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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창원 또 놓친 경찰(사설)

    탈옥 무기수 申昌源이 또 경찰을 따돌리고 달아났다.지난해 1월 부산교도소를 탈옥한 이후 다섯 번째다.이번에도 경찰의 잘못이 크다.검문한 경찰관 2명은 기본적인 검문·검색 수칙도 지키지 않았으며 각각 유도와 태권도 유단자이면서 오히려 범인에게 총까지 빼앗길 뻔하다 통사정을 하고서야 돌려받았다. 이들은 또 문책이 두려워 본서에 늦게 신고, 출동을 지연시켰으며 관할 수서경찰서는 사건 발생시간도 늑장출동에 대한 비난과 질책을 피하기 위해 30분이나 늦춰 발표했다.이에 앞서 시민의 신고로 출동명령을 받고 나간 서초경찰서 경찰관들은 신고한 시민에게 전화를 걸어 현장을 재차 확인하고도 관할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냥 철수했다.결국 경찰의 총체적인 무능력과 무책임으로 인해 다 잡은 것이나 다름없는 범인을 놓치고 말았다. 이렇게 경찰이 무기력하면 국민은 불안하다.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가뜩이나 각종 범죄가 크게 늘어나 항상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국민들의 실망은 크다.이런 경찰에게 과연 마음놓고 치안을 맡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관할다툼,늑장출동은 벌써 몇번째인가.최초 검문에서 도난차량임을 알았으면 즉각 비상조치를 취했어야지 범인의 거짓말에 속아 돈가방을 든 범인을 따라가 얻어맞고 물어뜯긴단 말인가.총은 언제 사용하려고 차고 다니다 빼앗길 뻔하는 수모를 당하는가. 그리고 申昌源이 누구인가. 지난 1년6개월 동안 그토록 경찰을 농락하며 6개 지방경찰청에 차려진 전담 수사반을 피해 나간 장본인이 아닌가.아무리 변장술이 능하다 하더라도 순찰경찰관이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도 문제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치안에도 큰 구멍이 나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가 남긴 운전면허증이나 현금,수표 등은 지난 5월 20일 서울 강남의 가정집 두 곳에서 훔친 것이거나 수도권 일대 은행에서 발행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이는 최소 두 달 전쯤 서울로 잠입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다.또 지난 9일 서울 양재 지하철역 금연구역 흡연으로,지난 5월 4일에는 대구 달성에서 훔친 차를 몰고 다니다 각각 적발돼 범칙금 통지서까지 받았으나 역시 훔친 면허증을 제시하고 유유히 빠져나간 사실도 확인됐다. 경찰의 수사망을 비웃듯 전국을 제집 드나들듯 하며 다닌 것이다. 그의 도주로를 따라 그동안 징계를 받은 경찰관은 경기경찰청장을 비롯,22명에 이른다.아무리 징계를 해도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경찰은 분명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근본적인 의식개혁과 체질개선이 없고는 힘들다.직무교육도 다시 실시해야 할 것 같다.특단의 조치가 요구된다.
  • 농가서 밥 훔쳐 먹으며 새우잠/노트로 본 도피 행각

    ◎경찰과 격투중 부러진 팔 스스로 맞추기도 申昌源이 버리고 간 가방속에서는 탈옥 동기와 도피생활,심경 등을 적은 대학노트 25장 분량의 글이 발견됐다.이 글은 申이 도피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써 둔 것으로 보인다. 申은 교도소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탈옥을 결심했다고 적고 있다.글에 따르면 申은 탈옥을 5년 동안 계획했다.교도소의 허점을 찾느라 5년을 보냈고 쇠창살 2개를 절단하는데 2개월이 걸렸다.감방의 환풍기 문을 빠져 나가기 위해 체중을 빼느라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申은 탈옥한 뒤 택시를 타고 서울로 갔다가 다시 천안으로 내려가 숨어 다녔다.사흘을 산에서 보내기도 했다.경찰에 발각돼 격투하다 다친 뒤에는 병원에도 가지 않고 부러진 팔을 스스로 맞추어 깁스를 하기도 했다.또 농가에서 밥을 훔쳐 먹거나 비스킷 하나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김제에서는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고 라면만 먹고 살았다. 여성들과의 동거생활도 상세히 써 놓았다.돈을 훔쳐 생활한 사실도 밝혔다. 자신이 알고 있는 교도소 비리와 가혹행위에 관한 부분도 상세히 써 놓았다.자신을 가혹하게 대한 교도관에게 복수를 시도하려 한 적도 있다고 쓰고 있다. 申은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고 써 누군가 申을 숨겨 주거나 비호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申은 이와 함께 칼을 들었다면 경찰이 10명이라도 처치할 수 있다고 조롱하듯 적고 있다.“웬만한 격투기 선수하고도 싸워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도 했다.申은 “절대 자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 서양화가 李大源(이세기의 인물탐구:175)

