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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미경의 사진 산문] ‘온빛’이라는 빛

    [박미경의 사진 산문] ‘온빛’이라는 빛

    노모(老母). 1920년 북녘 외딴 작은 섬에서 태어나 뭍으로 왔으나, 이제 늙고 병들어 홀로 방안에 섬처럼 놓인 어머니. 딸은 구순을 넘긴 이 어머니의 남은 날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보살피면서 자신이 하지 않으면 누구도 기록하지 않을 ‘절박한 다큐멘터리’가 바로 가까이에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사진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사진이 좋아서 늘 일상의 중심에 두고 살아온 그녀였다. 노모를 찍는 동안 어머니와의 정서적 공감이 깊어 갔고, 그렇게 쌓인 사진들은 사진상의 심사를 맡은 여러 사진가에게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온빛사진상’ 최초 수상작인 한설희의 사진 ‘노모’(老母) 이야기다.69세 여성 아마추어 사진가의 작업을 초대 수상작으로 선정함으로써 기존 상의 틀에 환기창을 낸 ‘온빛사진상’은 결성 자체도 전에 없던 신선함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십시일반 자력으로 힘을 모아 제정한 ‘사진가가 주는 사진상’이었기 때문이었다. 2011년 ‘노모’를 시작으로, ‘대중적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의미 있는 스토리를 발굴, 사진으로 기록하여 사회적 소통과 공감을 이루고자 한다’는 취지의 온빛상에 해마다 수많은 응모작이 줄을 이었다. 매해 연말연시면 수상작을 발표하고 전시로 선보이는데, 어느새 사진계의 행사를 넘어 일반인들조차 기다리는 소식과 전시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2018년에는 어떤 사진이 온빛상의 수상작이 됐을까? 일터에서, 학교에서, 동네 골목에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흰 종이를 들고 선 사람들. 올해 온빛사진상 최우수상에 선정된 최우영의 사진 속 풍경이다. ‘이름은 그 사람이 지속적이고 파괴될 수 없는 실체라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리자면 이 사진들은 ‘이름을 지킴으로써 스스로를 지켜 가는 사람들’에 관한 기록인 셈이다. 사진가 최우영은 일본에 계신다고만 들었던 친할아버지가 고향방문단의 일원으로 고국을 방문했을 때, 조부의 실체뿐만 아니라 재일교포들의 실상과도 처음 대면했다. 집안이 연좌제로 고통받아 온 사실도, 일본 법률상 무국적으로 간주되는 조선적(朝鮮籍)을 가진 재일교포들의 현실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어려움에 처한 조선학교의 상황도 알게 됐다. 카메라를 들고 재일교포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고, 올해로 광복 73주년이 됐지만, 지금까지도 치유되지 않은 식민 지배의 상흔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온빛이 그런 최우영의 사진을 선정해 ‘수많은 재일교포가 자신의 국적과 한글 이름을 잊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마음과 작업에 힘을 실어 준 것이다. 이번 온빛사진상에 총 79명이 지원했고, 최우영 등 다섯 명의 수상자가 선정됐다. 신설된 후지 뉴 플랫폼상을 받은 우해미의 ‘분홍 옷 입은 엄마’를 비롯해 권학봉의 ‘로힝야 난민캠프, 1년 후’, 박창환의 ‘동물원’, 신락선의 ‘프레임프레임588’까지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의 한계를 넘어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형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온빛의 확장성이 드러나 보이는 수상작들이다. ‘따듯한 빛’이라는 이름 뜻대로, 연말연시를 온기로 밝히는 온빛상. 1월 전시와 더불어 2019년에는 또 어떤 사진들을 만나게 될지 새해가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다.
  • [팩트체크]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통과…소주 ‘원샷’ 시킨 최 팀장의 운명은

    [팩트체크]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통과…소주 ‘원샷’ 시킨 최 팀장의 운명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톺아보기정서적 고통은 제외…개념 혼란사장에게만 신고, 프리랜서는 제외폴란드 ‘직업 적합성 재고하게 하는 행위’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지난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연말에도 괴로운 회사 생활을 이어가던 직장인들에게 반가운 소식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지금껏 논란이 이어지다가 막바지 간신히 여야 합의를 이뤘습니다.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이 법을 공포하면 6개월 뒤부터 시행됩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뜯어보려 합니다. 주말에도 전화하는 김 부장, 회식 자리마다 먹기 싫은 술을 강권하는 최 팀장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Q.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A. 이번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란 근로기준법 개정안,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 두 건을 함께 부르는 말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정의 규정을 법에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핵심입니다.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 정의입니다. 산재보상보험법에선 업무상 질병 항목에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발생한 질병’도 추가했습니다. 한마디로 상사가 괴롭혀서 발생한 스트레스도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Q. 개념이 모호하다고 논란이 됐다면서요. A. 그렇습니다. 과연 어떤 행동까지 우리가 괴롭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괴롭힘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텐데 말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해야 한다는 점엔 여야가 공감했고 관련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에선 만장일치로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법의 자구 등을 심사하는 법제사법위원회에선 쉽사리 통과가 되지 않았습니다. 격론 끝에 일부 표현이 달라졌습니다. 원안에서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를 ‘신체적·정신적·정서적인 고통’이라고 표현했지만 여기서 ‘정서적’이라는 표현은 빠졌습니다. ‘업무’ 환경이라는 표현도 근무환경이라고 바뀌었지요. 전문가들은 커다란 차이는 아니라고 봅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정서적 고통은 널리 보면 정신적인 고통으로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Q. 여전히 모호한 것 같은데요. A. 직장 내 괴롭힘을 아주 명료하게 정의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주관적인 감정에 판단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봐도 정당한 업무 지시인데 부하 직원은 괴로워할 수 있습니다. 이때도 지시를 내린 상사를 징계하는 건 곤란하겠죠.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가이드라인’입니다. 고용부는 내년도 추진할 업무 과제로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것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것인지 사업장에서 참고할 수 있도록 손에 잡히는 사례를 중심으로 구성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냥 만드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전문가 연구 용역을 거쳐 그간 쌓인 법원의 판례와 외국 사례 등을 참조할 것입니다. 어떤 지시가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는지 판단하는 게 핵심이겠네요. Q. 저희 회사 김 부장은 자꾸 주말에 전화합니다. 쉬는 날이지만 안 받을 수도 없고 미치겠습니다. A. 부장이 전화를 한 것 자체만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날 업무 지시를 내렸다면 이는 암묵적으로 초과근로를 강요하는 ‘부당한’ 업무 지시로 볼 수 있습니다. 근로자가 합의하지 않은 연장·야간·휴일 근로는 강제할 수 없습니다. 근로기준법 제50조와 제55조에선 법적으로 휴식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을 통해서 해결하거나 고용부 산하 관할 지방고용노동지청에 관련 사실을 신고하세요.Q. 같은 부서 최 팀장은 회식 때마다 술을 강권합니다. 저는 술을 먹지 못하는데 “토를 하더라도 마셔라”고 하네요. A. 이는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업무상 적정 범위가 아닙니다.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인 고통을 준 것도 분명하네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볼 필요도 없습니다. 앞으로 법이 시행되면 최 팀장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것이 됩니다. Q. 처벌은 누가 받나요. A. 물론 괴롭힘 정도가 심하면 가해자는 직접 법의 처벌을 받습니다. 직원의 뺨을 후려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처럼요. 하지만 이번에 통과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가해자들을 직접 법으로 처벌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누구든 사장에게 신고할 수 있습니다. 사장은 반드시 조사를 실시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사실이 확인되면 피해 근로자의 요청에 따라 근무장소를 변경해주거나 유급휴가 등을 줘야 합니다. 사장은 가해자에게 징계 등을 내려야 하죠. 만약 사장이 피해를 당했거나 괴롭힘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내렸다면 그때 사장은 처벌을 받습니다. 다시 말하면 술을 강권한 최 팀장에게 징계를 내리지 않고 오히려 신고한 사람에게 불리한 조치를 내렸다면 사장님이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게 됩니다. Q. 직장 내 괴롭힘을 사장에게 신고할 수 있도록 했군요. 그런데 사장이 괴롭힘 가해자면 어떡하죠. A. 이번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맹점입니다. 일반 근로자가 가해자라면 사장이 조치할 수 있지만 사장이 직접 가해자일 땐 이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신고 대상이 사용자로 한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사장이 괴롭혔다는 사실을 사장에게 신고한다는 것은 아주 웃기는 일입니다. 증거를 잘 수집했다가 가까운 노동청에 신고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근로감독관이 부당해고, 부당징계, 임금체불 등 구체적인 사건으로 보기 어려운 괴롭힘 사건 때문에 적극적으로 사업장에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노동청에서 도와주지 않을 것 같으면 증거를 수집해 기자에게 제보해주세요. 기자 메일 주소는 기사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 Q. 프리랜서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나요? A. 안타깝지만 불가능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로기준법이란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입니다. 따라서 법에서 정한 근로자로 보호받기 어려운 프리랜서들에겐 이 법이 적용되지 않아요. 게다가 4인 미만 소규모 영세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도 해당 규정을 적용하려면 별도로 하위 법령을 바꿔야 합니다. 법이 만들어졌다고 다 끝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Q. 다른 나라에선 어떤가요? A. 유럽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논의가 가장 활발한 곳입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법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규정했어요. 스웨덴도 1990년대 후반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규율하기 위해 ‘직장 내 괴롭힘 조례’를 만들어서 관련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폴란드는 노동법에서 ‘근로자에게 직업 적합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며 굴욕감과 곤란함, 고립과 격리 등을 유발하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핀란드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신적인 폭력을 ‘개인 또는 집단에 대한 고의적인 실력 행사로 신체적, 정신적, 영적, 도덕적, 사회적 발전의 저해를 초래하는 경우를 포함한다’고 규정했네요. 한국과 법 체계가 비슷한 이웃나라 일본에선 직장 내 괴롭힘(파워하라)에 대해 기업의 대응을 법으로 의무화하는 방침을 후생노동성에서 정했습니다.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 의무를 기업에게 법률로 부과하는 것입니다. 내년 정기국회에 관련 법을 제출하는 게 목표라고 합니다. Q. 이것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요. A.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법 하나 만들어졌다고 모든 사람들의 행동이 하루아침에 바뀌긴 어려울 것입니다. 기업마다 일해왔던 관행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법에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문장을 넣었다는 사실입니다. 법리를 다투는 과정에서 어떤 것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을 것인지 판례도 나오겠죠. 많은 사례가 수면 위로 오를 것이고 자연스레 사회적 자정작용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죠. 하지만 이번 법 통과는 직장 내 괴롭힘을 없애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기업 특집] GS, 희망 공부방 짓고 푸드뱅크로 생식품 나눠

