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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 병산서원 ‘부시효과’

    ‘병산서원에 가보셨나요.’ 관광 비수기인 겨울철임에도 불구하고 경북 안동 병산서원에는 요즘 방문객들이 줄을 잇는 등 새로운 관광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병산서원은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건축으로 한국건축사의 백미”라고 칭송한 건축물. 겨울철에 접어든 요즘에도 병산서원에는 주말의 경우 하루 1000명 가까이 방문객이 몰려 서원 입구까지 2.8㎞의 비포장 길은 뽀얀 먼지가 가라앉을 틈이 없을 정도다. 주중에도 100명 이상씩 서원을 찾는다. 대부분 건축을 공부하는 대학생이나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다. 병산서원에는 올해 1월부터 11월 말까지 13만 7000여명이 다녀갔다. 인근 하회마을에 한 해 70만명이 다녀가는 것을 감안하면 명성에 비해 결코 손색이 없다. 고려시대 풍악서당에서 출발해 1572년 지금의 자리에 들어선 병산서원은 서애 유성룡과 그의 셋째아들 유진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유성룡의 문집을 비롯해 각종 문헌 1000여종 3000여책이 소장돼 있다. 넓은 백사장과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앞마당으로 삼고 있는 덕분에 수년 전부터 역사미술학자와 TV 드라마 촬영팀의 발길을 끌어들였고 차츰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내외가 방문해 소나무 한 그루를 심고 가기도 했으며 그 이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더 잦아졌다.안동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소백산 옥녀봉에 스키장 영주시 민간자본 유치 조성

    경북 영주 소백산 옥녀봉 일대에 스키장이 조성 된다.2일 영주시에 따르면 봉현면 두산리 옥녀봉 30여만평에 민간자본을 유치해 슬로프 5면, 리프트 4기 등 시설을 갖춘 스키장을 조성키로 하고 이날 현장 설명회를 가졌다. 옥녀봉은 동절기(12∼2월) 평균기온이 0.68도, 강수량이 29.6㎜, 최대 적설량이 4.17㎝로 스키장의 입지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더구나 전체 부지의 57%를 차지하는 사유지 매입도 주민들의 반대가 적어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업비는 모두 870억원 정도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영주시는 세금 감면과 기반시설 지원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할 방침이다.이날 설명회에는 국내 20여개 업체 관계자가 참여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사업신청은 이달 말까지이다. 영주시 관계자는 “스키장과 골프장 조성 예정지는 소백산 국립공원과 부석사, 소수서원 등과 가까워 관광유발 효과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특히 이 지역을 충북 단양팔경, 강원 영월관광단지 등과 연계해 관광벨트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영주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양그룹-창업주 故 이양구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양그룹-창업주 故 이양구회장家

