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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일 대구서 ‘왕건길 걷기’ 행사

    ‘왕건길 체험 건강걷기’ 행사가 오는 5일 대구시 동구 도평동에서 열린다.행사는 도평동 향산마을에서 시량이까지 6.7㎞ 구간을 걷는 것으로 올해 처음 개최된다. 고려 태조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패해 생사의 갈림길에 빠졌을 때 신숭겸 장군의 지혜로 간신히 빠져나와 반야월을 지나 김천 등을 거쳐 개성으로 돌아간 뒤 후삼국을 통일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행사가 마련됐다. 당시 왕건은 불로동을 거쳐 평광동을 지날 때 지금의 시량이에 이르러 한 나무꾼에게 물 한 바가지와 주먹밥을 얻어 먹고 힘과 용기를 내 산을 넘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달구벌얼찾기모임과 도평동사무소에서 참가자들에게 ‘왕건길 주변 역사 및 문화재 체험 답사’의 해설 및 안내를 한다. 천연기념물 제1호인 달성측백수림과 전귀당, 백원서원, 관음사, 구로정, 용암산성, 와룡암, 모영재를 접할 수 있으며 76년된 대구 최고 수령 사과나무에서 열리는 사과를 맛 볼 수 있는 기회도 갖는다. 이밖에도 옛 평광초등 운동장에서 평광사과와 도평동 목공예품이 전시·판매된다. 대구 동구청 관계자는 “왕건길을 걸으면 가을 정취도 느끼고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15)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 횡성 풍수원성당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15)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 횡성 풍수원성당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2리 두메산골에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고즈넉하게 들어앉은 풍수원 성당(주임신부 김승오·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 고딕·로마네스크풍 건물이 명동성당을 축소해 옮겨놓은 듯 빼닮았지만 의자 없는 맨 마룻바닥과 간결한 내부가 100년 전 건립 때의 모습 그대로다. 자연과 잘 어울리는 고즈넉한 외양 때문에 일반인들에겐 이런저런 드라마와 영화 촬영의 단골로 애용되는 아름다운 공간이면서 한국 천주교사의 한 획을 그을 만큼 중요한 종교적 위상을 지닌 곳. 신앙촌을 터전으로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으로, 강원도 경상도 등 한국 동부 지역의 천주교 성당과 교인을 총괄했던 ‘동부 전교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지금은 번듯한 국도가 성당 앞을 지나고 있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좁은 비포장 길이 이 지역 유일한 통로였을 만큼 성당이 들어선 자리는 첩첩산중의 벽지다. 산중의 외딴곳이어선지 인근 경기도를 비롯한 외지에서 박해를 받은 천주교 교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살았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당시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도 자연스레 천주교 전교의 주요 거점으로 삼았을 것으로 보인다. 1888년 강원도 최초의 본당으로 설립되어 르메르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파견됐지만 성당이 건립된 것은 2대 주임인 정규하(1863∼1943년)신부가 재직하던 1907년이었다. 정규하 신부는 김대건·최양업에 이어 1896년 서울 중림동성당에서 서품을 받은 한국 세번째 신부. 풍수원성당 역사에선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지금까지 교인들 사이에 회자된다. 사제 서품을 받아 바로 풍수원 본당에 부임했으며 선종 때까지 47년간 이곳을 지키며 신자들 사이에 신망이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 신부 사목 기간중 풍수원 성당은 총 12개 군을 관할하는 중심성당으로 성장, 지금의 춘천·원주 교구의 모태가 되었다. 한국에선 7번째로 지어진 고딕·로마네스크 양식의 풍수원성당은 바로 정규하 신부의 뜻을 따른 신자들이 고생스럽게 품을 팔아 일군 성과였다. 건립기금은 강원도 지역 몇몇 지주와 신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6000원. 중국인 벽돌공들이 벽체를 쌓았지만 산에 올라 나무를 베어 오고 성당 인근의 가마에서 직접 벽돌을 구워 나른 것은 모두 한국인 신자들이었다. 성당 건립 소식을 들은 양양, 강릉의 신자들은 보름씩이나 걸려 태백산맥을 넘어와 일손을 보탰다고 한다. 본당 건물 자체는 120평 규모로 아담하다. 정문과 함께 양측 벽에 각각 1개씩 출입문을 내었는데 지금도 신자들은 이 문을 사용하고 있다. 건물 외양처럼 내부도 명동성당을 아주 닮아있긴 하지만 제대며 성물 등 구조물은 간결하고 소박하다. 제대를 중심으로 6개씩 좌우로 늘어선 기둥은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12사도의 상징. 처음엔 나무로 세웠으나 나중에 석조로 교체되었다. 바닥은 처음 그대로 의자(장궤)없는 맨 마룻바닥인데 둥근 아치형 천장과 썩 잘 어울린다. 제대 뒷부분 벽에 화려하지 않게 설치된 3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성당 안으로 들이는 은은한 빛이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제대 오른쪽 마리아상에 얽힌 사연도 흥미롭다.6·25전쟁중 이 지역에서 전투가 치열했는데 간절히 기도해 부대원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미군 장교가 나중에 귀국해 비행기로 공수해 왔다고 한다. 성당 왼쪽에 성당을 바라보며 서있는 2층짜리 유물전시관은 전국의 신자와 순례객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성지.1912년 사제관으로 만들어 써오다가 1997년 대대적인 단장을 거쳐 320점의 초기 유물들을 모아 놓았다. 성당 건립자인 정규하 신부의 유품을 비롯해 초기 사제들이 미사때 쓰던 촛대와 의식복, 흙으로 빚은 십자가, 율무묵주, 성합, 기도서들을 눈여겨보면 이곳이 예사로운 곳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사제관 왼편 나지막한 동산에 조성한 십자가의 길도 꼭 둘러봐야 할 공간. 지난 2002년 판화작가 이철수씨가 예수 최후의 고난상들을 동판화로 제작한 14처를 음미하며 정상에 오르면 잘 꾸며진 묵주동산을 만나게 된다. 나란히 선 큰 십자고상과 마리아상 앞에 축구공 크기만 한 묵주알들이 빙 둘러 박혀 있는 게 특이하다. 횡성군과 원주교구는 요즘 풍수원 성당의 역사적 가치를 인근 자연과 연계해 천주교 복합성지에 담아내려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100억원을 들여 대지 78만평에 6만 8000평 규모의 ‘바이블 파크’를 조성하는 것이다. 예정대로 완공된다면 내년 말까지 풍수원 성당을 중심으로 수목원과 피정의 집, 미술관, 정규하 신부 동상, 천국동산, 가마터 등이 들어서게 된다. 풍수원 성당 김승오(54) 주임신부는 “한국 동부지역 전교의 중심지로 우뚝 섰던 초기의 위상에선 멀어졌지만 초기 모습을 고스란히 갖춘 채 고난했던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소리없이 증거하는 핵심적인 성지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천주교계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imus@seoul.co.kr ■ 천주교 최초의 신앙촌은 한국엔 천주교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모여 살았던 교우촌이 여럿 있지만 풍수원 성당 일대는 가장 먼저 형성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앙촌이다. 초기의 큰 성당들이 주로 대도시에 들어섰던 것과 달리 험한 산골짜기에 커다란 풍수원 성당이 세워진 것은 바로 이 신앙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초는 1800년대 초 경기도 용인에 살던 40여명의 신자들이 신유박해를 피해 이 지역으로 피신해온 것. 당시 신자들은 피신처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용인에서 비교적 가까운 산골인 이 지역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터를 잡은 신자들은 다른 지역의 교우촌과 마찬가지로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우며 연명했다. 단 한 사람의 성직자도 없이 두려움에 떨며 80여년간 신앙심을 지키던 신자들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에 의해 이곳에 강원도 최초의 본당이 설정된 1888년에야 자유로운 신앙의 꽃을 피울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은 한때 전국에서 모여든 신자들로 붐볐으나 차츰 흩어져 살게 되었으며 6·25전쟁을 겪으면서 북한에서 넘어온 난민 중심의 교우촌으로 거듭났다. 이후 신자들의 크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으나 30여년 전 도로와 마을 정비사업을 거치면서 많은 가구가 떠났다. 지금 성당 앞에 비슷한 형태로 모여있는 주택 40여채는 30여년 전 정비사업을 하면서 들어선 것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모두 천주교 신자들.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신앙촌 성격이 강한 때문인지 지금 횡성군 서원면 일대 주민 2300명중 신자가 850명에 이를 정도로 천주교 세가 강하다. 물론 풍수원 주민은 모두 천주교 교인들이다.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44) 時享(시향)

