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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 귀성객 반기는 지자체

    설 귀성객 반기는 지자체

    “‘고향의 정’을 듬뿍 담아가세요.” 전국의 시·군들이 오랜만의 긴 설 연휴를 맞아 대도시 등에 나가 있는 ‘고향출신 인사맞이하기 행사’ 준비에 바쁘다. 유적지를 무료 공개하고 민속놀이 한마당 잔치를 마련하는 곳이 많다. 전남 해남군은 7일 우항리 공룡화석지 공룡전시관과 전라우수영 관광지, 땅끝전망대, 고산 윤선도의 고택인 녹우당 등의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6∼10일 군청 앞 군민광장 지하주차장도 개방한다. ●전라우수영 관광지·대나무박물관 등 입장료 면제 대나무골인 담양군도 6∼8일 죽녹원, 한국대나무박물관, 한국가사문학관, 가마골 생태공원에서 입장료와 주차료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민간인이 대신 운영하는 조선시대 전통 정원인 소쇄원과 금성산성은 설날만 주차료를 면제한다. 또 6일부터 전남 영암 영산호 관광농업박물관에서는 윷놀이·제기차기·투호 등 민속놀이 12가지를 즐길 수 있다.6∼8일 목포 자연사박물관에서는 전통차 마시기, 도자기 만들기로 가족단위 나들이 손님을 손짓한다. 전북에서는 7∼9일 전주 전통문화센터에서 설맞이 소원축제와 음식축제, 전통공연 등으로 쥐띠 새해를 맞는다. 재수부적 나눠주기, 가래떡 썰기대회, 떡국 나눠먹기, 토정비결 봐주기, 연 만들기 등이 관심을 끈다. 또 한옥생활체험관에서는 6∼9일까지 이주 여성과 노동자들을 위해 만두빚기, 장기자랑, 전통민속놀이 등이 이어진다. 공예품전시관에서도 민속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국립전주박물관과 전주역사박물관, 최명희 문학관 등에서도 다채로운 민속놀이 한마당 잔치가 열린다. 6∼7일 국립대구박물관에서는 뮤지컬 ‘형아’가 무대에 올려져 관객을 맞는다.6∼10일 달서구 첨단문화회관에서는 널뛰기·윷놀이 등 민속놀이와 함께 공짜로 영화도 보여준다. ●널뛰기·제기차기·전통공연 등 가족 발길 유혹 7∼9일 대구 놀이공원인 C&우방랜드에서는 국악과 양악이 어우러진 퓨전 국악 한마당이 설날 추위를 녹인다. 여기에다 북한 출신 예능인들로 구성된 평양민속예술단이 우리 귀에 익은 북한가요와 전통춤을 선보여 무대를 달군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는 관광객들이 동참하는 널뛰기와 제기차기 등 민속놀이가 펼쳐진다. 영주 선비촌과 소수서원에서는 한복입고 사진찍기, 새해 토정비결 보기, 지신밟기, 축원 굿 등이 마련돼 고향 방문의 추억을 안겨준다. 설 연휴 내내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한복 입은 관광객에 한해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또 부산 시립박물관에서도 민속놀이 체험장이 펼쳐져 귀성객을 반긴다. 전국종합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가평베네스트 회원권 17억 ‘최고’

    가평베네스트 회원권 17억 ‘최고’

    전국 골프장 회원권의 기준시가가 작년 8월에 비해 2.7% 상승했다. 국세청은 전국 175개 골프장,349개 회원권의 기준시가를 올해 1월1일 기준의 실거래가액, 분양가액 등을 반영해 고시했다고 31일 밝혔다. 수도권 일대의 고가 회원권은 계속 오르고 지방의 저가 회원권은 계속 떨어지는 양극화 현상이 지속됐다. 회원권 가격대별로 보면 4억원 이상의 고가 회원권과 2억원대의 회원권의 상승률이 높았다. 회원권(일반 회원권) 기준시가는 가평베네스트가 17억 1950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남부 17억 1200만원, 이스트밸리 14억 9400만원 등이 뒤를 이었다. 회원권 상승 금액은 남부 2억 8650만원, 가평베네스트 2억 4350만원, 서원밸리 2억 4200만원 등이었다. 상승률은 세븐힐스 45.7%로 가장 높았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실세 부서 “나 떨고 있니”

    정부 조직개편을 앞두고 부처내 부서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부처 내에서 실세부서로 꼽힌 인사·혁신·총무 관련 부서 공무원들은 통폐합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반면 평소 부처 내에서 별다른 영향력이 없던 고유 사업부서 공무원들은 비교적 ‘무풍지대’에서 현 사태를 그저 바라보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최근 두 기관이 통합될 경우 공통부서 인력 중 규모가 작은 기관 기준으로 65∼75%를 감축하라고 지시했다. 만약 A·B 기관을 합칠 경우, 두 기관이 혁신담당관실을 갖고 있다면 규모가 작은 기관의 혁심당당관실 인력 중 70% 정도를 감축해야 하는 것. 현재 대부분의 부처에 공통적으로 설치돼 있는 부서는 인사·혁신·홍보·감사·총무·전산·정책기획 등이다. 인사·정책기획 등은 과거부터 부처내 인사와 정책을 조율하는 중요부서로 실력파들이 포진하고 있다. 특히 혁신부서는 참여정부 들어 최고 핵심부서로서 각종 혁신업무를 총괄했다. 감사·총무·홍보 업무도 여전히 중요한 부서로 인식돼 있다. 그러나 인수위 기준에 따라 이들 부서 책임자와 부서원들은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게 됐다. 통합부처 중 가장 덩치가 큰 기획재정부의 경우, 현재 이같은 공통부서 인력이 250여명(재정경제부 170여명, 기획예산처 75명)에 달한다. 인수위 기준대로라면 이 중 기관 규모가 작은 기획처 공통부서 인력의 65%에 해당하는 50여명을 줄여야 할 판이다. 기획처 관계자는 “기준을 맞추기가 힘들어 작업에 애를 먹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공통부서 공무원들의 불만도 터져나온다. 한 부처의 홍보 담당 간부는 “`하필 이때 여기 근무해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면서 “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른 부처의 인사 담당 공무원도 “부처 내에서 인정받은 실력파들이 통폐합 바람에 희생되면 국가적 손실”이라면서 “이들 부서가 앞으로 기피부서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9) 천주교 작은형제회 고사카 빈첸시오 수사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9) 천주교 작은형제회 고사카 빈첸시오 수사