    동양은 국내 재벌가(家)에서 최초로 사위가 승계한 그룹이다. 동양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이 1945년 북에서 혈혈단신으로 월남한데다 이관희(76)여사 사이에 딸만 둘을 둔 것과 무관치 않다. 이 창업주의 차녀인 화경(49)씨가 일찍이 경영에 참여해 현재 오리온 사장직을 맡고 있지만 동양의 ‘경영 대권’은 맏사위인 현재현(56) 동양 회장과 둘째 사위인 담철곤(50) 오리온 회장에게 돌아갔다. 가족 구성원이 단출한 만큼 이 창업주가(家)의 혼맥도는 정·관·재계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린 국내 여느 재벌가와 달리 단순하다. 또 이 창업주가 딸들의 통혼을 통해 사돈가(家)의 후광을 기대하기보다 자신의 유업을 이어갈 사위들의 ‘사람 됨됨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도 혼맥의 단순함을 더했다. 특히 오리온 담 회장의 집안이 화교 출신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설탕왕·시멘트왕’ 이양구 창업주 동양 창업주인 서남(瑞南) 이양구 회장은 1916년 함경남도 함주군의 작은 농가에서 부친 이교흠(작고)씨와 모친 김성자(작고)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이 25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면서 서남의 어린 시절은 힘겨운 생활로 점철됐다.15세의 늦은 나이에 보통학교 졸업장을 받은 서남은 상급학교 진학 대신 ‘함흥물산’이라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식료품 도매상에 취직했다. 서남은 훗날 이곳에서 ‘정직과 신용’이라는 상도를 배웠다고 밝혔다. 8년간 악착같이 돈을 모은 서남은 1938년 식품도매상인 ‘대양공사’를 시작으로 6·25전까지 수차례의 회사를 세우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그때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고향에 수십만평의 토지와 1억원에 가까운 거금도 삼팔선과 전쟁으로 잃었다. 그러나 그는 부산에서 설탕도매업을 기반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전시의 특수 경기와 생필품 부족이 거꾸로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서남은 부산과 마산, 대구 등에서 이른바 ‘설탕왕’으로 불렸다. 서남은 당시 국내 유일하게 설탕을 생산했던 고 이병철 삼성 회장, 고 조홍제 효성 창업주와 가까운 사이였다. 서남은 1955년 삼성 이 창업주와 풍국제과의 배동환씨 3인의 공동 출자로 동양제당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으며, 풍국제과의 경영에도 참여해 오늘날 오리온(옛 동양제과)의 기틀을 다졌다. 또 동양제당이 국내 최고의 역사를 지닌 삼척시멘트를 인수하면서 서남은 자연스럽게 시멘트 사업에 진출하게 됐다. 서남은 1957년 삼척시멘트를 동양시멘트공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 뒤, 노후시설 교체와 증산을 통해 한때 시멘트 왕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 경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신규 업체의 대거 진입으로 시멘트가 남아돌았고, 정부의 금융 긴축정책으로 동양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서남이 훗날 ‘운명의 날’이라고 밝혔던 1971년 9월10일 법원에 회사보전신청을 제출해 세인으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채에도 불구하고 동양은 살아났다. 정부의 사채동결조치가 사실상 동양의 구명줄이었으며, 평상시 쌓아온 정직과 신용도 큰 도움이 됐다. ●운명적인 만남 서남과 이관희 여사의 인연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6·25가 이들을 만나게 하고, 또 헤어지게 만들었지만 결국은 거제도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게 했다. 6·25 발발로 3년 5개월만에 공군 소속으로 귀향한 서남은 모친의 부탁에 이관희씨와 약혼했다. 그의 나이 34세였다. 관희씨는 당시 함흥의 명문인 영생고녀(永生高女)를 나와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군의 전쟁 개입으로 두 사람은 결혼식도 못올리고 생이별을 하게 됐다. 부산으로 내려온 서남은 가족 소식을 알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다가 뒤늦게 피란선을 타고 월남해 거제도에 머물던 관희씨와 극적으로 만났다. 이 여사는 현재 서남재단 이사장으로 남편의 유업을 기리고 있다. 서남과 이 여사는 슬하에 장녀 혜경(53)씨와 차녀 화경씨 등 2녀를 뒀다. 이화여대 미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혜경씨는 평소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던 고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의 중매로 1976년 현재현 회장과 결혼했다. 현 회장은 당시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중이었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대학 3학년 때 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혜경씨는 현재 전공을 살려 동양매직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 회장의 집안은 전형적인 선비 가문이다. 고려대 초대 총장을 지내고 ‘유학계의 마지막 거두’로 알려진 고 현상윤 총장이 그의 조부이며, 이화여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고 현인섭씨가 그의 부친이다. 그는 고 현 교수의 3남2녀 가운데 셋째다. 첫째는 고려대 대학원장인 현재천(61)씨이며, 둘째는 현재민(59) KAIST 교수, 장녀는 현재희(51) 세종대 교수, 차녀는 현재란(49) 의사로 현재 이화의원 원장이다. 현 회장과 이 고문은 ‘정담(28·여)-승담(25·남)-경담(23)-행담(18)’ 등 1남3녀를 두고 있다.2세 모두 미국 스탠퍼드대를 다녀 현 회장과 동문이다. 첫째인 정담씨는 스탠퍼드대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을 복수로 전공한 뒤 지금은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장남 승담씨는 컴퓨터 사이언스와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차녀 경담씨는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있다. 막내딸 행담씨는 스탠퍼드대 교양학부 1학년에 재학중이다. 서남의 둘째 딸 화경씨는 이화여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1980년 뜨거운 열애끝에 담철곤 회장과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담 회장의 선친은 대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했으며, 타이완 국적으로는 한의원 경영이 쉽지 않아 일찍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화경씨와 담 회장은 슬하에 경선(20)씨와 서원(16·남) 1남1녀를 뒀다. 경선씨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서원군은 국내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서남가(家)의 혼맥은 이처럼 단순하지만 그나마 현 회장 집안을 통해 정·재계에 인연이 이어진다. 현 회장의 조부인 현상윤 전 총장은 6∼8대 국회의원이었던 김봉환 전 국회법사위 위원장과 사돈지간이다. 김 전 법사위원장은 손경식 CJ 회장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잉꼬 부부 이 고문과 현 회장은 중매로 만났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애틋하고 각별하다. 결혼 이후 경영수업을 위해 미국 스탠퍼드대에 홀로 유학한 현 회장은 이 고문에게 자주 편지를 보냈고, 편지 첫 머리에 늘 ‘사랑하는 당신’이라고 적었다. 담 회장과 이 사장은 서로가 첫 사랑이다. 대구에서 서울로 유학온 담 회장은 중학교 3학년 때 이 사장을 같은 반 친구로 처음 만났다. 이 때부터 서로에게 끌린 두 사람은 10년 이상 연애했다. 담 회장이 미국 조지워싱턴대로 유학간 4년이 유일하게 떨어진 시간이었다. 이 때도 두 사람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수백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하루가 멀다하고 비싼 국제전화를 하는 탓에 꾸중도 많이 들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친구에서 연인, 다시 부부로 인연이 이어지기까지 두 사람은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오랜 만남을 지속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막상 결혼때는 집안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담 회장과 이 사장은 국내 재계에서 보기 드문 ‘부부 CEO(최고경영자)’다. 담 회장은 현재 이 사장이 총괄경영을 맡고 있는 오리온의 엔터테인먼트사업 아이디어를 추진한 주역이다. 이 사장은 “나는 다소 감성적인 반면 담 회장은 실용적이어서 상호 보완이 된다.”면서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 이제는 이 세상에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시에 더없이 훌륭한 사업 파트너”라고 곧잘 언급한다. ●혹독한 경영 수업 서남은 사위들을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더 철저하게, 더 강하게 경영 수업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내 딸, 내 사위라고 해서 특혜는 없다.”는 것이 서남의 ‘후계자론’이다. 현 회장은 75년 부산지검 검사로 입문한 뒤 결혼과 함께 경영자로 변신했다. 그는 7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재계의 첫 발을 내디뎠고, 초고속 승진을 통해 동양의 후계자로 대내외에 알려졌다. 그러나 후계자의 길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이 창업주는 타계하는 날까지 두 사위와 작은 딸에게 이론과 실전으로 혹독한 경영자 수업을 시켰다. 현 회장은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금융을 전공한 이후, 이 창업주로부터 직접 경영수업을 받았다. 낮에는 현장을 같이 누비며 실전과도 같은 수업을 받았고, 밤에는 새벽까지 수십년동안 쌓아온 이 창업주의 경영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이 창업주의 경영수업은 이틀 정도 잠을 안재우는 일이 허다할 정도로 강도가 높았다. 이화경 사장은 동양제과(현 오리온)에서 인턴사원으로 일을 시작했으며, 담철곤 회장도 유학을 마친 후 동양시멘트 구매부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 창업주는 ‘경영자가 되려면 기본부터 충실해야 한다.’며 두 사람 모두 구매부로 발령냈다. 이후 이 사장은 영업부를 제외한 각 부서를 돌며 업무를 익혔다. 특히 마케팅담당 시절엔 획기적이고 신선한 광고로 광고담당자들을 놀라게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초코파이의 ‘정(情) 시리즈’ 광고다. 그는 입사 26년만에 오리온그룹의 외식과 엔터테인먼트사업을 담당하는 CEO에 올랐다. 이 사장은 최근 경제전문지 포브스코리아가 발표한 한국의 여성부호 50인 가운데 8위(1652억원)에 올랐다. 담 회장도 81년부터 동양제과로 자리를 옮겨 구매부장과 사업, 관리, 영업 상무 등을 거치며 89년 동양제과 CEO에 올랐다. ●동양·오리온의 분가 이 창업주가 1989년 타계한 이후 동양의 경영권은 가족간 협의를 통해 맏사위인 현 회장이 승계했고, 둘째 사위인 담 회장은 동양제과를 맡았다. 현 회장과 담 회장은 13년간 각각 시멘트·금융, 제과·엔터테인먼트 등의 사업영역에서 독자 경영을 해왔다. 이 때문에 사위간에 기업 분할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여기에 동양제과가 영상미디어 분야에 투자와 외자유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30대 기업집단으로 제한을 많이 받아 계열분리가 빨라졌다. 동양제과는 2001년 9월1일 동양에서 분가했다. 동양그룹 32개 계열사 가운데 제과와 엔터테인먼트 계열의 16개사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러나 동양과 오리온(옛 동양제과)은 여전히 그룹 CI(기업이미지)를 함께 사용할 정도로 뿌리에 대한 깊은 유대감을 이어가고 있다. 현 회장은 “동양과 오리온의 분가는 미래 지향적인 경영을 위해서이며,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그룹이 한국경제의 거목으로 성장하기 위해 가지를 펼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계열분리 이후 동양은 금융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은 증권·종금·투신업을 아우르는 종합금융사로 거듭났으며, 동양생명은 6년 연속 흑자를 내고 있다. 동양은 현재 제조업 6개사, 금융 7개사로 총자산은 15조원 수준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4조 300억원을 기록했다. 오리온그룹은 케이블 방송과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집중해 계열사를 26개사로 늘렸다. 지난해 매출액 1조 5300억원을 올렸다. 특히 미디어플렉스의 극장사업체인 메가박스는 전국에 117개 스크린을 확보하며 최고의 영화관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영화투자 배급사인 쇼박스는 ‘말아톤’과 ‘웰컴투 동막골’,‘가문의 위기’ 등을 잇달아 흥행시켜 설립 3년만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여기에 베니건스를 중심으로 한 외식사업과 편의점 사업체인 바이더웨이 등도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동양·오리온의 대표 CEO 노영인(59) 동양시멘트 사장은 30여년을 시멘트업계에 종사한 산증인이다.98년 동양시멘트 대표이사로 취임한 그는 외환위기 한파를 수출로 돌파했다. 그동안 시멘트 수출은 채산성이 안 맞고, 선진국의 품질검사가 까다로워 시늉만 내왔다. 그러나 노 사장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밀어붙여 99년에는 창사이래 최대 물량인 171만t을 세계 각국으로 수출했다. 덕분에 579억원의 순익을 기록해 기나긴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노 사장은 동양의 실질적인 지주회사인 동양메이저의 대표이사도 겸직하고 있다. 박중진(54) 동양종합금융증권 부회장은 금융업계에선 신사로 통한다. 친근한 말투가 트레이드 마크. 그는 조지워싱턴대 MBA 출신으로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갖고 있다.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동양증권과 동양생명, 동양종금을 거치며 10년이상 실전 금융을 익혔다. 윤여헌(57) 동양생명 사장은 행시 14회 출신으로 건설부와 재무부를 거쳐 95년 동양에 합류했다. 윤 사장은 겉치레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내실형’ 스타일이다. 철저한 손익 위주의 경영을 선호한다. 오리온그룹을 이끄는 전문 경영인으로는 김상우(48) 오리온 대표이사를 꼽을 수 있다. 김 대표는 1987년 오리온(옛 동양제과)에 입사한 이후 줄곧 마케팅 분야를 맡았다. 농심이 장악한 국내 스낵시장에 포카칩과 스윙칩 등을 출시해 오리온의 돌풍을 일으켰다. 오일호(53) 스포츠토토 사장은 1987년 오리온 마케팅부 과장으로 입사해 오리온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004년엔 스포츠토토 사령탑을 맡아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초기 난관을 극복했다. 특히 가라앉은 ‘토토´를 최근 ‘토토 붐´으로 확산시킨 것은 그의 공이 컸다는 평이다. golders@seoul.co.kr ■ 창업주 두딸 이혜경·화경씨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자매.’ 이혜경(53) 동양매직 고문은 국내 ‘재벌가(家)의 딸’들이 그러하듯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전공(이화여대 미대)을 살려 동양매직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가정에 더 충실한 편이다. 그러면서도 장녀로서 모친인 이관희(서남재단 이사장) 여사를 도와 부친의 뜻을 기리는 서남재단의 이사로서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적이다. 반면 이화경(49) 오리온 사장은 1975년 동양제과(현 오리온)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밑바닥을 두루 거친 뒤 26년만에 오리온 사장에 올랐다. 약력에서 알 수 있듯 이 사장은 그동안 ‘경영자의 길’을 걸어왔다. 언니와는 다르게 ‘바깥 일’을 더 중시한다. 이 때문에 자매를 잘 아는 지인들은 보통 언니를 ‘살림꾼’으로, 동생을 ‘여장부’로 부른다. 이 고문은 소박하면서 다정다감하다. 살림을 손수 챙기며, 요리 실력이 수준급이다. 미술 감각을 살려 실내 장식과 정원 등은 손수 꾸민다. 또 혼자서 곧잘 동대문 시장에 나가 살림 도구나 가족 옷을 산다. 자녀 교육에도 각별한 정성을 쏟는다.1남3녀를 모두 미국의 명문 대학인 스탠퍼드대에 진학시킨 것은 이 고문의 노력과 관심 덕분이다. 이 고문은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때 사회활동을 극도로 자제했으며, 수년간 미국에 머물며 자녀 뒷바라지를 했다. 현 회장도 틈틈이 아이들의 영어와 수학을 직접 가르쳤다. 막내딸 행담씨가 올해 대학에 들어가면서 이 고문은 건강 관리를 위해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이 사장은 경영인, 아내, 엄마의 ‘1인3역’을 소화하느라 늘 시간에 쫓긴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 소홀한 법이 없다. 자녀(1남1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업무 외의 약속은 잡지 않는다. 경영인으로서 이 사장은 어떨까. 호탕하고 도전정신이 강해 부친을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월간 현대경영이 2003년 8월 100대 기업 비서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신세대 여비서들이 모시고 싶은 CEO’에 뽑히기도 했다. 그만큼 업무상의 유연함과 직원 배려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인턴사원으로 출발해 구매부, 조사부, 마케팅부 등 주요 부서를 거쳐 누구보다 현장 분위기와 실무진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오리온의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계열사 직원들은 이 사장을 열정적인 CEO로 평가한다. 이 사장이 전담하는 계열사는 온미디어와 미디어플렉스, 외식 사업부문인 롸이즈온 등 3개사. 일주일을 나눠 각각의 회사에 출근한다. 이 사장은 현장 경영을 중시한다. 직원들과 직접 회의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며, 영화사업을 담당하는 CEO로서 때로는 서울 삼성동의 메가박스에서 하루종일 영화를 보기도 한다. 이 사장은 “내가 재밌고, 감동을 받아야 관객들에게 권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golders@seoul.co.kr ■ 두 CEO 경영스타일 비교 ‘외유내강 VS 실용주의’ 사위들이 경영권을 승계하다 보니 현재현(56) 동양 회장과 담철곤(50) 오리온 회장은 곧잘 비교의 대상이 된다. 재계 안팎에선 현 회장을 선 굵은 외유내강형으로, 담 회장을 철저한 실용주의형으로 분류한다. 기업의 성장세로는 담 회장의 오리온이 빠르다.1989년 매출액 1360억원에 불과했던 동양제과(현 오리온)를 지난해 1조 5300억원으로 10배 이상 키운 것은 신규 사업을 진두지휘한 담 회장의 공이 크다. 현 회장은 오리온이 분가한 이후 그룹 구조조정에 매진했다. 금융계열사를 통합, 매각하면서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주력했다. 이 덕분에 1000%를 웃돌았던 부채비율은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진입했다. 상대적으로 그룹의 외적 성장은 더디었지만 속은 눈에 띄게 알차졌다. 현 회장은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서 유창한 영어 실력을 과시하며, 재계의 ‘스타 CEO’로 떠올랐다.CEO 서밋 의장으로서 각국 CEO(최고경영자)들과 토론 및 기자회견을 깔끔하게 소화해 화제가 됐다. 그는 이처럼 남들이 멍석을 깔아주지 않는 한 자신의 진면목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외유내강형 CEO로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현 회장은 화를 내지 않는다. 늘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그룹 총수가 화를 내서 임직원들의 기를 꺾으면 차후 일 진행이 쉽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대신 원칙에 따라 결정된 내용은 남들이 주저해도 과감하게 추진한다. 현 회장이 경영자로서 평가받은 첫 사업은 1984년 일국증권(현 동양종합금융증권) 인수다. 당시만 해도 증권사는 대형사고와 부실경영의 대명사로 인식됐던 터라 임직원들의 증권사 인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현 회장은 자본금 20억원에 지점이 덜렁 하나뿐인 일국증권을 불과 5년만에 10대 증권사로 키워냈다. 이를 계기로 동양은 30년간 지속된 시멘트와 제과 사업에서 탈피해 금융업 중심으로 업종 다변화를 일궈냈다. 현 회장의 취미는 바둑. 중학교 시절 바둑을 배워 고등학교 때는 적수가 없을 정도였고, 대학 때는 교내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했다. 장수영 9단에 2점으로 버티는 아마 고수다. 현 회장의 고교·대학 동기들은 그를 ‘티없는 친구’로 기억한다.“품성이 맑고 깨끗하며 원만할 뿐 아니라 일처리까지 깔끔하다.”는 것이다. 담철곤 회장은 실용주의자이자 ‘일벌레’라는 평가를 받는다. 요즘도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골프를 치지 않는다. 대신 스키 등 다이내믹한 스포츠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냉혹한 스타일도 아니다. 직원들은 잔정이 많은 CEO라고 얘기한다. 한 임원의 설명이다.“부장 시절에 기획안을 제출했다가 담 회장으로부터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회장으로부터 휴대전화가 왔습니다.‘다시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다’는 내용이었죠. 직원의 기를 꺾지 않으려는 회장의 배려였지요.” 담 회장은 인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90년대 초반에는 20대 중심의 신규 사업팀을 구성한 뒤 수십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여러 분야의 사업에 진출해 쓴맛을 많이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들은 훗날 오리온의 케이블 TV사업과 극장·외식사업 등으로 진출해 현재의 그룹 규모를 갖추는데 일조했다. 담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잘 엮는다. 국내 제과사들이 90년대 안방시장에 안주하며 저성장의 어려움을 겪을 당시, 해외시장을 개척하며 오리온의 고성장을 주도했다.2003년엔 남들이 모두 망했다고 평한 체육복표 사업체 스포츠토토를 인수해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바꿔 놓고 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사설] 문화재, 이렇게 함부로 취급해도 되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문화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고궁이나 서원 등의 이용 상황을 보면 드라마나 영화 촬영의 소품 정도로 천대를 받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마저 든다. 하긴 고궁이 먹고 마시는 만찬장으로 허용된 적도 있으니 굳이 말이 필요없다. 문화재라고 해서 폐쇄적으로만 운영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재는 깨끗이 관리·보전해 후대에 물려줘야 할 유산이다. 그렇기에 문화재를 이용하고, 관리하는 쪽 모두가 소중히 여기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SBS의 드라마 촬영 때 일어난 덕수궁 돌담의 훼손은 참으로 어이없는 사건이다. 돌담은 1897∼1910년 대한제국 때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우리의 역사이다. 접착제로 붙인 800여장의 종이를 주의없이 떼어내면서 돌 사이에 바른 줄눈이 떨어지고 긁혔다. 더욱이 제작사측이 허가도 없이 돌담을 사용했다니 문화재에 대한 기본 소양이나 갖췄는지 의심스럽다.KBS는 2000년 드라마를 찍으면서 창덕궁 인정전 마당에 LP가스통을 설치했다가,MBC는 1999년 병산서원의 누각에서 기생파티 장면을 연출했다가 혼쭐이 나기도 했다. 문화재는 한번 훼손되면 원형의 복원이 불가능하다. 역사의 숨결이 사그라진다.2003년 이후 고궁에서 92건의 방송 촬영이 허용됐고, 이 와중에 크고 작은 손상이 있었다고 한다. 문화재 당국은 고궁 등의 사용 허가를 내줄 때 규정을 철저히 적용해야 할 것이다. 허가한 뒤의 관리 및 감독도 마찬가지다. 문화재는 특정 기관이나 계층의 전유물이 분명 아니다. 국민 모두의 귀중한 역사적·문화적·예술적 자산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 [혁신 공기업탐방] 이우재 한국마사회 회장

