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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약돌] 朴相千의원 귀경길 경찰차 선도 ‘눈살’

    경찰이 귀향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던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박상천(朴相千)의원 일행 차량을 ‘자발적으로’선도해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귀경길에 오른 운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박의원 일행을 태운 포텐샤 등 차량 3대는 13일 오전 9시50분쯤 지역구인 전남 고흥읍을 출발한 후 국도 15호선인 점암면 3거리지점에이르러 길이 막히자 때마침 나타난 고흥경찰서 소속 경찰 순찰차량을앞세우고 이곳에서부터 동강면사무소 앞까지 10여㎞ 구간을 중앙선을넘어가며 질주해 귀경객들의 불만을 샀다. 박의원은 당초 여수공항을 출발,서울로 올라갈 예정이었으나 태풍으로 기상이 악화되자 경남 사천공항으로 옮겨 귀경길에 올랐다.박의원은 “당시 재해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급히 상경하던 중이었으며 경찰에 특별히 차량 선도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金容淳비서 이모저모

    지난 11일 고려항공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김용순(金容淳) 북한노동당 대남비서 일행은 13일까지 서울과 제주,포항,경주를 오가며한껏 조국의 ‘반쪽’을 살폈다.김비서 일행은 14일 다시 평양에서오는 고려항공편으로 북한에 돌아간다. ■포항·경주 방문 김비서 일행은 13일 포항과 경주를 잇따라 방문,포항제철을 시찰하고 신라 유적지를 관광했다.이날 오전 공군 CN-235기를 타고 전날 1박한 제주에서 대구로 이동한 김비서 일행은 곧바로승용차와 버스를 이용, 포항을 찾아 포항제철을 시찰했다.생산자동화와 컴퓨터를 이용한 생산체제 등에 특히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포철을 떠난 김비서 일행은 곧바로 경주 세계문화엑스포장과 불국사 등을 관광했다.불국사 이승타 주지스님의 안내로 경내에들어선 일행은 석가탑과 다보탑을 둘러본 뒤 사찰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이어 김비서 일행은 대구공항으로 이동,군용기편으로 밤 늦게 서울로 돌아왔다.이날 저녁 예정됐던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 초청만찬은 김비서 일행의 귀경이 악천후로늦어져 취소됐다. ■제주요담 김비서와 임동원(林東源) 대통령 특보는 12일 저녁 8시부터 제주 신라호텔에서 회동,남북관계 전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만찬을 곁들인 회동은 자정을 넘겨 5시간 가까이 진행됐다.국정원,통일부 관계자와 북측 대표단 6명이 참석했다.임특보와 김비서는 밤 10시40분부터 서훈 청와대 국장과 권호웅 노동당 중앙위 지도원만 배석시키고 단독요담을 갖기도 했다.13일 0시30분쯤 회동을 마친 두 사람의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임특보는 “14일쯤 남북현안에 대해 밝힐 것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 시기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했음을 시사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태풍영향 추석귀경길 ‘교통지옥’

    추석연휴 마지막날인 13일 태풍 ‘사오마이’의 영향으로 전국 대부분 지방에 비가 내리는 가운데 귀경 차량들이 주요 고속도로와 국도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극심한 체증을 빚었다.또 서울에서 추석연휴를보낸 뒤 지방으로 내려가는 ‘역귀경’차량들도 크게 늘어 고속도로상·하행선 모두 거북이걸음을 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이날 “귀성 차량은 사흘간 분산돼 비교적 소통이원활했으나 귀경길은 차량이 한꺼번에 몰린데다 비까지 내려 최악의교통지옥이 연출됐다”면서 “13일 하룻동안 32만대의 차량이 서울로돌아왔고 14일에도 29만대가 귀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서울을 빠져나간 차량도 13일 하룻동안 24만여대에 달했다.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는 옥천∼천안 82㎞,중부는 오창∼이천휴게소 66㎞,호남은 익산∼회덕 64㎞,영동은 양재∼마성 11㎞ 구간에서 13일 밤 늦게까지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이날 밤 10시 현재 부산∼서울 15시간,광주∼서울 17시간20분,대전∼서울 6시간30분이 걸렸다.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속도가 다소 회복됐으나 동틀무렵이 되면서 다시 답답한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일부귀경 차량들이 정체를 피해 국도로 우회하면서 수도권 일대 국도도차량으로 메워졌다. 김경운 이동미기자 kkwoon@
  • 金正日위원장 내년봄 답방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내년 봄 서울 답방이 추진된다. 남북한은 또 오는 27일부터 나흘간 제주도에서 열리는 3차 장관급회담 이전에 적십자회담,국방장관급 회담,경의선 복원 실무접촉,경협제도적 장치마련을 위한 실무접촉 등을 갖기로 합의했다.이에따라 이르면 이번주부터 경의선 복원실무 접촉 등 주춤하던 남북접촉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김용순(金容淳) 북한 노동당 비서 일행은 제주도를 방문중이던 지난12일 밤 임동원(林東源) 대통령특보(국정원장)와 신라호텔에서 만찬회동을 갖고 이같이 합의했다고 정부 고위당국자가 13일 밝혔다. 경의선 복원을 위한 실무접촉은 이르면 이번 주말,적십자회담은 19일쯤 금강산 개최가 유력시된다.국방장관급 회담도 25·26일쯤 홍콩등 제3국에서 개최될 것으로 전망된다. 13일 오전 제주도를 떠나 포항, 경주를 거쳐 서울로 돌아온 김용순비서는 14일 상오 청와대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예방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와 친서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청와대측은 김 비서와의 논의 결과를 정리,발표할 예정이다.김용순 비서는 청와대 예방을 끝으로 방문일정을 마치고 고려항공편으로 북한에 돌아간다. 앞서 김 비서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일행 7명과함께 11일 오전 10시 고려항공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 3박 4일의 방한일정을 시작했다. 북측 일행에는 박재경 인민군 총정치국 선전담당 부총국장,림동옥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권호웅 당중앙위 지도원,박성철 당중앙위과장,김광렬 당중앙위 지도원 등 군부와 당의 실세들이 포함됐다.그러나 박 부총국장 등 2명은 김정일 위원장이 남측 인사에게 선물하는송이버섯 전달식 직후 바로 평양으로 돌아갔다. 공동취재단 이석우기자 swlee@
  • 한가위 연휴 가족나들이 명소 5곳

