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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출세보다는 저녁이 있는 삶… 그래서 난 제주에 산다

    돈·출세보다는 저녁이 있는 삶… 그래서 난 제주에 산다

    ‘제주살이’ 열풍이 5년 넘게 전국을 달구고 있다. 제주 이주 바람이 불면서 지난 5년간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사람들만 5만여 명에 이른다. ‘제주 전성시대’다. 최근에는 30~40대 제주 이주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른바 ‘다운시프트(downshift)’ 이주족이다. 다운시프트는 원래 자동차 기어를 고속에서 저속으로 낮춘다는 뜻이다. 돈벌이와 성공에 쫓기는 도시 일상을 거부하고, 넉넉하진 않지만, 자연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인생을 살겠다는 이주족들이다. 도시를 거부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겠다며 제주로 이주한 그들에게 ‘왜 제주냐?’고 물어보았다. 제주올레 사무국 취업한 손혜인씨 - 올레길에 빠져 눌러앉았죠 제주살이 열풍의 진원지는 제주 올레길이다. 렌터카를 타고 유명 관광지만 돌아다니던 여행객들이 구석구석 제주 올레길을 걸으면서 아름다운 제주 속살과 바쁠 것 없는 제주의 평화로운 일상에 반해 버렸다. 2009년 제주 올레길이 생기고 2010년부터 감소하던 제주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사단법인 제주올레 사무국에서 일하는 손혜인(32·여)씨는 지난해 5월 제주로 이주했다. 부산에 살던 가족이 2010년 11월 먼저 제주로 귀촌했다. 서울에서 디자인회사 등을 다니다 손씨는 원어로 헤르만 헤세를 읽고 싶어져 1년간 독일 유학을 갔다. 귀국 후 가족이 있는 제주에 왔다가 올레길 매력에 푹 빠졌다. 제주에 눌러앉기로 하고 일자리를 찾다 제주올레 사무국에 취업했다. 손씨는 이제 제주에서 가장 시골답다는 한경면 조수리 한적한 농촌에서 부모님과 함께 산다. 채식주의자로 집에 딸린 넓은 텃밭에서 손수 자신의 먹거리인 채소를 재배한다. ‘캣맘’이기도 한 그는 “제주에서는 고양이를 키우는데 도시처럼 남 눈치 볼 게 없어 너무 좋다”며 “전공을 살려 제주에서 일을 할수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제주올레 사무국 직원 16명 가운데 11명이 다운시프트 이주족이다. ‘세렌디피티 제주’ 프로젝트 이광석씨 - 아이디어 있으면 창업 기회 서울에서 미술관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이광석(32)씨는 최근 제주창조경제센터 제주체류지원 사업에 따라 한 달간 제주에 머물며 곳곳을 둘러봤다.제주에서 새로운 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한 이씨는 나 홀로 제주를 찾는 여행객들을 위한 ‘세렌디피티(serendipity)제주’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30대 나 홀로 여행객이 제주에서 한데 모여 파티도 즐기고 서로 인맥도 쌓게 하는 사업이다. 이씨는 “연중 관광객이 넘쳐 나는 제주는 참신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의 기회가 많은 곳”이라며 “제주에서 성공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지예술인 마을 ‘빛의 작가’ 김성호씨 - 밤 풍경·자연 느끼며 작업 중견 화가 김성호(54)씨는 2014년 제주 저지예술인 마을에 집을 짓고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창작 활동을 한다. 이른바 문화 이주민이다. 그는 도시의 새벽 불빛을 강렬한 색채로 그려내 ‘빛의 작가’로 불리며 팬들을 몰고 다니는 인기작가다. 지난 2년간 한라산이며 오름이며 포구며 제주 구석구석 밤 풍경을 탐미했다.‘섬 불빛 바다, 그리운 제주’라는 타이틀로 지난 5월 제주에서, 6월엔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어 ‘제주 자연을 담백하게 담아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김씨는 “제주는 풍경에 집중할 수 있어서 매력적”이라며 “싱그러운 제주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작업하는 자체가 즐겁다”고 말했다. 바닷가 펜션 운영하는 박라미씨 - 숨 막히는 도시 직장인 싫증 박라미(48·여)씨는 일 때문에 제주를 오가다 지난해 3월 아예 제주로 이주해버렸다. 20년 넘게 홍보 전문회사에 다니며 서울에서 살았다. 제주의 한 공기업 사보 제작 일을 맡게 돼 2009년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제주를 찾았다. 제주 출장 후 서울로 돌아가면 “내가 도대체 이 숨 막히는 도시에서 뭘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루었다. 박씨는 요즘 칠십리 해안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서귀포 바닷가 언덕에 ‘달이봉봉’이란 펜션을 운영한다. 박씨는 “퇴근 후에도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게 도시 직장인의 일상”이라며 “제주에서는 온전한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두모포구에 식당 차린 김태헌씨 - 마음 안정·힐링의 땅이죠 대구가 고향인 요리사 김태헌(51)씨는 지난 4월 제주로 이주했다. 젊은 시절 일본에 유학해 일식요리를 배웠던 김씨는 대구의 번화가 동성로에서 일본식 선술집을 운영했다. 동업 제의가 들어와 제법 큰 판을 벌였지만 사기를 당했다. 선후배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을 들고 가족을 대구에 남겨둔 채 그는 나 홀로 제주로 왔다. 제주의 서쪽 바닷가 한경면 두모포구에 ‘한경청방’이라는 식당을 다시 열고 일본식 짬뽕과 수제 돈가스를 정성껏 만들고 있다. 김씨는 “매일 아침 바라보는 넉넉한 제주 바다가 마음의 안정을 찾아 주었다”며 “제주는 나에게 힐링의 땅이자 새로운 기회의 땅”이라고 말했다. 미국서 온 피아노 조율사 조성찬씨 - 피아노 박물관 만드는 게 꿈 미국에서 살던 피아노 조율사 조성찬(61)씨는 2014년 귀국해 제주로 이주, 남원읍 수망리 시골마을에 터를 잡았다. 조씨의 원래 고향은 서울이다. 1982년 미국으로 건너간 조씨는 미국 조율협회 공인 자격을 획득, 남가주 사립음악대학 연주 조율사, 미국 청소년 음악제 책임 수석 조율사로 활동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영구 귀국하기로 한 조씨는 제주를 선택했다. 조씨는 “제주는 도시와는 달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이 넓어 좋다”며 “늘 자연과 함께하는 일상도 잔잔한 감동”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수집한 올드 피아노 70여 대를 갖고 온 조씨는 제주에 피아노 박물관을 만드는 게 마지막 꿈이다. 지현룡 제주이주지원센터 본부장은 “최근 들어 20~40대 다운시프트 이주가 늘어나고 있어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구인·구직 매칭사업과 이주 희망자를 위한 이주 박람회 등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주지원센터는 오는 29일 제주 롯데시티호텔에서 ‘2016 제주이주콘퍼런스’를 연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황장호씨는 “제주 이주자들은 돈벌이와 성공이 전부가 아닌, 삶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치관이 존재한다 것을 보여준다”며 “청년 취업난과 육아 문제, 직장 퇴출 공포 등으로 20~40대의 다운시프트 도시 탈출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단독] 손학규 “산속생활 정리하고 정계복귀 하겠다” 손사모 모임서 공식발표

    [단독] 손학규 “산속생활 정리하고 정계복귀 하겠다” 손사모 모임서 공식발표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전대표가 정치 재개를 전격 선언했다. 전남 강진 백년사 뒤 움막에 기거중인 손학규 전대표는 16일 오후 1시쯤 ‘손학규를 사랑하는 모임(손사모)’ 전국 조직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강진읍내 한 식당에서 그동안의 산속생활 정리하고 정치활동 재개를 공식 발표했다. 손 전대표는 이날 ‘손사모’의 전국 광역시·도 대표들이 참석한 회동에서 정치 재개 요구를 묵묵히 듣고난 후 “민초들의 아픔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산속 기거를 마치고 현실 정치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이 순간 손사모 회원들은 “손학규! 손학규!”를 연신 외치며 환성과 함께 우뢰와 같은 박수로 환대했다. 2시간 동안 이어진 회동에서 손 전대표는 “현재 정치가 국민들을 너무나 혼란스럽게 하고 있고, 출산 포기 등 각종 문제점 등 국가적으로 보완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고 우려스러움을 나타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날 분위기는 마치 ‘대권 출정식’ 같은 열띤 분위기였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고문인 손 전대표는 국민의 당과 더불어 민주당 등으로 부터 정치 제의를 받고 있지만 당적을 옮기지는 않을것이라는 뉘앙스를 남겼다는 후문이다. 움막을 정리할 시점과 서울로 복귀할 시간 등 구체적인 일정을 밝히지는 않았다. 오전 11시 30분쯤 움막에서 회원들을 맞이한 손 전대표는 식당으로 이동한 후 ‘저녁이 있는 삶 손학규’를 쓴 종이에 직접 자필 서명을 하면서 공식적으로 ‘손사모’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지지자들은 서울 등 수도권 지지자들은 관광버스를 대절해 내려왔고 나머지 지역의 지지자들은 승용차 등을 타고 강진으로 내려왔다. 글·사진 강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고함·욕설·물병… 대통령은 순방 중인데 발 묶인 ‘2인자’

    고함·욕설·물병… 대통령은 순방 중인데 발 묶인 ‘2인자’

    국방장관도 갇혀 국정 공백 빚을 뻔 총리 “아무 걱정 없게 하겠다” 설득에 군민 “그리 안전하면 집에 가져가라”경북경찰청장은 물병 맞고 눈썹 찢어져 인구 4만 5000명인 경북 성주는 15일 하루 종일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어수선했고, 오후 8시부터 2시간에 걸친 촛불시위로 ‘사드 배치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날 달걀과 물벼락 세례, 6시간의 버스 감금, 군민의 추적을 피한 도피와 포위 등 잊지 못할 하루를 견뎌야 했다. 또 대통령 해외 순방 중 군 통수권을 대리하는 총리와 국방 장관이 6시간 넘게 사실상 감금된 사태는 국가적 위기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긴급한 외교·안보 상황이 발생하면 청와대에서 상황을 지휘해야 하는 총리가 국방부 장관과 함께 발이 묶여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총리 봉변’ MB 때 정운찬 이후 7년 만의 일 국무총리가 봉변을 당한 건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계획을 백지화하려던 2009년 11월 28일 당시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건설현장을 찾았다가 주민들로부터 계란에 맞은 이후 7년 만이다. 또 한승수 전 국무총리는 같은 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봉하마을에 조문 갔다가 물과 계란 세례를 맞았다. 이날 오전 10시 군청 앞 주차장에는 ‘사드 결사반대’ 등을 적은 붉은색 머리띠를 한 성주군의 학생과 주민 등 3000여명이 모여 있었다. 한 시간 뒤쯤에 황 총리 등 일행이 성주군청에 들어섰지만, 주민들은 곧바로 날계란, 물병, 소금 등을 던지며 반발했다. 이때 조희현 경북지방경찰청장이 날아온 물병에 맞아 왼쪽 눈썹 윗부위가 5㎝가량 찢어졌다. 계란 세례로 황 총리의 양복 상·하의도 얼룩졌다. 황 총리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 김관용 경북도지사, 김성렬 행정자치부 차관, 오균 국무조정실 1차장 등을 대동했지만 주민 설득에는 역부족이었다. “국방부 장관 사퇴하라”, “성주 군민 다 죽는다”며 격렬하게 구호를 외쳤다. 김항곤 성주군수가 군민들에게 “좀 자중해 달라. 총리의 말을 들어보자”며 당부해도 소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군수 “대통령 돌아오면 똑바로 설명해 달라” 황 총리는 “주민들의 안전과 인체의 확실한 보장, 농작물 등의 안전에 이르기까지 충분하게 검토해서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어제 국방과학연구소가 사드 레이더와 아주 비슷한 그린파인 레이더에 대해 전자파 강도를 검사한 결과 인체의 보호 기준보다 훨씬 낮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주군민은 “그렇게 안전하면 너희 집으로 가져가라”거나 “우리 집 비워줄테니 총리 부모·자녀 모시고 살아라”고도 했다. 단상을 향해 던지는 물병이 많아지면서 설명회는 11시 20분쯤 중단됐다. 경호원들의 방어는 무용지물이었다. 이후에 나선 김 군수는 “(사드 레이더 배치 예정지인) 성산포대 반경 1.5㎞ 이내엔 우리 군민 절반인 2만여명이나 거주하며 기업체도 550개에 이르는 성주군의 심장”이라며 “그런 심장에 칼을 꽂으면 우리 군민들은 모두 죽는다”고 말했다. 김 군수는 “대통령이 순방이 끝나고 돌아오면 똑바로 설명해 달라”고 했다. 이에 한 장관이 “여러분께 미리 설명을 드리지 못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문을 열었지만 다시 욕설과 함께 물병이 날아들었다. ● 경찰 연막탄 터뜨려… 총리, 차 갈아타며 탈출 상황만 악화되자 설명회를 시작한 지 30분도 안된 오전 11시 35분쯤 황 총리 일행은 경북도청에서 제공한 20인승 미니버스를 타고 군청사를 빠져나가려 시도했다. 그러나 100~200명의 주민들은 미니버스를 에워쌌고 트랙터 2대를 동원해 출입구를 봉쇄했다. 경찰은 13개 중대, 1000여명의 경찰관과 의경을 투입해 질서 유지에 안간힘을 썼다. 사복 경찰과 총리실 경호원 등 300여명은 주민들이 더이상 버스에 근접하지 못하게 차단했다. 감금에 가까운 이런 대치는 오전 11시 35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6시간이나 진행됐다. 결국 경찰이 연막탄을 터뜨리며 황 총리 등 일행 구출작전에 나섰으며, 버스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황 총리는 승용차로 옮겨 탔지만, 그 뒤를 쫓은 시민들에게 다시 둘러싸였다. 결국 오후 6시가 지나 경찰 경호를 받으며 준비해 놓은 다른 승용차를 타고 마침내 빠져나가 헬기로 서울로 돌아갔다. 12일 밤 성주군청에서 군민 300여명으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15일까지 4일째 계속됐다. 참여인원도 각계각층 1000여명으로 늘어났다. ‘사드 성주 배치 반대 범군민비상대책위원회’ 촛불집회에서 ‘성주 사드 배치 저지 범국민비상대책위원회’로 명칭을 바꾸고 공식 출범했다. 투쟁 수위를 높여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날까지 5일간의 단식 농성 중인 김 군수는 “오늘 정말 잘 싸웠다. 끝까지 우리 힘으로 사드 배치를 막아내자”고 강조했다. 한편, 사드 배치에 반발해 성주군 일부 학부모가 초·중·고교생인 자녀의 등교를 거부했다. 등교를 거부한 학생 수는 5개 학교 40여명에 이르고 일부 학교에서는 수십명씩 조퇴하겠다고 담임교사에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성주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성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서울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여행 갈 때 이런 사람 꼭 있다? 세컨드하우스 ‘미리내테라스’ 눈길