    임진왜란때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에 몸을 던진 논개의 고장 경남 진주. 한·일 과거사의 아픈 편린으로 인해 꾸준히 회자되는 이 진주시의 자그마한 칠암동성당(칠암동 496의14)엘 가면 짙은 밤색 수도복 차림의 일본인이 눈에 띈다.19년째 한국에 살며 의지할 곳 없는 노숙자며 독거노인을 돕는 데 몸바치고 있는 천주교 작은형제회 한국관구 소속 수사(修士) 고사카 빈첸시오(64·본명 고사카 요시히로·高阪淑皓·한국명 고명호).“일본보다 한국이 더 좋아 한국에 산다.”며 한국에 귀화한 빈첸시오 수사에게 한국은 한·일 과거사에 얽힌 아픔을 풀어가는 ‘숙제의 땅’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통해 칠암동성당은 한국에 있는 천주교 작은형제회 소속 본당 7곳 중 대표적 성당. 이 성당에 딸린 사제관에서 주임신부와 함께 살며 나눔과 베품을 묵묵히 실천하는 고사카 빈첸시오 수사는 한국 천주교계에서 남다른 신앙인으로 이름나 있다. 무소유의 ‘작음’과 ‘배려’를 생명처럼 새기며 사는 천주교 작은형제회. 이 수도회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통하는 빈첸시오 수사를 따라 세례명을 빈첸시오로 택한 그가 헐벗고 의지할 곳 없는 ‘빈자(貧者)’와 함께 부대끼며 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수도자 빈첸시오에게는 신앙인의 삶에 더해 풀어야만 할 절실한 화두가 있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웠다는 지난 24일 오후 칠암동성당 사제관에서 기도 중 기자를 맞은 빈첸시오 수사는 “추운 날씨에 보잘것없는 사람을 찾아 먼 길을 왔다.”며 덤덤한 표정으로 찻물을 끓였다. 인근 칠암동, 망경동의 독거노인들을 위해 반찬거리를 만들어 신자들을 통해 배달하는 일을 막 끝낸 참이었다. 매주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성당 지하의 주방에서 나물이며 김치 같은 반찬을 만들어 독거노인들에게 전달하기를 벌써 2년째. 이젠 이곳 독거노인들에겐 빈첸시오 수사의 손길이 들어 있는 반찬을 받는 게 가장 반가운 일상이 되었다. ●37살 수도회 입문… 빈민식당서 봉사의 첫발 일본 도쿄의 가난한 집 외아들로 태어난 빈첸시오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공장 일을 하는 어머니를 따라 도야마(富山)현으로 이사해 중학교까지 마친 게 학력의 전부이다. 중학교 졸업 후 16년간 주유소 일을 하며 홀어머니를 도와 어렵게 살았다. 천성이 선했던 때문일까.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했으며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수도자들을 막연히 동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19살 때 도야마현 다카오카시의 작은형제회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홀어머니 걱정에 수도자가 될 결심을 못한 채 흔들리던 중 화재를 당한 친구를 보고 불현듯 마음을 정했다. “공교롭게도 친구 집을 찾아가는 날 화재로 친구의 집이 모두 불탔어요. 세상의 모든 재물은 한 순간에 없어질 수 있지만 신앙은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곧바로 작은형제회 수도회에 입회,5년 뒤 “일생토록 나를 온전히 하느님께 바친다.”는 성대서약(종신서원)을 하고는 수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37살 때였다. 독신서약을 하고 오사카 작은형제회에 몸을 담아 이 수도회가 운영하는 빈민식당 일이 평생 봉사의 시작이 될줄이야.5년간 노숙자며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급식을 하는 빈민식당의 주방일을 맡아하면서 노숙자들을 찾아가 주먹밥이며 이부자리를 나눠주고 몸이 아픈 사람들을 병원으로 데려다 주곤 했다.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교토의 재일교포들과 만나면서. 교토 작은형제회 소속 신부들과 함께 일본 천주교 박해시대(1597~1797년) 순교자들의 자료를 모은 크리스천 자료관을 만들어 일하던 때였다. 그곳 ‘코리아 가톨릭센터’에서 재일교포 할머니들과 어울려 미사를 함께 올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국말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오사카에서 만난 재일 교포들이 과거의 아픈 역사 때문에 힘겹게 살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교토의 재일교포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아픔을 진실하게 나누기 위해선 한국말을 알아야겠더라고요.” 작은형제회 일본 관구에 ‘한국에서 봉사하겠다.’는 뜻을 거듭 전했지만 번번이 무산된 끝에 결국 일본관구에서 한국관구로 적을 옮겨 한국행을 결행한 게 1989년. 정동 작은형제회 한국관구 본부 수도원에 머물면서 당시 퇴계로에 있던 코리아헤럴드 어학당에서 1년6개월간 한국말을 배웠다. 한국이름 고명호는 그때 만난 한국인 신학생의 도움을 받아 지은 이름. 일본 이름 숙호(淑皓)가 여성 이름이니 명호가 어떠냐는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과는 당연한 것” “처음엔 한국말만 배우고 귀국할 예정이었지요. 그런데 한국관구 수사들이며 주변의 한국인들에게서 일본인이 갖지 못한 따뜻한 정을 느꼈습니다. 일본인인 내가 한국인들을 위해 할 일이 있음을 그때 절실히 느꼈지요.” ‘한국에 살리라.’는 결심을 굳히고는 서울 제기동 자선식당인 프란치스꼬의집 주방 일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하루 300∼400명씩 몰리는 노숙인들에게 한 끼 밥을 제공하기 위해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며 주방장 생활을 한 게 15년. 이후 2006년 1월 칠암동성당으로 옮겨 독거노인들을 챙기며 살고 있다. “사는 집, 입는 옷이 없는 사람보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 먹을 것을 갖지 못한 사람이 제일 불쌍하지요.” 그래서 독거노인들을 향한 정이 더욱 깊단다. 여기에 과거 일본의 침략에 고통받은 한국인들의 상흔을 달래고 빚을 갚는다는 사명 아닌 사명이 자신에게 주어진 큰 숙제라고 한다. “한·일 과거사를 볼 때 한국인들이 일본에 나쁜 감정을 갖는 것은 당연할 수 있지만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채 과거에만 매몰되면 더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봅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과는 물론 당연합니다. 저를 만나는 한국인들이 위안을 얻고 저를 통해 일본과 일본인이 참회를 할 수 있다면 큰 보람이겠지요.” ●평생 독거노인과 노숙자의 벗이 되고파 ‘남은 생동안 나를 필요로 하는 어디건 찾아가 몸을 아끼지 않겠다.’는 빈첸시오 수사. 요즘은 독거노인 반찬 대는 일 말고도 한 달에 한번씩 경기도 시흥의 양로원을 찾아 노인들의 벗이 되어 준다. 그런가 하면 역삼동의 신자들이 모이는 작은공동체를 찾아 일본어도 가르치고 신앙모임도 이끈다. 수도사의 길을 시작한 지 얼만 안 된 1980년 당시 오사카에서 만난 테레사 수녀의 한마디는 수도자 생활에서 잠시도 잊을 수 없는 화두가 되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무관심입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 비해 관심받지 못한 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더 많이 배려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일본에서 빈민식당을 운영할 때보다 제기동 프란치스꼬의집 주방장으로 있을 때 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탰고 일반인들의 도움도 더 많았다고 귀띔한다. 세상엔 관심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봉사할 게 너무 많다는 빈첸시오 수사. 정년퇴직 없이 평생을 봉사할 수 있는 수사라는 직업(?)은 복받은 직업이라며 두 손으로 수도복을 만져 보인다. “수도자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 교만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과 일에 정성을 다해 기쁘고 재밌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한국에서….” 진주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고사카 빈첸시오 수사는 ●1944년 일본 도쿄 출생, 도야마현으로 이주 ●1963년 도야마현 다카오카시 성당에서 세례 ●1977년 천주교 작은형제회 수도회 입회 ●1982년 종신서원, 오사카 빈민 자선식당 운영 ●1987년 교토 크리스천 자료관 개관, 코리아 가톨릭센터서 봉사 ●1989년 한국으로 이주 ●1991∼2006년 서울 제기동 빈민식당 프란치스꼬의집서 봉사 ●2006년∼ 진주 칠암동성당서 독거노인 대상 봉사
  • 日, 외국인 참정권 논의 본격화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에 사는 영주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하는 법안에 대한 논의가 일본 정치권에서 본격화됐다.영주 외국인의 지방참정권은 재일교포들의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15년 동안 줄기차게 일본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최대 현안이다. 일본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 83만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47만여명이 재일교포들인 까닭에서다. 또 지난 2005년부터 한국에서 영주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준 상황에서 상호주의에 따라 최대 혜택을 볼 외국인 역시 재일교포들이다. 민단 측은 올해는 ‘지방참정권 관철의 해’로 정했다. 지금껏 일본의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주축이 돼 영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 법안이 추진됐지만 제1야당인 민주당이 적극 가세하고 나섰다. 모처럼만에 지방참정권에 ‘순풍’이 불고 있는 셈이다. 법안은 일본에 영주가 인정된 20세 이상인 외국인의 신청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의 투표권을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공명당과 별도로 관련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할 방침을 굳혔다.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도 지난 18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재일교포들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를 요청하자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찬성이다. 빨리 논의를 거쳐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민주당은 지방참정권을 둘러싼 자민당과 공명당을 흔들려는 정치적 노림수도 깔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도 23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인권옹호는 중요한 과제다. 정부도 진지하게 검토할 방침”이라고 답변했다. 서원철 민단 국제국장은 “지방참정권은 국회의원이 아닌 자치단체장 등 지역 일꾼을 선출하는 것인 만큼 영주권자로서 정당한 권리”라면서 “15년만에 참정권 문제를 풀 수 있는 정치적인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며 일본 정치권의 행보를 반겼다. 그러나 영주 외국인 지방참정권 법안이 확정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만 않다. 중의원 의석의 3분2를 장악한 자민당의 반발 때문이다.1998년 10월 공명당이 처음 법안을 제출하기 시작한 이래 2006년 9월까지 6차례에 걸쳐 법안이 상정됐으나 계류 중인 여섯번째 법안을 제외한 나머지 법안은 번번이 폐기됐다. 자민당은 내부에서 찬반 의견조차 따지지도 않았다. 자민당의 ‘보수정책연구회’에서는 지난 22일 “외국인 지방참정권의 문제가 꿈틀대고 있다”면서 “이른바 ‘보수의 깃발’을 분명히 내걸지 않으면 안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했다.hkpark@seoul.co.kr
  • “인사위 행자부에 통합 전문·공정성 확보안돼”

    “인사기관이 독립돼 있지 않다면 어떻게 상관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한국인사행정학회가 23일 서울 출판문화회관에서 개최한 ‘이명박정부의 중앙인사기관의 위상과 역할’이란 주제의 토론회에서 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단장이 ‘독립성과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은 인사기관의 문제를 이같이 지적하는 등 중앙인사위원회의 행정자치부 통합 등 인사 방향에 강한 질타가 쏟아졌다. 백종섭 대전대 교수는 “인사기관은 전문성과 공정성, 독립성을 갖춰야 한다.”면서 “백화점식 복합기능을 하는 기관이 인사를 맡으면 비인사업무로 인해 고도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하는 인사에 전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공무원의 순환보직시스템 등 인사행정을 아마추어식으로 했을 때 국가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인적 자원’의 실패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중립성과 신뢰성을 위해 인사위를 ‘인사원 또는 인사관리처’로 운영하고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소한 통합된 행정안전부 내에 ‘조직인사관리본부’를 둬 국이 아닌 본부장 체제는 갖춰야 전문화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박천오 명지대 교수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심성 정책과 인사가 남발했는데 그것이 기관아래 들어가면 결코 효율성을 발휘할 수 없다.”면서 “인사전담 행정기관을 둬 불공정 인사를 막고 공무원 인사에서도 수월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성철 부산대 교수는 “인사기관의 독립을 조직 이기주의로 몰아가는 이명박 당선인의 태도가 아쉽다.”면서 “인사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정작 그에 걸맞은 조직을 개발해 전략을 새롭게 짜진 않고, 되레 활동을 못하게 왜곡시키니 안타깝다.”고 직격타를 퍼부었다. 부처 통합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서영복 행정개혁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실현가능성에 대해 공론화도, 여론 수렴과정도 거치지 않고 너무 급커브를 틀었다.”면서 “지금부터라도 수렴과정을 밟아 차후에 발생할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박경원 서울여대 교수는 “인사는 내부 임용 정도가 아니다.”면서 “잘못된 인사는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길 수 있는 만큼 적절한 절차를 밟아 검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조건적인 통폐합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부처업무의 중복과 혼재는 완전히 사라지기 힘들고 때로는 일방적인 전달에서 오는 위험성을 상쇄시키기도 한다.”면서 “수평적 분화는 줄어들지 모르겠지만 수직적 분화는 늘어 실익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내가 바로 으뜸 공무원] 이민래 관악구청 도시관리과장

    [내가 바로 으뜸 공무원] 이민래 관악구청 도시관리과장

    1968년 겨울, 밤기차를 타고 12시간만에 도착한 서울역 광장의 새벽바람은 매섭기만 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아버지가 터 잡은 서빙고동 단칸방을 찾아가는 길. 소년의 눈 앞에 펼쳐진 서울은 판잣집과 미로가 뒤엉킨 ‘슬럼(slum)의 바다’였다. 39년 뒤 소년은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도시공간을 디자인하는 ‘도시계획기술사’가 됐다. 전국을 통틀어 300명밖에 없다는 도시설계 ‘명장(名匠)’이다. 관악구청 이민래(54) 도시관리과장 얘기다. 도시 리모델링이 한창인 관악구에서 사람들은 그를 ‘개발민원 해결사’라고 부른다.2006년 9월 부임한 뒤 20년 넘게 답보상태에 있던 신림7동과 봉천8동의 무허가 건물 정비사업을 해결했다. “가난한 집 속내는 가난했던 사람만이 안다고, 재개발 민원도 ‘당하는’ 입장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습니다.” 실제 마지막까지 이주를 거부하던 난곡의 무허가 건물주와 세입자 98명은 그의 집요한 설득에 하나둘 설복됐다. 봉천8동의 120가구도 그랬다. “무허가 셋방살이 경력이 15년이다. 머리 맞대고 살 길을 함께 찾아보자.”는 인간적 호소가 주효했다. 달동네 주민에 대한 그의 애정은 유별나다. 지난 연말엔 부서 성과급 50만원에 부서원들 정성을 모아 신림동의 조손(祖孫)가정 10곳에 10만원씩 전달하기도 했다. 도시계획이 직업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재개발 없는 도시’를 꿈꾼다. 인간을 위한 도시라면 약자 희생이 불가피한 ‘건설을 위한 파괴’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지론인 까닭이다. 일주일에 6시간씩 대학 강단에도 선다. 야간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습득한 도시론에 행정경험을 접합한 ‘현실주의적 이상도시론’을 펼쳐 보겠다는 포부도 숨기지 않는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Local] 제주 축정과, 금요회의 영어로

