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서재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 오염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 전역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 100만원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 봉쇄
    2026-03-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394
  • ‘작은 아씨들’ 작가 루이자 올콧 처녀작 출간

    ◎고아처녀와 귀족 ‘아주 특별한 사랑’/17세때 쓴 로맨스 필사본 150년만에 햇빛/여리면서 자립적인 여주인공의 사랑 만들기 1996년 4월 미국의 언론과 영화계는 한편의 소설에 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작은 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의 미발표 처녀작 ‘아주 특별한 사랑’(원제 Inheritance)의 필사본(필사본)이 150년만에 하버드 대학의 도서관에서 발견된 것이다.엄청난 관심속에 출간된 이 소설은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미국 출판계는 다시 한번 ‘올콧 바람’에 휩싸였다.올콧의 문학인생의 출발점이 된 ‘아주 특별한 사랑’(임옥희 옮김)이 도서출판 창작시대사에서 나왔다. ‘아주 특별한 사랑’은 올콧이 열일곱살때 쓴,한 편의 동화같은 순정 로맨스.고아출신의 여주인공 에디스와 기품있는 귀족 퍼시 경의 투명한 사랑을 그린다.공상적이며 서정미 넘치는 사랑이야기인 로맨스는 시대와 나라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되지만 그 기본골격은 보편성을 띤다.한 예로 우리의 ‘콩쥐팥쥐’ 이야기는 서양의 ‘신데렐라’ 이야기와 매우 비슷한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다.로맨스의 남자주인공은 영웅다운 행동으로 미인을 얻게 되고,여주인공은 착한 마음씨와 아름다운 외모가 눈에 띄어 백마탄 왕자를 만나게 된다는 식이다.이 작품 역시 로맨스의 원형을 그대로 따른다.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 에디스는 전형적인 로맨스의 여주인공이면서도 다른 로맨스물의 여주인공들과는 색다른,독립적인 모습을 보인다.이것은 그의 개인적인 성장배경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올콧은 183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저먼 타운에서 진보적인 교육자이자 초절주의 사상가인 에이모스 브론슨 올콧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그의 아버지는 훌륭한 인품과 교육자적인 정열을 지녔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능했다.올콧의 자매들은 ‘작은 아씨들’에서처럼 가난하지만 어머니를 중심으로 굳건하게 세파를 헤쳐나갔다.하지만 올콧은 풍요로운 문학적 환경속에서 성장했다.아버지의 친구들인 랠프 왈도 에머슨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나다니엘 호돈 등 미국 문학의 거장들로부터 기름진 문학적 자양분을 얻은 것.올콧은 월든 연못가에있는 소로의 오두막에 놀러가곤 했다.소로가 연주하는 플루트 혹은 그가 들려주는 숲속 요정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소녀적 감수성을 키웠다.월귤나무 열매를 찾아 콩코드의 숲속을 헤집고 다녔는가 하면 에머슨의 서재를 수시로 드나들며 보고싶은 책을 읽었다.그의 삶은 그 자체가 바로 로맨스였다. 올콧 작품의 여주인공들은 마치 19세기 로맨스의 전형인 ‘제인 에어’의 주인공 제인 에어처럼 자립적인 경향이 강하다.그것은 올콧이 19세기 전반부에 있었던 가장 중요한 지적·문학적 운동 가운데 하나인 초절주의의 분위기에 싸여 지낸 영향이 크다.이 소설의 주인공 에디스 역시 독립적인 인물로 그려진다.에디스는 남성의 기사도를 자극하기에 충분할만큼 여린 감성의 소유자지만 그는 결국 독립독행한다.고딕풍의 세기말적 우수까지 묻어나는 이 소설에는 로맨스의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황량한 세상에 ‘유리구두’와 같은 환상을 안겨주는 상큼함이 있다.
  • 한보 피고인 부인도 도덕 불감증

    ◎남편 돈뭉치 상자의 출처 묻지도 않아/꺼내 주는대로 받아 생활비 등에 사용 한보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피고인의 부인들은 대부분 1만원권 돈뭉치가 가득 담긴 사과상자를 건네 받고도 출처를 묻지 않고 생활비 등으로 받아 쓴 것으로 밝혀졌다. 26일 공개된 한보 사건 수사기록에 따르면 정태수 총회장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2억원을 받아 징역4년을 선고받은 김우석 전 내무장관의 부인 김모씨(53)는 지난 2월 검찰 조사에서 『94년 9월 어느날 하오 9시쯤 남편과 함께 귀가한 운전기사가 사과상자 1개를 현관에 놓고 갔으며 남편이 「돈이 들어있다」고 해 열어보니 1만원권이 1백만원씩 묶여 모두 1억원이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돈의 출처에 대해 묻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어디서 났는지,누구와 저녁을 먹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으나 남편이 시키는 대로 쇼핑 백에 담아 안방 장롱에 보관했다가 2∼3차례에 걸쳐 1천5백만씩을 꺼내주는대로 생활비로 썼다』고 말했다. 정총회장에게 2차례에 걸쳐 4억원을 받아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신광식 전 제일은행장의 부인 강모씨(57)도 『96년 7월 어느날 저녁 남편과 함께온 낯선 사람이 사과상자 1개를 현관에 놓고 갔으며 남편은 「아무 것도 아니니 만지지 말라」며 서재로 직접 들고 갔다』고 말했다. 강씨는 『며칠뒤 청소를 하면서 몰래 뜯어보니 1만원권 돈뭉치가 있었지만 남편이 바깥 일에 대해서는 얘기하는 것을 싫어해 출처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면서 『며칠뒤 남편이 그 돈에서 딸의 혼수비용으로 1천만∼7천만원씩 4∼5차례 주었고 생활비로도 몇차례에 걸쳐 2백만원씩 타 썼다』고 말했다. 정총회장으로부터 2억원을 받아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황병태 의원의 부인 김모씨(62)도 『96년 12월 조찬 약속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이 직접 사과상자 1개를 힘겹게 들고 들어와 「돈이 들었다」며 보관하라고 해 돈을 세어 옷가방에 담았으나 돈의 출처나 사용처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 시내전화도 이젠 선택시대/한통 100년 아성에 하나로통신 도전장

