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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시 무더기 탈락…행시에도 ‘면접공포’

    사시 무더기 탈락…행시에도 ‘면접공포’

    “이렇게 힘들게 할 것을 2차에서 뭐하러 많이 뽑았는지 모르겠어요. 떨어지면 곧바로 다음달에 내년도 행시 1차시험 원서를 다시 접수해야 하는데… 휴∼”다음주 행정고시 3차 면접시험을 앞두고 2차 합격생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지난주 사법고시 면접에서 7명이 탈락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 이후 행시생들 사이에서 “자칫 방심했다가 나도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행시 3차 면접은 사시 면접과 달리 2차 시험에서 최종합격자의 120%가량을 뽑아 이중 20%를 무조건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지난해부터 면접시험이 강화됐다. 올해의 경우 2차 합격자는 370여명이지만 최종 합격 예정자는 306명에 불과하다. 사시는 면접 탈락생에게 다음해 1·2차 시험이 면제되지만 행시는 1차부터 다시 치러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면접은 6명이 한 조가 돼 90분간 진행되는 집단토론과 40분동안 이뤄지는 개인 프리젠테이션 면접으로 나뉜다. 수험생들이 더욱 부담을 느끼는 부분은 개인 프리젠테이션 면접.‘농민들이 관공서로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스승의 날 연설문을 10분 안에 작성해 발표하라.’ ‘나이 많은 부서원을 어떻게 통솔하겠는가?’ 등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실무능력을 평가한다. 중앙인사위원회 인재채용과 진영만 과장은 “면접 비중이 높아지면서 종전에는 성적이 큰 비중을 차지해 하위권만 탈락하는 걸로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상위권도 탈락할 수 있다. 상위권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차 시험을 통과했다고 예전처럼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지난 11월15일 2차 합격자가 발표된 이후 수험생들은 삼삼오오 스터디그룹을 짜 실전대비 연습에 들어갔다. 각 고시학원마다 지난해 합격생이 전하는 ‘비법전수 면접특강’은 불티가 났다. 면접에 대한 축적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선배들의 특강이 유일무이한 교과서다. 4년만에 2차시험에 합격한 한 수험생은 “겨우 2차시험에 합격했더니 더 큰 고비가 닥쳤다. 평소에 책만 파던 응시생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라니 다들 어려워한다. 차라리 글로 쓰라고 하면 편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수험생은 “2∼3주만에 면접에 대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전엔 2차시험에 합격하면 모여서 술도 마시고 여행도 다녔지만 이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2차시험을 준비할 때도 코피 한번 안 흘렸는데 면접 준비를 하다가 코피를 흘렸다. 요즘에는 꿈에서도 프리젠테이션 하는 꿈을 꾼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춘추관법정연구회 이민수 원장은 수험생들에게 “마음 자세를 편안하게 갖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원장은 “수험생들이 대부분 긴장을 많이 해서 예민한 상태인데 오히려 그런 것들이 면접을 그르칠 수 있다.”면서 “평소 준비한 대로 차분하게 대처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부고]

    ●정동채(국회의원ㆍ전 문화관광부 장관)씨 빙모상 29일 광주 조선대병원, 발인 2일 오전 9시 (062)231-8901●정규영(서울중앙지검 검사)종문(KBS 대전방송총국)씨 모친상 2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일 오전 10시 (02)3410-6912●지영국(지오건축설계사무소 회장)씨 별세 정현(현대자동차 마케팅총괄본부)수현(리스)씨 부친상 2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일 오전 6시30분 (02)3010-2233●김경포(경북 칠곡군청 총무과장)경덕(춘천지방보훈청 복지팀장)경민(회사원)경석(〃)씨 부친상 29일 칠곡 혜원성모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 011-803-0164●박정선(한국항공대 교수)씨 부친상 최준희(삼성의료원 과장)씨 시부상 이택완(미래에셋생명 부장)씨 빙부상 3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일 오전 9시 (02)3410-6920●안종찬(태광물산 대표)석찬(나우테크 관리이사)경희(스마일코리아 부장)씨 모친상 김흥기(구리청소년수련원 이사)박상범(굿모닝여행사 〃)씨 빙모상 3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일 오전 7시 (02)3010-2294●류동희(전 청주서원중 교장)씨 별세 재준(제일은행 마천지점 부지점장)재정(삼양식품 호남영업팀장)재영(청주 복대중 교사)씨 부친상 대희(전 경향신문 비서실장)남희(전 조선일보 사진부장)씨 형님상 강신문(자영업)씨 빙부상 30일 청주 참사랑병원, 발인 2일 오전 9시 (043)286-9514●박범서(KBS 대외정책팀 부장)종서(KT 경영연구소 〃)진서(둔촌중 행정실장)현서(탄현중 교사)씨 부친상 최미영(하안중 교사)씨 시부상 양병수(가인정보처리 대표)씨 빙부상 3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일 오전 8시 (02)3010-2230●조태균(매일경제TV 제작기술부장)향곤(사업)씨 부친상 30일 서울 둔촌동 보훈병원, 발인 2일 오전 6시 (02)478-0699●이기병(부국 대표)씨 상배 용국(대한항공 부기장)용정(현대건설 과장)씨 모친상 최은진(대한항공)임영주(역곡중 교사)씨 시모상 20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일 오전 7시 (02)392-0299
  • 독도 영유권 주장 허구 입증 日本지도 4점 최초 공개

    독도 영유권 주장 허구 입증 日本지도 4점 최초 공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허구라는 것을 입증하는 일본 문부성 발행 지도 등 4점이 최초로 공개됐다. 영남대 독도연구소는 24일 영남대 국제관회의실에서 개최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와 독도’ 국제 학술회의에서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허구성을 입증하는 자료를 공개했다. 이들 자료는 1929년부터 1940년까지 발간된 ▲최근 일본지도 ▲개정 최신 일본역사지도 ▲신일본도첩 등 지도 3점과 ▲최근 조사 일본 분현 지도와 지명총람 등으로, 최근 영남대 도서관 등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 가운데 1929년 일본 출판사인 산세이도(三星堂)에서 문부성 검인정 교과서로 발행한 ‘최근 일본지도’와 1933년 후산보(富山房)에서 간행한 역시 문부성 검인정 교과서인 ‘개정 최신 일본 역사지도’는 시마네(島根)현의 관할을 오키(隱岐)섬으로 국한했고, 독도는 표기돼 있지 않다. 또 1934년 도코(刀江)서원에서 출판한 ‘신일본도첩’에도 시마네현에 속하는 섬이 오키 섬뿐임을 명확히 표기하고 있다. 1940년 국제지리협회에서 출판한 ‘최근 조사 일본 분현 지도와 지명총람’에도 일본 영토로서의 독도에 대한 언급이 없다. 따라서 이들 자료는 일본이 ‘1905년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면서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는 일본측의 주장이 허구라는 것을 입증하는 중요한 단서로 평가된다. 독도는 울릉도에서는 동남방 92㎞ 지점에 있고, 시마네현의 오키 섬으로부터는 160㎞ 지점에 있어 울릉도에서보다 훨씬 멀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HAPPY KOREA] 대구·경북 마을 주민활동 탐방

