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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축구] 동국·상식 방출 설움 씻을까? 인천 킹메이커 징크스 올해도?

    ‘인천 킹메이커 징크스’를 아시나요. 프로축구 K-리그 챔피언결정전(2일 성남·6일 전주)에 눈여겨 볼 관전 포인트이다. 인천과 마지막으로 상대해 ‘집으로’ 돌려보낸 팀은 챔피언에 오른다는 흥미로운 역사를 말한다. 인천이 리그에 참가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은 그해 11월 20일 수원과 맞붙었다. 0-0으로 비긴 인천은 리그를 끝냈다. 수원은 챔프에 올랐다. 인천은 이듬해 2년차 징크스를 깨고 플레이오프(PO)에 올랐지만, 울산에 2-7(1차전 1-5, 2차전 1-2)로 대패하고 울산은 우승했다. 2006~2008년엔 성남, 포항, 수원과 마지막 경기를 치러 무릎을 꿇었고 상대는 모두 챔프를 꿰찼다. 올 시즌 6강PO에서 리그 4위로 챔피언십에 오른 성남은 지난 22일 인천과의 6강PO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3시간 혈전을 치러 올라온 뒤 FC서울과의 준PO와 포항과의 PO에서 차례로 1-0 승리를 거두고 전북전을 기다리고 있다. 인천을 돌려세운 팀이 이번에도 최강의 자리에 오를까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성남에서 나란히 내침을 당한 전북의 리그 득점왕 이동국(30·20골)과 ‘우승 청부사’ 김상식(33)이 어떤 활약을 펼칠 것인가도 관심사. 둘은 지난해 말 성남의 사령탑을 맡은 신태용(39) 감독의 결단에 따라 전북 ‘젊은피’ 문대성(23)·홍진섭(24)과 패키지로 맞트레이드돼 새 둥지를 틀었다. “네임밸류만 외치는 선수는 필요없다.”는 게 퇴출의 이유였다. 라이언킹 이동국은 지난해 7월 말 성남과 1년 5개월 계약을 맺었지만 3개월 동안 13경기에서 2골 2도움으로 부진했다. 김상식도 1999년 데뷔 때부터 성남 유니폼을 입고 328경기를 뛰며 ‘명품수비’를 뽐냈지만 팀을 떠났다. 이동국과 김상식은 전북 최강희(50) 감독의 조련을 받으며 전환점을 맞았다. 이동국은 K-리그 데뷔 12시즌 만에 첫 득점왕의 영광을 안았고, 김상식은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를 오가는 멀티플레이를 펼치며 정규리그 1위에 힘을 실었다. 1998년 K-리그 신인왕으로 화끈하게 부활한 이동국과, 리그 3회, 컵 대회 2회, FA컵 1회씩 우승을 이끈 김상식은 ‘복수혈전’을 예고한 셈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해외 빅밴드 몰려온다

    해외 빅밴드 몰려온다

    갖가지 록 페스티벌이 지난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었다면, 이번 연말연시는 거물 밴드들이 잇따라 내한해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 특히 사상 처음으로 한국 음악 팬과 직접 대면하는 밴드들이 수두룩해 비상한 관심을 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밴드’로 꼽히는 건스 앤 로지스(GNR)가 가장 먼저 포문을 연다. 새달 13일 오후 7시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공연을 갖는다. GNR가 한국을 찾는 것은 결성 24년 만에 처음이다. GNR는 한때 트레이시 건스와 LA건스를 만들었던 액슬 로즈(보컬)를 중심으로 라면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슬래시(기타), 이지 스트래들린(기타), 더프 매케이건(베이스), 스티븐 애들러(드럼)가 뭉쳐 1985년 결성됐다. 1987년 데뷔 앨범 ‘애피타이트 포 디스트럭션’을 통해 ‘웰컴 투 더 정글’, ‘패러다이스 시티’, ‘스위트 차일드 오 마인’ 등을 히트시키며 스타덤에 올랐다. 드러머를 바꾸고 키보디스트 디지 리드를 영입해 1991년 내놓은 두 장짜리 앨범 ‘유즈 유어 일루전’에서는 ’돈트 크라이’와 ‘노벰버 레인’, 영화 ‘터미네이터2’ 주제가 ‘유 쿠드 비 마인’ 등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고, GNR는 단숨에 최고 밴드의 자리에 올랐다. 음악 팬들의 가슴을 자극하는 발라드도 빼어났지만, 정통 하드록에 가까운 사운드를 들려주며 세계를 주름잡았던 GNR는 그러나, 1993년 이후 멤버들이 각자의 길을 가며 깊은 잠에 빠졌다. GNR가 다시 꿈틀댄 것은 지난해. 로즈가 새로운 멤버들로 새 GNR를 꾸려 신작 ‘차이니스 데모크라시’를 발표했던 것. 1993년 리메이크 앨범 ‘스파게티 인시던트’ 이후 무려 15년 만이었다. 아쉽게도 로즈와 슬래시의 콤비 플레이를 맛볼 수 없지만, 록 공연에서는 보기 드물게 외국 스태프만 70명이 입국하고, 무게가 70t에 달하는 장비가 공수될 예정이라 벌써부터 역대 외국 밴드 내한 공연 가운데 최고 공연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전설의 그루브 황제’ 미국 펑크(Funk) 밴드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WF)가 뒤를 잇는다. 17일 오후 8시 서울 코엑스 대서양홀에서 내한 공연을 펼친다. 이들 역시 결성 약 4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1971년 데뷔한 EWF는 아프리카, 라틴, 디스코, 펑키, 솔, 리듬 앤드 블루스, 재즈 리듬까지 총망라하며 혁신적이면서도 빈틈이 없는 사운드로 지구 상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흥겨운 음악을 들려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셉템버’, ‘부기 원더랜드’, ‘애프터 더 러브 해즈 곤’, ‘레츠 그루브’ 등은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명곡. 미국의 양대 대중음악상인 그래미상 10회, 아메리칸뮤직어워드 4회 수상에 빛나는 EWF는 흑인 음악의 선구자, 음악의 교과서로 추앙받으며 전 세계적으로 9000만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새해 첫 순서는 감성적이면서도 강렬하고 중독성 있는 멜로디, 깊이 있는 노랫말로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브리티시록의 간판인 뮤즈의 몫이다. 새해 1월7일 오후 8시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무대에 오른다. 현재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밴드인 만큼, 이번 방문은 처음이 아니라 세 번째다. 매튜 벨라미(기타·보컬), 크리스 볼첸홈(베이스), 도미니크 하워드(드럼) 등 3인조로 결성된 뮤즈는 1999년 앨범 ‘쇼비즈’로 데뷔할 당시 라디오 헤드의 ‘짝퉁’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으나 2003년 3집 ‘앱솔루션’이 대성공을 거두며 아우라를 가진 밴드로 거듭났다. 2006년 4집 ‘블랙 홀스&레블레이션스’는 발매 일주일 만에 전 세계에 110만장 가까이 팔려나갔고, 지난 9월 발매한 새 앨범 ‘더 리지스턴스’도 현재까지 140만장이 판매됐다. 뮤즈는 국내에도 충성도가 높은 골수팬들이 상당히 많은 편. 팬들이 ‘1-2-1-3’ 박수를 치는 진풍경을 연출하는 ‘스타라이트’, 국내 휴대전화 광고에 삽입된 ‘타임 이즈 러닝 아웃’, 영화 ‘트와일라잇’에 삽입된 ‘슈퍼매시브 블랙홀’ 등 대표곡을 연주하며 장엄하고 드라마틱한 무대를 선사할 예정이다. 새해 1월18일 오후 8시에는 네오 펑크(Punk)의 맏형 그린데이가 역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무대에서 국내 팬들을 열광시킬 예정이다. 역시 첫 내한 공연이다. 빌리 조 암스트롱(보컬·기타), 마이크 던트(베이스), 트레 쿨(드럼) 등 3인조로 꾸려진 그린데이는 1994년 메이저 데뷔 앨범이자 통산 3집인 ‘두키’로 세계 대중 음악의 흐름을 바꿨다. 얼터너티브 록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바스켓 케이스’, ‘웬 아이 컴어라운드’ 등을 히트시키며 1970년 대 이후 펑크 붐을 다시 일으킨 것. 이른바 네오 펑크 시대를 열며 국내 인디 록 신의 태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예전 성공에 견줄 만한 작품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2004년 미국 부시 행정부를 꼬집는 7집 ‘아메리칸 이디엇’이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록 앨범으로 선정되고 전세계적으로 1500만장이 팔리는 등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하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지난 5월 5년 만에 발표한 신작 ‘트웬티퍼스트 센추리 브레이크 다운’으로 제2의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나신용씨 신용등급 어떻게 정해졌을까

    나신용씨 신용등급 어떻게 정해졌을까

    신용도 돈이 된다. 신용등급은 자신의 경제적 인생을 통제한다. 그러나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신용평가회사(CB)는 1000여가지가 넘는 요소를 고려해 등급을 결정한다. 한국신용정보(한신정)의 도움을 받아 가상인물인 나신용(28)씨의 신용등급을 알아봤다. 등급 결정에 중요한 것은 이자연체 외에 직장이나 연봉이 아닌 성실한 생활이었다. ●“5만~10만원 소액연체도 반영” 올해 초 서울의 한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지난달 대기업에 입사한 나씨는 평범한 경제인생을 살았다. 대학땐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2장의 체크카드를 사용했다. 5차례에 걸쳐 1000만원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이자를 3차례 연체했다. 입사하면서 만든 신용카드가 나씨의 생애 첫 카드다. 평가 결과 나씨는 5등급(보통)이 나왔다. 1~10등급의 딱 중간이었다. 한신정 관계자는 “나씨는 막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신용거래실적이 충분치 않았다. 이 경우 보통 등급을 받는데, 나씨는 대출 이자 연체 때문에 점수가 낮아졌다.”고 했다. 이처럼 신용등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체 여부다. 문제는 연체를 몇 번 해야 등급이 내려가는지 가늠하기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연체 금액, 횟수, 기간 등 수많은 요소들이 점수화되고, 점수가 다시 등급화되기 때문이다. 한 번 연체해도 등급이 내려갈 수 있고, 서너번 연체했어도 유지될 수 있다. 관계자는 “3등급이 800점까지, 4등급이 799점부터라고 가정했을 때 800점에 걸쳐 있던 사람은 한 번 연체로 4등급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보 조회해도 신용등급 안 떨어져 신용등급 결정에 대해 상식과 다른 것도 많다. 연봉이 높거나 직장이 좋으면 더 높은 신용등급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요인은 신용도와 상관없기 때문에 반영되지 않는다. 부모님의 집 소유 여부, 재산 등도 마찬가지다. 카드를 많이 발급받으면 신용등급이 내려간다고 알려져 있지만 CB사 관계자는 “발급 갯수보다 얼마나 꼬박꼬박 갚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전한다. 자신의 신용정보를 조회할수록 신용등급이 내려간다는 상식도 틀렸다. 금융회사가 아닌 본인이 자신의 신용정보를 조회할 경우엔 상관없다. CB사 관계자는 “수시로 자신의 신용등급을 확인해 신용테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신용정보는 각 CB사 홈페이지(www.mycredit.co.kr)에서 확인할 수 있고 1회에 한해 무료로 제공된다. 신용등급을 조회했을 때 생각보다 낮은 등급을 받을 수도 있다. 대개 자신이 모르는 연체 등의 신용정보가 있는 경우다. 드물게는 명의도용을 당한 것일 수도 있다. 이 경우 명의 도용을 당한 은행, 카드사 등에 연락하면 신용정보가 수정돼 등급이 회복된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케이윌이 부른 ‘하트브레이커’ 반응 폭발

