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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일 TV 하이라이트]

    ■책상서랍 속의 동화(KBS1 밤 12시) 슈쿠안 초등학교의 가오 선생은 아픈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잠시 학교를 떠나야 한다. 이에 마을 촌장은 대리 선생으로 밍지웨이를 추천한다. 가오 선생은 한 달 동안만 대리 선생이 된 밍지웨이에게 ‘학생이 한명이라도 줄어들어선 안 되며 그 약속을 지켜줄 경우에는 돈을 더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사랑과 전쟁 2(KBS2 밤 11시 10분) 부부클리닉 위원회에 한 부부가 찾아왔다. 천사표 아내이자 애교 만점 며느리인 희수는 남편과 시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반면 말괄량이로 가족들의 속을 썩이는 시누이 주영은 딸인 자신보다 더 사랑받는 희수를 질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주영은 희수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게 된다. ■나 혼자 산다(MBC 밤 11시 20분) 무지개 회원들이 자기 계발에 나선다.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며 하고 싶었던 곳을 찾아가는 이들. 한편 한판승을 꿈꾸는 서인국은 유도를 배우고 김태원은 자신의 불타는 붉은 방 연기교실을 통해 연기를 꿈꾼다. 그리고 데프콘은 먹방을 통해 보여줬던 식성을 드러내며 자신만의 특식 만들기에 도전한다. ■TV소설 삼생이(KBS2 오전 9시) 막례(이아현)는 삼생(홍아름)으로부터 사기진(유태웅)의 사진을 몰래 빼내고 사진의 행방을 찾던 삼생은 막례와 사기진이 결탁한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커프스 버튼의 주인을 확인하려고 고심하던 삼생은 동우(차도진)에게 그것이 자신의 것이란 말을 듣고 충격에 휩싸인다. ■하나뿐인 지구(EBS 밤 7시 30분) 물을 찬란히 비추는 태양은 생명을 살리는 빛이다. 그렇다면 그 태양빛을 눈앞에서 바로 본다면 어떨까. 3년 전 경기도의 한 아파트 앞에 28층 규모의 통유리 건물이 들어서면서 아파트 주민들은 매일 햇빛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인근의 아파트로 빛이 반사돼 마치 거울 위를 걸어다니는 것과 같은 피해를 낳은 것인데…. ■애자(OBS 밤 11시 5분) 고등학교 시절 ‘부산의 톨스토이’로 이름을 날렸던 애자는 소설가의 꿈을 품고 서울로 상경한다. 하지만 지방신문 당선 경력과 바람둥이 남자 친구, 산더미 같은 빚만 남은 스물아홉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한편 그녀의 유일무이한 적수는 바로 엄마 영희다. 애자는 엄마를 향한 회심의 일격을 준비한다.
  • [속보] 윤창중 대변인 전격 경질

    [속보] 윤창중 대변인 전격 경질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수행하던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9일(현지시간) 전격 경질됐다. 청와대 측은 방미 수행 도중 워싱턴에서 전격 귀국한 윤 대변인을 박 대통령이 전격 경질했다고 전했다. 윤 대변인은 8일 한미 정상회담과 박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 등 워싱턴 공식일정이 끝나자 다음 기착지인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하지 않고 곧바로 서울로 귀국해 그 배경을 놓고 궁금증을 낳았다. 미국 교포사회에서는 윤 대변인이 워싱턴 주미 대사관 인턴을 성추행했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은 곧 수행기자단에게 경질 사실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앤젤레스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 서울·인천 수도권 매립지 갈등 격화

    서울·인천 수도권 매립지 갈등 격화

    수도권 매립지 사용기한 연장 문제를 놓고 깊어지고 있는 갈등의 골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인천 시민들의 실력 행사로 서울시가 추진한 언론 홍보전이 무산된 것이다. 8일 서울시는 출입 기자를 대상으로 수도권 매립지 프레스투어를 마련했다. 인천 서구 백석동에 위치한 수도권 매립지 현장을 찾아 현황을 소개하고 제3매립장 건립이 시급하다는 시 측 입장을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프레스투어에 나선 기자 20여명은 오후 1시쯤 매립지 정문에 도착했으나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인근 청라국제도시 등에 살고 있는 인천 시민 30여명이 ‘매립 연장 음모하는 박원순은 물러가라’ ‘서울 쓰레기는 서울로’ ‘이 지역이 너희꺼냐’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나와 기자들이 탄 버스가 매립지로 들어서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일부는 도로에 누웠고, 일부는 욕을 하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서울시 측은 프레스투어를 진행한 뒤 매립지관리공사 홍보관에서 인천주민 측 입장을 듣는 시간을 마련하겠다며 물러나 줄 것을 요청했지만 인천 시민들의 입장은 강경했다. 주관식 ‘수도권 매립지 종료를 위한 인천시민연대’ 공동위원장은 “서울시의 일방적인 이야기만 듣고 일방적인 기사를 쓰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40분가량의 설득에도 인천 시민들이 꿈쩍도 하지 않자 서울시는 결국 버스를 되돌려야 했다. 매립지관리공사 관계자는 “다른 출입구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지역 주민들을 더 자극할 수 있다”며 조심스러워 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서울시가 아무런 상의도 하지 않고 프레스투어를 강행했다”며 책임을 서울시로 돌렸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프레스투어는 협의할 사안이 아니다”며 “기자들의 취재까지 막는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글 사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프로축구] 10년 만에 되살아난 ‘지지대 더비’

    ‘지지대 더비’가 10년 만에 다시 열린다. 8일 경기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대한축구협회(FA)컵 3라운드(32강전) K리그 챌린지(2부 리그) 안양 FC와 클래식(1부 리그) 수원과의 대결이다. 더비 이름은 1번 국도의 수원과 안양을 잇는 고개 이름에서 따왔다. 1997년 김호 수원 감독의 애제자였던 코치 조광래가 안양 사령탑을 맡으면서 악연이 시작됐다. 2년 뒤엔 안양의 최고 스타였던 서정원이 프랑스로 진출했다가 국내로 돌아오면서 수원 유니폼으로 갈아입어 제대로 불이 붙었다. 당시 안양 서포터들은 1999년 3월 20일 수원과의 슈퍼컵 경기에서 서정원 이름이 박힌 안양 유니폼을 불사르는 의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그 뒤로도 두 팀의 뜨거운 라이벌 의식은 명승부를 연출했다. 2000년 4월 9일에는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전반에만 3골씩 주고받은 끝에 수원이 5-4로 이겼다. 같은 해 9월 30일에는 안양이 3-2로 설욕하며 그해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그러나 2004년 안양이 연고를 옮겨 FC 서울로 거듭나면서 지지대 더비는 끊겼다. 물론 서울과 수원의 경기는 관중을 끌어모으는 ‘슈퍼매치’가 됐지만 수원과 안양의 골수 팬들은 이를 진정한 더비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번 대결은 장외에서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진작부터 인터넷에서는 두 팀 서포터들의 공방이 뜨겁다. 지난 시즌 K리그 챔피언 FC 서울의 최용수 감독은 모교인 연세대 후배들과 쑥스러운 대결을 벌인다. 포항도 대학 축구 강호인 숭실대와 16강 티켓을 다툰다. 제주 수비수 홍정호(24)는 건국대와의 경기를 통해 1년여 만에 그라운드에 돌아온다.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세상과 담 쌓고 주저앉은 인생 도움의 손길 덕에 일어섭니다”