    [기업 특집] GS, 희망 공부방 짓고 푸드뱅크로 생식품 나눠

    GS는 계열사별로 다양한 공헌 활동을 통해 사회와 동행하는 길을 찾고 있다. 이 중 GS건설의 공부방 지원 사업은 저소득층 가정 어린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꿈과 희망의 공부방’으로 이름 붙여진 공부방 지원 활동은 저소득층 가정 어린이들에게 안정된 학업 및 놀이 공간인 공부방을 만들어 주는 프로젝트다. 2011년 5월 1호 공부방을 시작으로, 2013년 6월 100호 공부방을 열었다. 2016년 11월 24일 200호점까지 늘어난 데 이어, 올 상반기 기준 235호 공부방까지 만들어져 프로그램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한편 GS칼텍스가 2013년 대기업 최초로 시행한 ‘마음톡톡’은 우울, 불안, 공격성 등 심리·정서적 문제로 학교생활과 또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집단예술 치유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마음톡톡 예술치유 프로그램 지원을 받은 아동·청소년은 총 1만 2546명에 이른다. GS리테일은 각 지역에 퍼져 있는 점포를 통해 매달 고아원이나 양로원 청소, 노숙자 배식, 소년소녀가장 공부도우미, 연탄배달, 김장담그기 등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푸드뱅크 식품기부’ 활동도 벌이고 있다. 전국 GS수퍼마켓 매장에서 매일 야채, 과일, 우유 등의 생식품을 각 지역 푸드뱅크에 기부한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기업 특집] GS칼텍스, 예술로 아동·청소년 치유… 아픈 마음 ‘톡톡’

    [기업 특집] GS칼텍스, 예술로 아동·청소년 치유… 아픈 마음 ‘톡톡’

    GS칼텍스는 ‘사회와 더불어 성장’한다는 기업철학을 바탕으로 어린이들의 심리·정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술치유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마음톡톡’ 사업을 6년째 진행하고 있다. 2013~2017년 5년간 전국에서 총 1만 2546명의 아동청소년들을 도왔다. 미술, 연극, 무용동작, 음악 등 예술치유 매체를 통합적으로 활용해 아이들의 자존감과 사회성 향상을 돕는다는 취지다. 마음톡톡 사업은 교육부 Wee프로젝트 및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와 협력해 우울불안위축 등의 심리·정서적 문제로 힘들어하는 초중학교 학생들을 지원하는 ‘센터치유’ 프로그램,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또래관계 문제의 예방과 치유를 함께 도모하는 ‘교실힐링’ 프로그램, 2박 3일간 집중적인 예술치유 활동을 통해 긍정적 또래관계를 경험하는 마음톡톡 ‘치유캠프’로 구성돼 있다. 2016년부터는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법무부 법사랑위원 전남동부지역 연합회와 협력해 보호관찰 및 선도조건부 기소유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재범방지와 재사회화를 돕고 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홍석경의 문화읽기] 현상 유지를 위한 무한경쟁

    [홍석경의 문화읽기] 현상 유지를 위한 무한경쟁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장안에 화제다. 자녀의 명문 의대 진학을 위해 전력 질주하는 한국의 상류·중산층 이야기인데, 극적 효과를 위해 도입된 불편한 설정들이 있고 드라마에서 언급된 입시 정보의 사실 여부가 온라인에서 검증되면서 이 드라마가 보여 주는 암울한 경쟁 상황에 현실감이 더해지고 있다. 수학 점수로 줄서서 전국의 의과에 진학하는 이상한 사회. 수학 능력과 좋은 의사의 상관관계를 추적 조사해 보고 싶은 이 난센스의 현실을 이 드라마는 더욱 극적인 필터를 통해 접근한다.그런데 이 드라마의 진짜 주제는 입시 경쟁이라기보다 상류 계급 진입이 불가능해진 한국 상류·중산층이 벌이는 현상 유지를 위한 무한경쟁이다. 귀족이 없는 한국에서 상류층이라면 재벌과 소수 자산가 집단일 것이다. 강남 개발과 더불어 형성된 뉴리치(신흥부자)들이 자산만으로 상류층에 편입될 수 있는지 현실 검증이 힘들지만, 여러 정황을 통해 한국에서 결혼과 교차소유 등을 통해 이미 상류 그룹이 형성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80~90년대의 드라마는 가난한 집안의 수재가 입신양명해 상류층에 진입하고, 그 과정에서 어려운 시절의 풋풋한 첫사랑과 가난한 가족을 배반하고 불행해진다는 멜로드라마를 반복해 왔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계층 탈출 시나리오가 더이상 허구적 현실감마저도 확보할 수 없게 변하면서 2000년대 이후 로맨틱 코미디는 평범한 여성과 모든 것을 가졌으나 불행한 재벌가 아들들과의 연애를 다루었고, 이 과정에서 부자들이 여성의 사랑을 통해 치유되고 완성된다는 서사로 옮겨 갔다. 현재 방송 중인 ‘남자친구’는 연상의 재벌가 이혼녀와 평범한 미혼 연하남의 사랑 이야기인데, 시청자들은 이러한 관계의 서사적인 그럴듯함을 더이상 문제 삼지 않는다. 이 드라마에서도 상류층의 도덕적, 정서적 결핍을 일반인 애인의 청순함으로 보상받고 치유받는다는 설정이 반복된다. 두 경우 모두 결혼을 통한 계층 변화는 문제되지 않는다. ‘스카이캐슬’은 연애와 결혼이 아닌 입시경쟁으로 계층 문제를 다루는데, 계층 상승이 아닌 계층 유지가 관건이다. 아이를 입시경쟁에 갈아 넣는 부모의 목표는 가족 전체의 성공이나 꿈꾸는 미래가 아니라 자신들이 누리는 현재다. 3대째 의사라는 명목을 위해 자식이 의사가 못 되면 추락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상류·중산층적 위신과 삶을 유지하기 위한 대리전인 것이다. 이런 상류·중상층의 계층 하락 불안이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불안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이런 삶의 방식 속에서 한국 사회 지배이데올로기의 작동 양태가 잘 드러난다. 학력이 상징 자본이 되는 것은 중산층의 현실이다. 진정한 상류층은 이들을 고액 연봉으로 고용하면 되지 자식들에게 뼈를 깎는 경쟁의 고통을 안길 필요가 없다. 고급스러운 소비로 자신의 신분을 가시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의무도 중류·하류 중산층과 자신 사이에 끊임없이 차이를 생산해야 하는 상류·중산층의 업보다. 외모를 크게 바꾸는 성형 또한 결혼과 취업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여야 하는 사람들의 투자 영역이 돼 버렸다. 상류층은 이미 선택적 결혼을 통해 외모 DNA가 개선됐고, 상류·중산층은 티 나지 않게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시각을 조금만 넓히면 한국의 명문대 입시지옥은 무의미하거나 극소수 상류·중산층 리그에서나 의미 있는 일이다. 인구 감소로 대학입시 경쟁도 느슨해지고 대학의 명성보다 전공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다. 대학에 진학하면 편입이나 전과의 기회도 있고, 대학원은 이미 원하는 대학을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런데 왜 이토록 잔인한 입시경쟁을 계속하는 것일까. 학생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빼앗고 중학생에게 왜 ‘자라투스트라’를 읽히는 것일까. 과외 전문가들이 교양서적 리스트를 만들어 내는 것만큼 학생들을 선발하는 대학교수들은 그 리스트의 함정에서 벗어나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을 찾기 위한 질문에 골몰하고 있다. 부모들이여, 사교육계의 공포정치에 휘둘리지 말고 아이들을 믿어 줍시다. 우리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이 아이들이 틀림없이 우리보다 좋은 생각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 철기시대 권력 상징 ‘호랑이 띠고리’ 보물된다

    철기시대 권력 상징 ‘호랑이 띠고리’ 보물된다

    철기시대 지배층의 권력을 상징하는 ‘청동 호랑이모양 띠고리’가 보물이 된다.문화재청은 2007년 경북 경산 신대리 1호 목관묘에서 출토한 ‘청동호랑이모양 띠고리’와 조선 초기 불경인 ‘불정심 관세음보살 대다라니경’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26일 밝혔다. 일반적으로 호형대구(虎形帶鉤)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호랑이모양 띠고리는 의복과 칼자루 등에 부착하는 장식품이다. 호형대구나 마형대구(馬形帶鉤·말모양 띠고리) 같은 동물형 띠고리는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 지배층 권력을 상징하는 위세품으로서, 북방계 청동기 문화와의 연관성을 보여 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또 ‘호랑이모양 띠고리’는 현존하는 유물이 적은 데다 대부분 파손이 심하거나 입수 과정이 명확하지 않은 사례가 많다. 반면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경산 신대리 호형대구는 보존 상태가 좋고 형태가 온전한 편이다. 정식 발굴조사로 찾아 출토 위치 역시 확실하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전남 장흥 묘덕사 소장품인 ‘불정심 관세음보살 대다라니경’은 몸에 지니거나 독송(讀誦·소리 내어 읽거나 외움)하면 관세음보살의 영험한 힘을 통해 액운을 없앨 수 있다는 다라니의 신통력을 설교한 경전이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경전은 조선 세종 7년(1425년) 전북 고창 장사현의 지방관인 윤희와 석주가 돌아가신 부모의 극락왕생 등을 기원하며 새긴 책이다. 3권 1첩으로 이뤄진 수진본(袖珍本·소매에 넣도록 작게 만든 서적)으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판본이다. 더불어 문화재청은 신라의 유서 깊은 사찰인 분황사가 있었던 ‘경주 분황사지’와 통일신라 시대 석축, 담장, 우물 등의 유적이 발견된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 두 유적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지만 출토된 유물로 볼 때 서로 다른 시기의 유적으로 밝혀졌다. 문화재청은 30일의 예고기간 동안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물 및 사적 지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고용 불안한 사회 분위기, 직장 내 괴롭힘 심화시켜”

    “고용 불안한 사회 분위기, 직장 내 괴롭힘 심화시켜”

