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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린턴 또다른 연인 의혹

    ◎인터넷신문,함께 서재 들어가는 테이프 공개/백악관 “주지사때 이웃에 살던 가족의 옛친구” 【워싱턴 AFP 연합】 성추문으로 탄핵 위기에 몰린 클린턴에게 ‘또다른 여인’과의 성추문 의혹이 일고 있다.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을 특종 보도했던 인터넷신문 ‘드러지 리포트’는 최근 클린턴 대통령이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젊은 여성과 개인 서재로 들어가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했다.개인 서재는 르윈스키와의 밀회 장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지난 주말 폭스 TV를 통해 방영된 문제의 테이프는 93년 8월에 촬영된 것이다. 10분짜리 이 테이프는 이어 다른 사람들이 곧 돌아간 뒤 클린턴이 이 여성을 대통령 집무실 옆 개인 서재로 데리고 들어가 서재문을 약간 열어놓는 것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또다른 성추문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는 드러지는 서재가 클린턴과 르윈스키가 성 접촉을 가진 곳으로 클린턴은 르윈스키와 밀회를 즐길 때 했던 것처럼 문을 약간 열어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백악관측은 “신원 미상의 여성이 클린턴이아칸소주 주지사 시절 저택 옆에 살던 가족의 옛 친구”라고 밝혔다고 드러지는 전했다.
  • 벌거벗겨진 대통령/蔣正幸 논설위원(外言內言)

    섹스 스캔들은 언제나 세인(世人)의 관심을 끌게 마련이다.성(性)이 인간 공통의 관심사인데다 둘만의 은밀한 관계를 들춰보는 재미까지 곁들여있기 때문이다.스캔들의 주인공이 부(富)나 인기,권력을 가진 유명한 사람일수록 관심은 더하다.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에 관한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의 의회조사보고서가 온통 화제다.미국은 물론 세계가 충격적이고도 적나라한 보고서 내용에 관심을 쏟고 있다.보고서가 실린 인터넷은 밀려드는 접속희망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언론들도 앞다투어 대서특필하고 있다. 클린턴이 백악관 인턴직원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2년여에 걸쳐 10차례의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 보고서의 주내용이다.클린턴이 연방대배심 증언에서 이미 시인했던 ‘부적절한 관계’를 넘어선 행위들을 ‘섹스’‘성기’‘성교’ 등의 단어들을 동원,실감나게 전하고 있다.세계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서재에서,화장실에서 벌인 갖가지 놀라운 행위들은 세계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미국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탄핵이냐,사임이냐 최대의 위기에 몰린 클린턴은 눈물과 사죄작전으로 궁지를 벗어나려 하고 있다.미국국민들은 대통령의 추잡한 행위에 놀라고 실망은 하지만 대통령직만은 그대로 수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아직은 높다.백악관측도 대통령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탄핵사유가 될 위증이나 사법방해는 없었다고 방어에 나섰다.그러나 의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다 11월의 중간선거까지 겹쳐 클린턴의 앞날은 아무도 점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클린턴 대통령이 뛰어난 그동안의 업무실적이나 여론의 힘을 입어 요행히 탄핵만은 면한다 하더라도 그의 지도력에 치명타를 입을 것은 분명하다.냉전종식 이후 유일한 강대국인 미국이 지도력을 잃는다는 것은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세계는 지금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경제위기,러시아사태,환경재앙,지역분쟁 등 세기말적인 몸살을 앓고 있다.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지도적 역할을 해야할 미국이 대통령의 사생활로 흔들린다는것은 우려되는 일이다.세계의 주요 증시들은 벌써부터 ‘클린턴 쇼크’를 겪고 있다.미사일 발사에 핵개발 의혹등 북한문제를 안고있는 우리로서는 걱정이 더할 수밖에 없다. 미국 대통령의 섹스스캔들로 세계가 멍들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 JP 총리서리 꼬리 떼면 위상 큰 변화 있을까

    ◎김 대통령과 신뢰관계 더욱 굳어질 듯 金鍾泌 국무총리서리는 16일 아무런 일정을 갖지 않고 청구동 자택에 머물렀다.서재에서 평소 읽던 책들을 정리하면서 곧 삼청동 공관으로 이사할 준비를 하는 듯 했다. 사실 金총리서리의 국회 인준이 임박했다.오늘이냐 내일이냐의 문제만 남았다.이제 정가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서리 딱지를 뗀 ‘金鍾泌 국무총리’의 위상 변화에 쏠리는 것 같다. 서리를 떼면 법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까.정치적인 위상은 얼마나 높아질까.자민련에 대한 장악력은 확대할 것인가,줄일 것인가.金大中 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궁금증들을 정치권에서는 제기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총리인준 뒤의 金총리서리에게는 본질적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金총리서리는 지난 5개월여 동안 총리로서의 모든 권한과 책임을 행사해 왔다.金대통령을 대신해 국무회의를 주재하기도 했고,각료를 추천했다.국가 문서에도 서명했다.굳이 달라지는 것을 찾자면 공관으로 이사가는 정도다.차량도 현재 타고 다니는 ‘체어맨’을 계속 이용할 계획이다. 총리인준 뒤 金총리서리는 정치적인 활동보다는 국정을 돌보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할 것이라고 한다.총리실 고위관계자는 “총리인준뒤 공동정권의 한 축으로서 영향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예상은 그야말로 만들어낸 얘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이 관계자는 “경제난 극복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金대통령을 보좌하겠다는 것이 金총리서리의 뜻”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 金총리서리이다.때문에 그는 金대통령과 쌓아온 신뢰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는 얘기다. 최근 金총리서리에 대한 청와대측의 의전적 예우도 한층 극진해지는 흔적이 나타난다.앞으로 국무총리가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고,대통령을 대신해 주요 행사에 참석하는 경우도 많아질 것으로 총리실 관계자들은 예측한다. 물론 국민회의와 자민련에서는 앞으로 각 당의 이익과 논리에 따라 여­여간 신경전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이른바 ‘통치기반 확대’와 ‘내각제 추진’의 대립이다.다툼은 한나라당 전당대회 직후부터 나타날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그같은 다툼이 金대통령과 金총리서리간의 관계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두 사람의 관계가 공고하면 정국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적어도 올해안에는 金대통령과 金총리서리간의 틈을 파고들려는 시도 같은 것을 특별히 우려할 만한 계제가 아닌 것 같다.
  • 장충단 유세 테이프 진본 나왔다

    ◎당시 동교동 출입 李成春 기자 가져가 보관/음질상태 양호… 金 대통령도 “틀림없다” 확인 청와대측이 12일 金大中 대통령의 지난 71년 4월18일 서울 장충단 공원 유세연설 녹음테이프 진본(眞本)을 새로 공개했다. 이번 테이프는 지난 3일 한국마사회 보안과 계약직 직원인 尹善弘씨(60)로 부터 입수,공개한 테이프보다 녹음 상태가 훨씬 좋다. 현장감이 넘치고,연설내용 또한 전문으로 尹씨가 보관한 테이프에는 없었던 공약 등이 담겨있다. 이 테이프는 지난 6일 청와대가 장충단 유세테이프를 입수했다는 보도를 접한 한국일보 李成春 논설위원이 9일 朴智元 공보수석에게 전달 한 것이다. 당시 정치부기자로 동교동을 출입했던 李위원은 유세 다음날 19일 동교동에 들렸다가 서재에 있던 이 테이프를 몰래 가져와 지금까지 보관했다. 李위원은 “그 뒤 여러 방송국에 알아본 결과,전체가 녹음되어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값진 자료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金대통령도 테이프를 들은 뒤 “진본이 틀림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 확인된 공약은 ▲영구집권을 위한 헌법개정 불가 ▲김일성이 전쟁포기를 선언하고 파괴분자를 남파하지 않다는 약속을 할땐 남북 체육경기 및 기자 교류 ▲전쟁억제를 위한 4대국 안보체제 방안 등이다.
  • ‘민족 서정시의 계승자’/故 박재삼 시인 詩 세계 여행

    ◎1주기 추모 60·70년대 작품묶어 ‘시전집 1권’ 발간/시집 2권·산문집 준비 ‘해방이후 한국 서정시의 정점’에 자리잡은 박재삼(朴在森) 시인이 주위의 안타까움을 훌훌 털고 세상을 떠난 지도 1년.그의 ‘시전집 1권’이 민음사에서 나왔다. 이 전집은 시인의 첫번째 시집 ‘춘향의 마음’(62년,신구문화사)부터 다섯번째 시집 ‘뜨거운 달’(79년,근역서재)까지를 묶은 것이다.시 세계의 정수(精髓)가 담긴 시절의 작품들이다.생전에 펴낸 시집을 모아 두 권을 더 펴내고 한 권의 산문집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한 작가를 떠올릴 때 한 마디로 집약할 수 있는 말,일체의 형용사를 다 발라내고 박재삼 시인 앞에 붙는 것은‘서러움’이다.그에겐 삶이 서러웠고 시가 서러웠다.그의 설움이 세상에겐 위로였다. 인생의 절반을 병마와 가난과 싸우면서도 올곧은 자세를 흩뜨리지 않았던 박재삼 시인의 존재는 한국 시사(詩史)적인 의미로만 보더라도 김소월,서정주로 이어지는 민족서정시의 계승자였다.전통적인 리듬에 고유의 정서인 한을 접맥시켜 온 흐름에풍부한 물줄기를 보태고 있다. 그 물줄기는 지금도 의미를 띠면서 유유히 흐른다.80년대엔 ‘싸움터의 소리’에 치이고,90년대엔 ‘현란한 감각의 난장(亂場)’에 치이면서 지칠 대로 지친 현재의 시단에서 그의 시가 지니는 위치는 어떤 것인가. 전집을 기획한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이렇게 말한다.“시인의 1주기를 맞아 한국 서정시의 원류를 탐색하는 징검다리를 놓아 보고 싶었다.90년대를 고비로 선정성·실험성이 주춤하는 우리 시의 현주소에서 시의 서정성에 대해 밀도있는 고찰을 하려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시인이 박재삼이다” 세월이 지나도 빛바램이 없는 시인의 육성.(‘천년의 바람’) 자연의 변함없음에 빗대어 인간사의 가벼운 팔랑거림을 나무라고 있다.영리에 눈먼 세상의 덧없음을 한탄한다.그 음조는 비애미(悲哀美)다.(‘사람이 사는 길 밑에’) 시인의 몸은 떠나도 노래의 반짝거림은 남는다.변함없는 음성으로 시 정신의 한 갈래를 지켜 온 그의 자취를 더듬다 보면 오늘의 노래도 더 풍성해지리라. 시인은 193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53년 ‘문예’지에 ‘강물에서’,55년 ‘현대문학’에 ‘정적’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고려대 국문과를 수료했으며 평생 가난을 벗삼아 지냈다.살아갈 방도 삼아 서울신문에 ‘요석자(樂石子)’라는 이름으로 바둑 관전기를 싣기도 했다.
  • 朴宗和 교수 평양방문기:上

