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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2) 모문룡의 작폐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32) 모문룡의 작폐 Ⅱ

    인조반정 이후 조선 조정이 모문룡을 ‘은인’으로 여겨 송덕비까지 세우게 되자 모문룡은 기고만장했다. 그는 조선에 군량을 비롯하여 전마(戰馬), 조총, 병선 등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더 큰 문제는 그 휘하의 장졸(모병:毛兵)과 요민들이 끼치는 민폐였다. 모병과 요민들은 청북으로 밀려들었고, 후금을 자극했다.1627년의 정묘호란은 그 같은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밀려드는 遼民과 毛兵들 조선 조정은 모문룡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두 가지 난제에 직면했다. 하나는 모문룡의 진영에 막대한 양의 군량을 보내주어야 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시로 조선으로 들이닥쳤던 모문룡 휘하의 명군과 요민들에게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모문룡은 수시로 차관을 서울로 보내 양곡을 공급하라고 요구했다. 인조반정 직후 조선 조정은 그의 요구를 거의 들어주었다. 책봉 과정에서 모문룡의 ‘은혜’를 입었던 데다 그가 내세운 ‘요동 수복’이라는 슬로건에 공감했기 때문이다.1623년에만 6만석 이상의 양곡이 가도로 운반되었다. 조선을 길들여 모문룡을 지원하는 배후기지로 삼으려 했던 명 조정의 계산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당시 요동의 한인들은 계속 가도로 몰려들었고, 그곳에서 식량을 구하지 못하면 철산 등지로 상륙했다.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 청북 지방의 방어가 허술해지자 요민들의 유입은 극에 이르렀다. 요민들 가운데는 가재도구나 청람포(靑藍布) 등을 가져와 조선 사람들과 식량으로 바꾸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빈 손으로 무작정 몰려왔다. 조선은 후금을 탈출해온 요민들을 가달(假 )이라 불렀다.‘가짜 달자( 子-오랑캐)’를 줄인 말로 한족 가운데 후금에 귀순하거나 포로로 잡혀가 머리를 깎인 사람들을 가리킨다. 고향을 떠나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그들은 거칠고 난폭했다. 1624년 3월 의주부윤(義州府尹) 유비(柳斐)의 보고 내용은 끔찍했다. 당시 날마다 수많은 가달들이 청북 지역으로 밀려들었다. 그들은 수십명씩 떼를 지어 들녘에 흩어져 봄갈이 한 곡식과 보리 싹을 죄다 캐 먹었다. 마을로 들이닥쳐서는 약탈하거나 밥을 지어달라고 떼를 썼다. 어느 가난한 백성이 음식을 내어주지 못하자 그들은 가달의 시체를 가져다가 그 집에 내팽개쳤다. 그러고는 ‘조선인들이 그를 때려죽였다.’고 한 뒤 온 마을 사람을 죄다 묶어놓은 뒤 재물을 빼앗아 갔다. 유비는 심지어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으면 서로 뜯어먹는다.’는 내용도 보고했다. 철산, 가산, 선천, 정주, 곽산 등 청북 지역은 몸살을 앓았다. 가달뿐 아니라 가도에서 상륙한 모문룡 휘하의 장졸들이 끼치는 민폐도 심각했다.1625년 2월, 모병들의 작폐를 참다 못한 의주부윤 이완(李莞)은 실력 행사에 나섰다. 그는 난동을 피운 모문룡의 부하 주발시(朱發時) 등을 붙잡아다가 곤장을 쳤다. 모문룡의 부하들은 ‘이완이 상국인을 몰라보고 재조지은을 배신했다.’며 그를 잡아가야 한다고 아우성을 쳤다. 조선 조정은 결국 이완의 직급을 한 단계 강등하는 조처를 취했다. ●모문룡의 불장난 모병들은 때로는 청북 지역을 벗어나 함경도 지방까지 몰려들었다.1623년 4월 모문룡은 조선 조정에 사람을 보내 ‘회령(會寧)을 경유하여 오랑캐 지역으로 원정할 것’이라며 군량을 제공해줄 것과 길 안내를 위한 향도(嚮導)를 붙여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회령 너머 두만강 건너편의 여진 부락들은 거의 비어 있었다. 일찍이 누르하치가 조선과의 접경에 살던 여진인들을 포섭하여 내지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두만강을 건너 며칠 동안 깊숙이 들어가야만 여진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문룡이 그럼에도 원정 운운했던 것은 진짜 후금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제스처’이자 ‘쇼’였다. 당시 명 조정에서 조선으로 사신이 올 것이라고 예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문룡은, 가도에 들를 사신 일행에게 자신이 가만히 앉아 군량만 축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후금 원정’을 내세워 조선으로부터 군량 등을 얻어내려는 목적도 있었다. 조선 조정은 고민에 빠졌다. 당시 함경도 지역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어 모병들을 접대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행군하는 도중에 민폐를 자행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장만(張晩) 등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의 함경도 행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의 우려에 귀 기울일 그들이 아니었다.4월16일, 이미 모병들이 함흥까지 들어왔다는 보고가 올라왔다.5월15일에는 군량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함경도 수령들을 포박하고 구타까지 자행하고 있다는 소식도 날아들었다. 수령들은 그들의 협박에 못 이겨 민간에서 곡물을 징색하고, 승사(僧舍)까지 뒤지는 형편이었다. 조선 조정의 예상대로 모병들은 후금 지역으로 원정은커녕 함경도 각지에서 노략질만 자행했다. 그들이 왕래했던 행군로 주변에 거주하는 조선 백성들은 민폐 때문에 몸서리를 쳤다. 모문룡 휘하들이 보였던 이 같은 행태는 1637년 가도가 청군에게 함락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들은 ‘오랑캐 지역 정탐’ 등을 내세워 수시로 압록강을 건너 후금의 점령 지역까지 출몰했고, 그곳에 살던 요민들을 불러모았다. 더욱이 청북의 곳곳에는 모문룡이 설치한 둔전까지 널려 있었기 때문에 요민들은 계속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조정은 후금의 보복을 우려했지만 모문룡을 견제할 이렇다 할 방도가 없었다. ●‘해외천자(海外天子)’의 사기 행각 모문룡은 ‘요동 수복’을 표방했지만 사실 그는 그럴 능력이나 의지가 없었다. 그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후금으로 하여금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산해관(山海關)의 울타리’ 역할을 할 뿐이었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 모문룡은 그저 ‘군량을 축내는 존재’,‘밀수 왕초’로 변해갔다. 가도는 척박한 섬이었지만 해상 교통의 요충이었다. 해마다 봄철이 되면 산동(山東), 절강(浙江) 등지에서 상선들이 몰려들었다. 해로는 험난했지만 명 조정이나 조선 조정의 감시가 제대로 미치지 않는 곳에서 벌이는 밀무역의 이익이 짭짤했기 때문이다. 조선 상인들은 가도에서 은과 인삼으로 비단과 생사(生絲), 청람포 등 중국 물화를 구입했다. 조선 상인들은 그것을 후금 상인들에게 넘기거나, 부산의 왜관으로 가져가 일본 상인들에게 전매하여 이득을 챙겼다. 한족 상인들과 후금과의 사이에 밀무역이 벌어지기도 했다. 모문룡은 가도에 세관(稅關)을 설치하여 왕래하는 상인들로부터 통행세를 징수했다. 때로는 그 자신이 직접 무역을 벌였다. 모문룡의 창고에는 은을 비롯하여 중국의 비단과 직물, 조선 인삼, 후금의 모피 등 온갖 물화들로 넘쳐났다.1624년 3월, 모문룡은 사람을 보내 이괄의 반란이 평정된 것을 축하했다. 그런데 그가 인조에게 보낸 예물 가운데는 춘의(春意)라 불리는 여인의 나체상도 있었다. 조선은 그것을 도로 반송했지만 당시 가도로 온갖 물건들이 유입되고 있었던 실상을 보여준다. 모문룡은 때마다 환관 위충현(魏忠賢)에게 두둑한 뇌물을 보냈다. 천계(天啓) 연간 명의 실권자나 마찬가지였던 위충현은 그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었다. 기록에 따르면 ‘모문룡은 한 번에 오륙십 가지로 차려진 성찬(盛饌)을 들고, 식사 때마다 여덟 아홉 명의 미희(美姬)들로부터 시중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바다 밖의 천자(海外天子)’였다. 명 조정의 감시에서 벗어나 있었고, 수군을 갖추지 못한 후금의 위협으로부터도 안전했다. 더욱이 조선은 그를 ‘은인’으로 섬기고 있었으니 그의 ‘현실 안주’는 어쩌면 당연했다. 모문룡은 노회한 인물이었다. 평소 안락을 즐기다가도 명 조정으로부터 ‘모문룡을 감사(監査)해야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움직였다. 조선 땅에 상륙하여 후금을 공격하는 시늉을 했다. 그 과정에서 조선에 민폐를 끼쳤고, 궁극에는 후금을 자극했다. 정묘호란 직전, 모문룡은 분명 후금의 침략을 불러들이는 ‘인계철선’이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몸짱천국 뱃살지옥, 몸매UCC

    몸짱천국 뱃살지옥, 몸매UCC

    몸짱천국 뱃살지옥! 지리한 장마가 끝나고 후텁지근한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막바지 휴가가 피크를 이루고 있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찾은 피서지에서 시원하게 노출패션을 즐기려면 무엇보다 소프트웨어(?)가 충실해야 할 터. 남자라면 탄탄한 복근. 여자라면 잘록한 허리를 뽐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때문일까. 지금 UCC 사이트에는 근사한 몸매를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각종 몸매 관련 UCC가 붐을 이루고 있다. ◇몸짱 여자의 진실은? 코카콜라 병처럼 매끈한 실루엣을 가진 그녀. 그녀가 가진 비밀은 뭘까. 싸이월드 동영상게시판에 오른 ‘몸짱여자의 진실’이라는 동영상에서는 늘씬한 몸매의 여성이 뭇남성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고혹적인 포즈로 걸어간다. 몸에 딱 붙는 원피스로 환상의 S라인을 선보이는 그녀. 도도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라서는 새침한 표정으로 웃어 보인다. 하지만 ‘땡’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 마자 ‘부욱’ 치마 허리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퉁퉁한 뱃살이 옷 틈새로 쏟아져 나온다.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변신한 그녀는 임신 7개월로 보일 만큼 뱃살이 물결치는 복부 비만녀다. 이 동영상은 외국의 저지방 참치광고로 뱃살로 고민해본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내용으로 화제를 모았다. 한 네티즌은 ‘옵티머스. 프라임. 범블비. 라쳇. 재즈. 아이언 하이드 출동’이란 댓글로 그녀의 변신을 로봇에 비유해 웃음을 주었다. ◇뱃살빼기 84일 프로젝트 이보다 눈물겨운 마술도 없다. ‘비만탈출. 몸짱 만들기 84일’이란 제목의 동영상 UCC에는 한 외국 청년 아담 워터스가 올챙이배를 가진 평범한 남자에서 구릿빛 피부. 왕(王)자가 아로 새겨진 복근의 매력남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은 리얼 스토리다. 첫 장면은 2003년 7월에 시작된다. 아담의 상반신 누드사진은 스스로 “내 인생 최악의 시점”이라고 표현할 만큼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그 날 이후 84일간 매일매일 자신의 전신을 셀프 촬영하며 아담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몰라보게 근사해진 몸매와 당당한 미소로 세상을 마주한 아담을 만날 수 있다. 이 UCC를 본 네티즌 이지은씨는 “탄탄한 몸매도 좋지만 자신감 있는 표정을 되찾은 모습이 마치 한편의 휴먼스토리를 본 듯 훈훈하다”고 말했다. 몸짱으로 변하는 자세한 노하우가 드러나지 않아 다소 아쉽다는 평도 있지만. 비만탈출을 하고 싶은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될 만한 동영상이다. ◇움직이는 식스팩 네티즌이 입을 모아 ‘부러운 몸매’라고 말하는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의외의 부정적인 평을 받고 있는 몸짱UCC도 있다. 이 동영상에는 보통 식스팩이라고 불리는 탄탄한 복근의 소유자가 이 복근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숨을 힘껏 들이마시면 가슴뼈 아래가 푹 패인듯이 들어가고. 양쪽 복근을 한 덩어리로 보이게 뭉쳐서 마치 걷듯이 움직여 보이기도 한다. 얼마나 운동을 하면 이런 진기한 기술이 가능한지 모르겠으나 평은 반반으로 엇갈리고 있다. 일단 보기에 “너무 징그럽다”는 게 대다수의 반응. 네티즌 서성호씨는 “저렇게 유연한 복근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할텐데 대단하다”고 평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 박효실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프로축구] 서울 10경기 무승 탈출 성남 14경기 무패 행진