    [HAPPY KOREA] 대구·경북 마을 주민활동 탐방

    농촌 대부분이 인구 및 소득 감소로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이같은 구조적 위기를 타개할 방법으로 체험마을, 테마마을 등 관광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돈 문제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하지만 대구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에서 돈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전통이다. 전통을 바로세워야 마을이 바로설 수 있다는 것이다. 옻골마을을 들여다봤다. 1 대구 옻골마을 경주최씨 종가 ●가진 것만큼 지킬 것 많은 옻골마을 동대구 도심을 빠져나와 승용차로 10여분을 달리면 아기자기한 과수원길과 마주한다.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 사이를 지나 졸졸 흐르는 개울과 만나는 순간, 팔공산 자락에 감춰졌던 옻골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골이라고 하기엔 도시와 너무 가깝고, 도시라고 하기엔 너무 고즈넉한 곳이다. 옻골마을은 1616년 대암(臺巖) 최동집 선생이 마을터를 잡은 이후 400년 가까이 경주 최씨 후손들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집성촌이다. 지금은 20여가구 70여명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 제일 안쪽에 자리잡은 종가는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자, 대구시 민속자료 제1호다.14대 종손 최진돈(59)씨와 고3짜리 아들 등 가족 4명이 살고 있다. 종가를 비롯한 20여채의 고가는 나뭇결을 그대로 살려 이음새의 빈틈조차 자연스러운 마루, 구불구불한 모양이 더 정감있는 기둥, 기둥 아래 높이가 서로 다른 주춧돌 등 어느 것 하나 인공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마을을 휘감고 도는 2∼3㎞의 돌담길은 지난 6월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로 고시했다.350년 이상 마을을 지켜온 높이 10∼20m의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회화나무 수십그루는 보호수로 지정됐다. 문화재로 등록·지정된 소장품도 667점에 이른다. 이쯤되면 민속마을이나 문화마을로 꾸며 보겠다고 나설 법한데 주민들은 손사래부터 친다. 마을을 상품화해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최완식(68)씨는 “꾸민 것은 이미 문화가 아니지. 우리 마을은 화장한 아름다움보다 수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더 어울려. 우리 마을 같은 곳이 전국에 한 곳이라도 있어야 전통이 보존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웃음지었다. ●후손들이 마을에서 출퇴근하는 게 꿈 옻골마을은 인위적으로 꾸민 민속마을도, 갖가지 체험프로그램이 풍부한 체험마을도 아니다. 그 흔한 구멍가게 하나 없을 정도로 불편한 점 투성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전통과 가치를 보존하겠다는 마음에 변함이 없다. 매달 빠짐없이 열리는 마을회의이자 종중회의도 어떻게 해야 마을을 제대로 보존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외지로 떠난 아이들이 돌아올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데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 주민들은 지금은 사라져버린 초가와 서원을 복원하는데 온통 마음이 쏠려 있다. 과수원을 포함한 종중 소유의 마을 주변 땅을 자연생태공원으로 조성해 준다면 무상으로 내놓겠다고도 서슴없이 말한다. 마을을 찾는 방문객만 연간 2만∼3만명에 이르고 있지만, 일부러 마을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도 변함이 없다. 그만큼 행정기관의 도움도 필요하다는 눈치다. 최진돈씨는 “보존·관리에 필요한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마을이 많이 훼손된 상황”이라면서 “마을이 되살아나면 대구 도심까지도 20∼30분밖에 걸리지 않는데, 우리 아이들도 이곳에서 출퇴근할 수 있지 않겠나. 바라는 것은 그뿐”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대구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2 군위 한밤마을 출신 명사 귀향 대구 계명대 홍대일(60) 화학과 교수는 수업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고향인 경북 군위군 부계면 한밤마을을 찾는다. 홍 교수는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고향을 떠났지만, 갈수록 황폐화되는 고향을 보고 있노라면 명절에만 찾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면서 “고향을 되살리는 게 마을을 지키고 계신 어르신들의 몫만은 아니다.”고 잘라말했다. 홍 교수는 마을 출신 교수와 기업인 등 10여명과 뜻을 모아 ‘고향 발전을 위한 향우회’도 결성했다. 분기에 적어도 한번은 모임을 갖고 마을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향우회에는 동국대 경영학과 홍경흠 명예교수, 계명대 철학과 홍원식 교수, 계명대 컴퓨터공학과 홍동권 교수, 영남대 한문학과 홍우흠 교수, 홍기흠 전 대구은행장 등도 참여하고 있다. 한밤마을이 부림 홍씨 집성촌인 터라, 거슬러 올라가면 대부분 한 집안 사람들이다. 홍진규(47)씨는 아예 20년의 타향살이를 접고 10년전 귀향했다. 바이오벤처기업을 운영하는 진규씨는 현재 ‘살기 좋은 한밤마을 만들기 추진위원회’ 살림까지 맡고 있다. 진규씨는 “마을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지역시민·사회단체 활동이 전무해 체계적인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손을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고 말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6개 자연부락을 합친 한밤마을은 540가구 1200명이 거주할 만큼 제법 규모가 크다. 하지만 한때 아이들로 북적이던 대율초등학교는 올해 입학생이 1명에 불과할 정도로 활기를 잃었다. 사과 재배 등을 통해 군위군 내에서 소득이 상위권에 속하지만, 생활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라고 넋두리도 곁들인다. 홍연소(63) 추진위원장은 “고등학교가 없어 자식들을 일찍 유학시켜야 하기 때문에 도시보다 오히려 교육비 부담이 크다.”면서 “대부분 넉넉한 살림도 아니어서 빚만 늘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에 따라 마을 출신 인사들과 주민들은 종합발전계획을 세우는데 여념이 없다. 제2석굴암(삼존석굴)과 돌담 등 마을 고유의 역사와 전통을 복원하고, 팔공산 동산계곡과 사과밭 등 자연자원의 이점을 살리겠다는 포부다. 군위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3 구미 양포동 공단배후 고민 지방도시 대부분이 인구 감소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경북 구미시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체 인구는 39만명으로, 최근 10년간 10만명 가량이 늘었다. 내년에는 4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바로 ‘공단의 힘’이다.753만평에 이르는 구미1∼3공단에는 모두 1650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입주업체의 86%는 액정디스플레이(LCD) 등을 생산하는 전자 관련기업이다. 지난 한 해 수출액만 305억달러다. 구미시는 이것도 모자라 64만평 규모의 구미4공단을 추가로 조성하고 있다. 터닦이 등 기반공사가 한창인 4공단 배후지역인 양포동 일대에는 공단 근로자를 위한 아파트와 주택 등 모두 2만여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미니 신도시’나 다름없다. ‘만드느냐, 만들어지느냐.’의 갈림길에 선 양포동 주민들의 고민은 일자리가 아닌 다른 데 있다. 시민들의 평균 연령이 31세에 불과하고 전체 인구의 69%가 30대 이하다. 하지만 이들 ‘젊은 세대’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과 고민은 아직 부족하다. 예컨대 남편을 출근시킨 아내들 상당수는 마땅한 소일거리를 찾지 못해 월평균 100만원도 받지 못하는 가내수공업공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아이들, 나아가 가족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생활기반시설도 턱없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박광석 양포동 청년회장은 “새 집을 짓는다는 것 자체에 만족할 게 아니라, 기존 마을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면서 “구획을 나누는 것은 공단이나 농지를 조성할 때 필요한 것이며, 마을은 전체를 하나로 엮어낼 수 있는 공간 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란 주부도 “국가나 지역 발전은 기업 못지않게 기업과 더불어 생활을 영위하는 주민들의 역할도 중요하다.”면서 “구미에는 외국인 근로자도 많지만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벽을 허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글 사진 구미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지금 구리에선] ‘고구려 프로젝트’ 재점화…中 동북공정 맞선다

