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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도­경원·경의·경춘선 운행 중단/수도권 교통 두절 현황

    ◎지하철­1·3·7호선 일부 한때 끊겨/도로­서울서 의정부·파주 방향 불통 5일 밤부터 6일 새벽까지 파주,강화 등 경기북부 지역과 서울 등에 쏟아진 집중 호우로 비피해가 속출했다.특히 곳곳에서 침수에 따른 도로 파손,철로 파괴,통신 두절 등으로 교통·통신 마비사태가 잇따랐다. 6일 하오 6시 현재 철도의 경우 경원선 12곳,경춘선 11곳,경의선 1곳 등 5개 선로 44개소가 두절됐다.도로는 경기 49곳 등 모두 56개소가 두절됐다. 의정부와 동두천,파주,포천지역에서 서울로 통하는 대부분의 도로와 철도가 6일 새벽 물에 잠겼다.1번,43번,32번 등 주요 국도의 통행이 두절됐고 서울 지하철 1호선 성북­의정부구간,3호선의 구파발­일산구간,7호선 태능역­도봉산역 구간 등 서울 지하철 3개 선로도 침수로 한때 운행을 중단했다. 서울­춘천을 연결하는 경춘선 열차도 철로 곳곳이 물에 잠겨 상오 5시35분과 6시20분에 춘천에서 청량리로 떠난 통일호 열차가 경기도 가평역에서 운행을 멈췄으며 상오 6시10분과 6시27분,7시30분에 성북과 청량리에서 춘천으로 떠난 통일호와 무궁화호 열차도 역시 운행하지 못했다. 서울에서는 중랑천 범람으로 하루 20만명이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 7호선 전 구간이 상오 6시부터 운행이 중단됐고 국철 성북­의정부 구간도 운행 중단사태를 빚었다. 동부 간선도로는 상오 5시15분쯤 완전 침수돼 양방향의 차량통행이 전면 통제됐고 한강 수위 상승으로 잠수교의 보행자 통행은 상오 6시30분,차량통행은 상오 7시10분부터 통제됐다. 특히 일산 신도시의 경우 서울로 통하는 도로 일부가 차단되는 바람에 주민들이 무더기 결근사태를 빚었다. 이밖에 강변북로 당인가교,북악산길,중랑교,서대문구 북가좌1동 상암동철길 밑 굴다리 등 주요도로 13곳이 전면 통제됐으며 올림픽대로 여의도상류 및 하류 IC,성산대교 IC,강변북로 등이 침수돼 차량들이 우회했다. 한강 수위 상승으로 한강시민공원 반포지구와 샛강지구와 이날 상오 8시30분쯤 침수돼 진입이 차단됐다.
  • KAL機 괌추락 참사 1년­현지 추모행사 표정

    ◎不歸의 넋 위로… 위령제 준비 분주/오늘 유족 352명 참가 추모비 제막/사고뒤 심야노선 폐지… 관광객 격감 6일은 대한항공 801편이 괌에 추락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희생자 229명의 유족 대부분은 아직도 당시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괌 현지에서는 5일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린다. 유족들의 지난 1년과 보상 문제,지금까지 드러난 사고 원인과 문제점 등을 짚어본다. 대한항공기 괌 추락사고 1주기 추모위령제가 5일 상오 괌 현지에서 열린다. 추모식에서는 희생자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비 제막식도 갖는다. 추모비는 괌 한인회가 괌 주정부의 일부 지원을 받아 모두 19만달러를 들여 건립했다. 추모비에는 희생자와 부상자 명단,추모시,추모비 제작에 기부한 괌 한인회의 기부자 명단 등이 새겨졌다. 추모식은 추모사에 이어 기독교,불교,천주교식의 종교 행사와 함께 헌화 및 분향 순서로 진행된다. 이에 앞서 4일 하오 유족 352명과 건설교통부 관계자,대한항공 직원 등 승객 396명을 태운 대한항공 특별기가 괌 현지에 도착했다. 이들은 2박3일간의 행사를 마치고 6일 하오 서울로 돌아온다. 한편 지난해 8월6일 사고 이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대한항공측은 세계 70개 취약 공항을 집중 점검,이 가운데 심야에 도착하는 항공노선을 폐지했다. 괌의 아가나 공항을 비롯,중국 삼아(三亞) 공항,몽고 울란바토르 공항,튀니지 제르바 공항,마카오 공항 등 심야에 도착하는 5곳이다. 또 미국 연방항공국(FAA)의 기준에 따라 조종사들의 야간 비행에 따른 업무 부담도 대폭 줄였다. 대한항공은 또 현재 A­300,F­100 두 기종에만 적용하던 비행분석관리시스템(AIMS)을 연말까지 B­747을 비롯한 전 기종으로 확대,안전도를 높일 계획이다. 사고 항공기처럼 기령이 20년 이상된 항공기 12대의 매각도 추진중이다. 사고 이후 괌으로 떠나는 관광객도 크게 줄었다. 괌정부 관광청 한국사무소에 따르면 사고 전 한달 평균 1만5,000∼2만명에 달하던 여행객이 사고 이후 90% 이상 줄었다. 이에 따라 괌현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운영됐던 50여개의 여행사도 3∼4개로 줄어든 것으로알려졌다.
  • 삼성그룹(한국경제를 이끌어온 기업)

