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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어린이를 위한 선물, 전곡선사박물관/황규호 언론인

    [시론] 어린이를 위한 선물, 전곡선사박물관/황규호 언론인

    어느 해 겨울 이야기다. 정월 초순이었으나, 겨울은 분명했다. 서울을 떠나 파리를 경유하고 나서, 고깔 모양의 아이스크림 껍데기를 거꾸로 박아 놓은 듯한 니스 공항에 내렸다. 겨울은 오간 데가 없고, 따사로운 볕이 마치 봄날 같은 지중해 연안 남프랑스의 겨울이 정겨웠다. 여기서부터 서남프랑스에 이르는 지역의 구석기시대 유적을 거의 훑어본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가 말하는 구석기시대 유적은 인류가 먼 옛날에 남긴 삶의 자리다. 타임머신을 타고 1만년이 넘는 세월을 뒷걸음쳐야 구석기시대 끝자락을 겨우 만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줄잡아도 100만년 전부터 시작한 구석기시대는 선뜻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역사의 뒤안으로 까마득히 멀다. 그해 겨울 여행에서, 마주친 서남프랑스는 구석기시대 문화가 아주 함초롬한 유서 깊은 땅이었다. 비제르 강이 도르도뉴 강으로 흘러드는 넓고도 긴 물길을 가운데 두고, 양안(兩岸)의 석회암 벼랑마다 유적이 촘촘히 들어앉았다. 가히 후기 구석기 문화의 보고였다. 소설 북회귀선의 작가 헨리 무어는 이 물길을 가리켜 “사람의 영혼을 살찌게 한 꿈이 살아 숨 쉬는 도르도뉴”라는 말로 예찬한 적이 있다. 이 물길 상류인 비제르 강가의 레저지 드 다야크 마을에는 유명한 아브리 파토 등 여러 유적이 자리했다. 이른바 ‘마담 파토’로 일컫는 젊디젊은 여인네 인골이 나온 유적이 아브리 파토다. 유적은 19세기 말에 발견되었으나, 본격적인 발굴은 20세기 중반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 할렘 모비우스 손에서 이루어졌다. 서남프랑스 외진 산골로 달려와 꽤 이름을 날렸던 고고학자 모비우스의 체취를 느껴야 했던 감회가 남달랐다. 그는 후기 구석기시대를 거꾸로 껑충 뛰어넘은 전기 구석기시대 유물 주먹도끼 분포 지역을 유럽과 인도 북쪽으로 좁게 들여다보았던 근시안적 인물이다. 유럽의 문화 우월주의를 애써 강조했던 이른바 ‘모비우스 라인’은 뒷날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를 뒤엎은 중심에는 경기도 연천읍 전곡리 유적이 버티고 있다. 지난 1979년 첫 발굴 이후 아슐리안 문화를 대표하는 전기 구석기시대 돌연모 주먹도끼가 쏟아져 나온 데가 바로 전곡리 유적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전곡리는 동아시아 전기구석기 문화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런데 경기도가 최근에 지은 전곡선사박물관(全谷先史博物館)이 오는 25일, 마침내 문을 연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제야 속에 담아 두었던 응어리 하나가 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프랑스를 여행하는 동안 니스 라자레 동굴 유적과 파리 교외 숲 속의 선사박물관 일 드 프랑스에서 만났던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을 잊을 수 없다. 이미테이션 유물을 장난감 삼아 즐겁게 노는 이들 초등학생이 부러웠다. 그리고 자연사박물관을 들렀을 때, 온갖 동물의 미니어처 표본을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바라보던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도 무척 부러웠던 터라, 여태 지우지 못한 프랑스 여행의 응어리로 남았다. 그래서 마무리 치장이 한창인 전곡선사박물관을 엉겁결에 미리 찾았다. 용이 똬리를 튼 것처럼 기묘한 모양새로 지은 박물관 2층 상설전시관 문을 열면서, 깜짝 놀랐다. 이게 웬일인가, 털북숭이 투마이로부터 현생 인류로 접근한 막달레니안에 이르는 14개 그룹의 인류가 어정어정 걸어나왔다. 그리고 진화의 시간표에 따라 인류와 더불어 진화한 매머드 따위의 고생동물이 끼어들어 전시관 풍경은 스펙터클한 감흥으로 다가왔다. 추가령구조곡(楸哥嶺構造谷)을 따라 이루어진 제4기 지질시대의 한탄강가 용암대지(鎔巖臺地)도 한눈에 잡혔다. 헨리 무어가 살아서 전곡리를 보았더라면, 무슨 말로 찬탄했을지 궁금하다. 어떻든 어린이날이 들어간 5월이 곧 다가온다. 전곡선사박물관은 인간의 심성을 보듬는 인문학의 산실일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린이를 위한 세계적 문화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어린이는 꿈을 먹고 산다는 얘기는 무한한 가능성을 말하지 않는가.
  • 5000년 전 게이가 커밍아웃? 그 근거는…

    5000년 전 게이가 커밍아웃? 그 근거는…

    고대 여성의 무덤에서만 보이던 특징이 한 남성의 무덤에서 발견됨으로서 5000년 전에도 동성애자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연구에 나선 고고학자들이 5000년 전 원시인의 것으로 추측되는 무덤의 특징을 살펴본 결과 지금까지 알려진 성별에 따른 매장법과 다른점을 발견했다. 체코에서 발견된 이 무덤은 BC 2900~2500 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 시기에 남자가 숨을 거두면 머리를 서쪽으로 둔 채 몸을 오른쪽을 향하게 두고 매장하는 것이 풍습이었다. 여성은 반대로 동쪽을 향해 머리를 두고 몸을 왼쪽을 향하게 눕힌 뒤 매장했다. 또 남자가 숨지면 대부분 돌이나 망치 등 무기들을, 여자가 숨지면 액세서리나 주방용품 등을 함께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하지만 체코에서 발견된 이 무덤 속 남성은 머리를 서쪽으로 둔 반면 몸은 왼쪽을 향해 눕혀진 상태였다. 특히 단 하나의 무기도 발견되지 않은 대신 주방에서 쓰는 주전자만 함께 출토된 점이 학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고고학자들은 당시 사람들이 장례풍습을 매우 중시한 점을 미뤄, 이 같은 매장품들과 몸이 향하는 방향이 단순한 실수가 아닐 것이라고 주장한다. 연구를 이끈 카밀라 레미소바 베시노바 박사는 “이번에 출토된 유골의 주인은 남다른 성적 성향을 가졌을 것”이라면서 “호모섹슈얼이거나 트랜스베스테이트, 즉 이성 특히 여성의 복장을 좋아하는 복장 도착자 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구로역사 인터넷에 담다 ‘디지털구로문화대전’ 이달 오픈

