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서윤복
    2025-12-13
    검색기록 지우기
  • 로봇
    2025-12-13
    검색기록 지우기
  • 분식회계
    2025-12-13
    검색기록 지우기
  • 아이린
    2025-12-13
    검색기록 지우기
  • 잠실
    2025-12-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7
  • 임시완, 손기정마라톤대회 10km 출전 ‘체력도 미남’

    임시완, 손기정마라톤대회 10km 출전 ‘체력도 미남’

    임시완이 손기정평화마라톤대회에 출전한다. 17일 배우 임시완이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2019 손기정평화마라톤대회’에 출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임시완은 오는 11월17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손기정평화마라톤대회 10km 부문에 나선다. 임시완은 현재 마라톤 영웅 손기정과 그의 제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 ‘보스턴 1947’(감독 강제규) 촬영 중이다. 하정우, 배성우와 함께 출연하는 영화 ‘보스턴 1947’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열린 보스턴 국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임시완은 극중 1947년 보스턴국제마라톤대회에 출전해 우승한 선수 서윤복 역을 맡는다. 한편 임시완은 최근 군 제대 후 첫 복귀작인 OCN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보스턴 마라톤 제패… 세계에 ‘KOREA’ 새긴 영웅

    보스턴 마라톤 제패… 세계에 ‘KOREA’ 새긴 영웅

    대한민국 정부 수립 1년여 전에 보스턴 국제대회를 제패했던 ‘영원한 마라토너’ 서윤복 옹이 27일 새벽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1923년 서울에서 태어난 서 옹은 24세이던 1947년 4월 19일 미국 보스턴 국제마라톤에 출전해 당시 세계최고기록(2시간 25분 39초)으로 우승했다. 세계 4대 마라톤의 하나인 이 대회 첫 동양인 우승자였다. 광복을 맞았지만 정부가 수립되지도 못한 채 어렵고 힘들기만 하던 시절 국제마라톤대회를 제패함으로써 한국인의 웅혼한 기상을 만방에 알렸다.고인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입던 헌 옷을 걸치고 동대문에서 헌 스파이크 운동화를 구해 밑창의 못을 빼고 리어카 바퀴의 고무를 잘라 덧대 신었다. 더군다나 대회 참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는 군용기를 얻어 타야만 했다. 당시 육상 대표팀 감독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고 손기정(1912~2002) 옹이었다. 서윤복의 우승이 확정된 뒤 서로 얼싸안은 채 펑펑 눈물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듬해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귀국한 서윤복에게 “난 몇십 년 동안 독립운동을 했는데도 신문에 많이 나오지 못했는데 그대는 겨우 2시간 조금 넘게 뛰고도 신문의 주목을 받는구나”라고 농담을 건넸다는 일화도 남겼다. 김구 선생과 함께 경교장에서 기념촬영한 사진도 전해진다. 역대 보스턴 마라톤 한국인 우승자는 고인과 1950년 함기용, 1994년 이봉주 셋뿐이다. 1950년에는 고 송길윤(1927~2000)이 2위, 최윤칠(89) 옹이 3위를 차지하는 등 한국인이 1~3위를 싹쓸이했다. 고인은 1948년 런던올림픽을 마치고 현역에서 은퇴한 뒤 대한육상연맹 전무이사와 부회장, 고문, 대한체육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1961년부터 17년 동안 서울시립운동장장으로 일했으며 1978~1981년 대한체육회 이사로 전국체전위원장 직을 수행했다. 2013년엔 대한체육회에서 스포츠 영웅으로 선정해 생활비 등을 지원했다. 지난해 2월 김정행 전 체육회장 등이 서울 강동구 길동 자택을 찾아 지원금 등을 전달했을 때도 휠체어에 앉은 채로 일행을 맞을 정도로 건강한 편이었다. 장례는 대한체육회장으로 거행되며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2호에 마련됐다. 선수와 지도자들을 위해 태릉과 진천선수촌에도 임시분향소를 설치한다. 발인은 29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 안성 천주교 공원묘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동양인 최초 보스턴 마라톤 우승’ 서윤복옹, 94세로 타계

    ‘동양인 최초 보스턴 마라톤 우승’ 서윤복옹, 94세로 타계

    보스톤 마라톤에서 동양인 최초 우승을 일궈냈던 육상 원로 서윤복 옹이 27일 별세했다. 94세.서윤복 옹은 이날 오전 4시 40분쯤 별세했다고 대한육상연맹이 밝혔다.서윤복 옹은 1923년 서울에서 태어나 24세이던 1947년 4월 19일 보스턴 국제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25분 39초의 당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세계 4대 마라톤 중 하나인 보스턴 마라톤의 사상 첫 동양인 우승이었다. 그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어렵고 힘든 시절에 국제마라톤 대회를 제패, 한국의 존재를 세계만방에 알리고 국민에 희망을 줬다.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니 엄밀히 말하면 무국적이다. 서윤복은 일본 강점기 일본인들이 입던 헌 옷을 입고 동대문에서 헌 스파이크 운동화를 구해 밑창의 못을 빼고 리어카 바퀴의 고무를 잘라 덧대 신고 훈련에 매진했다. 보스턴 마라톤 참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갈 때는 미군 군용기를 얻어타고 갔다. 당시 우리나라 육상대표팀 감독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고 손기정 옹이었다. 서윤복의 우승이 확정된 뒤 두 사람은 서로를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이듬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 선생은 귀국한 서윤복에게 “난 몇십 년 동안 독립운동을 했는데도 신문에 많이 나오지 못했다. 그대는 겨우 2시간 조금 넘게 뛰고도 신문의 주목을 받는구나”라는 농담했다고 전해진다. 김구 선생은 ‘족패천하’(足覇天下: 발로 천하를 제패하다)라는 휘호를 써줬다. 장례는 대한체육회장으로 거행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2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9일 오전 9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스포츠 전설 된 김연아 “대통령 손 뿌리친 기억 없다”

    스포츠 전설 된 김연아 “대통령 손 뿌리친 기억 없다”

