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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서 자란 동네 알리다 오락실로 경제적 자립도 이뤘죠”

    “나서 자란 동네 알리다 오락실로 경제적 자립도 이뤘죠”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 서촌에서 10년째 가이드로 일하는 설재우(41)씨는 자영업자에게 창의성을 불어넣는 존재다. 10년 가까이 공공기관과 광고회사 등에서 직장인으로 일했지만, 직장생활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왔다. 서촌에서 태어나 현재 서촌에서 살고 있지만 그의 꿈은 자신이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옛집’을 사는 것이다. 설씨는 “동네를 사랑하는 아이였고, 종로 바닥을 벗어나지 않았다”면서 “성년이 되어서는 모든 선택의 기준이 동네 근처였고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는 돌아올 곳이 지역뿐이어서 지역을 직장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2011년 정부 소속이 아닌 지역관광 가이드 활동을 하기에 앞서 독학으로 서촌에 대해 공부했다. 조선시대의 화가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로 남긴 절경을 그대로 간직한 인왕산 계곡에서 수영하고 썰매 타며 컸지만 살았던 시간과 지역에 대한 지식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로 법정동은 종로구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다. 청와대 바로 옆 동네다 보니 개발에 제한을 많이 받아 한옥과 골목들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고층건물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설씨는 2009년 인터넷 블로그 ‘효자동닷컴’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촌을 알리기 시작해 가이드 활동을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2012년에는 미국 플로리다 주민들이 직접 만든 독특한 관광안내서 ‘괴상한 플로리다’에서 영감을 얻어 ‘서촌방향’이란 책을 펴냈다. 플로리다 주민들은 사람들이 디즈니 월드만 가는 것이 안타까워 책을 썼다면 설씨는 노무현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식당에서 삼계탕만 먹고 서촌을 뜨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책을 썼다. 서촌의 마지막 오락실을 인수한 것도 작은 동네의 변화에 예민했던 그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다. 자주 가던 오락실을 운영하던 할머니가 가게 문을 닫는 것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자 할머니는 “너가 할래”라고 권했다. 사무실로 사용하던 오락실 공간은 2015년 네이버, 싸이월드 등의 기부를 받아 진짜 오락실인 ‘옥인오락실’로 재탄생했다. 오락실 기계에는 당시 기부금을 냈던 사람들의 이름이 명패로 만들어져 붙어 있다. 서촌을 지키고 싶어 인수한 오락실은 그에게 경제적 자립도 가져다주었다. 옥인오락실에서는 한 달 100만 원의 월세를 낼 수 있을 만큼 수입이 발생하고 있으며 현재 익선동, 용산, 이태원, 해방촌, 연남동 등 서울 시내 여섯 군데에서 무인오락실을 운영 중이다.그는 창업을 고민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카페, 책방처럼 멋있어 보이는 걸 하지 말고 지역에 필요한 걸 하면 돈이 된다”고 조언한다. 또 오락실은 지역 공원을 만드는 것이라고 추천했다. 무인오락실에는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놓고, 한 달에 한 번 기계에서 돈을 걷을 때만 간다. 저예산으로 지역에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그의 목표는 창조적인 소상공인이 늘어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영업자를 하려고 서촌 알리기를 시작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그는 성공한 자영업자이자 기획자가 되었다. 최근에는 ‘남의집 프로젝트’를 통해 서촌의 다양한 자영업자들을 알리고 있다. 숯, 쑥, 차가버섯, 사프란, 고수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는 서촌의 아이스크림 가게를 소개한 ‘젤라또 오마카세’는 완판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남의집 프로젝트는 취향이 비슷한 남의 집에 모이는 것으로 시작해 현재는 가정집, 작업실, 동네가게 등을 통해 다양한 취향을 공유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의 또 다른 꿈은 ‘미니멀 라이프’란 삶의 방식을 제안한 미국 킨포크의 주민들처럼 전국 모든 지역이 각자의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영업자들이 지역의 유령 같은 존재가 아니라 ‘창의적 크리에이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서해의 독도’ 격렬비열도 중국에 팔릴 뻔…“섬이 우리의 미래”

    ‘서해의 독도’ 격렬비열도 중국에 팔릴 뻔…“섬이 우리의 미래”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인도와 서울의 오래된 마을 서촌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두 청년을 만났다. 강연을 다니다 서로 알게 되어 친하게 된 이들은 어디에도 없던 직업을 만들었고, 새로운 방법으로 지역 살리기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설 소재를 찾아 사막에서 마라톤을 했던 문학 청년은 무인도를 연구하고 탐험하는 연구소의 소장이 됐다. 윤승철(33) 무인도섬테마연구소장은 탐험문학을 쓰려고 했다가 무인도 탐험가란 새로운 직업을 만든 경험을 전국 각지에서 강연을 하며 공유하고 있다. 국내 및 해외 무인도 탐험 프로젝트를 운영했지만, 코로나19로 봉사를 제외한 나머지 활동은 중단 상태다. 윤씨가 무인도에 끌린 것은 사막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사막처럼 자연 한복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대에 세계 최연소로 사하라, 아타카마, 고비, 남극 사막을 모두 완주하는 ‘사막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이뤘던 그다. 수백만 원에서 1000만 원이 넘는 비싼 참가비를 내고 죽을 고비를 무릅쓰며 사막을 달렸던 이들은 그에게 모두 비슷한 동기를 들려줬다. 남들이 하지 못한 경험이나 스스로에 대한 도전 또는 자연 한복판에 가보고 싶다는 갈망 때문에 사막 마라톤에 나섰다는 것이다. 자연 그 자체인 무인도에서 사막을 달리며 느꼈던 감정을 가질 수 있었지만 엄두가 안 나거나 정보가 없어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인도연구소를 만들었다. 첫 탐험은 사하라 사막을 같이 달렸던 남동생과 부루마블 게임을 하다가 우리나라에 무인도가 2918개나 있다는 것을 알고 궁금해서 무작정 떠난 것이었다. 처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모집한 무인도 여행에는 지원자가 17명이나 몰렸다. 윤씨는 “나만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 무인도에 가고 싶은 사람이 많구나”란 것을 알게 됐고, 무인도섬테마연구소와 섬마을봉사연합이 만들어졌다.연구소는 여행업으로 등록했다가 갈증이 생겨 무인도 생태교육까지 겸했다. 생태교육을 더 잘하고 싶어서 생명과학 대학원 과정도 다니고 있다. 섬에 가서 섬 주민들에게 필요한 일을 하는 섬 봉사활동은 한 달에 한 번씩 참가비를 받고 참여자를 모집한다. 섬마을봉사연합은 4년째 운영 중이지만 매번 수십 명이 모인다. 그는 “섬 봉사활동은 섬 주민들의 복지와 소득 증가가 주가 되어야지 봉사자들을 위한 봉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봉사활동으로 섬 주민들이 불편할 때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해안가 마을에 청년 정착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경상북도를 찾아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조언했다. 그는 “지금 어촌이나 농촌에 청년들이 정착하도록 지방자치단체에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는데 지역만의 차별점이 있어야 한다”면서 “명확한 일자리 없이 공간만 준다고 하면 금방 입주한 기업이나 청년들이 지원금만 받고 나가는 경우가 생긴다”고 설명했다.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많은 섬을 가진 세계 10대 섬 보유국이지만 섬 관리가 유인도는 행정안전부, 무인도는 해양수산부로 가닥이 잡힌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천연기념물을 보호해야 하는 환경부, 국토를 관리하는 국토교통부에다 산림청과 지자체까지 섬을 두고 여러 법규와 정부 부처가 얽혀 있다고 윤씨는 밝혔다. 한국섬진흥원의 ‘청년 섬 정책 자문단’으로도 활동 중인 그는 무인도의 98%는 소유자가 있긴 하지만, 방치된 곳이 대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서해의 독도’로 불리는 충청남도 가장 서쪽의 섬인 격렬비열도는 중국인에게 팔릴 뻔한 일이 있을 정도로 섬의 가치는 무한하나 국민이 섬을 국토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이 떨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격렬비열도는 중국인이 20억원에서 100억원까지 값을 부른 것으로 알려졌지만, 중국의 불법어업에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 2014년 정부에서 이 섬에 대해 외국인토지거래제한조치를 내렸다. 그는 “섬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며 “우리나라에 수천 개의 무인도가 있다는 것을 많이 알았으면 좋겠고, 미래에는 무인도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하나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스마트폰 일상 된 ‘新문맹’ 아이들 미디어, 피할 수 없다면 잘 배울래

    스마트폰 일상 된 ‘新문맹’ 아이들 미디어, 피할 수 없다면 잘 배울래

    “신문 기사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다면 어떤 섬네일(인터넷 페이지나 콘텐츠의 미리보기 이미지)을 앞세우는 게 좋을까?” 지난 5월 서울 강동구 동북고에서는 ‘섬네일 디자인 경시대회’라는 이색 대회가 열렸다. ‘지구 온난화가 한반도의 기후를 바꾼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를 읽고 기사의 내용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릴 때 활용할 섬네일을 직접 만들어 보는 활동이다. 한 학생은 우리나라 지도를 망고 모양으로 그린 뒤 ‘2100년에는 춘천에서 망고가 자란다’는 제목을 달았다. 네 컷 만화의 틀을 빌려 여름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혼자 커지는 그림을 그린 학생도 있었다. “정보를 전달하려는 유튜브 콘텐츠의 섬네일이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자극적이어서 학생들이 ‘낚시’를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권영부 동북고 수석교사는 “학생들이 ‘제목 소비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역량을 키우기 위한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직접 유튜브 콘텐츠 제작자의 관점이 돼 정보의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섬네일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콘텐츠 독자로서의 역량도 한 뼘 자란다는 게 권 교사의 설명이다. ●신체 일부가 된 ‘폰’… 미디어 문해력이 필요해 동북고 3학년 학생들에게 경제 과목을 가르치는 권 교사는 학생들이 신문 기사나 유튜브 동영상 같은 미디어를 정확히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교육에도 적극적이다. 스마트폰으로 찾아낸 정보를 비판적으로 선별해 문제를 해결하는 수행평가인 ‘스마트폰과 액션러닝을 통한 토론학습’이 대표적이다. ‘가상화폐를 현실 경제에서 화폐로 사용해도 좋은가’라는 주제를 놓고 학생들은 스마트폰으로 유튜브와 포털 사이트 등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머리를 맞대고 주제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 조별 활동에 앞서 권 교사는 학생들에게 ‘확증 편향’(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현상)과 ‘필터 버블’(자신이 좋아할 만한 정보에 갇히는 현상), ‘에코 체임버’(비슷한 성향의 이용자들의 이야기가 증폭되는 현상) 등에 유의하라고 설명한다. 학생들의 ‘스마트폰 중독’을 우려하는 여론과 달리 스마트폰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힘을 수업을 통해 기를 수 있다고 권 교사는 자신한다.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 각종 미디어가 일상을 지배하는 환경에서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인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문해력)의 중요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2년 가까이 원격수업을 받으며 디지털 기기와 가까워진 학생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필수로 여겨진다. 권 교사는 “요즘 학생들은 스마트폰이 또 다른 신체가 된 ‘포노 사피엔스’”라면서 “읽고 쓸 수는 있지만 복잡한 내용의 정보를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 문맹’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5월 발표한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연구(PISA)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 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OECD가 전 세계 만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3년 주기로 실시하는 ‘PISA 2018’에서 우리나라 학생의 읽기 평균 점수는 514점으로 OECD 평균(487.0점)보다 높았다. 이는 OECD 37개 회원국 중 5위에 해당하는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역량을 측정하는 문항에서는 정답률이 25.6%로 OECD 평균(47.4%) 이하였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의 미디어 교육은 ‘뼈대’부터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현선 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장(국어교육과 교수)은 “현행 교육과정의 총론에 ‘미디어 리터러시’가 부재해 교과 교육과정에 미디어에 대한 내용이 중복되거나 빠지는 등 체계성이 부족하다”면서 “‘미디어 리터러시’와 ‘디지털 시민성’ 등의 개념에 대해서도 여전히 혼란이 있고 교과서에 미디어에 대한 지식과 학생들의 미디어 문화 등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부족한 토대 위에서 학교에서의 미디어 교육은 가짜뉴스 문제에 대응하는 ‘뉴스 팩트체크’에 머물기 일쑤라는 게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한계다. ●팩트체크뿐? ‘뉴스 만들기’도 미디어 교육 “성인들도 가짜뉴스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미디어를 윤리적으로 활용하는 역량은 학생이 성인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슬기로운 미디어 생활’(우리학교 펴냄)의 공동 저자인 김광희 경기 시흥서촌초등학교 교사는 “학생들의 미디어 문해력이 낮아서 가짜뉴스나 ‘유튜브 중독’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관점은 미디어 교육의 가치를 축소시킨다”고 말했다. 어른의 공간이었던 미디어 환경이 학생의 삶에 파고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학생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체계적으로 길러 주는 게 미디어 교육의 의미라는 것이다. 김 교사는 “컴퓨터를 켜고 플랫폼에 접속하는 기초적인 기능부터 미디어 공간에서의 메시지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추천 알고리즘과 광고 등 미디어 공간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이해하는 것까지 내실 있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역량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미디어를 생산하고 활용하는 역량이다.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거나 SNS로 카드뉴스를 공유하는 등 학생들에게 미디어는 사회에 참여하는 효과적인 통로다. 김 교사는 초등학생들이 직접 ‘어린이 뉴스’를 만들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어린이들이 왜 방송 뉴스를 재미없게 느끼는지 생각해 보고 직접 ‘어린이 방송국’을 만들어 뉴스를 제작해 보는 프로젝트다. 진짜 방송처럼 리허설을 거쳐 학교 강당에 부모님을 모시고 생방송 뉴스를 진행한다. ‘초등학생의 화장’, ‘편의점 즉석조리 식품과 건강’ 등 학생들의 생활 속 이야기들이 뉴스가 돼 전파를 탔다. 학생들은 친구들과 부모님, 화장품 매장 직원을 인터뷰하며 초등학생의 화장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고 화장할 때의 주의점도 소개했다. 김 교사는 “미디어 교육은 학생들의 삶을 교실 안으로 끌어오는 것”이라면서 “학생들은 글보다 친숙한 영상과 이미지로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소통하면서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말했다. ●“미디어 소통 세대… 초·중 사회교과 반영을” 권 교사는 “학생들에게는 미디어 텍스트에 담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읽고 이해하는 역량과 미디어를 활용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이 모두 필요하다”면서 “미디어에 대한 문해력을 높이는 교육과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교육, 학생들이 미디어를 활용하고 생산하는 교육이 조화롭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2024년 초등학교 1·2학년부터 적용되는 2022 개정교육과정에서 미디어 교육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2022 개정교육과정의 사회 과목을 연구하고 있는 ‘역량 함양 사회교과군 교육과정 재구조화 연구팀’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회 교과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차기 교육과정의 총론에 ‘미디어 교육’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 소장은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미래 인재상에 ‘디지털 시민성’을 반영하는 등 총론 차원에서 미디어 교육을 명시해 교과교육에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소장은 최근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미디어 리터러시 반영 방안’ 보고서에서 ▲초등학교에서의 특화 단원 ▲중학교 자유학기제·자유학년제의 특화 프로그램 ▲고등학교 독립 과목 설치를 통해 미디어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 우주의 근원을 담다… 따스한 모성을 품다

