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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술이 술술] 자유에서의 도피/글쓴이:에리히 프롬

    에리히 프롬은 독일 출신의 유태인으로 나치즘이 대두하자 1933년 미국으로 망명해 활동한 학자다. 그는 ‘근대인에 있어서의 자유의 의미’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둬 사회 구조의 변혁과 인간의 심리적 해방을 연동시키는 신프로이트 학파의 이론적 지도자로 활약했다.1940년에 발표된 이 책에서 그가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도 자신의 이러한 경험과 관련이 있다. 흔히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가 강제력이나 국가의 선전에 의해서만 형성, 유지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당시 사람들의 폭넓은 지지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왜 나타났을까. 그는 이 문제를 ‘∼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와 ‘∼에로의 자유(freedom to)’라는, 지금은 이미 보편화되어 널리 쓰이는 개념들에 근거하여 분석한다. 우선 프롬에게 ‘자유’는 하나의 심리학적 문제로 나타난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소극적인 자유’가 아닌 자아의 자발성을 뜻하는 ‘적극적인 자유’다. 인간은 자유를 억압하는 외적 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외적 억압이 제거될수록 내적인 억압은 커진다. 이러한 내적 억압은 바로 무력감과 고독감이다. 인간은 무력감과 고독감을 피하기 위해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하나는 자발적 자아를 이룩해 세계와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함으로써 피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적극적 자유’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자아의 통일성을 포기함으로써 세계와 결합하는 방법으로, 곧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누군가를 지배하거나 누군가에게 복종함으로써 안정을 얻는 사도-마조히즘적인 권위주의에 굴종하는 것이고, 사실상 자아의 통일성을 무너뜨리는 것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의 등장이나 종교 등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이러한 ‘자유로부터의 도피’로 설명될 수 있다. 중세의 억압에 대한 투쟁을 통해 인간은 ‘∼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했다. 그러나 신에서의 탈출은 동시에 혼돈의 세계로의 입문이었다. 현대인은 중세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지기는 했지만, 그 자유가 나아갈 새로운 인간 관계와 방향성을 찾지 못한 채 지도자나 민족·국가에 복종함으로써 새로운 안전을 추구하고 있다. 이처럼 프롬은 전체주의 운동이 근대 이후 인간이 획득한 자유로부터 도피하려고 하는 마음 속 깊은 열망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히며,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소외 현상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에로의 자유’를 실현할 ‘생산적 사랑’에 기초를 둔 만족스러운 인간 관계의 창조를 강조한다. 프롬은 이를 사랑과 인간 존중에 기초한 ‘인간적 공동체 사회주의’로 지칭하며, 이후의 저작인 ‘건전한 사회’에서 이를 좀더 구체화하고 있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 독서 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고1∼고3 -관련 교과:고등 사회, 윤리와 사상, 사회문화 -함께 읽어 볼 책과 고전:건전한 사회(에리히 프롬·범우사), 소유냐 존재냐(〃), 사랑의 기술(〃),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사르트르·청솔출판사), 지식인을 위한 변명(〃·한마당), 사회학적 상상력(밀즈·홍성사), 고독한 군중(리즈먼·홍신문화사), 도덕적 인간과 부도덕한 사회(라인홀드 니버·문예출판사) -기출논제:1998학년도 한양대 인문계 논술,2001학년도 논술,1997학년도 서울대 논술,2004학년도 서강대 모의논술,2001학년도 부산대 정시 논술 ■ 생각해보기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현대인을 지배하는 무력감과 고독감의 원인은 무엇인지 밝혀보자. -무력감과 고독감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은 어떤 것이 있는지 써보자. -인간 소외란 무엇인가. 그것이 나타나는 사회적 원인은 무엇인가.
  • [쪽지 통신]

    ●교육정보 사이트 유니드림(www.unidream.co.kr) 수험생들의 논·구술 길잡이 웹진 2호를 펴냈다.2005년 1월호에는 부시 재선과 세계 질서, 북한인권법과 탈북자 문제, 금리와 세계경제, 성매매 특별법, 한국의 핵실험과 핵주권, 교토의정서 발효 등의 시사 이슈를 심층분석했다. 역사 속 인물 코너에는 독립운동가이자 문학가인 단재 신채호의 삶과 철학을 분석했다. 꼼꼼한 진로탐색 코너에서는 초등교원이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할 사항과 절차를 세심히 설명했다. 유니드림 홈페이지에 접속해 ‘Webzine 유니드림’을 클릭하면 볼 수 있다. ●온라인 교육사이트 비타에듀(www.vitaedu.com) 25일(화)부터 시작하는 ‘겨울방학특강’ 신청 수강생들에게 기념품을 나누어주는 ‘신나는 겨울방학, 최고의 알뜰 수험생을 찾아라’ 이벤트를 연다.24일(월)까지 겨울방학 특강을 접수한 학생 중 선착순 1000명에게 고급 다이어리 ‘2005년 스케줄러’를 제공한다. 같은 기간 새로 가입한 수강생 중 3명을 선발해 문화상품권 등 다양한 경품도 준다. ●코리아토인비(www.e-ktc.com) 15일(토) 오전 11시 강남구 역삼1동 코리아토인비 세미나실에서 2005년 8월 학기 미국 공립학교 교환학생 선발을 위한 설명회를 연다. 미국 국무성에서 세계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주관하고 있는 공립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만 15∼18세의 학생들이 6개월∼1년 동안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홈스테이’하며 현지 학교에서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87년 8월∼90년 8월 사이 출생한 학생으로 최근 3년간 학교성적이 중위권 이상인 학생과 학부모면 누구나 설명회에 참가할 수 있다.569-9600. ●학교폭력상담 전문 사이트 왕따닷컴(wangtta.com) 친구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친구 사귀기 프로그램 ‘친구야 놀자’ 이벤트를 개최한다. 초등학교 5·6학년과 중학교 1·2학년 학생 20명을 선착순으로 선발한다. 캠프는 24일(월)∼26일(수) 2박3일 동안 서울 인근 지역의 청소년 수련원에서 열린다.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다운받아 작성한 뒤 인터넷으로 참가신청을 하면된다. 참가비 8만원.795-8000. ●한국심리교육 연구소(www.mindnlp.com) 컴퓨터 게임중독으로 자기 통제력을 잃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게임중독 탈출작전 3단계 훈련 캠프’를 개최한다. 의정부시 호원동 YMCA다락원 캠프장에서 29일(토)∼2월 1일(화) 3박4일 동안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자기통제·게임통제 체험훈련을 받는다. 초등학생 12명을 선착순 선발. 참가비 25만원.582-3275. ●연세대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cdri.x-y.net/v2)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영아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신입 원아를 모집한다. 모집 대상은 2002년 3월1일∼2003년 2월28일 사이에 출생한 유아이다.2월2일 오전 10시부터 3일 오후 4시까지 인터넷으로만 접수한다. 이미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둔 학부모들도 이 기간에 참가 신청을 해야 한다. 지원서, 영아 반명함판 사진 1장, 엄마·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 1장, 주민등록 등본 1통이 필요하다.2123-3480∼2.
  • 올 전주영화제 ‘디지털 3인3색展’

    올 전주영화제 ‘디지털 3인3색展’

    올해 6회째인 전주국제영화제의 ‘디지털삼인삼색’프로젝트에 ‘거미숲’의 송일곤(한국),‘열대병’의 아피차퐁 위라세타쿤(태국),‘총알발레’의 쓰카모토 신야(일본) 감독이 초청됐다. 전주국제영화제는 10일 서울 세종호텔에서 ‘디지털삼인삼색’제작발표회를 갖고, 이들 3명의 감독 선정 배경과 작품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디지털삼인삼색’은 국내외 영화감독 중 매년 3명을 뽑아 5000만원의 제작비를 지원하는 디지털 옴니버스영화 프로젝트로, 지금까지 차이밍량, 지아장커, 이시이 소고, 봉준호 등 15명의 작품이 소개됐다. 1999년 칸 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 심사위원 대상작인 ‘소풍’과 ‘꽃섬’‘거미숲’에 이어 최근 제작비 7000만원의 디지털영화 ‘깃’을 발표한 송 감독은 이번 영화제에서 해체된 밴드 멤버들의 이야기를 담은 ‘매지션’(가제)을 선보인다. 송 감독은 “러닝타임이자 영화속 절대시간인 31분안에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형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은 지난해 ‘열대병’으로 태국 영화로는 최초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감독. 욕망으로 가득찬 생명체가 살고 있는 정글을 배경으로 한 ‘세계의 욕망’을 준비중인 그는 “상업적인 시스템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디지털 작업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총알발레’를 비롯해 ‘쌍생아’‘6월의 뱀’ 등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쓰카모토 신야 감독은 좁은 공간에 갇힌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탈출 프로젝트’(가제)를 제작한다.“데뷔 이후 20년간 줄곧 필름작업만 고집했지만 그동안 디지털영화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이런 기회를 갖게돼 무척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수완 프로그래머는 “디지털 매체로 가장 새로운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감독들을 초청했다.”고 설명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오는 4월28일부터 5월6일까지 열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3)하멜의 여정-­제주서 나가사키까지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3)하멜의 여정-­제주서 나가사키까지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다지만,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등이 해양을 통한 제국 건설에 몰두하면서 서세동점의 기세로 밀어닥친 그 때 우리가 좀 더 잘 했더라면, 조금만 생각을 고쳐 먹었더라면 하는 일말의 아쉬움은 지금도 남는다. 하멜표류의 교훈도 그 중의 하나이다. 1628년, 일본 나가사키(長岐)로 향하던 네덜란드인 벨테브레 일행 3명이 부산 근처에 표착했으니, 이 중 1명이 훗날 조선인과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고 살던 박연이다. 박연 표착 25년 뒤, 같은 네덜란드인 하멜이 제주도에 표착한다.1653년(효종 3년) 암스테르담을 출발한 스페르웨르호가 바타비아와 타이완을 거쳐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폭풍에 밀려 이 해 8월15일 제주도에서 파선한 것. ●조선에 표류한 하멜일행 탈출 성공 선원 64명 중 28명이 익사하고 36명이 표류한다. 이듬해 이들은 서울로 호송되었다가 2년 뒤인 1654년에 다시 전라도로 분리, 이송된다. 그동안 사망자가 14인이었으며 생존자는 22인이었다.1666년 9월에 전라좌수영 소속의 하멜 이하 8인이 읍성을 탈출하여 작은 배를 타고서 극적으로 ‘조선 탈출’에 성공한다. 나가사키를 경유한 이들은 1688년 7월 네덜란드로 귀국함으로써 13년의 조선생활을 끝낸다. 바로 이들에 의해 하멜표류기가 출간되면서 ‘금단의 땅 조선’이 서구에 널리 알려진다. 이 하멜 표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할까. 이들 집단을 통하여 어떤 구체적인 서양 과학기술을 알려고 했거나 이들의 정보를 역추적하여 세계정세를 탐구하려 했다는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군부대에 배속된 하멜 일행이 약간의 전투술 전수에 참여한 것으로 짐작되나 세계정세 판단을 위한 조선 조정의 관심은 확인되지 않는다. 서양인 대집단을 13년간이나 데리고 있었으나 그들로부터 세계동향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는 증거가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세계인식이 아닐 수 없다. 하멜은 조사 과정에서 조선 조정이 파견한 박연을 만나며, 이후에 여수 좌수영 등으로 분산되기 전까지 계속 박연이 통역을 담당했다. 이로 미뤄 박연을 통해 충분히 서양의 지식정보를 빼낼 수 있었음에도 그러한 시도는 아예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중국 사신이 하멜 일행을 접하는 일은 극도로 경계하였으며, 이들을 훈련도감 소속 군인으로 배치한 것으로 미뤄 북벌에 대비한 군사적 대응으로 활용하려 한 인상은 준다. 박연과 하멜은 암스테르담에서 바타이유를 거쳐서 나가사키로 향하다 표류하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하멜 일행은 조선 체류 중 끊임없이 일본행을 꿈꾼다. 결국은 배를 구하여 규슈의 히라도(平戶)를 거쳐 나카사키로 들어가는데 일본인들은 그들이 네덜란드인임을 금세 알아차리고 친절하게 안내했다. 이들을 체포해 13년간이나 하릴없이 억류했던 조선과는 대비되는 조치였다. 이들이 나가사키에 당도했을 무렵 만에는 네덜란드배 다섯척이 정박해 있었다. 이들은 곧장 네덜란드 상관(商館)에 당도, 지휘관 빌렘 볼거에게 안내된다. 그리하여 꼭 13년 28일 만에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당시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서방을 향해 열려진 창구였다. 하멜의 조선표착 시점보다 훨씬 이른 1543년에 포르투갈 상인이 일본에 도착했으며,1549년에는 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엘이 가고시마(鹿兒島)에 발을 내딛는다. 이후 100여년 간 무역과 가톨릭 포교가 이루어지나,17세기 중엽 도쿠가와 바쿠후(德川 幕府)에 의하여 기독교가 탄압받는 쇄국이 단행된다. 주목할 것은 쇄국은 쇄국이되, 바늘 구멍은 열어놓은 쇄국이었으니 서방과의 대화는 어떤 식으로든지 계속 하고 있던 셈. ●日 바쿠후, 포교 금지하고 무역만 허용 오직 장사에만 종사하며 포교활동을 하지 않은 네덜란드인들만 일본 거류가 허용되어, 이른바 난학(蘭學)을 꽃피웠다. 서양 의술을 비롯하여 천문, 지리, 생물, 지리학 등 다양한 근대 학문체계들이 이 즈음 난학으로 정리된다. 젊은이들이 오늘날의 도쿄인 에도(江戶), 심지어는 머나먼 동북지역에서도 몰려들어 ‘난학의 길’이 활짝 열린 것. 하멜이 일본에 거류하는 상관을 찾아 귀국할 수 있었음은 또한 이같은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적어도 하멜을 통하여 서세동점의 긴급한 상황을 재빨리 읽었어야 옳았다. ‘하멜표류기’는 조선 땅에 남긴 서양인 최초의 족적이자, 조선을 세계에 알린 ‘스테디 셀러’였다. 표류인 하멜과 조선의 첫 만남, 첫 거래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우리가 그들에게서 얻은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음에 반해, 조선을 탈출한 하멜의 기록은 수백년간 서양인의 인구에 회자되면서 열강들이 입맛을 다시게 하는 근거자료로 보급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수많은 하멜들이 찾아들었던 나가사키는 당시 어떤 여건이었을까. 예쁜 전차가 오가는 나가사키 중심통에 데지마(出島)가 있다. 말이 섬이지 도심에 포위되어 있다. 유심히 보면 바다 수로가 데지마 옆으로 흐르고 있으며 그 수로는 가까운 바다로 연결된다. 데지마는 1636년 그리스도교의 포교 금지를 목적으로 만든 인공섬. 서방을 통하여 무역 등의 이득은 취해야겠고, 문을 열자니 기독교 포교가 두려워 궁여지책으로 만든 출구였다. 나가사키라고 쉽게 말하지만 고작 손바닥 크기만 열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운동장 규모의 땅에 상관 건물을 짓고나서 다리를 놓았다. 바쿠후는 외국배가 들어올 때마다 그들로부터 정보를 얻었다. 네덜란드와 중국 상인에게 풍문보고서(風說書)를 내게 하고, 번역 내용을 바쿠후 중심 인물들이 돌려보았으니 세계 정세의 변화를 개괄적이나마 시시각각 첩보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어두운 동굴 속의 불빛처럼 창구 하나만큼은 분명히 열어놓았던 셈. 어쩌면 일본이 서방을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닫지 않았던 그 ‘바늘구멍’이 일본이 아시아에서 선두 주자로 나서게 하는 결정적 기반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꽃피운 난학, 메이지유신 토대 돼 네덜란드인들의 종교와 무역의 분리는 바쿠후의 정책과 일치하였다. 오로지 무역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바쿠후로부터 독점권을 얻게 된다. 이후 200여년 동안 이곳은 일본 유일의 해외무역 창구가 된다. 나가사키를 둘러보면 주변에 국제도시다운 면모를 지닌 도시들이 즐비함을 알 수 있다. 히라도는 일본이 대륙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견수사(遣隋使)를 파견했을 때부터 중심지였으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국제무역거점항이었다. 히라도 남동쪽의 도자기로 유명한 아리타(有田) 북쪽에는 도자기 수출입항으로 명성을 얻었던 이마리가 있다. 이곳 도자기는 19세기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으로 수출되면서 명성을 얻어 유럽 도자기문화 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현해탄이 보이는 가라쓰(唐津)도 빼놓을 수 없다. 지명이 말해주듯 중국과의 교역으로 번영한 항구도시다. 나가사키현의 사세보는 일찍이 1886년 해군기지가 들어선 이래 군항도시로 번창했다. 지금도 일본 자위대와 미군기지가 들어서 있으니 이래저래 외국과의 관계를 떼놓을 수 없는 곳.17세기 네덜란드의 모습을 복원해 놓은 100만평 규모의 하우스보텐스로 아시아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일본이 이미 많은 양의 정보를 직수입하여 서양을 이해하고 있었던 시절에도 우리의 서양을 향한 입장은 여전히 폐쇄적이었다. 훗날 메이지유신을 단행하면서 개화문명을 부르짖었음은, 비단 외국의 압력 때문만은 아니었다.‘난학’같이 장기간 축적된 서양문명의 이해에 기초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해상 문물교류로 갈린 두 나라 명암 나가사키에서 외국과의 관계를 확인할수 있는 유적은 무수히 많다. 흡사 서양인 거리로 들어가는 것 같은 그라비엔, 영국 무기상인 토머스 글러버의 자택, 고색창연한 돌길인 오란자자카, 포르투갈인의 기술로 완성된 아름다운 다리인 메가네바시(眼鏡橋), 무역상사의 의사로 일본 여인과 결혼한 독일의사 시볼트기념관, 일본 최초의 무역상사를 세운 료마의 흔적, 일본 최초의 사진가인 우에노 히코마의 묘소, 그리고 수백년 전통을 자랑하는 나가사키 가스테라 등이 그것이다. 중국 무역항답게 중국의 흔적도 숱하게 흩어져 있으니, 나가사키짬뽕이나 푸젠성(福建城) 사람들이 세운 소후쿠지(崇福寺), 중국의 국부 손문의 유허지 등이 그것이다. 일본은 15세기부터 규슈 일대를 드나들던 포르투갈인에게 입수한 조총을 자체적으로 모방, 개발해 엄청난 무기체계로 발전시킨다. 그 조총을 손에 쥐고 자신만만하게 임진왜란을 일으켰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7년전쟁을 통하여 조선에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조총을 미워하기 전에 그 조총이 어떤 바닷길을 통하여 입수, 개발됐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했어야 옳았다. 서방의 급격한 이입을 두려워한 바쿠후의 폐쇄정책은 1868년까지 계속된다. 그러면서도 데지마는 바늘구멍 같은 숨통으로 역사의 소명을 다하였다. 일본은 미국 페리의 강요에 의해 전면 개방되지만, 적어도 데지마 같은 바늘구멍을 오랫동안 열어두었고, 수백년 전통의 난학으로 대비해 왔기 때문에 서방문명에 대한 일정한 저항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흡사 숫처녀가 백주 대낮에 겁간 당하는 식의 급격한 개항을 강요당했던 우리와는 여러 모로 대비된다. 옛 데지마를 복원시켜 놓은 건물 앞에서 지난 수백년을 돌이켜보자니 느껴지는 바가 적지 않다. 일본은 정교한 기념관을 만들어 놓고 ‘왜 선조들이 바다를 통한 문물교류에 집착했던가.’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우리 역사에 흔적을 남긴 숱한 ‘하멜’들이 바로 데지마와 연관을 맺고 있음을 고려할 때, 바다를 통해 세계로 열린 천혜의 출구를 완벽하게 닫아버렸던 지난날 우리의 해양관을 어찌 비판하지 않을 것인가. 취재협조 학술진흥재단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
  • [광복 60년-국민여론조사] ⑤ 전문가 좌담

