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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초보 무인기에 南 방공망 뚫렸다

    청와대와 군은 2일 백령도와 경기도 파주에서 지난달 추락한 무인항공기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에서 초보적 기술로 제작한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군은 뒤늦게 고성능 저고도 탐지 레이더를 해외에서 도입하는 등 방공작전 체제를 보완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동안의 안일한 경계태세가 논란이 되고 있다. 국방부는 한 관계자는 이날 “백령도와 파주에서 발견된 무인항공기가 연관성이 있고 동일하게 제작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파주에서 추락한 무인기 배터리 뒷면에 북한식 표기인 ‘기용날자’ ‘사용중지날자’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파주에서 발견된 무인기 경로가 북쪽에서 서울로 와서 다시 북쪽으로 가는 중이었으며 남은 연료가 북한 지역으로 충분히 복귀할 수 있는 양이었다”면서 “현재 추락한 소형 무인기는 이를 더 발전시키면 테러 목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동체는 레이더와 육안 관측을 회피하기 위해 소형으로 제작됐고 하늘색으로 위장 도색했으며, 비행체 재질도 탄소 소재인 폴리카본에이드”라면서 “사진 촬영 지역은 파주 등 경기 북부와 서울 지역 일부”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청와대에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북한의 무인항공기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군 조사 결과 무인기는 일제 캐논 카메라를 장착했으며 실시간 영상 송·수신은 불가능해 카메라로 정지 영상을 촬영하고 회수하는 방식의 초보 수준 정찰용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륙 방법은 발사대 사출 방식이고 회수는 십자형 낙하산을 이용한다. 이는 모두 군용 무인기에서 사용되는 방식이다. 군 관계자는 “이를 계기로 우리 군의 전반적 방공작전 체제를 보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은 지난달 24일 파주에서 무인기가 처음 발견됐을 당시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의 화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대공 용의점이 없다고 성급히 판단하는 등 북한의 무인항공기 위협을 과소평가했다는 지적이 남는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손성진 칼럼] 사법부의 역주행, 향판

    [손성진 칼럼] 사법부의 역주행, 향판

    ‘부러진 화살’만 나오면 흥분하는 판사들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광주 향판(鄕判) 사건은 사실을 왜곡한 통속 영화보다 저급하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이 사건의 전주곡은 이미 오래전부터 울렸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콧방귀로 일관하다 공들여 온 신뢰 회복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향판의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했다니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다. 10년 전쯤 대법원이 향판을 ‘지역법관’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하겠다고 했을 때 의구심을 숨길 수 없었다. 생색내기였을지 모르지만, 검찰이나 국세청 같은 기관들도 지역 토호들과의 유착을 걱정해 향피(鄕避) 원칙을 강조했었다. 대법원은 역주행을 한 셈이다. ‘지역 사정에 밝은 지역 법관들이 재판을 맡아 판결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하니 정말 그럴듯해 보였다. 지역법관은 서울 중심주의와 엘리트 의식이 어우러져 탄생했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속담이 있듯이 서울 중심주의는 뿌리가 깊다. 힘들게 공부해서 고시에 합격한 사람 치고 지방을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서울 근무에 대한 경쟁이 치열하니 지역법관을 미리 정해 평생 지역을 지키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인사의 숨통이 틔기 때문이다. 법관에게 사법시험 성적과 사법연수원 성적은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성적이 최상위인 엘리트들은 처음부터 서울과 수도권에서 근무하고 대법원에서 재판과 법원 행정의 역량을 기를 기회도 얻는다. 엘리트들에게 기회를 더 주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양보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지역법관이다. 그런데 재판의 효율성을 높이는 지역법관의 이점보다 유착의 폐해가 더 크다는 점을 대법원은 간과했다. 법관의 양심을 스스로 과신했다. 김병로 선생 같은 영원한 사표(師表)도 있고, 이 시대에도 조무제 전 대법관과 같은 청렴한 향판도 물론 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양심과 정의감은 가뭄철 논바닥처럼 메말라 붙고 있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할 수 있는 지조와 절개는 우리에게서 실종된 지 오래고 세류에 영합한 곡학아세(曲學阿世)만이 득세하는 세상 아닌가. 고려시대부터 향피와 유사한 상피제를 택한 것도 그런 연유다. 사람을 믿을 수 없으면 제도로 다스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어떤 직업보다 더 판사는 고고해야 하지만 그 또한 사람이다. 금전과 인간관계를 물리칠 만큼 초연히 살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초연히 살라고 요구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지연과 학연으로 얽혀 있는 고향 근무를 원하는 게 처음부터 그 속으로 뛰어들어 한통속이 되겠다는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고향에서 봉사하겠다는 순수한 향판까지 도매금으로 넘겨서도 안 된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향판 수십 년이면 선비 같은 판사라도 세속에 물들지 않을 수 없다. 작정한 향판이라면 누구에게도 고개 숙일 필요가 없는 지역의 ’황제’도 될 수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향판의 폐해는 10년 전에 했던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토호들과 어울려 광주 사건처럼 사법정의를 땅에 떨어뜨렸다. 변호사가 된 향판들은 지역 사건을 싹쓸이했다. 전·후임 향판들은 서로 밀어주고 끌어줬다. 판결의 신뢰도가 높아질 리가 없다. 한줄기 정의마저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특히 지방에서는 법조 3륜(三輪)이 사실상 공생 관계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그 사이에 지역의 권력층이 끼어들어 한 바퀴를 지탱한다. 틈바구니에서 멍드는 것은 힘없는 서민들이다. 제도는 좋지만 사람을 너무 믿었다. 달리 말하면 경판(京判)이 되지 못하는 판사들에 대한 일종의 보상책으로 만든 제도가 향판이 아니었을까. 시간이 지나면 향판은 향변(鄕辯)이 되어 돈과 권력을 동시에 쥐게 된다. 지방근무를 안타까워해 줄 때 향판은 속으로 웃고 있을지 모른다. 과오를 인정하고 지역법관제를 속히 개혁해야 한다. 그나마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sonsj@seoul.co.kr
  • 킹 美북한인권특사 한·일 방문

    킹 美북한인권특사 한·일 방문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이번 주 북한 인권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다고 국무부가 31일(현지시간) 밝혔다. 킹 특사는 한·일 양국 당국자들과 만나 최근 발표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조사 내용과 후속 대책 등을 논의하는 한편 북한에 1년 이상 억류돼 있는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석방 문제와 북한과 일본 정부 간 진행 중인 일본인 납치자 협상 등을 광범위하게 협의할 예정이다. 국무부는 킹 특사가 3~5일 일본을 먼저 방문하며 6일 서울로 이동해 외교부와 통일부, 청와대 관계자 등과 회동한 뒤 9일 출국한다고 밝혔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미술 작품을 구매한 당신 사회공헌도 함께했군요

