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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와의 전쟁」 이기는 길을 찾는다(질서있는 사회로:6)

    ◎갈수록 잔인ㆍ조직적…「기업형폭력」까지 등장/금품갈취ㆍ공사입찰 등 각종이권 개입/장기간 사회격리등 중벌로 다스려야/일 야쿠샤등 해외조직과 연계,국제화추세 뚜렷 「범죄와의 전쟁」의 승패는 조직폭력배를 얼마나 철저히 소탕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만큼 조직폭력배가 각종 사회악의 온상이 되고 있으며 범죄와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5ㆍ16,12ㆍ12사태 등 정변기의 강력한 소탕으로 한때 거의 꼬리를 감춘듯 했던 조직폭력배들이 최근 몇년사이에 다시 날뛰고 있다. 이미 서울등 대도시 유흥가의 반은 이들 조직폭력배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중소도시까지 검은 손을 뻗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 국내 폭력조직의 3대 「패밀리」로 꼽히고 있는 「OB파」「서방파」「양은파」의 두목들인 이동재ㆍ김태촌ㆍ조양근 등이 경찰에 검거되거나 해외로 도피하자 군소 및 신흥조직들이 춘추전국시대를 맞아 치열한 세력확장 싸움을 벌이고 있다. ○유흥가 거의 지배 최근들어 이들 조직 폭력배들은 일본의 야쿠자조직들과 연계되고 마카오의 도박계에 진출하는 등 국제화 추세까지 보이고 있다. 지난 8월30일 하오 10시20분쯤 경기도 부천시 남구 소사 2동 50 북부역 앞길에서는 민성식씨(30)등 부천역전파 폭력배와 이경영씨(27) 등 소사 3거리 폭력배 등 30여명이 일본도등 흉기를 들고 패싸움을 벌이기 위해 집결,주변 상인과 시민들이 놀라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들은 그동안 세력권확장을 둘러싸고 잦은 충돌을 빚어오다 이날 「결전」을 벌이기로 했던 것이다. 이들의 패싸움은 결국 경찰의 출동으로 무산됐으나 시민들은 「깡패」들이 이처럼 활개를 치게 된 치안상태를 한탄하며 불안해 했다. 지난달 9일 하오 8시쯤 전남 광주 대인동 금남상가타운 7층 금남볼링장 입구 계단에서는 광주 수기동파 조직원 전모군(17)이 20대 남자 2명으로부터 배등을 흉기로 찔려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전군은 지난 7일 동료 폭력배들과 함께 경쟁 폭력조직인 「계림동파」 조직원들을 집단폭행 했으며 이에 대한 계림동파의 보복으로 목숨을 잃었다. 치안본부는 지난 88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3년동안 전국에서 활동해온 조직폭력배들은 모두 4백49개파로 구성원은 5천7백여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최근의 지속적인 단속으로 검거됨으로써 조직이 와해됐으나 현재 신흥조직등 1백18개파 1천5백여명이 여전히 활동중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숫자는 표면으로 드러난 것일뿐 경찰에 포착되지 않은 신흥세력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엄청나게 많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조직폭력 가운데 가장 뿌리가 깊고 유명한 것은 서방ㆍOBㆍ양은파 등 3개파. ○대낮 칼부림 예사 현재 두목의 검거 등으로 표면적으로는 와해된 것처럼 보이고 있으나 조직원들이 흩어져 크고 작은 각종 범죄에 간여하고 있다. 이들 3개파의 뿌리는 지난 50년대 중반 광주의 모고교 폭력서클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고교서클에서 두각을 나타낸 심모씨와 전모씨 등 두사람이 60년대초 각각 광주시내 대호ㆍ동아 등 2개 다방을 거점으로 조직을 형성,피나는 싸움을 벌이다 동아파 전씨가 패배하면서 부하였던 박모씨가 서울로 진출해 서방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때 승자인 대호파는 OB파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결국 신ㆍ구파로 양분됐으며 신OB파 부두목 이동재씨도 두목 박모씨를 살해하려다 경찰에 쫓겨 상경,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해 나갔다. 행동대장으로 활동해오던 김태촌과 조양은 등도 같은 시기에 상경,김태촌은 서방파를 흡수했고 조양은은 양은파를 결성했다. 이밖에 부산ㆍ경남지방에도 「20세기파」「칠성파」 등 뿌리깊은 조직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폭력조직들은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며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타조직과 피나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주로 유흥가에 기생,유흥업소에 「보호」를 명목으로 조직원을 취업시키거나 술ㆍ안주 등 물품조달 형식으로 업주로부터 금품을 뜯어낸다. 또 밤업소출연 연예인들에게 공갈ㆍ협박을 일삼아 출연료중 일부를 정기적으로 갈취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외상술값ㆍ채권ㆍ채무ㆍ공사입찰ㆍ아파트분양 등 모든 이권등에 개입,청부폭력을 휘두르며 심지어 노점상등 영세상인과 택시운전사들까지도 등을 치기 일쑤다. 최근에는 호텔 파친코나 카바레 등을 직접 경영하는 기업형 조직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더욱이 이들은 고향선후배등 각종 인연을 따져 정치인이나 실력자 등과 직간접의 교류를 맺어 은근히 배후를 과시하고 있으며 일부 정치인들은 필요에따라 이들을 어느정도 관리(?)하기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은근히 배후 과시 조직폭력배가 좀처럼 뿌리 뽑히지 않고 있는 것은 피해자들이 보복을 두려워 수사당국에 피해사실등을 알리지 않는데다 사건이 표면화 되더라도 두목급은 뒷전에 물러나 앉아있고 행동대원들만 붙잡히기 때문이다. 또 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무대가 사건당사자들이 떳떳이 나설 수 없는 음지라는 것도 소탕을 어렵게 하는 이유의 하나이다. 치안본부 이팔호 폭력과장은 『조직폭력배의 근절을 위해서는 경찰의 철저한 단속도 중요하지만 조직범죄가 서식할 수 없는 사회분위기 형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이 제아무리 폭력배를 잡아들여도 대부분 1∼2년만에 다시사회로 복귀한다는 것이 경찰의 불만이며 조직폭력배임이 확실할 때는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획기적인 형사정책이 실시돼야만 뿌리가 뽑힐 것이라는 주장이다.
  • 총리회담 대표단 귀환 스케치

    ◎“3차회담 다리 놓은 셈”… 아쉬운 작별/“주석님” 호칭에 “총리각하”로 응답 강 총리/김일성,노 대통령에 액자등 3가지 선물 보내와 강영훈 국무총리를 비롯한 우리측 대표단은 19일 하오 3박4일 일정의 평양고위급회담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판문점 도착◁ ○…강영훈 총리 등 우리측 대표단 7명은 하오 1시28분 북측의 벤츠승용차 8대에 분승해 판문점 우리측 지역인 평화의 집 앞에 도착. 차에서 내린 대표단은 맨 앞차로 타고왔던 북측의 최봉춘 책임연락관,두번째 차로 강 총리와 같이 온 최우진 북측 대표 등 2명과 2차 고위급회담을 끝내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강 총리는 최 대표 등에게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고 말했고 최 대표 등은 『안녕히 돌아가십시오』라고 정중히 인사. 대표단이 도착한 평화의 집에는 이연택 총무처 장관,김동영 정무장관,송한호 통일원 차관,안치순 총리실 행조실장,이진 총리비서실장 등 우리측 인사들이 일찍부터 나와 영접. 강 총리와 김 장관 등 일행은 평화의 집 1층 응접실에서 15분간김 주석 면담,평양방문 소감 등을 화제로 환담. 김 장관은 『어젯밤 TV에 김 주석과 강 총리께서 만난 장면이 아주 잘 보였다』며 『총리께서 아주 의젓한 모습이었다』며 강 총리를 추켜세우자 강 총리는 자신이 느꼈던 인상을 소개. 강 총리는 『나는 「주석님」이라고 불렀는데 김 주석이 나를 「총리각하」라고 해서 깜짝 놀라 나도 「주석각하」라고 불렀다』며 『김 주석은 매우 건강해 보였고 건강비결을 묻자 「낙천주의」라고 대답하더라』고 소개. 강 총리는 『신문을 보니까 우리 기자가 보낸 방송테이프가 지워졌다는데 어떻게 된거냐』며 관심을 표명. 우리측 대표단의 일원인 김종휘 청와대외교안보보좌관은 『개성서 평양까지가 1백60㎞인데 기차로 3시간50분이나 걸릴 정도여서 북한의 수송능력 상태를 간단히 알 수 있었다』며 나름대로 본 북한사정을 평가. ○…식사를 끝낸 뒤 차석대표인 홍성철 통일원 장관은 『무사히 잘 다녀온 것과 특히 이번에 많은 역할을 해준 중견언론인 여러분들을 위해 술은 없지만 차를 한잔씩 들자』며 건배를 제의. 이에 앞서 하오 2시쯤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위원회 회의실 우리측 지역에서 북측은 무개차(식료품차) 5대를 동원,우리 대표단 일행의 짐과 북한당국의 선물을 우리쪽에 전달. 북측의 선물중에는 김일성 주석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내는 액자 1점과 녹색 포장지로 싼 1m크기와 50㎝크기의 박스 각 1개씩 모두 3가지의 선물이 포함돼 있어 눈길. 북측은 이밖에 우리측 대표단,수행원,기자들을 위해서는 약 1m 크기의 박스 70여개를 준비. ○…이에 앞서 강 총리 등 남측 대표단은 이날 하오 1시10분쯤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 도착,이곳까지 따라온 김광진 북측 대표단 차석대표 등 북측 대표 6명과 작별. 강 총리는 이 자리에서 『김일성 주석이 바쁜 시간을 내주어 고맙다』면서 『2차회담이 3차회담을 위한 교량역할을 한 것으로 믿는다』고 북측 환송단에게 작별인사. 이에 대해 안병수 북측 대변인은 『일을 성사시키려면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라고 말하고 『이런 진통들을 빨리 겪고 나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 대표단은 통일각내 응접실에서 북측 대표단과 3박4일간의 평양체류일정을 화제로 10여분간 마지막 환담을 나눈 뒤 통일각을 나와 북측이 마련한 벤츠승용차 8대에 분승해 곧바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으로 귀환. 이어 수행원 및 기자단들은 판문각에서 도보로 1백여m 떨어진 중립국 감독위 회의실을 거쳐 남쪽 지역으로 돌아왔다. ○…수행원중 대표단 전략팀의 일원인 한 당국자는 남측의 공동선언안과 북측의 불가침선언안이 절충되지 못한 데 대해 『불가침선언안은 군사 정치문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반면 우리측의 그것은 교류 협력문제를 핵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다음 회담에서는 이에 대한 조정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 또다른 고위수행원은 남북한 유엔 가입문제와 관련,『북측이 아직은 기본자세에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하고 『그러나 개별접촉 등을 해본 결과 북한당국은 유엔정책 전환을 위해 북한주민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더라』고 북측의 정책수정 가능성을 시사. ▷평양 출발◁ ○…강총리 등 우리측 대표단은 이날 상오 8시40분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서 연형묵 북한 총리로부터 김일성 주석이 노태우 대통령 내외에게 보내는 선물목록을 전달받고 작별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3박4일간의 평양체류일정을 마무리. 두 총리는 『오는 12월11일 서울에서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며 석별의 악수를 교환. ○…강 총리 등 대표단 7명은 이날 하오 3시50분쯤 정부종합청사에 도착,잠시 휴식을 취한 뒤 4시30분 청와대로 출발. 강 총리는 휴식하는 동안 구내이발소에 들러 머리를 손질하며 청와대 보고내용을 전달. 강 총리는 이에 앞서 판문점에서 청사로 오는 차중에서 이진 비서실장으로부터 회담기간중 있었던 국내문제에 관한 개략적인 보고를 청취.
  • 대표단 어제 귀환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했던 강영훈 국무총리 등 우리측 대표단과 기자 90명이 19일 하오 3박4일간의 평양일정을 모두 마치고 판문점을 경유,서울에 돌아왔다. 임동원 우리측 대변인은 판문점 도착성명을 통해 『이번 회담을 통해서 남북간의 상호 이해를 깊이하고 화합분위기를 조성했으며 여러 부문에서 의견을 같이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은 새로운 진전』이라고 말하고 『이번 회담에서 북한측이 상호 실체의 인정과 존중 등 남북 관계개선에 신축성 있는 자세를 보인 것은 평가할만한 일』이라고 밝혔다. 우리측 대표단은 이날 상오 9시 기차편으로 평양을 출발,개성과 판문점을 거쳐 이날 하오 서울에 도착했다. 북한의 연형묵 정무원 총리는 이날 상오 8시40분 우리측 대표단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강 총리 등 대표단 일행을 환송하며 12월11일 서울 3차회담에서 다시 만날 것을 다짐했다.
  • 농협초청으로 서울주부 6백명 농촌견학