    “세상과 담 쌓고 주저앉은 인생 도움의 손길 덕에 일어섭니다”

    “아유, 저야 정말 고맙죠. 사는 것도 어렵지만, 죽는 게 더 어렵다며 세상과 담 쌓고 살았었는데요.” 7일 수술 뒤 보름간의 입원 생활을 끝내고 퇴원을 앞둔 공모(59·여)씨의 목소리는 밝았다. 홀로 어렵게 살고 있던 공씨를 괴롭힌 것은 척추협착증. 30여년 전 서울로 올라온 공씨는 가정부일을 해가며 남동생을 대학 보내고 취직시켰다. 남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정작 자신의 결혼은 포기했다. 그러나 그렇게 뒷바라지했던 남동생은 외환위기 때 사업 실패 끝에 주저앉았다. 이혼까지 한 남동생과 보증금 100만원, 월세 20만원의 월세방으로 들어왔다. 사업 실패에다 이혼까지 겹쳐서인지 남동생은 2009년 췌장암으로 숨졌다. 그 뒤 공씨의 증세는 계속 나빠졌다. 주사치료로 버텼으나 지난 4월 초 병원은 마침내 더 이상 주사치료는 의미없다며 수술을 통보했다. 수술과 입원 날짜를 받아들었지만 공씨는 암울해졌다. 혈혈단신이라 수술동의서와 연대보증서를 써줄 사람이 없었고 수술비도 부담스러웠다. 고민만 하던 중 통증 때문에 거동까지 불편해지자 공씨는 남가좌동주민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때부터 서대문구가 개편한 복지 중심의 행정기구가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해 초 서대문구는 단순반복적인 민원행정업무는 무인민원발급기에 넘기고 여유 인력을 전부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에 투입했다. 공씨와 상담한 이현근 남가좌2동장은 즉시 구청에 긴급의료비 지원을 요청한 뒤 성모병원 사회사업팀을 방문, 수술비와 입원비를 제외한 모든 부대 비용을 무료로 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황재하 통장은 흔쾌히 수술동의서와 최대 3000만원에 이르는 입원비 보증각서까지 썼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공씨는 8일 퇴원 예정이다. 이 동장은 “퇴원 이후에 공씨를 노래교실 같은 곳에 가입시켜 또래 노인들과 어울리도록 하는 등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겠다”면서 “올해 초부터 복지업무가 강화된 만큼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길섶에서] 바다이슬/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을 빙 두른 간이장터에서 녀석들을 만났다. 이제 막 꺾꽂이를 끝냈을, 주먹만 한 크기의 녀석들은 수백개의 화분에 담겨 다닥다닥 붙어 앉은 채 서울로 처음 소풍 온 산골 아이들처럼 살랑바람에 마냥 조잘대고 있었다. 그 앙증맞은 푸르름에 마음을 빼앗겨 지갑을 열었고, 세 녀석(화분)을 들고 왔다. 사무실은 그 어떤 방향제도 따르지 못할 자연의 향으로 금세 덮였다. 학명 ‘Rosmarinus’, 라틴어 ‘Ros’(이슬)와 ‘Marinus’(바다)를 합쳐 ‘바다 이슬’이란 멋진 이름을 갖고 있는 녀석들, 로즈메리. 한데 이놈들, 키우는 게 만만치가 않다. 매일 일광욕 시켜주고, 바람도 쐬어주고, 말도 건네야 한단다. 하루만 딴짓 해도 결별, 죽는단다. 볕을 좇아 복도 끝 창가로 옮겨 나르는 일과가 생겼다. “아니, 머리를 맑게 해주고, 살균·소독 작용도 하는데, 그 정도도 못해 줘요?” 글을 쓰는 동안 노트북을 훔쳐보던 녀석들이 한마디 하는 듯하다. 향기 나는 중년에 이르지 못한 처지 아니던가. 녀석들의 향기라도 탐할밖에…. ‘아냐 그럴리가~, 내 어찌 그 정도도 못하겠니?’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세종~국회 영상회의 8월 도입] 업무 비효율 얼마나 심하기에

