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서울로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효과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이메일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창업가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무능력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638
  • 이승엽 ‘최단거리 스윙으로 자존심 회복 할 것’

    이승엽 ‘최단거리 스윙으로 자존심 회복 할 것’

    자존심 회복을 선언한 ‘아시아 대포’ 이승엽(33·요미우리)이 ‘최단거리 스윙’을 재장착해 열도 정복에 재도전한다.   대구에서 개인훈련에 몰두해온 이승엽은 “무너진 타격폼을 되찾는 것”을 올 시즌 부활의 열쇠로 지목했다. 이승엽은 지난해 왼손 엄지손가락 수술 통증에으로 타격 밸런스가 무너져 최악의 성적표(타율 0.248 8홈런 27타점)를 받아들었다. 때문에 올 겨울 자연스런 중심이동으로 임팩트 순간 엄청난 파워를 뿜어내던 ‘이승엽표 타법’을 찾기 위해 절치부심해왔다.   지난 24일 대구 세진헬스클럽에서 만난 이승엽은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도 늘 방망이를 들고 다녔다. 근력운동 틈틈이 교정한 타격폼을 거울에 비춰보며 몸에 익히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이 거의 사라졌고, 검도에서 볏단을 베는 동작과 비슷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이승엽은 “어제(23일) 백인천 감독님께서 타격훈련을 지켜보시며 조언을 해 주셨다. 가장 강조한 것은 최단거리로 때리라는 주문이었는데 그동안 타격밸런스가 무너져 잘 안됐다. 감독님과 함께 훈련한 타격자세를 캠코더로 녹화해 돌려보면서 몸에 익히려고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백인천 전 감독의 특별과외를 통해 예년의 호쾌한 타격폼을 상당부분 되찾았다. 스탠스가 조금 넓어졌고 방망이를 들고 있는 팔과 몸의 각도가 조금 벌어졌지만,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전성기 때의 타격폼과 비슷했다. 우선 그립(손)의 위치가 예전으로 돌아갔다. 지난해에는 왼쪽 가슴께에 방망이를 들고 타격준비 동작을 취하던 것을 왼쪽 어깨 위로 올렸다. 방망이를 들고 있는 각도도 흔들렸던 지난해와는 달리 지면과 거의 수직으로 곧게 세웠다. 스탠스도 조금 넓어져 중심이동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게 됐다.   오전에는 근력강화, 오후에는 캐치볼과 타격훈련을 병행하고 있는 이승엽은 “올 해는 굉장히 느낌이 좋다. 손에 통증도 없고 밸런스도 돌아오는 것 같다. 개막 전까지 좋은 몸상태를 만들어 명예회복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게 말했다. 그는 28일 서울로 상경해 가족과 시간을 보낸 후 오는 30일 일본으로 출국, 요미우리의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미야자키로 들어갈 계획이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귀성길 ‘악몽’… 귀경길 “휴”

    올 설 귀성·귀경길은 상반된 모습이었다. 폭설·한파로 귀성길은 최악의 교통대란이 벌어진데 반해 귀경길은 고속도로 일부 구간에서 혼잡이 빚어졌지만 28일 자정 현재 정체가 순조롭게 풀리면서 우려했던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설 연휴 마지막 날인 27일, 답답한 흐름을 보이던 전국의 주요 고속도로와 국도는 오후 들어 정체가 풀렸다. 이날 오후 9시 현재 요금소 기준으로 부산~서울 4시간 50분, 광주~서울 3시간 50분, 목포~서울 3시간 40분, 대전~서울 2시간 40분, 강릉~서울 3시간 30분이 걸렸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28일 새벽까지 68만 8000여대의 차량이 서울로 돌아왔다.”면서 “최근 3년 평균 설 귀경 소요 시간이 부산~서울 8시간50분 등인데 비하면 비교적 무난했다.”고 말했다.이날 오후까지만 해도 주요 도로는 꽉 막힌 교통 흐름을 보였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서해안고속도로는 서울 방향 서해대교~서평택분기점 16㎞ 구간과 광천∼홍성 11㎞ 구간,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옥산휴게소~망향휴게소 35㎞ 구간과 천안~안성 20㎞ 구간, 중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증평나들목~진창나들목 12㎞ 구간과 괴산~연풍 14.2㎞ 구간, 영동고속도로 인천 방향 이천나들목~용인휴게소 27㎞ 구간과 횡계∼진부 13㎞ 구간 등 여러 곳에서 정체가 빚어졌다.한편 귀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지난 24~25일에는 서산 24㎝, 천안 17.3㎝, 충주 13㎝, 순창 9㎝, 목포 6.4㎝ 등 충청·호남 지역에 폭설이 내리면서 서해안·경부 고속도로가 마비됐다. 폭설로 지·정체 구간이 급증하자 한국도로공사는 지난해 2월 도입한 주요 구간 소요 예상시간 서비스를 처음으로 중단하기도 했다. 이틀 동안 서울~부산·목포 17시간, 서울~광주 14시간 등 평소보다 12시간 이상 더 걸렸다. 특히 서해안고속도로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충남 당진에 40㎝의 눈이 내리면서 당진군 송악 나들목이 마비됐다. 이로 인해 교통정체가 극심해지면서 귀성차량이 서해대교에서 옴짝달싹 못했다. 서평택~행담도 휴게소 10㎞ 구간을 빠져 나가는 데만 5~6시간 이상 걸렸다. 일부 귀성객들은 승용차 안에서 밤을 꼬박 지새워야 했고, 밤늦도록 수도권을 빠져 나가지 못한 사람들은 귀성을 포기하기도 했다.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5080] 당신이 갑자기 죽는다면… 생각해보셨나요?

    [5080] 당신이 갑자기 죽는다면… 생각해보셨나요?

    인간에게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 있을까? 세상 삶에 난관이 많다지만,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하기에 우리에게 죽음보다 넘기 힘든 고비는 없을 법하다. 특히 노인 앞에서는 죽음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것조차 ‘터부’시된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안락사 논쟁을 계기로 죽음의 의미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의 실버타운에 거주하는 김수영(가명·75)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미리 준비하라고 알리고 다닌다. 자칭타칭 ‘죽음 전도사’다. 그는 노인대학에 다니면서 생경하기만 했던 ‘리빙윌(living will)’을 우연히 알게 됐다. 리빙윌이란 살아있을 때 존엄한 죽음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명기해두는 ‘생전유서’다. 김씨는 “리빙윌을 미리 써두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김씨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내거나 ‘저승사자’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웰빙(well-being)이 있다면 웰다잉(well-dying)도 있다. 국립암센터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지난해 10월 전국 성인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4.6%가 호스피스 치료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년 전 조사 때의 57.4%보다 무려 30%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그만큼 사람답게 죽기를 희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강의 듣고 생각 바꿔 서울 강남구에 사는 한진영(가명·71·여)씨는 상조회사 전문가에게 의뢰해 장례 의전 절차를 미리 알아보고 있다. 한씨는 최근 ‘죽음을 준비하는 학교’라는 강의를 듣고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죽음을 이제는 새로운 출발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불교 신자인 그는 신앙심이 깊어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경험이 많았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가족이라고는 미국에 가 있는 아들 내외가 전부였기에 어느 날 혼자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그러다 죽음을 준비하는 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노망 들었느냐.’는 핀잔만 돌아왔다. 그는 “미국에서는 50세만 넘으면 죽음을 준비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얘기만 꺼내도 손사래를 친다.”면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생각만 하면 삶에 대한 의지도 생기고 힘이 난다.”고 말했다. 국내에 죽음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기관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교육받기를 원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과거 대가족 사회에서는 염을 끝낸 시신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일상으로 받아들였지만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된 뒤 죽음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었다. 미디어에서 나오는 죽음은 온통 부정적인 의미뿐이기 때문에 죽음은 두려운 존재라는 점만 확대생산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량참사를 보면서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무덤덤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뿐이다. 자신의 죽음이 TV에서 비춰지는 비참한 죽음이 아닌 편안한 죽음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지만 방법을 잘 모르는 노인이 많다. 웰다잉 전문가 교육기관인 사회복지법인 각당복지재단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홍양희 회장은 “요즘 리빙윌 교육을 해보면 노인 100명 중 80명이 스스럼없이 생전 유서를 작성한다.”면서 “죽음에 대한 교육을 받고 싶어 하지만 인터넷을 모르는 노인세대가 찾아갈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또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려야 한다.”면서 “잘 죽는 법을 생각해둬야 잘 사는 법을 생각하게 되고 건강하게 살다가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잘 죽는 법 알아야 잘 사는 법도 알게 돼 미리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죽음은 절망스럽고 두렵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리 상태는 일반적으로 절망과 두려움, 부정, 분노, 슬픔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아무런 준비 없이도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희망을 표현하거나 마음의 여유를 갖는 이는 드물다. 노인 전문가인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박상철(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 교수) 소장은 “90세가 넘어가면 죽음을 대체로 겸허하게 받아들이지만 60, 70대는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의 K대병원에 입원한 김성환(가명·67)씨는 대장암 말기 환자다. 이미 폐와 간에 암세포가 퍼져 6개월을 생존하기도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 더 이상 손쓸 길이 없어 퇴원해야 하지만 그에게 죽음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다. 그는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 밥을 훔쳐 먹으면서 궁핍하게 지낸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힘들게 살아왔는데 70까지도 살아보지 못하고 죽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하다.”고 말하곤 눈물을 훔쳤다. 많은 말기암 환자들이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만 막상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시기가 오면 삶의 끝자락을 붙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충주에서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서울로 모시고 온 이영호(가명·37)씨는 “아버지에게 말기암 판정을 받으셨다고 말씀드리기가 어려워 차일피일 미뤘는데 어떻게 본인이 알아보시곤 통곡을 하셨다.”면서 “암 때문에 죽을 수 없다고 강력하게 말씀하셔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은 모조리 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죽음학 가르치는 학교 단 한곳도 없어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노인들과 옥신각신하는 의사들도 입장이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곧이곧대로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의사가 말기암 판정을 내리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 중 하나다. 한 대학병원 종양내과 전문의는 “노인에게 직접 말기암이어서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가 주먹을 맞은 적이 있다.”면서 “‘어떻게 당신이 나에게 이럴 수 있냐.’며 노인의 친척들까지 지팡이를 휘둘러 혼난 경험이 생생하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젊을 때부터 죽음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음을 부정하거나 죽음에 대해 분노한다고 말한다. 죽음 준비는 노인만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죽음은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죽음 준비는 삶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음에 유념하면서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다시 돌아보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라는 명령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 준비 교육은 자살예방 교육과 일맥상통한다. 죽음학 전문가인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오진탁 소장은 “최근 노인과 젊은 층의 자살이 많은 것은 죽음에 대해 철저하게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이런 사람들은 죽음이 다른 삶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삶과 죽음 모두 불행으로 치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강의차 전국의 의과대학을 두루 다녀봤지만 죽음학을 가르쳐주는 곳은 단 1곳도 없었다.”면서 “죽음학 전문가를 양성하고 우리 사회에 웰다잉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의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인터넷 사이트 유명인사들 유언장 공개 인터넷상에 유언장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사이트들이 있다. ‘my will’도 그런 곳 중의 하나다. 이곳에서는 유명인사들의 유언장을 공개하고 있다. -너희 네 형제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의 힘 안 빌리고 스스로 잘 성장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고맙다.(중략) 화장해서 재를 엄마가 아끼는 정원의 주목 밑에 뿌려라.(중략) 나의 기일에는 재래식 제사는 지내지 말아라. 너희가 편한 곳에서 각기 내 사진을 내 놓고 회상하든가, 아니면 그 기회에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든가 해라.(소설가 한말숙) -부탁컨대 의식이 없으면 살릴 생각 말고 죽을 때나마 품위 있게 죽을 수 있게 도와주게. 장례식은 따로 없고 합동으로 하게 될 것 같다. 장기 기증이 끝나면 가까운 의대 해부 실습용으로 가야 하기 때문일세. 그러니 누구에게도 알릴 것 없다. 모두들 바쁜데 불편 끼치지 않도록 해주게.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 -나무(딸), 바다(아들)에게 아무런 유산을 남기지 않느냐고? 아마도 빚 갚으면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니 이 점 아무 걱정없고 다만 네(필자 자신) 그림 몇 점씩을 기념으로 줄까 생각해 보았는데 이 또한 부질없다고 생각해서 그만두기로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식들에게는 무엇인가 미련이 있는 모양인데 네가 평소에 한 말 ‘인생은 축적이니만큼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면 된다.’는 그들도 모두 가슴에 담고 있으니 염려말라.(화가 임옥상) 정현용 박건형 류지영기자 junghy77@seoul.co.kr
  • [2010남아공월드컵] 염기훈 2골 ‘눈도장’

