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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업지 공장 업종변경 자유화/기업규제 완화

    앞으로 공업지역이 아닌 곳에서도 공장의 업종변경이 쉬워진다.대규모 소매점과 도매센터 등이 5백㎡ 이하 규모로 증설할 때는 신고만으로 가능하다.종전엔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기업활동규제 심의위원회(위원장 서원우)는 16일 4차 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으로 규제를 완화토록 의결했다.이들 규제완화는 관계부처와 실무협의를 거친 것이어서 그대로 시행될 전망이다. 위원회는 시장 관리자의 지정요건을 완화,상인이 자율적으로 조직한 단체로 일정 요건을 갖춘 경우에도 시장 관리자로 지정할 수 있게 관련 법규를 고치도록 했다.현행 시장 관리자 요건은 매장면적을 2분의 1 이상 소유한 자가 세운 법인이나 도산매업자로 구성된 조합 등으로 돼 있다. 공업지역이 아닌 곳에서 업종을 바꿀 경우 허가나 신고 없이도 가능하도록 했다.주유소 허가를 받은 뒤의 사업개시 기간은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했다. 산매상의 연쇄화사업 운영요령도 바꿔 연쇄화 사업자의 지정신청 때 내야 하는 서류 가운데 건축물 관리대장과 신원증명서를 없애고 재개발 사업의 승인조건으로 돼 있는 재개발 지역 내 공공청사 건립비의 기부채납 관행도 고치도록 했다.
  • 일 통합막료회 의장/19일부터 한·중 방문

    【도쿄 AFP 연합】 니시모토 데쓰야(서원철야) 일본 방위청 통합막료회의 의장이 오는 19일부터 일주일간 한국과 중국을 방문한다고 지지통신이 15일 방위청관계자의 말을 빌려 보도했다.
  • “공인된 변호사 보수기준 마련을”/참여연대,과다수임료 근절 토론

    ◎사건해결뒤 받는 「성공보수」도 금지해야/독일선 공판횟수별 기준액 법으로 규정 「변호사 수임료는 어떻게 책정되어야 하는가」.「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는 13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변호사 수임료에 관한 토론회를 갖고 과다 수임료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개선및 대책방안등을 논의했다. ◇권오승 서울법대교수=변호사 보수문제는 법률시장개방,규제완화라는 시대적 흐름을 놓고 본다면 장기적으로는 현재와 같이 변호사들의 자율적 규제에 맡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러나 자율적 규제가 실효를 거두려면 변호사들의 직업윤리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러야 하는데 우리나라 변호사들의 직업윤리는 그렇지 못하다.계약자유라는 이름으로 의뢰인들의 궁박한 처지를 이용,폭리를 취하는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규제를 강화해 변호사 보수의 공정화를 조속히 실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국가가 직접 보수기준을 마련하거나 최소한 변호사단체에서 마련한 기준을 국가가 인가해 주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변호사의 사명인 점에 비춰 사건을 해결한 뒤 의뢰인으로부터 받은 「성공보수」는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독일과 영국은 이를 전면 금지하고 있고 미국의 경우도 형사사건과 가사사건 등에는 성공보수계약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다만 민사소송에 한하여 변호사가 자기의 비용으로 소송을 수행한뒤 소송비용과 보수를 돌려받는 미국식의 성공보수는 예외적으로 인정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한수웅 헌법재판소 연구원=독일은 변호사 보수문제를 변호사 단체 자체의 규율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연방 변호사보수법」이라는 법률로써 「법정최저액」을 규정하고 있다.법정보수액 이상을 받으려면 사건위임장이 아닌 독립된 문서로써 의뢰인과 합의해야한다.또 합의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보수가 부당하게 높다면 소송으로 감액을 청구할 수 있다.민사사건의 경우 패소자는 결과적으로 이유없이 권리주장을 한 셈이므로 국가에 재판비용을 지급함은 물론 승소한 상대방변호사의 「법정보수」도 부담하도록 규정하고있다.형사사건 보수는 공판이 열린 횟수를 기준으로 해 보수가 정해진다.한 사건당 평균 3백만∼3백50만원 수준으로 착수금만 해도 1천만원이하의 범위에서 요구할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김재원 서원대법대교수=미국에서도 수임료를 둘러싼 고객과 변호사간의 논쟁이 적지않게 발생하고 있다.미국은 법조윤리법을 통해 변호사비용이 「적절한」수준에서 이뤄져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적절함을 판단하는 요소로는 ▲투입된 시간과 노력의 양 ▲사건의 난이도 ▲변호사의 경험·명성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수임료에 대한 「일반대중의 인식」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과도한 수임료 때문에 분쟁이 일어날 경우 법원은 수임계약을 무효화해 일정액이상을 넘는 금액을 환불하는 것은 물론 변호사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하기도 한다.
  • 일 통합막료회 의장/니시모토 23일 방한

    합동참모본부는 10일 니시모토 데쓰야(서원철야)일본 통합막료회의 의장(대장)이 김동진 합참의장의 초청으로 오는 23일부터 26일까지 한국을 공식방문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통합막료의장은 그동안 한국을 2차례 비공식방문한 바 있으나 공식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후기대 경쟁률 저조/부산외대 등 9곳 접수마감

    강남대와 부산외국어대 등 후기 9개 대학이 7일 원서접수를 마감했다. 이날 원서접수를 최종 마감한 결과 부산 동서공대 등 6개 대학은 비교적 높은 경쟁률을 나타냈으나 가야대 등 3개 대학은 미달되거나 막판 눈치지원으로 겨우 정원을 넘기는 등 양분현상을 보였다. 각 대학의 경쟁률은 △동서공대 4.06대1 △부산외국어대 2.73대1 △서원대 2·59대1 △경주대 2.06대1 등이다. 그러나 가야대는 8개 계열중 4개 계열이 미달된 가운데 전체 경쟁률도 0.96대1로 정원을 채우지 못했고 호남대는 전체 경쟁률이 1.23대1이었으나 43개 학과중 17개 학과가 미달됐으며 목포대도 1.72대1에 머물렀다. 이로써 후기 11개 대학이 원서접수를 마쳤으며 8일 24개 대학이 원서접수를 마감함으로써 35개 후기대의 원서접수는 모두 완료된다.
  • 소설가 강신재(이세기의 인물탐구:67)

