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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 정상회담 앞당길듯/장소·일정 협의 끝내

    【콸라룸푸르(말레이시아)=문호영특파원】 오는 21일 방콕에서 열리는 제49차 ESCAP(유엔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 정기총회 참석에 앞서 동남아를 방문중인 한승주 외무부장관은 19일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를 예방,북한핵문제와 한·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경제협력등 양국 공동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다. 한장관은 이어 압둘라 바다위 말레이시아 외무장관과 양국 외무장관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한편 한장관에게 미국무부관계자들과의 면담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17일 워싱턴에서 싱가포르로 왔던 장재용 외무부 미주국장은 오는 21일로 예정된 피터 타노프 미국무부 정무차관의 방한 준비를 위해 18일 서울로 돌아갔다.장국장은 이번 미국 방문에서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응책 논의외에 김영삼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대통령간의 양국 정상회담 일정및 장소등에 관해 대체적인 합의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관련,오는 7월초 도쿄에서 개최되는 서방선진 7개국(G7) 정상회담을 전후해 열릴 것으로 알려졌던 한·미정상회담은 앞당겨질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 KBS 「독도 365일」 제작팀 해단식

    ◎8·15 때맞춰 3부작 다큐멘터리로 방송/생태계·계절변화,1년간 체류하며 촬영 독도의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 「독도 3백65일」이 KBS 8·15특집 3부작으로 제작·방영된다. 독도의 자연 생태계뿐 아니라 울릉도와 함께 우리 조상들의 생활터전이었음을 입증해줄 내용을 담은 「독도 3백65일」이 광복절에 때맞춰 방영됨으로써 일본의 독도에 대한 영토권주장에 쐐기를 박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또한 이 프로는 국내 방송사상 최초로 제작진이 특정 장소에 꼬박 1년간 체류하며 그동안 일어난 모든 변화를 기록,다큐멘터리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KBS 특별제작팀이 촬영을 위해 독도로 향한 것은 지난 92년 3월말.교양제작국 최훈근프로듀서(36)와 서울대 해양학과 출신의 연구요원 최성순·김영완,2명의 카메라맨(2개월마다 교대)등 모두 5명으로 구성된 제작팀은 지난해 3월31일 독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을 시작으로 1년간의 긴 여정에 들어갔다.지난 3월31일로 제작진이 만 1년동안 촬영한 20분짜리 녹화테이프만도 6백여개에 이른다. 최프로듀서는 『독도에서 1년동안 일어난 모든 일을 보여주고 나아가 자연과 생명,문화와 사회,독도의 역사와 현재를 밝혀보려 노력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제작팀은 섬 2군데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같은 피사체를 한 장소에서 1년동안 연속촬영을 시도,시간에 따른 일출과 일출의 변화를 처음으로 관찰했다.총제작비 2억8천만원을 투입,독도를 입체적으로 조망키위해 수중·공중촬영도 감행했다.이런 과정에서 제작팀은 지난 76년 제주도에서 포획된뒤 자취를 감춘 녹색비둘기 4마리와 바다표범 1마다를 발견,촬영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제작기간동안 독도를 찾은 사람은 약60여명.해양학자·역사학자·지질학자·조류·생물학자등 관련 전문가들이 총동원됐다.특히 독도에 대한 지질학계의 보고서가 올해안에 나올 예정이어서 방송계뿐 아니라 학계에 던지는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광장만한 고도 독도에서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생활을 자원했던 제작팀.1년동안 3번밖에는 독도를 떠나본 적이 없는 최프로듀서.바람이 심해화장실에 갈때도 역기를 들고 다녀야했다는 이들의 섬생활.지난해 12월24일엔 최프로듀서와 카메라맨 최찬영씨가 눈을 촬영하려다 계단에서 굴러 다쳤고 지난 설날에도 카메라맨 김승연씨가 촬영도중 크게 다쳐 서울로 후송되는등 갖은 위험을 무릅써야만 했다.온갖 고생으로 점철된 1년이었지만 무사히 귀환한 제작팀은 한결같이 「일생에 단 한번뿐인 값진 경험」을 했다는 행복감으로 주위의 격려와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지난 6일 해단식을 가졌다.KBS는 우선 정식 방영에 앞서 제작과정을 담은 「제작노트」(가제)를 오는 5월쯤 방영할 계획이다.
  • 한국문학의 국제화 전략/김병익 문학평론가(정경문화포럼)

    ◎영·불 문학권에 정예작가 집중소개/노벨상에 버금갈 문학상 제정할만 문예진흥원이 기왕의 「대한민국문학상」을 전면 개편하여 우리 작품을 외국어로 옮긴 번역작품에 몰아서 시상하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보도를 본데 이어 새로 설립되는 문화재단과 몇몇 대출판사가 거액을 투입하여 비슷한 번역문학상을 제정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우리 문학의 풍부한 생산과 뛰어난 성과들이 그 소수민족 단위의 언어라는 한계 때문에 세계문학에서 바른 평가를 받지 못해온 것이 늘 섭섭해 오던 참에,우리 작품의 국제적인 진출에 큰 벽이 되고 있는 번역작업에 거액의 투자를 하게 되었다는 뉴스는 우선 반갑고 대견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공공의 시상중에 가장 관록있는 대한민국문학상을 폐지하기까지 하면서 그 상금들을 번역문학으로만 전환해야 할 것인지도 의심스럽거니와 한국문학의 국제화 전략이 번역문학의 「상」으로만 집중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욱 의아스럽다.「상」이 유발할 수 있는 일정한 효과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음에도 거액의 상금이 동반할 수 있는 폐해도 적잖이 예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외국의 문단과 독자들이 한국문학을 수용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데 있어서는 상이라는 제한된 방식보다 더 포괄적이고 구체적이며 중요한 전략구상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문학이 외국문학에 찾아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번역된 작품의 출판이다.그 출판을 위해서는 좋은 번역자의 훌륭한 번역이 전제되어야 하며 그래서 번역문학상을 제정하는 기획에까지 이른 것이겠지만,그러나 그 목적이 출판에 있는 한 우리가 더 치중해야 할 것은 외국출판사들이 그 번역작품을 출판하도록 여건을 지원해 주는 일이 될 것이다.우리 문학의 좋은 번역이 드문 것은 한국문학을 전공하는 외국인 문학자가 양으로나 질로 적기 때문이고 그 출판이 미미한 것은 외국의 상업출판사들이 한국문학을 간행해도 채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이렇다는 것은 외국의 한국문학 번역자와 연구자들을 양성해야 할 필요성,출판사의 이윤을 맞추어 주어야 할 필요성이 우선적으로 중요한 전략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문학상에의 급작스런 거액투자는 그를 위한 여러가지의 과제중에 전시효과가 더 큰 하나의 항목에만 모여진 것이며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작업의 폭넓은 효과를 일구어 내는 것은 아니다. 근년 외국에서의 한국 작가 초청과 우리 문단에서 외국 작가들을 초청하여 작가 대 작가간의 인적 교류가 서서히 일기 시작하고 있는데,그 성과는 의외로 큰 것으로 보인다.외국 작가와 문단은 한국 작가를 직접 만나고 대화하고 혹은 한국을 방문,체험함으로써 막연하고 추상적이던 한국문학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면을 하게 되는 것이고,그를 통해 한국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고 관심을 갖게 된다.이런 유의 작업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마구잡이로 작품과 작가를 전시하듯이 내놓기보다는,이제 정말 좋은 작가와 작품을 골라 집중적으로 외국 문단에 파고들 수 있도록 되어야 할 것이다.노벨상을 목표로 한 일본이 그러했는데,그들은 몇몇 작가들만을 영·불 문학권에 침투해들어갈 수 있도록 집중적인 홍보와 투자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올림픽을 서울로 유치하는 데 성공한 이후 80년대초부터였는데 그것은 물론 우리 작가도 노벨상을 타야한다는 기대에 의한 것이다.그러나 다른 어떤 분야와 달리,문학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야 하고,그러고서도 오랜 기간에 걸쳐 연구와 비평의 적극적인 조명을 받아야 겨우 유력한 후보로 지목될 정도이다.그러니,올림픽을 유치하는 것과는 달리 많은 투자를 들인다 하더라도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을 수 없고,그래서 우리에게 그 차례가 빨리온다 하더라도 앞으로 10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그럴만큼 지구력을 갖지 못한다면 차라리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에 버금할,또는 그에 대척될(예컨대 제3세계문학상이라든가 소수민족언어문학상 같은) 거액의 문학상을 제정하고 권위있게 시행할 일이다. 서구와 미국·일본의 문학이 그 경제적 풍요성과 사회적 안정때문에 상대적으로 문학적 열의를 잃어가고 그 주제 의식이 쇠퇴해가면서 한국 문학에 대한 새삼스런 주목을 가하기 시작하고 있다.프랑스의악트 쉬드사가 한국 작가들의 소설 간행이 성공하면서 그 작업을 계속 추진하기로 한 것이라든가,독일과 일본·미국이 한국의 소설과 시집을 번역 간행하고 권위있는 문학지에서 본격적인 소개를 시작하고 있어 우리 문학의 국제화는 아주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이 호기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번역문학상의 갑작스런 증가로만 모아져서는,들인 경비에 비해 그 효과도 의심스럽고 방향도 비능률적인 쪽이라는 점을 강조해두지 않을 수 없다.
  • 서예가 김기승씨(이세기의 인물탐구:21)