    ◎「UR태풍」 앞둔 농민의 시름 청취/현지 찾아 대화 통해 농촌의 실정 이해/“우리 농산물만 애용하자”… 공감대 넓혀 소비자인 도시주부들이 농촌을 방문,농민과 농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서울의 주부 6백여명은 18일 경기도 여주군 등 4개 농촌지역을 4개조로 나누어 방문,그곳의 실정을 확인하고 농민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도시주부들의 이날 방문은 특히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의 타결시한이 불과 한달남짓 남아있어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농민들의 소리와 농촌 현장을 직접 듣고 볼 수 있게 돼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고충이해와 농산물 직거래 등 서로 돕는 방안을 끌어내는데 좋은 계기가 됐다. 이같은 도시주부와 농민과의 만남의 장은 농협중앙회 서울시지회가 처음으로 주부고객들에게 그동안 농협을 이용해준데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한편 우리농촌의 모습을 알리면서 소비자들속에서 국내농산물 애용운동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도록 유도하기 위해 마련된 것. 이날 경기도 여주지역 농촌을 방문한 가정주부 1백57명은 상오 9시30분에 서울을 출발,신륵사와 영릉을 관광한뒤 영릉앞 소나무 밭에서 현지 농촌주부들과 식사를 하면서 대화의 장을 가졌고 근처 사과과수원을 둘러보았다. 이어 여주농협공판장을 견학,농산물을 구매한뒤 하오 6시40분 서울로 돌아오는 바쁜 일정을 보냈다. 주부들은 이런 짧은 하루속에서도 힘들여 일해도 마냥 제자리 걸음에 불과한 농업의 현주소를 똑똑히 볼 수 있었고,특히 우루과이라운드라는 복병을 만나 어쩔줄 몰라하는 농민들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 표정. TV등을 통해 농민들이 우루과이라운드로 농업의 기반이 무너지게 된다며 정부를 높은 톤으로 비판하는 것을 접하고,어느정도는 정부의 많은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엄살이겠거니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을걷이로 풍요로워야 할 농촌이,우루과이라운드협상이 시한대로 연내 타결되면 내년부터 당장 전체 농산물이 수입개방된다고 알려져 농민들이 당장 무엇을 심어야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는 잦은 일기불순으로 쌀ㆍ과일 등의 수확량마저 예년보다 10∼20% 정도 줄어들어 훈훈하던 농심마저 예전같지 않았다. 이런 농촌 모습을 대한 도시주부 김명희씨(38ㆍ서울 송파구 잠실동)는 『그동안 별생각없이 사들인 아몬드ㆍ자몽 하나 하나가 농민들을 더욱 못살게한 것이라는 점을 여기와서 깨닫게됐다』고 털어놓고 앞으로 비싸더라도 국내 농산물만을 애용키로 마음을 정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사과과수원에 들렀을 때 그곳에서 사과를 따는 일을 돕던 10여명의 인근주부들이 도시에서 온 말쑥한 주부들의 모습에서 소외감을 느낄것을 우려한 주인의 배려로 잠시 자리를 피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고 좀더 검소한 평상복을 입고 오지 못한것을 뉘우치기도 했다. 답답한 서울을 떠나 농촌을 향할 때는 누런 벼물결,듬성듬성 쌓여있는 볏짚더미,주렁주렁 매달린 과일에서 넉넉해졌던 마음이 서울로 되돌아오는 길에는 착잡한 느낌으로 반전,우리 농민이 이 위기를 벗어나 잘살 수 있는 방안이 하루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이날 농촌을 본 주부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 김일성,집무실 문앞서 강총리 마중/우리대표단,평양 주석궁 찾던 날