    조선시대 인천과 서울을 오가던 행인들의 쉼터 오류동 주막거리 객사는 지금 어떻게 탈바꿈했을까. 구로공단 여공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10여년 전 ‘IMF시대’ 가리봉동은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전승되어 내려오는 문학은 어떤 게 있을까. 석기시대부터 현대까지 구로구 역사를 모두 담은 사이트가 탄생했다.구로구는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함께 문화, 정치, 경제, 사회 등 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구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 인터넷 백과사전 ‘디지털구로문화대전’(guro.grandculture.net) 웹사이트를 이달 중 공식 오픈한다고 7일 밝혔다.디지털구로문화대전은 구와 교육과학기술부가 총 6억원을 투입, 2009년 4월부터 지난해까지 구로 지역의 역사를 데이터베이스(DB)화해 구축한 것이다. 현재 베타버전이 시험 운영 중이다. 이곳에 담긴 자료는 자연과 지리, 역사, 문화유산, 성씨와 인물, 정치·경제·사회, 종교, 문화와 교육, 생활과 민속, 구비전승과 어문학 등 총 9개 분야에 걸쳐 200자 원고지 1만 2000장, 멀티미디어 자료 2075종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다. DB 카테고리는 ▲향토문화백과, 구로의 특별한 이야기, 구로의 마을이야기 등 콘텐츠 분야 ▲디렉토리 분류 ▲콘텐츠 색인 ▲전자지도 ▲전자연표 ▲시청각 자료로 분류돼 있다.이성 구청장은 “역사라는 것이 자료가 남아있지 않으면 다 사라져 버린다.”며 “과거를 찾아내고 현재의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 만든 디지털구로문화대전을 통해 구가 재조명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5300년전에도 훈남이?”…아이스맨 얼굴 복원

    “5300년전에도 훈남이?”…아이스맨 얼굴 복원

    ‘아이스맨 외치’라 불리는 5300년 전 남성 얼굴이 복원돼 눈길을 모으고 있다. 1991년 독일과 오스트라이 국경 부근의 외치 계곡 빙하에서 발견돼 ‘외치’라 명명된 이 미라는 ‘아이스맨’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네덜란드 과학자들은 미라 상태로 발견된 외치의 두개골 3차원 영상과 적외선 영상, 첨단 법의학 단층 촬영 기술 등을 총 동원해 5300년전 사람의 얼굴을 복원해내는데 성공했다. 5300년 전 티롤의 산속에서 산 석기시대 인류로 추정되는 외치는 나이 45세, 키 160㎝로 알려져 있다. 당시 함께 발견된 옷가지와 무기 등은 과거 석기시대 유럽의 생활환경을 추측하는데 큰 도움을 가져다 줬다. 복원된 외치의 외모는 주름이 많고 볼이 움푹 패여 현재의 45세 남성과는 다소 다른 이미지지만, 오랜 사냥꾼의 모습처럼 강인한 인상을 풍긴다. 또 최신 연구에 따르면 유럽인 특유의 푸른 눈동자 대신 갈색 눈동자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아이스맨 외치의 얼굴 모델은 이탈리아 남티롤 고고학박물관에서 ‘외치 발견 20주년’을 기념해 3월 1일부터 전시된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부산서 8000년 전 공동묘지 발굴

    부산서 8000년 전 공동묘지 발굴

    약 8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신석기시대 초기 때 만들어진 공동묘지가 부산 가덕도 신항 예정지에서 발굴됐다. 옛 ‘부산사람’의 인골도 발견됐다. 이 묘지는 현재까지 보고된 신석기시대 공동묘지 중 연대가 가장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규모도 최대여서 고고학계의 관심을 모은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국문물연구원은 부산 성북동 가덕도 일대 부산 신항 준설토 투기장 예정지 일대에서 신석기 전기(기원전 6000~4000년)로 추정되는 인골 26기와 함께 완형 토기 30점을 비롯한 상당수의 신석기 유물을 발굴했다고 17일 밝혔다. 문물연구원은 지난해 6월부터 부산지방해양항만청의 의뢰로 발굴조사를 벌여 왔다. 발굴된 신석기 인골들 가운데 상당수는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인골은 서로 중첩되지 않고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이곳이 집단 매장터로 확인됐다. 또 이들 인골의 머리가 모두 북쪽으로 향해 있고 인골마다 옥이나 고래 가슴뼈, 상어 이빨, 융기문(隆起文)이나 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 등이 함께 묻혀 있어 신석기시대 장례의식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고래 가슴뼈는 길이 70㎝에 타원형(긴쪽 지름 7㎝)으로 양쪽 끝을 의도적으로 절단해 묻은 것으로 확인됐으며 길이 7.2㎝의 옥도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이 옥은 신석기 전기 무덤에서 나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인골의 연대를 신석기 전기로 추정하게 된 결정적 자료는 압인문·융기문토기였다. 통상 신석기 토기의 대표로 꼽는 빗살무늬(櫛文·즐문)토기는 신석기 중기부터 나오며 이들 두 유형 토기는 그 이전 단계부터 사용됐기 때문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생활과 육체의 시간차는 2만년?… 몸은 아직도 진화중

