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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國監 현장 이모저모

    ◎재경위 위원들 “접대 사절”/구내식당 점심값 계산/‘행동없고 말만…’ 영택/‘NATO 정부’ 신조어도 올해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된 23일 여야 의원들은 밤늦게까지 피감기관을 상대로 국정을 조목조목 따졌다.반면 각 정당의 당사는 마치 휴일과 같이 한산한 모습이었다. ▷재정경제부◁ ○…재경위의 朴明煥 의원(한나라당)은 IMF 재협상 과정부터 빅딜까지의 혼선 사례를 지적한 뒤 “현정부는 ‘행동은 없고 말만 앞선다(No Action Talking Only)’는 의미에서 ‘NATO 정부’임에 틀림없다”고 꼬집었다.張在植 의원(국민회의)은 기존의 화의 및 회사정리제도를 대체하는 ‘신속처리절차’의 도입을 촉구했다.邊雄田 의원(자민련)은 D그룹 회장과 C모 전 대학총장,H그룹 K회장의 호화별장 사진을 공개했다. ○…金東旭 재경위원장(한나라당)은 과천 제2청사 구내식당에서 관료들과 점심을 함께한 뒤 의원 식사비를 李揆成 재경부장관에게 전달했다. ▷행정자치부◁ ○…행정자치위는 국회에서 ‘서울역 집회방해사건’의 진상을 캐기 위해 열띤 증인신문을 펼쳤다. 행자위는 신문절차 등을 놓고 5시간의 정회소통 끝에 오후 7시쯤 당시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를 시청한 한나라당 張光根 부대변인과 許准榮 남대문경찰서장을 차례로 증인석에 세웠다. 李允盛·金光元 의원(한나라당)은 “정치적으로 무장된 집단이 조직적으로 집회를 방해했다”면서 “현장에서 폭력을 행사한 빨간 점퍼의 청년들이 재개발 전문 용역회사인 H토건 소속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張誠源·金玉斗 의원(국민회의)은 “폭력사태 배후 조종자가 지난해 대선 당시 한나라당 선대위 지도위원으로 임명된 牟모씨라는 의혹이 있다”고 한나라당의 ‘자작극’ 가능성을 제기하며 설전(舌戰)을 벌였다. ▷정보통신부◁ ○…과학기술정보통신위의 국정감사에서 劉容泰 의원(국민회의)은 “정보통신부의 감청 집계는 3,580건인 반면 법원은 2,289건으로 통계에 차이가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졌다.이어 鄭鎬宣(국민회의)·朴鍾根 의원(한나라당)은 “감청요청 대장 원본을 제출하지 않는 것은 국감을 거부하는 것”이라며“제출하지 못하는 근거를 대라”고 요구했다. 裵洵勳 정보통신부장관은 “감청은 합법적인 것으로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감청요청 대장사본을 임의로 줄 수 없지만 상임위에서 의결하면 제출할 수도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 野 집회 방해 주동자는 한나라당원/경찰

    ◎“서울역 폭력사건은 우발적 소동” 결론/노숙자 12명 구속·13명 입건 한나라당 서울역집회 방해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22일 한나라당측이 폭력주동자로 지목한 牟모씨(58)는 지난 15대 대선 때 한나라당 선거대책위 지도위원으로 활동한 한나라당 당원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한나라당측이 牟씨를 주동자로 지목함에 따라 소환 조사했으나 牟씨가 과거 평민당 조직원으로 활동했던 경력 때문에 빚어진 오해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별다른 혐의점이 드러나지 않아 牟씨를 돌려보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또 한나라당 金浩一 의원이 국민회의 당원이라며 수사를 요구한 全모씨를 조사한 결과,全씨가 지난해 말 국민회의 대외협력특별위원으로 임명된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全씨는 한나라당 집회장 근처에는 있었지만 집회에 참석하거나 폭력을 휘두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날까지 모두 25명을 검거,노숙자 李義成씨(28)등 12명을 구속하고 13명을 입건했으며 집회 방해사태는 노숙자들의우발적인 소동으로 결론지었다.
  • 여야 국감 증인채택 ‘샅바싸움’/국회 이모저모

    ◎야­총풍·세풍 관련자 증인채택 강력 요구/여­“수사중인 사건 왜곡 우려” 난색 표명 여야가 국정감사 증인채택 문제를 놓고 본격 ‘샅바싸움’에 들어갔다.총풍(銃風)·세풍(稅風)사건 등으로 궁지에 몰린 한나라당이 ‘명예회복’ 차원에서 관련증인 채택을 요구하자 여당은 “정쟁(政爭)으로 수사중인 사건이 왜곡될 수 있다”며 난색을 표명했다.때문에 16일 열린 일부 상임위는 여야간 설전(舌戰)으로 얼룩졌다.쟁점 상임위의 증인채택 문제는 국감이 시작되는 23일 이후 더욱 치열한 논란거리로 남을 전망이다. ▷증인채택 공방◁ 법사위가 가장 시끄러웠다.한나라당은 총풍사건과 관련, 吳靜恩 張錫重 韓成基씨 등 ‘3인방’과 가족,신체감정을 담당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李漢榮 법의학과장,姜信玉 변호사,‘옥수수 박사’ 金順權 경북대 교수 등의 증인채택을 요구했다.편파사정(司正)을 따지기 위해 청구와 경성비리사건도 증인 채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張壽弘 전 청구 회장과 裵學哲 초대대구방송 사장(청구비리),李載學 전 경성 사장과 文永晧전 서울지검 특수1부장(경성비리) 등이 지목됐다. 부산 다대·만덕지구 특혜의혹을 둘러싸고 金杞載 전 부산시장,李永福 동방주택 사장,金泰政 검찰 총장 등도 ‘리스트’에 올랐다.한나라당 李圭正 의원은 “필요한 증인을 반드시 채택해야 진실을 규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이에 국민회의 趙贊衡 의원은 “다분히 정략적인 의도가 깔려 있다”고 맞섰다.옥신 각신 끝에 여야는 오는 19일 간사회의에서 다시 논의키로 했다. 정보위에서도 한나라당은 총풍사건을 담당한 안기부 요원과 북풍사건으로 구속,자해사건을 일으켰던 權寧海 전 안기부장 등을 증인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진통을 겪었다. 재경위에서는 환란(換亂) 책임과 관련,한나라당이 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전후해 경제부총리를 지낸 林昌烈 경기지사를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여당은 ‘수용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반면 여당은 세풍사건의 의혹규명을 위해 李會昌 총재의 동생 會晟씨를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맞섰다.행정자치위에서는 한나라당이 서울역 집회 난동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구속된 노숙자들을 증인석에 세워야 한다고 고집했다. ▷본회의◁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여야의원 4명이 5분 자유발언을 통해 묘한 신경전을 벌였다.국민회의 南宮鎭 의원은 “국회제도 개혁안이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며 정책중심의 국회운영을 다짐했다.자민련 李良熙 의원은 “여야을 떠나 정치력을 갖고 생산적인 의정활동을 펴나가자”고 여야간 정쟁 방지를 촉구했다.이에 한나라당 申榮國 의원은 “야당이 국회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여권은 햇볕을 북한에만 쬐지 말고 야당에도 보내달라”며 야당의원 빼내가기에 불만을 피력했다. 앞서 한나라당은 黃鶴洙 의원의 탈당과 관련,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그러나 주류인 李富榮·金文洙 의원이 국회일정 중단 불사선언 등 강경책을 주장한 반면,비주류의 李在五 의원이 지도부의 강경투쟁 노선을 강력 비판하는 등 이견을 빚었다.
  • ‘경제 국회’‘정치 공세’ 주도권 대결/여·야 국회대책