    ◎“위기는 기회” 삼성의 도전의식 뜨겁다 초유의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대그룹들마저 하루 아침에 공중 분해되는가 하면 미니그룹으로 속속 변신해가고 있다. 서울신문은 흥망의 부침속에서도 꿋꿋하게 생명력을 지키고 있는 기업을 찾아 재조명해보는 건국 50주년 특집 ‘한국경제를 이끌어 온 기업들’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초일류 만이 생존” 質경영 뿌리내려/“起亞 꼭 인수” 자동차산업 육성 집념 ‘정권은 유한하고 기업은 영원하다’ 믿든 믿지 않든 재계가 철칙삼아 간직해 온 명제다. 그러나 IMF사태로 이 대마불사론(大馬不死論)도 사라졌다. 재계 1위 삼성. 삼성도 문민정부까지만 해도 잘나갔다. 그렇다고 국민의 정부와 척진 사이는 물론 아니다. 삼성이라고 IMF한파가 비켜갈 리 없다. 계열사 대부분이 내수침체와 수출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작은 청와대로 불렸던 비서실이 구조조정 본부로 40년만에 간판을 바꿔달았고 문민정부때 특혜시비를 일으켜가며 진출했던 자동차도 IMF한파로 휘청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삼성맨들 사이에서는 옛 사가(社歌)가 유행이다. “고난과 시련속에 일어선 우리…” 삼성맨들은 시련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우리만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노하우와 기술은 무엇인가. 우리의 사업과 제품들 가운데 진정 세계 일류라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되나?” 李 회장이 삼성맨들에게 지금도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질(質)경영을 통한 초일류는 李 회장이 93년 신(新)경영을 출범시키며 삼성맨들에게 던진 화두(話頭)다. 초일류는 삼성경영의 알파요 오메가. 모든 것이 ‘초일류’에서 시작돼 ‘초일류’로 끝난다. 李 회장은 93년 6월 프랑크푸르트에서 계열사 사장단을 모아놓고 “나부터 변해야 산다”고 역설했다. 제2창업의 2기 경영을 구획정리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었다. “처자식만 빼고 다 바꿔보자. 고객의 요구에 혁신적으로 대응하고 사회 요구에 정직하게 책임지는 기업이 초일류기업이다. 앞으론 초일류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 95년 4월엔 북경발언으로 파문을 던지기도 했다. “기업은 2류,행정은 3류,정치는 4류…” 이 발언으로 李 회장이 마음고생을 했지만 李 회장은 이 말이 여전히 맞다고 생각한다. 지금 삼성에게 닥친 또 하나의 시련은 자동차. 삼성자동차 역시 IMF한파로 고전하고 있어 기아차 인수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도’아니면 ‘모’의 심정이다. “자동차 한대를 만드는 데는 2만여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자동차 산업은 철강 기계 전자산업 등과 밀접하게 연관된 조립산업이어서 산업간 파급효과가 크다. 자동차 사업진출을 두고 오랫동안 고심했다. 여론의 반대,막대한 투자 등…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 경제구조와 자동차 산업수준을 볼 때 누군가는 반드시 새로 참여해서 한차원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국가 장래를 위해 시작했던 자동차 사업이 세간에서 정경유착이니,개인적 취미에서 시작한 것이니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자동차 산업에 대해 많이 공부했고 경영진과 기술진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것이 결코 아니다”(李 회장의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삼성의 자동차에 대한 집념은 대단하다.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본관에는 “우리가 왜 자동차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집념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이 기아인수로 위기극복의 계기를 만들어낼 지 주목된다. ◎어떻게 일궈 왔나/밑돈 3만원 삼성상회가 종업원 17만명으로 성장 삼성의 모태(母胎)는 1938년 3월1일에 설립된 삼성상회(三星商會)다. 고(故) 李秉喆 선대회장이 마산에서 정미업과 운수업으로 쌓은 사업수완을 밑천으로 대구시 수동(현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열었다. 이 것이 오늘날 삼성그룹의 싹이다. 청과류와 건어물을 모아 만주와 북경 등지에 팔고 국수제조업(별표국수)으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李 회장은 48년 11월 활동무대를 서울로 옮겼다. 상호도 삼성물산공사로 바꿨다. 2년만에 면사수입 등으로 당시 서울의 유명 100사 중 9위에 오르는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그러다 6·25전쟁을 맞았다.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설립,전쟁의 와중에서도 생필품을 들여다 팔았다. 53년엔 제당(製糖)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년만에 설비를늘려야 했다. 54년엔 제일모직을 세웠다. 당시 양복지다운 양복지가 없어 ‘마카오 신사’라는 말이 유행했을 때. 영국제 양복 한벌 값이 봉급생활자 석달치 월급(6만환)이던 데 비해 제일모직은 1만2,000환에 팔았다. 삼성은 물산과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 3사를 주축으로 급속성장을 계속했다. 李秉喆 회장은 64년 ‘야심작’ 한국비료를 설립한다. 당시 세계 최대의 요소비료 공장(33만). 그러나 한비는 공정률 80%를 보이다 67년 10월에 국가에 헌납된다. 사카린원료로도 사용되는 비료생산원료(OTSA)가 유출됨으로써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비화됐던 것. 삼성은 당시 한비지분을 요구한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하나 어쨌든 이 사건으로 그룹이 존폐위기로 몰려 헌납해야 했다(삼성은 이후 94년 7월 한비공개입찰에 참여,한비를 인수한 뒤 삼성정밀화학으로 개명한다). 80년대 들어서는 첨단산업 투자를 서둘렀다. 반도체에 뛰어든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83년에 발표된 64KD램의 개발성공은 한국의 과학기술이 선진대열에 들어었음을 알린 쾌거였다. 李秉喆 회장은 한국경제사에 큰 발자국을 남기고 87년 11월 19일 타계했다. 88년 李健熙 회장 체제가 출범했다. 94년 세계 최초로 256MD램 반도체 칩을 개발한 데 이어 96년에는 또 다시 세계 최초로 1기가 D램을 개발했다. 순풍에 돛을 단 삼성전자는 95년 2조5,054억원라는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다. 삼성은 지금 매출·자산 80조에 61개 계열사,16만7,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재계 1위그룹으로 서 있다. ◎인재 제일주의/학력 철폐… 능력주의 지향/첨단시대 개성·창조 강조 한솔 신세계 제일제당 등 위성그룹들을 독립시키고도 부동(不動)의 1위를 지키는 삼성의 저력은 어디서 나올까. 무엇보다 창업자인 ‘거상 李秉喆’의 족적이 워낙 크다 하겠다. 비서실을 통한 특유의 공세적 경영이나 ‘품질은 타협이나 양보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철저한 질(質)경영도 한몫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의 삼성이 있기까지는 인재 제일주의가 있었다. 일찍이 최고 경영자가 인재중용에 눈을 떠 삼성은 57년 국내 그룹으로는 처음 신입사원을 공채했다. 宋世昌 전 삼성항공 사장 등 27명이 그들이다. 신입사원들은 입사 1년간 부서배치를 받지 않고 몸으로 때우는 일부터 배웠다. 호텔같으면 주차관리,에버랜드라면 공원 대청소가 신입사원 몫이었다. 李健熙 회장 체제에서는 학력까지 철폐하는 철저한 능력주의를 고집했다. 치밀하고 밀도높은 교육때문에 ‘인재조련’에 비유됐다. “개성시대,창조시대에는 끼있고 개성이 강한 사람의 신바람과 기를 살려야 한다” 삼성이 겨냥하는 인재는 컴퓨터업계의 빌 게이츠나 영화계의 스필버그,패션계의 베르사체와 같은 이른바 골드컬러(Gold Color). 첨단·정보시대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화이트(White)컬러도,블루(Blue)컬러도 아닌 골드컬러에 달렸다는 게 李 회장의 지론이다. 신(新)인재 상은 박세리에게서 입증됐다. 골프에 대한 李 회장의 각별한 애정 탓도 있지만 삼성은 박세리라는 싹을 찾아내 ‘초일류 벤처기업’으로 키워냈다. 인재를 보는 안목과 초일류를 키워낼 수 있는 노하우의 합작품이었던 것이다. ◎계열사 및 생산제품 ▷전자소그룹◁ ▲삼성전자­반도체, 가전제품, 기타전자제품 ▲삼성전관­LCD, 디스플레이 ▲삼성전기­전자품목 ▲삼성코닝­TV 및 모니터 브라운관용 유리, LCD유리 ▲삼성SDS­시스템통합, 정보통신 ▲한국휴렛팩커드­컴퓨터, 컴퓨터 주변기기 ▲삼성 GE의료기기­MRI, CT, 기타 의료기기 ▷기계소그룹◁ ▲삼성중공업­기계, 조선플랜트, 중장비, 건설 ▲삼성항공­항공기, 카메라 ▲삼성시계­시계 ▷화학소그룹◁ ▲삼성종합화학­에틸렌, 플로틸렌, 부타디엔, 복합수지 ▲삼성정밀화학­메틸아민, DMF, 말로네이트, 화공기기, 환경설비 ▲삼성BP화학­초산, 비닐초산 ▲삼성석유화학­PTA ▷금융소그룹◁ ▲삼성생명­그린행복연금보험, 홈닥터플러스보험, 슈퍼무지개보험, 허니문설계보험 ▲삼성화재­화재보험, 해상보험, 자동차보험, 상해보험, 연금보험, 해외여행자보험 ▲삼성카드­일시불/할부/현금서비스, 카드론(대출), 할부금융, 통신판매, 보험 ▲삼성증권­주식/채권 매매, 증권저축, BMF, RP, CD, 수익증권 ▷자동차소그룹◁ ▲삼성자동차­자동차 생산 및 판매 ▲삼성상용차­상용차 ▷독립회사군◁ ▲삼성물산­무역, 건설, 자동차 판매, 유통, 의류 생산/판매 ▲제일모직­소모사, 방모사, 울, 소보복지, 방모복지, 카펫, 여성/남성의류 ▲삼성에버랜드­리조트개발/운영, 골프장, 운영사업, 빌딩관리, 컨설팅/에너지사업, 식음사업 ▲삼성엔지니어링­석유화학 플랜트, 정유/가스플랜트, 산업공장/환경오염 등의 엔지니어링 ▲신라호텔­서비스, 컨설팅, 레포츠 사업 ▲중앙일보­일간지, 출판 ▲제일기획­광고기획, 제작, 조사, 마케팅, SP, PR, 디스플레이 이벤트, CI ▲에스원­로컬 경비시스템 및 전자 경비 시스템, 감시 시스템 ▲삼성영상사업단­영상, 영화 ▲삼성의료원­서울병원, 강북병원, 마산병원, 생명과학연구소 ▲삼성문화재단­호암미술관, 호암갤러리, 삼성미술관, 삼성어린이 박물관 ▲삼성복지재단­효행상, 어린이집 건립운영, 소년소녀 가장 돕기 ▲삼성경제연구소­연구, 교육 ▲삼성종합기술원­정보처리, 첨단기술개발 ▲삼성라이온즈­프로야구▷기타 유관 기관◁ ▲인력개발원­연수, 교육 ▲삼성경영기술대학­기술교육 ▲삼성패션연구소­패션 디자인 여구 ▲IDS­디자인 교육, 연구 ▲호암재단­호암상, 청년논문상
  • 지리산 구조헬기 추락/기장 등 5명 중상

    3일 상오 10시30분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외곡마을 앞 논에서 인명구조 활동을 벌이다 부상한 소방대원을 서울로 이송하기 위해 지리산 상공을 비행하던 서울항공 내셔날 소속 BK­117B 헬기(기장 閔병호·40)가 추락했다. 이 사고로 헬기에 타고 있던 기장 閔씨와 부기장 金상모씨(41),정비사 金선덕씨(43),소방장 孫대협씨(32),소방교 安광우씨(30) 등 5명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중이다. 주민 徐재덕씨(35)는 “논에서 일을 하고 있던 중 헬기가 저공으로 비행하다 갑자기 중심을 잃고 추락하면서 논두렁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소방장 孫씨는 헬기에서 빠져나온 직후 “기장으로부터 헬기에 문제가 생겨 불시착하니 기체를 꼭 붙잡으라는 지시를 받고 좌석을 꽉 붙잡았으나 저공비행을 계속하다 결국 논두렁에 추락했다”고 말했다.
  • 金正吉 행자부장관 고향 간 까닭은

