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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실지하광장 제2시민청 생긴다

    잠실지하광장 제2시민청 생긴다

    잠실지하광장에 제2시민청을 설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의회 강감창 부의장(새누리, 송파)은 “현재 서울시청 지하에서 운영되고 있는 시민청이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며, “이를 권역별로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먼저 ‘잠실지하광장 제2시민청 건립계획’을 박원순 서울시장과 긴밀한 협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신청사 내 지하1․2․4층에 총 8,150.65㎡규모의 시민청을 운영하고 있는데 2013년 1월 개관 이후 누적 방문객 500만 명을 돌파했다. 지하 1층(5,401.02㎡)의 경우, 서울관광 안내센터, 청년 또는 사회적기업의 우수제품을 전시 판매하는 톡톡디자인 가게, 다목적 가변공간인 시민플라자, 서울시정을 전달하는 시티 갤러리, 기획전시공간인 시민청 갤러리, 서울책방, 등 12개 공간이 시민이 참여하는 비움과 유연성의 공간으로 운영되고, 지하 2층(2,269.75㎡)의 경우, 다양한 행사가 가능한 태평홀, 전시 등으로 사용되는 시민프라자, 이벤트 홀, 등 6개 공간이 심화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시민청 결혼식 이용자 약 100쌍을 비롯, 대관건수가 약 2,000건에 이르고 1일 평균 5,000명 이상이 이용하며 대관률이 89%에 이르는 등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서울시는 보다 많은 서울시민들에게 시민청의 기능과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동남권역에 제2시민청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강감창 부의장은 지난 9월,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서면질문을 통해 잠실지하광장 제2시민청 건립을 제안했고, 서울시는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여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민청 추가건립 타당성 등 연구 용역’에 잠실지하광장을 추가로 포함시켜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현재 잠실역의 경우 일평균 승하차 인원이 18만 명에 이르고 2016년 말 제2롯데월드와 잠실 지하환승센터 까지 완공 될 경우 1일평균 30만명 이상이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강 부의장은 잠실지하광장에 제2시민청을 유치할 경우 “내국인은 물론 외국 관광객에 대한 서울시 홍보 유리하고 지하 공간 활성화 및 공익적 요소 강화외에 제2롯데월드와 연계한 도심 명소화 등 순기능이 많다”고 강조했다. 현재 잠실지하광장은 12,272㎡중에서 12개 점포(767㎡)와 3개의 공공시설(98㎡)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간이 텅 비어 있는 상태에서 가끔 바자회나 이벤트 등이 진행되는 등 사실상 이동통로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잠실지하광장의 관리권을 가지고 있는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은 지난 3월부터 강감창 부의장이 제안한 ‘잠실지하광장 명소화 협의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협의회에서도 광장 활성화와 명소화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시되고 있어 잠실 지하광장이 시민들을 위한 공익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강감창 부의장은 잠실지하광장에 제2시민청을 설치할 경우 “송파지역 주민은 물론 서울 동남권역의 시민들에게 고품격 문화공간을 제공할 수 있게 되고, 체계적인 지하공간 운영으로 대시민 서비스가 향상될 뿐만 아니라 지하공간 활용의 성공모델로 서울동남권역의 지하명소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서울시는 동남권역에 제2시민청 건립을 위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시민청 추가 건립 타당성 등 연구용역’을 12월말까지 완료하고 내년 상반기에 제2시민청을 추가로 설치하여 운영할 계획이다. 강 부의장은 최근 2차례에 걸쳐 잠실지하광장 제2시민청 계획안을 박원순 시장에게 직접 건의하였고 박시장도 적극 추진할 뜻임을 밝혔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시, 대학생 아르바이트 1629명 모집

    올겨울에도 매회 약 20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이는 ‘서울시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 시와 25개 자치구는 겨울방학을 맞아 서울시정을 체험할 아르바이트생 1629명을 뽑는다고 30일 밝혔다. 2~9일 시 홈페이지와 ‘모바일 서울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신청받아 오는 15일 전산 추첨하고 다음날 발표한다. 임금을 받는데다 사회경험 및 경력이 될 수 있어 올해도 취업준비생들의 높은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지난겨울과 올 여름방학에는 각각 1684명과 1739명을 뽑아 인원에는 큰 변동이 없다. 모집 인원 중 500명은 시 본청과 산하사업소, 소방재난본부 등에 근무하고 나머지 1129명은 25개 자치구에서 일한다. 근무는 내년 1월 8일부터 2월 5일까지 한다. 하루 5시간씩 주5일 근무다. 임금은 점심 식대를 포함, 하루 3만 5150원을 준다. 아르바이트생들은 ▲민원 안내 ▲시민청 프로그램 및 행정업무 지원 ▲동주민센터 무인민원발급기 이용안내 등 공무원들이 수행하는 각종 업무를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다. 지원 자격은 서울 소재 대학 재학생(휴학생 포함)이거나 접수일 현재 서울에 주민등록이 있는 타 지역 대학생이면 된다. 시 본청과 산하사업소 등에 근무하는 500명 중 30%(150명)를 취약계층에서 선발할 예정이다.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 차상위계층, 등록 장애인, 북한이탈주민, 다문화가정 자녀, 국가유공자와 그 자녀가 대상이다. 신청방법이나 결과 발표 등은 모바일 앱 또는 다산콜센터(120), 시 자치행정과(02-2133-5839)로 문의하면 된다. 각 구청 아르바이트는 모집 기간과 근무 기간이 다르므로 거주지 구청에서 확인해야 한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동정] 박원순 서울시장 시민 100명과 서울시정 이야기

    [동정] 박원순 서울시장 시민 100명과 서울시정 이야기

    박원순 서울시장은 10일 오후 3시10분 서울광장에서 ‘2015 함께서울 정책박람회’ 개막행사인 ‘스케치북 토크쇼- 원순씨! 나! 할 말 있어요’에 참석해 시민 100명과 서울시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박 시장은 이날을 시작으로 12일까지 3일간 서울광장에서 시민과 만난다. 박 시장은 앞서 오후 1시에는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리는 ‘마을만들기 지방정부협의회 출범식’과 ‘2015 서울마을박람회 및 제8회 마을만들기전국대회’ 개막식에 참석한다.
  • 박원순 “서울 시정 끝까지 책임지겠다”

    박원순 “서울 시정 끝까지 책임지겠다”

    야권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손꼽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끝내 ‘대선 불출마 선언’이나 ‘재선 서울시장직 완주’ 같은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박 시장은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세미나에서 대선 출마 의사를 묻자 “이미 다른 자리에서 세 차례나 의견을 밝혔다”면서 답변을 회피했다. “오늘 19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것이냐”는 추가질문에 “서울시정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만 했다. 다시 한번 “재선 4년 임기를 꽉 채우겠다는 것이냐”고 묻자 “열심히 하겠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지지도에 대해 그는 “높은 수치가 나오면 시민이 저를 좋아한다는 얘기니까 기분이 좋다“면서 ”꼭 대통령 출마가 아니더라도 서울시정에 대한 선호의 바로미터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강개발 프로젝트’와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 등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에 한 ‘청계천 사업’과 같은 토목사업이 아니냐는 질문에 박 시장은 “서울시가 토목·건설사업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재선이 되면서 철학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청과 문화재청의 반대에 부딪힌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 추진을 낙관하며 “청계천 사업도 당시에 교통 우려와 주민 반대가 지금보다 심각했지만 잘 풀어나갔다”며 설명했다. ‘박원순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지난 6월 4일 ‘메르스 사태 긴급 브리핑’과 관련해 “최선을 다했고, 중앙정부의 메르스 정책을 리드했다”고 평가한 뒤 “최경환 부총리에게 메르스는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총리실이 장악해야 한다고 건의했는데 수용되는 등 다양한 건의를 빠르게 조처해 존경하게 됐다”고도 밝혔다. 이날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과 무소속 천정배 의원의 회동에 대해 “여의도 정치와 떨어져 있겠다는 게 제 원칙”이라며 “새정치연합 당인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2년 전 강용석 전 의원 사과로 끝난 아들 병역 문제가 또 불거진 사실에 그는 “참담하다”며 “소셜미디어에 비난 여론이 2년 전보다 2배나 많다”며 조직적인 음해의 가능성을 우려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정조대왕 수원 화성 능행차 57㎞ 전구간 재현

