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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이 머문 풍경] 상록수의 충남 당진

    [문학이 머문 풍경] 상록수의 충남 당진

    독자들 중에 이미 다녀온 이들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인천∼목포간 서해안 고속도로의 최고 명물인 서해대교를 건너자마자 충남 당진 송악IC를 빠져 왜목마을쪽으로 조금만 가면 ‘한진리’라는 작은 갯마을이 먼저 나타난다. 이 마을은 부곡국가공단을 사이에 두고 ‘부곡리’란 마을과 잇닿아 있다. 무심코 지나쳤을지 모르지만 두 마을이 농촌소설의 백미 ‘상록수’의 무대다. ●농촌에서 산업화 중심지로 탈바꿈 소설의 주인공 박동혁이 농촌계몽운동을 편 ‘한곡리’는 한진리와 부곡리를 합쳐 만든 마을 이름이다. 농촌인 부곡리와 어촌인 한진리는 당초 신작로로 연결돼 있었고 길옆에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이 펼쳐져 있었다. 소설에서 ‘해변에서 새우를 잡아 말리고, 준치나 숭어 잡는 철이 되면‘이라고 표현된 한진리에선 준치나 새우가 안 나온지가 오래 됐고 숭어는 봄철에만 조금 잡히고 있다. 지금은 여름이면 바지락, 겨울이면 굴을 주로 채취한다. 겨울철을 빼면 우럭과 놀래미를 잡으려고 배를 빌린 낚시꾼들이 선창에서 북적대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소설은 또 ‘큰덕미’라는 실제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공단이 조성돼 없어졌지만 한진리 뒤 바다쪽으로 볼록 튀어나온 산이었다. 한 신문사의 학생계몽운동 상을 받는 자리에서 만나 사랑을 키우며 농촌운동을 함께 벌이는 채영신을 동혁이 맞은 곳이다. 영신이 조그만 발동선을 타고온 이곳은 ‘하루 한번 똑딱이(석유발동선)가 와닿는 조그만 포구로 주막 몇 집과 미류나무만 엉성하게 선 나루터’라고 묘사된다. 하지만 큰덕미는 이런 것이 없었고 한진이 그랬다. 한진은 1970년대 초반까지 인천을 왕래하는 여객선이 드나들었고,80년대 초까지 경기도 평택을 오가는 배가 운행됐다. 서해안고속도로가 난 지금은 서울이 가깝지만 그 때만 해도 당진이나 서산에서는 여객선 때문에 인천이 가까웠다. 지금까지 인천에 서산·당진 출신이 많이 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큰덕미가 있던 곳에는 지난 98년 67만여평의 고대공단이 들어서 있고, 신작로와 염전이 있었던 공간은 2000년 94만평의 부곡공단이 입주, 소설의 무대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됐다. ●박동혁의 모델은 큰조카 여주인공 채영신은 경기도 안산에서 농촌운동을 하다 숨진 ‘최용신’이 모델이지만 남자 주인공인 박동혁은 심훈 선생(1901∼36)의 큰조카 심재영씨가 모델이다. 심씨는 작고하기 전 저술한 수필집에서 “나는 숙부보다 11살이 어렸지만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냈고 나를 사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 흑석동에서 태어난 심씨는 1930년 진외가가 있는 부곡리로 내려온다. 그는 이곳에서 ‘민중속으로’란 뜻을 지닌 러시아의 브나로드 운동을 본따 마을 청년들과 공동경작회를 조직, 농촌운동을 벌였다. 그는 “일제의 감시와 가난 속에 방황하던 숙부가 나의 권유로 2년 후에 부곡리로 내려왔다.”고 말한다.1년간 심씨의 자택 사랑방에 머물면서 소설 ‘영원의 미소’ 등을 쓴 심훈은 인근에 집을 짓고 ‘필경사(筆耕舍)’란 이름을 붙였다. 식솔과 함께 정착한 이 집에서 심훈은 큰조카 심씨와 최용신을 모델로 해 ‘상록수’를 집필했고, 이 소설은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현상모집에 당선된다. 진외가 조카인 안승환(60)씨는 “심훈 선생의 둘째·막내 아들이 이 집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면서 “두 아들은 현재 어머니와 함께 미국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장남은 한국전쟁 때 인민군으로 끌려갔다. 안씨는 “10년전 선생의 부인이 북한으로 들어가 큰아들을 만났었는데 지금까지 그 아들이 살아있는지는 잘 모른다.”고 가족사를 전했다. 심씨는 자기 집과 필경사 사이에 있는 곳에 야학당을 짓고 학생을 가르쳤다. 그는 심훈이 상록수 당선금 500원 가운데 100원을 들여 야학 문을 고치고 책상 등을 바꿔줬다고 했다. 이 야학이 발전해 지금의 상록초등학교가 됐다. 심씨는 지난 95년 작고하기 몇해 전까지 이 학교 육성회장으로 있으면서 교육 열정을 불태웠다. ●상록수의 고향 남편이 작고한 뒤에도 줄곧 부곡리 집에 살고 있는 심씨의 부인 김옥순(83)씨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 ‘숙부가 술을 좋아하고 생각이 자유분방했다.’고 얘기했다.”며 자신이 시집오기 전, 상록수를 간행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 원고를 교열하던 중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난 심훈을 전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심씨와 농촌계몽운동을 벌이던 공동경작회의 회원 가운데 김덕영(93)씨만이 생존해 있고 거대한 공단이 마을 일부를 삼켰지만 당진에선 심훈의 문학을 기리는 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1977년부터 시·백일장 등을 곁들인 상록문화제가 펼쳐지고, 이 기간중에는 필경사에서 심훈 선생 추모제도 열린다. 또 시와 장·단편 소설을 공모해 시상하는 심훈문학상도 개최된다. 필경사 옆에는 심훈의 육필원고와 유품 등이 전시된 ‘상록수문화관’이 지어져 있어 해마다 1만여명의 관광객과 문학청년, 학생들이 찾아오고 있다. 당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4시간의 웰빙산행-설악 흘림골

    4시간의 웰빙산행-설악 흘림골

    단풍이 끝난 가을산은 겨울 채비를 하고있다. 낙엽이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 바람이 불면 ‘사사∼삭’하고 힘없이 떨어지는 나뭇잎,10월의 그 빛나던 단풍은 잊혀졌다. 나뒹굴고 있는 낙엽은 그저 자신이 최고인 양 살고있는 ‘덧없는 우리의 삶’처럼 느껴진다. 화려한 아름다움은 없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싶거나, 삶에 지쳐 위로받고 싶다면 가벼운 배낭을 매고 단풍을 밟으며 걸을 수 있는 11월의 산으로 떠나라. 마침 20년의 자연휴식년제를 마치고 울창한 원시림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설악산 흘림골이 제격이다. 설악산 오색지구에서 맛있는 산나물정식, 칠성장어를 먹고 오색탄산온천에 몸을 담갔다가 일상으로 돌아온다면 세파에 지치고 상처받은 몸과 마음이 말끔히 치료받을 것이다. 진정한 웰빙을 꿈꾸는 이들에게 ‘딱’ 어울리는 산행이다. ●20년 만에 드러낸 아름다움 산은 좋은 공기와 아름다운 풍광으로 인간들에게 몸과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몰상식한 인간들은 그의 몸을 파헤치고 병들게 했으며 거대한 쓰레기만을 남겨주었다. 그래서 그는 20년 동안이나 사람들의 손길과 발길을 거부하고 황폐해진 자신을 추스렸다. 지난 9월20일, 건강해진 자신을 드러내 보였다.‘내가 당신들을 사랑하는 만큼 당신들도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와 달라.’는 당부와 함께. 그래서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더욱 설다. 아주 오래 전에 헤어진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랄까. 콧노래를 부르면 양평, 홍천을 거쳐 인제를 지나고 한계령으로 접어들었다. 한계령 정상에서 2㎞를 양양쪽으로 내려오자 오른쪽에 ‘흘림골 개방’이란 현수막이 보였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조금 지났다. 국립공원입장료 1600원을 내밀며 표를 달라고 하자 직원이 “오후 2시면 입산통제를 한다.”며 한사코 만류했다. 계곡에는 해가 일찍 지고 등산로가 평탄치 않아 사고가 일어난다는 말도 덧붙였다. 막무가내로 표를 끊고 산행을 할까 생각하다 ‘산에 대해서 자신하거나 만용을 부리면 화를 면치 못한다.’는 말이 스쳐 지나가 고집을 꺾었다. 그랬다.20년 만에 사람들의 발길을 허락한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숙소가 있는 오색약수 쪽으로 내려왔다. 다음날 오전 10시. 아침을 든든히 챙겨먹고 산행을 시작했다.“산행이 아니라 트레킹코스로 생각하면 돼요.2시간30분 정도로 코스도 가볍고….”사람들은 그렇게 말해줬다. 그 말만 믿고 카메라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물도 챙기지않은채 산을 올랐다. 매표소를 통과하자마자 시작되는 오르막길. 약간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돌아봤다. 바위에 붙어살고 있는 진초록의 이끼들, 곳곳에 쓰러져 있는 커다란 나무, 등산로 위로 넘어져 고개를 숙이고 통과하게 만드는 고사목,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거대한 주목들이 늘어서 있다. 계속되는 오르막길, 나도 모르게 ‘헉헉’소리를 내며 걸었다.“이렇게 험한 길을 누가 트레킹 코스라고?” 혼잣말을 하며 40분을 넘게 걸었다. 오른쪽에 나타나는 여심(女深)폭포. 여성의 성기에 비슷하게 생겼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여심폭포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 때문에 1960∼70년대에는 신혼여행객들의 필수방문코스였다고 한다. 여기서 등선대(登仙臺)까지는 300m. 일명 ‘깔딱고개’다. 급경사를 이루는 구간으로 올라가는데 보통 30분이 넘게 걸린다. 아예 구슬땀이 흘러내린다. 돌계단 또한 흙이 깔려있어 미끄럽다.‘야 이거 장난이 아닌데, 어제 오후에 들어왔으면 고생했겠네.’하는 생각이 든다. 뚝뚝 이마에서 볼을 타고 구슬땀이 흐른다. 손수건도 없어 맨손으로 땀을 훔치며 올랐다. 오르막의 끝에는 약간의 평지가 나온다. 바로 내려가면 십이폭포를 거쳐 하산하는 길이고 왼쪽으로 10여 분을 올라가면 등선대로 오르는 길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등선대에서 설악의 비경은 보고 가야지 하는 생각에 왼쪽으로 올랐다. 길이 좁고 험하다. 밧줄을 잡고 바위 오르기를 두차례. 드디어 등선대에 올랐다. 일단 눈이 시원하다. 해발 1004m의 등선대는 사방이 트여 있다. 역시 흘림골이 자랑하는 멋진 풍경이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남설악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사방에 뾰족한 바위로 덮인 산들이 이어진다. 가히 천하절경이다. 설악의 정상인 대청봉, 한계령 휴계소, 점봉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어느 화가가 그림을 그린들 이렇게 이런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잠시 숙연해진다. 사람들이 4∼5명이 머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공간인 등선대에 잠시 앉아 땀을 식히고 내려온다. 아차 발을 잘못 디디면 바위 밑으로 내팽겨질 것같았다. 주말에는 등선대 정상은 좁고 오르려는 사람들이 많아 1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등선대에서 12폭포로 하산하는 길은 철계단이 잘 만들어져 있다.10여분 내려오자 오른쪽 조그만 바위틈에 빨간 바가지가 놓여 있다. 졸졸 흐르는 물이 바위틈에 고여 있었다. 물이 시원하고 맛있다. 오래간만의 산행이라 그런지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어지는 돌계단과 바위에 걸려 몇 번 넘어질 뻔했다. 계곡을 따라 약 1시간을 걸으니 작은 오르막이 나온다. 그런데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물소리였다. 이제부터는 계곡을 따라 가는 길이다. 물이 깨끗하다고 해도 이렇게 투명할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물도 마시고 얼굴을 씻으며 약간 계곡물을 오염시킨 채 12폭포로 향한다.2시간20분만에 도착한 12폭포는 아기자기한 소와 담이 이어진다. 계곡 주변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을 보며 침만 흘리고 물로 배를 채우고 서둘러 하산한다. 용소폭포에서 금강문을 거쳐 도착한 선녀탕. 아름다운 계곡에 눈이 커진다. 정말 사람들만 없으면 옷을 벗고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신발을 벗고 발을 담갔다. 그리고는 머리를 들었다. 지금 이순간은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 아름다운 설악을 온몸으로 느꼈다는 것이 뿌듯했다. 10분을 내려가니 제 2약수다. 바위틈에서 나오는 톡 쏘는 약수를 마시고는 용소폭포에서 1시간만에 오색약수 매표소에 도착했다. 출발한 지 4시간 만이다. 밥을 먹고 오색그린야드호텔 온천에서 씻고 서울로 출발했다.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산행팁:보통 3시간30분에서 4시간을 잡으면 넉넉하다. 흘림골에서 오후 2시 이후에는 통제를 한다. 오색으로 올라오는 길은 오르막이 계속되므로 흘림골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편이 좋다. 또 11월 중순부터는 산불 위험때문에 통제를 할 수 있으므로 확인 후 떠나는 것이 좋다.(033)636-7702. ■자연송이 힘이 송송 칠성장어 건강 쑥쑥 남설악 오색지구는 산채정식을 하는 식당들이 모여있다. 그중에서 통나무집식당(033-671-3532)이 잘한다.35년째 같은 자리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이 집은 ‘통나무집정식’(1만3000원)이 주메뉴다. 인근 산에 채취한 산나물 8가지와 북어구이, 된장찌개가 나온다. 특히 3개월을 숙성시킨 동치미는 이집의 별미. 얼음이 둥둥 떠 있고 아작아작 배추가 씹히는 맛이 최고다. 뚝배기에 오색약수로 지은 밥은 꿀맛이다. 오색지역의 별미는 ‘칠성장어’. 남대천에서 비가 많이 오는 8월에 주로 많이 잡힌다. 입쪽은 거머리처럼 생겼고 몸통은 일반 장어와 같다.남설악식당(672-3159)이 맛있다. 꼼장어처럼 갖은 야채와 고추장 양념에 졸여 먹는데 쫄깃쫄깃하고 담백한 것이 일품이다. 요즘은 잘 잡히지 않아 가격이 비싼 것이 흠. 마리당 3만원. 산채정식이나 약수정식과 함께 먹으면 좋다. 향긋한 자연산 송이를 맛 볼 수 있는 곳은 양양송이마을(672-0072)도 괜찮다. 오색그린야드호텔 지하에 있다. 오색그린야드호텔(672-8500)은 가족끼리 묵기에 좋다. 우리나라 최초의 콘도형 가족호텔로 호텔급의 서비스에 객실에서 콘도처럼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어 좋다. 가격도 일반 펜션보다 훨씬 저렴하다.25평은 주중 7만원, 주말 9만원. 또한 지하에 있는 탄산온천도 유명하다. 중탄산과 탄산가스를 주성분으로 각종 광물질이 많이 녹아있어 피부병 등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입장료 7000원. 이밖에도 호텔에는 온천물을 이용하는 국제규격의 실내 수영장, 전자오락실, 실내골프연습장,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룸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이태원서 3國 전통한마당