    ◎하나로 99년 개통… 첨단서비스 제공 선언/한통 98년까지 가입자망 정비… 수성다짐 새 통신사업자 선정으로 시내전화사업 독점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한국통신과 데이콤(하나로통신)의 첨단 시내전화망 가꾸기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2만㎞에 이르는 광케이블망 소유자인 한전과 이동통신업계의 대부 SK텔레콤,그리고 삼성·현대·대우를 연합세력으로 끌어들인 데이콤이 『멀티미디어 통신망을 선보이겠다』면서 1백년 가까이 국내 시내전화시장을 독점해 온 한국통신에 정식으로 도전장을 냈다.단순한 음성전화가 아닌 데이터통신서비스나 멀티미디어형 통신상품을 내세워 시내전화의 성격 자체를 바꿔 놓겠다는 얘기다. 99년초 서비스를 시작하는 하나로통신은 자사의 제2시내전화망을 광케이블·케이블TV전송망·무선가입자망(WLL) 등을 이용한 최첨단 통신시스템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또 가정까지 광케이블을 연결해 음성은 물론 주문형비디오(VOD)·영상전화·원격교육·홈쇼핑·홈뱅킹과 같은 멀티미디어서비스를 싸게 제공할 계획이다. 케이불TV망을 이용하면 안방에서 케이블TV를 보고 거실에서는 전화를 걸며 서재에서는 고속인터넷 접속을 동시에 즐길수 있게 된다.또 무선가입자망을 도입하면 지금보다 두배 남짓 빠른 64Kbps의 속도가 나온다.일단 가입만 하면 두개의 회선이 제공되므로 PC통신(데이터)과 전화통화(음성)를 한꺼번에 할 수 있다. 시내전화도 공산품처럼 싸고 품질 좋은 서비스를 골라 쓰는 시대가 다가 오고 있는 것이다. 하나로통신은 또 통화료를 3분당 39.5원으로 한국통신의 41.6원보다 5% 싸게 받고 가입비는 한국통신의 25만원보다 64% 싼 9만원으로 책정해 놓았다.99년이후 한국통신 가입자가 하나로쪽으로 시내전화를 옮기면 15만원을 돌려 받게 되는 셈이다. 또 주문형비디오·영상전화와 같은 멀티미디어서비스는 한국통신보다 15∼47% 낮게 요금을 정했으며 가입자접속장치나 디지털 고속모뎀·케이블 모뎀 등 필요한 각종 장비는 무료로 나눠줄 계획이다. 한국통신은 이같은 하나로통신의 계획에 현실성이 없다며 코웃음치고 있으나 내심으로는 긴장감을 감추지 못한다. 한국통신은 지난 5월 통신망고도화방안을 발표하고 현실로 다가온 가입자망 경쟁에 대비해 대대적인 수술작업을 시작했다.우선 올해말까지 전국 80개 도시를 잇는 광전송장치를 깐 뒤 98년부터 멀티미디어서비스에 맞는 비동기전송방식(ATM)상용통신망을 구축,하나로통신이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 자사의 시내망을 완전히 새단장하겠다는 각오다. 이와 함께 2002년까지는 전국 시내전화국과 시외교환기의 종합정보통신망(ISDN)화를 매듭지겠다는 청사진도 마련해 놓았다. 우리나라 시내전화서비스가 하나로통신의 등장으로 1백여년간의 긴 잠에서 깨어나 멀티미디어통신으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 「서유기」 저자 오승은의 회안(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0)

    ◎타동항 생가 연당에 주인닮은 청죽 꼿꼿이…/영원불후한 명성 불구 무덤가엔 잡초만 휘휘하고/거리는 온통 “탄신 100주년” 주은래 기념 플래카드가 비록 중국의 장배항 교수가 최근 「서유기」의 저자는 오승은이 아니라고 회의를 제기했지만 중국의 4대기서 가운데 「서유기」만큼 그 저자·생졸·저작연대·출생지·무덤에 대한 논쟁이 적은 것도 없거니와 「서유기」만큼 신마소설을 비롯한 사회소설·종교소설·기행소설·공상과학소설·우언소설 등의 다양한 성격 부여도 없을 것이다. 오승은(1504∼1582)의 행운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중국 도처에 널려있는 명인들의 동상이나 입상은 겨우 그사람의 인상이나 풍격을 과장적으로 풍기는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그럼에도 지금 오승은의 고향집이나 화과산 산구에 세워진 오승은의 입상은 400여년전 생존했던 실재 용모와 매우 흡사하다는 중국과학원 고인류연구소의 과학적인 검증을 거친 제작이기 때문이다. 그 입상을 세우기까지는 상당한 곡절이 있었다.1974년 겨울.그러니까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이라는 폭풍속에 모든 문화재가 닥치는대로 파괴되고 역사적인 인물들의 무덤들이 까뭉개지는 난장판이었다.그런 난리판에 회안. 마전향(회안) 이보촌의 오씨 선영으로 알려진 무덤 몇개가 도굴당했다. 그중 하나는 오승은의 아버지 오국옹의 무덤으로 판명되었지만그 옆 무덤에선 관목만 파냈을 뿐 백골 한무더기를 고스란히 그 자리에 묻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관목은 당시 어느 중학교에 팔려서 창문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그런데 그 관목을 헐어 손질하다가 「오」자를 비롯한 글자들이 발견, 계속 추심끝에 그곳 중학교 역사교사들은 당판에 쓰인 글자들을 겨우 「형부기선사양오공지구」로 판독하기에 이르렀다.그리고 세월이 흘러 문혁이 끝나고 서서히 질서가 회복되던 1981년 8월,강소성청 문화재관리국은 그 오씨선영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에 착수, 위의 당판에 쓰인 열글자가 오승은의 마지막 문서직 관명임을 확인했고그 무덤에서 수습한 1남2녀의 유골을 중국과학원 고인류연구소에 보내 검증,그중 미골이 뾰족한 장렴에 키 1m60∼70cm,생존연령칠십몇쯤으로 보이는 남성의 유골은 오승은의 것이요,나머지는 초취와 지취부인의 것임을 각각 확인했으니 「서유기」연구에는 일대 개가가 아닐수 없었다. 오승은은 저승으로 떠날때 겨우 「회안부지」에 「서유기」의 저자라는 단 한줄로 남았지만 400년이 지나는 동안 그는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를뿐 아니라 공상과학소설로 연구의 열기를 모으고 있다. 그는 회안땅 하하리,소상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경항운하가 지나가는 중원의 요충인 회안땅에는 본시 인걸이 많았다.옛날 한고조때 천하통일의 기초를 확립한 한신대장을 비롯해 한나라의 대표적인 부가 매승, 한나라 말엽 건안칠자의 하나로 불리는 시인 진림,그리고 청말의 대표적인 풍자소설로 꼽히는 「노잔유기」의 저자 유악등이 이곳에서 낳거나 살았던 곳.그러나 그 모두를 몽땅 모아도 문학으로는 어찌 「서유기」한권을 감당할 것이며 정치하는 사람 모두를 내놓아도 어찌 죽은 주은래(1898∼1976)한 사람을 당하랴! 그는 회안사람으로 모택동을 도와 신중국을 세우곤 줄곧총리를 지냈던 제2인자요,또한 시인이었다. 필자가 오승은을 만나러 연운항에서 2시간반이나 버스에 터덜거리며 회안에 당도했는데 회안은 주은래 일색이었다. 거리에는 그의 「탄신100주년」을기념하는 빨강 플래카드가 물결을 치고,회안시 북교에는 수만평 규모의 호상공원으로 꾸며진 「주은래기념관」,다시 시내 한복판 서문대가 연도에는 주은래 생가가 옛날 반가의 풍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30년전, 대북에서 즐겨 탔던 삼륜차를 타고 회안시 북단에 있는 초호 지나 하하로 머리를 돌렸다. 오승은이 태어나서 예순살이 넘어 장흥현의 현승을 살아먹은 1년남짓 말고 줄곧 살았던 생가를 찾는 길이었다.회안호텔에서 겨우 15분거리.하하는 들판.타동항이라는 골목에 접어들자 네모난 전통 가옥.동향 대문에는 「오승은고거」라는 횡편이 걸렸고,대문으로 발을 딛자 맨앞에 손님맞이의 객실,객실옆으로 오승은의 서재로서 불후의 명작 「서유기」를 썼던 「사양이」(사양은 회안의 옛이름이요,오승은의 호.이는 다락)가 있고,서재옆으로 대청,그 안에는 중국과학원의 검증으로 제작된 오승은의 반신 동상이 있다.그 옆으로 오승은이 거처했던 안방,안방 건너편에 사랑방.마당에는 작은 연당,연당에는 가산.가산에는 청죽 몇그루 꼿꼿이 서있는데 비록 불우하게 큰 벼슬 하나 건지지 못했지만 천궁 지부를 마음대로 출입하고 작은 이끗에도 굽히지 않던 신통과 오기가 보이는 듯했다. 16년 전만 하더라도 오승은의 무덤은 깜깜한 안개속이었다.이제 그 무덤이 확인되고 그 유골이 틀림없다는 그곳은 찾는 이의 마음을 부풀게 했다. 경항운하를 따라 남행 8㎞쯤의 도로에 이윽고 「마전공업단지(마전공업원)」라는 안내판이 보였다.거기서 좌회전하여 내를 건너 다시 미루나무가 이열 횡대로 선 언덕을 따라 남으로 1.5㎞쯤 걸었을때,왼편에 작은 마을.아무 팻말도 없었다.그 마을이 이보촌.곽대장.그러니까 두번째 방축 마을의 곽씨네 집성촌이란 뜻이겠다.마을앞에 묘문이 보였다.「오승은지묘」. 온 마을에 푸릇푸릇고개를 흔드는 밀밭,그 복판에 버드나무로 방풍림을 세우고 묘문안에는 아주작은 봉분 2기.하나는 오승은의 아버지,그러나 2기 모두 잡초와 잡목이 휘휘했다. 오승은의 묘앞에는 「형부기선사양오공승은지묘」라는 묘표.여기서 형부는 명나라 인종의 서출왕자인 형헌왕의 왕부요, 기선이란 왕부의예법을 관장하는 자문직,사양은 오승은의 관향을 말한다. 곧 왕부의 8품으로 말직인데 그것마저 증여의 관작으로 보인다.오승은의 만년 관운이 얼마나 소조했을까를 설명해 준다.
  • 한·중 미래포럼 김우중 회장 특별연설

