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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민중의 입에서 나오는 대로 쓴 ‘오래된 미래’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민중의 입에서 나오는 대로 쓴 ‘오래된 미래’

    헌책방이라고 해서 책을 무조건 싸게 파는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은 표지 뒤에 쓰인 정가보다 비싼 것도 있다. 큰 틀에서 보자면 책도 다른 물건과 비슷하게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 책이 처음 출판되어 서점에서 팔릴 때는 정가를 받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 그 책이 절판되면 더이상 구할 수 없게 되니까 헌책방에선 자연스레 가격이 올라간다. 하지만 모든 책이 그런 운명을 가지는 건 아니다. 절판됐다고 하더라도 그 책을 구하는 사람이 적으면 굳이 가격이 비싸질 이유는 없다.책값이 달라지는 이유엔 좀더 복잡한 사정이 더해진다. 책의 내용과 저자의 철학이 훌륭해야 함은 물론이고 책 표지가 아름답다거나 장정의 훌륭함 등 책의 전반적인 만듦새도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어떤 경우엔 번역자나 편집자 그리고 출판사 대표의 철학도 가격에 반영된다. 이런저런 이유가 더해진 결과, 헌책방에서 비싸게 팔리는 책은 전체를 두고 보면 극소수일 뿐이다.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가 많다 보니 책 가격이 오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은 한동안 비싸게 거래됐다가 가격이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또 가격이 오를 때가 있고…. 책의 운명도 생명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헌책방 주인장은 이런 가격변동 요인을 그때그때 잘 알아두어야 한다. 가격이 비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책은 아니겠지만 절판된 책 중에 가격 등락폭이 오랫동안 변함없이 유지되는 책이라면 헌책방에서만큼은 널리 사랑받는 책이라 부를 만하다. 다른 헌책방에서 직원으로 일한 것까지 합치면 이쪽 계통에서 일한 지 10년을 훌쩍 넘기게 되었는데, 그러면 어떤 책이 손님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느냐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번 해봐도 되지 않나 싶다.곰곰이 생각해본 끝에 내린 결론은 ‘뿌리깊은나무’ 출판사에서 펴낸 책들이다. 이 출판사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들여온 한창기(1936~1997)씨가 만든 회사다. 같은 이름으로 발행한 잡지를 기억하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한국브리태니커회사를 운영하던 그는 1970년 4월에 ‘배움나무’라는 제목으로 사보를 만들었는데 이를 발전시켜 1976년 3월 ‘뿌리깊은나무’ 창간호를 내놨다. 한글전용, 가로쓰기 편집 등 당시로선 대단히 파격적인 디자인은 우리나라 잡지사에서 여전히 높이 평가되고 있다. 내용도 알차서 잡지는 구독자 수를 꾸준히 늘렸지만 1980년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에 의해 강제 폐간됐다. 우리 문화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던 한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1984년 ‘샘이깊은물’을 창간해 2001년까지 잡지 발행을 이어 갔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이 두 잡지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많다. 뿌리깊은나무에서는 잡지와 별도로 ‘혼자 사는 외톨박이’, ‘이 땅의 이 사람들’ 등 여러 단행본도 펴냈고 모두 인기가 있어 그중에 무엇을 베스트로 뽑겠느냐 하는 질문만큼 대답하기 어려운 게 없다. 그래도 하나만 말해 보라면 나는 ‘민중자서전’이라고 하겠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유명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자서전인데 특이한 점은 당사자가 직접 책을 쓴 것이 아니라 구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책에 있는 소개 글을 빌려 보자면 “이름 없는 민중이 입으로 쓴 자서전”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한 기획이다. ‘민중자서전’은 1981년부터 10년간 총 스무 권이 출판됐다. 각 책은 한 사람이 말로 풀어낸 한평생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제암리 학살사건의 증인 전동례씨(1권)를 시작으로 조선 목수 배의환씨(2권), 보부상 유진룡씨(5권), 옹기쟁이 박나섭씨(7권), 진도 강강술래 앞소리꾼 최소심씨(9권), 벌교 농부 이봉원씨(12권), 옹기배 사공 김우식씨(19권) 등 평범한 민중들의 범상치 않은 인생역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주인공이 풀어놓는 입말을 편집 단계에서 가공하지 않고 들리는 그대로 본문에 기록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벌교에서 한평생을 산 농부 이봉원씨가 한 말을 읽어 보면 이렇다. “그전이는 인자 흔트모, 흔트모, 기양 방 골래서 여윽 꽂고, 여윽 꽂고, 여윽 꽂고, 그릏곰 기양 막 슁겨 나가. 기양 멍체이 모로 싱궜어. 기양 아믛게나 강골라서 차꼬 모 싱군 사람덜이 인자 방 골래서 꼽아, 항클방클허니.”(‘그때는 고롷고롬 돼 있제’, 민중자서전 12권, 73쪽.) 전라도 토박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강원도와 서울이 삶터인 나로 말하자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마치 외국어같이 느껴질 정도다. 본문 아래에 단어별로 주석을 달아 놓지 않았더라면 이 책을 올바르게 읽어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위의 말을 대강 해석해 보면, 예전에는 모를 심을 때 못줄을 쓰지 않고 내키는 대로 대충 심었기 때문에 모 심어 놓은 논을 보면 줄이 똑바르지 못하고 흐트러졌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오랫동안 이어온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많이 잃었다. 눈으로 보이는 문화재가 망가지거나 도난당한 것은 물론 철학과 정신으로 전해 내려오는 정신문화 역시 적지 않게 훼손됐다. 이런 때 한씨는 이 땅의 전통문화를 찾아 되살리려는 노력으로 한평생을 보냈다. 한 나라의 힘은 곧 문화의 힘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문화의 중심에는 언어가 있다. 그는 책을 만들어 파는 출판인이기 이전에 우리의 문화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민중자서전’ 스무 권은 그런 철학이 오롯이 들어가 있는 책이다. 여러 지방 방언으로 말한 것을 소리 나는 그대로 받아 적어 책으로 만든 게 의미의 전부는 아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구술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으며 점차 사라지고 있는 지역 방언 연구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는 1997년에 세상을 떠난 한씨의 20주기다. 4월에는 서울시청 지하에 있는 서울시민청에서 20주기 추모전이 있었다.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던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은 2011년 전남 순천 낙안읍성 근처에 개장했다. 그곳에는 뿌리깊은나무 출판사의 여러 출판물 실물이 전시되어 있고 한씨가 살아 있을 때 수집했던 전통문화 관련 소장품들도 둘러볼 수 있다. 바야흐로 무엇이든 새로운 것이라야 대접받는 시대다. 하지만 그 어떤 새로움도 지나간 것에서 배우지 않은 게 없다. 오늘 ‘민중자서전’을 다시 읽으며 “오래된 미래”라는 말을 실감하는 값진 우리 문화를 곰곰 생각해 본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의정부역 메트로타워’, 착한 가격과 서울 접근성 갖춰 관심도↑

    ‘의정부역 메트로타워’, 착한 가격과 서울 접근성 갖춰 관심도↑

    지난 1월 서울시가 동부간선도로 지하화를 토대로 한 ‘중랑천 중심, 동북권 미래비전’을 발표하며 의정부 분양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그 동안 경기북부에 위치한 의정부는 동부간선도로, 국도 43번 도로, 지하철 1호선 등 한정된 교통상황으로 인한 극심한 교통정체 등의 문제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아왔다. 동부간선도로의 경우 하루 평균 17만대 이상의 차량이 이용할 정도로 많은 양의 차량이 이동하지만 그만큼 전국적인 상습 정체구역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상습 정체를 빚고 있는 동부간선도로가 오는 2026년까지 지하화된다. 동부간선도로 확장·지하화되면 의정부에서 강남 이동시간이 한 시간대에서 20분대로 단축돼 서울 접근성이 향상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구리-포천고속도로, 43번 국도의 차선확장 등 교통 개발호재가 속속 발표되면서 의정부의 부동산 시장이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서울 접근성은 수도권지역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그 동안 개선되지 않던 의정부 교통환경이 개선되면서 더 많은 발전이 기대된다”며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43번 국도 차선 확장 등의 개발호재로 서울 접근성이 크게 향상돼 1시간 이상 걸리던 강남 이동이 단축되면서 강남 생활권으로서 역할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구리-포천고속도로 등과 함께 의정부-금정 간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지하철 7호선 연장 등 대중교통 개선사업들도 속속 발표되면서 의정부역 도보 3분 거리에 위치하는 ‘의정부역 메트로타워’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의정부역 메트로타워는 지하 1층~지상 19층 연면적 5,992㎡ 규모로 들어서며 최근 가구 구성의 대세로 자리잡은 1~2인가구가 타깃인 소형 타입(도시형생활주택 176세대, 오피스텔 22실) 위주로 구성된다. 사업지는 지하철 1호선과 다양한 버스노선이 있어 서울 및 수도권 각지 이동이 편리하고 의정부 경전철을 통해 의정부 내 지역 이동도 수월하다. 또한 수도권 외곽순환고속도로, 동부간선도로 등의 도로접근성도 갖춰 차량을 이용한 인접 지역 진출입이 원활하다. 뿐만 아니라 의정부-금정간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가 개통되면 서울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향상질 것으로 기대된다. 생활편의시설과 인프라도 우수한 정주 여건의 기반으로 꼽힌다. 우선 부산 센텀시티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의정부 민자역사 신세계백화점을 단지 가까이에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경기 동북부의 유일한 백화점으로 영업면적만 5만㎡에 이르며 내부에는 영화관, 대형마트와 서점 등 시설이 들어서 다양한 문화·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이 밖에도 의정부역을 중심으로 사무실, 학원, 상가 시설이 밀집된 시가지와 중심상업지구, 시청, 시의회, 세무서 등 공공·행정기관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때문에 이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에게 직주근접 주거시설로 여겨지고 있다. 현장 관계자는 “최근 수도권 개발사업이 남부에서 북부로 이동하는 추세이며, 더불어 의정부지역의 수혜가 기대되고 있다”며 “1인가구가 갈수록 늘어나는 이 시점에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책정된 이번 신규 공급이 기대된다”고 전했다. 의정부역 메트로타워의 주택홍보관은 경기도 의정부시 시민로에 위치해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해피라움 블루’ 세종 상가 투자 리드하는 대표 상품으로 눈길

    ‘해피라움 블루’ 세종 상가 투자 리드하는 대표 상품으로 눈길

    최근 상가 투자가 아파트나 타 수익형 부동산 보다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상가의 평균 수익률은 6.4%에 달할 정도로 시중 금리나 타 수익형 부동산 보다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상가는 임대를 주는 것 외에도 실제 운영도 가능해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형 부동산 상품으로 꼽힌다. 하지만 상가 투자 상품이 늘어나면서 상가도 차별화가 대두되고 있다. 상가 투자의 인기와 함께 다양한 상가 형태가 들어서면서 입지만큼이나 상가 설계가 높은 수익률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SNS 등에서 예쁜 인테리어와 분위기를 갖춘 상가들이 입소문을 타고 소위 대박이 나고있는 만큼 이러한 특화설계의 인기는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수도권 신도시 등에서는 스트리트형 테라스를 갖춘 상가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광교신도시 A공인중개사는 “이색 상가열풍에 이국적 테마를 갖춘 테라스 상가가 인기를 끌고 있다”며 “스트리트 테라스형 상가는 기존 상가에 비해 권리금이 5000만원 이상 높은 곳이 많은데다 신규 분양 물건에서도 테라스 상가는 수천만원에서 억대의 높은 프리미엄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단순한 상가를 넘어서 다양한 테마를 갖춘 상가가 인기를 끌면서 세종시에서 분양하는 스트리트형 테라스 상가 세종 해피라움이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종시 해피라움블루는 세종시 3-1생활권 C3-1, 2블록에 들어서며 지하 3층~지상 7층으로 이뤄진다. 행복한도시개발㈜은 금강 수변공원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테라스특화거리를 조성해 투자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계획이다. 실제 금강과 가장 가까운 공간을 공중가로형 입체테라스로 설계, 테라스를 조성해 수변조망을 극대화했다. 이와 동시에 보행 동선에서 접근이 용이하도록 통로를 배치해 고객 유입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세종시 해피라움블루는 최근 프리미엄이 높은 금강변 상가로 우수한 조망권은 물론 향후 미래가치도 두텁게 평가받고 있다. 전방향 탁트인 조망권을 확보했고 금강1교(학나래교), 2교(한두리교), 금강 낙조, 나성, 중앙호수공원 등 주변 경관 조망도 매우 우수하다. 또한 건축디자인 특화구간에 입지해 독특한 입면디자인도 자랑한다. 이어 세종시 3-1생활권 13블록에는 ‘해피라움페스타’가 공급된다. 해피라움블루와 바로 마주하고 있는 입지다. 두 상가를 연결하는 브릿지(Bridge) 및 상호 연계된 기획 MD가 도입될 계획으로 모두 합쳐 토지면적만 총 1만9944㎡(연면적 약 4만평)에 달한다. 완공 시 ‘해피라움 블루·페스타’는 세종시 최대규모의 랜드마크 상가로 거듭날 전망이다. 특히 이 상가는 압도적인 규모에 의해 입지적으로도 대전과 가장 인접한 세종시 3생활권에 위치해 충청권 전체를 대표하는 핵심 상권을 주도할 전망이다. 준공 시 세종시는 물론 인근의 대전 유성과 대덕, 신탄진 등 충청권 전역에서의 광역적인 수요를 끌어 모을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복합터미널 및 지선환승센터 등 대중교통 환승여건도 좋고 대전세종간 자전거도로, 자전거금강종주길 등 친환경 녹색교통체계의 교차지에 위치해 고객 유입이 더욱 풍부할 전망이다. 콘셉트 및 차별화된 MD구성도 주목할 만하다. 해피라움블루에는 최근 선호도가 증가하고 있는 하우스 웨딩을 비롯해 프리미엄급 한식, 일식당 등이 들어선다. 해피라움페스타에는 키즈테마파크, 라이프스타일서점 등이 입점, 다양한 키테넌트(핵심 점포) 업종이 확보될 예정이다. 특히 해피라움 블루는 우수한 대중교통 환경까지 갖춰 더욱 눈길을 끈다. 세종시의 핵심 교통시설로 지목되고 있는 BRT 역세권 입지를 지녀 상권의 활성화는 물론 유동인구를 쉽게 유입해 직접적인 수혜와 프리미엄이 기대된다. 해피라움 블루는 지하 BRT(간선급행버스체계) 정류장과 직접 연결되는 동선이 설계를 선보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치 뒷담화] 리더를 꿈꾸게 한 나만의 멘토

