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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전국쌀증산왕 이천 한천희씨(농산물개방/극복의 현장)

    ◎“다수확 비결은 땅심”… 지력증진에 실혈/토양 정밀조사후 가지·이삭거름 적절히/단보당 8백51㎏ 수확… 농가평균 배 넘어 93년 전국 쌀재배 최우수농가로 선정돼 철탑산업훈장을 받은 경기도 이천군 와현리의 한천희씨(42). 한겨울인데다 하늘마저 유달리 춥게 느껴진 6일 하오 김씨는 마당앞 퇴비장에서 열심히 두엄을 개고 있었다.우루과이라운드다 쌀개방이다 해서 전국의 농촌이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도 그는 개방시대의 해결책이 두엄속에 있기라도 한듯 묵묵히 두엄더미만을 뒤적였다. 바쁜 일손에 동네 이장직까지 맡고있는 그는 서울로 떠난 부모와 동생들을 뒤로하고 홀로 고향에 남아 과학영농을 실천해온 의지의 농군이다. 한씨는 지난해 이상저온현상에 따른 극심한 냉해에도 불구하고 단보당 8백51㎏의 쌀을 생산,일반농가의 평균생산량 4백18㎏의 2배 이상 수확을 올렸다. 그러나 농사꾼으로서 이같은 최대영광을 안기까지에는 그의 치밀한 과학영농 추구와 피나는 노력이 배어있다. 지난 91년 이천군 다수확상을 수상한 한씨는 군의 추천에따라 이듬해 경기도 다수확부문에 도전,역시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이에 고무된 한씨는 이번에는 전국 다수확상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영농방법을 면밀히 분석,우량품종 선택과 지력증진을 위한 최상의 과학영농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그의 때묻은 영농일지엔 제일 먼저 지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결과가 적혀있다.그는 우선 다수확의 선결요인이 땅심에 있다고 판단,출품할 3단보의 논에 대한 정밀 토양검증을 농촌지도소에 의뢰했다.그리고 지도소의 처방에 따라 단보당 볏짚 5백㎏을 절단해 투입하고 부식함량을 높이기 위해 두엄 2천㎏도 1년간 묵혀 완숙된 것을 사용했다.게다가 전해에 거둬들인 들깨짚 2백여㎏까지 알뜰하게 섞어 토양가꾸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또 지력향상에 필수인 규산질비료 7백50㎏과 용성인비 3백㎏도 빠짐없이 쓰는 한편 평소보다 5㎝가량 깊은 18㎝이상의 깊이갈이를 했다. 비료는 가지거름으로 단보당 요소 8.3㎏을 주고 이삭거름으로는 단보당 12.3㎏의 복합비료를 투여했다. 한씨는 농민들 대부분이 이삭이 달리기 시작하면 일체의 비료를 사용치 않고 있으나 낱알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삭거름 시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모를 낼 논에는 단보당 42㎏의 밑거름과 벼가 썩어들어가는 문고병을 방지하기 위해 일반농민들이 밭에만 사용하는 붕사 등을 과감히 시비하는등 본답관리를 시작했다.그리고 이앙은 기계를 사용치 않고 손모내기를 했다.이 과정에서 그의 피나는 노력을 지켜본 동네 청년 20여명이 달려들어 품삯도 거부한채 모내기를 돕기도 했다. 물관리는 6월부터 9월 말까지 5∼7일 간격으로 일정하게 실시했다.7월 중순이후 이상저온현상이 지속되자 한씨는 물의 온도를 높여주기 위해 논주위에 투명비닐호스를 설치,대낮의 태양열을 이용해 호스안의 물온도를 2∼3도가량 높여 공급했으며 병충해 방제는 5월 벼물바구미 방제를 시작으로 모두 9회에 걸쳐 실시했다. 지난 76년 군에서 제대한후 물려받은 5천여평의 논을 기반으로 첫 농사를 시작한 한씨는 2년뒤인 78년 장호원읍에서는 최초로 콤바인등을 구입,기계화영농에 앞장서 선배 농군들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의 억척같은 농사열기에 수확도 매년 늘어 재산이 불어나갔고 이제는 2만5천평의 전답에 묘목단지와 양돈까지 겸해 연간총소득 6천만원에 달하는 부농으로 성장했다.
  • 수도꼭지·샤워용구 생산/(주)성진 김영애사장(맹렬여성)

    ◎“다품종·고품질로 외국제품 이기겠다” 『중소기업 제품이라도 다품종 소량생산에 품질만 좋으면 대기업 제품과 능히 겨룰 수 있습니다』 수도꼭지 및 샤워용구 전문 생산업체인 (주)성진의 김영애사장(38·경기도 김포군 김포읍 장기리438)은 20여년전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는 생각만으로 무작정 상경한 당찬 소녀였지만 이제는 연간 매출액 46억원을 올리는 탄탄한 중소기업의 여사장으로 올라섰다. 『오직 한가지 제품에만 전념한 결과입니다.맨주먹으로 사업을 시작,뼈아픈 경험을 많이 했지만 보잘것 없는 중소기업이라도 품질만 좋다면 대기업 제품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김사장이 이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당시 오지였던 강원도 원통에서 고학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낮에는 구로공단의 직공으로 일하면서 야간 실업학교를 졸업한 뒤 수도꼭지를 연마·도금하는 회사에 취직하면서부터였다.같은 회사의 직원이던 박성호씨(41)와 결혼하고 사업자금을 모아 80년 허름한 공장을 인수,각종 밸브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업규격 표시허가를 받지 않아 제품 대부분이 「불량품」 취급을 받았다.다른 업체 제품을 모방해 생산하다 고발당하기도 했다.이를 계기로 자체 상품 개발만이 살길이라고 생각,일본에 견학도 가고 전시회를 찾아 다니며 아이디어를 짜냈다. 다행히 개발한 연탄보일러의 공기를 빼는 장치가 특허를 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독자적으로 만든 샤워용구는 92년 상공부의 「굿디자인 마크」와 함께 환경처 장관상을 받았다.수압에 따라 돌아가지 않도록 벽걸이 접속부에 홈을 파내고 샤워 헤드에 버튼을 달아 꼭지를 잠그지 않고도 물을 멈추도록 한 간단한 제품이지만 절수 효과에다 편리한 제품으로 평가받았다. 『시장 개방으로 외국제품들까지 밀려들어 더욱 치열해지는 경쟁속에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내지 않으면 대처해 나갈 수 없다』며 『관리가 복잡하더라도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말한다.공장을 새해초 김포 하성으로 넓혀 옮기고 9월에는 인도네시아 현지공장의 가동에 들어간다.새해부터 경영 무대를 세계로 넓히기 위해서이다.
  • 갑술년 아침에/대모신의 심장이여 천룡으로 비상하라

    겨레의 영원한 어머니인 영원한 대모신인 국토, 그 가슴의 심장을 우리는 서울이라 불러 왔다. 북한,도봉의 소슬한 봉우리들 그대 어깨죽지도 솟고 한가람의 푸른 물길 그대 숨결로 맥동하였으니, 해와 달 그리고 뭇 성좌와 6백년의 성상이 그대를 에워 돌고 도는 사이 겨레의 역사,그 비장한 운행 또한 그대를 더불었으니 아! 서울이여, 이제 새로운 6백년,그리고 6백의 세기,그 무량의 억겁을 새 천시를 얻은 천룡으로 비상하라. 나라의 개벽은 곧 서울의 개벽이었다. 그것은 고조선,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조선조에 다다르기까지 변함이 없었다. 나라가 세워지면 서울을 새로이 닦았으니,재(성)를 쌓고 담을 두르고 궁궐을 짓고 하여 일러서 「서울」이라고 하니,이가 곧 나라의 기틀이었다. 고조선에서나 고구려에서나 「정도」는 하늘의 뜻이었다.사람이 함부로 할 일은 아니었다.하늘이 점지한 터에 하늘나라의 본을 따서 하늘의 의지며 솜씨대로 서울은 이룩되었다.고구려 건국신화가 무엇보다도 생생하게 이 사실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골령위에 상서로운 구름이 걸리고 그 속에서 몇날 몇일 두고 나무 베는 소리,다듬는 소리를 위시해서 온갖 집짓는 소리 들리니,백성들이 이를 신기하게 여기자 동명왕은 그것은 곧 하늘이 자신을 도와 성을 쌓는 소리라고 풀이했다』 이 신화의 문맥은 한 나라의 도읍의 창건은 곧 하늘의 작업이요 공사임에 대해서 시사하고 있다.그런 점에서는 고조선의 서울이었을 「신시」또한 다를 수 없다.오죽하면 그 터전을 일러서 「신들의 고을」이라고 일렀을라고…. 이 정신은 조선조에도 이어졌다.서울에 바친 찬가인 「화산별곡」은 「화산남한수북,조선승지백옥경」이라고 서울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백옥경은 하늘의 서울,달속의 궁궐이 아니던가.백옥경은 단순한 미사려구가 아니다. 고조선 이래의 전통을 받들어서 하늘 뜻대로 조선왕조가 오늘의 서울에 정도한 뒤 이미 6백의 성상이 흘렀다.위로 천명을 우러러 아래로 광명정대하여 홍익인간하는 것,그 이념에 서울이 헌신한지 6백년의 세월이 흘렀다.앞으로도 이 이념이 달라질리는 없다. 그 사이 서울은 민족의 역사가 스스로 겪는 아픔의 크기만큼 자라간다는 것을,몸소 고뇌와 비창과 맞선 열정의 부피만큼 발전해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이 점은 서울이 6백년의 대단원을 눈앞에 두고 나라를 빼앗긴 오욕,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을 때도 달라지지 않았다.서울은 그로써 6백년을 마무리할 기틀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것은 6백년 서울의 역사의 「도미의 장식」이었다.아세아의 한 중핵이자 세계속의 서울로 비약할 도약대를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화산별곡은 서울을 「용이 하늘을 날면서 지은 형세」라고 하였지만 이제 한반도안에 웅크리고 있던 용은 동북아를 품에 안고 세계를 향해서 비상해야한다.이제 서울은 세계를 향한 천시를 누리고 천명을 받들어야 한다.그리하여 지구촌의 광명정대가 되어 범지구적인 홍익인간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서울은 지난 6백년을 잠룡으로서 은인자중해 온 것이다.그러나 드디어 때가 왔다.아세아의 잠룡은 마침내 「세계의 천룡」이 되어야 한다.그리고 세계의 빛 세계의 의로움이 되어야 한다.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세기에서 서울이 누려 마땅한 천명이다. 화산별곡은 「의로움을 잇고 또 이어서 또 펴고 또 펴서 천지가 편안함을 누리고 사방세계가 하나같이 통합될 태평」을 서울에 부쳐서 축수하고 있거니와 그 창업의 정신이 간직했던 웅지가 이제 바야흐로 실천되어야 한다.한반도의 옛 화산은 이제 세계의 새 화산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또다른 천명을 서울은 감당할수 있어야 한다.그것은 겨레를 위한 천명,민족사를 위한 천명이다.통일 한국의 수도 서울이 될 그 지엄한,지상의 거룩한 천명이다. 새로운 세기의 서울이여,세계의 천룡으로 비상하라.남북의 용으로 날아라 .그리하여 「후천」개벽하라. 이제 그 천시가 왔음을 우리들은 다짐하노니 서울이여,우리의 천룡이여,우리의 소원을 가납하라.
  • 되돌아본 1993 신한국 원년/정치부기자 방담