    우주의 근원을 담다… 따스한 모성을 품다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양순열 작가의 개인전 ‘현현’(玄玄)이 서울 종로구 서촌 인디프레스갤러리에서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우주의 블랙홀처럼 검게 칠한 캔버스에 추상적인 조형 언어와 유기적인 오브제들을 더해 입체적인 세계를 연출한 회화 연작 ‘현현’ 16점과 모성을 상징하는 조각 ‘대모신(大母神)-오똑이’ 3점을 만날 수 있다. 현(玄)은 흑(黑)과 달리 단순한 검은색이 아니다. 작가는 “깊고 넓은 우주의 근원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검은 바탕에 그려진 원형의 선들은 어둠 저 너머에 있을 밝은 빛을 암시한다. 그 때문에 짙은 색조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느낌은 경쾌하다. 윤재갑 큐레이터는 “2차원 평면에 결코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리고 있다”면서 “끝없이 펼쳐진 우주를 향해 의식의 전부를 열어놓고 있는 허블 망원경 같은 작가”라고 평했다. 단순하고 절제된 형태의 ‘대모신-오똑이’는 모든 존재를 품는 범우주적 모성을 대변한다. 알록달록한 색채로 표현된 조형물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어떤 역경에도 꺾이지 않는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을 닮았다. 작가는 “동양적 화엄의 세계와도 같은 범우주적 모성의 회복을 통해 시대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고, 인간과 자연 사이 영적 교감의 가능성을 모색했다”고 말했다. 대구가톨릭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지난해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선정한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가나화랑, 학고재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미국 뉴욕과 유럽 등 해외에서도 전시를 열었다.
  • 이인영 “대북인도협력부터 제재 유연화 논의되길”...한미정상회담에 기대

    이인영 “대북인도협력부터 제재 유연화 논의되길”...한미정상회담에 기대

    “北 호응하면 평화 시간표 앞당겨질 것”미 고위당국자도 ‘최대 유연성’ 표현 써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21일(현지시간·한국시간 22일 오전)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인도적 협력 분야부터 제재의 유연화가 논의되면서 남북관계 복원과 북미대화 재개를 위한 좋은 여건이 조성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21일 서울 종로구 흥사단 대강당에서 도산통일연구소와 서촌포럼 주최로 열린 학술회의 영상 축사를 통해 “보다 속도감 있게 대화와 협상의 여건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 중요해진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과 조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에 북한이 유연하게 호응해 나온다면 한반도 평화협력의 시간표는 보다 확실하게 앞당겨지고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장관은 이날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2021 DMZ 포럼’ 축사에서도 “최근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가 끝나고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시점에서 한반도는 다시 평화의 역사를 한 걸음 더 전진시켜야 하는 기회의 길목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장 첨예한 전쟁과 대결을 경험한 한반도에서 시작되는 평화가 전 세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앞서 바이든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19일(현지시간) 언론과의 전화 브리핑에서 새로운 대북정책에 대해 유연해지도록 노력했다며 ‘최대 유연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최대 유연성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 있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환갑 넘긴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안전하게 재탄생

    환갑 넘긴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안전하게 재탄생

    환갑이 넘은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이 새로 태어난다. 행정안전부 정부청사관리본부는 정부청사 가운데 최고령 건축물인 창성동 별관을 철거한 뒤 내진 설계를 적용한 새 건물로 신축한다고 21일 밝혔다. 경복궁 인근 서촌에 있는 창성동 별관은 1960년 국민학원(현 국민대) 교육시설로 처음 지은 뒤 정부가 건물을 매입하면서 1982년부터 청와대·국무조정실·외교부 사무실 등으로 사용해 왔다. 정부 주요 업무 시설인데도 심하게 낡았고 건축 당시엔 내진설계 기준도 없었기 때문에 각종 위험에 노출된 상태였다.정부는 2016년 9월 경주 지진을 계기로 정부청사 등 주요시설을 규모 7∼9 지진에 견딜 수 있는 특등급으로 보강하도록 했다. 창성동 별관은 이에 따라 이듬해 ‘구조물 상태 및 안전성 평가 결과 D등급(붕괴위험) 판정을 받았다. 정부청사관리본부는 리모델링 등 대안을 비교·분석한 결과 창성동 별관 건물을 철거 후 신축하기로 했다. 새 창성동 별관은 총사업비 299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연면적 1만594㎡)로 짓는다. 2023년 12월 준공이 목표다. 신축 창성동 별관은 스마트오피스로 구축해 각종 위원회, 정부 주요 기관의 사무공간 및 스마트워크센터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대지 안에 북카페, 소나무 정원 등을 조성해 고궁 등 인근 문화유적지와 조화를 이루는 품격있는 공간으로 조성할 방침이다. 박형배 정부청사관리본부 청사시설기획관은 “창성동 별관 신축을 계기로 모든 정부청사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인사] 대구시교육청(중등·유·초·특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쌍용건설, 방위사업청

    ■ 대구시교육청(중등) ◇ 교장 [승진] ▷ 교감(공모교장)에서 교장 △ 호산고 유병택 △ 대구북중 고희전 △ 복현중 이창걸 △ 서남중 김왕미 △ 경서중 곽상순 △ 범일중 전경희 △ 경일중 김미리 △ 중리중 홍종란 △ 성지중 장경희 △ 다사중 김령경 [중임] △ 대구체육고(대구체육중 겸임) 장응찬 △ 신기중 오명희 △ 고산중 김준태 [전보] △ 대구여고 황진숙 △ 동원중 박준용 △ 덕화중 양명순 △ 동변중 은종태 △ 새본리중 백성기 △ 상원중 김희숙 △ 포산중 성희경 △ 유가중 김택식 [공모] △ 강동고 정희석 △ 대구국제고 백채경 △ 대구예담학교 최명호 △ 대구해올중·고 정재명 △ 구지중 박미숙 [전직] ▷ 장학관(교육연구관)에서 교장 △ 경북대학교사범대부설고 박재선 △ 다사고 박홍진 △ 황금중 황윤백 △ 새론중 배한천 △ 칠곡중 임오섭 △ 교동중 김종협 △ 북동중 김현우 ◇ 교감 [승진] △ 대구공고 이준구 △ 대구공고테크노폴리스캠퍼스 김경일 △ 고산중 이경희 △ 경운중 금동호 △ 관천중 김명희 △ 침산중 윤숙희 △ 운암중 이미현 △ 상인중 권금녀 △ 월서중 김정수 △ 대구중 김정애 △ 대명중 류행심 △ 논공중 곽명순 △ 달성중 유영달 △ 포산중 최윤정 [전보] △ 경북고 윤철수 △ 성산고 신만철 △ 수성고 서상경 △ 칠성고 왕한열 △ 비슬고 정기옥 △ 대구농업마이스터고 김석대 △ 대구공고 김강진 △ 대구전자공고 이동준 △ 대구제일여상 김장한 △ 동원중 이성애 △ 성곡중 신감철 △ 성서중 김진현 △ 용산중 차운식 △ 신당중 조경숙 △ 화원중 김춘석 △ 경서중 김혜경 △ 동촌중 윤서영 △ 수성중 이승환 △ 대구동부중 김규희 △ 평리중 김현제 △ 대구일중 김영선 △ 서남중 김금숙 △ 강북중 권형복 △ 서변중 이상숙 △ 대서중 오미향 △ 도원중 박용수 △ 상원중 최정란 △ 월암중 김미애 △ 경혜여중 김은희 [전직] ▷ 장학사(교육연구사)에서 교감 △ 다사고 권영만 △ 와룡고 정강욱 △ 매천고 김건우 △ 경덕여고 유경아 △ 대구외국어고 서보훈 △ 대구국제고 장태성 △ 경북기공 정도영 △ 대구해올중·고 이응곤 △ 대구팔공중 장미옥 △ 새본리중 박미영 ◇ 교육전문직 [승진] ▷ 장학관에서 과장 △ 체육보건과장 이영길 ▷ 장학사에서 장학관 △ 중등교육과 최진아 홍병우 △ 융합인재과 유병원 △ 체육보건과 강현구 △ 생활문화과 장진욱 [전보] ▷ 장학관(교육연구관) △ 미래교육연구원 교육과정평가부장 김동관 △ 미래교육과 이혜정 ▷ 장학사(교육연구사) △ 중등교육과 임채희 송인용 △ 융합인재과 최근묵 △ 체육보건과 최승욱 △ 동부교육지원청 박준현 △ 서부교육지원청 박혜경 △ 달성교육지원청 이종선 △ 창의융합교육원 김정환 [전직] ▷ 교감에서 장학관(교육연구관) △ 교육연수원 글로벌교육부장 류영미 △ 창의융합교육원 융합교육부장 이창호 △ 중등교육과 김석기 △ 생활문화과 박창석 ▷ 장학사(교육연구사)에서 교육연구사(장학사) △ 미래교육연구원 교육정책연구부장 직무대리 안기주 △ 중등교육과 최순임 △ 융합인재과 김철수 △ 동부교육지원청 정승윤 △ 남부교육지원청 신현주 △ 교육연수원 임경현 김계희 △ 미래교육연구원 이승엽 ▷ 교사에서 장학사(교육연구사) △ 미래교육과 임정호 △ 중등교육과 김동현 윤지양 강민정 최진아 △ 생활문화과 조선영 △ 기획조정과 정해동 △ 동부교육지원청 박애숙 이희정 정현철 이규락 △ 서부교육지원청 손희림 △ 남부교육지원청 노진경 △ 달성교육지원청 배종우 △ 교육연수원 박순흡 △ 미래교육연구원 여은실 △ 창의융합교육원 손동일 [파견] △ 영남공고 김봉준 △ 한국교원대 조용득 ■ 대구시교육청(유·초·특수) ◇ 교장(원장) [승진] △ 팔공유 박상희 △ 연경유 서순남 △ 상원유 이정화 △ 월배유 안혜선 △ 비슬유 채정화 △ 동호초 김애경 △ 아양초 황금이 △ 성북초 임후남 △ 조야초 장세철 △ 강북초 정현숙 △ 서부초 이미경 △ 연경초 김장수 △ 성남초 구미숙 △ 진천초 박세숙 △ 감삼초 이종금 △ 용전초 배영서 △ 영선초 이운발 △ 동곡초 남지윤 [중임] △ 고산초 김정희 △ 서촌초 임도영 △ 범일초 정미희 △ 복명초 채정순 △ 관문초 신경식 △ 이현초 강호순 △ 송현초 유선향 △ 유천초 유재향 △ 월촌초 조경희 △ 노전초 최성기 △ 다사초 류성진 △ 명곡초 송창익 [전보] △ 경북대학교사범대부설초 서정하 △ 동도초 이상근 △ 효신초 김은숙 △ 월배초 배남숙 △ 효명초 심재석 △ 예아람학교 하미애 [초빙] △ 서평초 조경선 [전직] ▷ 장학관(교육연구관)에서 교장(원장) △ 경동초 김승한 △ 팔공초 신광호 △ 남도초 박호길 △ 성보학교 정경렬 ◇ 교감(원감) [승진] △ 팔공유 손진명 △ 인지초 병설유 배하영 △ 서변유 나미영 △ 월배유 도수형 △ 경상유 안효주 △ 대구초 문금희 △ 서도초 임유식 △ 달성초 정경희 △ 팔달초 김서정 △ 동변초 김신표 △ 두류초 박태분 △ 대산초 최영래 △ 남부초 김원구 △ 성당초 김천식 △ 비슬초 김시응 △ 논공초 이금배 △ 북동초 임경숙 △ 남양학교 서혜정 [전보] △ 새론유 이선주 △ 연경유 박소영 △ 대실유 김명진 △ 화원꽃뜰유 배소경 △ 유가유 이정연 △ 공산초 김만도 △ 팔공초 유재익 △ 신매초 권국진 △ 경동초 권기옥 △ 매호초 김우근 △ 동부초 김종희 △ 새론초 김태우 △ 율원초 박영춘 △ 욱수초 배이선 △ 복명초 안정원 △ 시지초 최선주 △ 함지초 권진옥 △ 구암초 권혜영 △ 서대구초 김문규 △ 이현초 성미정 △ 대천초 양순희 △ 도남초 이영희 △ 연경초 전명진 △ 서변초 한진옥 △ 선원초 김태영 △ 조암초 백광순 △ 장산초 이자순 △ 죽전초 정승수 △ 용계초 김선미 △ 서재초 박귀자 △ 예아람학교 김현경 △ 세명학교 배한춘 [전직] ▷ 장학사(교육연구사)에서 교감(원감) △ 불로초 병설유 구양숙 △ 율빛유 김양주 △ 한실초 병설유 오경녀 △ 월서초 전호진 △ 남동초 이근진 ◇ 교육전문직 [승진] ▷ 장학사에서 장학관 △ 유아특수교육과 김연호 △ 유아특수교육과 서혜연 [전보] ▷ 장학관 △ 초등교육과 류은영 ▷ 장학사 △ 미래교육과 신선혜 △ 유아특수교육과 남인숙 우성숙 윤정희 △ 초등교육과 임귀숙 정재훈 차종화 △ 융합인재과 안일모 △ 체육보건과 차국섭 △ 생활문화과 송미연 △ 남부교육지원청 강은순 △ 달성교육지원청 권순우 [전직] ▷ 교장(원장)에서 교육연구관 △ 교육연수원장 권혜숙 △ 유아교육진흥원장 이덕주 ▷ 교감에서 장학관 △ 체육보건과 이미정 △ 동부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장 조수경 ▷ 교감(원감)에서 장학사 △ 남부교육지원청 장은숙 ▷ 장학사(교육연구사)에서 교육연구사(장학사) △ 융합인재과 정왕기 △ 생활문화과 강세정 △ 동부교육지원청 김은지 △ 서부교육지원청 배태수 △ 남부교육지원청 조수영 이은경 △ 달성교육지원청 최수정 △ 교육연수원 김수정 △ 창의융합교육원 유동욱 △ 미래교육연구원 김정민 △ 유아교육진흥원 이순주 ▷ 교사에서 장학사(교육연구사) △ 유아특수교육과 김은성 △ 생활문화과 강정일 △ 동부교육지원청 김정미 권미정 민강기 △ 서부교육지원청 정미라 황연희 △ 달성교육지원청 김현우 △ 교육연수원 이선영 △ 창의융합교육원 김현아 △ 미래교육연구원 김동현 이수영 △ 대구교육박물관 권혁기 ■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 1급 승진 △경영안전처장 임재형 △인재육성처장 최주환 ◇ 2급 승진 △빅데이터팀장 이정석 △디지털서비스팀장 길승관 △법무지원부장 박향섭 △푸드플랜부장 김영범 △공공급식부장 공영미 △통일교육원(교육파견) 오창준 ◇ 관리자 전보 △비서실장 전기찬 △디지털혁신단장 이원기 △기획조정실장 김형목 △수급관리처장 김정욱 △비축사업처장 이주표 △식량관리처장 강계원 △수출전략처장 양인규 △해외사업처장 안병희 △식품진흥처장 백태근 △화훼사업센터장 고동호 △급식지원처장 기노선 △e커머스사업처장 배민식 △광주전남지역본부장 김권형 △부산울산지역본부장 이은석 △대외협력부장 고혁성 △홍보실장 노윤희 △디지털기획팀장 민경후 △조직관리부장 황도연 △사회가치창출부장 윤정자 △경영지원부장 이윤영 △시설안전부장 김병철 △ICT기반부장 박기관 △정보보안부장 김용광 △노무복리부장 석영지 △기금관리부장 곽정화 △유통정보부장 정일권 △비축관리부장 임헌주 △보관관리부장 한승희 △두류부장 남택홍 △밀산업육성팀장 채종혁 △콩산업육성팀장 권혁원 △수출정보분석부장 윤미정 △글로벌거점지원부장 송미정 △신시장개척부장 노태학 △마케팅지원부 박성국 △수출플랫폼TF팀장 김민호 △농임산수출부장 김경철 △수출기반부장 권현주 △수산수출부장 구자성 △식품외식지원부장 우수동 △식품수출부장 윤상영 △유통기획부장 기운도 △시장지원부장 김기헌 △온라인유통활성화TF팀장 장호광 △교육지원부장 홍준수 △학교급식부장 유명근 △플랫폼사업부장 김서령 △온라인경매부장 허현행 △식품기업육성부장 전대영 △센터운영부장 김봉섭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 수출유통부장 김명수 △대구경북지역본부 관리비축부장 장시현 △대구경북지역본부 수출유통부장 서기원 △인천지역본부장 권오훈 △전북지역본부장 류정한 △제주지역본부장 한병희 ◇ 해외지사 전보 △아세안지역본부장 박민철 △상하이지사장 성시찬 △칭다오사무소장 이선우 △쿠알라룸푸르지사장 장재형 ◇ 교육파견 △서울대학교 김창국 손용규 △국방대학교 홍성호 ■ 쌍용건설 ◇ 임원 승진 및 신규 선임 △ 부사장 이경석 △ 상무 이상엽 유종식 △ 상무보 제갈명 송준호 이계상 ■ 방위사업청 △ 기반전력사업본부장 성일
  • [책 속 한줄] 아파트는 언제쯤 살 곳이 될 수 있을까

