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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니스트 앙드레 가뇽 내한연주회

    ‘바다 위의 피아노’,‘클라라에게 보내는 편지’,‘죽은누이를 위한 노래’….국내 CF와 드라마,영화 등의 배경·테마 음악으로 사랑받는 감미로운 노래들이다. 그 작곡·연주자인 캐나다의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앙드레 가뇽(59)이 세 번째 내한공연을 갖는다. 16일(부산문화회관 대강당)과 17일(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오후7시30분.(02)598-8277. 그는 ‘피아노의 시인’‘영혼을 청소하는 피아노의 마법사’라 불릴 만큼 짙은 서정성을 바탕으로 마음의 평화를 선사한다. 이번 독주회에서도 바쁘게 떠밀려 사는 도시인들에게 차분한 여유를 제공하는 ‘조용한 날들’,해변의 평온한 분위기를그대로 전해주는 ‘바다 위의 피아노’등을 들려준다. 그는 프랑스어권인 퀘벡에서 태어나 4살 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내 피아노를 배웠고 6살 때 작곡을 시작해 10살 때 리사이틀을 열었다. 클래식을 전공하다 프랑스 유학시절 처음 영화음악을 맡으면서 팝과의 크로스오버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캐나다의 그래미로 불리는 주노상을 여러차례 수상했다. 그는 일본에서 10개 도시 순회공연을 갖는 등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를 능가하는 인기를 누린다.국내에도그의 6번째 앨범 ‘사계’가 최근 발매됐다. 김주혁기자
  • 어른위한 동화집 ‘제비꽃’

    절망과 슬픔에서 아름다운 희망을 피워낸 이야기 19편을담은 정채봉(작고)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 ‘제비꽃’(현대문학북스)이 나왔다. 현대인들에게 참된 아름다움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제비꽃’,작은 돌이 짧지만 험준한 세상 여행을 통해 생의의미를 깨닫는 ‘숨쉬는 돌’,간절한 그리움으로 선하고의로운 뜻을 이루는 ‘별이 된 가시나무’등 동화들은 탐욕에 찌든 맑은 동심의 세계를 복원하고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조영훈 화백의 그림이 서정성을더해준다. ‘행복한 눈물’에 등장하는 동물원의 앵무새는 추잡하게먹이를 구걸하지 않는 깨끗한 처신을 보여준다.“앵무새야,양심을 지키며 본래의 노래를 잊지 않고 산 너의 양심을후일에 내가 증언하겠다”는 시조새의 말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 “노래하라, 산과 들의 서정을”

    한국의 실경산수를 이야기하면서 오용길(55·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을 빼놓을 수는 없다.그의 작업 역정은 우리실경산수화가 변화, 발전해온 궤적과 거의 일치한다. 숱한화가들이 너나 없이 서구적 조형세계로 줄달음쳤어도 그는오로지 실경이라는 화두만을 부여안고 현대미술의 격랑을헤쳐왔다. ‘현대성의 유혹’을 이기고 실경의 세계에 든 지 20여년. 비록 고루하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그는 지금도 여전히 실경산수의 영토를 지키고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미술관(20∼26일)과 청작화랑(20일∼5월4일)에서 동시에 열리는 ‘오용길 개인전’은 바로 작가의이러한 존재의의를 확인해주는 자리다. 오용길은 두드러진 명승이나 특별한 풍광만을 그리지 않는다.전국의 산과 들이 모두 그림 소재다.전남 구례 산동마을의 노란 산수유꽃,쌍계사 입구의 화사한 벚꽃,광양의 청매실농원….이런 것들을 카메라에 담거나 스케치를 한 뒤 아주 사실적인 기법으로 감동을 재현해낸다.이번에 선보이는‘봄의 기운’‘북한산 여름’‘가을서정’‘밤의 도동항’‘울릉도기행’‘정선기행’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봄의 기운’은 이른 봄 남도의 산골에 흐드러지게 핀 산수유꽃을 그린 것이고,‘북한산의 여름’은 북한산의 암골미(岩骨美)가 솔숲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울릉도의 우람한 바위산이 달빛에 일렁이는 구름과 조화를 이룬 ‘밤의도동항’도 눈길을 끄는 작품.1,000호 크기의 ‘울릉도 기행’과 함께 구도의 웅장함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작이다. 오용길 그림의 생명은 편안한 서정성에 있다.수묵담채의화면은 늘 밝고 경쾌하며 화려하다.이른바 졸(拙)하다거나소박함과는 거리가 있다. 이에 대해 미술평론가 김상철(공평아트센터 관장)은 “가벼운 장식취미로 흐를 여지가 다분하지만 그의 그림은 의외로텁텁하고 질박하며 명징하다”고 평한다. 오용길은 객관적인 자연을 그리되 “내 방식대로 관찰하고표현한다”는 점에서 퍽 주관적인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단순히 실경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주관적으로이상화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종종 실제보다 더 형형색색으로 보인다.“전통산수화에서는 자연을정신적인 귀의처로 이해하고 그렸지만,이제는 자연이 하나의 주변환경으로바뀐 만큼 동시대에 맞는 화법이 필요하다”는 게 작가의말.그는 머리 싸매고 보지 않아도 되는,감성적으로 와 닿는 ‘쉬운’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작품을 찾는 것 같다고 했다. “나의 그림은 사생의 맛을 강조하다보니 기발함이나 독창성의 면에서는 ‘서운한’ 점이 많을 것입니다.어떨 땐 그림의 객기도 부려보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군요.” 김종면기자 jmkim@
  • 베르디 3대오페라 무대 오른다

    이탈리아는 롯시니,푸치니 등 걸출한 오페라 작곡가들을 배출한 나라.그중에서도 주세페 베르디(1813∼1901)는 이탈리아하면 오페라를,오페라하면 이탈리아를 떠오르게 만든 오페라의 황제다. 올해는 베르디 서거 100주년.추모열풍이 국민적 축제로 번진 이탈리아 뿐 아니라 세계는 온통 베르디 열풍으로 달아오르고 있다.국내에서는 지난 1월 지휘자 정명훈이 이끄는아시아필하모닉이 베르디 ‘레퀴엠’(진혼곡)으로 첫 테이프를 끊었다. 국립오페라단과 글로리아오페라단이 오는 13일부터 5월9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올리는 ‘비바 베르디’역시 위대한 작곡가 베르디에게 바치는 무대다.그의 대표작인 ‘라 트라비아타’,‘시몬 보카네그라’,‘리골레토’등 3편이 잇달아 공연된다. 서막을 장식할 라 트라비아타(13∼18일)는 국내에는 ‘춘희’로 더 유명한 인기레퍼토리.창녀 비올레타와 귀족청년 알프레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다. 소프라노 신지화 이화영,테너 류재광이 출연하는 이 공연에는 이탈리아 출신 소프라노 루치아나 세라,러시아 볼쇼이오페라단 소속 국민배우 유리 베데네예프 등이 가세해 눈길을 모은다.부천필 반주에 서울시합창단의 합창과 전미례 재즈 무용단의 안무가 곁들여진다. 국내 초연으로 주목을 받는 시몬 보카네그라(25∼29일)는수많은 출연자와 방대한 스케일 탓에 그동안 엄두를 못내던대작이다. 이탈리아 본고장의 지휘자 죠르지오 모란디,연출자 율리세산티키가 참가하고 현지에서 의상 250벌과 가발,소품 등을공수했다.주인공인 시몬 역에 전기홍,우주호,김승철이 출연한다. 왕정과 공화정의 정치싸움이 한창인 때,역사의 영웅이지만불행한 개인이었던 시몬 보카네그라의 비극적 삶을 그린다. 코리안 심포니와 국립합창단이 함께 호흡을 맞춘다. 마지막 작품인 리골레토(5월5∼9일)는 베르디 작품 가운데가장 서정성과 비장미가 돋보이는 작품.차이코프스키와 베르디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리톤 최현수가 사랑하는 딸 질다를 잃고 절규하는 어릿광대 리골레토로 출연한다. 또 호세 카레라스 콩쿠르 우승자인 최종우와 박미혜,최인애등 국내 정상급 성악가들이 함께 한다.뉴서울필이 반주하고 서울필하모닉오페라합창단이 코러스를 맡는다. 평일 오후 7시30분,토·일요일 오후4시.국립오페라단 (02)586-5282,글로리아오페라단 (02)543-2351. 허윤주기자 rara@
  •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 내한 연주회