    정글에서 갈기 곧추세운 수사자와 마주쳤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 당신은 화들짝 놀랄 게다. 그때 당신의 표정을 그려 보자. 눈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치켜뜨고, 입과 콧구멍 또한 한껏 벌린 상태가 된다. 이번엔 썩어 가고 있는 동물 사체를 목격했다. 그때 당신 표정은? 코를 잔뜩 찡그리고,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할 것이다. 당연한 듯 보이는 이런 행동들의 이면엔 생존을 위한 진화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땐 눈을 크게 뜨고 콧구멍을 벌려야 더 많은 시각 정보와 냄새 정보를 받아들여 위험에 대처할 수 있다. 반대로 썩은 사체 앞에서 입을 다물고 콧구멍을 좁힌 채 시선을 돌리는 것은 병원체가 우리 몸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반사작용이다. 이처럼 인간의 몸이 외부 작용에 반응하는 양식은 모두 자연 선택의 결과다. 단세포 생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진화를 거듭하면서 어떤 특질들은 보존되고 어떤 특질들은 사라졌다. 즉 현재 우리 몸은 환경에 부단하고도 긴 적응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자연사(史)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엘리트다. 그해 번식에 성공한 가장 우수한 자들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몸은 완벽과는 거리가 있다. 예컨대 불필요한 듯 보이는 사랑니와 맹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자 몸 속의 산도(産道)는 고통 없이 출산할 수 있을 만큼 넓어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우리 몸은 석기시대’(데트레프 간텐·틸로 슈팔·토마스 다이히만 지음, 조경수 옮김, 중앙북스 펴냄)는 진화론을 한가운데 놓고 현대인의 건강과 질병 문제를 짚어 본 교양과학서다. 책은 우리 몸의 불완전성에 대해 지구상의 생명 발달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으며 진화의 결과물인 인간의 몸도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우리의 행동과 생활양식은 변했지만 우리 몸은 아직 2만년 전 석기시대 그대로라는 얘기다. 그러니 ‘몸과 환경의 마찰음’은 당연할 수밖에 없으며, 질병을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하려면 먼저 진화의학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의학 교수와 생명과학 담당 저널리스트들로 구성된 저자들은 암을 비롯한 비만·고혈압·당뇨병 등 각종 질환과 진화의 연결고리를 자세하게 그려 놓고 있다. 비듬·대머리·털·피부·비타민 등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설명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기존 의학상식을 뒤집는 내용들도 많이 담겼다. 아울러 최근 의학계 동향을 쉽게 풀어내 의학 문외한들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게 했다. 1만 5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제주서 첫 구석기유물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서귀포 천지연폭포 인근의 바위그늘 유적에서 구석기 시대 유물이 다량 발견됐다. 국립제주박물관은 서귀포시의 의뢰를 받아 지난 8월 20일부터 2개월간 서귀동 천지연폭포 하구 동쪽 절벽 아래에 있는 ‘생수궤’에 대한 고고유물 조사를 벌인 결과 돌날몸돌과 좀돌날몸돌, 긁개와 밀개 등 유물을 다량 발굴했다고 14일 밝혔다. 이 유물들 가운데 낙반석을 이용해 만들어진 돌날몸돌은 평면형태가 삼각형이며 두께가 얇은 것이 특징이다. 이 유물은 1점만 발굴됐지만, 한반도 동굴유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또 좀돌날이 떼어진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좀돌날몸돌은 4점가량 출토됐으며, 긁개와 홈날, 톱니날과 밀개 등 잔손질한 석기류도 다량 발굴됐다. 석기류 날의 평면형태는 낙반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손상과는 분명하게 구별될 만큼 규칙적이고 뚜렷하게 손질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제주박물관 오연숙 학예연구사는 “이번에 발견된 돌날몸돌과 좀돌날몸돌은 생수궤유적이 적어도 후기 구석기시대에 형성되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라며 “이번 조사는 제주 고고학의 공백시대인 구석기시대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준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충북대 박물관서 구석기 특별전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은 8일 충북대 박물관에서 ‘구석기시대로의 여행-석기’ 특별전의 개막식을 갖는다. 충북대 박물관 개관 40주년을 기념해 12월18일까지 열리는 이번 특별전에는 청원 두루봉과 소로리·만수리, 단양 수양개와 구낭굴, 청주 복대동, 제천 두학동, 양평 도곡리 등 이 원장이 발굴한 구석기 유물이 대거 출품된다.
  • 도심 한복판서 원시시대 체험…모형유물 발굴해 기념품으로