    [정치 뒷담화] 리더를 꿈꾸게 한 나만의 멘토

    책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어떤 책을 썼는지 못지않게 어떤 책을 감명 깊게 읽었는지도 그 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대선 주자들은 과연 어떤 책을 읽고 큰 꿈을 다져왔을까. 주자들이 꼽은 ‘내 인생의 책’을 통해 이들이 꿈꾸는 가치와 정치를 읽어 본다.유신체제 지식인의 필독서, 국제정치 눈뜨다 문재인 전 대표의 ‘인생 책’은 고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다. 1974년 출판된 이 책은 유신체제 시절 지식인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히던 고전적 사회계몽서다. 문 전 대표에게 현대사와 국제정치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문 전 대표는 자신의 책 ‘운명’에서 대학 시절 비판의식과 사회의식을 다지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리영희 선생을 꼽았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 관련 책들을 읽는데 특히 김현철 서울대 교수의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저성장 시대, 기적의 생존 전략’이 인상 깊었다. 이 책은 우리보다 먼저 저성장 시대를 경험한 일본을 철저하게 분석해 다가오는 세계 경제의 침체 위기에 대처하는 전략을 담고 있다.정치 환멸 잠재워 준 신영복 교수의 에세이집 안희정 지사는 고 신영복 교수의 에세이집 ‘청구회 추억’과 토머스 머튼의 ‘사막의 지혜’를 인생의 책으로 추천했다. ‘청구회 추억’은 신 교수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기 2년 전 소풍길에서 우연히 만난 가난한 소년들과의 우정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정치에 환멸을 느껴 출판사 영업부장이 된 안 지사가 대구의 한 서점에서 우연히 읽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고, 세상을 다시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2013년에 읽은 수도사들의 잠언을 모은 책인 ‘사막의 지혜’를 통해서는 ‘분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지난달 문 전 대표가 안 지사의 ‘선의 발언’을 비판하며 “안 지사의 말 속엔 분노가 담겨 있지 않다”고 지적하자 그는 “지도자의 분노는 단어 하나만 써도 피바람을 불러온다”고 말하기도 했다.호남을 이해하고 역사관 만들어준 ‘태백산맥’ 이재명 시장이 중앙대 법대 재학 시절 가장 충격을 받은 일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고 나머지는 소설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은 것이다. 1948년 여수반란사건 종결 시점부터 1953년 7월 휴전 협정 직후까지의 시기를 배경으로 좌우 갈등을 그린 이 소설에 대해 이 시장은 “호남 지역을 이해하게 해 준 고마운 책이고 대학 시절 다음 권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나오자마자 사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지켜본 경험이 더해져 이 시장의 역사관이 만들어졌다. 이 시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광주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한낱 개가 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면서 “광주는 나의 구원이자 스승이었고 내 사회의식의 뿌리였다. 나를 바꿔 놓았다”고 밝혔다.유럽 ‘공화주의’에 쇼크… 정치를 하는 이유 2015년 2월부터 7월까지의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험은 유승민 의원의 정치 인생의 큰 전환점이기도 했다. 원내대표가 되기 전 지인의 소개로 읽은 모라치오 비롤리의 ‘공화주의’는 그 변곡점을 함께한 책이다. 수백 년 전 유럽에서 이탈리아 사상가들이 고민하던 공화주의가 지금 대한민국의 양극화와 불공정, 불평등 문제와 닮아 있다는 점에 놀랐다. 책에서 나온 공화의 정신은 곧 대한민국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깨닫게 됐고 “이것이 바로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라고 믿게 됐다”고 말한다. 자유, 평등, 공정, 법치와 같은 소중한 가치들을 모두 담고 있는 정의가 바로 공화의 핵심이며 유 의원이 강조하는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이 밖에 보수주의 정치의 교과서와도 같은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후배들에게 주로 추천했던 책인 조지훈 시인의 ‘지조론’, 초등학생 시절 푹 빠져 읽었던 ‘대망’ 등이 유 의원의 생각을 다듬어 왔다.‘삼국지’에서 인생의 모든 처세술을 배우다 홍준표 지사는 ‘삼국지’를 인생의 책으로 꼽았다. 인생의 모든 처세술이 삼국지에 담겨 있다는 이유에서다. 홍 지사는 정치적 상황을 설명할 때에도 삼국지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는 최근 페이스북에 “적벽대전을 앞둔 제갈량이 주유에게 ‘만사구비 지흠동풍’(모든 조건이 구비되었고 이제 동풍만 남았다)이라고 했다. 이제 누명 벗은 무죄 판결이 동풍이 됐으면 한다”고 적기도 했다. 또 “조자룡은 장판파 전투에서 단기필마로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해 왔다”며 대규모 경선 캠프를 꾸리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대학 시절 읽었던 이병주의 ‘지리산’도 인생을 바꾸게 한 책으로 꼽았다. 지리산은 1972년 월간 ‘세대’에 연재된 소설로 해방 직후 한국의 좌우 혼란상이 극명하게 담겼다.아내가 선물한 책, 열세 번도 넘게 읽은 반려자 김관용 지사는 빅터 프랭클린의 ‘죽음의 수용소’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말했다. 아내가 선물한 이 책을 13번도 넘게 읽은 “인생의 반려자 같은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은 독일의 아우슈비츠수용소에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끌려간 저자의 자전적 소설로, 인간 군상을 통해 고통과 생존을 치열하게 고민한 것이 특징이다. 김 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 책에 대해 “생사의 갈림길 속에서도 치열하게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저자의 모습 자체가 인간 존엄성의 승리”라면서 “살아가며 겪는 힘겨운 문제들도 삶의 근본적인 질문에 비춰 보면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대한민국 미래산업의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서 안철수 전 대표는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 26명이 쓴 책인 ‘축적의 시간’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책은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현주소에 대해 평가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로 ‘축적’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오랜 기간 실패 경험이 축적된 상황에서만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안 전 대표는 “대한민국은 사회 전반적으로 축적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실패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이스라엘 학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다. 인류의 역사가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과학혁명 등에 따라 전환점을 맞았다는 점을 서술하며 이제는 인류가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책이다. 이번 대선의 중요한 과제로 4차 산업혁명을 내세운 안 전 대표는 이 책을 읽으며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통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키루스 대왕의 업적, 위대한 리더십을 키우다 손학규 전 대표는 크세노폰의 ‘키로파에디아: 키루스의 교육’을 통해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가졌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플라톤과 동문수학한 크세노폰이 쓴 이 책은 키루스 대왕의 업적을 살펴보며 어떤 교육을 받으면 그와 같은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또 어떻게 사람들을 지휘하면 대제국을 건설하는 것과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는지를 자세히 다뤘다.사회약자를 대변하는 ‘좋은 정치’의 깊은 성찰 심상정 대표가 선택한 래리 바텔스의 ‘불평등 민주주의’는 각종 통계를 바탕으로 소득 불평등과 정치의 긴밀한 관계를 실증한다. 미국 민주당 집권기에는 사회의 불평등이 줄어들고, 공화당 집권기에는 다시 불평등이 늘어난다는 결론은 곧 정치의 중요성을 일깨우게 했다. 그런데 이 같은 현상과 달리 사회적 빈곤층은 민주당에 표를 주지 않았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라는 게 이 책의 분석인데 심 대표는 여기에 깊이 공감했다. 특히 진보정당을 이끄는 주역으로서 사회적 약자들을 진정으로 대변할 수 있는 ‘좋은 정치’가 무엇인지 꾸준히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을 과업으로 여기고 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빌딩숲 사이 문화재꽃·지하길 이어 경제꽃 핀 명품 종로

    [자치단체장 25시] 빌딩숲 사이 문화재꽃·지하길 이어 경제꽃 핀 명품 종로

    “서울 종로구는 구의 정체성인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명품도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서울 종로는 조선 한양 천도 이후 600여년의 역사가 면면히 흐르는 곳이다. 김영종(64) 종로구청장은 2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취임 이후 이 같은 종로의 특성을 살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명품도시로 만드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구청장의 과거와 미래,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명품도시-종로 만들기는 ‘청진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일대는 KT 신·구 청사, D타워, 그랑서울 등 고층빌딩들이 빽빽이 들어선 빌딩 숲이지만 그 사이사이로 발굴된 문화재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김 구청장은 2015년 D타워 부지 옆에 있는 조선시대 시전행랑터 위를 투명 강화유리로 덮어 지나가는 행인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KT 건물 부지에서는 16세기 전통 구들시설을, 그랑서울 부지에서는 조선시대 화약무기인 총통 등을 투명한 유리 위를 걸으면서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청진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은 주변 전통 문화를 잘 보존하는 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조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선진도시의 특징인 지하도시 조성사업을 병행한 게 특징이다. 모두 김 구청장의 아이디어로 진행된 것이다. 김 구청장이 취임한 2010년 7월 당시 이 구역 내 그랑서울, 타워8, D타워 등 사업들은 이미 건립 허가가 났거나 공사 중이었다. 그는 이 구역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간주해 지하공간을 개발해야 한다는 구상을 갖고 직원들이 사업시행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이미 허가가 난 상태였기 때문에 별도로 돈을 내고 각 건물 지하를 연결하겠다며 선뜻 돈을 낼 사업자는 없는 상태였다. 김 구청장은 “캐나다 몬트리올 등 선진도시에 가 보면 주요 빌딩들을 지하로 연결시킨 경우가 많다”면서 “청진구역도 전체를 하나의 사업장으로 연계해 지하공간을 개발한다면 각 건물의 가치가 높아지고 편리성 증대로 유동인구가 늘어나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사업자들을 설득했다”고 회고했다.김 구청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사업자들을 모아 협의체를 만들고 1년간 무려 87회의 협의를 거친 끝에 사업비 596억원 전액을 이들 사업자들이 부담하는 방식으로 구청 돈 한 푼 쓰지 않고 사업을 이끌어 갔다. 그 결과 지난해 현재 1호선 종각역~그랑서울~타워8~청진공원까지, 그리고 D타워~KT~광화문역까지 지하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끝냈다. 인근 미착수 구간은 사업자들이 향후 재건축에 나선다면 인가 조건으로 지하통로 연결을 내걸 계획이다. 2018년 리모델링을 시작하는 종로 청사도 해당된다. 사업이 완료되면 세종문화회관 광화문역부터 보신각이 있는 종각역까지 지하로 한 번에 뚫리는 길이 만들어진다는 구상이다. 이에 더해 이 지하보행로에는 과거 대형서점이 밀집된 청진동의 지역 특성을 살린 ‘책 거리’도 조성할 계획이다. 그뿐만 아니다. 인근에는 청진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기부채납받은 부지를 전통의 멋이 가득한 청진공원으로 조성했다. 땅속에 묻혀 있던 주춧돌과 철거된 한옥 기와를 재활용하고, 1900년대의 지적도를 찾아 옛 건물터와 191m의 전통담장을 되살리는 식으로 종로 역사를 복원했다. 한옥에 어울리는 대나무, 소나무, 매화나무, 꽃복숭아 등으로 경관을 조성하고 한옥 건축물을 복원한 종로홍보관도 지었다. 고층빌딩으로 삭막했던 청진동 일대가 전통과 역사가 흐르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종로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발판으로 종로를 재정비한 또 하나의 성공 사례로는 세종마을을 꼽는다. 일대에 역사 인물들의 생가터가 모여 있는 것은 물론 국내 문학과 예술의 거장들이 창작 활동의 무대로 삼아 온 유적이 풍부하다는 데서 착안해 기획했다. 세종마을을 조성하면서 우선 버려진 수도사업장을 윤동주 기념관으로 재탄생시켰다. 옥인아파트를 철거하고 인왕산 자락의 수성동 계곡을 겸재 정선의 그림처럼 복원했다. 한국 미술계의 거장인 박노수의 작품을 기증받아 박노수 화백이 살던 가옥 자체를 구립 박노수 미술관으로 변신시켰다. 이런 문화 인프라를 구축해 특색 없는 마을이 지금은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김 구청장이 이같이 종로의 도시계획을 속속 세워 나갈 수 있는 데는 건축을 전공한 서울시 건축과 공무원과 전문 건축사로 일해 온 그의 이력이 밑거름이 됐다. 조선대 병설공업고등전문학교 건축과(5년제)를 나온 그는 서울시 건축직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1983년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그 길로 공무원을 그만두고 20여년간 건축사로 일한 도시전문가다. 1990년 2월 서울산업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그의 지난해 신고 재산은 74억원으로 서울 25개 구청장 가운데 가장 돈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공을 들이고 있는 종로의 도시비우기 사업은 전문 건축인의 혜안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그는 서울 25개 자치구 최초로 2013년 종로구에서 걷기 편한 건강한 도시를 모토로 통신주, 안내표지판 등을 최소화하는 도시비우기 사업을 시작했다. 관리 주체가 제각각인 시설물들이 무질서하게 방치된 것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고 판단해 공간 설계 최대의 미덕인 비움의 철학을 행정에 접목시켜 도시비우기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경찰청, 한국전력, 우체국 등 유관 기관과 뜻을 모아 2013년부터 4년간 지역 내 1만 5000여건의 시설물을 정리했다. 이 사업으로 시설 설치 비용을 최소화해 절감한 예산만 같은 기간 약 4억 6000만원에 이른다. 보존가치가 높은 한옥자재 재활용 은행을 만든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종로구는 전체 면적의 48%가 옛 한양도서 안에 위치해 한옥이 많다. 이 은행은 종로가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보도를 만들 때도 명품종로 정신을 강조한다. 김 구청장은 “무턱대고 저렴한 돌을 깔았다가 몇 년마다 계속 다시 바꿔 주느니 20~30% 정도 비싸더라도 100년 동안 쓸 수 있는 좋은 제품으로 포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취임한 뒤 종로는 기존의 얇은 화강판석이 아닌 10㎝ 두께의 화강석을 사용해 친환경보도를 조성하고 있다. 2011년 자하문로를 시작으로 북촌로, 새문안로, 창경궁로, 종로 등 9곳에 100년이 가도 변함없는 보도 조성 사업을 진행했다. 초기 투자비는 높지만 장기적으로 유지보수와 재포장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는 직원들에게 종로를 ‘상품’이 아닌 ‘명품’으로 만든다는 생각으로 일을 기획하라고 입버릇처럼 말을 한다. 명품종로 만들기 사업은 계속된다. 그는 종로와 인연이 있는 현진건, 염상섭, 이상 등 1920~30년대 활동한 문인들의 원고, 사진, 편지, 서예, 소장품 등 문학자료 2000여점을 기증받아 관사에 보관하고 있다. 종로문학관을 건립한다는 목표다. 미술관, 갤러리 등 시설이 몰려 있는 부암동, 평창동 일대는 자문밖 창의예술마을로 조성 중이다. 이 마을 일대의 자연환경 및 인적 인프라를 활용해 세계적인 아트밸리를 만들 계획이다. 당장 오는 4월 세종마을에는 우리 고유의 과학적인 난방법인 온돌문화를 소개하는 전통한옥 상촌재를 선보인다. 우리 고유의 음악을 공부할 수 있는 우리소리 도서관도 연내 문을 열 계획이다. 그는 2018년 종로청사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하지만 본관 건물은 보존해 박물관으로 개방할 계획이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수송공립보통학교로 지어진 이 건물은 1975년부터 청사로 쓰이고 있는데 최근 이를 서울미래유산으로 신청해 지정받았다. 김 구청장은 3선에 도전해 명품종로 사업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모든 것을 헐어내고 전면 재건축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면서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면서도 주민생활 편의와 자산 가치를 증대하는 식으로 종로를 더욱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책 향기 나는 골목으로 봄마실 어때요

    책 향기 나는 골목으로 봄마실 어때요

    지역 특색 담은 책거리 곳곳에 인문·추리·시집 등 전문성 살려날씨가 풀리면서 가족과 주말 봄나들이를 준비하는 이들이 많다. 멀리 갈 것 없이 서울의 동네책방을 탐방해보는 건 어떨까. 서울시가 이색 서점이 몰려 있는 동네책방 탐방 코스 11곳을 선정해 16일 소개했다.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마포구에서는 홍대앞책방길과 연남책방길, 망원책방길 등이 가 볼만하다. 홍대앞책방길은 홍대 특유의 개성 있는 문화를 살린 책방이 많다. 책방 주인이 방문객의 취향과 심리상태 등을 상담한 뒤 알맞은 책을 권해주는 책방과 국내외 독립출판물이 빼곡한 책방도 있다. 또, 마포구가 경의선 폐철길 주변에 책을 주제로 조성한 쉼터인 ‘경의선 책거리’가 있다. 지역 놀이터 같은 책방들이 있는 망원, 인문·철학, 여행, 시각예술 등 전문 책방이 모인 연남 등도 함께 들러 보면 좋다. 이대앞책방길에는 지역 문화인들이 재개발 위기에서 지켜낸 홍익문고와 술 한잔 마시며 책을 보는 서점과 추리소설이나 시집만 파는 고집 있는 전문서점 등이 있다. 경복궁책방길에서는 1934년 문을 연 유서 깊은 서점 ‘통문관’은 물론 개인 서재를 옮겨놓은 듯한 작은 책방들을 만날 수 있다. 스토리지북앤필름과 고요서사 등 개성 있는 서점들이 모인 해방촌길과 1970년대를 재현한 서점 등이 있는 이태원, 헌책방거리 등이 있는 종로도 가 볼만하다. 혜화에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서점 등이 있고 신림동 고시촌이 있는 관악에는 고시전문 서점과 인문사회과학서점, 오래된 헌책방이 공존한다. 강남에는 제일기획 최인아 전 부사장이 차린 책방과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을 내세운 트렌디한 책방 등이 있다. 서울시책방길 11곳의 지도는 4개 국어로 번역돼 서울시 관광사이트 비지트서울(www.visitseoul.net)과 서울스토리(www.seoulstory.kr)에 올려진다. 시는 또 책방길 관련 상세정보를 담아 ‘책방산책 서울’로 펴낸다. 오는 20일부터 시민청 서울책방과 동네책방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씨줄날줄] ‘보복 대국’에 대처하는 지혜/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보복 대국’에 대처하는 지혜/황성기 논설위원