    브라질 용병 두두가 FC서울을 지긋지긋한 10경기 무승 터널에서 빠져나오게 했다. 전반기 부상 악몽에 시달리며 제몫을 해내지 못한 두두는 K-리그 후반기가 개막된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전남을 상대로 선제 결승골을 뽑아내며 후반기 대활약을 예고했다. 두두는 후반 3분 히칼도가 오른쪽 골라인을 파고 들며 찔러준 패스를 골키퍼 바로 앞에서 침착하게 밀어넣어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전까지 8위를 달렸던 서울은 최근 10경기(8무2패) 무승을 벗어나 4승8무2패로 승점 20을 챙겨 7위로 한 계단 올라갔다. 서울이 승점 3을 챙긴 것은 지난 3월8일 이후 5개월 만의 일. 1위 성남과 2위 수원의 희비는 엇갈렸다. 성남은 제주와의 홈경기에서 김철호와 모따의 연속골로 2-0 완승을 거두며 14경기 무패(10승4무) 행진을 이어갔다. 전반 24초 만에 터진 김철호의 골은 K-리그 역대 최단시간 골 공동 4위에 해당. 반면 수원은 ‘마케도니아 특급’ 스테보와 정경호가 2골을 합작한 전북에 2-3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염기훈과 트레이드돼 전북 유니폼을 입고 처음 나선 경기에서 정경호는 전반 11분 스테보의 선제골에 밑받침을 했고 에두와 백지훈(이상 수원)의 골로 1-2로 뒤진 상황에서 또다시 스테보의 동점골을 이끌어냈다. 팽팽했던 추는 정종관이 후반 41분 결승골을 뽑아내면서 전북으로 기울었다. 전북은 7승2무5패(승점 23)를 기록,4위로 뛰어올랐고 수원은 1위 성남과의 승점차가 9로 벌어졌다. ‘40년 라이벌’ 김정남-김호 감독의 충돌로 관심을 모았던 울산-대전 경기는 우성용의 두 골에 힘입어 울산이 2-1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김정남 감독은 김호 감독에게 통산 40번째 승부에서 15승15무10패의 우위를 지켰다. 박성화 감독이 올림픽대표팀으로 떠나 졸지에 세 번째 대행으로 나선 김판곤 감독의 부산은 빛고을 원정에서 안영학, 이정효, 루시아노의 연속골로 광주를 3-0으로 완파했다. 포항은 김기동의 선제골과 신입 용병 슈벵크의 추가골로 경남FC를 2-1로 따돌렸고 인천은 두 골을 넣은 데얀의 활약에 힘입어 ‘시민구단 라이벌’ 대구를 2-1로 제쳤다. 스테보와 데얀은 모두 9골로 1위 까보레(경남,10골)를 바짝 추격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발언대] 탈북자들의 손을 잡아주자/조순환 서울 노원경찰서 보안과 경위

    “안녕하십네까? 반갑습네다.” 통일부 산하 탈북자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정착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탈북자들과 신변보호담당관의 첫 만남에서 듣는 북녘 사투리다. 같은 민족 형제자매이면서도 이방인 같은 그들을 대할 때마다 “오랜 분단의 역사가 같은 민족도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하는구나.”하고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생활고와 억압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부모형제, 처자식과의 인연도 끊은 채 돈을 벌겠다는 욕심으로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 공안들의 눈을 피해 떠돌게 되고 그 과정에서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서 남한에 입국하게 된다. 그들은 우리가 어렸을 적 생각했던 뿔달린 공산당도, 우리에게 직접 총부리를 겨누었던 적도 아니다. 헤어져 있던 시간만큼 너무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우리의 형제자매들일 뿐이다. 월남이 패망한 후 돌아갈 조국이 없어 이국을 떠돌던 베트남 난민들을 떠올려 보면서 부모형제와 처자식을 떠나 낯선 남한을 찾아온 탈북자들을 관심있게 바라 보자. 탈북자 1만명 시대 탈북자들이 외로움을 이겨내고 하루빨리 우리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신변보호담당관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 모두 그들의 손을 잡아 주자.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통일로 가는 길이며 우리들이 반드시 해야 할,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조순환 서울 노원경찰서 보안과 경위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빚더미 직장인 “독촉전화 무서워”

    Q월 250만원을 받는 직장인으로 시가 1억원의 아파트 한채가 있습니다. 주택담보대출을 5000만원 받았고 그밖에 여기저기 빚을 졌는데 그 내역은 은행 신용 대출 3000만원, 캐피털 700만원, 대부업 5군데 1000만원, 사채 600만원, 친구 1300만원, 회사대출 2000만원, 친척 2700만원과 보증채무 2000만원입니다. 대부업과 사채 이자로 힘겹던 차에 보증채무로 급여와 집에 압류가 들어왔고 평일에는 휴대전화와 직장으로 걸려 오는 독촉전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성철 (가명·32세)- A일단 마음부터 안정하십시오. 직업적인 추심인이 빚 독촉 전화를 한다고 해도 채무자를 해치는 행동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예의에 어긋나는 거슬리는 언동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사람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것일 뿐입니다. 빚 독촉에 시달리면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종업원은 아무래도 업무에 전념할 수 없고 직장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많은 사용자가 생각하고 있기에 다른 구실로 해고를 당할 위험이 커진 것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일단 업무에 전념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를 단호히 제거할 필요가 있습니다. 휴대전화는 받지 마십시오. 가능하면 번호를 바꾸거나 아예 없애십시오. 주위 동료에게는 재정적 현실을 알리고 가능하면 직장으로 걸려 오는 사적인 전화는 연결이 되지 않도록 협조를 받으십시오. 빚 독촉이 계속되고 갚아도 채무가 줄지 않는 상황을 급여소득자는 개인회생제도를 이용하여 개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달 급여에서 생계비를 제외하고 남은 가처분소득을 5년까지 전부 채무의 변제에 제공하도록 하고 이것을 모두 이행하면 나머지 채무의 이행책임은 면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성철씨가 3인 가족의 생계비 150만원을 제외한 100만원을 매월 회생위원회를 통하여 채권자들에게 제공하여 60개월 동안 6000만원을 갚으면 원래의 채무가 2억원 이상이라도 모두 소멸하는 것입니다. 파산제도에서는 채무자의 재산을 팔아서 채권자들 사이에 나누는 절차를 시행하지만, 개인회생제도에는 그럴 필요가 없고 채무자는 가진 것을 지킬 수 있습니다. 담보대출을 제외한 순가치가 채무자가 앞으로 변제할 금액의 현재가치보다는 적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하기만 하면 집 이외에도 전세보증금, 보험, 적금, 자동차, 가족묘지 같은 자산을 그대로 보유할 수 있기에 중산층의 급여소득자에게 아주 유용한 선택입니다. 개인회생을 신청하면 법원에서는 중지명령과 금지명령을 내려 줍니다. 중지명령에 의하면, 기존에 집행되던 급여 가압류는 더 이상 시행되지 않고, 심지어 이미 진행되는 경매절차도 중지됩니다. 금지명령이 나오면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채무자에게 추심행위를 하는 채권자는 위법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나중에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고 정도가 심하면 형법상 강요죄를 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채무자는 개인회생제도를 신청하고 이에 덧붙여 중지명령, 금지명령을 받아 숨 쉴 여가를 가지게 됩니다. 물론 나중에 채무자가 직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사유로 개인회생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는 특별한 배려가 있습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면직되었음을 이유로 일시에 면책을 받을 수 있고 또 이미 변제한 금액이 많은 경우에는 파산절차 없이 그냥 개인회생 절차에서 특별면책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김관기 변호사가 담당하는 ‘채무상담실’의 상담신청은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0) 이괄(李适)의 난(亂)이 끼친 영향 Ⅳ

    [병자호란 다시 읽기] (30) 이괄(李适)의 난(亂)이 끼친 영향 Ⅳ

    이괄의 난을 계기로 인조정권의 취약점과 한계는 여지없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인조정권이 구상하고 있던 계획들을 흐트러뜨렸다. 인조반정 성공 직후 ‘후금을 정벌하여 명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호기롭게 내세웠던 표방은 물거품이 되었다. 흔들리고 있는 내정을 추스르기에도 겨를이 없는 처지에 정벌을 시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우선 땅에 떨어진 인조의 권위를 회복하고, 질서를 수습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실추된 권위, 동요하는 민심 인조는 서울로 돌아온 직후 무신 김응창(金應昌)과 임박(任)을 처형했다. 당상관이었던 두 사람은 이괄이 입성했을 때 각각 좌우변 순장(巡將)이 되어 이괄을 경호하는 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무신만이 아니었다. 문신들 가운데도 이괄의 난을 맞아 심각하게 동요했던 자들이 있었다. 부호군(副護軍) 이안눌(李安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이괄의 난 당시 공조참의 김덕함(金德)과 함께 가도( 島)에 파견되어 있었다. 김덕함이 모문룡에게 원군을 청해다가 이괄을 토벌하자고 했을 때 이안눌은 동의하지 않았다. 얼마 후 ‘인조가 저자도(楮子島)로 피난 가고 이괄이 인목대비를 모시고 있다.’는 풍문이 들려오자 이안눌은 거침없이 인조에 대해 불경한 말을 내뱉었다.‘자전(慈殿-인목대비를 지칭)을 모셨다면 또한 우리 임금의 아들일 것이다.’,‘저자도에서 어떻게 모면할 수 있겠는가?’ 등등 인조는 이미 끝났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안눌은 그 밖에도 ‘반정 이후 개혁이 지지부진했고 공신들의 운이 좋지 않다.’는 등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동요했던 것은 백성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안현 전투에서 관군이 승리할 기미를 보이자 도성 문을 닫아걸어 반란군에게 타격을 주기도 했지만,‘이괄이 입성했을 때 도성 백성 대부분이 이괄에게 붙었기 때문에 법으로 논하면 죽여야 한다.’는 논의가 나올 정도였다. 우의정 신흠(申欽)은 백성들의 ‘불충(不忠)’을 불문에 부치자고 했다. 그는 “나라의 형세가 당당할 때는 조정에 문제가 있어도 백성들이 감히 원망하지 못하지만, 쇠약한 때에는 한 가지 잘못만 있어도 원망이 일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당시를,‘늙고 병들어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급박한 상황’이라고 규정하고 백성들에게 책임을 묻지 말자고 했다. 정경세(鄭經世)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반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반정 직후부터 조정이 신의를 잃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원망한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민심은 쉽사리 안정되지 않았다. 난이 진압된 지 한달 여가 지난 1624년 3월 중순,“장차 큰 변란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풍문이 퍼지는 와중에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밤에 여염을 돌아다니며 피란하라고 소리치며 선동하는 자들도 나타났다. 조정이 민심 수습을 위해 ‘과거를 불문에 부치겠다.’고 했지만 이괄 치하에서 부역(附逆)했던 사람들의 불안과 의구심은 좀체 가시지 않았던 것이다. ●‘정권 안보´에 올인 이처럼 불안한 상황에서 인조와 반정공신들은 우선 인조에 대한 경호를 강화했다.1624년 3월, 비변사(備邊司)는 ‘숙위(宿衛)하는 병력이 적고 약하다.’며 외방의 출신들 가운데 재주 있고 용맹한 자들을 뽑아 경호 병력의 숫자를 늘리자고 요청했다. 뿐만 아니라 반정공신 네 사람이 거느리고 있는 군관(軍官)의 숫자를 400명에서 1000명으로 늘리자고 했다. 그것은 당시의 민심과는 거리가 먼 조처였다. 인조와 반정공신들은 군관의 수를 늘리면 정권의 안보가 확보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민심은 달랐다. 군관들이 자행하는 폐해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급료를 국고에서 지급 받음에도 불구하고 군관은 사실상 반정공신들의 사병(私兵)이었다. 언필칭 ‘인조 호위’를 강변했지만 실제로는 공신들의 집안 일을 건사하는 집사였기 때문이다. 유사시에도 공신 집안을 호위하고 재물을 운반하는 등 사사로이 부려졌다. 실제로 반란 당시 인조가 피난길에 올랐을 때 대가를 호위했던 군관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또 군관을 거느리고 있던 신경진은, 나아가서 적을 막으라는 인조의 명령도 무시했다. 이제 그런 군관의 숫자를 더 늘리자고 하는 판이었다. 이괄의 반란으로 혼쭐이 난 인조는 이후 반정공신들에게 더 의지하는 태도를 보였다. 명령을 어긴 신경진을 불문에 부치고, 군관의 수를 늘리는 데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 같은 분위기에서 반정공신들의 권세는 더 높아졌고, 이런 저런 비리가 터져 나왔다. 자연히 ‘광해군대의 폐정(弊政)을 개혁하겠다.’는 구호는 힘을 잃어 갔다. 정권이 바뀌면 무언가 과거와는 확 달라진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인조정권도 광해군대의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재생청(裁省廳)이란 기구를 설치하고 나름대로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괄의 난을 계기로 ‘개혁’은 지지부진해질 수밖에 없었다.‘정권 안보’가 발등의 불로 떨어진 상황에서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인조정권의 실세였던 김류와 이귀가 박승종 부자의 저택을 불하(拂下) 받은 것에서 드러나듯이 반정공신들의 탐욕스러운 처신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다만 주인이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이 없다.’는 냉소가 번져갔다.1625년(인조3) 6월, 도성에는 상시가(傷時歌)라는 노래가 떠돌고 있었다. 아, 너희 훈신들이여(嗟爾勳臣) 잘난 척하지 말라(毋庸自誇) 그들의 집에 살고(爰處其室) 그들의 토지를 차지하고(乃占其田) 그들의 말을 타며(且乘其馬) 또 다시 그들의 일을 행하니(又行其事) 너희들과 그들이(爾與其人) 돌아보건대 무엇이 다른가(顧何異哉) ●반란의 대외적 여파 이괄의 반란은 나라 밖으로도 영향을 미쳤다. 인조정권은 이괄의 반란군이 도성을 압박해오자 가도의 모문룡(毛文龍)에게 자문(咨文)을 보내 원병을 요청했다. 모문룡은 조선의 보고를 접한 뒤, 유격(游擊) 왕보(王輔)에게 선사포(宣沙浦)에서 군사를 점검하도록 지시했다. 왕보는 자신이 ‘군사 1만을 거느리고 진격한다.’고 큰소리쳤다. 조정은 다급한 마음에 원병을 요청했지만 당시 모문룡의 접반사(接伴使)였던 윤의립(尹毅立)은 신중했다. 그는 모문룡의 군대가 육지로 나온 이후의 상황을 우려했다. 왕보의 말대로 1만이나 되는 대군이 나올 경우, 그들에게 군량을 지급하는 문제는 물론이고 그들이 자행하는 민폐가 심각해질 것을 우려했다. 윤의립은 왕보를 만나 ‘이 적은 얼마 안 가서 주벌될 것이니 천병(天兵)을 역적 토벌에 끌어들여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다.’며 원병 요청을 취소했다. 결과적으로 윤의립의 판단은 정확했다. 반란이 곧 진압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모문룡의 병력이 나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에 대한 접대와 그들이 자행하는 민폐 때문에 온 나라가 몸살을 앓았을 것은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섬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후금을 군사적으로 자극하여 또 다른 사단이 발생했을 것이다. 앞으로 서술하겠지만, 반란 종식 이후 모문룡과 그의 군대가 보여주었던 행태를 보면 윤의립의 ‘결단‘이 얼마나 빛나는 ‘혜안’이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반란의 여파는 후금에도 미쳤다. 한명련의 아들 한윤(韓潤)이 조선을 탈출하여 후금으로 투항했던 것이다. 한윤은, 당시 후금에 억류되어 있던 강홍립(姜弘立)을 만나 “강씨 일족이 다 죽었다.”고 무고했다. 강홍립은 격앙되었다.‘새로 들어선 인조정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정보도 후금 측으로 건네졌다. 한윤의 투항은 정묘호란이 일어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괄의 반란을 계기로 조선은 명과 후금의 대결 구도 속으로 점점 깊숙이 빠져들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58인치 풀 HD PDP 개발

