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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24시간 열린 종이책 도서관을 만들면서/김언호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한길사 대표

    [시론] 24시간 열린 종이책 도서관을 만들면서/김언호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한길사 대표

    ‘종이책’이 푸대접 받고 있습니다. 인간이 창출한 가장 탁월한 미디어인 종이책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학자·연구자·지식인·저술가들이 평생을 읽고 연구한 장서들을 학문과 연구의 전당인 대학 도서관도 수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출판사가 서점으로 내보낸 책들이 독자들의 손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반품되고 있습니다. 반품된 책들은 작두로 파쇄되거나 물속에 처넣어 그 존재를 소멸시키기도 합니다. 수입된 외서들이 또 다른 방법으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불에 태워져서 없어지는 운명을 감내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합니다. 종이책이 아니라 전자책을 읽으면 된다고.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종이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전자책도 읽지 못한다고. 전자책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책의 연장선상에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종이책을 푸대접하고, 종이책을 내버리는 일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현대인들의 교만입니다. 책 없이도, 독서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현대인들, 돈과 물질로 얼마든지 살아가는 자본주의형 인간들의 벌거벗은 행태를, 오늘 우리는 종이책을 푸대접하고 함부로 내다버리는 경박한 물질주의의 슬픈 풍경에서 새삼 확인합니다. 종이책을 보호·보존하는 새로운 정신운동·문화운동이 요구됩니다. 인간의 삶에 가장 본원적인 가치를 갖고 있는 종이책을 읽고, 종이책을 보호·보존하는 생명운동이 이 시대에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젊은이들의 손에 책이 없습니다.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여러 조건이 있지만, 그 가장 큰 조건은 경쟁으로 상대방을 눌러 좌절시키고 나만 사는 것을 당연하게 가르치는 공·사교육입니다. 그리고 수단이 목적이 되고 있는 스마트폰의 과잉생산·과잉사용이라는 기계만능주의입니다. 스마트폰의 기능주의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 부재로부터 빚어지는 비독서·반독서로 젊은이들의 이성적·도덕적·감성적 지력이 날로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사회가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창조와 문화융성은 어렵게 됩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당장에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책을 읽지 않는 교육이 지속되고, 스마트폰 같은 것에만 의존하면서 20년, 30년 가면 우리 국가사회와 민족공동체의 지혜와 역량은 심각한 위기에 부닥칠 것입니다. 아니, 도덕적이고 정의로우며 민주적인 국가사회와 민족공동체의 영위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지금 파주출판도시는 ‘지혜의 숲’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푸대접받고 버려지고 있는 책들을 수집해서, 24시간 문을 열어놓는 도서관입니다. 파주출판도시의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1층과 지식연수원 지지향 호텔 로비, 복도에 우리 사회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열린 도서관을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출판사들로부터 반품된 책이나 재고 도서를 기증받고 있습니다. 원로 연구자들과 학자들이 생애를 통해 모은 책들을 또한 기증받아 잘 보호·보존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도서관의 이름을 ‘지혜의 숲’이라고 붙였습니다. 한 권의 책도 아름답지만 수많은 책들이 쌓인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는 ‘지혜의 숲’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의 전당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100만권의 책을 소장하게 될 ‘지혜의 숲’은 기증한 출판사와 장서가의 이름을 의미 있게 소개하는 표지판을 붙여 기증자들의 독서정신과 학문정신을 기릴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의 숲’을 24시간 열어 놓기로 했습니다. 세상의 젊은이들이 한껏 책을 읽게 하자는 것입니다. 책 읽는 젊은이들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아니, 젊은이들은 책을 읽으려 합니다. 어른들과 국가사회의 잘못된 가치와 제도가 젊은이들의 독서를 방해할 뿐입니다.
  • [문화마당] 책, 아날로그적 감성 속으로/이애경 작가

    [문화마당] 책, 아날로그적 감성 속으로/이애경 작가

    일본 도쿄 서부에 시모키타자와라는 동네가 있다. 아기자기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많고 후루기라고 불리는 구제 옷과 액세서리를 파는 상점들이 한 집 건너 하나씩 장사를 하고 있는 개성 넘치는 동네다. 역 출구를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 지역이 확연히 분위기가 다른데,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와 가로수길을 조합해 놓은 곳이라고 할까. 며칠 전 시모키타자와에 있는 한 북카페에 들르게 되었다.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서너 평 되는 작은 도서관인데 작가, 사진가, 문화예술가 등 스무 명의 지각 있는 지식인들이 뜻을 모아 토론과 문화 활동을 하기 위해 마련한 아지트다. 이곳에는 인종차별문제, 베트남전쟁, 공해문제 등이 중요시되던 1960~70년대의 대항문화(counter culture)에 관한 책들을 모아놓았는데, 당시 출간된 책들부터 현재 출간된 것까지 다양한 책들이 작은 공간의 세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조금 열린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니 열띤 토론을 하던 두 여인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학생으로 보이는 한 명은 2층 다락에서 열심히 골라놓은 책들을 읽고 있었다. 영업시간은 저녁 6시부터라 커피를 판매할 수는 없지만 책은 마음껏 읽어도 좋으니 구경하라고 하면서 주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다시 조곤조곤 말을 섞는 토론에 들어간다. 잠시 뒤 다락에 있던 청년이 내려와 다시 책을 고르기 위해 손가락으로 책 목록을 훑는다. 우리나라에 있는 북카페를 몇 번 가봤고, 북카페로 포장된 프랜차이즈 카페들도 가봤지만 책들은 카페의 분위기를 우아하고 클래식하게 만들어주는 장식품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언제나 안타까웠다.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책을 읽기보다는 노트북을 켜놓고 공부를 하거나 업무에 관계된 일을 한다. 우리나라 한 지자체에서는 시민들을 위해 야심차게 북카페를 만들었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정작 시민들에게는 외면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카페에 있던 운영인에게 물으니 이곳에는 책을 읽으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고, 새로운 출판 아이템을 찾아가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요새 일본 젊은이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고 스마트폰에 허비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참 큰일이라며 일본의 독서 풍토 변화를 심각한 투로 내게 전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눈에 비친 일본은 여전히 책을 읽고 있었다. 동네마다 소형서점이 살아 있고, 간다 지역의 중고서점가는 활기를 띠고 있으며,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서너 명씩은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가고, 책이 사라져 가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비교해볼 때 일본에는 아직도 책이 사람들 손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찰스 엘리엇은 ‘책은 가장 조용하고 변함없는 벗이자,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고 가장 현명한 상담자, 가장 인내심 있는 교사’라고 했다. 완연한 가을로 접어드는 요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친구 한 명을 만들면 어떨지. 책장에 꽂힌 지 몇 년이 넘은 베스트셀러도 좋고, 최근 친구에게서 추천 받은 책도 좋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차가운 액정이 아니라 손가락에 착 안기는 아날로그 종이의 향기와 감촉이니 말이다.
  • [커버스토리] 신림동 고시촌의 역사는

    [커버스토리] 신림동 고시촌의 역사는

    서울 신림동 일대의 고시촌은 서울대가 1975년 관악구로 이전하면서 형성됐다. 지방에서 온 대학생과 사법고시·행정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 고시학원들이 신림동 일대에 모여들면서 고시촌이 만들어졌다. 봉천동과 신림동 일대에는 1960년대 초 도심 철거민들의 집단 이주로 판자촌이 많았으나 서울대 이전, 1984년 지하철 2호선 완전 개통 등으로 고시촌이란 독특한 문화가 형성됐다. 하숙집, 원룸, 고시원, 고시 전문 서점, 복사가게 등이 빽빽하게 들어선 신림동 고시촌은 ‘녹두거리’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신림동 고시촌의 역사를 대변하는 것은 바로 광장서적이다. ‘고시촌의 메카’로 불리던 광장서적은 올해 초 부도로 문을 닫아 쇠락한 고시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울대 81학번으로 중앙부처 국장으로 근무하는 한 고위 공무원은 “고시 합격자 발표가 나기 전날 저녁이면 광장서적에서 합격자 명단 방을 붙이는데 그걸 보려고 서점에서 계속 죽치고 기다렸다”면서 35년 역사를 가진 광장서적의 폐업을 아쉬워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커버스토리] “독서실엔 빈자리…책상엔 법전 대신 공무원 수험서”

    [커버스토리] “독서실엔 빈자리…책상엔 법전 대신 공무원 수험서”

    “광장서적이 없어졌을 때 뭐랄까. 사법시험도 곧 없어지고, 서점도 문을 닫으니 저도 같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서울의 한 사립대생인 박민지(26·여·가명)씨가 서울 관악구 서림동(옛 신림2동) 고시촌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2011년 3월부터다. 박씨는 지난 6월까지 고시촌에서 지내면서 두꺼운 법전 및 판례집과 만날 씨름했다. 2년 3개월은 신림동 고시촌의 변화를 체험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난 6월 26일부터 나흘간 사법시험 제2차 시험을 치르고 이달 복학한 박씨는 지난 25일 기자와 만나 고시생 생활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평일에는 주로 고시식당에서 식사했고요. 아침 식사는 집에서 씨리얼로 간단하게 해결했어요. 학원 수업 일정에 맞춰서 차례대로 민법, 형법, 헌법과 ‘후사법’(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행정법, 상법)을 공부하고 그날 오전 또는 오후 중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독서실에서 복습했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동문 수험생들과 스터디도 하고 독서실에 들어가 자습하고, 시험 관련 자료를 확인하고 밥 먹고 또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이런 생활이 매일 반복됐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잘 모를 정도로 빠듯했어요.” 서림동에 오기 전까지 박씨는 스스로 성격이 밝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고시촌 생활이 길어지면서 본래의 모습을 점점 잃어갔다. 박씨는 “공부를 시작한 뒤로 평소 대화할 상대가 거의 없다 보니 말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면서 “공부할수록 자신감을 잃거나 시험에 대한 압박감이 심해 ‘합격을 못 하면 뭐하고 살까’하고 고민을 한 적도 많았다. 인생에서 실패했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고 말했다. 박씨가 조금씩 변해가는 동안 서림동 주변 풍경도 달라졌다. 사시생들이 하나둘씩 고시촌을 떠나기 시작했다. 박씨가 서림동에 발을 들여놨던 초창기만 해도 독서실에는 법전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나 해가 지나면서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장면이 나타났다. “예전에는 제가 원하는 자리에 앉고 싶어도 사람이 많아서 못 앉았어요. 그런데 점점 독서실에 빈자리가 생기는 거예요. 그리고 어느 때부턴가 법전으로 가득했던 독서실 책상에 공무원 시험 수험서가 눈에 띄기 시작했어요.” 박씨보다 시험 준비도 오래하고 고시촌에 오래 머물고 있는 윤화경(27·여·가명)씨. 처음 대학동(옛 신림9동) 고시촌에 들어올 때만 해도 윤씨는 “좋아하던 술도 끊을 결심까지 하면서 꾹 참고 3년 안에 시험에 합격하자는 마음으로 이곳에 들어왔다”고 회상했다. 2007년 7월부터 지금까지 6년 넘게 대학동에 살고 있는 윤씨는 박씨가 보지 못한 진풍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대학동 주변을 둘러보면 약국이 참 많잖아요? 이곳에 사시생이 한창 많았던 시절에는 약사 손이 쉴 틈이 없었어요. 사시생들이 너도나도 약국에 와서 피로회복제와 두통약, 소화제를 찾았거든요. 손이 바쁠 수밖에 없었죠. 대학동이 전국에서 박카스 판매율 1위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어요.” 윤씨는 “고시촌에 들어가려고 하자 주위에서 ‘말 붙일 상대가 없어서 우울 증상을 겪을 수도 있다’며 걱정을 해줬다”면서 “하지만 보기에는 대학동이 삭막해 보일지 몰라도 공부하기 참 좋은 곳이다. 식당과 독서실까지의 거리가 짧고, 독서실도 골라서 다닐 수 있고, 학원도 집에서 가까워 이동하기 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씨의 여정이 그의 긍정적인 태도처럼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고시생활 초반에는 단기간에 끝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 하루에 15시간씩 공부하던 때가 있었어요. 당시에는 새벽 2~6시만 잤어요. 화장실도 하루에 딱 세 번만 갔고요, 물도 잘 안 마셨어요. 그랬더니 피부에 여드름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더라고요. 병원에 가보니 피로가 쌓이고 면역력이 떨어졌다는 진단을 받았죠.” 윤씨의 책상 책꽂이 위에는 한 아프리카 소년의 얼굴 사진이 놓여 있었다. 윤씨가 국제구호단체를 통해 후원하는 어린이였다. 윤씨는 환한 미소를 보이며 그 소년이 보내준 편지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윤씨는 “평소 어디 가서 봉사활동을 하기 어려우니까 이렇게 후원금을 통해서라도 아프리카 결식아동을 돕고 있다”고 수줍게 말했다. 고시촌도 훈훈한 정이 흐르는 보통 사람이 사는 동네였다. 글 사진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커버스토리] 2030 공시생 늘자 원룸 품귀 vs 사시생 줄어들자 썰렁한 苦시촌