    미술 작품을 구매한 당신 사회공헌도 함께했군요

    “7년 전 울산에서 서울로 상경했을 때 지하철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어둡고 천편일률적이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그렇게 살고 있더라고요. 이때부터 사소한 주변의 것들을 포착해 강렬한 색감으로 경쾌하게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회화를 전공한 신진 작가인 정도영(32)씨는 이렇게 말한다. 도예를 전공한 명가을(30) 작가가 구워낸 도자기에 색을 입혀 배트맨, 원더우먼, 토르와 같은 영화 캐릭터부터 레이싱 선수, 추리닝맨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의 표정을 경쾌하게 그려낸다. 푸른 초원에서 마냥 웃고 있는 여유로운 사람들의 익살스러운 표정도 예외가 아니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와 국내 아트페어 등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온 두 작가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5년간 함께 작업하며 무려 1000여명의 모습을 도자기에 담아왔다. 원형을 떠 가마에 굽고 채색·유약 작업을 거쳐 다시 가마에 들여놓는 도자 작업에 흠뻑 빠져 산다. 이들은 2일부터 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그림손갤러리에서 열리는 ‘행복의 발견’전을 통해 새로운 실험에 동참한다. 대한적십자사와 한국미술경영연구소가 주관하는 전시에서는 기본경비를 제외한 작품구매 수익금 전액이 대한적십자사에 그대로 기부된다. 예전 나눔전시와 달리 구입자의 이름으로 기부가 이뤄져 연말정산 등 다양한 소득공제 혜택을 챙길 수 있다. 두 작가의 협업 작품들은 해학적이다. 과장된 표정과 색채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물질에 대한 욕망이나 소유를 추종하는 삶의 의미를 되묻는 듯하다. “현대사회와 사회를 구성한 사람들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어요. 그리고 도자기가 갖고 있는 속성을 작품의 의미와 결합시켰죠. 도자기는 화려하지만 동시에 작은 충격에도 산산이 조각날 수 있는 이중성을 지녔어요. 아슬아슬한 삶의 모습이죠.”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유망 작가를 발굴, 후원하는 한편 미술작품 소비가 사회공헌 기부활동으로도 확장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특별한 계층의 특별한 소비행위로 여겨지는 미술 소비문화의 저변을 확산시켰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지구 6000바퀴 돈 KTX, 종착역은 ‘안전’

    지구 6000바퀴 돈 KTX, 종착역은 ‘안전’

    전국 반나절 생활권을 실현한 고속철도(KTX)가 개통 10주년을 맞았다. 코레일은 2004년 4월 1일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고속철 시대’를 연 KTX의 누적 이용객이 4억 1400만여명으로, 전 국민이 평균 8차례 이상 탑승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30일 밝혔다. 현재 하루 평균 이용객은 15만명으로 개통 첫해(7만 2000명)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운행 횟수는 첫해 하루 132회에서 232회로 늘었고, 하루 평균 주행 거리도 4만 8000㎞에서 8만 8000㎞로 확대됐다. 개통 이후 총 운행 거리는 2억 4000만㎞로 지구(4만 192㎞)를 5971바퀴 돈 거리다. 첫해 5500억원에 불과했던 운행 수입은 지난해 말 1조 6000억원으로 늘었고, 코레일 전체 여객 수입의 76%를 차지하고 있다. KTX를 이용한 출퇴근도 증가했다. 첫해 8202장이던 정기권은 지난해 7만 1770장으로 9배 증가하고 하루 이용객이 7000명에 달했다. 서울~천안아산이 23.8%를 차지했다. KTX는 국내 출장을 당일 출장으로 바꿔놨고, 서울로의 원정 쇼핑과 의료 진료도 가능하게 했다. 또 KTX 정차역 주변이 지역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역세권 효과도 낳았다. KTX가 빠르게 안착한 이유에는 높은 정시율(도착 예정 시간 15분 이내 도착)도 있다. 정시율은 첫해 86.7%에서 현재 99.8%에 이른다. 그럼에도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 탈선 사고와 차량 고장 등에 따른 지연 운행으로 운임을 환불해 준 건수가 연간 30여건에 이르고 있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국민 생활의 친숙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안전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내러티브 리포트] 전남 신의도 염전마을 가보니…

    [내러티브 리포트] 전남 신의도 염전마을 가보니…

    지난 21일 국내 최대 천일염 산지로 알려진 전남 신안군 신의도. 소금 생산 개시일(28일)을 1주일 앞둔 시점인데도 척박한 소금밭에는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만 있었다. 이맘때쯤 염전 다지기 작업인 ‘로라질’에 한창이어야 할 염부(염전 인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달 초 불거진 ‘염전 노예’ 사건 이후 전남경찰청 ‘도서인권보호특별수사대’가 민간인권단체인 전남장애인인권센터와 신의도에 상주하며 염부들을 상대로 면담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부 염전주는 임금 체불 사실이 드러날까 봐 염부들을 섬 밖으로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7일 시작된 도서인권보호특별수사대의 염부 면담 조사는 수십 년간 공공연하게 인권유린이 묵인된 이곳에서 최초로 이뤄지는 시도다. 수사대는 현재까지 신의도 내 염전 239개를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를 30% 정도만 마친 상태다. 이날 면담이 이뤄진 염부 A(38)씨도 무허가 직업소개소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A씨는 서울 노원구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군대까지 다녀왔지만 오랜 노숙생활로 사회성이 매우 취약했다. 2011년 신의도에 들어온 A씨는 이듬해 염전 주인이 노환으로 숨지면서 서울로 올라갔다. 한 달간 일자리를 구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실패했다. 결국 전에 일했던 염전 주인의 친척 집 염전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지난달 염전 노예 사건이 불거진 이후 부랴부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근로계약서에는 A씨에게 염전철인 4~10월 매달 100만원씩을 지급한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A씨는 염전철이 아닌 11~3월에도 박씨의 밭일과 소금을 옮겨 싣는 일을 도왔다고 증언했다. A씨는 원형탈모증을 앓고 있었으며 치과 치료를 받지 못해 어금니가 모두 빠진 상태였다. 지난 3년치 임금만 제대로 받았어도 치료할 수 있었을 터였다. 신의도에서 만난 염전주들은 면담조사에 대해 볼멘소리를 했다. “한 명당 면담이 5~6차례 이뤄지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는 염부들이 자진해서 염전을 떠났다”고 말했다. 수사대 측은 “대부분 지적장애가 있거나 오랜 노숙생활로 사회성이 떨어진 상태라 마음을 열려면 5~6차례 정도 만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염전 노예 사건의 진원지로 질타를 받으면서 마을 주민들은 외지인에게 마음의 문을 닫았다.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인력난이 가중된 탓에 생계가 어렵다며 원망했다. 염전주 B(60·여)씨는 “염전 일은 일반인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이라며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직업소개소와 염전주의 관계에서 인력브로커들이 ‘갑’”이라고 말했다. 15년간 부모에게 물려받은 염전을 운영해 온 C(41)씨는 “구인광고를 통해 인력을 구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허가 직업소개소를 통해서라도 사람을 구하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신의면사무소에서 만난 염전주협의회 박영호 회장은 “300명에 이르던 염부들 수가 70~80명으로 감소하는 등 섬 전체가 뒤숭숭하다”면서 “염전주의 인권 의식을 바로잡으려고 지난달에 이어 25일에도 교육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안군의 본격적인 천일염 생산을 알리는 ‘채렴식’도 다음 달 15일로 미뤘다고 했다. 목포에는 염전주에게 노숙인이나 지적장애인들을 알선하는 직업소개소가 130여개나 있다. 이 중 70%는 무허가 직업소개소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본인이 어떤 경로로 신의도에 왔는지 기억하는 염부가 손에 꼽힐 정도라 장애인들을 알선한 직업소개소를 단속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인권센터 관계자는 “지자체나 고용노동부가 장애인을 고용한 염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임금 체불, 인권유린 등을 단속해야 하는데 손을 놓고 있다”면서 “남의 자식을 데려다가 한 평 남짓한 방에 재우면서 가혹행위나 임금을 체불한 염전주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신안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내러티브 리포트] ‘염전노예’ 사건 그 이후… 지적장애 박씨는 왜 제 발로 염전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나

    [내러티브 리포트] ‘염전노예’ 사건 그 이후… 지적장애 박씨는 왜 제 발로 염전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나