    제주도의 한 부서가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회의를 영어로 진행하기로 해 관심을 끌고 있다. 제주도 친환경농축산국 축정과는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위상에 걸맞게 직원들의 영어활용 수준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모든 직원들이 참석하는 회의를 월 1회 영어로 진행한다고 17일 밝혔다. 이 부서는 ‘영어회의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영어구사 능력이 뛰어난 직원 4명을 중심으로 사무실 업무 개선방안 등 가벼운 주제부터 회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영어가 서툴거나 어려워하는 직원들을 위해 회의자료를 1주일 전에 미리 배포해 숙지토록 하고 모든 참석자에게 1회 이상 영어로 질문해 영어 교육 효과를 높일 방침이다. 송중용 축정과장은 “부서원들의 영어능력 향상을 위해 그룹 스터디를 강화하고, 원어민 강사를 초빙해 수시로 대화의 시간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20&30] ‘물먹은 인사’ 그들의 속마음

    [20&30] ‘물먹은 인사’ 그들의 속마음

    직딩(직장인)들에게 ‘인사´는 곧 ‘만사´다. 뻔한 유리지갑에, 까탈스럽고 때론 무능력한 상사들을 견뎌내며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이유는 힘들지만 언젠가는 꿈을 펼칠 때가 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 그 날을 위해 원하는 부서에서, 원하는 업무를 하며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는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현실은 비참할 때가 많다. 인사가 끝난 뒤 흡족한 마음에 표정관리(?)를 하는 이들은 많아야 20∼30% 정도일 뿐. 최근 인사에서 ‘물을 먹은’ 김세현(32·여·A건설)씨와 박주원(30·B전자)씨, 인사 파트에서 근무하는 유재용(33·K건설)씨와 장선희(27·여·M컨설팅·이상 가명)씨의 인터뷰를 가상대담으로 꾸며봤다. 임일영 이경주 장형우기자 argus@seoul.co.kr 1 “실력보다는 인맥이 중요” 김세현(이하 김) 난 건설회사에서도 가장 경쟁이 치열한 해외사업직군으로 입사한 지 4년째예요. 그런데 입사하자마자 토목영업부로 발령을 내더니 올해까지 4번 연속 ‘스테이(잔류)’ 시키더군요. 물론 인사 때마다 해외사업부를 지원했지만 후배들은 인사이동이 원하는 대로 척척 나는데 난 말뚝을 박은 꼴이어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적어도 뽑은 파트에서 한 번은 기회를 줘야하는 것 아닌가요. 유재용(이하 유) 인사부에서만 5년차입니다. 솔직히 인사가 실력으로만 움직이면 좋겠지만 그 외의 변수가 너무 커요. 학벌같은 ‘라인(연줄)’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가 가장 많죠. 우리 회사는 고려대가 가장 세고 그 다음이 연세대, 한양대 정도가 힘을 발휘하죠. 솔직히 우리 회사에 들어올 정도면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학연에 의해서 한번 ‘물 좋은’ 부서에 들어가면 다시는 안 나옵니다. 그러니 변두리 부서에 있는 사람들은 원하는 부서에 진입하기가 더욱 힘들죠. 솔직히 능력대로 인사 이동이 되는 경우는 거의 못 본 것 같네요. 장선희(이하 장) 저는 해외업무가 많은 컨설팅업체에서 2년째 인사를 담당하는데 해외인사는 정말 힘들어요. 한 번은 동남아지사로 발령난 선배가 씩씩거리며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뺨을 때리더군요. 그 상황에서 다른 인사팀 선배들을 둘러보니 모두다 아무일 없는 듯 업무에만 집중하더라구요. 나중에 팀장이 “강해져라.” 한마디 툭 던졌을 뿐이죠. 인사를 내는 것도 힘들지만 흔들리지 않고 인사를 밀어붙이는 게 더 힘들었어요. 박주원(이하 박) 경영지원팀에서만 3년째인데 전략팀으로 가고 싶어요. 솔직히 실력 만으로 될 것이라 믿을 만큼 순진하지는 않아요. 사장의 모친상, 이사의 부친상 때 만사 제쳐두고 거의 살다시피했어요. 술을 매일 달고 살았어요. 그런데 제가 인사이동이 안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건강 때문이래요. 건강검진에서 ‘간수치 위험’,‘고혈압 의심’이 나왔거든요. 부서이동 하겠다고 열심히 술 먹었더니 건강만 나빠지고 오히려 부서 이동의 장애물이 되다니요. 김 저는 인사에 물 먹은 지 2년째되던 해에 인사부장을 찾아갔어요. 부장이 미안해 하시면서 내년에는 될 거라고 하더군요. 물론 안 됐죠.3년째 인사부에 있는 동기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넌 싹싹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은데….”라고 하더군요. 그 다음부터 천성은 못바꾼다지만 간부들 앞에서 맞짱구도 치고 늘 웃으면서 ‘이건 아부가 아니라 처세술이야.’라고 되뇌었어요. 하지만 4년째 인사 때는 이사와 줄이 닿아 있는 바로 밑 후배가 해외사업부로 갔어요. 그날 부서 선배가 해외사업부 가봤자 별 것 없다며 위로라고 하는데 미치겠더라구요. 전 해외사업직군으로 들어왔는데 계속 엉뚱한 곳에서 앉아있으니…. 유 제가 겪어보니 인사부 업무 중 가장 힘든 것이 인사이동을 못한 사람들이 그럴 듯한 핑계를 대는 겁니다. 보통은 1년만 더하면 원하는 부서로 갈 수 있다고 설득합니다. 그리고 현재 부서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재인지 설명하곤 합니다. 그리고 1년 후에 상황에 따라 다시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우리 회사의 경우는 인사팀의 결정권이 60%이고, 해당부서장의 결정권이 40%입니다. 해당부서장이 현재 팀원이 최고라고 말하면 인사팀에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어쨌든 부서원 평가는 해당 부서장이 하니까요. 2 일을 너무 잘해도 골치? 박 솔직히 건강에 이상이 있을지 몰라 전략팀으로 못간다고 하니 황당하기만 하고, 회사에 애착도 안생기네요. 올해부터는 경조사는 거의 안챙기고 있어요. 주말에 등산동호회에 가입했고, 못읽은 책들을 읽고 있어요. 친한 선배들도 전략팀장이 바뀔 때까지는 불가능하니 결혼에나 신경쓰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일을 너무 열심히 해도 인사이동에 불이익이 따른다고 하던데요. 장 그것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일을 너무 잘해서 운이 억세게 없는 경우도 가끔 있어요. 저희 회사는 아프리카처럼 험한 지역에서 2년 정도 고생하면 그 다음엔 모두가 선호하는 미국이나 유럽 같은 지역에서 근무하게 배려해주는 것이 관례거든요. 그런데 험한 곳에서도 일을 잘 한다면서 곧바로 중동지사로 발령을 내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경우는 너무 잘해서 ‘피 봤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죠. 유 맞습니다. 솔직히 남들이 기피하는 부서에서 일한다고 돈 더주는 것도 아니죠. 남들보다 월등히 일을 잘 한다고 표가 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곳에서 잘 해주면 조용하고 편하니까 계속 시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장 한 번은 한 부지사장이 아프리카 지사장으로 간다며 능력있는 동문 후배 김모씨를 요청했어요. 그리고 김씨의 공으로 인정을 받더니 2년 만에 지사장은 미국으로 이동했죠. 하지만 정작 그동안 고생시킨 김씨는 챙기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힘든 곳에서는 협력자였지만 좋은 곳에 가면 무서운 경쟁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결국 김씨는 일을 잘 한다는 이유로 차기 지사장도 놓아주지 않아 4년을 아프리카에서 일해야 했어요. 김 나는 밑에 있던 해외사업직군으로 들어온 후배들이 다 떠나 이제 경쟁자도 없어요. 물론 토목 분야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아요. 열심히 일해야 해외파트로 갈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선배들이 가끔씩 “토목영업부의 ‘꽃’인 줄 알았더니 ‘기둥’”이라고 말하는데 불안이 엄습하더군요. 회사에서 나를 방치해 놓은 동안 2년차부터 꾸준히 타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어요. 해외파트로 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애써 무시했을 뿐이죠. 하지만 요즘은 제의가 들어온 회사들 중에서 고르고 있어요. 규모는 조금 작지만 토목계열로 스카우트해서 해외직군으로 보내주는 약정을 해주겠다더군요. 박 전 다른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도 못믿겠어요. 조직이라는 게 원래 자기들의 일원이 될 때까지는 온갖 감언이설을 다하지만 막상 가족이 되면 입장을 바꾸니까요. 3 “떠나겠다” 벼랑 끝 전술 유 우리 회사에선 인사에 불만이 쌓여 회사를 옮기겠다면서 인사부와 일종의 거래를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만일 이번에 원하는 부서로 안옮겨주면 다른 회사로 가겠다.”고 얘기하는 식이죠. 그 사람이 더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고, 회사가 아쉬워할 실력자라면 해볼 만한 것 같아요. 인사부는 고민을 시작하겠죠.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최대한 비슷한 부서라도 보내줍니다. 혹은 1년 뒤에 보내준다는 약속이라도 하죠. 물론 혼자서만 인재라고 생각한다면 “앞길에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라며 회사에서 시원하게 보내줄 수도 있겠죠. 장 인사철이 되면 갑자기 식사 약속이 너무 밀려요. 만일 거절할 경우에는 ‘누구하고만 밥을 먹었다.’며 뒷얘기가 나오기 때문에 다 참석해야 하죠. 밥이 아니라 스티로폼을 씹는 기분이에요. 박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일반 사원들은 인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너무 힘들어요. 어느 부서가 인원이 넘치는지, 내가 원하는 부서의 팀장이 인원을 늘릴 것인지 등을 알려면 인사부 사람과 한번 쯤은 식사해야 하잖아요. 정보를 알아야 ‘소원수리(wish list·인사이동 희망 지원서)’도 쓰고요. 김 그런데 소원수리가 효력이 있기는 한가요?네 번이나 떨어져 보니 윗사람들이 열어 보기나 하는지, 괜히 의견을 수렴하는 척하려고 쇼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더라구요. 유 물론 읽어봅니다. 읽어보지만 의미를 별로 안둬서 문제죠. 게다가 알게 모르게 윗선에서 ‘누가 어디를 지원했다더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비밀이 안 지켜지는 셈이죠. 하지만 젊은 세대는 윗세대처럼 속물스러운 로비를 안해서 다행이에요. 당당하게 원하는 곳을 말하고 밥이나 술 한 잔 하는 게 전부니까요. 하지만 인사부보다는 가고 싶은 곳의 해당 팀장을 공략하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박 지난 연말 전략팀장과 술 한 잔 할 기회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팀장이 “주원씨는 일도 잘하고 인간관계도 좋지만 건강 문제가 걸려. 전에 있던 두 팀장이 왜 주원씨를 안뽑았는지 알겠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더라고요. 당황했죠. 그런데 그 부서의 친한 선배 말이 “술 한 잔으로 인사이동이 되면 누가 못하느냐.”고 말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김 그래도 뇌물 같은 것은 못건네겠어요. 스스로 실력이 있다는 자존심일지도 모르지만, 받는 사람도 오히려 제가 싫어지지 않을까요? 실력 외의 것으로 어필하려 든다면 말이죠. 4 “인맥 줄대기, 나도 모르게 답습” 유 제가 인사부에서 배운 것은 인사이동은 결국 시류를 잘 타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영업부서를 거친 사장님의 경우 모든 직원이 영업부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업직 사원에게는 인사부나 경영전략팀으로 들어올 기회가 생기는 셈이죠. 반면 기술직 출신 사장님은 기술을 알아야 그것을 토대로 경영전략도 세워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럴 때는 기술직이 중앙으로 진출할 기회입니다. 결국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부서로 갈 확률은 거의 없어요. 학연이나 지연이 없다면 말이죠. 김 대학 시절에는 학연·지연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인사에서 계속 물을 먹으니 나도 모르게 같은 대학 출신 부서장들을 수소문하게 되더군요. 나도 모르게 물들어 가는 모습이 싫을 때가 있어요. 장 개개인은 자신이 제일 소중하지만 회사에서는 개인을 부속품으로 부려야 하니까 갈등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인사가 공평하면 말이 안 나올 텐데 공평의 의미도 당사자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인사에 불만을 갖고 직장을 그만둔 선배 가운데 오히려 잘 된 사람들도 많아요. 그럴 때는 회사가 오히려 배가 아프지 않을까요? 박 글쎄요. 어디서나 월급쟁이의 숙명이 아닌가 싶네요. 인사 정책이 투명하게 공개되면 좋겠지만 그럴 리는 없겠죠. 취직공부할 때는 붙기만 하면 좋겠다고 고민했는데 사람이 참 쉽게 변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수뇌부가 바뀌면 언젠가 기회가 찾아오겠죠. 그때까지는 조용히 숨죽이고 있으려고요.
  • [한반도 대운하 커지는 논란] 대운하 주변 문화재 얼마나