    오는 9월쯤 대각선 길이 147.32㎝(58인치)의 대형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TV가 나온다.훨씬 밝고 선명해졌다.6개월째 적자에 시달리는 삼성SDI가 위기 탈출을 목표로 내놓은 야심작이다. 가격은 400만원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132.08㎝(52인치) 액정표시장치(LCD) TV와의 시장 쟁탈전이 예상된다. 삼성SDI는 58인치 풀 고화질(HD) PDP 개발에 성공,31일 서울 태평로 본사에서 제품 발표회를 열었다.58인치 패널이 나온 것은 국내 처음이다. 세계에서는 일본 마쓰시타에 이어 두번째다. 기존 160.02㎝(63인치)는 너무 크고 127㎝(50인치)는 다소 작아 구매를 망설였던 고객을 겨냥한 제품이다. 삼성전자 등이 이 패널을 공급받아 58인치 완제품(PDP TV)을 내놓게 된다. 박상규 마케팅팀장(상무)은 “삼성전자를 통해 3·4분기(7∼9월)중에 미국시장에 먼저 출시한 뒤 국내에 내놓을 예정”이라며 “가격은 50인치(3000달러 초반)보다는 35∼40% 비싸겠지만 초기 보급을 위해 마쓰시타 58인치(4500달러)보다는 싸게 책정될 것 같다.”고 말했다. PDP의 약점이었던 단위 면적당 밝기(휘도)를 크게 개선한 점이 눈에 띈다. 마쓰시타보다 18% 이상 높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그만큼 더 밝고 생생한 화면 전달이 가능해졌다. 모듈 부품수도 마쓰시타보다 절반 가까이 줄여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 박 상무는 “비슷한 크기의 LCD TV는 일러야 내후년 말에나 나올 것”이라며 “그 사이 58인치 제품으로 대형 평판TV 시장에서의 PDP 우위를 굳혀나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여성&남성] 우린 ‘판박이 여름휴가’ 탈출을 꿈꾼다

    [여성&남성] 우린 ‘판박이 여름휴가’ 탈출을 꿈꾼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루 하루를 달리는 직장인들에게 여름 휴가는 ‘사막의 오아시스’, 그 이상이다. 상사의 질책이나 고된 야근도 휴가를 생각하면 얼마든 참아낼 수 있다. 최근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미혼남녀 7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번 여름휴가 때 무엇을 하면서 보낼 예정인가.’라는 질문에 남녀 모두 ‘일상 탈출을 위한 여행(71.5%)’을 꼽았다. 굳이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처럼 낯선 곳에서의 특별한 만남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혹시나’하는 기대만으로도 여름 휴가는 즐겁다. 가족이나 연인, 아니면 혼자만의 휴가를 꿈꾸는 남녀의 생각을 들어봤다. ●그곳에 가면 왠지 특별한 행운(?)이 있을 것 같은데… 회사원 김모(32)씨는 여름 휴가만 생각하면 웃음이 피식피식 나온다.2주 뒤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타기로 돼 있다. 김씨는 스포츠카를 빌려서 1주일 동안 뉴질랜드 곳곳을 누빌 계획이다. 휴가 예산은 150만원 정도로 다소 부담스럽지만 8년 동안 별러온 ‘로망’이 이뤄지는 순간이기 때문에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1999년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어학연수를 떠났던 김씨는 형편이 어려워 하루에 3뉴질랜드달러(당시 환율기준 2000원)로 버텨야 했다. 아침은 식빵 3조각, 점심과 저녁은 서울에서 공수해 온 ‘봉지라면’으로 해결하는 등 처절한 연수 생활을 했다.8년 전 한국으로 돌아오던 순간부터 그는 뉴질랜드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것을 결심했다. 김씨는 “당시 지겹게 먹었던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이민자가 하는 식당에서 탕수육과 볶음국수로 된 콤보메뉴도 먹으며 그 때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 물론 딱 한 끼니다.”며 웃었다. 당시에는 꿈도 못 꾸던 남섬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 연수 시절 클래스메이트였던 늘씬한 스위스 미녀가 남섬 여행을 제안했지만 형편이 안 돼 못갔던 한도 이 참에 풀 계획이다. 물론 그 곳에서 특별한 행운(?)이 생길 거라는 기대도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있다. 회사원 이모(33)씨는 “언제부턴가 와이프를 집에 두고 홀로 베낭을 꾸려 유럽으로 떠나고 싶다는 공상을 했다.”면서 “정처없이 돌아다니다 어울릴 수 있는 친구(?)를 만난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냐. 항상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와이프랑 휴가까지 가야 한다면 우울할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씨는 “올 여름 ‘로망’을 이룰지는 모르겠다.”면서 “뒤탈을 막기 위해 아내와 함께 갈지, 솔직히 말하고 혼자 떠날지 결정하지 못했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붕어빵 같은 바캉스는 싫다” 회사원 장모(27)씨는 8월 말 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계획이다. 그때 쯤이면 성수기가 끝나갈 때라 경제적 부담도 적은 데다 북적거리는 관광객도 피할 수 있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쌀국수나 양꿍 같은 태국 전통 음식을 실컷 먹고 틈날 때마다 한가롭게 마사지사에 몸을 맡길 생각이다. 정씨는 “이름난 관광지에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사진이나 찍는 해외여행 따위는 관심없다.”면서 “1년에 한 번뿐인 휴가인데 아무 생각없이 푹 쉬면서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신선놀음 아니냐.”고 말했다. 은행원 박모(32)씨의 휴가 테마는 ‘애니메이션’이다. 혼자서 애니메이션의 천국인 일본에 가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손때가 묻은 지브리스튜디오를 둘러보고 좋아하는 애니매이션을 보며 올 때는 DVD와 관련 상품을 가득 사올 계획이다. 박씨는 “몇달 전 여자친구와 헤어져 여름휴가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어설프게 친구들과 해수욕장이나 수영장에 가서 안 되는 작업(?)을 하는 것보다 일본에 가서 혼자 만의 휴가를 즐기고 싶다. 여름휴가 때 꼭 바닷가나 계곡, 유명 관광지에 가야 한다는 것도 고정관념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일본 문화에 푹 빠져보기 위해 지인의 집과 호텔 대신 일본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을 인터넷으로 예약했다. ●40대 가장 ‘방콕 vs 해외여행’ 회사원 진모(40)씨에게 ‘주 5일 근무제’는 남의 나라 일이다. 설상가상 최근 2주 동안 새벽 1시에 퇴근하는 등 격무에 시달리느라 몸은 천근만근이다. 하지만 마음 만은 가뿐하다. 새달 초 예정된 휴가를 생각하면 2주쯤이야 얼마든지 참아줄 수 있다. 진씨는 “해외리조트에 가서 아무 생각없이 쉬고 올 생각도 해봤지만 올 해는 집에 틀어박혀 있을 생각이다.1주일 내내 뒹굴면서 푹 잘 생각”이라고 밝혔다. 다른 가장들처럼 휴가에 대한 가족들의 정신적 압박도 없다. 둘째 아이를 가진 아내가 임신 8개월째 접어들어 몸이 무거운 탓에 꼼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씨는 “무거운 몸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도 ‘방콕 프로젝트’(집에서 푹 쉬는 계획)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덕분에 아무런 장애없이 ‘방콕’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반면 직장인 조모(41)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인터넷 여행사이트를 뒤지고 있다. 올 여름 휴가때 아내와 아들과 데리고 모처럼 해외에 나갈 생각이다. 조씨는 “주변에서 해외로 하도 많이 나가니까 한 번쯤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진작부터 하고 있었는데 한 번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면서 “단 1주일이라도 해외에 다녀오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견문을 넓혀주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아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어 아직까지는 비밀로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통장에 자물쇠를 채워놓은 아내를 설득하는 일이다. 조씨는 “해외로 나가려면 한두 푼 드는 게 아니어서 그런지 해외 운이라도 슬쩍 내비치면 아내가 눈을 흘기곤 한다. 밤낮으로 작업(?)을 해서 아내를 설득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나홀로 휴가’를 꿈꾼다 경기 안산시에서 한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윤모(30·여)씨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꿈이다. 주변에서는 여름방학을 하면 다녀오라고 하지만 실상 방학 때는 보충수업과 교내외 연수 등으로 더 짬이 안 난다. 게다가 올해는 평생 한번 받는 연수까지 겹쳐서 휴가는 머릿속에서만 다녀올 형편이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 가서 4년 전 시간에 쫓겨 못 보았던 루브르박물관을 열흘 정도 샅샅이 관람하고 싶다.”면서 “혼자 개선문이 보이는 거리에서 홍합요리나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마음 속의 휴양지로 박물관을 고른 이유는 하루 4시간의 수업에 조례, 종례 시간까지 시달리는 자신에게 뭔가 정신적인 휴식을 주고 싶어서다. 윤씨는 “점심시간에는 급식 지도하며 떠들고, 쉬는 시간마저 아이들이 몰려와 떠들곤 한다.”면서 “한 동료 교사는 아이들끼리 싸운 것을 가지고 학부모들이 담임 탓이라며 교육청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해 학교를 그만두기도 했다. 이런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평화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회사원 권모(27·여)씨는 여름휴가에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익스트림 스포츠를 배워볼 계획이다. 평소 참하다는 이야기를 지겹도록 듣는 자신에게 용기와 힘을 길러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번지점프나 패러글라이딩 등을 배우며 여름휴가를 보내고 싶다.”면서 “물론 무섭겠지만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하면 나도 미래로 비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매일 반복되는 육아와 집안 일에 매여 있는 전업주부 신모(35·여)씨는 서비스를 하는 휴가가 아니라 서비스를 받는 휴가를 꿈꾼다. 가족끼리 가는 휴가는 결국 자신이 밥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남편 비위를 맞추게 된다는 것. 그는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나홀로 여행’을 원한다. 매일 피곤이 쌓여 멀리 갈 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는 “근처 특급호텔 패키지를 신청했다. 마사지 받고 밥도 안하고 식사도 객실로 시켜 먹으며 뒹굴뒹굴 게으름을 맘껏 피우고 싶다.”면서 “책도,TV도, 컴퓨터도 필요없고, 곁에 있을 사람들도 필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얼마나 홀로 보내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일주일까지는 남편이 아이를 돌보며 지낼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다가도 “아이가 걱정돼 길어야 이틀밖에 안 되겠네요.”라며 웃었다. ●“역시 휴가는 친구나 그이와 가야…” 대기업에 다니는 전모(25·여)씨는 엔화의 가치가 떨어진 지금 일본으로 3박4일 쇼핑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홍콩의 쇼핑 페스티벌이나, 떠오르는 신흥 쇼핑시장 중국 상하이도 유명하지만 이번에는 일본으로 결정했다. 자칭 쇼핑 전문가인 친구 3명과 각자의 여름 보너스 200여만원씩 들고 가서 옷, 가방 등을 싸게 살 계획이다. 유씨는 “요즘 같은 경우 일본에서 쇼핑만 잘하면 비행기값 정도는 빠진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또 “어떤 친구는 과소비를 걱정하기도 하지만 1년 동안 돈 버느라고 고생한 나에 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만난 사람들로부터 해방돼 친구들과 진정한 수다를 나누고 싶다.”며 웃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모(29·여)씨는 “남자 친구와 밀월 여행을 가고 싶다. 가장 즐거웠던 여름여행은 역시 남자친구와 다녀온 여행이었다.”면서 “밤에 안 헤어지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또 “물론 부모님께 거짓말하는 것은 죄송하지만 약간의 스릴이 여행에 짜릿함을 더한다.”고 속내를 밝혔다. ●“추억 속 아름다운 로맨스를 꿈꿔요” 대학생인 손모(21·여)씨는 아직도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 같았던 지난해 여름의 유럽 기차여행을 잊지 못해 한 번 더 스치는 인연을 고대한다. 당시 그는 여행 직전 특별한 인연을 기대하며 서울 인사동에서 한국 전통 기념품 등을 준비했다. 그런데 정말 선물을 주고싶은 사람이 나타날 줄이야. 스위스로 이동하던 기차 안에서 한 취객이 혼자 있던 여성을 괴롭혔고, 손씨 일행은 당황하며 어쩔줄 모르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인도계 유럽 남성이 다가와 행패를 부리던 취객을 오히려 달래면서 부드럽게 진정시켰는데 황홀하게도(?) 그의 좌석은 바로 손씨의 옆자리였다. 그녀는 “참 멋진 남자라는 생각과 함께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한 장면이 내게도 우연처럼 찾아왔다고 생각했다.”면서 “용기를 내 그에게 먼저 말을 걸었고, 서로 통성명을 하고 여행에 대해 담소를 나눴다.”고 회상했다. 일행들이 옆에 와서 대화를 방해했지만 한국에서 준비해간 한국 전통 문양의 책갈피를 그에게 주었고, 그는 한국에 꼭 한번 가겠다는 말과 함께 먼저 기차에서 내렸다. 손씨는 “아직도 그가 연락을 주지 않을까 기대한다.”면서 “휴가에서의 로망은 스치는 인연에 대한 추억인 것 같다.”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희귀 난치병 도전과 정복] (40) 마르팡 증후군