    ◎문민 기틀다진 정치대변혁 365일/개혁 대명제… 공직자 1·2차 재산공개/정통성 바탕 「5.16」 「12·12」 재평가 큰의미/성역없는 사정… 감사원 위상 크게 강화/NPT탈퇴 북핵,국제적 파문속 한반도 위기설까지 초래 「신한국 원년」 계유년이 저문다.문민시대를 활짝 열고 숨가쁘게 달려온 한해.정치권은 개혁·사정·역사재평가·국제화·개방화등 신한국을 창조하기 위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한치도 눈돌릴 틈이 없었던 올해 정치권의 변화를 정치부기자들의 방담으로 돌이켜 본다. ­올 한해는 우리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변혁의 해였습니다.30년만에 문민정부가 출범하고,우리사회는 정치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혁명에 가까운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다사다란이란 말로는 부족할 정도입니다.변화의 조짐은 새정부 출범 첫날인 2월25일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 등산로가 개방되면서 시작됐지요.국민들은 굉장한 변화가 시작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변화는 김영삼대통령과 청와대로부터 출발했지요.권위주의시대의 상징이라 할수 있는 이른바 「안가」(안전가옥)는 시민공원으로 바뀌었습니다.「지방청와대」(대통령을 위한 지방공관)도 일반에 개방됐습니다. ­정말 청와대주변이 몰라보게 달라졌어요.평일에 3천여명,휴일에는 6천∼7천명이 줄을 이어 찾는 관광명소가 된 것입니다. ­그 부작용도 있지요.청와대 주변에 차량이 몰리면서 교통체증이 심각한 문제로 등장했고,청와대 안까지 매연이 몰려들고 있습니다.시위도 빈발하고요. ○안기부 크게 위축 ­청와대 살림도 눈에 띄게 달라졌어요.청와대 칼국수가 국제적으로 유명해졌고 청와대 구내 식당은 늘 만원사례입니다.한 수석비서관은 모든 경조사 부조금을 일률적으로 「3만원」으로 하라고 보좌관에게 지시,청와대의 허리띠 졸라매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시켰습니다.한때 박관용비서실장의 영양실조설까지 나돌 지경이었으니까요. ­8월12일의 전격적인 금융실명제 단행은 김대통령이 얼마나 보안에 철저한가를 실증하는 사건이었습니다.저녁 7시30분 TV생중계로 김대통령이 직접 발표하기 5분전까지 출입기자들도그 내용을 전혀 몰랐어요. ­대통령이 다음날 수석비서관들에게 미리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얘기를 할 정도였으니 알아줘야 하겠어요.그렇게 했으니 보안이 유지되었지,미리 새나갔다고 생각해봐요.금융시장이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새정부 들어 위상의 부침이 가장 심했던 기관이 감사원과 안기부일 것입니다. ­그동안 권력의 하부기관 쯤으로 인식돼왔던 감사원은 이회창원장이 취임한뒤 청와대와 「율곡사업」,「평화의 댐」등에 대한 감사를 통해 국가최고사정기관으로서의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그에 비해 안기부는 정치관여에 대한 지난날의 「원죄」때문에 크게 위축된 모습이 됐습니다.게다가 평화의 댐 건설과 대통령훈령 조작의혹으로 감사원의 감사대상에까지 오르게 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무엇보다 안기부를 답답하게 만든 것은 안기부법의 개정이었습니다.안기부도 나름대로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안기부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죠.하지만 여야의 협상과정에서 수사권한등이 그 인식의 틀을 훨씬 뛰어넘어 대폭으로 손질되자 『손발이 완전히 묶였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대공업무를 처리하느냐』는 등의 불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새정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정통성을 바탕으로 한 역사의 재평가작업이었습니다.과거의 청산이라고나 할까요.「5·16」「12·12」등 군사정권 아래서 미화되던 사건들이 쿠데타로 규정되었고 「4·19」를 비롯,「6·3」「광주민주화운동」「6·10」등이 민주화운동의 반열로 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김대통령은 「12·12」를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여당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했지만 과거 군사정권과는 연계가 없음을 분명히 했지요.그러나 김대통령은 「적」이라는 절묘한 수식어를 달면서 이들에 대한 궁극적 평가는 역사에 맡기자고 말해 현 여당내의 구세력을 인위적으로 청산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김대통령은 일제의 잔재를 없애는데도 앞장섰습니다.옛 일본총독부건물과 총독관저를 헐기로 결정한 것도 김대통령의 「업적」의 하나로 평가될 것입니다. ­정부는 규제와 관행과의 전쟁을치렀습니다.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적으로 잘못된 규제와 관행이 지적되자 모두 3천8백여건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들을 뜯어 고쳤습니다. ○일제의 잔재 제거 ­일반국민들의 관심과 호응도 매우 컸어요.공무원과 회사원·농민·학생 가릴 것 없이 앞다퉈 제안들을 내놓아 지금까지 접수된 안건이 9천건을 넘어섰습니다.한달에 1천건 이상씩이 쏟아져 들어온 셈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리던데요. ­관행을 바꾼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죠.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부분이 많습니다.지속적인 개선작업을 펴나가야만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아울러 법령개정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안건들이 많습니다.다행히 이번 정기국회에서 민생관련법안들이 많이 개정됐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부분적으로나마 달라진 행정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주민등록 전출입 신고를 한차례로 끝내도록 한 것이나 인감증명제를 점차적으로 폐지키로 한 것 등은 일상생활의 편의와 직결돼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변화의 뇌관은 김대통령의 자진재산공개라고 봅니다.고위공직자들의 재산공개를 유도한 것이지요. ­3월의 1차 재산공개는 새 정부의 사정 예고탄이었어요.김상철서울시장과 박량실보사부장관이 그린벨트의 훼손과,절대농지의 위장매입으로 결국 사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몇몇 장관과 집권당 사무총장도 자녀 입시문제로 물러났습니다. ­정치권의 재산공개는 「토사구팽」이란 말을 올해의 최고 유행어로 만들었지요.박준규국회의장과 유학성·김문기·김재순·이원조의원등이 의원직을 사퇴하게 됐고 임춘원의원은 자진탈당,정동호의원은 출당,김영진·금진호·조진형·남평우의원등은 공개경고를 받았습니다.김재순전의장이 「토사구팽」으로,박의장은 「격화소양」으로 김대통령에게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김대통령은 재산공개 파문이 마무리된 뒤 「역사적 명예혁명」이라고 강조하지 않았습니까.당하는 쪽과 일하는 쪽은 언제나 이렇게 다릅니다. ­1차공개가 대통령의 유도에 따른 것이었다면 2차공개는 법률에 근거한 첫 재산공개였습니다.하지만 12월초 행정부 4명비공개경고,입법부 3명 비공개경고로 가볍게 마무리돼 다소 김이 빠진 인상을 남겼습니다. ­민자당은 박박식·이학원의원을 자진탈당시키고 김동권의원은 6개월 당원권정지의 중징계를 내렸고 남평우의원 등은 비공개 경고했습니다. ­두 차례 재산공개에서 수많은 공직자들이 납득할만한 근거가 없는 많은 재산을 갖고 있거나 제주·경기등에 투기를 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그러나 금융실명제와 함께 이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기초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국회도 과거에 비해 생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인 것 같습니다.정기국회 예산안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가 실력대결을 벌이기도 했지만 과거의 2배에 이르는 많은 법안들이 처리됐고 법안을 심의하는 과정도 상당히 진지했어요. ­특히 올해는 국정조사권이 발동됨으로써 의원들에게는 여느 해보다 바빴던 해로 기록될 듯 싶습니다.야당측의 요구로 시작된 국정조사는 「5·6공」의 실력자들을 대거 증인으로 채택,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민주당은 올해의 성과로 안기부법 개정과 함께 야당의 힘으로 국정조사권 발동을 이루었다는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초반에는 문민정부의 출범으로 시선이 온통 청와대로 집중되고 사회분위기가 사정한파로 위축됐던 것이 사실이지만 정기국회에서 안기부법과 정당법·통신비밀보호법등 과거에는 상상이 어려웠던 정치관계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는 성과를 이끌어 냈습니다.정기국회 예산안 처리에서 나타난 여당의 강행처리와 야당의 실력저지라는 문민시대에 걸맞지 않는 구태가 재연된 것만 제외하면 시작보다는 마무리가 좋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우루과이 라운드(UR)협상의 타결에 따른 쌀시장 개방에 대처하는 부분에서는 정치권 전체가 속수무책이었던 것 같습니다.이미 오래전부터 예상됐는 데도 전혀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마치 무슨 「날벼락」이라도 맞은 사람들처럼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실망보다는 기대 ­어쨌든 올해 여야를 포함한 정치권이 보인 모습은 실망보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는 것이 국민들의 대체적인 평가인듯 합니다.선거법·정치자금법등 정치개혁법들이 미결로 남은 점은 아쉽습니다만 여야합의에 의한 좋은 결과도 기대되고 있습니다. ­최근 마무리된 당정개편을 얘기해 볼까요. ­우선 눈에 띄는 대목은 민주계 핵심실세 3인방의 진퇴죠.뒷전에 밀려나 있던 최형우의원과 서석재전의원은 다시 각광을 받게 된 반면 「잘 나가던」 김덕용전정무장관은 「휴식」을 택했습니다. ­당3역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뒤 김대통령의 언급이 재미있어요.김대통령은 4번의 원내총무를 지낸 경력탓인지 『원내총무가 가장 좋은 것인줄 알았다』면서 3선총장과 4선총무에 대한 당내의 불협화음을 잠재웠지요.정치9단다운 뒤처리라고나 할까요. ­대구·경북 출신인사의 배제로 이른바 「TK(대구·경북) 소외론」이 여전합니다.강재섭대변인이 물러나게 됐고 김용태의원은 지난 8·12보선 뒤의 총장기용설에 이어 이번에도 설만 나돌아 두번 상처받게 됐죠. 당직자로는 최재욱의원만이 사무부총장으로 유일하게 남아있습니다. ­이젠 외교분야에 대해 이야기좀 하겠습니다.올해 외교의 제일 큰 현안은 역시 북핵 문제였습니다.새정부가 출범하자 마자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비롯된 이 문제는 급기야 「한반도 위기설」로까지 치달아 외국기자들이 대거 서울로 몰려들기까지 했죠.두차례의 미­북 고위급회담,10여번의 실무접촉,유엔의 대북결의등 국제적으로 파문도 컸습니다. ­최근 미­북 뉴욕실무접촉에서 양측이 상당히 의견접근을 본 상태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시작에 불과한 일이에요.설사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고,남북대화에 응한다 하더라도 겨우 NPT 이전 상태로 복귀한 것에 불과하거든요.새해에도 북핵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을 전망이 우세합니다. ­그에 비해 새정부의 신외교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어요.다변화·다원화·태평양시대의 지역협력이라는 차원에서 종전과는 다른 외교패턴을 정착시켰다고 해야할 겁니다.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아·태경제협의체(APEC)정상회담은우리의 국제화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준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것입니다.또 탈냉전시대 이후 한반도의 안보를 위한 「동북아 다자 안보대화」의 제기도 큰 성과입니다. ○신외교 문제점도 ­중국과 러시아가 북핵문제에 있어 우리와 공동보조를 취한 것도 과거엔 상상할수도 없었던 일이라 생각됩니다.한국 외교의 역량이 그만큼 확대됐다는 반증 아닐까요. ­미,일 중심의 외교체제를 과거 어느 정권때 보다 확고히 다졌다는 점도 빼놓아서는 안될 것 같아요.김대통령은 올 3월 신외교의 기조를 설명하면서 미,일을 축으로 하는 외교전략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두차례의 한미정상회담,경주 한일정상회담이 이를 이끌어낸 견인차 구실을 톡톡히 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UR협상에서 보인 우리의 협상력과 공직자들의 국제화 수준은 우리의 신외교가 갖는 문제점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많은 성과도 있었지만 이와 더불어 문제점도 노출된 신외교의 1년이었다는 생각입니다. □ 참 석 자 김 영 만 차장 김 명 서 기자 김 경 홍 〃 강 석진 〃 이 목 희 〃 양 승 현 〃 한 종 태 〃 문 호 영 〃 박 대 출 〃 박 정 현 〃 이 도 운 〃 진 경 호 〃 박 성 원 〃
  • 전통 민속주 판매 자유화(업계는 지금…)

