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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군사대국화 서두는 일본(사설)

    탈냉전의 동아시아질서 주도를 위한 일본의 노력이 가속되고있다.새해벽두의 플루토늄도착 뉴스가 아시아 이웃들에게 일본의 핵무장가능성을 경고한데이어 11일엔 미야자와총리가 새해 첫정상외교로 태국 말레이시아등 동남아순방길에 올랐다.정치·군사 대국화를 서두르는 일본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 움직임이요 발길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의 거듭된 다짐에도 불구하고 탈냉전이후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지역엔 상대적인 힘의 공백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구소련의 붕괴와 이데올로기 대신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질서재편의 불가피한 과정이요 결과라 할수 있을 것이다.일본은 이것을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며 그 공백을 스스로 메우고 주도해나가기위한 분주한 행동에나서고 있다해야 할 것이다. 경제대국 일본은 그럴수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동남아에서 이미 경제적 패권을 장악한 일본은 이제 그에 걸맞는 정치·군사적 패권을 위한 노력에 나서고있는 단계라 할수 있을 것이다.주변국들의 반대를 무릅쓴 작년의 캄보디아 유엔평화유지군(PKO)파견은 그러한 포석의 일환이라 할수 있는 것이었다. 미국과 러시아에 이은 세계3위의 국방비라든가 미7함대를 능가하는 해군함정보유의 규모,그리고 공중경보통제기(AWACS)등을 비롯한 최첨단무기의 꾸준한 증강에 원자력발전을 위한 원료확보명분의 플루토늄 도입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그리고 공공연한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 지위요구에 중국과 동남아를 향한 외교의 본격강화인 것이다.일본이 무엇을 원하며 추구하고있는지 잘 보여주는 증거들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경제는 물론 정치·군사적으로도 아시아의 맹주내지는 패권을 장악하려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총리자문기구인 「21세기의 아시아 태평양과 일본을 생각하는 간담회」는 최근의 보고에서 「아태지역에서의 일본의 정치적 역할강화」를 공공연히 촉구한바 있다.동남아순방의 미야자와총리도 방콕에서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의 일본의 정치·군사적 역할증대를 강조하는 독트린을 발표할 예정이다.군사대국을 전제로하는 정치대국은 물론 「아시아의 일본」을 공공연히 과시하게될 공식기회로 주목되고 있다. 솔직히 말해 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는 전환기적 시대상황의 불가피한 추세라 할수있을 것이다.그것을 저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 모른다.그러나 문제는 견제와 균형이며 한계를 넘지않는 자제라 생각한다.미국이 아시아에서 계속 강력한 존재로 남아 그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경제에 이어 정치·군사대국화 하는 일본을 어떻게 할 것인가.그것은 일본자신도 포함하는 아시아가 이제부터 해결해가야할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 소설가 최인훈씨(이세기의 인물탐구:10)

    ◎「자신의 언어」에 충실한 “지적성직자”/현실묘사보다 관념성 짙은 작품활동 주력/화제작 「광역」발표로 “전후최고작가” 명성도/다방면에 해박한 지식·분석정신… 주관 강한 성품 『흰 바다새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마스트에도 그 언저리 바다에도.아마,마카오에서 다른데로 가버린 모양이다』 소설 「광장」은 이렇게 끝나고 있다.추악한 밤의 광장인 남쪽이나 밀실은 없고 광장만 허용되는 북의 기계적 체제등 모든 것에 염증과 환멸을 느낀 주인공이 어딘가 먼곳,아득한 이상의 나라인 제3국으로 가는 선상에서 실종되자 독자는 그의 실종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은둔인가,영원한 죽음인가,그렇다면 희망과 기대없는 암담한 절망이란 말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이 소설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었다. 곧 이 소설은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분단이후 최초로 남북을 동시에 작품의 무대로 삼았다는 점과 분열된 이데올로기의 비극이 첨예하게 묘사됐다는 이유외에도 불꽃튀기는 눈부신 지적 문체와 지성미 넘치는 철학적 사고,극명한 체제분석등은 60년당시 정치상황의 독자들에겐 싱그러운 통쾌한 충격일수밖에 없었다. 최인훈은 문단데뷔 1년만에 일약 유명작가로 부상되었고 많은 평자들은 다각도로 그를 조명하기에 앞을 다투었다. 문단과 젊은 문학도들은 당연히 이 당돌한 신인작가가 누구인가에 주목했다.그러나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최인훈은 그자리에서 한발자국도 전진하거나 물러서지 않은,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적당한 범주속에서 언제나 담담하고 온화하게 미소짓고 있을 뿐이다. ○견고한 자기세계 구축 좀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그 자신이 자신을 감추거나 도사린 것이 아니라 제3자가 그의 실체를 공략할 수 없게끔 이미 탄탄하고 견고한 지식의 성속에 군림하고 있었다는 편이 옳다. 그와 친한 친구들­이라기보다 그를 가까이 하려고 접근했던 이들은 그의 문학과 철학 역사와 생태학 진화론에 이르는 해박한 지식과 지적직관,철저하게 파고드는 분석정신에 삼투된 나머지 오히려 그를 난삽한 존재로 규정짓고는 일찌감치 그에대한 현혹을 포기했던 것 같다. 예를들어 그는 아무나를 만나서 선뜻선뜻 대화에 응하거나 문학지등이 내건 잡다한 기획에 뛰어들어 그때마다 지면을 장식하는데 도움을 주는 필자는 아니다. 그가 나설 자리 나서지않을 자리를 또박또박 구두점을 찍어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타당성 여부를 명료하게 따지고 타진한다.그래서 편집자측도 그에게 맞는 마땅한 기획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게되었고 그역시 『부덕한 사람이 실수를 피할수 있는 길은 일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최상』임을 전제,상대방이 빠져나갈수 있는 탈출구를 터주고 있다. 만사에 긍·부정을 분명히 하면서 이렇게 적당한 변명을 달아주는 것만봐도 지금까지의 주변의 평가대로 그의 행동과 말에는 막무가내의 기미는 없어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작가라는 작위」가 갖는 위치가 「막대한 부채를 인수한 상속자」라 현지라도 체면상 마지못해 얼굴을 내밀거나 체면상 글 한줄 써야 하는 허례와 허식,의례적 형식들을 외면하기 위해서,그러니까 그 자신을 보호하려는 걸맞는 이유를 장치하고 있었는지도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누가 오라하지도 않고 갈만한 일도 없었다는 논리는 성립된다.따라서 사교적인 모임이나 장소에서는 객관적으로 건너다보아도 그의 존재는 어울려보이지 않는다. 그의 소설의 네 귀가 딱딱 들어맞아 빈틈이나 허술함을 찾아볼수 없듯이 그의 평상시의 모습,작가로서의 모습도 여전히 그의 작품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그의 걸음걸이에서도 성격이 나타난다.그는 손끝까지 똑바로 편채 걷는다.호들갑스럽게 놀라고 감탄하고 감동하지 않는다.침착하게 아주 천천히 반응하기 때문에 그와 사무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곤혹스러운 노릇이다. 자연스러운 자리가 아닌 이상 상대방이 아무리 떠들어도,그래서 의도적으로 작가의 어떤 면을 꿰뚫어보고 그 대답을 얻고자 하는 방법일 때는 그 질문이 명료해질 때까지 그는 조용히 입을 다물어버린다.그리고 산만함중에도 상대방의 의중이 진지하고 진실하다고 여겨지면 비로소 한마디의 압축된 대답으로 노냐 예스냐로 반응한다. 그는 말을 절제하되될수 있는한 명증한 말만을 고르고 있다.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 그의 소설은 흔히 「관념소설」또는 「환상소설」,작가로서의 그는 이상주의자이며 비현실적이라고도 말한다. 혹자들은 그의 소설에는 「생동하는 인물」보다 「지적괴뢰」들이 넘쳐있으며 「쉽게 쓸것도 어렵게 쓰고」그래서 그는 「관념보다는 현실을 그리는게 목적인 소설가로서의 임무를 우선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비꼬기도 한다. 이른바 카뮈나 사르트르보다는 로맹롤랑이나 레마르크처럼 삶의 향훈이 물씬 풍기는 눈물과 한숨과 인생역정과 사랑의 애증을 그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현실은 관념에 우선한다」는 논리에 반대되는 변명을 늘어놓기보다 「관념」은 예술적으로 소설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도 「현실에 우선할 수 있는 소설적 기법」임을 그의 여러소설에서 단정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고귀한 자가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비극적 상황」만이 독자의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정답은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는 직선」이라는 유클리드의 공식만큼이나 자명하고 단순할뿐 「고귀한 자」는 「한사람의 남자」이거나 「귀족」이거나 「영웅」이전에 그가 처하고 있는 사회적·철학적·도덕적 차원에서 「고뇌하는 현대인」「방황하는 지식인」일수도 있음을 그는 대표작 「광장」과 「가면고」「회색인」「웃음소리」등에서 증명해보이고 있다. 평소의 그는 그의 소설속의 주인공들처럼 24시간 책읽기에 빠져있고 혼자 앉아있기를 좋아하며 남들과의 케상공론보다 아들 윤F(20)에게 「영산회상곡」이나 베토벤을 신청해 듣는 것이 행복하다. 바둑을 둘줄도 모르고 스포츠도 모른다.다른 취미나 오락이 있을리 없다.요즘은 긴 방학을 맞아 갈현동 2층서재에서 오랜만에 신작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실은 소설에 손댈 경황도 심적 여유도 없었다.34세에 뒤늦게 결혼해서 낳은 아들 윤F가 중2때 간염백신주사를 맞는 과정에서 보균자로 나타나는 바람에 그는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부모로서의 일념과 기원으로 좋은 의사,좋은 병원을 찾아 뛰어다녀야만 했다. 학업을 중단한채 누워서 책과 음악으로 소일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천둥처럼 무너져 내렸으리라. 문학이 예술이라면 그중에서도 가장 가혹하고 잔인한 예술일 것이다.아들의 아픔을 보면서 이를 체험으로 끄집어내고 휘두를만큼 그는 잔혹하지 못하다. 그것이 작가로서 위대한 것이라면 그는 「사양하고 싶은 위대함」이라고 외면해 버린다.2년전 윤구는 회복하여 검정고시합격으로 지난해 대학에 갔다.딸아이 윤경이도 올해 이대 영문과에 입학,모처럼 가정에 안락이 찾아들어 그는 작품구상을 할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무슨일에든 까탈을 부리거나 까다롭게 군 적은 없다.남들이 지레짐작하는 것이라면 그로서도 속수무책일수밖에 없다.그는 다만 글을 쓰는 일에서는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않아 쓰지않을때도 언제나 내면에서 쓰고있었다고 말한다.그러나 「광장」이후 사람들은 그를 향해 작품을 쓰느니 못쓰느니 끝없는 소요로 들끓었다. 그가 「광장」을 쓴것은 24세때다.이후 이 소설은 대학생과 문학도들의 필독서에다 지난 32년간 해마다 1만부이상,지난해엔 2만부,지난해초엔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노벨문학상 후보작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단일작품으로는 평자들의 가장 많은 논란을 받았고 「전후 최대의 작가」로 찬사되기도 했다. ○24세때 「광장」 발표 그는 함남 회령출신으로 6·25때 가족이 모두 월남,피란지 부산에서 16세때 장편소설 「두만강」을 쓰기 시작해서 이 소설은 70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서울대 법대에 다니면서 아무런 목적없이 법과를 택한 자책감에 학문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해 결국 출석미달로 4학년에서 1학기를 남기고 대학을 중퇴했다. 그의 웃음은 순백하다.그의 심성은 천진무구한 소년과도 같고 그의 행동은 순리를 좇아 자연스럽기만 하다.그는 집에서는 두남매와 소탈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원영희씨)와의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고 그리고 이 시대의 대표적 작가의 한사람이다. 평론가 김현은 그의 향기높은 지적 탐구로서의 문학에 대해 롤랑 바르트와 줄리앙 방데의 말을 빌려 이렇게 평한 적이 있다.「그는 독자의 평균에 부합하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에 성실하게 맞부딪치려고 글을 쓰고 있다.그의 정신의 질서는 혼란된 세계를 조리있게 파악하려는 의지이며 논리에 따라 부당하게 기울어지지 않는 천칭,그는 바로 지적 성직자」라고. 그리고 평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의 임무가 무엇이든 성직자에겐 모자를 벗는 것이 예의」라고 정중하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연보 ▲1936년4월 함북 회령서 목재상인 부친 최국성씨와 김경숙여사의 4남2녀중 장남 ▲47년 함남 원산으로 이사,회령국민교에 이어 원산중­원산고2까지 ▲50년 6·25로 가족 전원 월남,부산 정착 ▲57년 서울대 법대 4년때 출석미달로 중퇴 ▲58년 군입대,통역장교로 근무 ▲59년 「GREY 구락부 전말기」「라울전」이 안수길씨 추천으로 「자유문학」지 통해 문단 데뷔 ▲60년 문제의 작품 「광장」을 「새벽」(10월호)에 발표 ▲61년 단행본 「광장」(정향사)출간 ▲67년 「총독의 소리 1·2」연작 발표에 이어 단편집 「총독의 소리」(홍익출판사)출간 ▲70년 평론집 「문학을 찾아서」(현암사)출간,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극단 자유극장공연),11월17일 신문회관에서 이헌구씨 주례로 원영희씨와 결혼 ▲71년 창작집 「서유기」(을유문화사)출간 ▲72년 창작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삼성출판사)출간 ▲73년 장편 「태풍」(중앙일보)연재 ▲73년8월∼76년5월 미국체류,미아이오와대 세계작가 프로그램(IWP)초청,「광장」(일어판),수필가 김소운씨 역으로 일본 동수사출간 ▲76년 「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극단 산하 초연) ▲77년 「봄이오면 산에들에」(극단 동랑레파토리 공연) ▲78년 「둥둥 낙랑둥」(국립극단 97회 정기공연) ▲79년 미뉴욕주 브록포드대 초청,「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공연참가,「최인훈전집」(문학과 지성사)완간(전 12권) ▲80년 소설집 「왕자와 탈」(문장사),「하늘의 다리」(고려원)출간 ▲81년 소설집 「느릅나무가 있는 풍경」(민음사)출간 ▲82년 희곡집 「한스와 그레텔」(문학예술사)출간 ▲87년 미 뉴욕 「범아시아 레파토리」극단 10주년기념공연,「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공연 참관 ▲89년 창작선집 「달과 소년병」(세계사),산문집 「길에 관한명상」(청하),창작선집 「웃음소리」(책세상)출간 ▲92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소설 「광장」을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 ▲77∼현재 서울예전 교수 그외 대표작 「구운몽」「회색인」「가면고」「크리스마스캐럴」「두만강」「우상의 집」과 수필집 「유토피아의 꿈」외 동인 문학상,한국연극영화예술상(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중앙문화대상 예술부문 장려상,서울극평가 그룹상(달아 달아 밝은 달아)
  • 새시대상황에서의 남북관계/서울신문사정경문화연대토론회 주제발표 요지