    [혁신 공기업탐방] 이우재 한국마사회 회장

    한국마사회(KRA) 이우재 회장은 요즘 승마에 재미를 붙였다. 경마란 말만 들어도 승마와 같은 고급 레저 스포츠가 연상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승마를 전국에 보급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CEO)인 자신부터 승마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21일 “아직도 경마하면 도박·중독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면서 “KRA가 한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경마를 고급 레저 스포츠로 승격시켜 모든 가족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승마를 대중화하기 위해 경마에서 은퇴한 말을 승마용으로 적극 투입하도록 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서울신문 오풍연 공공정책부장이 이 회장을 만나 경마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혁신 방안을 들어봤다. 취임 초부터 특히 윤리경영을 강조했는데. -경마에 대한 부정적인 2가지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다. 하나는 경마 순위를 조작하는 경마부정에 대한 이미지와 다른 하나는 경마 수익금을 마사회가 마음대로 쓴다는 점이다. 이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철저히 없애겠다. 특히 경마 수익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내 의지로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된다.KRA 운영도 그동안 정치생활처럼 깨끗하게 하겠다. 철저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시대에 적극적으로 부응하지 못하면 어느 조직이나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을 직원들에게 늘상 깨우치게 하고 있다. ●비실명 부정비리신고센터 운영 지금까지 시행한 윤리경영 내용은 어떤 것들이 있나. -윤리경영의 실천을 위해 비상임이사 수를 늘려 외부 감시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투명계약 시스템을 정착하기 위해 일부 특수 분야를 제외한 모든 계약에 ‘전자입찰제’를 실시하고 ‘청렴계약제’를 적용토록 했다. 또 부조리 예방 등 감시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부패방지팀’을 신설했다.‘내부공익신고자 보호 프로그램’ 및 ‘부조리 신고보상제도’ 마련과 ‘부정비리신고센터 운영 활성화’를 통해 신고자 자격을 외부인까지 확대하고 비실명 신고도 접수토록 했다. 윤리경영 성과는 나타나고 있나. -이제 윤리경영이 KRA의 핵심 경영이념으로 뿌리내렸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노력이 외부로부터 인정받게 돼 지난달 19일 ‘2005년 대한민국 사회책임경영대상 공기업부문 윤리경영대상’을 수상했다. 경마를 고급 레저 스포츠로 발전시킨다는 장기플랜을 세웠다고 들었다. -경마가 선진경마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경마상품의 품질이 우선 높아져야 한다. 그리고 건전한 경마문화 조성, 경마시행의 공정성 강화, 서비스 향상을 통한 고객만족도 제고 등이 뒤따라야 한다. ●경마정보 공개 확대 추진 그렇다면 구체적인 복안이 있나. -외부의 경주마도 경기에 참여토록 하는 ‘외마사 제도’를 활성화해 경기의 질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또 경주의 박진감을 높이고 향후 외국산마와 직접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경주편성체계도 바꿔야 한다.KRA가 공익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경마팬을 위한 재단도 설립할 계획이다. 건전한 흐름을 유도해 부정경마 개연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마정보 공개도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최근 경마매출이 하락하고 있다. -경마매출액은 외환위기 이후 2002년까지 매년 평균 27% 내외의 고성장을 했다. 하지만 2003년부터 급격한 하락세로 반전, 현재까지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7조 6000억원까지 갔던 매출액이 5조 3000억원대로 떨어진 상황이다. 내수침체 장기화와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해 경마팬이 그만큼 마권을 덜 샀기 때문이다. 또 과거처럼 경마가 독점적인 시장 점유를 하지 못하고 로또, 카지노, 경륜 등의 경쟁산업이 확대되면서 시장점유율이 잠식됐다. 사설경마, 마권구매대행업, 경마게임오락장 등 불법·유사산업도 계속 번지고 있다. 매출감소를 막을 대책은 있나. -서울경마일수를 확대하고 제주교차경주를 1회 추가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또 회사의 업무추진비를 20% 줄이는 등 경상경비를 줄이고 관람대 리모델링 사업 등 자본투자 계획도 축소·연기하는 것을 고려중이다. 장외발매소 리모델링 또는 이전 등을 통해 접근 및 쾌적성을 강화하고, 모바일 베팅 및 PC 베팅 추진 등 베팅방식도 다양화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해 1조 1944억원 사회환원 경마이익금은 얼마나 사회에 환원하고 있나. -KRA는 한국마사회법과 시행령에 따라 전체 이익금의 60%를 특별적립금으로 적립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레저세와 교육세 등의 세금으로 1조 400억원을 납부했다. 또 축산발전기금과 농어촌복지사업으로 1447억원을 출연했으며, 독거노인·불우청소년 등 사회복지 증진을 위해 97억원을 지원하는 등 모두 1조 1944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KRA는 경마가 열리는 하루 동안 16만여명이 500억원의 마권을 사 다른 공기업보다는 상대적으로 쉽게 돈을 벌고 있다. 예전에 대통령이 주재한 공기업 및 산하기관 혁신대회에서 수익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공기업 사장을 보니까 정말 애국자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국회의원을 해봤지만 최근 돈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공기업 사장을 보면서 그동안 뭐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최근 지방교육세 환원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 어떤 입장인가. -현재 레저세액의 60%로 부과되는 레저세분 지방교육세가 내년부터는 20%로 환원토록 돼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만큼 경마팬들에게 많은 상금을 돌려줄 수 있어 경마상품의 선진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5일 국무조정회의를 통해 현행 60%의 세율로 3년 동안 연장하고,2009년부터는 40%로 영구세화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만약 레저세분 지방교육세가 정상적으로 환원되지 않을 경우에는 2003년 이후의 경마 매출액 감소로 한때 1834억원까지 달했던 축산발전기금 출연금은 370억원으로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대담 오풍연 공공정책부장 정리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KRA Angels 봉사단 ‘한국마사회(KRA)의 천사들’ KRA 전 임직원이 천사로 활동하고 있다. 전직원 900여명이 단원으로 있는 ‘KRA 에인절(Angels) 봉사단’을 통해서다. 봉사단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공익기업’이라는 KRA 기업이념에 따라 지난해 1월 창립됐다. 봉사단의 첫 활동은 지난해 3월 충청도 지역에 내린 폭설 피해 농가 복구작업. 지난 8월에는 전북지역을 강타한 폭우 피해 농민들의 복구작업에도 동참했다. 이밖에도 정신지체아 보호시설 봉사활동, 해양환경 정화, 독거노인 및 소년소녀가장 도시락배달 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 KRA는 에인절 펀드도 운영하고 있다.1계좌에 1000원씩 직원들이 월급에서 원하는 만큼의 성금을 내고 있다. 현재까지 6000만원을 적립했다. KRA는 농촌봉사활동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충북 청원군의 한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고 지속적인 지원을 한다는 계획이다. 또 부서별로 1부서 1시설 돕기운동도 펼치기로 했다. 경로원, 고아원 등의 시설을 골라 부서원들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지난 18일에는 KRA 에인절 봉사단장을 맡고 있는 이우재 회장과 직원 등 250명이 김장 1만 4500포기를 담가 서울과 과천 불우이웃들에게 전달했다. 최원일 KRA 사회공헌팀장은 “경마수익금을 금전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 외에도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 KRA 에인절 봉사단의 목적”이라면서 “봉사단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KRA에 남아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농업전문가’ 이우재 회장 이우재 회장은 운동권 출신의 전문경영인이다. 이 회장은 4·19혁명 주도,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으로 지난 1979년부터 3년여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이후에도 전민련 중앙위원, 민중당 상임대표 등을 지낼 만큼 영향력있는 ‘재야정치인’이었다. 15·1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는 ‘농업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지역구가 서울이면서도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의정활동을 하며 농촌발전을 주도했다.‘한국농민운동사’ 등 10여권이 넘는 농업관련 서적도 저술했다. 지난 4월 KRA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개최된 아시아경마회의(ARC)와 부산경남경마공원 개장 등 굵직한 행사를 무난히 치러 전문경영인으로서 합격점을 받았다. 이 회장은 최근 승마의 매력에 푹 빠졌다. 승마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이 회장은 “마사회장이 말(馬)을 못 탄다는 것은 말(言)이 안 된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충남 예산(68) ▲예산농고·서울대 수의과 ▲민중당 상임대표 ▲15·16대 국회의원 ▲대한수의사회장 ▲한나라당 부총재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8)일본의 차 문화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8)일본의 차 문화

