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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00만명, 막혀도 고향으로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이틀 앞둔 1일부터 민족 대이동이 시작됐다. 낮시간 여유롭던 상황은 날이 어두어지면서 고속도로 전구간은 주차장으로 변했다. 국토해양부는 일부 기업들의 추가 연휴기간을 포함, 이달 5일까지 지역간 이동 인원이 하루 평균 513만명, 모두 2566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지난해에 비하면 0.8%가량 줄어든 수치다. 이날 정오부터 본격화된 고속도로 정체는 오후 9시쯤 절정을 이뤘다.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향의 기흥 IC→천안IC 47.16㎞구간, 영동고속도로 강릉방향의 용인IC→양지IC 7.96㎞ 구간 등에서는 늦은 밤까지 차량들이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도로공사는 이날 오후 8시까지 280만대가 서울을 빠져나갔으며 2일 귀성길 정체는 새벽부터 시작해 오후 절정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귀경길은 3일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 귀경객의 22.9%가 몰릴 것으로 예상돼 극심한 교통정체를 빚을 것으로 분석했다. 서울역, 고속버스터미널 등은 낮시간 신종플루 감염 우려 탓인지 다소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서울 반포동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는 이날 오전 1만 3000여명의 귀성객이 찾았지만 크게 혼잡하지는 않았다. 98.1%의 예매율을 기록한 부산행 고속버스를 비롯해 주요 도시들은 높은 예매율을 보였지만 추석에 맞춰 차편이 증차돼 시민들이 표를 구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밤이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고속버스터미널 관계자는 “전년에 비해 승객수가 7% 정도 줄었다.”면서 “신종인플루엔자 등의 영향으로 대중교통보다 승용차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밤시간에 몰리면서 고속도로가 극심한 정체를 빚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역에도 신종플루를 의식한 듯 마스크 차림의 귀성객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서울역 측은 신종플루 확산 방지를 위해 역사 곳곳에 손소독기와 세정제를 배치했다. 서울역 역무과 박문길 과장은 “신종플루 등 악재가 있지만 2일을 비롯해 추석 연휴기간 동안 상·하행선이 모두 매진됐고 일부 구간만 입석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국내선 여객기도 모두 매진됐다. 지방에서 서울로 오는 항공편 역시 추석 당일인 3일 오전부터 4일까지 매진됐다. 박건형 유대근기자 kitsch@seoul.co.kr
  • ‘역귀성’ 부모님 서울오기 전 이것만은

    ‘역귀성’ 부모님 서울오기 전 이것만은

     3일간이란 짧은 추석연휴에 자식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서울로 오는 ‘역귀성’을 택한 노부모님들.이번 추석엔 서울의 주요 관문인 서울역 등지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많이 달라져 꼼꼼히 익혀놓지 않으면 부모님을 고생시켜드리기 십상이다.자식·손자손녀 주려고 바리바리 싼 꾸러미를 두손에 든 노부모님이 고생하실 것을 생각하면 바뀐 버스정류장 정도는 숙지해 놓아야 할 것같다.  서울역과 반포 서울고속터미널 인근 교통시스템이 지난 설때와 달리 많이 달라졌다.서울고속터미널 앞에 버스중앙차로제가 시행돼 기존의 버스정류소가 옮겨졌고, 서울역 앞에는 버스환승센터가 생겨 이곳 또한 버스정류소의 위치가 싹 바뀌었다.또 지하철 9호선이 개통되면서 서울고속터미널에서 이용할 수 있는 노선도 늘어 굳이 택시를 타지 않아도 편하게 도착할 수 있다.  ●서울역 앞에서 버스타려면 노선도 꼭 참조  서울역에 내려 버스를 타러 이리저리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서울역 주변 10여곳에 산재됐던 버스정류소를 한 곳에 모은 시내버스환승센터가 지난 7월 25일 개통됐다.기존 버스정류소에 익숙했다면 많이 헷갈릴 수 있다.  원칙만 알면 간단하다.서울역에서 나오면 바로 정면에 보이는 1~7번 정류소 중 1~2번은 택시를 이용하는 곳이다.용산·김포(인천)공향 방향으로 가려면 3번 정류소에서,용산·광명·시흥·노량진 방향으로 가려면 4번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면 된다.강남·분당·퇴계로 방향은 5번,고양·은평·구리 방면은 6번 정류소를 이용하면 된다.한강로→한국은행·시청 방면 버스는 7번 정류소에서 탈 수 있다.    서울역 계단을 내려와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있는 전체 노선도를 참조하면 편리하다.  자세한 정보는 서울시 교통정보센터 홈페이지(http://topis.seoul.go.kr) 혹은 120 다산콜센터(전화 120번)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고속터미널 앞에서 버스 타려면 차도 중앙에서  반포 서울고속터미널 앞도 많이 바뀌었다.지난 6월 13일부터 구 반포삼거리∼논현역 사이 3.5㎞ 구간에 중앙차로제도가 시행됐기 때문이다.  중앙차로 정류장에서 이용할수 있는 버스는 143,148,360~362,401,4212,4318,4425,4425(심야),462,540,540(심야),6000,640,6411,642,642(심야),643,8541,9408번이다.가장 가까운 중앙차로 정류장은 신세계백화점이 입점한 센터럴시티(호남선) 빌딩 바로 앞에 있다.이외 노선은 주변에 있는 가변차로 정류장,마을버스·공항버스 정류장을 이용하면 된다.  ●터미널에 내려 9호선 타고 ‘슝~’  지하철 9호선의 개통도 고속터미널에서 내린 어르신들이 알면 좋은 정보다.9호선이 지난 7월 24일 개통되면서 서울 동남 지역과 서북부 지역을 바로 잇게 됐다.신논현역에서 개화역까지 52분이면 간다.고속터미널에서 동작(현충원)까지 5분40초 거리가 급행을 타면 3분15초로 줄어든다.고속터미널에서 김포공항까지 급행을 이용하면 43분에서 27분30초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단 다른 노선으로 환승이 바로 되지 않는 곳이 있으니 지하철 9호선 홈페이지(http://www.metro9.co.kr/index.do)에서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지하철·시내버스 연장 및 증편  한편 3~4일에는 서울의 지하철과 시내버스 막차 운행시간이 연장된다.또 추석연휴기간 고속·시외버스도 증편된다.  3~4일 지하철 1~9호선은 종착역을 기준으로 다음날 새벽 2시까지 12~30분마다 1대꼴로 하루 총 142차례 늘어난다.또 같은 기간에 시내버스는 서울역·청량리역·영등포역·용산역 등 기차역과 반포 서울고속버스터미널·동서울·남부·상봉 등 주요 버스터미널에서 새벽 2시까지 탈 수 있다.연휴기간 고속·시외버스는 하루 1828회를 늘려 모두 7166회 운행되고 30일 오전 4시부터 10월5일 자정까지 개인택시 부제가 해제된다.  1일 오전 6시부터 4일 자정까지 남부순환로 남부버스터미널~서초IC 구간(0.5㎞) 양방향의 도로변 1개 차로는 임시 버스전용차로로 운영된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서울시 우선주택공급제 개정해야”

    서울 거주자에게 유리한 현행 수도권 주택공급제도를 지역별 형평성을 고려해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3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청에서 열린 ‘경기도 지역우선주택공급제도 개선 및 지방분권 토론회’에서 이화순 경기 도시주택 실장은 “현행법상 서울시에 건설되는 주택은 서울시에 100% 우선 공급권이 주어지는 반면 경기도에 건설되는 주택은 30%만 지역주민에게 우선 공급돼 불합리하다.”며 법 개정을 강력 촉구했다. 지난 1999년 서울의 주택난 해소와 서울로의 인구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서울시 우선주택공급 규정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제30조’에 따르면 서울시 건설 주택은 서울시민에게 100% 우선 공급되고 경기도 건설 주택은 30%만 해당 시·군 주민에게 우선 공급된 뒤 나머지 70%는 서울·인천·경기 지역 ‘수도권’ 주민들에게 공급된다. 이 실장은 “이 규정은 과거 서울시와 타 지역의 주택공급 불균형이 컸을 때를 기준으로 제정된 것”이라며 “현재 서울시와 경기도의 주택보급률은 각각 93.9%와 96.0%로 비슷해졌고 그 사이 서울시 인구는 감소하고 경기도 인구는 23%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실장은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불공평한 현행법을 ‘해당 기초자치단체에 30%, 해당 광역단체에 70%를 우선 공급하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실장은 “이와 같이 규칙을 개정하면 기초자치단체 원주민의 재정착률도 높아질 것”이라며 “현행법대로라면 위례신도시 개발면적의 62%를 차지하는 성남·하남 주민들에게 공급되는 주택비율은 19.6%에 불과해 원주민 재정착이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가평行 낭만열차 떠나요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가평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낭만의 기차 관광상품이 첫선을 보인다. 경기 가평군은 오는 12일부터 열차를 타고 가평의 자연과 문화와 볼거리, 먹을거리를 테마로 한 ‘낭만 가득 가평 가는 기차여행’ 상품을 판매한다고 30일 밝혔다. 이 상품은 가평군과 코레일이 녹색생태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를 맺고 공동 개발한 것으로 매주 월·수요일 주 2회 운행된다. 아침 8시40분 청량리역에서 출발, 아침고요수목원과 우리나라 최고의 잣 생산단지인 영양잣마을을 차례로 둘러본다. 이어 어린이들의 꿈과 소원을 풀어주는 ‘쁘띠프랑스마을’을 관광하고 동서양의 과수와 식물의 천국인 이화원 관광을 끝으로 오후 5시35분 가평역에서 열차를 타고 서울로 되돌아온다. 통행료와 관광지 입장료, 식사비를 포함해 어른 2만 7700원, 어린이는 2만 4300원이다. 기차여행에는 향토문화와 생태자원에 식견을 지닌 문화관광 해설사들이 동행한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女기자, K3 기관총을 직접 쏴보니…②