    [지금 구리에선] ‘고구려 프로젝트’ 재점화…中 동북공정 맞선다

    ‘고구려 프로젝트로 동북공정(東北工程) 파고를 넘는다.’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좁은 땅(33.3㎢), 주민 19만여명에 불과한 경기도 구리시가 동북아의 대제국이던 ‘고구려의 기상’을 테마로 대규모 역사복원과 개발계획을 동시에 추진중이어서 주목된다.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455호)인 관내 아차산 보루군(堡壘群) 정비·복원과 20만평에 이를 역사테마 유적공원인 ‘고구려 역사도시’ 조성계획이 그 핵심사업이다. 구리시의 ‘고구려 프로젝트’는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우리의 고대사를 삼키려 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선다는 명분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생산시설도, 가용할 땅도 거의 없는 구리시에 연간 수백억원의 재정수입을 가져올 실익도 기대하고 있다. ●토기등 1500여점의 유물 출토 구리시는 지난 7월 문화재청이 승인한 ‘아차산일대 보루군 종합정비 기본계획’에 따라 내년부터 114억원을 들여 관내 아차산 1∼5보루와 시루봉·망우산1·용마산5보루 등 8개 보루의 정비와 복원사업을 편다. 아차산 일원엔 서울 관내에 용마산 6곳, 홍련봉 2곳, 망우산 3곳의 보루가 더 있다. 아차산은 지난 1994∼95년 역사문화유산 지표조사가 실시돼 구전으로 내려온 고구려 보루유적의 존재가 공식 확인됐다. 서울대박물관이 2000년까지 발굴작업을 벌여 보루의 성벽유적 등과 함께 총 1500여점에 이르는 철제·토기로 된 항아리·접시·무기·마구와 농기계·생활용품 등을 찾아냈다. 발굴 유물의 규모는 그때까지 남한에서 발견된 고구려 유적·유물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시내 곳곳에 고구려 정취 지난 94∼95년 관선시장을 거쳐 98년 민선시장에 당선된 현 박영순 시장은 구리시를 ‘고구려 역사의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일련의 캠페인과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2000년 밀레니엄 행사에 맞춰 시청 정문앞에 대형 북을 만들어 고구려 고각(鼓閣)을 세웠고, 시의 관문인 토평대교에 고구려 투구 모양의 대형 아치조형물을 설치했다. 교문2동 장자대로 변에는 광개토대왕 대형동상을 세웠고, 아파트 외벽을 중국 지린성(吉林省)과 평양 고구려 고분의 ‘수렵도’ 그림 등으로 장식하는 사업도 폈다. 시 청사엔 현재도 ‘고구려의 기상, 대한민국 구리시’란 캐치프레이즈가 걸려 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과 아차산에서 숨진 온달장군을 추모하는 이벤트도 연례적으로 열었다. 지난 2000년 10월엔 한·중·일 학자를 초빙, 구리·고구려 국제학술회의도 열어 아차산 유물의 중요성을 검증받았다. 2002년 구리시는 아차산 기슭 아천동 151번지 일원 10만평에 고구려박물관이 포함된 유적공원을 세우기로 하고 관련 TF팀을 구성했다. 당시 용역결과에 따르면 사업비는 1500억원, 연간 관람료 수입 등으로 얻게 될 수입은 4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됐다. 이 계획은 미국과 일본 투자전문회사로부터 투자의향서도 받았으나 박 시장이 지방선거에서 낙선하면서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후임 이무성 시장은 예산문제와 감사원의 ‘규모과다’ 지적 등을 이유로 고구려 유적공원 계획을 백지화하고 아차산 일원 8200여평에 600억원을 들여 ‘국립 고구려박물관’을 건립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전국에 산재한 국립박물관의 지자체 이양 방침에 어긋난다는 이유 등으로 난색을 표했다. ●역사박물관 국민 모금운동 검토 박영순 시장이 재선출되자 다시 TF팀을 구성,‘국립 고구려박물관’을 ‘고구려 역사박물관’으로 바꾸고 박물관과 역사교육장 및 촬영세트장 등이 들어서는 20만평의 유적공원을 오는 2010년까지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유적공원엔 복원된 고구려 보루와 함께 광개토대왕비·장수왕릉·안학궁과 고분벽화 등 북한과 중국내의 대표적 고구려 유물·유적이 재현될 예정이다. 유스호스텔과 오락·유희시설, 저잣거리 등 고구려 생활체험촌도 조성된다. 공원이 들어설 곳은 서울과 인접하고, 서울외곽순환도로 및 중부고속도로의 토평IC와 연계돼 뛰어난 접근성을 갖췄다. 이용객은 2010년에 740여만명, 매출액은 2300억여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전체 사업비는 총 4000억원 규모로 일부 기반시설비를 제외하고 민자를 통해 유치한다는 복안이다. 1단계 사업이 될 고구려 역사박물관 건립사업은 천안 독립기념관을 전례삼아 범국민 모금운동으로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공중파 TV방송이 앞다퉈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는 연속극을 방영중이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어이없어하는 국민적 정서가 팽배한 만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구리시는 유적공원을 중국과 북한에 주로 있는 고구려의 역사적 실체를 확인시키는 교육의 장으로 조성할 방침이다. 재현될 유적유물은 중국이 광개토대왕비의 본래 비각(碑閣)을 철거하고 중국식 비각으로 대체한 사례에서 보듯, 왜곡된 부분은 고증을 통해 원형대로 살려낼 예정이다. ●그린벨트 규제완화가 관건 구리시 고구려 유적공원 사업엔 현행법의 보완 등이 선결돼야 한다. 공원 예정부지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인 탓에 박물관 시설은 가능하나, 재현 유적·유물의 설치가 곤란하다. 구리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교통부에 그린벨트 관련규제 완화를 요청중이다. 박영순 시장은 “동북공정으로 ‘역사지키기’에 대한 국민의식이 어느 때보다 높고, 여·야가 준비중인 ‘고구려 사적 복원 및 지원사업에 관한 법률’이 조만간 마련되면 사업이 급속도로 탄력을 받는다.”고 기대했다. 구리시와 국회 고구려포럼은 지난 6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박영순 시장과 구리 출신 열린우리당 윤호중 의원, 서영수(단국대), 윤명철(동국대), 임효재(서울대)교수와 건교부 이재홍 기획관이 참가해 고구려 역사유적 공원조성과 관련한 토론회를 열었다.7∼9일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구려 역사복원을 위한 예술제도 열렸다. 구리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박영순 구리시장 “동북공정으로 중국의 고구려 유적이 마구 변형되는 와중에 원형모델을 보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박영순 구리시장은 지난 94년 관선시장 때부터 서울의 특색없는 위성도시에 불과했던 구리시의 발전 테마를 내심 ‘고구려’로 정했다. 최근 4년 동안의 야인시절에 그가 쓴 에세이집 ‘가슴으로 부르는 구리사랑 노래’엔 고구려 관련 부분이 전문사학가 수준 못지않은 지식을 바탕으로 광범위하게 기술돼 있다. “1500년 전 고구려의 모습을 재현하자는 것이 고구려 유적공원 사업의 핵심입니다. 유적공원이 조성되면 구리시는 중국의 지안(集安), 북한의 평양과 함께 3대 고구려 유적도시로 대내외에 확실히 자리매김할 겁니다.” 외교관 출신의 박 시장은 “중국의 동북공정은 한반도 통일 이후 만주를 둘러싼 영토분쟁 발생에 대비하려는 중국의 속셈 때문이라고 본다.”고 진단했다.“고구려사를 우리 민족사로 인정받으려면 중국이나 평양에 가지 않고도 고구려 역사·문화를 체험할 장소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 지방선거에서 박 시장은 고구려 유적공원 조성을 공약사항으로 내걸고 출마, 수도권에서 열린우리당 후보의 유일한 단체장 당선자가 됐다. 박 시장은 장차 고구려 유적공원을 아차산과 장자못, 한강변 토평 꽃단지 등과 함께 지역경제 활성화의 구심점이 될 관광벨트로 묶는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구리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이이화 서원대 교수 “아차산 출토 고구려 유물이 10년째 마땅한 장소가 없어 서울대박물관에 방치상태로 임시 보관중입니다.” 역사학자 이이화(서원대 석좌교수·69)씨는 12일 “국민의 역사의식을 높이고, 사학계의 고구려사 심층연구를 위해서도 자료관 형식의 현장박물관 건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차산 유적지를 공유하고 있는 서울 광진구도 유적공원 건립을 구상했던 것으로 아나, 지역적 여건으로 보아 구리시에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시리즈로 출판된 ‘한국사 이야기’의 저자이자 고구려역사문화보존회 이사장인 이씨는 25년째 아차산 가슭에 살며 아차산과 고구려의 관계를 현장에서 연구해 왔다. “한강변 아차산은 삼국시대 신라·백제·고구려 삼국의 접경지로서, 고구려가 장수왕시대에 백제를 침공해 개로왕을 참수하고 한강 진출을 이룬 곳입니다.100년 가까이 이 지역을 지배했고 온달 장군이 전사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추가 발굴도 시행돼야 합니다.” 이 이사장은 “동북공정의 와중에 ‘고구려 역사지키기’는 범국민적 관심사이고, 책으로만 고구려를 배우기보다는 재현된 유적·유물을 통해서라도 실물을 접하는 것이 당연히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차산 고구려 유적도 복원·보존하고 ‘역사교육의 장’이 되도록 그린벨트 관련규정 등 법률적 장애를 조속히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리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책꽂이]