    ‘옥석 가리기, 설 선물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새해 첫 소집훈련 중인 한국 월드컵축구대표팀 예비 전사들의 ‘옥석 가리기’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21일 서귀포 제주월드컵경기장. 허정무 감독이 조련 중인 대표팀은 울산과의 연습경기에서 염기훈이 두 골을 뽑아내고 이근호(대구), 정조국, 기성용(이상 FC서울)이 한 골씩 보태 5-1 대승을 거뒀다. 새달 11일 이란과의 2010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원정 4차전을 앞두고 지난 10일부터 소집훈련 중인 대표팀은 이로써 네 차례의 연습경기에서 2승2무를 기록했다. 당초 “무한경쟁”을 천명하며 훈련을 시작한 허정무 감독으로서는 꽤 의미있는 승리. 지난 15일 광운대와 이튿날 실업팀 국민은행과 각각 1-1로 비긴 뒤 19일 숭실대전에서 4-0으로 이겼지만 프로팀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무려 5골을 퍼부은 때문이다. 물론 허 감독은 “연습경기 승리는 큰 의미가 없다.”며 애써 표정을 감추면서도 “선수들이 제 호흡을 찾은 것 같아 다행스럽다.”고 내심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반면 대표팀 승선을 목표로 매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예비 전사들의 희비는 설 명절을 앞두고 갈릴 전망이다. 경기를 마친 뒤 허 감독은 “서울로 올라갈 때쯤 이란 원정전 명단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24일 해산할 예정인 데다 설 연휴를 보낸 직후인 28일 파주트레이닝센터(NFC)에 재소집, 이튿날 이란으로 향하는 탓에 최종 명단을 발표할 시간은 설 연휴 직전이 적기다. 이란행 티켓, 22명의 예비 전사들에겐 어느 때보다 큰 설 선물이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수몰로 고향마을 잃은 표순성씨

    수몰로 고향마을 잃은 표순성씨

    충북도교육청 서기관인 표순성(55)씨는 명절 때가 되면 가슴이 저미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그는 “아버지 산소를 놔둔 채 이삿짐을 싸면서 자꾸만 눈물이 쏟아졌다.”며 27년 전을 회고했다. 표씨는 1982년 충주댐 건설로 30년 가까이 살아온 마을이 수몰되자 고향을 떠나왔다. 그의 고향은 충북 제천시 한수면 황강리. 충주댐 건설로 충주, 제천, 단양지역 수몰민 3만 8600여명이 고향을 등졌다. 표씨가 다녔던 정든 한수초등학교는 물에 잠겼고, 면사무소도 댐 안으로 사라졌다. 그는 “1972년 대홍수로 한바탕 물난리를 겪었는데, 마을이 결국 물로 망했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동네 사람들이 당시 ‘물 속에 가라앉으면 고향에 영원히 갈 수 없을 텐데 어떻게 하면 좋느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고 전했다. 표씨는 “이북이 고향인 사람은 그래도 돌아갈 고향이라도 있지 않으냐.”며 “물 속에 고향을 수장한 사람들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표씨 가족은 충주로, 서울로 뿔뿔이 흩어졌다. 표씨는 제천으로 옮겼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3년만에 가족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면서 “고향이 없으니까 가난의 서러움이 더하는 듯했다.”고 되뇌었다. 그는 당시 공무원 월급이 적어 신문배달까지 하며 객지에서 자식 넷을 키웠다. 수몰 뒤에는 초등학교 동문회 등 고향에서 흔히 있던 모든 활동이 중단됐다. 표씨는 고향을 떠난지 얼마 안돼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친구 10여명과 함께 충주에 터를 잡은 고향 친구 집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그래도 허전함은 가시지 않았다. 표씨 등 한수면 옛 주민들은 2005년 향수를 달래기 위해 ‘그리운 고향 한수’라는 책을 냈다. 320쪽의 이 책에는 수몰되기 전의 고향 사진, 마을 주민 이름 등이 담겼다. 표씨는 “수몰된 지 23년만에 총동문회를 열면서 책을 내놓았는데 금방 동이 났다.”고 전했다. 글 사진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SPECIAL] 나의 첫 크리스마스 선물 《인어공주》

    [SPECIAL] 나의 첫 크리스마스 선물 《인어공주》

    겨울이었다. 이맘때였다. 나는 8살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눈은 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더 이상 골목에 없었다. 나는 이따금 빈 골목으로 나가보았다. 춥고 마른 바람이 골목을 핥고 갔다. 춥고 마른 아이는 춥고 마른 센베이 가게로 그만 돌아간다. 그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나. 아버지의 센베이도 잘 팔리지 않는 날이었다. 그날 우리는 무얼하고 있었나. 어린 동생들은 잠들었었나, 빽빽 울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여기저기 흠집이 난 벽지 사이로 냉기가 스며들었나, 가게에 딸린 단칸 연탄방이 절절 끓었나,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칭얼대는 일뿐이었다. 살짝 울먹였는지도 모른다. 아, 정말 그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나. 내 칭얼거림을 견디다 못한 아빠가 이윽고 나가버린다. 튼튼한 고무줄을 단 문이 신경질적으로 삐걱거린다. 엄마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일을 한다. 포대기에 감싸 업은 막내는 볼이 빨갛게 텄다. 새침데기 누이동생은 잠들었다. 더 이상 칭얼거릴 사람도 없어 나는 심심하다. 하필 눈도 안 오고 머릿속이 온통 심심해, 로만 가득 찬다. 아빠는 오지 않는다. 어느새 스스로 잠이 들었나. 엄마의 밥 먹으란 소리에 나는 잠이 깼다. 아빠는 술에 취한 모습이었다. 밥상머리에서 아빠는 슬쩍 내 쪽에 뭔가를 들이민다. 동화책이다. 나는 금세 얼굴이 환해진다. 비로소 화들짝 잠이 깬다. 표지에는 《인어공주》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그게 나의 첫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하루 종일 칭얼거린 끝에 처음 내 책을 갖게 된 사연이다.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건 그게 하필 《인어공주》였다는 거다. 아홉 살짜리 사내아이에게 아버지는 왜 《인어공주》를 사다주셨을까. 짐작키로는, 속상해 술을 드시고 서점에 들러 아무거나 집어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 내가 이건 여자 아이들 책이야, 하고 투정을 부린 건 물론 아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도 그런 의식 따윈 없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책은 아홉 살 사내아이에게 무척 강력했다. 인어공주가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 날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어린 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인어공주》의 마지막 펼침면에는 흰 배경에 거품 몇 방울만 띄엄띄엄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그 여백에다 어린 나는 몇 방울 눈물을 떨궜다. 그 뒤로 나는 안데르센의 팬이 되었지만, 쉽게 책을 구해 읽지는 못했다. 그해에 나는 상을 받았다. 반 독후감 대회에서 나는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다. 그러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책을 읽지 않았다. 어릴 적 외할아버지가 읽어준 《흥부와 놀부》를 기억해 독후감을 썼다. 우리 집엔 동화책이 한 권도 없었다. 우리 집에 동화책이 한 권도 없다는 얘기를 나는 선생님한테도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상 받은 얘기를 엄마에게도 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금고에서 돈을 훔쳐내 조립식 프라모델을 몰래 샀다. 놀이터에서 혼자 그걸 조립했다. 돈을 훔쳤어도 책은 사지 않았다. 사실 서점이 어디 있는 줄도 몰랐다. 내가 최초로 접한 책은 새마을 잡지였다. 서울로 오기 전에 아버지는 젊은 이장이었다. 우리 집엔 새마을 잡지가 그득했다. 글자를 몰랐지만, 세 살 때 나는 ‘새마을’이라는 글자를 읽을 줄 알았다. 어른들은 나를 신동이라 불렀다. 삼촌과 이모들이 사다준 유아용 그림책은 그 다음이다. 두꺼운 종이로 된 그것은 이따금 탑을 쌓기에도 유용했다. 나는 그게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봤다. 그때도 역시 글자를 몰랐지만, 나는 그 책들의 모든 글자들을 다 외웠다. 《인어공주》 이전에 내가 가져본 책들이라곤 그게 전부였다. 부모님은 내가 시인이 될 줄 몰랐을 것이다. 《인어공주》가 보여준 그 지독한 허무가 내 몸에 깃들지 않았다면 나는 어쩌면 시인이 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원초적 결핍이 지금도 크리스마스 때마다 반복될 줄은 부모님은 전혀 몰랐을 것이고 지금도 모를 것이다. 내가 왜 지독하게 책을 사 모으는 줄은 더더욱.
  • [5080] 세상은 변했다…고부 관계 재조명