    女기자, K3 기관총을 직접 쏴보니…②

    ◆ 1초에 20발, 기관총을 겨누다 <1:20> 오후는 분대 공격 훈련 체험이다. 40분가량 떨어진 육군 부사관학교로 갔다. 오후 첫 훈련은 사격이었다. “우리 부대에서 사격 실력은 나 따라올 자 없었지.” 지금껏 만난 예비역 열 중 예닐곱은 이렇게 자랑했다. “사격 훈련, 너 잘 걸렸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잘해서 그 남자들 코 납작하게 해주겠다며 자신했다. ‘빵, 빵, 빵, 빵’ 고막을 흔드는 총소리에 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귀에서 손 떼!”라는 교관의 호통에 기가 더 죽었다. 실제 총은 처음 본 터라 손에서 식은땀만 줄줄 났다. 고소공포증도 이기고 레펠 훈련도 마쳤는데 훈련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안하면 안 될까요.”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왔다. 오락실 총싸움 정도로 생각했는데 실제 무기를 보니 뒷걸음질치게 됐다. 이런 기회는 돈 주고도 못산다는 선배 기자의 말이 마음을 움직였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여기서 뒷걸음질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K3라는 기관총을 어깨에 지지하고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교관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듣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르르…. 놀라운 위력이었다. 2초도 안되어 장전한 20발이 속사포처럼 튕겨나갔다. 참았던 숨이 터져 나왔다. 사격보다 더 중요한게 무엇일까. 정답은 탄피 줍기다. 20발을 쐈으면 단 한 발도 남기지 않고 탄피를 주어야 한다. 탄피 한 발이 사라졌다면 그 날은 부대에 ‘비상’ 걸린다. “탄피 하나를 잃어버리면 목숨을 잃는 것과 같다.”고 교관은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이날 밤 기자는 악몽을 꿨다. 사라진 탄피 세 발을 찾아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넜다. ◆ 훈련의 하이라이트, 분대공격훈련 <2:30> “2번 분대원 북한군이 쫓아오는데도 그러고 있을 것입니까.” 또 호통이다. 하루 종일 혼났더니 이제는 교관의 빨간 모자만 봐도 소름이 돋을 정도다. 오전에 받은 유격훈련에서 83번 후보생으로 불렸다면 오후에 받은 분대공격 훈련에서는 2번 분대원이었다. 가짜 수류탄을 ‘건빵 주머니’에 넣고 공포탄이 든 총을 어깨에 멨다.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르고 군모에 밤나무 가지를 꽂으니 실제 전투에 임한다는 비장함이 몸에 흘렀다. 게다가 기자는 체험이지만 다른 분대원에게는 진짜 훈련이기에 피해를 줄 수 없었다. “몸을 숨기라.”는 분대장의 명령에 따라 포복을 하고 “9시 방향에 있는 북한군을 공격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뛰어가는데도 번번이 제일 늦었다. 엄지발가락에 잡힌 물집이 터졌고 입안에 마른침이 끓어올랐다. 인간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은 이런 걸 두고 이야기 하는 거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 한계를 극복하는 군대 훈련, 이것이 참맛 <5:30> 서쪽 하늘로 해가 넘어가서야 훈련의 끝이 보였다. “이제 끝이다.”는 해방감 보다는 오늘 겪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기사로 풀어낼까 겁부터 났다. 그 만큼 하루가 길었고, 겪은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남자들이 제대하고 몇 년이 흘러도 군대 이야기를 하는지 그 이유가 짐작이 갔다. “충성!” 교관에게 경례를 하는 것을 끝으로 기나긴 훈련이 마무리 됐다. 후보생들과 10분 간 꿀 같은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옆에 있는 여자 후보생에게 물었다. “대체 이 고생을 왜 사서 하세요?” 기자의 철없는 질문에 여군은 “고된 훈련을 받으면서 나의 한계를 극복하는 거예요. 이런 훈련 안 해 본 사람은 모르죠.”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이해할 것 같다. 극한 상황을 극복하고 두려움을 뛰어넘는 것 그것이 바로 훈련의 참맛이 아닐까. 두고 온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냐는 물음에 누구하나 선뜻 나서지 않았다. 옆에 있는 남군에게 슬쩍 재차 물었더니 “왜 아니겠어요. 요즘에는 눈 뜰 때마다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 고된 몸을 뉘일 때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그래요.”라며 공허한 미소를 지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이 말이 한동안 가슴을 울렸다. 비록 하루라는 짧은 훈련이었으나 그들의 땀과 웃음 그리고 애환을 엿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묵묵히 나라를 지키는 68만 군인이여, 모두 힘내시라!” 전북 익산=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사진=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 동영상=김상인VJ bowwow@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030] 귀향 포기한 그들의 사연은