    정조대왕 수원 화성 능행차 57㎞ 전구간 재현

    서울 창덕궁을 출발해 수원 화성행궁을 거쳐 화성 융·건릉까지 이어지는 정조대왕 능행차 전 구간이 내년 9~10월 재현될 전망이다. 경기 수원시는 내년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맞아 정조대왕 능행차 전 구간 재현사업을 서울시·경기도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2일 밝혔다. 이 사업은 민선 4기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지사가 추진하다 무산된 바 있어 성사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 행사는 창덕궁을 출발해 한강 배다리터∼노량행궁지∼시흥행궁지∼안양 만안교∼안양행궁지∼수원 화성∼융릉 간 총 57㎞에서 능행차를 옛 모습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그동안 서울시와 수원시는 이 행사를 자체적으로 치렀다. 수원시는 매년 10월 수원화성문화제 행사의 하나로 만석공원에서 시작해 장안문, 종로사거리, 팔달문을 거쳐 영동사거리에 이르는 구간에서 선보였다. 정조대왕와 혜경궁 홍씨가 앞서고 말 120필, 2000명의 신하와 호위무사, 병졸 등이 뒤따르는 장관을 연출했다. 정조대왕 능행차 전 구간이 재현되면 전국 최대 규모로 국제적인 행사로 급부상하게 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 수원시는 수원시정연구원에 의뢰한 용역을 최근 끝냈으며 서울시는 서울시정연구원에서 용역 중이다. 수원시의 용역결과를 보면 전 구간 재현 사업에는 150억원가량이 소요되며 인원 1000여명과 말 500여필이 필요한 것으로 예측됐다. 능행차는 세계기록유산인 ‘원행을묘정리의궤’ 반차도 그림에 나타난 순서대로 재현된다. 수원시정연구원은 “서울~안양~수원 1번 국도구간은 도로폭이 넓어 행차 진행에 무리가 없으나 고속도로 진입과 철도 등으로 도보행렬 이동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했다. 행사 개최 방안으로 ▲지자체 공동 전 구간 재현 ▲지역별 부분 재현 ▲지역별 축제 연계 재현 등 3가지 안을 내놨다. 수원시 최강구 특수관광 팀장은 “서울시 용역결과가 나오면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 경기도와 추진단을 구성해 구체적인 행사 시기와 방법, 규모 등을 결정할 계획이다”면서 “행사가 성사될 경우 새로운 유형의 축제 문화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서울시 정책이슈 팟캐스트 방송, ‘피터와 승환이의 시청 뒷골목’

    서울시 정책이슈 팟캐스트 방송, ‘피터와 승환이의 시청 뒷골목’

    하루에도 다양한 이슈와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슈들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최근 서울시는 추진되고 있는 다양한 정책들과 시민들이 궁금해 하는 서울시정 이슈에 대해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공감할 수 있도록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했다. 팟캐스트 방송 ‘피터와 승환이의 시청 뒷골목’(http://www.podbbang.com/ch/8982) 이야기다. ‘시청 뒷골목’은 시사전문 파워블로거 ‘아이엠피터 임병도’씨와 ‘이슈매거진 ㅍㅍㅅㅅ의 대표 이승환’씨가 진행을 맡아 서울시의 다양한 정책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팟캐스트는 지난 2월 26일 ‘어린이집 아동학대’ 문제를 시작으로 벌써 8회째 진행되고 있다. 팟캐스트에서 지금까지 다룬 주제는 ▶1회. 어린이집 아동학대 방지대책은 ▶2회. 입학특집 학교화장실 개선사업 ▶3회. 서울역 고가재생, 서울역 7017프로젝트 ▶4회. 전세난민의 시대, 대안은 없는가? ▶5회. 개발이냐, 보존이냐, 풍납토성의 논란과 진실은? ▶6회.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벌써 1년..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7회. 서울둘레길 157Km, 집중분석 ▶8회. 세계 기후환경총회, 이클레이(ICLEI)! 뒷담화(?) 등이다. ‘피터와 승환이의 시청 뒷골목’은 특별하다. 일반 시사팟캐스트의 경우 비판적인 시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청 뒷골목’의 경우 서울시에서 제공되는 보도자료나 기자설명회때 미처 못다한 이야기, 정책의 심층적인 측면들을 관계 공무원 또는 전문가가 직접 방송에 출연해 알려줌으로써 차별화를 두고 있다. ‘시청 뒷골목’은 매주 목요일 ‘팟빵’과 ‘아이튠즈’를 통해 업로드 된다. 또한 보이는 라디오처럼 동영상으로도 별도 편집해 ‘라이브서울’과 ‘유투브’에 2차 업로드 되고 있다. 방송을 접한 네티즌들은 “사안에 대해 담당자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들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정책 내용 외에도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부분이나 아직 해결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하면 좋겠다” 등 다양한 의견을 보이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오승록 시의원 “장애인 가장 많은 區 중심으로 장애인정책 수립”

    오승록 시의원 “장애인 가장 많은 區 중심으로 장애인정책 수립”

    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있는 노원구를 중심으로 장애인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오승록 서울시의원(새정치민주연합, 노원3)은 지난달 31일 오후 노원구청 6층 강당에서 장애인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우원식 국회의원, 김성환 노원구청장, 박근수 서울시 복지기획관, 윤재삼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장, 이종만 서울시 장애인자립지원과장, 김원제 노원구 지역사회복지협의체 공동대표, 이흥주 노원구장애인총연합회 회장, 박향식 노원구 지역사회복지협의체 장애인분과장, 허곤 늘편한집 원장, 하성준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사무국장, 이성수 어울림센터 소장, 이재환 노원구립 장애인일자리센터장, 윤영웅 노원구장애인체육회사무국장 등이 참여해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오승록 의원은 서울시 자치구 중 노원구가 장애인이 27,739명으로 가장 많으며, 그 다음으로 강서구, 은평구, 관악구, 중랑구, 송파구 순임으로 노원구에서 장애인관련 정책들이 수립되어, 서울시 장애인 정책들이 반영되어야 한다며, 공청회 취지를 설명했다. 윤재삼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장과 이종만 서울시 장애인자립지원과장은 2015년 서울시 장애인 주요정책으로 “발달(중증)장애인과 그 가족들에 대해 지원을 강화할 것이고, 장애인 일자리를 지원 할 것이며, 장애인거주시설에 입소하고 있는 장애인들을 지속적으로 사회에 복귀시킬 것이고, 장애인 인권을 증진시키며, 장애가 없는 환경을 조성하여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지역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박향식 노원구지역사회복지협의체 장애인 분과장은 “노원구의 장애인 복지관이 교통이 불편한 곳에 밀집되어 있어 거동이 불편한 지체장애인들이 이용하기에는 상당한 제약이 있고 또한 프로그램도 지적장애인 프로그램 또는 사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보니지체장애인들은 시설이용에 자연히 멀어지고 있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허곤 늘편한집 원장은 장애인 거주시설 서비스 개선 방안으로 “장애인 거주시설 소규모화 추진을 통해 탈시설 및 지역사회정착 욕구가 있는 시설 거주 장애인의 탈시설 및 자립생활 촉진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하성준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사무국장은 “장애인정보화교육이 컴퓨터를 교육하는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스마트폰과 같은 교육도 추가되어야 하며, 장애인이 병원에 입원하면 일반인과 다르게 장애인의 특성에 맞는 간병이 필요함으로 이에 대한 방안들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증장애인을 대표해 토론에 참여한 이성수 어울림센터 소장은“중증장애인에게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의료혜택을 받는 것이며, 이에 따른 의료비 부담이 없어야 하는데, 현재 중증장애인들이 취업을 할 경우, 기초생활수급권자에서 빠질 우려가 있어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들이 있다며, 이에 대하여 보완될 수 있는 정책들이 수립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원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현장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가장 설득력 있다”며, “오늘 토론회에서 못 다한 이야기들은 다음 토론회를 통해 심도 있게 토론을 하고, 오늘 나온 이야기들은 구의원, 시의원, 국회의원, 노원구, 서울시, 중앙정부에서 각각 역할을 나누어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박근수 서울시 복지기획관은 오늘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들에 대해 우선순위를 정해 서울시 정책에 반영하겠고, 또한 중앙정부에 요청하겠으며, 관련부서에서 조치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오승록 의원은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직접 듣고, 서울시 장애인 정책이 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노원구를 중심으로 하여 정책이 수립되어,모든 자치구로 확산시키고, 오늘 토론회에서 논의된 내용들이 중앙정부, 서울시정책에 반영되도록 서울시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800억 국비 추가 확보의 무게감은 8000억 같다”