    ◎작음 만남이 신뢰구축 첫 걸음/4㎞ 무지개동굴 수작업 열악한 기술 대변/훼손 흔적 거의없는 금강산 커다란 기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표단이 지난 5월26일부터 6월2일까지 조선기독교연맹의 초청을 받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이번 평양방문에서 경험한 것은 그동안 남북교회간에 축척된 긴밀한 상호간의 ‘신뢰성 구축’이 방문기간 내내 남북쌍방을 감싸며 흐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공항도착에서부터 평양을 떠날 때까지 귀빈접대를 받으며 귀빈숙소인 ‘서재동 초대소’에 머물며 스케줄대로 움직였다.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 고향집’과 ‘통일 전선탑’을 관람했다. 국립도서관에 해당하는 ‘인민대학습당’을 방문하여 시설과 운영을 돌아보았다. 안내인이 세계최대의 도서관을 목표로 3,000만권의 장서를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고 있다는 설명을 했으나 웅장한 시설에 비해 서적이나 소프트웨어는 아직 미흡함을 느끼게 했다.‘개선문’과 ‘주체사상탑’도 관람했다. ‘미술박물관’을 찾았는데 고조선의 고인돌과 고구려 동명왕릉을 재생해 놓은 것에서부터 한민족역사의 유물들을 보면서 설명과 해석이 주체사상적 냄새를 풍긴 것 말고는 정치적·이념적 선전물이 아닌 민족역사의 동질성을 확인해 주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50년 분단의 현실에서 이질화 현상 극복을 위한 방안 중에 남북상호간의 역사유물 교환이나 교환전시 등을 통하여 역사적 동질성을 확인하는 것이 민족화해의 중요한 첫 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이 자랑하는 ‘평양산원’도 방문했다. 평양산원은 현지의 여건과 형편으로 보아 출중한 것 같았다. 엄청난 자금을 들여 최신 시설과 고가 기계를 설치한 서울의 병원시설과 비교할 처지는 되지 못했다. 2박 3일의 ‘금강산 유람’은 퍽 인상깊었다. 평양에서 원산까지 135㎞의 시멘트 고속도로를 달려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거쳐 고성군에 위치한 호수인‘삼일포’를 경유하여 금강산에 당도했다. 금강산의 수려함과 빼어난 장관은 굳이 글로 표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금강산의 자연환경은 거의 훼손되거나 오염의 피해에 시달린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커다란 바윗돌에 군데군데 새겨진 선전문구 말고는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음은 커다란 기쁨이었다. 금강산 개발이 자연친화적으로 이루어지고 부족한 관광시설들을 새로 만들어 관광객 유치를 통한 북한 경제의 활성화가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원산 약 20㎞ 전방에 있었던 4㎞에 달하는 무지개동굴(터널) 작업현장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사람의 손과 발이 주축이고 거의가 수작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동굴공사는,열악한 경제사정이나 기술환경을 대변하는 것 같아 가슴 아팠다.그것도 후방 군부대가 동원되고 또 과거 목탄차라고 불리던 트럭을 덤프 트럭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평양으로 되돌아올 때는 강원도 북부와 평안남도를 이어주는 공사중인 신설 도로로 우회하였다.공사 현장은 역시 마찬가지 모습이었다.구슬땀 흘려 일하는 남녀노소 인부들의 얼굴이나 표정은 바로 통일 이전이라도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북한의 양질 노동력과 결부되어 민족 번영의 길로 들어서게 하라는 간절한 희망을 전하고 있었다.
  • 세계지도력의 산실 백악관(美國의 대통령 문화:21·끝)

    ◎‘모든 사람의 집’ 백악관 매년 관광객 수백만명 다녀가/1800년 애덤스 첫입주후 40명 거쳐/“정직 현명한 이들만 살게 하소서”/라이브러리룸 등 6개 20분 소요/시대 초월한 국민과의 교감 피부로 【워싱턴=羅潤道 특파원】 미국 대통령문화의 산실인 워싱턴DC에는 미대통령의 체취를 느끼려는 수백만의 관광객들이 매년 몰려든다.‘펜실베니아 애브뉴1600번지’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진 백악관,스미스소니언 초상화박물관의 대통령실 등은 차치하고라도,워싱턴기념탑,링컨기념관,제퍼슨기념관,프랭클린루즈벨트 기념관,시어도어 루즈벨트 기념관 등 개인 기념관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물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포토맥강과 잔디광장 ‘더 몰’이 어우러져 이뤄내는 아름다움 사이로는 또 케네디센터,윌슨센터,조지 워싱턴 대학,루즈벨트 브릿지,린든 B.존슨 기념공원,제임스 매디슨 빌딩 등 대통령의 이름이 붙은 시설물들도 많아 시내곳곳 어디를 가도 대통령을 만날수 있다.특히 백악관은 미대통령의 권위를 상징함과 동시에 세계 지도력의산실로 역대 미대통령의 삶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이다. 이곳은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누구에게나 개방된다.백악관 남쪽의 ‘방문자센터’에 가서 줄을 서기만 하면 된다.그러나 백악관 방문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부지런해야 한다.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아침 7시부터 선착순으로 줄을 선 사람들에게 3천매,단체관광객에게 1천500매 등 모두 4천500장의 입장권을 나눠준다.대부분의 경우 입장권 분배를 시작,30분이면 동이난다. 입장은 당일 상오10시부터 정오까지만 허용되며 지하1층의 회랑을 통해 첫 방인 라이브러리 룸에서 출발하여 지상1층의 국가만찬장까지 모두 6개의 방만 일반에 공개된다.전체 20여분의 투어다. 백악관은 보통 관광객들이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남쪽에서는 4개층으로,정문쪽인 펜실바니아애브뉴 쪽에서는 3개층으로 보인다.따라서 관광객들은 지하1층 동쪽 회랑의 출입문으로 입장하여 첫방인 ‘라이브러리’만을 본후 지상1층으로 올라가게 된다.지하1층의 다른 방으로는 금도금한 은제품들을 진열한 ‘버메일(금도금)룸’,대통령의 식기 세트를 진열한 ‘차이나룸’,중앙의 ‘외교사절 영접룸’,그 좌측에 2차대전시 루즈벨트 대통령이 전황을 체크하기 위해 사용했던 ‘맵(지도)룸’ 등이 있다. 지상1층에는 리셉션이 열리는 가장 큰 방인 ‘이스트룸’,응접실인 ‘그린룸’과 ‘블루룸’,퍼스트레디들의 응접실인 ‘레드룸’,연회실인 ‘국가만찬장’ 등이 있고 이들 5개의 방은 모두 공개된다.또한 이들 방을 연결하는 중앙회랑에는 대통령들의 흉상과 퍼스트레디들의 초상화들로 장식돼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집무실과 침실 등 사적 공간이 있는 2,3층은 공개되지 않는다.중앙의 거실인 ‘옐로 오벌 룸’을 중심으로 양측에 대통령의 서재와 조약체결시 사용하던 ‘트리티룸’이 있고 그 양측 옆으로 대통령의 침실과 손님방으로 사용되는 ‘링컨룸’이 있다.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와 각료회의장인 ‘캐비닛룸’은 서쪽 부속건물에 있다. 1792년 초대 워싱턴 대통령의 임기중 착공된후 1800년 11월,2대 존 애덤스 대통령이 퇴임 2개월여를 남기고 미완성인채로 입주함으로써 시작된 백악관에서의 대통령 스토리는 오는 2000년 200주년에 이르게 된다.그동안 워싱턴을 제외하고 클린턴 대통령까지 40명의 대통령을 거쳐오며 조금씩 증개축되어 오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거주기간은 윌리엄 해리슨(9대)의 1개월부터F.루즈벨트(32대)의 12년까지 다양하다.임기중 사망한 대통령은 모두 8명으로 4명은 암살,4명은 병사로 기록돼 있다. 한편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이듬해 득녀,백악관에서 자녀를 얻은 유일한 대통령이 됐다.자녀수가 가장 많은 대통령은 타일러로 전처와 후처로부터 모두 8남6녀를 얻었다.다음은 윌리엄 해리슨으로 6남4녀를 기록하고 있다.가족대통령으로는 존 애덤스와 존 퀸시 애덤스(6대)가 부자관계 였고 윌리엄 해리슨과 벤자민 해리슨(23대)은 조부와 손자 사이로 유명하다. 워싱턴에서 또하나 빼놓을수 없는 대통령문화의 본거지는 국립초상화박물관 이다.2층의 대통령실에는 역대 미대통령들의 사진과 흉상,부조 등이 전시돼 있다.언제라도 대통령의 미소를 접하고 그 숨결을 느낄수 있는 곳이다. 시대를 초월한 국민과 대통령의 교감은 이같이 바로 민주주의의 근원을 이루는 또하나의 현장이기도 하다.백악관 ‘국가만찬장’의 벽난로 위에 새겨진 애덤스의 글귀는 긴 여운으로 남는다.“정직하고 현명한 사람들만이 이지붕 아래 살게 하소서.”
  • 李姬鎬 여사 골절상/국군 서울병원서 수술

    대통령 부인 李姬鎬 여사(75)가 지난 26일 낮 관저 李여사 서재로 쓰던 온돌방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우측 대퇴부 경부 골절상을 입고 종로구 소격동 국군 서울지구병원으로 옮겨져 이틀째 치료를 받고있다고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이 27일 발표했다. 朴대변인은 “李여사가 앉으려고 의자를 짚다 의자와 함께 미끄러지면서 넘어져 곧 서울지구병원으로 옮겨져,방사선 진단을 받고 가벼운 정형외과 수술을 받았다”면서 “의사들에 따르면 회복속도가 빠르고 경과가 좋다”고 밝혔다. 李여사는 병원에서 3일동안 입원치료를 받은뒤 퇴원,휠체어를 타고 10일∼14일 정도 자가치료를 더 받아야 완치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5월5일 어린이날 행사와 같이 기간중의 일부 행사에는 휠체어를 타고 참석하는 문제를 검토중이다.
  • 民權단체 등장과 반작용(秘錄 南柯夢:6)