    지난달 한 노모가 장애인 아들이 보낸 편지를 들고 서울 구로경찰서를 찾아와 수사를 의뢰하면서 ‘염전 노예’ 사건이 알려진 지 40여일이 흘렀다. 이후 전남청 도서인권보호특별수사대가 전남 신안군 신의도에 상주하면서 조사한 결과 체불·폭행·강제노동 등을 당한 염부(염전 인부) 가운데 탈출 의사를 밝힌 30여명이 구조됐다. 이 가운데 2006년 염전 인권유린 사건이 터지면서 구출됐던 지적장애 3급 박모(42)씨가 지난달 같은 염전에서 또 발견됐다. 그는 8년 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6개월 만에 제 발로 다시 염전에 돌아갔다고 했다. 자활의지는 충만했지만 어떤 정책적 도움이나 사회적 관심도 받지 못했기에 염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박씨의 지난 15년을 내러티브 리포트 형태로 재구성했다. 2000년 3월, 박씨(당시 28세)는 서울 영등포 역 근처에서 낯선 남자를 만났다. 허기진 박씨에게 따뜻한 국밥을 사주며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16세에 집을 나와 1999년 첫 직장이던 신발공장이 망한 뒤 노숙생활을 전전했던 그가 모처럼 맞닥뜨린 호의였다. “시켜만 주면 일을 잘할 자신이 있었어….” 당시를 떠올리던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따뜻한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는 일자리는 흔치 않았기에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았다. 그저 돈을 벌어 공장에 다닐 때처럼 주말이면 놀러도 가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었다. 목포여객터미널에서 두 시간 배를 타고 신의도에 도착한 뒤에야 그곳이 염전이란 사실을 알았다. 주인집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그래도 박씨는 주인을 나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담배나 과자값을 꼬박꼬박 챙겨줬고 11월 염전 철이 끝나면 서울이나 목포에 다녀오라고 용돈도 줬다. 애당초 박씨에게는 노동에 따른 정당한 대가인 ‘임금’ 개념이 뚜렷하지 않았던 셈이다. 염전 철인 4~10월 매일 새벽 4시에 눈을 떠 13~14시간을 일했고 11~3월에는 주인집 농사일과 소금 옮기는 일을 했다. 주인이 쥐어 준 돈은 과자·담배값 정도. 통장이 있기는 했지만 주인이 관리했기 때문에 얼마를 받았고, 얼마를 더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일이 고되고 주말에도 쉴 수 없다는 게 힘들었다. 몇몇 염부들이 몰래 도망갔다는 소식도 들려왔지만, 탈출을 꿈꾸지는 않았다. 어차피 서울에 가더라도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박씨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염부 생활 7년째이던 2006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신의도 염부들의 노예 같은 삶을 다루면서 경찰이 탐문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임금 체불이나 폭행, 강제 노동을 당한 염부들을 구조했다. 염전 주인은 3년간 밀린 임금을 박씨에게 물어줬다. 박씨는 생전 처음 목돈을 쥐었다. 18년 만에 대구에 사는 이복 누나도 찾았다. 부모는 돌아가신 지 오래였다. 박씨의 사연을 소개한 방송사에서 연락하자 누나는 “데리고 와라. 같이 살겠다”고 했다. 일자리도 구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새로운 삶은 녹록지 않았다. 2006년 6월 누나 집 근처에 방 한 칸을 얻어 미장일을 시작했지만 허리를 다쳐 4개월 만에 일자리를 잃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데다 몸도 성하지 않으니 불러 주는 곳이 없었다.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누나나 당시 그를 발견한 수사팀이 장애 진단을 받을 수 있게 해 줬거나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제공하는 교육훈련을 받도록 했다면 다른 희망을 찾을 수 있었을 터. 그러나 누구도 그에게 지적장애 등급을 신청하라는 얘기를 해 주지 않았다. 2007년 1월, 박씨는 염전을 나온 지 6개월 만에 제 발로 지긋지긋한 섬으로 돌아갔다. “나도 밥은 먹고 살아야지…. 그래서 염전 주인한테 내가 전화했어.” 이복 누나도 말없이 그를 보냈다. 그렇게 8년을 또 염부로 지냈다. 휴대전화도 있었고 염전 철이 끝난 11월에는 용돈 50만원을 가지고 나와 서울, 목포를 돌아다녔지만, 경찰이나 장애인단체에 연락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자칫 일자리를 잃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염전 주인의 임금 체불은 여전했지만 서울이나 목포에서 굶거나 노숙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믿었다. 현재 박씨는 신의도에서 나와 목포의 한 노숙인 시설에 머물고 있다. 전남장애인인권센터의 도움으로 최근 병원에 가서 장애 진단도 받았다. 이제 신청만 하면 지적장애 3급을 받는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도 품게 됐다. “대구에서 초등학교 6학년까지 다닐 정도로 기본적인 것은 배웠어…. 시켜만 주면 일은 잘할 수 있어”라는 그의 말은 어눌했지만, 확신이 느껴졌다. “26년 전에 다녔던 공장과 비슷한 곳에서 일하고 싶어. 토요일에는 내가 번 돈으로 맛있는 것도 먹고 야구장에도 갈 거야”라고도 했다. 박씨는 염전 주인이 지난 8년간 체불한 임금 가운데 3년치만 받을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염전 주인이 박씨를 8년이나 노예처럼 부렸더라도 임금 청구 시효가 지나지 않은 3년치만 의무적으로 지급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박씨처럼 장애가 있을 경우에는 농촌 일용직 근로자 평균 급여에서 일률적으로 노동상실률 50%를 뺀 금액만 받을 수 있다. 나머지 5년치의 임금을 받으려면 3년 안에 소송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박씨는 3000만원 정도의 돈이 생기면 당장 서울로 갈 생각이다. 그는 “법원에 가는 것보다 그냥 빨리 일하고 싶어”라며 해맑게 웃었다. 목포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뉴스 분석] ‘김황식 호남 후보론’ 후발주자 약점 극복할까

    6·4 지방선거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한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노골적으로 ‘호남 후보론’을 들고 나오면서 과연 ‘김황식표’ 호남 후보론이 서울시장 본선에서 얼마나 파괴력이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호남 후보론은 호남 출신인 김 전 총리가 새누리당의 후보가 돼 민주당 소속 박원순 시장과 맞붙을 경우 서울의 호남 출신 유권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논리다. 한마디로 기존 새누리당 지지층에 더해 민주당 성향의 야권표를 잠식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아무리 호남 후보를 내세워도 민주당 지지층은 동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호남 후보 회의론의 요체다. 서울신문이 21일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은 결과 관측은 엇갈렸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본선 무대에서 ‘박원순 시장+안철수 의원’에 대한 호남 출신 유권자들의 지지를 김 전 총리가 뺏어올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면서 “광주일고 출신이라는 점으로 호남 후보론을 내세우기엔 모자란 측면이 있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그는 “호남 출신 유권자들에게 부정적 이미지가 굳어진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총리를 지냈다는 점도 마이너스 요소”라고 덧붙였다. 반면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서울 인구의 약 25%가 호남 출신인 점을 고려하면 표 잠식 가능성이 상당하다”면서 “특히 민주당 지지층 중 친노무현계를 싫어하는 상당수 유권자들과 호남 출신 중 중도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긍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호남 출신 유권자에게는 호남 출신인 김 전 총리가 영남권 지역구를 오래 했던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보다 강점인 측면이 훨씬 많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다만 “유권자들이 원적지(본인 출생지가 아닌 조상의 고향)에 기반한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갈수록 옅어지고 있어 새누리당 소속 호남 후보의 의미는 떨어진다”고 일정부분 한계를 지적했다. 이 대표는 본선이 아닌 당내 경선에선 새누리당 지지자뿐 아니라 야권 지지자도 여론조사·일반 국민 선거인단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김 전 총리의 출신지가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윤희웅 민정치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서울지역의 호남 원적자들이 일반국민 선거인단 모집에 적극적으로 응할 가능성이 높지 않고 여론조사 비율(20%)을 감안하면 호남 후보론만으로 당내 지지율을 역전시키기엔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진단했다. 김 전 총리 측 관계자는 “호남 후보론이 주요 전략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새누리당의 호남 후보는 분명히 지역 통합의 상징이 될 수 있다. 4월 초반을 기점으로 지지율 추세가 역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총리는 지난 16일 출마선언 때 “지역·계층·세대·이념으로 분열, 대립하는 서울을 하나 되는 서울로 만들겠다”며 지역화합형임을 강조했다. 반면 정 의원 측 박호진 대변인은 “본선에서 유권자들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민주당 소속 박 시장’과 ‘호남 사투리를 쓰는 새누리당 소속 김 전 총리’ 중 당을 따라 민주당을 찍을 것”이라면서 “결과는 자명하다”고 했다. 박 대변인은 “김 전 총리의 인지도가 70%에 불과하고 더 올라간다고 해도 지지로 직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뮤지컬 女배우, 헤어진 남친에게 살해될 뻔한 위기 넘겨