    [5080] 세상은 변했다…고부 관계 재조명

    “둘째며느리 고것이 찜질방을 가자고 그러잖아요. 날 태워 죽이려고.” 일요일밤 방송되는 인기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할매가 뿔났다’ 코너. 할머니로 등장하는 개그맨 장동민은 등장할 때마다 둘째며느리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겨 잔뜩 화가 나 있다. 코너에는 등장하지도 않는 둘째며느리의 호의는 언제나 시어머니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스티커 사진을 찍자고 하면 죽은 다음 영정사진으로 쓰기 위해서고, 밥을 많이 먹으라고 하면 배터져 죽게 하려는 음모가 된다. 관객도, 시청자도 시어머니의 과장된 오해에 폭소를 터뜨리지만 어쩐지 씁쓸하다. ●34년전 며느리의 애교작전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 사는 김진순(57·가명)씨는 34년 전 지금의 남편을 따라 경북 상주의 시댁을 처음 찾았다. 김씨를 처음 본 시어머니는 맘에 들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김씨의 집이 가난했던 데다 또박또박 말대답을 하는 김씨의 태도 때문이었다. 결혼 후 시어머니는 큰며느리와 사사건건 비교했고 차별대우를 했다. 큰며느리는 부엌에만 들어가도 “힘들면 쉬어라.”라고 하면서 일은 김씨에게 시켰다. 심지어 ‘이년 저년’이라는 소리도 했다. 물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넨 적도 없다. ‘서울댁’ 김씨가 택한 생존법은 ‘애교 작전’. 남편과 함께 거의 매주말 상주를 찾았고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다. 좋게 대해주지 않는데도 이런 모습을 보이자 시어머니의 태도도 누그러졌다. 넷이나 되는 시누이들에게도 김씨는 무작정 들이댔다. 집으로 찾아가 김치를 해주기도 했다.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시누이들은 김씨의 편이 됐다. 김씨는 “시댁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으니까 마음이 편해졌다.”면서 “친정 행사는 빼먹더라도 시댁 행사는 한 번도 안 간 적이 없었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된 며느리 김씨는 “시어머니의 캐릭터를 그대로 인정하니 서운할 것도, 마음 상할 일도 없었다.”고 말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김씨는 남편이나 시누이들보다도 서럽게 울었다. 김씨는 “정말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런 생을 겪은 김씨는 며느리를 절대 차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2005년, 2008년 두 아들을 차례로 장가보낸 김씨는 시어머니의 입장이 됐다. 두 며느리는 ‘곰’과 ‘여우’라고 할 정도로 캐릭터는 정반대다. 작은며느리는 자신의 젊은 시절처럼 시부모에게 애교를 부린다. 주말이면 영화를 보러 가자며 조르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작은며느리에게 마음이 더 간다. 김씨는 “일생의 대부분을 남으로 살아온 며느리를 진심으로 공평하게 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면서 “30년 넘게 겪으면서도 시어머니를 잘 알지 못했는데 며느리가 생긴 이후 이해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는 며느리 전성시대 전통적인 고부갈등에서 시어머니가 우위에 있었다면 이제는 아니다. 대전에 사는 강보영(60·가명) 씨는 2월 초 생일을 앞두고 요즘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울에서 올 전화를 기다린다. 2년 전 결혼한 아들 내외가 첫 생일상을 차려주겠다고 내려왔을 때 한 말실수 때문이다. 강씨가 보기에 전날 저녁부터 며느리가 준비한 미역국은 간이 맞지 않았고 잡채도 맛이 없었다. 모인 가족들에게 이 음식을 도저히 먹일 수가 없겠다는 생각에 부엌으로 들어가 직접 음식을 손봤다. 식사가 끝난 후 넌지시 요리학원이라도 다니는 게 어떻겠냐고 말을 꺼낸 게 발단이었다. 얼굴이 굳어버린 며느리는 불만 섞인 표정으로 말없이 있다 상경했다. 다음 주말 혼자 내려온 아들은 “엄마 때문에 이혼하게 생겼다.”면서 난리를 쳤다. 아들 표현대로라면 강씨는 간 큰 시어머니이자, 세상 물정 모르고 시어머니 대접 받으려는 사람이었다. 충격을 받은 강씨가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자 대부분 아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고 여대를 다니는 딸조차 “엄마 같은 시어머니가 요즘 어디 있느냐.”며 며느리 편을 들었다. 강씨가 음식을 싸들고 서울로 올라가 며느리에게 사과했지만 한 번 서먹서먹해진 상황은 2년째 그대로다. 결혼 전에 수시로 내려와 애교를 떨던 며느리는 그 후로 명절 때를 제외하고는 전화조차 잘 하지 않는다. 어쩌다 와도 며느리와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는 것 같아 영 불편하다. 강씨는 “이제나 저제나 생일상을 다시 차려주겠다는 전화만 기다리고 있다.”면서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며느리에게 정말 잘할 수 있는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 정말 후회된다.”고 말했다. ●사위에게 잘 보여야 하는 장모 서울 일원동에 사는 이은우(65·가명) 씨는 시집간 외동딸에게 남편 몰래 집을 사주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젊은 시절 정치를 하느라 바빴던 남편 대신 재산을 관리했던 터라 이씨는 강남 일대에 오피스텔 빌딩 여러 채를 가지고 있는 재력가다. 처음 딸이 사윗감을 데려왔을 때 이씨는 속으로 탐탁지 않았다. 특히 시댁에서 전셋집만 마련해 주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귀하게 기른 딸을 별 볼일 없는 집에 보낸다고 주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 같아 신경도 많이 쓰였다. 이씨는 “집을 사주고 싶었지만 상대편 집 입장도 생각해야 하는지라 일단 참았다.”면서 “나중에 아기를 낳으면 집을 옮겨주겠다고 딸에게 약속했다.”고 말했다. 결혼 이후 딸과 사위는 이씨에게 극진하다. 차가 고장나면 사위가 회사에 휴가를 내고 기사 역할을 할 정도다. 칠순이 넘은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흐뭇해하기만 하지만 이씨는 요즘 혼란스럽다. 딸은 집에만 오면 “집값이 많이 떨어졌는데 지금 사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보채고 사위는 옆에서 눈치만 살피고 있다. 가족끼리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부동산 시장 얘기로 화제가 옮겨가고 결국 딸 내외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씨는 “돈이 있어야 대접받는다고 해서 집 얘기를 처음 꺼냈는데, 이제는 사위가 오로지 집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집을 사주고 난 이후에 사위가 어떻게 변할지 솔직히 겁이 난다.”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집을 보러 다니느라 바쁘다. 집을 사주지 않을 경우 지금 받고 있는 관심조차 줄어들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은퇴해서 집에 있는 남편 모르게 일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이씨는 “한번 사주는 집인데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을 찾는 것도 어렵고, 사돈집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면서 “이렇게라도 사위에게 대접을 받을 수 있다면 크게 아깝지는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영원한 스테디셀러 ‘고부 갈등’ 여전히 TV드라마 최고의 소재는 고부갈등이다. ‘너는 내운명’, ‘조강지처클럽’, ‘며느리 전성시대’, ‘겨울새´ 등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들에도 예외없이 고부갈등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어머니’, ‘시댁’ 등의 검색어를 입력하면 수십만건씩 찾을 수 있다. 댓글도 수십개에서 수백개씩 달려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공감을 한다는 얘기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또 다른 세계라는 의미에서 시댁을 부르는 ‘시월드’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그러나 시어머니들은 탈출구가 없다. 인터넷에서 남의 사연을 읽고 공감하고 익명으로 마구 욕을 퍼부을 수 있는 며느리들에 비해 시어머니들은 고작해야 친구들과 며느리 흉을 보는 일이 전부다. 그나마 친구들이 며느리 자랑이라도 하면 배만 아프기 일쑤다. 송지인(55·가명)씨는 “며느리가 시댁 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다른 친구들한테 민망해서 하소연도 못하겠다.”면서 “아들한테 넌지시 얘기를 했다가 ‘바쁜 사람 왜 자꾸 부르느냐.’고 잔소리만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당하는 며느리가 줄어들면서 시어머니가 약자가 되는 경우도 흔하다. 노인의 전화 관계자는 “며느리나 사위가 절대 강자인 집안도 쉽게 찾을 수 있다.”면서 “며느리나 사위와의 관계 설정에 실패하는 경우 나이 든 시부모나 장인 장모가 상처를 받고 전화를 거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서는 ‘선진국형 가족갈등’으로 평가되는 역고부갈등(사위와 처가식구간의 갈등)이나 시아버지와 며느리 간의 갈등도 많아지고 있다. ‘좋은 가정 만들기’, ‘생명의 전화’ 등 상담소들에 따르면 걸려오는 가족갈등 상담 중 역고부갈등이나 시아버지와 며느리간의 문제가 절반을 넘을 정도다. 이처럼 갈등이 다양해진 배경에는 며느리들의 사회 진출이나 육아로 인한 처가살이 등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신혼부부들의 결혼 당시 경제 지원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처가에서의 지원(18%)이 시댁 지원(11%)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박건형 류지영 정현용기자 kitsch@seoul.co.kr
  •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21년만에 고국서 음반 내는 ‘엔카 여왕’ 김연자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21년만에 고국서 음반 내는 ‘엔카 여왕’ 김연자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특유의 꺾기 창법이 여전히 생생하다. ‘수은등’ ‘진정인가요’ 등 주옥 같은 히트곡으로 1980년대 초·중반 절정의 인기를 한몸에 모았던 가수 김연자(50)씨. 그는 88 서울올림픽 폐막식에서 고(故) 길옥윤이 작곡한 ‘아침의 나라’를 불렀다. 이 노래는 동시에 일본어로 개사돼 불려졌고, 국내보다는 일본에서 오히려 더 큰 바람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김씨는 국내활동을 중단하고 일본으로 훌쩍 건너가 신인처럼 뛰었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그녀 특유의 열정은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인연이었던지 그는 1989년 이후 모든 연예인들이 꿈꾼다는 NHK ‘홍백가합전’에 무려 3회나 출연하는 ‘절정의 호황’을 누렸다. 반응은 뜨거웠다. 단숨에 일본 톱가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오리콘 엔카 가요차트 1위, 일본 레코드 대상, 일본 유선방송 최다 리퀘스트 가수상까지 거머쥐었다. 일본 매스컴에서는 김씨를 가리켜 ‘엔카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그가 낸 싱글앨범만 31장에 이르고, 해외공연 때마다 고정팬들이 따라다닐 정도로 여전히 높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그가 최근 잠시 귀국했다. 오는 2월 말 국내 음반 발매를 앞두고 녹음을 하러 고국을 찾았다. 한국에서는 21년만에 음반을 내는 셈이다. 앞으로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할 예정이다.지난 9일 일본 출국에 앞서 김포공항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송창식씨가 작사·작곡한 노래 담아 →오랜만에 고국을 찾았습니다. -지난 8월6일 일본에서 새 앨범을 내고 활동할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임종을 못해 마음이 많이 아팠지요. 딸 셋 중 제가 장녀거든요. 지난 12월27일 귀국했을 때에도 아버지의 산소를 가장 먼저 찾았습니다. 이후 열흘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모처럼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지요. 때마침 음반녹음도 계획돼 있었고요. →새 음반은 어떤 내용입니까. -송창식씨가 작사·작곡한 노래 ‘안돼’, ‘슬픈 얼굴 짓지 말아요’, ‘불꽃’과 ‘아침의 나라’, ‘수은등’, ‘당신은’ 등을 담았습니다. 송창식씨는 다른 가수에게 노래를 잘 안 주기로 유명한데 잘 아는 지인을 통해 곡을 어렵사리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국내에서도 활동하게 됩니까. -예, 그럴 생각입니다. 이젠 한국의 팬들을 위해서라도 자주 와야지요. 4월에 일본에서 다시 신곡을 내고 5월쯤 국내 콘서트도 생각 중에 있어요. →일본에서 톱가수로 인기를 끄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주변에서 ‘열심히 노래하고 인간관계가 모범적’이라는 얘기를 들어요. 뭐니뭐니해도 공연장을 쫒아다니는 팬들 덕분이죠. 그녀는 지금도 공항로비에 일본에서 온 팬들이 많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1년에 100일은 콘서트, 100일은 방송출연, 나머지 100일은 음반작업에 몰두한다. 아이가 왜 없느냐고 묻자 “너무 바빠서….”라며 웃는다. 웃음에 얼핏 외로움이 묻어나는 건 무슨 까닭일까? 그는 1982년 18세 연상의 밴드악단장 출신 재일교포 김호식(현재 예총 일본지부장)씨와 결혼했다. →현재 사는 곳은 어디인가요.  -도쿄 스기나미구에 살고 있어요. 치와와 강아지 세 마리와 남편하고 오붓하게 살지요. 한국에는 방배동에 집이 있고요. 고향 광주에는 아직도 친척분들도 많이 살고 있습니다. ● “인생의 마지막은 한국서 보내고 싶어” →일본팬들이 귀화하라고 종용도 했을 터인데….  -일본 언론과 인터뷰할 때 그런 제의를 자주 받아요. 그럴 때마다 고국이 한국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대답해요. 사실 제 인생의 마지막은 한국에서 보내고 싶거든요. 전 지금도 일본공연이나 해외공연 때면 한국 노래를 빼놓지 않고 불러요.  그는 15세 때 가수로 데뷔했다. 노래를 무척 좋아하는 아버지의 권유로 서울로 올라와 TBC에 오디션 프로그램 ‘가요 신인스타’에 합격한 것이 1974년 10월이었다. 일본에서는 1977년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을 일본어로 불러 데뷔했으며, 현재 그와 함께 생활하는 스태프만 50명에 이를 만큼 대형가수로 우뚝섰다.  그녀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 “우선은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것이고, 데뷔 40주년 즈음해서 국내에서 큰 행사를 가질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일본에서 굳건한 ‘성좌’를 일군 그녀가 새삼 우뚝해 보였다. km@seoul.co.kr
  • 돌아선 여자에게 쇠고랑 선물받고 가슴을 친 청년