    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관광특구 내 이태원로 거리에서 ‘한·중·일 문화교류 거리 퍼레이드’가 열린다. 이번 행사에서는 숙명여대 풍물동아리 ‘숙풍회’와 이태원동 부녀자풍물패의 풍물놀이, 일본의 전통 가마행렬, 중국의 사자놀이·용놀이 등 한·중·일 3국의 전통 놀이팀이 대거 참가할 예정이다. 특히 일본 전통 가마행렬을 공연할 ‘미코시 마쓰리’팀은 300명에 가까운 대규모. 이들은 오는 6일 오후 1시 대형 가마 미코시를 어깨에 메고 지하철6호선 녹사평역에서 한강진역까지 갔다 되돌아오는 일본 전통 축제를 선보인다. 일본인들은 통상 마쓰리때 미코시 가마를 메고 흥을 돋우면서 그 해의 풍년과 무병 등을 기원한다.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처음 개최되는 이번 행사는 일본 미코시 협회 마쓰리 동호회원들이 회비를 갹출해 참가하는 것으로,80여명이 힘을 합쳐야 들 수 있는 1.5t의 대형 가마가 서울로 공수된다. 행사를 기획한 차명석 세중여행 사업본부장은 “우리나라에 자신들의 고유한 축제를 알리고 싶다는 마쓰리 동호회원들의 바람을 전해듣고 행사를 기획했다.”며 “순수 전통문화의 민간교류를 통해 한·일 양국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김유태 용산구 문화체육과장은 “올해 첫 행사를 지켜본 뒤 내년부터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이태원지구촌 축제’에 정규 프로그램으로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4)18년만의 시화호 외출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4)18년만의 시화호 외출

    최후를 목격하는 일처럼 불행한 경우가 있을까. 낡은 사진첩과 답사노트를 뒤지면서 시계바늘을 18년 전으로 되돌려본다. 시화호가 망가지기 직전을 목격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시에 찍었던 사진을 사회적으로 공개할 의무감을 느낀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틈만 나면 시화호에 가서 살았다. 당시에는 시화호란 명칭도 없었고 그저 화성이나 안산 앞바다로 일명 ‘반월만’이었다. 물론 갯벌을 둘러싼 환경운동이나 갯벌환경에 관한 인식조차 공론화되지 않던 시절.1987년 6월10일, 역사적인 시화호 방조제공사가 시작되었다. 엄습해오는 예감이라고나 할까. 시화호 내의 음도나 형도, 어도, 아니면 화성의 송산면이나 서신면, 우정면 등의 마을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면서 민중생활사의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흔적없이 사라진 계명산 봉화대 저울섬이라 불렀던 형도는 물이 썰면 송산면 독지리 쪽에서 30여분만에 쉽게 걸어들어갈 수 있었다. 독지리 사람들은 봄에는 가무락·동죽·대합·피조개·소라·낙지를 잡고, 여름에는 맛, 가을에는 낙지·쭈꾸미 등을 채취하였다. 물고기는 숭어·농어·민어·새우·꽃게·전어를 잡았다.1988년, 독지리 사람들은 보상 문제에 골몰하였다. 오래 살아온 1등급은 호당 900여만원, 분가한 이들은 2등급으로 호당 850만원, 심지어 최저 100만원 정도를 받는 이도 있었다. 배 보상도 이루어져 작은 배는 서신면의 용두리, 궁평리 쪽으로 팔려나갔으며, 큰 배는 소래포구로 팔렸다. 형도에는 30여가구 120여명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낙지와 바지락·굴·피조개·숭어, 새우, 농어 등을 잡았다. 본디 어부들의 살막만 있던 무인도였는데 기미년(1919) 만세운동으로 쫓겨온 이들이 정착하여 어업에 종사하다가 한국전쟁 이후에 피란민이 밀려들어와 마을이 커졌다. 형도 복판의 계명산을 허물어 바지선으로 돌을 실어날라 방조제를 막았다. 그래서 형도 동쪽 해변에는 중동에서 퇴직한 중장비들이 대체 일감을 찾아 빼꼭하게 들어차 있었다. 계명산 정상을 올라가니 봉화를 올리던 석축봉화대가 완형으로 보존되어 있었다. 계명산을 신성한 신으로 모시고 있었으며, 봉화대 밑에는 바위가 겹쳐진 동굴이 있어 이 역시 신성시되었다. 마고할매가 쌓은 봉화대라고 했다. 동굴은 비단실 열꾸러미를 넣어도 바닥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고 했다. 호기심이 동하여 동전을 던져보았더니 실제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관해기’를 쓰기 위하여 다시 찾았을 때, 동굴도 없어졌으며 봉화대도 사라졌다. 쉽게 말하여, 문화유산을 깔아뭉갠 것. 음도는 형도와 달라 지명유래처럼 소가 누워 있듯 나지막한 섬이다. 파평 윤씨가 사화 때 역적으로 몰려서 낙향하여 개척한 섬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밀도가 높아서 160여명이 살고 있었으며 어업이 주종이었다. 섬 북쪽 선착장에서 뱃길로 안산시 사리포구쪽으로 빠지거나 화성의 독지리와 고정리 사이에 위치한 목섬을 거쳐서 걸어들어갔다. 형도 가는 길과 달리 음도는 멀어서 무려 한 시간여를 걸었다. 물 때를 잘못 맞추면 걸어가다가 조류에 휩쓸려 죽는 이도 많았던 섬이다. 갯벌을 걸어가면서 굴따는 ‘자세’로 지천으로 널린 굴을 까먹으면서 지루함을 달랬다. 음도 사람들은 섬 정상의 숲속에 소당이라 부르는 신당을 모셨다. 조기잡이의 신인 임경업 장군, 각시, 소댕애기씨, 말구중 등 무속신을 모시고 있었다. 선착장 갯가에는 당나무가 서있고 바위가 쌓인 곳은 군웅당이라고 했다. 고정리 쪽 갯가의 돌출바위는 각시당(일명 나락부리당)이라 불렀다. 밀물 때는 보이지 않고 썰물에만 모양이 나타나는 각시당은 갯벌 복판에 서있어 갯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지켜준다고 하였다.18년 뒤의 음도에도 여전히 신당 건물은 숲속에 남아 있다. 우거진 가시덤불을 헤치고 다시금 신당문을 여니 그림들은 간곳이 없다. 찾아온 길손에게 낙지를 거저 주면서 연신 술잔을 권하던 어민들도 사라지고 쥐죽은 듯 고요하다. 옛사람들이 일부 살기는 하지만 예전의 떠들썩함은 찾을 길이 없다. 초등학교를 찾아가니 아직도 건물은 의연한데 주인 잃은 그네는 줄이 끊어진 채로 시간이 멈춰섰다. 마산포에서 걸어들어가던 어도는 음도나 형도와 달리 당시에도 시멘트 포장이었다. 마산포구에는 횟집이 번성하고 있었고 물이 나면 쉽게 어도로 들어갔다. 포도밭을 지나 언덕배기를 내려가면 어도 가는 길목의 해변 초입에 해안초소가 있고 터주가리처럼 생긴 신당이 바위 위에 모셔져 있었다. 고포리의 마산포는 반월만의 어업전진기지로서 형도·어도·선감도·탄도·불도와 연계되었다. 일제시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인천 가는 연락선이 대부도와 영흥도를 거쳐서 다녔다. 따라서 대부도 사람들은 마산포를 거쳐서 사강장을 보았으며, 이곳의 생활권도 뱃길로 인천과 서울로 이어졌다. 이제 대부도와 영흥도는 시화호로 연결되어 4차선 도로로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고포리 어촌계는 당시에 224호에 도합 1000여명에 달하는 조합원을 거느리는 대단위 조직이었다. 고포리의 굴은 알이 작은 대신에 맛이 뛰어났다. 갯벌에서는 맛이 지천으로 잡히고 있었고, 봄·가을에는 숭어, 여름에는 농어, 그 외에 꽃게와 게장용 박하지가 많이 잡혔다. 오랜만에 찾아가본 시화호는 정말이지 예전이 아니었다. 상전벽해는 이를두고 말함이렷다.‘남양인천’으로 불릴 정도로 큰 외항이었던 비봉면 유포리(일명 버들무지)는 예전에는 남양관아로 연결되던 중요한 포구였다.1960년대까지는 조기잡이 중선배가 있어 연근해어업을 다녔다. 가리맛의 주생산지였으나 건너편에 반월공단이 들어서면서 어업은 일찍이 막을 내렸다. 우정면 호곡리를 들어서니 예전에 없던 어시장이 들어섰다. 호곡리는 범아지라 불렀으며 바닷가를 백년거지라 했다.‘백년을 거처할 수 있는 좋은 곳’이라는 뜻. 범아지의 바닷가로 돌출한 산에는 당할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그런데 백년거지는커녕 화옹호에 가려졌다. 수산물이 어획되지 않는 동네에 웬 어시장일까. 거개가 수입산이나 외지에서 들여온다는 솔직한 답변이다. ●물고기 쫓겨난 시화호는 사막일 뿐 물새가 노닐던 해변이 갈대밭으로 덮이면서 아예 ‘우음도 갈대축제, 갈대보러 오세요’ 그런 글이 인터넷에 떠있다. 해초 대신에 갈대라! 문전옥답인 바다밭은 갈대밭으로 변하고, 아직도 죽은 조개껍질들이 하얗게 뒤덮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갯벌에 관한 한 한국사회의 인식은 지난 20여년간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이다. 시화호 출신 해양생태학자로서 국회로 진출한 제종길 의원은,“갯벌문제는 간단히 보면 해양생태 보존과 개발론의 싸움이지만, 지역감정은 물론이고 지역정치를 포함한 한국사회의 총체적 문제점들이 모조리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새만금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시화호도 끝나지 않았다. 시화호가 미완의 장인데 바로 코밑에서 화옹호를 기어이 막았다. 세인들은 간척의 문제점은 인정하면서도 갯벌문제만 나오면 이제는 지겨워한다.‘듣기 좋은 노래도 자주 들으면 지겹다.’(歌曲雖艶 恒廳斯厭)는데 불길한 예언만 쏟아져나오니 아무리 취지가 좋은들 약발이 덜 먹힌다. 간척론자들은 호재를 부른다. 결코 사회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자원공사를 비롯한 간척주도집단의 ‘밥벌이’를 위해서 간척이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은 대단히 설득력 있다. 문제점 투성이인지라 종합성적이 낙제점 이하인데도 책임을 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잘못한 이들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불감증사회’답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물고기도 돌아오고 심지어 돌고래까지 돌아오고 있다는 밑도끝도 없는 낭설이 진실처럼 떠돌기도 한다. 시화호에서 돌아오기 전, 예전에 늘 드나들던 송산면 옛바닷가로 나갔다. 갯벌로 가던 언덕배기를 넘자 한가로운 오솔길 대신에 신작로가 나타났고 조개를 캐던 갯벌터에 농구골대도 들어섰다. 배는 사라지고 연습용 경비행기들이 마중한다. 물고기가 부려지던 선착장은 흉물스럽게 콘크리트더미만을 남기고 있고 죽어버린 따개비만이 ‘여기가 예전에는 잘나가던 포구였소.’라는 무언의 항거를 하는 듯하다. 물고기가 쫓겨난 시화호는 사막일 뿐이다. 해수유통이 되면서 한결 나아졌고, 온갖 철새들이 몰려오고, 옛갯벌은 갈대밭이 되어 야생동물의 보고로 변하고 있으며, 공룡알들이 발견되었다고 아우성이지만 어찌 이토록 무정하게 ‘무단가출’했던 오염된 바다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으랴. 해결책은? ‘무식과격’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동안 투자한 그 모든 것이 아깝더라도 눈 딱감고 방조제를 허무는 길 뿐이다. ●새만금 운명도 시화호의 전철 못벗어날듯 오랜만의 시화호 외출에서 느낀 소감이 이러하니, 현재 진행되는 새만금의 운명 역시 시화호의 전철에서 한치도 못 벗어날 것 같다. 과거를 거울 삼아 오늘의 현실에 살리자는 감고계금(鑑古戒金)의 전범이 시화호일진대, 새만금은 시화호에서 충분히 배웠음에도 아직도 수업료가 부족한 것일까. 성호 이익은 ‘관가에 일이 없으면 촌동네도 조용하다.’(公府無事 村巷方安)고 하였다. 관청에서 불필요한 간척 같은 일을 벌이지 않으면 살 만하다는 뜻이거니와,‘지도가 바뀐다.’‘5000만평 땅을 건지다.’ 등등으로 국민을 현혹하면서 8000억원 이상의 돈을 들이고도 건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국민대사기극’, 시화호에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싶다.
  • [결혼이야기]조동기(28·현대모비스)·임미선(28·하남 동부여중 기간제 교사)

