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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개 산업단지 코앞… 음성 푸르지오 마크베르

    12개 산업단지 코앞… 음성 푸르지오 마크베르

    대우건설이 충북 ‘음성 푸르지오 마크베르’(투시도)를 분양 중이라고 25일 밝혔다.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 293-5 일대에 들어서는 이 단지는 지하 2층~지상 29층, 6개 동, 전용면적 84~146㎡ 총 644가구로 공급된다. 음성은 수도권과 충북 경계선에 위치해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충청권 도시로 서울로의 접근이 쉽다. 현재 이곳에는 금왕산업단지, 원남산업단지 등 12개의 산업단지와 금왕농공단지 등 3개의 농공단지가 들어서 있다. 여기에 성본산업단지, 금왕테크노산업단지 등 8개의 산업단지가 추가로 조성될 예정인 만큼 상주인구는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음성 기업복합도시로 불리는 성본산업단지엔 에너지글라스코리아, 대보마그네틱, 바이오플러스 등 우량기업들이 입주할 예정이다. 수도권내륙선으로 불리는 경기 화성 동탄~청주공항 간 광역철도 사업이 가시화되면서 수도권으로의 접근성도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남측으로는 중심상업용지(예정)가 위치해 생활 편의시설 이용도 편리해질 전망이다. 원지형 보존녹지뿐 아니라 어린이공원, 체육공원도 차례로 들어설 계획이라 쾌적한 주거 환경도 누릴 수 있다.
  • 서울시, 관광업계 손님맞이 준비…‘서울국제트래블마트’ 개최

    서울시, 관광업계 손님맞이 준비…‘서울국제트래블마트’ 개최

    국내 최대 규모의 관광산업 교류의 장이 오는 27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다.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은 오는 27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코엑스에서 ‘2022 서울국제트래블마트(SITM) 및 2022 서울의료관광국제트래블마트(SITMMT)’를 대면으로 전격 개최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3년 만이다. 이번 행사의 주요 프로그램은 개막식, 1:1 관광기업 상담회(B2B 트래블마트), 서울관광설명회, 서울의료관광 국제토론회, 서울관광홍보구역 등이다. 올해 트래블마트에는 국내·외 관광 업계 924개 사가 참여했다. 특히 시는 33개국, 140명의 해외 구매자를 서울로 직접 초청해 관광 분야 국내 판매자와 1:1 대면 면담을 진행한다. 1:1 관광기업 상담회에 ‘서울국제트래블마트’는 611개사, ‘서울의료관광 국제트래블마트’는 313개사가 참여할 예정이다. 오는 28~29일 열리는 서울관광설명회에서는 서울페스타, 서울빛초롱축제, 서울산악관광 등 서울의 새로운 관광콘텐츠와 뷰티관광 스타트업(버츄어라이브)도 소개한다. 서울 강남구와 인천시, 스마트기술(지능형기술) 기반 관광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 관광기업(코메디클럽) 등과 협업해 의료관광설명회도 개최한다. 이외에도 의료관광 협력기관 간 교류와 협력사업 우수사례를 공유하는 서울의료관광 협력기관 연례회의와 사업 상담회에 참여한 해외 구매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서울관광사전답사여행 등이 준비돼 있다. 최경주 시 관광체육국장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국내외 관광업계 관계망을 재구축하고, 해외여행 수요를 선점해 서울 관광시장의 회복 신호탄이 되길 바란다”면서 “감염병 주기적 유행 시대를 맞아 관광업계가 변화된 관광 흐름과 패러다임(구도)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서울시가 다각도로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 “환영합니다”…서울 전입한 청년, ‘웰컴 박스’ 받는다

    “환영합니다”…서울 전입한 청년, ‘웰컴 박스’ 받는다

    서울시가 학업, 취업 등의 이유로 다른 지역에서 서울로 전입한 청년들에게 ‘환영(웰컴)박스’를 지원한다. 25일 시에 따르면 전입청년 웰컴박스 지원 사업은 청년들의 제안으로 지난해 처음 시작됐다. 지난해 3600명을 모집하는데 8491명이 신청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던 만큼 지원 인원을 6000명으로 늘렸다. 지원 대상은 만 19~29세에서 만 19~34세로 확대했다. 올해부터는 배송 뿐 아니라 서울청년센터, 청년활동지원센터 등 13개 청년공간에 방문해 직접 수령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웰컴박스는 ▲나를 채우는 식기세트 ▲나를 만드는 공구세트 ▲나를 챙기는 청정(클린)세트(수건, 휴지) 3가지 종류로 구성됐다. 이 가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서울 청년이 꼭 알아야 할 정책을 소개하는 자료(책자, 카드)는 모든 유형에 공통적으로 포함돼 있다. 책자는 서울 생활 2년차를 맞은 ‘서울잘알쥐’에게 새로 서울 생활을 시작한 전입 청년이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는 형식으로 구됐다. 카드는 청년들의 고민과 궁금증을 16개 상황으로 구분, 상황별로 활용할 수 있는 정책을 간단히 알아볼 수 있도록 제작한 홍보물이다. 지원 사업은 지난해 1월 이후 타 시·도에서 서울로 전입한 만 19~34세 청년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신청은 다음달 5일 오후 6시까지 청년 몽땅 정보통에서 할 수 있다. 지원 대상자는 자격 요건을 충족한 사람 중 6000명을 무작위 추첨하여 선정한다. 선정 결과는 다음달 17일 청년 몽땅 정보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철희 시 미래청년기획단장은 “낯선 곳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이 서울시를 든든한 울타리로 생각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 [ITS 2022]국내 통신사 ‘지능형 교통체계’ 기술 선전…세계 대회서도 치열한 경쟁

    [ITS 2022]국내 통신사 ‘지능형 교통체계’ 기술 선전…세계 대회서도 치열한 경쟁

    KT·LG유플러스 ITS 세계총회서 K-ITS 선보여강릉시, 2026년 ITS 세계총회 개최지로 선정출근길 교통 불편 해소 등 교통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향상하기 위한 교통 체계 시스템을 도입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많아진 가운데 통신사들도 앞다퉈 지자체와 손잡고 해외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다.  23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KT와 LG유플러스는 이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막을 내린 지능형 교통 체계(ITS) 세계총회에 참석해 최첨단 기술을 선보였다. ITS는 ‘교통 올림픽’, ‘교통 엑스포’라고 불리는 교통 분야 세계 최대 전시회이자 학술대회이다. ITS 월드 콩그레스는 1994년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1998년), 부산(2010년)에서 열리기도 했다. 특히, 기업들은 최신 모빌리티 기술과 미래 운송 수단 등 정보를 교류하고 보유 기술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강릉시는 지난 18일 LA컨벤션센터에서 경쟁도시인 대만 타이베이를 제치고 ‘2026 ITS 세계총회’ 개최지로 선정됐다.ITS는 서울시 우선 신호 사업, 세종·광주 자율주행 규제자유특구 사업에 이어 국내 최대 규모인 강릉시 ITS 기반 구축사업을 획득하면서 선도사업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해오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6월 강릉시 ITS 구축사업자로 선정된 후 강릉시, 국토교통부 등과 유치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적극적인 유치 활동을 전개해 왔다. 올해 7월 진행된 후보 도시 현지실사에서도 긴급차량 우선신 호, 자율주행차 시범 운행, 미래형 자율주행 셔틀 등을 선보이며 현지실사단의 호평을 끌어낸 바 있다. 이번 세계총회에서 LG유플러스는 강릉시와 함께 전시 부스를 구성해 렉스젠·바이다·서울로보틱스 등 유수의 ITS 전문기업과 함께 강릉시에 구축한 ▲스마트 교차로 ▲스마트 횡단보도 ▲주차장 혼잡예보 등 지능형 교통 서비스를 선보였다. 예를 들어 스마트 교차로는 도심 내 주요 교차로에 교통관제 시스템을 설치해 구간별 차량 교통량과 대기 행렬, 차종별 통행 데이터를 수집하고 사고 발생을 감지하는 시스템이다. 또 교차로 주변에 도로전광표지(VMS)가 설치되면 운전자가 여러 경로의 교통 현황을 한눈에 확인하고 우회도로를 선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운전자는 VMS로 해당 공영주차장에서 주차가 가능한 위치와 잔여 주차 공간 수 등을 확인한다. 강종오 LG유플러스 스마트모빌리티사업담당(상무)은 “이번 ‘2026 ITS 세계총회’ 유치와 앞으로 진행될 ITS 고도화 사업을 통해 강릉시가 세계적인 중소도시형 첨단 모빌리티 선도도시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도시의 현실적인 교통 문제 해결은 물론 미래비전을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파트너로서 최선을 다하고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KT, 부천시와 손잡고 ITS 세계총회서 디지털 트윈 기술 선보여 KT도 ITS 세계총회에서 부천시와 함께 디지털 트윈·AI 기반 ‘지능형 교통 기술’을 소개했다. KT는 융합기술원에서 자체 개발 ‘KT 로드 트윈’을 부천시 실제 교통환경에 적용한 실증사례와 신호시스템을 최적화해 도심 내 교차로 통과 교통량이 효과적으로 개선된 실증결과를 전시했다.KT로드트윈은 광역 교통 네트워크의 교통흐름을 최적화해주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현실의 모든 도로와 교통상황을 가상화하는 ‘광역 교통 시뮬레이터’와 교통 현황 신호체계를 사전에 학습해 최적화된 신호를 도출하는 ‘인공지능(AI) 최적신호 엔진’으로 구성돼 있다. KT는 해당 기술로 시범 도로 기준 연간 약 147억원에 달하는 교통혼잡비용과 약 1000톤의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천시 전역의 288개 교차로로 확대할 시 연간 약 3505억원의 교통혼잡비용과 약 2만 3000여톤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김봉기 KT 컨버전스연구소장은 “KT는 다양한 실증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 교통 경험 개선 및 불필요한 비용 감소 등 좋은 사례를 발굴하고 이와 함께 글로벌 서비스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전 세계 누비는 손열음의 건반… 그 안엔 깊고 넓은 독서가 있다[김언호의 서재탐험]

    전 세계 누비는 손열음의 건반… 그 안엔 깊고 넓은 독서가 있다[김언호의 서재탐험]