    C= 꿈에도 잊지 못할 첫사랑의 여인을 찾아 헤매다 덜컥 쇠고랑을 찬 어느 청년의 억울한 「러브·스토리」-. 지난 20일 서울 노량진경찰서 형사과 보호실에 나(羅)모(23)라는 더부룩한 시골청년이 잡혀왔는데 『세상에 이럴수가 있는가?』며 가슴을 치며 방성대곡을 하고 있었지. 사연을 들어본즉 나군은 70년 9월 고향인 전남 광양에서 청운의 큰 뜻을 품고 용약 서울로 올라 왔겄다. 막벌이 행상 등으로 갖은 고생끝에 40여만원의 돈도 모으고 이(李)모양(21)이란 어여쁜 아가씨도 사귀게 되어 이모양과 살림을 차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지난달 24일, 이양을 집에 두고 오래간만에 고향엘 다녀오니 집에 있어야할 이양이 그동안 나군이 애써 모아놓았던 돈 40만원을 훔쳐가지고 뺑소니를 쳐버렸어. 지난해 6월에 난 딸 아이만 남겨놓고. 사방에 수소문을 해보니 이양은 신림동 어느 술집에 접대부로 일하고 있다는 기막힌 소식이 들려왔지. 곧장 이양을 찾아가 다시 살림을 살아줄 것을 애원했지만 한번 돌아선 여자의 마음은 흘러가버린 강물 같아서 되돌아올 줄을 모르고. B=1주일을 술집에 개근한 나군, 끝내 이양이 마음을 돌이키지 않자 생각끝에 지난 19일, 빨랫줄에 걸려있는 이양의 「스웨터」,속내의, 한복 등 옷가지를 눈에 띄는대로 걷어와 버렸어. 옷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집에 돌아올 줄 알았던 거지. 그런데 그 이튿날 이 순진한 청년은 이양이 도둑으로 몰아 고소한 덕에 쇠고랑을 찬 것. A= 돈 40만원 잃어버린 사람이 옷 몇가지 훔쳤다고 쇠고랑을 차다니 너무 했군. [선데이서울 72년 4월 2일호 제5권 14호 통권 제 182호]
  • [12일 TV 하이라이트]

    ●일일연속극 집으로 가는 길(KBS1 오후 8시25분) 유건영의 차남, 용환의 제삿날. 늘 양평에서 지내던 제사를 처음으로 서울에서 지내겠다는 며느리 순정의 제안에 서울로 올라오는 건영의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 한편, 순정의 막내딸 지수는 일본에서 오는 유명 모델 마중차 공항으로 향하고, 공항에서 둘째 오빠 현수를 만난다.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세계가 주목하는 영화음악 작곡가 지박. 세계 최연소 제리골드미스상의 주인공이 되기까지의 노하우, 김기덕 감독과의 영화음악 인연,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음악을 담당했던 이야기를 들어본다. 클래식에서 영화음악으로 전공을 바꾼 이유를 비롯해 미국에서 성공한 후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도 들어본다. ●닥터스(MBC 오후 6시50분) 경기도 양평군 정배리의 빨간 고무장갑 아줌마 김희숙씨. 손바닥, 손등, 손가락 할 것 없이 부스럼으로 뒤덮여 웬만한 남자들 손보다도 더 두껍고 거칠다. 난치병이라고 생각해 치료를 포기한 지 10여년 만에 처음 김희숙씨가 병원을 찾았다. 과연 김희숙 씨의 빨간 고무장갑 속 거북손은 치료될 수 있을까? ●TV로펌 솔로몬(SBS 오후 8시50분) 10년 전 보경과 친구들은 사소한 다툼으로 그만 한 친구를 죽이고 만다. 이들은 시체를 강에 던져버리고 살인사건을 은폐한다. 그런데 그 후 사건에 가담했던 친구들이 차례로 해를 입고, 그렇게 당하는 친구들을 지켜보며 홀로 남은 보경은 두려움에 떨다 술김에 경찰에 살인사건에 대해 자백을 하는데…. ●60분 부모(EBS 오전 10시) 공부 한 번 하려 하면 가방 챙기는 것에서부터 연필 깎아주기, 물 가져다주기, 심지어 문제까지 읽어주기를 원하는 건일이. 이제 곧 5학년이 되는데 아직까지도 엄마에게 많이 의존하는 아이를 보며 엄마는 걱정이 밀려오는데…. 어떻게 해야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잡아줄 수 있을지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알아본다. ●세계 세계인<모기퇴치 셔츠>(YTN 오전 10시30분) 파라과이에서 모기를 퇴치할 수 있는 옷을 만들었다. 이 옷은 모기를 쫓는다고 알려진 시트로넬라가 주재료로 쓰였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향기 나는 풀에서 섬유 오일을 추출한다. 셔츠를 오일에 담갔다가 옷을 만드는데, 셔츠를 40차례 이상 빨아도 모기를 쫓는 효과는 그대로 지속된다.
  • 上京4년만에 자살(自殺)한 아가씨

    10대에 꿈을 안고 상경한 20세 아가씨가 서울살이 4년만에 목숨을 끊었다. 식모살이, 병원 종업원, 다방「레지」로 전전하며 무지개빛 날개를 펴 보려고 했으나 끝내 꿈은 거품처럼 사라진 것. 식모·레지로 전전하다가 친구들도 어울리지 않고 22일 낮 1시15분쯤 서울 마포구 상수동 D여관 3층 5호실에 19일밤 청년1명과 함께 들었던 한 젊은 여인이 숨져 있었다. 「라벨」조차 떼지 않은「팬티」와「브래지어」를 분홍색 내의 밑에 받쳐 입고 겉에는 흰 바탕에 검은 무늬의 바지와 같은 천으로 만든 상의를 입고 있었다. 창문쪽으로 머리를 둔채 반듯이 누워있듯 숨져있는 여인은 경찰수사 결과 명동「로열·호텔」맞은편 자그마한 2층 C다방「레지」로 있는 이옥자(李玉子)양(가명·20)으로 알려졌다. 이양의 옆에는 S「위스키」병 1개와 C「콜라」병 등이 눈에 띄었고 흰색 가루의 약가루가 흩어져 있었으며 구석에는 밤새 사용한 휴지더미가 흩어져 있었다. 『11시쯤이었어요. 19일 밤에 함께 투숙했던 권문호(權文浩)씨(가명·23)는 먼저 나가고 어저께 한방에서 같이 자던 (셋이서 한방에서 잤다) 청년은 1시10분쯤 나갔어요. 나가면서 저보고 저 계집애가 또 약을 처먹고「쇼」를 하는 것 같으니 가보라고 했어요』 여관종업원 김모양(19)의 이야기다. 급히 방으로 들어가보니 이양은 숨지기 직전. 의사가 달려오고 경찰이 왔을 때는 이미 이양은 싸늘한 시체였다. 이양의 고향은 경남(慶南) 하동(河東). 시골서 중학교를 나와 집에서 놀다가 4년전 돈벌이하러 서울로 왔다는 것. 그동안 병원 종업원, 식모살이, 다방「레지」등등을 전전하며 지냈다. C다방에 온 것은 약 1개월전, 여관에 함께 투숙했던 권씨를 안 것은 약 4개월전으로 O다방에 있을때. 모 전기회사 직공으로 있던 권씨가 입영영장을 받아놓고 따분한 마음에 들른 곳이 O다방. 자주 들르다 보니 알게 되었고 친하게 되었던 것. 『부산 계시는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집에 간다』며 이양이 「트렁크」하나를 들고 C다방 문을 나선 것이 지난 19일 하오 7시. 이때 바로 나와서 만난 사람이 권씨. 권씨의 말에 따르면 만나서 하는 이양의 이야기인즉 『부산에 가야겠는데 돈도 없고 피곤하니 한 이틀 쉬었다갔음 좋겠다』고 하더라는 것. 두사람이 D여관으로 간 것은 밤10시쯤의 일이었다. 짐을 푼 뒤 외출복을 벗고「시미즈」차림이 된 이양은 피곤하다며 어깨를 권씨에게 기대더라는 것. 『나도 목석이 아닌데「핑크」색 「시미즈」에 속살이 다 뵈는 여자가 기대는데 참을 수가 있겠느냐』는 게 권씨의 말. 이래서 이날 밤부터 사흘을 한방에서 지냈다. 이양이 근무하던 C다방은 주로 젊은이들이 쌍쌍이 들어오며 미칠듯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 이곳에서 아침 10시부터 밤10시가 넘도록 월 1만5천원을 받기 위해 이들에게 차를 날라다 주는「레지」노릇은 고달프기만 하고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이들이 무척 부러웠던 모양. 이양이 죽기 일주일 전의 일기를 보면. 『오늘도 지겨운 하루가 지났다. 산다는 게 이렇게 힘들고-(중략)-멋지게 사랑을 해보고 싶다. 기대를 걸어 본다. 생명이 있는한-』 수첩 등 아무 종이에나 갈겨둔 이양의 독백은 모두가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한 넋두리다. C다방에 함께 근무하던 이모양(19)에 의하면 숨진 이양은 틈만 나면 구석에 처박혀 청승맞게 앉아 있기를 좋아했으며 함께 근무하는 다른 종업원들과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성격이었다고. 일과를 마치면 매일 밤 성당에 나가 기도를 하고 들어오는 착실한 신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여관에 함께 투숙한 권씨 등과 남자교제가 있는 것은 몰랐다고. 사건이 나기 바로 전날인 21일 밤, 권씨의 친구 엄(嚴)모씨(20)가 이들이 묵고있는 D여관에 놀러 와 이들과 함께 셋이서 한방에서 잤다. 권씨와 이양은 한이불에서 자고 자기는 윗목에서 꾸부리고 잤다는 게 엄씨의 말. 22일 늦게까지 자고난 권씨는 11시쯤 옆방에서 투숙했던 친구들 서너명과 함께 당구장에 가면서「와이셔츠」가 마르지 않아 혼자 여관에 남게 된 엄씨에게 계집애가 아프니 건드리지 말라고 부탁했다는 것. 『절대 관계를 하지 않았읍니다. 하자고 하지도 않았아요. 나도 의리가 있는 놈인데』엄씨의 주장이다. 엄씨는 나갈 때 보니 이양이 또 약을 먹을 것 같아 종업원에게 일러주고 나갔다는 것. 검시 과 반항 적이나 교살 적이 없고 일기로 보아 염세자살로 단정한 경찰은 이양의 시체를 이튿날 부산있는 오빠에게 인계했다. <창(昌)> [선데이서울 72년 4월 2일호 제5권 14호 통권 제 182호]
  • 경비원에 10원짜리 내밀며 “살려달라” 애원한 가정부