    여행 갈 때 이런 사람 꼭 있다? 세컨드하우스 ‘미리내테라스’ 눈길

    여름휴가철을 앞두고 여행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목적지는 같아도 동행하는 이들의 유형은 각양각색이기 때문이. 이에 여행 갈 때 꼭 있는 친구들을 유형별로 살펴봤다. 여행 가기 전 꼭 노트를 꺼내놓고 끄적이며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 검색에 여념이 없는 친구가 있다. 바로 ‘나노 플래너형’이다. 지난해 대학내일 조사에 따르면 이처럼 꼼꼼하게 계획을 짜는 유형이 함께 여행가고 싶은 친구 1위(32.1%)로 꼽혔다. 하지만 이런 가이드형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것저것 제안을 해도 관심이 없는 ‘방관형’, 스스로 알아보는 것은 없으면서 불편만 늘어놓는 ‘불만형’, 즉흥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즐기는 ‘모험가형’ 등 계획을 짜지 않는 유형이 더욱 많다. 실제 바쁜 직장인들의 경우 금전적 여유가 있어도 시간에 치여 여행 준비에 최선을 다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럴 때 몸만 가도 레저와 휴식을 한 번에 다 해결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이에 미리내리조트는 서울로부터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자연친화적 빌리지를 조성했다. 봉미산 자락에 위치한 미리내테라스하우스는 퇴근 후 또는 주말, 휴가 시 언제든 와서 쉴 수 있도록 조성됐다. 단순 펜션이 아닌 세컨드 하우스 개념으로 분양 시스템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별도의 계획 없이 몸만 와도 충분한 휴식이 가능한 공간이다. 24시간 보호해주는 보안시스템이 있어 내 집처럼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으며 빌리지 내 4.20km의 트레킹 코스 또는 산책로를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피톤치드를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 승마클럽과 힐빙클럽(힐링+웰빙), 골프클럽 등 레저 시설이 갖춰져 있어 액티브한 여가생활을 즐기는 이들에게도 적합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또한 승마와 보물찾기, 정글탐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미리내캠프가 있어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학습에도 효과적이다. 미리내테라스하우스는 이처럼 자연 속 세컨드 하우스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해 리조트 내 모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서 각종 시설 및 프로그램들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新국토기행] ‘남도 답사 1번지’ 전남 강진

    [新국토기행] ‘남도 답사 1번지’ 전남 강진

    전남 남서부 강진군은 고려청자의 고장이다. 1993년 유홍준 교수의 역작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남도답사 1번지’로 소개될 만큼 문화재와 볼거리가 많다. 전국에 답사 열풍을 몰고 왔을 정도로 유명한 천년 고찰 무위사를 비롯한 다산초당, 영랑생가, 고려청자박물관 등 국보급 문화유산이 풍부하다. 고려시대 청자를 만들었던 가마가 보존돼 있고, 군내에 가마터 188개소가 남아 있어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오는 30일부터 8월 7일까지 열리는 청자축제는 대한민국 최우수 축제로 선정돼 있다. 농업과 수산업도 발달해 ‘하늘과 바다, 산과 들, 그리고 강이 있는 천혜의 땅’으로 표현되고 있다. 내년은 ‘강진’(康津)이라는 지명이 탄생한 지 600주년, 조선시대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할한 육군 총본부였던 전라병영성 축성 600주년을 맞는 해다. 군은 2017년을 ‘남도답사 1번지 강진 방문의 해’로 정하고 맛과 흥이 어우러진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지역문화지수에 2년 연속 전국 1위에 선정되는 등 문화 관광지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볼거리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을 찾아… 영랑 생가 영랑 김윤식 선생이 1903년 1월 16일 태어난 곳이다. 영랑은 1950년 9월 29일 숨을 거두기까지 주옥 같은 시 80여편을 발표했다. 그중 60여편이 광복 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곳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쓴 작품이다. 강진 읍내에 있는 영랑생가는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옮긴 후 몇 차례 전매됐다. 1985년 강진군이 매입해 관리해 오고 있다. 안채는 일부 변형됐던 것을 1992년에 원형으로 보수했다. 철거됐던 문간채는 영랑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3년 복원했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 있으며 모란이 심어져 낭만이 넘친다. ●강진만 바다 위를 걷듯… 가우도 출렁다리 전남도가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한 가우도는 지난해 4월 무인계측이 실시된 후 1년여 만에 65만명 이상이 다녀갈 정도로 유명하다. 오는 10월 말 가우도 내 산정상에 청자 모양의 전망탑과 가우도와 대구면 저두쪽 바다 위를 횡단하는 짚 와이어가 설치되면 지금보다 몇 배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올 것으로 기대된다. 다양한 힐링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가우도 출렁다리는 강진군의 유일한 유인도인 가우도를 해상 보도교로 연결해 고려청자 요지 및 다산 유적지 등과 연계한 해상 인도교다. 다리 중간에 유리데크를 설치해 걷는 이로 하여금 강진만의 푸른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과 아슬아슬한 공포감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다. 가우도 복합낚시공원은 강진만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아 교통 접근성, 낚시 여건, 주변 여건 시설 등이 좋다. 감성돔 등 다양한 어종이 잡히는 천혜의 낚시터다. 낚시터 안전성 검사를 거쳐 부잔교 낚시터, 관리사무소, 인공어초, 소파제 등의 시설을 갖췄다. ●모란이 피기까지… 10월 ‘세계모란공원’ 완공 오는 10월 완공 예정으로 영랑생가 뒤편에 있는 세계모란공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계절 내내 모란을 볼 수 있는 명소다. 특히 유리온실이 기대된다. 유리온실은 봄에 모란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고 농업기술센터의 전문기술을 통해 저온저장을 이용, 사계절 내내 모란을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세계모란원은 프랑스, 일본, 네덜란드, 독일, 미국, 영국의 국가별 모란을 심어 세계 각국의 모란을 감상할 수 있다. 모란을 비롯, 작약 등 화려한 꽃들의 향연이 펼쳐져 내년부턴 더 진한 향기가 여행객들을 유혹할 것으로 보인다. ●사랑하고 있다면… 석문공원 ‘사랑+구름다리’ 지난 2일 남도의 소금강으로 명성이 높은 강진 도암면 석문산의 석문공원에 ‘사랑+구름다리’가 개통했다. ‘사랑이 넘쳐 구름 위에 서 있다’란 이름을 가진 출렁다리다. 111m로 국내 산악 현수교로서 가장 길다. 다리 바로 옆에는 노적봉의 다른 이름인 견우직녀봉이 있고, 다리 정면에는 ‘세종대왕바위’가 자리잡고 있어 의미를 더하고 있다. 22명의 자녀를 둔 세종대왕이기에 가족여행이나 연인, 결혼을 앞둔 커플 등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명소로 이름나 있다. 군은 다리 완공을 기념해 이곳에서 특별한 결혼식을 올릴 주인공을 찾았고 개통한 날 500만원 상당의 해외여행 상품을 지급한 결혼이벤트도 열었다. 군은 석문산과 만덕산을 잇는 코스를 전문 등산객은 물론 연인, 가족단위 등 다양한 계층이 이용할 수 있도록 등산로, 주차장, 포토존 등 관련 시설을 완벽하게 정비했다. ●갈대숲에서 철새와 춤을… 강진만 생태공원 생물종이 무려 1131종에 이르는 국내 최대 생태서식지 생태공원이다. 군은 그동안 아껴뒀던 철새도래지와 갯벌, 갈대를 품은 탐진강~강진만 일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고 생태탐방로를 조성했다. 또 갈대숲 축제, 강진만 노을 콘서트 등 방문객 눈높이에 맞춰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생태 탐방과 음악 프로그램,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상생하는 농·수·축·특산물 직거래, 축제에 빠질 수 없는 맛난 강진음식을 준비해 가고 있다. 올가을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생태환경을 지닌 강진만에서 체험과 먹거리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도록 춤추는 갈대축제를 연다. 여행자들의 눈과 귀, 손을 즐겁게 해줄 강진만 춤추는 갈대축제는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나흘간 강진만 일대와 강진읍내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신선한 횟감이 지천에… 마량놀토수산시장 지난해 대박을 터트려 강진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남해안 최고의 수산시장이다. 마량놀토 수산시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수산물은 당일 강진군수협이 위판한 것으로 일반시장보다 20~30% 저렴하다. 최고 품질, 최고 신선, 최고 저렴의 ‘3최’와 수입산과 비브리오, 바가지요금이 없는 ‘3무’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미항 마량토요음악회 콘텐츠를 확대해 마술과 밸리댄스, 인디밴드 공연을 추가했다. 즐길거리와 먹거리로 가득 차 있다. 토요일이면 강진 마량이 사람으로 북적이고 웃음으로 활짝 핀다. 마량놀토 수산시장의 활성화로 지난해부터 광주권에서 강진 마량을 찾는 차량 행렬이 20% 이상 증가했다. ●음악에 취하고 싶다면… 오감통 강진읍이 노래와 음악을 모티브로 새로운 명소로 가꾸고 있는 곳이다. 은퇴 가수들이 모여들면서 미국에서 손꼽히는 음악도시로 성장한 브랜슨을 모델로 삼아 대한민국 최고 음악도시로의 변모를 꿈꾸고 있다. ‘오감통 중심 강진읍 노래도시 만들기’가 핵심이다. 이 가운데 구심점은 오감통 음악 창작소다. 오감통 음악 창작소는 광주·전남권 음악인들뿐만 아니라 앨범 제작을 꿈꾸는 가수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나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올해 문화체육부관광부 음악 창작소 조성 지원사업 공모에 도전해 국비 10억원을 확보했다. 전국 군 단위 최초 쾌거다. 군은 오감통을 음악을 기반으로 한 볼거리와 먹거리, 살거리, 즐길거리가 있는 장소로 만들어 가고 있다. 강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먹을거리 ●깔끔한 육수에 찰진 횟감이 풍덩… 강진물회 강진물회는 여름 한철 최고라고 뽐낸 물회 중 으뜸으로 꼽힌다. 제철 자연산 도다리, 광어, 세미 따위가 횟감으로 등장하고 100% 강진산 양배추, 무, 오이, 당근, 참나물이 들어가 아삭함을 더한다. 초록, 빨강 색감을 드러낸 날치알은 톡톡 터지며 입속에서 은근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목 넘김이 좋은 육수는 셰프가 고른 과일을 기본으로 초장을 만들고 저온 저장고에서 셰프가 ‘이만하면 됐다’ 하고 판단이 설 때까지 숙성시킨다. 이때 사용하는 식초는 육수보다 더 긴 시간 셰프의 OK 사인을 기다린다. 개운하고 깔끔한 ‘사금사금’한 맛이 깃들었다. ‘막걸리가 들어갔나’ 하고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할 찰나 어느새 입안은 물횟감의 찰진 맛과 육수의 조화가 이뤄진다. ●수라간 궁녀의 손맛이 그대로 강진한정식 한반도 끝자락 강진은 왕궁과 거리가 멀어 조선시대 사대부나 왕족들의 유배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때 유배를 따라온 수라간 궁녀가 궁중음식의 비법을 전하면서 강진한정식이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본래 궁중에서는 왕의 수라상으로 12첩 반상을 차렸으나 일반인에게는 9첩 이하로 제한했다. 반찬은 구이, 전, 볶음, 편육, 조림, 지짐, 생채, 취채, 숙채, 튀김, 전골, 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됐다. 화려한 궁중음식이 강진 향토 음식과 한상차림으로 융합되면서 맛깔스러운 한정식 밥상이 됐다. 강진한정식은 조선 후기부터 시작되며 그 바탕을 궁중음식에 두고 강진의 특산품과 진상품을 많이 생산해 맛의 표현이 자유로워 맛깔스런 음식이 만들어졌다. 특히 강진은 예로부터 산과 들, 강, 바다가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지형으로 이곳에서 거둬들인 천연 음식재료를 활용한 밥상문화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발달했다. ●봄이 오듯 젊어질 강진회춘탕 닭과 문어, 전복과 함께 여러 가지 한약재를 넣어 만들었다. 강진 마량이 원산지로 알려졌다. 아직 다른 시군에는 요리 방법이 알려지지 않았다. 회춘탕을 먹으면 ‘봄이 오듯 젊어진다’고 알려졌다. 늙음이 싫은 인간의 소망을 담아낸 음식이다. 지난 600년 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음식문화 속에서 탄생해 역사적 전통성을 지니고 있다. 단백질이 풍부한 닭과 DHA·EPA가 함유된 문어, 비타민과 칼슘·무기질이 풍부한 전복, 독소를 배출시키는 해독작용과 피부미용에 좋은 녹두가 주재료이다. 탕을 끓이는 육수에는 한약재가 많이 들어간다. 당뇨와 우울증 개선에 좋은 엄나무, 암 예방 및 치료에 좋다는 느릅나무, 어혈을 제거하고 진통제 역할을 하는 당귀, 뼈와 관절, 근육 건강에 좋은 가시오가피가 들어간다. 생리활성기능 실험 결과 칼로리가 낮고 콜레스테롤과 나트륨 함량이 적은 것으로 분석됐다. 항당뇨 및 산화 방지 기능이 뛰어나고, 치매를 예방하는 성분까지 있다.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 병영 돼지불고기 강진군 병영면에서 파는 병영 돼지불고기는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그 맛에 관광객들이 또 찾는 1위 메뉴다. 생 앞다리 살을 결대로 베어내 굽기 30분 전 양념을 버무린다. 연탄구이 위에서 ‘치이익~’, ‘따닥따닥’ 소리가 나며 굽는 덕분에 청각까지 자극한다. 조림 간장에 고춧가루, 양파, 다진 마늘을 버무린 맛이 일품이다. 씹을수록 입안 가득 넉넉하게 육즙이 퍼져 여유로운 마음이 된다. 병영 돼지불고기는 조선시대 현감과 병마절도사의 일화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온다. 강진 현감은 어느날 친조카가 전라병영성 최고 책임자인 병마절도사로 부임하자 지위가 낮은 탓에 부임을 축하하는 인사를 갔다. 그러나 조카는 현감을 웃어른으로 모시며 특히 양념이 잘된 돼지고기를 내놓았는데 이후 병영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돼지불고기를 내오는 전통이 생겼다는 것이다. 1인분 8000원. ●쌀과 단호박이 만나 가오리빵 가우도를 건너면 찾게 되는 쌀빵, 황가오리빵이다. 남녀노소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차별화된 식품이다. 강진산 쌀과 단호박이 주재료다. 쌀로 만들어져 소화가 잘되고 담백하다. 밀가루로 만들어진 것과 비교해 필수아미노산 함량이 높다. 반죽 과정에서 설탕과 버터를 대폭 줄여 칼로리가 낮다. 소금을 조금 사용해 나트륨 섭취도 최소화했다. 군은 가우도 앞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황가오리에 착안해, 빵을 개발하고 상표와 디자인을 출원 등록했다. 강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성주군민 “결사반대” 성토… 경북지사 ‘사실상 수용’ 온도차