    [희귀 난치병 도전과 정복] (40) 마르팡 증후군

    2m가 넘는 큰 키로 농구 코트를 누비던 왕년의 농구스타 H(42)씨.1983년부터 10년간 국가대표로 뛰면서 구름팬들을 몰고 다녔던 그의 앞날에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암흑이 닥쳤다.‘골리앗’으로까지 통했던 그의 큰 키가 오히려 생명을 위협하는 병증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뒤였다. 뼈와 근육, 심혈관 등에서 합병증을 일으키는 이 병은 그의 아버지와 동생의 목숨까지 앗아갔다.‘거미손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선천성 발육이상 질환인 ‘마르팡 증후군(Marfan Syndrome)’이다. “이 증후군 환자들은 일반인보다 키가 훨씬 크고, 사지가 길며, 척추가 굽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대부분의 환자는 심장에서 나오는 가장 큰 혈관, 즉 대동맥이 약해 찢어지거나 터지기가 쉬운데 이때 즉각적인 조치를 받지 못하면 생명을 잃기도 하지요. 통증이 없더라도 늘어난 대동맥 때문에 혈액이 역류하면 호흡곤란이 올 수도 있고요. 하지만 초기에 진단을 받고 의사가 제시한 수칙대로 꾸준히 몸을 관리하면 정상인과 같은 생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삼성서울병원 심장혈관센터 김덕경 교수는 마르팡 증후군을 ‘사형선고’로 보는 잘못된 시각을 경계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완치는 어렵지만 약물 치료와 정기적인 건강검진, 적당한 운동을 통해 얼마든지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르팡 증후군은 110년 전인 1896년 프랑스의 안토니오 베르나르 장 마르팡이라는 소아과 의사가 키가 크고, 팔·다리와 손가락이 길며 무릎의 관절 위축이 있는 한 소녀 환자를 학계에 보고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이 질환의 원인은 세포 간의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결체조직’(結締組織)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결체조직의 구성요소로, 인체 내에서 생성되는 단백질인 피브릴린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이 질환의 원인으로, 부모로부터 유전된다. 주요 진단 기준인 ‘겐트 기준’에 따르면 수술이 필요한 정도의 흉골 기형, 안구탈출증, 대동맥 확장증, 척추 측만증, 경막 확장증 등의 증상이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날 경우 마르팡 증후군을 의심해 봐야 한다. 이 질환의 발병률은 0.02%, 즉 인구 1만명당 2명이지만 유전질환의 특성상 환자나 가족들이 숨기는 경우가 많아 실제 환자 수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이 증후군은 상염색체 우성 유전질환입니다. 이는 부모 중 한쪽 또는 양쪽에서 유전자를 받을 경우 자녀들은 50%의 확률로 이 질환을 갖고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기술이 발전해 1개월이면 질환의 진단이 가능하고, 그 정확도도 70%에 이르므로 이 질환을 가졌다면 숨기기보다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지요.” 마르팡 증후군이 위험한 것은 환자의 대동맥이 지속적으로 확장돼 파열(대동맥 박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동맥이 풍선처럼 부풀어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지속적인 압력을 받으면 약해진 혈관이 터지는데, 이때 환자는 가슴과 등쪽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고, 이 상황에서 신속하게 수술을 받지 못하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대동맥이 갑자기 늘어나거나 직경이 5㎝ 이상 확장되면 대동맥 대체 수술이 필요하며, 이때 대동맥 판막을 인공 판막으로 대체하는 시술을 병행하기도 한다. 또 환자 중 절반은 척추가 S자형으로 휘어지는 ‘척추측만증’이 동반되고 이 중 20%는 교정 수술을 받아야 한다. 일부는 눈의 수정체가 제자리를 이탈하는 탈구 증상으로 시력장애를 겪기도 한다. “심초음파검사나 MRI,CT로 비교적 정확하게 심장과 대동맥의 이상을 진단할 수 있고, 대동맥 및 판막 수술은 성공률이 99%에 이를 정도로 높습니다. 여기에는 주로 인조혈관과 인공판막을 이용하지요. 척추측만증 환자의 경우 척추 만곡이 20∼40도 사이이면 보조기를 사용해 교정하지만 그 이상이면 수술을 해야 합니다. 이게 모두 조직을 지탱하는 피브릴린이 제기능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증상이지만 조기에 진단하면 치료 성공률은 비교적 높은 편입니다.” 마르팡 증후군은 다른 난치성 질환처럼 완치가 불가능해 많은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외래 환자는 희귀난치성 질환 산정특례로 총 진료비의 20%만 내면 되지만, 대동맥 수술비 등은 일반인과 같기 때문에 부담이 적지 않다. 하지만 조기에 진단을 받고 적절한 약제를 꾸준히 복용하는 등 건강관리에 힘쓰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 큰 불편이 없다는 점이 희망이다. 의료진이 이런 환자들에게 일반적으로 권하는 약제는 혈압강하제인 ‘베타차단제’이다. 혈관 확장을 막고 맥박 수를 감소시키기 때문에 이를 꾸준히 복용하도록 권유한다. 최근에는 고혈압약 중 ‘안지오텐신수용체 차단제’ 계열의 혈압강하제인 ‘로잘탄’이 동물실험에서 대동맥 확장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다. 그러나 약물 못지않게 환자의 노력도 중요하다. 대동맥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심한 운동은 피해야 한다. 만약 운동을 하고 싶다면 에어로빅이나 가벼운 자전거 타기 및 조깅 등이 좋다. 이런 운동을 주 3∼4회, 매회 20∼30분 정도씩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운동은 피로감을 느낄 때 쉴 수 있는 종목이어야 하며, 만약 베타차단제를 복용하고 있다면 맥박수를 분당 100회 이하로, 그렇지 않다면 110회 이하로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새로운 약과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환자의 수명은 계속 느는 추세입니다. 최근에는 1970년대 초반에 발표된 것보다 마르팡 증후군 환자의 수명이 25% 정도 연장됐다고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조기에 진단해 초기부터 관리를 시작하면 60∼70세까지도 큰 불편 없이 살 수 있지요. 그런 만큼 꾸준히 전문의의 관리를 받는 게 중요합니다. 미국의 링컨, 프랑스의 드골도 마르팡 증후군 환자로 알려졌지만 병을 극복하고 역사에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아있다는 점을 환자와 가족들이 항상 되새기기 바랍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29)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다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29)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다Ⅲ

    1624년 2월10일 이괄이 서울로 입성한 직후, 도원수 장만은 관군을 이끌고 서울을 향해 달렸다. 장만은 초조했다. 반란군에게 도성을 내주고 국왕으로 하여금 파천 길에 오르게 만든 일차적 책임이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장만은 파주 혜음령(惠陰嶺)에 이르러 부원수 이수일(李守一)과 남이흥, 정충신 등 장수들을 불러모아 작전 회의를 열었다. 장만은 두 가지 계책을 제시했다. 서울로 달려가 결전을 벌이든가,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남쪽에서 원군이 오기를 기다려 세력을 키운 뒤 공격하자는 안이었다. 그는 사실 지구전을 생각하고 있었다. ●관군 승기 잡자 관망하던 민심 돌아서 정충신은 지구전에 반대했다. 그는 즉시 서울로 달려가 안현(鞍峴)을 장악하자고 주장했다. 높은 고개를 차지하여 진을 친다면 도성을 내리누르게 될 것이고, 관망하고 있는 도성 백성들도 관군 편으로 붙을 것이라고 했다. 또 반란군이 공격해와도 지형의 이점 때문에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만은 정충신의 계책을 받아들였다. 관군은 안현을 향해 내달렸다. 정충신이 제일 먼저 연서역(延曙驛, 지금의 은평구 역촌동)을 통과하여 안현에 도착했다. 그는 정상으로 달려 올라가 봉수대를 지키는 병사를 생포했다. 정충신은 평상시의 봉화(烽火)를 올리도록 하여 이괄의 진영에서 안현이 탈취된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 이윽고 관군의 병력이 속속 안현으로 집결했다. 때마침 동풍이 크게 불어 이괄 진영은 관군이 안현으로 모여드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에야 이괄은 관군이 안현을 접수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는 느긋했다. 이미 승승장구해온 터라 관군을 가볍게 보는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이괄은 항왜들을 이끌고 연서역으로 나아가 장만을 생포하려는 계책을 세웠다. 한명련(韓明璉)은 도성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안현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둠으로써 민심을 얻어내자고 건의했다. 이괄의 반란군은 부대를 둘로 나눠 안현을 향해 진격했다. 한명련이 항왜 수십 명과 정예 포수를 이끌고 선봉에 서고, 이괄은 중군이 되어 싸움을 독려했다. 아침 6시쯤부터 격전이 벌어졌다. 도성의 백성들은 성이나 높은 곳에 올라가 두 진영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전황은 밑에서 위쪽으로 공격하는 반란군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화살과 총탄이 제대로 맞지 않았다. 더욱이 장만 등은 도성을 내준 것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도 분전했다. 오전 11시쯤까지 이어지던 싸움의 중간에 바람의 방향마저 바뀌었다. 반란군 쪽으로 서북풍이 불었다. 관군은 승기를 잡았다. 반란군 진영에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많은 수가 안현을 향해 기어오르다가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 한명련도 화살에 맞은 뒤 퇴각했다. 전투 장면을 구경하던 도성 백성들은 반란군이 수세에 몰리자 돈의문(敦義門)과 서소문(西小門)을 닫아 버렸다. 관망하던 민심의 향배가 정해진 것이다. 퇴로가 막힌 반란군은 숭례문 쪽으로 향하거나 마포 서강(西江) 방면으로 도주했다. 여염으로 숨어 들어간 자들도 있었다. ●기익헌 등이 반란군 지휘부 9명 죽여 2월11일 밤 아홉시 무렵, 이괄과 한명련은 패잔병을 이끌고 수구문(水口門)을 통해 서울을 탈출했다. 다음날 새벽 삼전포(三田浦)를 경유하여 광주(廣州)까지 달아났다. 이괄은 광주목사 임회(林檜)를 살해하고 경안교(慶安橋)라는 곳에서 병력을 수습하려 했다. 12일 아침, 정충신 등이 병력을 이끌고 추격해 왔다. 안현에서 패한 이후 반란군은 이미 기세가 꺾였다. 얼마 되지 않는 관군의 공격에 변변하게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괄은 고작 60여명 정도의 기병만 거느리고 다시 이천(利川) 쪽으로 달아났다. 이괄을 따라가던 흥안군은 광주 소천(昭川) 쪽으로 도주했다. 관군 또한 지쳐서 추격을 멈추고 있을 때, 이괄의 진영에서 포수 한 사람이 도망쳐 왔다. 그는 반란군 내부에 이괄과 한명련의 목을 베려고 시도하는 자가 있다고 알려 주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자중지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튿날 새벽 정충신이 관군을 이끌고 이천 묵방리(墨坊里)에 당도했을 때 상황은 이미 종료되었다. 반란군 가운데 기익헌(奇益獻) 등이 이미 이괄과 한명련 등 지휘부 아홉 명을 살해한 상태였다. 한명련의 아들과 조카만 간신히 달아나고 반란군은 궤멸되었다. 흥안군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여염으로 숨어들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서울로 압송되어 돈화문 앞에서 살해되었다. 한남원수(漢南元帥) 심기원(沈器遠)과 훈련대장 신경진(申景 )이 ‘흥안군이 선조의 아들이고 인조의 숙부지만 참역(僭逆)에 가담했으니 아무나 죽일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죽였던 것이다. 흥안군은 이괄에 의해 추대된 지 불과 4일 만에 몰락하고 말았다. 인조 일행은 안현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천안에서 들었다. 하지만 13일 새벽, 도주하던 적이 달려들 것을 우려하여 공주로 들어갔다.2월15일, 참수된 이괄의 머리가 공주에 도착했다. 인조와 신료들은 군용(軍容)을 벌여놓고 이괄의 수급(首級)을 받는 의식을 거행했다. 반정을 일으켜 어렵사리 잡은 권력을 1년이 채 못 되어 내놓을 뻔하다가 다시 잡는 순간이었다. ●난의 후유증 인조는 2월18일 공주를 출발하여 22일에 서울로 귀환했다. 난민들이 불을 질러 창경궁이 불탔기 때문에 인조는 경덕궁(慶德宮)으로 들어갔다. 도성은 엉망이었다.“모든 재물이 바닥나서 열흘 먹을 저축도 없는 상황”이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민심이 흉흉한 것이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였다. 며칠 사이에 궁궐의 주인이 바뀌었다가, 다시 바뀌면서 처참한 살육전이 벌어졌다. 이미 파천하기 직전인 2월7일, 인조 정권은 옥에 갇혀 있던 정치범들을 즉결 처분했다. 광해군때 정승을 지냈던 기자헌(奇自獻)을 비롯하여 역모 가담 혐의를 받았던 37명의 목을 베었다. 이들은 의심은 받았지만, 혐의를 부인하고 있었던 데다 심문도 채 마치지 않은 상태였다. 이원익이 “기자헌은 반역에 가담한 죄상이 없는 데다 폐모론에도 반대했다.”고 애써 변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반정공신들의 여유를 빼앗아 갔다. 격변의 와중에서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백성들도 적지 않았다. 안현 싸움에서 패한 이괄군이 도주하기 전에 80여 명을 학살했고, 관군이 서울을 접수하면서 다시 처참한 학살이 빚어졌다. 좌의정 윤방(尹昉)은 인조에게 ‘적에게 붙었던 백성 가운데 자신이 처단한 사람만 200명’이라고 보고했다. 백성들 가운데는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여 ‘반란군의 머리’라면서 수급을 가져다 바치는 자들이 있었다. 비록 잠깐이었지만 이괄이 도성을 점령했던 동안 서울의 민심은 인조정권에 몹시 적대적이었다. 백성들은 이괄군을 맞이하고, 창경궁에 불을 지르고, 내탕(內帑)을 훔치고, 반정공신들의 저택을 점거했다. 인조반정 성공 직후 자살한 박승종(朴承宗) 집안의 노비들은, 대가가 서울을 나가자마자 반정공신 김류의 집을 접수했다. 박승종의 며느리는, 역시 공신 가운데 실세였던 이귀의 집에 들이닥쳐 문을 봉해버렸다. 반정 직후 김류가 박승종의 저택을, 이귀가 박승종의 아들 박자흥(朴自興)의 저택을 차지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인조가 환도한 뒤 또 다른 보복이 자행되었다. 서울을 비운 사이에 피해를 당한 관인이나 사대부들은 환도하자마자 의심나는 대상자들을 포도청에 고발했다. 그 때문에 ‘포도청의 감옥이 가득 찼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아예 직접 대상자들의 집으로 쳐들어가 재물을 약탈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괄의 난은 진압되었지만 인조정권은 여러 면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논공행상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이괄로 하여금 거병하게 만든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였다. 후금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와중에 내란을 치르면서 조선의 군사적 역량은 심하게 훼손되고 말았다. 인조정권은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민심을 수습하고 국방력을 재건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피랍 한국인 석방협상] “스톡홀름 신드롬 올 수도”