    ◎우리측에 깍듯이 경어… 줄곧 밝은 표정/총리회담 호칭… 통일노력의 성과 바라/이례적 서구적 춤 공연… “남측 대표에 대한 성의” 북한방문 3일째인 18일 강영훈 국무총리 등 우리측 대표단은 상오에는 비공개회의를 가진 데 이어 하오에는 평양의 김일성 주석궁(금수산 의사당)에서 김 주석과 면담하는 등 3박4일의 일정 가운데 가장 극적인 하루를 보냈다. 우리측 대표단은 이날 저녁에는 양형섭 최고회의 의장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으며 우리 기자단은 비공개회의가 열리고 있는 동안 평야시내 노동신문을 방문,신문제작 과정을 둘러보았다. ▷김일성 주석 면담◁ ○…18일 하오 분단 45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의 강영훈 국무총리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을 예방,20분간 요담했다. 강 총리는 이날 하오 3시 정각 평양시내 금수산 의사당 현관에 도착,주석궁측의 안내를 받아 김 주석 집무실로 향했다. 강 총리가 주석집무실 입구에서 20여m 떨어진 지점에 이르자 집무실 문이 열리면서 김 주석이 강 총리를 맞았다. 김 주석과 강 총리는 반갑게 악수를교환하면서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라고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집무실 안으로 나란히 걸어 들어갔다. 집무실 복판에 장방형 탁자가 마련 돼 있었고 동서로 마주보는 자리에는 강 총리와 북한 연형묵 총리가 앉았으며 김 주석은 남북 양총리의 한 가운데 좌정. 이 자리에서 강 총리가 먼저 『주석 각하,제가 서울을 떠날 때 노태우 대통령께서 김 주석에게 정중한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씀했습니다』라고 말하자 김 주석은 『감사합니다. 노 대통령께서 건강하시는지요. 서울에 가시면 「사랑하시는」 나의 인사를 전해주시오』라고 응답. 이어 강 총리가 『제가 서울을 떠날 때 노 대통령께서 여러 가지 말씀이 계셨습니다만 김 주석께서 남북 관계개선을 위해 총리회담을 개최하게 한 데 대해 인사를 전할 것을 당부했습니다』라고 말하자 김 주석은 『피차 마찬가지지요. 귀측의 호응으로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데 대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김 주석과 강 총리와의 단독면담은 사진촬영을 위해 약 3분간 공개됐는데 김 주석이 『강 총리 고향이 북쪽이라면서요』라고 말하자 강 총리는 『네 그렇습니다. 45년 전에 평양을 거쳐 서울로 갔습니다. 연 총리를 두번째 만나니까 친근하게 여겨집니다』라고 답변. 이어 김 주석은 『이번 회담에서 귀측이 우리측 제의에 호응해 나섰기 때문에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평양에서 양측이 여러 가지 진지한 얘기를 서로 나누어 결실을 맺을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니 앞으로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희망합니다』라며 밝은 표정을 짓기도. ○…강 총리를 제외한 우리측 회담대표 6명과 수행원 3명 등 9명은 이날 하오 3시10분쯤 주석궁 현관에 도착,10분간 집무실 옆 대기실에 머문 다음 3시21분쯤 집무실에서 김 주석과 면담. 김 주석은 강 총리가 우리측 대표단을 소개하자 홍성철 통일원장관,정호근 합참본부장 순으로 일일이 악수를 하며 반갑게 맞았다. 김 주석은 우리측 회담대표 및 수행원과 인사를 끝낸 다음 『자 모두를 앉읍시다』라며 직사각형 긴탁자 북쪽 중앙에 좌정했으며 같은 쪽 좌우에는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과 안병수 조평통서기국장 등 북한측 회담 대표 및 수행원이 착석. 김 주석은 양측 대표단이 모두 참석하자 『저는 이번에 총리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에 온 여러분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조국통일을 위해 많이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말을 했다. 이에 대해 강 총리는 『우리 회담대표를 바쁘신 가운데 이렇게 만나게 해주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번에 평양에 와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만 회담에서 구체적인 합의점을 찾지 못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응답. 김 주석은 이어 『고위급회담이 열린 자체가 우리민족의 전망을 밝게 내다보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80년대부터 10년 만에 열리게 된 이번 고위급회담은 우리 민족의 앞날에 밝은 전망을 갖게 해줘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문건 채택은 못했지만 다음 기회에 서울에서 열리는 총리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 김 주석과 우리 대표단과의 면담은 하오 3시21분부터 30분까지 10분간 진행됐는데 김 주석은 우리 대표단에게 최고의경어를 사용하면서 시종 밝은 표정으로 환대해 주목. 김 주석은 우리 대표단과의 면담을 끝낸 다음 3시30분부터 35분까지 5분간 주석궁 중앙홀에서 남북 양측 대표단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으며 촬영이 끝난 다음 우리 대표단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작별 인사. 우리측 대표단과의 면담에 앞서 강 총리는 이날 하오 3시부터 김종휘 대표와 연형묵 총리가 배석한 가운데 20분간 김 주석과 개별면담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는 공개면담 때보다 더 깊숙한 얘기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주석은 면담중 「고위급회담」이라는 표현 대신 「총리회담」이라는 용어를 계속해서 사용. ○…주석궁 현관벽은 대리석으로 장식됐고 중앙통로에는 붉은 카펫이 두껍게 깔려 있었다. 현관에서 중앙홀에 이르는 천장에는 대형 샹들리에가 중앙 4개 양쪽 5개씩 모두 14개가 달려있는 등 은은하면서도 호화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중앙홀 정면벽에는 (기념촬영 한 곳) 백두산 삼지연의 봄 풍경을 그린 대형 그림이 걸려 있었고 중앙홀 양 옆에는 오엽송 분재가 놓여있었다. ▷18일 비공개회담◁ ○…18일 상오 10시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2차 비공개회담에 앞서 강영훈 총리와 북측 연형묵 총리는 전날 있었던 평양시 인민위원장 주최옥류관 만찬에서 맛본 평양냉면ㆍ날씨ㆍ첫날회담 등을 화제로 15분 동안 환담. 양측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북총리는 전날보다 다소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 대화를 나눴으나 각 분야에서 통일문제를 놓고 「차근차근」 추진해 나가자는 우리측 입장과 「속도」를 강조하는 북측 입장이 엇갈려 가벼운 신경전. ▲연=어젯밤에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강=아주 참 조용하고 방온도도 꼭맞게 조절해줘서 잘 잤습니다. 평양가면 평양냉면 한번 꼭 먹어봐야지 했는데 역시 평양냉면 맛은 다릅니다. 잘 먹었습니다. ▲연=어제 학생소년궁전에서 어린애가 그림그리는 것 보셨지죠. ▲강=천재적이더군요. 4살짜리가 그리는 데 두살 때부터 그리기 시작했다고 해요. 젖먹을 때부터 그리기 시작했다는 말이지요. 옆의 여덟살난 여자아이도 명필이더군요. ▲연=옛날부터 한민족이 본래똑똑하지요. 어제 1차회담을 했는데 서울쪽에서 어떻게 보도하고 있습니까. ▲강=잘 진행돼 간다고 보도합니다. 한술에 배부르겠느냐는 얘기가 있듯이 갑자기 다 해결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상대방의 입장과 시각을 확실히 알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가 뚜렷하다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부터 잘 해갑시다. ▲연=잘 합시다. 평양시에선 어떤 평이 있느냐 하면 말입니다. 북남 고위급회담이라는 것이 「고위급」이 달려서 회담수준도 높을줄 알았는데 수준이 대단히 낮다고 합니다. ▲강=교육을 어떻게 그렇게 시켰어요(웃음). 숙소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대단히 실망했다고 얘기하더군요. ▷양형섭 의장 주최 만찬◁ 남북고위급회담 우리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 하오 8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천리마거리 목란장에서 주최한 만찬에 참석. 양 의장은 만찬사에서 『구두쟁이 셋이면 제갈량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며 『민족 앞에 책임진 정치인으로 남조선의 국회의원들과 손잡고 민족재생의 길을 함께 걸어나갈 용의가 있다』고 피력. 강 총리는 답사에서 『통일을 이룩한 동ㆍ서독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지속적인 대화와 교류 축적이야말로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이 가야 할 길』이라고 지적하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 양보하는 대화의 숨결 속에 증오와 대결의식은 봄눈 녹듯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 강 총리 등 우리측 대표단 일행은 만찬이 끝난 뒤 경음악과 남성독창ㆍ3중창 등 공연을 관람했는데 「4계절의 춤」이라는 제목의 무용은 얇고 짧은 의상에 서구적인 춤이어서 이채. 북측의 한 참석자는 『우리는 본래 민족적인 무용을 좋아하는데 이같은 무용을 공연한 것은 남측 대표에 대한 북측의 성의』라고. 강 총리가 공연히 끝난 뒤 무대에 올라가 악단과 가수ㆍ무용수 등 출연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준비한 선물을 전달하자 참석자 전원이 기립박수. 강 총리 일행은 만찬에 앞서 이날 하오 평양 중구역에 위치한 인민대학습당을 약 45분간 관람했으며 기자단은 비공개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노동신문을 방문한 데 이어 하오에는 김일성경기장에서 1시간10분 동안 학생 5만명이 연출하는 「일심단결」이란 집단체조를 관람. ◎“합의 없어도 크게 진전” 남/“「불가침」 타결 못봐 유감” 북 ▷대변인 회견◁ ○…18일 남북고위급 이틀째 비공개회담에 대한 남북간의 시각은 긍정과 부정이 다소 엇갈리는 듯한 분위기로 양측 대변인의 별도 회견을 통해 표출. 똑같은 장소(인민문화궁전 1층 회의실)에서 먼저 회견을 가진 북측의 안병수 대변인은 『우리는 불가침선언을 제기하면서 오늘 회담에서 매우 쉽게 합의될 것으로 확신했다』며 기본적으로 남북간에 큰 이견이 없는 점 등 그 근거를 예시. 안 대변인은 『남측에서는 밟아야 할 절차가 많아 국무총리라 해서 당장 합의를 해줄 수는 없다고 하길래 그러면 가조인이라도 하자고 했으나 불가피하게 합의를 보지 못했다』며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피력. 이어 우리측의 임동원 대변인은 서두에 『과거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담이 진행됐다』고 강조한 뒤 『합의선언문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한 회담이 아니라 내용면에서 많은 접근을 보아 대단한 진전을 이룬 회담』이라고 평가. 임 대변인은 회담내용을 조목 조목 설명한 뒤 양측 안의 내용이 유사한 데도 불가침선언이라는 명칭상의 문제로 합의를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헌법에 불가침문제는 국회의 비준을 거치도록 돼 있는 제도상 절차 때문』이라고 설명. 임 대변인은 『강 총리가 회담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총리라 해도 권한 밖의 일을 하는 등 법을 안 지키면 감옥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북측 제도와는 다르니 속도전도 좋으나 절차를 밟도록 하자」고 농담을 곁들여 우리 입장을 설명하기도 했다』고 소개.
  • 통일음악회 개막/평양서/우리측,오늘 연주회

    【평양=권기진 특파원】 범민족통일음악회가 18일 하오 2시 평양 2ㆍ8문화회관에서 개막되었다. 이날 개막식에는 14명의 서울전통음악연주단을 포함한 재외동포 음악인 2백30여명,재외동포 참관인 2백70여명과 북한 음악인 등 모두 6천여명이 참가했다. 우리측 대표단은 19일 이 공연장에서 연주회를 갖고 22일 남북한과 미국 소련 중국 등 이 음악회에 참가한 음악인들이 벌이는 합동연주회에서 연주를 가진 뒤 24일 서울로 귀환한다.
  • 평양회담 취재 방송사 녹화필름/지워진 채로 배달돼

    ◎정부,경위 조사키로 고위급회담을 취재하고 있는 우리측 방송취재진이 18일하오 평양에서 행낭편으로 보낸 방송뉴스용 비디오테이프의 내용이 지워져 있어 원인규명이 주목되고 있다. 이날 평양회담관련 보도내용을 담은 녹화테이프 8개중 기자의 육성리포트와 화면이 담겨 있어야할 테이프 1개가 도착후 빈 테이프로 밝혀져 현지 취재진의 기술적 실수인지 제3자의 고의적 삭제인지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KBS 등 방송사측은 『테이프 상태로 볼 때 단순히 기술적 실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전문가에 의해 자석 등을 사용한 고의적 삭제로 보여진다』고 밝혔다. 방송사측은 특히 『이날 저녁 평양의 우리 방송사 보도진과 통화한 결과 녹화테이프가 평양에서 보낼 때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말하고 평양에서 서울로의 전달과정에서 녹화테이프가 지워졌다고 주장했다. 정부측은 즉각 평양의 김용환 우리측 책임연락관에게 연락,경위 확인 등을 지시했으며 미묘한 사안임을 고려해 정확한 경위가 규명될 때까지 언급을 자제키로 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와관련,『만약 북한측이 고의로 지웠다면 공식 경로를 통해 엄중히 항의하겠지만 행낭을 판문점에서 전달받을때 평양의 우리 대표단이 밀봉했던대로였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고의적 삭제여부를 속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 92올림픽­내년 세계탁구/“남북 단일팀” 원칙 합의