    성주군민 “결사반대” 성토… 경북지사 ‘사실상 수용’ 온도차

    성주군수 ‘혈서’ 단식농성 돌입 성주군내 500여장 반대 현수막 “목숨을 건 결사항전을 하자.” “민주 사회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박근혜 정부가 자행하고 있다.” 경북 성주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지역으로 최종 확정되자 주민들은 13일 격렬하게 정부를 성토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항곤 성주군수는 혈서를 쓰고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날 성주읍과 9개 면에는 사드 배치 반대 현수막 500여장이 나붙었다. ‘사드 성주 배치 반대 범군민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군민 5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범군민 궐기대회를 했다. 30도를 넘는 찜통더위였지만 예상보다 2000여명이 더 몰려왔다. 60~70대 노인들도 ‘사드 결사반대’ 머리띠와 어깨띠를 두르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군수는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 없이 밀실 행정으로 성주군의 희생만을 바라는 현실에 군민이 분노하고 있다”며 “고귀한 땅을 사드로 잃는다면 후손과 조상을 뵐 면목이 없어 군민이 하나돼 사드 배치를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재만 성주군의회 의장도 “민주주의는 과정·절차가 중요한데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사드 배치는 5만 성주 군민을 업신여기고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재복 사드 성주 배치 반대 범군민 비상대책위원장도 “인구가 적은 성주를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경북도의원들도 “국가 안보의 중요성은 충분히 인정하나 아무런 협의 없이 일방통행식으로 밀실에서 한 결정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모든 과정을 정확히 공개하고 공정한 입지 선정 기준으로 절차를 밟자”고 촉구했다. 김 군수 등은 ‘결사반대’ 혈서를 썼다. 비대위는 궐기대회가 끝난 뒤 군민 200여명과 함께 버스 5대에 나눠 타고 국방부를 찾아가 혈서와 반대 서명서를 전달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13일 보도자료에서 “결정 과정과 절차 면에서 납득하기 어렵다”고 유감을 표시했지만, “성주군민과 지역경제 어려움을 헤아리고 납득할 만한 수준의 안전·환경·발전 대책을 마련해 신속히 실행해야 한다”고 해 ‘사드 성주 배치’를 사실상 수용했다. 이는 지난 8일 칠곡 후보지를 두고 “경북 지역 사드 배치에 강력 반대”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한편 이날 “김 지사가 청와대 수석과의 오찬 면담이 있어 서울로 올라갔다”고 경북도 고위 관계자가 밝힌 만큼 김 도지사와 청와대 간의 ‘협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아태무용총회 22년 만에 서울로

    아태무용총회 22년 만에 서울로

    세계 무용인들의 축제인 ‘아시아·태평양 국제무용총회’가 오는 21일 서울에서 개막한다. 1994년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창립 때 처음 개최된 이후 22년 만이다. 12일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홍조(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회장·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장) 총예술감독은 이번 총회에 대해 “아시아·태평양 무용인들의 국제 교류의 장”이라며 “공연뿐 아니라 학문을 통한 정신적 교류도 하며 서로 소통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우리나라 무용을 세계에 알릴뿐더러 국내 무용가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직위원장은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맡았다. 총회엔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 독일, 대만, 일본, 싱가포르, 이스라엘 등 20개국 300여명의 무용인이 참석한다. ‘춤의 통합, 춤의 세계화’라는 주제 아래 120여개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선보인다. 50명의 무용인이 참여하는 심포지엄, 36개의 쇼케이스, 5명의 아시아 안무가와 32명의 아시아 무용수가 협업하는 안무가랩, 대표팀 공연 등이다. 23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한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4개국 대표팀들의 춤의 향연이 백미로 꼽힌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했던 김주원 성신여대 무용학과 교수, 이정윤 댄스시어터 대표 등이 신작을 발표한다. 김 교수와 이 대표는 “새로운 스타일의 춤을 통해 어떤 식으로 소통하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무용연맹은 춤을 통한 국가 간 통합을 도모하고 춤의 세계화·대중화를 지향하는 무용인들의 국제 교류 단체다. 전 감독은 “유럽, 미국 등 전 세계 무용인들이 모두 모이는 세계무용총회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게 목표”라며 “북한 무용과도 교류할 수 있는 초석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24일까지 서울사이버대학교·서울무용센터·호암아트홀, 2만~3만원. (02)920-7790.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송파~성남 일대 3시간 무법질주 폭주족 한달여 만에 검거

    한밤중 3시간 동안 송파와 성남 일대 주요 도로를 무법천지로 만든 10대 오토바이 폭주족들이 한 달여 만에 경찰에 모두 붙잡혔다. 경기 성남수정경찰서는 10대 후반의 연합 오토바이 폭주족 16명을 검거해 도로교통법위반(공동위험행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5일 오전 2시부터 5시까지 서울 송파구에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까지 편도 4차로인 성남대로를 무법 질주했다. 굉음은 물론 확성기 사이렌을 울리고, 교차로에서 신호를 위반하는가 하면, 전 차로를 점령해 지그재그 운전을 했다. 이날 경찰에 신고된 건수만 14건에 달했다. 이들의 신호 위반 질주로 교차로에서는 차량이 뒤엉키는 등 아찔한 상황이 반복됐다. 이들은 동네 선후배 등으로, 전날 성남폭주족들이 서울로 놀러 갔다가 도로에서 우연히 서울폭주족들을 만나 다음날 범행을 약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에 사용한 오토바이는 대부분 배달업체용이거나 빌린 것으로 드러났다. 청소년들은 수사 초기에 범행을 부인하거나 허위 진술로 수사에 혼선을 줬으나 경찰이 20여일 동안 블랙박스·폐쇄회로(CC)TV·휴대전화 사용내역 등을 분석해 순차적으로 검거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건축가’ 당선작 신형철 ‘템플’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건축가’ 당선작 신형철 ‘템플’

    ‘쉼’ 휴식이 됐다… 즉흥적 손질로 탄생한 건축 작품·열린 공간‘배’ 확 뒤집었다… 35년 된 보물 같은 폐선박, 해체 뒤 재조립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마당에 녹슨 폐선박이 거꾸로 박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다가가 한 바퀴 둘러보고는 둥근 구멍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 붉게 녹슨 외부와는 대조적으로 내부는 흰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고, 나무도 몇 그루 세워져 있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 본다. 둥글게 뚫린 창을 보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창 너머로 경복궁이 보이고, 저 멀리 있던 인왕산이 성큼 다가온다. 도심의 폐선 설치가 던져주는 의외성에 “아!”하고 탄성이 나왔다. 설치된 폐선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신예 건축가 발굴·전시 프로그램인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YAP) 2016’의 당선작 ‘템플’(Temp’L)이다. 뜨거운 여름 한시적으로 제공되는 명상의 공간이자 휴식을 제공하는 파빌리온 형태로 건축가 신형철(프랑스 그르노블대학 건축과 교수)이 이끄는 신스랩 아키텍처의 작품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건조된 지 35년 된 폐선박의 선수 부분을 잘라내 땅에 세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재활용 건축물이다. 신형철 건축가는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을 향하여’라는 책에서 산업화 시대가 만들어낸 결과물도 고전적인 건축물 못지않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대형 여객선 이미지를 제시해 놓은 것이 아이디어의 시작이었다”며 “산업시대에 만들어진 가장 큰 구조물로 예술적이면서 건축적인 가치를 지닌 선박에 주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1년에 1300여척의 선박이 수명을 다하고 해체되는데 그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이 바다에 마구 버려진다는 얘기를 듣고 환경을 생각하는 태도를 건축에 담아보고 싶었다”면서 “미술관에서 하는 건축물 전시인 만큼 순수미술과 건축의 관계 설정에 특히 주목했다”고 덧붙였다. “레디메이드된 변기가 화장실에 있으면 소변기이고 미술관으로 옮겨오면 작품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던 마르셀 뒤샹, 폐품으로 조각작품을 만든 파블로 피카소, 대형 망원경을 뒤집어 놓은 클래스 올덴버그, 철판을 이용해 건축 같은 조각을 하는 리처드 세라 등의 작품을 보면서 작품에 대한 구상을 구체화시켰습니다. ” 폐선박을 뒤집으면 훌륭한 건축작품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폐기된 선박 그 자체에서 공간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개념에 딱 맞는 폐선박을 찾는 것은 보물찾기나 다름없었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중국 등지에서 폐선을 수소문했지만 결국 전남 목포에서 보물을 찾았다. 2주 동안 체계적인 해체작업을 거쳐 환경오염을 줄이고 해체된 선박으로부터 재활용이 가능한 부분을 기술적으로 분리해 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 다음 배의 머리 부분인 선수 부분만 19조각으로 분해해 서울로 옮겨와 한 달 동안 재조립했다(설치된 작품은 원래 선박의 8분의1 정도다).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을 만들고 창도 내고 안에는 흰색 페인트를 칠했다. 나무 몇 그루와 테이블을 설치해 도심 속 작은 휴게소로 만들었다. 한쪽이 열린 공간이다 보니 야외음악당같기도 하다. 그는 “처음부터 콘셉트를 잡고 설계를 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즉흥적으로 손질했다”고 설명했다. 조형물의 제목 ‘템플’도 모든 설계를 마친 다음 설계도를 보면서 떠오른 이름이라고 덧붙였다. ‘템플’은 각각 ‘임시’와 ‘신전’이라는 뜻의 영어단어 ‘템포러리’와 ‘템플’을 합성해 만든 이름이다. 신 소장은 화가인 아버지(고 신성희 작가)를 따라 5살에 프랑스로 건너가 국립베르사유건축대학에서 공부했으며 현재는 그르노블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건축물이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에 대해 “세월호 사건으로 당시 충격을 받았고 잊을 수 없는 사건이지만 이 작품과는 무관하다”면서 “작품을 보고 세월호를 떠올리거나 위로받고, 명상하고, 휴식하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3일까지이며, 이 기간 중 서울관 제8전시실에서는 ‘템플’을 비롯해 YAP 후보작에 오른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생각나눔] “난폭운전 스마트폰으로 찍어 신고했더니… 범칙금 내래요”