    늦가을과 초겨울 하늘은 참으로 투명하고 맑다. 마치 가을걷이를 위해 풍성하게 들어차 있던 들판이 텅비어 버린 것 같이 아름답고 맑아서 눈이 아프도록 시리다. 코발트빛 밤 하늘은 또 얼마나 깊고 청순한지 모른다. 너무 높아서 까치발을 들고 손을 눈썹위 이마에 얹고 쳐다봐야 하는 밤하늘은 마치 술이 술술 익어가는 시골의 마을처럼 우리의 애잔한 삶을 살포시 위로하는 길손같이 정겹기만 하다. 하늘에 떠있는 별은 또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가. 천목(天目) 즉 하늘의 눈 같은 별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 중생들에게 혜안(慧眼)의 살림살이를 살 수 있도록 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가로등 같은 것이다. 산에 뜨는 달 또한 마찬가지다. 산에 뜨는 달은 등불이 되고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는 마치 관현악의 장중한 울음 같다. 그림자 가득한 뜰을 지나 대나무를 쪼개어 만든 홈통을 타고 졸졸 밤새도록 울어대는 유천의 물을 발우에 담는다. 발우에는 달이 담기고 별이 담기고 영원한 적막이 흐른다. 푸른 돌솥에 찻물을 담아 차를 달여 마신다. 차의 살림살이는 차인의 마음에 따라서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다. 자신이 속한 일상속에서 잠깐 마음의 눈을 돌려 내 안의 나를 바라보는 고즈넉한 시간을 갖게 한다면 차는 내 삶속에 뜨거운 용광로처럼 피어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웰빙적인 측면에서 단순한 음료로 기능한다면 그 삶은 역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도록 메마르고 강파를 것이다. 일본다도의 창시자로 불리는 이큐 소우준 선사는 주광문답(珠光問答)에서 차의 살림살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일미청정(一味淸淨)하고, 법희선열(法喜禪悅)하니 조주선사는 이를 체득했지만, 육우는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사람이 다실(茶室)에 들어가면 겉으로는 남과 나의 구별을 떨쳐버리고 , 안으로는 부드럽고 온화한 덕을 함양하며, 서로 간에 교제함에 있어서는 삼가고(謹), 공경하고(敬), 사념을 품지 않고(淸), 평온해지며(寂) 결국 온 세상이 평안해진다.” 이큐선사의 근, 경, 청, 적은 후일 센리휴에 의해 화(和), 경(敬), 청(淸), 적(寂)으로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일본다도의 핵심사상이 되고 있다. 이큐선사 이전에 일본에는 ‘다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송나라 때 전해진 음차풍속의 일환인 ‘투차(鬪茶)’가 성행했을 뿐이다. 일본에 맨 처음 말차를 전한 사람은 에이사이스님으로 천태산 만년사에 주석하며 5가7종 가운데 1파인 황룡파의 선을 배우고 귀국하면서부터로 말하나 그같은 것은 현상적인 측면이 강하다. 당시 일본에서는 중국으로 많은 스님들이 유학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선가에서는 선수행과 더불어 다양한 음다법이 성행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말차법은 중국에서 귀국한 많은 유학승들에 의해 시작된 문화의 공통분모 같은 것으로 봐야 한다.12세기 일본 사찰에서는 좌선때 애용된 말차가 단순한 음용의 수준을 떠나 하나의 다례로 정착됐다. 당시 일본의 선종사찰에서는 중국 선종사찰에서와 같이 생활규범으로서의 청규가 있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사찰에서 대규모의 차회가 열릴 정도로 끽다법이 일반화됐다고 보여진다. 그같은 선종사찰의 말차법은 현재도 행해지고 있는 건인사의 경우에서 보면 확연해진다. 건인사에서는 매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네머리의식(四頭·요쓰가시라)’을 진행한다. 그 다례를 살펴보면 맨 먼저 향을 피우는 헌향, 다과(茶菓)와 함께 말차가 들어간 천목이 배치되는 행잔(行盞), 그리고 스님이 정병을 가지고 손님이 천목(찻잔이름)에 끓은 물을 붓고 차를 저어 돌리는 행다(行茶)순으로 되어 있다. 일본교토 상국사에도 사두재연이라는 말차법이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 선종사찰에서 말차법에 의한 다례가 일상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마쿠라시대를 거쳐 아시가가 시대에는 송나라로부터 ‘투차’의 풍속이 전해졌다.‘투차’풍속은 일본무사들의 정신적인 성향과 맛물려 당시 사회지배계층의 전형적인 음차문화로 자리잡았다. 무로마치 막부시대에 일본의 다도는 화려한 꽃을 피운다.‘서원차(書院茶)’로 불리는 당시 차문화는 값비싼 차와 다완을 자랑하는 등 외형적인 화려함에 치우쳐 차의 정신이나 형식보다는 차의 품격, 다완의 가격 등 사회적인 부의 수준에 따라 그 차회의 품격이 정해질 정도로 사치스러워졌다. 서원차는 화려할 뿐만 아니라 너무도 귀족적인 차회였던 것이다. 그것은 당시 서원차를 주도했던 무가(武家)와 막 꽃피기 시작한 상업자본가들의 외형적인 자기과시욕 때문이었다. 사무라이들의 근엄하고 권위적인 취향과 상업자본가들의 자기과시욕의 결합은 심지어 차가 도박으로까지 발전할 정도로 지배계층 내부의 극단적인 정신적 사치를 불러왔을 정도다. 서원차의 병폐는 사회경제적 균등을 통해 안정적인 사회의 구축을 이루려는 집권막부에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갔다. 일본 다도의 창시자랄 수 있는 무라다 주코와 이큐 소우준 선사의 만남은 이때 이루어졌다. 주코의 스승인 이큐선사는 고코마쓰일왕의 아들이었다. 그는 어린시절 사찰로 보내졌다. 어린시절 여러 가지 고난을 이겨낸 이큐선사는 조주의 끽다거를 갈파해낸 탁월한 선승이었다. 조주의 끽다거의 공안을 깨쳤던 그는 왕실 막부의 투차의 화려함을 대신해서 원오극근선사의 ‘다선일미’를 다도의 근본형식으로 이끌어냈다. 이큐는 그의 나이 60세 때 30살의 주코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나라출신인 주코는 11살에 출가하였으나 그 단조로운 생활을 견디지 못해 환속, 이곳 저곳 떠돌며 ‘투차’나 여러곳의 ‘다사(茶事)’를 보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주코는 우연히 이큐선사의 설법을 듣고 그 문하에 다시 입문하게 된다. 주코를 조주차의 깨달음으로 이끌었던 이큐선사 일화 한토막을 소개해본다. 이큐는 주코가 ‘끽다거’의 공안을 깨칠 수 있도록 각고의 수행을 주문했다. 천재였던 주코에게도 그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이큐선사는 마지막 방법을 선택했다. 선수행중인 주코를 이큐선사가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끽다거”. 그러나 주코는 이큐선사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이큐선사가 차탁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담아 주코에게 건넸다. 주코가 그 찻잔을 받아들기 위해 손을 내밀자 이큐선사는 “끽다거”하며 찻잔을 깨트려버렸다. 공안이 익을 대로 익어 있던 주코는 이큐선사의 벽력같은 소리에 단박에 깨칠 수 있었다. 마침내 조주차의 근원을 알게 된 주코는 이큐선사의 인가를 받았으며 원오극근선사의 묵적을 전수받았다. 이큐선사의 인가를 받은 주코선사는 당과 송에서 전해진 투차의 차 문화를 대체하는, 즉 차와 선이 하나인 일본화된 품차의 정신을 만들어냈다. 주코를 통해서 차가 선이며, 선이 차이며, 끽다가 참선이고 참선이 끽다인 ‘다선일미’를 구현해냈다. 이같은 주코의 차도는 다케쇼오를 커쳐 센리휴에 의해 완성된다. 부유한 피혁상의 아들이었던 다케쇼오는 주코의 제자로부터 다도를 배웠다.36세 때 사카에로 돌아온 다케쇼오는 20세나 아래인 센리휴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다케쇼오는 일본이 다도를 통해 민족적인 정신을 눈뜨게 했다. 교토에서 와카와 다도를 함께 배운 다케쇼오는 와카를 다도에 접목시켰다. 그는 주코의 다도를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선가의 기풍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와카를 표구해 차실에 걸어놓아 일본다도에 민족적인 정신을 심어냈다. 사카에 상인 가문 출신이었던 센리휴는 주코와 다케쇼오의 차 정신을 완성해냈다. “여름에는 차실을 시원하게 하고 겨울엔 차실을 따뜻하게 하며 연료를 찻물이 잘 끓게 넣고 차는 맛있게 우려내는 것이야말로 차정신의 비결”이라고 말한 센리휴는 다다미 스무장 넓이의 넓고 화려한 서원차의 차실 대신 두세 사람이 무릎을 맞대고 겨우 앉아 차를 마실 수 있는 이른바 초암차실을 완성했다. 센리휴는 전국시대의 최고의 무장이었던 오다 노부나가의 차 시종을 거쳐 일본을 천하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 시종관이 되었다. 센리휴가 일본차계에 그 이름을 떨친 것은 1587년 히데요시가 주관한 천하통일 기념차회와 기타노 신사에서의 차회에서다. 센리휴는 이 차회에서 원나라 때 화가 옥간의 ‘원사만종’을 걸고 최고급 차합과 쌀 4천만섬의 가치가 있다는 ‘송화(松花)’라는 아름다운 다관을 사용했다. 그야말로 서원차의 극치를 보여준 차회였던 것이다.1589년 기타노 신사의 황금차실은 그같은 호화로운 차회의 극점이었다. 온통 황금으로 이루어진 황금차실과 8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차인들의 참석은 ‘거처는 비가 새지 않으면 되고 음식은 배가 부르면 충분하다.’는 센리휴의 생각과 정 반대가 되는 것이었다. 센리휴는 일단 작은 차실을 선호했다. 그리고 중국에거 전래한 천목찻잔이나 청자완보다는 조선서민들이 사용했던 막사발(이도다완)을 즐겨 사용했다. 모양이 고르지 않고 검은 빛을 띠며 무늬가 없는 막사발을 센리휴는 최상의 다완으로 쳤다. 이같은 다도를 통해 센리휴는 마침내 주코의 ‘근경청적’의 정신을 ‘화경청적’으로 완성해낸 것이다. 일본차의 정신은 흔히 ‘와비차’로 표현된다.‘와비’란 이른바 ‘한적(閑寂)’하다는 말로 정신성이 강한 차예절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선차의 첫 번째 목적은 심신을 수련하는 것이다. 차와 선이 상통하는 점은 바로 정신적 경지의 정화와 승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차를 마실 때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맛을 음미한다. 참선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참선을 할 때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생각을 끊어야 한다. 다도(茶道)와 깨달음은 그것을 직접 실행하는 주체의 맑고 고요한 근원적인 감각에 치중한다. 연차, 자차, 점차, 음차 등 일련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본체를 드러내며 윤회하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것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선다일미라는 것이다. 다도는 또 근원성의 문화라는 점에서 깨달음과 일치한다. 다도의 완성은 일종의 무형의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신이 표현해내는 근원적인 문화양식인 것이다. 다도는 무형의 근원에 도달한 자신의 외재적 표현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또다른 문화양식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위대한 선사들이나, 다도를 완성한 차인들은 이미 또다른 문화를 창조한 문화의 창조인들인 것이다. 센리휴선사는 이렇게 말한다.“물을 긷고, 땔감을 하고, 물을 끓이고, 차를 따르고, 부처께 올리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이 마시고, 삽화분향하는 것 모두가 불법을 수행하는 행위인 것이다.” 차와 선의 문화는 그런 점에서 인류 미래문화의 진보를 앞당기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지암 암주 ■ 日 茶界 최고보물 ‘다선일미’ 묵적…中 송나라때 원오극근선사가 전해 일본차계 최고의 보물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그것을 ‘이도다완’으로 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중국 송나라때 선승으로 유명한 원오극근선사가 직접 썼다고 전해지는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묵적이다. 서원차와 투차의 화려하고 권위적인 차 문화를 선과 결합시켜 내 ‘다선일미’라는 일본의 차도를 창조해낸 주코가 그의 스승인 이큐선사로부터 차도의 인가증서로 원오극근선사의 묵적을 전해받은 것이다. 이큐선사로부터 묵적을 물려받은 주코는 그것을 다실 안에서 가장 잘 보일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위치인 벽감속에 걸어 두고 사람들이 그의 다실을 드나들 때마다 무릎꿇고 예를 행하여 경의를 표하게 했다. 일본 경도 대각사에 소장되어 있는 ‘다선일미’에 대한 일화는 아주 재미있다. 원오극근선사가 어느날 중국 성도에 있는 소각사에서 설법을 하였다. 원오극근선사는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는 일본 제자를 불렀다. 그리고 직접 그 제자에게 ‘다선일미’라는 네자를 써주었다. 그 제자는 그 글씨를 큰 대통에 담아 귀국하는 배를 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천신만고 끝에 일본에 도착한 그 스님이 탄 배가 항구에서 전복되고 만 것이다. 그 대통과 글귀는 이사람 저사람 손을 전전하다 마침내 이큐선사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큐선사는 그 대통에 든 글귀를 보고 오랫동안 참문을 하였다. 출중한 선승이었던 이큐선사는 마침내 원오극근선사가 쓴 ‘다선일미’의 오의를 깨쳤다. 그리고 그 정신과 묵적을 자신의 수제자였던 주코에게 차도의 인가증으로 전해준 것이다. 주코는 교토에 주광암을 개원했다. 그리고 선종의 중흥조인 육조혜능선사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선지를 바탕으로 차를 마심으로써 ‘초암다풍’을 형성한 것이다. 주코는 “차실에 들어가면 밖으로는 남과 나의 구분을 모두 잊고 안으로는 유화의 덕을 쌓으며 서로 응대함에 있어서는 근경청적하고 궁극적으로는 천하태평에 이른다.”고 말한다. 주코는 선을 통해 일본의 다도를 철학이자 종교로 승화시켜낸 것이다. 청담스님은 차의 진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차의 맛이 지닌 진수는 어디까지나 술처럼 교만하지 않고, 커피처럼 자만하지 않으며, 코코아처럼 천진한 기취와는 달리 엄절한 청정미에 있다. 그러기에 다도는 미를 발견하고도 오히려 환희를 감추려는데 묘미를 느끼는 예술이라 할 수 있으며 선을 실행하고도 그 공덕을 숨기는 윤리이자 참을 체득하고도 오히려 빛을 묻는 종교이다.”
  • [유림] 儒林(479)-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