    “800억 국비 추가 확보의 무게감은 8000억 같다”

    “감사합니다. 정부의 서울시 지원예산 확보를 위해 도움 주셔서 고맙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당 지역위원장들이 9일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나 서울시정 4개년 계획과 시정 현안사업을 논의했다. 만남의 화두는 내년 ‘예산’이었다. 그만큼 서울시가 각종 복지비 증가 등으로 예산 편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날 간담회는 민선 5기 이후 처음으로 서울시와 새정치연합 서울시당이 만나 서울시정을 논의한 자리였다. 박 시장은 국회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확보한 국비와 관련, 당의 협조에 감사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박 시장은 “지난주 통과된 정부 예산안에서 여러 의원의 도움으로 노후 하수관거 정비나 지하철 전동차 구매 등으로 800여억원의 추가 국비를 확보했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박 시장은 선물만 받은 게 아니다. 새정치연합으로부터 커다란 숙제도 받았다. 당에서 지역구 현안과 필요 예산을 정리한 책자를 박 시장에게 전달했다. 오영식 새정치연합 서울시당 위원장은 “지난 2일 내년 예산 심의를 처리한 후로 서울시와 25개 구청 예산 심의가 진행 중인데 서울 지역 주요 현안에 대해 긴밀한 당정협의가 이뤄지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면서 서울시 예산안 심의 과정에 꼭 반영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책자를 받아든 박 시장은 “제가 한 손으로 들고 있지만 엄청 무겁다”면서 “의원들께서 (서울시에) 국비 800억원을 따주셨는데 이 책자에 요구된 내용은 한 8000억원 되는 것 같다”고 해 한바탕 웃기도 했다. 이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면서 “많은 질책과 조언을 달라”고 덧붙였다. 지난 8일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박 시장은 “예산제도도 마찬가지인데 지방자치단체 조직에서 획기적인 전환, 결단이 있어야 한다”면서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안에 우리 생각이 상당히 반영됐는데 이를 구체화하려면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5대 5는 돼야 시민이 체감하는 정책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박 시장을 비롯해 행정 1·2부시장, 정무부시장 등 서울시 측 인사 10여명과 오 위원장, 정세균 종로구 지역위원장, 추미애 광진을 지역위원장 등 새정치연합 서울시당 측 인사 20여명이 참석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현장 행정] 서울역고가 공원화 거세지는 반대여론

    [현장 행정] 서울역고가 공원화 거세지는 반대여론

    “마포구 공덕·아현동 및 용산구 청파동에 있는 봉제공장만 1000여개에 달하는데 대체도로 없이 공원을 만드는 건 안 될 일입니다. 대체도로가 없을 경우 빙빙 둘러서 가야 하는 인근 주민들의 불편함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25일 박원순 시장의 2기 시정 핵심 공약인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 구청장은 “코레일이 추진하는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사업’ 계획에 따르면 동서 관통 도로 기능 유지를 위해 대체도로를 만들게 돼 있다”며 “무조건 끊는다고 할 게 아니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민호 남대문시장 본부장도 이날 “시는 올해 3월 서울역 고가를 철거하고 신설 고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다”며 “이제 와서 대체도로를 만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수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나온 결과를 하루아침에 바꾼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행정은 개인의 의견에 따라 바뀌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앞서 남대문시장 상인 등으로 구성된 서울역 고가 공원 조성 반대 추진협의회는 지난 24일 오후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서울시 계획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남대문시장 상인을 비롯해 중구 중림동·회현동 주민, 마포구·용산구 주민 등 약 500명이 참석했다. 시는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남대문상인회와 공식적인 대화 채널 구성에 나서는 한편 시민토론회, 공청회 등을 열 계획이다. 하지만 논쟁의 중심에 있는 대체 고가 신설에 대해서는 남대문시장 상인들과 시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동필 시 도로관리과장은 “협의체를 구성해 상인들과 논의할 것”이라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다음달 8일 시민토론회를 열고 지역 주민들의 얘기를 듣기 위한 설명회 등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역 고가 철거나 다른 용도로의 활용은 박 시장의 선거 공약으로 ‘서울시정 4개년 계획’에도 담겨 있는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9월 미국을 방문한 박 시장은 철거 예정이던 서울역 고가를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파크와 같은 ‘공중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시는 이후 시민과 전문가를 상대로 공원화 아이디어를 수렴, 380억원을 들여 2016년까지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서울시장, “공무원은 모두 도둑” 호통치더니…

