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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民心이 黨心 움직였다

    民心이 黨心 움직였다

    ‘오풍(吳風)’이 조직표의 벽을 뚫었다.’ 오세훈 전 의원이 막판까지 혼전을 거듭한 끝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된 것은 잇단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본선 경쟁력이 맹형규·홍준표 후보가 앞서 다져온 ‘당심(黨心)’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방증한다. 오 후보는 ‘클린 이미지’를 무기로 당 경선전에 합류하자마자 돌풍의 핵으로 떠오르며 비슷한 이미지의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와의 가상 대결에서 잇따라 승리하면서 ‘강풍(康風)’을 잠재웠다. 이런 ‘민심’은 경선 당일에도 재연됐다. 대의원·당원·국민참여선거인단 투표에서는 맹형규 후보에 100표 뒤졌지만 여론조사에서 624표(60.05%)를 얻어 2위인 맹 후보를 461표차로 따돌리며 역전에 성공했다. 나아가 맹·홍 후보가 공들여 다져온 조직표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애초 맹 후보가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할 것으로 예상된 대의원·당원 투표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특히 경선 당일 ‘부유하는 당심’의 향배를 결정하는 데 위력을 발휘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맹·홍 후보가 대의원·당원 표심을 나눠 가지면서 응집력이 떨어진 것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오 후보의 서울시장 출마카드를 구상했던 원희룡 최고위원은 “오 후보의 승리는 한나라당의 부정적 이미지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것과 최근 공천 비리 등으로 위기 의식이 높아진 가운데 당원·대의원들이 본선 경쟁력이 높은 후보를 밀자는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참여선거인단의 투표율이 28.8%에 이른 것도 오 후보에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당초 다른 지역에서는 10%에도 못 미쳐 이날도 낮은 투표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으나 의외로 국민참여선거인단이 3배 가까이 참가함으로써 ‘오풍’의 위력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오 후보의 경선 참여를 주도했던 박형준 의원은 “오 후보의 승리는 새로운 정치 코드를 바라는 대중의 바람이 투영된 것”이라며 “국민참여선거인단 투표율이 이처럼 높았던 것이 이를 입증한다.”고 분석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한나라 서울시장후보 경선 D-1] 후보 3인 지상 인터뷰

    [한나라 서울시장후보 경선 D-1] 후보 3인 지상 인터뷰

    6개월여 진행된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은 ‘마라톤’이었다.1월31일 맹형규 후보가 의원직 사퇴라는 배수진을 치고 독주했다. 그러자 홍준표 후보가 아파트 반값 인하 등의 이슈를 내세워 바짝 따라 붙었다. 두 주자의 각축 속에 오세훈 후보의 ‘오풍’이라는 맞바람이 거세게 불었다.‘오풍’은 잇단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의 ‘강풍’마저 잠재우며 급피치를 올렸다. 최근엔 조직표에 우위를 둔 맹·홍 후보가 가속도를 내면서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뤘다. 최종 예선전이 하루 남았다.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막판 레이스에 열중인 세 주자의 육성을 들어보았다.<순서는 기호순> ■ 홍준표 후보 “당 공헌·정책 차별화 분명 선택받을 것” “야당 생활 10년째인 당원들이 내년 집권의 초석이 될 서울시장 경선을 이미지나 바람에 흔들려 감성적으로 판단하진 않을 것이다.” ‘준비된 일꾼 시장’을 자처하는 홍준표 후보는 2년 전부터 ‘반값 아파트’ 공급 등 서울 강남북 불균형을 해소할 공약을 만들었다며 당 공헌도, 정책 준비, 본선 경쟁력 등 여러 면에서 자신있다고 말했다. ▶막판 경선 판세가 어떤가. -맹형규, 오세훈 후보가 출신지역과 부드러운 이미지 등 공유하는 부분이 많아 제가 결코 불리한 구도가 아니다. 당내 경선은 조직력이 승패를 좌우한다고 볼 때 저와 맹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 ▶여론조사에선 오 후보에게 밀리고, 당내 지지도에선 맹 후보에 비해 열세라는 분석이 있다. -경선은 대의원 20%, 당원 30%, 국민참여 30%, 여론조사 20%로 결정되는데 국민참여 집단은 투표율이 낮다. 오 후보가 강세를 보이는 여론조사도 선거인단 투표율과 연동해 환산하므로 실질적인 영향은 크지 않다. 결국 경선을 결정하게 될 ‘대의원+당원’은 당에 대한 공헌도와 정책준비 면에서 제가 앞선다고 판단할 것이다. ▶공천 비리가 선거 악재라는 관측이 있다. 홍 후보가 혁신위원장 때 만든 ‘분권형 공천’이 문제라는데. -공천비리는 ‘분권형 공천’이라는 제도적 문제가 아닌, 당사자의 개인적 문제이다. 과거 밀실에서 하던 것보다 민주적으로 진일보한 제도이다. 운영상 문제점은 앞으로 개선하면 된다. ▶막판까지 ‘오풍’이 지속된다면 맹 후보와 단일화할 가능성 있나. -전혀 없다. 첫째, ‘오풍이 지속된다면’이란 가정에 동의할 수 없고, 둘째, 명분도 약하고 실리도 없다. 후배 잡기 위해 두 선배가 연대하는 것은 명분이 될 수 없고, 저한테 불리한 구도도 아닌데 단일화할 이유도 없다. ▶오·맹 후보를 어떻게 평가하나. -두 분 모두 당의 보배다. 오 후보는 지금은 이른 감이 있지만, 앞으로 당을 짊어질 차세대 선두주자임이 분명하다. 맹 후보는 3선을 기록한 원만하고 합리적인 분으로 10년간 당을 위해 고민도 같이 나눴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을 어떻게 보나. -성공한 여성의 표상, 부드러우면서도 똑똑한 이미지가 있다. 문제는 1000만 서울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15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집행하며 5만 공무원을 지휘하는 서울시장이라는 자리를 위해 과연 얼마나 준비를 했느냐다. 장관 재임 때는 수도이전·분할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과 뜻을 같이해 놓고 이제 와서 이전·분할 대상인 서울의 수장이 되겠다니 어색하다. ▶당내 경선인데 네거티브 전략을 많이 쓴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네거티브는 정책 대결을 회피하고, 상대 후보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 다른 후보가 저에 대해 허위·날조된 불법 유인물을 만들고 구전홍보단 발대식까지 한 것이 네거티브의 전형이다. 저는 그간 오 후보에 대해 준비부족, 당에 대한 헌신부족 등 몇 가지 문제제기를 했다. 오 후보가 정책으로 답해야 할 문제이며, 당내 후보간 검증은 본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불가피한 과정이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주요 경력 경남 창녕(52), 영남고·고려대 법대, 사법고시 24회, 청주·부산·광주·서울 지검, 우신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15·16·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부총무, 총재 특별보좌역, 전략기획위원장. 혁신위원장 ●주요 공약 ▲무주택 서민에 ‘반값 아파트’ 공급▲강남북 교육 불균형 해소▲강북 교통환경 개선▲여성·노인·장애인 복지 획기적 개선▲엄마가 안심하고 직장 다닐 수 있도록하는 보육정책 ■ 오세훈 후보 “본선 경쟁력 우위… 표심 대세 따를 것” “당심은 본선 경쟁력이 가장 확실한 후보를 선택할 것이다.” 서울시장 후보 출마선언 이후 여론지지도에서 압도적 우세를 유지해 온 오세훈 후보는 “민심이 곧 당심으로 옮겨져 확실한 승리 후보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며 경선 승리를 장담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 당원들의 마음 속에는 올해 서울에서 압승을 거두고, 그 기세를 내년 말 대선 승리로 몰고 가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대세를 따를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당비 미납으로 ‘피선거권 논란’이 일고 있다. 경선이 끝나도 당헌·당규 위반에 따른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 법률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당비 ’미납’이 아니라 ‘체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특별당비를 냈고, 이재오 원내대표께서 법적 문제가 없다고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줬다. 그럼에도 당원의 한 사람으로 의무를 소홀히 한 것에 대해서는 송구스럽다. ▶17대 총선 불출마 선언 당시 ‘정계 은퇴’라는 말을 했다. 서울시장 후보 출마는 당시의 선언을 번복한 것으로 봐도 무방한가. 정계 복귀 뒤 달라진 점(장단점 모두)이 있다면. -정확히 얘기하면 정계은퇴가 아니라 총선 불출마 선언이었다. 한나라당의 새로운 탄생을 촉구하는 결단이었다.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결심한 것도 그때 초심과 변함없다. 당을 위기에서 구하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희망의 꽃을 피우기 위해 몸을 던진 것이다. ▶경선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지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50%가 넘는 예비후보는 매우 드물 것이다. 그래서 더욱 거친 역풍이 예상되지만 오세훈의 풍차는 더 힘차게 돌고 있다. 서울시민들의 열렬한 지지와 염원에 확실한 승리로 보답하겠다. ▶경선 라이벌인 맹형규·홍준표 후보의 장·단점을 말해 달라. -두 분 모두 선배님으로서 훌륭하신 분이다. 선의의 경쟁은 본선에서 확실한 승리를 위한 담금질이라고 본다. ▶경선에서 패한다면 ‘백의종군’하겠다고 했다. 아직도 유효한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겠다는 것인가. -만일 패한다는 것은 당심이 민심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결과이다. 나는 당을 구하기 위해 나온 구원투수다.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만약 패하더라도 한몸 던져 당을 살릴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 ▶열린우리당의 강금실 전 법무장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같은 법조인 출신으로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해왔다. 특히 인신공격 같은 네거티브 캠페인이 아니라 정책선거로 깨끗한 선거를 치르겠다는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강 전 장관과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된다면 어떻게 극복하실지. -어떤 것이 차별화되는지는 본선에서 확연히 부각될 것이다. 지켜봐 달라.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주요 경력 서울(45), 대일고·고려대 법학과, 사법고시 26회,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16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부총무·청년위원장·상임운영위원, 법무법인 지성 대표변호사, 미래포럼 공동대표. ●주요 공약 ▲강북도심부활 프로젝트▲강남북 균형발전과 투명한 행정을 위한 ‘열린 서울 프로젝트’▲보육을 비롯한 복지·교통·환경 등 ‘희망의 서울 프로젝트’▲강남북의 격차 해소▲서울의 브랜드 가치 제고와 경제 활성화 ■ 맹형규 후보 “준비된 일꾼… 급조된 후보와 다르다” “승리는 준비된 후보의 몫이어야 합니다.” ‘의원직 사퇴’라는 배수진을 치고 경선에 뛰어든 맹형규 후보는 ‘준비된 정치인’으로 ‘상품성’을 돋을새김했다. 그는 “지금까지 당선된 서울 시장의 면면을 보면 현명한 시민들은 정책·비전, 연륜있는 후보를 선택했다.”며 “3년간 준비해 온 후보와 2·3주 만에 급조된 후보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이 정책 토론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막판 판세를 어떻게 보시는지. -‘이미지 바람’이 불어 한때 고전했으나 이제 조정기에 들어섰다. 바람에 마음이 흔들렸던 당원들이 있더라도 경선 현장에선 한나라당과 서울, 대한민국의 미래를 믿고 맡길 만한 후보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조정기’에 들어섰다는 의미는. -최근 대구, 제주, 충남·북 경선을 보면 여론조사가 담아내지 못한 ‘민심’이 있다. 결국 우리 당원들은 “과연 누가 당을 대표했을 때 본선 승리를 거두고 차기 대선 승리에 기여할 것인가.”를 기준으로 투표할 것이다. ▶국민경선선거단 투표율이 낮아서 대의원·당원 특히 대의원 비율이 높아진 상황을 말하는 것 같은데, 조직표를 어떻게 다지고 있나. -선거 준비를 하며 당원·대의원과 꾸준한 신뢰를 쌓았다. 조직 기반이 든든하다.10년 동안 20여개의 당직을 맡으며 당에 헌신·봉사했다. 튀거나 나서지 않고 후배들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모든 사실을 당원들이 알 것이다. ▶가장 일찍 경선을 준비했는데 여론조사상 오세훈 후보나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에 뒤진다. 인지도 제고 실패 혹은 당원·시민들의 마음을 잡지 못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는데. -정부·여당이 치밀하게 계획된 프로그램으로 강금실 띄우기를 했다. 오 후보는 막판 합류 과정에 여론조사가 인기투표형으로 흐른 경향이 있다. 선거 과정에는 늘 바람과 변수가 작용한다. ▶‘오풍’‘강풍’의 배경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기존 정치가 국민을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정치에서 멀리 있을수록 신비감을 준 것이다. 지난 10년간 정치 현장에서 밤낮으로 일해온 입장에서는 안타깝다. ▶홍·오 후보를 어떻게 보는지. -오 후보는 참신함과 클린 이미지가 장점이다. 하지만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기엔 준비기간이 짧지 않았나라는 아쉬움이 있다. 홍 후보는 강한 추진력과 소신을 가진 정치인이다. 다만 다소 편중된 정치 철학과 사고가 단점이라고 본다. ▶‘의원직 사퇴’라는 배수진을 쳤는데 만약 이번 선거에서 실패한다면. -정치에 대한 마지막 봉사로 나섰다. 승리를 향해 최선을 다할 뿐이지 다음 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오풍’이 거세자 홍준표 후보와의 단일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는데. -이미지만의 선거를 우려하는 분들이 제기한 대안이다. 저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경선 출마 뒤 가족들의 반응은. -아내의 변화가 놀랍다. 수줍음이 많아 이전 선거운동에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밤낮으로 함께 뛴다. 살이 많이 빠져 마음이 아프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주요 경력 서울(59), 경복고·연세대 정외과, 연합통신 런던특파원, 국민일보 워싱턴 특파원,SBS 앵커,15·16·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대변인, 총재비서실장,17대 총선 수도권선거대책위원장, 정책위의장, 국회 산업자원위원장 ●주요 공약 ▲‘4대비전 20대 과제’ ‘123개 세부실천과제’▲자치구별 자율형 공립학교 운영▲공인베이비시터제 도입 및 안심보육센터 신설▲공공요금 2년 동결▲강북 용적률 및 층고제한 완화 및 20년 장기 전세주택 공급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삶과 노래(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삶과 노래(2)