    ◎빛을 데생하는 화단의 신사/때묻지 않고 따뜻한 성품 작품에 그대로/화폭마다 생명력 약동 축제분위기 넘실/‘물방울처럼 영롱한 화경’… 독자 영역 이룩 만약 벚꽃이 만개한 눈부신 봄날에 함박눈처럼 떨어지는 꽃잎을 본 사람이라면 서양화단의 원로 李大源 화백의 그림을 아는 사람이다. 그의 쏘는듯한 붓길은 비로드에 싸인 보석더미와 그 보자기를 펼치는 순간의 차갑고도 투명한 광채(光彩)의 이미지다. 겨울에는 오색 찬란한 꽃망울이 예감되고 무더운 장마에는 무지개빛 서광이 번뜩인다. 눈송이도 빗방울도 온통 색채의 의장(意匠)이 장식되어 못위에 내리는 빗줄기가 송곳처럼 수면에 꽂히는가하면 색채의 향연이 옥구슬처럼 농원에서 굴러다닌다. 광활한 공간에 만약 그의 그림이 한점만 걸려 있어도 그곳에는 생명의 결실과 축제의 분위기가 넘칠 것이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그림은 미술’ 임을 확고히 지켜나간다. 아무리봐도 지루하지 않고 아무리 봐도 행복감에 젖어 그림속에서 흘러나오는 탐미적 향기에 도취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초기의 여거도(與居島)등 섬이나 산그림을 보면 웅걸(雄傑)한 호방함과 분방함이 도사리지만 그림의 내면은 오늘의 별빛 미래를 산뜻하게 예고했다고 할수 있다. 예를 들어 야트막한 산야와 그 아래 펼쳐진 과수원풍경,수목에서 솟아나는 활기와 생동감은 하루의 아침과 저녁이 다르듯이 ‘늘 같은 것을 보아도 화가의 눈에는 항상 다르게 보인다’는 말대로 가장 신선한 그림을 탄생시킨다. 그가 그림을 통해 추구하려는 것은 자연의 일부를 화폭에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지니고 있는 생명의 가능성과 미묘한 조율(調律)을 변주로 뿜어내는 것이다. ○자연의 생동감 變奏 그러기 위해서 그때마다 떠오르는 영감과 감상에 의존하기보다 다시한번 새롭게 사물을 관찰하여 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관용으로 작가의 내면까지 화면에 담아낸다. 이른바 살아있는 힘으로서의 자연을 포착하기 위해 스스로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 연못에 이는 잔물결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자연은 무의미하게 멀리 서있는 부동의 풍경화가 아니라 햇빛에 찰랑거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살아숨쉬는 소우주로서 재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만큼 그의 붓길은 속도감과 운동감으로 쉴새없이 움직이고 짧은 사선과 직선과 곡선이 그때마다 의외성을 다양하게 표출해 낸다. 평론가 박래경은‘상식적이지 않은 시선과 범상치않은 구도설정은 단순하면서도 참신한 맛을 추가하여 추상화된 그림세계에 연결되고 있다’고 예언한바 있다. 예를들어 지난 60년에 그린 ‘담쟁이’는 불꺼진 창과 밋밋한 벽으로 기어오르는 메마른 덩굴에 머물고 있으나 그로부터 2년후인 62년에는 같은 벽으로 기어오르는 덩굴이라도 빨강과 황금색등 색채의 축연을 조직하는 것이 남다르다. 이른바 12계절이라해도 좋을만큼 시절따라 시간따라 환상적인 보랏빛이 발휘되고 같은 유형의 색깔이 변조되어 맨 마지막 단계에서 오리지널리티의 완결성과 정신적 탐구를 성취해낸다. ○59년 첫 개인전 열어 이경(二耕) 이대원, 가장 흔히 회자되기는 그는 화단의 신사요 멋쟁이다. 그의 그림세계에는 예술가들이 자칫 가질수 있는 퇴폐적인 낭만이나 고뇌나 파토스 대신 아파테이아의 초연(超然)이 깃들여 있다. 그와 경복고 동문에다 절친했던 고고학자 김원룡박사에 따르면 ‘말쑥한 성품으로 태어나서 평탄한 청춘시절을 보내고 만년소녀로 소문난 아름다운 미인의 내조를 받으며 정상의 예술가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의 총장을 거쳐 집에서는 딸들과 훌륭한 사위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과연 이대원은 팔자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여기에다 ‘항상 멋있는 옷을 입어 화단의 드레서로 소문나 있고 미식가애 주가에다 집과 학교와 파주농원에까지 화실이 세군데나 되어 화단의 귀족’ 같은 존재지만 그의 어느 일면에도 ‘속물취(俗物臭)’는 찾아볼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예술가적 면모는 어느장소에서나 시와 정취와 인간미를 잃지 않는다. 지성적 풍모에 단정한 매너로 인해 언뜻 보기엔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그와 사귄 사람들은 ‘볼수록 때묻지 않고 따뜻한 성품’ 에 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평소에는 화단의 김흥수 권옥연과 잘 어울리고 최기원과 이만익, 삼성문화재단의 손기상 상무와도 각별한 사이다. 경기도 문산에서 농림회사에다니면서 그 일대 꽤큰 과수원을 가지고 있던 一耕 李鍾林씨와 金善伊씨 사이에서 삼남중 막내. 파주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서울로 이사해서 청운공립보통학교에 다닐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중학교 3학년때 선전에 연속 입선, 경복고를 졸업할때까지 미술공부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던 부친이 미술학교만은 강경하게 반대하여 지금의 서울대인 경성제국대 법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림만을 그렸고 59년에 첫개인전, 한때는 우리나라 화랑의 효시로 기록되는 반도화랑을 운영한 적이 있다. 가족은 의사이던 부인 李鉉金 여사와의 사이에 딸 다섯, 63년간 살고 있는 유명한 혜화동집은 지난 89년 출간된 ‘혜화동 50년’의 바로 그 무대다. ○한때 반도화랑 운영 그의 미술역정은 파리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에 의하면 ‘출중하고도 예외적인 인물’로서 ‘이대원은 빛을 그린다기보다 빛을 데생하는 화가’란 말로 압축된다. ‘선과 점과 조직을 사용해서 그것으로부터 그의 붓은 그가 창출한 수많은 색채로 형태를그려내기’ 때문이다. 그의 엄청난 재능들은 레스타니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의 그림속에 있는 모든 것은 화사함과 고요함과 기쁨’에 틀림없다. 현대작가중에서 이러한 자연적인 교훈을 자신의 창작으로 성취한 사람은 별로 흔치않다. 물방울처럼 튀기는 영롱한 화경에서 그가 이룩한 이대원식 표현이란 바로 ‘이대원 자신의 화창한 인생의 음률’일 것이다. 거기에는 국경이 없으며 범우주적인 진솔한 정서와 삶의 즐거움만이 투영되어 날이 갈수록 싱싱하고 청청한 빛을 발한다. 사람을 반기는 그의 색채점묘화는 보는 이의 가슴에 루비나 사파이어같은 보석의 광채를 언제까지나 눈이 부시게 비춰주게 될것이다. ◎그의 길 ▲1921년 경기도 문산 출생 ▲1938­40년 선전 출품 ▲1945년 경성제대 법과졸업 ▲1959년 첫개인전(중앙공보관화랑) ▲1959­60년 국제자유미술전출품 ▲1962­68년 신상전·동인전출품 ▲1967­86년 홍대 미술대 교수·대학원장·학장·총장 ▲1971년 개인전(반도화랑) ▲1973년 한국근대미술 60년전·한국현역화가 100인전(국립현대미술관) ▲1975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위원 ▲1977년 개인전(현대·신세계) ▲1978년 중화민국 중화예술원 명예철학박사,영국국제하계미술전 출품 ▲1979년 뉴욕 한국화랑초대개인전 ▲1981년 회갑기념전, 성균관대 명예철학박사, 파리 살롱도톤느 출품 ▲1983·85년 현대화랑 개인전 ▲1986년부터 홍대 명예교수 ▲1987년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한국박물관회회장,개인전(강남현대) ▲1988년 부산개인전 ▲1988­91년 국제현대미술제 및 아시아국제미술전 출품 ▲1989년 개인전,대한민국예술원회원 1993년 대한민국 예술원회장 ▲1995년 ‘이대원 1990­95년’개인전(갤러리 현대) 국민훈장목련장(73년) 5·16민족상(88년) 대한민국예술원상(91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94년) 오지호미술상·대한민국금관문화훈장(95년) 역서 柳宗悅저 ‘한국과 그 예술’(74년)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96년) 화집 ‘이대원’(81년) ‘이대원,혜화동 50년’(89년)
  • 제주공항 개방 확대/모든 외국항공사에 중간기착 허용/9월부터

    오는 9월부터 외국 항공사의 제주 취항이 전면 허용된다. 서울에 취항하는 모든 외국 항공사는 제주를 중간 기착지로 활용할 수 있다. 건설교통부는 12일 제주지역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제주공항을 미국의 앵커리지공항이나 인도의 몰디브공항처럼 외국 항공사에 대폭 개방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에 취항하는 외국 항공사는 제주에 중간 기착한 뒤 서울로 운항할 수 있으며,일본 중국 홍콩 태국 싱가포르 러시아 등 제주 관광객이 많은 나라의 항공사는 원할 경우 제주 취항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지금까지 국가간의 항공협정에 따라 국제선 운항노선과 운항횟수를 제한해 왔으나 제주공항에 대해서는 이러한 협정에 관계없이 개방키로 했다. 건교부는 이번 조치로 현재 한·일 노선밖에 없는 제주공항의 국제노선이 다양화되면서 연간 제주행 외국인 관광객이 지난해의 2배 수준인 20만명으로 늘어 날 것으로 전망했다.
  • 아시아 新 공항 개항 초기부터/비틀 비틀

    ◎첨단시설 잦은 고장… 이착륙 5시간 지연/홍콩 수출입화물업무 옛공항으로 옮겨/말聯 정치문제 비화… 야 국정조사 요구 【홍콩 AFP 연합 특약】 아시아 대륙과 세계를 잇는 21세기의 항공 중계기지를 목표로 건설된 홍콩의 첵랍콕 국제공항이 개항초부터 시스템 고장과 운영체제 혼선 등 엄청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홍콩 공항 당국은 8일밤부터 항공화물 회사인 홍콩 항공터미널사의 본부를 당분간 옛 공항인 카이탁으로 옮겨 수출입 화물을 처리키로 했다.이에 앞서 공항 당국은 상업 운항 이틀만인 7일 첵랍콕 신공항에서의 화물 운송처리를 금지시켰다. 이에 따라 홍콩에서 수출되는 화물은 카이탁에서 절차를 마친 후 화물트럭으로 첵랍콕의 화물기로 수송된다.반면 첵랍콕에 도착한 화물기에 실린 화물들은 카이탁으로 옮겨져 최종 목적지로 이동된다. 대한항공 홍콩 본부는 8일 밤부터 항공화물을 카이탁에서 처리키고 했다고 밝히고 앞으로 홍콩을 오가는 회물수송을 위해 홍콩에 인접한 션전공항 이용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당분간 여객기에는 화물을 싣지 않고 ▲부패하기 쉬운 화물 ▲활어 등 생물 ▲긴급한 의약품 등만 운송해 주기로 했다. 첵랍콕 공항은 지난 6일 상업 운항 첫날부터 여객기들의 이·착륙이 예정보다 길게는 5시간까지 지연되고,승객들이 수화물을 찾는 데 어려음을 겪는 등 시스템 전반의 문제점을 노출했다.특히 6일 서울로 출발하려던 캐세이퍼시픽 CX416편은 출발이 지연돼 승객이 비행기 안에서 밤을 세웠다. 이처럼 첵랍콕 공항의 ‘첨단시설’이 잇따라 고장나면서 공항 당국의 운영체계마저 삐걱거리자 현지 언론들이 일제히 홍콩 당국을 비판하고 있다. 서방 항공사 관계자들은 홍콩 당국이 지난 1일 주권 귀속 1주년을 맞아 홍콩을 방문한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일정에 맞추느라 서둘러 개항식(2일)을 갖는 바람에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첵랍콕 공항보다 6일 앞서 개항한 말레이시아의 콸라룸푸르 신공항은 중앙컴퓨터 시스템의 잦은 고장 및 운영 미숙 등으로 승객들에게 큰 불편을 끼치고 있어 야당측이 국정조사와백서 발간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정치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 高銀·金周榮씨 오늘 방북/2주간 문화유적 답사