    ‘예전의 그 고향이 아니야’한가위 같은 명절을 지내고 돌아온 이들의 입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푸념.사람살이가 날로 강퍅해져 고향 인심도 예전같지 않고 무엇보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변해버린 고향집과 그주변 풍광이 사람들의 가슴에 찬바람을 일게 한다.길이 뚫리고 산이잘리고 우리네 인정도 뚝뚝 잘라지는 것 같기만 한 것이다. 한가위 연휴,고향가는 길을 서두르거나 귀성길을 바삐 채비해 고향의 모습을 제대로 간직한 전통마을을 둘러보면 어떨까.평소 발품이나시간을 많이 들여야 찾을 수 있던 곳을 가볍게 찾아보자.아이들에겐좋은 교육이 될 것이고 가족들에겐 잃어버리고 헐거워졌던 정을 돈독히 할 수 있을 것이다.이쯤이면 ‘한가위만 같아라’는 우리네 덕담도 허튼 말은 안될 터. ●송천 떡마을 명절날 떡시루 옆에 괜스레 앉아 코묻은 손으로 밀가루 번을 떼었다 붙였다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강원도 양양읍에서서울로 오는 길은 세갈래.강릉으로 내려가 영동고속도로를 타거나 한계령을 넘는 길도 있지만 오색 못미쳐왼쪽 56번국도로 접어들어 구룡령을 넘는 방법도 있다.이 길에 접어들어 10여분 달리다보면 큰 길가에 좌판을 벌인 떡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길손들은 시장기나 속여볼 요량으로 한봉지 사들었다가 이내 마을로 들어서고 만다. 도시에서 맛보던 인절미 맛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맛에 매료되기 때문.예전에 굴피집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초가와 기와를 올렸지만 그래도 굴뚝의 까치구멍 등 옛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100년 가까이된 떡판에 직접 찹쌀을 빻은 가루를 쳐내 인절미를 만든다. 떡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소만 전체 30여가구 중 13가구가 넘는다.관광객들은 직접 떡메를 들고 떡을 쳐보기도 한다.소문난 떡집 (033)673-4316,민속떡집 673-8977여행자클럽 (02-2277-5155)에선 10일과 11일 1박2일 일정으로 정선아우라지와 송천마을을 돌아보는 여행상품(어른 9만,000원,어린이 7만5,000원)을 판매하고,옛돌(02-2266-1233)은 10일 하루 일정(4만원)을 마련한다. ●봉화 닭실마을 우리나라 오지의 몇 손가락안에 꼭 들어가는 경북봉화군.봉화읍 유곡리 닭실마을은 명절때면 할머니들의 즐거운 비명이 그득하다.전국 각지에서 옛날 비법대로 만든 한과를 주문하는 전화가 폭주하기 때문이다.부녀회관 (054)673-9541닭이 알을 품고 있는 듯한 금계포란형의 명당터로 알려진 닭실마을은 콧대높은 안동 권씨의 집성촌으로도 이름짜하다.150여가구 400여 주민 가운데 대다수가 권씨집안이다.300∼400년 된 종가집이 그대로 남아있고 반달 모양의 월문,종가집 옆에 세워진 청암정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중앙고속도로에서 영월로 진입한 뒤 88번 국도를 타고 단양쪽을 버리고 직진하면 곧 봉화에 이른다.청량리역에서 매일 오후11시 출발하는통일호가 춘양역(054-673-7788)까지 직접 연결된다. 우리여행사(02-335-7137)에선 10∼11일 닭실마을과 울진 월송정해변,백암온천을 돌아보는 여행상품을 9만5,000원에 판매한다. ●영덕 종가집마을 ‘소안동’으로 불릴 정도로 떵떵거리던 종가집들이 모여있는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고려때 칠보산 줄기에 학처럼 날개를 펼친 형국의 길지로 꼽혀 이태껏 인재의 출현이 심상치않았다.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과 삼은의 한사람인 목은 이색,나옹화상 등이 이 마을 출신이었다.명나라 신종황제의 친필현판을 걸어놓은 재령이씨 집안의 충효당과 사당 사암재,야성 정씨의 고택으로 평산 신씨집안이 사들인 만괴루,효자로 소문난 이시형의 우계종택,병조참의를지낸 김익중의 용암종택 등 각 씨족의 종가집만 해도 8채가 넘는다. 봉화에서 해안 드라이브코스로 이름높은 918번 지방도로를 타고 영해에 이른다.영해면사무소 (054)732-3003●아산 외암리 민속마을 아산시와 천안시 경계인 광덕산 밑에 자리한 외암리는 500년전에 이 마을에 정착한 예안 이씨 일가의 종가댁을비롯,86채의 고풍스런 옛집들이 포진해있다.이끼낀 돌담 너머로 엿보이는 감,살구,밤,은행나무 등이 살갑고 마을 입구의 장승은 물론 디딜,연자,물레방아 등과 많은 민속유물이 전시돼 있다.국가지정 민속자료 195호인 외암참판댁이 특히 유명하다. 천안을 거쳐 아산시에 이른 뒤 남쪽으로 난 39번 국도를 따라 34㎞를 남하한 뒤 송악외곽도로로 진입하면 된다.아산시청 문화관광과 (041)540-2542●서울 성락원 조선말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었던 것을의친왕 이강공이 별궁으로 사용하다 그 아들 이건공이 살았던 곳이다.면적 4,358평의 성락원은 자연 지형을 살려 건물을 배치,도심 속에서 청류를 즐길수 있다. 자연스레 구성된 수풀과 Y자형의 개울 그리고 인공적인 석가산이 절묘한 균형미를 이루고 있고 인공미가 가해진 자연연못,용벽지는 공간미의 극치를 보여준다.건물들 뒤의 후원과 같은 공간인 심원은 지붕을 뚫고 서 있는 노송이 눈길을 끈다.지붕에 나무 그늘이 지는 것을피해왔던 오랜 관습에 파격인 셈. 주변에 양잠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올렸던 선잠단지(先蠶壇址),만해 한용운이 만년을 지냈던 심우장(尋牛莊),우리나라 최초의사립박물관으로 다양한 국보급 문화재를 거느린 간송미술관,1세기전별장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이재준家,소설가 상허 이태준家가 있다.성북구청 관광정보센터 (02-920-3787)임병선기자 bsnim@
  • [지방 고시촌 르포] (5.끝)기타 중소도시

    정치 ·경제·문화 등 우리 사회 대부분의 분야가 서울로 집중되는속에서 공무원시험·고시 등을 준비하는 수험생도 마찬가지 문제로고민한다.수험생들은 대체로 서울의 활발한 수험문화를 동경한다.하지만 지방에서 자신의 수험 스타일을 개발하며 각종 고시에 대비하는수험생도 적지않다. 지방 수험가도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다.광주·대구·부산 등 대도시는 그나마 안정적인 고시 문화가 형성된 곳이다.하지만 대전·마산·울산·전주·인천 등 대부분의 중소 도시는 독자적인 수험가를 형성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따라서 인천·대전·춘천 등서울 생활권 도시의 수험생들은 서울에서 준비하는 것을 선호한다.이지방들의 학원가는 상대적으로 울상이다. 대전은 중구 은행동 중심으로 6∼7개 정도의 공무원·자격증 시험을준비하는 학원가가 형성돼 있지만 아직까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이는 인천 등지도 마찬가지. 대전 한빛고시학원 손영림(孫永林·40)원장은 “2시간 정도면 서울에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수험문화가 형성되지 못했다”면서 “수준 있는 강사진과 빠른 정보제공으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고있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학원 전문가들은 지방 대도시 중심으로 학원가가 확실히 뿌리내리면중소도시도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진단한다.대도시 강사와 수험정보 공유 등을 통해 활로를 모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중소도시학원 관계자들은 “수험생이나 학원측이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것이 현실”이라면서 “지방 대도시에서만 수험문화가 제대로 정착돼도 중소도시에서는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지방 수험생들의 이익과 편의를 돌보려는 자세다. 중소도시 중 그나마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마산 중앙고시학원 김원규(金元圭·41)원장은 “교원 임용고사나 자격증 시험 등 전문적인영역을 다룰 수 있는 학원가가 뿌리내리는 것이 학생들과 학원이 동시에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특히 각 시·도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개채용 등 지방의 훌륭한인력을 뽑으려는 성의있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이와 함께 ‘공무원 처우 개선 문제’ 역시 공무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의욕을 불어넣을 수 있는동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우리학원 명강사] 서울 남부행정고시 민법 조병욱씨