    1964년‘동백아가씨’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트로트 시대를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이미자씨. 그러나 이후 3대 히트곡인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에 이어 ‘기러기 아빠’까지 왜색, 비탄조 등의 사유로 금지되면서 한때 가수 생명까지 위협받는다. 이 노래들의 금지 배경에는 아직도 확실히 규명되지 않은 몇 가지 설이 나돈다. 그 중 하나는 정치적 희생양 설. 당시 한·일국교를 맺을 즈음 치닫던 반일감정을 ‘왜색 근절’이라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민심 달래기용’으로 이용되었다는 설과 아울러 당시 정책구호였던 ‘재건’에 대한 ‘의욕 저하 설’ 등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다른 하나는 주위 음반사의 작용설. 정작 당사자인 이미자씨는 후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는 99년에 발간한 자전 에세이 ‘인생 나의 40년(황금가지刊)’에서 본인의 심경을 이렇게 적고 있다. ‘65년 한·일국교 정상화에 따른 주체성 확립 차원에서 본보기로 규제한 시대적 희생물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지만 정작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 청와대 영빈관에서 만찬이 있을 때마다 나를 불러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며 정말로 ‘동백아가씨’가 왜색이어서 정부가 금지시켰다면 일본에 대해 강경자세를 취했던 박 대통령이 그 노래를 내게 부르게 했을 리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권력층에서는 정작 이 노래의 금지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오히려 연속되는 빅히트로 상대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타 음반사가 극에 달한 ‘반일감정’에 편승, 심의실과 결탁해 여론몰이를 통한 ‘마녀사냥’에 나선 것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해적판’까지 기승을 부리게 만든 ‘동백아가씨’ 신드롬은 우리 가요계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된다. 미8군 출신가수들이 주축을 이루던 가요계가 트로트 붐으로 급선회했고 아울러 한국 최고의 메이저 음반사로 꼽히던 지구레코드사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피란 시절, 이북 출신 일곱명의 ‘38 따라지’들이 고물을 주워 모아가며 부산에서 설립한 미도파레코드사는 9·28수복 후 서울로 본거지를 옮긴다. 임정수·김능억 공동사장으로 운영되던 미도파는 동백아가씨가 ‘대박’을 터뜨리자 이듬해인 65년 1월부로 결별, 각각 독립한다. “두 공동사장이 분가할 때 그동안 미도파 라벨로 출시된 음원들도 똑같이 분배했지요. 그런데 정작 분가의 불씨를 제공한 선택 1호 ‘동백아가씨’ 만큼은 임정수 사장의 ‘지구’ 몫이었습니다. 미도파 전속 후 별다른 히트곡이 없던 작곡가 백영호씨의 그동안 밀린 월급을 임사장이 개인적으로 주어왔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지구’는 출발부터 돈방석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도파레코드사에 근무하던 현 한국가요작가협회 김병환(68) 이사장의 증언이다. 결국 임 사장은 지구를, 김 사장은 그랜드를 각각 설립, 결별한 이후에도 미도파 당시에 출시한 동백아가씨 판매수익 지분을 놓고 법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되었다. 지구의 출발과 함께 ‘이미자 시대’는 본격적으로 막을 연다. 게다가 천재 작곡가 박춘석씨가 자신의 곡을 이미자씨에게 취입키 위해 자청, 지구에 전속된다. 작풍도 ‘이미자풍(風)’에 맞춰 트로트로 선회, 스스로 ‘제2의 전환기’를 맞는다. 이렇게 해서 60년대 빅 히트 3대요소인 ‘지구+박춘석+이미자’라는 진용을 갖추고 ‘섬마을 선생님’ ‘그리움은 가슴마다’ ‘흑산도 아가씨’ ‘기러기 아빠’ ‘황혼의 블루스’ ‘한번 준 마음인데’ 등을 잇달아 발표한다. 동시에 이미자씨는 백영호 곡인 ‘여자의 일생’ ‘아씨’ ‘서울이여 안녕’ ‘여로’, 그리고 손석우 곡인 ‘사랑했는데’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거침없는 질주를 계속했다. 쉴 새 없는 공연과 취입으로 그녀의 목은 늘 잠겨 있었다. 따로 연습할 시간조차 없어 ‘녹음이 곧 연습’이었다. 그럼에도 ‘타고난 목소리’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성대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의 한 연구기관이 그녀의 성대를 사들였다는 소문까지 전국에 파다하게 나돌기도 했다. 물론 낭설이었지만 이미자씨 역시 이 소문을 접했을 때 그리 나쁜 기분만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상의 목소리’ 그리고 ‘촌스러움’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았던 이미자씨 노래는 89년 10월,30주년 기념공연을 기해 세종문화회관무대에 오른다. 처음 이 공연은 ‘공연장의 품위와 관객의 질적 수준 저하’라는 이유로 세종문화회관 운영자문위원회의 결사반대에 부딪혔던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격이 낮다’는 노골적인 멸시를 받으며 막이 오른 이 공연은 정작 시작 첫날부터 세종문화회관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당시 민정당 박태준 대표, 평민당 김대중 총재, 민주당 김영삼 총재, 공화당 김종필 총재, 즉 당시 4당 총재부부가 나란히 관객석에 자리한 것이다. 한국인만의 정서를 대변하고 달래주었던 이미자 노래, 그 실타래 같은 노래 한가닥 한가닥은 서민의 밑바닥 정서부터 한국을 움직이는 최고 수뇌부까지 모두 하나로 묶는 소중한 ‘끈’이었던 것이다. (sachilo@empal.com)
  • ‘吳風키우기’ 한나라소장파 움직인다

    ‘오풍(吳風)을 태풍으로.’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에 참여한 오세훈 전 의원의 돌풍이 예상보다 거세다. 그러자 오 전 의원의 ‘결단’에 주춧돌이 된 의원들이 오풍을 키우려고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오 전 의원이 출마 의사를 밝힌 지난 8일 미래연대 출신 원내외 위원장에게 ‘사발통문’을 돌렸다. 경선에 뒤늦게 합류한 오 전 의원의 ‘아킬레스건’인 당내 지지율을 제고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J의원·K위원장 등이 공조 방안을 모색키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원 최고위원은 그 전날 오후 오 전 의원을 만났다. 오 전 의원이 출사표를 던지기 직전이다. 오 전 의원은 “당 일각에서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의 대항마로 분위기를 띄우고 있는데 모른 척하면 무책임하니 출마해야 될 것 같다.”며 자문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원 최고위원은 “당의 개혁적 이미지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으로 나와야지 개인의 유불리를 따지면 힘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9일 저녁엔 최근 오 전 의원을 잇따라 접촉했던 새정치수요모임의 박형준 대표, 정병국 홍보기획본부장, 남경필 의원 등이 오 전 의원을 만났다. 격려성 모임이었지만 자연스레 향후 대응책도 논의했다. 박형준 의원은 “남은 과제는 오풍에 쏠리는 민심을 당심으로 일치시키는 것”이라며 말했다. 줄곧 영입론의 불씨를 지펴온 박계동 의원측은 “약속대로 불출마를 선언할 예정인데 이르면 11일께 할 수도 있다.”며 “이후 오 전 의원을 도울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지방선거 후보 윤곽…3대 관전포인트