    ◎독립협회 결성에 ‘魚頭鬼面의 무리’ 비난/高宗의 해산령에도 활동 계속하자/徐載弼 등 주동자 17명 투옥/李承晩은 탈옥미수로 사형선고/하야시日公使 上奏로 특사 석방 ‘남가몽’의 저자 정환덕(鄭煥悳)이 경북 영천(永川)에서 처음 상경한 것은 1897년 가을,나이 40때였다.이 때는 갑신정변이 일어난지도 13년이 지나 세상은 온통 개화사상으로 들떠 있었다.1894년 일제는 동학란을 구실로 청일전쟁을 일으켰고 김홍집 등 개화파를 시켜 갑오개혁을 단행했다.그리고 이듬해는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바로 그 다음해가 정환덕이 상경한 때였다. 정환덕은 상경하기 두달 전 길몽(남가몽)을 꾸었다.황학사의 한 암자에서 수도하고 있는데 하루는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더니 “공부 더 할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1896년 徐載弼이 결성 “광무 원년(1897년) 7월 16일 밤 황학사(黃鶴寺) 동편 운수암(雲樹庵)의 동대(東臺)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흰 도포를 입은 산신령이 청려장(靑藜杖·명아주 대로 만든 지팡이)을 짚고 내려와 마루에좌정한뒤 말하기를 ‘자네가 수학(象數學-易學)에 마음을 쏟은지 벌써 7년이나 되었으나 글의 요령(참뜻)이 어떠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글만 줄줄 읽어온 것으로 안다.그러니 글의 행간에 숨겨진 뜻을 해득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더니 산신령이 청려장을 짚고 돌연 “나라가 망했다”고 개탄하는 것이 아닌가. “슬프게도 금수강산이 벌써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니 애석하도다! 이런 때를 당하여 비록 주(周)나라 800년을 일으킨 강태공(姜太公)이 나타나도 안되고,한(漢)나라 4백년을 보좌한 장자방(張子房)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아무 쓸데가 없다.하물며 자네가 약간의 역학을 배웠다 하여 큰 운수(大數)를 잡을 수 있다고 자신하겠는가.헛되이 정력을 대수에만 집착하지 말고비록 작은 운수(小數)에 지나지 않다 하더라도 잡는 것이 좋을 것같다.너의 신상에는 앞으로 십년간 통운(通運)이 있으니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말라.시국의 변화를 따라 잘 대처하면 자신과 처자를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꿈을 꾸고 선뜻 서울에 올라와 보니독립협회 회원들이 아우성을 치며 거리를 누벼 장안은 온통 난장판이었다. “사람같지 아니한 무리(匪類),즉 어두귀면(魚頭鬼面)의 무리들이 작당을 하여 단체를 만들고 이름을 독립협회라 하고 광화문 앞에 모여서 밤낮으로 선동하고 있었다.이 때문에 소란상태가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문안이나 성밖을 막론하고 온 서울의 인심이 점점 물끓듯 하여 장차 군자는 설땅이 없을 것같은 조짐이 보였다.” 독립협회는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미국으로 망명한 서재필이 11년만에 귀국,1896년 7월 2일 결성한 단체였다.우리나라 최초의 민권당(民權黨)이요,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지금 많은 역사가들이 독립협회를 찬양하고 있으나 당대의 절대 다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예컨대 정성우(鄭惺憂)라는 선비는 상소하기를 “갑신정변때 망명했던 역당들이 갑오 6월의 난을 일으켰으며,다시 을미 8월의 대역(大逆)을 양성한 것이다.소위 개화의 무리들이 외국으로 망명하였다가 환국,둔갑해서 말을 바꾸기를 부국강병이라 하고 외국인을 불러들여 대변(大變)을 일으켰다.흉도(兇徒) 서재필이 외신(外臣)이라 자칭하며 국권에 간여하고 있는 것은 무슨장난이며 독립신문이라는 것은 정부를 훼방하는 글 뿐이요,의리를 저버린 것이다.이것은 다만 나라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다”고 통렬히 비난하였다.그러니 ‘남가몽’이 독립협회 회원을 ‘비도’라 했다해서 상식에 어긋나는 말은 아니었다. “이때에 황상폐하(고종)께서는 특별히 교서를 내리시어 ‘지금 너희들이 이같은 어려운 시대를 당하여 죄망에 걸리어 스스로 알지 못하는 곳에 빠져들고 부득이하게 핍박되어 평시와 다르게 되었으나 내가 마땅히 용서해주고 놓아줄 것이다.각자 돌아가 농사짓는 자는 농사짓고 장사하는 자는 장사에 부지런히 힘써 생업에 안착한다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고 경고하여 깨우쳤다.” ○영은문 헐고 독립문 건립 그러나 독립협회 회원들은 해산하지 않고 한결같이 사단을 야기하였다.이에 고종과 순종이 크게 진노,직접 광화문루 위에 올라가 교시를 내려 말하기를 “짐(朕)이 너희 무리들의 범죄를 풀어서 놓아주고 각자 돌아가 생업에 안착할 의사를 누차 깨우쳐 주었으나 듣지 않으니 너희 무리들은 도무지 정치 밖에 있는 백성으로 국민이 아니다.사세가 부득이하니 너희들을 차별없이 소멸시키고 말겠다” 하고 대포를 성루에 높이 달아매고 위력을 보이니 독립협회 회원들은 해산하고 말았다. “내가 서울에 갔을 때는 차차 평온해지고 시골도 점점 진정상태에 접어들고 있었다.그러나 남은 재앙이 이어져 수해와 기근이 겹치게 되고 도적이 날뛰어 천재(天災)와 시변(時變)이 해마다 일어나지 않는 때가 없었다.겉으로는 조금 안정을 되찾는 듯했으나 안으로는 점점 비상시국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서재필은 먼저 사대주의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웠다.이어 모화관의 편액을 독립관으로 바꿔 달았다.봄부터 독립관에서는 치열한 토론회가 열렸는데 모두가 전직 판서·참판·승지 등 고위층들로 가마를 타고 나타나 앞마당은 거마로 꽉 찼다.또한 토론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라 발언권을 얻어도 말이 나오지 않아 그냥 연단에 서있다 내려가는 사람도 많았다. 하루는 토론 주제가 “길에 가로등을 달아 도적을 없앱시다.”였다.한 사람이 일어서서 “가로등이 비치면 도적이 은신할 데가 없으니 매우 유용합니다”고 주장했는데 반대론도 만만치 않았다.어떤 사람은 “도적이 어디 길에서 도적질 합디까.남의 집 캄캄한 다락이나 곳간에서 도적질하기 때문에 가로등을 세워봐야 소용없습니다”고 하였고,다른 사람은 “가로등으로 밤도둑은 막을 수 있으나 밤에 등불을 켜고 남의 집에 들어가는 명화적(明火賊)에게는 가로등이 소용없고 또 청천백일하에 선량한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낮도둑(부정부패 관리)에게는 백촉,천촉,억만촉의 등불을 켜도 막을 수 없습니다.여러분!”이라고 소리쳤다. ○법무대신 韓圭卨이 감형 때마침 회장에 몰래 숨어들어와 있던 내부협판(內部協判·내무부 차관) 김중환(金重煥)이 이를 듣고 곧장 고종에게 달려가 “독립협회에서는 국왕을 비롯한 모든 정부요인들을 절국대도(竊國大盜)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라고 과장했다.고종은 대로하여 해산령을 내렸고 그래도 해산하지 않고 이듬해 여름까지 세번이나 직소를 올리자 어용단체 황국협회(皇國協會)로 하여금 몽둥이로 독립협회원을 두들겨 패고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 이때 독립협회 주동자는 18명이었는데 윤치호를 뺀 17명 모두가 서소문 감옥에 갇혔다.그중에서도 이승만(李承晩)은 가장 과격한 분자라 사형선고가 내려졌으며 한번 탈옥하다가 붙잡혀 들어왔으므로 꼭 죽어야 될 신세였다.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한규설(韓圭卨)이 법무대신이 되더니 그를 감형하였고,1904년 일본공사 하야시(林權助)가 고종에게 상주(上奏)하여 특사로 풀려났다.하야시는 훗날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살려내리라는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 동갑 한­일 군주 비교(비록 南柯夢:5)

    ◎“메이지 강국화 성공… 고종은 자애롭기만”/공자를 정승으로 안연을 사부로 항우를 장수로 조조를 모사로 삼은들 유약한 임금이 국가중흥 이뤄낼까 임오군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881년에 안기영(安驥泳)의 쿠데타 음모사건이 있었다.안기영은 민씨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8월21일 종로 네거리에서 서울에 과거 보러 올라온 유생들을 모아놓고 ‘타도 일본(伐倭)’을 부르짖으면 호응하는 자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면 그들을 몰아 창덕궁을 기습,고종을 사로잡고 척신들을 잡아죽인다는 것이 쿠데타의 시나리오였다.그러나 이 계획은 가담했던 마음 약한 이풍래(李風來)라는 남한산성 소속의 한 장교가 밀고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 사건이 수구(守舊)파의 불발 쿠데타였던데 반해 그 다음에 일어난 갑신정변은 반대로 개화파의 쿠데타였다. “어느 해였던가.김옥균(金玉均) 박영효(朴泳孝) 서재필(徐載弼) 서광범(徐光範) 유길준(兪吉濬) 안경수 등의 무리가 모두 일본에 유학하여 일본을 효빈(效嚬;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모방함)하고자했으나 일본을 따를 수가 없었다.임금과 신하의 관계란 바람과 비의 사이 같은 것인데,일본의 메이지(明治)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관계가 그러하였다. ○갑신정변 개화파의 구데타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군신간의 관계를 끊고 불세출의 공을 세우고자 했으니 이것은 마치 무거운 수레를 끈채 물을 건너고 배와 노를 움직여 저 험한 검각(劒閣;중국 사천성에 있는 대검산과 소검산 사이에 있는 구름다리)에 오르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하물며 서울에는 권력만 탐내는 권신(權臣)만 있고 충신(忠臣)은 지방에 숨어 있었으니 어찌 일을 성공시킬 수 있었겠는가.이때문에 안경수는 이우인(李愚寅)의 손에 죽었고 김옥균은 홍종우(洪鍾宇)의 칼에 죽었다.그 밖의 여러 사람은 혹 살아서 고국에 돌아온 자도 있고 혹그 몸을 멸망시킨 자도 있었으니 다 기록할 수 없다.” 여기에 나오는 안경수는 1895년 을미사변때 항일 쿠데타를 시도하다가 실패한 사람이다.앞의 안기영의 수구 쿠데타와 같은 성격의 사건이었다. 어찌됐든 갑신정변은 1884년 10월17일(음) 밤 서울 종로의 우정국 낙성식장에서 일어났다.2년 전에 일어났던 임오군란이 계획없이 일어난 우발적 사고였다면 갑신정변은 김옥균 서재필 홍영식(洪英植) 서광범 박영효 등 이른바 갑신5역(甲申五逆)이 계획적으로 일으킨 쿠데타였다. 이들은 홍영식이 우정국 총판(總辦)으로 있는 것을 기화로 우정국 낙성 축하연을 빙자,수구파 요인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몰살하려 들었다.그러나 사전계획이 엉성한데다 소문까지 나버려서 우정국에서는 서재필이 민영익(閔泳翊)의 귀를 칼로 자른 것 외에 별 소득이 없었다.오기로 돼 있던 용산의 일본군도 움직이지 않았다.그래서 김옥균이 황급히 창덕궁으로 가서 고종과 명성황후를 경우궁(景祐宮)에 납치한 뒤 궁안에 들어오는 정부 요인을 차례로 찔러 죽였다.경우궁은 창덕궁의 옆문인 금호문 밖에 있던 작은 사당이었는데 지금은 없다.이때 민태호(閔台鎬) 민영목(閔泳穆) 조영하(趙寧夏) 이조연(李祖淵) 한규직 윤태준(尹泰駿) 등 보수파 6인방이 살생부에 올라 있었고 실제로 이들은 경우궁에서 칼에 맞아 죽었다.이런 엄청난 사건을 일으킨 20대 젊은이들 때문에 나라가 얼마나 어렵게 되었는가를 ‘남가몽’은 이렇게 고발하고 있다. “일본의 메이지 천황은 우연치 않게 우리 광무황제(고종)와 같은 해인 임자년(壬子年,철종 3년,1852)에 출생하였다.메이지는 신하들의 간언(諫言)을 신속히 따르고 어진 사람을 등용하고 능력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었다(從諫言如流 任賢使能).그러기에 이토 히로부미 같은 사람이 나타나 영국식의 개화를 주창하고 유신정치 40년만에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막강한 군사력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일본은 크게 변하여 노나라(魯國;여기서는 근대국가)가 되더니 마침내는 동양의 패주가 되어 세계에서 능히 당할 자가 없는 나라로 발전하였다.이것은 모두 일본이 남들이 모르는 사이에 미리 선각(先覺)한 때문이다.그러나 우리는 남들이 다 알고 행한 뒤에야 깨달았으니 이는 만각(晩覺)한 것이다.그 때문에 우리 근대화는 마치 깨진 그릇을 끼어 맞추는 것과 같은꼴(破器相從)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수구파­개화파 세력다툼 이처럼우리나라 근대화는 개화파와 수구파의 갈등 속에서 혼란만 거듭할뿐 되는 일이 없었다.거기다 외세까지 끼어 드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남쪽에 일본이 있고 북쪽에 러시아가 있어 서로 한국을 넘보고 있었으니 군주가 강하고 굳세어야 했다.그런데 고종은 유순하고 자애롭기만 했으니 요순(堯舜)시대가 아닌 이상 견뎌내기 어려웠다. “성상(고종)은 타고난 자질이 어질고 착하며 자애로웠다.만약에 삼대(중국의 夏,殷,周)의 태평성대에 태어나셨더라면 덕이 있는 사람에게 그냥 정권을 이양할 수도 있는 그런 인물이었다.그러나 이같이 조선 5백년이 끝나게 된 기구한 운명을 당하여 안으로는 어진 보좌관이 없고 밖으로는 훌륭한 장수가 없는데다 태평스러운 해가 오래 지속되어 우리나라는 미처 전비(戰備)를 갖추지 않았었다.하물며 강한 진나라(일본을 가리킴)가 동쪽에 있고 거센 초나라(러시아를 가리킴)가 북쪽에 있어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니 비록 덕이 높은 요임금이 왼쪽에 계시고 순임금같은 훌륭한 신하가 오른쪽에 있더라도 독자적으로 정치를 하기는 어려운 처지라 할 것이다.” ○“뛰어난 인물에 큰 일이…” 이런 임금에게는 훌륭한 재상과 장군이 꼭 필요하였다.그러나 김옥균같은 신하를 가지고는 나라를 일으킬 수 없었다.‘남가몽’에 따르면 백이숙제(伯夷叔齊)나 조조(曹操)같은 신하가 나와도 구제불능이었다는 것이다. “옛날 정치가 잘 다스려지던 한나라 문제(文帝)때같은 시대에도 오히려 회양(淮陽) 태수인 급암이 있었고 장사왕(長沙王) 태부인 가의(賈誼)같은 어진 신하가 있었다.하물며 지금은 마침 액운을 당하여 비록 공자(孔子)로서 정승을 삼고 그 수제자인 안연(顔淵)으로 사부(師傅)를 삼고 자로(子路)로 집금오(執金吾;검사)를 삼고 백이로 서울의 판윤(시장)을 삼고 항우(項羽)로 상장군을 삼고 조조로 모사를 삼는다 하더라도 쉽게 중흥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먼저 뛰어난 인물이 있고,그러고 나서야 큰 일이 벌어지고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대략 이 세상에는 먼저 비상한 인물(非常人)이 나와야 다음에 비상한 일(非常之事)이 벌어지며,비상한 일이 벌어진 뒤에야 비상한 변화(非常之變)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남가몽’ 서두에 나오는 말이다.그러나 왕이나 그 신하나 할 것 없이 모두 나라를 구하는데 역부족이었으니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고 온전하였겠는가.
  • 이상우 공주대 총장