    착착 귀에 감기는 ‘솜사탕 선율’이 현해탄을 건너온다.일본 최고의 뉴에이지 아티스트로 꼽히는 이사오 사사키가 17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연주회를갖는다. 이름은 낯설지만 막상 음악을 들으면 ‘아!’할만큼 귀에익다.아시아나 항공 등 4∼5가지 CF 배경음악을 통해 자주들을 수 있기 때문. 이사오 사사키는 클래식을 바탕으로 재즈·뉴에이지 장르를 넘나드는 일본 최고의 크로스오버 피아니스트.3세부터 클래식 교육을 받았으나 19세에 재즈로 전향한 뒤 미국 뉴욕으로건너가 밥 모제스,스즈키밴드 등과 활동하며 실력을 쌓았다. 지난 99년 12월 국내에도 출시된 사사키의 첫앨범 ‘미싱유(Missing you)는 아름답고 서정성 넘치는 멜로디로 국내팬들을 매료시키며 3만장이상 팔렸다.피아노에 얼후(중국 현악기),바이올린까지 접목시킨 사운드가 애잔하다.조지 윈스턴과 비교할 때 악기간의 앙상블이 강조되고 따뜻한 선율은동양적 분위기를 풍긴다. 이번 공연에는 친구이자 크로스오버 바이올리니스트 시노자키 마사추쿠가 동행한다.영화음악 ‘마지막 황제’에서 끊어질듯 애절한 얼후를 연주한 이로도 유명하다. 첫곡으로 들려줄 ‘스카이 워커(Sky walker)’는 일본 지하철에서 취객을 구하다 숨진 이수현씨에게 바칠 예정이다.이밖에도 대표곡 ‘블루 문(Blue moon)’‘문 리버(Moon river)’등 10여곡을 선사한다.(02)417-0028허윤주기자 rara@
  • 단편소설등 10권 국내 첫 번역

    도서출판 책세상이 릴케전집 13권을 완간했다.릴케는 일반 독자를 사로잡는 뛰어난 서정성에다 형이상학적인 깊이와 마력적인 언어 구사로 독일 시를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대시인.그는 삶의 본질,사랑,고독,신과 죽음의 문제를 통찰하는 수많은 시를 썼다.지난해 2월 ‘기도시집 외’(1)로 첫 권을 발간했던 책세상은 잘 알려진 ‘형상시집’ ‘두이노의 비가’ ‘신시집’ ‘말테의 수기’ 등 대표작 뿐 아니라 헌시 시작노트 유고시 단편소설 산문 예술론 희곡 등 릴케의 작품 전량을 소화했다.전집 13권 중 무려 10권에 수록된 작품들이 국내에 초역됐다고 책세상은 밝히고 있다.70여년간 릴케전집을 펴온 독일인젤 출판사본을 기본 텍스트로 했으며 김재혁 고려대교수 등 젊은독문학자들이 번역을 맡았다.낱권 8,000∼1만5,000원,전집 한질 14만5,000원. 김재영기자 kjykjy@
  • 대한매일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작-최하림론(2)