    ●중2 때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고 피아니스트 손열음. 그의 독서력이 그의 음악을 심화시킨다. 그의 빛깔로 해석해 낸다. 세계를 무대로 삼아 전문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손열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의 작은 도시 원주에서 태어났다. 그에게 책과 독서는 그의 음악을 성장시키는 근원 같은 것이었다. “우리 아파트 상가에 있던 ‘글방터’라는 작은 책방이 좋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저는 그 책방에 살다시피 했습니다. 글방터에 비치돼 있는 어린이·청소년 책들을 거의 다 읽었습니다. 친절한 사장님 내외분은 글방터에 없는 책들은 서울로 주문해 주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책이, 책의 세계가 그렇게 좋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고, 문학이란 게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했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었나,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었는데 엄청 강렬했어요. 우리 언어가 이렇게 아름답구나 했습니다. 두 번이나 읽었어요.” 손열음의 독서는 넓고 깊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영역은 넓어졌고, 의미는 더 깊어지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다 그렇겠지만, 저도 어렸을 적에 헤르만 헤세를 좋아했습니다. ‘데미안’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유리알 유희’를 펼쳤다가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책을 덮었습니다. 한참 뒤에야 마저 읽었습니다. 중3 때 어머니가 권한 릴케와 마르틴 부버를 읽었습니다.” 그는 문학뿐 아니라 역사가 좋았다. 역사는 신비로웠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생일 선물로 ‘국사대사전’이란 엄청 큰 책을 사 주셔서, 설레는 마음으로 ‘ㄱ’부터 순서대로 다 읽었습니다. 황현 선생의 ‘매천야록’ 같은 책도 특유의 시대정신 때문에 재미있게 읽었지만,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도 좋아했습니다. 라벨, 스트라빈스키, 거슈윈, 쇤베르크, 슈트라우스 등 개성 있는 사조를 창출해 내는 음악 예술가들이 등장하는 근현대사, 인류문화사에서 그 개개인이 빛을 발하는 시대이기에, 음악을 하는 저로서는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그를 존재하게 하는 우리 근현대사의 문학가를 당연히 탐독한다. 홍명희의 ‘임꺽정’뿐 아니라 채만식의 ‘탁류’를 읽었다. 김유정·이광수를 읽었다. 박경리의 큰 소설 ‘토지’를 가슴 졸이면서 읽었다. “문학엔 경계가 없지요. 중국현대사에 우뚝 서는 루쉰도 좋아합니다.” ●토마스 만 음악소설 ‘파우스트 박사’ 우리에게 ‘마의 산’으로 널리 알려진 토마스 만은 ‘파우스트 박사’라는 불멸의 음악 소설을 써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을 서술한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는 정말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음악철학가 아도르노의 자문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책을 다 읽은 후에야 알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제가 지금까지 읽은, 음악을 글로 표현한 작품 중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것을 꼽으라면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라고 말하겠습니다.” 수많은 철학자·사상가·문학가들이 그의 독서목록에 들어 있다. 니체, 사르트르, 한나 아렌트, 아도르노,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들이다. 괴테, 프루스트, 마르그리트 뒤라스, 슈무엘 아그논 같은 문학가들이다. 독일음악은 기본적으로 철학과 종교에 맞닿아 있다. “‘신약성경’의 네 복음서를 정말 좋아합니다. 문학과 철학을 좋아하지만, 저는 다소 종교적인 것 같아요.”●그를 키워 낸 이강숙의 음악철학 손열음은 ‘순 국산’이었다. 한국에서 공부해 세계에 서는 피아니스트가 됐다. 지금은 더 많은 ‘국산 연주자’가 탄생하고 있지만, 손열음은 서울도 아닌 저 원주에서 공부해 국제무대에 당당히 서고 있다. 이런 손열음의 뒤에는 이강숙이라는 걸출한 음악교육가가 있었다. 2015년 손열음이 써낸 음악에세이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에 한예종 이강숙 총장이 ‘축하의 글’을 붙였다. “손열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대진 교수에게서 배웠다. 순 국산이 국제콩쿠르에서 1등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울었다. 손열음을 불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머니를 뵙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아이를 키우셨길래 저를 이렇게 기쁘게 하십니까’라고 물었던 기억도 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강숙 총장은 이 기쁜 마음을 간직하기 위해, 우리 예술교육의 장래를 위해, 손열음을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소설 ‘피아니스트의 탄생’을 썼다. 저 1980년대부터 나는 이강숙 선생을 만났고, 한예종을 준비하는 이야기와 자신의 음악교육철학을 들었다. 그때 나는 세계가 연주·연구하는 우리 음악가 윤이상의 음악이 왜 자기 조국에서는 연주도 안 되고 연구도 안 되느냐면서 베를린으로 갔다. 선생을 뵙고 선생의 음반을 펴내려 했다. 그때 한 신문사는 선생의 귀국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국의 불허로 음반도 음악회도 성사되지 못했지만, 나는 이강숙 선생과 함께 음악회에 즈음한 ‘윤이상 귀국’을 의논하기도 했다. 이강숙은 손열음에게 ‘영웅’이다. 그의 예술영혼에 언제나 살아 있다. 그와의 만남은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선생님은 우리 모두를 등에 짊어지고 견인해 주신 프로메테우스 같은 영웅에 비견해야 할 것 같아요. 어렸을 적 매일매일 역사책을 붙들고 다니던 때는 잘 몰랐는데, 때때로 세상은 한 사람에 의해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는 것, 그분이 안 계셨더라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문화계는, 그리고 나는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세계를 누비는 피아니스트의 뒤에는 역시 어머니가 있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던 어머니의 ‘가르치는 일’을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했던 딸 손열음을 사랑과 이성으로 키워 낸 최현숙 선생이다. “어릴 적 열음이가 하는 일은 딱 두 가지, 책 읽기와 피아노 치기였습니다.” 손열음도 말했다. “원주에서 레슨을 받으러 서울로 다니는 차 안에서도 책 없이는 살 수 없었다”고. 그런 독서의 덕택이었을까. 그는 빼어난 글쓰기의 ‘작가’가 됐다. “어린 시절 제가 책에서 받은 선물들을 돌려드릴 마음으로 설렌다”고 ‘음악 편지’ 머리말에 쓰고 있다. 손열음은 참 의미 깊은 이야기도 한다. “제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면 음악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처럼 경쟁적인 대도시, 뭐라도 빨리빨리 해야 하는 속도의 사회에서 음악이 과연 가능할까. 제가 어렸을 때 책을 덜 읽었다면 30분, 40분 소요되는 클래식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젊은 감독 2018년 32세의 젊은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정명화·정경화 자매가 이끌던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을 이어받는다. 그의 고향 강원도가 그를 선택했다. 평창대관령음악제는 손열음의 젊은 예술정신으로 새로워지고 있다. “원주와 강원도는 저의 근원입니다. 고향의 산과 들, 나무와 숲과 꽃이 저의 가슴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고향을 위해 일할 수 있어 저는 행복합니다.”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강릉 외삼촌 댁에 놀러 갈 적에 넘어야 했던 그 대관령이었다. 그는 이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세계 속의 음악제’로 만들고 싶다. 고향의 산하에서, 고향의 숲에서 펼쳐지는 음악제를 위해 헌신하는 손열음이 아름답다. “평창대관령을 스위스의 베르비에 페스티벌, 루체른 페스티벌 같은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발전시키고 싶어요. 꿈은 그렇게 꿔야지요. 제가 해외 연주를 가면 평창대관령음악제에 와 보고 싶다는 음악 팬들이 많이 늘었다는 걸 알게 돼요.” 2021년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는 윤이상이 연주됐다. 우리 작곡가들의 작품이 더 많이 연주돼야 할 것이다. 우리 연주자들이 더 참여해야 할 것이다. “당연합니다. 윤이상 선생의 곡은 편성이 큰 곡이기 때문에 악기 편성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 작곡가들의 작품이 많이 연주되는 평창대관령음악제가 돼야 합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해 보려 합니다.”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세계에 내놓으려면 내실 있는 프로그램으로 지속돼야 한다. 연륜과 역사가 중요하다. “평창대관령은 음악제를 하기 위한 지형적 조건이 참 좋다고 생각됩니다. 산하가 아름답고, 기본적으로 조용합니다.” 1년에 세계 무대에서 50여회 연주하는 젊은 피아니스트 손열음. ‘논어’를 읽으면서 세계의 음악인들과 호흡을 맞춘다. 열려 있는 클래식 피아니스트. 그는 이미 인기 있는 대중적 스타가 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길을 걷겠다고 한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강단에 서기보다는 연주자로 남고 싶어 한다. “아르헨티나의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1941년생이지만 지금도 힘찬 연주를 해내고 있습니다. 20세기의 남성 연주자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도 80~90대까지 연주했지요. 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깊어지고 더 다양해지는 연주자로 오래오래 남고 싶어요.” 나는 학창 시절부터 책방을 드나들었다. 지인들과 함께 ‘숲속의 책 읽는 마을’의 건설을 모색하고 있다. 1995년부터 북녘땅이 건너다보이는 파주의 통일동산에 예술마을 헤이리를 건설하는 일에 나섰다. 그 한가운데에 책의 집, 책을 위해 존재하는 ‘북하우스’를 지어 개관했다. 책방이 그 중심공간이고, 전시와 공연이 함께 펼쳐진다. 나는 헤이리의 북하우스 프로그램에 이어 숲과 산악의 땅 강원도를 주목하고 있다. 평창과 대관령의 고원지대 숲속 어딘가에 책방을 개설한다면, 이 책방을 평창대관령음악제와 연계한다면 어떨까. 이름하여 ‘손열음 책방’이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책 읽는 소리, 깊은 밤 적막강산의 책방을 밝히는 달빛과 별빛. 작은 음악회와 시 낭독회가 열린다. 작은 미술 전시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좋아요. 저도 그런 거 하고 싶어요.” 책과 음악이 하나 되는 작은 책방, 도시문명에 지친 우리들의 영혼을 위무하는 힐링공간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나는 저 숲으로 울창한 강원도의 고원지대에 ‘손열음 책방’을 친구들과 손잡고 개설해 보고 싶다. 인문예술의 장르와 공간의 확장운동이다. “생각만 해도 신명나는 일입니다. 우리 함께해 봐요.” 한길사·한길책박물관 대표
  • 종로거리 그 약국 그 약사님, 27년째 모교 기부