    ◎‘PK 푸대접론’ 오해 풀고 대통령 방문 앞둔 정지작업 金正吉 행정자치부 장관이 3일 동안의 PK(부산·경남·울산)지역 순방을 마치고 31일 서울로 돌아왔다. 金장관은 사회 및 치안,그리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긴밀한 협력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으로서 강도높은 일정을 소화했다.첫 순방지인 울산에서는 29일 상공회의소를 찾아 현대자동차의 정리해고 방침에 따른 노사갈등의 실상을 파악했다.부산으로 자리를 옮긴 30일에는 해운대 여름경찰서의 근무 상황을 점검했다.31일에는 부산진시장을 찾아 재래시장의 소방시설을 확인하는 한편 시장상인들로 부터 경기와 물가동향을 직접 들었다. 또 沈完求 울산시장과 安相英 부산시장,金爀珪 경남지사를 비롯해 각 지역의 기관 및 단체장들을 차례로 만나 지역현황과 건의를 들은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金장관의 이번 PK지역 순방은 그가 이 지역 출신으로는 현정부의 유일한 각료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던 것도 사실이다.실제로 金장관의 참모들은 이번 순방이 8월 초순으로 예정된 金大中 대통령의 이지역 방문을 앞두고 민심을 추스리고,지역정서를 파악해 청와대에 전달하는 정지 작업의 성격이 있다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이를 반영하듯 金장관은 경제상황이 전국에서 최악을 달리는 데다 정부로부터 홀대받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부산에서 구미­포항­울산­부산­창원­거제를 잇는 ‘동남산업벨트’구상을 밝히는 등 지역균형개발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알리는 데 전력투구했다. 신호공단과 가덕도 신항만 건설현장,컨테이너 부두공단을 방문한 것도 정부가 지원을 계속할 것임을 행동으로 보여준 대목이다.사장에서 평기자까지 지역언론인들과 잇따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는 “IMF긴축예산으로 광주에가도 예산문제로 불평을 하는 상황에서 ‘부산죽이기’니 ‘부산홀대’니 하는 것은 오해”라며 설득하기도 했다. 한편 金장관은 이번 순방에서 3일 동안 줄곳 수행원들과 함께 미니버스를 이용함으로서 지방순시 문화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 신창원 또 놓친 경찰(사설)

    탈옥 무기수 申昌源이 또 경찰을 따돌리고 달아났다.지난해 1월 부산교도소를 탈옥한 이후 다섯 번째다.이번에도 경찰의 잘못이 크다.검문한 경찰관 2명은 기본적인 검문·검색 수칙도 지키지 않았으며 각각 유도와 태권도 유단자이면서 오히려 범인에게 총까지 빼앗길 뻔하다 통사정을 하고서야 돌려받았다. 이들은 또 문책이 두려워 본서에 늦게 신고, 출동을 지연시켰으며 관할 수서경찰서는 사건 발생시간도 늑장출동에 대한 비난과 질책을 피하기 위해 30분이나 늦춰 발표했다.이에 앞서 시민의 신고로 출동명령을 받고 나간 서초경찰서 경찰관들은 신고한 시민에게 전화를 걸어 현장을 재차 확인하고도 관할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냥 철수했다.결국 경찰의 총체적인 무능력과 무책임으로 인해 다 잡은 것이나 다름없는 범인을 놓치고 말았다. 이렇게 경찰이 무기력하면 국민은 불안하다.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가뜩이나 각종 범죄가 크게 늘어나 항상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국민들의 실망은 크다.이런 경찰에게 과연 마음놓고 치안을 맡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관할다툼,늑장출동은 벌써 몇번째인가.최초 검문에서 도난차량임을 알았으면 즉각 비상조치를 취했어야지 범인의 거짓말에 속아 돈가방을 든 범인을 따라가 얻어맞고 물어뜯긴단 말인가.총은 언제 사용하려고 차고 다니다 빼앗길 뻔하는 수모를 당하는가. 그리고 申昌源이 누구인가. 지난 1년6개월 동안 그토록 경찰을 농락하며 6개 지방경찰청에 차려진 전담 수사반을 피해 나간 장본인이 아닌가.아무리 변장술이 능하다 하더라도 순찰경찰관이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도 문제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치안에도 큰 구멍이 나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가 남긴 운전면허증이나 현금,수표 등은 지난 5월 20일 서울 강남의 가정집 두 곳에서 훔친 것이거나 수도권 일대 은행에서 발행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이는 최소 두 달 전쯤 서울로 잠입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다.또 지난 9일 서울 양재 지하철역 금연구역 흡연으로,지난 5월 4일에는 대구 달성에서 훔친 차를 몰고 다니다 각각 적발돼 범칙금 통지서까지 받았으나 역시 훔친 면허증을 제시하고 유유히 빠져나간 사실도 확인됐다. 경찰의 수사망을 비웃듯 전국을 제집 드나들듯 하며 다닌 것이다. 그의 도주로를 따라 그동안 징계를 받은 경찰관은 경기경찰청장을 비롯,22명에 이른다.아무리 징계를 해도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경찰은 분명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근본적인 의식개혁과 체질개선이 없고는 힘들다.직무교육도 다시 실시해야 할 것 같다.특단의 조치가 요구된다.
  • 농가서 밥 훔쳐 먹으며 새우잠/노트로 본 도피 행각

    ◎경찰과 격투중 부러진 팔 스스로 맞추기도 申昌源이 버리고 간 가방속에서는 탈옥 동기와 도피생활,심경 등을 적은 대학노트 25장 분량의 글이 발견됐다.이 글은 申이 도피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써 둔 것으로 보인다. 申은 교도소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탈옥을 결심했다고 적고 있다.글에 따르면 申은 탈옥을 5년 동안 계획했다.교도소의 허점을 찾느라 5년을 보냈고 쇠창살 2개를 절단하는데 2개월이 걸렸다.감방의 환풍기 문을 빠져 나가기 위해 체중을 빼느라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申은 탈옥한 뒤 택시를 타고 서울로 갔다가 다시 천안으로 내려가 숨어 다녔다.사흘을 산에서 보내기도 했다.경찰에 발각돼 격투하다 다친 뒤에는 병원에도 가지 않고 부러진 팔을 스스로 맞추어 깁스를 하기도 했다.또 농가에서 밥을 훔쳐 먹거나 비스킷 하나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김제에서는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고 라면만 먹고 살았다. 여성들과의 동거생활도 상세히 써 놓았다.돈을 훔쳐 생활한 사실도 밝혔다. 자신이 알고 있는 교도소 비리와 가혹행위에 관한 부분도 상세히 써 놓았다.자신을 가혹하게 대한 교도관에게 복수를 시도하려 한 적도 있다고 쓰고 있다. 申은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고 써 누군가 申을 숨겨 주거나 비호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申은 이와 함께 칼을 들었다면 경찰이 10명이라도 처치할 수 있다고 조롱하듯 적고 있다.“웬만한 격투기 선수하고도 싸워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도 했다.申은 “절대 자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 서양화가 李大源(이세기의 인물탐구:175)