    “서 있던 곳 원래 자리 아닌 데다 당시 분위기 워낙 우왕좌왕해늘품체조 행사 있는지도 몰라… 정부 불이익 직접 느낀 것 없어” ‘피겨 여왕’ 김연아(26)가 대한체육회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김연아는 ‘늘품체조’ 시연회에 불참해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받았다는 논란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느낀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연아는 2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16 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참석해 역대 최연소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영예를 안았다. 동계 종목 선수가 ‘스포츠 전설’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2011년 시작된 명예의 전당에는 첫해 손기정(마라톤), 김성집(역도)을 시작으로 2013년 서윤복(마라톤), 2014년 민관식(체육행정), 장창선(레슬링), 2015년 양정모(레슬링), 박신자(농구), 김운용(체육행정) 등 8명이 헌액됐다. 지난해에도 12명의 최종 후보에 오른 김연아는 당시 인터넷 팬 투표에서 82.3%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1위에 올랐지만 ‘50세 이상을 후보로 한다’는 선정위원회의 방침에 따라 선정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지난해 김연아의 탈락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이 일었다. 김연아가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고 최순실씨의 측근 차은택씨가 만들어 화제가 된 늘품체조 시연회에 불참했고, 지난해 광복절 행사에서는 옆에 서 있던 박 대통령이 내민 손까지 뿌리쳐 정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연아는 행사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최근 자신을 둘러싼 논란들에 대해 직접 해명했다. 김연아는 광복절 행사에 대해 “생방송이다 보니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며 “제가 아무리 버릇이 없다고 해도 어른 손을 뿌리치지 않는다. 영상으로 보면 오해를 살 만하지만 (대통령의) 손을 뿌리치지는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늘품체조 시연회에 대해서는 “그런 행사가 있는지도 몰랐다”며 “에이전시에서 일정을 정한 것이라 잘 모르고 있었다. 일이 부풀려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고 답했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김연아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는 “보도를 통해 알았다. 불이익을 당했다는 느낌을 직접 받은 것이 아니다”라며 “보도가 나오기 전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연아의 소속사 올댓스포츠 구동회 대표는 “만약 문체부에 찍혔다면 왜 찍혔나를 생각해 봤다. 정부 행사나 정치 관련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면서 “(2012년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 시절에 토론회에 초청을 받았으나 참석을 안 했다. 또 다른 논란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연결 지으려는 맥락에서 이야기가 나오는데 확대해석을 자제해 달라”고 주문했다. 김연아는 한국 피겨 사상 최초로 2010년 밴쿠버올림픽 금메달, 2014년 소치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했고, 여자 싱글 선수 최초로 총점 200점을 돌파하고 세계신기록을 11차례나 작성한 피겨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또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올림픽 유치에 큰 공을 세웠다. 김연아는 시상식에서 “제가 영웅으로 선정되기에는 많이 어리고 턱없이 부족한데 이런 상을 받게 돼 감사하다”며 “앞으로 한국 스포츠 발전에 헌신하고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 홍보대사와 집행위원으로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피겨 여왕’ 김연아 스포츠영웅 선정

    ‘피겨 여왕’ 김연아 스포츠영웅 선정

    ‘피겨 여왕’ 김연아(26)가 2016년 스포츠영웅으로 선정됐다. 대한체육회는 18일 “스포츠영웅 선정위원회의 정성평가와 국민지지도 정량평가 등을 합산한 결과 김연아가 올해의 스포츠영웅으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스포츠영웅 인터넷 투표에서 82.3%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도 나이 제한 논란 끝에 좌절됐지만 올해는 수상에 성공했다. 스포츠영웅 선정위원회는 2016년 수상자 선발을 위해 지난 8~9월 일반 국민, 추천단, 출입기자, 체육단체 등을 대상으로 54명의 후보를 추천받았다. 이후 심사 과정을 거쳐 김연아, 박세리(골프), 박찬호(야구), 차범근(축구), 고 김일(프로레슬링), 고 이길용(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 보도) 등 6명을 최종후보로 추렸다. 체육회는 이들을 대상으로 국내 스포츠 발전 공헌도, 국위 선양 공헌도, 사회적 모델로서의 상징성, 환경 제약 극복 등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고 국내 지지도 조사를 추가한 결과 1위에 오른 김연아를 올해의 스포츠영웅으로 선정했다. 체육회는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고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린 체육인을 국가적 자산으로 예우하고자 2011년부터 스포츠영웅을 선정하고 있다. 2011년에는 고 손기정(육성)·고 김성집(역도), 2013년에는 서윤복(육상), 2014년에는 고 민관식(체육행정)·장창선(레슬링), 2015년에는 양정모(레슬링)·박신자(농구)·김운용(체육행정) 등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연아에 대한 명예의 전당 헌액식은 다음달 2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한국 체육史 빛낸 영웅 3인 ‘명예의 전당’ 입성

    한국 체육史 빛낸 영웅 3인 ‘명예의 전당’ 입성

    대한체육회 스포츠영웅으로 선정된 우리나라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정모(61·레슬링)씨, 1960년대 농구스타 박신자(74·농구)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을 지낸 김운용(84·체육행정)씨 등에 대한 명예의 전당 헌액식이 1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렸다. 스포츠영웅 사업은 2011년 스포츠로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스포츠강국 위상에 기여한 사람들을 예우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고(故) 손기정, 김성집, 서윤복, 고 민관식, 장창선 등 5명이 선정됐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2㎏급에서 우승해 우리나라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남은 양씨는 이날 헌액식에서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성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린다”며 “우리 레슬링이 다시 한번 신화를 쓸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양씨는 1974년과 1978년 아시안게임을 2연패했고 체육훈장 청룡장과 백마장을 받았다. 1967년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준우승을 이끈 박씨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박씨는 여자 실업팀인 신용보증기금 감독과 청소년 여자대표팀 감독을 지냈고 1999년에는 미국 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에 오를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살아있는 ‘전설’이다. IOC 부위원장, 대한체육회장, 세계태권도연맹 회장, 대한태권도협회장 등을 지낸 김씨는 “앞으로도 대한체육회가 그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훌륭한 국위 선양과 리우데자네이루, 평창, 도쿄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체육 가족들이 하나가 되어 지금 이상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기를 바라고 대한올림픽위원회(KOC)와 대한체육회의 영원한 발전을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한 그는 1961년 황조근정훈장, 1986년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美 보스턴 폭탄 테러] 보스턴 마라톤은