    도심 한복판서 원시시대 체험…모형유물 발굴해 기념품으로

    서울 도심 한복판에 6000여년 전 원시시대 생활상을 직접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체험 공간이 처음 등장했다. 강동구는 암사동 선사주거지 옆에 ‘선사체험마을’을 조성해 5일 정식 개장한다. 선사주거지는 기원전 3000∼4000년 전 신석기시대 집단취락지이다. 1967년 발굴이 시작돼 1979년 국가사적 제267호로도 지정됐다. 이어 1988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됐지만, 7만 8793㎡ 부지 전체가 유적지인 탓에 방문객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을 갖추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구는 선사주거지 옆 2만 3208㎡ 부지를 추가로 확보해 체험 공간으로 꾸민 것이다. 때문에 선사체험마을은 배움터이자 놀이터 역할의 에듀테인먼트(Education+Entertainment)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습·놀이 기능에 초점 마을 입구를 지나면 마주하는 ‘시간의 동굴’에서는 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시대별 역사를 담은 영상자료가 펼쳐진다. 이어 동굴을 벗어나면 신석기시대 움집과 토기 등 당시 생활상이 연출된다. 또 어로·수렵·발굴 체험장에서는 자연형 하천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모의 사냥 체험을 하고, 모형 유물을 발굴해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다. ●나무·바닥도 당시 재현 노력 방문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상수리·떡갈나무와 진달래 등 조경수는 신석기시대 당시에 번성했던 식물 위주로 심어졌다. 탐방로 역시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대신 물이 스며드는 친환경 흙포장제가 사용됐다. 마을은 월요일을 제외한 연중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각종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인터넷(sunsa.gangdong.go.kr)을 통해 사전 예약해야 한다. 체험비는 프로그램당 3000~5000원 수준이다. 구는 또 내년 여름방학부터는 움집에서 1박2일 동안 원시생활을 체험해 보는 원시체험캠프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해식 구청장은 “이번 선사체험마을 개장으로 암사동 선사주거지 관람객이 현재 연간 19만명 수준에서 30만∼50만명 정도로 늘어날 것”이라면서 “올림픽대로 때문에 단절된 선사유적지와 한강을 연결하고, 선사유적지 인근에 암사역사생태공원을 추가 조성하는 등 공간의 질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구는 오는 8∼10일 선사주거지 일대에서 ‘제15회 강동선사문화축제’를 개최한다. ‘선사의 숨결, 소통과 나눔으로 피다’를 주제로 각종 체험·공연·전시·교육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숨쉬는 그릇’ 옹기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숨쉬는 그릇’ 옹기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중학교 역사 시험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문제다. 정답은 ‘빗살무늬토기’. 이 땅에서 농경이 시작될 때 씨앗을 담았던 최초의 옹기(甕器)다. 옹기는 간장, 된장, 김치 등 우리의 독특한 음식을 저장하는 용구로, 제조 기능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소박하고 정겨운 옹기에는 안주인의 살림 솜씨가 묻어 있다. 장독대를 지키던 옹기는 아파트 중심의 주거 문화와 플라스틱 그릇에 밀려 점점 사라지고 있다. 최근 옹기의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외고산 옹기마을서 옹기엑스포 개막 찾아간 곳은 울산시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 옹기마을. 6·25전쟁이 터지자 영남 일대에서 옹기를 굽던 사람들이 모여들어 지금까지 전통 방식대로 옹기를 제조하고 있는 곳이다. 30일 이곳에서 ‘울산 세계 옹기문화 엑스포’가 막을 올린다. 50년 동안 옹기를 만들어 온 신일성(67·무형문화재 제4호)씨는 전통기법에 따라 찰흙을 발로 반죽하고 있었다. 부채처럼 펼쳐지는 반죽이 내려칠 때마다 찰기를 더해 갔다. 반죽을 바닥에 메치는 판장질과 물레작업으로 모양이 드러나는 옹기는 사나흘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린 뒤 천연 잿물을 입혀 전통 ‘뻘통가마’에서 1주일 동안 굽는다. 신씨는 지난해부터 전통 옹기가마 복원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전통 가마는 내화 벽돌을 황토로 붙이고 틈새를 옹기조각으로 메우는 고난도의 작업을 거쳐 만들어진다. ●통기성·정화력… 전통과학의 결정체 한때 기술을 전수받으려는 사람이 없어 옹기 제조의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이에 울산시가 지난해 옹기 제조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한 대책을 내놓아 명맥을 이어 갈 수 있게 됐다. 저장과 발효용으로 요긴하게 쓰이는 옹기는 흙과 잿물, 구워 내는 가마에 따라 특성이 달라진다. 신씨는 “잿물을 발라 구우면 결정수가 빠져나가면서 숨구멍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뛰어난 통기성과 정화 능력이 있는 옹기는 전통 과학기술의 결정체이며 ‘숨 쉬는 바이오 그릇’이다. 농촌진흥청 한귀정 발효이용과장은 “숨 쉬는 옹기를 사용해온 우리나라는 발효·숙성 음식의 종주국”이라면서 “항아리의 불룩한 부분은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서 고른 온도를 유지하도록 해 음식의 변질을 막고자 친환경적으로 고안된 것”이라고 말했다. 옹기는 대대손손 백성들과 함께해 온 민족의 그릇이다. 청자나 백자처럼 우아하지는 않지만, 투박한 빛깔과 불룩한 몸통에서는 흙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래서 옹기는 자연과 우리의 삶을 이어 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글 사진 이종원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시론] 원로 사회학자에게 보내는 박수/황규호 언론인

    [시론] 원로 사회학자에게 보내는 박수/황규호 언론인

    어떤 이들은 서구 열강이 세계를 마음대로 나누어 차지했던 영토제국주의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고 말한다. 그 대신 문화제국주의라는 새로운 침략 수단이 빈자리로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제국주의는 이 시기에 국한한 현상만은 아닌 듯하다. 오늘날 중국이 주권국가인 우리네 역사를 무시한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속내를 들여다 보노라면, 더욱 그렇다. 이같은 중국의 역사 왜곡은 자기네를 세계 한가운데 놓고, 다른 이웃을 전적으로 얕잡아 보는 역사를 쓰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니까 기원전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악명 높은 지배 이데올로기 중화주의(中華主義)가 오늘의 21세기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 며칠 전 한국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중국인 유엔 고위직 외교관이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는 말을 떠올리면,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땅 한 뼘이 삶보다 중요하다.”는 그의 주장을 곱씹을 때, 지금 중국은 영토제국주의와 문화제국주의가 맞물려 돌아가는 시대를 맞았는지도 모른다. 우리네 자존에 올가미를 씌운 중국 동북공정에 맞설 뚜렷한 학술적 이론은 정녕 없을까. 그렇지 않다는 믿음을 심어줄 저술 한 권이 최근 세상에 나왔다. 이는 역사학자의 저술이 아니거니와, 역사학과 아주 가깝다는 고고학 전공도 아닌 사회학자가 썼다는 점에서 펴뜩 눈길을 끈다. 그동안 고고학계가 밝힌 여러 편린의 학술적 성과를 모아 한국상고사(上古史) 실체에 접근한 저술이고 보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을 실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에 원로 사회학자 신용하 교수가 내놓은 ‘고조선 국가 형성의 사회학’에 박수를 보낸다. 사회사로 온통 일관한 저술로 여길지 모르지만, 지은이는 먼저 고고학 쪽에서 한국상고사의 실마리를 찾는다. 이를테면 인류가 혹독한 추위의 구석기시대 빙하기를 용케 버틴 지역을 북위 40도 이남으로 보고, 이때 살아남은 무리가 신석기인으로 진화한 최초의 한국인 원류에 해당하는 한(韓·桓·馬于)부족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원전 1000년쯤부터 한반도에 나타난 신석기시대 유적에 주목하면서, 경기도 양평 앙덕리 등지의 한강 유역에 분포한 덮개돌식(蓋石式) 고인돌을 들추었다. 이와 더불어 남한강 유역의 신석기시대 집자리 출토품인 뾰족밑 빗살문토기에서는 수확한 곡물을 갈무리할 만큼 생산기반을 갖추었던 농업구조 흔적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들 농경문화 주체의 근거지는 한강 분수령을 경계로 물길이 남하한 금강 상류까지를 싸잡아 한강문화권에 넣었다. 그 경제기반으로는 일찍 벼를 심기 시작한 금강 상류의 충북 청원 소로리를 비롯, 한강 하류인 경기 고양 가와지와 김포 가현리 등지의 고대 볍씨 출토 지역을 꼽았다. 어떻든 남성 군장(君長)을 우두머리로 삼은 부계공동체 사회였던 한강문화권의 ‘한’ 부족 주체세력은 북으로 올라가 대동강 유역에 새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맥(貊)’부족 및 ‘예(濊)’부족과 서로 어울려 선돌에 덮개돌을 얹은 덩치가 큰 탁자식 고인돌을 지었다. 탁자식 고인돌은 왕의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거석문화(巨石文化)인데, 이를 축조할 무렵인 기원전 30세기~기원전 24세기쯤에는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이 건국되었다. 이 때 고조선 왕을 배출한 ‘한’부족은 혼인동맹을 통해 ‘맥’부족을 건국세력으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중국이 마냥 자랑하는 대릉하 유역의 우하량(牛河梁) 유적 출토 토제여신상(土製女神像)은 여자를 부족장으로 삼았던 ‘맥’부족의 모계사회를 상정한 유물로 풀이했으니, 중국은 허탈감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더구나 논픽션의 기자(箕子)동래설을 앞세워 한국상고사의 고조선 실체를 얼버무린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한국을 착한 이웃으로 생각한다면, 동북공정 같은 악성 문화정책보다는 남을 존중하는 상대문화주의의 길로 나오기를 바란다.
  • [기고] 강릉 저탄소 시범도시에 바란다/김도경 강원대 건축학 교수