    5·31 지방선거에 출마할 여야 후보들이 윤곽을 드러낸 가운데 여야 각 정당이 본격 선거전에 돌입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번 선거는 참여정부 3년 및 지방자치제 10년에 대한 평가와 함께 오는 2007년 대선의 전초전 성격도 띠고 있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전의 향방과 대선의 시금석이 될 충청권의 민심 동향, 민주당·민주노동당 등 군소정당의 재도약 여부 등이 최대 관전포인트로 꼽힌다. ■ 1. 지방선거 바람의 진원 서울승부 서울은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승부처이자 ‘바람’의 진원지가 될 것같다. 선거 결과에 따라 정계 개편의 회오리가 예상되는데다 오는 2007년 대선 승부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전략공천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정당지지도로는 한나라당에 큰 차이로 뒤지고 있지만 강 전 장관을 내세우면 바람을 일으키기에 충분하고,‘강풍’(康風:강금실 바람)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강 전 장관의 인기는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거론되는 맹형규 전 의원이나 홍준표 의원을 크게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강 전 장관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젊은층의 투표율을 어떻게 높이느냐가 당락의 관건이 될 것 같다. 한나라당도 당운을 걸고 서울시장 선거에 임할 태세다. 여당의 강 전 장관에 맞설 후보를 확정하는 데 극도의 공을 들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맹 전 의원과 홍 의원을 포함해 박진 의원과 권문용 전 강남구청장 등이 뛰고 있지만 여전히 ‘외부 영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굳이 외부인사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승산이 있다고도 보고 있다. 그간의 여론조사 결과, 맹 전 의원과 홍 의원이 선호도에선 강 전 장관에 뒤지지만 적극적인 투표의사층의 지지도에선 다소 앞서기 때문이다. ■ 2. 대선승부 시금석 충청 민심여야는 수도권 못지 않게 충청권 지방선거 결과를 2007년 대선의 시금석으로 인식하고 있다. 역대 대선에서 충청권의 표심이 사실상 승부를 갈랐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충청권 공략에 발벗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충청 민심 재결집’의 기치를 내건 국민중심당도 선거 결과에 따라 존폐가 결정 될 것 같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의 정당지지도만 놓고 보면 대전·충남에서는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전이 예상된다. 충북에선 한나라당의 우세가 점쳐진다. 대전·충남의 경우, 국민중심당의 약진이 만만찮은 가운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박빙의 승부를 펼칠 것 같다. 열린우리당은 염홍철 대전시장과 오영교 전 행자부장관의 ‘인물 우위론’을, 한나라당은 ‘정권 심판론’을 앞세울 것으로 보인다. 충북에서는 한나라당의 정당지지도가 열린우리당보다 20%포인트 가까이 앞서는 상황이어서 열린우리당의 고전이 예상된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3.군소정당들 부활의 봄 올까 지방선거를 통해 ‘서부 벨트’의 맹주가 되려는 민주당과 진보세력의 ‘재도약’을 노리는 민노당 등 군소정당들도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광주·전남의 ‘텃밭’을 뛰어넘어 전북과 수도권, 충청권으로의 ‘외연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잡고 있다. 민주당은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서울 지역에 호남 지지표를 등에 업은 박주선 전 의원을 투입, 캐스팅 보트를 쥐고 파괴력을 보여준다는 전략이다. 전북 공략을 위해 강현욱 전북지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화갑 대표 등 수뇌부가 직접 강 지사를 접촉하고 있으나 쉽지 않은 형국이다.‘혼전’을 벌이는 충청권에선 국민중심당과의 ‘제2의 DJP(김대중-김종필) 연대’를 검토하고 있다. 반면 민노당은 ▲전국 평균득표율 15% 이상 ▲광역단체장 1명 ▲기초단체장 5명 이상 당선을 목표로 정했다.‘행복한 주민자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빈곤과 차별, 양극화의 주범인 보수 양당에 대한 심판을 공격, 진보정당 역할론을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 구체적으로 진취적인 20∼30대의 표심과 여성·노동·농민·시민단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선거운동을 준비하고 있다.30대의 서울시장 후보인 김종철 전 최고위원을 내세워 젊은 층 공략에 나섰고 아직 후보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텃밭’인 울산에서 필승 전략을 세웠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자이툰부대병력 교체 동행기

    자이툰부대병력 교체 동행기

    김 상사님! 만약 당신이 지난 9일 서울공항에서 자이툰부대 교대 병력의 출국 장면을 지켜봤다면 실망하셨을 겁니다.41년 전 용맹스러운 제2해병여단의 일원으로 당신이 월남으로 떠날 때 부산항을 가득 메웠던 만큼의 환송 인파를 그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활주로에 일렬로 늘어선 동료 군인들의 손짓만을 배경으로 트랩을 오르는 장병들의 뒷모습은 쓸쓸해 보였습니다.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숱한 찬반 논란의 포연(砲煙)에 질식하는 건 결국 장병들의 ‘실존’이 아닌지요. 그러나 김상사님! 저의 우울함은 기내로 들어선 순간 증발했습니다.300여명의 장정들이 일제히 뿜어내는 ‘테스토스테론’의 열기가 확하고 달려드는 것이었습니다. 베이지색 군복에 바짝 밀어버린 머리, 그리고 이글거리는 검은 눈동자는 흡사 질서정연한 사자떼의 모습이라 할 만했습니다. 저는 감히 그들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해석하기 힘든 침묵이 전장(戰場)으로 향하는 기내를 묵직하게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륙 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가까스로 뒷좌석의 한 병사에게 물었습니다. 두렵지 않으냐고.“담담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오더군요.‘불치의 직업병’에 걸린 기자는 재차 다그쳤습니다. 전체 감정 중에 두려움이 몇 퍼센트나 되느냐고. 이번엔 “그걸 딱 잘라 말하긴 힘들다.”는 대답입니다. 우문현답이었습니다. 어찌 사람의 감정을 일률적으로 재단할 수 있겠습니까. 호기심과 설렘에 온통 구름 위를 걷다가도 순식간에 공포가 엄습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인간의 한계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아(我)는 비아(非我)요, 무아(無我)라는 것이겠지요. 김 상사님! 이륙 10시간 30분만에 장병들을 실은 민항 전세기는 쿠웨이트의 무바라크 공군기지에 도착했습니다. 전장인 이라크로 진입하기 전 장병들은 쿠웨이트의 미군기지(캠프 버지니아)에서 하루를 묵습니다.41년 전 김 상사님은 6일의 항해 끝에 월남의 깜란만에 상륙, 바로 전투태세에 돌입했지만 지금 후배들은 잠시나마 숨을 고를 겨를이 있는 것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린 병사들을 제일 먼저 맞아준 것은 악명높은 사막의 모래바람입니다. 얼굴쪽으로 사납게 달려드는 모래 세례에 눈을 뜨기도, 숨을 쉬기도 힘든 지경이었습니다. 사막의 신(神)은 이런 식으로 여기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님을 경고하는 듯합니다. 다음날 장병들은 공군 수송기인 C-130에 실려 이라크 아르빌로 향했습니다. 김 상사님,41년 전 당신은 미 해군 함정을 타고 월남에 와서 미군이 나눠준 탄약으로 전쟁을 치렀지만, 지금 자이툰 부대원들은 소총에서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일체 우리 장비로 전쟁에 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력의 성장치는 이렇게 확인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김 상사님과 전우들이 흘린 피의 기여가 포함돼 있겠지요. 보일러실 내부처럼 어수선한 수송기에 앉아 고막을 찢을 듯한 소음을 듣고 있으려니 본격적으로 전쟁터로 향한다는 실감이 났습니다.2시간 가량이 흘러 착륙이 임박해졌을 때 기체가 롤러코스터처럼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전술비행’에 돌입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착륙시 혹시 있을지 모를 적의 대공포 공격을 피하기 위해 기체를 지그재그로 선회하는 것입니다. 장병들 모양으로 방탄조끼와 헬멧을 착용하고서 10분 넘게 넘실대는 기내에서 중심을 잡다보니 속이 울렁거리면서 구토가 밀려올라왔습니다. 김 상사님도 월남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배멀미 때문에 죽을 고생을 했다고 하셨지요. 세상이 변해도, 또 기술이 진보해도 구역질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전쟁의 통과의례인가 봅니다. 수송기가 닿은 곳은 아르빌 국제공항입니다. 수송기 주위에 배치돼 집총자세로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는 자이툰부대원들을 보면서 오싹 긴장감이 들었습니다. 이곳이 허허벌판이라고 해서 41년 전 밀림 속에서의 김 상사님보다 공포감이 덜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어디선가 순식간에 날아오는 총탄에 격살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무애(無碍)한 광야에서 오히려 더 섬뜩하게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 이라크 북부에 위치한 아르빌은 예상과 달리 사막이라기보다는 구릉지와 녹지가 군데군데 펼쳐진 초원지대에 가깝습니다. 부대원들이 완전무장 차림으로 철통 같은 경계를 펴고 있는 자이툰부대 영내로 들어선 순간 안심이 됐습니다.100만평 규모에 3000여명의 사단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자이툰부대는 병원도 있고, 슈퍼마켓도 있고, 외환은행 지점도 있어 마치 한국의 어느 마을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입니다. 장병들의 식탁은 한국에서 배로 실어온 우리식 반찬으로 채워집니다. 김 상사님이 보시면 세상 참 좋아졌다고 하시겠지요. 김 상사님! 정작 놀라실 얘기는 지금부터입니다. 도착 다음날인 11일 자이툰 부대원들의 민사심리작전에 동행해 아르빌 외곽의 작은 마을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잔뜩 긴장해 있는 제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흉악한 테러가 아니라 주민들의 따뜻한 미소였습니다. 자이툰 부대원의 차량을 발견한 어린이들은 하던 놀이를 제쳐놓고 손을 흔들며 수도없이 차량으로 달려들었습니다.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느라 팔이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피르라시’라는 마을에 다다르자 귀에 익은 우리 동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라크 어린이들이 용맹하기로 이름난 우리 특전사 요원들을 따라 율동에 맞춰 우리 말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아기곰∼” 서울에서 8400여㎞나 떨어진 이국의 하늘 아래서 우리 동요를 부르고 있는 어린이들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울컥 눈시울이 불거졌습니다. 한쪽에서는 이라크 청년들과 우리 병사들 사이에 씨름대회와 줄다리기가 펼쳐지고 있었고, 호떡, 솜사탕 같은 우리 먹을거리도 차려져 있었습니다. 이 성대한 마을잔치는 오롯이 우리 군인들의 손으로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살벌한 전장을 상상하고 온 기자에게 이런 장면은 한바탕 충격이었습니다. 자이툰은 전투가 아닌 사랑을, 파괴가 아닌 재건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거대한 한류(韓流)였습니다. 이라크 파병이 어쩌고저쩌고하는 온갖 탁상공론을 자이툰은 총이 펜보다 강하다는 역설의 웅변으로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6월 이후 아르빌에서 단 한 건의 테러도 일어나지 않은 기적은 이런 한류식 사랑의 결실입니다. 불퇴전의 특전사 요원들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어린이들과 껑충껑충 율동을 하는 것, 이것은 유난히 다정(多情)한 우리 민족이 아니고선 다른 어떤 나라 군인들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발상의 전환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한국군의 성과에 자극을 받은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최근 “한국군의 민사심리전을 벤치마킹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전쟁터에서 민심부터 챙기는 것은 우리 군의 오랜 전통인 것 같습니다. 월남전 당시 채명신 주월 한국군 사령관이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고 신신당부했던 것을 김 상사님도 기억하시지요. 현지에서 자이툰은 치안유지에서부터 도로포장, 기술교육, 의료봉사 등등 수십가지의 민사작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정부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상황이 이러니 이곳 주민들은 한국군 철군 소식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합니다. 이날 오후 만난 쿠르드 자치정부 관계자는 한국군이 얼마동안 주둔했으면 하느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영원히(forever)”라고 하더군요. 12일 아침 저는 올 때와는 반대로 밝은 마음으로 아르빌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6개월의 복무기간을 마치고 귀환하는 300여명의 교체 병력과 말입니다.14일 아침 드디어 서울공항에 비행기가 안착했을 때 한 병사(김금휘 병장)에게 제일 보고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어머니”라고 답하더군요. 그 말을 들으니 고작 6일간 이라크 출장을 가는 아들 걱정에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신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니 이라크에서 조국을 위해 생명을 담보잡힌 3000여 장병의 어머니들의 심정은 또 어떻겠습니까. 물론 41년 전 사지에 아들을 보내놓은 김 상사님의 어머니도 밤잠을 못 이루셨겠지요.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강금실씨 골프유탄?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 파문은 여권이 노리는 ‘강금실 효과’에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골프 파문이 정점에 이른 지난 10일 CBS 라디오의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한 가상대결 조사에서 강 전 장관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모두 뒤졌다.20세 이상 522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한 결과 강 전 장관은 맹형규 후보와는 44.5%대31.6%, 홍준표 후보와는 44.0%대36.2%로 패했다.무소속 정몽준 의원이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는 시나리오에서도 52.4%대31.8%로 강 전 장관이 낮게 나왔다.리얼미터의 지난 1월 조사에서는 강 전 장관이 맹·홍 후보 모두에게 많게는 7.3% 포인트 앞섰다. 리얼미터측은 “30∼40대와 남성 응답자가 지지를 바꾼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골프 파문 이후 민심의 악화와 여권의 난기류가 강 전 장관의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앞서 폴앤폴이 지난달 9∼10일 10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강 전 장관은 맹·홍 후보에게 많게는 11.2% 포인트 뒤졌었다.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는 골프 파문의 후폭풍과 최근 당내 전략공천 반발 기류 등을 폭넓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권의 고민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총리사퇴 찬성 절반 넘다니 바닥민심 모르겠다”