    서울 방배경찰서는 14일 헤어진 여자친구인 뮤지컬 배우 A씨를 납치하고 목을 졸라 살해하려 한 혐의로 김모(30)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달 28일 오후 9시 10분쯤 A씨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강원도 인제의 한 도로에서 차를 세우고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어 나와 헤어진 것 아니냐”며 A씨의 목을 졸라 실신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이날 오후 4시쯤 서울 시내에서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하고 A씨를 만나 자신의 차에 태웠지만 A씨가 잠이 들자 갑자기 강원도로 간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인제 지역을 지나던 중 차 안에서 A씨에게 다시 사귀자고 요구했지만 A씨가 “지금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면서 거부하자 화를 참지 못하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목이 졸려 실신한 A씨를 차에 태워 서울로 돌아왔고 도중에 정신이 든 A씨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지금 만나는 남자 때문에 당신과 헤어진 것은 아니다”라며 김씨를 설득했다. 감정이 가라앉은 김씨는 A씨를 집에 데려다 줬고 무사히 귀가한 A씨는 경찰에 김씨의 범행을 신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두 사람은 연인으로 지내다 1년 전 헤어졌는데 김씨는 A씨가 다른 남자를 만나서 자신과 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김씨에게 처음부터 살해 의도가 있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무상복지 부메랑 보고도 ‘공짜버스’ 말하나

    다시 선거의 계절임을 실감한다. 6·4 지방선거가 두 달 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공짜’를 내세운 달콤한 공약들이 춤을 추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의 ‘무상버스’ 공약이다. 김 전 교육감은 출마 선언을 하며 “버스 완전공영제를 단계적으로 실시해 무상 대중교통의 첫걸음을 떼겠다”고 공언했다. “복지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문제”라는 소신도 밝혔다. 무상급식 공약으로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그로서는 퍼주기식 공약의 유혹을 쉽게 떨쳐내기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이 이른바 ‘3무 1반’ 공약을 내걸면서 등장한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 약속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국민은 잘 알고 있다. 무상급식에 돈을 쏟아붓다 보니 다른 교육 예산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명예퇴직 예산이 크게 줄어들면서 명예퇴직자는 대폭 감소했고, 이는 신규 교사 충원의 차질로 이어졌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올해 서울지역 초등 임용고시 합격자의 신규 교사 발령 비율은 예년의 10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물론 이런 교육현장의 악순환을 무상급식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원인의 태반은 무절제한 무상공약 남발에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도 김 전 교육감의 단선적인 복지관은 교정돼야 마땅하다. 복지가 의지의 문제인 것은 맞다. 하지만 복지는 명백히 돈의 문제이기도 하다. 마치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낼 수 있는 양 무차별 복지공약을 외쳐대는 것은 평균인의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전문가들은 버스완전공영제는 고사하고 준공영제를 실시하는 데도 매년 5000억원 이상의 추가 재정부담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최근 지방자치단체와 산하 공기업 등의 부채 총액은 100조원이 넘는다. 경기도는 올해 무상급식 예산을 삭감할 정도로 재정난이 심각하다. 경기교육감을 지내며 이 같은 현실을 누구보다 똑똑히 봤을 텐데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청개구리식 ’ 공약을 내놓으니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김상곤표 공짜버스 공약이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경기지사에 뜻을 둔 다른 후보들도 ‘무상열차’에 올라타려 한다는 점이다. 대중교통이 서민복지의 한 축인 만큼 버스 공공성 강화 차원의 논의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집중된 수도권의 경우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이 하루 125만명에 이르는 현실이고 보면 대중교통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임에 틀림없다. 수도권 대중교통정책의 교통정리를 위해서도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짜 버스시대를 열겠다며 무리해서라도 덜컥 내지르는 식의 공약이라면 건전한 정책경쟁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 논의구조를 왜곡시키기 십상이다. 김 전 교육감 측은 “곧 실행계획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엄청난 소요 재원을 감안하면 똑 부러진 대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방선거 공약도 국회 입법과정에서처럼 ‘페이고(PAYGO) 원칙’을 적용해 재원 확보 방안부터 내놓게 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배경이다. 선거를 앞두고 기승을 부리는 포퓰리즘성 공약에 이제는 정말 유권자들이 따끔한 표심을 보여줘야 한다.
  • ‘김포풍무 푸르지오 센트레빌’ 팔방미인 아파트 눈길 사로잡는다

    ‘김포풍무 푸르지오 센트레빌’ 팔방미인 아파트 눈길 사로잡는다

    대우건설과 동부건설이 시공하는 ‘김포풍무 푸르지오 센트레빌’이 총 5000여 가구 중 1차로 아파트 23개동 2712가구를 분양 중이다. ’김포풍무 푸르지오 센트레빌’은 보육특화 단지로 잘 알려져 있으며, 지하 1층~지상 2층 1715㎡ 규모로 220명의 아이를 수용할 수 있다. 또한 국내 최초로 숙명여대가 직접 운영할 예정이다. 내부 평면 역시 4베이 구조로 자녀방을 전면에 배치해 채광을 극대화 했으며, 알파룸을 제공, 침실 또는 다른 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알파룸은 주택형에 따라 수납·학습·서재·놀이 및 가족소통 공간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대단지에 걸맞은 고품격 프리미엄 커뮤니티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커뮤니티시설은 지하 2층~지상 2층 6000여 ㎡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 내부시설로는 스포츠존, 에듀존, 컬처존으로 구성돼 있으며 골프연습장, 다목적 실내체육관, 북센터, 티하우스,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선다. 김포도시철도와 인근 지역의 개발호재도 다양해 프리미엄을 기대해 볼만 하다. 먼저 4월초 김포도시철도가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포도시철도가 개통될 경우 가칭 풍무역(2018년 개통 예정)을 도보로 3분~5분이면 이용할 수 있다. 주변 지역인 고촌의 비즈니스 호텔과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시네폴리스의 개발도 ‘김포풍무 푸르지오 센트레빌’의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로의 출퇴근 또한 편리하다. 단지에서 인접한 올림픽대로를 이용하면 여의도까지 20분대, 강남까지 40분대에 이동이 가능하다. 서울외곽순환도로 김포나들목, 자유로, 강변북로 등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고, 제2외관순환도로의 김포~인천 구간의 개통도 임박했다.(2017년 개통 예정) 학군도 눈에 띈다. 김포 3대 명문고로 불리는 김포고·사우고·풍무고가 단지 인근에 있으며, 풍무초를 비롯 2012년도 대한민국 최우수 초등학교로 선정된 혁신학교 신풍초도 가깝다. 학원가 역시 단지 옆 사우동에 위치해 있어 주거환경, 교통, 교육 삼박자를 두루 갖춘 서부수도권의 신중심지로 손색이 없다. 주택형은 전용면적 기준 59~111㎡며, 59㎡ 571가구, 72㎡ 346가구, 84㎡ 1527가구, 108㎡ 136가구, 111㎡ 132가구로 실수요자에게 인기가 높은 중소형 아파트가 분양물량의 90%를 차지한다. 입주는 2016년 6월예정이다. ’김포풍무 푸르지오 센트레빌’은 1차 계약금 500만원 정액제와 중도금 무이자 혜택을 실시하고 있다. 중도금 무이자 대출만으로 전용 84㎡기준 약 1100만원의 이자 비용이 절감돼 계약자들의 부담이 줄었다. 모델하우스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어 방문 전 전화 예약이 필요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로봇고 1년 만에 삼성전자 장학생 22명 배출