    [유림] 儒林(479)-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 1558년 명종 13년 봄. 한양에서 600여리나 떨어진 경상도 성주(星州)에서 한겨울을 난 율곡은 해동이 되자 강릉의 외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 길을 떠났다. 성주는 율곡의 처갓집으로 그곳에는 장인 노경린(盧景麟)이 목사로 재임하고 있었다. 노경린은 성주목사로 재임할 때 서원을 세워 유학을 장려하였으며,6년 동안 그곳에서 크게 선정을 베풀어 조정으로부터 포장을 받을 만큼 바른 시정을 펼치고 있었다. 노경린이 세운 서원은 훗날 퇴계가 천곡서원(川谷書院)으로 명명할 만큼 유서 깊은 서원이 되었는데,1년 전에 율곡은 노경린의 딸과 혼인하였던 것이다. 이때 율곡의 나이는 22살. 당시로서는 드문 만혼(晩婚)이었다. 원래 율곡의 장인 노경린은 서울의 수진방(壽進坊), 즉 오늘의 청진동에 함께 살던 이웃이었다. 그러므로 율곡의 부친이었던 덕형 이원수(李元秀)와 노경린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던 사이였다. 따라서 노경린의 딸과 율곡 간의 혼례는 덕수 이씨 집안과 곡산 노씨 집안의 결합이기도 했던 것이다. 율곡의 정부인이었던 노씨는 율곡과 여섯 살의 차이로 이 무렵 17살이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폐질을 알아서 건강한 몸은 아니었으므로 율곡이 처갓집이었던 성주에서 월동을 하였던 것은 어쩌면 신행(新行)겸 처가살이였던 것처럼 보인다. 겨우살이를 끝낸 율곡은 봄이 되자 성주를 떠난다. 목적은 강릉에 살고 있는 외할머니를 만나기 위한 것. 그러나 실은 정처 없이 사립문을 나선 나그네의 여정이었다. 왜냐하면 율곡의 고향이었던 강릉의 오죽헌에는 이미 사랑하는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이 아들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사임당.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현모양처 상으로 손꼽히는 신사임당은 이미 7년 전 율곡의 나이 16세 때 세상을 떠났다. 부덕과 재능을 갖추고 남다른 교육열로 직접 율곡에게 글을 가르쳤던 신사임당은 율곡에게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엄격한 스승이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율곡은 외할머니 이씨를 어머니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이씨는 사임당의 아버지인 진사 신명화(申命和)의 부인으로 신씨 가에 시집가서 율곡의 어머니인 사임당을 비롯하여 딸 다섯을 낳아 키우고 ‘삼강행실도’를 외워 부덕을 닦기에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남편이 병으로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자 자기 손가락을 칼로 잘라 쾌유를 빌었다고 ‘중종실록’은 기록하고 있을 정도였다. 당시의 강원도 관찰사가 왕에게 보고한 치계(致啓)에 의하면 이씨는 서울에서 돌아온 남편이 전염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롭자 밤낮없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였다고 한다. 그래도 효험이 없자 어느 날 새벽 몰래 남편의 패도(佩刀)를 품고 선영에 나아가 향불을 피워 기도하며 남편의 쾌유를 간절히 빌었으며, 왼손 가운뎃손가락을 잘라 지극정성으로 간구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그날 밤 그녀의 꿈에 하늘에서 대추만한 약이 떨어지는 장면이 현몽하였고, 이튿날 남편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던 것이다.
  • [신연숙칼럼] 문화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신연숙칼럼] 문화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전 개관하면서 문화재에 관한 크고 작은 논란이 있었다. 그중에도 국보1호 교체 건은 국민적 이슈가 된 끝에 일단 현행체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사실 남대문이 무슨 죄가 있는가.550여년 동안 한 자리에 서서 수도를 드나든 백성들과 고락을 함께 한 것뿐인데 일제 잔재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뻔했다.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긴 박물관이나 문화유적지에 가보면 낯뜨거워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문화재는 잠잠히 있을 뿐이지만 엉뚱한 의도를 갖고 이런저런 해석을 붙여대는 사람들이 있는 탓이다. 문화재를 슬프게 하는 이런 일들이 없어질 수는 없는 것일까. 지난 주말 경북 영주 소수서원 여행에서도 황당한 순간을 겪었다. 소수서원은 소나무 숲이 유명하다. 수백년된 적송(赤松)들이 서원의 선비와 같은 기품을 자랑한다. 안내원은 이곳 소나무를 설명하면서 일본 국보 목조미륵반가사유상과의 연관성을 들려준다. 일본 최고의 보물이 이곳 적송으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7세기초 일본인들이 신라에서 만든 반가상을 빼앗아가 자기네 국보로 지정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목조반가상은 우리 국보 83호 금동반가상과 모양이 흡사하다. 또한 일본에서는 적송이 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신라에서 건너간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다. 하지만 일본 측은 펄쩍 뛰는 얘기다. 그렇기에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개관기념전에서도(비록 이 때문에 관람객들의 항의를 받긴 했지만)국보 83호에 대해 ‘일본 고류지 목조상과 상당히 흡사하다.’란 신중한 설명문을 붙여놨던 것이다. 그러나 안내원은 이런 사정은 아랑곳없이 ‘일본×’이란 말까지 써가며 단정적인 설명에 열을 올렸다. 일본 국보 얘기는 민족주의의 발로로 좋게 봐 줄 수도 있지만 여기에 상업주의가 더하면 파장도 한 차원 달라진다. 중국 고대 실크로드의 중심점에 있는 둔황석굴은 벽화로 유명하다. 벽화를 관람하는 한국 관광객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조우관(鳥羽冠)을 쓴 사람이다. 중국에서 머리에 깃털을 꽂은 사람은 한국인을 뜻한다. 고대 한국인들이 서역의 입구인 둔황까지 진출해 벽화에 자주 등장했다면 멋진 일이긴 하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벽화 속의 조우관 쓴 사람을 찾고 중국인 안내원들은 엄청난 선심이라도 쓰듯이 조우관 그림이 있는 동굴을 하나하나 공개한다. 그러나 지난 8월 현지에서 만난 둔황학자에 따르면 조우관 그림이 곧 삼국인의 왕래를 뜻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한다. 벽화는 중원의 화가가 가서 그렸을 수도 있고, 둔황의 화가가 다른 그림을 보고 베껴 그렸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조우관 쓴 사람들은 한국인의 얼굴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둔황석굴을 보려는 한국인들은 밀려들어 지금은 일본 관광객 숫자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문화재 당국의 상술이 엉뚱한 결과를 낳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문화재의 의미를 크게 왜곡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다. 일본의 광개토대왕비문의 억지 해석은 고대사의 방향을 틀어놓는 것이었다. 국보1호 논란이 그토록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도 ‘일제 잔재’라는 규정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문화재위원회가 국보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며 그간 ‘국보·보물의 지정은 전문가들의 광범위한 논의를 거쳐 지정한 것’임을 밝힌 것은 의미가 있다. 문화재의 가치는 고유의 예술성과 역사성으로 판단해야 함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외 다른 것이 개입돼서는 안된다. 그것들은 문화재를 슬프게 하는 일일 뿐이다. yshin@seoul.co.kr
  • “여보, 고마워” 한마디면 결혼생활에 꽃이 핍니다

    “여보, 고마워” 한마디면 결혼생활에 꽃이 핍니다

    “결혼한 지 2년도 안됐는데 벌써부터 너무 힘이 드네요.”지난해 3월 결혼한 여교사 김정화(29·가명)씨는 요즘 ‘결혼이 전쟁’이란 말을 실감하고 있다.5년 동안 연애를 하면서도 별로 다툰 적 없던 남편과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부부싸움을 하고 있다. 결혼 전에는 김씨를 2시간 거리에 있는 집에 바래다 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더니 요즘에는 휴일에 청소기 한번 돌려 달라고 해도 온갖 짜증을 다 낸다. “결혼한 지 2년도 안됐는데 벌써부터 너무 힘이 드네요.”지난해 3월 결혼한 여교사 김정화(29·가명)씨는 요즘 ‘결혼이 전쟁’이란 말을 실감하고 있다.5년 동안 연애를 하면서도 별로 다툰 적 없던 남편과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부부싸움을 하고 있다. 결혼 전에는 김씨를 2시간 거리에 있는 집에 바래다 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더니 요즘에는 휴일에 청소기 한번 돌려 달라고 해도 온갖 짜증을 다 낸다. 김씨는 “치약을 중간부터 짜는지, 끝부터 짜는지를 갖고 싸운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남편과 함께 사람들이 별걸로 싸운다며 비웃었는데 요즘 우리 부부가 신발을 똑바로 벗어놓는지, 반대 방향으로 벗어놓는지를 갖고 승강이를 벌인다.”면서 “연애할 때는 뭘 해도 공통점이 많아서 주변에서 꼭 닮은 천생연분이란 부러움도 많이 샀는데 결혼 뒤 보는 남편은 다른 사람 같다.”고 했다. 지난 5월 결혼한 박성진(35·회사원·가명)씨는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소개받은 부인과 만난 지 5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나이가 많다고 조급해하는 집안 어른들 때문에 서두른 감이 있지만 속 깊고 다정한 ‘그녀’라면 평생을 같이할 수 있겠다는 확신도 있었다. 하지만 박씨는 최근 생각보다 까다롭고 예민한 부인과 충돌하는 일이 잦아졌다.“출근 때 자기가 골라주는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아요. 신경 써주는 것은 알겠지만, 가끔은 ‘이러려고 결혼한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신혼이라고 하면 흔히 달콤한 상상을 먼저 하게 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현실이라는 결혼의 벽을 출발부터 절감하게 된다. 결혼 초기의 시행착오는 쉽게 별거나 이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위기에 처해 있는 ‘신혼부부’들에게 서로 더욱 소중히 여기는 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지난달 26일부터 함께 산 지 5년 이내인 부부나 사실혼 관계 커플 10쌍을 대상으로 ‘결혼초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서원 사회복지학 박사의 강연으로 서울시 위기가정 SOS상담전화 사업과 연계해 5주 과정으로 진행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결혼 초기에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갈등상황에 대한 문제해결과 건강한 의사결정 모형을 찾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개발됐다. 프로그램 첫 주는 우선 두 사람의 만남을 점검해 보는 순서로 시작한다.‘운명적인 만남 vs 치명적인 만남’이라는 주제로 ▲우리는 우연의 일치가 많다 ▲이 사람을 만난 이후로 행복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이 사람과 어쩐지 파장이 잘 맞고 느낌이 잘 통한다 등 10개 항목에 대해 각각 10점 가운데 몇 점이나 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어지는 ‘이러려고 결혼한 게 아닌데’ 테마에서는 본격적으로 ▲결혼 전에 내가 당신을 좋아했던 점은 ○○이다 ▲내가 보기에 당신의 직장·가정생활은 ○○인 것 같아 걱정스럽다 ▲결혼 전에 비해 당신의 표정은 더 ○○해졌다 ▲당신이 ○○였을 때가 정말로 멋있다 등 20개 항목을 통해 대화를 이끌어낸다. 2주째에는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부분을 본격적으로 풀어보는 순서가 마련된다.‘내 가슴에 걸린 물건’이라는 주제로 어린 시절의 가족과 지금의 결혼생활 등 전반적인 삶의 과정을 돌이켜보는 시간이다.▲우리 부모님 사이에 일어난 일 가운데 지금도 가슴에 걸려 있는 것은 ○○이다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결혼하면 꼭 닮아야겠다고, 닮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은 ○○이다 ▲결혼할 당시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은근히 걱정했는데 실제로 일어난 것은 ○○이다 ▲결혼생활을 돌이켜보면 남편·아내로서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점수는 ○○점이다 등 27개 항목으로 이뤄졌다. 세번째 시간에는 ‘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다. 우선 부모에게 혹은 학창시절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가장 화 날 때가 언제였는지, 그리고 지금은 가장 화가 나는 상황이 무엇이고 누구에 대해서인지 스스로 점검하게 하는 ‘화의 역사’를 살펴본다.‘화의 패턴’에서는 나와 배우자가 화가 나면 어떻게 변하는지, 내가 화를 낼 때 상대방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 보게 하고 서로의 화를 가라앉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4주차에는 부부가 대화를 나누는 방식에 대해 알아보고, 대화를 할 때 느끼는 점과 바라는 점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하루에 몇 분이나 대화를 하는지, 공통되는 관심 분야는 무엇인지, 의견이 충돌하는 부분과 말이 통하지 않는 부분, 또 그때 느낀 감정 등에 대해 알아본다. 성생활의 빈도, 방해요소, 바라는 점 등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마지막에는 더 행복한 생활을 위해 대화할 때 부탁하고 싶은 점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주에는 자기의 ‘괜찮음 지수’를 알아보고, 상대방을 칭찬하게 된다.‘나 괜찮은 남편·아내 아닌가요’라는 코너에서는 스스로 자랑스럽고 자부심이 생길 때가 언제인지 5개를 꼽고, 내가 괜찮은 배우자라고 느낀 때를 떠올리게 한다.‘여보 고마워요’ 코너에서는 배우자와 결혼하기를 잘했다고 생각되는 때와 배우자를 칭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현재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결혼 1년차 부부 가운데 남편 A씨는 “전에도 결혼 관련 프로그램에 참석한 적이 있지만 일방적으로 강의를 듣기만 하고 깊이 들어갈 만하면 다른 주제로 넘어가서 실제 대화할 시간이 없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부부가 서로 깊게 이야기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아내와 싸울 상황이 되면 그저 회피하기만 했는데 스스로 이런 행동이 이해되지 않곤 했다.”면서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어렸을 적 부모님이 싸우는 것을 정말 싫어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면서 그것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대화를 통해 아내도 내 행동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상담소 박현정 사회복지사는 “결혼 초기에 겪을 수 있는 갈등상황에서 가족과 본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문제를 해결,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서 “시범사업이니만큼 효과를 분석한 뒤 정기적으로 계속 시행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의 (02)782-3601.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남녀가 보는 ‘외도의 출발점’ 이렇게 다르네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태복음 5장 28절) 2000여년 전 예수는 일찍이 인간들의 외도에 대해 엄격하고 광범위한 잣대를 제시했다. 성인(聖人)들은 역사를 통틀어 줄곧 인간의 외도를 말려왔지만 성인(成人)들의 궤도 이탈은 계속돼 왔다. 세계적으로 드물게 간통이 형법상 처벌 대상인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한번 간통법 폐지 논쟁이 일고 있는 2005년 우리 시대 남녀들이 보는 외도의 기준은 뭘까. ●인터넷포털 ‘젝시인러브´ 2만명 설문조사 최근 여성 인터넷포털 ‘젝시인러브’(www.xyinlove.co.kr)가 남녀 회원 2만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내용을 보면 외도를 바라보는 남녀의 시각차가 확연하다. 외도의 기준을 묻는 질문에 조사대상 여성의 45%는 ‘(배우자가)다른 이성과 사랑에 빠졌을 때’라고 답해 가장 많았다. 이어 ‘육체적 관계를 하면 외도’가 22%,‘마음만 끌려도’가 18%,‘만나기만 해도’는 10%를 차지했다. 반면 남성 응답자는 육체적 관계를 외도의 본격적 출발점으로 보는 시각이 뚜렷했다. 남성 응답자의 경우 ‘육체 관계’를 기준으로 둔 경우가 43%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사랑에 빠졌을 때’ 33%,‘마음이 끌리면’ 12%,‘만나기만 해도’ 8% 순이었다. 결국 여성의 73%는 설사 배우자가 부적절한 육체 관계를 갖지 않았더라도 다른 이성에게 사랑의 감정이나 만남, 호감을 갖는 것 자체를 외도라고 규정하고 있는 셈. 반면 육체관계와 상관 없이 마음의 움직임만으로 외도가 시작된다고 본 남성은 55%에 불과해 남녀간 적잖은 편차를 드러냈다. ●남자는 부부 사이 좋아도 외도할 가능성? 한편 외도의 시작은 ‘배우자에게 들킨 순간부터’라며 다소 ‘위험스런’ 정의를 내린 남녀도 각각 2%를 차지했다.‘어떤 때 외도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여성들은 가장 많은 29%가 ‘다투거나 사이가 안 좋을 때’라고 응답, 부부 사이의 관계 악화를 큰 원인으로 꼽았다. 반면 남성은 가장 많은 38%가 ‘성적인 매력이 뛰어난 여성을 만났을 때’라고 답했다. 가정 문제 때문에 외도를 한다기보다는 (부부 사이가 좋더라도)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나면 외도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외도 사실이 들통 난 이후 수습 방법에서도 남녀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보였다.1위로 남자(47%)는 ‘용서를 구한다’라고 정면돌파를, 여성(27%)은 ‘절대 아니라고 잡아 떼거나 변명한다.’는 우회적 수법을 선택했다. 이밖에 남성은 ‘변명이나 부인´ 27%,‘침묵으로 일관’ 15%,‘이별선언’ 6%,‘화를 내며 상대를 탓함’ 3% 순이었다. 여성은 ‘용서를 구함’ 25%,‘이별선언’ 23%,‘침묵으로 일관’ 18%,‘화를 내며 상대를 탓함’ 8%였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임은주 심판 “굿바이 그라운드”