    【공주=이천열 기자】 공주대 이상우 총장이 지난 22일 하오 8시쯤 공주시 중학동 총장공관에서 별세했다.향년 64세. 이 총장은 58년 공주사대를 졸업, 63년부터 공주대 교수로 재직해왔으며 95년 3월 총장에 취임했다. 유족은 미망인 서재영 여사와 2남 1녀. 영결식은 25일 상오 10시 공주대 교정에서 학교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총장공관이다. 장지는 공주시 이인면 주봉리 선영.(0416)50­8001,53­2010
  • ‘어부사시사’의 무대 남해 보길도 세연정

    ◎윤선도가 꾸민 정원… 자연과 어우러진 절경/인공연못에 변화무쌍한 바위 발길따라 풍경 달라/회수담 노송·무도­유도암의 조화 고산 풍류 느끼게/섬주위엔 해수욕장·천연기념물 상록수림 등 장관 【보길도=임태순 기자】 신선이 되어 취해보자.무대는 쪽빛 남해바다 다도해상의 섬.‘지국총 지국총 어사화’라는 후렴구가 나온다. 전남 완도군 보길도의 세연정이 그 곳이다.조선 중기 단가문학의 대가 고산 윤선도가 꾸민 정원이다. 세연정은 인공으로 만든 연못에 바위가 주요 구성품이다.멀리서 바라보면마음 심자 모양을 하고 있는 세연지라는 연못에는 바위가 절묘하게 배치돼 있다. 세연정은 또 보는 이의 시각을 철저히 차단,정원 전체를 한눈에 굽어보는것을 허용하지 않는다.여기저기가 바위 또는 나무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발길을 옮길 때마다 풍경은 수시로 바뀐다. 세연정은 또 바위가 변화무쌍함을 더해준다.크고 작은 바위가 반쯤 물에 잠겼는가 하면 우람한 몸체를 그대로 드러낸다.완전히 물에 잠긴 암반도 있다.‘지국총 지국총어사화’하며 노를 저으면 물에 잠긴 바위는 물살에 밀려물고기가 뛰노는 것처럼 보인다. 고산 풍류의 진수는 세연정 정자 앞에서 맛볼수 있다.정면 3칸,측면 3칸의 정사각형 단층 정자인 세연정 앞에는 회수담이라는 섬이 고송과 함께 외로이 떠 있다.이 섬은 고산의 관념의 세계를 상징한다.섬 주위에는 두개의 바위가 있다.무도암과 유도암이 바로 그것으로 무도암은 이름 그대로 춤추는 바위다.고산은 한발짝 건너 유도암에서 무희의 춤을 즐겼다.수면에 드리워진 고송을 배경으로 춤사위가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여울져 나간다.고산은 심산유곡의 폭포를 평지로 끌어 내렸다.세연지 하류의 판석으로 만든 탄석보는 평상시는 물막이 역할을 하지만 물이 넘쳐나면 그대로 폭포가 된다. 세연정 앞산으로 15분 정도 올라가면 옥소대라는 넓은 바위가 나타난다.옥소대는 세연정의 간접배경으로 무희가 이곳에서 춤을 추면 세연정에 그림자가 비춘다.또 옥소대에서 피리를 불면 소리가 공명돼 산울림으로 퍼져 나간다.이밖에 고산의 흔적은 세연정에서 조금 떨어진 부용리에서 볼수 있다.고산이 다도를 즐긴 동천석실이 산중턱에 있으며 책을 읽었다는 낙서재터도 남아 있다.동천석실에서 차를 끓이기 위해 저녁에 피어올리는 연기는부용동 8경가운데 제1경으로 꼽히는 곳이지만 아직 복원이 안돼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고산 유적지를 구경하고 나면 해변가로 발길을 돌리자.섬 남쪽의 예송리 해수욕장은 천연기념물 40호로 지정된 상록수림과 새알만한 조약돌로 이루어진 해변이 압권이다.반달모양의 중리해수욕장은 예송리와는 달리 고운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보길도의 또 하나의 절경은 서남쪽 바닷가 마을 보옥리.송곳같이 뽀족한 모양의 보족산 정상에 오르면 맑은 날에는 멀리 제주도가 보이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파도가 부딪히는 모습이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4월이 되면 산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고산과 보길도/제주도 가는길 풍랑 만나 대피한 곳/산수 빼어나 14년간 섬에 눌러 앉아 고산은 병자호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천637년 보길도와 인연을 맺는다.벼슬을 그만두고 전남 해남에 낙향해 있던 고산은 인조를구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켜 해로로 남한산성으로 가던중 인조가 화친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뱃머리를 제주도로 돌린다.도중에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대피했다 산수가 빼어난 그 곳에 그대로 눌러 앉는다.그의 나이 51세때였다. 이후 왕의 간청으로 다시 벼슬길에 나섰다 귀양길에 오르는 등 부침을 거듭하던 그는 85세를 일기로 부용동에서 생을 마감하는데 보길도에서 지낸 기간은 14년쯤 된다.고산은 보길도에서 어부사시사를 남기는데 당대의 송강 정철이 연군을 노래한 것과는 달리 주로 자연에 대해 읊었다. 오랫동안 방치돼 오던 고산 유적지는 지난 78년 고산 윤선도 유적보존회(회장 강종철씨·63)가 만들어지면서 빛을 보게 된다.보존회는 고증작업을 거쳐 군지정문화재를 도지정문화재(84년),국가지정문화재(92년)로 격상시킨다.강회장은 세연정 인근에 백록당이라는 집을 지어놓고 유적지보존은 물론 관광객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0633­54­6321). 보길도는 땅끝 갈두항과 완도에서 들어갈수 있다.갈두항에서는 아침 8시30분부터 하루 3차례 출발하며 40분 걸린다.완도항에서는 아침 7시30분부터 하오 4시30분까지 하루 5차례 있으며 1시간30분이 소요된다.모두 승용차 도선이 가능하다.직항편이 끊겼으면 노화도로 가 사선을 타고 보길도로 들어갈수 있다.
  • 어제 DJT 회동… 조각 사실상 마무리

    ◎안보·경제각료 분담… 책임정치 추구/인선 협의 순조… 대야 추천 제의는 재검토/정치인 하마평속 전문가 다수 발탁 가능성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새 정부 국무총리로 지명된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박태준 총재는 23일 ‘DJT 회동’에서 새정부의 각료인선을 사실상 마무리했다.회동에서 세사람은 먼저 17개의 국무위원 자리 가운데 자민련측이 경제관련 부처를 차지하고 나머지 부처는 국민회의측이 맡는다는 기본원칙에 합의했다.이는 국민회의가 안보를 비롯한 국정의 큰 줄기를 담당하고 자민련도 국정의 한 축인 경제를 책임진다는 정치적 분할이다. 이같은 원칙에 따라 세 사람은 이날 각 부처 장관의 인선을 확정지을 수 있었지만 최종결정은 김총리의 국회인준 절차를 마친 뒤인 25일 밤으로 미뤘다.국회인준을 위해 양당이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점에 한 사람이라도 섭섭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고려 때문이다.박태준 총재는 회동이 끝난뒤 “구체적인 사람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얘기를 하다 보면 금방 누구인지 알 정도로 진전이 됐다”고 밝혔다.박지원 청와대공보수석 내정자도 DJT와 김중권 청와대비서실장 내정자 등 4명이 인선작업을 벌인 삼청동 임시공관의 서재에서는 15분마다 한번씩 폭소가 터졌다고 전했다.각료인선 협의과정이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음을 시사하는 전언이다. 이날 DJT가 검토한 인선안의 국민회의 및 발탁인사에는 통일부장관에 정대철 부총재와 박재규 경남대총장,외교통상부에 박정수 의원과 홍순영 주독일대사,법무부에 박상천 의원과 신건 전 법무차관,국방부에 천용택 의원과 장성 비상기획위원장,행정자치부에 김정길 전 의원,문화관광부에 김한길 의원,환경부에 박영숙 전 의원,노동부에 노무현 부총재와 배무기 중앙노동위원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또 자민련측 및 발탁인사로는 재경부장관에 김용환 의원,보건복지부에 주양자 전 의원,건설교통부에 조부영 전 의원,산업자원부에 한덕수 통산부차관,허남훈 의원,박운서 한국중공업 사장,과학기술부에 이태섭·강창희 의원,문화관광부에 최재욱 전 의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정보통신부에는 배순훈 대우프랑스 본사 사장,교육부에 문용인 서울대 교수 등 외부인사가 추천된 것으로 전해졌다. 세 사람은 또 당초 한나라당과 국민신당측에 각료추천을 제의하려던 계획은 재검토한 것으로 알려진다.한나라당의 경우 이미 반대의사를 밝혔고,국민신당에서도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기획예산위원장,여성특위위원장,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장 등 국무위원이 아닌 나머지 7개 장관급 기관장과 관련해서는 김명예총재와 박총재가 김대통령당선자의 인사권을 존중하기로 했다.다만 국무총리실 산하의 국무조정실장과 공정거래위원장에는 김총리 지명자가 김문원 전 의원 등 자민련 인사 가운데 한 사람을 지명할 방침이다. 이번 새정부 첫 조각 과정의 특징은 정치인이 많이 거론된다는 점이다.이에 비해 교수나 언론계 출신은 하마평에 별로 오르지 않고 있다.그러나 실제 뚜껑이 열리면 상당수 전문가 집단이 발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초대 대선과 첫 조각(대한민국 50년:5)