    *역사와 개인이 만나는 시의 자리-최하림론. 4.풍경의 미학 정신. 최하림의 시는 역사와 실존이 부딪치는 자리에서 수행되는 치열한시적 사유의 세계이다.두 테마에 대한 집요한 천착 과정을 통해서 그가 보여준 절제와 균형의 미학은, 그의 시세계에 시적 긴장을 유지할수 있는 동인이었다.질곡의 한국현대사를 통과하면서,그리고 그 현실에 부단한 시적 대응을 견지하면서도 특정한 관점에 경도되거나 생경한 직설의 형식을 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그의 시가 자신을 시적 사유의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자신에 대한 성찰에서 시적 사유를 시작한다는 것은,세계와의 정서적 거리두기를 가능케 하는 미적전략이다.관조와 응시를 통해 세계에 접근하는 최하림의 시적 방식은,심미적 거리를 확보하려는 시적 태도인 셈이다.역사와 현실에 대한집요한 시적 장고(長考)는 그의 시가 기초한 진지한 미학 정신에서연유한다. 이 미학정신을 구현하는 시적 형식으로 최하림은 풍경화(風景化)의방식을 사용한다.그것은 ‘겨울’,‘골짜기’,‘밤’,‘눈’,‘개’,‘새’,‘강’,‘어둠’,‘바다’,‘사내’ 등 시대적 상징성을 확보하고 있는 소재들을 동원하여 현실을 암시하는 상황을 설정하고,그상황을 시인의 내면적 정서나 정신적 지향과 겹쳐서 하나의 압축된풍경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이러한 그의 시적 방법은 현실에대한 내적 관조와 깊은 침잠이 선행되어야 하는 창작 방법이다. 현실에 대한 직설적 토로나 생경한 비판의 형식이 아닌,그것을 하나의 형상으로 구축하는 최하림의 미학 정신은 그의 시가 발딛고 있는 기지이자 오늘의 시점까지 그의 시를 추동시킨 문학적 원동력이다.그 심미적 시정신은 자신과 현실적 사태에 대한 반성적 사유의 토양인 셈이다. 큰 나무들이 넘어진다 산과 산 새에서/강과 강 새에서 마을 새에서/길을 벗어난 사람이 어디로인지 달리고/길러진 개들이 일어서서/추운겨울을 향하여 짖는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작은 강을 따라/우리들은 입을 다물고 걸어간다/저녁 그림자처럼 걸어간다 마을도/나루터도 사라지고 과거도 현재도/보이지 않는다/날아가는 새들의/불길한울음만 공중에 떠돌며/얼어붙은 겨울을 슬퍼하고/// 언덕도 상점도폭설에 막히고/거리마다 바리케이트 쳐져/사람들이/어이어이어이 울부짖고/갈색 옷을 입은 사내 몇,들리지 않는 소리로/진정하라고 말하고 또 다른 소리로/진정하라고 말하고 그 소리들이 모여/겨울나무를넘어뜨린다/// 꽁꽁 언 새벽 여섯 시,地靈처럼 걷는/사람들 새로 우리들은 걸어간다/살얼음의 아픔이 여울마다/경천동지하며 뛰어올라갈기를 날리고,/우리와는 다른 방향으로 일단의 사내들이/사냥개를끌고 온다 개들이 짖는다/이제는 얼어붙은 우리들의 꿈이여/눈과 같은 결정체로 三韓의 삼림에 내리어오라/기다리는 노변에서 상수리숲도 우어이우어이/울고 겨울새도 울고 우리도 울고 있다.― 「겨울 精緻」 전문 암담한 시대적 상황이 구체적인 풍경으로 형상화된 작품이다. 시 전체를 물들이고 있는 음울한 절망의 정조가 ‘우리’라는 대명사와 결합되고 등장하는 소재들이 암울한 시대적 상징으로 수렴되면서, 시는비극적 현실을 환기하는 한 반영으로 읽힌다. 산에서는 숲을 숲이게만드는 ‘큰 나무들이’ 사라져 가고 ‘한 방향으로 흐르는 작은 강을 따라’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입을 다물고 걸어가는’ 상황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몰수된 황폐하고 암담한 현실이다. 폭설로 봉쇄된 암담한 겨울,새의 울음과 숨죽인 통곡만이 가득한 강제와 감시의 현실을 시인은 ‘地靈처럼 걷는 사람들’이라는 섬뜩한죽음의 형상으로 그리고 있다.‘경천동지하며 뛰어올라 갈기를 날리는’ 듯한 것으로 생생하게 경험되는 현실의 고통은,출구에 대한 욕망의 절실함만큼이나 격렬한 것으로 감각된다.꿈마저 얼어붙은 전망부재의 현실에서 ‘우리들’은 눈을 부르고 있다.하늘을 향해 ‘내리어오라’고 주술처럼 되뇌이는 사람들의 바람 속에는 일말의 가시적인 가능성이라도 확인하고자 하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우리의 암울한 질곡의 현대사를 최하림의 시는 이렇게 묘사한다. 당대 현실에 대한 아무런 직설적 비판이 없는데도 이 시가 보여주는 암담하고 폭압적인 상황은,상황 자체로써 이미 현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수행한다. 구체적 풍경을 통해 형상화된 현실은그것이 그리는대상 자체보다 생생하며,그것의 문제적 국면은 증폭되어 표출된다.구체적 풍경이 발휘하는 형상력은 시적 정서와 의식을 보다 직핍하고절실하게 드러내는 기능을 감당한다.문학의 본질적인 힘은 바로 이구체성에서 발원하는 것으로서,삶과 현실에 대한 섬세한 사유와 그것의 미적 형상화는 문학을 다른 제도와 구별짓는 힘의 원천이다.심미주의의 좌절은 야만주의를 부른다. 거친 육성과 생경함 속에 건설된시는,시간의 거센 물살을 견뎌낼 수 없으며,시대가 지나간 자리에 조잡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구체적 풍경을 통해 현실을 형상화하는 최하림의 시적 태도는, 사실적 풍경도 정신화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다음의 시에서 우리는 풍경과 의식이 상호 작용하여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구체적 형상으로드러내는 최하림 시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눈이 내리니/나뭇가지들이 무게를 이기지/못하고 포물선을 그리며휘어지다가/눈을 털고 일어나고,/다시 눈을 털고 일어나고 한다/오후 내내 그 일을 단조롭게/반복한다 우리가 날마다/아침을 시작하고또/시작하는 것과 같으다/// 이런 날/하늘은 지붕 가까이/내려와 멈추고 세상 길도/들녘에서 모습을 지운다/나는 천근 무게로 눈꺼풀이/내려 앉아 꿈속처럼 눈을 감는다/아이의 속뼈같이 여린 가지들이/사라지고 또다시 가지들이/사라지고 또다시 가지들이/떠올라 머나먼 마을에/차곡차곡 쌓인다/// 나는 사나운 짐승처럼 눈벌판을/마구 쏘다니고 싶지만/나는 결코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지/못한다 눈은 나를 덮고 또 덮으며/종일 내려 쌓인다 ― 「아무 생각 없이 겨울 풍경 그리기」전문 이 시에는 오랫동안의 응시를 통해서만 포착할 수 있는 눈 내린 겨울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최하림의 [바라보는 시]가 빈번하게 펼쳐 보이는 눈여겨보지 않은 사물들의 아름다운 움직임이 정겹게그려진 작품이다.나뭇가지들이 ‘눈을 털고 일어나고 다시 털고 일어난다’는 묘사 속에는 순진무구의 서정성이 담겨 있다.비어있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정경들이 시인의 투명한 시선에 의해 포착된다.최하림의 최근시가 보여주는 정결한 세계는 이러한 시선에 의해 확보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하림의 시적 특질은 그러한 맑은 시선이나 그 시선에 포착된 자연 대상의 아름다움보다,오히려 그것을 정신성의 세계로 고양시키는 시의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눈내린 상황을 인간의 일상으로전환시키고,그것을 다시 보편적 시간의 세계로 확대하는 방식은,사물의 정경을 정신의 풍경으로 환치하는 최하림 시의 특징이라 하겠다. 여기서 눈의 의미는 일상성으로,그리고 다시 시간의 무게로 전이되면서,‘지붕’과 ‘길’과 ‘들녘’에 내린 눈은 사람과 마을을 지우는무화(無化)의 상징으로 자리를 옮긴다. 시인이 ‘눈을 감고’ 의식의심층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개별적 존재들을 지워버리는 시간의 냉혹함이다.명멸하는 ‘아이의 속뼈같은’ 가지들이 ‘차곡차곡 쌓이’는‘머나먼 마을’이란, 존재들이 묻힐 시간의 영원한 심연을 의미한다.이 마을의 광경은 시인의 의식이 형상화한 정신의 풍경인 것이다.말할 수 없는 비극성을 삼키고도 저토록 평화로운 마을의 풍경,고요 속에 잔혹함을 내포한 시간의 벌판을 시인은 ‘사나운 짐승’이 되어‘마구’ ‘마구 쏘다니고’ 싶다.그것은 모든 인간의 삶 속에 내재하는 존재의 비극적 충동이다.시간의 고요한 위력 앞에 선 무력한 인간의 보잘 것 없음,정화된 풍경 속에 내재한 동적 충동의 이유인 것이다.외부의 풍경을 정신화하고 정신을 풍경화함으로써,이 시는 생의비극성을 구체적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최근의 시들을 중심으로 최하림의 많은 시들은 정적(靜寂)의 풍경을노래한다.투명하고 정결한 정서를 보여주는 이 시들 속에는 사물과의화해를 꿈꾸는 생의 충동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 꿈꾸기가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바라보는 일이 종내에는 어둠으로 귀착될 것임을 시인은 안다.