    ◎한국축구단,오늘 판문점 통해 귀국 남북 교류의 새장을 연 남북통일축구경기 참가 한국선수단이 4박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13일 상오 8시30분 평양역에서 열차편으로 개성과 판문점을 거쳐 서울로 돌아간다. 한국선수단은 평양방문 기간중 북한측과 91년 나고야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남북 단일팀을 구성한다는 데 합의했다. 한국측은 또 오는 12월 서울서 열릴 월드더블컵탁구대회에 북한측을 초청한다는 뜻을 전달했으며 오는 21일 북한축구팀이 서울에 올 때 탁구팀 초청교류ㆍ단일팀 구성문제를 깊이있게 협의키로 했다.
  • 경평축구 TV로 녹화중계/범음악제/17명 14일 평양에

    ◎남북한 연락관 접촉서 합의 남북 통일축구대회 실무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 연락관 접촉이 8일 상오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있었다. 남북 양측은 이날 이미 쌍방이 합의한 대로 1차 대회를 11일 하오 3시 평양 5ㆍ1 경기장에서 갖기로 하고 경기장면은 TV로 녹화 방영키로 했다. 우리측은 생중계를 위해 중계요원을 받아줄 것을 요구했으나 북측이 이를 거절,부득이 녹화 방영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쌍방은 또 이날 하오 판문점에서 연락관 접촉을 갖고 평양에서 열릴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참가할 우리측 참가자들의 체류일정과 실무문제에 합의하고 방북자 명단과 신변안전보장각서를 교환했다. 이에 따라 이화여대 황병기 교수 등 음악인과 취재기자 등 17명은 오는 14일 판문점을 경유,평양을 방문해 「윤이상 음악회」(15∼17일)를 관람하고 통일음악회(18∼23일)에서 연주를 한 뒤 24일 판문점을 통해 서울로 돌아온다. 남북 쌍방은 이날 접촉에서 ▲공연은 5회 정도로 예상하나 추후 참가자들이 협의,결정 ▲서울과의 통신을 위한 직통전화 3회선 가설 ▲우리측 참가자들의 요구시 행낭 운송 ▲정치성 행사나 장소에는 불참 등에 합의했다고 남북대화사무국에 밝혔다.
  • 외삼촌이 13세여조카 유괴살해/20대 구속

    ◎빚독촉 누나에 앙심… 목졸라 죽여 암장/돈 요구하다 48일만에 잡혀 빚독촉을 하는 누나에게 앙심을 품고 13살난 여조카를 살해하고 암매장한뒤 유괴범을 가장,돈을 요구하던 20대 외삼촌이 범행 48일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23일 서일주씨(23ㆍS도시가스 안전관리원ㆍ용산구 한남동 620의97)를 붙잡아 범행일체를 자백받고 미성년자 약취유인살해 및 사체유기 등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또 서씨와 짜고 피해자의 부모로부터 돈을 뜯어내려던 김모군(18ㆍ간판공ㆍ용산구 보광동)을 공갈미수혐의로 구속했다. 서씨는 지난달 6일 상오11시쯤 둘째 누나 정옥씨(43)의 외동딸 최숙자양(13ㆍ한강중 1년)을 이웃가게로 불러내 『시골에 있는 외삼촌집에 놀러가자』고 꾀어 고속버스를 타고 이날 하오8시쯤 전북 정주시에 도착,고향인 정읍군 이평면 마항부락으로 가다 5백여m쯤 떨어진 야산으로 최양을 끌고가 목졸라 죽인뒤 오솔길옆에 파묻었다. 서씨는 범행후 고향집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사흘간 머문뒤 같은달 9일하오 서울 누나집에 올라와태연하게 회사를 다녔다. 서씨는 지난13일 평소 알고 지내던 김군에게 『내가 잘알고 있는 과부를 협박,5천만원을 뜯어내 나눠쓰자』고 꾄뒤 김군에게 한국외환은행 방배동지점에 「김기철」명의의 통장을 개설하도록 시켰다. 서씨는 이어 이튿날 밤늦게 회사 사무실에 남아 전동타자기로 『딸을 잘 보호하고 있다. 몸값 2천만원을 20일까지 입금시키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내용의 협박편지를 작성,누나집 단칸방에 던져놓고 마치 자신이 발견한 것처럼 누나에게 건네주었다. 경찰은 서씨가 최양이 실종되던 날부터 회사에서 휴가를 낸뒤 나흘간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최양이 집을 나가면서 아버지 최영진씨(49)에게 『외삼촌집에 다녀오겠다』고 말했으며,통장을 개설할때 쓴 주민등록번호의 끝부분 5자리 숫자가 서씨 것과 같은점 등을 들어 서씨를 추궁한 끝에 22일하오 범행일체를 자백받았다. 경찰은 23일새벽 범행현장에 형사대를 보내 최양의 사체를 찾아냈다. 조사결과 서씨는 지난2월부터 누나집에서 지내면서 지난해 어머니가 지병으로 숨진뒤 폐결핵을 앓고있는 자신의 치료비를 댈길이 없어 누나로부터 2백만원을 꾸었으나 계속 빚독촉을 당하는 등 구박을 받자 이에 앙심을 품고 범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씨는 7남매중 막내로 고향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짓다가 16살때 서울로 올라와 여관종업원 등으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으며 지난1월 2급열관리사자격증을 따낸뒤 2월초 S도시가스에 취직했다. 서씨는 경찰에서 『큰형(37)으로부터 힘들게 1백만원을 받아내 빚 절반을 갚았는데도 계속 나머지 돈을 갚으라고 독촉을 해 너무나 괘씸한 생각이 들어 범행을 결심했다』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 “가난이 죄”… 안타까운 모정/성종수 사회부기자(현장)

    ◎“어미약값 마련하려 친구돈을 훔쳤다니… ” 『세상에 착하기만 한 내딸이 못난 에미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친구 돈을 훔치다니…』 22일상오 서울 마포경찰서 형사계에는 전남 목포에 사는 임옥임씨(45)로부터 애절한 사연의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딸이 친구의 돈을 훔쳤다가 경찰에 붙잡혀왔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건 전화였다. 그 시간 형사계보호실 철창안에는 자그만 키에 수척한 얼굴을 한 임씨의 큰딸 김모양(21)이 구석진 곳에 쪼그려 앉아 울먹이고 있었다.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김양은 어머니의 치료비와 세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지난6월 서울로 올라와 L사 전자부 판촉사원으로 취직했다. 25만원의 월급을 쪼개 적금붓고 남은 돈을 생활비로 집에 부치고 나면 교통비조차 부족할 만큼 빠듯한 생활이었지만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파출부일을 마다않고 하시는 어머니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처지라 여기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이 닥쳐왔다. 지난10일 지병인 담석증이 악화돼 서울 원자력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어머니가 자궁암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러던 지난17일 몸이 아파 직장에 나가지 않고 있던 김양의 머리에는 함께 자취하고 있는 친구의 현금카드가 떠올랐다. 김양은 생각이 미치자 말자 방안 진열장 속에 있던 친구의 현금카드를 훔쳐 은행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4차례에 걸쳐 모두 1백80만원을 꺼냈다. 김양은 한꺼번에 돈을 보내면 어머니가 의심을 할까봐 우선 자궁암에 좋다는 약 15만원어치를 사서 소포로 부치고 나머지 돈은 다락속에 숨겨두었다. 그러나 『한푼 두푼 애써 모아 온 돈을 잃어버렸다』며 매일같이 비통해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김양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김양은 이내 나머지 돈을 돌려주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이미 김양의 범행을 확인,김양을 연행했다. 김양의 딱한 형편을 알게된 친구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담당형사에게 호소했지만 구속영장이 신청된 뒤였다. 『모든것이 내탓이니 차라리 나를 처벌해 주십시오. 딸이 이 일로 직장에서 쫓겨나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흐느끼면서 담당형사에게 애원하는 김양 어머니의 전화에는 안타까운 모정이 가득했다.
  • 공이 이어주는 서울과 평양(사설)

    남북한 축구대표팀의 평양ㆍ서울 교환경기가 결정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제 남북한간에 뭔가 색다른 일이 성사되어 민족문제 해결의 큰 전기가 오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공(구)은 모나지 않고 둥글다. 정지하지 않고 항상 흐르며 율동한다. 공을 구사하는 주체의 기량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또 축구경기에는 항상 의외성과 전격성이 따른다. 남북문제 해결도 축구에서 배우며 축구처럼 해나가면 되지 않을까. 지금 남북한간에 겉으로는 눈에 띄게 화해의 기운이 돌고 있다. 지난 9월초 서울의 남북총리회담 이후 남북문제에 접근하는 북한의 자세에 변화가 있는 듯도 하다. 적극적인 개방이나 개혁에로의 길은 아니더라도 다소 유연하고 유화적인 입장이 엿보이는 것이다. 특히 북경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체육회담ㆍ공동응원단 구성 등을 제의하고 나섰다. 여기에 비록 정치적 접근이기는 하나 유엔가입문제 협의를 위한 실무접촉 등에도 나왔다. 우리 축구대표팀 초청기간이 바로 평양의 총리회담시기란 점에도 눈여겨지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 북경의 한국관광단을 유치한다는 방침아래 구체적인 실무작업을 펴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우리 축구대표팀의 평양초청도 그 일환일 수 있으나 과거 전통적인 「경평축구」의 상징성을 감안한다면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다. 우리 대표팀의 평양방문은 북한 대표팀의 서울 원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축구뿐 아니라 모든 친선경기,예컨대 서울 평양간 마라톤,부산ㆍ신의주간 사이클대회 등 당장이라도 실현될 수 있는 경기종목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 정부도 이에 맞추어 지금 북경에 가 있는 한국인들이 북한방문을 원하면 이를 허용키로 했다. 우리의 이같은 방침과 북한측의 한국관광단 유치계획이 맞아떨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민족교류이며 이산가족 재회의 계기도 될 것이다. 이산가족 재회사업에 있어서도 반드시 적십자회담 형식만을 고수할 필요도 없다. 명분과 형태를 달리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스포츠교류는 물론 과학 문화 학술 언론인 교류도 그에 속할 것이다. 우리측의 7ㆍ20민족대교류 선언이니 8ㆍ15범민족대회의 취지도그런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남북한 동포가 만나고 대화하고 헤어진 가족 친지를 찾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날엔 그것이 정례화,일상화될 것이고 서울에서 평양으로,백두산에서 한라산으로 국토순례대행진이 이어질 날도 올 것이다. 서울ㆍ평양간 스포츠교류를 계기로 우리는 평양당국이 남북문제에 있어 지금까지 보여왔던 정치ㆍ군사문제 우선의 입장을 재고할 것을 기대하게 된다. 민족문제는 이론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감성에 의지되는 바 큰 것이다. 대개 「사람」이 개재된 문제해결은 이성적이라기보다 감성적으로 접근될 때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오늘의 국제정세,특히 한반도정세변화 추세는 평양당국도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 한소 및 한중 관계개선의 필연적 추세를 막을 수 없다면 이에 참여하고 협조하는 일이 현명할줄 안다. 평양의 공은 서울로 오게 돼 있는 것이다.
  • “식수비상”… 공동우물마다 장사진/서울ㆍ경기ㆍ충북지역 수해상황