    ◎빛을 데생하는 화단의 신사/때묻지 않고 따뜻한 성품 작품에 그대로/화폭마다 생명력 약동 축제분위기 넘실/‘물방울처럼 영롱한 화경’… 독자 영역 이룩 만약 벚꽃이 만개한 눈부신 봄날에 함박눈처럼 떨어지는 꽃잎을 본 사람이라면 서양화단의 원로 李大源 화백의 그림을 아는 사람이다. 그의 쏘는듯한 붓길은 비로드에 싸인 보석더미와 그 보자기를 펼치는 순간의 차갑고도 투명한 광채(光彩)의 이미지다. 겨울에는 오색 찬란한 꽃망울이 예감되고 무더운 장마에는 무지개빛 서광이 번뜩인다. 눈송이도 빗방울도 온통 색채의 의장(意匠)이 장식되어 못위에 내리는 빗줄기가 송곳처럼 수면에 꽂히는가하면 색채의 향연이 옥구슬처럼 농원에서 굴러다닌다. 광활한 공간에 만약 그의 그림이 한점만 걸려 있어도 그곳에는 생명의 결실과 축제의 분위기가 넘칠 것이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그림은 미술’ 임을 확고히 지켜나간다. 아무리봐도 지루하지 않고 아무리 봐도 행복감에 젖어 그림속에서 흘러나오는 탐미적 향기에 도취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초기의 여거도(與居島)등 섬이나 산그림을 보면 웅걸(雄傑)한 호방함과 분방함이 도사리지만 그림의 내면은 오늘의 별빛 미래를 산뜻하게 예고했다고 할수 있다. 예를 들어 야트막한 산야와 그 아래 펼쳐진 과수원풍경,수목에서 솟아나는 활기와 생동감은 하루의 아침과 저녁이 다르듯이 ‘늘 같은 것을 보아도 화가의 눈에는 항상 다르게 보인다’는 말대로 가장 신선한 그림을 탄생시킨다. 그가 그림을 통해 추구하려는 것은 자연의 일부를 화폭에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지니고 있는 생명의 가능성과 미묘한 조율(調律)을 변주로 뿜어내는 것이다. ○자연의 생동감 變奏 그러기 위해서 그때마다 떠오르는 영감과 감상에 의존하기보다 다시한번 새롭게 사물을 관찰하여 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관용으로 작가의 내면까지 화면에 담아낸다. 이른바 살아있는 힘으로서의 자연을 포착하기 위해 스스로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 연못에 이는 잔물결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자연은 무의미하게 멀리 서있는 부동의 풍경화가 아니라 햇빛에 찰랑거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살아숨쉬는 소우주로서 재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만큼 그의 붓길은 속도감과 운동감으로 쉴새없이 움직이고 짧은 사선과 직선과 곡선이 그때마다 의외성을 다양하게 표출해 낸다. 평론가 박래경은‘상식적이지 않은 시선과 범상치않은 구도설정은 단순하면서도 참신한 맛을 추가하여 추상화된 그림세계에 연결되고 있다’고 예언한바 있다. 예를들어 지난 60년에 그린 ‘담쟁이’는 불꺼진 창과 밋밋한 벽으로 기어오르는 메마른 덩굴에 머물고 있으나 그로부터 2년후인 62년에는 같은 벽으로 기어오르는 덩굴이라도 빨강과 황금색등 색채의 축연을 조직하는 것이 남다르다. 이른바 12계절이라해도 좋을만큼 시절따라 시간따라 환상적인 보랏빛이 발휘되고 같은 유형의 색깔이 변조되어 맨 마지막 단계에서 오리지널리티의 완결성과 정신적 탐구를 성취해낸다. ○59년 첫 개인전 열어 이경(二耕) 이대원, 가장 흔히 회자되기는 그는 화단의 신사요 멋쟁이다. 그의 그림세계에는 예술가들이 자칫 가질수 있는 퇴폐적인 낭만이나 고뇌나 파토스 대신 아파테이아의 초연(超然)이 깃들여 있다. 그와 경복고 동문에다 절친했던 고고학자 김원룡박사에 따르면 ‘말쑥한 성품으로 태어나서 평탄한 청춘시절을 보내고 만년소녀로 소문난 아름다운 미인의 내조를 받으며 정상의 예술가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의 총장을 거쳐 집에서는 딸들과 훌륭한 사위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과연 이대원은 팔자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여기에다 ‘항상 멋있는 옷을 입어 화단의 드레서로 소문나 있고 미식가애 주가에다 집과 학교와 파주농원에까지 화실이 세군데나 되어 화단의 귀족’ 같은 존재지만 그의 어느 일면에도 ‘속물취(俗物臭)’는 찾아볼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예술가적 면모는 어느장소에서나 시와 정취와 인간미를 잃지 않는다. 지성적 풍모에 단정한 매너로 인해 언뜻 보기엔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그와 사귄 사람들은 ‘볼수록 때묻지 않고 따뜻한 성품’ 에 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평소에는 화단의 김흥수 권옥연과 잘 어울리고 최기원과 이만익, 삼성문화재단의 손기상 상무와도 각별한 사이다. 경기도 문산에서 농림회사에다니면서 그 일대 꽤큰 과수원을 가지고 있던 一耕 李鍾林씨와 金善伊씨 사이에서 삼남중 막내. 파주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서울로 이사해서 청운공립보통학교에 다닐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중학교 3학년때 선전에 연속 입선, 경복고를 졸업할때까지 미술공부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던 부친이 미술학교만은 강경하게 반대하여 지금의 서울대인 경성제국대 법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림만을 그렸고 59년에 첫개인전, 한때는 우리나라 화랑의 효시로 기록되는 반도화랑을 운영한 적이 있다. 가족은 의사이던 부인 李鉉金 여사와의 사이에 딸 다섯, 63년간 살고 있는 유명한 혜화동집은 지난 89년 출간된 ‘혜화동 50년’의 바로 그 무대다. ○한때 반도화랑 운영 그의 미술역정은 파리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에 의하면 ‘출중하고도 예외적인 인물’로서 ‘이대원은 빛을 그린다기보다 빛을 데생하는 화가’란 말로 압축된다. ‘선과 점과 조직을 사용해서 그것으로부터 그의 붓은 그가 창출한 수많은 색채로 형태를그려내기’ 때문이다. 그의 엄청난 재능들은 레스타니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의 그림속에 있는 모든 것은 화사함과 고요함과 기쁨’에 틀림없다. 현대작가중에서 이러한 자연적인 교훈을 자신의 창작으로 성취한 사람은 별로 흔치않다. 물방울처럼 튀기는 영롱한 화경에서 그가 이룩한 이대원식 표현이란 바로 ‘이대원 자신의 화창한 인생의 음률’일 것이다. 거기에는 국경이 없으며 범우주적인 진솔한 정서와 삶의 즐거움만이 투영되어 날이 갈수록 싱싱하고 청청한 빛을 발한다. 사람을 반기는 그의 색채점묘화는 보는 이의 가슴에 루비나 사파이어같은 보석의 광채를 언제까지나 눈이 부시게 비춰주게 될것이다. ◎그의 길 ▲1921년 경기도 문산 출생 ▲1938­40년 선전 출품 ▲1945년 경성제대 법과졸업 ▲1959년 첫개인전(중앙공보관화랑) ▲1959­60년 국제자유미술전출품 ▲1962­68년 신상전·동인전출품 ▲1967­86년 홍대 미술대 교수·대학원장·학장·총장 ▲1971년 개인전(반도화랑) ▲1973년 한국근대미술 60년전·한국현역화가 100인전(국립현대미술관) ▲1975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위원 ▲1977년 개인전(현대·신세계) ▲1978년 중화민국 중화예술원 명예철학박사,영국국제하계미술전 출품 ▲1979년 뉴욕 한국화랑초대개인전 ▲1981년 회갑기념전, 성균관대 명예철학박사, 파리 살롱도톤느 출품 ▲1983·85년 현대화랑 개인전 ▲1986년부터 홍대 명예교수 ▲1987년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한국박물관회회장,개인전(강남현대) ▲1988년 부산개인전 ▲1988­91년 국제현대미술제 및 아시아국제미술전 출품 ▲1989년 개인전,대한민국예술원회원 1993년 대한민국 예술원회장 ▲1995년 ‘이대원 1990­95년’개인전(갤러리 현대) 국민훈장목련장(73년) 5·16민족상(88년) 대한민국예술원상(91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94년) 오지호미술상·대한민국금관문화훈장(95년) 역서 柳宗悅저 ‘한국과 그 예술’(74년)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96년) 화집 ‘이대원’(81년) ‘이대원,혜화동 50년’(89년)
  • 제주공항 개방 확대/모든 외국항공사에 중간기착 허용/9월부터

    오는 9월부터 외국 항공사의 제주 취항이 전면 허용된다. 서울에 취항하는 모든 외국 항공사는 제주를 중간 기착지로 활용할 수 있다. 건설교통부는 12일 제주지역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제주공항을 미국의 앵커리지공항이나 인도의 몰디브공항처럼 외국 항공사에 대폭 개방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에 취항하는 외국 항공사는 제주에 중간 기착한 뒤 서울로 운항할 수 있으며,일본 중국 홍콩 태국 싱가포르 러시아 등 제주 관광객이 많은 나라의 항공사는 원할 경우 제주 취항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지금까지 국가간의 항공협정에 따라 국제선 운항노선과 운항횟수를 제한해 왔으나 제주공항에 대해서는 이러한 협정에 관계없이 개방키로 했다. 건교부는 이번 조치로 현재 한·일 노선밖에 없는 제주공항의 국제노선이 다양화되면서 연간 제주행 외국인 관광객이 지난해의 2배 수준인 20만명으로 늘어 날 것으로 전망했다.
  • 아시아 新 공항 개항 초기부터/비틀 비틀