    “수험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을 가지고 신명을 바치는 거죠.강의의 비결도 그와 다름없습니다.” 서울 남부행정고시학원에서 감정평가사시험의 민법,부동산관련 법규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조병욱(曺秉旭·41)강사는 신들린 듯한 강의로 수강생들을 휘어잡기로 유명하다.조강사가 일단 강의를 시작하면어설픈 여담(餘談)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학생들 역시 두어시간동안 진행되는 그의 강의에 함께 빠져든다. 조강사는 지난 88년 부산에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다.그 곳에서 떨친명성에 힘입어 90년 서울로 스카우트돼 지금까지 감정평가사 시험의민법과 부동산관련 법규 과목에 관한 한 줄곧 정상을 지켜왔다. 그는 지난 90년 감정평가사 시험이 도입된 뒤 최고의 강사 자리를지키고 있다.하지만 자신은 감정평가사 자격증이나 박사학위를 갖지않고 있다.그래서 약간은 ‘찜찜함’이 남아 있다고 한다.하지만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조강사의 욕심일 뿐”이라면서 “그의 실력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입을 모은다. 감정평가사 1차 시험은 민법,부동산관계법규,경제학,회계학이고 2차시험은 감정평가 이론,감정평가 실무,감정평가 및 보상법규로 이뤄졌다.객관식인 1차 시험은 평균 60점 이상에 40점 과락과목이 없으면합격한다. 조강사는 “전략과목에서 평균을 끌어올리고 자신없는 과목은 과락만 면한다는 전략을 세우면 1차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귀띔했다.하지만 그는 “2차 시험은 요령보다는 실력인 만큼 열심히 공부하는 길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감정평가사 자격증만 따면 고소득이 보장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수강생들에게 “초창기 이야기다.이제는 노력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단순한 합격만이 아니라 각자의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거듭 강조했다. 10년여 동안 감정평가사 강의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누려왔던 조강사는 이제 또다른 변신을 꾀하고 있다.좋은 강의를 듣기 위해 굳이 서울까지 올라와 만만치 않은 학원비를 들여가며 공부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이번달부터 시작될 인터넷 동영상 강의(www.gosiplus.co.kr)를 준비하고 있다.조강사의 신명나는 강의를 온라인상에서도 접할 수 있게 됐다. 박록삼기자
  • 離散 10만명 서신교환 합의

    남북한은 이산가족 서신교환 문제를 이달초 열릴 적십자회담에서 협의하고 임진강 수해방지 사업을 빠른시일안에 공동 추진키로 합의했다. 또 긴장완화와 평화 보장에 노력하고 이를 위해 군사당국자 회담개최를 협의하며 남측의 대북 식량차관 제공을 검토한다는데도 의견을모았다.이에따라 남북간 긴장완화와 한반도 냉전해체가 급진전되고인적·물적 교류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한은 1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지난달 29일부터 열린 제2차 장관급회담을 마치면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7개항의 공동발표문을 발표했다.이날 합의와 별도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약속에 따라 고위급 관리 및 전문가 등 15명으로 구성된 북한의 경제시찰단이 곧 서울을 방문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번 3차 장관급회담은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제주도의 한라산에서 열기로 했다. 이날 합의에 따라 남북한은 올해내 이산가족 교환방문단을 두 차례더 교환하고 세부사항은 이달초 열리는 적십자회담에서 논의하게 됐다. 이와 함께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분쟁조정 등 경협 관련 제도적장치를 마련키로 하고 이를 위한 전문가 실무접촉을 9월중 열기로 했다.경의선 복원·문산∼개성 새 도로 건설문제 협의를 위한 실무협의도 9월중에 갖고 공동역사설치·착공식 등을 협의키로 했다. 또 백두·한라산 관광단을 각각 100명 정도의 규모로 9월 중순부터10월초까지 상대측 지역에 보내는데도 합의했다. 한편 남측 수석대표인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은 1일 함경북도를시찰중인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직접 찾아가 이산가족문제 해결문제 등을 논의했으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메시지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앞서 박장관은 지난달 31일 인민문화궁전에서 김용순(金容淳) 아태평화위원장을 만나 한차례 입장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측 대표단은 회담일정을 하루 연장한 끝에 이날 밤 평양을 출발,자정을 넘겨 서울로 돌아왔다. 평양 공동취재단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 경협 제도화 양측 의견 접근

    올해 안으로 이산가족 방문단의 교환이 2∼3차례 더 성사된다.투자보장 등 경협 제도화와 경의선 복원을 위한 실무협의도 별도로 이뤄질 전망이어서 교류협력사업이 속도를 더하게 됐다. 남북한은 30일 평양 시내 인민문화궁전에서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장관급 회담을 갖고 이같은 내용에 의견 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양측은 31일 오전 5∼6개항의 공동보도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양측은 또 백두·한라산 교차관광단은 100명씩 규모로 9월 중순 백두산 관광을 먼저 시행한 뒤 9월말 한라산 관광을 하기로 한 것으로알려졌다. 이산가족 방문단의 후속 교환과 관련,구체적인 규모와 일정은 9월초 열리는 적십자회담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양측은 국방장관급 회담,군사공동위 가동 등 군사 및 경협 부문의제도적 장치 마련과 군사직통전화 설치 등도 집중 협의했다. 우리측은 북측에 경협 제도화를 위해 투자보장·분쟁해결·이중과세방지 및 청산결제 마련을 위한 합의안을 제시하고 군사·경협·사회문화교류협력 등 3개 분야의 실무협의기구 설치와 경의선 복원을 위한 협의체 구성 등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납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해결을 위한 북측의 성의있는 자세를 요청했으며 경의선 복원을 위한 지뢰 공동제거작업 등도 논의한 것으로알려졌다. 그러나 북측은 군사·경협·사회문화교류 등 3개 분야의실천기구 설치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날 회담에는 남측에서 박재규(朴在圭)수석대표 외에 이정재(李晶載) 재경·김순규(金順珪) 문화부 차관,김종환(金鍾煥) 국방부 정책보좌관,서영교(徐永敎) 통일부 국장이,북측에서는 전금진(全今鎭)단장과 김영신 문화성 부상,류영선 교육성 국장,최성익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량태현 내각사무국 성원 등이 각각 참석했다. 박재규 통일부장관 등 남측 대표단 35명은 31일 전세기편으로 평양을 출발,2박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다. 평양 공동취재단 이석우기자 swlee@
  • ‘저서 100권 출간’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