    “(세종시 인근에 있는) 관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임명되고 한 달이 다 된 한 경제부처 차관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회 설명에, 부처 간 회의에 정부세종청사에 머물 시간이 거의 없다는 하소연이다. 5일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14억여원을 들여 영상회의실이 문을 연 지도 5개월이 지났지만 단 9번 쓰이는 데 그쳤다. 기재부만 해도 일주일에 경제관계장관회의, 대외경제장관회의, 물가관계차관회의 등 적어도 3번 이상 회의가 서울에서 이뤄지고 그때마다 관련 실·국장, 과장·사무관·주무관까지 서울로 총출동한다. 세종시로 이사한 6개 부처의 국내 출장비는 이전보다 약 3.5배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세종시로 이전하기 전인 지난해 2월 한 달 4억원이었던 6개 이전 부처의 국내출장비는 이전한 후 지난 2월 14억 3000만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부처당 2억~3억원이 출장비로 소요된 것이다.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의 등이 이뤄지는 하반기에는 출장비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과거 세종시 이전에 따른 행정비효율을 추산하며 출장비용으로 200억~3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던 관련 용역보고서 등의 전망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정보통신(IT) 기술을 활용한 원거리 영상회의를 일상화하는 방법만이 해결책이라고 보고 있다. 외청 등을 포함해 정부 각 부처가 지난해부터 올해 3월 말까지 실시한 영상회의와 영상 업무보고는 모두 1149건으로 추계됐다. 올해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에 참여한 윤창번 전 하나로텔레콤 회장은 최근 공무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출장 여비를 삭감해서라도 불필요한 출장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무원들의 반응은 ‘절반의 기대’다. 세종시 이전 부처들은 정책집행기능을 하는 외청과 달리 정책을 면밀히 검토하고 입안해야 해 ‘면대면’의 스킨십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최대한 영상회의를 활용하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장·차관이 급하게 찾을 때 한가하게 영상회의로 보고한다는 건 업무현실과 안 맞다”면서 “장·차관 회의와 달리 실무진 회의는 실제 토론이 이뤄지기 때문에 만나지 않으면 전체 분위기도 알 수 없고 토론도 어렵다”고 말했다. 국회 내 운영 예정인 영상회의 시스템에 대한 반응도 엇갈렸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회 질의응답은 단체 토론이 아니라 1대1 질의응답이라서 영상회의가 더 적합할 수 있다”면서 “국회의원들이 나서지 않으면 도입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하는 재미가 장·차관 깨는 맛인데 영상회의는 절대로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사설] 화상 국무회의와 화상 국회 상임위 병행해야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64일 만에 처음으로 국무회의가 영상으로 진행됐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엊그제 정부세종청사 회의장에서 국토교통부 등 6개 부처 장관과 함께 정부서울청사의 국무위원들과 화상회의를 갖고 22개 안건을 의결했다. 세종시 부처 공무원들의 서울 출퇴근으로 행정 비효율이 커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영상 국무회의는 앞으로 더욱 자주 열려야 할 것이다. “국회 대기인원을 줄이고 화상회의나 스마트워크 등을 활용해 세종시가 행정 중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자”는 정 총리의 당부가 허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난해 9월 이후 국무총리실을 비롯해 기획재정부 등 6개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했지만 행정 비효율은 심해지면 심해졌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무조정실은 얼마 전 서울청사 9층에 총리 집무실 및 접견실, 실·국장 및 직원 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서울과 세종시에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었다. 이 같은 사정은 기재부 등 다른 부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다 보니 국무총리와 기재부 장관 등 주요 국무위원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업무를 보고 세종시에서는 1주일에 하루 정도 머문다고 한다. 총리,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들이 대부분 서울에 상주하니 직원들도 수시로 서울로 출장을 간다. 기재부의 경우 한 달 출장비가 3억원에 이르는 등 예산이 바닥날 상황이라고 한다. 이렇게 된 것은 청와대나 국회에 대면 보고를 하는 등 경직된 행정문화가 변하지 않고 있는 탓이 크다. 장차관들은 대통령 보고와 국무회의 등을 이유로 서울에 체류하고 공무원들도 이를 핑계로 서울에 머문다. 국회도 예결위와 각 상임위에 장차관을 출석시키고, 장차관들은 실·국장을, 실·국장은 과장·사무관을 대기시키니 세종시는 텅텅 비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세종시가 행정중심도시로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는 청와대와 국회부터 변해야 한다. 서울에서 회의를 하는 것을 줄이고 업무보고도 화상으로 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부여해야 한다. 특정요일에는 서울에 머물면서 업무를 보는 집중근무제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국회도 필요할 때만 장차관을 부르는 등 여의도 호출을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상임위는 세종시에서 여는 것을 상례화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협회나 기관들도 의전문화를 실무적으로 개선해 불필요한 행사에 장관 참석을 고집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숭례문 5월 4일 공개] 615년 전 숭례문에 가깝게, 옛 방식대로 지었습니다

    [숭례문 5월 4일 공개] 615년 전 숭례문에 가깝게, 옛 방식대로 지었습니다

    “숭례문을 뜯어는 놓았는데 기술자가 없어 다시 세우지를 못 한다네.” 어둑어둑해지는 해거름 무렵 서울 마포구 아현동 골목 어귀에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런거렸다. 1961년 7월 해체를 시작한 숭례문은 1962년 3월쯤 완전히 해체됐다. 현 남대문시장 쪽에 아름드리나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1962년 4월 ‘급래’(急來) 딱 두 글자의 전보를 받고 서울로 뛰듯이 올라와 숭례문 중수 현장에서 일하던 당시 20살의 어린 목수 신응수는 걸어서 아현동 거주지로 퇴근하던 길에 이런 걱정을 들었다. 신 목수는 마음속으로 “내가 바로 그 숭례문을 다시 세우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치며 어깨에 한껏 힘을 주고 뿌듯하게 지나갔다. 해체된 목공사가 완료되던 1962년 12월 20일 숭례문은 국보 1호로 지정됐다. “지금이라면 가던 길을 멈추고 ‘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대목장 조원재(1903∼1976) 지휘 아래 잘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할 텐데…”라고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신응수(71) 대목장은 회상했다. 그는 1963년 3월까지 만 11개월 동안 조원재 대목장 밑에서 대패질과 톱질을 하면서 숭례문이 조선 전기 건축물 양식으로 군더더기 없이 완전해지는 데 힘을 보탰다. 1963년 5월 14일 숭례문에서 완공식을 했다. 그 뒤 50년이 지난 2013년 5월 4일, 2008년 2월 방화로 2층 문루가 크게 소실됐던 숭례문이 5년 3개월 만에 복구공사를 마치고 국민들에게 완전히 돌아온다. ‘숭례문, 문화의 새 문이 열린다’는 슬로건 아래 연극 연출가 이윤택(61)씨가 경축 행사를 총감독한다. 중수에 참여했던 20살의 신응수는 66세에 대목장으로 숭례문 복구공사에 참여해 칠순을 넘겼다.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신응수 대목장과 28일 숭례문 현장을 찾았다. 숭례문은 1395년(태조 4년)에 짓기 시작해 1398년 완성한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조선의 수도인 한성을 보호하는 성곽의 남문으로 남대문으로 더 잘 알려졌다. 이후 1447년(세종 29년)에 개축했으나 1961~1963년의 중수 과정에서 1479년(성종 10년)에도 대규모 보수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 복구의 기준은 1960년대 중수였다. 그래서 복구된 숭례문의 외관은 조선 전기에 사용했던 녹색과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단청을 입었다. 울긋불긋한 절집의 단청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위엄 있고 묵직한 느낌이다. 당시 중수의 책임자였던 조원규 대목장은 숭례문의 1층이 조선 후기 양식으로 변형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전기 양식으로 바로잡았다. 조선 후기 건물 양식인 광화문 등에 달렸던 완초공 등을 제거했고, 덩굴무늬 등도 당연히 없앴다. 그 과정에서 문화재 담당 공무원과 갈등도 빚고 그만두기도 했다. 당시 문화부 차관이 조 대목장 집을 찾아가 모셔 오지 않았더라면, 숭례문 중수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는 일화도 있다. 이번 복구공사가 1960년대 중수와 다른 점은 더 철저하게 전통 방식으로 복구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찍어 낸 기와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제작한 가벼운 기와를 썼고, 대장간을 숭례문 복구 현장에 설치해 직접 못과 철물을 만들어 썼다. 중수보다 용마루 길이가 0.9m 늘어나 16.6m가 됐고, 1층 잡상(지붕 장식물)도 8개에서 7개로 줄었다. 1층 마루도 우물마루에서 장마루로 바뀌었다. 성곽을 좌로 16m, 우로 53m 복원해 군사시설이란 목적을 확실히 했다. 목재도 전동기기 대신 도끼와 자귀로 다듬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 시간을 계산하지 않은 탓에 늘어난 목수들 품삯을 놓고 문화재청과 갈등이 생겨 지난해 1월 목공사가 한 달 정도 중단되기도 했다. “옛날만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완공된 모습을 보니 뿌듯합니다. 도편수(대목장)가 돼서 공사가 잘못됐으면 당시 도편수였던 조원재 선생님이 나한테 잘못 전수한 것이 됐을 테니 그런 무례가 없잖아요. 정말 잘 배웠구나 싶습니다.” 복구 기간 내내 전통 방식으로 목공사를하지 않았다느니, 한옥에는 못을 사용하지 않는데 못을 썼다느니, 단청을 한 용무늬가 잘못됐다느니, 적심 탓에 화재에 취약하다느니 등등 말도 많았다. 신 대목장은 “눈으로 보이는 부분에 못을 안 쓰니까 한옥은 끼워 맞추기만 하는 줄 아는데, 오해다. 근정전을 해체해 보니 2m 가까운 대못이 나오기도 했다. 우물마루는 목재를 끼워서 쓰지만, 장마루에는 못을 써야 한다. 또 홍예의 용무늬 단청이 잘못됐다는 오해는 풀리지 않았나. 적심 탓에 화재에 취약하다는 것은 문제지만 차차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마지막으로 문화재 보호를 기계에만 맡기지 말고, 국민 모두가 감시자가 돼 국보 1호를 보호했으면 좋겠다”며 복구된 숭례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텅텅 빈 ‘1조원짜리’ 용인경전철… 혈세 낭비 불보듯