    ◎첨단시설 잦은 고장… 이착륙 5시간 지연/홍콩 수출입화물업무 옛공항으로 옮겨/말聯 정치문제 비화… 야 국정조사 요구 【홍콩 AFP 연합 특약】 아시아 대륙과 세계를 잇는 21세기의 항공 중계기지를 목표로 건설된 홍콩의 첵랍콕 국제공항이 개항초부터 시스템 고장과 운영체제 혼선 등 엄청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홍콩 공항 당국은 8일밤부터 항공화물 회사인 홍콩 항공터미널사의 본부를 당분간 옛 공항인 카이탁으로 옮겨 수출입 화물을 처리키로 했다.이에 앞서 공항 당국은 상업 운항 이틀만인 7일 첵랍콕 신공항에서의 화물 운송처리를 금지시켰다. 이에 따라 홍콩에서 수출되는 화물은 카이탁에서 절차를 마친 후 화물트럭으로 첵랍콕의 화물기로 수송된다.반면 첵랍콕에 도착한 화물기에 실린 화물들은 카이탁으로 옮겨져 최종 목적지로 이동된다. 대한항공 홍콩 본부는 8일 밤부터 항공화물을 카이탁에서 처리키고 했다고 밝히고 앞으로 홍콩을 오가는 회물수송을 위해 홍콩에 인접한 션전공항 이용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당분간 여객기에는 화물을 싣지 않고 ▲부패하기 쉬운 화물 ▲활어 등 생물 ▲긴급한 의약품 등만 운송해 주기로 했다. 첵랍콕 공항은 지난 6일 상업 운항 첫날부터 여객기들의 이·착륙이 예정보다 길게는 5시간까지 지연되고,승객들이 수화물을 찾는 데 어려음을 겪는 등 시스템 전반의 문제점을 노출했다.특히 6일 서울로 출발하려던 캐세이퍼시픽 CX416편은 출발이 지연돼 승객이 비행기 안에서 밤을 세웠다. 이처럼 첵랍콕 공항의 ‘첨단시설’이 잇따라 고장나면서 공항 당국의 운영체계마저 삐걱거리자 현지 언론들이 일제히 홍콩 당국을 비판하고 있다. 서방 항공사 관계자들은 홍콩 당국이 지난 1일 주권 귀속 1주년을 맞아 홍콩을 방문한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일정에 맞추느라 서둘러 개항식(2일)을 갖는 바람에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첵랍콕 공항보다 6일 앞서 개항한 말레이시아의 콸라룸푸르 신공항은 중앙컴퓨터 시스템의 잦은 고장 및 운영 미숙 등으로 승객들에게 큰 불편을 끼치고 있어 야당측이 국정조사와백서 발간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정치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 高銀·金周榮씨 오늘 방북/2주간 문화유적 답사

    시인 高銀씨와 소설가 金周榮씨가 4일 북한 문화유적 답사를 위해 북한을 방문한다. 高씨 등은 베이징을 거쳐 북한 전세기편으로 평양에 도착해 2주일간 북한에 머문 뒤 오는 18일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다. 지난 해 12월 북한 문화유적답사를 위해 북한을 방문했던 兪弘濬 영남대 교수도 동행한다.
  • 金 대통령,崔珏圭 지사 배려 눈길/軍부대 방문길 동행

    ◎강릉재선 ‘여권의 무소속후보’ 인식 심기/귀경길엔 승용차 함께타고 ‘깊숙한 대화’ 金大中 대통령이 24일 강원지역 군부대를 방문하면서 崔珏圭 강원도지사를 만났다. 예정에 없던 李康來 정무수석도 대동했다. 대통령이 지사를 만나는 일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만남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崔지사가 다음 달 무소속으로 강릉을 보선에 출마하기 때문이다. 강릉을 보선의 한나라당 후보는 趙淳 총재이며,국민회의·자민련은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합의한 지역이다. 金대통령의 崔지사에 대한 배려는 한마디로 崔지사가 범여권 무소속 후보임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金대통령은 출발에 앞서 李수석을 따로 불러 5분 동안 얘기를 나눴고,수행원 버스안에서는 崔지사와 李수석이 나란히 앉아 대화를 주고 받았다. 李수석은 “보선 준비상황을 물었을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으나,이후의 궤적은 ‘심증’을 굳히기에 충분했다. 金대통령은 서울로 돌아오는 도중 崔지사를 승용차 옆좌석에 앉혔다. 원래 千容宅 국방장관의 자리였다. 金대통령은 “그동안 강원도를 위해 많은 일을 했으므로 이제는 경제전문가로 경제회생을 위한 큰 일 해야 할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동석한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崔지사는 “보선 전 국민회의에 입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으며,李수석도 이 말을 거들었다. 그러나 金대통령이 이날 崔지사에게 보인 ‘관심’과 崔지사 자신의 ‘행보’는 앞날을 예고하는 듯 했다.
  • 앵벌이 3형제가 갈곳은…/李志運 기자·사회팀(현장)

    18일 이른 아침 郭모군 형제(18·16)와 金모군(15)이 한 친척의 손에 이끌려 서울 마포경찰서를 나섰다.지난 3개월 동안의 ‘앵벌이’ 생활에 대해 진술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들은 이복 형제다.지난해 초 아버지와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맺어진 형과 동생이다.아버지의 실직과 함께 가정불화가 깊어지자 지난해 12월 서울로 상경,월 50만원을 주는 한 구두제조 공장에서 일을 했다. 지난 3월 유혹의 손길이 뻗쳐왔다. 공장 동료가 앵벌이꾼 崔成必씨(25)와 함께 찾아와 한달에 100만∼150만원을 벌 수 있다고 꾀었다. 앵벌이 생활은 혹독했다. 2평 남짓한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한 주택의 옥탑방에서 7∼8명이 모여 ‘칼 잠’을 잤다.물도 잘 나오지 않아 제대로 씻어본 기억이 없다. 상오 8시부터 시작되는 하루.간단히 아침을 먹고 양말과 치솔세트를 들고 시내를 돌아다닌다.하지만 양말 3켤레와 치솔 4개들이 한 세트를 1만원에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많이 팔아야 하루 4∼6세트 정도였다. 점심은 먹어본 적이 없다.한창 먹을 나이,식당 앞을 지날 때마다 수없이 호주머니 속의 물건 판 돈을 만지작거렸지만 崔씨의 얼굴을 떠올리곤 근처 건물의 화장실로 가 수도꼭지를 빨았다.숙소로 돌아가 崔씨에게 당할 일도 두려웠지만 벌로 저녁을 굶어야 하는 것이 훨씬 겁이 났다. 큰 형 郭군(18)은 앵벌이 생활을 고통스러워하는 동생들에게 “돈을 받으면 도망치자”고 말했지만 돈을 받아본 적이 없다.‘99년까지 함께 일을 하지 않으면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쓴 것도 순진한 이들에게는 부담이었다. 3형제는 지난 17일 밤 주민의 제보를 받은 경찰의 급습으로 앵벌이 생활에서 해방됐다.그러나 경찰서를 나선 뒤에는 직업 없이 놀고 있는 친척집에 머물기가 미안했는지 “옷을 찾으러 가겠다”며 따로 버스에서 내려 어디론가 가버렸다.한 경찰관이 뒤늦게 소식을 전해듣고 수소문했지만 끝내 연락이 되지 않았다.
  • 鄭周永 회장 訪北­외국언론 반응

    ◎美­새정부 출범후 첫 南北화해 조짐/日­양측의 교류촉진 계기 여부 주목 ▷미국◁ 【워싱턴 연합】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500마리를 몰고 북한을 방문하는데 큰 관심을 보인 미국 언론들은 방북의 성사가 金大中 대통령 정부 출범 이후 남북한 화해 조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15일 보도했다. CNN을 비롯한 미국 방송들은 “북한지역 출신으로 현대그룹을 일궈낸 鄭회장이 소떼를 싣고 고향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보도하고 “북한도 鄭회장의 판문점 통과를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특히 鄭회장의 방북이 남북한 교류·협력을 촉진한다는 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화해조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워싱턴 포스트도 이 기사를 크게 취급하고 “17세에 고향을 떠나 사업가로 성공한 鄭씨의 소떼몰이 방북은 지난 수십년동안 전쟁과 총격전,도끼만행 등으로 얼룩진 비무장지대(DMZ)의 긴장을 완화하는 상징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도쿄 연합】 일본의 언론들은 鄭周永 현대그룹명예회장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전하고 한국민들은 소가 남북을 잇는 인연이 되기를 크게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도(共同)통신은 “강원도 통천 출신 鄭씨가 소 기증을 생각하게 된 것은 부친의 소 판돈을 가지고 서울로 가출했던 경험 때문”이라고 전하고 “한국 매스컴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에 농경용 소를 기증,정을 확인하려는 생각에 감동,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사히(朝日)와 요미우리(讀賣)산케이(産經)등 주요 신문들도 주로 1면에 사진과 함께 “북측이 남측과의 교류에 적극적으로 돌아서는 것을 보여줄 것인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며 주요기사로 전했다. 아사히는 특히 “남북 합의하에서 민간 기업인이 판문점을 통과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소가 가는 것처럼 이산가족도 왕래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는 청와대 성명을 소개했다.
  • ‘아침이슬’ 양희은(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