    ◎「젊은 느티나무」로 60년대 낭만주의 새바람/주제설정 명확하고 작중인물 심리파악에 민감/오페라 가수가 아리아 부르듯 혼신의 창작작업/“언제나 깨어있는 작가”… 최근엔 역사재조명 작업 전념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냄새가 난다.아니,그렇지는 않다.언제나라고는 할 수 없다­ 이렇게 시작되는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는 1962년 이 소설이 발표되자 문단은 한동안 「젊은 느티나무 감동」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했다.당시 카뮈 사르트르의 반항과 부조리문학에 감염되어 기진하고 황폐하던 젊은이들에게 이 한편의 명편은 푸르른 낭만과 사랑의 절제를 심어줬으며 「비누냄새」는 지금까지도 싱그러운 젊음의 상징으로 대변되고 있다. 강신재소설은 현대적 감각과 단편소설만의 「영롱한 완벽성」을 추구하면서 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화섬의 문체가 특징이다.그의 글은 독자에게 긴장된 추적을 강요하지 않는다.난해한 관념을 함축하기보다 간결하고 명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설명해낸다.사랑에 빠진 한 소녀가 상대방 청년에게 느끼는 미묘하고도 애틋한 감정을 「그에게서 비누냄새가 난다」고 표현한 것이 그 예다. ○천분의 재질 갖춘 작가 일찍이 월탄은 그의 소설을 향해 『주제설정이 명확하고 작중인물의 다면적·복합적 심리파악에 특히 민감하다』고 했고 남의 작품평에 까다로운 박화성도 『인물들의 개성을 신기에 가깝도록 그려내기 때문에 그의 소설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찬사를 보냈다.평론가 김윤식은 그의 첫장편소설인 「임진강의 민들레」에 이르러 『천분의 재질로 황홀한 경지를 이룩한 작가』임을 전제,『만일 불모성을 향한 소멸의 미학이 사랑이라면 한국문학은 이 작가에 의해 종종 양식에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을 예고했다. 작가자신은 「언제나 깨어 있는 작가」이기를 원한다.그리고 작품을 쓸 때마다 자신의 슬픔이나 기쁨을 『마치도 오페라가수가 전심전력을 기울여 아리아를 부르듯,혹은 해변의 빛과 볕에 마음을 그을리듯』 그렇게 함몰된 상태에서 혼신을 다했다고 말한다.이런 투철한 문학정신으로 63년 「현대문학」에 연재한 「파도는 노소층을 막론한 이례적인 절찬을 모았고 그후 20여개에 이르는 신문연재소설도 일과성이 아닌 문학작품의 범주에서 독자의 수준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의 삶을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치는 사회기구의 힘을 어떻게 느끼지 않을 도리가 있으며 그것의 포악과 비정과 어리석음을 작가로서 어찌 무심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모든 시대상의 아픔을 가족사나 남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승화시키면서 작품의 진실과 완벽성에 천착할 뿐 이리저리 가꾸어 맵시나게 만들자는 생각은 애초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그런 만큼 「감각적」이라거나 「아름다운 수채화」란 말을 듣기보다 「이지적인 필치」「냉정한 태도로 대상을 간파한 문학작품」이란 평을 들을 때 그는 비로소 작가로서의 긍지를 느낀다. 그에게선 시류에 휩쓸리거나 감정에 복받치거나 상황에 따라 모습을 변환시키는 속물근성은 찾아볼 수 없다.불가근불가원으로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세상을 냉철하게 정시하고 어떤 소설에서든지 적시에 삶의 진실과마주치는 필연을 제시해나간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따뜻한 표정은 실은 무한히 다정할 것 같지만 은근히 까다롭고 은근히 고집과 자존심이 세어서 하지 않는다고 마음먹은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60년대말 조선일보에 「유리의 덫」을 연재할 때가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당시 편집국장으로 있던 선우휘가 그에게 연재소설을 부탁했고 『원고료는 작가에게 실례가 되지 않게 대접해드리겠다』고 단서를 붙였다.그러나 연재 한달만에 붙여온 고료는 결코 섭섭지 않게 대접하겠다는 약속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그는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일년동안 쓰겠다고 약속했으니 그 약속은 지키겠다.그러나 원고료는 보내지 말라.이번에 보낸 고료도 다시 가져가라』고 했다.이 전화를 받은 선우휘는 혼비백산하여 사정을 알아보고는 그에게 백배사죄한 후 그의 부군인 서임수씨를 만나 『서선생,애 많이 잡숫갑시다』했다는 것이다.「그처럼 까다로운 여류작가를 부인으로 모셨으니」 부군으로서 참으로 고달프리라는 우려였다. ○남편의 식사는 손수준비 그러나 실은 그는 누구보다 가정적인 여류로 유명하다.번거로운 모임이나 단체에 관여하지 않고 어쩌다 문단모임에 나와서도 시간이 되면 소리없이 빠져나가 부군의 식사를 손수준비한다.미식가이며 특히 무청과 배추줄거리를 좋아하는 부군을 위해 새벽마다 시장에 나가 채소상이 길에 버린 무청을 거둬들이자 시장사람들이 오죽하면 『집에서 토끼를 기르시나보다』고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그런 그를 문단에서는 「쌀쌀이」란 별명을 붙이고 있지만 낯모르는 후배가 책을 출간하여 증정하면 잘 받았다는 축하카드와 함께 반드시 문학의 정진을 격려하는 글을 써서 보내준다. 언젠가 「북간도」의 작가 안수길은 『강신재가 있으면 장미꽃밭처럼 화사하고 향기롭다』고 말한 적이 있다.원로·중진들이 엄숙하게 모여앉은 자리에 그가 나타나면 무겁고 지루하고 낡아보이던 모든 것이 금가루를 뿌린 듯 금세 현란해진다는 것이다.그것은 무엇보다 그의 타고난 미모탓일 수도 있다.지금도 여전히 섬연하여 만모의 기색이나 비풍이 없이 사람을 반기고 감싸면서 그가 쓴 「레이디 서울」처럼 만년숙녀의 모습을 변함없이 간직한다. 그는 지금의 남대문근처인 용산구 어성동에서 태어났다.부친은 세브란스병원 의사인 강태순씨이고 어머니는 숭의학교를 졸업한 신여성으로 풍금·피아노가 있는 환경에서 비바람을 모른 채 곱게 성장했다.경기고녀에 다닐 때는 영미문학에 심취했으나 일본인 교사가 『귀축미영과 전쟁을 하고 있는데 영문학을 한다는 것은 사상이 불건전해 보이기 쉽다』고 경고하여 이전 가사과에 가게 되었다.그러나 염색이니 자수·재봉은 체질에 맞지 않아 대학재학중에 만난 서임수씨와 결혼,우연히 써본 단편소설을 손소희를 통해 김동리에게 보였고 과찬의 추천사와 함께 문단에 등단했다. ○아직도 청랑의 미모간직 그가 소설을 쓰기까지는 서임수씨(남성해운 이사)의 보이지 않는 외조를 빼놓을 수 없다.서임수씨는 경향신문부사장·국회의원·국민대학장등을 지낸 저명인사로 그는 소설집필에 필요한 모든 자료와 책들을 일일이 구입해주어 서재에 산적해 있는 수천여권의 장서중작가의 손으로 산 책은 한권도 없을 정도다.자녀(건축가 기영씨와 피아니스트인 타옥씨)는 결혼후 따로 나간 지 오래이고 동호가 내려다보이는 옥수동 한남 하이츠빌라에서 부부가 새벽산책과 음악과 미식을 즐긴다. 그에게도 어쩔수없이 세월이 스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이제는 청랑의 미문이나 감각의 번뜩임을 휘두르기보다 「육성에 닮아 있을수록 문학이 우수하다」는 것을 지키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사실로 존재하던 소설이며 소설은 존재할 수 있던 역사』라는 공쿠르의 말에 공감하여 최근에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재조명하는 작업에 계속 전념해 있다.지난해말 아홉번째 역사소설인 「광해의 날들」을 펴냈고 이번 겨울 조선조말을 무대로 하는 다음 작품의 구상을 끝냈다. 별은 딸 수 없는 물건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며 웃고 울고 생각하는 인간의 행위는 이후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그리고 그런 행위에 많은 시간과 힘을 바치는 사람들의 행렬에 끼어 그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별빛 같은 화섬의 광채를 언제까지나 비쳐줄 것이다. □연보 ▲1942년 경기고녀 졸업 ▲1944년 이화여전 중퇴 ▲1949년 「문예」지 소설「얼굴」「정순이」추천 ▲1958년 단편집 「희화」(계몽사) ▲1968∼82년 문협 PEN이사 ▲1982년 한국여류문학인 회장,한국소설가협회 분과위원장 ▲1992년 소설가협회 대표위원회 위원장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 소설가협회 대표위원 단편집 「여정」(중앙문화사 59년)「젊은 느티나무」(대문출판사 72년)「황량한 날의 동화」(삼중당 76년) 장편집 「청춘의 불문률」(여원사 60년)「임진강의 민들레」(을유문화사 62년)「이 찬란한 슬픔을」(신태양사 64년)「그대의 찬손」(신태양사 65년)「오늘과 내일」(을유문화사 66년)「신설」(대문출판사 67년)「숲에는 그대 향기」(대문출판사 69년)「유리의 덫」(삼성출판사 70년)「파도」(대문출판사 72년) 강신재대표작전집 8귄(삼익출판사 74년)「레이디 서울」(선일문화사 75년)「서울의 지붕밑」(문리사 76년)「그래도 할말이」(서음출판사 77년)「마음은 집시」(태창문화사 77년)「밤의 무지개」(청조사 77년)「천추태후」(동화출판사 78년)「불타는 구름」2권(지소림 78년)「우연의 자리」(명서원 78년)「모험의 집」(범조사 79년)「사도세자빈」3권(행림출판사 81년)「사랑의 묘약」2권(중앙일보사 86년)「신사임당,문정왕후 아수라」(한벗 87년)「간신의 처」(문학세계사 89년)「명성황후」3권(세명서관 91년)「광해의 날들」(창공사 94년) 수필집「사랑의 아픔과 진실」(중앙문화사 66년)「모래성」(서문당 74년)「거리에서 내마음에서」(평민사 76년)「무엇이 사랑의 불을 지피는가」(나무사 86년) 한국문협상 여류문학상 중앙문화대상 예술원상
  • 돼지/성스럽고 길한 동물