    [커버스토리] 2030 공시생 늘자 원룸 품귀 vs 사시생 줄어들자 썰렁한 苦시촌

    고시(高試) 하면 떠오르는 두 곳,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과 관악구 신림동은 국내 고시촌계의 양대 산맥이다. 7, 9급 국가공무원 및 경찰공무원 채용시험 등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노량진동에 밀집해 있다. 사법시험과 일명 ‘행정고시’(5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 채용시험) 합격을 바라는 수험생들은 신림동에 모여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고시촌의 명암이 뚜렷하게 엇갈리고 있다. 노량진 고시촌 주변은 갈수록 늘어나는 수험생들로 활기를 띠고 있지만 신림동 고시촌은 2017년 사법시험 폐지가 예정된 탓에 ‘사시생’이 감소하면서 과거의 명성을 점점 잃어 가고 있다. 신림동 주변 상권은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곳에 20년 가까이 머물러 있는 상인들은 격세지감을 토로한다. 한가위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20일 오후 2시 30분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뒤섞인 행렬이 역 계단을 뒤덮었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육교 너머로 유명 공무원 시험 학원이 눈에 들어왔다. 휴일이었지만 가벼운 반팔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가방을 멘 채 길을 걷는 수험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육교에서 동작경찰서가 위치한 길로 내려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니 각양각색의 수험생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노량진 고시촌의 명물로 자리 잡은 포장마차 컵밥집 중 세 군데가 문을 연 가운데 컵밥집 주변에는 서 있거나 앉은 자세로 컵밥을 먹는 수험생들이 가득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한 손에는 포장된 컵밥이 담긴 검은색 비닐봉지를, 다른 한 손에는 병 커피 두 개를 들고 이동하는 수험생도 있었다. 수험생 중 일부는 캐리어를 끌고 원룸과 고시원이 밀집한 노량진동 노량진로14길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휴학생 이모(26)씨는 2년 전부터 지방에서 국가직 9급 공무원 공채시험 직렬 중 검찰사무직 시험 과목을 공부하다가 지난달 말 노량진 고시촌으로 왔다. 현재는 노량진동의 한 공무원 시험 학원에 다닌다. 이씨는 “올해와 달리 다음 국가직 9급 공채 시험이 내년 4월에 실시될 예정이라 유명 강사 수업을 듣기 위해 노량진동에 원룸을 하나 얻었다”면서 “필수 과목, 특히 한국사 과목 수업은 한 반에 수험생 약 200명이 수강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노량진 고시촌 일대가 조용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직접 머물러 보니 주변에 PC방, 만화방, 노래방 등 수험생들을 유혹하는 시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이 많은 탓이었다. 이씨는 “학원 근처에 고깃집, 호프집 등 놀 곳이 많다”면서 “공부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 일부러 학원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언덕길에 있는 방을 구했다”고 전했다. 이씨처럼 시험일을 7개월 정도 앞두고 방을 구하러 부동산 공인중개소를 찾는 수험생 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 공인중개사 오모(59)씨는 “올 초 정부에서 경찰공무원을 2만명 증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 한동안 원룸 품귀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면서 “이곳에서 중개업을 한 지금까지 2년 동안 20~30대 청년층 수험생 방문자 수가 계속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원룸 가격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지난해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을 받던 15㎡ 규모의 풀옵션 원룸이 올해는 월세가 5만원 더 올랐다. 오씨는 “공무원 시험 연령 제한이 폐지되면서 50대 장년층이 고시촌 방을 구하러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면서 “수요가 늘다 보니 기존 다가구 건물 내부를 리모델링해서 원룸으로 만드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날 노량진 고시촌을 서성이다가 신림동에 살면서 노량진에서 공부하는 모형석(32·가명)씨를 만났다. 그는 현재 국가직 7,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모씨가 신림동 독서실에서 공부하지 않고 굳이 노량진까지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신림동 고시촌에 있는 독서실을 다니면서 우울증 증세까지 겪었어요. 알고 지내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칸막이가 놓여 있는 독서실 책상에서 2년 동안 공부하다 보니 답답하더라고요. 스트레스도 심했고요. 그렇다고 아는 사람이 많아서 노량진에 오는 건 아니에요. 이곳에 있는 학원의 개방된 자습실에 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요. 정신적으로 풍요롭다는 느낌도 들고요. 사람 냄새가 그립다 보니 여기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는 것 같습니다.” 모씨의 말은 신림동 고시촌의 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지난 23일 지하철 2호선 신림역 3번 출구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오후 2시쯤 ‘대학동(옛 신림9동) 고시촌 입구’ 정거장에 도착했다. 정거장 인근에는 과거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의 주된 모임 장소이자 다양한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비치해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서점 ‘그날이 오면’(1988년 개점)이 있었다. 서점을 운영하는 김동운 대표는 “비록 우리 서점에 고시용 수험서는 없었지만 예전만 하더라도 장시간 법전을 보다 잠깐 쉬는 차원에서 이곳을 방문해 책을 고르는 고시생도 더러 있었다”면서 “지금도 인근 서울대 학생들이 꾸준히 서점을 찾는 것과 비교한다면 이 주변의 고시생 수는 전보다 많이 줄었다. 그러면서 대학동 고시촌 풍경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이는 단순히 고시생 수 감소에서만 비롯된 일은 아니고 사회 운동에 앞장섰던 1980년대 말 당시 학생들이 갖던 문화와 지금의 학생들이 공유하는 문화가 달라진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경숙(66·여)씨는 대학동의 ‘녹두거리’에서 20년 가까이 빈대떡 장사를 해 오고 있다. 김 대표와 마찬가지로 전씨 역시 대학동의 변화를 곁에서 지켜본 ‘산증인’인 셈이다. “1990년대만 해도 식당에 들어오는 손님의 90%가 고시생이랑 서울대생이었어요. 특히 고시생이 많았죠. 게다가 1990년대 초 심야 영업 규제가 적용되던 시절 이곳 녹두거리 술집은 사실상 규제를 받지 않는 곳이었어요. 그렇다 보니 고시촌에 살지 않는 외부 사람들까지 야간에 모여드는 바람에 녹두거리 주변은 문전성시를 이뤘죠.”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로 고시생 수가 감소세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전씨의 이야기다. 대학동 고시촌의 변화는 사법시험 학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수험생은 “학원 강사들도 수업 중에 ‘예전보다 수강생 수가 확실히 많이 줄었다’고 얘기한다”면서 “사시생이 많았을 때는 반을 나눴었는데 지금은 합반을 할 정도”라고 전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세바른병원 무료 관절강좌

    세바른병원 강서점(대표원장 신명주)은 26일 오후 3시 서울 강서구 등촌동 본원 10층에서 지역 주민을 위한 무료 관절 강좌를 연다. 송은성 세바른병원 정형외과 원장이 ‘어깨 질환의 종류와 치료’라는 주제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어깨 관절 질환의 종류와 발병 원인, 증상 및 치료법을 소개한다.
  • “책으로 소통하는 아시아” 파주 북소리 28일 개막

    “책으로 소통하는 아시아” 파주 북소리 28일 개막

    아시아 최대 북페스티벌을 표방하는 ‘파주북소리 2013’이 오는 28일부터 10월 6일까지 경기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린다. 3회째인 올해 행사는 ‘책으로 소통하는 아시아’를 주제로 특별전과 국제교류 행사, 시민참여 마당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는 특별전시 ‘고지도, 상상의 길을 걷다’가 열린다. 조선 초기의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와 18세기 후반 제작된 ‘도펠메이어의 천문도’를 포함해 국내외 고지도, 천문도, 지리·역사 관련 고문헌 등 80여점이 전시된다. ‘아시아 작가와 도시’ 국제문학 심포지엄에는 황석영·김미월 등 한국 작가와 베트남의 바오닌, 티베트의 망명 시인 체링 왕모 돔파 등 16개국 30여명의 작가가 한자리에 모여 아시아의 도시가 어떻게 문학의 배경이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작가들이 글과 사진, 음악,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도시를 소개하는 문학콘서트와 각국 이야기 구연전문가들이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아시아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출판인들 간 소통과 교류의 장인 국제출판포럼에선 경계를 넘어서 책으로 소통하는 협력 방안에 대해 모색한다. 일본의 대표적 지성인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가 ‘동북아 지역의 위기와 극복을 위한 방안’을 주제로 기조 강연을 하고, 오카모도 아쓰시 이와나미 서점 대표와 방재석 도서출판 아시아 대표 등 7개국 17명의 출판인이 아시아 각국의 화합과 공존을 위한 출판의 역할에 대해 논의한다. 시민 참여행사도 풍성하다. 스마트 백일장, 스토리텔링 콘서트 등 글짓기 대축전과 전국 독서동아리를 대상으로 한 독서모임 대축전이 올해 새로 마련됐다. 출판도시 내 출판사들이 주도하는 ‘지식난장’ 행사에는 24개 출판사가 참여해 저자와의 대화, 강연, 워크숍 등 100개가 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밖에 국내외 조명 디자이너들이 지난 1일부터 출판도시 내 9개 건물을 아름다운 조명으로 물들이고 있는 파주라이트페스티벌도 행사 기간 내내 펼쳐진다. 아시아 출판의 발전에 기여한 출판인과 저자, 출판미술인에게 수여하는 ‘파주 북어워드’시상식도 열린다. 파주북소리조직위원회는 앞서 올해 수상자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저작상), 중국의 북 디자이너 류샤오샹(출판미술인상), ‘왕실문화총서’(돌베개)를 기획한 김문식·박정혜·김재우(기획상)씨를 선정했다. 또 특별상에는 ‘기적의 도서관’을 건립하는 등 독서문화 발전에 기여한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을 뽑았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한손으로도 가벼운 ‘페이퍼백’ 왜 한국에서만 외면받을까요