    서울시장, “공무원은 모두 도둑” 호통치더니…

    ●서울특별시장 변천사 ‘정부 속의 정부’ 서울특별시와 흔히 ‘소통령’(小統領)으로 일컬어지는 서울특별시장의 변천사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몇 가지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일률적으로 파악하기엔 우리 근현대사의 진로가 너무나 복잡다단했기 때문이다. 왕조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외세강점기와 독립 쟁취가 아닌 강대국 협상의 산물인 미 군정 과도체제는 정부수립 전후 극단적인 혼란을 가져왔다. 한국전쟁 이후 혁명과 반혁명을 거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격변의 파노라마가 이 땅을 휩쓸었다. 서울특별시장의 역할은 특별했다. 중앙부처도 아니고 지방자치단체라고도 할 수 없는 수도 서울의 독특함이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자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서울시장의 위상 변화는 대략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조선 500년을 관통한 한성부와 한성판윤의 명멸,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경성부와 경성부윤으로의 위상 격하, 한국전쟁과 두 번의 정변 과정에서 맞은 서울시정의 공백, 30년간 지속한 군사정권 아래 관선시장,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선출직 빅2’로 꼽히는 민선 서울시장의 탄생 등이다. 특히 정부수립 이후 서울시정을 획일적으로 관선과 민선으로 이분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구분 짓기엔 미흡하다. 왕조의 유물인 한성판윤과 일제 잔재인 경성부윤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하겠으나 관선과 민선시장을 뭉텅 그려 역대 서울시장(1~36대)으로 묶기엔 무리라는 뜻이다. 같은 서울특별시장이지만 임명직 시장과 선출직 시장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장의 위상 변화에 따른 구분과 아울러 민선 서울특별시장을 크게 1기와 2기로 떼는 것도 방법이다. 관선 1기는 1대 김형민(1946년 9월 29일~1948년 12월 14일) 시장부터 10대 장기영(1960년 5월 2일~1960년 6월 30일) 시장 재임기로 볼 수 있다. 이어 4·19 혁명의 희생으로 쟁취한 최초의 민선 시장인 제11대 김상돈(1960년 12월 30일~1961년 5월 16일) 시장을 민선 1기로 따로 평가해야 한다. 5 ·16 군사정변으로 임명직 관선시장 시대로 되돌아간 제12대 윤태일(1961년 5월 20일~1963년 12월 16일) 시장부터 제29대 최병렬(1994년 1월 3일~1995년 6월 30일) 시장까지가 관선 2기이고, 본격 지방자치시대를 연 제30대 조순(1995년 7월 1일~1997년 9월 9일) 시장부터 제36대 박원순(2011년 10월 27일~현재) 시장까지를 민선 2기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관선과 민선시장이 혼재된 서울특별시장사를 정리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민선 서울특별시장사에 발자취가 뚜렷한 김상돈의 민선시대를 빼버리고 조순 시장을 민선 1기로 계산해 현 박원순 시장을 민선 6기로 치는 것은 잘못된 계산법이다. 엄연하게 서울시민의 손으로 뽑은 첫 민선 시장을 대통령이 임명한 관선으로 모는 격이다. 말로는 ‘첫 민선 시장 김상돈’이라면서 민선시장 계보에서는 빼버렸다. 자랑스러운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인 최초의 민선 시장기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의 영욕사 관선 서울특별시장은 권력의 꼭두각시였다. 최고 권력자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하면 연임하거나 장수했다. 제1대 김형민은 미군정이 임명한 구색갖추기용 한국인 시장이었다.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딴 뒤 귀국, 영어교사를 거쳐 석유상을 하다 미군정 관계자와 인연을 맺어 해방 이후 첫 한국인 경성부윤인 이범승(1945년 10월 25일~1946년 5월 9일)에 이어 제2대 경성부윤으로 취임했다가 얼떨결에 벼락출세했다. 관선과 민선을 합쳐 역대 최연소인 39세 시장이다. 미군정청은 미군 시장 윌슨 중령이 한국인 시장을 지휘하는 ‘투 톱 체제’로 운영했다. 비록 허수아비였지만 김형민 시장은 ‘서울’이라는 지명이 살아남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미군정청 군인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서울시 헌장’(Charter of The City of SEOUL)을 제정토록 하고, 경성부를 서울특별시로 승격시킨 것이다. 그는 일본식 동명과 가로명, 도로명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명으로 바꾸는 의미있는 일도 했지만 일제 잔재 탈피에 급급해 서두르는 바람에 옛 우리말 지명 되찾기에 실패하는 우도 범했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서울은 건국기의 혼란 와중에 우남(雩南)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시’(雩南市)로 이름을 바꿨을 개연성이 높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 추종자들의 압력을 이겨냈다는 후일담이다. 이승만도 집권 후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지명 중 유일하게 한자로 표시가 안 되는 서울이라는 지명은 문제가 있다”면서 지명 변경 검토를 지시해 은연중 자신의 아호를 도시명으로 정하고 싶은 의도를 드러냈다. 국부(國父)로 추앙받으면서 남산에 25m 높이의 세계 최대 동상을 세우고, 시민회관을 우남회관, 남산 팔각정을 우남정이라고 작명했던 만큼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도이름을 바꾸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뿐더러 자신의 손으로 바꾸기엔 민망하다며 차일피일 미루다 4·19를 만나 없었던 일이 됐다. 관선 시장의 면면을 보면 관선 1기에는 정치인출신(윤보선, 이기붕, 고재봉, 허정, 임흥순, 장기영)이 대부분 이었다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인(윤태일, 김현옥, 구자춘)과 경찰(정상천, 박영수, 염보현)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1970년대 이후 서울시 행정이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행정관료(양택식, 김성배, 김용래, 고건, 이해원, 이상배, 이원종, 우명규) 출신이 자리를 잡았다. 일화도 많이 남겼다. 제2대 윤보선(1948년 12월 15일~1949년 6월 5일) 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쓰레기를 청소하라”라고 지시했다. 제8대 허정(1957년 12월 14일~1959년 6월 11일) 시장은 시장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온 모 야당의원에게 “깡패 같은 놈”이라며 호통을 친 뒤 수위를 불러 시청 밖으로 끌어냈다. 신당동 동회장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의 마지막 하수인 임흥순(1959년 6월 12일~1960년 4월 30일) 시장은 서울시 공무원 전원이 도시락을 싸오도록 해 ‘도시락 시장’으로 통했다. 첫 민선 시장이자 마지막 민선 시장이 될 뻔했던 김상돈 시장은 4·19 혁명이 낳은 비운의 스타였다. 등록상표인 카이저수염에 국민복을 차려입고 엄청난 거구를 흔들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민주당 후보로 나서 전임 관선 시장 장기영을 꺾은 그가 얻은 표는 서울시 총유권자의 19.5%에 불과해 ‘2할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취임식장에서 터진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도둑놈이다)”라는 일갈은 서울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어록이다. 서울시는 복마전이고, 서울시 공무원들은 전부 도둑놈이라는 이 한마디 때문에 지금도 서울시는 복마전의 그림자를 벗지 못하고 있다. 시민과의 면담은 대부분 청탁이므로 면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5·16 쿠데타로 취임한 제12대 윤태일 시장은 육군 소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은 채 시장직에 취임했고 그만둘 때까지 군복차림이었다. 당시 내무장관이던 한신(육군 소장) 장군과의 라이벌의식이 지방자치사를 바꿨다. 자신의 전용 지프 번호가 26번이고 한신 장관이 12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울시 번호판을 아예 바꿨다. 앞에 지역명을 넣어 ‘서울 1000번’으로 바꾼 것이다. 한신 내무부장관의 지휘를 받을 수 없으니 서울시를 내부무 산하가 아닌 총리실 산하로 바꿔달라고 박정희 의장에게 떼를 썼다. 이 덕분에 1962년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만들어져 서울시가 국무총리 직속으로 지위가 승격되고,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장관급이 됐다. 제14대 김현옥(1963년 3월 31일~1970년 4월 15일) 시장에서부터 15대 양택식(1970년 4월 16일~1974년 9월 1일) 시장, 16대 구자춘(1974년 9월 2일~1978년 12월 21일) 시장 등 3명의 시장이 재임한 15년 동안 서울의 지형이 바뀌었다. 이 시기 서울은 ‘한강의 기적’ 기반을 닦았고, 지하철시대를 열었고, ‘강남 아파트공화국’이 됐다. 제18대 박영수(1980년 9월 2일~1982년 4월 27일) 시장 이후 제21대 김용래(1987년 12월 30일~1988년 12월 4일) 시장까지 4대에 걸친 서울시정의 모든 것은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에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를 마감하고 1990년대를 연 제23대 박세직(1990년 12월 27일~1990년 2월 18일) 시장부터 마지막 관선 시장 제29대 최병렬 시장까지는 개발시대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은 각종 비리사건으로 얼룩졌고 결국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마감됐다. ●관선 서울특별시장들의 진기록 관선시장이 세운 기록도 다양하다. 최연소는 김형민(39) 시장이 유일한 30대를 기록하고 있고, 이어 김현옥(40), 구자춘(42), 윤태일(43), 양택식·김상철(46), 정상천(47), 김태선(49) 시장이 40대였다. 외세강점기와 전쟁, 혁명 등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젊은 인재 등용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김형민 시장은 마지막 경성부윤이자 초대 서울시장이라는 전무후무한 진기록을 보유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그림자 이기붕(1949년 6월 6일~1951년 5월 8일) 시장이 제3~4대를 연임했고, 미국 유학파로 경찰출신이던 김태선(1951년 6월 27일~1956년 7월 5일) 시장이 5~6대 시장을 연임했다. 이후 관선 시대에 연임은 없었다. 김태선 시장의 재임기간은 4년 11개월로 관선시장으로선 최장수이지만 관선과 민선을 합쳐 6년을 재직한 고건 시장에게는 뒤진다. 그러나 보궐선거로 오세훈 시장의 잔여 임기 2년 8개월을 채운 박원순 시장이 두 번째 임기 4년을 무사히 채우면 6년 8개월이라는 최장수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최단명 시장은 그린벨트 훼손 문제로 부임 7일 만에 물러난 제26대 김상철 시장이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수습을 위해 임명됐다가 성수대교 부실 시공 책임을 지고 11일 만에 물러난 제28대 우명규 시장과 수서택지개발 특혜비리로 53일 만에 도중 하차한 제23대 박세직 시장이 뒤를 잇는다. 성수대교 붕괴 수습용 시장을 맡았던 마지막 관선시장 최병렬 시장은 이임식을 하러 가던 길에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듣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제2대 윤보선 시장이 대통령에 올랐고, 제4대 이기붕 시장은 부통령에 선출됐다. 제8대 허정 시장은 4·19 혁명 직후 과도내각 수반, 대통령직무대행, 국무총리를 각각 맡았고, 제22대 고건 시장은 2년간의 관선 시장직에서 무사히 물러나고 나서 제30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2003년 다시 제35대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직무대행을 맡았다가 8년 만에 민선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허정 시장과 고건 시장이 세운 시장, 총리, 대통령권한대행의 3관왕 기록은 앞으로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이 최고 권력자의 명을 받드는 꼭두각시 최고 집행자였다면, 이후 전개될 민선 서울특별시장은 시민들의 명을 받드는 대신 차기 혹은 차차기 대권을 예약하는 자리가 되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6) 서울특별시장(중)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6) 서울특별시장(중)