    케이윌이 부른 ‘하트브레이커’ 반응 폭발

    ”지드래곤? NO, 케이드레곤!” 가수 케이윌(K.Will·본명 김형수)이 지드래곤으로 깜짝 변신,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하트브레이커’를 열창해 녹화장을 달궜다. 케이윌의 소속사 스타쉽 엔터테인먼트는 “오는 21일 SBS ‘김정은의 초콜릿’에서 케이윌이 금발의 지드래곤으로 파격 변신해 ‘하트브레이커’를 선보인다.”고 밝혔다. 케이윌은 이날 방송에서 지드래곤 특유의 스타일링은 물론, 그의 안무까지도 100% 소화해 냈다는 후문이다. 또 이날 케이윌은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휘성과 함께 데뷔 이후 처음으로 듀엣 무대를 가졌다. 평소 남다른 우정을 과시하던 두 사람은 스티비 원더의 ‘리본 인 더 스카이’(Ribbon in the sky)를 멋진 하모니로 선사해 뜨거운 박수를 이끌어냈다. 한편 깊고 호소력있는 보컬력으로 신세대 남성 보컬리스트의 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는 케이윌은 최근 발표한 정규 2집 타이틀곡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로 음악차트 상위권에 진입했다. 케이윌은 오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맞아 서울 연세대 대강당에서 생애 첫 단독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수명 100년 아파트 나온다

    수명 100년 아파트 나온다

    서울시가 ‘부수고 새로 짓는’ 현행 주택 재건축 패러다임을 ‘고쳐서 다시 쓰는’ 쪽으로 바꿔 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 신축할 공공아파트는 자유로운 평면 변화가 가능한 기둥식 아파트로 지어진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는 모든 공동주택 건축을 이 같은 방식으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나 민간 건설업체들은 분양가 상승을 이유로 부정적이어서 주목된다. ●내부 벽·설비 평면변경 가능 서울시는 18일 다양한 주거양식에 적응하고 주택 수명을 100년까지 연장할 수 있는 ‘지속가능형 공동주택’을 새해부터 서울에서 지어지는 아파트에 도입한다고 밝혔다. 지속가능형 공동주택은 건축물의 골조는 그대로 유지하되 벽이나 설비 등은 필요에 따라 손쉽게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라멘(Rahmen)’식 주택을 말한다. 아파트 전체는 기둥과 보(기둥 사이를 잇는 구조물)로 지탱하고 벽은 조립식 벽돌이나 석고보드 등으로 쌓아올려 쉽게 철거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가구별 리모델링이 쉬워져 2가구를 1가구로 또는 3가구를 2가구로 통합할 수 있게 된다. ●공공부문 아파트부터 적용 시는 지속가능형 공동주택 보급을 위해 내년 1월부터 SH공사가 공급하는 공공부문 아파트에 이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민간이 짓는 아파트도 ‘지속가능형 공동주택’으로 지을 경우 현재 20%까지 운용되는 시의 용적률 인센티브와 별도로 10%까지 추가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줄 방침이다. 이어 2012년부터 지어지는 모든 신축 공동주택을 지속가능형 공동주택으로 짓도록 할 계획이다. 시는 공동주택을 지속가능형 구조로 전환할 경우 주택수명 연장과 함께 ▲자원절약 ▲온실가스 감축 ▲자연생태지반 확보 ▲다양한 주거방식 수용 ▲건축기술 국제경쟁력 강화 등 ‘1석5조’의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건기 서울시 신주택정책기획단장은 “지속가능형 주택은 철근 콘크리트를 수명이 다할 때까지 쓸 수 있어 20~30년마다 집 전체를 부수고 새로 짓는 일을 반복하는 현 재건축 방식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업계 “분양가 상승” 난색 하지만 아직까지 건설업계에서는 라멘식 구조로 아파트를 지으면 골조 공사비 증가로 분양가가 높아지고 주민들이 기둥식보다는 벽식 구조를 선호한다는 등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정부가 먼저 지속가능형 주택 건설을 위한 법률적 기반을 마련해 이를 권장하고 있지만 이 방식으로 주택을 지으면 집안에 기둥을 세워야 해 평면구조가 나빠져 시공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는 “분양가격 상승이나 건설기술 문제 등 주택시장에 미칠 영향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 실행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MC한새·박소연 쇼케이스, ‘13일의 금요일’ 달구다

    MC한새·박소연 쇼케이스, ‘13일의 금요일’ 달구다

    MC한새와 박소연이 ‘13일의 금요일’의 위기를 넘기며 성황리에 쇼케이스를 개최하며 새로운 활동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MC한새와 송메이트 박소연은 지난 13일 7시 30분 서울 성동구 왕십리 엔터식스에서 7집 2번째 새 앨범 발매를 기념하는 쇼케이스를 열었다. 당초 공연은 7시 정각에 시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리허설까지 마스터를 마친 음향기기가 급작스럽게 본 쇼케이스 전 작동하지 않아 공연 측과 매니지먼트 팀 전체가 투입, 약 30분간 지체되는 돌발 사고를 겪었다. 게스트인 원써겐과 지기독의 무대 후 한껏 달아올린 분위기에서 등장한 MC한새는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아 이슈가 됐던 새 앨범 수록곡 ‘엄마 몰래 비밀여행’으로 쇼케이스 1부의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첫 순서를 마친 MC 한새는 “6년 만에 쇼케이스를 열게 됐다. 오랜만에 경험하게 된 떨리는 순간”이라며 공백 끝에 팬들과 마주한 소감을 밝혔다. 그는 “13일의 금요일이라 그런지, 예상치 못한 시스템의 문제가 있어서 공연을 못하게 되는게 아닌지 걱정했는데 너무 다행스럽다.”고 기쁨을 더했다. 힙합 쇼케이스에 대한 편견을 벗는 어쿠스틱 무대도 마련됐다. 송메이트 박소연을 보컬로 내세운 MC한새는 매니저 박병창 씨와 함께 기타 라이브 연주로 소녀시대의 ‘지’(Gee)와 ‘귀여워’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재편곡해 불러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달콤한 목소리의 홍대 뮤지션 로지피피와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여성 가수 유리의 게스트 무대로 관객들은 다채로운 음악을 접하는 브레이크 타임을 가졌다. 2부에서는 이제껏 방송을 통해 볼 수 없었던 MC한새의 파워풀하거나 감성적인 양면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다. 파격적인 ‘라이브 유어 라이프’(Live your Life) 무대에 전 관객을 두 손을 높이 들고 “MC한새!”를 연호했다. 이어 ‘섹시백’(Sexy back) 무대에서는 박소연 특유의 여린 듯 호소력있는 보컬이 빛을 발했다. 7집 take2의 새 타이틀곡 ‘아프다...’도 첫 공개됐다. 애절한 박소연의 리드로 시작된 ‘아프다...’는 MC한새의 휘몰아치는 거친 랩핑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강렬한 느낌을 심어주며 또 하나의 발라드힙합 히트곡 탄생을 예고케 했다. 짧지만 강한 여운은 관객들의 ‘앵콜’ 메아리로 이어졌다. 이에 MC한새와 박소연은 다시 무대로 올라 힙합팬에게 자신을 알린 곡인 ‘사랑이라고 말하는 마음의 병’을 열창했다. 공연 후 만난 MC 한새는 “날씨도 춥고 13일의 금요일이라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셔실 줄 몰랐다.”며 “준비한만큼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도 남지만, 오늘 느낀 무대와 관객들의 열정은 7집 take2 ‘아프다...’활동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감사함을 표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이규하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6인조’ 2PM, 12일 수능 맞춰 ‘공식 컴백’

    ‘6인조’ 2PM, 12일 수능 맞춰 ‘공식 컴백’

    그룹 2PM이 대입 수능능력시럼 날인 오는 12일 케이블 음악채널 Mnet ‘오~ 굿! 콘서트’로 컴백한다. 2PM은 이날 무대에서 최근 히트곡 ‘니가 밉다’ 외 새로 선보인 1집 ‘1:59PM’의 타이틀 곡 ‘하트비트’(Heartbeat)를 열창한다. 이날 무대는 재범이 탈퇴한 후 6인조 2PM이 갖는 첫 공식 무대라 팬들의 관심이 뜨겁다. 이번 오~ 굿! 콘서트’에는 2PM 외에도 아이비, 신인 그룹 엠블랙과 비스트, 휘성, 씨야, 박효신, 린 등이 출연한다. 수험생들을 위한 ‘오~굿! 콘서트’는 12일 오후 7시부터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방송인 현영의 진행으로 펼쳐진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범, 하숙범에서 추수범까지 ‘별명열전’

    김범, 하숙범에서 추수범까지 ‘별명열전’

    데뷔 5년차 배우 김범은 그동안 ‘거침없이 하이킥’의 ‘하숙범’부터 유독 여배우들과의 많은 키스신으로 ‘키스범’을 거쳐 ‘무한도전’ 벼농사특집으로 ‘추수범’까지 다양한 별명을 얻었다. 김범은 배우로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민호(김혜성 분)의 절친한 친구로 등장해 친구 집을 제 집 드나들 듯 드나들어 하숙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외자 이름 덕분인지 이후 김범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상상범’, ‘노숙범’, ‘분노범’, ‘판매범’ 등의 이름이 붙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매년 2편의 드라마와 1편의 영화를 꾸준히 찍어왔던 그는 시트콤과 영화에서 유독 키스신이 많은 신인 배우였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박민영, ‘뜨거운 것이 좋아’에선 원더걸스의 소희, 편집됐지만 ‘고사’를 통해 남규리 그리고 ‘드림’의 손담비와 키스신을 선보인 김범은 덕분에 ‘키스범’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어 김범은 최근 ‘무한도전’ 벼농사 특집에 출연해 성실히 낫질을 하는 모습을 보여 ‘추수범’이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맡은 역할, 하는 것마다 ‘…범’으로 승화시키는 김범은 다음달 3일 개봉하는 ‘비상’에서 첫 눈에 반한 수경(김별 분)을 위해 호스트로 변신해 모든 것을 바치고 무한 질주하는 시범 역을 맡았다. 극중 청담동 No. 1 호스트로 태어나기 위해 몸만들기에 주력한 김범은 아직 남아있는 소년티를 벗어버릴 예정이다. 별명 많은 김범이 이번 영화를 통해 또 어떤 애칭을 얻을지 기대된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현장 행정] 전화응대부터 상담까지 행정서비스 향상