    ◎선진국 통상압력에 한·중 공동대처를/분야별 협력체제 강화­기업간 경험교환 확대해야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30일 밤 서귀포에서 열린 제4차 한·중 미래포럼 첫날 회의가 끝난뒤 만찬에서 「미래를 위한 한·중 협력」을 주제로 특별연설을 했다.김회장의 연설내용을 요약한다. 세계무역기구(WTO)출범으로 상징되는 세계화가 실행단계에 접어들고 있다.선·후진국 모두 세계화를 국가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삼아 규제완화,민영화,해외투자 활성화,대외개방 등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추진중이다. 또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역통합이 최근 광역화되고,지역간 연계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사례로 유럽연합(EU),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확대한 범미주자유무역지대(TAFTA)창설 움직임 등을 꼽을수 있다. 한국과 중국은 국제경제사회의 위상을 감안,이같은 세계경제질서의 재편과 아시아지역의 질서재편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그러나 질서재편의 핵인 WTO가 세계 11대 교역국인 중국의 가입 지연에 따라 아직 불완전한 상태에 놓여있어 큰 문제다.중국을 WTO내로 흡수하느냐 여부는 향후 WTO제제의 유지와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WTO가입은 조속한 시일안에 성사돼야 한다.중국도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의 시장개방이 단기간에는 어렵겠지만 WTO가입이 자국의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 아래 시장개방에 적극 노력해야 한다.이 과정에서 한국은 중국의 순조로운 WTO가입을 위해 미국 등 선진국들이 가입요건을 완화할 수 있도록 조정자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양국은 공동노력에 의한 협상력 제고를 통해 미국 등 선진국의 통상압력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지금까지 한·중 양국의 협력은 순조롭게 이루어져 왔다. 한·중 양국의 협력은 경제분야만 한정하더라도 상품과 자본,인력 등 하드웨어 교류단계에서 정부와 기업의 경험과 지식 등 소프트웨어 교류단계로 발전되고 있다.특히 양국 모두 21세기를 향한 장기적 국가발전구상을 마련,추진중이어서 양국간 협력과 제휴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먼저 분야별 협력체제가 효율적으로 가동돼야 한다.양국간에는 포괄적인 경제산업협력뿐 아니라 무역·금융·건설·농업·항공·정보통신·자원개발·문화·교육·관광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정부간 또는 기업간 협력체가 설치돼야 한다.이를 통해 정책협조·경험의 교환·인재교류 등 사업이 보다 구체적으로 실현될 때 양국 협력은 보다 심화될 것이다. 특히 중국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날 세계식량 및 에너지 부족·환경오염 문제 등을 막기 위해 중국의 농업생산·에너지 절약이나 환경보전 관련 기술분야의 상호교류에 남다른 노력이 요청된다. 아울러 기업간 실질적인 경험교환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핵심 노하우를 공유하고 응용력을 배가하는 차원에서 경영자원의 조달 협력과 정보의 교류,나아가 공동의 기술개발과 위험요소의 분산에 이르기까지 쌍방적인 협력관계를 이룩해야 한다.이를 위한 양국정부 또는 기업의 노력은 앞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한·중 양국은 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전략을 수립하고 함께 대응하는 구체적 노력과 실천을 기울일 싯점에 서있다.
  • 박석태 전 제일은 상무 자살/어제 하오/“행장 등에 죄송” 유서

    ◎청문회증언 11일만에 자택서 목매 한보 대출비리 의혹과 관련돼 국회 청문회에 출석했던 박석태 전 제일은행 상무(59)가 28일 하오 3시20분쯤 서울 마포구 망원1동 404의 48 자택에서 유서를 남기고 높이 2.5m 계단에 목을 매 숨진채 발견됐다.〈관련기사 22·23면〉 세째 딸 소영양(20)은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혼자 집에 있던 아버지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에 나일론 끈으로 목을 매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2층 서재 서랍안에 「먼저 가서 미안하다.못난 아빠를 용서해라.은행장에게도 죄송하다.화장해 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또 윤진식 청와대 비서관과 국민회의 김원길 의원(서울 강북 갑),박태영 전 의원에게 죄송하다고 적혀 있었다.박씨가 지난 17일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가 세 사람을 언급한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인 것 같다는 주위 사람들의 설명이다. 박씨는 한보철강에 대해 1조7백억원을 대출해준 제일은행의 실무 책임자이다.
  • 「한국언론의 국제뉴스 결정요인」 박사논문/언론연구원 김덕모씨