    텅텅 빈 ‘1조원짜리’ 용인경전철… 혈세 낭비 불보듯

    경기 용인 경전철의 첫 상업운행이 시작된 29일 오후 7시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기흥역. 분당선 기흥역과 만나는 경전철 기흥역의 역사는 일반 국철 역사보다 크고 웅장했지만 역 구내에 승객이라곤 가끔 한두 사람씩 보일 만큼 한산했다. 전대·에버랜드역을 출발, 기흥역에 도착한 경전철에서는 승객 10여명이 내렸고 3~4명이 탑승했다. 3분 뒤 도착한 경전철도 비슷한 수의 승객이 타고 내렸다. 다른 역도 승객은 10여명에 불과했다. 승객 김동식(68·용인시 포곡읍 영문리)씨는 “경전철은 환승할인이 안 되고 65세 이상 노인에 대해 요금면제 혜택도 없다”면서 “버스를 타면 2000원에 서울까지 편히 갈 수 있는데 누가 값도 비싸고 시간도 더 걸리는 경전철을 이용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경전철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이용해야 하는데 용인경전철은 노선이 잘못돼 앞으로도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순임(58·여·처인구 고림동)씨는 “마을버스를 타고 1100원이면 출근할 수 있는데 경전철을 이용하니 1300원을 추가로 더 내는 꼴”이라면서 “앞으로는 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료시승행사와 에버랜드 방문객이 반짝 몰렸던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은 경전철 승객이 각각 4만 7000여명, 4만 6000여명에 달해 용인시는 한껏 고무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날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전체 탑승 인원은 고작 3879명에 불과했다. 기자가 오후 7시 현재 탑승 인원을 물어보자 용인경전철㈜ 관계자는 “내부 규정상 알려줄 수 없다”면서 답변을 거부했다. 시 관계자는 “이날 오후 퇴근길 승객을 더해도 최대 1만명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털어놨다. 용인경전철이 상업운행 첫날부터 수요예측 결과에 한참 못 미치는 운행 실적을 보이면서 용인경전철의 앞날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용인시는 연간 295억원을 경전철 운영사인 ㈜용인경전철에 운영비로 지급해야 한다. 이는 하루 탑승 인원이 3만 2000명에 이를 것이라는 경기개발연구원의 연구용역 결과에 따른 것으로 경전철 1회 운행당 평균 80명이 탑승하는 수준이다. 이 경우 시는 연간 최대 150억원의 운임수입을 얻을 수 있어 나머지 145억원만 예산에서 보전해줄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시는 막대한 혈세를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불 보듯 뻔하다. 시의회의 한 의원은 “이 상태라면 운임수입이 50억원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며 “재정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경전철 운행 첫날이었고 많은 비가 내려 아무래도 승객이 적었던 것 같다”며 “내년 1월부터 분당선과 환승 할인이 되고 분당선이 수원역과 연계되면 승객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20살 ‘풋내기 중수’, 51년만에 숭례문 복구하다