    서울로봇고 1년 만에 삼성전자 장학생 22명 배출

    서울 강남구에 있는 서울로봇고교(옛 강남공고)가 마이스터고로 지정된 지 1년 만에 1학년 학생 22명을 삼성전자 장학생으로 배출해 화제다. 서울시교육청은 13일 서울로봇고 1학년 학생 153명 중 22명이 삼성전자 장학생으로 최종 선발됐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와 산학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해 매년 외국어, 언어, 수리, 추리, 지각 능력 등을 평가하는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와 포트폴리오, 면접으로 전국 마이스터고 39개교 1학년 학생 중 100명 안팎을 선발하고 있다. 선발된 학생들은 2년 동안 1인당 500만원의 장학금을 받는다. 학기 중에는 맞춤형 방과 후 수업을 받으며 현장에서 필요한 전문기술 지식을 배운다. 방학 중에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인턴십 과정을 거친 후 졸업과 동시에 정규직으로 채용된다. 선발된 학생들은 전문대학 졸업자에 준하는 우대를 받는다. 서울로봇고는 첨단로봇학과와 로봇설계·로봇제어·로봇시스템 등 3개의 마이스터 코스를 운영 중이다. 노태석 교장은 “정부의 선취업 후진학 정책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운영한 것이 성공을 거뒀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씨줄날줄] 광화문 시복 미사/서동철 논설위원

    교황청이 시복(諡福)을 확정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모두 극적이다. 그럼에도 역사책에서 낯이 익은 몇몇 순교자에게는 어쩔 수 없이 관심을 조금 더 갖게 마련이다. 정약종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는 잘 알려진 것처럼 천주학에 일찍이 눈을 뜬 북한강변 마재(馬峴) 정씨 집안의 약현, 약전, 약종, 약용 형제의 일원이다. 약종 아우구스티노는 형제 가운데 가장 늦게 천주학에 입문했지만, 믿음은 가장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초의 우리말 교리서인 ‘주교요지’(主敎要旨)를 펴냈고, 교리를 집대성한 ‘성교전서’(聖敎全書)를 편찬하다 신유박해(1801)를 만나 배교를 거부하고 참수됐다. 약종과 함께 복자(福者)에 오르는 큰아들 철상 가롤로는 아버지가 순교한 날 붙잡혔고, 역시 한 달 뒤 같은 길을 갔다. 정약종 집안이 보여준 신앙의 깊이는 세계 천주교 역사에서도 다른 유례를 찾기 어렵다. 부인 유 체칠리아와 작은 아들 하상 바오로, 딸 정혜 엘리사벳은 기해박해(1839) 때 가장의 뒤를 따랐다. 온 가족이 순교의 길을 택한 것이다. 유씨 부인과 하상, 정혜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한국을 찾은 1984년 ‘한국 순교자 성인 103위’의 일원으로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시성(諡聖)은 조선에 선교사 파견이 본격화된 이후 파리외방전교회의 기록에 의존한 것이라고 한다. 반면 ‘윤지충과 123위’는 국내 자료를 발굴해 개개인의 순교 과정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노력의 결과로 평가된다. 따라서 정약종 같은 초기 순교자가 대거 포함될 수 있었다. 한국 교회가 시복 결정에 더욱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일 것이다. 정약종은 체포 과정도 ‘확신범’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신유년 음력 2월 마재에서 서울로 말을 타고 가는 길에 급하게 달려가는 금부도사와 엇갈렸다. 곧바로 사람을 보내 누구를 잡으러 가는지 알아보게 했고, 대상이 자신임을 확인하고는 곧장 의금부로 갔다. 그에게는 극형이 불가피한 ‘대역부도’죄가 씌워진 만큼 마지막에는 형조에서 국왕의 처결을 기다렸을 것이다. 형조는 관청이 한데 모인 광화문 육조거리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었다. 그는 2월 26일 서소문 형장에서 태연한 모습으로 조용히 칼을 받았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8월 시복 미사 장소로 서울 광화문 일대가 적극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권력이 집중된 경복궁에서 숭례문에 이르는 거리가 거대한 성당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국가가 용인하지 않는 종교적 신념을 가졌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은 혼령의 해원(解寃)에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을 듯하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현금수송차 절도범은 前직원… “생활고 때문에”

    현금수송차 절도범은 前직원… “생활고 때문에”

    경부고속도로 부산요금소 부근에서 발생한 현금 수송차량 절도범은 수송대행업체의 전 직원으로 밝혀졌다. 부산 금정경찰서는 11일 현금 2억 1900만원을 실은 수송차량을 훔쳐 달아난 혐의(절도)로 설모(25)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설씨는 지난 10일 오전 3시 28분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부산요금소 주차장에서 현금을 실은 수송차량을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날 0시 15분쯤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한 모텔에 숨어 있던 설씨를 붙잡았다. 경찰 조사 결과 설씨는 현금 수송대행업체에서 6개월간 근무하다가 지난해 12월 31일 퇴사했다. 당시 설씨는 수송차량의 예비열쇠를 훔쳐 보관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설씨는 지난 9일 오후 10시 50분쯤 지인에게 쏘렌토 승용차를 빌려 범행 장소에서 800m가량 떨어진 한적한 골목에 주차한 뒤 부산요금소 주차장 근처에 숨어 있었다. 이후 수송차량 직원 2명이 모두 자리를 비운 사이 예비열쇠를 이용, 차를 몰고 쏘렌토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도주한 뒤 돈다발을 옮겨 싣고 서울로 달아났다. 경찰은 범행 현장 주변의 폐쇄회로(CC)TV 화면을 정밀 분석해 설씨의 신원을 확인한 뒤 휴대전화 발신지를 추적, 서울 모텔에 숨어 있는 설씨를 붙잡았다. 설씨는 탈취한 현금 2억 1900만원 중 50만원가량을 사용했으며 나머지 2억 1850만원은 차량 뒷좌석에 보관해 놓았다. 경찰은 돈을 모두 회수했다. 부산의 모 전문대를 중퇴한 설씨는 퇴사 후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생활해 왔고 휴대전화 요금을 내지 못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설씨는 단독 범행을 주장하고 있지만 경찰은 공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통화 내역 등을 분석하고 있다. 설씨는 경찰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워 며칠 전부터 혼자 범행을 계획했고 훔친 돈으로 여행이나 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아파트(상)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아파트(상)