    경비원에 10원짜리 내밀며 “살려달라” 애원한 가정부

    A= 「아파트」에 사는 가정부가 경비원에게 수상한 사람으로 몰린 끝에 10원을 주며 살려달라고 애원한 촌극(寸劇)한 토막. 서울 아현동 S「아파트」에 가정부로 들어간 조(趙)모양(16)은 전남 벽촌서 살다가 지난 9일 난생 처음 서울로 온 전형적인 시골뜨기였지. 조양은 가정부로 들어간지 3일만인 지난 12일 하오 1시쯤 「아파트」에 차물결 등을 보고 정신이 빠진채 들어서서도 잔뜩 질려 눈길을 좌우로 돌려보자 이를 본 경비원이 수상히 여겨 뒤를 밟았던 거야. 이를 눈치챈 조양은 다리야 날 살려라 식으로 4층 자기집으로 달아났지. 뒤따라 가던 경비원이 문을 두드리자 문을 꼭 잠가 놓고 숨을 죽이고 있었지. 문을 열어주지않자 틀림없이 도둑이구나 하고 생각한 경비원은 다른 열쇠를 들고와 밖에서 문을 열었던 거야. 이렇게 되자 다급해진 조양은 당황한 끝에 문밖으로 손을 내밀고 10원짜리 동전 하나를 경비원에게 주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지. 방안으로 밀고들어간 경비원은 조양에게『무얼하러「아파트」에 들어왔느냐』 고 묻자『며칠전 이집에 가정부로 들어왔다』고 하지 않았나. 이상히 여긴 경비원은 『그러면 주인이 무얼하느냐』고 물어본 뒤 아래층 경비실로 내려가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했지. 김이 샌 경비원은 은근히 화가 치밀어 혼을 내주겠다는 속셈으로 다시 조양에게로 갔더니 조양은 다시 방뒤쪽에 붙은 벽장으로 들어가 나오질 않았던거야. 경비원은 나오라고 타일렀으나 막무가내. 결국 문을 따자 조양은 엉겁결에 벽장 안쪽 창문으로 뛰어내렸던 거야. 4층에서 뛰어내린 조양은 다행히 다리만 골절상을 입었을 뿐 생명은 건졌지. 알고보니 조양은 시골서 올라온지 며칠 안된 촌뜨기라 지레 겁을 먹어 이런「넌센스」를 저질렀던 거야. [선데이서울 72년 3월 26일호 제5권 13호 통권 제 181호]
  •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중심 나주·충주 르포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중심 나주·충주 르포

    경기 부양을 위한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등 4대강 정비사업이 지난 연말부터 시작됐다. 대운하 사업의 단초가 아니냐는 논란 속에 착공된 이 사업은 치수와 예산 조기집행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지방경기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지 주민들은 “침체된 지역경기가 살아날 수 있는 호재”라고 반기면서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4대강 정비사업의 첫 단추를 낀 전남 나주시 영산강과 충북 충주의 새해 주민 표정을 살펴봤다. ■나주 새해 첫날,나주배로 이름난 전남 나주시는 들뜬 분위기였다.영산강 개발 기대 심리가 곳곳에서 묻어났다.도로와 영산강변에는 ‘영산강 르네상스 시대를 열자.’는 등 여망을 담은 플래카드가 나부꼈다.지난 29일 열린 ‘영산강 살리기’ 기공식에서는 2011년까지 국비 1조 6000억원 투입이 발표됐다.옛날 영산강 선착장으로 번성했던 영산포 일대는 개발 진앙지답게 주민들 열기가 느껴졌다.흑산홍어로 돈을 움켜쥐었던 이 일대 홍어 도·소매점과 식당 등 40여곳은 영산강이 다시 한 번 살길을 열어 줄 것이라고도 확신했다.1976년 영산강 하구둑으로 뱃길이 막히기 전 영산포는 남도 잔칫상의 백미로 꼽히던 흑산 홍어 집산지로,서울로 가는 교통 요지로 흥청거렸다. ●국내 유일 영산포 내륙등대 영산교에서 200m쯤 내려오면 바다에서 보던 하얀 등대가 서 있다.영산포 등대다.육지에 세워진 유일한 등대로 하루 20여척씩 드나들던 어선의 길잡이였다.등대 인근 선착장에는 홍어 전문점과 식당들이 즐비하다.김정대(60·영산동) 금일홍어 주인은 “영산강에 배가 뜨면 환경이 좋아져 관광객도 늘 것으로 본다.”고 점쳤다.인근 홍어 상가 주인들은 “영산포에서 홍어를 파는 40여곳에서 연간 매출액을 200억원대로 보는 데 모두들 이를 두 배로 늘려 잡을 꿈에 부풀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건희(60·영산동) 영산포홍어연합회장은 “영산강은 1989년 대홍수 이후 퇴적토로 강바닥이 높아져 지금도 영산포 주민들은 상습 침수피해에 떤다.”고 강조했다.나주시는 선착장 일대 현존 건물 70%가 일본식 건물이라는 점을 활용해 관광자원화하고 이곳에 홍어 음식문화 집적화단지 조성,영산강변 마한시대 고대문화권 개발 등으로 관광 나주시대를 진행 중이다.정윤기(60·대기동) 영산포발전협의회장은 “지금 인구 2만명도 안 되는 영산포는 1960~70년대 인구 10만명이 넘던 영화시대를 모두들 잊지 못한다.”며 “영산강 뱃길이 막혀 영산강 때문에 피해를 보던 주민들이 이제 뭔가 살길이 열리지 않겠느냐는 기대로 부풀어 있다.”고 전했다.민물장어로 유명했던 영산포 구진포 나루쪽 식당들도 “제발 장사좀 잘됐으면 한다.”고 영산강 살리기에 남다른 기대감을 표시했다. ●영산강 시대가 오는가 이를 반영하듯 지난 29일 가진 영산강 살리기 기공식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주민 1000여명이 행사장 안팎을 메웠다.일부는 돼지 머리고기를 가져와 행사장 한편에서 축원 고사를 지내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1989년 꾸려진 ‘영산강뱃길복원추진위원회’의 양치권(59·영산동) 회장은 “영산강 치수사업으로 홍수 예방은 물론 물길이 나 배가 다니게 되면 물류와 관광객이 늘어 지역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전남도는 4~5급수로 떨어진 영산강 수질 개선과 뱃길 복원을 골자로 하는 ‘영산강 프로젝트’에 속도를 높인다.2015년까지 국비 등 8조 5500억원을 투자한다.영산강 유역권인 나주·무안·함평·화순·장성·담양·목포·영암 등 도내 8개 자치단체장도 영산강 살리기에 힘을 모으기로 다짐했다. 글 사진 나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충주 ‘뚝딱 뚝딱.’ 2009년 기축년 새해 첫날 충주시 금가면 탄금대 인근 하천에서 신탄금대교 공사가 한창이다. 현재 하천제방 주변에는 자전거도로가 있는 게 고작이지만 2011년 12월이 되면 축구장,피크닉장,야생화단지,물놀이장,산책로,정수식물 군락지 등이 조성된다. 또 하천 수질과 생태환경이 개선되고 홍수 위험도 낮아진다. ●충주댐 건설 이후 가장 큰 공사 충주가 정부의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선도사업 도시로 선정되면서 오는 2월부터 이곳에서 ‘충주지구 하천정비사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사업 구간은 충주시 목행동에서 충주시 금가면 탄금대 일원 7.19km로 설계비를 포함해 총 228억원이 투입된다. 사실 이 사업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이 추진하다가 예산확보가 안 돼 백지화 위기를 맞던 와중에 정부가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극적으로 재추진됐다. 충주시민들은 이번 사업을 호재라며 반기고 있다. 하천정비 사업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를 볼 수는 없지만 구체적인 사업내용을 묻는 시민들의 전화가 충주시청에 걸려오고 있다. 윤정진 충주시 지역개발과 하천관리담당은 “이 사업에 지역건설업체들이 투입되고 일자리가 창출되면 충주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며 “하천정비 사업을 통해 주변에 휴식공간도 조성돼 시민들의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윤 담당은 “이 사업과 별개로 5월에 정부가 한강종합개발 계획을 발표하면 충주에서 진행되는 하천정비사업 구간이 대폭 늘어나게 된다.”며 “아마도 충주댐 이후 가장 큰 공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기대했다. 이번 하천정비는 충주 현안사업인 유엔평화공원 조성과 2013년 세계 조정선수권 대회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도 꿈틀… 일부선 곱잖은 시선 두 사업을 위해 시 예산을 들여 탄금대 주변 하천 일원을 정비해야 하는데 정부가 하천정비사업을 추진해 따로 돈을 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충주에선 하천정비가 확대돼 대운하로 연결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 또한 크다. 신순철 충주시의원은 “충주시민들의 80% 이상이 아직도 대운하를 희망하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하천정비사업을 통해 대운하사업이 시작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4대강 정비사업 발표 이후 땅값 상승이 예상되면서 침체됐던 부동산업계도 모처럼 활기를 찾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 환경단체는 하천정비사업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박일선 충주환경연합 대표는 “정부가 강을 건드려 성공한 적이 없다.”며 “하천정비를 잘못했을 경우 홍수범람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이번 사업이 대운하로 확대되면 반대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충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서울 2.4㎏ 여자아기 첫울음… 기축년 ‘대한민국 1호’들