    [기고] 강릉 저탄소 시범도시에 바란다/김도경 강원대 건축학 교수

    오늘날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는 친환경, 생태, 저탄소, 녹색성장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 등과 같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에서 비롯된 말들이다. 그 결과 산업혁명 이후 절대적으로 신봉되었던 과학문명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며, 친환경과 생태산업이 새로운 산업으로 주목받는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어 우리나라에서도 21세기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산업의 진흥을 위해 정부는 강릉시와 함께 경포대 일원에 저탄소 녹색성장 시범도시를 조성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여기에는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어 환경 문제를 도시와 결합시켜 해결한 시범도시를 만듦으로써 국내에 저탄소 녹색산업 붐을 일으키고 나아가 세계의 저탄소 녹색산업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시범도시 조성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도시와 건축에 대한 우리만의 차별화된 시각이 필요하다. 동양 사상에 대우주(大宇宙), 중우주(中宇宙), 소우주(小宇宙)라는 말이 있다. 대우주는 자연을, 소우주는 소아(小我), 즉 사람을 의미한다. 중우주는 자연과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이다. 또한 인간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공존해야 할 존재이다. 이러한 의미를 보다 확장시켜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적용할 때, 강릉 시범도시 조성사업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차별화된 특성을 지닌 성공적인 사업이 될 것이다. 강릉은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는 명품도시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단오제를 비롯한 무형의 문화유산은 물론 초당동의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신라의 고분군과 굴산사지, 조선의 강릉향교와 객사문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문화유적이 있다. 특히 경포호 일대의 호수와 산, 바다,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관동팔경 중에서도 으뜸에 속한다. 또 그 주변으로는 경포대를 비롯해 방해정, 금란정, 경호정, 해운정, 선교장, 오죽헌, 이광로 가옥을 비롯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수많은 누정과 주택이 포진해 있다. 이곳에 그린 IT 기술, 경전철, 신·재생에너지 복합단지, 탄소 중립형 에코 빌리지 등과 같은 첨단의 과학기술을 적용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 환경적 가치를 바탕으로 할 때 부각될 수 있다. 또 이 사업은 이 지역의 주민을 중심에 두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진행해야 한다. 이 지역 사람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살기 좋은 도시가 될 때 비로소 강릉의 역사와 문화가 지속되는, 진실로 타의 모범이 되는 시범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녹색도시 조성의 꿈은 단순한 첨단 과학기술의 적용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도시와 건축을 매개로 땅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며 지속적으로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키겠다는 생각으로 강릉만의 특화된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세계의 저탄소 녹색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 신석기시대 고래사냥 했다

    신석기시대 고래사냥 했다

    울산에서 신석기시대 전기(기원전 6000~4000년) 뼈로 만든 화살촉이 박힌 고래뼈 2점이 발견됐다. 이번 고래뼈 발견으로 인류의 고래사냥 역사가 새로 쓰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7일 한국문물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과 이달 초 두 차례에 걸쳐 울산 황성동 처용암 앞 울산 신항만 연결도로 개설공사 현장에서 2㎝ 크기의 뼈로 된 화살촉이 박힌 고래 흉추조각(윗지름 30㎝, 밑지름 20㎝, 높이 20㎝) 1점과 4㎝ 뼈 화살촉이 박힌 부채꼴 모양의 고래 견갑골조각(양측 반지름이 각각 31㎝, 36㎝인) 1점이 각각 출토됐다. 화살촉은 원통 모양에 끝 부분이 뾰족한 몽당연필처럼 생겼고, 사슴 앞다리 뼈를 갈아 만든 것으로 추정됐다. 이 고래뼈는 우리나라 포경 역사를 보여 주는 가장 오래된 유물이라고 한국문물연구원은 설명했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우리 민족의 뿌리 초원 실크로드서 만나다