    ◎“힘차고 남성적인 운필” 원곡체 창안/한자명체 두루 통달… 독창적 변형경지 도달/고 최현배박사도 “한글 본연성품 표출” 칭송/성경구절 작품화 유명… 도산선생 묘비문 등 명필남겨 글씨를 이루기전 작업대앞에 선 원곡 김기승씨의 모습은 신을 향한 기도처럼 절실하고 경건하다. 눈부신 백지위에 붓길이 닿는순간 율동처럼 이어지는 묵향,어느때는 일필휘지,어느 때는 점 하나에도 혼신을 다해 멈출듯 흐느끼는 ▦황은 그 자체가 이미 통신의 경지다. 마치 자신의 손이 아니라 신에 의해 움직이는것처럼 힘차게 그어내린 획마다에선 맑고도 밝은 상서로운 향기를 뿜어낸다.그리고 그 몇순간의 긴장은 폭풍전야의 정적인듯 은은히 주위를 압도한다. 원곡의 문향실은 그가 38년간 머물렀던 종로구 적선동에서 이곳 워커힐 아파트로 옮긴지 올해로 만 10년이된다. 요즘도 여전히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독교 방송을 들으면서 하루일과를 시작하고 근처 아차산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바로 작업에 임한다. 그리고 하루 2시간에서 3시간,전날 독서로 구상해두었던명언·명구를 마음속에 새겨 우러나오는 진한감동을 작품속에 담아낸다. 그는 글씨를 이루는데 있어 아름다움은 언제나 「선」이어야함을 전제하고 있다.이른바 선하지 않은 것은 미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기술이 피부라면 인격은 근골이다.티없이 청정한 피와 살과 뼈대가 합일될때만 비로소 미의 영혼이 글씨와 글속에 첩식된다는 것이다.순수한 서체에서의 체삽이나 시속기는 천착스러움의 극치다.글이 뜻하는 바를 거르거나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타내기 위해선 심혼의 혈서로 성자에 임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씨 내재의미 중시 「초학자시 불가진형세 선상자성의 재필전」­글씨는 처음 대할때 그 형세를 알수없으니 먼저 글씨가 이루어짐을 생각하면 뜻은 쓰기전에 있게 된다,즉 원곡은 서의 진수는 글씨의 모양에 두기보다 그 내부에 내재된 뜻을 소중하게 여기는 투철한 작가정신으로 일관되어 있다. 해서·행서·초서·전서·예서등 한자체에 두루 통달하여 일가를 이룬동안에도 그는 한때 중국말로 된 성경을 국전에 출품한 적이 있었다.막상 이를 내놓았으나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 그때부터 그만의 독특한 원곡체를 창안,한문각체의 독창적 변형을 한글에 적용시킨 이 서체는 한자와의 대련 작품을 쓸때도 조화와 균형을 깨지않는것이 특징이다. 옛날 궁중에서 궁녀들이 소설을 베낄때 사용한 궁체가 부드러운 반흘림의 반행초의 실용글씨라면 원곡체는 한문보다 힘차고 남성적인 운필,구슬을 꿴듯한 우아미보다 먹물이 뚝뚝 듣는 힘의 분출이 돋보이는 서체다. 한글학자 고 최현배박사는 원곡의 한글체를 보고 『산같이 망막하고 강같이 줄기차다.우리의 한글이 제본연의 성품으로 온전히 나타났다』고 칭송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그의 독창성이 지나쳐 그 자신이 스스로 「전위예술」이라 일컬었던 「묵영기법」은 서예계에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큰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묵영기법이란 청묵의 번짐을 사용하거나 먹물의 농담으로 거듭써서 시각효과를 앞세운 일종의 회화적 서예 회화인 셈이었다. 서예계는 『전위예술,즉 묵영은 서예에서는 있을수 없다』고 발칵 뒤집혔고 심지어는 『전통을모르고 전통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난 예술』로 혹평되기도 했다. ○「묵영기법」 논쟁불러 이때도 젊은감각과 시대에 부응하는 예술을 지향해온 원곡으로서는 전통예술을 지키기 위해선 고루하게 전통만을 고집하기 보다 오히려 여러각도의 실험과 시도를 언해 새로운 조형언어를 발굴,전통의 소중함은 물론 각자의 개성과 특성을 살려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평생동안 그가 써온 작품은 개인전때마다 40점에서 60점씩 32회.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평소에 아끼는 성경구절들은 그때마다 아름다운 작품으로 담아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육당 최남선의 「삼·일독립선언문」을 비롯,제갈량의 「전후출사표」는 3천자이상,아가서8장 4천여자,무위자연의 노자 「도덕경」5천여언,특히 굴원의 「이소경」의 경우는 사적고증,한자구성·암기 등으로 6개월준비,집묵만도 10일이상 걸린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랜 연륜과 우수사려가 없는 마음가짐으로 인해 그의 글씨에는 향기는 물론 불가사의한 힘이 담겨 있다. 올해나이 84세.그러나 그 음성과 행동에서 연노의 기색은 찾아볼수 없다. 또 서예계 최고 원로의 권위의식 같은것도 없다.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격의없이 친절하고 편안하게 대한다. 1909년 충남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에서 김정현씨와 김취옥여사의 2남중 차남으로 출생.5세때부터 조부인 동효공이 설립한 한문서당 삼언재에서 글씨와 천자문을 배웠고 홍산소년백일장에 나가 한시짓기 장원,11세때 보통학교 2학년에 들어가면서 신교육을 받게됐으나 공주고보 2학년때 일인체조교사를 배척하는 맹휴의 주동자로 지목되는 바람에 서울 휘문고보로 전학,그후 만주로 건너가 봉천 문회고급중학과 상해중국공학대학 경제과에 다녔다. 상해유학시절 흥사단 원동위원부에 입단하여 도산 안창호선생을 모신 독립운동에 가담,국내신문의 주요기사를 발췌정리하여 국내정세를 보고하거나 흥사단 행사때마다 글씨를 잘 쓴다고 해서 식순을 쓰는 일 등을 맡아보기도 했다. ○흥사단서 독립운동 그때부터 대학에서 공부한 경제학보다 글씨 쓰는 일에 심취하여 졸업후 고향에 돌아오자 고장의 명필인 산정 신익선선생에게 본격적으로 글씨를 배웠다. 하루종일 쓴 글씨가 집안마당에 흰눈처럼 수북히 쌓였던 기억은 지금도 그에게 불길같은 작업의지를 당겨준다고 한다. 그후 다시 서울로 올라와 소전 손재형선생에게 사사.『재주는 있으나 헛 공부했다』는 혹독한 질책을 받으면서 그는 구양순 안진경 왕희지의 법첩으로 겨울밤이 지새도록 수련을 쌓아갔다. 봉천 문회고급중학교때 남경서 신학대학을 나온 백영엽목사의 영향을 받아 크리스천이 된 그는 조국에 돌아가면 목사가 되려했으나 글자 한자한자의 그 묘한 성자에 빠져 글씨쓰는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그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글씨로 전한다는 의도에서 성경구절을 작품에 담게 되었고 성경구절을 쓴 작품만도 6백여점에 이른다. 새문안교회에 다닌지 45년,출중한 건강을 타고난 그는 담배나 커피·술은 입게 대지 않는다. 산부인과 의사인 부인 차인실씨(82)와는 1939년에 결혼,외아들인 명호씨(53·미앨라배마에서 병원)와 4녀가 있다. 원곡은 주변을 조금씩 정리해 본다는 뜻에서 지난83년 그가 아끼던 자작품 2백87점을 골라 국립현대미술관에 보내던날,아들 딸을 결혼시켜 내보낼때보다 더 가슴저미는 허망함과 섭섭함에 그날밤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고 말한적이 있다. 지난 90년에는 그가 한평생동안 소장해왔던 추사 김정희의 「고시행서」위창 오세창·김구선생의 글씨,청전 이상범과 절친했던 운보 김기창,청계 정종여의 금물로 그린 「독수리」등 30억 상당의 골동서화를 아들의 모교인 연대박물관에 기증. 1958년 제1회 개인전을 필두로 신세계미술관이 주관하는 개인전이 끝나면 부인과 자녀들이 권유하는대로 이대와 고려대 중앙대등 각 대학에 작품을 나누어 보낸다. ○33회째 개인전 준비 그가 제정한 원곡서예상은 올해 16회째,오는 10월25일부터 제33회 원곡서예개인전을 역시 신세계미술관에서 갖게된다. 도산 안창호선생의 묘비문을 비롯,수백여개의 비문과 동상문 현판글씨 시비등 전국 방방곡곡에 그의 글씨가 산재해 있으나 단 한글자도 그는 허트로 내놓는 일은 없다. 그의 마음가짐은 「논어」에 나오는­ 「불지명이면 무이위군자야요 불지례면 무이립야요 불지언이면 무이지인야라(천명을 알지못하면 군자가 될수 없고 예를 모르면 세상에 나서 행세할수 없고 말의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를 실천하며 앞만보고 살아왔다.분한이 있으면 향기로운 글,빛을 발하는 글에 이를수 없기 때문이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대덕약곡」(큰덕은 골짜기 같아야 한다)」에서 따온 그의 아호인 원곡처럼 그래서 나를 낮추고 남을 섬기고 마음을 텅비운 맑고 깊은 골짜기,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포용하면서 묵묵하게 자신의 일에 정진하는 예인의 자세를 지킬 뿐이다. □연보 ▲1909년 충남 부여 홍산출생 ▲1927년 만주 봉천 문회고급중학졸업 ▲28년 흥사단 원동위원부입단 안창호 김구 이동령선생이 이끄는 한국독립당입당 ▲1932년 중국 상해 중국 공학대학부 경제과 졸업 ▲1936년 소전 손재형선생사사 ▲1939년 조선서도 진흥회 주최 전국서도전 입선 ▲1942년 중국 상해서 전중국서화전 입선 ▲1946년 전국 서화전 이등상 ▲1949년 제1회국전 서예부 특선(문교부장관상) ▲53∼55년 국전 제2·3·4회 특선 ▲〃 대성 서예학원 설립 ▲〃 서울대·숙대·상명여대 출강(15년간) ▲56∼58년 국전 제5·6·7회 추천작가(출품) ▲58년 제1회 원곡 서예전 ▲59·60년 〃 제8·9회 초대작가(출품) ▲61∼82년 국전 제10∼30회 국전심사위원·운영위원 ▲59∼89년 원곡서예전 제2회∼29회 개최 ▲1976년 미국·유럽 미술여행 ▲78년 제1회 원곡서예상 제정 ▲79년 동아일보 주최 원곡서예 회고전 ▲79년 북유럽및 캐나다 미술여행 ▲〃 제1회 원곡 미술상 제정 시상 ▲79∼92년 제2∼15회 원곡서예상 시상 ▲83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자작 대표작(2백87점 기증) ▲84년 주일 한국 대사관 한국문화원 초대 서예전 ▲87년 봄베이·카이로등 유럽지역 여행 ▲기독교 미술인 협최 회장역임 고왕경·김강경·경천애인·시편23편·이소경·삼일독립선언문·애경·전후출사표·1오일삼성오신·불원천불우인·묵시록등 1천여점 은관문화훈장 한국서예사 원곡서문집
  • 신동엽창작기금 받게 된 고재종씨(인터뷰)