    양진호 폭행 때 못 말리던 사람들 더 충격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괴롭힘에 취약 ‘괴롭힘 방지법’ 근로기준법 명시 큰 성과 “누구나 주인으로 대우받는 사회로 가야”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갑질 폭행’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한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직원의 뺨을 후려치는 양 회장에게 모든 관심이 쏠릴 때 ‘직장 내 괴롭힘’ 전문가 문강분(51) 노무법인 ‘행복한 일 연구소’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26일 서울 종로구 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문 대표는 “양 회장이 직원을 때리는 동안 옆에 가만히 서 있던 사람들이 눈에 더 띄었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 중 누구라도 나서서 양 회장을 말리지 못할 만큼 조직이 경직됐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면서 “직장 내 괴롭힘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과 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틀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장 내 괴롭힘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직장 내 괴롭힘에 더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규직으로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누가 괴롭힌다고 회사를 관두기엔 ‘밖은 지옥’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쩔 수 없이 꾹 참는 게 반복되다 보니 양 회장 같은 ‘괴물’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문 대표는 “고용이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가 직장 내 괴롭힘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문제를 없애기 위한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를 근로기준법에 담았다. 정의가 모호하다는 지적에 ‘정서적 고통’이라는 표현을 빼는 등 일부 문장을 수정했지만 모호성을 완벽하게 지우지는 못했다. 문 대표는 “직장 내 괴롭힘이란 표현을 근로기준법에 담았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성과”라면서 “고용노동부가 그동안 쌓인 법리 해석이나 외국 사례를 참조해 사업장에서 참고할 가이드라인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최소한’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 곳곳에 숨은 수많은 양진호를 법 하나로 솎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 대표는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무심코 상처를 주진 않았는지 항상 성찰해야 한다”면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이후의 과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 사회에서 확실한 한 가지가 바로 ‘협력’의 중요성입니다. 타인을 짓눌러야 내가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어요. 누군가를 지배하고 괴롭히는 사회구조가 이어진다면 직장 내 괴롭힘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각자의 노동이 소중하다는 것을 서로 존중할 때 직장 내 괴롭힘은 자연히 없어질 것입니다.” 글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강남구, ‘알쓸신잡’ 김상욱 초청 송년 북콘서트 개최

    강남구, ‘알쓸신잡’ 김상욱 초청 송년 북콘서트 개최

    서울 강남구는 오는 26일 오후 7시 역삼1문화센터 3층 공연장에서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를 초청해 ‘송년 북콘서트’를 연다고 25일 밝혔다. 김 교수는 그동안 다수의 물리서적을 출간했으며, tvN ‘알쓸신잡3’에도 출연한 바 있다. 무료로 열리는 이번 북콘서트에선 저서 ‘떨림과 울림’을 토대로 물리를 통해 세상을 보는 방법을 들려줄 예정이다. 퓨전 국악팀과 북 뮤지션의 특별공연도 마련돼 있다. 구는 올해 ‘책 읽는 강남! 행복한 강남!’이라는 슬로건 아래 25개 구립도서관에서 900여개의 독서문화프로그램을 운영했다. 40개의 정기 독서동아리 활동 지원, 북페스티벌 개최 등 다양한 사업도 하고 있다. 은승일 문화체육과장은 “민선 7기 강남구는 ‘기분 좋은 변화’를 통해 도서관을 삶을 즐기고 재창조하는 복합문화생활공간으로 혁신하려 한다”며 “주파수로 ID를 식별하는 RFID를 활용한 도서상호대차서비스사업 등을 통해 ‘품격 강남’의 풍부한 문화적 토양을 쌓아가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초등학생 수차례 때린 골프강사…2심서 형량 늘어

    초등학생 수차례 때린 골프강사…2심서 형량 늘어

    학생을 수시로 때리고 학부모가 훈련에 쓰라고 준 돈을 빼돌린 골프강사가 1심 처벌이 무겁다고 항소했지만 2심에서 형량이 오히려 늘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부장 이수영)는 아동학대처벌법(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A(48)씨에게 원심보다 형량이 6개월 늘어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고 연합뉴스가 25일 보도했다. A씨는 초등학생 B군에게 골프를 가르치면서 B군이 공을 해저드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골프채 손잡이로 머리를 수차례 때리는 등 2014년부터 약 2년 동안 B군을 최소 12차례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B군을 9시간 동안 타석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벌을 세우고, 모욕적인 말을 내뱉어 정서적 학대를 한 혐의도 적용됐다. 이외에도 A씨는 B군의 해외훈련 비용을 부풀려 돈을 뜯어내거나, B군 부모가 부대 비용에 쓰라며 맡긴 신용카드로 자신의 골프채를 사는 등 5700만원 상당의 금전적 이득을 챙긴 혐의도 있다. A씨는 1심이 자신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년을 선고하자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반대로 검찰은 형량이 가볍다고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의 항소를 들어줬다. 재판부는 “아동에 대한 신체적, 정서적 학대는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방어할 능력이 부족한 아동의 취약성을 이용한 범죄”라면서 “이런 행위는 피해 아동이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A씨는 B군의 외할머니 통장으로 피해금액 중 5000만원을 송금했지만, 재판부는 “이는 피해아동 부모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행위”라면서 “사죄의 의미로 해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독립군 탄압 거점 부산경찰서 폭파… 의열단 거사 1호 ‘부산의 윤봉길’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독립군 탄압 거점 부산경찰서 폭파… 의열단 거사 1호 ‘부산의 윤봉길’

    “왜놈 손에 사형당하기 싫어 단식하고 있으니 도로 가져가게.” 1921년 5월 5일 대구감옥으로 면회 온 친구 최천택이 가져온 달걀꾸러미를 건네자 박재혁 의사(義士)는 이렇게 말했다. 엿새 후인 5월 11일 오전 11시 20분 박 의사는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식음을 전폐한 지 열이틀째, 사형 집행 사흘 전이었다. 며칠 후 의사의 시신은 부산진역에 도착했다. 박 의사의 노모와 친구들, 수많은 시민이 역 앞에 몰려들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천만뜻밖에 이 지경이 되니 하늘이 무너진 듯합니다.” 노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최초로 의열단 거사를 성공으로 이끈 주인공이자 ‘부산의 윤봉길’로 불릴 만한 박 의사가 순국한 지 97년이 흘렀다.취재차 찾은 부산 날씨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 10도쯤 됐다. 서봉수 박재혁 의사 기념사업회장 겸 삼일동지회중앙회장을 만나 박 의사의 생애와 기념사업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삼일동지회는 해마다 박 의사 추모제를 여는 등 기념사업을 주관하고 있다. 박 의사는 직계 후손이 없다. 박 의사 여동생 명진의 손녀인 김경은(53)씨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인데 업적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아 가슴 아프다”고 말문을 떼었다.●정부·지자체 관심 부족… 담당자도 박재혁 몰라 김씨와 서 회장은 인터뷰 내내 독립유공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정부와 지자체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실제로 고위층은 물론 현지 담당자 중에도 박재혁이 누군지 모르는 이가 있다고 했다. 10억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조성했다는 ‘박재혁 거리’를 찾아가 보니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박 의사는 1895년 5월 17일 부산 동구 범일동 183번지에서 가난한 선비 박희선과 어머니 이치수 사이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그러나 생가 복원은 고사하고 아직 출생지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범일동 550번지라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550번지는 1919년 이사해서 가족이 살았던 집으로 보인다. 현재 ‘183번지’는 공용 주차장이 돼 있고 ‘550번지’에는 민가가 있다. 박 의사는 15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여동생 명진과 어렵게 살았다.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었다. 교육열 높은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의사는 1915년 부산공립상업학교(부산상고, 현 개성고)를 4회로 졸업했다. 박 의사와 동급생 최천택, 오택(오재영)은 친형제보다 가깝게 지낸 ‘삼총사’였다. 의형제를 맺고 부모상을 당하면 같이 상주 노릇을 하자고 다짐할 정도였다. 최천택이 남긴 글에 따르면 “박재혁, 김인태, 김병태, 김영주, 장지형(장건상 조카), 오택 등 친구들과 매일 만나 독립운동에 대한 전도를 모의하였다”고 한다.●고서적상으로 위장… 서장실 들어가 폭탄 던져 2학년 때인 1913년 박 의사와 최천택 등은 일제가 금서로 규정한 ‘동국역사’를 여러 학교와 학우들에게 몰래 나눠주다 발각됐다. 구한말 역사가인 현채가 지은 우리 역사교과서였다. 이때부터 박 의사는 요주의 인물로 찍혀 일경의 감시를 받게 된다. 3학년이 된 박 의사는 최천택 등 16명과 ‘구세단’을 결성, 지역 청년들을 규합하려 했다. 그러나 6개월 만에 탄로 나 1주일 동안 모진 고문을 받았다. 구세단은 1915년을 전후해 경남 밀양에서 의열단장 김원봉이 결성한 ‘일합사’와 교류했다. 이는 나중에 박 의사가 의열단에 가입하는 계기가 됐다. 박 의사는 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과 싱가포르를 오가며 무역업에 종사했다. 그러면서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고 항일 의지를 불태웠다. 1920년 초 박 의사는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했다. 김원봉은 “부산경찰서장을 죽이라”고 지시했다.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 슈헤이는 의열단원 다수를 체포한 악질 경찰로 경남북 경무부 관내 수석 서장인 거물이었다. 박 의사는 김원봉에게서 거사 자금 300원과 여비 50원, 러시아제 원통형 폭탄 한 개를 받아 중국 상하이를 떠났다. ●“모든 책임 진다” 편지 붓대롱에 넣어 친구에 박 의사는 감시가 심한 관부연락선을 타려던 계획을 바꿔 대마도를 거쳐 부산항에 잠입했다. 선생은 상하이 동지들에게 ‘熱落仙他地末古 大馬渡路徐看多’(열락선 타지 말고 대마도로 간다)고 적은 엽서를 보냈다. 검열을 피하려고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부산에 들어온 날은 1920년 9월 6일이었다. 폭탄은 친구 오택의 집에 숨기고 “총독부를 폭파할 것”이라고 거짓으로 얘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경은 오택을 찾아와 박 의사의 입국 경위를 캐물었다. 의사는 더 지체할 수 없었다. 폭탄을 숨겨둔 오택의 집으로 갔다. 오택은 유고집에서 이렇게 썼다. “박형이 시간이 절박하다며 맡겨둔 물건을 내어달라고 독촉했다. 나는 암실에 들어가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고 나왔다.” 박 의사는 가족을 부탁하면서 붙잡히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홀로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박 의사가 중국 고서적상을 가장해 용두산공원 아래 부산경찰서에 도착한 것은 9월 14일 오후 2시 30분쯤이었다. 폭탄을 숨긴 짐꾸러미를 들고서였다. 최천택은 용두산공원에서 망을 보았다고 한다. 고서적상으로 위장한 것은 하시모토가 중국 고서적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박 의사는 서장실로 들어가 서장이 몸을 돌리는 순간 “나는 상해에서 온 의열단원이다”라며 준엄하게 꾸짖고는 폭탄을 던졌다. “꽝” 하고 폭탄이 터졌다. 폭탄은 1층 유리창과 책상을 부수고 천장을 관통할 만큼 강력했다. 하시모토는 중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의사도 오른쪽 무릎을 심하게 다쳤다.●“일본 관광객 보기 안 좋다”… 표지석도 안 세워 다친 박 의사는 현장에서 검거됐다. 투탄 후 경남 전역에 비상령이 내려졌다. 일경은 경찰서 주변을 지나던 행인 등 수십 명을 닥치는 대로 붙잡아 들였다. 어머니와 여동생도 잡혀와 심문을 받았다. 최천택 등 친구들도 붙잡혔다. 오택은 폭탄을 숨겨준 혐의로 1년 동안 수감됐다. 응급처치를 받은 박 의사는 공범을 불라는 일경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단독범행임을 고집했다. 박 의사는 부립병원 간호원을 통해 유치장에 갇힌 최천택에게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짧은 편지를 붓대롱에 넣어 전달했다고 한다. 망을 보았던 최천택(1897~1962·건국훈장 애족장)은 모진 고문을 받아 의식을 잃은 채 풀려났다. 치안 조직의 핵심인 경찰서장실에 폭탄을 던진 박 의사의 의거는 일본 본토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일본 신문들은 “일선(日鮮) 동화를 단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썼다. 박 의사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지만 2심에서 사형으로 형량이 높아졌고 경성고법 상고심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사형이 선고되자 선생의 홀어머니와 누이동생은 대성통곡했다. 방청객 모두 따라 울었다. 폭탄 파편에 맞은 부상과 고문 후유증으로 감옥 생활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박 의사는 면회 온 사람들에게 “내 뜻을 다 이루었으니 지금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의사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고 유해도 1969년 부산에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장됐다. 그러나 부산에서도 박 의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런 데는 정부나 부산시의 책임이 크다. 동상조차 예산 한푼 들이지 않고 롯데그룹 지원으로 건립했고 그나마도 인적이 드문 부산 성지곡 수원지 맨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산길을 돌아 찾아간 동상 앞에는 등산객 몇몇이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을 뿐이었다. 폭탄 의거가 있었던 옛 부산경찰서 자리엔 모텔과 상가가 들어서 있었다. 그 자리에 마땅히 있어야 할 표지석도 없었다. “개인 땅이어서 안 된다”거나 “일본 관광객들 보기에 안 좋다”는 반대에 부닥쳐 세우지 못했다고 한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도경수 “저도 몰랐어요, 춤출 때 그렇게 웃는지”

