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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약공장 폭발사고… 6명 사망/인천 진흥정밀화학

    ◎건조기 과열… 화학약품 인화/52명 부상… 경인고속도 2시간 불통 【인천=최철호기자】 26일 상오 9시25분쯤 인천시 서구 가좌4동 549의6 한국수출5공단내 농약제조업체 (주)진흥정밀화학(대표 조택호) 건조실에서 고속드라이어기(건조기)가 과열로 터져 주변에 있던 살충제제조용 인화성 화학약품들이 잇따라 폭발하면서 불이 났다. 이 사고로 건조실에서 작업중이던 종업원 김근수씨(35)등 6명이 숨지고 주광민씨(41)등 근로자 52명이 중경상을 입고 인천길병원등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사상자들은 건조실·휴게실·건물주변등에 있던 사람들로 2t가량의 변압기가 놓인 전신주가 폭발사고로 넘어져 건물천장을 덮친데다 변압기도 폭발,큰 화를 당했다. 이날 사고는 용량3t가량의 고속드라이어로 농약강화를 위한 강화제 첨가건조작업중 건조기가 더운 날씨에 과열되면서 폭발해 부근에 있던 아세톤·이소프로필알코올등 인화성이 강한 물질등에 급격히 옮겨붙어 폭발해 일어났다. 사고 순간 건물내·외부에 놓여있던 톨루엔·아세톤등을 담은 드럼통과 배관파이프등이 사방으로 튀면서 사고현장과 이웃해 있는 한양정밀3층 공장내부 유리창 3백여장과 사무실 집기등이 부서졌고 신흥화학·린나이공장등 8개 업체의 공장유리창 1천여장이 박살났다.또 일부파편은 현장에서 3백여m 떨어진 경인고속도로 건너편 경동산업까지 날아들었고 경인고속도로로 통행하던 차량13대가 날아온 화염파편에 맞아 이중 2대가 전소되고 11대가 크게 부서졌다.이 사고로 경인고속도로 상·하행선 통행이 상오 11시30분까지 2시간동안 완전두절돼 종점인 인천항에서 서울로 향하던 차량과 부평IC부근에서 인천항쪽으로 향하던 차량들이 3∼4㎞씩 길게 늘어서는 심한 정체를 빚었다. 경찰은 고성능 화학차등 소방차 16대와 70여명을 동원,진화에 나서 1시간만에 불길을 잡았다. 진흥정밀화학은 지난 78년에 문을 열어 농사용 살충제와 농약원제등을 생산해 왔으며 약품제조 과정에서 심한 악취가 발생,이웃한 주민들과 공장등이 이전을 요구하는 등 마찰을 빚기도 했다. ◇사망자=김태흥(37·생산과직원),이병덕(40·〃,김근수(35·대리),이병화(31),이남규(30),조현길
  • “남북정상회담 계속 추진/김정일/클린턴과 회담도 희망”

    ◎방북 박보희씨 북경서 회견 【북경=최두삼특파원】 김일성사망에 조의를 표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박보희세계일보사장은 23일 북한의 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을 이미 정해진 원칙에 따라 계속 추진해갈 것이며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미대통령과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박사장은 이날 11일간의 평양방문을 마치고 북경에 돌아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난 20일 추도식이 끝난직후 김정일과 약 50분간 단독면담을 가졌다고 밝히고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이 카터전미대통령에게 한 약속이 모두 유효하며 북한­미국회담 등을 모두 그대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김정일이 한국과 미국정부에 전해달라는 구두 메시지도 있으나 그 내용을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사장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24일 일본에 가서 생각해 보겠다고 밝혀 곧바로 서울로 돌아갈 생각이 없음을 시사했다. 박사장은 자신의 방북활동이 한국내에서 물의를 빚은 사실을 의식한듯 기자회견에 앞서 배포한 「본인이 평양을 방문한배경과 입장」이라는 설명서에서 『김일성주석의 장의 의식에 참여하여 조의를 표하고,북한이 처한 현실정을 정확하게 알고 미래를 전망코자 하는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설명서는 이어 방북과 관련,▲조문은 인도주의 정신의 기본 신념이며 ▲문선명총재의 「참사랑」 가르침을 실천하고 ▲조국통일의 물꼬를 튼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 북한읽기­아는만큼 보인다/이재근(서울광장)

    구소련의 「6·25외교문서」가 주는 교훈적인 의미는 크다.역사적 진실은 결코 감춰질 수 없다는 진리가 그것이고 과거의 사실은 같은 형태로는 두번다시 되풀이될 수 없다는 확신을 사람들에게 심어준것이 또다른 하나다.6·25를 놓고 북침이니 남침유도전쟁이니 하는 속절없는 강변이 이제 무슨 근거를 갖겠는가.역사는 세월속에 확연해지고 사물은 아는만큼 보인다는 교훈이다.우리의 북한관이나 대북한인식도 그래야한다. 열이틀간에 걸친 장의행사와 추도대회의 장막뒤에 무슨 꿍꿍이속이 있었는지는 조만간 밝혀질 일이다.「그 아버지의 아들」이 후계권력자로 일단 굳혀진 사실도 알려졌다.그러나 그것이 곧 김정일이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한다는 보장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국내외적으로 체제유지에 불리한 요인이 가중되고 내부반목이 첨예화할 경우 큰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새가 죽을때 소리가 아름답고 사람이 죽을때 말이 착하다』(조지장사 기명야애 인지장사 기언야선)는 옛말이 있다.50년 독재자의 마지막은 어떠했을까.그들 장의기간 내내 그것을 생각했다.그건 그렇고,김일성은 자신의 죽음을 다분히 예감했으리라고 나는 본다.죽기전에 가슴에 감춰둔바 과거의 잘못을 털어놓고는 뭔가 하나라도 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남북정상회담이 그것 아니었을까.카터씨에게 얘기했다는 일흔살이상 이산가족 고향방문제의도 사실이라면 그렇다.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이고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그러나 어떻든 김일성은 희대의 음모가요 책략가였음이 분명하다.그는 정상회담을 제뜻대로 끌고가다가 여의치않거나 중동무이하는 경우 아들에게 「물려준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김일성은 근년에 들어 유난히 김정일후계체제를 비롯한 통치권인계작업과 연관된 언행을 많이 한것으로 나타났다.아들후계구도 및 주체사상의 강화와 관련해서는 『내가 우리인민의 토양에 씨를 뿌리고 키워온 주체사상을 김정일동지가 무성한 숲으로 가꾸어 풍만한 열매를 맺게했다』『그가 없으면 동무들도,사회주의도 없다』『그만큼 신념이 강하고 배짱이 센 사람은 처음봤다』는 등의 공언이 그런 것들이다.밝혀진 바로는 최근 수년동안 김일성은 다만 「군임」해왔을뿐 김정일이 당·정·군의 전권을 장악했다.김일성은 세습후계체제의 공고화에 모든힘을 쏟았다는 얘기다.오랜기간 타스통신 평양특파원을 지낸 알렉산더 레빈은 그의 저서에서 김부자의 「일체관계」를 이렇게 묘사한다.『내가 목격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1984년 평양주재 소대사관에서 일어났던 일이 있다.그곳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안드로포프 서기장의 서거에 조의를 표하러 와있었다.서기장과 개인적으로 친분을 가져왔던 김일성은 추억에 잠긴듯 조금은 감상적으로 보였다.그는 소련대사 슈브니코프와 대화를 더 하기위해 강당중앙에 멈춰섰다.그러자 그보다 앞서가던 김정일은 돌아서서 「갑시다.갑시다」하고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조급히 재촉했다.아무것도 거칠것이 없다는 몸가짐이었다.김일성은 갑자기 대화를 중단하고 온순하게 아들의 뒤를 따라갔다.이 광경에 놀란 우리는 그후 오랫동안 이 「사건」을 분석했다』 독재자 아버지는 죽었고 그 아들이 아버지와 형식적으로나마 나눠가졌던절대권력을 아우르게 됐다.「한몸 두머리」의 권력이 지금 「한몸 한머리」로 되는 마당이다.그래서 우리는 이제 전체 북한읽기는 물론 그 한 머리 권력주체의 인물탐구에 철저해야한다.남북정상회담이나 이산가족 교류를 위한 남북회담의 진전을 위해서도 그러하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은 원칙이 유효하다는게 우리 입장이다.원칙과 정신은 살아있다는 말이지만,단 새로운 상황 새인물에 맞게 조정돼야한다고 본다.남북정상회담은 이제야말로 북이면 북 어느 한쪽의 책략으로 이뤄질 일이 아니다.처음 우리쪽 여론이나 국민정서가 그러했듯 시기는 여유있게 잡고 장소도 평양이나 서울아닌 제3의 지역이 좋다.판문점도 그렇고 공해상의 어느 함정에서도 안될것이 없다.그리하여 차츰 평양으로 서울로 가고 오자는 것이다. 상황은 많이 변했고 그래서 사람을 아는 일이 또한 중요하다.김정일을 더욱 연구하고 탐색해야한다.현재로선 그가 정상회담의 한쪽이 되는것이기 때문이다.그들 장의행사 전기간에 걸쳐 말한마디 하지않았고 공개석상에서는 병색이 완연한 넋나간 모습이었는데 왜 그랬는지를 정확히 알아내야한다.그의 성격,언행,사고,감정처리가 어떻든 남북한 관계변화와 직결되는 것이라면 우리의 지피지기는 단순한 인물탐구가 아닌 큰지혜에 속하는 것이다.『사람은 아는만큼 느끼고 느낀만큼 보인다』고 누군가 말했다.
  • 국민 5명중 1명꼴 이사했다/통계청 작년 인구이동 집계