    한손으로도 가벼운 ‘페이퍼백’ 왜 한국에서만 외면받을까요

    값싸고 가벼워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페이퍼백(문고본). 1935년 펭귄북스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세계 출판가를 정복(?)했다지만, 유독 한국에서만은 외면받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서점가에서 문고본은 전성기를 누렸다. 200종 이상의 책을 냈던 삼중당문고, 을유문고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후 단행본의 고급화, 컬러화가 이뤄지면서 문고본은 속수무책으로 자취를 감췄다. 현재 출간되고 있는 대표적인 문고본 시리즈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인문·사회분야에서는 살림출판사의 살림지식총서, 책세상의 책세상문고·우리시대, 시공사의 디스커버리총서 등이다. 장르소설 분야에서는 민음사의 펄프, 북스피어의 에스프레소 노벨라 등이 있다. 페이퍼백이 국내 출판시장에서는 자리잡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책의 가치를 ‘소비용’보다 ‘소장용’으로 더 중시하는 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첫 손에 꼽힌다. 겉치레를 중시하는 국민성에 출판시장을 주도하는 여성 독자층의 책 디자인 중시 성향 등이 맞물려 문고본보다는 양장본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출판사 은행나무의 이진희 주간은 “출판시장을 주도하는 20~30대 여성 독자들은 겉표지, 책 디자인 등 예쁜 책을 찾기 때문에 양장본을 더 선호한다. 때문에 출판사들도 표지 디자인에 주력하다보니 뛰어난 디자인이 많아 번역서의 경우 일본 출판사에서 우리 표지를 가져다 마케팅에 이용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책을 휴대용으로 지니며 간편하고 빠르게 소비하는 독서 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양은경 민음사 외국문학팀 과장은 “우리는 인문·교양 분야 등의 독서 습관이 주로 교육과 연관해 형성되다 보니 이야기를 쉽게 소비하는 문화가 없다”고 파악했다. 시장 규모가 작아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도 페이퍼백의 번성을 막는 이유로 꼽힌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인구가 1억명 이상은 되어야 초판에서 기본 5000부는 팔릴 수 있는데 기껏해야 1000~2000부 팔리는 국내 시장에서는 이윤이 남지 않으니 출판사들도 꺼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휴대의 편리함, 작은 판형 등 페이퍼백과 비슷한 장점을 지닌 전자책이 페이퍼백을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내는 현상을 가속화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현재는 전체 출판시장에서 전자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1~2%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콘텐츠가 좋아지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독자들은 굳이 문고판 책을 사기보다 전자책을 선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출판계 안팎에서는 페이퍼백의 추락은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독자는 출판사들이 책을 내지 않으니 못 본다고 하고, 출판사들은 팔리지 않으니 안 낸다는 것이다. 지난 2010년부터 장르소설 문고본 시리즈를 내온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문고본은 최소한의 가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도록 하자는 취지이지만 책을 사는 사람은 사실 한정돼 있다. 독자 수요에 대해서는 사실상 회의적”이라고 했다. 결국 출판사로서는 양장본 책을 만들어 가격을 높이는 쪽이 가격저항력도 없어 더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페이퍼백에 대한 독자 수요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한 예로 올해 출간 10주년을 맞은 살림지식총서 시리즈는 현재 466호까지 나왔다. 한 달에 평균 3권씩 낼 정도로 활발하게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최진 살림출판사 지식총서팀장은 “매월 재인쇄에 들어가는 책이 20종에 이르고 전체 466권 가운데 100권은 3쇄 이상 찍을 정도로 독자들이 꾸준히 찾는다”며 “이는 좋은 콘텐츠가 독자들을 이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페이퍼백 시장에 눈을 돌리는 게 미래의 독서 인구를 늘리는 방편이 될 수가 있다고 조언한다. 백원근 연구원은 “인터넷서점 중고책방이 인기를 끄는 데서 알 수 있듯 콘텐츠가 좋은 염가의 책에 대한 수요층은 분명히 있다. 독서 생태계를 넓힌다는 측면에서도 문고판 시장에 독자를 끌어들이려는 출판사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불운하지만 특별한 인생… 호킹의 고백 들어보세요

    불운하지만 특별한 인생… 호킹의 고백 들어보세요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스티븐 호킹 지음/전대호 옮김/까치/192쪽/1만 6000원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이자 대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과학자의 자서전치고는 무척 간결하다. 총 192쪽 가운데 역자 후기와 용어 해설을 빼면 157쪽. 사진과 문서 등 다양한 자료가 수록돼 있어 텍스트는 그보다 더 적다. 원서 출간과 동시에 국내에 소개된 스티븐 호킹(71)의 첫 자서전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원제 My brief history)는 그의 생애와 학문적 성과, 그리고 사생활을 둘러싼 루머 등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원했던 이들에겐 어쩌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전신마비와 기관절개 수술로 인해 컴퓨터와 음성합성기를 통해 1분에 최대 세 단어를 말하고 쓸 수 있을 뿐인 그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집필한 첫 육성 기록이란 점에서 어떤 방대한 자서전보다 깊은 진정성과 큰 울림을 느낄 수 있다. 호킹은 옥스퍼드대에서 의학을 공부한 아버지와 의사 집안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출생 배경부터 수학과 물리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성적은 중간 정도였던 중·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에서 우주론을 연구한 과정 등을 소개한다. 자신의 출생 연도(1942년)가 갈릴레오 사후 300년이 된 해라든가 친구들이 아인슈타인이란 별명을 지어줬다는 점을 언급한 대목에선 남다름을 강조하고 싶은 인간적인 면모도 드러난다. 스물한 살에 발병한 루게릭병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병을 진단받기 전에 나는 삶이 몹시 지루했다.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퇴원한 직후, 나는 처형을 앞둔 죄수가 된 꿈을 꾸었다.(중략) 어차피 죽을 거라면, 좋은 일을 하는 편이 낫지 않나 싶었다.”(64쪽) 호킹은 30대 초반에 손이 마비돼 머리로만 연구를 진행하고, 40대 초반에는 목소리마저 잃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우주론 연구에 매진해 빅뱅과 블랙홀 연구의 대명사가 됐다. 그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몹시 부당하다고 느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당시에 나는 내 삶이 끝났고 내가 느끼는 나의 잠재력을 결코 발휘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내 삶에 대해서 평온하게 만족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나의 장애는 과학연구에서 심각한 걸림돌이 아니었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장점이었다”고 말한다. 실패로 끝난 두 번의 결혼에 대해서도 털어놓는다. 발병 초기에 만난 첫 아내 제인 와일드는 삶의 의지를 북돋워준 소중한 인연이었다. 하지만 제인이 동네 청년과 가까워지자 그는 간호사 일레인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자신이 죽은 뒤 세 아이를 부양할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제인의 변심을 받아들인 것이다. 호킹은 1995년 일레인과 재혼했지만 2007년 헤어졌다. 항간에는 일레인이 호킹을 학대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호킹은 책에서 “나와 일레인의 결혼 생활은 격정적이고 파란만장했다”고만 간단히 언급했다. 전 세계에서 1000만부가 팔려 현대의 고전이 된 ‘시간의 역사’ 출간(1988년)에 얽힌 비화도 소개했다. 그는 “일반 독자를 겨냥해 우주에 관한 책을 쓸 생각을 처음 품은 것은 1982년”이라면서 이왕 시간과 노력을 들여 쓸 작정이라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하고 싶어 ‘공항 서점에서 팔릴 만한 책’을 쓰려고 했다고 밝혔다. ‘시간의 역사’를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1985년 스위스에 있는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로 이동하던 중 폐렴에 걸려 주립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병원 의료진은 가망이 없다며 인공호흡기를 뗄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제인이 이를 거절하고 구급항공기편으로 케임브리지로 옮겨 회복될 수 있었다. 호킹은 책에서 중력파 분출 탐지, 빅뱅, 블랙홀, 시간여행 등 자신이 연구한 이론들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노벨상을 받지 못한 데 대한 소회도 밝혔다. 그는 “대다수의 이론물리학자는 양자 방출이 일어난다는 나의 예측이 옳음을 인정할 것이다. 비록 그 방출을 실험적으로 검증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내가 아직 노벨상을 받지 못했지만 나는 노벨상보다 더 값진 기초물리학상(2012년)을 받았다”고 썼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무중력 비행을 경험한 것도 모자라 우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그는 “이론물리학을 연구하며 살아온 세월은 영광스러웠다”면서 “내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무언가를 보탰다면, 나는 행복하다”고 글을 맺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지금&여기]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나요/홍혜정 사회2부 기자