    시인 高銀씨와 소설가 金周榮씨가 4일 북한 문화유적 답사를 위해 북한을 방문한다. 高씨 등은 베이징을 거쳐 북한 전세기편으로 평양에 도착해 2주일간 북한에 머문 뒤 오는 18일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다. 지난 해 12월 북한 문화유적답사를 위해 북한을 방문했던 兪弘濬 영남대 교수도 동행한다.
  • 金 대통령,崔珏圭 지사 배려 눈길/軍부대 방문길 동행

    ◎강릉재선 ‘여권의 무소속후보’ 인식 심기/귀경길엔 승용차 함께타고 ‘깊숙한 대화’ 金大中 대통령이 24일 강원지역 군부대를 방문하면서 崔珏圭 강원도지사를 만났다. 예정에 없던 李康來 정무수석도 대동했다. 대통령이 지사를 만나는 일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만남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崔지사가 다음 달 무소속으로 강릉을 보선에 출마하기 때문이다. 강릉을 보선의 한나라당 후보는 趙淳 총재이며,국민회의·자민련은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합의한 지역이다. 金대통령의 崔지사에 대한 배려는 한마디로 崔지사가 범여권 무소속 후보임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金대통령은 출발에 앞서 李수석을 따로 불러 5분 동안 얘기를 나눴고,수행원 버스안에서는 崔지사와 李수석이 나란히 앉아 대화를 주고 받았다. 李수석은 “보선 준비상황을 물었을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으나,이후의 궤적은 ‘심증’을 굳히기에 충분했다. 金대통령은 서울로 돌아오는 도중 崔지사를 승용차 옆좌석에 앉혔다. 원래 千容宅 국방장관의 자리였다. 金대통령은 “그동안 강원도를 위해 많은 일을 했으므로 이제는 경제전문가로 경제회생을 위한 큰 일 해야 할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동석한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崔지사는 “보선 전 국민회의에 입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으며,李수석도 이 말을 거들었다. 그러나 金대통령이 이날 崔지사에게 보인 ‘관심’과 崔지사 자신의 ‘행보’는 앞날을 예고하는 듯 했다.
  • 앵벌이 3형제가 갈곳은…/李志運 기자·사회팀(현장)

    18일 이른 아침 郭모군 형제(18·16)와 金모군(15)이 한 친척의 손에 이끌려 서울 마포경찰서를 나섰다.지난 3개월 동안의 ‘앵벌이’ 생활에 대해 진술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들은 이복 형제다.지난해 초 아버지와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맺어진 형과 동생이다.아버지의 실직과 함께 가정불화가 깊어지자 지난해 12월 서울로 상경,월 50만원을 주는 한 구두제조 공장에서 일을 했다. 지난 3월 유혹의 손길이 뻗쳐왔다. 공장 동료가 앵벌이꾼 崔成必씨(25)와 함께 찾아와 한달에 100만∼150만원을 벌 수 있다고 꾀었다. 앵벌이 생활은 혹독했다. 2평 남짓한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한 주택의 옥탑방에서 7∼8명이 모여 ‘칼 잠’을 잤다.물도 잘 나오지 않아 제대로 씻어본 기억이 없다. 상오 8시부터 시작되는 하루.간단히 아침을 먹고 양말과 치솔세트를 들고 시내를 돌아다닌다.하지만 양말 3켤레와 치솔 4개들이 한 세트를 1만원에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많이 팔아야 하루 4∼6세트 정도였다. 점심은 먹어본 적이 없다.한창 먹을 나이,식당 앞을 지날 때마다 수없이 호주머니 속의 물건 판 돈을 만지작거렸지만 崔씨의 얼굴을 떠올리곤 근처 건물의 화장실로 가 수도꼭지를 빨았다.숙소로 돌아가 崔씨에게 당할 일도 두려웠지만 벌로 저녁을 굶어야 하는 것이 훨씬 겁이 났다. 큰 형 郭군(18)은 앵벌이 생활을 고통스러워하는 동생들에게 “돈을 받으면 도망치자”고 말했지만 돈을 받아본 적이 없다.‘99년까지 함께 일을 하지 않으면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쓴 것도 순진한 이들에게는 부담이었다. 3형제는 지난 17일 밤 주민의 제보를 받은 경찰의 급습으로 앵벌이 생활에서 해방됐다.그러나 경찰서를 나선 뒤에는 직업 없이 놀고 있는 친척집에 머물기가 미안했는지 “옷을 찾으러 가겠다”며 따로 버스에서 내려 어디론가 가버렸다.한 경찰관이 뒤늦게 소식을 전해듣고 수소문했지만 끝내 연락이 되지 않았다.
  • 鄭周永 회장 訪北­외국언론 반응

    ◎美­새정부 출범후 첫 南北화해 조짐/日­양측의 교류촉진 계기 여부 주목 ▷미국◁ 【워싱턴 연합】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500마리를 몰고 북한을 방문하는데 큰 관심을 보인 미국 언론들은 방북의 성사가 金大中 대통령 정부 출범 이후 남북한 화해 조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15일 보도했다. CNN을 비롯한 미국 방송들은 “북한지역 출신으로 현대그룹을 일궈낸 鄭회장이 소떼를 싣고 고향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보도하고 “북한도 鄭회장의 판문점 통과를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특히 鄭회장의 방북이 남북한 교류·협력을 촉진한다는 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화해조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워싱턴 포스트도 이 기사를 크게 취급하고 “17세에 고향을 떠나 사업가로 성공한 鄭씨의 소떼몰이 방북은 지난 수십년동안 전쟁과 총격전,도끼만행 등으로 얼룩진 비무장지대(DMZ)의 긴장을 완화하는 상징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도쿄 연합】 일본의 언론들은 鄭周永 현대그룹명예회장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전하고 한국민들은 소가 남북을 잇는 인연이 되기를 크게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도(共同)통신은 “강원도 통천 출신 鄭씨가 소 기증을 생각하게 된 것은 부친의 소 판돈을 가지고 서울로 가출했던 경험 때문”이라고 전하고 “한국 매스컴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에 농경용 소를 기증,정을 확인하려는 생각에 감동,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사히(朝日)와 요미우리(讀賣)산케이(産經)등 주요 신문들도 주로 1면에 사진과 함께 “북측이 남측과의 교류에 적극적으로 돌아서는 것을 보여줄 것인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며 주요기사로 전했다. 아사히는 특히 “남북 합의하에서 민간 기업인이 판문점을 통과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소가 가는 것처럼 이산가족도 왕래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는 청와대 성명을 소개했다.
  • ‘아침이슬’ 양희은(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