    경부운하저지국민행동은 7일 한반도 대운하 예정지역에 분포하는 문화재 및 매장문화재의 현황을 공개했다. 앞서 문화재청은 지난 3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경부운하 예정지의 반경 100m 이내에 매장문화재 분포지가 177곳에 이르며, 반경 500m 이내에 72점의 국가 및 시·도 지정 문화재가 있다고 보고했다. 국민행동에 따르면 경부운하가 지나가는 한강 및 낙동강 주변에는 국보 제6호 충북 충주시 중원 탑평리 7층석탑과 경기 여주군 북내면 신륵사 조사당을 비롯한 보물 6점이 있다. 또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 등 사적 15점과 경북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은행나무 등 천연기념물 3점,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동 박엽씨 가옥 등 중요민속자료 1점 등 26점의 국가지정문화재가 분포한다.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의 삼강사비 등 시·도 유형문화재 10점과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정약용 묘소 등 시·도 기념물 19점,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부군당 등 시·도 민속자료 2점, 경남 함안군 칠북면 봉촌리 광심정 등 시·도 문화재자료 15점 등 시·도 지정문화재도 46점에 이른다. 매장문화재는 한강수계에 경기 양평군의 두물머리 나루터와 상자포리 유물산포지, 여주군 흔암리 선사유적, 충북 충주시 가금면 안반내사지 등 118곳, 낙동강수계에 경남 밀양시 삼랑진성지와 낙동강변 선사유적지 등 59곳이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문화재청의 보고는 정밀도가 낮은 기존 문화재 분포지도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정밀 조사를 하면 훨씬 많은 문화유적이 분포할 수 있다.”면서 “실제 운하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터미널, 갑문, 수중보, 연결도로, 편의시설, 관광단지 등을 포함하면 문화유적의 분포 반경은 얼마나 더 넓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비움으로 나눈 평화’