    20살 ‘풋내기 중수’, 51년만에 숭례문 복구하다

    “숭례문을 뜯어는 놓았는데 기술자가 없어 다시 세우지를 못 한다네.” 어둑어둑해지는 해거름 무렵 서울 마포구 아현동 골목 어귀에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런거렸다. 1961년 7월 해체를 시작한 숭례문은 1962년 3월쯤 완전히 해체됐다. 현재 남대문시장 쪽에 아름드리 나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1962년 4월 ‘급래’(急來) 딱 두 글자의 전보를 받고 서울로 뛰듯이 올라와 숭례문 중수 현장에서 일하던 당시 20살의 어린 목수 신응수는 걸어서 아현동 거주지로 퇴근하던 길에 이런 걱정을 들었다. 신 목수는 마음속으로 “내가 바로 그 숭례문을 다시 세우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치며 어깨에 한껏 힘을 주고 뿌듯하게 지나갔다. 해체된 목공사가 완료되던 1962년 12월 20일 숭례문은 국보 1호로 지정됐다. “지금이라면 가던 길을 멈추고 ‘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대목장 조원재(1903∼1976) 지휘 아래 잘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할 텐데?”라고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신응수(71) 대목장은 회상했다. 그는 1963년 3월까지 만 11개월 동안 조원재 대목장 밑에서 대패질과 톱질을 하면서 숭례문이 조선 전기 건축물 양식으로 군더더기 없이 완전해지는 데 힘을 보탰다. 1963년 5월 14일 숭례문에서 완공식을 했다. 그 뒤 50년이 지난 2013년 5월 4일, 2008년 2월 방화로 2층 문루가 크게 소실됐던 숭례문이 5년 3개월 만에 복구공사를 마치고 국민들에게 완전히 돌아온다. ‘숭례문, 문화의 새 문이 열린다’는 슬로건 아래 연극 연출가 이윤택(61)씨가 경축 행사를 총감독한다. 중수에 참여했던 20살의 신응수는 66세에 대목장으로 숭례문 복구공사에 참여해 칠순을 넘겼다.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신응수 대목장과 28일 숭례문 현장을 찾았다. 숭례문은 1395년(태조 4)에 짓기 시작해 1398년 완성한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조선의 수도인 한성을 보호하는 성곽의 남문으로 남대문으로 더 잘 알려졌다. 이후 1447년(세종 29)에 개축했으나 1961~1963년의 중수 과정에서 1479년(성종 10)에도 대규모 보수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 복구의 기준은 1960년대 중수였다. 그래서 복구된 숭례문의 외관은 조선 전기에 사용했던 녹색과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단청을 입었다. 울긋불긋한 절집의 단청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위엄 있고 묵직한 느낌이다. 당시 중수의 책임자였던 조원규 대목장은 숭례문의 1층이 조선 후기 양식으로 변형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전기 양식으로 바로잡았다. 조선 후기 건물 양식인 광화문 등에 달렸던 완초공 등을 제거했고, 덩굴무늬 등도 당연히 없앴다. 그 과정에서 문화재 담당 공무원과 갈등도 빚고 그만두기도 했다. 당시 문화부 차관이 조 대목장 집을 찾아가 모셔 오지 않았더라면, 숭례문 중수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는 일화도 있다. 이번 복구공사가 1960년대 중수와 다른 점은 더 철저하게 전통 방식으로 복구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찍어 낸 기와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제작한 가벼운 기와를 썼고, 대장간을 숭례문 복구 현장에 설치해 직접 못과 철물을 만들어 썼다. 중수보다 용마루 길이가 0.9m 늘어나 16.6m가 됐고, 1층 잡상(지붕 장식물)도 8개에서 7개로 줄었다. 1층 마루도 우물마루에서 장마루로 바뀌었다. 성곽을 좌로 16m, 우로 53m 복원해 군사시설이란 목적을 확실히 했다. 목재도 도끼와 자귀로 다듬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 시간을 계산하지 않은 탓에 늘어난 목수들 품삯을 놓고 문화재청과 갈등이 생겨 지난해 1월 목공사가 한 달 정도 중단되기도 했다. “옛날만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완공된 모습을 보니 뿌듯합니다. 도편수(대목장)가 돼서 공사가 잘못됐으면 당시 도편수였던 조원재 선생님이 나한테 잘못 전수한 것이 됐을 테니 그런 무례가 없잖아요.” 복구 기간 내내 전통 방식으로 목공사를 않았다느니, 한옥에는 못을 사용하지 않는데 못을 썼다느니, 단청을 한 용무늬가 잘못됐다느니, 적심 탓에 화재에 취약하다느니 등등 말도 많았다. 신 대목장은 “눈으로 보이는 부분에 못을 안 쓰니까 한옥은 끼워 맞추기만 하는 줄 아는데, 오해다. 근정전을 해체해 보니 2m 가까운 대못이 나오기도 했다. 우물마루는 목재를 끼워서 쓰지만, 장마루에는 못을 써야 한다. 또 용무늬 단청이 잘못됐다는 오해는 풀리지 않았나. 적심 탓에 화재에 취약하다는 것은 문제지만 차차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마지막으로 문화재 보호를 기계에만 맡기지 말고, 국민 모두가 감시자가 돼 국보 1호를 보호했으면 좋겠다”며 복구된 숭례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기고] 인천의 홀대와 해묵은 과제/김민배 인천발전연구원장

    [기고] 인천의 홀대와 해묵은 과제/김민배 인천발전연구원장

    홀대(忽待). 푸대접 혹은 괄시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최근 인천에서는 ‘홀대’를 ‘해묵은 과제’로 바꾸어, 고질적인 현안들을 점검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지방의 입장에서 보면 잘나가는 인천, 그것도 수도권에 무슨 걱정과 홀대가 있다는 것인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수도권이야말로 모든 것을 가졌고, 지방을 어렵게 만드는 주범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도권 내부를 들여다보면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다. 말이 수도권이지 모든 여건에서 지방보다 못한 경기 연천군이나 인천 강화·옹진군도 있다. 평양이 인천보다 가까운 백령도를 비롯한 접경지역은 군사시설이나 문화재보호법 등이 이중삼중으로 규제의 벽을 치고 있다. “백령도가 무슨 수도권이냐”라는 조윤길 옹진군수의 하소연이 농담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인천 홀대의 근원적 이유 속에는 수도권을 이루고 있는 서울, 경기, 인천 상호 간의 문제도 많다. 인천 서구에 자리한 쓰레기매립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처리한 쓰레기를 보면 서울이 48%, 경기가 35%, 인천이 17%이다. 인천의 쓰레기보다는 서울과 경기의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인천시민들이 20년 동안 오염과 악취라는 고통을 받고 있다. 영흥도 화력발전의 7, 8호기 증설계획도 문제다. 유연탄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는 영흥화력은 황산화물 및 질소산화물 배출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송도에는 액화천연가스(LNG) 저장탱크 3기 증설을 추진 중이다. 최초 3기 건설 약속과 달리 23기의 저장탱크로 확대되는 것이다. 발전용량의 32%만을 인천이 사용하고 있음에도 LNG와 발전설비의 증설이 계속되고 있다. 인천시민들은 물론 지역 여야 정치인 모두가 2016년 수도권매립지 종료와 발전소 증설 반대를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텔과 미술관에는 화려한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매립지 주변에는 혐오시설들이 집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은 2044년까지 수도권매립지 사용을 주장한다. 깔끔한 서울로 만들어 살겠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인천은 2044년은 물론 그 이후까지 악취와 분진 그리고 혐오시설들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것은 폭력적 강요이자 무례한 처사다. 서울은 쓰레기를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를 떠안고 사는 인천시민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고 있다. 각각 대체매립지를 마련해야 한다는 인천의 주장을 생각할 때마다 서울은 끔찍할 것이다. 적절한 땅을 찾기도 쉽지 않고, 대체시설 부지를 찾는다고 해도 주민 반발을 불러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상시는 물론 북한의 위협이 있을 때마다 유류와 가스저장고 주변의 인천시민들은 더 큰 불안을 안고 산다. 누구나 쾌적하고 안전한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인천에 대해 미안해하기는커녕 당연시하는 지역을 위해 더 이상의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천시민들은 없다. 인천의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수도권 공동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와 서울 그리고 경기도가 자기 책임의 원칙에서 인천의 고통을 분담하는 정책을 실천할 때다.
  • ‘1m확장에 2억’ 성남 공원로 월요일 개통