    ●대당서역기(현장 지음, 권덕녀 옮김, 서해문집 펴냄) 당나라 승려 현장이 1500년 전에 쓴 인도여행기. 서기 627년 스물 여섯의 청년 현장은 국법을 어기고 몰래 취경(取經)여행을 떠났지만 18년 뒤 인도에서 견문을 넓히고 수많은 불경을 구해 돌아오는 길엔 장안이 들썩일 만큼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서기 645년 현장은 640질의 불경과 불상 등 귀중한 자료를 가지고 당으로 돌아왔다. 트로이전쟁에 참가해 활약한 뒤 긴 세월 동안 온갖 위기를 이겨낸 끝에 집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와 닮은꼴. 당나라 때 불경은 오역이 많아 승려들 사이에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1만 1900원.●노블레스 오블리주(예종석 지음, 살림 펴냄)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제국의 2000년 역사를 지탱해준 힘은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이라고 지적했다. 로마의 귀족은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스스로 전장의 선봉에 서서 용감하게 적과 싸웠다고 한다.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벌인 16년간의 제2차 포에니전쟁 중 최고 지도자인 콘술(집정관)의 전사자 수만 해도 13명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역사를 다룬 책.3300원.●남명 조식의 학문과 선비정신(김충열 지음, 예문서원 펴냄) 조선 중기의 유학자 남명 조식은 퇴계 이황과 더불어 당대의 사상계를 이끈 영남유림의 종장이다. 그러나 정권과 타협하기보다는 현실개혁에 관심을 둔 남명학파는 정치적으로 소외됐다. 남명학의 권위자인 저자는 남명이 문묘배향을 불허한 점, 북인정권의 영수인 내암 정인홍의 실각, 곽재우 등 남명 문하에서 의병장이 많이 나와 일제강점기 때 역사가 왜곡된 점 등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 자득과 실천을 중시한 남명의 학문세계와 강의직절(剛毅直切)한 선비정신을 살폈다.2만 6000원.●공자와 논어(요시카와 고지로 지음, 조영렬 옮김, 뿌리와 이파리 펴냄) 공자는 조국 노나라를 떠나 56세부터 69세까지 14년간 제자들을 이끌고 산동 하남의 여러 제후국을 방문했다. 그것은 “외뿔소도 아니고 범도 아닌데 저 광야에 떠돈다.”라고 공자 자신도 말한 것처럼 황량한 방랑이었다. 정나라 성문 밖에서 제자들과 떨어져 혼자 서 있을 때의 공자는 상갓집 개와 같았다고 ‘공자세가’는 전한다. 공자는 학자이자 동시에 정치가였다. 공자의 정치 중시, 그것은 ‘논어’에서 가장 잘 알 수 있다. 공자 평전이라 할 만한 글과 논어에 대한 설명이 실렸다.1만 8000원.●거울 속의 원숭이(이언 태터솔 지음, 정은영 옮김, 해나무 펴냄) 우리는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에렉투스로, 다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는 이야기에 익숙하다. 그러나 인류학자인 저자는 이같은 자연선택론의 아성에 반기를 든다. 그런 식의 단선적 이야기는 진화과정에서 발생하는 진실을 심각하게 오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화의 세계에는 적응의 증거도 있지만 비행을 위해 생겼던 펭귄의 날개가 지금은 나는 데 사용되지 못하고 수영에 이용되는 ‘탈응’의 증거가 있는 것처럼, 인간도 진화할 때가 있었지만 가끔은 숨을 고르기 위해 한 박자 정지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1만 1000원.
  • “문화재 도둑들 ‘룰’ 깨고 국보까지 넘봐”

    “문화재 도둑들 ‘룰’ 깨고 국보까지 넘봐”

    “절도범 검거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할 일은 문화재를 회수해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 우선입니다.” 23년 동안 도난당한 문화재를 추적, 회수하는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강신태(55) 문화재청 문화재사범단속반장은 “사회가 발달하면서 문화재 도난의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고, 회수 역시 어려워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범죄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문화유산 180건 2000여점 되찾아 그는 최근 문화재 도난사건이 급증하는 경향에 우려했다. 도난 문화재는 2004년 519점에서 지난해 2531점으로 4배 이상 증가하는 등 최근 6년간 6162점이 털렸다. 반면 회수된 문화재는 13%인 789점에 불과하다. 180건,2000여점의 문화유산을 되찾았고 도난 현장을 보면 누구의 소행인지, 어떤 목적인지를 가늠할 정도의 베테랑인 그도 범죄 행태에 당황스럽다. 그 세계에서도 지켜지던 ‘룰’이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굴·도난기법이 전수돼 계보에도 없는 제자(?)들이 등장하면서 국보나 보물, 박물관과 사당·서원 등 과거 넘지 않던 선까지 침범하는 것이다. 강 반장은 “방송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문화재가 돈이 된다는 그릇된 인식이 생겨나고 관리가 부실한 점 등이 복합되면서 위험을 맞게 됐다.”면서 “문화재 절도는 즉시 대처하지 못하면 단시간에 깊숙이 숨어버리는 범죄”라고 수사의 어려움을 공개했다. 강 반장과 문화재의 만남은 우연히 이뤄졌다. 사업체를 운영하던 1983년 신안해저유물 발굴조사 요원 모집에 호기심으로 응모한 것이 평생 직업이 됐다. 이후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문화재를 추적, 회수하는 ‘문화재 지킴이’ 역할을 23년 동안 해왔다. 그는 “단속반이 72년에 설치됐지만 그땐 수사 체계나 노하우가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면서 “범죄자의 협박과 위협에 노출된 데다 수사와 행정을 병행하다보니 근무를 꺼리는 기피 부서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단속반원을 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문화재를 공부했단다. 새내기 시절에는 사건이 발생하면 겁부터 났다고 한다. 개념이 서 있지 못한 데다 경험도 없었기에 ‘실수’가 두려웠다. ●압수 유물 상당수 주인 없어 국가에 귀속 하지만, 한 달에 20일을 현장 잠복 등으로 외박(?)하는 등 어려운 여건에서도 성과가 하나둘씩 나타났다.80년대 사찰문화재 절도범을 검거해 트럭 2대분을 압수했는데 주인을 찾지 못하는 사태도 있었다. 지금도 압수 유물 중 상당수가 주인이 없어 국가에 귀속된다고 한다. 도난당한지 11년만에 찾아낸 영국사의 ‘영산회상도’가 보물로 지정됐다.2003년 국립공주박물관 국보 도난사건 때는 범인에게 문화재 반환을 호소해 돌려받은 일도 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문화재 범죄의 중요성을 감안해 검·경이 전문 수사팀을 신설하고 문화재청도 4명에 불과한 조직을 확대할 계획이다. 강 반장은 “포기할 수 없는 사명감과 천직으로 생각하며 업무를 수행해왔다.”면서 “소중한 문화유산을 소유하는 것보다 박물관 등에 위탁, 기증해 공유할 수 있는 의식이 확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5일 대구서 ‘왕건길 걷기’ 행사