어둠은 죽음이고,어둠은 무(無)이다.삶에 내재하는 비극성이 동적 충동을 부른다.그가 보여주는 정화의 풍경은존재의 비극성이 미만한 시간의 풍경이며,그래서 생의 충동으로 가득한 허무의 비가(悲歌)이다. 최하림의 역사적 상상력과 실존적 고뇌는 구체적 풍경을 통해서 생생하게 형상화된다. 반성적 거리에 뿌리를 둔 이 풍경의 형식 속에는세계에 대한 깊은 응시와 성찰의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이러한 정신에 기초한 시적 사유의 세계는 그 깊이만큼의 집요함과 강인함을 내포한다.역사와 인간에 대한 비극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미학정신이 최하림의 시세계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5.다시 꿈꾸는 아침의 역사 현재적 삶이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의의있는 연결이라는 신념이 없다면,인간은 생의 종말을 단순히 불길하고 허무한 상징으로밖에 인식할 수 없다.고통스러운 역사와 유한한 존재들을 모두 삼켜버린 시간의 냉혹함 앞에서,최하림은 인간의 자세를 생각한다.절망적인 역사와실존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역사 밖에 존재할 수 없다. 이는최하림이 끝내 포기하지 않은 시적 사유의 대전제이다.최하림에게 역사와 실존은 삶이 끌고 갈 두 개의 테마이다.‘지옥 같은 역사’의기억과 질병을 통해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그는 황폐한 삶의현장을 다시 응시한다.“보이지 않는 들판을 간다는 것은 어려운일이다”.(「들판」) 냉엄한 역사적 현실과 인간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안고 건너야 하는 그 들판은, 정신의 강인함이 요청되는 고되고 지난한 삶의 현장이다.최하림은 들판을 건너는 방법에 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길의 줄기찬 모색과 그 모색의 매력을 이야기한다. 내 눈이 너를 보고/내 귀가 너를 듣는 동안에/감추인 아침이 차츰차츰 열리고/감당할 수 없이 세상이 밝아온다/경이로운 아침이여 새벽부터 길들은/사립을 나서서 숨소리 깊은 들로 간다/내가 처음의 나그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부지런한 농부들은 벌써 몇 사람째 이슬을 털고 갔다/그들의 발걸음이 들을 깨우고 비린내음 물씬한/밭고랑옥수수들을 흔든다 옥수수들이/눈 비비며 일어나 제 모습 본다/우리도 어느 날,들을 가면서 우리가 지나는 모습/볼 것이다 긴 낫 들고,그림자 드리우며,/존재하는 것들이 밝게 얼굴 드러낼 것이다/언덕으로 올라가는 도랑에서,나는 잠시,햇빛에 싸여,/걸음이 미치지 않는곳의 신비를 본다/가려고 하지 않는 길들은 매력있다 ― 「밭고랑 옥수수」전문 건강한 아침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들을 깨우고 새벽을여는 농부들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역사의 모색을 그리고 있는 이 시에는 역사의 운동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담겨 있다.‘차츰차츰 열리’는 역사의 새벽을 ‘감추인 아침’이라고 적고 있는 표현에는,[숨겨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의식의 개안을 통해 아침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시인의 인식이 내재되어 있다.‘감당할 수 없이 밝아오’는 ‘경이로운 아침’은 그것을 향해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는 ‘동안’,다시 말해 정화된 응시의 시간이 있고 나서야 찾아오는 국면인 것이다.이는 ‘오래오래’ ‘멈춘 평화’의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보이지 않는 들판’을 건널 수 있다는 「들판」의 사유와도 상통한다.이응시의 시간은 ‘처음의 나그네’를 ‘부지런한 농부’로 전환시키는인식의 계기이다. ‘이슬을 털고’ ‘들을 깨우고’ ‘밭고랑 옥수수들을 흔’들며 역사의 새벽을 걸어가는 이 부지런한 농부들의 발걸음에서,‘숨소리 깊은 들’은 건강한 생명력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가개인에게 의식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러한 상상력 속에는,역사란 개인의 고통과 반성을 통해서 성취되는 변증법적 삶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들을 찾아 나서는 ‘농부들’은 바로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통해 굳건한 존재로 선 역사적 주체들인 것이다.‘걸음이 미치지 않는 곳’의 ‘신비’함과 그 길의 매력은 바로 이러한 고통과 반성을 거친 자들의 가슴 속에 찾아온다.역사는,아니 역사적 삶은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패배 속에서 다시 꿈꾸는 것임을,최하림은 새벽을 여는 농부들의 힘찬 발걸음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역사적 세계에 대한 염원은 최근 시들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아침 이미지]에서 잘 드러난다. “미소 속으로 아버지가 쇠스랑을 메고/온다 이슬 젖은 잠방이 바람으로 온다/(오오 고통스런 세상으로 오시는 아버지!)/노동으로 빛난얼굴을 하고 아버지는/사립으로 온다 우리 가족은 모두/아침의 유대속에서 아침의 빛을 뿌리며//온다 새로운 아이들이 따뜻한 유대 속으로/온다 무성한 시간의 숲을 헤치고/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포르릉포르릉 날며”(「아침 유대」,5·6연)에 그려진 것처럼,찬란한 역사의아침은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노동을 통해서 열리는 세계이다. 황폐한대지를 갈고 고르는 노동을 통해서 이룩되는 역사, 그 노동으로 다져진 아버지의 ‘빛난 얼굴’은, 고통을 통해 새로운 전망을 열어가는역사의 변증법적 운동력을 상징한다.개인의 고통과 줄기찬 노동이 역사를 일구어 간다.역사의 아침은,고통을 견디고 또다시 꿈꾸는 강인한 정신 속에 깃드는 것임을 최하림의 시는 보여준다. [농부의 대지적 상상력]이라 부를 수 있는 최하림의 역사 의식은 인간적 실존에 기초한 공동체의 연대를 모색한다.그 삶이란 “모서리들이/조금씩 조금씩 부서지고 모서리들이/닳아지고 모서리들이 정다워지면서/죽음 가까이 죽음처럼 둥글”(「모카커피를 마시며」)어 지는조화와 화해의 삶이며, 모든 존재의 동질적 비극성에 기초한 관용과사랑의 정신에서 연유하는 삶이다.아울러 이러한 개인의 유대가 지향하는 공동체적 삶은 ‘목적이 없고 관객이 없으므로 그들 자신이 춤이고 즐거움’(「즐거운 딸들」)이 되는,과정 자체가 하나의 목적을이루는 삶이다.존재에의 연민에 뿌리를 둔 공동체의 유대는,개인의실존과 역사가 만나는 인간적 역사의 모습이며,냉소주의와 자기아집에 대항하는 부단한 투쟁의 역사인 것이다. 집요하게 존재와 역사의 막막함을 들여다보는 최하림의 질긴 시적고투의 역정은,속도와 효용성이 주도하는 현실세계에 있어서 시의 역할을 재고하게 하는 육중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 ‘밤새도록 죽지를눈에 박고 졸며 혼몽 속을 헤매’(「눈을 맞으며」)는 굴뚝새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실종된 역사를 고통스럽게 견뎌내는 최하림의 고독한 견인주의는 우리에게 시와 시인의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시의 진정한 자리는 인간적 진실을고민하고 탐색하는 반성적 사유와 그것을 구체화하는 미학 정신 위에서 건설되며,인간적 진실은 경험과 존재가, 사색과 생이 만나는 자리위에 구축된다. 시의 위의(威儀)는 준엄한 자기 반성과, 그 반성을 통해 한 단계 나아간 진실에의 깨달음에서 발현된다.최하림이 한 작은 글에서 ‘창조적 정신을 잃고 관성에 의지하는 시’가 ‘지상의 평화를 헤친다’고했던 고백은,시적 정신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시사한다.새로운 세기의시의 모습이 인간과 역사를 보다 창조적인 시각으로 열어 보일 길찾기가 될 것이라면,최하림의 시적 작업은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하고극복해야 할 언덕이다.더불어 그의 시가 현재를 넘어서 또다른 세계에 도달할 것을 믿는 것은,그의 진지하고 강인한 정신의 역투에 대한믿음에서이다. 김문주
  • ‘바이올린의 시인’ 강동석 금호홀서 새해 첫 무대