    儒林(711)에는 ‘時享’(때 시/제사지낼 향)이 나오는데,‘시월 보름날을 전후하여 祖上神(조상신)에게 지내는 제사’로 時祭(시제)라고도 한다. ‘時’는 본래 ‘日’(날 일)’과 ‘止’(발자욱 지)가 합하여 ‘계절’의 뜻을 나타냈다.‘때’‘시간’과 같은 뜻도 派生(파생)하였다.音符(음부)에 해당하는 ‘寺’는 변신을 거듭하여 ‘들다’라는 뜻에서 ‘모시다’의 뜻이, 다시 ‘官廳(관청)의 이름’을 나타냈다.後漢(후한)의 明帝(명제)는 인도에서 온 僧侶(승려)들을 위하여 郊外(교외)에 白馬寺(백마사)라는 客舍(객사)를 마련하였는데, 이것이 중국 최초의 ‘사찰’이다. 用例(용례)에는 ‘晩時之歎(만시지탄:시기에 늦어 기회를 놓쳤음을 안타까워하는 탄식),時代錯誤(시대착오:변화된 새로운 시대의 풍조에 낡고 뒤떨어진 생각이나 생활 방식으로 대처하는 일),時宜適切(시의적절:당시의 사정에 꼭 알맞음) 등이 있다. ‘享’은 祖上神(조상신)을 모신 장소인 宗廟(종묘)를 본뜬 象形(상형)으로 ‘바치다’의 뜻을 나타냈다. 조상에게 음식을 바치면 福(복)을 받아 일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싹트면서 ‘형통하다’의 뜻으로도 쓰였다.用例로 ‘享年(향년:한평생 살아 누린 나이),享樂(향락:즐거움을 누림),享祀(향사:제사),配享(배향:공신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일. 학덕이 있는 사람의 신주를 문묘나 사당, 서원 등에 모시는 일)’ 등이 있다. 인류가 원시적인 생활을 할 때 천재 지변이나 사나운 맹수의 공격과 질병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天地(천지),深水(심수),巨木(거목),山川(산천) 등에 절차를 갖춰 빌었던 데에서 祭祀(제사)가 시작되었다. 유교적인 조상숭배의 제도로 변하면서 그 儀式(의식) 節次(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까다로워 전문가들 사이에도 甲論乙駁(갑론을박)의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조상신에 대한 제사는 대체적으로 삼국시대부터 의례의 형태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性理學(성리학)의 수입과 더불어 朱子家禮(주자가례)가 보급되면서 家廟(가묘)의 설치와 같은 일대 변혁을 예고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불교의례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유교식 의례가 널리 통용되지는 않았다.四代封祀(사대봉사),五代 이상 時祭가 일반화된 것은 16세기 이후의 일이다. 祭禮는 절차와 규정의 복잡성 만큼이나 종류도 다양하다. 초하루 보름에 사당에서 올리는 朔望祭(삭망제)를 비롯하여 집안의 大小事(대소사)를 사당에 알리는 告由祭(고유제), 설과 추석에 행하는 茶禮(차례),端午(단오)나 流頭(유두)와 같은 각종 名節에 행하는 世俗(세속) 節祀(절사),封祀(봉사) 대상의 忌日(기일)에 올리는 忌祭祀(기제사),春夏秋冬(춘하추동) 四時節(사시절)의 仲月(중월)에 올리는 時祭, 시월에 5대 이상의 묘소에서 올리는 歲一祀(세일사)인 時享(시향) 등이 그것이다.祭禮의 일차적 목적은 報本反始(보본반시:지금의 나와 내 존재의 연원인 조상이나 천지만물의 은의에 감사를 표하는 것)에 있다. 진지하고 경건한 자세로 같이 참여하기 때문에 구성원간의 不信(불신)이나 葛藤(갈등)이 사라지고 和合(화합)의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는 것이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儒林(720)-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

    儒林(720)-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 경오년(1570년) 12월7일. 도산서당은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서당 안은 퇴계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사방에서 몰려든 70여명의 제자들로 빈 곳이 없을 정도로 만원이었지만 누구 하나 정적을 깨트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당을 오갈 때에도 뒤꿈치를 들고 발끝으로만 걸어 예리성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비록 제자들은 입을 열어 말을 나누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스승 퇴계가 이번 병에서 일어나 쾌차하리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퇴계의 병은 위독하였다. 지난 11월9일 가묘에서 시향을 올릴 때 ‘내가 이제 늙어서 살아있는 날이 많지 않으므로 불가불 제사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하며 손수 독()을 받들고 제물을 올리며 제사를 주관한 이후 감기에 걸렸던 퇴계는 그러나 계속된 무리로 병세가 악화되어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제자 이덕홍(李德弘)이 스승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온계로 온 것은 12월2일. 이덕홍은 퇴계가 가장 사랑하던 애제자였다. 이덕홍은 퇴계보다 40년이나 연하의 제자였으므로 제자라기보다는 퇴계의 아들과도 같은 존재였다. 실제로 퇴계는 이덕홍을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특히 이덕홍은 10살 때 퇴계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배웠으므로 퇴계는 각별히 이덕홍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퇴계는 자신이 위중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친자식과 같은 이덕홍을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이덕홍이 남긴 ‘간재문집(艮齋文集)’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12월2일. 병세가 더욱 위중해지셨다. 약을 드신 다음 말씀하시기를 ‘내일은 장인(권질)의 제사니, 고기반찬을 쓰지 말라.’고 이르셨다. 이날 이덕홍은 퇴계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계상서당으로 와서 머물렀다.” 이덕홍(1541∼1596)은 조선중기의 학자로 자는 굉중(宏仲), 호는 간재(艮齋)였다. 10살 때 퇴계의 문하에 들어가 극진하게 퇴계의 사랑을 받았던 이덕홍은 훗날 이름난 선비 9명 중 4위에 뽑혀 벼슬에 올랐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세자를 모시고 성천까지 호종하였을 만큼 빼어난 충신이었는데, 특히 이순신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거북선’의 도안에도 참여하였다고 알려진 만큼 재능 역시 뛰어난 선비였다. 이덕홍이 얼마나 퇴계의 사랑을 받았는가를 알 수 있는 사실은 지금도 도산서원의 유물각 안에 안치된 혼천의(渾天儀)를 이덕홍이 스승의 부탁을 받고 직접 제작하였다는 사실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과 성좌의 위치를 추정하는 과학기구인데, 이덕홍은 스승이 직접 설계한 도안대로 둥근 공모양의 천체를 대나무로 만들어 그 위에 종이를 바르고 수평으로부터 약간 기울어져 있는 나무대 위에 고정시켜 직접 만들었던 것이다. 퇴계는 생전에 이덕홍이 만든 혼천의를 바라보면서 우주만물의 운행과 별들의 위치를 관측하며 태극사상을 연구하였을 것이다.
  • 훔친 문화재 사들여 전시회까지

    도난당한 중요 문화재들을 사들여 숨겨온 서예가, 박물관장, 탱화 화가 등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이 중 일부를 버젓이 일반에 전시하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8일 전국 사찰, 고택, 서원 등에서 도난당한 문화재 252점을 전문 절도범, 미술품 매매상 등을 통해 취득·은닉한 서예가 문모(51)씨, 사설박물관 관장 박모(58·인간문화재)씨와 권모(65)씨 등 6명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문씨는 1998년 5월부터 올 4월까지 절도범 우모(52·수감 중)씨가 훔친 통일신라시대 석탑 8부신 중 기단석 6점을 사들여 숨겨온 것을 비롯해 도난문화재 유통책으로부터 240여점을 사들인 혐의를 받고 있다. 문씨는 이 중 백은문집 목판, 취사문집, 석불좌상 등 140여점을 경기 여주 사설박물관장 박씨에게 판 혐의도 받고 있다. 서울 종로의 박물관장 권씨도 2002년 6월 미술품 매매상으로부터 80년 전남 해남 대흥사에서 도난당한 사천왕도를 사들인 것을 비롯해 93년 9월부터 2002년 11월까지 미술품 매매상 등으로부터 창녕 관룡사 도난 영산회상도 등 도난 불교미술품 7점을 매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이종현의 나이스샷] 명문 골프장 짝퉁 골프장