    문학평론가 김윤식교수(서울대 국문과)가 최근 현장비평서 ‘초록빛 거짓말,우리 소설의 정체’를 펴내 100권째 저서출간이라는 의미깊은 기록을 세웠다.번역,편저,감수 저서까지 합하면 130권이 넘는 김교수를 찾아 책쓰기,문학작품 읽기,그리고 문학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언제부터 100권 째 책저술을 의식하게 되셨나요. 내가 일일이 세어 본 것은 아니고 홋데이란 일본 서지학자가 리스트를 만들어 알려줬어요.이미 90권이 넘어섰을 때였습니다.책 숫자가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많은 책을 쓸 수 있는 비결이라도 있는지. 다른 사람보다 시간이 많았던 탓입니다.왜 시간이 많았던가.사람은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첫번째는 자기 일만 하는,자기 일에만 몰두하는,‘고약한’ 유형이며,두번 째는 자기 일은 내팽개치고 남의 일,사회에 온갖 열정을 갖고 달려드는 사람으로 이도고약한 유형입니다.대부분의 사람은 이 두 유형의 중간을 적당히 걷고 있는데 나는 첫번 째 고약한 타입으로 자기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시간이많았고 그 시간을 책보는 데 쏟았던 것입니다. ◆책에다 남달리 많은 시간을 쏟았던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인상입니다만. 그렇습니다.처음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해야겠군요.‘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학자나 비평가 ‘종자’들을 공동묘지에서 시체나 지키는 신세로 꼬집고 있습니다.책은 관이고 도서관은 공동묘지로 남이 쓴 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시체지기에불과하다는 것이죠.현실을 모르고,시체와의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공부나 하고 있는,인간 축에도 못드는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비꼽니다. 사르트르만큼 책을 많이 읽었던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스스로 여기서 뛰어나오려고 이렇게 책과 관련된 것을 비하하면서 참여문학의 기치를 높이 쳐든 것입니다.사르트르의 말에 나를 비쳐볼 때꼼짝없이 들어맞는다는 생각,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는것입니다. ◆그래도 책을 쓴다는 건 대사회적인,적극적인 어떤 태도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간접적으로 뛰어나온다고나 할까.극도로 자기 일에만 몰두했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나도 알고보면 ‘문제있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문학 연구가 출발점입니다.1930년대의 카프 활동은 우리의 진정한 근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73년에 나온 본격적인 첫 책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는데 당시는 반공 이데올로기 절대우위의 유신 시절이었습니다.금기시되던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연구했으니 판금도 당하고 보안사에서 내 책을 죄 가져갔습니다.그런데 그때 나한테 대단한 일을 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이건 착각이었습니다.이론이나 학문은 어떻든 회색의 세계입니다.괴테가 파우스트에서 ‘생명의 황금 나무는 녹색’이라고 말할 때의 녹색과 대비되는 회색입니다.헤겔은 법철학 서문에서 ‘회색에다 회색을더해봐야 회색’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아무나 책을 내는 건 아닙니다.자신의 책에 대해 더 말한다면. 내가 쓴 책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비평사 연구 같은 학술적인 것,창작품에 대한 현장비평 즉 평론,그리고 학술 예술 문학 방면의 기행 등입니다.나는 본래 어려서 작가가 되려고 했는데 그러려면 국문과에 가야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산에서 서울로 와 대학 국문과에 갔습니다.그러나 대학은 학문,과학하는 곳이었습니다.잘못 온 것이죠.작가가 된다는 생각을 때려치우고 연구의 길로 나섰습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인데 창작은 못하고 중간적인 비평을 하게 됐고,창작에 가까이 다가가는 마음으로 많은 기행문을 썼습니다.나름대로 유려한 문장을 실컷 쓰고자 했습니다. ◆책을 많이 썼다는 사실보다 남의 글과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을더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는데 남의 글을 읽는 것에 대해 말하면. 남의 글을 읽는 것이 본업이죠.지난 25년간 소설을 주로 해서 새로발표되는 작품은 거의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읽어왔습니다.왜 이렇게 열심히 읽어왔나,꼭 직업 상의 이유 뿐일까.아까 말했듯 시간이 많아 투자를 많이 한 것이 한 이유가 되고 또 하나는 문학 창작 작품에는 뭔가,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어떤 것이 들어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작가는 평범한 우리와 비슷한 사람으로 결코 비범하다거나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은 아닙니다.작가들이 작품을 쓸 때는어떤 의도가 있는데 신기한 것은 완성된 작품은 작가가 처음 의도한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작가도 모르는 것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문학작품이 인간과 세계를 읽는 텍스트가 되는 것이며이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에 매료당해 소설을 끊임없이 읽었다고할 수 있습니다.작가는 보통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작품은 보통이 아닌 것입니다.가치가 있고 나아가 인류의 유산이 됩니다.작품 속에 내가필요로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작가는 내 스승인 것입니다. ◆거기서 찾은 의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통속적으로 쉽게 이야기하면 문학은,우리 문학은 ‘인간은 벌레가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인간의 기품,인간성,인간다움을 강조하는 것인데 우리 역사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벌레 취급을 받아오곤 했습니다.이데올로기 분단 계급 문제의 와중에서 싸우고 죽고 부당한 대접을 받아온 예가 수두룩한데 그런 면에서 우리 문학은 위대합니다.인간의 위엄과 기품을 지키는데 대단히 큰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반공 이데올로기,기관원 시대나 유례없는 경제발전 속에 숱한 노동자가 벌레같이 희생되어 온 노사문제의 시대에 벌레가아니다라는 명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왔습니다.황석영의 ‘객지’가 그렇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소련과 동구가 붕괴되고 역사의 종말이 운위되기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우리 문학도 달라져야만 했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습니다.94년에 나온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에서 뚜렷해지는데 인간은 벌레가 아니다가 아니라 이제 ‘인간은 벌레다’가 됩니다.여기서 벌레는 인간이하의 의미가 아니라 인간을 제한했던 꼬리표가 떨어져 나간,확장의 개념입니다.인간은 이제 연어고 철새고 메뚜기고 게놈인 것입니다.세계문학의 큰 흐름과 궤를 같이 하는 우리 문학의 이런 조류를 나는 생물학적 상상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비평이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비평을 학문의 일분야라고 할 때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말한 ‘학문은 예술과 달리 언제가 뒷사람에게 추격당한다’는 말만큼 시사적인 것은 없습니다.누구 작품은 어떻고 저떻고 하고수많은 현장비평을 했던 나로서 비평은 ‘남을 창찬하기 위한 교묘한 술책’이라고 정의내립니다.이 말에 대들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땅처럼 굳건합니다. 김재영기자 kjykjy@. *약력. 김윤식교수는 1936년 경남 진영에서 출생해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71년과 80년 일본에서 연구했다.62년 ‘문학방법론서설’로 등단했으며 현대문학 신인상(73년) 대한민국 문학상 문학평론상(87년) 등을 수상했다.평론가 김현과 ‘한국문학사’를 공동집필한 뒤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와 ‘근대한국문학연구’를 냈으며 80년대에는 평전쓰기를 주력해 ‘이광수와 그의 시대’ ‘김동인 연구’ ‘이상 연구’ 등을 냈다.‘우리 소설과의 만남’ ‘현대소설과의 대화’ ‘한국소설의 표정’ 등 현장비평서 외에 ‘한국현대문학사상론’ 등 문학사상사서도 저술했다.
  • 金夏中 외교안보수석 ‘입조심’ 유명

