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민족」 예비회담 무산 그 이후
◎「불신의 골」 증폭… 북의 “교류제스처”/이틀째 접촉서도 “수용… 거부” 되풀이/정부전민련 협조,내심 당황한 듯/북,「범민족」 치중… 「고위급」 역풍우려
회담장및 숙소문제등에 꼬투리를 달아 서울행을 거부했던 북한측 대표들이 범민족대회 2차 예비회담 마지막날인 27일에도 남북접촉에서 끝내 입장을 바꾸지 않아 내외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북한당국및 남한의 전민련,그리고 해외동포대표들의 3자간 서울 접촉은 미완성으로 끝나게 됐다.
북한대표단의 서울예비회담 참가여부와 관련,남북쌍방 판문점 연락관은 27일에도 7차례의 직통전화통지문을 교환했으나 이날 하오 1시50분 북측이 전화문을 통해 우리측을 맹렬히 비난함으로써 이날 접촉은 결렬되고 말았다.
한때 북측은 상오 11시24분 전통문을 통해 회담장소등에 관한 자신들의 종전태도를 바꿔 우리측의 안내와 질서에 따르겠다는 의향을 우리측에 전달,『북측 대표단이 정말 오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보다 2시간26분 후인 하오 1시50분에보내온 전통문에서 『남한측이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회담무산은 전적으로 남한당국 때문이며 남한당국은 이에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내용의 강도높은 비난을 퍼부음으로써 북한대표단 입경은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즉,신변안전및 편의제공에 대한 남한당국의 주도권을 인정한 북측의 양보성 제안을 놓고 우리측은 더이상 북측이 입장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16일의 1차 합의사항을 문서(합의각서등) 형식으로 보장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북측이 이를 불쾌하게 받아들인 나머지 거부의 몸짓을 나타낸 것으로 분석된다.
통일원의 고위당국자는 잠시나마 있었던 북측의 태도변경에 대해 『북측 대표단이 예비회담에 참가할 의사가 있었다면 당초 예정일인 26일 진작 서울로 왔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정부로서는 수시로 바뀌는 북측 태도를 감안,문서형식으로 1차 합의사항을 준수하도록 보장받으려 했던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결국 북측은 서울 예비회담에 불참키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대한 명분을 찾기 위해 우리측에 보내는 전통문의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관측된다.
바꿔 말하면 자신들의 대표단이 서울에 내려오지 못한 것은 『남한 당국의 대회 방해책동 때문』이라는 인식을 대내외에 확산시키려는 의도를 북측은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북측은 예비회담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예비회담 무산에 대한 남한당국의 완전한 「책임귀속성」을 대대적으로 선전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측은 2차 예비회담이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고 판단,3차 예비회담을 8ㆍ15전에 평양에서 갖자고 제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통일원측은 분석하고 있다. 범민족대회에 상당한 정치적 체중을 싣고 있는 북측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논리에 입각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3차 예비회담 날짜가 정해져 전민련이 북행하는 현실적인 측면에 부딪힐 경우 북한이 과연 스스럼 없이 받아들일 것이냐는 문제도 의문으로 남는다.
범민족대회를 민족대교류 차원에서 권장하고 있는 정부측의 「각계각층 참여」 제안을 전민련이 수용한데다 전민련측이 이 대회개최에 관한 한 정부측과의 긴밀한 협조를 다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측은 전민련이 자유총연맹등 우리측 58개 우익단체들의 범민족대회 참가를 수용한 것을 두고 『반통일단체가 범민족대회에 참가키로 한 것은 일종의 도전적인 행위』라고 비난,전민련측이 남한정부의 압력과 회유에 굴복했다면서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사정을 검토해 볼때 범민족대회의 8ㆍ15 판문점 개최는 상당히 불투명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남북 접촉에서 자신들에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판단되면 언제나 불응해온 지금까지의 북한측 관행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정부는 남북간 자유왕래와 전면개방원칙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범민족대회의 개최및 2차 서울예비회담을 허용한 마당에 북측이 3차 예비회담의 평양 개최를 제의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부측의 각계각층 참여제의를 수용한 전민련이 계속해서 이같은 자세를 유지해 주기 바랄 뿐이다.
따라서 범민족대회의 성공적 개최여부는 전민련측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민련이만약 평양에서 3차 예비회담이 열릴 경우 여기서 종전의 입장을 바꿔 자신들의 노선과 같은 단체들만이 범민족대회에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어려운 국면을 또다시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정부는 범민족대회 개최와 관련한 현안을 전민련측과 수시로 논의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데,바로 이같은 사실을 의식한 것으로 판단된다.
아무튼 범민족대회의 성사여부는 남북대화에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모든 대남정책을 통일전선전술에서 추진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비록 1차 본회담의 서울개최를 합의했지만 이번 고위급회담 보다는 범민족대회를 오히려 선호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때문에 범민족대회가 자신들의 의도대로 개최되지 못했다고 판단될 경우 북한은 남북 고위급 1차 본회담을 일방적으로 무기 연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6일의 8차 고위급예비회담에서 백남준 북측단장이 『범민족대회에 전민련의 참가가 보장되지 않거나 내외의 복잡성을 야기,대회성사에 지장이 생긴다면 고위급 본회담을 비롯한 모든 남북대화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밝힌 데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잘 나타난다.
결국 김일성이 시정연설에서 밝힌 조국통일 5개 방침중 「전민족적 통일전선형성」이라는 대남 전화노선에 북한이 매달리고 있는 한 남북관계는 상호 불신의 연장선상에서 실질적인 개선조치 없이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