    서울신문사 정경문화연구소는 새로운 문민정부출범과 동북아의 신질서태동을 앞두고 남북대화의 전망과 이 지역에서 형성되고 있는 질서재편 움직임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등을 점검하는 대토론회를 28일 하오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했다.「새 시대상황에서의 남북관계」를 큰 테마로 한 통일원후원의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된 「남북대화의 향후 전망」(이동복고위급회담대표)과 「동북아질서와 한반도­93년의 전망」(정용길동국대교수)주제의 요지를 정리한다. ◎남북대화의 향후전망 이동복 고위급회담 대표/서울∼평양대화채널 바뀔 가능성/경제난 등 북의 내부정리 시간걸려/재대좌 내년 4월 이후로 미뤄질듯 고위급회담형태로 지난 2년간 진행돼온 남북대화가 북측의 거부로 중단되고 있다.현재로는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대화가 93팀스피리트 훈련이 종료되고 한국과 미국에 신정부가 들어서는 내년 4월말 이후에 가서 재개될 것이란 견해가 유력하다.그러나 이같은 전망은 내외정세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이 이의 타개를 위해 개혁·개방의 길을 선택할 것이란 가정 아래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북한은 지금 냉전체제의 종식으로 최대의 국제적 고립위기를 맞고 있으며 왜곡된 자원배분과 계획경제 및 통제사회 특유의 생산의욕 상실로 경제 또한 회복 불능의 침체상태에 빠져있다.이같은 절박한 상황은 북으로하여금 결국 개혁과 개방의 길을 택하도록 할 것이다. ○「하나의 조선」논리 고수 지난 11일 단행된 북한의 개각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그러나 북한은 개혁·개방의 신호로 해석되는 이번 요직 개편에도 불구하고 대외경제를 담당해온 김달현을 남북경협의 전면에서 후퇴시키고 「노동당 재정경리부 39호실」산하에 「고려민족산업발전협회」라는 기구를 신설,남북경협문제를 전담시키려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이는 북한이 남북관계를 정부간의 관계로 발전시키기보다는 당을 창구로 내세워 「하나의 조선」논리 고수,「두개의 국가」을 수용치 않겠다는 종래 입장을 재차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북의 입장은 남북경협에 적용될 법령의 운용면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북한은 지난 84년 제정한 「합영법」에서 합영허용대상을 「외국인 및 재일조선 상공인을 비롯한 해외에 거주하는 조선동포」에 한정함으로써 한국인을 그 대상에서 제외했었다.북한은 또 지난 10월 제정·공포한 「외국인 투자법」에서는 「합영법」과는 달리 대북투자허용대상을 외국인과 함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영역밖에 거주하는 조선동포」로 규정,한국인에게도 대북투자에 필요한 법적 지위를 부여한듯 했지만 내용면에서는 그렇지 않다.여기서 북한이 말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영역」은 「조선반도와 그에 인접한 연안수역과 그 상공」을 말한다.또한 북한은 북한지역을 반드시 공화국 북반부로 표기함으로써 공화국 표현은 곧 한반도 전역을 의미하는 개념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요컨대 북한이 사용하는 공화국 표현은 한반도 전역을 포괄하는 개념이며 「외국인 투자법」도 「합영법」이나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에게는 대북투자 허용대상으로 별도의 법적 지위를 부여치 않고 있다.이는 결국 북한이 여전히 「하나의 조선」 논리에 입각하여 남북관계를 다루고 있음을 나타내는 대목으로 남북대화가 갖는 한계성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이 목표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는 의문과도 연관된다.북한은 그동안 고위급회담에서 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 그리고 부속합의서를 타결했지만 이는 주어진 시점에서 합의서가 타결됐다는 사실이 필요해서 했을 뿐 합의서 내용을 실천에 옮길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합의서 타결과정에서 북한이 보인 ▲일괄합의·동시실천 ▲원칙·규칙·세칙에 대한 논쟁 ▲전제조건 놀음 등 일련의 행적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결국 고위급회담에서의 합의서 채택은 개혁과 개방을 수용하겠다는 의도보다는 대일·대미관계를 개선하여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 극복을 꾀하면서 남한사회의 민주화 분위기를 통일 열기에 편승시켜 남한을 흔들려는데 주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 난국을 타개키 위한 개혁·개방수용문제와 관련,최근 북한권력 구조내부에 갈등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그렇지만 이 갈등구조는 수평적이 아니라 수직적이라는데 문제가 있다.상부구조에서는 여전히 체제유지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따라서 개혁엔 어느 정도 신축성을 띠고 있지만 개방에는 아직도 부정적인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이같은 북한의 수직적 갈등구조 아래서는 남북대화가 진행되더라도 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따라서 고위급회담 재개시기를 내년 4월이후로 보는 시각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서울과 미국에 신정부가 들어선다해도 북한내의 긍정적인 변화가 예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개방엔 아직도 부정적 결국 현재 중단되고 있는 고위급회담의 재개시기는 핵을 비롯한 몇가지 현안들에 관한 북측의 새로운 입장 정리가 어떻게 될 것이냐에 달려 있다고 보여진다.따라서 대화재개는 내년 4월보다는 그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뿐만 아니라 앞으로 대화가 다시 이어질 경우 그동안 진행돼온 고위급회담과는 다른 형태의 대화로 바뀌어 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듯하다. 남북대화가 동면기에 들어선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의 의의에 관한 문제이다.고위급회담의 중단은 당연히 이들 합의서의 이행이 지연되는 것을 의미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될 경우 7·4남북공동성명의 재판으로 이들 합의서의 효율성에 관한 의문이 제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그러나 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는 그 내용의 충실성 면에서 7·4남북공동성명과는 비교될 수 없다.내용면에서 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는 당초 남측이 제시한 안을 90% 이상 수용하고 있다.남북간의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의 장전으로 체제나 내용면에서 지난 72년 동서독간에 체결된 양독기본조약을 능가하는 문서인 것이다. 1215년 영국의 왕실과 귀족 지주간 납세방법에 관한 타협의 소산이었던 대헌장은 영국헌법의 기초가 된 기본장전이었다.그러나 그 내용의 해석을 둘러 싼 의견차이로 4백년이 지난 1648년 「권리장전」 성립때 가서야 비로소 햇빛을 보게 됐다. 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도 남북이 동상이몽 관계에 있는 동안은 그 내용의 해석을 놓고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견해차이의 지속은 이행의 지연으로 연결될 것 또한 분명하다.이 문제는 북한이「하나의 조선」이라는 허구의 논리에서 벗어 날 때 해결될 것이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반도의 현실이 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가 이행·실천될 때까지 4백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동북아질서와 한반도 정용길 동국대교수/질서재편 통일에 도움되게 유도/남북교류 일환 지역경협체 추진/「다자안보」 논의때는 군비통제 중시 미국과 구소련에 의해 동·서 양극체제를 이루었던 냉전시대는 사라지고 이른바 신세계질서가 도래했다.이같은 질서변화는 미국과 러시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변화시켰고 이러한 국제질서는 다시 이보다 하위체계인 동북아의 정치질서에도 변화를 가져 오게 했다.즉 동북아에서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4강대국이 쌍무관계를 통해 다양하게 국내외 정책을 조율하고 있고 남북한도 동북아의 질서변화에 편승하고 있는 것이다. 신동북아 질서 수립에 중요한 변수는 ▲이 지역에서 미국과 일본의 역할분담에 따른 파장 ▲이들을 견제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대응 ▲한반도의 남북한관계가 빚어내는일들이다. 먼저 신동북아 질서의 형성은 미국과 일본의 역할에 달려 있다고 본다.미국의 클린턴 새 대통령당선자는 탈냉전시대에서도 대외정책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지금 미국이 중요시하고 있는 것은 경제적 이익이다.미국은 그동안 자신들의 안보지원으로 경제대국을 이룩한 일본에 국력에 상응하는 역할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일본은 지난 6월 자위대를 해외에 파병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라는 오명을 씻어 버리게 되었고 대량의 플루토늄을 프랑스로부터 들여와 주변국가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신동북아질서 형성에서 일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지금 막 경제발전을 하고 있는 중국은 결코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무시할 수 없다.러시아는 일본의 경제적 지원없이 시베리아 개발에 성공할 수 없으며 한국도 일본의 기술이전 문제를 안고 있다.북한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 수교를 서두르고 있는 형편이다.그러므로 신동북아 질서는 일본이 어떠한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본의 영향력을의식한 중국은 한반도에서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키 위해 북한·일본 수교에 앞서 한국과 수교했다고 볼 수 있다. ○일의 역할이 중요변수 러시아의 한반도에 대한 이해관계는 크게 두가지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이유로 인한 정치 및 안보차원의 이해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그것이다.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북아는 불안과 갈등의 근원이 단일적이지 못해 새로운 질서형성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지금 동북아에서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와 유사한 다자적안보협력체를 구성하자는 제의들이 잇따르고 있다.이미 러시아는 지난 69년 브레즈네프가 아시아 집단안보체제를 제안한데 이어 고르바초프도 다자적안보협의체제와 유사한 형태의 제의를 했었다.85년 범아시아안보 포럼을 시점으로 86년 블라디보스토크선언,88년 크라스노야르스크연설 그리고 91년 일본국회연설 등이 그 예이다.이와같이 4강 가운데 러시아가 다자적안보협력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추구해 온 이유는 이 지역에서 미국의 해군 및 전략무기의 감축을 달성하기 위해서이다. 한국은 이미노태우대통령이 동북아 평화협의회의안을 내 남북한과 4강이 참석한바 있다.이와같이 동북아에서 다자적안보협력체제가 모색되는 이유는 냉전이후 지역안보 전망의 불확실성과 국제경제에서 나타나고 있는 지역 블록화 경향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동시에 미국과 일본의 역할을 충격없이 조화시킬 수 있는 구조를 찾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그러나 동북아는 이러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국가들의 이질성과 이해관계의 상충으로 다자적안보체제가 구조화되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구조화되더라도 이미 기초가 다져진 미일안보협력체게에는 영향을 주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신동북아 질서구축과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는 다자적 안보협력체제 구상에 임할 때 특히 이 지역의 평화를 위해 군비통제 같은 문제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그러한 협력체제는 분명히 한반도의 통일에 저해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추진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과 같은 탈냉전구조 아래서는 군사력의 한계효용과 상호의존성의 증가때문에 대규모 군사력에 의한 전쟁 대신에 경제전쟁이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특히 경제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각국들은 시장개방압력·보호무역·관세장벽 등을 국내정치의 중요한 과제로 삼으며 인근 국가들끼리 블록화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유럽과 북미주에서의 경제블록화에 자극받은 아태지역국가들도 안보문제와는 다르게 경제협력을 다변적으로 추진하면서 협의체구성에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다.즉 89년엔 12개국이 아태경제협력 각료회담을 출범시켰고 91년 서울회의에서는 중국 대만 및 홍콩이 가세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키로 했다.그러나 동북아에서의 지역경제협력문제는 일부국가의 사회주의체제 고수와 심한 경제수준 및 기술격차로 그 실현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통일 당사자주도 철칙 하지만 한국은 다국적경협의 실시가 남북한간의 경제교류와 협력을 촉진시킬 수 있는 첩경임을 인식,동북아 경협체 구상을 구체화시킬 수 있다. 신동북아 질서구축의 관건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고 할 수 있다.동북아에서의 진정한 냉전체제 종식은 냉전의 산물인 남한과 북한의 통일을 의미한다.한반도통일은 분단 당사국인 남북한 내부의 문제인 동시에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까지 겹쳐 어려움이 많다.고위급회담은 중단됐고 주변국가들도 한반도 통일에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냉전체제에서는 주변국가들과의 관계가 단선적이고 선명하였지만 이제는 그것도 복잡 다기하다.또 그것은 한반도와 미·일·중·러 4강과의 관계가 아니라 남한과 북한 각각의 4강 관계이기 때문에 더욱 예측불가능하다. 최근 한반도 통일후에도 주한미군의 주둔을 인정한다는 입장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지금까지 한반도는 어느 한 세력에 기울어져 있을땐 다른 세력들의 간섭이 반드시 따랐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남북한이 먼저 접근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은 남북간 신뢰구축의 바탕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의 핵문제 등이 걸림돌이 되고는 있으나 이미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채택·발효시킨 남북기본합의서와 그 부속합의서를 착실히 이행,남북간 교류와 협력을 통해평화공존을 정착시키면 통일기반은 다져질 것으로 본다.그래야만 동북아에도 비로서 신질서가 도래할 것이다.
  • TV3사,연말·연시 시청자 확보 “비상”