    중국은 국가 간 정치적 분쟁을 외교로 풀려 하지 않고 보복의 칼부터 휘두르고 보는 ‘보복 대국’이다. 영토 분쟁, 이슬람 국가로 분리 독립을 추진하고 있는 신장·위구르자치구, 티베트 망명 정부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반체제 인사와 관련된 일이라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덤빈다.필리핀은 2012년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 영유권 분쟁으로, 노르웨이는 2010년 10월 노벨평화상 위원회가 중국 반체제운동가인 류샤오보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프랑스는 2008년 12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달라이 라마를 만난다는 이유로 글로벌 스탠더드(국제기준)와는 거리가 먼 중국의 막무가내식 보복에 줄줄이 당했다. 중국의 무차별 보복을 당한 국가들 상당수가 절절맸지만 일본은 조금 달랐다. 2012년 9월 일본 정부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전격적으로 국유화한 사건을 보자. 중국은 감시선의 영해 침범, 관광 제한, 불매운동 같은 전가의 보도를 꺼내 든다. 일본 기업의 현지 공장 종업원들이 정치 파업을 벌여 피해가 속출했다. 베이징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에선 연일 반일 시위가 열리고 일본 출판물이 중국 서점에서 자취를 감췄다. 도요타가 수출을 일시 정지했고, 자동차 판매가 직격탄을 맞아 수출이 31%나 감소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중국 투자를 오히려 늘리는 역전략을 구사했다. 2013년 상반기 대중국 투자는 전년보다 14.4% 증가했다. 세계 최대의 시장 중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구축을 꾀했다. 우익계를 제외한 언론 대응도 차분했다. 국민을 쓸데없이 불안하게 하거나 격분하게 하는 자극적인 보도를 삼갔다. 일본 정부의 의연한 대응은 시종일관했다. 총리가 나서 보복으로 피해를 본 일본 기업에 대해 “현지법에 따라 중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정권 교체기에 반일 공세를 강화해 새 국가주석 시진핑 체제의 안정을 꾀하려 했던 중국의 속사정을 간파하고 대처한 것이다. 일본의 질 좋은 제품, 맛있는 음식, 안전하고 깨끗한 관광지에 대한 13억 인민의 욕구를 중국 정부가 억누르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 법. 이듬해인 2013년 11월 기준 일본 자동차의 중국 판매는 닛산이 전년 동기보다 96%, 도요타는 41%나 폭증했는가 하면 일본을 찾는 중국 관광객은 매년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중국 정부가 반한 감정을 부추기고 있고, 인민들도 동조하고 있지만,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미래를 내다보고 좋은 콘텐츠와 품질로 중국인의 마음을 잡는 게 최상책이다. 시장 다변화도 중요하지만, 세계 공장이자 세계 시장이 된 중국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씨줄날줄] 수제 번역/황수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수제 번역/황수정 논설위원

    독일의 문호 헤르만 헤세는 우리에게 소설과 산문으로 익숙하다. 원래 그는 시인이었다. 화가이기도 했다. 시인이자 화가였던 헤세의 글은 그래서 더 미려했을지 모른다. 시처럼 그림처럼 산문을 썼으니 언어 미(美)의 절정이 궁금하면 그의 산문을 읽어 보라고들 한다.헤세의 산문을 텍스트 삼아 뜯어 읽고는 한다. 고향과 자연을 찬미한 그의 대표 산문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를 몇 번 읽어도 고백건대 소문만큼의 감동을 맛본 적 없다. 첫손에 꼽히는 헤세 전문가의 번역본인데도 그렇다. 언어의 조탁에 무릎을 치는 감동까지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원문에 충실한 직역은 자칫 암호 해독서가 되고 만다. 그렇다고 지나친 의역은 원작의 결을 망가뜨린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좋은 번역이다. 헤세의 행간을 생생히 느끼고 싶어 열혈 독자들은 아예 독일어를 배운다. 눈 밝은 독자는 출판사보다 번역가의 면면을 따진다. 궁합이 맞는 저자와 번역가가 따로 있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번역가 이세욱,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양윤옥, 히가시노 게이고는 김난주·양억관이 짝을 이루는 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작품 세계를 연구하거나 직접 교류하면서까지 원작자의 의중을 꿰뚫는 번역가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원작자는 출판사와 계약할 때 특정 번역가를 지목하는 까탈을 부린다. 행간의 묘미를 전달하는 문학작품에서 번역가는 원작의 생사여탈권을 쥔다. 최초의 독자이면서도 “천 겹 언어의 베일을 지나 독자에게 가닿는 순간 사라져야 하는 사람”(번역가 김남주)이다. 그들에게 최고 찬사는 ‘번역 같지 않은 번역’이다. 원작자 앞에 나서서도, 텍스트를 뛰어넘어서도 안 된다. 도무지 기계로는 감 잡기 어려울 번역의 불문율이다. 그제 세종대에서 열린 인공지능(AI) 번역기와의 대결에서 인간 번역사가 압승했다. AI 번역기가 인간의 수준에 얼마나 근접했는지 가늠하는 자리였다. 수필, 소설 등 문학 부문에서 AI의 번역 품질은 특히 더 떨어졌다. 인간 언어 영역의 감성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이라는 관전평을 위안 삼아야 할지, 언어의 뉘앙스가 바둑의 수보다 훨씬 많다니 당분간은 안도해도 좋은 건지 씁쓸하다. AI 번역이 미래의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거라는 전망이다. AI가 인간 번역가의 자질과 행간 읽기 능력까지 흉내 내는 날이 온다면 서점 풍경도 바뀌지 싶다. 발 빠른 출판사는 인간 번역가의 ‘수제(手製) 번역서’를 한정판으로 찍어 명품족 독자를 유인할지 모른다. 아무래도 궁금하다. 언젠가 그날, AI는 이 문장을 어떻게 영문으로 옮길까. “온종일 뿌윰하고 두터운 햇살이 별당 뜨락에 들어차더니 … 팔월 한가위는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는 아닐는지.”(박경리 ‘토지’ 중)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1> 여성잡지 ‘엘레강스’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1> 여성잡지 ‘엘레강스’

    헌책방에서 잠자던 옛 책을 발굴해 그 시대의 문화상을 발랄하고 경쾌하게 조명하는 새 연재물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박물관’이 격주로 독자들과 만납니다.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지금의 우리들도 충분히 곱씹어 볼 만한 문화의 자취를 느껴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을 좋아해 그의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패러디한 책방을 연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는 ‘탐서의 즐거움’, ‘내가 사랑한 첫 문장’,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를 쓴 자칭 애서가이자 활자 중독자입니다.오래된 책들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보아 넘길 게 없다. 그중에서도 내게 특별한 것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흔하게 보던 대중잡지다. 대중잡지는 당시 문화와 시대상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매체다. 특히 텔레비전이 보편화되기 전인 1980년대 이전 잡지는 사건 사고에서부터 정치, 경제, 문화, 연예계 이야기는 물론 가벼운 가십거리까지 꽉꽉 들어차 있어 시대의 축소판이라고 부를 만하다. 지금도 서점에 가면 이런저런 잡지들이 많은데 멀티미디어 매체라는 게 아예 없었던 당시에 잡지의 힘이란 그야말로 대단했다. 얼마 전 가끔 들르는 책 경매장에서 ‘엘레강스’라는 여성 잡지가 한 권 출품되어서 구입했다. 평소에 옛날 잡지를 좋아하는 내게 1960~70년대에 나온 대중잡지는 무엇보다 반가운 책이다. 이날 구입한 잡지는 1976년 6월호로 잡지 제목 위에 “미혼여성·여대생의 잡지!”라는 문구가 쓰인 걸로 봐서 젊은 여성을 주 독자층으로 겨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잡지를 발행한 곳은 ‘주부생활사’다. 주부생활사는 1960년대부터 여성 독자를 위한 책을 많이 출판한 곳이다. 펴낸 책 대부분은 각종 음식 만드는 방법, 집안 살림, 옷 만들기, 육아, 꽃꽂이 등에 관한 것으로 그 당시 여성이 알아야 할 지식이 대체로 어떤 분야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미혼 여성 ‘신부수업’ 받던 그 시절 확실히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성은 ‘결혼해서 살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컸다. ‘신부수업’이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쓰던 때였다. 몇 년 전에 ‘지리산’, ‘관부연락선’ 등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이병주의 칼럼 모음집 ‘1979년’을 봤는데 여러 글들 중에서 “여자는 대학을 나와야 하는가”라는 것도 있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작가가 1970년대에 쓴 글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당시 사회 분위기가 어땠는지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여성이 대학 교육을 받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이에 더해서 강한 목소리로 여성에게 고학력은 아무 쓸 곳이 없을 뿐 아니라 취직하는 것에도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잘못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당시 사회가 그랬다. 문화, 사회, 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남성이 움직이고 있었으니 여성의 존재는 그만큼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1960년대 이전으로 내려간다면 이런 분위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대중들 반응에 가장 민감한 매체인 영화만 보더라도 1960년대에는 말하자면 신성일의 시대였다. 영화 내용도 사나이들의 모험과 의리 같은 것을 그린 내용이 많았지만 1970년대에 히트한 영화들은 대개 이야기 중심에 여성이 있었다. 최인호 소설을 각색한 ‘별들의 고향’(1974)을 보기 위해 46만명이 영화관을 찾았다. ‘영자의 전성시대’(1975)와 ‘바보들의 행진’(1975), ‘겨울여자’(1977)도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히트 영화가 유명한 원작 소설들과 짝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유행 때문이었는지 인기 소설가와 젊은 영화감독들은 연예인 못지않게 인기를 누렸다. 문화를 즐기는 계층은 남성 중심에서 여성 쪽으로 조금씩 무게가 이동했다. 자연스레 대학생 또는 사회에 진출한 젊은 여성을 위한 잡지도 늘어났다. ‘엘레강스’ 1976년 6월호 목차를 살펴보면 문화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성 독자를 겨냥해서 인기 있는 소설과 영화, 외국에서 유행하는 팝송 소개 등으로 지면을 구성했다. 여성 예술가로 해외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천경자 화백의 작품 설명과 컬러 화보가 잡지 앞쪽에 실렸다. #독자 참여 방식으로 차별화 전략 또 하나 특별한 점은 당시에 나왔던 여러 여성 잡지에 대한 차별화 전략으로 일반 독자를 잡지에 직접 참여하게 유도했다는 것이다. 이번 호 표지를 장식한 모델은 인기 연예인이 아니다. 올해 스물네 살이 된 박옥경씨로 고려대 의대 간호학과에 재학 중이다. 취미는 스포츠이고 장래 꿈은 선장(船長)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덧붙여 편집부는 박옥경씨를 “나이팅게일을 꿈꾸는 대학가의 주인공”이며 “안 보고도 데려간다는 셋째 딸” 이라고 설명한다. 멋진 설명인 것 같지만 가만히 읽어 보니 좀 이상하다. 여성을 위한 잡지라고는 하지만 설명은 ‘남성이 원하는 여성상’이다. 이런 모습은 남성이 문화 소비의 중심이던 사회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아이러니하게도 여성 잡지에 실린 주요 콘텐츠도 남성들이 지면을 채웠다. ‘엘레강스’ 1976년 6월호를 보면 최인호, 고은, 박두진 등 유명 작가들이 쓴 칼럼이 곳곳에 배치되었고 잡지 끝부분에는 조해일, 이동하 작가의 연재소설이 실렸다. 이 잡지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한 기사는 “청춘파(靑春派) 감독이 말하는 영상 속의 미혼의식(未婚意識)”인데 이 역시 남성 감독 두 명과 인기 소설가 한 명의 좌담회를 글로 풀어 옮긴 것이다. 사실은 내가 경매에서 이 잡지를 구입한 이유가 바로 이 흥미로운 좌담회 때문이다.좌담회에 참석한 이들은 다음과 같다. ‘별들의 고향’을 히트시킨 이장호 감독, ‘영자의 전성시대’를 연출한 김호선 감독, 그리고 소설가로도 인기를 누렸지만 1968년에는 대종상 각본상을 거머쥐며 영화 쪽에도 재능을 인정받은 김승옥 작가 이렇게 세 명이다. 1970년대 중반은 청춘 영화의 시대였으니 두 히트 감독과 이들의 영화를 각색한 소설가를 섭외하는 기획은 참신하다. 그리고 잘나가는 세 남성을 모셔 놓고 요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이라면 고개가 갸우뚱할 일이지만 그때는 이 특집 좌담회 기사를 읽기 위해 잡지를 구입했을 사람들도 꽤나 있었을 것이다. 좌담회 기사 부분을 펼치면 우선 세 참석자가 한 곳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이 큼직하게 한쪽을 차지한다. 이장호, 김호선 감독은 손질을 언제 한 건지 알 수 없는 더벅머리이고 사진 왼쪽으로 정면 얼굴이 나온 사람이 김승옥 작가다. 손가락에는 담배를 끼우고 턱을 괸 상태로 두 감독 쪽을 바라보는 모습인데, 멋지게 나온 사진이라서 좌담회 이후에 이 사진은 김승옥 작가의 공식 프로필 사진처럼 여기저기서 다시 쓰이게 된다.#결국 남성이 원하는 여성상만 알려줘 이야기는 대부분 두 감독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고 김승옥 작가는 사회자 격으로 좌담회 흐름을 이끌어 간다. 먼저 나오는 이야기는 참석자 세 명이 감명받은 영화중에 인상 깊은 여성상을 담고 있는 작품을 꼽는 것이다. 두 감독은 ‘초원의 빛’, ‘젊은이의 양지’, 김승옥 작가는 아일랜드 영화 ‘라이안의 처녀’를 예로 들었다. 그다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러면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어떻게 미혼 여성의 이미지를 다룰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서로 나눈다. 놀랍게도 두 감독은 약간씩 방향은 다르지만 더욱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을 창조하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낸다.그러나 이 사회 구조는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좀처럼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 이들 젊은 예술가들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김호선 감독은 “이미 사회 통념상 묵인되어 있는 사실을 영화화하면 꼭 부도덕하다는 비난이 들어온단 말이에요”라며 한탄한다. 이에 김승옥 작가는 “편견을 타파하도록 꾸준히 해보는 것, 이게 우리의 할 일이겠죠” 하면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어서 그는 여성들이 앞으로 더욱 힘을 내서 이 시대를 이끌어 나가라고 주문한다. 두 감독에게도 “수많은 여자들이 삶의 보람을 찾으면서 살아가는 생, 그 자체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리얼하게” 나타나도록 연출해 달라고 당부한다. 지금이야 당연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1970년대 우리 사회 모습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앞서나간 지식인다운 면모다. 이로부터 시대는 많이 흘렀고 지금 ‘엘레강스’같은 여성 잡지를 펼쳐 보면 내용이 유치하다며 쓴웃음을 짓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끊임없이 힘을 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우아함을 내세운 ‘엘레강스’도 몇 년 후에는 시대의 흐름에 맞도록 ‘여성자신’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변화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몇십 년이 지난 후에 또 다른 누군가도 지금 우리들이 살았던 모습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길 수 있다. 옳고 그른 문제는 당장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이 시대를 반성하며 변화하려고 노력했는지, 그것이 미래의 독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작은 실천이라 믿는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지하철 여행을 떠나요, 동네 책방으로