    종로거리 그 약국 그 약사님, 27년째 모교 기부

    숙명여대는 정영자 종오기획 대표가 발전기금 10억원을 기부했다고 21일 밝혔다. 숙명여대 약학과를 졸업한 정 대표가 지금까지 모교에 기부한 금액은 총 25억원에 달한다. 정 대표는 1965년 대학 졸업 후 서울 종로5가에 종오약국을 열고 2014년까지 50여년간 운영했다. 정 대표는 1995년부터 해마다 숙명여대에 발전기금을 기부해 왔다. 학교 측은 2001년과 2011년 약학대학 내 정영자강의실(201호), 정영자우수약물실습실(301호)을 마련해 정 대표의 뜻을 기리고 있다. 전북 김제 출신인 정 대표는 이날 “시골에서 서울로 와서 공부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숙명여대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기부를 해 왔다”면서 “모교뿐 아니라 주변에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출신 고교인 김제여고에도 해마다 수백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다양한 사회 기부를 해 왔다. 2015년 정부로부터 ‘국민추천 포상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정 대표는 “앞으로도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꾸준히 기부를 이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 종로거리 그 약국 그 약사님, 27년째 모교 기부

    종로거리 그 약국 그 약사님, 27년째 모교 기부

    정영자 종오기획 대표, 숙명여대 10억 기부숙명여대는 정영자(사진) 종오기획 대표가 발전기금 10억원을 기부했다고 21일 밝혔다. 숙명여대 약학과를 졸업한 정 대표가 지금까지 모교에 기부한 금액은 총 25억원에 달한다. 정 대표는 1965년 대학 졸업 후 서울 종로5가에 종오약국을 열고 2014년까지 50여년간 운영했다. 정 대표는 1995년부터 해마다 숙명여대에 발전기금을 기부해 왔다. 학교 측은 2001년과 2011년 약학대학 내 정영자강의실(201호), 정영자우수약물실습실(301호)을 마련해 정 대표의 뜻을 기리고 있다. 전북 김제 출신인 정 대표는 이날 “시골에서 서울로 와서 공부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숙명여대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기부를 해 왔다”면서 “모교뿐 아니라 주변에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출신 고교인 김제여고에도 해마다 수백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다양한 사회 기부를 해 왔다. 2015년 정부로부터 ‘국민추천 포상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정 대표는 “앞으로도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꾸준히 기부를 이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 암매장된 ‘실미도 부대’ 공작원…진화위 “유해 발굴” 권고

    암매장된 ‘실미도 부대’ 공작원…진화위 “유해 발굴” 권고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21일 ‘실미도 부대 공작원 유해 암매장’ 사건과 관련해 국방부가 매장지 조사와 함께 유해 발굴을 지속하라고 권고했다. 공군이 1972년 3월 실미도 부대 공작원 4명을 사형한 뒤 시신을 임의로 매장한 사건과 관련해 진화위는 이들이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가족 관계와 주소 등을 진술했는데도 당시 공군은 사형 집행 사실을 가족 등에게 통지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행 집행 이후에도 시신을 가족에게 인도하지 않고 암매장했다. 진화위는 공군이 이들을 암매장한 곳으로 서울시립승화원 벽제리 묘지를 유력하게 꼽고 있다. 실미도 부대는 중앙정보부와 공군이 1968년 북한 침투 작전을 목표로 창설한 부대다. 3년 넘게 군사훈련을 받은 공작원 22명은 1971년 공군 기간 요원들을 살해한 뒤 탈출해 서울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공작원 18명이 숨졌다. 살아남은 4명은 사형을 선고받았다.진화위는 “불법행위이자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인한 중대한 인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진화위는 또 1980년 군사법원 부당판결 사건에 대해서도 국가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비상상고 등의 절차로 위법한 판결을 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 사건은 1978년 10월 강원 철원군 소재의 일반전초(GOP) 지역에서 우리 장병 3명을 사살하고 도주한 북한 무장 간첩들을 추적하던 중 적에 대한 공격을 기피했다는 혐의로 군법회의(현 군사법원)에 회부된 병사가 유죄를 선고받은 일이다. 당시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지만 고등군법회의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해당 병사는 1979년 10월 27일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다시 상고하지 못해 유죄가 확정됐다.
  • [이연실의 Book 받치는 삶] 내 가슴속 제주 어멍, 잘 갑서양/출판사 이야기장수 대표

    [이연실의 Book 받치는 삶] 내 가슴속 제주 어멍, 잘 갑서양/출판사 이야기장수 대표

    지난 12일 현영자 여사가 제주 서귀포에서 91세로 별세했다. 현 여사는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어머니다. 나는 ‘영초언니’라는 책을 만들다 현 여사를 알게 됐다. 책을 만들다 보면 놀랍고 감동적인 책 속의 어머니들을 만나게 된다. 내 가슴속엔 내 몸을 낳아 준 것은 아니나 내 영혼을 길러 준 수많은 어머니들이 살아간다. 현 여사는 그중에서 단연 내게 특별한 ‘어멍’이었다. 현 여사는 노점상에서 시작해 강인한 생활력으로 제주 시장통에서 40여년간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다. 그 가게의 이름은 ‘서명숙상회’다. 딸이라면 이름도 아무렇게나 지어 버리던 시대, 누구 아내, 누구 엄마로 쉽사리 여자의 이름이 지워지던 시대, 현 여사는 1959년에 딸의 풀네임을 간판에 내걸고 세상 사람들이 수천수만 번씩 부르게 했다. 딸 명숙에게 “독신으로 살아라. 똑똑하고 잘 배운 여자는 좋은 직업을 가지게 되니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 남자에게 의지하지 말아라”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했다 하니, 일찌감치 생각이 깬 여성이었다. 어멍이 금이야 옥이야 길러 낸 딸 명숙은 공부도 잘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다. 그리고 교사가 되기 위해 제주의 모교로 교생 실습을 나가기 바로 전날 돌연 동네 형사들이 마당에 들이닥친다. 명숙이를 서울에 잠깐 데리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서슬 퍼런 긴급조치 시대였다. 형사들은 그저 선배 일로 잠시 물어볼 것이 있다며 안심시켰으나, ‘월요일 출근 전에 돌아오려면 배를 타고 갈 수도 없고 어쩐다’ 하고 뜸들이며 현 여사에게 왕복 비행기삯까지 뜯어 갔다. 훗날 현 여사는 “내 딸 끌고 가는 놈들 비행기삯까지 내준 멍청한 에미가 됐다”며 수없이 가슴을 쳤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딸은 돌아오지 않았고, 서명숙상회 주인은 장사를 작파하고 딸을 찾으러 서울로 날아갔다. 울며불며 서울 바닥을 헤매고 다녔으나, 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딸 명숙이 어멍을 다시 만난 것은 법정에서였다. 여대생 서명숙이 꼿꼿이 “박정희는 독재자다”라고 입을 떼는 순간 어멍은 절규했다. “맹숙아, 겅 곧지 말라게. 빨리 판사님한티 잘못했댄, 다시는 겅허지 않으켄 싹싹 빌라게.” 아주 나중에야 명숙은 어멍에게 물었다. 그때 왜 빌라고 했느냐고. 정말 딸이 잘못했다 생각했느냐고. 어멍은 말했다. “살아야 하니까. 살려야 하니까. 일단 어떻게든 살려서 데리고 나와야 하니까.” 먹고사느라 뼈 빠지게 일만 한 어머니라고 세상의 더러움을 모르겠는가. 딸 잡아다 무지막지하게 가둔 사람들에게 침이라도 뱉어 주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어머니는 딸에게 빌라고 절규했다. 물론 딸들은 엄마의 가장 애절한 소원은 잘 들어 주지 않는 법. 대학생 서명숙은 어머니의 절규 속에서도 소신대로 꼿꼿하게 준비한 최후진술을 마쳤다. 당시 운동권 대학생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 ‘영초언니’와 함께 독재권력에 맞서 싸웠던 서명숙은 그렇게 감옥으로 갔다. 서명숙 이사장은 지금 긴급조치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승소하는 모습을 어머니께 간절히 보여 드리고 싶었건만, 왜 언제나 국가의 사죄와 배상은 꼭 이렇게 한발 늦는 것일까. 지금도 책을 열면 영자 어멍이 “멍청한 에미”라며 가슴을 치고, 길도 모르는 서울 바닥에서 “맹숙아, 맹숙아” 외치며 딸을 찾아 헤매는데. 나는 기다린다. 하늘에서나마 영자 어멍이 이 나라가 사죄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기를. 그리하여 이승에서 멍 들도록 치셨던 가슴, 하늘에선 가만히 쓸어내리실 수 있기를. 현영자 여사의 명복을 빈다.
  • 서울까지 보폭 넓힌 ‘양구 시티투어’

    서울까지 보폭 넓힌 ‘양구 시티투어’

    강원 양구군은 수도권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서울에서 출발해 양구 관광지를 도는 광역시티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14일 밝혔다. 프로그램은 평화의길 두타연 트레킹 코스와 펀치볼 둘레길 트레킹 코스로 나뉜다. 두타연 코스는 서울시청역 3번 출구에서 두타연으로 이동해 트레킹을 가진 뒤 요가체험과 중앙시장 방문을 거쳐 다시 서울로 복귀하는 일정으로 짜여 있다. 두타연은 6·25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민간인의 발길이 닿지 않아 원시 자연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펀치볼 코스도 서울시청역 3번 출구를 기·종점으로 하고, 방문지는 펀치볼둘레길, 해안야생화공원, 중앙시장 등이다. 펀치볼둘레길에서는 숲해설사로부터 양구의 역사와 주민들의 애환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트레킹을 할 수 있다. 두타연 코스는 이달부터 12월, 펀치볼둘레길 코스는 이달부터 내년 6월까지 각각 19회씩 운영된다. 1회당 참가 인원은 20~35명이고, 이동 수단은 전용버스다. 조인선 군 관광정책팀장은 “양구를 다녀간 관광객이 다음에도 다시 찾고, 입소문도 낼 수 있도록 매력적인 관광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특파원 칼럼] 옌볜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류지영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옌볜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류지영 베이징 특파원