    ◎“농민의 삶 그린 농민시 인정해줘 기뻐” 『아무도 돌보지 않는 농민,그리고 이들의 삶을 그린 농민시를 뒤늦게나마 인정해주어 기쁩니다』제11회 신동엽창작기금 수여자로 선정된 농부 시인 고재종씨(36).지난 13일 유치원에 들어가는 아들과 함께 아내가 다니는 경남 함양의 한 국민학교 사택에서 창작기금 수여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전남 담양에서 농사를 지으며 저녁에 짬을 내 시를 쓰는 시인 고씨.농고를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공원,막노동꾼,서점종업원등을 전전하다 고향땅으로 돌아온 뒤 시작에 몰두하고 있는 그에게 농민시는 「생명운동」의 의미를 지닌다. 『아무도 농민 얘기를 쓰지 않으니까 농민 얘기를 계속 써내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격려하는 사람도 많습니다.그러나 이제는 어려운 농촌현실속에서 들려오는 농민의 울분과 좌절 주위만 맴돌 것이 아니라 농민의 생활감정과 사상까지 깊에 천착해 좀 더 나은 농민세상에의 꿈을 전망해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는 우리가 그동안 『농촌을급격한 산업화과정에서 파생된 피해대상으로 치중해 바라만 봐 농촌이 품고 있는 생명성·건강성·공동체정신등을 간과해버린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그래서 『앞으로 우리의 농민시는 소재적 측면이 강조됐던 농촌시와 관조적인 시각이 강한 전원시 모두를 합쳐 인간과 대지의 관계로 그 범위를 확대시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땅과 돌·농토 이야기를 묶은 연작시를 마저 끝내고 두번째 산문집을 펴낼 생각이다.지난 84년 시 「동구밖 집 열구식구」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바람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87년) 「새벽들」(89) 「사람의 등불」(92)등 세권의 시집과 산문집 「쌀밥의 힘」등을 펴냈다. 수상식은 4월9일 하오 6시30분 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 열린다.
  • 본사초청 벽지어린이 80명 15일 나들이