    서울은 넓고 그리고 깊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장기연재한 ‘서울택리지’가 서울의 윤곽을 더듬는 도시학적 탐사였다면 이번에 후속으로 선보이는 ‘서울택리지-테마기행’은 서울의 속살을 찬찬히 살펴보는 풍물적 탐사의 성격을 띨 것입니다. 먼저 세계 최고,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서울의 아파트와 아파트 문화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어 서울의 극장, 백화점, 호텔, 공원, 시장의 명멸사(明滅史)를 추적할 작정입니다. 서울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지하상가와 지하도, 고가도로와 육교의 부침이나 한강 다리와 나루의 변천도 들여다보기의 대상입니다. 물난리와 하천복개, 전차, 판자촌과 달동네, 다방·댄스홀 같은 유흥업소에 얽힌 흘러간 추억도 되새김해 볼만할 겁니다. 지구상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다이내믹이 지배하고 있는 서울의 변화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볼까요? ●어쩌다 아파트가 서울의 압도적 주거문화가 됐을까 아파트는 서울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한국사회를 읽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서울사람 열 명 중 여섯 명이 아파트에 살고 있고, 서울 도시경관을 아파트가 주도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여성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원)교수가 2007년에 출간한 ‘아파트 공화국’은 파리의 아파트가 아니라 서울의 아파트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줄레조는 1990년 서울 방문길에서 공룡처럼 군림하고 있는 아파트와 아파트단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주저 없이 ‘서울의 아파트’를 박사학위 논문의 연구주제로 선택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서울의 아파트 건설 이유와 한국인들의 아파트에 대한 열망을 분석해 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10년 넘게 걸린 긴 조사과정을 통해 그녀는 왜 아파트가 서울의 지배적인 주거형태가 됐으며, 한국의 중산층은 왜 아파트에 집착하느냐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졌다. 이방인의 눈에는 희귀한 이상현상이었지만 한국사람들은 덤덤했다. “그런 것도 연구대상인가”라는 조롱 섞인 핀잔을 극복하고 줄레조는 2003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아파트문화 분야연구의 독보적인 학자로 인정받는다. 유수 기관들이 그녀를 초빙해 강연을 듣는다. 줄레조의 의문에 한국사람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서울은 땅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아서 아파트라는 거주형태의 선택이 불가피했다고. 우리가 알고 생각하는 대로다. 그러나 줄레조의 연구결과는 달랐다. 한국사회에서 아파트는 ‘압축된 현대성’(compressed modernity)의 반영이었다. 아파트는 돈이나 주식과 비슷한 환금성을 가진 재화인 동시에 현대화의 매개체 또는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1970~80년대 산업화를 담당한 권위주의 정권과 재벌, 중산층이 맺은 ‘3각 동맹’이 아파트를 상위 계급화했다고 주장한다. 아파트는 서울사람, 나아가 한국인 욕망의 상징이며 3각 동맹이 건재하는 한 아파트에 대한 환상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아파트와 아파트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비평한다. 영화평론가 이형석은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집의 역사’와 다름없다”라면서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갖는 것을 중산층 평균적 삶의 실현으로 봤다. 주거지역과 평형, 아파트 건설회사의 브랜드가 신분을 드러내고, 재개발이나 뉴타운 공약이 선거 판세를 좌지우지하고, 아파트 정책이 정권의 성패를 가르는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이다. 2004년에 출현한 초고층 최첨단 주상복합 아파트는 또 다른 성공과 신분을 상징하는 ‘욕망의 바벨탑’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경제 칼럼리스트 우석훈도 줄레조의 분석에 동의하면서 중산층의 욕망과 개발독재의 획일성이 결합된 부동산정책과 아파트공화국의 파국을 예고했다. ‘아파트 한국사회’를 펴낸 건축가 박인석(명지대) 교수는 “문제의 핵심은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라고 비판의 대상을 좁혔다. 아파트라는 주거형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담장을 둘러친 ‘단지’가 문제라는 인식이다. 그는 아파트를 열악한 도시환경이라는 사막 속에 자리 잡은 ‘사설(私設) 오아시스’라고 명명하면서 오아시스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임대아파트 단지, 분양아파트 단지, 주상복합아파트 단지처럼 아파트 단지가 재산가치에 따라 계급화하면서 계층적으로 폐쇄성을 띤다고 보았다. ‘단지 해체’가 왜곡된 아파트문화를 바로잡는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충정아파트부터 와우아파트까지… 아파트의 부침 아파트가 서울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30년대였다. 일제는 회현동에 3층짜리 공동주택(미쿠니아파트)을 지은 데 이어 1932년 충정로에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충정아파트(도요타아파트)를 지었다. 혜화동과 적선동 등에도 아파트가 선보였다. 주로 일본인 임대·거주용이었다.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8층짜리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이었으니 충정아파트는 당장 도시의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아파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 르 코르뷔지에가 주창한 미래주택 개념에 따른 획기적 건축물이었다. 이 아파트는 한때 호텔(트레머호텔, 코리아관광호텔)로 개조됐다가 다시 아파트(유림아파트)로 되돌아갔다. 1979년 충정로 8차선 확장으로 건물 절반이 뜯겨나가는 곡절을 겪었지만 살아남았다. 서울시는 지난해 충정아파트를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로 공인, ‘100년 후의 보물, 서울 속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정부 수립 이후 지어진 최초의 민간아파트는 1958년 중앙산업이 성북구 종암동에 세운 종암아파트였다. 17평짜리 4층 건물에 152가구가 살았다. 정식명칭은 ‘종암 아파트먼트 하우스’였지만 ‘종암아파트’로 줄여 부르면서 ‘아파트’라는 용어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잘나가는 기업인, 정치인, 예술가들이 입주했으며 최초의 옥내 수세식 화장실과 입식 부엌이 장안의 화제였다. 특히 양변기로 대변되는 화장실 문화의 대혁명을 알린 옥내 좌식화장실은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같은 변기에 앉아 일을 보는 해괴망측한 서양문화의 무분별한 도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온돌이 깔린 침실이 현관이나 주방, 거실보다 한 단이 높은 특이한 구조였다. 1995년 종암선경아파트로 재건축됐다. 1962년 안양으로 이전한 마포형무소 자리에 대한주택공사가 최고급 마포아파트(도화동 삼성아파트)를 건립하자 서울의 모던보이와 모던걸 사이에 아파트는 일약 선망의 대상이 됐다. 입주 초기 연탄보일러 중독사고가 연발하고 부유층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했지만, 아파트주변에 담장을 쌓아 외부와 격리시키는 ‘자폐적 공간’을 조성하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세계 유일의 ‘한국형 아파트 단지’의 모델등장이었다. 서울로의 ‘광적인’ 인구유입은 주택난을 부채질했다. 도심과 가까운 지역의 산비탈과 국공유지변 하천부지를 꽉 메운 토막집과 판잣집을 밀어내고 시민아파트를 지었다. 당시 지은 낙산 시민아파트 등 대부분 시민아파트는 경관훼손 사례로 낙인 찍혀 1990년대 철거 신세를 면치 못했다. 김현옥 시장(1966~70년 재임)이 주도한 시민아파트는 본래 철거민 수용용이었다. 시민아파트 1호는 천연동 금화아파트였다. 한 서울시 공무원이 해발 203m의 산꼭대기에 아파트를 짓는 이유를 묻자 김 시장은 “이 바보야 높은 데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볼 것 아니냐”라고 답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전해진다. 1968~69년에 지은 시민아파트는 어김없이 산허리 또는 산등성이에 지어졌다. 전시행정의 표본이었다. 그래서인지 경관 하나는 끝내주는 금화아파트는 아직도 살아남아 개발연대기의 암담함을 나타내는 영화촬영장으로 쓰인다. ●서울은 아파트 공화국… 뚫린 물길은 막을 수 없었다 도심재개발 차원에서 이뤄진 세운상가와 낙원상가, 청량리 대왕코너(롯데백화점 청량리점)는 요즘 주상복합아파트의 원조격이다. 특히 세운상가 아파트는 1960년 후반부터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이 들어서는 1970년대 초까지 상한가를 쳤다. 18~25평의 작은 평수였지만 대규모 상가와 엘리베이터를 갖춘 이 아파트에 사회 저명인사들이 앞다퉈 입주했다. 사대문 안에 밀집된 직장에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상류층 집결지였다. 세운상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집창촌으로 알려졌던 ‘종삼’과 무허가 판자촌 철거로 얻어진 1만 3000평의 공지 위에 종로~청계천~을지로~퇴계로까지 무려 1km를 8개의 건물이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심의 괴물이었다. 아파트의 고급화는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에서 처음 시도됐다. 대한주택공사가 1970년에 지은 한강맨션은 중앙집중식 난방을 채택한 첫 호화 아파트였다. 시민아파트의 싸구려 이미지를 벗으려고 ‘아파트’ 대신 ‘맨션’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계약 1호는 27평형을 구입한 탤런트 강부자였다. 고은아, 문정숙, 패티 김 등 연예인들이 줄지어 입주했다. 분양이 대박 나자 당시 현대건설 정주영 사장이 장동운 주공 총재에게 “아파트 사업 그거 돈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현대를 비롯한 대형 건설업체들이 아파트사업에 뛰어드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1970년 4월8일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의 붕괴로 위기를 맞았지만 뚫린 물길을 막을 수 없었다. 바야흐로 서울은 아파트 공화국의 문턱을 막 넘어섰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혐한 기류 日에 한국 사랑하는 사람도