    ‘왕건길 체험 건강걷기’ 행사가 오는 5일 대구시 동구 도평동에서 열린다.행사는 도평동 향산마을에서 시량이까지 6.7㎞ 구간을 걷는 것으로 올해 처음 개최된다. 고려 태조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패해 생사의 갈림길에 빠졌을 때 신숭겸 장군의 지혜로 간신히 빠져나와 반야월을 지나 김천 등을 거쳐 개성으로 돌아간 뒤 후삼국을 통일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행사가 마련됐다. 당시 왕건은 불로동을 거쳐 평광동을 지날 때 지금의 시량이에 이르러 한 나무꾼에게 물 한 바가지와 주먹밥을 얻어 먹고 힘과 용기를 내 산을 넘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달구벌얼찾기모임과 도평동사무소에서 참가자들에게 ‘왕건길 주변 역사 및 문화재 체험 답사’의 해설 및 안내를 한다. 천연기념물 제1호인 달성측백수림과 전귀당, 백원서원, 관음사, 구로정, 용암산성, 와룡암, 모영재를 접할 수 있으며 76년된 대구 최고 수령 사과나무에서 열리는 사과를 맛 볼 수 있는 기회도 갖는다. 이밖에도 옛 평광초등 운동장에서 평광사과와 도평동 목공예품이 전시·판매된다. 대구 동구청 관계자는 “왕건길을 걸으면 가을 정취도 느끼고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15)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 횡성 풍수원성당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15)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 횡성 풍수원성당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2리 두메산골에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고즈넉하게 들어앉은 풍수원 성당(주임신부 김승오·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 고딕·로마네스크풍 건물이 명동성당을 축소해 옮겨놓은 듯 빼닮았지만 의자 없는 맨 마룻바닥과 간결한 내부가 100년 전 건립 때의 모습 그대로다. 자연과 잘 어울리는 고즈넉한 외양 때문에 일반인들에겐 이런저런 드라마와 영화 촬영의 단골로 애용되는 아름다운 공간이면서 한국 천주교사의 한 획을 그을 만큼 중요한 종교적 위상을 지닌 곳. 신앙촌을 터전으로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으로, 강원도 경상도 등 한국 동부 지역의 천주교 성당과 교인을 총괄했던 ‘동부 전교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지금은 번듯한 국도가 성당 앞을 지나고 있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좁은 비포장 길이 이 지역 유일한 통로였을 만큼 성당이 들어선 자리는 첩첩산중의 벽지다. 산중의 외딴곳이어선지 인근 경기도를 비롯한 외지에서 박해를 받은 천주교 교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살았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당시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도 자연스레 천주교 전교의 주요 거점으로 삼았을 것으로 보인다. 1888년 강원도 최초의 본당으로 설립되어 르메르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파견됐지만 성당이 건립된 것은 2대 주임인 정규하(1863∼1943년)신부가 재직하던 1907년이었다. 정규하 신부는 김대건·최양업에 이어 1896년 서울 중림동성당에서 서품을 받은 한국 세번째 신부. 풍수원성당 역사에선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지금까지 교인들 사이에 회자된다. 사제 서품을 받아 바로 풍수원 본당에 부임했으며 선종 때까지 47년간 이곳을 지키며 신자들 사이에 신망이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 신부 사목 기간중 풍수원 성당은 총 12개 군을 관할하는 중심성당으로 성장, 지금의 춘천·원주 교구의 모태가 되었다. 한국에선 7번째로 지어진 고딕·로마네스크 양식의 풍수원성당은 바로 정규하 신부의 뜻을 따른 신자들이 고생스럽게 품을 팔아 일군 성과였다. 건립기금은 강원도 지역 몇몇 지주와 신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6000원. 중국인 벽돌공들이 벽체를 쌓았지만 산에 올라 나무를 베어 오고 성당 인근의 가마에서 직접 벽돌을 구워 나른 것은 모두 한국인 신자들이었다. 성당 건립 소식을 들은 양양, 강릉의 신자들은 보름씩이나 걸려 태백산맥을 넘어와 일손을 보탰다고 한다. 본당 건물 자체는 120평 규모로 아담하다. 정문과 함께 양측 벽에 각각 1개씩 출입문을 내었는데 지금도 신자들은 이 문을 사용하고 있다. 건물 외양처럼 내부도 명동성당을 아주 닮아있긴 하지만 제대며 성물 등 구조물은 간결하고 소박하다. 제대를 중심으로 6개씩 좌우로 늘어선 기둥은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12사도의 상징. 처음엔 나무로 세웠으나 나중에 석조로 교체되었다. 바닥은 처음 그대로 의자(장궤)없는 맨 마룻바닥인데 둥근 아치형 천장과 썩 잘 어울린다. 제대 뒷부분 벽에 화려하지 않게 설치된 3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성당 안으로 들이는 은은한 빛이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제대 오른쪽 마리아상에 얽힌 사연도 흥미롭다.6·25전쟁중 이 지역에서 전투가 치열했는데 간절히 기도해 부대원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미군 장교가 나중에 귀국해 비행기로 공수해 왔다고 한다. 성당 왼쪽에 성당을 바라보며 서있는 2층짜리 유물전시관은 전국의 신자와 순례객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성지.1912년 사제관으로 만들어 써오다가 1997년 대대적인 단장을 거쳐 320점의 초기 유물들을 모아 놓았다. 성당 건립자인 정규하 신부의 유품을 비롯해 초기 사제들이 미사때 쓰던 촛대와 의식복, 흙으로 빚은 십자가, 율무묵주, 성합, 기도서들을 눈여겨보면 이곳이 예사로운 곳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사제관 왼편 나지막한 동산에 조성한 십자가의 길도 꼭 둘러봐야 할 공간. 지난 2002년 판화작가 이철수씨가 예수 최후의 고난상들을 동판화로 제작한 14처를 음미하며 정상에 오르면 잘 꾸며진 묵주동산을 만나게 된다. 나란히 선 큰 십자고상과 마리아상 앞에 축구공 크기만 한 묵주알들이 빙 둘러 박혀 있는 게 특이하다. 횡성군과 원주교구는 요즘 풍수원 성당의 역사적 가치를 인근 자연과 연계해 천주교 복합성지에 담아내려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100억원을 들여 대지 78만평에 6만 8000평 규모의 ‘바이블 파크’를 조성하는 것이다. 예정대로 완공된다면 내년 말까지 풍수원 성당을 중심으로 수목원과 피정의 집, 미술관, 정규하 신부 동상, 천국동산, 가마터 등이 들어서게 된다. 풍수원 성당 김승오(54) 주임신부는 “한국 동부지역 전교의 중심지로 우뚝 섰던 초기의 위상에선 멀어졌지만 초기 모습을 고스란히 갖춘 채 고난했던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소리없이 증거하는 핵심적인 성지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천주교계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imus@seoul.co.kr ■ 천주교 최초의 신앙촌은 한국엔 천주교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모여 살았던 교우촌이 여럿 있지만 풍수원 성당 일대는 가장 먼저 형성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앙촌이다. 초기의 큰 성당들이 주로 대도시에 들어섰던 것과 달리 험한 산골짜기에 커다란 풍수원 성당이 세워진 것은 바로 이 신앙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초는 1800년대 초 경기도 용인에 살던 40여명의 신자들이 신유박해를 피해 이 지역으로 피신해온 것. 당시 신자들은 피신처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용인에서 비교적 가까운 산골인 이 지역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터를 잡은 신자들은 다른 지역의 교우촌과 마찬가지로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우며 연명했다. 단 한 사람의 성직자도 없이 두려움에 떨며 80여년간 신앙심을 지키던 신자들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에 의해 이곳에 강원도 최초의 본당이 설정된 1888년에야 자유로운 신앙의 꽃을 피울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은 한때 전국에서 모여든 신자들로 붐볐으나 차츰 흩어져 살게 되었으며 6·25전쟁을 겪으면서 북한에서 넘어온 난민 중심의 교우촌으로 거듭났다. 이후 신자들의 크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으나 30여년 전 도로와 마을 정비사업을 거치면서 많은 가구가 떠났다. 지금 성당 앞에 비슷한 형태로 모여있는 주택 40여채는 30여년 전 정비사업을 하면서 들어선 것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모두 천주교 신자들.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신앙촌 성격이 강한 때문인지 지금 횡성군 서원면 일대 주민 2300명중 신자가 850명에 이를 정도로 천주교 세가 강하다. 물론 풍수원 주민은 모두 천주교 교인들이다.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44) 時享(시향)