    [책 속 한줄] 아파트는 언제쯤 살 곳이 될 수 있을까

    아파트로 누군가는 돈을 벌고 또 누군가는 돈을 잃는다. 거대한 룰렛 판에 수백만 명이 둘러앉아 있는 것 같은 그림이 떠오른다.(85쪽) 배우 김광규가 지난 19일 열린 S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다가 개그맨 유재석에게 대뜸 “아파트값 좀 잡아 달라”고 해 화제가 됐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아닌 ‘재석이형’에게 부탁한 이유는, 그도 장관이 못 미더워서가 아닐까. 정부의 헛발질과 사람들의 욕심으로 아파트값은 연일 신기록을 경신 중이다. ‘집을 쫓는 모험’(2020) 저자는 운도 참 없다.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를 잘못 팔아 6억원을 손해 봤다. 팔고 나서 치솟은 아파트 시세를 보며 2년 동안 얼굴에 열꽃이 피어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그 덕분에 빌라, 한옥으로 즐겁게 이사를 했고, 서울 서촌에 작은 집을 지을 수 있었다. 15년 동안 6번의 이사기를 읽으며, 아파트는 언제쯤 재산이 아니라 거주 공간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경춘선 폐철로·국기원·서울의 휴일… 서울미래유산

    서울시가 1일 ‘경춘선 폐철도노선’과 ‘국기원’, 영화 ‘서울의 휴일’을 ‘이달의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들 모두 ‘11월’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1939년 조성된 경춘선은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역 근방에서 강원 춘천까지 이어지는 노선이었으나 2010년 경춘선 복선화 및 직선화 사업으로 일부 폐철도 노선이 생겼다. 시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폐선을 활용해 ‘경춘선 숲길’로 공원화했고 2017년 11월 전 구간을 개방했다. 현재 경춘선 폐철도 노선에는 산책로와 오픈 갤러리, 등록문화재 제300호인 화랑대역 등 볼거리가 풍부해 시민들의 좋은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국기원은 1972년 11월 개관했다. 국기원은 1983년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하고 세계태권도연맹을 발족하는 등 태권도 세계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태권도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시범종목,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과정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56년 11월 개봉한 ‘서울의 휴일’은 서촌과 청계천, 덕수궁, 남산 등 당시 서울의 모습을 보여 주는 영화다. 영어를 섞어 쓰던 젊은이들의 말투, 남녀가 함께 맥주를 마시는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장면이 작품에 담겼다. 60년이 넘었지만 지금 봐도 표현기법과 구성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추사와 다산, 김환기가 숨쉬는 곳… 현세의 ‘무릉도원’속으로

    추사와 다산, 김환기가 숨쉬는 곳… 현세의 ‘무릉도원’속으로

    한양도성 순성이 도성 안팎으로 확대될 무렵 많은 사람들이 찾은 곳이 북악산과 인왕산, 북한산으로 둘러싸인 부암동이다. 인왕산 북벽 기슭 청계동천과 북악산 북벽 기슭 백석동천은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 동천복지(洞天福地)를 꿈꾼 곳이다.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다. 어지러운 세상 잠시 잊고 꿈꾸듯 무릉도원을 걷는다.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상명대 앞 삼거리에서 내렸다. 버스 정류장 앞 건널목을 지나면 석파랑(石坡廊)이 나온다. 대원군 이하응의 호 ‘석파’를 딴 이름이다. 1958년 소전 손재형이 석파정에 있던 일곱채 건물 중에서 별당 석파랑만을 현재 위치로 옮겨 지었다. 1819년 대과에 급제한 추사 김정희는 아버지 유당 김노경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연행에 나선다. 1820년 1월 추사는 보소재 석묵서루에서 담계 옹방강(1733~1818)을 만난다. 스승 초정 박제가가 세 차례 연행하면서 옹방강과 교류했던 것에 비춰 보면 아마도 초정이 만나라고 권고한 듯하다.추사는 청나라 금석학의 대가 담계 옹방강을 깊이 흠모하면서 당호를 보담재(寶覃齋)라고 짓는다. 전국에 있는 비석을 탁본해 첩을 만든다. 원형을 간직한 우리나라와 중국 비석 글씨를 연구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산에 있는 비석이 진흥왕순수비라는 사실을 밝힌다. 스승 옹방강은 한나라 훈고학과 송나라 성리학을 서로 보완해 경학을 한다. 한송불분론(漢宋不分論)이다. 추사는 스승을 좇아 성리학과 청나라 고증학을 절충함으로써 북학의 틀을 확고히 하고 개화를 준비한다. 그러나 또 한 번 북청 유배길에 오르면서 모든 게 산산이 부서진다. 대신 유배지에서 붓 천 자루를 몽당붓을 만들고 벼루를 열 개나 밑창 내고서 추사체를 완성한다. 추사를 찾아 나룻배를 타고 서귀포까지 온 사람이 있다. 제자 이상적이다. 제자 이상적의 절개에 감복한 추사는 자신의 심경을 한 장 그림으로 표현한다. ‘세한도’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집은 김흥근의 부암동 별서 삼계동산정 별당 월천정(三溪洞山亭 別堂 月泉亭), 즉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의 석파정 석파랑(石坡亭 石坡廊)이다. 송백은 석파정 정원수다. 추사와 이상적이다. 서울미래유산인 석파랑의 주인 소전 손재형은 22세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연이어 7회나 입선 또는 특선을 한다. 1933년부터 선전 심사위원 연 3회, 광복 후 국전(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연 8회 역임한다. 홍익대 미대 교수를 지냈다. 1944년 미군의 공습이 연일 계속되는 도쿄로 가서 세한도를 되찾아 온다. 세한도에 등장하는 석파정 별당을 옮겨 짓고 석파랑이라 부른다.석파랑에서 다시 도로를 건너 직진하면 도롯가에 멋진 정자, 세검정이 나타난다. 광해군은 어머니 인목대비를 경운궁에 유폐시킨다. 또 인목대비의 아들 영창대군을 강화로 유배 보내고 사실상 살해한다. 폐모살제(廢母殺第)한 광해의 패륜을 응징하기 위해 1623년 인조반정을 단행한다. 김류·이귀·심기원·김경징 등 반정공신들은 세검정에 모여 반정을 모의한 후 칼을 씻으면서 결의를 다진다. 반정군은 모화관에서 심기원의 병사와 합류한 후 창의문을 부수고 창덕궁을 점령한다. 광해군은 역모의 기미를 알았지만 적극 대처하지 않았는데 이는 김개시라는 상궁 때문이다. 실록은 상궁 김개시를 다음과 같이 평한다. “김상궁은 이름이 개시(介屎)로 나이가 차서도 용모가 피지 않았는데, 흉악하고 약았으며 계교가 많았다. 춘궁의 옛 시녀로서 왕비를 통하여 나아가 잠자리를 모실 수 있었는데, 인하여 비방으로 갑자기 사랑을 얻었다.” 실록에서는 보기 드물게 여자의 용모와 잠자리 비방 등을 직접 거론한다. 김개시는 광해의 총애를 받는다. 그런데도 그냥 상궁으로 머물렀다. 세검정에는 남인 다산 정약용의 흔적도 남아 있다. 목멱산(남산) 아래 명례방(명동) 집에서 벗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1791년 신해년 여름 어느 날 다산이 말을 타고 창의문 밖으로 냅다 달린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세검정에 올라 자리를 벌이니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 산골 물이 사납게 들이친다. 그날 다산이 세검정에서 벗들과 노닐었던 기록, ‘유세검정기’에서 세검정을 이렇게 즐기라고 일러 준다. “세검정의 빼어난 풍광은 오직 소낙비에 폭포를 볼 때뿐이다. 그러나 막 비가 내릴 때는 사람들이 옷을 적셔 가며 말에 안장을 얹고 성문 밖으로 나서기를 내켜 하지 않는다. 비가 개고 나면 산골 물도 수그러들어 버린다. 이 때문에 정자가 저편 푸른 숲 사이에 있는데도 성중의 사대부 중에 능히 이 정자의 빼어난 풍광을 다 맛본 자가 드물다.” 세검정에서 하천을 따라 걸어가다가 오른쪽 골목길로 접어들면 별서 터가 나온다. 그야말로 서울 시내에 있는 보물이다. 별서 터에는 사랑채와 안채 등 두 채 집터와 연못 두 개와 정자 한 개 그리고 우물 등이 있다. 처음 별서정원을 가꾼 사람은 연객 허필(1709~1768)이다. 표암 강세황과 절친했다. 두 사람 다 시서화에 능했기 때문에 연객이 그린 그림에 표암이 시를 짓기도 하고 표암이 그린 그림에 연객이 찬하기도 했다. 연객 허필이 이곳에 별서를 조영했을 때는 그저 소박한 띠집이었다. 사랑채와 안채, 연못과 정자를 조영한 사람은 추사의 생부 유당 김노경이다. 연객과 유당에 이어 이곳 백석동천에 별장을 소유했던 사람은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아들 박종채(1780~1835)다. 한 가지 궁금하다. 1935년까지도 멀쩡하던 연못 정자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나?별서 터에서 산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왼쪽 길가에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 각자한 바위가 나온다. 백석동천에서 말하는 백석은 열선도(列仙圖)에 등장하는 신선 백석생(白石生)이 들어가 살았던 백석산(白石山)이다. 백석생은 백석을 삶아 식량 삼아 먹으면서 백석산에서 살았다. 하늘로 오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늘 위 신들의 세계라고 해서 인간세계보다 반드시 즐거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난해서 돼지 살 돈도 없었던 백석생은 양을 사서 십여 년 길렀다. 많은 돈을 벌어 내단약 금즙(金液)을 사서 먹고 백석산으로 들어갔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보다 오래 사는 것을 더 귀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노불사의 신선이 노니는 동천복지(洞天福地)를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동천이라 했다. 산속 깊은 곳에 있다고 믿었던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를 일컬어 동천복지라 한다. 일반적으로 속세와 격리된 산속 살기 좋은 땅을 뜻한다. 백석과 동천을 서로 엮으면, 백석산 깊은 곳 백석생이 사는 동천복지와 같은 별천지가 된다. 그야말로 신선이 노니는 도교적 이상향, 백석동천이 바로 이곳이다. 백석동천의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커피프린스’를 촬영한 카페가 나온다. 북악산 성곽과 인왕산 성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산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오른쪽 골목길 아래로 돌아들면 환기미술관이다. 김환기는 1913년 2월 27일 전남 신안군 기좌도에서 태어났다. 김환기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는 광복부터 한국전쟁까지다. 1948년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한다. 서울대 미술학부를 만든 동양미술사학자 근원 김용준과 교유하면서 우리 고미술과 한국미를 새롭게 발견한다. 산 중턱에 걸린 달, 길게 날아가는 학, 매화 긴 가지 등 한결같이 예서를 방불케 한다. 파리 시기를 통해 오히려 한국미를 확신한다. 김환기에게는 기좌도도, 서울도, 파리도 작았다.전환점은 1963년부터 1974년까지 뉴욕 시기다. 파리가 아닌 뉴욕에서 정점을 찍는다. 1969년 김환기는 뉴욕에서 절친 김광섭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실의에 빠진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주제로 마지막 시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제목으로 전면점화(全面點畵)를 그린다. 환기미술관에서 김환기 그림을 다시 본다. 김환기의 점화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가득 메운 고구려 사람들이 입은 땡땡이 옷이다. 도교사원 운주사를 가득 메운 석탑과 석상이다. 김광섭의 시를 가득 메운 별이다. 김환기, 그림, 별, 김광섭 그리고 시! 한양성곽 4소문 중 하나로 북소문 창의문을 만든 것은 1396년이다. 임진왜란 때 타고 없는 문루를 1741년 중수하기는 했으나 4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원래 위치를 지키는 문이다. 사람들이 창의문을 기억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인조반정 당시 반정군이 이 문을 지나 창덕궁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광해군 15년 1623년 세검정에서 결의를 다진 반정군과 능양군(훗날 인조)의 친정군이 합류해 창의문을 깨고 창덕궁으로 들어간다. 광해는 역모의 상소를 읽었지만 무시했다. 반정군이 창의문 밖에 모여 있다는 밀고까지 받았지만 반정군에 합세한 훈련대장 이흥립의 소극적인 대처로 이 또한 무효였다. 어머니 인목왕후를 폐위하고 동생 영창대군을 죽였다는 게 반정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광해의 가장 큰 실책은 ‘왕기(王氣)가 있다’는 이유로 동생 정원군(인조의 친부)의 아들 능창군(인조의 동생)을 유배 보낸 것이다. 유배지 강화에서 능창군은 목매 자결한다. 결국 광해가 능창군을 죽인 셈이다. 능창군의 형 능양군이 가만히 있다면 그게 패륜이다. 둘째는 이곳의 유명한 치킨집과 연관시켜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 때문이다. 분명 봉황인데 사람들은 자꾸만 닭이라고 한다. 봉황 모가지를 닭 모가지처럼 그리기도 했다. 창의문 밖에서 바라본 부암동 형상이 마치 지네와 같아 지네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지네의 천적인 닭을 길렀다. 그래서 부암동에는 독특한 맛으로 유명한 치킨집이 많다. 글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그 외 부암동 일대의 서울미래유산 세이장 1974년 지어진 주택이며, 건축가 김수근이 직접 살기도 한 건물 체부동 성결교회 벽돌 쌓기 방식으로 1920년대 건립된 교회 서촌 한옥밀집지역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들로 구성된 독특한 경관이 형성돼 있는 마을 통인시장 각 점포의 개성과 이야기를 담은 작품 전시 등 문화와 예술이 함께하는 재래시장 김봉수 작명소 1958년쯤 개업해 같은 지역에서 2대째 가업을 이어 오고 있는 작명소 이상의 집 시인 겸 소설가 이상이 1912년 백부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기거했던 가옥의 터 ●다음 일정 : 제9회 잠실의 추억●출발 일시 : 25일 오전 10시 출발●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체육 요람이자 예술 총아… 서울 맨 위에서 격동의 역사를 목도하다