    ‘몸과 마음의 묵은 것들을 털어내고 생명과 평화의 기운을 채운다.’ 지난 2일부터 전북 완주군 고산면 양아리 고산산촌유학센터에서 3박4일간의 일정으로 열리고 있는 ‘생명평화의 비움잔치 신년단식’은 독특한 행사. 마음을 비우고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유별난 새해맞이 행사로 눈길을 끈다. 전북생명평화설레임이 주최하고 생명평화결사가 후원해 열리게 된 이번 행사는 무엇보다 비움을 통해 아름다운 만남에 치중한다는 것. 몸과 마음을 비워 자신을 돌보고 이웃들을 배려해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이뤄낸다는 뜻을 담은 모임이다. 행사는 공동단식을 주 타이틀로 삼았지만 단식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는 만남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꾸며졌다. 참가자들은 단식, 요가, 명상을 기본으로 하면서 생명평화를 서원하는 백배(百拜)와 어울리기·삶나누기, 산행 산책, 생명평화강의, 자연치료 강좌를 함께 하고 있다. 허병섭 전북생명평화설레임 공동대표, 이병철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장, 정현숙 정읍전주한살림 이사장,‘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씨, 김경일 신부, 김민해 목사, 요가수행자 칫다다, 요가지도자 김재경씨 등이 생명평화와 자연치료 등에 대해 강의한다.(063)262-3336.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개성, 사무치게 그리웠다…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개성, 사무치게 그리웠다…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유년기를 보낸 시골마을, 기억나십니까. 포장도로라고는 달랑 신작로뿐, 대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길은 이내 흙먼지 폴폴 나는 흙길로 바뀌지요. 때에 전 옷차림의 개구쟁이들이 겨울이면 비료포대로 눈썰매타던 마을 고샅길이며, 아버지 읍내 나가시던 둑방길이 그랬습니다. 버스를 타고 돌아 본 고려 500년 도읍지 개성의 풍경이 딱 그 모습이었습니다. 마을 공동우물에서 남바위 비슷한 털모자를 쓴 아낙네가 물을 길어 등지게에 지고 나릅니다. 선죽교 부근의 냇가에서는 시린 손 호호 불어가며 빨래 방망이를 휘두르는 여인네의 모습도 눈에 띕니다. 버스가 마을을 지날 때 제법 용감한 개구쟁이는 언덕 위에서 늠름하게 폼을 잡고 손을 흔드는 반면, 수줍음 많은 녀석은 담장 뒤에 숨어 보일 듯 말 듯 손짓합니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세계가 교차하는 듯한 풍경이었지만, 참 정겨웠습니다. 버스를 함께 탔던 관광객 누구에게서도 잘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상대적 우월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금강산 일대가 처음 개방됐을 때와 비교하면 주민들의 표정도 놀라울 만큼 변했습니다. 버스가 지나는 길목마다 군인들이 지켜서고 있었지만, 주민들이 예전처럼 외면하거나 심지어 등을 돌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자연스레 웃고 손을 흔들며 환영의 뜻을 표했습니다. 전혀 인위적인 모습이 아니었지요. 박연폭포, 선죽교 등 고도(古都) 개성의 관광명소를 둘러보는 것도 좋았지만, 주민들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더욱 좋았습니다. 개성에서의 체류 8시간을 기록했습니다. 서울에서 불과 1시간 남짓한 거리지만, 그 사이엔 이념과 체제의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지요.60년 세월을 에둘러 돌아왔기에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쉽게 갈 수 없는 곳을 훔쳐보는 묘한 즐거움도 각별했고요. 시간대별로 개성관광의 묘미를 소개해봅니다.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흔히 출입국사무소로 알고 있지만, 서로 두 개의 국가로 인정하지 말자는 뜻에서 ‘국’자를 뺐다)에서 개성관광증을 받는 등 수속을 마친 다음 버스에 올라탔다. 5분 정도 달린 버스가 개성표시판을 지날 즈음 전신주 가운데 테두리 색깔이 노란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뀐다. 북한 지역으로 들어섰다는 뜻이다. 버스 행렬을 에스코트하기 위해 북한군 지프차가 등장하는 것도 이때쯤이다. 경계근무를 서는 앳된 얼굴의 북한군 병사 몇 명을 지나면 곧바로 북측 출입사무소. 간단하게 입국심사를 마치고, 버스에 동승한 북한 안내원 2명과 함께 개성으로 향했다. 개성공업지구를 지나기 전까지는 여전히 낯익은 남측의 풍경이 이어진다. 공장 건물 사이로 24시간 편의점도 있고, 서울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란색 버스가 출근길의 북한 근로자들을 실어 나른다. 개성공업지구를 지나 15분쯤 경의선 철길과 나란히 달리면 개성의 초입 송남동에 닿는다. 고려를 세운 왕건이 거란에서 보낸 낙타 50마리를 굶겨 죽였다는 약대다리가 있는 곳이다. 개성 주민들에게는 ‘야다리’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개성에서 경의선 열차가 매일 한차례 와닿는 봉동역까지 가기 위해서는 야다리를 건너야 한다. 송남동을 지날 무렵, 느닷없이 머리 위로 고가도로가 나타났다. 안내원은 장차 서울과 평양을 연결할 고속도로라고 설명했다. 현재는 개성과 평양을 오가는 데 이용된다. 고기남새, 세거리 사진관, 리발관 등 개성시내 건물에 내걸린 간판들이 마치 1960∼70년대를 재현한 영화 세트장을 보는 듯하다. 슬그머니 사진을 찍고도 싶었지만, 안내원의 경고대로 ‘피곤한 여행’이 될 듯해 꾹 참고 말았다. 시내는 거의 무채색이 지배하고 있다. 주민들의 옷이며, 건물들이 검고 어두운 색깔 일색이다. 거기에 낮게 깔린 안개까지 더해지며 무채색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간밤에 무척이나 추웠던 듯, 주민들 대부분이 두툼한 옷차림이다.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동여맨 여인네의 얼굴이 시선을 붙잡았다. 차가운 날씨 탓에 볼에서 귀밑머리에 이르도록 빠알갛게 얼어 있다. 개성에서 박연폭포까지는 40분 남짓 소요된다. 개성시 외곽의 고갯길에 서면 개성을 둘러싸고 있는 송악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만삭이 된 여인이 두 팔 벌려 개성을 보듬고 있는 형상이란다. 그래서 개성 시민들은 송악산을 어머니 산이라 부른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멸망을 재촉하기 위해 고려 왕조에 정기를 불어넣어 주던 송악산의 여신을 임신시켰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개성시내를 벗어나자 처녀의 젖가슴처럼 봉긋한 산자락이 겹겹이 다가섰다. 나긋나긋한 느낌, 박연폭포에 가까워지면서부터 산세가 우람해지기 시작했다. 고봉준령은 아니지만 바위산답게 흰 눈을 이고 선 모습이 당당하다. 길도 제법 험하다. 좌우로 휘어지는 모양새가 설악산 한계령에는 못 미쳐도, 속리산 말티재에는 버금갈 듯하다. 마침내 박연폭포 앞에 섰다. 서경덕, 황진이와 더불어 송도삼절의 하나로 꼽히는 곳. 북측에선 천연기념물 제388호로 지정해 놓았다.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 38m 높이 암벽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겨울이라 가늘어지긴 했지만, 금강의 구룡폭포와 설악의 대승폭포 등과 더불어 국내 3대폭포를 이룰 만한 자태다. 이쯤에서 관광안내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오래전 박연폭포를 찾은 기생 황진이는 폭포 아래 고모담에 훌쩍 뛰어들어 목욕을 즐깁니다. 목욕을 마친 황진이는 폭포 바로 옆 룡바위에 올라 젖은 머리에 먹물을 묻혀 초서체로 시 한 수를 적습니다.‘비류직하 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 의시은하 락구천(疑是銀河落九天)’이란 내용이지요.1957년 이곳을 처음 방문한 김일성 주석께서 그 문장을 ‘날아흘러 곧추 아래로 떨어진 물이 삼천척이나 되니, 하늘에서 은하수가 떨어지는지 의심스럽구나’라고 해석해주셨습니다.” 안내원은 또 “황진이가 적은 글씨를 곧바로 도공들이 새겨 오늘까지 전해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연폭포의 전경을 감상하기에는 고모담 오른쪽의 범사정이 으뜸이다.‘박연폭포가 안개 위에 떠있는 듯하다’는 뜻의 정자. 범사정에 앉아 쉼을 청한 이옥임(81·하남시)할머니의 눈가에도 옅은 물방울이 괸다.“70년 전 개성에서 소학교 다닐 때 걸어서 소풍왔던 곳이야. 아침나절 개성을 출발하면 저녁 무렵 도착하지.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구경한 다음 다시 개성으로 돌아갔지.” 범사정에서 계단을 따라 오르면 대흥산성 북문이 나온다. 고려때 개성 방위를 위해 천마산과 성거산 등의 봉우리를 따라 쌓은 석성이다. 황진이의 연인 서경덕도 산성 동쪽 성거산에 터를 잡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산성 왼쪽의 박연(朴淵)을 놓쳐서는 안 된다. 박연폭포란 이름의 유래가 된 못이다. 폭포 위쪽에 있다. 박씨 성 가진 사람이 폭포 앞에서 피리를 불었는데 그 소리에 반한 용녀가 그를 유혹해 결국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슬픈 전설이 내려온다. 고모담(姑母潭)은 아들이 용녀를 따라 죽자 그의 어머니가 몸을 던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대흥산성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관음사에 닿는다.970년 조성된 사찰. 작고 화려한 대웅전의 뒷문 장식에 슬픈 전설이 숨어있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관음사 조성공사에 동원된 조각 신동 운나(당시 11세)는 뒷문 장식물 조각에 열중하다 어머니가 아프다는 전갈을 받는다. 곧바로 하산하려 했으나, 공사 진행이 늦어질 것을 우려한 공사 관리자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왼손잡이였던 운나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도끼로 자신의 왼팔을 자른다. 결국 뒷문 왼쪽은 완성됐지만, 오른쪽은 미완으로 남게된 것. 그는 왼쪽문에 왼팔이 잘린 자신의 모습을 새겨 놓았다. 박연폭포를 출발한 버스는 50분쯤 걸려 개성시내 중심부의 통일관에 도착했다. 앞으로는 개성 시내와 개성 남대문, 뒤로는 자남산과 김일성 동상이 펼쳐져 있다. 낡은 벤츠 승용차 뒷좌석의 흰 드레스 입은 신부, 파란색 복장의 교통보안원, 삼삼오오 걸어가는 주민 등 모두가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관광객들을 관찰하고 있다. 시간이 느린 화면처럼 더디게 흐르는 느낌이다. 그들과의 물리적 거리는 겨우 수m 쯤. 하지만 말을 걸 수도, 더더욱 손을 잡을 수도 없다. 통일관의 자랑은 닭곰탕과 장지단(계란조림), 이면수 조림 등으로 구성된 ‘개성 13첩 반상기’. 쌀밥에 13가지 반찬이 놋그릇에 담겨 나오는 개성지역 토속요리다. 여기에 입에 불이 날 만큼 독한 송학소주가 곁들여진다. 개성시 문화회관 뒤편의 숭양서원은 정몽주와 서경덕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573년 정몽주의 생가터에 지어졌다. 입구 알림판에 따르면 ‘특별한 장식없이 간소하게 지었으나 이 곳 지형조건을 효과적으로 리용하여 크고 작은 집들을 합리적으로 배치하고 조화시킨 우수한 건축물’이다. 정몽주의 영정과 저잣거리에 버려진 정몽주의 시신을 수습한 친구 우현보, 서경덕 등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역사책에서나 보던 선죽교앞에 섰다.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피살당한 곳으로 너비 2.54m, 길이 6.67m의 자그마한 돌다리다. 일제 강점기에 만든 인공수로가 물길을 대신하기 이전엔 송악산에서 발원한 로계천이 선죽교 아래를 흐르고 있었다. 선죽교를 지난 로계천은 사천강, 예성강 등과 차례로 만나 서해로 흘러 들어갔다. 원래 선지교(善地橋)라 불리던 것을 정몽주가 흘린 핏자국이 없어지지 않고 충절을 상징하는 대나무가 돋았다고 해서 선죽교(善竹橋)라고 고쳐 부르게 됐다. 자세히 보면 다리가 두 개인데, 난간이 있는 멋진 다리가 진짜다. 1780년 이곳에 부임한 정몽주의 후손 정호인이 선조할아버지의 피가 묻은 곳을 사람들이 그냥 지나다니자 원래 다리에 난간을 만들고 그 옆에 새 다리를 놓았다고 전해진다.‘문제의’ 핏자국은 화강암의 철분이 산화되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한다. 개성 출신의 명필 한석봉이 썼다는 비석 맞은 편에 두 채의 비각이 서있다. 하나는 변을 당하기 직전 마지막 만난 친구 성여완의 것이고, 또 하나는 피습을 눈치챈 정몽주가 도망치라고 했음에도 끝까지 그와 함께한 하인 김경조의 것이다. 선죽교 건너편에는 표충비가 있다. 거북이 두 마리가 정몽주 충정을 찬양하는 비석을 이고 섰는데, 각 각 조선의 21대,26대 임금이 만들었다고 안내원은 설명했다. 마지막 일정은 고려박물관. 성균관 건물을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성균관은 992년 고려시대 국자감으로 창설됐다가, 이후 성균관으로 개칭한 국내 최초의 대학이다. 서울의 성균관보다 500년을 앞선다. 원래 건물은 임진왜란때 모두 불타 없어지고,17세기 초에 개축했다. 노거수(老巨樹)들의 집합소라고 할 만큼 넓은 뜰에 심어진 1000년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등이 인상적이다. 국보로 지정된 곳인데도 건물 내부를 들고 남이 자유롭다. 성균관 내 4개의 전시관에 고려청자, 금속활자 등 1000여점의 고려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야외 전시장에는 헌화사 7층탑 등 북측의 국보급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개성을 빠져 나오는 길에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오전에 비해 몇 배는 많은 숫자다. 때는 이미 땅거미지는 시간. 전력이 부족한 마당에 어두컴컴해 진 건물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었을 게다.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보일 듯 말 듯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개성 시내 한 쪽을 가로지르는 경의선 철길 위로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기차가 자주 지나지 않으니 무서워할 것도 없을 터. 어른들도 무시로 지나다닌다. 은행나무도 마주 봐야 열매를 맺는다던가. 등돌리고 있었던 겨레가 금강산과 개성 등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서서히 간극을 좁히려 하고 있다. 그것은 곧 열매를 거둘 날도 머지 않았다는 뜻일 게다. 글·사진 개성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가는 길 :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오전 6시 전후 서울 계동, 광화문 등에서 출발한다.5000원. 자가용의 경우 임진각까지 간 다음, 임진각에서 셔틀버스(6시40분∼7시20분 운행)로 출입사무소까지 가면 된다. 예약은 현대아산의 개성관광 홈페이지(www.ikaesong.com)에 링크된 전국의 개성관광대리점에서 할 수 있다. 현대아산 02)3669-3000, 도라산사무소 031)954-3940,950-5195.1일관광 요금은 18만원이다. ▲신분증 : 현지에서의 신분증은 개성관광증이 대신한다. 관광증 발급에는 여권 사진 2장이 필요하다. 관광증을 훼손하면 벌금을 물 수도 있다. 국내 출국 수속을 위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여권 중 하나는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화폐 : 개성에서는 미국 달러 외 원화나 카드 등을 사용할 수 없다. 출발 전 환전해 가는 것이 좋다. 개성 북측 출입사무소 출구에서도 환전할 수는 있다. ▲휴대 금지 물품 : 필름 카메라는 반입 금지. 디지털 카메라는 허용되지만 초점거리 160㎜ 미만 렌즈, 광학 기준 24배줌 미만일 경우만 가능하다. 남측의 신문·잡지, 휴대전화(배터리 등 관련 용품 포함),MP3와 GPS, 내비게이션, 소형 라디오, 녹음기 역시 반입금지. 해당 물품은 현대 아산측이 보관, 관광 후 돌려준다. ▲국내 반입금지 물품 : 북측에서 구입한 뱀술, 령정술 등 동물을 재료로 만든 주류와 비아그라·우표·불온 서적 등은 들여올 수 없다. ▲남측출입사무소 1층에 설렁탕 등 간단한 아침 식사를 파는 매점이 마련돼 있다.
  • 개편을 말한다①경제관련부처