    儒林(711)에는 ‘時享’(때 시/제사지낼 향)이 나오는데,‘시월 보름날을 전후하여 祖上神(조상신)에게 지내는 제사’로 時祭(시제)라고도 한다. ‘時’는 본래 ‘日’(날 일)’과 ‘止’(발자욱 지)가 합하여 ‘계절’의 뜻을 나타냈다.‘때’‘시간’과 같은 뜻도 派生(파생)하였다.音符(음부)에 해당하는 ‘寺’는 변신을 거듭하여 ‘들다’라는 뜻에서 ‘모시다’의 뜻이, 다시 ‘官廳(관청)의 이름’을 나타냈다.後漢(후한)의 明帝(명제)는 인도에서 온 僧侶(승려)들을 위하여 郊外(교외)에 白馬寺(백마사)라는 客舍(객사)를 마련하였는데, 이것이 중국 최초의 ‘사찰’이다. 用例(용례)에는 ‘晩時之歎(만시지탄:시기에 늦어 기회를 놓쳤음을 안타까워하는 탄식),時代錯誤(시대착오:변화된 새로운 시대의 풍조에 낡고 뒤떨어진 생각이나 생활 방식으로 대처하는 일),時宜適切(시의적절:당시의 사정에 꼭 알맞음) 등이 있다. ‘享’은 祖上神(조상신)을 모신 장소인 宗廟(종묘)를 본뜬 象形(상형)으로 ‘바치다’의 뜻을 나타냈다. 조상에게 음식을 바치면 福(복)을 받아 일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싹트면서 ‘형통하다’의 뜻으로도 쓰였다.用例로 ‘享年(향년:한평생 살아 누린 나이),享樂(향락:즐거움을 누림),享祀(향사:제사),配享(배향:공신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일. 학덕이 있는 사람의 신주를 문묘나 사당, 서원 등에 모시는 일)’ 등이 있다. 인류가 원시적인 생활을 할 때 천재 지변이나 사나운 맹수의 공격과 질병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天地(천지),深水(심수),巨木(거목),山川(산천) 등에 절차를 갖춰 빌었던 데에서 祭祀(제사)가 시작되었다. 유교적인 조상숭배의 제도로 변하면서 그 儀式(의식) 節次(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까다로워 전문가들 사이에도 甲論乙駁(갑론을박)의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조상신에 대한 제사는 대체적으로 삼국시대부터 의례의 형태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性理學(성리학)의 수입과 더불어 朱子家禮(주자가례)가 보급되면서 家廟(가묘)의 설치와 같은 일대 변혁을 예고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불교의례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유교식 의례가 널리 통용되지는 않았다.四代封祀(사대봉사),五代 이상 時祭가 일반화된 것은 16세기 이후의 일이다. 祭禮는 절차와 규정의 복잡성 만큼이나 종류도 다양하다. 초하루 보름에 사당에서 올리는 朔望祭(삭망제)를 비롯하여 집안의 大小事(대소사)를 사당에 알리는 告由祭(고유제), 설과 추석에 행하는 茶禮(차례),端午(단오)나 流頭(유두)와 같은 각종 名節에 행하는 世俗(세속) 節祀(절사),封祀(봉사) 대상의 忌日(기일)에 올리는 忌祭祀(기제사),春夏秋冬(춘하추동) 四時節(사시절)의 仲月(중월)에 올리는 時祭, 시월에 5대 이상의 묘소에서 올리는 歲一祀(세일사)인 時享(시향) 등이 그것이다.祭禮의 일차적 목적은 報本反始(보본반시:지금의 나와 내 존재의 연원인 조상이나 천지만물의 은의에 감사를 표하는 것)에 있다. 진지하고 경건한 자세로 같이 참여하기 때문에 구성원간의 不信(불신)이나 葛藤(갈등)이 사라지고 和合(화합)의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는 것이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儒林(720)-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

    儒林(720)-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 경오년(1570년) 12월7일. 도산서당은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서당 안은 퇴계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사방에서 몰려든 70여명의 제자들로 빈 곳이 없을 정도로 만원이었지만 누구 하나 정적을 깨트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당을 오갈 때에도 뒤꿈치를 들고 발끝으로만 걸어 예리성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비록 제자들은 입을 열어 말을 나누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스승 퇴계가 이번 병에서 일어나 쾌차하리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퇴계의 병은 위독하였다. 지난 11월9일 가묘에서 시향을 올릴 때 ‘내가 이제 늙어서 살아있는 날이 많지 않으므로 불가불 제사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하며 손수 독()을 받들고 제물을 올리며 제사를 주관한 이후 감기에 걸렸던 퇴계는 그러나 계속된 무리로 병세가 악화되어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제자 이덕홍(李德弘)이 스승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온계로 온 것은 12월2일. 이덕홍은 퇴계가 가장 사랑하던 애제자였다. 이덕홍은 퇴계보다 40년이나 연하의 제자였으므로 제자라기보다는 퇴계의 아들과도 같은 존재였다. 실제로 퇴계는 이덕홍을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특히 이덕홍은 10살 때 퇴계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배웠으므로 퇴계는 각별히 이덕홍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퇴계는 자신이 위중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친자식과 같은 이덕홍을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이덕홍이 남긴 ‘간재문집(艮齋文集)’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12월2일. 병세가 더욱 위중해지셨다. 약을 드신 다음 말씀하시기를 ‘내일은 장인(권질)의 제사니, 고기반찬을 쓰지 말라.’고 이르셨다. 이날 이덕홍은 퇴계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계상서당으로 와서 머물렀다.” 이덕홍(1541∼1596)은 조선중기의 학자로 자는 굉중(宏仲), 호는 간재(艮齋)였다. 10살 때 퇴계의 문하에 들어가 극진하게 퇴계의 사랑을 받았던 이덕홍은 훗날 이름난 선비 9명 중 4위에 뽑혀 벼슬에 올랐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세자를 모시고 성천까지 호종하였을 만큼 빼어난 충신이었는데, 특히 이순신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거북선’의 도안에도 참여하였다고 알려진 만큼 재능 역시 뛰어난 선비였다. 이덕홍이 얼마나 퇴계의 사랑을 받았는가를 알 수 있는 사실은 지금도 도산서원의 유물각 안에 안치된 혼천의(渾天儀)를 이덕홍이 스승의 부탁을 받고 직접 제작하였다는 사실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과 성좌의 위치를 추정하는 과학기구인데, 이덕홍은 스승이 직접 설계한 도안대로 둥근 공모양의 천체를 대나무로 만들어 그 위에 종이를 바르고 수평으로부터 약간 기울어져 있는 나무대 위에 고정시켜 직접 만들었던 것이다. 퇴계는 생전에 이덕홍이 만든 혼천의를 바라보면서 우주만물의 운행과 별들의 위치를 관측하며 태극사상을 연구하였을 것이다.
  • 훔친 문화재 사들여 전시회까지

    도난당한 중요 문화재들을 사들여 숨겨온 서예가, 박물관장, 탱화 화가 등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이 중 일부를 버젓이 일반에 전시하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8일 전국 사찰, 고택, 서원 등에서 도난당한 문화재 252점을 전문 절도범, 미술품 매매상 등을 통해 취득·은닉한 서예가 문모(51)씨, 사설박물관 관장 박모(58·인간문화재)씨와 권모(65)씨 등 6명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문씨는 1998년 5월부터 올 4월까지 절도범 우모(52·수감 중)씨가 훔친 통일신라시대 석탑 8부신 중 기단석 6점을 사들여 숨겨온 것을 비롯해 도난문화재 유통책으로부터 240여점을 사들인 혐의를 받고 있다. 문씨는 이 중 백은문집 목판, 취사문집, 석불좌상 등 140여점을 경기 여주 사설박물관장 박씨에게 판 혐의도 받고 있다. 서울 종로의 박물관장 권씨도 2002년 6월 미술품 매매상으로부터 80년 전남 해남 대흥사에서 도난당한 사천왕도를 사들인 것을 비롯해 93년 9월부터 2002년 11월까지 미술품 매매상 등으로부터 창녕 관룡사 도난 영산회상도 등 도난 불교미술품 7점을 매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이종현의 나이스샷] 명문 골프장 짝퉁 골프장