    한국 최초의 여성 국제심판 임은주(39·서원대 겸임교수)씨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임씨는 3일 지난해부터 맡기 시작한 아시아축구연맹(AFC) 심판분과위원회와 지난 8월 임명된 AFC 여성분과위원직에 전념하기 위해 심판직을 은퇴한다고 밝혔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부고]

    ●김수복(사업)봉래(삼인건설 대표)성룡(〃 이사)정룡(공군작전사령부 정훈공보실장)씨 모친상 한준수(위너스프린팅 대표)씨 빙모상 1일 전남 담양 동산병원, 발인 3일 오전 9시30분 (061)383-5105 ●김정주(건국대 교수)씨 부친상 강경일(전 요나손해사정인 대표)씨 빙부상 1일 건국대병원, 발인 3일 오전 6시 (02)2030-7904●강봉인(전 국민은행 지점장)씨 별세 영희(전 대한항공 경영관리팀장)영갑(사업)영남(〃)영식(〃)영철(〃)씨 부친상 최종인(우리투자증권 미금역지점장)씨 빙부상 1일 일산백병원, 발인 3일 오전 7시 (031)919-0899●안기성(조흥은행 반포남지점장)기명(두산디앤디 상무)해균(서강대 사학과 직원)기훈(뉴웰씨앤에스 대표)씨 부친상 이경구(한국정보보호진흥원 연구위원)박태경(한국에스지에스 부장)씨 빙부상 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일 오전 9시 (02)3410-6916 ●송준태(전 군자초등학교 교장)준관(전 동성약품 대표)씨 모친상 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 (02)3410-6920●김명섭(전 남도학숙 총무부장)영춘(성남중부경찰서 보안과)석규(알엠씨 대표)양규(에스오일 과장)씨 모친상 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일 오전 5시 (02)3010-2268●남정인(사업)정희(〃)정채(MBC 경영본부장)씨 모친상 1일 수원 아주대학병원, 발인 3일 오전 7시 (031)219-4119●문희수(서원대 교수)용수(서울시탁구협회 부회장)씨 모친상 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3일 오전 6시30분 (02)392-0299●곽광호(동아엘리베이터 대표)광준(THE NAM 회장)광진(제주 교차로신문사 대표)씨 모친상 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30분 (02)3010-2230●류제헌(한국교원대 교수)제인(조각가)제승(합동참모본부 장군)씨 모친상 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일 오전 10시 (02)3010-2295
  • 梧里 이원익 13대 종손 충현박물관 이승규·함금자 부부

    梧里 이원익 13대 종손 충현박물관 이승규·함금자 부부

    “저희 부부가 사재를 헌납하고, 땀을 쏟아 부은 이 박물관이 청백리로 한 시대를 살았던 오리(梧里)라는 역사적 인물을 바로 알고 기리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최근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충현박물관(관장 함금자·65)이 ‘영정 보물지정 기념 이원익전’(11월14일까지)을 열어 눈길을 모았다. 우리에게 청백리 ‘오리 대감’으로 더 잘 알려진 문충공 이원익(李元翼·1547∼1634)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격동기에 선조 등 3명의 임금을 섬긴 명신(名臣)으로 청렴함과 바른 처신으로 당대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인물. 이번 전시회는 문화재청이 최근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4점의 오리 영정 중 ‘호성공신도상(扈聖功臣圖像)’을 보물1435호로 지정한 것을 기념해 열렸다. 연세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 현재 간호대 동창회장도 맡고 있는 함금자 관장과, 오리의 13대 종손으로 이 박물관 관리법인인 충현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남편 이승규(65·전 연세대의대 세브란스병원 소아과 교수)씨는 사실 박물관과는 거리가 먼 의료인 부부. 이들은 역사적 인물을 주제로 해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박물관을 연 것을 두고 “선조의 뜻을 너무 늦게 받들게 됐다.”며 그간의 경위를 설명했다.“실은 종중 내에서 재산 분쟁이 있었습니다.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6년을 끌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분의 유서 등 자료를 통해 정말 자랑스러운 조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아내와 함께 집안에서 전해지는 영정과 종가 유물 등 자료를 다시 추려 정리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이 과정에서 이들 부부는 50억원에 이르는 사재를 박물관 건립에 쏟아부었다. 광명시 소하동 1085-16 박물관 부지는 오리가 노후에 관직을 떠나 타계할 때까지 기거했던 곳으로, 이곳의 관감당(觀感堂)은 그의 공덕을 기려 인조가 하사한 당옥이다. 박물관의 이름 ‘충현´은 숙종 2년 오리의 학덕을 기려 건립된 사액서원인 충현서원에서 따왔다. 모두 90여평의 전시관에는 보물로 지정된 오리 영정 외에 3점의 영정이 더 있으며, 이밖에 오리 묘와 신도비, 종택과 충현서원지, 영정을 봉안한 영우와 관감당 등이 지방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이곳에 전시된 600여점의 종가 유물도 조선조 반가의 생활상을 전해 주는 매우 소중한 자료들. 함 관장은 “지금 생각해도 가계에 대한 자부심이 없었더라면 결코 해내지 못할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들 부부는 이 자료들을 모아 지난 95년에 119쪽 분량의 컬러판 ‘오리 이원익 유적유물집’을 펴냈으며, 이황, 이덕형, 송시열은 물론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나섰다가 순절한 윤탁, 허적 등과 나눈 서간문을 따로 모아 엮은 ‘간찰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이들 유물 중에서도 유독 오리가 남긴 유언서에 큰 애착을 느낀다.“재산 분쟁 과정에서 유언서에 기록된 그분의 유지가 없었다면 이 박물관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이사장은 “현행 세금 관련 법규정이 재단에 출연조차도 어렵게 한다.”며 “목적사업을 위한 재산 출연에 대해서는 법인세 등을 감면해주는 전향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93) 精舍(정사)

    儒林 (451)에는 ‘精舍’(마음 정/집 사)가 나오는데,‘정신이 머물러 있는 곳’ 즉,‘학문을 가르치기 위하여 마련한 學舍(학사)나 書院(서원)’, 또는 ‘정신을 수양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절’을 뜻하기도 한다. ‘精’자의 본래 의미는 ‘고르다.’이다.意符(의부)인 米(미)는 벼이삭의 象形(상형)이다.音符(음부)인 靑은 ‘풀’처럼 푸른색의 鑛石(광석)을 의미한다.用例(용례)에는 精密(정밀:아주 정교하고 치밀하여 빈틈이 없고 자세함),精誠(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精銳(정예:썩 날래고 용맹스러움) 등이 있다. ‘舍’자는 ‘口’(입 구)와 관리들의 원거리 출장 때 휴대하던 일종의 信標(신표)를 가리키는 ‘余’(나 여)를 합친 글자로 본래의 뜻은 ‘머물다.’, 혹은 ‘머무는 곳’이다.‘베풀다.’‘두다.’‘버리다.’‘쉬다.’ 같은 뜻으로도 쓰인다.用例로는 ‘校舍(교사:학교의 건물),舍利(사리:부처나 고승의 유골),蝸舍(와사:작고 초라한 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등이 있다. ‘精舍’는 산스크리트어 ‘vihara’의 漢譯(한역)이다.精舍는 석가모니 생존시의 居所(거소)에서 유래하였는데, 그저 雨期(우기)에 비를 피할 정도의 움막과 뜰이 있는 허름한 形態(형태)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精舍는 後漢(후한)의 包咸(포함)이 동해에 精舍를 세웠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우리나라는 고려말부터 생겨났으며 朱子學(주자학)의 융성과 더불어 곳곳에 세워졌다. 명망있는 선비가 자신의 고향이나 경치가 좋은 장소를 택해 은거하면서 講學所(강학소)를 개설하면, 그를 흠모하는 志學(지학)들이 모여들어 修學(수학)함으로써 많은 精舍가 성립되었다. 그런데 書院(서원)은 祠堂(사당)을 두어 享祀(향사)를 하는 등의 공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반면 精舍는 단지 私的(사적)으로 학문을 수양하는 곳일 뿐이었다. 住居(주거) 등의 목적인 건물을 나타내는 漢字(한자)에는 ‘家’(집 가),‘屋’(집 옥:흔히 가옥 꼭대기의 덮개를 말함),‘堂’(집 당:관아, 사원, 집회소 등의 높고 큰 집, 혹은 터를 높이 돋우어 지은 집),‘館’(객사 관:여행 등의 목적으로 임시 거처하는 집),‘邸’(사처 저:來朝한 제후가 서울에 올라 왔을 때 머무는 숙소),‘軒’(집 헌:난간이 설치된 긴 복도가 있는 집) 등이 있다. 이밖에 ‘亭’(정자 정:벽이 없는 觀望用(관망용)의 建築物(건축물)),‘樓’(다락 루:2층 이상의 건축물로 規模(규모)가 크고 문과 벽이 없이 트이어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지은 건물),‘臺’(돈대 대: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성토한 위에 세운 건축물),‘閣’(문설주 각:집, 누각, 대궐, 내각, 안방, 객관, 부엌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齋’(집 재:집이라는 뜻 외에도 ‘재계하다.’‘마음을 깨끗이 하다.’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書齋(서재)나 學舍(학사)와 같이 경건함이 필요한 집의 명칭으로 쓰인다),‘宮’(집 궁:원래는 사람이 거주하는 가옥의 통칭이었으나 秦(진)·漢(한) 이후 궁궐의 뜻으로만 限定(한정)하여 쓰임),‘殿’(큰집 전:일반적으로 큰 집이나 큰 건물을 가리키는데, 임금의 居處(거처)나 宮闕(궁궐)을 칭하기도 함) 같이 구체적인 형태의 建造物(건조물)을 나타내는 漢字도 있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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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일(웰리츠 회장)대문(사업)대석(서울시립아동병원)씨 부친상 김진용(월간중앙 대표)씨 빙부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5시 (02)3010-2292●오치윤(묵현초등학교 교사)신진호(세계일보 사회부 기자)씨 빙모상 17일 하계을지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 (02)973-5268●김호동(예비역 공군 준장)씨 상배 진성(한화증권 연구원)씨 모친상 이종주(옥토건축사사무소 실장)씨 빙모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3010-2291●김택호(전 오류철재 회장)씨 별세 효원(한국가스공사 안전품질부장)창원(오류철재 사장)씨 부친상 박춘식(광신)김종문(한국철강협회 HRD 사무국장)씨 빙부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2)3410-6920●김태호(한국부품소재산업진흥원 연구원)기호(건국대사범대부속중 교사)씨 부친상 16일 건국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2030-7905●김윤상(서원교역 대표)윤철(한국아스텔라스제약 소장)씨 부친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7시 (02)3010-2266●이애현(이애현산부인과원장)씨 부친상 신동환(연세대 의대 교수)씨 빙부상 17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9일 오전 7시 (02)392-3299●이선경(안성 이선경산부인과 원장)인호(자영업)인환(전 대우증권 재정부장)경은(이경은치과 원장)씨 부친상 김경한(이코노믹리뷰 편집국장)차광웅(안성 차외과 원장)씨 빙부상 17일 문경 제일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 (054)556-1063●최병훈(전 넥서브 이사)씨 모친상 김현아(아이뉴스24 기자)씨 시모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10시 (02)3010-2265 ●송기문(서울 관악구 부구청장)씨 모친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2)3010-2295●조재영(제일화재 고문)씨 별세 성호(사업)양호(제일화재보험 대리점 사장)씨 부친상 17일 천안단대병원, 발인 19일 오전 10시 (041)550-7169
  • [부고]