    [2030] 귀향 포기한 그들의 사연은

    사흘 뒤면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처럼 누구에게나 넉넉하고 풍성한 명절이 된다면 더할 나위없겠다. 하지만 올 추석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유난히 짧은 연휴와 취업 걱정 등으로 귀성을 포기한 2030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오달란 유대근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미뤄왔던 시력교정수술·영화관람 ‘기분전환’ 직장인 김모(27)씨는 얼마 전 안과에서 추석 연휴 전날인 10월1일에 시력교정 수술을 하기로 예약했다. 며칠 눈을 쓰지 않고 푹 쉬어야 하는데 평일에 휴가를 내기가 눈치 보여 그동안 수술을 미뤄왔다. “어렸을 때부터 안경을 썼는데 이상하게 점점 안경이 거추장스럽더라고요. 올 추석 연휴가 짧긴 하지만, 연차를 하루 덧붙여 수술을 하기로 결심했어요. 사실 저같은 직장인들은 연휴가 되면 그동안 못했던 일을 몰아서 하죠.”라고 말했다. 김씨는 친구와 선배 중에서도 연휴 때 보톡스를 맞거나 피부 관리를 받는 사람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쉬면서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명절 연휴라도 마음 편하게 쉬며 재충전을 해야 한다는 게 김씨의 지론이다. 결혼 3년차인 중학교 교사 정모(30·여)씨는 연휴 동안 남편과 오붓하게 집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시부모님은 미국의 큰집에서 명절을 보내기 위해 한국을 떠나고 전남 광주인 친정에는 연휴가 짧아 내려가지 못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정씨는 추석 휴가를 간절히 기다려왔다.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신장이 나빠져 몸이 자주 붓고 피곤함을 호소해왔기 때문이다. 정씨는 “명절 때면 시댁에 미리 가서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차가 밀려서 도로 위에 꼼짝없이 갇혀 있곤 했는데 이번에는 집에서 쉬면서 건강을 챙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남편이 챙겨주는 밥을 먹고 하루 10시간 이상 잠을 푹 자기로 했다. 사람이 덜 붐비는 극장을 찾아가 영화나 뮤지컬 한 편을 보면서 기분전환도 할 예정이다. 정씨는 “명절 스트레스에서 해방돼 연휴 3일을 고스란히 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며 좋아했다. 직장인 김모(34)씨는 예년보다 짧은 이번 추석 연휴 동안 고향(대구)행을 포기하는 대신 문화 생활을 즐길 계획이다. 그는 중동지역 건설공사 프로젝트건 때문에 여름 내내 야근에 시달리며 휴가도 다녀오지 못한지라 휴식이 절실한 상황이다. 휴일이 3일밖에 되지 않는데 귀향, 귀경길에만 이틀을 잡아먹느니 차라리 텅빈 서울에서 푹 쉬며 홀로 책도 보고 오랜만에 영화관에도 가 볼 생각이다. “각종 입찰서류, 영문 이메일에 파묻혀 지냈는데 연휴 첫날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와 김별아의 ‘미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로 나온 소설책 속에 파묻혀 보낼 겁니다. 음식은 대형마트에서 산 전과 떡으로 해결하면 되고요.” 그는 추석 당일 오후엔 혼자 경복궁과 창경궁을 돌아다니며 공짜 민속행사를 구경하고 마지막 날에는 서울이 고향인 동료와 영화를 보기로 했다. “부모님을 못 뵙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효도보단 휴식을 택했다.”는 김씨는 “대신 내년 설날에는 가장 먼저 대구 집에 내려가 부모님들과 지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 “결혼해라” 명절 단골멘트 지겹다 지겨워 직장인 장모(33)씨는 추석 연휴에도 집에 머무를 틈이 없다. 혼기가 꽉 찬 노총각인 장씨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이번 추석 연휴 3일 연속으로 맞선 약속을 잡아놓았다. 평일에는 ‘야근한다, 회식한다.’는 핑계로 부모님이 권하는 선 자리를 잘 피해왔다. 그러나 이번 추석에는 “시골에 끌려가서 어르신들에게 혼날래, 서울에서 선볼래.”라는 부모님의 최후통첩에 두 손을 들었다. “요즘 제 나이면 그다지 노총각도 아니죠. 그런데 지난해 두 살 아래 남동생이 먼저 장가를 가면서 부모님의 조급증이 부쩍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전 나이가 찼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것인지 아직도 의심스러운데, 그런 말을 꺼낼라치면 부모님은 저더러 아직 철이 덜 들었다고 화만 내시고….”라며 장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주 말에는 어머니, 제수씨와 함께 백화점에서 선보러 갈 때 입을 옷도 샀다. 지난달만 해도 추석 연휴 때 혼자 조용히 남해안으로 여행 갈 계획을 세웠던 장씨였지만, 이제 여행은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하루도 편하게 못 쉬고 선 보러 나가서 억지웃음을 지어야 할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해져요. 남해안이고 뭐고 어디 템플 스테이라도 가서 분노를 다스렸으면 좋겠어요.”라며 장씨는 얼굴을 찌푸렸다. 대학원생 최모(27)씨는 이번 추석연휴에 소개팅을 하루에 한건씩 잡아놓았다. 심지어 추석 당일인 3일 저녁에도 강남역에서 소개팅을 하기로 했다. 각종 페이퍼 작성과 프로젝트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이긴 하지만 실연의 상처를 잊으려면 사람 만나는 게 최고라고 마음먹었기 때문. 그는 7월까지만 해도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알뜰살뜰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름방학이 끝날 즈음 취업에 성공하자마자 절교 선언을 날렸다. “미래가 불투명한 대학원생과는 더 만나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최씨는 “문과대라 석사과정이 끝나도 취업이 힘들 것 같아 고민이었는데 여자친구마저 내 상황을 이해해주지 못하니 야속하기만 했다.”며 속상해 했다. 한달 가까이 식음도 전폐하며 폐인처럼 살았던 그는 10월 달력을 넘겨보며 다짐했다. 추석연휴를 계기로 다시 정신 차리고 여자친구 만들기에 나서자고 마음먹었다. “소개팅하는 건 실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휴에 어른들이 모이면 옛 여자친구의 안부를 물을 게 뻔한데 ‘소개팅 나간다.’는 걸 핑계 삼아 귀찮은 질문공세에서도 피해 나오려는 계산”이라고 말하며 최씨는 씁쓸히 웃었다. 올해 초 광고회사에 입사한 서모(27·여)씨는 있지도 않은 업무를 핑계로 이번 추석을 서울에서 혼자 지내기로 했다. 지난 3월 취업 성공과 더불어 시작된 부모님의 ‘시집’ 타령에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씨가 솔로인 것도 아니다. 3년간 만나온 남자 친구가 있지만 아직 신입사원의 티를 못 벗은 서씨로서는 결혼보다 자신의 일이 더 중요하다. 서씨는 “그토록 원하던 광고회사에 입사했지만 내가 꿈꾸던 카피라이터의 모습과는 한참 멀다.”면서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내 능력을 인정받는 게 우선”이라며 신입사원의 고초를 토로했다. 서씨의 회사는 인원 충원을 위해 최근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냈다. 이 때문에 서씨의 마음은 더 조급한 상황이다. 서씨는 “입사 기간이 크게 차이 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선배인데 후배보다 하나라도 뛰어난 점을 보여야 하잖아요. 이 바닥은 워낙 경쟁이 치열한 데다 시장도 좁아서 개인에 대한 평가가 금방 퍼져요.”라며 “일에서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을 수 있을 때 남자친구와 함께 고향집을 방문하고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 금의환향할 그 날을 위해 공부 삼매경 사법고시 준비생 김모(30)씨는 이번 추석에도 고향인 경남 진주에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벌써 5년째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 부모님과 친척들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서다. 김씨는 “명절이면 친척들이 가장 먼저 꺼내는 얘기가 나의 합격 여부”라면서 “그 소리가 듣기 괴롭고 부모님께도 죄송해서 3년 전부터 추석과 설날에 고향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올해 추석 연휴 동안 서울 신림동 자취방에 틀어박혀 밀린 동영상 강의를 듣고 토익책도 펼쳐 볼 생각이다. 지난 6월에 치른 2차 시험의 성적이 좋지 못해 내년을 기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1차 시험부터 다시 응시해야 해서 토익점수도 700점 이상 확보해야 한다. 연휴도 없이 공부할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나오지만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고 김씨는 전했다. 위로 누나만 두명 있는 막내아들인 터라 김씨에 대한 어머니의 생각은 애틋하다. 지난주 말 도착한 택배 상자에는 냉동 동그랑땡과 산적, 깨송편, 김치 등이 들어있었다. 객지생활에 명절음식도 못 먹을까봐 어머니가 손수 싸서 보낸 것이다. 김씨는 “명절 분위기라도 내라고 지난 설부터 음식을 보내주시는데, 만들어먹을 시간이 없으니 보내지 말라고 해도 고집을 부리신다.”고 말했다. 김씨는 기필코 내년 추석에는 부모님께 합격 소식을 전해드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매달 10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축 내면서 부모님 속을 썩였던 만큼 좋은 성적으로 합격해 ‘판사 아들’ 덕 좀 보게 해드리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양모(29)씨는 어느 해보다 씁쓸한 명절을 맞이하고 있다. 고향인 부산 집에서는 밀린 업무와 짧은 연휴 때문에 못 내려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양씨는 새 직장을 구하는 중이다. 회사의 자금난으로 지난 봄에 해고됐기 때문이다. 양씨는 “아직도 가족들은 제가 직장에 잘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부모님께서 제 소식을 알면 저보다 더 마음 아파하실 것 같아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양씨는 이번 추석 연휴를 재기의 의지를 다지는 기회로 삼겠다며 최근 입사 지원서를 제출한 회사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같이 서울로 상경한 대학 친구들을 보면 가슴이 쓰리지만 내년 설날을 기약하며 마음의 칼을 갈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의 처지를 “멀리 뛰기 위해 잠시 움츠리고 있는 개구리”와 같다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양씨는 “추석 연휴 때면 대학 도서관도 한산해 마음이 더 허전하겠지만 지금 이 처절한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이번 추석 연휴만큼은 최선을 다해 취업 준비에 몰입할 겁니다.”라며 이를 악물었다.
  • [엄마와 읽는 동화] 둠벙 할아버지/장수명