    1989년 3월 소설가 황석영은 북한의 초청으로 평양 땅을 밟았다. 남한 작가로는 처음으로 김일성 주석을 만난 그는 방북 뒤 바로 귀국하지 않고 해외에 머물며 네 차례 더 평양을 찾았다. 1993년 4월 서울로 돌아와 재판을 받고 5년간 옥살이를 했는데, 이때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제목의 방북기를 펴냈다. 황 작가는 “북한에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북한에는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어 ‘남조선 적화’만 노리는 이들만 모여 있다”고 교육받던 때였다. 그런 한국 사회에 ‘우리와 같은 말을 쓰고 동일한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는 주장은 큰 충격을 줬다. 이 책은 우리가 북한을 인식할 때 ‘독재 정권’과 ‘일반 주민’을 구분해서 판단할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을 줬다.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옌볜주)가 지난 3일로 창설 70주년을 맞았다. 기자는 조선족의 명절인 9·3제(자치주 설립 기념일)를 살펴보려고 옌볜주를 찾았다. 주도(州都)인 옌지는 ‘조선족의 서울’이라는 별명답게 많은 것이 우리나라와 닮아 있었다. 가게마다 한국 가수들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20대 여성들의 옷차림도 차이가 없었다. 완다그룹이 조성한 한류타운 ‘서울거리’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만큼 세련되진 않았지만 조선족이 사는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옌볜주는 북한·러시아와 맞닿은 안보 요충지여서 한국 특파원이 방문하면 현지 공안의 밀착 감시를 받는데, 기자를 따라다니던 이들도 조선족이었다. 잠깐이지만 “옌지 음식점 가운데 어디가 맛있냐” 등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한국에서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고 있다. 2016년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베이징이 한한령(한류 제한령) 등으로 보복해 중국에 대한 반감이 확산된 것이 결정적이다. ‘오원춘 사건’ 등 일부 조선족의 흉악 범죄에 더해 영화 ‘청년경찰’과 ‘범죄도시’, ‘황해’ 등에서 잔인하고 흉악한 존재로 묘사한 것도 영향을 줬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으로 간 조선족과 달리 우리나라로 온 이들 대부분이 단순 노무직에 종사하는 것도 지금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 온 교포들이 국내에서 건강보험 ‘먹튀’나 마약 복용, 성범죄 등 논란을 일으키는 것을 두고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면 조선족에 대해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91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으로 미국 교민들이 큰 피해를 입는 걸 우리는 경험했다. 당시 미국 주류 언론이 한국인을 ‘흑인 차별의 주범’으로 몰아가 어려움이 더 컸다. 재미교포를 비하하는 ‘블랙 코리아’라는 노래가 나왔고 한국인을 ‘돈밖에 모르는 존재’쯤으로 묘사하는 영화도 만들어졌다. 그런 아픔을 겪은 우리는 30년 전 미국인들이 저지른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조선족을 좀더 이성적이고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들과의 공존은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레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되 함께 사는 사회에서 약속(법률과 규칙)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조선족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난 이들의 후손이자 미래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글로벌 한민족 네트워크’의 일원이다. 국익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꼭 조선족을 끌어안아야 한다.
  • 책을 사는 것, 읽을 시간도 사는 것…책과 사는 것, 어떻게 사느냐 결정[김언호의 서재탐험]

    책을 사는 것, 읽을 시간도 사는 것…책과 사는 것, 어떻게 사느냐 결정[김언호의 서재탐험]

    ●이른 새벽에 검찰에 연행됐다 1992년 10월 29일 새벽. 네 명의 검찰 수사관이 집으로 밀어닥쳤다. 출판인 장석주는 곧장 서울지검으로 연행돼 갔다. 연세대 마광수 교수가 이미 연행돼 와 있었다. 검찰은 마 교수가 그해 써낸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를 ‘음란물’로 규정했다. 검찰권력은 마 교수와 책을 펴낸 청하출판사 장석주 대표를 ‘음란문서 제조 및 반포’ 혐의로 몰아 그날 저녁 8시에 전격 구속했다. 두 사람은 포토라인에 세워졌고 언론들은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그날 밤 텔레비전 9시 뉴스는 두 문화인의 구속을 난리가 난 듯이 보도해댔다. 검찰은 작가와 출판인을 이미 6개월 전부터 수사하고 있었다. 국무총리 현승종은 “어찌 이런 야한 내용이 공공연하게 출판될 수 있느냐”면서 화를 냈다는 것이었다. 뒷날 검찰총장이 되는 김진태가 담당 검사였고, 이건개가 서울지검 검사장이었다. 두 ‘공범’은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찬 채 끌려다니다가 두 달 만에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풀려났다. 진보적인 이념으로 민주화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1980년대에 마 교수는 단독자로 성(性)담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청하출판사에서 이미 ‘상징시학’, ‘심리주의 비평의 이해’, ‘마광수 문학론집’을 펴냈다. “그는 독특한 유형의 천재였습니다. 솔직하고 유쾌한 성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검찰권력이 들이댄 문학의 잣대는 그 작가와 그 출판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사건이 됐다. 마 교수는 재직하던 연세대로부터 추방당했다. 법정 싸움을 통해 해직과 복직을 반복해야 했다. 결국 2017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심약하고 고립된 예술가에게 이 사회는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한 문학가를 우리 사회 전체가 공모해서 죽인 것입니다. 빈센트 반고흐의 자살도 ‘사회적 타살’이라고 하듯이, 마 선생의 죽음도 자살의 형식을 빌렸지만 우리 사회가 타살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를 ‘변태’라고 몰아세워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출판인 장석주에게도 ‘즐거운 사라’ 사건은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그해 12월 30일 ‘석방’됐지만, 1993년 1월 3일 새해를 맞아 서귀포로 가서 한 달을 머물며 고민했다. 결국 출판을 접기로 했다. 청담동의 사옥과 대치동의 집을 팔고 출판사를 정리했다. 1억원이 남았다. 의왕시로 가서 30평형 아파트를 세 얻었다. 책 만들기 13년 만이었다. 나름 개성 있는 책들을 기획해 냈다. 베스트셀러를 여럿 펴냈다. 서정윤의 시집 ‘홀로서기’(1987)는 200만 부의 슈퍼셀러였다. 몇만 권씩 읽히는 ‘니체전집’ 10권도 여느 출판사가 펴내지 못하는 기획이었다. 장 그르니에 선집을 펴냈고 인문과학시리즈 ‘청하신서’를 펴냈다. 1979년 고려원에 입사해 3년 동안 편집자로 일하다가 1982년 청하출판사를 창립해 500종 이상을 출간했다. 책에 대한 장석주의 헌신은 개성 있는 출판사 청하의 이미지를 출판계에 각인시켰다. “출판사명 ‘청하’(淸河)는 아들의 이름이었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 책을 만들자는 소박한 생각을 했습니다.”●정독도서관, 청소년 시절의 책 읽기 그가 펴낸 책들과 작가들이 그를 말한다.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32세에 자살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독일 시인 파울 첼란도 센강에 투신자살한다.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의 ‘태양의 돌’과 프랑스의 시인 프랑시스 퐁주의 ‘사물시편’이 그의 정신의 한 내면일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를 성찰하는 실존의 문제가 그의 가슴에 내재하고 있지 않았을까. 이 땅의 젊은이들이 온몸으로 온정신으로 책 읽고 행동하는 시대, 그 혁명적 정조(情調)의 시대에 출판인 장석주의 책 만들기는 인간의 본성탐구 그것이었을 것이다. 1955년 충남 논산의 농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장석주는 10세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 왔다. 아버지는 가난한 목수였다. 서울에서 장석주가 만난 책의 세계는 ‘문화충격’ 그것이었다. 책은 무한의 총체였다. 학급문고와 친구들과 형들이 읽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독서가 장석주의 탄생이었다. “청운중학교 시절, 친구 집에서 빌려 온 오영수 전집을 단숨에 읽고는 제 안의 노스탤지어가 폭발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김소월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학원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수업보다 정독도서관에서의 책 읽기가 그의 모든 것이었다. 1970년대 박정희의 권위주의 권력은 학교를 병영화시켰다. 그는 책의 세계로 도피했다. 저항의 몸짓 같은 것이었다. 정독도서관은 독서로 구현되는 피안의 세계였다. 황순원·김동리·손창섭·이제하·김승옥·이청준·박태순·이문구·박상륭·황석영·최인호 같은 한국소설가들, 고은·김종삼·김수영·김지하·황동규·신경림·김영태 같은 한국시인들, 카프카·카뮈·헤세·헤밍웨이 같은 국외 소설가들, 니체·바슐라르·사르트르·프로이트·융 같은 철학가와 사상가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 미술사·성서고고학을 탐독했다. 노트했다. 정독도서관 시절의 이 노트들과 습작들이 1979년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시와 평론의 기초가 됐다. “저는 정독도서관에서 동과 서, 어제와 오늘의 책들을 두루 찾아 읽으면서 청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깨 너머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던 정독도서관 열람실에서의 책 읽기는 잊을 수 없는 세월이었습니다. 희망 없는 내일과 궁핍이 의식을 옥죄었지만, 날마다 책 읽는 것으로 그 고통을 견디어 냈습니다.” 그토록 책 읽기에 매달린 것은 책이 그를 새로운 의미의 존재로 이끄는 충만한 세계이기 때문이었다. “책은 심오한 통찰로 이루어진 위대함, 무한한 사유와 창조를 이끄는 촉매제였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주 샛길로 빠져 엉뚱한 영역에서 헤맸지만, 그 자체가 경이로웠습니다. 그 일탈의 경험은 또 다른 사유와 무한한 형태의 창조적 진화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지요. 책의 권능이었지요. 저는 독서를 즐거움의 수단으로 삼았지만, 이 즐거움이야말로 제 안의 ‘혁명’이자 ‘결단’이었습니다.” 20대 초반에 그가 읽은 다양한 문학이론서들. 프랑스의 가스통 바슐라르의 책들, 김우창과 김현의 비평서들이었다. 문학의 내재적 가치에 눈뜨고 나름의 방법론을 세웠다. 문학비평으로 가는 길이었다. 책 읽기는 그의 삶의 대안이었고, 사유의 모든 것이었다. 책 읽기로 시인이 됐고, 평론가가 됐고, 저술가가 됐다. “시와 철학은 오성(吾性)을 향하는 길에서 방법론적 차이를 가질 뿐 한 혈통입니다. 시는 상상력을, 철학은 사유를 방법론적 매개로 삼습니다. 시는 자명함을 배제함으로써 자명함에 닿고, 철학은 의미를 배제함으로써 의미에 닿습니다. 철학은 상식·대화·지혜 너머로 나아가려는 사유 속에서 뜨겁게 달아올라 빛을 내는 행위입니다.”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장석주에게 가장 진실한 명제일 것이다. 읽음으로써 그는 현실 속에서 실체를 구현해 내는 것이었다. 독서가 장석주! ●니체와의 만남 “제 인생 철학책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생각하고 생각했습니다. 니체의 철학은 벼락처럼 제 머리에 꽂혔습니다. 니체의 책들이 굶주린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는 인식욕을 채워 주는 한편 제 절박한 내적 필요에 응답했습니다. 20대 때 저는 광대의 역할을 떨치고 일어나 사자의 심장을 갖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니체는 제게 속삭였습니다. ‘나는 너의 미로다’라고. 저는 굶주린 자가 젖과 꿀에 탐닉하듯이 니체 철학의 정수를 정신없이 들이켜며 철학이 건네주는 황홀과 도취 속에서, 부정의 정신에서 긍정의 정신으로 돌아섰습니다. 어느 순간 삶에 얽힌 매듭들이 주르륵 풀렸습니다. 더는 삶을 버거워하며 우울감에 빠지거나 주눅들지 않았습니다.” 장석주가 그동안 읽고 모은 책들이 3만 권이 된다. 온갖 책들의 섭렵이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시집이 물경 5000권이나 된다. 소설이 수천 권이 될 것이다. 문학이론·인문서·예술서들이 또 얼마나 될까. 이렇게 다양한 책들을, 때로는 여러 번씩 읽다 보니 100권이 더 되는 책을 저술해 냈다. 장석주는 자신을 ‘산책자’ 겸 ‘문장노동자’라고 칭한다. 사람들은 그를 ‘인문학 저술가’라고도 부른다. 책의 내용을 널리 알리고 책 읽기를 권하는 ‘독서교사’가 됐다. 세상의 친구들에게 책의 가치를, 독서의 즐거움을 알리는 작업이란, 책과 책 읽기를 사랑하고 스스로 출판해 낸 그에게는 운명 같은 일이다. 그가 북리뷰해서 써낸 책들이 열 권을 넘어서고 있다. 젊은 친구들에게 책의 가치와 즐거움을 이야기해 주는 일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행복하다. 그가 써낸 책들이 우리 현대문예사의 한 장르가 돼 가고 있다. 첫 시집 ‘햇빛사냥’으로부터 가장 최근의 시집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등 18권의 시집을 냈다. 문학을 통해 본 현대한국의 사회문화사인 ‘20세기 한국문학의 탐구’(전 5권), ‘일상의 인문학’, ‘이상과 모던뽀이들’, 이광수에서 배수아까지의 작가론인 ‘나는 문학이다’, ‘풍경의 탄생: 한국시의 이미지 계보학을 위해’, 동양철학에서 우리 시를 읽는 ‘상처 입은 용들의 노래’, ‘은유의 힘’ 등이 그것이다. ‘한 완전주의자의 책읽기’가 기억에 남는 한 권의 책이다. ●생의 고비마다 책이 있었다 보르헤스는 말했다. “쟁기와 칼은 손의 확장이다. 그러나 책은 그 이상이다. 책은 기억의 확장이다”라고. 한두 권의 책이 아니라, 수많은 책들 속에서, 그 책들의 내면을 탐험하면서 그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낸다. “살아온 인생을 되짚어 보면 항상 중요한 국면마다 책이 있었습니다. 아직 뼈가 약하고 살이 연할 때 저를 키우고 단련한 것도 책이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해 스스로 낙오자가 되어 시골로 내려와 쓸쓸한 살림을 꾸릴 때, 힘과 용기를 준 것도 책이었습니다. 평생을 책과 벗하며 살아왔으니, 제가 읽은 책들이 곧 내 우주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 안에 다정함이나 너그러움, 취향의 깨끗함, 투명한 미적 감수성, 올곧은 일에 늠름할 수 있는 용기가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모두 책에서 얻은 것입니다.” 독서가 장석주의 시 ‘대추 한 알’이 교과서에 실려 있다. 수많은 책들이 합창하면서 창출해 내는 그의 정신의 한 풍경일 것이다. “저는 늘 책을 삽니다. 책을 사들일 때 책을 읽을 시간도 함께 사는 것입니다. 책을 읽고 싶다면 서점에 나가 책을 사십시오. 그래야 비로소 책을 읽을 시간도 얻습니다.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길사·한길책박물관 대표
  • 안심전환대출 신청 D-4, 집값 4억 넘는 차주 선택지는?