    [결혼이야기]조동기(28·현대모비스)·임미선(28·하남 동부여중 기간제 교사)

    1999년 여름, 우리는 실로 우연한 기회에 만났다. 여름방학때 학교(연세대) 도서관을 오가던 어느날 저녁 스타크래프트에 열중해 있던 친구와 PC방을 찾았다. 채팅을 하려고 유니텔에 접속했다.‘추억 만들기’라는 방에서 대화를 나누다 만난 사람이 ‘임미선’이라는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대학 4학년, 고향은 울진이라고 했다.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던 그녀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임용시험 준비차 서울 고모댁에 올라 왔다는 등등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그녀는 무척 냉랭하게 대했다.“참 잘났다.” 싶었지만 마음 한구석엔 왠지 만나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그녀는 내 제안에 쉽게 동의했고, 다음날 2시쯤에 신촌에서 만났다. 처음엔 그녀가 쉽사리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 더위에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거 하며, 까무잡잡하던 피부색이랑 비슷한 케이크를 먹는 것도 그랬다. 게다가 머리는 답답할 정도로 어찌나 길게 늘어뜨렸던지 손수 귀넘이를 해 주고 싶었다. 시간이 무척 더디 가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영화나 보자면 먼저 일어섰다. 영화를 보고 나자 그녀는 5시밖에 되지도 않았는데 집에 가야 한다며 휑하니 가버렸다. 첫 만남은 그렇게 엉성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가 내 안으로 자꾸 들어왔다. 모습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았다. 한 번 더 만나자고 제안을 했고,8월 마지막 날 한강변에서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여전히 분위기는 서먹했지만 선물로 준비했던 휴대전화를 주고서 헤어졌다. 그 후에도 그녀에 대한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 연고전 때였다. 좋은 기회다 싶어 친구들과 함께 가자며 부탁을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안 되겠다 싶어 대구로 내려갔다. 몇 시간 동안 그녀와의 시간속으로 흠뻑 빠져버렸다. 그녀의 고모집을 향하는 택시 안에서 살며시 손을 잡았다. 그제서야 내 손에 ‘작은 우주’가 하나 들어왔다,‘그녀’라는.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내내 함께 했던 시간을 곱씹어 보았다. 그녀는 언제나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그녀 앞에 서면 봄날의 새털처럼 마음이 푸근해지고 가벼워지곤 했다.“넌 이제 내 꺼야!” 그녀는 졸업을 하고 큰 고모댁에서 임용시험 준비를 했고, 이후 6년 동안 가을날 알밤처럼 실한 사랑을 가꿔 왔다. 마침내 우리는 이번 주 일요일 결혼을 앞두고 있다. 결혼으로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가자고 약속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 만들기는 진행형이다.
  • 서울 5대 전략산업 육성안 가속도 붙는다

    서울 5대 전략산업 육성안 가속도 붙는다

    지난 21일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행정수도 이전은 사실상 물건너갔다. 반면 경제수도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서울시의 5대 전략산업 육성방안 추진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서울시는 지난 8월 중순 심의·의결한 ‘전략산업육성 및 기업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안’을 바탕으로 서울을 동북아 비즈니스의 중심도시로 가꾸어가고 있다. 이에 따르면 시는 디지털콘텐츠, 정보통신, 바이오·나노기술, 금융·사업서비스, 의류·패션 등 5개 업종을 전략산업으로 선정, 육성키로 했다.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이 오히려 득 디지털콘텐츠 산업은 마포구 상암동 일대 17만 2000평에 조성 중인 디지털 미디어 시티(DMC)에 집중된다. 베를린공대 등 12개 독일대학과 프라운호퍼 연구재단 등의 컨소시엄이 투자한 한독산학기술연구원(KGIT)이 2008년 들어서 정보통신공학·공학경영 등 12개 분야의 연구소 및 대학원을 운영할 계획이다.KBS,MBC 등 국내 방송사와 LG텔레콤,㈜팬택 R&D센터,3M 등 기업들의 입주도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약 130층 규모로 지어지는 국제비즈니스센터(IBC) 건립도 다음 달쯤 본격화될 전망이다. 강서구 마곡지구와 공릉동 지역은 나노산업과 바이오산업, 정보통신산업 등이 융합된 차세대 성장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약 30만평 규모로 조성될 마곡 첨단산업단지는 NBT(나노·바이오 기술) 산업의 전초기지로의 역할을 맡는다. 올해 안으로 국내외 유명 대학과 다국적 기업, 국내 대기업 등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마쳐 종합개발계획을 세운 후 오는 2013년까지 개발할 예정이다. 노원구 공릉동 172 일대 4만 9000여평에는 나노기술(NT)과 정보통신기술(IT)이 융합된 NIT 테크노파크가 2014년 완공을 목표로 건립된다.30여곳의 LG필립스 협력업체, 삼성전기 등이 입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청계천엔 제1금융권 본사 집중 유치 여의도와 청계천 일대는 홍콩을 대신하는 동북아 금융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다국적 금융기업인 AIG와 합작, 여의도 중소기업전시장 터에 연면적 8만평의 규모로 짓는 서울국제금융센터(SIFC)는 2009년 완공된다. 여의도 지역에는 증권사 등 제2금융권을 집중시킬 생각이다. 청계천 지역에는 은행 등 제1금융권 본사를 집중 유치된다. 현재 시는 중구 다동 2000평, 세운상가 4만 5000평, 종로구 공평동 6900평 등 가운데 최적지를 저울질하고 있다. 강남구 청담동의 패션기획력을 고부가가치의 패션상품으로 연결시키는 동시에 이를 동대문과 남대문의 중·저가 상품에 파급시키는 의류·패션 지원방안도 마련된다. 이를 위해 매년 4월과 10월 서울컬렉션·패션위크 개최를 지원한다. 능력있고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육성하기 위한 방안도 도입할 계획이다. 장석명 서울시 산업지원과장은 “현재 홍콩과 도쿄, 싱가포르 등에 있는 다국적기업의 아시아 지역본부를 서울로 이전시킬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육성방안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2)신화와 과학이 만나는 이어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2)신화와 과학이 만나는 이어도

    섬을 찾아가고 있다. 하나는 ‘신화 속의 이어도’, 다른 하나는 ‘과학 속의 이어도’이다. 이름은 같되, 역할이 다르고 취할 바도 다르다.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신화와 과학이 이처럼 절묘하게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계 해양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먼저, 신화 속의 이어도를 찾아가 본다. 이어도는 제주도에만 있는 섬이 아니다. 처처불불(處處佛佛)처럼 곳곳에서 이어도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어도를 만난 사람은 어쩜 이 세상으로 되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곳이 피안(彼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꿈에 취하고 싶은 사람들은 메트로폴리스의 뒷골목 허름한 술집, 그도 아니면 영화관에 앉아서라도 꿈을 꾼다. 자본의 시대는 민중의 이상향마저도 오로지 상품으로 환치시킬 뿐이다.‘혁명’은 꿈 속에서도 불가능하고,‘개혁’은 구두선으로 되뇌일 뿐이다. 삶은 늘 현실에 차압당한다. 그래도 이상향을 포기하지는 못한다. 모진 현실을 벗어나 어딘가 ‘지상낙원’이 있을 것만 같다. 옛날에도 그랬다. 가령 보이지 않는 섬 따위에 이상향이 있을 것만 같다.‘그 섬에 가고 싶다.’고 누구나 생각했으나 정작 그 섬에 가본 이는 없었다. 천년의 이상향, 이어도였다. ●가 본 사람 없는 피안의 섬 조선 후기에 변란이 그치지 않았을 때, 해도출병설(海島出兵說)이 떠돌았다. 이름 모를 남쪽 섬 어딘가에서 기마(騎馬)가 벌떼처럼 일어나 한양을 들이친다는 유언비어가 장안을 덮쳤다. 화들짝 놀란 벼슬아치들 가운데는 실제로 도망친 사람도 있었다 한다. 현실을 전도시키는 유언비어의 놀라운 힘! 그 시대를 예언하는 묵시록이 파도를 타고 뭍으로 전해졌다. 바닷가 사람들에게는 모든 희망과 절망이 바다로부터 온다. 산너머 남풍 부는 곳에 이상향이 있다면, 섬사람들에게는 수평선 저 너머 미궁의 바다속에 이상향이 있다. 마라도 남서쪽 물마루 너머에 평화의 땅, 환상의 땅, 이어도가 숨어있다고 믿어왔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마라도 남서쪽의 수중 암초가 이어도란다. 비단 우리에게만 섬에 유토피아가 있는가. 플라톤이 ‘대화’에서 언급한 이래로 오랜 세월 서양인의 꿈이 되어버린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도 바다 속에 잠들어 있다. 아틀란티스를 찾으려는 무수한 노력들이 하나의 새로운 학문, 즉 아틀란티스학(Atlantology)을 출현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아틀란티스는 여전히 미궁의 바다에 머물고 있다. 꿈과 약속을 이뤄 주던 이상향은 천년을 뛰어넘는 하나의 기호로 각인돼 유전인자로 전승될 뿐이다. 그 이어도는 오늘도 남태평양으로 열려진 바닷 속에 잠들어 있다.‘이어도학’(Ieodology)이 출현할 단계이다. 이제, 또 하나의 이어도를 찾아가야 할 차례다. 신화와 과학이 만나서 새로운 이어도를 탄생시켰다.‘전설의 섬 이어도에 우뚝선 첨단 해양과학기지’란 설명이 붙은 한국해양연구원(KORDI)의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Ieodo Ocean Research Station)가 그 곳이다. 신화는 현실일 수도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해도에 소코트라 등으로 명기된 이어도의 실체가 드러났다. 마라도에서 남서쪽 149㎞ 떨어진 수중 암초로, 주변 수심은 55m, 암초의 정상은 해수면에서 4.6m에 불과하다. ●수중 암초에 해양과학기지 들어서 이곳에 무려 1220t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 기둥을 박았다. 수심 40m 해상에 15층 높이,400평 규모의 기지가 들어섰다. 연구원 8명이 2주간 상주할 수 있다. 당연히 선박 접안시설과 헬리콥터 이착륙장, 등대시설, 통신 및 관측시설, 실험실과 회의실도 마련되었다. 해양·기상관측장비 44종 108점이 설치되어 가히 종합연구센터의 면모를 갖추었다. 관측 자료는 무궁화위성(KOREASAT)과 글로벌스타(GLOBALSTAR)를 통해 한국해양연구원으로 전송된 뒤 인터넷을 통해 사용자에게 실시간 제공되고 있다. 지난해 14호태풍 매미가 엄습했을 때, 상륙 10시간 전부터 위력을 경고해 자연재해 감소에 큰 역할을 했음은 세간에 잘 알려진 사실. 이어도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심재설 박사는 과학기지의 역할을 ▲종합해양▲기상관측소, 인공위성에 의한 해양 원격탐사자료 검·교정▲지구환경변화의 핵심자료 제공▲태풍구조 및 특성연구▲어·해황 예보 및 지역 해양연구▲황사 등 대기오염물질 이동 및 분포파악▲불량한 기상 상태에서 해양구조물의 안전성연구▲안전항해를 위한 등대 및 수색 전진기지 역할 등으로 꼽았다. 기지의 역할은 과학적 목적을 뛰어넘어 국방·영토상으로도 중요하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면 망망해대에 작은 점 하나로 보인다. 수중 암초가 과학기지건설을 통해 하나의 섬으로 ‘승격’되었다. 사람이 상주할 수도 있다. 국제해양법상으로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200해리 해양주권시대에 저마다 해역을 넓히려고 안간힘을 쓰는 마당에 이어도 같은 수중 암초가 망망대해에 존재하고, 이곳에 기지를 건설할 수 있게 된 사실을 우리는 조물주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모든 것은 원격 관측제어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우주와 해양이 하나로 연결되고, 또 육지로 전달되어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간다. 첨단 과학기술의 노하우가 총동원되고 있다. 사실, 수심 40m의 거친 바다에 수천 t이 넘는 거대한 골리앗 기둥이 당당하게 선 것만으로도 우리의 기술력을 입증한다. 연구 실무자들은 이들 고급 장비의 도난을 걱정했다. 늘 사람이 지킬 수 없어 망망대해라도 ‘해적’들이 들이닥칠수 있다는 걱정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격제어로 조정,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설치하기도 했다. 기지를 건설하려 했을 때, 중국 등이 까닭없이 반발하기도 했다. 그만큼 해역 주권의 이해득실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신화의 바다에서 과학의 바다로 나아갔으니 감개무량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어도가 실제로 확인되었다고 이상향의 꿈이 끝난 것일까. 달나라가 그랬다. 유인우주선 아폴로가 우주인을 내려놓자, 사람들은 더 이상 계수나무와 방아찧는 토끼는 사라졌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그 ‘우주선신화’로 ‘달나라신화’는 영영 소멸된 것일까. 프랑스의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신화는 인간에게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물리적인 힘은 주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신화는 매우 중요한 것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것은 환상이었지요. 환상을 통하여 인간은 우주를 이해합니다. 물론 환상에 불과할 뿐이지만 말입니다. 과학적인 사고관을 가진 우리지만 매우 제한된 정신력만을 사용할 뿐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탐라 백성이 꿈꾸던 ‘4차원의 현실’ 궂은 일을 하다보면 지문이 닳아 없어진다. 그러나 지문을 영원히 없앨 수는 없다. 민중이 천년을 꿈꾸어 온 이상향의 지문도 그대로 남는 법. 탐라 백성이 꿈꾸던 이상향인 이어도는 가상 공간이며,4차원의 ‘사이버 현실’이다.‘사이버 현실’이 현실과는 구별되지만, 민중은 환상 속에서나마 현실을 보고싶어 한다. 이어도는 현실과 환상을 이어주는 ‘유토피아행 티켓’이다. 그러면 과학은 무엇인가. 그리고 신화란 무엇인가. 신화가 던져주는 환상은 과학의 환상과 화려하게 만날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양자는 영원히 다른 화두이기도 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우리는 신화와 과학이 만나는 이어도에서 2개의 섬을 얻은 것이다. 영원히 미궁의 섬으로서 남아 있어야할 ‘신화 속의 이어도’, 그리고 현실에서 수면 위로 솟구친 ‘과학속의 이어도’가 그것이다. 신화와 과학이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환상적이지 않는가.
  • 효령대상 받는 김우중 동작구청장