    혐한 기류 日에 한국 사랑하는 사람도

    “라면 먹을 땐 김치가 딱인데….” 지난 8일 일본 도쿄의 주일문화원 한마당홀. 한 일본인 고교생이 조금 어색한 한국어 발음으로 한국인들이 즐겨 쓰는 말을 하자 장내에 웃음이 퍼졌다. 일본 각지에서 지역 예선을 통과한 고등학생들이 ‘금호아시아나배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한국어 실력을 맘껏 뽐냈다. 한·일 간 민간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2008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7회째를 맞은 이 대회에는 476명의 고교생이 지원할 정도로 변함없는 관심을 끌었다. 본선에는 한국어 촌극, 한국어 스피치, 일본어 에세이 부문에서 32명이 참가해 열띤 경쟁을 벌였다. 스피치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하스다 나쓰미(18·나가사키현 쓰시마고등학교)는 “슈퍼주니어 동해의 팬이어서 4년 전부터 한국어를 배웠다”면서 “한국을 싫어하는 일본인도 있지만 나처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해 한국에서 일하며 살고 싶다”고 장래 희망을 소개했다. 유광열 아시아나항공 일본지역본부장은 “한·일 관계 악화의 여파가 있지만 이런 때일수록 민간 교류를 지속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대회를 열게 됐다”면서 “지난해보다 학생들의 한국어 수준이 매우 높아졌는데 앞으로도 민간 교류의 장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염색공 고난 딛고 IT 보안전문가 꿈꿔요”

    “염색공 고난 딛고 IT 보안전문가 꿈꿔요”

    “모두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닌다고요? 몇 년 전만 해도 꿈 잃은 청춘이었죠.” 정보기술(IT) 보안 업체인 ‘한국통신인터넷기술’의 신입 사원 최경민(32)씨는 모교인 동국대 전산원 후배들에게는 롤모델이다. 늦깎이로 대학생이 됐지만, 4년 만에 학사·석사 학위를 따고 속전속결로 취업까지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20대는 또래보다 굴곡이 많았다. 충북 충주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2005년 무작정 상경했다. ‘성공하려면 서울로 가야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향을 떠난 삶은 만만치 않았다. 경기도 안산 시화공단의 한 공장에 취업한 그는 염색공과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1년 넘게 버텼다. 땀 흘리며 일하는 보람은 컸지만, 머릿속은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만화가의 꿈으로 가득했다. 2006년 최씨는 유명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3년 가까이 어깨너머로 배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회의를 느꼈다. 최씨는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의 나이는 어느새 스물일곱.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다시 치르기에는 부담스러운 나이였다. 대신 지인의 추천을 듣고 ‘학점 은행제’로 운영되는 동국대 전산원에 컴퓨터공학 전공으로 입학했다. 전산원에서는 140학점만 수료하면 2~3년 만에 학사 학위를 딸 수 있었다. 최씨는 대학생이 된 뒤 더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염색공과 만화가 문하생 생활 등을 하며 모은 돈으로 입학금만 충당했을 뿐 학비가 없었던 터다. 그는 매학기 학과 수석·차석을 차지해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독하게 공부하고 일한 덕에 1년 반 만인 2010년 학사 학위를 얻었다. 이후 전액 국비 장학금을 받아 동국대 국제정보대학원에서 정보보안 전공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지난해 2월 한국통신인터넷기술에 취업한 최씨는 “동국대 전산원의 도움으로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 대학원까지 마칠 수 있었다”며 “평생 배워 최고의 IT 보안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깡통전세 걱정은 이제 그만! 값싸고 안전한 아파트?

    깡통전세 걱정은 이제 그만! 값싸고 안전한 아파트?

    # 최근 결혼을 앞둔 김 모씨는 신혼집으로 전세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전셋값이 폭등하였지만 집을 사기에는 자금이 부족하고 월세로 살기에는 다소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전세 아파트에 들어가려 하니 최근 깡통전세의 증가로 불안하기만 하다. 안전하고 값싼 전세 아파트를 구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최근 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를 찾는 사람이 꾸준하게 늘어나는 가운데 전세 가격 상승세는 지속되고 있다. 이에 더해 집주인이 대출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 처분되면 세입자들은 전세보증금을 되돌려 받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 전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건설사가 값싸고 안전한 직접 전세를 내보이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직접전세란 순수한 전세계약으로 계약금이나 입주잔금을 내지 않고 전세보증금만 내면 거주 할 수 있고 전세계약이 끝나는 시점에서 보증금 전부를 안전하게 돌려받을 수 있다. 또한 순수 전세 상품은 인근 시세 대비 저렴한 전세가격으로 선보이기 때문에 세입자들에게 더욱 인기를 끌고있다. 업계관계자에 따르면 “직접전세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애프터리빙제와는 완벽히 다른 개념”이라며 “애프터리빙제의 경우 분양등기를 하기 때문에 소유권 이전이나 취득세 및 재산세 등을 지불해야 했지만 직접전세는 집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직접 전세를 놓는 개념으로 집을 사는 것이 아닌 빌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을 모두 해소할 수 있어 안전하다”고 말했다. 동부건설은 인천시 계양구 귤현동에 입주중인 계양 센트레빌 아파트를 건설사가 직접 전세를 실행해 근저당이 없는 아파트를 선보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계양 센트레빌의 ‘직접전세’는 1순위 확정일자가 가능하며, 회사가 직접 전세를 주기 때문에 근저당이 없어 안전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로써 기존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소위 깡통전세에 대한 문제를 해소 할 수 있으며, 임대차보호법으로 보호되기 때문에 전세금을 떼일 걱정도 없다. 또한 임대인이 원하면 전세등기도 할 수 있다. 특히 가격적으로 저렴하다는 면이 강점이다. 이 아파트는 공항철도 계양역 인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용 84㎡의 전세가격은 1억 8천만원 선으로 책정됐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1정거장 차이인 김포공항역 인근 김포 강서 C아파트 84㎡의 전세가격은 2억5천5백만원 선이며, 2정거장 차이인 상암DMC역 E아파트 84㎡는 3억원, 3정거장 차이인 공덕역 인근 공덕역 R아파트 84㎡는 4억4천5백만원선으로 인근대비 7천만원 ~ 2억 6천만원 가량 저렴하다. 한편, 계양 센트레빌은 지하 2층 ~ 지상 15층 26개동 규모로 전용면적 84~145㎡ 1∙2∙3단지 총 1,425가구의 대단지 랜드마크 아파트이다. 인근 공항철도 계양역을 이용하면 김포공항까지 한정거장이면 이동 할 수 있어 서울역 까지는 25분대, 강남까지는 30분대에 진입 할 수 있어 서울로의 출∙퇴근이 편리하다. 또한 ‘경인 아라뱃길’의 최대 수혜단지로 두리 생태공원이 인접해 있어 자연생태공원을 비롯해 수변휴게공간, 오토캠핑을 즐길 수 있어 쾌적한 생활도 가능하다. 전세물건은 전용 84~145㎡ 일부 남은 잔여 물량에 한해 진행된다. 금액은 1억8천만원~2억2천만원선으로 구성되며, 계약 후 바로 입주가 가능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뿌리내리지 못함 그 쓸쓸함에 대하여