    [지금&여기]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나요/홍혜정 사회2부 기자

    전직 언론인 노엘 앙슬로는 1984년 부활절 축일을 책 축제로 바꾸자고 서점에 수백 통의 편지를 부쳤다. 이를 계기로 벨기에 뤽상부르의 작은 마을인 르뒤는 유럽 최초의 책마을이 됐다. 스위스 발레의 생피에르 드 클라주 등 다른 지역에서도 르뒤로 찾아가 자문하고 책마을로 변신했다. 르뒤에서는 매년 첫째 토요일 모든 책방이 밤새 문을 열고 주민과 방문객이 어우러져 잔치를 벌인다. 한 해에 책을 사랑하는 수십만명이 르뒤를 찾는다. 이들은 서점 곳곳을 돌아다니며 ‘보물찾기’라도 하듯 책을 고르고 구입한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늘면서 신간 도서 발행 부수와 서적 구입 지출액은 줄고 있다. 스마트 기기 확산과 경기침체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1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일반 도서 독서율은 66.8%이다. 1년간 한 권 이상 책을 읽은 사람의 비율이 10명 중 7명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성인의 평균 독서량은 9.9권으로 10권 밑으로 떨어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2인 이상 전국 가구’의 서적 구입 지출은 가구당 월평균 1만 9026원. 전년 2만 570원보다 7.5% 줄어든 것으로 가계동향조사 대상을 전국 가구로 확대한 2003년 이후 2만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신간 도서 발행 부수는 8690만여부로 전년보다 20.7%나 감소했으며 1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책 읽는 사람들의 확대와 책 읽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정부도 적극 나서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한 달간 지방자치단체, 도서관, 학교 등과 함께 6700여건의 독서문화 행사를 연다. 서울 서대문구·영등포구·성동구 등 자치구도 이달 북콘서트, 도서경매전, 독서 퀴즈 등 다채로운 책 축제를 벌인다. 서울시는 10월 11일 ‘책의 날’을 기념해 11월 중 ‘북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다. 책 읽는 서울을 조성하자는 취지로 25개 자치구 도서관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난독가로 알려진 박원순 시장은 평소 “독서는 인생의 경험치를 키워 내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정민 한양대 교수는 저서 ‘오직 독서뿐’에서 책을 왜 읽어야 하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몰라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옛 선인들의 글에 모든 답이 있다고 말한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책을 통해 생각도 깊어진다. 여러분은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나요. jukebox@seoul.co.kr
  • [당신의 책]

    위대한 수학문제들(이언 스튜어트 지음, 안재권 옮김, 반니 펴냄) 최소한의 색깔을 사용해 구역이 구분되도록 지도를 색칠하려면 몇 가지 색이 필요할까. 답은 네 가지다. 4색이면 어떤 복잡한 지도도 구별해서 그릴 수 있다는, 유명한 ‘4색 정리’다. 간단해 보이지만 증명이 어려워 오랫동안 난제(難題)로 여겨졌다. 1976년 어펠과 하켄 교수가 1000시간 넘게 컴퓨터를 활용해 수학적 귀납법으로 증명해냈다. ‘케플러 추측’은 제한된 공간에 공을 가장 조밀하게 쌓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증명하는 데 400년이나 걸린 이 문제의 답은 과일가게 주인의 과일 쌓기 방식이었다. 영국 수학자이자 대중과학 저술가인 저자는 이처럼 수학사를 뒤흔든 14가지 난제를 소개한다. 492쪽. 2만 3000원. 빅 히스토리(데이비드 크리스천· 밥 베인 지음, 조지형 옮김, 해나무 펴냄) 가장 큰 규모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빅 히스토리’(거대사) 입문서로, 2011년 빌 게이츠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설립된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의 핵심 강의 시리즈를 묶은 것이다. 데이비드 크리스천이 처음 고안한 ‘빅 히스토리’ 개념은 과학과 인문학을 결합시킨 융합학문으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선 인간의 역사를 넘어 우주 전체의 역사를 바라볼 것을 강조한다. 책은 빅뱅에서부터 별의 탄생, 태양계와 지구의 탄생, 생명의 기원, 인류의 등장, 문명의 출현, 현대사회로의 발전 등 137억년의 역사를 광범위하게 펼쳐 보여준다. 432쪽. 1만 5000원. 이매진, 초일류들의 뇌 사용법(조나 레러 지음, 김미선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글로벌 기업 P&G의 밀대형 청소용품인 ‘스위퍼’는 먼지를 손쉽게 닦아내는 혁신적 기술로 주부들의 열렬한 환호를 이끌어냈다. 이런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을까. 한 할머니가 부엌 바닥에 쏟은 커피 가루를 빗자루로 쓸어낸 뒤 종이 행주를 물에 적셔 커피 알갱이 한 알까지 깨끗이 닦아내는 장면에서 착안했다. 창의성은 이처럼 우리가 날마다 하는 일을 다른 방법으로 생각해낼 때 발현된다. 이 책은 밥 딜런, 3M, 픽사 등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개인과 집단의 창의성이 어떻게 발휘되는지를 면밀히 추적함으로써 창의적 재능이 몇몇 예외적인 인물에게만 있다는 선입견을 깨뜨린다. 328쪽. 1만 6000원. 인디고 서원에서 정의로운 책읽기(인디고 서원 엮음, 궁리 펴냄) 학업에 치여 책조차 마음대로 읽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전문가나 어른의 시각이 아닌 또래의 눈높이로 선정한 독서 길라잡이다. 부산에 있는 청소년인문학서점 ‘인디고 서원’의 아이들이 다양한 책을 읽으며 기록해 두었던 좋은 책들의 목록과 현실을 향해 던지는 질문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삶이 지루한 친구들에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궁금한 친구들에게는 ‘노인과 바다’를, 경쟁이 지긋지긋한 친구들에게는 ‘이타주의자가 지배한다’를 추천하는 등 상황과 관심사에 따른 맞춤형 책 80여권을 소개한다. 368쪽. 1만 5000원.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2) 종로(상)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2) 종로(상)

    ■ 늙은 종가 며느리 같지만 위풍 여전… 우리에게 종로는 무엇인가. 불과 30년 전만 해도 ‘종로는 서울이고, 서울은 종로’라는 말에 토를 달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인구 2500만 명이 드나드는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의 중심도시로 급팽창한 서울의 중심이 더는 종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종로는 600년 가까이 서울 유일의 도심이었지만 지금은 여러 도심 중 하나로 ‘내려’ 왔다. 강홍빈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종로는 번성하던 문중을 지키며 늙어가는 종갓집 며느리 같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보신각 타종행사는 여전히 서울의 중심이 종로라고 외치는 듯하다”라고 종로의 흥망성쇠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다. 비록 사람이 구름처럼 모인다는 운종가(雲從街)의 기세는 한풀 꺾였지만 종로는 여전히 한민족의 핏줄에 새겨진 대표거리이다. 광화문~숭례문까지 남북축선이 정치적 중심이라면, 광화문~동대문까지 동서축선을 이루는 종로는 생활의 중심이었다. 도성의 하루를 열고 닫는 종루(보신각)와 팔도의 물자가 모이는 시전행랑(市廛行廊)이 그 중심에 있었다. 수많은 것이 스쳐 지나가고 땅속에 묻혔지만, 종로에는 조선 초부터 지금까지 600년 가까이 서울을 지키는 ‘다섯 가지’가 건재하다. 종각과 종묘, 원각사지 10층 석탑과 흥인지문(동대문) 그리고 시장이 그것이다. 개항 이후 종로의 변천사를 짚어보자. 보신각 종소리에 따라 성문 여닫는 제도는 1908년 폐지됐다. 1899년 5월 전차가 개통돼 성문 안으로 전차가 드나들면서 문을 여닫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1900년 4월 전기 가로등 3개가 종로의 밤거리를 대낮처럼 밝힌 이후 가장 아름답고, 활기차고, 제일 좋은 상점과 시장이 있는 곳으로 군림했다. 1931년 지금의 종로타워 자리에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현대식 백화점 화신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장안의 모던(Modern)보이와 자유부인은 화신에서 쇼핑하고, 르네쌍스 다방에서 클래식음악 감상하고, 단성사에서 영화 보고, 청일집에서 대폿잔을 기울이면서 담론을 즐겼다. 대중문화의 본거지였다. 주단 거리, 양복점 거리, 서점·출판사·학원, 포목점, 귀금속 상점의 성쇠가 거듭됐다. 육의전(명주·종이·어물·모시·비단·무명)의 명맥이 살아있었다. 근래 들어 국내 최대의 귀금속거리로 우뚝 서게 된 데에는 배경이 있다. 종로4가 예지동은 예로부터 돌이나 옥을 다듬는 공인들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석수방골, 옥방골로 불리던 곳이었다. 6·25전쟁 이후 단성사와 종묘 뒤편을 중심으로 시계노점상이 한 곳 두 곳 모이기 시작하더니 자연스럽게 세공업소와 귀금속 상가, 공방이 상권을 형성했다. 1980년 한국귀금속보석기술협회의 봉익동 이전은 영역확대의 신호탄이었다. 종로의 풍경은 귀금속의 메카로 바뀌었다. 서울YMCA는 1903년부터 종로의 터줏대감이었다. 이 땅에 시민사회운동과 사회체육의 씨앗을 뿌렸다. 종로서적은 1963년 문을 연 이래 2002년 문을 닫을 때까지 출판문화의 대명사였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종로서적 앞’은 젊은이들의 대표적인 약속장소였다. 종로는 학원 일번지이기도 했다. 경복학원, 대성학원, 양영학원, 신성학원, 금자탑학원, 종로학원, 정일학원, YMCA학원, 제일학원 등이 학생들을 불러모았다. 탑골공원은 연산군 때 폐사된 원각사 터에 조성됐다. 1895년 고종이 황실음악연주회장으로 팔각정을 짓기 전까지 원각사지 10층 석탑과 원각사비는 민가 안에 방치돼 있었다. 1919년 3·1 독립선언문이 낭독돼 민족운동의 성지가 되었지만 원각사 백탑은 또 유리집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종로라는 길 이름을 낳은 종루는 탑골공원 옆 인사동 입구에 있었다. 태종(1413년)이 한양의 동서대문을 연결하는 종로와 광통교~남대문이 만나는 곳에 누각을 세우고 큰 종을 달았다. 오늘날 종로 네거리 한가운데이자 사대문 한복판이다. 종을 쳐서 도성문을 여닫고 통행금지(人定)와 해제(罷漏)를 알렸다. 보신각(普信閣)이 된 것은 1885년 고종이 중건하면서 사액을 내린 데서 이름 붙여졌다. 종루는 모두 3번 불타고, 8번 다시 짓고 옮기는 수난을 겪었다. 지금의 종은 ‘보신각종이 수명을 다했다’는 1984년 1월 15일자 서울신문 보도가 나가자 거국적인 국민성금운동이 벌어진 끝에 8억 원의 성금을 거둬 만든 새 종이다. 종로(鐘路)인가 종로(鍾路)인가. 종로의 한자표기를 놓고 한바탕 혼선이 일었다. 쇠 북 종(鍾)인가 아니면 (술을 담는) 쇠그릇 종(鐘)인가의 논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옳다. 강희자전을 보면 ‘고이자 통용’(古二字通用)이라 하여 서로 통용되었다고 풀이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혼용해 썼다. 일제강점기인 1943년 종로구 표기를 ‘종로구’(鍾路區)라고 표기하면서 쇠 북 종으로 굳어졌을 뿐이다. 쇠 북 종이면 어떻고 쇠그릇 종이면 또 어떤가. 종로는 그만큼 이중적이고 역설적인 곳이다. 모든 이질적인 것을 녹여버리는 용광로 같은 곳이다. 1953년부터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이 울리면서 한국의 새해는 보신각에서 맞는 세밑풍속도가 생겼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타종행사가 계속되는 한 종로의 흥행은 이어질 것이다. ■ 지금의 삼성전자 같았던 화신백화점 화신백화점은 1930~50년대의 삼성전자였고, 박흥식은 당대의 이병철이었다. 화신은 식민시기 서울의 신화요, 대표 브랜드였다. 1937년 신축한 지하 1층 지상 6층의 화신백화점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첨단빌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엘리베이터와 옥상 전광뉴스판이 설치됐다. ‘화신 가서 엘리베이터 타고 6층 식당의 비빔밥을 먹은 것’이 화젯거리였다. 6·25전쟁 이후 지금의 SC제일은행 자리에 신신백화점을 추가로 지어 전성기를 누렸다. 풍운아 박흥식을 빼고 화신백화점을 이야기할 수 없다. 계열사 흥한화섬의 자금난으로 부도가 나 1980년 그룹이 해체됐고, 1987년 백화점도 철거됐다. 이후 바람처럼 사라져버려 한때 그의 이름이 인명록에서 빠진 적도 있었다. 지금도 포털에서 ‘박흥식’을 치면 동명의 프로야구 선수와 비슷한 비중의 인사로 취급받지만, 그를 제외하고 일제강점기를 거론할 수 없다. 본정통(충무로)에 있던 미쓰코시(신세계백화점), 조지아(옛 미도파백화점) 등 일본계 4개 백화점을 따돌리고 조선 최대의 백화점, 백화점 왕으로 군림한 식민지 조선의 자랑이었다. 상품권을 발행하고, 재고정리, 할인행사, 주택을 내건 경품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전국 350여 곳의 화신 연쇄점이 화신 왕국의 수족이었다. 해방 후 반민특위는 친일부역인사 1호로 박흥식을 체포해 구속했다. 풀려난 것도 1호였다. 법원은 “일제하에서 겨레의 상권을 수호했고 한민족의 긍지와 명예를 떨쳤다”라며 무죄를 언도했다. 1961년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구속됐다가 풀려나면서 제출한 ‘남서울 신도시계획안’은 10년 후 강남개발의 모델이 되었다. 오늘의 강남지역 2410만 평에 11년간 270억 원을 들여 32만~48만 명을 거주케 한다는 엄청난 프로젝트였다. 친일기업가에 특혜를 준다는 여론을 의식한 정권이 등을 돌리면서 박흥식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구설수도 끊이지 않았다. 당시 화신백화점 선전 노랫말에는 ‘종로 십자가 봄바람 부는데 웃음꽃 피는 화신의 전당/안으로는 융화 밖으로는 신용 그 이름도 아름답다 화신이여’라고 하여 ‘융화’의 ‘화’ 자와 ‘신용’의 ‘신’ 자를 따서 작명한 것처럼 홍보했다. 일부에서는 친일사업가 박흥식이 일본의 정신을 상징하는 화(和)자에 믿을 신(信)자를 덧붙여 ‘일본을 믿는다’는 뜻으로 백화점 이름을 작명했다고 몰아붙였다. 백화점 외벽에 초대형 ‘和’ 자를 새긴 것도 시비 삼았다. 일본의 건국정신이 대화혼(大和魂)이고 ‘일본’이라는 나라이름이 야마토(大和)의 한자표기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사진으로 남아있는 화신백화점의 모태가 된 ‘화신상회’라는 간판으로 미뤄볼 때 박흥식이 1931년 화신상회를 인수하면서 그 이름을 딴 것이 확실해 보인다. 화신백화점 자리를 화신그룹의 뒤를 이은 국내 최대 재벌 삼성이 인수해 종로타워를 지은 것도 흥미롭다. 이 나라 최고의 요지를 탐내지 않을 회사가 있겠냐마는 두 회사의 소유권 이전은 우연이라고 치기엔 공교롭다. 다만 ‘종로의 전설’ 화신백화점 자리에 백화점이 아닌 오피스빌딩을 지어 종로상권의 위축을 불렀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 건축가 라파엘 비뉼리가 설계한 종로타워는 ‘화신백화점의 역사와 종로의 도시적 맥락을 무시했다’(영남대 이우종 교수), ‘도시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혼자 군림하는 건물’(건축가 우대성)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광복 이후 지어진 최악의 건물 3위에 올랐다. 정체성 불명의 구멍 뚫린 건물이 종로의 전통과 풍광을 괴이쩍게 만들었다. joo@seoul.co.kr
  • “인문학을 경제활성화 도구로 전락시켜 위기 심화”