    개편을 말한다①경제관련부처

    정부부처를 기능 중심으로 통·폐합하는 ‘대부처주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은 권한이나 기능이 지나치게 집중된 ‘공룡부처’의 출현이다. 이번 정부가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대부처주의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전략기획 기능만큼은 개별 부처가 아닌 청와대가 직접 챙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제시한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국가 전체의 전략을 수립하는 ‘국가전략기획원’이 신설된다. ●국가전략기획원, 사실상 과거로의 회귀 이는 재정경제부의 경제정책·조정 기능과 기획예산처의 재정기획·예산책정 기능을 총괄한다. 재경부의 세제·금융정책 기능은 또다른 신설 조직인 ‘재무부’가 담당할 전망이다. 이같은 경제부처 재편방향은 사실상 옛 경제기획원·재무부 구도와 대동소이하다. 경제기획원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발족해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기획·집행·조정 기능을 주도했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국가 주도에서 시장 주도로 전환됨에 따라 결국 1994년 재무부와 함께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됐다. 이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재경원은 재경부·기획처·금융감독위원회 등으로 기능이 분산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의 경제부처 구도로는 국가의 장기 과제를 통합·조정·기획할 수 있는 부처가 없어 미래의 위험요인에 적극적으로 대처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주요 정책에 대한 관련 부처의 이견을 조율할 ‘사령탑’이 필요하고, 경제부처들의 기능 중복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부처 기능별 재편은 ‘즐거운 선택’ 이런 구상은 경제 부문만 떼어 놓고 생각하면 타당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전체적인 정부조직 운용 측면에서는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우선 부처간 힘의 균형이 깨져 국가전략기획원을 제외한 모든 부처가 사실상 ‘하부 조직’으로 전락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국가전략기획원 수장의 영향력이나 입김이 총리보다 커 ‘실세 장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또 경제부처-국가전략기획원-총리실-청와대 등 ‘옥상옥’ 구조를 만들고, 끊임없이 힘겨루기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간경제 영역이 비약적으로 확대된 상황에서 정부가 일일이 계획·관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경제부처는 전문기능 중심으로 재편하는 대신 전략 기능은 청와대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면서 “이 경우 청와대 비서실 조직을 개편하거나, 대통령 직속 위원회 조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처럼 전략 기능을 청와대가 직접 챙길 경우 경제부처는 국가 경제운용의 ‘3대 수단’인 ▲세제(경제정책) ▲금융 ▲재정 등 전문기능에 따라 재편할 수 있는 선택의 폭도 넓어질 수 있다. 예컨대 산업자원부·중소기업청이 개별 산업육성을 위한 정책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재경부의 경제정책 기능과 통합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또 재경부 금융정책국,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다층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금융 관련 조직도 슬림화가 가능하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잉여인력 활용 어떻게 이번 정부는 정부조직은 축소하되, 인력은 현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직이 줄어들면 필연적으로 ‘잉여인력’이 발생한다. 때문에 조직개편의 성공 여부는 잉여인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따라 정부조직 개편작업과 동시에 잉여인력 활용계획도 서둘러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조직개편 대상으로 거론되는 중앙행정기관은 모두 55개. 이 가운데 18부·4처·17청은 정부조직법을 근거로,2원·4실·1청·9행정위원회는 특별법 등에 의해 각각 설치됐다. 현재 국가공무원 60만 4000여명 가운데 교원·경찰·교정·소방·집배원 등을 제외할 경우 55개 중앙행정기관 소속 공무원 수는 9만 7300여명이다. 또 이들 인력의 30% 가량은 기관별로 차이가 거의 없는 인사·서무 등 공통업무 부서에 몸담고 있다. 따라서 중앙행정기관 수를 40개 안팎으로 줄인다고 가정할 경우 최대 1만여명의 잉여인력이 발생할 수 있다. 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직에 비해 인원이 많아 도태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공직사회에 경쟁구도를 조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보건·복지·교육·안전관리 등 이번 정부에서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려는 부문에 잉여인력을 집중 배치하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정부는 인력 감축은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개편 과정에서 퇴출이나 구조조정은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 경우 일반직 공무원과 달리 신분 보장이 안되는 별정직·계약직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차기정부 출범에 대한 불안 심리가 확산될 우려도 있다. 서 연구위원은 “공직사회 분위기를 저해할 수 있는 인위적인 강제 퇴출보다는 정부조직의 공사화·법인화·민영화 등을 통한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이 바람직할 것”이라면서 “사무환경 변화에 대비해 업무전환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재교육 시스템을 보완하는 노력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비경제부처 개편 핵심 우정사업본부·교육부비경제부처 조직개편의 핵심은 정보통신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통부의 ‘변신’에 따라 타 부처의 개편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통부 산하 우정사업 부문을 공사화할 경우 공기업 민영화의 ‘신호탄’이자, 조직개편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는 ‘방향타’가 되기에 충분하다. 전국 방방곡곡에 포진한 우체국, 그 사업을 담당하는 집배원 3만 3000여명을 정부조직에서 떼어내면 2005년 철도청 공사화에 따른 감축인력 3만명보다 규모가 크다. ●우정사업이 변수 인위적인 구조조정 없이도 국가공무원 수를 6% 가까이 줄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어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기업 민영화 또는 통·폐합 등의 설득 논리로 작용할 수 있다. 공공기관 인력은 지난해 말 기준 32만명에 육박한다. 수입·지출 규모는 262조원으로 정부예산을 뛰어넘는 등 비대한 측면이 없지 않다. 공기업 구조개편 ‘1순위’는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됐던 금융공기업, 국민의 정부 당시 추진했던 민영화가 중단된 상태인 에너지공기업, 공공성 못지않게 수익성을 앞세우고 있는 사회간접자본(SOC) 공기업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우정사업 공사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정통부의 ▲방송통신분야 규제 ▲방송통신산업 지원 ▲소프트웨어산업 육성 등 주요 기능을 어떻게 짜맞추느냐에 따라 비경제부처 조직개편의 윤곽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예컨대 정보통신분야 규제 기능은 방송분야 규제를 담당하는 방송위원회로 넘겨 ‘방송통신위원회’로의 재편이 유력해 보인다. 소프트웨어산업 육성 기능을 문화관광부의 디지털·영상산업 지원 기능과 합치거나, 방송통신산업 지원 기능을 경제부처에 넘기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초·중등교육, 지방이양 시발점 비경제부처 조직개편의 주요한 변수로는 교육인적자원부의 향배도 꼽을 수 있다. 교육부의 ▲초·중등교육 ▲대학교육 ▲평생·직업교육 등 3대 기능 가운데 초·중등교육 업무가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되면 독립 부처로서 존재 가치가 줄어들게 된다. 이 경우 평생·직업교육 기능을 노동부와, 대학지원 기능은 연구개발(R&D) 지원을 주도하는 과학기술부와 각각 일원화할 수 있다. 또 교육부에 대한 조직개편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중앙정부 소속 기관이면서도 지방정부와 업무가 상당 부분 중복되는 지방통계청·지방노동청 등 특별지방행정기관에 대해서도 ‘개편 바람’을 몰고 올 수 있다. 이처럼 중앙행정기관의 본부가 아닌 부속기관에 근무하는 공무원 수는 전체 9만 7300여명 중 70%가 넘는 7만명을 웃돌고 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정책자문단 소속 유홍림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특별지방행정기관은 단기적으로는 구조조정, 장기적으로는 지방이양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또 정부 관계자는 “조직이 통·폐합되더라도 ‘복수 차관제’를 적절히 활용하면 조직개편에 따른 업무누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오히려 통합 부처에 어느 수준의 기능을 맡길지, 요구되는 기능이 제대로 이전됐는지 등의 여부를 중점적으로 확인·점검하는 노력이 더욱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희망을 본 사람들] (5) 유방암 이긴 피아니스트 서혜경교수

    [희망을 본 사람들] (5) 유방암 이긴 피아니스트 서혜경교수

    “그동안 음악을 도전대상으로 여겼는데 앞으론 음악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 자체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겠습니다.”40년 넘게 피아노 선율과 함께 살아온 중년의 피아니스트 말이다. 서혜경(47) 경희대 교수.5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20살에 세계적 권위의 부조니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했다.28살에는 카네기홀에서 세계 3대 피아니스트로 선정된 정상급 피아니스트다. 그는 지난해 10월 정기 건강검진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암세포가 유방뿐만 아니라 오른쪽 어깨와 겨드랑이까지 퍼졌으며 암세포가 퍼진 부위의 근육과 신경을 잘라내면 생명은 구하지만 오른손으로 피아노를 다시 치기 힘들다.”는 통보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나 다름없었다.“피아니스트로서 가장 원숙기에 이르러 피아노로 원하는 소리를 마음대로 끌어낼 수 있는 최고의 시기에 왜 하필이면 나한테 이런 병마가….” 음악과 관객에 대한 경외심이라고나 할까. 그는 개인적으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지만 이미 잡힌 공연 스케줄은 암에 걸린 사실을 안 뒤에도 소화했다. ●암 사실 알고도 공연 스케줄 소화 암 진단 선고 이틀 뒤 경기도 안산시 동산교회에서 열린 ‘서혜경 가족 콘서트’에서 동생인 바이올리니스트 서혜주(40·경원대 교수)씨는 “콘서트 직전에 소식을 듣고 감정이 북받쳐 울고 싶었지만 관객들 앞에서 미소를 지어야만 했다.”면서 당시의 고통스러운 심정을 전했다. 서 교수가 간절히 원했던 세계 최고의 클래식 음반회사인 도이치 그라마폰과의 녹음은 가족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아버지 서원석(81)씨는 녹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딸의 매니저들에게 “딸을 잘못되게 하지 마라. 혜경이를 데리고 가려면 당신들 생명부터 두고 가라.”며 반대했다. 서 교수는 “너무 괴로워서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고 회상한다. 고통스러워하는 서 교수를 위해 가족들은 암도 고치고 피아노도 계속 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올케인 김원선(44)씨는 “삼성서울병원과 국립암센터, 원자력병원 등 암을 고친다는 병원에는 다 들렀다.”고 했다. 하지만 항상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심지어 미국 최고의 암센터인 슬로엔 케터링과 MD앤더슨도 마찬가지였다. ●새해 1월22일 재기 콘서트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서 교수는 지난 4월 ‘구세주’를 만난다. 자신의 열렬한 팬이라는 서울대병원 노동영 교수였다. 노 교수는 “초밀도 정밀 기계를 이용하면 피아니스트에게 필요한 신경과 근육조직은 모두 남겨놓고 암세포만 없애는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수술은 지난 5월 초 성공리에 이뤄졌다.“몇 달 쉬면 근육을 다시 쓸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노 교수 말처럼 서 교수는 지난 9월초 피아노 앞에 다시 섰다. 아름다운 선율은 예전과 다름없었다.“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다.”는 서 교수는 새해 1월22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첫 재기의 콘서트를 갖는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7) 성남 노숙인급식소 안나의집 김하종 신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7) 성남 노숙인급식소 안나의집 김하종 신부