    ◎특집 다큐멘터리 경쟁 뜨겁다/심혈기울인 야심작 잇따라 방영/KBS­1/멸종위기에 처한 원앙의 일생 추적/MBC/국내 불법체류 외국인문제 파헤쳐/SBS/몽골 심층취재… 우리문화 원형 탐구 KBS·MBC·SBS등 방송3사의 특집다큐멘터리 경쟁이 뜨겁다. 연말연시 시청자 확보의 「비상령」이 떨어진 가운데 이들 TV3사가 새로 선보일 다큐멘터리 프로는 KBS­1TV 「멸종위기에 처한 원앙」(1월1·2일 하오8시),MBC­TV 「불법체류자」(1·2부 28·29일 하오 10시55분,3부 30일 하오11시20분),SBS­TV 「유목민의 땅­몽골을 가다」(26·27일 하오10시55분)등 모두 3편. 이중 KBS­1TV의 「멸종위기에 처한 원앙」은 KBS가 장기계획의 일환으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본격자연다큐멘터리.제1편 「19 92년 7월생 원앙」에서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와 천적의 멸실등으로 점차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는 원앙의 일생을 추적,아직 밝혀지지 않은 생태학적 특성을 규명하고 원앙의 생태와 민간속설과의 관계도 알아본다.또 원앙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조성을 위해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를 모색해본다.제2편 「잃어버린 둥지」에서는 환경변화로 제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새들의 보금자리를 중심으로 새 환경에 적응해가는 독특한 생존방식을 집중 소개한다.특히 블록담속에 둥지를 튼 박새,버스의 엔진룸에서 포란중인 딱새,가정집 서재의 형광등에 집을 지은 제비등의 기형적 생태와 원인등을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중점 조명한다. KBS제작팀은 민감한 원앙의 생태를 영상에 담기 위해 지난 5개월 동안 특수장비를 총동원,광릉 숲 홍천 양수리등지에서 현지촬영,다큐의 사실감을 높였다. MBC­TV 창사특집 3부작 「불법체류자」는 현재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불법체류 외국인의 문제를 심층 추적,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대처방안을 모색해보는 기획프로.제1부 「후세인과 아키노」에서는 「코리아에 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흘러들어온 동남아 출신의 불법체류자들에게 한국은 과연 어떤 나라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또 제2부 「연변 아줌마의 우리 중국 우리 한국」에서는국내 친척들의 초청을 받아 가족단위로 입국,잡역부나 단순기능공 또는 식당에서 일하는 중국교포들의 실상을 알아보며 제3부 「코리안 드림」에서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조명해봄으로써 그들에 대한 정치 사회 문화적 대응방안을 찾아본다. 한편 SBS­TV가 마련한 「유목민의 땅­몽골을 가다」는 우리 방송사상 처음으로 몽골인의 참모습을 문화인류사적으로 추적한 다큐2부작.이 프로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몽골문화의 유적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동몽골지역을 집중 취재,한국문화의 원형을 밝히겠다는 야심작이다. 제1부 「할힝골 대초원의 수수께끼」에서는 고구려의 국경지역을 표시했던 조형물로 알려진 훈촐로(돌하루방)가 서있는 할힝골 대평원을 직접 가보며 고구려 초기의 무덤형태인 적석총군도 보여준다.또 고구려의 전설이 깊이 잠들어 있는 할힝골 이목민의 가정을 방문,3대가 함께 모여사는 그들의 생활풍습과 유목민의 특질등을 살펴본다.제2부 「울란바토르에 부는 바람」에서는 구소련의 붕괴와 몽골의 민주화를 거쳐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울란바토르시의 변모된 모습을 전해준다.그밖에 징기스칸이 칼을 갈고 10만대군을 숨겨놓은채 후일을 도모했다는 강가 호수와 몽골의 영산 신림복드도 카메라에 담아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 “신한국 건설” 지원요청과 화답/김 당선자­최·전 전대통령 대화록