    체육 요람이자 예술 총아… 서울 맨 위에서 격동의 역사를 목도하다

    첫 돔구장 ‘장충체육관’… 스포츠 중심지김일·천규덕·장영철이 이끈 프로레슬링가난한 시절 찌든 마음에 통쾌한 선물로 김수영·박인환·변영로 등 문인·예술가전쟁 후 활동무대 명동서 국립극장 개관남산으로 이전한 후 문화의 새 뿌리로 ‘남산서울타워’ 1980년 일반에 처음 공개서울·지방 사람·외국인 인기 관광 코스서울은 역사 이래 한반도에 영토를 둔 나라들의 각축장이었다. 조선의 도읍이 되면서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됐고, 지금까지 역사의 중심축이다. 이곳에 있는 유무형의 문화재가 지난날 이야기라면, 시민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2000년 역사의 단층 위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도 역사의 한 줄이 되고 있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20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7차 남산산책’ 편이 지난 11일 열렸다. 참가자들은 남산의 동쪽 장충체육관에서 출발해 남산 정상을 지나 남산의 서쪽 남대문시장까지 서울미래유산을 찾아 함께 걸었다.1960년대 중반 장충체육관은 우리나라 스포츠의 중심지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돔구장이었으며 각종 운동경기와 다양한 행사가 열린 곳이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던 종목은 프로레슬링과 권투였다. 아련하게 귓전에 맴도는 말, ‘여기는 장충체육관 특설링입니다’. 프로레슬링이 열리는 날 체육관은 만원이었다. 박치기의 왕 ‘김일’, 당수의 명수 ‘천규덕’, 비호 ‘장영철’ 세 명은 우리나라 프로레슬링을 이끄는 주축이었다. 나라 전체가 가난했던 시절, 링 위의 그들은 일상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통쾌하게 뚫어 주는 명약이었다. 상대 선수의 공세와 반칙에 당하던 김일 선수가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가 체중을 실어 상대방의 머리를 향해 박치기를 하면 관중과 텔레비전을 보던 사람들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손뼉을 치고 환호했다. 김일 선수의 박치기가 상대 선수의 이마에 꽂힐 때마다 사람들은 “잘한다”, “잘한다”를 외쳤다. 천규덕 선수의 당수가 상대 선수의 가슴팍을 내리칠 때도 그랬다. 레슬링 경기가 끝나면 동네 아이들은 항상 모이는 친구 집에서 레슬링을 했다. 김일 선수의 박치기를 따라 했다가 머리에 혹이 나는 아이들도 있었다.김일 선수는 장충체육관에서 프로레슬링 세계 챔피언이 됐다. 권투에는 김기수 선수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권투 세계 챔피언인 그도 장충체육관의 스타였다. 1963년 개장한 장충체육관은 2012년부터 리모델링을 시작, 2015년에 재개장했다. 새롭게 단장한 그곳에서 배구와 격투기 등 여전히 각종 운동경기가 열려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한때 사람들 사이에서 장충체육관을 필리핀에서 무상으로 지어 줬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장충체육관 부근에는 1971년에 지어진 장충리틀야구장이 있다. 서울에 하나밖에 없는 유소년야구장이다. 이곳에서 야구를 하며 뛰어놀던 어린 선수들은 1983년, 1985년, 2014년에 세계리틀야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어릴 때 이곳에서 야구를 했던 선수 가운데 박찬호와 이승엽도 있었다. 배우 송강호와 김혜수가 열연한 영화 ‘YMCA야구단’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장충리틀야구장 위에 있는 테니스장도 1971년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테니스 선수인 이덕희와 김봉수, 이형택 등 테니스 스타의 땀이 어려 있는 곳이다. 호주 오픈 본선 진출, US오픈 16강, 프랑스 오픈 본선 진출 등 이덕희 선수의 ‘한국 최초 기록’은 화려하다. 이번 미래유산 답사 코스는 아니지만 장충체육관 북쪽 약 1㎞ 거리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자리에 동대문운동장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경성운동장으로 시작, 해방 이후 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1959년에 재개장한 뒤 잠실에 종합운동장이 생기면서 동대문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프로야구와 축구가 없던 시절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리는 축구와 야구의 인기는 지금의 프로 경기 못지않았다. 특히 동대문야구장은 봉황기, 황금사자기, 청룡기, 대통령배 대회 등이 열리면 출신 지역과 학교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TV는 물론 라디오에서도 경기를 중계했다. 그 시절 최동원 선수는 최고의 고교야구 스타였다.장충체육관, 장충리틀야구장, 장충테니스장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국립극장으로 연결된다. 국립극장의 역사는 1950년 지금의 서울시의회 본관 건물에서 시작됐다. 첫 공연 작품은 ‘원술랑’이었다. 그해 4월 30일부터 5월 6일까지 7일 동안 5만명이 넘는 관객이 공연을 관람했다. 팬레터가 쇄도했다. “사랑하는 이를 눈물로 웃으며 보내는 예쁜 공주, 화랑 원술랑을 사모했던 것이 잘못일까?”라는 당시 어떤 팬이 보낸 팬레터의 한 대목이 남아 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국립극장은 대구에서 문을 열게 된다. 휴전협정을 맺은 다음해 미국 여배우 메릴린 먼로가 위문 공연 차 우리나라를 찾았다. 당시 ‘춘향전’에 출연한 배우 백성희와 촬영한 기념사진이 남아 있다. 전쟁이 끝난 명동에 김수영, 박인환, 오상순, 이봉구, 변영로 등 문인과 음악가, 미술 분야의 예술인이 모여들었다. 1956년 박인환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노래로도 만들어진 시 ‘세월이 가면’을 남겼다. 폐허가 된 명동에서 예술혼은 그렇게 피어나고 있었다. 박인환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57년 국립극장은 명동에 둥지를 튼다. 환도 기념 공연 작품은 카를 쇤헤어의 ‘신앙과 고향’이었다. 희곡 현상 공모도 했다. ‘딸들은 자유연애를 구가하다’가 제1회 당선작이었다. 1961년 극장 리모델링을 시작해 1962년 3월에 새롭게 개관했다. 이때 ‘국립극단’이 발족됐다. 국립극장은 명동 시대를 끝내고 1973년 10월 지금의 자리인 남산으로 이전한다. 국립극장 남산 시대의 문을 연 개관 기념 공연은 ‘성웅 이순신’이었다. 240여명이 출연한, 당시 한국 연극 사상 최대 규모의 작품이었다.국립극장을 뒤로하고 남산서울타워로 향한다. 조선 시대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남산순환버스가 다니는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 있지만 무더운 날씨와 한정된 시간 때문에 남산순환버스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남산 정상 못 미쳐 넓은 터가 버스 종점이다. 종점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일행이 출발했던 장충체육관의 돔 지붕이 보인다. 그 풍경을 뒤로하고 정상으로 올라간다. 짧은 오르막길을 다 오른 후 오른쪽으로 돌아 전망데크에서 서울 도심을 조망했다. 서울 도심에 조선 시대 한양도성의 경계를 그려 본다. 발 딛고 서 있는 남산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성곽은 출발 지점인 장충체육관 뒤편으로 이어져 동대문을 만난다. 동대문을 지난 성곽은 낙산 줄기 주택가 사이를 비집고 올라 낙산 정상에서 숨을 고른다. 성곽은 백악산(북악산)을 지나고 그 품에 조선 시대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 경복궁을 품었다.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다시 남산으로 흘러온다. 그 가운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청계천이 흐른다. 청계천의 상류를 웃대라고 했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서촌은 웃대의 한 마을이었다.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계곡 물줄기가 만든 풍경이 선경이라 시인 묵객들이 모여들었다. 겸재 정선이 살던 집은 현재 경복고등학교 자리다. 백사 이항복은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의 한쪽 끝부분에 필운대라는 둥지를 틀었다. 송석원시사는 중인 출신의 문인들이 시서화를 창작하는 공간으로 유명했다. 하류는 아랫대로 군영이 많았다. 조선 후기에 군사체제와 경제체제가 흔들리자 군영의 군인들이 직접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리기도 했다. 현재 훈련원공원이 있는 곳이 훈련원이었는데, 조선 후기 훈련원 군사들이 농사지은 배추가 유명해 ‘훈련원 배추’로 팔렸다고 한다. 청계천 중류 중촌은 저잣거리이자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종로 남대문 주변에는 시장이 있었다. 의원, 역관, 꼭지(광통교와 수표교 등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활동했던 한양의 거지 조직), 전기수(소설을 읽어 주고 일정한 보수를 받는 사람)가 서로 얽혀 살았다. 지리적으로 중촌의 북쪽은 북촌이다. 당대 권력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중촌의 남쪽에는 남촌이 있었다. 양반 중 무반 쪽 사람들과 벼슬 없는 선비들이 많이 살았다. 그곳이 남산 기슭이었다.남산 정상 전망데크는 여러 곳이다. 그곳을 돌아다니며 도심 풍경을 봐도 좋고 남산서울타워 전망대(유료)에 올라 전망을 즐겨도 좋다. 남산서울타워는 전체 높이가 236m가 조금 넘는다. 남산의 해발고도가 270m다. 1971년 탑신과 철탑의 공사를 마쳤다. 전망대는 1975년에 생겼으며 일반에 공개된 건 1980년이다. 남산서울타워는 관록의 여행지이자 유행을 타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 사람은 물론 지방에 사는 사람, 외국인 등 서울을 찾은 사람들의 인기 관광코스다. 남산서울타워 전망대를 한 바퀴 돌며 굽어보는 시야에 인천 앞바다까지 들어온다. 남산서울타워를 뒤로하고 남대문 쪽으로 내려가는 길, 한양도성 성곽이 길을 안내한다. 백범광장을 지나 남대문 쪽으로 향한다. 오전 10시에 출발한 걸음은 낮 12시를 조금 넘겨 도착했다. 배가 고프다. 남대문시장으로 향한다. 오늘의 도착지 서울미래유산 남대문시장, 조선 태종까지 거슬러 오르는 시장의 역사를 뒤로하고 먹을 것이 넘쳐나는 골목으로 향한다. 50년을 넘긴 밥집이 여럿이다. 국밥에 곰탕, 닭곰탕, 칼국수, 갈치조림 등 한 끼 밥도 좋고 길거리 음식도 좋다. 돌아보니 출발했던 장충체육관 앞에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장충동 족발거리도 있었구나! 글 장태동 여행작가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우리가 지나는 땅을 되짚어 보면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우리가 지나는 땅을 되짚어 보면