    ◎개봉동서만 감전등 8명 사망/공원묘지 산사태,분묘7백기 유실/물 빠진곳 전염병 우려… 긴급방역 ▷서울◁ 사흘동안 쏟아진 폭우로 서울지역의 피해는 12일 현재 사망 12명 실종 15명에 이재민이 2만6천3백61가구 8만1백83명,침수지역 34곳에 4천4백12채로 공식집계됐으나 실제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잠수교ㆍ마포대교ㆍ동작대교ㆍ행주대교ㆍ광진교 등 5개 다리와 올림픽대로 4개 구간,한천로 영등포지하차도 등 22곳이 12일하오까지 교통이 끊기거나 통제됐다. 일부 저지대 및 고지대주민들은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애를 태웠고 공동우물이나 지하수가 있는 곳은 우물을 받으려는 주민들로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 한편 이날 상오8시40분쯤 서울 성동구 성수1가 2동 685와 송정동 85 뚝섬유원지 부근 중랑천 둑방의 토사가 유실되기 시작,제방붕괴의 위험이 높아짐에 따라 성동구청측은 이 지역 주민들을 긴급대피시키는 등 한때 긴장했었다. 그러나 제방을 긴급보완해 붕괴위험을 넘겼다. 침수됐던 물이 빠지기 시작한 12일 개봉동에서는 숨진 시체들이 계속 발견됐다. 숨진 사람들은 이 일대 고대부속 구로병원 우신향병원 등으로 옮겨졌으며 고대부속 구로병원에 2구,광명병원에 2구 등 감전과 화재 등으로 숨진 8구의 시체가 이날 하룻동안 영안실에 안치됐다. ▲개봉역의 침수로 불통됐던 경인선 전동열차가 불통된지 23시간만인 12일 상오11시50분쯤 운행이 재개됐다. 그러나 인천ㆍ수원지역에서 서울로 출발하는 시민들은 평소보다 이른 상오6∼7시쯤부터 출근을 시작했으나 이때까지 복구가 되지 않아 전날에 이어 이날도 극심한 출근전쟁을 치러야 했다. ▲용산구 동빙고동 89일대 등 7개지역 저지대가 침수돼 인근 학교ㆍ교회 등으로 대피,뜬눈으로 밤을 지샌 용산구 침수지역주민 2천여명은 12일 집으로 돌아가 동사무소측에서 지원해 준 양수기 등으로 집안에 찼던 물을 퍼냈다. 용산구 보광동 80일대 저지대 90가구 주민 3백여명도 이날 상오6시쯤부터 날씨가 개고 물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자 물에 젖은 옷ㆍ이불 등 가재도구를 밖에 내다말리고 지하실에 찬 물을 퍼냈다. ▷경기◁지난10일부터 연사흘째 집중폭우가 쏟아진 경기지역에는 12일 현재 의왕 6백10㎜를 비롯,수원ㆍ성남ㆍ안산ㆍ군포ㆍ광주 등 6개시군에 5백㎜이상의 강우량을 보이는 등 도내 평균 3백84㎜의 호우가 내려 31명이 숨지고 21명이 실종됐다. 또 주택 6천9백5채가 침수파손돼 9천5백54가구 3만2천7백64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농경지 1천여㏊가 매몰됐으며 3만7천여㏊의 논과 밭이 침수되는 등 모두 96억9천5백여만원의 재산피해(고양군 제외)를 낸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용인군내 천주교공원묘원ㆍ서울공원묘원 등 2곳의 공원묘원에서 축대가 무너지고 산사태가 발생,7백여기의 분묘가 유실 또는 매몰됐다. 11일새벽 쏟아진 집중폭우로 모현면 오산리의 천주교공원묘원에 매장된 분묘 1만5백67기 가운데 묘원 5개지역이 완전 붕괴돼 6백여기가 유실됐다. 또 이동면 서리의 서울고원묘원도 산사태로 전체분묘 2천85기 가운데 1백여기가 쓸려내려 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묘원측은 분묘유실사태가 벌어지자 곧 묘주측과 협의,시신을 수습한뒤 합동위령제를 지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 충북지역은 12일 하오5시 현재 대부분지역에 비가 그쳤으나 충주댐에서 11일 상오11시부터 시작한 방류로 인해 도내 상당수의 도로가 침수되고 유실됐다. 이로인해 충주에서 원주ㆍ수안보ㆍ청주ㆍ서울방면의 교통이 두절됐거나 통제돼 우회도로를 이용하고 있다. 충주댐의 수위가 위험수위인 1백45m를 넘어선 12일 상오3시30분쯤부터 구단양지역이 대부분 침수되고 신단양으로 향한 외곽도로마저 대부분 물에 잠기기 시작,이지역 3만여주민이 이날 하오5시 현재 완전 고립됐다. 또 충주댐을 역류한 남한강물이 이날 새벽부터 구단양의 하방ㆍ상방리 등 대부분지역을 침수시킨후 8㎞떨어진 신단양 선착장을 넘어 강변도로를 덮쳐 신단양 1단지 상진ㆍ도전ㆍ별곡 등 6백여가구가 긴급 대피했다. 충주댐을 역류한 강물은 매포읍 성신양회앞 국도 5호선 1백50m를 침수시켜 단양∼제천간 도로가 두절된데 이어 단양읍 덕상리앞 36번국도 1백m 침수,단양∼충주간이 막히는 등 영주ㆍ영월방면을 포함,외부로 통하는 모든간선도로가 막혔다. 또 단양시내 상수도 취수장이 침수,3만여명의 식수원이 끊김에 따라 단양읍ㆍ매포읍ㆍ대강면의 소방차 6대가 식수를 긴급 공급하고 있다. 단양을 덮친 남한강탁류는 이지역 시멘트단지로 덮쳐 매포읍 시멘트공장인 성신양회와 아시아시멘트 등의 기계설비가 침수돼 시멘트 생산에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 노대통령ㆍ연 총리 청와대 대화내용

    ◎“서로 만나고 또 만나 통일의 길 열자”/양측 이익되게 물자교역을 노대통령/주석께서 안부말씀 전하셨다/「7ㆍ4성명」 따른 통일 추진 희망/연총리 ◇노태우대통령=온국민과 함께 북대표들을 환영하고 청와대로 온 것을 반갑게 생각하며 환영합니다. 이번 역사적 회담에 대해 국민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가는 그동안 여러분들이 본 우리 언론의 보도나 사설을 봐도 알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역사적인 회담을 통해 45년동안의 분단을 종식시키고 영광된 통일을 여는 출발점으로 만들어주길 기대합니다. 남북이 서로 오가고 자주 만나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고 안될 일이 없습니다. ◇연형묵총리=대통령께서 귀중한 시간을 내어 따뜻하게 저희 대표단을 맞아주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경애하는 주석께서 노대통령을 만나면 안부를 전하라는 말씀을 위임받았습니다. 이번 회담이 열린 것은 북과 남의 합의에 따른 것이지만 그것도 경애하는 주석님의 결의에 따른 것입니다. 주석께서는 건강이 좋아 공장과 농장등을 자주 둘러보며 인민들과도 자주 만납니다. 김주석은 지난 7ㆍ4공동성명에서 표명된 자주ㆍ평화ㆍ민족대단합의 통일 3원칙에 따라 통일을 추진하길 바라고 있고 북과 남이 제도가 다르지만 서로 다른 제도를 지키면서 통일할 수 있는 길로서 연방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주석은 북한은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이 이뤄져선 안되며 평화통일이 돼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번에 서울로 올 때도 분단 45년 만에 열리는 고위급회담인 만큼 회담을 아끼고 이번 회담을 통해 통일의 전제가 마련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막상 남에 와서 대표들을 만나 얘기하다보니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고 북남이 자주 만나면 여러가지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노대통령=이번 회담을 보니 남과 북이 많은 문제에 대해 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문제는 남북민족의 염원을 담고 합의된 것을 하나하나씩 실천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난 20년동안 대화를 통해 그동안 선전에 치우친 것 같은 부분은 지양돼야겠지만 7ㆍ4공동성명의 3원칙을 존중하고 모든 문제를 만나서 얘기하고 또얘기해서 합의점을 찾고 실천해나감으로써 역사적 소명인 통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민족의 열망과 의지를 뭉쳐나가면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2차 대전때 패전국인 일본도 커다란 경제발전을 이뤘고 동서독의 통일도 눈앞에 두고 있으며 냉전구조의 주축이었던 미소도 화해를 하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단일민족인 우리가 대결할 이유가 더이상 없고 이념과 사상,정책이 달라도 우리는 반드시 민족화합을 이루고 통일의 길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기 전 올림픽을 유치했을 때도 이 세계가 화합을 이룩해나가자는 뜻도 담고 있었지만 남과 북이 화합의 한마당에 모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었습니다. 7ㆍ7선언과 유엔 연설등을 통해 나는 세계에 대해 남측만을 도와달라고 한 것이 아니고 남북이 나란히 서로 돕고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으며 이를 온세계가 공감한 것입니다. 나의 북방정책도 결코 북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며 북을 어려운 처지에 빠뜨리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사회주의 세계와 관계개선을 이루고 북쪽이 서방세계와 관계개선을 이루면 냉전을 종식시키고 평화통일의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 담긴 것입니다. 지난 6월초 샌프란시스코에서 소련의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남북한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다함께 기여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연총리=대통령의 말씀을 김일성주석께 잘 보고하겠습니다. 이번 회담이 좋은 결실을 맺고자 염원하고 있는데 불신과 긴장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급한 문제라고 봅니다. 회담과정에서도 얘기했지만 유엔가입문제,구속된 방북자의 석방,팀스피리트훈련 중지 등을 남북회담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도 대통령께서 결단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면 회담이 보다 순조롭게 진전되고 속도도 빠라질 것입니다. 7ㆍ7선언에 대해서도 잘 분석해본 바 있습니다만 대통령의 임기중 통일문제가 마지막 정점에 이를 것으로 우리는 생각 합니다. ◇노대통령=남북간의 불신해소와 신뢰를 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부부간에도자주 만나지 않으면 불신이 생기지만 이웃도 자주 만나면 신뢰가 굳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나고 또 만나고 이야기하면 믿음이 조성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다시한번 확신합니다. 북한에 대한 나의 3가지 확고한 입장을 얘기하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북측의 발전을 돕고 협조하는 입장에 설 것이며 북측도 우리에 대해 같은 입장을 취해주길 바랍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북이 돕고 북이 어려우면 우리가 돕는 관계로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둘째로는 남북간에 이해와 신뢰를 심은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는데,여러분들이 여기와서 보니 우리 사회에 대한 이해가 생겼고 여러분들을 본 우리 국민들도 여러분에 대한 신뢰를 심기 시작한 것 아닙니까. 내가 7ㆍ20대교류를 선언했는데,김주석이 지난 신년사에서 남북개방을 얘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셋째로는 남북이 서로 입장을 이해하고 가능한 한 서로의 입장을 수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또 남북 경제협력문제에 있어서도 남북이 서로 필요한 물자를 교역하게 되면 서로 이익이 될 것입니다.(북측 김정우 대외사업부부부장을 향해) 김부부장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부부장=앞으로 조건이 잘 맞아 그런 관계로 발전되길 바랍니다 ◇연총리=북에는 현재 크게 아쉬운 것은 없지만 사람힘(인력)이 달려 지하자원 개발을 다 못하는등 어려움도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던 3가지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결단을 잘 고려해주시길 거듭 바랍니다. ◇노대통령=아무튼 남북회담의 진전을 위해선 여러분들이 진지하게 노력해주길 바랍니다. 구속자문제등에 대해 지적했습니다만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북에서 온 여러분보다 대통령인 본인이 훨씬 더 사랑합니다. 이 지구상에서 냉전체제로 분단된 유일한 나라로 우리나라가 더이상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남북 화해와 통일을 이루는 일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만큼 여러분들의 평화통일의 능력을 세계로 향해 실증해주길 부탁드립니다. ◇연총리=만나주시고 여러가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남북한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다시 평양에서 만납시다(사설)