    ◎“통일대비해 남북문제엔 신중을”/최 전대통령/“온국민 신바람 나게 새 정치 펴길”/전 전대통령 김영삼 대통령당선자는 23일 최규하·전두환전대통령을 서교동과 연희동자택으로 당선인사차 차례로 방문하고 신한국건설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김당선자는 이날 상오9시50분쯤 서교도 최전대통령 자택에 도착,현관에 마중나온 최전대통령의 안내로 1층 응접실에서 녹차를 마시며 30여분간 환담한데 이어 10시28분쯤에는 연희동을 방문,마중나온 전전대통령과 이순자여사의 축하인사를 받았다. ○…김당선자와 최전대통령은 이날 건강문제와 향후 국정운영방안 등을 주제로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환담. 최전대통령이 『오늘 날이 춥다』고 환영의 뜻을 표하자 김당선자는 『전보다 체중이 줄으신것 같은데 건강은 어떠냐』고 화답,자연스럽게 건강문제가 화제. ▲최전대통령=지난 9월17일부로 담배를 끊었습니다.벌써 석달이 지났습니다. ▲김당선자=전에는 많이 피신것 같았는데.담배를 끊으면 체중이 늘지 않습니까. ▲최=몸의 컨디션이 달라진건 없습니다.가래가 안나오는 정도입니다.공직을 그만둔후 선산을 많이 찾아가는 편인데 요즘은 숨이 가쁘지 않습니다.다만 담배를 피울적에는 파이프도 손질하고 했는데 지금은 소일거리가 없습니다.TV에서 뵈니까 매일 새벽 조깅을 하시던데 대단하십니다. ▲김=하루도 안빠지고 30년을 했는데 정신집중도 되고 몸에도 좋습니다. ▲최=대통령이 갖춰야할 요건이 여러가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입니다.아무리 식견이 높아도 건강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김=몸이 건강해야 생각도 건전해지죠. ▲최=선거운동기간중 하루에 몇천리씩 다니면서 고생하셨죠. ▲김=많이 다니고 점심도 자주 굶었습니다.그런데 정신무장이 돼서 그런지 별문제는 없었습니다. ▲최=(녹차를 권하며)녹차 좋아하십니까. ▲김=네.일본사람들이 특히 즐기더군요. 김당선자는 5분가량 건강이야기를 나누다 『지금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이니 여러가지 부문에서 잘 도와달라』며 국정운영에 대한 조언을 요청. 최전대통령은 이어 『외교경험이 있어서 그런데남북문제는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고 충고하며 『당선자도 같은 생각이라고 알고있지만 이 문제는 충분히 연구 검토해달라』고 재차 당부. 이어 김당선자와 최전대통령은 배석자 없이 약 20여분간 요담. ○…10시20분쯤 단독요담을 마치고 서교동을 나선 김당선자는 곧바로 연희동을 방문. 김당선자가 도착하자 전전대통령과 이순자여사는 정원에서 마중한뒤 1층 서재로 안내,김당선자와 전전대통령은 1시간10분동안 요담. ▲전전대통령=어서 오십시오.축하합니다. ▲김당선자=날씨가 춥습니다. ▲전=추운 계절엔 추운 게 좋습니다.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높은 42%의 득표율로 당선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평생을 고생하셨는데 국민들도 안도감을 갖는 것 같습니다.우리나라가 국운이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경제도 침체해 있고 국민들도 신이 안나고 있습니다.새대통령이 취임하시면 국민들을 신바람나게 해주십시오. ▲김=우리 경제는 지난 십몇년 동안 사실상 논것이나 다름없습니다.앞으로는 기업인·근로자·정부등이 모두 힘을 합쳐 경제를살리고 국민에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전=당선인사때 아주 훌륭한 말씀을 하셨습니다.모든 국민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대통령이 조깅하듯 앞장서서 뛰고 국민들이 따라오면 몇년내에 나라가 크게 발전할 것입니다. ▲김=우리 국민들은 아주 훌륭합니다. ▲전=이번 선거에서 나타났듯 선거하는 것 보세요. ▲김=이번 결과는 국민들의 승리입니다. 전전대통령은 이어 『대통령직을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노파심에서 몇가지 참고말씀을 하겠다』고 전제한뒤 『오랜 측근이나 참모들도 최대한 활용하고 또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보답을 하는 것이 도리이지만 국가적으로 중요한 공직을 맡기거나 통치행위에 참여시키는 일은 특히 경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이황/서재는 비·바람 들이치는 「흥부 집」(역사속의 청백리)

    조선조가 낳은 대표적인 성이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은 부귀영화를 탐하지 않고 한평생 겸손하고 검소한 생활로 일관,후대의 추앙을 받고 있다. 그의 심오한 학문은 당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회자되고 40년에 가까운 관직생활에서 호조판서등을 거치고 사후에는 영의정에까지 증직됐지만 살아 생전 그의 삶은 청빈하기 그지 없었다. 그가 예안의 퇴계에 집을 정하고 스스로 호를 「퇴계」라 지어 살때 그의 서재는 「위로는 비가 새고 옆으로는 바람이 치는 보잘 것 없는 오막살이,마른 곳을 찾아 가구를 자주 옮기다 보니 헌상자속에는 책만 그득하더라」고 묘사돼 있다. 어느날 군수 허시가 찾아왔다가 초라한 거처에 놀라 『이렇게 좁고 누추한 곳에서 어떻게 지내십니까』하고 묻자 이황은 『오랫동안 습관이 되어서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태연스럽게 대꾸했다. 그가 한양의 서소문부근으로 거처를 옮겼을 당시 좌의정 권철이 찾아와 같이 식사한 적이 있었다.권철은 이황이 내놓은 식사가 너무나 악식이어서 수저조차 들지 못하고 돌아갔다가 훗날 「입맛 잘못 들인 것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번은 가뭄으로 온 동네사람들이 물대기작업에 나섰다.그의 논은 물길이 닿는 첫번째 위치에 있었음에도 「나의 논은 말라서 밭이 되더라도 아주 굶주릴 형편은 아니니 다른 사람들의 논에 먼저 물을 대어주라」며 대인으로서의 도량을 몸소 실천했다.또 그의 밭 한가운데로 길이 나있어 오가는 사람들이 곡식을 해치는 것을 보고 하인들이 길을 봉쇄,사람들이 십여리나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겪게 되자 「개인적인 이해 때문에 남에게 해를 끼쳐선 안된다」며 길을 원상복구토록 했다. 이처럼 궁핍한 처지임에도 자신의 안위보다는 항상 남의 어려움부터 먼저 생각하곤 했다.그는 권력을 탐하는 재사형 인간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오히려 선비로서의 도도한 마음가짐을 지키면서 이를 실천하다가 간 진정한 청백리였다.
  • “물의 일으켜 국민에 죄송”/김우중회장 일문일답