    도경수 “저도 몰랐어요, 춤출 때 그렇게 웃는지”

    살벌한 전쟁터에서도 청춘의 꿈과 내일의 희망은 자라는 법이다. 강형철 감독이 영화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신의 손’에 이어 네 번째로 선보이는 장편 ‘스윙키즈’(19일 개봉)는 1951년 한국전쟁의 한복판에서 춤을 통해 행복을 찾고자 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주연을 맡은 배우 도경수(25)는 서로를 겨누는 총 대신 그저 리듬에 자신을 맡기고 싶었던 북한 병사 ‘로기수’를 연기했다. 북한군·중공군 등 포로들로 구성된 댄스팀 ‘스윙키즈’의 메인 댄서로서 ‘미제 춤’인 탭댄스를 배우며 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 인물이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와 영화 ‘카트’, ‘신과 함께’ 등에서 정서적으로 불안한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연기했던 도경수는 이번 작품에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포로들 사이에서 추앙받는 리더로서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이내 순수한 어린 아이처럼 환하게 맑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도경수는 “제 안에 있는 장난스러운 모습, 남자답고 호기로운 모습은 지금까지 보여드리지 않아서 그런지 ‘로기수’라는 캐릭터에 엄청 끌렸다”면서 “이상과 현실이 다른 상황에 처한 청춘이 내뿜는 열정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점도 이 영화를 꼭 하고 싶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스윙키즈’는 한국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시나리오의 3분의 1 이상이 음악과 춤 장면으로 이루어졌다. 도경수는 댄스단 ‘스윙키즈’의 멤버 중 가장 많은 분량의 탭댄스 장면을 선보인다. 특히 과거 브로드웨이 무대를 누비던 탭댄서이자 댄스단을 결성한 미군 하사 잭슨(자레드 그라임스)과 일대일로 탭댄스 실력을 겨루는 장면에서 고난도의 동작도 무리없이 소화한다.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 디오(D.O.)로 파워풀한 칼군무로 단련된 그에게도 탭댄스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캐스팅 확정되고 촬영 하기 전 5개월간 탭댄스를 배웠어요. 극 중 로기수가 탭댄스의 리듬이 자꾸 떠올라서 쉽게 잠을 못 이루는 장면이 있는데 저도 자기 전에 탭댄스만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지금까지도 무의식중에 발을 두드리는 습관이 있는 걸 보면 ‘많이 연습하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직접 해보니까 탭댄스는 하나의 악기 같더라고요. 손으로 드럼을 치듯이 발로 바닥을 두드리고 스스로 박자를 만드는 게 매력 있어요. 유산소 운동으로도 제격이고요.(웃음)”도경수는 극 중 로기수가 영국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의 ‘모던 러브’를 배경으로 춤추는 모습을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로기수가 수용소에서의 갑갑한 현실을 잠시 잊고 춤에 대한 끓어오르는 열정을 몸으로 발산하는 장면이다. “감독님께서도 제게 ‘너가 알아서 표현해보라’고 말씀하신 장면이에요. 촬영하면서 해방감을 느꼈고 스트레스도 진짜 많이 풀었어요. 제가 춤출 때 그렇게 웃는지도 처음 알았고요. 그동안에는 짜여진 안무를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제가 잘 할 수 있는 춤을 춘 느낌이었어요. 예전에는 촬영장에서 긴장을 많이 해서 선배들 눈도 못 쳐다볼 정도였는데 지금은 뭐든 재밌어요. 이 영화를 찍으면서 제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의미겠죠.” 그간 다양한 배역을 맡으며 연기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온 도경수는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을 계기로 중장년 팬까지 사로잡았다. “10~20대들이 엑소의 디오를 많이 알아본다면 이제는 어머니들도 저를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최근에 팬들께 사인을 해드릴 때 ‘누구누구 어머니’라고 쓰는 경험을 많이 해요. 행복한 경험이죠. 앞으로도 저의 연기를 보시는 많은 분들에게 에너지와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 나이대에 도전할 수 있는 캐릭터라면 어떤 것이든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멜로든 누아르든 휴먼드라마든 상관없이요.”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GS칼텍스와 순천지청, 위기청소년 마음톡톡 뮤직힐링 콘서트 개최

    GS칼텍스와 순천지청, 위기청소년 마음톡톡 뮤직힐링 콘서트 개최

    전남동부권 위기청소년들이 예술치유 과정을 마무리하는 음악 공연을 펼치며 뜻 깊은 연말를 보냈다. GS칼텍스와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은 15일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소극장에서 ‘전남동부지역 위기청소년 마음톡톡 뮤직힐링 콘서트’를 개최했다. ‘전남동부지역 위기청소년 마음톡톡’은 전남동부권의 보호관찰 및 선도조건부 기소유예 처분된 위기청소년을 위한 예술치유 프로그램이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에게 처벌이 아닌 예술치유를 통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기획됐다. 이날 콘서트는 올 한해 예술치유에 참여한 청소년 48명 중 23명이 5개팀으로 나눠 자작곡을 노래하고 악기 연주 실력을 뽐냈다. 이화여대 대학원 음악치료학과는 15주의 프로그램을 통해 작사·작곡, 기타·키보드 등을 가르치며 청소년들의 정서적 안정과 내면의 성장을 도왔다. 순천지청, GS칼텍스, 이화여대는 찬조 무대를 꾸몄다. 순천지청 소년담당 검사는 노래로, GS칼텍스 사내 음악 동호회인 킥스(Kixx)밴드와 이화여대는 청소년들과 호흡을 맞춰 합동 무대를 펼쳤다. GS칼텍스는 마음톡톡 프로그램에 성실하게 참여한 학생 5명을 선발해 장학금을 전달했다.GS칼텍스는 2016년 4월 순천지청, 법무부 법사랑위원 전남동부지역연합회와 ‘마음톡톡 예술치유 지원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위기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집단 음악 예술치유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같은 해 여수지역 위기청소년 119명이 예울마루와 한국보호복지공단 전남동부지소에서 이화여대 대학원 음악치료학과 정현주 교수가 이끄는 음악치료사들의 지도 아래 예술 치유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억눌리고 공격적인 감정이 해소되고 긍정적인 자아상이 형성됐으며 일상 생활도 변화했다.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순천 지역으로까지 사업을 확대했고 올해까지 308명의 위기청소년들이 예술 치유를 경험했다. 박성근 광주지검 순천지청장은 “마음톡톡 예술 치유가 전남동부권 위기청소년 선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관,산,학이 힘을 모아 추진하는 예술치유를 통해 청소년들이 꿈과 비전을 키울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GS칼텍스가 2013년부터 펼쳐온 ‘마음톡톡’은 국내 기업 최초의 어린이 심리정서 전문 치유 사업이다. 지난 6년간 1만 5000여명의 아동들에게 집단 예술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심리·정서적 문제 해결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수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상상력이 쑥…의왕시, 신개념 놀이공간 ‘하우놀이터’ 조성

    상상력이 쑥…의왕시, 신개념 놀이공간 ‘하우놀이터’ 조성

    경기도 의왕시는 신개념 놀이공간 ‘하우(HOW) 놀이터’를 새로 조성했다고 15일 밝혔다. 청계동 가막들공원에 조성된 이 시설은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아이누리 놀이터 조성사업의 하나다. ‘하우’라는 놀이터 명칭은 다투던 두 사람이 의왕과 성남의 경계인 하우고개를 넘으며 화해(하우)했다는 전설에서 따왔다. ‘하우놀이터’는 규격화, 획일화된 놀이 시설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상상력을 통해 스스로 만드는 신개념 공간이다. 협동심과 도덕성을 키울 수 있는 친자연적 공원으로 꾸몄다. 3500㎡ 면적의 놀이터에는 구릉지를 활용해 잔디미끄럼틀, 펌프놀이, 하늘그림자 놀이, 대형원통 미끄럼틀 등 어린이들의 모험심을 길러줄 다양한 놀이시설을 갖췄다. 특히 주문진에서 가져온 모래로 만는 놀이터는 아이들이 심리적 안정과 정서적 발달할 도울 수 있도록 설계됐다. 기존의 탄성포장재, 데크 등은 인조잔디와 하드우드 목재로 교체했다. 에메랄드그린과 영산홍, 삼색버드나무, 송엽국 등 초화류 약 1700그루를 심어 녹지공간도 확대했다. 시 관계자는“하우 놀이터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공간이”이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비닐하우스가 집 네식구 단칸방에… “숨 막히고 답답해”

    비닐하우스가 집 네식구 단칸방에… “숨 막히고 답답해”