    ●서울특별시장 변천사 ‘정부 속의 정부’ 서울특별시와 흔히 ‘소통령’(小統領)으로 일컬어지는 서울특별시장의 변천사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몇 가지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일률적으로 파악하기엔 우리 근현대사의 진로가 너무나 복잡다단했기 때문이다. 왕조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외세강점기와 독립 쟁취가 아닌 강대국 협상의 산물인 미 군정 과도체제는 정부수립 전후 극단적인 혼란을 가져왔다. 한국전쟁 이후 혁명과 반혁명을 거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격변의 파노라마가 이 땅을 휩쓸었다. 서울특별시장의 역할은 특별했다. 중앙부처도 아니고 지방자치단체라고도 할 수 없는 수도 서울의 독특함이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자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서울시장의 위상 변화는 대략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조선 500년을 관통한 한성부와 한성판윤의 명멸,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경성부와 경성부윤으로의 위상 격하, 한국전쟁과 두 번의 정변 과정에서 맞은 서울시정의 공백, 30년간 지속한 군사정권 아래 관선시장,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선출직 빅2’로 꼽히는 민선 서울시장의 탄생 등이다. 특히 정부수립 이후 서울시정을 획일적으로 관선과 민선으로 이분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구분 짓기엔 미흡하다. 왕조의 유물인 한성판윤과 일제 잔재인 경성부윤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하겠으나 관선과 민선시장을 뭉텅 그려 역대 서울시장(1~36대)으로 묶기엔 무리라는 뜻이다. 같은 서울특별시장이지만 임명직 시장과 선출직 시장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장의 위상 변화에 따른 구분과 아울러 민선 서울특별시장을 크게 1기와 2기로 떼는 것도 방법이다. 관선 1기는 1대 김형민(1946년 9월 29일~1948년 12월 14일) 시장부터 10대 장기영(1960년 5월 2일~1960년 6월 30일) 시장 재임기로 볼 수 있다. 이어 4·19 혁명의 희생으로 쟁취한 최초의 민선 시장인 제11대 김상돈(1960년 12월 30일~1961년 5월 16일) 시장을 민선 1기로 따로 평가해야 한다. 5 ·16 군사정변으로 임명직 관선시장 시대로 되돌아간 제12대 윤태일(1961년 5월 20일~1963년 12월 16일) 시장부터 제29대 최병렬(1994년 1월 3일~1995년 6월 30일) 시장까지가 관선 2기이고, 본격 지방자치시대를 연 제30대 조순(1995년 7월 1일~1997년 9월 9일) 시장부터 제36대 박원순(2011년 10월 27일~현재) 시장까지를 민선 2기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관선과 민선시장이 혼재된 서울특별시장사를 정리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민선 서울특별시장사에 발자취가 뚜렷한 김상돈의 민선시대를 빼버리고 조순 시장을 민선 1기로 계산해 현 박원순 시장을 민선 6기로 치는 것은 잘못된 계산법이다. 엄연하게 서울시민의 손으로 뽑은 첫 민선 시장을 대통령이 임명한 관선으로 모는 격이다. 말로는 ‘첫 민선 시장 김상돈’이라면서 민선시장 계보에서는 빼버렸다. 자랑스러운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인 최초의 민선 시장기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의 영욕사 관선 서울특별시장은 권력의 꼭두각시였다. 최고 권력자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하면 연임하거나 장수했다. 제1대 김형민은 미군정이 임명한 구색갖추기용 한국인 시장이었다.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딴 뒤 귀국, 영어교사를 거쳐 석유상을 하다 미군정 관계자와 인연을 맺어 해방 이후 첫 한국인 경성부윤인 이범승(1945년 10월 25일~1946년 5월 9일)에 이어 제2대 경성부윤으로 취임했다가 얼떨결에 벼락출세했다. 관선과 민선을 합쳐 역대 최연소인 39세 시장이다. 미군정청은 미군 시장 윌슨 중령이 한국인 시장을 지휘하는 ‘투 톱 체제’로 운영했다. 비록 허수아비였지만 김형민 시장은 ‘서울’이라는 지명이 살아남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미군정청 군인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서울시 헌장’(Charter of The City of SEOUL)을 제정토록 하고, 경성부를 서울특별시로 승격시킨 것이다. 그는 일본식 동명과 가로명, 도로명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명으로 바꾸는 의미있는 일도 했지만 일제 잔재 탈피에 급급해 서두르는 바람에 옛 우리말 지명 되찾기에 실패하는 우도 범했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서울은 건국기의 혼란 와중에 우남(雩南)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시’(雩南市)로 이름을 바꿨을 개연성이 높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 추종자들의 압력을 이겨냈다는 후일담이다. 이승만도 집권 후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지명 중 유일하게 한자로 표시가 안 되는 서울이라는 지명은 문제가 있다”면서 지명 변경 검토를 지시해 은연중 자신의 아호를 도시명으로 정하고 싶은 의도를 드러냈다. 국부(國父)로 추앙받으면서 남산에 25m 높이의 세계 최대 동상을 세우고, 시민회관을 우남회관, 남산 팔각정을 우남정이라고 작명했던 만큼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도이름을 바꾸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뿐더러 자신의 손으로 바꾸기엔 민망하다며 차일피일 미루다 4·19를 만나 없었던 일이 됐다. 관선 시장의 면면을 보면 관선 1기에는 정치인출신(윤보선, 이기붕, 고재봉, 허정, 임흥순, 장기영)이 대부분 이었다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인(윤태일, 김현옥, 구자춘)과 경찰(정상천, 박영수, 염보현)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1970년대 이후 서울시 행정이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행정관료(양택식, 김성배, 김용래, 고건, 이해원, 이상배, 이원종, 우명규) 출신이 자리를 잡았다. 일화도 많이 남겼다. 제2대 윤보선(1948년 12월 15일~1949년 6월 5일) 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쓰레기를 청소하라”라고 지시했다. 제8대 허정(1957년 12월 14일~1959년 6월 11일) 시장은 시장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온 모 야당의원에게 “깡패 같은 놈”이라며 호통을 친 뒤 수위를 불러 시청 밖으로 끌어냈다. 신당동 동회장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의 마지막 하수인 임흥순(1959년 6월 12일~1960년 4월 30일) 시장은 서울시 공무원 전원이 도시락을 싸오도록 해 ‘도시락 시장’으로 통했다. 첫 민선 시장이자 마지막 민선 시장이 될 뻔했던 김상돈 시장은 4·19 혁명이 낳은 비운의 스타였다. 등록상표인 카이저수염에 국민복을 차려입고 엄청난 거구를 흔들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민주당 후보로 나서 전임 관선 시장 장기영을 꺾은 그가 얻은 표는 서울시 총유권자의 19.5%에 불과해 ‘2할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취임식장에서 터진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도둑놈이다)”라는 일갈은 서울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어록이다. 서울시는 복마전이고, 서울시 공무원들은 전부 도둑놈이라는 이 한마디 때문에 지금도 서울시는 복마전의 그림자를 벗지 못하고 있다. 시민과의 면담은 대부분 청탁이므로 면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5·16 쿠데타로 취임한 제12대 윤태일 시장은 육군 소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은 채 시장직에 취임했고 그만둘 때까지 군복차림이었다. 당시 내무장관이던 한신(육군 소장) 장군과의 라이벌의식이 지방자치사를 바꿨다. 자신의 전용 지프 번호가 26번이고 한신 장관이 12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울시 번호판을 아예 바꿨다. 앞에 지역명을 넣어 ‘서울 1000번’으로 바꾼 것이다. 한신 내무부장관의 지휘를 받을 수 없으니 서울시를 내부무 산하가 아닌 총리실 산하로 바꿔달라고 박정희 의장에게 떼를 썼다. 이 덕분에 1962년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만들어져 서울시가 국무총리 직속으로 지위가 승격되고,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장관급이 됐다. 제14대 김현옥(1963년 3월 31일~1970년 4월 15일) 시장에서부터 15대 양택식(1970년 4월 16일~1974년 9월 1일) 시장, 16대 구자춘(1974년 9월 2일~1978년 12월 21일) 시장 등 3명의 시장이 재임한 15년 동안 서울의 지형이 바뀌었다. 이 시기 서울은 ‘한강의 기적’ 기반을 닦았고, 지하철시대를 열었고, ‘강남 아파트공화국’이 됐다. 제18대 박영수(1980년 9월 2일~1982년 4월 27일) 시장 이후 제21대 김용래(1987년 12월 30일~1988년 12월 4일) 시장까지 4대에 걸친 서울시정의 모든 것은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에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를 마감하고 1990년대를 연 제23대 박세직(1990년 12월 27일~1990년 2월 18일) 시장부터 마지막 관선 시장 제29대 최병렬 시장까지는 개발시대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은 각종 비리사건으로 얼룩졌고 결국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마감됐다. ●관선 서울특별시장들의 진기록 관선시장이 세운 기록도 다양하다. 최연소는 김형민(39) 시장이 유일한 30대를 기록하고 있고, 이어 김현옥(40), 구자춘(42), 윤태일(43), 양택식·김상철(46), 정상천(47), 김태선(49) 시장이 40대였다. 외세강점기와 전쟁, 혁명 등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젊은 인재 등용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김형민 시장은 마지막 경성부윤이자 초대 서울시장이라는 전무후무한 진기록을 보유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그림자 이기붕(1949년 6월 6일~1951년 5월 8일) 시장이 제3~4대를 연임했고, 미국 유학파로 경찰출신이던 김태선(1951년 6월 27일~1956년 7월 5일) 시장이 5~6대 시장을 연임했다. 이후 관선 시대에 연임은 없었다. 김태선 시장의 재임기간은 4년 11개월로 관선시장으로선 최장수이지만 관선과 민선을 합쳐 6년을 재직한 고건 시장에게는 뒤진다. 그러나 보궐선거로 오세훈 시장의 잔여 임기 2년 8개월을 채운 박원순 시장이 두 번째 임기 4년을 무사히 채우면 6년 8개월이라는 최장수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최단명 시장은 그린벨트 훼손 문제로 부임 7일 만에 물러난 제26대 김상철 시장이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수습을 위해 임명됐다가 성수대교 부실 시공 책임을 지고 11일 만에 물러난 제28대 우명규 시장과 수서택지개발 특혜비리로 53일 만에 도중 하차한 제23대 박세직 시장이 뒤를 잇는다. 성수대교 붕괴 수습용 시장을 맡았던 마지막 관선시장 최병렬 시장은 이임식을 하러 가던 길에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듣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제2대 윤보선 시장이 대통령에 올랐고, 제4대 이기붕 시장은 부통령에 선출됐다. 제8대 허정 시장은 4·19 혁명 직후 과도내각 수반, 대통령직무대행, 국무총리를 각각 맡았고, 제22대 고건 시장은 2년간의 관선 시장직에서 무사히 물러나고 나서 제30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2003년 다시 제35대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직무대행을 맡았다가 8년 만에 민선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허정 시장과 고건 시장이 세운 시장, 총리, 대통령권한대행의 3관왕 기록은 앞으로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이 최고 권력자의 명을 받드는 꼭두각시 최고 집행자였다면, 이후 전개될 민선 서울특별시장은 시민들의 명을 받드는 대신 차기 혹은 차차기 대권을 예약하는 자리가 되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박원순의 정치력/이춘규 정치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박원순의 정치력/이춘규 정치부 선임기자