    ◎與­정쟁·민생현안 분리처리 방침/野­司正·漁協 등 국감서 철저 추궁 국회정상화를 하루 앞둔 12일 정치권은 국회 주도권 확보방안을 놓고 대책마련에 착수했다.여야는 어렵사리 국회로 전장터를 옮겼지만 ‘판문점 총격 요청사건’ ‘국세청 불법모금사건’ 등 곳곳에 ‘고성능 뇌관’이 산재한터라 파행과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여권은 촉박한 국회 일정을 감안,‘민생·경제국회’에 초점을 맞추면서 야권의 정치공세를 무력화시킨다는 전략이다.반면 야권은 ‘정경(政經)병행’ 전략으로 정치권 사정 등을 최대한 정치 쟁점화시킬 태세다. ▷여권◁ 정쟁(政爭)과 민생·경제 현안을 철저히 ‘분리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세풍(稅風),총풍(銃風)과 관련,예상되는 야권의 정치공세를 차단하되 국민복리 차원에서 경제 현안을 최우선 다루는 ‘경제국회’로 초점을 맞췄다. 국민회의는 총재단회의를 통해 상법개정안 등 38개 민생법안을 최우선 처리키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협조가 어려울 경우 국회 상임위 조정이나 회기 조정문제 등을 의장직권으로 조기 마무리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국정감사의 경우 예산안 및 법률안처리 시안을 감안해 2주일 정도로 기간을 단축,밀도 있게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경제청문회는 11월 하순부터 20일 일정으로 예결위와 병행처리할 방침이나 한나라당측이 ‘회기 내 개최 반대’로 선회,지루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한나라당◁ 여권이 이번 국회를‘경제국회’로 끌고가려는 데 맞서 경제와 정치문제를 병행한다는 전략이다. 국정감사를 통해 편파사정시비,세풍,북풍,고문조작의혹,서울역집회방해사건,도청논란,한·일어업협정 등 현안을 모조리 따진다는 계획이다.이를 위해 정책위원회 산하에 ‘국감대책반’을 구성하기로 했다. 특히 경제청문회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정기국회 회기 중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경제청문회 때문에 예산과 국정감사를 소홀히 다룰 수 없다는 게 이유다.경제청문회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하는 것이지,죽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고 또 다른 당사자격인 재계에도 손짓하고 있다. 만약 경제청문회를 연다면‘북풍청문회’도 함께 열어야 한다고 여권을 압박하고 있다. 李會昌 총재도 이날 열린 당비상대책회의에서 “국회 등원을 하더라도 여당의 야당 말살,민주주의 억압행위에 대해서는 원내외 투쟁을 계속 병행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하고 “등원한다고 해서 유화정책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고 쐐기를 박았다.
  • 노숙자 대책/류호담 아이템풀 대표(굄돌)

    며칠전 서울역에서의 일이다. 열명 남짓한 노숙자들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하며 흘러간 유행가를 목청 높여 불러대고 있었다. 단속 나온 경찰관에게,하늘을 지붕 삼아 살아가는 인생에게 잠잘 곳을 마련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보면서 노숙자 문제가 상당히 심각함을 절감할 수 있었다. 노숙자 문제는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우리가 겪는 사회적 고통 중의 하나이다. 일자리를 잃고 가정까지 버린 채 길바닥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숙자 문제는 이제 정부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등장했다. 스스로 취업을 포기할 실업자까지 포함하면,오는 연말 실업자 수가 240여만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상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들을 방치할 경우 각종 범죄유발과 함께 사회불안 요인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정상적인 생활인이기를 포기한 이들에게 재기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단체·종교단체에서 벌이는 구호 차원의 일방적인 도움보다는 직업훈련 등을 시켜 자활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런면에서 서울시의 대책은 퍽 다행스런 일이다. 내년도 예산에서 노숙자 지원비를 대폭 늘린 것도 당연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이제 남은 과제는 노숙자 스스로 어려운 처지를 극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는 일이다. 노숙자들이 재기의 터전을 마련,먹고 자는 인간의 기본욕구와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받을 때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국민통합이 구현될 수 있다. 겨울이 곧 닥치는데 이들을 무관심 속에 버려두어서는 안되며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사랑의 손길과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삶이 어려울수록 나눔의 정이 필요하다는 평범한 사회적 진리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 대낮 지하철 환기구 불/4호선 서울역 1시간 통행 제한

    11일 오전 10시35분쯤 서울 지하철 4호선 서울역 환기실 환풍구에서 불이 나 공기정화기 2대를 태우고 5분여만에 꺼졌다. 이 불로 역구내에 연기가 가득차 1호선과 4호선 연결통로의 통행이 1시간여 동안 통제돼 지하철 이용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경찰은 지나가던 행인이 환기구 안으로 던진 담배꽁초가 공기정화용 솜 필터에 떨어져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중이다.
  • ‘三風사건’ 등 현안 대접전 예고/국회쟁점과 與野 전략