    [현장 행정] 전화응대부터 상담까지 행정서비스 향상

    서울 성동구가 “확 바뀌었다.”는 칭찬을 듣는다. 구청사를 새롭게 리모델링한 것뿐만 아니라 주민들을 대하는 직원들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것이다. 각종 소양교육과 다양한 직무직능 교육프로그램 덕분이다.10일 성동구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열린 68개 교육에 참가한 직원은 8300여명. 전체 직원이 1100여명인 만큼 1인당 7개가 넘는 교육을 받은 셈이다. 이호조 구청장은 “인재(人材)가 바로 구청의 자산”이라면서 “빠르게 변하는 행정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한 직무직능 교육과 주민들에게 더 나은 행정서비스 제공을 위한 소양교육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직원 1인당 7개꼴로 소양·직능 교육 “구청 직원의 친절하고 상냥한 목소리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나에게 꼭 필요한 세무상담으로 어려운 가게에 큰 도움이 됐어요.” 요즘 구청 홈페이지에는 직원들을 칭찬하는 주민들의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구청장이 “서울시와 자치구에서 30년쯤 근무를 하다 보니 자기개발과 재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면서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업무에 대해 깊이 알아야 좀 더 미래지향적인 구정을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선4기를 시작하면서 다양한 직원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식곤증이 몰려오는 오후 2~3시쯤 구청 대강당을 이용했다. 내용도 다양하다. 언론 홍보부터 전화응대 친절교육, 청렴 교육, 관리자를 위한 스피치 교육 등 소양교육과 소송실무, 부동산공법, 기획서 작성요령, 사회복지 실무교육 등 직무교육까지 100여가지가 된다. 이용애 사회복지과 주임은 “다양한 재교육을 통해 느슨해졌던 마음가짐을 바로 세우고 주민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습관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성동구는 직원 수준에 맞는 교육과 직급별 핵심역량을 키우기 위해 전문가 초청, 전문교육훈련기관 위탁교육 등을 실시했다. 소설가 신달자, 방송인 엄용수, 공병호 박사 등이 나서 직원들을 울고 웃기며 주민과의 소통, 입장 바꿔 생각하기 등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전국 첫 사무관 승진자격이수제 도입 또 성동아카데미를 통해 각 부서에서 필요한 교육을 실시했다. 주택과에서 전문가의 재건축·재개발 실무 교육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총무부에서 강사를 섭외, 직원들을 상대로 교육을 한다. 사회복지·창의혁신·재개발 등 다양한 학습동아리 활동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공부하는 근무 분위기를 만들고자 2007년 전국 처음으로 사무관 승진자격이수제를 도입했다. 자격이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직원은 승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김종순 총무과장은 “다양한 교육으로 직원들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고 자부한다.”면서 “미래지향적 성동, 친절한 성동을 만들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 도입에 더욱 애를 쓰겠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스크린도전’ 영웅재중 “힘든 시기, 팬 위한 선물”

    ‘스크린도전’ 영웅재중 “힘든 시기, 팬 위한 선물”

    소속사와의 전속계약 문제로 법적 분쟁중인 동방신기의 멤버 영웅재중(본명 김재중)이 분쟁 이후 첫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첫 스크린 연기에 도전한 소감을 밝혔다. 9일 오후 서울 CGV 왕십리에서 열린 영화 ‘천국의 우편배달부’(감독 이형민·제작 삼화네트웍스)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영웅재중은 “스크린에 비친 내 얼굴을 처음 본다. 조금 이상했다.”며 쑥스럽게 말했다. ‘천국의 우편배달부’를 통해 영화 시나리오를 처음 접했다는 영웅재중은 “연기에서는 풋내기나 다름없는 나를 이형민 감독이 가르치다시피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지난해 동방신기가 4집 정규 앨범 ‘미로틱-주문’으로 바쁜 활동을 하던 당시 ‘천국의 우편배달부’를 촬영했다는 영웅재중은 “영화를 보는 내내 ‘당시 더 집중해서 연기했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영웅재중은 드라마 등 연기에도 도전 중인 동방신기 멤버들과 서로 연기에 대한 조언을 주고받았느냐는 질문에 “서로 바빠서 연기에 대한 조언이나 지도를 해주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이 열심히 하라는 격려를 보내 큰 힘을 얻었다.”고 말해 소속사 분쟁 등의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돈독한 멤버들 간의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어 “지금은 동방신기 모두에게 힘든 시기”라고 솔직하게 말한 영웅재중은 “이런 때 시사회 같은 자리에 나서는 것을 많이 고민했지만, 정말 소중한 작품이었기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고백했다. “동방신기는 물론 팬들에게도 힘든 시기일 것”이라고 말한 영웅재중은 “팬들에게 ‘천국의 우편배달부’가 작은 선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많은 사랑과 관심을 부탁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영웅재중과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히로인 한효주가 호흡을 맞춘 ‘천국의 우편배달부’는 죽은 이들을 잊지 못한 사람들이 천국으로 보내는 편지를 배달해주는 천국의 우편배달부(영웅재중 분)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을 연출한 이형민 감독과 일본 대표 드라마 작가 기타가와 에리코가 호흡을 맞춘 ‘천국의 우편배달부’는 ‘텔레시네마 7’의 두 번째 개봉작으로 오는 11일 개봉한다.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사진=이규하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게골스 골드 “男스토커, 경찰에 신고” (인터뷰)

    게골스 골드 “男스토커, 경찰에 신고” (인터뷰)

    3인조 혼성그룹 게리골드스미스(GaryGoldSmith, 이하 ‘게골스’)의 여성 멤버 골드(본명 김지영)가 최근 남성 스토커로 인한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최근 골드는 서울신문NTN과 가진 인터뷰에서 새 타이틀곡 ‘내 사랑 스토커’와 관련, “스토킹을 당해본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어렵게 이 같은 사실을 고백했다. 본래 고향이 부산인 골드는 현재 연예계 활동으로 인해 서울시 모 여대 근처에 거주하고 있다. 골드는 “약 한두 달 전부터 매일 새벽 비슷한 시각이 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성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고 밝혔다. 골드는 “새벽 한두시가 되면 밖에서 ‘저 ㅇㅇ예요. 보고싶다. 문 열어달라’며 문을 마구 두들긴다. 처음에는 제가 알고 있는 가수 연습생과 이름이 똑같아 문을 열 뻔했다. 그런데 잘 들어보니 음성이 달랐다.”고 털어놨다. 스토커는 자신을 소개하며 집요하게 문을 열라고 강요했다. 골드는 “그가 ‘저는 이 동네에 3년 이상 살았는데, 그 때부터 쭉 그 쪽을 지켜봤다’면서 ‘일단 문을 열고 이야기 좀 하자.’고 하는데 너무 너무 무서웠다.”고 두려워했다. 인터뷰 바로 전날에는 아침 6시에 찾아오는 과감함을 보였다. 골드는 최근 경찰서에 스토커를 신고했다. 경찰서가 집과 3분 내 거리지만 출동 후 아직 범인을 잡지 못한 상태. 골드는 “일단 신고가 접수돼 있는 상태라 경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소속사 몬스터월드 측도 “만약의 사태가 우려돼 매일 아침 골드의 집 앞까지 직접 데리러 가고 있다.”며 “기사화가 됐을 경우, 스토커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마음이 쓰인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취했다. 한편 게골스의 홍일점을 맡고 있는 골드는 가창력과 댄스 실력을 겸해 최근 표인봉과 SM에서 제작을 맡은 뮤지컬 ‘동키 쇼’의 여주인공으로 낙점됐다. 지난 7일 MBC ‘쇼! 음악 중심’으로 컴백한 ‘게골스’는 ‘내사랑 스토커’의 첫 라이브 무대 후 호평을 이끌어내며 당일 포털 검색어 1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데뷔 20주년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