    ◎대전외 대도시 인구집중 추세 둔화/수도권 순수전입15만… 광역화 가속 지난 한 해에 우리나라 전체 인구(4천4백49만6천명)의 5분의 1 가까운 19.8%,8백80만7천명이 동·읍·면 경계를 넘어 이사했다.인구 1백명 당 19.8명이 이동한 셈이다.이 중 2백86만명은 시·도 경계를 넘어 사는 곳을 옮겼다. 또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지역은 나가는 사람보다 들어온 사람이 15만명 가량 많아 수도권 인구집중 현상이 계속됐으나 서울만 떼놓고 보면 신도시 개발 등으로 들어온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서울은 지난 90년 이후,부산은 89년 이후 계속 전출자가 전입자보다 많았으나 이는 인구의 분산 현상이라기보다는 신도시 등 주변 도시의 규모가 커져 대도시의 광역화가 이뤄진 때문이다.특히 신도시가 있는 성남(분당),부천(중동),안양(평촌),고양(일산),군포(산본)등 5개 시의 전입자는 10만명(31.5%)이 늘어났으며,10명 중 7명 정도는 서울로부터의 전입자였다. 21일 통계청이 주민등록 전출입 신고 내용을 토대로 집계한 「93년 인구이동 집계」에 따르면 지난 해 우리나라의 인구이동률은 19.8%로 일본(5.2%,92년 통계),대만(7.3%,〃)보다 훨씬 높았다.우리나라의 이동률은 지난 70년대 후반 이후 20% 이상을 유지,지난 83년 24.7%로 최고를 기록한 뒤 91년 이후 둔화되는 추세이다. 시·도별 인구이동 다른 시·도로부터의 전입률이 높은 지역은 경기(11.5%),인천(9%),대전(8.9%),광주(7.4%)등의 순이다.수도권 지역 및 신흥 대도시 지역으로의 인구집중은 92년에 이어 지속되고 있다.다른 시·도로의 전출률이 높은 지역은 전남(7.6%),서울(7.3%),경기·인천(7.2%)등의 순이다.전남에서는 광주로,수도권 지역은 수도권 내의 다른 시도로의 전출이 많았다. 시도 경계를 넘어 이동한 사람은 92년보다 4천명이 증가한 2백86만4천명이다.그러나 그동안 수도권 및 대도시로 전출이 많았던 강원,충남북,전남북,경북에서는 오히려 전출이 감소,전반적인 시도간 이동은 92년에 이어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 ▷시도간 이동자의 전입지 분포◁ 시도간 경계를 넘어 이동한 사람들의 전입지를 보면 수도권 및 대도시로의 높은 이동성향을 보여준다.6대 도시의 전출자는 인근 지역으로 가장 많이 옮겼고 그 다음이 서울이다.강원,충남북,전남,제주에서는 서울로 가장 많이 들어왔고 그 다음이 경기이다.이들 지역 총 전출자의 60% 정도가 수도권으로 전입했다.또 전남,경남북에서는 인근 대도시인 광주,대구,부산으로의 전입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서울이다. ▷시도별 순이동 추이◁ 대전을 뺀 대도시의 인구집중 추세가 둔화되고 있다.서울은 90년 이후,부산은 89년 이후 계속해서 전출자가 전입자보다 많다.93년에는 사상 처음로 많은 18만3천명,5만9천명의 전출초과를 각각 기록했고 대구는 90년에 이어 93년에 다시 전출초과를 보였다. ▷수도권의 인구이동◁ 수도권 이동자는 92년보다 0.1%(4천명)가 증가했다.그러나 수도권 밖 지역에서의 전입(4.4%),수도권밖으로의 전출(1.8%),수도권 외 지역간의 이동(4.3%)이 모두 감소했으나 수도권 안의 시도간 이동은 92년에 비해 8.4%(7만7천명)가 늘었다.이는 신도시 아파트 입주를 위해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동이 급증했기 때문이다.수도권 전입자의 전거주지를 보면 전남이 8만4천명(14.4%)으로 가장 많고 충남,전북,강원 등의 순이다.
  • 모스크바에 「한국무역관」 세운다/국내기업 5∼6곳 컨소시엄 구성

    ◎양국,오늘중 기본합의서 체결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한·러양국은 21일 모스크바 한국종합무역관 건립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키로 최종 합의했다. 모스크바를 방문중인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박영도사장과 모스크바시의 블라디미르 레신 제1부시장은 이날 하오 한국무역관 건립 부지문제와 관련된 제반사항에 합의하고 22일중으로 무역관건립을 위한 기본의향서를 체결키로 했다. 모스크바시에서 최고 요지로 꼽히는 모스크바대학부지내 15◎(4만5천평)에 건립될 한국무역관은 향후 5년간 총공사비 3억5천만달러를 투입,지상 25층 지하5층 규모로 세워지는 모스크바내 최대의 종합무역관이 된다. 코트라측은 22일 기본의향서를 토지소유주인 모스크바대학측과 체결한뒤 오는 10월중 토지매매계약을 공식체결하고 곧 바로 국내 5∼6개 대기업들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착공에 들어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코트라측은 이와관련,류슈코프 모스크바시장 일행을 조만간 서울로 초청키로 했다. 모스크바 한국종합무역관 건립은 지난 90년12월 코트라와모스크바시사이에 건립합의서가 체결돼 추진됐으나 그간 러시아정부의 입장변화로 거의 진전을 보지 못했었다.그러던 중 지난 6월 김영삼대통령의 방러시 우리측이 문제를 적극 제기해 이번 공식 사절단방문으로 최종 매듭을 본 것이다.
  • 뉴욕발 서울행 KAL기 폭파위협/긴급수색… 4시간 지연출발

    뉴욕발 서울행 대한항공여객기가 20일밤(이하 현지시각) 출발지인 뉴욕 케네디국제공항에서 폭탄 테러위협으로 화물을 긴급수색하는 등 소동을 벌인 끝에 예정보다 늦게 출발한 것으로 21일 전해졌다. 탑승객들이 중간 기착지인 앵커리지에서 전한 바에 따르면 대한항공 027편이 20일밤 이륙에 앞서 폭탄 테러위협으로 활주로에 짐을 풀고 승객들로 하여금 일일이 확인토록 하는 등 긴급 보안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객기 탑승객이 정원의 절반 가량이었다면서 긴급 보안점검이 이뤄진후 예정보다 4시간여 늦게 서울로 떠났다고 전했다.
  • 덕수궁/월산대군사저… 임란후 궁으로/궁궐:8(서울6백년만상:45)