    ◎꿈같은 서울구경… 설레는 동심/완주 비봉국민학교 20명/롯데월드·63빌딩 등 방문/“꿈 아닌가요” 웃음꽃 활짝 『야!신난다』 서울신문사가 주관하는 제5회 도서·벽지어린이초청계획에 따라 서울나들이 소식을 전해들은 전북 완주군 비봉면 비봉국교 어린이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전형적인 산간벽지학교로 전교생이 6학급 1백21명에 지나지 않는 비봉국교 어린이들은 꿈에 그리던 서울나들이를 하게 된다는 소식에 손뼉을 치며 웃음꽃을 피웠다. 오는 15일부터 18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초청을 받은 비봉국교생은 4학년생 10명,5학년생 2명,6학년생 8명등 모두 20명. 이들은 인솔교사인 권대호선생님(47)이 『이번 서울나들이 기간에 서울시청,중앙박물관,롯데월드,63빌딩,독립기념관,올림픽주경기장등을 구경하게 된다』고 설명하자 『와』하는 환호성을 지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김혜민양(10·4학년)은 『TV서만 보던 63빌딩과 롯데월드를 직접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는다』며 『지도책을 펴놓고 며칠후에가볼 서울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고 말했다. 이계원교장(60)은 『산간 벽지 어린이들을 서울로 초청,나라의 발전하는 모습과 선조들의 찬란했던 문화유산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심어 주는 기회를 만들어준 서울신문사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고창 삼광국민학교 20명/“지하철 꼭 타보고 싶어요”/교실마다 서울얘기 가득 『땅속으로 가는 기차는 어떤 모습일까?』『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63빌딩 꼭대기에 올라가면 어떤 느낌이 들까?』 서울신문사 초청으로 오는 15일부터 3박4일간 서울나들이를 하게된 전북 고창군 상하면 용대리의 삼광국교(교장 유영준·61)어린이들은 평소 가졌던 의문들이 이번 기회에 풀리게 될 것이 몹시 기쁜듯 벌써부터 화제가 「대도시 서울」에 맞춰지고 있었다. 이 학교가 있는 곳은 전북도내 서남단해안지역으로 전남 영광군 홍농읍 계마리의 영광원자력발전소와는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있는 전북도내 오지중의 오지이다. 이 학교 6학년 최승희양(13)은 『TV에서 본 서울은 지나는 행인에서부터 자동차,건물등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이 신기했다』며 『요즘엔 서울 갈 생각으로 마음이 설레 밤에도 잠이 잘 오질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학생들이 서울나들이에 인솔을 맡게 된 곽용식교사(37)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아직까지도 수세식화장실이 뭔지 모를 정도로 문화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서울나들이를 통해 학생들이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송 지소국민학교 40명/버스 하루 3번… 학생 51명/“잊지못할 여행” 마음들떠 『선생님 우리 정말 서울가요』 경북 청송군 안덕면 지소리 지소국민학교 어린이 40명은 요즘 난생 처음 떠나는 서울 나들이를 앞두고 밤잠을 못이루고 있다. 지소국민학교가 있는 지소리는 경북에서도 손꼽히는 오지마을로 청송에서 비포장길을 하루 세차례 운행하는 새마을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72년의 긴 역사를 가진 지소국교는 10년전만 해도 13학급 7백명의 학생을 자랑하는 시골에서는 비교적 큰 규모의 학교였으나 도시화의 물결에 밀려 지금은 4학급 51명의 학생이 전부인 미니학교로 변했다.해마다 취학학생수가 줄어들어 오는 95년쯤에는 인근 안덕국교의 분교로 바뀔 것이라는게학교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간오지에 학부모들도 대부분 고추재배등 밭농사로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고있어 서울여행은 엄두도 못낼 형편이라 벌써 자녀들의 서울여행 준비로 학부모들 마저 마음이 들떠있다. 정성호군(11·6학년)은『텔레비전과 책에서만 보아온 서울을 직접 가보게 돼 무척 기쁘다』며 『서울에서 구경한것을 모두 적어 부모님에게도 얘기해주겠다』고 말했다. 또 학부모 김성규씨(47)는『농사일에 쫓겨 가까운 읍내 한번 제대로 구경시켜주지 못한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며 『아들이 서울여행을 떠나게 돼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이 학교 임동택교장(58)은 『두메산골에서만 자란 어린이들에게는 이번 서울여행이 평생 잊지못할 소중한 추억을 간직할수 있는 기회가 될것』이라며 『어린이들을 서울로 초청해준 서울신문사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 백남근 교통부 관광국장(만나고 싶었습니다)

    ◎2천년 세계10대관광국 도약 총력/1천만명 몰릴 대전엑스포 준비 순조/내년 1백여개 대규모 국제회의 유지/국민 관광수요 충족위해 각종시설 확충 등 추진 관광산업은 굴뚝없는 공장으로 비유된다.외화 가득률이 높기 때문이다.정부는 올해 8월부터 시작되는 대전엑스포와 94년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관광산업을 획기적으로 부양하기 위해 각종 시책을 펴고있다.오는 2000년까지 세계10대 관광국으로의 도약이 목표이다.우선 94년도에 외래관광객 4백50만명 유치,여행수입 50억달러 달성을 겨냥하고 있다.정부의 관광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교통부의 백남근 관광국장을 관광안내원 공순복씨(한진관광 일어통역)가 만나 정부의 관광진흥정책을 들어본다. ▲공순복씨=93대전엑스포는 세계 1백여개국이 참가하는 대규모 국제행사로서 우리나라 관광진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이에 대비한 관광진흥대책은 무엇입니까. ▲백남근국장=93대전 엑스포 총관람인원이 1천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외국인 관람객도 60여만명이 넘을 것으로 보고있습니다.이 기간중에 사용될 호텔객실은 약 1만5천여개로 추산되고 있으며 부족한 객식 2천여개는 건설중에 있습니다.엑스포 아파트와 민박등의 시설도 적극 활용,외국인 관광객들이 숙식때문에 불편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이 기간동안 일본인 관광객들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현재 제주도에 한해 실시하고 있는 무사증 입국을 8월부터 12월까지 허용할 계획입니다.서울올림픽 경험을 살려 특색있는 관광코스 개발및 새로운 쇼핑상품의 개발과 관광종사원의 서비스 향상등 관광수용 태세완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공씨=올해 대전엑스포에 이어 추진하게 될 「94한국방문의 해」사업의 주요 내용과 준비상황은 어떻습니까. ▲백국장=최근 적자를 보이고 있는 여행수지 개선과 한국관광의 새 전기를 만들기 위해 서울정도 6백년이 되는 94년을 「한국방문의 해」로 90년9월 전세계에 선포했습니다.「94한국방문의 해」에는 PATA총회 만국우편연합총회 세계에스페란토대회등 1백여개의 대규모 국제회의를 유치하고 외래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관광행사로눈축제,꽃축제,사계절축제,세계요리 축제등 32개의 대형 국제행사와 전통민속 문화행사를 연중 개최할 계획입니다.이 행사를 세계에 널리 홍보하기 위해 엠블럼 로고 주제등 상징물을 활용하고 미의 사절을 선발하여 유치홍보사절단으로 파견하는등 해외 홍보활동을 적극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공씨=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국민들의 여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여가활동이 급격히 증가될 전망입니다.복지증진의 측면에서 국민들의 여가및 관광수요를 충족시킬 대안은 무엇입니까. ▲백국장=국민소득이 증가하고 여가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관광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고 소비지출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정부는 이같은 추세에 부응하기 위해 81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에 모두 85개 관광지를 개발하여왔고 올해에도 보완 개발을 포함해서 모두 17개소의 관광지를 개발하고 있으며 경주 보문 관광단지,제주 중문단지를 비롯하여 해남 화원관광단지,감포 해안관광단지등 모두 8개소의 대규모 관광단지 개발을 추진중에 있습니다.또 국민들의 다양한 관광성향에 부응하기 위하여 가족단위 관광객이 이용할수 있는 가족휴가촌등 관광휴양 시설과 자동차 여행문화에 부응하는 자동차 야영장,관광도로등의 관광시설을 확충하고 특히 도시주변에 국민휴식공간을 확대해 가는 한편 국민복지증진 차원에서 근로자·청소년계층의 관광장려를 위하여 각종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나갈 계획입니다. ▲공씨=남북한 교류협력분야 부속합의서의 발효에 따라 국민들의 남북한 관광교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남북한 관광교류 협력에 대한 정부의 방침은 무엇입니까. ▲백국장=남북한 관광교류 협력을 위한 시행가능한 사업으로는 남북한을 방문하는 외래관광객이 상호 직접 방문할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남북한을 연결하는 관광코스를 공동 개발하고 남북한 주민들의 관광교류를 추진해 나가며 관광시설을 합작건설하는 사업등을 고려할수 있습니다. 우선 관광자원 공동개발을 위한 조사단 파견등을 고려할수 있으며 사업의 추진을 위한 시행절차 방법등에 관해 남북경제교류협력 공동위원회를 통하여 협의,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휴전이후 40년동안 사람이 출입하지 않은 판문점주변의 비무장지대와 금강산과 백두산등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인구가 많아도 4계절이 뚜렷하며 역사와 전통이 깊어 사회간접자본을 잘 투자하면 관광객을 끌어들일수 있다고 봅니다.더욱이 남북통일이 되고 중국과 러시아가 육로로 연결된다면 대륙철도와 항공기를 이용한 세계의 관광객들이 부산과 서울로 몰려들 전망입니다. ▲공씨=관광업계 종사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백국장=관광산업은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해왔고 관광산업 종사자 여러분들은 그늘진 곳에서 서비스향상에 주력해왔습니다.여러분들은 한국관광의 주역이자 민간외교관이라는 긍지를 갖고 현업에 종사해주기 바랍니다.국민소득의 향상과 함께 여러분들을 보는 국민의 인식도 크게 변하고 있습니다.
  • 김학준 청와대대변인 일지와 회견