    ◎하지 사령관 서재필 대통령 꿈꿨다/암살 겁내 출마거부… 결국 국회 간선서 이승만 당선/초대총리 이윤영 제청,인준 부결 수모… 이범석으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정치적 지도력과 개성에 관해서는 평판이 극명하게 엇갈렸다.“대한민국을 세운 국부”“운산광산을 팔아먹은 매국노”“프린스톤 사람”(무초) “×자식”(하지)….남한에 진주한 미군 사령관 J.R.하지 중장은 애초부터 서재필을 귀국시켜 대통령에 입후보시키려 했다. 그것은 다분히 이승만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강했다.당시 하지의 개인고문으로 일하던 서재필은 이미 암에 걸려 있었다.그는 자신이 살해될 것이라는 피해의식 때문에 입후보를 거절,미국에 돌아간 직후 운명했다. 1948년 7월20일 제헌국회에서 간선으로 치러진 초대 대통령선거에는 결국 이승만과 김구,안재홍 등 3인이 나섰다.이미 예견된 대로 이승만은 196명의 재석의원 중 180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김구는 겨우 13표를 얻었다.그리고 안재홍은 2표,무효가 1표였는데 무효는 미국 국적의 서재필에 투표한 것으로 밝혀졌다. ○7월24일 중앙청서 취임식 압도적인 다수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은 1948년 7월24일 중앙청 광장에서 취임식을 가졌다.“죽었던 이 몸이 하나님의 은혜와 동포의 애호로 지금까지 살아 있다가 오늘 이와같이 영광스러운 추대를 받은 나로서는…” 그는 독립의 공을 연합군측에도,상해 임시정부를 비롯한 해외독립운동파에도,국내의 항일투쟁 세력 어느 곳에도 돌리지 않았다.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돌렸다. 이승만은 취임후 곧바로 이화장에서 조각에 착수했다.‘조각의 산실’로 등장한 이화장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73세의 이승만은 철저하게 자신이 신뢰하는 측근만을 각료에 임명했다.그러나 그의 건국 내각은 국무총리 인준을 놓고 출발부터 상처를 입었다.이승만은 북한의 조선민주당 위원장인 조만식의 후광을 내세워 부위원장인 이윤영을 국무총리로 제청했다.하지만 이윤영 총리안은 제헌국회에서 인준이 부결되는 수모를 겪었다. 지면이 거의 없는 이윤영을 내세운 것 자체가 당시 정황으로 볼때 무리였다.한민당의 김성수가 국무총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회의 공론이었다.그러나 이승만은 자칫 한민당에 업힐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이를 애써 무시했다.국회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정치적 발판을 국회에 두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초대내각은 결국 항일독립운동가 이범석을 국무총리로 실마리를 풀었다.그리고 내무 윤치영,외무 장택상,국방 이범석,재무 김도연,법무 이인,문교 안호상,농림 조봉암,상공 임영신,사회 전진한,체신 윤석구,교통 민희식,법제처 유진오,공보처 김동성,무임소 이윤영 등으로 조각을 마무리했다.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인선은 국회에서 친일논쟁이 가열되면서 실패라는 평가를 받았다.1948년 8월15일 우여곡절 끝에 대한민국은 출범했다.이와 함께 이날 상오 0시를 기해 미 군정은 폐지됐다. 이승만은 모든 관리들을 하향식으로 통제하려고 했다.이와 관련,미 중앙정보부(CIA)는 “이승만은 국무총리를 마치 ‘행정보좌관’처럼 부리고 있다”고 혹평했다.또한 미대사관은 상공부 장관 임영신을 “2다스의 속옷만으로도 매수당하는” 인물로 파악했다.그는 부패로 쫓겨난 최초의 각료라는 오명을 남겼다. 이같은 이승만 정권의 최고 통치방침 가운데 하나는 유엔에서의 승인을 획득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새롭게 출범한 이승만 정부는 미국의 군사적 보호에 계속 의존했던 만큼 합법정부로서의 국제적 승인을 즉각 얻어내지 못했다.1948년 10월19일 재일조선청년단체의 암살 위협 속에 이승만은 일본을 방문했다.목적은 주일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를 만나 대한민국의 방위와 국제적 승인문제를 의논하기 위한 것이었다. 초대 주한미국대사 무초에 의하면 이승만은 맥아더를 특별히 존중했다고 한다.그래서 이승만은 자신이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질 때마다 맥아더를 찾았다.1945년 10월 미국에 머물던 이승만은 환국과 더불어 그를 만났다.1948년 10월 회담은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미국이 한국을 지키겠다는 계획을 이승만으로 하여금 내외에 공표토록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한민국 수립에 산파역을 맡았던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은 1948년 10월8일 유엔에 제출할 최종 보고서를 채택했다.이 보고서에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에 의해 성립된 한국정부는 정부의 기능이 점차 개선되어가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모든 유엔 가맹국들은 한반도 전체의 독립과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한다는 권고 내용도 포함시켰다.이 보고서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심의에 부쳐졌다.1948년 12월12일 마침내 대한민국은 유엔 총회에서 46대 6으로 승인됐다.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된 것이다.그 후 대한민국은 소련과 그 동맹국가들을 제외한,50여개국의 자유진영 국가들로부터 개별적인 승인을 받았다. ○임정 세력 반대속 출범 대한민국의 출범은 민족사적으로 볼 때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진정한 의미의 민족국가가 비로소 출범한 것이다.우리 민족이 주권확보를 위해 장기간 노력해온 결과로,그 자체가 민족 숙원사업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남북에서는 상이한 정권이 출범했다.그것은 무엇보다 미·소 강대국의 서로 다른 한반도 정책에 기인한다.이는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미국과 소련의 분할점령정책에 있다.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의 반소·반공정책에 의한 남한지역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유엔이 결정한 데서 비롯됐다.당시 유엔은 미국의 대한정책을 그대로 추수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제헌국회가 남북통일특별대책위 설립안을 부결시켰다는 사실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이는 국회가 남북통일문제를 도외시한 뚜렷한 징표라는 점에서 그렇다.국회소집 무렵 김구·김규식 등은 통일정부 수립을 지향하는 통일독립촉성회를 결성했다.통일운동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하려고 한 이들을 이승만은 공산당으로 몰아부쳤다.그렇듯 대한민국 정부는 김구·김규식을 중심으로 한 임정세력의 반대 속에서 출범했던 것이다. ◎미,이승만 신뢰하지 않았다/본사특별취재반,미 CIA 작성 비밀보고서 입수/“독립위해 최선 다했지만 재난 불러올 행동 가능” “이승만은 한국의 독립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참된 애국자였다.그러나 그는 독립한국을 자신이 차지한다는 의미에서 최선을 다했다.……위험이 도사리고 있다.이승만은 증폭된 자아의식 때문에 재난을 불러올 행동을 하거나 적어도 신생 한국정부와 미국의 이해를 상당히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 대한민국 수립 직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직설적인 평가를 보여주는 문건이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워싱턴의 국립공문서보존기록관리청에서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1948년 10월28일에 작성한 2급비밀보고서 ‘대한민국의 생존전망(PROSPECTS FOR SURVIVAL OF THE REPUBLIC OF KOREA)’을 찾아냈다. 이 보고서는 당시 워싱턴 정책담당자들의 상황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자료다.이 문건에 의하면 미국은 결국 이승만을 옹립했지만 결코 신뢰하지는 않았다.따라서 미국은 이승만과 그의 각료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계속했다.또한 미국은 군정이 끝난 후에도 CIC나 G­2,CIA 등을 통해 이승만과 그의 각료들이 행한 부정축재 사실과 같은 부정적인 정보를 모았다. 또 방위와 재원에 대해서도 통제를 가했다. 이 보고서는 제2차세계대전 기간 동안 이승만은 개인적인 이익과 로비활동도 들추어냈다. 워싱턴 임시정부 한국위원회의 수장이었던 이승만은 그 지위를 상당히 이용했다고 밝힌다.사적인 로비활동이야말로 이승만에게는 전쟁이 끝난뒤의 소중한 정치적 밑천이 되었다는 것이 보고서의 시각이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문화부 차장 최병열 문화부 차장급 김종면 문화부 기자 박정현 문화부 기자 서정아 문화부 기자 강선임 DB부 기자
  • DJ “달러 버는 기업이 최고”/김 당선자·캉드쉬 총재 대화록

    ◎김 당선자­“노·사 공정대우… 노동계 대화해야”/캉드쉬­“한·IMF 한배 탔다… 우등졸업 믿어”/캉드쉬,한국 예산편성 관련 ‘상당히 깊은’ 조언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12일 일산 자택에서 미셀 캉드쉬 IMF총재일행과 오찬회동을 갖고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양측간 협력방안을 논의했다.한식과 양식을 곁들여 1시간50분 남짓 계속된 이날 회동은 폭소가 터지는 화기애애한 가운데서도 순간순간 긴장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고 배석한 박지원 당선자대변인이 전했다. ○배석자 없이 15분 밀담 공식회동에 앞서 김당선자와 캉드쉬 총재는 2층 서재에서 통역 등 배석자를 물리친 가운데 15분 동안 단독요담을 갖기도 했다.박대변인은 이와 관련,“캉드쉬 총재가 한국의 예산편성에 대해 상당한 조언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김당선자와 캉드쉬 총재의 대화를 요약정리한다. ▲캉드쉬 총재=한국인들은 지금 IMF가 강요하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오해하고 있으나,나는 (IMF요구가)번영으로 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해 돕고 있다. ▲김당선자=한국인들은 적극 IMF에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노동계도 IMF요구를 불가피하게 수용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그들도 정리해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을 알고 있다.새 정부는 노동자에게 많은 이해와 애정을 갖고 있다.과거 정부처럼 노동자를 차별하지 않는다. ▲캉드쉬 총재=노동계 지도자들이 내게 보낸 편지에는 정부와 기업부터 솔선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기들도 성의를 다할 것으로 나타나 있다. ○잘되는 기업 안 망하게 ▲김당선자=노동계는 먼저 대화에 응해야 한다.새 정부는 모든 것을 공정한 조건에서 하겠다.대화에 응하지 않는 것은 공정한 방법이 아니다. ▲캉드쉬 총재=기업은 어떤 노력을 할 것으로 보는가. ▲김당선자=먼저 투명성 확보가 중요하다.또한 상호지급보장 금지를 통해잘 되는 기업마저 망하게 해선 안된다.결합재무재표도 실시해 일목요연하게 국제적으로나 국민,노동자들이 기업의 상황을 알게 해야 한다.이익이 안남는 기업은 정리하고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만 살려야 한다.나는 좋아하는 기업도,미워하는 기업도 없다.내가 지지하는 기업은 경쟁력을 갖고 달러를 많이 벌어오는 기업이다. ▲캉드쉬 총재=미국 상원의원 4명이 내게 편지를 보내 ‘IMF가 도와 한국이나 인도네시아의 경제가 살아나면 경쟁이 더욱 어려워지므로 도와선 안된다’고 했다. ▲김당선자=일부 업계에서 그런 로비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캉드쉬 총재=나는 세계 경제를 위해 한국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나는 당선자가 2년 이내에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안정시키고 한국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한국 발전에 대한 장기계획은 무엇인가. ○대북경협때 정경분리 ▲김당선자=서울대 시험보다 더 어려운 질문이다.(폭소).모든 경제분야에서 1등할 수는 없으나 목표한 분야에서는 1등하는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이다.투자영입과 수출을 통해 각국과 상호의존,상호협력,상호발전의 경제체제를 만들고 동북아,동남아를 포함한 경제블럭을 형성,세계와 협력하는 경제를 운영하고 싶다.또 북한과 정경분리의 원칙 아래 경제협력에 노력하겠다. ▲캉드쉬 총재=북한은 당선자가 취임도 하기 전에 비난하고 있는데. ○도움준 나라 순방 권유 ▲김당선자=북한은 오는 3∼4월경 노동자 파업을 일으켜 혼란이 오도록 선동하면서 당분간 우리를 지켜볼 것 같다.그렇더라도 남한에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남북문제는 서두르지 않겠다.금년은 경제문제가 산적해 있다.남북문제를 크게 벌일 여력이 없다.북한이 나서면 응하고 그렇지 않으면 응하지 않겠다. ▲캉드쉬 총재=당선자가 노력해 우등졸업생이 되길 바란다. ▲김당선자=이번에는 출마하지 않으려다 4번째 당선된 미테랑 대통령의 글을 읽고 나왔다.막상 당선되고 나니 쉬지도 못하고 이 고생이다. ▲캉드쉬 총재=죄송하다.꼭 극복해 훌륭한 당선축하파티가 있기를 바란다. ▲김당선자=하느님께서 우리 경제를 새로 태어나도록 하라는 소임을 주셨다고 생각하며 노력하고 있다. ▲캉드쉬 총재=세계에서 당선자를 잘 알고 있고 존경하고 있다.모든 사람들이 이런 분이 지도자 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해외 순방할 기회가 있으면 이번에 도와준 나라들을 차례로 방문하면 큰 도움이 될것이다. ▲김당선자=세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성공모델 되도록 최선 ▲캉드쉬 총재=우리는 같은 배에 타고 있으므로 같이 노력하자. ▲김당선자=IMF노력에 성공한 모델로 한국이 기록되도록 노력하겠다.멕시코처럼 빠른 시일내 극복하겠다. ▲캉드쉬 총재=멕시코보다 더 빨리 극복해 주기 바란다.우리 두 사람은 참으로 좋은 친구이나 앞으로 두 사람 사이가 멀어지는 것이 두 사람 모두 성공하는 것이다.
  • 현대그룹 임원 308명 인사/종합금융 회장 정몽일씨