    불과 5∼6년 전만 해도 골퍼들 사이에서는 ‘북일남화’란 말이 널리 퍼져 있었다. 강북에서는 일동레이크, 강남에서는 화산CC가 최고라는 평가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을 좀체 듣기가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명문 골프장에 대한 평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강북에선 송추CC와 서원밸리GC가, 강남에선 남부CC와 이스트밸리가 최고 명문 골프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가하면 세계 100대 명문 골프장에 선정된 제주도의 나인브릿지와 핀크스골프장은 골퍼들의 관심에서 차츰 멀어지고 있다. 반면 로드랜드GC와 블랙스톤골프장이 골퍼들 사이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골프장으로 꼽힌다. 그렇다고 예전에 명문으로 불리던 그 골프장들의 가치가 떨어진 건 절대 아니다. 분명한 건 골프장에 대한 가치와 평가는 항상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명문 골프장에 대한 평가는 왜 바뀌는 것일까. ‘골프 천국’ 미국에선 골프다이제스트와 골프매거진이 2년에 한 차례씩 ‘100대 골프장’을 선정해 발표한다.선정기준은 샷의 가치와 코스난이도, 디자인의 다양성·기억성·미적감각, 코스관리, 전통성 등이다. 국내 역시 위의 7가지를 잣대로 명문 골프장을 평가한다. 이에 선정되는 것은 분명 명예로운 일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평가일 수는 없다. 골퍼의 눈에 차지 않으면 언제나 그 가치가 바뀔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골프장의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 사실 국내 ‘명문 골프장’ 선정은 회원권 가격 올리기와 신규 회원권 판매 전략, 골퍼들의 지나친 명문 선호가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이들은 지나치게 100대니,10대니 하는 명문 수식어에 집착한다. 적당한 상술로 꿩도 먹고 알도 먹을 수 있다.‘누이좋고 매부좋은’ 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명문 골프장은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객관성과 형평성, 그리고 신뢰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욕심대로라면 회원과 내장객의 만족도까지 포함돼야 한다. 골프장의 차별성이나 발전적인 경쟁유도 차원에서 볼 때, 명문 골프장 선정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칫 골프장을 귀족화시키거나 특권의 테두리에 더 가둬 놓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마케팅 전략에 의해 선정되는 명문이 과연 얼마만큼 객관성을 가질까. 그리고 얼마나 오래 갈까. 진정한 명문은 골퍼들의 입을 통해서 최대의 공감대를 이룬 결과여야 한다. 명문 골프장에 대한 골퍼의 생각은 항상 바뀔 수 있다. 오랫동안 명문으로 남기 위한 요건이 무엇인지 골프장들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레저신문 편집국장 huskylee1226@yahoo.co.kr
  • IPTV 시범사업자 C 큐브·다음 확정

    ‘말 많던’ 인터넷TV(IPTV) 시범 사업자로 통신업계 컨소시엄인 ‘C-큐브’와 다음커뮤니케이션 컨소시엄이 최종 선정됐다. 하지만 탈락 업체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어 논란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IPTV 시범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는 13일 “6개 컨소시엄을 대상으로 서류 및 실사평가를 한 결과, 두 부문에서 모두 70점을 넘은 C-큐브와 다음커뮤니케이션 컨소시엄을 최종 시범 사업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정통부는 “서면평가 결과 70점 이상을 받은 C-큐브,UMB(케이블업계), 다음 3개 컨소시엄이 통과했지만 UMB는 연내 시범서비스 개시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와 탈락됐다.”고 설명했다.서원I&B와 대림I&S, 굿티비 컨소시엄은 ▲컨소시엄 구성요건 부적합 ▲제한적인 서비스 제공지역 ▲서비스 품질 보장의 어려움 ▲기존 서비스(주문형 비디오) 위주의 사업추진 등으로 서면 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 3개 컨소시엄은 “정통부와 방송위의 선정 과정이 KT와 다음 등 대기업에 편향된 상태로 진행됐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특히 이들은 이날 “서면 평가가 졸속으로 이뤄졌다.”면서 합동사업체로 ‘TVONE 컨소시엄’을 구성해 재심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통부 관계자는 “공식적인 심의나 공고를 다시 할 수 없다.”면서 “다만 개별업체가 자율적으로 시범서비스를 하면 앞으로 결과물을 내년 결과 보고서 작성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IPTV 시범 사업자는 시범가구 모집, 장비 설치 등 준비기간을 거쳐 11월부터 12월까지 2개월간 시범서비스를 한다.C-큐브 컨소시엄은 서울과 난시청 지역인 경기 양평의 350여가구를 대상으로 지상파 5개 채널 등 26개의 단방향 채널 서비스와 27개 양방향 데이터 채널 서비스,700편 이상의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를 제공한다. 다음커뮤니케이션측은 통신사업자 없이도 IP(인터넷)망을 통한 실시간 방송, 양방향 서비스를 가능케 하는 독자적인 서비스를 소개할 계획이다. 영화, 음악, 게임, 뉴스, 애니메이션, 스포츠 등 8개 메뉴를 선보인다. KT가 주도하는 C-큐브 컨소시엄은 하나로텔레콤,LG데이콤,SK텔레콤, 온세통신, 삼성전자 등 52개 업체로 구성됐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컨소시엄에는 컨텐츠플러그와 한솔교육, 디보스, 씨디네트웍스 등 10개사가 참여했다.●IPTV 인터넷 초고속 통신망을 통해 전송되는 TV다. 통신과 방송의 대표적인 융합서비스의 하나다. 실시간 방송이면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주문형 시청이 가능하다. 또 의견이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쌍방향 방송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PC를 통해 즐기던 정보검색, 게임 등 각종 인터넷 서비스와 방송 서비스를 초고속 인터넷망 기반의 TV를 통해 즐길 수 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한국유교문화의 산실’ 안동 세계문화유산도시연맹 등록

    경북 안동시가 우리나라 도시로는 처음으로 세계문화유산도시연맹에 준회원으로 등록됐다. 3일 안동시에 따르면 김휘동 안동시장과 데니스 리카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시 사무총장이 이날 안동 탈춤 축제본부에서 안동시를 세계문화유산도시연맹 준회원에 가입하는 의향서에 서명했다. 세계문화유산도시연맹은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거나 그에 준하는 자격을 갖춘 도시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으로 현재 79개국 215개 도시가 정회원 혹은 준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연맹 준회원 등록으로 안동시는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도시에 준하는 자격을 얻게 돼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한 유교문화권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동시는 현재 세계역사도시연맹, 아시아태평양관광도시연맹, 국제탈문화예술연맹 등 세계 민간기구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안동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07일 TV 하이라이트]

    ●라이프n조이(YTN 오전 8시30분) 병풍처럼 펼쳐진 산과 기다란 낙동강이 흐르는 풍요의 고장 안동. 드라마를 통해 잘 알려진 병산서원을 찾아가 아름다운 경치를 느껴본다. 병산서원에서 십리길에 이르는 곳 하회마을. 고택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하회마을에서 과거로 여행을 떠나본다. 또한 하회동 탈박물관도 둘러본다. ●행복의 오솔길(EBS 오전 6시20분) 일주일에 두번 복지관에서 진행되는 태극권 수업에 일등 출석을 자랑하는 할아버지. 느린 듯하지만 정도가 있고 정신 건강은 물론, 육체건강까지 책임진다는 태극권 예찬이 대단하다. 다이어트는 물론 혈색까지 회복한 일흔여덟 팔팔한 태극맨 이중균 할아버지가 말하는 태극권의 매력을 들어본다. ●추석특집 천하제일 신동열전(SBS 오후 4시20분) 자타공인 천하제일 대한민국 최고의 신동이 다 모였다. 춤 노래는 물론,2개국어(영어, 일어)에 능통한 유치원생부터 한번 보면 뭐든지 척척 외워버리는 인간 컴퓨터, 암기 신동까지 총 15팀이 출연해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입이 떡 벌어지는 재주를 선보인다. ●한국의 산나물(MBC 오전 8시) 산나물은 그야말로 산의 기운을 흠뻑 머금고 자란 야생식물이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사람들은 산나물을 단순히 배고픈 시절의 추억으로서가 아니라 건강한 식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이 변해도 산나물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자리잡고 있다. ●트로트 올드 앤 뉴(KBS2 오전 9시) 전통가요를 부르는 가수들이 벌이는 추석특집 초특급 버라이어티쇼. 기성 트로트 가수 올드팀과 신세대 트로트 가수 뉴팀으로 나뉘어 대결을 펼친다. 트로트가 아닌 다른 장르의 노래 도전을 통해 이제까지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롭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윷놀이, 씨름 등 명절 게임도 즐긴다. ●허영만의 맛 이야기(KBS1 오전 10시10분) 2002년 9월 동아일보 연재를 시작으로 단행본으로까지 발간된 맛과 인생의 이야기, 만화 ‘식객’. 만화 ‘식객’에 담지 못한 갖가지 사연들과 함께 음식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만화에선 결코 느낄 수 없는 만화가 허영만의 독특한 삶의 해법과 경쾌한 입담을 이제 TV에서 만나본다.
  • IPTV 시범사업 6개 컨소시엄 신청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IPTV 시범사업에 KT와 UMB(케이블업계 컨소시엄), 다음커뮤니케이션, 서원아이앤비, 대림아이앤에스,Good TV를 주사업자로 하는 6개 컨소시엄이 신청했다.
  • “보령 관촌에 이문구 문학관 세우자”