    ‘실내악 전용홀’을 표방하며 최근 개관한 금호아트홀의 2001년 첫무대는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이 연다.6일 오후7시. 앳된 얼굴과 함께 서정성 넘치는 음색으로 ‘바이올린의 시인’이란별명을 갖고 있는 강동석은 정경화,김영욱과 함께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손꼽힌다. 1부 슈베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서는 피아니스트 김영호가,코다이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듀오곡’은 첼리스트 양성원과 호흡을 맞춘다. 2부 브람스 ‘피아노 4중주’에서는 여기에 비올리스트 최은식이 합세해 멋진 앙상블을 들려준다.(02)6303-1919허윤주기자 rara@
  • 3色 뮤지컬 입맛따라 골라보기

    순수하지만 심약한 청년 베르테르의 슬픔에 동참할까,뮤지컬계의 전설적 안무가 밥 포시의 삶을 엿볼까.아니면 소낙비처럼 쏟아져내리는리듬과 비트에 온몸을 맡겨볼까…. 늦가을 찬바람에 스산해진 마음을달래줄 3가지 색깔의 뮤지컬이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세미클래식, 재즈,타악연주 등 음악 장르도 제각각이라 입맛따라 골라보기에 안성맞춤. ◆베르테르 약혼자가 있는 아름다운 여인 롯데를 사랑하다 끝내 권총으로 자살하고 마는 청년 베르테르.독일 문호 괴테가 창조해낸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이 뮤지컬 무대에서 새롭게 태어난다.토탈퍼포먼스그룹 갖가지가 10일부터 연강홀에서 공연하는 창작뮤지컬 ‘베르테르’는 사색의 편린으로 가득한 편지글 형식의 원작을 토대로 베르테르,롯데,알베르트의 삼각관계를 재구성해 가슴시린 사랑이야기로 펼쳐낸다. 대사는 거의 없이 40여곡에 달하는 노래가 중심인 오페레타 형식인데연세대 정민선교수가 작곡하고,5인조 실내악단이 라이브로 연주하는서정성 강한 음악들이 귀에 착 감긴다.뮤지컬배우 서영주,이혜경,김법래가 젊은날의 순수한 사랑에 사로잡힌 주인공들을 연기한다.“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잊혀진 사랑의 원형을 되새기는 따뜻한 무대”라는 게 연출자 김광보의 말.12월3일까지(02)708-5001◆올 댓 재즈 60∼70년대 미국 뮤지컬계의 최고 흥행가로 불렸던 밥포시의 삶을 재조명한 뮤지컬.포시는 이야기 중심의 뮤지컬에서 벗어나 음악과 춤을 전면에 내세운 독특한 구성으로 인기를 모은 안무가겸 연출자이다.스타서치가 제작하는 ‘올 댓 재즈’는 포시가 안무하고 연출한 뮤지컬넘버 중에서 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레퍼토리17곡을 골라 엮은 것.‘미스터 댄서’‘포시즈 월드’‘디 엔터네이너’등 주옥같은 노래와 춤이 1시간30분동안 펼쳐진다. 국내 뮤지컬 안무 1세대인 한익평에서 설도윤 이상호 서병구 주원성에 이르기까지 뮤지컬 안무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윤복희,양소민,임춘길 등 출연.22∼12월6일 LG아트센터.(02)515-2890◆스텀프 뮤지컬 퍼포먼스 ‘난타’의 원조로 곧잘 인용되는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최대 히트작‘스텀프’가 96년 내한공연때 전회매진을기록한 데 힘입어 이번에 다시 초청됐다.“모든 것에는 리듬이 있다.모든 것에는 음악이 있다”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로 출발한 스텀프는빗자루, 쓰레기통,나무막대기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악기로 변모시키는 독창적인 무대구성으로 관객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7년째매진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티켓관련 이벤트도 다채롭다.11일까지 예매관객에 한해 10% 할인혜택이 주어지고,인터넷경매업체 옥션에서는 13일까지 티켓 경매를 실시한다.28∼12월10일,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02)580-1300이순녀기자 coral@
  • ‘가을동화’은서·준서 비극으로 막내린다

    KBS2 ‘가을동화’가 7일 은서와 준서가 모두 죽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그동안 KBS 게시판에 결말에 대한 다양한 시청자 의견이 올라왔으나 제작진은 비극적 결말을 선택했다. ‘가을동화’는 제목답게 올 가을 많은 화제를 낳았고 성공했다는평가를 얻었다.하지만 출생의 비밀,주인공의 희귀병 등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쉬운 구도,젊은 연기자들의 미흡한 연기력 등 뒷맛이 영 씁슬하다. ‘가을동화’ 14회가 방송된 지난달 31일의 전국적 시청률은 42.1%(TNS미디어코리아 집계).KBS측은 “미니시리즈가 시청률 40%를 넘어본 것이 언젠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라고 할 정도로 경이적인 시청률이다.‘가을동화’ 게시판에 올라온 시청자들이 올린 글은 6일현재 30만건에 육박한다.보통 드라마 한 편에는 많아야 몇 만건의 글이 올라온다. ‘가을동화’는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인기였다.월·화에는 애청자들이 밤9시30분까지 귀가하는 진풍경을 낳기도 했다.인터넷 게시판에방송 전에 올라온 대본을 한번 읽어보고 울고 드라마를 보고 울고,다시 재방송 챙겨보고….매주 토요일 재방송되는 ‘가을동화’ 시청률은 10%를 넘어섰다.등장인물들이 즐겨 쓰는 말을 패러디한 가을동화고스톱 버전이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떠돌고 있을 정도다. 연출을 맡은 윤석호 PD는 “젊은층 외에 주부나 할머니들도 많이 본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 자신도 놀랐다”며 “순정만화같은 이야기를아줌마들도 좋아한 것 같다”고 나름대로 원인을 분석했다.주연을 맡은 송혜교는 “요즘 다 웃기는 드라마인데 예외적으로 슬픈 드라마를고른 게 성공한 것 같다”고 말했다.슬픔이나 한(恨)등 서정성에 드라마의 90% 정도를 야외촬영하는 등 수채화같은 그림을 만들어 낸 것이 큰 몫을 차지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 ‘가을동화’의 성공은 외화내빈 형국이다.중요 연기자중 원빈만 그나마 자신의 배역을 제대로 연기했고 송혜교 송승헌 한나나 등은 그저 울기만 했다.또 드라마의 한 축으로 불치병을 배치,시청자들의 감성을 쉽게 자극하는 전략이 먹힐 수 있음을 보여줬다. ‘가을동화’ 후속으로 마련된 ‘눈꽃’도 여주인공이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것으로 설정돼 있다.9일 끝나는 MBC 수목 미니시리즈 ‘비밀’,새로 시작된 MBC 주말극 ‘엄마야 누나야’도 희귀병이 나온다.실제 사람들의 삶을 깊이 파고 들어 한 순간의눈물이 아닌 짙은 페이소스를 일궈내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아쉽다. 전경하기자 lark3@
  • 타계 黃順元선생