    ◎고종퇴위후 거주… 전기·전화 최초가설/일제 1933년 시민공원으로 개방 덕수궁은 궁궐이라기보다는 공원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등 현존하는 3대궁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우선 정문인 대한문을 들어서면 세종대왕동상이 앉아있고 분수대가 물을 뿜고 있으며 매점등 편의시설이 즐비하다.점심시간대에는 인근 회사원들에게 산책 코스로 각광을 받고있는 여느 도심공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단지 대한문을 필두로 중화전 즉조당 함녕전등 몇 안되는 전각들과 스피커를 통해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우리 가락이 이곳이 궁궐이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을 뿐이다. 덕수궁은 원래 세조의 큰아들이자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으나 정궁이 된 배경은 임진왜란과 을미사변등 국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임진왜란의 발발로 신의주까지 피란갔다 서울로 돌아온 선조는 경복궁과 창덕궁이 타버려 어쩔 수 없이 덕수궁에 거처를 정했다. 이때는 궁궐의 이름도 없이 그저 정릉동행궁이라 불리다 광해군이 즉위 3년만에 행궁의 이름을 경운궁이라고 지어 처음으로 궁궐의 반열에 섰다.그러나 불과 7년만에 인목대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광해군이 대비를 이곳에 유폐하면서부터 경운궁은 서궁으로 격하됐다. 광해군을 이어 덕수궁 즉조당에서 즉위한 인조는 경운궁을 명례궁으로 부르다 1623년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덕수궁은 별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2백70여 성상이 흐른 광무 원년(1897)을미사변의 와중에서 러시아공관으로 파천했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되찾았고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이곳에 칩거하면서부터 궁의 이름에 고종의 존호를 사용,덕수궁이라고 불렀다. 고종이 이곳으로 옮긴뒤 두차례에 걸친 대규모 축조공사로 함녕전 보문각 선원전 중화전 관명전이 새롭게 태어나 궁의 모습이 일신됐다. 이때 덕수궁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대한문은 원래 중화전의 문인 대안문을 옮겨놓았으나 190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2년뒤에 중건,대한문으로 이름을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덕수궁은 서울의 다른 궁궐들과 마찬가지로 일제에 의해 크게 훼손됐다. 원래는 경희궁(옛 서울고자리)과 연결돼 있을 정도로 규모가 방대했으나 열강들의 각축이 벌어지면서 조금씩 떼어내 외국공관으로 사용케 해 규모가 줄어들다가 고종이 승하한뒤 빈 궁궐로 남아 있자 일제가 기다렸다는 듯이 궁의 서쪽 선원전을 통과하는 도로를 뚫은뒤 1933년 시민공원으로 개방했다. 지금의 대법원과 새문안길을 잇는 이 길이 바로 60∼70년대 서울의 연인들이 낭만을 즐겼던 「덕수궁 돌담길」이다. 일제는 도로 서쪽으로 떨어져 나간 궁궐의 전각들을 헐고 경기여고를,그리고 도로 동쪽 제사준비소터에 덕수국민학교를 세웠다.또 동쪽 언덕을 밀어내고 최초의 방송국인 경성방송국국을 지어 궁궐이 반쪽으로 줄어들었다. 광무10년(1902)궁내에 발전소가 완성돼 전기가 들어오고 궁내부전화가 설치되는등 신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기도 했던 덕수궁은 구한말 격동의 시기에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며 수많은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 4중충돌로 6명 사망

    【천안=이천렬기자】 17일 하오 6시30분쯤 충남 천안군 성거읍 정촌리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서울기점 75.5㎞)에서 서울로 가던 서울 1프7564호 엑셀승용차 (운전자 한승희·33세 수원시 장안구 지동 113의 13)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충북 1부6180호 프라이드 승용차(운전자 미상)와 대전 5아3076호 금남여객 소속 고속버스(운전사 김대성·31)를 잇따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엑셀 승용차 운전자 한씨와 함께 타고있던 이범주(40·서울 성북구 정릉동 110의 40),전옥자씨(34·여)등 6명이 숨지고 버스승객 김충옹씨(29·평택군 지탄면 아두2리)와 1살된 김씨의 딸 채윤양등 2명이 크게 다쳐 천안 단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한­중 항공회담/20일 서울서 개최

    【북경 연합】 서울∼북경간 직항로개설문제를 매듭짓기 위한 한·중항공회담이 20∼22일 서울에서 열린다. 이곳의 한 소식통은 16일 이와 관련,『외교부·민항총국·교통부 등의 관리들로 구성된 중국대표단이 19일 서울로 떠날 것』이라면서 『중국측도 그 어느 때보다도 서울∼북경간 직항로의 조속개설필요성을 느끼고 있어 이번 회담에서 타결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 미상원의원 오늘 입북/군사위 레빈,북경 거쳐/김일성과 핵논의

    ◎11일 판문점 통해 서울에 미국 민주당 상원군사위 소속 칼 레빈의원(60)이 북한측의 공식 초청으로 북경을 거쳐 9일 북한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외무부 장기호대변인이 8일 밝혔다. 장대변인은 이날 『레빈의원은 8일 북경에 도착,9일 상오 평양에 들어가 3일동안 머문뒤 11일 판문점을 통해 서울로 내려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레빈의원의 이번 방북은 제네바에서 미·북 3단계회담이 열리고 있고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이뤄져 그 결과가 주목된다. 장대변인은 또 『레빈의원은 먼저 서울을 방문,판문점을 거쳐 방북하려 했으나 한·미 두나라의 실무진들의 검토결과 시간이 촉박해 북경을 통해 입북부터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레빈의원은 방북기간 동안 북한의 김일성주석을 면담,핵문제와 동북아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레빈의원은 그러나 빌 클린턴미국대통령의 친서나 메시지는 휴대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레빈의원은 「미·북 3단계회담이 진행중이고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는 만큼 조용하고 신중한 방북이 되도록 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덧붙였다. 레빈의원은 서울로 돌아온뒤 청와대를 예방,김영삼대통령에게 방북결과를 설명하고 한승주외무부장관과도 만나 협의할 예정이다. 칼 레빈의원은 하버드대 법학박사로 변호사 출신.지난 79년 미시간주에서 상원의원에 진출,오늘에 이르고 있다.상원의 위원회 활동은 주로 군사위에서 하고 있으며 현재 연합방위및 증원소위위원장을 맡고있다.중소기업위와 행정문제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 몽브리알 불 국제문제연구소장 특별기고