    ◎“나는 가수일뿐… 결코 운동권 못돼”/암울한 독재정권 아래 서정적 노래 통해 정신적 탈출구 제시 했을뿐/‘늙은 군인의 노래’ 부르고 78년 쓸쓸히 노래판 떠나 70년대 청년문화를 주도했던 ‘아침이슬’의 통기타 가수 楊姬銀씨.독재정권의 잇단 금지곡 딱지로 70년대를 ‘금지인생’으로 살아야 했던 그가 이제 아픈 세월을 딛고 우리 앞에 다시 우뚝섰다.세월은 흘렀지만 그때 그 시절 그 노래들은 어두운 시절의 기억과 함께 더욱 강한 행명력으로 살아난다. “긴 밤 지새우고/풀잎마다 맺힌/진주보다 더 고운/아침이슬처럼/내 맘에설움이/알알이 맺힐때/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1994년 8월,무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리던 한 여름밤.서울 동숭동 음악전문 공연장 ‘라이브’­.20년의 시공을 초월한 ‘청년가수’ 楊姬銀(46)의 열창에 공연장을 가득 메운 30∼40대의 관객들은 70년대 어두운 기억의 편린들을 떠올리며 숙연한 분위기에 빠져 들었다.가수생활 23년을 결산하는 첫 개인무대였던 이 자리에서는 ‘아침이슬’ 등 70년대의사연 많은 시대곡들이 이어졌다.시간이 흐를수록 관객들의 침묵은 한계에 달했고,급기야는 모두 목이 터져라고 함께 불렀다. 71년 서강대 사학과 1년 재학중 ‘아침이슬’로 데뷔한 뒤 70년대 청년문화의 대명사로 자리매김돼 온 통기타 가수 양희은.가난했던 어린시절과 사랑의 상처,연속되는 금지곡 행진,한창 나이의 투병생활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독재정권의 서슬퍼런 압제의 칼날 아래서 젊은이들에게 노래를 통해 정신적인 탈출구를 제시했던 그녀는 한때는 ‘운동권 가수’로 인식되기도 했다.그러나 楊씨는 자신이 결코 운동권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암울한 시절 시대상황이 노래까지 어둡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지금은 가정주부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매일 하오 2∼4시 SBS 라디오방송(2시의 친구 楊姬銀입니다) 진행도 맡고 있고 연말로 예정된 콘서트 준비를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그러나 문득 문득 떠오르는 20대의 아팠던 추억,즉 자신이 불렀던 노래들이 금지곡으로 묶여야만 했던 힘겨운 70년대를 결코 지울 수가 없다.양씨의 ‘금지 인생’은 그 유명한 ‘아침이슬’로부터 시작됐다.金敏基씨가 작사·작곡한 곡을 받아 71년 발표,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노래가 같은 타이틀의 앨범에 수록된 ‘엄마 엄마’‘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그날’과 함께 74년 어느날 느닷없이 방송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72년 새음반 ‘서울로 가는 길’에 실린 ‘작은 연못’‘백구’‘서울로 가는 길’‘새벽길’ 등 10곡도 이때 모두 금지곡 딱지를 받았다.그 외에도 78년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늙은 군인의 노래’ 등 부른 노래중 금지곡만 30여곡에 이른다. 이 노래들이 해금된 것은 지난 84년.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레퍼터리들이지만 오히려 이 노래들에 실린 무게는 더해만 갔다.대학생들의 시위현장에서,소외된 노동현장에서,젊은이들의 술자리에서….노래를 방송이 원천봉쇄하면 음반도 막히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은 이들 금지곡들을 용케 찾아서 불렀다. 楊씨는 당시의 상황을 돌이켜 이렇게 말한다. “한마디로 우스꽝스런 해프닝의 연속이지요.‘가사퇴폐’‘시의부적합’‘허무주의 조장’이란 명분인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늙은 군인의 노래’만 하더라도 국방부장관이 금지를 명령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느냐는 꼬투리를 잡아 금지곡 판정을 당했을 정도니까요” 노래가 금지곡으로 묶이고 나니 가수의 생활도 곤궁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요주의 인물’로 낙인받은 뒤 본격적으로 도청에 시달렸고 하루 종일 따라붙는 감시의 눈도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아침이슬 발표 후부터 계속해온 방송도 순탄치만은 않았다.방송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정보부 요원들에게 잡혀 빵집에서 추궁받던 일은 지금도 진저리가 쳐진다고 회고했다.그중에서도 가장 견딜 수 없던 일은 71년부터 계속 맡아오던 방송활동의 중단이었다. “77년 당시 6년째 기독교방송 음악프로 ‘우리들’을 진행하고 있었어요.요원들이 항상 뒤따르던 시절이지요.어느날 느닷없이 사장으로부터 ‘당분간 쉬라’‘네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을땐 눈물이 핑 돌더군요”.그때부터 방송출연 교섭이 뚝 끊겼다.결정적으로 노래판을 떠나게 된 것은 78년 MBC TV ‘토토즐 사건’이었다.어렵게 출연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프로그램에서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렀다. “‘늙은 군인의 노래’는 평생을 군에서 복무하다 전역한 한 직업군인의 나라사랑을 순수하게 담은 노래였는데 국방부장관이 ‘군 사기 저하’를 이유로 봉쇄하더군요.레코드사 사장이 불려가고 전국 매장에 깔려있는 음반을 모두 수거해 파기시킨뒤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지요” 이후 83년 ‘하얀목련’이 나올 때까지 일체의 노래활동을 중단해야 했다.87년에는 결혼했고 남편과 함께 훌쩍 미국행을 결행,지난 93년 돌아올 때까지 드문드문 고국을 드나들며 서정성 짙은 맑은 노래를 모은 음반도 몇 집을 냈다.자신의 노래·방송 인생을 자전적으로 풀어낸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이라는 책도 펴냈다. 처음부터 줄곧 어떤 노래를 부르며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살아 왔다는 楊씨.그는 자신이 받았던 팬들로부터의 사랑을 되돌려주기 위해 다시 노래를시작했다고 말한다.“20대엔 밝은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철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노래는 슬픔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요즘 신세대들이 흔히 부르는 노래들은 나름대로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무언가 모자란 느낌입니다.노래는 서정성이 담겨야 합니다.70년대의 금지곡들도 저에겐 모두 서정이었지요”. ◎사연들/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냐고/퇴폐·허무·時宜 부적절 우스꽝스런 해프닝 연속/“네 잘못 아니다” 듣고 눈물/‘붉은태양’이 북측 인사라니… “태양은 묘지위에/붉게 떠오르고/한낮에 찌는 더위는/나의 시련일지라 /나이제 가노라/저 거친 광야에/서러움 모두 버리고/나 이제 가노라.” 이 노래에서 문제가 된 것은 ‘태양은 묘지위에/붉게 떠오르고’부분.붉은 태양이 북쪽의 인사를 암시한다는 억지해석이 금지곡으로 이어졌다.그러나 금지곡 이후 들불처럼 번져 지금까지도 애송되고 있는 걸작이다. “나 태어나/이 강산에/군인이 되어/꽃 피고/눈 내리길/어언 삼십년/무엇을 하였느냐/무엇을 바라느냐/나 죽어/이 강산에/묻히면 그만이지/아 다시 못올/흘러간 내 청춘/푸른옷에 실려간/꽃다운 이 내 청춘.” 평생을 군인으로 살다 전역하게 된 실제 인물의 순수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이 노래 는 금지곡으로 결정된뒤 대학가와 노동현장에서 개사돼 투쟁가로 변질된 대표적인 노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느냐는 이유아닌 이유로 금지됐다면 ‘작은 연못’은 당시 대립되는 두 세력들을 빗댔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사라진 노래들이다. “너의 침묵에/메마른 나의 입술/차가운 네 눈길에/얼어붙은 내발자욱/돌아서는 나에게/사랑한단 말 대신에/안녕 안녕 목메인 그한마디/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깊은 산 오솔길옆/자그마한 연못엔/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아무 것도 살지 않지만/먼 옛날 이 연못엔/예쁜 붕어 두마리/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깊은산 작은 연못…” 이들 역시 금지 이유와는 달리 서정적인 분위기가 농후하다.◎그의 길 ▲52년 서울 출생. ▲70년 경기여고 졸업. ▲71년 서강대 사학과 입학. ▲71년 ‘아침이슬’ 발표. ▲72년 앨범 ‘서울로 가는 길’ 발표. ▲74년 ‘아침이슬’‘서울로 가는 길’ 금지. ▲77년 기독교방송 음악프로 ‘우리들’ 진행 도중하차. ▲78년 MBC TV‘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출연뒤 ‘늙은 군인의 노래’금지. ▲84년 ‘하얀목련’으로 대한민국 가사대상 수상. ▲87년 결혼,도미. ▲93년 귀국. ▲94년 첫 개인 콘서트. ▲현재 SBS 라디오 ‘2시의 친구 양희은입니다’ 진행.
  • 6·4 지방선거­광역단체장 당선 일성