    8만명이 컨테이너 등 비주택에 거주 학업 성취도 감소·가족 갈등 시달려 화장실 없는 가구는 성추행 피해도 “주거약자 포함시켜 우선 지원해야”‘컨테이너’, ‘비닐하우스’ 같은 최소한의 공간과 설비도 없는 비주택에 사는 주거빈곤 아동들이 정서적·신체적 방임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내 아동의 10명 가운데 1명은 주거 빈곤 상황에 놓여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부모(부자) 가정의 자녀 A(16)군은 “군대 간 형이 휴가를 받아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가족이 다 같이 방에 누워 잘 수 없어 아버지는 의자에서 잔다”고 했다. 보증금 20만원에 임대료 33만원짜리 원룸이 3부자가 함께 누워 자기엔 너무 비좁기 때문이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이 가족은 2004년부터 14년째 이 집에 살고 있다. A군은 “내 방이 있으면 스트레스도 덜 받고 성적도 오를 것 같다”고 푸념했다. 고교생 B(17)양은 보증금 300만원에 임대료 50만원짜리 집에서 3명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B양은 ‘2차 성징’이 찾아왔는데도 여전히 남동생과 한방을 쓰고 있다. B양의 부모는 “딸을 위해 다른 집을 알아보고 있지만 보증금으로 낼 돈이 없어 이사를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빈곤 주거가정 자녀인 C(17)군은 “어디를 가더라도 지금 사는 집보단 낫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산다”면서 “숨 막히고 답답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고 토로했다. 13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발표한 ‘아동주거빈곤의 실태와 주거빈곤이 아동 권리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따르면 국내 아동(만 18세 이하) 977만 7897명 가운데 약 9.7%에 해당하는 94만 4104명이 주거빈곤 아동으로 분류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가운데 지하방, 옥탑방 등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집에 사는 아동은 78만 9121명에 달했다. 게다가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등 주택이라 할 수 없는 기타 거처에 사는 아동도 8만 6605명이나 됐다. 또 아동이 주거빈곤 환경에 오래 노출될수록 학교생활 적응도와 학업성취도가 감소하고 가족 갈등의 빈도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개별적으로 쓸 수 있는 화장실이나 목욕 설비가 없는 가구에서는 아동이 성추행에 노출될 확률도 높았다. 임세희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거기본법에 명시된 주거 약자에 아동을 포함해 우선 지원하고, 아동주거 빈곤가구의 공공임대주택 입주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국내에는 아동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비적정 주거에 대한 기준이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아 상황을 심화시키고 있다”면서 “아동을 포함한 과밀 기준을 법제화해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당대 개혁안 내놓고 실사구시 추구한 이익… 영원한 성리학 스승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당대 개혁안 내놓고 실사구시 추구한 이익… 영원한 성리학 스승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을 말할 때 곧바로 떠오르는 단어는 ‘성호사설’과 ‘실학’이다. ‘성호사설’은 이수광의 ‘지봉유설’, 유형원의 ‘반계수록’과 함께 실학의 대표적 저술이다. 성호는 실학을 한층 체계화해 다산 정약용에게 전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성호는 아버지 이하진이 당쟁에 휘말려 평안도 운산으로 귀양 갔을 때 그곳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부친이 귀양지에서 사망하자 모친과 함께 경기도 안산으로 내려와 10세 무렵부터 둘째 형 이잠을 비롯한 집안의 형님들에게서 글을 배웠다. 성호 생애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은 그가 26세 때 일어났다. 이잠이 당시 세자이던 경종을 해치려는 세력을 처단하기를 청하는 상소를 올린 일로 심한 고문을 당하다 견디지 못하고 사망한 것이다. 아버지에 이어 형까지 이런 참화를 겪게 되자 성호는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 매진하게 된다. #퇴계의 성리학을 계승하다 도산서당은 선생이 손수 지은 것이라 나무 한 그루, 돌 한 덩이도 후세 사람들이 감히 옮기거나 바꾸어 놓지 않았다. 때문에 낮은 담장과 그윽한 사립문, 작은 물길과 네모난 연못이 소박한 예전의 모습 그대로여서 마치 선생을 뵌 듯 우러러 사모하지 않는 이가 없다. 처음에는 마치 선생의 음성이 들리기라도 하듯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가 나중에는 손으로 어루만지며 불현듯 경모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백년이 지난 후에도 사람들이 선생의 유적을 보고서 이렇게 감흥이 일어나거늘, 당시 직접 가르침을 받은 자야 오죽하겠는가. -도산서원 참배기 이잠이 죽은 지 3년 뒤 29세의 성호는 본격적인 학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영남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는 죽령을 넘어 퇴계의 자취가 남아 있는 풍기의 소수서원과 봉화의 청량산을 둘러본 다음 도산서원을 방문했다. 서원에 들어서서 원생들의 숙소인 박약재와 홍의재, 강의실인 전교당을 지나 퇴계의 위패를 모신 상덕사에 올라 참배했다. 그리고 다시 내려와 퇴계가 생전에 강학을 하던 도산서당을 찾았다. 도산서당은 퇴계가 직접 설계해 지은 것으로, 여타 서원 건물과 달리 소박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왼편 담장 아래에는 정우당이라는 네모진 작은 연못이, 담장 너머로는 퇴계가 손수 기른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방 안에는 사용하던 유품이 많이 보존돼 있었다. 성호는 도산서당을 둘러보며 퇴계를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학문에 대한 열의를 다졌다.성호는 집안 형님들을 제외하면 특별히 배운 스승이 없다. 하지만 그의 학문적 연원은 허목을 통해 퇴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허목은 거창 군수로 부임한 부친을 따라 경상도에 내려갔다가 인근 성주에 사는 퇴계의 문인 정구를 찾아가 퇴계의 학문을 전수했다. 허목은 성호의 조부 이지안과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한 벗이었다. 부친 이하진은 허목이 남인의 영수로서 서인과 대립할 당시 가장 가까이서 보좌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퇴계의 성리학을 계승한 허목의 학문이 자연스레 성호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성호는 자신과 퇴계의 공통점을 자주 강조했다. 퇴계가 태어난 1501년과 성호가 태어난 1681년은 같은 신유년 닭띠 해이고, 두 살 되던 해 6월에 부친을 여의었으며, 심지어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도 똑같이 겪었다는 것이다. 남들은 이를 우연이라 여길지 모르겠으나 성호는 이마저도 자신이 퇴계의 계승자라는 자부심으로 연결했다. 그러한 까닭에 도산서원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퇴계의 문집이나 문인록의 편찬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이와 함께 퇴계의 중요한 말씀을 모은 ‘이자수어’(李子粹語)와 퇴계의 예설을 정리한 ‘이선생예설유편’(李先生禮說類編)을 직접 편집하고 ‘사칠신편’(四七新編)을 지어 사단칠정에 대한 고봉 기대승과 율곡 이이의 견해를 비판하고 퇴계의 주리론을 옹호했다.#당대의 현안을 논하다 ‘성호사설’은 성호옹(星湖翁)이 생각나는 대로 지은 글이다. 옹이 이 ‘사설’을 지은 뜻은 무엇인가? 아무런 뜻이 없다. 뜻이 없는데, 어찌 이것을 지었는가? 옹은 한가한 사람이다. 독서하는 여가에 남들처럼 전기(傳記)에서 얻기도 하고, 제자백가나 문집에서 얻기도 하고, 시가(詩家)에서 얻기도 하고, 전해들은 이야기에서 얻기도 하고, 우스개에서 얻기도 하였는데, 웃고 즐길 만한 것 중에서 보존하여 볼 만한 것을 붓 가는 대로 어지럽게 기록하니, 어느덧 글이 많이 쌓이게 되었다. -‘성호사설’ 서문 ‘성호사설’은 성호의 겸손한 표현과 달리 평소에 학문을 하면서 생각이 떠오르거나 의심나는 것을 자신의 의견과 함께 적어 둔 글, 제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정리한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천지문’, ‘만물문’, ‘인사문’, ‘경사문’, ‘시문문’의 5가지 분야로 나눠 모두 3007편을 수록했다. 그 속에는 당시의 현안이던 토지, 군사, 교육 등 각종 제도에 대한 개혁안을 비롯해 서양 학문, 유교 경전, 시문학 등에 대한 해박한 식견이 들어 있다. 이는 성호의 열렬한 학구열은 물론이요, 편지를 통한 제자들과의 진지한 토론, 그리고 부친 이하진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구입해 온 수많은 서적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성호전집’은 이 ‘성호사설’과 내용상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성호는 역사나 예법 등 당시의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제자들이 편지로 질문하면 이에 대해 답장을 먼저 보내고, 그것을 다시 정리해 독립된 단편으로 저술했다. 그런 다음 편지 내용은 문집에 수록하고 단편은 ‘성호사설’에 수록했다. 따라서 성호의 학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두 책을 함께 읽어야 한다.#저술로 영원한 스승이 되다 도를 품고서 혜택을 베풀지 못한 것은 한 시대의 불행이지만 저서를 지어 혜택을 베푼 것은 백 세대의 다행이로다 하늘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한 시대는 짧지만 백 세대는 길고 길도다 정조대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이 지은 성호의 묘갈명이다. 성호는 ‘성호전집’과 ‘성호사설’, ‘사칠신편’ 이외에도 사서삼경과 성리학 기본서적들에 대한 자신의 연구 성과를 정리해 11종의 ‘질서’(疾書)를 편찬하고, 예론을 정리한 ‘상위록’(喪威錄), 국가적 당면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한 ‘곽우록’(藿憂錄), 민간에 떠도는 속담들을 모은 ‘백언해’(百諺解) 등의 저술을 남겼다. 이들 저술에 담긴 성호의 학문은 후대 학자들에게 계승돼 구한말까지 큰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그의 학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성호는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전념한 삶을 살았기에 자신의 포부를 당대에는 펼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저술을 남김으로써 후세의 영원한 스승이 됐다. 이는 성호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이라 채제공은 믿었다. 최채기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사업본부장
  • [요즘 것들의 문화 답사기] 불후의 명곡 ‘디깅’에 빠진 열여섯 살…최애곡은 81년생 ‘이은하의 봄비’

    [요즘 것들의 문화 답사기] 불후의 명곡 ‘디깅’에 빠진 열여섯 살…최애곡은 81년생 ‘이은하의 봄비’