    김하중(金夏中) 신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입이 무거운 사람이다. 때로는 지나칠 정도여서 “입에 돌을 달고 다닌다”는 말도 듣는다. 김 수석은 “열을 알면 둘,셋만 쓰는 것이 기자의 미덕”이라는 독특한 언론관을 갖고 있다.그러나 외교부 국장 시절에는 기자들에게열에 하나,둘조차도 알려주지 않을 때가 많았다.열을 알려주면 분명히 열을 다 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김 수석은 골프를 치지 않는다.영어와 중국어,일본어 구사력을 유지하고 주말에 가족과 지내려면 도저히 시간을 할애할 수 없기 때문이다.5시30분에 일어나 집안의 모든 문과 창문을 열어놓고 체조를 하는 것이 건강유지법이다. 그렇지만 김 수석은 고리타분한 성격이 아니다.서울대 중문과 재학시절 김 수석은 문리과대 그룹사운드인 ‘엑스타시’에서 리드 기타로 클리프 리처드의 노래를 연주했다.또 술을즐겨 마시지 않지만,폭탄주 열 잔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김 수석은 대 중국 관계에서는 외교부내 1인자로 꼽힌다.아들도 베이징대로 보냈다.그만큼 남다른 중국인 판별법이있다. 김 수석은 처음 만나는 중국인에게 “1 더하기 1이 뭐냐”고 묻고답변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곧바로 “2”라고 답변하는 사람은 평범한 중국 인민이다.중간 관리쯤 된다면“나는 2라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조심스럽게 되묻는다고 한다. 최고위급 인사라면 “1 더하기 1 ? 으하하하하…”라고 웃어버린다고 한다.어떤 대답도 13억 인구를 모두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수석은 또 “중국인은 세 개의 보따리를 갖고 있다”고도 말한다.친구라고 확신을 가진 이후에야 첫번째 보따리를 열어 보인다.그러나 여간 친해지지 않고서는 두번째 보따리를 열지 않는다고 한다.중국이 황장엽(黃長燁)씨를 서울로 보낸 것이 잠시 두번째 보따리까지연 경우다. 세번째 보따리는 평생 한번 열어보기도 어렵다고 한다.김 수석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중국인들과 비슷할지 모른다. 이도운기자 dawn@
  • 결실의 가을 발레의 유혹 ‘발레축제 2000’

    한국 발레가 최근 몇년새 보여준 성장은 발레계 스스로도 깜짝 놀랄만큼 눈부시다.올해만 해도 국립발레단의 김용걸이 동양인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성했는가 하면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생 장운규-노보연이 세계적 발레대회인 바르나국제발레콩쿠르에서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해 한국 발레의 위상을 드높였다.지난달말 열린 ‘세계춤2000’에서는 줄리 켄트,이렉 무카메도프 등 쟁쟁한 발레스타들을 서울로불러들여 이원국,김주원,김지영 등과 한무대에 서게함으로써 세계 발레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더욱 반가운 것은 ‘여유있는 사람들의 고상한 취미’쯤으로 여겨지던 발레가 대중에게 성큼 다가서고 있다는 점.얼마전 공연된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이런 여세를 몰아 국립발레단(단장 최태지)유니버설발레단(문훈숙)광주시립무용단(박경숙)서울발레시어터(김인희)등 국내 4대 직업발레단이 처음으로 ‘발레축제2000’을 기획했다.각 단체의 특성을 가장 잘살린 다양한 작품들을 모아 9월7·8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에올린다. ‘해설이 있는 발레’로 발레대중화에 앞장서온 국립발레단은 ‘파리의 불꽃’‘돈키호테’‘다이애너와 악테온’을,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는 유니버설발레단은 ‘라 바야데어’‘바버 아다지오’‘알비노니 아다지오’를 선보인다.지방유일의고전발레단체인 광주시립무용단은 ‘기병대의 휴식’‘잠자는 숲속의미녀’‘투쟁’을 레퍼토리로 택했고, 창작발레의 선두주자인 서울발레시어터는 상임안무가 제임스 전의 ‘생명의 선’‘나우 앤 덴’‘세레나데’를 공연한다. 단장 4명이 모두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여성 주역무용수 출신으로 평소에도 친자매이상의 친분을 유지해온 터라 이번 행사에 대한 애착과 기대가 남다르다.이들은 “모처럼 전성기를 맞고 있는 발레계가 이번 행사로 더욱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발레축제2000’에는 이틀간의 합동공연외에 무용평론가들이 뽑은명작발레 비디오상영,공개강좌,워크숍 등이 마련된다.(02)2272-2153이순녀기자
  • [우리학원 명강사] 대구 한국공무원고시 국어담당 한수문씨

    “학생들이 변화하는 시험 경향에 뒤지지 않도록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서울로 올라가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야죠.” 대구 한국공무원고시학원 한수문(韓秀文)강사는 7·9급 공무원 시험 국어를 강의하고 있다.그는 강의할 때 특별히 교재에 집착하지 않는다.시험 경향은 매년 시험마다 변하는 만큼 고정된 자료에 얽매이다보면 학생들에게 새로운 경향을 전해주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그만큼 강의에 들어가야 하는 품은 몇 배로 들 수밖에 없다. 한강사가 학원 강의를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88년.대학을 졸업하고 3년 정도 고등학교 교단에 섰고 교육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학원가에 첫 발을 디뎠다.대구에서 떨친 명성에 힘입어 서울에서도 강의해봤으나 고향을 떠나 사는 데 별로 익숙하지 않아 다시 낙향해 대구지역 명강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구 한 허름한 식당에서 소주잔 기울이며 얘기 나눴던 한강사는 영락없이 ‘인심 좋은 동네아저씨’다.동석했던 대구지역 공무원 시험준비 학원가의 ‘대부’격인 배용구(裵龍球·42)씨는 한 강사를 ‘의리와 성정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한강사는 “그냥 얻어지는 영광은 없음을 학생들에게 강조한다”고한다.자신만의 욕심이 앞서 학생들을 다그치는 것은 아닌지 되묻기도 하지만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꾸준한 노력’인 만큼 강의 때마다 학생들에게 성실한 수험준비를 독려한다. 이러다 보니 학생들은 ‘한수문’이라는 이름 석자를 ‘합격의 보증수표’처럼 인식할 정도다. 그는 “공무원 시험에서 국어과목은 단시간에 해결되지 않는다”고강조하면서 폭넓은 독서와 깊이 있는 사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이해 중심의 시험 경향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암기 위주의 공부 방식은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설명이다. 안동에서 학원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수험준비를 전문으로 하는학원의 성격상 버겁고 주제 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수험생들에게 전인교육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구 박록삼기자
  • 새 내각에 듣는다/ 田允喆장관은 누구