    14일 타계한 한국 문단의 거봉 황순원(黃順元) 선생은 인간 심성의그윽한 세계를 드러내는 청아한 작품들로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은한편 그런 문학세계의 혼을 그대로 실천하는 고고하고 절조있는 문인생활로 문단후배들의 귀감이 돼 왔다. 일체의 잡문 청탁과 인터뷰 요청은 물론 문단 내외의 정치적 감투와허명을 칼로 베듯 거절하고 배격해 왔다. 작가는 작품으로만 말하고 독자와 만나야 한다는 문학순수주의인 것이다.문학적 명망에서 선생과 어깨를 겨루던 몇몇 대가급 문인들이‘정치적’ 행보로 뒷날 비판받는 것과 대조된다. 선생은 지난 96년 은관문화훈장 수훈자로 결정되었으나 이를 거부해화제가 되기도 했다. 선생은 또 작품활동과 함께 30년 가깝게 경희대 국문과에 재직하며수십명의 걸출한 제자문인들을 길러냈는데 서울신문(현 대한매일)신춘문예에서 제자의 작품이라고 해서 더 냉혹한 잣대를 대 낙선시켰던 일화는 유명하다.이같은 엄격함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많은 후배와제자 문인들이 선생을 따랐다. 1915년 평남 대동에서 출생한 선생은평양 숭실중학과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했으며 19세 때 시집을 냈고 25세 때인 1940년 첫 단편집을 출간했다. 해방직후 월남한 그는 아세아자유문학상,예술원상,3·1문화상 등을수상했다. 한국현대 소설의 전범으로 평가받는 선생의 소설은 간결하고 세련된문체,소설의 미학을 위한 다양한 기법적 장치들,소박하면서도 치열한 휴머니즘의 정신,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에 대한 애정 등을 고루 갖추고 있다. 특히 작품의 서정적 아름다움은 소설 문학이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성과의 한 극치를 시현한 것으로 평론가들은 보고 있다. 장편 ‘별과 함께 살다’(50년) ‘카인의 후예’(53) ‘나무들 비탈에 서다’(60) ‘움직이는 성’(72) 등은 서정성과 함께 현실과 역사에 대한 비판을 갖춘 대표작이다.단편 ‘별’ ‘학’ ‘독짓는 늙은이’ ‘소나기’ 등도 수많은 애독자를 가지고 있다. 특히 53년에 발표된 ‘소나기’는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한국 중장년층에게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과 비견될 수 있는 문학적 애정을아낌없이 받아왔다. 김재영기자 kjykjy@
  • 화폭에 담은 ‘영혼의 바다’ 이상국 개인전

    서양화가 이상국(53)이 그리는 바다는 독특하다.그의 바다그림에는원근법이 없다.개념속의 바다풍경을 감성적인 기법으로 그려낸다.한점 섬도 없는 허허바다의 거친 물결과 수평선 그리고 파란 하늘이 작가만의 회화언어로 되살아난다.그것은 수평의 붓놀림과 고요한 움직임으로 압축되는 정중동의 세계다.지난 96년 미국으로 훌쩍 떠난 그가 바다를 가득 안고 돌아와 전시장에 풀어놓고 있다.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이상국 개인전(17일까지)에는캘리포니아 바다 등을 배경으로 한 신작 40여점이 나와 있다.바다는그가 미국생활에서 새롭게 인식한 창작의 신천지.언제부턴가 그는 바다의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해 화폭에 담아 왔다.이씨와 20년 지기인시인 정호승은 “이상국은 바다를 하나의 풍경으로서 그리는 게 아니라 하나의 영혼으로서 그린다”고 말한다.‘순간과 영원의 미학’을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30년 가까운 작가의 예술세계가 점차 관조적인 데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70년대 중반 이후 그는 쓸쓸한 산동네 겨울풍경과공장지대 그림으로 민중의 눈물을 닦아줬다.‘민중적 서정성’의 시대라 이름지을 만하다.90년대 초반에는 영국에 머물면서 작품경향도 바뀌었다.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한층 추상화한 가운데 나무의모습을 통해 인간 본질에 다가가고자 한 것. 미국체류는 이같은 그의작품세계에 또 한번의 변화를 몰고 왔다.이제 그는 자연을 소재로 삶에 대한 빛과 어둠을 잔잔하게 전해주고 있다. 김종면기자
  • 홍혜경·제니퍼 라모 듀오콘서트

    “오페라에는 삶,죽음,사랑 등 인간의 삶 자체가 녹아 있죠.세 아이를 낳고키우며 하루하루 제 목소리의 맛이 깊어짐을 깨닫습니다.”성악가들이 한번 서보는 게 꿈이라는 미국 메트로폴리탄무대를 16년째 지키고 있는 최정상급 소프라노 홍혜경. 그녀가 5년만의 내한공연으로 우리곁을찾아온다. 13일 오후7시,15일 오후8시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듀오콘서트에서 미국출신의 메조소프라노 제니퍼 라모와 절묘한 화음을 들려준다.라모는 이탈리아의체칠리아 바르톨리와 쌍벽을 이루는 월드스타. 공연을 며칠 앞두고 지난 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홍혜경은 “지난해 예정된 콘서트가 갑작스런 후두염으로 취소돼 너무 안타까웠다”며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소프라노와 메조의 하모니를 고국팬들에 들려주게 돼 설렌다”고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물이 흐르는듯한 촉촉함과 서정성이 돋보이는 리릭소프라노. 라모어는 다소 어둡지만 파워풀한 음색을 자랑한다. 두사람은 지난해 텔덱 레이블로 듀엣앨범을 냈고,공연에서도 여러번 호흡을맞춰본 사이.올시즌메트 초연작인 헨델의 오페라 ‘줄리어스 시저'에서도 클레오파트라와 시저로 출연하는등 도타운 교분을 쌓아왔다. 홍혜경은 모짜르트의 ‘피카로의 결혼'중 ‘그리운 시절은 가고',헨델의 ‘줄리어스 시저'중 ‘괴로운 운명에 눈물이 넘쳐'를,라모는 비제 오페라 ‘카르멘'중 ‘하바네라' 로시니 ‘세빌리아 이발사' 중 ‘방금 들린 그 목소리를' 독창한다. 들리브의 ‘라크메'중 ‘가자, 말리카여'와 오펜바흐의‘호프만의 이야기'중 ‘사랑의 밤'은 듀엣송으로 마련했다. 반주는 임헌정 지휘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맡는다.(02)2005-0114@
  • 이순원 장편소설 ‘순수’

    동인문학상,현대문학상의 이순원이 장편소설 ‘순수’(생각의 나무)를 냈다. ‘순수’는 ‘1968년 겨울,램프 속의 여자’ ‘1978년 겨울,슬픈 직녀’ ‘1988년 겨울!로코코 거리의 여자’ ‘1999년 겨울,어린 누이를 위하여’ 등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연작 형식의 장편소설이다. 화자가 10년 단위로 겨울에 만나는 여자들 이야기로 어린 시절 옆집에서 자란 한 여성이 자주 등장하긴 하지만 단일 주인공으로 보기 어렵다.또 화자는여기 세 명의 여주인공들과 가까우나 끝까지 중립적인 화자의 거리를 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은 주제가 조금 애매한데 결코 평탄하게 살아오지 못한 세여성을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면서 여성에 대한 어떤 일반화를 꾀하는듯 싶다. 오빠같은 청년을 따라왔다가 그곳 동네 청년들에게 윤간당하는 여자,서울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다가 일본인 사업가의 후처로 일본에 가고 10년 후 귀국해 술집을 경영하는 고향 옆집 여자,고등학교도 마치지 않고 서울로 올라와성적으로 황폐한 경험을 갖게된 옛 고향 형의 딸 등이등장한다. ‘사회성과 서정성’을 아우른다고 책을 낸 출판사는 강조하지만 장편소설로서의 응집력이 부족하고 주제가 분명하지 않은 점이 거슬린다. 김재영기자
  • ‘바이올린 시인’ 강동석씨 연대강단에 선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姜東錫·46)씨가 연세대 교수로 임명돼 강단에 선다. 13일 연세대에 따르면 강씨는 오는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귀국,이번 학기부터 오디션을 통해 직접 뽑은 학생 6명에게 주당 6시간씩 바이올린 실기를 지도한다. 강씨는 지난해 9월 연주차 한국에 들렀다가 ‘고국의 음악발전을 위해 일해달라’는 연세대측의 제의를 흔쾌히 수락,지난달 음대 정교수로 특별채용됐다. 정교하면서도 서정성 넘치는 연주로 ‘바이올린의 시인’이란 평가를 받는강씨는 지난 67년 뉴욕 줄리어드 음악학교를 거쳐 커티스 음악원에서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이반 갈리미언에게 수학했다.71년 17살의 어린 나이로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재단 및 워싱턴의 메리웨더포스트 콩쿠르에서 우승,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김청묵(金淸默) 음대학장은 “세계 최정상급 음악가인 강씨가 교수로 오게된 것은 큰 영광”이라며 “왕성한 연주활동을 펼칠 나이임을 감안해 중요한해외 연주로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울 경우 추후에 강의를 보충토록 할 방침”이라고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음악 리뷰] 베이스 김요한 독창회