    불과 5∼6년 전만 해도 골퍼들 사이에서는 ‘북일남화’란 말이 널리 퍼져 있었다. 강북에서는 일동레이크, 강남에서는 화산CC가 최고라는 평가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을 좀체 듣기가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명문 골프장에 대한 평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강북에선 송추CC와 서원밸리GC가, 강남에선 남부CC와 이스트밸리가 최고 명문 골프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가하면 세계 100대 명문 골프장에 선정된 제주도의 나인브릿지와 핀크스골프장은 골퍼들의 관심에서 차츰 멀어지고 있다. 반면 로드랜드GC와 블랙스톤골프장이 골퍼들 사이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골프장으로 꼽힌다. 그렇다고 예전에 명문으로 불리던 그 골프장들의 가치가 떨어진 건 절대 아니다. 분명한 건 골프장에 대한 가치와 평가는 항상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명문 골프장에 대한 평가는 왜 바뀌는 것일까. ‘골프 천국’ 미국에선 골프다이제스트와 골프매거진이 2년에 한 차례씩 ‘100대 골프장’을 선정해 발표한다.선정기준은 샷의 가치와 코스난이도, 디자인의 다양성·기억성·미적감각, 코스관리, 전통성 등이다. 국내 역시 위의 7가지를 잣대로 명문 골프장을 평가한다. 이에 선정되는 것은 분명 명예로운 일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평가일 수는 없다. 골퍼의 눈에 차지 않으면 언제나 그 가치가 바뀔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골프장의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 사실 국내 ‘명문 골프장’ 선정은 회원권 가격 올리기와 신규 회원권 판매 전략, 골퍼들의 지나친 명문 선호가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이들은 지나치게 100대니,10대니 하는 명문 수식어에 집착한다. 적당한 상술로 꿩도 먹고 알도 먹을 수 있다.‘누이좋고 매부좋은’ 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명문 골프장은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객관성과 형평성, 그리고 신뢰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욕심대로라면 회원과 내장객의 만족도까지 포함돼야 한다. 골프장의 차별성이나 발전적인 경쟁유도 차원에서 볼 때, 명문 골프장 선정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칫 골프장을 귀족화시키거나 특권의 테두리에 더 가둬 놓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마케팅 전략에 의해 선정되는 명문이 과연 얼마만큼 객관성을 가질까. 그리고 얼마나 오래 갈까. 진정한 명문은 골퍼들의 입을 통해서 최대의 공감대를 이룬 결과여야 한다. 명문 골프장에 대한 골퍼의 생각은 항상 바뀔 수 있다. 오랫동안 명문으로 남기 위한 요건이 무엇인지 골프장들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레저신문 편집국장 huskylee1226@yahoo.co.kr
  • IPTV 시범사업자 C 큐브·다음 확정

    ‘말 많던’ 인터넷TV(IPTV) 시범 사업자로 통신업계 컨소시엄인 ‘C-큐브’와 다음커뮤니케이션 컨소시엄이 최종 선정됐다. 하지만 탈락 업체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어 논란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IPTV 시범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는 13일 “6개 컨소시엄을 대상으로 서류 및 실사평가를 한 결과, 두 부문에서 모두 70점을 넘은 C-큐브와 다음커뮤니케이션 컨소시엄을 최종 시범 사업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정통부는 “서면평가 결과 70점 이상을 받은 C-큐브,UMB(케이블업계), 다음 3개 컨소시엄이 통과했지만 UMB는 연내 시범서비스 개시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와 탈락됐다.”고 설명했다.서원I&B와 대림I&S, 굿티비 컨소시엄은 ▲컨소시엄 구성요건 부적합 ▲제한적인 서비스 제공지역 ▲서비스 품질 보장의 어려움 ▲기존 서비스(주문형 비디오) 위주의 사업추진 등으로 서면 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 3개 컨소시엄은 “정통부와 방송위의 선정 과정이 KT와 다음 등 대기업에 편향된 상태로 진행됐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특히 이들은 이날 “서면 평가가 졸속으로 이뤄졌다.”면서 합동사업체로 ‘TVONE 컨소시엄’을 구성해 재심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통부 관계자는 “공식적인 심의나 공고를 다시 할 수 없다.”면서 “다만 개별업체가 자율적으로 시범서비스를 하면 앞으로 결과물을 내년 결과 보고서 작성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IPTV 시범 사업자는 시범가구 모집, 장비 설치 등 준비기간을 거쳐 11월부터 12월까지 2개월간 시범서비스를 한다.C-큐브 컨소시엄은 서울과 난시청 지역인 경기 양평의 350여가구를 대상으로 지상파 5개 채널 등 26개의 단방향 채널 서비스와 27개 양방향 데이터 채널 서비스,700편 이상의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를 제공한다. 다음커뮤니케이션측은 통신사업자 없이도 IP(인터넷)망을 통한 실시간 방송, 양방향 서비스를 가능케 하는 독자적인 서비스를 소개할 계획이다. 영화, 음악, 게임, 뉴스, 애니메이션, 스포츠 등 8개 메뉴를 선보인다. KT가 주도하는 C-큐브 컨소시엄은 하나로텔레콤,LG데이콤,SK텔레콤, 온세통신, 삼성전자 등 52개 업체로 구성됐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컨소시엄에는 컨텐츠플러그와 한솔교육, 디보스, 씨디네트웍스 등 10개사가 참여했다.●IPTV 인터넷 초고속 통신망을 통해 전송되는 TV다. 통신과 방송의 대표적인 융합서비스의 하나다. 실시간 방송이면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주문형 시청이 가능하다. 또 의견이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쌍방향 방송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PC를 통해 즐기던 정보검색, 게임 등 각종 인터넷 서비스와 방송 서비스를 초고속 인터넷망 기반의 TV를 통해 즐길 수 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한국유교문화의 산실’ 안동 세계문화유산도시연맹 등록

    경북 안동시가 우리나라 도시로는 처음으로 세계문화유산도시연맹에 준회원으로 등록됐다. 3일 안동시에 따르면 김휘동 안동시장과 데니스 리카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시 사무총장이 이날 안동 탈춤 축제본부에서 안동시를 세계문화유산도시연맹 준회원에 가입하는 의향서에 서명했다. 세계문화유산도시연맹은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거나 그에 준하는 자격을 갖춘 도시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으로 현재 79개국 215개 도시가 정회원 혹은 준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연맹 준회원 등록으로 안동시는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도시에 준하는 자격을 얻게 돼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한 유교문화권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동시는 현재 세계역사도시연맹, 아시아태평양관광도시연맹, 국제탈문화예술연맹 등 세계 민간기구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안동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07일 TV 하이라이트]