    안심전환대출 신청 D-4, 집값 4억 넘는 차주 선택지는?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장기·고정금리로 바꿔주는 ‘안심전환대출’ 신청 시작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금리 상승기에 늘어나는 차주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나온 상품으로 주택가격과 소득 등 신청 요건을 충족한다면 신청 날짜를 한 번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택금융공사(주금공)는 오는 15일부터 안심전환대출에 대한 신청과 접수를 시작한다. 안심전환대출은 1·2금융권에서 반은 변동·혼합금리형 주택담보대출을 공사의 장기·고정금리 정책모기지로 바꿔주는 상품이다. ▲집값 4억원·연봉 7000만원 이하 안심전환대출을 이용하려면 주택가격이 신청일 기준 KB시세, 한국부동산원 시세로 4억원 이하여야 한다. 시세가 없으면 공시가격을 활용한다. 부부합산 소득은 연 7000만원 이하여야 하는데 미혼인 경우 본인의 소득이 연 7000만원 이하면 가능하다. 소득을 산정하는 방법은 최근 3개월 건강보험료 납부 확인서나 지난해 소득금액증명원 등으로 최근 1년 소득을 산정하게 된다. 1주택자만 신청할 수 있는데, 분양권과 입주권도 주택수에 포함된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기존 대출의 잔액 범위 내에서 최대 2억 5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한데, 단 주택담보인정비율(LTV) 70%, 총부채상환비율(DTI) 70%를 초과할 수 없다. 금리 수준은 만기(10~30년)에 따라 연 3.80~4.00% 수준으로 결정됐다. 소득이 연 6000만원 이하인 만 39세 이하 청년층은 이보다 0.1% 포인트 낮은 연 3.70~3.90%의 금리를 적용받는다.▲주택 3억원 이하부터 5부제 실시 기존 대출이 6대 은행(국민·기업·농협·신한·우리·하나) 대출인 경우 해당은행 창구나 온라인으로 신청해야 한다. 그 외 은행이나 2금융권 대출이라면 주금공 홈페이지나 스마트주택금융 애플리케이션에서 신청 가능하다. 기존 대출이 여러 금융기관에 걸쳐있을 경우 대환 예정 대출 중 첫 번째 대출 금융기관을 기준으로 신청·접수처가 결정되니 확인해야 한다. 신청할 땐 공동인증서나 금융인증서가 있어야 하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 신청은 우선 주택가격이 3억원 이하인 차주와 4억원 이하인 차주로 나뉘는데, 1회차에 접수된 총 신청금액이 계획된 공급금액(25조원 상당)을 초과할 경우 2회차 신청이 아예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우선 오는 15일부터 신청이 시작되는 건 주택가격이 3억원 이하인 차주부터다. 목요일인 15일에는 출생년도 끝자리가 4와 9인 경우, 16일(금)은 5와 0, 19일(월)은 1과 6, 20일(화)는 2와 7, 21일(수)은 3과 8인 경우 신청할 수 있다. 22일(목)부터 28일(수)까지는 다시 같은 순서로 신청을 받게 되니 신청을 놓친 차주들은 날짜를 다시 확인한 후 신청할 수 있다. 주택가격이 3억원 이하인 차주는 1회차에 신청이 마감될 수 있으므로 제 날짜에 신청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주택가격이 4억 이하인 차주는 다음달 6일부터 13일까지 신청을 받는다. 주금공으로 신청할 때는 당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신청이 가능하다.▲집값 4억원 넘는 차주는? 안심전환대출 신청자가 공급 규모에 미치지 못할 경우 신청 대상이 확대될 수 있다. 1·2회차까지 접수된 신청 금액이 공급금액에 미달할 경우 4억원 초과 주택을 추가 접수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7월 전국의 평균 주택매매 가격은 4억 8776만원으로 서울로 한정하면 9억 1974만원이다. 공급금액을 초과해 신청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 은행권에서 낮은 금리의 주담대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케이뱅크의 경우 지난달 4일 아파트담보대출 고정금리형 혼합금리 상품의 금리를 고객에 따라 연 0.17~0.18% 포인트 낮췄다. 11일 기준 아담대 고정금리는 4.46~4.95%다. 한도는 10억원으로 주택가격에도 제한이 없다. 주담대 변동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자금조달비용지수)가 15일 발표되기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주담대 금리도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보유 중인 주택을 담보로 취급하는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담대 한도를 1억원에서 2억원으로 확대했기 때문에 주택을 보유한 차주의 경우 신용대출보다 낮은 금리를 제공하는 생활안정자금을 받는 게 유리할 수 있다.
  • 역대급 태풍 힌남노 북상에 박형준 부산시장 파리행 취소

    역대급 태풍 힌남노 북상에 박형준 부산시장 파리행 취소

    국제박람회기구(BIE)에 2030부산세계엑스포 유치계획서를 제출하기 위해 파리로 떠나려던 박형준 부산시장이 태풍 힌남노에 대비하기 위해 출장을 취소하고 부산으로 복귀했다. 부산시는 박 시장이 5일 오전 10시 시청으로 복귀한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파리에 있는 BIE에 엑스포 유치계획서를 제출하기 위해 전날 서울로 이동해 출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힌남노가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가운데 위력이 가장 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재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출장 일정을 취소하고 부산으로 방향을 돌렸다. 박 시장은 복귀와 함께 시의 태풍 대응 수위를 최고단계인 ‘비상 3단계’로 격상하고 시 직원 7600명에게 태풍 대비에 전력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엑스포 유치계획서 제출 등 프랑스 현지에서 준비하고 있는 행사는 산업부와 긴밀하게 의논해 대응하기로 했다. 프랑스 현재에는 박 시장을 대신해 신재현 부산시 국제관계대사를 파견했다.
  • 역대급 ‘힌남노’ 북상에…부산시장, 파리行 취소했다

    역대급 ‘힌남노’ 북상에…부산시장, 파리行 취소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북상하면서 큰 피해가 우려되자 5일 오전 2박 4일간의 프랑스 파리 출장계획을 취소하고 부산으로 복귀했다. 박형준 시장은 파리에 있는 국제박람회기구(BIE) 사무국에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계획서를 제출하기 위해 전날 저녁 서울로 이동해 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2030부산세계박람회 개최도시 시장으로서 유치계획서를 직접 제출해 국제박람회기구(BIE) 관계자와 170개국 회원국에 부산시와 부산시민 여러분의 강력한 유치 의지를 적극 알리겠다”라며, 파리 현지에서 화상회의 등을 통해 태풍과 관련한 안전 사항을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태풍으로 부산시에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기간에 부산시장이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해 “태풍 대비 보다 엑스포 유치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거 같다” “시장이 계획서 제출하러 파리에 직접 가야할 이유가 있나” “부산이 태풍에 날아가게 생겼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출장을 취소했다. 박 시장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역대급 위력을 가진 태풍 힌남노가 북상하고 있어 부산을 비울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그러면서 시의 태풍 대응 수위를 비상 최고단계인 ‘비상 3단계’로 선제적으로 격상하고 전체 시 직원 7600여 명이 태풍 대비에 전력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계획서 제출과 파리 현지에서 준비하는 행사가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하고 신재현 부산시 국제관계대사를 파견했다.한편 태풍 힌남노는 5일 오후 9시 강도가 ‘매우 강’인 상태에서 제주 서귀포시 남남서쪽 180㎞ 해상을 지나 6일 오전 9시 강도가 ‘강’인 상태로 부산 북북서쪽 20㎞ 지점에 상륙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상청장은 “이번 태풍 같은 규모와 세기에 있어선 지금 태풍의 경로가 동쪽이냐, 서쪽이냐 하는 논의는 아무 의미가 없다”라며 “경로가 의미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고 경고했다.
  • 역대급 태풍 ‘힌남노’…부산시장, 파리 출장 논란에 ‘취소’(종합)