    ◎상임위­야당 부도덕성 부각·특검제 도입 요구/국정감사­문민 정책실패 추궁·현 정부 실정 부각/경제청문회­경제파탄 원인 규명·공동책임론 제기 13일 정상화되는 정기국회에서는 여야간 불꽃튀는 공방전이 예상된다.총풍(銃風),세풍(稅風),병풍(兵風) 등 이른바 ‘삼풍(三風)사건’과 개혁·민생관련 법안 등 정쟁거리가 다양하기 때문이다.주요 정치 쟁점별 여야 입장과 전략을 알아본다 ▷상임위◁ ○…국민회의는 ‘삼풍’과 관계가 있는 정보위 법사위 재경위 등을 통해 한나라당의 부도덕성과 李會昌 총재의 관련설을 집중 부각시킨다는 방침이다.특히 吳靜恩·韓成基·張錫重 3인방과 李총재 측근과의 커넥션을 밝혀 주도권을 잡아 나가겠다는 것이다.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3인방의 고문설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사건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마련에 부심하고 있다.‘세도(稅盜)사건’은 한나라당의 ‘아킬레스 건’인 만큼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야당을 압박한다는 전략이다. ○…한나라당은 각종 정치현안에 얽힌 의혹을 도마에 올릴 태세다.정보위와 법사위에서는 안기부·검찰을 상대로 판문점 총격요청 고문조작 의혹을 따진다.안기부 간부·직원의 피의사실 유포혐의,피의자 가혹행위 등을 파헤칠 예정이다.15대 대선 당시 국민회의쪽의 대북 접촉설이나 검찰청사 1144호에서의 안기부 고문 의혹 등도 문제삼을 방침이다.대선자금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도 요구키로 했다. 재경위에서는 세풍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권 발동을 요구할 작정이다.행자위에서는 서울역 집회 난동사건과 관련,여권의 조직적 폭력배 동원과 경찰의 방조 의혹을 제기한다. ▷국정감사◁ ○…여권은 국정감사 시기를 한나라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2주일에서 20일로 조정했다.기본전략은 ‘공격은 최선의 방어’.문민정부에서 추진한 정책 실패를 추궁하고,재발방지책 마련등 정책감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나라당은 현 정권의 경제 실정(失政)과 총체적인 국정수행능력 미비를 파헤친다는 계획이다.이를 위해 소속의원간 역할분담을 통해 ‘팀플레이’를 강화,핵심 쟁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방침이다.실업난 악화와 경제위기 심화,제2외환위기 우려,구조조정의 허(虛)와 실(實),잠수정 및 무장간첩 침투사건 등 안보문제,치안부재,민생파탄,편파사정 등을 주요 쟁점으로 삼기로 했다. ▷경제청문회◁ ○…여권은 이 번 청문회를 정기국회의 대미(大尾)로 활용한다는 복안이다.지난 정권의 최대 실정은 경제정책의 실패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개최시기는 예결위와 병행,정기국회 회기내에 마무리한다는 입장이다.金泳三 전 대통령의 증인채택 여부는 미정이지만 증인 수는 25명 안팎으로 좁혀진 상태다.외환위기 상황을 재구성하고,한보·기아사태,종금사·PCS 인허가 비리 등을 추궁,IMF구제금융을 받게 된 원인과 정경유착의 폐해를 집중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정권 당시 노동법 등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법안 처리를 반대한 야당의 책임도 추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당시 야당 지도부를 증인으로 채택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다.朴熺太 총무는 “경제관련 법안을 육탄 방해한 당시 야당의 책임도 동시에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러나 회기내 조기 청문회에는 부정적이다.“경제살리기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 노숙자 일자리 알선 20일까지 계속 상담/다시서기 지원센터

    “일을 하고 싶습니다.공사장 미장일이라도 얻을 수 없을까요” 노숙자 다시서기 지원센터(소장 黃雲聖)가 8일부터 노숙자들을 상대로 취업 문제 등에 관해 상담을 하고 있다. 지난달 21일부터 열흘동안 했던 1차 상담에 이어 두번째 행사다. 노숙자들은 모두 절박한 심정이었고 자연히 상담에 응하는 표정도 매우 진지했다. 黃소장은 “일반 근로 취업을 알선하거나 공장에 연결하는 등의 취업 프로그램을 오는 12월까지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상담은 서울역을 비롯해 서소문공원·용산역·영등포역·종묘공원 등에서 오는 20일까지 계속된다.
  • 野 집회 폭력 11명 구속·11명 입건/경찰

    ◎집회 불만 우발 사건… 배후조종 혐의 없어 한나라당 서울역광장 집회 폭력사태를 수사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7일까지 李義成씨(28) 등 노숙자 11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등 혐의로 구속하고 林모씨(77) 등 11명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배후조종 여부와 관련,이들이 모두 ‘아는 바 없다’고 부인하는 데다 혐의를 둘 만한 물증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李씨 등은 지난달 29일 서울역광장에서 집회중인 한나라당원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행을 하는 등 집회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李씨가 한나라당원들에게 ‘너희들 때문에 이 나라를 망쳤는데 무슨 집회를 하느냐’고 욕설을 하며 ‘으ㅆㅑ 으ㅆㅑ’ 소리를 지르자 다른 노숙자 등이 동조,집회장을 돌며 집회를 방해하고 당원들을 폭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한나라당 집회 장소에서 선물이나 음식을 받을 생각으로 집회장에 나왔던 일부 노숙자 등이 경제실정의 책임자로 인식된 한나라당의 집회 행태에 불만을 터뜨리면서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 ‘칙칙폭폭’정겨운 소리…차창밖엔 황금들녘… 함께 가을로 달려가요