    ◎“청와대나 민자당고위층 만난적 없어/경제인으로 남아 국가발전 도울 결심”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29일 대통령선거 불출마 선언을 한뒤 기자들과 가진 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회장은 불출마선언을 하기까지 그동안 고민을 많이 한듯 피로한 모습이었다. ­대통령 불출마선언이 압력을 받은 인상인데. ▲그런 일 전혀 없다. ­그동안 정치개혁을 주장해 온 것은. ▲그동안 혼자 고민도 많이 하고 생각도 많이 했다.내가 생각하기엔 정치도 중요하지만 개혁도 중요하다.그러나 지금의 입장은 오직 경제인으로 남아 기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각계 인사와 만나 정치를 하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비추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다. ­불출마선언에 앞서 회사내부 인사와 상의했는가.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혼자서 결정했다. ­이번 선거에서 정치적 지원을 할 의향은 없는가. ▲앞으로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지난3월 창립25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마쓰시타 정경숙과 같이 정치지도자를 양성하겠다고 했는데.지금도 변함이없나.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아야 겠다. ­대선 불출마와 관련,청와대나 민자당 고위층을 만나지 않았는가. ▲전혀 아니다. ­오늘 아침 이종찬의원을 만났는가. ▲만나지 않았다. ­지난 27일 김포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서재경이사가 지난 25일밤 김회장 공식입장임을 들어 「출마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 서이사 개인생각이라고 했는데. ▲모든 일은 내가 직접한다고 했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다.언론이 그렇게 쓴 것이다. ­도쿄나 광주에서 불출마입장을 밝히지 않고 며칠 시간을 끈 이유는 무언가. ▲나에게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세사람 후보중 누구를 지지하나. ▲…. 김회장은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이제 그만하자』며 황급히 회견장을 떠났다.
  • 김우중씨의 교언/양승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지난 25일이후의 김우중대우그룹회장의 말을 추적하다보면 무엇이 진실이고,어떤게 거짓인지 도대체가 종잡을수 없다.꼭 무엇에 홀린듯한 느낌마저 든다. 일본방문을 마치고 지난 27일밤 귀국한 김회장은 공합대합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 25일 광주에서 자신의 대선불출마를 밝힌 서재경이사의 발언을 공식 부인했다.이부분에 대한 기자의 첫질문에는 『말꼬리를 잡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슬쩍 비켜나갔다.끝에 다시금 묻자 『나는 누구를 시켜서 하는 사람이 아니다.서이사가 개인 생각을 말했는지 모르지만…』이라고 얼버무려 버리며 사실상 백지화시켰다. 하지만 서이사는 당시 이를 「돌아오지 못하는 강」으로 비유한 기자들의 질문에 다시 확인 절차를 거친뒤 『틀림없다』고 못박았었다. 그의 「말의 숨박꼭질」은 여기서만 끝난게 아니다.공항에선 신당인사로부터 대선출마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 밝혔으나 이 발언이 미처 활자화되기도 전인 28일 새벽 이종찬의원과 회동,이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심지어 더이상비밀일수 없었던 노대통령과의 단독면담 사실마저 그날의 강릉일정을 빙자해 거짓말로 일관했다. 뿐만아니라 『정치는 정치인들이 해야지 왜 장사하는 사람을 못살게 구는지 모르겠다』면서 오히려 언론을 탓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김회장은 최근 대선정국을 틈타 언론계·학계의 유력인사들과 만나 대선출마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이 때문에 신문에 대서특필되는등 우여곡절을 겪은 것일 뿐 언론에 귀책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김회장의 최근 언행에 대해 세간에는 재벌의 정치참여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탐색하고 신당에 유리하게 추대되기 위해 미리 계산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다. 그는 지난번 광주에서 『만일 정치에 참여하게되면 후배를 키우고 모범된 정치를 하고싶다』고 밝힌바 있다. 적당히 얼버무리고 정치에 나서게 된다면 모범도,그렇다고 개혁도 아니어서 「첫단추부터 잘못 끼우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 김우중씨,신당 대선후보 출마 시사/일서 귀국 회견

    ◎“조건없이 추대땐 수락” 밝혀 대통령후보출마설로 관심을 모아왔던 김우중대우그룹회장이 27일 정치불참의 종전입장을 번복,신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강력히 시사했다. 김회장은 이날 하오 일본에서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기자회견을 갖고 신당에서 조건부로 후보수락요청을 했는지 여부에 대해 『후보로 나오라고 하면서 조건을 얘기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얘기가 되느냐』면서 『정치지도자가 책임감이 있고 모범이 되면 되는 것이지 그외에 무슨 조건이 필요하냐』고 반문,신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김회장은 또 기자들이 지난 25일 밤 광주에서 서재경 대우 기조실이사를 통해 불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았느냐고 묻자 『나는 누구를 대신 시켜서 한일이 없다.그런얘기를 남을 시켜서 하지는 않는다.서이사가 개인생각으로 그랬는지…』라며 불출마 의사표명을 부인했다. 김회장은 정치를 하게되면 기업을 정리한다고 했는데 주식처분까지 포함되느냐고 묻자 『완전히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 “기성정치인으론 개혁 못해”/김우중회장 일문일답

    ◎“정치참여땐 기업 완전 정리” 김우중대우그룹회장은 27일 저녁 일본으로부터 김포공항에 도착,공항대합실에서 최근 자신이 정치참여문제와 관련해 모호한 입장을 밝혀왔던 점을 설명해달라는 보도진의 요구에 『정치참여를 할것이냐,말것이냐 하는 것은 묻지말아달라』면서 일문일답에 응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요지. ­거취를 명확히 해달라. △상황을 누가 여기까지 혼란케 만들었는지 생각해봐라.언론이그렇게 만든것 아니냐. ­정치를 하게 되면 기업을 정리하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주식처분까지 말하는거냐. ▲완전히 정리해야한다. ­새한국당(가칭)은 김회장 추대쪽으로 의견을 모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랬다는 얘기를 들은적도 없고 공적이든 사적이든 요청받은 일 없다.요청받았다고 해도 나도 생각을 해봐야 될것 아닌가. ­정치참여 방법은. ▲꼭 대선에 출마해야 정치참여냐. ­신당에서 조건부요청을 해왔다는 얘기가 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나오라면서 조건이 얘기가 되느냐.정치지도자가 책임감있고 모범이 되면 됐지 그외 무슨 조건이 필요있느냐.지도자의 길은 고난의 길이다.고난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이 조건을 받아가면서 하는게 어디 있느냐.지금 사람들 가지고는 개혁을 바로할 수 없다.기성정치인이 개혁을 못하면 누가 나와도 나오겠지.우리나라에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기회가 없어서 안되지.여건이 되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것 아니냐. ­25일밤에 서재경이사를 통해 정치참여 않겠다고 한말은 뭐냐. ▲나는 누구를 대신 시켜서 한일이 없다.나는 절대 그런 얘기를 남을 시켜서 하지 않는다.서이사가 개인생각으로 그랬는지…. ­대선에 참여한다면 시간이 없지 않으냐.명확한 입장을 밝혀달라. ▲정치를 한다면 나도 생각을 해야지 금방 얘기를 할 수 있느냐.(기자들을 지칭)당신들 같으면 금방 얘기할 수 있겠느냐.그러나 지금은 심각히 생각을 해야한다.
  • 신당 후보옹립 난관 봉착/김우중씨 출마포기와 새한국당의 행로

    ◎위기감속 강 전총리 막바지 설득/추대 실패땐 당내인사 내세울 전망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의 대선출마설이 일과성으로 끝난 가운데 12월 대선구도가 정리되는 느낌을 주고있다. 김회장의 이번 측근을 통한 불출마표명으로 새 한국당(가칭)의 대선후보선정작업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결국은 「국민후보」추대가 불가능해지면서 「양금일정」의 기존 대선판도가 유지될 것이라는게 정가의 분석이다. 김회장은 지난 25일 밤 광주에서 서재경 대우그룹이사를 통해 『정치에 참여치 않겠으며 이는 나의 공식 입장표명』이라고 밝혔다. 물론 김회장이 또다시 태도를 돌변,자신의 말을 번복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김회장이 28일쯤 일본에서 귀국한뒤 어떤 행동을 취할는지는 미지수이며 새한국당이 만장일치로 「국민후보」수락을 요구할 때 김회장이 이를 받아들이는 상황도 상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김회장이 설령 아직 정치입문에의 의욕을 버리지않고 있더라도 정치관련 발언이 오락가락했다는 점,12월 대선까지 시일의 촉박성등을 감안할때 그의 대선출마는 「물 건너갔다」는게 중론이다. ○…정치참여와 관련한 김회장의 언행은 시시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김회장을 만난 어떤 인사는 『대선출마욕망이 강하다』고 전하는 반면 다른 인사는 『정치참여를 않을 것』이라고 밝힌다. 연초 김회장이 정치참여에 관심을 가진 이래 그의 정치와 연관된 움직임이 기복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출마설이 본격 증폭된 지난 주말이래 김회장의 심경을 가장 정확히 전하는 사람은 새한국당의 이종찬의원인 듯싶다.이의원은 지난 5월 민자당 대권후보경선에 도전한 이후 김회장과 밀접한 정치논의를 가져왔다. 지난 25일에는 김회장과 1시간여에 걸쳐 단독회동,새한국당의 후보추대문제를 협의했다. 이의원은 『김회장은 이번 대선출마보다는 정치개혁에 관심이 더 많았다.대선이 끝난뒤 마음이 맞는 인사들끼리 모여 조그만 정당이라도 결성하려 했다』고 전했다. 이의원은 이어 『김회장은 따라서 강영훈전총리나 박태준최고위원이 신당의 「국민후보」로 나서는 것이 상지상책이라는 견해를 밝혔다』면서 『하지만 신당의 후보추대가 지지부진하자 자신이 스스로 나서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회장은 그러나 정치입문을 하려면 기업과의 관계를 완전 청산해야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데 12월 대선까지는 시간이 촉박한 점때문에 고민하는 눈치였다고 이의원은 전했다. 결국 김회장은 대선이후의 정계 개편,나아가 차차기를 노리고 12월 출전을 검토했으나 촉박한 시간,일부의 부정적 여론,어려운 기업사정등으로 한발 물러서고 있는 상황이라 여겨진다. ○…김회장의 불출마표명으로 가장 타격을 받은 측은 새한국당이다. 새한국당은 「국민후보」로 박태준의원,강영훈전총리,김준엽전고대총장을 상정하고 꾸준한 교섭을 벌여왔으나 성과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김용환·이자헌·장경우의원을 중심으로 김회장이라는 차선책이 모색되었고 김회장이 동조하는 기색을 보여 활로가 열리는 듯했다. 이들은 김회장을 후보로 추대할 경우 「제2의 재벌당」이라는 비난을 살 소지는 있었으나 김회장이 대우와 완전 절연한다면 부정적 여론을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그에 더해 신당창당에 절대 필요한 자금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고,국민적 관심을 바탕으로 세확대에 나서볼 가능성도 있었다. 다시 말해 김회장은 정상적 「국민후보」추대가 어려울때 내세울 최대의 「히든카드」였던 셈이다. 신당인사들은 김회장카드가 조기노출돼 「무력화」된 배경에는 고도의 정치전략이 개재했을 수도 있다고 의심한다. 하지만 신당 인사들은 이제 김회장에게만 연연해서는 당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깨지리라는 우려아래 다른 대안을 찾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박태준의원,강전총리에 대한 막바지 설득을 재시도하는 한편 제3의 「국민후보」가 없는지를 탐색하고 있다. 새 한국당측은 당분간 김용환의원등을 통해 김회장의 진의를 정확히 타진해보는 노력도 병행하리라 예상된다.김회장이 아직도 「만장일치 추대면 수락」의 뜻이 있다면 신당세력들간 컨센서스형성을 위한 논의가 재개될 수도 있다. 보다 현실적 관점에서 추론하면 당외 「국민후보」추대보다는 이종찬의원등 당내 인사의 출마 혹은 국민당과의 연대 모색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역설이긴 하지만 김회장의 후퇴라는 위기상황은 반양금세력에게 재결집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박태준의원,강전총리의 태도변화여부도 주목되며 신당과 국민당의 연합여부도 관심을 끈다. 신당이 창당대회를 가질 예정인 11월초가 반양금세력의 결집 혹은 와해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대선 출마” 찬반 논란 일단락/김우중씨 정치불참선언 안팎