    역대급 태풍 ‘힌남노’…부산시장, 파리 출장 논란에 ‘취소’(종합)

    “경로가 의미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역대급 세력을 지난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북상하고 있는 가운데 기상청장은 “이번 태풍 같은 규모와 세기에 있어선 지금 태풍의 경로가 동쪽이냐, 서쪽이냐 하는 논의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경고했다. 태풍 힌남노는 5일 오후 9시 강도가 ‘매우 강’인 상태에서 제주 서귀포시 남남서쪽 180㎞ 해상을 지나 6일 오전 9시 강도가 ‘강’인 상태로 부산 북북서쪽 20㎞ 지점에 상륙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가운데 박형준 부산시장이 오는 5일부터 8일까지 2박 4일간의 일정으로 장영진 산업부 1차관, 김윤일 대통령실 미래정책비서관을 비롯한 정부대표단과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를 방문해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계획서를 제출한다고 밝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2030부산세계박람회 개최도시 시장으로서 유치계획서를 직접 제출해 국제박람회기구(BIE) 관계자와 170개국 회원국에 부산시와 부산시민 여러분의 강력한 유치 의지를 적극 알리겠다”라며, “국제박람회기구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한 유치 교섭활동도 쉴 틈 없이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는 일단 시장의 파리 출장 기간에도 부시장 중심으로 태풍에 각별히 대비하고, 박 시장은 필요시 파리 현지에서 화상회의 등을 통해 태풍과 관련한 안전 사항을 직접 챙긴다는 계획이다.파리 출장 논란에 출국 직전 ‘취소’ 사실상 태풍으로 부산시에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기간에 부산시장이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해 “태풍 대비 보다 엑스포 유치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거 같다” “시장이 계획서 제출하러 파리에 직접 가야할 이유가 있나” “부산이 태풍에 날아가게 생겼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등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같은 논란에 박형준 부산시장은 서울로 이동해 출장을 준비하다가 5일 오전 프랑스 파리 출장계획을 취소하고 부산으로 복귀했다. 박 시장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역대급 위력을 가진 태풍 힌남노가  북상하고 있어 부산을 비울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그러면서 시의 태풍 대응 수위를 비상 최고단계인 ‘비상 3단계’로 선제적으로 격상하고 전체 시 직원 7600여 명이 태풍 대비에 전력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계획서 제출과 파리 현지에서 준비하는 행사는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하고 신재현 부산시 국제관계대사를 파견했다. ‘매미’ 위력 넘어서는 태풍 상륙 힌남노는 중심기압 950hPa, 최대풍속 155km/h로 국내에 상륙했던 태풍 중 가장 강했던 1959년 ‘사라(951.5헥토파스칼(hPa)·부산)’와 두 번째로 강했던 2003년 ‘매미(954헥토파스칼(hPa)·통영)’를 넘어선다. 힌남노는 충분히 강해진 상태에서 한반도에 상륙하기 때문에 많은 비뿐 아니라 매우 빠르고 강한 바람까지 동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태풍 강풍반경이 380㎞여서 경기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이 영향권에 들 가능성이 높다. 기상청 관계자는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태풍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기상청장은 인명 피해를 우려하며 “태풍이 지나가는, 길어야 12시간 동안은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모든 대비를 해달라”라며 “안전한 곳에 계시고 위험에 조금이라도 덜 노출이 되셨으면 좋겠다. 그 점은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재차 말했다. 6일 태풍이 근접할 때 제주도와 남해안에는 초속 60m 이상의 관측 사상 가장 강한 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됐다. 초속 10m의 바람이 불면 우산을 들고 있기가 어렵고, 초속 20m가 되면 걷는 것도 힘들어진다. 초속 40m의 바람에는 건장한 남성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걸음도 옮기지 못한다. 초속 60m 정도면 철탑이 골리앗 크레인이 쓰러지거나 콘크리트 건물이 무너질 정도의 위력이다.●폭풍전야 앞둔 부산…모래주머니 벽까지 부산교육청은 힌남노의 직접 영향권에 들어가는 6일 모든 학교에 전면 원격 수업을 시행하기로 했다. 부산시는 태풍 힌남노 북상에 대비해 취약 지역을 비롯한 현장 점검을 벌이는 등 피해 예방에 나섰다. 부산경찰청은 상습 침수하는 지하차도와 마린시티, 민락수변로 등 월파 우려 지역에 대해 사전 점검을 했다. 부산지역 주민과 상가들은 대피 시설로 피신할 준비를 하고 있다. 2016년 ‘차바’ 태풍으로 큰 피해를 봤던 해운대 마린시티 인근 역시 주말 장사를 포기한 채 도로에 모래주머니로 벽을 쌓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다.●역대 태풍의 위력…무사히 지나가기를 2002년 제15호 태풍 루사 때문에는 209명이 사망하고 37명이 실종됐으며 6만3085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재산피해액는 5조1479억 원인데 이는 태풍 재산피해액 역대 1위에 해당한다. 2003년 제14호 태풍 매미 사망자와 실종자는 각각 119명과 12명이다. 이재민은 6만1844명 발생했고 재산피해액은 4조2225억 원이었다. 2004년 제15호 태풍 메기 때문엔 7명이 목숨을 잃었고 4712명이 집을 잃어 이재민이 됐다. 재산피해액은 2500억 원이었다. 2016년 제18호 태풍 차바로 인해선 6명이 사망했고 6714명이 이재민이 됐다. 재산피해는 2150억 원 발생했다. 기상청 분석관은 “이 숫자들 하나하나에 많은 사람의 슬픔과 회한이 담겨 있다”라면서 “힌남노는 정말 강할 것으로 예상되며 강한 바람과 많고 강한 비가 예상되니 슬픔과 회한이 다시 찾아오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 “국가 존망 위기 어찌 몸 아끼랴”…육순 老시인 구국 순절의 칼[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국가 존망 위기 어찌 몸 아끼랴”…육순 老시인 구국 순절의 칼[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고경명은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의 시는 ‘바람을 읊고 이슬을 날리며 은하수를 뛰어넘고 안개를 올라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왜란이 일어나고 왜적이 도성을 점령하자 전라도관찰사 이광은 그에게 의병을 모으기 위한 격문(檄文)을 요청했다. 고경명은 그만큼 대(大)문장가인 동시에 호남을 대표하는 지성이었다. 고경명의 간절하면서 감동적인 격문은 이르는 곳마다 뜻있는 사람들의 궐기를 이끌었다. 60세 노(老)시인은 붓을 쥐던 손에 칼을 잡고 의병장이 됐다. ●간절하고 감동적인 마상격문 ‘임진년 6월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은 삼가 각 도 수령과 백성들과 군인들에게 급히 통고한다. 근자에 국운이 불길하여 섬 오랑캐가 불시에 침입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와 약속한 맹세를 저버리더니 나중에는 통째로 집어삼킬 야망을 품었다. 우리 국방이 튼튼치 못한 틈을 타 기어들어 하늘도 무서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북상하고 있다.…경명은 비록 늙은 선비지만 나라에 몸바치려는 일편단심만은 그대로 남아 있어 밤중에 닭의 소리를 듣고는 번민을 이기지 못하여 강 한복판 배의 노를 치면서 스스로 의로운 절개를 지키려 한다. 한갓 나라를 위하려는 성의만 품었을 뿐, 자기 힘이 너무나 보잘것없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제 의병을 규합하여 곧장 서울로 진군하려 한다.’ 마상격문(馬上檄文)의 한 대목이다. 고경명은 1592년 5월 29일 담양 추성관에서 전라도 21개 지역 61명의 사림 대표가 모인 가운데 전라좌도 의병장에 추대된다. 6월 1일 한양을 향해 출발한 6000명의 호남의병은 전주에 이르렀을 무렵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상황을 판단하고자 훈련을 하며 잠시 머무른다. 고경명이 다시 북상을 시작하면서 6월 24일 지은 것이 마상격문이다. 글자 그대로 ‘말 위에서 지은 격문’이라는 뜻이니 그만큼 급박한 위기상황이었다는 뜻이다. 고경명은 ‘국가존망의 위기에 어찌 감히 하찮은 제 몸만을 아끼려고 하겠느냐’고 마상격문에 적은 그대로 우리가 아는 것처럼 7월 10일 금산 전투에서 왜적을 공격하다 장렬하게 순절한다.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1533~1592)은 전라도 광주 제봉산 아래 압보촌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이다. 이곳에는 고경명과 두 아들 종후와 인후, 종사관 유팽로와 안영을 기리는 포충사(褒忠祠)가 있다. 1601년 세웠고, 1603년 사액됐다. 1865년 대원군의 서원·사우 철폐령에도 장성 필암서원과 함께 살아남았다.포충사는 지금 로제와인색 배롱나무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포충사가 자리잡은 제봉산은 해발고도 165.5m로 높지 않지만 나지막한 곡선이 아름답다. 짐작처럼 제봉이라는 고경명의 아호는 이 고향 마을의 뒷산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고경명의 무덤이 있는 전남 장성 영천리의 오동촌 뒷산 역시 제봉산이다. 장성 제봉산은 고경명의 무덤이 옮겨진 뒤 그를 기려 붙여진 이름이다. 광주 제봉의 정기가 고경명을 낳고 다시 그의 의기가 장성 제봉에 이식된 셈이다. ●“시 가운데 그림이” 明도 인정한 시인 고경명은 26세이던 1558년 식년문과에서 장원급제했다. 성균관 전적에 이어 홍문관 부교리, 부수찬, 교리에 이르는 5년 동안은 평탄하게 승진했다. 하지만 당대 대표적 외척의 한 사람인 이량이 사림의 탄핵으로 실각하는 과정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량의 전횡을 논죄하는 데 참여한 제봉은 관련 정보를 당사자에게 유출했다는 이유로 울산군수로 좌천되곤 곧 파직됐다. 이 사건으로 고경명은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을 조정에서 쓰임을 받지 못했다. 대신 낙향한 제봉은 호남의 문인들과 폭넓게 교유하며 산수를 유람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시인으로 크게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것도 역설적으로 향리에서 한가롭게 머물던 시절이 그만큼 길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봉은 1581년(선조 14) 영암군수로 다시 기용됐다. 곧바로 종계변무주청사 김계휘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서장관(書狀官)이란 외교 문서의 기록을 담당하는 직책이다. 당대 명나라 문신 장응회(莊應會)는 고경명의 시를 두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는 것 같아서 원진(元)·백거이(白居易)·위응물(韋應物)·유우석(劉禹錫)과 비교해 명나라와 조선의 표준을 세울 수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제봉의 시가 명나라에서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고경명은 이후 서산군수와 종부시 첨정, 한산군수, 사복시 첨정, 순창군수 등을 역임하고 1591년 동래부사에 임명됐지만 곧 파직돼 고향으로 돌아갔다. 후임 동래부사 송상현은 이듬해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에 맞서 영웅적으로 수성전(守城戰)을 벌이다 전사한다. 천문에도 조예가 깊었던 제봉은 임진년 초 “올해는 장성(將星)이 분명히 보이지 않으니 장수(將帥)가 이롭지 못하겠다”며 국가의 환란을 예고했다. 장성은 북두칠성의 두 번째 별 천선(天璇)을 가리킨다. 고경명이 추성관 추대 직후 지은 격문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나는 경전의 장구(章句)나 따지는 우활한 선비로 병법에 어두우나 장수를 뽑는 이 자리를 위촉받아 망령되이 대장에 추대되었으니, 이미 흐트러진 사병들 마음을 수습하지 못해 동지들의 수치가 될까 두려워한다. 