    민족분단 최초의 남북한 총리회담은 한반도에 존재하는 양 정부당국간의 공식적인 첫 접촉이라는 의미이상의 상징성을 갖는다. 그 상징성은 한반도의 두 정부당국은 한 정부당국으로 통합될 수 있고 타의에 의해 분단된 민족은 어느 때라도 통일될 수 있다는 당위성의 바탕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분단사상 첫 총리회담은 그런 측면에서 전민족적 기대와 관심이상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총리회담은 또한 지금까지 끊임없는 대치와 대결을 거듭해온 남북한의 공식적인 기본입장과 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방안이 각기 잘 정리되어 천명된 계기도 되었다. 그것을 압축하면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협력실시」가 된다. 한반도 남북문제에 있어 지금까지의 모든 갈등과 모순,앞으로의 방향은 기실 이들 두가지 과제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남북한의 책임있는 당국자들은 서울 대좌에서 바로 이 과제에 접근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총리회담은 정치ㆍ군사ㆍ경제 등 모든 분야별로 양당국간 접촉의 길을 터주었을 뿐이다. 총리회담의 양쪽 기조연설은 앞으로의 당국간 실무협상의 형식과 내용을 규정지어준 것이다. 이번 총리회담의 가장 큰 합의사항이라면 바로 그것이 될 것이다. 서울의 남북한 총리회담은 궁극적인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 최고위당국자로서 책무를 갖는 남북한 정상회담에 이르는 길목으로서의 의미 또한 크다. 남북한 정상회담이야말로 남북한 문제의 모든 것을 포괄하고 규정할 수 있는 합리적인 명분과 궁극적인 해결형식의 하나가 될 것이다. 노태우대통령에 대한 연형묵 북한정무원총리의 예방은 남북한 정상의 각기 고위당국자들을 통한 공식적인 「교환」일 수 있다. 멀고도 험했던 남북대화와 교류,통일에의 길이 이제 여기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남북한은 지금까지 이념과 체제의 대립,다시 말해 정치ㆍ군사ㆍ사회적으로 분단되어왔다. 그 정치적 분단속에서 민족의 이질화현상은 심화되었다. 남북한 주민들은 이번 서울 총리회담을 통해 남북한은 「먹고 먹히는」 이민족이 아님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민족만 하나로 뭉쳐있으면 정치적 통일은 언제라도 가능하다. 통일에 접근하는 정책과 자세에서 뚜렷한 입장 차이가 잘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리회담은 「새로운 시작」으로서 뿐 아니라 당장이라도 뭉칠 수 있는 같은 민족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총리회담에서 전과 다르게 느낀 것은 양쪽의 이념이나 체제의 벽이 과거처럼 육중한 무게로 다가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산가족을 포함한 남쪽의 동포들은 한쪽이 다른쪽에 사상과 제도를 강요하는 것을 결국 대결과 충돌을 가져오며 민족적 재난을 면할 수 없게 된다는 북한 연총리의 연설대목을 기억하며 지켜볼 것이다. 양쪽 당국의 대표들도 겸허하고 진솔했다. 인내도 했고 양보도 했을 것이다. 그것이 평양으로 이어지고 다시 서울로 연결되기를 동포들은 바라는 것이다. 서울과 평양에서 각기 정상회담이 있는 어느날 남북한 동포들은 휴전선을 통해 남과 북으로 오갈 것이다. 민족적 자신감과 긍지에 비춰 그것은 가능하다. 그것을 확신하며 우리는 북한대표단 일행을 전송하는 것이다.
  • 「만찬회」서 있었던 일/황석현 북한부장(데스크메모)

    북한의 연형묵 총리가 판문점을 거쳐 서울로 들어오는 역사적인 장면을 감회어린 심정으로 지켜봤다. 분단 이후 45년만에 북한의 정무원 총리가 처음으로 남쪽땅을 밟았다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큰 뜻을 지니고 있지만 필자에게는 40여년이나 헤어져 있던 고향이웃이 불쑥 집으로 돌아오는 것같은 감상적인 느낌이 우선 와 닿았다. 이같은 감상은 필자 뿐만 아니라 북쪽의 대표들이 휴전선이란 장애물을 걷어버리고 성큼 남쪽땅에 들어서는 모습을 지켜본 모든 이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올해 65세인 연형묵 총리는 퍽 건강해 보였고 환영의 꽃다발을 안겨준 어린 소녀를 붙들고 귀여워하는 모습은 인자한 우리들 할아버지의 바로 그것이었다. ○「역사적 만남」 감회 깊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 필자는 또 북측 대표단이 서울에 들어온 첫날 밤,이들을 환영하는 만찬회에 참석,북한동포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는 행운을 맛보기도 했다. 이날밤 필자의 짝이된 사람은 「통일신보」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영상씨였다. ­나이는 50세.김일성종합대학 졸업. 아들 둘을 두었는데 큰 아들(24)은 「머리가 나빠」 노동을 하고 있고 둘째 아들(22)은 다행히 자신을 닮아 김책 공과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자랑. 생활은 그쪽 수준으로는 중상으로 괜찮은 편. 서울은 처음­.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 얻어낸 그의 짧은 신상명세서이다. 보기보다는 소탈하고 사교적인 그에게 서울의 첫 인상을 물어보았다. 『말로는 들었지만 이처럼 복잡하고 공기가 탁한줄은 몰랐다. 자동차에서 뿜어 나오는 배기가스가 사람몸에는 제일 나쁜데 웬 자동차가 이렇게 많은가. 자가용 안가지기 운동을 펼쳐야 할 것 같다. 또 외국어간판이 너무 많아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간판만 보아도 남조선에는 주체의식이 없는 것 같다. 서울에 비하면 평양은 아주 쾌적한 도시이다』 ­평양은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특별한 도시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 평양은 혁명의 수도이기 때문에 수준높고 재간많고 기술좋은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평양에는 이런 사람들이 다른 도시보다 많이 모여있을 뿐이다. 남조선에서도 큰기업은 질좋은 일군들을 이곳저곳에서 끌어모으고 있지 않는가. 그런 것을 뭐라고 그러던데…』 ­스카우트 말인가. 『그렇다. 말하자면 평양이란 도시가 수준높고 재간많고 기술좋은 사람들을 많이 스카우트 한 것 뿐이다』 ­동구의 대 변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대 변화라니…』 ­대 변화가 아니고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거의 몰락하고 있는 사태에 대한 얘기다. 이 질문에는 박영상 기자는 약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그 나라들의 내부문제일 뿐 우리가 이렇고 저렇고 할 것은 못된다. 사회주의제도가 나빠서 그쪽 국가들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 우리인민은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되어 있고 주체적인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우리인민은 자본주의를 원치 않는다』 ○서로 이해의 폭 넓혀야 박기자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주체사상이 얼마나 위대한 사상이며 고려연방제가 얼마나 합리적인 통일방안이며 북쪽의 군축제의가 또 얼마나 건설적인가를 역설하다가는 「왜그렇게 말귀를 못알아 듣느냐」는듯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정치적인 논쟁을 애써 피하려는 필자를 향해 『황선생은 워낙 겸손하셔서…』라면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우리가 이날밤 유일하게 합의한 것은 『계속 만나 대화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평양에서 다시 만나자는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이날 밤의 만남이 유쾌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기분나쁜 것도 아니었다. 비교적 담담한 심경이었다고 할까, 우리민족이 통일의 대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어떤 모양새로든 서로 자주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수순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남북 총리회담은 이틀째인 5일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이번 서울회담에서는 「군비축소」「유엔 가입문제」「남북 정상회담」「경제 및 인적교류」 서로가 시각을 달리하는 많은 현안문제가 걸려있다. 이 많은 쟁점사안중 한 분야만이라도 합의가 된다면 더말할나위가 없이 기쁘겠지만 설사 모든 분야에서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고 해도 실망할 것은 없다. ○들뜨지말고 차분하게 서울회담에서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도 합의가 안된다면 다음 평양회담을 기대하고 그것도 안된다면 다시 서울ㆍ평양을 오가면서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 총리회담에 기대를 걸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은 이번 서울회담이 첫 걸음이라는 점을 인식,보다 폭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냄비문화」라는 속어가 등장하고 있지만 통일문제에 관한한 냄비문화의 속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대를 하는 것은 좋지만 들뜨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서로가 일깨워주어야 한다. 과거의 숱한 회담에서 좌절을 겪었던 우리는 이제 들뜨지말고 차분하게 회담의 진행을 지켜보는 성숙된 자세를 지녀야 한다. 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지만 북한 대표단에게 섭섭한 일 두가지만 얘기하고 싶다. 하나는 문익환ㆍ임수경 등 밀입북했다가 실정법에 의해 구속되어 있는 사람들을 만나 위로하고 싶다는 것과 또 하나는 남쪽의 강영훈 총리는 북쪽의 연형묵 총리를 「총리」로 예우하고 있는데 반해 연총리는 강총리를 「수석대표 선생」으로 호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밀입북했다 구속된 사람들을 만나 위로하고 싶다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것이 이번 회담의 공식의도가 아니고 또 회담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런 요구는 자제해주었으면 하는 것이고 강총리에 대한 호칭문제도 북한의 기본전략 즉 「두개의 조선」 부정논리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어차피 서울에 왔고 또 노태우 대통령을 예방까지 하는 마당에 예의상으로라도 「총리」로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북측 대표단을 탓하거나 항의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총리회담을 보다 원만하게 또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면 하는 필자의 충정에서 나온 것임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 「기대」와 「우려」 엇갈린 서울의 만남/김영만정치부기자(남북초점)