    지하철 여행을 떠나요, 동네 책방으로

    바야흐로 개성있는 동네 책방 전성시대입니다.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네 사랑방, 복합문화공간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지하철로 다녀올 수 있는 보물같은 동네 책방들을 소개합니다. ◆1호선 신설동역 ‘고양이책방 슈뢰딩거’세 마리 고양이들의 집사인 책방지기가 운영하는 고양이 전문 책방입니다. 3년 전부터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김미정 대표는 지금의 고양이 책방을 차리기 전 고양이 도서관 개관을 꿈꿀 정도로 고양이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다고 합니다. 사람과 교감할 줄 알면서도 자기만의 개성이 뚜렷한 점이 그녀를 ‘냥덕’(고양이 마니아)의 길로 이끌었다고 하네요. 김 대표의 말처럼 이 책방도 개성이 뚜렷합니다. 국내 일반 단행본, 해외 화보집, 중고 서적, 독립 출판물 500여권 외에도 엽서, 일러스트, 간단한 문구들도 취급합니다. 물론 모두 고양이에 관한 것들입니다. 심지어 책 내용이 고양이와 관련이 없어도 표지에 고양이가 등장한 책도 다룹니다. 책방지기와 고양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정보도 서로 교환하고 실용서적을 직접 추천받을 수도 있어 애묘인을 비롯한 고양이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꼭 한 번 들르면 좋을 책방입니다. 수익의 일부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등 동물보호단체에도 기부한다고하니 책 구매를 통한 착한 소비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매장을 확장하면 소모임, 상영회 등 고양이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도 할 계획이랍니다. *주소: 서울 종로구 숭인동길 68 *운영시간: 화~토요일 오후 3시~9시 (일·월요일 휴무)*문의: 070-5123-2861 ◆2호선 문래역 ‘청색종이’1992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해 ‘로큰롤 헤븐’, ‘코끼리 주파수’ 등의 시집을 낸 김태형 시인이 운영하는 출판사 겸 작은 책방입니다. ‘청색종이’라는 상호는 김태형 시인이 생각하는 청색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담아 지었습니다. 청춘을 의미하기도 하고 우울하거나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담은 ‘청색’을 찾아오는 분들이 다양하게 해석하기를 원한다고 하네요. 처음 책방을 차릴 때 시집 전문 서점을 표방한 것은 아니지만 김태형 시인이 시를 공부하는 데 필요한 책을 구입해 모으다보니 아무래도 시집이 많습니다. 시집을 비롯한 인문 과학 서적이 중심이고 헌책과 절판된 책들도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송재학 시인의 ‘기억들’ 등 절판된 책을 복간하기도 합니다. 매주 독서모임, 시읽기 수업, 인문독회 등 다양한 강좌도 열립니다. 이름은 잘 알고 있지만 지금껏 읽어보지 못한 고전을 비롯해 특히 어렵게 여긴 탓에 그동안 접하지 않은 시집 등을 모여서 함께 읽으며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 4종의 책을 출간한 작은 출판사로서 곧 독일 번역소설과 국내 극작가의 희곡집 출간도 준비하고 있다고 하네요. *주소 : 서울 영등포구 당산로 8-6*운영시간 : 월~토 오후 1시~9시 (일요일 휴무)*문의 : (02)2636-5811 ◆3호선 안국역 ‘베란다북스’서울 종로구 계동길 끝자락에 위치한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방입니다. 아트북, 그래픽노블 등 시각예술 서적을 기반으로 한 그림책 전문 서점으로 일러스트레이터 노준구씨 부부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화초와 빛이 가득한 집안 베란다처럼 서점에 머무는 분들이 편안하게 쉬어가는 곳이 되길 바라는 부부의 마음이 담긴 공간입니다. 시각예술분야 국내 작가 서적이 중심이지만 외국 작가 번역 서적도 마련돼 있습니다. 최근에는 문예지, 에세이, 시집 등 베란다북스라는 공간에 어울리는 독립출판물로 장르를 조금씩 확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인문학 서적처럼 그림책에서도 삶에 대한 시각과 철학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하는 노 대표의 말처럼 아이들의 책으로만 여겨졌던 그림책 속에서 마음을 달래는 따뜻한 위로를 발견할 수 있는 곳입니다. 책 뿐만 아니라 아트프린트를 비롯해 판화, 엽서, 카드, 에코백 등의 상품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예술 관련 강사와 함께하는 세미나를 시작으로 앞으로 그림책 작가와의 대화 등 책방을 찾는 손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도 열 계획입니다. *주소 : 서울 종로구 계동길 120*운영시간 : 화~토요일 오후 12시~6시 (일·월요일 휴무)*문의 : (02)747-3742 ◆4호선 혜화역 ‘얄라북스’사진을 전공한 세 명의 주인장이 사진 스튜디오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서점입니다. ‘얄라’는 아랍어로 ‘함께 가자’의 의미를, 우즈베키스탄어로는 ‘노래하다’는 뜻을 지닌 단어입니다. 프랑스의 한 수녀가 이슬람권 국가에서 얄라 운동을 펼친 것을 본보기 삼아 얄라북스를 찾는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지었다고 합니다. 현대미술 중에서도 시각예술 분야의 독립출판물을 주로 취급합니다. 예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한 인문 도서들까지 포함해 4000~5000권 정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진, 회화 작가들이 참여하는 전시와 세미나도 많이 열립니다. 젊은 작가들에게는 책방을 찾는 손님들에게 본인의 작품을 알리고 소통하는 장소가, 손님들에게는 다가가기 힘든 현대 미술을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인 셈이죠. 김지훈 실장은 “대형서점 직원들에게 세세히 물어보기 힘든 것도 이 곳에서는 마음 편히 질문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유로운 분위기 덕분인지 예술을 공부하는 지방 대학생부터 어르신들까지 손님의 연령층도 다양합니다. 특히 한국 작가 작품집을 사가는 외국인들도 많다고 하네요. *주소 :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3길 11 지하 1층*운영시간 : 월~금요일 오전 11시~오후 7시, 토요일 오후 12시~7시 (일요일 휴무)*문의 : (02)745-3330 ◆5호선 신금호역 ‘프루스트의 서재’박성민 대표가 어린 시절부터 산 동네에 차린 빨간 벽돌로 된 작은 책방입니다. 대부분의 책은 중고서적이고 소규모 출판물도 취급하고 있습니다. 대형 서점 등에서 10년 넘게 일했다는 박 대표는 책을 많이 보고 싶어서 입사한 서점에서 정작 책을 읽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직접 책방을 차렸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처럼 자신만의 서점에서 책을 읽고 나누며 그동안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공간이죠. 프루스트의 서재는 책을 파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최 대표는 본인의 책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의 좋은 작품을 펴내는 작업도 할 계획입니다. 매주 화요일, 토요일에는 여럿이 모여 낭독 모임을 가집니다. 참석자가 돌아가면서 책을 소리내어 읽으면서 천천히 읽는 시간을 갖습니다. 동네 분들과 타지역에서 오신 분들로 이루어진 모임에서 친목을 다지기도 합니다. 때때로 책방 공간을 이용한 사진, 그림 전시회도 열고 있습니다. *주소 : 서울 성동구 무수막길 56 *운영시간 : 화~일요일 오후 12시~8시 (월요일 휴무)*문의 : 010-8988-2682 ◆6호선 한강진역 ‘다시서점’낮에는 서점으로, 저녁에는 바(Bar)로 운영되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가수 윤선애의 노래 ‘다시 만날 날이 있겠죠’에서 따온 서점의 이름은 ‘다시 한다’는 뜻과 더불어 ‘시가 많다’(多詩)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시집을 주로 취급하는 서점입니다. 올해부터는 특정 시인을 정해서 그 시인의 시집을 중심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인 백석을 시작으로 앞으로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 등 유명한 시인들의 작품을 다룬다고 합니다. 김경현 대표는 “돌아보면 학창시절 시를 교과서에서 재미없고 어렵게 배운 것 같아 다른 방식으로 시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책을 비치한 작은 공간을 돋보이게 하는 뚫린 벽 인테리어 덕분에 찾는 손님들이 흥미로워한다고 하네요. 간혹 인테리어가 예뻐 사진만 찍고 가는 손님들도 있지만 김 대표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다가 자신의 감성을 풍성하게 만드는 한구절이라도 얻어가는 공간이 되길 바란답니다. 저녁 6시가 되면 맥주와 차 등을 판매하는 ‘초능력’이라는 이름의 바로 변신합니다. 지난해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독립출판물을 주로 다루는 다시서점 신방화점도 문을 열었습니다. *주소 :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42길 34 지하 1층*운영시간 : 화~일요일 오후 12시~6시 (월요일 휴무)*문의 : 070-4383-4869 ◆7호선 신대방삼거리역 ‘대륙서점’1987년에 문을 연 동작구 상도동 ‘동네 사랑방’ 서점입니다. 대륙서점을 연 이전 사장님 부부에 이어 새로운 사장님 부부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혼 보금자리를 마련한 동네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어했던 부부는 대륙서점이 여러 사정으로 인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점을 인수해 2015년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동네 서점이 변치 않고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랐던 부부는 그래서 간판도 원래의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등의 추천을 받은 도서를 주제에 맞게 비치합니다. 동네분들이 읽고 싶어하는 추천 도서들도 많이 갖추고 있는데 특히 마을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한 동네의 특성상 마을, 협동조합, 생태 등과 관련한 도서가 많습니다. 책 뿐만 아니라 독서 모임, 취미 소모임, 작가 강연, 다큐 상연회까지 열리니 그야말로 동네 복합문화센터입니다. “삶의 여유가 없는 요즘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집 근처에서 쉽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서점”이 되길 바라는 사장님 부부의 염원이 담긴 공간입니다. *주소 : 서울 동작구 성대로 40 *운영시간 : 월~일요일 오전 11시~오후 10시*문의: (02)821-8878 ◆9호선 선유도역 ‘프레센트.14’향기 관련 일을 하던 최승진 대표가 책과 향을 접목해 차린 향기 파는 책방입니다. 마치 카페처럼 생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향긋한 향기가 먼저 손님을 반깁니다. ‘선물’(present)과 ‘향기’(scent)라는 단어가 합쳐진 상호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책을 특별하게 선물하고 싶을 때 찾으면 좋은 곳입니다. “책만 선물하면 뭔가 허전해 색다른 느낌을 주고 싶어 향기를 선택했다”는 최 대표는 선물받는 사람이 좀 더 책을 소중하게 여기고 특별하게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총 900여권의 책 중 스테디셀러가 대다수이고 나머지는 독립출판물입니다. 책의 주제를 테마로 한 최 대표가 직접 만든 향기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웨하스 의자’, 알랭 드 보통의 ‘키스 앤 텔’,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 등 책 6권과 더불어 영화 ‘4월 이야기’를 테마로 만든 향기입니다. 앞으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책을 중심으로 책에 어울리는 향기를 만들 계획입니다. 책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에 적힌 몇 개의 키워드만 보고 고르는 ‘블라인드 북’도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최근에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옛날 책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대할 수 있도록 한 시도입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이라면 환불, 교환도 가능하다고 하네요. *주소 : 서울 영등포구 양평로22라길 1 대우미래사랑2차 104동 105호*운영시간: 월~목요일 오전 11시~오후 11시, 금~일요일 오후 12시~9시*문의 : (02)2679-1414 . 사실 동네 책방은 대형 서점보다 골목 깊숙이 있거나 주택가에 위치해 상대적으로 찾기 힘들고 규모도 작아서 책을 감상하는 데 불편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으로 지도를 보면서 혹은 동네 주민에게 물어가며 열심히 찾아간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그 책방에 더 오래 머물게 되실 겁니다. 보물찾기를 하듯 미지의 책방을 알게 된 기쁨은 덤입니다. 개성있는 책들을 한 권씩 구경하다보면 어느덧 시간가는지도 모르죠. 책방지기에게 내가 좋아하는 책에 대한 조언과 추천을 받는 것도 수월합니다. 책 말고도 독서 모임, 낭독회, 전시회, 영화 상영, 세미나 등 다양한 활동도 즐길 수 있으니 그야말로 복합문화공간인 셈입니다. 다가오는 주말 지하철을 타고 가까운 책방에 들러보는 건 어떨까요 글·사진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사회 바꿔온 헌법…어떻게 가꿔 갈까

    사회 바꿔온 헌법…어떻게 가꿔 갈까

    헌법의 상상력/심용환 지음/사계절 352쪽/1만 6000원 헌법은 살아있다/이석연 지음/와이즈베리 232쪽/1만 4000원 바이마르 헌법과 정치사상/헤르만 헬러 지음/김효전 옮김/산지니/994쪽/7만원대한민국 헌법의 ‘시즌 2’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2016년 12월 9일) 이전인 그해 11월 출간돼 서점가의 헌법 열풍을 일으킨 해설서 ‘지금 다시, 헌법’(로고폴리스)이 ‘시즌 1’이라면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인 현재 쏟아지는 헌법 교양서들은 시즌 2의 성격이 짙다.헌법을 둘러싼 담론은 다양화되고 구체화됐다. 역사인문학자 심용환이 쓴 ‘헌법의 상상력’은 헌법적 가치의 역사성을 미국, 독일, 일본, 북유럽 등 각국 헌정사와 우리 헌정사를 교직해 풀어냈다. 우리나라 제1호 헌법연구관이자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의 ‘헌법은 살아 있다’는 향후 개헌 헌법에 담아야 할 새로운 헌법적 가치를 제시한다. 김효전 동아대 법대 명예교수가 번역하고, 부산 지역의 대표적 출판사인 산지니가 펴낸 ‘바이마르 헌법과 정치사상’은 ‘바이마르 독일’의 헌법적 고뇌와 당대 시대에서의 실패를 조명한 학술서다. 헌법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의 원점이자 작동 원리다. ‘법 위의 법’이라는 최상위 지위를 부여한 이유다. 헌법이 바뀔 때마다 우리 현대사는 출렁였고, 이 변화를 읽는 건 정치 체제의 변화를 넘어 당대의 헌법적 가치들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인식하는 토대가 됐다. ‘헌법의 상상력’은 역사학자 시선을 통해 세계사적 헌법의 흐름을 좇는다. 미국은 1776년 7월 4일 독립 선포 후 11년 뒤 연방 국가 형태의 헌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지만 ‘수정 조항’들이 켜켜이 쌓일 때마다 민주적 정신을 상기시켰다. 일본의 헌법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실험된 1920년대의 ‘다이쇼데모크라시’가 1930년대 군부에 의해 무력화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2차대전 패전 후 전쟁과 군비의 포기를 천명한 평화헌법은 아베 신조 정권에 의해 개악 위기를 맞고 있다. 저자는 “시민혁명과 같은 강렬한 역사적 성취가 없는 근대화, 극우보수 성향의 정치문화와 패배하는 진보정치가 발전 없는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헌법으로 상상해 보자’는 저자의 관점은 북유럽 헌정사에서 구체화된다. 1930년대 경제대공황 시기에 실업보험법과 국민보험법 등 사회복지제도의 근거를 마련한 덴마크의 ‘칸슬레르가데협약’ 등 보편적 복지국가를 역사에 등장시킨 스웨덴, 노르웨이가 헌법 조항에 부합하는 현실을 만들어 온 역사적 노력을 조명한다. 우리에게도 북유럽 못지않은 헌법적 시도가 존재했다.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제헌헌법 18조의 이익균점권이다. 노동자와 경영자의 기업 수익 공유를 천명한 이 조항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그 가치조차 훼손됐다. 보수 인사로 꼽히는 이석연 변호사의 신간은 자신의 성향과 상관없이 헌법적 가치와 양심에 충실한 책이다. 그는 촛불집회에 대해 “대통령과 그 측근 권력자들에 의해 헌법질서가 침해되는데도 헌법을 지켜야 할 권력기관 등이 방관하자 마침내 이 땅의 주인이 나섰다”고 썼다. 그리고 이를 평화적인 ‘헌법적 저항권’ 행사로 규정했다. 이 변호사는 간통죄, 제대 군인 가산점 제도, 인터넷 게시판 본인 확인 제도, 태아의 성별 고지 금지 등 한국 사회를 바꾼 주요 위헌 결정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아울러 향후 개헌안에 담아야 할 조항으로 ▲국가의 정체성 조항과 저항권 조항 신설 ▲권력 구조 또는 정부 형태 손질 등 10가지를 제시했다. 독일 정치학자 헤르만 헬러는 히틀러의 나치에 대항한 헌법적 토대를 조명하고, 가장 민주적인 헌법으로 평가받고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 바이마르의 헌법적 이상을 환기시킨다. ‘독일 제국은 공화국이다. 국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바이마르 헌법 제1조의 구절이 우리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구현된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단독]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손사탐 시절 연수입 50억…10대 때 청강한 청년들에 20년 만에 ‘빚’ 갚게 됐죠