    [엄마와 읽는 동화] 둠벙 할아버지/장수명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이다. “휴, 비는 언제 온담.” 바싹 마른 바닥에서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기호가 타박타박 걷는다. “기호, 이제 오니?”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기호를 보자, 우물가로 가시더니 두레박에서 물을 퍼 올린다. “기호, 이리 온. 할애비가 등목 시켜줄 테니.” 할아버지는 기호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말했다. 우물에서 갓 퍼 올린 물은 얼음 같다. “아~, 차차 차가워. 할배.” 기호가 엎드렸던 몸을 발딱 일으켜 세우며 호들갑을 떤다. “원, 녀석도 뭐가 차갑다고 호들갑이누.” 할아버지는 길러 놓은 물을 할아버지 몸에 퍼붓는다. “피, 할아버지 억지로 참는 것 다 안다 뭐.” 기호가 입술을 삐죽이 내밀며 팔딱팔딱 뛰어 툇마루로 재빨리 올라선다. 몹시도 더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하지만 어찌나 긴 가뭄을 겪었는지 논바닥은 쩍쩍 갈라지고 제대로 자란 벼도 그다지 없었던 농사는 가을이 되어도 별로 추수할 거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둠벙을 하나 파야겠어.” 할아버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다. “둠벙을 파신다고요?” 작은아버지의 낯빛이 싸늘해졌다. “그래, 아무래도 그래야 되지 싶다. 저기 윗마을에 있는 우리 논에….” 할아버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작은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버지, 그 논에 둠벙을 판다는 게 말이 돼요. 다른 사람들 다 가만있는데 왜 번번이 아버지가 나서요. 지난 번 영식이네가 돌아왔을 때도 문중에서 모두 가만있는데 아버지가 나서서 그 위에 있던 논 한 마지기하고 밭 한마지기 털컥 떼 주더니 이번엔 또 우리 논에 둠벙을 판다고요?” 작은아버지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다 할 참인가 보다.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목청을 돋우기 시작했다. “그래요. 아버지 땅이니까 아버지 마음대로 하세요. 난 이제 이곳을 떠나서 살 거예요. 더는 농사짓기도 싫고, 이곳도 지긋지긋하고….” 작은아버지는 휑하니 나가버렸다. 할아버지는 한동안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으셨다. 그런 작은아버지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보시더니 천천히 몸을 움직여 툇마루에 걸터앉는다. “허참, 쟤가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네.” 할아버지는 길게 한숨을 지으며 먼 산으로 눈길을 돌리신다. 몇 날이 지났다. 집안 분위기는 잔뜩 가라앉아 숨조차 마음대로 쉬기 어려울 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기호는 늦잠을 잔 탓에 허겁지겁 밥을 먹고 가방을 둘러메고 잰걸음으로 학교로 달려갔다. 일교시가 끝날 무렵이었다. “기호야.” 작은아버지가 학교로 찾아 왔다. “작은아빠, 작은아빠가 웬일이세요?” 기호는 멀뚱멀뚱한 눈빛으로 작은아버지를 올려다 본다. “오늘, 12시 차로 작은아빠는 작은엄마하고 서울 올라가려고 한다.” “서울요?” “넌, 할아버지와 있다가 우리가 자리잡고 연락할 테니까, 그때까지 학교 잘 다니고 할아버지랑 잘 지내도록 해야 한다.” 기호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느닷없이 학교에 찾아와서 서울 간다는 작은아버지의 말에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작은아빠, 정말 갈 거예요? 정말, 나하고 할아버지만 두고, 서울로 갈 거예요?” “그리 알고 수업 마치고 집으로 곧장 가도록 해라. 알았지.” 작은아버지는 이미 마음을 굳혔나 보다. 기호의 어깨를 몇 번 도닥거리더니 총총히 학교를 빠져나갔다. ‘서울….’ 느닷없이 나타나 서울 간다는 작은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호가 작은 주먹을 움켜잡는다. 기호도 가고 싶던 서울이다. 하지만 작은아버지처럼은 아니다. 기호 눈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읜 기호는 작은아버지와 작은엄마를 친부모처럼 따랐는데, 덜컥 기호를 두고 간다니…. 작은아버지와 작은엄마가 없는 집은 마치 빈집처럼 휑하기만 했다. 바닥 가장자리 천이 닳고 닳아서 헤져 작은 구멍이 난, 아주 오래된 낡은 배낭을 할아버지는 찾아냈다. 다 먹은 주스병에 물을 담아 배낭에 챙겨 넣고, 반찬 몇 가지며 밥도 챙겨 넣었다. 그리고 허벅지까지 오는 고무장화도 차곡차곡 접어서 배낭에 넣는다. “할아버지 어디 가요?” “그래 기호야, 할아버지 좀 늦게 올지도 모르니까 밥 알아서 챙겨 먹어라.” 헛간에 세워져 있던 삽자루를 자전거 뒤에 싣고 할아버지는 대문을 나선다. “할아버지, 윗마을 가요?” “그래.” 여름 내내 비 한 번 오지 않았던 날씨 탓에 논바닥은 마치 거북이 등짝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펌프로 물을 뽑아 올렸지만 그것도 한정이 있었다. 듬성듬성 누렇게 말라 다 타버린 나락줄기를 만지던 할아버지 얼굴은 일그러져, 우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지으며 한참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배낭을 벗고, 할아버지는 삽으로 논바닥을 뒤집기 시작했다. 뿌연 흙먼지가 삽을 따라서 하얗게 일어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할아버지 손등으로 올라온 굵은 핏줄 위로 땀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논바닥은 거의 다 뒤집혀져 있었다. 하루, 이틀, 사흘…, 몇 날이 지나고 몇 달이 흘렀다. 할아버지는 마치 곧장 일을 끝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바람 쌩쌩 부는 겨울이 되었는데도 하루도 쉬지 않고 논으로 갔다. 진눈깨비가 어지럽게 날리는 날이다. “할아버지 이제 그만 쉬었다가, 날씨 풀리는 봄에 해요.” 기호가 할아버지를 말렸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기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어김없이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언젠가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처럼 사람 손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할아버지를 따라 윗마을로 간 기호의 눈은 화등잔처럼 커졌다. 윗마을 논은 움푹 파인 분화구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어떠냐! 기호야.” 기호는 말문이 막혔다. 아침 햇살을 받고 선 할아버지의 얼굴이 그처럼 빛나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이제 저 곳에 연도 심고, 고기도 놓아 기르면서 우리 마을 농업용수로도 쓰고, 너희들이 장가를 가서 자식을 낳으면 수생생물들의 생태를 공부할 수도 있는 학습장이 되게도 할 테다.” “할아버지 정말 대단해요! 혼자서 이 넓은 땅을 팠단 말이에요!” 기호는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세우며 말했다. “다행히 저 산 가까운 아래쪽에서 물이 샘솟는구나.” 시간이 지나자, 둠벙엔 물이 차기 시작했다. 봄비도 알맞게 내려주었다. 할아버지는 틈만 나면 둠벙으로 가서 연도 심고, 수초도 곳곳에 심으셨다. 할아버지 말씀처럼 할아버지 바람처럼 둠벙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찰랑거리는 잔물결도 만들었고, 그 위로 잠자리도 날아다녔으며, 어느 날부터인가 오리 몇 마리가 날아들어 둠벙 이곳저곳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고 해를 거듭할수록 둠벙은 아름답게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얼굴은 점점 야위어 가고 몸도 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할아버지, 어디 편찮으신 것 아니에요. 병원에 가 봐요!” “아니다. 내 병은 내가 잘 안다.” 그러고 보니 작은아버지와 작은엄마가 집을 나간 지 여러 해가 지났다. 그동안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할아버지, 작은아빠 오시라고 할까요?” “끄응….” 작은아버지라는 말에 할아버지가 돌아누우시며 앓는 소리를 내신다. 할아버지가 밖으로 나가자 기호는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찾아 뒤적인다. “작은아빠, 저 기호예요. 지금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세요. 빨리 내려오셔야겠어요.” 일요일 아침이었다. 몇 날 동안 대문 앞을 기웃거리던 기호를 보자 할아버지가 한마디 하신다.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게서 며칠 동안 왜 그러누?” 그때였다. “기호야!” 작은아버지와 작은엄마다. 순간 할아버지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귀밑 볼이 불그레해졌다. “창이 왔구나! 어서 들어가자!” 할아버지는 작은아버지 손을 덥석 잡아 끈다. “아버지, 죄송해요.” 작은아버지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이제 작은아버지는 서울로 안 간단다.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둠벙을 가꾸겠단다. 아침부터 온종일 작은아버지는 둠벙으로 가서 일했다. 작은아버지 손길이 닿은 둠벙은 멋지고 아름다운 곳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연꽃도 더 많아졌고, 부들이며 수초들도 더 많이 자라기 시작했다. 게다가 둠벙 가운데를 가로질러 직접 만들어 놓은 나무로 만든 구름다리는 둠벙을 찾는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인기 최고였다. ‘작은 생태학습장 -둠벙 이야기-’ 작은아버지는 둠벙에 팻말을 세웠다. 둠벙 들머리 정자에 걸터앉아 작은아버지의 바쁜 손길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시는 할아버지의 눈은 어느 때보다도 평온하고 부드러웠다. “기호야, 저 둠벙은 네 것이기도 하다.” 기호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간 바람이 둠벙 가운데에 우뚝 선 부들을 살랑대며 춤추게 하고 있었다. *둠벙:둠벙은 물웅덩이의 방언으로서 우리 조상들이 가뭄에 대비해 농촌 곳곳에 만들어 놓은 작은 못으로, 한국형 습지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든 중심이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타인에 대한 배려엔 인색하기 그지없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기호의 할아버지는 자신이 아닌 타인에 대한 배려와 나눠주기, 그리고 가까이 있는 것에 대한 귀중함과 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있는 어른이다. 하지만 작은아버지는 그런 할아버지와는 반대로 요즘의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나눠주면서 얻게 되는 행복과 기쁨, 가까운 것에 대한 귀중함과 소중함들을 한번쯤은 되짚어보며 살아가자는 생각에서 기호의 할아버지를 통해 조금은 느리게 살면서 얻게 되는 삶의 기쁨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작가 약력 아동문학평론 ‘해님이 사는 마을’, 아동문예문학상 ‘지훈이와 할아버지’ 당선으로 등단. 제24회 새벗문학상 수상, 동화 ‘호수에 갇힌 달님’. 주요작품: 동화집 ‘내 이름은 아임쏘리’ 그림동화집 ‘도깨비 대장이 된 훈장님’ ‘동백꽃’ 외 다수. 현재 한라산학교 강사, 서귀포신문 동화연재 중, 제민일보 생활칼럼 집필진 활동 중
  • [주말 데이트] 기무사 옛터서 설치전 준비하는 현대미술 대표주자 최정화