    우리 민족의 뿌리 초원 실크로드서 만나다

    중국 내몽고 지역에서 찾아낸 훙산(红山) 문명. 중국사의 근간인 황허(黃河) 문명을 비롯한 세계 4대 문명보다 더 오래됐다고 전해진다. 훙산 문명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중원(황허) 문명을 창조한 화하족이 아니라 동이족이라고 한다. 동이족은 우리의 먼 조상 격이다. 중국이 동북공정, 요하문명론을 들먹이는 마당에 훙산 문명의 주역이 동이족이라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문명교류학의 권위자 정수일(76) 박사는 훙산 문명과 우리 고대 문화 사이에는 여러 상관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한반도 20여곳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한 암각화가 훙산 문명에 속하는 츠펑시에서 발견됐다는 점도 그 중 하나다. 중원 문명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정 박사는 그러나 역사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면서도 역사의 진실을 100분의1도 채 알지 못하는 인간이 문명중심주의와 문명단원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며 단세포적인 편단이라고 강조한다. “중국이 주장하는 이른바 통일적 다민적 국가론에 입각해 고조선에서부터 발해까지의 우리 민족사를 저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물론, 우리들 속에서 튀어나오는 비현실적이며 복고주의적인 고토 회복 운운도 지양해야 한다.” ●초원길, 오아시스·해상로보다 일찍 개통 정 박사는 중국, 몽골, 시베리아 초원을 거쳐 모스크바에 이르기까지 약 2년간의 답사를 담은 초원 실크로드 기행 실록을 냈다.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창비 펴냄)이다. 동서 문명 교류 통로인 실크로드는 오아시스로, 초원로, 해상로가 있다. 이른바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이다. 연구가 집중된 오아시스로와는 달리 3대 간선 가운데 가장 일찍 개통된 초원로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 박사는 “근 5000년 전에 신석기시대를 갓 벗어난 에게해의 애송이 문화를 에게 문명으로 정의하면서도 이보다 3000년 후에 완숙한 금속문화를 가꾼 유목기마민족의 문명은 주변 문화로 비하하고 홀대해 왔다.”며 서구의 문명중심주의를 그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가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의 대흥안령산맥에서 시작해 몽골 초원과 카자흐 초원을 지나 동유럽에 이르기까지 폭 수백킬로미터의 초원 지대를 누빈 까닭은 초원로가 거칠고 험하지만 일찍이 찬란한 초원 문명을 잉태하고 전파시킨 소통의 길이며, 문명 교류의 최초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선구의 길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 민족의 뿌리를 내리게 하고 가지를 뻗게 한 결연(結緣)의 길인 까닭이다. ●바이칼 주변 민족 DNA, 우리와 거의 일치 그래서 그는 초원로에서 우리 민족의 삶을 찾으며 뿌리를 더듬는다. 우리의 뿌리를 러시아 바이칼 호수에서 찾기도 한다. 해빙기에 큰 홍수가 일어나자 바이칼에 살던 구석기인들이 남쪽으로 내려와 한반도에 정착했고, 이때문에 야쿠트, 부리야트 등 바이칼 주변의 민족과 우리 유전자(DNA)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초원로에서 우리 뿌리의 흔적은 물론, 오늘날 반추해야할 교훈까지 찾아낸다. 창의적인 조화와 융합이 다문화 사회의 성공 비결이라는 것, 닫힌 사회는 망하고 열린 사회만이 살아남는다는 것 등이다. 궁극적으로 초원로를 통해 교류와 소통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6년 ‘실크로드 문명 기행:오아시스로 편’을 냈던 저자는 앞으로 해상 실크로드 기행을 통해 실크로드 답사를 완결할 예정이다. 2만 3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객원칼럼] 일제고사 논란과 사회제도로서 교육의 가치/정인학 언론인

    [객원칼럼] 일제고사 논란과 사회제도로서 교육의 가치/정인학 언론인

    이번에도 일제고사 논란이 그냥 지나치질 않았다. 일제고사가 한국교육의 본질이 되었다. 직선 교육감을 뽑았던 터라 소리가 요란하다. 한편에서 일제고사를 실시하라 지시하고 다른 쪽에선 학생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단다. 일제고사가 도입된 2008년과 똑같은 주문만 되뇐다. 하나같이 학생들을 위하고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위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교육의 본질적인 사회적 역할은 온데간데 없고 그들만의 아집만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교육은 다음세대를 사회화하는 사회제도다. 교육은 인류의 생존과 함께 시작되었다. 석기시대 아버지는 아들에게 돌 다듬는 법을 가르쳤고, 농경시대 어머니는 딸에게 길쌈 법을 가르쳤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교육은 전문가의 몫이 되었고 그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가치와 지식 그리고 미래의 비전과 기술을 가르쳤다. 교육은 시대, 지역에 따라 그 방식을 달리해 왔지만 언제 어디서나 국가 사회의 물리적 기반을 강화하고, 시대를 넘어 관통할 수 있는 가치를 우선 전수한다는 좌표만은 변함이 없었다. 교육은 개인의 사회화 과정이요, 공동체 전체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사회제도였다. 일제고사에 대한 학생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며 일제고사를 사실상 거부하는 주장에 이의 있다. 수험생인 학생은 우리 공동체를 이끌어갈 다음의 세대로 지금 교육의 결정권자가 아니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에게 일제고사 선택권을 줘야 한다면 교육감 투표권도 줘야 한다. 가치관과 세계관이 정립되지 않은 중학교 3학년 학생에게 어떻게 국가 사회라는 공동체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교육을 맡긴단 말인가. 솔직해지자. 초·중·고생 인격 운운하지 말아야 한다. 초·중·고생의 생각이나 판단 준거는 그 학생이 좋아하는 교사의 그것과 닮은 꼴이기 십상이다. 일제고사는 학생이 아니라 바로 어른들이 결정해야 한다. 일제고사는 또 학교교육의 비정상화를 유발한다고 지적한다. 일제고사에 대비한다는 0교시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의 교육적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0교시수업과 야간자율학습 그 자체가 일제고사 거부의 이유가 못 된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0교시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을 안 하면 될 것이다. 일제고사가 없다면 0시교시수업도 하지 않을 것이니 일제고사를 거부해야 한다는 논리는 인간의 의지적 영역을 부인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일제고사를 거부하려면 일제고사가 사회 제도로서 교육 본래의 가치에 어떻게 어긋난다는 이유를 제시해야 비로소 설득력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일제고사를 실시해야 할 적극적인 가치는 있는가. 일제고사는 단편적 지식의 평가시험으로 창발적인 사고를 키워주는 방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서열화를 조장해 인성계발에 적합하지 않다고도 한다. 흔히 지금을 지식정보화 사회라고 규정한다. 당연히 역량 있는 개인으로 성숙하려면 최소한 지적 기반을 갖춰야 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한다. 확산적 사고력도 최소한의 지식적 기반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지적 활동이다. 일제고사에 대비하는 학습활동은 절제력과 인내력 그리고 선의의 경쟁의식 등을 일깨워주는 매우 효과적인 인성 교육 수단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 교육은 이제 일제고사 논란 따위는 집어 치워야 한다. 한국 교육은 학생들의 다양한 특기와 적성에 맞는 교육을 시행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학교를 다양화하는 한편 학교 교육과정의 다양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국가 사회에서 자기에 맞는 역할을 찾아내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어야 한다. 한국 교육은 의식과 발상의 다원성이라는 교육의 가치에 눈떠야 한다.다음 세대들이 적성과 특기를 살려 자기 길을 나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방안으로 밤을 새워야 한다. 청소년들이 국가 사회의 물리적 기반을 강화하고 문화적 바탕을 살찌우도록 해주어야 한다. 교육은 개인의 사회화 과정이요 공동체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사회제도라는 점을 반복해 둔다.
  • 유라시아서 가장 오래된 신발은 5500년 된 가죽신발