    2017년 대통령 선거가 3년 이상 남아 있는 상태인데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이 다수의 차기주자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를 내달리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10월 셋째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19%의 지지율로 새정연 문재인 의원(13%)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10%)를 제쳤다. 갤럽 조사에서 3개월 연속 1위다. 지난 27일 발표된 리얼미터 지지도 여론조사에서도 박 시장은 20.6%로 1위를 달렸다. 2위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로 12.8%, 3위는 11.4%의 새정연 문재인 의원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는 3주 연속 1위다. 한국갤럽이나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모두 박 시장이 추세적으로 차기주자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상태다. 박 시장은 김무성 대표나 문재인 의원처럼 당내 조직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당에서 요직을 맡아보지 않았다. 뚜렷한 정치적 행보를 하고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1위 자리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개인적인 경쟁력도 있지만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여의도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추정한다. 이와 함께 문재인·안철수 의원 등 새정연 내 다른 차기주자들이 2012년 대선 이후 정치적 역량을 입증해 보이지 못한 상황도 그를 대안으로 선택하게 하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다만 전문가들조차 박 시장이 대선에 출마하게 될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 자신도 서울시장 임기 중에 치러질 대선에 도전할지 태도가 애매하다. 현재 다수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박 시장은 다른 주자들과 도토리 키재기식 경쟁을 벌여 나가고 있는 양상이다. 여차하면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박 시장이 계속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야권의 대선후보까지 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우선 박 시장이 새정연 당심을 잡을 수 있을지가 최대의 변수다. 문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친노무현계가 견고한 상황에서 당심 잡기가 여의치 않을 수 있다. 서울시정에서도 확고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돌발 악재를 만날 수도 있다. 정적들이 들이댈 덫도 돌파해야 한다. 최근에만도 경비견 문제로 홍역을 치렀고,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에 대한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낙하산 임용과 사임 소동을 빚었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중공원화하기로 한 것도 남대문시장 등 주변 상인과 주민들의 반대를 뚫고 관철할지 행정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국민에게 제시할 차기 비전도 안갯속이다. 한국갤럽은 박 시장의 1위에 대해 “현 시점에서의 정치인 선호도를 차기 대권 구도에 견주는 것은 섣부른 확대 해석”이라고 전제할 정도로 신중한 자세다. 정치권에서는 박 시장이 차기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자신의 확실한 권력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본다. 가족과 측근들 관리도 중요한 요소다. 다른 유력주자와 당권·대권 역할 분담 등을 통해 정교하게 내부를 정비해야 본선에 나설 기회가 올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야권의 차기주자를 굳혀가면 서울시장 선거 때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혹독한 검증공세도 예상된다. 박 시장의 정치력이 여러 겹의 시험대 위에 올라 있는 셈이다. taein@seoul.co.kr
  • 담배 인생 70년… 몸값 750배 ‘껑충’

    담배 인생 70년… 몸값 750배 ‘껑충’