    서울 2.4㎏ 여자아기 첫울음… 기축년 ‘대한민국 1호’들

    기축년(己丑年)의 첫날을 힘차게 시작한 대한민국 ‘1호’들이 잇따라 탄생했다. 새해 첫 아이는 서울 퇴계로 관동의대 제일병원에서 태어났다.병원측에 따르면 1일 0시0분 이경숙(32)씨가 2.4㎏의 여아를 출산했다.임씨는 “소띠 해인 만큼 우리 아기도 건강하고 근면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며 남편 임유승(32)씨와 기쁨을 나눴다. 부부는 진료비와 병실사용료 전액을 면제받으며,신생아 건강검진권과 출산기념품 등 축하선물도 받았다. 첫 일출은 독도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었다.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26분에 독도에서 새해 첫 해가 동해상으로 떠올랐다.독도경비대장 김태석 경위는 “새해에는 독도를 지키는 데 더욱 만전을 기하겠다.”면서 “독도 내 대원들이 건강하고 국가 경제가 좋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이날 해경의 함정을 타고 소년소녀가장 70여명과 자전거원정대 30여명 등이 독도에 입도할 예정이었으나 높은 파도로 주변에서 돌아가야 했다. 독도에 이어 7시31분쯤에는 울산 대송리 간절곶과 방어진,부산 기장군 삼성리,태종대,해운대에서 일출이 잇따라 연출됐다.강릉 강동면 정동진과 경포대에서는 7시39분쯤 새해 첫 해를 볼 수 있었고,서울 남산에서는 7시46분쯤 해가 떠올랐다. 이날 0시2분에는 중국 베이징 광산기술회사에 근무하는 탕엔리어우(44·여)가 인천공항을 통해 첫 손님으로 입국했다.새해 첫 열차는 이날 오전 4시 동대구를 떠나 서울로 향한 무궁화 1302호와 같은 시각 광주에서 용산으로 출발한 무궁화 1422호였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생존이 최우선” 자택서 전략구상 몰두

    기축년(己丑年)을 맞은 주요 그룹 총수와 대기업 최고 경영자(CEO)들은 새해 첫날 대체로 자택에서 신년 경영구상에 몰두한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1일 특별한 외부일정 없이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가족들과 휴식을 취한다.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은 자택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 새해 경영전략을 짜고 있다.삼성전자의 2009년도 사업계획은 이달 초로 예정된 전략회의에서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도 신년 사업계획을 다듬을 장소로 서울 한남동 자택을 택했다.국내외 시장에서 자동차 수요가 급감하면서 완성차 업체들이 위기를 맞고 있어 세계 유수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전략을 찾는 중이다.구본무 LG그룹 회장은 1일 한남동 자택에서 가족들과 차례를 지내고 4일까지 집에 머물며 신년 경영구상에 전념할 예정이다.남용 LG전자 부회장도 집에서 4일까지 휴식을 취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허창수 GS그룹 회장도 새해 첫날을 집에서 가족과 보내며 경영계획을 짠 뒤 2일 시무식을 갖는다.최 회장은 경영환경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시나리오별 사업계획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현장을 찾는다.이 회장은 집에서 새해를 맞고 2일에는 포항 본사에서 열리는 시무식에 참석,현장을 둘러보며 직원들을 격려할 예정이다.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고향인 울산에서 가족들과 신정을 보낸 뒤 서울로 올라와 계열사 업무 보고를 받으며 경영 구상에 전념할 계획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새해 첫날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있다.박 회장은 2일 시무식과 공채 신입사원 입사식에 참석한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하나高’ 하나금융 직원 자녀 전형 유지

    자립형사립고인 ‘하나고등학교’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모집 비율이 20%로 상향 조정됐다.그러나 기여입학 논란을 빚었던 하나금융지주 임직원 자녀 전형은 그대로 유지했다.하나고는 2010년 은평뉴타운에 들어서는 서울 최초 자사고로 하나금융지주가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31일 “사회적 배려 대상자 선발 비율을 애초 계획했던 10%에서 20%로 높이는 것을 전제로 하나고 설립계획을 인가했다.”고 밝혔다.사회적 배려 전형은 국민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소년소녀가장,환경미화원 가정,군인,다문화 가정 자녀 등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전형이다. 시교육청은 “국제중 및 자율형 사립고의 예를 적용해 하나고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모집비율을 20%로 정했다.”고 설명했다.이에 따라 일반전형 비율은 원래 계획했던 65%에서 60%로 낮췄다. 특별전형은 사회적 배려 전형과 하나금융 임직원자녀 전형(20%) 두 가지로만 이뤄지게 됐다.모집지역은 서울로 제한되지만 특별전형 가운데 하나금융 임직원 자녀,군인 자녀,다문화 가정 자녀는 전국에서 선발할 수 있다.성적우수자 전형은 없다. 하나고는 개교 첫해 1학년 8개 학급으로 시작한다.학급당 학생은 25명이다.2012년에는 총 24개 학급에 600명의 학생이 공부하게 된다.수업료는 일반고의 3배 정도에서 책정된다.수업은 국제경제 및 금융 분야를 특성화해 이중언어로 진행될 예정이다.하나고는 2003년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처음 설립을 추진했다.올해 4월 하나금융지주가 학교 설립자로 선정됐고 새해 1월 초 착공에 들어간다.11월쯤에는 신입생 모집이 가능할 전망이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4·끝) 조선을 알았던 청, 청을 몰랐던 조선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4·끝) 조선을 알았던 청, 청을 몰랐던 조선

    조선이 병자호란을 맞아 일방적으로 몰리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청군이 조선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강적이었다는 점이다.청군은 병력의 수,무기 체계,전략과 전술,사기 등 모든 면에서 조선군을 압도했다.그들은 교전 경험도 풍부했다.1618년 무순성(撫順城)을 점령했던 이래 수많은 공성전(攻城戰) 경험을 갖고 있었다. 남한산성 공성은 1631년 홍타이지가 주도했던 대릉하(大凌河) 공략전과 흡사했다.대릉하전 당시 청군은 성을 물샐 틈 없이 포위하고,산해관 쪽에서 몰려오는 명 지원군의 접근을 차단했다. 남한산성을 고립시키기 위해 판교와 광주 쪽에서 삼남으로 이어지는 길을 차단한 것과 똑같다.외부와의 연결을 끊고 성 내부의 식량이나 연료가 떨어지는 정황을 정확히 파악하면서 수시로 투항을 권유하는 심리전을 폈던 것도 비슷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쟁을 시작하기 전 청이 이미 조선이 사용할 ‘카드’를 간파하고 있었다는 점이다.그들은 조선 조정이 유사시 강화도로 들어갈 것이라는 점도 1627년 정묘호란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청군은 그 때문에 서울을 신속히 점령하고 인조를 사로잡는 것을 전략 목표로 삼았고,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조선군의 청야견벽 작전을 무시하고 서울로 치달리는 속전속결 전술을 구사했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하면 병자호란 당시 조선이 저지른 실책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드러난다.우선 오랫동안 막대한 물력을 기울여 강화도를 정비했으면서도 정작 청군의 침입이 시작되자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은 명백한 과오였다.만약 인조와 조정이 강화도로 들어갔다면 전쟁의 양상은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우선 해로를 통해 삼남 지방과 연결됨으로써 물자 조달이 훨씬 용이했을 것이다.또 김경징 같은 용렬한 인물에게 섬의 방어를 맡기지도 않았을 것이다.삼남 지역의 수군도 훨씬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청의 배후에는 엄연히 명이 있었다.청은 ‘뒤를 돌아보아야 할(後顧)위험’ 때문에 속전속결 전술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만일 인조가 강화도로 들어갔다면 조선은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후금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그러면 설사 강화(講和)를 맺더라도 훨씬 완화된 조건으로 화약을 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역사에서 가정이란 부질없는 것이다.강화도로 들어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내몰린 것은 결국 인조와 조선 조정의 실책이었다.적은 나를 아는데,나는 적을 모르고 거기에 안일하기까지 했던 정황이 불러온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1623년 3월 김류가 이끄는 인조반정의 거사군이 창덕궁으로 들이닥쳤을 때 광해군의 부인 유씨는 반문했다.“지금의 거사가 종사(宗社)의 미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대들의 영달을 위한 것인가?” 반정세력은 거사가 성공하던 당일에는 그 뜻을 잘 몰랐을 것이다. 인조반정은 분명 나름대로 명분과 정당성이 있는 정변이었다.그 주도 세력들이 광해군 집권기에 자행된 실정과 난맥상을 바로잡으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던 것도 인정할 수 있다.하지만 거기까지였다.반정공신들을 비롯한 주도 세력들은 집권 이후 ‘자기 관리’에 실패했다.‘광해군대의 부정과 비리’를 소리 높여 질타했으되,자신들 또한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반정 이후 영달한 공신들 가운데 최명길과 이귀 정도를 빼면 나머지 사람들은 무능하고 문제가 많았다.나아가 공(公)과 사(私)를 제대로 분별하지 않았다.청군의 침략 소식을 제때 보고하지 않고 저항마저 포기함으로써 청군의 신속한 남하를 방조했던 김자점,강화도 검찰사라는 감투를 자기 집안의 식솔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남용했던 김류와 김경징 등의 행적은 그 상징이었다. 인조는 그럼에도 김류와 김자점 등 공신들을 끝까지 편애했다.종묘사직을 도탄에 빠뜨리고,수많은 생령들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그들을 처벌하려 들지 않았다.청은 달랐다.그들은 전승국임에도 병자호란이 끝나자마자 ‘과거 청산’을 철저히 시도했다.조선의 전장에서 과오를 저지르거나 태만했던 지휘관들을 가차없이 군율로 처벌했다. 사정(私情)에 눈이 멀어 공신들을 끝까지 비호한 결과는 무엇이었던가? 훗날 인조 정권과 효종 정권을 뒤엎으려는 역모를 시도했던 심기원(沈器遠)과 김자점이 모두 공신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너무 역설적이다. 1627년의 정묘호란과 1637년의 병자호란을 돌아보면 오늘이 보인다.1627년은 상대하기 버거운 청의 전면 침략을 미봉책으로 잠시 멈춰 놓았던 해였다. 이후 10년은 당연히 ‘외양간을 고쳐야 했던’ 시간들이었다.하지만 조선은 그러지 못했다.‘개돼지만도 못한 오랑캐와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없다.’는 ‘총론’의 목소리는 높았다.그러나 그들의 침략을 막아낼 방도에 대한 ‘각론’은 존재하지 않았다.그 귀결이 처참한 항복이었고 수많은 환향녀와 ‘안추원’,‘안단 ’ 등을 만들어 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역사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고 있을까? 1997년 혹심한 외환위기를 겪었음에도 10년 만에 경제가 휘청대는 상황을 다시 맞은 것을 보면 도무지 그런 것 같지 않다. 1627년과 1637년,1997년과 2008년.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이 숫자들을 보면서 생각해야 한다.“역사를 두려워하고,역사 앞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추위와 굶주림 속에 절망과 슬픔을 곱씹으며 심양으로 끌려가야 했던 수많은 선인들의 고통을 추념(追念)하며 글을 마친다. 한명기 명지대 교수 ■ “지금의 경제위기도 10년 전 IMF 원인 규명 미흡했기 때문” 연재 마치는 한명기 교수의 소회 “병자호란(1636)은 10년 앞서 일어난 정묘호란(1627) 당시 조선에 주어진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뼈아픈 결과입니다.지금의 경제난국도 10년 전 IMF 외환위기 때 책임 소재와 원인에 대한 규명이 부족했기 때문에 되풀이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한명기(46) 명지대 사학과 교수가 서울신문에 매주 연재한 기획시리즈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가 31일자로 마침표를 찍었다.2007년 1월11일 첫 회를 시작으로 꼬박 2년간 모두 104회에 걸쳐 철저히 사료에 입각해 병자호란에 얽힌 이야기를 꼼꼼히 풀어낸 한 교수는 “비극의 역사인 병자호란을 되돌아보면서 과거의 잘못을 뿌리 깊이 성찰하지 않으면 위기는 언제든 반복된다는 교훈을 새삼 되새겼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 교수는 수많은 민초의 죽음과 10만명이 넘는 포로를 발생시킨 병자호란의 원인이 조선 지배층의 무능과 무책임에 있다고 지적한다.정묘호란의 굴욕을 겪고도 이들은 명·청 교체기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신속히 대처할 방법을 강구하기는커녕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다.위정자들의 이같은 안이한 태도는 병자호란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인조는 청태종에게 세 번 큰절을 하는 치욕을 겪었지만 잘못된 정책 판단으로 환란을 자초한 정책담당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은 소홀히 했다.일례로 인조반정의 1등 공신인 김류는 아들 김경징의 안일한 처신으로 강화도가 함락돼 비난이 들끓는데도 자리를 보전했다. 반면 백성들의 고통은 극심했다.청으로 끌려갔다 탈출한 포로들은 다시 청으로 끌려가 발뒤꿈치를 잘리는 혹형을 당했다.안추원과 안단은 무려 28년,37년 만에 탈출에 성공했지만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조선으로 되돌아온 포로 여자들(환향녀)은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았다. 한 교수는 “청에 항복한 이후에도 오랑캐라고 혐오하기만 했지 왜 당해야 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위기의 원인을 찾아 철저히 반성하고,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결여됐던 것이 조선이 동아시아 3국 가운데 근대화가 가장 늦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분석했다.그러면서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확실히 극복하는 DNA가 부족한 것 아닌지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병자호란의 전말을 학술논문이 아닌 대중적인 글로 집대성해서 풀어쓴 사례는 드물다.한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을 기본으로 병자호란에 관한 모든 자료를 취합해서 철저히 사료에 근거해 글을 썼다.”고 밝혔다.‘임진왜란과 한중관계’‘광해군’ 등의 저서를 쓴 한 교수는 앞으로 임진왜란에 관한 대중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의 방법을 모색해야 했던 조선의 운명은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때문에 현재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다시 읽는 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 길이라고 한 교수는 강조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CBS 진행자 교체 ‘파행’