    [생각나눔] “난폭운전 스마트폰으로 찍어 신고했더니… 범칙금 내래요”

    경찰 “범칙금 나오니 신고 취하하라” “또 다른 사고 위험성” “긴급 상황” 경찰 내서도 예외규정 적용 여부 갈려 “지난달 27일 오후 7시쯤 용인서울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로 차를 몰고 가던 중이었어요. 제 1000㏄ 경차 뒤로 중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가 차간거리도 유지하지 않고 바짝 붙은 채 3~4분을 따라오는 거예요. 너무 불안했죠. 그러다가 갑자기 속력을 높이고는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3차선에서 달리고 있는 제 차 앞으로 끼어들더니 속도를 확 줄였어요. 자칫 잘못하면 사고가 날 뻔했죠.” 8일 만난 정모(29·여)씨는 당시 SUV 운전자의 난폭운전에 식은땀을 흘렸다고 했다. 이 차가 계속해서 옆 차선으로 갔다가 깜빡이도 없이 앞으로 끼어들기를 반복하자 정씨는 의도적이라는 생각에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은 다음 이를 ‘스마트국민제보’ 앱을 통해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5일 뒤 정씨에게 날아온 경찰 답변은 엉뚱했다. 정씨에게 신고를 취하하라는 것이었다. 사건을 접수한 관할 경찰서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운전 중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건 불법이다. 신고하면 귀하도 범칙금을 물 수 있으니 취하하는 게 좋다”고 했다는 게 정씨의 말이다. 정씨가 “블랙박스나 스마트폰 영상으로 난폭운전을 찍어 신고하라고 경찰이 홍보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이 경찰관은 “스마트폰 영상은 정차 시에 촬영한 것만 신고 접수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정씨는 기자에게 “난폭운전자를 신고하는 데 차를 정차한 뒤 촬영해 신고를 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신고한 사람이 오히려 범칙금을 물게 되는 상황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범칙금을 감수하고라도 난폭운전자를 고발할지 고민 중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다시는 난폭운전 신고는 안 할 거예요.” 경찰은 지난 2월 보복운전 문제가 불거지자 스마트국민제보 앱에 난폭운전 전용 신고 창구를 열었다. 휴대전화나 블랙박스 촬영 동영상을 첨부해 신고하면 적극적으로 수사해 처벌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정씨의 경우처럼 현실은 이런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운전자는 운전 중에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 반드시 자동차를 정지한 상태에서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각종 범죄·재해 신고 등 긴급한 필요가 있을 때’다. 논란은 난폭운전이나 보복운전의 피해를 당한 경우를 ‘긴급한 필요가 있을 때’로 볼 것이냐 여부다. 이에 대한 마땅한 유권해석은 마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갈린다. A경찰관은 “난폭운전을 신고하는 것도 긴급한 상황으로 보고 신속히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B경찰관은 “난폭운전을 신고한다고 운전 중에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또 다른 사고 위험성이 높다”며 반대의 뜻을 밝혔다. C경찰관은 “보복·난폭운전은 어느 일방에게만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동영상 촬영 신고가 접수되더라도 가해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사진작가 김중만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사진작가 김중만

    김중만(62)과의 만남은 금요일인 지난 1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예정돼 있었다. 그 주 수요일부터 수영 박태환을 리우올림픽에 내보내자는 1인 시위를 국회 정문 앞에서 벌여 온 그가 일단은 그곳에서 보자고 제안해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후에 쏟아진 폭우로 그는 철수를 해야 했고 결국 청담동 스튜디오로 장소가 변경됐다. 폐렴 증세가 있는데 비까지 흠뻑 맞은 그는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좀 있으니 그에게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법원에서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 자격을 인정했다는 뉴스였다. 그의 표정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그럼 이제 정말 사자도 보고 침팬지도 보고 하마랑 코뿔소도 보고 그러는 거예요?” 1970년 여름 어느 날 저녁 나는 만세를 불렀다. 끓어오르는 희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홍대부고 1학년에 다닐 때였다. 아버지는 충남 한산에서 외과의원을 운영하셨는데, 가족들을 불러 앉혀 놓고 상상도 못했던 말씀을 하셨다. “정부에서 아프리카 봉사활동 파견 의사들을 모집하는데, 거기에 지원했다. 거기 가면 여기에서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다.” 나와 동생은 기뻐 날뛰기만 했지, 아버지의 입가에 흐르는 씁쓸한 미소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대접받는 의사의 자리를 버리고, 자식들 교육도 제대로 안 되는 나라로 떠나갈 결심을 한다는 게 얼마나 깊은 번민의 산물이었을지는 나중에 좀더 철이 든 뒤에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6·25 참전 군의관이셨다. 내가 휴전 이듬해 강원도 철원에서 2남1녀의 맏이로 태어난 건 그래서였다. 아버지는 군인들이 이 땅을 계속 통치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요즘 ‘헬조선’이라며 이민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46년 전에 그걸 몸소 실천에 옮기셨던 것이다. 그것도 가난과 모래폭풍이 지배하는 아프리카 오지에 가는 걸로 말이다. -아버지는 전역 후 당신 아버지의 고향인 전북 군산 대신에 어머니의 고향인 한산에 정착해 의원을 차리셨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즈음만 해도 우리 집이 양계장을 하는 줄 알았다. 아픈 사람들이 돈이 없으면 닭을 가져왔고 아버지는 늘 그걸 웃으며 받아주셨다. 매일 닭 요리가 밥상 위에 올라왔는데, 그때 물리게 먹어서 지금도 닭을 안 좋아한다. -내가 아프리카행에 그토록 환호했던 것은 탐험 소설가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대니얼 디포의 고전 ‘로빈슨 크루소’를 주셨는데, 난생처음 밤을 새워 읽은 책이었다. 이후 내 머릿속에는 무인도나 정글 생활 같은 것들이 꽉 들어찼고, 중학생이 돼 서울로 올라와서는 틈만 나면 청계천 8가 헌책방 거리로 달려갔다. -아버지의 중대 발표가 있고 보름 후 부모님과 우리 형제, 이렇게 네 식구가 탄 비행기가 서아프리카 오트볼타 상공에 도착했다. 오트볼타는 지금은 부르키나파소로 개명된 옛 프랑스 식민지였다. 하지만, 비행기가 랜딩 기어를 내릴 즈음 나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창밖의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그림이 전혀 아니었다. 밀림이나 사자는커녕 아래로 온통 시뻘건 모래사막뿐이었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사하라 남쪽에 위치한 오트볼타는 거대한 사막의 끝자락이었다. ‘아프리카면 다 똑같은 줄 알았더니….’ 게다가 우리가 살 곳은 수도인 와가두구에서 버스로 20시간도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였다. 철판으로 벽을 세운 묘한 형태의 집에 방 두 칸과 나무침대가 전부였다. 옆에서 흐뭇하게 웃고 계시는 아버지가 야속했고, 할머니와 함께 서울에 남은 여동생이 부러웠다. -아버지는 그 길로 평생을 아프리카 사람으로 사셨다. 오트볼타에서 의료 활동을 마친 후에는 더 남쪽에 있는 보츠와나로 옮기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계셨다. “내 통장에 2000풀라(보츠와나의 화폐 단위)가 있는데, 그 정도면 괜찮겠냐.” 1999년의 어느 날 생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직감한 아버지가 미국에서 돌아와 병 수발을 들고 있는 나에게 물으셨다. 그게 장남인 나에게 남겨 주시는 전 재산이란 얘기였다. 아버지의 표정은 대단했다. 2000풀라면 우리 돈으로 200만원 정도인데, 거의 200억원을 물려주시는 듯한 그 당당함이란. 얼마 후 돌아가셨을 때 당신이 남긴 거라곤 정말로 그 2000풀라와 양복 2벌, 청진기 3개, 모자 3개, 모터 달린 자전거 1대 그리고 ‘김정’이란 이름 두 글자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위대한 유산이 그리고 이만큼 멋진 분이 또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나는 동생보다도 아프리카 생활을 못 견뎌했다. 일단 마을에 학교가 없어 답답했다. 불어를 익히는 것 말고는 나를 채워 줄 것이 없었다. 신물 나게 양배추 김치만 먹어야 하는 것도 싫었고, 독거미에 물려 사경을 헤맸던 일도 끔찍했다. 1971년 나는 아버지가 수소문한 끝에 프랑스 서부의 작은 도시 숄레로 보내져 고1부터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인생의 황금기가 열렸다. 사방이 포도밭이었는데, 모두가 와인을 만들어 먹고살았다. 학교건 기숙사건 와인이 넘쳐났다. 그리고 1500명 학생 중에 유일한 동양인인 나에 대한 남녀 학생들의 관심과 배려는 한이 없었다. 꿈결 같은 3년을 보냈다. -원래 꿈대로라면 문학을 전공해야 했는데, 그러기엔 수학 실력이 너무 달렸다. 수학 시험을 안 보고 갈 수 있는 대학 전공은 미술밖에 없었는데, 그건 자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으로 숱하게 상을 받은 나였다. 1974년 니스에 있는 국립응용미술대 서양화과에 입학해 1년을 보내고 난 어느 날, 기숙사에서 사진을 취미로 하는 법대생 친구가 인화 작업을 도와 달라고 했다. 사진 한 장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지 처음으로 보게 됐다. 3~5분 만에 인화지에 그림이 새겨지는 건 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내 그림은 석 달이 걸려도 완성이 될까 말까인데. “맞다 저거야. 내 성격엔 저게 딱이야.” 친구에게 카메라를 빌렸다. 잠자고 씻을 때를 빼고는 카메라를 품고 살았다. 풍경, 얼굴, 동물 등을 닥치는 대로 찍었다. 아르바이트해서 몇 푼 손에 들어오면 무조건 필름 가게로 달려갔다. 늘 필름에 목이 말랐다. 주변에 있는 여자들의 누드도 찍었는데, 이는 내가 작가로서 초기에 명성을 얻게 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데뷔 시절 나의 주제가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1975년 대학 2학년 때 일찌감치 아들을 보았다. 아이의 엄마는 특수교육을 전공하던 한 살 어린 프랑스인 여자친구였다. 가장이 됐으니 생활비가 필요했고 필름값도 벌어야 했다. 돈을 아끼려고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아이를 몰래 돌보다 쫓겨난 적도 있었다. 주말이건 심야건 닥치는 대로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디스코텍에서 DJ도 했다. 점심때 식당 주방에 설거지를 하러 가면 늘 4~5m 높이 분량의 접시들이 쌓여 있었다. 당시 아버지가 아프리카 의료 활동으로 받는 돈은 고작 석 달에 500달러였다. 멀리 프랑스에 있는 아들에게 전혀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사진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었을까, 얼마 안 돼서 나는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전공을 살려 사진에 과감하게 미술적인 프레임을 접목한 게 먹혀들었다. 주어진 것을 찍는다는 생각보다는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장소를 정하고 모델을 세웠다. “니스에 동양인이 한 명 있는데 사진을 잘 찍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나를 찾는 곳이 늘어갔다. ‘프랑스 오늘의 사진 80인’ 등 몇몇 중요한 상을 거머쥐고 나는 파리로 진출했다. 자연히 니스에서의 학업은 더이상 이어갈 수가 없었다. 파리에서는 유명작가들 밑에서 패션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당시는 세계적인 대가일수록 동양인 어시스턴트를 두는 게 유행이었다. 이게 나에게는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어떠한 다른 동양인 사진작가도 나만큼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는 못했다. -1977년 서울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23세 때였다. 칸 미술제 참석을 위해 프랑스에 온 우리나라 화가들이 우리 집에 왔다가 내 사진을 보더니 “한국에는 이런 사진이 없다”며 전시회를 열어 보라고 했다. 전시회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 인연으로 한국에 계속 머물게 됐다. 이듬해 배우 오수미(1950~1992)를 만났다. 남편인 신상옥 감독이 납북되고 혼자 살고 있던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아름다움에 현기증을 느꼈다. 얼마 후 한국에 같이 머물고 있던 첫 번째 아내에게 “새로운 운명을 만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용서를 구했다. 아내는 별말 없이 아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떠났다. 그녀는 지금도 니스에서 전공을 살려 정신지체아들을 돌보고 있다. 지금도 아내와 아들과는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그녀는 가히 천사다. 방학이면 해마다 인도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 나는 테레사 수녀님을 따서 그녀를 ‘마더 테레사’라고 부른다. 지금도 우리들은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아들은 나와 같은 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나는 이 땅에서 두 번의 추방을 당했다. 1985년에는 프랑스 국적의 외국인이면서 당국에 신고도 하지 않고 전시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1986년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정보당국에 붙들려가 일본과 미국행 비행기에 강제로 태워 보내졌다. 두 번째 추방은 신상옥 감독이 북한을 탈출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그걸 계기로 오수미와는 자연스레 결별을 하게 됐다. -1988년 프랑스 국적을 버리고 한국인이 됐다. 당시 나는 프랑스에서도 톱클래스에 있었다. 그런데 오기가 생겼다. 두 번이나 나를 추방한 이 나라에 뭔가를 보여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해 당시 톱 모델이던 이인혜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1995년 5월에는 서울시립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됐다. 검찰이 일부 마약사범의 진술에 의존해 나에게 대마초 흡연 혐의를 씌웠는데, 나는 이미 2년 전에 같은 혐의로 구속돼 55일 동안 구치소 생활을 했고, 이후로는 완전히 절연한 상태였다. 검찰은 소변 검사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자 13일간 나를 정신병원에 가뒀고, 이는 인권탄압 사례로 신문 등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어쨌거나 이 일로 나는 국립종합예술학교 영상원 강사에서 잘리고 아내에게 이혼까지 당했다. -다섯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갔다. 1년을 아이와 둘이 살고 있으니 아내가 다시 찾아왔다. LA에서 3년 동안 패션사진, 상품 카탈로그 등을 찍으며 세 식구가 괜찮게 먹고살았다. 그런데 1997년 말 한국 외환위기의 파고가 멀리 LA까지 밀려왔다. 주된 고객이던 한국 기업들이 도산을 하거나 경영난에 빠지면서 일감이 뚝 끊겼다. 결국 월세 3000~4000달러짜리 아파트에 살다가 빈민들이 사는 300달러짜리 집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꼬박 1년을 살면서 전당포를 세 번을 갔다. 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다. 500달러에 카메라를 잡히면 그날은 LA갈비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거기에서 얻은 건 가족애였다. 극심한 가난 속에 우리 셋은 정말로 하나가 됐다. 너무도 소중한 가치였다. -“형, 처자식 고생 그만 시킬래.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형이 사진전 좀 열 수 있도록 주선해 줘.” 1999년 LA라디오 사장이던 가수 이장희에게 귀국을 고했다. 떠나기 전에 라디오코리아에서 내 작품들의 전시회를 열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였다. 사람들에 신세진 것들 좀 갚고 남은 돈으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부모님 계신 보츠와나를 거쳐 서울로 오는 티켓이었다. 그런데 카메라 장비며 책이며 옷가지 등 해서 짐이 250kg이나 됐다. 추가 화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수중에 남은 돈이 고작 400달러 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사진 5장을 별도의 휴대용 박스에 넣고 우리가 예매한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의 카운터를 찾아갔다. 책임자를 보자고 했다. 후덕해 보이는 여성이 나왔다. “저는 사진을 하는 예술가입니다. 짐이 좀 많은데, 추가 비용을 낼 형편은 안됩니다. 저의 작품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게 힘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녀는 내 사진을 한 장, 두 장 보더니 곧바로 ‘오케이’ 사인을 냈다. 이에 더해 우리 가족의 티켓을 이코노미석에서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해 주었다. 내가 절실할 때, 진실할 때 정성이 통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사진의 힘이란 걸 새삼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보츠와나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그의 30년 아프리카 여정을 기리는 뜻에서 카메라 장비를 챙겨 초원으로 나갔다. 요하네스버그, 세렝게티, 타랑기레 등의 동물들을 담아 2001년 8월 15일 광복절에 한국에 돌아왔다. -막상 귀국을 하니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내 한 몸은 고사하고 아내와 아들이 머물 수 있는 집 한 칸이 없었다. 상업사진을 시작했다. 명함을 만들고 압구정동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패션, 영화포스터, 음반표지 등 닥치는 대로 작업을 했다. 3년을 일하니까 서울 전농동에 아파트 한 채를 살 돈이 모였다. 3년을 더 하니까 한 해에 15억원 정도가 손에 들어왔다. -‘이게 내가 추구하던 삶인가? 맹목적으로 일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먹고 살 만 해지니까 또 다른 생각에 발동이 걸렸다. 2006년 고비 사막으로 여행을 갔다. 보름 동안 50대, 60대의 김중만은 어때야 할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돌아와서 아내에게 말했다. “나 상업사진 그만할게. 그래도 괜찮겠지?” 6년 동안 상업사진을 찍으면서 50억원 이상을 벌었는데 남은 건 거의 없었다. 빌딩 한 채 사 두라는 주위의 말들 무시한 채 어려운 나라에 학교 지어 주고, 카메라 장비 사고, 스튜디오 운영하고, 먹고 놀고 했더니 남은 게 없었다. -2008년 관광공사의 외주를 받은 것을 계기로 한국의 풍경을 집중적으로 앵글에 담기 시작했다. 한국의 이미지는 나에게 새로운 전기가 되어 주었다. 그동안 나는 우리나라의 이미지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어느날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에 갔다. ‘600년 된 학교인데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있고, 옆에는 숲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600년 전에 이런 학교를 지었던 것이다.’ 내가 그동안 우리나라를 너무 피상적으로만 보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이미지 촬영은 나에게 새로운 전기가 됐다. 무엇보다도 해외에서 호평이 이어졌다. ‘극단적으로 동양적인 본질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극단적으로 서양적인 표현력을 갖고 있다’, ‘동양과 서양을 겸비한 이중성을 갖고 있는 유일한 작가’ 등 평가들이 나왔다. -예술사진으로 다시 돌아와 시간이 흐르니 내 작품 가격이 2500만원, 5000만원, 7500만원 등으로 해가 다르게 뛰었다. 대부분 외국에서 구매하는데 3개월 전에 처음으로 작품 하나를 파리에서 1억원에 계약했다. 작품의 가격은 작가의 자존심이다. 5억원까지는 올려보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건 나의 철칙은 지키려 한다. 작품의 영역에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 순결해지자는 것이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사진작가 김중만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다. 10대 중반 아프리카를 거쳐 프랑스에 유학해 21세 때인 1975년 니스에서 개인전을 열고 데뷔했다. 1977년 ‘프랑스 오늘의 사진’에 역대 최연소 작가로 선정되면서 주목받았다. 인물, 동물, 꽃, 풍경, 패션 등 다양한 주제에서 틀에 짜인 관습과 앵글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을 창조해 왔다. 현재 스튜디오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운영하고 있다. 2006년부터 상업 활동을 중단하고 예술 사진에 집중하고 있다. 아프리카 어린이 지원과 캄보디아, 베트남 학교 건립 등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이다. ▲1954년 강원 철원 출생 ▲한산초, 홍익중, 프랑스 숄레 고등학교, 니스 국립응용미술대 서양화과 중퇴 ▲프랑스 아를 국제 사진페스티벌 젊은 작가상(1977), 올해의 패션사진가상(2000),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2010), 한국패션 100년 어워즈(2011) ▲ 작품집 ‘불새’, ‘인스턴트 커피’, ‘동물왕국’, ‘아프리카 여정’, ‘애프터 레인’, ‘네이키드 소울’, ‘오키드’ 등
  • [자치단체장 25시] 김홍섭 인천 중구청장