    ◎“나는 가수일뿐… 결코 운동권 못돼”/암울한 독재정권 아래 서정적 노래 통해 정신적 탈출구 제시 했을뿐/‘늙은 군인의 노래’ 부르고 78년 쓸쓸히 노래판 떠나 70년대 청년문화를 주도했던 ‘아침이슬’의 통기타 가수 楊姬銀씨.독재정권의 잇단 금지곡 딱지로 70년대를 ‘금지인생’으로 살아야 했던 그가 이제 아픈 세월을 딛고 우리 앞에 다시 우뚝섰다.세월은 흘렀지만 그때 그 시절 그 노래들은 어두운 시절의 기억과 함께 더욱 강한 행명력으로 살아난다. “긴 밤 지새우고/풀잎마다 맺힌/진주보다 더 고운/아침이슬처럼/내 맘에설움이/알알이 맺힐때/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1994년 8월,무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리던 한 여름밤.서울 동숭동 음악전문 공연장 ‘라이브’­.20년의 시공을 초월한 ‘청년가수’ 楊姬銀(46)의 열창에 공연장을 가득 메운 30∼40대의 관객들은 70년대 어두운 기억의 편린들을 떠올리며 숙연한 분위기에 빠져 들었다.가수생활 23년을 결산하는 첫 개인무대였던 이 자리에서는 ‘아침이슬’ 등 70년대의사연 많은 시대곡들이 이어졌다.시간이 흐를수록 관객들의 침묵은 한계에 달했고,급기야는 모두 목이 터져라고 함께 불렀다. 71년 서강대 사학과 1년 재학중 ‘아침이슬’로 데뷔한 뒤 70년대 청년문화의 대명사로 자리매김돼 온 통기타 가수 양희은.가난했던 어린시절과 사랑의 상처,연속되는 금지곡 행진,한창 나이의 투병생활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독재정권의 서슬퍼런 압제의 칼날 아래서 젊은이들에게 노래를 통해 정신적인 탈출구를 제시했던 그녀는 한때는 ‘운동권 가수’로 인식되기도 했다.그러나 楊씨는 자신이 결코 운동권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암울한 시절 시대상황이 노래까지 어둡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지금은 가정주부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매일 하오 2∼4시 SBS 라디오방송(2시의 친구 楊姬銀입니다) 진행도 맡고 있고 연말로 예정된 콘서트 준비를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그러나 문득 문득 떠오르는 20대의 아팠던 추억,즉 자신이 불렀던 노래들이 금지곡으로 묶여야만 했던 힘겨운 70년대를 결코 지울 수가 없다.양씨의 ‘금지 인생’은 그 유명한 ‘아침이슬’로부터 시작됐다.金敏基씨가 작사·작곡한 곡을 받아 71년 발표,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노래가 같은 타이틀의 앨범에 수록된 ‘엄마 엄마’‘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그날’과 함께 74년 어느날 느닷없이 방송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72년 새음반 ‘서울로 가는 길’에 실린 ‘작은 연못’‘백구’‘서울로 가는 길’‘새벽길’ 등 10곡도 이때 모두 금지곡 딱지를 받았다.그 외에도 78년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늙은 군인의 노래’ 등 부른 노래중 금지곡만 30여곡에 이른다. 이 노래들이 해금된 것은 지난 84년.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레퍼터리들이지만 오히려 이 노래들에 실린 무게는 더해만 갔다.대학생들의 시위현장에서,소외된 노동현장에서,젊은이들의 술자리에서….노래를 방송이 원천봉쇄하면 음반도 막히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은 이들 금지곡들을 용케 찾아서 불렀다. 楊씨는 당시의 상황을 돌이켜 이렇게 말한다. “한마디로 우스꽝스런 해프닝의 연속이지요.‘가사퇴폐’‘시의부적합’‘허무주의 조장’이란 명분인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늙은 군인의 노래’만 하더라도 국방부장관이 금지를 명령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느냐는 꼬투리를 잡아 금지곡 판정을 당했을 정도니까요” 노래가 금지곡으로 묶이고 나니 가수의 생활도 곤궁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요주의 인물’로 낙인받은 뒤 본격적으로 도청에 시달렸고 하루 종일 따라붙는 감시의 눈도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아침이슬 발표 후부터 계속해온 방송도 순탄치만은 않았다.방송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정보부 요원들에게 잡혀 빵집에서 추궁받던 일은 지금도 진저리가 쳐진다고 회고했다.그중에서도 가장 견딜 수 없던 일은 71년부터 계속 맡아오던 방송활동의 중단이었다. “77년 당시 6년째 기독교방송 음악프로 ‘우리들’을 진행하고 있었어요.요원들이 항상 뒤따르던 시절이지요.어느날 느닷없이 사장으로부터 ‘당분간 쉬라’‘네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을땐 눈물이 핑 돌더군요”.그때부터 방송출연 교섭이 뚝 끊겼다.결정적으로 노래판을 떠나게 된 것은 78년 MBC TV ‘토토즐 사건’이었다.어렵게 출연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프로그램에서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렀다. “‘늙은 군인의 노래’는 평생을 군에서 복무하다 전역한 한 직업군인의 나라사랑을 순수하게 담은 노래였는데 국방부장관이 ‘군 사기 저하’를 이유로 봉쇄하더군요.레코드사 사장이 불려가고 전국 매장에 깔려있는 음반을 모두 수거해 파기시킨뒤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지요” 이후 83년 ‘하얀목련’이 나올 때까지 일체의 노래활동을 중단해야 했다.87년에는 결혼했고 남편과 함께 훌쩍 미국행을 결행,지난 93년 돌아올 때까지 드문드문 고국을 드나들며 서정성 짙은 맑은 노래를 모은 음반도 몇 집을 냈다.자신의 노래·방송 인생을 자전적으로 풀어낸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이라는 책도 펴냈다. 처음부터 줄곧 어떤 노래를 부르며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살아 왔다는 楊씨.그는 자신이 받았던 팬들로부터의 사랑을 되돌려주기 위해 다시 노래를시작했다고 말한다.“20대엔 밝은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철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노래는 슬픔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요즘 신세대들이 흔히 부르는 노래들은 나름대로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무언가 모자란 느낌입니다.노래는 서정성이 담겨야 합니다.70년대의 금지곡들도 저에겐 모두 서정이었지요”. ◎사연들/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냐고/퇴폐·허무·時宜 부적절 우스꽝스런 해프닝 연속/“네 잘못 아니다” 듣고 눈물/‘붉은태양’이 북측 인사라니… “태양은 묘지위에/붉게 떠오르고/한낮에 찌는 더위는/나의 시련일지라 /나이제 가노라/저 거친 광야에/서러움 모두 버리고/나 이제 가노라.” 이 노래에서 문제가 된 것은 ‘태양은 묘지위에/붉게 떠오르고’부분.붉은 태양이 북쪽의 인사를 암시한다는 억지해석이 금지곡으로 이어졌다.그러나 금지곡 이후 들불처럼 번져 지금까지도 애송되고 있는 걸작이다. “나 태어나/이 강산에/군인이 되어/꽃 피고/눈 내리길/어언 삼십년/무엇을 하였느냐/무엇을 바라느냐/나 죽어/이 강산에/묻히면 그만이지/아 다시 못올/흘러간 내 청춘/푸른옷에 실려간/꽃다운 이 내 청춘.” 평생을 군인으로 살다 전역하게 된 실제 인물의 순수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이 노래 는 금지곡으로 결정된뒤 대학가와 노동현장에서 개사돼 투쟁가로 변질된 대표적인 노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느냐는 이유아닌 이유로 금지됐다면 ‘작은 연못’은 당시 대립되는 두 세력들을 빗댔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사라진 노래들이다. “너의 침묵에/메마른 나의 입술/차가운 네 눈길에/얼어붙은 내발자욱/돌아서는 나에게/사랑한단 말 대신에/안녕 안녕 목메인 그한마디/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깊은 산 오솔길옆/자그마한 연못엔/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아무 것도 살지 않지만/먼 옛날 이 연못엔/예쁜 붕어 두마리/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깊은산 작은 연못…” 이들 역시 금지 이유와는 달리 서정적인 분위기가 농후하다.◎그의 길 ▲52년 서울 출생. ▲70년 경기여고 졸업. ▲71년 서강대 사학과 입학. ▲71년 ‘아침이슬’ 발표. ▲72년 앨범 ‘서울로 가는 길’ 발표. ▲74년 ‘아침이슬’‘서울로 가는 길’ 금지. ▲77년 기독교방송 음악프로 ‘우리들’ 진행 도중하차. ▲78년 MBC TV‘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출연뒤 ‘늙은 군인의 노래’금지. ▲84년 ‘하얀목련’으로 대한민국 가사대상 수상. ▲87년 결혼,도미. ▲93년 귀국. ▲94년 첫 개인 콘서트. ▲현재 SBS 라디오 ‘2시의 친구 양희은입니다’ 진행.
  • 6·4 지방선거­광역단체장 당선 일성