    한국인 23명이 피랍된 지 6일째를 넘어선 가운데 전문가들은 협상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피랍자들의 생존 확률은 높아지겠지만 고통과 후유증은 그만큼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산악지대에 2∼4명씩 무리지어 수용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피랍자들은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고온건조한 날씨와 극도의 공포 및 불안감이라는 안팎의 적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민수 고려대의료원 안암병원 정신과 교수는 협상이 장기화될 수록 피랍된 한국인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피랍 자체가 커다란 스트레스로 급성 스트레스 반응으로 인한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1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PTSD가 나타난다.”면서 “현재 상황을 비춰보면 인질의 3분의1 정도는 PTSD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이들이 풀려난다면 귀국하자마자 전문의 면담이 필요하며 최소 1년간 이들의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6개월의 잠복기를 거쳐 발생하는 지연성 PTSD가 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유범희 삼성서울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생사가 오가는 극한 공포 상태가 오래 유지될 경우 PTSD가 발생한다.”면서 “육체적으로도 극도의 긴장 상태 탓에 소화 불량과 위장 장애가 발생하며 불면증 등 고통이 가중된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 역시 “공포 상황이 오랜 시간 지속될 경우 풀려난 뒤에도 짧게는 3∼6개월, 장기적으론 수년 후까지도 악몽과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덧붙였다. 반건호 경희의료원 정신과 교수는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 자체가 극도로 긴장된 상황이며 스트레스가 고조돼 소화 불량과 근육통, 극단적인 경우엔 고혈압, 심장질환 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면서 “전체가 무사귀환하지 못할 경우에는 살아남은 이들이 죄책감에 시달리는 ‘서바이벌신드롬’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대테러 전문가인 이종화 경찰대 교수는 “협상 장기화를 긍정적인 신호로 본다. 협상 시한을 연장하는 것은 아프간 정부와 안 되니까 우리와 직접 거래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억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납치범과 인질 사이에 동화현상이 생기고, 납치범 사이의 헤게모니 다툼에서 온건파가 득세할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또 “피랍자들이 처음에는 자아상실과 우울증에 시달리겠지만 차츰 정상을 찾을 것”이라면서 “억류 장소를 옮겨다니거나 감시원을 교체하고 극단적으로 인질에게 두건을 씌우는지 여부 등이 변수지만 ‘스톡홀름 신드롬(납치범과 인질이 동화되는 현상)’ 같은 전이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진태 한국테러리즘연구소장은 “처음에는 극도의 심리적 공포에 빠지거나 삶에 대한 자포자기가 나타날 수 있다. 피랍된 이들이 젊은 층인 만큼 순간적인 반발 심리로 납치범에 대항하거나 탈출을 시도하는 등 무모한 행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소장은 “스톡홀름증후군 사례도 보고되고 있지만 단정적으로 얘기할 순 없다.”고 덧붙였다. 임일영 오이석기자 argus@seoul.co.kr
  • [주말탐방]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로또

    [주말탐방]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로또

    2002년 12월 이후 ‘꿈’이라는 말과 이음동의어가 된 낱말. 그 이름은 바로 로또다. 이달 안으로 국민은행·코리아로터리서비스(KLS) 대신 새로운 로또 사업자가 선정되면서 ‘2기 로또’가 열리게 된다. 로또는 인생 역전을 위한 ‘끝내기 홈런’이었다. 강원도 산골의 말단 경찰도, 복사 용지를 나르던 여사환도, 그리고 생선 비린내에 전 부산 아지매도 강남 거부(巨富)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손바닥만 한 복권을 들고 일상의 탈출을 꿈꿨다. 무너진 꿈에 대한 실망감에도 ‘토요일의 주인공’을 꿈꾸며 로또 판매 대열에 다시 끼어들곤 했다.‘로또로 재산을 탕진했다.’는 말도 떠돌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5년 가까이 지난 요즘. 로또에 ‘꽂혔던’ 시선들은 어느새 부동산에서 다시 증권 쪽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미워도 다시 한번’이다. 로또는 누가 뭐래도 신분 상승을 위한 유일한 ‘동아줄’이다. 누가 알겠는가. 이번 주 대박의 주인공이 내가 될지.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 3가.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서도 사람들은 한 편의점을 드나들고 있다. 땀과 때가 엉긴 수건을 목에 두른 늙수그레한 중년 남성, 가슴이 깊게 파이고 소매 없는 티셔츠를 걸친 20대 여성들. 외모와 성별은 다르지만 모두 로또 복권을 손에 쥐고 ‘대박’의 꿈을 꾸고 있다. “3,4년 전만 해도 토요일 오후면 편의점 밖으로 줄이 이어졌죠. 어떤 날은 하루에 500만원어치나 팔기도 했어요. 요즘은 한 절반 되려나?” 지금은 광풍(狂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강모(47)씨는 이곳에서 5년 동안 편의점을 경영하면서 로또 광풍을 지켜봤다. 복권이 많이 팔리면 수입이 오른다. 그렇다고 한창 많이 팔릴 때 환호성을 질렀던 것도, 매상이 반토막 난 요즘 특별히 한숨을 내쉬는 것도 아니다. “전에는 한번에 10만원어치씩 사가는 손님이 종종 있었어요. 로또에 미쳤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요즘도 사는 사람은 꾸준히 사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죠.‘한건’에 대한 욕심들이 줄었으니 나쁜 것만은 아니잖아요. 저도 매주 5000원씩 투자하지만 2년 전 4등에 한 번 걸렸을 뿐입니다.” ●상계동 판매점 1등 7명 배출 지금까지 로또 판매액은 올해 4월 말 기준으로 13조 1200억여원. 약 100억장이 팔려나갔다. 국민 한 명이 평균 220장을 샀다는 뜻이다. 로또 복권의 최고 당첨금 기록은 2003년 4월12일 터진 제19회차의 407억원. 강원 춘천시의 경찰관 박모씨가 대박의 주인공이 됐다. 이어 ▲25회차 242억원(서울 역삼동·신당동) ▲20회차 193억원(경기도 수원시 정자1동) ▲43회차 177억원(대전 둔산동) ▲15회차 170억원(충북 청주시 가경동) 등이다. 역대 최고 금액 상위 10위는 2004년 8월 이전에 몰려 있다. 게임당 판매가격이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내리기 전이다. 반면 최저액은 지난해 9월2일 제196회차의 7억 2000만원. 최고액의 50분의1도 안 된다.6월 말 기준으로 1284명의 1등 당첨자들이 모두 3조 1465억원을 받아갔다.1인 평균 24억 5000만원이다. 최고령 1등 당첨자는 85세. 최연소는 24세였다. 지역별로는 지금까지 서울에서 344명의 1등 당첨자가 나왔다. 이어 ▲경기 271명 ▲부산 96명 ▲인천 72명 ▲대구 59명 등의 순이다. 인구수 순위와 거의 어긋나지 않는다. 1등 당첨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판매점은 서울 상계동의 S편의점. 무려 7명이 이곳에서 로또를 산 뒤 대박을 맞았다. 충남 홍성과 부산 범일동의 복권방도 5명의 1등 당첨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 판매점들 주변 도로는 주말이면 정체를 빚는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로또 마니아’들 덕분이다. 한꺼번에 모여드는 손님을 감당하지 못해 주인이 자동 로또 복권을 미리 뽑아놓기도 한다. 전국 택배 서비스도 해주고 있다. ●3개월 지나도록 안 찾아가면 소멸 1등에 당첨됐는데도 당첨금을 찾아가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있다. 무려 13명이나 된다. 이들의 미수령액은 모두 367억원. 만일 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나온 로또가 1등짜리더라도 섣불리 흥분해서는 정신 건강에 치명적이다. 당첨금을 지급하기 시작한 날로부터 3개월이 지났다면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 이미 복권 소멸시효를 넘겨 복권기금으로 들어간 상태다. 세금은 5만원 이상 당첨금부터 낸다. 세율은 당첨금 5억원 이하는 기타소득세 20%와 주민세 2% 등 22%,5억원 초과분은 기타소득세 30%와 주민세 3%를 합한 33%다. 예를 들어 30억원에 당첨됐다면 세금 9억 3500만원을 뺀 20억 6500만원 정도를 받게 된다. 1등 당첨 확률은 814만분의1이다.1500년 동안 매주 10만원씩 복권을 사야 가능하다. 수학계에서는 확률 ‘0’라고 보는 편이 편하다고 한다. 벼락을 16번 맞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어 ▲2등 135만분의1 ▲3등 3만 5724분의1 ▲4등 733분의1 ▲5등 45분의1 등이다. 가장 많이 나온 당첨번호는 37(41회). 이어 ▲40(40회)▲2,3,4,36(37회) 순이다. 복권은 어떤 사람들이 많이 살까. 국무조정실 산하 복권위원회의 2004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57.5%가 복권 구입 경험이 있고, 월소득 200만∼300만원 층에서 월 1∼2회 구입하는 비율(28.3%)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회당 평균 구입비용은 7130원. 특히 중소도시 지역의 자영업이나 블루칼라 층에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복권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1등 당첨자들의 3분의1 정도는 꿈을 꾸고 당첨된다. 이중 25% 정도가 조상 꿈을 꾼다. 꿈에서 물을 접하거나 숫자를 보고 로또 대박을 맞은 이들도 상당수다. 당첨금은 아무리 적어도 10억원은 훌쩍 넘는다. 현금으로 받는 것은 무리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당첨금 수령지인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복권사업부 건물에서 통장으로 직접 건네진다.”고 설명했다.1등 당첨자들은 의외로 담담한 편. 실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또 판매액의 절반 정도는 상금으로 나간다. 판매 수수료(판매인) 5.5%, 시스템 사업자(KLS) 3.114%, 수탁사업자 0.54%(국민은행) 등이 로또 운영 원가에 해당한다. 나머지 40% 정도는 복권 기금으로 조성돼 지역개발, 중소기업 창업 지원 등 공익 사업에 쓰인다. ●문화 정착 vs 광풍 재현될 수도 요즘은 로또 열풍이 상당히 사그라졌다. 지난해 로또 판매금액은 2조 4715억원.2003년의 3조 8031억원보다 3분의1가량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로또를 사도 당첨이 계속되지 않아 구매 의욕이 떨어지는 ‘로또 피로’ 현상의 결과로 분석한다. 1등 평균 당첨금도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2003년 평균 81억 2900만원에서 올해(지난 5월5일 기준)는 18억원까지 떨어졌다. 게임 횟수당 가격이 낮아지면서 전체 복권 매수는 늘어났고, 확률적으로 1등 당첨자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2004년 이후 매회 매출은 400억여원 정도로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복권,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복권 관련 저서 공저자인 목포대 수학과 박형빈 교수는 “본능적인 사행심리를 막는 것보다 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리는 게 중요하다.”면서 “미국 등 외국인들이 1달러짜리 복권 한 장으로 1주일 동안 즐겁게 지내는 것처럼 우리의 로또 역시 오락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로또 과열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사회 위기 때는 누구나 ‘환상’에 기대기 마련. 로또 광풍이 불던 2003년은 카드대란의 여파로 경기 불황과 함께 신용불량자가 속출하던 시절이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 교수는 “예측 가능한 여가로서의 로또는 사회에 긍정적이지만 과거 ‘바다이야기’ 열풍처럼 모든 관심이 쏠리는 것은 병리적인 현상”이라면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언제든 로또 광풍이 되살아날 수 있는 만큼 외국 사례처럼 국가 차원에서의 로또 사업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외국 사례와 각종 기록 로또(lotto)는 ‘행운’이란 뜻의 이탈리아어다. 복권의 영어 표기인 ‘lottery’ 역시 로또에서 유래된 단어다. 16세기 초 이탈리아 플로렌스 지역에서 최초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근대적 개념의 로또는 1971년 6월 미국 뉴저지주에서 판매됐다. 이후 북미권과 유럽을 넘어 호주·아시아 등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 통계에 따르면 2004년 세계 복권 시장의 규모는 1870억달러(약 168조원). 이중 로또의 비율은 45.9%(77조원) 정도다. 역대 복권 최고당첨금은 3억 7000만달러(3400억원). 지난 3월 미국 조지아주의 트럭 운전사 등 2명이 받았다.1인 최고액은 2002년 파워볼 게임 1등 당첨자의 3억 1490만달러(2880억원)이다. 국민 1인당 연평균 구매액이 최고인 국가는 싱가포르.2004년 기준으로 696달러(64만원)에 이른다. 반면 한국은 68달러(6만 2500원)에 그친다. 복권 최대 판매 국가는 미국으로 2004년 50조원을 넘겼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새 사업자 선정 앞둔 ‘2기 로또’ 오는 12월1일부터 국민은행과 KLS 대신 새로운 사업자가 로또 복권 운영을 맡게 된다.‘국민은행 로또’ 시대가 끝나는 셈이다. 최근 마감된 2기 사업자 입찰에는 CJ, 코오롱아이넷, 유진기업 등이 각각 컨소시엄을 형성해 참여했다. ‘로또 쟁탈전’에는 시중은행들도 뛰어들고 있다.CJ의 ‘로또와 함께’ 컨소시엄에는 한국컴퓨터 등과 함께 우리은행이 참여했다. 코오롱의 ‘드림로또’ 컨소시엄에는 하나은행, 유진기업의 ‘나눔로또’ 컨소시엄에는 농협이 함께한다. 복권위원회는 이달 말까지 사업자 선정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입찰에 국민은행은 참여하지 않았다.‘은행 이미지 훼손과 함께 수익성이 높지 못하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복권위 등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입찰을 안 했다기보다는 못했다는 게 정확하다. 복권위가 정부로부터 소송을 당한 업체의 참여를 제한했기 때문. 정부는 국민은행과 KLS에 대해 수수료를 과다책정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대기업들이 로또 사업권에 목을 매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KLS와 국민은행은 지난해 로또 매출 2조 4730억원의 3.654%인 900억원 정도를 수수료로 가져갔다. 원가를 빼더라도 5년 동안 매년 현금 수백억원이 남는 장사다. 더구나 운영사업자로 선정된 은행은 수수료 수익 말고도 당첨금을 제외한, 매주 로또 판매액의 절반인 200억여원의 이자 수익도 올릴 수 있다. 정부 기금분이 사업자 은행 계좌에 머물러 있는 덕분이다.1등 당첨자를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것도 보이지 않는 메리트다. 광고 효과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일반인들에게 회사의 이름을 알리는 동시에 국내 최대 복권 사업자라는 신뢰감도 심어줄 수 있다. 복권위 관계자는 “돈도 벌면서 홍보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대기업과 은행들이 사업권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익원 창출에 골몰하고 있는 은행 입장에서 돈과 인지도를 가져다 줄 로또 사업권은 매력적인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30년 中企 부도위기… 기술력 아까워