    아흔살 넘어서도 예순 된 자식을 걱정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라고 한다. 제7회 효령대상 효도부문 수상자로 뽑힌 김우중(62) 서울 동작구청장은 “4남4녀 가운데 셋째아들로 태어나 아직도 98세인 어머니로부터 걱정을 듣는다.”면서 “꼭 100세까지 사셔서 돼지를 잡아 동네잔치를 열어드리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효령대상은 조선 태종의 둘째왕자 효령대군의 충효 사상과 사회봉사 정신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이현재(李賢宰) 전 국무총리, 권이혁(權彛赫) 전 서울대총장 등으로 이뤄진 효령대상 운영위원회가 각계 추천을 받아 심사를 거쳐 해마다 시상해오고 있다. 충남 홍성 출신인 김 구청장은 겨울철에는 노모를 서울로 모셨다가, 여름철이면 시원한 고향에 모시고 한달에 두차례 직접 찾아가 뵙는 등 효성이 극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998년 취임한 뒤, 충남 태안군 안면도 신야리에 있던 안중초등 분교가 문을 닫자 2001년 이를 매입해 노인휴양소를 세워 운영해오고 있다. 동작구 관내 낡은 경로당 12곳을 재건축, 또는 신축했으며 체력단련실을 설치하는 등 연간 9억원의 예산을 경로당에 투입하고 있다. 노인복지 행정의 체계화를 위해 올 7월에는 전국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자체 복지재단을 출범시켰으며, 치매·중풍을 앓는 노인들이 전문적인 요양·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같은달 실버센터를 세우는 공사에 들어가기도 했다.‘로얄실버봉사단’‘실버사랑지도단’‘복지가정지킴이’ 등 노인 일자리 마련을 위한 취로사업도 다양하게 펼쳤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예술을 뚫고 들어간 사람들/이세기 지음

    ‘그 많은 문학적 업적과 행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나 그 흔한 문단의 단체장을 맡아본 적이 없다. 작품의 질이나 분량에서 투철하게 작가의 자세를 지켜온 그를 보면 아무리 강파르고 앙칼지게 생의 모든 것을 부여안고 몸부림쳐 온 사람도 그의 앞에 서면 모든 것이 미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문단의 청산 박경리) ‘그는 지금도 한달이면 29일 술을 마신다. 좋은 사람과 좋은 대화가 있는 곳은 아무리 바빠도 빠지지 않지만,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과는 술자리를 함께하지 않는다. 대쪽같은 결벽증은 부잣집 둘째아들로 태어났으면서도 서울로 올라온 후 부모로부터 땅 한뼘도 물려받지 않고 혼자서 자수성가한 케이스다.’(리얼리즘 연극의 파수꾼, 차범석의 역사의식) ‘예술을 뚫고 들어간 사람들’은 신문기자 출신인 저자가 2000년부터 2004년 초까지 문예진흥원이 발간하는 월간 ‘문화예술’지에 연재했던 ‘이세기의 인물탐구’를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문학, 미술, 연극, 무용, 국악, 건축 등 각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예술가 35명의 작품 세계와 인생관을 심도있게 조명했다. 영상미학을 실천한 영화감독 김수용, 인간의 체취를 담는 건축예술을 펼친 건축가 원정수, 동양적 신비를 길어올리는 가야금주자 황병기, 자유를 꿈꾸는 무용가 홍신자 등이 그들. 저자는 예술가가 자기 분야에 투철하게 뚫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섭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수묵화 한 점을 그리려면 양해와 석도, 피카소와 고갱, 해부학과 철학, 시와 글씨 등 독서 만권과 만리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가 탐구한 예술가들은 그런 점에서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과 고된 노동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인물들이다. 저자 스스로 “비판의 시각보다는 그들이 이룬 공로에 초점을 맞췄다.”고 하지만,‘인물탐구’라는 타이틀에 비춰볼 때 다소 평면적인 서술이 아쉽다.3만 7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수도이전 위헌 파장] 憲裁결정문 요지