    ◎김열규교수에 들어본 돼지에 얽힌 이야기/다산·운수대통의 상징으로 사랑/소설 「최치원전」선 고운을 “돼지의 아들”로 표현/조선시대,사원서 성현에 제사때 제물로 사용 돼지 해 덕담은 「돼지 꿈」으로 시작하자. 하고 많은 길한 짐승 꿈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돼지꿈은 용꿈과 더불어서 백미의 쌍벽이다.한데 용꿈은 주로 태몽으로 치는데 비해서 돼지꿈은 일상 생활의 꿈으로 치게 되니 올 한해 삼백예순날을 살아 갈 우리들로서는 돼지꿈을 용꿈보다 윗자리 옥좌에 모셔야 한다. 일수 또는 일운이라고 하는,그날 그달의 길함을 점치기로는 단연 돼지 꿈이니 경제적 재수의 대통 그리고 이것저것 다 망라한 운수의 대통은 우리 손아귀에 있는 게 아니라 돼지발에 달려 있다고 해야 한다.돈도 벼슬도 이름도 예외가 아니다.다리 안무너짐도 가스 폭발하지 않음도 다들 해몽으로 치면 돼지탓이다. 해동의 첫 문장이 최치원이라고 했는데 그가 돼지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소설이 있다고 하면 다들 놀랄까 하지만 정말이다.소설 「최치원전」은 분명히 문창후의 혈통을 그같이 못박고 있다.아무리 옛날 소설이기로서니,최치원을 돼지아들로 일컬었다면,우리들의 꿀꿀이는 성스럽고도 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꿀꿀대는 돼지 울음은 달기가 꿀맛이다. 그런가 하면 고구려는 돼지를 「교시,곧 하늘에 제사들일 거룩한 제물로 삼고 있다.삼국사기만 살핀다고 해도 동명왕과 상산왕의 두 시대에 걸쳐서 교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동명왕 때는 달아난 교시를 뒤쫓아서 위내암이라는 오곡이 잘 익고 들짐승이 많은 풍족한 땅을 찾아내고 있다.그런가 하면 상산왕은 역시 달아난 교시를 따라가다가 드디어 아리따운 여인을 만나서 왕자를 얻을 수 있었다.풍요한 신천지와 귀골의 옥동자를 모두 돼지가 점지해준 것이다.고구려 시대만 해도 세상만사 오직 돼지 발바닥 안에 있었던 것이다. 이들 두 마리 고구려의 돼지를 「상서로움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비슷한 보기를 신라에서 찾기는 어렵지 않으니,이같은 돼지해석학의 전통이 고스라니 고려왕조에 전해지기도 한다. 고려왕조 조상의 한 사람인 강충은 동명왕에게위내암이 주어질 때와 마찬가지로 돼지의 인도로 그 집터를 개성 송악산 기슭에 얻게 된다.돼지터는 복로다.하지만 고려왕조의 또다른 시조인 작제건에 관한 신화에서는 별난 차원으로 돼지를 승화시키고 있으니,고려왕조는 돼지왕조라고 할 만도 하다.즉 작제건은 처가에서 얻을 수 있는 혼수감의 으뜸으로 다른 것 아닌 바로 돼지를 치켜들고 있다.그것도 예사로 치켜들고 있는 게 아니다.처가에서,그나마 용궁인 처가에서 내놓은 칠보를 다 밀쳐두고는 돼지를 구태여 칠보의 왕으로서 택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조선조에 와서는 각지의 서원에서 저 어마어마한 성현들께도 돼지를 제물로 바쳤으니,삼국시대 이후 우리 역사는 줄줄이 돼지로 해서 지켜진 것일까.그러기에 오늘날 민속에서 그 발이 풍요의 점괴요 그 꿈이 길몽이요 그 머리가 비손이나 고사를 위한 필수인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궂은 데서 험하게 살기에 돼지는 번성스럽다.마른 자리 진 자리 가리지 않고 찌꺼기 먹이,버린 먹이 마다 않기에 그는 엄청난 다산자다.대량 생산의 근로자다.그래서 그는섬김받은 것이다. 「생활은 낮게 사회적 공헌은 높게」… 이것이 돼지의 좌우명이요 가운이다. 우리들이 우리들 자신을 새로이 갈아치지 않고는 새해를 맞을 수 없다.지난 한해가 유달리 궂었던 만큼 이 새해는 폭발적으로 달라져야 한다.쇄신되어야 한다. 돼지해에 쇄신의 길은 오직 하나 「생활은 낮게,사회적 공헌은 높게」라는 돼지의 좌우명 그것 뿐이다.
  • 베제크리크 천불동/허세욱(서역 문화기행:4)