    2년 전 발견된 가죽신발이 유라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신발로 판명났다. 연구결과는 10일 온라인 학술지 PLoS ONE에 실렸다. 신발은 2008년 아르메니아의 바이오츠 드조르 주(州)의 한 동굴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는 한 여학생에 의해 발견됐다. 완벽한 상태로 보존된 신발은 2차례의 탄소 실험 결과 약 5500년 전 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991년 알프스빙하에서 발견된 가죽신발보다 약 300년 정도 앞서 만들어진 것이 된다. 신발은 이음새 없이 통짜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 앞부분에는 운동화처럼 가죽 끈을 묶게 돼 있다. 발을 감싼 형태로 보아 오른발에 신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이즈는 유럽 기준으로 37, 미국 사이즈로는 7정도다. 논문의 공동저자인 론 핀허시 교수(코크대)는 “남자의 것인지 여자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사이즈가 작은 편이지만 (당시 사람들의 덩치가 작았다면) 남자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크기였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발견 당시 신발 안에는 마른 풀이 들어 있었다. 풀의 용도는 명쾌히 밝혀진 게 없다. 발의 보온을 위해 마른 풀을 깔았거나 신발의 형태를 살리기 위해 풀을 넣은 것일 수 있다고 추정될 뿐이다. 외신은 “발견된 신발이 금석기시대 또는 청동기시대를 연구하는 데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발은 아르메니아의 고고학 연구소가 보관 중이다. 한편 지금까지 발견된 신발 중 가장 오래된 건 미국 미주리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샌들이다. 섬유재질로 만들어진 이 신발은 약 8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유적가치 후대 알리는 게 고고학 나눔운동”

    “유적가치 후대 알리는 게 고고학 나눔운동”

    “한반도 최대 구석기 출토지의 하나인 수양개 유적은 1980년 충주댐 수몰지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어요. 2008년까지 발굴 조사를 벌인 결과 중기 구석기시대와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이 대거 나왔습니다. 발굴된 유물을 한데 모아 이 전시관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9월까지 주제별로 5차례 열려 지난 8일 충북 단양군 적성면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에서 ‘이융조 교수와 함께 떠나는 선사유적 탐방’이 열렸다. 고고학자인 이융조 한국전통문화학교 초빙교수가 수양개 유적과 유물전시관의 유래를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수양개 유적에서 나온 주먹도끼가 지금 런던의 영국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말하는 순간 40명 남짓한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박수가 터졌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과 충청북도, 청주시가 공동으로 마련한 ‘…선사유적 탐방’은 ‘수양개와 그 이웃들Ⅰ’로 이름붙여진 이날의 첫 행사를 시작으로 오는 9월까지 모두 5차례 열린다. 평생을 구석기유적 연구에 헌신한 이 교수가 50만년 전 청원 두루봉 동굴부터 2500년 전 청원 아득이 고인돌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조사한 유적의 발굴 과정과 의미를 신세대들에게 직접 설명하는 자리이다. 이 교수는 “우리가 물려받았거나 공부하고 새로 터득해 갖게 된 것은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프로그램은 사회적으로 퍼져가고 있는 나눔운동에 고고학 분야가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고민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어린이들은 이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박물관을 둘러보고, 노교수에게 질문공세를 폈다. 어린이들은 남한강의 자갈돌을 재료로 석기를 만들고, 구석기시대 사냥법을 재현해 보기도 했다. 탐방이 끝나갈 무렵에는 수양개 유적의 중요성을 깨달은 듯 현재 남한강가에 수몰돼 있는 유적의 상태를 직접 살펴보면서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모습이었다. ●구석기시대 사냥법 재현 체험도 이 자리에는 역사학자인 신용하(이화여대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와 대표적인 출판인의 한 사람인 김경희 지식산업사 대표, 이 교수가 고고학에 관심을 갖도록 처음 이끌었다는 서산초등학교 시절 은사 이한승 선생이 함께해 어린이들에게 역사와 고고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만화계의 중진인 김광성 화백도 참석해 강의 내용을 만화로 만들어 출판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선사유적 탐방’은 ▲6월26일 수양개선사유적전시관에서 ‘수양개와 그 이웃들 Ⅱ’에 이어 ▲7월10일 충주박물관에서 ‘조동리에 살았던 청동기시대 사람들’ ▲8월14일 청주문화원에서 ‘흥수아이는 누구일까’ ▲9월11일 옥천문화원에서 ‘안터의 임신한 미인’을 주제로 열린다. 단양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울주 역세권 개발 현장서 구석기유물 발굴

    울주 역세권 개발 현장서 구석기유물 발굴

    울산 울주군 삼남면 KTX역세권 개발 현장에서 구석기시대 석기류가 다량으로 발굴됐다. 이 일대는 구석기시대 석기 제작 장소로 추정되고 있다. 6일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에 따르면 울주군 삼남면 신화리 KTX역세권 개발구역에 대해 문화재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구석기시대의 새부리 모양 석기, 외날찍개, 옆날 긁개, 수정 및 석영재 석기 등을 다량 발굴했다. 이와 함께 당시 석기 제작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망치돌과 모루돌 등도 발굴됐다. 연구원은 이날 현장에서 지도위원회를 개최해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약 2만년 전의 구석기시대 생활유적으로 평가된다.”면서 “청동기시대 지층 아래에 형성된 구석기시대 지층과 다량의 석기, 석재는 울산 뿐 아니라 한국의 구석기시대 문화상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지방시대] 청정섬 꿈꾸는 가파도/김태윤 제주발전연구원 연구실장