    경기도 성남시 안나의집(중원구 하대원동 102)은 성남과 서울 지역 노숙인들이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다. 의지할 곳 없는 노숙인들이 밥 한 끼를 무료로 제공받는 ‘공짜 밥집´을 넘어 어려운 사람들끼리 정을 나눌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8년 이 안나의집을 세워 9년째 운영하고 있는 김하종(50·본명 빈첸시오 보르도·이탈리아) 신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숙인들에게 한결같이 따뜻한 손을 내밀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신부.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목에 뜻을 두고 18년간 한국에서 몸을 낮춰 어려운 이들에게 온정을 쏟고있는 유별난 현장 사제이다. ● 10년째 안나의집 운영… 하느님보다 더 고마운 ‘밥퍼 신부´로 통해 제17대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된 지난 20일 오후 4시 성남시 성남동성당 바로 옆 안나의집 주변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처없는 노숙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밥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간 허름한 양철 가건물 1층 식당 안에선 김하종 신부와 자원봉사자 10여명이 손을 맞잡고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일하자.”는 기도와 함께 노숙인들을 맞기 위한 채비를 하고 있었다. 식당 문이 열리자 줄을 서 기다리던 노숙인들이 차례로 밥을 타서는 20여개 남짓한 길따란 식탁에 앉아 허기를 달랜다. 앞치마를 두른 김하종 신부가 식탁을 돌며 “맛있게 드세요.”라며 인사를 건네자 노숙인들이 연신 “고맙습니다.”라며 답례를 한다. 앞치마를 두른 채 노숙인 맞으랴 밥 푸랴 정신없이 바쁜 김하종 신부의 소중한 시간을 잠시 축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연신 노숙인들을 살피는 신부를 괴롭히는 것 같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신부는 그냥 웃는다. 이곳에선 하루 평균 400여명의 노숙인이 찾아와 저녁 식사를 한다. 토·일요일을 뺀 주 5일 동안 매일 오후 4시30분부터 3시간여 김하종 신부와 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식사를 챙기느라 진땀을 뺀다. 찾아오는 이들은 대부분 성남지역과 서울의 노숙인들. 이 노숙인들에게 김하종 신부는 ‘하느님보다 더 고마운 밥퍼 신부’로 통한다. ● 난독증 딛고 신학대 입학… 동양철학 공부하며 한국에 관심 이탈리아 로마 근교, 인구 5만여명의 작은 도시 비데르보에서 태어난 김하종 신부는 어릴 때부터 난독증을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난독증이란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단어들을 조합해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이 형편없이 낮은, 일종의 학습장애이다. 세계 각국 인구의 5% 정도가 중·경증의 난독증을 갖고 있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김 신부는 암기는 물론 집중력과 이해력이 너무 떨어져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심한 열등감에 빠져 살았다.“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열등감과 자괴감에의 반사였을까. 남에 대한 배려와 희생에 관심을 갖게 됐고 “봉사하며 살겠다.”는 뜻을 세워 비데르보 교구 신학대에 들어갔다. 신학교를 다니면서도 주말이면 장애인과 독거노인, 교도소 재소자들을 찾아 봉사활동에 몸을 바쳤다고 한다.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알린다.’는 오블라티 선교수도회에 몸을 담았고 5년 만인 1987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런데 김 신부 역시 한국과는 어쩔 수 없는 인연의 업(業)이 있었던 것 같다. 고교시절부터 유독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고 결국 로마대학교에 진학, 동양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수도회 생활을 하면서 5년간 공부끝에 ‘라오스의 역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1년간의 봉사를 마친 뒤 이탈리아에서 2년째 사제활동을 하던 중 ‘한국에서 하느님의 종으로 살겠다.’는 서원을 수도회에 냈고 한국에 온 게 1990년. 서강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울 무렵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와 함께 지은 이름이 김하종이다.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성을 택하고 ‘하느님의 종’을 줄인 ‘하종’을 이름으로 삼았다. “내가 원해서 한국에 온 바에야 초심 그대로 철저하게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살겠다.”는 각오를 다졌고 서강대 어학당 시절 1년여에 걸쳐 어려운 이웃이 많이 사는 곳을 물색해 1992년 정착한 게 성남이다. 이후 성남 신흥동성당 보좌신부로 2년여 일한 게 교구 성당 사목의 전부. 보좌신부로 일하면서 한국의 수녀들과 당시 상대원동, 은행동 지역의 어려운 가정을 돌며 동사무소나 구청, 병원 관련 일들을 해결해 주면서 “내가 갈 길은 역시 어려운 이웃들의 손과 발이 되어 주는 것”이라는 현장사목을 택한 것이다. ● 어려운 이웃 많이 사는 성남에 정착 현장사목의 길 걸어 성남시 수정구의 위탁을 받아 ‘평화의집’에서 독거노인들에게 급식을 시작한 게 지금 안나의집의 시초이다.93년부터 오전엔 평화의집에서 급식을 하고 오후엔 어려운 가정을 돌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가 97년 무렵엔 아예 분당에 공부방을 내었다. 그러던 중 IMF사태가 터져 실직 노숙인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자 공부방을 사회복지사에게 맡기고 모란역 옆 뷔페 건물 한층을 빌려 노숙인 식당을 시작한 것이다. 1년여간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다 보니 노숙인들이 감당할 수 없이 늘었다. 그래서 성남동성당 주임 신부에게 지금의 공간을 무상으로 얻어 안나의집을 시작했다. 안나의집은 처음 노숙인 식당을 하던 뷔페 건물 주인의 어머니 세례명을 딴 것이라고 한다. 말이 급식소이지 안나의집은 아주 허름한 2층의 양철 조립식 건물이다.1층에 주방과 식당이 있고 2층은 이런저런 용도로 쓰이는 공간이다. 왼쪽 비슷한 형태의 단층 조립식 건물에는 자원봉사자며 후원자들의 발길이 분주하게 닿는 곳이다. 이렇다할 지원 없이 매일 400여명에게 식사를 제공하려니 도움을 받을 만한 후원자들을 찾아다니며 궁색한 손을 내밀어야 한다. 번갈아가며 김 신부를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김 신부도 식사준비며 설거지 같은 허드렛일을 닥치는 대로 한다. “흔히 노숙자를 일자리를 잃어 사회에서 도태된 사람쯤으로 쳐다보지만 이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에서 비롯된 성격과 심리, 정신 장애를 겪은 사람들입니다.” 똑같은 인간이고 하느님의 자녀들인데 남다른 고생길을 걸어야 하는 노숙인들에게 그래서 사랑과 온정이 더 절실하단다.“알량한 밥 한끼를 대접하기보다는 꺼져가는 영혼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매일 매일 밥주걱을 듭니다.” ● ‘난독증 알리기 본부´ 만들어 어려운 청소년돕기 앞장 내년이면 안나의집도 10년째. 그동안 일이 많이 늘었다. 가출 청소년을 수용하는 쉼터와 청소년 자립관 세 곳을 마련했고 특히 한국인들에게 난독증의 실체를 알리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큰 일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번민과 자괴감의 뿌리가 난독증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한국에 온 지 7년이 지난 1997년. 우연히 ‘타임’지의 기사를 읽다가 자신과 똑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 이야기를 접하곤 삼성의료원을 찾아 난독증 장애 판정을 받은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보다 남을 더 먼저 생각하고 주저없이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바탕은 바로 난독증이었던 것 같아요.” 2003년 마침내 교사와 대학교수, 의사 7명과 함께 ‘난독증 알리기 본부’를 만들었다. “내가 암기식 교육에 치우친 한국에 태어났으면 아마 도태된 채 아무 직업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에 시달리는 청소년 돕기에 발벗고 나서 지난해 11월 처음 연세대 의대 음성언어연구소와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의 도움을 받아 국제 난독증 세미나를 열었고 올해 들어선 매월 대학 교수들을 모셔 난독증 자녀들의 부모를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가난한 농민의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역만리 한국 땅을 택해 험한 길을 걷고 있는 푸른 눈의 사제. 사제 서품 20년차의 보통 신부라면 이제 번듯한 자리에 올랐을 법한데 후회는 없을까. 인터뷰를 마치면서 던진 기자의 분별없는 물음에 오블라띠 선교수도회를 설립한 성 에우제니오 드 마제노의 임종사를 말없이 보여준다.“너희들 안에서 사랑, 사랑, 사랑하라. 그리고 모든 이들을 위해서 열정을 다해 사랑을 실천하라.” 성남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김하종 신부는 ●1957년 이탈리아 비데르보 출생 ●1981년 비데르보 교구신학교 졸업 ●1982년 로마 오블라티 수도회 입회. 로마대학교 진학 동양철학 공부 ●1987년 사제서품, 로마대학교 졸업 ●1988∼1990년 세네갈 봉사, 이탈리아 사목 ●1990년 한국으로 이주, 서강대 어학당서 한국어 공부 ●1992년 성남 신흥동성당 보좌신부 ●1993년 독거노인 급식 시작, 어린이 영어 교육 ●1998년 모란에서 노숙인 급식, 노숙인급식소 ‘안나의집’운영 ●2003년 ‘난독증 알리기 본부’ 결성
  • 29회 서울교육상 시상식

    서울시교육청은 24일 본청 강당에서 ‘제29회 서울교육상’ 시상식을 가졌다. 수상자는 최중희 방화 이화유치원장(유아교육부문), 신성식 성베드로학교장(특수교육부문), 백순애 서울 서원초등 교장(초등교육부문), 서영석 전 중부교육청 학무국장(초등교육부문), 이덕정 여의도중 교사(중등교육부문), 이창우 서울여상 교사(중등교육부문), 이선재 일성여중고 설립자 겸 교장(평생교육부문) 등이다.
  • [열린세상] 정부조직 재설계의 접근방법/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

    [열린세상] 정부조직 재설계의 접근방법/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

    내년에 출범할 새정부가 당면한 중요 과제로 정부조직 개편이 떠오르고 있다. 현재까지 제기되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있으며, 정부 부처의 수를 현재보다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간과하기 쉬운 것이 정부조직 편성의 기본적인 설계원칙이며, 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정부조직의 설계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고려할 원칙으로, 첫째는 견제와 균형의 원칙, 둘째는 분화와 통합의 원칙, 셋째는 효율성과 합리성의 원칙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견제와 균형의 원칙은 어느 하나의 조직이 독주하지 못하도록 기능을 상호감시 견제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크게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이 분립되어야 하며, 행정부내에서도 조직간에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즉 예산과 조직관리 기능간의 상호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며, 감사기능과 비리조사기능의 병립이 이러한 원칙에 따라 제기되는 것이다. 분화와 통합의 원칙은 정부의 기능이 적절한 범위의 전문성을 인정하여 세분화되어 수행될 필요가 있으며, 동시에 분화된 업무들이 총체적으로는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작동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기능은 적절히 분화되고 또한 전체적으로 통합을 이루는 양면성을 충족하여야 한다. 서로 통합되면 그 속의 일부 기능은 간과되어 제대로의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고 경시되는 폐단이 있고, 너무 분화되면 부처간의 할거주의에 따른 갈등과 대립이 우려된다. 또한 정부조직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인 조직이므로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해 절약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항상 낭비하지 않고 경제성과 효율성에 입각해 기능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효율성이 중요하지만, 마찬가지로 정부조직은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분야별 행정서비스가 골고루 제공될 수 있도록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원리와 기준에 의거하여 운영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의 내용에는 서로 상충적이고 모순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상호 견제하면서도 협력하여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기능적으로 분화되어 있으면서도 총체적으로는 통일성을 가져야 하며, 효율을 추구하지만 보편적인 서비스가 빠짐없이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순적인 원리가 요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부조직이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독점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민간서비스와 달리 매우 신중하게 운영되어야 하며, 여러 가지의 복잡한 요소들을 심사숙고해 가면서 처리해 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과거 정부조직 개편의 예를 보면 통합되었던 부처가 성공적으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다시 독립된 부처로 분리된 경우도 있었고, 한 부처 내부에서도 서로 분리된 것과 같이 화합되지 못하고 ‘따로국밥’식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부처조직이 바뀌면, 보통 수개월에서 몇 년까지 장기간 업무수행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더 중요한 행정업무의 수행이 수단에 불과한 조직개편으로 인하여 지장을 받는다면,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 새 정부가 추구해야 할 국가적 비전을 수립하고, 이를 실현할 정책방향과 구체적인 대안들이 먼저 정립되고 난 후에, 이를 집행할 수단으로서 정부조직 개편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정부부처 개편의 구체적인 실행과정도 중요하고 시급한 기능부터 우선순위를 정해 단계적으로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꺼번에 전체 정부조직을 흔드는 것은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해야 할 일을 수행하지 못하고, 수단과 방법론을 놓고 시간을 낭비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
  • ‘갱상도’ 오지서 별미 찾았다~