    [광복 60년-국민여론조사] ⑤ 전문가 좌담

    광복 6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이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와 공동으로 기획해 정치·경제·역사·통일 등 4개 분야로 나눠 보도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는 우리의 현 주소를 다시금 확인케 했다. 우리 사회의 성숙함에 기반한 북한 포용의 필요성,5·16를 평가하는 인식, 경제 회복에 대한 낙관적 기대, 정치적 무당(無黨)층의 확산 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를 토대로 학계 전문가들의 좌담을 통해 지나간 6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조명해봤다. ●경제 재도약과 강한 리더십 갈망 김형준 KSDC 부소장 근현대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으로 예상과 다르게 5·16을 꼽은 것은 정치심리적으로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추구가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명진 국민대 사회과학부 교수 5·16이 가져온 메시지는 경제적인 함의가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경제가 어렵다보니, 경제 재도약에 대한 갈망이 담긴 것 같다. 노재봉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 사무국장 최근 경기가 침체돼 있고, 어렵다보니 우리 사회를 발전시킨 중요한 계기로 5·16을 꼽은 것 같은데 이는 미래에 대한 비전과 연결돼 있다. 이번 조사에서 68%가 장래가 나아질 것이라고 내다본 것은 우리가 앞으로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지금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듯해도 이런 긍정적 평가를 한 것은 의미가 있다. 김 부소장 현재 우리 사회는 리더십의 위기다. 열심히 일하면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치를 높일 수 있는 변혁적 리더십의 출현이 절실하다. 이 교수 국민들은 현재 ‘사자형 정치 지도자’를 원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 맥락에서 5·16을 꼽은 것으로 보인다. 노 국장 국민들이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정치의 기능이 사회에서 원활하게 작용해야 다른 모든 사회 부분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다. 다양성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싸움의 긍정적 측면’을 살펴보는 고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성장·분배의 조화로운 병행 필요 노 국장 경제는 심리적 요소가 크다. 낙관하면 낙관적 결과가, 비관하면 비관적 결과가 나오곤 한다. 미래에 우리 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의 비율이 높게 나온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다만 기업가들이 수익을 내면서도 투자하지 않은 채 뭔가 리스크를 두려워하고 있다. 또한 중산층의 붕괴가 가장 큰 걱정이다. 이렇게 되면 경제가 회복되고 국가 경제는 그럭저럭 갈지 몰라도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이 교수 중산층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경제 기반이 옅어졌기 때문이다. 안정된 중산층을 키우는 문제에 소홀하게 되면 모든 상황이 극단적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김 부소장 빈부 격차 문제와 함께 반부패 문제가 중요하다. 얼마전 시민사회단체 주요 인사 150여명이 모여서 반부패사회협약을 발표했다. 선진한국의 지향점도 ‘강소국’인데, 강소국으로 가기 위한 전제로서 ‘부패 없는 사회’로 가는 게 중요하다. 이 교수 우리 사회 부패도가 그리 나쁜 정도는 아니지만 너무 절대적인 기준만을 생각하며 칭찬에 인색한 것 아닌가. 노 국장 투명하게 돈을 벌고 그렇게 쌓은 재산을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에서 성취한 것에 대해 인정하는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기업가가 먼저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 부소장 작년 경제 키워드는 ‘성장과 분배’였고 정치권에서 갑론을박했지만 국민들은 병행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정치권이 이러한 국민적 인식을 끌어안아 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이 교수 국가 정책이란 것이 실질적으로 성장만 할 수도 없고, 분배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두 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김 부소장 성장과 분배의 필요성과 문제점이 동시에 나타났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의 강화가 필요하다. 사회적 책임성이 함께 병행되어야지 성장과 분배의 동시 추구가 가능할 것이다. 노 국장 삼성의 이재용씨가 백몇십 억을 상속받으며 세금을 제대로 물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기 이전에 원래 해야 할 최소한의 상식적이고 투명한 경영이 필요하다. 이후에 사회적 책임까지 덧붙여진다면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소모적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위협 아닌 지원의 대상 노 국장 한·미관계 설정에서 잘 하고 있다는 평가와 잘못 하고 있다는 평가가 엇비슷하게 나타났다. 평가의 세부적인 원인이 궁금하다. 이 교수 젊은층은 미국과의 관계를 매우 평등한 관계로 인식하고 싶어한다. 그 심리가 현실과 관계없이 긍정적 평가로 나타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우려스럽다.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보는 것 같다. 김 부소장 친미도 반미도 아닌 용미(用美)로 가야 한다. 이번 조사에서 잘·잘못 평가가 비슷하게 나온 점은 실용적 노선과 자주적 노선을 병행하는 우리 정부의 이중적 외교에 대한 평가다. 이는 여야가 따로 없는 부분인 만큼 초당적으로 대처해주기를 주문하고 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마저도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모습이다. 유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 하나 특이할 만한 점은 북한에 대한 인식이다. 위협으로 느낀다는 평가보다는 지원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평가가 훨씬 많았다. 노 국장 더 이상 친북에 대한 거부감이 우리 사회에서 없어야 할 것이다. 통일 방식에 있어서는 남측이 주도권을 갖고서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상황에서 친북을 과거와 같이 용공의 인식으로 볼 필요가 없다. 서로 평화롭게 살고 통일 시대에서 북한 주민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져야 할 것이며, 국제사회에 편입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일종의 친북 아니겠는가. ●대선 후보 검증 과정 개선 필요 이 교수 인기투표 방식이 아니라 어젠다, 정책 내용 등 정치지도자에 대한 검증 과정을 강화하면서 일반 국민의 참여 제도를 보완해야 할 필요는 있다. 관훈토론, 여론조사 등은 첫 단계다. 더 나아가서 정책을 명확히 하고, 실현 가능한 정책 검증이 필요하다. 김 부소장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 과정을 통해 정치적 리더십도 강화될 수 있다. 정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는 점에서 볼 때 잠재성 및 실현 능력에 대해 검증을 위한 검증이 아니라 내용 있는 검증이 필요하다. 노 국장 여론조사를 보니 정책 등 구체적 사안에서 보수적 사고를 하면서도 진보적이라고 스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김 부소장 이념은 일관성이 가장 중요하다. 예컨대 네 개의 이슈를 놓고 두 개는 진보고, 두 개는 보수일 경우 이는 중도가 아니라 이념이 없는 무정향이다. 지난 대선 때 보면 일관성 있는 진보가 일관성 있는 보수보다 많았다. 최근에 보니 일관성 있는 진보의 비율이 더 많아졌다. 우선은 이념 정당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후 정책정당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념이 바탕이 되지 않는 정책은 공허하다. ●2005년 우리 사회는 이렇게 김 부소장 정치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 자기방어적 리더십에서 벗어나 국민과 같이 갈 수 있는 미래지향적 리더십을 보여줄 때다. 여당은 야당의 기능을, 야당은 여당의 기능을 인정해야 한다. 선진화의 요체는 인물과 우연에 의해 지배되지 않고 시스템에 의해 지배될 때 선진화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 관용과 화해가 필요하다. 노 국장 모든 경제 정책에서 우선순위를 두고 움직여야 한다. 지속적 성장과 함께 기업할 수 있는 환경 조성, 상위 20% 계층의 지갑을 열 수 있는 소비진작 정책을 펴주기 바란다. 이 교수 이때까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 인식은 자기방어적이었다. 집권 3년차에 어떤 세력이나 정당의 리더가 아니라 국민의 지도자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정권으로부터 소외된 집단 계층을 감싸안는 것은 어느 정도 해왔고, 이제는 국민 전체를 통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정리 전광삼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10억 빚더미…파산신청땐 구제

    1995년에 대기업 부장으로 퇴직, 퇴직금과 저축 2억원으로 제조회사를 차렸습니다.10억원으로 설비를 마련하고, 집을 담보로 돈도 빌렸습니다. 처음에는 이익을 냈는데,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맞아 환율이 폭등하고, 은행금리도 20%를 넘어 위기를 맞았습니다. 모기업의 파산으로 납품대금까지 떼였습니다. 빌린 돈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빚이 늘어나 이자부담은 더해 갔습니다. 대출금 연장과 돌려막기로 이자를 상환하며 얼마간 버텼지만 외국 제품에 가격경쟁력을 잃고 그나마 9·11테러의 충격으로 쫄딱 망했습니다. 집을 헐값에 경매하고, 남은 빚 10억원을 독촉받으며 일용근로자로 살고 있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탈출하고 싶습니다. -최성현(49) 벌어서 빚을 갚을 수만 있다면 그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겠지요. 그러나 5%만 적용해도 이자가 연 5000만원이니 벌어 갚는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대안입니다. 도망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정보화 사회에서 전문적인 추심업자들로부터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니 편히 살 수 없습니다. 채무 없는 세상으로 가겠다고 생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옳지 않은 선택입니다. 현실적이고 정당한 방법은 파산(破産,bankruptcy)입니다. 이 단어가 ‘부순다.’는 상서롭지 않은 의미를 가진 것은, 채무에 몰린 상인이 의자를 부수면서 ‘망했다.’고 선언하면 채무를 면제해 주던 상관습에서 유래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 상인들은 긴 의자에 앉아 장사를 했습니다. 현대 파산법은 질서 있는 청산과 재조정을 규정, 정직하지만 불운한 채무자에게 금융채무를 면책해줘 새로운 출발을 열어주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즉 채무자는 언제든지 가진 것을 다 채권자에게 내놓고 그 시점에 안고 있는 모든 계약상의 채무로부터 탕감받을 수 있습니다. 파산법 346조가 채권자를 속인 비행이 없는 한 법원은 면책불허가를 할 수 없다는 취지를 밝히고 있는 까닭입니다.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인기가요에 나오듯 ‘예상은 빗나가기 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주의해서 운전해도 교통사고는 발생하고, 암도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백화점이 무너질 수도 있고, 평온하던 바다가 해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위험은 보험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재정적 파탄에 이른 채무자를 구제하는 보험을 민간 보험회사는 인수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는 강제보험의 한 형태로 파산이라는 안전망을 유지합니다. 성현씨는 파산보호라는 보험을 탈 수 있는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실례입니다. ●서울신문은 과도한 빚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채무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새 전문가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 NYT가 반한 서울의 ‘멋’ 서울의 ‘맛’