    ◎“북핵 대화 해결땐 모두가 승리자”/평양측,핵카드로 「최상의 대가」 획득 노려/서방,「당근해법」 제시… 「핵포기」 유인책 펴야 오는 25일 김영삼대통령이 분단사상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주석과 역사적인 회담을 가질 예정 이어서 한반도에 45년만에 봄다운 봄이 올 것으로 기대된다.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긴장의 뇌관인 북한 핵문제의 해법을 프랑스 국제문제연구소(IFRI)의 티에리 드 몽브리알 소장의 기고를 통해 알아본다. 현재 평양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위기 조성 도박은 정확히 어떤 것인가.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한반도의 후기 공산주의가 변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문제의 전제조건들은 비교적 간단하다.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조용한 변혁으로 북한은 쿠바와 약간 비슷하게 얼굴에 핏기를 잃었다.그러나 김일성 체제는,확실히 예견할 수는 없지만 금방 붕괴할 위협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한국측으로서는 북한 주민들이 풍요로운 경제를 맛보는 순간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라는 사실을 독일 통일의 전례에 비추어 알고 있기 때문에급속한 통일을 바라지 않고 있다.마찬가지로 주변의 모든 강대국들도 동북아지역의 경제및 지정학적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 점진적인 변화를 선호한다.특히 중국은 김일성체제가 붕괴될 경우 난민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혼란을 두려워 하고 있다. 평양의 나이 많은 독재자와 참모들은 아마도 이런 기본 전제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그들은 또 부드러운 전환이 미국·일본과 같은 경제대국들의 실질적인 원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점도 알고 있다.더구나 북한은 외화 조달의 대부분을 조총련의 송금(연간 20억달러에 달한다)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평양의 전략가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게 돼 있다.그들이 내놓을 수 있는 단 한장의 카드로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대가를 얻어내느냐 하는 것이다.그 카드란 군사적 핵능력이며 또한 중거리 미사일 같은 정교한 무기 체계를 서방의 적들에게 팔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대가는 핵원자로의 민간용 전환을 포함한 각종 경제원조와 외교적인 승인 등일 것이다.하지만 그들이 받아낼 수 있는 액수는 미정이다.당근과 채찍을 요량해서 벌이는 값올리기에 달려 있을 뿐이다. 채찍은 한반도에서의 새로운 전쟁이라는 위협이다.이 전쟁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은 거의 확실하게 이기겠지만,그 직접및 간접 비용은 모두에게 엄청난 것이 될 것이다.당근은 핵폭탄과 대량파괴무기 매매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쟁이 억제되리라는 추론에만 안주하고 있으나 김일성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란 그 위협의 신빙성을 미국을 비롯한 대화상대자에게 확신케 하는 것이다.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그는 전쟁 즉 자멸행위를 실제로 준비해야 한다.승리하려면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워싱턴의 시각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어떤 것인가.미국 행정부는 틀림없이 북한이 지난 75년부터 군사핵개발에 착수했고 그것을 숨기려 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북한은 지난 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으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은 거부했다.인공위성 관찰에 따른 계산에 근거해 미국 전문가들은 평양이 이미 8∼12㎏의 플루토늄을 추출해 1∼2개의 핵무기를 만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워싱턴의 전략가들은 효과적인 제재를 가했을 때 김일성이 실제로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할 수 있는 아무런 방도가 없다. 앞에서 설명한 이유 때문에 노장 김일성은 공격을 결정할 수도 있다.설사 서울을 점령할 확률이 희박하더라도 그의 타산이 반드시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미국은 쉽게 북한 영변의 핵시설을 파괴할 수 있겠지만 핵폭탄은 파괴하지 못할 것이다.핵폭탄이 존재한다면 지하의 땅굴속에 숨겨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이 경우 북한 지도부가 전면적인 패배 사실을 안다고 할지라도 핵폭탄은 서울로 발사될 것이다. 미국의 전략적인 계산은 외교의 어려움에다 군사적인 망설임이 겹친 것만큼 복잡하다.러시아는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미국에 못마땅하다는 태도를 보였으며 중국은 미국이 세운 제재 계획에 아무런 공감도 표시하지 않고 있다.일본은 겉으로는 미국을 지지하지만 실제로는 유보하는 입장이다.클린턴대통령으로서는 아무 것도 일방적으로 시작할 수가 없다. 핵무기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은 걸프전 때 충분히 나타났다.그러나 그때는 핵무기가 존재하리라는 추정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다. 미국 민주당 정부는 그들의 현실주의를 충분히 보여줬다.미국은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해체하는 대가로 원조를 했던 전례를 갖고 있다.미행정부는 인권 문제를 포기하면서 중국에 최혜국 적용을 연장해 주었다.빌 클린턴으로서 현재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를 가장 간단하게 해결하는 방안은 가장 좋은 대가를 김일성에게 주고 핵무기를 내놓게 하는 것이다.결국은 그것이 한반도 주변 모든 나라들이 바라는 것이 아닐까. 미국의 대통령에게는 국제적인 비호가 필요하다.국내에서는 매파들의 반발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대외적으로는 그가 유약하다는 비난이 있기 때문에도 그러하다.모스크바는 이미 북한핵문제에 대한 국제회의 소집을 제의함으로써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쳤고 김일성은 김영삼대통령과 곧 만난다.외교적인 우회가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면 모두가 승리했다고 여길 것이다.그리고 이는 진실로 모두의 승리가 될 것이다. ▷약력◁ ▲1946년생 ▲이공대학 졸업 ▲외무부 정세분석실장(차관보급) ▲IFRI소장(77년∼현재)
  • 「정상회담 보안」통신비밀 보장으로/통신분야 실무접촉과 우리측 대응

    ◎“도청막으려면 위성전화 휴대 필수”/외신 등 위해 신라호텔엔 멀티비전 남북정상회담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필수적인 분야가 바로 통신이다.회담의 진행을 일일이 점검하고 그때마다 전략을 숙의하기 위해서는 통신의 신속성과 비밀성이 보장돼야 한다.회담의 성패가 통신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어떻게 보면 대통령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호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경호는 신변안전보장각서에 따라 대부분 북한이 책임을 지는 부분.국제적인 분위기로 미루어볼 때 북한이 섣부른 짓을 하리라고는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만약 북한이 「장난」칠 우려가 있다면 그것은 통신분야가 될 가능성이 크다. 7일 통신분야 실무접촉에서 우리측이 역점을 둔 부분은 통신시설의 확충과 안전성 보장.현재 낮잠을 자고 있는 직통전화 24회선을 모두 가동하고 도청을 방지하자는 것.이 가운데 직통전화를 풀가동하는 문제는 전화선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별 어려움이 없다.실제로 고위급회담때 풀가동됐었다.평양에서 전화를 걸면 판문점을 통해 지하에 매설된 전화선을 타고 음성이 서울로 온다.직통전화는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을 거쳐 청와대로 연결된다. 그러나 직통전화는 완벽한 비밀 보장이 어렵다.상대방 정보기관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도청이 가능하다.유사시 선이 끊어질 염려도 있다.보안유지의 어려움에 더해 비상사태 발생에 대비한 독자통신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우리측이 위성전화를 휴대하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위성전화는 전화선을 거치지 않고 태평양 상공에 떠있는 인공위성을 통해 통화가 가능하다.위성전화에는 파라볼라안테나등 인공위성에 직접 전파를 발사할 수 있는 장비가 부착돼있다.이동지구국이나 다름없다.평양에서 전화를 걸면 인공위성으로 직접 연결되며 금산지구국을 거쳐 서울의 수신자에게 목소리가 전달된다.북한의 위성통신시설을 거칠 필요가 없어 도청될 위험이 거의 없다.지난해 문화방송이 내전중인 소말리아에 특파원을 보내면서 위성전화를 휴대하게 해 현지에서 리포트를 한 적이 있다.걸프전때 바그다드에 혼자 남아 현장의 소식을 전했던 CNN의 피터아네트기자도 위성전화를 이용했었다.위성전화는 일반전화에 비해 감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도청을 피하는데는 효과적이다.가격이 엄청나게 비싼 것이 흠.일본등에서 한차례 빌리는 데만도 1천만원 가까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공보처는 국내 보도진과 전세계에서 몰려들 외신기자들을 위해 신라호텔에 프레스센터를 마련하기로 했다.공보처는 오는 21일 호텔 본관 2층에 있는 약 4백평 규모의 방에 전화와 팩시밀리등 통신수단과 평양에서 생중계되는 화면을 볼 수 있도록 대형 TV를 마련해 22일 문을 열 계획이다.공보처가 예상하고 있는 국내외 보도진의 숫자는 5백명쯤.지난달 28일 예비접촉에서 정상회담의 개최가 전격 합의된 뒤 수행 취재를 신청했던 국내상주 62명,도쿄주재 20명등 82명 말고도 본사에서 지원팀이 추가로 서울에 도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위성전화란 무엇인가/대양상공 8개위성에 전화·팩스 연결/고유번호 달린 단말기로만 교신가능 위성전화는 송신자가 지상 어느 곳에서나 위성단말기(1백㎏ 정도)와 휴대용전화를 이용해 전화를 걸면 인공위성이 바로 전파를 수신하고 이를 다시 지상지구국으로 보내 유·무선 등 지상통신망을 통해 수신자와 연결되는 전화시스템이다. 세계의 위성전화는 태평양,인도양,대서양 등의 지상 3만6천㎞ 상공에 떠있는 인마세트(국제해사위성기구)의 위성 8개(4개는 예비용)를 통해 이루어지며 우리나라는 지난 91년 금산에 태평양 및 인도양 위성지구국을 건설,인마세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고유번호(ID)가 있는 단말기만 통신이 가능하고 단말기마다 전화와 팩스,텔렉스 등을 각 1채널만 사용할 수 있다.즉 위성전화를 사용하려면 전화기 등에 ID번호가 있어야 인마세트의 채널이 열리고 전화 등을 걸때는 인마세트에 있는 어느 채널을 통하는지 알수 없어 전파방해 등이 거의 불가능하다. 남북정상회담시 우리측이 위성전화를 갖고 갈 경우 평양∼태평양인마세트∼금산지구국∼청와대로 통신망이 연결된다.따라서 북한이 만약 전파방해를 한다해도 태평양위성에 수용된 1백개 채널을 모두 막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로선 가장 간편하고 안전한 지휘용 통신망인 셈이다.
  • 의전에 북측 이해부족… “미완의 합의”/정상회담 실무접촉 안팎