    “신성한 스포츠 행사에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인류의 적이죠.” 1950년 제54회 보스턴 마라톤을 제패했던 함기용(83) 대한육상경기연맹 고문은 안타까움을 넘어 분개하고 있었다. 함 고문은 16일 “관중이 몰린 결승선 근처에서 폭발이 일어난 걸 보면 누군가 의도한 것이다.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고, 너무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보스턴 마라톤은 한국선수와의 각별한 인연으로 유명하다. 1947년 51회 대회에 출전한 서윤복(90)이 2시간 25분 39초의 세계 최고 기록으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6·25전쟁 직전 열린 1950년 대회에서는 함 고문과 송길윤(2000년 작고), 최윤칠(85)이 1~3위를 휩쓸어 한국 마라톤의 위상을 높였다. 황영조(43)와 이봉주(43)는 1994년 98회 대회에서 각각 4위와 11위를 차지했다. 특히 이봉주는 2001년 105회 대회에서 2시간 09분 42초의 기록으로 우승, 함 고문 이후 51년 만에 애국가를 울렸다. 그러나 최근 한국 마라톤이 침체하면서 이번 대회에는 대표 선수를 파견하지 못했다. 미국 독립전쟁의 첫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보스턴 마라톤은 1897년 처음 열렸고, 올해 117회 대회가 열렸다. 뉴욕, 런던, 로테르담마라톤과 함께 세계 4대 메이저 마라톤 대회로 꼽힌다. 1968년까지는 ‘애국자의 날’(Patriot’s Day)인 4월 19일에 열렸지만, 그 뒤부터 4월 셋째 주 월요일에 열리고 있다. 보스턴 마라톤은 1997년부터 국제 마라톤대회로는 유일하게 참가자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국제대회에서 연령대별 제한시간 안에 풀코스를 주파해야만 출전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때문에 아마추어들은 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으로 여긴다. 한편 이날 참사로 보스턴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프로농구(NBA)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경기는 취소됐다. 보스턴과 인디애나의 NBA 경기는 아예 열지 않는 것으로 정해졌고, 보스턴과 오타와의 NHL 경기는 추후 재편성할 예정이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1948 런던올림픽 참가 최윤칠·함기용옹의 덕담

    1948 런던올림픽 참가 최윤칠·함기용옹의 덕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태극기를 들고 참가한 첫 여름올림픽이 1948년 런던올림픽이다. 그해 1월 프랑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겨울올림픽 때 처음 태극기를 앞세우고 입장했지만 선수단 5명의 조촐한 행렬이었다. 64년 전 런던올림픽 때는 67명(임원 15명, 선수 52명)으로 규모가 부쩍 커졌다. 런던가는 길은 참 멀고 험난했다. 홍콩까지 배를 타고 갔고, 거기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영국까지 갔다. 갈아타고 기다리는 사이 18일이 훌쩍 지났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국민들이 쌈짓돈을 꺼내 올림픽후원권과 복권을 사서 마련한 8만 달러가 노잣돈 전부였다. 선수들은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도, 경유 중인 공항에서도 쉴 틈 없이 발을 구르고 땀을 흘렸다. 그래서일까. 정작 런던에 도착했을 때에는 기진맥진했다. 무서운 세월이 흘렀지만 함기용(오른쪽·82) 전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 기억엔 그때의 일이 손에 잡힐 듯 또렷하다. 함옹은 11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한국 선수단 결단식에 참석해 당시 일들을 들려줬다. “요즘엔 10시간 정도면 런던에 가지 않습니까. 우리는 장시간 여행을 하다 보니 기진맥진했어요.”라고 회상했다. 이어 “애국애족하는 심정으로 태극기를 (런던 하늘에) 많이 올려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못한 뜻을 이뤄 주세요.”라고 따뜻한 격려를 잊지 않았다. 1948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마라톤에 배정된 티켓은 3장. 1936년 베를린올림픽의 영웅 손기정(1912~2002년), 서윤복(89), 최윤칠(왼쪽·84)에 함옹까지 4명이 런던까지 함께 갔다. ‘없는 돈’에 그렇게 했던 건 마라톤에 거는 기대가 유달리 컸기 때문. 현지에서 3명을 추렸는데 함옹이 빠졌고 그는 코스 옆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그러나 1등으로 달리던 최옹이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 38㎞ 지점에서 기권하면서 주권 국가 한국의 첫 금메달 꿈은 물거품이 됐다. 함옹은 4년 뒤 헬싱키대회를 앞두고도 오른쪽 발꿈치 통증으로 출전하지 못해 올림픽은 한(恨)이 됐다. 그런 함옹은 64년 만에 런던 땅을 밟는다. 이날 결단식에 함께한 최옹과 함께다. 몸이 허락하는 대로 마라톤 등 경기를 참관하고 선수촌도 방문해 후배들을 격려할 예정이라고. 당시 한국선수단 67명 가운데 생존자는 김성집 전 태릉선수촌장 등 5명이고 그나마 거동할 수 있는 이는 그 둘뿐이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육상연맹 마라톤 기술위원장 황영조