    NYT가 반한 서울의 ‘멋’ 서울의 ‘맛’

    서울 사람에게 서울은 단지 무덤덤한 생활 공간이다. 아니, 탈출하고 싶은 답답한 도시일 뿐이다. 매일 스쳐 지나가는 남산타워의 모습과 인사동·청담동 거리는 회색도시의 프로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무관심에서 비롯된 우리의 오만이나 착각이 아닐까.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우리가 무심했던 서울을 꼼꼼하게 되짚었다. 그것도 ‘도쿄에 버금가는 화려한 볼거리와 재미가 있다.’며 서울 관광을 적극 추천했다. 서울은 많은 볼거리 먹을거리를 품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다.NYT가 찾아낸 서울의 볼거리와 먹을거리에 확대경을 들이대고 다시 돌아봤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NYT가 반한 서울의 ‘멋’ ●“왜 서울에 가야 하는가” NYT는 이 같은 물음을 던지며 서울 관광을 적극 권했다. 신문은 눈부신 경제성장과 더불어 서울의 마천루는 나날이 화려해지고 있으며 문화시설도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평했다. 압구정동과 청담동, 이태원 등은 미국 웨스트 할리우드나 일본 하라주쿠 못지않다고 칭찬했다. 관광 코스로는 낮에는 인사동 갤러리와 남산 서울타워,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을 돌아보고, 밤에는 청담동 재즈바나 클럽, 이태원 나이트클럽을 가보라고 권했다. 이 가운데 삼성미술관 리움(www.leeum.org)은 지난해 10월 13일 개관한 세계 수준의 국내 최대 사립미술관으로 예약제로 운영돼 아직 일반인에겐 생소한 곳이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가(家)가 수집한 1만 5000여점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리움은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어서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곳이다. 리움은 뮤지엄1과 뮤지엄2, 삼성 아동교육문화센터 등 3개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뮤지엄1은 세계적인 건축가 스위스의 마리오 보타의 작품.‘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국보 133호)와 ‘고려 금동대탑’(국보 213호),‘고려 불화 아미타삼존도’(국보 218호) 등 국보 25점과 보물 35점이 전시돼 있다. 뮤지엄2는 천재 건축가 프랑스의 장 누벨의 작품이며,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는 네덜란드의 렘 쿨하스가 설계했다. 그러나 사전에 예약(2014-6901)을 해야만 볼 수 있으며, 예약시간도 오전 10∼12시까지로 예약이 쉽지 않다. 한국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인사동도 꼼꼼히 살펴 보면 새롭게 다가온다. 종로구 안국동 로터리에서 종로 2가 방향으로 뻗어 있는 400여m의 좁은 골목길에는 수백여개의 골동품 판매점과 고서적 전문점, 공방, 전통찻집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최근에는 인사아트센터 맞은편에 복합문화쇼핑몰 쌈지길이 개관했다. 쌈지길 1층 첫걸음길 마당엔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며,3층에는 무형문화재 및 전승작가의 공방이 들어서 있다.2층과 4층에는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찻집과 식당이 있다. ■ NYT가 혹한 서울의 ‘맛’ ●“이곳이 맛 있대요” 서울의 먹을거리로 장충동의 한국요리 전문점 지화자와 청담동 이탈리아식 퓨전 레스토랑 카페 74, 논현동의 미스터 차우가 첫번째에 꼽혔다. 국립중앙극장 1층에 있는 지화자(2269-5834·www.jihawajafood.co.kr)는 조선왕조 궁중음식 중요 무형문화재 38호로 지정돼 있는 황혜성 교수의 맏딸 한복려씨가 운영하는 한정식집. 전통음식을 지키는 일을 일생 업으로 삼고 살아온 황 교수는 자신에게 궁중음식을 가르치던 스승인 궁궐 상궁이 돌아가신 후부터 궐안에서 배운 궁중음식 요리법을 전수해 지난 71년 인간문화재로 지정됐다. 음식은 구절판과 신선로를 비롯해 생과방의 떡과 한과 등 다양한 식단이 마련돼 있다. 궁중만찬(9만 9000원)과 궁중진상(7만 2000원), 점심에만 하는 낮것상(2만 5000원), 진짓상(1만 5000원) 등이 있다.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예약해야 한다. 최근 삼청동(733-5834)에 분점을 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차이니즈 레스토랑 미스터 차우(517-2100·www.mrchowseoul.com)는 다양한 딤섬요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시금치즙으로 색을 낸 새우만두와 물냉이와 마른새우가 들어 있는 딤섬, 파인애플을 넣은 볶음밥이 일품이다. 호텔로비와 같은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런치코스는 2만 5000원부터 시작하며, 디너코스는 3만 5000원부터다. 특히 저녁식사후 새벽 3시까지 운영하는 분위기 좋은 3층 클럽으로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실 수 있다. 청담동 골목에 있는 카페74(542-7412)는 식사는 물론 커피, 와인까지 즐길 수 있는 복합 레스토랑. 이 곳에서는 신선한 과일과 오렌지 필렛, 아이스크림을 토핑해서 먹는 바삭한 와플 브런치, 웰빙족을 위해 오븐에서 가장 맛있게 구워낸 아몬드 크러스트를 씌운 농어구이,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을 자랑하는 모차렐라 치즈를 덮은 크림 스파게티 등을 먹을 수 있다. 아울러 W서울 워커힐 호텔의 우바(2022-0333)는 이색적인 카페. 독특한 UFO 모양의 DJ부스, 천장에서부터 연결되는 달걀 모양의 의자 등을 갖추고 있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우바는 40여종의 다양한 보드카와 60여 종이 넘는 와인, 다양한 양주와 칵테일이 준비돼 있다. 서울 힐튼호텔의 나이트클럽 아레노(317-3244)와 청담동 재즈클럽 화수목(548-5429)은 서울의 밤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소개했다. 이 밖에 서울내 추천할 만한 숙소로는 워키힐호텔과 신라호텔, 인터컨티넨탈호텔 등을 권했다.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진실이 나를 절망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면 나는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천운영,‘포옹’ 천운영 소설에 대한 보다 정확히 말해,‘바늘’이 출간되고 난 후 이 작가의 첫 소설집을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엽기성’,‘동물성’,‘야생성’,‘야수성’,‘육식성’,‘파괴성’,‘공격성’,‘관능성’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천운영 소설에 이르러 우리 문학은 “가부장적 질서를 난도질하는 육체적 질감을 지닌 현장(김양선,‘기이하고 낯선 가족과 여성이야기’)”을 갖게 되었다는 식의, 지난 연대의 여성 소설과 천운영 소설을 구획짓고자 하는 시도가 여러 평문에서 발견되는 것은 그러므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불감증, 거식증, 불임, 도벽 등과 같은 히스테리적 징후로서만 즉, 부정으로서만 여성 소설의 위반성을 거론할 수 있었던 지난 연대와는 달리,“맹수의 이미지를 띤 여성인물들(황종연,‘탈승화의 리얼리즘’)”은 유례없이 “전복적이고 파괴적인(황도경,‘환상 속으로 탈주하라’)”힘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작가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신선한 살과 피를 원하는 이 짐승의 다음 먹잇감은 무엇이 될 것인가(남진우,‘늑대의 후예’)”쯤으로 표현되는 것이 지금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육체적 질감”,“신선한 살과 피” 등의 앞서 인용한 비평적 수사에서 은연 중 드러나듯, 천운영 소설이 보여 주는 이러한 특징은 무엇보다 그 생생한 현장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이제는 잘 알려진 ‘발로 쓰는’ 이 작가의 스타일이나 그로 인한 생동감 넘치는 디테일의 창출에도 불구하고, 천운영이 정작 공들여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가 취재한 세계, 바로 그 곳으로부터 도출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직접 회를 뜨고, 야나기상의 문신을 보고, 소머리 가르는 접칼을 쥐어도, 작가의 시선은, 장어를 다루는 횟집 주방장의 손놀림에서 텅 빈 수족관 앞에 망연히 앉아 있는 그의 ‘아내’에게로, 남자의 육체에 수놓아진 화려한 거미 문신에서 문신사의 자살한 ‘어머니’에게로, 뼈와 살이 갈려진 소머리에서 우시장 노동자의 ‘할머니’와 ‘연인’에게로 이동한다. 한 세밀한 묘사가 담고 있는 내용이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좌우하는 데까지 미치지는 못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 앞에서, 우리의 포커스 또한 이동할 때가 된 듯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질문들;천운영 소설의 세밀한 묘사와 이에 기반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가려 미처 드러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저토록 야수적이고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인물들 내면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 작가의 두 번째 창작집 ‘명랑’이 출간된 지금, 우리가 시도해야 할 작업은 엽기성과 파괴성의 이면 혹은, 공격성과 야수성의 연원을 추적해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그 그로테스크함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비평적 키워드들의 시발점의 하나가 되었던 천운영 소설 인물들의 ‘몸’으로부터 출발해 보자.“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신체를 보여(심진경,‘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로지르는 섹슈얼리티의 모험과 위반’)”주면서 “몸의 해부학적 묘사라 할 만큼 유난히 신체에 대한 묘사에 집착(황도경, 앞의글)”한다고 평가받는 이 작가의 소설에서, 몸, 그것으로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주목하는 몸의 일부는 얼굴이 아니다. 바로 ‘등’이다. 우리 중 누군가 자신의 ‘등’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이 있을까. 등은 인간의 육체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대개 죽을 때까지 자신의 등의 실제 모습을 모르고 산다. 심지어 거울 앞에서도. 그 실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무의식의 세계를 은유하고 있으며, 나조차 알지 못하는 이면을 타자는 볼 수 있다는 인식은 불안과 공포의 근원으로 자리한다. 만약 자신의 등이 “굽은 등”이고, 자신이 “곱사등이”이라면, 그 불안과 공포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포옹’의 ‘나(인경)’는 “평면만을 보여주는 거울의 기만성(1:213, 이하 괄호안의 표기는 수록소설집:페이지수)”을 충분히 알고 있다.“그렇게 화장을 하고 차려 입으니 너무 예쁘구나(1:213)”라는 거울 속 어머니의 말은 그러므로 거짓이라는 것도. 일찍이 멜라니 클라인이 말한 대로 거울의 드라마가 막을 내릴 때 더 이상 엄마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아이의 고통은 원초적인 것에 육박하지만, 거울이 제공하는 이 기만적인 나르시시즘은 자기정체성을 구성해 내고, 거울을 통과한 후에야 아이는 자신을 3인칭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굽은 등을 보기를 두려워하는 인경은 여전히 엄마의 일부일 때에만 완전하다고 느낀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엄마 품에 안겨 거울 속 나를 바라보(1:213)”며, 자신의 뒷모습이 “백지”로 남기를 바란다. 진실이 절망을 가져다준다면 그 진실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 그것은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믿는 그녀가 불우한 삶을 견뎌 내는 일종의 방법론이다. ‘포옹’에서 인경의 등은, 어머니를 제외한 그 누구도 손대기를 꺼려한다는 점에서는 나조차 어찌할 수조차 없는 내 안의 괴물―‘바늘’에서 곱추를 연상시키는 ‘나’의 등이나,‘숨’에서 육식동물을 연상시키는 할머니의 단단한 등뼈를 보라―이지만, 거꾸로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요구한다는 점에서 소통을 불러오는 몸의 유일한 창구가 된다.“어느 누구도 자신의 등을 쓰다듬을 수는 없는 법이며, 타인만이 그 등을 쓰다듬고 보듬어 줄 수 있”(‘등뼈’)다는 소설 속의 한 전언은 천운영 소설에서 타인과의 소통이란 것은 곧 위무의 다른 말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자신은 볼 수조차 없지만 타자는 볼 수 있으며, 자신은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없지만 타자는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있기 때문에,“아내의 굽은 등”“할멈의 굽은 등”(‘행복 고물상’)에서 번져 나오는 고독감은 남편과 이웃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지친 이를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편은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멍게 뒷맛’)이며, 위로받는 가장 좋은 방법 또한 “등을 내맡기는”(‘아버지의 엉덩이’) 것이다. 천운영 소설에서는 환상 속에 잠깐 이루어진 만남 또한 “등을 만졌던 것 만 같다”(‘월경’)라고 표현된다. 이런 식이라면 타인에 대한 분노나 타인으로부터의 외면은 등을 돌리거나, 등을 치는 것으로 그려질 성싶다. 마치 아버지를 경멸하는 아들이 제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보”고, 그 아버지의 “등짝을 후려”치고 싶어 하는 것(‘아버지의 엉덩이’)처럼, 친구들이 대항할 힘도 없는 ‘나’를 “등을 밀쳐 땅바닥에 넘어뜨리”던 것(‘세번째 유방’)처럼, 살인 장면의 마지막 기억이 “남자가 정말 당신 등을 밀었다”(‘멍게 뒷맛’)로 남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무엇보다 천운영 소설에서 등은 대부분 대상­타자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작중인물의 불안을 담고 있다. 등을 돌린 사람 혹은, 돌아선 사람의 등에 대한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사례들;“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남편 뒤에서 그의 아내는 “침묵하는 당신(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그 “등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왜소한 그 등을 보이고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당신의 바다’)며 견딜 수 없어 한다. 연인들의 연애의 끝은 또 어떠한가. 꿈 속에서 골목을 헤매던 여자는 길 모퉁이에서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가지만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모퉁이만 계속해서 나타날 뿐이고(‘모퉁이’), 연인에게 입 맞추던 여인은 “등을 보이고 돌아”선 후 그로부터 “점점 멀어진”다(‘세번째 유방’). 이렇듯 도저한 상실감이 등의 이미지를 빌려 가장 성공적으로 형상화된 소설은 그 표제가 아예 ‘등뼈’이다. “여자가 떠났다”라는 간결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등뼈’는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집착하던 여성이 떠난 이후 전개되는 남성의 황폐한 내면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아무런 징후나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1:138)”라는 구절에서 강조되고 있듯이, 여자의 실종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어서 남자에게 그것은 “떠난 것이 아니라 증발한 것(1:143)”에 가까우며, 남자는 당연히 여자의 그러한 증발에 대비할 수 있는 아무런 준비도 해 놓지 못한 채이다. 그러나 “그때 왜 여자의 등을 쓰다듬어주지 못했을까(1:148)”라는 소설 속의 한 구절을 제외한다면 남자가 여자의 사라짐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남자는 특이하게도 “여자가 떠난 뒤 살 속에 숨은 뼈에 집착하기 시작(1:150)”한다. 주위 사물들에서 뼈를 연상해 내고(1), 원인을 알 수 없는 요추디스크로 고통받다가(2), 급기야 뼈를 찍은 엑스레이 필름을 닥치는 대로 모으며(3), 결국 아무런 식욕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어 그의 몸엔 뼈만 두드러지게 된다(4). 여자가 떠난 후 이 남자가 보여주는 모든 증상((1)∼(4))은 그러니까 ‘뼈’에 대한 집착으로 수렴된다. 그런데 왜 하필 ‘뼈’일까? 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손을 돌려 등을 만졌다. 손끝에 등뼈 마디마디가 분명히 잡혔다. 남자는 욕조에서 기어 나와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서린 김을 걷어내자 남자의 퀭한 얼굴이 보였다. 광대뼈가 툭 튀어 나오고 눈이 쑥 들어간 낯선 사람이 거울 속에 들어 있었다. 남자는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거울에 등을 비추어보았다. 등골이 패고 뼈가 튀어나온 등이 어렴풋이 보였다.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었다.(1:158) ‘뼈’에 대한 남자의 집착은 그의 일상을 와해시키고 결국 그 자신을 말 그대로 뼈만 남게 만들어 버리는데, 사라진 여자가 등뼈는 말할 것도 없고 광대뼈, 턱뼈, 어깨뼈, 복사뼈까지 유난히 뼈가 도드라졌으며 식성도 특이해서 생선뼈, 닭갈비뼈, 조개껍데기와 같이 뼈에 붙은 살들만을 골라 먹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남자의 집착은 그녀에 대한 남자의 무의식적 동일시 즉, 사라진 대상을 불완전하게나마 보유하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동일시가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지면 누구나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 유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현실적인 요구와 함께 대상에 투자되었던 리비도는 다시 회수된다(프로이트,‘애도와 우울’). 이것이 상실된 대상에 대한 상식적인 ‘애도’의 과정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에 대한 리비도가 너무나 강해서 현실에서 상실된 대상을 대체할 만한 다른 대상을 찾지 못할 때, 주체는 상실된 대상을 내면화(internalization) 혹은 합체(내적 동일화,incorporation)함으로써 계속 보유하고자 한다(J 버틀러,‘멜랑콜리적 젠더/거부된 동일시’).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상실된 대상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살아 있는 현재로 끊임없이 소환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자가 가까스로 거울에 비춰본 자신의 등에서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환상으로 처리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러한 맥락에서 음미해 볼 만하다.