    Q30년 된 중소기업입니다.2년 전 시설자금 대출로 공장을 확장·이전한 뒤 금융비용 등 고정비용이 증가했습니다. 최근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원가 부담이 커지고 환율 하락과 국제경쟁의 심화로 매출도 하락해 영업이익 없이 2년째 결손인데, 단기 자금 결제는 순차적으로 돌아와 부도 위기입니다. 청산하자니 150명 종업원의 생계도 걱정이고 투자가 많이 된 공장이어서 기술력이 아깝습니다. - K회사 A회생절차에 들어갈 수 있는 전형적인 기업은 상당한 영업이익이 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투자나 금융사고 등으로 부채가 많아 금융비용을 영업이익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부채를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하고 일부 채무를 취소하거나 주식으로 전환하는 단순한 방법만으로도 기업은 회생할 수 있습니다. 민사법상의 원칙은 이것을 채권자와 주주들의 합의로 이루게 돼 있지만 개별 채권자와 주주가 당장 손해가 실현되는 것에 반발해 저항하면 합의가 안 됩니다. 이 문제를 시정하기 위하여 기업의 현황과 전망에 관한 인식을 채권자, 주주, 경영진 사이에 공유하고 향후 구조변경에 관한 합의를 다수결로 이끌어내는 것이 회생절차입니다. 문제는 귀사와 같이 영업이익을 실현하고 있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시장의 여건이 호전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장기적인 투자와 구조조정으로 영업수지가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규 투자 유치가 필수적입니다. 즉 추가로 자금이 투입되어야 단기간의 결손을 극복하고 장기적 번영의 기반을 다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록 정상적인 조업을 하고 있고 자산가치도 충분하지만 현재 부채가 많은 상태라면 회사법에 정해진 정상적인 방법으로 투자를 유치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채권이나 주식의 실질가치가 많이 감소된 상태인데 새로운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과거의 채권자와 주주들과 동일한 입장에서 투자를 하게 되면 손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투자 유치를 위해 과거의 채권자와 주주를 후순위로 밀어내고 새 투자에 대하여 우선권을 주는 조치가 불가피합니다. 새 투자 유치는 기업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 기존의 채권자와 주주에게도 전체적으로는 이익이 되지만, 개별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가결될 가능성이 적기에 거래비용을 줄여주기 위하여 정보 공유와 다수결을 강제하는 회생절차가 있는 것입니다. 신규 자본 유치는 원칙적으로 기업 쪽에서 제시하는 회생계획에 포함됩니다. 자본 감소, 채권자와 담보권자의 권리 축소와 주식 전환에 수반하여 신규 자본을 유치하여 그 대가로 담보부사채, 전환사채를 발행하기도 하고 신주를 발행하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회사법에 규정된 모든 형태가 이용될 수 있습니다. 주식의 포괄적 교환과 이전, 흡수합병, 분할합병, 새로운 회사의 설립과 같은 테크닉을 개별적으로 또는 여러 개를 복합하여 사용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회생절차는 비상시의 인수합병 즉 인수·합병(M&A)을 촉진하는 수단입니다. 여기에는 상당한 조세특례도 부여됩니다. 회생절차는 비교적 소액의 신용을 추가로 얻는 것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것은 회생절차의 개시 이후 발생하는 채권에 대하여는 회생채권과 회생담보권에 우선해 회생절차에 의하지 않고 수시로 변제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가능해집니다. 기업에 따라서는 사업을 청산할 때의 가치가 사업을 계속할 때의 가치보다 클 수 있습니다. 이때에도 청산, 영업양도, 물적 분할을 내용으로 하는 회생계획안을 작성하여 제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조업을 계속하는 한 회생절차를 통하여 청산의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습니다. ●김관기 변호사가 담당하는 ‘채무상담실’의 상담신청은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檢,김재정씨 대리인등 조사