    ◎회담형식 「배석자있는 단독」으로 조정/TV중계 등 이견은 큰 걸림돌 안될듯 지난달 28일 예비접촉에서의 전격적인 합의와는 달리 1일의 실무접촉은 난항을 겪은 끝에 완전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그렇다고 해서 과거처럼 실무적인 부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상회담 자체가 무산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추가 접촉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타결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접촉이 끝난뒤 우리측 윤여전대표는 『경호문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의전문제에 있어 북한의 이해가 의외로 부족했다』고 말했다.대결 분위기였다면 우리측 대표는 북한의 저의를 의심하는 발언을 했어야 마땅하다.하지만 윤대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상황이 전과는 사뭇 다른 것으로 여겨지는 사례다.윤대표는 「현격한 의견 차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그것이 접촉의 결렬을 예상한 발언은 아닌 것 같다. 이날 접촉에서 북한은 대표단의 규모를 수행원 1백명과 보도진 80명 등 모두 1백80명으로 하자는 우리측의 제의를 받아들였다.북한은 정상회담의 복수 개최에도동의했다.다소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회담의 형식도 단독정상회담으로 한다는데 의견의 접근을 이루었다. 그러나 사전답사반(선발대)의 파견과 TV중계팀 파견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북한은 선발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선발대의 역할과 필요한 시간에 대해서는 별로 비중을 두지 않았다.회담 15일전까지 15명 안팎의 선발대가 평양에 도착해야 한다는 우리측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북한은 회담 며칠 전이면 충분하다면서 인원도 그렇게까지는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었다.북한의 생각은 선발대가 그렇게 할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북한은 우리측 선발대가 미리 들어와서 의전절차를 준비하고 경호상태를 점검한다고 회담장 주변과 숙소등지를 돌아다니는 일을 허용할 수 없다는 생각인 것이다.북한은 TV중계팀의 수행에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행낭편을 통해 테이프를 서울로 보낸뒤 지정된 뉴스시간에 방영하면 된다고 버텼다. 하지만 선발대와 TV중계팀의 파견은 회담의 형식에 비해 그리 큰 문제는 못된다. 회담이 우리측의 안대로 단독회담의 형식을 띠기는 했지만 고위급 각료 1명 또는 2명씩 배석하는 어정쩡한 형태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데 아쉬움이 남는다.김일성과의 단독 대좌에서 특유의 결단력으로 담판을 짓는다는 김영삼대통령의 복안이 그대로 실현되기에는 어딘가 충분하지 못한 구석이 있어보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처음에는 단독회담 없이 확대정상회담 한차례면 충분하다고 나왔다.단독정상회담만 두차례 갖자는 우리측의 생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확대정상회담이란 대개 정상간의 단독 대좌에서 어떤 원칙이 합의됐을 때 열리는 것이 보통.대체로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열리는 제3국 정상과의 회담에서는 단독정상회담에 이어 으레 고위급 수행원들이 배석하는 확대정상회담이 추가로 열린다.하지만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성격상 그런 회담과는 거리가 있다.지금까지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정부의 최고책임자들간의 회담이다.서울에서 회담이 다시 열릴 가능성을 상정하더라도 확대정상회담만으로는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일조차도 힘들것 같다.배석자가 있는 단독정상회담도 마찬가지라고 할수 있다. 배석자의 숫자만 적을뿐 실질적으로 확대정상회담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단독정상회담을 반대하는 배경에는 김일성을 따르는 혁명 1세대 원로보수세력과 김정일을 추종하는 소장파들간의 알력이 숨어있는 것처럼 비쳐지기도 한다.회담의 형식이 단독으로 결정되면 김정일진영은 그 결과를 직접 알 수 없다.그래서 김정일이 단독정상회담을 수용하지 말도록 했을 가능성도 엿보이는 대목이다. ◎“예비접촉 합의는 두정상 결단의 소산”/판문각 실무대표 접촉 이모저모 ○…1일 열린 남북실무대표접촉은 지난번 예비접촉에서 중요한 문제가 합의됐기 때문인지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시작. 이날 접촉에는 당초 예상과 달리 안병수조평통부위원장이 아니라 백남준정무원책임참사가 북측대표로 나와 다소 의외라는 반응. 백대표는 우리측 윤여전대표에게 『통일각은 처음이시죠.85년도에 착공했는데 석달만에 완공했다』고 회담장을 소개.이에 윤대표도 『역사적인 장소가 되도록 해야죠』라고화답. 윤대표는 이어 김용순북측예비접촉단장과 안대표의 안부를 물으면서 『김단장은 언변도 좋고 풍채도 좋은신게 정치인같다』고 칭찬. ○…양측대표는 지난번 예비접촉에서 전격적으로 정상회담을 성사시킨데 대해 덕담을 교환하면서 사명감을 피력. 북측 백대표는 『북남최고위급회담으로 세상이 들썩하는 것 같습니다.북녘에선 분단 50년을 한해 앞두고 통일의 역사를 창조하는 것 같다며 흥분하고 있다』고 소개. 우리측 윤대표는 『분단 반세기 만에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연다는 시간적 공간적인 의미를 넘어서 민족사적 의미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너무 기대가 커서 과연 회담이 이루어지는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고 호응. 두대표는 이어 지난번 예비접촉에서 합의가 이뤄진 것은 두정상의 정치적 결단때문에 가능했다는데 의견을 일치. 백대표가 『김영삼대통령이 용단을 내렸습니다』고 말하자 윤대표는 『지금까지 회담 관례로 볼때 김대통령이 첫 회담장소로 평양을 받아들인 것은 보통의 용기와 결단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지기힘든 것이었다』고 언급. ○…북측 백대표는 『장마가 지면 직업과 계층별로 반응이 다른데 농민은 관개가 잘돼 괜찮지만 청소년들은 별반 좋아하지 않는것 같다』며 『북쪽 청소년들은 1년에 15일씩 국가 부담으로 야영생활을 하기 때문에 이를 무척 기다리는데 비가오면 좋지않기 때문』이라고 설명. 윤대표는 이에 대해 『옛날에 우산장사와 짚신장사 아들을 둔 어머니가 있었는데 날씨가 좋아도 고민이고 날씨가 나빠도 고민이었다는 말이 있다』고 맞장구. 백대표는 인사말을 교환한뒤 『우리 오늘 끝내도록 합시다.비가 와도 방안에 앉아 있으니 문제가 없겠지요』라며 회담시작을 제의. 윤대표는 『저희측 북한문제 전문가들로부터 백선생이 참가한 회담은 다 잘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지난번 회담도 약간의 진통은 있었지만 잘되지 않았습니까』라고 화답. 이에 백대표는 큰 소리로 기분좋게 웃으며 『사실입니다.우리 오늘 속보로 나가봅시다』라고 말한뒤 회담에 진입. ○…이날 하오접촉은 저녁 늦게까지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회담시작 1시간만에 종료. 양측대표들은 농담까지 주고 받는 등 밝은 분위기속에서 회의를 속개. 우리측 윤대표가 먼저 북측 수행원으로 나온 최승철 조평통서기국부장을 가리키며 『최선생은 쌍꺼풀도 지고 얼굴이 미남인데 우리처럼 못생긴 사람들은 원래 미남옆에는 잘 안가는 법』이라고 칭찬하자 좌중은 웃음바다. 이에 북측 백대표가 『원래 남남북녀라고 했는데…』라고 응답하자 윤대표가 다시 『70년대초 서울에 온 북측회담대표중 이청일씨라는 여성대표가 당시 신문기자였던 나에게 「조선여자는 남북 가릴것 없이 다 이쁘다」고 말한적이 있다』라고 말하는등 서로 덕담을 교환. ○…이날 접촉에서는 개성에도 종합대학인 성균관대학이 있음이 북측대표 입을 통해 밝혀져 화제. 하오 접촉에서 구본태통일원통일정책실장이 『개성이 한창 개발중이라는데요.』라고 운을 떼자 북측 백대표는 『금년초 왕건릉 확장공사가 완료됐고 종합대학인 성균관대학도 2년전에 설립됐다』고 설명.백대표는 『성균관대학은 주로 경공업중심의 대학으로 개성이 인삼으로 유명한만큼 「인삼학부」도 개설돼 있다』고 소개. ○…당초 관심을 모았던 대표단 규모문제는 이날 상오 접촉에서 이미 확정됐다는 후문. 회의 벽두에 우리측 윤대표가 『취재기자단 수를 좀 늘려야 될 것같다』면서 북측의사를 타진하자 백대표는 『기자수는 그냥 80명으로 하는게 좋겠다』고 말해 기자단외의 대표단 1백명등 전체 일행수가 모두 1백80명으로 결정됐다고. ○…한편 북측기자들은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데 대해 남측기자들에게 『남조선 주민들의 반응은 어떠냐』고 집중 질문. 이들은 『전해 듣기로는 남조선 주민뿐 아니라 미국 일본등 외국의 반응도 대단히 좋다는데 사실이냐』고 우리국민과 서방의 움직임에 관심.
  • 상호 이해·양보로 합의 도출/기자가 본 예비접촉 현장