“뼈가 튀어나온 등”은 현재의 환상 속에서 과거의 상실된 대상과 남자가 조우하는 장소로 공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은 이처럼 상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 저항이 지극히 위장된 형태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멜랑콜리적 주체의 성격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 상실로 인한 슬픔이 애도로 승화되지 못한 원인은 무엇보다 이들이 도저한 상실감의 원인이 된 대상에 대해 ‘의식적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환상 속에서조차 대상과의 만남이 허락되지 않을 때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난폭한 짐승(2:119)”이 출몰하게 된다. 이 “난폭한 짐승” 혹은,“광포한 짐승” 혹은,“제 속에 든 짐승”은 인물들 특히, 여성인물들을 숨이 차도록 달리게 만들기도 하고, 그녀들에게 무서운 식욕을 부추기기도 한다. 다음을 보라:애도할 만한 죽음이 나타나면 여자 속에 숨은 짐승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슬픈 일이 일어나기를, 짐승을 다스릴 만한 제물이 나타나기를 여자는 빌었다(‘모퉁이’, 강조 인용자).“애도할 만한 죽음”이 여자 속 숨은 짐승을 사라지게 하고,“무언가 슬픈 일”이 그 짐승을 다스릴 것이라는 저 여자의 내면이 가리키는 것은, 자신의 상실감의 원인이 되는 대상이 앞에 있다면 그 상실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막한 기대이다. 통제 불가능한 내면은 분명 무언가의 상실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된 대상이 눈 앞에 있어 이를 애도할 수 있다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내면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기억-내용은 이미 소실되었으되 기억-감정이 남아 있어 유사한 심리적 기제가 주어지면 어김없이 리비도가 투자된다. 그러나 그 대상이 상실된 바로 그 대상은 아니기에 상실의 흔적은 그녀들에게 애도해야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애초에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남자의 유골을 뿌리러 제주도로 향하는 여자(‘포옹’)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또한 바로 그것이다. 천운영의 소설들에서 누군가의 죽음 혹은 (갑작스러운) 사라짐은 서사를 이끌어 가는 가장 기본적인 모티프이다. 이 작가의 어느 작품을 들춰 보아도 이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명랑’‘아버지의 엉덩이’‘세번째 유방’에서는 할머니가,‘바늘’‘명랑’‘월경’‘당신의 바다’에서는 아버지가,‘바늘’‘멍게 뒷맛’‘월경’‘아버지의 엉덩이’에서는 어머니가,‘숨’‘그림자 상자’에서는 양친부모 모두가,‘등뼈’‘멍게 뒷맛’에서는 여자가,‘모퉁이’에서는 연인이,‘당신의 바다’에서는 남편이 죽거나, 실종되거나, 아무런 예고 없이 주인공 곁을 떠난다. 이러한 상실이 대개 가장 기본적인 삶의 단위인 가족 관계에서부터 발생한다는 것은 이렇게 열거한 목록에서도 금방 포착되는데,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할머니)의 빈자리이다. 천운영 소설이 가족관계 안에서의 갈등을 그 기본 축으로 하면서도 ‘모퉁이’‘그림자 상자’‘세번째 유방’을 제외하면 형제나 자매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소설들에서마저도 언니, 오빠, 동생은 화자를, 부모 특히 어머니 곁에 가까이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쟁자로서만 그 의미를 지닌다. 천운영 소설 속 주인공들의 어머니에 대한 집착 혹은 애증은 그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다. 최근 한 평론에서는 천운영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로 ‘부재하는 아버지’가 거론되었거니와(남진우, 앞의 글), 이 논자의 지적대로 무능하고 비루한 아버지의 초상은 이 시대 거세된 남성성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물론 아버지가 부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부재하는 아버지’는 실로 오랫동안 우리 소설의 한 테마였고,‘아비-부재’,‘아비-찾기’,‘아비-되기’,‘아비-부정’의 기나긴 순환 속에서 우리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 정체성의 근거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불안과 함께 지금껏 성장해 왔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운영 소설에서 아버지의 죽음, 그 부재의 효과는 말 그대로 그저 ‘없음’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특징적이다. 아버지의 위치가 지극히 주변화되어 있음에도, 이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들들에게서는 그에 대한 어떠한 연민도, 이를 복권하려는 의지도, 스스로 가부장으로 전신하고자 하는 충동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천운영 소설에서 강력한 입법자로서의 아버지란 ‘세번째 유방’의 아버지를 빼고는 찾아보기 힘들며, 심지어 ‘아버지―법’은 “어머니를 닮은 부라보콘”에게까지 자리를 내준다(‘눈보라콘’);“오직 부라보콘만이 내 운명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1:90)”다.‘∼하지 말라’가 사라진 자리에서, 가위를 든 “이발사” 아버지가 사라진 바로 그 자리에서,‘나’는 어머니를 마음껏 향유하고자 한다.‘눈보라콘’에서 부재하는 아버지는 그러므로 이후 도래할 어머니의 빈자리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그치게 된다. 또 다른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아버지의 엉덩이’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버지는 느낄 수 없을 만큼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텔레비전을 본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상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본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쇼핑호스트가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소개하고 있다. 앞치마를 두른 쇼핑 호스트는 크기가 각기 다른 밀폐용기를 쌓아놓고 얼마나 저렴한지에 대해 과장되게 말하며 전화주문을 유도한다.(……) 아버지는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조금씩 내려가는 숫자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2:172) 위 장면의 등장인물의 성(性)을 여성으로 치환시켜 놓으면 즉, 아버지와 아들의 식사장면이 아니라 어머니와 딸의 그것으로 바꾸어 놓으면, 우리 눈 앞에 매우 익숙한 광경이 펼쳐진다. 늙은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딸이 “상”을 차려 들어간다, 어머니의 모습에 “신경질”이 난 딸은 그녀를 “쏘아 본다”, 텔레비전에서는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선전하는 “홈쇼핑”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어머니는 숫자판에 넋을 놓고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의 주인공은 분명 아버지와 아들이다. 홈쇼핑 중독자인 아버지의 “게걸스런 주문과 반품”이 “외출”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히스테리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 혹은 홈드라마의 역전된 판본이라 할 만한다. 그러나 이 장면을 언급한 것은 이 시대의 ‘아버지 부재’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한다. 아버지의 ‘엉덩이’라는 발칙한 상상력이 말해 주듯이 다만,‘어머니 부재’로 세계의 중심을 잃어버린 한 “엄마”의 아들로서만,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이 소설의 아버지와 아들, 두 남성 주인공을 움직이는 숨은 작인은 아버지가 아니라 부재하는 어머니이다. 자신의 어머니 묘소 앞에서 “이제 막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갓난아이처럼 우는(2:166)” 아버지는 물론이고, 태어나자마자 잃어버린 “따뜻한 자궁(2:167)”을 그리워하는 아들 역시 포도나무 가지에서조차 “침묵하며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2:182)”를 발견한다. 이들 부자(父子)에게 ‘부재하는 어머니(할머니)’는 모성적 초자아(maternal superego)의 형상으로 그녀의 아들들을 조종한다. 남성인물을 움직이는 모성적 초자아의 형상은 ‘숨’에서는 ‘차가운 자궁’의 이미지를 빌려 섬뜩하게 변주된다. 할머니를 설득하는 마지막 방편인 송치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 ‘나’가 불법적인 물먹이기를 감행하다가 경찰에 발각되어 도망치는 대목에서, 단속반의 추격을 피해 숨어든 장소가 높이 2미터, 영하 20도의 “거대한 냉장창고”라는 점을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추격의 장면이 마치 사냥의 한 대목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점―할머니가 “육식동물”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이 발각으로 인해 할머니의 의사를 거스른 미연과의 결혼이 틀어질 위기에 처한다는 점, 그 안에서 ‘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숨을 죽여(1:55)”야 한다는 점 등은 이 냉동고가 ‘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얼어붙은 자궁’이 물질화된 것임을 암시한다.‘숨’에서 아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냉동고가 이처럼 은유적 차원에서 자궁의 부정적 이면을 함축하고 있다면,‘행복고물상’에서 그것은 “유산된지도 모르고 보름 동안이나 자궁 속에 죽은 아이를 넣고 다녔던(1:162)” 아내를 빌려 실체화되고 있기도 하다. 자궁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자궁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는 천운영의 소설들에서는 빈번하게 출물하면서 작품의 기저음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당신을 둘러싼 바다 밑바닥 같은 어둠”(‘당신의 바다’)과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천운영 소설에서 어둠, 바다는 의미론적인 층위에서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 놓이는 경우가 흔하며,“깊은 어둠(1:195)”,“어두운 바닷 속으로 깊숙이(1:139)”,“바다 깊숙한 곳(1:156)”,“물 속 깊숙이(1:158)”,“깊은 바다로 침잠(1:136)” 에서와 같이 곧잘 하강 혹은 침잠의 이미지와 함께 나타나는데,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최종지점에 어머니―모체―자궁이 자리한다.“탄생 이전의 따뜻한 양수 속으로 돌아가고 있는” 할머니(‘명랑’)나,“태아처럼 몸을 구부리”고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해진 어둠”을 즐기는 아이(‘유령의 집’)는 천운영 소설의 주인공들에서 발견되는 모체―자궁으로의 회귀욕을 보다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위와 같은 사례들에서 다음과 같은 해석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무력한 아버지를 대체하는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법에 내포된 헤게모니의 일시적인 전복을 읽어낼 수도 있고, 성적 관계의 절대적 방해자로 나타나는 할머니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손자의 서사를 아버지―질서의 외부를 꿈꾸는 딸의 서사의 역전된 판본으로 체감할 수도 있으며, 빈번히 등장하는 자궁 회귀욕으로부터 주체―대상의 이분법에 이전하는 원초적 충동으로서의 모체 회귀욕을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 소설들에서는 그것이 의존성이건, 억압이건, 회귀이건 간에 어머니의 부재가 스토리―시간 내에서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며,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죽음(‘아버지의 엉덩이’)이나 재혼(‘눈보라콘’)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버려짐이나 내쳐짐의 쓰라린 감각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대상―타자의 상실을 ‘버려짐’으로써 격렬하게 경험하는 인물들은 무엇보다 ‘바늘’‘멍게 뒷맛’‘월경’‘모퉁이’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이다. 울음보가 터졌다.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다락 계단을 기어오르면서부터 나는 이미 울고 있었다. 코피가 나올 것처럼 콧잔등이 매큼해지고 입술은 움찔움찔 울음을 품었다. 엄마는 내 울음소리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었다. 내 울음이 엄마를 돌려세울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울음을 그칠 수는 없었다.(2:100) ‘모퉁이’는 주인공 ‘나’가 ‘엄마’와 헤어지는 인상적인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엄마를 잃어 비통한 한 소녀의 심사는,14줄에 걸쳐 집요하게 서술된다. 마치 그것을 영원한 이별이라 예감하는 듯이 소녀는 줄기차게 울어댄다. 그러나 소녀가 그토록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엄마는 단지 아빠의 공장에 밥을 가져다주러 나선 길일 뿐이다. 매일 반복되었을 이 일상적인 엄마의 떠남 앞에서 소녀는 한참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놓는다고 생각되는 존재는 “뱃속의 아이”라도 저주하는 소녀,“엄마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악을 쓰고 울었(2:112)”던 그 소녀,“우는 것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2:105)”이었던 바로 그 소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남자”에게는 여전히 “울음소리”로 존재한다.‘멍게 뒷맛’,‘바늘’에서 역시, 어머니와의 이별은 언제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것이며, 성장한 그녀들이 겪는 모든 상실의 밑그림이 된다. 엄마들은 결국 떠난다. 엄마가 떠난 길목을 바라보며 꼼짝도 못하고 있던 그날을 기억하는 ‘나’(‘바늘’)나, 좋은 옷을 차려 입고 기차에 올랐을 때부터 이미 엄마에게 “버려질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당신’(‘멍게 뒷맛’)은, 그런 점에서는 모두 닮은 존재들이다. 이 세 작품에 비해 어머니의 비중이 미미하게 그려진 ‘월경’에서조차, 주인공 ‘나’는 어머니의 화사한 보석함에, 손톱 자른 것, 빠진 머리카락, 상처에서 떼어낸 딱정이와 같이 제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을 모아둠으로써, 뿌리깊은 분리 불안을 드러낸다. 이 소설들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들은 어린시절, 주로 어머니로 대표되는 대상-타자에게 강렬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되, 필연적으로 그 애착이 거부(혹은 금지)됨을 경험한다. 가령,‘모퉁이’에서 그것은 금지의 양상(“엄마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젖무덤을 헤치는 내 손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나는 엄마의 매정한 손이 야속했다. 엄마는 내게 동생이 생길 거라고 했다. 동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되우 맞은 사람처럼 휘청거렸다(2:109)”)으로,‘바늘’에서 그것은 거부의 양상(“엄마가 내민 보자기에는 꽤 많은 돈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스님의 옷을 들고 집을 나섰다.‘나는 그곳으로 가야겠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말이었다.(1:24)”)으로 전면화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금지/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욕망은 부인된 형태로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할머니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은 뒤 그녀의 뼛가루를 생전의 할머니가 명랑가루 먹듯 맛보는 손녀가 “내 내부에는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침묵하는 그녀가 있다(2:37)”고 고백하는 것(‘명랑’)처럼, 상실이 일어났을 때 상실을 부인하고 상실된 대상의 속성을 취하여 이를 내면화하는 것이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생존전략이라고 한다면,‘바늘’과 ‘월경’의 ‘나’는 바로 그 길을 간다. ‘바늘’과 ‘월경’은 각각 그로테스크한 인물 묘사와 도착적인 섹슈얼리티로 인해 발표된 직후부터 유독 많은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 온 작품들이다. 이 글의 관점에서 역시, 두 작품은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두 소설을 집중적으로 되짚어 보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 단서들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먼저 두 소설 모두 여성 화자들이 이미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임에도 여전히 아동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으며 또한 공히 인물이 비성적인 단계―통상적인 의미로―에서 성적인 단계로 이행하는 순간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 인물들은 각각 어머니(‘바늘’) 혹은 아버지(‘월경’)와의 이별을 하나의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반대성(性)의 부모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는 점 등이 그 단서들로, 이로부터 우리는 천운영 소설에 나타나는 도저한 공격성(/도착성)의, 이면(/연원)을 다시금 집약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왜냐하면 ‘바늘’과 ‘월경’에서는 여성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한 쪽 부모의 상실이 그녀들의 자아정체성의 형성에 결정적인 기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바늘’에서는 그로테스크한 삽화가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다음의 세 장면은 특히 문제적이다;(1)먼저, 죽어가는 새끼고양이. 