    [주말 데이트] 기무사 옛터서 설치전 준비하는 현대미술 대표주자 최정화

    왁자지껄, 엉망진창, 아수라장, 싱싱생생, 팔팔활발 등등. 이런 말들은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최정화(48)의 작업들을 볼 때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다. 또한 이는 최 작가가 사랑하는 현재 동남아시아의 모습이자, 사라져 가고 있는 1960~70년대 한국의 모습이고, 그의 미술적 상상력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찬란한 촌스러움’에 세계가 환호 그도 그럴 것이 형광색 연두, 주황, 핑크색 소쿠리를 대규모로 쌓아올리는가 하면, 2008년엔 488대 트럭 분량(170만개)의 생수통·세제통 등 쓰레기 플라스틱을 줄줄이 꿰어 ‘쓰레기 플라스틱 주렴’을 만들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을 다 두르기도 한다. 한글로 씌어진 형형색색 불법 현수막으로 덴마크 코펜하겐 왕립미술관의 외벽을 싸버리고, 오방색 플라스틱 천으로 농악대가 몸 치장하듯 미국 LA 라크마 미술관을 장식했다. 이른바 ‘찬란한 촌스러움’이다. ‘그게 무슨 작품이야?’라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하지만 그는 이런 작업으로 2005년 제7회 일민예술상을 수상하고,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다. 일본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한국 작가로 드물게 이름 석자가 실렸고, 일본이나 유럽은 비엔날레나 개인전에 그를 초청하지 못해 안달이고, 그의 작업에 환호하고 열광한다. 그림 솜씨도 나쁘지도 않다. 그는 홍익대 미대 회화과 3학년이던 1986년 중앙일보가 주최한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없는 장려상을 받았고, 4학년이던 1987년 같은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오는 10월21일 서울 소격동 기무사 옛터(국립현대미술관 분소)에서의 전시를 위해 기무사 옛건물 옥상에서 형광색 소쿠리로 설치작업을 하고 있는 최 작가를 만났다. 머리를 박박 밀어 버리고, 굵은 뿔테 안경, 볕에 두 뺨이 검붉게 그을린 그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11월4일까지) 개막에 맞춰 ‘살림’ 설치작업을 마치고 서울로 막 돌아온 터였다. ‘살림’이라는 작업도 파리채, 부서지거나 현란한 색깔의 플라스틱 의자 등의 컬렉션, 제사용 ‘짝퉁’ 과자 쌓음, 낙엽갈퀴와 빗자루 등 1970~80년대 한국 가정 등에서 흔히 사용했던 물건들을 전시했다. 미술관과 박물관에 놓여 있는 이른바 ‘작품’에 길들여진 눈으로는 이런 전시를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난감하고 곤혹스럽지만, 작가는 “내키는 대로, 마음대로”라고 말한다. ●“현대를 살지 않고 현대미술 한다는 건 어불성설” 최 작가는 “미술 전문가나 평론가들의 소리에 관심이 없다. 일반 사람들이 감동해 주길 바라고, 좋든 싫든 느끼는 대로가 나의 작품이다. 설명이 필요없다. 그래서 나는 ‘My art, Your Heart(내 예술은 너의 느낌)’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일반적인 기준으로 아름답지 않은 소재(망가진 의자나 버려진 문짝, 잡초)나 색깔, 싸구려 소재인 비닐이나 플라스틱 등에 집착하는가. 그는 “현대를 살지 않으면서 현대 미술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즉 아시아(한국)에 살면서 아시아(한국)적인 요소에 주목하지 않고 아시아(한국) 현대미술을 한다고 주장하지 말라는 의미다. ‘현재,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면서 어떻게 예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더 나아가면 백자와 청자, 수묵화만 예술이고, 양은 냄비나 길거리 낙서는 예술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그는 “박물관에 보존돼 있는 것, 이미 대가 끊어진 것 등은 박제된 예술일 뿐 더이상 한국적인 것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내가 한 모든 작품·건축·인테리어는 뻥” 그는 현장성, 생명력, 에너지가 느껴지는 한국적인 요소와 더 나아가 동아시아적 요소로 그의 작품을 채우고자 한다. “나의 작업은 ‘현대판 민화’”라고도 주장한다. 조선시대 선비의 그림에 비해 천대받은 백성의 그림 민화를 21세기 한국에서 계승발전시킨 설치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못난 예술, 못난 역사도 껴안고 가자.”는 그는 ‘설치’는 예술이다라고 했는데, 아마도 ‘설치는 예술’이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먹고살기 위해 1989년 시작한 인테리어 회사 ‘가슴시각개발연구소’는 요즘엔 잘 나가는 인테리어 회사이자 건축회사로 바뀌고 있다. 그것은 최 작가가 미술가의 지위에서,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영역까지 뛰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현재의 미술이나 디자인, 인테리어, 건축이 모두 현대예술이라는 그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다 이야기해 놓고도 그는 “내가 한 모든 작품과 건축, 인테리어는 ‘뻥’이다.”라고 스스로 말할 것이다. 열반에 들기 직전 부처님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듯.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김정민 “父 폭력 피해 중1때 가출” 눈물

    김정민 “父 폭력 피해 중1때 가출” 눈물

    댄스곡 ‘넌 아냐’로 가수 데뷔한 탤런트 김정민이 슬픈 가족사를 털어놨다. 24일 오후 9시에 방송된 ‘tvN ENEWS’에서 김정민은 “아빠는 정상적인 가장이 아니었다. 엄마가 아빠의 난폭함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고 가슴 아픈 사연을 공개했다. 이어 “엄마가 집을 나간 후 학업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중학교 1학년 사촌언니가 일하는 미용실에서 일을 시작했고 우연히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연예계에 입문하게 됐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또 “처음에는 나를 버리고 떠난 엄마가 너무 미웠다. 하지만 지금 엄마를 정말 많이 사랑하고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7년 만에 엄마와 함께 살게 된 감사함을 전했다. 13세에 가출, 길거리에서 극적 캐스팅, 7년 만에 엄마와 함께 살게 된 사연을 털어놓으며 눈물 흘린 김정민의 모습은 보는 사람을 짠하게 만들었다. 사진 = tvN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명배우 명무대] 강부자

    [명배우 명무대] 강부자

    2009년 설날 즈음에 있었던 초연 당시 폐막 3주 전에 이미 전석이 매진되어 일주일 간 공연기간을 연장했던 〈친정엄마와 2박 3일>(고혜정 원작/각색, 구태환 연출)이 3개월 간의 지방 순회공연 이후 다시금 같은 극장(동국대 이해랑극장)에서 재공연에 들어갔다. 이 역시 7월 4일부터 8월 30일까지의 대장정이다. 이와 같은 흥행 성적은 단연 강부자라는 배우에 힘입은 바 크다. 1962년 KBS 탤런트 제2기로 연기 인생을 시작한 강 배우는 데뷔 첫 작품부터 21세의 나이에 중년의 ‘중매쟁이’역을 맡았고, 명동국립극장 무대에서도 역시 그 비슷한 역이었다. 심지어 TBC 개국 드라마 <로맨스 가족>에서는 작고한 김동원 선생이 아들, 도금봉 선생이 손녀딸이었을 정도이다. 요즈음 특히 TV드라마를 이야기하는 중에 ‘전문배우’라는 이상스러운 호칭이 유행어처럼 떠도는 모양인데, 그런 의미에서라면 강 배우는 단연 아줌마를 비롯해 온갖 나이 든 여성 역할 전문배우인 셈이다. 나는 이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칫 연기자들의 개성을 짐짓 무시하게 만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와 같은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더러 천편일률적인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불륜전문배우도 있다던가? 그러나 적어도 무대 위에서 본 강 배우의 경우를 그렇게 도매금으로 넘긴다면, 실로 크나큰 결례가 아닐 수 없다. <친정엄마와 2박 3일>에서 친정엄마는 자녀들을 모두 서울로 떠나보내고 남편도 없는 시골집을 혼자 지켜낸다. 후에 외동딸이 하소연하고 싶을 때 찾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그 사연이 밝혀진다. 그러던 어느 날 외동딸이 불현듯 찾아온다. 유난히 똑똑해서 모진 살림 형편에도 명문대학까지 공부시킨 보람이 있어 유명회사에 취직했고, 잘나가는 남편도 얻었으나, 무지렁이 출신이라고 유난히 유세가 심한 시어머니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한 딸이 불쑥 나타나니 엄마는 반가우면서도 겁부터 난다. 2박 3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드디어 그 딸이 간암 말기로 회복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친정엄마는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진다. 딸과 함께 찍은 둘만의 사진이 그야말로 영정사진이 될 줄이야. <심판> <고곤의 선물> 등으로 꾸준하게 짜임새 있는 연출 솜씨를 보이고 있는 구태환의 연출은 이 평범한 이야기에서 감동과 재미를 뽑아내기 위해 기본적으로 사실주의적인 연출 기법에 다소간 이질적인 요소들의 삽입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대의 경우, 특히 집 주변 나무들처럼 생략적인 것이라든지, 주 출입구가 사립문인 것에 비해 소슬대문 형의 대문은 그냥 모양으로 남아 있는 것이라든지, 주 무대인 방과 부엌을 분리시켜 배치한 것 등은 사실주의적 기조에서 벗어났을 뿐더러 별로 기능적이지도 못해 보였다. 그러나 자칫 침울해지기 쉬운 분위기를 바꿔놓기 위해 삽입된 각설이 장면 등은 다분히 이윤택적인 발상 같아 보이지만, 기능적이었다. 연출의 노력으로 많이 가려지긴 했지만, 자칫 뻔한 이야기로 지루해질 약점을 지닌 원작과 각색은,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강부자의 연기력으로 상당 부분 가려졌다. 물론 이에는 딸 역의 전미선과 아버지 역의 정상철 등의 호연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부자가 없는 이 연극은 상상하기 힘들다. 배운 것 없기에 자식들에 대한 사랑은 더욱 절실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의 기꺼움이나 받아들여졌을 때의 기꺼움이 배가되는 그 감정 기복을 그처럼 절묘하게 표현해 낼 배우를 떠올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각설이와 어울려 슬쩍 곁들이는 곰배탈이 연기에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지러진다. 그러나 이 연극은 마지막 대사가 보여주듯 비극적이다. “내 새끼, 보고 싶은 내 새끼. 너한테는 참말 미안허지만 나는 니가 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 니가 허락만 헌다믄 나는 계속 계속 너를 내 딸로 낳고 싶다.” 이 마지막 장면이 마치 눈물을 강요하듯이 다소간 길어진 것은 그의 연기력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겠지만, 절제가 아쉽게 느껴진다. 그 점에서 나로서는 강부자의 모노드라마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공연은 1994년에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박완서의 동명소설을 그대로 무대화한 것이다. 7년 전에 목숨을 잃은 아들로 인한 통한의 심정을 어머니가 동서에게 전화로 호소하는 형식은 모노드라마로 전환되기에 알맞다. 시위 도중 쇠파이프로 맞아 죽은 아들의 어머니가 민가협의 일원이 되어 의식화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1980년대의 사태를 무리 없이 반영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를 받았거니와, 백치 아들을 간병하면서 ‘웬수’를 되뇌이는 한 어머니를 보면서 비록 식물인간일 망정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실체가 부러워 통곡하는 마지막 대목은 이길 수 없는 슬픔을 이기기 위해 기를 쓰고 스스로 민주투사가 된 장한 어머니의 모습조차 거짓임을 드러냄으로써 뜨거운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 모든 것을 생생하게 살려낸 강부자의 연기는 오래오래 기억될 만하다. 강부자는 1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 연기상(1977), KBS 연기대상 대상(1966), KBS 연기대상 공로상(1999) 수상이 말해주듯이 주로 TV 드라마를 통해 잘 알려진 연기자이지만, 그가 쌓은 내공의 실상은 무대에서 더욱 빛난다. 그것은 특히 이윤택이 쓰고 연출한 <오구>에서 넉넉히 입증되었다. 이 작품은 1989년 서울연극제에서 <잘 가세요>(이윤택 작, 채윤일 연출)라는 제목으로 첫선을 보였지만, 그 이듬해부터 이윤택이 직접 연출을 맡아 무대에 올려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왔다. 원래 남미정이 맡았던 노모 역을 1997년부터 강부자가 맡으면서 더욱 빛을 발하였다. 무대는 한적한 시골 마을의 한가로운 오후, 어느 날 꿈속에서 염라대왕과 남편을 만나면서 죽음을 예감한 떡장수 노모가 저승 갈 준비를 해야겠다면서 자식들에게 산 오구굿을 해달라고 조른다. 오구굿이란 죽은 사람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소원이나 원한을 풀어주고 극락왕생을 바라는 무속의식이다. 소원대로 오구굿이 신명나게 펼쳐지는 중에 같이 흥을 내던 노모가 갑자기 세상을 떠 굿판은 초상집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초상집은 또 하나의 굿판이다. 떠들썩하게 초상이 치러지는 중에 저승사자들이 내려와 산 자와 인사하고 촌지를 받는가 하면, 자식들 간에 유산상속 싸움이 벌어지는 중에 노모가 되살아나 자식들을 꾸짖어 이승의 문제를 해결하고 난 후 남편의 손을 잡고 저승사자들과 함께 먼 길을 떠난다. 이처럼 떠들썩한 굿판에서 이윤택과 오랫동안 함께 해온 배우들, 더군다나 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의 예능보유자인 하용부(박수무당 석출 역)의 익숙한 춤사위와 노랫가락에 못지않게 강부자의 익숙한 연기가 흥을 돋운다. 논산 출신으로 강경여고 시절에 이미 노래와 연극에 끼를 보이면서 한때 가수를 지망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1998년 국인당의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을 이수하기도 했지만, 배우가 천직임을 깨닫는 소득 이외에는 여기에서 얻은 바는 별로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적 관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웰컴 투 코리아 시민협의회 공연단’ 단장을 비롯한 봉사활동은 한국 해비타트의 사랑의 집짓기 건축기금 마련을 위한 모금 패션쇼로까지 이어진다. 그 패션쇼에는 KBS동기생인 남편(이묵원)이 함께 출연해서 화제였다. 그와 함께한 드라마에서 모자로 출연하기도 한 에피소드도 있는데, 그 때문인지 연상의 남편을 서슴치 않고 ‘연하’라고 부르기도 한다. <친정엄마와 2박 3일>에서 딸이 엄마에게 해주고 싶은 일들을 나열하는 중에 ‘성경 읽어주기’라는 대목이 있지만, 강부자는 소문난 불자이다. 법정 스님을 회주로 모신 길상사가 개최한 석가탄신 기념 산사음악회에서 열창을 아끼지 않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글_ 김문환 서울대교수, 연극평론가
  • ‘하이킥’ 新 감상포인트, 신애-지희 대결구도