    [스포츠 라운지] 육상연맹 마라톤 기술위원장 황영조

    “왕대밭에 왕대 나는 법입니다.” ‘몬주익 영웅’에서 한달 전 한국 마라톤의 ‘기술 사령탑’으로 변신한 황영조(39) 대한육상경기연맹 마라톤 기술위원장은 마라톤 ‘핏줄 잇기’를 거듭 강조했다. 17일 서울 태평로 서울신문에서 만난 그의 얼굴엔 의욕이 넘쳤다. 손기정(1912~2002년)·서윤복(86)·함기용(83) 선생을 잇는 ‘마라톤 핏줄’을 살리고 말겠다는 각오가 담겼다. 황 위원장은 마라톤 대표팀 35명을 이끌며 지난 7일부터 강릉에서 비지땀을 쏟고 있다. 28일까지 체력 테스트와 피로회복 훈련으로 기본을 다지게 된다. 자율로 훈련하는 날이면 서울 송파동 집과 잠실 육상연맹을 오가며 바쁘다. ●꼼꼼한 기록 바탕으로 대표팀 강훈련 이처럼 대규모로 대표팀 합동훈련을 갖기는 이번이 처음. 황 위원장의 머리에서 나왔다. 무한경쟁을 뚫어야 국제대회 때 태극마크를 달아준다는 뜻이다. 선수들은 오전 26㎞, 오후 20㎞씩 뛴다. 하루 46㎞라는 수치에 견줘 되새길 만한 것은 기복이 워낙 심해 대관령에서 악명 높은 ‘99고개’를 달린다는 점이다. 긴 오르막은 14㎞에 이른다. 마라톤의 이른바 ‘심장파열 언덕(Heartbreak Hill)’은 ‘저리가라’다.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모든 게 반성에서 출발합니다. 별다른 게 아니라 하루하루를 점검하는 것. 그러려면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아주 중요하죠.” 마라톤에 첫 발을 뗀 1988년 강릉 명륜고 1학년 때부터 1996년 은퇴하기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훈련일지를 썼다. 미혼인 그의 방 한쪽엔 당시 다이어리 9개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풀코스(42.195㎞) 금메달만큼이나 소중히 간직돼 있다. “어떤 날씨에 어떤 길을 달렸고 무엇을 먹었는데 기록은 어땠는지를 그림까지 곁들여 꼼꼼하게 기록했어요. 지금도 참고자료로 씁니다.” ●“후배들 정신력 못마땅해” 그는 후배들에 대해 “정신력이 못마땅하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도 “아직 초기 점검단계라 딱히 말할 수 없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훈련일지로 얘기를 되돌렸다. 거리·장소별 훈련일정에 따른 몸 상태와 기록의 변화를 일정기간 체크하면 해당 선수의 장단점을 한눈에 읽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신체 바이오리듬이 있듯 선수 저마다 특징도 달라요. 봄에 잘 뛰다가도 가을엔 그렇지 않은가 하면, 여름에 유달리 강한 마라토너도 나타납니다.” 그는 고향인 삼척 근덕면 초곡리에서 혼자 지내는 어머니(70) 걱정에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서울로 모셔 오려는데, 한사코 도시는 싫다시지 뭐예요.” 글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황영조는 누구 ▲출생 1970.3.22 강원 삼척시 근덕면 초곡리 ▲학력 강릉 명륜고-고려대 체육교육과-대학원 석·박사 ▲경력 영국 셰필드 유니버시아드 2시간12분41초로 역대 최고기록(1991), 일본 벳푸·오이타 대회 2시간8분49초로 한국 최고기록·스페인 바르셀로나올림픽 2시간13분23초로 1위(1992), 미국 보스턴마라톤 2시간08분09초로 한국기록(1994) ▲가족 어머니(70)와 누나 둘, 남동생 ▲취미 스쿠버다이빙·열기구 타기(이상 1999년 자격증 땄음) ▲주량 맥주나 막걸리 2잔 정도 ▲좌우명 선택과 집중, 그리고 창조
  • 지구 다섯바퀴 돈 슈퍼맨 금빛날개 희망으로 접다

    지구 다섯바퀴 돈 슈퍼맨 금빛날개 희망으로 접다

    다른 운동을 하려다 돈이 들어갈 것 같아 발을 들여놓은 마라톤이었다. 초등학교 때까지 찍은 사진이라곤 한 장도 없는 집안에서 흔히 그렇듯, 더러는 학교를 빼먹고라도 농사를 거들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도망 다니던 개구쟁이 막둥이였다. ‘국민 마라토너’보다는 ‘봉달이’라는 별명이 더 친숙한 이봉주(39·삼성전자)가 21일 대전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 남자 마라톤 42.195㎞ 풀코스에서 우승, 생애 마지막 레이스를 화려하게 마쳤다. 2시간15분25초. 자신이 2000년 일본 도쿄마라톤에서 작성한 한국기록(2시간7분20초)과는 멀다. 하지만 그는 ‘무한 도전’에 망설이지 않은 정신력을 유감없이 내보였다. 20년간 희망의 레이스를 펼쳐온 이봉주는 “내 생애 최고의 레이스였다. 끝까지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 ●동갑내기 황영조도 완주 8차례 그쳐 충남 천안시 성거읍에서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천안농고 1년 때 육상에 첫발을 뗐다. 레슬링 선수였던 큰형을 따라 운동에 취미를 붙인 게 발단이었다. 이봉주가 달리기에 얼마나 매달렸는지는 고교를 세 군데나 옮겨다녔다는 데서 엿보인다. 팀이 해체되는 불운을 떠안고 삽교고를 거쳐 광천고로 전학하는 고집을 부렸다. 불혹(不惑)에 열매 맺은 41번째 완주는 세계에서도 드물다. 세계 정상급 마라토너라면 42.195㎞를 100m 평균 18~19초의 속도로 2시간 이상 달려야 한다. 대부분 10~20회 완주 기록을 남기고 쓸쓸히 은퇴의 길을 선택한다. 동갑내기 황영조(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도 완주는 여덟 차례에 그쳤다. 이봉주는 이날 완주로 지구의 둘레를 다섯 바퀴 넘게 달렸다. 거리는 22만여㎞. 하프마라톤(21.0975㎞)도 13차례 치렀다. 한 차례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크로스컨트리, 오르막 훈련 등으로 4000~5000㎞씩 모두 54차례를 소화한 셈이다. 무엇보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인간승리의 교훈이 담겼다. 왼발 248㎜, 오른발 244㎜의 ‘짝발’에다 평발, 레이스 도중 쏟아지는 땀으로 눈을 찌르는 눈썹 때문에 쌍꺼풀 수술을 하다 잘못돼 ‘짝눈’으로 달려야만 했다. 1999년엔 코오롱 선수단 개편을 둘러싼 대립으로 팀을 떠나 자비를 털어 운동하는 떠돌이 신세에 내몰리기도 했다. 그는 “키워준 팀을 버리고 잘되겠느냐는 따가운 눈총 탓에 실패하면 운동화를 벗어야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봉주 사진 더 보러가기 ●“이제 큰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 편해” 그러나 2001년 부친이 췌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슬픔을 딛고 미국 보스턴마라톤에서 1947년 서윤복(86) 이래 반세기 만에 금메달을 일궜다. 그 뒤로도 자신이 쌓은 장벽을 스스로 허물기 위해 줄곧 뛰었다. 은퇴한 그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체육학 석사학위 논문을 마친 뒤 지도자의 길을 밟을 계획이다. 어머니 공옥희(74)씨가 지켜본 가운데 마지막 레이스를 펼친 그에게 뒤이을 후계자가 없는 어두운 현실이 드리웠다. 이봉주는 떠나는 선배를 끝내 꺾지 못한 후배들에 대해 “경기하면서 실망한 게 사실이다. 후배들이 달리면서 서로 눈치보는 경향이 있다. 더 과감하게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나름대로 더 빨리 일어나 더 많이 뛰었다고 자부한다. 이제 큰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편하다. 뛰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지만 후회는 없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이봉주 고향에 마지막 봉사