간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절에서 살던 시절 ‘나’는 “어미고양이의 날카로운 울부짖음(1:20)”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새끼고양이를 변기통에 버리고는 그 변기통 속으로 고양이가 자취를 감추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2)다음으로, 전쟁기념관에서의 상상. 전쟁기념관에서 ‘나’는 전시된 무기들을 하나씩 꺼내 스님을 공격하는 불온한 상상을 해보지만 스님의 심장이 관통당하고 내장이 갈가리 찢기고 발에서 피가 솟구쳐도, 그녀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좀더 강인하면서 잔인한”“엄마가 할 수 있는 그런 방법(1:21)”이 아니었기 때문에.(3)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자살 소식 직후 행해지는 육식. 형사로부터 어머니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의연히 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기 한 점을 집어 먹으며, 바위에 찢긴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 보지만 ‘나’의 머릿속엔 “여자의 하얀 알몸만 떠오를(1:31)” 뿐이다;상식적인 수준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행위들이 무대화되고 있는 이 세 장면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러니까 ‘나’의 공격적인 행위의 메커니즘을 해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첫 번째 장면에 대한 질문 하나. 어미고양이에게서 떨어져 나와 변기통 속으로 빠져 들어간 새끼고양이는 마찬가지로 버려진 ‘새끼’인 ‘나’의 분신과 다름 없을 터. 그렇다면 이 장면은 ‘나’에게 지극한 고통을 유발했을 것임에도 왜 ‘나’는 이를 스스로 자행하며 게다가 “오랫동안” 지켜 볼 수 있었던 것일까? 마조히스틱한 쾌감 때문에?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상실이 곧 결핍을 부른다는 오래된 통념은,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 앞에서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아가 포기된 대상의 심리적 저장고이며 상실된 대상은 구성적 동일시의 하나로 자아 안에 거주하면서 자아와 함께 출몰한다는 사실은 일찍이 프로이트가 ‘자아와 이드’에서 기술한 바 있으며, 버틀러는 그러하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대상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위상을 외부적인 것에서 내부적인 것으로 전이하는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J 버틀러, 앞의 글). 즉, 상실에 대처하는 멜랑콜리적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상실 자체를 무화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나’가 새끼고양이를 변기통 속에 버릴 수 있었던 까닭으로 이미 그녀의 자아 안에, 거부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어머니가, 멜랑콜리적 동일시를 통해 그 자아의 일부로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어머니는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숨쉰다! ‘나’의 행위에서 ‘나’의 위치와 어머니의 위치가 이중적으로 얽혀있는 것은 이러한 내면화의 결정적인 증거다. 버려짐과 버림을 동시에 구현하는 새끼고양이의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스님을 잔인하게 공격하는 상상이나, 자살 소식 직후의 육식 또한 마찬가지의 메커니즘 아래에서 작동한다. 스님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어머니를 빼앗아간 존재에 대한 응징이라는 점에서 그 일차적 의미가 있지만, 그 방식은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던 방법 혹은 어머니가 스님을 살해했던 바로 그 방법에는 미치지 못하기에 ‘나’는 그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수가 없다.‘나’가 공격으로부터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그녀의 내부에서 그녀와 함께 공존하는 어머니의 시선 바로 그것을 체현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기 한 점을 씹어 삼키면서 찢겨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는 그녀로부터 우리는, 어머니가 여전히 ‘나’에게는 알몸의 여자로 현현하는 에로틱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유추함과 동시에,“상실하기보다는 차라리 조각내고 분해하고 자르고 삼키고 소화하고”자 하는 곧, 대상을 먹음으로써 그 대상을 제 안에서 부활시키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식인 행위의 환상(J 크리스테바,‘검은 태양’)의 한 풍경과 마주하기에 이른다. 정신이 아득해져온다. 가슴 한쪽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솟구쳐 올라온다. 나는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그리고 그가 했던 것처럼 팔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한다. 누구를 향해 팔을 휘둘렀는지 모른다. 푸른 모자가 튀어오른 것 같기도 하고 계집의 찢어지는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1:83) ‘바늘’에서와 같이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에도 여전히 아동으로 남겨진 듯한 여성 주인공은 ‘월경’의 ‘나’로 재등장한다.‘월경’의 ‘나’는 스무살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월경(越境)하지 못한 채 바로 그 경계 위에 서 있다.‘나’의 말을 빌리자면 ‘나’의 “몸은 작정이라도 한 듯 자라기를 멈추었다(1:62).” 이 소설의 주된 관심사가 바로 그 경계를 넘어서는 한 순간에 있다는 것은 제목에서부터 암시되는 바다. 그런데 ‘바늘’과 마찬가지로 한쪽 부모의 상실을 초점화하고 있는 이 소설을 전작 옆에 나란히 놓고 따져볼 때 새롭게 부각되는 측면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그 상실이 ‘나’의 젠더 정체성 형성에 개입됨으로써 ‘나’의 젠더 정체성을 매우 불안정하게 구조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월경’에서는, 천운영 소설에서는 이례적으로, 어머니의 떠남이 아니라 아버지의 떠남이 ‘나’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나’가 떠나버린 아버지를 하나의 이성으로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 또한 수차례 등장한다. 그녀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칭하지 않고 ‘그’라고 지칭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인상을 강화하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은 일렉트라 콤플렉스의 천운영식 판본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울 듯하다. 그러나 프로이트에게 이성부모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과 그 욕망의 금지가 여아에게 여성성을 최종적으로 선사하는 것과는 달리 이 소설에서 ‘나’의 젠더 정체성은 오히려 남성의 그것에 가깝게 드러나고 있어 차별적이다. 즉,“가슴도 가슴이지만 계집의 엉덩이는 정말 탐스럽다. 표주박 두 개를 나란히 놓은 듯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툭 불거지는 모습이 여간 아니다(1:70)”라는 구절을 비롯한 소설의 여러 대목에서 나타나듯이 ‘나’는 “은하수 계집”을 성인 남성의 시선으로 욕망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여러 평자들로 하여금 ‘월경’을 도착적 섹슈얼리티가 전경화된 소설로 주목하게 한 주요한 요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함께 트럭 짐칸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면 온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았고, 별들은 작은 이슬방울이 되어 우리의 배 위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1:63)”에서와 같이 지극히 감상적으로 또 지극히 여성적인 시선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기억하고 또 애타게 그리는 ‘나’가 어떻게 동시에 “은하수 계집”을, 그것도 저러한 시선으로 욕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불균형은 작가가 도발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몰두한 나머지 그 일관성은 신중히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함에 불과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상실한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내면화하고자 했던, 그럼으로써 상실로 인한 상처를 무의식적으로 무화하고자 했던 ‘바늘’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월경’의 ‘나’ 역시 상실한 아버지를 그러한 방식으로 제 속에 부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즉, 그녀의 자아 안에, 상실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가, 그 자아의 일부로서 공존하고 있다고 말이다.“은하수 계집”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이에 대한 한 근거가 됨은 물론이거니와,‘나‘가 “은하수 계집”을 여러모로 ‘그녀(어머니)’와 견주어 보면서 ‘그녀(어머니)’의 분신처럼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정을 뒷받침해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위치하는 사건 곧,“은하수 계집”과 “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정사장면을 ‘나’가 목격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그 사건에서,‘나’가 ‘그(아버지)’의 위치를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과거의 ‘그(아버지)’―‘그녀(어머니)’―“낯선 남자”의 구도를, 현재의 ‘나’―“은하수 계집”―“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구도로 전이시키고 있다는 점은 그 결정적인 증거로 제출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요컨대 ‘월경’에서 ‘나’는 아버지를 욕망하는 데서, 아버지의 욕망을 그리고 아버지가 욕망할 것이라 추정되는 대상을 욕망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나’의 젠더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한 근본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의 시발점에 현실에서의 상실을 절대로 수락할 수 없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내면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읽는 이를 순식간에 포박하는 천운영 특유의 자질 뒤편에 도사리고 있는 상실과 박탈의 어두운 그림자……, 누군가는 사라지고 그 사라짐이 가족 내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저토록 결정적인 흔적을 남긴다. 그리하여 이 작가에게 가족은 천운영식으로 표현하자면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 같은 유령의 집(‘유령의 집’)” 즉,‘아가리(구강기)’적 욕구에 충실한 “괴물”스러운 인물들이 집 안을 떠도는 “유령”의 “어두운” 그림자와 씨름하는 전쟁터나 다름없다.“핏줄”과 얽혀진 인간 욕망의 가장 원초적인 그래서, 들여다보고 싶으면서도 그러기에는 두려운 “하수도” 속 같은 “어둠”이야말로 이 작가의 해부 대상인 것이다. 이어지는 ‘유령의 집’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라;“보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이면에 삶은 존재하니까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고 해보세요. 그건 때때로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겁니다.” 천운영이 꾸며놓은 유령의 집을 방문한 독자에게 이 보다 더 친절한 안내가 또 있을까. 천운영은 이렇게 근본적인 상실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그것도 가족 내부에서 끈질기게 문제화한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 문단에서는 매우 독특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배수아, 백민석 같은 바로 앞선 연배의 작가는 물론이고, 비슷한 연배이며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정이현이나 김윤영에 견주어 보아도 이는 이 작가 특유의 자질이다. 앞서 살펴본 작품들에서처럼 특히나 천운영은 가족 안에서의 상실을 한 인간을 배태해내는 결정적인 그 무엇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제 전환을 맞을 때가 온 것은 아닐까.‘늑대가 왔다’나 ‘그림자 상자’와 같은 비교적 근작들에서는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파괴적 욕구가 분출되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가족이 부여한 운명으로부터의 탈출은 아직 환상 속에서만 가능하고 결국에는 처참한 결말을 맞지만 말이다. 앞으로 이 작가에게 “배꼽을 버리고자 하는(‘그림자 상자’)” 욕구가 앞설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운명론에 더 깊숙이 천착할 것인지, 우리는 이 작가를 계속 눈여겨 지켜볼 필요가 있다. ■ 당선 소감 하루 평균 서른 통 정도의 전화를 받고 또 그만큼의 전화를 하며 두 해를 보냈다. 맞춤법을 묻는 전화부터 부고를 알리는 전화까지. 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하며 또 누군가의 수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 역시 그리 다르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누군가의 호소에 응답하는, 그러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마음껏 공부할 수 없어 애태우던 나날들이었지만 헛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족함을 스스로 잘 알기에 당선은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응모한 글에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공이 아니라 주위 여러분들의 은덕이다. 국문과 은사님들과 조남현 지도 교수님,202호와 326호에서 동고동락했던 선후배 동료들, 이 분들께 더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다. 결점이 많은 글을 너그러이 감싸주신 김윤식 선생님과 정과리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결같이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언니, 동생, 오랜 벗들에게는 쑥스럽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고백하건대,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이제는 다른 길을, 그것도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쓸쓸하다. 그러나 약속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세상을 향한 내 새로운 수화기를 함부로 놓지 않겠노라고. 그것이 지금 주어진 이 지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인 것 같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약력 ▲1976년 대구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이번에도 평론의 기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이론에 대한 지식을 과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설익은 개념들이 횡행하면서 작품을 파괴하거나, 작품과 겉도는 독무를 추는 글이 적지 않았다. 이론이 문학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니 배울수록 좋다. 그러나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니 작품 분석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네 편이다. 김수영의 시를 다룬 정경은의 ‘생활의 뒤란, 시’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김수영의 시를 장식해가면서 시의 변주를 다룬 재미있는 글이다. 그러나 그 상상력이 김수영 시의 이해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장욱과 김행숙의 시를 다룬 송승환의 ‘청동 방패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은 동일성의 부정이라는 기본적인 전제 하에 새로운 시의 존재 가능성을 탐색한 글이다. 꼼꼼한 분석이 돋보이고 설득력도 있었다. 오랫동안 시를 써본 사람이라는 짐작이 간다. 다만 구도가 지나치게 단순한 게 흠이었다. 최윤의 세 장편을 분석한 허병식의 ‘진정성의 서사와 주체의 귀환’은 ‘기원의 부재’라는 현대 이론의 신화에 깊이 침윤된 글이다. 그래서 마치 소설이 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씌어진 것처럼 읽었다. 그것이 약점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주체의 귀환이라는 명제를 끌어낸 것은 글쓴이만의 독창적 사유의 결과이다. 전체적으로는 대상 작품에 들어맞았지만 세목들에서는 무리한 적용이 많았다. 천운영의 소설 세계를 해부한 차미령의 ‘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은 ‘등뼈’ 이미지를 천운영 소설의 핵심 징조로 보고 그것으로부터 소설의 무의식의 ‘작업’과 변주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파고든 글이다. 분석과 해석이 요령을 얻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기존의 상식적인 해석을 뛰어넘으려는 패기가 돋보였다. 마무리를 서둘러 처리했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글 전체가 보여준 가능성은 그런 약점을 무시해도 좋게 하였다. 당선을 축하한다. 김윤식·정과리
  • [창업플러스] 창업&취업박람회 20일~22일까지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주최하고 노동부·서울시가 후원하는 ‘대한민국 창업& 취업박람회’가 오는 20∼22일 강남구 대치동 서울 무역전시장에서 열린다. 장기불황 탈출을 위한 창업 세미나 및 사업 설명회 등을 한다. 신청서 제출 및 문의는 한국노총 박람회사무국 홈페이지(www.expopia.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02)2649-1427.
  • [Anycall 프로농구] LG 11연패 탈출