    [단독]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손사탐 시절 연수입 50억…10대 때 청강한 청년들에 20년 만에 ‘빚’ 갚게 됐죠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전성기를 보내던 1997~1998년. ‘손사탐’(손 선생 사회탐구)의 제자들은 맨날 학원 책상에 ‘박찬호 연봉 vs 손사탐 연봉’을 적어 놓고 비교를 하곤 했다. “아! 손사탐이 더 버네. 돼지 아냐. 그렇게 돈 많이 벌어서 뭐할 거야.” 이런 비아냥거리는 낙서도 종종 발견됐다.‘손사탐’ 손주은(56) 메가스터디 그룹 회장은 당시 오프라인 학원 강사료로만 한 달에 4억원을 벌었다. 여기에 교재비까지 더하면 연간 수입이 50억원에 달했다. 보통 월급쟁이들은 평생 만져볼 수조차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손 회장은 이렇게 번 돈을 토대로 2000년 교육기업 메가스터디를 설립했다. 메가스터디 그룹은 시가총액이 한때 2조 5000억원을 넘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손 회장은 항상 빚진 기분이었다고 했다. “워낙 돈을 쉽게 벌었으니 학생들한테 일부는 환원해야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항상 했어요. 인생이 생각대로 잘 안 돼서 이걸 그냥 가지고 죽으면 안 되겠다고….” 2015년 말에 구체적인 결심을 한 그는 지난해 10월 청년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윤민창의투자재단을 설립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 했던 약속을 20년 만에 실행한 거죠. 이제 빚을 갚았다는 느낌에 홀가분해요.” 그래서인지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메가스터티교육 본사에서 만난 손 회장은 표정이 유달리 밝아 보였다.→청년 창업을 위한 재단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애초에는 청년 창업보다는 인재 양성을 위한 재단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인재 양성도 중요하지만 요즘 30대가 너무 힘들어합니다. 과거 10대 때 제 수업을 듣던 애들이죠. 당시 제가 “공부가 너희를 구원할 거다”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구원이 안 됐어요. 한국이 지금 고성장에서 저성장으로 들어온 상태에서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는 건 결국 청년들이 힘을 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생각에서 청년 창업 지원 쪽으로 생각을 바꿨죠. →재단 이름 윤민은 무슨 뜻인가요. -아까 회의실에서 보셨겠지만, 관동별곡에 나오는 한 구절이 벽 액자에 걸려 있어요. ‘음애(陰崖)에 이온 풀을 다 살와내여사라’. ‘그늘진 벼랑에 시든 풀을 다 살려내라’, 즉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기업을 만들면 이런 정신을 가져야겠다고 항상 생각했어요. 이걸 두 자로 줄이면 윤택할 윤(潤), 백성 민(民), 윤민입니다. 1992년 교통사고로 먼저 간 딸 이름이에요. 집사람은 1991년 같은 교통사고로 먼저 숨진 아들 이름(광욱)에서도 한 글자를 따서 ‘광윤’으로 하자고 했는데, 사람들이 잘 못 알아들을 것 같아 그냥 윤민으로 했어요. 회사가 더 커지면 이름을 ‘윤민그룹’으로 바꾸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 단계로 가기는 어려워졌고…. →25일까지 첫 지원을 받는데 어떤 기대를 하고 있나요. -시도를 하나도 안 하면 0이지만, 한번 시도를 해 보면 언젠가 자기뿐 아니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큰 걸 만들 수 있어요. 여기에서는 꼭 해서 성공하라는 건 아닙니다. 그건 벤처캐피탈이 하는 거고. 우리도 벤처캐피탈을 갖고 있는데 대상을 찾을 때 성공할 애들을 찾아요. 그러면 어느 정도 단계에 와 있는 사람만이 벤처캐피탈 지원을 받죠. 그보다 낮은 단계는 과감하게 시도조차 해보기 어려워요. “일단 원서를 내 봐라. 도전을 해 봐라. 실패도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한 300팀 정도 지원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10팀을 뽑습니다. →재원은 얼마인가요. -300억원을 출연합니다. 지난해 100억원, 올해와 내년 100억원씩이죠. 첫해엔 부동산 63억원, 현금 37억원을 출연하고 올해와 내년은 현금으로 지원합니다. 처음에는 400억원을 생각했는데 막상 딱 내는 순간에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100억원을 또 깎게 되더라고요. 실제 사람 심리가…. 이사장은 숙대 법대의 성민섭 교수님이 맡아 주셨어요. →이미 장학 사업을 하고 있지 않나요. -기존에 메가스터디가 학생들한테 올해까지 350억원 가까이를 지원했죠. 그거 말고도 여러 대학을 중심으로 기부활동을 해 왔어요. 특히 모교인 서울대 인문대에는 ‘손주은 인문학 장학금’이라 해서 인문학 후세대 양성을 위해 연간 1억원 가까이 계속 내왔는데 앞으로 그 부분을 이 재단에서 일부 담당하려고 해요. →기업인들이 재단을 재산 증여 등 관리 목적으로 설립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그런 거 전혀 아닙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그런 게 절대 아닐 거라는 걸 압니다. 늘 얘기했듯이 다른 직업에 비해 한국 사교육 종사자들, 그중 스타 강사는 너무 쉽게 돈을 많이 벌었어요. 사교육이 하나의 열풍이었잖아요.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손사탐 시절에는 특히 그랬죠. 제가 1997~1998년 대중강의를 처음 시작하고 나서 한 5개월 만에 학생 2000명이 20개반에 몰렸어요. 한 반에 100명씩 쭉 줄을 서서 등록했죠. 1998년부터는 한 교실에 250명으로 늘려도 줄이 끝도 잘 안 보여요 .그걸 20개반을 하니 월 5000명, 게다가 저는 최고의 스타 강사니까 5대5 배분 비율이 깨지죠. 강사가 절대 강자니까 7대3(수입을 강사가 70%, 학원이 30%로 가져가는 것)까지 갔어요. 그래도 학원은 많이 남으니까. 엄청난 돈을 벌었죠.→외환위기 직후니 더 많아 보였겠네요. -그냥 돈 많이 번다가 아니고 노력에 비해 훨씬 큰 소득이죠. 예를 들어 그 당시 했던 16주 강의는 48만원을 받았는데. 그러면 저는 250명을 넣고 어떤 선생님은 10명도 못 넣었어요. 당장 25배 차이가 나잖아요. 그런데 25배가 아니죠. 그분은 배분을 5대5. 저는 7대3. 30배 이상, 한 40배 차이가 나잖아요. 어떤 선생님은 한 시간 강의하면 시간당 2만~3만원 정도가 평균가라면, 저는 한 시간에 100만~150만원. 하루 평균 9시간 강의를 했는데 하루 소득이 1000만원을 넘었어요. 분명 같은 노력에 비해 과도한 수입이죠. 그래서 그때부터 저는 두 가지 원칙을 정했어요. 하나는 정직하게 소득 신고를 해서 세금을 정확하게 내자. 그게 소득 재분배 효과가 있으니. 그래서 지금까지 소득세, 양도소득세, 토지보유세 등 이래저래 낸 세금이 500억원 가까이 돼요. 또 하나는 어려서부터 갖고 있던 청교도 윤리에 따라 양심적으로 할 수 있는 기부활동을 했어요. 그걸 드러낸다는 건 나를 파는 것밖에 안 되니 모르게 했죠. →그래서 ‘깨끗한 장사꾼’을 모토로 삼은 건가요. -제가 서른여섯 살 때 10년간 사교육으로 번 돈을 접고 사립학교 하나 사서 이사장이 되려고 했어요.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의식이 숨어 있었던 거죠. 제가 대학생들한테 강연 중에도 말하는데 생산력이 엄청 올라간 사회에서는 이 질서는 거꾸로 돼야 한다. ‘상공농사, 상자지천하대본’이다. 기업 하는 사람들, 장사하는 사람이 사회 주도층이 돼야 한다. 법률가 등이 사회 지도층이 되는 게 옳지 않다. 지금 이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에너지와 원리는 기업이다라고요. 근데 내가 고작 강의 팔아서 하니까 나 보고 장사꾼이라고 욕을 할 거니까 장사꾼이라고 하자. 대신 깨끗하게 하자. 이런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저 스스로 ‘깨끗한 장사꾼’이라고 안 합니다. ‘깨끗한 기업인’이라고 합니다. →안철수 캠프를 도와주면서 정치를 할 거라는 말도 나옵니다. -아닙니다. 교육 관련 해서 조언만 해 준 것 뿐이에요. 안 의원과의 인연은 10년 전 손학규씨를 대신해 메신저 역할을 하기 위해 만나서 시작됐어요. 지난해 두 번째 만남을 가졌죠. 당시 입장(기업인으로 특정 정파를 지원하지 않는다는)을 분명히 밝혔어요. 이후 지난해 안 의원 쪽에서 교육 관련 대담을 하자고 했고 그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온 게 전부입니다. 무슨 캠프에 들어가거나 정치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정치는 인생 자체가 완전히 망가질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통일주체국민회의 때와 경남 도의원 등 네 차례 선거를 치르면서 제가 직접 선거캠프에서 도와준 적이 있어 정치 세계를 잘 압니다. 더구나 저는 정치를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사교육에서 돈을 번 사람이 정치하겠다고 하면 후안무치죠. 그 정도는 저도 압니다. →교육정책에 대해서 제언을 한다면.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서 입시를 바꾸는 게 현실적인 하나의 대안으로서는 맞지만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에요. 교실이 다 바뀌어야 해요. 한 교실에 애들을 다 집어넣고 수업을 한다는 건 근대 시민사회 초기에 있던 모형 아닙니까. 어느 정도 수준의 보편적 지식과 기능을 만들기 위해선 효율적이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지식은 세상에 널려 있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또 그걸 가지고 실제 도전해 보고 체험해 보고 이런 작업들이 중요한 시대에 왔어요. 시간표 짜서 선생이 들어오는 이런 교실을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봐요. 입시 제도를 백날 바꿔서 되는 게 아니고 근본적인 교실 혁명이 있어야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교육 대전환이 가능합니다.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교육의 패러다임은 어떤 건가요. -완전히 깨부수어야 하는데 국민들은 일종의 의식의 지체에 빠져 있어요. 아직도 대학 잘 가서 우리 애가 성공하는 것, 아주 우수하면 의사 되는 것, 그다음으로 우수하면 로스쿨 가서 변호사 되는 것 아니면 교사가 되거나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 들어가거나…. 그런 질서의 세상이 얼마 안 남았는데 부모들은 아직도 이렇게 생각해요.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죠. 30년간 고도 압축 성장을 하면서 계속 해마다 나아지는 삶을 살았던 유례없는 경험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그런 세상이 아니잖아요. 명문대 나와도 취직이 안 되고, 취직이 돼도 임금에 한계가 있고 위로 올라가면 층층이 쌓여 있고. 로스쿨 나와서 변호사 돼도 몇 개 대형 로펌 외에는 답이 전혀 없어요. 더구나 지금까지 교육은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 주로 했어요. 옛날에는 이기고 나면 뭔가 소득이 있었죠. 지금은 경쟁에서 이겼는데도 ‘헬조선’이라고 얘기합니다. 이런 교육을 하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교육의 본질에 기초한 비즈니스가 뭔지 요즘 고민하고 있어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노량진이 공무원시장이잖아요. 공무원 학원도 있고 입시 학원도 있고. 거기에서 저희도 오피스텔 이런 걸 지어 분양해서 성공도 했지만, 학생들한테 입시를 계속 팔고 있거든요. 노량진을 보면 세계에서 20대 인구 비율이 1등인 곳입니다. 군대 같은 특수한 곳 빼고는 일반인이 사는 곳 중에서는 유일할 겁니다. 그런데 많은 공무원 학원들은 “너희가 공무원 되면 안정된 미래가 열릴 거다” 이러잖아요. 실상은 2~3년 어두운 인생의 터널을 지나서 패배의 상처를 안고 가는, 젊음이 썩어 들어가는 공간이잖아요. 비극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 젊은이들에게 삶이 그렇게 비극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면서 ‘힐링’할 수 있는 복합 공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어요. 연내 노량진에서, 시험에 찌들어 사는 젊은이들에게 작은 빛을 줄 수 있는 시도를 하나 할 겁니다. →오래전부터 “사교육은 끝났다”는 말을 해 왔는데. -사교육업체들도 2000년대 후반 2010년쯤 와서 “어 세상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사교육 시장이 끝났다”는 얘기를 하고 다닌 지 7~8년쯤 됐죠. 실제로 끝났고 일종의 잔불이 남아 있는 걸로 보는데.그런 비판을 해 오다가 최근에 얻은 영감은, 일본 도쿄에 가면 ‘쓰타야’라는 서점이 있거든요. 마스다 무네아키라는 분이 쓴 ‘지적자본론’에 나오는 얘긴데요. 서점은 다 망한다고 했어요. 당연히 인터넷 서점으로 가고 있으니. 그런데 이분이 거꾸로 서점수를 일본 전역에 1440개로, 회원수는 5000만명으로 늘렸어요. 연 매출 2조원에 영업이익 1000억원 이상 내는 신화적인 일본의 오프라인 서점으로 성장시켰죠. 이분이 하는 말이 서점은 서적을 팔면 망한다고 합니다. 그럼 뭘 팔아야 되냐. 책 안에 들어 있는 새로운 삶의 양식, 철학, 행복 등 여러 가지를 팔아야 한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저도 직원들에게 “사교육업체가 사교육을 팔면 틀림없이 망한다”고 해요. →그러면 사교육업체는 뭘 팔아야 하나요.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인 더 나은 삶에 대한 새로운 제안이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이걸 팔아야만 진정한 교육 기업이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사교육에 대해선 지금도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소비를 하고 있거든요. 사람들이 이건 아닌 거 같은데 당장 우리 애 성적이 안 나오니 한다, 이런 생각으로…. 이런 소비는 오래가지 않아요. 그런데 교육 기업이 우리한테 행복을 줬다고 생각하면, 행복을 팔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미래 지향적인 가치,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수요자들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상품이 뭐냐. 그게 답이라고 생각해요. 김성수 산업부장 sskim@seoul.co.kr ■프로필 ▲1961년 경남 창원 출생 ▲부산 동성고 졸업(1979년) ▲서울대 서양사학과 졸업(1987년) ▲2000~2010년 메가스터디 대표이사 사장 겸 이사회 의장 ▲2007년 코스닥 상장법인협의회 이사 ▲2010~2014년 메가스터디 대표이사 회장 겸 이사회 의장 ▲2014년~현재 메가스터디그룹 회장 겸 메가스터디 이사회 의장 ▲2015년~현재 메가스터디교육 이사회 의장 ▲2016년~현재 윤민창의투자재단(이사장 성민섭) 이사
  • [데스크 시각] 책의 위기, 책의 미래/안동환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책의 위기, 책의 미래/안동환 문화부 차장

    미국 제45대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는 12권이 넘는 책을 쓴 다작 작가다. 대부분 자서전이거나 자기 계발서인 게 보통의 작가들과 다를 뿐이다. 그는 후보 시절 공공연히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TV 카메라에 포착된 그의 집무실엔 책꽂이가 없었다. 책상 위에는 자신의 얼굴을 표지로 쓴 잡지들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TV 쇼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을 묻는 질문을 받자 자서전인 ‘거래의 기술’을,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성경의 ‘눈에는 눈’을 꼽았다. 그는 “언제나 옳은 결정을 하기 때문에 수백 페이지의 글을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사안의 핵심을 쏙쏙 뽑아 흡수하는 매우 뛰어난 효율적 인간”이라고 자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바마 레거시’(업적) 지우기는 ‘오바마 케어’(건강보험개혁법안) 폐기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북칼럼니스트 미치코 가쿠타니와의 인터뷰에서 “백악관 8년을 버틴 힘은 잠들기 전 1시간의 독서”라고 고백할 정도로 애독가였다. 오바마는 재임 기간 중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자신의 ‘여름 독서 목록’를 공개했다. 2010년 그가 읽은 조너선 프랜즈의 장편소설 ‘자유’는 100만부 넘게 팔렸다. 전체 도서 판매량도 덩덜아 늘었다. 두 딸 말리아와 사샤를 데리고 동네 서점을 찾는 그의 모습은 미국민의 독서욕을 자극하는 캠페인이었다. 매년 8월 대통령의 휴가철 독서 목록 발표는 제35대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백악관의 전통이지만 의무적인 건 아니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말해 온 트럼프 대통령의 독서 리스트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신임 대통령을 바라보는 미국 출판계의 걱정도 커지는 듯하다. 400개 출판사들의 대표 기구인 미 출판협회(AAP)는 지난해 12월 그에게 출판산업의 지적재산권과 저작권 보호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대통령이 책을 읽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도 작가 출신이니 독서의 중요성을 이해할 것이라는 착잡한 심경의 코멘트를 덧붙였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보다 더 비관적인 건 한국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년 조사에서 한 해 동안 1권 이상 도서(교과서·참고서·수험서·잡지·만화를 제외한 종이책)를 읽은 성인은 65.3%로 역대 최저치다. 지난해 미국 성인의 독서율은 73%로, 전 해보다 2% 포인트 늘었다. 한국인 3분의1은 1년 동안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 매주 한 권 이상 읽는 ‘습관적 독서율’은 2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평균 40.1%) 중 최하위다. 지난해 우리 국민의 개별 여가활동 비율 중 독서는 가장 낮은 1.2%였다. 국내 2000여개 출판사, 1200여개의 서점과 거래하는 국내 2위 도매상인 송인서적의 부도로 출판사와 서점들이 존폐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이달 어음 결제를 하지 못하는 출판사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말한다. 학계는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뇌를 변화시킨다고 지적한다. 스마트폰 확산으로 난독증 인구가 늘었다는 연구도 있다. 더 깊이 사유하는 과정이 생략되면서 책을 안 읽는 게 아니라 ‘못’ 읽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지난 22일 별세한 박맹호 민음사 회장에 대한 추모 열기가 뜨겁다. 평생 1만종의 책을 일궈 온 ‘탐서가’인 고인의 말은 그래도 책의 미래를 낙관하게 한다. “‘완성된 인간’은 책 없이는 불가능하다.” ipsofacto@seoul.co.kr
  • [현장 블로그] “어려워도 서울대생에게 보답” 고시촌 사람들 ‘장학금 온정’