    (신행정 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위헌확인)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이상경 재판관)는 2004년 10월 21일 수도의 이전을 내용으로 하는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우리 헌법체계상 자명하고 전제된 불문의 관습헌법 사항을 헌법개정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채 법률의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어서 그 법률 전체가 청구인들을 포함한 국민의 헌법개정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였으므로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이 결정은 이 사건 법률이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는 김영일 재판관의 별개의견과 국민투표권을 포함한 청구인들의 기본권 침해의 가능성 자체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부적법 각하하여야 한다는 전효숙 재판관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재판관들의 의견일치에 의한 것이다. (1)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2004년 1월 16일 공포되어 같은 해 4월 17일부터 발효되었다. 이 법률에 근거하여 발족한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는 7월 21일 주요 국가기관 중 중앙행정기관 18부 4처 3청(73개 기관)을 신행정수도로 이전하고, 국회등 헌법기관은 자체적인 이전 요청이 있을 때 국회의 동의를 구하기로 심의·의결하였다. 한편 8월 11일 위 위원회는 ‘연기-공주 지역’(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금남면, 동면, 공주시 장기면 일원 약 2160만평)을 신행정수도 입지로 확정하였다. (2)청구인들은 전국 각지에 거주하는 국민들로서, 위 법률이 헌법개정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수도이전을 추진하는 것이므로 법률 전부가 헌법에 위반되며 이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 납세자의 권리, 청문권, 평등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받았다는 이유로 위 법률을 대상으로 그 위헌의 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였다.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2004년 1월 16일 제정 법률 제7062호, 이하 ‘이 사건 법률’이라 한다)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이다.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2004년 1월 16일 법률 제7062호)은 헌법에 위반된다. 가. 이 사건 법률의 내용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수도는 국가권력의 핵심적 사항을 수행하는 국가기관들이 집중 소재하여 정치·행정의 중추적 기능을 실현하고 대외적으로 그 국가를 상징하는 곳을 의미한다. 이 사건 법률은 신행정수도를 ‘국가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가지는 수도로 새로 건설되는 지역으로서……법률로 정하여지는 지역’이라고 하고(제2조 제1호), 신행정수도의 예정지역을 ‘주요 헌법기관과 중앙행정기관 등의 이전을 위하여……지정·고시하는 지역’이라고 규정하여(같은조 제2호), 결국 신행정수도는 주요 헌법기관과 중앙행정기관들의 소재지로서 국가의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가지는 수도가 되어야 함을 명확히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은 비록 이전되는 주요 국가기관의 범위를 개별적으로 확정하고 있지는 아니하지만, 그 이전의 범위는 신행정수도가 국가의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담당하기에 충분한 정도가 되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은 국가의 정치·행정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기관의 소재지로서 헌법상의 수도개념에 포함되는 국가의 수도를 이전하는 내용을 가지는 것이며, 이 사건 법률에 의한 신행정 수도의 이전은 곧 우리나라의 수도의 이전을 의미한다. 나. 수도가 서울인 점이 우리나라의 관습헌법인지 여부 (1)성문헌법 체제에서의 관습헌법의 의의 우리나라는 성문헌법을 가진 나라로서 기본적으로 우리 헌법전(憲法典)이 헌법의 법원(法源)이 된다. 그러나 성문헌법이라고 하여도 그 속에 모든 헌법사항을 빠짐없이 완전히 규율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한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으로서 간결성과 함축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형식적 헌법전에는 기재되지 아니한 사항이라도 이를 불문헌법(不文憲法) 내지 관습헌법으로 인정할 소지가 있다. 특히 헌법제정 당시 자명(自明)하거나 전제(前提)된 사항 및 보편적 헌법원리와 같은 것은 반드시 명문의 규정을 두지 아니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헌법사항에 관하여 형성되는 관행 내지 관례가 전부 관습헌법이 되는 것은 아니고 강제력이 있는 헌법규범으로서 인정되려면 관습헌법의 성립에 요구되는 요건들이 엄격히 충족되어야 한다. (2)기본적 헌법사항으로서의 수도문제 국가의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가지는 수도를 정하는 문제는 국가의 정체성(正體性)을 표현하는 실질적 헌법사항의 하나이다. 여기서 국가의 정체성이란 국가의 정서적 통일의 원천으로서 그 국민의 역사와 경험, 문화와 정치 및 경제, 그 권력구조나 정신적 상징 등이 종합적으로 표출됨으로써 형성되는 국가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수도를 설정하거나 이전하는 것은 국회와 대통령 등 최고 헌법기관들의 위치를 설정하여 국가조직의 근간을 장소적으로 배치하는 것으로서, 국가생활에 관한 국민의 근본적 결단임과 동시에 국가를 구성하는 기반이 되는 핵심적 헌법사항에 속하는 것이다. (3)수도 서울의 관습헌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 (가)우리 헌법전상으로는 ‘수도가 서울’이라는 명문의 조항이 존재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서울은 사전적 의미로 바로 ‘수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1392년 조선왕조가 창건되어 한양이 도읍으로 정하여진 이래 600여년간 전통적으로 현재의 서울 지역은 그와 같이 일반명사를 고유명사화하여 불러온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서울 지역이 수도인 것은 그 명칭상으로도 자명한 것으로서, 대한민국의 성립 이전부터 국민들이 이미 역사적, 전통적 사실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대한민국의 건국에 즈음하여서도 국가의 기본구성에 관한 당연한 전제사실 내지 자명한 사실로서 아무런 의문도 제기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 후에도 수차의 헌법개정이 있었지만 우리 헌법상으로 수도에 관한 명문의 헌법조항은 설치된 바가 없으나, 서울이 바로 수도인 것은 국가생활의 오랜 전통과 관습에서 확고하게 형성된 자명한 사실 또는 전제된 사실로서 모든 국민이 우리나라의 국가구성에 관한 강제력 있는 법규범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나)수도 서울의 역사적 존속 경위 1)조선의 창건과 서울의 수도 설정·계속 서울은 일찍이 고려시대에 남경(南京)이 설치되어 고려의 이른바 삼경제를 이루는 지방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왕조의 창건 직후 곧 수도가 되었다. 한양, 즉 서울의 수도로서의 지위는 성종 때에 완성된 조선의 기본법전이었던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경국대전에는 한성부가 경도(京都), 즉 서울을 관장한다고 명시하여 한성의 수도로서의 지위를 법상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경국대전의 내용은 개정됨이 없이 조선왕조가 존속한 500여년의 장구한 기간동안 계속하여 국가생활의 기본적인 최고 법규범으로서 효력을 유지하였다. 2)일제강점시대의 서울의 수도성 유지 1910년 8월 한일합방에 의하여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는 상황이 시작되었으나 이후에도 경성부(京城府), 즉 서울은 우리나라의 행정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계속하였으며, 국권을 상실한 상황에서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들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독립이 선언된 곳이기도 하였다. 비록 일제의 국토강점으로 인하여 국가조직이 와해된 상태에 있었지만 서울은 우리나라의 수도로서의 대외적인 상징성을 유지하였고 임시정부에서도 서울의 수도성을 당연한 전제로 하여 항일활동 조직을 편성하였으며 국민들의 의식도 변화가 없었으므로 서울의 수도성은 이 시기에도 사실상 유지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3)해방과 건국 이후 현재까지의 서울의 수도성 유지 해방 이후 서울이 수도인 것을 언급하는 법률조항들이 계속 존재하여 왔으나, 이들은 서울이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수도라는 점을 이미 존재하는 규범적 전제로서 받아들이면서 이를 기준으로 수도 서울의 특별한 지위를 법률적으로 설정하기 위한 조항들이었고, 법률의 차원에서 서울이 수도인 점을 확정하고자 하는 내용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해방 이후 현재까지의 이러한 입법의 상황을 살펴보아도 서울이 수도인 점에 대한 우리 국민의 전통적인 법적 확신이 확인된다. (다)그렇다면 수도가 서울로 정하여진 것은 비록 우리 헌법상 명문의 조항에 의하여 밝혀져 있지는 아니하나, 조선왕조 창건 이후부터 경국대전에 수록되어 장구한 기간 동안 국가의 기본법 규범으로 법적 효력을 가져왔던 것이고, 헌법 제정 이전부터 오랜 역사와 관습에 의하여 국민들에게 법적 확신이 형성되어 있는 사항으로서, 우리 헌법의 체계에서 자명하고 전제된 가장 기본적인 규범의 일부를 이루어 왔기 때문에 불문의 헌법규범화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라)이를 관습헌법의 요건의 기준에 비추어 보면,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인 것은, 서울이라는 명칭의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이래 600여년간 우리나라의 국가생활에 관한 당연한 규범적 사실이 되어 왔으므로 오랜 전통에 의하여 형성된 계속적 관행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계속성), 이러한 관행은 변함없이 오랜 기간 실효적으로 지속되어 중간에 깨어진 일이 없으며(항상성),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국민이라면 개인적 견해 차이를 보일 수 없는 명확한 내용을 가진 것이고(명료성), 나아가 이러한 관행은 장구한 세월동안 굳어져 와서 국민들의 승인과 폭넓은 컨센서스를 이미 얻어(국민적 합의) 국민이 실효성과 강제력을 가진다고 믿고 있는 국가생활의 기본사항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우리의 제정헌법이 있기 전부터 전통적으로 존재하여 온 헌법적 관습이며, 우리 헌법조항에서 명문으로 밝힌 것은 아니지만 자명하고 헌법에 전제된 규범으로서,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에 해당한다. 다.‘수도 서울’의 관습헌법 폐지를 위한 헌법적 절차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점에 대한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성문의 수도조항이 존재한다면 이를 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이 필요하겠지만 관습헌법은 이에 반하는 내용의 새로운 수도설정조항을 헌법에 넣는 것만으로 그 폐지가 이루어진다. 예컨대 충청권의 특정지역이 우리나라의 수도라는 조항을 헌법에 개설하는 것에 의하여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은 폐지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헌법규범으로 정립된 관습이라고 하더라도 세월의 흐름과 헌법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이에 대한 침범이 발생하고 나아가 그 위반이 일반화되어 그 법적 효력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상실되기에 이른 경우에는 관습헌법은 자연히 사멸하게 된다. 이와 같은 사멸을 인정하기 위하여서는 국민에 대한 종합적 의사의 확인으로서 국민투표 등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 고려될 여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에 이러한 사멸의 사정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인 것은 우리 헌법상 관습헌법으로 정립된 사항이며 여기에는 아무런 사정의 변화도 없다고 할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헌법 개정의 절차에 의하여야 한다. 라. 국민투표권의 침해 여부 수도의 설정과 이전의 의사결정은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기본적 헌법사항으로서 헌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민이 스스로 결단하여야 할 사항이다. 또한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인 점은 불문의 관습헌법이므로 헌법 개정절차에 의하여 새로운 수도 설정의 헌법조항을 신설함으로써 실효되지 아니하는 한 헌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 개정의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수도를 충청권의 일부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이 사건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헌법개정사항을 헌법보다 하위의 일반 법률에 의하여 개정하는 것이 된다. 한편 헌법의 개정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되어(헌법 제128조 제1항)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에 따른 국회의 의결을 거친 다음(헌법 제130조 제1항) 의결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만(헌법 제130조 제3항)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헌법의 개정은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쳐야만 하므로 국민은 헌법 개정에 관하여는 찬반투표를 통하여 그 의견을 표명할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은 헌법개정사항인 수도의 이전을 위와 같은 헌법개정 절차를 밟지 아니하고 단지 단순법률의 형태로 실현시킨 것으로서 결국 헌법 제130조에 따라 헌법 개정에 있어서 국민이 가지는 참정권적 기본권인 국민투표권의 행사를 배제한 것이므로 동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청구인들이 제기한 다른 쟁점들에 대하여 더 나아가 판단할 필요도 없이, 수도의 이전을 확정함과 아울러 그 이전절차를 정하는 이 사건 법률은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불문의 관습헌법 사항을 헌법개정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채 법률의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어서 그 법률 전체가 청구인들을 포함한 국민의 헌법개정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였으므로 헌법에 위반된다. 이 사건 법률은 청구인들의 기본권인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 별개 의견의 요지이다.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은 헌법 제72조가 규정하는 국방·통일 및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해당하므로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의 대상이 된다. 대통령이 어떠한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의하는 행위는 자유재량 행위이다. 그러나 법치주의의 원리는 어떠한 공권력의 작용이라도 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요구하므로 대통령의 국민투표 부의행위가 자유재량 행위라고 하더라도 재량권의 일탈·남용이 있는 경우에는 그 재량권의 근거 규범인 헌법 제72조에 위반된다. 대통령이 수도이전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지 아니하는 것은 헌법 제72조의 입법목적과 입법정신에 위배되고 자의금지원칙과 신뢰보호원칙에 반하므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헌적인 것이 된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재량권을 적법하게 행사한다면 위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대통령은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국민투표에 부칠 의무가 있다. 이에 국민은 위 대통령의 의무에 상응하는 권리인 국민투표권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은 국민투표에 의하지 아니하고 수도이전의 의사결정을 한 것이어서 국민투표를 확정적으로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한다. 수도의 위치가 관습헌법 규범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가사 다수의견과 같이 관습헌법 규범이라고 보는 경우에도 이 사건 법률이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나아가 헌법 제130조보다는 헌법 제72조에 의하여 이 사건 법률의 위헌성을 확인함이 보다 타당하다. 가. 나는 다수의견의 논지는 우리 헌법의 해석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므로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힌다. (1)우선 오늘날의 헌법에서 과연 한 나라의 수도의 위치가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를 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수도의 소재지는 국가 정체성에 관한 중요한 사항이었으나, 자유민주주의와 입헌주의를 주된 가치로 하고 있는 우리 헌법은, 국가권력의 통제와 합리화를 통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실현하려는 것이 그 근본 목적이다. 수도의 소재지가 어디이냐 하는 것은 그러한 헌법의 목적 실현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 그러한 목적 실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사항이라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헌법상 수도의 위치가 반드시 헌법 제정권자나 헌법 개정권자가 직접 결정해야 할 사항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2)‘서울이 수도’라는 관행적 사실에서 ‘관습헌법’이라는 당위규범이 인정되기 어렵다.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이 오랫동안 우리 민족에게 자명하게 인식되어온 관행에 속한다 하더라도, 우리 국민이 그것을 강제력 있는 법규범으로 확신하고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우리 국민들에게 수도의 위치가 성문헌법과 동등한 효력을 지니는, 즉 헌법개정절차에 의해서만 개정되어야 할 정도의 법적 확신이 존재하여 왔다고 볼 수 없다. 수도이전 문제는 최근에야 우리 사회의 주된 쟁점이 되었고, 이 사건 법률의 입법과정에서도 여야 국회의원들은 수도이전 사안이 국민의 헌법적 확신을 지니는 헌법사항이라든가, 그 개정은 헌법개정절차를 통하여야 하므로 입법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든가 하는 점에 관한 인식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서울이 수도이다.’라는 사실로부터 ‘서울이 수도여야 한다.’는 헌법적 당위명제를 도출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 있는 것이다. (3)성문헌법을 지닌 법체제에서, 관습헌법을 성문헌법과 ‘동일한’ 혹은 ‘특정 성문헌법 조항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효력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없다. 성문의 헌법전은 헌법제정권자인 국민들이 직접 ‘명시적’ 의사표시로 제정한 것으로서 국가의 법체계 중 최고의 우위성을 가지며, 그 내용의 개정은 엄격한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 점에서, 관습헌법과 성문헌법은 동일한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성문헌법의 특징은 최고 법규범으로서 모든 국가권력을 기속하는 강한 힘을 보유하는 것인데, 이는 국민주권의 명시적 의사가 특정한 헌법제정절차를 거쳐서 수렴되었다는 점에서 가능하다. 관습만으로는 헌법을 특징화하는 그러한 우세한 힘을 보유할 수 없는 것이다. 성문헌법 체제에서 관습헌법은 성문헌법에 대한 보완적 효력만을 가진다. 성문헌법이 존재하는 한, 관습헌법은 성문헌법으로부터 동떨어져 성립하거나 존속할 수 없고, 항상 성문헌법의 여러 원리와 조화를 이룸으로써만 성립하고 존속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헌법적 관행에 의해서 성문헌법이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게 되고 성문 헌법전보다 불문적인 헌법의 관행 예가 우선하고 국가생활을 지배하는 결과가 된다. 이러한 법리는 관습헌법의 내용이 중요한 ‘헌법사항’이라 하더라도 동일하다. 국민들은, 설령 헌법제정시 자명한 사실이어서 성문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사항이 있더라도, 언제든지 그러한 사항을 성문 헌법전에 수록할 수 있는 헌법개정권력을, 자신의 대표자와 국민투표를 통하여 행사할 수 있고, 이로써 성문헌법의 효력을 가지게 할 수 있다. 마치 법률에 규정되지 않는 한 아무리 처벌 필요성이 있는 사항도 처벌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성문헌법에 규정되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법적 효력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4)다수의견은 관습‘법률’이 아닌 관습‘헌법’은 ‘헌법’이므로 그 변경은 헌법 개정절차를 통해야 한다고 하나, 이는 형식적 개념논리만 강조된 것이다. ‘관습헌법’이란 실질적 의미의 헌법 사항이 관습으로 규율되고 있다는 것을 뜻할 뿐이며, 관습헌법이라고 해서 바로 성문헌법과 똑같은 효력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성문헌법의 강력한 힘은 국민주권의 명시적 의사가 특정한 헌법제정절차를 거쳐서 나왔기 때문인데, 관습은 그러한 명시적 의사나 특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인정되므로 성문헌법과 같은 효력을 인정할 근거가 없다. 다수의견은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중요한 사항은 ‘국민이 스스로 결단하여야 할 사항’이라고 하나,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와 한글의 경우도 대한민국국기에 관한 규정과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에서 규율되고 있는데, 그러한 규정 형식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 수도와 같은 관습헌법의 변경을 헌법 개정으로 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의 개정은 ‘형식적 의미’의 헌법, 즉 성문헌법과 관련된 개념이다. 헌법제정권자가 헌법개정을 일반 법률 절차보다 훨씬 엄격한 절차를 거치도록 한 이유는, 헌법전에 규정된 내용이 주권자의 의지의 명시적 표명으로서 이를 함부로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헌법에 들어있지 않은 헌법사항 내지 불문헌법의 변경은 헌법의 개정에 속하지 않으며, 우리 헌법이 마련한 대의민주주의 절차인 법률의 제정, 개정을 통하여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국회가 수도이전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민의를 대변하지 않고 당리당략적으로 입법한 것이라면, 그것이 헌법과 국회법 절차에 위반되지 않는한, 그러한 입법의 궁극적 책임은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야 하는 대의기관에 불과한 이상 그러한 입법부를 구성한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다수의견의 논지에 따르면 아무리 국회가 이 사건 법률 제정과정에서 공청회와 청문회 등 충분한 국민의사 수렴절차를 거쳤고, 국회의원 전원일치로 법률이 통과되었더라도, 헌법 개정절차를 거치지 아니하였다는 형식적 이유만으로 위헌이 되는데, 그러한 결론이 타당하리라 보기 어렵다. (5)‘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의 변경은 헌법개정에 의해야 한다면, 이는 관습헌법이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입법권을 변경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관습헌법에 대하여 국회의 입법권보다 우월적인 힘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제40조)고 규정하며, 헌법에 달리 규정이 없는 한 국회의 입법권은 포괄적 대상을 지닌다. 입법권의 주체는 다름아닌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대의기관이며, 헌법은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대의제를 기본형태로 채택하고, 국민으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표기관이 입법작용을 통하여 그 이념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수도이전과 같은 헌법관습의 변경의 경우, 별도로 이를 제한하는 헌법규정이 없는 경우 왜 국회의 입법으로 불가능한 것인지 실질적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 많은 나라에서 의회가 국민투표 없이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데, 이는 의회가 다름아닌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주권의 대행기관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 법률은 투표의원 194인 중 찬성 167인(반대 13인, 기권 14인)으로 재적과반수와 출석 3분의2 이상의 압도적 다수로 통과되었는데, 그러한 입법이 국민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다는, 혹은 민의를 배신하였다는 정치적 비난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별도로 하고, 적어도 헌법적 측면에서 그것이 ‘국회의원들의 권한이 아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한 결론은 관습헌법으로서 국회의 헌법상의 입법권한을 부인하는 것이고, 이는 헌법을 변경하는 것이 되므로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관습에 의한 헌법적 규범의 생성은 국민주권이 행사되는 한 측면인 것이다.’라고 하나, 성문헌법 체제하에서 국민주권의 행사는 저항권의 행사와 같은 특별한 예외가 아닌한 성문헌법의 테두리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현실적으로 무엇이 진정한 국민의 의사인지를 확인하기 어렵고 국민들 간에도 특정 사안을 놓고 갈등과 대립이 있을 수 있으므로, 헌법이 객관적으로 규정한 제도화된 절차가 아닌 헌법 외적인 방식으로 ‘국민주권의 행사’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헌법이 예정하지 않은 그러한 문제는 그것이 국가의 위기상황에 관련된 것이 아닌한 정치적 의사결정 구조에 맡겨야 하는 것이다. (6)결론적으로 서울을 수도로 한 관습헌법의 변경이 반드시 헌법개정을 요하는 문제라고 할 수 없고, 헌법해석상 국회의 입법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이 헌법 제130조 제2항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나. 한편 나는 별개의견이 이 사건 법률은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였다고 한 논지도 받아들일 수 없다.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에게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의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재량을 주고 있는데,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그 재량 여부가 달라진다고 해석할 수 없다. 헌법 제72조가 대통령에게 과도한 재량을 주고 있어 국민주권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는 효과적인 제도인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현행 헌법상 위와 달리 해석할 만한 근거가 없다. 또한 그러한 재량은 헌법이 직접 부여한 것이므로, 행정법상의 재량권의 일탈·남용 법리는 적용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행정수도의 이전 정책에 대하여 대통령이 국민투표 부의를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국민투표권이 행사되지 못했더라도, 이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이 침해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 침해 주장은 권리의 침해 가능성 자체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부적법하다. 청구인들이 주장한 다른 기본권 침해 주장 역시 기본권 침해의 자기관련성, 직접성 혹은 현재성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 결국 이 사건은 ‘기본권 침해’를 구제하기 위한 헌법소원절차에서 헌법재판소가 본안판단을 하기에 부적법한 것이다.
  • 단풍놀이 버스 추락…15명 사망·18명 중경상