    전국 16개 시.도의 민선 자치단체장이 탄생했다.이번 선거는 金大中 정부출범 이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전국적인 선거이자 새 정부의 초반기 국정운영에 대한 사실상의 중간평가적 의미도 담고 있다.선거 결과는 ‘DJT공동정권’의 국정운영과 정계개편 등 향후 정국의 흐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당선이 확정된 시.도지사 후보들은 공약으로 내건 지역발전의 청사진을 임기동안 소신껏 추진하겠다고 입을 모았다.선거과정에서 빚어진 갈등과 반목을 화합으로 승화시키겠다고 다짐했다.당선 일성을 들어본다. ◎高建 서울시장 당선자/“조속히 경제살려 희망의 서울로” 국민회의 高建 서울시장 후보는 4일 밤 당선이 확실시 되자 여의도 국민회의 중앙당사를 찾아 기자회견을 갖고 “시민들의 지지·성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 “시민들의 깊은 마음을 헤아려 서울의 경제회생과 희망의 서울을 만드는데 정성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긴 원인을 분석하면. ▲서울시정이 복합적이어서 시민들이 전문행정가를선택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하나는 현안인 정국안정과 경제회생을 위해 시민들이 집권여당에 힘을 실어준 것 같다. ­행정의 초점은. ▲실업대책을 일용직 생산직 사무직 등 직업유형별로 처지에 맞는 일자리 창출에 노력할 것이다.행정경험을 살려 서울의 물·교통·시민안전 등 생활행정에 역점을 둘 생각이다.다음으로는 현재의 국난을 극복하고 개혁을 수행하기 위한 방편으로 행정서비스의 품질을 혁신시키려 한다.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도 과거 경험을 살려 잘 조정해나갈 것이다. ◎2002년 亞洲개입 성공 개최 ◇安相英 부산시장 당선자(한나라당)=한나라당의 승리이기 이전에 부산의미래를 걱정하는 시민의 위대한 승리이다. 무너지는 부산경제를 일으켜 세우라는 부산시민의 기대와 충고를 받아들여 지역경제 회복과 일자리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교통난 해소와 2002년 아시안게임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위대한 부산을 만들어 가겠다. ▲59 ▲서울대 토목공학과 ▲부산시장·해운 ◎실업문제 해결에 행정력 집중 ◇文熹甲 대구시장 당선자(한나라당)=대구 경제 회생을 위해 다시한번 최선을 다하겠다.지난 3년동안 벌여왔던 각종 사업을 차질없이 추진하고 비상실업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실업문제 해결에 행정력을 집중해 나가겠다.심각한 재정난 타개를 위해 올 하반기 외자도입을 재추진,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집중 투자하겠다. ▲60 ▲서울대 행정대학원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대구시장 ◎국제투자 자유도시 건설 ◇崔箕善 인천시장 당선자(자민련)=송도 신도시 건설 등 대형 사업들을 내실있게 마무리하고 시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에 노력하겠다.실업을 줄이기 위해 공공근로사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대우 본사의 송도 이전,국제투자 자유도시 건설 등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겠다.공약을 효율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시정 브리핑,시민 토론회,시정 여론조사를 하겠다. ▲53 ▲서울대법학과 ▲13대 국회의원·인천시장 ◎외자유치 지역경제 활성화 ◇高在維 광주시장 당선자(국민회의)=IMF시대의 조기 극복과 시정 발전을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겠다.조직개편 및 중복 부서의 통폐합 등 행정개혁과 감량화를 통해 광주를 경쟁력 있는 자치단체로 만들겠다.첨단과학 산업단지와 평동공단 등에 외국인 투자자를 적극 유치해 지역경제를 활성시키겠다.당정협의를 정례화 해 정부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하겠다. ▲60 ▲조선대 대학원 법학과 ▲광주지검 부이사관·광산구청장 ◎제2 행정수도 위상 확고히 ◇洪善基 대전시장 당선자(자민련)=선거결과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화합 의지는 당면한 경제위기의 극복과 제2의 도약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이번 선거는 초대 민선 자치시대의 끝맺음이 아니라 새로운 세기의 시작입니다.제2행정 수도로서의 자리매김 등 대전 중흥의 대장정에 나설 것입니다.과학산업단지 개발 등 50대 공약사업은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61 ▲중앙대 경제학과 ▲대전시장·충남도지사 ◎월드컵 전용 축구장 등 건립 ◇沈完求 울산시장 당선자(한나라당)=큰 울산 건설의 기초를 다진 지난 3년동안의 시정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임기안에 큰 울산 건설을 훌륭하게 마무리하겠다.우선 당면 과제인 울산의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의 지혜와 힘을 모으겠다.월드컵 전용축구장과 신항만 건설,울산대공원 조성 등 대규모 토목공사를 차질없이 추진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 ▲59 ▲성균관대 경제학과 ▲12·13대 국회의원,울산시장 ◎300억달러 외자유치 총력 ◇林昌烈 경기도지사 당선자(국민회의)=경제위기 극복의 견인차 역할은 물론 주민생활과 경제활동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등 경제살리기에힘을 쏟겠다.특히 수도권 발전법 및 경기북부개발법 등의 제정을 추진해 300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하겠다.국제적 마인드를 갖고 모든 공무원들이 경제 세일즈맨이 될수 있도록할 계획이며 행정서비스의 질을 높이는데도 역점을 두겠다. ▲54 ▲서울 상대 ▲통상산업부 장관·재정경제원 장관 ◎농·어·정 대책위 운영 ◇김진선 강원도지사 당선자(한나라당)=초대 통합지사가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겠다.99년에 열리는 국제관광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명실상부한 관광 강원이 되도록 도정을 이끌겠다.오는 2002년까지 중소기업자금을 1,000억원까지 확대해 영세기업과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겠다.9만여 농어민들에게 희망을 주기위해 농·어·정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소신껏 운영해나가겠다. ▲51 ▲동국대 행정학과 ▲강원도 행정부지사,강릉시장 ◎청주공황 활성화 방안 강구 ◇李元鐘 충북도지사 당선자(자민련)=지역경제 회생을 위해 학계와 행정계,산업계 등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로 ‘충북 경제포럼’을 구성,해결책을 마련하겠다.지역 현안인 청주광역권 쓰레기 매립장 건설과 오창과학산업단지조성,청주공항의 활성화 방안을 빠른 시일안에 강구하고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도 공론화하겠다.행정기구 개혁방안도 수립하겠다. ▲56 ▲성균관대 행정학과 ▲충북도지사·서울시장 ◎4년간 도정 새롭게 가꿔 ◇沈大平 충남도지사 당선자(자민련)=도민들의 지지와 성원에 감사드린다.이번 선거 결과는 현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21세기를 열고자 하는 200만 도민의 성숙한 민주역량의 승리다.지난 3년 동안 펼쳐온 민선자치 성과에 두터운 신뢰를 보내준 것이기도 하다.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앞으로 펼쳐질 4년간의 도정을 새롭게 가꾸겠다. ▲57 ▲서울대 경제학과 ▲대통령비서실 행정수석,충남도지사 ◎문화행정으로 삶의 질 높여 ◇柳鍾根 전북도지사 당선자(국민회의)=지속적인 외자유치로 외국기업을 많이 끌어들이고 수출을 증진시켜 잘 사는 전북을 만들겠다.중앙정부로부터더 많은 지원을 받도록 하겠다.도민이 행정에 참여하는 민주행정과 복지행정,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행정을 펴겠다.이번 선거 과정에서 내놓은 공약은 반드시 이행해 약속을 지키는 도지사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54 ▲뉴욕주립대 대학원 ▲뉴저지주립 럿거스대 교수,대통령 경제고문 ◎中企육성·환경보전에 전력 ◇許京萬 전남도지사 당선자(국민회의)=지난 3년 동안 중점 추진해온 사회간접시설 확충,농업경쟁력 강화,해양개발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멀지 않은 기간안에 달라진 전남의 모습을 보이겠다.중소기업 육성,지역경제 활성화,환경보전과 복지증진에도 힘쓰는 한편 IMF시대에도 도약하는 전남,희망과 풍요가 넘치는 전남 건설에 최선을 다하겠다. ▲60 ▲서울대 사법대학원 ▲전남지사·국회부의장 ◎위대한 경북건설에 혼신 ◇李義根 경북도지사 당선자(한나라당)=재선의 영광을 안겨주신 300만 도민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선거운동기간 동안 도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경북이 어디로 나가야 할 것인지 많은 조언을 들었다.앞으로 도민들의 뜻과 기대를 도정에 반영,위대한 경북 건설에 혼신의 힘을 바치겠다.선거로 흩어졌던 도민들의 역량을 한데 모아 지역발전을 이룩해 나가겠다. ▲59 ▲영남대경제학과 ▲청와대 행정수석,경북도지사 ◎실업자 보호·민생안전에 역점 ◇金爀珪 경남도지사 당선자(한나라당)=앞으로 해외에 나가서 외국자본과 외국기업 유치에 전력을 다할 생각이다.민선 1기가 25개 대형 사업을 중심으로 21세기 경남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만드는 실행준비 기간이었다면 민선 2기에는 이를 구체화하고 실행하겠다.새 임기의 전반기는 IMF에 따른 실업자 보호 및 민생안전에 역점을 두면서 세계 일류 경남건설에 온힘을 바치겠다. ▲58 ▲부산대 행정학과 ▲청와대 민정비서관,경남도지사 ◎20개 관광지구 차별화 추진 ◇禹瑾敏 제주도지사 당선자(국민회의)=제주교역의 운영방법을 개선하고 먹는 샘물 사업은 민간에 맡기겠다.감귤 생산조정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감귤 복합가공공장을 세우거나 최저 가격을 보장하는 등 감귤사업을 육성할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3개 관광단지와 20개 관광지구에 대한 차별화 전략을 세우고 외국인 관광투자지역을 지정해 외자유치가 쉽게 이뤄지도록 하겠다.여성지위 향상을 위해 여성특별위원회를 직할기구로 신설하겠다. ▲55 ▲경희대 행정대학원 ▲제주도지사·총무처 차관
  • 金惠子씨 訪北 재추진