    [Anycall 프로농구] LG 11연패 탈출

    LG가 드디어 연패 탈출에 성공했다.TG삼보는 2위 KTF와의 ‘맞수’ 대결에서 승리하며 선두 자리를 굳게 지켰다. LG는 2일 창원에서 열린 프로농구 04∼05시즌 경기에서 SBS를 90-86으로 누르고 11연패의 늪에서 빠져 나왔다.LG는 지난해 12월5일 SK전 이후 29일 만에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모두 삭발에 가깝게 머리를 깎고도 연패의 사슬을 끊지 못했던 LG는 초반까지만 해도 승리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번번이 리반운드를 빼앗겼고, 야투마저 난조를 보여 1쿼터를 25-31로 뒤졌다.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던 LG를 살려낸 것은 공교롭게도 연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던 데스몬드 페니가(29점). 황성인(14점)의 미들슛으로 41-41, 동점을 이룬 2쿼터 중반 페니가는 골밑 공격을 하다 얻은 자유투를 성공시켜 첫 역전을 이루더니 곧바로 호쾌한 덩크슛으로 팀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이후 LG는 페니가의 골밑 장악과 조우현(12)의 3점포가 고비마다 터지며 3쿼터까지 72-62로 점수를 벌린 뒤 4쿼터 조 번(32점)을 앞세운 SBS의 추격을 제럴드 허니컷(23점)이 잘 막아내며 승리를 지켰다. 1·2위간 접전이 벌어진 부산에서는 TG가 김주성(12점)-자밀 왓킨스(18점) ‘더블포스트’의 위용을 한껏 자랑하며 KTF를 74-66으로 꺾었다.19승9패가 된 TG는 이로써 공동 2위 KTF와 오리온스를 2게임 차로 따돌렸다. 주전 5명의 고른 활약으로 낙승을 기대했던 TG는 4쿼터 막판 애런 맥기(23점)에게 3개의 3점포를 잇달아 허용하며 64-67까지 쫓겼고, 김성현의 레이업슛을 막지 못해 1점차 위기로 몰렸다. 그러나 왓킨스의 팁인 성공으로 한숨을 돌린 TG는 처드니 그레이(20점)의 결정적인 가로채기와 김주성의 차분한 자유투 성공, 신기성의 쐐기포로 승리를 낚았다. 오리온스는 울산에서 모비스를 85-76으로 꺾고 4연승의 휘파람을 불었고, 전희철(28점)이 폭발한 SK는 잠실에서 서울라이벌 삼성을 97-89로 눌렀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본지 새 칼럼 ‘채무상담실’ 필자 김관기변호사

    “채무자에 대한 선입견과 개인파산·회생에 대한 오해에 맞서 빚탈출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개인파산·회생 전문가인 김관기 변호사는 지난달 31일 서울신문 2005년 새 연재 칼럼 ‘채무상담실’을 시작하는 각오를 이같이 밝혔다. 신용불량자가 370만명을 웃도는데도 개인파산·회생제를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로만 몰아가는 사회 풍조를 그는 늘 안타깝게 생각했다. “경제적 실패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설 길을 사회는 열어 줘야 합니다. 파산과 개인회생이 바로 이런 ‘사회안전망’이지요.” 1988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김 변호사는 6년 동안 판사로 재직하다 1997년 변호사로 개업했다.2000년 미국 버지니아 대학에서 파산법을 공부한 그는 2001년 8월 처음으로 개인파산 신청자를 만나면서 인생의 행로를 변경했다. 신청자는 97년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을 당하고 정육점을 운영하던 50대. 고기 한점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성실히 일했지만 주위에 대형할인매장이 들어서면서 빚더미에 올랐다. 카드로 월세를 메우다 ‘돌려막기’ 구렁에 빠져 카드빚만 7000만원이 넘었다. 그러나 법원은 돌려막기를 했다는 이유로 법원은 그의 빚을 일부만 탕감해 줬다.“대부분의 신용불량자가 열심히 일했는데도, 사회에서 도태된 이들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죠.” 그후 김 변호사는 개인파산 변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2003년 8월 개인파산상담카페(cafe.daum.net/CancelDebt)를 열고, 책 ‘늬들이 카드빚을 갚어?’‘개인파산의 이해’ 등을 잇따라 내놓았다. 또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근처에 개인채무자를 위한 모임공간도 마련했다. 부인 박찬희 변호사도 힘을 보탰다.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자살자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살인·강도·성폭력 등 강력범죄도 늘어만 갑니다. 이런 현상 뒤에는 항상 빚이 숨어 있어요. 한가하게 비난의 돌을 던질 때는 지났습니다. 하루 빨리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칼럼 ‘채무상담실’도 해결방안 중 하나라고 그는 믿는다. 사회적 금기로 여겼던 개인파산·회생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최초의 시도인 까닭이다. 그는 칼럼에서 채무자들이 보내온 사연을 소개하고 개인파산, 개인회생, 워크아웃, 배드뱅크 등 지원제도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또 파산·개인회생 등을 신청할 때 채무자가 경험하는 법적 문제도 도와줄 것이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의 파산법을 설명, 우리 법률도 채무자의 고통을 덜어 주는 방향으로 개정되도록 노력할 방침이다. 그는 “파산선고를 받았다는 이유로 고용을 거부하지 못하고, 파산을 신청한 시점부터 모든 빚독촉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법률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활에 지장없이 빚만 탕감하는 개인파산을 늘리면 ‘사기성 파산’도 생길 것이란 지적에 대해 김 변호사의 생각은 단호했다.“자동차 보험금을 노리고 거짓 사고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고 보험 자체를 없앨 수는 없지요. 사회 전체를 위해 몇몇 사기범이 양성되더라도 많은 채무자들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회 일원으로 회복하도록 돕는 제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내년상반기도 불황탈출 어렵다

    내년상반기도 불황탈출 어렵다

    소비와 건설경기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내년 상반기에도 경기침체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이 29일 발표한 ‘11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11월 생산은 수출호조에 힘입어 전년 동월보다 10.1% 늘었다. 이 때문에 현재 경기상태를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전월에 비해 0.1%포인트 오른 96.6을 기록해 8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다만 도소매 판매 부진과 건설경기 위축으로 앞으로의 경기전환 시기를 예측해 주는 선행지수가 전년 동월보다 0.3%포인트 하락,8개월째 감소세를 보였다. ●수출이 이끈 ‘착시’효과? 11월 산업활동 동향에서는 수출 증가폭이 두드러졌다.11월 수출은 전년 동월대비 21.9%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면서 산업생산도 지난 8월 이후 3개월 만에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였다. 통신기기와 정밀기기 등에 대한 투자가 늘면서 설비투자도 3.1% 늘었다. 반면 도소매 판매는 1.3% 줄어 5개월째 감소했다. 고소득층의 소비성향을 보여주는 백화점 판매는 10.5% 감소, 지난 3월부터 9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소비회복의 선행지표로 간주되는 내수용 소비재출하는 1.6% 줄어들어 22개월째 마이너스다. 앞으로의 건설경기를 예고하는 국내 건설수주는 10월에는 32.1% 증가했으나 11월에는 1.8% 감소세로 돌아섰다. 올들어 건설수주는 10월에만 서울 반포와 경기도 과천의 재건축 수요로 첫 증가세를 기록해 건설경기 위축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내년 상반기 회복 난망 수출과 소비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엷어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경제를 이끌어 왔던 수출마저 내년부터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향후 경기전환시기를 예측해 주는 경기선행지수가 8개월째 감소세를 보여 내년 상반기까지는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다만 현재의 경기를 나타내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전달보다 0.1포인트 상승,8개월 만에 오름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통계청 관계자는 “한달 움직임을 추세적인 변화로 보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시론] 배심원제도 虛와 實/션 헤이스 헌법재판소 연구관·코네티컷 로펌 변호사

    [시론] 배심원제도 虛와 實/션 헤이스 헌법재판소 연구관·코네티컷 로펌 변호사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는 최근 국민의 사법참여(배심·참심제)란 야심적이고 과감한 개혁안을 내놓았다. 국민 사법참여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세계 최초로 배심제를 채택한 미국 사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 헌법은 국민이 배심원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형사재판 배심원단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12명으로 구성된다. 피고에 대한 유죄 판결은 배심원 12명이 만장일치로 선고해야 가능하다. 배심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면 의견을 모을 때까지 토론해야 한다. 반대로 배심원단이 무죄라고 판단하면, 상급법원의 판단없이 무죄로 확정된다. 미국 배심제는 국민들이 정부의 손에 모든 권력을 맡긴다는 데에 반대하고 거부하면서 탄생했다. 연방 대법원 판사인 바이런 화이트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에 대한 전권을 판사 몇몇에게 부여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배심제는 시작됐다.”고 말했다. 또 유명한 법학자인 라이샌더 스푸너는 “배심원은 사건 진상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법이 추구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수많은 영웅들이 ‘잘못된’ 배심원의 결정으로 면죄부를 받았다. 법률적으론 유죄임에도 배심원이 그 적용 법률 자체가 정의롭지 못하다며 유죄 판결을 내리기를 거부한 것이다.1734년 뉴욕 식민법원은 영국 국왕을 비판하는 자료를 출판한 피터 젠거에게 분명 유죄였지만 무죄를 선고했다. 남북전쟁 이전, 미국에서는 탈출한 노예를 숨겨주는 것이 위법행위였음에도 수많은 북부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최근에도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거나, 징집을 거부한 사람들, 불법 망명자들을 숨겨준 시민들에 대한 무죄 판결이 계속됐다. 그러나 과거 반정부 활동을 하던 한국 학자들의 경우 투옥되거나 사형을 선고받았다. 배심제가 도입됐다면 이러한 권력의 남용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저명한 법학자인 프레드 스트로트벡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 아니라 다양성이라고 주장했다. 스트로트벡은 미국 판사들이 엘리트 교육과정을 거친 사회 지도층이기에 다양한 사회적 배경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다양한 출신으로 구성된 배심원단과 비교하면 진실규명 과정에서 부정확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말한다. 한국 판사들도 소수 특정 대학 출신으로 성년기 대부분을 서울 지역에서 보낸다. 이는 다양성을 저해하고, 때론 정확한 진상 규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배심원제가 사법부의 독립성을 저해할 수도 있다. 판사들은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결정을 내릴 때 심각한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연방법원 판사인 윌리엄 슈워저는 “판결로 인해 판사는 가끔 경력에 흠집을 입고, 가족까지도 고통받는다. 하지만 배심원단은 익명성을 보장받는데다 사건이 끝나면 대중의 눈에서 사라져 논쟁적인 사건을 결정하는 데 적합하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배심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에는 많은 비판이 제기돼 왔다. 배심원단이 법률적 지식이 부족해 어려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능력이 떨어질 것이란 지적이 대표적이다. 고비용과 비효율성도 문제로 꼽힌다. 사법제도 및 법률 교육 자체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과 배심원으로서의 공명정대한 태도도 필수적이다. 배심제에 대한 반대 의견은 찬성 논의만큼이나 타당하다. 따라서 한국사람들은 이같은 점들을 숙고하고 각자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션 헤이스 헌법재판소 연구관·코네티컷 로펌 변호사
  • 성매매 여성2명 아픔딛고 대학 수시합격