    ◎중공업 사장 김형벽씨/인재개발원 사장 이진세씨 현대그룹은 29일 정몽일 현대종합금융 사장을 회장으로,서재진 현대종합금융 부사장과 이진세 인재개발원 부사장을 각각 대표이사 사장과 사장에 승진,발령하는 등 총 308명에 대한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현대는 현대중공업 총괄 대표이사 사장에 엔진사업과 중장비사업을 맡고 있는 김형벽 사장을 임명하고 김정국 사장은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 수출에 주력토록 했다.현대석유화학 이경배 부사장은 현대정유판매 대표이사 부사장에 선임됐다. 승진 인원은 301명으로 지난해 370명에 비해 19% 가량 줄었다.또 임원 1천200여명 중 현대자동차 36명 등 90명의 임원이 해임됐다.2단계 발탁 승진자는 없었으나 종합기획실 이계안 전무가 기획력을 인정받아 임원이 된지 5년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 현대전자의 안승한 이사대우도 16메가 및 64메가 D램 설계에 기여한 공으로 90년 과장으로 입사한 지 8년만에 임원에 올랐다.
  • 사법시험 최종합격자 604명 명단

    총무처는 제39회 사법시험 최종합격자 604명을 확정,18일자로 발표했다. 합격자 가운데 최고득점자는 제2차 시험에서 평균 64.07점을 얻은 이시열씨(29.서울대 물리학과 졸)가 차지했으며 최고령자는 백종인씨(45.단국대 정치외교학과 졸),최연소자는 위인규씨(22.서울대 사법학과 4년 재학)이다. 여성합격자는 전체 차석을 차지한 설윤정씨(25.서울대 공법학과 졸) 등 49명이었으며 전체의 8.1%를 기록했다. 총무처 관계자는 “2차 합격자 604명은 성적과 자질이 모두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 3차에서 한명도 불합격처리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올해 사법고시에는 2만551명이 응시해 35대 1의 경쟁율을 기록했으며 합격자 평균성적은 50.92이다. 합격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문기탁 변성국 이승현 장찬 장영달 오재혁 박춘하 김종수 최용석 허성욱 유기인 장경욱 신철민 이창환 정경모 어영강 이형범 이재우 노태선 손석천 권오석 오기형 최관수 최창훈 권두섭 이명수 최상원 구자헌 이병삼 이승민 박지훈 양중* 변태종 박정무 장정환 민경천 이상훈 안식 박정길 김완규 남순표 김태광 한정화 노호성 문대근 김중원 조성오 김홍경 강동욱 임동번 김순부 강인구 김태훈 신안재 최수영 이효제 정영식 조기민 윤웅기 이태관 양진호 이영환 조민석 최종민 고범석 정진우 임병석 김희제 신치수 박재윤 남현수 이용균 김성훈 부경복 이규주 정진석 김도균 김녕민 이영상 김재호 최재무 김창모 박병규 서형주 강종헌 이진렬 양문식 정경근 정재수 이재석 정인재 김민기 송태섭 윤원상 송석봉 이오영 박종국 신익철 손제현 김현영 서안교 고지환 정상규 한중석 김상연 채석현 김재용 양귀환 서동칠 손주철 당우증 손준성 이명신 경규석 이상호 김용환 조영하 이유형 허준서 박승권 김장구 김태우 허성희 김호운 조진구 김태권 권순정 김태균 김종견 강경국 김선웅 신인수 권낙균 석현수 김순렬 이정하 조웅 김규석 안영환 김제동 문홍식 구본성 황병주 이형관 정영학 황남석 조병규 신영욱 송승룡 주상용 조영식 장재영 박세현 박찬익 최종우 김학민 최낙준 이시열 이철원 배종렬 노정석 김용규 조현철 신대철 안정환 김윤천 이훈재 진상훈 김승주 정도성 염호준 신계렬 이경환 정대정 김정호 남기송 김기현 고경민 권형수 조봉규 이관희 박공우 김장생 김승태 이한조 최석규 이철호 김성우 정진웅 김진호 배성렬 배진덕 서해택 서창교 남수환 이웅 양시복 이준서 박선희 정수인 김병준 김재호 김명식 심현욱 전보성 조찬영 손창완 김지웅 이준택 정진 원대희 정재훈 박봉희 최승재 윤석주 정원 이민석 서성호 김춘수 한상철 이준철 한성수 이영삼 하재홍 이상현 채승우 민성철 정주백 마은혁 김영생 김형석 홍현필 노만석 김두헌 성낙일 채승원 임대진 소윤수 전병찬 박종운 손헌태 최석진 정성호 정경록 김영수 김영현 노진영 최성만 김형선 한기봉 임성환 정철(0138410) 유주상 이헌영 박종림 염우영 이준희 최성완 신승호 김영준 정철(0138426) 홍승현 채승준 문정환 김성진 정연헌 신길호 조형수 전승만 이철기 민기영 이민호 김상훈 형진휘 박재억 김종환 김봉원 구광현 박상진 윤태영 송선양 김문주 최재형 구상엽 김도현 임성훈 문준섭 위인규 김성문 이영철 방이엽 배창대 김경훈 유형영 기세운 심학진 이준식 오수환 박윤석 신병동 김현순 이재호 조재빈 김정호 최호영 전국진 이남석 김종근 유길룡 강우찬 구자현 김성환 김동빈 김정민 정문수 이경수 신봉수 강지현 손영호 유지원 소홍철 조중래 하성원 황혁 정경인 강창문 김기수 서경배 이원근 이창열 이진수 이상호 유창훈 박창주 이문성 강유호 박영준 안형준 권성수 윤영석 박대규 강창균 문성관 한창수 우관제 박상현 양석조 임영민 이종건 김성우 전종만 조명수 이상민 유지열 강문대 김정헌 배성효 김진욱 강현중 우인성 민철기 송강 김형배 정승식 김명환 이준엽 윤대해 신우정 김형준 김웅렬 노로 서기호 정영훈 조재호 전준용 조영호 정재욱 이종석 이남균 김영수 손호관 이종민 이경훈 김현철 안효정 최재원 이영광 도상범 이재성 최성도 강태환 우관수 양인철 김준배 김용빈 이상준 김봉규 정승규 박광배 김선재 최기엽 조면식 이병철 이종경 김동원 이재은 정진환 이종훈 백철우 한두희 오현철 김우정 최기영 주진암 김경민 정진형 송우룡 양승종 김효권 장창호 오대혁 윤정섭 최용규 장선 김양수 김형연 김준효 조영보 여운철 한범석 이상오 김형근 장훈열 이명재 마성영 최일권 이상준 송경호 이동건 이성훈 김웅 윤상호 김길수 이남권 허상수 김규일 장언석 유헌주 이승철 옥성대 전문우 송우섭 신현성 이수광 고창은 김택균 박억수 유경문 이은태 반성관 안종석 이경창 박형삼 송영환 최찬실 차경남 오종근 정호경 문흥만 채윤주 최주현 박길배 허일승 서재국 김권영 이정환 최상묵 김준성 김동규 박관수 이경천 조정웅 전영준 김범희 김기태 주용완 정재헌 박승규 신영식 김동욱 조현주 이영준 김승훈 박상국 박성문 이현곤 안관주 이석화 홍진표 신현일 이정훈 안영수 조경헌 윤희찬 성기권 김성원 김진한 김선일 권경일 이공재 황중연 서기원 신용호 박의호 윤복남 여영학 변필건 노승익 홍원의 김복기 엄상섭 황선철 박재호 이현용 이명상 김병주 조민제 조길원 김의식 위광하 양원석 김재훈 안종화 한석종 백종인 김판봉 민기호 나승권 김호춘 조성래 문종렬 배재일 김동오 김성률 신광식 조현호 박기준 이진효 이윤호 채시호 박운삼 김영준 박찬호곽용석 이강민 권성연 임지아 신한미 차진아 이지원 송현경 임정하 박순덕 김현아 김영심 이정민 임성희 김정민 정소민 설윤정 최은주 이영경 문경화 김태진 신교임 정옥자 백혜련 이영희 이진화 박은정 김선주 이미현 임선지 김윤영 문선영 장윤정 노행남 황은경 조영숙 김지연 송혜정 남해숙 김현정 이주영 이언주 박지영 박민정 홍종희 조혜정 신진화 윤은경 박선영 왕미양 공숙영 ◎수석합격 이시열씨/‘합금의 전자구조’ 연구한 물리학 석사/“재정·통상분야 국제변호사 되고파” “외국의 통상 압력에 맞서는 국제변호사로 국익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제39회 사법시험에서 평균 64.07점으로 수석을 차지한 이시열씨(29·서울 종로구 동숭동)는 이례적으로 이학도 출신이다. 91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93년 합금의 전자구조를 연구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신병으로 1년반 가량 요양을 했던 이씨는 사법시험에 도전하기 위해 95년 3월 서울대 법대로 학사 편입했다.현실사회의 전면에나서고 싶은 강한 욕구 때문이었다.“학문의 세계에서 안주하기 보다는 사회적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어려서는 공부가 재미 있어 공부밖에 몰랐지만 점차 사회의 움직임에 눈을 뜨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씨는 가뜩이나 국가 우수인력이 고시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변신이 기초과학을 공부하는 후배들의 마음을 흔들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고시를 염두에 두고 있는 비법대 출신 후배들에게는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좋겠지만 일단 전환을 생각했다면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공과 사법시험이 학문적 연관성은 거의 없지만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익혀둔 논리전개와 사고력이 시험공부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95년 1차시험에 실패한 뒤 이듬해인 96년 재도전,1차에 합격하고 올해 수석의 영광을 안았다. 앞으로 로펌(Law Firm)에 들어가 증권·금융 분야의 국제변호사로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이를 위해 사법연수원을 마친뒤 미국의 법대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이씨는 “우리나라에 경제 전문법률가들이 부족해 최근 IMF 협상이나 통상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면 통상산업부나 기업의 재정·통상 분야의 자문을 맡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연소 합격 위인규씨/초등교부터 수석 안놓쳐/“전문분야 법조인 될터” “공부하는 동안 건강 때문에 힘들었지만 고생하신 부모님께 합격의 기쁨을 안겨드려 기쁩니다” 최연소 합격의 영예를 차지한 위인규씨(21·서울대 사법학과 4년)는 “앞으로 전문분야를 가진 법조인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전남 여천 율촌 산수초등학교와 율촌중 순천고를 다니는 동안 줄곧 수석을 놓치지 않은 수재이다.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후 3학년 2학기때인 지난해 9월부터 사시 공부를 시작,하루 10시간 이상씩 학교도서관에서 공부했다.농사를 짓는 아버지 위계춘씨(66)와 어머니 한기남씨(60)의 1남 4녀중 막내다. ◎최고령 합격 백종인씨/“고생한 아내에 보답” 눈시울 붉혀 최고령으로 합격한 백종인씨(45)의 성남시 중원구 금광2동 2평짜리 지하방은 모처럼 웃음꽃이 활짝 폈다. 합격 통보를 받은 백씨는 “45살의 나이까지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며 “모두 어렵게 공부했겠지만 아내에게 그동안 고생의 대가를 조금이라도 건네줄 수 있어 다행”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지난 85년 단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시 교육위원회에서 3년을 근무하다 사시에 뛰어들어 8전9기만에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고시원 비용마련을 위해 막노동에서부터 학원강사,대학정문 경비까지 했다.부인 이점숙씨(42)는 “지하 월세방에 살면서 비가 와 방안으로 물이 스며들 땐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남편의 합격을 의심하지는 않았다”며 아들 수현군(2)과 딸 수진양(4)의 손을 꼭 잡았다. ◎이색 합격자 오기형씨/면접하루전 임용자격 회복 ‘행운’ 지난해 사법고시 2차시험에 합격했으나 시위 전력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멍에 때문에 3차 면접에서 탈락했던 오기형씨(31)가 17일제 39회 사법고시 최종 합격의 영예를안았다. 3차 면접 하루 전인 지난 11일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있는 자격을 회복,‘하루 차의 행운’으로 합격했기 때문에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국가공무원법은 ‘집행유예기간이 끝난뒤 2년이 지나지 않은 자는 공무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86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법대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던 오씨는 92년 12월12일 ‘서울대 활동가 조직 사건’에 연루돼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세무공무원 김영생씨 현직 세무공무원이 국세청 사상 처음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화제다. 국세청 납세지도과 김영생 사무관(34)은 84년 행정고시 28회에 합격한 뒤 13년만에 사시까지 합격했다.김사무관은 “”소송업무 및 부가가치세 예규 등을 담당하면서 조세제도 체계화의 필요성을 느껴 사시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김사무관은 “2년간 시험 준비를 해왔으며 퇴근후 집에서 5시간 가량 공부한 것이 전부였다”고 밝혔다.낮엔 본연의 직무를 다하고 밤에 시험공부를 하느라 남들보다 더 건강에 신경서야 했던점이 어려웠다고 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사무관은 행시합격후 서울지방국세청 송무4계장,영등포세무서 부가가치세 2과장,대방세무서 법인세과장을 지냈다.
  • IMF 자금지원 어떻게 볼것인가(서울신문 포럼)