    최근 정부가 담뱃세를 한 갑 2500원 기준으로 2000원 올리겠다고 밝히면서 담뱃값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물가연동제까지 시행되면 2025년에는 6000원까지 치솟는다. 인상 폭 2000원 중 600원 정도는 개별소비세다. 개별소비세는 보석과 귀금속, 모피 등 타인에게 악영향을 주는 ‘외부불경제’ 항목에 대한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부과된다. 정부 입장에서는 담배가 더 이상 기호품이 아니라는 뜻이다. 담배는 이제 천덕꾸러기 신세지만 소주 한잔과 더불어 ‘서민들이 하루 종일 일하고 난 뒤 즐기는’(2005년 당시 한나라당 논평) 품목 중 하나였다. 오랜 시간 애용되면서 값도 많이 올랐다. 해방 이후 가격과 비교하면 750배다. 서민의 기호품에서 ‘사치품’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담배 가격 변천사를 소개한다. 해방 이후 국내에서 처음 생산된 담배는 승리였다. 1945년 10개비 한 갑에 3원으로 출시됐다. 요즘 주로 팔리는 20개비 기준으로는 6원이다. 내년부터 담배 가격이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오르면 70년 만에 담뱃값이 750배가 되는 셈이다. ●1940년대 책 한 권·버스 6구간 비용과 같은 가격 승리는 우리 기술로 만들어진 최초의 막궐련 담배다. 광복을 기념해 출시됐다. 당시 승리 한 갑 가격인 3원은 요즘 기준으로는 상당히 고가였다. 책 한 권을 사거나 버스 6구간을 탈 수 있는 돈이었다. 3년 뒤인 1948년에 20개비 한 갑에 50원인 백구가 나왔다. 최고급 담뱃잎으로 만든 고급 담배라 부유층에서 인기를 끌었다. 1949년에는 우리나라 담배사에 빼놓을 수 없는 제품이 선을 보였다.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라는 노랫말에도 등장하는 화랑이다. 대한민국 국군 창설 기념으로 4원에 출시됐다. 1981년까지 32년간 팔린 최장수 브랜드다. 단종되기 전까지 군에서 1인당 매달 15갑씩 공짜로 나눠 주기도 했다. 국내 담배업계 최초로 나온 필터 담배는 1958년 아리랑이다. 발매 당시 25원이었다. 1961년 나온 최고급 담배 파고다는 50원, 1965년 나온 신탄진은 60원이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1968년 시내버스 요금은 10원, 자장면은 50원, 극장 요금은 130원이었다. 담배 한 갑 가격과 자장면 한 그릇 가격이 비슷했다는 뜻이다. ●80년대 ‘거북선’ 500원… 시내버스 요금 10배 1969년에는 70년대 베스트셀러인 청자가 발매됐다. 당시로서는 비싼 100원에 팔렸다. ‘노래는 추자 담배는 청자’라는 말까지 유행할 정도였다. 1970년대에는 충무공의 애국심을 기리는 담배 거북선도 출시돼 인기를 끌었다. 1974년 출시 당시 가격은 300원이었지만 1989년 500원까지 올랐다. 30~60원이던 1980년대 서울 시내버스 요금의 10배 가까운 가격이다. 국내 담배 중 최고 히트작은 1980년 등장한 솔로 450원에 팔렸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발매된 88라이트와 더불어 80년대를 풍미했다. 한국담배인삼공사(1988년 4월) 출범 이후 처음 나온 담배는 한라산이다. 1989년 700원에 팔렸다. 국내 최초의 레이저 천공 담배로 지금도 나오고 있다. 담뱃값은 1990년대부터 1000원대로 올라섰다. 지금도 애연가들의 사랑을 받는 디스는 1994년에 처음 등장했다. 1996년 900원에서 1000원으로 올랐다. 풍부하고 진한 맛의 담배를 상대적으로 싸게 살 수 있어 큰 인기를 누렸다. 국산 최초의 초슬림 담배인 에쎄는 1996년에 출시됐다. 2004년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올랐다. 전 세계 초슬림 담배 소비자 3명 중 1명이 애용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초슬림 담배다. 2002년과 2003년에는 각각 시즌과 더원이 발매됐다. 2002년 말 출범한 KT&G의 ‘친자식’인 셈이다. 시즌은 국내 최초 저타르(2㎎) 담배다. 더원은 타르 1㎎ 저타르 제품의 선두주자다. 모두 2500원이다. ●담뱃값 싼 편이지만 흡연율은 세계 최고 수준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담뱃값이 싼 나라에 속한다. 2012년 기준으로 유럽연합(EU) 산하 담배규제위원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2개국의 담뱃값(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2500원으로 가장 쌌다. 아일랜드가 한국의 6배인 1만 4975원으로 가장 비쌌고 이어 영국(1만 1525원), 프랑스(9400원), 독일(8875원), 네덜란드(8400원) 순이었다. 담뱃값이 싼 나라는 폴란드(3175원), 일본(3575원), 슬로바키아(3725원), 헝가리(3750원) 등이었다. 반면 흡연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 성인 남성 흡연율은 지난해 기준 42.1%로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다. 특히 30대와 40대 남성의 흡연율은 각각 54.5%, 48.0%다. 2명 중 1명이 흡연자라는 얘기다. 현재 담배 한 갑(2500원 기준)에는 1550원의 세금 및 부담금이 포함돼 있다. 담배소비세 641원, 지방교육세 321원, 건강증진부담금 354원, 부가가치세(VAT) 234원 등이다. 출고가 및 유통 마진은 950원이다. 매일 한 갑을 피우는 흡연자가 내는 연간 세금은 56만 5750원이다. ●“세수 부족분 채우려 인상” 비판도 담뱃값 인상안이 국회를 무난히 통과하면 내년부터 한 갑당 세금은 현재보다 1768원이 더 올라 3318원이 된다. 여기에는 담배소비세 1007원, 지방교육세 443원, 건강증진부담금 841원, 부가가치세 등 433원 외에 새로 부과될 개별소비세 594원도 포함된다. 흡연자가 부담하는 연간 세금도 121만 1070원으로 크게 늘어난다. 담뱃값 인상이 현실화되면 정부는 2조 8000억원 상당의 세수를 추가로 걷을 수 있다. 개별소비세(1조 7000억원)와 부가가치세(1800억원) 등 국세만 1조 9000억원 정도 불어난다. ‘손쉬운 간접세 인상으로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나라 곳간을 채우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정부가 출고가 대비 77% 세율로 개별소비세를 부과하는 데 대해 위헌 소지가 크다는 주장도 나온다. 개별소비세의 입법 취지에 맞지 않고 헌법상 과잉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통상 사치성 품목의 개별소비세율은 출고가의 5~20%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저소득층이 많이 소비하는 담배에 고율의 개별소비세를 부과하는 것은 세금의 역진성을 더욱 강화해 흡연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면서 “겉으로는 국민 건강을 내세우지만 실제론 세수 부족을 메꾸려는 것이 목적인 만큼 위헌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박원순 시장 2기 슬로건 ‘함께 서울’로

    박원순 시장 2기 슬로건 ‘함께 서울’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7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마련한 기자 간담회에서 ‘함께 서울’을 2기 서울시정 슬로건으로 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선거공약 최우수 광역단체장에 선정

    선거공약 최우수 광역단체장에 선정

    박원순 서울시장이 6·4 지방선거에서 가장 공약을 잘 만든 광역자치단체장으로 선정됐다. 서울시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2014 매니페스토 약속대상’에서 박 시장이 시·도지사 선거공약서분야 최우수상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30일 밝혔다. 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지방선거에 출마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들의 공약을 창의성(10점), 내용성(20점), 형식성(20점) 등으로 평가해 선정했다. 박 시장은 민선 6기 서울시정 비전을 ‘사람이 중심인 서울, 시민이 행복한 서울’로 내세웠다. 또 ‘안전한 도시, 따뜻한 도시, 꿈꾸는 도시, 숨쉬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60대 정책공약과 101개 혁신공약, 12개 시민제안공약을 제시했다. 시상식은 1일 오후 4시 40분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씨줄날줄] 서울의 공중정원/구본영 이사대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서울처럼 명산과 큰 강 등 수려한 자연과 벗하고 있는 대도시가 세계 어디에 또 있을까 싶었다. 지난 주말 남산에서 열린 걷기 행사에 참가했을 때 느낀 소회였다. 몇년 전 파리 출장 중 야트막한 몽마르트르와 샛강 같은 센 강을 보면서 천만금을 얹어주더라도 북한산, 한강과는 맞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새롭다. 수도 서울에 또 다른 명소 하나가 생기는 걸까. 서울시가 서울역 고가를 공원화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남대문로 5가와 만리동을 잇는 총연장 914.5m 고가도로에 정원과 산책로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신문기자가 되기 전 도시계획학도였던 필자에게만 흥미로운 뉴스는 아닐 성싶다. 생각해 보라. 자동차가 쌩쌩 달리던 고가도로가 녹색 정원으로 탈바꿈한다면. 얼핏 환상적인 도시재생 프로젝트일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 보면 ‘꿈의 프로젝트’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생각도 든다. 일단 서울시는 뉴욕의 ‘하이라인’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하이라인은 맨해튼을 공중으로 가로지르던 1.6㎞ 고가철로를 두 명의 뉴요커가 10년에 걸쳐 공원화한 것이다. 하지만, 하이라인의 성공이 ‘서울의 공중정원’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닐 게다. 지척에 남산이 있는데 얼마나 많은 시민이 매연 속 고가 공원을 찾을 지부터 의문이다. 고가 공원은 지상공원과 달리 막대한 유지비가 든다는 점에서 자칫 골칫거리 흉물이 될 개연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비용 못잖게 안전성도 문제다. 박원순 시장은 얼마 전 발표한 ‘서울시정 4개년 계획’에서 ‘안전한 도시’를 4대 목표 중 첫 머리에 꼽았다. 서울역 고가도로는 2008년 안전검사에서 ‘D등급’을 받아 철거키로 했으나, 비용문제로 2015년으로 연기됐다. 서울역 고가도로 시민문화공원화 사업은 박 시장의 시정 방침에 비춰볼 때 얼마간 이율배반적이기도 하다. 다만 서울시 내부에선 상판 보강 등을 통해 안전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공중정원의 원조는 세계 7대 불가사의로도 꼽히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다. 신바빌로니아 왕국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메마른 대지 위에 건조한 인조 공원이다. 벽돌로 벽을 쌓고 그 안을 흙으로 메워 여러 층의 정원을 만든 것이다. 수목과 화초에 필요한 물은 노예들이 유프라테스강에서 나르게 했다고 한다. 당연히 엄청난 비용과 인력이 소요됐을 것이다. 지금은 허물어져 아직 그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서울시가 서울역 고가 공원화의 첫 삽을 뜨기 전에 역사성과 안전성 이외에 지속가능성부터 점검해야 할 이유다. 구본영 이사대우 kby7@seoul.co.kr
  • 박원순 서울시장 인터뷰 “평양과 교류 확대 통일 준비 나설 것”