    ◎남북 육군대장 악수엔 “통일의 희망”/북측 방북인사 거론은 정치적 저의 총리회담 북측 대표단이 서울에 온 4일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들은 두 사람의 육군대장이었다. 정호근 우리측 합참의장과 김광진 북측 인민무력부부부장. 양쪽 어깨에 은빛 찬란한 4개씩의 별을 단 이들 두 육군대장은 판문점에서 악수를 나눈 뒤 같은 승용차로 회담장인 인터콘티넨탈호텔까지 왔다. 이들의 대표단내 서열이나 양측의 의사결정과정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사실 요란한 플래시 세례만큼 크지는 않다. 양측 군부를 대표하기는 하지만 군부내 최고실세는 아니다. 또한 관심을 끌고 있는 군축문제 역시 이들의 의사보다는 양측의 대남ㆍ대북 정책이란 큰고리안에서 정해질 수밖에 없게 돼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만남,자동차 동승에 카메라 플래시가 몰려 터지는 것은 국군대장과 인민군대장의 만남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좁게 말하면 통일에의 핵심과제에 양측이 접근하고 있음을 두 사람의 만남은 국내외에 알리고 있다. 이들의 만남은 또한 「외세」와 항상 연관지어 생각되던 분단과 통일이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었음을 상징한다. 6ㆍ25참전 군인들인 두 육군대장의 악수와 웃음에서는 동족간 전쟁의 상처를 마침내 극복하고 통일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란 따뜻한 희망까지 발견할 수 있어 좋다. 두 사람의 경력이 분단의 비극과 양측의 대립된 체제를 날카롭게 대변하고 있어 만남의 의미를 더 크게 하는지도 모른다. 김광진은 1913년 만주땅 북간도에서 태어나 빨치산 활동을 거쳐 소련군에 입대,소련군 포병기술학교를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포병장교로 6ㆍ25전쟁에 참여했고 67년 포병사령관,85년 4월에 인민군 대장이 됐다. 정합참의장은 경복고 2학년 때인 1950년 6월 사병으로 6ㆍ25에 참전했다. 이후 6ㆍ25가 한창이던 51년 갑종5기로 소위에 임관돼 우리군의 최고지위에 오른 인물이다. 정의장이 우리군에 남아있는 유일한 6ㆍ25참전 장성이면서 총리회담의 대표라는 점은 스스로에게 남다른 감회를 안길 수밖에 없을 듯하다. 서울로 오는 1시간동안 김광진과 단독회동을 가지면서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지 회담이 시작도 안된 시점에서 알아내기 어렵다. 그러나 6ㆍ25의 아픔을 서로 이야기하고 그 아픔을 참전세대들인 자신들이 극복하고 나아가 통일의 길을 열자는 다짐외에 또 무슨 다른 말이 있었을까. 그것은 확실히 희망이다. 제비 한마리를 보고도 봄이 왔다고 믿어버리고 싶을 만큼 분단의 겨울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의 희망이다. 인민군대장과 국군대장의 만남이 갖는 상징성을 부각시키고 실제보다 앞질러 이를 평가하고자 하는 것도 분단극복에 대한 따뜻한 희망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희망도 안병수 북측대표단 대변인의 도착성명을 들으면서 잠시 주춤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안은 도착성명에서 두가지의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하고 있다. 그는 『평양과 서울에로의 길을 다시 열어놓게 되었다』면서 『이길은 누구에게나 넓게 열려 있어야 하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길이 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녀서는 안되는 그런길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우리 정부를 겨냥했다. 그는 이어 문익환목사와 임수경,문규현신부 등 『통일을 부르다 령어의 몸이 된 방북인사들의 가족과 친척을 방문,위문을 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주장,우리측 대표단과 준비요원들의 얼굴을 어둡게 만들었다.
  • “북한대표단 임춘길은 내동생”/양주 임춘심씨

    ◎“47년 월남때 이산… 눈매ㆍ턱 닮아” 남북고위당국자회담에 북한측대표단 수행원자격으로 4일 서울에 온 림춘길씨(53)가 43년만에 누나를 만날 것같다.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선암리 309에 사는 임춘심씨(69ㆍ여)는 이날 자신이 평안북도 철산군 탑면 동천동 고향에서 살다 지난47년 남편 안정승씨(80년작고)를 따라 3남매가 월남하면서 막내동생 춘길씨와 헤어졌다고 주장,임춘길씨를 만나러 상경했다. 임씨는 『지난 3일자 신문에서 춘길씨의 사진을 보고는 얼굴윤곽과 눈매ㆍ삼각형턱 등 첫눈에 동생임을 알아보았다』면서 『부모님이 만년에 춘길이를 낳아 하나뿐인 누이인 내가 암죽을 끓여먹이며 업어 키우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임씨는 속칭 「차련관」이라 불리던 동천동에서 아버지 국영씨(생존시 99세)와 「귀덱이」로 불리던 어머니 강씨 사이에 자신과 춘길씨 및 두 남동생이 있다며 『춘길이는 어릴때 「호미를 메고가자 동삼천리…」 등의 노래를 잘 불렀다』며 울먹였다. 춘길씨는 이번 회담에 수행원 33명의 일원으로 「총리책임보좌관」이란 공식직책을 갖고 있으며 「총리보좌원겸 책임연락관 최봉춘과 함께 회담을 움직이는 막후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임씨는 이날하오 모 수사기관으로부터 『춘길씨의 고향은 평북 철산군 탑면』이라는 통보를 받고 춘길씨가 동생이라는 확증을 얻었다며 서울로 올라갔다.
  • “통일길 엽시다”… 남과 북 한목소리/총리회담 첫날 이모저모