    ◎단풍·등산·문화관광 등 다양한 열차 여행상품 손짓/알뜰주부위한 ‘젓갈열차’도 차창 밖으로 스치는 황금들녘을 지켜보면서 가을정서에 흠뻑 젖어보는 것은 생각만해도 가슴설레는 일이다.철도청은 기차여행의 계절을 맞아 부담없이 다녀올 수 있는 다양한 코스의 관광열차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02)717­1002 △등산열차=‘주왕산’과 ‘내장산’코스 2가지.주왕산 등산열차는 24일 오후 11시50분 청량리역에서 출발,대전사에서 내려 등산을 즐긴뒤 다음날 밤 10시59분 청량리에 돌아온다.요금은 어른 3만8,000원.내장산 등산열차는 31일 오후 11시40분 서울역을 떠나 정읍에서 내려 등산한뒤 오후 6시5분 서울역에 도착한다.요금은 4만1,000원. △문화열차=‘전주지구’‘백제문화 탐방’‘남원지구’등 3종류.전주지구 관광열차는 매주 일요일 아침 7시10분 서울역을 출발,전주 종이박물관을 들러 풍남문과 경기전을 거쳐 마이산을 돌아본다.요금은 3만5,000원.백제문화 탐방열차는 매주 일요일 아침 6시40분 서울역을 출발해 부소산성과 무량사와 석탄박물관을 살펴본다.요금은 어른 3만3,300원.남원지구 관광열차는 일요일 아침 7시10분 서울역을 떠나 지리산 뱀사골∼정령치∼국악당∼광한루를 돌아온다.요금은 4만1,200원. △단풍열차=‘설악산’‘내장산’ 2코스이다.설악산 열차(1박3일)는 청량리역에서 20일 밤 9시50분 새마을호로 출발한다.강릉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설악산으로 간다.설악산 한화콘도에서 1박한 다음 낙산사, 주문진항을 거쳐 22일 밤 8시57분 청량리역으로 돌아온다.요금은 2인1실이 8만5,000원.내장산 열차는 27일 아침 7시40분 서울역을 출발,당일 낮 내장산 백양사 단풍을 즐긴 뒤 밤9시40분 돌아온다.요금은 어른 3만3,000원. △바다열차=‘정동진·환선굴 관광열차’와 ‘영덕·강구항 관광열차’가 가을바다로 떠난다.정동진·환선굴 열차는 매주 토요일 오후 10시50분 청량리역에서 출발한다.정동진역∼동해∼환선굴∼묵호항∼동해역을 거쳐 돌아온다.요금은 어른 5만1,000원.영덕·강구항 관광열차는 매주 토요일 오후 11시40분 청량리역에서 떠나 장사해수욕장∼산사해상공원∼주왕산을 거쳐 돌아온다.요금은 어른 3만8,000원. △젓갈열차=김장철을 앞두고 무박 2일 일정으로 ‘강경 젓갈열차’와 ‘광천 새우젓열차’가 마련된다.강경젓갈열차는 17일,광천 새우젓 축제에 맞춘 새우젓 열차는 23일 출발한다.
  • ‘총격요청’과 ‘고문주장’의 해법(사설)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수사과정에서 고문이 있었나 없었나로 또다시 사건의 본질이 왜곡,희석되어가는 모양새다. 경성비리,청구비리수사가 편파·표적사정이라고 해서 진실이 증발된 듯하고,세도(稅盜)사건 역시 지역감정싸움으로, 서울역집회건도 정치테러다 아니다로 각각 본말이 전도된 모습을 보였다. 총격요청사건도 고문문제가 제기되면서 본질이 물타기가 되어가는 양상이다. 그래서 비록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고함치고 떠들면 잘못에 대한 비난의 초점이 흐려진다는 오도된 풍토를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러나 총격요청사건은 국기를 뒤흔든 중대사안이란 점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야당의 고문 주장은 주장대로 철저히 수사하라. 그것이 총격요청의 핵심을 흐리려 하는 악의가 있다고 보더라도 고문에 관한 한 흐지부지 넘어갈 수 없다. 그리고 총격요청 사건은 고문과 별개로 분명하게 가려야 한다. 적을 동원하는 반역의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혐의가 이번 말고도 여러차례 감지되고 있는 마당에 이를 서투르게 다루다 놓친다면 용서할 수 없는 외환(外患)유치의 국사범을 방관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고문을 내세워 총격요청사건을 무시하거나,총격요청을 내세워 고문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벌써부터 일부 언론은 고문에 중점을 두어 사안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있지만,검찰은 흔들림없이 이를 별개의 문제로 철저히 다뤄야 한다. 그리고 고문이 사실로 판명되면 관련자를 엄중 문책해야 하며 자작극으로 드러나면 가중처벌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혹시라도 고문이 있었기 때문에 총격요청 사건이 조작이라는 논리는 가당치 않다는 것이다. 이는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독재타도를 외치다 고문을 당했던 양심범의 허위자백과 동일시하는 단순논리를 적용할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야당은 문이 열려있는 국회에 지체없이 등원해 자신들이 억울해하는 문제를 따지기 바란다. 자신들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펼쳐보일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는데도 엉뚱한 곳에서 성동격서(聲東擊西)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략적 대응에 치우친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여야는 검찰수사와 관련,진실규명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대응을 삼가야 한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고문을 정략적으로 이용해선 안된다. 고문을 수없이 자행하며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해온 뿌리로서 회개는커녕 고문의 피해자인 양 강변하는 것이 모순이라서가 아니라, 국민의 정부에서 제정된 인권법을 혹 자신들의 죄악을 숨기는 보호막으로 악용할 소지가 있지 않은가 해서다. 고문은 어떠한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특정목적에 악용될 수단으로 제공될 수 없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러므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법원의 감정결과가 나올 때까지 여야는 끝없는 소모전을 중단해주기 바란다.
  • 한나라 서울역집회 방해/노숙자 등 5명 추가 영장

    한나라당 서울역광장 집회 폭력사태를 수사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2일 李永植씨(42·특수절도 등 전과7범) 등 노숙자 3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朴東植씨(28·사기 등 전과2범) 등 5명에 대해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孫應龍씨(36) 등 용의자 10명을 추가로 연행해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배후조종자가 있었다는 정황 및 증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연행된 12명은 집회를 구경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집회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토대로 용의자 검거를 위해 탐문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 한가위 3,000만 대이동/IMF 불구 귀성객 작년보다 약간늘듯

    ◎고속도 오늘 22만·내일 19만대 탈서울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 연휴를 앞두고 민족대이동이 시작됐다.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처음 맞는 이번 추석은 대규모 구조조정과 임금삭감 등으로 명절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가라앉았지만 귀성객 수는 그리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국은 이동 인원이 지난해보다 2% 늘어난 2,990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어렵더라도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겠다는 게 귀성객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추석연휴를 하루앞둔 2일 전국 주요 철도역과 고속버스터미널은 오후에 접어들면서 선물꾸러미를 들고 고향을 찾는 귀성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오전에 대체로 원활한 교통흐름을 보였던 고속도로와 국도도 오후 들어 귀성 차량이 몰리면서 일부 구간에서 지체와 서행이 계속됐다.서울에서 부산, 서울에서 광주까지 평소보다 3시간 이상이 많은 9시간 가까이 걸렸고 대전까지도 5시간 정도 소요됐다. 한국도로공사측은 2일 하루동안 21만9,000여대의 차량이 서울을 빠져 나갔다고 밝혔다.3일과 4일에도 각각 22만4,000여대,19만7,000여대의 차량이 서울을 빠져 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역에서도 이날 모두 11만3,000여명이 떠났다.기차표는 대부분 매진됐으나 운행회수는 지난해에 비해 10% 정도 줄었다.철도청은 2∼5일 나흘동안 40여만명의 귀성객이 열차를 이용해 고향을 찾을 것으로 보고 연휴기간동안 하루 40∼50편의 열차를 증편했다. 예비차량 680여대를 준비한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은 예매율이 80%를 밑돌아 이날 120여대만 투입했다.부산이 고향인 朴美英씨(28·회사원)는 “부모님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지만 고향을 찾는 것으로 효도를 대신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포공항에서는 4일까지 모두 12만명이 비행기로 고향을 찾을 것으로 예측됐다.대한항공은 이날 평소보다 10편을 늘린 117편을 운항했고 아시아나항공도 7편을 늘렸다.
  • 한나라 서울역 집회 폭력 휘두른 3인

    ◎“노숙자 아품 나몰라라 집회 일삼는 정치 혐오”/“술 너무 취해 정치 집회인지도 몰랐다”/“싸움 말리려다 맞아 홧김에 때렸다”/사업 실패·실직자… 조직적 방해 증거 없어 한나라당 서울역 광장집회에서 일어난 폭력사태를 수사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집회당일인 지난달 29일 술에 취한 노숙자들이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감에서 우발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보고 있다.야권이 제기하는 ‘배후조종설’은 근거가 없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1일 구속영장이 신청된 노숙자 권영복(57·사기 등 전과 2범)는 “집회 당일 만취 상태에서 저지른 일이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權씨는 “당시 서울역광장 집회가 정치집회인지조차 몰랐다”면서 “광장 부근에서 혼자 소주 2병을 마셨으나 소주병을 깨고 난동을 부린 기억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5월 돼지농장사업이 망하면서 서울역 노숙 대열에 합류했고 평소 정치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다고 토로했다. 權씨와 함께 영장이 신청된 金同坤씨(48·폭력 등 전과10범)도 노숙자들과 한나라당 당원들 사이에 벌어진 싸움을 말리려다 당원들이 폭행을 가해 홧김에 받아쳤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충북 옥천에 있는 어머니 산소에 성묘 갔다가 서울역에 돌아와 보니 집회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면서 “싸움을 말리려고 했는데,정말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金씨는 지난해 초 정화조사업에 실패한 뒤 1년여 동안 서울역 부근에서 노숙생활을 해왔다고 밝혔다. 집회 당일 단상에 올라가려다 저지하는 한나라당 당원들을 폭행한 李永植씨(42)도 “일자리도 없어 고생하는 데 정치인들이 집회만 하는 데 화가 치밀어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李씨는 전남 목포시 봉명동 고기박스 제조공장에서 일하다가 직장을 잃고 지난 5월부터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용의자들이 이처럼 배후조종설을 부인하고 있는 데다 별도의 물증도 찾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집회 도중 청중 사이에서 조직적인 방해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은 데다 몸싸움과 야유 등 사소한 마찰만 군데군데 있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조직적방해공작이 있었다고 보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하고 있다. 한나라당측은 이 사건을 여당의 야당파괴공작으로 규정,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두 가지 의혹을 제기했었다.하나는 ‘탑골공원 노인 동원설’이고 다른 하나는 집회 당일 ‘노숙자들에 대한 우산 제공설’이다.
  • 국민안보의식 해이 우려/丁海龜 세종硏 연구위원·정치학(기고)