    내 작업실 뒤엔 주차장을 둘러싼 기다란 화단이 있다. 이곳엔 서양측백나무와 당단풍나무, 스트로브잣나무와 서양자두나무 등 평범한 도심 정원에서 흔히 볼 법한 나무들이 있다. 이 화단을 참 좋아한다. 나무 꽃이 아름답고 열매가 맛있어서가 아니라, 화단에 피어나는 다채로운 풀꽃들 때문이다.이맘때면 로제트 잎을 가진 봄 풀꽃들이 색색의 꽃을 피워 낸다.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부지런히 피어난 꽃들이 어찌나 기특한지 나는 요즘 땅만 들여다보고 다닌다. 이맘때 늘 그랬다. 오늘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작업실에 들어오기까지 30분 이상 걸렸다. 오늘 만난 꽃은 꽃마리와 봄맞이꽃, 쇠별꽃, 냉이, 큰개불알풀, 서양민들레, 꽃다지다. 이들은 흔히 잡초라 불리는 풀이다. 내가 이 이름을 나열하면 주변 식물학자들은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흔한 풀이지만, 꽃을 보러 어딘가로 나서지 않아도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시 일상에서 스스로 자라고 피어난 꽃을 만난다는 것은 지금과 같은 시기엔 마치 숲에서 희귀식물을 보는 것만큼 소중한 일이다. 게다가 꽃마리나 쇠별꽃, 냉이와 꽃다지 등은 모두 꽃이 지름 0.5㎝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풀이라 땅에 얼굴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주차장에서 쪼그려 앉아 꽃을 보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슨 귀한 게 있냐며 함께 땅을 들여다보는 일이 생긴다. 물론 이건 이 주차장에서만 있을 법한 일이 아니다.몇 년 전 덴마크의 한 미술가가 한국에서 식물 관련 전시를 진행했고, 그를 도와 서울 서촌의 한 공터 식물들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는 공터의 식물로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에게 식물종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다. 흥미로운 건 도심 한가운데 건물이 철거된 자리,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30평 남짓의 공터에 40종 이상 식물이 존재하며 10종 이상의 꽃은 만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식물 중에는 제비꽃이나 꽃마리가 있었다. 보라색 제비꽃은 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자란다. 심지어는 부서진 시멘트와 콘크리트 사이에서도. 우리나라에 제비꽃만 해도 40여종이 자생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들은 변이가 다양해 식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제비꽃속 중 유럽 원산의 삼색제비꽃과 다른 4종을 교배해 만든 것이 겨울과 초봄 정원을 화사하게 만들어 주는 꽃, 팬지다. 옅은 파란 꽃잎을 가진 꽃마리 역시 도시에서 흔히 보이는 풀꽃이다. 줄기 끝이 말려 꽃마리라 이름 붙여졌는데, 가끔 꽃마리나 참꽃마리 사진을 지인들에게 보여 주면 실제 크기를 짐작할 수 없어서인지 물망초냐고 묻는다. 이들은 물망초와는 먼 친척뻘이고 꽃이 훨씬 작다. 물망초는 원예종으로 개량돼 꽃집에서 볼 수 있지만 꽃마리는 길에 흔하다. 이처럼 꽃집에서 보는 화훼식물과 이 풀꽃들을 연관 지어 떠올리다 보면 풀꽃의 아름다운 가치에 결코 소홀할 수 없다. 나와 함께 공터를 조사한 미술가는 이 다채로운 풀꽃들로 꽃다발을 여러 개 완성했고, 꽃다발 사진은 미술관에 전시되었다. 전시를 본 사람들은 이것이 모두 ‘잡초’라 불리는 식물로 만든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코로나19의 여파로 몇몇 국공립 식물원이 문을 닫았고, 꽃축제는 모두 취소되고 있다. 당분간 멀리 이동하는 걸 금기하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물론 이건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틀 전, 세계적인 식물원인 영국의 큐가든은 앞으로 그들이 가진 식물 컬렉션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과 봉사자들을 건강하게 지키는 것이라며 잠정적으로 방문객 입장을 금지했다. 지금 한창 열리고 있어야 할 세계적인 알뿌리꽃축제인 네덜란드 퀴켄호프는 개최가 무기한 연기됐다. 공지 글에는 ‘이미 꽃은 피었지만, 문을 열 수 없다’고 쓰여 있다. 이미 피어난 꽃의 가치와 그간의 수고를 생각하면 아쉽고 아깝지만 나 역시 이들의 결정을 지지한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우리 가까이에 존재해 온 들꽃을 들여다보기 좋은 때가 아닐까 싶다. 재정적으로 힘들, 가까이의 사립식물원에 가거나 동네 꽃집에서 꽃을 사는 것이 올봄을 느끼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그리고 집 안의 실내식물들로 나의 자연 욕망이 다 채워지지 않는다면 내가 늘 지나는 땅을 되짚어 보았으면 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길에 지나는 아파트 단지 내 화단과 주택 마당의 시멘트 틈 사이, 혹은 회사 주차장의 작은 화단에서 풀꽃들은 이미 그들만의 꽃축제를 벌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은 잠시 걸음을 멈춰 고개를 숙이고 땅을 들여다보는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는 봄꽃 축제다.
  • [따뜻한 세상] “한 분당 2개씩 가져가 주세요” 특별한 마스크 두 장

    [따뜻한 세상] “한 분당 2개씩 가져가 주세요” 특별한 마스크 두 장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마스크 대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스크를 손수 만들어 무료로 나눠주는 따뜻한 손길이 있어 눈길을 끈다. 설치미술가 이효열(33) 작가는 지난 16일부터 일회용 마스크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원단을 치수에 맞게 가위로 자르고 재봉틀을 돌려 꼼꼼히 박음질을 한 뒤 양옆에 끈을 달아 완성한다. 이렇게 완성된 마스크는 하나씩 비닐포장지 속으로 들어가 시민들과 나눔의 장소에 비치된다. 바로 서울 종로구 서촌에 있는 이 작가의 작업실 입구다. 정성스럽게 만들어놓은 마스크는 누구나 무료로 가져갈 수 있다. 시선을 모으는 것은 이 작가의 특별한 바람이 적힌 포스트잇이다. “마스크가 필요하신 분은 한 분당 2개씩 가져가 주세요. 하나는 자신을 위해, 하나는 모르는 사람을 위해 사용해 주세요”라는 메모가 있다. ‘모르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이 캠페인에 대해, 이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에 줄지어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며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특히 모르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이어 그는 “어려운 때일수록 모두 하나가 되어서 이 사태를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며 “기부 릴레이처럼 함께 나눔을 이어갈 수 있는 캠페인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효열 작가는 연탄재에 꽃을 꽂는 설치 작품 ‘뜨거울 때 꽃이 핀다’, 추운 겨울이면 버스정류장에 노란 방석을 설치하는 ‘네모난 봄’, 여름에는 그늘막 쉼터에 양산을 설치하는 ‘우리의 그늘’ 등의 소박한 캠페인을 통해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기자 gophk@seoul.co.kr
  • [인사] 서울시교육청, 공정거래위원회, 대구시교육청(초등), 인천시교육청