    ‘1m확장에 2억’ 성남 공원로 월요일 개통

    1m 확장에 2억원가량 들어가 예산낭비 논란이 일었던 경기 성남시 공원로가 확장 공사를 시작한 지 6년 만에 개통됐다. 막대한 예산투입으로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황금도로’라는 별명까지 붙은 길이다. 성남시는 26일 공원로(중앙동 공원터널∼태평동 현충탑) 1.56㎞ 구간을 왕복 2차로에서 6∼8차로로 확장하는 공사를 마무리하고 29일 오후 2시 개통식을 연다고 밝혔다. 2007년 7월 시작, 3093억원을 투입한 끝에 5년 10개월 만에 끝났다. 1m 확장에 1억 9830만원을 쏟아부은 셈이다. 사업비 중 88% 2727억원이 보상비로 나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공사가 됐다. 전체 보상면적은 3만 7000㎡, 보상받은 건물은 270채 1446가구였다. 단순 계산하면 3.3㎡(1평)에 2300만원의 보상비가 들어갔다. 도로 확장 부지에 편입된 주민들이 보상비 인상과 이주·생계대책을 요구하며 시청사를 점거 농성하자 2006년 보상금 이외에 토지·건물주에게 판교신도시 아파트를, 세입자에게 공공임대아파트를 특별공급했다. 도로확장 사업에 신도시 아파트 입주권을 제공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러고도 이주민들이 “아파트 분양대금 중 기반시설 비용을 돌려달라”고 시를 상대로 12건의 채무부존재 소송까지 제기해 장기간 법정다툼까지 벌여야 했다. 사업은 전임 민선 4기 이대엽 시장 때 시행했으며 이재명 현 시장은 2010년 7월 판교 특별회계 모라토리엄을 발표할 당시 공원로 공사를 대표적인 재정난 원인으로 지목했다. 공원로 확장 개통으로 분당구 야탑동∼중원구 도촌동∼수정·중원 본시가지∼위례신도시로 이어지는 남북 간선교통망이 연결됐다. 앞서 시는 지난해 4월 이 도로와 연결되는 태평동 영장산터널~복정동 창곡교차로 1.63㎞ 공원로 구간 확장 공사를 끝냈다. 시 관계자는 “도로 개통으로 성남에서 서울로 가는 차량 통행시간이 기존 20분에서 10분으로 단축되고 도시의 균형적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DB를 열다] 1967년 서울 구경 온 낙도 어린이들

    [DB를 열다] 1967년 서울 구경 온 낙도 어린이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섬을 낙도(落島)라고 한다. 1969년에 제작된 ‘수학여행’이라는 영화가 있다. 섬마을의 낙도에 부임한 교사(구봉서 분)가 갖은 노력을 한 끝에 섬 아이들과 서울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아이들은 서울에 도착해서 서울 아이들의 환대를 받고 집으로 초대를 받는다. 도심과 고궁을 돌아보며 섬과는 너무나 다른 대도시 서울의 모습에 신기해한다. 서울 아이들은 돌아가는 낙도 아이들에게 리어카를 선물해 준다. 요즘도 낙도 어린이를 서울로 초청하는 행사가 있기는 하지만, 교통이 좋아지고 도농 격차가 줄어서 낙도의 개념이 희미해졌다. 그러나 1960년대만 해도 낙도나 오지에서 서울로 오려면 배와 버스, 기차를 몇 번씩이나 갈아타야 했고 시간도 하루가 넘게 걸렸다. 그만큼 돈도 많이 들어 독지가나 단체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사진은 1967년 4월 베트남에 파견된 기술자들이 고국에 보내온 성금으로 서울 구경을 온 낙도 학생들의 모습이다. 제주도 가파초등학교, 울릉도 석포초등학교, 진도 지산서초등학교에서 온 아이들이다. 스카우트 복장을 한 서울 아이들이 팡파르를 울리며 환영하고 있다. 교복 차림에 모자를 쓴 시골 아이들은 환영 인사를 받으면서도 즐겁다기보다는 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다. 품에는 강아지를 안고 있는데 아마도 서울 아이들에게 줄 선물인 모양이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서울서 변호사 개업하지 마” 빗장…지방 로스쿨생 부글부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서울’과 ‘비(非)서울’의 지역 간 갈등 구도에 휘말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서울 이외 지역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서울시내 개업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나승철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지난 1월 회장에 당선될 때 ‘비서울 지역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서울변회 등록 유예’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다른 지역 로스쿨 출신은 해당 지역에서 변호사 등록을 하고 일정 기간 활동한 뒤에야 서울변회에 등록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서울변회 회원으로 등록하지 못하면 변호사법상 서울에서 개업할 수 없게 된다.  그러자 가뜩이나 사법연수원 출신이나 서울 소재 로스쿨 출신에 비해 취업률이 저조한 비서울 로스쿨 학생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남대 로스쿨 학생 A(28)씨는 “지방대에 입학했다고 지방에서만 취직하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면서 “서울에 수요가 많다 보니 서울로 몰리는 경향도 있지만 부모님도, 생활 터전도 원래부터 서울에 있는 학생이 많은데 밥그릇 싸움 때문에 지방 출신의 개업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강원대 로스쿨의 B(30)씨도 “로스쿨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부자와 서민, 서울과 지방으로 이분화하려는 서울변회의 행태가 안타깝다”면서 “법조계 안팎의 분열과 반발심만 키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지역별 변호사 개업 제한 문제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위철환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좋은 취지지만 자칫 서울 변호사들의 이권만 대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직업 선택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등 헌법적 권리에도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지방대 학생들을 서울에서 개업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오히려 서울변회가 주장하는 취지와 달리 모순적인 기득권 강화에 불과하다”면서 “특히 사법시험 출신들과의 차별 문제도 심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나 회장은 “취업은 자유롭게 할 수 있고 개업만 1~2년 제한하려는 것이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의견을 수렴하는 단계”라면서 “서울변회의 이익을 위해서는 등록 회원이 많을수록 좋지만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것이므로 지방 로스쿨 관계자들과 학생들도 변호사로서의 사명감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현윤(연세대 교수) 법학전문대학원협회장은 “많은 사람의 존립 기반과 관계된 문제가 너무 쉽게 논의되는 것 같다”면서 “지역적 개념을 동원할 것이 아니라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에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먼저 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DB를 열다] 1963년 무작정 상경한 시골 소녀들