    “바닥 민심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게 걱정이다.” 9일 저녁 여당 지도부가 서울 노량진의 한 식당에서 단합대회를 겸한 첫 만찬을 가졌다. 정동영 의장, 김한길 원내대표, 김근태·김두관·조배숙 최고위원 등이 함께한 이날 만찬에선 이해찬 총리의 골프 파문 등 폭넓은 현안이 논의됐다. 지도부는 이 총리 사퇴에 대해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응답자가 찬성 의견을 낸 데 대해 “이것이 맞는 것이냐. 도대체 여론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곤혹스러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연희 의원에 대해 의원직 사퇴 의견을 밝힌 응답자가 70%를 웃돈 것은 이해되지만 이 총리에 대해서도 사퇴 의견이 과반수였다는 점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정 의장이 12일 고건 전 총리와의 회동을 앞두고 의견을 구하자 참석자들은 “고 전 총리는 참여정부 초대 총리인데 한나라당에 참여하진 않을 것이다. 같이 가자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편 일부 참석자들은 이명박 시장이 강금실 전 장관에 대해 “춤추고 놀기 좋아한다.”고 한 발언과 관련,“카바레 춤과 전통무용도 구분 못하는 문화적 안목의 빈곤에 실망했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與, 李총리 사퇴 말릴 생각 없다

    與, 李총리 사퇴 말릴 생각 없다

    이해찬 총리의 사의 표명이 여권 내 프리즘을 거치면서 다양한 굴절현상을 보이고 있다. 가장 첨예한 각도를 이루는 것은 역학구도의 변화 시나리오다. 이번 사태의 결말을 여권의 양대 실세인 이해찬 총리와 열린우리당 정동영 당 의장간 파워게임으로 연결짓는 시각이다. 물론 이 총리의 사의 표명에 당 지도부의 입김이 우회적으로라도 작용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이 총리의 5일 발언이 ‘사과’수준에 그칠 것으로 생각했으며, 이 총리가 ‘거취’를 언급할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 의장측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순방길에 오른 6일까지 당의 공식기구에서 이 총리의 사퇴를 만류하는 언급이 일절 나오지 않았다는 대목은 눈여겨 볼 만하다.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심의 향방에 ‘올인’하고 있는 정 의장 체제로서는 정치적 유연성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는 해석도 나온다. 문제는 ‘지방선거 이후’에도 레임덕의 변수를 줄이고 국정 전반을 이끌어 가야 할 노 대통령의 선택이다.4선의 한 의원은 “대통령이 이 총리의 완벽한 내각 장악력과 국민정서 사이에서 고심할 것”이라면서 “국가 운영의 큰틀에서 여론의 흐름을 존중하지 않겠느냐.”고 말해 ‘지방선거 올인론’과는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이 총리의 거취 문제에 당내 계파구도를 투영시키는 시각도 있지만, 사안의 성격상 힘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정 의장 체제에 비판적인 재야파 중진의원도 계파간 시각차이를 묻는 질문에 “그런 건 아니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또 지난 3일 정 의장이 김근태·김두관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전원의 의견을 모아 자숙론과 기강론을 공식 언급하는 등 당 지도부도 ‘이견 표출’을 최대한 삼가고 있다. 서울 출신의 비(非)정동영계 의원도 “계파간 갈등으로 비쳐지는 것은 지방선거를 앞둔 당에 결코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당 소속 의원들은 이번 사태의 수습 방안에 따른 후폭풍의 강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총리의 사퇴를 주장한 한 초선의원은 “여권이 스스로 사퇴카드를 선택하느냐, 국회에서 야당의 협공 속에 사퇴를 당하느냐의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내다봤다. 야당의 해임건의안 제출이 현실화되면 지방선거를 앞둔 여당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 주변에서 전·현직 도지사인 L·S씨 등 후임총리의 하마평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도 이같은 정서와 무관치 않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한화갑대표 “盧정권, 동교동 종자를 죽이고 있다”

    한화갑대표 “盧정권, 동교동 종자를 죽이고 있다”

    한화갑 대표의 ‘민주당호’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한 대표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8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항소심 형이 확정될 경우 의원직 상실은 불가피하다. 당 안팎에서 ‘통합론’이 불거지고 있고, 당내에서는 ‘한화갑 퇴진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민주당의 총체적 위기인 셈이다. ●黨일부서 대표 퇴진론 고개 ‘사면초가´ 민주당은 9일 ‘대여 총공세’로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한 대표의 이날 신년 기자회견이 신호탄이다. 한 대표는 법원 선고를 ‘불평등한 판결’로 규정하고 “노무현 정권이 동교동 종자를 죽이고 있다.”고 반발했다. 한 대표는 “한화갑을 놔두고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통합할 수 없다는 말이 시중에 돌고 있다.”고 전제, 법원 판결이 ‘한화갑 죽이기 전략’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활을 걸고 ‘민주당 말살 음모’로 몰아치면서 서울과 광주·전남 지역에서 대규모 릴레이 항의, 규탄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의원직상실땐 ‘우리-민주통합´ 급부상 가능성 민주당의 대여 총공세는 다목적 카드로 보인다. 재판 결과로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민주당 통합론’이 급부상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통합 반대론자’인 한 대표의 입지 약화를 사전에 막으면서 ‘호남 민심’을 결집하려는 전략으로 볼수 있다. 한 대표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전당대회에서 전체 대의원 83%의 지지를 받았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는 통합론과 관련, 고건 전 총리가 자신의 회동 요청을 거절했다며 “통합론은 지금 당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통합을 위해서라도 당의 존재 부각에 우선 힘을 써야 한다.”고 일정한 선을 그었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창조적 공존론’을 앞세워 중도실용 개혁 노선의 연대 가능성은 열어놓았다. 당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 등에서 국민중심당 등과의 연합공천 가능성 등은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총체적 위기에 몰린 ‘한화갑호’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시민 삶 담은 기획물 부족하다/양승찬 숙명여대 언론정보학 교수