    ◎“노 대통령,89년 계엄령건의 거부/남북 첫 총리회담 소서 북측 설득” 한국과 소련의 국교수립은 미국의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이 소련측에 한국의 뜻을 전달함으로써 이뤄진 것이라고 김학준 청와대 대변인이 24일 밝혔다. 일본의 아사히(조일)신문은 이날 김대변인과의 회견기사에서 이같이 밝히고 남북한 첫 총리회담은 북한측에서 한때 일정변경을 추진 했었으나 소련측이 북한을 설득함으로써 성사됐다고 말했다. 김대변인은 또한 지난 89년 정국이 혼란스러웠을 때 한국의 보수세력들이 계엄령이나 비상사태를 선포하도록 건의했으나 노태우대통령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고 털어놨다. 회견 요지를 간추려본다. ▷한·소수교◁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이 한국과 소련의 국교수립을 지지했다.이미 국무장관을 사임했던 슐츠가 크렘린으로 한국의 의사를 전달,한·소정상회담을 적극 지원했다. 대통령의 정책담당자들은 회담의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보아 「5%작전」이라는 암호명을 붙이기도 했다.서독의 헬무트 콜총리의 측근도 회담실현을 적극적으로 밀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대통령은 회담석상에서 노대통령에게 차관을 포함한 경제협력을 요청했다.노대통령은 『국교를 수립하면 경제적 지원이 가능하다』고대답,고르바초프대통령도 즉석에서 납득했다. ▷한·중수교◁ 중국측에서 적극적으로 내놓았다.그들은 91년11월 중국을 방문한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을 통해 한국과의 국교수립 의사를 타진해왔다. 92년4월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ESCAP)가 북경에서 열렸을 때 전기침 중국외교부장이 이상옥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국교수립에 대한 「관심」을 정식으로 표명했다. ▷남북총리회담◁ 90년9월 제1차회담 직전까지 북한은 사전합의했던 일정대로의 개최를 거부했으나 2,3일전이 되자 『서울로 간다』고 연락해왔다.소련이 북한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노대통령과 김일성주석의 남북정상회담은 북한도 회담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에 개최 가능성은 비관적인 것이 아니었으나 북한의 핵문제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다. ▷한국민주화◁ 89년에 학생 데모와 노사분쟁이 격화되고 문익환목사등의 방북사건으로 정국이 동요하고 있을 때 보수세력쪽에서는 계엄령이나 비상사태를 선포하도록 청와대에 의견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강경 조치는 절대로 안된다』고 이를 거절 했으며 측근들에게 『역사를 후퇴시킬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노대통령은 당시 대통령의 연설문을 기안했던 나에게 「엄단」·「근절」등의 딱딱한 표현은 쓰지 말도록 지시했다.
  • 김 대통령취임식 참석/의원 6명 한국 파견/일한의원연

    【도쿄 연합】 일한의원 연맹은 오는 25일에 있을 김영삼차기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에 도츠카 신야(호총진야)자민당 중의원 의원을 비롯,자민·공명·민사 3당의 국회의원 6명을 개인 자격으로 한국에 파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이들은 24일 서울로 떠날 계획이다.
  • 총리와 국교생의 “따뜻한 정” 화제/옥천 박경렬군과 편지교환

    ◎“외투수선 기사에 감명” 만5천원 송금/현 총리,박군초청 컴퓨터선물후 격려 현승종국무총리는 19일 대전 대덕의 한국과학기술원 졸업식에 참석한뒤 지난해 12월 자신의 검소함에 감명받았다는 편지와 함께 소액환으로 1만5천원을 보내왔던 충북 옥천군 군서국민학교 6학년 박경렬군(13)을 과기원장실로 불러 컴퓨터 1대를 선물로 주고 격려. 현총리가 헌 외투를 세탁소에서 수선해 입고 다닌다는 내용의 신문기사를 읽고 지난해 편지를 보냈던 박군은 따뜻한 격려에 어쩔줄을 몰라하며 집에서 정성스럽게 마련한 영지버섯을 현총리에게 답례로 증정. 다음은 현총리와 박군이 만나서 나눈 대화내용. ▲현총리=네가 경렬이냐. 정말 반갑다.손한번 만져볼까.네편지를 받고 내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아버지도 같이 오지 그랬니. ▲박군=아버지는 총리할아버지 만나면 폐가 된다고… ▲현총리=네 편지를 받고 내가 무안해졌다.네가 나보다 더 훌륭해.코트 얘긴 어디서 들었니. ▲박군=아버지가 신문을 가져와서요. ▲현총리=내가 코트 해입을 돈이 없었던게 아니라 아직 하나도 헤지지 않아서 그랬다.네가 1만5천원을 만들려면 오랫동안 저축을 많이 했을텐데…어머님은… ▲박군=제가 어릴때 돌아가셨어요. ▲현총리=그 편지를 받고 바로 너하고 만나고 싶었다.그렇지만 재임중에 만나면 말이 나올 것 같아 임기끝나기 직전에 만나게 됐다.성적은 어떠니(담임선생님이 상위권이라고 대답).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박군=아버지와 할아버지처럼 검소한 보통사람이 되고 싶어요. ▲현총리=그래 훌륭하다.너무 어릴때부터 대통령이 되겠다느니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돈은 어떻게 마련했니. ▲박군=아버지가 주신 용돈을 절약했어요. ▲현총리=네가 준 1만5천원은 어느 재벌이 준 몇십억보다 더 값어치가 있다.그래서 아직까지도 쓰지 못하고 있다.네 정성이 너무 고마워 개인용 컴퓨터 1대를 마련했다. 할아버지 선물로 알고 받아다오(증서전달).네가 준 1만5천원도 내가 정성은 받았으니 네가 유용하게 써라. 이때 박군은 건강을 위해 잡수시라며 자신의 집에서 재배한 영지버섯을 현총리에게 증정하고 인사를 나눈뒤 작별.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현총리는 박군의 편지를 받고 답장을 보내 외투를 수선하게된 경위를 설명하고 서울로 초청하겠다는 약속을 했었으나 바쁜 일정으로 미뤄왔다』며 『마침 과기원 졸업식에 참석하게 돼 박군을 초청,컴퓨터를 선물해 정성에 답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 한편 동화작가 조대현씨는 현총리의 이같은 일화를 토대로 한편의 동화를 집필,아동용 월간잡지인 「소년」1월호에 실리기도 했다.
  • 정주영씨 탈당/현대출신 직원 복귀 지시/국민당 혼란 가중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정주영 국민당대표가 11일 탈당계를 공식제출함으로써 국민당과 관계를 완전히 정리했다. 정대표는 이날 하오 종로지구당에 우편으로 낸 탈당계에서 『일신상의 사유로 통일국민당 종로지구당을 탈당한다』고 밝혔다. 정대표는 또 광화문 중앙당사 14층 자신의 집무실을 폐쇄하고 현대출신 비서실및 사무처 직원들을 15일까지 현대그룹으로 복귀하도록 지시했다. 정대표는 울산에서 금명 서울로 올라와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의원직사퇴등 정계은퇴에 따른 신변정리문제와 현대경영복귀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정대표는 이날 서울 계동 현대그룹 본사 12층의 현대 명예회장 옛 사무실로 집무실을 옮기도록 지시했다. 한편 국민당은 이날 최고위원·당직자 연석회의와 의총을 잇따라 열고 대선직후 일괄사퇴서를 제출한 지구당위원장들의 사표를 반려하자는 박철언최고위원의 제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 고속도 승용차충돌 2명 사상