다만 신하의 의리로 마땅히 국난에 죽어야 하는 것이고, 군대는 의리상 곧은 것을 세다고 여기니 그 수효의 많고 적은 것에 달려 있지 않다.…무릇 우리 도내 사람들은 아비가 아들에게 일러 주고 형이 아우에게 권면하여 의로운 군대를 규합해서 함께 일어나, 용맹스럽게 결단을 내려 선(善)에 따를 것을 바라나니 미혹되어 자신을 그르치지 말게 하라.’신경(1613~1653)의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에는 ‘격문이 이르는 곳마다 사대부들이 감격해 울면서 분연히 궐기했다. 고경명이 개연히 의병장에 올라 늙고 병든 것을 사양치 않으니, 응모하는 자가 날로 모여들었다’고 했다. 고경명은 전라도 의병군의 결성 보고와 함께 왜적을 격퇴하겠다는 출사표를 서해 뱃길로 조정에 전달토록 한다. 의병군은 6월 22일 전주에서 여산으로 진을 옮긴 데 이어 27일 은진으로 북상해 왜적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는데 황간·영동의 왜적이 금산을 점령한 데 이어 장차 곡창 호남의 심장부인 전주를 침범할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한다. 휘하 장수들이 먼저 도내의 적을 토벌한 뒤에 북쪽을 정벌하자고 다투어 청하자 제봉은 당초 계획을 바꾸어 7월 1일 연산으로 군사를 돌린다. 의병은 9일 진산을 거쳐 금산성의 초입에서 전라도방어사 곽영의 관군과 좌·우익으로 진을 편성했다. 당시 금산의 왜군은 전주를 공격하려다 이치에서 황진 장군의 조선군에 크게 패하자 물러나 금산성에 웅크리고 있었다. 선조수정실록은 금산 전투의 전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때 왜적은 금산으로 퇴각하여 진을 두터이 치고 있었다. 경명이 방어사 곽영과 재를 넘어 험한 곳으로 들어가 곧장 금산성 밖에 육박하였는데 곽영이 먼저 날랜 장사 수백 명을 보내어 적을 시험하다가 물러나자 경명이 북을 울리며 전투를 독려하여 도로 적병을 성 밖에서 위축시키고 화포를 쏘아 적이 주둔하던 관사를 불태우니 적이 감히 나오지 못했다.’ 이튿날 동틀 무렵 고경명은 다시 곽영과 군사를 진격시켜 각각 북문과 서문을 공격했다. 왜적이 군사를 총동원해 약해 보이는 관군진영을 공격하니, 관군 선봉장인 영암군수 김성헌이 말을 채찍질해 먼저 도망치자 관군이 크게 패했고 의병도 대오가 무너지며 흩어졌다. 이때 제봉이 말에서 떨어졌는데 말이 달아나 버리자 종사관 안영이 자기 말을 타게 하고는 걸어서 따라갔다. 또 다른 종사관 유팽로는 대장이 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에 말을 채찍질해 어지러운 군사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수정실록은 이들의 최후를 이렇게 적었다. ‘이에 경명이 팽로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나는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그대는 말을 달려 빠져나가라’ 했다. 팽로가 ‘어떻게 차마 대장을 버리고 살기를 구하겠습니까’ 하고는 안영과 함께 경명을 에워싸고 있다가 모두 전사했다. 경명의 둘째아들 인후도 달려가 싸우다가 전사했다’. 큰아들 고종후는 복수군(復讐軍)을 조직해 제2차 진주성전투에 참전해 순절한다. 고경명의 시신은 40일 만에 찾아 금산 산중에 묻었다가 10월 화순 흑토평에 장사지냈고, 1609년 3월 임금이 내린 사패지(賜牌地)인 장성 오동촌 산 아래로 이장했다.
  • 대(大)시인, 붓대신 칼을 들어 국가를 보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대(大)시인, 붓대신 칼을 들어 국가를 보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고경명은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한사람이다. 그의 시는 ‘바람을 읊고 이슬을 날리며 은하수를 뛰어넘고 안개를 올라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왜란이 일어나고 왜적이 도성을 점령하자 전라도관찰사 이광은 그에게 의병을 모으기 위한 격문(檄文)을 요청했다. 고경명은 그만큼 대(大)문장가인 동시에 호남을 대표하는 지성이었다. 고경명의 간절하면서 감동적인 격문은 이르는 곳마다 뜻있는 사람들의 궐기를 이끌었다. 60세 노(老)시인은 붓을 쥐던 손에 칼을 잡고 의병장이 됐다. ‘임진년 6월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은 삼가 각 도 수령과 백성들과 군인들에게 급히 통고한다. 근자에 국운이 불길하여 섬 오랑캐가 불시에 침입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와 약속한 맹세를 저버리더니 나중에는 통째로 집어삼킬 야망을 품었다. 우리 국방이 튼튼치 못한 틈을 타 기어들어 하늘도 무서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북상하고 있다.…경명은 비록 늙은 선비지만 나라에 몸바치려는 일편단심만은 그대로 남아있어 밤중에 닭의 소리를 듣고는 번민을 이기지 못하여 강 한복판 배의 노를 치면서 스스로 의로운 절개를 지키려 한다. 한갓 나라를 위하려는 성의만 품었을 뿐, 자기 힘이 너무나 보잘 것 없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제 의병을 규합하여 곧장 서울로 진군하려 한다’  마상격문(馬上檄文)의 한 대목이다. 고경명은 1592년 5월 29일 담양 추성관에서 전라도 21개 지역 61명의 사림 대표가 모인 가운데 전라좌도 의병장에 추대된다. 6월 1일 한양을 향해 출발한 6000명의 호남의병은 전주에 이르렀을 무렵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상황을 판단하고자 훈련을 하며 잠시 머무른다. 고경명이 다시 북상을 시작하면서 6월 24일 지은 것이 마상격문이다. 글자 그대로 ‘말위에서 지은 격문’이라는 뜻이니 그만큼 급박한 위기상황이었다는 뜻이다. 고경명은 ‘국가존망의 위기에 어찌 감히 하찮은 제 몸만을 아끼려고 하겠느냐’고 마상격문에 적은 그대로 우리가 아는 것처럼 7월 10일 금산 전투에서 왜적을 공격하다 장렬하게 순절한다.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1533~1592)은 전라도 광주 제봉산 아래 압보촌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이다. 이곳에는 고경명과 두 아들 종후와 인후, 종사관 유팽로와 안영을 기리는 포충사(褒忠祠)가 있다. 1601년 세웠고, 1603년 사액됐다. 1865년 대원군의 서원·사우 철폐령에도 장성 필암서원과 함께 살아남았다. 포충사는 지금 로제와인색 배롱나무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포충사가 자리잡은 제봉산은 해발고도 165.5m로 높지 않지만 나지막한 곡선이 아름답다. 짐작처럼 제봉이라는 고경명의 아호는 이 고향마을의 뒷산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고경명의 무덤이 있는 전남 장성 영천리의 오동촌 뒷산 역시 제봉산이다. 장성 제봉산은 고경명의 무덤이 옮겨진 뒤 그를 기려 붙여진 이름이다. 광주 제봉의 정기가 고경명을 낳고 다시 그의 의기가 장성 제봉에 이식된 셈이다.  고경명은 26세이던 1558년 식년문과에서 장원급제했다. 성균관 전적에 이어 홍문관 부교리, 부수찬, 교리에 이르는 5년동안은 평탄하게 승진했다. 하지만 당대 대표적 외척의 한 사람인 이량이 사림의 탄핵으로 실각하는 과정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량의 전횡을 논죄하는 데 참여한 제봉은 관련 정보를 당사자에게 유출했다는 이유로 울산군수로 좌천되곤 곧 파직됐다. 이 사건으로 고경명은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을 조정에서 쓰임을 받지 못했다. 대신 낙향한 제봉은 호남의 문인들과 폭넓게 교유하며 산수를 유람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시인으로 크게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것도 역설적으로 향리에서 한가롭게 머물던 시절이 그만큼 길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봉은 1581년(선조 14) 영암군수로 다시 기용됐다. 곧바로 종계변무주청사 김계휘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서장관(書狀官)이란 외교 문서의 기록을 담당하는 직책이다. 당대 명나라 문신 장응회(莊應會)는 고경명의 시를 두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는 것 같아서 원진(元稹)·백거이(白居易)·위응물(韋應物)·유우석(劉禹錫)과 비교해 명나라와 조선의 표준을 세울 수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제봉의 시가 명나라에서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고경명은 이후 서산군수와 종부시 첨정, 한산군수, 사복시 첨정, 순창군수 등을 역임하고 1591년 동래부사에 임명됐지만 곧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후임 동래부사 송상현은 이듬해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에 맞서 영웅적으로 수성전(守城戰)을 벌이다 전사한다. 천문에도 조예가 깊었던 제봉은 임진년 초 “올해는 장성(將星)이 분명히 보이지 않으니 장수(將帥)가 이롭지 못하겠다”며 국가의 환란을 예고했다고 한다. 장성은 북두칠성의 두번째 별 천선(天璇)을 가리킨다.고경명이 추성관 추대 직후 지은 격문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나는 경전의 장구(章句)나 따지는 우활한 선비로 병법에 어두우나 장수를 뽑는 이 자리를 위촉받아 망령되이 대장에 추대되었으니, 이미 흐트러진 사병들 마음을 수습하지 못해 동지들의 수치가 될까 두려워한다. 다만 신하의 의리로 마땅히 국난에 죽어야 하는 것이고, 군대는 의리상 곧은 것을 세다고 여기니 그 수효의 많고 적은 것에 달려 있지 않다.…무릇 우리 도내 사람들은 아비가 아들에게 일러 주고 형이 아우에게 권면하여 의로운 군대를 규합해서 함께 일어나, 용맹스럽게 결단을 내려 선(善)에 따를 것을 바라나니 미혹되어 자신을 그르치지 말게 하라’  신경(1613~1653)의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에는 ‘격문이 이르는 곳마다 사대부들이 감격해 울면서 분연히 궐기했다. 고경명이 개연히 의병장에 올라 늙고 병든 것을 사양치 않으니, 응모하는 자가 날로 모여들었다’고 했다. 고경명은 전라도 의병군의 결성 보고와 함께 왜적을 격퇴하겠다는 출사표를 서해 뱃길로 조정에 전달토록 한다. 의병군은 6월 22일 전주에서 여산으로 진을 옮긴 데 이어 27일 은진으로 북상해 왜적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는데 황간·영동의 왜적이 금산을 점령한 데 이어 장차 곡창 호남의 심장부인 전주를 침범할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한다. 휘하 장수들이 먼저 도내의 적을 토벌한 뒤에 북쪽을 정벌하자고 다투어 청하자 제봉은 당초 계획을 바꾸어 7월 1일 연산으로 군사를 돌린다. 의병은 9일 진산을 거쳐 금산성의 초입에서 전라도방어사 곽영의 관군과 좌·우익으로 진을 편성했다. 당시 금산의 왜군은 전주를 공격하려다 이치에서 황진 장군의 조선군에 크게 패하자 다시 물러나 금산성에 웅크리고 있었다.  선조수정실록은 금산 전투의 전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때 왜적은 금산으로 퇴각하여 진을 두터이 치고 있었다. 경명이 방어사 곽영과 재를 넘어 험한 곳으로 들어가 곧장 금산성 밖에 육박하였는데 곽영이 먼저 날랜 장사 수백 명을 보내어 적을 시험하다가 물러나자 경명이 북을 울리며 전투를 독려하여 도로 적병을 성 밖에서 위축시키고 화포를 쏘아 적이 주둔하던 관사를 불태우니 적이 감히 나오지 못했다’ 이튿날 동틀 무렵 고경명은 다시 곽영과 군사를 진격시켜 각각 북문과 서문을 공격했다. 왜적이 군사를 총동원해 약해 보이는 관군진영을 공격하니, 관군 선봉장인 영암군수 김성헌이 말을 채찍질해 먼저 도망치자 관군이 크게 패했고 의병도 대오가 무너지며 흩어졌다. 이때 제봉이 말에서 떨어졌는데 말이 달아나 버리자 종사관 안영이 자기 말을 타게 하고는 걸어서 따라갔다. 또다른 종사관 유팽로는 대장이 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에 말을 채찍질해 어지러운 군사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수정실록은 이들의 최후를 이렇게 적었다. ‘이에 경명이 팽로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나는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그대는 말을 달려 빠져나가라’ 했다. 팽로가 ‘어떻게 차마 대장을 버리고 살기를 구하겠습니까’ 하고는 안영과 함께 경명을 에워싸고 있다가 모두 전사했다. 경명의 둘째아들 인후도 달려가 싸우다가 전사했다’. 큰아들 고종후는 복수군(復讐軍)을 조직해 제2차 진주성전투에 참전해 순절한다. 고경명의 시신은 40일만에 찾아 금산 산중에 묻었다가 10월 화순 흑토평에 장사지냈고, 1609년 3월 임금이 내린 사패지(賜牌地)인 장성 오동촌 산 아래로 이장했다.
  • 서울에서 수천억 미술거래 시작… 프리즈·키아프 개막