    전윤철 장관은 추진력과 뚝심이 대단하다.공정거래위원장 시절인 지난해 초 일부 부처의 반대를 뛰어넘어 계좌추적권을 얻어낸 게 대표적이다.재벌들의 부당내부거래를 제대로 조사하려면 계좌추적권이 있어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게 성공했다.공정거래위원장 시절 재벌개혁을 밀어붙여 재벌들로부터는 가장 싫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앞으로 공공부문 개혁이 보다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전장관의추진력 때문이다. 마른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그렇지만 ‘꼬장꼬장한’한 선비형이다.눈치를 보는 스타일도 아니다.지난 89년 옛 경제기획원 예산총괄심의관(국장) 시절에는 율곡사업 예산을 재검토해 과감히 삭감했다.당시 군에서는 “전국장의 안보의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며강한 불만을 터뜨릴 정도였다. 이리저리 빙빙 돌려서 말하거나 할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직설적이다.직설적인 성격이라 오히려 뒤끝도 없다.지난달 26일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2000년 상반기 정부업무 심사평가 보고’에서 이세중(李世中) 정책평가위원장에게 가장 먼저 불만을 터뜨린 장관도 전장관(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다.전장관이 포문을 연 이후이헌재(李憲宰) 전 재정경제부장관 등 다른 장관들도 평가의 문제점을 잇따라 지적했다. 변함없는 그의 스타일은 오랫동안 정평이 나있다.주위에서는 지난 66년 공직에 몸담은 뒤 늘 그래왔다고 말한다.80년 옛 경제기획원의공정거래담당관을 하면서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법률)을 주도적으로 만들 때 전경련은 물론 재무부,상공부 등도 반대했다. 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특유의 논리로 강하게 밀어붙여 ‘전핏대’라는 별명을 얻었다.문희갑(文熹甲) 한이헌(韓利憲) 전 경제수석과 함께 기획원의 ‘세 핏대’로 통한다.실장,차관,장관으로 승진하면서 불같은 성격은 누그러졌지만 추진력은 여전하다.그래서 ‘전핏대’보다는 ‘전틀러’가 오히려 적합할지도 모른다. 전남 목포 출신이다.중학교(목포 제2중) 때 수석을 해 서울로 ‘유학’을 와 서울고를 다녔다.1학년 때에는 신문배달을 했다.2학년 가을에는 명동에서 군밤을 팔기도 하는등 어렵게 학창시절을 보내기도했다. 곽태헌기자. *내년 예산편성 사정은. 내년 예산사정은 몹시 좋지않다.내년의 예산은 올해보다 6조원 정도 늘어나는 데 그치지만 각종 법 개정 등에 따라 필수적으로 늘어날규모만 12조∼14조원이다.산술적으로만 봐도 적어도 올해 주요사업예산 중 6조∼8조원을 삭감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체제로 들어선 이후 예산을 짜는 게 어려워졌다.공공근로사업 지원,공식적으로만 64조원을 쏟아부은 공적자금에 대한 이자,국채이자 등 종전에는 없던 분야에 새로 투입해야하는 부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이런 변수에다 법 개정 등으로 추가로 늘어나는 규모만 12조∼14조원이니 내년 예산을 짜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공적자금을 추가조성하는 데 따른 이자도 부담해야하고 의약분업으로 국가가 지원을 해줘야 할 부분도 만만치않다.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부분에 대한 예산은 삭감이 불가피한 셈이다.내년에 사회간접자본(SOC)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줄어드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예산사정이 좋지않다보니 예산을 편성하는 기획예산처도 어느 때보다 고민이 많다.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할 곳은 많고 돈은 없고…….예산처는 6∼7월 1차 심의와 문제사업 심의(2차 심의)를 마쳐 실무진선에서의 예산안 윤곽은 대부분 마련했다. 전윤철(田允喆) 예산처장관은 지난주 이정빈(李廷彬) 외교통상,조성태(趙成台) 국방장관 등 13개 부처의 장관과 예산을 위한 협의를 가졌지만 아직도 중요한 사안,민감한 사안은 확정되지 않았다.공무원처우개선,경찰보수 문제,쌀농사 직불제,남북 경제협력 관련예산,국방비 등 핵심사안들이 여기에 속한다. 다음달 초의 당정협의와 시·도지사 협의회를 거쳐 확정되는 사안도 있다.관례적으로 여당이 생색을 내며 결정하는 예산도 있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결심을 받아 결정될 사안도 있다.예산처가 다음달26일 열릴 국무회의에 내년 예산안을 올리기 전까지 변수는 아직도많은 셈이다. 곽태헌기자
  • 윤영자 할머니 “비전향 장기수도 고향 간다는데…”

    부모 형제를 두고 월남한 할머니가 남쪽에서 얻은 아들마저 납북돼‘이중(二重)이산’의 고통에 괴로워하고 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기간 내내 TV를 아예 끄고 살았어.북에 두고온가족과 북에 끌려간 큰아들 생각에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 윤영자(尹英子·69·대구시 동구 백안동)할머니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누구보다 소중한 피붙이와 두번이나 찢어지는 생이별을 겪었다. 윤 할머니는 해방되던 해인 45년 14살때 홀몸으로 남쪽으로 내려오며 북의 부모·여동생과 헤어졌고,남쪽에서 얻은 큰아들은 그가 15살무렵인 68년 오징어배를 탔다가 북한에 피랍돼 30년이 넘도록 소식이끊겼다. 일제의 압제,그리고 해방,남북분단으로 점철된 우리 역사의 고난은할머니의 삶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황해도 평산군이 고향인 할머니는 지난 45년 봄 일제의 ‘근로정신대’징용을 피해 아버지 고향인 전라도 쪽으로 도망갔다가 서울로 다시 올라가는 우여곡절을 겪던 끝에 6·25전쟁에 휘말렸다. 할머니는 “해방되는 해 집을 떠날때 ‘언니,언니’하며 울던 하나뿐인 여동생만 생각하면 지금도 밥술을 뜨다가도 목이 멘다”고 회고한다. 혈혈단신으로 월남,부산항 도착후 육군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만난 남편과 결혼,두 아들을 낳았지만 할머니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불행했던 결혼생활 끝에 남편과 별거,혼자 서울로 올라와 온갖 궂은 일을 하던중 68년 7월10일 큰아들의 납북은 청천벽력이었다. 술주정으로 뱃일을 자주 못나가는 아버지 대신 당시 열다섯 어린나이로 부산에서 오징어배 ‘가나다호’를 타야했던 큰아들 박종업씨(47)는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서 북한에 피랍됐다. 지난 82년 남편과 사별하고,작은 아들도 몇년전 결혼시켜 홀로 사는할머니는 “비전향 장기수들도 고향을 찾아간다는데 먹고 살려다 일이 잘못돼 납북된 아들놈은 왜 내려오질 못하는 거여…”라며 울먹였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지방 고시촌 르포](4)광주