    ■ 서울시교육청 ◇ 유치원 원장·원감 인사 <원감에서 원장 승진> △ 위례별유 곽은숙 △ 방학유 권수경 △ 마들유 김미숙 △ 북한산유 성구진 △ 장충유 이선미 △ 남현유 이은경 △ 수락산유 이정희 △ 하늘숲유 전월순 △ 산울림유 최혜원 <공모원장 임용> △ 연지유 강효정 △ 역촌유 박영주 <원장 중임·전보> △ 어진유 이선경 △ 강솔유 김광미 <교육전문직원(관급)에서 원장 전직> △ 솔가람유 권미애 △ 노일유 황지현 <교사에서 원감 승진> △ 남부교육지원청 국영란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김옥 △ 북부교육지원청 김세진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김진아 △ 북부교육지원청 김향연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김현경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김현주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김혜정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문성숙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박은하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박은희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상정진 △ 북부교육지원청 안선희(경수병유) △ 북부교육지원청 안선희(동명병유) △ 동부교육지원청 연현정 △ 서부교육지원청 이공주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이명란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이은정 △ 서부교육지원청 이혜경 △ 동부교육지원청 이희정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임희경 △ 서부교육지원청 장갑희 △ 북부교육지원청 장정아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전지현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최희정 <원감 청 간 전보>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송현주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이은경 ◇ 유아 교육전문직원 인사 <교육전문직원(관급) 전보·전직> △ 서울특별시교육청 유아교육과 장학관 오경미 <원장에서 교육전문직원(관급) 전직> △ 유아교육진흥원장 강경숙 △ 유아교육진흥원 기획연구과장 백정희 <교육전문직원(사급) 전보·전직> △ 유아교육진흥원 박선자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이정인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이혜정 ◇ 초등학교 교장·교감 인사 <교감에서 교장 승진> △ 염경초 권용경 △ 문창초 김광옥 △ 신곡초 김기순 △ 대조초 김명순 △ 광희초 김문숙 △ 강서초 김미영 △ 장위초 김옥령 △ 지향초 김은주 △ 인왕초 김정혜 △ 등촌초 김종금 △ 양목초 김현숙 △ 공연초 김혜정 △ 상봉초 나철영 △ 망우초 박소용 △ 양화초 안말례 △ 위례별초 안정미 △ 진관초 엄계영 △ 금화초 엄수경 △ 윤중초 오문환 △ 신은초 유미영 △ 전곡초 이규상 △ 계상초 이규직 △ 용두초 이연숙 △ 면중초 이은영 △ 선곡초 정경숙 △ 당산초 정혜경 △ 신강초 정화희 △ 장월초 조명옥 △ 영등포초 허혜련 △ 삼광초 황우열 <공모교장 임용> △ 동구로초 김웅현 △ 삼전초 김태인 △ 두산초 문병화 △ 사근초 문성현 △ 신사초 이주희 △ 유현초 임수경 △ 동작초 정정남 △ 묵현초 한권출 <공모교장에서 교장 임용> △ 광진초 김인선 △ 동신초 김진화 △ 마장초 장언경 <교장 중임·전보·유예> △ 공진초 고관희 △ 신화초 김선희 △ 장충초 김순희 △ 여의도초 김인자 △ 학동초 김향연 △ 독립문초 나수연 △ 양재초 박승란 △ 논현초 박은미 △ 수락초 박재희 △ 원명초 유정원 △ 강동초 윤경동 △ 발산초 이봉학 △ 역삼초 이정옥 △ 경동초 이중렬 △ 영도초 이희숙 △ 도성초 임인숙 △ 증산초 조현희 △ 신도초 진경자 △ 석계초 최미묘 △ 구암초 하순옥 △ 대림초 한철수 △ 방산초 강혜숙 △ 삼선초 김영애 △ 매헌초 이인순 △ 서정초 허혜정 △ 고현초 최숙자 △ 공항초 권기옥 △ 신내초 김경희 △ 상수초 김도연 △ 명원초 문교민 △ 길동초 박찬미 △ 신길초 윤경혜 △ 도곡초 윤미희 △ 옥정초 이근실 △ 홍릉초 채정옥 <교육전문직원(관급·사급)에서 교장 전직> △ 신현초 김홍미 △ 구로초 박혜경 △ 잠동초 백미향 △ 한산초 심금순 △ 염리초 정순자 △ 창천초 조현석 △ 연가초 김은정 △ 목원초 김종범 △ 성원초 김종숙 △ 수송초 김희영 △ 누원초 민태일 △ 동명초 이강순 <교사에서 교감 승진>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공순희 △ 남부교육지원청 김명욱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김미라 △ 동부교육지원청 김미란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김용국 △ 남부교육지원청 김종현 △ 서부교육지원청 김진수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김현철 △ 서부교육지원청 김혜정 △ 남부교육지원청 노진우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문영숙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박명희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박인숙 △ 남부교육지원청 박진성 △ 서부교육지원청 신미경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심준섭 △ 중부교육지원청 엄종진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연태협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오이화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오정옥 △ 서부교육지원청 이경희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이계숙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이근자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이묘복 △ 서부교육지원청 이미경 △ 중부교육지원청 이미근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이보연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이상분 △ 남부교육지원청 이성종 △ 중부교육지원청 이혜경(학동초)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이혜경(금동초)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이혜금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임영선 △ 동부교육지원청 정성모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정희숙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조성복 △ 남부교육지원청 조정근 △ 남부교육지원청 최명숙 △ 동부교육지원청 최장선 △ 서부교육지원청 최종숙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한승환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홍은주 <교육전문직원(사급)에서 교감 전직> △ 서부교육지원청 권희은 △ 서부교육지원청 김영진 △ 동부교육지원청 손윤득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임정미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장석원 △ 서부교육지원청 정재원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정천연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조미연 △ 남부교육지원청 조영숙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한선혜 <교감 청 간 전보>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김준호 △ 북부교육지원청 유연희 △ 동부교육지원청 이은미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황혜정 ◇ 초등 교육전문직원 인사 <교육전문직원(관급) 승진>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교육장 민계홍 △ 초등교육과장 최규애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함혜성 △ 학생교육원 대천임해교육원분원장 라민호 <교육전문직원(관급) 전보> △ 민주시민생활교육과 평화·세계시민·다문화교육 장학관 한미라 <교장에서 교육전문직원(관급) 전직> △ 체육건강문화예술과 창의·예술·교육기부 장학관 정선숙 △ 서부교육지원청 학교통합지원센터장 김명희 △ 서부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장 송현숙 △ 북부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장 이의란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장 김선희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학교통합지원센터장 김장균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장 안광용 <교감·교사에서 교육전문직원(사급) 전직> △ 동부교육지원청 라향숙 △ 서부교육지원청 한동기 △ 중부교육지원청 이영관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고연숙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방일순 △ 교육연수원 김미경 △ 남부교육지원청 김정미 △ 중부교육지원청 류승연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송찬경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이강미 △ 중부교육지원청 이성주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이현심 △ 동부교육지원청 임순자 △ 교육연수원 조선희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지청숙 △ 북부교육지원청 황은영 <교육전문직원(사급) 전보·전직>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김재성 △ 교육연수원 강인경 △ 민주시민생활교육과 고민석 △ 과학전시관 김민회 △ 중부교육지원청 김혜영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류경석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박해연 △ 초등교육과 배성호 △ 진로직업교육과 백현숙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신진희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오상표 △ 교육연구정보원 오선미 △ 교육혁신과 위주환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유태호 △ 체육건강문화예술과 윤선자 △ 동부교육지원청 이미현 △ 정책·안전기획관 이숙매 △ 남부교육지원청 이진우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이태동 △ 교육연구정보원 정선일 △ 민주시민생활교육과 정성준 △ 초등교육과 정은선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정희진 △ 민주시민생활교육과 최영태 ◇ 중등 교장·교감 인사   <공모교장에서 교장> △ 상경중 노유경 △ 아현산정 신상열 △ 성서중 이영아 △ 휘봉고 이재억 △ 양재고 임규형 <교감에서 교장으로 승진> △ 염경중 강병호 △ 윤중중 강은숙 △ 마곡하늬중 강진자 △ 시흥중 김돈희 △ 대림중 김시영 △ 세일중 김영선 △ 개운중 김원겸 △ 신반포중 김진옥 △ 신암중 김춘자 △ 강북중 김팔성 △ 수서중 남신 △ 거원중 박해화 △ 천일중 배필수 △ 백운중 변원목 △ 창일중 여성림 △ 경수중 유강우 △ 수유중 윤석구 △ 노곡중 윤형택 △ 방화중 이경현 △ 신수중 이성호 △ 광양중 이재우 △ 문정중 이준임 △ 항동중 이한구 △ 인헌중 임경수 △ 화계중 임영은 △ 북악중 조상주 △ 성수중 조성욱 △ 방배중 조향제 △ 송정중 최희경 △ 수명중 하광열 <공모교장> △ 서울로봇고 강상욱 △ 미양고 김영현 △ 신림중 김현태 △ 서울과학고 오성환 △ 효문고 이시우 <교장 중임> △ 대명중 김정화 △ 용산중 김해숙 △ 서울국제고 류성남 △ 영원중 박상태 △ 신목고 서종일 △ 선유고 유경식 △ 강서공업고 이주암 △ 은평문예정 임성빈 △ 수명고 임승호 △ 중암중 정선영 △ 염창중 최수일 △ 불암고 한홍열 △ 경인고 황원기 <교육전문직원(관급)에서 교장으로 전직> △ 가재울중 강흥권 △ 월촌중 고광석 △ 광희중 김진효 △ 양진중 김해경 △ 서울방송고 신창진 △ 자양고 이상수 <교장 전보> △ 청운중 김옥남 △ 휘경공업고 류현호 △ 상계고 민병인 △ 명일여고 이점순 △ 서초문예정 이춘근 △ 영신고 장상술 △ 은평고 차혁성 <교사에서 교감으로 승진> △ 남부교육지원청 고정민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권소림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권충환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김동근 △ 경기고 김병인 △ 서부교육지원청 김상돈 △ 금천문예정 김억경 △ 서울공고 김영권 △ 남부교육지원청 김영임 △ 남부교육지원청 김원구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김호실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문용호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박재선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송원근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신귀항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신영순 △ 남부교육지원청 양선직 △ 북부교육지원청 오묘순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윤여한 △ 북부교육지원청 이상윤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이원흥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이정환 △ 동부교육지원청 이형엽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이화진 △ 북부교육지원청 임귀선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임래묵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정관용 △ 남부교육지원청 조민수 △ 북부교육지원청 조인숙 △ 동부교육지원청 천명희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최승열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최현주 △ 북부교육지원청 현종호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홍선규 <교육전문직원에서 교감으로 전직> △ 노원고 김나영 △ 서울고 김양수 △ 남부교육지원청 김영복 △ 서부교육지원청 김찬우 △ 선사고 김해용△ 청량고 박정주 △ 대영고 배병일 △ 중부교육지원청 성은정 △ 선유고 손의성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신현주 △ 고척고 오준식 △ 중부교육지원청 이명숙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이미진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이세호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이훈정 △ 양재고 조영순 △ 아현산정 주기녀 △ 효문고 한혜숙 <교감전보·전보유예>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강구정 △ 수명고 강동숙 △ 서부교육지원청 권혜순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김경희 △ 누원고 김기수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김미혜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김용완 △ 경동고 김재명 △ 신도림고 김정열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노영준 △ 서부교육지원청 박상복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박성규 △ 경기기계공고 박윤철 △ 중화고 박정욱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박종찬 △ 진관고 박치동 △ 남부교육지원청 배종규 △ 서부교육지원청 신만섭 △ 성동고 신무선 △ 서울공고 안영호 △ 종로산정 안재완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원유미 △ 동부교육지원청 유정호 △ 남부교육지원청 이동진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임지영 △ 북부교육지원청 정영옥 △ 서부교육지원청 한수찬 ◇ 중등 교육전문직원 인사 <교육전문직원(관급) 승진> △ 북부교육지원청 교육장 조호규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교육장 정영철 △ 민주시민생활교육과장 윤여복 <교장에서 교육전문직원(관급)으로 전직>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교육장 김용호 △ 남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이건재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정복영 △ 학생교육원 교육기획운영부장 방승호 <교감에서 교육전문직원(관급)으로 전직> △ 민주시민생활교육과 성평등 김종미 △ 서부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장 채영이 △ 남부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장 강순원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장 정동회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장 홍난희 <교사에서 교육전문직원(사급)으로 전직>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권오순 △ 동부교육지원청 김광용 △ 서부교육지원청 김민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김민성 △ 남부교육지원청 김완종 △ 서부교육지원청 김정연 △ 교육연구정보원 박정원 △ 동부교육지원청 박현주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변혜원 △ 동부교육지원청 송치순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오승한 △ 북부교육지원청 윤원정 △ 남부교육지원청 이범석 △ 교육연수원 이성재 △ 교육연수원 이수정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이영희 △ 북부교육지원청 이지현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이진수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이치형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정승호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조성호 <교육전문직원(사급) 전보·전직> △ 민주시민생활교육과 강현희 △ 참여협력담당관 고민순 △ 중등교육과 김경미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김광용 △ 서부교육지원청 김명규 △ 체육건강문화예술과 김병호 △ 학생체육관 김보라 △ 중등교육과 김승희 △ 중등교육과 김유미 △ 중등교육과 김은주 △ 체육건강문화예술과 김종우 △ 교육혁신과 노원경 △ 진로직업교육과 도귀연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박기성 △ 교육연구정보원 박선희 △ 체육건강문화예술과 박연주 △ 감사관 박은경 △ 교육혁신과 백경화 △ 교육혁신과 복대원 △ 중등교육과 신지영 △ 서부교육지원청 유세진 △ 정책안전기획관 윤상혁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이봉용 △ 중부교육지원청 이원렬 △ 대변인 이은영 △ 중등교육과 이은영 △ 교육연구정보원 이재중 △ 총무과 이지영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정나미 △ 진로직업교육과 조경숙 △ 진로직업교육과 조유현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조풍구 △ 교육혁신과 조현종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최정윤 △ 과학전시관 한승희 △ 중등교육과 한정현 <교육부에서 전입> △ 잠실고 오승걸 ◇ 특수학교 교장·교감 인사 <교장 중임·유예> △ 서울정문학교 김현진 <교육전문직원(관급)에서 교장 전직> △ 서울서진학교 홍용희 <교사에서 교감 승진> △ 서울서진학교 심윤서 △ 서울정진학교 정미경 <교육전문직원(사급)에서 교감 전직> △ 서울정진학교 박진 ◇ 특수 교육전문직원 인사 <교감에서 교육전문직원(관급) 전직> △ 민주시민생활교육과 특수교육지원센터 장학관 전상희 <교사에서 교육전문직원(사급) 전직> △ 동부교육지원청 임효선 ■ 공정거래위원회 ◇ 과장급 승진 △ 서울지방공정거래사무소 소비자과장 임성찬 ■ 대구시교육청(초등) ◇ 교장(원장) [승진] △ 대천초 권은숙 △ 대산초 김경란 △ 서동초 김미영 △ 경진초 김봉희 △ 칠곡초 김세환 △ 구지초 김주경 △ 관남초 김지태 △ 봉덕초 류명순 △ 침산초 박명희 △ 비산초 박영순 △ 해안초 박정식 △ 범물초 배득순 △ 남명초 손정화 △ 달산초 송경애 △ 달성초 이종숙 △ 성북초 이현주 △ 대봉초 전경희 △ 사수초 조광미 △ 태전초 황덕근 △ 중앙초 김송욱 △ 태암초 박화자 △ 도림초 배은희 △ 동덕초 윤정희 △ 성동초 천민필 [중임] △ 세천유 김월계 △ 신천가온유 김일욱 △ 자연누리유 김정희 △ 황금유 박명숙 △ 삼영유 윤덕희 △ 월배유 이덕주 △ 남양학교 이숙희 △ 동산초 김경옥 △ 만촌초 김미숙 △ 화동초 김숙자 △ 동신초 김영옥 △ 사월초 김은희 △ 매호초 김일 △ 월배초 김지숙 △ 덕성초 노미란 △ 한샘초 반해정 △ 함지초 이성태 △ 장산초 이인숙 △ 송일초 이준호 △ 율원초 임현혜 △ 대진초 장명순 △ 경운초 최순희 △ 칠성초 황경숙 [전보] △ 대명초 권미숙 △ 세현초 김승회 △ 죽곡초 김위향 △ 고산초 김정희 △ 포산초 김정희 △ 이곡초 김주석 △ 지산초 김태선 △ 관음초 김한식 △ 화원초 김훈술 △ 신월초 김희자 △ 대남초 류춘원 △ 성곡초 박성호 △ 죽전초 배이화 △ 용천초 빈중섭 △ 명곡초 송창익 △ 동평초 신명숙 △ 한솔초 오순화 △ 대서초 이동화 △ 남부초 이임락 △ 남산초 장영숙 △ 범일초 정미희 △ 월촌초 조경희 △ 동촌초 지승욱 △ 복명초 채정순 △ 용지초 천민해 △ 노전초 최성기 [전직] △ 숙천초 윤여선 △ 들안길초 이윤옥 △ 남동초 임춘우 △ 한실초 정병원 △ 학남초 허미정 [초빙] △ 남대구초 구영미 ◇ 교감(원감) [승진] △ 동문초 고경임 △ 서촌초 두선미 △ 중앙초 박지윤 △ 황금초 여상한 △ 성동초 유명희 △ 입석초 장은숙 △ 새론초 조정숙 △ 송정초 지명주 △ 비봉초 김철완 △ 북비산초 노인순 △ 중리초 문성순 △ 북부초 배영희 △ 북대구초 이경미 △ 침산초 이순식 △ 삼영초 이주형 △ 태전초 이채윤 △ 영선초 강경택 △ 월암초 남윤모 △ 성서초 박남순 △ 본리초 박진아 △ 신월초 박해영 △ 봉덕초 신영주 △ 세천초 신미경 △ 비슬초 한미영 [전보] △ 세천유 박경화 △ 한실초병설유 서순남 △ 대실유 채정화 △ 비슬유 황은숙 △ 만촌초 강혜경 △ 해서초 공영순 △ 들안길초 권금자 △ 매동초 김명희 △ 명덕초 김미경 △ 봉무초 김미향 △ 용지초 김승남 △ 동촌초 김은정 △ 효동초 김태희 △ 동일초 백면희 △ 사월초 변순덕 △ 범어초 송의연 △ 청림초 이상기 △ 동산초 이양희 △ 신천초 정경숙 △ 동신초 채태희 △ 동도초 한찬 △ 성북초 권오걸 △ 비산초 김성옥 △ 경운초 김영자 △ 칠성초 이용락 △ 달산초 장순희 △ 인지초 정영미 △ 칠곡초 정윤희 △ 강북초 최영란 △ 관남초 최영분 △ 태암초 홍선주 △ 대곡초 김경수 △ 대봉초 김명선 △ 와룡초 김성자 △ 노전초 김은희 △ 신당초 김진성 △ 상인초 김찬수 △ 장기초 박미애 △ 송현초 백승옥 △ 한실초 이보경 △ 신서초 이수환 △ 남덕초 이영숙 △ 용산초 이윤창 △ 성곡초 임휘성 △ 남명초 전혁진 △ 대서초 최명숙 △ 논공초 김만도 △ 구지초 김미영 △ 천내초 김미정 △ 북동초 김애경 △ 가창초 김영희 △ 화남초 김은영 △ 강림초 김희정 △ 동곡초 백종숙 △ 금포초 이숙홍 △ 효신초 차수선 △ 대남초 김금연 △ 장산초 반홍자 △ 대명초 안상한 △ 반송초 여균 [전직] △ 자연누리유 이세희 △ 경동초 정미현 △ 숙천초 황재연 △ 학남초 민병조 △ 평리초 이재훈 △ 죽전초 백광순 ◇ 교육전문직 [승진] ▷ 부장에서 원장 △ 교육연수원 원장 김승한 ▷ 장학사에서 장학관 △ 생활문화과 김은옥 [전보] ▷ 장학관 △ 초등교육과 이해연 △ 남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이철구 ▷ 장학사 △ 유아특수교육과 최윤정 구영주 △ 융합인재과 권순우 △ 초등교육과 김상은 박지현 우경수 △ 생활문화과 정재훈 △ 동부교육지원청 이순주 △ 달성교육지원청 학교생활건강센터 차국섭 [전직] ▷ 교장(공모교장)에서 장학관(교육연구관) △ 서부교육지원청 교육장 황윤식 △ 기획조정과장 안영자 △ 유아특수교육과장 이삼선 △ 교육연수원 기획부장 김한룡 ▷ 교감에서 장학관(교육연구관) △ 미래교육과 김봉수 △ 미래교육연구원 교수학습지원부장 정승록 ▷ 교육연구사에서 장학사 △ 남부교육지원청 강용운 △ 동부교육지원청 남정철 정경령 최명선 △ 달성교육지원청 박창숙 유은경 △ 서부교육지원청 조미경 ▷ 교사에서 교육연구사(장학사) △ 서부교육지원청 윤정희 이은숙 △ 융합인재과 유동욱 △ 동부교육지원청 권순호 △ 팔공산수련원 윤영훈 △ 미래교육연구원 이소라 이은경 △ 창의융합교육원 이수진 이현주 정현숙 △ 교육연수원 정솔 [전입] △ 학생문화센터 김은선 [파견] △ 한국교원대학교 이근진 ■ 인천시교육청 ※ 유치원ㆍ초등ㆍ특수 ◇ 교육전문직원 전보 △ 시교육청 정책국 정책기획과장 신경순 △ 동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김미석 ◇ 교장→장학관·교육연구관 전직 △ 시교육청 마을교육지원단장 조선미 △ 서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전병식 △ 남부교육지원청 초등교육과장 최영신 △ 북부교육지원청 초등교육과장 강계윤 △ 시교육청 안전체험관장 구본준 ◇ 교육전문직원→교장 전직 △ 갑룡초 최형목 △ 동춘초 이상미 △ 청량초 김응균 △ 부내초 김석례 △ 함박초 손재윤 ◇ 교장 중임 △ 연송초 박경덕 △ 문남초 박인덕 △ 일신초 박찬구 △ 한길초 안명모 △ 목향초 안형석 △ 간재울초 윤순동 △ 간석초 함병미 ◇ 교장·원장 전보 △ 합일초 김미자 △ 인동초 김애경 △ 송월초 김용성 △ 소래초 김인호 △ 개흥초 모영수 △ 단봉초 백옥란 △ 연성초 신문희 △ 정각초 이옥경 △ 연화초 이유환 △ 길주초 이준희 △ 용학초 임종천 △ 청일초 최명자 △ 갈월초 최임인 △ 검암유치원 양효숙 △ 예송유치원 차은선 △ 서희학교 류애숙 ◇ 재외교육기관 파견 △ 일본 센다이한국교육원장 고승천 ◇ 교장 승임 △ 경서초 김석봉 △ 부원초 김연갑 △ 병방초 이지훈 △ 학익초 임항빈 △ 논곡초 전영찬 △ 동부초 조성철 △ 당산초 조정길 △ 옥련초 홍광희 △ 효성동초 김창복 △ 청학초 김창용 △ 상정초 박종탁 △ 구월초 박평희 △ 아암초 배장우 △ 상아초 배재상 △ 조산초 백동기 △ 신촌초 이은혜 △ 부현동초 이종학 △ 서흥초 이지훈 △ 만석초 이형섭 △ 서곶초 정춘인 △ 부평동초 차인철 △ 부평북초 채익수 △ 석정초 최승호 △ 주안북초 최종진 △ 부광초 함환웅 △ 석남초 홍상임 △ 연일학교 정영남 ◇ 교장 공모 △ 계산초 김진규 △ 가림초 이상훈 △ 용정초 이종숙 ※ 중등 ◇ 교육전문직원 임용 △ 시교육청 정책국장 정의정 △ 동부교육지원청 교육장 한광희 △ 시교육청 정책국 민주시민교육과장 이종원 △ 시교육청 교육과학정보원장 이하용 ◇ 교장→장학관·교육연구관 전직 △ 시교육청 학생교육원장 이성호 △ 시교육청 교육국 평생교육체육과장 서상교 △ 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 유충열 △ 시교육청 학생교육문화회관 연수부장 김경훈 △ 강화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고석봉 ◇ 장학관·교육연구관→교장 전직 △ 국제고 장후순 △ 가림고 김기택 △ 부평여고 고보선 △ 영종고 정혜경 △ 함박중 윤재환 ◇ 교장 중임 △ 신송고 고학재 △ 부개고 김귀술 △ 연성중 김성동 △ 삼산고 김현목 △ 구월중 신갑식 △ 송천고 이원희 △ 연송고 이해경 △ 도림고 한연주 ◇ 교장 전보 △ 도화기계공고 강선구 △ 학익여고 권상수 △ 교동고 김경숙 △ 상인천여중 김길중 △ 생활과학고 김수억 △ 옥련여고 김영민 △ 청량중 노현호 △ 해원고 류기서 △ 마전고 오동화 △ 연수여고 우인상 △ 남동고 윤영실 △ 인천남고 이영우 △ 고잔고 장근수 △ 원당중 전동명 △ 신흥여중 정병헌 △ 심도중 홍성춘 ◇ 교장 승임 △ 연수중 김기철 △ 경연초중 이현주 △ 인천중 김세환△ 서운중 오병학 △ 한누리학교 이귀원 △ 해양과학고 손태기 △ 북인천여중 이영자 △ 정보산업고 윤승제 △ 동방중 김양희 △ 청람중 김상철 △ 가좌중 이성규 △ 신송중 박애희 △ 북인천중 박창이 △ 부평중 성윤미 △ 강화여고 유복현 △ 화도진중 조성환 △ 강서중 신학균 △ 연화중 정진승 △ 산업정보학교 김신제 △ 인천남중 강기호 △ 용유중 서은희 △ 덕적고 김수경 ◇ 교장 공모 △ 과학예술영재학교 심현보 △ 해밀학교 육철민 △ 전자마이스터고 김봉영
  • 경기 “성남 서현동 등 지명 40%, 일제가 바꾼 것”