    ◎“국제뉴스판단 정치보다 「질서 재편」 더 중요시” 우리나라 국제부기자들이 가장 중요시여기는 국제뉴스판단가치는 정치보다는 APEC 등 경제권역뉴스나 국가경쟁력 제고 등 「국제질서재편기에 순응하는 판단가치」(20.6%)인 것으로 나타났다.다음으로는 전통자본주의적 가치(19.5%),국익중시의 현실주의적 가치(14.7%)가 그 뒤를 이었다.그러나 실제 보도내용은 흥미성 중심의 「전통자본주의적 가치」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결과는 최근 언론연구원 데이터뱅크국에 근무하는 김덕모씨(34)가 성균관대 대학원에 제출한 「한국언론의 국제뉴스결정요인에 관한 연구」라는 박사학위논문에서 나왔다.김씨는 『중앙종합일간지,경제지,방송,통신사 등에 근무하고 있는 국제부기자 2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에 출강중인 그는 『세계화시대에 국제질서재편기에 조응한다는 점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그러나 실제 보도내용에서는 그 판단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이 논문에 따르면 국제뉴스판단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일반적 뉴스가치는 중요성·일탈성·흥미성 요인으로 대별됐다.그리고 이들 요인은 앞에서의 세가지 국제뉴스판단가치중 「전통자본주의적 국제뉴스판단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국제부기자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국제뉴스판단가치가 실제 보도에 투영되는 못하는 요인으로 「국익중시의 현실주의적 판단가치」,조직 외적 통제요인,의존도 높은 국내 및 해외통신사들의 일차적 거름장치 등을 들었다.그는 이러한 문제점 해결을 위해 『국내통신의 순기능 제고 방안,국제부기자들의 전문화 및 특파원제도 활성화 방안,국제뉴스가 수용자에 미치는 영향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광대역 초고속교환기 국내 개발/한통·6개기업 공동…6월 시범개통

    ◎통화·FAX·인터넷 등… 전화선 하나로 동시에/2M∼155Mbps 속도도 마음대로 「전화선 하나로 남편은 서재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영상회의를 하고 아내는 거실에서 TV를 통해 주문형비디오를 본다.이와 동시에 아들은 방에서 인터넷을 즐긴다」 이처럼 전화선 하나로 전화번호가 다른 여러 대의 전화기와 컴퓨터·영상회의 장비등 각종 정보단말기를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첨단 통신시스템이 오는 6월쯤 선보일 전망이다. 한국통신은 삼성전자·LG정보통신·대우통신·한화전자정보통신·동아일렉콤·우진전자통신 등 6개 기업과 공동으로 지난 93년부터 1백93억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입,이같은 성능을 지닌 광대역 초고속교환기 「비동기식 전송모드(ATM)액세스노드」를 최근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교환기는 하나의 전화선에 여러 대의 통신단말기를 연결해 전화는 물론 인터넷·주문형 비디오·영상회의등 다양한 통신서비스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지능형 시스템.주로 대도시 지역이나 기업 구내통신망(LAN)을 연결하는데쓰일 예정이다. 비동기식 전송모드 액세스 노드는 이처럼 한 개의 전화선이 수십개의 전화선 구실을 해 냄으로써 지금처럼 PC통신이나 인터넷,전화 통화용으로 각각 달리 전화선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 특히 이 교환기는 고속(155메가bps)·중속(45메가bps)·저속(2메가bps)의 다양한 전송 속도를 갖고 있어 가입자는 이미 설치된 전화선 속도를 마음대로 조절해 쓸 수 있다.따라서 빠른 속도로 인터넷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서비스 형태에 따라 통신 속도를 2메가∼155메가bps까지 선택할 수 있다.현재는 통신 속도를 바꾸려면 한국통신에 요청해 전화선을 새로 설치해야 한다. 한국통신 관계자는 『전화선 하나에 연결할 수 있는 단말기는 많게는 수십대까지 가능하다』면서 『요금은 하나의 전화선을 사용할 때보다 비싸지만 단말기 수만큼 전화선을 사용할 때보다는 훨씬 저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통신은 시제품 제작 기간을 거쳐 국가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사업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대덕연구단지내 초고속정보화 시범지역에 오는 6월 시범 개통할 계획이다.이어 98년부터는 초고속국가망 및 공중망 사업과 각종 지역사업의 핵심장비로 활용하기로 했다. 이번 비동기식 전송모드 액세스 노드 개발로 국내 초고속 정보통신 관련 사업에 투입되던 외국산 ATM 장비를 국산 장비로 대체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순수 국내 기술에 의한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사업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어린이에 국산품 애용 당부/김 대통령,초등생 20여명과 대화

    ◎가장 존경하는 인물 “김구 선생” 대답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 7일 연두기자회견을 마친뒤 하오 어린이대표들과 「가벼운 인터뷰」를 가졌다.청와대가 각종 행사때 「신세」를 지는 인근의 교동,매동,재동초등학교 어린이 등 20여명이 초청됐다. 다음은 어린이와의 대화요지. ­기억에 남는 어린시절 추억은 무엇입니까. ▲고향이 거제도 바닷가였는데요,바다에 들어가면 온종일 안나와요.지금도 정확히 모르는 것은 내가 헤엄을 먼저 배웠나,걸음을 먼저 배웠나,하는 것 입니다.짠 멸치를 먹은뒤 논물을 너무 먹어 어머니에게 평생에 제일 많이 야단맞은 일이 있어요. ­어린이들이 어떤 각오로 살아가야할까요. ▲21세기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해야합니다.미래의 확실한 꿈을 갖고 우리나라를 어떻게 하겠다 하는,크고 넓은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가족중에는 돌아가신 어머님이고요,우리나라에서는 백범 김구 선생,외국 사람중에는 미국의 링컨,영국의 처질을 존경합니다. ­새해 어린이에게 하실 말씀은. ▲우리국민들의 제일 문제는 낭비입니다.너무 값진 물건,외제를 좋아하는데 우리 물건도 아주 좋아요.(김대통령은 양복은 체스터필드라는 양복점,구두는 에스콰이어에서 만든 한국제품을 사용한다고 소개) 김대통령은 이어 「대도무문」의 뜻을 「정도로 가면 반드시 승리한다」고 풀어준 뒤 『클린턴 미국대통령에게 붓글씨로 써 선물했더니 백악관 서재에 걸려있더라』고 밝혔다.
  • 김판근씨 등 9명 승진/오늘 경무관 후속 인사

    정부는 3일 서울경찰청 김판근 형사과장 등 경무관 승진 예정자 9명을 확정,발표했다. 경찰청에서는 김정찬 경무과장,천사령 조사과장,서재관 정보분석관,이병진 외사 2담당관 등 4명이,서울경찰청에서는 김형사과장과 김홍권 인사교육과장,신보기 22특경대장 등 3명이 포함됐다. 일선 경찰서에서는 이원화 서울 노량진서장과 김병준 종암서장이 승진했다. 경찰청은 승진 인사에 따른 경무관 전보 인사를 4일 단행한다.
  • 현대그룹 임원 375명 인사/케피코 사장 백효휘씨