    CBS 진행자 교체 ‘파행’

    전국언론노조는 총파업 닷새째를 맞은 30일 MBC에 이어 CBS,EBS 노조가 파업에 참여한 가운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언론노조는 이날 오후 서울과 지방에서 집결한 3000여명의 조합원(주최측 주장)이 참석한 가운데 ‘언론법 저지 총력 결의대회’를 가졌다.전면 방송제작 거부에 들어간 CBS 조합원 200여명은 이날 오전 목동 본사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가진 뒤 여의도 집회에 합류했고,MBC 노조와 SBS 노조도 각각 결의집회를 갖고 결의대회에 가세했다. 경인일보와 경남도민일보,한라일보,경상일보 등 이날 16개 지역 신문은 지면 파업을 계속했고 광주방송과 제주방송,강원방송 등 지역 방송의 앵커들은 파업동참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전날에 이어 검은색 의상을 입고 뉴스를 진행했다.지역 방송 및 신문의 조합원들은 이날 1박2일 일정으로 대거 서울로 와 여의도 집회에 참석했다. 파업 불참을 선언한 KBS의 현 노조와 달리 내년 1월1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KBS 차기 노조는 이 와중에 “언론 관계법을 강행 처리하려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또한 2002년 이후 입사한 KBS 기자 111명도 이날 오전 KBS 사내전산망에 올린 성명을 통해 “KBS 노조는 하루빨리 언론 노동자들의 파업에 즉각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며 “언론노조의 총파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집회를 마친 언론노조는 오후 7시부터 2시간 동안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했다.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이끌었던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회원들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원들도 대거 참여해 힘을 보탰다. CBS와 EBS 노조가 파업에 동참함에 따라 진행자와 PD들도 교체됐다.CBS의 표준FM ‘김현정의 뉴스 쇼’(오전 7시)와 ‘8585 퀴즈쇼’(오후 2시5분),음악FM의 ‘그대와 여는 아침 김용신입니다’(오전 7시),‘신지혜의 영화 음악’(오전 11시) 등의 노조원 아나운서와 PD 등이 진행석에서 물러났다.EBS는 이날부터 조합원 일부가 상징적인 제작거부에 들어갔으나 프로그램 대부분이 2주가량 여유를 두고 제작되기 때문에 방송 차질은 빚어지지 않았다. MBC의 케이블 채널 관계사인 MBC에브리원과 MBC드라마넷 등도 파업 영향권에 들고 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김혜성 “문근영 덕분에 연예인 데뷔” 각별한 인연

    김혜성 “문근영 덕분에 연예인 데뷔” 각별한 인연

    배우 김혜성이 ‘국민여동생’ 문근영과 각별한 인연이 있음을 밝혔다. 김혜성은 2009년 1월 2일 방송되는 MBC ‘오늘밤만 재워줘’에 출연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공개했다. 프로그램의 MC를 맡고 있는 이경실, 김지선, 강수정, 유채영은 김혜성의 집안을 구경하던 중 침실에서 문근영의 사진을 발견했다. MC들은 김혜성에게 “혹시 문근영이 숨겨진 여자 친구가 아니냐.”며 추궁했다. 이에 김혜성은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매니저 형이 예전 문근영의 매니저라서 가지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또 “내가 연예계 데뷔 전 얼짱으로 인터넷 상에서 유명했을 때 근영이가 지금의 소속사 매니저 형에게 나를 추천해 데뷔시켰다.”며 문근영과의 과거 인연을 소개했다. 한편 김혜성의 집안 곳곳에서 독특한 물품들이 대거 발견됐다. 매니저 형과 가끔 한 잔 할 때 꺼내 먹는다는 와인셀러 안에는 소주가 가득차있었다. 또 김혜성은 6년 전부터 매니저와 함께 모았다는 LPG가스통 저금통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한쪽 벽에 놓여 진 김혜성의 상반신 누드사진을 발견한 아줌마 MC 4인방이 마음을 설레여 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녹화에서 김혜성은 “학창시절 5~6개월 정도 가출을 해 친구 집에서 있었다.”며 “그 시절에는 부모님 얼굴만 봐도 너무 싫었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일을 하게 되면서) 떨어져 지내니 부모님의 모습이 굉장히 작아보였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부산에서 살던 김혜성은 연예인 데뷔로 서울로 올라오면서 자연스럽게 고등학교를 중퇴하게 돼 이후 검정고시를 통해 학업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고 전했다. 김혜성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MBC ‘오늘밤만 재워줘’는 2009년 1월 2일 금요일 오후 11시 40분 방송된다.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길섶에서’ 바라본 무자년 한해 세상살이