    “인문학을 경제활성화 도구로 전락시켜 위기 심화”

    가히 인문학 전성 시대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대상의 고가(高價) 강좌부터 동네 주민을 위한 구청의 무료 강좌까지 시중엔 인문학 대중 강의가 넘쳐나고, 서점에는 분야와 상관없이 ‘인문학’을 제목에 내건 책들이 즐비하다. 대통령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인문학을 강조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인문학 열풍은 있으되 인문학의 위기는 더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학계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문학평론가 오창은(43)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는 저서 ‘절망의 인문학’(이매진)에서 이런 불균형적이고 왜곡된 인문학의 현실을 낱낱이 파헤친다. 책은 오 교수가 2001년부터 12년간 인문학 현장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내부 고발 목소리를 담아 쓴 현장 보고서 성격을 띠고 있다. 그는 “대학원생 때 무크지 ‘모색’을 창간해 사회 현실과 거리를 둔 인문학 연구를 비판하면서 문제의식이 싹텄고, 이후 비정규직 시간강사 시절 지행네트워크를 구성해 실천 인문학 관련 활동을 하면서 고민이 깊어졌다”면서 “특히 수년간 교도소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절감했던 인문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공론화하고 싶었다”고 책을 쓰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오 교수는 위기에 처한 한국 인문학의 현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판한다. 인문학 열풍의 이면에는 인문학을 경제활성화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자기계발서를 대체하는 교양 상품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부가 창조경제의 원동력으로 인문학을 강조하는 것도 인문학을 본연의 가치가 아닌 경제적 효용에 한정하는 근시안적 태도”라면서 “정치권력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건 좋지만 이는 경제적 이익이 아닌 학문의 자유를 위한 진흥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문학의 산실인 대학 내부에도 메스를 들이댄다. 취업률에 따라 학과가 통폐합되고, 실용수업이 교양 교육을 대체하는 현실에서 인문학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전문성을 찾기 힘든 대학원 시스템은 학생들을 해외로 눈돌리게 하고, 시간강사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는 인문학의 토대를 약화시켰다. 오 교수는 성장주의와 양적 팽창을 부추기는 한국연구재단의 편협한 학문 지원 체계도 인문학의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절망(絶望)은 희망의 반대말이지만, 절망(切望)은 간절한 희망을 의미한다. 책 제목은 두 가지 뜻을 모두 품고 있다. 상품과 도구로 전락한 인문학을 신랄하게 고발하면서도 인문학의 본령을 지키려는 ‘희망의 인문학’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오 교수는 “인문학 위기의 해법은 결국 대학에서 찾아야 한다”면서 대학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인문학의 가치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라면서 “인문학 강의를 혼자 듣는 데서 그치지 말고 동료를 만들어 같이 읽고 적극 토론하라”고 권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이름값 하면… 그랜저, 신라면, 파리바게뜨

    이름값 하면… 그랜저, 신라면, 파리바게뜨

    한국생산성본부는 국내 197개 브랜드를 대상으로 분석한 올해 국가브랜드경쟁력지수(NBCI)는 67.5점으로, 경기 침체 탓에 지난해(67.8점)보다 0.3점(0.4%)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10일 밝혔다. 올해 NBCI 발표 10주년을 맞은 가운데 제조업에서는 쏘나타, 래미안, 휘센 등이 10년 연속 산업별 1위를 유지했다. 서비스업에서는 롯데백화점, 삼성생명, 국민은행 등이 10년 선두의 영광을 차지했다. 올해 조사에서는 그랜저, 신라면, 파리바게뜨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2년 처음 조사 대상에 편입된 파리바게뜨는 올해에도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인정받았다. 총 56개 산업군 중 태블릿PC, 에어컨, 멀티플렉스영화관, TV홈쇼핑 등 15개 산업군의 NBCI가 상승했다. 하지만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제조업 NBCI 전체 평균은 전년 대비 0.5점 하락했다. 반면 서비스업 NBCI 평균은 0.1점 상승했다. 특히 김치냉장고의 대표 브랜드였던 딤채가 2위로 밀려났고, 카스가 새로운 맥주 넘버원 브랜드로 성장했다. 편의점업에서는 씨유(CU)가, 인터넷서점에서는 예스24가 1위 브랜드로 올라섰다. 생산성본부 관계자는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위축은 기업의 성과를 축소시키고, 이는 마케팅 예산 및 투자의 축소로 이어진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현재 고객이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경운 기자 kkwoon@seoul.co.kr
  • 김정은 발언집 중국서 출간