    [현장 블로그] “어려워도 서울대생에게 보답” 고시촌 사람들 ‘장학금 온정’

    서울 관악구 대학동의 주민과 자영업자 100여명이 지난달 23일 없는 시간을 쪼개 한 술집에 모였습니다. 대학동은 ‘신림동 고시촌’으로 더 잘 알려진 서울대 인근 지역입니다. 주민과 자영업자 등의 모임인 관악발전협의회는 이날 술집에서 ‘일일호프’를 열고 1300여만원을 벌었습니다. 이들은 서울대장학기금위원회도 발족하고, 번 돈을 고스란히 장학기금에 부었습니다. ●자영업자 등 장학기금위 발족 이들은 왜 장학사업을 시작했을까요. 고시촌은 사법·행정·외무고시 합격자를 많이 배출해 한국 고위관료의 산실이라고 불렸습니다. 서울대가 1975년 신림9동(현 대학동)으로 이전한 뒤부터 이곳에서 공부하던 많은 학생들은 그야말로 우리나라를 주름잡는 인재가 됐습니다. 자연스레 상권이 발전했고 학원, 서점, 식당, 미용실, 당구장 등을 하던 자영업자들도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사법시험이 단계적으로 폐지되면서 고시생 수는 급격히 줄었습니다. “최근 1~2년 사이에 매출이 반 토막이 났습니다. 심한 곳은 3분의1수준으로 쪼그라든 곳도 있어요.” 피자집을 하는 임종수 사장 얘기입니다. 자영업자들은 이 힘든 상황을 오히려 나눔으로 헤쳐가자는 뜻을 모았다고 합니다. 권영출 협의회장은 “우리도 힘들지만 다들 힘든 시절 아니냐”며 “큰돈은 아니지만 우리의 단골인 서울대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면서 이곳을 키워준 학생들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우선 상반기에 장학생 2명을 선정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힘들지만 대학·지역사회 동행 사실 대학, 지역사회, 자영업자들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 존재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대학과 지역사회가 ‘동행’하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연세대와 이화여대는 인근 상권과 함께 신촌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하고, 서울대나 서울시립대는 인근 주민에게 주차장과 도서관, 박물관 등을 무료 또는 할인된 가격에 공유합니다. 중앙대는 2012년 처음으로 학교 담장을 허물고 걷고 싶은 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고시촌 장학사업은 지역상인들이 작은 힘이라도 보태 대학 인재를 양성하는 사업일 겁니다.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았는지, 기대 이상의 기금이 모여 협의회는 목표치를 1억원으로 잡았다고 합니다. 서울대 성낙인 총장도 축사를 통해 이들에게 고마움을 나타냈습니다. 힘든 시기에 모두 함께 힘을 모으는 지혜들을 보며 세상이 따뜻하고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시촌 상인들이 키운 인재가 모두의 행복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미래를 상상해봅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금천 청소년 작가 43명 작품집 ‘꿈꿈’ 북콘서트

    “친구의 뒷이야기를 잘하는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왕따도 없고, 모두가 친하고 행복한 학교생활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내 맘대로’란 시로 표현했어요.” 신소희(문성중)양은 지난 23일 서울 금천구청 1층 강당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자신의 시를 이렇게 표현했다. 신양은 “6개월 동안 시와 수필을 공부하는 시간이 정말 즐거웠다”며 “앞으로도 시를 계속 쓰겠다”고 말했다. 금천구는 지역 중학생 43명이 함께 만든 작품집 ‘꿈꿈’을 펴냈다고 26일 밝혔다. 제작에 참여한 이들은 지난 3월 지역 동일중과 문성중, 세일중 등 학생 가운데 공모를 통해 뽑았다. 꿈꿈은 지난 5~10월 동화작가와 웹툰작가 등 전문 작가들로부터 13차에 걸쳐 문예창작 수업을 받은 결과물이다. 일제강점기 출산을 앞둔 아내를 두고 독립운동을 하러 나가는 가장의 아픔을 일인칭 시점으로 표현한 김유경(세일중)양의 ‘무명’, 자신과 친구들이 미래에 희망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박상원(문일중)군의 ‘미래일기, #759 기록’ 등 모두 43편의 작품이 실렸다. 이번 프로그램은 지난해 처음 금천혁신교육지구 사업의 하나인 ‘우리 동네 책 이야기’로 시작했다. 지역 중학교에 동화작가와 웹툰작가가 방문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직접 지도하고 작품을 모아 도서로 출판하는 사업이다. 발간된 작품집들은 인터넷 서점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지난해에는 4개 중학교 27명의 학생이 ‘꿈! 우리 동네 책 이야기 내 얘기, 우리 솜씨’를 펴냈었다. 구 관계자는 “내년에도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전통주 개발 위해 시음하느라 매일 술 마셔

    전통주 개발 위해 시음하느라 매일 술 마셔

    농가 애로 줄이려 항상 현장에 곤충으로 소득창출 지원도 12명 달인 이야기 엮은 책 출간 “평일, 주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실 수밖에 없지 뭐예요. 술 전문지에 7년째 글을 쓰고 있으니 가히 술꾼인 셈이죠.” 서울신문사와 행정자치부 공동 주최로 선정하는 ‘지방행정의 달인’ 지역경제 분야에서 올해 수상의 영예를 안은 이대형(40) 경기도 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는 13일 이렇게 운을 뗐다. 이씨는 “농산물 소비 확대를 위해 와인과 맥주, 위스키 등 다양한 술을 지속적으로 시음하느라 어려움을 겪는다”며 “하지만 새로운 전통주를 개발한다는 긍지와 자부심, 즐거움으로 버틴다”고 밝혔다. 그를 비롯해 올해 지방행정의 달인 12명은 ‘달인학 개론’(북드림 펴냄)을 출간했다. 허윤선(38·여) 충북도 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도 책에서 “선배 공무원들과 함께 농업 현장의 애로사항을 줄이는 길을 고민하던 2005년 당시 초임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며 “연구실이나 사무실에선 정답을 찾을 수 없고, 도움을 절실하게 기다리는 현장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지역경제 분야 달인에 이름을 올린 노치원(49) 경남도 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는 “내 이름을 삼행시로 지은 ‘노력에 노력을 더하고, 치열한 경쟁력을 통해 원대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한다”며 “미래 신약·음식의 보물창고인 곤충을 소득 창출 부문으로 활성화한 보람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곤충은 면역기능을 가진 항체를 몸속에서 만들지 못해 생존을 위해선 사람의 100배나 되는 병원균 감지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첨단생명산업으로 각광받을 것으로 여겼다고 설명했다. 보건위생 부문 양호철(51) 전남도 보건환경연구원 보건연구사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쉬운 것으로부터 시작하라는 혁신의 원칙을 실천한 본보기로 평가됐다. 그는 “신안군과 영광군을 주축으로 전국 천일염의 85% 이상을 전남에서 생산한다는 데 주목했다”며 “미네랄 함량을 조사한 결과 다른 나라의 제품에 비해 3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나 세계를 놀라게 했다”고 적었다. 환경산림 부문 송희봉(52·환경연구관) 대구시 보건환경연구원 대기보전과장은 “누구나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35조를 되새겨야 한다”며 “금호강 환경기초시설 확충과 철로 주변 방음벽·방음림 설치 등 결실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사람으로서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부3.0 분야에서 수상한 손명희(50·여·행정 6급) 광주시 참여혁신단 주무관은 “달인에 뽑혔다는 소식을 듣자 잘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살짝 얹은 기분이었다”며 웃었다. ‘협업’이란 게 글자 그대로 상대방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을공동체 종합계획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협조한 기업, 법원, 교육청, 교육기관 등에 고마움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같은 분야의 장진영(39) 전북도 소방본부 소방위는 “어릴 적 ‘분노의 역류’란 영화를 보고 타인을 위해 일하는 소방공무원이란 직업을 생각하게 됐다”며 “근무 여건 탓에 후회도 적지 않았지만,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늘 처음처럼’이란 좌우명처럼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달인학 개론’은 전국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발행처 . 1만 1000원. 문의 (02)2000-9756 서울신문사 사업단 문화사업부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前대통령들도 찾던 피맛골… 미래유산의 보고 인사동까지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前대통령들도 찾던 피맛골… 미래유산의 보고 인사동까지

    서울신문이 서울시·문화지평과 함께 진행하는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미래 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문화자산을 찾아 나선 여정이다. 서울미래유산은 서울 시민들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온 공통의 기억과 감성으로 미래세대에게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을 의미한다. 미래유산은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시민제안이 언제나 가능하다. 서울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를 통해 시민단체나 전문가들도 제안할 수 있다. 마을만들기 사업을 통한 커뮤니티 차원의 미래유산 발굴도 이뤄지고 있다. 미래유산 발굴과 신청은 시민 주도의 상향식 방식이 원칙이다. 제안된 예비후보들은 사실 검증, 자료수집을 위한 기초 현황조사를 한 후 소유주 동의에 따라 최종적으로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한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사거리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본점 자리는 조선시대 의금부가 있던 터다. 의금부는 관원·양반의 범죄, 대역죄, 강상죄 등을 처벌하던 특별사법기관이다. 요즈음으로 치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맡아 처리하는 특검과 같은 기관이었던 셈이다. 의금부가 있던 지역명은 공평동으로 ‘공정하게 재판을 처리한다’는 의지를 담았다. 의금부 앞에는 백성의 억울한 사연을 신고받기 위한 신문고가 있었다. 길 건너 영풍문고 본점 자리는 전옥서가 있던 자리다. 전옥서는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미결수를 수감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관원·양반 출신 범죄자는 의금부에서 담당했고 전옥서는 주로 상민 출신 범죄자를 수감했다. 최근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옥중화’를 통해 전옥서가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의금부 터에서 18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이 지난달 19일 오전 10시 박광규 서울미래유산해설사의 해설로 진행됐다. 박 해설사는 “‘종로 뒤안길 답사’ 등 그동안 종로를 횡축으로 누볐는데 이번 코스는 우정국로와 감고당길, 인사동길, 삼청로 등 남북으로 형성된 도로를 따라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종축 탐방으로 준비했다”며 “이 지역은 서울미래유산의 보물창고”라고 운을 뗐다. 이어 서울미래유산이란 무엇이고, 답사를 왜 진행하는지 그리고 답사 진행에 따른 안전수칙을 설명한 뒤 이동을 시작했다. 의금부 터에서 우정국로를 따라 북쪽으로 70여m쯤 가다가 처음 만나는 골목을 들여다보니 열차집이 자리잡고 있다. 청진옥·미진·열차집·청일옥…3대 가업 잇는 노포식당 즐비 열차집은 3대째 이어오는 빈대떡 전문점이다. 1954년 지금의 교보빌딩 인근 세종로 뒷길 한옥가 골목길에서 창업주 안덕인씨가 문을 열었다. 박 해설사는 “당시 추녀 밑에 기차간처럼 길게 놓인 의자를 보고 사람들이 ‘기차집’이라 부른 데서 명칭이 유래됐다”며 “1960년 피맛골로 이전해 ‘열차집’이라는 간판을 단 게 상호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현 운영주인 우제인씨 부부는 1976년 열차집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다 안씨로부터 장사 노하우를 전수받아 가게를 인수했다. 2009년 도심 재개발사업으로 현 위치로 이전해 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비서관을 시켜 이 집 빈대떡을 가끔 사갔다고 한다. 이번 답사코스에는 열차집을 비롯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식당이 꽤 많다. 1937년 개업한 해장국 전문점 청진옥(대표 최준용), 1954년 문을 연 메밀전문식당 미진(대표 이수련), 1945년 개업한 녹두빈대떡 전문점 청일집(대표 이승진) 등 노포가 즐비하다. 이들 노포는 모두 3대째 대물림해서 운영되고 있다. 청진옥은 백범 김구 선생과 윤보선 전 대통령의 단골집이었다. 박 해설사는 “과거 해장국집에서는 밥을 팔지 않고 손님이 찬밥을 가져와 토렴해 먹었다”며 “이유는 밥이 식으면 밥알이 갈라지는데 그 사이로 국물이 스미면서 풍미가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뜻한 밥을 국에 넣으면 국물을 빨아들여 불어버리기 때문에 맛이 제대로 안 나 일부러 찬밥을 쓴다는 것이다. 박 해설사가 전문요리사처럼 설명하자 탄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열차집 대각선 방향에는 동헌필방과 NH농협은행 종로지점이 이웃해 있는데 서울미래유산에도 나란히 선정됐다. 동헌필방은 1934년 창업한 남계양행의 사옥으로 사용됐던 건물로 초기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남계양행 창업주 윤치창은 개화파 무신 윤웅렬의 서자이자 구한말 개화파 윤치호의 이복동생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오는 등 개화기 신문물을 일찍 수용한 인물이다. 이 건물 출입구의 상부 박공은 색다른 조적조 쌓기 기법을 보여 주고 있다. NH농협은행 종로지점 건물은 1926년 지어진 서울시 근대건축물이다. 1926년 창간한 중외일보 판권과 신문 호수를 이어받아 1931년 창간한 중앙일보(조선중앙일보 전신)가 1933년 똬리를 튼 곳이다. 당시 몽양 여운형(1886∼1947)이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제호를 조선중앙일보로 바꾸고 사옥도 옮겼다. 1936년 8월 10일 독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유니폼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건으로 인해 1937년 폐간당했다. 손기정 일장기 말소로 폐간된 신문사갑신정변 실패 지켜본 회화나무도 미래유산 조계사 정문 우측에는 우정총국이 자리잡고 있었다. 고종 21년인 1884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우편행정관서로서 조선시대 통신수단인 역참제의 대체수단이었다. 병조참판 홍영식이 초대 총판을 지냈다. 우정총국은 낙성식을 틈타 개화당의 김옥균 등이 일으킨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실패하자 개국 17일 만에 문을 닫았다. 초대 총판 홍영식은 김옥균과 달리 일본으로 망명하지 않고 29세에 대역죄로 처형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이런 역사를 우정총국 앞마당 회화나무가 고스란히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박 해설사는 “갑신정변의 현장이었던 우정총국 일대를 지켜온 나무로서 보전 가치가 높아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답사팀은 안국동 사거리를 통해 인사동길로 접어들었다. 100여m를 들어서니 한자로 ‘通文館’(통문관)이라고 돌에 각자 간판을 단 서점이 있다. 글씨는 서예가인 검여(劍如) 유희강(1911∼1976)이 썼다. 1934년 문을 연 통문관은 고서 매매와 출판업을 겸했던 서점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서적 매매서점이다. 80년 넘게 같은 지역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오면서 관훈동 일대의 시대상을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된 곳이다. 통문관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카페 귀천이 나온다. 귀천은 천상병(1930~1993) 시인의 부인 목순옥(1935~2010)씨가 운영하던 찻집이다. 인사동 큰길 가에 1985년 개업했던 원래 찻집은 목씨가 사망한 뒤 폐업하고, 지금은 남도 제철음식점 ‘여자만’ 앞에 목씨 조카가 2호점을 열어 명맥을 잇고 있다. 귀천과 이곳에 인접한 인사동 14길 24-1 일대 한옥밀집지역 모두가 서울미래유산이다. 한옥 골목을 빠져나와 서울미래유산인 서울시노인복지센터(구 통계청)를 지나 풍문여고 옆 길인 감고당길(율곡로3길)로 들어섰다. 이 지역은 매주 토요일에 계속되고 있는 민중총궐기 때면 통행이 통제되는 곳이다. 덕성여고 자리에 있던 숙종 계비 인현왕후의 친정 감고당(感古堂)에서 길 이름이 유래했다. 감고당은 현재는 경기 여주시로 옮겨졌다. 직장이 광화문인 안진남(42)씨는 “오늘 답사하는 지역의 과거 지명과 역사를 두루 알고 싶어 답사를 신청했고, 앞으로 도움이 많이 될 듯하다”며 “프로그램을 너무 늦게 알게 돼 후회스럽고 내년에도 꼭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인들 아지트·귀천·고서점 통문관인사동길은 미래유산 밀집지역 김봉완 공인중개사가 1968년 개업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울미래유산 신영부동산과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장남 김선재(1990년 사망)씨를 기리고자 만든 아트선재센터를 지나 정독도서관에 다다랐다. 1900년부터 1976년까지 경기고등학교가 있던 자리다. 정독도서관은 등록문화재 제2호다. 본관 앞 정원에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비가 세워져 있다. 겸재가 인왕제색도를 그리기 위해 인왕산을 바라봤던 자리는 종친부(조선 왕가의 종친관계 일을 맡았던 관청)에 있다. 종로구 화동 종친부 앞 소격동 국군기무사령부(구 국군보안사령부)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탈바꿈했다. 기무사령부 이전에는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이 자리했다. 종친부는 조선시대 왕실 가족들의 봉작(봉토와 작위 하사), 관혼상제를 관리하던 관청이다. 박 해설사는 “흥선대원군이 고종을 옹립하고 외척으로부터 왕권을 보호하던 정책이 종친부에서 나왔다는 일설도 있다”며 “군인들이 테니스를 치기 위해 종친부를 통째로 옮길 만큼 만만하게 볼 사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무사가 힘을 쓰던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1년 테니스장을 짓도록 종친부 건물을 뜯어서 정독도서관 구내로 옮겨버린 사건을 지적한 것이다. 감고당길에 서린 인현왕후의 추억흥선대원군 권력의 핵심 종친부의 설움 이 근처에는 금호미술관, 갤러리 현대 등 갤러리가 많은데 두가헌도 그중 한 곳이다. 1950년대에 지어져 1965년 사용승인이 났다. 두가헌은 갤러리 현대 소유의 4개 갤러리 중 하나로, 한옥 레스토랑과 러시아식 양식 건축물이 짝을 이룬다. 한옥은 고종의 후궁이었던 귀빈 엄씨가 살았던 곳이다. 마당 한가운데 수령이 제법 됨 직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씩씩하게 서 있다. 박 해설사는 “한옥과 서양식 건물의 조화로 장소가 예뻐서 웨딩 촬영하러 많이 오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옛 수송초등학교에 자리잡은 종로구청 역시 서울미래유산이다. 1977년 수송초교가 폐교된 뒤 종로구청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1930년대 준공 당시 외관을 비교적 양호하게 간직하는 건축물이다. 일제강점기 학교건축 양식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번 답사는 피맛골에 세워진 르메이에르 빌딩에서 마쳤다. 이 빌딩에만 서울미래유산 음식점이 세 곳 있다. 부모님과 함께 나온 서울교대 초등교육과 3학년 권상리(21·여)씨는 “아버지의 권유로 나왔는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유적을 많이 봤다”며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친구들과 꼭 다시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따뜻한 예술인의 낭만… 뜨거운 지식인의 고뇌… 은은한 근현대 문·예향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따뜻한 예술인의 낭만… 뜨거운 지식인의 고뇌… 은은한 근현대 문·예향