    검찰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경선 후보의 검증 문제를 둘러싼 고소·고발 사건과 관련,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다 한나라당은 이 후보 X-파일의 작성 및 유출과 관련, 김만복 국정원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하고, 청와대는 즉각 반박하는 등 이 후보의 검증문제가 전방위로 확산되는 형국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이 후보의 처남 김재정씨 대리인과 김씨가 대주주인 ㈜다스 대표 김모씨를 고소인 자격으로 8일 불러 조사했다고 9일 밝혔다. 검찰은 또 이날 오전 이 후보의 BBK 사기 사건 연루 의혹과 부동산 거래 내역 등을 문제 삼은 열린우리당 의원 5명을 수사의뢰한 한나라당 법률지원단 소속 김용원 변호사를 소환해 조사했다. 지난 6일 신속한 실체 규명을 천명하면서 수사에 착수한 검찰의 행보가 이례적으로 빠르다. 검찰은 ㈜다스 대표 김모씨와 김재정씨 대리인을 상대로 부동산 투기 의혹 보도와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 등의 의혹 제기에 대한 고소 취지를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수사의뢰인의 대리인 자격으로 나온 김 변호사로부터는 수사 의뢰 사항과 배경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김 변호사는 이날 기자실을 찾아와 9일 한나라당이 이 후보 측에 고소 취하 요청을 한 사실과 관련,“한나라당이 수사의뢰한 사건은 반의사불벌죄(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는 범죄)인 명예훼손 혐의뿐만 아니라 개인 정보의 불법 유통 혐의 등도 있어 검찰 수사가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이 후보 관련 X-파일의 작성 및 유출과 관련해 김만복 국정원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한나라당과 이 후보측이 정치공작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후안무치한 국면탈출용 정치공작”이라고 맹비난했다. 전광삼 홍성규기자 hisam@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불멸의 보초가 ‘전선야곡’의 신세영(Ⅰ)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아∼ 그 목소리 그리워//들려오는 총소리를 자장가 삼아/꿈길 속에 달려간 내 고향 내 집에는/정안수 떠놓고서 이아들의 공 비는/어머님의 흰 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아∼ 쓸어안고 싶었소.//방아쇠를 잡은 손에 쌓이는 눈물/손등으로 씻으며 적진을 노려보니/총소리 멎어버린 고지 위에 꽂히며/마음대로 나부끼는 태극기는 찬란해/아∼ 다시 한 번 보았소.’ -전선야곡(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신세영 노래,1951년 10월 발표). ‘불멸의 보초가’로 현재까지도 병영 막사에서 군가보다도 많이 불린다는 이 노래,‘전선야곡’은 대표적인 전쟁가요다. 전 국토의 4분의3이 전쟁터로 변하고 온 국민을 전장으로, 피란민으로 내몰았던 6·25 한국전쟁. 당시 나온 노래로 특히 ‘전선에서 그리는 고향 어머니’에 대한 심경을 고스란히 담은 이 노래는 온 국민들의 소맷자락을 적셨다. 특히 길가다가도 느닷없이 징집되어 전쟁터에 나선 바람에 정작 어머니 얼굴조차 뵙지 못보고 고향을 떠난 이들도 적지 않았던 탓. 때문에 ‘어머님의 흰 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하는 부분에서는 특히 가슴이 복받쳐 올라 부르는 이도, 듣는 이도 함께 소리 내어 울었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현재 대한가수협회 원로가수회장을 맡고 있는 신세영(82)씨. 이 ‘신세영’이란 예명은 당시 최고 여가수들이었던 신카나리아의 ‘申’, 장세정의 ‘世’, 이난영 이름의 ‘影’자를 한 글자 씩 조합해 만든 이름.1948년 대구 오리엔트레코드사를 통해 데뷔곡 ‘로맨스 항로’를 발표한 데 이어 ‘영 너머 고갯길’,‘바로 그날 밤’,‘무영탑 사랑‘ 등을 잇달아 발표했던 그는 해방 이후 현인에 이어 두 번째로 가수가 된 인물. 음반을 찍어낼 물자와 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누구나 쉽게 음반을 낼 수 없었던 탓으로 그만큼 가수 또한 귀했다. 이 노래는 그에게 대표곡 이상으로 의미가 각별하다. 취입했던 바로 그날 어머니가 운명하셨기 때문. 그래서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더욱 목이 메었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많은 희생을 강요했다. 그 역시 이 노래를 발표한 이듬해 국방부 정훈국 공작대에 소속되어 북진하는 국군의 작전을 따라 최전방 덕천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에게 포위, 이틀 만에 탈출하는 등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이때 생사를 함께 한 7사단 군예대원 중에는 가수 손인호씨도 있었다. 본명 정정수.1925년 광산업을 하는 부친 정자경과 포목점을 운영했던 모친 김옥경 사이 3남매 중 외아들로 부산 동래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대구로 이사했다. 운동신경이 뛰어나 복싱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가수가 되기 위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콩쿠르에 참여하면서부터 점차 노래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내던 1945년 초, 해방을 불과 얼마 앞둔 시점에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징집된다. 이후 만주 봉천을 거쳐 항구 전선에 투입되는데 이때 그는 B29의 폭격을 받아 대부분의 동료들을 잃고 그 역시도 피투성이가 된 채 병원으로 이송, 생사의 갈림길에서 감격적인 일본 패망 소식을 듣는다. 이 무렵 그는 정신대의 참혹상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더구나 그 주인공 중 한 여성을 최근 서울의 한 방송국에서 다시 재회하는 감격을 맛보기도 했다. 1981년 신세영씨는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틈틈이 한국을 오가다가 3년 전에는 아예 비자를 반납했다.‘묻혀도 한국 땅에 묻혀야 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1일 TV 하이라이트]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청전 이상범의 산수화가 나온다. 겨울과 가을의 풍경을 각각 담아낸 두 점의 그림, 이 가운데 하나만 진품이라는데 과연 어떤 것이 진품인지 찾아본다. 추억의 박치기왕으로 온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준 프로레슬러 김일은 은퇴와 함께 제자 이왕표에게 가운을 물려주었다. 용맹한 호랑이의 모습이 담겨있는 이 가운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싱싱 일요일(KBS2 오전 8시)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꿈꾸는 새로운 전원생활이나 전문 영농인을 꿈꾸는 귀농 모두 농촌에서의 정착 성공률은 30% 정도이다.100회를 맞아 ‘도시탈출, 전원을 꿈꾸다’에 나왔던 세 가족의 ‘방송 그 후 1년’을 찾아 행복한 전원생활의 성공요소를 살펴본다. 그동안 ‘계절의 보석’을 거쳐 간 신토불이 농수산물 70가지 가운데 베스트 5를 알아본다. ●잡지왕(MBC 오후 4시40분) 일본에는 토끼 전문 잡지가 3종이 있고, 이 가운데 ‘토끼의 생활’에는 세계 각국 다양한 종의 깜찍하고 앙증맞은 토끼들이 소개되고 있다. 일본 토끼계 톱스타로 불리는 이즈미. 기비결은 바로 일본 최고의 초대형 토끼이기 때문이란다. 이즈미의 몸무게는 무려 8kg에 이른다. 토끼 전문 잡지에서 소개하는 매력만점의 애완 토끼들을 만나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SBS 밤 12시5분) 몇 시간 외출하기 위해선 이틀을 굶어야 하는 환희. 환희는 ‘대장폴립’이란 질환을 앓고 있다.10살 무렵, 환희의 대장에서 수백 개의 폴립이 발견되었고, 빠른 시간 안에 대장암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진단을 받고 환희는 3년전에 대장을 모두 잘라냈다. 아빠와 환희, 세상에서 단 둘뿐인 가족. 아빠는 환희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데…. ●장학퀴즈(EBS 오후 5시) 제543회 우승자의 자리를 놓고 서울 정의여고와 천안 북일여고 학생들 사이에 박진감 넘치는 대결이 펼쳐진다. 야구명문고인 천안 북일고와 한 울타리에 있는 북일여고는 강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실력으로 줄대결과 아이템획득전에서 월등히 앞서간다. 하지만 정의여고도 뒤지지 않고 1승의 노련함을 살려 본선대결에서 북일여고와 접전을 펼친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전 8시30분) 전 세계 국가에서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게다가 기후 변화의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단순한 빙하가 녹는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와 지역 주민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다. 기후의 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곳은 자원부족으로 기후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개발도상국들이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50분) 1933년 최악의 암흑기를 맞은 미국 시민들에게 큰 활력소가 되어준 만화 속의 위대한 영웅 ‘슈퍼맨’. 영화로까지 제작되어 큰 인기를 누렸지만, 이목이 집중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는데 과연 영화 속에 숨은 비밀은 무엇일까. 고대 문명의 폐허에서 발견된 유물 가운데는 지금까지의 상식을 뒤엎는 지식의 보고가 숨겨져 있다는데…. ●TV탐험 멋진 친구들(KBS2 오전 9시45분) ‘서울뚝배기’에서 윤마담으로 나왔던 김애경. 애교 목소리의 1인자인 그녀의 연기 인생이 담긴 세 가지 보물상자를 열어본다. 부부 사이의 문제를 드라마로 재구성한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촬영 현장에서 이루어진 배우들과의 생생 인터뷰도 공개된다.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파산선고 받으면 대표이사 못하나요

    Q중소기업의 대표이사입니다.IMF환란 이전 계열사에 연대보증을 서면서 약 500억원의 채무를 가졌습니다. 주채무자는 회사정리절차로 채무가 모두 면책되었으나 보증채무가 남았는데, 여러 차례 양도를 거쳐 취득한 최종 양수인은 파산신청을 통해 대표이사 직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하더니 며칠 전 저를 상대로 파산신청을 하였습니다. 저의 재산은 IMF 때 다 날아갔고, 매월 120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지만 채권자 몇 명이 급여 절반을 압류해둔 상태입니다. 파산 선고를 받으면 대표이사를 하지 못하게 될까봐 겁이 납니다. - 김형진(가명·55) A금융기관은 기업여신을 할 때 대주주와 핵심 임원에 대하여 기업채무 연대보증을 요구합니다. 기업인은 기업과 운명을 같이 하라는 것인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금융기관이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업주가 사업에 실패하면 천문학적인 채무를 지게 되니 마치 기관총 사수의 발목을 쇠사슬로 진지에 묶어 놓는 것처럼 비인도적인 면이 있습니다. 이같은 불합리함은 파산제도로 보완할 수 있습니다. 파산제도에 의하면, 정직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라면 자신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것을 모두 내 놓고 나머지 채무는 면책받아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파산제도의 이같은 효과 때문에 대부분의 신청은 채무자 자신이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채권자들은 잘 신청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업인에게도 적용됩니다. 원래 파산제도는 생활능력이 곤란한 사람보다는 기업인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소비자에게 확산돼 최근에는 소비자 파산이 더 많습니다.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은 기업인이라도 고용과 생산을 늘려 국가와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려던 사람이므로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는 실패한 기업인을 감싸 줘야 고용이 늘어나고 경제가 발전한다는 인식이 우리나라에도 서서히 확산되어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회사가 파탄의 위기에 직면해 회생제도를 통해 재건될 때 연대보증을 한 대표이사 개인은 개인파산을 신청해 자신의 개인재산을 모두 내 놓고 나머지 채무를 면제 받으면 기업은 기업대로, 기업인은 기업인대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는 기업인들의 인식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업인의 헌신으로 몇 년 동안 회사정리계획을 전부 이행해 회사는 정상화되었는데, 김형진씨와 같이 기업인 자신이 채무 독촉에 시달리는 사례가 흔히 있습니다. 어쨌든 300억원의 채무에 대하여는 연체이자만해도 매월 수억원이 발생할 것이니만큼 월 1200만원의 급여로는 갚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므로 파산 상태인 것은 분명하고 채권자의 파산신청은 받아들여질 것이고, 과거 개인재산을 따로 감춰 채권자들을 해롭게 한 적이 없다면 김형진씨도 면책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채권자가 파산신청을 하는 상황은 어찌 보면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준다는 속담처럼 오히려 기회일 수 있습니다. 채권자가 신청한 사건에서도 채무자는 파산선고를 받은 후 바로 면책신청을 할 수 있으며 여기에서 다른 비위가 발견되지 않으면 채무자는 면책을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권자가 나서서 파산신청을 한 이유는 김형진씨가 대표이사 직을 잃게 될까봐 겁이 나서 조금이라도 변제하기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만, 파산선고를 받으면 회사의 대표이사를 할 수 없게 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대표이사와 회사의 관계가 위임에 해당하고 이같은 위임은 수임인 즉 위임을 받은 사람이 파산선고를 받으면 종료하는 것으로 민법에 기재되어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이 민법 규정은 당사자의 의사로 적용하지 않을 수 있는 ‘임의규정’이므로, 파산선고를 받은 사실을 아는 사람을 회사가 대표이사로 채용하는데 어떠한 제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회사에 대표이사 직을 내 놓으라고 할 의도가 있지 않은 한 대표이사 직의 수행에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또 파산법원이 회사에 대표이사에 대한 파산 선고 사실을 통지하지 않기에 실무상으로는 거의 문제되지 않습니다. ●김관기 변호사가 담당하는 ‘채무상담실’의 상담신청은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입시공화국의 종말/김덕영 지음

    3월엔 ‘3불정책’으로 뜨겁더니 6월엔 대학 내신등급 적용문제로 뜨겁다. 한국사회는 교육문제로 늘 뜨겁다.‘세상만사’에 무관심한 사람도 교육문제, 좀더 정확하게 말해 입시정책에 대해서만큼은 입에 거품을 문다. ‘입시 공화국의 종말’(김덕영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입시 공화국은 종말을 고해야 한다.’는 의미이자 ‘입시 공화국은 결국 종말에 이르고 만다.’는 주장이다. 독일 카셀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하는 지은이는 한국 교육이 ‘인재 이데올로기’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을 ‘인재’‘인적자원’으로 파악하는 한 학생들은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쉼 없이 뛰는 조그만 선수들’일 뿐이다. 학교가 ‘감시와 처벌’의 온상이란 푸코적 진단도,‘명문대 출신’으로 정의되는 한국 엘리트의 허약함에 대한 야유도 새삼스럽진 않다. 그러나 ‘조승희=오답’ ‘하인즈 워드=정답’이란 정의가 학벌주의와 민족주의로 오염된 교육의 필연적 결과란 지적은 가슴 아프다. 저자는 해법을 제시하는데도 우물거리지 않는다. 서울대를 ‘대학 중의 대학’이 아닌 ‘다양한 대학 중 하나’로 위상을 재정립할 것, 고등학생 평가는 고등학교에 맡길 것, 객관식 시험을 폐지하고 토론과 논술로 대체할 것.1만 2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5) 인조반정의 외교적 파장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25) 인조반정의 외교적 파장Ⅱ