    ◎경영실적·능력 철저반영… 영업부문 승진 두드러져/엔지니어링 사장 심옥진씨 현대그룹은 30일 백효휘 현대자동차 부사장을 (주)캐피코 사장으로,심옥진 현대건설 부사장을 현대엔지니어링 사장으로 승진 발령하는 등 임원 375명에 대한 정기인사를 단행했다.이번 인사에서는 이현태 현대석유화학 회장과 박재면 현대엔지니어링 회장,정하오 현대엔지니어링 사장,김명관 (주)캐피코 사장 등 원로 전문경영인들이 그 기업의 상근고문으로 선임됐다. 또 13명은 전무에서 부사장으로,34명은 상무에서 전무로,66명은 이사에서 상무로,98명은 이사대우에서 이사로,156명은 부장 또는 부장대우에서 이사대우로 각각 승진했고 1명은 2단계 발탁 승진했다. 현대그룹은 이번 인사의 원칙에 대해 『경영실적과 능력을 철저하게 반영했으며 영업력을 강화,불황을 이겨내기 위해 영업 부문에서 승진을 많이 시켰다』고 설명했다. ◇승진 ▼부사장 △현대자동차 한상준 △현대중공업 이연재 조충휘 △현대건설 김대윤 이지송 △현대전자 변태성 장동국 △현대정공 김평기 △고려산업개발 허호 △현대정보기술 송영삼 △현대증권 강학순 △현대해상화재 강종호 △현대우주항공 김동진 ▼전무 △현대자동차 이명군 김종일 김채원 △현대중공업 김종운 박병기 이세혁 △현대건설 정승일 신성재 노주섭 유인창 곽호남 윤광언 윤종삼 황의영 △현대전자 장병준 △현대정공 김정수 이종후 이용도 김무일 김재일 △현대종합상사 박원진 최동호 조태연 △현대자동차써비스 박광인 △현대상선 박광훈 장철순 한원제 △현대산업개발 윤석만 △현대강관 이성철 조경래 △현대정보기술 이재성 △현대중기 한기환 △금강개발 장낙종 김남종 ▼상무 △현대자동차 김영우 유재환 박용환 홍석종 신명식 △현대중공업 김광훈 강길건 김수경 정재영 김영국 이정형 최우림 신명선 △현대건설 유준만 허인범 이명진 김용환 이태동 임영춘 허전 유영목 변재신 정동수 △현대전자 김철규 김준오 유국상 김병훈 신동수 윤희구 조규정 이대훈 김동인 최병우 △현대정공 한영철 신일규 △현대종합상사 윤은혁 안승길 양한석 김상명 △현대자동차써비스 김태범 강일성△현대산업개발 김희철 이봉무 허상길 △인천제철 이두연 김재주 △현대정유 김상곤 김영현 △현대종합목재 최진만 △현대강관 김기병 박세창 △현대미포조선 이규식 △현대엔지니어링 손옥철 천인수 △현대정보기술 김대준 곽정구 △금강기획 채광철 전용규 최영준 △금강개발 김기현△현대해상화재보험 이철영 △현대우주항공 김정엽 △한국물류센터 노홍 △종합기획실 홍성원 김원갑 노정익 ▼이사 △현대자동차 김덕연 박래욱 권수원 최달호 윤여익 이문희 김만유 최종식 이문수 △현대중공업 김병순 위창일 김종진 김보겸 김홍태 박영의 구윤회 최원길 하창윤 조갑래 김정률 이무희 권영철 서영길 김광 △현대건설 김종근 김용남 김성중 박동찬 백종섭 박용식 김인섭 윤호철 이형직 장덕수 김현중 이충 김현호 박준봉 김종숙 이영수 이정우 서영환 이영남 △현대전자 정규철 박찬종 최병진 이성희 채수만 최수 신기진 이원재 김종석 김철규 정창시 김대수 오춘식 △현대정공 신홍균 기군도 이중우 염영길 △현대종합상사 문경철 허환 △현대자동차써비스 성요한김창희 △현대상선 거장호 이재현 △현대산업개발 이승구 이상태 노재민 김익환 △인천제철 성장수 형영우 △현대석유화학 김해식 김창규 △현대종합목재 한용태 △현대강관 허대진 이한구 △현대엔지니어링 김동욱 이재윤 △현대정보기술 정철주 장해성 김선배 △금강기획 김우종 이영희 △현대증권 유종훈 박철재 권순석 이찬욱 △금강개발 문광훈 한상갑 최동주 경청호 △현대알루미늄 이기영 △현대해상화재 이상남 박임철 △현대투자자문 홍풍호 △현대우주항공 민광기 최기탁 ▼이사대우 △현대자동차 안상범 김인식 고병훈 윤재욱 허국중 최호성 김명구 부정택 신민균 김경한 이준형 박희두 김성국 김규환 정흥식 이광선 서재천 이재완 △현대중공업 김평식 최판옥 서문화 하종윤 허영규 송인섭 윤용무 김헌태 이의열 이창복 하용헌 권오갑 △현대건설 김치중 이원근 박회욱 조돈승 이경훈 이창섭 강대신 권재형 김렬규 김희배 유영현 이정우 최종현 하정용 권탄걸 김익수 김진엽 박주관 변동주 임병우 정영상 정형기 조남적 거성춘 천진욱 고동준 권홍기 김광욱 김종학 박정호 오명길 이승렬 이종수 정근우 정순균 조영희 손광영 △현대전자 유창렬 노치용 홍성택 남상무 최송철 안동준 김동건 허철 김재우 임정호 김영부 조영삼 김광구 이병길 △현대정공 이상길 이흥술 김형욱 마기인 임채영 장대익 최종률 △현대종합상사 송주현 이봉구 김종곤 김완섭 이창복 △현대자동차써비스 김춘원 신동현 정남기 △현대상선 박재영 문주일 강성호 권주석 이동렬 김연성 김종헌 박재영 김윤기 △현대산업개발 박장송 박만홍 김규원 이한준 김응일 남상천 박병천 정명한 △인천제철 김선경 한민수 한우섭 최돈형 박건 △현대정유 이철수 신익현 신선기 △현대정유판매 주흥남 △현대종합목재 김태호 마상덕 △고려산업개발 이중춘 김종인 박장서 △대한알루미늄 서태일 강현남 △현대엘리베이터 조성창 한규용 △현대미포조선 김형완 △현대정보기술 김종순 △현대중기산업 정동수 △금강기획 김종원(국장)이회중(국장) △현대증권 박성군 이상규 최상기 △현대종합금융 권안식 서동진 △금강개발 우근식 김홍철 정인만 이규성 △현대우주항공 김재홍 김응수 오성대 △현대물류 전재을 이상용△선일상선 박남성 유재덕 △한무쇼핑 신광렬 △현대파이낸스 송용백 △종합기획실 강연재 우시언 ▼감사 △현대자동차 원정남 ◇전보 △고려산업개발 전무 조창휘
  • 「화석소고」/이영익 생명공학연구소 연구부장(굄돌)

    몇년전 일이다.스웨덴에서 열린 AIDS 국제학회 참석후 관광을 하다 안경점에 장식으로 진열해 놓은 물고기 화석을 우연히 발견했다.요즘은 국제교류가 크게 늘어 많은 화석을 외국에서 들여와 시판하며,또 전시회도 열리지만 당시로서는 구경조차 힘든 것들이었다.나도 생물시간이나 진화론 강의때 사진으로만 보았지 실물은 처음이었다.하도 신기해 주인과 교섭 끝에 미화 50달러에 구입했다. 그후 화석에 관한 호기심,수억년전에 산 생물체와 만난다는 흥분으로 하나둘씩 수집하고 화석에 관한 책도 구입했다.이제 몇년이 지나 서재에는 작은 화석들이 벌써 수십가지 늘어섰다.책을 보다 피로하거나 직장에서 돌아와 틈이 나면 화석을 하나하나 음미하는 습관이 들었다. 용암이 분출할 때 어쩌다 그곳에 있던 풍뎅이화석,잠자리와 똑같은 육각 모양의 눈을 가진 삼엽충화석,바다물결 따라 움직이다 화석이 된 바다나리화석….이렇게 화석들을 음미하노라면 나 자신이 그 당시 세계로 빠져드는 듯한 착각에 젖기도 한다.또 이러한 화석연구로 지구상 생물의 역사를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최근 전남 해남에서 영화 「쥐라기공원」에서나 본 공룡·익룡의 발자국화석을 발견해 매스컴이 떠들썩하게 보도한 적이 있다.물갈퀴새의 발자국도 함께 나왔다고 한다.공룡·익룡·물갈퀴새의 발자국화석이 동시에 발견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며,이로써 세 동물이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입증했다 하여 세계 학계가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모양이다.공룡화석은 해남말고도 국내 5∼6군데에서 발견됐다. 그 먼 옛날,2억년전쯤인가? 생각하기도 힘든 때 한반도 곳곳에서 다리 길이가 5∼6m인 공룡,날개길이가 10m넘는 익룡들이 뛰놀았다고 생각하면 지축을 흔드는 굉음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 문학평론가 김윤식(이세기의 인물탐구:112)