    ◎화염산기슭 석굴 83개… 6세기 불교유적/위구르족 왕가 사원… 당시 생활상 벽화로 남겨/서유기의 무대… 삼장법사­손오공 등 3제자의 조각상 곳곳에 투루판은 그 동서를 관통하는 국도 312번에 놓여있다.그것은 신강의 최서단인 이닝(이령)에서 황하와 황해가 만나는 최동단의 상하이(상해)까지 장장 5천㎞,어쩌면 미국의 동서를 횡단하는 80번 하이웨이에 상당하다. 투루판에서 312번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40㎞쯤 달렸을 때,갑자기 그 왼편으로 빨간 바위산을 만나는데 그 형상은 얼핏 한국전쟁당시 철의 삼각지,아이스크림고지를 방불케하는 타원형으로 마치 험상궂도록 쪼글쪼글한 노인의 얼굴 혹은,여름날 여인의 풍덩한 주름 치마같았다.한 포기의 폴도 없이 세로의 주름살은 차라리 빨간 폭포가 쏟아지는 형상이었다. 그것이 바로 화염산의 남쪽 기슭이었다.그 맹렬한 화염의 섭곡을 보자 놀랍고 반가웠다.그 명성을 들은지 너무 오래라서 그렇다.당나라의 고승 현장(602∼664)의 「대당서역기」를 비롯,당나라의 유명한 변새시인 잠참(715∼770)이 이곳에서 벼슬하는 동안 썼던 경화산」,「화산운가송별」등의 명작,그리고 중국4대기서로 꼽히는 오승은(1500?∼1582?)의 「서유기」등에서 익히 화염산,그 「팔백리에 걸친 불길」을 들어 왔었다. ○홍산에 풀한포기 안나 화염산은 「홍산」혹은 「화산」으로 불렸다.그보다 위구르말로는 「쿠즈로다고」즉 홍산이란 뜻이다.그것은 지구상에서 두번째로 넓고 낮은 동서 1백20㎞,남북 60㎞의 투루판분지에 동서 98㎞의 길이에 남북 9㎞의 폭으로 가장 높은 곳이라야 8백32m,평균 높이는 고작 5백m다.하지만 해발 이하의 분지라서 그 높이는 상당했다.연간 강우량이 겨우 16㎜의 초건조지역에 평균 기온이 섭씨38도 최고 기온이 49도나 된다.그래서 암석표면의 온도는 무려 80도를 넘는다.거기다 지층에 매장된 무진장의 석탄과 석탄에서 배출되는 가스로부터 폭발 연소도 적지 않다고 하니 「서유기」에 묘사한 대로 「화두 불길이 천길의 높이」란 형용도 결코 터무니 없는 말이 아니었다. 필자가 화염산을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은 지금부터 1천2백45년전인 기원749년,이곳에 당도했던 잠참의 「화산을 지나며」란 시에 잘 나타났다. 「화산금시견, 돌올포창동. 적염소로운, 염기증색공. 불지음양탄, 하독연차중? 아래엄동시, 산하다염풍. 인마주한류, 열지조화공」 (처음 만난 화염산은, 포창 동녘에 우뚝하여라. 화염은 오랑캐의 구름을 불지르고, 증기는 변방의 하늘을 찜질한다. 음양의 숯이, 어찌 여기서만 훨훨 타오르는가? 엄동설한에도 산밑엔 삼복의 열풍이. 사람도 말도 땀을 뻘뻘 흘리거늘, 누가 알랴? 자연의 조화를) 화염산 섭곡이 끝나는 승금구에서 312번 국도를 작별하고 좌회전하자 이윽고 빨간협곡이 열리면서 차는 화염산 북록을 휘돌았다.그 협곡의 정면에 보이는 둥근 모자모양의 홍산이 피라미드의 형세로 성큼 다가섰다.그것이 화염산의 주봉이었는데 주봉은 충격적 이라기보다 다소곳한 곡선으로 다만 풀 한 포기 없을 뿐 여느 동리앞을 지키는 안산의 크기였다.거기서 삼장의 길이 막히고 손오공이 파초의 부채로 재주를 부렸다는 곳이다. ○아래쪽 설수도 흘러 그 주봉아래로 기원6세기 고창왕국씨때부터 9세기까지 3세기에 걸쳐 위구르족들 왕가의 사원으로 건설한 석굴의 촌락 「베제크리크 천불동」이 있고 천불동아래로는 파란 설수가 콸콸 흐르는 목두구.그리고 천불동 입구 편편한 산기슭엔 최근 「서주천성원」이라는 작은 전시장을 개설 해 놓았다.그 안에는 「서유기」의 주연으로 삼장법사를 비롯,손오공·저팔계등을 조소한 외로도 「팔십일난」을 도해한 동굴,동굴밖 언덕위로는 잠참의 입상과 그의 대표작인 「화산운가송별」을 새긴 시비가 있었다.그 시비에 새겨진 첫 절은 이러했다. 「화산돌올적정구, 화산오월화운후. 수운만산응미개, 비조천리불감래」 화산이 우뚝 적정 어귀에 섰거늘, 오월이라 불꽃 구름 뭉게 뭉게. 불꽃 구름 엉긴 채 풀리지 않거늘, 천리길 나는 새도 얼씬할 수 없네) 필자가 찾은 때는 다행히 쾌청한 9월중순 이어서 인지 불꽃구름커녕 흰구름 한 조각도 보이지 않는 진하디 진한 쪽빛 하늘 뿐이었다.그 쪽빛에 적갈의 산빛,골짜기와 석굴,길가에 굴러가는 돌멩이조차 일색으로 빨갰다. 그런데 그토록 숨 막힌 빨간 모랫벌과협곡에도 서원의 의지는 굴을 파고 예술의 꽃을 피웠었다.바로 베제크리크 천불동이 그것이다. 화염산 주봉 동쪽 기슭엔 광장이 닦여 있었다.그 왼편엔 「서유기」의 일사삼도의 조상을 세웠는데 초입의 서주천성원에서 보았던 그것보다 규모가 큰데다 훨씬 정교하고 생동감이 있었다.그 바른편 계단으로 내려가면 황갈색의 가파른 벼랑이 무르토크강(목두구))을 굽어 보고 있었다.과연 「베제크리크」란 지명이 「산 허리」라는 위구르말을 딸만했다. 기록상으로 석굴의 수는 83개라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50여개이며 그중 벽화를 소유했던 것이 40여개요 벽화의 총면적은 1천2백㎡라고.그것들은 열차의 창을 방불케 일렬횡대로 늘어서 있었고,그 내부는 대체로 석굴의 길이 20m에 5m의 폭과 5m의 높이의 장방형,거기다 천장은 동그란 궁륭식이라 쿠차의 키질,돈황의 막고굴에 비해 훨씬 넓고 시원했다. ○일부 벽화 손실 아쉬워 기원6세기부터 13세기까지 지금 위구르족의 조선인 고창왕국씨들의 왕가 사원을 비롯,당시 불가의 승려·신도들의 승방,고승을 기리는은굴,혹은 그들이 좌선하던 비가라굴로 쓰였었다.당대의 문헌인 「서주도경」에 고창지역 불교의 승지로 소개한 「영융굴사」가 바로 베제크리크 천불동인 것이다. 여기 벽화는 비록 석가모니 전생의 사적을 선양하는 본생고사를 비롯,서원도·경변도·공양상·인연고사등 불가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거기에 등장하는 왕공 귀족과 공양 신도들의 복식·가옥·거마·기악등을 통해 당시 불교를 신앙하던 회골사람들의 생생한 생활과 문화를 볼수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했다. 특히 33호 석굴의 「왕자거애도」에 그려진 여러나라 왕자의 각기 다른 모습과 표정은 마치 오늘날 정상들의 모임을 발불케했고,39호 석굴의 커다란 공양 보살의 풍윤한 얼굴과 굵직한 청화의 무늬,그리고 31호 석굴의 설법도에 그려진 보살의 성장과 복식등은 생생한 역사와 문화가 묻혀 있음을 직감케 했다. 그러나 20호 석굴과 27호 석굴에서 만난 복사물의 대체와 훼손된 잔화를 대하면서 허탈과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특히 20호 석굴의 서원도,회골국왕과 왕후의 형상은 10세기 당시 회골국 복식을 알수있는 증거임에도 절취된 채 지금 영인된 사진만 걸려 있음은 27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필자가 참관한 9호,37호등 석굴에서도 불상의 눈이 뭉개지거나 벽면을 도려낸 칼날의 선이 남아 여기 저기서 수난의 흔적은 완연했다. 베제크리크의 수난은 크게 두번 있었다.13세기말,몽골의 말굽 아래 처음 망가졌고,그를 전후해서 이슬람교가 흥성하면서 불교의 석굴은 쇠락을 거듭하였다.또 한번은 금세기초인 1902년,독일의 그륀베델과 로코크 등이 네차례나 답사를 빙자한 예술품의 절취가 있었다. 그 속에는 20호,27호 석굴의 것 말고도 회골귀족과 몽골인들의 복식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공양도」와 회골문자가 들어 있는 「본생고사도」등이 절취당한 것은 통석할 일이다.더구나 그중 베를린 박물관으로 납치되었던 벽화 일부가 2차대전의 전화에 소실되었다니 서역의 찬란했던 회골문화의 운명도 꽤나 기구한 것이었다.
  • 국립대구박물관 개관/착공5년만에 준공… 3천여평 규모