    꼭 10년 전인 1999년 10월 중순. ‘봉달이’ 이봉주(39)는 충남 보령의 한 여관에서 힘겨운 날을 보내고 있었다. 매서워진 12월엔 경남 고성으로 옮겼다. 역시 여관방 신세. 훈련에 한번 나서면 100여일씩 걸리는 터라 쓸쓸하기까지 했다. 그해 8월 6년째 몸담던 코오롱 마라톤팀 개편을 둘러싼 문제에 휩싸여 ‘무적(無籍) 선수’를 자처했던 이봉주는 2000년 2월 도쿄 국제대회에서 한국최고기록(2시간7분20초)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시드니올림픽 티켓을 겨냥했지만 “키워준 팀을 버리고 잘 되겠느냐.”는 따가운 눈길은 짐이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실패하면 운동화를 벗어야 했다.”고 말했다. 넉달 뒤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육상계의 결의를 모아 창단한 삼성전자 육상단에 둥지를 틀었다. 10월 시드니올림픽에 나섰지만 18㎞ 지점에서 다른 선수와 충돌하며 24위. 2시간17분57초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긴 그는 우려 속에 이듬해 4월 보스턴마라톤에서 1947년 서윤복(86) 이래 반세기 만에 한국의 금메달을 일구며 의구심을 잠재웠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오는 21일 대전 전국체전에서 현역 마지막 레이스를 펼친다. 충남 천안 성거읍에서 태어난 이봉주는 “고향을 위해 한 게 별로 없어서 은퇴 경기를 충남 대표로 뛴다.”고 12일 밝혔다. 그는 20세이던 1990년 충북 전국체전에서 2위를 차지하며 풀코스에 뛰어들었다. 이후 한국의 간판 마라토너로 자리매김한 뒤 다시 데뷔 무대로 돌아와 41번째 완주에 나서는 것. 16년째 동고동락하는 삼성전자 오인환(50) 감독은 “마스터스 대회에서 하프코스를 뛰며 일반인들과 영예를 함께 하는 길도 생각했지만 이봉주가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메달을 장담하기 어려운 만큼 자칫 불명예를 안을 수도 있지만 또 풀코스에 도전하는 것. 인간 극한의 운동 마라톤에선 대부분 10~20회 완주 기록을 남기고 은퇴의 길을 간다. 더욱이 이봉주는 왼발 248㎜, 오른발 244㎜의 ‘짝발’에다 평발이다. 레이스 도중 눈을 찌르는 쌍꺼풀을 수술하다 잘못돼 ‘짝눈’이라는 핸디캡도 안았다. 지난 7월부터 강원 횡계와 충남 공주를 오가며 크로스컨트리, 오르막 훈련 등으로 경기감각을 끌어올리고 있는 그는 은퇴 뒤 동국대 대학원에서 마지막 남은 체육학 석사학위 논문을 마칠 계획이다. 그는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이론에다 경험을 엮어 엄하면서도 부드러운 지도자가 되고 싶다.”며 웃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날개 꺾인 손기정의 후예

    1935년 손기정(베를린 올림픽), 1947년 서윤복, 1950년 함기용(이상 보스턴 마라톤), 1992년 황영조(바르셀로나 올림픽), 2001년 이봉주(보스턴 마라톤)…. 한국 마라톤 금메달 계보는 끊기고 말 것인가. 지영준(28·경찰대)과 이명승(30·삼성전자), 이명기(26·국민체육진흥공단), 육근태(22·한국체대) 등 남자 마라톤 대표팀은 22일 독일 베를린 시내에서 열린 마라톤 42.195㎞ 풀코스에서 개인 메달은커녕 단체전에서도 순위 밖으로 밀려났다. 개인 최고기록 2시간8분30초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포스트 이봉주’ 지영준은 발바닥 물집 때문에 18㎞ 지점에서 레이스를 포기했다. 황준현(22·한국체대)은 족저 근막염으로 아예 뛰지도 못했다. 이명승은 46위(2시간21분54초), 이명기는 65위(2시간35분12초), 육근태도 69위(2시간40분47초)에 그쳤다. 특히 상위 3명의 성적으로 가리는 단체전에서도 7시간30분을 훌쩍 넘긴 반면 일본은 6시간41분05초로 동메달을 안아 대조를 이뤘다. 한국은 2007년 일본 오사카 대회에선 은메달을 땄다. 단체전은 종합순위에는 빠지지만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시상하는 공식 종목이어서 일본에 뒤졌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순위에서 완패해 위기감은 더하다.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 풀코스에서 기록 못잖게 순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날 아벨 키루이(27·케냐)가 2시간6분54초의 대회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은메달은 에마뉘엘 무타이(25·케냐·2시간7분48초), 동메달은 체게이 케베데(22·에티오피아·2시간8분35초)에게 돌아갔다. 이어 여자 마라톤에서도 윤선숙(36·강원도청)은 2시간39분56초로 39위에 머물렀다. 중국 바이쉐(21)가 2시간25분15초로 금메달, 일본의 요시미 오자키(28)가 2시간25분25초로 은메달을 안았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무심 질주’ 게브르셀라시에·‘번개’ 볼트 새 역사 쓴다