    경기 성남시 ‘서현동’이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동이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일제강점기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둔서촌, 양현리, 통로동 등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한 글자씩 따 서현동으로 변경했다. 이 같은 ‘합성 지명’은 서현동 말고도 경기도 내에 100곳이 넘는다. 15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내 398개 읍면동을 대상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명칭 변경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약 40%인 160곳이 당시 고유의 명칭을 잃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제는 ‘창씨개명’뿐만 아니라 ‘창지개명’도 했던 것이다. 도는 도내 시군을 대상으로 행정구역 명칭 변경 의사 여부를 수렴해 바로잡을 예정이다. 도는 “일본은 일제강점기에 식민 통치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1914년 대대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우리나라 지명을 변경했다”면서 “이 시기 전국 330여개 군이 220개 군으로 통합됐고 경기도는 36개에서 20개 군으로 축소됐다”고 밝혔다. 도내에서 일제에 의해 변경된 읍면동 지명의 유형을 보면 두 지명에서 한 자씩 선택해 합친 ‘합성 지명’이 121곳으로 가장 많았다. 성남 서현동 말고도 수원시 구운동, 성남시 분당동, 용인시 신갈동, 화성시 매송면 등이 두 곳 이상의 지명을 합성해 만든 지명이다. 일제가 식민 통치의 편리성을 위해 숫자 위치 등을 사용해 변경한 사례도 29곳이나 됐다. 광주시 중부면과 연천군 중면이 이에 해당된다. 부천시 심곡동 등 3곳은 일제가 기존 지명을 삭제한 후 한자화한 지명이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경기도, 일본의 창지개명(創地改名) 잡는다

    경기도, 일본의 창지개명(創地改名) 잡는다

    경기 성남시 ‘서현동’이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동 이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일제 강점기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둔서촌, 양현리, 통로동 등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한 글자씩 따 서현동으로 변경했다. 이같은 ‘합성지명’은 서현동 말고도 경기도내에 100곳이 넘는다. 15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내 398개 읍·면·동을 대상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명칭 변경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이중 40%인 160곳이 당시 고유의 명칭을 잃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제는 우리 고유의 정서와 의식을 말살하고자 ‘창씨개명’ 뿐만 아니라 ‘창지개명’도 했던 것이다. 도는 “일본은 일제강점기에 식민 통치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1914년 대대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우리나라 지명을 변경했다”면서 “이 시기 전국 330여개 군이 220개 군으로 통합됐고 경기도는 36개에서 20개 군으로 축소됐다”고 밝혔다. 도내에서 일제에 의해 변경된 읍·면·동 지명의 유형을 보면 두 지명에서 한 자씩 선택해 합친 ‘합성지명’이 121곳으로 가장 많았다. 성남 서현동 말고도 수원시 구운동, 성남시 분당동, 용인시 신갈동, 화성시 매송면 등이 두 곳 이상의 지명을 합성해 만든 지명이다. 일제가 식민 통치의 편리성을 위해 숫자나 방위, 위치 등을 사용해 변경한 사례도 29곳이나 됐다. 광주시 중부면과 연천군 중면이 해당된다. 광주시 중부면은 1914년 군내면과 세촌면을 통합하면서 방위에 따른 명칭인 중부면으로 개칭됐, 연천군 중면은 연천읍치의 북쪽이었던 북면을 ‘연천군의 중앙에 위치한다’해서 중면으로 개칭됐다. 일제가 기존 지명을 삭제한 후 한자화 한 지명은 3곳이었다. 부천시 심곡동이 대표적으로 일제는 고유지명인 먹적골, 벌말, 진말을 병합하면서, 심곡동(深谷洞)으로 변경했다. 심곡은 원래 토박이말로 ‘깊은 구지’라는 뜻이다. 지명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향토 정서가 왜곡된 사례도 있었다. 안성시 일죽면이 대표적인데, 일제는 1914년 죽산군을 폐지하며 남일면, 남이면, 북일면, 북이면, 제촌면을 안성군의 죽일면으로 만들었으나 듣기에 따라 욕으로 들릴수도 있어 이듬해 일죽면으로 변경됐다.곽윤석 경기도 홍보기획관은 “일제에 의해 고유 지명이 사라진 역사적 치욕을 바라보면서 진정한 민족의 독립과 문화 창달의 과제가 여전히 남 아있음을 느끼게 된다”며 “해당 시·군과 긴밀히 협력해 사라지거나 왜곡된 우리의 고유 지명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일제잔재 청산과 지역의 역사성·정체성 회복을 위해 현재 31개 시·군을 대상으로 행정구역 명칭 변경 의사 여부를 수렴중이며 향후 대상지가 확정되면 행정구역 명칭 변경을 통해 고유한 행정지명 복원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장동석 평론가의 뉴스 품은 책] 도시가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장동석 평론가의 뉴스 품은 책] 도시가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서울 주요 상권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상권별 중대형 주요상가 공실률’에 따르면 광화문 공실률은 올 1분기 10%에서 2분기 12.6%로, 청담은 16.1%에서 17.6%로 늘었다. 이태원은 상상을 초월한다. 24.3%에서 26.5%로 늘었다.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더 싼 지역을 찾아 짐을 쌀 수밖에 없는 자영업자들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이처럼 수치를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는 문화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지리학자 등 국내 연구진 8명이 서촌, 홍대, 가로수길, 구로공단, 창신동, 해방촌 등에서 진행한 현장 연구를 바탕으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본질에 다가간다. 저자들은 동네 토박이, 세입자, 건물주, 부동산 중개업자, 구청 직원 등의 심층 인터뷰는 물론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 동안 현장을 관찰했다. 자영업자들뿐 아니라 삶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는 소시민들의 삶, 예술마을이 해체되는 과정 등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우리 사회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구로공단은 1960~70년대 수출 중심 성장 기조에 따라 정부가 기존 주민을 강제 이주시키고 건설한 대규모 공장지대였다. 시대 변화에 따라 제조업은 쇠퇴했고, 공장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이젠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변모했다. 숱한 공장 노동자들과 가족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봉제업으로 동네가 돌아가던 창신동 역시 쇠락을 길을 걷고 있다. 도시재생 대상 지역으로 지정됐지만, 지역 주민을 위한 재생은 찾을 수가 없다. 보통 젠트리피케이션은 갑과 을, 승자와 패자가 분명한 현상인데, 서울 서촌은 복잡다단한 지형을 형성한다. 서촌 토박이들와 이주민들이 다양한 층위를 이룬다. 카페나 상점 등을 운영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이들은 ‘서촌 보존’이라는 공통의 명제를 추구하면서도 방법만큼은 제각각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전국적 현상이고, 대개 사회적 약자들이 아무런 대책 없이 희생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한 사람이 삶을 살아낸 장소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제다. 그래서 저자들은 책 말미에 도시가 먼저인지, 사람이 먼저인지 묻는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사람이 먼저”라 하겠지만, 자본은 끝내 “도시가 먼저”라고 행동으로 보여 줄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서 안전한 곳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 [길섶에서] 골목길/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서울의 매력은 골목골목, 구석구석마다 역사와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데 있다. 도심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 피맛골(높은 벼슬의 관리가 종로 큰길을 오갈 때 평민들이나 낮은 벼슬의 관리들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다니던 뒷골목)을 비롯해 광화문, 종로, 충무로 등 골목마다 숱한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북악산 한쪽 자락에 위치한 종로구 부암동은 문학인들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윤동주문학관이 있고 소설가 현진건도 이곳에서 살았다. 자연히 횡보 염상섭, 월탄 박종화 등 당대의 시인, 소설가들이 이 일대를 중심으로 어울리고, 문학과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했다. 윤동주문학관 뒤편의 ‘시인의 언덕’도 이런 사연을 담고 있어 시민들의 발길을 이끈다. 경복궁 옆 ‘서촌’은 윤동주의 하숙집이 있었던 곳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시인의 마음이 전해질 듯한 곳이다. 웬만해서는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회가 됐지만, 서촌의 골목길을 찾는다면 ‘서시’(序詩)를 한 번쯤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염치(廉恥)가 없음을 부끄러워한다면 치욕스런 일이 없을 것이다”라는 경구를 떠올리며…. yidonggu@seoul.co.kr
  • 서울탄생 설화 깃든, 김소월 흔적 담긴 왕십리… 진정 난 몰랐네