    ‘관촌수필’의 작가 명천 이문구(1941∼2003)의 전집 완간을 기념하는 세미나가 28일 충남 보령시 관촌 솔밭과 대천문화원에서 열렸다. 이문구기념사업회(회장 김주영)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스물여섯권으로 완간한 ‘이문구 전집’(랜덤하우스코리아)의 봉헌제와 더불어 이문구 문학관 건립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전집 발간사업은 2004년 2월 고인의 타계 1주기를 맞아 시작한 사업으로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 이경철 전 문예중앙 주간, 문학평론가 임우기, 구자황 서원대 교수 등이 편집위원을 맡아 추진해 왔다. 전집은 1960년대 등단작부터 산문, 유교시집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40년 문학인생을 총 망라한 것으로 권당 300쪽을 기준으로 시기별로 정리했다. 마지막권인 ‘숨 쉬는 장승’은 작가 생전 책으로 출간된 적이 없는 작품 10여편을 실었다. 이와 별도로 이문구 작품을 연구한 논문 10여편도 별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세미나에선 평론가 김윤식·권영민, 신준희 보령시장, 이형호 문화부 예술정책과장 등 1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문학 세계를 기리는 한편 문학관 건립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소설가 박덕규 단국대 교수는 “이문구의 고향인 충남 보령의 갈머리(冠村)는 이문구의 작품 못지않은 콘텐츠다. 보령을 이문구 문학의 필수 답사지로 다양하게 개발한다면 산업적 효과도 클 것”이라며 문학관 건립을 촉구했다. 또 이문구의 작품들을 주제, 캐릭터, 소재, 작중무대, 어휘별로 분류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는 사이버문학관의 개설 필요성도 강조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서울시정 거듭난다

    서울시는 ‘창의와 열정으로 일하는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창의의 날’‘소통형통의 장(場)’‘워크아웃 미팅’ 등 다양한 조직문화 개선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들 프로그램은 크게 업무의 창의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부분과 조직 내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직원들의 복리를 증대시키기 위한 부분으로 구분된다. 시는 우선 기관별로 ‘창의의 날’을 정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고 업무 개선의 계기로 삼도록 하고 우수한 창의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이나 이를 잘 실행한 부서에 상이나 인센티브를 주는 ‘창의인(人)상’을 신설하기로 했다.●`당일 결재´ 정착 업무 지연 막기로 실제 ‘창의의 날’을 시범 운영한 결과 ‘남산 케이블카를 명동 우리은행(신세계백화점) 앞까지 연장하자’‘남산 꼭대기까지의 계단을 에스컬레이터로 바꾸자’‘고시원. 원룸을 임대주택으로 활용하자’ 등의 아이디어가 제시됐다고 시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와 함께 시는 회의를 줄이고 회의자료를 사전에 제공하는 한편 회의 시간에 상한을 정해 운영하는 등 회의를 최소화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업무가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일 결재’를 정착시켜 나가기로 했다.●4급이상 간부 `시니어보드´ 운영 시는 또 조직 상하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업무를 순조롭게 처리하자는 취지로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 ‘소통형통의 장’을 운영할 계획이다. 또 시는 민간기업에서 시행 중인 ‘워크아웃 미팅’을 시정에 활용하기로 했다. 전 부서원이 현안 업무에 대해 토론을 벌여 합의에 도달한 뒤 의사결정자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신속히 실행에 옮기는 의사결정 방식이다. 이와 함께 4급 이상 간부들로 ‘시니어보드’를 구성해 전문지식과 경험을 시정에 활용하고 5급 이하 유능한 직원들로 ‘주니어보드’를 편성해 직원들의 의견 수렴 창구로 삼기로 했다. 시 전산망에 개설한 ‘칭찬합시다’ 코너의 칭찬 내용을 평가해 ‘이달의 칭찬왕’‘올해의 칭찬왕’을 선발하고 의사 간호사 체육지도사 등으로 구성돼 직원들의 건강을 책임질 ‘건강관리팀’도 신설한다.●`직원 건강관리팀´ 운영·`칭찬상´ 신설 이밖에 시는 ‘가정의 날’을 지정해 가족에게 편지 쓰기, 가족 사진 콘테스트, 직장 내 가족 초청 행사 등을 열고 동호회 활동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조직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속 발굴해 신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조직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강혜승기자 1ffineday@seoul.co.kr
  • [행복일기] 온몸으로 사랑해요

    구명신_종신서원 수녀이자 청각장애 특수학교의 새내기 선생님입니다. 아이들과 엎치락뒤치락 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현장 학습을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장난꾸러기 지성이가 이영진 선생님 이름을 줄기차게 불러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정희가 놀렸다. “지성이는 이영진 선생님만 좋아해요.” “그래? 그럼 너는?” 이 선생님이 물었다. “나는 구명신 선생님을 좋아해요. 그리고 정수는 장혜진 선생님을 좋아해요. 개인지도를 해주잖아요.” 정희가 대답했다. 우리 학교는 세 명의 담임교사가 공동으로 학급을 운영한다. 교과 수업 후에는 각 교사가 아이들을 일대일로 개인지도를 해준다. 그래서 정희는 개인지도 선생님과 아이들을 연결해서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림을 그리거나 운동을 할 때에는 나도 같이 해주잖니.” 이 선생님이 묻자 정희의 대답이 걸작이다. “나는 구명신 선생님을 가슴으로 사랑해요.” 뒷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던 나는 가슴이 뿌듯했다. 정희는 계속 말했다. “그리고 머리로는 이영진 선생님을 사랑해요. 겨드랑이로는 장혜진 선생님을 사랑해요. 손으로는 김지영 선생님을 사랑해요.” 선생님들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선생님 한 분도 빼놓지 않고 자신의 신체 부위별로 사랑을 표현하는 정희가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정희에게 말했다. “정희야, 네가 선생님을 가슴으로 사랑해줘서 정말 고마워. 선생님도 정희를 가슴으로도, 머리로, 겨드랑이로, 손으로, 그리고 온 몸으로 사랑해.” 그리고 장난기가 발동해 은근히 물었다. “그런데 만약에 나중에라도 선생님이 정희를 안 좋아하면 어떻게 할래?” 정희는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나는 선생님을 가슴으로 사랑할 거예요!” 나는 정희를 힘껏 끌어안았다. 월간<샘터>2006.09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0) 충주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0) 충주길