    ◎구조조정 대변혁 경제회생 기회로 삼자/고실업·저성장·인플레 등 고통따라… 대비책 긴요/협상과정 국익 최우선… 투자 무차별 삭감 경계를 □참석자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 소장 ·이재웅 성균관대 교수(금융통화운영위원) ·엄봉성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외환위기에 시달리던 우리 경제가 마침내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자금지원을 받게 됐다.일각에서는 한국경제가 ‘IMF의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그러나 이를 계기로 정부는 물론,기업 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심기일전해 경제회생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서울신문 포럼’은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 소장,이재웅 성균관대 교수,엄봉성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초청,IMF와의 협상은 어떻게 벌여야 하며 이런 일련의 과정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각 경제주체들이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 등에 대해 알아 보았다. ▲이한구 소장=IMF와의 협상뒤 대외신인도 제고 여부와 협상내지 조치가 국민경제에 미칠 영향과 부작용 혹은 도움되는 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과 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IMF의 협상과 관련해서 지원받을 2백억달러가 충분하냐 아니냐,혹은 별도 조달이 가능한가에 대해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재웅 교수=충분한지 아닌지는 그걸 들여와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습니다.2백억달러는 올해 말까지 1∼2개월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외채 원리금상환용입니다.주로 단기성 외채 원리금 상환용이죠.문제는 외환위기가 불거진이후 금융기관 정부 및 기업이 신뢰도를 상실했다는데 있습니다.외국인 투자가가 자금을 회수하고 외국 금융기관들은 신용을 연장하지 않고 있습니다.‘크레디트 라인’을 축소하고 있는 것이죠.IMF 지원을 계기로 경제운용에 대한 신뢰를 높여야 합니다.경우에 따라서 5백억∼6백억달러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2백억달러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봐야지요. ▲이소장=자금조달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봅니까. ▲이교수=2백억달러는 큰돈이 아닙니다.한국경제가 무너지면 다음은 일본과 중남미 국가 차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29년 세계 대공황 때처럼 세계적인 금융공황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미국이나 일본도 ‘남의 배’에 불난 것처럼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자금조달은 문제가 안될 겁니다. ▲엄봉성 선임연구위원=자금조달은 충분히 가능하리라 봅니다.가능하면 이 기회에 넉넉하게 받아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IMF는 약속한 구조개혁 이행여부를 봐가면서 단계적으로 지원할 것이고 그간 경제사정이 호전되면 지원을 중간에 그만둘 수도 있습니다.다만 금액 지원규모는 심리적으로 외국인투자가나 금융기관을 안정시킬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금융공황 올수도 ▲이소장=2백억달러보다 많아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엄위원=단기부채인 6백억∼7백억달러가 문제입니다.이중 상당부분은 수출입 관련 무역신용인데 평상시에는 자동으로 연장된 것들입니다.그러나 기업의 신뢰도 하락까지 감안하면 2백억달러 이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구체적인 규모는 말하기 어려우나 시장의 기대심리,불안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확보할 수 있는 만큼 넉넉하게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소장=필요한 돈은 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고 신뢰성 회복시 이보다 더 적게 쓸수도 있지만 IMF로부터 많이 빌리자는 말씀이군요.하지만 조건이 까다로울 것 같은데요.최저금액을 정하고 추가로 딴데서 빌리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이교수=IMF로부터 55억달러가 지원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쿼터의 5배지요. ▲엄위원=금리조건을 따져서 결정할 문제입니다.일반적으로 ‘스탠드 바이’ 차관이 유리합니다. ▲이소장=금융구조조정은 어느 정도까지 요구해올 것으로 예상됩니까. ▲이교수=기본적으로 재정 통화 금융부문의 긴축을 요구할 것입니다.재정의 균형예산만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재정 서플러스(SURPLUS)를 내서 갚아야 하지만 GDP의 1% 이상을 짜내라고 할 것입니다.통화 긴축·억제후 국제수지 방어가 나올 것입니다.그다음은 금융산업입니다.우리가 못한 금융개혁을그들은 손을 댈 것입니다.산업구조와 노동시장 등에도 구조조정을 요구해올 것입니다. ▲엄위원=재정흑자도 중요하지만 경상수지를 개선해서 달러자금을 확보해야 합니다.거시경제측면에서 경상수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외환위기의 원인은 금융기관 및 대기업의 부실에 있습니다.근본원인을 치료한 후 금융기관이든 기업이든 구조조정에 나서야 합니다.또 고용조정도 필요합니다.그럴 경우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가 제기될 것입니다.구조조정의 범위는 최소한 적게 잡아도 금융 및 고용조정이 포함되고 좀 확대하면 정부의 생산성 향상 및 개혁 문제도 포함될 것입니다.경우에 따라선 세제까지 손질하는 광범위한 구조조정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이소장=시중에는 IMF가 지원할 경우 대형 국책사업의 조정이나 한은의 독립성문제,통화·금융정책의 중립성 문제,특정 금융기관의 지정폐업이 예상된다는 말이 있습니다.금융기관의 통폐합의 경우 태국은 은행 16개를 폐쇄한데 이어 90여개의 통폐합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한국의 경우 종금사 등금융기관의 인수·합병(M&A)을 권고할 가능성이 많습니다.국책사업 조정이나 한은에 대한 개입은 어느 선까지 할까요. ▲이교수=국책사업의 우선순위에 따라 금액조정을 하지않고 어디서재정긴축을 합니까. ▲이소장=공무원도 감원하게 될까요. ▲이교수=우리의 필요에 따라 해야 할 것은 해야죠. ▲엄위원=구조개혁과 관련,기본적으로 제약이 너무 많습니다.차제에 광범위하게 개혁해야 합니다.정부개혁도 넣어야 합니다.구체적으로 정부조직 뿐 아니라 정부의 생산성 향상도 넣어야 합니다.금융기관 통폐합이나 M&A가 핵심이 될 것입니다.국책사업의 경우 장기적으로 SOC(사회간접자본)의 개발필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합니다.저는 효율화를 기할 필요는 있지만 무차별 삭감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융기관 통폐합 핵심 ▲이소장=IMF가 하라는대로 하는 것은 ‘국치’이며,‘경제주권’을 내놓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이들의 입장은 IMF에 될 수 있는대로 적게 약속하라는 것이지요.차제에 IMF를 핑계로 개혁을 해보자는 주장도 있는 것 같습니다.어떻게 소화해야 할까요. ▲이교수=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 ▲이소장=국치라는데 동의합니까. ▲엄위원=저는 동의합니다.그간 멕시코나 태국 인도네시아의 위기를 봤고위기의 이유를 알고 있는데도 미리 대처하지 못하고 관리하지 못한 점은 국제적 수치입니다.그러나 선진국 진입을 위한 마지막 기회일수도 있습니다.최대한 활용하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합니다.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우리가 받아들일수 없는 요구에 대해선 과감히 ‘노’라고 해야 합니다. ▲이소장=고통이 따르더라도 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IMF의 협상조건에 따라 돈을 받고 정부는 국채를 발행한다고 하는데,원화표시든 외화표시든 국채를 발행할 경우 경제상황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엄위원=최근까지 거시경제 모습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성장률은 올해 최소 6%에 이르고 국제수지 적자는 경상수지 기준으로 1백억달러입니다.이 추세라면 내년에는 올해보다 1백억달러가 더 축소돼 50억달러 이하,GDP1% 밑으로 떨어져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물가와 환율 상승 요인이있습니다. 그러나 기업투자와 소비심리 위축으로 안정요인도 있습니다.크게 오를 것 같지 않다는 얘기지요.그러나 앞으로 금융산업과 기업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하고 이럴 경우 금융시장 경색과 기업투자 위축,이에 따른 경제위축이 올 가능성에 대한 관심을 갖고 필요에 따라 대처방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소장=정부와 KDI는 거시경제가 건실하다고 해왔고 계량경제학자들도 동의해왔습니다.그런데 건전한데 왜 이모양이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엄위원=거시경제의 펀드맨털(Fundamentals)은 좋습니다.저축률 등을 동남아·남미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그렇게 얘기하면서도 구조조정 특히 금융부문의 비효율성과 부실채권 등의 해소방안에 대해서는 지적도 했습니다.다만 개선방안을 액션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책임은 인정합니다. ▲이소장=부실채권,기업의 높은 부채비율과 관련해선 금융쪽에서도 잘못이 있을 텐데,금융통화위원으로서 책임은 느끼지 않는지요. ▲이교수=IMF 경제학자들은 한국 경제에 대해 펀드맨털이 건전하다는 측과위기로 보는 측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한달전 IMF는 위기가 없다고 했지만 어제온 팀은 ‘위기관리팀’입니다.펀드맨털이 좋아도 위기는 올 수 있다고 얘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그동안 금융부문이 낙후되고 비효율적이라고 얘기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소장=IMF의 돈을 빌리는 것과 빌린 후의 실물경제나 금융시장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이교수=최근 주가가 하락했습니다.단기적으로 기업과 경제전반,금융산업에 어려움이 많아질 것입니다.경쟁력회복 전까지는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입니다.기간이 1∼2년이 될지 모릅니다.그걸 반영해서 주가가 떨어진 것입니다.환율도 1천100원선에서 안정됐습니다.달러유입의 대가였죠.경제성장은 구조조정 등 자구노력으로 상당히 떨어질 것입니다.불경기 불황에는 부채가 많고 재무구조가 나쁜 기업일수록 적응하지 못할 것입니다. ○위기관리 실기로 수치 ▲이소장=국제수지는 개선되겠지요. ▲이교수=계속 개선될 것입니다.정부 서플러스와 가계저축을 해야만 갚을수 있을 것입니다. ▲이소장=그럴 경우 인플레가 심해질 텐데요. ▲이교수=내년에는 환율이 25%이상 평가절하돼 물가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엄위원=단기적으로 내년 물가는 오르겠지요.그러나 낮아질 요인도 있어 크게 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우리가 IMF패키지를 얻기 전에 한 전망과 IMF패키지를 얻은후 전망은 구분해야 합니다.보통 연말 경제운용은 전망을 위주로 합니다만 이번에는 달리 해야 할 것입니다.IMF는 경상수지를 ‘타깃’으로 하지 전망을 타깃으로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물가도 목표를 분명히 제시할 것입니다. ▲이교수=전에는 성장률을 목표로 잡고 국제수지를 정했지요. ▲엄위원=경상수지적자가 균형을 잡고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4∼4.5%로 할 경우 경제성장률을 얼마로 할 것인가.예컨대 4%이하로 주문할 경우 수용여부는 우리가 IMF와 논의해야 합니다.IMF는 멕시코의 경우 하드 랜딩(hard landing) 시나리오를 요구하고 있습니다.하드 랜딩 시나리오에 의하면 한국은 4% 이하를 수용해야 합니다.그러나 한국은 올해와 내년의 경우 그대로 둬도 경상수지가 줄고 재정적자 역시 감소하기 때문에 5%는 성장해야 된다고 봅니다.
  • 서양화가 양만기씨 개인전/15일부터 인사동 갤러리상서 열어