    ◎이면의 진실 꿰뚫는 혜안의 통찰/춘원연구 1인자… 10년간 자료수집 열정/문학이론·작가론 등 망라 저서 1백여권 지난봄 김윤식의 35년 글쓰기를 중간결산하는 「김윤식선집」이 출간됐을때 책 말미에 종합된 논문목록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경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그는 62년 현대문학지를 통해 문단에 등단한 이래 초기엔 5,6편에서 10여편의 평론을 발표해왔고 80년대에 들어 30여편,93년에는 무려 45편 등 문학사 문학이론연구 작가론 작품론을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섭력해왔다.여기에 73년이후 해마다 2,3권에서 5,6권의 저서를 출간,단독저서만 71권에다 공저 역서가 11권,편저 공편이 17권이나 된다.이는 그의 글쓰기와 치열한 문학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면일 것이다. 그의 저서에는 「기왕의 권위나 규범이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탐색해나가는 자유인의 모범적인 초상」이 들어있다.독자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쳤던 「중요한 의미와 가치들을 비상한 통찰력과 설득력」으로 일깨우고 아무도 먼저 캐내지 못한 엄청난 분량의 자료들을 직접 찾아다닌 「땀의 흔적」이 책의 갈피마다에 서려있다.그를 두고 통상 「발바닥으로 글쓰는 사람」이란 말은 왠지 미흡하다.그는 온몸과 정신이 온통 쓰고 읽고 현장으로 달려나가는 실천자이기 때문이다. ○발바닥으로 글쓰는 사람 그의 글쓰기는 「엄밀한 학술적 연구,끊임없는 현장문학 비평활동과 예술기행 양식의 센시티브한 글」들이 병행되어 있다.특히 그만의 평전문학은 작가의 「내면풍경」을 복원함으로써 「인간의 오롯한 모습을 재현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한사람의 작가를 연구하기 위해 그가 들이는 공과 시간과 정성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란 어렵다.우리문학사에 획을 긋는 기라성같은 인물들을 일사불란하게 투찰한 밀착비평중에서도 춘원 이광수에대한 열정은 유난히 남다르다.그 시간과 분량에서 이를 따를수가 없고 춘원에 관한한 그를 떼어놓고 말할수도 없다.「이광수와 관련된 일이라면 누구에게라도 무릎을 꿇고 배울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다」는 구절만으로 집념을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그가 춘원에 관한 「글을 쓰고자 마음먹은 것」은 69년 하버드엔칭 장학금으로 도쿄대에 유학하면서부터다.유독 일본체류를 희망한 것은 근대문학을 이룩한 문인들의 대부분이 도쿄유학생출신이라는데 착안하여 그들의 「현해탄 콤플렉스의 정체」를 캐보기 위해서였다.일본의 각 도서관을 돌다가 먼저 춘원의 첫작품인 「사랑인가」를 확인하게 되었고 「간다(신전)고서점과 와세다대학 도서관과 근대문학관을 헤매던 세월,겨울에도 동백꽃 붉게 핀 울타리를 돌면서 내젊음을 도쿄바닥에 흩뿌렸다」고 돌아보고 있다.그의 나이 33세였다. 귀국후 그는 춘원에 대한 다방면의 기초연구를 마친후 80년에 다시 일본에 건너갔다.「와세다대 서고에서 하루종일 자료를 조사발굴하고 점검하는」 과정에서 3개월만에 「개조」(1936.8)에 실린 일어로 쓴 춘원의 단편 「만영감의 죽음」을 찾아냈다.세검정을 무대로한 이 소설을 읽어 가는동안 「그가 살았던 시대적 풍경과 그것에 반응하는 그의 내면세계를 순간적으로 헤아리게 되어」 그해말에 귀국,이번엔 춘원이 살았던 세검정 「홍지동 산장」을 세밀하게 답사해 나갔다.작가의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춘원연구」를 쓴바 있는 김동인을 동시에 연구하는등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쓰기 위해 그것을 준비한 기간은 무려 10년이나 된다.그때부터의 세검정 승가사와 문수봉 산행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비평뿐만 아니라 그의 일상을 객관적으로 관조한 수필은 「어떤 글보다 섬세한 내면의 무늬가 아로새겨져 있다」는 평을 듣는다.『두 바보의 길』『서재주인의 독백』같은 글은 짧은 콩트식의 시적인 글맛을 살리면서 그의 면모를 면면에서 보여준다.「싸락눈이 내리는 그 소리는 참으로 쓸쓸하고 듣기 좋다」「겨울이 겨울다워서 우리는 가슴설레곤 했다」는 구절이 있고 「백색원고지가 놓여있다.운동장만큼 넓고 아득하다」「그는 원고지위에서 그의 운명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는 숙명적인 글쓰기와 관련된 대목도 나온다.그가 평론 외에 청년시절에 시와 소설을 써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새벽까지 서재 불밝혀 그는 한마디로 철두철미하고 집요하다.그의서재엔 새벽까지 불이 켜져있기 일쑤이고 아침 8시에 전화를 해도 그는 벌써 연구실에서 받는다. 문학에서는 강경과 창경의 글을 쓰면서도 평소엔 「과묵」한 편이고 사무적인 일에서는 공과 사를 구별하여 제자들이 연구실에 찾아와도 굳이 「왜왔느냐?」고 「용건」을 묻지 않는다.모든 것에 절제의 선을 그어 「하고」「안하는것」을 분명하게 가리고 실력으로 탄탄히 무장된 강의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그외 영화와 여행을 좋아하고 미술에 대해서도 「그림이란 복제불가능한 유일한 예술,적어도 신화가 깃들어야 하는 것,그자체가 스스로 원광을 뿜어내야 한다」는 안목을 지니고 있다. ○연구작가 족보까지 확인 단지 신기한 것은 이상이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라고 했듯이 글외엔 그에대해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는 점이다.그는 한 작가의 연구를 위해 족보에서 학적부 성적표까지 확인하면서도 막상 문단에서는 교류가 빈번하지 않고 그의 집을 공개하는 일도 없다.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에서 자녀없이부부만이 살고있다. 경남 진영에서 십리 들어간 벽촌에서 태어나 그는 「장난감이나 친구가 없는」대신 「참으로 희한한 글자와 그림으로 가득찬」「누나들의 교과서를 엿보는 것」으로 유년기를 보냈다.마산에서 중학교에 다니면서 「쪽빛 바다와 제비꽃」을 보았고 진주예술제에서는 「강남꽃보다 더 푸른 흐름」과 「강위에 걸린 긴 다리」를 보았으며 그때부터 서서히 문학소년다운 시원을 싹틔운 것 같다. 「문학은 한시대의 악을 좀더 깊은 악으로 파악케 하는 장치이고 어떤 사회적 현상도 문학적 검증없이는 결코 극복되지 않는다」는 그의 문학관은 방대한 집필의 분량만큼이나 드높고 폭넓게 「견고한 성과」를 이룩하고 있다.그리고 이제 「젊음의 순수성으로 부단히 자신의 세계를 확대해온 한 사상가의 모습」으로 어느 때는 내연으로 어느때는 창회의 글로써 앞으로도 도저하게 그의 문학을 지켜갈 것이다. □연보 ▲1936년 경남 김해 출생 ▲59년 서울사대 국어과 졸업 ▲61년 「현대문학」평론 추천 ▲62년 서울대 대학원 졸업 ▲68년부터 서울대 재직 ▲69∼70년 도쿄대 유학 ▲76년 서울대 「문학박사」 학위 ▲78년 미 아이오와대 IMF(국제작가회의) 참가 ▲79∼현재 서울대 인문대 교수 ▲80년 도쿄대 「이광수연구」 ▲81∼85년 「문학사상」에 「이광수와 그의 시대」 연재 ▲83·89년 런던대 아시아·아프리카연구소(SOAS)주관 AKSE(유럽지역 한국학모임) 참가 ▲86·88년 네덜란드 라이든대 한국문학심포지엄 등 학술회의 다수참가 〈저서〉 「한국문학사론고」(73년)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76년) 「문학과 미술사이」(79년) 「한국근대문학사상사」(84년) 「한국근대소설사연구」 「이광수와 그의 시대」전3권 「우리 소설과의 만남」 「안수길연구」(86년) 「이상연구」 「염상섭연구」(87년) 「한국현대문학사론」(88년) 「임화연구」(89년) 「한국현대현실주의소설연구」(90) 「작가와 내면풍경」(91년) 「환각을 찾아서」(92년) 「한국근대문학사상연구」(84·94년) 「설렘과 황홀의 순간들」(94년) 「지상의 빵과 천상의 빵」(95) 「북한문학사론」외 공저 역서 등 82권과 편저공편 등 〈수상〉한국출판문화상(73년) 대한민국문학상(87년) 김환태평론문학상(89년) 팔봉비평문학상(91년)
  • 아인슈타인 “부인에게는 폭군”