    설 연휴를 보내고 난 1주일 동안 서울신문이 우리 국민의 마음을 얼마나 읽었는지 지면에서 파악할 수 있기를 내심 기대했었다. 대통령 연두기자 회견과 민족의 대이동 속에서 우리 삶에 대한 사람들의 대인 커뮤니케이션 정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이 한국 사회의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여론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 발견하기 어려웠다. 단순 발생 기사의 전달 매체로서 신문은 다른 매체에 우월적 지위를 내 준 지 오래된 것이 사실이다. 다매체 다채널 무한경쟁시대에서 신문이 여전히 강한 부분은 전문가의 시각을 토대로 시민중심의 삶의 문제를 찾아 심층적인 진단을 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신문의 기획과 탐사보도의 영역은 더욱 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연초 서울신문이 사고를 통해 한 해 동안 특정 분야에 대한 기획보도를 추구한다는 것을 밝힌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종합해 보면 크게 안전, 환경, 교육, 철학, 여행, 농업, 경제, 문화 전반에 대한 다양한 심층기사를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1월31일자의 세이프코리아 연재물과 어린이 장난감 사고 관련 기사,2월4일자의 지하철 정비 24시 기획기사는 생활 안전과 관련한 환경감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였다.1월31일자 아랍세계 변화의 현장 기획과 2월2일자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인생관 특집 역시 독자들의 교양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정보였다. 하지만 서울신문이 1년 동안 추구한다는 기획의 영역에서 새로운 정치이슈에 대한 분석과 진단, 이와 관련한 여론과 민심의 동향, 흐름에 대한 평가 부분이 빠져 있는 아쉬움이 있다. 이는 그동안 우리 언론이 너무 정치 중심적이었기 때문에 사회의 다양한 영역을 다루려고 애쓴 과정에서 나온 결과일 수도 있겠다. 이점을 고려하더라도 지면 전체에 정치와 여론 관련 기획이 다른 분야와 조금 더 균형을 이루면서 체계적으로 다루어졌으면 한다.5월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유권자들의 관심 이슈와 정치적 판단에 대해 정기적으로 그 흐름을 점검하는 것 또한 언론의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2월3일자 정치캠프 해부 기사는 여전히 정치인 중심이다. 누가 어떤 캠프를 차렸고 어떤 전략을 가지고 누구와 제휴하고 있으며 선거비용이 빠듯하다는 이야기들은 흥미의 대상일 수는 있겠지만 유권자인 국민이 정치적인 판단을 하는데 유용한 정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많은 연구결과들을 보면 이와 같은 전략적인 틀에 의해 구성된 뉴스는 유권자를 냉소적으로 만들고 유권자 참여에 부정적 영향력을 미친다고 한다. 올해 서울신문이 추구하는 기획, 탐사의 영역에 시민중심적 정치, 여론 분야를 추가하면 어떨까?물론 언론이 전문주의에 입각하여 스스로 판단하고 의제를 설정하거나 정치권의 주요 의제를 시민에게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1월 중 다섯 차례 2006년 정국 핫코너에서 보도한 정치권의 중요 이슈에 대한 진단은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경험을 반영하여 기사를 구성하고 나아가 시민의제를 공론화하는 것 역시 중요한 임무이다.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을 더 많이 직접 접촉하고 정치사안에 대한 이들의 여론을 진단할 과학적인 조사 방법 등을 기획과 탐사보도에 더 적극적으로 이용했으면 좋겠다. 지난주 기사 중 일반 시민 중심으로 기획된 것은 다분히 감각적인 남녀문제의 연성주제였다.“뻑이 가요 뻑이 가”라는 부제 아닌 부제의 품격, 비과학적인 인터넷 조사 결과를 크게 키운 것도 문제였지만, 일반 시민들의 의견과 경험을 볼 수 있는 기사가 1주일동안 고작 이것뿐인가를 고민하게 한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1월초 보도된 ‘양육 양극화’ 기사와 같이, 정치 현안에 대한 일반 시민의 집합적 의견과 경험을 토대로 여론과 민심, 시민의 의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정기적인 기획기사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양승찬 숙명여대 언론정보학 교수
  • 정치권 영호남 장벽 뛰어넘기

    정치권 영호남 장벽 뛰어넘기

    오는 5월3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지역주의의 벽을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호남과 열린우리당의 영남은 아직도 높은 문턱으로,‘다가가기 어려운 지역’으로 남아 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영남의 민심이나 한나라당에 대한 호남의 민심은 여전히 냉랭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영남 출신, 한나라당의 호남 출신 의원·당직자들이 체감하고 있는 영·호남의 민심과 지역 장벽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과 대책을 들어봤다. ■ 한나라의 호남 다가서기 “한나라당에 대한 호남 민심은 여전히 싸늘했다. 특히 ‘광주 항쟁’을 겪은 이들의 시선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다만 호남인들이 쏟아낸 꾸지람 속에서 새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1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회 토론회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김형오 인재영입위원장도 “호남에는 쓴소리 듣기 위해 간 것”이라고 전제,“호남인들이 믿어줄 때까지 반성하고 노력하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11월 폐쇄했던 호남지역 시·도당을 조만간 복원, 오는 5월31일 지방선거에서 참신한 인재들을 앞세워 본격적인 호남 파고들기에 나설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호남지역 인사들에 대한 비례대표 배정을 확대하고, 당 차원의 서남해안 개발계획을 마련하는 등 실질적 대안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히 싸늘한 호남 민심 올 들어 광주와 전주에서 각각 열린 두차례의 토론회에서는 한나라당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줄을 이었다.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호남인들이 한나라당을 외면한 원인에 대해 “1980년 5·18 광주항쟁을 계기로 호남인들은 과거 민정당이나 이를 이어받은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을 지지할 수 없는,‘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게 됐다.”고 분석했다. 광주대 류한호 언론홍보대학원장도 “박근혜 대표의 호남 방문도 중요하지만 5·18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전제되지 않고는 호남인들의 마음을 끌어안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형배 참여자치21 대표는 “박 대표가 망월동에 아무리 여러번 와도 소용이 없다.”면서 “정책을 통해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일회성 이벤트보다는 지속적 대화와 화해 노력이 관건 호남 토론회에서는 한나라당에 대한 질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이면엔 희망적인 내용도 있었다. 전남 곡성 출신으로 23년간 당 사무처에 몸 담아온 이정현 부대변인은 “호남지역에서는 내로라하는 학자·언론인·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토론자로 나서준 것만 해도 예전 같으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북 고창 출신인 진영 의원(서울 용산)은 “워낙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갈등이기 때문에 한순간에 풀어질 수가 없을 것”이라며 “인재 영입 이벤트도 중요하지만 인재들이 당당하게 찾아올 수 있는 정당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진 의원은 특히 “한나라당은 무엇보다 호남의 정치적 상징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치적에 대한 재평가부터 해야 한다.”며 “햇볕정책의 성과를 폄하하거나 ‘X-파일’ 공개를 통해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행태에 대한 반성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두언 의원도 “그동안 호남에 공들인 것은 없으면서 표 안 나온다고 투덜거리기만 했던 게 사실 아니냐.”며 “당 대표의 호남 방문이나 인재 영입을 위한 토론회 등도 중요하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이 수시로 호남을 찾고, 진정으로 호남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남 출신의 구야권 원로인 이중재 전 의원의 아들 이종구 의원은 “선거철에 정치·정략적 목적으로 호남을 찾아가는 것은 감정의 골만 깊게 할 뿐”이라며 “한나라당 의원들이 호남 출신 인재를 1명 이상 보좌진으로 영입하거나 ‘1의원 1지역구 갖기운동’ 등을 통한 정책·예산 지원 등 구체적이고 진정성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역대 영호남 선거 결과는 “당선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한나라당)씨라도 싹 틔우자는 것이죠.”(광주시장 후보로 출마하는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배지 달기는 어렵고, 당원들도 정권 재창출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열린우리당 정병원 경북도당위원장) 5월 지방선거에 대한 영·호남 지역 전망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영남=한나라당, 호남=열린우리당+민주당’이라는 구도가 굳어지다시피 한 까닭에 당에 따라 출마 예정자들조차 기대를 걸지 못하는 판국이다. 유일한 희망은 사실상 중선거구제로 개정된 기초의회 선거다. 1995년 시작돼 2002년 3회째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당선 현황을 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한나라당과 그 전신인 민자당은 호남에서 단 한 명의 광역단체장도 배출하지 못했다. 영남에서도 초대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출마한 문희갑 후보가 대구시장에 당선된 것을 빼면 한나라당과 민자당 후보가 휩쓸었다. 총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15대 총선에서 당시 신한국당 강현욱 후보가 전북에서 당선된 것을 제외하면 호남에서 당선된 한나라당측 후보는 없다. 영남의 경우 15대 때에는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들이 모두 졌고 17대에 와서야 68석 가운데 4석을 열린우리당 쪽에서 가져갔다. 그나마 현재 일말의 희망이나마 갖고 있는 쪽은 열린우리당이다. 지난해 4·30 재·보궐선거 당시 경북 영천에서 ‘48.7% 대 51.3%’의 득표율로 아쉽게 패배한 데 이어 지난 10·26 재선거에서 한나라당 아성으로 불려온 대구 동을에서 이강철 후보가 44%의 득표율로 52%를 얻은 한나라당 유승민 후보와 살얼음 승부를 펼쳤다. 하지만 영남의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은 변화 조짐에 대해 비관적이다. 영천의 경우 한나라당 후보 공천과정의 잡음 등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본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우리당의 영남 끌어안기 열린우리당 부산시당위원장인 윤원호 의원은 24일 “우리당이 PK(부산·경남)에서는 숨이라도 조금 쉬면서 살지만,TK(대구·경북)에서는 아예 숨도 못 쉬지 않느냐.”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을 향한 영남 민심이 어떠냐는 질문에 나온 이 답은 ‘한나라당 텃밭’인 이곳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 여권의 현 주소를 대변하는 것이다. 전국 정당을 표방하며 2003년 창당한 열린우리당에 영남권은 이처럼 여전히 ‘섬’이다.10∼20%대 초반인 당 지지율은 영남에만 가면 아예 반토막 수준으로 뚝 떨어진다. 조경태(부산 사하을)·최철국(경남 김해을) 두 국회의원이 현직에 있고,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김두관 전 경남 남해군수 등 지역 거물이 건재한 PK에서도 민심이 녹록한 것은 아니다. ●PK·TK의 참담한 지역정서 최근 부산에 다녀온 여권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이곳에서는 ‘열린우리당=호남 정당’이라고 보기 때문에 별다른 관심도, 애정도 없는 것 같다.”면서 “영남 출신이 당에서 소외받고 있는데 영남이 당에 관심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가뜩이나 보수적이고 깐깐한 TK정서는 더욱 여당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편이다. 김태일 대구시당위원장은 “당원도, 일반 시민도 전당대회엔 큰 관심이 없다.”고 잘라말했다.5월 말 지자체 선거에 대해선 “중선거구제가 도입돼 한 지역구에서 3명 이상 뽑는 곳에서나 한 명씩 당선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인데 그것도 어려워진 것이 (한나라당이)2명짜리 선거구로 모두 쪼개버리지 않았느냐.”고 읍소할 정도다. 정병원 경북도당위원장도 “현실은 굉장히 비관적”이라고 한몫 거들었다. 또 “이 지역은 원래 (우리당으로)국회의원 배지 달기도 어려워 사실상 이번 지자체 선거보다는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전대에 출마한 김영춘 의원도 최근 경북도당에 다녀온 경험을 들어 “5월 말 지자체 선거 때 이 지역이 다시 한 번 한나라당 일색이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더라.”고 전했다. 경북 상주 출신의 김부겸 의원은 “한나라당의 아성인 대구·경북에서 지역주의를 타파해야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출마했지만, 크게 힘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이번 전대에 출마한 영남권 4인방은 “지도부 입성만이 영남을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김혁규 의원의 김종률 대변인은 “전국정당을 표방하고 있다면 당연히 영남 출신이 지도부에 진출해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두관 후보도 “영남 출신 4명 중 적어도 2명은 이번 지도부에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지역 정서”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0·26 재선거에 대구 동을에 출마해 44%의 ‘기록적인’ 득표율을 얻은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은 “지역의 덕망 있는 인사를 많이 발굴, 발탁해서 영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철국 경남도당위원장은 “오랫동안 한나라당 텃밭이었지만, 그래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는 식으로 역발상 홍보 전략을 써야 한다.”면서 “지자체 선거 출마 희망자를 대상으로 정치 아카데미를 4차례 개최했고,30∼40쪽짜리 포켓용 홍보책자를 만들어 대통령의 댓글정치나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한 오해를 푸는 자료를 배포했더니 호응도가 높다.”고 밝혔다. 박지연 황장석기자 anne02@seoul.co.kr
  • “비례대표 지역인물 배정” 또 쓴소리만 들은 한나라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회는 13일 전주에서 ‘전북에서 바라본 한나라당’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5월 지방선거에 대비, 외부인사를 영입하기 위한 행사인데 지난 10일 광주의 첫 세미나 못지않게 쓴 민심을 확인했다. 박근혜 대표는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수많은 지역 인재를 배출한 전주·전북의 인재를 모시면 당과 이 지역, 나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마음’을 열었다. 그러나 민심은 냉랭했다. 발제자인 박종철 경희대교수는 “전북의 한나라당에 대한 태도가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바뀌고 있지만 지지도가 상승한 것은 아니다.”고 충고했다.토론자인 유철종 전북대 교수도 전북 출신인 김덕룡 의원을 향해 “저 분은 서울 분”이라며 “비례대표에 출향 인사 대신에 이곳에서 고생한 사람을 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서울신문·KSDC조사] 정당지지율 우리 10.9% 한나라 21.2%