    보통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기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정오.광주용봉동 전남대학교 앞은 학원 수업을 듣기 위해 분주히 걸어가거나졸음과 권태를 피해 담소를 나누는 고시생들로 붐빈다. 광주,전남·북도를 아우르는 호남지역에서 가장 큰 고시촌은 단연전남대 앞이다.2년여의 기간동안 우후죽순 식으로 생긴 전남대 앞 고시원은 어느새 30여개.고시 관련 서점,학원 등이 이곳에 몰려있다.이런 추세로 가면 서울 신림동 규모의 고시촌이 생기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현재 호남지역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은 3,000여명정도로 추산된다.7·9급과 각종 자격증을 준비하는 수험생까지 따지면 7만여명에 이른다고 주변에선 얘기한다. 수험생의 수에 비해 고시·자격증 학원은 많은 편이 아니다.광주지역 고시·자격증 학원은 13개,전주·익산은 고작 4개뿐이다.목포·순천 지역도 각각 1개씩. 하지만 ‘무척 열악한 환경이다’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호남지역수험생들을 위한 ▲대학측의 적극적인 지원과 ▲영상 강의 활성화라는 호남지역 고시환경의 특징과도 연관성이 많다. 전남대,전북대,원광대,조선대 등 호남지역의 대표적인 대학들은 고시를 준비하는 재학생,졸업생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때가 되면 서울지역 명강사를 초빙해 특별강의를 하는가 하면 대학 내 고시특강 수업료는 일반 학원 수업료보다 50%가 저렴하다. 또한 대학 고시반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매달 50만원의 장학금을 주기도 하고 수험료의 일부를 면제하기도 한다.물론 50∼100명 정도의최정예 요원만 수용하는 고시반에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지만. 지난해 사시 최종합격자가 전남대의 경우 11명,전북대 4명,조선대 3명,원광대 1명이 배출된 저력도 이같은 대학측의 적극적인 지원에서나온 것이다. 소위 잘나간다는 명강사는 서울로 가버리기 때문에 학원마다 튼튼한 강사진을 배치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하지만 그 대안으로 시작된영상강의가 이제 조금씩 실효를 거두고 있다. 신림동의 유명 고시학원과 연계해 호남지역 대학에 영상강좌를 제공하고 있는 호남법학원 박기수(朴基洙·42) 원장은 “공부할 수있는분위기를 익히고 정보를 얻기 위해 무작정 상경하는 학생들을 보면안타깝다”면서 “우수한 인재들이 고향에서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도록 지방강좌를 상설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한다. 한때 역사적으로 소외된 지역이었고,고시계에서도 변두리 지역으로꼽히는 호남지역에서 꾸준히 고시 합격자 수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광주 최여경기자 kid@
  • 생이별의 恨 다시 가슴에 묻고…

    “꼭 다시 와 언니,살아 꼭 만나자”“부디 부디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오마니…”“아버지…” 분단 반세기 만에 감격의 재회를 나눈 남북의 혈육은 너무나도 짧은3박4일을 보낸 18일 생이별의 한을 가슴에 묻고 다시 북으로 남으로헤어졌다. 50년을 고대해 온 만남의 기쁨도 잠시,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 기약없는 이별 앞에 오열하고 통곡했다.양측 방문단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이들을 보내는 가족들은 붙잡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복받쳐 오르는 설움에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냈다.서울과 평양이 다시함께 운 하루였다. 류미영(柳美英)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 등 북측 방문단은 이날오전 대한항공기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갔으며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 남측 방문단도 이 비행기를 타고 오후 서울로 귀환했다.남측 민항기가 서행직항로를 통해 서울∼평양을 오간 것은 분단이후 처음이다. 남북은 이날 오전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과 평양 고려호텔,김포공항 등에서 방문단과 가족들이 마지막 석별의 정을 나눌수 있도록 배려했다. 장단장은 서울 도착 직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는 비용이 덜 드는방향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측 방문단 중 어머니 생존을 확인하고도 만나지 못했던 량한상씨(69)는 이날 새벽 4시쯤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어머니 김애란씨(87)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남북민항기 서해상 조우 인사

    18일 오전 10시49분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영공.“JS814,해브어 굿 데이(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대한항공 특별기(KE815)김홍순(金鴻順·51) 기장은 북측 고려항공 특별기(IL-62)에 제1신을날렸다. “로저,댕큐. 해브 어 굿 데이(알았습니다.좋은 하루 되십시오)”. 북측 IL-62 특별기 박승남(46) 기장은 대한항공기 김 기장의 인사에이렇게 화답했다.남북 민항기끼리 같은 공역에서 사상 처음으로 교차비행하며 교신을 주고 받은 것이다. 이날 평양으로 가는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을 태운 KE815편과 서울로 오는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을 태운 JS814편은 북위 38도,동경 124도20분 지점의 NLL 영공을 10시49분 통과했다.북측 민항기가 서해 영공을 ‘ㄷ’자로 돌아 비행하는 직항로를 이용하기는 지난 15일 이후 두번째다.또 평양 항로교통관제소(ACC)와 대구 ACC가 동일 시간대에 항속,고도,예정 항로 등 정보를 교환하고 관제를 맡은 것도 두번째다. KE815와 JS814는 NLL을 통과하면서 각각 “컨택,평양 ACC”,“컨텍,대구 ACC”를 타전하며 비행관제를 이양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마지막날 아쉬움속 또 이별