    [자치단체장 25시] 김홍섭 인천 중구청장

    김홍섭(67) 인천 중구청장만큼 ‘입지전적’이라는 말과 들어맞는 단체장은 흔치 않다. 김 구청장은 영종도의 가난한 농가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조그만 농토를 일구었지만 3남 4녀를 키우기에는 궁핍하기 그지없었다. 장남으로서 책임감을 느낀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중퇴하고 동생들 학비를 대고자 염전·공장 등에서 노동자 생활을 했다. 일을 하면서 익힌 경험을 토대로 가마니를 짜 염전에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했으나 마대가 등장하면서 빚만 잔뜩 졌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생필품을 인천의 섬 등에 유통하는 일을 해 제법 큰 돈을 벌었다. 이 돈을 모두 투자해 1980년대에 연안부두에 목욕탕을 열었다. 영업이 시원찮았다. 고민하던 그는 오래전 월미도에 있었다는 조탕을 떠올렸다. 국내 최초로 해수탕을 만들어 보겠다고 각오했다. 인하공대로 가서 해수 성분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을 의뢰,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질이 좋고 특이한 느낌을 주는 해수탕을 개발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해수탕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됐다. 1990년대 초에는 월미도에서 놀이기구 사업을 펼쳐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김 구청장은 늘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열심히 궁리하면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해결책이 나온다”고 말한다. 이런 인생 역정 덕분인지 그는 누구보다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안다. 이는 자연스레 소외 계층을 배려하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그가 2000년 중구청장에 처음 당선된 이후 한결같이 유지해 온 행정철학이다. 인천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인현동 쪽방촌과 북성동 새우젓 거리를 말끔한 공동주택으로 변모시키는 등 김 구청장은 열정적으로 펼친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펼쳤다. 이런 일까지 있었다. 구청장에 당선된 직후인 2000년 7월 첫 봉급 전액을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기부했다. “나는 먹고살 만하니 봉급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는 의도였다. 뜻밖에 선거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2006년 기부를 중단했다. ●근대문화시설·관광 만나면 일자리 창출 김 구청장은 낙후한 중구가 발전할 해법으로 관광을 제시했다. 그는 놀이기구 사업 전문성을 인정받아 유럽에 초청받아 갔는데 이때 관광이 유럽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 지역의 문화를 접하고 사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관광의 진수라는 것도 깨달았다. 이때의 경험은 중구에 산재해 있는 근대문화시설을 관광과 접목시키면 예산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김 구청장이 인천항 내항 개방과 재개발에 치중하는 것은 민원 해결과 관광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천항은 1883년 제물포항으로 개항한 이래 번성기를 누리며 우리나라 관문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원목, 고철 등을 하역·운반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분진, 소음, 교통문제 등으로 주민들은 환경 피해는 물론 생존권까지 위협받아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김 구청장은 인천항 내항이 재개발되면 인근 차이나타운 및 월미관광특구와 연계된 친수·문화·상업 공간으로 탈바꿈돼 지역경제의 틀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내항을 전면 개방하겠다는 애초 약속과는 달리 지난 4월 1일 8부두 일부만을 개방했다. ●“1~8부두 전체 개방돼야 종합적 투자” 김 구청장은 “8부두 일부를 개방하는 것만으로는 관광과 연계된 복합시설을 설치하기에 부족하다”면서 “1∼8부두 전체가 개방돼야 종합적·체계적인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항의 기능은 남항·북항·송도 신항 등의 외항으로 이전하면 되며, 실제로도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라며 “인천을 동남아 비즈니스 관문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김 구청장은 인천시에 대한 쓴소리도 주저하지 않았다. “내항 개발이 이뤄지면 뛰어난 입지 때문에 서울 명동, 남대문, 동대문에 버금가는 상업·관광 기능을 할 수 있다”면서 “시가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관광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인천항을 부산항과 견줘 분석하기도 했다. 그는 “부산 북항은 태평양과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국제적인 관문 도시로 발전하고자 정부 지원을 받아 153만㎡에 8조 519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개발하고 있다”면서 “인천의 경쟁력은 결코 부산에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13억 인구의 중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고 세계 최고의 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이 자리 잡아 잠재력이 무한하다”고 강조했다. ●‘유커 겨냥’ 한중무역유통단지 추진 김 구청장은 중구의 비전을 창출하기 위해 중국을 주목하고 있다. ‘큰손’으로 부상하는 중국인들이 들어오는 관문인 중구의 입지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둥북아 허브를 지향하는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중국 시장이 중구뿐 아니라 인천의 경제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부적인 계획을 위해 항동에 중국 무역상을 타깃으로 하는 한중무역유통단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서울 강서유통단지사업협동조합과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원도심인 신포·신흥동은 쇼핑, 숙박, 먹거리, 볼거리를 다양하게 제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일자리 창출과 내수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구상이다. “중국 관광객들이 인천을 찾았을 때 편하게 먹고 자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인천공항 환승객을 위한 다양한 관광상품 개발에도 힘쓰겠습니다.” 김 구청장은 “기본적으로 항공으로 1∼2시간 거리에 있는 중국 도시를 겨냥하고 장기적으로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까지 커버할 수 있는 시설들이 들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의 경제적·문화적 위상이 높아진 만큼 일단 인프라가 구축되면 주변 국가 관광객·무역상들이 찾아올 것”이라며 “공항과 항만을 통해 들어오는 외국인들을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을 붙잡을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관광·레저, 국제 비즈니스, 해양문화, 갑문·역사영역 등을 기본 주제를 꼽았다. 여기에는 해양문화·관광산업과 연계된 벤처기업 유치, 해양 스포츠 등 테마관광, 여객 편의시설 기능을 갖춘 휴식공간, 전시·무역공간,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 등이 포함된다. 한마디로 무역과 관광, 해양레저를 아우르는 복합벨트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도에 개발 치중… 영종도는 소외돼” 김 구청장은 경제자유구역 지정 이후 개발이 지지부진한 영종도 문제도 거론했다. “정부가 20조원 투자 등 거창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2003년 영종도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했지만 영종하늘도시를 조성한 것 외에는 지금까지 한 일이 없다”면서 “개발이 송도에 치중돼 있고 영종도는 소외돼 주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정작 외국인들이 들어오는 곳은 영종도인데 외국인 발을 묶을 만한 시설이 없으니 도착하자마자 서울로 가는 것 아니겠으냐”고 반문했다.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적극적 지원 계획도 밝혔다. 김 구청장은 “취약 계층에 대한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과 지역 특성에 맞는 사회적기업을 발굴해 육성하겠다”면서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복지시설 운영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新전원일기] 하늘과의 동업 농사는 기다림…바보처럼 지킨 못난이 토마토