    ◎강총리,“자주 만나면 끊겼던 통로 복구”/만찬 대기실 요담 15분… 독대는 불발/연총리,“회담 많이 했지만 이번엔 유망” 북에서 온 「손님」들은 4일 서울 하늘아래서 체류 첫날을 보내며 남과 북은 하나라는 명제를 새삼 확인했다. 연형묵총리등 북한대표단 7명과 수행원 33명,기자단 50명 등 일행 90명은 이날 상오 판문점을 통과,승용차 10대와 버스 3대에 나눠타고 임진각을 떠나 통일로∼구파발∼불광동∼서대문로터리∼마포대교∼강변북로∼반포대교∼올림픽대로∼영동대로를 거쳐 회담장 겸 숙소인 인터콘티넬탈호텔에 도착,여장을 풂으로써 온겨레와 세계의 이목은 서울로 쏠리고 있다. 북한 대표단은 이날 저녁 강영훈국무총리가 힐튼호텔에서 베푼 만찬에 참석,우리측 각계 초청인사들과 만나 한핏줄의 뜨거운 정을 느꼈다. 북한대표들단들은 만찬이 끝난후 숙소 근처 무역전시관에서 문화영화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을 관람하며 문화적 동질감에 젖기도 했다. ▷환영만찬◁ ○…이날 저녁 서울 힐튼호텔에서 강총리가 연총리 등 북측 일행을 위해 베푼 환영만찬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예정시간을 30여분 넘겨 2시간 가까이 진행. 강총리는 이날 만찬사에서 『잡초를 갈라 길을 내듯,길없는 길을 오시느라 애쓰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전제,『만나고 또 만나노라면 잡초 우거지고 비바람에 끊겼던 통로라도 반드시 복구될 수 있을 것』이라며 대화의 지속을 강조. 이어 연총리는 답사에서 『우리 대표단 일행중에는 이전에 서울에 와본 사람들도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초행길』이라고 소개하면서 『그러나 우리 일행에게는 서울로 오는 길이 결코 생소한 감을 주지 않았으며 만나는 동포형제들마다 낯선 감도 없었다』고 말하고 그 이유는 동포의 정때문이라고 언급. 강총리와 연총리는 각각 만찬사와 답사를 끝낸 뒤 포도주(마주앙)로 상대편의 건승과 행운을 비는 건배를 교환. 연총리등 북측 일행은 이날 저녁 7시5분쯤 힐튼호텔에 도착,미리 와 기다리던 강총리의 영접을 받았으며 두 총리는 칵테일장소가 정리되기 전 만찬장소인 그랜드볼룸 옆의 대기실(오크룸)에서 15분여간 요담. 우리측은 이날 만찬전 요담이 두총리의 단독요담으로 이루어져 심도있는 얘기가 오가길 원했으나 림춘길ㆍ최봉춘씨 등 북측 수행원들이 『우리도 들어가야겠다』고 문을 밀고 들어가는 바람에 총리간 단독회동은 무산. 북한 대표단들은 만찬이 끝난 뒤 홍성철통일원장관,정호근합참의장,김종휘 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 등 우리측 대표와 함께 밤 9시50분부터 한국종합전시장(K0EX) 4층 국제회의실에서 1시간가량 문화영화를 관람. 「우리의 보배」라는 이 영화는 구석기시대부터 조선말기까지의 우리 역사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북측 기자단대표 김천일은 관람이 끝난 뒤 『이북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고 촌평하며 다소 불쾌한 표정. ▷숙소환담◁ ○…연총리 일행을 인터콘티넨탈호텔 현관에서 영접한 강총리는 우리측 대표단과 함께 북측 대표단을 연총리 숙소인 3229호실로 안내한 뒤 연총리 숙소에 마련된 접견실에서 10분동안 환담. 남북총리는 『악수좀 나눠주시지요』라는 사진기자들의 요구가 있자 『또』라는 말을 약속이나 한듯 동시에 연발하며자리에서 일어나 접견실안은 한때 웃음. 남북 보도진들에 대한 포즈를 취한 뒤 홍성철통일원장관이 『우리측 대표들은 판문점에서 모두 소개해 드렸으니 북측 대표단을 강총리께 소개해 달라』고 하자 연총리는 이름없이 직책만 호칭하며 북측 대표단을 일일이 소개. 인사가 끝나자 연총리는 『TV에서 여러번 뵌 것 같다』고 강총리에게 말을 건넸고 이에대해 강총리는 『연총리와는 전생에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우리 모두 비슷한 시기(88년말)에 총리가 됐고 총리가 된 직후 북측에서 부총리회담을 요구해 왔을 때 우리측에서 총리회담으로 하자고 수정 제의하자 이를 수락하지 않았느냐』고 응답. ○“우린 2년간 편지교환” 강총리의 전생 연분론에 연총리는 『동감이다』고 짤막하게 답한 뒤 『그러다 강총리와는 2년여동안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느냐』고 해 양측 대표단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강총리는 『쓸때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썼다』고 응수. 연총리는 이어 『이런 큰 회담을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았지요』라고 회담준비를 맡은 우리측의노고를 위로했고 강총리는 『피차 마찬가지지요. 승강기내에서 얘기드렸지만 지금까지 비가 내리다 연총리께서 도착하니 날씨가 쾌청해지는 걸로 보아 연총리가 복이 많은 모양』이라며 『날씨도 쾌청하니 회담도 잘 될 것』이라고 화제를 회담쪽으로 유도. 회담얘기가 나오자 연총리는 『내가 복을 갖고 서울에 왔다니 기쁘다』면서 『남북회담이 여러차례 있었지만 그렇게 잘 되지는 못했다』고 지적한 뒤 『그러나 이번 회담 전망은 유망할 것』이라며 역시 관망적 견해를 피력. ▷호텔도착◁ ○…북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 낮 12시2분 숙소 겸 회담장인 인터콘티넬탈호텔에 도착,로비에서 영접차 기다리고 있던 강영훈국무총리와 반갑게 인사. 두 총리는 이번 회담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생각해서인지 모두 상기된 표정이었으며 강총리가 악수를 건네며 『안녕하십니까』하고 말하자 연총리가 『반갑습니다』라며 화답. ○…이날 북측 대표단과 수행원들은 인터콘티넬탈호텔에 도착한 뒤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숙소에 머물러 있었으나 북측 보도진들은 호텔 2층에 마련된 북한 기자실을 둘러본 뒤 우리측 기자실로 몰려와 안병수 북한대표단대변인의 서울 도착성명이 있으니 취재를 하겠다고 준비. ○북기자,회담장 답사 북한 보도진들은 그러나 우리측 기자들이 『소감이 어떠냐』 『취재계획은』 등 갖가지 질문을 쏟아붓자 몇번은 대답하다가 일부 북한보도진들이 『기자가 기자를 취재하느냐』 『나가자』며 모두 밖으로 나가 한때 어색한 분위기. 그러나 이들은 20여분후 다시 우리측 기자실로 들어왔고 장내정리가 어느 정도 된 뒤 안 북한대표단대변인이 도착성명 낭독을 시작. 안대변인은 도착성명에서 『뜻이 같으면 길도 열린다는 것처럼 통일에 뜻을 둔 우리는 평양과 서울의 길을 열었다』며 상당히 우호적 내용의 입장을 밝혔으나 성명말미에 문익환ㆍ임수경씨 등 방북건으로 구속당한 사람들의 가족과 친척을 방문하고 싶다는 엉뚱한 뜻을 피력해 북측의 저의를 드러내기도. ○프레스센터 ○우리측 차석대표인 홍성철통일원장관은 이날 하오 2시 프레스센터에서 내외신기자 회견을 갖고 이번회담 우리측대변인으로 첫 브리핑을 실시. 홍장관은 먼저 연정무원총리등 북한대표단의 판문점 영접과 관련,『본인을 비롯한 우리측 대표단 6명(강영훈국무총리를 제외한 전원)이 판문점에 나가 북한측 대표단을 따뜻하게 맞이했다』면서 『우리 대표단은 북한측 대표단과 함께 승용차에 동승,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울에 도착했다』고 아침 상황을 보고. 홍장관은 이어 『북한측 대표단이 회담장 겸 숙소인 인터콘티넨탈호텔로 오는 도로상에서 약간의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했다』고 운을 뗀 뒤 『마포에서 강변대교입구 사이의 지점에서 비행사차량이 대표단차량에 끼여드는 바람에 접촉사고가 일어났다』고 사고경위를 소개하고 『북한측 대표단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피력 홍장관은 특히 이 사고와 관련,『강총리가 우리측을 대표해서 연총리를 직접 방문,사과의 뜻을 전달할 예정이었으나 연총리가 『잘하려고 하다가 그런 사고가 난 만큼 굳이 올라오실 필요가 있느냐』고 사양해 강총리의 직접방문은 취소됐다』면서 『오늘 만찬에서 반드시 이같은 사과의 뜻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소개. ○문의ㆍ격려전화 빗발 ○…북한대표단의 숙소인 인터콘티넨탈호텔에는 4일 오후부터 이산가족의 안부를 묻는 문의전화와 회담에 대한 격려전화가 쇄도. 일반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밤늦게까지도 시민들은 『회담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는 격려와 문의전화를 계속 걸어 왔는데 이날 야간당직지배인 김광철씨는 『주로 실향민들이 고향의 이산가족을 찾기 위해 북측 대표들을 통해 안부를 전할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 전화가 많았다』고 소개.
  • 연형묵 총리 답사 요지

    우리 대표단 일행중에는 이전에 서울에 와본 사람들도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번에 초행길을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일행에게는 서울로 오는 길이 결코 생소한 감을 주지 않았으며 만나는 동포형제들마다 낯설은 감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나라와 민족은 비록 북과 남으로 갈라져 있어도 우리의 조국은 하나이고 우리 겨레도 하나이며 우리는 서로 떨어져 살 수 없는 형제들이라는 동포애의 정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북측대표단은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서울에서 열리게 되는 제1차 북남고위급회담이 민족 앞에 지니고 있는 책임이 무겁고 이 회담을 지켜보고 있는 겨레의 기대가 매우 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겨레에게 더이상 실망을 주지 않는 대화,민족분단의 아픔을 진실로 덜어주는 대화,통일의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는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서울회담에 림하는 우리 대표단의 립장이고 의지입니다.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성스러운 통일의 길에서 서로 상대방을 누르려고도 하지 말고 이기려고도 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를 양보받으면 대신 둘을 양보해 주고 한가지를 합의하면 두가지,세가지를 실천해 나가는 민족적 단합의 정신과 훌륭한 미덕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국통일 위업은 자기의 사상과 리념과 제도를 상대방에 강요하는 방법으로는 실현할 수 없습니다. 북과 남에는 오랫동안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가 존재하여 왔으며 그것은 이미 반세기 가까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굳어져 왔습니다. 우리가 신봉하는 사상과 제도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가장 귀중히 여기는 주체사상이며 모든 것이 사람을 위하여 복무하는 주체의 사회주의제도입니다. 우리 인민은 지난 40여년 동안의 생활체험을 통하여 사람중심의 주체사상과 우리식의 사회주의제도야말로 인민대중에게 가장 철저한 자주성을 보장하여 주고 모든 사람들에게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누리게 하여 준다는 것을 심장으로 느끼고 이 사상과 제도를 끝까지 옹호하고 빛내어 나갈 확고한 결의에 넘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것을 남조선에 절대로 강요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일방이 타방에 자기의 사상과 제도를 강요하는 방법은 결국 대결과 충돌을 가져오게 되며 민족적 재난을 면할 수 없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라의 통일문제를 먹고 먹히우는 방법이 아니라 북과 남의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두고 련방국가를 창립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남침도 없고 북침도 없는 이러한 통일의 전제를 마련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번에 서울에 왔습니다. 우리는 모처럼 서울에 온 기회에 남측의 여러 정당ㆍ단체 인사들과 각계 인민들과도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될 것을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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