    서울신문은 ‘서울미래유산’을 시민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시·문화지평과 함께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매주 토요일 진행한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다음달 3일 20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은 전상봉 서울미래유산해설사의 설명으로 오전 10시부터 2시간 30분가량 마포대로 일대를 살펴본다. 이 지역은 활인서터, 경성감옥터, 3·1만세 시위터, 별영청터, 읍청루터 등 유적지와 최대포집, 역전회관 등 서울미래유산 노포식당이 즐비하다. 관심 있는 시민은 오전 10시까지 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면 인증서와 함께 소유주가 원할 경우 건물 외벽에 현판을 부착한다. 상징 도안은 서울미래유산으로 등록됐다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 인장 형식으로 디자인됐다. 인장색은 서울 대표색 중 ‘단청빨간색’을 사용했다. 서울미래유산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문화자산 중에서 선정한다. 서울시는 지금까지 372개의 미래유산을 지정했고 앞으로 1000개까지 늘린다는 방침이다.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은 생전에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고 했다. 김수근은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기사에 여러 번 등장한다. 자유센터, 경동교회, 불광동 성당, 잠실 종합운동장, 정부서울청사, 워커힐 호텔 힐탑바(현 피자힐) 등 도심 곳곳에 그가 설계한 건축물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17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출발지였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은 그의 건축물이 유독 많은 곳이다. 샘터극장, 아르코예술극장, 아르코미술관, 옛 한국국제협력단 건물 등 그가 말한 ‘벽돌이 짓는 시’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벽돌 건물이 사방에 들어서 있다. 그가 건축재료로 벽돌을 좋아했던 이유는 ‘실용과 예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급해도 벽돌은 한꺼번에 쌓지 못한다. 때문에 한 장 한 장 단정히 쌓지 않으면 무너지거나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벽돌이 지닌 조소성은 무한히 인간화되는 과정을 상징한다”고 했던 벽돌예찬론자였다. 샘터사옥, 아르코예술극장, 아르코미술관은 모두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김수근作 샘터사옥·아르코예술극장한 장 한 장 쌓아올린 벽돌과 빛으로 지은 건물 샘터사옥은 1979년 지어져 연극인·화가 등 예술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많이 이용되는 공간이다. 대학로 랜드마크 중 한 곳이다. 1980년 제2회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을 정도로 건축미를 인정받았다. 이날 해설을 맡은 한선영 서울미래유산해설사는 “샘터 사옥은 종로구 미관 건물로 지정돼 있어서 건물 외관을 건드리지 않고 유지, 보수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며 “대학로를 상징하는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으로서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 건립 당시 모습이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돼 있어 건축사적인 측면에서 보존 가치가 높다”고 해설했다. 아르코예술극장은 ‘공연예술 진흥과 공연인구 저변 확대를 위한 전문공간 확보, 재정난을 겪는 예술단체들을 위한 발표공간 마련·조성’이라는 취지로 1981년 문을 열었다. 아르코예술극장 개관은 명동·광화문 등 시내에 있던 공연장들을 동숭동으로 이동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다. 현재 동숭동 일대는 97개 극장이 들어서 있고 명실상부한 연극과 문예의 중심지다. 아르코미술관은 옛 서울대 본관 자리에 들어선 전시 전문 공간이다. 미술관이라는 기능 때문에 창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이 건물들이 위치한 마로니에 공원은 과거 서울대 본부가 있던 곳이다. 1975년 3월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뒤 택지로 개발하려 했지만 여론에 따라 공원으로 조성됐다. 지금은 서울대학교유지기념비를 통해 과거 상아탑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마로니에 공원에는 조선 중기 문신인 해남 윤선도의 생가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조선 후기 화가인 표암 강세황도 동승아트센터 근처에서 자랐다. 소설가 김훈도 마로니에 공원 뒤쪽 낙산을 올라가는 이화동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소설가 한무숙도 혜화동에서 태어났다. 마로니에 공원으로 대변되는 대학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향과 예향’이 넘쳤던 곳이었다. 미래유산 보고 서울대병원·학림다방근대 의학의 산실… 민주화운동의 불씨가 된 곳 공원 건너편에는 서울미래유산이자 근대 의학의 산실인 서울대병원이 있다. 병원 내 시계탑 건물은 1907년 고종 황제 칙령으로 설립한 대한 의원 건물로 사적 248호로 지정돼 있다. 지금은 의학박물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앞서 1885년 제중원, 1899년 의학교, 1899년 광제원, 1902년 의학교부속병원, 1905년 대한국적십자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07년 대한의원으로 개원했다. 대한의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의 맥을 이으며 서울대병원의 전신이 된다. 대학로에서 서울대병원을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서울대 의과대학 정문 옆에는 서울미래유산 학림다방이 있다. 학림다방은 1956년 문을 열었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불씨가 된 학림사건으로 유명한 곳이다. 소설가 이청준·김승옥, 시인 김지하·황지우 등 문학인들이 단골로 다녔던 곳이다. 다방 이름은 서울대 문리대가 마로니에 공원에 있던 시절의 축제인 ‘학림제’에서 따왔다. 신반포에 사는 김혜정(45)씨는 “학창 시절 마로니에 공원에서 연극 보고 나와서 커피를 마시던 추억이 떠오른다”며 “그동안 서울의 많은 것을 못 보고 살았는데 앞으로 부지런히 찾아다니겠다”고 말했다. 시비·기념비·흉상 가득한 대학로안창호 비석·타고르 시비 등 곳곳에 새긴 역사 대학로 주변에는 유난히 돌에 새긴 시비와 기념비, 흉상들이 많다. 흥사단 건물 앞에는 도산 안창호(1878~1938)의 흉상과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란 말씀 비석이 서 있다. 그 옆으로는 시인 김광균(1914∼1993)의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설야’(雪夜) 시비와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로 우리나라를 알렸던 인도 시인 타고르의 흉상 시비도 나란히 서 있다. 혜화동 로터리 우리은행 혜화동 지점 앞에는 한국기독교문인협회장을 지낸 김영진 시인의 ‘혜화동 로터리’라는 시비도 서 있다. 혜화동 로터리에는 4·19혁명 때 서울대와 함께 큰 몫을 한 동성고등학교가 있다. 학교 담벼락 앞에는 ‘4·19 횃불 바로 여기에서’라는 표석이 그날의 역사를 품고 섰다. 동성고 옆으로는 등록문화재 제230호로 지정된 혜화동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혜화동 로터리 북쪽에는 1953년 문을 연 동양서림이란 책방이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역사학자 이병도(1896~1989)의 장녀인 이순경씨가 문을 연 이 서점은 점원으로 일하던 최주보씨가 인수해 딸에게 물려줬다. 답사에 참가한 이동고(51) 한·아세안센터 부장은 “늦잠 자던 토요일에 일찌감치 도심으로 나와 문화유산을 만나면서 걷다 보니 주말이 산뜻하다”며 “서울신문과 서울시의 답사 기획이 시민들의 인문지식 함양에 좋은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했다. 60년 문화 이용원·40년 연우소극장혜화로 골목마다 시대상 간직·공연 열기 이어가 혜화동 로터리부터 혜화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혜화로 골목 구석구석에는 동숭무대소극장, 선돌극장. 눈빛극장, 게릴라극장 등이 포진하면서 대학로의 공연예술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 골목에는 1940년대 문을 연 문화 이용원이 중간에 몇 차례 주인이 바뀌긴 했지만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다. 같은 장소에서 60여년 동안 운영된 이발소로, 혜화동 일대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장소로 서울미래유산이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혜화 칼국수가 나오는데, 이곳은 1970년대부터 경상도식 사골국수를 전문으로 했다. 박정희 정권이 1969년 분식장려운동을 펼치면서 국숫집이 성업할 당시 문을 연 것으로 보인다. 한 해설사는 “고개 넘어 한성대 입구 성북동 ‘국시집’은 서울미래유산이지만, 역사가 더 오래된 혜화 칼국수는 미래유산으로 지정받지 못했다”며 “서울미래유산은 소유주의 자율적인 참여를 우선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내년이면 창단 40주년을 맞는 연우소극장 골목으로 접어들어 내리막을 걸으면 등록문화재 357호인 장면 가옥이 나온다. 장면(1899~1966)은 제1공화국 국무총리와 부총리, 내각제였던 제2공화국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정치 거목이다. 장면의 처남 김정희가 설계한 이 집은 한·일·양식이 혼합된 특징을 갖는다. 한옥으로 된 한명숙 문학관도 인접해 있다. 이 지역부터 시작된 명륜동 한옥밀집지역 전체가 서울미래유산이다. 과천 청계 초등학교 3학년 고승현(9)군은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엄마와 같이 나왔다”며 “경기도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에서 공식 답사를 마치고 한 해설사는 희망자를 이끌고 이화동벽화마을(서울미래유산)과 이화장(사적 497호)을 보기 위해 길을 건넜다. 이날 대학로는 이미 제3차 민중총궐기 참가자들로 꽉 차 있었다. 이화장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귀국 후 살았고, 3·15 부정선거 후폭풍으로 하야한 후에도 잠시 머물렀던 공간이다. 역시 박근혜 정부의 하야 여론이 무성한 시점, 미묘한 감정으로 열일곱 번째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이 마무리됐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新전원일기] ‘배움’ 뿌리고 ‘자연’ 거두고 ‘이웃’ 나누고