    전국 16개 시.도의 민선 자치단체장이 탄생했다.이번 선거는 金大中 정부출범 이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전국적인 선거이자 새 정부의 초반기 국정운영에 대한 사실상의 중간평가적 의미도 담고 있다.선거 결과는 ‘DJT공동정권’의 국정운영과 정계개편 등 향후 정국의 흐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당선이 확정된 시.도지사 후보들은 공약으로 내건 지역발전의 청사진을 임기동안 소신껏 추진하겠다고 입을 모았다.선거과정에서 빚어진 갈등과 반목을 화합으로 승화시키겠다고 다짐했다.당선 일성을 들어본다. ◎高建 서울시장 당선자/“조속히 경제살려 희망의 서울로” 국민회의 高建 서울시장 후보는 4일 밤 당선이 확실시 되자 여의도 국민회의 중앙당사를 찾아 기자회견을 갖고 “시민들의 지지·성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 “시민들의 깊은 마음을 헤아려 서울의 경제회생과 희망의 서울을 만드는데 정성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긴 원인을 분석하면. ▲서울시정이 복합적이어서 시민들이 전문행정가를선택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하나는 현안인 정국안정과 경제회생을 위해 시민들이 집권여당에 힘을 실어준 것 같다. ­행정의 초점은. ▲실업대책을 일용직 생산직 사무직 등 직업유형별로 처지에 맞는 일자리 창출에 노력할 것이다.행정경험을 살려 서울의 물·교통·시민안전 등 생활행정에 역점을 둘 생각이다.다음으로는 현재의 국난을 극복하고 개혁을 수행하기 위한 방편으로 행정서비스의 품질을 혁신시키려 한다.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도 과거 경험을 살려 잘 조정해나갈 것이다. ◎2002년 亞洲개입 성공 개최 ◇安相英 부산시장 당선자(한나라당)=한나라당의 승리이기 이전에 부산의미래를 걱정하는 시민의 위대한 승리이다. 무너지는 부산경제를 일으켜 세우라는 부산시민의 기대와 충고를 받아들여 지역경제 회복과 일자리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교통난 해소와 2002년 아시안게임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위대한 부산을 만들어 가겠다. ▲59 ▲서울대 토목공학과 ▲부산시장·해운 ◎실업문제 해결에 행정력 집중 ◇文熹甲 대구시장 당선자(한나라당)=대구 경제 회생을 위해 다시한번 최선을 다하겠다.지난 3년동안 벌여왔던 각종 사업을 차질없이 추진하고 비상실업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실업문제 해결에 행정력을 집중해 나가겠다.심각한 재정난 타개를 위해 올 하반기 외자도입을 재추진,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집중 투자하겠다. ▲60 ▲서울대 행정대학원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대구시장 ◎국제투자 자유도시 건설 ◇崔箕善 인천시장 당선자(자민련)=송도 신도시 건설 등 대형 사업들을 내실있게 마무리하고 시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에 노력하겠다.실업을 줄이기 위해 공공근로사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대우 본사의 송도 이전,국제투자 자유도시 건설 등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겠다.공약을 효율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시정 브리핑,시민 토론회,시정 여론조사를 하겠다. ▲53 ▲서울대법학과 ▲13대 국회의원·인천시장 ◎외자유치 지역경제 활성화 ◇高在維 광주시장 당선자(국민회의)=IMF시대의 조기 극복과 시정 발전을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겠다.조직개편 및 중복 부서의 통폐합 등 행정개혁과 감량화를 통해 광주를 경쟁력 있는 자치단체로 만들겠다.첨단과학 산업단지와 평동공단 등에 외국인 투자자를 적극 유치해 지역경제를 활성시키겠다.당정협의를 정례화 해 정부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하겠다. ▲60 ▲조선대 대학원 법학과 ▲광주지검 부이사관·광산구청장 ◎제2 행정수도 위상 확고히 ◇洪善基 대전시장 당선자(자민련)=선거결과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화합 의지는 당면한 경제위기의 극복과 제2의 도약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이번 선거는 초대 민선 자치시대의 끝맺음이 아니라 새로운 세기의 시작입니다.제2행정 수도로서의 자리매김 등 대전 중흥의 대장정에 나설 것입니다.과학산업단지 개발 등 50대 공약사업은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61 ▲중앙대 경제학과 ▲대전시장·충남도지사 ◎월드컵 전용 축구장 등 건립 ◇沈完求 울산시장 당선자(한나라당)=큰 울산 건설의 기초를 다진 지난 3년동안의 시정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임기안에 큰 울산 건설을 훌륭하게 마무리하겠다.우선 당면 과제인 울산의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의 지혜와 힘을 모으겠다.월드컵 전용축구장과 신항만 건설,울산대공원 조성 등 대규모 토목공사를 차질없이 추진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 ▲59 ▲성균관대 경제학과 ▲12·13대 국회의원,울산시장 ◎300억달러 외자유치 총력 ◇林昌烈 경기도지사 당선자(국민회의)=경제위기 극복의 견인차 역할은 물론 주민생활과 경제활동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등 경제살리기에힘을 쏟겠다.특히 수도권 발전법 및 경기북부개발법 등의 제정을 추진해 300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하겠다.국제적 마인드를 갖고 모든 공무원들이 경제 세일즈맨이 될수 있도록할 계획이며 행정서비스의 질을 높이는데도 역점을 두겠다. ▲54 ▲서울 상대 ▲통상산업부 장관·재정경제원 장관 ◎농·어·정 대책위 운영 ◇김진선 강원도지사 당선자(한나라당)=초대 통합지사가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겠다.99년에 열리는 국제관광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명실상부한 관광 강원이 되도록 도정을 이끌겠다.오는 2002년까지 중소기업자금을 1,000억원까지 확대해 영세기업과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겠다.9만여 농어민들에게 희망을 주기위해 농·어·정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소신껏 운영해나가겠다. ▲51 ▲동국대 행정학과 ▲강원도 행정부지사,강릉시장 ◎청주공황 활성화 방안 강구 ◇李元鐘 충북도지사 당선자(자민련)=지역경제 회생을 위해 학계와 행정계,산업계 등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로 ‘충북 경제포럼’을 구성,해결책을 마련하겠다.지역 현안인 청주광역권 쓰레기 매립장 건설과 오창과학산업단지조성,청주공항의 활성화 방안을 빠른 시일안에 강구하고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도 공론화하겠다.행정기구 개혁방안도 수립하겠다. ▲56 ▲성균관대 행정학과 ▲충북도지사·서울시장 ◎4년간 도정 새롭게 가꿔 ◇沈大平 충남도지사 당선자(자민련)=도민들의 지지와 성원에 감사드린다.이번 선거 결과는 현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21세기를 열고자 하는 200만 도민의 성숙한 민주역량의 승리다.지난 3년 동안 펼쳐온 민선자치 성과에 두터운 신뢰를 보내준 것이기도 하다.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앞으로 펼쳐질 4년간의 도정을 새롭게 가꾸겠다. ▲57 ▲서울대 경제학과 ▲대통령비서실 행정수석,충남도지사 ◎문화행정으로 삶의 질 높여 ◇柳鍾根 전북도지사 당선자(국민회의)=지속적인 외자유치로 외국기업을 많이 끌어들이고 수출을 증진시켜 잘 사는 전북을 만들겠다.중앙정부로부터더 많은 지원을 받도록 하겠다.도민이 행정에 참여하는 민주행정과 복지행정,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행정을 펴겠다.이번 선거 과정에서 내놓은 공약은 반드시 이행해 약속을 지키는 도지사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54 ▲뉴욕주립대 대학원 ▲뉴저지주립 럿거스대 교수,대통령 경제고문 ◎中企육성·환경보전에 전력 ◇許京萬 전남도지사 당선자(국민회의)=지난 3년 동안 중점 추진해온 사회간접시설 확충,농업경쟁력 강화,해양개발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멀지 않은 기간안에 달라진 전남의 모습을 보이겠다.중소기업 육성,지역경제 활성화,환경보전과 복지증진에도 힘쓰는 한편 IMF시대에도 도약하는 전남,희망과 풍요가 넘치는 전남 건설에 최선을 다하겠다. ▲60 ▲서울대 사법대학원 ▲전남지사·국회부의장 ◎위대한 경북건설에 혼신 ◇李義根 경북도지사 당선자(한나라당)=재선의 영광을 안겨주신 300만 도민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선거운동기간 동안 도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경북이 어디로 나가야 할 것인지 많은 조언을 들었다.앞으로 도민들의 뜻과 기대를 도정에 반영,위대한 경북 건설에 혼신의 힘을 바치겠다.선거로 흩어졌던 도민들의 역량을 한데 모아 지역발전을 이룩해 나가겠다. ▲59 ▲영남대경제학과 ▲청와대 행정수석,경북도지사 ◎실업자 보호·민생안전에 역점 ◇金爀珪 경남도지사 당선자(한나라당)=앞으로 해외에 나가서 외국자본과 외국기업 유치에 전력을 다할 생각이다.민선 1기가 25개 대형 사업을 중심으로 21세기 경남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만드는 실행준비 기간이었다면 민선 2기에는 이를 구체화하고 실행하겠다.새 임기의 전반기는 IMF에 따른 실업자 보호 및 민생안전에 역점을 두면서 세계 일류 경남건설에 온힘을 바치겠다. ▲58 ▲부산대 행정학과 ▲청와대 민정비서관,경남도지사 ◎20개 관광지구 차별화 추진 ◇禹瑾敏 제주도지사 당선자(국민회의)=제주교역의 운영방법을 개선하고 먹는 샘물 사업은 민간에 맡기겠다.감귤 생산조정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감귤 복합가공공장을 세우거나 최저 가격을 보장하는 등 감귤사업을 육성할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3개 관광단지와 20개 관광지구에 대한 차별화 전략을 세우고 외국인 관광투자지역을 지정해 외자유치가 쉽게 이뤄지도록 하겠다.여성지위 향상을 위해 여성특별위원회를 직할기구로 신설하겠다. ▲55 ▲경희대 행정대학원 ▲제주도지사·총무처 차관
  • 金惠子씨 訪北 재추진