    ◎각종 모임서 모호한 발언… 진의에 촉각/「50대 역할론」 강조로 한때 기정사실화 대통령후보출마설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잠적했던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은 25일 광주 전남대 경영대학원 초청간담회에 참석하는 등 공개활동을 재개,관심을 끌었으나 결국 하오 늦게 측근을 통해 「정치 불참여」를 공식표명함으로써 그의 대선출마설은 일단락됐다. 김회장은 그러나 이날 광주에서 있은 각종 모임에서 출마를 시사하다가 부인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발언을 계속,그의 진의에 관해 여전히 일말의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김회장은 이날 하오 7시30분 무등산관광호텔에서 열린 전남대 경영대학원 초청간담회후 숙소인 신양파크호텔로 돌아와 기자간담회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기자간담회는 취소하고 대신 측근인 서재경 대우그룹이사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전달. 서이사는 『김회장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면서 『이를 김회장의 공식입장표명으로 봐도 된다』고 부연. 서이사는 신당인사들이 김회장을 대통령후보로 영입하고자 하더라도 거절할 것이냐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린뒤 『그렇더라도 참여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한뒤 『대우자동차대리점을 계속 방문하는 김회장의 행보가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는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 ○…김회장의 측근인 서이사가 김회장의 불출마입장을 간접확인해준뒤 보도진들은 김회장의 직접 공식확인을 요구,서이사는 취침중인 김회장을 또다시 면담. 서이사는 김회장과 다시 만난뒤 『서이사를 통한 의사표명이 김회장의 뜻이며 이로인해 김회장의 향후정치적 입장에 불이익이 없겠느냐』는 질문에 『상관없다고 했다』면서 불출마입장을 거듭확인. 김회장은 26일 상오 항공편으로 서울로 올라가 곧바로 1박2일동안 일본을 방문,스즈키사와 기술협력계약을 체결할 예정. ○…김회장은 그러나 이에앞서 이날 하오 전남대 경영대학원이 주최한 「전환기 한국의 과제」라는 세미나에선 『지금은 희생하는 지도자가 나서야 할 때』라며 『현정치지도층엔 국민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줄 정치지도자가 없다』고 주장,정치참여 결심을 굳힌 듯한 인상을 주기도. 김회장은 이날 주제강연에서 『지금은 희생하는 지도자가 새로운 영웅으로 등장해야 하는 시기』라며 『현 상황대로 가면 나라의 장래가 매우 우려스러울 정도』라고 현실 정치관을 피력. 김회장은 『만약 정치에 참여한다해도 대권에 도전하는 정치는 하고 싶지 않다』고 전제,『고난의 길을 가며 후배를 키우고,정치개혁을 위한 전국민운동을 전개하는데까지 참여할 생각』이라고 의미심장한 발언. 김회장은 그러나 정치참여문제에 대해 『KBS와의 대담에서 정치참여는 않는다고 분명히 얘기했다』면서 『지금으로서는 신당으로부터 교섭을 받은 일도 없고 깊이 생각한 적도 없다』고 후퇴하기도 하는 등 모호한 태도. 그는 이어 50대 역할론과 관련,『모든 분야에서 개혁이 필요하며 이번은 안되더라도 다음번에 50대가 높이 평가돼야 하며 지금부터 키워서 다음을 잇도록 해야 한다』고 차차기 역할론을 제기. 또 정치개혁에 대한 질문에 김회장은 『우리 정치는 후배를 키우는데 상당히 인색해 왔으며 이로인해 개혁및 도전의지,생동감 있게 나라를 끌고가려는 의지가 사라졌다』고 지적한 뒤 『과거 박정희대통령도 40대에 집권,경제발전을 이룩했다』고 상기. ○…김회장은 이날 상오 승용차편으로 서울을 출발해 이리에서 헬기로 갈아타고 광주에 도착,대우전자 광주공장 구내식당에서 낮12시부터 열린 호남일원영업사원 판촉격려대회에 참석,약7백명의 사원들과 함께 도시락으로 점심을 나누며 대화. 김회장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향후 정치행보에 관해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한국사회에서 50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내용의 이른바 「50대 대망론」을 피력하는등 강한 정치 의욕을 보였다는 것. ○…김회장은 그러나 이 행사직후 하오5시부터 열린 광산 김씨 종친회모임에선 『사실상 기업인으로 남아 기업을 키우고 싶다』면서 『정치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현재로선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자신의 대선후보출마설을 부인하는 듯한 발언.그는 또 23일 노태우대통령과 만났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23일에는 강릉에 가 있었는데 청와대에 어떻게 갔겠느냐』고 부인. 김회장은 그러나 종친회 참석직전 신양파크호텔에서 기자들과 잠시 만난 자리에선 대선출마회의론을 펴면서도 『우리나라는 정치도 그렇고 30·40대 인재가 없어 허리가 약하다』며 여전히 「50대 역할」을 강조. 그는 출마설을 일단 부인하는 가운데서도 『현재로선…』이라고 전제를 붙이는가 하면 『신당으로부터 아직 요청이 없었다』고 신당측의 「추대」문제를 지적하는등 계속 여운. 김회장은 이어 『이번 광산 김씨 행사가 정치적으로 비칠 것을 우려해서 행사참석을 않으려다 광주까지 내려와 종친회에 참석지 않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같았다』면서 『그러나 26일 담양에서 열릴 시제행사에는 불필요한 오해를 살 것으로 보여 불참하니 양해해 달라』고 설명. 한편 광산 김씨 종친간담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노대통령과의 단독면담등 구체적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으나 정치부분에 대해 많은 의견을 피력했다』면서 『내가 볼때는 정치에 참여할 것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전언. 김회장은 종친회 행사장에서 취재기자들이 『한편으로 대선출마의사를 강력표명해 놓고도 이렇게 계속 부인만 하면 어떻게 되느냐』며 확실한 입장표명을 요구하자 이날 하오9시30분 신양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겠다고 약속. ○…김회장은 이에 앞서 이날 아침 서울역앞 대우빌딩에서 이종찬의원과 비밀회동을 갖고 자신의 대통령후보 추대문제를 집중협의. 이 자리에서 김회장이 『신당측이 전원합의로 자신을 대통령후보로 밀면 이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이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는 설이 돌기도. 이에 대해 이의원도 사실상 긍정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의원은 김회장과 회동직후 우당기념관에서 측근들과 모임을 갖고 『김회장이 대우와의 관계를 모두 단절하면 그의 대통령후보 추대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는 전언. 김회장의 대선출마에 대해 반대입장을 견지하던 이의원의 이같은 태도선회로 미루어 두사람간에는 후보문제에 관한 합의가 끝난 상태일 것이라는 추측.
  • 김우중씨 정치불참 선언/측근통해 공식발표

    ◎“아직은 기업인으로 남고싶다”/“신당서 영입제의 한적 없고/「후보추대」 하더라도 거절” 【광주=양승현기자】 가칭 새한국당에 참여해 대통령후보로 출마할 움직임을 보였던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이 25일 하오 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김회장은 이날 하오 광주신양파크호텔에서 측근인 대우그룹 서재경이사를 통해 이같은 뜻을 밝혔는데 서이사는 『이를 김회장의 공식입장표명으로 보아도 된다』고 말했다. 서이사는 새한국당 인사들이 김회장을 대통령후보로 영입하려해도 거절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김회장은 이날 광주 하남공단내 대우전자 광주공장에서 전남·북 판매사원 7백여명과 오찬을 함께 하고 광주신양파크호텔에서 광산 김씨 종친회에 참석한데 이어 같은 호텔에서 열린 전남대 경영대학원 초청 간담회에 참석,「전환기의 한국의 과제」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김회장은 간담회 연설을 통해 『KBS­TV와의 대담에서 정치참여는 않는다고 분명히 얘기했다』면서 『지금으로서는 신당으로부터 교섭을 받은 일도 없고 깊이 생각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김회장은 그러나 『만약 정치에 참여한다면 대권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는 하고 싶지 않으며 고난의 길을 가는 후배를 키우는 모범의 정치를 하고싶다』고 여운을 남겼다. 김회장은 이 과정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직까지는 기업인으로 기업에 남고싶다』고 말했다. 김회장은 광주에서 1박을 한뒤 상경,일본 스즈키자동차와 기술협력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박2일 일정으로 26일 출국할 예정이다. 김회장은 이날 상오 광주로 내려가기전 새한국당의 이종찬의원을 서울 대우빌딩에서 단독으로 만나 『새한국당이 전원일치로 추대해주면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새한국당은 이에따라 이날 하오 전체회의를 갖고 김회장이 대우주식을 모두 처분하는등 대우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대권후보를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장하며 신당참여인사들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수용한다면 「국민후보」로 추대할수 있다는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회장이 정치불참의사를 공식표명함에 따라 신당 인사들은 우선 김회장의 진의를 타진한 뒤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경제난 타개” 외자유치창구 확대/북한,「외국인투자법」왜 제정했나