    [DB를 열다] 1963년 무작정 상경한 시골 소녀들

    사람들은 서울로 서울로 모여들었다. 덜 익은 보리를 먹으며 배고픔을 이겨야 했던 농촌에서는 미래가 없었기에 시골 사람들에게 수도 서울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가족을 버리고 아버지가 홀로 오기도 했고 가출한 사춘기 학생들이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기도 했다. 일가족이 가산을 정리해 아무런 계획도 없이 서울에 도착하기도 했다. 단지 먹고살기 위한 무작정 상경이었다. 서울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상경한 사람들이 할 일이란 날품팔이나 하층 노동자, 식모, 버스 안내양 같은 것이었다. ‘흙에 살리라’ ‘고향초’같이 무작정 상경을 비판하거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대중가요들이 나왔다. 박노식이 주연한 ‘무작정 상경(1970)’이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다. 우직한 곰팔이가 돈을 벌려고 서울로 올라와서 웃지 못할 실수들을 연발하고 짝사랑하던 여인을 잃게 되자 봇짐을 싸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이호철의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는 상경한 길녀가 결국은 창녀로 전락하고 마는 과정을 그렸다. 무작정 상경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렸다. 상경 소녀들은 시골티가 나서 단박에 알아차린 인신매매꾼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경찰은 서울역에 안내소를 설치하고 상경하는 소녀들을 타일러서 돌려보냈는데, 그 수가 하루에 20여명이나 된 적도 있다. 사진은 1963년 4월 4일 서울역 광장에서 여경이 상경 소녀들과 대화하는 모습이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지역 일꾼 뽑는데 무슨 정당공천이냐” “공천제라도 있어야 후보 난립 막지”

    “지역 일꾼 뽑는데 무슨 정당공천이냐” “공천제라도 있어야 후보 난립 막지”

    “밑바닥 지역 일꾼을 뽑는데 정당 공천이 무슨 상관 있나요?”(50대 재래상인) “공천제라도 있어야 수준 이하 후보들 난립을 막지요.”(30대 주부) 4·24 재·보선에서 군수를 새로 뽑는 경기도 가평군이 새누리당의 기초단체장·의원 무공천 시험대에 올랐다. 경남 함양군과 더불어 기초단체장을 선출하는 가평군에서 ‘무공천 원칙’에 대한 주민들의 찬반 양론은 엇갈렸다. 당의 무공천 방침은 지역별로 선호도가 극명하게 나뉜다. 수도권은 여권 지지율이 공고한 대구·경북(TK), 부산·경남(PK) 지역과 달리 야권발 바람에 취약해 여당 공천이 아쉬운 형편이다. 투표율이 낮은 재·보선에서 여당 소속 ‘기호 1번’이 갖는 상징성도 남다르다. 가평은 예외적으로 지난해 4·11 총선에서 경기·인천 최다 득표(67.46%)를 몰아줄 만큼 새누리당 지지도가 높은 곳이다. 그래도 무공천에 대한 주민들의 온도 차는 판이했다. 14일 가평재래시장에서 만난 상인 김정우(43)씨는 “공천 배제는 무책임한 조치”라면서 “당장 여권 후보들만 쪼개져서 표를 갉아먹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 예비 후보 7명 중 3명이 탈당해 민주통합당, 무소속 후보와 5파전을 벌이게 된 게 못마땅한 눈치였다. 직장인 최은별(32·여)씨는 “서울로 출퇴근하다 보니 군수가 누가 되든 솔직히 관심이 없다”면서도 “기초선거는 후보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서는데 최소한의 여과 장치는 있어야 하지 않냐”며 공천제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미순(66·주부)씨는 “군수는 동네 주민 수발 충실히 들면 그만”이라면서 “당에서 추천하는 게 뭐가 중요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씨는 “앞서 군수 선거에서 무소속이 3연속 당선된 것도 공천에 승복 못한 후보들이 탈당하고 출마해서 그런 것”이라면서 “공천해도 다 소용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후보 당사자들의 속내는 사뭇 달랐다. 무공천 여파가 여당권 후보들에게는 적잖이 쓰린 셈이다. 실제 판세 역시 새누리당을 탈당한 육도수, 박창석, 정진구(기호순) 후보의 경쟁을 틈타 무소속 김성기 후보가 근소하게 선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당 성향 후보는 “우리들은 후보 단일화에 대해 잠정 합의를 한 상태였다”면서 “그런데 갑자기 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우리로선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다른 후보는 “여당의 지원사격을 받아야 하는데 정당 프리미엄이 없으니 솔직히 불안하다”고도 했다. 이병재 경기북부시·군의회 의장협의장은 “새누리당이 기초단체장 무공천 방침을 후보 등록 신청 3일 전에야 확정하면서 후보와 지역 주민들의 혼란이 더 커졌다”고 전했다. 지역구 의원 입장에서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정병국(여주·양평·가평·여주) 의원은 주말 동안 세 후보 사무실을 모두 돌면서 격려하는 등 발품을 더 들였다. 정 의원은 “무공천 취지에는 원칙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야당은 공천을 그대로 밀어붙이는데 우리만 무공천하는 게 전략상 맞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이번 재·보선을 계기로 새누리당은 야권과 함께 기초단체장·의원 무공천 입법화에 시동을 걸겠다고 밝혔다. 안진영(48·택시운전사)씨는 “대통령 공약이었으니 이번 선거부터 부랴부랴 추진하는 것 같지만 여야가 무공천 원칙을 실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가평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향토기업 특선] 양변기 완제품 시장 진출할 차례

    [향토기업 특선] 양변기 완제품 시장 진출할 차례

    ‘와토스코리아’ 송공석(60) 대표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최고경영자(CEO)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그는 1967년 의지 하나만 가지고 고향인 전남 고흥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중국집 배달 등 밑바닥 생활을 하다 우연히 양변기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 몸담고 있던 회사가 망하자 1973년 직접 양변기 부품 회사를 차렸으나 극심한 부침에 시달렸다. 3번이나 부도가 났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다. 1987년 아파트 건설경기 붐이 일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양변기 절수 제품을 개발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당시 양변기에 벽돌 넣기를 통한 절수 캠페인이 있었는데 물을 적게 사용하는 부속품을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절수형 양변기 부품을 개발하면서 회사가 크기 시작했습니다.” 송 대표는 요즘 양변기 완제품 시장에 진출하려는 계획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위생도기 전문업체인 세림산업과 외국계 욕실용품 생산회사인 아메리칸스탠다드코리아(LIXIL코리아)와의 합작으로 초절수 양변기 부품을 개발한 게 계기가 됐다. 완제품 생산도 이들 업체와 협력하는 방식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외형 제작은 세림산업이 맡고, 브랜드 개발과 마케팅은 LIXIL코리아가 담당하는 형태다. “국내 최고의 절수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부품업체에서 벗어나 양변기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도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와토스코리아는 현금 유동성이 풍부해 완제품 시장에 도전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지난 2월 공장을 전남 장성으로 옮긴 것도 사전 포석의 일환이다. 생산 가능 물량이 전보다 2배가량 늘어나게 됐다. 오는 7월 신부품을 출시한 뒤 서서히 완제품 생산체계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LIXIL코리아 관계자는 “수십 년간의 양변기 영업 경험을 살려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체공학적 설계를 바탕으로 공간 효율성과 편안함을 제품에 반영, 안락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올해 건설경기가 큰 폭으로 개선되기는 어려워도 점차 회복돼 신규 아파트 양변기 공급 물량이 늘어날 수 있다”면서 “전 세계적인 유통망을 가진 욕실 설비업체인 LIXIL코리아와 물품 공급 계약을 체결해 일본, 미국 등지로의 수출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백두대간 관광열차 1년 무료 이용 주인공은