    서울탄생 설화 깃든, 김소월 흔적 담긴 왕십리… 진정 난 몰랐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3차 김소월의 왕십리’ 편이 지난달 28일 성동구 행당동과 마장동, 홍익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왕십리역 4번 출구 시계탑 앞에 집결, 김소월의 시비를 보고 마장 축산물시장을 돌아서 왕좌봉 표석이 있는 동명초등학교와 한우고기집으로 유명한 대도식당을 거쳐 청계천박물관에서 탐사를 마쳤다. 이날 코스에서 서울미래유산은 김소월의 ‘왕십리’ 시비, 마장 축산물시장, 대도식당 등 3곳이었다. 참석자들은 소월 시비 앞마당에 앉아 해설자가 들려주는 노래의 제목 알아맞히기 게임을 했는데 우리가 흔히 듣고 불러 온 가요의 노랫말이 소월의 시였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동명초등학교 교정에 서 있는 왕좌봉 표석은 600여년 전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려고 지형을 살핀 봉우리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평평한 주택가로 변해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고층 아파트단지가 옛 봉우리를 대신하는 듯했다. 해설을 맡은 전혜경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군더더기 없는 해설과 진행으로 참가자들을 이끌었다.왕십리는 우리가 흔히 무학대사의 일화에서 농부로 변신한 도선대사로부터 ‘여기서 십리를 더 가라는 가르침을 받은 곳’으로 널리 알려진 도참설의 근거지이다. 서울천도와 서울탄생 설화의 고향이다. 무학봉, 왕좌봉, 도선동 같은 전래지명이 뒷받침한다. 왕십리(往十里)라는 지명은 이를 소리 나는 대로 읽고,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왕심리(旺審里) 또는 왕심리(往尋里)로 바뀌곤 한다. 더러는 왕십리벌, 왕심평이라고도 불렸다. 답십리와 함께 도성에서 10리 떨어진 마을이라는 뜻이다. 옛 서울의 중앙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왕십리는 사대문 밖 동남쪽 지역으로 대개 하촌 또는 아랫대라고 불렸다. 사대문 안 동촌, 서촌, 남촌, 북촌에 주로 양반이 살았다면 중촌에는 의관과 역관, 화원 등 전문직업인이 거주했다. 요즘 서촌이라고 잘못 이름 붙여진 인왕산 아래 마을은 상촌 또는 웃대라고 하여 궁이나 관아에서 일하는 중인과 아전의 거주지였다. 하촌은 청계천 효경교 아래 동대문과 광희문 사이를 말하는데 주로 군교(하급장교)들이 거주했다. 이곳에 훈련도감의 하도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예지동·주교동·방산동·을지로6가·을지로7가·광희동·신당동이 아랫대에 해당한다. 군인과 군속 거주지라고 봄 직하다. 1751년(영조27)에 반포된 ‘도성3군문 분계총록’에는 한성부 동부 인창방이라고 기록돼 있다. 1865년(고종2) 편찬된 ‘육전조례’에 왕십리 1, 2계였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왕십리계로 통합됐다. 일제강점기 고양군 한지면 상왕십리, 하왕십리였으며 1936년 행정구역 확장 당시 경성부에 편입됐다. 조선 오백년 내내 왕십리는 채소재배지로 유명했다. 조선 초기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동대문 밖 왕심평(왕십리)은 순무·무·배추 등 야채류의 산지”라고 기록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은 ‘예덕 선생전’에서 “예덕선생은 매일 마을의 똥을 져 나르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그를 불러 엄행수라고 불렀다. …왕십리에서 무, 살곶이다리에서 순무, 석교에서 가지·오이·수박, 연희궁에서 고추·부추·해체, 청파에서 미나리, 이태원에서 토란 같은 것들이 나오는데, 밭은 상상전에 심고 모두 엄씨의 똥을 써서 가꾸어 내는 것이다”고 왕십리의 채소재배 전통을 설명했다.‘왕십리똥파리’는 채소재배지라는 숙명에서 따라온 부정적 이미지이다.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이다 보니 1930년 동대문~왕십리~뚝섬 간 기동차라는 이름의 궤도가 부설됐다. 기동차에는 채소와 땔감, 한강에서 채취된 얼음을 실어 날랐다. 뚝섬유원지로 가는 교통수단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기동차에 동대문 인분저장소의 인분을 실어다가 뚝섬 채소밭에 거름으로 사용하다 보니 파리가 들끓기 마련이었다. 왕십리똥파리는 왕십리와는 무관하게 붙은 억울한 지역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에 출간된 ‘동국여지비고’에는 왕십리의 식물성 이미지를 뒤엎는 ‘현방’ 관련 기록이 나온다. 현방이란 소를 잡아서 파는 정육점이다. 고기를 매달아서 팔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다림방, 푸줏간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하다. 한양도성 내 23곳의 현방 중 왕십리 현방을 소개했다. 이는 18세기 이후 왕십리를 중심한 뚝섬 일대가 한강 해상교통의 중심지 중 한 곳으로 떠오르면서 고기수요가 많았음을 반증한다. 뚝섬 일대는 강원도에서 북한강 물길에 띄워 보낸 땔감이 부려진 곳이고, 퇴적층이라서 채소농사에 알맞았다. 고산자 김정호의 ‘수선전도’에 왕십리는 서쪽으로 동대문~영도교~광희문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 왕십리~살곶이다리~뚝섬으로 각각 연결된 모습으로 그려졌다. 오늘의 마장동은 조선시대 살곶이목장 중 시장지대였다. 살곶이목장은 조선 전기 87곳, 후기 209곳에 이르던 전국의 목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국립목장으로, 전국에서 뽑은 우수한 말 400~500필을 모아서 방목했다. 말 한 필이 면포 수백필에 해당할 정도였으니 말의 관리와 경비가 삼엄했다. 살곶이목장에는 말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마조단, 말을 처음 기른 사람에게 제사 지내는 선목단, 말을 처음 탄 사람을 모시는 마사단, 말을 해치는 신에게 제사하는 마보단 등 4개의 제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냈다. 마조단을 알리는 표석은 살곶이다리와 중랑천을 굽어보는 한양대 캠퍼스 안에 있다. 오늘의 뚝섬, 자양동, 면목동, 군자동, 능동, 중곡동 등이 목장지대에 해당한다. 말 목장에 소를 함께 키웠다. 조선시대 관혼상제와 행사에 소고기는 빠질 수 없는 음식이었으나 왕실과 사대부가에만 허용되고 일반 백성에게는 소를 잡거나 먹지 못하도록 제한했기에 밀도살이 심했다. ‘한 집 걸러 한 집’ 정도로 성행했다.일제강점기 숭인동에 있던 가축시장과 도축장이 해방 이후 마장동으로 이전하면서 조선시대 말을 비롯한 모든 가축이 거래되는 시장의 관성이 다시 이어졌다. 1958년 청계천변 판잣집을 철거한 부지에 가축시장이 문을 연 뒤 1961년 도축장이 지어졌다. 그러나 1990년 이후 지방 소고기의 서울반입이 허용되면서 서울의 도축수요는 감소했다. 게다가 폐수와 악취 등이 도심에 부적합한 시설로 낙인찍히면서 1974년 가축시장, 1998년 도축장이 차례로 폐쇄되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시장은 살아남았다. 1963년 개장 이후 수도권 축산물 유통의 60~70%를 담당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육류 유통전문시장이다. 면적 11만 6150㎡이며, 점포는 총 3000여개, 연간 이용객 수는 약 200만명, 종사자 수는 약 1만 2000여명에 이른다. 하루 거래되는 축산물은 소 1000여 마리, 돼지 2만여 마리다.왕십리는 무학봉, 왕좌봉, 도선동 같은 서울탄생의 설화가 깃든 유서 깊은 고장이다. 뚝섬과 마장 축산시장에는 목장의 관성이 살아 숨 쉰다. 살곶이는 청계천과 성북천, 중랑천이 한데 모여 한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합류지다. 청계천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는 한강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흐르는 역류의 하천이다. 뉴타운 개발사업의 완료의 함께 왕십리는 새 역사지층을 맞이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24차 창덕궁~창경궁 담장 길 풍경 ■집결장소: 10월 5일(토) 오전 10시 창덕궁 돈화문 앞(안국역 3번 출구에서 300m)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 (www.suci.kr)
  • [데스크 시각] 구청장 3선 연임의 조건/주현진 사회2부장

    [데스크 시각] 구청장 3선 연임의 조건/주현진 사회2부장

    민선 7기 들어 25명의 서울 구청장 가운데 8명이 3선 연임으로 10년째 지역을 이끌어 오고 있다. 1995년 처음 시작한 지방자치가 20년 이상 무르익으면서 3선 연임이 대거 출현했다. 민선 3기 때 반짝 5명이 나온 뒤 민선 4~6기 단 3명을 배출한 데 그친 것을 감안하면 3선 중진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주인공은 강서, 강북, 구로, 도봉, 동대문, 서대문, 용산, 종로 등 8곳이다. 지자체장은 최대 3선 연임으로 임기를 제한하는데 이들 중 강서, 동대문, 용산 3개 지역 구청장은 민선 2기 때도 한 번 지냈기에 도합 4선의 관록을 자랑한다. 지난 한 달간 이들 8인을 모두 만나 인터뷰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흙수저 출신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이성 구로구청장은 7남매 중 고등학교 때까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큰누이가 가난 때문에 대학 대신 구로공단을 택했던 기억을 떠올릴 때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본인도 당연히 고등학교 졸업 후 돈벌이를 할 목적으로 덕수상고에 진학했다가 ‘반란’을 일으켜 고려대 법학과에 진학한 뒤 가장 빠른 생계 수단으로 행정고시를 택해 서울시 공무원이 됐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도 가난 때문에 전남 나주에서 혼자 상경해 신문배급소에서 먹고 자며 고학했고, 대학 시절에는 부마항쟁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수배생활을 하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다. 가난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대학에 합격하고도 가족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릴 길이 없어 막막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뚝심 있게 사업을 이끌었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2010년 민선 5기로 처음 취임한 뒤 국내 최초 전문공연장인 서울 아레나 건립 계획을 내놨을 때만 해도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반응 일색이었지만 꾸준히 추진한 끝에 오는 2021년 사업 준공을 앞두고 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지난 2002년부터 연거푸 두 번 구청장 선거에서 떨어지고 8년간 매일 북한산 둘레길을 다니다가 순국선열 애국지사 16명의 묘를 보고 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 사업을 구상해 현재 공정률이 70%에 육박한다. 노현송 강서구청장은 강남 뺨치는 신도시인 마곡지구를 완성했고,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전문 건축인의 식견을 살려 서촌 등 지역에 명소를 대거 탄생시켰다. 처복이 대단하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민선 2기 취임 후 선거법에 걸려 낙마한 뒤 10년간 야인으로 지냈지만 보광동 웅변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계를 꾸렸던 부인은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다른 지자체장의 부인들도 비슷하다. 경제 문제가 이혼의 가장 큰 이유가 되는 요즘 시대에 수년간 돈 한 푼 벌어오지 못하는 가장을 위해 선거까지 도와야 했다니 어머니도 하기 힘든 인내와 희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꼽는 3선 연임의 조건은 ‘운칠기삼’이다. 그동안 지방선거를 일곱 번 치러 오면서 서울 25개 구는 정치적 바람에 따라 선거 결과가 좌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특정 당의 ‘싹쓸이’ 현상이 강했다. 실제로 민선 7기 서울 25개 구청장 가운데 24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단체장 선거는 이렇듯 바람이 좌우한다고 봤기 때문인지 스스로에 대해서는 연임 제한을 두지 않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3선 연임 구청장이 직을 버리고 내년 총선에 나오면 공천 때 감점을 줘 떨어뜨리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운칠기삼이 이어질까. 3선 연임을 넘어설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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