    오페라 작곡가들은 로맨틱한 비극적 주인공 역할은 베이스에 맡기지 않는 것같다. 바리톤에게도 비슷한 한계가 있지 않을까.뒤늦은 ‘중년의 사랑’이라면 혹시 몰라도….대신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 처럼 젊은 소프라노와테너의 치기어린 사랑을 인생의 선배로 충고하는 역할은 곧잘 돌아간다. 베이스는 로맨스와는 더욱 거리가 멀다.황제(보리스 고두노프)나 제사장(아이다),성주(탄호이저)가 아니면 염라대왕(천국과 지옥)이나 유랑악사(미뇽),엉터리약장사(사랑의 묘약)다. 그래서 베이스 독창회에 가기로 마음먹기는 쉽지않다.자칫 유연성없는 베이스 가수가 레퍼토리 선정에 실패라도 한다면,음악회를 즐기기는 커녕 무거운분위기에 억눌려 고통스런 시간이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대한매일이 주최한 베이스 김요한 독창회를 보러 6일 저녁 예술의 전당에 가는 길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베이스가 과연 2,600석의 콘서트홀을 채우고,자신의 희망대로 청중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무대에 선 김요한은 일단 체구에서 콘서트홀을 장악하는 듯 했다.3년반 만의 독창회라는 부담감도 잊은듯 여유도 만만했다.헨델의 ‘용사여 힘을 내라’와 ‘명예와 힘’이 시작되자 풍부한 성량과 뛰어난 기교가 자리를 고쳐앉게했다. 모차르트와 베르디의 아리아에서도 좋은 컨디션이었지만,로톨리의 ‘나의 신부는 나의 깃발이 되리라’와 덴자의 ‘오라’ 등 칸소네에서는 보기드문 서정성을 과시했다. 청중들과 즐기는 후반부도 인상적이었다.베이스의 대표 레퍼토리인 ‘볼가강의 뱃노래’‘벼룩의 노래’도 좋았지만,브라스앙상블에 반주를 맡긴 ‘진정하라 종들아’ 등 흑인영가는 성량에 자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선곡이었다.청중들의 갈채에 3곡의 앙코르로 화답해야 했던 것은 충분한 줄거움을 주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날 청중은 1,500명 정도.벨리니의 ‘꽃의 띠’가 피아니시모로 끝나면 정적속에 감정을 이어가고,베르디의 ‘하늘이 이같이 어둠을 드리우고’의 화려한 끝마침에서는 격정적인 환호로 뒷받침하는 등 ‘순도’는 어느 음악회보다 높았다. 그런 만큼 무대위의 성악가와 주고받는 무언의 대화속에 위안을 찾은 청중도있으리라는 상상은 그리 어렵지않은 일이었다. 서동철기자 dcsuh@
  • [대한매일 신춘문예 당선] 심사평

    한 세기를 접고 시간은 흘렀다.‘꿈의 21세기’벽두를 화려하게 장식한 ‘새 얼굴’을 발굴해내는 자리는 용호상박(龍虎相搏)의 격전장을 방불케 했다. 응모작 수준이 상향 평준화를 이루어 그 어느 때 보다 각축이 치열한 가운데 1차 관문을 통과한 작품은 무려 아홉편이나 되었다. 다른 매체와 ‘겹치기 투고’작품을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한 다음 ‘초당기행’(곽지원),‘만년설 1’(이운정),‘다운동 고분’(임석),‘길’(신수현)등 네편을 놓고 당락을 결정하게 되었다. ‘만년설 1’은 은유의 문법 속에 시대정신을 가미했지만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지는 못했다.상징과 은유가 때로는 겉돌며,발상법이 기발하지만 그 재기가 경이로움을 이끌어내지 못했다.‘초당기행’과 ‘다운동 고분’은 고전과 현대의 뒤섞임이라고 할까.옛스러운 것과 새로운 것이 절묘하게 버무려져 있었다.복고 스타일과 첨단 스타일,발랄한 감성과 비판적 시각이서로 뒤섞여 시적 긴장미를 연출해냈다.그러나 뼈대있는 메시지와 서정성 곁들인 힘찬 목소리가 서로 행복한 악수를 해야 하는데,그것이 그만 설득력을지니지 못해 언어 유희로 흐르고 말았다. 당선작 ‘길’은 언어 조탁 능력이 탁월했다.톡톡 튀는 맛은 없었으나 결코서두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면서 끈적거리는 점액질(粘液質)같은,언어의 찰기와 흡인력을 거느리고 있었다.‘겨울나무에게’‘겨울 한계령에서’ 등 당선자가 접수한 일련의 작품 곳곳에 녹아있는 그 ‘풋풋한 감성’을 검출해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숱한 굴절과 신산의 지난 세기를 넘어 새 천년을 펼치는 오늘 ‘길’을 만나게 된 것도 행복이라면 그지없이 오롯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근배·윤금초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 (45)노동시인 박노해