    ◎옛술맛 즐길기회 잦아진다/교동법주 등 31종 제조면허/도매상·백화점에 계약조건 저울질… 값 비싼게 흠 내년부터 약주의 판매지역 제한이 없어짐에 따라 민속주 판매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약주의 판매 자유화로 고향을 떠나있는 도시인들이 고향의 옛술맛을 비롯해 우리의 전통 민속주를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벌써부터 각 지방에서 민속주를 만드는 기능 보유자들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시장 진출을 준비중이다.이들은 주요 백화점및 주류 도매상들과 민속주 판매를 위해 접촉을 활발히 하고 있다. ○새해 판매지역 철폐 정부는 지난 89년 전통문화를 보전하고 관광진흥을 위해 민속주의 제조판매를 확대,90년부터 민속주 판매를 승인해주고 있다.이에 따라 국세청은 처음으로 지난 90년 3월 황금주(경북 경주) 옥미주(경기 안양) 제주토속 좁쌀약주(제주 남제주)등 3개 민속주에 면허를 내준 것을 비롯,지난달 10일 경기 동동주(경기 화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28가지의 민속주에 제조 면허를 내줬다.이에 앞서 70∼80년대 용인 민속주(경기 용인) 산성 막걸리(부산 동래) 서울 삼해주(서울 노원)가 면허를 받았기 때문에 모두 31개의 민속주가 제조 면허를 받은 셈이다. 그러나 민속주중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한소 정상회담과 남북 총리회담때 선보였던 소주인 문배주(서울 서대문),안동소주(경북 안동)등 일부에 불과하다.지난 91년 7월부터 민속주의 판매구역이 완화됐지만 약주와 탁주는 주세법에 판매구역이 제한돼 민속주중 소주와 기타주류만 판매구역 완화 혜택을 보았기 때문이다. ○연간판매량 10만병 약주의 지역제한 철폐로 면천 두견주(충남 당진)등 민속주의 매출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진달래가 곁들여져 진달래술로도 불리는 두견주는 지난 86년 문배주,교동법주(경북 경주)와 함께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될만큼 명주로 알려져 있다.연간 10만병(7억∼8억원)정도가 팔려 약주중 판매량이 가장 많다.두견주의 기능보유자인 박승규씨(56)는 『내년에는 서울을 비롯한 각 시·도에서 2배이상 팔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서울의 주요 백화점 2∼3곳과 부산·대구지역에서도 판매를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대관령의 감자를 주원료로 해 담백한 맛을 내는 감자술(강원 평창)의 기능보유자인 홍성일씨(53)도 『시장이 가장 큰 서울로 진출할 것을 추진중』이라고 밝혔고 더덕을 넣은 점이 특징인 사삼주(전남 승주)와 찹쌀외에 국화 진달래 오미자 등도 포함된 계룡 백일주(충남 공주),옥수수를 주원료로 한 강냉이술(강원 춘성)의 기능보유자들도 서울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백화점과 주류 도매상들이 내거는 계약조건을 저울질하고 있다. 대추를 넣어 붉은 빛을 내는 대추술(충북 청주)은 서울보다는 먼저 부산과 대구지역에 진출,선보이게 된다.이 밖에 전통주중 문헌상으로 가장 오래됐다는 한산 소곡주(충남 서천)를 비롯한 5∼6개 민속주도 대도시 진출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져 모두 10여개의 민속주가 내년초부터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수입 외국술과 한판 승부를 벌일 전망이다. ○수입술과 한판승부 민속주의 판매는 빠른 시일내에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대량생산이 어려운데다 민속주 대부분은 지금까지 연간 매출액이 2천만∼4천만원(병으로는 약 3천∼5천병)에 불과할 정도로 영세하기 때문이다.살균처리를 하지 않으면 보통 1개월(여름에는 20일)정도되면 변질될 우려가 있고,오랫동안 유통을 시키려면 살균을 시켜야하는데 이 경우 본래의 맛과 차이가 생기는 것도 문제이다.입맛이 맥주 양주등 외국술에 길들여진데다 보통 한 병에 7천∼1만5천원으로 값이 다소 비싼 것도 흠이 될 수도 있다. 서울 송절주(서울 서초)의 기능보유자인 이성자씨(여·46)는 『옛 것인 우리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우루과이라운드 타결로 봇물처럼 들어올 외국술의 수입을 다소라도 줄이기 위해 우리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우리의 전통술인 민속주를 아끼는 책임은 소비자·업자·정부등 우리 모두의 몫이다.
  • 전위 디자이너 홍미화/국내 첫 패션쇼