    지난달 30일 북한을 방문하지 못한 탤런트 金惠子씨(57)가 빠르면 이번 주중 다시 방북을 추진할 것으로 31일 알려졌다. 金씨는 “베이징(北京)에서 비자 발급 절차에 차질이 있어 어제 서울로 돌아왔다”면서 “단순한 실무 착오로 지연된 것이기 때문에 일정이 조정되는대로 북한 비자를 받기 위해 조만간 베이징에 다시 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선명회측 관계자도 “방북 자체가 좌절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고 “빠른 시일 안에 베이징을 거쳐 북한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5월30일부터 6월2일까지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던 金씨는 당초 일정대로 북한을 방문하지 못하고 한국선명회 吳在植 회장 등 일행과 함께 30일 서울로 돌아왔다.
  • 항공기 8편 긴급 투입/건교부,교민 수송용으로

    인도네시아 현지 교민을 국내로 수송하기 위한 대한항공 특별기 8편이 긴급 투입됐다. 건설교통부와 대한항공은 인도네시아 소요사태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19일 정기편 B747(419석) 1대와 임시편 B747(384∼385석) 4대 등 모두 5대를 긴급 투입한 데 이어 20일 새벽에도 A300(258∼274석) 2대와 B747(258석) 1대 등 3대를 추가 배치했다.이들 항공기는 19일 하오와 20일 새벽에 각각 서울을 떠나 자카르타에서 교민을 태우고 20일 상오와 하오에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다.
  • 팽팽한 긴장… ‘제2 폭동’ 예고/印尼사태 이모저모

    ◎전직관료들 “개각보다 퇴진” 반기/언론도 반정부기사 잇달아 게재/삼성·SK 등 주재원 가족들 철수 시작 【자카르타 외신 종합】 인도네시아 소요사태는 15일을 고비로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나 이는 ‘폭풍전의 고요’일 뿐 수하르토의 퇴진을 둘러싼 대립은 여전히 내부적으로 팽팽한 긴장을 키워나가고 있다.따라서 인도네시아 사태는 결국 대규모 유혈충돌에 따른 ‘피플파워’의 승리나 또는 군부에 의한 ‘궁정쿠데타’의 둘중 하나로 끝날 것같다. ○…수하르토에 충성하던 전직 관료들에게서도 수하르토의 시대는 끝났다며 그의 하야를 촉구하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쿠즈마트마자 전 환경장관은 17일 “수하르토 대통령이 자신의 이익에만 집착,대통령직에 계속 머문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인도네시아의 문제는 바로 대통령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또 수브로토 전에너지장관은 “대통령은 개각을 얘기하고 있지만 개각으로는 충분치 않다.국민이 원하는 것은 새 각료가 아니라 ‘새대통령’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퇴역장성 15명 개혁 촉구 ○…인도네시아 군부 원로로 추앙받고 있는 케말 이드리스 육군중장을 비롯한 퇴역장성 15명도 수하르토를 퇴진시킨 후 후임 대통령을 선출키 위한 ‘국민자문위원회’ 비상회의 소집을 촉구.49년 독립 이후 군부를 이끌어온 이들은 학생들의 요구사항인 정치개혁 이행조처를 지지한다고 발표. ○…수하르토에 반대하는 기사를 싣는데 소극적이던 언론들도 최근엔 서슴없이 수하르토를 비난하는 기사들을 크게 다루고 있는데 이는 공개석상에서 수하르토를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간 국가원수 모독으로 체포·구금되던 과거의 양상에 비춰볼 때 상상도 할 수 없던 일. ○…인도네시아 민간 방송채널들은 자체 제작한 뉴스 대신 정부가 공급하는 뉴스만을 내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자카르타 포스트지가 17일 보도.이에 따라 인도네시아의 5개 민간방송 채널에서는 격렬한 폭력사태나 폭동에 관련한 뉴스들은 일체 자제한 채 사태수습과 함께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는 모습들만 전파를 타고 있다. ○공항 외국인들로 북새통 ○…수카르노­하타공항이 인도네시아를 빠져 나가려는 외국인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한국 교민들도 16일 밤 350여명이 대한항공편으로 서울로 떠난 데 이어 17일 하오 9시40분쯤 400여명이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삼성,SK,현대,한국석유개발공사,한국중공업 등 현지 진출 한국기업들도 20일 상오까지 직원 가족들을 먼저 귀국시킬 계획이며,상황 악화에 대비,잠정휴업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자카르타시 가토트 수브로토 지역에 있는 한국대사관 비상대책반에는 출국절차 등을 묻는 교민들의 전화가 폭주,인도네시아 사태에 대한 교민들의 불안감을 실감케 했다. ○일 자위대가 파견 준비 착수 ○…일본 정부는 인도네시아 사태와 관련,17일 인도네시아에 체재중인 일본인들에게 ‘퇴피(退避)권고령’을 내렸다. 일본 정부는 이와 함께 자위대수송기 파견을 위한 구체적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이날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외상은 방위청에 자위대 파견 준비를 의뢰했으며 방위청은 오부치 외상의 의뢰에 따라 C130 수송기 파견을 위한 부대편성 등 준비 작업에착수했다.
  • 5·18 부상 전신마비 장애 張周仁씨

    ◎‘폭도오명’ 씻는길 ‘국가유공 인정’뿐/총상 학생 부축중 계엄군 차에 치여/전재산 치료비로… 부인 막일로 생계/18년 고통의 세월 눈물속의 忍苦 “5·18 희생자를 ‘폭도’로 보는 주변의 시선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5·18 당시 계엄군의 트럭에 치여 끝내 일어서지 못하고 18년째 휠체어에 의지해 살고 있는 전신마비 장애인 張周仁씨(59)는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처음 맞는 5.18을 하루 앞둔 17일 새로운 감회보다는 지난 세월의 아픔을 다시 토해냈다. 지금도 살이 썩어가는 고통을 겪고 있는 張씨는 재산을 치료비로 모두 탕진한 뒤 배고파 우는 아이들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서울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던 張씨 부부에게 비극이 시작된 것은 80년 5월 23일. 張씨는 광주에 사는 누이동생을 만나러 갔다가 전남대 앞길에서 총에 맞고 쓰러진 한 대학생을 부축하다 계엄군의 트럭에 치였다.張씨는 조선대 병원에 1년 동안 입원할 수 있었지만 ‘폭도’로 몰리면서 병원비 지원마저 중단됐다. 강제 퇴원당한 張씨는서울로 옮겨져 4차례에 걸친 대수술 끝에 목숨은 건졌지만 전 재산을 병원비로 날리고 말았다. 생계가 막막해지자 부인 李英玉씨(51·관악구청 청소원)는 연탄배달 호떡장수 식당일 청소원 등 닥치는 대로 일해야만 했다.그나마 다행이라면 갖은 고생 끝에 네 딸 가운데 셋은 대학에,막내는 고등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는 정도다. 남편의 병수발은 물론 가계의 생계까지 도맡아온 李씨는 “그날의 상처 때문에 아직도 잠 못이루는 남편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張씨는 희생자들을 국가유공자로 인정,지난 세월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기를 간절하게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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