    ■ 서원우 서울법대 명예교수 서울대 법대 서원우 명예교수가 16일 오전 8시 숙환으로 별세했다.74세. 고인은 한국공법학회장과 한국환경법학회장, 한국부동산법학회장, 기업활동규제심의위원장, 서울대 법대 학장, 동아시아행정학회 한국지회장 등을 지냈다. 평생 행정법학의 연구에 헌신했으며, 특히 일본과의 학문 교류에 크게 기여해 지난 7월 일본 나고야대학으로부터 한·일 법 문화 교류에 앞장선 공적을 인정받아 우리나라 최초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족으로는 이두영 여사와 덕주(㈜아트랜드 대표), 상교(〃 이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9일 오전 8시.(02)2072-2091. ■ ‘신의 아들’ 만화가 박봉성씨 만화 ‘신의 아들’로 유명한 만화가 박봉성씨가 15일 오후 4시30분 별세했다.56세.1949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4년 ‘떠벌이 복서’로 데뷔했다.1983년부터 1987년까지 총 37권에 달하는 ‘신의 아들’을 집필해 ‘공포의 외인구단’의 이현세씨와 함께 80년대 만화 붐을 일으켰다. 고인은 부산예술문화대 만화학과 겸임교수, 한국만화가협회 22대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2003년 동료 작가들과 만화 콘텐츠 전문기업 ‘대한민국 만화중심’을 설립하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권복녀씨와 2남1녀. 발인 17일 오후 3시,011-9909-3095. ●정원모(전 삼성물산 상무)형모(전 대림산업 부장)이모(한국은행 금통위실장)정모(소망화장품 천안대리점장)학모(삼성SDS 수석)씨 모친상 홍의경(전 대우전자 부장)씨 빙모상 16일 인하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10시 (032)890-3191 ●박황(전 한일은행 심사부장)씨 별세 준(대한광업진흥공사 이사)균(서울농자재 이사)영(전 동화은행 화성지점장)미애(정치과원장)씨 부친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2)3410-6903 ●윤찬열(자영업)동현(명인설계 대표)용현(국방부 사무관)용호(자영업)씨 부친상 1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2)3410-6912 ●정동천(SBS 제작본부 부국장)씨 부친상 16일 이대 목동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 (02)2650-2741 ●서대원(퍼시픽림 인터내셔널 대표)씨 빙모상 김정은(영화배우)씨 외조모상 15일 건국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2030-7903 ●정동건(라포 부사장)동주(세계여행사 대표)동신(라포 전무이사)동인(일본 월드트래블 대표)일순(라포 대표)씨 모친상 정환상(클라라 대표)홍준기(신라CC 회장)씨 빙모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30분 (02)3410-6906 ●주수도(한국무역협회 부산지부장)영화(사업)영봉(〃)영일(두산중공업 총무부)씨 부친상 16일 경남 마산삼성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55)290-5649 ●정용주(건국대 산학협력단 충주지부 행정실장)씨 모친상 이진성(충주 대원고 교사)씨 빙모상 16일 건국의료원 충주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43)840-8496 ●한성규(전 동국대사대부고 교장)명규(용인대 교수)씨 모친상 김경남(동국대사대부속여중 교사)김봉옥(언남중 〃)씨 시모상 승훈(현대모비스 직원)씨 조모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3010-2293 ●오화중(사업)석중(신성건설 주택사업부 과장)점숙(현대자동차 〃)인숙(사업)씨 부친상 김병규(사업)홍성환(〃)씨 빙부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3010-2264 ●김인범(진안테나시스템 대표)씨 상배 지훈(대만 거주)씨 모친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 (02)3010-2236 ●전동성(전 경향신문 편집부국장)씨 모친상 16일 적십자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725-7099 ●이목희(열린우리당 의원)씨 빙부상 16일 인하대부속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32)890-3199 ●송인득(MBC 아나운서국 부장)씨 부친상 16일 일산병원, 발인 18일 오후 1시 (031)908-1599 ●이창우(전 파주시 부시장)흥우(고양시청 근무)응우(우정건설 대표)씨 모친상 16일 오후 2시30분 경기도 고양시 일산백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30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선영 (031)919-0899
  • [부고]

    ●김경주(사업)효주(하이마트 상품본부장)순희(안경박사 대표)씨 부친상 1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3410-6916●김종헌(LEOS 대표)명숙(한국선물포장디자인협회 이사장)강희(호서대 겸임교수)씨 모친상 김영탁(대성엘텍 사장)이성철(동현금속 〃)박정식(서울아산병원 내과과장)최영진(한국단자공업 전무)원준서(Educasia 부사장)씨 빙모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5시 (02)3010-2291●이신헌(잠실 교연학원 강사)신우(쿵픽쳐스 조감독)씨 부친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5시 (02)3010-2253●김현집(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장)씨 부친상 11일 분당서울대병원, 발인 13일 오전 7시 (031)787-1503●임수민(한화이글스 내야수)씨 부친상 11일 수원 연화장장례식장, 발인 13일 오전 8시 (031)217-2952●최철(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씨 별세 10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2일 오전 7시 (02)392-3499●유균형(새한트랜스포트 이사)우형(제이티이 대표)석형(새한트랜스포트 이사)씨 부친상 김일환(한국은행 총무국 부국장)씨 빙부상 11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13일 오전 (02)2650-2752●우태하(전 대한피부과학회장·우태하피부과 원장)씨 별세 김영수(인하대 의과대 교수)한승경(우태하피부과 원장)씨 빙부상 1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30분(02)3410-6915●박흥주(도서출판 푸른솔 대표)해주(삼화페인트 과장)원식(가희 계장)씨 부친상 11일 강화장례식장, 발인 13일 오전 9시 (032)932-8655●김하규(전 대성인쇄 대표)씨 별세 석찬(펠츠펠리스 대표)석진(자영업)경희(〃)씨 부친상 고해석(자영업)씨 빙부상 11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13일 오전 9시 011-355-2067●윤창기(유나이티드스펙트럼 회장)영기(서원실업 대표)용기(재미 사업)씨 부친상 홍승재(전 쌍용 전무)최진식(SIMPAC 회장)정성환(재미 사업)씨 빙부상 10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921-3699●최순기(MBC프로덕션 영상기술팀 차장)현요(백해영갤러리 큐레이터)씨 부친상 11일 서울시립보라매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831-6099●박성규(도서출판 아침이슬 대표)씨 모친상 11일 서울 종로구 무학동 세란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723-4444
  • [부고]

    ●김영구(전 정무장관·전 국회의원)씨 모친상 태섭(신광테크 대표)정섭(한일카페트 〃)씨 조모상 정평섭(성담 회장)씨 빙모상 8일 서울대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2)2072-2011●조영래(변호사)성래(TEE-KOREA 이사)중래(명지대 교수)순경(이화여대 〃)씨 모친상 이달근(사업)박수문(포항공대 교수)박정부(부싯돌 대표)씨 빙모상 이옥경(내일신문 편집국장)씨 시모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7시30분 (02)3410-6916●박종식(전 경영섬유공업 회장)씨 별세 흔택(경영산업 대표)하수(하선데코 〃)씨 부친상 이수신(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관리위원장)조상연(한국세큐리트 대표)씨 빙부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3일 오전 9시 (02)3410-6914●오윤배(캠프코리아 대표)씨 부친상 김용집(전 코트라 본부장)조태억(재미 의사)최희성(일본삼성 상무)씨 빙부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8시 (02)3410-6918●김유철(관동대 피아노과 교수)유강(한국외대 영어학부 교수)씨 모친상 김동수(미국 나약대 신학과 교수)씨 빙모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6시 (02)3410-6919●이명노(건설교통부 익산지방국토관리청장)덕노(독일약국 대표)준노(남양당한의원장)광노(세종한의원장)은노(용산경찰서 경장)씨 부친상 박광우(자영업)조원일(전주공대 교수)임철수(원광여고 교사)씨 빙부상 8일 전북 원광대병원, 발인 11일 오전 7시 (063)842-5237●강부부(동신상선 대표)씨 모친상 상우(세성항운)민석(동신상선)씨 조모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2)3410-6912●이병직(전주이씨 수도군파 종친회 고문)병도(중앙공사 대표)병주(전 철도청)병준(재미 사업)병춘(한불에너지 관리주)병화(미국다이몬 연초 직원)씨 모친상 9일 강북삼성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2)2001-1093●양문호(경희대 의대 교수)씨 부친상 8일 경희의료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2)958-9549●박종택(전 경상남도 부지사)씨 별세 성원(SBS PD)씨 부친상 김재민(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부장)천국진(사업)하정희(미국 거주)장호현(재정경제부 과장)씨 빙부상 9일 마산삼성병원, 발인 12일 오전 9시 (055)290-5651●유재수(케이디미디어 경영지원부장)씨 부친상 9일 국립의료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2)2262-4811●김점남(오현초등학교 교사)씨 별세 학권(세중코리아 대표) 학규(자영업) 학래(서울지하철공사 대리)씨 형님상 9일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 11일 오전 5시 (02)929-1099●한성간(연합뉴스 기획위원)성웅(개인사업)규희씨 모친상 9일 오전 9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지하1층 2호, 발인 11일 오전 9시,(02)392-0499●홍신희(전 서원대 총장)씨 별세 기윤(KT 인재경영실 근무)기엽(음악가)씨 부친상 장항진(치과의사)씨 빙부상 9일 오후 3시 30분 청주 참사랑병원 영안실, 발인 11일 오전 8시 (043)298-9200
  • [인사]

    ■ 과학기술부 ◇부이사관 승진 △원자력정책과장 金鎭洪■ 교육인적자원부 △인적자원정책국장 김경회■ 대한주택보증㈜ △관리본부장 직무대리 서원영△관리부장 신용태△전산실장 김기돈△리스크관리팀장 전대현△주택금융지점장 장명보△서울중앙〃 이동원△대전〃 이경도△서울관리1센터장 박종민△서울관리2〃 신충식△영남관리〃 오규열△중부관리〃 전재석■ 데일리줌 △광고마케팅국 부장 이선동△편집국 〃 홍석동 박효순■ 한누리투자증권 ◇승진 △기업금융부장 李炯洛
  • 秋억속으로 ‘양반의 고장’ 안동