    데뷔 20주년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나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 주면 세상은 아름답게 될 것입니다.” 민중가수보다 더 민중가수답다는 이야기를 듣는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이 문화연대와 함께 라이브 무대를 꾸린다. 27~28일 서울 소월아트홀에서 열리는 문화연대 10주년, 블랙홀 20주년 기념 트리뷰트 공연 ‘깊은 밤의 서정곡’이다. 문화연대가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어깨동무하는 음악인이 헤비메탈 밴드라는 점이 이채롭다. 마침 블랙홀도 앨범 발매 기준으로 20년의 나이를 먹은 시점. 1985년 결성 뒤 1989년 첫 앨범을 포함해 8장의 정규 앨범을 내는 동안 우리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잊어서는 안 되는 정신적 가치를 노래하고, 지금까지 2000회가 넘는 공연을 펼치며 헤비메탈의 뚝심을 보여주고 있는 밴드가 바로 블랙홀이다. ●창립 10주년 문화연대와 27~28일 라이브 무대 최준영 문화연대 대안문화센터 팀장은 “문화연대가 했던 주요 행사나 캠페인에 빠짐없이 참여한 팀이 바로 블랙홀”이라면서 “우리도 자료를 찾아보다가 놀랐을 만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팀”이라고 설명한다. 공연 연출을 맡은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문화연대 활동과 관련해 섭외를 도맡아 왔다.”면서 “사회적인 메시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탁월한 음악성과 연주력 때문에 블랙홀을 섭외했다.”고 강조한다. 이번 공연이 시대에 편승하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만의 음악을 연주하며 대중음악에 획을 그었던 밴드의 음악적 의의를 짚어보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스크린쿼터 사수 문화제, 이라크 파병 반대 반전 콘서트, 촛불아 힘내라 콘서트, 용산 참사 유가족 돕기 자선 콘서트 등을 통해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밴드로 인식됐으나, 사실 블랙홀은 데뷔 때부터 동학농민혁명을, 통일을, 우리 삶과 사회를 노래해 왔다. 내년에 발표할 9집에서는 잊혀져 가는 위안부 할머니, 3·1절, 친일파 청산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리더인 주상균(보컬·기타)는 “어떤 특정한 사회 참여적인 발언을 하려고 애쓰는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우리가 어울리고 연주하는 목적이 서로 행복하기 위해서인데 나만 잘살아서는 행복할 수 없고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보듬어 줘야 행복할 수 있다고 노래해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자신들의 연주에 대해 만족하고, 서로 재미있어 하고, 하지만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다 보니 딴 생각을 할 시간이 없어 2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는 블랙홀. 앞으로 활동이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감쌀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래를 부르겠다고 다짐했다. ●“사회적 약자들에 희망·사랑 전하고파” 주상균은 문화연대와 함께한 활동 가운데 2000년초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 운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제의가 들어왔을 때 시민단체에 대한 선입견도 있고,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망설여진 부분이 많았다.”면서 “우리가 노래로 하는 것을 문화연대는 몸으로 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더니 바로 선입견이 무너졌고, 이후 연대 활동을 하며 우리가 갖고 있는 것으로 조금씩 세상을 바꿔 나갈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돌이켰다. 당시 전국 7개 도시를 돌며 서명을 받았고, 공연 비용은 블랙홀이 지원했다고 한다. 이번 무대는 제목 그대로 선배에 대한 존경을 담아 바치는 헌정 공연이다. 국내 음악계에서는 드문 경우. 그것도 비주류에 속하는 헤비메탈 밴드가 주인공이라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블랙홀이 대중음악계에 깊은 발자국을 새기고 있다는 이야기. 주상균은 “우리 입장에서 헌정받는다는 것 자체가 어색해서 다른 때 같으면 안 한다고 했을 것”이라면서 “예전보다 음악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 대중음악 가운데 비주류인 헤비메탈 밴드 가운데 누군가는 이정표가 돼줘야 후배들에게 그래도 명예는 남길 수 있다는 용기를 줄 것 같아 부끄럽지만 과감하게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27일에는 크래쉬, 갤럭시익스프레스, 노브레인이, 28일에는 디아블로, 스트라이커스, 크라잉넛이 블랙홀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노개런티다. 각 팀마다 블랙홀의 대표곡을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바꿔 1곡씩 부르며 25분 동안 연주할 예정이다. 인터미션에는 블랙홀의 활동을 담은 10분짜리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이번 공연은 HD화질의 실황 DVD로도 제작된다. 특히 한예종 재학생들이 내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블랙홀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어 기대를 모은다. 후배들의 공연 뒤 블랙홀이 자신들의 20년 역사를 반추하는 무대를 약 70분 동안 꾸리게 된다. ●새달 5일부터 전국투어 콘서트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가 펼쳐진다. 다음달 5일 충남대 백마홀, 12일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문화센터 무대에 서는 것. 역시 뉴크, 마하트마, 다운인어 홀 등 후배 밴드들이 함께한다. 내년 1월에는 부산, 대구, 광주로 발걸음이 이어진다. 투어 이야기가 나오자 주상균이 한마디를 꺼낸다. “음악신이 서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면, 군 단위에서도 투어를 해왔던 우리 입장에서는 ‘지방’은 차별적인 말이다. ‘지방’이 아니라 ‘지역’이 있을 뿐이다. 5~10년 된 각 지역의 베테랑 음악인들과 열정을 나누며 다시 볼 수 없는 공연을 선사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 정병희(베이스)는 “지금까지 한번도 소홀하게 공연한 적이 없다. 음악은 아직도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하루하루 변함 없이 열심히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원재(기타)는 “정말 공연을 많이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자주 질문을 받는다. 앞으로는 이번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고대했다. 어느덧 관록의 밴드가 됐지만 요즘도 회사원이 출근하듯 연습실에 나와 끊임 없이 가다듬고 무대에 오른다고 하는 블랙홀. 이관욱(드럼)은 “대한민국 음악계에서 최고 밴드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대체가 절대 불가능한 팀”이라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7일 TV 하이라이트]

    ●반갑습니다 선배님(KBS2 오전 9시30분) 발달장애 아들 승훈이를 키우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베푸는 삶에 대해 깨우치기 시작했다는 이상우.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자신에게 돌아오는 더 큰 행복을 후배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 선배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90년대를 풍미한 발라드 가수 이상우가 모교 부산동고등학교를 찾아간다. ●다큐멘터리 3일(KBS1 오후 9시40분) 서울 중구 충무로 대한극장 건너편, 경쟁하듯 키를 높여가는 빌딩 숲 사이 낮게 몸을 웅크린 채 긴 세월을 버텨내고 있는 작은 골목이 있다. 충무로에서 을지로로 이어지는 200m 남짓한 골목 사이사이에 들어선 출판, 인쇄, 종이와 관련된 각종 업체들. 세월을 찍는 인생골목, ‘인쇄골목’의 3일을 따라가 본다. ●수상한 삼형제(KBS2 오후 7시55분) 재수는 어영이를 만나 놓치기 싫다고 얘기하면서 다시 돌아와 달라고 부탁하고, 어영은 옛날 생각을 하면서 잠시 흔들린다. 전과자는 현찰에게 건강이 아파트 하나 사주면 어떻겠냐라고 하지만 현찰은 머뭇거린다. 한편 전과자는 우미와 함께 건강이 모르게 고시원에 있는 물품들을 싸서 집으로 옮긴다. ●인연만들기(MBC 오후 7시55분) 상은네 가족들이 갑자기 와서 놀란 여준과 상은은 자신들 모르게 결혼식이 진행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에 심각해진다. 결혼 얘기에 놀라 상은을 찾아간 혜림은 다짜고짜 상은의 뺨을 때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준은 자신에게 무뚝뚝한 상은이 이상하기만 하고, 상은은 학원에 첫 출근한다. ●그것이 알고싶다(SBS 오후 11시20분) 신종말론이 지목하는 대재앙의 날짜는 2012년 12월21일. 2012년 12월 21일을 지구 대재앙으로 예견하는 주장의 근거들을 하나씩 추적해 본다. 2012년 지구 대재앙의 근거가 되는 마야력의 예언의 실체는 무엇인지, 그리고 지구에 벌어질 일들을 예견하는 여러 과학 이론들은 어떤 것인지 살펴본다. ●효도우미0700(EBS 오후 5시10분) 3년 전, 막내아들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한달음에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루게릭병, 운동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어 결국에는 온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병. 아들은 현재 성대에 삽입한 튜브로 숨을 쉬고, 위장에 삽입된 급식관을 통해 영양식을 공급받으며 의학의 힘으로 삶을 유지하고 있다. ●OBS 스페셜(OBS 오후 8시50분) 경남 합천에 위치한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 10년 전 이곳의 학생들은 일반 고교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극심한 성장통을 겪은 이들은 나름의 열정을 가지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과연 이들은 졸업 후 1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 [토요 포커스] 올 희망근로 종료 D-24 희망의 싹 틔운 현장가다

    [토요 포커스] 올 희망근로 종료 D-24 희망의 싹 틔운 현장가다

    이달을 끝으로 지난 6월부터 진행된 희망근로사업이 마침내 종료된다. 경기 침체와 최악의 실업난 속에 25만명이 참여한 대규모 일자리 프로젝트였던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희망근로는 소외된 이웃에게는 ‘희망’을, 참여자에게는 ‘자신감’을 불어넣는 긍정적인 효과를 조금씩 내고 있다. 찬 바람이 잦아지는 늦가을의 희망근로 현장을 찾았다. ■방과후 학습 도우미, 일본어 선생님 서윤환씨 읽지못한 아이들 척척쓰니 뿌듯 오후 3시 서울 망원2동 주민센터 3층.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경쾌하다. “하루노오카와와 사라사라유쿠요~” 일본어다. 강의실에는 가사도 보지 않고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보인다. 노래를 끝낸 아이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난다. “저요, 저요!” 칠판에 나와서 서슴없이 일본어를 써내려가는 아이들. 방과후 무료 수업으로 배운 실력이 만만치 않다. 5개월 만에 아이들을 ‘일어 울렁증’에서 ‘자신감’으로 무장시킨 사람은 다름 아닌 ‘희망근로 방과후 공부방’ 선생님, 서윤환(78)씨다. ●수업 주3회…교재 직접 만들어 서씨는 이곳 주민센터에서 오후 2~5시까지 초등학생에게 일본어를 가르친다. 수업은 일주일에 세 번. 서씨는 강의 때 사용하는 교재를 모두 직접 만든다.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수업 초반 30분은 노래, 남은 30분은 강의를 진행한다. 때때로 아이들을 위해 마술까지 동원하는 열의를 보인다. 교재인 프린트에는 일본어인 ‘히라가나’와 한국식 표기법이 나란히 씌어 있다. 아이들은 그 밑에 한글로 뜻을 적어넣는다. 아이들은 서씨의 교육방식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최지원(9·동교초2)양은 “교재가 이해가 잘 되고 따라쓰기도 쉬워 정말 재미있다.”면서 “선생님이 계속 일본어를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씨는 “전혀 읽고 쓸 줄 몰랐던 아이들이 내가 부르는 대로 글을 척척 받아쓰거나 읽어나가는 걸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며 밝게 웃었다. 바둑 유단자인 서씨는 바둑과 체스도 가르친다. “사요나라(안녕히 가세요.)” 강의가 끝나면 서씨는 다음 강의를 위한 교재를 만드는 데 몰입한다. 주민센터 2층에 마련된 사무실 컴퓨터 앞에서 3~4시간 씨름을 한다. 한 손가락으로 치는 ‘독수리 타법’이라 속도는 느리지만 ‘히라가나’는 어느새 여백을 가득 메워간다. 서씨는 “애들의 교육수준과 이해력이 다르다 보니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애매할 때가 많다.”며 고민을 털어놓는다. ●“5개월간 하면서 건강도 좋아졌죠” 서씨는 어릴 적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어 사용을 금지하면서 모든 수업을 일본어로 배웠다. 슬픈 과거지만 그때 배운 일본어로 현재 자유로운 신문 통·번역도 가능하다. 서씨는 틈틈이 일본 서적을 읽으며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서씨는 희망근로를 하면서 몸이 건강해졌다고 한다. 5개월 동안 일하다 보니 체력이 상당히 좋아졌단다. 서씨는 “정년퇴임 이후에는 아무데서도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는데 희망근로로 손자에게 선물도 사주니 행복하다.”면서 “희망근로를 계속 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글ㆍ사진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독거노인 도우미, 인기짱 방애순씨 돈떠나 삶의 보람 되찾아 기뻐요 “할머니, 병원에 가셔도 돈 안 드니까 아프면 꼭 가셔야 해요. 홍시는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되고요. 커튼은 다 빨아놨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도시락은 꼭 챙겨드시고요, 또….” ●오전9시~오후5시까지 매일 방문 방애순(42·주부)씨는 마음이 바쁘다. 3주 뒤면 지난 반년 간 돌봐드렸던 이항순(87) 할머니와 작별을 고해야 하기 때문. 몇 년째 도시락 배달봉사를 하던 방씨는 주민자치센터에서 희망근로사업을 알게 돼 ‘독거 노인 방문 도우미’ 파견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할머니 집은 방씨가 맡은 성산1동의 41가구 중 한 곳이다. 방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일같이 홀로 사는 노인 가정을 방문해 집안일을 돕고 말벗이 되어주고 있다. 오전 9시. 어김없이 방씨는 주민센터에 들러 출근 도장을 찍고 곧장 할머니댁으로 향한다. “할머니, 나 왔어.” 방씨의 크고 친근한 목소리에 할머니는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뛰어나오신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이 할머니는 5년 전 남편과 사별 후 이곳으로 이사와 혼자 생활하고 있다. 슬하에 세 명의 자식을 두었지만 자녀들도 넉넉지 않은 살림 탓에 얼굴 본 지가 오래다. 당뇨와 고혈압으로 바깥 외출도, 집안 청소와 요리도 혼자하기 어렵다. 할머니는 이달 말로 희망근로가 끝난다는 방씨의 얘기를 듣자 덜컥 그의 손을 잡는다. “그럼 이제 안 오는 거야? 난 어떡해. 안돼. 사람들 너무 좋은데.” 할머니는 이내 손수건으로 참았던 눈물을 훔친다. ●“돌아가신 어머니같아 맘이 짠해요” 희망근로를 위해 이 할머니집을 찾은 첫 날, 방씨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5년간 빨지 못한 커튼, 청소를 못해 쌓인 쓰레기 등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 사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방씨는 희망근로를 같이 하는 2명의 동료와 화장실 등 집안청소, 빨래는 물론 망가진 수납장, 배터리가 나가 멈춰버린 오랜 시계까지 세심하게 챙겼다. 방씨와 대화를 나누는 할머니의 모습은 꼭 딸과 어머니 같았다. 1년 전 치매로 어머니를 여읜 방씨는 노인의 말벗이 돼드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방씨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어려운 어르신의 마음을 읽어낼 줄 알고 상처받지 않도록 따뜻한 마음으로 대화하며 인내심도 길러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는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 복지 업무에 대한 사전 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방씨는 올 겨울까지 희망근로가 연장되길 바랐다. “돈을 떠나 무료한 일상에 삶의 보람이 생겼다.”면서 “도움이 더 필요한 겨울에 홀로 계실 할머니가 너무 걱정된다.”고 안타까워했다. 글ㆍ사진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표절논란’ 지드래곤 vs 이승기, 차이점은?