    ◎“사회활동 빼곤 나와 수적관계 단념해”/“내가 말하면 즉시 답하고 군소리 말라” 【예루살렘 DPA 연합】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천재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부인을 비롯한 여자들에 대해서는 폭군이나 다름없었던 것으로 그가 쓴 편지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지난 86년 로스앤젤레스의 한 은행 금고에서 발견된 아인슈타인의 편지들은 현재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그는 지난 1914년 자신의 첫번째 부인 밀레바 마리치에게 쓴 편지에서 A,B,C,①,②,③ 등 항목을 하나 하나 붙여가며 매우 딱딱하고 사무적으로 지시를 내리고 있다. 그는 A항목에서 ①옷은 잘 정돈할 것 ②식사는 내방에서 먹을 수 있도록 할 것 ③침실과 서재는 항상 깨끗하게 정돈을 하고 내 책상은 다른 사람이 절대 손대지 못하도록 할 것 등을 지시.B항목에서는 『사회활동을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과 사적인 관계를 단념해야 할 것』이라고 부인에게 선언.C항목에서는 ①나에게서 사랑을 기대해서도 안되고 사랑때문에 나를 비난해서도 안된다 ②내가 말을 하면 즉각 대답을 해야한다 ③내가 나가라고 하면 군소리없이 즉각 내 침실이나 서재에서 나가야 한다 ④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나 행동으로 나에게 모욕을 주는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지침을 내리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35세때 세르비아출신의 부인 밀레바에게 쓴 것으로 남편의 편지를 받은지 몇달 지나지 않아 밀레바 부인은 두 아들을 데리고 취리히로 건너 갔으며 남편과는 다시 함께 살지 않았다.
  • 경륜장 수익금 탈취미수/범인은 현금수송사 직원

    ◎형제 등 5명 구속·둘 수배 서울 송파경찰서는 3일 한국금융안전 직원 서재원씨(24)와 그의 형 기원씨(26·회사원) 등 5명을 강도상해혐의로 긴급구속하고 달아난 공범 박순구씨(24) 등 2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이들은 지난 달 22일 하오 7시30분쯤 경륜사업본부 지하경리과에서 경륜수익금 7억7천여만원을 운반하던 한국금융안전 직원 김모씨(36)등 3명을 쇠파이프로 마구 때리고 현금을 빼앗으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다. 이들은 범행과정에서 서기원씨가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한국금융안전 본부에 남아 현금수송차량이 경륜장으로 출발할 때 나머지 공범 무선호출기에 「4444」를 입력해 차량출발을 알리는 등 치밀한 사전준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 전문가 분석/북 공비침투 왜 시인했나

    ◎명백한 증거에 국제비난 줄이기 “고육책”/미·일 강경반응에 「책임회피용 변명」 택해 북한이 침투 잠수함과 공비들의 송환을 요구한 것은 명백한 무력도발을 축소·은폐하기 위한 의도임이 드러났다.그러나 과거 북한이 무장공비사건을 우리측의 자작극으로 몰아붙였던 점으로 볼때 이번에 잠수함과 공비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은 그 주장은 거짓이지만 일단 도발자체는 시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북한문제 전문가들로부터 북한이 침투를 시인한 이유와 속셈을 들어본다. ▲서재진 민족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강릉 무장공비사건은 남한이 조작했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명백한 증거를 남겼다.북한은 이번 잠수함 침투가 국제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오자 수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이번 무력도발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난을 초래했고 4자회담등을 통해 북한과 대화하려는 미국의 입지를 어렵게 했다. ▲오관치 국방연구원책임연구위원=도발행위에 대한 미국과 일본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난이 북한으로 하여금 예전과 같이 무시해버리기 곤란하게 작용했다.북한도 한국의 대북감정 악화와 국방예산의 증가를 원치 않을 것이며 한·미·일 공조체제로 인한 경제협력이 위축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따라서 우리측의 자작극이라고 돌려댈 수도 없는 명백한 도발행위에 대해 책임회피용으로 표류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김도태 민족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잠수함 침투라는 명백한 도발행위가 노출되자 어떤 형태로든 의사표시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그러나 이런 주장이 북한의 외교나 경제정책 수행라인의 태도변화로 보기는 어렵다.관행적으로 북한은 대남군사노선과 외교노선은 이원적인 행태를 보여왔다.현재 북한은 국제사회에 식량을 구걸하고 다니며 미·북협상 등으로 경제회생을 시도했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미국과 일본 등이 강경한 반응을 보이자 변명을 하고 나선 것이다.
  • 안보 초당적 협력/여·야 총재 청와대 회동 합의