    ◎금동관음보살입상 등 1,351점 전시 국립대구박물관(관장 김성구)이 착공 5년여만인 7일 대구시 수성구 황금동에서 준공 개관됐다. 문화체육부는 지난 89년부터 총 사업비 2백3억8천4백만원을 들여 3만5백81평의 대지에 연건평 3천여평의 지상 2층,지하 1층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준공하고 고고실,미술실,민속실,기획전시실등 4개실과 수장고,강당,시청각실,세미나실,도서실등 각종 부대 시설을 마무리 지었다. 8번째 국립박물관이 되는 대구박물관의 개관으로 대구·경북지역의 국공립대학박물관에 흩어져있던 국보 3점과 보물 32점을 비롯,1천3백51점의 각종 문화재와 그 모형이 4개의 전시실에 전시되게 됐다. 고고실에는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를 거쳐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이 지방의 문화 발전을 이해할 수 있는 5백16점의 전시품을 유적별로 구성했다. 미술실은 영남 사림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불교 공예품및 선비문화와 임진왜란관련 전시품 2백여점이 전시된다.불교 공예품으로는 국보 1백84호 금동관음보살입상,보물 3백25호 금동사리장엄구,금동용두,범종,선비문화로는 안향의 초상,길재의 야은집,이황의 유첩,강세황의 도산서원도 등이 전시된다. 또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석탑인 정솔사지 5층석탑,석불좌상등의 석조물로 박물관경내를 꾸며 야외공간도 문화 공간으로 꾸몄다. 한편 대구박물관은 대구가 조선시대 3대 약령시장중의 하나로 한국 의학발전의 근원이 되었던 지역임에 착안,각종 의약도구,서적,한약재등 2백53점을 한데 모은 「한국의약발달사」 개관기념 특별전을 기획전시실에 마련했다.
  • 군계장 거액세금 착복/적발하고도 고발안해/강원도 횡성군

    【횡성=조한종기자】 강원도 횡성군 세정계장이 거액의 취득세를 착복한 사실이 자체감사에서 적발됐는데도 이를 도에 보고하지 않고 사표만 받은채 마무리한 사건이 뒤늦게 밝혀졌다. 1일 횡성군에 따르면 군 세정계장 진상근씨(52·6급)가 지난해 9월 서원면의 W기업이 공장을 설립하자 취득세 5천4백80만원을 부과한뒤 4천9백만원만 받아 입금하고 나머지 5백80만원은 착복했다는 것이다. 횡성군은 인천시 세금횡령사건이 터진 직후인 지난 10월 자체감사에서 진계장의 세금횡령사실을 발견,착복세금만 환수조치한뒤 지난달 2일 사표를 받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하고 이를 도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이에대해 『진계장이 공무원생활을 25년동안 해 정상을 참작,형사고발 조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횡성군은 현재 내부의 특별감사를 받고있으며 진계장의 비위사실을 곧 사직당국에 고발조치할 방침이다.
  • 신민 싸움 2라운드/진경호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신민당이 「전당대회」의 적법시비에 이어 이른바 「당권 합의 각서」의 진위여부로 또다시 잡음을 내고 있다. 양순직 최고위원등 비주류쪽은 『합의각서에 김동길 대표가 서명을 했다』는 주장이고 김대표는 『안했다』고 맞서고 있다. 양최고위원쪽의 고소로 김대표의 명예훼손 혐의를 수사해 온 검찰은 지난 5일 각서의 김대표 서명이 친필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김대표에 대한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방침도 세웠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당사자들의 희비는 물론 엇갈리고 있다.양최고위원쪽은 『모든 것은 사필귀정』이라고 느긋해 하면서 김대표의 퇴진을 촉구하고 나섰다.『친필로 드러나면 도덕적 책임을 지고 정치를 떠나겠다』던 김대표의 공언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반면 김대표쪽은 검찰수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 문서가 조작된 것이라는 지금까지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검찰도 속일 만큼 정교한 조작이 가능하다는 데 대해 놀랄 뿐』이라는 것이 김대표가 7일 기자회견을 통해 한 말이다.도깨비에 홀린 느낌이라고도 했다.양심을 걸고 이 문서에 서명한 사실이 없으며 수사기관마저 진실을 밝히지 못하니 이런 상태에서 정계은퇴는 물론 대표직 사퇴도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재미있는 것은 김대표쪽이 합의각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데 있다.지난 3월 12일 충북 괴산군 고사리마을의 금란서원에서 김동길 양순직 임춘원 한영수의원등 4명이 「당대표는 양순직,대선후보는 김동길로 한다」는 각서에 서명한 사실은 있다는 것이다.문제는 양최고위원이 검찰에 낸 각서가 이것과 다르다는 것.당권·대권분리를 포함해 5개항으로 된 3월 8일자의 이 각서는 『본 적도,서명한 적도 없는 명백히 위조된 것』이라는 주장이다.따라서 허위각서를 만든 양최고위원을 사문서 위조혐의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정말 회견에서의 표정대로 억울한 지 모른다.아니면 억울한 표정으로 양심을 담보로 한 거짓을 감추고 있는 지도 모른다.반대로 양최고위원이 각서를 조작했는지도 모를 일이다.모든 것은 재판을 통해 가려질 문제다.다만 분명한 사실은 신민당은 지금 스스로 정치적 무덤을 파고있다는 것과 이를 아쉬워하는 국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 관광산업 육성(하남성이 움직인다:4)