    ◎권력장악 노린 ‘적과의 내통’ 충격 보도된 바에 따르면 지난 15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의 비선 조직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인사를 만나 판문점에서 총격전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좀더 구체적인 사실이 보다 분명하게 밝혀져야겠지만,현재 보도 내용대로라면 충격적인 일이다. 이미 우리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특정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안기부까지 개입된 ‘북풍(北風)사건’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와 유사한 사례가 더 있으리라는 의구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래도 설마했던 것이 우리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러므로 선거승리를 위해 ‘적과 내통’했을 뿐만 아니라 항상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판문점에서 총격전까지 요구했다는 것은 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 뿐이다. 한편 이번 일이 여야 정쟁이 가장 극심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개되었다는 점도 미심쩍은 일이다. 물론 사건의 수사과정상 정치와는 무관하게 공개된 것이라고 검찰은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여야가 ‘서울역 집회 방해사건’ 등을 놓고 대치중인 상황이 아닌가. 아무튼 적에게 총격전을 요구하는 일이나 여야의 끊임없는 정쟁 등 속된 말로 ‘막가파’식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들이 있다. 언젠가부터 권력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다할 수 있다는,이를테면 ‘적과의 내통’뿐만 아니라 적에게 총격전까지 요구할 수 있는 ‘권력물신주의’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그 누구를 지적하기 이전에,지난 몇번의 선거를 통해 권력을 향한 줄서기가 얼마나 성행했는지 우리는 익히 안다. 하나의 단적인 예지만 이러한 사태들이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를 얼마나 재촉했는가. 특히 정치권에서 남북관계를 이런 식으로 일상적으로 이용할 때 궁극적으로 국민 안보의식의 해이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적극적 도발을 ‘정치권 사주’로 치부해버리는 분위기가 생길까 걱정된다. 또 하나 지적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이 사건에 거론된 인물들이 비교적 젊은 사람들로 이른바 똑똑하고 잘나가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자기 책임을 넘어선 국제통화기금(IMF)고통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그 고통분담에 땀흘리고 있다. 그러나 권력 주변에 맴도는 똑똑한 친구들의 ‘한탕주의’가 언젠가부터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외면적으로 탈독재 민주화가 이뤄졌음에도 민주적 절차와 규칙을 만들고 이를 지키기보다는 독재시대보다 더못한 정치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우리 정치문화도 그 공동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권력 장악을 위해 적과의 내통까지 마다하지 않은 정치문화는 명분도 실리도 없는 이전투구의 정쟁만을 이어가는 현재의 정치문화와도 연결되어 있는지 모른다. 사건의 내용이 공개된 이상,정부와 검찰은 분명한 진상을 밝히고 그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며,동시에 그 과정에 정략적 동기가 개재되어 있다면 그에 대해서도 마땅히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 “한나라 집회 폭력은 우발적”/경찰 수사

    ◎음주 난동 노숙자 3명 영장/배후조종 혐의 못찾아 지난달 29일 한나라당 서울역광장 집회에서 일어난 폭력사태는 술에 취한 노숙자들에 의해 우발적으로 빚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1일 李永植씨(42·특수절도 등 전과7범) 등 노숙자 3명에 대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데 이어 趙珍相씨(33) 등 용의자 4명을 추가로 검거했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난동을 부린 경위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으나 배후조종 여부 등에 대해서는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경찰은 한나라당측이 제기한 여당의 탑골공원 노인 동원설과 관련,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형사 2개반을 투입,탐문수사를 펴고 있다.
  • 박영효의 귀거래(秘錄 南柯夢:25)