    문경새재 넘기가 숨이 차기는 찼던 모양이다. 제3관문을 넘어 산을 다 내려오기도 전에 나그네들이 쉬어가던 마을이 나온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고사리마을. 조선시대 충청도로 접어드는 영남대로의 첫 숙박지 신혜원(新惠院)이 있던 곳이다.17∼18세기에는 주막만 100여가구가 될 정도로 많았으나 광복후에 자취를 감췄다.3관문을 지나 2㎞쯤 밑에 있는 고사리는 새재 7∼8부 능선의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 주민 이종언(73)씨는 “옛날에 제1관문과 대안보에 역촌이 있었는데 상놈이 많다며 양반들이 두곳을 피해 ‘고 사이에서 잠을 자고 가자.’고 하면서 ‘고사리’라는 이름이 굳어졌다.”고 전했다. 마을에는 말을 재우며 묶어놓았던 마방터가 있었으나 10년 전에 헐렸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현재 민박집이 있고 이 집 유리문에 대문짝만 하게 쓰여진 ‘마방터’라는 글씨만이 옛날 어떤 곳이었는지를 알리고 있을 뿐이다. ●고단한 나그네들의 쉼터 고사리 마을 1914년까지 이 마을은 연풍현(군) 고사리면이었다. 산속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상당히 번화했음을 알 수 있다. 면사무소가 있던 터에는 한 기독교인이 철제 십자가를 세워 놓았다. 세월이 꽤나 흘렀는지 녹이 슬어 있다. 마을 안으로 폭 2m쯤 되는 길이 나 있다. 이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구에 갔다가 경호원을 따돌리고 혼자 문경새재를 넘어 이곳을 거쳐 충주로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귀경한 직후 도로포장을 지시, 공사가 시작됐으나 갑작스러운 서거로 중단됐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총장과 문교부 장관을 지냈던 고 김옥길씨가 이 마을에서 은거하기도 했다. 공사가 중단된 얼마 후 김씨의 별장을 찾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 이같은 사연을 듣고 도로를 완공했다고 한다. 최 전 대통령은 부인 홍기 여사가 김씨의 별장에 머물자 이곳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별장은 길 옆에 있다. 대문 양쪽에 ‘금란서원(金蘭書院)’과 ‘이화학당’이라고 새긴 문패가 달려 있다. 지금은 이화여대 수련원으로 쓰인다. 마을 밑에 이 대학 대형 수련원도 있다. 이 마을에서 문경장은 40리, 충주장은 61리이다. 이씨는 “어릴 적에 장날이면 걸어갔는데 충주장보다 문경장을 더 많이 다녔다.”고 회고했다. 관광지로 변한 이 마을 산기슭 여기저기에는 외지인들이 지은 펜션이 들어차 있다.20여가구 주민들은 관광객과 문경새재 신선봉을 찾는 등산객들을 상대로 음식점과 상점을 열고 있다. 마을에서 내려오던 길은 다시 높아지며 작은새재(소조령)에서 이화령쪽으로 뻗어나온 국도 3호선과 만난다. ●냉천에서 목 축이고 수안보로 고사리 길이 소조령과 만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자 충주시 수안보면 화천리 사시마을이 나온다. 지난해 4월 상모면이 수안보면으로 바뀌었다. 이 마을에는 ‘냉천(冷泉)’이 있다. 주민들은 ‘찬물내기’라고 부른다. 주민 김지연(84)씨는 “길(국도 3호선)을 넓히면서 샘의 흔적이 모두 사라졌다.”면서 “냉천의 전설까지 명맥을 잃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평생 약초를 캐 살아가던 노인이 삶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 이 옹달샘에서 선녀와 동자가 ‘이곳에 한양가는 길이 나고 목마른 행인들이 많이 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노인은 이 물로 농주(濃酒)를 빚었고 이를 얻어 마신 한 유생이 이를 ‘냉천’이라고 불렀다는 전설이다. 이후 영남대로가 나면서 마을에는 목을 축이고 가려는 행인들이 줄을 이어 마방과 주막이 성행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2㎞를 채 안 내려와 ‘대안보’ 마을이 나온다. 조선시대 ‘안부역’이 있던 곳이다. 수안보보다 커 대안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역(驛)은 말만 갈아타는 곳이고 원(院)은 말도 바꿔타고, 잠까지 자던 곳이다. 마을 주민 허남순(83)씨는 “지금은 마을 옆으로 큰 도로가 났지만 옛날에는 마을 한가운데로 난 게 선비들이 과거보러 가던 길이었다.”고 내려오는 얘기를 전했다. 이 길은 마을 안에 있는 구릉 위를 오솔길처럼 지나는 형태로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을회관 도로 옆에는 공덕비 등 비석 여러개가 한 줄로 늘어서 있다. 옛길에 늘어섰던 것을 마을회관을 신축하면서 주민들이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길경택 충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당시 이 길로 행인들이 많이 다니다보니 현감 등이 자기 공적을 자랑하려고 비를 많이 세웠다.”고 설명했다. ●마당처럼 넓은 바위 천하명당 ‘패랭이번던’ 대안보에서 2㎞ 더 가면 온천으로 유명한 수안보가 있다. 당초 ‘물탕(온천이 나오는 샘)’만 있었던 거리였다. 수안보 전문 향토사학자 조일환(70)씨는 “수안보가 대안보보다 커진 것은 불과 100년도 안 됐다.”면서 “일제가 수안보 온천을 개발하면서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충주시내 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수안보면 수회리가 나타나고 도로변에 ‘마당바위’가 있다. 마당처럼 넓은 바위로 이 산이 ‘패랭이번던’이라고 불리는데 유래가 재미있다. 번던은 ‘언덕’을 의미한다. 조선 명종 때 한 지관이 충주에 머물다 꿈에 선인을 만나 따라간다. 선인은 이 마당바위에 술과 안주를 마련하고 서쪽 산을 가리킨 뒤 구름을 타고 날아가버리면서 꿈에서 깨어난다. 다음날 지관은 선인이 가리킨 방면으로 가다 이 바위에 패랭이를 벗어 나무에 걸어놓고 이곳이 ‘천하명당’임을 발견하고는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이를 보고 몰려든 행인들이 ‘패랭이번던’이라고 불렀고 이 길을 지날 때면 경치를 구경하며 쉬어가곤 했다. 이 산은 지금도 그렇게 불린다. 주민들은 이 바위가 국도 3호선 확장공사로 절반쯤 잘려나갔다고 믿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길 실장은 “산림종자연구원 안의 ‘서유돈 불망비’가 새겨진 바위가 마당바위”라고 확인해줬다. 지금은 잡목이 우거져 접근이 쉽지 않다. 서유돈은 조선조 현감이다. 이 바위 앞으로 영남대로가 지나갔었다. 1950년대까지 주막 3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국도 3호선이 생기면서 완전 폐쇄됐다. 길 실장은 “행인들이 많이 지나는 큰 길이어서 선정비를 새겨 넣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당바위 앞과 중앙경찰학교 등을 지난 옛길은 국도 3호선과 겹치거나 갈라지면서 충주시내로 들어간다. 글 사진 충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난동부리는 사람 곤장 30대씩 쳐라”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거나 길거리에서 욕지거리를 하는 사람은 서른대의 볼기를 치고 관청에 보고한다.” 1700년대 관청에서 고사리면 온정동(수안보온천)과 관련해 승인한 동규절목(洞規節目·향약)의 한 대목이다. 주민들이 8개 항목의 이 향약을 만들어 관에서 허가를 받아 시행할 정도로 질서가 문란했음을 보여준다. 향토사학자 조일환씨는 “당시에는 온천이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수안보가 대형 병원역할을 했고 아픈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면서 미풍양속을 해치는 일이 잦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부모께 불효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없는 사람은 법적 조치한다.’‘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경멸하면 서른번 볼기를 친다.’‘남녀간에 분수를 모르면 볼기를 친다.’는 것 등이 있다. ‘소나무를 마구 베거나 산불을 내면 마을에서 볼기 서른대를 친다.’는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끈다. 조씨는 “환자들이 수없이 몰려들었지만 숙박집이 부족해 노숙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난방이나 밥을 해먹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면서 산들이 모두 벌거숭이로 변해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관인’이 선명히 찍힌 동규절목 원본은 수안보면 온천1구사무소에 보관돼 있고 기념비도 물탕공원에 설치됐다. 수안보는 18세기 초 안보뜰에 보(堡)가 축조되면서 그 안쪽을 물탕거리라고 해 ‘물안보’로 불렸다가 ‘물’이 ‘수’자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한 걸인이 이곳으로 추위를 피해 왔다가 피부병이 나은 것을 보고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 시기는 알 수 없다. 고려 때부터 수안보온천이 기록에 나타나고 태조와 숙종 등이 이곳을 찾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남녀탕이 따로 만들어진 것은 1885년에 이르러서였다. 현재 수안보에는 호텔과 콘도가 3개씩 있고 여관 등 숙박업소 21개, 욕탕 2개가 영업을 하고 있다. 조씨는 “동규절목은 영남대로상 교통의 요충지로 온천창과 온정원이 설치됐을 정도로 수안보온천이 큰 영화를 누렸음을 방증하는 중요한 자료”라면서 “다른 온천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해외여행 선호 등으로 갈수록 찾는 이들이 줄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충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부고]