    ◎“성전체가 유적”… 북송왕궁 복원 한창/위락시설 개발붐… 외자유치 열올려/석본·당삼채등 문화 상품화… 전통오페라 「상극」 보급도 힘써 요동치는 황금빛 용처럼 하남의 북부를 흐르는 황하.서해로 향한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면 개봉·정주·낙양등 역사의 고도들이 나오고 삼국시대의 격전장이던 첩첩산중의 낮은 구릉지대가 펼쳐진다. 용문석굴·상대국사·소림사·숭산서원·중악묘등 중국역사의 이정표라 할 만한 고적들이 하남의 북쪽,황하주변을 따라 펼쳐져 있다.「중국의 역사박물관」이란 호칭에 걸맞게 성전체가 문화유적지다.중국의 역사유물중 8분의 1에 해당하는 1천3백만건과 전체 탑가운데 6분의 1쯤인 5백30여개가 이곳에 있다. ○탑 5백30여개 산재 「하남의 땅속엔 지하자원과 함께 역사자원도 있다」는 말처럼 중앙정부의 내륙지역 경제개발 추진정책이 세워진 이후 지난 2년여동안 하남성 정부도 문화유적을 경제발전의 중요 수단으로 생각하게 됐다.관광을 지역의 주력산업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특히 소림사,도교의 성지인 중악묘,관우의 사당인 관림,중국최초의 사찰인 백마사등으로 둘러싸여 있는 낙양시는 고신기술개발구에 대한 외국의 투자유치와 함께 관광산업육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지난 92년초 성도인 정주가 개방구로 지정되고 내륙에 대한 외국투자가 밀려들면서 성 정부도 관광산업개발에 열성적이다.최근에는 기업에 대한 합작투자에 이어 위락시설개발을 위한 외국자본의 유입이 늘고 있다. 낙양시 남부,루오난 지역에 대한 필리핀 국적의 화교재벌 정주민씨의 20㎦규모의 상업위락지구 개발 프로젝트도 외국투자의 대표적인 예의 하나.낙양에 별세개 짜리 호텔을 갖고 있는 홍콩의 중성집단도 시 주변에 놀이동산과 골프코스,숙박시설등이 결합된 관광단지개발을 모색하고 있다. 낙양시의 장세군시장은 『시와 성정부차원에서 관광시설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며 『부동산개발과 숙박시설의 확충,지역특산물등 관광상품의 개발,대규모 골프코스의 건설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골프장건설 구체화 장시장은 『시정부의 골프코스개발에 찬반양론이 있지만 경제발전에 따라 7∼8년후면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해외관광객을 끌기 위해서도 아시아 최대규모의 골프코스개발을 구체화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이와는 별도로 시정부는 97년초까지 조우산 부근의 골프장과 별다섯짜리 호텔 개장을 계획하고 있다. 하남성 인민대외우호협회 방홍연부회장은 『이러한 사업들을 위해 한국기업등 외국기업의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낙양시 대외문화교류협회 왕국평이사장도 『관광을 비롯,문화적인 교류확대를 위해 낙양시와 한국의 도시들과 자매결연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벽 14㎞ 내년 완공 이런 개발열기는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낙양을 비롯,개봉·정주·삼문협·안양 등 하남의 도시들에서는 유적의 복원작업이 한창이다.그중에는 단순한 보수작업도 있지만 개봉의 북송왕궁 같은 없어진 유적의 복원작업도 적지않다. 내년말 끝나는 왕궁복원사업중 성벽되살리기 작업으로 2㎞만 더 쌓으면 전장 14.4㎞의 원래 성의 모습을 되찾는다.개봉시는 또 시외각에 영화촬영소와 관광지로 쓰일 2만8천3백㏊ 규모의 동경문화영시성이란 북송시대의 궁궐과 거리,민가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개봉 남쪽 20㎞ 밖의 악비(남송 때의 장군) 사당도 보수작업이 한창이다. 하남성의 주요도시들은 어김없이 도시 축제기간을 갖고 있고 이 기간에 지역의 경제개발구에 대한 투자유치회가 열린다.매년 4월 낙양의 도시축제인 목단제와 개봉의 10월 국화제,삼문협의 황하제,정주의 도시축제의 프로그램에 빠짐없이 외국기업 투자유치회가 들어있다.매년 봄 소림사에서 열리는 세계무술경연대회의 프로그램에도 외국기업인을 위한 투자상담회가 열린다.모든 기회를 사업과 연결하는 중국인들의 주도면밀한 상술을 볼 수 있다. ○“투자없이 돈못번다” 뒤늦게 관광산업에 뛰어든 하남의 각 시정부는 문화상품개발과 지역의 대표성있는 상표개발에도 눈을 뜨고 있다.낙양의 황·녹·백색을 기본채색으로 고령토를 구워 만드는 당삼채를 비롯,삼문협의 옥으로 만든 장신구,그림과 서예작품·수예품·공예품등이 외국인들에게 높은 값으로 팔린다.최근 북경의 경극과 유사한 하남성의 전통 오페라 예극의 보급과 교육을 강조하는 것도 지역 문화의 특색을 나타내 보이기 한 것이다. 중국고대의 묘비를 모아놓은 낙양시 신안현의 천당지제박물관은 외국관광객에게 묘비의 탁본을 중국인의 한달월급에서 석달월급에 해당하는 5백위안에서 1천5백위안에까지 팔고 있다.종이한장에 먹물 몇방울로 근로자들 몇달 노동의 부가가치를 얻어내는 것이다. ○교통발달… 앞날 밝아 역사적 인물발굴과 관련된 관광코스의 개발도 활발하다.역사를 세일즈의 품목으로 삼고 있다.정주시산하 등봉 여유국(관광국)의 곽범죽부국장은 큰 투자없이 현금을 바로 얻을 수 있는 관광산업은 자금여력이 부족한 중국 내륙지방개발의 커다란 추진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직 하남성을 통틀어도 별 다섯짜리 호텔이 하나도 없고 관광부문의 외화획득액이 20개성중 15위밖이지만 하남인들은 이곳의 경제개발과 관광의 미래를 밝게 내다본다.중국의 가운데지역,중원이라는 이름처럼 지리적 조건에다 잘 발달된 철도교통,특히 최근 내륙개발을 위한 도로등 사회간접시설 확충은 관광 및 산업전반의 비약을 약속하고 있다. 하남인들은 21세기에는 하남이 이탈리아나 프랑스처럼 외국여행객들이 꾸역꾸역 밀려드는 관광보고가 되리라는 기대감에 젖어있다.
  • 마쓰시타 정경숙/박정호 일본주재 문화원장(굄돌)