    ◎광목등 소재 한복 새이미지 창출/원초적인 선함·자연의 순수함 드러내/“상가같은 실내장식” 묘한 분위기 연출 지난 7월 프랑스 파리 벤센느숲속에서 야외 패션발표회를 개최,아방가르드적 신예패션인으로 세계패션계의 주목을 끌었던 디자이너 홍미화(38)씨가 17일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국내에서의 첫 패션쇼를 가졌다. 이날 패션쇼는 백열등이 듬성듬성 켜진 허름한 창고같은 전시공간과 그 바닥에 깔려진 광목천,대나무로 얼기설기 세운 기둥위에 달린 한지로 만든 등등 마치 상가집같은 분위기의 실내장식이 연출돼 참석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이날 홍씨가 발표한 옷은 모두 65점.소창 옥양목 광목 거즈등의 소박한 듯 묘한 분위기를 내는 우리 전통의 소재를 이용,흰색이 주는 순수함을 한복선의 이미지가 드러나는 다양한 디자인으로 응용해 보였다.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 아름다운 옷」「형식을 탈피,마음이 가장 편한 상태로 입어서 즐길 수 있는 옷」을 진정한 「옷」으로 본다는 홍씨가 추구하는 패션감각이 드러난 작품들이 중심. 자신의 브랜드마크인 천사모습의 인장과 눈물자욱을 모델들의 얼굴과 몸등에 찍고 흘러내린 머리카락 위의 거즈 장식물과 이름을 적은 부적같은 종이등으로 옷의 이미지 완성을 위한 총체적인 시도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홍씨는 부드러운 느낌의 거즈로 드레스와 베일을,투박한 삼베에 주름을 넣어 유연함도 동시에 느낄수 있는 바지와 치마수트를 만들어냈다.색상은 흰색을 주조로 고운 흙색과 베이지 카키·검은색을 주요 색상으로 썼다. 특히 화관을 연상하는 커다란 모자와 함께 연출한 풍성한 웨딩드레스와 이브닝드레스등은 한국적인 선과 중국풍,인도풍의 다양한 민속적인 특징이 드러난 작품들로 갈채를 받았다. 옷 발표회를 지켜본 코오롱 패션산업연구원의 이호정씨(이학박사)는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부담되는 전위적인 요소가 강한게 사실이나 인간의 원초적인 선함과 자연이 갖는 순수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는 평가를 내리고 홍씨의 이번 옷발표회에서 나타난 전위성은 세계에서 인정받을 만한 수준이라고말했다. 대구출신으로 경북여고와 계명대(공업미술 전공)를 졸업한뒤 국제복장학원과 일본 문화복장학원을 마친 홍씨의 주요 활동무대는 일본도쿄.지난 7월의 파리진출로 고지노 준코,이세이미야케등을 잇는 동양의 뛰어난 디자이너라는 평가를 현지언론으로부터 받기도 했다.국내에서는 지난 86년부터 최근까지 (주)데코「텔리그라프 바이 홍미화」라는 상표로 자신의 이름이 나가는 서구형 계약제 디자이너로 패션업계에서 주목을 받아왔다.홍씨는 자신의 디자인사무실 「홍크리에이션」을 최근 서울로 옮기고 이번 패션쇼를 계기로 내년 봄 국내브랜드매장을 낼 예정이다.
  • 인물소설 「길 모퉁이에서 만난 사람」 출간 양귀자씨(인터뷰)

    ◎“주변 사람들의 희로애락 진솔하게 묘사” 「원미동사람들」의 작가 양귀자씨(38)가 두번째 인물소설 「길 모퉁이에서 만난 사람」을 펴냈다. 지난 89년 첫 인물소설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이 원미동 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부담없이 그렸다면 이번 「길…」은 작가가 서울로 옮긴후 맞닥뜨린 주변의 인물 50여명을 3년간의 작업끝에 같은 양식으로 묘사한 사람사는 이야기모음이다. 『한 인간을 찾아 그 내면을 깊숙이 들어가보면 거대한 우주를 발견하게 됩니다.각자의 삶속에는 나름대로 비밀이 숨겨져 있고 비밀의 실체가 정확하게 알려질때 그 삶들의 집합체인 사회도 제대로 볼 수 있지요』 일상에서 만난 사람 1만명의 삶에 진솔하게 접근,만인보를 엮겠다는 작가의 욕심은 따라서 읽는 이들의 입장에선 이 사회에 대한 가식없는 보고서로 다가선다. 실제로 이 보고서엔 봉급생활자,자유직업인,행상인,시인,잡지사 여기자등 다양한 서울사람들의 변화된 풍속과 성의 역할등이 다른 어느 소설보다도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모두 저를 만난 죄밖에 없는 소박한 사람들이란 점에서 한편으론 미안한 생각이 없지 않아요.모든 인물묘사에 애정을 갖고 솔직하게 접근했지만 본인들의 우수와 희로애락이 얼마만큼 진지하게 투영됐을지 걱정도 되고요.애정을 갖지않곤 인물묘사가 퍽이나 힘든게 사실입니다』 평범하면서도 작가의 입장에선 그대로 놓칠 수 없는 소시민적인 삶의 편린들을 기존 소설의 단순한 틀로 담아내기엔 아쉬움이 커 인물소설의 형태로 시도했다는게 양씨의 설명이다. 『요즘 그 어느 장르보다도 인물소설에 치중하고 있다』는 양씨는 중단편소설에의 욕심도 크고 장편동화도 써야겠지만 만인보의 매듭짓기를 위해 만나는 사람에 대한 스케치를 결코 잊지 않는다.
  • 안보자신감 심고 군사기 진작/김 대통령 군부대 순방

    ◎한미부대 동시시찰로 북 오판 가능성 경고 김영삼대통령의 14일 군부대 방문은 다양한 방문지만큼이나 다목적을 지니고 있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김포에 있는 해병 청룡부대를 방문했다.점심 때는 태릉에 있는 육사를 방문,생도들과 오찬을 나누면서 군의 바람직한 발전방향과 육사의 미래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김대통령은 이어 오산에 있는 미공군기지에 들러 주한미군들을 격려하는 것으로 이날 행사를 마무리지었다. 김대통령의 이날 군부대 방문은 어떤 행사보다 강행군이었다.일정을 짚어보면 단순히 연말연시를 맞아 일선에서 고생하는 군장병들을 위문하는 의전차원이 아님을 쉽게 헤아릴 수 있다. 청와대측은 이에 대해 『현재의 한반도 상황과 군개혁에 대한 종합적 고려 끝에 일정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이 청룡부대와 오산 공군기지를 동시에 시찰한 것은 북한에 대한 오판 방지용 행차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는 최근 CNN­TV등 외국언론들이 한국에 집중적으로 특파원들을 증파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한 TV방송국은국내방송사와 제휴해 종일중계체제까지 구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당국은 서울을 또하나의 바그다드 비슷하게 여기고 있는 외국언론의 시각을 못마땅해 하지만,그것과는 별도로 북한의 움직임에 긴장을 감추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통령은 국군의 최전방부대와 주한미공군부대를 방문,한미 양국군이 북한의 모험적 도발을 충분히 격퇴할 수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예전 대통령들도 이런 강조를 하곤 했다.그러나 북한의 핵을 둘러싼 긴장이 외국특파원들을 서울로 불러들이고 있는 상황인만큼 그 의미는 종전과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북한에 대한 경고이면서,동시에 우리 국민에 대해서는 국가안위에 관한 최종책임자로서의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대통령이 육사를 방문해 오랜시간 머물면서 생도들과 오찬을 나눈 것은 군출신 대통령들 때도 보기 힘들었던 일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방문에서 군은 진정한 문민정부에서 더욱 위상이 강화된다는 점을 강조했다.이와 함께 육사를 세계최고수준의 대학으로 키울 것이라고 약속했다.취임후 김대통령이 대학을 방문하기는 육사가 처음이다.그만큼 이날 방문에는 「군의 단합」과 「사기진작」을 위한 국군통수권자의 특별한 배려가 들어있다. 문민정부의 군개혁과정에서 육사출신은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집단이 됐었다.때문에 김대통령의 군개혁에 불만이 가장 많을 수 있는 집단도 역시 육사출신들이다. 김대통령은 잠재적 불만집단일 수 있으면서,군의 중추일 수 밖에 없는 육사출신들의 「정신적 고향」을 찾아가 이들과 친근한 대통령이 되려 했고,이들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심어주려 한 것이다.세계적 육사의 육성을 약속한 것은 최근 입시생들의 성적부족으로 정원을 다 선발하지 못한 육사의 현황을 고려한 또 하나의 선물로 보인다. 김대통령은 군인출신 대통령보다 더 자주,열심히 군부대를 찾고 있다.지난 5월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철책선을 방문한 것도 김대통령의 군에 대한 관심을 읽게하는 대목이다.
  • 함팔고 오다 윤화/신랑친구 셋 숨져