    ●이홍지(대한산업안전협회 회장)홍무(전 명일초등학교 교감)병숙 전숙(전북대 교수)홍수(코트라 수출전문위원)영숙(전 창덕여교 교사)홍희(원텍스트레이딩 대표)씨 모친상 서굉일(한신대 교수)이종덕(전북대 교수)정진대(앞선공인중개사 대표)씨 빙모상 김혜자 윤현순(전 묘곡초등학교 교사)정현주(서울시 북부여성발전센터 소장)김금주씨 시모상 3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일 오전 6시30분 (02)3410-6918●어용선(우리투자증권 일산지점 WM팀장)효선(화천군 축제조직위원회 실장)진선(학생)씨 부친상 1일 일산 국립암센터, 발인 3일 오전 8시 (031)920-0310●조동룡(대우증권 전주지점 부장)동규(주택관리공단 실장)씨 부친상 1일 전북대학병원, 발인 3일 오전 10시 (063)250-2450●류낙원(한국쇼핑 대표)낙준(케이투텍)씨 모친상 정영산(한국아트체인 대표)씨 빙모상 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일 오전 시 (02)3410-6914●안근준(대덕전자 기획팀장)근성 소현 소화씨 부친상 31일 인천 가천의대 길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30분 (032)462-9261●엄기일(건국대병원 성형외과장)기방(한양대병원 안과 교수)씨 부친상 김경래(한양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씨 빙부상 31일 건국대병원, 발인 2일 오전 9시 (02)2030-7902●박원영(동양공업전문대 교수)경숙(전 국립특수교육원장)명숙(전 KT 직원)씨 부친상 이만영(전 고려대 교수)정찬주(소설가)씨 빙부상 한영란(상명사대 부속여고 교감)씨 시부상 1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 (02)921-1699●장영기(법무법인 율촌 변호사)씨 모친상 박진모(서원산업 대표)박흥규(한국철도공사 성북송무사무소)나문배(지구촌여행사 이사)신정훈(기아자동차 과장)씨 빙모상 1일 이대 목동병원, 발인 4일 오전 10시 (02)2650-2741●김종철(통계청 혁신기획관실 주무관)씨 부친상 31일 전북 남원장례식장, 발인 2일 오전 10시 (063)635-4458●이승열 지열씨 부친상 허훈무(aT 농수산물유통공사 기획실장)씨 빙부상 31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2일 오전 7시30분 (02)590-2352●김동현(한국전력 과장)익현(신동아화재 부장)계현씨 모친상 허경욱(재정경제부 비서실장)씨 빙모상 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 (02)3410-6917●이원태(이원태이비인후과 원장)씨 부친상 이경수(프로니아 대표)정덕모(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임승재(두훈산업 대표)씨 빙부상 1일 한양대병원, 발인 5일 오전 8시 (02)2290-9457●이원식(디시티 상무이사)원복(선경미디어 대표)원천(메로잔코리아 대표)원국(성경식품 지사장)원분(직원훈련원 교수)씨 모친상 1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3일 오전 7시30분 (02)2650-2753●이창우(이창우치과의원 원장)흥우(인건토건 이사)씨 모친상 1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 (02)929-1099
  • 경북, 본관도 관광상품화

    경북도가 성씨의 본관(本貫)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기로 해 눈길을 끌고 있다. 성씨별 유적과 문화자원 등을 관광상품으로 개발,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복안이다. 17일 경북도에 따르면 도내에 본관을 둔 청송 심씨, 안동 권씨, 경주 김씨 등 성씨별 유적과 인근 관광지를 연계한 ‘조상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란 관광상품을 개발, 판매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도는 우선 오는 9월말까지 안동 김·권씨, 경주 김·손씨, 영양 남씨, 풍양 조씨, 성주 이씨, 인동 장씨, 의성 김씨 등 13개 성씨 본관별 시조묘나 종택, 서원 등 관련 유적과 유품, 인근의 유명 관광지 등을 대상으로 관광상품을 만들기로 했다. 상품의 주요 내용은 조상의 시조묘나 종가, 제사, 집성촌 등을 성씨별로 파악해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가훈과 가풍 등 조상의 내력, 시조 이야기, 자녀 교육관 등이다. 또 조상들의 훌륭한 업적과 그 사례, 선조들의 유물·유품을 비롯한 주요 문화재, 대종친회와 파종친회 개최 시기와 장소, 종손 소재지 등도 집중 소개한다. 본관별 제사상 차리기, 차례 지내는 법 등을 익히고 종택에 머물면서 가훈 쓰기, 전통음식 담그기 등을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주변 관광지와 연계한 1박 2일짜리 코스 등 다양한 관광 상품을 패키지로 내놓기로 했다. 실례로 청송 심씨 관광코스는 시조묘∼종택∼만세루(재실)∼송소고택(숙박체험)∼국립공원주왕산∼주산지∼야송미술관∼달기약수터 등으로 구성된다. 도는 이 상품이 개발되면 종친회 및 경북관광 홈페이지(나드리) 등에 관련 상품을 소개하고 조상 뿌리찾기 캠페인, 아름다운 종택 가꾸기 사업 등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2007년 ‘경북방문의 해’를 앞두고 본관과 관련한 관광상품을 개발하게 됐다.”면서 “경북에 본관을 둔 전국의 후손들을 위한 유익한 교육·관광 상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내 여보냐 네 여보냐