    단풍놀이 버스 추락…15명 사망·18명 중경상

    20일 오후 3시45분쯤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속사2리 신약수 인근 지방 도로에서 관광객을 태운 76거 4014호(운전사 서현석·43) 관광버스가 15m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이 사고로 단풍놀이에 나섰던 탑승객 33명 가운데 운전사 서씨를 포함, 남자 10명과 여자 5명 등 모두 15명이 숨지고 1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안전벨트 안매 희생 커 이날 사고는 단풍관광길에 나섰던 관광버스가 방아다리약수터를 지나 신약수방면으로 이어진 급커브·급경사로 이뤄진 도로를 내려가다 발생했다. 내리막길을 달리던 차량은 30여초 가량 좌우로 크게 흔들리다가 급커브길에서 회전하지 못하고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절벽 아래로 굴렀다. 사고 현장에는 사상자들의 옷과 신발, 가방 등 소지품 외에도 갖가지 음식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끔찍한 사고순간을 짐작케 했다. 경찰은 사고 당시 가드레일과 나무등에 부딪친 충격으로 상당수의 탑승객들이 차량 밖으로 튕겨져 나가고 일부는 차량 밑에 깔려 숨지는 등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 대형사고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탑승객 이도웅(63·서울 광진구 노유동)씨는 “점심을 먹고 출발한 지 10분쯤 후 차량이 갑자기 휘청거리면서 속도를 내다가 회전길을 미처 돌지 못한 것 같다.”면서 “사고 당시 ‘쾅’소리와 함께 도로옆 나무를 들이받을 때 충격으로 차량 밖으로 튕겨져 나왔는데 차량에 깔리지 않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탑승객들은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상록수’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들로 대부분 50∼70대 연령층이며 이날 오전 8시쯤 서울을 출발, 강원도 평창 계방산과 방아다리약수터 일대에서 단풍관광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탑승객 “내리막길 속도 안줄어” 사고 장소는 S자형 급경사 2차선 군도로 평소 통행량은 많지 않지만 단풍철에는 대형 관광버스 등의 통행이 많은 곳이다. 경찰은 스키드마크가 35m나 되는점 등으로 미뤄 과속운행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조사를 하고 있다. 아울러 내리막길인 데도 속도가 줄지 않았다는 탑승자들의 말에 따라 제동장치 이상유무도 점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급커브길 경사진 도로지만 안전장치가 철제 가드레일뿐이어서 사고를 키운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이날 사망자 가운데 이운휴(63)·오귀래(59)씨 부부의 시신이 안치된 강릉 동인병원 영안실은 오열하는 유족들로 눈물 바다를 이뤄 주변을 숙연케 했다. ●사망자 명단 ▲서현석(43·서울 강남구 대치동)▲이운휴(63·서울 송파구 방이동)▲이민찬(55·서울 송파구 방이동)▲박세영(65·서울 강동구 성내동)▲차주영(70·서울 강동구 길동)▲안경운(74) ▲윤용섭(72·서울 송파구 석촌동) ▲이종윤(83·서울 송파구 잠실동) ▲이규룡 ▲황봉춘 ▲오귀래(59·여·서울 송파구 방이동) ▲최금자(54·여)▲조부자(60·여·서울 성파구 방이동)▲유명자(여) ▲정지영(67·여) 평창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여야56명 개성공단 첫 현장감사

    여야 국회의원 56명이 20일 북한 개성공단을 대거 방문, 현장감사 활동을 벌였다.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개소식과 시범단지 입주 공장 착공식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남북대화가 교착상태에 놓인 상황에서 남북협력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 21명, 산자위원 20명,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 15명 등 의원 56명이 참여했다. 남측 국회의원의 대거 방문에 북측도 고무됐다. 북측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관계자는 “50명이 넘는 남측 국회의원의 방북은 처음 아니냐.”며 “이런 분위기가 개성공단의 성공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개성공단 성공을 위한 초당적 협력을 다짐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인 열린우리당 임채정 의원은 “넉달 전 왔을 때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는데 그동안 많이 달라졌다.”며 “개성공단을 잘 키워 경제 이상의 평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도 “개성공단은 남북 공동번영뿐 아니라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맹형규 의원은 “남북 공동번영의 의미가 있는 만큼 국회 차원에서 많이 도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같은 당 원희룡 의원도 “생각보다 정말 가깝다. 남북간에 대화는 닫혀 있지만 경제 협력이 계속돼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해 큰 틀에서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가세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개성공단이 남북 경협과 화해 협력의 심장부가 돼야 하겠지만 컴퓨터 하나도 제대로 들어올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 아니냐. 결국 사업의 진척은 미국에 달려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행사에는 통일부와 산자부 관계자, 공단 입주예정 기업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개소식에서 주동창 북측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장은 격려사를 통해 “올해 안으로 공업지구에서 민족 공동의 첫 시범 생산물이 나오기를 바라는 온 민족의 염원에 맞게 사업을 적극적으로 다그쳐 나가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측의 조명균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은 “개성공단의 성공을 위해 정부는 상생과 실용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대화와 협력을 통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야 의원들과 김동근 공단이사장, 주동창 총국장 등 행사 참석자들은 개소식에 이어 입주공장 착공 시삽행사를 가진 뒤 관리위 사무실과 직원 숙소, 교육관 등을 둘러봤다. 개성공단 관리위는 이날 개소식에 이어 28일부터 남측에서 30명의 인원이 상근, 입주공장 건설공사 등을 관리하게 된다. 남측 참석자들은 행사에 이어 개성 자남산 여관으로 이동, 북측 인사들과 오찬을 한 뒤 선죽교와 고려민속박물관을 참관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개성 공동취재단·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성공시대] 단돈 1000원의 행복

    [성공시대] 단돈 1000원의 행복

    “우산도 1000원인가요?” ‘싼게 비지떡’이라는 통설을 무색케 하는 싸고 질 좋은 제품이 경기불황에 더욱 빛을 내고 있다. 일본의 100엔숍과 미국의 1달러숍을 벤치마킹한 1000원숍이 서울 명동에서 인기다. 시중에서 3000∼4000원에 팔리는 웬만한 생활용품을 절반도 채 안되는 가격에 내놓은 덕이다. 주머니 가벼운 소비자를 유혹하는 ‘1000원의 경제학’이 통했다. ●일제 프라이팬도 단돈 1000원 “천원 세상, 만원 행복” 지난 3월 개점한 온리원 명동점에는 일제 프라이팬을 비롯, 우산, 그릇, 넥타이, 이어폰, 옷 등 생활용품 1500여종이 빼곡하다. 주식회사 온리원은 3년 전 전주에서 처음 문을 연 뒤 3년만에 서울로 입성,50평의 매장을 만들었다. 양종석 온리원 관리팀장은 “천원짜리 상품은 싸기 때문에 품질은 떨어진다는 인식을 쉽게 갖는다.”면서 “이 때문에 불량상품은 100% 환불 해주는 등 엄격한 ‘리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에는 전주에서 판매한 뚝배기에 물이 스며드는 결함이 발견됐다.‘하자가 발생한 제품은 교환해줘야 한다.’는 내부 방침에 따라 중앙일간지와 지방지 몇 군데에 수백만원을 들여 광고를 냈다. 이미 팔린 3000여개 뚝배기 가운데 리콜 서비스를 통해 회수된 제품은 30여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1000원 숍’ 온리원의 이미지는 크게 올라갔다. 그는 “저렴해서 제품을 우습게 생각할 것 같지만 문제가 있는 제품을 교환하러 오는 고객들이 예상밖에 많다.”면서 “천원숍을 통해 고객들이 알뜰하게 사는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도 하나의 보람”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3000∼4000원으로 1시간씩 쇼핑을 즐기는 ‘1000원숍 마니아’까지 생겼다. 단골 고객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20%에 달한다. ●‘박리다매’… 순이익률 10%선 양 팀장은 “중국이나 인도, 베트남 등에서 저렴하게 제품을 들여온다.”면서 “원래 싸게 살 수 있는데 다단계의 유통경로를 거치면서 가격이 부풀려진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다 온리원은 대량구매나 덤핑 등으로 원가를 더 낮춘다. 제품에서 인건비와 운영경비를 뺀 이익비율은 대략 20∼30%, 인건비 등 제반경비를 제외하면 순이익의 비율은 10%정도이다. 하루 매상은 400만∼500만원, 한달에 1억∼1억 2000만원 안팎을 기록한다. 하루 1000명 이상이 이 매장을 찾으며 이 가운데 80%는 여성이다. 최근에는 입소문을 타고 외국인 관광객까지 여기에 가세했다. 정기원 명동점장은 “교회나 어린이집, 양로원 등 단체 주문도 많다.”면서 “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깨기 위해 인테리어 등에 오히려 신경을 많이 쓴다.”고 털어놨다. 본사 직영점인 명동점에 투입된 매장 개설 비용은 1억 3000만원. 여기에는 상품대금 5000만원과 인테리어 비용 2000만∼3000만원이 포함된다. ●매상을 4배 올린 ‘벌서기 광고’ 1000원숍이 성공한 요인은 값에 비해 좋은 품질과 리콜서비스 외에 숨겨진 것이 하나 더 있다. 국내 한 자동차회사의 광고를 패러디한 홍보 전략이 바로 그것.‘○○의 출시를 반대합니다.’라는 푯말을 들고 있는 자동차 광고를 모방했다. 가게 앞에서 직원들이 교대로 ‘모든 상품 천원’이라는 문구가 적힌 광고판을 높이 들고 서 있다. 초등학교 때 벌을 서는 장면과 유사한 이 모습은 행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정 점장은 “미술을 전공한 한 아르바이트 학생이 만원에 제작한 광고판이 전체 매출을 4배나 올렸다.”면서 “하루 10시간씩 광고판을 들고 있으니까 불쌍해서라도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110만∼120만원에 불과하던 하루 매상은 ‘벌서기 광고’를 실시한 바로 그날 두배까지 뛰어 올랐다. 그는 “매장이 지하에 있기 때문에 이 공간을 으레 주차장으로 생각한다.”면서 “벌 서는 시간이 늘수록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증가했다.”고 전했다. 온리원은 앞으로 프랜차이즈 형태로 서울시내에 ‘천원숍’을 더 개설할 예정이다. 한 기독교 사학재단에서 운영하는 온리원은 이익금의 일부를 사회에 내놓는 등 건전한 기업문화를 만드는 데도 힘쓰고 있다. 글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국감 하이라이트] 건교위 서울시 국감