    중국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담화(談話·발언)가 책으로 출간됐다. 10일 관영 통신사인 중국신문사 등에 따르면 출판사 단둥(丹東)룽산(龍山)인쇄창은 김 제1위원장의 담화인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요구에 맞게 국토관리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오자’를 단행본 형태로 번역, 출간했다. 북한에서 ‘노작’(作)으로 불리는 이 담화는 김 제1위원장이 지난해 4월 당, 국가경제기관, 근로단체 책임 일꾼들을 모아 놓고 발표한 것으로 평양시를 화려하고 웅장한 세계적인 도시로 꾸미는 등 국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나가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에서 김 제1위원장의 저작이 번역 출간된 것은 처음이다. 이 책은 극히 소량만 인쇄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국의 일반적인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는 구입할 수 없다. 중국 언론들은 전에도 김 제1위원장의 책 출간 소식을 보도한 바 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당신의 책]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알베르토 망겔·자니 과달루피 지음, 최애리 옮김, 궁리 펴냄) 엄청난 독서가가 아니라면 기획 자체를 엄두조차 내지 못할 ‘무시무시한’ 저술이라는 사실을 일러둬야 할 책이다. 저자는 서점 점원으로 일하던 중 눈이 보이지 않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위해 책을 읽어주다 내처 독서가이자 작가로 변신한 알베르토 망겔. 그가 이탈리아 최고의 여행작가 자니 과달루피와 함께 만든 책은 문학 등 예술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곳’들을 담고 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세계에 대한 온갖 정보를 담은, 지도에 없는 지리백과사전인 셈이다. 760여개 작품에 나오는 1300여곳의 상상 속 장소를 사전 형태로 실었다. 1256쪽. 6만 5000원. 르네상스(폴 존슨 지음, 한은경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지식인의 두 얼굴’ ‘기독교의 역사’ 등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저명 역사 저술가인 폴 존슨이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정보와 통찰을 담았다. 방대한 역사적 자료와 인물, 작품 해설 등으로 채워져 있어 예술 미학서로서도 손색없다. 중세 후기 누적된 부의 집중 현상과 인쇄업의 발달로 대표되는 기술적 혁명이 르네상스 시대를 불렀다고 전제하고, 그 시대의 문학과 학문, 조각, 건축, 회화 등을 영역별로 나눠 당대 작가들과 작품들을 면밀히 분석한다. 단테, 보카치오, 페트라르카, 초서, 에라스무스 등으로 이어지는 르네상스 문학 발전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건축 부문도 집중 조명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 등 주요 건축물들의 탄생 과정이 두루 조망된다. 264쪽. 1만 2000원. 스티븐 호킹(키티 퍼거슨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펴냄) 영국의 천재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71)의 삶과 연구 성과를 입체적으로 조망했다. 과학저술가인 저자가 1991년 출간한 책의 확대 개정판. 호킹의 저서 ‘호두껍질 속의 우주’의 원고 편집에 관여했을 정도로 호킹과 인연이 깊은 지은이는 천재 학자의 유연한 학문적 태도에 주목했다. 예컨대 블랙홀은 크기가 절대로 작아질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서 다시 작아질 수도 있으며 심지어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고 나중에 주장을 바꾸기도 했다. 호킹의 일대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현대물리학의 발전사도 짚게 된다. ‘정상 우주론’에서 ‘빅뱅 우주론’으로 넘어가는 과학 혁명, 빅뱅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제기된 인플레이션 우주 모형의 발전 과정, 최근 호킹이 선호하는 ‘영원한 인플레이션’까지 일목요연하게 파악해볼 수 있다. 504쪽. 2만 2000원. 종교 너머, 아하!(오강남·성소은 엮음, 판미동 펴냄) 지난해 종교 간, 종교인·비종교인 간 소통과 이해를 목적으로 출범한 ‘종교 너머 아하’가 창립 1주년을 맞아 기획한 책. 다원화 시대, 소통 막힌 종교를 연결하는 다리역할을 자처해온 이 단체의 회원 10명이 쓴 글을 엮었다. 종교 전반에 관해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네 편의 글과, 새 시대의 필요에 의해 변화가능한 개별 종교의 대안에 천착한 글 여섯 편 모음. 각자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종교의 궁극적 역할을 고민하면서 인간과 삶에 맞닿은 진정한 의미의 종교를 공통적으로 제안한다. 자기중심적 표층종교를 지양하자는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작은 교회’의 가능성에 주목한 김진호 목사(제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헌신과 봉사에서 신앙의 의미를 찾는 박충구 감리교신학대 교수의 글이 들어 있다. 252쪽. 1만 3000원.
  • 읽어봤니, 그 영화

    읽어봤니, 그 영화

    ‘7번 방의 선물’과 ‘퍼시픽 림’, ‘감기’, ‘숨바꼭질’의 공통점은 뭘까. 올해의 흥행 영화? 그렇다면 여기에 ‘연가시’와 ‘광해’, ‘써니’, ‘피에타’를 더해 보면 어떨까. ‘오싹한 연애’와 ‘레드 라이딩 후드’, ‘초능력자’는? 정답은 ‘노벨라이제이션’(novelization), 즉 영화를 원작으로 소설이 탄생한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영화와 소설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소설의 영화화를 넘어 영화의 소설화도 늘어나고 있다. 당장 개봉을 앞둔 영화들만 해도 송강호 주연의 ‘관상’, 김강우·김효진 주연의 ‘결혼전야’, 현빈 주연의 ‘역린’ 등이 소설을 내놓을 예정이다. 게다가 노벨라이제이션의 세계는 꾸준히 진화 중이다.영화계와 출판계에서 꼽는 영화 소설 출간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홍보 효과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따로 광고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책 소개가 되고, 영화사 입장에서는 대형 서점에 깔린 책들을 통해 영화를 홍보하는 효과를 누린다. 두 번째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하나의 소스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서운 이야기2’를 제작한 수필름의 민진수 대표는 “영화는 오랜 기간 많은 노력을 들여 만들어지는 데 비해 개봉 기간은 길게는 한 달, 짧게는 2주 정도로 무척 짧다”면서 “소비 주기가 빨라 아쉬움이 큰데 소설을 통해 더 많은 관객을 만나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퍼시픽 림’을 소설로 펴낸 황금가지의 김준혁 편집장은 “출판 시장이 불황을 맞으면서 출판사의 자생력이 갈수록 약해지다 보니 홍보 비용을 부담하기도 쉽지 않다”면서 “문학보다 매체력이 강한 영화의 소설화는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소설화가 늘어나면서 노벨라이제이션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와 출판사도 생겼다. 무협과 판타지 소설 작가 등이 의기투합한 창작 모임 ‘박이정’이 대표적인 경우다. 2010년 ‘해결사’로 시작해 ‘쩨쩨한 로맨스’나 ‘반창꼬’ 같은 영화는 물론 ‘응답하라 1997’ 같은 드라마도 소설로 펴냈다. 출판사 중에서는 ‘가연 컬처 클래식’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 가연이 독보적이다. 소설의 판매량은 일반적으로 영화의 흥행 정도와 비례한다. 3만 5000부가 팔린 걷는나무의 ‘광해’는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대박을 친 사례다. 가연의 ‘7번 방의 선물’도 1만 5000부가 팔리며 성공했다. 그러나 변수도 적지 않다. 박재범이 출연한 ‘Mr. 아이돌’은 박재범의 팬층을 겨냥했지만 정작 팬들은 소설 대신 OST 시장에 몰렸다. ‘퍼시픽 림’은 출판사의 예상보다 영화 관객(253만명)이 적게 들면서 소설 판매량도 5000부에 그쳤다. 반면 ‘레드 라이딩 후드’는 영화 관객은 36만명에 그쳤지만 소설은 1만부가 팔렸다. 김준혁 편집장은 “‘레드 라이딩 후드’는 영화에 반전이 있어 결말 부분은 빼고 소설이 출간됐는데 오히려 그런 부분이 독자들에게 열린 결말로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사례”라면서 “각종 변수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벨라이제이션은 상당히 위험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걷는나무의 주정림 편집장은 “표지와 띠지에 배우의 얼굴이 들어가느냐 마느냐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면서 “‘광해’를 마케팅할 때도 일부러 이병헌의 얼굴이 들어간 엽서를 사은품으로 증정했다”고 설명했다. 책에 따라 다르지만 영화 소설의 작업 기간은 보통 한 달 정도로 짧다. 출판사가 정해지면 기획에 1주, 집필에 2~3주, 제작에 1주 정도가 걸린다. 출간 시기를 놓고는 출판사와 영화사의 입장이 미묘하게 갈린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개봉 한 달 전쯤 출간해 영화의 홍보 효과를 업고 가는 것이 최선이지만 영화사는 결말이 알려지면서 김이 샐 것을 우려해 개봉 일자에 맞추기를 희망한다. ‘숨바꼭질’처럼 반전이 중요한 영화는 더욱 그렇다. 경험이 쌓이면서 노벨라이제이션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로커스상 수상 작가인 알렉스 어빈이 ‘퍼시픽 림’의 소설을 집필한 것처럼 미국 등 해외에서는 전문 작가의 역량을 더욱 강화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출판사는 영화보다 더 재밌는 소설, 일반 소설만큼 작품성을 갖춘 소설을 추구한다. 가연의 김성룡 대표는 “‘연가시’는 작가가 기생충학을 공부하면서 썼고, ‘블라인드’는 영화와는 달리 주인공과 살인자 등의 시점을 번갈아 가며 썼다”면서 “외국 영화 소설과 달리 국내 영화 소설은 무조건 낮춰 보는 경향이 강해서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한 달에 그치는 작업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내년 개봉 예정인 ‘역린’은 지난 4월 일찌감치 소설화 논의에 들어갔고, 11월 개봉 예정인 ‘결혼전야’는 지난 7월부터 집필을 시작했다. 정유정 작가의 ‘28’을 펴낸 은행나무와 ‘결혼전야’를 작업 중인 민진수 대표는 “단순히 마케팅에 그치는 게 절대 아니다. 감동과 재미가 있는 독립적인 소설을 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룡 대표의 말은 출판사가 추구하는 노벨라이제이션의 미래를 잘 보여 준다. “아, 까놓고 말해서 솔직히 영화보다 소설이 더 재밌다니까요.”(웃음)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규슈에서 걷는 올레길