    백두대간 관광열차 1년 무료 이용 주인공은

    코레일이 12일 백두대간 관광열차 O-트레인과 V-트레인의 운행을 시작했다. 이날 오전 코레일은 서울역과 경북 분천역에서 각각 축하 행사를 갖고, 정창영 사장이 중부내륙 순환열차 첫 번째 예매고객인 박상철(68)씨 부부(사진)에게 인증패와 1년 열차 무료 이용권을 전달했다.코레일이 이날부터 운행하는 백두대간 관광열차는 O-트레인과 V-트레인 두 코스로 이뤄져 있다. O-트레인은 서울역을 출발, 청량리역을 거쳐 제천역(충북 제천)~추전역(강원 태백)~승부역(경북 봉화)~풍기역(경북 풍기) 등을 돌아본 뒤 다시 제천역을 통해 서울로 돌아온다. 제천역을 기점 삼아 원형으로 순환한다 해서 O-트레인이라 이름붙였다.하루 4회 운행하는 O-트레인 첫 열차는 서울역에서 오전 7시 45분에 출발한다 V-트레인은 ‘V’자 형태의 협곡을 돌아본다는 뜻이다. 중부내륙 구간 중 가장 빼어난 풍경을 가진 분천~양원~승부~석포~철암역 간 27.7㎞ 구간을 하루 3회 왕복한다. 그 가운데 분천역~석포역 구간은 시속 30㎞로 천천히 운행한다. 열차가 서는 거점 역을 중심으로 트레킹과 사이클링 등의 여가 활동도 도입된다.시동은 건 백두대간 관광열차는 새 패러다임의 여행 문화를 창출할 것으로 보인다.코레일은 백두대간 관광열차표 판매 개시 9일 만에 7천700여명이 예매를 마쳤다고 밝혔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데스크 시각] 한반도의 봄/박홍환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한반도의 봄/박홍환 국제부장

    총탄과 포탄이 난무하는 세계 분쟁지역 소식을 최일선에서 전해주는 미국의 24시간 뉴스채널 CNN의 짐 클랜시 앵커가 서울로 달려왔다. 클랜시는 주요 시간대에 서울에서 한반도가 위기 상황이라는 내용을 전세계에 타전하고 있다. 전세계 CNN 시청자들은 클랜시의 서울발 보도를 지켜보며 한반도를 그가 이전에 종횡무진했던 르완다나 이라크 등과 동일시할지도 모를일이다. 클랜시뿐이 아니다. 세계 유수 언론의 분쟁지역 취재 전문기자들이 연일 서울과 판문점 부근을 서성대고 있다. 어느새 한반도가 전쟁 직전의 급박한 분쟁지역으로 부각되는 양상이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카톡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내용은 이렇다. “요즘 남북 정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북한은 한국을 침략하지 못합니다. 한국이 이처럼 완전무장했으니까요. 1. 집집마다 ‘핵’가족 2. 골목마다 ‘대포’집 3. 남자들은 ‘폭탄’주 4. 밤에는 ‘총알’택시” 여기에 “동네마다 ‘부대’찌개”라는 내용까지 곁들여진 완성판도 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버전의 풍자 글이 여럿 있는 모양이다. 목을 빼고 또 다른 분쟁 소식을 기다리던 일부 글로벌 매체들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정작 분쟁지역 취급을 받는 한반도의 한쪽 당사자들은 유머를 전파하며 낙관론을 펴고 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물론 지금은 위기 상황이다. 개성공단이 막혔고, 북한은 추가 도발을 공언(公言)하고 있다. 언제, 어떤 형태의 도발이 될지는 모르지만 김정은의 ‘집권 1년’ 행태로 볼 때 공언(空言)으로 그치지만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남과 북 사이에 어떤 형태의 직접대화가 없다는 점에서도 우려할 만한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상대방의 얼굴이 아닌 허공에 대고 퍼붓는 말은 애초 의도 이상으로 과격화질 수 있고, 실제 남과 북이 지금 그런 양상으로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나친 낙관론도 경계해야 하지만 실제보다 과장된 위기감 조장은 더욱 안 된다. 우리가 당사자로서 이 상황을 누구보다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결 방법도 우리가 찾아야 한다. “도와달라”며 워싱턴의 어깨에 기대거나 “압력을 넣어달라”고 베이징의 발목을 잡을 일이 아니다. 워싱턴이나 베이징 모두 각자의 관점에서 한반도를 지켜볼 뿐이다. 베이징 특파원 시절 북한 노동신문 특파원과 몇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첫번째 만남에선 데면데면하게 명함만 교환했다. 두번째 만남에선 애써 외면하는 그를 돌려세워 말을 붙였다. 세번째엔 그가 먼저 목인사를 건넸다. 남북관계는 지난 5년간 최악이었다. 남북이 직접 눈을 맞추지 못하고 허공을 향해 서로를 헐뜯는 목소리만 내뱉기에 바빴다. 그러다 보니 미국이나 중국 등 제3자의 역할이 더 부각됐다. 지금 한반도에는 봄이 오고 있다. 서울에는 목련이며 개나리, 벚꽃이 만개했다. 곧 평양에도 똑같은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4월 중순에 진눈깨비가 휘날리는 어처구니없는 날씨가 연일 이어지고 있지만 섭리는 이게 아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기대를 갖는다. 가지를 꺾어 꽃을 피우지 못하게 한다고 봄이 오지 못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남이든, 북이든 누가 먼저이든 상관없이 손을 내밀고 대화하면 지난 5년간의 ‘한겨울’ 같은 남북관계가 봄눈 녹듯이 시나브로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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