    노래 ‘거짓말’을 부른 가수는 누구일까요?” ‘빅뱅’이라고 답했다면 당신은 10대 또는 20대일 것이다. ‘GOD’(지오디)라고 답했다면 30대 혹은 40대일 가능성이 크다. 만약 ‘조항조’라고 답했다면 당신의 나이는 분명 50세를 훌쩍 웃돌 것이다.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떠올렸다면 70대 이상으로 추정된다. 동명의 노래를 부른 가수를 질문한 뒤 답변에 따라 연령대를 가늠하는 한 방법이다. 하지만 최근 10대와 20대들은 이런 공식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40~50대 중년보다 더 옛날 노래를 많이 알고 있는 ‘요즘 것들’이 적지 않다. 과거에 유행했던 노래를 인터넷에서 직접 찾아 듣는 문화가 10~20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발굴하다’라는 의미의 ‘디깅’(digging) 문화다. 디깅은 1970~80년대 레코드 가게에서 LP판을 뒤적이며 새로운 음악을 발굴하던 데서 유래했다.●20세기 노래로 ‘시간여행’ 떠나는 십대들 고교 1학년생 노무승(16)군이 최근 가장 즐겨듣는 노래로 1981년에 나온 이은하의 ‘봄비’를 꼽았다. 노군의 스마트폰 음악듣기 앱 ‘플레이리스트’에는 김수철의 ‘못다 핀 꽃 한 송이’(1983), 정수라의 ‘환희’(1988),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1991) 등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노래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같은 학년 박상민(16)군은 보물 1호가 통기타, 보물 2호가 1970년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국의 록밴드 레드 제플린의 CD 10장이라고 했다. 이 밖에 좋아하는 가수로는 스콜피언스(1965년 데뷔), 이글스(1971년 데뷔), 딥 퍼플(1968년 데뷔)을 언급했다. 2002년에 태어난 고교생답지 않은 이색적인 음악 취향을 자랑하는 두 학생은 “옛날 음악이 주는 특유의 정서가 좋다”고 입을 모았다. 노군은 “옛날 노래를 들으면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서 “당시 시대상을 느낄 수 있고, 자기 성찰, 외로움, 삶에 대한 고민을 담은 가사의 노래가 많아 마음에 와 닿는다”고 말했다. 박군은 “중학생 때 아버지가 들었던 김현식의 노래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면서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에 옛날 노래에 빠져드는 것 같다”고 했다. 인기 아이돌 가수의 댄스 음악은 좋아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노군은 “아이돌 가수의 노래는 테크닉은 출중하지만 멜로디가 비슷하고, 옛날 노래와 비교해 가사에 ‘스토리텔링’이 부족해 정서적 충족감도 덜한 것 같다”면서 “목소리가 갈라지는 김현식의 노래가 처음에는 듣기가 거북했는데, 구글에서 인생 스토리를 ‘디깅’해 알고 난 뒤 들으니 이해가 됐고 위로도 됐다”고 전했다. 어쩌면 ‘요즘 것들’은 무한경쟁에 내몰린 팍팍한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미’를 찾으려고 겪어 보지도 못한 과거의 추억이 담긴 노래를 ‘디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디깅’으로 부활한 록그룹 ‘퀸’ 최근 전설적인 영국 록밴드 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 40일 만에 국내 누적 관람객 수 700만명을 돌파하며 ‘비긴 어게인’(343만명), ‘라라랜드’(359만명), ‘맘마미아’(457만명), ‘레미제라블’(592만명)을 차례로 제치고 역대 국내 개봉 음악영화 중 흥행 1위에 오른 것도 ‘요즘 것들’의 ‘디깅 문화’가 원인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영화가 큰 인기를 끌자 영화관은 관람객들이 영화를 보며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싱어롱 영화관’을 오픈하기도 했다. CGV 리서치센터가 영화가 개봉한 지난 10월 31일부터 11월 29일까지 관람객 연령을 분석한 결과 20대 이하 관람객이 36.0%로 가장 많았다. 이어 30대(25.8%), 40대(24.4%), 50대 이상(13.8%) 순이었다. 이런 열풍은 음원 시장으로도 이어졌다. 지난달 12일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2011년 리마스터 버전)는 한 음원사이트 실시간 차트 63위에 진입했다. 팬들의 ‘총공’(총공격) 문화로 인해 아이돌 가수의 노래가 장악하는 국내 실시간 음원 차트에 43년 전(1975년 10월 30일) 발표된 외국곡이 진입한 것은 처음이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국내 음악계의 ‘주류’는 아이돌 가수의 음악이나 힙합이라 할 수 있지만 이런 노래가 대중 모두의 정서를 대변하지는 못한다”면서 “퀸의 노래는 주류 사회의 성공 법칙에 반기를 들면서 우리 사회의 ‘비주류’인 젊은층을 향한 위로를 담았기 때문에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진원지 ‘유튜브’… 7090 숨은 명곡 찾기 디깅 문화의 진원지는 바로 ‘유튜브’다. 옛날 노래 애호가인 노군이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유튜브를 통해서다. 노군은 “처음 가수 이은하의 노래를 듣다가 유튜브의 ‘추천 영상’을 통해 양수경을 알게 됐고, 정수라, 김수철, 조관우, 산울림, 부활 등 ‘새로운 가수’를 연이어 접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튜브에서 들은 노래에 꽂히면, 해당 노래와 가수를 검색해 정보를 얻고 다른 가수도 함께 ‘디깅’해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곡들을 하나하나씩 발굴해 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젊은층들이 옛날 음악과 문화를 쉽게 소비할 수 있게 되면서 최근 ‘레트로’(복고풍)는 최근 대중문화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로 떠올랐다. 1981년부터 약 17년 동안 방영되다 1998년 종영된 KBS 음악 순위 프로그램 ‘가요톱텐’도 유튜브에서 부활했다. 5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노래에 ‘골든컵’을 수여한 뒤 순위 집계에서 제외하는 방식을 도입했던 가요톱텐은 국내 대표 음악 프로그램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새로 생긴 유튜브 채널명은 ‘어게인 가요톱10’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은 900개를 돌파했다. 현재 높은 조회 수를 기록 중인 노래는 가수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1994), 혜은이의 ‘작은 숙녀’(1983), H.O.T.의 ‘행복’(1997), 김혜림의 ‘날 위한 이별’(1995),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 백 홈’(1995) 등이다. 또 유튜브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신해철이 데뷔 무대인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를 부른 영상의 조회 수는 450만건에 달한다. 이 영상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이렇다. “직접 느낀 적 없지만 직접 느끼고 싶은 과거다.” 지난 9월 네이버의 음악 사이트인 ‘온스테이지’는 20세기 음악을 21세기 뮤지션이 재해석하는 ‘온스테이지 디깅 클럽 서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시대를 앞서갔던 숨은 음악을 재조명한다는 기획이다. 가수 죠지가 김현철의 ‘오랜만에’(1989)를,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이재민의 ‘제 연인의 이름은’(1987)을 각각의 감성으로 재해석해 불렀다. 지난달에는 가수 스텔라장이 부른 윤수일의 ‘아름다워’(1984)가 공개됐다. 글 사진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달빛에 비친 겨울철새 실루엣…금강하구에 내 마음을 포개다

    달빛에 비친 겨울철새 실루엣…금강하구에 내 마음을 포개다

    여행을 즐기기에 최고의 계절은 아니다. 팔도강산을 수놓았던 단풍은 끝물마저 지났고 설경을 찾아나서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대신 어느 계절에 찾아도 만족할 만한 숨은 여행지들을 골라갈 좋을 시기다. 겨울 철새가 모여들기 시작한 금강 하구의 충남 서천은 이제부터 방문하면 좋을 여행지다. 논산에는 지난달 정식 오픈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세트장이 드라마의 감동과 새로운 볼거리를 찾는 사람들을 맞이한다.서천의 서쪽 끝자락 마량리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춘장대IC로 나와 서쪽으로 25여분 더 달리면 황해를 향해 갈고리처럼 튀어나온 마량리에 닿는다. 이곳에는 서천 제일의 바다 풍광을 볼 수 있는 동백나무숲이 있다. 최고 수령 500년 등 동백나무 80여 그루가 야트막한 언덕 위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다. ●서천 제일의 바다 풍광을 볼 수 있는 동백나무숲 언덕 위로 난 돌계단을 밟는다. 양쪽으로 심긴 동백나무의 반질반질한 잎 사이로 손톱만 한 꽃망울이 돋아 있다.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나 돼야 빨간 꽃을 피우겠지만 한겨울 추위를 버텨낼 봉오리가 옹골차다. 언덕 위 동백정에 오르니 발아래로 바다가 펼쳐진다. 정면에 보이는 외딴섬은 오력도다. 이곳 안내원에 따르면 섬의 까마귀들이 왜구를 물리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력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동백나무숲을 빠져나와 인근 마량포구로 발걸음을 옮긴다. 쌀쌀해진 바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방파제를 따라 늘어선 낚시꾼들, 사방으로 낚싯대가 삐져나온 앞바다의 작은 배들이 한가로운 어촌 풍경을 그린다. 포구에서 멀지 않은 공원에는 서양의 돛단배와 한국의 판옥선 모형이 나란히 조성돼 있다. 진짜 배는 아니지만 성경이 국내로 최초 전해진 곳이 마량포구라는 의미를 담은 조형물이다. 마량포구와 공원에서 각각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성경전래지기념관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잠시 둘러볼 만하다. 1816년 조선 해역을 측량하던 영국 군함 알세스트호의 함장 머리 맥스웰이 마량진에서 수군첨절제사였던 첨사 조대복을 만난다. 말과 글이 통하지 않아 의사소통은 할 수 없었지만 맥스웰이 조대복에게 건넨 것이 조선 최초의 성경이었다는 설명이다. 옛 서적과 사진자료, 인물 모형 등 전시물이 제법 알차다. 2016년 9월 문을 연 기념관은 현재 서천군기독교연합회에서 서천군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입장료 어른 2000원, 어린이 600원. ●금강하구 일대 40여종 철새… 수백·수천 마리 ‘장관’ 마량포구에서 차로 45분쯤 달려 금강하굿둑 부근으로 간다. 이맘때 서천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겨울 철새를 보기 위해서다. 겨울이면 금강 하구 일대에는 검은머리물떼새, 큰고니, 청둥오리 등 40여종의 철새가 날아든다. 금강하굿둑에서 상류로 10여㎞ 떨어진 신성리갈대밭 부근까지 물새떼가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수백, 수천 마리가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장관도 볼 수 있다. 붉게 물들었던 하늘이 어둑해질 무렵 새들도 조용히 강 위로 내려앉아 분주했던 하루를 정리한다. 하굿둑을 따라 노란 조명이 들어올 때면 하얗게 빛나는 달이 오락가락하는 새들의 까만 실루엣을 비춘다. 논산에서 이튿날 여정을 이어 간다. 논산의 이름난 절 관촉사는 논산역이 있는 구시가지, 논산시청이 있는 신시가지에서 그리 멀지 않아 돌아보기 수월하다. 논산은 지명에 산이 들어가지만 금산, 완주와의 경계에 있는 대둔산을 제외하면 넓은 평지가 주를 이루는 고장이다. 관촉사 역시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해 있다. 그 유명한 은진미륵, 즉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보기 위해 가는 길이 힘들지 않다. 언덕 위에서 논산을 인자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은진미륵은 거대한 얼굴, 파격적인 비율이 특징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개성 있는 외관에 눈길이 가지만 실제로 마주하면 실로 감탄이 나온다. 고려 광종 때인 970년 승려 조각장 혜명의 주도 아래 제작됐다고 전해진다. 불상의 얼굴과 몸매에서 이상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어딘가 푸근한 느낌이 전해온다. 김경란 문화관광해설사에 따르면 전체 높이 18m의 거대한 불상은 왕권 강화 목적으로 건립됐다고 한다. 높은 건물이 없던 과거에는 평지인 주변 어디에서나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불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은진미륵은 불교 미술사에서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지난 4월 국보 제323호로 지정됐다.●논산 관촉사 은진미륵… ‘미스터 션샤인’ 세트장 있는 선샤인랜드 관촉사가 논산이 내세우는 전통의 명소라면 연무대에 새로 지어진 선샤인랜드는 새로운 핵심 관광지다. 밀리터리 체험관, 1900~1950년대 드라마·영화 세트장, 그리고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세트장이 한데 모여 있다. 그중 ‘미스터 션샤인’ 세트장은 숱한 화제를 낳은 드라마의 인기 덕에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관광객으로 붐빈다. 외국인 개별 관광객들도 먼저 알고 찾아온다. 고애신(김태리)과 유진 초이(이병헌)가 자주 마주치던 다리 아랫길로 드라마에서처럼 전찻길이 나 있다. 고애신이 살던 저택, 쿠도 히나(김민정)가 운영하던 호텔 ‘글로리’, 추노꾼들이 세운 만물상점 ‘해드리오’ 등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실제 마을 같은 느낌을 준다. ‘불란셔 제빵소’에서 빵과 빙수를 팔고 있지 않다는 것 정도만 아쉬울 뿐 드라마의 여운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입장료 어른 7000원, 어린이 3000원. 밀리터리 체험관 등은 무료 입장. 글 사진 서천·논산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식물과 함께 연말을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식물과 함께 연말을