    1991년 8월19일 오후 3시,“박노해,그를 이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 시키기위해 사형을 구형합니다”라는 검사의 구형 앞에서 방청석은 흐느낌이 번졌다.그러나 시인은 당당하게,그러나 서정성 넘치는 최후 진술을 해냈는데,이진술은 트로츠키를 연상할 만큼 감동적이다. “사형!사형입니까?이것이 노동자에 대한 당신들의 대답입니까?서러운 기름밥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인간다운 삶을 갈구해 온 한 노동자를 기어코사형 시켜야 되겠단 말입니까?결국 이 나라의 노동자에게는 두 개의 죽음 중 한가지를 선택할 자유밖에 없단 말입니까?임금 노예냐,사형이냐?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죽어가거나 아니면 당신들 손에 죽임을당하는 겁니까?지금까지 당신들은 이 나라 천만 노동자에게 폭력과 구속으로 대답해 왔습니다.박정희 정권은 나에게 폭행과 해고를 밥먹듯 자행했고,전두환 정권은 나를 수배자로 내몰았고,노태우 정권은 안기부 지하 밀실에서무려 24일간,576시간에 걸쳐 밤낮으로 고문하여 이 법정에 세우기까지,오로지 정치 보복과 정치 살인만을 준비해온 것입니다.우리가 그렇게 두렵습니까?노동자가,박노해가 그렇게 두렵습니까?당신들은 지금 이성을 잃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다 죽어 간다는 사회주의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나는 사형을 결정한 당신들을 진심으로 동정합니다.가련한 것은 사형을 받은 내가 아니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당신들입니다.얼마나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부실하고 부도덕한 정권이기에 한 노동자의 진실한 주장 앞에서 이토록 두려움에 떨어야 한단 말입니까.…우리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반드시 무죄를 선고해야 합니다.그러나 나에게 무죄를선고하는 것은 기적일 겁니다.참 어려울 것입니다.무죄라고 판정하기가 두렵거든 적어도 앞으로 10년 뒤에,2000년 1월1일,‘그때 우리 판결은 부끄럽지않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살아 있으라,살아 있으라’)그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법정은 박수가 터졌는데,시인은 “무기 징역형을 축하 받아야 하는 슬픈 나라,슬픈 시대”라며,“그래도 산다는건 소중한 것이다”고 고해한다.그리곤 “1992년 4월,봄비가 차갑게 내리던 날”그는경주 교도소로 이감되어 199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기까지는 7년이 걸렸다.그의 최후진술이 예견했던 10년보다 3년이나 빠른 역사의 일대 변혁이었다. 변한 건 역사만이 아니라 시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이글거리던 반역의 눈빛,성난 호랑이처럼 포효하던 혁명가의 얼굴은 어디로 갔느냐?마치 세속을떠난 수도자처럼 평온해 보인다”(‘오늘은 다르게’)는 그의 외모만 변한게 아니라 내면까지도 변했다.“당신은 아직도 사회주의자인가?”란 물음 앞에 그는 “예!” “아니오!”라고 답하는 이유를 세가지로 축약해 풀이해 준다.박시인에 따르면 사회주의에는 세가지 차원이 있다.첫째는 ‘체제로서의사회주의’인데,“나는 이러한 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반대한다”고 단언한다.둘째는 ‘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있는데,“그 방법론은 생산 수단의국유화와 계획 경제,프롤레타리아 독재,집단주의,민중항쟁노선으로 귀결됨으로써 위함한 독소를 내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마지막 셋째 ‘가치로서의사회주의’는 “인류의 소중한 가치로 계승해야 할 요소”로 긍정한다면서,위의 두가지는 부정하고 마지막 한가지만 긍정하기에 그 대답은 ‘예’와 ‘아니오’의 갈림길이라고 밝혔다(‘흑과 백 사이에서’). 어떤 연유건 박노해의 역정은 노동시인에서 혁명가를 거쳐 이제 3단계인 지식인 시인이 된 셈이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윤이상선생 영전에 바치는 춤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분단 비극을 상징하는 인물 윤이상(1917∼1995).그의 4주기를 맞아 11월1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막을 올리는 ‘아시아-코리아-윤 페스티벌’에서 김현옥 계명대 무용학과 교수가 춤판을 벌인다. 김교수는 11월4일 유리드문극장 무대에 펼쳐지는 ‘무용의 밤’에 춤 세 편을 선보인다.윤이상의 곡 ‘두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티나’‘간주곡 A’‘밤이여 나뉘어라’를 각각 안무한 1인무이다. ‘소나티나’는 윤이상의 곡 가운데 특히 서정성이 뛰어난 작품.김교수는 널 한쪽을 도구 삼아 사랑이야기,넓게는 인간관계를 춤으로 표현한다.‘간주곡 A’는 윤이상에게서 안무를 부탁받은 작품.그의 사상적 바탕인 도교를 정중동의 움직임으로 보여준다.재독 한국인 피아니스트 가야 한이 반주한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실내악에 맞춰 춤추는 ‘밤이여 나뉘어라’.김교수가 지난 91년 뉴욕에서 활약할 때 안무한 것으로 비디오로 제작,그해 스페인 테루엘 국제비디오 페스티벌에서 대상,이듬해 뉴욕 댄스 온 카메라에서금상을 받았다. 김교수는 효성여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1대학에서 무용미학 석사와 예술학 박사학위를 따냈다.지난 88년 뉴욕에서 윤이상의 곡 ‘차원’을 처음 듣고는 “그 음의 파동이 내 신체파동과 묘하게 맞물리면서전율이 일어나고 눈물이 날만큼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다음해 초 베를린으로 그를 방문해 처음 만난 뒤로는 매년 한차례 정도 찾아가 ‘예술의 스승’으로 모시며 지도를 받았다. 국내에서 윤이상의 곡으로 작품활동을 하는 유일한 무용가인 김교수는 “‘밤이여 나뉘어라’를 발표할 때만 해도 주위에서 그분의 곡을 다루면 위험하다고 극구 만류했다“면서 “국내에서 선생님의 작품이 ‘해금’되었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나마 지난해부터였다”고 말했다. “독일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선생님의 예술적 업적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데 아직 국내에서는 기념관 하나 세운다는 분위기가 없다”고 아쉬워하는 김교수는 “그동안 준비해온 ‘윤이상 프로젝트’를 내년부터 하나씩 추진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용원기자 ywyi@
  • 정호승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정호승(49)을 일컬어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인’이라고 한다.그런데 그 ‘아름답다’거나,‘서정적’이라는 단어는 한국문단에서는 때론 ‘아름답기만 하다’거나,‘서정적이기는 하다’는 비아냥거림이 되기도 한다. 정호승 역시 그런 인식의 피해자라고 할만하다.그렇게 된 이유는 지난 97년 펴낸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가 ‘너무 많이’ 팔렸기 때문이라는것이다.아예 안팔리거나 적당히 팔리면 인정받다가도,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순간부터 문학성을 의심하는 것이 우리 문단의 이상한 현실이다. 그런 정호승이 일곱번째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창작과 비평사)를 냈다.이 시집 역시 앞선 ‘사랑하다가…’처럼 ‘아름답고 서정적’이라고 ‘비판’받을 만 하다. 이 시집에서 느껴지는 감수성은 왜 그의 시가 호응 받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그의 시는 결코 독자로 하여금 머리를 감싸안고 고뇌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고뇌를 고뇌 답지 않게 맑고 따뜻하게,때로는 희화적으로 극복한 결과 도달한 지점은 극단적인 고뇌를 통해 다다른 곳에서 그리 멀지는 않은 것 같다.그것이 그를 소녀들의 취향에 영합하기만 하는 대중시인과 거리를 두게 하는 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문학성을 평가하고자 하는 사람 조차,이 시집이 가진 긍정적 의미의 대중성을 부각시키려하기 보다는,애써 대중성을 부정하는 시편에서의미를 찾으려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어쩌면 그것은 시인에 의해 어느 정도의도된 것인지도 모른다.이른바 문학성을 증명해보여야 자신의 본령인 서정성이 제대로 살아날 수 있다는…. 경주박물관 앞마당/봉숭아도 맨드라미도 피어있는 화단가/목잘린 돌부처들나란히 앉아/햇살이 눈부시다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자기머리를 얹어본다 소년부처다/누구나 일생에 한번씩은/부처가 되어보라고/부처님들 일찍이 자기 목을 잘랐구나 정호승이 던지는 화두(話頭)는 ‘소년부처’처럼 어려운 법이 없다.짝을 이루는 ‘햇살속으로’도 마찬가지다. 경주박물관에 가면/몸은 온 데 간 데 없고/돌부처의 머리만 길가에/쓸쓸히앉아있다 나는 어느 여름날/…/그 돌부처의 머리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내 머리를그 자리에 떼어놓고/돌부처의 머리를 내 머리에 얹고는 천천히 길을 걸었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경의를 ‘들녁’처럼 간결하면서,훈훈하게 표현하기도어려울 것이다. 날이 밝자 아버지가/모내기를 하고 있다/아침부터 먹왕거미가/거미줄을 치고 있다/비온 뒤 들녘 끝에/두 분 다/참으로 부지런 하시다 한권의 시집에서 이것 이상 어떤 엄청난 것을 읽어낼 수 있을까.오늘 지하철을 타거든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를 읽어볼 일이다.그러다 진짜 눈물이 나면 잠깐 내렸다가,다음 전동차를 타도 좋을 것이다. 서동철기자 dc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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