    11일 상오 1시쯤 충남 논산군 벌곡면 신양리 호남고속도로 상행선 회덕기점 29.5㎞지점에서 광주에서 서울로 가던 서울2머 5942호 쏘나타승용차(운전자 황진학·26·서울 강동구 천호3동 145의14)가 도로옆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뒤집혔다. 이 사고로 운전자 황씨와 임경선(26·서울 중구 황학동732)·고갑용씨(27·서울 서초구 방배본동1646)등 3명이 숨지고 고은채씨(27·서울 강남구 삼성동121)가 중상을 입고 대전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있다. 이들은 12일 서울에서 결혼하는 고갑용씨의 전남 강진 신부집에 함을 팔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 금융개방 파고/고객유치 서비스경쟁 불꽃/보험사들 비상(업계는지금)

    ◎건강특강·탁아소 운영서 결혼·장례 상담까지/새이미지 창출 아이디어 만발 금융시장 개방시대를 맞아 보험사들의 서비스 경쟁이 불붙고 있다.보험사들은 기존 계약자들을 계속 확보하는 한편 새로운 고객을 끌기 위한 아이디어 찾기에 열심이다.결혼 및 장례서비스,보험계약자 자녀초청 여행은 물론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해 탁아소와 아파트 건립등 공익사업도 하고 있다.고객서비스면에서 다소 뒤졌던 손보사들까지 최근 서비스 강화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데서 보험사들의 서비스 경쟁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주요 보험사들이 내놓고 있는 고객 서비스를 알아본다. 삼성생명은 저소득 맞벌이 부부 자녀들을 위해 서울과 부산 등 5대 직할시를 비롯해 전주 마산 성남등 10여개시에 탁아소를 운영중이다.산간 벽지나 외딴섬에서 사는 어린이들을 서울로 초청,문화유적과 첨단공장 견학도 시켜주고 있다.접수에서 출납까지를 한 장소에서 처리하는 창구 텔러제,가정에서 전화 한통화로 보험금·배당금 지급내용·상품내용 등을 안내받는 음성정보 서비스제도를 처음으로 실시하는 등 서비스 경쟁에서 다소 앞서고 있다. 대한생명은 결혼 및 장례대행업체와 제휴해 보험계약자와 이들의 직계 존비속의 결혼과 장례를 상담해준다.웨딩드레스·혼수용품 등을 살때 15∼40% 할인을,교육보험 계약자가 컴퓨터를 살 때는 20%를 할인해준다.또 컴퓨터 교실을 개설해 계약자 및 유망고객의 자녀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준다. 대한교육보험은 본사 법무팀에서 법률상담을 해주고 있으며 업계 최초로 보험 설계사들이 고객에게 보험상담을 보다 잘 할 수 있도록 휴대용 컴퓨터를 지급했다. ○컴퓨터교실 개설 동아생명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고려해 지난 9월부터 주부 계약자들을 초청,건강특강을 하고 있으며 계약자의 배우자도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문화혜택을 볼 수 없는 벽지 어린이들에게 「파랑새 인형극」 순회공연을 실시하고 계약자 자녀들의 철새탐조 여행을 매년 제공하고 있다. 삼성화재(구 안국화재)는 우체국에서도 보험료 입금이 가능한 우체국 지로제도를 시행,농어촌이나 은행이멀리 떨어져있는 중소도시의 계약자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했다.한국통신의 PC통신망을 통해 보험상품 및 자동차 사고 등 보험관련한 궁금한 사항을 알려주고 있다.지난달 말부터 사고접수부터 보험금 지급사항에 이르기까지 모든 손해사정업무의 진행사항을 개인 단말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손해사정 정보시스템」도 개발,시행에 들어갔다. 럭키화재는 지난달 26일부터 계약자 및 시민들에 대한 보험 서비스를 높이기 위해 자동차보험·장기보험 등 대중성 보험에 관한 전화상담과 자동차 사고가 일어났을때 신고접수와 보상처리 상담을 해주는 「종합안내 서비스센터」를 개설,가동중이다.또 서울·부산·대구등 대도시를 순회하면서 여성 운전자 교실·여성과 건강·화장기술 등을 특강하는 「주부교양강좌」를 개최하고 있다.여행·법률·세무·회계상담도 있다. ○항공권 예약까지 동양화재는 소비자들을 찾아다니며 상담하는 이동상담실 차량을 운영중이다.상담실·운전적성 진단기·교육용 VTR가 설치된 이동상담실은 보험에 관한 소비자들의 상담,안전운전교육,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운전적성 진단」을 해준다.서울의 대리점을 통해 보험정보는 물론 항공권 예약·주식정보까지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다. 제일생명은 경기도 의정부시에 계약자용 장기임대 아파트를 건설,1백여 가구가 입주했다.어려운 보험약관을 만화로 쉽게 만들어 계약자들에게 나눠주고 있으며 춘천 소양제,안동 민속축제,전주 풍남제등 지방문화제 협찬도 하고 있다.이밖에 한국생명은 어린이날에는 미아방지를 위한 이름표 달아주기 운동을,여름 휴가철에는 「한가족 추억만들기」 사진 공모전을 열면서 고객들에게 보다 친밀해지려는 한편 신설생보사로는 처음으로 맞벌이 부부 자녀를 위한 어린이집을 서울과 부산에 개설했다.국민생명은 진주 개천예술제,대전 한밭문화재등을 지원하고 있다.
  • 「훈령조작」 감사 결론 단순화/감사원,이동복사건 중간점검

    ◎기밀문서 유출경위 언급 피해 7일 이동복전안기부장특보의 소환조사로 대통령훈령조작의혹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감사원은 그동안 안기부·통일원에 대한 실지감사에 이어 지난 2일부터 엄삼탁전안기부기조실장·정원식전국무총리·최영철전통일원장관등에 대해 방문조사를 했었다.5일부터는 이상연전안기부장·임동원전통일원차관·이동복전특보등에 대한 소환조사가 이어졌다. 조사과정에서 이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당시 상황에 대해 엇갈린 진술을 계속했다.또 그러한 진술이 나름대로는 설득력을 갖고 있어 감사원은 복잡한 상황을 정리하는데 애를 먹었다. 감사원은 이 때문에 감사의 결론을 도출하면서 가급적 문제를 단순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즉 이전특보가 서울로부터 받은 「기존의 3가지 조건을 고수하라」는 훈령을 누가 보냈는가 하는 의문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전특보의 지휘계통에 있던 엄삼탁전안기부기조실장과 이상연전안기부장은 이를 보내라고 지시한적이 없다고 진술했다.그렇다면 결국 이특보가 받은 훈령은 본인이 만든 것이거나 서울의 상황실 근무자가 임의로 작성해 보냈다는 결론이 된다. 감사반장인 이명해심의관은 『이특보와 임전차관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는 당시 상황실에 근무하던 실무자들이 이특보의 청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거나 또는 다른 이유에서 임의로 문제의 전문을 보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따라서 이전특보가 훈령을 조작했다 또는 조작하지 않았다는식의 두부모 자르는듯한 감사결과는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만 이특보는 임전차관이 보낸 청훈에 대한 훈령을 받고도 보고를 미룬 사실등에 대해 설득력있는 해명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이 부분에 대한 면죄부를 받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훈령조작의혹에 대한 감사와 함께 기밀문서 유출경위에 대해서도 의혹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감사원은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민주당의 이부영의원이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이 끝난 뒤 최영철전통일원장관·김종휘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임동원전통일원차관이 작성,청와대에 보고한 자료를 고스란히 손에 넣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세가지 문서를 한꺼번에 입수할 수 있는 기관은 청와대뿐이라는 것이 감사원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전직 혹은 현직 청와대관계자가 문서를 유출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민감한 상황 때문에 감사원은 문서의 유출경위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감사원은 비공개를 전제로 이부영의원에게 직접 입수경위를 밝히도록 권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그러나 정치인을 조사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파문을 걱정하고 있다.
  • 오동진선생(이달의 독립운동가/다시 새기는 그 충절)