    일본인들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진 마쓰시타정경숙(정경숙)에서 숙생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되어 방문하게 되었다. 도쿄에서 약50분 걸리는 교외에 위치한 마쓰시타정경숙은 6천여평의 터에 아담하고 안온한 분위기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도산서원과 같은 발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쓰시타정경숙은 21세기의 일본을 이끌어 갈 정치가와 경영자를 키워나가는 것이 목표. 15년전인 79년 6월,일본의 유명한 기업가 마쓰시타 고노스케(송하 행지조)씨가 70억엔의 사재를 털어 세운 사설 교육기관이다.지금까지 1백49명이 졸업했는데 이중 국회의원 15명,지방의회의원 15명,지방자치단체장 1명등 유수한 정치가를 배출해왔으며 이밖에 언론계에 9명,연구기관에 6명등이 포진되어 있다. 1년에 10명 안팎을 뽑는데 경쟁률도 치열해서 올해의 경우 60대1이 넘었다고 한다.일단 합격하면 1년간은 의무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최고 5년까지 숙생자격으로 연수자금(1년생은 17만엔)을 받아가며 자신이 정한 테마의 연구를 계속하게 된다. 전임교수나 고정 강의진은 없으며 「자수자득」­스스로 연구해서 스스로 깨우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이미 고인이 된 마쓰시타씨는 일본의 유명한 검성 미야모토무사시(궁본무장)의 예를 들어가며 한 분야의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여 이루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재 숙생은 1∼5년차에 걸쳐 모두 16명.이에 비해 상근직원이 26명(재단임원 61명)으로 이 재단이 인재양성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졸업후 학위도 주지 않고 취직알선조차 해주지 않는데도 이처럼 인기가 높은 까닭은 많은 선배들이 숙에서 배운 경험을 되살려 이미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듯 일종의 엘리트 코스이기 때문인 듯 하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정경유착」의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이들 숙생들이 9월25일부터 10월14일까지 3주간에 걸쳐 한국을 연수·방문했다.일본의 젊은 엘리트그룹이 한국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한다는 의미에서 눈여겨 볼 일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의 기업들도 최근들어 장학및 복지재단,의료지원,메세나(문화예술지원)활동등 여러분야에서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제 시야를 더욱 넓혀 아직도 GNP대비 2%대에 머물고 있는 연구개발비 투자를 선진국 수준으로 늘려나가는 한편 순수한 목표아래 인재양성에 힘을 기울이는 것 또한 국가장래를 위한 확실한 투자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 스포츠와 정치/고두현 체육부 국장급기자(오늘의 눈)

    이번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의 슬로건은 「아시아의 화합」이다.그러나 아마드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회장이 대만의 서립덕행정원 부원장을 스포츠관계자의 자격으로 대회에 초청한데 대해 중국이 반발함으로써 중국과 대만사이에 긴장감이 빚어지고 개최국인 일본은 난처한 입장에 몰리는등 대회슬로건을 퇴색시키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OCA가 대만의 이등휘총통에게 보낸 한장의 초청장. 지난 6월 대만을 방문했던 아마드 회장은 평소 개인적으로 친했던 이총통을 이번 대회에 초청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대만쪽에서 먼저 요청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돌고있다. 이쨌든 OCA가 이총통을 초청하자 「이총통의 일본초청은 두개의 중국을 국제사회에 인정시키려는 책략」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한 중국이 「대회보이콧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애꿎은 개최국 일본은 새파랗게 질렸다. 중국의 불참으로 이번 대회가 망가질 경우 쏟아지게 될 비난을 고려해서인지 결국 이총통 스스로 히로시마에 가지않겠다고 밝히고 중국이 보이콧을 철회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 된듯 싶었다. 그러나 이총통의 「대타」처럼 서부원장이 2002년 아시안게임의 대만유치책임자 자격으로 OCA의 초청을 받아 히로시마에 오게되자 중국은 또다시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일본은 『동아시아의 일본 중국 대만을 둘러싼 델리케이트한 정치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아마드 회장이 주책없이 서원장을 초청해 우리 입장만 어렵게 만들었다』고 심히 못마땅한 표정이다. 이 문제로 말미암아 대만이 「앞으로 중국과의 체육교류를 재고해야겠다」고 반격한 반면 중국은 「주권국가가 아닌 대만의 2002년 아시안게임 개최에는 반대」라고 맞받아친다. 중국과 대만이 거의 정부차원에서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견주어 두나라의 선수와 보도진은 화기애애한 가운데 동족애를 다지고 있어 매우 대조적이다. 개회식에서 대만이 입장했을 때는 중국과 대만의 양쪽 보도진석에서 일제히 박수가 일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했다. 선수촌에서 두나라 선수들은 부드러운 분위기속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고 저녁식사가 끝난뒤에는 가라오케룸에서 서로 목청을 뽑아가며 노래자랑을 즐기고 있기도 하다. 수영장의 기자실에서는 대만기자에게 중국기자가 중국선수의 기록스크랩을 빌려주는 보기좋은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어느 누구도 스포츠와 정치를 분리시킬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포츠의 현장에서 늘 정치를 배제시킨 인간끼리의 사귐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대형건물 미술장식 「권고사항」 무시/시도,강제 설치 유도

    ◎기업활동규제심의위서 위법 밝혀/“과도한 규제 폐지하라” 권고 건축물의 미술장식품 설치가 건축법상 「권고규정」임에도 서울시가 각 구청의 조례에서 「강제규정」으로 운용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기업활동규제 심의위원회(위원장 서원우 서울법대 교수)는 30일 상공자원부에서 열린 제3차 회의에서 서울시가 각 구청의 조례로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에 강제적으로 설치토록 한 미술 장식품의 설치규정은 건축법 시행령의 권고규정에 어긋나는,건축주에 부담을 주는 과도한 규제라며 이를 폐지토록 권고할 것을 의결했다. 현행 건축법 시행령은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서울시의 경우 11층 이상 또는 연면적 1만㎡ 이상)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정하는 건축조례에 따라 미술장식품의 설치를 권장하고 있으나 서울시 각 구청의조례는 일률적으로 총 건축 공사비의 1천분의5∼1백분의1 이상에 해당하는 미술장식품의 설치를 건축허가 요건으로 정해 강제성을 띠고 있다. 위원회는 따라서 미술장식품의 설치를 강요하는,법적근거 없는 조례상의 제한(건축위원회심의 등)과 지침상의 제한(한국미술협회와 가격협의,건축허가 요건)을 건축법의 권장취지에 맞춰 폐지하도록 권고하고 미술장식품의 가격에도 문제가 있다며 이를 낮추도록 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미술장식품의 설치가 92년 5월이후 권고규정으로 바뀌었음에도 서울시가 강제규정으로 그대로 운용해 왔다』며 『대부분의 다른 시·도도 서울시와 비슷하게 강제규정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파악돼 같은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위원회는 또 바닥면적 합계의 50% 미만으로 규제하는 건축물 부속용도의 비율을 없애 공장내 창고 등의 증축을 쉽게 했으며,건강진단 실시계획서의 제출의무도 폐지,사업주가 자율적으로 실시 시기를 선택하도록 했다. 이밖에 창업사업 계획을 승인받은 뒤 공장설립을 완료해야 하는 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등 총 27건의 규제완화 과제를 심의,의결했다.
  • 일,“한·중·러와 합훈 용의”/통합막료의장 밝혀

    【도쿄 연합】 일본 육·해·공 3자위대의 총수인 니시모토 데쓰야(서원철야)통합막료회의의장은 28일 하오 『일본자위대는 장차 한국을 비롯,중국·러시아군대와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문제도 시야에 두는 등 아시아제국 군대와의 신뢰양성을 도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니시모토의장은 이날 도쿄시내 제국호텔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아시아지역의 평화·안정을 위해서는 주변제국과의 신뢰관계를 고양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해 관계 각국과 군사교류를 적극화해나갈 방침임을 강조했다.
  • 택시기사 무자격자 마구 고용/대학생등이 몰아 사고위험