    【춘천=정호성기자】 7일 상오7시쯤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영동고속도로 신갈기점 1백68.2㎞지점에서 강릉을 떠나 서울로 가던 서울1부 5926호 쏘나타승용차(운전자 정문연·32·서울 강남구 도곡동)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강원4다3892호 르망승용차(운전자 조용운·59·강릉시 홍제동 118의11)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정씨와 르망승용차에 타고 있던 박정숙씨(54)등 2명이 숨지고 조씨는 중상을 입었다. 사고는 강릉을 떠나 서울로 가던 쏘나타승용차가 빙판길에 미끄러지면서 중앙선을 침범,마주오던 르망승용차와 부딪쳐 일어났다.
  • 최익현선생/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을사조약 체결되자 “항일의병” 횃불/74세 거유,“조약은 무효” 전북 태인에서 거병/대마도 유배뒤 순국… 전국적 배일투쟁 “점화”/“나라위해 생사초월” 무성서원연설 민족혼 일깨워 노옹의 항쟁은 열하루밖에 되지 않았다.그가 이끄는 의병의 병력과 무기도 보잘 것 없었고,정부측의 반응도 냉담했다.정부는 일제의 눈치를 보느라 오히려 해산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면암 최익현­1906년 6월4일부터 14일까지의 「뜨거운 날들」은 선생의 이름과 함께 역사에 붉게 각인되어 있다. 그것은 한반도에 요원의 불꽃으로 번지게 한 의병항쟁의 불씨를,선생이 지폈다는 뜻만으로서가 아니다.선생은 「나라가 흥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 우리의 마음을 잃지 않는데 있으며,인권도 중요하고 민권도 중요하지만 국권 없이는 모든 것을 잃는다」는 진리를 가르치며 이같은 독립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한 민족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경기도 포천 출생 당대 유학의 거봉으로 74세나 된 선생이,국권회복을 부르짖고 구국창의의 깃발을 높이 든 것은 일관된 삶의 자세에서 비롯됐다. 1833년 경기도 포천군 가범리에서 출생한 면암은 일찍이 이항로 문하에서 「애국여부 우국여가」의 사상을 이어받고,그 이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철저하였다. ▲1871년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리자 그 부당함을 상소 ▲고종의 신임을 얻어 호조참판이 된 뒤,누적된 적폐를 바로 잡으려다 오히려 기득권층의 반발을 받아 제주도로 유배 ▲1876년 병자수호조약을 결사반대하며 지부소(도끼를 가지고 상소를 올리며 답을 기다리는 것)를 올렸다가 흑산도로 유배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공표되자 청토역복의제소를 올려 항일운동을 전개 ▲1905년 소위 을사5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무효화와 박재순·이완용·이근택·이지용·권중현등 「오적」처단을 주장한 청토오적소를 올린 일등은 흐트러짐 없는 인간 최익현의 한 단면이다. 1906년 3월15일.선생은 가묘에 하직을 고하고 집안 사람들과 이별,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상소만으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러나 선생은 다시 한번 참담함을 맛보지않을 수 없었다.판서 이용원·김학진·참판 이성렬·이남규등에게 서신을 보내 「함께 국란에 대처할 것」을 바랐으나 한사람도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선생은 애제자 고석진의 소개로 「태인사람 임병찬」을 만나게 된다.임병찬은 임실군수까지 지내다가 왜인들의 정치를 마다하고 사퇴한 올곧은 선비였다. 『호남의 선비들이 장차 의병을 일으키려 하는데 모두 선생을 맹주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곳으로 가셔야 하겠습니다』 이후 두달 남짓동안 거의가 준비됐다.시골 포수들로부터 총칼이 모아지고,2백여명의 우국지사가 모여들었다. 6월4일.태인 무성서원에서 있은 선생의 강회는 항일의병의 역사적 분기점을 이룬 날로 기록된다. 『지금 왜적들이 국권을 농락하고 역신들은 죄악을 빚어내 오백년 종묘사직과 삼천리 강토가 이미 멸망지경에 이르렀다.나라를 위해 사생을 초월하면 성공 못할 염려는 없다.나와 함께 사생을 같이 하겠는가!』 불꽃에 민족혼을 일깨운 의병들은 이날 정읍에 무혈입성,총칼과 탄환을 거두고 군사를 모집했다.또한 일제에 16개 죄목을 들어 국권의 침략과 국제적 배신행위를 통렬하게 지적한 장문의 규탄서를 보내기도 하였다. 그후 정읍에서 흥덕으로,다시 순창 구암사에서 순창읍내로 행군하였을 때에는 의병의 수가 5백여명을 넘게 되었다.힘을 얻은 「면암의병」들은 파죽지세로 곡성을 거쳐 남원으로 밀고 들어 가려 했으나,순창으로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남원 방비가 워낙 견고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의병은 8백여명으로 불어났다. 6월11일.광주관찰사 이도재가 사람을 보내 고종의 칙지를 전해왔다.선생은 큰 기대를 갖고 이를 펼쳐 보았으나 그 내용은 엉뚱하게도 『의병을 해산하라!』는 것이었다. 면암은 『이미 소장을 올려 의병을 일으키게 된 연유를 말씀 드렸으니,나의 진퇴는 관찰사의 직권으로 지휘할 바가 아니다』는 답장을 보냈다.그리고 다시 남원진입을 꾀했다. ○고종,의병 해산령 그러나 남원을 지키고 있는 부대가 왜군이 아니고 우리측 진위대임이 확인되었다. 진위대(경군)측은 『대감이 민병을 해산시키지 않으면 전진이 있을 뿐』이라는 통보를 세차례나 보내왔다.선생은 괴로워했다. 선생은 임병찬에게 『동포끼리 서로 박해하는 것은 원치 않으니 즉시 해산시키라』고 명령했다.쉽사리 흐트러지지 않던 의병들은 눈물을 머금고 해산되었다.선생 곁에 끝까지 남은 의병은 12명 뿐이었다. 6월14일.선생일행은 서울로 압송되었다.그리고 우리 사법부가 아닌 일제에 의해 재판을 받게 된다. 「대마도 감금 3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선생은 1907년 1월1일 단식 끝에 한많은 적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선비정신의 귀표 역사학자 박성수교수(정신문화연구원)는 면암의 항일운동과 관련,『선생은 1876년 개항 이후 줄곧 외침을 경고했으며 이에 맞서 나라를 구하는 길은 오로지 국론을 통일해 일치단결하는 것밖에 없다고 부르짖어 온 분이었다』며 『그러므로 선생이 70고령을 무릅쓰고 무기를 들었다는 소식은 단지 그것만으로도 여간 큰 충격이 아니었는데 외딴 섬 대마도에서 순국하셨다는 소식은 온 국민의 가슴에 칼을 꽂은거나 다름없는 슬픔과 분노를 안겨 주었다』고 평가했다. 선생의 항쟁 이후 호남을비롯한 전국 각지에서는 우후죽순처럼 의병들이 일어난 점만 보아도 당시 선생이 위대한 민족주의자로서,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였다는 점이 입증되는 셈이다. 선생은 순국직전 임병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죽음에 있어 마땅히 죽을 곳에서 죽으면 삶보다 부끄러울 것이 없다.나 이제 죽을 것이니 황상에게 올릴 마지막 소를 비밀히 간직하였다가 본국으로 돌아 가는 날 전해주길 바란다』 고국으로 돌아온 선생의 영구행렬 앞에는 「춘추대의 일월고충」이라는 깃발이 나부꼈다.
  • 「상경 설쇠기」 승용차 44% 증가

    ◎21일∼설 24만대 귀성역류 “서울로”/열차귀경도 20% 늘어 7만여명/차량급증 불구 자가용귀향은 2만대 줄어 명절을 부모 또는 친지가 있는 고향으로 내려가 지내지 않고 부모가 형제들이 살고있는 서울로 올라와 쇠는 「귀성역류현상」이 새로운 명절풍속도로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찰청이 귀성행렬이 이어지는 설날연휴 하루전인 21일부터 설날인 23일까지의 3일동안 상경차량을 비교·분석해 2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의 경우 상경한 차량이 24만1천대로 지난해의 16만7천9백대보다 43.5%가 는 7만3천1백대가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설날특별수송대책기간 첫째날과 둘째날인 21일과 22일 서울역으로 들어온 상경객도 각각 3만5천여명,3만6천여명으로 지난해보다 20% 늘어났다. 이에비해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서울을 빠져나간 설날귀성객은 2백19만3천여명으로 지난해의 2백21만9천여명보다 2만5천여명이 줄어들어 귀성역류현상을 뒷받침해주었다. 귀성객을 교통편별로 봐도 정체가 예상되는 승용차와 버스이용자는줄어든 반면 교통체증이 없는 열차와 항공기승객은 증가,귀성전쟁을 피하려는 움직임이 뚜렷이 나타났다. 자가용귀성객은 승용차보급이 크게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1백7만6천여명으로 지난해보다 3만8천여명 감소했으며 서울을 빠져나간 자가용 승용차도 2만2천여대가 줄어든 53만6천여대에 그쳤다. 또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귀성객은 53만2천9백여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거의 3만명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열차와 항공기는 승객이 늘어 열차귀성객은 48만7천여명으로 6천명 가까이 증가했으며 항공기이용자는 3만6천여명 늘어난 9만6천여명이었다.
  • 차분한 설연휴… 귀경길도 순조/대형사건·사고 격감