    식물을 그리기 위해서는 그들을 관찰해야 하고, 관찰을 위해 나는 식물이 있는 곳에 가거나 식물을 내 곁에 데려오기도 한다. 산과 들의 자생식물을 그릴 때에는 내가 그들을 찾아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도시의 원예식물은 씨앗이나 모종으로 가져와 텃밭에서, 혹은 작업실의 분화로 직접 재배하며 관찰하는 일이 많다.그렇게 내 집과 작업실에 자리를 잡은 화분은 서른 개 정도가 된다. 이들은 각자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다. 지금 내 앞의 해국 화분은 한 식물학자가 우리나라 해국의 형태 변이를 연구하고 싶다며 내게 관찰해 그리라고 가져다준 것이고, 작업실에 온 향기를 내뿜는 라벤더 화분은 4년 전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허브 식물도감을 만드느라 농장에서 가져와 재배한 것이다. 그 옆의 작은 두 화분은 한 농민이 우리나라에 아직 유통이 안 된 로즈마리 두 품종을 시험 삼아 증식해 내게 보내 주었다. 이들은 모두 그림 기록 작업을 위한 목적으로 오게 됐지만, 지금은 내게 정서적, 신체적 안정과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됐다. 인류가 식물을 재배해 온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먹기 위한 식용식물이나 건강을 위한 약용식물을 얻기 위해, 그리고 식물의 아름다움을 관상하기 위해서다. 내가 식물을 재배하는 건 관상을 위한 목적에 가깝다. 그리고 그저 우리가 눈으로 바라보기 위해 식물을 재배하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사치’라고도 여겨지는 이 관상용 ‘화훼’ 식물의 소비 패턴은 식물 문화가 얼마나 활발한지의 지표가 된다.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 시장일 것이다. 식물 문화가 발달한 영국 외의 여러 유럽 나라와 우리와 가까운 일본, 싱가포르의 재래시장에 가면 채소와 과수를 파는 상인뿐 아니라 비슷한 비율로 화훼식물을 파는 상인을 볼 수 있다. 마트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일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 마트와 시장에 들러 요리할 식재료를 사듯 식탁 위에 놓을 튤립 한 다발을 산다. 시장의 중심부엔 ‘꽃’ 매대가 있고, 채소와 과일을 판매하는 곳보다 화훼 매대에 손님이 많을 때도 있다. 생각해 보면 화훼도 과일이나 채소와 같은 농작물일 뿐인데, 우리나라에서 화훼식물은 여유 있는 사람만 누리는 사치라는 이미지가 늘 안타까웠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화훼식물의 80%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경조사용 장식이거나 입학식과 졸업식 꽃다발, 어버이날의 카네이션과 같은 기념일 선물용이다. 일상적으로 꽃을 사는 사람은 소수인 데다, 경조사용 식물조차 재사용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화훼 농가의 사정은 점점 힘들어지고, 작물을 과수나 채소로 바꾸는 일도 많다. 그나마 희망을 가져보는 건, 젊은 세대가 식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화훼 소비를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으로 식물 문화를 즐기는 연령대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작년 11월, 나는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에서 육성한 포인세티아 화분을 받아 그렸다. 포인세티아는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화훼식물이다. 꽃처럼 보이는 붉은 잎과 초록색의 잎 대비로 유명한데, 다른 식물들이 자취를 감추는 겨울에 주로 볼 수 있어 이들의 원산이 추운 한대 지방이라고 떠올릴 수도 있으나, 이들의 고향은 더운 남미의 정글이다. 세계 포인세티아의 1년 판매의 80%가 크리스마스 전후 6주 동안 이루어져 지금이 딱 제철인데, 미국에서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잎이 붉은색뿐만 아니라 흰색, 연두색, 검은색 외에도 고기의 단면 무늬라든지 벽돌 무늬와 같은 독특하고 다채로운 색으로 많이 육성됐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육성한 ‘플레임’이라는 품종을 그렸고, 몇 번의 수정 끝에 그림을 완성했다. 그림 파일을 보내고 남은 건 책상 위에 덩그러니 있는 포인세티아 화분과 해부하느라 자른 줄기 몇 개뿐이었다. 나는 그 줄기를 모아 물이 든 유리컵에 담아 책상 위에 두었고, 화분은 평소 내 시선이 가장 많이 머무르는 테이블에 얹어두었다. 포인세티아를 보면서 작년 겨울을 났다. 작업실에 온 지인과 친구들은 꼭 포인세티아 화분 이야기를 했다. 화분 하나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난다며 좋아했다. 백화점이나 호텔에서 보는 화려한 장식에는 못 미치지만 화분 하나가 주는 심미적, 정서적 효과를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포인세티아 외에도 꽃이 화려한 구근식물인 아마릴리스와 로즈마리, 아로우카리아와 같은 식물도 이맘때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집안에 두기 좋은 식물이다. 로즈마리는 미세먼지와 추위에 환기가 힘든 실내에서 항균 효과를 준다. 올 연말을 이 식물과 함께 지내는 건 어떨까.
  • 구로, 모든 출산가정에 산후조리비 30만원 지급

    출산일 기준 6개월 이상 구 거주해야 결혼 이주여성들도 지급대상에 포함 서울 구로구는 내년부터 모든 출산가정에 산후조리비 30만원을 지급한다고 4일 밝혔다. 산후조리비 지원사업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체계를 구축하려는 이성 구로구청장의 구로형 4대 복지정책 가운데 하나다. 신청 대상은 출산일 기준으로 6개월 전부터 신청일 현재까지 구로구에 거주하면 된다. 우리나라 국민과 혼인 관계에 있는 결혼 이주여성도 지급 대상에 포함된다. 소득수준, 출생아 수, 산후조리원 이용 여부 등을 따지지 않고 신청자 모두에게 지급된다. 신청 조건을 따지지 않고 산후조리비를 지급하는 것은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처음이다. 산후조리비 지원 신청은 출생증명서, 통장, 신분증 등을 지참하고 출산일로부터 60일 이내 동주민센터를 방문하면 된다. 구로구는 산후조리비 지원 외에도 부부출산교실, 임산부 건강교실, 모유 수유 클리닉, 아기와 함께하는 브레인스쿨 등 산모의 신체적·정서적 회복과 아기의 건강한 성장을 돕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 구청장은 “앞으로도 빈틈없는 복지 그물망을 조성해 주민이 더욱 행복한 도시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인간이 안 보면 멋진 빛을 부르는 기계, 이런 심상적 요소가 제 작업이죠”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인간이 안 보면 멋진 빛을 부르는 기계, 이런 심상적 요소가 제 작업이죠”