    ‘표절논란’ 지드래곤 vs 이승기, 차이점은?

    지드래곤에 이어 이승기가 ‘표절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작곡가 성환은 28일 이승기의 4집 타이틀곡 ‘우리 헤어지자’가 자신이 2007년 작곡한 팀의 ‘발목을 다쳐서’와 4마디 이상 같다며 서울 성동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번 이승기 건은 단순한 표절 시비가 아닌 법적 분쟁으로 접수된 사례라 결과에 대한 대중들의 이목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 활동 직격탄 ‘지드래곤’ 이는 지난 8월 ‘표절 논란’의 직격탄을 맞았던 지드래곤의 경우와 큰 차이점을 보인다. 빅뱅에서 첫 솔로 활동을 시작한 지드래곤은 타이틀곡 ‘하트브레이커’로 발표와 동시 정상에 올라서는 ‘저력’을 과시했지만 곧바로 표절 시비에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더욱이 그는 아이돌 가수로서는 전무하게 뮤지션 성향과 재능을 인정받아 왔던 터라 그 타격은 적지 않았다. 지드래곤의 ‘하트브레이커’는 미국의 힙합 뮤지션 플로라이다의 ‘라이트 라운드’를 표절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또 그의 또 다른 수록곡 ‘버터플라이’는 영국의 록밴드 오아시스의 ‘쉬즈 일렉트릭’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는 지적이 제기 되면서 곤혹을 겪었다. 이에 두 곡의 저작권을 관리하고 있는 소니ATV뮤직퍼블리싱은 YG 엔터테인먼트에 경고장까지 발송, 세간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다. ◆ 뒤늦은 ‘표절 피소’ 이승기 지드래곤이 ‘표절 논란’으로 활동 기간 내 이미지 손상이 적지 않았던 반면, 이번 이승기의 ‘표절 피소’는 활동 기간이 무려 1달 반 남짓 지난 시점이라 눈길을 끈다. 가요 관계자들은 “이승기의 4집 ‘헤어지자’는 지난 9월 중순 발표와 동시에 1위를 차지했던 곡”이라며 “이미 음원 및 음반 판매가 상당 부분 마무리된 시점이라 뒤늦은 표절 피소로 직접적인 타격은 입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우리 헤어지자’와 ‘발목을 다쳐서’가 16마디 멜로디와 코드 진행이 흡사하며, 4마디는 멜로디가 거의 똑같다.”는 작곡가 성환의 주장이 받아들여 진다면 ‘저작권 침해’로 인한 금전적 보상 및 이미지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된 ‘우리 헤어지자’와 ‘발목을 다쳐서’ 두 곡이 담긴 CD를 한국저작권위원회(KOMCA)에 보내 표절 여부에 대한 감정을 의뢰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표절 여부에 대한 판단은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전문적인 시각으로 진행할 것”이라며 “아직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가요계의 해묵은 논란 거리인 표절 논란에 최근들어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는데 대해 음악 팬들은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진우석의 걷기 좋은 산길] (43) 양양 구룡령 옛길

    [진우석의 걷기 좋은 산길] (43) 양양 구룡령 옛길

    구룡령 옛길이 온전히 살아남은 건 거의 기적이다. 양양 서면 갈천리에서 백두대간 능선을 넘어 홍천 내면 명개리에 이르는 옛길은 양양과 고성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꿈 많은 길이고, 양양의 아버지들이 동해의 해산물을 지고 홍천으로 넘어가 곡식과 바꿔왔던 고단한 길이다. 일제가 동해안 지역의 물자 수탈을 위해 옛길에서 1㎞쯤 떨어진 곳에 비포장도로를 냈고 1994년 비포장길이 말끔하게 아스팔트로 포장되면서 옛길은 아주 잊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갈천리 마을 주민들이 수풀 속에서 묻혀 있던 길을 발굴하고 보살핀 덕분에 구룡령 옛길은 새롭게 태어났다. 구룡령 옛길은 말 그대로 옛길이 간직한 미덕이 오롯이 담겨 있다. 험준한 오르막은 굽이굽이 돌면서 부드럽게 이어지고 하늘을 찌르는 금강소나무들은 활엽수들과 어울려 그윽한 숲의 정취를 풍긴다. 그리고 갈천리에서 명개리까지의 거리는 지금의 포장도로보다 훨씬 짧다. 이러한 옛길의 원형과 정취를 담고 있기에 갈천리에서 옛길 정상까지 2.76㎞가 명승으로 지정되어 ‘문화재 길’이 되었다(홍천 내면 명개리에서 옛길 정상까지 3.7㎞는 뒤늦게 복원된 탓에 명승 길이 아니다). 국내의 명승 길은 이곳 외에도 문경새재, 죽령 옛길, 문경의 토끼비리(관갑천 잔도)가 있다. 구룡령 옛길의 탐방은 갈천리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명개리까지 고개를 온전하게 잇는 것이 정석이지만 명개리로 내려가면 교통편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포장도로 구룡령 정상에서 시작해 옛길 고갯마루까지 백두대간 마루금을 잇고, 옛길을 따라 갈천리까지 내려오는 코스가 좋다. 현재의 길과 과거의 길이 백두대간을 통해 연결되는 이 코스는 힘들이지 않으면서 옛길과 백두대간을 체험할 수 있는 기막힌 코스다. 거리는 4.36㎞로 2시간30분쯤 걸린다. 56번 국도가 지나는 구룡령의 본래 이름은 ‘장구목’이다. 도로가 포장되면서 이름이 구룡령으로 둔갑해 지금까지 굳어졌다. 구룡령 생태터널 앞에는 ‘백두대간 구룡령’이란 거대한 돌비석이 서 있다. 그 뒤로 난 길은 약수산과 오대산 방향이고 도로 건너편으로 나무계단이 보인다. 구룡령 옛길로 가려면 그쪽으로 올라야 한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100m쯤 가면 본격적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을 밟게 된다. 1000m가 넘는 고도지만 길은 평지처럼 순하다. 30분쯤 걸었을까. 쏴~ 갑자기 파도소리가 들린다. 백두대간 능선을 넘으면 동해가 펼쳐지는 것을 아는 듯, 내륙에서 불어온 바람은 능선의 나무들을 두들기며 파도 흉내를 내더니 뺨을 후려치고 달아난다. 낙엽이 진 능선은 심술궂은 바람이 주인 노릇을 톡톡히 한다. 1121m 봉우리에 올라서자 나뭇가지 사이로 갈천리 마을이 보인다. 여기서 본 갈천리는 그야말로 백두대간 아래 첫 마을이다. 1121봉에서 내려서면 구룡령 옛길 정상.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르고 갈천리 방향으로 내려서면서 본격적으로 옛길 탐방에 나선다. 완만한 산비탈 길에는 수북한 낙엽이 발바닥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활엽수들은 이미 잎사귀를 떨어냈고 낙엽들은 무언가 움켜쥔 것을 놓은 것처럼 편안해 보인다. 가랑잎 하나를 쥐고 냄새를 맡으니 뜻밖에 좋은 냄새가 난다. 아직 나무의 향기가 마르지 않았다. 잎사귀에서 향기가 사라지면 가을도 떠나리라. 길은 산의 허리춤을 파고들면서 구불구불 휘어진다. 구룡령(九龍領)이라는 이름은 아홉 마리 용이 구불구불 거리며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구룡령 포장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옛길에서 새길까지의 거리는 불과 1㎞가 안 되지만, 세월의 거리는 참으로 아득하다. 이윽고 눈부시게 흰 돌이 간간이 눈에 들어오는 횟돌반쟁이. 옛 행인들이 쉬어가던 곳으로 장례식에 쓰는 횟돌이 나왔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물자작나무라고도 하는 거제수나무 몇 그루가 단풍과 어울린 그윽한 길을 내려서니 굵은 소나무 그루터기들이 보이는 곳은 솔반쟁이. 이곳의 금강소나무들은 1989년 경복궁 복원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구불거리는 길이 잠깐 평지처럼 순하게 이어지다 무덤 하나를 만난다. 군 경계를 확정하기 위해 홍천 명개까지 양양 수령을 업고 뛰다 돌아오는 길에 지쳐 죽은 젊은 청년의 무덤인 묘반쟁이다. 무덤을 지나면 하늘을 찌르는 금강소나무들이 유감없이 펼쳐진다. 그 중 하나는 둘레가 270㎝, 높이 25m, 나이는 무려 180살이다. 이렇게 기품 있으면서도 야생이 살아있는 금강송은 전국적으로 흔하지 않다. 목이 아픈 줄 모르고 금강송 구경을 하다 보면 어느덧 계곡을 만나면서 옛길은 끝난다. 맑은 물에 땀을 닦고 있는데 심술쟁이 바람이 찾아와 낙엽 한 움큼을 머리 위로 뿌려놓는다. 글 사진 mtswamp@naver.com ●가는 길과 맛집 구룡령은 대중교통이 불편해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수도권에서 출발하면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이용해 홍천까지 이른 후에 56번 국도를 타고 창촌을 지나 구룡령에 닿는다. 양양에서 갈천리행 버스는 1일 5회(08:10 홍천행, 11:00, 13:30, 16:00, 18:10) 운행한다. 구룡령에 차를 댔으면 갈천리에 도착한 후에 갈천리 주민들의 픽업서비스를 이용한다(엄주현 이장 011-294-2427). 갈천리 관광 정보는 마을홈페이지(http://www.치래마을.kr)에 잘 나와 있다. 갈천리는 산나물과 토끼탕이 유명하다. 갈천약수가든(033-673-8411), 치래마당(033-673-0050) 등에서 정성껏 음식을 준비한다.
  • [2030] 불어난 살에 대처하는 방법