    [서울신문·KSDC조사] 정당지지율 우리 10.9% 한나라 21.2%

    서울신문 신년 여론조사에서 올 5월 31일 치러질 지방선거, 즉 시장 도지사를 뽑는 선거에서 현재 민심이 유지된다면, 광주·전라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이 한나라당의 승리로 돌아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됐다. 전체적으로는 열린우리당 후보에게 투표한다는 응답이 6.8%, 한나라당 후보에게는 17.8%로 나타났다. 그러나 광주·전라지역의 경우에도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는 응답이 14.5%로, 열린우리당 11.8%보다 높다. 이 수치대로라면 열린우리당의 전패(全敗)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물론 국민들의 절반(50.8%)이 시장·도지사 선거에서 “아직 지지 정당을 정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일반적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도 53.1%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응답, 정치권 전반에 대한 실망감을 나타냈다. 후보가 확정되고 선거전이 가열되면 무당파층은 줄어들면서 새로운 변수가 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선거와 무관하게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한나라당은 등락을 반복하면서도 계속해서 상승곡선을 보이고 있다. 지지율은 21.2%로 열린우리당 10.9%의 두배다.2005년 1월1일 조사에서는 한나라당(14.7%)이 열린우리당(12.8%)에 앞섰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에서 열린우리당은 50% 전후의 지지를 받았었다. 한나라당은 호남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과 모든 연령대에 걸쳐 열린우리당 보다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데 특히 열린우리당의 지지 기반이던 20대와 30대도 한나라당을 선호했다.20대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지지 비율이 14.0%대 17.0%, 30대는 11.3%대 20.1%였고,40대는 10.4%대 23.7%, 50대 이상은 9.1%대 22.8%로 나타났다. 진보적 이념성향을 가진 응답자조차 열린우리당 지지가 18.5%, 한나라당 지지가 17.5%로 나왔다. 결국 열린우리당은 핵심 지지층이었던 20대와 30대의 진보적 이념성향 그룹에서도 고전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10%를 넘겼던 민주노동당도 2.5%의 낮은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중도적 유권자의 18.8%, 보수적 유권자의 31.5%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당의 지지기반에서 접전을 보이며 자신의 지지층은 유지하는 형국이다. 여기에 중간지대의 유권자 그룹을 끌어들이고 있는데 이것이 지지도 1위를 유지하는 원인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지지도 1위는 한나라당 스스로 ‘수권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당당하게 얻은 지지는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정책에 대한 전반적 실망감과 경제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데 따른 좌절감 등 여권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과 사회전반의 중도보수화 경향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정리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서울광장] 대통령님, 올 초 약속 지키셨나요/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대통령님, 올 초 약속 지키셨나요/진경호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님, 기억하십니까. 올해를 여는 대통령의 모습은 그 전 어느 해보다 따뜻하고 활력이 넘쳤습니다. 탄핵을 딛고 일어서 선진한국을 기치로 우리 사회의 희망을 얘기했습니다.“민주주의의 핵심은 화해와 포용”이라며 통합과 관용을 강조했습니다.“많이 배웠고, 더 넓어지려 한다.”는 말로 집권 3년차 대통령의 성숙함을 내보였습니다. 보수언론들조차 “대통령 코드가 바뀌었다.”고 반겼습니다. 의욕도 넘쳤습니다. 경제활력 회복과 양극화 해소, 정부 혁신, 투명사회 건설 등 사회 구석구석에 눈길과 손길을 건넸습니다. 올 한해 많은 걸 이뤘습니다. 균형발전을 위한 행정중심복합도시와 지방혁신도시 건설, 공공기관 이전 작업이 궤도에 올랐습니다.19년을 떠돈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이 주민 뜻에 따라 경주에 자리하게 됐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잡겠다던 집값, 땅값은 8·31대책으로 숨고르기에 들어갔습니다. 국방개혁의 틀도 세웠고, 사법개혁도 착실히 준비돼 가고 있습니다. 고위공무원단제 도입 등 정부혁신 또한 숨가쁠 정도로 발빠릅니다. 어느 정부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물론 이루지 못한 것도 많습니다. 먼저 양극화 해소입니다.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청년실업률도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백약을 무색케 합니다. 경기가 나아진다지만 서민들은 여전히 이 겨울이 춥습니다. 북핵 문제도 좀처럼 풀리질 않습니다. 미국과의 동맹은 불안불안하고, 일본과는 수교 40년만에 최악의 관계입니다. 최대의 사회협약인 노사정위원회는 기능이 정지됐습니다. 문제는 잃은 것입니다. 민심입니다. 화해와 통합입니다. 지금의 사학법 갈등은 물론 강정구 교수 논란,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 등 해묵은 정체성 논쟁으로 서로가 등을 돌렸습니다. 얼마전 대학교수들이 올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상화하택(上火下澤)을 꼽았습니다. 물과 불이 따로 논, 분열과 반목의 한해였다는 것입니다.2003년 참여정부 첫 해의 사자성어가 우왕좌왕이었고, 지난해는 당동벌이(黨同伐異)였습니다. 갈팡질팡하다 패를 갈라 싸우더니, 이마저도 지쳤는지 등 돌리고 앉은 형국이라는 게 이들이 매긴 참여정부 3년의 자화상입니다. 고약합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많은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이니 말입니다.27전27패의 재·보선 성적표와 20%대의 낮은 지지율이 달리 뭘 뜻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여권에선 지금 “우리는 잘하고 있다.”는 당찬 목소리가 나옵니다. 엊그제 열린우리당 대선 3주년 기념 워크숍에서도 자화자찬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몇몇 고위인사는 틈만 나면 언론 탓, 보수 탓 하기 바쁩니다. 유신독재시대에 머문 국민의식을 꾸짖는 간 큰 공직자도 있습니다. 자찬과 남탓은 문 걸고 하는 것입니다. 황우석 교수 파문의 한 쪽에서 국민들은 또 다른 좌절을 맛보고 있습니다.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이 정부의 비겁함 말입니다. 재기의 희망마저 잃는 듯해 몸이 떨립니다. 대통령께서 조만간 미래국정구상이라는 거대 담론을 내놓을 것이라 합니다. 연정론으로 한번 어리둥절했던 터라 기대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혹여라도 내년 지방선거나 후년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기를, 말 그대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틀이기를 바랍니다. 대통령께서 너무 높이, 너무 멀리 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윗불이 뜨거울수록 아랫물은 차갑습니다. 반발짝 앞선 대통령의 열정이 국민과 사회를 따뜻하게 덥히는 상택하화의 새해를 기대해 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우리는 충분히 다이내믹합니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의정 포커스] “KTX 영등포 정차하면 1년 1조1천억 得”

    [의정 포커스] “KTX 영등포 정차하면 1년 1조1천억 得”

    “KTX를 멈추게 하라.” 고속철도의 영등포역 정차를 위해 전면에 나선 서울 영등포구의회(의장 조길형)가 이를 관철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굳히기에 들어간 양상이다. 수도이전 논의가 한창일 무렵 서울시의회가 반대의 선봉에 선 것과 닮았다는 평가다. ●“하루 27만여명 오가는 교통요충지” 의원들은 “기존 새마을호 등 대부분의 열차들이 영등포역에 정차할 정도로 영등포역은 교통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은 이미 입증됐는데, 왜 KTX만 안된다는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철 철도공사 사장이 영등포역 정차 가능성을 밝힌 데다, 경기도민들의 거센 반발을 감안할 때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추병직 건설교통부장관이 지난달 말 “영등포역 정차에 대한 계획이 없다.”는 말로 구민들의 여망에 찬물을 끼얹어 마침표를 찍으려는 구의회의 운동은 다시 불이 붙었다. 서울역과 가깝다는 근거를 들어 지역이기주의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이들은 “하루에 지하철 25만명, 국철 2만 5000명이 오가는 역세권”이라고 강조한다.KTX 무정차로 서울은 물론 경기도 부천·안양시 등을 포함해 영등포역을 생활권에 둔 1000만 국민을 불편하게 만드는 처사라고 덧붙였다. 오히려 광명역에 정차하도록 1차 결정한 게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등으로 돌아선 경기도 민심을 되돌리려는 정치적 배경에서 나왔다고 반발하고 있다. 또 이미 수십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도 적자가 예상되는 마당에 광명역에 추가로 투자해야 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인 여의도와 가깝다는 사실도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는 영등포역에 정차토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의회는 KTX의 영등포역 정차로 얻는 직·간접적인 이익을 교통 전문가인 한양대 원제무·계명대 정병두 교수를 필두로 한 연구진에 용역을 의뢰한 결과를 들어 건설교통부를 비롯한 정부·여당을 설득하고 있다. ●타당성 용역 결과 내세워 건교부등 설득 이 조사에 따르면 그 효과는 연간 1조 1565억원에 이른다. 하루 고속철 이용자는 경부선 188명, 호남선 282명 등 2170명이 추가로 늘어난다. 이를 출발 지역별로 보면 서울 461명, 인천 777명, 경기도 932명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한 수입은 연간 457억 6300만원이었다. 이용자로 따지면 광명역 정차와 비교할 때 평균 4분 정도의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돈으로 환산하면 하루 2094만원, 연간 76억 4000만원이라는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또 기존 광명역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다시 2543억원을 추가로 쏟아넣어야 하는데, 이중으로 지출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또한 인천국제공항과의 연계성이 높아져 한국을 오가는 외국인들에게 편의제공 등 간접효과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구의회가 홈페이지(http://www.ydpc.go.kr)에 마련한 서명란엔 14일 현재 700여명이 힘을 실어주고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9)지배층의 편에 선 정치적 예언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9)지배층의 편에 선 정치적 예언