    ◎달라진 북대표·기자 표정… 낭보기대감 증폭 1994년 6월28일은 우리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날로 기록될 것 같다. 그렇게도 멀게만 느껴졌던 남북정상회담을 다음달 25일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3개월만에 재개된 이날 접촉에서 양측대표들이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어 보여준 「이해」와 「양보」,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룻만에 회담을 마무리한 양측의 성실성이 무엇보다 눈길을 끈 까닭이다. 우리측 대표단과 함께 회담장인 판문점 평화의 집으로 떠날 때만 해도 회담 성과에 대해 솔직히 반신반의 했다.『북한측이 처한 대내외 상황을 감안하면 이번만큼은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도 했지만 북측이 또다시 수용하기 어려운 엉뚱한 전제조건을 들고 나오는 것은 아닌지,그래서 설전만 벌이다 기약없이 서울로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온갖 걱정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우리측 대표단의 얼굴에서도 긴장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상오10시 평화의 집 2층 회담장에서 양측 대표단이 만나는 것을 본 순간 기우에 그칠지 모른다는 쪽으로 바뀌어갔다. 먼저 김용순 북측단장의 얼굴과 몸짓 하나하나가 지난날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회담에 앞서 영국대사를 지낸 우리측 이홍구수석대표와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역시 두사람은 국제적 신사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것이 합의로 이어졌으면…』하는 바람이 생겼다. 첫째 것이 좋으면 둘째 것도 좋은 것인가.북측 기자들도 여느 때와 다른 것 같았다.그전엔 말도 안되는 것을 트집잡아 자주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곤 했는데 이날은 이상하리만큼 조심스러웠다.몇년동안의 판문점 취재경험을 통해 그날 회담의 성과는 북측 기자들의 언행과 깊은 함수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에 이같은 모습은 고무적인 것으로 비쳐졌다. 회담은 곧바로 비공개로 진행됐다.공개회담이 아닌 것으로 봐서 『진짜 북한이 정상회담에 열의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그로부터 한편으론 초조하고 한편으론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평화의 집 1층에 마련된 프레스룸은 회담의 진전상황을 체크하려는 기자들로 북새통이었지만 회담장으로부터는 아무런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양측 대표단이 점심 식사를 끝내고 실무대표접촉을 가지면서부터 낭보에 대한 기대감으로 긴박하게 돌아갔다.여러차례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실무접촉에 뒤이은 수석대표간의 2차개별회동은 서로의 이견을 완전히 해소한 「화룡점정」이었다. 드디어 하오8시25분.9시간 가까이 마라톤회의를 마무리지은 뒤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합의서」의 서명식이 2층 회담장에서 열렸다.양측 수석대표가 합의서에 서명한 뒤 이를 주고받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날따라 최신식 시설에다 한국적 멋을 곁들인 평화의 집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 복귀기관사 늘자 5일만에 아침점호/철도·지하철파업 이모저모

    ◎“광주·울산 파업차단” 노동부 부산/경인도로 버스·택시몰려 “주차장” 철도·지하철노조원 파업사태는 27일 철도는 수습,지하철은 혼미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시민들이 지하철대신 버스등 지상교통편을 이용하는 바람에 지하교통은 한산하고 지상교통은 붐비는 공동화현상이 이어졌으며 이날로 예정된 대기업노조의 연대파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노동부·검찰등 관계부처도 국면이 전환된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출근길◁ ○…지하철파업 나흘째인 이날 아침 출근길은 구간에 따라 극심한 정체를 보이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큰 혼잡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시민들은 당초 하루이틀 불편으로 끝날줄 알았던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는 추세인데다 28일부터 단축운행이 불가피하다는 지하철공사의 발표등으로 파업중인 지하철노조원들에 대한 분노는 더욱 거세어지는 추세. ○…이날 상오 수도권지역에서 서울로들어오는 주요 간선도로는 평소 통행량이 많은 월요인인데다 시민들이 아직 파행운행되고 있는지하철을 피해 버스·택시 등 지상교통수단으로 몰려들어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부처모습◁ ○…「전노대」의 27일 연대파업이 사실상 불발로 그치자 검찰은 연대파업 사전 진화에서 「전노대」에 대한 본격수사로 방향을 잡고 향후 수사전개에 자신감을 피력했으나 대기업노조등에 자극을 주지않기 위해 「연대파업실패」라는 등의 용어는 자제. 검찰은 연대파업이 이뤄지지 않은데 대해 『각 기업노조원들이 여론의 동향을 분석,이성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인 것』이라고 평가. ○…검찰고위관계자는 「전노대」고문 백모씨 등의 수사설이 경찰쪽에서 흘러 나오자 『공식적으로 확인해줄 수 없다』『경찰의 부주의로 이름이 거명된 것같다』고만 언급. ○…노동부는 대우조선노조가 파업불참을 선언하는등 대기업노조의 참여가 저조한 것으로 드러나자 일단 한숨을 돌렸다는 표정. 노동부는 그러나 일선 사업장의 파업분위기가 이번주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판단,김재영노사지도관과 최성오노사협력관을 26일 각각 광주와 울산지역에 급파한데 이어 각 지방노동관서를 통해 주요사업장에 대한 지도강화를 지시하는등 연대파업의 불씨를 끄는데 주력. ▷동차사무소◁ ○…지난 23일 파업이후 썰렁했던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서울동차사무소는 27일 파업에 참가했던 기관사와 검수원들이 속속 복귀하자 아침에 모처럼 직원점호를 실시하는등 활기찬 분위기. ○…철도파업 5일째인 27일 인천의 주안역과 부평역등 이지역 주요역들에서는 파업초기 30∼40분 늦던 것이 10여분간격으로 좁혀져 시민들의 불편이 다소 덜어진 분위기. 이같은 운행시간은 평소보다는 6∼7분 늦은 편이지만 그래도 상당히 단축된 것으로 시민들의 수송능력이 지난주보다 훨씬 늘어나 전철역 플랫폼은 다소 한적한 모습을 띠기도. 시민들은 『전철운행이 다소 빨라진 것은 다행』이라며 그동안의 불편해도 불구하고 빨라진 전철운행에 고마워하는 모습. 그러나 경인고속도로와 경인국도 등 서울과 연결된 도로는 평소와 다름없이 밀려드는 차량으로 혼잡상태가 여전. ○…전철이 파행적으로 다니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이 애용하던 고속시외버스가 그 어느 때보다도 호황을 맞아 즐거운 비명. 부평역에서 서울역까지 운행하는 S고속이 그 주인공인데 평소에는 출퇴근시간에 5분간격,낮시간에는 10분간격으로 다니다 전철파행운행을 하고 있는 요즘은 차가 서울역에서 회자하자마자 출발하는 등 버스가 모자라 밀려드는 승객을 다 소화해내지 못하는 상황.
  • 시내버스도 파업/종로∼의정부 58대