    [新전원일기] ‘배움’ 뿌리고 ‘자연’ 거두고 ‘이웃’ 나누고

    성공한 귀농이란 무엇일까. 억대 연봉의 농부, 외제차를 타는 농부가 성공한 귀농의 롤모델이 되어야 할까. 물론 ‘농민이 부자 되는 세상’이야말로 좋은 세상이겠지만 처음부터 목표를 그렇게 잡는 것은 귀농 생활을 또 다른 생존 경쟁의 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나 자신의 간절함으로부터 시작되는 귀농, 그것이야말로 귀농의 첫걸음이 아닐까. 한 사람의 개인적 귀농도 중요하지만 농촌 생활에서는 마을공동체와의 융화가 중요하다. 더 오래 지속 가능한 귀농, 마을공동체와 함께하는 귀농,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보람과 깨달음을 주는 귀농의 핵심은 바로 ‘귀농 교육’에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농촌 생활의 A부터 Z까지 철저한 귀농 교육을 실천해 온 이해경(60) 남원귀농귀촌학교 교장을 만났다. 이 교장은 경제학 박사 출신의 농부이자 한국의 자연농업 1세대다. →귀농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준다면. -대학원에서 경제사학을 공부하며 조교, 시간강사의 코스를 걷는 동안 맞벌이 아내의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어느덧 불혹의 나이가 되자 계속 학자의 길을 갈 수 있을지 고민이 깊었다. 1993년 박사 논문을 끝내고 중국 북경인민대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며 읽고 싶은 책들을 원 없이 읽었다. 처음으로 의무감이 아닌 자유 의지에 의한 공부에 깊은 희열을 느꼈다. 그때 여러 책을 읽으며 ‘무위자연’의 화두가 마음속에서 점점 살아나며 귀농의 꿈을 꾸게 됐다. 친구 농장에서 1년 정도 농촌 생활을 경험하며 농사의 즐거움에 흠뻑 빠졌다. →남원귀농귀촌학교를 설립하게 된 과정은. -이병철 전국귀농운동본부장의 소개로 1998년 전북 남원 산내면에 위치한 ‘실상사 귀농학교’(남원귀농귀촌학교의 전신)의 개교를 계획하던 도법스님을 만났다. 어느덧 귀농교육을 진행한 지 18년째다. 산내에서의 13년은 멈추지 않는 불도저처럼 일했다. 실상사 농장을 귀농자들에게 제공해 전업 농부를 양성하고, 사단법인 한생명을 결성해 지역공동체를 만들고,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의 지리산 거점을 만들었다. 어린이집, 방과후학교, 노인건강교실 등을 만들어 귀농인들이 정착할 수 있는 문화인프라를 구축했다. 2009년에는 도법 스님의 뒤를 이어 실상사 귀농학교의 교장을 맡았다. 2011년 남원시, 남원시 도시민유치협의회와 함께 남원귀농귀촌학교를 시작했다. →자연농법에 대한 신념을 갖고 귀농을 결심하신 계기는. -1992년은 내게 ‘운명의 해’였다. 전국이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의 쌀시장 개방 이슈로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쌀시장 개방은 우리 농업과 농민의 사망 선포나 다름없는 막중한 결정이었다. 그때 시내의 한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한권의 책 ‘생명의 농업’(후쿠오카 마사노부)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 무경운의 ‘4무 농법’이 한국 땅에서 가능하다면 쌀시장 개방에 맞서 우리 농업의 대안이 될 수 있었다. 4무 농법은 생산비를 대폭 낮출 수 있어 저가의 수입쌀과 대등한 가격 경쟁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경제학자로서의 분석이었다. ‘생명의 농업’이 나에게 던져준 화두는 바로 무위자연이었다. ‘스스로 그러함, 자연에 순응하는 조화로운 삶을 사는 것이 진정 나의 갈 길’을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실상사 귀농학교 시절부터 귀농 교육을 해왔는데, 귀농 교육의 밑그림은 어떤 것인지. -초기에는 단지 배움에 대한 욕망으로 시작된 일이 점차 생태적 귀농의 확산을 통한 농촌공동체의 복원이라는 사회적 과제로 변화되면서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알찬 교육을 통한 귀농인의 농촌 유입 확대와 안정적 정착을 지원하는 일, 지역민과 귀농인의 조화로운 협력을 통한 마을공동체의 복원이라는 두가지의 과제가 오롯이 나 자신의 과제가 되었다. 거기에 40대의 열정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귀농귀촌 교육은 피할 수 없는 18년 동안의 나의 운명이 되어버렸다. 우리 귀농학교가 연결시켜 준 커플이 무려 50쌍이 넘을 정도다(웃음). →자연농법의 미래는 어떤지, 그리고 주로 어떤 농작물을 가꾸고 있는지. -현대 농업은 철저한 외부 종속형 구조다. 모든 것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고비용 농업이다. 당연히 비용을 많이 투입할 수밖에 없으니 아무리 농사를 오래 해도 망하기 십상이다. 남원귀농귀촌학교의 농지 규모는 논 5000평, 밭 5000평 정도다. 아무리 쌀값이 떨어져도 우리의 밥상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 핵폭탄보다 위력이 훨씬 큰 식량위기 폭탄이 조만간 오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도가 23%에 불과하다. 농민들이 벼농사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나라는 식량 안보에 큰 위기가 온다. 쌀값을 올릴 수 없으면 농사 비용을 줄이는 자연 농업을 실시해야 한다. 내가 두 번째로 중시하는 작물은 약초와 산채류다. 야생의 형질이 강하기 때문에 농부의 큰 노력 없이도 자연재배의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다. 자연의 약성을 최대로 살리는 약초와 산채류의 자연농업은 앞으로 건강한 밥상을 지켜줄 최고의 힐링 작물이다. 세 번째는 토종 작물이다. 종자의 주권을 빼앗기면 농업의 주권을 상실하는 것이다. →귀농 이전과 이후의 삶에서 가장 달라진 점들은 어떤 것들인지. -귀농 이전에는 학교라는 조그만 틀 속에서 안주하고 살았던 것이 전부였다. 귀농 후에도 여전히 사회에서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잘난 체를 많이 했다(웃음). 서투르면서도 의욕만 앞세워 갈등이 발생했다. 귀농 전 사회에서는 상처가 발생할수록 자신을 더욱 단단한 껍질로 보호막을 만들었을 텐데, 오히려 귀농 후에는 내 자신을 두껍게 감싸고 있던 자아의 막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마음을 채우고 있던 모든 것들을 비우고 내려놓자 진실로 평안해졌다. 지금은 모든 것이 고맙고, 지금 현재가 참으로 행복하다. 위대한 자연을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농사를 힘든 일이 아닌 ‘농선’(農禪)으로 생각하게 되니 농부임이 자랑스럽다. →귀농 교육을 하시면서 보람을 느끼신 적은 언제인지 궁금하다. -교육의 보람은 귀농학교를 거쳐간 분들이 농촌에 잘 정착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어떤 젊은 여자분은 초창기 실상사 귀농학교가 비닐하우스 교실에서 교육을 할 때 실수로 화재를 일으켜 시설이 전소된 적이 있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불을 낸 당사자는 늘 미안한 마음에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그분이 농촌 현장체험을 하다가 남편을 만나 훌륭한 가정을 이루어 TV프로그램에 초대돼 행복한 귀농생활의 사례가 되었을 정도다. 어떤 젊은 친구는 교육을 마치고 학교에서 소개한 곳에서 현장 체험을 하던 중 좋은 인연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산중에서 학교에서 배운 자연농업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데, TV 인간극장에서도 소개됐다. →현재 일종의 귀농 열풍이 불고 있는데, 이런 열풍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대부분의 귀농귀촌 교육이 성공을 목표로 하는 교육에 치중돼 있다. 억대부자 농부, 억대 매출 사업가 등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그들을 따라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정부가 교육시간 100시간을 지원 조건으로 정하면서 그 시간만 이수하면 모든 준비가 끝난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필요에 의해 교육을 이수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에 의해 교육에 참여하기 때문에 간절함이 부족하다. 귀농귀촌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 자신을 향한 귀농귀촌이다. 자기 바깥만 바라보며 살아가다가는, 귀농의 진정한 목적을 잊어버리게 된다. ‘나’를 잘 바라볼 수 있다면 귀농귀촌은 무조건 성공한다. 또한 모든 면에서 자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식·주·의·에너지’는 반드시 자립의 토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산야초학교, 자연순환농업학교, 자연음식학교, 자연건강교실, 흙집짓기학교, 적정기술학교 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귀농을 준비하거나 꿈꾸고 계신 분들께 조언을 한다면. -첫째, 귀농귀촌의 핵심은 농사다. 농사는 ‘준비’와 ‘때’가 가장 중요하다. 씨앗, 농지, 농자재 등을 준비하고 체력도 단련해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때가 찾아온다. 둘째, 땅값 싼 곳이나 경치 좋은 곳만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디로 갈지 모르겠으면 무조건 좋은 이웃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좋은 이웃은 가장 좋은 귀농귀촌 보험이다. 셋째, 남의 인생을 표절하지 말아야 한다. 무조건 억대부자 농부, 억대 성공 사례를 따라가는 것은 드라마 작가가 남의 작품을 표절하는 것과 같다. 나의 정체성을 세우는 나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넷째, 결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오자마자 창업자금 융자받아 사업부터 추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시작이 빚쟁이의 굴레 속에서 이뤄진다면 평생 그것을 벗어나기 어렵다. 최근 수년간 정부가 수많은 빚쟁이 귀농귀촌 창업을 권장했는데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하는 5년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참으로 우려스럽다. →향후 계획은. -남원귀농귀촌학교에서는 인공 감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자체 브랜드 쌀막걸리를 만들 예정이다. 무공해 산야초를 중심으로 다양한 먹거리의 상품화도 계획 중이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귀농교육 프로그램도 열심히 준비 중이다. 귀농교육이 이뤄지는 ‘귀정사’로 가는 길 곳곳에서 동네 주민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참으로 정겨웠다. 도시에 사는 나에게는 이런 마을이 없다. 이사 온 지 8년째이지만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없다. 나는 ‘마을’을 잃어버렸기에 이토록 외로운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문득 울컥한 무엇인가가 치밀어 올랐다. 잃어버린 이웃을 찾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삭막한 도시 속에서도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결국 귀농귀촌은 ‘관계 맺음’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인간과 자연 사이, 상품과 소비자 사이의 관계까지도 바꾸는 자연농법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게 되었다. 농민의 부채를 양산하는 대량생산 농업을 지양하고, 저비용 고효율의 자연농법으로 가는 길을 개척하는 남원귀농귀촌학교의 미래는 밝다.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이나 농약의 장기적 위험을 깨달은 사람들이 점점 더 자연농법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고, 건강한 먹거리, 안전한 먹거리, 자연과 함께하는 삶에 대한 비전을 추구하는 자연농법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글쓴이 정여울 작가 2013년 제3회 전숙희문학상 수상. 주요 작품으로 ‘공부할 권리’,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빼곡한 빌딩숲 사이, 역사는 흐른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빼곡한 빌딩숲 사이, 역사는 흐른다

    비운의 흥화문… 혁명의 경교장… 낭만의 성우이용원 서울미래유산은 정치역사, 산업노동, 시민생활, 도시관리, 문화예술 등 5개 분과로 나뉜다. 도시관리분과 세부 선정기준에 따르면 지어진 지 40년 이상 된 건조물로서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중 특히 근대 건축 특성이 잘 나타나 있거나 훼손·멸실 가능성이 높은 건물 위주로 선정한다. 서울의 도시 발전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건조물이나 흔적도 미래유산으로 지정할 수 있다. 이름난 건축가의 건축물 중에서는 시대별 대표작이나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 대상이다. 다음 회엔 문화예술분과 세부 선정기준을 알아본다. 서울시는 미래유산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서울신문·문화지평과 공동 주관으로 매주 토요일 진행한다. 총 20회 중 지난주까지 13회차를 진행했다. 오는 22일 답사는 웃대 일대 문화유산을 배건욱 서울미래유산해설사와 함께 돌아본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11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은 지난 1일 오전 10시 서울역사박물관 뒤에 있는 경희궁에서 시작했다. 이날 해설은 한선영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맡았다. 이번 답사 경로는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서대문역~충정로역 라인과 많이 겹친다. 그 길 위에 놓여 있는 숱한 서울미래유산들을 이번 답사에서 확인했다. 광화문역에서 경희궁까지는 500여m를 걸어야 한다.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새문안로를 따라 정동사거리 방향으로 걷다 보면 구세군 본영회관을 만날 수 있다. 회관 1층에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기독교 서점 ‘생명의 말씀사’가 있다. 1953년 팀선교회 선교사들이 만든 기독교 서적 전문 출판사다. 1985년 김재권씨가 인수한 뒤 아들과 함께 현재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서울시는 “한국 교회 양서 보급에 큰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기독교 서점의 대형화를 시도하는 등 기독교 서점 문화를 주도해 왔다는 데 큰 의의를 지닌다”는 이유로 이곳을 미래유산에 선정했다. 경희궁과 정문인 흥화문은 통째로 뜯기는 등 우여곡절이 많은 유물이다. 조선조 광해군 10년(1618년)에 지어진 경희궁은 1910년 일제가 경성중학교를 세우기 위해 전각들을 헐거나 매각하고 일부는 이전하는 등 무참히 유린당했다. “동향이던 흥화문도 1915년 남쪽 담장으로 옮겨졌다가 1932년 장충동 박문사로 옮겨져 정문으로 사용됐습니다. 박문사는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한 이토 히로부미를 위해 만든 절인데요, 이때는 경춘문이란 이름의 현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해방 직후 박문각이 헐리고 신라호텔이 들어서자 다시 영빈관이라는 현판을 달고 정문 기능을 하다가 1988년 가까스로 경희궁으로 돌아왔습니다.” 반세기 가까이 엉뚱한 곳에 있다가 돌아왔지만, 흥화문은 끝내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흥화문이 간직한 비운의 역사를 한 해설사가 풀어내자 답사단에서는 낮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경희궁 정전이던 숭정전은 한일합병 이후 세워진 경성중학교 교실 건물로 사용되다가 1926년 지금의 동국대 자리에 있던 일본 조계사에 매각된 뒤 옮겨져 본당으로 사용됐다. 해방 후에는 동국대 강의동으로 쓰이다 지금은 정각원(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0호)이란 이름의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날 답사에 나온 전수정(36·여)씨는 “지난 역사가 순조로웠다면 서울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 먹먹하다”며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여 빚어진 결과물이 역사라면 좀더 세심하게 주변을 기억하고 기록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흥화문에서 조금만 걸으면 강북삼성병원 앞에 있는 돈의문 터 표지를 만날 수 있다. 돈의문은 한양 4대 문 중 하나로 서쪽 대문이다. 서대문, 새문, 신문(新門)이라고도 불렀다. 신문로, 새문안로, 새문안교회 같은 명칭으로 흔적이 남아 있다. 1396년 한양도성 축조 때 만들어졌고 1915년 도로 개설에 따라 철거됐다. 한 해설사는 “당초 서울시는 2013년까지 돈의문 원형을 복원할 계획이었으나 예산·원형 복원 등의 문제로 2022년까지 중장기 과제로 미뤄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강북삼성병원 안에는 경교장(사적 제465호)이 있다. 일제강점기 부호인 최창학의 저택이었던 경교장은 최씨가 친일 경력을 무마하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헌납했다. 그 뒤 임시정부 주석인 백범 김구 선생의 숙소이자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건물로 사용했다. 김구 선생은 1945년 11월 23일 환국해 안두희에게 저격당해 서거하기까지 3년 7개월을 이곳에서 머물렀다. 건물 이름은 근처에 있던 경교라는 다리에서 따왔다. 백범 서거 후 외국 대사관저, 미군시설, 병원 등으로 사용되다가 2013년 원형대로 복원됐다. 현재 문화일보 자리는 옛 동양극장 터다. 이번 답사 주제의 한 축은 ‘영화 같은 역사’다. 동양극장 터를 비롯해 서대문 로터리에는 지금은 헐려서 사라진 화양극장이 있었다. 한 해설사는 “동양극장은 1935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 전용극장으로 신파극을 공연했다”며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란 연극이 공연될 때는 장안 기생들이 대거 모여들었다”고 했다. 동양극장은 광복 후 운영난으로 영화관으로 사용되다가 1976년 폐관된 뒤 1995년 철거됐다. 정면 길 건너에는 매끈한 대리석 건물의 4·19 혁명 기념도서관이 있다. 이 자리는 제1공화국 실세로 불리던 이기붕과 박마리아 부부가 살던 집이 있었다. 1960년 일어난 4·19 혁명은 이기붕이 부정선거로 부통령에 당선된 3·15 부정선거가 발단이 됐다. 이기붕 일가는 자살했고 이후 집은 국가로 환수됐다. 정부는 4·19 혁명 희생자 유족들에게 이곳을 무상으로 빌려 주다가 1982년 증여했다. 유족들은 1964년 사설 도서관으로 시작해 공공 도서관으로 발전시켰다. 한 해설사는 “4·19 혁명 기념도서관은 자유·민주·정의를 기본 정신으로 하는 4·19 혁명의 숭고한 이념과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도 계승, 발전시킨다는 목표 아래 설립된 특수 도서관”이라며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등 대비되는 두 역사를 모두 간직한 곳이라서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고 설명했다. 충정로역 주변에는 우리나라 아파트의 효시라고 불리는 1932년 지어진 충정 아파트, 1900년대 초기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의 충정각, 1892년 세워진 약현성당(사적 제252호), 1940년 개교한 미동초등학교 등 고풍스럽고 이야기를 한껏 담은 건축물이 즐비하다. 충정 아파트 내부에 들어가 사진을 찍으려니 거주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역정을 내며 “사진 같은 거 찍지 말고 빨리 나가라”고 고함을 쳤다. 유명세를 타다 보니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탐방객들이 답사할 때 거주민 입장을 배려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충정각은 문동수(46)씨가 임대해 레스토랑으로 운영하고 있다. “충정각 뒤 건물은 1906년 설립된 이명래 고약(명래제약)이 있던 자리”라고 충정각 직원이 귀띔했다. 답사단은 아현동 가구거리를 지나 한동안 걸어 만리시장으로 향했다. 그사이 답사단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국제KEY디지털’이란 열쇠 만물상과 손기정기념관을 지났다. ‘국제KEY디지털’은 1961년 현 위치에 창업주 최창윤씨가 개업해 1991년 아들에게 물려줬다가 2001년부터 최씨가 다시 운영하고 있다. 같은 장소에서 반세기 넘게 운영된 철물점으로, 만리동 1가 일대의 한 시대를 반추해 주는 장소다. 옛 양정고 자리에 들어선 손기정기념관은 2012년 개관했다. 양정고는 1905년 양정의숙으로 세워져 인재를 배출하다가 1988년 서울 목동으로 이전했다. 이 자리에는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옹 기념관이 세워졌다. 만리시장 꼭대기에 있는 성우이용원에 들어서자 이남열(68) 사장이 속사포처럼 설명을 쏟아냈다. 성우이용원은 슬레이트 지붕에 기우뚱한 외관이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이 사장은 “서울시를 통해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받을 수 없느냐”며 이 말을 꼭 전해 달라고 했다. 성우이용원 내부는 1960년대에서 시간이 멈춰 선 듯하다. 타일과 시멘트로 만든 세면대와 저수조, 그리고 연탄 난로가 당시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 성우이용원은 1927년 이발 기술자였던 서재덕씨가 문을 열었다. 서씨 사위인 이성순씨가 1935년부터 이어받았고 현재는 3대째인 이 사장이 운영하고 있다. 이 사장은 이발만 56년째라고 했다. 성우이용원은 내년이면 창업 90년을 맞는다. 이씨는 “요즘 유행하는 ‘투 블록’ 머리 스타일은 유럽 거지들이 하고 다니는 것이고, ‘블루클럽’(이발소 브랜드) 커트 방식은 인도네시아, 미장원 방식은 대만에서 유행하는 이발법이지요”라고 농담 섞어 말했다. 그러면서 “정통 일본 이발 기술을 익히려면 적어도 15년이 걸리고 칼·가위를 제대로 갈려면 30년이 걸려요”라고 덧붙였다.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재벌 총수와 대기업 임원들도 많이 찾아왔고, 동네 손님은 채 열 명이 안 된다고 했다. 이 사장은 자신의 이발 기술은 물론 이용원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데 자부심이 상당했다. 다만 낡고 불편한 시설 개선에 서울시의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답사에 참여한 박태백(64)씨는 “43년 서울살이를 하고 있지만 집과 직장만 알았다”며 “서울미래유산과 골목답사를 통해 서울의 애환 어린 인생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서 보람 있었다”고 말했다. 임윤재(65)씨는 “인천에서만 40년을 살지만 한양 도성과 성저십리 답사에 관심이 많다”며 “그동안 역사 유물 위주로 답사했는데 근대와 미래유산을 둘러보니 큰 공부가 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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