    뿌리내리지 못함 그 쓸쓸함에 대하여

    은희경(55) 작가의 다섯 번째 소설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문학동네)에는 뿌리 없이 부유하는 존재들이 서성인다.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면서 남편 하나만 믿고 신도시에 둥지를 튼 새댁, 남쪽 바닷가 고향을 떠나 대기조차 날카로운 서울로 유학 온 소녀들, 신도시에서 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적응에 실패하고 다시 신도시로 유턴하는 청년 등이다. 이들에게서는 한곳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사람의 상실감과 결핍, 불안이 반복된다. 삭막한 삶의 조건에 부딪히고 마모되지만 인물들은 새된 비명을 내지르는 대신, 견딤으로써 살아 낸다. ‘프랑스어 초급 과정’에서 가족에게 고립되고 어떤 질서도 통하지 않는 세계, 신도시로 삶을 옮긴 ‘그녀’는 적응하려 애쓰지만 돌아오는 건 울리지 않는 전화벨, 대답을 삼킨 침묵, 시들어 버린 거울 속 얼굴뿐이다. 그런 그녀가 몰두하는 것은 바이올렛 키우기. 자른 잎을 물에 담가 두면 며칠 새 뿌리를 내리는 바이올렛 화분을 늘려 가며 그녀는 자랑한다. “우리 아들은 군대에 가도, 외국 생활을 해도 세상 어디에든 뿌리를 잘 내릴 거예요. 신도시의 아이거든요. 갚을 빚도 없고 상처도 없고, 그리고 과거도 지니지 않은 가벼운 존재니까요. 뭐 하나 가르쳐 드릴까요? 뿌리를 잘 내리고 싶다면 가벼워져야만 해요. 물에 떠 있는 바이올렛 잎처럼 말이죠. 제가 어떻게 바이올렛 화분을 열네개로 늘렸는지 알고 싶지 않으세요?”(68~69쪽) 하지만 인간은 바이올렛처럼 터를 잡지 못한다. 작가는 화자의 입을 빌려 낯선 곳에 당도한다는 것, 그로써 획득하는 자유와 고독이 인생임을 담담하게 진술한다. “낯선 곳에 가야 한다고 해서 저렇게 흐느껴 우는 건 아직 인생이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야. 매 순간 예상치 않았던 낯선 곳에 당도하는 것이 삶이고, 그곳이 어디든 뿌리를 내려야만 닥쳐오는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어.”(66쪽) 2009년부터 2013년까지 4년의 간극을 두고 쓰였지만 6편의 단편 속 인물들은 느슨한 연결 고리로 서로 스쳐 가고 포개진다는 점에서 ‘연작소설’의 형태를 띤다. ‘프랑스어 고급 과정’의 ‘그녀’와 그녀가 배 속에 품고 있던 아기는 ‘스페인 도둑’에 등장하는 어머니와 아들 완으로 연결되고, ‘금성녀’에 등장하는 주인공 마리와 육촌 형제 현과 완규는 다른 단편 속 청년들과 공통분모를 지닌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의 안나는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에 등장하는 소년의 엄마와 겹치는 식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살지만 끊임없이 타인과 스치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삶과 어떤 식으로 스치고 얽히고 풀어지는 순간이 있었을 테고, 또 그것이 인생을 바꿔 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계간 문학동네 봄호) 뿌리 뽑힌 존재들을 통해 주류의 질서나 시스템에서 벗어난 개인의 고유성을 드러냈다면, 작가는 무관해 보이는 인물들을 하나로 묶으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스치는 인연이 건네는 위로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인생의 변곡점을 짚어 낸다. 그의 말을 빌리면 “노마드적인 신인류들이 찾아낸 쓸쓸함의 연대”인 셈이다. ‘완은 어머니와 달랐다. 힘들게 이루어 낸 사랑에 대해서도, 돌아갈 고향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비어 있는 의자에 이방인끼리 자리를 좁혀 앉는 법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방인의 부축이란 사랑하는 이의 헌신이 결코 줄 수 없는 방심과 편안함을 제공하기도 한다는 것을.’(104쪽)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프로축구] 축구 레전드, 친정팀 귀환

    [프로축구] 축구 레전드, 친정팀 귀환

    지난해 프로축구 K리그 승강제 본격 시행과 함께 시·도민 구단들은 클래식 잔류에 사활을 걸었다. 대기업 운영 구단에 비해 재정 지원이 열악한 시·도민 구단들에 있어 챌린지 강등은 곧 팀의 존폐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에도 3개 시·도민 구단이 챌린지로 떨어졌다. 특히 시민구단의 ‘맏형’ 격인 대전은 최하위의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이런 대전에 ‘샤프’ 김은중(왼쪽·35)이 돌아왔다. 프로 생활을 한 팀에서만 하는 ‘원클럽맨’이 되기 쉽지 않은 K리그 현실에서 이적을 거듭한 선수가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팀으로, 그것도 2부리그로 강등된 상황에서 돌아온 것이다. 1997년 대전의 창단 멤버였던 김은중은 2004년 FC서울로 이적한 뒤 제주와 강원, 포항을 거쳤다. 지난해 여름 강원에서 포항으로 임대된 김은중은 시즌 종료와 함께 강원으로 돌아왔는데 강원 역시 강등을 당해 구단 재정이 줄면서 고액 연봉자였던 그를 정리 대상 1호로 찍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은중은 미프로축구(MLS) 서부 지역 구단과 사실상 협상이 끝나 떠나면 되는 상황이었다. 은퇴 이후를 염두에 뒀던 그는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뒤 공부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10년 전 대전 팬들과의 약속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서울로 팀을 옮길 당시 대전 팬들은 “꼭 돌아오라”고 했고 김은중도 “꼭 오겠다”고 답했던 것이다. 플레잉코치로 친정에 돌아온 김은중은 28일 “대전으로부터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대전은 내게 첫 팀”이라고 밝혔다. 김은중은 팀의 승격이란 무거운 짐을 기꺼이 둘러맸다. 마찬가지로 승격을 노리는 강원의 주장 배효성(오른쪽·32)도 플레잉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강원 태백 출신인 그는 2004년 부산에서 데뷔해 270경기에 출전하면서 8골 4도움을 올린 베테랑 수비수다. 배효성은 “프로 생활의 다양한 경험을 전수해 주는 좋은 멘토가 되겠다”며 “나를 축구 선수로 만든 고향 강원에 헌신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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