    ●라이프n조이(YTN 오전 8시30분) 병풍처럼 펼쳐진 산과 기다란 낙동강이 흐르는 풍요의 고장 안동. 드라마를 통해 잘 알려진 병산서원을 찾아가 아름다운 경치를 느껴본다. 병산서원에서 십리길에 이르는 곳 하회마을. 고택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하회마을에서 과거로 여행을 떠나본다. 또한 하회동 탈박물관도 둘러본다. ●행복의 오솔길(EBS 오전 6시20분) 일주일에 두번 복지관에서 진행되는 태극권 수업에 일등 출석을 자랑하는 할아버지. 느린 듯하지만 정도가 있고 정신 건강은 물론, 육체건강까지 책임진다는 태극권 예찬이 대단하다. 다이어트는 물론 혈색까지 회복한 일흔여덟 팔팔한 태극맨 이중균 할아버지가 말하는 태극권의 매력을 들어본다. ●추석특집 천하제일 신동열전(SBS 오후 4시20분) 자타공인 천하제일 대한민국 최고의 신동이 다 모였다. 춤 노래는 물론,2개국어(영어, 일어)에 능통한 유치원생부터 한번 보면 뭐든지 척척 외워버리는 인간 컴퓨터, 암기 신동까지 총 15팀이 출연해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입이 떡 벌어지는 재주를 선보인다. ●한국의 산나물(MBC 오전 8시) 산나물은 그야말로 산의 기운을 흠뻑 머금고 자란 야생식물이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사람들은 산나물을 단순히 배고픈 시절의 추억으로서가 아니라 건강한 식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이 변해도 산나물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자리잡고 있다. ●트로트 올드 앤 뉴(KBS2 오전 9시) 전통가요를 부르는 가수들이 벌이는 추석특집 초특급 버라이어티쇼. 기성 트로트 가수 올드팀과 신세대 트로트 가수 뉴팀으로 나뉘어 대결을 펼친다. 트로트가 아닌 다른 장르의 노래 도전을 통해 이제까지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롭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윷놀이, 씨름 등 명절 게임도 즐긴다. ●허영만의 맛 이야기(KBS1 오전 10시10분) 2002년 9월 동아일보 연재를 시작으로 단행본으로까지 발간된 맛과 인생의 이야기, 만화 ‘식객’. 만화 ‘식객’에 담지 못한 갖가지 사연들과 함께 음식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만화에선 결코 느낄 수 없는 만화가 허영만의 독특한 삶의 해법과 경쾌한 입담을 이제 TV에서 만나본다.
  • IPTV 시범사업 6개 컨소시엄 신청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IPTV 시범사업에 KT와 UMB(케이블업계 컨소시엄), 다음커뮤니케이션, 서원아이앤비, 대림아이앤에스,Good TV를 주사업자로 하는 6개 컨소시엄이 신청했다.
  • “보령 관촌에 이문구 문학관 세우자”

    ‘관촌수필’의 작가 명천 이문구(1941∼2003)의 전집 완간을 기념하는 세미나가 28일 충남 보령시 관촌 솔밭과 대천문화원에서 열렸다. 이문구기념사업회(회장 김주영)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스물여섯권으로 완간한 ‘이문구 전집’(랜덤하우스코리아)의 봉헌제와 더불어 이문구 문학관 건립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전집 발간사업은 2004년 2월 고인의 타계 1주기를 맞아 시작한 사업으로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 이경철 전 문예중앙 주간, 문학평론가 임우기, 구자황 서원대 교수 등이 편집위원을 맡아 추진해 왔다. 전집은 1960년대 등단작부터 산문, 유교시집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40년 문학인생을 총 망라한 것으로 권당 300쪽을 기준으로 시기별로 정리했다. 마지막권인 ‘숨 쉬는 장승’은 작가 생전 책으로 출간된 적이 없는 작품 10여편을 실었다. 이와 별도로 이문구 작품을 연구한 논문 10여편도 별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세미나에선 평론가 김윤식·권영민, 신준희 보령시장, 이형호 문화부 예술정책과장 등 1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문학 세계를 기리는 한편 문학관 건립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소설가 박덕규 단국대 교수는 “이문구의 고향인 충남 보령의 갈머리(冠村)는 이문구의 작품 못지않은 콘텐츠다. 보령을 이문구 문학의 필수 답사지로 다양하게 개발한다면 산업적 효과도 클 것”이라며 문학관 건립을 촉구했다. 또 이문구의 작품들을 주제, 캐릭터, 소재, 작중무대, 어휘별로 분류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는 사이버문학관의 개설 필요성도 강조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서울시정 거듭난다

    서울시는 ‘창의와 열정으로 일하는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창의의 날’‘소통형통의 장(場)’‘워크아웃 미팅’ 등 다양한 조직문화 개선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들 프로그램은 크게 업무의 창의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부분과 조직 내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직원들의 복리를 증대시키기 위한 부분으로 구분된다. 시는 우선 기관별로 ‘창의의 날’을 정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고 업무 개선의 계기로 삼도록 하고 우수한 창의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이나 이를 잘 실행한 부서에 상이나 인센티브를 주는 ‘창의인(人)상’을 신설하기로 했다.●`당일 결재´ 정착 업무 지연 막기로 실제 ‘창의의 날’을 시범 운영한 결과 ‘남산 케이블카를 명동 우리은행(신세계백화점) 앞까지 연장하자’‘남산 꼭대기까지의 계단을 에스컬레이터로 바꾸자’‘고시원. 원룸을 임대주택으로 활용하자’ 등의 아이디어가 제시됐다고 시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와 함께 시는 회의를 줄이고 회의자료를 사전에 제공하는 한편 회의 시간에 상한을 정해 운영하는 등 회의를 최소화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업무가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일 결재’를 정착시켜 나가기로 했다.●4급이상 간부 `시니어보드´ 운영 시는 또 조직 상하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업무를 순조롭게 처리하자는 취지로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 ‘소통형통의 장’을 운영할 계획이다. 또 시는 민간기업에서 시행 중인 ‘워크아웃 미팅’을 시정에 활용하기로 했다. 전 부서원이 현안 업무에 대해 토론을 벌여 합의에 도달한 뒤 의사결정자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신속히 실행에 옮기는 의사결정 방식이다. 이와 함께 4급 이상 간부들로 ‘시니어보드’를 구성해 전문지식과 경험을 시정에 활용하고 5급 이하 유능한 직원들로 ‘주니어보드’를 편성해 직원들의 의견 수렴 창구로 삼기로 했다. 시 전산망에 개설한 ‘칭찬합시다’ 코너의 칭찬 내용을 평가해 ‘이달의 칭찬왕’‘올해의 칭찬왕’을 선발하고 의사 간호사 체육지도사 등으로 구성돼 직원들의 건강을 책임질 ‘건강관리팀’도 신설한다.●`직원 건강관리팀´ 운영·`칭찬상´ 신설 이밖에 시는 ‘가정의 날’을 지정해 가족에게 편지 쓰기, 가족 사진 콘테스트, 직장 내 가족 초청 행사 등을 열고 동호회 활동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조직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속 발굴해 신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조직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강혜승기자 1ffineday@seoul.co.kr
  • [행복일기] 온몸으로 사랑해요

    구명신_종신서원 수녀이자 청각장애 특수학교의 새내기 선생님입니다. 아이들과 엎치락뒤치락 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현장 학습을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장난꾸러기 지성이가 이영진 선생님 이름을 줄기차게 불러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정희가 놀렸다. “지성이는 이영진 선생님만 좋아해요.” “그래? 그럼 너는?” 이 선생님이 물었다. “나는 구명신 선생님을 좋아해요. 그리고 정수는 장혜진 선생님을 좋아해요. 개인지도를 해주잖아요.” 정희가 대답했다. 우리 학교는 세 명의 담임교사가 공동으로 학급을 운영한다. 교과 수업 후에는 각 교사가 아이들을 일대일로 개인지도를 해준다. 그래서 정희는 개인지도 선생님과 아이들을 연결해서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림을 그리거나 운동을 할 때에는 나도 같이 해주잖니.” 이 선생님이 묻자 정희의 대답이 걸작이다. “나는 구명신 선생님을 가슴으로 사랑해요.” 뒷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던 나는 가슴이 뿌듯했다. 정희는 계속 말했다. “그리고 머리로는 이영진 선생님을 사랑해요. 겨드랑이로는 장혜진 선생님을 사랑해요. 손으로는 김지영 선생님을 사랑해요.” 선생님들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선생님 한 분도 빼놓지 않고 자신의 신체 부위별로 사랑을 표현하는 정희가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정희에게 말했다. “정희야, 네가 선생님을 가슴으로 사랑해줘서 정말 고마워. 선생님도 정희를 가슴으로도, 머리로, 겨드랑이로, 손으로, 그리고 온 몸으로 사랑해.” 그리고 장난기가 발동해 은근히 물었다. “그런데 만약에 나중에라도 선생님이 정희를 안 좋아하면 어떻게 할래?” 정희는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나는 선생님을 가슴으로 사랑할 거예요!” 나는 정희를 힘껏 끌어안았다. 월간<샘터>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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