    ◎만주 15개독립단체 규합… 대일 항전/정의부 결성 주도… 독립운동 구심체로/미의원단 내한에 맞춰 일인요인 암살/체포된뒤 재판거부 33일간 단식… 44년 옥에서 숨져 1889년 평북 의주군 광평면 청수동 659에서 출생한 오동진선생은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3월16일 고향인 광평면 시위에 참가,맹렬한 활동을 전개한 뒤 일경의 체포령이 내려지자 3월18일 중국 관전현 안자구로 망명했다. ○평북 의주서 출생 선생은 이곳에서 윤하진 장덕진 박태렬등을 규합,비밀결사인 광제청년단을 조직했으며 의용대를 편성 해 군자금 모금활동을 벌였다.같은해 5월 중국 안동(현 단동시)에 있는 이륭양행 2층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기관을 설치하고 안동교통사무국을 두어 평안남북도와 황해도를 관할했다. 1919년 12월 선생은 대한의용군사의회·한족회·기원독립단·민국독립단·대한청년단연합회등을 통합,서북간도지방의 교민 통치기관으로 임시정부 내무부 직속의 광복군 참리부와 군무부 직속의 군사기관으로 광복군사령부를 조직했으며 각 지방에는 군영을 두고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1920년 6월6일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파견된 이 탁을 중심으로 조선의 실질적 군대로 광복군총영이 조직돼 사령관에 조맹선,참모부장에 이 탁,경리부장에 조병준이 임명되고 선생은 총영장이 되었다.일제의 끊임없는 탄압에 대응하기 위해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장총 2백40여정과 많은 탄약을 이륭양행을 통해 입수하고 항쟁준비를 위한 무장을 강화하고 있을 때 미국의회 동양시찰단인 모리스의원 등 상원의원 일행과 가족 70여명이 1920년 8월14일 서울에 입경 예정이라는 정보를 얻게 된다.광복군 총영에서는 이 호기를 이용,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여론에 호소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국내 일제 중요기관을 파괴하며 침략원흉과 일제관리등을 처단하기로 했다.1920년 7월 결사대원을 엄선,평양·신의주·선천·서울로 보내 미 의원단 일행이 그 지역을 통과할 때 일제관청을 파괴하고 일제요인들을 암살하는 등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다. 선생은 1922년 6월 양기탁이 제안하는 동삼성내 독립운동단체 통합에 적극 찬성하고 양기탁김동삼 현정경 이상용 이 탁등과 광복군총영·서로군정서·한교민단·광복단·독립단·대한청년연합회를 통합,통군부를 조직했으며 2개월후에는 다시 대한통의부로 확대 발족시켰다. ○7백여 병력 편성 이후 군사위원장이 된 선생은 이듬해 6월 신팔균사령장이 전사함에 따라 사령장을 겸직하고 소속 독립군을 총지휘,항일전을 전개한다. 1925년 1월25일경 선생은 통의부의 고문인 양기탁등과 통의부를 중심으로 길림주민회·의성단·대한독립단·광정단·노동친목회·변론자치회·고본계·대한독립군단·학우회등 지방자치단체를 총망라,통일회의를 개최하고 정의부를 조직했다.통의부와 마찬가지로 입법·행정·사법기관을 두었으며 중앙집행위원장밑에 내무·군사·학무·생계·재무·외무등 6부를 두었다.군사부에는 정의부의용군을 두고 군사위원장에 이청천(후임으로 선생이 취임),사령장에 선생이 겸무했으며 8개중대에 무장한 7백여명의 병력이 각종 군사활동을 전개,적지않은 전과를 올렸다. 1926년 3월3일 길림성내 양기탁의 집에서 각계 인사들이 연석회의를 열고 고려혁명당을 조직,좌우익이 합작으로 새롭게 통일된 독립운동을 추진하개 된다.당원수는 1천5백여명에 이르렀으며 선생은 정의부 군사위원장으로 총사령을 겸임했다. 이무렵 선생과 가까웠던 옛 동지 김종원이 선생에게 『삼성금광주인 최창학이 선생을 만나 뵙고 싶어한다』는 뜻을 전하자 1926년 12월16일 장춘시내 구시가지 약속 장소에 나갔다가 잠복중인 일경에게 잡혔다. 선생은 일제의 재판을 거부하고 1929년 11월11일부터 33일동안 단식을 하기도 했다.1932년 3월5일 강제로 재판정에 서게 된 선생은 광기가 발작했다는 이유로 퇴장당한채 검사로부터 무기징역을 구형받았으며 3월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도 같은 형이 선고됐다. ○18년간 옥고치러 공소를 제기한 선생은 그해 6월 평양에서 1심과 똑 같은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더이상 일인의 재판이 필요없음을 깨닫고 상고를 포기했다.7월 장기수를 수용하던 경성형무소로 이감된 선생은 1934년 6월11일부터 48일간의 제2차 단식을 벌인다. 7년간의 형무소생활로 쇠약해 질대로 쇠약해 진선생이 2차 단식에 들어가자 모두들 선생의 정신력에 경이로움을 표시했으며 일본인 형무소장조차 선생과 면담을 할 때에는 경례하고 예를 갖추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인 의사가 선생에게 「형무소 정신병」이라는 기이한 병명을 붙이는 바람에 선생은 1944년 정신질환자들이 수용되는 공주형무소로 이감돼 그해 5월20일경 옥중에서 순국한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열차­트럭­버스 3중 충돌/김천/건널목 간수 등 15명 사상

    【김천=이동구기자】 1일 하오6시쯤 경북 김천시 지좌동 경부선 감천건널목에서 앞서가던 대구 7아 1733호 11t트럭을 추돌하고 멈춰 있던 전북 7아 7711호 11t트럭(운전사 조억환·31)이 새마을호 35호 열차(기관사 안창률·37)에 들이받힌 뒤 서울 5바 1673호 대현관광버스(운전사 김종만·53)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관광버스의 건널목 진입을 제지하던 건널목 간수 오진택씨(52)가 그자리에서 숨지고 해인사 관광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던 관광버스 승객 14명이 다쳐 김천의료원에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 교육은 가정에서부터(교육 개혁해야 한다:10)