    ◎조용한 명절보내기 자리잡아/고속도 소통 예상밖 원활/“교통체증 피하자”… 조기 귀경객 는 탓 조용하고 차분한 설연휴였다.사건·사고도 예년에 비해 적었으며 명절연휴때마다 되풀이 되던 귀성·귀경길의 극심한 교통난도 없었다.연휴 마지막날인 24일 고속도로가 밤늦게 다소 붐볐지만 연휴 3일동안 평일보다 특별히 체증이 심한 편은 아니었다. 고속도로의 경우 경부고속도로 남이∼청주구간,영동고속도로 양지∼용인구간등 일부구간이 한때 부분적으로 정체현상을 빚기도 했으나 나머지구간은 대부분 정상소통됐다. 한국도로공사는 연휴기간동안 모두 45만5천여대가 서울을 빠져나가 이 가운데 30만8백여대가 설날인 23일까지 서울로 돌아왔다면서 지난해보다 설날연휴기간이 하루 짧았으나 확장공사중인 경부고속도로구간을 귀성·귀경길에 신축적으로 운영하고 일부기업체의 경우 25일까지 휴무하는 기업도 많아 귀경행렬이 분산돼 차량소통이 원활했던 것같다고 분석했다. 또 신정과 설이 나뉘어져 귀성인파가 분산됐고 극심한 교통정체를 피해 서둘러서울로 올라오는 새로운 풍속도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이와함께 많은 시민들이 신정과 설연휴중 한번만 귀성하고 나머지 연휴때는 가족과 함께 근교에 나들이가거나 휴식을 취하는 새로운 생활패턴도 혼잡을 덜어 주었다. 서울시와 서울경찰청은 이날 예비군수송버스 50대,경찰버스 85대를 동원,서울역·청량리역·영등포역등지에 배치해 밤늦게 귀가하는 귀경객들의 편의를 도왔으며 지하철과 좌석버스도 25일 상오2시까지 연장운행해 밤늦게 도착한 귀경객들을 귀가시켰다. 내무부는 이번 연휴기간중 전국에서 모두 1백90건의 화재가 발생,7명이 숨지고 4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모두 4억4천9백여만원의 재산피해가 난 것으로 잠정집계했다. 한편 설날인 23일 각 가정에서는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낸뒤 가족들과 오순도순 모여앉아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대부분의 상가들이 철시한 가운데 도심을 지나는 차량도 적어 한산한 모습을 보였으나 벽제·망우리등 시립묘지에는 이른 아침부터 성묘객들의 발길이이어졌다. 성묘를 마친 시민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경복궁·창경궁등 고궁과 서울대공원등 유원지를 찾아 설날 연휴를 즐겼으며 시내 극장가에도 젊은층들이 몰려 입장권을 구하려는 청소년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 연휴 교통사고 1,611건/86명 사망·1,958명 부상

    설연휴 대이동이 이뤄진 21일부터 23일까지 3일동안 전국에서 모두 1천6백11건의 교통사고가 발생,86명이 숨지고 1천9백58명이 다쳤다.이는 건수로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0건이 늘어났으나 사망자는 21명,부상자는 2백33명이 줄어든 것이다. ▲24일 하오1시50분쯤 광주시 동구 지원동 녹동마을 앞길에서 대전 1러1329호 엑셀승용차(운전사 김영석·22·대전시 동구 신안동 233의15)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광주 대진운수소속 광주 5자8321호 17번 시내버스(운전사 백일환·46)와 정면으로 충돌,승용차 운전사 김씨와 임성봉(43·여·대전시 중구 대흥동470의12),엄기완씨(60·광주시 서구 주월1동450의8)등 승용차에 타고 있던 5명이 모두 숨지고 시내버스 승객 백기선양(18)등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24일 상오7시20분쯤 충남 천안군 성거읍 석교리 망향휴게소앞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광주를 떠나 서울로 가던 광주고속소속 전남6바1158호 고속버스(운전사 이기한·34)가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던 이 휴게소 직원 오세희씨(57·여)를 들이받고 급제동을 거는 순간 뒤따라오던 서울6누 3811호 봉고승합차(운전자 이순복·47·서울 성동구 중곡동82)등 차량 6대를 잇따라 추돌했다. 이 사고로 오씨와 봉고차운전자 이씨등 2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24일 상오2시쯤 충남 서산군 고북면 신상리 중앙레미콘앞 국도에서 해미에서 고북방면으로 가던 경기3두4347호 엑셀승용차(운전자 이창수·31)가 앞서가던 차를 추월하려다 길옆 가로수를 들이 받아 차에 타고 있던 조득호씨(26·서산군 해미면 읍내리 321)와 박장근씨(28·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세류3동 485)등 2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운전자 이씨등 3명이 중상을 입었다. ▲24일 상오 1시40분쯤 강원도 원주군 지정면 보통리앞 영동고속도로 하행선에서 경기3노 7511호 에스페로 승용차(운전자 김상환·33·경기도 여주군 동래면 현암리 155)가 마주오던 경기2구 6525호 캐피탈 승용차(운전자 안진모·31·서울 중랑 경찰서 면목3동 파출소 순경)와 정면으로 충돌,캐피탈승용차운전자 안씨가 숨지고 에스페로 승용차 운전자 김씨등 3명이 크게 다쳤다. ▲지난 23일 상오 0시10분쯤 충북 충주시 칠금동 칠금주유소앞길에서 서울 1후 8797호 그랜저승용차(운전자 신종훈·19·충주 대원고 3년)가 빙판길에 미끄러지면서 길옆 2m아래 논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함께 타고있던 주영기(19·충북·중원군 엄정면 옥계리)이동규군(19·충주시 칠금동)등 2명이 그자리에서 숨졌다. ▲지난 23일 상오9시쯤 강원도 원주군 문막면 후용리 영동고속도로 상행선에서 서울1르 5779호 르망승용차(운전자 우태명·47 산림청 연구원)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경기4두 2757호 르망승용차(운전자·변용섭·27)를 들이받아 가해차량 운전자 우씨와 우씨의 아들 종진군(15)등 2명이 숨지고 우씨의 부인 김명남씨(40)등 5명이 중상을 입었다.
  • 복잡한 귀성길 고생 피하자/상경설쇠기 늘고 있다

    ◎고향가족,부모모시고 서울로/“성묘 못하지만 고궁구경 시켜드리죠” 명절이나 연휴 교통체증을 피해 지방거주 가족들이 대도시 가족들과 합류하는 「귀성역류」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대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미리 고향을 찾아 차례를 지내고 추석·설등 연휴에는 시골에 계신 부모들을 서울등 대도시로 모셔 명절을 보냄으로써 많은 식구들이 움직이는 불편을 덜려는 착상이다. 이는 열차·고속버스등 대중교통수단의 귀성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다 손수운전자들도 귀성·귀경길에 엄청난 홍역을 치르기 때문이다. 이들 귀성역류가족들은 고향의 웃어른을 직접 찾아보지 않고 서울등으로 모시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예절에 어긋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극심한 귀성·귀경전쟁에 이제는 부모들도 어느 정도 이해해준다고 말하고 있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는 김모씨(36·구로구 구로1동)는 『지난 신정연휴때 대전에 계신 62세의 어머니를 여동생이 모시고 왔다』면서 『연휴때 대전을 가려면 평소의 2시간30분보다 2∼3배인 6∼8시간씩 걸렸으나 어머님이 오실때에는 고속버스표 구하기도 쉬웠고 시간도 1시간40분정도 밖에 안걸렸다』며 만족해했다. 또 홍모씨(42·회사원·서울 성동구 구의동)도 『고향이 전남 광주여서 아이 둘을 데리고 연휴때 간다는 것은 이제 엄두가 안난다』면서 『고향의 남동생 가족이 아버님을 모시고 신정연휴때 머물다 갔다』고 말했다. 홍씨는 또 『성묘는 가족끼리 약속을 정해 명절전후의 일요일을 잡아 치른다』면서 『명절날 성묘를 못하고 부모님을 올라 오시도록 해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한꺼번에 귀성인파가 몰리는 것을 감안하면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고 덧붙였다.
  • 휴일 3㎝ 눈에 귀가길 “교통전쟁”/서울 곳곳 도로 결빙