    ‘무심 질주’ 게브르셀라시에·‘번개’ 볼트 새 역사 쓴다

    누가 가장 빨리 달릴까. 누가 가장 높이 날아오를까. 누가 가장 멀리 뛸까. 100m 9초50, 마라톤 2시간 벽은 과연 허물어질까. 월드컵·올림픽과 함께 지구촌 3대 스포츠 빅이벤트인 2009 육상 세계선수권대회가 8월15일 독일 베를린에서 막을 올린다. 인간 한계의 경연장이자 연인원 65억명이 지켜볼 이 대회는 9일간 지구촌을 뜨겁게 달군다. 특히 2011년 대구 세계선수권 개최를 2년 남짓 남긴 한국으로서는 더욱 눈길을 모을 수밖에 없다. “어려서 학교를 다닐 때부터 날마다 10㎞를 뛰었다. 언덕과 내리막이 되풀이되는 길이었다. 게다가 첫 수업에 시간을 맞추려면 빨리 뛰어야만 했다. 런던 코스(세계기록을 세운 곳)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다. 기록이 문제가 아니라 그저 달릴 뿐이다.” ●마라톤 인간한계 기록은 1시간57분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36·에티오피아)는 이렇게 말한다. 마라톤 풀코스(42.195㎞) 세계 기록을 지닌 그다. 2시간3분59초. 이번 베를린대회에서 역사를 다시 고쳐 쓸 각오다. 또 한번 ‘무심 질주’를 과시하겠다는 것. 게브르셀라시에의 기록이면 분당 340m, 역산해서 100m를 17.6초대에 꾸준히 뛰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마라톤 풀코스는 1904년 오늘과 같은 42.195㎞로 정착됐다. 미국 켄터키주립대 학자들은 날씨와 코스, 러닝화 등 외부 조건과 마라토너의 스피드·지구력·근력·피로도 등 내부 요인을 최적의 조건으로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실시해 한계 기록이 1시간57분이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세계기록은 1908년 2시간55분19초로 3시간 벽을 깬 이래 손기정 선생은 74년 전 바로 베를린대회에서 2시간26분42초, 서윤복 선생은 1947년 2시간25분39초로 대열에 동참했으며, 1967년엔 10분대 벽이 깨졌다. 이후 2시간5분이 한계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100년 만인 2007년 게브르셀라시에가 2시간4분26초를 기록했다. ●과학적 훈련으로 100m 9초50대 가능할까 마라톤과 함께 육상의 꽃인 100m에서 ‘번개’ 우사인 볼트(23·자메이카)의 활약이 주목된다. 나쁜 스타트를 보이고도 9초69라는 놀라운 세계기록을 올린 터라 기대는 자못 크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 결승선을 끊기 직전 관중에게 키스 세리머니를 펼치는 여유까지 부린 볼트로서는 충분히 가능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912년 10초06으로 출발, 56년 만인 1968년 9초95로 10초대가 깨졌다. 이후 40년만에 볼트가 9초60대 시대를 활짝 열었다. 역시 최첨단 소재로 된 신발과 트랙 바닥, 과학적 훈련방법이 한몫 거들었다. 일본 과학자들은 역대 세계기록 보유자들의 장점을 모아 시뮬레이션한 결과 출발 반응속도·근력·순발력을 종합할 때 9초50도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볼트는 출발 반응속도에서 보통 0.165초로 경쟁자들보다 0.03초 이상 뒤진다. 그러나 단점 보완에 비지땀을 쏟고 있어 키 1m96㎝에서 뿜는 폭발적인 탄력과 어우러지면 새 기록 탄생도 시간문제라는 평가이다. 볼트도 “베이징에서 9초50대도 달릴 수 있었다.”고 자신한다. 더구나 스프린터에게 힘이 붙어 전성기라고 할 23~25세 무렵이다. 9초72를 뛴 아사파 파월(27·자메이카)과 9초77을 뛴 타이슨 가이(27·미국)와 벌일 라이벌전도 그의 자극제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국민 마라토너서 은퇴까지

    이봉주에겐 영광만큼 시련도 많았다. 이봉주가 처음 풀코스에 도전한 것은 1990년 10월 전국체전이었다. 무명선수나 다름없었던 그가 2시간19분15초로 2위를 차지하자 단박에 마라톤 관계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서울시립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 마라톤의 대부로 불리던 고(故) 정봉수 감독의 코오롱 사단에 합류,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2시간12분39초로 은메달을 목에 걸면서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1999년 선수단 개편안을 둘러싼 대립으로 소속팀을 떠나 자비를 털어 운동하는 떠돌이 신세에 몰렸다. 6개월여 만인 이듬해 삼성전자에 둥지를 튼 이봉주는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2시간7분20초로 한국기록을 세우며 부활을 알리는 듯했다. 하지만 같은 해 시드니올림픽에선 레이스 도중 넘어지는 불운 속에 24위에 그쳤다. 2001년 보스턴마라톤에서 2시간10분30초로 5위에 오르며 서윤복, 함기용의 업적을 반세기 만에 빛내는가 싶더니 같은 해 캐나다 에드먼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레이스 도중 기권해야만 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14위(2시간15분33초)에 이어 2006년 일본 비와코마라톤에서도 중도에 포기했다. 완주 도전 중 두 번째 기권이었다. 오랜 꿈이었던 올림픽 금메달을 포기할 수 없었던 터에 용기를 내 출전한 베이징올림픽에서는 2시간17분56초로 28위에 그쳤다. 마침내 지난해 9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이봉주는 이번 대회를 완주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결국 해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프로필 ▲1970년 10월10일 충남 천안시 성거읍 소우리 출생 ▲2남 2녀 가운데 막내 ▲167㎝, 56㎏ ▲천안 성거초-천성중-광천고-서울시립대 ▲부인 김미순(39)씨와 두 아들 우석, 승진
  • 수원시 공무원 보스턴 달린다