    [新전원일기] 하늘과의 동업 농사는 기다림…바보처럼 지킨 못난이 토마토

    소 한 마리로 시작한 낙농업 10년… 우유 판로 막히면서 하우스 농사로… 병충해 시달리면서도 유기농법 25년 안전 먹거리·윤리적 농법 의식 확산… 못난이 토마토 이젠 없어서 못 팔아… 착즙 개발해 年 수익 1억 5000만원 남편은 뒤늦게 방송대서 농학 공부… 아내는 최근 식품가공기능사 합격… 변화 꿈꾸는 부부는 또 새로운 ‘시작’ 어린 시절 더운 여름날, 학교 갔다 돌아오면 엄마가 미리 설탕에 재워 차갑게 식혀 둔 토마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콤하고 시원한 과육을 포크로 찍어 흘릴세라 접시에 대고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남은 과즙을 서로 들이마시겠다고 동생과 머리를 맞대고 실랑이하던 기억. 거꾸로 읽어도 토마토, 바로 읽어도 토마토. 껍질도 과육도, 안팎이 똑같이 빨간 토마토는 추억이다. # 꿈이 농부였던 남자 충남 아산시에서 유기농 토마토와 아로니아를 재배하는 ‘달기 농장’의 조재호(59)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꿈이 농업인이었다. 면 단위 중학교를 나와 평택까지 통학했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예비고사를 보러 가는 길에 결국 옆길로 샜다. 어차피 농사를 지을 건데 대학에는 가서 무엇하느냐는 그의 고집을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에 예산 산다는 박응서(58)씨를 중매로 만났다. 당시 그녀는 그보다 한 살 어린 스물다섯. 그 시절 생면부지의 나이 어린 청춘들이 마주 앉아 나눌 법한 이야기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자신의 꿈은 농사를 계속 짓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박씨는 그렇게나 좋았더란다. 그러나 박씨는 농사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시집와 처음으로 남편과 시아버지를 따라 들로 나갔다. 농약 치는 기계를 보고만 있으면 된다 해서 따라나섰던 길인데, 아버님이 둘둘 말린 호스를 계속 풀고 감으라 하신다. 논은 저 멀리 들판 너머에 있고, 논두렁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기계를 실은 경운기는 길가에 서 있다. 그 길이 까마득히 멀어 무거운 호스를 풀고 당기고 또 풀고 당겨주어야 하는데, 한 뼘 그늘도 없는 뙤약볕 아래에서 그 일이 너무나도 힘에 부치더란다. “제발 그것만은 좀 안 시켰음 싶은데, 농사 짓는 집에 시집와서 못 한다고 할 수도 없고, 나중에는 약 치러 가자 하시면 정말 경기를 일으키겠더라고요. 그때부터 약 치는 일은 힘든 일, 안 좋은 일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그날의 들판 위로 부는 바람과 햇살, 땀방울이 다시금 생각나는지, 부부는 서로 시선을 맞추고 웃음을 터뜨린다. 오래 한 곳을 바라보며 살아온 부부의 마주치는 눈빛이 깊다. 들판 너머로 힘들어하는 어린 신부를 바라만 봐야 했던 어린 신랑의 마음은 또 어떤 것이었을까. #패물과 돌 반지 팔아 시작한 낙농업 10년 두 아이가 태어나고 어린 신랑은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좀더 수익을 낼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아내의 패물과 아이들 돌 반지를 팔아 소 세 마리를 들였다. 시골에서 몇 마리의 소만 먹여도 부자 행세를 하던 시절이었다. 바람대로 소는 금방 네 마리가 되고 다섯 마리가 되었다. 젖을 짜기 시작하며 돈도 돌기 시작했다. 스물대여섯 마리까지 늘어나며 해마다 주변의 땅도 조금씩 사들였다. 하지만 워낙 낙후된 지역이었다. 땅이 질척거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동네였다. 목장 앞까지 집유차가 들어올 수 없어서 우유 통을 경운기에 실어 큰 길까지 내가곤 했는데, 이제 더이상 그렇게는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서였다. 한때 육우로 돌려보기도 했지만 결국 시작한 지 10년 만에 목장을 접어야 했다. 그래도 마침 따로 지었던 애호박 농사로 재미를 보았던 터라, 소를 판 돈으로 목장을 밀고 다져 하우스를 세웠다. “그런데 그게 또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란 말이지요. 애호박으로 시작해서 부추, 깻잎 등 하우스 작물들을 심었는데….” 처음에는 바람에 하우스가 파이프째 날아가 버렸다. 낙하산처럼 날아올랐다가 이리저리 나부끼는 것을 붙들면 사람까지 딸려 날아갈 지경이라 속수무책 바라만 봐야 했다. 바람이 잦아진 뒤에야 들판에 널려 있는 파이프를 주워 와 다시 펴고 땜질해 설치하면 또 날아가고, 다시 설치하면 또 날아갔다. 하우스 시설에 대한 이해와 경험 부족 탓이었다. “나중에는 그냥 같이 날아가 버리고 싶더라고요.” 충청도 특유의 구수한 억양을 담아 그가 농담처럼 말하고, 아내가 또 그 말을 웃음으로 받는다. #어찌 됐든 농업은 하나님과의 동업 본격적으로 유기농법을 시작한 지는 25년, 토마토로는 19년째다. 당시 한 산림조합 관계자의 설득으로 시작하게 됐는데, 조 대표도 돈이 덜 되더라도 꼭 가야 할 길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 역시 해마다 실패하고 말았다. 병충해가 돌고 벌레가 생겨 작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어쩌다 작황이 좋아도 판로가 마땅치 않았다. 유기농이라는 말 자체가 없을 때였다. ‘무공해’라는 이름으로 협동조합을 통해 판매되기도 했지만 제대로 알고 찾는 소비자가 많지 않았다. 돈이 덜 되는 정도가 아니라 소 판 돈을 모두 잃고 농사짓던 땅마저 야금야금 팔아야 했다. “후원을 받아 단체로 일본이나 유럽 쪽으로 벤치마킹을 다니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쪽에서는 벌레 먹고 못생긴 것들을 안전하다고 아주 자연스럽게 잘 사먹는데, 우리는 여전히 번드르르한 것만 찾는 현실이 답답하더라고요.” 차츰 미생물을 배양해 농약 대신 뿌리고 천적을 이용해 방제할 수 있는 경험과 기술이 축적되었다. 작황이 좋아지고 가격이 안정적으로 형성되며 소비자들에게도 안전한 먹을거리와 자연을 윤리적으로 이용하는 농법에 대한 의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우리도 한 10년 전부터는 ‘못난이 토마토’가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생김새나 크기 때문에 등급을 받지 못했을 뿐 맛이나 효능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거든요. 그런 것들을 ‘못난이’라고 이름 붙여 싸게 팔았더니, 정품보다 더 잘 팔리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농사는 하나님과 동업하는 일, 작황은 기후에 따라 유동적이고 토마토는 저장성이 좋지 않다. 때로는 트럭에 싣고 서울로 올라가 지인들의 사무실을 돌며 팔기도 하고, 길가에 차를 세워 놓고 직접 목청껏 소리쳐 팔기도 했다. #차별화된 착즙 개발과 기다림의 시간 그래도 고향이다 보니 이웃은 물론이고 시청 등에도 지인이 많았다. 관련 공무원들과 농업 현실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할 수 있었다. 짧은 유통 기간에 대한 타개책의 하나로 2009년 지원금 3500만원을 받아 조립식으로 가공 공장을 짓고 중탕기와 포장 기계를 들였다. 따로 벤치마킹을 할 곳을 찾지 못해 주변의 건강원 등을 찾아다녔다. 토마토는 익혀 먹으면 그 맛과 효능이 배가 된다. 특히나 항산화 물질인 라이코펜 성분은 가열 때 4배 이상의 효과를 낸다. 무수한 실험과 연구 끝에 맛과 영양을 모두 잡은 제품을 만들어내고 홈페이지(www.dargi.co.kr)도 개설했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알고 오겠어요. 처음에는 주위에 다 나눠줬죠. 아는 고깃집이나 미용실에 맡겨두기도 하고, 어쩌다 전자상거래 유통업체에서 연락이 오면 어떤 조건이든 그냥 다 줬어요. 어디서든 하나라도 팔면 광고가 되고, 누구든 먹어보면 그 맛과 효능을 인정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입소문으로 전해지며 차츰 판매량이 늘어갔다. 단골도 늘어 2014년 2월에는 급기야 만들어 놓은 제품이 다음 시즌이 되기도 전에 완판됐다. 계속 드시던 고객들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귀한 생물로 제품을 만들어 공지를 띄우면 몇 시간 만에 품절되기 일쑤였다. 가공 시설을 갖추고 홈페이지를 개설한 지 5년 만의 일이었다. “농사는 기다림이거든요. 봄이 오길 기다리고, 싹이 나길 기다리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길 기다리고, 그 열매가 익어가기를 기다리고. 장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했죠.” 부부는 현재 2800평 규모의 토마토 하우스와 50평 남짓의 가공 공장, 노지 1500평의 아로니아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융복합 산업 농장으로 선정돼 가공 시설과 체험 시설 등의 증축과 확장 계획도 갖고 있다. 지금은 연간 1억 5000만원가량의 수익을 내고 있지만, 그동안의 투자액을 생각하면 다른 산업에 비해 수익률이 높은 편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고 한다. 조 대표는 자신을 자꾸만 바보라고 표현한다. 일반 농사도, 낙농도, 하우스도, 유기농도, 토마토도 그 실상을 알고 숫자에 밝아 셈을 할 줄 알았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런데 농사는 돈의 논리로만 생각하면 안 되는 거거든요. 나도 그렇고 우리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도 그렇고, 인간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잖아요. 공적 산업이랄까, 뭐 그런 사명감을 갖고 어느 정도는 자신을 내려놓고 비워야 해요.” 조 대표는 뒤늦게 방송통신대에서 농학을 공부했다. 여러 단체에서 벤치마킹을 오기도 하고, 귀농인들의 멘토가 돼 농장은 종종 교육장으로 변신한다. 대형 물류 창고를 닮은 선별장은 프로젝트와 스크린까지 갖춘 교실이 된다. 오랜 세월 속에서 터득한 자신만의 노하우는 적당히 감출 법도 한데, 조 대표는 절대 그러는 법이 없단다. “시골 사람들은 자랑할 게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뭐 좀 가르쳐 달라고 하면 신이 나서는 그냥 다 알려주는 거죠.” 조 대표가 또 충청도 특유의 억양을 담아 여유롭게 농담을 하고, 아내가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면서도 같은 생각이라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도 지난달 국가고시인 식품가공기능사 시험을 봤단다. 엊그제 합격 통보를 받았다며 기뻐 어쩔 줄 몰라 한다. “얼마나 힘들게 공부했는지 몰라요. 내후년이면 예순인데,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가서는 글자가 어디 눈에 들어와야지요. 그래도 자꾸 찾아서 배우려 해요. 전자상거래도 그렇고, 자격증도 그렇고. 사실 평생 농사만 지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관공서 양식에 맞춰 사업계획서를 쓰고, 서류 준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사는 날까지는 조금씩이나마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었으면 해요. 세상이 변하는데, 농민도 농사도 옛 방식 그대로일 수는 없지요.” 그녀가 운영하는 블러그(http://blog.naver.com/pes6538)에서 읽은 마크 트웨인의 ‘앞서 가는 방법의 비밀은 시작하는 것’이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오랜 세월 한길을 걸어오면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 온 이 부부의 ‘시작’은 현재진행형이다. 글쓴이- 소설가 서진연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13년 제2회 EBS 문학상 우수상 수상. 소설 ‘붉은 나무젓가락’, 그림동화 ‘옥상에 텃밭이 생겼어요’, 옴니버스 에세이집 ‘가족이 힘이다’, ‘수업’, ‘가족, 당신이 고맙습니다’ 등.
  • ‘www.haveseoul.com’ 서울 정책·행사 한눈에