    ◎도심∼강남 2∼3시간 걸려/제설차량 9백37대 동원 철야 작업/한파 20일까지… 오늘아침 영하9도 17일 하오부터 서울·경기지방에 내린 3㎝가량의 눈이 밤사이 기온이 떨어지면서 그대로 얼어붙어 18일 아침 출근길이 큰 혼잡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경찰청은 17일 하오4시30분부터 북악및 인왕스카이웨이,남산순환도로등 3곳의 차량통행을 금지하는 한편 88올림픽대로등 도심외곽지역도로가 얼어붙어 각종 교통사고가 일어날 것에 대비,이날 하오5시부터 「교통비상령」을 내리고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이날 하오 백상승부시장을 본부장으로 한 「제설대책본부」를 가동,제설차량 9백37대와 5천6백여명의 인원을 동원해 올림픽대로및 한강교량,터널입구,미아리·남태령고개등 취약지역에 염화칼슘 25만㎏을 뿌리는 등 철야제설작업을 벌였다. 서울시와 경찰은 도로의 결빙상태가 18일 낮까지도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승용차 대신 지하철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줄 것을 시민들에게 당부했다. 한편 이날 눈이 내리면서 차량들이 시속 10∼20㎞의 거북이운행을 계속하는 바람에 도심과 올림픽대로·한남대교 등 서울시내 곳곳에서 밤늦게까지 극심한 교통정체현상을 빚었다. 롯데·미도파등 대형백화점이 밀집한 을지로입구등 서울도심에서는 세일기간을 이용,설날선물이나 제수용품을 마련하려는 시민들의 차량이 한꺼번에 몰린데다 눈까지 내려 혼잡이 더했고 도심에서 강남지역으로 빠져나가는데 2∼3시간이 걸렸다. 회사원 강모씨(50)는 『광화문에서 남산3호터널을 통해 신반포까지 빠져나가는데 평소 20분이 소요됐는데 이날은 2시간이상이 걸렸다』면서 『특히 시청앞에서 남산3호터널까지 1시간이 소요돼 도심의 교통정체가 극심했다』고 말했다. 또한 경부·중부고속도로를 통해 서울로 올라오는 차량들이 20∼30㎞의 서행을 계속,대전에서 서울까지 평소보다 2배이상인 4∼5시간이 소요됐다. 기상청은 이날 『찬 대륙성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 18일 전국의 아침최저기온이 영하15도에서 0도의 분포를 보이겠으며 이같은 강추위는 오는 20일까지 이어지겠다』고 예보했다. 18일 아침최저기온은춘천 영하15도,수원·청주 영하10도,서울·대전 영하9도,전주·인천·대구 영하8도,강릉 영하7도,광주 영하6도,부산 영하4도 등이다.
  • 주도면밀한 출국기도/윤두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정주영국민당대표가 지난13일 김해공항에서 일본으로 출국하려 했던 것이 「돌발행동」인가,「사전계획」에 의해서인가에 대해 해석이 구구하다. 정대표는 출국이 저지된뒤 『일본에서 며칠 휴식을 취하려고 했었다』고 말했다.그러나 경주에서 교묘하게 보도진을 따돌리고 김해공항까지 도착한 행적을 보면 「몰래 도피」하려 했다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정국구상을 이유로 경주에 머무르고 있던 정대표는 12일 밤 중앙당으로부터 『보도진들이 내일(13일)대거 몰려간다』는 전화보고를 받았다.정대표는 잠시 궁리한 끝에 수행차 내려온 김인재차장에게 『즉각 서울로 가서 여권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이어 다음날인 13일 이른 아침 정대표는 기자들이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간편복차림으로 숙소인 현대호텔을 빠져 나갔다. 이때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하는 호텔 관계자들에게 『산책하러 간다』고 대답한 정대표는 곧장 울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정대표가 하룻밤을 보낸 현대호텔 12층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에는 정대표의 것으로 보이는 양복과 구두가 그대로 놓여져 마치 곧 돌아올 것처럼 위장돼 있었다. 게다가 호텔측은 평소 별도의 청소담당직원을 둘 정도로 철저히 관리하던 이 방을 기자들이 짧은 시간이나마 몰래 방안을 엿볼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경비를 허술하게 함으로써 기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또 호텔정문 앞에는 현대중공업 소속 귀빈용승용차라는 「뉴 그랜저」가 정대표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이 승용차운전사는 이날 낮 잠시 차를 몰고 나갔다 돌아와 『정대표가 떠날 것에 대비,기름을 넣고 왔다』며 연막을 피웠다. 그러나 이 사이 정대표는 울산 현대중공업 영빈관에서 이자헌최고위원과 정몽준의원을 만난뒤 곧바로 김해공항으로 향발,출국수속을 밟았다. 이처럼 치밀한 계획은 뜻밖의 언행으로 주위사람들을 자주 당혹하게 만드는 정대표의 평소 습관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이 「유아독존식」의 정대표를 이같은 주도면밀하게 움직이게 했을까. 국민당이나 정대표의 해명처럼 단순히 휴식을 위해 출국하려했던 것이기에는 설득력이 모자란다. 따라서 이같은 일련의 과정에서나타난 상황으로 볼때 정대표의 출국시도 목적은 검찰의 수사를 피하기 위한 「도피성」이었다는 결론이 설득력을 갖는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정 대표가 「국민당 자금지원」 지시/검찰 확인

    ◎현중 비자금 1백억 추가조성 밝혀/정 대표에 2차소환장 발부/출두거부땐 구인… 설연휴전 기소 국민당 정주영대표의 대통령선거법위반및 현대중공업 비자금유출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은 14일 정대표가 이날 1차소환에 불응함에 따라 16일 상오10시 출두하도록 2차 소환장을 보냈다. 검찰은 정대표가 재소환에도 불응할 경우 다음주초 정대표를 강제구인,21일 이전 불구속기소로 사건을 매듭지을 방침이다. 검찰은 『정대표측이 당초 14일은 나올 수 없지만 19일이나 20일쯤 자진출두 의사를 타진해 왔다가 갑자기 오는 20일에 있을 클린턴 미대통령취임행사 참가를 이유로 25일이후에나 출두하겠다고 해 16일 다시 소환키로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정대표측이 클린턴대통령 취임행사 참석을 위해 출국을 희망하고 있으나 검찰조사를 피하기위해 이미 예고없이 일본 출국을 시도한 적이 있고 출국금지상태에 있는만큼 조사받기전에 출국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울산현대중공업경리사무실에서 압수한 자금전표철과 원재료원장등을 정밀 분석한 결과 이 회사가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선박수출대금을 미도착한 재료의 수입대금인 것처럼 전표를 허위작성하는 수법으로 모두 6백63억여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로써 현대중공업이 조성한 비자금의 규모는 지금까지 밝혀진 5백65억원에서 1백억원가량이 더 늘어났다. 검찰은 이에따라 이날 울산 현지에서 허위전표작성을 주도해 온 이 회사 상무 김종운씨(46)와 회계부장 손영률씨(42)등 2명을 서울로 압송,호위전표작성경위와 실제로 돈이 조성돼 국민당측에 건네졌는지 여부를 집중추궁하고 있다. 검찰은 특히 구속수감된 장병수전무(52)에 대한 조사결과 『지난해 11월 수배중인 이병규국민당 대표특보를 통해 정대표에게 비자금 1백억원을 전해주고 「명예회장 1백억원」이라는 메모지를 직접 작성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검찰은 또 장전무가 이특보로부터 정대표의 지시라는 말을 듣고 다른 비자금도 조성해 이특보에게 전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검찰관계자는 『지금까지 조사결과 정대표가 비자금을 조성,국민당으로 전달할 것을 지시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자진출두했던 이 회사 재정부장 이상령씨(40)를 조사한뒤 특정 경제범죄가 중처벌법(업무상배임등)혐의로 구속수감했으며 임양희출납과장과 문종박외화금융과장등 2명을 같은혐의로 입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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