    역사를 보면 기성세력이 예언의 힘을 빌린 경우도 적지 않았다. 민심이 흉흉할 때, 국가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예언서를 끄집어내 “이렇게 하면 아무 문제도 없다.”는 식으로 나왔다.‘정감록’이 주로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들 편에서 이용돼 온 것과는 사뭇 다르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기성세력은 주로 국도(國都)에 관한 풍수설을 자주 꺼냈다. 이런 논의를 주도한 이들은 술관(術官)이었는데, 고려 인종 때 백수한과 묘청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자고 주장한 일은 너무도 유명하다. 이른바 묘청의 서경 천도설이다. 이것은 이미 다각도로 다룬 적이 있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밖에 어느 곳에 별궁(別宮)을 지으면 나라의 수명이 연장된다거나, 양경제(兩京制 수도를 둘로 함) 또는 삼경제(三京制)를 실시해야 나라가 무사태평하다는 견해도 있었다. 일단 이런 주장이 제기되면 술관들 사이에선 격렬한 갑론을박(甲論乙駁)이 되풀이되었고, 그 여파로 한동안 조정이 양분되기도 했다. 민심을 달래려는 정략적인 의도에서 임시방편적인 조치가 강구되기도 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특히 조선 후기엔 예언서에 관한 논의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민심을 가라앉히는데 더욱 효과적이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이것은 기성세력이 예언서를 대하는 근본 태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징후로 봐야 한다. ●강화도 연기설과 술관 백승현 13세기, 고려사회는 몽골의 침입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고종(1213∼1259) 때는 사태가 심각했다.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조정은 수도 개경을 버리고 강화로 피란을 가게 됐다. 국운이 다했다는 소문이 온 나라에 퍼졌고 신하들의 사기도 저하되었다. 왕은 무엇이 됐든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이 때 풍수를 업으로 삼은 백승현이란 술관이 고종의 뜻을 알아차리고 왕업을 연장시킬 방도를 제시했다.“혈구사(穴口寺)에 들러 ‘법화경’을 강론하시면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삼랑성 등에 궁궐을 짓는다면 영통한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백승현은 국교인 불법과 풍수설의 위력을 빌려 사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종은 내심 백승현의 주장에 찬동했다. 당시엔 심리적인 방법 외에 따로 마땅한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왕은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재상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 다음 최고급 술관들에게 백승현의 건의사항 특히, 임시궁궐을 짓는 문제에 대해 찬반토론을 하게 했다. 일대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백승현은 이 자리에서 ‘마타도록’, 불경, 음양서 및 각종 예언을 자유자재로 인용하여 왕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의 견해를 반대하던 경유 등은 말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결국 백승현의 건의대로 삼랑성과 신니동에 궁궐을 건설하게 되었다.(‘고려사’, 권 123) 그러나 궁궐공사는 시작만 하였을 뿐 제대로 추진되기 어려웠다. 많은 인력과 재물이 투입되는 큰 공사인 만큼 도리어 국력이 소진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뒤 고종은 승하했고 원종이 왕위에 올랐다. 몽골과의 전쟁은 아직 지속되고 있었다. 원종5년(1264년) 몽골은 고려의 왕더러 몸소 입조(入朝)하라고 요구하였다. 백승현은 당시의 실권자 김준(金俊)을 통하여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만약 마리산(摩利山·마니산이라고도 함)의 산성 주변에 못을 판 다음 왕께서 친히 제사 지내시고, 또 삼랑성과 신니동에 임시 궁궐을 만들고, 친히 대불정에서 오성도량(五星道場·해와 달을 비롯한 다섯 별들을 위한 기도)을 마련하신다면 금년 8월이 되기 전에 징험이 나타날 것입니다. 몸소 입조하라는 말은 아예 사라질 것입니다. 또한 삼한이란 이름을 바꿔 진단(震旦)이라 부르면 큰 나라가 조공을 바치러 올 것입니다.” 원종은 백승현의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래서 내시대장군(內侍大將軍) 조문주를 비롯한 여러 신하들에게 명령해 임시 궁궐을 짓게 했다. 가뜩이나 조정의 세입이 부족한데 궁궐공사를 벌이고 대규모 불사(佛事)를 벌이고 한다는 것은 도리어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판단을 하는 관리가 있었다. 예부시랑 김궤였다. 그는 어느 재상에게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털어놓았다.“혈구산은 사실 흉산입니다. 그러나 요망한 백승현은 그곳에 대일왕(大日王 태양신)이 항상 머무른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는 일찍이 고종께 아뢰기를, 혈구사를 지어 고종의 옷과 혁대를 가져다 두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한 지 얼마 안 되어 왕께서 승하하셨습니다. 지금 또 감히 요망한 말을 지어내서 임시 궁궐을 짓자 하고, 혈구사에 임금님이 몸소 대일왕을 위해 도량을 차려야 한다고 하니 말도 안 됩니다.” 김궤는 그 재상더러 국정의 실권자인 김준에게 고해, 백승현의 말을 물리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려사’, 권 123) 이 말을 전해 들은 김준은 김궤를 죽이려 했다. 까짓 돈이 얼마 드느냐가 큰 문제는 아니었다. 과연 백승현의 제안이 옳은가, 하는 문제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 행사를 벌임으로써 고려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백승현의 예언이 들어맞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의 주장과는 달리 원종은 몽골에 항복했고, 몽골인 왕비를 맞아들이는 처지가 되었다. 김준도 비명에 횡사했고, 조정은 강화도를 떠나 개경으로 다시 돌아갔다. 고려라는 나라가 완전히 망하지는 않았지만 망한 거나 별반 차이는 없었다. 그렇다면 백승현 효과는 그야말로 일시적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은 아직 살아 있다. 강화도 혈구산에 대일왕, 즉 태양신이 머문다는 백승현의 견해는 현재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혈구산은 강화도의 주산(主山)인데, 그 남쪽에 마니산이 있다. 그 산 꼭대기에 유명한 참성단이 있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인데, 이를 통해 우리는 강화도가 하늘 또는 태양신과 밀접한 관계로 인식됨을 알 수 있다. 지금도 해마다 참성단에서 채화된 불을 가져다 전국체전에 봉화로 사용할 정도다. 또한 혈구산 등이 최고의 명산이란 백승현의 주장이 후대에 널리 전승되어 ‘정감록’에도 강화도는 전국의 길지(吉地) 가운데 하나로 이름이 올라 있다. ●조선 광해군 때의 교하 천도설 임진왜란으로 국토가 잿더미로 변했다. 그러자 그간 수백 년 동안 잠잠했던 천도설이 다시 조정에 등장했다. 광해 4년(1612) 술관 이의신이 상소를 올려 한양을 버리고 천하제일의 길지인 경기도 교하(交河)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얼마 전 왜란에 이어 몇 차례 반역사건이 발생한 이유, 조정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까닭, 그리고 한양 주변의 산이 황폐해진 것도 한양의 지기(地氣)가 쇠약해진 때문이라고 했다. 광해군은 이 말에 솔깃했다. 허균을 비롯한 일부 관리들도 수도 이전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힘을 얻은 왕은 예조에 명령해 수도이전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해 보라 했다. 그러나 예조 판서 이정구(李廷龜)는 반론을 전개했다. 우선 풍수설이란 것이 유교경전과 무관해 믿을 만한 근거가 도무지 전혀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의신이 문제로 삼은 한양은 지세가 평탄해 편리하고, 전국각지와 교통망이 발달해 있으며 주변에 비옥한 토지가 많아 물산이 풍부하고 성곽도 잘 갖춰져 있어 흠잡을 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수도로서의 조건이 완비돼 있어 조선을 다녀간 중국의 많은 사신들도 한양의 수려함을 칭찬했다고 주장한다. “왜란은 국제질서에 관계된 것이며, 역적이 일어난 것은 수도와 관계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도끼를 들고 산에 들어가지 않으면 수풀은 절로 무성해집니다. 국운을 생각한다면 백성을 사랑하고 풍속을 두터이 하며, 내정을 잘 닦고 외적을 물리치는 것뿐입니다. 이 도리에 어긋나면 해마다 도읍을 옮기더라도 위기와 난리만 불러들일 것입니다.” 이런 식의 반론이 고려 공민왕 때는 불가능했다. 고려 고종이나 원종 때도 물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예언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술관들이 검토해야 할 일종의 전문분야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엔 달랐다. 모든 중요한 문제는 성리학자들이 담당했다. 더 이상 풍수설과 도참설이 판단의 기준은 아니었다.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이 절대적인 척도였다. ●발상의 전환 이정구는 바로 그런 입장에서 일체의 예언을 근거 없는 미신으로 간주해 몽땅 부정해 버렸다. 그가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은 공리성과 합리성이다. 이것은 역사상 일대 전환을 뜻한다. 고대의 왕과 대신들은 기꺼이 예언가 노릇을 차지했다. 고려 말까지도 왕과 대신들은 예언의 위력을 빌려 정권의 안정을 꾀했다. 남의 나라 일이라곤 하지만,20세기 후반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국가의 중요한 일을 점성술사와 상의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어쨌거나 17세기 조선의 성리학자 이정구는 예언을 정치의 장에서 몰아냈다. 본심이야 어쨌든 광해군도 이정구의 견해에 반대의사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예언이 주렁주렁 매달린 뽕나무 밭이 변해, 이제 합리성의 푸른 바다가 된 셈인가. 세월이 가면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신돈·공민왕 ‘도선비기’ 이용 망국론 잠재워 요즘 MBC가 고려말 승려였던 신돈을 재조명하는 드라마 ‘신돈’을 방영하고 있다. 그는 과연 ‘희대의 요승’인가 아니면 ‘실패한 혁신가’인가. 고려 말, 공민왕은 몽골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왕은 승려 출신 신돈을 내세워 내정을 혁신하고, 정권을 농단해온 무장(武將) 세력을 숙청하는 등 여러 면에서 새로운 정치를 꾀했다. 그러나 귀족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고, 여러 차례 홍건적과 왜구의 침공이 잇따르는 등 애로가 많았다. 공민왕과 그를 최측근에서 보좌한 신돈은 정권의 안정을 위해 여러모로 예언을 이용하고자 했다. 신돈과 공민왕이 예언설에 집착하게 된 데는 사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외우내환이 겹쳤고 혁신정치를 추진하느라 불만세력이 발생한데다, 항간에 고려가 곧 망한다는 끔찍한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서 든 국면전환이 이뤄져야만 했다. 이에 신돈은 ‘도선비기’(道詵記)를 살폈다. 여기서 그는 송도의 운수가 쇠진된다는 설(松都氣衰之說)을 거꾸로 이용했다. 신돈은 왕에게 천도를 권하였다. 왕은 그에게 명령하여 평양으로 가서 지맥을 살펴보게 하였다. 그러나 신돈은 진심으로 도읍을 옮길 생각을 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시늉을 하며 잠시 민중의 마음을 떠 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과연 신돈은 심리전술의 대가였다. 자신이 승려출신이라 유교를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학자들을 널리 포용하기 위해 약간의 잔재주를 피우기도 했다. 공민왕이 성균관을 지으라고 명령하자 그는 여러 유신(儒臣)들과 함께 성균관의 옛 터를 둘러보았다. 신돈은 모자를 벗고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리며 공자에게 맹세했다.“온 마음을 다하여 성균관을 다시 짓겠습니다.” 공민왕 18년(1369), 신돈은 그동안 자신이 추진해온 개혁정치가 한계에 도달하자 또 다시 천도론을 펼쳤다. 이번에는 평양이 아니라 충주였다. 공민왕은 그에 반대했다. 신돈에 대한 의심을 노골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궁지에 몰린 신돈은 핑계를 찾아냈다. 개성은 바닷가에 가까운 관계로 왜구가 쳐들어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내륙지방이자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충주가 수도로 적격이란 것이었다. 공민왕은 여러 생각 끝에 교서(敎書)를 내려 수도 문제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정리했다.“옛날에 우리 태조는 매번 소해, 용해, 양해 그리고 개해마다 삼소(三蘇)를 돌아가며 머물렀다. 나도 장차 평양에 갔다 금강산을 거쳐 충주에 머물려고 한다.”서울은 개성으로 묶어 두되 평양, 금강산 및 충주를 이른바 세 군데 명당으로 삼아 돌아가며 머물겠다고 한 것이다. 왕의 원거리 순행은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는 큰일이었다. 여행경비가 만만치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일행이 머물 시설을 새로 짓는 문제, 도로를 닦는 작업이 뒤따랐다. 더욱이 왕은 자신이 머물 이궁(離宮)은 물론 죽은 왕비를 위해 공주혼전(公主魂殿)까지 짓게 하였다. 그 바람에 평양과 충주의 백성들은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국운을 연장해 보겠다고 벌인 공사 때문에 자칫하면 민심이 이반되어 도리어 국운이 위태해질 가능성마저 커졌다. 얼마 후 공민왕은 자신의 결정이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책동한 신돈을 더욱 의심하게 되었다. 이때를 기다린 술관 진영서가 왕에게 아뢰었다.“요즘은 한낮에도 태백성이 보입니다. 게다가 흉년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길하고 움직이면 흉합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어째서 이렇게 늦게 그런 사실을 아뢰느냐며 평양과 충주 순행계획을 모두 파기해 버렸다. 모든 공사가 중지된 것은 물론이다. 공민왕은 남달리 영리했지만 본래 의심이 많고 잔인한 성격이었다 한다. 제아무리 심복 대신이라도 권력이 커지기만 하면 꺼려해서 반드시 제거했다. 신돈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역모를 꾸몄다는 죄명으로 왕은 신돈을 없애 버린다. 그러던 왕 역시 어느 신하의 칼끝에 쓰러진다. 공민왕과 신돈은 한 때 개혁정치의 동반자로, 갖은 예언설까지 끌어다 국운을 연장하려 애썼지만, 실은 제 한 목숨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다.
  • 전북도 새만금 재판에 사활