    [2030] 불어난 살에 대처하는 방법

    책상 앞에서 열 시간씩 앉아 공부하며 먹은 초코바, 잦은 회식에서 단숨에 비운 폭탄주는 ‘질량 보존의 법칙’을 배신하지 않는다. 순도 100%의 지방으로 변해 옆구리와 배둘레에 정직하게 자리잡는다. 이 법칙을 거스르려는 사람들이 있다. 연애와 결혼, 취업을 위해 살과의 전쟁을 선포한 2030이 바로 그들이다. 오달란 박성국 유대근기자 dallan@seoul.co.kr ■ 주 3~4회 술 마셨더니 배둘레에 도넛링…매일 2000번씩 ‘줄넘기 야근’ 통번역대학원에 다니는 이모(25)씨는 살에 대한 경각심은 있지만 ‘귀차니즘’ 때문에 운동을 선뜻 하지 못 하는 타입이다. 10대 시절부터 운동에는 취미가 없었고, 몸매 관리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도넛처럼 양 옆구리에 들러붙은 이씨의 ‘원수덩어리’ 살들은 몇 년 전부터 찾아오기 시작했다. 대학원 시험을 보기 위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몸매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 것도 모자라 시시각각 찾아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초콜릿을 옆에 끼고 살았다. 키 160㎝에 체중 50㎏을 넘은 적이 없었던 이씨의 체격 조건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6개월 전 체중계에서 눈금이 55㎏을 가리키는 것에 경악한 뒤 다시는 체중을 재보지 않았다. ●바나나·덴마크 다이어트 2주일도 못 넘겨 불어나는 살에 대처하는 이씨의 방법은 ‘xx 다이어트’. 하루종일 바나나만 먹는다는 바나나 다이어트, 당근과 오이만 먹는다는 당근오이 다이어트, 달걀과 자몽, 양념 안 한 닭가슴살만 먹는다는 덴마크 다이어트 등 인터넷에 떠도는 갖가지 다이어트들을 섭렵하게 된 것. 문제는 특정 음식만 먹는 다이어트를 2주일을 넘기지 못 한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배를 곯다가 한꺼번에 폭식을 하게 됐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체중은 오히려 더 불어났다. 하다 못해 이씨는 큰 마음을 먹고 집앞 헬스장 회원권을 끊었다. “운동을 시작해 보라.”는 주위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이 악물고 3개월만 운동해서 예쁜 청바지를 사 입는 게 꿈”이라면서 “이번엔 절대로 중간에 포기하지 않겠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대학교 4학년인 정모(26)씨는 여느 취업 준비생들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정씨의 취업 준비는 남다른 면이 있다. 토익, 학점, 각종 자격증 등 이른바 ‘스펙’ 관리는 일찌감치 끝냈다. 정씨가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가장 먼저 찾는 곳은 학교 체육관이다. 여름이면 당당히 상반신을 드러낼 정도로 ‘몸짱’이었던 정씨지만 취업 준비로 매일 책상에 앉아 숨쉬기 운동만 하다 보니 ‘식스팩’ 복근은 자취를 감췄다. 복대를 두른 듯 옆구리 살이 바지 밖으로 비집고 나왔다고 한다. 63㎏이던 몸무게가 어느덧 76㎏까지 늘어났다. 정씨는 연이은 면접 탈락의 원인을 뚱뚱하고 둔해 보이는 이미지 탓으로 돌렸다. 때문에 살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는 매일 40분간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한 시간가량 근력 운동을 병행하며 좋아하던 술도 멀리했다. 저녁 6시 이후에는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정씨다. 그러기를 한 달째, 정씨는 벌써 68㎏까지 체중계 바늘을 낮췄다. 정씨는 “몸이 한결 가벼워지니 마음까지 가볍고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며 웃었다. 직장 생활 2년차인 신모(29)씨는 최근 친구 결혼식에 가려고 평소에 입지 않던 정장을 꺼내 입었다가 깜짝 놀랐다. 대학생 때 면접을 위해 구입한 옷이 몸에 맞지 않았던 것. 복장이 자유로운 직장에서 일하다 보니 평소에는 몸이 불어난 것을 못 느꼈다고 한다. ●잦은 야근·회식은 다이어트의 적 신씨는 입사 초만 해도 헬스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를 자랑했다. 하지만 영업직에 종사하다 보니 연일 거래처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잡혔다. 일주일에 3~4일 꼴로 술독에 빠져 지내다 보니 입사 1년 만에 무려 10㎏ 이상 불어났다. 신씨는 “대학 축구 동아리의 회장을 하며 만능스포츠맨으로 여학생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아왔건만 이제는 지하철 계단만 올라도 숨이 가쁜 처지가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급격히 불어난 살과 함께 대인 기피증까지 생겼다. 부산 출신인 신씨는 서울에서 직장을 구했다. 1년간 일에 빠져 바쁘다는 핑계로 지인들을 만나지 못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지만 선뜻 친구들과 약속을 잡지 못한다. 너무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각종 핑계를 대며 만남을 미루고 있는 것. 신씨는 “학생 때 몸매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5㎏ 정도라도 빼야 고향 친구들에게 얼굴을 비출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부터 자는 시간을 한 시간 줄이고 매일 밤 줄넘기를 2000번씩하고 있다. 중견기업 홍보팀 직원인 백모(31)씨는 입사 1년 만에 체중이 10㎏ 가까이 불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넘치는 의욕으로 주중, 주말 가릴 것 없이 거래처 실무자들과 술약속을 잡았고 기름진 고기와 폭탄주로 배를 채우다 보니 바지단추가 채워지지 않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우리 사위가 매끈한 몸매 하나는 최고”라며 추켜세우던 장모님도 백씨의 배를 흘겨보기 시작했다. 백씨는 6개월 전 본격 ‘체중감량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업무특성상 금식 등 식이요법을 통한 다이어트는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운동으로 3개월 안에 10㎏을 빼겠다고 다짐했다. 매일 아침 새벽 5시에 눈을 떠 하루 10㎞ 달리기 시작한 백씨는 여유로운 주말이면 마라톤 하프코스에 가까운 20㎞씩 집 근처 공원을 내달렸다. 생각대로 늘어졌던 뱃살은 점점 모습을 감췄다. 다이어트 시작 한 달 만에 7㎏을 감량한 백씨는 두 달이 채 안 돼 목표치인 10㎏ 감량에 성공했다. 그러나 백씨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아침운동을 위해 일어나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무릎이 아파왔다. 무리한 운동의 후유증 탓이었다. 뛰기는 커녕 걷기조차 어려워진 그는 이후 운동을 할 수 없었고 빠졌던 체중은 세 달 만에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백씨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다이어트에도 통하더라.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했어야 하는데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올해 초 입사한 새내기 사원인 최모(31)씨는 지난달 소개팅에서 상대 여성에게 거절을 당한 뒤 바로 몸매 만들기에 들어갔다. 그는 입사 전까지만 해도 훤칠한 얼굴과 키 덕분에 꽃미남이라고 불렸다. 여자친구도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입사 후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원흉은 잦은 야근과 회식이었다. 영업직 사원이라 선배를 따라 거래처 간부들을 자주 상대해야 하는 최씨는 입사 9개월 만에 배만 볼록 나온 일명 ‘개구리 체형’이 돼 버렸다. 그는 “운동부족으로 팔다리는 근육 없이 가늘고 아저씨처럼 뱃살만 늘어지다 보니 소개팅 상대에게 아저씨 같다며 연달아 거절당했다.”고 우울해했다. 다이어트에 돌입한 그는 단시간 내에 체중감량 효과가 가장 빠른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침마다 근처 학교 운동장을 20바퀴씩 도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 “아침잠이 유독 많지만 야근과 회식 때문에 저녁에는 운동할 짬이 없다.”면서 그는 눈물을 머금고 새벽마다 달린다. 아직 3주째라 몸매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 같지 않지만 최씨는 그래도 “연말에 소개팅에서 여봐란 듯이 퀸카를 건져올릴 꿈에 부풀어 있다.”고 귀띔했다. ■ 입사 후 ‘개구리체형’ 소개팅서 퇴짜맞고…‘두번 실패없다’ 복근성형까지 호리호리한 외모 덕에 ‘미소년’ 소리를 듣는 대학생 박모(21)씨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100㎏이 넘는 거구였다. 재수생 시절 입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폭식증에 걸렸고 하루에 초코바를 6~7개씩 해치우다 보니 감당 못 할 만큼 몸무게가 늘어난 것이다. 대입에 성공한 박씨는 처음 나간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방이 30분만에 “다른 약속이 있다.”며 도망가듯 자리를 피하는 것을 본 뒤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명품몸매되려고 매일 댄스·헬스 동네 헬스장 등록을 마친 박씨는 매일 저녁 러닝머신 위를 달렸지만 다람쥐 쳇바퀴를 도는 느낌 때문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차라리 인근 공원을 도는 것이 낫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최신형 mp3를 주문한 그는 H.O.T의 ‘전사의 후예’부터 소녀시대의 ‘소원의 말해봐’까지 아이돌스타들의 댄스곡을 들으며 매일 저녁 2시간씩 공원 산책로를 달리고 또 달렸다. 빠른 비트에 발맞춰 달리다 보면 지치는 줄도 몰랐다는 박씨는 불과 다섯 달만에 30㎏ 감량에 성공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차모(33)씨는 얼마 전 강남의 한 성형외과의 문을 두드렸다. 요즘 30대 남성들이 많이 한다는 ‘복근성형’에 대해 문의하기 위해서였다. 뱃살 지방을 부분적으로 흡입해 복근이 있는 것처럼 만들어주는 수술이다. 차씨는 “수술이 잘 되고 나면 본격적으로 소개팅 전선에 뛰어들 생각”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5년 전 입사할 때만 해도 차씨는 178㎝에 75㎏으로 딱 보기 좋은 체격이었다. 그런데 입사 이후 1년에 정확히 2㎏씩 살이 찌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앉아있는데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폭탄주가 도는 회식을 하다 보니 살이 겉잡을 수 없이 쪄 버렸다. 운동으로 몸매관리를 해 보려고 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집 앞 헬스장, 동네 권투장 등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그런데 번번이 한 달을 넘기지 못 했다. ‘운동을 할 바엔 잠을 더 자지. 술만 끊으면 살은 저절로 빠질거야.’라는 안이한 생각에 매번 굴복한 탓이다. 이제 80㎏를 넘어 90㎏대를 향해 달려가는 차씨의 몸매 때문일까, 그의 연애 생활은 백전백패였다. “체격 좋고 듬직한 남성이 이상형”이라는 말을 듣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소개팅 자리에 나가봐도 애프터 신청은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지나치게’ 듬직한 그의 체형이 문제였다. 이런 일이 세 번쯤 반복되고 나니 차씨는 자신감마저 사라졌다. 이대로 가다간 노총각으로 늙어 죽겠다는 두려움이 그를 엄습했다. 그 두려움이 이번에 그를 ‘복근 성형’의 세계로 인도한 것. 차씨는 “물론 운동과 식습관 조절이 최고의 방법이겠지만 급한 대로 장가는 가야겠다.”면서 “이번 수술만 잘 되면 자신감도 회복하고 마음에 드는 이성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출산 후 불어난 살 지방연소 프로그램으로 직장인 4년차인 김모(30)씨는 6개월간의 산후휴가 및 육아휴직 뒤 복직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옷장을 열어보니 출산 후 15㎏이나 찐 살 탓에 맞는 외출복이 거의 없었던 것. 정장은 물론 티셔츠 같은 캐쥬얼복도 제대로 입을 만한 게 없었다. 김씨는 일단 궁여지책으로 헬스클럽에 등록했지만 식사량은 줄일 수가 없었다.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탓에 식이요법까지 병행하기엔 무리였다. 김씨는 아침마다 동네 공원 두 바퀴를 뛰고 와서 수유를 한 다음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헬스장으로 향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개인 트레이너와 체질량 검사를 해 보니 출산 후 체지방량이 거의 배로 늘었다.”면서 “지방연소 프로그램을 집중 실행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러닝머신과 자전거운동 등 유산소운동을 40분간 한 다음, 근육량을 키우는 체조를 병행했다. “다행히 한달 반만에 7㎏ 가까이 빼긴 했지만 급격히 살을 빼서 혹여 모유수유에 지장이 있을까 한편 걱정도 된다.”면서 워킹맘의 비애를 뼈져리게 느낀다고 털어놨다.
  • 장하나 “프로무대서 일 낼게요”