    “이제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나나…”“통일돼서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오빠” “오마니,몸 건강히 오래오래 사시라우요…” 17일 낮 서울과 평양의 이산가족 방문단 오찬장은 사흘 전 첫 상봉때와 같은 오열과 탄식의 바다를 이뤘다.사흘간의 상봉중 마지막인이날 오찬은 50년 전 한맺힌 이산에 이은 또 한번의 눈물어린 생이별의 장이 됐다.너무나 짧은 만남과 감격어린 상봉의 기쁨도 잠시,어머니와 아들,남편과 아내,오빠와 누이는 기약없는 재회를 약속하고 하루 뒤면 남과 북으로 흩어질 혈육의 어깨를 부여잡은 손을 끝내 놓지못했다. 서울에서 북한의 인민화가 정창모씨(68)는 여동생 춘희씨(60·경기군포)를 끌어안고 이별의 슬픔을 달랬다.북한의 수학자 조주경씨(68·김일성대 교수)도 숙소에서 어머니 신재순씨(88)를 만나 생이별의슬픔을 나누며 재회를 약속했다. 평양에서는 북에 각각 처자식과 아들을 두고 내려와 남에서 결혼한이선행(李善行·81·서울 망우동)·이송자(李松子·82) 부부가 이씨의 북쪽 부인 홍경옥씨(76·평북 구장군)와 만났다. 대한적십자사 지원요원으로 방북한 소설가 이호철(李浩哲·68)씨와방북단 의료진인 고 장기려 박사의 차남 가용(家鏞·65·서울의대교수)씨도 북측이 별도로 마련한 장소에서 가족을 비공개리에 만났다. 앞서 류미영(柳美英·78) 북측 단장은 16일 오후 23년만에 서울의 둘째아들 인국씨(53)와 막내딸 순애씨(48),손자 등 가족을 만났다. 남과 북의 방문단 200명은 이날 모든 공식일정을 끝내고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과 평양 고려호텔에서 고향땅에서의 마지막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분단의 아픔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북측 방문단은 전날과 같이 두 팀으로 나뉘어 숙소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가족들과 개별상봉했으며 창덕궁(비원)을 둘러봤다.남측 방문단도 고려호텔에서 개별상봉한 뒤 북한 가극 춘향전을 관람했다. 남북 방문단은 가족 공동오찬에 이어 저녁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 주최 환송만찬,평양 옥류관에서 평양시 인민위원회 주최 환송연회를 끝으로 3박4일의 방문중 공식일정을 모두마쳤다. 18일 오전우리측 대한항공기가 북측 방문단을 태우고 김포공항을출발,남북직항로를 통해 평양 순안공항에 이들을 내려놓은 뒤 남측방문단을 태워 서울로 귀환한다. 한편 15년만에 재개된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남북 각 100명의 인원과짧은 시간으로 제한된 데 대해 남북 당국이 하루빨리 면회소 설치,상봉 정례화 등을 통해 많은 이산가족들이 상봉할 수 있도록 해야 할것으로 지적됐다. 98년 남북 차관급회담 수석대표로 참가했던 정세현(丁世鉉) 통일부전 차관은 “상설 면회소를 만들어 이산가족들에게 많은 상봉기회를줘야 한다”면서 “중간단계인 면회소 상봉을 거쳐 중국·대만,동서독처럼 상대방 지역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고 병문·조문의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얼마든지 허용하는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인영(全寅永) 서울대교수도 “이산가족문제는 남과 북 어느 당국도 사상과 체제를 초월하는 강력한 이슈임을 이번에 생생히 확인했다”면서 “북한의 경우 절대적 지도자가 마음먹으면 면회소 설치 등은어렵지 않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말했다. 특별취재단
  • [김명서 칼럼] 15년전 상봉 때는

    고 지학순(池學淳)주교(1921∼1993).양심과 정의를 위해 독재정권에맞서 싸운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사다.74년 유신헌법은 무효라는 내용의 양심선언을 했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정부로서는 늘상 껄끄러운 상대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15년 전인 1985년 9월 사상 첫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남북 각각 50명)의 일원으로 평양을 다녀왔다. 고향은 평양에서가까운 평남 중화군. 지주교가 방문단에 뽑힌 배경은 불분명하지만상봉의 극적 효과를 높이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재야 일각에서는 정권에 이용 당한다는 이유로 그의 방북을 반대하기도 했다. 당시 남북한 정권은 모두 체제 유지에 위기감을 느끼는 상황이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 정권은 경제난의 해법을 미국 등 서방세계와의 관계개선에서 찾으려 했다.남한 정권은 민추협 중심의 신민당이돌풍을 일으킨 2·12 총선 이후 더욱 달궈진 민주화 열기를 비켜갈탈출구가 필요했다.북한의 대외 이미지 개선,남한의 대내 민심 무마라는 계산이 맞아 떨어져 이산가족 상봉이라는합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이같은 배경에 상관없이 1985년의 상봉도 온나라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하지만 인도주의 보다는 정치적 이해가 우선시되다 보니 부자연스러운 대목이 적지 않았다.상봉 당사자들은 격정의 순간이 지난 다음에는 주위에 신경을 쓰며 경계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방문자 가운데 상당수는 가족을 만나지도 못하고 귀환했다.언론에는 연일상봉 기사가 대서특필됐지만 ‘분단의 벽은 높았다’는 식의 부정적인 보도가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북한 언론은 그나마 상봉단의 방북을 동정(動靜) 수준으로 보도하는 데 그쳤다.상봉 자체가 일과성 이벤트로 그칠 것이라는 분위기가 두드러졌다. 특히 지주교와 누이동생 용화씨(당시 61세) 가족의 상봉 장면은 남북간의 이질감을 함축하는 것처럼 비쳐졌다.당시 보도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중략)누이는 안내원의 눈치를 살피더니 “북한에서는모두 잘 먹고 근심 없이 잘 살아 천당인데 천당을 어디에서 찾겠다는거야요”…(중략)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지주교가 “네가 여기서 세뇌공작을 많이 받았구나”라고 말하자 누이는 당황한표정으로 “아니야요”를 연발했다.]여기까지가 대부분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각인된 지주교 상봉장면의 전부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지주교는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그러다가한 잡지에 ‘6천만 민족을 위한 기도를’이라는 장문의 글을 실었다. 그는 “그렇게 대드는 용화의 마음 속에는 얼마나 더 큰 살을 에는아픔이 휘젓고 있을까”라고 절절한 심경을 토로했다.이어 “7·4 남북공동성명의 합의는 어느 한 쪽을 전적으로 배제하지 않는 통일일진대 이는 자유와 인권을 신장시켜 민족성원들의 주체적 통일역량을 키움으로써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통일의 지름길은 결국 민주화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 3박4일 동안 서울과 평양에서 펼쳐진 이산가족 상봉의 대드라마가 막을 내리고 있다.상봉 당사자들은 허탈한 마음에 얼마 동안은아무런 일도 손에 잡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상황은 15년 전과 너무나다르다. 무엇보다 미래가 밝다.지주교가 지적한 민주화는 이미 우리사회에 뿌리를 내렸다.남북간 교류와 협력,화해의 다양한 청사진은숨가쁘게 실행 단계로 줄달음치는 상태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아직도 남북관계 개선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북한의 변화를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도 보인다.85년에는 더욱 심했을 수밖에 없다.그래서인지 지주교는 이렇게강조했다.“세상사에서 밝은 면 뒤에는 어두운 면이 있다.지금 우리가 취해야 할 가장 슬기로운 자세는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우려와 긴장 못지 않게 밝은 면을 보다 긍정적인 데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김명서 논설위원 m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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