    【의정부=김명승기자】 철도파업으로 서울∼의정부간 지하철1호선이 파행운행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종로5가와 의정부간을 운행하는 승원여객(대표 변영화) 12번 시내버스 58대가 회사통합에 항의하는 운전사 1백여명의 승차거부로 25일 상오4시부터 운행이 전면중단되고 있다. 운전사들은 지난 24일 회사측이 사전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회사버스 38대를 같은 노선을 운행하는 대원여객에 양도하고 노선을 폐쇄하자 퇴직금및 전별금 즉시지급과 대원여객입사때 근무경력합산등을 요구하며 운행을 거부하고 있다. 이에따라 지하철파업으로 시내버스를 이용,서울로 출근하려던 시민 5천여명이 큰 불편을 겪었다.
  • 방북회담 내용 40분간 설명/카터 귀환·회견·이한 표정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은 18일 아침 판문점을 통과해 서울로 온뒤 하오 이한하기에 앞서 바쁜 일정을 보냈다. ▷기자회견◁ ○…김영삼대통령과의 오찬을 마친뒤 카터전대통령은 정동 미대사관저로 돌아와 내외신기자 2백여명과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북한방문 배경과 김일성주석과의 회담내용및 방북인상등을 40여분에 걸쳐 자세히 설명. 이날 기자회견은 예정보다 20분 늦은 하오2시20분쯤 시작돼 카터전대통령이 미리 준비한 성명을 발표한뒤 기자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 카터전대통령은 먼저 자신의 방북은 지난 91년부터 있었던 북한의 초청에 카터재단 소장이라는 개인자격으로 응했음을 강조. 그는 특히 평양에서 자신의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중단」발언과 관련된 질문이 쏟아지자 『이는 개인 입장에서 북한이 전날 제안한 사항들을 충분히 이행한다면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중지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라며 미국정부와의 모종의 사전협의설을 부정. 카터전대통령은 또 김일성주석이 『상당히 합리적이며 활발하고 지성적이었으며 복합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었고 적어도 나에게는 솔직했다』며 김주석을 호의적으로 표현. 그는 또 김주석이 이번에 한 제안을 믿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발언의 진실성은 앞으로 서방과의 대화를 통해 입증될 것이며 가까운 시일안에 거짓으로 밝혀질 것을 제안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답변. 내외신기자들의 열띤 취재경쟁속에 진행된 회견동안 카터전대통령은 약간 피곤한 모습이었으나 외국기자의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한 통역사에게 질문을 반복해주는등 여유를 보이기도.그는 회견직후 3시5분쯤 부인 로절린여사와 함께 김포공항으로 직행,4시15분발 델타항공 050편으로 남북한 동시방문을 마치고 이한. ▷청와대 오찬◁ ○…김대통령과 카터전대통령은 이날 낮12시부터 접견을 포함,모두 1시간30분동안 오찬회동. 김대통령은 이날 오찬에서 카터전대통령의 방북결과를 설명듣고 북한핵문제를 포함,남북관계에 대해 많은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주돈식대변인은 남북정상회담 관련사항만 발표. ▷판문점 귀환◁ ○…카터전대통령은 3박4일동안의 북한방문을 마치고 이날 상오 8시35분 방북때와 같은 절차를 거쳐 판문점 남측지역으로 귀환. 카터전대통령은 북측관계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한후 군사분계선을 넘어 레이니 주한미대사등 환영객들과 악수를 교환한뒤 방북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매우 좋았다』며 특유의 함박웃음.
  • 바그다드·암만/“신의 도시” 바빌론(아랍서 지중해까지:5)

    ◎시간도 멈춰선 「2천5백년전 왕국」/거대한고 장엄한 이슈타르게이트… 네자르왕의 위엄 보는듯 고고학자들은 로맨티스트들이다.바빌론 궁전의 유명한 「행진의 거리」복판에 섰을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그들은 역사의 미궁속으로 끊임없이 잠입을 시도하고 있다.마치 현대의 어린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속으로 여행을 꿈꾸듯이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90㎞,차로 한시간 남짓 걸리는 이 고속도로를 달리는동안 나도 그 비슷한 공상을 하면서 가슴이 설레었다. 신의 도시,고대 인류가 만든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같은 수식어로 바빌론은 역사의 문외한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그 이름이 주는 매력과 신비감 때문에 나는 갑자기 엉뚱한 「증발의 유혹」에 빠졌는지 모른다.영화 「타임머신」에서 인간은 첨단기계를 이용해서 「과거와 미래로의 여행」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최근 대전엑스포에서 시승해 본 「미래의 서울로 가는 자동차」는 이보다 한층 단순하고 솔직했다.이것은 고속으로 전개되는 대형 멀티비전 화면을 이용한 것이다.그러나 바빌론에서 시간여행을 하는데는 그런 구차스런 문명의 이기들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여기에는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공간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을뿐 아니라 이 공간에서는 시간도 잠을 자고있다. ○외성은 흔적 없어 먼저 우리앞을 막아선 것은 청색으로 채색된 거대한 이슈타르 게이트였다.이슈타르는 사랑의 여신이란 뜻이다.이 문은 본래 바빌론내성의 출입문인데 외성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지금 바빌론 궁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출입구 구실을 하고 있었다.우리 눈에 거대하게 보이는 이 문도 복제품으로 원형의 절반 규모밖에 안된다고 한다.이슈타르 게이트의 전면에는 이상한 동물의 모양이 무늬처럼 일정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그 형태는 말과 개의 중간쯤이라고 할까.이것은 상상의 동물로 바빌로니아의 수호신이었다.상상의 동물은 궁안의 여러군데 벽에서도 발견되었다. 입구를 통과하자 오른쪽에 뜻밖에 소규모의 현대식 건물이 보였다.이 건물은 바빌론박물관으로 1899년 이도시가 처음 발굴될때 발견된 여러가지 유물을 보관하고 있었다.박물관을 지나약간 오르막진 언덕으로 올라가자 눈앞에 행진의 거리와 왕궁의 웅장한 성벽들이 나타났다.행진의 거리는 철책으로 가장자리를 둘러쌌는데 그 길이가 수백m는 될것 같았다.성벽들은 행진의 거리 좌우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거리의 바닥에는 단단한 흙벽돌이 깔려 있는데 이것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상태였다.행진의 거리는 「적들은 절대로 통과하지 못하는 곳」이란 뜻이 있고 이곳에서는 매년 신에게 영광을 돌리려는 축제가 열렸었다.그러나 네부카드 네자르가 죽고(BC605∼562) 불과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 승리의 거리에 페르시아의 정복자들이 말발굽소리를 울리며 행진했다는 사실(BC539)을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500년전의 길바닥 위로 뜨거운 햇볕이 작렬하고 있었다.성벽으로 에워싸인 행진의 거리는 정적이 가득했다.문득 이 공간에는 시간이 정지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렇다면 저 성벽들 사이로 걸어들어가서 네부카드 네자르의 병사들과 신하들을 당장 만나볼 수도 있지 않을까?거리 복판에 서서 나는 잠시 이런 공상에 빠져들었다.그러나 이 공상은 금방 깨지고 말았다.성벽을 쌓은 벽돌들마다 네부카드 네자르 대신 사담 후세인의 이름을 새겨놓고 있었던 것이다. ○벽돌엔 후세인 이름 사실 이 거대한 왕궁은 후세인의 지시에 의해 최근 복원된 하나의 무대세트에 불과한 것이다.후세인은 2500년전 이 도시를 수복하고 예루살렘을 정복했던 네부카드 네자르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수백만달러를 들여 바빌론을 복원시켰고 왕궁의 성벽을 쌓은 벽돌에는 네부카드 네자르의 이름대신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은 것이다.후세인은 자기 이름이 다시 2500년 뒤에 위대한 정복자의 이름으로 회자되기를 바라는 것일까. 9월에 열리는 바빌론축제도 옛 영광을 되살리겠다는 사담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이 축제가 열리는 주무대인 그리스 극장은 바빌론성에서 수백m 떨어진 한적한 들가운데 외롭게 버려져 있었다.일종의 야외극장인 이 무대가 그리스극장이란 이름을 갖게된 것은 BC300년경 바빌론에 수도를 정하고 이곳을 통치했던 그리스의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건축되었기 때문이다.얼핏 봐서 무척 현대적으로 설계된 이 야외무대를 건립하는데 사용된 벽돌이 모두 바벨탑의 잔해에서 거둬들인 것들이란 사실이 흥미로웠다. 궁전의 성벽을 조금 벗어나 옆뜰로 나서면 넓은 공터의 복판에 커다란 사자상이 버티고 있다.높이 2m,폭2·5m의 이 용맹한 사자상은 그러나 지금은 보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어 무척 쓸쓸하게 보였다.이 사자상은 사랑의 여신 이슈타르를 상징한 것이란 얘기도 있고 적들을 제압하는 상징물이란 얘기도 있으나 어느쪽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다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사자밑에는 사람이 누워있고 사자는 앞발로 인간을 찍어누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이것을 보면 침략자를 제압한다는 왕궁의 수호신 역할을 하지 않았나 짐작되기도 한다. 그 유명한 바벨탑의 유적은 바빌론성에서 거의 1㎞쯤 떨어진 외딴 언덕위에 있다.바벨탑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전설이 있을 뿐이다.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랬다.그러나 바벨탑은 희미하게 존재하고 있었다.이 구약의 불가사의 중의 하나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쨌든 의심하기 좋아하는 이방인을 잠시나마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우리는 그것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밋밋하고 먼 언덕길을 올라갔다. 거대한 분화구가 나타났다.미사일이나 큰 폭탄이 떨어져 거대한 웅덩이를 만든 것 같았다.벽돌조각이나 건축물의 다른 잔해조차 흔적이 없었다.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대역사를 벌였다는 느낌은 쉽게 받았다.웅덩이의 넓이나 깊이로 미뤄볼 때 그 규모가 엄청났으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바벨이란 말에는 「하느님의 문」이란 뜻과 「혼돈」이란 뜻이 함께 있다.거대한 웅덩이 잔해를 봤을때 한마디로 혼돈이란 말이 생각났다. 백성들은 하느님에 대한 종교적 열정,하느님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열망으로 이 제단을 쌓아올라갔다.그러나 여호와께서 내려와서 보시고 이것은 백성들이 자기를 두려워하지 않을뿐 아니라 자기네끼리만 뭉치면 무슨 일이든 해치울 수 있다는 교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탑의 건축을 중지시켰다.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에 관해 대강 이런 얘기가 나와있다.여호와께서는 자신에 대한 백성들의 열정을 왜 배신으로 오해했을까?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뜻을 신에게 올바로 전하는 일은 그처럼 힘든 것인가? ○탑문화 크게 발달 이라크 남부에는 구약의 표적물이 유난히 많다.바벨탑을 위시해서 아브라함의 고향이라는 「우르」,쿠르나의 에덴동산 등이 그것이다.「노아의 방주」는 바빌론에 끌려온 유태인들이 수메르인들의 홍수얘기를 전해듣고 훗날 돌아가서 신화로 꾸며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분명한 것은 유프라테스 평원에는 탑이 많다는 사실이다.유프라테스 뿐아니라 나일강 유역도 마찬가지다.평원에는 산악지대와 달리 하늘로 높이 솟은 탑문화가 유독 발달되어 있다.사람들은 수직으로 솟아오른 탑에 의지해 자기의 권력의지와 신에 대한 갈망까지 모두 표출하고 있는 셈이다.바벨탑의 잔해는 인간의 그 끝없는 욕망의 허망감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바빌론성 외곽을 멀리 벗어난 곳에 인류최초의 성문법전을 만든 함무라비 대왕의 석상이 있었다.법전을 새겨놓았다는 높이 2.5m크기의 돌기둥도 있었는데 이것은 모형이었다.원형은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빌론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들도 자연 보잘것이 없었다.귀중한 유산들이 열강의 손으로 넘어가버린 탓이다.박물관 진열대에는 고작해야 문자가 새겨진 돌조각들,작은 토기 몇점만 뒹굴고 있었다. 그곳에서 눈길을 끈것은 1899년 독일인 콜데베이에 의해 처음 발굴이 시작되기 직전의 바빌론성의 전경과 발굴이 진행되는 현장의 사진들이었다.발굴직전의 바빌론 성은 짙은 안개에 싸인 고성의 모습처럼 아름답고 신비로 가득했다.내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그런가하면 발굴현장 사진은 시장바닥처럼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아,귀중한 유물을 훔쳐가기 위해 발굴이라는 이름으로 이 신비의 고도는 얼마나 잔인하게 파괴되었던가,나는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쇠파이프들고 평화집회라니…”/김병철 전국부기자(현장)