    장하나 “프로무대서 일 낼게요”

    “내년에 프로가 되면 달라질 거예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KB국민은행 스타투어 그랜드파이널 최종 4라운드가 열린 인천의 스카이72골프장. 근처 모텔방에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골프신동’ 장하나(17·대원외고)는 서둘러 대회장으로 향했다. 아버지 창호(53)씨의 10년된 미니밴에 몸을 실은 뒤 장하나는 생각에 빠졌다. “오늘은 (서)희경 언니가 어떤 샷을 던질까. (유)소연 언니는 얼마만큼 날 따라잡을 수 있을까.” 평소엔 큰 일이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털털한’ 성격이지만 이날 아침만큼은 달랐다. 전날 서희경(23·하이트)과의 동반라운드에서 나란히 4타를 줄였던 터. “그러고 보면 오늘은 할 만한 날”이라고 자꾸만 되뇌었다. 그러나 막상 티오프 전 퍼팅 그린에 나서고 보니 자꾸 힘이 들어갔다. 마음을 다독였다. 하지만 대회 첫 홀 티샷이 벙커에 빠지면서 샷은 더 헝클어졌다. 캐디백을 지인에게 맡기고 갤러리로 따라다니던 아버지 장씨는 “스윙이 빨라진 걸 보니 엄청난 심적 압박을 받고 있는 게 틀림없다. 제 리듬을 잃었다.”면서 18홀 내내 안타까워했다. 우여곡절 끝에 경기는 서희경의 1타차 역전우승으로 끝났다. 장하나는 애써 웃었다. 그러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머금고 있는 웃음 속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내년 봄 프로 전향을 계획하고 있는 그녀에게 아마추어 자격의 프로대회 참가는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그녀는 “앞으로 2개 대회가 남았지만 하이트컵챔피언십을 비롯해 아마추어가 나설 수 있는 2개 대회를 모두 썼다.”면서 “만약 우승을 했더라면 좀 더 쉽게 프로 무대에 나설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아마추어 기록으로 보면 신지애(2005년 5월·SK엔크린 인비테이셔널) 이후 4년5개월 만에 아마추어 챔피언이 될 수 있었고, 송보배(2003년 9월·한국여자오픈)에 이어 무려 6년 만에 아마추어 메이저 여왕이 될 뻔한 기회를 놓친 셈. 장하나는 어릴 때부터 드라이버샷으로 300야드를 치는 ‘장타 소녀’로 이름이 자자했다. 12세 때(서울 반원초교)인 2004년 타이거 우즈(미국)가 제주 라온골프장에서 다른 3명(최경주·박세리·콜린 몽고메리)과 함께 ‘빅매치’를 벌일 당시 ‘신동 자격’으로 그녀를 초청했다. 지금도 그녀의 어머니 김연숙(51)씨가 운영하는 삼겹살집에는 빛바랜 당시의 사진이 추억처럼 걸려 있다. 이후 프레드 커플스로부터 “미국에서 키우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선수”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각종 국·내외 아마추어대회를 휩쓴 그녀는 분명 ‘유망주’ 이상의 존재였다. 아쉬운 마지막 아마추어샷을 날린 장하나는 “2위에 그치긴 했지만 실망하지 않아요.”라면서 “내년 프로가 되면 모든 게 달라질 거예요. 내일이 있잖아요.”라며 대회장을 빠져나갔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백혜선 해외데뷔 20주년 피아노 독주회