    ◎합영법보단 진일보… 실효성 아직 의문/지역제한 등 폐쇄성 여전한 걸림돌 구실 북한관측통들은 북한이 지난 5일 채택한 것으로 알려진 「외국인투자법」과 관련,기존의 「합작회사운영법」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데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하지만 이 법 자체가 여전히 북한 특유의 폐쇄성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데다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정치체제 등 내부의 문제점들이 풀리지 않고 있어 북한이 기대하는대로 외국기업의 급속한 대북투자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북한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우선 북한은 신설 「외국인투자법」에서 외국인들의 단독투자기업은 자유경제무역지대내에서만 창설할 수 있다고 규정,외국인들의 단독투자지역을 나진·선봉자유무역지대와 두만강특구로 제한하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평양 근거리에 있는 남포지역이 제외된 이같은 「위치적 제한」은 외국기업의 투자와 함께 불어닥칠지 모르는 자유경제체제의 바람을 철저하게 차단하려는 의도로 북한의 외국투자수용의 한계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북한은 거의 지구상에서 유일하다시피 개방과 개혁이라는 세기사적 흐름을 외면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시장원리의 수용태세 역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다. 뿐만 아니라 극심한 식량난과 외화부족,원유의 고갈 등 제반 기본투자여건 또한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이 현재 가중되고 있는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한 「응급조치」로 「외국인투자법」을 채택하긴 했지만 이같은 일련의 악조건들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실효를 거두기가 어려울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민족통일연구원의 서재진 북한연구실장은 『외국의 투자를 끌어 들이기 위한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법만으로는 가시적인 효과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하고 『이 법의 제정은 다만 외국인투자와 관련한 북한의 정책이 뒤늦게나마 방향을 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준 의미밖에는 없다』고 밝혔다. 서실장은 특히 이 법의 성격에 대해 서방기업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 촉진법」이라면서 아직은 외국인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첫 걸음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지난 84년 9월 중국의 「중외합작경영기업법」을 본딴 「합작회사운영법」을 채택,외국기업의 투자유치에 주력해왔다.그러나 92년 10월 현재 합작실적은 총 1백40여건에 그치고 있으며 그나마 60% 가량이 조총련 상공인과의 합작인 것으로 나타나 당초 기대했던 서방의 자본과 선진 기술도입은 극히 부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북한 대규모 공사 대부분 단절상태/경제상황 분단이후 최악

    ◎최 통일원 밝혀 최영철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16일 북한은 대외경제여건의 악화,원유 등 수입 원자재의 공급부족,수출부진과 외화부족 등으로 생산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있으며 금년들어 대규모 공사는 거의 중단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최부총리는 이날 시내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국능률협회주최 최고경영자조찬회에 참석,「세계질서재편과 남북관계개선의 과제」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90년 마이너스 3.7%,91년 마이너스 5.2%로 평가되며 특히 광공업은 마이너스 10% 정도의 저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최근 들어 분단 이후 가장 극심한 경제침체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 “국민된 도리서 거역 어려웠다”/총리내정서 수락까지

    ◎14시간 두문불출… 인간적 번민/“대통령 보필에 최선” 고사뜻 철회 신임 국무총리내정자인 현승종교총회장은 몇차례의 고사를 표명하면서 인간적인 고뇌를 겪는등 번민 끝에 지명을 수락했다. ▷청와대◁ ○…노태우대통령은 이날 하오3시35분부터 4시까지 25분간 본관 서재에서 현총리내정자를 면담. 현총리내정자는 이날 춘천숙소를 떠나 청와대로 향할 때부터 총리직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사실상 내락한 상태였기 때문에 노대통령과의 면담에서는 다시 고사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김학준청와대대변인이 설명. 노대통령은 이자리에서 공명선거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중립내각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현총리내정자는 『노대통령의 뜻이 역사앞에 살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다』고 말했다고 김대변인이 소개. 김대변인은 현총리내정자가 총리직을 고사한데 대해 『역사적과업 수행에 힘이 모자란다는 겸량지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해석하고 『그렇지만 대통령의 뜻에 공감,미력이나마 돕기위해 나서기로 한것으로 본다』고 부연. ▷수락안팎◁ ○…6일 밤10시부터 자택인 춘천시 후평동 엘리트아파트에서 두문불출,만14시간 가까운 7일 상오11시35분 기자들의 요청에 못이겨 현관문을 열어준 현승종 교총회장은 당시까지 『아직 결단을 못 내렸다』며 난감한 표정. 그는 이어 『수원에 있는 자식이 「교육계에만 계시던 아버지가 나가게 되면 몸만 다친다」고 말했다』면서 가족들은 물론 친구들도 반대하고 있다고 소개. ○…그러나 현회장은 자신이 정치경험이 없고 자신감이 없는등 부적격자임을 내세우면서도 『국가원수가 나라를 위해 희생하라면 국민된 도리상 거역하기 어렵다』는 말로 사실상 국무총리직 수락의 뜻을 표명. 현회장은 이날 아침도 거르고 점심은 서울로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 샌드위치와 음료수로 해결하는 등 마음고생으로 인해 정상적인 식사를 못하기도. ○…이날 낮12시10분쯤 춘천을 출발,하오2시에 교총에 도착한 현회장은 『교육계만 몸담아온 본인이 총리직을 극구 사양했으나 국가원수께서 부르시니 가 봐야겠다』며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나 미안하게 됐다』고 교총임직원들에게 고별인사. ○…현회장이 국무총리 내정자로 발표되자 현회장이 거주하는 춘천시 후평동 엘리트아파트 주민들은 경사가 났다며 환영 일색.
  • 장기표·이근희씨 영장 요지

    ▷장기표◁ 장기표는 경남 밀양 출생으로 84년 1월 민청련 지도위원.86년 3월 민통련 정책연구실장,90년 11월 민중당 정책위원장,92년 3월 14대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해 낙선한 자로 92년 4월부터 「민주개혁과 사회진보를 위한 협의회(민사협)」회장을 맡고 있음. 장은 89년 11월10일 이우재·박계동등 전민련 간부,제정구·정태윤등 진보정치연합 간부들과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을 위한 준비모임」을 결성,조직국장을 맡아 민중당 창당을 준비중이었음. 장은 당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준비모임」사무실에 자주 드나들던 북한 공작원 이선화(77)와 접촉,이로 부터 같은해 12월 5백만원의 자금을 기탁받았음. 장은 주위 사람들로 부터 이가 『4·3폭동때 남편을 잃고 서울로 와서 바느질·식모살이 등을 하면서 모은 돈을 희사했다』는 설명을 들어 이가 좌익으로 기울어졌고 신분노출을 꺼려하는 점으로 미뤄 북한과 연결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임에도 계속 접촉했음. 장은 90년 1월 어느날 하오7시쯤 이를 서울 도봉구 쌍문동 집으로 초청,처 조무하(42)등과 식사하면서 『민주화운동을 하느라 고생많았다.생활비에 보태 쓰라』는 말과 함께 30만원을 받았음. 그해 2월에는 수배중인 청계피복노조위원장 김영대의 은신처를 이에게 부탁,이의 전셋방 3개중 1개를 사용토록 허가받았음. 장은 다음날 이가 그려준 약도를 보고 이의 집을 방문했음. 또 같은해 6월에는 이로 부터 5백만원을 받아 「준비모임」사무실에 복사기를 설치하면서 「이선화 기증」이라는 글씨를 새겼음. 장은 90년 6월21일 민중당창당 준비위원회 결성대회를 열어 이에게 표창장을 주었으며 이에 이는 「민중시대를 맞는다」는 제목의 축시를 보냈음. 장은 이 축시를 같은해 7월16일자로 발행한 민중당 당보 「민중시대」에 게재했음. 장은 90년 6월 어느날 이를 집에 초청,저녁식사를 한뒤 이로 부터 「조용히 할 말이 있다」는 말을 들었음. 이어 자리를 서재로 옮겨 이가 『나는 북에서 내려온 사람으로 김일성수령의 뜻을 받들어 통일사업을 하는 사람이다.장위원장도 함께 사업하자』는 제의를 받음. 이에 장은 이가 대남공작원으로 국내에 잠입,간첩활동을 하는 줄 알게 됐으면서도 수사기관에 고지하지 않았으며 같은해 8월 민중당사 부근 「하얀집」다방에서 계속 만났음. 장은 현재 피의사실에 대해 조사를 받으면서 진술을 거부하는등 소위 「신문투쟁」으로 일관하고 있음. ▷이근희◁ 이근희는 서울대 불문과3학년 재학중이던 86년10월 「구국학생연맹(구학련)」사건과 관련,징역2년·집행유예4년 형을 받은 자로 90년5월당시 평민당 이상수의원 입법보조원으로 근무하다 91년9월부터 김대중 민주당공동대표의 비서 김모씨(30)의 소개로 김대표의 국회 국방위 비서로 채용돼 근무하고 있음. 이씨는 91년4월하순 서울대에서 분실자살했던 「김세진·이재호추모집회」에서 황인욱을 만나 국회 정보를 제공하기로 약속하고 수차례 황과 접촉했음. 91년 6월하순 황으로부터 김일성부자 찬양물인 「민족의 태양」이라는 불온 비디오테이프 3개를 전달받아 이를 보고 돌려줌. 같은해 7월 하순부터 11월까지 서울 신촌 이대앞 「1995」카페에서 황과 접촉하면서 「사노맹 수사발표문」및 「홍보책자」2권과 「민자당계파 갈등」및 남북정상회담관련 메모를 전달함. 91년 12월하순 국회 국방위 입법조사관실에서 김대중대표의 도장으로 문서수령대장에 날인한뒤 군사 2급비밀인 「1992 국방예산(안)개요」를 1부 복사,황에게 전달했음.
  • 북한 핵·통일 등 국제협력 모색/노 대통령 유엔방문의 함축