     서울신문 오피니언란에 ‘길섶에서’란 코너가 있습니다.소소한 일상에서 느꼈던 감회를 편안한 필체로 옮겨놓는 곳인데 의외로 즐겨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유난히 심란하고 안타까웠던 일들이 많았던 2008년 한해를 돌아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200자 원고지 2.7매밖에 안 되는 짧은 공간이어서 독자를 흡인력있게 끌어당기기 위해 필자들이 겪었을 고뇌와 번민이 오롯이 드러나는 곳이기도 합니다.물론 필자들의 재주를 비교 감상(?)하는 재주는 덤입니다.올 한해 이 란을 수놓은 기사들 가운데 인터넷에서 가장 많은 클릭수를 기록한 10편을 골랐습니다.오프라인에서는 얼마나 많은 독자가 어떤 글을 읽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부득이하게 온라인 클릭수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덕망있는 논설위원님들이 많은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공간인데 클릭 수만으로 재단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기도 하고 무람한 짓인 것 같기도 합니다.해서 순위를 일부러 엉크려 날짜 순으로 배열했습니다.하지만 그렇게 많은 클릭 수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만 말씀드립니다.  아무쪼록 2009년 기축년에도 이 란을 채워가는 여러분들이나 이 란에서 삶의 여유와 희망을 느꼈던 독자 여러분 모두 행운이 가득하기를 빌어봅니다.아울러 절망보다는 희망의 노래가 가득 울려퍼지길 기대해 봅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상심의 계절(2월5일)  깊은 밤이다. 메피스토 왈츠가 춤춘다. 작곡가 겸 피아노 연주자 리스트의 곡이다.‘선술집에서의 춤’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겨울 밤 그림자가 창가를 맴돈다. 리스트의 연주는 현란했다. 평론가들은 “피아노가 없어지고, 소리가 나타났다.”고 했다. 그는 천재적 연주만큼이나 쇼맨십이 뛰어났다고 전한다. 여성팬을 몰고 다녔다. 그는 관객을 향해 초록색 장갑을 던졌다. 오빠부대 동원의 원조라고 할까. 질투와 비난이 쏟아졌다.  화가 엘그레코가 없었다면, 스페인의 고도 톨레도가 지금처럼 화사한 빛을 더할 수 있었을까. 그는 성당 벽화 등에 ‘암호’를 남겼다. 중심 인물은 둘째, 셋째 손가락을 벌리고 있다. 자신의 그림이라는 표시다. 성화엔 사인을 할 수 없어서였다. 사람들은 속물 근성이라며 비난했다. 하지만 지금은 리스트, 엘그레코의 ‘돌출’을 인간적인 측면으로 이해하는 목소리가 높다.‘트로트의 황제’ 나훈아의 바지지퍼가 여전히 화제다. 꿈을 잃었다고 했다. 견디기 힘든 고통속에서 돌출된 인간적인 몸짓으로 이해한다면, 지나친 옹호일까.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성장통(2월6일)  요즘 이유 없이 몸이 피곤하다. 뼈마디가 쑤시고 잠자리도 편치 않다. 저항력이 떨어졌는지 알레르기도 심해졌다. 자고 일어나도 몸이 찌뿌듯하고 얼굴은 푸석푸석하다. 컨디션이 이 지경이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쉽게 울적해지고, 쉽게 노여움을 탄다.  이런 증세를 얘기했더니 한 동료가 ‘성장통’이라고 진단했다. 나이가 드느라고 아프다는 것이다. 오십견, 갱년기 장애라는 것도 모두 성장통의 한 유형이라고 했다. 옆에 있던 다른 동료는 “성장이 멈춘 지가 언젠데 성장통이 웬 말이냐?”며 ‘사추기’라고 했다. 인생의 가을을 맞아 마음이 심란해지면서 오는 병이라고 했다. 좌우에서 날아온 강펀치를 맞고 얼얼해 있는데 또 다른 동료가 어퍼컷을 날린다.  “성장통은 무슨, 그건 나이가 들어 근육이 쪼그라들면서 나타나는 ‘수축통’이다.”라고. 억장이 무너진다.  어느덧 인생의 절반을 넘게 살았다. 나머지 생을 잘 살려면 몸과 마음을 제대로 재정비해야겠다. 몸은 건강하게, 마음은 넉넉하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아름다운 시절(3월27일)  며칠 전 작가 이봉구의 ‘명동백작’서평을 봤다. 어둡지만 낭만이 샘물처럼 넘쳤던 1950·60년대 풍류객들 이야기다. 박인환 시인에 대한 회고담이 나온다. 그는 서른 나이에 술과 함께 세상을 떴다.‘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박인환은 어느 술집서 단숨에 ‘세월이 가면’을 썼단다. 저자는 박인환이 활개쳤던 명동이, 가장 아름다웠던 명동이라고 추억했다. 사랑노래가 잡힐 듯하다.  어느 문인의 황망했던 여고시절 추억담이 떠오른다. 새 학기였다. 담임 선생님이 액자를 들고 왔다. 마른기침 끝에 “반훈(班訓)을 만들어 왔다.”고 했다. 액자가 올라갔다. 칠판위 하얀 벽으로 눈동자가 옮겨졌다.‘첫 사랑을 잊지 말자’ 학생들이 까무러쳤다. 포복절도에 교실이 떠내려갔다. 첫 사랑을 그토록 상찬한 선생님은 어떤 이였을까. 박인환류의 사랑 당부였을까. 꿈 많던 시절의 추억을 잊지 말라는 주문이었을까. 사랑없는 사랑이 넘친다. 명동백작이 그리운 시대다.‘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 새삼 아프게 다가온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자유로운 새(5월20일)  숙제처럼 쌓아 두었던 ‘카르티에 소장품전’과 ‘티파니 보석전’을 토요일 오후 반나절에 모두 다녀왔다. 일본에서 온 손님 덕분이었는데 아름답고 진귀한 보석 구경에 내 눈은 잠시나마 엄청난 호사를 누렸다. 내 것이 될 수는 없는 것들이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143.23캐럿의 에메랄드가 박힌 카르티에 목걸이,128.54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로 된 티파니의 브로치 등 엄청난 보석들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수백점의 보석 가운데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카르티에 전시회에 소개된 자그마한 브로치였다.  디자이너 장 투생의 1944년 작품으로 ‘자유로운 새’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브로치다. 새 한마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형상이다. 그런데 그 새는 새장 속이 아니라 밖에 앉아 있다. 독일의 점령에서 해방돼 자유를 되찾은 프랑스를 표현한 것이란다. 얼굴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혀있고 가슴은 붉은 산호, 날개는 남색 청금석으로 만들었다. 파랑, 빨강, 흰색의 세가지 색깔은 프랑스를 상징한다. 새장 밖의 새…. 생각만해도 자유롭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배호가요제(5월24일)  ‘안개 낀 장충단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요절가수 배호(본명 배신웅·1942∼1971년)를 기리는 ‘배호가요제’가 어제 서울 장충단 공원에서 열렸다는 사실을 동네 골목에 붙은 홍보 포스터를 보고 알았다.  올해로 벌써 열두번째란다. 팬클럽인 배호사랑회가 주최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불멸의 히트송 ‘안개 낀 장충단공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뽑은 한국인의 열창 성인가요 20위에 올랐다. 배호는 37년전 세상을 떠났지만 팬들은 그를 보내지 않는 것이다. 가수의 이름을 붙인 가요제가 명멸하고 있지만 배호가요제가 롱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90년대 노래방이 등장해 노래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놓기 전에는 숟가락을 마이크 삼거나 젓가락 장단으로 노래를 불렀다. 참 많이도 불렀다. 오죽하면 ‘노래를 못하면 장가(시집)를 못간다. 엽전 열닷냥∼’하는 노래 촉구송도 있었을까. 우리나라는 노래방이 가장 많은 나라이고 심지어 노래는 한국인의 힘이라는 분석도 있다. 팬들이 꾸려가는 배호가요제는 노래를 향한 한국인의 목마름인 것 같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사람의 향기(7월23일)  인사동을 지나다 우연히 백단향 한통을 구입했다. 제사 때 피우는 일주향(一炷香)밖에 모르던 문외한이 향을 알게 된 것이다. 가족들이 타박했지만 향의 세계에 빠져버렸다. 여름철엔 시골 뒷마당에서 태우던 짚불처럼 모기, 파리를 쫓아주니 ‘아로마 테라피’가 따로 없다.  용연향(龍涎香), 사향(麝香), 침향(沈香)을 3대 향으로 꼽는다. 팥꽃나뭇과의 상록교목을 벌채해 땅 속에 묻어서 썩인 다음 흘러나온 수지(樹脂)를 수집하여 만드는 침향이나 사향노루 수놈의 샘에서 분비되는 사향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져 있다. 용연향은 향유고래가 즐겨먹는 대왕오징어를 소화시키지 못하고 토해낸 소화분비물. 용연이란 말 그대로 ‘용이 흘린 침’. 귀하고 비싸다.  주위에 번지르르한 얼굴과 말로 우리를 현혹시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도종환시인이 빗댔다. 향유고래나 사향노루, 팥꽃나무 모두 향기나는 음식을 먹어서 향을 내는 것은 아니며 그들은 그저 바닷물과 풀과 햇빛을 먹었을 뿐이라고. 사람의 향기도 마찬가지 아닐까.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실패의 교훈(7월25일)  “이제야 인생을 알게 됐다.”선거에 출마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한 선배의 변이다. 정무직인 장·차관만 빼놓고 여러 고위급 보직을 섭렵하는 등 순탄하기만 한 공직생활을 한 그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퍽 달라져 보였다. 항상 진지하고 모범생 분위기만 풍기던 그가 이젠 실없는 농담도 곧잘 던졌다. 일생일대의 좌절을 맛보았는데도 종전보다 더 낙천적으로 바뀐 그를 보고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의문은 금방 풀렸다. 그 스스로 “선거에 진후 한때 절망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실패한다고 해서 사람이 아주 죽으란 법은 없다는 요지였다. 선거의 패인도 자신의 오만에서 찾는다고 했을 때 그 말의 진정성도 느껴졌다.  그렇다. 누구나 마음먹기에 따라 절망의 심연에서도 희망의 샘물을 길어 올릴 수 있는 법이다. 염세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조차도 “강을 거슬러 좌절을 경험한 사람만이 자신만의 역사를 갖게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선생의 편지(8월2일)  한창 소설에 빠져있던 고3 여름 무렵이었다. 인생엔 책밖에 없다며 입시 공부는 저만치 제쳐 놓았던 시기다. 집에서 가라던 공대를 포기하고 문학계열로 진학하겠다고 선언한 뒤로 방을 책으로 채워갔다. 책꽂이에 늘어가는 책만으로도 작가가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던 어느날, 불안감이 엄습했다.  습작이랍시고 해보는 글들이 제 눈에도 형편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대 위기였다. 그래서 편지를 낸 것이 이청준 선생이었다.“제게 글쟁이 자질이 있나요.”가 골자인 편지였다. 대작가가 답장 따위 보내 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스스로를 질책하는 편지였으니.    2주쯤 지나서일까, 선생이 답장을 보내왔다. 파란색 만년필의 달필이었다.“지금은 아무 생각 말고 공부하시오. 대학에서 경험과 노력을 쌓을 기회는 많으니 말이오.”라는 요지였다. 비록 길을 틀어 신문쟁이로 늙어왔지만 한낱 고등학생에게 5장이나 답신해준 선생의 따뜻한 격려는 아직도 마음속에 살아 있다.  황성기 편집국 부국장 marry04@seoul.co.kr   ● 버킷 리스트(10월13일)  영화 ‘버킷 리스트’를 DVD로 빌려 봤다. 잭 니컬슨, 모건 프리먼이라는 걸출한 배우가 출연하고 롭 라이너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말한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66살 동갑내기 갑부와 자동차 정비사가 병실에서 만나 의기투합, 목록을 작성하고 실행에 옮겨본다는 내용이다.  의미있는 죽음에 대한 고찰과 죽음으로써 완성되는 삶의 미학을 관조하는 영화다. 스카이다이빙하기, 최고의 미녀와 키스하기, 장엄한 광경 보기 같은 난제도 있지만 문신하기, 눈물이 날 때까지 웃기,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기처럼 손쉬운 목표도 세웠다.  난 무얼 꼽을까. 얼핏얼핏 생각은 했지만 아직 절실하지 않은 탓인지 정리하지 못했다. 특정시기의 목표나 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몇가지 정해 보기는 했지만 인생을 망라한 것은 아니었다. 단순명료화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차일피일 미룰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나의 버킷 리스트엔 무엇을 올릴 것인가. 숙제가 생겼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   ● 노팬티 아이들(10월24일)  이따금 경북 상주 과수원에 가서 자원봉사하고 돌아오는 아줌마가 들려준 이야기다. 인근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5학년 자매들이 과수원으로 와 낡은 그네를 타고 놀았다. 별다른 놀 것이 없어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우연히 못볼 것을 보고 말았다. 아이들이 속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주위를 통해 알아보니 자매들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이른바 ‘조손’(祖孫)가정이었다. 조손가정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 정도일까 싶었다.  서울로 와 아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도와주자고 했다. 옷, 학용품 등을 챙겨 지난 추석 과수원을 찾았다. 물론 아이들의 속옷도 준비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소용이 없었다. 옷이 갑갑하다며 다시 벗어 던졌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읽은 밀림에 사는 소년 이야기가 떠오르더란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바라보는 시대에 절대빈곤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조차 못받는 극빈층도 적지않다. 가난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모양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