    지난달 30일 북한을 방문하지 못한 탤런트 金惠子씨(57)가 빠르면 이번 주중 다시 방북을 추진할 것으로 31일 알려졌다. 金씨는 “베이징(北京)에서 비자 발급 절차에 차질이 있어 어제 서울로 돌아왔다”면서 “단순한 실무 착오로 지연된 것이기 때문에 일정이 조정되는대로 북한 비자를 받기 위해 조만간 베이징에 다시 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선명회측 관계자도 “방북 자체가 좌절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고 “빠른 시일 안에 베이징을 거쳐 북한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5월30일부터 6월2일까지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던 金씨는 당초 일정대로 북한을 방문하지 못하고 한국선명회 吳在植 회장 등 일행과 함께 30일 서울로 돌아왔다.
  • 항공기 8편 긴급 투입/건교부,교민 수송용으로

    인도네시아 현지 교민을 국내로 수송하기 위한 대한항공 특별기 8편이 긴급 투입됐다. 건설교통부와 대한항공은 인도네시아 소요사태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19일 정기편 B747(419석) 1대와 임시편 B747(384∼385석) 4대 등 모두 5대를 긴급 투입한 데 이어 20일 새벽에도 A300(258∼274석) 2대와 B747(258석) 1대 등 3대를 추가 배치했다.이들 항공기는 19일 하오와 20일 새벽에 각각 서울을 떠나 자카르타에서 교민을 태우고 20일 상오와 하오에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다.
  • 팽팽한 긴장… ‘제2 폭동’ 예고/印尼사태 이모저모

    ◎전직관료들 “개각보다 퇴진” 반기/언론도 반정부기사 잇달아 게재/삼성·SK 등 주재원 가족들 철수 시작 【자카르타 외신 종합】 인도네시아 소요사태는 15일을 고비로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나 이는 ‘폭풍전의 고요’일 뿐 수하르토의 퇴진을 둘러싼 대립은 여전히 내부적으로 팽팽한 긴장을 키워나가고 있다.따라서 인도네시아 사태는 결국 대규모 유혈충돌에 따른 ‘피플파워’의 승리나 또는 군부에 의한 ‘궁정쿠데타’의 둘중 하나로 끝날 것같다. ○…수하르토에 충성하던 전직 관료들에게서도 수하르토의 시대는 끝났다며 그의 하야를 촉구하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쿠즈마트마자 전 환경장관은 17일 “수하르토 대통령이 자신의 이익에만 집착,대통령직에 계속 머문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인도네시아의 문제는 바로 대통령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또 수브로토 전에너지장관은 “대통령은 개각을 얘기하고 있지만 개각으로는 충분치 않다.국민이 원하는 것은 새 각료가 아니라 ‘새대통령’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퇴역장성 15명 개혁 촉구 ○…인도네시아 군부 원로로 추앙받고 있는 케말 이드리스 육군중장을 비롯한 퇴역장성 15명도 수하르토를 퇴진시킨 후 후임 대통령을 선출키 위한 ‘국민자문위원회’ 비상회의 소집을 촉구.49년 독립 이후 군부를 이끌어온 이들은 학생들의 요구사항인 정치개혁 이행조처를 지지한다고 발표. ○…수하르토에 반대하는 기사를 싣는데 소극적이던 언론들도 최근엔 서슴없이 수하르토를 비난하는 기사들을 크게 다루고 있는데 이는 공개석상에서 수하르토를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간 국가원수 모독으로 체포·구금되던 과거의 양상에 비춰볼 때 상상도 할 수 없던 일. ○…인도네시아 민간 방송채널들은 자체 제작한 뉴스 대신 정부가 공급하는 뉴스만을 내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자카르타 포스트지가 17일 보도.이에 따라 인도네시아의 5개 민간방송 채널에서는 격렬한 폭력사태나 폭동에 관련한 뉴스들은 일체 자제한 채 사태수습과 함께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는 모습들만 전파를 타고 있다. ○공항 외국인들로 북새통 ○…수카르노­하타공항이 인도네시아를 빠져 나가려는 외국인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한국 교민들도 16일 밤 350여명이 대한항공편으로 서울로 떠난 데 이어 17일 하오 9시40분쯤 400여명이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삼성,SK,현대,한국석유개발공사,한국중공업 등 현지 진출 한국기업들도 20일 상오까지 직원 가족들을 먼저 귀국시킬 계획이며,상황 악화에 대비,잠정휴업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자카르타시 가토트 수브로토 지역에 있는 한국대사관 비상대책반에는 출국절차 등을 묻는 교민들의 전화가 폭주,인도네시아 사태에 대한 교민들의 불안감을 실감케 했다. ○일 자위대가 파견 준비 착수 ○…일본 정부는 인도네시아 사태와 관련,17일 인도네시아에 체재중인 일본인들에게 ‘퇴피(退避)권고령’을 내렸다. 일본 정부는 이와 함께 자위대수송기 파견을 위한 구체적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이날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외상은 방위청에 자위대 파견 준비를 의뢰했으며 방위청은 오부치 외상의 의뢰에 따라 C130 수송기 파견을 위한 부대편성 등 준비 작업에착수했다.
  • 5·18 부상 전신마비 장애 張周仁씨