    ◎문제학생 부모들 “우리 애는 착했는데…”/무관심·과보호속 비뚤어진 길로/가족의 사랑과 엄격한 지도 필요 서울 H고 1학년 강모군(16)은 지난달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10만원짜리 가짜고지서 수십여장을 만들어 같은 반 친구들에게 5백원씩 받고 팔다가 담임교사에게 적발됐다.강군은 『국민학교 입학이후 10여년동안 부모와 선생님으로부터 「잘했다」는 칭찬을 한번도 받아보지 못해 열등감을 느꼈다』면서 『용돈도 마련하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우쭐해지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이학교 1학년 김모군(16)은 지난 9월 반친구들에게 여러차례 5백∼1천원씩 빼앗아 당구비·담배값등 유흥비로 써오다 이사실을 알아차린 학생부 교사에게 불려갔다.학생부 최영근교사(40)는 김군과의 대화과정에서 김군의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바람에 김군이 무관심속에 방치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다음날 김군의 어머니를 불러 『김군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이학교 2학년 박모군(17)은 3년전에 부모가 이혼해 부산에서 서울로 전학온 뒤 할머니(85)와단둘이 생활해왔다.지난해 박군은 지각과 결석횟수가 눈에 띄게 잦았다.또 서울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청계천등지에서 7천원씩에 구입한 음란비디오 테이프를 밤늦게까지 보는가 하면 도색잡지를 갖고 다니다 담임교사에게 적발되기도 했다. 최교사는 박군이 부모가 각각 서울과 부산에 떨어져 사는데다 고령의 할머니가 박군의 생활에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가정환경때문에 빗나가고 있다고 판단,지난해 9월 서울 북가좌동에 사는 누나부부와 함께 생활하도록 충고했다.최교사의 충고를 받아들인 박군의 학교생활은 이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최교사는 『문제가정에 문제학생이 있다』면서 『최근 실시한 교내 가정환경조사에서 부모의 이혼이나 갈등,맞벌이등으로 가정의 관심과 애정으로부터 소외된 학생들이 전체의 10%쯤인 학급당 4∼5명씩이나 됐다』고 말했다. 최교사는 폭행·가출등 비행학생의 특성으로 열등의식과 소외감을 꼽았다.흔히 가정에서 상실감이나 애정결핍을 겪고있는 학생들이 입시위주의 획일적인 학교교육에서도 소외됨으로써 잘못된 길로 빠져들기 쉽다는 것이다. 서울 Y중 학생주임 유창현교사(59)는 가정의 무관심 못지않게 부모의 과보호도 자녀의 교육에 역효과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이 학교는 지난해 2학기때부터 매학기마다 교내폭행·금품갈취등 학생들의 피해사례에 대한 무기명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 학교측은 지금까지 3차례의 조사에서 폭행사례등으로 다른 학생들로부터 이름이 지적된 학생수가 1백80명,1백8명,87명으로 점점 줄어 설문조사가 학생지도에 일단 긍정적인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가운데 이름이 중복지적된 10여명의 학생은 학부모를 학교로 불러 면담을 실시했는데도 비행사례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 교사들의 지적이다.유교사는 『불려온 학부모들에게 설문지를 보여줘도 「우리애는 그럴 애가 아니다」며 도리어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유교사는 또 학생지도는 가정과 학교·사회가 3위일체가 되어야 하지만 40여명의 교사가 전체 1천여명의 학생들을 일일이 지도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할때 1차적으로 가정에서 학생들에게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B고에는 매달 1∼2차례씩 익명의 학부모전화가 걸려와 『아들이 친구나 상급생에게 매일 맞는다.무서워서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며 항의섞인 불만을 털어 놓는다고 한다.학부모들은 그러나 학생신분을 밝혀달라는 교사들의 부탁을 한사코 거절한다는 것. 교사들은 이에대해 『신분이 밝혀지면 아들이 다시 피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학부모들의 과보호와 소극적인 심리가 도리어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꼬집었다. 교사들은 특히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물질과 학벌·출세제일주의의 가치관을 심는데 급급할 뿐 민주시민의식이나 공중도의심등을 가르치는데는 인색하다고 지적했다. 김진현군(18·서울 B고2년)은 『부모들은 항상 「공부를 잘 해서 출세해야 사람구실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할 뿐 우리의 적성이나 소망에 대해선 무관심하다』면서 『획일적인 잣대로만 우리를 평가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불량청소년의 원인/자녀 방치해도 「결손가정」/이혼·맞벌이 늘어 소외감/갈등속에 문제행동 표출/신명희 연세대교수·교육학 청소년의 문제행동을 말할때 빼놓을수 없는 원인중의 하나로 「결손가정」이 거론된다.가정이 지역사회·국가·인류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임을 생각하면 이러한 귀인은 지극히 당연하다.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므로 그 사회에서 다른 구성원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적절한 기술을 익히지 못하면 건강한 개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그리고 한 개인의 사회화과정은 가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결손가정의 어떤 요인이 청소년의 문제행동과 관련이 되는가.우선 「결손가정」의 의미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어떤 가정을 결손가정이라 할수 있는가.소년범죄에 관한 대검찰청의 통계자료(1980∼1989)에서 보면 가족관계별 동향에서 실부모가 있는 경우가 70%를 훨씬 웃돌고 한쪽 부모만 있는 상태는 아버지만 있는 경우가 2.0∼3.0%,어머니만 있는 경우가 8.0∼10.5%,양쪽 모두 없는 경우는 2.0∼2.7%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적어도 청소년의 문제와관련이 되는 한 단순히 생물학적인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다는 것만으로 결손가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실제적인 부모역할 기능의 결함이 더 심각한 결손이 될 수 있다.심리학자들은 청소년의 행동과 발달이 부모의 결혼관계,부모역할의 양식과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이러한 가정의 성격과 기능은 시대적·사회문화적 변화에 따라 종래와는 상당히 다르게 변모해가고 있다. 첫째,「노인」이 가족 구성원에서 점점 없어지고 있다.이것은 결혼관계에 문제가 생겼을때 그 해결방법에 대해 풍부한 경험과 지혜에서 오는 충고와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원이 없어진다는 뜻이다.또한 세대간의 친밀한 정서적 가족유대를 형성해 줄수 있는 자원의 손실을 뜻한다. 둘째,생활형태가 산업사회의 도시형으로 바뀜에 따라 직장위주의 주거형태는 예전의 밀접한 친척관계나 이웃관계,친구관계를 없애고 있다.정서적 지지를 받을수 있는 근원이 오로지 핵가족 구성원으로 축소,집약될수 밖에 없게 된다. 셋째,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경향으로 가족구성원 모두가 제각기 바빠지고 있다.가족이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교환하고 이해하므로 심리적인 유대를 강화하기에는 모두 너무 바쁘고 지쳐있어서 텔레비전의 역할만 점점 더 커지는 것이 요즈음 가족관계의 실상이다.특히 어머니의 생활이 훨씬 여유가 없어지고 결혼관계나 가정생활에 대한 불만을 더 느끼게 된다는 점은 대단히 중요한 영향요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가족관계의 이러한 변화는 결국 결혼관계를 포기하는,가정을 해체하게 하는 이혼의 경향을 높이고 있다.편부모,혹은 계부 계모의 완전하지 못한 가정의 형태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자녀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관하여 많은 연구의 결과들이 그 심각성을 경고해주고 있다. 실제로 청소년의 문제행동에 상관되는 결손가정의 의미는 물리적인 결손보다는 이러한 심리적·기능적 결손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고 이런 방향에서 청소년의 문제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선진국의 경우/「모래알 가족」 미선 “가정 유대회복운동”/예절교육 철저… 건전한 가족관 심어/불·독/어릴때부터 자립심 길러주기 노력/일본 최근 3∼4년사이 유럽과 미국등지에서는 가정의 인간적 유대회복을 주장하는 「집에서 가정으로」(From house to home)라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독신및 이혼의 급증으로 가족구조가 흐트러지고 「모래알 가족」이 등장하는등 탈가족사회 현상이 진전됨으로써 점차 상실돼가는 전통적 가정의 의미를 되살리자는 움직임이다. 이 운동은 인생의 출발선에서 한 사람이 사회인으로 성장,독립해 나갈 때까지 우리가 머물러야 할 「가정」이 인간적 유대감을 상실한 채 구성원 개개인이 한지붕 아래서 전혀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하숙집」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우려에서 출발한다. 결혼한 3쌍중 1쌍이 이혼하고 4가정당 평균 1가정이 혼자 사는 1인 가정이며 새로 태어나는 아이 5명중 1명이 혼외출산이라는 몇가지 사실만으로도 오늘날 구미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정붕괴현상의 깊이와 폭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가정의 붕괴현상이 감수성이 예민한 자녀에게 인간관계의 결핍을 겪에 함은 물론 청소년 범죄증가현상과도 무관치 않다는 인식이 「집에서 가정으로」운동이 일어나게 된 주요 원인이다. 유태인 가정에서 어머니가 잠자리에 든 자녀들의 머리맡에 앉아 책을 읽어주는 것은 단순한 지식전달이 아니라 부모·자식간 감정의 융합과 일체감을 갖기위한 자식사랑의 지혜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에선 하오 1시부터 2시간동안,그리고 하오6시이후에는 어린이 놀이터에서 어린이를 볼 수 없다. 노인들이 낮잠을 잘 시간에 떠들면 안된다는 규율과 저녁식사시간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가정교육때문이다. 얼마전 프랑스의 한 여론조사기관이 서유럽내 9개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5명중 4명이 가정이란 귀중한 가치는 변할수 없다는 의견을 보인 반면 5명중 1명만이 가족개념의 종식에 찬성했을 뿐이다. 유럽사회를 아직 지탱하는 기반은 대다수 유럽인들의 이러한 건전한 가족관에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경우 비록 부자집 자녀라해도 어릴 때부터 자립심을 길러주는 가정교육이 오늘의 경제대국을 이룬 기초가 됐다는 것이 교육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도쿄의 모 중소전자업체 사장의 장남(18·고교2년)이 스키장에 가기위해 집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주 3일,하루 3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그러나 이같은 일은 일본에서는 흔한 일이다. 교육전문가들은 전통적 유교관이 뿌리박힌 우리사회가 「학벌위주」의 사회풍토와 접목되면서 예의와 자립심등을 심어주는 가정교육은 실종되고 부모와 자식간의 효와 사랑마저도 「학력」하나로 저울질하게 된 왜곡된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것이라고 말한다. 얼마전 대학입시 부정사건도 왜곡되고 이기적인 부모의 자식사랑과 학력위주의 우리사회가 빚어낸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현실은 구미각국과는 달리 오히려 「가정에서 집으로」후퇴하고 있다는 우려와 자성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특별취재단 변우형(단장 편집부국장) 김만오(사회부차장) 김용원( 〃 기자) 임태순( 〃 ) 김민수( 〃 ) 박현갑( 〃 ) 박찬구( 〃 ) 박상렬( 〃 ) 박희준( 〃 ) 김경빈( 〃 ) 손원천( 〃 )
  • 국도서 승용차충돌 송영진의원 등 부상

    【당진=이천렬기자】 지난 21일 하오 3시쯤 충남 당진군 면천면 사기소리 마을앞 도로에서 서울 2포 9652호 스텔라승용차(운전자 양인권·42)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서울 1미 2505호 그랜저승용차(운전사 김종민·31)와 정면 충돌했다. 이 사고로 지역구인 당진에서 결혼식 주례를 보고 서울로 가던 민자당 송영진의원과 운전사 김씨,스텔라운전자 양씨 등 모두 8명이 중경상을 입고 당진 성모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있다.
  • 고속도서 타이어 펑크… 승용차끼리 충돌/일가족 셋 등 5명 참변

    【영동=김동진기자】 21일 하오3시10분쯤 충북 영동군 황간면 우천리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서울기점 1백91.3㎞)에서 대구를 떠나 서울로 가던 서울 3츠9634호 엑셀승용차(운전자 구문재·33·서울 중구 장충동3가)가 앞바퀴에 펑크가 나면서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대전 1구7855호 르망승용차(운전자 김용희·33·대전시 동구 대성동 삼익세라믹 아파트 107동102호)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 사고로 엑셀승용차 운전자 구씨와 어머니 왕영자씨(50),할머니 이일순씨(69)등 일가족 3명과 이순임씨(45·여·서울 성북구 삼성동)등 이 차에 타고 있던 4명 모두와 르망승용차 운전자 김씨등 모두 5명이 숨지고 김씨의 부인 박광희씨(34)는 중상을 입었다.
  • 정인보선생/해방전후 국학부흥­교육에 진력(다시 새기는 그 충절)