    경기도 수원시청 소속 40대 공무원 4명이 오는 17일 열리는 미국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참가한다. 주인공은 수원시청 사회복지과 소속 김종연(44·행정7급)씨와 건설사업소 소속 맹한영(46·토목6급)씨, 권선구 금호동사무소 동장 오광록(49·행정5급)씨, 팔달구청 환경위생과 소속 성기복(44·환경6급)씨 등 4명으로,42.195㎞ 풀코스에 도전한다. 이들 가운데 성씨만 마라톤경력 2년이고 나머지 3명은 5년이며, 모두 연령대별로 일정 기록에 도달해야 참가자격을 주는 보스턴 마라톤대회의 조건을 충족시킨 ‘고수’들이다.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출전하려면 만 40세에서 44세 사이 남자의 경우 풀코스 기록이 3시간 20분,45세에서 49세까지는 3시간 30분 이내의 기록을 갖고 있어야 한다. 특히 수원시청 마라톤동호회 총무인 김씨는 지난해 9월25일 청원 대청호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58분 56초의 기록으로 골인, 아마추어 마니아들의 꿈인 ‘서브3(3시간 이내 주파)’를 달성한 고수 중의 고수다. 이들이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권위있고 전통깊은 마라톤대회 참가라는 ‘소망’을 이루는 동시에 수원시 브랜드 ‘해피수원’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달리며 전 세계인에게 수원시를 홍보하기 위한 것. 평소에도 매일 15㎞ 이상을 달려온 이들은 이번 대회참가를 앞두고 음식조절은 물론 광교산과 일월저수지 주변 등 각자의 훈련장에서 열심히 개인훈련을 해왔다. 오씨는 “보스턴마라톤은 정말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이 평생 한번이라도 참가하게 되기를 기원하는 대회”라며 “열심히 뛰어 수원시뿐 아니라 개인의 명예도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보스턴마라톤대회는 아테네 근대올림픽 다음해인 1897년에 제1회 대회가 개최돼 올해로 110회째를 맞고 있다.1947년 서윤복 선수가 세계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해 2001년 이봉주 선수가 우승하는 등 우리 나라와 인연이 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데스크 시각] ‘봉달이’를 풀어주자/오병남 체육부장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뛰었습니다.하지만 생각만큼 안 되는 게 마라톤인 것 같습니다.” ‘국민 마라토너’이봉주(34·삼성전자)는 ‘봉달이’라는 애칭이 더 잘 어울린다.순박한 외모와 어눌한 말투,그리고 미련해 보일 정도의 우직함…. 그 우직함이 오히려 믿음직스러워 많은 사람들이 아테네올림픽에서의 쾌거를 기대했다.기록상으로는 10위권이었지만 역대 최악의 난코스에 무더위까지 겹친 42.195㎞ 클래식코스(마라톤시∼아테네)를 제패할 선수는 투혼과 끈기의 그가 오히려 적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 30일 새벽의 레이스에서 14번째(2시간15분33초)로 파나티나이코스타디움에 골인해,올림픽 ‘2전3기’ 신화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1996년 애틀랜타에서 예상밖의 은메달을 따낸 그는 2000년 시드니에서 24위에 머문 뒤 4년간 와신상담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레이스를 마친 뒤 그는 무척 힘들어 했다.“결승선을 통과하자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쥐가 나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올림픽에 세차례나 도전했지만 이렇게 힘든 적은 없었다.”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기가 쉽지 않음을 토로한 그가 안쓰럽기만 하다.14년 마라톤 인생을 접어야 할 때를 맞은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월계관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 다짐을 32번째 완주로 지켜 낸 것이다.그는 지금까지 33차례 풀코스에 도전해 지난 2001년 에드먼턴세계선수권때 딱 한번 중도 포기한 것 말고는 모두 완주했다.당연히 현역선수 가운데 최다 완주 기록이다. 인간이 하는 스포츠 가운데 가장 고통스럽다는 마라톤에서 완주는 온몸을 태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풀코스를 한번 달리려면 5000㎉ 이상을 소모해야 한다.한번 완주하고 나면 최소한 3개월은 쉬어야 몸안의 영양소가 보충된다는 게 정설이다. 이 때문에 마라톤의 목표는 완주요,그 다음이 기록이라고 말한다.아테네에서도 남자선수 101명 가운데 20명,여자 82명 가운데 16명이 기권했다.또 여자 우승자 노구치 미즈키(일본·2시간26분20초)보다 1시간20분이나 늦게 골인한 꼴찌 오토곤바야르 루브산훈데그(몽골)가 가장 뜨거운 갈채를 받은 것도 완주의 무게 때문이다. 이봉주는 늘 우직하게 달렸다.기원전 490년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목숨을 걸고 내달린 그리스 병사 필리피데스처럼 늘 앞만 보고 달렸다. “어려서부터 뛰는 것이 무작정 좋았다.슬퍼도 뛰었고,기뻐도 뛰었다.”는 그의 말은 그래서 가슴을 울린다.2001년 보스턴마라톤에서 서윤복 이후 53년만에 우승한 뒤 더 이상 달려야 할 동기가 없어 보였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연습까지 합쳐 지구 네바퀴에 해당하는 16만㎞를 달린 그는 “후회도,아쉬움도 없다.”고 당당해 한다. 금메달리스트들을 앞세운 한국선수단 본진보다 하루 늦은 1일 조용히 귀국한 그는 “일단은 더 뛰겠다.”고 말했다. 소속팀에서도 그걸 바라는 눈치다.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박수를 보내자.“달리는 것 말고는 잘하는 것이 없는데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며 수줍어 하는 봉달이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그동안 충분히 행복했다.이제 봉달이를 우리의 욕심에서 풀어 주자. 오병남 체육부장 obnbkt@seoul.co.kr
  • [아테네 2004] 한국 마라톤은 암흑기?

    한국 마라톤이 위기를 맞았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34·삼성전자)가 30일 아테네올림픽 레이스에서 14위(2시간15분33초)에 그치며 올림픽 무대를 마감했다.지금까지 32차례나 풀코스를 완주한 베테랑 이봉주는 향후 몇차례 더 레이스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 출전은 현실적으로 무리다.따라서 ‘포스트 이봉주’에게 눈길이 쏠린다.그러나 이렇다할 차세대 주자가 없어 불안하다.2000년 2월 이봉주가 세운 한국최고기록(2시간7분20초)도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신예 지영준(23·코오롱)이 이번 대회에서 16위(2시간16분14초)로 가능성을 보였지만 이봉주의 ‘무게’를 이어가기엔 역부족이다.이명승(25·삼성전자)도 20명이나 중도포기한 난코스에서 40위에 올랐지만 역시 모자란다는 느낌이다.이밖에 형재영(32·전북도청),제인모(28·구미시청),정남균(26·삼성전자) 등이 있지만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때문에 ‘암흑기 도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지난 1932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 첫 출전한 한국은 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이 금메달을 따내는 등 마라톤 강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심어줬다.광복 후에도 서윤복이 47년 보스턴마라톤에서 우승하며 전통을 이어갔다.그러나 56년 멜버른올림픽에서 이창훈이 4위에 오른 것을 끝으로 이렇다할 스타가 나타나지 않아 긴 암흑기를 맞았다.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황영조가 우승하면서 다시 전성기를 맞았고,이봉주가 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2001년 보스턴마라톤 우승을 차지하면서 홀로 한국 마라톤을 이끌어왔다. 마라톤계에서는 장기계획을 마련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성적지상주의에 매달려 중·고교 때부터 마라톤을 시작하는 풍토에서 벗어나 트랙 장거리에서 충분한 스피드를 기른 뒤 20대 초·중반에 입문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쉬어가기˙˙˙