    ◎남총련 주장에 열차 승객들 “갸우뚱” 며칠째 열대야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18일 상오 3시35분. 수원역을 출발한 목포발 서울행 제7217통일호 열차안은 찜통더위속에 짜증스런 분위기가 터질듯 승객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광주·전남지역 총학생회연합(남총련)소속 대학생 6백여명이 4시간전 송정리역 부근에서 강제로 열차를 세워 타고 서울로 향하는 길이었다.승객들은 잠시 눈이라도 붙이고 싶었지만 답답한 공기와 무거운 분위기탓인지 잠을 못이룬채 계속해서 학생들을 향해 곱지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지성인임을 자랑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은 서부영화에나 나오는 무법자들의 무리나 불법게릴라단체들과는 달라야 하는게 아닌가…』계속 땀을 훔치던 한 중년이 혼잣소리같이 중얼거렸지만 별다른 반향이 없었다.열차강제정차라는 무법의 작태를 저지른 학생들에 대한 이같은 핀잔에 모든 승객들이 공감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그들의 기세에 눌려 누구하나 말문을 열려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듯 한 학생이 나서 『우리의 행동은 농산물수입개방으로 농민들이 시름에 잠겨 있는 이때 월드컵축구붐이나 조성하면서 UR국회비준을 날치기처리하려는 반민족적행위를 저지하기 위해서…』라며 자신들 행동의 정당성(?)을 강조했다.그러나 목적달성을 위해선 이같은 폭력수단도 가능하다는 투의 주장에는 전혀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다. 상오 4시15분 열차가 영등포역에 도착하자 학생들은 플랫폼에 집결한뒤 역광장으로 나왔다.이들은 이곳에서 다시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벌였다.이때 카메라를 들고있던 전경으로 보이는 남자가 학생 4∼5명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을 향해 한 학생이 이렇게 외쳤다.『우리들은 평화적인 집회를 원합니다』 학생들은 일제히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답한뒤 자리에서 일어나 플랫폼으로 몰려갔다.그들의 손에는 쇠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평화집회를 원한다면서 쇠파이프는 왜 준비했지.그리고 또 열차는 왜 세워…』목포에서 열차를 타고오며 이들의 행동을 계속 지켜보았다는 회사원 김모씨(34)는 학생들의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듯 고개를 저으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역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 “믿어도 될까”… 의혹섞인 환영/「카터·김 회담」을 보는 정부시각

    ◎「핵과거 규명」 미 의지 후퇴 우려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과 북한주석 김일성의 회담이 유엔 안보리의 제재로 치닫던 북한핵문제를 일단정지선에 멈춰서게 한 것 같다.과연 「파란불」이 켜질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나 무언가 새로운 상황이 나타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카터·김일성회담을 미국과 북한의 대화재개에 기초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이 없는 것 같다.유엔 안보리의 제재결의 추진에도 불구,정부는 북한과의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놓았기 때문이다.한 당국자는 『미국과 북한의 3단계회담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우리가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총체적인 사태를 보는 눈은 클린턴대통령이 성명을 발표,북한에 대해 최대로 모양를 갖춘 미국과는 사뭇다르고 상당히 부정적이다.한 관계자는 『우리는 미국보다 북한을 잘 안다.언제 변할지 모르는 집단이기 때문에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해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정부가 이날 상오 통일안보조정회의를 열고 카터·김일성회담의 내용에 대해 유보적인 결정을 내린 것도 결국은 좀 더 지켜봐야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18일 아침 다시 서울로 오는 카터전대통령의 설명을 직접 듣고난 뒤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자세에는 알게 모르게 미국측에 대한 불쾌함이 깔려있는 것 같다.우선 특별사찰에 대한 미국측 태도에 대한 것이다.「북한의 핵과거」를 파헤치려는 한미 두나라의 의지가 미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후퇴하는 것 아니냐 하는 강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실제 회담결과를 보면 「북한이 현재수준에서 핵활동을 동결하면」이 미국과 북한의 3단계회담 개최의 전제조건이 돼 있다.북한이 이 부분에 대해 외교적으로 공식 태도를 표명하면 조만간 미국과 북한의 3단계회담은 자연스레 열리게 되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이 카터·김일성회담 내용에 대해 애써 일체의 논평을 삼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불쾌감의 표현으로 분석된다.바로 하루 전인 16일 내놓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초안에 대해 이렇다할 설명도 없이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우리 정부에겐 정책의 신뢰성에 상당한 부담을 안겨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또 미국정부가 개인적인 신분이라고 누차 강조했고 우리도 북한에 이용당할 것을 우려해온 카터가 클린턴대통령의 특사이상의 역할을 하면서 우리의 우려를 현실화시킨데 대한 반감도 작용한 듯싶다. 카터의 방북을 계기로 정책을 선회하려는 미국의 기도는 한미 두나라의 공조체제를 불안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한승주외무부장관과 크리스토퍼미국국무부장관이 관례에 없이 이날 새벽 세차례에 걸쳐 회담 내용등에 대해 전화통화를 한 것도 우리 정부의 이해를 구하면서 공조체제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의식적인 행동으로 여겨지고 있다. 어쨌든 우리 정부가 추진한 제재국면이 별 소득 없이 또 다시 방향을 틀게 될 것 같다.그러나 여태까지의 행태로 볼때 북한의 또다른 전략이 시작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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