    “이제는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지난 18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탈(脫)성매매 여성 쉼터인 ‘휴먼케어센터’에서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센터 내 하성희(23·가명)씨와 성소영(28·가명)씨의 대학합격(수시전형)을 축하하기 위한 것. 내년 봄부터 하씨는 사회복지학을, 성씨는 미용학을 전공하는 ‘05학번 늦깎이 대학생’이 된다. 하씨는 4년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만 듣고 다방에 취직했다. 이후 여느 성매매여성처럼 빚이 눈덩이처럼 불었고, 결국 ‘성매매여성의 종착지’라는 섬으로 팔려갔다. 이후 손님들과 업주에게 매맞는 상황속에서 가까스로 탈출해 올초 쉼터에 입소했다. “처음에는 빚만 해결되면 빨리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쉼터 선생님의 잔소리도 귀찮았죠. 하지만 인근 사회복지관에서 치매 노인들에게 자원봉사를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몸이 불편한데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저와는 달랐으니까요.” 이후 하씨는 대학 입학을 결심했고, 쉼터 선생님들의 보살핌 속에서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시작했다. 앞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성매매여성들과 노인들을 위해 일하는 게 꿈이다. 성씨는 10여년전 가족과의 불화 속에서 가출한 뒤 업소를 전전하다가 올초 도망나왔다. 매일매일 업주와 손님에게 맞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여겼던 성씨는 쉼터에 들어와 ‘공부’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중졸 학력이 전부였던 성씨는 지난 8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11월 대입 원서를 넣었다. “업주와 혹시 마주치게 된다면, 주변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면 어쩌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죠. 그래도 지금까지 못해본 것들을 지금이라도 다 해볼거예요.”(성씨) “기나긴 세월동안 이런 생활을 몰랐던 게 한스러워요. 잡초같던 제 삶에 생기를 넣어준 분들께 보답하고 싶어요.”(하씨) 후원금 계좌번호는 외환은행 287-22-01062-2(예금주: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신자들과 부대끼던 본당시절 가장 행복”

    “사랑도 풋풋한 첫사랑이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사람들이 ‘성직생활 52년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물어오면 난 서슴없이 ‘가난한 신자들과 울고 웃었던 본당신부 시절’이라고 대답한다. 일선 본당신부 시절이라고 해봐야 안동본당과 김천본당을 합해 2년 반밖에 안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추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김수환(82) 추기경의 회고록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평화방송·평화신문 펴냄)가 나왔다. 김원철 평화신문 기자가 직접 김 추기경의 구술을 글로 정리했다. 책에는 가난한 옹기장수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1998년 서울대교구장직을 은퇴하고 혜화동 주교관에 머물기까지의 삶의 자취가 담겨 있다. 일본 상지대 유학 시절 한 평생 영적 스승으로 모시게 될 독일인 신부 게페르트를 만나고, 학병으로 끌려가 목숨 걸고 탈출을 감행하고, 신부가 되기 전 부산의 한 여인으로부터 청혼을 받고 갈등을 겪던 사연 등 비화도 공개돼 눈길을 끈다.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서부영화를 보면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잖아요.” 1980년 정월 초하루, 김 추기경은 새해 인사차 방문한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에게 쓴소리를 했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12·12 사태에 대한 이해를 구하러 온 모양인데 추기경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책은 1972년 서울대교구에서 발행하던 월간지 ‘창조’에 김지하의 장편 풍자시 ‘비어(蜚語)’가 실리는 바람에 홍역을 치렀던 사건,“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지나가시오.”라며 군사정권의 폭압에 맞섰던 일 등 70∼80년대 민주화 이야기도 담담하게 들려준다. 김 추기경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제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느 정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삶은 어느 날 이승의 생을 마감하고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온전히 드러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소록도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소록도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한센인(한센병 환자와 병력자) 700여명이 모여 사는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1리 소록도. 일본 변호사 65명과 한국 변호사 37명이 일제강점기 때 강제 수용돼 노역에 시달린 이곳 할아버지, 할머니 117명을 대리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1년 특별법을 제정, 강제 수용됐던 일본 한센인에게 1인당 800만∼1400만엔씩 보상했지만, 소록도 주민은 내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한·일 변호사들은 지난 8월 일본 정부의 결정에 불복, 보상청구소송을 냈다.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재판과정을 보고하러 가는 변호사들을 동행, 취재했다. ■ 日정부상대 소송 소록도 르포 #1. 할머니와 손녀의 상봉 지난 11일 오후 2시. 전남 고흥군 소록도 중앙리 강당을 가득 메운 할아버지, 할머니 50여명이 한국과 일본의 변호사들을 반갑게 맞았다. 한센병을 앓았던 노인들은 불편한 몸으로 휠체어를 타거나 비스듬하게 바닥에 앉아 있었다. 일본에서 온 여변호사들이 손가락이 뭉개진 할머니 손을 다정히 잡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서툰 한국어로 안부를 묻는다. 일그러진 얼굴로 눈을 꼭 감은 할아버지를 포옹하기도 했다. 미소를 머금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오랜만에 손녀딸이라도 만난 듯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이날 일본 변호사 5명과 한국 변호사 15명이 보고대회에 참석했다.10차례가 넘게 이곳을 방문한 사람도 있었다. 대한변호사협회 박영립 인권이사가 “첫 재판(10월25일) 때 장기진(84), 강석우(80) 할아버지가 증언했는데 17일 2차 재판 때 김일임(71·가명) 할머니가 증인으로 나선다.”고 말하자 노인들은 투박한 손으로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2. 피와 눈물로 얼룩진 ‘소록도’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6시간을 달리면 전남 고흥군 녹동항에 도착한다.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을 닮았다는 소록도(小鹿島)는 선착장에서 돌을 던져도 닿을 듯 가까이 보인다. 선착장과 소록도 사이 거리는 겨우 600m. 섬은 가운데 자리잡은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관광객이 북적이는 해수욕장, 왼쪽은 출입이 제한된 한센인 거주지역으로 나뉜다. 김명호(55) 자치회장은 “일제강점기 때 6000여명이 거주하던 섬에는 이제 ‘한센인’ 702명만이 남았다. 평균 연령은 78세이고 한해 노환으로 사망하는 분만 50∼6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1936년에 착공돼 3년4개월만에 완공된 중앙공원은 한센인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졌다. 한센인 6만여명이 강제 동원돼 산림을 베어내고,6000여평의 대지를 조성했다. 암석은 완도 등에서 채취, 운반해 왔다. 나무는 일본과 타이완에서 들여왔다. 장기진 할아버지는 “몇 척의 배를 연결해 뭍에서 섬까지 다리를 만들었어. 우리는 목도라는 장대에 길이 2∼3m, 폭 1∼1.5m짜리 돌 수십개를 매달아 옮겼지. 언덕 위를 오르다 쓰러지면 돌 위에 앉은 일본인이 몽둥이로 마구 때렸어.”라고 회상했다. 중앙공원 한쪽에 자리잡은 붉은 벽돌집도 ‘고통의 역사’를 안고 있다. 시체해부실, 감금실, 단종대(斷種臺·남성불임수술대)…. 김 자치회장은 “일제 때 한센인은 다섯 차례 ‘죽음’을 맞이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가족과 생이별하며 호적에서 파내져 한번, 자녀를 낳지 못하도록 단종수술 받으며 또 한번, 목숨이 끊어져 한번, 그 시체를 해부해 또다시 한번, 불에 태워 화장하며 마지막으로 죽는다는 것이다. 감금실은 일제 때 노역을 하지 않거나, 소록도를 탈출하다 잡힌 한센인들이 7∼60일씩 갇혔던 곳이다. 실컷 매를 맞은 뒤 감금되면 음식도 없이 추위를 견뎌야 했다. 결혼을 하려면 단종수술을 해야 하는 규정은 2002년 10월24일 국립소록도병원 운영규칙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유지됐다. #3. 오늘도 고통은 계속된다 한·일 변호사들은 진술서를 작성하기 위해 노인들이 살고 있는 집을 방문, 강제 격리된 상황과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했다. 권모(77) 할아버지는 1943년,16살 때 3살 많은 누나와 소록도로 들어왔다고 했다. 경북 안동에 살던 남매는 “소록도에 가면 6개월만에 나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일본 순사의 말을 믿고 따라나섰다. 그러나 소록도는 치료는커녕 좁은 방에 10명씩 몰아넣어 강제노역을 시키는 ‘지옥’이었다. 가마니를 짜고, 벽돌을 굽고, 토끼가죽을 만들었다. 당시 한센인들은 한 해 벽돌 140만장, 가마니 30만장, 토끼가죽 1500장을 생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배고픔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 동상과 고된 노동으로 멀쩡하던 손과 발은 상처투성이로 변해갔지. 그리고 손목, 발목이 절단되더라고….”권 할아버지의 한숨이 이어진다. 1945년 광복 후 강제노역은 사라졌다. 그러나 강제격리 정책은 66년 말까지 계속됐다.92년에야 소록도에 노령수당이 지급됐고, 이듬해 의료보험 대상자로 선정됐다. 장애인 등록은 94년 9월에 가능해졌다.4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생활하는 소록도 노인들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서 의식주를 해결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이들의 생활비는 노령수당 3만∼5만원이 전부다. 한센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애달픈 사연을 변호사들은 한글과 일본어로 옮겼다. 이 진술서는 일본에서 진행 중인 보상청구 소송에 주요 자료로 일본재판소에 제출될 것이다. 12일 오후 변호사들은 노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뭍으로 향했다.“고마우이.” 뭉툭한 손으로 등을 쓰다듬던 할머니를 향해 한 여변호사가 돌아섰다. 그는 차별, 편견과 싸우느라 가냘퍼진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안았다.“우리는 하나인 걸요.” 소록도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소송 앞장 日변호사 구니무네 “인권을 침해당한 한국인도 일본인과 동등하게 보상받아야 합니다.” 일본인 구니무네 나오코(國宗直子·49) 변호사는 2002년 3월부터 소록도 한센인 소송에 앞장서고 있다. 소록도변호단의 일본측 사무국장을 맡으며 14차례 방문했다.12일 한센인 117명에게 받은 진술서를 마무리하던 그를 만났다. 구마모토 출신의 구니무네 변호사가 소록도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다키오 에이지(73) 때문이다. 일본 근대사를 전공한 다키오씨는 구니무네 변호사가 1998년 일본 한센인들을 대리해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 승소하자 소록도 얘기를 들려줬다. 1907년 ‘나병예방법’을 제정한 일본은 1996년, 법이 폐지될 때까지 90년 가까이 한센인을 요양소에 강제 격리시켰다. 구니무네 변호사를 비롯한 일본 변호사 200여명은 ‘한센병 예방법 위헌 국가배상 변호단’을 구성, 소송을 냈고 2001년 5월 승소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항소를 포기, 한센병 환자 보상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구니무네 변호사는 “일제강점기 때 한국과 타이완에서도 한센인 강제격리정책이 펼쳐졌다는 얘길 접하고 바로 소록도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국적과 관계없이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일본인들에게 많은 고통을 받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를 반갑게 맞을 때 눈물나도록 고마웠다.”고 털어놨다. 일본 한센인들이 보상금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 소송비용을 내고 있다고 전했다. 언어 장벽 탓에 소록도 노인들의 진술서를 받는 게 쉽지 않던 구니무네 변호사는 한국 변호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우리 일을 대신해줘서 고맙다.”며 발벗고 나섰다. 한·일 변호사 102명은 지난 8월 도쿄 지법에 보상청구소송을 냈고, 지난 10월25일에 이어 17일 열리는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구니무네 변호사는 “일본 한센인들은 요양소에서 의식주 해결은 물론 매월 8만 5000엔(약 85만원)씩 받아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한국 한센인들의 생활 여건은 너무나 열악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한센인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려면 일본 정부에 앞서 한국인들의 편견과 오해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타이완 한센인 격리지역인 낙생원의 일본 정부 상대 소송도 돕고 있다. 소록도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한센병에 대한 몇가지 오해 한센인에 대한 두려움과 차별은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가톨릭의대 채규태 교수는 지적한다. 그는 한센병은 하늘이 내리는 형벌(天刑)도, 전염성이 강해 격리가 필요한 난치병도 아니라고 말한다. 한센병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풀어본다. ●한센병은 전염성이 강하다 한센병은 전염병예방법상 가장 낮은 단계인 3군 전염병이다. 결핵의 전염력이 한센병의 2000배를 웃돌 정도다. 특히 일반인은 95% 이상 한센병에 대한 자연 항체를 갖고 있다. 또 리팜피신이란 치료제를 단 1차례 4알(600㎎)만 복용해도 나균의 99.9%는 전염력을 상실한다. 신체는 물론 성접촉, 임신을 통해서도 감염되지 않는다. ●치료하려면 격리조치가 필요하다 1980년대 치료제 리팜피신이 발견되면서 한센병은 통원치료를 받는 병으로 바뀌었다. 전염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손가락·발가락 등 일부 신체기관의 변형으로 수술이 불가피하면 입원하지만, 장기간 격리는 필요치 않다. ●한센병은 난치병이다 한센병은 약물 복용으로 1∼2년이면 완치된다. 예전엔 치료시기를 놓쳐 변형된 손·발로 살아가는 한센인이 많았지만, 최근 발병한 환자들은 피부 반점 정도만 남는다. 치료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몸속 나균은 전염력을 잃는다. ●한센병은 유전된다 1973년 대한나협회가 조사한 결과, 전국 88개 정착촌에 살고 있는 2세 4157명 가운데 한센병에 감염된 2세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가족 가운데 한센인이 있다 해도 감염은 240만명에 한 명 꼴로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고 의학계는 분석하고 있다. ●새로운 한센병 환자가 많다 2004년 1월 현재 한센인은 1만 6801명이다. 대부분 치료가 끝난 사람들이다. 새로운 환자는 해마다 20여명에 불과하다. 소록도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Anycall프로농구] 오리온스 “TG 그만 튀지”