    [국감 하이라이트] 건교위 서울시 국감

    18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의 서울시에 대한 국정감사는 마치 지난 8일 열렸던 행정자치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 재방송을 보는 듯 ‘판박이’처럼 진행됐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수도이전의 타당성’과 ‘관제데모 동원 의혹’에 질의시간을 집중하며 이명박 서울시장을 강하게 추궁했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수도이전은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면서 이 시장을 옹호하기에 바빴다. 질의에 앞서 김한길 위원장은 머리 발언을 통해 여야 의원들에게 ‘정쟁 자제’를 요청했으나 오전 질의에 나선 25명 의원 중 민주당 이낙연 의원과 무소속 최인기 의원 등 단 2명을 제외한 23명이 ‘수도이전 문제’와 ‘관제데모 동원 문건과 이에 관한 위증 여부’를 질의하며 지루한 공방을 계속했다. 이낙연 의원은 “재건축·재개발 등이 난개발로 이어지지 않도록 적절한 규제와 제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수도이전과 관련, 한나라당 안택수 의원은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권이 집권을 위한 ‘만병통치 카드’로 수도이전을 이용하고 있다.”면서 포문을 열었다. 그는 수도이전이 불가한 이유 중 하나로 “열린우리당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리고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을 정략적으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이윤성 의원과 정갑윤 의원은 “충남도가 신행정수도 이전 추진을 위해 각종 홍보와 노력을 펼치는 것처럼 서울시도 수도이전 반대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며 “더 강력한 반대 노력을 보이지 않는 이 시장은 서울시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오히려 질타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작심’하고 온 듯했다. 노영민 의원은 “수도이전은 눈앞에 닥친 현실이며 동시에 역사적 소명”이라면서 “지적 나태나 능력부족으로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지도자는 역사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같은 당 윤호중 의원은 “이 시장은 법으로 정해진 신행정수도 건설을 무시하고 있다.”면서 “이 시장은 서울 우월주위와 서울 이기주의에 빠져 ‘역사적 반역’을 저지르고 있다.”고 더욱 강경하게 공격했다. 이 시장은 이에 “‘반역’이란 말을 함부로 쓰지 말아달라.”고 제동을 걸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장경수 의원은 ‘이명박 시장=마마보이’라는 주장을 펼쳐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장 의원은 “청와대가 이전해도 서울은 도시 서울로서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한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장은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가 반드시 서울에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청와대 의존 ‘마마보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김동철 의원은 “신행정수도 건설 이외에는 서울시의 어떠한 과밀해소 노력도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하자 이 시장은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뭐든 이뤄낼 수 있다.”라고 맞받아쳤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삼성증권배 2004 포스트시즌] 삼성 호지스-두산 박명환 16일 잠실 3차전서 ‘올인’

    ‘운명의 3차전은 내가 잡는다.’ 프로야구 플레이오프(PO) 대구 2연전에서 1승1패의 호각을 이룬 삼성과 두산이 최대 고비인 16일 잠실 3차전에 ‘올인’을 선언했다. 5전3선승제의 PO 3차전에서 승리할 경우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거의 손에 넣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 따라서 선봉장인 선발 투수의 어깨가 그 어느때보다 무겁다. 14일 대구 2차전에서 승리,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로 향한 삼성은 3차전 선발의 중책을 용병 케빈 호지스(31)에게 맡겼다. 선동열 삼성 수석코치는 “구원왕인 임창용을 3차전 선발로 기용할 생각도 했었다.”면서 “그러나 호지스가 두산에 강했고, 자신도 승리에 강한 의지를 보여 낙점했다.”고 말했다. 적지에서 1승을 건지고 안방으로 돌아온 두산은 올시즌 삼성에 유독 약했던 박명환(27)을 선발로 내세운다.2차전에서 좌완 전병두를 깜짝 선발로 투입해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닥터K’ 박명환이 홈 1차전에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할 것으로 굳게 믿는다.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다승왕(17승)에 올랐던 호지스. 올시즌 9승10패, 방어율 4.24로 팀의 기대에 못미쳤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들이 포스트시즌에서 진가를 보여 호지스도 한몫할 것으로 기대된다. 호지스의 강점은 상대 타자가 누구든 결코 주눅들지 않는 대담한 피칭. 큰 경기인 포스트시즌에서 더욱 빛을 발할 전망이다. 특히 올시즌 두산전 3경기에 선발로 나서 승리를 챙기지는 못했지만 방어율 2.87의 ‘짠물 피칭’을 뽐냈다. 김동주와 안경현에게 각각 3타수 1안타,6타수 2안타로 나란히 피안타율 .333을 기록했을 뿐, 중심타선인 최경환(.200)과 홍성흔(.143)을 꽁꽁 묶어 삼성을 고무시킨다. 이에 견줘 탈삼진(163개)과 방어율(2.50) 2관왕에 등극한 박명환은 3차전을 자존심 회복의 무대로 여긴다. 올시즌 12승을 따냈지만 네차례 선발 등판한 삼성전에서는 승수없이 1패만을 기록했다. 게다가 방어율은 5.26으로 시즌 평균치를 훨씬 웃돌았다. 약세를 면치 못했던 양준혁(피안타율 .538)과 진갑용(.444), 박한이(.364)에게 ‘닥터K’의 위용을 과시할 각오다. ‘영원한 우승후보’ 삼성과 ‘뚝심’ 두산의 운명을 거머쥔 두 투수의 한판 승부에 팬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대구 김민수기자 kimms@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네 모녀 목포산낙지

    [뒷골목 맛세상] 네 모녀 목포산낙지

    북한산 산행을 하는 이들이 산을 오르내리기 위해 모이는 장소는 코스에 따라 여러 곳이 있다.그 중에 한 곳이 지하철 불광역 코스인데,불광역 코스의 산행팀들 중에서 언제부터인가 입소문을 통해 유명해진 낙지전문 요리집이 있다.그 입소문이란 다름 아닌 ‘싸고 양이 많은데다가 색다른 맛이 있다.’는 것이다. ‘목포산낙지’라는 평이한 옥호인데,나로서는 이 맛집을 취재하는 동안에 지금까지의 다른 맛집들과는 달리 적잖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불광역 산행팀의 입소문에 따라 ‘목포산낙지’를 찾았을 때,우선 그 위치가 뒷골목의 뒷골목에 숨어 있어서 집 찾기부터 쉽지 않았다. 이제 막 땅거미가 내려앉는 평범한 주택가 골목을 해맨 끝에 어렵사리 찾아냈는데,이것 봐라,주변의 정황으로 보아서는 전혀 장사가 될 것 같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집안에는 뜻밖에 손님들이 바글바글 들끓고 있어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야 겨우 자리를 차지할 수가 있었다. 어렵게 자리를 차지하고 드디어 연포탕이며 철판낙지볶음 같은 ‘목포산낙지’의 몇몇 요리를 대할 수 있었는데,나로서는 산행팀에게 들은 입소문 중에서 싸고 양이 많다는 점은 얼른 수긍이 된 데 반해 다른 집하고는 달리 색다른 맛이 있다는 점은 별로 수긍이 되지 않았다.나중에 산행팀의 한 사람에게 이 점을 지적하자 그 이는 대뜸 잘라 말했다. “한두 번 먹어가지고는 목포산낙지의 색다른 맛을 알 수가 없지.” 그이의 말에 나는 은근히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는데,게다가 덧붙이는 말이 불광역 ‘목포산낙지’는 원조가 아니고 정작 ‘목포산낙지’ 원조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이가 가르쳐준 원조는 지하철 홍제역 부근에 있었는데,이것 봐라,이 원조 역시 어쩌면 그렇게도 불광역과 판박이로 똑 같으랴.뒷골목의 뒷골목 주택가에 숨어있는 것하며 바글바글 끓는 손님들하며…. 알고 보니 이 판박이 ‘목포산낙지’는 불광동과 홍제동 말고도 사직동과 마포 서부지청 뒷골목에도 있었다.그리고 그 주인들은 홍제동(02-391-7992)의 어머니 오순옥 여사를 위시해서 사직동 배화여대 입구(02-735-0881)의 큰딸 유영숙,불광동(02-388-3551)의 둘째딸 유경숙,마포 서부지청 옆골목(02-713-7604)의 셋째딸 유정숙으로 일가를 이루고 있기도 했다. 내가 일가 중에 먼저 취재를 하고 싶다고 운을 뗀 것은 불광동의 둘째딸 유경숙이었다.우선 내가 처음 간 집인데다가 주인 되는 이가 붙임성이 있어 보이고 그만큼 성격도 화끈하겠다 싶어서 먼저 운을 뗀 것인데,보기 좋게 한 마디로 거절당하고 말았다.그이는 빤히 나를 보며 묻는 것이었다. “거추장스럽게 왜 신문에 나고 그래요?” 아니,신문에 나는 것이 거추장스럽다니! 이 정도 되자 나도 드러내놓고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이어서 오기로 달려들어 북한산 산행팀들까지 동원한 끝에 삼고초려식으로 어렵사리 취재 승낙을 받아냈다. 홍제동의 오순옥 여사가 일가의 중심이 되어 오늘의 ‘목포산낙지’ 시대를 열게 된 것은 정말로 한 순간의 우연 때문이었다.갓 결혼한 열아홉살 새댁의 몸으로 남편 유점만을 따라 고향인 고흥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 것은 일찍이 60년대 초반이었다. 달랑 몸뚱어리 하나만을 밑천으로 삼고 시작한 젊은 부부의 서울살이는 애초부터 고달플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충무로 길거리에 난전을 펴고 앉아 막무가내로 장사를 하기 시작하여 의정부를 헤매며 고물장사를 하다가 이번에는 홍은동으로 흘러들어 인왕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하게 되었는데,20년 가까운 서울살이 끝에 1남 3녀의 자녀들과 함께 수중에 1000만 원을 거둘 수가 있었다.어느 덧 중년에 이른 부부는 홍제동에 보증금 1000만 원짜리 전세에 10평 남짓한 가게를 마련하여 미처 옥호도 내걸지 못한 감자탕집을 열었다. 아마도 이들 일가에게는 감자탕집을 전후한 시기가 가장 어려웠던 모양이었다.모처럼 어머니와 세 딸이 함께 모여 이러저런 지난 시절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둘째딸이 어머니의 말에 우스갯소리로 한 마디 덧붙였다. “하여튼 우리 집은 제대로 시집간 딸이 하나도 없응께.” 그러자 어머니가 나에게 세 딸들을 손짓해보이며 큰소리를 내었다. “이년들 통통한 몸땡이 잠 보시요.시방 이렇게 잘 묵고 잘 사는 년들이 어디 있겄소? 다 에미 잘 만난 덕이제.” 어머니의 말에 세 딸들이 이구동성으로 ‘그건 그래’하며 키들거렸다. 감자탕집을 시작한 지 4년이 되던 어느 해 가을에 유점만씨가 시제를 지내러 고향에 갔다가 산낙지를 가져왔다.식구들이 먹어치우기에는 많은 양이어서 우연찮게 손님들에게 내놓았더니,반응이 놀라웠다. 당시만 해도 오순옥 여사는 낙지요리에는 전혀 무지하여 고향에서 하던 대로 그저 끓는 물에 데쳐내는 식이었는데,살아있는 낙지여서일까,한번 먹어본 손님들은 감자탕보다는 자꾸 낙지만을 찾는 것이었다.할 수 없이 남편이 다시 한번 고흥에 가서 산낙지를 사올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번에도 반응이 놀라웠다. 마침내 부부는 감자탕집을 때려치우고 그 자리에 낙지집을 차렸다.‘목포산낙지’라는 옥호도 이때 붙인 것인데,우선 탁자 3개를 놓고 시작하여 손님이 넘쳐나면 모자라는 자리는 가까운 주차장 한편에 천막을 쳐서 때웠다.그리고 한번은 남편이 한번은 아내가,이렇게 날마다 교대로 고흥을 오르내렸다.서울역에서 자정 무렵에 출발하는 밤차를 타고 이른 새벽에 순천에 내려 버스로 바꿔 타고 고흥에 도착하면 이제 막 장이 열린다.부랴부랴 산낙지를 사서 고속버스를 타면 오후 4시에 남부터미널에 도착하고 거기서 택시를 타면 간신히 저녁 시간에 가게에 닿을 수 있었다. 언젠가 고흥장의 산낙지가 물량이 달려 안타까워하자 상인 중의 한 사람이 녹동에 가보라고 일러주었다.그리하여 부부는 녹동 수협 공판장에서 중개인을 만나 직접 산낙지를 구할 수가 있었다.녹동 수협과 거래하면서부터는 활어 운송차가 날마다 서울을 오르내려서 부부가 직접 녹동까지 다니지 않고도 손쉽게 산낙지를 공급받게 되었다. 이 무렵에는 오순옥 여사 또한 다양한 낙지요리에 눈을 떠 낙지데침 말고도 연포탕이며 낙지무침,낙지전골 등의 메뉴를 내놓을 수 있게 되었는데,이런 메뉴는 누구에게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순전히 손님들의 요구에 따르다 보니 저절로 익혀진 것이었다.이를테면 주인 뿐만이 아니라 주인과 손님이 함께 만들어낸 합작품인 셈이다.어쩌면 바로 그런 합작품의 솜씨 속에 산행팀의 한 사람이 나에게 스무고개 비슷하게 밝힌 ‘한두 번 먹어봐서는 알 수 없는 목포산낙지 색다른 맛’의 비밀이 있는지도 모른다. ‘목포산낙지’를 찾는 손님들이 하고 많은 낙지요리 전문집들 중에서도 정도 이상으로 이 집만을 고집하는 것에 대해 무슨 비법이라도 있느냐고 오순옥 여사에게 묻자,뜻밖에도 아주 단순한 대답이 돌아왔다. “비법은 무슨 베라묵을 비법.워낙 생물이라 낙지 자체가 좋은 것뿐이제.” 저마다 ‘목포산낙지’를 차린 세 사위들 중에서 둘째 사위가 언젠가 조심스럽게,‘장모님,혹시 어디서 낙지요리법을 전수받았습니까.’하고 물어왔을 때도 대답은 비슷했다. “전수는 무슨 베라묵을 전수.손님이 원하는 대로 거시기하게 맹글다봉께 거시기하게 된 거지.요리법이고 뭐이고 따지자먼 나 같은 엉터리는 천하에 없을 거이여.” 세 딸들 중에서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서 낙지요리 솜씨를 전수받은 것은 둘째딸이다.당시에 양재동의 유명한 한식당에서 서빙을 하던 둘째딸 류경숙은 거기에서 어쩐지 배우 한석규를 닮아 지성적으로 보이는 남편 정종석을 만나 결혼한다.그리고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교통사고를 내는 바람에 그동안 벌어놓았던 돈도 다 까먹고 할 수 없이 어머니 그늘에 들어온다. 이미 남편과 함께 유명한 한식당에서 식당일의 이모저모를 익힌 류경숙은 어머니 그늘에 든 지 1년 후에 홍제동에서 멀지 않은 대조동에 당시까지 비어 있던 창고 중에서 13평을 세 얻어 ‘목포산낙지’라는 옥호를 내걸었다.이 대조동 ‘목포산낙지’ 또한 상상외의 성공을 하여 단숨에 창고 전체를 사용하는 40여평 규모로 터를 넓힐 수 있었는데,젊은 부부의 의외의 성공에 놀란 집주인이 부부를 내쫓고 대신 낙지집을 차리는 바람에 부부는 지금의 불광동으로 자리를 옮겨 바야흐로 불광동 시대를 맞게 되었다. 류경숙은 류경숙대로 솜씨며 경영에 있어서 홍제동의 어머니 못잖은 비법이 있는 듯하다.그녀는 그 비법에 대해 ‘손님에게 두 개를 줘야 손님이 하나를 준다.’라는 아리송한 대꾸로 얼버무렸다.내가 미진해하자 그녀가 덧붙였다. “낙지가 비쌀 때는 오늘은 낙지를 많이 못준다고 솔직하게 밝히고,대신에 낙지가 쌀 때는 손님들이 놀랄 만큼 많이 줘요.그리고 그걸 손님들이 믿어줘요.” 목포산낙지가 번창하기는 홍제동이나 불광동뿐만이 아니라 사직동과 마포도 마찬가지인 듯하다.첫째딸 류영숙이 사직동에 ‘목포산낙지’를 낸 것은 1999년이고,셋째딸 류정숙이 뒤늦게 마포 서부지원 옆골목에 ‘목포산낙지’를 낸 것은 2001년이다.이들 세 딸들 또한 어머니처럼 녹동에서 ‘워낙 생물이라서 물이 좋은’ 산낙지를 가져다 쓰는 것은 물론이다.그렇듯이 저녁이 되면 손님들로 식당이 다 차서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도 사직동이며 마포 또한 예외는 아니다. ■ 서울서 세발낙지를? ‘목포산낙지’의 메뉴는 세발낙지를 젓가락에 감아서 통째로 먹는 통낙지(2만원)와 송송 썰어서 참기름을 묻혀먹는 산낙지(2만원)가 있다. 그리고 낙지에 콩나물과 파와 양파를 넣어서 철판에 볶는 산낙지철판볶음이 있는데,크기에 따라 대중소로 각각 4만,3만,2만원짜리로 나누며 4만원짜리는 네 사람이,3만원짜리는 세 사람이, 2만원짜리는 두 사람이 먹을 양으로 적당하다. 산낙지전골이나 산낙지볶음,산낙지무침,산낙지연포탕도 역시 크기에 따라 대중소로 나뉘어지며 값도 마찬가지다. 만일 ‘목포산낙지’에 처음 들르는 이라면 나는 우선 산낙지연포탕을 권하고 싶다.연포탕에는 살짝 데쳐 썰어내는 낙지 말고도 조개가 적잖게 들어있는 데다가 미나리며 부추,미역을 원하는 대로 추가하여 먹을 수 있는데,그것들을 다 건져먹고 나면 그 국물에 취향에 따라 이제 막 삶아낸 소면이나 중면을 말아먹기도 하고,밥을 넣고 끓이다가 계란을 풀어 죽으로 먹기도 한다. 산낙지철판볶음이나 산낙지전골,산낙지무침,산낙지볶음 같은 안주 메뉴도 다 먹고 난 후에는 다시 거기에 밥을 넣고 볶아먹을 수 있는데,이런 식으로 하면 한 가지 요리만으로도 충분히 양을 채울 수 있다. 이밖에도 점심식사 메뉴로는 산낙지회덮밥(6000원),산낙지볶음덮밥(5000원),뚝배기세발낙지연포탕(7000원) 등이 있는데,비단 점심 때 뿐만이 아니라 저녁에도 주문이 가능하다.
  • [내 인생의 등대]이명박 서울시장-스펜서 존슨 ‘선물’