    ‘하이킥’ 新 감상포인트, 신애-지희 대결구도

    명품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 속 서신애와 진지희를 주목하라. 방송시작 2주차를 맞은 MBC 일일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연출 김병욱 김영기 조찬주‧극본 이영철 이소정 조성희)은 배꼽 잡는 웃음과 동시에 코끝 찡한 감동을 선사하며 호평을 얻고 있다. 또 개성강한 캐릭터들이 환상적인 조화를 자랑하며 매회 다양한 에피소드를 쏟아내고 있는 것도 인기의 비결. 팬들은 ‘멜로순재’, ‘변태교감’, ‘버럭준혁’, ‘식모천명’, ‘주정정음’ 등 애칭을 지어주며 배우들을 응원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두 아역 신애(서신애 분)와 해리(진지희 분)의 불꽃 튀는 대결이 큰 웃음을 예고하며 새로운 감상포인트로 떠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로 올라온 세경(신세경 분)과 신애 자매는 순재네 식모로 들어가게 되고 산골에서 칡 캐먹던 소녀 신애와 고기를 좋아해 만성변비에 시달리는 해리는 사사건건 부딪치게 된다. 주인집 손녀 해리는 걸핏하면 빽빽 소리를 지르며 신애를 때리고 순진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신애는 혼자 화를 삭이기 바쁘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제작진은 “아역배우들이 제일 잘한다. 두 배우의 연기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밝힌 바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두 명의 아역배우가 펼치는 선악대결은 ‘지붕뚫고 하이킥’을 보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사진 = MBC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프랑스인이 본 한국 역사와 문화

    프랑스 문헌학자 모리스 쿠랑(1865~1935년)은 한국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서양인으로 통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 ‘직지’를 유럽에 처음으로 알렸고, 리옹대학에 유럽 최초로 한국사 강의를 개설했으며, 서양 최초의 한국 관광 전문 안내서를 쓰기도 했다. 그는 스물 한 편의 한국 관련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3812종에 달하는 한국의 자료들을 집대성한 ‘한국서지’(전 4권)는 최대의 업적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책만 국내에 번역돼 주목받았을 뿐 다른 저술들은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그가 남긴 한국 관련 논문 일부가 번역출간돼 주목을 끈다. ‘프랑스 문헌학자 모리스 쿠랑이 본 한국의 역사와 문화’(파스칼 그러트·조은미 옮김, 살림 펴냄)는 한반도에서 사용된 화폐제도와 문자체계, 종교의식, 한·일관계 등 다양한 분야를 주제로 한 논문 11편을 번역해 묶었다. 중국어를 전공한 모리스 쿠랑은 베이징 프랑스 공사관을 거쳐 1890년 5월 통역서기관으로 서울로 전속된 뒤 한국 유물과 문헌 수집에 관심이 많았던 주한 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의 영향으로 한국 연구를 시작했다. 구한말 한반도를 연구한 서양 학자들이 중국과 일본의 자료에 대부분 의존했던 데 비해 모리스 쿠랑은 한국의 문헌을 참조하고, 전국 각지를 직접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함으로써 한국학에 관한 당대 최고 권위자의 명성을 얻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길섶에서] 만국기/김성호 논설위원

    어린 시절 가을운동회 때면 학교운동장을 장식하던 만국기. 동네잔치로 열리는 운동회에 만국기는 잔치의 상징이었다. 운동회 날 아침이면 들떠서 만국기 밑을 뛰어다니며 마냥 즐거워했는데. 만국기 추억은 50줄에 든 지금도 여전히 설렘의 대상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시골서 서울로 전학왔을 때의 그 섭섭함. 가을 운동회를 애타게 기다렸건만 열리질 않고. 왜 운동회를 안 하느냐고 이리저리 물었지만 묵묵부답. 1960년대 후반 서울로 서울로 몰려드는 전학생들로 교실이 북새통인 경황에 어디 운동회 열 만한 여건이 됐을까. 실망이 꽤나 컸었다. 언제부턴가 이맘때 연례행사로 열리는 사무실 인근 서울 무교동 음식거리 축제. 음식점 이름들을 새긴 청사초롱이며 만국기들이 어린 시절 추억을 새록새록 살려준다. 운동회 시즌과 겹쳐서인지 푸근해지는 마음. 그런데 올해 분위기는 썰렁하다. 신종플루 탓에 인총이 모이는 행사는 모두 금지됐단다. 거리는 한산하고. 그러면 어떤가, 만국기에 실어 어린 시절로 떠나는 시간여행만으로도 족한 것을….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16일 TV 하이라이트]

    ●산너머 남촌에는(KBS1 오후 7시30분) 자식들을 서울로 보내고 외롭게 노년을 보내던 충주댁이 세상을 떠난다. 양산댁은 충격과 슬픔에 휩싸이지만 은자와 길수는 양산댁의 생일을 잊어버리는 등 무심하기만 하다. 자식들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양산댁은 그날 밤 집에 들어오지 않고, 다음날 낯선 노인과 함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30분 다큐(KBS2 오후 8시30분) 1933년 한국에 파마가 들어 온 이래 70여년간 수많은 머리 스타일이 명멸했지만, 오랜 세월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초절정의 히트상품’이 하나 있다. 뽀글뽀글 강한 웨이브가 특징인 일명 ‘아줌마 파마’가 바로 그것이다. 70여 년 파마 변천사와 함께 어머니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본다. ●맨땅에 헤딩(MBC 오후 9시55분) 이감독에게 여러가지 테스트를 받는 봉군. 만족할 만한 실력이 나오지 않자 지켜보던 모든 사람의 표정은 굳어 간다. 테스트가 종료되려하자 홍대표는 봉군에게 공을 힘껏 차주고 봉군은 멋진 발리슛을 성공시킨다. 해빈은 아무 때나 발리슛을 성공시키는 게 봉군의 특기라고 말한다. ●뉴스추적(SBS 오후 11시15분) 신종플루로 인한 혼선을 막기 위해 정부가 지정한 전국 455개의 거점 병원. 그렇다면 거점 병원에 가면 정확하고, 안전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신종플루’ 공포에 휩싸인 우리의 실태를 밀착취재하고, 정부 대응의 문제점에 대해 집중 취재해 올바른 신종플루 대응법이 무엇인지 점검해 본다. ●극한직업(EBS 오후 10시40분) 도로 건물 교량 등 건물을 신축하고 보수하는 현장에서 빠져서 안 되는 것이 바로 안전가설물이다. 비계라고 불리는 안전가설물은 건설 현장에서 재료 운반이나 작업원의 통로 및 작업을 위해 설치하는 가설물을 말한다. 극한의 위험도 감수하는 고공 위 비계공들의 아찔한 작업현장을 찾아가 본다. ●스페셜(YTN 오전 10시25분) 우리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고,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수요관리, 즉 절약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절약은 이제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시민들에게 요구되는 필수 덕목이 돼버린 것이다. 지구 온난화를 막고,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는 중요한 전략이기도 하다.
  • ‘교통사고’ 황보 “‘일밤’ 촬영후 정밀검사 받을 것”