    ◎한중 수교·동북아정세 변화 등 설명/국제현안 적극 발언… 위상 높이기/미 정책 실무자 접촉… 양국 우호협력 확인 노태우대통령의 이번 유엔방문은 오는 22일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주요 행사내용이다.또 수하르토 인도네시아대통령,부룬트란트 노르웨이총리와 회담을 갖는등 유엔을 무대로 한 정상외교도 펼친다. ○22일 총회 기조연설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서 우리나라가 추진해 나갈 외교정책적 기조를 확인하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상을 정립해 놓겠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있다.노대통령 개인으로서도 지난 집권기간동안의 외교성과를 마무리 정리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노대통령의 이번 유엔방문과 총회연설은 지난 88년10월,지난해 9월에 이어 3번째이다.88년에는 정식회원국이 아닌 옵서버국가의 대통령으로서 「한반도문제」에 관한 한정된 의제범위내에서 견해를 밝혔다.지난해에는 남북한유엔동시가입이 성사되면서 회원국 국가원수로서 국제적인 관심사 전반에 걸쳐 우리의 입장을 천명했다.이를테면 「가입연설」의 성격을 지녔다고도 할 수있다. 노대통령의 이번 유엔총회연설은 유엔가입후 지난 1년동안 회원국으로서의 우리의 역할과 노력에 대해 설명하고 특히 한·중수교로 조성된 동북아의 질서재편을 국제사회에 확인시키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즉 유엔의 당당한 회원국으로서 냉전종식이후의 신세계질서 창출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하겠다는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사실상 우리나라는 유엔에서 「준이사국대우」를 받을 만큼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우리의 유엔예산분담금은 전예산의 0·6%로 세계21위에 해당한다.금년도 우리의 부담액은 연회비 6백80만달러,평화유지군 지원비 4백만달러등 약 1천1백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또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도 7백50여명의 병력을 파견하겠다는 의사를 이미 통보해 놓은 상태이다. ○군축·환경노력 부각 이같은 위상에 걸맞게 노대통령은 기조연설을 통해 군축·저개발과 빈곤·환경·인권등 주요국제현안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또 한반도를 둘러싼 4강체제의 변화를 축으로 한 동북아정세를 설명,동북아문제를 세계적 문제로 부각시키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다질 방침이다.이는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해 나가는 외교전략상 매우 중요한 대목으로 유엔외교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게 정부당국자의 설명이다. 노대통령은 특히 정부가 꾸준히 추진해온 북방정책의 성과와 함께 북방정책의 마지막 목표인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할 것으로 전해졌다.노대통령이 북방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했다는 점에서 원래의 정책적 목표와 철학과 더불어 당위성을 설명하면 국제사회의 공감을 유도해내는데 효과적일 것이라고 당국자는 밝히고 있다.특히 북한의 핵문제가 풀리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노대통령의 이번 연설은 북한측에 대해 적지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엔 적잖은 부담 노대통령은 유엔체류기간중 두차례의 정상회담외에 이글버거미국무장관대리,스코우 크로프트미백악관 안보보좌관,전기침중국외교부장,와타나베일본외상등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들과 두루 접촉을 갖게 된다.유엔이 전세계적 주요 현안들이 깊이있게 논의되는 실질적 다자간 외교의 장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다.정부 당국자는 유엔총회가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가장 많은 국가의 정상들을 상대로 가장 효과적인 외교를 전개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당초 예상되던 부시미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재선을 노리는 부시대통령의 일정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부시대통령은 지난 17일 노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이같은 입장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노대통령은 그러나 미국의 고위정책관계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양국간 우호협력관계를 재확인하고 양국의 차기행정부간의 긴밀한 유대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옥숙여사 동반안해 노대통령의 유엔방문은 국가 지역적 이기주의가 팽배해 가는 국제현실에서 우리의 이익을 보호·신장하기 위한 외교노력의 일환이다.노대통령은 부인 김옥숙여사도 동반하지 않으며 공식수행원도 10명으로 최소화했다.
  • 한반도주변 정세 어떻게 변할까(한·중수교/동북아 새 질서:2)

    ◎「탈이념」 가속… 정치역학 대변환/한국,「힘의 균형」 주역으로 통일 주도/주변 4강 남북교차승인 당겨질듯 한국과 중국의 수교는 세계 유일한 냉전지대인 한반도와 그 주변정세에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제 그 변화의 폭과 속도를 결정해 주는 열쇠는 오로지 북한이 갖게 됐지만 하나뿐인 형제국가 중국의 이탈은 북한으로하여금 개방과 평화정착,그리고 통일이라는 외길로 나갈 수밖에 없도록 할 것이 확실하다. 이에따라 핵문제가 걸림돌이 돼 난항을 겪어왔던 일·북한 수교교섭과 미·북한 관계개선이 본격화돼 바야흐로 미·일·중·러 등 한반도 주변 4강의 남북교차승인이 가시권에 접어들 전망이다. 또 소련의 해체와 미군의 단계적 철수로 생겨난 힘의 진공을 틈타 점차 영향력을 증대시켜가는 일본과 아시아국가 가운데 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를 견제할 능력을 갖춘 유일한 나라인 중국의 향후 거취에 따라 동북아지역 질서재편의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즉,중국의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과 유엔개발계획(UNDP)의 두만강유역 개발계획에 있어 핵심당사국인 일본의 대북 영향력의 정도에 따라 완전한 탈냉전후의 북한의 모습이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김요일의 충격적인 뉴스는 북한권력층,특히 강경파에게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충격을 주었음직하다. 북한은 러시아 및 동유럽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부터 탈고립을 위해 대외정책에 상당한 수정을 가해왔다.체제를 불안케 하면서까지 개혁을 추진해서는 안된다는 강경파와,체제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개방의 정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온건파의 의견이 맞서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지만 점차 경제관료들이 주축이 된 온건파의 입지가 강화돼 왔다.그 이면에는 김일성을 불러들여 경제특구를 시찰시키면서 은연중 개방압력을 넣은 중국의 측면지원도 컸던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이제 중국이 완전히 등을 돌리리라고까지는 예상되지 않지만 전과 같은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입장이 됐다.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은 물론 남북상호사찰을 수용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미·일등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어야 하게됐다. 따라서 남북고위급회담과 핵통제공동위등 남북간의 대화채널이 활성화되는 동시에 24차에 걸친 참사관접촉에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미·북한간의 막후접촉,8차회담의 일자까지 정하지 못할만큼 교착상태에 빠진 일·북한수교교섭이 활기를 띠게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맹방이었던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활발한 외교를 펼쳐온 한국에 비교해 수세에 몰렸던 북한이 미·일과 공식적인 자리에서 수교교섭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한중수교가 대만을 제외한 주변관계국 모두에게 유익한 진전이라는 21일자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한중수교는 일본에도 상당히 고무적이다. 일본은 동남아는 물론 중국,시베리아까지 자신의 경제적 영향력 아래 두고 있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반도 특히 북한지역에 대해서는 북한핵문제가 해결되기 이전에는 투자및 관계개선을 보류해 달라는 미국의 요청때문에 관망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핵문제의 해결을 서두를 것이 확실시되는 이상 북한과의 수교교섭에 적극적인 자세로나올 것으로 보인다.한편으로 북한이 일본보다 수교를 갈망하는 형편이기 때문에 일·북한간의 관계개선은 한중수교보다 훨씬 간략하게 빠른 시일내에 성사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본으로서는 적어도 남북이 통일되기 전까지는 전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득실을 저울질해가며 대한반도정책을 펼 수 있는 여유까지 갖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수교는 중국이 남북한을 동시에 상대하며 이 지역에서 일본의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세력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음을 의미한다.물론 당분간 중국이 한반도문제에 있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한국보다 북한쪽에 기우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일본의 대한반도 영향력 행사에 관해서는 좌시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있어서는 상당한 굴욕을 감수해야 할 전망이다. 미국은 북한을 이라크처럼 위험한 존재로 규정,관계개선의 반대급부차원에서 북한을 철저하게 길들이려 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정책기조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국가들의 이해가 난마처럼 얽혀 섣불리 장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 변화의 방향이 평화정착이라는 건설적인 쪽으로 잡힌 듯하다. 한중수교는 한국의 전방위외교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 질서재편 과정에서 보다 능동적인 역할을 예상케 하는 것이다.
  • 이멜다,“2억불 찾자” 홍콩나들이/남편 유산·은행구좌 행방 추적

    ◎하루 호텔 투숙비만 2천달러 마르코스전필리핀대통령이 집권당시 숨겨놓은 약2억달러의 행방을 찾기위해 28일 홍콩에 온 이멜다여사는 남편의 자산을 찾아내 자선기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그녀의 수행원들도 이번 여행이 「(돈)찾기여행」이라고 거침없이 주장한다. 변호인으로 따라온 미국인 제임스 린씨는 『80년대 홍콩으로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2억달러중 대부분이 회수되지 못할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홍콩구좌에는 한때 꽤많은 돈이 있었으나 분명히 누군가가 그 돈을 인출해 갔으며,아마도 필리핀정부로부터 온 어떤 사람일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이 필리핀 정부를 물고 늘어지면서도 과연 누가 이돈을 찾아갔는지를 알아보고 그돈이 흘러간 방향을 알아내기 위해 홍콩에 왔다는 것이다. 이멜다의 대변인 로저 페유안은 마르코스재산의 행방에 대해 어떤 정보를 갖고있는 사람은 연락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는 현재로선 돈의 행방이 오리무중이어서 찾아낼 가능성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할것 같다.그럼에도 이멜다여사는 마르코스 전대통령의 금융상담인이었던 롤란도 가푸드씨를 비롯,은행대표자들과 옛친구들을 두루 만나 돈의 행방을 꼭 찾아내겠다는 의욕에 차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투숙한 방은 프레지덴셜슈트로 안방 서재 부엌 풀장 스팀사우나실 서비스실 등으로 이뤄진 초호화판으로 투숙료가 하룻밤에 2천달러씩이라고 호텔측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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