    ◎18세 상해 망명… 신채호 등과 항일투쟁/국학대학 설립… 민족사관 정립에 큰공 의에 철저한 인생을 살았던 위당 정인보선생은 말을 타고 총칼로 일제와 싸운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붓과 펜으로 싸운 정신적 독립운동가였다. ○서울 종현서 출생 선생은 1893년 5월6일 서울 종현(지금의 명동성당부근)에서 호조참판을 지낸 아버지 정은조씨와 어머니 달성 서씨의 독자로 태워나 후손이 없는 큰집의 양자로 들어간다.1910년 17세때 평생의 스승으로 모신 난곡 이건방선생으로부터 한국화한 양명학을 배워 학문과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받았다. 1911년과 1912년 두차례 망국의 한을 품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 동북성 회인현 흥도촌과 유하현 삼원보등지에서 활동하는데 이곳에서 독립기지를 건설하고 있던 이회영형제를 만나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부평땅 4백∼5백섬거리 전답을 팔아 신흥강습소등 이회영형제의 독립군양성소를 위한 군자금으로 지원한다.선생은 1913년 중국 상해로 활동무대를 옮기면서 일제와의 투쟁을 다짐하는 박은식·신규식·신채호·김규식등많은 청년애국지사들과 가깝게 지냈으며 이들과 비밀결사인 동제사를 조직했다. 선생은 1922년 4월부터 연희전문학교의 초빙을 받아 조선문학론과 한문을 강의한다.그후 중앙불교전문학교·협성학교·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국학및 동양사를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 얼을 환기시켰다.또한 동아일보·시대일보의 논설위원으로서 날카로운 필봉을 휘두르며 민족사관 정립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선생은 일본인들의 왜곡된 학설에 철저히 반론을 전개해 주목을 끌었는데 우리 고대사의 심층연구를 위해 안재홍·신채호·문일평·손진태선생등과도 힘을 합쳤다. ○일경에 검거·고초 선생은 1926년의 6·10만세운동을 지원했고 「이충무공유적보존회」를 창립,현충사를 중건했으며 고전을 소개하는 「조선고전해제」를 동아일보에 실었다.이후 같은 신문에 「단군 개천」「5천년간의 조선의 얼」을 연재했으며 실학연구를 위한 학문행사를 주도했다.1937년 「경훈훈민정음서」「훈민정음운해해제」등을 저술,국어보존에도 기여했다. 그해 7월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면서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고 일어교육만을 강요,연희전문학교에서 선생이 강의하던 조선문학과목은 폐지됐다. 학생들의 저항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1940년 10월 중동학교안에 소위 「5인 독서회」가 조직된다.노국환·조성훈·황종갑·이기을·유영하등은 역사연구를 명분으로 선생을 비롯,김성수·송진우등으로부터 국제정세등을 들기를 요청해와 이들과 접촉을 갖는다.독서회 운동이 한창 추진되고 있을 때 황종갑의 편지가 일제의 검열에 발각되면서 선생도 적지않은 고초를 당했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기에 이르자 선생은 병을 핑계로 휴직을 한뒤 1943년 가족을 이끌고 전북 익산군 황화산으로 들어가 산중생활을 한다. 2년후인 1945년 마침내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해방을 맞게되자 선생은 서울로 귀환,일제하의 식민정책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연면하게 이어온 국학을 부흥·발전시키기 위해선 일제로 인해 단절된 우리 얼을 선양하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라고 판단하고 국학대학을 설립한다. ○1950년 납북 국학발전에 몸바치고 있던중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돼 감찰위원회가 구성되자 선생은 여러 인사의 천거와 이승만초대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으로 새 정부의 감찰위원장에 취임,관기확립및 부정부패 일소에 나섰다.그러나 선생은 취임 1년이 지날즈음 자신의 의지가 이루어 질 수없음을 깨닫고 감찰위원장 자리를 떠났다. 다시 국학대학장에 돌아온 선생은 더욱 우리 얼을 밝혀 내는데 정진했으며 국학대학장을 그만 둔 뒤 서울 회현동에서 역사연구와 집필생활을 하다 6·25전쟁을 맞았다.미처 피란가지 못한 선생은 1950년 7월 북한으로 납치돼 한동안 생사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그해 11월 사망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정부는 1990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호쾌한 홈런공방… 관중 열광/한·일 프로야구 친선경기

    ◎야구묘미 만끽/첫 경기 2­2… 내일·모레 잠실서 2·3차전 【부산=배성국·오병남기자】 프로야구 한·일 친선경기 1차전이 11일 하오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려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LG 트윈스 연합팀이 일본의 롯데 마린스·주니치 드래건스 연합팀과 2­2로 비겼다. 한·일 두나라 팀은 이날 장쾌한 홈런 하나씩을 서로 주고받으며 초반엔 타격전 양상을 보이다 중반부터는 투수전으로 전환,모처럼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구장을 찾아온 관중들에게 야구의 묘미를 한껏 즐길 수 있게 해줬다. 한국팀은 특히 아무래도 열세일 것으로 여기던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1회말 김민호의 2점홈런으로 기선을 잡아나가는등 호각세의 선전을 펼쳤고 일본팀 또한 2회초 다이호 야스아키의 1점 홈런으로 응수하는등 좋은 경기를 보여줬다. 두 팀은 이날 나름대로의 경기결과를 점검한뒤 오는 13일과 1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속개될 2·3차전에 대비,12일 서울로 올라간다.
  • 갈리 유엔 사무총장/새달 한­일 방문/북한도 방문 가능성

    【유엔본부 로이터 연합】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은 다음달 말 한국과 일본을 방문하면서 북한을 방문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유엔의 한 소식통이 9일 밝혔다. 이 소식통은 5년 임기중 1년을 보낸 갈리 사무총장이 다음달 20일 도쿄를 방문해 3∼4일간 체류한 뒤 서울로 향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이어 그의 북한 방문이 성사된다면 이는 핵개발의혹을 받고 있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거부하고 있는 시점에 이뤄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결혼 3∼4개월만에 일자리찾아 가출(농촌총각 울리는 위장결혼:상)

    ◎모은재산 소개료로 날리고 술타령/소문날까 두려워 영농포기 이사도 일부 중국교포처녀의 위장결혼으로 피해를 보는 농촌총각들이 적지않은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있다. 위장,사기결혼의 피해자는 대부분 결혼후 3∼4개월만에 곧바로 파경을 맞은 것으로 드러났다.위장결혼한 교포처녀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면 대도시등으로 일자리를 찾아 잠적해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피해자들은 일반 중매알선업체를 통해 소개받았을 경우 소개료 2백만∼3백만원을 포함,결혼비용만도 5백만원이상을 졸지에 날려버리는 셈이다. 경북 금릉군 대덕면의 정모씨(27)는 가출한 부인 강씨(21)를 사진으로 선을 본뒤 편지와 전화를 통해 사귀어 오다 결혼을 했다.정씨는 영농후계자이면서 농공단지내 전자회사에 다녀 비교적 생활이 여유있는 편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신혼생활을 하던 정씨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부인 강씨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이모라고 부르는 서울 종로구에 사는 교포 안모씨로부터 전화를 받은 지난달 초쯤. 그후 강씨는 별로 말도 않고 근심을하는듯 지내다 같은달 15일 밤에 집을 나갔다. 정씨는 『부인을 찾기위해 서울에 사는 친척들을 통해 서울 종로쪽 식당과 다방등을 뒤졌으나 효과가 없어 가출신고를 했다』면서 『결혼후 매사에 신이 났었는데 이제 죽고 싶은 심정뿐』이라고 털어놓았다. 정씨의 아버지(58)는 『며느리는 어찌되었건 생활에 재미를 못붙이고 매일 술을 마시는 아들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35세가 되도록 결혼을 못한 경기도 파주군의 임모씨의 경우에는 우연히 결혼상담소를 통해 중국 교포와 결혼할수 있다는 말을 듣고 여의도의 한 결혼상담소에서 지난 4월 중국의 중매업자를 소개받았다. 결혼상담소의 중매비용은 결혼이 성사될 경우 2백만∼3백만원정도.중국공항에서 중매업자를 만난 임씨는 흑룡강성의 한 여관에 한달쯤 투숙하며 20대 초반에서부터 후반에 이르는 교포들과 선을 본뒤 부인 심모씨(27)를 만났다. 임씨는 이어 심씨의 집에서 간소하게 결혼식을 한뒤 귀국,지난 8월 심씨를 초청해 다시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의 단꿈에 젖었던 것도 잠시.심씨는 한달남짓결혼생활을 하다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자 곧바로 가출했다. 임씨는 『부인이 집안일에도 시큰둥하며 하루에 한두차례씩 중국으로 전화를 해 타국땅에서의 생활이 외로워 그런줄 알았다』면서 『하지만 이제 보니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며 흥분했다. 경기 안성군 최모(30)씨는 동생과 함께 중국교포와 결혼을 했으나 연길출신인 부인 전씨가 집을 나가자 서울로 올라와 막일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최씨는 『뒤늦게나마 잘살아 보려고 일도 열심히 하고 신이 났었는데 아내가 나간뒤로는 동네 사람들을 볼 낯이 없어 동네를 되도록 떠나 생활하고 있다』며 한숨을 지었다. 최씨의 동생 부인(21)은 이같은 일이 벌어지자 『시아주머님을 뵙기가 죄송스러워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라고 했다. 그는 또 『중국현지에서도 위장결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인천의 모결혼상담소에서 올해 주선한 1백여명의 교포가운데 10%정도가 위장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현재 가출한 사람도 5∼6명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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