    서울시의 각 부서나 산하기관 등에서 시행하는 모든 정책과 행사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이트가 열렸다. 서울시가 시민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나 유익한 프로그램을 여러 가지 운영하고 있지만 시민들이 잘 몰라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서울시는 3일 200개 주요 정책을 키워드별로 분류해 소개하는 웹사이트 ‘서울을 가지세요’(www.haveseoul.com) 운영을 시작했다. ‘영유아, 주택, 소상공인, 주말 뭐해’ 같은 키워드별로 관련된 모든 정책을 한눈에 찾아보고, 예약과 신청을 할 수 있게 했다. 주요 정책들은 생애주기와 분야, 상황, 대상별 등 4개 카테고리로 나눠 검색할 수 있고 스마트폰에서도 이용 가능하다. 상황은 ‘지갑 허전, 몸·맘 아픔, 주말 뭐해’ 식으로, 대상은 여성, 장애인, 소상공인, 근로자, 취약계층 등으로 구분된다. 예컨대 ‘서울로 떠나는 캠핑’을 찾으면 서울시내는 물론 강원도 횡성, 충북 제천에서 서울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캠핑장이 소개되고, 링크된 사이트로 이동해 예약까지 마칠 수 있다. 주변에 알리고 싶은 정책은 페이스북, 트위터로 공유할 수 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가정 어려워 34년 만에 못낸 병원비 갚은 60대 여성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병원비를 내지 못했던 60대 여성이 34년 만에 치료비를 완납했다. 서울에 사는 강모(63)씨는 34년 전 남편의 치료비 710만원을 30일 전북 전주 예수병원 발전기금 계좌로 송금했다. 강씨가 뒤늦게 병원비를 내게 된 사연은 1982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씨는 그날 청천벽력 같은 남편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다. 남편이 몰던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가 마주 오던 8t 트럭과 정면충돌한 것이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사람들은 동승자들을 병원으로 싣고 갔지만 강씨 남편은 숨졌다고 생각해 그 자리에 그냥 뒀다. 때마침 지나가던 한 군인이 남편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리는 것을 보고 곧바로 전주 예수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남편은 수차례 수술로 죽음의 고비를 넘겼고 3개월간 투병생활을 한 끝에 퇴원 절차만 남았다. 하지만 강씨의 마음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부부가 채소가게를 하다가 실패해 많은 병원비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딱한 사정을 전해 들은 이 병원 설대위 병원장은 병원비 780만원 중 710만원을 감면해줬다. 강씨 부부는 병원 측의 배려로 70만원만 내고 퇴원했다. 이후 강씨 부부 생활은 더욱 궁핍해졌다. 남편은 사고 후유증으로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 대신 강씨가 바느질로 살림을 꾸려갔다. 서울로 이사하고 나서도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자녀를 키웠다. 하지만 강씨는 늘 가슴 한구석에 마음의 빚이 있었다. 그는 다니는 교회 목사를 찾아가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병원 이야기를 털어놨다. 목사는 “그 돈을 현재로 치면 아마 8000만원이 넘겠지만 원금이라도 갚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강씨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남편의 병원비를 보냈다. 퇴원한 지 34년 만이었다. 강씨는 “예수병원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어 뒤늦게나마 감면받은 병원비를 내게 됐다”면서 “이 돈은 저희 같은 사람들을 위해 써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사고 현장에서 남편을 구해준 육군 제1697부대 정훈참모부 김우택 상사를 찾아 꼭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면서 연락을 기다렸다. 김 상사를 아는 분은 예수병원 홍보실(063-230-8771)로 연락하면 된다. 예수병원은 강씨가 보내온 돈을 어려운 환자를 돕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新전원일기] 충남 홍성 ‘자연재배 농가’ 귀농 8년차 이연진씨

    [新전원일기] 충남 홍성 ‘자연재배 농가’ 귀농 8년차 이연진씨

    거름은 녹조현상 일으키고 질소는 인체 유해… 압축한 볏짚 단열효과 좋아 난방비 안 들어 우리나라에 유전자조작식품(GMO)이 들어온 지 20년이 지났다. 아이와 여성에게 특히 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 GMO는 각종 질병과 기형아 출산 등 부작용이 심각함에도 정부는 ‘GMO 완전 표시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결국 최고의 해답은 ‘자연재배’(농약도 비료도 없이 흙의 힘으로만 작물을 키우는 것)가 아닐까. 충남 홍성군 홍동마을에는 완전히 자연재배 농법을 쓰는 젊은 귀농인이 있다. 이연진(44)씨는 귀농 8년차로, 세 아이의 아빠다. 명문대 국문학과를 나왔지만 ‘전공’보다는 ‘재능’과 ‘꿈’을 살린 케이스. 밭 1500평, 논 1000평으로 생활을 꾸려간다.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가족들이 먹고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그의 밭에는 온갖 것들이 있다. 셰프들은 자연재배로 키운 그의 농산물을 좋아한다. 그는 귀농 이후 높아진 삶의 질과 마음의 평화야말로 어떤 경제적 이득보다 커다란 가치임을 증언한다. 그는 홍동마을 최초의 협동조합인 ‘얼렁뚝딱 집짓기 협동조합’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천연재료 ‘스트로베일’(압축볏짚)로 집을 지어 난방비가 0원에 가깝다는 그의 집 짓기 비결도 궁금했다. →국문학을 전공하셨는데, 취직을 하셨다가 귀농을 하게 된 계기는. -결혼 후 경기 고양시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던 중 중국 베이징 주재원으로 가게 되었다. 대기 오염이 워낙 심각해서 베이징 주재원으로 가면 멀쩡한 사람도 천식 환자가 된다는 말을 듣던 터였다. 그래도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덜컥 아이가 생겨버렸다(웃음). 어디서 첫 아이를 키워야 할까를 아내와 고민했다. 베이징이 아니라면 서울도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도시로 가서 조용히 살고 싶었다. 충남 공주로 이사했지만, 쳇바퀴 같은 회사 생활에 회의가 들었고 ‘이제 정말 시골로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홍성에 오고 싶었지만, 워낙 귀농인들이 많아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전북 남원으로 급선회했다. ‘실상사’(實相寺)가 있는 동네에서 살았지만, 상상과는 너무 달랐다. 농부보다는 예술가가 더 많았다. 홍동에 집을 알아보다가 벼룩시장에서 전셋집을 찾았고 바로 계약했다. 2009년 홍동마을로 드디어 입성했다. 드디어 귀농인들의 꿈, 홍동에 정착했다는 뿌듯함도 크고, 농사일이 정말 재미있었다. →문학에 대한 꿈은 완전히 접은 건가. -시를 쓰고 싶었지만, 20대 후반쯤에 포기했다(웃음). 국문학 전공을 살리면 평론가, 기자, 교수 등 이런 쪽으로 가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다. 뭔가 구체적인 산물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분석이 아닌 생산, 그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결국 농사였다. 영업일도 해봤지만 삶의 근원적인 갈증을 해결 못 했고, 결국 모든 위계질서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길이 귀농이었다. 부모님이 농사 지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아이들은 꼭 시골에서 키우고 싶었다. 양복도, 출퇴근길도, 위계질서도 불편했고 그런 갈증을 녹색연합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풀었는데, 그곳에서 아내도 만났다. 아내는 “은퇴하면 귀농을 하자”고 했는데, 아이가 생기자 생각이 바뀌었다. 귀농학교 수업도 듣고 귀농운동본부에도 가보면서 완전히 마음을 굳혔다. →비료는 물론 거름까지 안 쓰시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 -귀농을 한다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고, 석유를 쓰지 않는 농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주일간 내 손으로 밭을 갈았다. 다른 도구 없이 삽만 썼다. 트랙터로 30분이면 끝날 일을, 일주일 내내 내 손으로 해냈다. 그렇게 몇 년 고생하다가 자연재배를 알게 되었다. ‘짚 한 오라기의 혁명’, ‘신비한 밭에 서서’라는 책을 보며 뭔가 머릿속에서 커다란 그림이 그려졌다. 그동안 농작물을 위해서 모든 풀들을 ‘잡초’로 분류하고 제거하는 농법에 익숙했지만, 그 모든 풀들과 공생하는 방법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기계로 밭을 억지로 뒤집어 놓으면 벌레들, 미생물들이 꾸리던 생태계가 다 무너진다. 작물만 생각하는 농사는, 밭을 갈아버리고 파종하고 거름 넣고 비닐 씌우면 끝이다. 하지만 자연농법은 풀과 흙과 미생물까지 모두 공생하면서 천천히, 길게 나아가는 것이다. →유기농법과 자연농법은 서로 다른 것인가. -자연농법은 본래 흙이 지닌 힘만으로 작물을 키우는 것이고, 유기농법은 밭을 갈고 거름을 넣는다. 30㎝ 정도 땅을 갈고, 흙이 밀가루처럼 부드러워지게 만든다. 해를 거듭할수록 땅이 딱딱해지게 되어 있다. 그 30㎝ 안쪽에 이미 소똥거름과 ‘유박’(기름을 짜고 난 유채 찌꺼기)이 가득하니까 뿌리가 그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뿌리가 땅속 깊이 내려갈 필요가 없으니까, 작물에서 땅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미네랄이 지닌 오묘한 맛이 안 난다. 유기농법은 토마토를 키우든 참외를 키우든 소똥이나 유박의 ‘거름맛’으로 수렴된다. 자연농법은 처음에는 고생스럽다. 땅이 워낙 딱딱한데, 농작물은 뚫고 들어갈 힘이 없으니까. 그런데 해를 거듭하면서, 김도 매지 않고 풀을 내버려두면, 작물보다 훨씬 강한 풀이 먼저 땅을 뚫고 들어간다. 강인한 풀들이 작물보다 먼저 딱딱한 곳을 뚫고 들어가 준다. 그럼 작물도 풀을 따라서 깊은 땅속으로 뿌리를 뻗어나간다. 자연재배 농작물에서는 ‘원래 수박이 이런 맛이었나, 참외가 이런 맛이었나’ 싶을 정도로 선명하고 강렬한 맛이 난다. 유기농 작물에 들어가는 거름에는 질소 성분이 가장 많다. 질소 성분은 인체에 매우 위험하다. →농작물에 섞인 질소 성분은 어느 정도 위험한 것인가. -농작물 부패 실험을 해보면 답이 나온다. 화학비료 작물, 유기농 작물, 자연재배 작물을 밀폐된 공간에 두고 부패하는 데 드는 시간을 비교해 보면, 유기농 작물이 가장 먼저 썩는다. 그 다음이 화학비료 작물이다. 그런데 자연재배 작물은 ‘부패’하지 않고 ‘발효’가 된다. 질소 성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질소비료가 많이 들어간 작물을 먹으면 호흡곤란이 올 수 있다. 신생아는 마트에서 산 채소를 먹고 청색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우리 식생활 자체가 ‘과잉 질소’로 오염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질소 거름이 들어가면 몸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비자가 20만명이 넘는다. 그래서 자연재배 채소만 찾아서 먹는 사람들이 많다. 소똥을 과다하게 쓰는 문화도 문제다. 악취가 엄청날 뿐 아니라, 소나 돼지 축사에서 나오는 똥을 그냥 밭에다 쏟아부어 처리해 버리니까 하천에 녹조현상이 심해지고 지하수 오염도 심해진다. 거름이나 비료를 많이 주면 과영양 상태로 인해 병충해도 극심해지고, 농약을 더 많이 뿌리게 되니까, 악순환이 되어버린다. →‘농부가 돼서 참 다행이다’ 싶은 순간은. -예전에는 풀이 농사의 방해물로 보였지만, 이제 농사의 친구로 보인다. 풀이 없이 작물만 있는 밭은 흡사 사막과 같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서 땅을 덮어줘야 그 땅이 부드러워지고 다음해 굳이 밭을 갈지 않아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동안 사람들은 풀을 없애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체력을 허비했다. 이제는 풀을 적극적으로 키우는 것이 농부와 땅의 체력에도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시장터인 ‘마르쉐 장터’에 가면 우리집 농산물이 인기다. 특히 셰프들이 내가 키운 자연재배 채소의 진가를 많이 알아주어서 뿌듯했다. 산약초, 수세미, 당근잎으로 만든 효소, 울금으로 만든 비누, 돼지감자차, 직접 갈아 만든 미숫가루 모두가 반응이 좋다. 울금비누로 머리를 감았더니 몇 년 동안 고질병이던 비듬이 한 번에 싹 없어졌다. 자연재배 농산물을 드시고 ‘이런 맛은 처음이다, 정말 맛있다’고 해주시면 그게 가장 큰 보람이다. →자연에 최대한 가깝게 살아가는 삶의 방편으로 천연재료로 집짓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인가. -귀농 2년차에 많이 흔들렸다. 둘째가 태어나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체력 고갈이 극심했고 은행 잔고도 바닥났다. 그러던 중 같이 집을 지어보자는 동네 형님들의 제안이 들어왔다. 그렇게 귀농 3년차에 집을 짓게 되었다. 지역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재료로 집을 짓고 싶었다. 벼농사를 많이 하니까 볏짚이 많았다.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볏짚을 벽돌처럼 압축해서 만든 재료로 집을 지으니까 단열 효과가 대단하다. 남자 네 명이서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농사엔 석유를 쓰지 말고, 집에는 시멘트를 쓰지 말자고 결심했다. 양파망에 흙을 채워 흙부대를 만들어 기초를 탄탄히 한 후 결국 해냈다. 처음엔 네 명이 시작했지만, 동네 사람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내 집을 내 손으로 짓고 싶다’는 원초적인 관심이 사람들을 모이게 한 것 같다. 2013년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고, ‘얼렁뚝딱 집짓기 협동조합’이 홍성 최초의 협동조합이 되었다. 이제는 목수 없이도 우리끼리 집을 지을 수 있고, 태양열 발전기만 따로 주문하시는 분도 많다. 한 번만 설치하면 고장도 거의 없고 평생 난방비가 들지 않는다. “우리 집도 천연재료로 지어보고 싶다”는 분들의 문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내 손으로 집짓기’에 대한 강의도 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농사일과 집짓기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이제는 좀더 적극적으로 ‘집짓기라는 종합예술’을 여러 사람들과 창조적으로 즐길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나도 어쩌면 농사를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늘 모범생으로 자라왔던 문학청년이 귀농해 저토록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뭔가 뿌듯한 연대감이 느껴졌다. “후회될 때는 없었느냐”는 내 소심한 질문에, 단호하게 “지금 귀농을 포기해도 후회는 없다”고 말하는 그의 결기가 좋았다. 앞으로 더 무언가를 채워야 좋은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단다. 그는 귀농 강의를 할 때 이렇게 말한다. “시골에는 돈 빼고 다 있다. 돈만 포기하면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고, 결국 돈도 생긴다.” 그는 ‘귀농’이라고 하는 것보다 ‘시골에 산다’는 표현을 좋아하는 듯했다. 귀농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지만, 시골에 산다는 것은 훨씬 친근하고 소박하게 다가온다. 시골에 살면, 정말 놓치기 아까운 눈부신 찰나들이 많다. 정신없이 밭일을 하다 잠깐 고개를 들면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오는데, 그 순간이 눈부시게 아름답단다. 한때 시인을 꿈꾸었던 젊은 농부에겐 바로 그런 순간이야말로 ‘일상이 시(詩)가 되는 순간’이 아닐까. 글쓴이 정여울 2013년 제3회 전숙희 문학상 수상작가. 주요 작품으로 ‘공부할 권리’,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이 있다.
  • 삼성重 노협 “자르고 땜질 처방 무슨 소용” 반기 든 조선 3사에… 정부·채권단 ‘당혹’