    40분간의 혈투를 끝내는 휘슬이 울리자 오리온스 선수들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 환호했다. 손색없는 우승후보 오리온스가 지난 1년10개월 동안 단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TG삼보에 마침내 승리를 거두며 천적관계를 청산하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오리온스는 12일 대구에서 열린 프로농구 04∼05시즌 경기에서 ‘식스맨’ 이은호(14점 7리바운드)의 깜짝 활약과 네이트 존슨(34점 11리바운드)의 내외곽을 넘나드는 야투로 TG를 89-81로 이겼다. 지난 시즌 6전 전패에 이어 올 시즌에도 2번 모두 패했던 오리온스는 천금 같은 승리로 마침내 ‘TG 징크스’에서 탈피했다. 오리온스를 영원한 ‘희생양’으로 만들려는 TG와 지긋지긋한 ‘먹이사슬’을 끊으려는 오리온스. 두 팀의 대결은 처음부터 불꽃을 튀겼다.TG의 김주성(24점)과 자밀 왓킨스(13점)가 이루는 ‘트윈타워’는 고공 폭격을 계속했고, 존슨-로버트 잭슨(18점)의 오리온스 ‘용병듀오’는 중거리슛으로 맞불을 놓았다. 그러나 오리온스에는 ‘히든카드’ 이은호가 있었다. 높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베스트5’로 전격 투입된 이은호는 1쿼터 3점슛 2개와 골밑슛을 잇따라 터뜨리며 31-23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이후에도 골밑에서 김주성을 꽁꽁 묶었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중거리슛과 결정적인 리바운드를 따냈다. 오리온스는 4쿼터 초반 양경민에게 3점포 2개를 얻어맞아 71-73으로 역전당했지만 존슨이 곧바로 2개의 3점포를 작렬시키며 78-73으로 재역전, 승리를 굳혔다. 이날 모비스도 귀중한 승리를 낚았다. 모비스는 부산에서 KTF를 연장접전 끝에 91-86으로 물리치고 기아 시절이던 99∼00시즌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4연승을 기록하며, 단독 4위로 올라섰다. 삼성은 서울에서 KCC를 81-73으로 누르고 3연패에서 탈출했고,SBS는 전자랜드를 78-73으로 이기며 4연패를 끊었다.SK도 LG를 99-95로 꺾고 3연패 뒤 1승을 챙겼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심층진단-한국 점령한 외국자본] 외국자본 “高배당 or 경영권” 조폭식 위협

    [심층진단-한국 점령한 외국자본] 외국자본 “高배당 or 경영권” 조폭식 위협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해외자본은 우리경제를 수렁에서 건져낼 구원의 빛이었다. 실제로 물밀듯 들어온 해외자본은 우리나라가 위기에서 탈출하는 데 큰 보탬이 됐다. 하지만 토종기업에 대한 경영권 위협, 상식을 뛰어넘는 고배당 요구, 유상감자 같은 변칙적인 자본회수 등 부작용이 잇따르는 지금, 해외자본을 곱게만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을 점령하다시피한 외국자본의 실태와 문제점, 대책 등을 심층진단한다. “공사(한국담배인삼공사) 시절이 차라리 나았던 것 같다. 자사주 매입, 신규투자 등 돈 들어갈 데는 많은데 터무니없는 고배당, 주가를 높이기 위한 자사주 완전소각 요구 등 외국인들이 이 정도로 나올 줄은 몰랐다. 말을 안 들으면 경영권을 빼앗겠다고 하니 참….”(KT&G 관계자) 국내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경영권 위협과 간섭은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재벌이건 개별기업이건 자신들의 투자이익을 극대화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공격에 나선다. 영국 소버린자산운용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SK㈜의 경우,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던 올 3월 주총보다 내년 3월 주총이 더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는 외국인 지분율이 44%였지만 내년에는 60%가 넘을 전망. 반면 국내 최대주주의 지분은 불과 17%선에 그친다. 내년 정기주총을 위한 주주명부 확정일이 이달 29일로, 불과 20일밖에 남지 않아 상황역전은 불가능하다.SK㈜ 관계자는 “SK그룹 지주회사인 SK㈜의 경영권이 소버린에 넘어갈 경우 그룹 해체가 불가피해 군소 계열사는 물론 SK텔레콤 같은 우량회사까지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해운은 지난 7월 이후 노르웨이 해운사인 골라LNG가 지분을 30.56%로 늘리면서 직접적으로 경영권 위협을 받고 있다. 현대상선도 골라LNG를 비롯한 북유럽계 지분이 최근 15%를 넘었다. 미국 자산운용사인 캐피털그룹은 최근 현대자동차 지분을 14.61%로 확대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캐피털측은 ‘단순 투자’라고 하지만 ‘제2의 소버린’이 안 된다는 보장이 없다.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우량기업들은 어디건 홍역을 치른다. 삼성전자는 사외이사 추천권 요구, 본사 미국 이전 등을 외국인들로부터 요구받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7년간 외국인들은 국내 알짜기업의 주식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97년 11월 외환위기 직전 13.7%에 불과했던 SK㈜의 외국인 지분율은 현재 61%로 5배에 육박한다. 포스코도 21%에서 69%가 됐고, 현대차는 24%에서 56%, 삼성전자는 24%에서 55%로 외국인지분이 과반이 됐다. 올 9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외국인 주식보유 비율은 43.2%로 헝가리(72.6%)와 핀란드(55.7%) 멕시코(46.4%)에 이어 세계 4위, 아시아 1위. 미국(10.3%), 독일(15.0%), 일본(17.7%)은 물론 타이완(23.1%)보다도 높다. 외국인들의 경영권 위협에 맞서 국내기업들이 쓸 수 있는 방어책은 지분매입이나 우호세력 확보 정도밖에 없다. 때문에 기업들은 ‘실탄’ 확보를 위해 현금보유를 사상 최고 수준으로 높이고 있다. 올 3분기 말 국내 10대 그룹의 유보율은 593.9%로 지난해 말(505.4%)보다 88.5%포인트나 뛰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보율이 높다는 것은 기업이 현금성 자산을 많이 갖고 있다는 얘기다. 또 2001년 말 8조 2000억원이었던 상장기업의 자사주 보유총액은 올 상반기 19조원을 넘어 2년 6개월 만에 배 이상이 됐다. 경영권 방어와 주가관리에 그만큼 돈을 쏟아부었다는 얘기다.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전자도 올 상반기에 자사주를 1조 9700억원어치 사들이고 중간 배당금으로 7643억원을 지급했다. 순이익(6조 2719억원)의 43.6%. 뒤집어 말하면 미래성장을 위한 에너지가 그만큼 잠식됐다는 뜻이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돈 빼가기 실태 삼성물산의 3대 주주였던 영국계 펀드 헤르메스는 지난 1일 “삼성물산의 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펀드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헤르메스는 불과 1주일 만인 8일 삼성물산 보통주 5%를 전량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인수합병 가능성을 흘려 주가를 띄웠다는 의혹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 실제로 ‘인수합병 협박’ 이후 사흘간 삼성물산 우선주는 43%나 뛰어 헤르메스는 300억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조지 소로스의 퀀텀인터내셔널펀드가 대주주(25.68%)인 서울증권은 2001년 액면가(2500원)의 60%인 주당 1500원을 배당했다. 총 배당액은 801억원으로 소로스는 276억원을 고스란히 챙겼다. 하지만 그해 서울증권의 당기순이익은 471억원에 불과했다.2002년에는 주당 140원 배당을 해 소로스가 20억원을 받아갔다. 서울증권은 지난 9월에는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서울 여의도 사옥을 947억원에 팔았다. 영국계 자본 BIH펀드에 인수된 브릿지증권은 지난 6월 전체 주식의 67.63%를 주당 1000원에 유상감자해 자본금을 2296억원에서 796억원으로 줄였다. 줄어든 자본금 중 1350억원이 BIH에 돌아갔다. 앞서 1999년 5월 주당 60%의 고배당을 했고 지난해에는 주당 1000원의 유상감자를 실시했다.BIH는 브릿지증권의 여의도와 을지로 사옥도 매각했다. 대규모 명예퇴직을 실시해 직원을 절반으로 줄였다. 홍콩 소재 외국계 투자회사인 파마펀드가 대주주인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주당 700원씩 총 235억원을 배당했다. 메리츠증권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고작 113억원밖에 안 됐다. 증권노조 관계자는 “외국계 펀드들이 국내에 들여온 것은 선진 경영기법이나 자산관리 노하우가 아닌 변칙적인 자산 빼돌리기 수법이었다.”고 비판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어쩌다 이렇게 됐나 영국 소버린자산운용이 자산 40조원의 국내 4위 재벌 SK를 흔들게 되기까지 들인 돈은 고작 1768억원. 지난해 3∼4월 이 돈으로 SK의 지주회사인 SK㈜ 지분 14.99%를 사들였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외부공격에 얼마나 취약한 지 잘 보여준다. 외국인들의 대규모 국내투자가 시작된 계기는 1997년 말 외환위기. 96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이후 서서히 완화되던 자본시장의 빗장이 외환보유고가 39억달러까지 추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2000원에 육박하는 초유의 상황이 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풀려나갔다.98년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을 포함한 자본시장이 완전히 개방됐고, 외국인의 금융기관 소유와 적대적 인수·합병(M&A)도 허용됐다. 2001년에는 국내기업의 해외차입, 증여성 송금 등 외국인의 대외자본거래가 전면 자유화됐다. 이를 계기로 국내기업의 외자유치 방식은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는 ‘대출(貸出)자본’에서 주식을 넘겨주는 ‘주주자본’으로 방향을 틀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미국에서조차 허용되지 않는 과도한 개방이 국제 금융자본의 구미에만 맞춰져 안전장치 없이 이뤄졌다고 비판한다. 그동안 우리가 외국에서 받아들인 것이 한마디로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 ‘미국 월가(街)의 스탠더드’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대주주의 기업 경영권 보호에 관대한 유럽은 물론 주주 이익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다양한 경영권 방어제도가 마련돼 있다. 미국에서는 전체 상장회사의 8.3%가 차등의결권제도를 두고 있다. 자동차회사인 포드의 대주주인 포드 가문은 단 7%의 지분으로 40%에 상당하는 의결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차등의결권은 법 위반이다. 외환위기 이후 대거 들어온 미국계 컨설팅사들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주장도 많다. 굴지의 외국계 컨설팅사에 있었던 현직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미국 컨설팅사들에 대한 국내 기업의 의존도가 높아졌지만 이들은 월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경영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삼성이 국내 최대 기업집단이 된 것은 그들의 논리에 넘어가지 않고 독자적인 경영방식을 고수했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찬근(인천대 교수)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는 “우리는 해외컨설팅사와 언론의 지적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어차피 그들도 국제 금융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독일월드컵’ 南·北 함께가자

    중동의 ‘모래바람’을 넘어라. 한국이 9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2006독일월드컵 최종예선 조추첨에서 중동의 강호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과 함께 A조에 들어갔다. 북한은 일본, 바레인, 이란과 함께 B조에 속해 12년만의 남북대결은 불발됐다. 최종예선은 A,B 두 개조에 네 팀씩 편성돼 홈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지며, 각조 1·2위는 독일로 직행한다. 조 3위 두 팀은 플레이오프를 치러 승자가 북중미·카리브해 지역 예선 4위팀과 본선티켓을 놓고 단판승부를 벌인다. 한국은 설날인 내년 2월9일 오후 8시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4번 시드의 쿠웨이트와 예선 1차전을 갖는다.4번 시드의 북한은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할 가능성이 50%나 됐지만 조가 갈리는 바람에 남북대결은 무산됐다. 이에 앞서 북한측은 이날 조추첨을 주관한 아시아축구연맹(AFC)측에 “남북대결을 피해 한국과 다른 조에 편성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AFC는 이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한국대표팀 감독은 “사우디아라비아는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신장이 좋고, 우즈베키스탄은 짧은 패스가 좋고 팀워크도 상당하다.”면서 “쿠웨이트도 허를 찌르는 플레이가 뛰어난 만큼 만만히 볼 팀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최대의 ‘난적’ 이란을 피한 것은 다행이지만, 기후와 시차적응을 해야 하는 중동에서의 원정경기가 부담이 될 것으로 우려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쿠웨이트 최종예선에 불어닥칠 모래폭풍 가운데 등급이 떨어지는 팀으로 분류되지만 유독 한국에는 천적이다. 역대전적에서 6승3무8패로 뒤졌다. 다행인 것은 지난 여름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4-0으로 승리, 지긋지긋한 쿠웨이트 징크스에서 탈출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것. 지난 2차예선에서는 ‘만리장성’ 중국을 다득점에서 1차로 따돌리고 극적으로 최종예선 8강에 합류했다. 측면 공격수 바샤르 압둘라(27)가 공격의 키를 쥐고 있지만 젊은 미드필더진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아라비아 FIFA랭킹 30위로 같은 2번 시드의 이란보다 중량감이 떨어지지만 역시 만만하게 볼 수는 없다. 역대 전적에서도 3승5무3패로 팽팽하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2무1패로 열세. 이란과 함께 중동 축구를 대표하는 사우디는 최근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등 주춤거렸지만 2차예선에서는 14골을 넣은 반면 1골만 허용할 정도로 탄탄한 전력을 보였다. 최종예선을 앞두고 아르헨티나 대표팀 출신 가브리엘 칼데론을 사령탑으로 영입, 담금질을 하고 있다.2002한·일월드컵에서도 나왔고, 왼발 슈팅이 일품인 공격수 타랄 알 메샬(26)이 주의 대상. ●우즈베키스탄 역대 전적에서 2승1패로 한국이 앞섰다. 97년 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만나 5-1로 이긴 것이 가장 최근 성적이지만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당시 80∼90권을 맴돌던 FIFA 랭킹을 51위까지 끌어올리며 업그레이드했기 때문. 상승세의 이라크 축구를 잡고,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2차예선에서 16골을 터뜨렸지만 득점이 한 선수에게 집중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 넓은 시야와 빠른 패스를 통해 공·수를 조율하는 미르디야랄 카시모프(34)가 돋보인다.2차예선 4골로 팀내 최다 득점을 기록할 만큼 득점력도 있다.
  • 한국문학전집/문학과지성사 펴냄

    한국 근현대문학의 명작들을 선별한 ‘한국문학전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전집 1차분은 김동인의 ‘감자’, 최서해의 ‘탈출기’, 염상섭의 ‘삼대’,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 최명익의 ‘비 오는 길’, 김정한의 ‘사하촌’, 김동리의 ‘무녀도’, 황순원의 ‘독짓는 늙은이’ 등 단편과 장편소설 8권으로 구성됐다. 하근찬 강신재 등 1950∼60년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50여명의 대표작들이 두 달에 5권꼴로 엮여 나올 전집에는 특징이 있다. 교과서에 실린 작품 말고는 거의 읽지 않는 한국 대표문학들을 중ㆍ고교생과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문고판에 가까운 판형으로 만들었다는 것. 기존 문학전집에서 소홀히 다뤄진 최명익 등의 작품을 포함시킨 것도 특기할 만하다. 숙명여대 최시한, 홍익대 정호웅, 연세대 신형기, 성신여대 강진호, 서울시립대 이동하 교수 등 작가별 전공자들이 책임편집을 맡아 작품해설과 주석을 곁들였다. 이광수 염상섭 등 주요작가들의 작품은 5권 이상 출간하고, 그들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발굴해 대표작과 함께 실을 예정. 문학과지성사는 ‘여성작가선’‘단편문학선’ 등 한국 근현대문학 전집시리즈를 잇달아 낼 계획이다. 각권 9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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