    ◎‘폭도오명’ 씻는길 ‘국가유공 인정’뿐/총상 학생 부축중 계엄군 차에 치여/전재산 치료비로… 부인 막일로 생계/18년 고통의 세월 눈물속의 忍苦 “5·18 희생자를 ‘폭도’로 보는 주변의 시선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5·18 당시 계엄군의 트럭에 치여 끝내 일어서지 못하고 18년째 휠체어에 의지해 살고 있는 전신마비 장애인 張周仁씨(59)는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처음 맞는 5.18을 하루 앞둔 17일 새로운 감회보다는 지난 세월의 아픔을 다시 토해냈다. 지금도 살이 썩어가는 고통을 겪고 있는 張씨는 재산을 치료비로 모두 탕진한 뒤 배고파 우는 아이들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서울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던 張씨 부부에게 비극이 시작된 것은 80년 5월 23일. 張씨는 광주에 사는 누이동생을 만나러 갔다가 전남대 앞길에서 총에 맞고 쓰러진 한 대학생을 부축하다 계엄군의 트럭에 치였다.張씨는 조선대 병원에 1년 동안 입원할 수 있었지만 ‘폭도’로 몰리면서 병원비 지원마저 중단됐다. 강제 퇴원당한 張씨는서울로 옮겨져 4차례에 걸친 대수술 끝에 목숨은 건졌지만 전 재산을 병원비로 날리고 말았다. 생계가 막막해지자 부인 李英玉씨(51·관악구청 청소원)는 연탄배달 호떡장수 식당일 청소원 등 닥치는 대로 일해야만 했다.그나마 다행이라면 갖은 고생 끝에 네 딸 가운데 셋은 대학에,막내는 고등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는 정도다. 남편의 병수발은 물론 가계의 생계까지 도맡아온 李씨는 “그날의 상처 때문에 아직도 잠 못이루는 남편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張씨는 희생자들을 국가유공자로 인정,지난 세월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기를 간절하게 기원했다.
  • 건국이후 인구변화(대한민국 50년:19)

    ◎49년 첫조사 20,188,641명… 96년엔 갑절로/55년 간이조사 전에는 추계… 정확성 의문/6·25전쟁기간 150만명 희생… 사망률 4%/60년대부터 공업·도시화 영향 대규모 이동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최초의 인구조사는 49년 5월1일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1회 인구조사’였다.이 때 인구는 2천18만8천641명으로 파악됐다. 한국전쟁 중인 50년과 51년에는 보건사회부의 발표가 남아있다.50년 2천35만6천명,51년 2천44만1천명이었다.그런데 이 인구조사 발표는 실제 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49년의 조사를 토대로 각도 도지사의 보고에 의한 추계였다. 52년과 53년에는 내무부의 추계가 남아있다.52년 2천52만6천명과 53년 2천1백54만6천248명이었다.53년의 인구가 전년도보다 1백만명 이상 급증한 것은 배급을 늘리기 위한 유령인구 때문으로 추측된다.54년 보건사회부의 인구통계는 2천1백91만3천명이었지만 이도 실제조사가 아니라 전년도에 기준한 추계이다.결국 정부가 발표한 50년부터 54년 사이의 인구 수는 정확하지 못하다. 55년 제1회 간이 총인구조사가 실시됐는데 상주인구가 2천20만2천256명이었다.이는 현역 군인과 형무소 수형자 등을 뺀 숫자이다.한국전쟁 시기의 인구 증가율은 1.1%였다.그러나 한국전쟁후 베이비 붐이 일어 55년 이후 66년까지 인구 증가율은 2.8%를 기록했다.그러다가 산아제한 정책이 실시된 66년부터 85년까지는 1.7%로 떨어졌다. ○증가율 2.8% ‘베이비 붐’ 정부 수립후 인구의 변동은 경제문제와 가장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1인당 국민소득은 44.5달러에 불과했다.따라서 국민총생산의 5분의 1에 달하는 미국으로부터의 원조액 1억7천9백59만3천달러는 기아를 막기 위한 것으로도 부족했다.한국전쟁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인구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생산시설은 ‘저고용­저소득­저고용’의 악순환 고리를 이어갔다.폭발적인 인구문제의 해결은 60년대 경제개발을 통한 지속적 성장 밖에 해답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의 인적 피해로 인한 가장 직접적이고 충격적 결과는 무엇보다도 특이한 인구구조를 형성시켰다는 점이다.우선 한국전쟁은 일시적 사망률의 상승과 출생률의 저하를 초래했다.한국전쟁으로 인한 인명 손실 중 사망자는 약 1백만∼1백50만명으로 추정되며 이로 인한 인구의 사망률은 1천명당 36∼47명,즉 4% 안팎으로서 평소 한국인의 사망률인 평균 2%의 2배나 됐다.이같은 현상은 60년과 66년의 인구 센서스에서 각각 30∼49세 및 35∼49세의 연령층에서 과부가 많은 것으로 조사된 것과 상통하는 것이다.반면 전쟁기간 동안의 0∼9세의 영아 및 아동의 사망자 가운데는 남아보다 여아가 더 많았다.이것은 새로 태어난 신생아들과 아이들의 경우 전통적 남아 선호사상으로 인해 남아를 되도록 보살핀 때문으로 사회학자들은 보고 있다. ○45만∼72만명 월남 추정 전쟁기간 중의 출생률은 극도로 저하돼 같은 기간의 높은 사망률과 더불어 인구의 절대 감소현상을 초래했다.이때의 출생률은 평상시보다 1%나 낮아졌으나 인구 증가율이 당시에는 1년에 1천명당 23명으로 늘어났었던 데 비해 전쟁기간 중이었던 49∼55년 사이에는 연평균 1천명당 11명 정도 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한 인구변동의 또다른 충격은 인구의 대규모 이동현상이다.한국전쟁 기간 동안의 월남인구의 추정치는 45만∼72만명에 이르고 있다.반면 남한에서 북한으로 강제로 납치되거나 그 밖의 이유로 넘어간 이들의 수도 대략 3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인구이동이 시작된 것은 60년대부터인데 60년대 이후의 인구이동은 물론 공업화의 영향을 받은 도시화의 결과였다. 61년 이후 인구 분포에 있어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한 지역은 수도 서울이었다.서울은 정부수립 직후인 49년에는 전인구의 7.1%를 차지했고 11개 시·도 중 인구 수로 따져 9위에 지나지 않았으나 75년에는 이미 전인구의 20%에 해당하는 6백90여만명의 인구를 갖게 됐다.또 오늘날에는 전인구의 22%가 넘는 1천여만명의 인구를 갖게 됐다. ○86년 도시인구가 65% 그러나 서울과 부산,그리고 경기도를 제외한 모든 도는 전국 인구에 대한 구성비에 있어 감소 추세를 보였다.인구이동을 도시와 농촌으로 구분하면 도시인구의 비율은 55년 25%에 불과했던 것이 80년에는 57%,86년에는 65%에 달해 도시인구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70년 이후 서울로의 인구집중은 어느 정도 둔화되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농촌인구가 서울 이외의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특히 마산 울산 포항 등의 새로운 공업도시와 수도권의 성남 안양 수원 등에는 우리나라 전도시의 평균 인구증가율보다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정부수립후 49년 첫 인구조사에서 남한의 인구는 2천18만8천여명이었으나 96년 조사된 인구는 4천6백43만4천여명으로 50년동안 두배로 불어났다. ◎日 전쟁 동원 인구 해방후 엄천난 逆유입/日帝와 美 군정 시기의 인구/도시주변 戰災民으로 반공체제 정착 큰 역할/46년 1,936만명 조사/이듬해 국민등록 실시 한국은 일제 식민통치 기간 동안 특히 37년 이후의 전시 총동원체제 아래서 대규모의 인구이동을 경험했다.가혹한 수탈로 인해 농촌을 떠나 일본과 만주 등으로 이주했다.또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시체제 기간동안 이른바 노무 동원 또는 강제 징용 등에 의해 북한의 광공업지역과 일본으로 동원됐다.39년에서 해방 전까지의 기간에 국내외에 걸쳐 전시체제와 관련한 유동인구는 약 7백만명으로 45년 현재 국내 총인구 수의 약 30%에 달한다는 사실은 인구이동 규모의 방대함을 말해 준다. 일제 말기의 인구이동 현상은 해방직후에는 역으로 대규모의 인구유입 즉 귀환을 초래했다.여기에다 남북 분단의 체제대립적 성격을 반영하는 이른바 월남민들이 발생했다.해방 직후 남한사회는 단기간 안에 엄청난 인구유입을 경험했다. 이는 해방정국을 이해하는 데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첫째는 유입인구가 자신의 성장지역인 농촌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도시지역의 경제활동 인구로 흡수되지도 못하면서 상당수가 도시 주변에 전재민(戰災民)으로 퇴적된 것으로 보인다.이는 해방정국의 사회적 불안정성과 긴장을 높이는 주요한 변수가 됐다. 둘째는 유입인구가 계급적 성격과 사회적 경험 등에 따라 비교적 뚜렷한 정치적 지향성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해방정국의 정치적 격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해방 직후 월남민들이 우익세력의 선봉대였으며 남한사회가 반공체제로 귀착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점은 역사가들이 입증하고 있다. 해방 후 최초의 인구조사는 미군정청에 의해 46년 8월25일 실시되었다.소련군이 진주한 북한은 제외됐다.이 통계는 44년 조선총독부의 국세(國勢)조사 인구에 미군측이 파악한 식량배급 인원과 외부로부터의 유입인구를 고려해 작성됐다.이 때 조사된 남한 인구는 총 1천9백36만9천270명이었다.따라서 이 통계는 실제 인구수를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미군정청은 이어 47년 국민등록을 실시했다.등록 인구는 총 1천9백88만6천234명.다음해 다시 실시한 국민등록에서는 2천2만7천393명의 인구가 등록됐다.미군정청이 실시한 국민등록은 의식주 및 생활 필수품의 확보와 배급계획의 수행,앞으로의 선거 등을 대비한 것이었다.
  • “50년전 선거는 애국심·열정의 축제”/제헌의원 증언