    ◎고종 “日本있는 박영효 불러들여라”/갑오경장으로 쫓겨났다가 하루 아침에 ‘구국재상’ 귀국/장안 환영물결 가시기도전에 며칠만에 日로 줄행랑/3년뒤엔 친일파되어…/‘헤이그’에 허찔린 이토 분통속에 잠 못이루다 이완용 내각 음모세우고/대책 고심하던 황제는 “꿩대신 닭격… 그래도 매국노보다 역적이 낫겠다” 헤이그 특사사건이 터지자 서울 남산아래 있던 통감부에서 야단이 났다.을사오조약을 늑약(勒約)하고 스스로 통감자리에 앉아 청주잔을 기울이던 이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여간첩 배정자(裵貞子)와 양아버지라 하면서 공공연히 잠자리를 같이하던 이토는 밤에 자다가도 일어나 대책을 구상하는데 급급하였다. 고종황제에게 또다시 급소를 찔린 것이니 분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고종은 본시 을사오조약을 무효로 봤기 때문에 외교권은 아직 황제 자신에게 있다고 믿고 있었다.을사오조약을 강제체결한 이토로서는 헤이그사건 하나로 자신의 모든 공이 수포로 돌아가는 판이었다.명치유신의 원로로서 후배에게 무안할 뿐 아니라 일왕 명치에게는 더이상 부끄러운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사건을 역습의 호기로 이용하기로 했다.이토는 고종을 황제 자리에서 몰아낼 음모를 꾸민 것이다.일단계 조치가 박제순(朴齊純) 내각을 해산하고 말 잘듣는,이완용(李完用)을 내각수반으로 하는 새 내각을 구성하는 일이었다.박제순보다 이완용이 훨씬 더 적극적인 매국노였기 때문에 그를 시켜 고종의 양위를 강박하게 만든다는 것이 그의 음모였다. 그러나 고종 황제 역시 호락호락 넘어갈 분이 아니었다.이토의 음모를 예상하고 이것을 미연에 막을 인물이 누구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금능위 박영효의 이름이 떠올랐다.박영효(朴泳孝)는 철종의 부마(사위)였으나 일찍부터 개화사상에 심취,1884년 갑신정변,1894년 갑오개혁에 참여했던 친일 개화당의 거두였다. 그는 갑신정변후 역적으로 몰려 일본에 망명한 뒤 12년동안 돌아오지 못한 유랑객이었다.그러나 1907년 5월 어느날 박영효의 부하 신철희(申哲熙)가 정환덕에게 접근,복권운동을 벌였다.요즈음 같으면 각종 정치범이 미국으로 도주하지만 그때는일본으로 도주하여 기회를 노렸다.그런 인물이 일본에는 우굴우굴했다.박영효 역시 그런 기회주의자의 한 사람이었다. 신철희는 문경사람이다.갑오경장(甲午更張 1894)때 아문주사(衙門主事)로 있다가 박영효의 덕분에 문경군수로 임명받았던 사람이다.그가 일본에 갔다가 돌아와서 나를 찾아와 말하기를 “이제 우리 한국이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으나 각부 대신들은 작록만 탐내고 자리를 지키는데만 연연합니다.이럴 때 일본에 망명해있는 금능위(錦陵尉)박영효와 같은 인물이 필요합니다.바라건대 대감께서 황상께 아뢰 그를 소환해 귀국토록 하시고 내각을 다시 조직해 국가증흥을 꾀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고 했다.이에 나는 그 말에 동의하고 황상께 아뢰니 “금능위에게 빨리 전보를 쳐 귀국토록 하라”는 분부가 계셨다 오죽했으면 고종황제가 박영효같은 인물에게 매달리게 되었을까.재위 44년만에 아무도 믿을 놈이 없게 됐기 때문이다.충신은 죽고 측근에 친일 매국노만 득실거리니 박영효는 꿩 대신 닭격이었다. 황상께서 직접 전화를 거시는 소리가 고막을 찢을듯이 났는데 박영효에게서 온 전화였다.부르심을 받은 박영효는 급히 행장을 정돈한 뒤 윤선을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부두에는 많은 사람이 나와 그를 환영했는데 이튿날 아침 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서울역 대합실에는 높은 벼슬아치들이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일제히 안부를 물은 뒤 박영효를 앞뒤에서 가려주듯 동행하여 회퇴루(回退樓)에 들어갔다.이때가 밤12시였다.날이 밝기를 기다려 조반을 든 뒤 곧바로 대궐에 나아가 승후방(承候房)에서 대령하였다 박영효는 과거에 두차례나 역모를 꾸민 인물이다.1884년 갑신정변에 가담해 갑신오역(甲申五逆)의 한 사람으로 일본에 망명하였고 10년 뒤 돌아와서 다시 갑오경장(1894년)에 가담,역모에 몰려 두번째로 일본에 망명했다.그후 12년만인 1907년에 귀국하였으니 감개무량하였을 것이다.부산에 도착하자 그는 땅에 엎드려 고종황제에게 예를 올리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고종으로서는 비록 박영효가 과거에 역적이라 하더라도 이완용같은 매국노와 다르다는 사실을 믿고 그를 궁내부 대신으로 맞아들였으니 황실을 보호하는데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다.따라서 고종황제와 박영효는 서로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 셈이다. 상감부자분께서 아침 수라진지를 드시고 난 뒤 박영효를 부르니 오전 11시경이었다.문안인사가 끝난 뒤 황상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러 해를 해외에서 풍상을 겪었으니 고생이 많았을 터인데 어떻게 감내 하였소”라고 물으셨다.이에 대답하여 아뢰기를 “성상(聖上)의 은총이 융성하시어 이와같이 다시 해를 우러러보게 되오니 참으로 황송하여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릅니다”고 하였다. 이에 황상께서 말씀하시기를 “근년이래로 나라에 어려움이 많은데 우선 경이 내각을 조직해 정치가 잘되고 백성이 화평하게 되면 나라의 위세가 만회될 것이니 이것이 일본의 ‘유신정치’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하시었다.박영효가 대답하기를 “신이 비록 보잘것없으나 황상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마음을 다하여 나라 일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하였다. 이에 황상께서는 특별히 비취옥술잔(翡翠玉圈) 남색전포(藍色戰袍) 도홍띠(桃紅帶) 오사모(烏紗帽) 분홍조복(粉紅朝服)등을 각각 한벌씩 하사해 입게 하시므로 그 경황이 찬란하였다 역적 박영효가 하루아침에 구국의 재상으로 돌변한 것도 그렇거니와 장안 사람들이 그가 대궐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기쁨으로 지화자를 부른 것도 괴이한 일이었다. 박영효가 마침내 황제에게 사은숙배하고 물러 나와 장안 대로상을 걸어가는데 구경꾼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갈채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모두들 말하기를 “오늘에서야 한관(漢官=옛 관료)의 위의(威儀)가 되살아났다”고 격찬하였다.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산두박첨지(山頭朴僉知)’라는 희극을 벌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늦어도 한참 늦었다.그런데도 1907년 6월30일 서울에서는 대대적인 박영효 환영대회가 열렸다.장소는 북서(北署) 농상소(農桑所)였는데 왕년의 개화당 동지들이 부부동반하여 모여들었다.환영회장 유성준,위원 정운복이 축사를 낭독하고 연회에 들어가려 할때 돌연 총성이 울렸다. 알고 보니 정재홍(鄭在洪)이라는 분이 권총자살을 시도한 것인데,원래 이토가 모임에 나타나면 그 권총으로 사살하려 했던 것이다.박영효가 이날 환영회에 병을 핑계하고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토도 나타날 리가 없었다.정재홍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갈때 혼미한 가운데 유언하기를 “나는 평생 품었던 우국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습니다.그러나 대감(박영효)은 더욱 분발하여 신명을 아끼지 않고 국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고 하였다. 그는 또 유서를 남기고 노래를 지었다.“살아서 욕되니 죽어서 영화를 보자”(生辱死榮)는 제목의 노래였다.그러나 박영효는 고종의 양위를 막지 못하고 궁내부 대신이 된지 며칠만에 다시 일본으로 망명하고 3년 뒤 친일파가 되어 돌아왔다.한국근대사에는 이렇게 지조없는 인물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지금도 그 후배들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며칠을 지나지 않아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고 하면서 박영효는 제주도 유람길에 올랐으나 실은 일본으로 망명하는 것이었다.그러니 개각(改閣) 따위의 얘기는 풀이 우거진 울타리가에 버려두고 도망을 갈 것이다.옛말에 “운이 가면 영웅이라도 자유롭지 못하다”(運去英雄不自由)는 말이 있으니 개탄한들 무얼 하겠는가.
  • 민주열사 열전:9/金宜基 前 서강대생(정직한 역사 되찾기)