    인조반정을 ‘찬탈’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조선을 후금과의 대결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절실했던 명은 고민을 거듭했다.‘찬탈’을 자행한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을 응징하여 상국으로서 명분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이미 바뀌어버린 조선의 현실을 수용하여 실리를 택할 것인가? 인조와 반정공신들 또한 초조했다. 반정 직후 명에 보낸 주문(奏文) 속에서 ‘광해군이 명에 대한 사대(事大)를 소홀히 하고 배은망덕했다.’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명 조정이 ‘찬탈’을 운운하자 그들은 바짝 긴장했다. 명 조정이 만일 ‘명분’을 선택하여 인조에 대한 책봉을 거부할 경우, 집권의 정당성을 얻지 못하고 좌초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명, 실리를 택하다 ‘조선 사태’에 대한 처리 방향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던 명 조정은 절충안을 내놓았다.1623년 8월 명의 예부상서(禮部尙書) 임요유(林堯兪)는, 신료를 파견하여 조선 신민(臣民)들의 의견을 청취한 다음 인조에 대한 책봉 여부를 결정하자고 건의했다. 여론 조사를 통해 ‘명에 대한 광해군의 배은 망덕’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인조반정을 ‘찬탈’로 규정하여 성토하자고 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고 인조가 명에 협조하여 후금과의 싸움에 앞장서겠다는 자세를 보일 경우,‘찬탈’이 아닌 것으로 결론을 내리자고 했다. 명 조정은, 당시 가도( 島)에 주둔하고 있던 모문룡(毛文龍)의 부하 진계성(陳繼盛)을 서울로 들여보냈다. 진계성은 조선에서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광정(李光庭)을 비롯한 831명의 의견을 청취했다. 진계성이 면담한 사람들의 의견은 거의 한결 같았다. 그들은 ‘1619년 심하전역에서 유정(劉綎) 등이 전사하고 명군이 패한 것은 조선군이 후금군에게 군사 기밀을 누설했기 때문’이고,‘광해군은 후금과 화친했다.’고 진술했다. 또 ‘광해군이 자신의 죄악을 은폐하기 위해 명 사신들을 숙소에 억류하고, 명과 후금 사이에서 관망하는 자세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반정 당일 일본군을 끌어들이고 궁궐에 방화했다.’는 소문은 유언비어임을 지적하고, 인조의 인품이 훌륭하고, 광해군은 잘 보호되고 있다고 진술했다. 예부상서 임요유는 1623년 12월8일 황제에게, 인조를 승인하여 책봉하자는 내용으로 상주(上奏)했다. 그는 진계성의 보고 내용을 토대로 ‘광해군의 배은망덕’과 인조의 ‘충순’을 확인했다고 평가하고, 일단 인조를 국왕으로 인정하되 그가 모문룡과 합세하여 후금을 공격하여 공적이 드러난 뒤에 정식으로 책봉하자고 주청했다. 말하자면 ‘조건부 책봉’이었다. 후금의 도전 때문에 곤경에 처한 명의 현실을 고려하여 명분이 아닌 실리를 택한 것이다. 그런데 그 실리의 크기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모문룡, 인조반정을 찬양하다 비록 ‘조건부 책봉’이지만 인조가 명으로부터 조선 국왕으로 인정받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은 모문룡이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그의 부하 진계성이 서울에 들어가 ‘조선 사태’의 전말을 조사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주청사 일행이 가도에 들렀을 때 모문룡은 반정의 발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명 조정에 보낸 주문에서도 인조를 책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으로 연결되는 육로가 끊어진 상황에서, 조선과 가장 가까운 가도에 머물던 모문룡의 의견은 명 조정이 인조를 승인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모문룡은 무슨 까닭으로 인조반정을 긍정하고 인조를 책봉하자고 했을까? 모문룡의 존재는 1620년대 조선과 명, 조선과 후금, 명과 후금 사이의 관계를 결정했던 ‘아킬레스건’이었다. 한마디로 모문룡 때문에 조선과 후금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고, 궁극에는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그는 달리 말하면 ‘시한폭탄’이었던 셈이다. 모문룡은 1621년(광해군 13년) 7월,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요동으로 잠입하여 진강(鎭江)을 탈취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의 의주를 마주보고 있는 진강-오늘날의 단둥(丹東) 부근-은 전략 요충이었다. 육로를 통해 선양 등 만주 내륙으로, 수로를 통해 요동반도와 산동반도 등지로 연결될 수 있었다.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모문룡의 진강 점령은 명과 후금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1618년 푸순성이 함락된 이후 명군은 후금군에 연전연패했다. 승전보에 목말랐던 명은 모문룡의 진강 점령을 기첩(奇捷)이라 불렀다. 마치 요동 전체를 수복이라도 한 것처럼 고무되었다. 후금은 자신들의 안마당에서 허를 찔린 것에 격앙되었다. 후금은 곧 대병을 동원하여 반격에 나섰다. 모문룡은 도주하여 조선의 미곶(彌串)으로 상륙했다. 그가 상륙했다는 보고가 날아들었을 때 광해군은 경악했다. 광해군은 모문룡이 조선과 후금 관계에서 화근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예상대로 모문룡은 휘하를 이끌고 철산(鐵山), 용천(龍川), 의주(義州) 등지를 옮겨다니며 “요동을 수복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때로는 압록강 너머의 만주 지역으로 포를 쏴대며 후금군을 자극했다. 모문룡 때문에 후금군의 침략을 받을 판이었다. 실제 1621년 12월, 후금군은 모문룡을 처치하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와 의주와 용천을 기습했다. 모문룡은 조선인 복장으로 갈아입고 탈출하여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다. 그의 휘하 578명이 피살되었다. 그가 ‘화근’임을 분명히 입증한 사건이었다. 광해군은 이후 모문룡을 설득하여 철산 앞 바다에 있는 가도로 들어가게 했다. 그가 육지에 있는 한 후금군의 침략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모문룡이 가도로 들어간 뒤에는 가능한 한 그와 접촉하지 않으려고 했다. 모문룡은 가도에 동강진(東江鎭)이라는 군사 거점을 마련했다. 거점을 유지하기 위해 ‘군량 보급’ 등 조선 조정에 여러 가지 요구 사항을 내밀었다. 광해군은 최소한만 수용할 뿐 그에 대한 지원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후금과 사단이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모문룡이 광해군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했다. ●인조정권, 모문룡에게 코가 꿰이다 명은 모문룡을 높이 평가했다. 그가 가도로 들어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명 조정은 가도의 동강진을 후금의 서진(西進)을 견제하는 거점으로 활용하려 했다. 그러려면 가도에 대한 군량과 군수 물자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했다. 당시 천진(天津)이나 산동에서 가도로 가는 해로가 있었지만 거리가 만만치 않은 데다 파도가 험악 했다. 자연히 명은 조선의 도움을 받고 싶어했다. 하지만 광해군은 모문룡에 대한 지원을 기꺼워하지 않았다. 열 받은 모문룡이나 명 조정이 조선을 손봐주고 싶어도 육로가 끊어진 상황에서는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차에 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쫓겨나고 인조가 집권했다. 모문룡은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책봉승인’에 목을 맨 주청사 일행에게 인조반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공짜란 없는 법이다. 모문룡은 명 조정이 인조를 승인하도록 애써주는 대가로 가도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려 했다. 그는 반정이 성공한 직후 부하 응시태(應時泰)를 서울로 보내 사정을 탐색했다. 인조는 응시태를 접견한 자리에서 ‘광해군이 명의 은혜를 망각하고 모문룡의 지원 요구를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모문룡과 합심하여 이 오랑캐들을 소탕하겠다.”고 약속했다. 모문룡의 입장에서는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였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인조 스스로 광해군을 성토하고 자신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었다. 모문룡으로서는 표정 관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의 새 정권은 반정에 대한 명의 승인을 얻어내기 위해 모문룡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해마다 엄청난 양의 양곡을 가도로 보냈다. 가도에 머물던 명의 난민들이 수시로 평안도 지역으로 상륙하는 것도 묵인했다. 자연히 후금과의 군사적 긴장은 날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인조는 자신의 집권을 승인 받는 대가로 모문룡이라는 ‘시한폭탄’을 끌어안았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경제 불평등 이제 그만](8) ‘공룡’ 대형마트에 재래시장 ‘신음’

    [경제 불평등 이제 그만](8) ‘공룡’ 대형마트에 재래시장 ‘신음’

    지난 주말 오후 경기 광명시 광명네거리에 있는 광명시장. 골목을 따라 400여개의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지만 지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광명시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7번째 규모를 자랑하던 재래시장이다. 반면 6개월 전 시장 옆에 생긴 380평 규모의 할인매장(슈퍼슈퍼마켓:SSM)인 ‘이마트’ 안은 쇼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유통공룡’이 골목 상권을 완전히 장악, 재래시장이 고사하고 있는 현장이다. ●광명시장 점포수 600개서 400개로 급감 광명시장에서 아내와 함께 8년째 반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정모(45)씨는 “대형할인점 때문에 재래시장이 다 죽어간다.”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정씨는 “‘이마트’가 들어오고 난 뒤 손님을 싹쓸이해가면서 매출이 40% 가까이 뚝 떨어졌다.”면서 “세 아이 등록금과 학원비를 제대로 낼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정씨 가게의 현재 월 매출은 150만원 수준. 이마트가 들어선 뒤 50만원 이상 줄면서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씨는 “이마트에서 생활필수품과 과일, 야채 등 식료품까지 모두 취급하고 있어 갈수록 일반 소비자들이 재래시장을 외면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이마트가 입점하기 전 2억원을 넘던 광명시장 전체의 하루 매출도 1억 5000만원 이하로 40%나 곤두박질쳤다. 가게들이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600개에 이르던 점포도 400개로 급감했다.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정씨는 “주로 식료품을 팔던 대다수 점포들이 이마트와의 경쟁을 피해 저가 대중식당 등으로 바꾸면서 서로 ‘출혈 경쟁’을 해 다같이 죽어가고 있다.”면서 “상당수가 빚에 시달리고 있어 두세 달 안에 폐업 도미노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영세상인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 규제에 나서기는커녕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핑계삼아 대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상가끼리 출혈경쟁→빚더미→폐업 ‘도미노´ 경기 성남시 중앙시장 골목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박모(47)씨는 요즘 잠이 안 온다. 가게 500m앞 옛 인하병원 자리에 지난해 말부터 건립 중인 주상복합건물에 대형마트 입점이 가시화되면서 폐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상당수 이웃 가게 주인들은 “도산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앞다퉈 가게를 정리했다. 그러나 박씨는 폐업조차 여의치 않다. 그는 “당초 업종을 바꿔보려고도 했지만, 어느 업종이나 대형마트와의 경쟁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면서 “대형 마트 입점 소식에 가게를 임차하러 오는 사람도 없어 가뜩이나 사정이 안좋은 집주인이 ‘보증금을 내주기 힘든 형편’이라고 호소한다.”고 토로했다. 신근식 성남중앙시장연합회 부회장은 “올해 들어 시장 점포 25%가 폐업을 하고 떠난 상태”라면서 “대형마트는 재래시장 상인의 생계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다.”고 말했다. ●동네 슈퍼마켓·문구점도 직격탄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30여평 규모의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54)씨도 대형 할인점의 기세에 눌려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씨 가게는 인근 홈플러스와 이마트 등 대형할인점과 불과 500∼600m 떨어진 곳에 있다. 김씨는 “외환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임대료를 내기 위해 빚도 여러번 냈고, 대학생 아들의 학자금 대출까지 받았다.”고 고개를 떨궜다. 서울 구로동 롯데마트 인근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이모(39)씨는 “우리 가게에서 마진을 감안해 500원 이하로 팔기 어려운 학용품을 할인점에서는 ‘초특가’ 판매로 400원대에 팔고 있어 경쟁이 안 된다.”고 울상을 지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공룡 마트’ 10년새 10배 급증 대형마트의 성공 뒤에는 소상인들의 눈물이 있다. 국내 재벌계 대형할인점은 지난 10년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유통공룡’으로 급성장했다. 재래시장은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대형할인점 96년 28곳서 작년 342곳으로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1996년 점포수가 급격히 늘어났다.96년 28곳에 불과하던 것이 2000년에 163곳,2006년에는 342곳으로 급증했다. 매출액도 2000년 10조 5000억원에서 2006년 25조 40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형마트 개점은 등록제로 돼 있어 건축법상 하자가 없으면 막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형마트들의 수도권 집중과 상위 4곳의 과점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대형마트의 48.3%인 160개가 서울·경기·인천에 몰려 있다. 매출액으로는 서울이 57%(13조 2000억원)에 이른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홈에버 등 대형마트 상위 4곳의 점포수는 245개로 전체의 71.6%. 이들의 매출은 17조 7000억원으로 75.3%다. ●재래시장 총매출 2004년 35조서 1년새 3조 급감 전국 재래시장은 2005년 1660곳이었다. 대형마트의 영향으로 최근 1년간 재래시장의 94%는 영업 상황이 악화됐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 결과 2004년 35조 4000억원이던 재래시장 매출액은 1년새 2조 7000억원이나 감소했다. 이는 재래시장 약 137개에 해당하는 것으로, 같은 해 대형마트 매출액 증가분 2조원에 잠식된 것으로 추정된다. 점포당 하루 매출액도 1년새 4만 2000원 줄었다. 시장당 고객수도 하루 146명씩 감소했다. 대형마트 확산은 대형업체들의 주장과 달리 신규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 않았다. 시장경영지원센터 조사에 따르면 2005년 새로 생긴 대형마트는 33개로 신규 고용자 수는 1만 8800명 늘었지만, 같은 기간 재래시장 종사자는 2만 6000명이 실직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형마트들끼리의 가격인하 경쟁은 재래시장은 물론 중소유통업체도 위축시켜 유통산업 양극화를 초래하게 된다.”면서 “지역경제 침체로 인한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지역간 불균형 발전의 요인도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상인들은 지역상권의 슬럼화를 가장 우려했다. 상가정보 제공업체 ‘상가114’가 지난달 상인 23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44.8%가 ‘재래시장이나 주택가 상권이 심각하게 슬럼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대형마트 규제·재래시장 자생력 확보 관건 상인들과 시민단체들은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가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8개 대형마트들은 추가 출점을 자제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미니 할인점’인 슈퍼슈퍼마켓은 계속 확장하고 있다. 전국시장상인연합회는 “일정 인구당 대형마트의 출점 제한 등 법적인 뒷받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WTO 협정 위반’이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 “국내자본과 외국자본간에 차별이 아닌 영세상인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것은 문제될 게 없으며, 이는 선진국에서도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반박했다. 슈퍼마켓연합회는 “대형 마트가 포화상태여서 새 탈출구를 찾은 것이 슈퍼슈퍼마켓”이라면서 “도심 반경 수㎞ 이내 출점을 못하게 하거나 시간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에는 정형근·이원영·심상정 의원 등이 10여개의 대형마트 규제 및 중소상인 법안을 발의해놓고 있다. 이들 법안은 ▲대형마트 신설시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취급품목 제한 ▲영업시간·일수 제한 ▲중소유통업에 대한 간접적인 지원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전국시장상인연합회는 “대규모 점포 매장면적 기준을 3000㎡(900여평)에서 1000㎡(300여평)로 강화하는 한편 대형유통업체의 SSM(슈퍼슈퍼마켓) 진출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형마트에 밀려 신음하던 재래시장이 시설을 현대화하고 고객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자발적 노력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다. 전국시장상인연합회 관계자는 “재래시장의 위기는 편의시설 및 고객 서비스 의식의 부족, 소비자의 기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곡동 중곡제일골목시장은 최근 활기를 되찾았다. 시장 주변에 수년새 대형마트 세 곳이 들어서 시장의 존폐 위기를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 상인들은 돈을 모아 골목에 비와 햇볕을 막는 지붕을 씌웠다. 간판도 깔끔하게 정비했다. 주부팔씨름대회나 노래자랑, 대학생 댄스동아리 공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었다. 그러자 끊겼던 손님이 다시 찾아왔다. 예전보다 매출이 50% 이상 늘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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