    ◎자연·생명·생태계의 이미지 대비 지난해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수상작가인 서양화가 양만기씨가 개인전을 지난 15일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상(730­0030)에서 갖고 있다. 양씨는 다양한 재료와 오브제를 기술적으로 사용해 영화의 영상 이미지와 사진 기법을 효과적으로 살려내는 독특한 화면을 구사하고 있는 작가.캔버스와 스치로폴,테라코타,안료,철분,왁스 등으로 만든 부조 성격의 바탕 화면에 자연 대상을 찍은 사진을 올려놓아 자연,생명,생태계의 이미지를 대비시키는 작업에 치중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시간과 역사,복고와 회상의 시선이 담긴 혼합작품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다윈의 ‘종의 기원’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환경 생명,생태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들을 몇개의 방으로 구분해 내놓고 있다.꽃과 곤충사진,통조림,꺼진 브라운관을 오브제로 택하면서 이것들의 대비와 충돌,혹은 오버랩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창출해내는 방식으로 꾸며져 있는데 관람객들이 응접실이나 서재,박물관을 둘러보는 듯한 묘한 체험을해볼수 있는 이색 전시다.31일까지.
  • 서지마·왕국유의 해령(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21)

    ◎양자강하류 자리잡은 수향이자 문향/주변에 운하·호수·정자 산재… 문인 대거배출/임정 중경 전진할때 첫 봇짐풀던 가흥 인근에 상해와 항주 중간점에 가흥이 있다.가흥의 원명은 화흥.들판에 벼가 저절로 난다는 고장이다.그만큼 농산품이 넉넉한 곳이다.우리 임시정부가 상해를 떠나 중경을 전전할 때 맨 처음 봇짐을 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여기도 물이 많다.그래서 수향이라고 한다.수향이 문향임은 전례에서도 볼 수 있다.그것도 전체 중국문학사에 올려도 그 시대 그 장르의 엄지 손가락인 굵직한 사람들이다.가흥으로부터 줄곧 남하하여 전당강에 이르는 불과 50㎞의 연도에서 말이다. 가흥에서 10여㎞ 남쪽인 왕점은 청나라때 일락과 태평을 노래했던 사를 써서 ‘절서파’를 창설한 사가요,8만권의 진기한 선본을 수장했던 장서가 주이존(1629∼1709)의 출생지이며,왕점에서 거의 10㎞인 해령시 협석에서는 우리나라의 소월만큼 중국의 문학소년소녀들에게 애독되고 있는 요절 서정시인 서지마(1897∼1931)가 태어났다.그런가 하면 15㎞쯤 남쪽 전당강언덕인 해령 염관에서는 중국 희곡·소설·비평등 장르에서 세계적인 연구를 남기고 끝내 염세 자살한 비극의 평론가인 왕국유(1877∼1927)가,다시 염관에서 서북쪽으로 30여㎞ 거슬러 올라간 동향시 오진에서는 20년대부터 ‘한 밤중(자야)’‘부식’ 등 중국 최고의 걸출한 사회주의적 현실주의계열의 혁명 소설가 모순(1896∼1981)이 각각 출생 성장해서 그 지방들은 이미 그들 문인의 유적으로 관광 상품을 만들고 있다. ○혁명소설가 모순도 출생 왕점의 ‘폭서정’은 문물과 자연이 어울려서 한판 잔치를 벌이고 있다.거기 굽이굽이 연못과 곡교,들쭉날쭉한 가산과 문장들은 주이존의 서재로 쓰였던 구방재와 서고로 쓰였던 폭서정,그리고 전망대로 쓰였던 육봉정들과 함께 서로 화음하고 있다.구방재는 마치 유람선처럼 3면의 물속에 떠있었고 폭서정은 8만권의 장서를 8진분류법에 따라 수장했던 300년 전의 개인 도서관.그래서 강희 황제는 ‘연경박물’이란 어필을 내렸다. 이렇듯 공원에 상당한 원림 도서관의 시설이 방대했지만 이들을 소박하게도 여름날 책을 햇볕에 쬔다는 폭서로 이름지은 그 시인의 마음에 미소를 머금을 수 밖에 없었다. 협석은 필자 가슴속에 오래 간직했던 연인이었다.다만 시인 서지마의 고향이라서.중국의 신문학을 개도했던 호적의 말대로 그는 ‘사랑’과 ‘자유’‘미’ 등 세가지만을 견결하게 신앙했던 시인이었다.그러면서도 목숨에 연연하지 않은 구름같은 시인이었다.그의 명시에 나오는 구절처럼 ‘나는 하늘에 구름 한조각’이라서 ‘살며시 왔듯이/살며시 떠난다’했고,끝내 ‘나는 옷 소매를 턴다./행여 구름 한조각이라도 묻힐세라’,짧은 34년을 공중에다 산산이 없애버린 시인이었기에 그랬다. 협석 지방 부호의 독자로 태어난 그는 불처럼 꽃처럼 살다가 갔다.중국의 명문 북경대학을 거쳐 영·미를 유학했고,신문사 주간과 남경중대·북경대학의 교수를 역임하면서 4권의 시집 속에 주옥의 229편을 남기고 있다.이러한 서지마의 생가와 유택이 있는 협석을 답사하는 것은 그의 전부를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었다.그 나머지는 모두 구름이라고. 그의 생가는 협석의간하가.그 옆으로 운하가 흘렀다.본시 지마의 집은 커다란 저택이었다.지금 협석영화관 앞이요,상해만국 증권의 뒷집이었다.지금은 2층으로 개축한 연립주택,물론 주인은 벌써 몇번이나 바뀌었다.현지 주민에게 슬쩍 물었더니 72가구나 산다고 귀띔해 주었다. ○백낙천기리는 자미정도 지마의 무덤은 생가로부터 서북쪽 5.6㎞에 있는 서산,그 서북쪽 산허리 짙푸른 송백의 숲속에 묻혔다.‘시인 서지마지묘’란 묘표를 세우고.그와 서산은 각별한 관계였다.우선 그가 공부했던 ‘개지학당’이란 초등학교가 그 남쪽 기슭에 있었고,그 정상에는 당나라 시인 백낙천을 기리는 ‘자미정’이란 높은 정각이 선데다 그보다 서지마를 더욱 애련하게 묶어둔 일은 세살때 독일에서 요절한 그의 아들 서덕생의 무덤이 바로 서산 서쪽,그러니까 지금 서지마의 무덤으로부터 불과 20여m 아래에 있다. 지마가 1931년,남경에서 북경을 비행중 제남근교 개산에 추락사한 뒤,협석의 동산에 묻혔다.그러나 불운이었다.문화혁명때는 자본주의 봉건시인으로 매도되어 그의 무덤조차 파헤쳐진 것을 1983년에야 뼈를 수습,다시 지금의 서산으로 이장하기에 이르렀다.필자는 여기 비록 해발 50여m의 동산이었지만 휘휘하게 솔바람소리가 몰려오는 지마의 무덤앞에 묵상하지 않을수 없었다.그의 심미신앙과 초탈적인 생명관을 승복해서요,필자에게 맨 처음 중국 현대시의 눈을 뜨게 한 인연때문이다. ○왕국유 염세비관 끝내 자살 염관은 천하의 장관을 연출하는 전당강옆에 있다.매년 8월보름에서 18일 사이에 전당강에 썰물이 천군만마처럼 일어나서 관조의 인파를 모으게 하는 곳이다.그 방축 너머의 안술문 밖에는 왕국유가 살던 집이,염관읍 쌍인항,지금 염관버스 터미널 북쪽에는 왕국유의 생가가 있었다. 왕국유도 지방 토호의 자체로서 일찍이 서양 철학에 흠탄하여 동경물리학교에 유학했고,북경대학·청화대학 등 명문의 교수로서 중국 사곡을 비롯,문자학·성운학·지리학·철학·심리학 등을 연구 강의하는 화려한 길을 걸었음에도 한창 중년인 50 체구를 북경 이화원 곤명호에 내던졌다. 왕국유는 그의 명저 ‘인간사회’에서 문학의 미학적 경지를 천착했는가 하면 ‘홍루몽평론’에서 인간의 해탈과 색공을 주장하면서 그의 내재의식에 축적되었던 염세 비관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그의 옛집은 당당하고 담박했다.널따란 마당에 후원까지 갖추었다.정문에는 ‘서중관학,심정대박’이란 현판,단적으로 동서를 겸비한 그의 박식을 압축한 말이었다.대문안에는 양쪽으로 계수나무와 석류.그의 성격처럼 심미적이면서 고독했다. 더구나 앞 마당에서 한길을 건너면 눈처럼 하얗게 갈대가 파도를 치고 있다.갈대밭 위로 전당강 방축이 평행선을 긋는다.왕국유는 이 길을 걸으며 쇼펜하워에 심취했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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