    ◎강요된 침묵속 ‘광주 항쟁’ 왜곡 항거/당시 기독교회관서 ‘서울 봉기’ 외치다 추락사/어둠의 시대 역방향 역사에 맞선 ‘진실의 불꽃’ ‘80년 5월의 학살’은 국민들을 극도의 공포로 몰아넣고 침묵을 강요했다. 항쟁 직후 정부와 제도언론에서 연일 뱉어내는 ‘광주폭동’이란 단어에 대해 누구도 ‘아니오’라고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분노를 흠뻑 머금은 침묵은 오래갈 수 없었다. 그 강요된 침묵을 깨뜨리고 거짓과 왜곡으로 가득찬 어둠의 시기에 진실을 향한 한줄기 빛을 비춘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의 한 사람이 金宜基라는 젊은이였다. 광주항쟁이 무력으로 진압된 후 사흘째인 80년 5월30일. 서강대 4학년생 金宜基는 그날 오후 5시쯤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 6층에서 떨어졌다. 밑에는 계엄군 장갑차와 군인들이 있었으나 그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대신,주위에 흩어진 유인물을 수거하기에 바빴다. ○가마니에 덮인채 방치 그는 가마니에 덮여 30여분 동안이나 그대로 방치된 채 죽어갔다. 그가 뿌린 유인물 ‘동포에게 드리는 글’은 이렇게 호소하고 있었다.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민주시민들의 뜨거운 피를 오월의 하늘 아래 뿌리게 한 남도의 봉기가 왜곡과 거짓과 악의에 찬 허위선전으로 분칠해지고 있는 것을 보는 동포여…동포여 일어나자. 우리의 힘모은 싸움은 역사의 정(正)방향에 서 있다…내일 정오 서울역광장에 모여 오늘의 성전에 몸바쳐 싸우자. 동포여!” 金宜基는 서울에서의 봉기야말로 짓밟힌 광주를 살리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이를 처음으로 실천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 채 젊은 생을 마감했다. 당시 경찰은 그가 유인물을 뿌리려다 발을 헛디뎌 떨어져 즉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가 떨어지는 모습을 확실히 목격한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주위에 있었던 몇몇 사람들은 그가 계엄군에게 발각돼 쫓겨다니며 유인물을 뿌리다 떨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가 숨막히는 시대와 씨름했던 불꽃같은 투혼은 그의 삶 구석구석 스며있다. 막일로 생활을 꾸리던 부모님과 광부·공장노동자로 일하던 형들을 가슴속에 빚으로묻어둔 채 대학에 다녔던 金宜基. 그러나 그런 부채의식은 집안에서 유일한 대학생으로 장차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야심보다는 도리어 사회모순에 대한 천착으로 이어졌다. “나를 빼고 모두가 돈을 버는데 우리 가족은 왜 셋방을 전전해야 하나”“농사를 짓는 형님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데 왜 빚만을 불려가야 하는가”그런 의문은 그를 자연스럽게 책으로 안내했고,그는 우리 역사가 바로 서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감상적 농활에 실망 그는 농촌문제 연구에 빠져들었다. 2학년 여름 학교 동아리 ‘한국유네스코 학생회(KUSA)’의 하계농촌봉사활동에 참여했으나 깊은 실망감을 맛보았다. 대개 근로·의료봉사,아동지도 등으로 구성된 당시 농촌봉사활동이 저변에 감상적 인도주의를 깔고 있어 농민과 일체감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막연한 봉사보다는 농민들과 함께 농촌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어가고자 했다. 발이 닳도록 농촌현장을 누볐고 농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했고 토론을 통해 분석된 결과를 다시 농민들에게 전했다. 그가 얻고자 한 것은 농촌의 실물경제 파악과 그에 대한 농민들과의 공감대였다. 10차례에 걸친 농활과 연구에서 그가 보여준 집중력은 놀라웠다고 한다. 전국농민회총연합 조성우 상임부의장(42)은 “그에게는 대학 출신 농민운동가들이 갖기 쉬운 현장 농민들과의 위화감 따위는 전혀 없었다. 농민운동은 농민대중에 기반을 둔 자주적인 조직이어야 한다고 믿었고,후일 그와 가깝게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자주적 농민관을 갖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대학 2학년때부터 서울 신당동 형제교회의 농촌문제연구모임을 이끌면서 농촌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키웠고,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EYC) 농촌분과위원회 간사로 활동하는 등 자신의 진로를 농민운동쪽으로 굳혀갔다. 80년 5월18일 광주시내에서 공수부대의 만행이 본격화할 무렵 그는 광주시내로 들어갔다. 항쟁 실상 파악과 19일 시내 한 성당에서 열릴 예정이던 함평고구마사건 승리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는 시민들이 고립무원 상태에서 무참히 살육되는 참상을 목도하고 이를전국에 알리기 위한 방법에 부심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 기독교회관에서 열리는 ‘금요기도회’를 디데이로 잡았다. 기독교회관에는 그가 활동하던 EYC사무실이 있었다. “30일 낮 12시 EYC사무실에 나타난 그가 광주에 다녀왔다며 잠시 좀 쓸게 있으니 사무실을 비워달라고 부탁했어요. 오후 4시쯤 사무실로 돌아오니 그가 작성한 ‘동포에게 드리는 글’ 원본을 건네주더군요. 근처 상동교회에서 청년회장과 그것을 보고 이상한 예감이 들어 기독교회관에 오니 이미 상황이 끝나 있었어요” EYC에서 함께 활동했던 변광순씨의 회고다. 떨어진 쌀 수매가에 가슴치던 분노의 주먹. 농활을 준비하던 신명나던 손길. 광주를 향했던 발길. 5월의 학살을 남들처럼 가슴에 묻지 못하고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고 터뜨린 피맺힌 절규. 이들은 모두 역(逆)방향의 역사에 맞섰던 金宜基 열사의 민중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실천 방식이었다. □金宜基 열사 연보 ▲1959년 경북 영주군에서 출생 ▲70년 영주 중부초등교 졸업 ▲76년 배명고 졸업.서강대 무역학과 입학. KUSA 가입. ▲78년 형제교회 농촌문제연구모임 참여. 감리교청년회전국연합회 참여 ▲79년 서강대 근대사연구모임 주도. ▲80년 EYC 농촌분과위원장으로 활동. ▲80년 5월 광주항쟁 목격. 30일 종로 기독교회관 6층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남기고 떨어져 숨짐 ▲90년 서강대에서 명예졸업장 받음 ◎어머니 권채봉 여사/“5·18 사망자 공식 인정” 소식 듣고 담담/“아들이 이루려 했던 세상보는게 소원” 광주광역시청 5·18 보상지원과에 전화를 했다. 담당 직원은 金宜基 열사가 ‘5·18 사망자’로 공식 인정됐다며 10월쯤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 권채봉 여사(74)는 그 소식에 의외로 담담했다. 아마도 아들의 큰 뜻과 죽음,‘빨갱이 가족’이라는 누명을 강요받아온 기나긴 고통의 세월이 금전으로 바꿔지는 듯한 허탈감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그저 “글쎄 다행인것 같기도 하고. 반갑다고 해야 하나”라고만 말했다. 어머니가 진정 바라는 것은 아들이 이루고자 했던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날(80년 5월30일) 저녁 8시30분쯤 동대문서 형사라는 사람이 와서 宜基가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하는거야. 그런데 그애는 영안실에 있었고,상부 명령이 없다고 다음날 낮 12시까지 시신도 안보여줬어. 사람을 오지 못하게 하고 화장을 하라고 갖은 협박을 했지” 그러나 김동완 목사의 주도로 장례식은 치러졌다. 수백명의 민주인사와 학생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참석,광주항쟁 후 첫 대규모 집회가 됐다. 어머니는 그때 자신의 울음을 신호로 학생들이 일어서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어 그들이 다칠까봐 자식의 관에 꽃을 던지면서도 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권여사는 송파구 잠실의 한 아파트에서 노환으로 거동을 못하는 구순의 시어머니와 중풍을 앓고 있는 남편 김억씨(73)의 시중을 혼자 들며 살고 있다. ◎장석재 형제교회 목사가 전하는 농민사랑/농민과 일체감 위해 극도의 허름한 생활/농촌연구 삶의 일부 농민 향한 애정 각별 金宜基 열사의 농촌문제에 대한 관심과 농민을 향한 애정은 각별했다. 그가 교회에 다니게 된 것도 형제교회의농촌문제연구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는 김동완 목사가 담임으로 있으면서 빈민·농민 선교를 통해 사회참여에 앞장서고 있었다. 金宜基는 특유의 적극성으로 이 모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농촌문제 연구의 핵심은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형제교회 장석재 담임목사(42)는 “그는 당시 가장 어려운 곳이 농촌이라고 보고 농촌현실에 몰두했던 것 같다”고 했다. “미울정도로 허름한 생활을 했어요. 군복바지에 검정고무신 청자담배 등 가장 싼 것만을 입고 먹었지요. 친구들로터 티내지 말라는 구박도 많이 받았어요”그러나 그것들은 농민과 일체감을 느끼려는 그의 사랑의 표현법이었다고 했다. 교회사적으로 볼때도 金宜基 열사는 ‘사회선교의 순교자’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장례식때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뿌리다 체포돼 4개월간 감옥신세를 지기도 했던 장목사는 “사회운동가들이 정치인 등으로 기성화하면서 과거의 순수함과 진지함이 굴절돼 보일 때마다 宜基가 생각난다”고 했다. 당시 EYC 농촌분과위원장이었던 전국농민회총연합 조성우 상근부의장도 “金宜基는 현장에서 필요로 하면 두말 않고 달려갔다. 농촌은 그에게 있어 몸에 밴 생활의 일부였으며 농민에 대한 애정과 이해는 혈육에 대한 것 이상의 깊이를 갖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 “해방후 최대 정치테러”/한나라당 시각