    ‘교통사고’ 황보 “‘일밤’ 촬영후 정밀검사 받을 것”

    가수 황보가 오늘(15일) 새벽 차량이 반파되는 사고를 당해 정밀검사를 받을 예정이다. 황보의 소속사 심티 엔터테인먼트는 15일 오후 전화 통화에서 “황보가 15일 새벽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노다지’ 촬영차 서울에서 전북 부안으로 이동하던 중 탑승하고 있던 차량이 미끄러져 가드레일에 들이 받는 사고를 당했다.”고 밝혔다. 이어 “차량은 반파돼 공장으로 견인됐으며 황보는 큰 외상이 없어 촬영에 투입됐다.”며 “오후 6시 께 촬영이 끝나는 대로 서울로 이동해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새벽 안개로 젖어있는 도로 위를 달리던 차량이 급커브길에서 미끄러지며 발생했다. 관계자는 “차량과의 추돌 사고가 아닌 가드레일에 들이 박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며 “차량이 반파 됐음에도 불구, 함께 탑승하고 있던 스텝진도 모두 큰 외상은 없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황보는 테크노풍 새 타이틀곡 ‘아리송’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전셋값 고공행진 지속… 남양주·하남 수요 급증

    전셋값 고공행진 지속… 남양주·하남 수요 급증

    DTI(총부채상환비율) 대출규제가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전세가 상승으로 집을 사려던 세입자들이 매입에 나서지 못하고 다시 전세로 돌아서고 있다. 이 때문에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된 전세가 강세는 계속되고 있다. DTI로 매수문의는 뚝 떨어져 거래시장은 한산해졌지만, 집주인들이 호가를 낮추지 않은데다 매물도 많지 않아 매매가의 상승세도 계속되고 있다. 매매시장은 대부분 보합세를 나타낸 가운데 수도권 남부지역 중 용인, 광주, 동탄은 광역교통망 수혜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광역급행철도, 제2경부고속도로, 제2외곽순환도로 등으로 서울로의 진입이 한결 용이해져 오름세를 타고 있다. 또한 수도권 지역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곳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남양주의 경우 전세가 상승으로 집을 구입하려는 문의가 부쩍 늘었다. 8월 말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는 전세시장은 경기남부권의 강세가 계속되고 있다. 신도시는 소형전세수요와 서울에서 유입되는 수요가 꾸준한 편이다. 보금자리주택 분양을 앞두고 있는 남양주, 하남 등도 전세수요가 부쩍 증가했다. 보금자리주택청약을 위해 주택 매입보다는 전세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25년 쌓아온 대중성·작품성 모두 인정받은 셈”

    “25년 쌓아온 대중성·작품성 모두 인정받은 셈”

    “들소리가 생긴 지 25년이 됐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느낌입니다.” 국내 월드뮤직 그룹 들소리가 다음달 30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워멕스(WOMEX·The World Music Expo)의 공식 쇼케이스 무대에 초청됐다. 국내에서는 처음이고 아시아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역대 최다인 760개팀이 응모했다. ‘7인의 사무라이’라고 이름 지어진 심사위원단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2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들소리를 비롯한 37개팀이 선정됐다. 워멕스는 워매드(WOMAD·World of Music, Arts and Dance)와 함께 월드뮤직과 관련한 세계 최대 행사로 꿈의 무대다. 워멕스가 음악전문가 4000여명이 모이는 아트마켓 성격이 짙다면, 워매드는 최고 실력의 뮤지션이 함께 하는 자리라 연주자들에게는 영광스러운 무대. 이미 대륙 별로 치러지는 워매드 시리즈에 2005년부터 7회 연속 초청되며 기록을 세운 들소리이지만, 워멕스 초청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해외 40~50회… 年 300회이상 공연 최근 서울 성산동 사무실에서 만난 문갑현 들소리 대표는 “그동안 쌓아온 실력이 검증된 것 같아요. 세계 최고 월드뮤직 전문가들에게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 인정받은 셈이죠.”라면서 “월드뮤직 시장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전기를 맞았다는 생각입니다.”고 설명했다. 워멕스에 공식 초청되면 음반에 워멕스 인증 마크를 달 수 있는데 이는 세계 곳곳의 월드뮤직 팬들에게 음악의 퀄리티를 보장하는 보증수표와 같다고 한다. 기획자 10명을 포함해 25명, 3개팀으로 구성된 들소리는 우리 소리와 멀어진 국내 대중에게는 낯선 이름일 수 있다. 하지만 해외 40~50회를 포함해 국내외에 걸쳐 연간 300회 이상 공연을 펼치고 있다. 2003년 일본을 시작으로 42개국을 다니며 해외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올려 세계 음악 축제에서 떠오르는 스타가 됐다. 문 대표를 만난 날도 한 팀은 코펜하겐 무대를 위한 연습이 한창이었지만 또 다른 팀은 벨기에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한때 마당극이 중심이있던 들소리는 전통축제를 옮긴 타악 중심의 ‘타오놀이’와 전통축원 의식인 비나리를 바탕으로 기악과 멜로디, 보컬을 입힌 ‘월드비트 비나리’ 등의 창작 레퍼토리를 연주한다. 문 대표는 처음부터 전통음악에 심취했던 것은 아니었다. 경남 진주에서 대학을 다니며 문화운동에 관심을 뒀다. 문화에 기대 사회운동을 하려고 했던 것. 하지만 어느새 우리 소리에 빠져들었고, 1984년 ‘물놀이’(현 들소리)를 만들었다. 탈춤과 풍물에 미쳤던 문 대표는 1990년대 초반 연주자보다는 기획자로 나서게 됐다. 1993년 전국국악대제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으나 지방에서 문예활동을 한다는 게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1999년 서울로 무대를 옮겼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국악 전공도 아니었고, 들소리는 변변한 이름값도 없었다. 문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촌놈’ 취급을 받았던 시절이다. ‘마이너중의 마이너’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끝에 살아남기 위해 생각해낸 돌파구가 해외시장을 개척해보자는 것. “처음에 우리 전통놀이를 세계에 상품으로 꺼내놓겠다고 하자 ‘미친 놈’ 소리를 듣기도 했죠.” 들소리는 친구 따라 강남가고 이웃 따라 장에 가는 게 아니라 자비를 들여 발로 뛰며 세계 아트마켓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고 소가 뒷걸음질하다가 쥐를 잡듯 그 효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이제는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에 지부를 내고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는 등 세계 무대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 대표는 “우리는 국내에서 아직도 비주류지요. 제대로 된 해외 시장을 좀 더 빠르게 쫓아다니다 보니 조금씩 알려지고 이제야 주변에서 서서히 인정해 주는 정도”라고 웃음을 지었다. 해외를 다니다보면 항상 주목을 받는다고 했다. 악기가 많고, 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격의 사람들이 무대에 오르다보니 외국 관객들이 일단 신기하게 받아들인다는 설명. 하지만 강한 에너지가 폭발하는 연주를 들려주면 신기한 시선은 곧 감탄으로 바뀐다고 했다. “올해초 독일 투어 때는 역동적인 사운드로 진행되다가 가야금 솔로가 도라지를 연주했는데 객석에서 ‘우와’하는 감탄이 나왔죠. 관객들을 감동시키는 소리가 나올 때, 관객들이 우리 소리에 빨려 들어갈 때 눈물이 찔끔찔끔 나곤 하죠.” ●“전통음악학교 만드는 게 꿈… 이제 시작” “포르투갈의 전통음악 파두를 노래하는 마리자처럼 우리도 월드뮤직계 슈퍼스타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 문 대표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선 뉴욕 근처 자연속에 부지를 구해 우리 소리를 곁들이며 한국식 대동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캠프를 만들고 싶어한다. 물론 국내에서도 전용극장을 마련하는 게 꿈이다.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연주하는 기계가 아니라 우리의 신명과 집단에너지를 담아내는 그릇을 양성하는 전통음악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문 대표의 말에 실감이 간다. 다양한 전통음악들이 모이는 월드뮤직 시장에 나가보면 각 나라 전통음악들은 자국에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우리만 툇방으로 밀려난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전형적인 틀에 갇혀 시대와 호흡하지 못해 자생력이 약해진 결과다. “우리 소리가 해외 시장에서 우뚝 서면 국내 시장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음악을 월드뮤직 시장에 진입시켜 세계인과 공유해 가치를 인정받고, 그 가치가 다시 이 땅에 들어오게 하는 것. 이게 이 시대에 맞는 문화운동인 것 같아요.”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권영일 작가 제공
  • 학교 세운 왕년의 거지왕초