    서울에서 수천억 미술거래 시작… 프리즈·키아프 개막

    수천억원의 미술 거래가 닷새간 서울에서 이뤄진다. 세계적 아트페어 주관사인 프리즈가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개최하는 ‘프리즈 서울’과 국내 최대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이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했다. 이날은 VIP 티켓 소지자만 입장할 수 있고, 일반 관람은 3일부터 시작한다. 프리즈 서울은 코엑스 3층에서 5일까지, 키아프 서울은 1층에서 6일까지 열린다. 사이먼 폭스 프리즈 최고경영자(CEO)는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여는 프리즈를 서울에서 개최하게 돼 매우 만족한다”며 “서울에는 미술관과 갤러리, 아티스트 등이 많이 있다는 점에서 개최지를 서울로 선택했으며 앞으로 계속 협력 관계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구자열 키아프 조직위원장은 “키아프가 오랫동안 노력해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와 축제를 개최하게 됐다”며 “이번 행사가 한국 문화예술의 큰 발전이 되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프리즈 서울에서는 21개국 갤러리 110곳이 참여해 주요 작가와 동시대 최고 작가들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정상급 갤러리 18곳이 참여하는 ‘프리즈 마스터즈’ 섹션에서는 근현대 미술사의 거장들이 포함돼 미술관 수준의 작품을 선보였다. 세계 최고의 화랑으로 꼽히는 가고시안과 하우즈앤워스는 이번에 처음으로 국내 미술시장에 진출했다. 가고시안은 미국의 2세대 추상표현주의 여성화가 헬렌 프랑켄탈러의 작품 ‘에트루리안 산책’을 부스 외벽에 걸었다. 현재 가장 핫한 작가 중 한 명인 무라카미 다카시의 꽃 연작 6점과 백남준의 2002년작 베이클라이트 로봇도 나란히 선보였다. 하우즈앤워스는 최근 미술시장에서 정상급으로 꼽히는 화가 조지 콘도의 신작을 대표작으로 내세웠다. 이 갤러리는 이번 행사의 최고가(약 600억원) 작품인 파블로 피카소의 ‘방울이 달린 빨간 베레모 여인’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밖에 데이비드위즈너, 에스더쉬퍼, 화이트큐브, 글래드스톤, 페로탕, 타데우스 로팍, 페이스갤러리, 리만머핀 등의 정상급 갤러리가 아그네스 마틴, 루치오 폰타나 등 거장들의 작품과 이불, 서도호 등 세계적 명성을 얻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출품했다.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키아프는 21회째인 올해 처음으로 프리즈와 공동개최하면서 국제행사로 거듭났다. ‘키아프 서울’에는 17개 국가의 갤러리 164곳이 참여했다. 가나아트는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 김구림을, 갤러리현대는 전위예술가 이건용을 각각 대표 작가로 내세워 세계적 수집가들에게 선보였다. 이날 전시장에는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등 국내외 수집가들이 대거 방문했으며 세계 유수 미술관과 갤러리 관계자들도 방문했다. 프리즈는 결산을 공개하진 않지만 출품작들을 토대로 추산해보면 거래 규모가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 특급호텔 숙박·K뷰티 체험…서울시, 글로벌 럭셔리 관광객 유치

    특급호텔 숙박·K뷰티 체험…서울시, 글로벌 럭셔리 관광객 유치

    서울시가 고부가 럭셔리 관광수요를 서울로 유치하기 위해 ‘커넥션스 럭셔리 서울’을 개최한다. 전 세계 해외 바이어들에게 럭셔리 관광지 서울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기획된 첫 글로벌 이벤트다. 시는 세계적인 럭셔리 관광 커뮤니티인 ‘커넥션스 럭셔리(Connections Luxury)’와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오는 4일까지 ‘커넥션스 럭셔리 서울’을 개최한다고 31일 밝혔다. ‘커넥션스 럭셔리’는 유럽 최대의 트래블&호스피틸리티 B2B 미디어 회사인 제이콥 미디어 그룹 산하 커뮤니티다. 영국, 유럽 등에서 글로벌 관광 비즈니스 사업을 제공한다. 시 관계자는 “럭셔리 관광객들의 목적지가 ‘서울’이 될 수 있도록 전 세계적으로 탄탄한 바이어 네트워크를 보유한 ‘커넥션스 럭셔리’와의 파트너십을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커넥션스 럭셔리 서울’은 B2B(기업과 기업 사이에 이루어지는 전자상거래) 트래블마트와 비즈니스 상담, 각종 문화체험 등으로 진행된다. ‘커넥션스 럭셔리’ 회원사 중 특별히 엄선한 17개국 35개 럭셔리 관광 바이어가 이번 행사를 위해 서울을 찾는다. 국내에서도 35개 관광업체가 대거 참여한다. 특히, 포시즌스 서울 호텔,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콘래드 서울 등 서울을 대표하는 특급호텔을 비롯한 관광업계가 대거 참여하기로 하면서 숙박, 만찬, 체험 프로그램이 더욱 풍성하게 채워질 예정이다. 한강 체험 프로그램은 ‘골든블루마리나’, 커넥션스 럭셔리 행사 경험이 많은 럭셔리 여행 전문 컨설팅 회사 ‘트래블 디퍼런트’도 함께 서울의 프리미엄 관광 육성사업에 힘을 모은다. 뷰티, 패션, 미식 등 한류를 선도하는 20여개의 다채로운 체험 콘텐츠도 마련했다. 콘텐츠는 ▲K-뷰티(정샘물 아카데미) ▲보자기체험(이효재) ▲K-디저트(JL디저트) ▲K-한식디저트(주은 레스토랑) ▲아트갤러리 도슨트 투어(정동아트갤러리) ▲전통차 및 로컬 크래프트 진 시음(락고재) ▲명상체험(조계사) ▲전통주(스페이스오) ▲서예(도정 권상호 선생) ▲고궁투어(덕수궁) 등이다. 시는 전례 없는 관광산업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변화하는 관광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사업을 준비해왔다. 최경주 서울시 관광체육국장은 “이번 네트워킹 행사를 통해 럭셔리 바이어와 국내 유수의 셀러가 신뢰할 수 있는 비즈니스 관계를 형성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이를 계기로 고부가 관광을 이끄는 럭셔리 인바운드 관광 목적지로서 서울의 가치가 상승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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