    ◎대북 경고 국회 결의 채택 합의 김영삼 대통령은 19일 낮 청와대에서 김수한 국회의장,이홍구 신한국당 대표와 김대중 국민회의·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오찬회동을 갖고 여야를 초월해 초당적으로 국가안보태세를 강화하는데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북한 무장게릴라 침투사건과 관련,대북 경고와 국민의 경각심을 고취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국회에서 채택키로 의견을 모았다. 김대통령은 지난 4월 총선직후 청와대회동 이래 5개월여만에 두 야당총재와 만난 자리에서 중남미 순방결과와 함께 안보·경제문제 등 국정현안을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안보태세 확립,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중남미와의 경제협력 강화 등을 위해 여야가 대국적 견지에서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북한의 무장공비침투사건은 일종의 무력도발행위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전제,『여야를 초월해 국가안보태세를 강화하는데 힘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무장공비침투에 군이 신속하게 대처했다고 평가하면서 『군의 힘만으로침투게릴라를 막기 어렵고 국민의 신고정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OECD에 가입해 선진국의 경제질서재편에 적극 참여하는게 국익에 도움이 되는 만큼 야당도 대국적으로 이에 협조해달라』고 당부했으며 김 국민회의 총재는 『가입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올해는 가입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중남미순방 성과를 설명하면서 『중남미와의 경협이 우리의 경제발전에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여야없이 이 문제에 대해서도 힘을 합쳐달라』고 요청했다.
  • 문인의 생가(외언내언)

    독일 프랑크푸르트시내에 있는 「괴테의 집」은 1년내내 관광객들로 성시를 이룬다.지난달 필자가 찾아갔을때도 4층건물은 방이나 복도할 것없이 외국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2백년도 넘은 이 집에는 모든 것이 가즈런히 잘 정돈돼 있었다.유명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시인의 방,두꺼운 라틴어책들로 가득찬 서재,괴테가 애장했던 그림들로 가득찬 방,북경식 가구로 꾸며진 응접실 등이 괴테가 살았던 1700년대 중반을 그대로 재현해놓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방문객은 연간 76만명.괴테하우스는 독일국민들의 자랑이요 긍지다. 우리는 문화예술인의 생가를 거의 갖고 있지 않다.조선시대는 그만두고라도 근대문학 1백년의 흐름속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문인의 생가나 작품의 산실이 몇개나 남아 있는가.영랑의 생가(강진),박종화의 자택인 서울 평창동의 조수루,서정주의 생가(고창 선운리) 등 손에 꼽을 정도다.우리사회의 문인들에 대한 무관심과 급격한 주택양식의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1930년대 감각적인 시어를 구사하며 주옥같은 시를 발표했던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생가가 충북 옥천에 복원됐다. 원래 있던 생가는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었는데 경매처분직전에 옥천문화원장 박효근씨가 성금을 모아 집터를 사고 초가 두채(22평)를 복원한 것이다.가족과 동네노인들의 증언을 참고로 했다고 한다. 「넓은 벌 동쪽끝으로/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향수). 그가 살던 마을도 지금은 크게 달라졌겠지만 지용의 생가가 복원돼 기념관이 되었다하니 반갑기 그지없다.사람들은 항용 제가까이 있는 보석은 놓쳐버린다.놓치기 쉬운 보석 하나를 찾아 닦아놓은게 지용의 생가라는 생각이 든다.
  • 새 경찰위원 5명 선임

    정부는 30일 경찰위원회 제1기 위원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2기 위원 5명을 선임했다. 새로 임명된 임기 3년의 신임 경찰위원은 서재근 전 동국대 사회대학장,백영철 관동대 총장,유근완 변호사,임백 조선일보 출판국장,김춘강 대한어머니회 회장이다.
  • 그룹 대변인:11/높아지는 위상(테마가 있는 경제기행:11)

    ◎그룹의 “중심축”… 수석부서 자부심/비자금 「외풍」 육탄방어… 논공행상때 파격 승진/직업선호도 상승… 전문분야 엘리트 선발 추세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수사가 1차 마무리된 직후인 지난해말.각 그룹 대변인실은 잔칫집 분위기였다.대변인들이 연말 정기인사에서 대거 「발탁」 승진했기 때문이었다. 삼성은 이의일 전무,김지선 이사,이순동 상무 등이 승진자였다.현대는 이영일 전무,송진철 상무,박일권 이사가 승진했다.대우는 김욱한 사장,서재경·김윤식·강영호 전무,박찬 상무,백기승·김종도 이사가 발탁됐다.대우의 백·김이사는 승진 1년만에 다시 승진하는 파격이었다.LG는 심재혁 전무,김영수·정상국 이사 등이 한직급씩 올랐다.쌍용도 조남도 전무가 부사장으로,김동현 이사가 상무로 각각 승진하는 영예를 누렸다. 그룹 대변인들에게 몰아닥친 승진바람은 회장이 직접 챙긴 논공행상이었다.그룹 회장들이 연루된 비자금 사건의 외풍을 대변인들이 육탄방어로 막아낸데 대한 포상이었던 것이다. 그룹 회장이나 회사가 어렵고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릴 때면 최전방에 나설 수 밖에 없는 것이 대변인들이고 이들은 「몸을 던져」 방패 구실을 한다.그 공은 회장이 직접 챙겨주게 마련이다.그만큼 대변인들은 회장의 측근으로서,그룹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인사에서도 혜택을 입을 가능성이 어느분야보다 높다. 『그룹의 중요 정책회의에 홍보실에서 꼭 참석합니다.회의 참여를 통해서 그룹 경영의 흐름을 읽을 수 있고 홍보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이제 홍보실은 수석부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상이 달라졌습니다』(D그룹 차장) 그들은 대기업 사원중에서도 가장 「신사」다.순전히 직업상의 탓이기는 하지만 술자리에서 가장 잘 놀고,누구에게나 친절하다.항상 말쑥한 싱글의 정장 차림이면서,얼굴에는 웃음을 지우지 않는 신사들.업무상 돈을 잘 쓸 수 있는 사람들.아무리 술을 먹어도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출근해 앉아 있는 것도 그들이다. 더이상 한직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홍보맨들도 엘리트로 충원되고 있다.주로 인문계 출신이었던 인적구성도 전문분야를 살린 공학도출신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정책과 정보에 가장 먼저 접할 수 있고 폭넓은 대인관계를 가질 수 있어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일합니다』(H그룹 부장) 최근 한솔PCS의 경력사원 90명을 모집하는 데 4천명이 몰렸다.이중에서도 홍보과장 1명 뽑는 데 무려 1백30명이나 지원했다.기술직이나 여타 경영지원분야보다 경쟁이 가장 치열했다.홍보맨이 「음지」가 아님을 증명한 사례다.한 취업전문지의 대학생 직업선호도 여론조사에서 기업의 홍보직이 선호도 7위에 오른 사실도 홍보의 변모한 사회적 위상을 시사하는 징표다.막상 그 홍보대상이 되는 기자들은 그보다 낮은 순위였다. 그러나 홍보맨들이 겪는 어려움과 갈등은 의외로 많다. 『홍보실인데요.○○프로젝트가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홍보실이요? 그런 자세한 것은 말해주기 곤란합니다』 그룹의 홍보실에서 자주 목격되는 전화통화 풍경.현업 부서의 동료 직원이 홍보맨을 마치 다른 기업 직원처럼 대하고 있다.『홍보실은 하는 일없이 돈만 쓰고 외부에 회사 정보나 흘려주고…』 대변인들은 한솥밥을 먹는 현업 직원들이 이질적인 존재,또는 외부인으로 생각할 때 가장 어렵다. 신문이나 뒤적이고 멀쩡한 대낮에 TV를 켜놓고 전화에 대고 사무실이 떠나가라 껄껄거리는 때도 있다.이런 업무 외양 때문에 대변인실의 「막중한」 역할을 알아 주지 않을 때 가슴이 답답해진다.〈손성진 기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