    秋억속으로 ‘양반의 고장’ 안동

    ‘양반의 고장’ 안동에서는 고즈넉한 가을을 느낄 수 있다. 쪽빛 하늘을 머리에 인 고택(古宅)과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270여점의 시대별 다양한 문화재들이 때묻지 않은 자연과 어우러져 멋진 가을 풍경을 연출한다. 그렇다고 양반 문화의 엄숙함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풍자와 해학, 민중의 애환을 담은 ‘하회탈 놀이’ 등 서민생활 속에 잠재돼 있던 갖가지 전통놀이도 맛볼 수 있다.10월9일까지 이곳에서는 신명나는 ‘2005년 안동 국제 페스티벌’이 열린다. 안동은 전통과 민속체험, 자연 등 삼박자를 갖춘 가을 여행지다. 지난 1999년 이곳을 방문했던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일행은 ‘가장 한국적인 곳에서 한국 역사와 문화의 정수를 경험했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臨淸閣)이 고택 체험장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안동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안동 내일부터 축제 한마당 안동은 태백산맥과 노령산맥이 시의 경계를 이루고 낙동강의 본류가 흐르고 있어 상쾌한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깎아지른 기암절벽과 맑은 계곡, 사시사철 색다른 표정을 전하는 울창한 자연림이 가을 나들이객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가을 경치를 만끽하고 싶다면 부용대를 권한다. 태백산맥 끝자락에 위치한 부용대에 올라서면 멋진 소나무 숲 사이로 하회마을의 가을 정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하회마을을 휘감아 도는 아름다운 낙동강과 마을을 감싼 화산의 풍광은 감탄을 자아낸다. ●고즈넉한 가을 느낌 이곳에서는 ‘화천’이라 불리는 낙동강이 마을 전체를 돌아 흐른다 하여 ‘하(河·물)회(回·돌다)’라 부른다. 마치 물에 떠 있는 연꽃과 같은 ‘연화부수형’지형이다. 높이 64m에 달하는 부용대는 연꽃을 의미하며, 마을 이름에서 유래됐다. 부용대는 화천서원에서 250m의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길 자체가 무척 아름답다. 부용대에서 내려와 오른쪽 길로 조금 내려가면 서애 유성룡 선생이 낙향해 기거했던 옥연정사가 있다. 이곳은 서애가징비록(국보 132호)을 저술했던 곳이며, 영화 ‘조선남녀상열지사’의 촬영장소로도 이용됐다. 인근에 있는 병산서원(사적 제260호)도 반드시 들러야 할 곳. 서애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에서도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자, 많은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운 서원으로 꼽는 곳이다. 서원 정문을 들어서면 낙동강을 마주보며 서 있는 널찍한 누각 만루대가 버티고 서 있다. 사람들이 이곳에 올라 휴식을 취하며 낙동강과 화산의 정취에 흠뻑 빠지곤 한다. 하회마을에서 동북쪽으로 35번 국도를 따라 30분쯤 달리면 퇴계 이황 선생을 모신 도산서원(사적 제170호)이 나온다. 다시 35번 국도를 타고 시내로 내려오면 가는 길에 월영교에서 안동댐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월영교는 길이 387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목책교다. 월영교에는 점핑날개 곡사분수대를 설치해 다리 양옆으로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는다. 분수는 4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매일 낮 12시, 오후 1시,3시,5시,7시,9시에 20분간 물줄기를 뿜어낸다. ●하회탈 만들어 볼까 최근 문을 연 안동 공예문화전시관(www.acehall.co.kr·054-843-5531)에 가면 하회탈 만들기 등 각종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시내에서 안동댐 방향으로 가다보면 보이는 전시관으로 지난 8월 문을 열었다.1층에는 작품 전시관과 체험관이 있으며,2층에는 작가들의 공방과 작업실이 갖춰져 있다. 이곳에서는 7000∼1만원 정도를 내면 도자기공예, 한지공예, 금속공예, 염색공예, 목공예, 칼라믹스 등 각종 체험에 참가할 수 있다.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찰흙으로 하회탈을 쓴 토기 인형을 만드는 것. 찰흙을 빚어 사람 모형을 만든 뒤 각종 하회탈 모형틀에 찰흙을 넣고 탈 모형을 찍어 낸 뒤 붙이면 멋진 토기 인형을 만들 수 있다. 작품은 택배비를 지불하면 집으로 보내 준다. 하회동탈박물관(www.tal.or.kr·054-853-2938)에서는 탈만들기와 탈 탁본체험 등을 할 수 있으며, 안동한지공장(andonghanji.com·054-858-7007)에서는 한지제작, 연만들기 체험 등을 즐길 수 있다. ■ 임청각 ●느낌있는 고택, 임청각 안동시 법흥동에 위치한 임청각(보물 제182호)에는 특별함이 배어 있다. 여느 고택(古宅)들과는 사뭇 다른 감동이 느껴진다. 특히 이곳에 얽힌 사연들을 알고 나면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강한 울림에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다. 단아한 선비의 기품이 느껴지는 고택, 넓은 대청마루, 돌계단, 위폐 없는 사당뿐만 아니라 집앞으로 수시로 오가는 기차 소리에도 아픈 사연이 숨어 있다. 지촌종택(지례예술촌), 농암종택, 오천군자마을 등 수백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안동지역의 다른 고택을 제쳐두고 임청각을 찾으면 한옥뿐 아니라 역사까지 알게 된다. 임청각은 조선 중종 14년(1519년)에 형조좌랑이던 고성 이씨 이명이 지은 집으로 고성 이씨의 종택이지만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 선생의 생가로 더 유명하다. 석주 선생과 그의 아들, 손자 3대에 걸쳐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충의의 종가’로 친족 9명이 서훈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일제로부터 수많은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석주 선생의 증손자인 이항증(66)씨는 “낙동강변 영남산 자락에 지어진 99칸짜리 집은 일제가 집의 맥을 끊으려 집을 관통하는 철로를 놓아 집이 잘려나갔고, 현재는 70여칸만 남아 있다.”면서 “그나마 다행인 것이 당시 일제가 아예 집을 없애려 했으나 동네 주민들의 반발로 철로를 놓는 선에서 그쳤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지금도 대문 밖을 나서면 바로 철로가 있어 수시로 기차가 다닌다. ●체험장으로 문 활짝 고성 이씨 종택이지만 조상들의 위폐가 하나도 없다.1911년 석주 선생이 만주로 독립운동을 떠나기 전에 ‘나라가 없어졌는데 종묘가 무슨 소용이냐.’며 위폐를 모두 땅에 묻어 버렸기 때문이다. 또 종가는 석주 선생이 독립 군자금 마련을 위해 세번이나 판 사연도 있다. 석주 선생이 집을 팔면 이씨 문중에서 구입하고, 다시 팔고, 구입하고를 세번이나 거듭했다.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온 이상진(40·경기 수원시)씨는 “헌법에 명시된 임시정부 법통을 따지면 사실상 이 집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의 생가나 다름없는 곳으로 전통 가옥 체험 이상의 느낌을 받았다.”면서 “하룻밤을 잘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영광스러웠다.”고 말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곳은 일본인 숙박객들이 많이 찾는다. 일부는 방명록에 ‘조상이 저지른 만행에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떠난다.’는 내용을 남겨 놓기도 했다. 수많은 수난을 겪었지만 고택에서는 단아한 선비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목조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영남 선비들의 체취가 가슴을 파고든다. 임청각이라는 당호는 퇴계 이황선생이 친필로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동쪽언덕에 올라 휘파람을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기도 하노라’라는 글귀에서 따온 것이다. ‘광복회 안동지회’라 쓰인 대문을 열고 돌계단을 오르면 영남산의 산세 모양에 따라 지어진 군자정이 나타나는데 이곳은 안동선비들이 대청마루에서 문학과 강학을 했던 공간이다. 군자정 내부에는 퇴계 선생의 친필인 ‘임청각’이라는 편액과 이상룡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상룡 선생의 태어난 방 앞마당에는 종가의 생명수인 석산수가 아나는 우물이 있다. 산의 지기가 모인 우물을 마시면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속설이 전해지는 신령스러운 곳이다. 퇴실에는 지난 3월 이곳에서 머문 도올 김용옥 선생의 글씨도 볼 수 있다. 수십년간 폐가로 방치돼 있다가 이항증씨가 인근에 건립 중인 독립운동기념관과 연계해 고택 체험장으로 일반에게 문을 열었다. 석주 선생의 후손인 이상동(45)씨가 관리를 맡고 있는데 10개의 방에서 숙박할 수 있다.3∼4인용 작은 방은 5만원, 중간방은 7만원,8∼10인용 방은 12만원이며,20명 이상 묵을 수 있는 군자정은 20만원이다. 전통가옥이어서 화장실이 방과 멀리 떨어져 있으나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안동역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안동댐 쪽으로 1㎞ 정도 달리다 법흥 육거리를 지나 조금만 가면 나온다.(054-853-3455) ●가는길 안동 시내와 하회마을은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빠져나오면 이정표가 보인다.IC를 빠져나와 좌회전하면 하회마을, 부용대, 병산서원이 나타나며, 우회전하면 시내와 임청각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길이 막히지 않는다면 서울에서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버스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열차는 청량리역에서 하루 8차례, 서울역에서 하루 1차례 떠난다. 시간은 4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안동역(054-856-7788)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안동관광정보센터(tour.andong.go.kr·054-856-3013)인 안동시 관광안내소(054-851-6397)로 문의하면 된다. ■ 안동 맛자랑 음식에도 양반문화의 전통이 배어 있다. 헛제삿밥과 안동식혜, 안동닭찜, 간고등어, 한동한우 등이 유명하다. 헛제삿밥은 도산서원 등 유명 서원의 많은 유생들이 쌀이 귀하던 시절 제사음식을 차려놓고 축과 제문을 지어 풍류를 즐기며 허투루 제사를 지낸 뒤 제사 음식을 먹는 데서 유래했다. 후식으로 안동 식혜를 즐겼는데 일반 식혜와 달리 식혜에 생강과 고춧가루를 넣어 발효시킨 특유의 먹을거리다. 안동댐 월영교 앞 ‘맛 50년 헛제사밥’(054-821-2944)에서는 6000원,1만원 두 종류를 판매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원조 안동찜닭을 맛볼 수 있다. 안동 구시장 내에 찜닭집이 즐비하다.1마리에 1만 8000원인데 4명이 먹기에 충분하다. 안동역 건너편 한우골목에서는 값싸고 질좋은 한우고기를 맛볼 수 있다. 안동의 한우는 소백산 자락에서 자라 육질이 부드럽다.250g에 1만 4000원. ■ 국제 탈춤축제 국내외 전통탈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2005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www.maskdance.com)이 오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10일간 안동 탈춤공원과 하회마을에서 펼쳐진다. ‘할미의 억척’을 주제로 개최되는 이번 페스티벌에는 국내외 전통탈춤 및 안동문화재 현장 축제, 민속놀이마당 등 270여개 행사가 준비돼 있다. 올해 행사에는 러시아와 스리랑카, 타이, 타이완, 일본 등 15개국의 대표적인 공연단체가 참가해 수준높은 공연을 선보인다. 국내에서는 하회별신굿 탈놀이, 봉산탈춤, 양주별산대놀이 등 각 부문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10개 탈춤 공연단이 참가한다. 특히 하회마을과 만송정 솔숲, 부용대의 절경과 어우러져 펼쳐지는 한국전통불꽃놀이인 ‘선유줄불놀이’와 하회마을 만송정 무대에서 열리는 국내외 탈춤공연이 이번 행사의 백미로 꼽힌다. 관광객들이 자신이 만든 탈과 가면 등을 직접 쓰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마스크 댄스 경연대회’(총상금 2000만원)와 함께 놋다리 밟기 등 30여종의 민속행사를 체험할 수 있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추진위원회 (054)840-6398.
  • [부고]

    ●신정훈(서울신문 상대원지국장)씨 부친상 20일 성남중앙병원, 발인 22일 오전 7시 (031)741-3699●이경표(삼성전자 LCD총괄마케팅팀 상무)씨 별세 2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7시 (02)3410-6915●노상국(오라뉴스 대표·전 전자신문 주필)씨 모친상 21일 분당제생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30분 (031)781-6721●박흥규(금성강철 전무)씨 부친상 이준호(전 미화금속 대표)박성일(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팀장)씨 빙부상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7시30분 (02)3010-2235●김광현(민재산업 대표)광운(해동식품 대표)광식(해동식품 상무)씨 모친상 조정빈(호주 거주)씨 빙모상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3010-2295●이인호(한도시건축사사무소 차장)광호(고구려개발 과장)씨 모친상 박의진(신성건설 이사)씨 아우상 21일 경희의료원, 발인 23일 오전 7시 (02)958-9549●최준식(한국관광협회중앙회 총무팀장)씨 상배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3010-2237●김수남(서울석유㈜ 대표이사)계남(용산주요소 대표)호남(서울석유㈜ 상무이사)씨 모친상 서원희(클리닉 유라인 원장)씨 시모상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9시30분 (02)3010-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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