    규슈에서 걷는 올레길

    ‘집 대문에서 마을길까지 이어지는 아주 좁은 골목’을 뜻하는 올레. 제주의 올레길이 단순한 길이 아니듯이 규슈의 올레도 길 이상의 것을 담고 있었다. 규슈 올레란? 사단법인 제주 올레와 규슈 운수국, 규슈 관광추진기구가 협정을 맺어 규슈의 매력적인 걷는 길을 ‘규슈 올레’로 선정하였다. 현재 총 길이 106.4km에 이르는 8개의 코스가 운영되고 있다. 규슈 올레 걷기 TIP 길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파란색과 붉은색 리본, 나무 화살표, 간세(제주 조랑말을 형상화한 모양)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파란색과 붉은색 리본은 나뭇가지 등에, 나무 화살표는 길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데 파란색 화살표가 정방향, 붉은색 화살표는 역방향을 뜻한다. 출발과 도착 지점, 관광 명소에 배치되어 있는 간세를 만나면 머리가 향한 방향으로 나아가자. 숲의 정령이 함께하는 다케오 올레 코스 규슈 사가현에 위치한 다케오는 나지막한 산 속에 자리잡고 있다. 1,300년 이상 된 온천과 400년을 이어 온 도자기 공방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라 해서 지루할 것이라 생각하면 금물. 30대 후반의 히와타시 게이스케 시장이 부임하면서 공격적인 행정을 펼쳐 젊은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다케오 올레 코스는 다케오 온천역에서부터 시작된다. 후쿠오카 국제공항에서 JR로 1시간 1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다. 제8회 규슈역 도시락 대회에서 1등을 한 ‘사가규 스키야키 벤토’를 가방에 넣고 나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길의 끝에 온천이 있다는 희망에 발걸음도 가볍다. 평일 차분한 도시의 아스팔트 길을 따라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지막한 산의 입구에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산길이라고 하나 잘 정비되어 있어 발걸음이 무겁진 않다. 조금 힘이 든다 싶을 때마다 쉼터가 나와 주어 평화로운 다케오를 감상하며 땀을 식힐 수 있다. 대나무가 병풍이 되어 길을 안내해 주고, 시원한 바람에 조용히 몸을 흔들어 사각사각 소리를 더해 준다. 시원한 녹색에 눈이 편안해지고 대나무의 응원에 귀마저도 안락해진다. 물 한 모금이 필요할 때 즈음 기묘지 절이 나타난다. 친절하게도 한 아주머니께서 녹차를 대접해 주신다. 주위를 둘러보니 빨간 모자를 쓴 조그만 석상들이 가득하다. 세상에 태어나 보지 못한 애기들을 위해 석상을 세우고 추울까 봐 빨간 모자와 이불을 덮어 준 것이라고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도룡뇽과 반딧불 사가현 현립 우주과학관까지 내달렸다. A, B코스 분기점 푯말이 나타난다. 안내 팸플릿을 보니 A코스가 ‘상급자’를 위한 길이다. 마음 같아선 ‘일반’ 코스인 B코스로 유유히 걸어가고 싶지만 몸은 이미 A코스를 걷고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오기가 발동한 까닭이다. 조금 걷다 보니 필자의 선택을 환영하는 도룡뇽 한 마리가 나타났다. 맑은 물이 흘러야만 산다는 도룡뇽을 보니 청정지역이 분명하다. 평소보다 한숨한숨 깊게 들이쉬고 내쉰다. 길에 집중하려는 찰나 ‘반딧불의 못’이라는 작은 연못 하나가 눈앞에 펼쳐진다. 밤 늦게 다시 찾아와 반딧불이 그려내는 빛의 선을 눈에 담고 싶지만 일정상 그러하지 못함이 아쉽기만 하다. 아쉬움이 가시기도 전에 곧 바로 거대한 삼나무가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됨을 알려준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삼나무의 위용에 가던 길을 멈추고 그 끝을 바라본다. 삼나무의 높이만큼이나 다케오 코스도 태고의 코스로 접어든다. 삼나무 길 다음엔 본격적인 오르막 코스가 시작된다. 약 100m 정도를 거의 수직으로 오르게 되는데 상급자 코스의 클라이맥스다. 턱밑까지 숨이 차 오른 바로 그 순간, 다케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정상이 나타난다. 다케오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는 미후네야마를 왼편으로 작고 정겨운 도시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장마철로 접어드는 시즌이라 청명한 하늘을 볼 수는 없었지만 고된 산행 뒤 정상에서만 누릴 수 있는 시원한 바람과 멋진 풍경만으로도 올레길은 충분히 즐거워진다. 다케오 코스의 상급자 코스를 정복했다고 자만할 때쯤 다시 수직에 가까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제주 올레팀의 지적에 따라 다케오시는 편한 길을 새로 내어 둘러갈 수 있게 했고 로프도 설치해 두었다. 수령 3,000년의 녹나무 이제 다케오 코스의 정점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힘을 실어 본다. 다케오 시립도서관과 다케오 신사의 큰 녹나무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다케오 코스의 진수 중 하나다. 사전적 의미의 ‘길’로서만 평가하라면 감히 ‘최고’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좋은 길이란 비단 길로서의 조건뿐만 아니라 길 위에서 사람과 소통하고 역사와 문화에 흡수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케오 시민의 열망을 담아 일본 제1의 도서관으로 재탄생한 시립도서관과 3,000년의 역사를 가진 큰 녹나무를 볼 수 있는 이 코스는 감히 최고의 길이라 불릴 만하다. 다케오 시립도서관은 기존 도서관을 리모델링하여 시민의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일본 소프트웨어 렌탈 업체인 ‘츠타야’와 함께 도서관과 서점의 개념을 융합해 운영하고 있다. 하얀 패널의 책장에는 판매용 책들을, 검은 패널 책장에는 대여용 책들을 비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립 도서관 최초로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으니 올레꾼들에겐 흡족한 쉼터가 되어 줄 것이다. 다케오 신사로 들어서니 세월의 흔적이 짙게 밴 토리이鳥居가 굳건히 서 있다. 신사를 지나 녹나무를 대면하려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른쪽엔 대나무, 왼쪽엔 삼나무가 곧게 서 있다. 그 길 끝에 3,000여 년을 버텨 온 녹나무가 그 웅장함을 드러낸다. 일본인들에게 녹나무는 영험함이 서린 ‘신물’과 같은 존재다. 모두 한순간 말을 잊는다. 순간 여행객 중 한 명의 독백이 들려왔다. “비워야 견디는구나.” 다케오 시청을 지나 자리한 온천 마을에는 1,300년 동안 이어 온 유서 깊은 온천들이 가득하다. 온천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사쿠라야마 공원에서 온천 마을을 내려다본다. 크게 힘들지 않은 길을 천천히 돌아나오면 다케오 올레길의 종착점인 다케오 온천 로몬이 나오는데 이 건물 안에 온천 박물관도 개방되어 있으니 과거 온천탕은 어땠는지 궁금하다면 들러 봄 직하다. 초원 너머 숲속으로 히라도 올레 코스 히라도는 규슈의 7개의 현 중 나가사키현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1,500년 전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상교역을 시작한 곳으로 ‘니시노미야코’ 즉, 서쪽의 도읍이라 불릴 만큼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번성하였다. 도시 곳곳에 네덜란드의 흔적이 고스란히 잘 보존되어 있어 올레를 걸으며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진홍색의 히라도 대교는 이 다리를 건너면 히라도가 시작되니 엄연히 히라도의 관문이라 하겠다. 희뿌연 하늘이 불안 불안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고 잘 정비된 마을을 빠져나와 사이쿄지 절을 지나 마을 이곳저곳을 걷다 보면 어느새 좁다란 숲길이 시작된다. 숲길이 끝났다 싶을 때 초록빛의 이끼가 비단처럼 깔린 길이 나타난다. 양탄자 위를 걷듯이 푹신푹신한 느낌에 절로 신이 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찍는 여행에서 걷는 여행으로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히라도 코스의 절정인 ‘가와치토우게’ 초원이 펼쳐진다. 언덕 위에서 보는 풍경이 궁금하여 한달음에 내달리고 싶지만 아직 걸어야 할 길이 10km 이상 남았다. 단시간 내 많은 것을 봐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래에서 목을 축인 후 언덕 위에 오르니 과연 절정이라 불릴 만한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를 건너 언덕을 타고 온 바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얼마나 서 있었을까. 한참을 앞서간 일행의 뒷모습이 손톱만하다. 서둘러 언덕을 내려와 다시 숲으로 몸을 숨긴다. 이 숲길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길이라고 하기엔 어설퍼 보인다. 몇몇 곳은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나무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고르다 보니 어느샌가 마을로 들어섰다. 잘 정비된 아카사카 야구장을 지나고 아스팔트길이 시작된다. 자연과 잘 어우러진 마을은 평온하기 그지없고 혹시나 꼬여 있는 리본을 누군가 보지 못할까 까치발로 고쳐 매는 올레꾼의 정성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멀리서만 보였던 자비에르 기념교회는 멀리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이 교회는 히라도에 가톨릭을 전한 프란시스코 자비에르를 기념하기 위해 1931년에 세워졌다. 교회를 지나 아름다운 담장을 두른 사원으로 향한다. 길만으로도 아름다운 이 사원길 끝에서 반드시 뒤를 돌아보자. 사원의 담장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사원과 자비에르 교회가 묘하게 겹쳐 보인다. 마을을 지나가다 보면 수령 400년 된 거대한 소철나무를 만나게 된다. 에도 시대 초기, 활발한 해외무역이 시작되는 시기에 뿌리를 내려 지금까지 히라도와 함께 성장한 상징적인 나무다. 어느새 히라도 올레길의 종착점인 우데유 아시유 족탕에 도착했다. 무료로 이용 가능하며 방석까지 준비되어 있다. 뜨거운 열기에 금세 피로가 녹아 버린다. 히라도의 역사와 사람냄새 나는 마을, 그리고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올레길이었지만 히라도 어디서나 보인다는 히라도의 상징 ‘히라도 성’이 코스에서 빠진 것은 못내 아쉬웠다. 아쉬워하는 필자를 위해 규슈 관광추진기구 측에서 이키스키섬에 함께 갈 것을 제안했다. 히라도섬과 이키스키섬을 잇는 이키스키 대교를 지나니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이 보이고 사오다와라 절벽 앞에는 기암괴석이 웅장한 위용을 드러낸다.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낸 장대한 예술 작품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바에 등대가 위치하고 있다. 80m의 오바에 절벽에 위치한 이 등대에서 바라보는 전망 또한 일품이다. 시간이 촉박하여 이키스키섬의 멋진 관광명소를 모두 가보진 못했지만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로 천천히 길을 걸으며 해풍을 느낄 수 있는 올레길이 어서 빨리 탄생하길 기대한다. 대자연과 역사 속을 거니는 아마쿠사 올레 코스 아마쿠사는 구마모토현 남서부에 위치해 있다. 아름다운 바다와 여러 개의 섬, 그 섬을 잇는 다양한 다리들, 그리고 이 모두를 감싸 안은 웅장한 산까지 아마쿠사는 대자연이 펼쳐놓은 작품이다. 온난한 기후를 살린 농업과 풍요로운 수산자원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도시다. 머금고 있던 빗물을 쏟아낼 것같이 흐린 날씨다. 구마모토현에 위치한 아마쿠사 올레로 향하는 길은 짧지 않았다. 하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수묵화 같은 절경에 연신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거무스름하고 비옥한 토양이 나오다가, 잘 정돈된 채소밭이 싱그럽게 스친다. 이윽고 고요한 바다가 펼쳐지고 이국적인 장면들이 쉼 없이 연출된다. 코스의 시작점인 치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왜가리 한 마리가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가 쏟아지고 시야가 어두워진다. 강과 바다가 교차하는 치쥬해안길을 따라 거친 돌을 밟아 나간다. 빗소리만이 가득한 길이 어느새 어두운 산 속을 향해 있다. 가파르진 않지만 만만하지도 않다. 우비 속이 뜨거워질 때 즈음 거대한 바위가 산 위에 박혀 있는 ‘센겐노모리다케’에 도착한다. 몸에서도 하얀 열기가, 산에서도 하얀 안개가 피어나고 있다. 현립 아마쿠사 청년의 집. 잘 정비된 캠핑장과 체육 시설이 눈에 띈다. 비를 피해 체육관에서 열심히 수업중인 아이들이 보인다. 수업에 방해될까 가던 길을 다시 재촉했다. 코스는 센간잔으로 이어진다. 아마쿠사 시마바라의 난이 일어났을 때 16세 소년이었던 아마쿠사 시로가 연회을 열고 술잔을 돌렸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아름다운 수국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센간잔에 도착했다. 쏟아지는 비 사이로 렌즈를 만져 보니 나름의 운치가 짙게 배여 나온다. 숲 속에 느긋이 자리잡은 마을들도 멋진 그림이 된다. 센간잔에서 내려와 거대한 돌들의 무덤에 다다른다. 거대한 돌덩이 사이를 간신히 빠져나와 숲길을 걷다 보면 어느샌가 ‘용의 족탕’이 반겨 준다. 아마쿠사 5호 다리를 감상하여 뜨거운 족탕에서 피로를 녹인다. 아마쿠사 코스는 11.1km라는 비교적 짧은 길이지만 편한 길은 아니다. 편하지 않았기에 고통을 느꼈고 고통이 있었기에 ‘내 다리도 꽤 쓸 만하구나’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김기현 취재협조 규슈운수국, 규슈관광추진기구 www.welcomekyushu.or.kr
  • [주말 인사이드] 아직도 클럽가니?… 요즘 홍대앞은 북카페로 ‘북적북적’