    학교 세운 왕년의 거지왕초

    12명의 뜻 맞는 동지 되어 부랑아 구제는 필생사업 두개의 빈주먹과 강철 같은 의지만으로 황무지에 3개의 학교를 세우고『남아 있는 생명이 다 할 때까지 부랑아 구제와 교육사업에 이바지하겠다』는 왕년의 거지왕초 홍만준(洪萬峻)교장(46)의 험난했던 반평생-. 평양(平壤)에서 태어난 홍씨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 중학교를 그곳에서 마쳤다. 어릴 때부터 거지를 돕는 일이 가장 기뻤으며 스스로 거지들과 어울려 놀기를 즐겼다고 한다. 8·15해방 후 단신 서울로 월남한 홍씨는 서울근교 지금의 쌍문동에 정착, 채소밭 가꾸는 농사일을 시작했다. 6·25동란이 일어나기까지 3년 동안 착실하게 일하며 절약한 결과 쌍문동과 우이동 일대에 적지 않은 농토를 마련할 수 있었다. 홍씨가 지금의 경민(慶旼)학교를 설립할 수 있었던 재정적 밑받침이 바로 이때 마련한 농토들이었던 것이다. 전란을 겪는 동안 잠시 군에 복무했던 홍씨는 54년부터 뜻을 같이하는 12명의 동지를 만나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었던 전국 부랑아(거지)일소운동에 발 벗고 나섰다. 현직 목사, 교사, 군인들이었던 이들 12명은 홍교장을 중심으로 우선 서울 시내의 거지들을 모아서 선도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성북구 쌍문동 509에 거지들이 잠자고 먹고 배울 수 있는 숙소겸 학교를 세운 이들 12명은 각기 흩어져서 거지들을 모으러 나섰다. 돕다 진짜 알거지 되기도 도둑질 해 올 땐 어이없고 그러나 거지는 거지대로의 고집과 버릇이 있는 법. 아무리 권유하고 설득해도 거지들은 이들의 손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이들 12명은 스스로 진짜 거지가 돼서 거지와 함께 생활하며 거지 한 사람 한 사람을 설득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때 홍씨가 맡은 지역이 청계천과 동대문일대. 어렸을 때 평양거리를 헤매는 거지들과 함께 놀아본 경험이 있는 홍씨로서는 어렵지 않게 거지들의 조직을 뚫고 그들의 생활 깊숙이 파고들 수가 있었다. 거지들과 함께 잠자고 거지들과 함께 구걸하고 그러면서 점차 자기를 믿고 따르도록 여러 가지로 신경을 쓰며 행동했다. 잠자리는 으레 제일 나쁜 자리를 골라서 차지했으며 식사도 다른 거지가 잘 안 먹는 ,맛없는 것만 골라서 먹었다. 구걸에 나설 때도 앞장섰고 다른 거지패들과 싸움이 났을 때도 혼자 도맡아 서너 명을 때려눕히곤 했다. 이렇게 하기를 40여일, 드디어 홍교장은 동대문일대 거지패의 왕초가 됐으며 그 밑에는 50여명의 부하거지가 따르게 됐다. 기회를 보고 있던 왕초 홍교장은 어느 날『좀더 살기 좋고 활동하기 편한 곳으로 옮기자』고 거지들을 설득한 뒤 쌍문동에 마련해 놓은 수용소로 이들을 모두 이끌고갔다. 다른 지역에서 거지들과 함께 생활하던 12명의 동지들도 각기 몇 명 또는 몇 십 명씩 거지들을 데리고 수용소로 돌아 왔다. 모여든 거지가 모두 1백50명. 12명의 동지는 한결같이 자기의 재산과 노력을 모두 쏟아가며 이들 1백50명의 거지 선도를 위한 교육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를 만 1년6개월, 12명의 동지는 더 이상 털어 놓을 돈도, 쌀도 의복도 없는 진짜 알거지가 돼버리고 말았다. 거지를 돕는다고 시작한 거지놀이가 그대로 현실이 되고만 것이다. 사정이 너무도 딱하게 돼 버리자 보고만 있던 거지들이『자, 이번에는 우리가 당신들을 도울 테니 기운을 잃지 마시오』하고 팔을 걷어붙이며 나섰다. 우르르 수용소문을 나선 거지들은 그날 저녁 쌀·고기·채소 등 푸짐한 음식물과 돈 15만원을 들고 들어왔다. 이밖에도 훔쳐온 물건이 많았다. 전국에서 모아 학생으로 10년 내 종합교육센터를 홍씨를 비롯한 12명의 동지는 기쁘기보다 가슴이 아프도록 슬펐다.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1년 6개월 동안 가르쳐 놓은 거지들이 다시 옛날의 거지로 되돌아가 버린 그 모습이 너무도 슬펐던 것이다. 『자 이걸 먹고 기운을 차려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거 교육인지 뭔지 집어치우고 우리와 함께 그전처럼 구걸이나 해서 먹고 삽시다』 원점으로 돌아가고만 허무와 비애를 억제하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을 때 어디서 듣고 왔는지 황애덕(黃愛德)여사(농촌사업가며 3·1운동 당시의 여성지도자)가 이들을 찾아왔다. 현재 미국에서 변호사겸 정치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재미교포「알프레도·송」이라는 저명인사와 유대관계를 갖고 있는 황여사의 도움으로 다시 생기를 찾은 홍씨 등은 수용소를 증축하고「한미종합고등기술학교(韓美綜合高等技術學校)」라는 새 간판을 달았다. 그 뒤 다시 6년6개월. 1백50명의 거지들은 한명씩 탈바꿈하고 새 사람이 되어 새 사회를 찾아 나섰다. 김(金)모군은 서울대학교를 거쳐 미국에 유학 가서 현재 박사학위「코스」를 밟고 있으며 최(崔)모군은 신학대학교를 나와 현재 목사로 활약 중이고, 또 어떤 거지는 경기도 K군에 있는 모중고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인사를 길러낸 홍교장은 끝까지 홍교장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옛거지들(지금은 모두 교직자)과 함께 쌍문동의 농토를 모두 팔고 의정부(議政府)로 옮겼다. 의정부 시내 가능(佳陵)동 일대에 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67년 11월, 10개의 교실을 가진 초라한 학교가 해마다 넓어지고 다듬어져 지금은 3천명의 학생을 거느리는 당당한 경민(慶旼)학교로 발전한 것은 홍교장의 피나는 결정인 것이다. 『앞으로 10년 안에 사범대학과 기술전문학교를 포함한 종합교육「센터」를 이 땅에 설립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전국의 불우한 거지들을 모두 학생으로 수용할 계획입니다』 굵은 눈썹에 다부진 체구를 가진 홍교장은 자신 있게 말한다. <재(宰)> [선데이서울 72년 11월 12일호 제5권 46호 통권 제 214호]
  • [발언대] 불꺼진 평양의 현주소/림일 탈북작가

    [발언대] 불꺼진 평양의 현주소/림일 탈북작가

    며칠 전 사무실에서 원고작업 중 지인으로부터 포토메일을 받았다. 친척 방문차 2개월 전 평양을 다녀온 재미교포로 내 책의 독자이기도 하다. 첫 번째 사진은 양각도국제호텔에서 찍은 평양 야경으로, 김책공대 신관건물의 전등이 너무 어두워 불이 켜진 건지, 꺼진 건지 모를 정도였다. 두 번째는 김일성 주석의 기일(7월8일)을 맞아 만수대 언덕에 있는 세계 최대 흉상인 그의 동상 앞에서 묵념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인데 어두운 밤인데도 주변은 대낮처럼 환하다. 별로 놀라지 않았다. 내가 평양에 있을 때인 1996년에도 예사로운 모습이었다. 배움의 꿈을 가진 미래주역들인 대학생들의 교실에 전기가 안 들어오고 고인이 된 지도자의 흉상 같은, 김일성·김정일 관련 특수시설물들에는 환한 조명이 비춰지는 평양의 실정을 개탄하며 서울로 온 나다. 그러나 마지막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양 중심지에 있는 냉면전문점인 옥류관 근처의 창전네거리 주변을 찍었는데 아파트 건물의 외장제가 모두 벗겨진 데다 아스팔트가 깨져 있는 모습들이었다. 내가 평양에 있을 때인 12년 전만 해도 변두리에서나 볼 수 있던 광경이었는데 지금은 시내중심까지 어려운 생활이 퍼져들었다는 증거다. 평양! 내가 그곳에서 배웠던 표현은 이러하다. “공화국의 수도 평양은 사회주의 혁명의 심장부이며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공원속의 도시이고 세계에 으뜸가는 국제도시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가 웃다가 꾸러미 터질 소리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주민강연’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말은 뒤집을 수 있으나 현실은 감출 수 없다. 외장제가 벗겨진 평양의 아파트와 깨져버린 아스팔트를 보면 궁핍한 인민들의 모습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앞으로 10년 후면 평양의 창광거리(당 고위간부들이 사는 곳) 아파트 유리창도 비닐이나 헝겊으로 가려지지 않을까 싶다. 한사코 개혁·개방을 거부하는 사회주의경제를 고집하는 이상 말이다. 림일 탈북작가
  • 2013년 시티넷 총회 서울 유치

    유엔(UN)의 도시간 국제기구인 시티넷의 차기 총회가 2013년 서울에서 열린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9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시티넷 제6차 총회에 참석, 2013년 시티넷 총회를 서울로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고 서울시가 밝혔다.오 시장은 이날 총회 유치 수락연설에서 “2013년 총회를 시티넷이 도약하고 발전하는 전기를 마련하는 성공적인 대회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시는 시티넷 사무국과 차기 총회를 유치함으로써 도시의 경제발전, 환경보전, 기후변화 대응 등에 대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각종 회의를 개최해 컨벤션 및 관광산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시티넷은 유엔이 1987년 설립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대표적인 도시간 국제기구로 116개 도시 및 기관이 회원으로 가입해 4년마다 총회를 연다. 역대 총회는 중국 상하이·인도 뭄바이·일본 요코하마·태국 방콕·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으며 그때마다 1000명 이상의 도시대표단이 참석했다. 올해 총회는 지난 7일부터 5일간 일정으로 요코하마에서 회원·비회원 도시 시장 등 대표단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리의 미래를 위한 조화로운 도시’를 주제로 열리고 있다.현재 요코하마에 있는 시티넷 사무국은 서울시가 예산 편성과 인력 구성 등을 완료하면 2013년 서울로 옮겨져 8~12년간 운영된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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