    체육계도 용천역 폭발사고로 고통을 받고 있는 북한 주민 돕기에 가세했다.한국씨름연맹(총재 이호웅)은 27일 ‘용천 참사’ 구호 성금을 모금한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다음 달 5일 개막하는 고흥장사대회 상금의 5%를 성금으로 기탁하는 한편 연맹 홈페이지에 팝업창을 띄운다고.서윤복(81) 함기용(75)씨 등 마라톤 원로들과 육상 관계자 200여명도 지난 26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용천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보내기 위한 모금운동을 벌였다.
  • [시론] 올림픽의 해를 맞으며

    희망찬 갑신년이 열렸다.올해는 아테네올림픽이 열리는 해로서 새해를 맞는 체육계의 각오는 그 어느때보다 단단하고 굳다. 한국 체육은 우리나라 근대사와 발자취를 같이하면서 어렵고 힘든 시기마다 국민의 힘을 모아 위기를 도약으로 반전시키는 데 앞장서 왔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에는 고 손기정옹이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해 민족혼을 일깨웠고,전쟁의 상처가 채 치유되기 전인 50년대에는 서윤복 함기용 선생이 보스턴마라톤 우승으로 광복된 조국의 힘을 세계에 떨쳤다. 경제 개발의 터를 닦은 60년대에는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67년)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으며, 도약기인 70년대에는 양정모 선수가 광복 후 올림픽(78년) 첫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한국 체육의 세계화에 힘찬 출발을 알렸다. 80년대 한국체육은 반만년 민족 최대의 제전인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세계 4위라는 대승을 거두면서 우리 민족이 세계의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서울올림픽은 한국을 세계의한 축으로 끌어 올렸고,세계의 눈은 한국으로 쏠리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체육은 성장 일로를 걸어 왔으나 90년대에는 안타깝게도 ‘IMF 시련’과 더불어 국제경쟁력도 하강세로 돌아서 92바르셀로나올림픽 7위,96애틀랜타올림픽 10위, 2000시드니올림픽 12위로 떨어지는 결과를 빚었다. 그리고 대망의 2000년대,우리는 2002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대회에서 희망찬 비전의 불을 지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민족의 응집력이 우리의 가장 큰 자랑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했고,2000시드니올림픽,2002부산아시안게임·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의 남북 공동입장은 평화통일을 향한 민족의 염원이 이제는 눈앞에 다가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던 우리나라는 90년대에 뜻하지 않은 ‘IMF 관리체제’라는 위기를 맞았지만 우리 국민의 단결로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빠른 속도로 이를 극복했다. 이제 2000년대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면서 모든 국민이 총력을 모아야 할 때,현재의 상황은 어렵고힘든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정치권은 국민과 멀어졌고,경제는 IMF때보다 힘들다고들 하며,사회는 가치관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세계는 무한 경쟁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때에,우리 민족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나 세계 어느 민족보다 뛰어나다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돌아보면 늘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바꿔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우리 민족은 지금 주춤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면서 세계 일류국가를 향해 발돋움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 선봉에 스포츠가 설 것이다. 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체육은 88서울올림픽 이후 하강국면의 국제경쟁력을 반전시켜 다시 세계 10위권의 성과를 올림으로써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그 힘과 의지가 민족 전체에 확산되도록 할 것이다. 우리 국민의 힘과 용기를 북돋우는 데 지금까지 그랬듯이 체육계가 최일선에 설 것이고,그러기 위해 더 큰 신뢰와 사랑을 받는 건실한 체육계로 거듭날 것이다. 이연택 대한체육회장
  • ‘2분 25초’의 차/마라톤 세계 - 한국기록 더 벌어져 이봉주 부진·유망주 없어 ‘먹구름’

    마라톤 한국최고기록은 언제쯤 깨질까. 28일 베를린마라톤에서 ‘마의 벽’으로 여겨져온 5분벽이 무너지자 한국 마라톤계는 다시 기록 경신의 기대감에 부풀었다. 현재 한국최고기록은 이봉주(33·삼성전자)가 지난 2000년 2월 도쿄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7분20초로,3년7개월 동안 요지부동이다.이는 폴 터갓(케냐)의 세계최고기록(2시간4분55초)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세계마라톤사에서 한국은 두차례 세계최고기록을 작성했다.베를린올림픽(1936년) 우승자로 지난해 작고한 고 손기정옹이 1935년 2시간26분42초의 세계기록을 세웠고,서윤복 선생이 47년 보스턴마라톤에서 2시간25분39초로 손옹의 기록을 깼다.이 때가 한국마라톤의 황금기로 기록과 성적에서 모두 세계를 주름잡았다. 따라서 기록과 성적은 비례 관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조만간 한국최고기록이 경신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대표주자 이봉주가 지난 4월 한국최고기록 경신을 기치로 런던마라톤에 출전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지영준(22·코오롱·개인최고기록 2시간8분43초)을 제외하곤 이렇다할 선수가 아직 없다. 대한육상연맹 관계자도 “한국최고기록과 세계최고기록과의 차가 벌어지고 있어 안타깝긴 하지만 한국최고기록은 향후 2년간은 깨지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 마라톤은 더욱 심각하다.권은주(26·삼성전자)가 97년 2시간26분12초의 한국최고기록을 세운 이후 경신은 고사하고 근접한 기록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세계최고기록(2시간15분25초)과는 너무나 멀어져 있다. 박준석기자 pjs@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