    [주말 인사이드] 아직도 클럽가니?… 요즘 홍대앞은 북카페로 ‘북적북적’

    10여년 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설치미술가 이서(38)씨는 오랜만에 귀국해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을 거닐다 깜짝 놀랐다. 수천 권의 장서를 갖춘 쾌적한 분위기의 출판사 직영 북카페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한 달간 머물 숙소를 홍대 근처에 정한 그녀는 요즘 짬날 때마다 홍대 주차장 골목에 있는 문학동네 ‘카페 꼼마’에 간다. 차 한잔 마시며 몇 시간씩 앉아서 책을 읽기에 그만이다. 그는 “파리에도 북카페가 많지만 이렇게 규모가 큰 출판사 북카페는 처음 본다”면서 “서가에 꽂힌 책들을 맘대로 골라 읽을 수 있고, 또 정가보다 싸게 구입할 수도 있어서 유익하다”고 했다. 얼마 전 문을 연 다산북스의 24시간 북카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나나흰)에도 잠 안 오는 밤에 가끔 가볼 생각이라는 그는 “카페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홍대 일대가 출판사 북카페 명소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2011년 3월 후마니타스 출판사의 ‘책다방’과 문학동네의 ‘카페 꼼마’가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이래 문학과지성사의 ‘문지문화원 사이(KAMA)’, 자음과모음의 카페 ‘자음과모음’, 창비 출판사의 ‘인문카페 창비’ 등이 선보였다. 2년 사이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과 합정역, 6호선 상수역을 잇는 서교동과 동교동 주변 삼각형 반경 안에 10여곳이 생겼다. 가장 최근엔 다산북스가 지난 7월 중순 ‘나나흰’을 열며 출판사 북카페 행렬에 가세했다. 홍대 주변에 출판사 북카페가 많은 것은 이 지역에 출판사들이 밀집해 있는 것과 연관이 있다. 출판사들이 사옥 공간을 활용해 임대료 부담 없이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음과모음은 서교동에 사옥을 마련하면서 1층 공간을 북카페로 만들었고, 창비도 서교동 창비빌딩 2층을 카페 겸 문화공간으로 활용했다. 후마니타스는 사옥은 아니지만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편집부 사무실 공간의 절반을 카페로 만들었다. 다산북스는 서교동 사옥에 있던 사무실을 파주출판도시로 옮기면서 다른 공간은 외부 임대를 줬지만 2층은 출판사 직영 북카페로 꾸몄다. 한때 홍대를 비롯해 대학가 일대에서 유행했던 북카페는 비싼 임대료, 책값 구입비 등 비용은 만만치 않은데 혼자 와서 장시간 책을 읽거나 개인 작업을 하는 손님 때문에 수지가 맞지 않아 대부분 문을 닫았다. 하지만 출판사 직영 북카페는 애초 수익을 내기 위한 목적보다 출판사 콘텐츠 홍보와 독자와의 소통을 위한 문화공간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어 상권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구조란 점도 출판사 북카페가 늘어나는 이유로 꼽힌다. 경영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 한 어느 정도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북카페를 직접 운영하는 것이 북 콘서트나 작가와의 만남 등 출판사 행사를 치를 때 매번 장소를 빌리는 것보다 낫고, 북카페 서가에 자사 신간들을 소개하면서 얻는 홍보 효과까지 따지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출판사 북카페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자음과모음의 정은영 주간은 “온라인 서점의 득세로 골목 서점이 없어져 신간을 홍보할 수 있는 오프라인 통로가 사라진 데다 대형 서점의 매대 진열도 돈 주고 사야 하는 현실에서 북카페 서가는 유용한 쇼윈도인 셈”이라고 말했다. 홍대 출판사 북카페 가운데 가장 공격적으로 운영하고, 또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사례는 ‘카페 꼼마’다. 하루 평균 400~500명이 몰리는 인기 카페로 소문나면서 1년 만에 홍대입구역에 2호점을 낼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2층 높이의 15단 책장은 이곳만의 자랑이다. 서가에 꽂힌 장서 7000여권은 전부 문학동네와 계열사에서 발간한 책이다. 장으뜸 ‘카페 꼼마’ 대표는 “신간은 서가에 2개월 동안 전시해 손님들이 맘껏 볼 수 있도록 한 뒤 5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고 말했다. 서점에 출고됐다가 출판사로 반품된 리퍼브(재고·파손) 도서도 반값에 판다. 장 대표는 “한 달에 책 매출만 2000만원 정도 된다”면서 “리퍼브 도서는 출판사의 골칫거리였는데 북카페가 독자와 출판사 모두 윈윈하는 틈새 판매 통로가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자사 도서 6000여권을 전시하고 있는 자음과모음 북카페도 신간 이외의 책을 할인 판매하는데 한 달 평균 1000~1500권의 책이 팔린다. 반면 인문과학서가 중심인 출판사의 북카페들은 책 판매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인문카페 창비’의 경우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한 리퍼브 도서 판매나 할인 제도가 없다. 처음부터 창비 온라인 회원과 계간지 ‘창작과 비평’ 정기 독자를 위한 라운지 성격의 문화공간으로 기획한 만큼 회원에 한해 음료와 도서를 40% 할인해 주고 있다. 후마니타스의 ‘책다방’도 2000여권의 장서를 전시하고 있지만 판매되는 책은 많지 않다. 자사 책들만 전시하는 다른 북카페들과 달리 ‘책다방’은 교환이나 기증 방식으로 타 출판사의 책을 상당수 갖춘 점이 색다르다. 북카페를 운영하는 출판사들은 북콘서트나 작가와의 만남, 시낭송회 등 독자와 만나는 다양한 행사에 북카페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인문카페 창비’는 창비 행사뿐 아니라 시민단체 모임, 인문학 소모임 등 연간 70~80회의 행사를 진행한다. 정지연 매니저는 “출판사로서 이 정도 문화공간은 갖춰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운영하고 있다”면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사람들 마음에 불러일으켜야 책도 잘 팔리지 않겠냐”며 웃었다. ‘카페 꼼마’, ‘자음과모음’ 등도 작가 낭독회 등 한 달에 1~2회 행사를 진행한다. 출판사 북카페의 공통된 특징은 1인 좌석을 넉넉히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컴퓨터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좌석마다 콘센트와 스탠드 조명을 구비한 곳이 대다수고, 무료 인터넷 사용도 기본이다. 카페로서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바리스타를 고용하고, 고품질 원두를 쓰는 등 음료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추세다. 출판사 북카페가 늘면서 차별화를 꾀하려는 노력도 보인다. 후발 주자인 다산북스의 ‘나나흰’은 올빼미 애서가를 위해 ‘24시간 운영’이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꺼냈다. 다산북스 서선행 마케팅팀장은 “처음엔 잘 될까 불안하기도 했는데 의외로 새벽에 카페를 찾는 손님이 적지 않다”면서 “열대야 덕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출판 시장이 어려울수록 독자와의 직접 소통이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카페의 젊은 고객을 출판사의 장기 독자로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집에서 서재가 사라지고, 골목에서 서점이 자취를 감춘 지금 ‘거리의 서재’가 영토를 넓혀 가고 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생활 좌파, 책으로 인생 되새김하다

    생활 좌파, 책으로 인생 되새김하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마 속까지 정치적인’, ‘야성의 사랑학’ 등을 쓴 재불 작가 목수정(44)이 3년 만에 신간 ‘월경(越境)독서’(생각정원)를 냈다. 국경뿐 아니라 도덕, 규범, 관습 등 다양한 유형의 경계를 넘는 삶을 살아온 그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인생의 책들을 되새김한 독서일기다. 한국관광공사, 동숭아트센터 등에서 근무하다 프랑스로 유학 간 그는 스물두살 연상의 예술가 프랑스 남자를 만나 비혼 상태로 아이를 낳았다. 2003년 한국으로 돌아와 국립발레단,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진보신당 당원으로 활동했으며 2008년 다시 월경해 남편, 아이와 함께 파리에서 살고 있다. 여름 휴가차 딸 칼리(8)를 데리고 한국에 와 있는 그를 만났다. “제가 소설가 장정일씨나 서평가 이현우씨처럼 대단한 독서가도 아닌데 처음 출판사의 독서일기 연재 제의를 받았을 땐 망설였어요. 그러다 문득, 이 작업이 새로운 계기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보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과 재회하는, 굉장히 의미 있고 재밌는 시간이었어요.” 목록에는 ‘몽실언니’(권정생), ‘심미적 이성의 탐구’(김우창), ‘이사도라 던컨’자서전, ‘엥겔스 평전’(트리스터럼 헌트), ‘미국민중사’(하워드 진) 등 다양한 분야의 책 17권이 실려 있다. 지난해 6월부터 1년간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글을 연재하면서 파리에서 구할 수 없는 책들은 한국의 지인에게 공수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는 “예전에 읽었을 때의 강렬한 느낌이 남아 있지만 정확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던 책들을 다시 보면서 그때의 감상뿐 아니라 삶의 연륜에서 오는 새로운 깨달음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스무살 때 만난 ‘이사도라 던컨’은 그에게 자유로운 영혼의 춤과 더불어 문화의 공공성에 대한 개념을 심어줬다. 이제 그는 이사도라의 두 아이가 사고로 숨진 센강을 딸과 함께 산책하면서 아이를 잃은 엄마 이사도라의 고통에 가슴 아파한다. 그는 “독자들이 이 책에 들어 있는 목록들을 찾아 읽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예전 가슴을 쿵 울렸던 책들을 찾아 자신만의 독서목록을 뽑으면서 각자 심기일전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문화 영역과 진보 정당 활동을 병행해 온 그에게 누군가는 ‘감성좌파’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는 “삶의 즐거움과 문화적 욕구를 희생하지 않으면서 좌파적 행동을 하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이라면서 “그런 점에선 ‘생활좌파’라는 용어가 더 익숙하다”며 웃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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