    ‘갱상도’ 오지서 별미 찾았다~

    경상도의 맛은 대체로 ‘맵고 짜다’고 표현된다. 실제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갱상도’라고 맛집이 없을까. 개성 강한 맛을 찾아 예천·풍기·봉화·영주 등을 거쳐 대게의 고향 울진까지, 경북 북부의 내로라하는 오지들을 둘러보았다. 전라도 음식이 화려하고 입에 착착 감긴다면, 이 지역의 맛은 의외로 소박하고 담백했다. 도회지에서 떨어져 오지일 뿐, 최소한 맛의 오지는 아니었다. # 예천 용궁순대와 참우 첫번째로 찾은 곳은 육지 속 섬마을 회룡포를 품은 예천군. 용궁순대와 참우(牛)가 대표 먹거리다. 회룡포의 들머리 용궁면에 들어서니 작은 시골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순대집 광고간판의 위세가 대단하다. 용궁순대는 다른 지역과 달리 돼지 막창을 순대 껍질로 사용한다. 순대 특유의 비린내가 덜한 데다, 말랑말랑해 씹는 맛도 일품이다. 여기에 부추·파·찹쌀·선지 등 십여가지의 재료로 속을 만든다.‘용궁순대’가 특정한 상호가 아닌 순대 제조방법에 따른 ‘일반명사’였던 셈이다. 현재 용궁순대를 만들어 파는 곳은 5집 정도. 그중 20년 영업을 해 온 단골식당이 가장 오래됐고, 순대 속에 두 가지 ‘비방’을 특별히 첨가했다는 흥부네순대(054-653-6220)가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 가격도 참 착하다. 사골로 우려낸 순대국밥(국밥용 순대는 소창을 재료로 만든다)은 3500원, 순대는 1인분 5000원을 받는다. 순대전골 1만 5000∼2만원. 예천 참우는 예로부터 일 잘하고 육질 좋기로 소문났다. 시뻘건 융단에 하얀 눈꽃이 핀 듯한 마블링은 ‘보는 맛’을 더한다. 현지인들은 참우가 먹는 사료에서 맛의 비결을 찾는다. 사질토에서 자란 참깨로 참기름을 만들고, 남은 깻묵을 사료에 섞여 먹인다는 것. 읍내 황소고집(655-9293)은 갈비살 등 생고기 전문식당으로 유명하다. 가격도 저렴한 편. 부위별 모듬은 450g 5만원, 갈비·토시·안창살 등은 150g 1만 6000원을 받는다. 고기를 먹고 나면 예천밥이 나온다. 냉이향 가득한 된장찌개에 고사리, 배추, 조밥 등을 넣고 예천 명산 참기름을 넣어 비벼 먹는다. ▶주변 관광명소:신라시대 세워진 천년고찰 용문사, 세금 내는 나무 석송령·황근목, 금당실마을 등이 있다. 예천군청 관광개발과 650-6907. ▶가는 길:영동고속도로→여주 나들목→중부내륙고속도로→점촌함창 나들목→예천. # 풍기인삼과 갈비의 만남 영주시 풍기읍내에서 부석사 방향으로 접어들면 너른 인삼밭 맞은편에 인삼갈비를 전문으로 하는 맛집들이 나온다. 인삼갈비 맛은 인삼과 여러가지 한약재를 넣어 만든 양념장이 좌우한다. 소갈비, 돼지갈비를 양념장에 재서 구우면 냄새가 없어지고, 육질도 부드러워진다.20년 넘게 영업을 해온 풍기인삼갈비(635-2382)집이 그중 많이 알려져 있다.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돼지인삼갈비. 요즘엔 인삼소왕갈비로 인기몰이 중이다. 왕갈비라는 이름에 걸맞게 크기부터 넉넉하다. 살점 사이사이에 인삼을 썰어 넣고 24시간 양념장에 잰 갈비를 숯불에 구워 먹는데, 은은한 인삼향이 일품이다. 살점 사이에 끼워둔 인삼을 마늘처럼 구워 먹는 것도 별미. 아이들은 인삼튀김을 좋아한다. 인삼에 반죽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낸 다음 꿀에 찍어 먹는다. 인삼왕갈비 500g 4만원. 인삼갈비살 150g 1만 8000원. 인삼불고기 200g 1만 2000원. 인삼돼지갈비 200g 6000원. 인삼튀김 1만원. ▶주변 관광명소:배흘림기둥과 무량수전으로 많이 알려진 부석사, 선비들의 숨결 가득한 소수서원 등이 있다. 영주시청 문화관광과 639-6062. ▶가는 길: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영주. # 봉화 3味, 전통 한과·송이돌솥밥·숯불돼지구이 봉화 닭실마을은 500여년 동안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며 한과를 만들어 오고 있는 전통마을. 재료도 순수 국내산만을 사용한다. 한과는 찹쌀 반죽에 멥쌀 가루를 입혀 튀겨 조청을 입힌 후 깨, 강정, 튀밥 등을 얹어 만든다. 오래 두면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소량만 주문생산한다.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3만∼8만원. 세트포장은 16만원.674-0788. 용두식당(673-3144)은 자연산 송이를 영하 40℃로 급속냉동한 다음 1년 내내 송이요리와 자연산송이돌솥밥을 공급하는 봉화군내 손꼽히는 별미집이다. 대표 메뉴는 산송이돌솥밥. 밤·대추·콩 등을 넣고 돌솥밥을 지은 다음, 뜸을 들이는 중에 두텁게 썬 송이를 얹는다. 향긋한 송이 향이 달아나지 않고 구수한 잡곡과 잘 어우러진다. 참나물, 취나물 등 주인장이 직접 채취한 나물과 함께 비벼 먹는다.1만 5000∼2만원. 산송이 전골(1인분) 2만원. 산송이 전 1만원. 해거름에 도착한 봉성면의 식당 굴뚝 여기저기서 뿌연 연기가 치솟는다. 숯불 위에서 두툼한 돼지고기가 익어가며 나온 맛깔스런 연기다. 봉성면은 참숯, 소나무숯 위에 솔잎을 넣어 구운 돼지고기 숯불구이로 유명한 곳. 기름 쪽 빠진 고기에 솔향기가 스며들어 맛이 담백하다.500년 전 고려시대부터 이같은 방식으로 돼지고기를 구워먹었다는 것이 봉화군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봉성면에서 숯불구이를 팔 수 있는 식당은 8곳으로 한정돼 있다.180근짜리 암퇘지만 사용해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고기를 굽는다. 청봉숯불구이(672-1116)도 그중 한 곳. 돼지숯불구이 500g 1만원, 양념구이 1만 2000원. ▶주변 명소:충재 종택과 청암정, 석천계곡으로 이어지는 닭실마을의 경관은 명승 및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보물급 문화재 467점이 전시된 충재기념관도 둘러볼 만하다. ▶가는 길:중앙고속도로→풍기 나들목→영주시→봉화. # 겨울철 별미 울진 대게와 전복죽 일부 지역에서는 11월부터 대게가 출하돼 들썩대고 있지만, 울진에서는 다리와 몸통에 살이 꽉 차기를 기다려 12월10일 이후 본격적인 대게잡이를 시작한다. 서식지에 따라 맛이 다른 것이 대게. 다리가 누런 빛을 띠고, 가슴을 눌렀을 때 물렁거리지 않는 녀석을 골라야 대게의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집게발 위아래가 정확하게 일치해야 연안에서 잡은 대게란 것도 기억해둘 만 하다. 읍내 울산회식당(783-7219)은 울진군수가 추천하는 맛집. 대게찜은 물론 전복죽으로 소문났다. ▶주변 관광명소: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와 불영사, 민물고기전시관 등을 둘러본 다음, 덕구온천이나 백암온천에 들러 피로를 푸는 것도 좋겠다. 울진군청 문화관광과 789-6900.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영주나들목→36번 국도→봉화→울진, 또는 영동고속도로→동해고속도로→7번 국도→울진.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제2영동고속道 내년 하반기 착공

    제2영동고속道 내년 하반기 착공

    경기도 광주시와 강원도 원주시를 연결하는 제2영동고속도로(지도)가 내년 하반기에 착공된다. 3일 제2영동고속도로㈜와 해당 시·군들에 따르면 민자로 추진되는 광주∼원주 제2영동고속도로는 내년 상반기 실시설계가 마무리된 뒤 내년 하반기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제2영동고속도로는 광주시 초월읍 선동리 중부고속도로에서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원주시 가현동 영동고속도로까지 56.95㎞ 구간에 왕복 4차로로 건설된다. 진출입지점을 광주JCT(분기점)∼초월IC(나들목)∼동광주IC∼홍천IC∼대신IC∼동양평IC∼서원주JCT∼원주JCT 등 8곳에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나 확정되지 않았다. 이 도로는 내년 착공예정인 안양∼성남 제2경인고속도로 연결구간, 공사 중인 성남∼장호원 국도 3호선 대체도로와 연계된다. 광주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제2영동고속道 내년 하반기 착공

    제2영동고속道 내년 하반기 착공

    경기도 광주시와 강원도 원주시를 연결하는 제2영동고속도로(지도)가 내년 하반기에 착공된다. 3일 제2영동고속도로㈜와 해당 시·군들에 따르면 민자로 추진되는 광주∼원주 제2영동고속도로는 내년 상반기 실시설계가 마무리된 뒤 내년 하반기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제2영동고속도로는 광주시 초월읍 선동리 중부고속도로에서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원주시 가현동 영동고속도로까지 56.95㎞ 구간에 왕복 4차로로 건설된다. 진출입지점을 광주JCT(분기점)∼초월IC(나들목)∼동광주IC∼홍천IC∼대신IC∼동양평IC∼서원주JCT∼원주JCT 등 8곳에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나 확정되지 않았다. 이 도로는 내년 착공예정인 안양∼성남 제2경인고속도로 연결구간, 공사 중인 성남∼장호원 국도 3호선 대체도로와 연계된다. 광주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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