    [지방시대] 청정섬 꿈꾸는 가파도/김태윤 제주발전연구원 연구실장

    제주의 부속섬인 가파도는 제주도 남서부 해안 모슬포에서 남쪽으로 약 2.2㎞ 떨어진 곳에 있는 마름모꼴, 가오리 모양을 하고 있는 유인도이다. 가파도에는 2009년 말 현재 134가구 292명이 살고 있는데 해마다 감소추세다. 2000년도에만 해도 407명이 거주하였는데 9년 동안에 115명, 무려 30% 가까이 감소하였다. 가파도의 전체 면적은 97만 1606㎡이다. 토지 이용현황을 살펴보면 경작지인 밭과 나대지·묘지 등을 합한 면적이 전체의 90.1%를 차지하고 있어, 가파도의 원풍경이 많이 바뀌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체 인구의 52.8%인 162명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 나머지가 농업에 종사하며,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보리와 고구마를 주로 재배하고 있다. 가파도의 옛 모습은 어떠했을까? 가파도의 형성 시기는 대략 신생대 제4기 제주도의 형성 초기와 연관되어 있다, 가파도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조면암질안산암류가 제주도의 남부 저지대에 분포하고 있어 시대적 연관성을 유추할 수 있으나 제주 본섬과는 다른 독립된 화산체로 추정하고 있다. 이때 형성된 암석해안이며 해안단구 지형은 현재까지도 본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가파도에 분포하는 유적에서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알 수 있으며, 출토된 적갈색경질토기와 마제석기는 기원전 150년 전부터 서기 150년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제주도 내 120여기의 고인돌 중 가파도에 56기가 분포하고 있어 단위면적당 선사 유적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지금 가파도에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청보리축제다. 섬 전체 면적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청보리밭 걷기를 비롯하여 어장체험, 소라구이 무료시식, 보말까기 대회, 청보리밭 연날리기 등이 펼쳐지는 축제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더욱이 제주올레 10-1 코스 개장과 200t급 여객선의 신규 취항으로 더 많은 방문객들이 편리하게 가파도를 찾을 수 있게 됐다. 이같은 추세라면 한적했던 가파도가 방문객들로 붐비는 가파도로 바뀔 것이다. 또 한 가지 변화는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과 관련이 있는 신재생 에너지 시범단지 구축사업이다. 이 사업은 제주도와 제주대 스마트그리드 실증연구센터가 가파도에 2012년까지 태양광·풍력 발전시설 등을 설치, 전력을 자급하는 신재생 에너지 시범단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가파도 동·서쪽 해안에 각각 10㎾급 풍력발전기 3대씩 모두 6대를 세운다. 또 섬 중앙 가파분교에 20㎾급 태양광 발전기, 하동 담수장에 소형 풍력발전기를 설치할 예정이다. 이러한 사업이 끝나면 섬에서 필요한 전기의 50% 이상을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하게 된다. 이 사업으로 가파도는 수평중심의 경관에서 수직 중심의 경관으로 바뀌게 된다. 가파도의 미래 모습은 어떻게 바뀔 것이며, 어떻게 바뀌는 것이 바람직한가? 주민들이 결정할 몫이지만, 본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녹색시대를 앞서는 탄소 배출 제로의 청정섬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해 본다.
  • 전쟁·경제위기·총·범죄… 붕괴, 미국도 소련처럼?

    미국의 변화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긍정, 부정 어느 방향이든 한반도의 상황과 운명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들어선 뒤 변화와 개혁의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지만 미국의 몰락을 예고하는 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글 뒤주에 머물지 않고 철저히 현실에 기반해 미국을 파헤치는 목소리까지 가세했다. 과연 ‘미국 없는 세상’, ‘포스트 미국의 시대’는 일부 진보주의자들의 급진적 전망일 뿐인가. 아니면 냉엄한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인가. 1991년 소련은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패배의 충격, 각 민족국가의 독립 요구 등 조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 함께 냉전시대의 한 축을 이뤘던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는 세계사적인 충격이었다. 오로지 소련만 쳐다보고 의지했던 범 소련권 국가들이 겪은 경제적 혼란, 대량 실업, 정치적 위기 등은 필연적 후과(後果)였다. 그렇다면 미국의 상황은? 만약에 미국이 소련처럼 붕괴한다면, 우리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나올 때마다, 미국 이후 시대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절박하게 미국에 매달리게 되곤 한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 최근 두 차례의 이라크전쟁의 패배 혹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등 금융자본 전횡의 후폭풍 등은 심상치 않은 위기감을 보여준다. ‘예고된 붕괴’(드미트리 오를로프 지음, 이희재 옮김, 궁리 펴냄)는 19세기 이후 최대 제국, 미국이 구 소련과 비슷한 양상으로 붕괴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학술적 측면의 접근이 아닌, 현장 중심의 근거들을 갖고 실증적 접근을 통해 이를 예견한다. 1962년 구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난 저자는 스스로 “전문가도, 학자도, 운동가도 아닌 목격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냉전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미국을 오가며 고에너지 물리학에서 인터넷 보안 등까지 다양한 분야의 엔지니어로 활동한, 드문 이력을 갖고 있다. 이는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를 직접 목격했음은 물론 미국 자본주의 현장을 구석구석 체험했음을 의미한다. 그에 따르면 파산하기 전 소련과 현재의 미국은 상당 부분 닮아 있다. 소련이 외채에 시달렸던 만큼, 미국 역시 재정 적자와 달러 가치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냉전 뒤에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이유로 감내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국방비 지출을 늘려 왔다. 이는 고스란히 지나친 석유 의존도로 이어졌다. 1980년대 중반, 석유 부족으로 경제 위기를 맞았던 소련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의 상황이 더욱 우울한 근거로 저자는 “세계 최고의 범죄율과 민간인에게 풀린 수억 자루의 총”을 든다. 책 뒷부분에서는 아예 붕괴를 기정사실화한 뒤 각자의 대처법을 제시한다. 3단계로 나뉜 일종의 ‘생존 가이드라인’이다. 일단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공동체의 힘을 믿고 따르며(완화), 붕괴 이후 석기시대에 준한 세상에 맞춰 불편하게 살 수 있도록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며(적응),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것(기회)이다.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쉽게 읽히도록 풀어냈다. 1만 3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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