    내 여보냐 네 여보냐

    성(姓) 둘을 가지고 두 여자와 각각 결혼, 두 부인을 모두 정 부인으로 호적에 따로 올려 데리고 살던 현대판 「야누스」가 경찰에 입건됐다. 한 남자 밑에 서로 다른 성(姓)을 가진 자식만도 여섯명-. 송경화(宋京和)(36·일명 김경화(金京和)·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씨가 서울 서대문 경찰서에 잡혀와 조사를 받고 있는데 형법 제231조. 234조, 228조인 사문서 위조 및 동 행사, 공정증서원본 불실기재 등 혐의-. 호적상으로나 실제로나 宋씨 에게는 김원미(金元美)(36·가명·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여인, 황경산(黃京山)(46·가명·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여인등 어엿한 두 아내가 있다. 누가 본처도 누가 후처도 아닌- 서로가 남편이 바람정도 피우는 것으로 알았던 두 여인이 우연찮게 만나 『내가 본 부인이다』『아니 내가 본 부인이다』라고 지난 달 대판 벌인 싸움 끝에 이 요절복통할 宋씨의 정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의젓하게 법을 속이고 두 여인을 정실부인으로 아이들까지 각각 낳고 살다 경찰에 잡힌 宋씨의 직업은 사법서사 사무소의 사무원. 경력 12년의 「베테랑」급이다. 호적상 「宋」씨로 金여인과 결혼해 살던 宋씨는 자기 본명이 국내에 없는양 무호적 증명서를 사법서사 사무원으로 서의 재간을 발휘, 허위로 꾸며 「金」씨로 둔갑한 새 호적을 만들곤 黃여인에게 새 장가를 들었다. 金여인과의 사이에 3남1녀, 黃여인과는 2남 등 6명의 자식중 4명은 宋씨요 2명은 金씨 성을 가졌다고 담당형사에게 눈하나 깜짝않고 대꾸해댔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 해괴한 둔갑은 「宋」씨이자 「金」씨인 경화(京和)라는 사나이가 사법서사 경력 12년에 귓전으로 배운 기막힌 잔 재주의 결과였다. 그러나 경찰에 온 宋씨이자 金씨는 『나에게도 설명하기 힘든 슬픈 과거가 있었다』는 독백이다. 金씨(그때까지는 金씨였다)는 황해도에서 아버지를 김동산(金東山·가명)씨, 어머니를 나(羅)씨로 하고 태어났다. 얼마 안가서 어머니 나(羅)씨를 두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곧 나(羅)씨는 이웃마을 송용만(宋龍萬·가명)씨에게 재가해 아들 경화(京和)를 데리고 새 남편과 함께 살았다. 1·4 후퇴 때 세 식구는 월남, 서울서 살았다. 의부 송용만(宋龍萬)씨는 부인이 재가할 때 데려온 경화(京和)를 송(宋)씨로 서대문 구청에 가본적을 만들 때 취직시켰다. 이때부터 핏줄만은 金씨인 경화(京和)씨는 법적으로 宋씨가 됐다. 그때만 해도 군 입대는 복잡한 서류가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金씨로 입대, 제대까지 했다. 宋씨 성으로 1956년 10월 김원미(金元美)여인과 평택(平澤)에서 중매로 결혼했고 다음해 11월엔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직업은 사법서사 사무소 사무원. 4명의 자식을 차례로 낳고 탈 없이 아내와 알뜰히 살았다. 집도 3채나 되었고 월수는 5만원대. 그러나 결혼생활 10년이 되던 해부터 이들 사이엔 가정불화로 싸우기가 일쑤였다. 불화가 계속되자 宋씨는 아내 金여인이 평소 시부모를 모실 수 없다고 버틴다는 이유를 들어 처가 어른들의 동의를 얻어 (宋씨의 주장) 1965년 1월 부인과 이혼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金여인은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펄쩍 뛴다. 3년을 별거 끝에, 자식들이 넷이나 되는데 이혼까지 해서 갈라 설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주위의 충고와 꾸지람을 이기지 못해 宋씨는 金여인과 다시 살게됐다. 이 별거중인 3년동안 宋씨는 새 여자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또 하나의 성(姓) 金씨를 만들어 냈던 것. 金여인과의 가정불화로 이혼이다, 아니다로 다투고 있을 때 宋은 대서업무관계로 자주 사무실을 드나들던 황(黃)여인과 우연히 알게 됐다. 10년이나 연상의 黃여인을 宋은 누님이라고 불러댔다. 黃여인도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살아오던 터였다. 누님과 동생 사이는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변해 둘은 남모르게 동거생활을 벌였다. 宋씨는 부인 金여인과 이혼, 함께 살 것을 黃여인에게 다짐했다. 黃여인은 宋씨가 부인 金여인과 이혼한 것을 호적열람으로 확인, 68년 혼인신고를 서울 종로 구청에 했다. 이 때 宋씨는 사법서사로 익힌 재간을 유감없이 발휘해내고 있었다. 『나는 원래 金씨의 피를 받았는데 법적으로 이상하게 된 宋씨로야 살 수 있느냐』며 黃여인을 꾀어냈던 것. 宋씨는 아내 金여인의 호적을 말소시킬 수 없음을 알고 무적신고를 내서 또 하나의 호적을 만들 것을 결심했다. 宋씨는 2명의 무적보증인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金씨로 되어있는 제대증명서, 병적증명서를 첨부, 자기가 위조해낸 무적증명서를 만들어 서울 종로 구청에서 김경화(金京和)란 새 호적을 떼어냈고 그 위에 黃여인과의 혼인신고를, 두 아이의 출생신고까지도 마쳤다. 그 후로는 두 아내집을 거의 반반씩 드나들며 살았다. 이미 이혼한 원부인 金여인의 집엘 왜 자주 가느냐는 黃여인의 반발로 가끔 싸움도 벌였지만 자식들 문제란 핑계로 교묘하게 부인 黃여인을 속였다. 그때까지 원부인 金여인은 남편이 잠시 첩을 얻어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알았을 뿐이다. 두여인은 물론, 두 여인의 아들 딸들은 저마다 아버지 성이 宋씨요, 金씨임을 믿는데 의심이란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성으로의 둔갑은 들통이 났다. 지난 달, 첩살림으로만 믿고 있는 宋씨의 부인 金여인은 서대문구 연희동 黃여인 집을 찾아 남편을 포기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 말을 들은 黃여인은 『내가 어째서 첩이냐』 『제 남편이 싫어서 이미 이혼한 것이 무슨 낯짝으로 찾아와 귀찮게 구느냐』 고 金씨가 자기의 정식남편이라며 대들어 두 여인사이엔 서로 떠밀고 밀치는 싸움이 벌어졌던 것. 이튿날 黃여인은 종로구청에서 떼어 온 호적등본을 남편 金씨의 어머니 나(羅)여인에게 들이대고 자기의 정당함을 호소했다. 이에 질세라 金여인도 宋씨가 남편임을 증명하는 호적등본을 떼어 호적상 적법한 부인임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두 부인은 이 엄청난 사실에 아연실색, 남편에게 宋씨와 金씨 중 어느것이 가짜 성이냐고 울면서 호소했다. 경찰에 잡혀온 그는 문초 형사에게 본명은 김경화(金京和), 일명 송경화(宋京和) 라고 거침없이 대답. 한편 자기가 진짜 宋씨와 金씨의 아내임에 틀림없다고 경찰에서 진술하고 있는 이들 두 부인은 서로 양보를 거부, 끝까지 버티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金여인은 남편 宋씨의 처벌을 원치 않으나 새 여자를 얻기위해 법을 어기고 성까지 바꾸는 파렴치 행위는 참을 수 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10년이나 손 아래인 내 남편이 그런 사람인줄은 몰랐다고 黃여인 은 한탄. 주인공 宋씨이자 金씨는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법의 심판을 달게 받겠지만 어떻게 하면 한 사람 밑에 각기 다른 두개의 성을 가진 자식들을 정리할 수 있겠느냐면서 앞날을 걱정하기도 했다. 담당 경찰쪽은 『宋씨에 대한 적용법규가 63년 12월에 공포된 일반사면령에 해당된다』면서 법의 약점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는 宋씨의 행위가 백번 벌을 받아야 하지만 근거가 흐려졌다고 수사상의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최광일(崔光一) 기자> [선데이서울 69년 12/14 제2권 50호 통권 제 64호]
  • [Book Review] 이땅 풍류주인들 전기적 초상

    16세기 조선의 문인 농암 이현보의 집은 도산서원 앞으로 흐르는 분천(汾川) 강가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퇴계 이황이 우리집 산이라고 한 청량산이 바라다 보였다. 그런데 집 앞에 소나무가 하나 있어 시야를 가렸다. 주위 사람들은 소나무를 베라고 했지만 농암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소나무가 있는 곳에 작은 집을 짓고 그곳에서 청량산을 바라봤다. 인간의 망령된 생각을 막는다는 뜻으로 두망대(杜妄臺)라는 근사한 이름까지 지어 붙였다. 이처럼 아름다운 산과 물이 한데 어우러진 조선시대 집이나 누정, 사찰 같은 문화공간에는 하나같이 문학과 예술, 풍류정신이 살아 숨쉰다. 서울대 국문과 이종묵 교수가 10여년에 걸쳐 쓴 ‘조선의 문화공간’(전4권, 휴머니스트 펴냄)은 조선시대 문인들의 문화공간과 삶에 대한 이야기다.‘태평성세와 그 균열’‘귀거래와 안분’‘나아감과 물러남’‘내가 좋아 사는 삶´ 등 각각의 부제가 암시하듯 조선 문인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한 편의 생생한 서사시 혹은 격조있는 풍경화로 그려낸다. 태평을 구가하던 시절, 도성 안이나 근기(近畿)지방의 명가들은 원림(園林)과 가산(假山)을 경영하며 집안에 산수를 끌어들였다. 태평성세를 누린 대부분의 유명 문인들은 사산 아래 아름다운 집을 짓고 살았다. 인왕산 앞뒤에 산 안평대군과 성임은 자신과 벗들의 글로 인왕산을 아름답게 꾸몄고, 백악은 맑은 선비 성수침이 있어 세상에 그 이름을 드리웠다. 또 낙산에는 신광한, 남산에는 김안로가 살면서 글을 지어 그 주인이 됐다. 조선 초기부터 풍광이 아름다운 한강에는 이름난 문인들의 정자가 들어섰다. 한명회의 압구정과 월산대군의 망원정은 시회(詩會) 공간으로 널리 알려졌다. 조선 초기 한강에서 가장 유명한 시회 공간은 단연 박은과 이행이 시를 즐긴 잠두봉. 부귀영화를 맛본 뒤 한강이 좋아 아예 강가에 집을 짓고 산 사람들도 있었다. 양성지와 강희맹이 그들이다. 강호로 물러난 사대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그들이 그저 농사를 짓고 산 것은 아니다. 호미와 쟁기 대신 붓을 잡고 고향에서의 안분자적하는 삶을 그려냈다. 조선의 문화공간은 아름다운 사람과 글이 있어 더욱 아름답다. 조선 후기 위항시인 장혼은 “미불자미(美不自美) 인인이창(因人而彰)”이라고 읊었다.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해 드러난다는 뜻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산과 물도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뛰어난 인물을 만나고 또 그들이 남긴 글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인왕산 자락의 옥류동은 지금은 주택가로 변해 흔적조차 사라졌지만, 장혼이 남긴 아름다운 글이 있기에 당시 눈에 띌 수 있었고 지금도 상상 속에서나마 옥같이 맑은 개울을 그려볼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이렇듯 빛나는 글로 아름다운 땅의 주인이 됐다. 풍월주인(風月主人)인 셈이다. 진정한 선비라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조선후기 실학자들이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홍대용은 목천에 자신의 과학정신을 담은 농수각을 세워 새로운 학문을 열고자 했다. 또 박지원은 현감으로 나간 안의에 ‘실학의 집’을 세우고 중국여행에서 깨달은 실학정신을 구현하려 애썼다. 책은 이들을 ‘내가 좋아 사는 삶’이라는 항목에 묶어 다룬다. 우리 옛 조상들은 와유(臥遊), 즉 누워서 유람하며 노니는 것을 즐겼다. 옛 글을 읽으면서 산수유람을 대신한 것이다. 저자는 옛 사람들의 와유처럼 이 책을 읽으며 마음 속에 상상의 정원을 꾸며보라고 권한다.‘그림의 떡’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저자는 조선 후기 대학자 성호 이익의 말을 답으로 들려준다.“마음은 불빛처럼 순식간에 만리를 가므로 사물에 기대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기억의 단서가 없으면 이것이 불가능하다.” 아무 것도 본 것이 없는 선천적 맹인은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권당 2만∼2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뭇 사람들의 마음 모이면 그것이 바로 천심이지요”