    오는 21일 서울 고법의 새만금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재판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결과에 따라 새만금사업의 중단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12일 전북도 등에 따르면 판결을 전후해 도가 중심이 돼 학술연구회와 1인시위 등 다양한 새만금 홍보전을 펼칠 계획이다. 재판부가 새만금사업에 긍정적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새만금사업을 염원하는 도민의지’를 각종 행사를 통해 표출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날부터 21일까지의 일정으로 서울고법 앞에서 도민들이 나서 1인 시위에 들어갔다. 새만금홍보 내용을 담은 멀티비전도 설치할 계획이다. 14일부터는 전주공업대학에서 새만금완공기원 프로복싱대회를 열고, 오는 16일 새만금사업 조기완공의 당위성을 알리는 연구논문 설명회를 갖는다. 또 신문, 방송 등 각급 언론기관에 새만금사업 지속 당위성을 집중 홍보할 방침이다. 도는 항소심에서 승소할 경우 22일 도민화합축제 한마당을 개최한다. 이 날 축제에는 새만금사업의 성공적 완공을 기원한 도내 사회단체와 기관, 도민들이 대거 참여할 계획이다. 하지만 패소할 경우 후유증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최근 군산방사성폐기물처분장, 군산자유무역지역 지정 등 도민들이 기대했던 각종 국책사업유치에 연이어 실패한데 이어 새만금사업마저 중단되면 민심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만금 사업은 15년 동안 1조원이 넘는 막대한 사업비가 투입돼 전체 33㎞의 방조제 가운데 2.7㎞만 남겨놓은 상태. 판결에서 승소하게 되면 내년 3월14일부터 한달동안 물막이 공사를 하게 되지만, 패소하면 공사 중단이 불가피하다. 전북도는 패소할 경우 대법원에 상고할 방침이다. 이에 비해 환경단체 등도 패소할 경우 대법원 상고와 함께 반대운동을 펼칠 것으로 보여 판결을 전후해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한나라 경기지사 예선 5대1

    한나라당 내 경기지사 후보군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들의 각축전이 치열한 가운데 경기지사 선거전에는 3선 이상의 중진급 의원들이 경쟁을 벌이는 양상이다. 지난 26일 이규택(4선) 최고위원의 공식 출마선언을 필두로 28일에는 김영선(3선) 최고위원이 출판기념회를 갖고 출사표를 던졌다. 김영선 의원은 이날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단행본 ‘R&D(연구개발), 첨단 한국으로 가는 행진곡’과 ‘IT(정보기술), 미래 한국의 블루오션’ 등 2권의 출판기념회를 열고 출마를 선언했다. 김문수(3선) 의원은 다음달 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수도권정비계획법 폐지 및 대체입법’에 관한 공청회를 열고 출마의 변을 밝힐 계획이다. 김 의원은 공청회에서 수도권정비계획법의 부당성을 알리고 서울·경기·인천 지역 자치단체들의 공동 개발계획을 주장하며 수도권 민심을 잡는다는 복안이다. 최초의 민선 여성시장 출신인 전재희(재선) 의원은 오는 30일 ‘공공기관 이전에 대한 정책 토론회’를 연 뒤 출마를 선언하고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이전에 대비한 수도권 살리기 정책을 제시할 계획이다. 남경필(3선) 의원도 조만간 출마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남 의원은 “장기적으로 대선 승리와 당내 개혁파 입지 강화 등을 고려해 내용있는 후보로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서울광장] 전세기 오른 이 총리와 개각/ 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전세기 오른 이 총리와 개각/ 진경호 논설위원

    이해찬 국무총리의 중동 순방이 회자되고 있다.8억원짜리 전세기를 이용하고, 그 전세기에서 개각을 논했다는 것이다. 기업인 40여명을 포함해 100여명에 이르는 순방단 규모도 예사롭지 않은 모양이다. 모두가 지난 시절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서나 볼 법한 행보인 까닭이다. 사실 총리가 전세기를 쓴 예는 아주 드물다. 대부분 일반 여객기를 탔다. 문민정부 시절 이영덕 총리는 일반 승객 사이에 앉기도 했다. 개각 발언도 총리에겐 금기에 가까웠다. 알아도 모른 척 입단속부터 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서 대통령에 대한 예우이기도 했고, 그래야 자리도 지켰다. 전세기가 아니더라도 분명 이 총리의 힘은 막강하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주어진 국정의 상당 부분을 나눠 쥐고 있다. 그가 주재하는 굵직한 회의만 하루 5∼8개에 이른다.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총리실 간부는 “이 총리가 온 뒤로 청와대의 정책조정 기능이 몽땅 넘어왔다.”고 전했다. 지난 9월에는 노 대통령이 실질적인 각료 임명권까지 넘기려 했다니 그의 위상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이 총리는 또 정말 열심히 일한다. 총리실을 출입하면서 지켜본 일과는 가히 철인에 가깝다. 하루 15시간을 국정에 쏟아붓는다.‘워크홀릭’이 따로 없다. 그는 능력도 갖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찌감치 당 정책위원장과 교육부 장관에 앉혔고, 숱한 총리를 경험한 총리실 간부들도 일에 관한 한 그를 ‘넘버원’으로 꼽는다. 그런데 참 이상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왜 이처럼 실력 있고, 힘 있는 인물이 총리를 맡은 참여정부의 인기가 날로 추락하느냐는 말이다. 언론이 왜곡을 일삼아서인가. 국민들이 무지몽매하고 반개혁적이어서인가. 이 총리가 취임한 지난해 6월 참여정부의 지지율은 40%대를 웃돌았다. 그러나 1년 반이 흐른 지금 반토막이 됐다. 반면 20%선의 한나라당은 40%를 돌파해 50%대를 넘본다. 두 차례의 재·보선에서도 여당은 27전27패했다. “그게 어찌 다 내 책임이냐.”고 총리는 항변할지 모른다. 하긴 이달 초 작성된 열린우리당 조사보고서에서도 지지율 하락의 첫째 원인이 ‘대통령’이라고 나왔지, 총리 이름은 없다. 하나 어쩌겠나. 권력을 나눴으니 책임도 나눠야 하지 않겠는가. 총리의 책임이 없다고도 하기 어렵다. 대선후보 선호도가 말해 준다. 이 총리는 3%선이다. 야권 주자들에 한참 못 미친다.“출마한다고 한 적 없다.”고 할지 모르나 다른 주자들도 한 적 없다. 노 대통령에겐 몰라도 국민들에겐 인기가 없는 것이다. 억울하지 않나. 일을 열심히, 잘하는데 말이다. 퇴임 후 뚜렷하게 하는 일도 없는(?) 고건 전 총리는 여전히 선두를 달리는데 말이다. 원인은 여럿 있겠으나 이제 개선책을 찾아 차근차근 그 센 힘을 쓸 때가 됐다고 본다. 첫 무대는 연말연시로 잡힌 개각이다. 벌써 어느 장관을 빼서 지방선거에 내보내고, 빈자리를 여당의원들로 채워 넣는다는 말이 나돈다. 이래선 안 된다. 내각은 집권세력의 전리품도, 정치인 연수원도 아니다. 경력 쌓기라면 정동영·김근태 장관으로 충분하다. 인재풀을 한껏 넓히고 밖에서 적임자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부여된 각료제청권을 최대한 행사해야 한다. 이 총리는 노 대통령과 마주 앉아 인선을 논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야당에 하듯 대통령에게도 소신발언을 하길 바란다. 제대로 된 개각이라야 총리가 살고, 정부가 살고, 대통령이 산다. 국민이 산다. 덜 싫은 정당을 가리는 여론조사가 국민들은 지겹다. 일만큼 민심도 즐기는 총리가 됐으면 한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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