    소년은 왜 자신의 삶이 불행할까하고 노인에게 물어본다.노인은 지나온 시절 행복했던 한때를 전해주며 인생에 있어서 행복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우치게 한다. 대부분의 명사들이 ‘자신의 삶에 이정표가 된 책을 소개해 달라.’고 하면 고전(古典)을 들고 나오지만 이명박 서울시장은 지난해 국내에 처음 소개된 베스트셀러 스펜서 존슨의 ‘선물’이란 책을 추천했다.선물은 소년이 경륜있는 노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이 시장은 지난 6월 뉴욕 출장 후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책을 단숨에 읽어치웠다.어린 시절의 방황과 자신의 삶의 궤적에 큰 영향을 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자신의 관계가 오버랩됐기 때문인 듯하다. 이 시장은 “지혜로운 한 노인을 통해 삶을 성공적으로 일궈가는 청년의 모습이 내 삶과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특히 정주영 회장에 대해 언급하며 “‘선물’의 주인공인 소년이 자신이라면 지혜와 경륜을 갖춘 노인은 정 회장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시장은 이 책을 ‘책 읽는 서울 만들기’행사 당시 한 여중생에게 선물했다.‘선물’을 선물한 셈이다. 평범하지만 연륜을 갖춘 노인의 ‘지혜의 샘’을 좇는 소년처럼 이 시장으로부터 책을 선물받은 소녀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의 비밀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 시장은 “이제 ‘선물’의 주인공 소년이 아닌 ‘노인’의 역할을 해야 할 때”라면서 “서울시청의 공무원들에게 나의 경륜과 경험,지혜 등을 오롯이 전달할 것”이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철강올림픽’ 내년 서울서…영향력 커진다

    내년 10월 서울에서 ‘철강올림픽’이 열린다. 포스코 이구택 회장이 세계 유수 철강업계 CEO로 구성된 국제철강협회(IISI) 총회를 서울로 유치했다. 이 회장은 한국철강협회 회장자격으로 지난 6일 밤(한국시간)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제38차 IISI 총회에서 내년 서울 총회에 회원사들을 초청하는 연설을 했다. 이 회장은 연설에서 “전세계 철강인들이 참가하는 IISI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게 돼 기쁘다.”면서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도록 총회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976년 정회원으로 가입한 포스코는 지난 88년에 이어 이번에 두번째로 총회를 서울로 유치,세계 철강산업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 특히 이 회장은 지난 3일 IISI이사회에서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15인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이 회장이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본격 참가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한국 철강업계는 통상,환경,수급 등 세계 철강업계의 현안 이슈에 대한 발언권이 확대되는 등 영향력을 한단계 높이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철강업계에서 ‘절대적’인 파워를 발휘하는 IISI에서 이같은 이 회장의 확고한 입지 굳히기는 세계 철강업계에서 점차 높아지고 있는 포스코의 ‘위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미 해외에서도 포스코를 ‘한국의 챔피언기업’으로 소개하고 있고,포스코의 높은 효율성과 수익성에 관심을 갖는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내년 서울 총회는 한국철강협회와 포스코,INI스틸,동국제강 등 국내 회원사들의 공동 주최로 열린다. 이번 이스탄불 총회에서는 신일본제철의 아키오 미무라 사장이 신임 회장으로 선출됐다.또 세계 철강생산량의 30%를 소비하는 중국이 신규 회원으로 가입,국제 철강업계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영향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7년 출범한 IISI는 현재 55개국,196개 철강업체가 회원사로 가입해 있고,회원사의 조강생산량은 세계 조강생산량의 100%에 달한다. 포스코 관계자는 “내년 서울 총회는 세계 철강업계간 화합의 장으로서 포스코와 한국 철강업의 발전상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세계 IT업계 수장 30명 줄줄이 서울로

    세계적인 정보통신(IT) 기업의 CEO 30명이 대거 서울을 다음주 중 방문할 예정이다. 휼렛 패커드(HP) 칼리 피오리나 회장,모토롤라 에드워드 잰더 회장,노텔네트워크스 윌리엄 오언스 회장 등 IT 업계 수장들이 줄줄이 방한,자사의 한국 지사를 찾는 한편 정보통신부 진대제 장관과 면담을 갖는다. 특히 오는 14일 SK텔레콤이 주관하는 전세계 CDMA 이동통신사업자의 모임인 ‘CDMA 오퍼레이터 서밋 2004’가 서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이틀간 예정되어 있어 버라이어존 와이어리스,퀄컴,스프린트,KDDI,페가소 등 16개국 27개사 CEO들도 대거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칼리 피오리나 회장은 12일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이뤄지는 연구개발(R&D)센터 개소식에 참석한다.한국HP는 HP가 연구소를 갖는 일곱번째 지사다.모바일 기기와 이동통신 네트워크 장비 등이 연구분야다.방문 일정은 11∼13일이며,이번 방한은 지난 1999년 취임이후 다섯 번째다. 노텔네트워크스 윌리엄 오언스 회장의 방한은 지난 4월 취임후 처음이다.아·태지역 순방 차원의 일환으로 14일부터 3박4일간 머문다.정통부 방문은 물론 고객사인 KT 등 대형 통신 사업자들을 만나 지속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LG전자도 방문,이동통신분야 합작사 설립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월 취임후 처음 한국을 찾는 모토롤라 에드워드 잰더 회장은 14일 하루 머문다.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대한상공회의소 오찬 간담회에 참석,세계 IT 기술 경향과 모토롤라의 향후 전략에 대해 강의한다.직원들과의 대화시간을 갖는 한편 자사 휴대전화를 납품받는 대형 고객 기업인 SK텔레콤도 방문한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국감 말말말]

    ●좋은 정책 대안이 나오는데 카메라가 없네.정쟁을 하는 데는 꼭 카메라가 있습니다.(이석현 보건복지위원장=언론이 정책 질의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아쉬워하며) ●비만 서울을 웰빙 서울로 만드는 다이어트가 신행정수도 건설이다.(열린우리당 노현송 의원=행자위의 서울시 국감에서 행정수도 이전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히면서) ●관제데모가 아니라 민제데모다.(이명박 서울시장=열린우리당의 ‘관제데모’ 주장을 반박하며) ●문화재가 아니라 문화유산이다.(열린우리당 이광철 의원=문화관광위의 문화재청에 대한 국감에서 재물을 뜻하는 문화재(cultural property)보다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이 더 적합한 표현이라며) ●지금 유 원장의 태도가 ‘열린 정부’의 태도와 마찬가지예요.(한나라당 김영선 의원=과기정위 국감에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유희열 원장이 구체적인 답변은 중간간부들에게 넘기고 본인은 소극적 답변으로 일관한다며) ●우리 문화재가 산토끼,고라니보다 천대받고 있는 게 현실(한나라당 이계진 의원=국회 문광위 문화재청 감사에서 환경보호를 위한 공익광고는 있으나 문화재 보존을 위한 공익광고는 없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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