    백혜선 해외데뷔 20주년 피아노 독주회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활약하는 중견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새달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그의 세계 무대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으로, 그가 “나 자신이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는 데 큰 도전이 됐던 곡들로 구성했다.”고 할 만큼 심혈을 기울인 연주회이다. 백혜선은 1989년 3년 동안 우승자를 내지 못했던 미국 메릴랜드 윌리엄 카펠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뉴욕 링컨센터에서 첫 해외연주회를 가졌다. 이후 영국 리즈(1990년), 퀸 엘리자베스(1991년), 차이콥스키(199 4년) 등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29세이던 1995년 서울대 음대 최연소 교수로 임용되며 화제를 낳았다. 2005년부터 안정적인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다시 세계를 무대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매년 여름 뉴욕에서 열리는 세계 피아니스트들의 축제인 IKIF(International Keyboard & Institute Festival)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2007년부터 대가 시리즈에 초청되고, 내년에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펠츠만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피아노 서머 인 뉴팔츠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았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바흐-부조니의 ‘오르간 코랄 전주곡’ 중 2곡,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F장조, 바르토크의 피아노 소나타,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를 연주한다. 한편 이번 독주회에 맞춰 그의 베스트 곡을 모은 ‘더 베스트 오브 혜선 백’(EMI클래식스)이 나왔다. 1집 ‘데뷔’(1998년), 2집 ‘사랑의 인사’(1999년), 3집 ‘혜선 백 플레이즈 리스트-사랑의 꿈’(2003년)에 수록된 곡 중 백혜선이 직접 발췌한 곡들을 엮었다. (02)518-7343.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10·26 30주년] 박상범 전 실장의 인터뷰 전문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의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말년에 유신헌법을 개정한 뒤 물러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비화를 들려줬다. 즉, “박 대통령이 집권 18년 정도 됐을 때인데 ‘1∼2년 뒤에는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는 얘기였다. 경호 실무자로서 피경호대상을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을 넘어 그의 표현대로 “경제적으로 세계사에서 드문,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 전대통령이 평화적 권력이양까지 일구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배어있는 듯했다.  “기억하기도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이야기를 안 꺼낼려고 했다.”며 서울신문의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의 뒷얘기에서부터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경호 및 남북관계 전문가로서 견해를 담담하게 피력했다. 합기도 등 각종 무술이 도합 10단이 넘는 무골답지않게 담담한 어조였다.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만에 이 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 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만에 된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그런걸 보면 당시 지도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강력하게 뒷받침 해줬던 국민의 저력이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해외 나가면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한국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느낀다. 서거 30년이 흘렀지만 매년 개인적으로 현충원을 간다. 그분 생각이 가끔 떠오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 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 그게 그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가끔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국내를 다니다 보면 관광지 재정비 한 곳을 많이 보는데 대부분 그 때 시작한 것이다. 그 족적을 보면서 당시의 지도자로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를 하게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박정희 대통령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것들이 경제나 문화쪽에서 보인다. 최근 광화문 세종대왕 좌상이 생겼지만, 그 전에 이순신 장군 동상 세워지고…. 여주의 영릉이나 아산의 충무공 사당도 그 때 다 성역화됐다. 처음에 갔을때는 초라했는데 그분이 성역화시키고, 그게 우리 역사에서 계속 남는 거다. 사석에서 말씀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갖고 계셨다.  ●경호를 하시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으셨겠지만, 그 중에서도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텐데. 1983년의 아웅산사태 때도 아슬아슬했겠지만.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소위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매사 들어봐야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한다는 건가.  -그렇다. 아웅산 사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들이 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경호관계자 중 ‘10·26’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것은 그 때 중앙정보부(현재 국가정보원) 후배가 평소에 후덕한 모습을 기억하고 일부러 비껴 쏴서 허벅지와 옆구리를 스치게 했다는 말도 있었는데. 확인사살 과정에서 버클에 맞췄다는 얘기도 있었고.  -제 3자를 통해 그런 얘기도 들었지만, 지금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다.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고, 중정 직원들도 다 사형당했으니.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중정 직원들도 참 고생 많이 했다. 대통령 경호원과 한 집안 식구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사람들 고생하는거 보고 서로 따듯하게 해서 깊은 우정들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사실 정말 안타까웠다. 정말 제가 아끼는 후배들도 있었고 그 중에 저를 참 좋아하는 후배들도 꽤 많았다.  ●정황상으로는 어떤가.  -그 현장이 한 10평 그 정도 밖에 되지않는다. 가운데 직사각형의 막힌 조리대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졌으니까 확인사살은 실수할 리가 없다.  ●군출신 아닌 첫 문민 경호실장을 지냈는데, 박종규, 차지절, 장세동, 안현태, 이현우씨등 군 출신의 여러 경호실장들의 노후는 불행했거나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 욕심 탓인지, 아니면 권력의 비정한 생리나 속성 때문인지.  -둘다로 본다. 하나는 권력의 속성 탓이다. 당시 여러 사회적 여건이 그 자리에 그분들이 있을 때 여건이 그런쪽으로 갈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각 개인의 성격에도 (다소) 문제가 있지 않겠나 싶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으로서 그런 행로를 답습하지 않아야겠다는 철학을 정립했을 것 같은데.  -거기서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니 많은 상사들을 모시고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확신은 안서지만 내가 만약에 과장자리. 처장자리에 갔을 때 ‘이러이러한 것은 내가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어느 직장이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우선 권위라는건 꼭 필요하지만 배타된 권위는 안된다. 예컨대 정부 각료들 회의 때 경호실장이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 안에 근접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팀장도 있기 때문에 굳이 국가 정책 논의하는 그 자리에 경호실장이 꼭 들어가서 앉을 필요가 있느냐. 교육도 참 중요한것 같다. 2년 있는 동안 교육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차피 경호도 국제화되기 때문에 많은 국빈들이 오고 우리 대통령도 1년에 몇 번씩 해외를 순방하고 그런 시대가 돼서 이제 어학 문제라든가 이런것을 체계적으로 해서 경호원들의 수준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1년 코스이지만 해외 유학도 보냈다. 지금은 우리 후배들 보면 아주 상당한 수준에 와있다는 생각이다. 통역 필요없이 업무를 직접 협의할 정도까지 상당한 직원들이 와 있다. 경호실이 예전처럼 권위적이지 않다. 한 때는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조직이란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주 순수한 전문 조직으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경호라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경호하는것이지 인간 누구를 경호하는것 아니다. 적어도 경호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전문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월권 등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알력이 생겨 박 대통령 서거라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고 보는 쪽도 있다. 이와 달리 박 대통령이 3선후 유신체제로 가면서 장기집권하는 통에 산업화 이끈 훌륭한 지도자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불행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저는 계장급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치적이나 정책적인 면 잘 모르지만 다 일리가 있다. 다만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저격된 뒤 차지철 실장이 들어왔을때 사회적 환경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차 실장이) 장관들을 배석시킨 채 국기하강식을 한다든가 하는 월권도 저질렀다는데.  -주말마다··· 그랬다. 굉장히 힘들 때가 있었다.  ●차 실장의 다른 독특한 면은.  -차 실장은 그런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금전, 돈 에 대해서 상당히 깨끗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아무것도 남겨놓은 게 없다. 돈에 있어선 깨끗했다.  ●최근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회고록에서 1978년 경제특보 재임 당시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식은 내가 봐도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라며 개헌후에 물러나겠다는 박 대통령의 육성을 기록했는데 당시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사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때가 (박 대통령 집권) 18년 정도 됐을때인데 “1~2년 뒤에는 내가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하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좀 앞당겨 실현됐더라도 ‘10·26’ 같은 불행한 일은 없었을텐데.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유신헌법 개정안 초안 작업을 하던 신직수 법률특보가 10·26 이후 관련자료를 폐기했다고 남 전총리가 구체적으로 증언했던데.  -2년 정도 뒤에 하야하려고 생각하셨던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그때 그런 생각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 하실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뻔 했는데, 그 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어느 단계에 가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냐면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였다. 물론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돼 버렸다.  ●그 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 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이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저한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줘야겠다는 연락이었다. 그 자리에서 정리를 다 했다. 경호 쪽에서 인원 줄이고….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될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 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길래 내가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당시에 정책비서관이 ‘맞으면 도사로 모시겠다.’고 농담으로 말하더라.  ●김영삼 대통령에겐 보고했나.  -안했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끝났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일주일 전에 꿈을 꿨다. 새벽 3시쯤 깜짝 놀래서 깼다. 집사람을 깨워 ‘이상한 꿈을 꿨다.’고 하니 집사람이 ‘절대 다른 곳에 가서 말하지 말라. 경호실장이 그런 말 하면 북한가기 싫어서 이야기 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당시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남북관계 큰 진전 있었을 텐데 김일성주석 답방도 있을 수 있고.  -그렇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국의, 한반도의 운명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꿈으로 나타날 정도면 신경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 사상 최초로 북한에 가는 남쪽 정상을 경호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상당했을 것 같다.  -처음 이뤄지는 일이고 민감한 일이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실 잠이 안왔다. 현장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여건들이 많았는데,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옥쇄할 수 밖에 없다는 각오까지 했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한다는 보도가 잇다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를 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물리적인 위해가 아니더라도 김 위원장 쪽에선 남쪽 보수단체에서 계란이라도 던지지 않나 이런 것 신경쓰는 거 아닌가.  -그런것도 있고. 예를 들어 근접 경호하는 사람 중에 약간 정신적으로, 순간적으로 문제가 발생돼 총이라도 뽑고 한다면 그건 큰일이 생기는 거다.  ●영화 쉬리의 한 장면 떠오르는데.  -그럴 경우 전쟁터가 되는 거다. 사실 초청한 쪽에선 그런 의도 없더라도…. 그게 젤 위험하다. 우리도 그렇지만 그쪽에서도 그런 생각 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몇분 모셨나.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등 다섯분을 모셨다. 김종필 총리 인준이 안되는 바람에 (인수인계가 늦어져)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반 (보훈처장으로) 잠깐 재직하기도 했다.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제 기억으로는.  ●김영삼 대통령도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보스형 리더십의 소유자인가.  -그렇죠.  ●노태우 대통령은 좀 다르지않나.  -좀 다르다. 최규하 대통령도 그렇고.  ●어느 정부든 할거 없이 대통령 아들 때문에 속썩인 일이 많은데.. (김영삼 대통령 아들인) 현철씨 관련해서 경호실장 하면서 김 대통령에게 직언하자 언짢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거 보다도…. 김현철씨 같은 분 보면 예의도 바르고 총명하고 그렇다. 대인관계도 좋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아버님이 두 번씩 대선에 출마할 때 김영삼 대통령과는 부자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대선 때 어려움을 겪으면서 참모역할을 하면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저도 한 2년 현철씨를 접촉했지만 예의바르고 대인관계 좋고 그랬는데, 대통령학에 대한 책도 좀 읽어보고 했지만 집권후 1년, 1년반 지나다 보면 주변에 사람들이 자꾸 모이게 되지않나. 어떤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본의 아니게 본인 생각과는 전혀 관계 없이 그런 문제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오랫동안 다섯 분 대통령 모시면서 보고 느꼈던 일이고, 김현철씨도 그랬던 듯하다. 그래서 그 당시 대통령께 (박관용 비서실장 등을 포함해) 여러분들이 고언을 드렸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씨와 관련한 에피소드중 기억나는 것은.  -박지만씨가 몇년 전 결혼해서 축복해 주기도 했지만, 그때는 육사를 다녔다. 아주 어릴 때인 1974년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신 뒤로 정신적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저항적인 그런 쪽으로 한 때 잠깐 바뀌었던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까 약물도 시작하게 됐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오죽 외롭고 했으면 그랬겠나 하고 이해도 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더군다나 비명에 가시지 않았나. 자연사로 가신것도 아니고…. 다행스러운건 지금 새 보금자리 만들어 잘 살고 있고….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권부 근처에 있었으니 일부 측근들이 엉뚱한 권력을 행사하는것을 보는 등 온갖 인간 군상들을 목격했을 듯한데.  -그런 것들이 대통령의 자제분들이나 가까운 친척 분들을 망가뜨릴 수도 있고. 역시 사람이 젤 중요하다. 사회생활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지난 대선에 나온 허경영 후보가 공중부양한다는 농담같은 얘기가 나도는 데 무술의 달인으로서 말하자면 원조 공중부양 전문가라는 소문은 사실인가.  -(손을 내저으며) 에이, 지금은 세월이 흐르니 아픈데도 생기고…. 요즘엔 무술 훈련은 안하고 하루에 한시간 반 정도 집에서 열심히 헬스는 하고 있다. 지금 나이에 무슨 헬스 하냐고, 또 얼마나 오래살라고 그러냐고도 하는데 적어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해야 통일되는 것도 보고, 요즘 G20 그러는데 (한국이) G10 되는 건 보고 죽어야 할것 아니냐는 농담도 한다. 열심히 운동한다. 한 시간 헬스가서 운동하면 기분 좋고 정신도 맑아지고 의욕도 생기고 그렇더라.  ●다친 무릎 때문에 고생한다는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제 등산은 하지않는다. 가끔 골프할 때는 보호대 차고 한다.  ●공직 땐 골프 안했는데 입문 1년만에 싱글했다는데.  -1998년 3월 중순까지 보훈처장으로 일했다. 그 직후 집사람과 골프 시작해 6개월 만에 80타 쳤다.  ●경호 전문가지만 민주평통 사무총장, 보훈처장 등 남북관계나 안보전문가로서 식견을 사회에 환원할 복안은.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 많이 한다. 1996년 평통 총장 막바지에 장학재단을 하나 만들었다. 장학재단 일이 다 봉사다. 수익사업 하는것도 아니고.  ●강의 같은 것도 하나.  -강의를 그만둔게 한 3년 됐다.대전 배재대에서 경제학부 학생들이 인간관계론을 강의해달라 해서 2년, 경기대에 경호문제 및 대테러 문제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 한 2년 지도했는데 무척 힘들더라.  ●10·26 사태의 배경을 설명해 달라.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 수없이 많이 보도 됐다. 합동 수사팀들이 조사결과가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런 사건을 당했던 사람들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더 일들이니까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다음에 모르잖아요. 총맞고 깨어나니 병원이었다. (공식)기록이 가장 중요하다. 작년에 어느 매체에서 1974년 문세광 사건 재조명한다고 했다. 한 11년동안 음성전문가 동원해서 준비했다는데, 어떤 결론을 내놓고 그쪽으로 몰아가니까.  ●경호원이 육 여사 돌아가시게 했다는 추측성 보도를 가리키는 건가요.  -그런 뉘앙스로…. 하도 그래서 내가 한 말이 있다. 총알은 절대 거짓말을 안한다. 탄환이 다 있다. 건물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이니까 탄환이 없을리 없잖아요. 총알은 각도가 있다. 그렇게 이해시키려 했는데, 자칫잘못하면 왜곡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10.26 사건도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합동수사팀의 조사결과가 젤 정확하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합동 수사팀에 검찰도 다 들어가고 했기 때문에 숨길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운명이다. 운명이 아니고는 벌어질 수가 없다. 물론 원인도 다들 아시잖아요. 차 실장과 김재규씨하고 인간관계도 있고. (유신정권의)권력독점 문제 등도 있고.  ●호사가들은 미국 CIA가 배후조종했다는 설도 제기하는데요.  -(고개를 저으며)원래 그런 사건에 별별 추측이 다 일어나거든요.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땠나요.  -그분도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죠. 외모를 보면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가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죠. 예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74년도에 영부인 서거한 뒤에 굉장히 외로워하셨죠. 박근혜씨가 영부인 대행하셨지만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았죠. 그러다 보니까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 때 건설된 거죠. 창원 신도시에서 창원 공단, 풍산에는 풍산금속 등이 하나하나 자리잡기 시작했지요. 70년 초만 해도 우리나라가 철모도 하나 못만들었지요. 철모가 간단한거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총알이 맞아도 튕겨나갈 정도가 돼야하는데 그걸 못만들었으니까. 안면도에는 제 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 만들기 시작했지요.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합니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유난히 많이 다녔는가요.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가끔 여행하다 보면 그분의 족적을 볼 수 있다.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요,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 없었거든요. 그런 걸 그 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광양으로 바뀌었죠.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고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억들이 납니다  대담 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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