    최고 권위 RCA의 유일 한국인 교수 이창희가 말하는 디자인“기계가 하나 있습니다. 주위에 사람이 있으면 전혀 움직이지도 작동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으면 이 기계는 혼자 작동합니다. 천천히 프리즘을 회전시켜 세상의 모든 멋진 빛을 현장에 다 불러모읍니다. 그러나 인기척이 있으면 이 기계는 작동을 완전히 멈춥니다. 인간은 누구도 이 멋진 빛을 볼 수 없습니다.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계이지만, 사람들은 이 기계가 제공하는 어떤 상상을 통해, 직접적 상호작용 없이도, 알 수 없는 형태의 즐거움을 받습니다. 이런 심상적 요소를 사물을 통해 비춰 보는 게 제 작업과 연구에 많이 들어갑니다.” 180년 전통의 RCA, 올해 교수로 임용만 30세 박사 학위 취득...軍복무 마쳐 디자인 및 예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의 영국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RCA)의 이창희(31) 교수가 자신의 디자인 작품 ‘사일런트 신(Silent Scene, 2018)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2013년 ‘영국이 주목할 자세대 디자이너’로 선정되기도 했다. 런던에 있는 RCA는 1837년 설립됐다. 180년 역사의 이 학교는 학부 과정이 없고, 석·박사 과정만 두고 있다. 영국 대학평가 기관인 QS평가에서 디자인 분야 부동의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런 대학에 현재 유일하게 한국인 교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추진했다. 인터뷰는 이메일을 몇 차례 주고받으면서 진행했다.- 현재 하는 일을 간략히 소개하면.☞ RCA의 혁신설계공학(Innovation Design Engineering) 학과의 조교수로, 대학원 2학년생(졸업반)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졸업 연구와 프로젝트를 지도하며 소통하고 있지요. 사실 학생들을 가르친다기보다는 산업 전반에 필요한 혁신들을 학생들과 함께 모색하고 함께 연구하고 발전시켜 저 자신도 같이 성장한다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산업 전반에 필요한 혁신이란 기술개발과 응용, 제품 설계, 서비스의 발견, 미학 연구 등의 요소들을 포괄합니다. 크게 보자면 공학과 미술의 응용을 통한 가치창출에 몰두한다고 보면 됩니다. 혁신설계학과를 마치면 RCA와 런던 임페리얼공대의 학위가 공동으로 나옵니다. - RCA에서 한국인 최연소 박사 학위 취득이라던데.☞ 박사 과정과 연구에서 언제 박사 학위를 받았느냐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만. 특히 우리 학교 재학생들의 나이가 ‘워낙’ 높은 편이고, 현장에서 오래 일하다 입학한 사람이 많습니다. 굳이 나이만을 말하자면 2009~2011년 군 복무를 마치고, 만 30세 때 박사학위를 끝냈으니 일찍 끝낸 것은 맞다고 봐야죠. 중국 베이징에서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계속해서 공부한 결과 시기적으로 남들보다 일찍 박사를 취득한 것 같습니다. RCA에서 박사 학위를 밟는 한국인이 많이 없습니다. 현재 RCA에서 정식 교수진으로 있는 한국인은 제가 유일합니다. 아시아인이 RCA에서 객원이 아닌 정식 교수로 있는 경우도 매우 드뭅니다. 최연소 교수인지는 잘 알 겨를이 없지만, 올해 운이 좋게 아주 일찍 교수직을 시작했으니 소중한 기회라 생각하고, 공부를 한층 더 심화한다는 생각뿐입니다.(※180년 역사의 이 학교에서 그가 최초의 한국인 교수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그는 최초란 ‘타이틀’을 부담스러워 했다.)- 굴지의 대기업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쳤다던데….☞ 요즘 워낙 재미있는 기업들도 많고, 그래서 기업체에 가서 일해볼까도 많이 고민했습니다만, 교수를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교수직을 고집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학생들과 소통하면서 늘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직업이라 생각해서죠. 물론 예전부터 교수는 여러모로 참 매력적이라 생각했고요. 개인적으로는 참 좋은 교수님들의 지도로 공부를 해왔던 것 같은데 그런 영향도 교수라는 직업을 참 괜찮게 보이게 한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기업에 가볼 의향도 있습니다만 현재로서는 교수직이 더 끌렸습니다. (※2014년과 2018년 그를 영입하려던 대기업은 스카우트 제의 자체도 발설하지 말라고 했다며 기업 이름을 쓰지 마라고 당부했다.) “2014년 박사과정 입학...아버지뻘들과 공부박사 출신 NASA 고위직 출신 등과 같이 연구” - 공부하면서 인상 깊었거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2014년 RCA 박사 과정을 시작할 때, 나이가 아버지뻘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서 당연히 교수님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하다 보니 같은 과에 다니는 학생이더라고요. 50대였는데 그런 지긋한 ‘동창’ 친구들이 꽤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알고 보니 이미 공학박사를 갖고 있던 미국 NASA의 ‘게임 체인징 개발프로그램(Game Changing Development Program)’의 고위직이었고요, 다른 친구는 영국의 모 대학의 학장이었습니다. 이런 부분이 저에게 여러 형태로 새로운 생각을 많이 심어줬습니다. 공부하는 열정과 마음을 갖고 있던 이런 ‘쟁쟁한’ 사람들과 박사 과정을 같이하면서 정말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에피소드로는 2013년도에 제 작업 중 하나인 ‘에센스 인 스페이스(Essence in Space)로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전시하고 있었는데, 거지같이 초라한 행세에 옷에는 담배 냄새로 찌든 사람이 계속 옆에서 제 작업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습니다. 제가 일에 좀 방해를 받아서 속으로 ‘참 피곤한 인간’이라 생각했는데요, 알고 보니 기상천외한 작품을 내놓는 채프먼 형제(Chapman Brother)의 작업으로 전시 기획했던 이였습니다. 그가 나중에 저보고 ‘채프먼 형제와 전 BBC 본사에서 전시할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하셨고요, 덕분에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상인 ‘터너상(Turner Prize)’ 수상자인 채프먼 형제와 함께 전시를 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특이한 경험들이 제겐 큰 자극제가 되었습니다.“공감각 교과서에 기여...채프먼 형제와 전시도거지 행세로 다가와 꼬치꼬치 캐물었던 기획자”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개인적으로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박사 공부를 참 재미있게 하였는데요, 그래서 여러 대학에 가서 연구주제로 발표도 하고 초대도 받고 부지런히 활동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퓰리처상 수상자인 ‘공감각(共感覺·synaesthetsia) 연구의 선구자이신 리처드 사이토윅(65) 박사가 이메일로 제 연구와 작업에 대해서 본인의 새로운 책에 넣고 싶다는 연락이 오기도 했습니다. 제게는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분의 책은 이 분야에선 교과서 수준이거든요. 참 인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덕분에 그의 가장 최근 책 ‘Synaesthesia’ (2018, MIT Press)에 작게나마 기여를 했지요. - 중국이나 영국에서 공부할 때 어려웠던 점은.☞ 제가 5살 때부터 홍콩에서 살다가 그다음은 10살 무렵부터 북경에서 살아서인지 해외 생활은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아마 당시에는 제가 어렸기에 많은 것을 빨리 습득했을 겁니다. 역설적이지만 가장 어려웠던 곳은 한국 생활이었죠. 베이징에 있는 중앙미술학원에서 학부를 마무리하고, 군 문제로 한국에 들어갔는데…. 당시에 제가 어느 정도였느냐면 한국말로 휴대폰 문자 쓰는 법을 몰랐을 정도였습니다. 대화할 때 단어 선택이라던가 그런 부분도 참 이상했지요. 덕분(?)에 군대에서 선임한테서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하하…. 공부할 때의 어려움보다는 문화적인 어려움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중국 생활에 젖어 있다가 영국으로 유학 갔으니 소통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고, 제스춰라든가 커뮤니케이션을 완벽히 할 수가 없으니 피곤한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솔직히 말하면 영어로 글쓸 때 가장 편합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모국어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대상·사물과 상호작용 없이 즐거울 방법 연구인간-기계 상호작용서 디자인적 상상력 녹여”- 디자인 세계이랄까, 작품 세계를 설명하면.☞ 제가 하는 작업은 대개 인간이 심상적으로 느끼는 체험과 경험에 대한 요소를 많이 포괄합니다. 사물과 인간이 상호 소통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의미와 방식을 만들어 나가기도 하고요. 근래의 작업 가운데 하나인 ‘사일런트 신’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지금 사회에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즐거운 경험들을 제공해주는 서비스와 제품이 많은데요, 시대가 가면 갈수록 더 풍부하고, 더 많은 것을 체험하고 경험하게 해줍니다. 그래도 만족을 모르는 인간들을 위해 끝도 없이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고요. 이러한 요구와 서비스들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더 많은 것이 요구되고 제공되고 있죠. 이런 맥락에서 ‘사일런트 신’ 프로젝트는 어떤 대상이나 사물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닌, 반대로 어떤 상호작용 없이도 즐거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입니다. 앞에서 간단히 설명했는데요, 이런 것들처럼 제 작업은 인간이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탐구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품, 인간-기계 상호작용(Human-Machine Interaction), 심상적 연구, 응용과학의 영역들에서 제 디자인적 상상력을 녹여내고 있습니다.- 향후 디지인은 어떻게 나아갈까.☞ 굉장히 어려운 질문 같습니다. 다수의 형태로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현재 디자인이라는 학문은 정말 다양한 형태로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의자를 만들고, 패션을 만들어내는 조형에 관한 공부에서부터 인간이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추상적 가치를 아주 분명하게 기술해나가는 영역까지,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사회와 학계에 소개되고 있어요. 컴퓨터 공학, 인공지능, 로봇공학과 같은 연구분야에서도 인간의 체험적 그리고 경험적 요소를 설명할 때 디자인을 비중 있게 소개하고 있으니까요. 디자인은 앞으로 인간의 경험을 최적화할 수 있는 서비스적 기호로서 다른 학계와 많은 인연을 만들게 될 것으로 봅니다. 이러한 다수의 인연은 디자인이라는 학문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계기를 만들게 될 거고요. 이런 연연 덕분에 흔히 말하는 4차산업 혁명에서 디자인은 화룡점정 격의 핵심으로 소개될 수밖에 것을 것이다. 물론 이게 굉장히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디자인은 학문적으로, 시장적으로 모두 성장통을 오래 겪게 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디자인은 현재 매우 즐겁고 동시에 매우 어려운 시기에 와 있습니다. 대개 이렇게 양쪽 요소가 다 맞물리는 상황은 기회적 속성을 많이 띠고 있기 때문에 저는 현재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앞으로 디자인은 과거의 공부를 통해서 미래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명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디자인은 학문적·시장적 성장통 예상재미있는 작업 계획...마흔쯤 벤처를”- 앞으로의 계획은.☞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30대 중반까지는 교수를 하면서 동시에 제 연구와 작업을 통해서 영향력 있는 전문서적을 한 1-2권 해외에 출판할 계획이 있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작업도 준비할 예정이고요. 하지만, 사실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서서히 준비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마흔 살 즈음에는 야금야금 구상해놓은 것으로 벤처를 하고 싶습니다. 그때까지 맑은 정신과 공부를 통해 제 자신을 스스로 관리하면서 지내고 싶습니다. 한국 교육으론 가능했겠느냐····반추 대목 ※이창희씨에 대한 인터뷰를 읽은 몇몇이 그가 교육 과정에 대해 물어왔다. 군복무를 마친 남자가 만 30세에 박사학위 취득이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이에 이창희씨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다시 쓸까하다가 기사 말미에 붙인다. 그는 초등학교를 8살 때 입학하였고, 6년 과정을 마쳤다. 중학교 3년 과정을 월반없이 마쳤지만 고등학교 3년 과정을 2년 만에 아주 드물게도 조기졸업했다. 그리고 대학교는 ‘05학번’으로서 4년 과정을 마쳤다. 그는 초등부터 대학과정을 한국이 아닌 중국에서 끝냈다. 그리고 영국으로 유학, 석사 과정을 1년만에, 박사 과정을 3년 6개월만에 아귀가 맞게 끝내면서 시간을 단축시켰던 것이다. 물론 2009년부터 2011년 학업과 완전히 단절되는 군복무도 마쳤다. 우수한 인재에 대한 수월성 교육보다는 보편적 교육을 강조하는 한국 실정에서 그가 만약 온전히 한국에서 교육과정을 마쳤다면 이처럼 신속히 박사과정을 취득할 수 있었겠느냐는 의문은 남는다. 그리고 한국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막 취득한 이에게 교수 자리를 내어주면 학교 안팎에서 상당한 논란이 일겠구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의 교육에 대해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라 생각한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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