    몽골의 불교는 지난 70년간 사회주의 암흑기를 거치며 재생이 어려울 정도로 철저히 파괴됐다.40대 이상 스님들은 무참히 처형당했고 사원과 불경은 남김없이 불태워졌다. 그러나 1991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버리고 자유주의 노선을 택하면서 몽골 불교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한때 700개가 넘는 라마교 사원이 있었고, 남자 인구의 3분의1(11만명)이 라마승이던, 유구한 전통의 불교국 몽골의 신심이 점차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몽골에서는 300개 이상의 사원들이 복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흐름의 한가운데 서 있는 인물이 바로 푸레바트 라마다. ‘현대의 자나바자르’로 칭송받는 그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시 중심에 자리잡은 간단사(寺)내 몽골불교대학의 한 접견실에서 만났다.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의 이 젊은 큰스님은 접하기 쉽지 않았지만, 일단 만남이 이뤄지자 친구처럼 다정하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인간의 성문제에서 불교미술, 우주, 한반도의 통일과제까지.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난 남녀가 서로 끌려 가정을 이루고 아기도 낳습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너무나 달라 음양이 만나면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합방을 하려는 수많은 인연 있는 영혼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원수관계도 있습니다. 몽골 불교에는 피말리는 고통의 삶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궁합이론이 있지요. 그것은 미신이 아니라 아주 높은 차원의 과학입니다.” 몽골 불교의 두드러진 특징이 탄트라 불교, 즉 밀불교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푸레바트는 ‘비밀스러운 가르침’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밀불교는 수행자가 신체로는 인계(印契·부처나 보살의 깨달음 혹은 서원을 나타낸 여러 가지 손모양)를 맺고 입으로는 진언을 외우고 마음으로는 부처를 주시, 부처의 불가사의한 신(身)·구(口)·의(意) 삼밀(三密)과 수행자의 삼밀이 합일함으로써 현재의 육신이 그대로 부처가 되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을 목표로 한다. 그런 만큼 사변적인 것보다는 개인적인 삶 속에서의 불교사상의 실천을 강조한다. 푸레바트는 정신적 지도자이자 불교미술대학을 세운 몽골 최고의 불모(佛母·불화를 그리거나 불상을 조성하는 사람)다. 그는 몽골 불교의 대성(大聖) 자나바자르가 그랬듯이 수많은 탱화와 불상을 직접 그리고 만들었다. 몽골불교의 상징인 간단사 금동 관음입상의 재건을 총지휘하고 마지막 점안을 한 사람도 그다. 푸레바트는 같은 밀불교권인 티베트와 비교해 몽골의 불교미술은 “색깔이 훨씬 다채롭고 스케일이 크며 힘이 넘친다.”고 평했다. 푸레바트는 몽골 불교가 ‘티베트 불교의 아류’로 비쳐지는 것을 무척이나 경계했다.“몽골은 일찍이 기원전 훈족 시대부터 불교를 받아들였습니다. 티베트보다 1600년 앞서, 중국보다 800년 앞서 불교를 수용한 것이지요. 몽골은 고대부터 스피드·정보 강국이었던 만큼 직접 불교현장을 찾아 좋은 것만 가져와 발전시켰습니다. 몽골과 티베트, 중국문화 가운데 어디가 주류이고 아류인지는 불교 문양만 비교해 봐도 금방 알 수 있어요.” 몽골 밀불교는 샤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샤먼의 80%는 불교신자”라고 소개한 푸레바트는 “샤먼에게 내리는 신이 모두 불교의 호법신장인 것만 봐도 불교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샤먼한테는 ‘잔챙이’ 신이 내리지만 라마에게는 공중부양으로 천지를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신이 내릴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푸레바트는 ‘몽골의 달라이라마’라 불리기도 한다.“일을 하려면 정치지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소신. 그는 올해 몽골제국 건립 800주년을 맞아 칭기즈칸을 국신(國神)으로 모시고, 울란바토르 수흐바타르 광장에 칭기즈칸 상을 조성하는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기자는 이 ‘영험한’ 라마에게 뜬금없이 한반도의 통일방안에 대해 한마디 물었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온 국민이 기도해야 합니다. 몽골이 극심한 분열을 겪은 16세기 자나바자르 성인은 시대를 일깨우는 기도문 ‘차긴 톡히 노올록치’를 만들어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뭇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면 그것이 바로 천심이지요. 한국의 명망있는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남북이 함께 할 기도문을 만들어 보세요.” 사뭇 다정다감한 라마는 인터뷰를 마치고 방을 나오는 기자에게 밀교적 분위기 가득한 신비로운 미소를 선물로 안겨줬다. 글 몽골 울란바토르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공사실적 조작 의혹

    한국토지공사가 발주한 대형 공공공사 설계심의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삼성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이 공사 실적 조작 의혹을 받고 있다. 문제의 공사는 삼성엔지니어링이 토공으로부터 따낸 성남 판교 신도시 쓰레기 자동집하시설공사로 공사 금액만 913억원에 이른다. 집하장 4개와 투입구 482개 이상을 설치하는 것으로 관련 공사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허위 실적 증명 제출로 공사 따내” 문제가 된 삼성엔지니어링은 국내 실적 및 기술이 부족해 일본업체(JFE사)와 기술제휴 컨소시엄을 구성했으며,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술심의위원회 설계심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어 실시설계 적격업자 선정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입찰에 참여했던 GS건설 컨소시엄이 “삼성엔지니어링 컨소시엄에 참여한 일본업체의 공사 실적이 부풀려졌고 실적 증명서류가 위조됐다.”며 이의를 제기, 적격업체 선정이 미뤄지고 있다.●세 차례 보완기회…업계,“입찰관행 없는 일” 물의를 빚자 토공은 삼성엔지니어링에 세 차례 기회를 주어 문제가 된 일본업체의 실적증명을 보완토록 요구했지만 19일 현재 증명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서원동 토공 시설사업처장은 “일본업체가 당초 실적 증명서 원본과 번역본 공증 등을 일본 한국대사관의 확인을 받아 제출, 이를 그대로 믿고 입찰을 진행시켰다.”며 “그러나 실적증명을 제출할 때 토공이 요구한 양식에서 벗어났고, 경쟁 업체가 이의를 제기해 보완기회를 주었다.”고 말했다. 김영환 삼성엔지니어링 상무는 “토공의 요구대로 실적확인서를 받아 제출할 것이며,GS가 주장하는 실적 미비는 억측”이라고 말했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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