    ◎시간대별 피해보고서 발표… 강경대응/“야당파괴 계속땐 국민적 저항” 경고 한나라당이 30일 ‘9·29 서울집회 사태’를 “해방 이후 최대의 정치테러 사건”이라고 규정,강경대응 방침을 밝혔다. 명칭도 ‘서울역 유혈 정치테러 사건’으로 못박았다. 李會昌 총재가 이날 경제기자회견을 전격 취소한 데서도 기류를 읽을 수 있다. 대신 辛卿植 사무총장이 ‘서울역 집회 폭력사례 폭로회견’을 가졌다. 당 3역 등은 오후 金鍾泌 총리를 항의 방문했다. A4용지 7장 분량으로 ‘서울집회 시간대별 상황과 피해사례’도 내놨다. “韓모 전문의원이 머리가 깨지는 등 당원 수십명이 몸에 문신을 새긴 폭력배에게 돌,유리병,각목 등으로 맞아 상처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당초 李총재는 회견에서 경제난국 극복을 명분으로 국회 드원의 수순밟기에 들어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서울역 집회 이후 여의도 등지에서 전국 규모의 집회를 추진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李총재는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정부 여당이 평화적·합법적 집회를 수백명의 폭력배를 동원,조직적으로 방해한 폭거는 민주주의와 현정질서를 파괴한 중대사태로 과거 자유당 정권이나 군사정권 시절에도 경험하지 못한 반(反)민주적 폭거”라고 밝혔다. 李총재는 “폭력적 방법으로 노도와 같은 민심을 누르고 야당을 파괴한다면 엄청난 국민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金大中 대통령의 사과와 金正吉 행정자치부장관,金世鈺 경찰청장해임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고민도 없지 않다. 퇴로 없이 투쟁으로만 치닫기가 버겁다. 자금은 바닥이 났고 투쟁방식을 둘러싼 당내 이견도 부담이다. 추석 연휴이후 여권의 태도변화를 기대하는 눈치다.
  • 檢·警 野 서울역집회 방해 진상규명 안팎

    ◎정부 도덕성 걸고 의혹 규명/“정치음모” 野 공세에 정면대응/배후·경찰방조 여부 집중수사 지난 29일 발생한 한나라당 서울역 집회 방해사건의 진상을 밝히라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과거처럼 진상을 덮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건을 빌미삼아 국회를 공전시키는 구태(舊態)도 버려야 한다. 金鍾泌 국무총리는 30일 한나라당 항의단을 맞아 철저한 진실 규명을 다짐했다. 金총리는 불상사가 발생한 데 대해 유감의 뜻도 표시했다. 여야의 주장,어느 것이 옳은 지에 대한 가치판단을 배제한 채 조사를 지시했다. 金正吉 행자부장관도 경찰에 한점의 의혹도 없는 수사를 지시했다. 수사전담반도 편성했다. 대검도 비슷하다. 폭력 가담자 엄벌을 다짐하고 있다. 당국은 이미 용의자 몇몇을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정부 조사의 초점은 크게 두가지다. 야당 주장대로 ‘불순한 배후’가 있는지가 첫번째다. 두번째는 괴청년들의 난동을 경찰병력이 방관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핵심은 배후 여부다. 정부는 철저한 조사를 벌일 태세다. 과거 정권에서도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철저히 조사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50년대 자유당시절 정치깡패,70년대말 유신시절 야당전당대회의 각목사태,80년대 중반 용팔이사건 등 과거 우리 정치사는 여권의 정치음모적 사건으로 얼룩져 왔다.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그 원인과 주모자를 가려내지 못했다. 정부가 사건의 진상규명에 발빠르게 나선데는 이유가 있다. 이번 사건을 잘못 처리하면 ‘국민의 정부’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철저한 조사를 당당히 선언하고 나선 것은 현재의 집권세력 내에는 무모한 정치폭력을 획책할 만한 구시대적인 인물이 없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여권으로서는 이번 사건이 여야간 공방으로 그치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공방수준에 그치면 한편의 의혹은 남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정치공작에 희생당했던 金大中 대통령의 명예도 걸린 일이다. 또 여권이 조기 결판을 내려는것은 이번 사건이 장기화 될 경우 소모적인 정국이 경색이 계속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사 결과,조직적으로 집회를 방해한 세력이 있었다면 관련여부와는 별개로 여권이 곤혹스럽겠지만,노숙자들의 돌발적 행동으로 나타나면 한나라당은 반성해야 한다. 그 양단간 어느 쪽이든 엄정하게 결론이 나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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