    박원순 서울시장 인터뷰 “평양과 교류 확대 통일 준비 나설 것”

    “통일은 대박일 수 있지만 잘못하면 재앙일 수도 있다. 지금부터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박원순(얼굴) 서울시장은 25일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원순표 새 정치’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가 ‘통일’이라고 밝혔다. 1기 정책을 이어 가면서 남북 통일시대를 준비하겠다는 의미다. 서울시정에 집중했던 1기 박원순호보다 보폭이 넓어졌다. 박 시장은 “남북 통일은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남북이 가지는 경제와 산업, 문화적 차이를 줄이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평양’을 파트너 도시로 생각하고 문화 교류뿐 아니라 공동 역사 연구, 나아가 도시계획 협력 등으로 통일시대를 대비하겠다는 복안도 밝혔다. 그는 “정치는 중앙정부가 담당하고, 우리는 평양과 도시 차원의 교류에 집중할 계획”이라면서 “경평(京平·서울과 평양) 축구대회와 서울오케스트라 협연 등 스포츠·문화 공연뿐 아니라 공동 역사 연구와 도시계획 협력 등 교류의 폭을 넓히겠다”고 강조했다. 재원은 이미 서울시의 남북교류협력기금이 190여억원을 이용한다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박 시장은 ‘협치’도 강조했다. 그는 “지난 1기가 협치의 실험이었다면 2기는 협치의 강화”라면서 “시민복지기준선과 2030 서울도시플랜 등 많은 갈등을 소통으로 해결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박 시장이 지난 6·4 지방선거 직후 여야를 떠나 25개 구청장과 시의원 당선인들에게 ‘새로운 서울을 만드는 데 힘을 합치자‘고 전화를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박원순 정몽준, 선거 뒤 처음으로 재회…“정치 선후배 하자” 덕담 주고받아

    박원순 정몽준, 선거 뒤 처음으로 재회…“정치 선후배 하자” 덕담 주고받아

    ‘박원순 정몽준’ 박원순 정몽준이 재회했다. 6·4 지방선거에서 경쟁했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정몽준 전 국회의원이 19일 다시 만나 소회를 나누고 서울의 발전을 위한 협력을 약속했다. 정몽준 전 의원은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서울시장 집무실을 찾아 박원순 시장의 재선을 축하했다. 박원순 시장도 시장실 입구까지 나와 “고생하셨다”며 반갑게 맞았다. 박원순 시장이 “선거 끝난 날부터 복귀해 별로 못 쉬었다”고 하자 정몽준 전 의원은 “박원순 시장은 백두대간을 종주할 만큼 건강하니 바로 와도 괜찮다”고 덕담을 건넸다. 박원순 시장은 또 정몽준 전 의원이 축구 국가대표팀 응원차 브라질로 출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연히 가셔야 한다. 많이 격려해달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서울시정 발전을 위한 협력도 약속했다. 정몽준 전 의원이 “서울이 대한민국에서 중요한 도시인데 시민의 한 사람으로 잘해달라는 부탁을 하러 왔다”고 하자 박원순 시장은 “여러 제안과 공약을 하셨으니 고문으로 모시고 핫라인을 만들어 경청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에 정몽준 전 의원은 “고문이 아닌 자원봉사로 하겠다”며 “그런데 제가 이제 의원이 아닌데 제가 연배는 위니 ‘정치 선배’로 불러주면 어떠냐. 저는 후배라고 안 하고 ‘박원순 시장님’이라 하겠다”고 제안했다. 박원순 시장은 “선거 기간 서로 그런 (네거티브 등) 일이 있었지만 오늘부터 다시 선후배로 돌아가자”고 답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보혁 떠나 통합정신으로 서울을 최고 도시로”

    “보혁 떠나 통합정신으로 서울을 최고 도시로”

    “오로지 서울 시민만을 보고 달려가겠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방선거 이후 대선후보 지지도 1위에 오른 것에 대해 “제가 특별하게 정치 활동을 했다기보다는 서울시장 역할을 제대로 해냈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시장은 “오로지 서울, 오로지 시민이란 마음으로 시정에 전념하겠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대선 출마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박 시장은 “서울을 최고의 도시로 만들어내려면 함께하려는 통합의 정신이 중요하고, 최고의 도시를 만드는 데 진보와 보수는 따로 없다”면서 “시의회 새누리당 당선자들에게도 계속 전화해 ‘함께 가자’ ‘무조건 우리가 잘 모시고 서울시를 당과 관계없이 최고 도시로 만들자’며 서로 함께하자는 뜻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즉 ‘시민이 시장입니다’를 강조했던 1기 시정의 연장선으로 민선 6기에서도 시민이 정책 결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협치를 강조할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2기 서울 시정에서는 시민의 안전과 복지, 창조 경제·글로벌 도시 육성이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은 “재난 발생 때 소방서장 등 현장책임자가 무한 책임을 지도록 하고 이들에게 면책 특권까지 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면서 복지담당 공무원을 2배로 늘리고 동 주민센터를 복지 서비스의 구심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그는 중앙정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지방분권에 정부가 큰 결단을 해주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서울시장이 국장, 부시장 한 명을 추가로 더 임명하지 못하는 시스템은 개선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박 시장은 경제부시장 등 경제 전문가 영입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가 경제전문가는 아니다. 부시장급으로 경제를 전담하겠다고 했으나 더 늘릴 수 없다”면서 “2기 서울시정의 기조는 안전과 복지, 창조경제 달성을 위해 부시장이 안 되면 경제진흥실장을 전문가로 둘 생각”이라고 밝혔다. 민선 6기에는 안전과 복지뿐 아니라 서울의 경제 활성화도 돕겠다는 얘기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6·4 선택 이후] 이 두 남자 ‘순·수의 시대’ 끝나나

    [6·4 선택 이후] 이 두 남자 ‘순·수의 시대’ 끝나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6·4 지방선거에서의 재선 성공으로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오름에 따라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와의 관계가 미묘해졌다. 협력·지원하던 ‘보완재’에서 본격 경쟁하는 ‘대체재’ 관계로 변할 조짐이다. 박 시장의 정치 입문에는 안 대표의 도움이 절대적인 것으로 알려진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5% 안팎의 지지율이던 박 시장은 50% 안팎의 지지율을 보이던 안 대표의 ‘아름다운 양보’에 의해 선거에 나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안 대표는 박 시장에 대한 지원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와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안 대표가 나설 필요성이 없어졌고, 박 시장은 ‘나 홀로 선거운동’으로 재선 고지를 밟았다. 박 시장이 차기 대선에 출마할 경우 두 사람은 졸지에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다. 박 시장은 당분간 서울시정에 전념한다고 했지만, 2017년 대선이 다가올수록 유권자들은 안 대표와의 관계 설정에 관심을 기울일 것 같다. 당의 대선후보는 둘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만약 두 사람 다 출마한다면 둘의 관계상 ‘양보’와 ‘보은’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안 대표 입장에서는 서울시장 선거 때 자신의 지원을 거론하며 박 시장의 양보를 바랄 테지만, 박 시장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사실상 안 대표의 지원 없이 재선됐기 때문에 박 시장으로서는 조금은 부담을 던 편이다. 박 시장이 역으로 안 대표의 양보를 바라는 상황이 되려면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국면이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본선 경쟁력이 두 사람 사이에 양보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 두 사람 다 끝까지 양보하지 않을 경우 여론조사를 동원한 단일화나 경선까지 가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두 사람의 ‘아름다운 관계’는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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