    ◎도급제 계약… 과속·합승행위 부추겨/사고땐 보험처리 안돼 승객 피해 택시기사 구인난에 시달리는 일부 택시업체들이 운전경험이 부족한 아르바이트학생이나 자가용운전자등을 시간제등으로 불법으로 고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교통사고를 부채질한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특히 이같은 회사는 임시고용기사에게 일정액의 급여대신 사납금을 지정해주고 나머지를 챙기도록하는 도급제형식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어 과속운행등의 위험과 합승강요등의 서비스부재를 부추키고 있다. 또 대부분의 회사들이 시내지리및 교통법규등에대한 시험을 거쳐 취득하는 자격증없이 불법으로 취업하는 임시고용기사와 계약을 체결할때 『사고시에는 본인이 책임을 지도록 한다』고 계약을 맺어 이들로부터 사고를 당할 경우 보험처리도 되지않는등 보상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지난달 1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사거리에서 아르바이트로 서원택시소속 서울 1사 4683호 스텔라택시를 몰던 강성진씨(29·J대 영문과4년)가 운전미숙으로 앞서가던 인천 5너 2841호 그레이스승합차를 들이 받아 승합차 운전사 최모씨등 5명이 부상했다. 사고가 나자 택시회사 공제회에서 일정액의 보상금을 지급했으나 피해자들의 치료비에는 턱없이 부족해 강씨의 가족들이 3백여만원을 보태 병원비를 충당다. 2백명의 택시기사를 데리고 있는 D택시업체의 한 관계자는 『주말에는 택시기사 가운데 10%정도는 일반자가용기사나 대학생들을 파트타임제로 채용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택시기사 구인난을 해소하기위해 울며겨자먹기로 서울시내 상당수의 회사가 아르바이트기사를 고용하고 있는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임승운교육선전국 부장(39)은 『불법영업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택시운전자격증을 제도적으로 강화하고 택시업체들을 감시할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이보다는 운전경력이나 자격유무등도 따지지않고 아르바이트기사를 마구잡이로 고용하는 택시업체들의 삐뚤어진 기업의식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 바탕골 예술관,전통춤 보존무대/이수자들 대거 참여

    우리 전통무용의 멋과 흥을 만끽할 수 있는 조촐한 춤판이 서울 동숭동 바탕골소극장에서 펼쳐진다. 소극장무용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온 바탕골예술관이 29일(하오8시),30일(하오5시·8시) 올리는 「바탕·춤 본향」.전통춤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무대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이매방류 승무 이수자인 이노연씨(이화여대 강사)를 비롯,도살풀이 전수조교인 김운선·강선영류 태평무 이수자인 윤덕경(서원대 교수)·이매방류 살풀이춤 이수자인 박숙자씨(서울예전 교수)등 중요무형문화재 이수자와 전수조교들이 출연,우리춤의 진수를 선보인다. 이노연씨가 추어 보일 승무는 우리의 전통적인 홀춤 가운데 가장 정제된 춤으로 친친 휘감기는 긴 장삼소매는 자유와 구원을 상징한다.민속무용의 모든 춤사위가 포함돼 있으며 장단이 바뀌면서 각기 다른 춤사위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기승전결의 극적인 감흥이 고조돼 가는 것이 특징.이씨가 선보일 춤은 호남형의 이매방류 승무로 향토적인 질박함이 돋보인다. 고 김숙자 선생의 외동딸인 김운선씨가 추어낼 도살풀이춤은 도당살풀이춤의 준말.살풀이춤의 원형으로 긴 수건을 공간에 드리우며 그려내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같다.수벽치기자세와도 같은 반만 굽힌 앉음새와 유난히 긴 명주수건의 현란한 놀림,맺고 끊는 춤사위 등이 진중하고 엄숙한 느낌을 자아낸다. 윤덕경씨의 태평무는 경기도당굿의 왕거리가 그 모체.풍년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기교위주의 공연용 춤으로 경쾌하면서도 절도있고 섬세한 발디딤새가 특징이다.이번에 올릴 작품은 한성준 옹의 태평무를 무속장단에 맞춰 강선영씨 특유의 춤사위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선보일 박숙자씨의 이매방류의 살풀이춤은 남도무악 장단에 맞추어 추는 무속춤의 하나로 삶과 죽음,환희와 고통이 교차되는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춤사위가 「정중동의 미」의 극치를 이룬다.
  • 김일성회고록 출판/「가서원」 대표 구속

    김일성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작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20일 문제의 회고록을 출판하려한 도서출판 「가서원」 대표 이희건씨(33·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241 주택아파트 13동 1501호)를 철야조사한 결과,이씨가 일본어판 김일성회고록을 번역,출판하려한 사실을 밝혀내고 이씨를 국가보안법위반(이적표현물 제작)혐의로 구속했다.
  • 김일성회고록 출판/추진서 미수까지

    ◎남북화해무드 틈타 “한몫” 욕심/일어판 번역 하려다 김 사망으로 “물거품” 김일성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출판하려다 국가보안법위반(이적표현물제작)혐의로 구속된 도서출판 가서원 대표 이희건씨(33)가 이 책을 출판하려 한 동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그는 경찰에서 『남북화해무드국면에 편승,관심을 끌었던 김일성의 일대기를 출판해 한몫 챙기겠다는 상업적 타산이 동기였다』고 밝히고 있다. 91년 5월 출판한 「컴퓨터는 깡통이다」의 판매부수가 60만부를 육박,불티나게 팔리면서 창업 1년만에 월매출액 1억여원이라는 기록을 세운 이씨가 이번에도 학생층과 젊은 샐러리맨들에게 남북관련 출판물이 많이 팔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무리하게 1만5천부나 제작을 의뢰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90년 3월 도서출판 가서원을 설립한 이씨는 그동안 「한국의 민간요법」「컴퓨터는 깡통이다」「약사는 약을 안먹어요」등 생활과 건강을 위주로 한 도서출판으로 톡톡히 재미를 봐 주위로부터 성공했다는 평가도 받았으나 참고서전문출판소인 「가서원교육연구소」를 따로 설립하는등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자금난에 시달려왔다. 실제로 이씨는 지난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1999 한일전쟁」「치카치카맘보」시리즈등의 서적이 잘 팔리지 않자 기발한 서적출판을 통해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출판사재정상태를 만회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김일성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출판하게 된 동기는 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성균관대 이모교수가 그해 모월간지 7월호에 기고한 「김일성회고록의 진실과 허구」를 읽고 김일성과 관련된 책을 출판하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그러다 지난 3월 일본고등학교 수학참고서를 구하기 위해 일본에 간 이씨는 일본어판으로 된 문제의 책자 1·2·3권을 구해 귀국하면서 직접 갖고왔다. 이어 일본어판 번역작업을 추진하던 이씨는 우연히 연세대앞의 한 서점에서 오름출판사가 발행한 「참된 봄을 부르며」라는 김일성의 일대기 내용을 담은 책자를 발견하고는 이 책과 일본어판내용을 비교하면서 「세기와 더불어」의 출판을 준비해 왔다. 그러나 92년 7월 출판을 결정한 이래 이씨는 서너차례 출판시기가 적절치 않다고 판단,출판기회를 미뤄 왔다.그러다 올 6월 남북정상회담발표와 함께 남북화해무드가 고조되자 「때가 왔다」고 판단한 이씨가 과감하게 출판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실시된 경찰의 「가서원」압수수색이후 역전이나 여관등을 전전하다 행방을 감춘지 10일만에 자수한 이씨는 결국 남북화해무드속에 김일성을 통해 한몫 챙기려다 김일성의 사망과 함께 다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영어의 몸이 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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