    ◎의원 좌석도 무작위 추첨… 지역성 배제/6·4 선거 금품·흑색선전의 장 되지말길 209명의 제헌 국회의원 가운데 생존자는 金仁湜 제헌동지회장(86)과 元長吉 부회장(87),閔庚植(79)·李錫柱(95)·鄭濬(84) 전 의원 등 5명이다.제헌의원들은 청와대 부근 효자동의 한옥집을 개조한 ‘제헌회관’을 사랑방 삼아 모임을 갖고 있다. 金회장과 元부회장 등 제헌의원들은 올해 5·10 선거 50주년을 맞아 국민들이 한번쯤 건국과 선거의 의미를 돌이켜보기를 간절히 희원했다. 金회장은 “50년 전의 제헌의원 선거는 애국심과 열정으로 가득찬 축제”였다고 회고했다.해주고보 재학 당시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투옥됐던그를 경기도 옹진에 사는 청년 2명이 찾은 것이 48년 3월.옹진과 특별한 인연도 없는 그에게 두 청년은 출마를 권유했다.동경 유학 경험과 해방후의 반공 활동을 주목한 것이다.金회장은 “당시 가진 것이 없었지만 걱정하지 않았다”면서 “명동에서 금은방을 하는 친구에게 5만원을 빌려 옹진으로 내려갔다”고 말했다.5만원 가운데 3만원으로선거 벽보를 만들고 청년들의 도움으로 군내 8개 면을 돌며 유세전을 벌였다.그는 “황무지 위에 민족의 집을지어보겠다”는 호소만으로 군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누가 더 애국심을 갖고 있느냐가 당시 유권자들의 선택 기준이었던 것이다.이후 선거양상이 회수를 거듭할수록 금품과 흑색선전으로 점철되자 金회장은 한없는 절망감을 느꼈다고 한다. 元부회장은 고향인 강원도 강릉갑에서 출마했다.강릉 지역은 강릉 崔씨와 강릉 金씨의 집안이 번성한 지역이었다.그러나 당시 선거전은 씨족의 관념을 훨씬 초월했다고 元부회장은 회고했다.오로지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공감대였다고 한다.평양의전을 졸업하고 강릉도립병원에서 6개월간 근무하다 “일제의 녹을 먹기 싫다”며 공장을 운영하던 그가 당선되자 주민들이 8만원을 모아 서울로 보냈다. 元부회장은 서울에 올라온뒤 여관방에서 지내며 의정활동을 했다.元부회장처럼 어렵게 여관 생활을 하는 의원이 많다는 사실을 안 李承晩 대통령이“적산 가옥을 하나씩 나눠주라”고 했으나,제헌의원들은 “그걸 받으면 일제와 다를 바 없다”며 거부했다. 元부회장은 “당시 제헌의원들은 지역색을 없애기 위해 좌석도 무작위 추첨으로 섞는 등 국민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고 돌이켰다.元부회장은 “현재 정치하는 후배 의원들은 무엇보다 먼저 지역갈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래야 통일도 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金회장과 元부회장은 외환위기에 따른 경제난이 가속화되고,6·4 지방선거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선거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고 제안했다. 李哲承씨의 삼촌인 李錫柱 전 의원은 95세의 고령인데도 이따금씩 제헌회관을 찾고 있으며,閔庚植 전 의원은 카나다에 이민간 아들 집에 주로 머무르고 있다.鄭濬 전 의원은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해 김포 자택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
  • 훈할머니 영구 귀국길에/어제 프놈펜 떠나

    【프놈펜 AFP 연합 특약】 일본군 위안부로 캄보디아에서 53년간을 보내다 지난해 혈육을 되찾은 훈할머니(한국명 李南伊·73)가 영구 귀국을 위해 30일 프놈펜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훈할머니는 이날 캄보디아의 가족 등 70여명의 프놈펜소재 한국 교민들의 전송을 받은후 서울로 향했다.훈할머니는 지난해10월 한국국적을 회복했으며 이달초 캄보디아정부의 국적 말소조치에 이어 한국대사관의 비자 발급 등의 귀국 수속을 밟아왔다. 경남 마산이 고향인 훈할머니는 지난 43년 일제에 의해 위안부로 캄보디아에 끌려온 뒤 캄보디아에 잔류해 왔다.
  • 오늘 노동절/종묘·대학로 대규모 집회

    1일 제108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서울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다. 민주노총은 집회를 서울로 집중시킨다는 계획아래 소속 조합원 1만5천여명이 1일 하오 2시쯤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에서 1시간여동안 ‘제108주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 및 ‘고용안정 쟁취와 민중생존권 사수대회’를 가진 뒤 종로3가에서 부터 광교­을지1가­명동성당 앞까지 인도를 따라 행진할 예정이다. 전국금속노련 조합원 3천여명과 전국건설노련 조합원 1천여명도 이날 낮서울 종로구 대학로와 공평동 제일은행 본점 앞에서 각각 결의대회를 갖고 민주노총 집회가 열리는 종묘공원으로 집결할 계획이다. 서울경찰청은 30일 “집회 참가자들이 한꺼번에 도심으로 몰려 교통혼잡이 예상된다”며 승용차의 도심 통행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경찰은 행진 코스로 예정된 서울 도심 교차로 40군데에 교통경찰을 배치하고 우회로 14군데에 안내표지판을 설치,우회로 이용을 유도하기로 했다.
  • 8순 교포 10억땅 장학기금으로

    ◎LA거주 李周永 할머니 서울 구세군에 헌납/LA거리 깡통모아 한인학생에 장학금도 “머리는 좋지만 돈이 없어 공부할 여건이 되지 않는 학생들을 돕는 것이 평생의 바람이었습니다” 미국에 사는 80대 할머니가 10억원대의 땅을 청소년 장학기금으로 내놨다. 22일 하오 3시 서울 광화문 구세군 대한본영 사령관실에서는 ‘만영장학기금’ 기증식이 열렸다.이 자리에서 李周永 할머니(87·미국 LA거주)는 고국에 남아있는 유일한 재산인 충남 아산시 배방면 공수리와 북수리의 임야 과수원 등 2천8백여평을 구세군에 헌납했다. 李 할머니와 남편 鄭씨는 1남5녀를 키우면서도 평생 장학사업을 해왔다.鄭씨는 일제 때 충남 천안시에서 이발업을 하면서 “민족정기를 잃어서는 안된다”며 청소년들을 모아 한글을 가르치다 적발돼 3년여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한국전쟁이 끝난뒤에는 서울로 올라와 중앙대와 고려대 구내에 이발소를 차려 생활하면서 틈틈이 어려운 학생들을 도왔다. 李할머니 부부는 지난 80년 장녀 부부가 사는 미국 LA로 건너간 뒤에도 길거리에 버려진 깡통을 주워 모은 돈으로 매년 한인학생 2명에게 1천달러씩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LA 교민들은 10평 남짓한 노인아파트에 세들어 살면서도 깡통을 줍고 매달 나오는 정부보조금 610달러를 아껴 장학금에 보태는 李 할머니를 ‘깡통 할머니’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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