    삼성重 노협 “당장 파업 아니라 사측과의 대화 채널 구축하는 것” 오늘 삼성그룹 본사서 시위 예정 정부가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해 실업대란을 막겠다고 한 날, 조선 3사 노조는 끝까지 파업 카드를 내려놓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가 파업을 강행하기로 하면서 올여름은 어느 때보다 기나긴 하투(夏鬪)가 예상된다. 28일 정부는 ‘2016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고용분야 대책을 내놓으면서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키로 했다. 근로자 해고 대신 휴업 조치를 취하면 ‘고용유지지원금’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실업급여 수급기간은 60일 범위에서 특별 연장을 검토한다. 조선업 일용직 등 고용보험 미가입자는 특별자진신고기간을 운영해 피보험자격을 부여한다는 계획이다. 거제, 울산 등에는 각종 고용·금융·기자재 업체를 지원하기 위한 통합창구로 ‘조선업 근로자 일자리 희망센터’를 설치해 운영한다. 정부는 조선업 밀집지역을 대상으로 오는 8월까지 추가적인 경제지원 세부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의 이 같은 특별조치 발표에도 조선 3사 노조는 파업을 고집하면서 정부와 채권단은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노조가 사실상 정부와 채권단을 상대로 반기를 들고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관계자는 “지금 희망퇴직 받는 것도 막지 못하면서 일단 다 자르고 난 뒤 땜질식 처방을 해 주겠다는 게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면서 “현재의 고용을 어떻게든 유지하도록 정부가 나서는 게 아닌 사후대책은 실효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대우조선 노조 관계자도 “특별고용지원업종 선정으로 물량팀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혜택을 받게 된 부분은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2009년 쌍용차 사태로 평택이 고용위기지역으로 선정됐을 때도 노동자들이 실질적 혜택을 보지 못한 만큼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가 관건”이라고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자체가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은 더 있다. STX조선해양 노조 관계자는 “지금은 구조조정 사후대책이 아니라 선박금융 지원 등 일자리를 창출·유지할 수 있는 대안이 더 시급하다”면서 “정부가 나서 조선사 규모별로 맞춤형 발주하는 등 현재의 조선업 고용 현황을 유지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합법적 파업권을 얻은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이 당장 파업에 들어갈 가능성은 낮다. 변성준 삼성중공업 노협 위원장은 “파업을 결의했다고 당장 파업에 돌입한다는 것은 아니고 지금 필요한 것은 사측과 채권단, 노협이 참여하는 대화 채널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협은 조합원들의 압도적인 파업 찬성에 따라 이날 자정 조합원 150여명이 버스를 이용해 서울로 올라가 2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본사 앞에서 구조조정 반대 시위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산업은행 본점으로 이동해 구조조정 반대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노협은 사측이 지난 15일 임원 임금 반납과 1500명 희망퇴직 등 내용이 담긴 자구계획을 공개한 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밝혀 왔다. 노협은 2018년 말까지 3년간 경영상황과 연계해 전체 인력의 30∼40%를 ‘효율화’한다는 계획 아래 올해 1500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단행하겠다는 사측의 자구계획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변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과 노사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간담회에서 “조선업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노사정이 허심탄회하게 만나 대화를 해야 한다”며 노사정의 대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노조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면서 조선 3사의 자구안 이행 계획 또한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자구노력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파업이 실행에 옮겨질 경우 심각한 구조조정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면서 “(노협이) 정식 노조가 아니지만 노조에 준해서 사측과 협의하고 고용노동부와 함께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거제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쏟아지는 오피스텔 공급 속 개발호재 넘치는 ‘청라 센트럴 에일린의 뜰’ 눈길

    쏟아지는 오피스텔 공급 속 개발호재 넘치는 ‘청라 센트럴 에일린의 뜰’ 눈길

    신규오피스텔 투자 시, 현재가 아닌 ‘입주시점’의 공급과 수요 파악해야 풍부한 수요와 단지 내 차별성을 둔 경우라면 수익률 높을 것으로 예상돼 오피스텔의 공급과잉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수요층이 탄탄한 오피스텔은 오히려 빠르게 소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약 1년 5개월 동안 전국에 공급된 오피스텔은 8만2566실로 조사됐다. 이는 2013년, 2014년까지 2년간 공급된 물량과 맞먹는 수준으로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물량이 풀려 일부 지역에서는 공급과잉에 따른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수요 대비 공급이 많은 곳은 입주 이후에도 수익률이 낮거나 공실 위험이 있지만 반대로 공급대비 수요가 많은 곳이라면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이때 분양시점이 아닌 입주시점의 공급과 수요를 판단해 투자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주변 공급단지들에 비해 차별화 된 부분이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차별화된 아이템은 결국 공급이 많은 지역일지라도 가장 먼저 임대수요가 발생하기 때문에 공실의 위험은 벗어날 수 있다. 최근 분양중인 ‘청라 센트럴 에일린의 뜰’ 아파텔 2차는 입주시점에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만한 개발호재가 몰려있다. 동시에 청라에서 유일하게 적용되는 ‘계단식 구조’와 단지 내 ‘실내체육관 건립’을 통해 단지의 차별성을 높여 주목 받고 있다. 청라국제도시는 주거 및 기반시설이 안정화됨에 따라 계획됐던 사업들을 속속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들 대부분이 2018년경에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위 단지의 입주시점과 비슷한 시기다. ㈜신세계투자개발은 청라국제도시 2BL에 복합쇼핑몰을 개장하고 차병원그룹도 의료복합타운을 조성할 계획이다. 3-4BL 일원에는 하나금융타운이 건설된다. 하나금융지구 본사 및 금융연구소 등 계약사의 주요기능을 집적화를 목적으로 건설되는데, 내년 초 1단계 조성사업인 통합데이터센터가 준공되고, 인재개발원 및 통합콜센터, 데이터 센터는 2단계인 2018년 상반기경에 입주한다. 이러한 개발호재로 인한 유입뿐 아니라 교통망이 확대되면서 파생되는 수요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인천공항철도와 9호선의 직결운행은 2019년으로 개통될 예정이며, 7호선 연장선 사업도 진행 중에 있다. 이뿐 아니라 이 단지만이 갖는 유일한 장점이 2가지 있다. 복도식으로 공급한 주변 아파텔과는 달리 아파트처럼 ‘계단식’으로 적용한 것. 1층에 2가구만 거주하는 형태로, 사생활 보호가 가능하고 방범 및 보안부분에서도 안전하다. 또 단지 내 다목적 실내체육관을 배치했다. 지난달 분양한 아파트 및 아파텔1차와 함께 약 2029가구의 대규모로 공급되는 단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이 곳에서 인천전자랜드 엘리펀츠 프로농구단이 운영하는 농구교실과 인천유나이티드 FC축구교실을 이용할 수 있다. ‘청라 센트럴 에일린의 뜰’ 아파텔2차는 중심상업지 인근에 위치해 있어 편의시설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단지 남쪽으로는 홈플러스, 롯데마트, 주민센터 등이 위치해 있고, 청라국제도시 내 상징성을 갖는 3.6㎞의 인공수로 ‘캐널웨이’와 약 70만㎡규모의 중앙호수공원도 가까워 쾌적한 주거환경뿐 아니라 여가 활동도 즐길 수 있다. 교통환경도 우수하다. 현재 이용 가능한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을 이용하면, 서울역까지 30분대로 접근할 수 있고, 청라와 가양을 잇는 BRT(간선급행버스) 등을 이용해 서울로 쉽게 진입할 수 있다. 이 단지는 지난 해 분양한 아파트(1163가구)와 아파텔1차 물량을 포함해 아파트 6개동, 아파텔 4개동, 총 10개동 2029가구의 대규모 단지로, 금회 물량은 총 452실로 전용 45㎡와 55㎡로 분양한다. 계약금 10%, 중도금 60%를 무이자혜택을 줘, 입주시점까지 추가로 들어가는 금액이 없다. 견본주택은 인천시 서구 경서동(청라국제도시 M1블록)에 마련되어 있다. 입주는 2018년 10월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송도 인구 10만명 돌파…개발 호재로 부동산 시장 ‘들썩’

    송도 인구 10만명 돌파…개발 호재로 부동산 시장 ‘들썩’

    인천 송도국제도시가 최근 인구 10만명을 돌파하면서 다양한 개발 호재로 부동산 시장에 호황을 맞고 있다. 24일 행정자치부의 따르면 지난달 송도국제도시가 속한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의 인구는 10만 2726명으로 불과 2년 전의 7만 7730명보다 32% 증가했다. 송도국제도시는 40조원의 자본으로 조성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민간 도시개 사업으로 인천국제공항 인프라를 배후로 지어지는 경제자유구역이다. 항만사업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여러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들이 송도로 속속 입주하면서 국제도시로의 모습도 갖춰가고 있다. 코오롱글로벌·대우인터내셔널·포스코A&C·셀트리온·대우인터내셔널·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을 비롯해 녹색기후기금(GCF)·세계은행 한국사무소 등 국제기구와 국내외 기업이 연이어 입주를 완료했다. 교통 여건도 좋아지고 있다. 제2외곽순환도로와 제1경인고속도로 등을 통해 수도권 전역으로의 이동이 편리하며 인천국제공항과는 인천대교만 건너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인접해 있다. 2020년 개통 예정인 인천지하철 1호선 랜드마크 시티역(가칭)이 들어서면 보다 편리한 생활권을 누릴 수 있을 전망이다. 최근 국토부가 발표한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의 신규 사업으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의 송도~청량리 노선도 확정되면서 서울로 출퇴근하기가 더욱 편해진다. 송도국제도시에는 센트럴파크를 비롯한 대형 공원들과 문화시설들이 많고, 대규모 복합유통단지 개발이 활발히 진행 중이어서 문화·생활·편의시설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송도국제도시에는 코스트코, 현대백화점,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과 같은 대형 쇼핑몰과 신세계몰, 롯데몰 송도, 이랜드 복합쇼핑몰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교육 여건도 우수하다. 명문사학 채드윅국제학교, 뉴욕주립대를 비롯해 조지메이슨대, 연세대 등의 국내외 명문대학들이 들어서면서 교육열이 높은 학부모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의 브랜드 아파트 분양도 계속되고 있다. SK건설은 처음으로 송도에 아파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SK건설은 오는 7월 송도국제도시 6∙8공구 A4블록에서 ‘송도 SK VIEW(뷰)’를 분양할 예정이다. 지하 2층~지상 43층, 총 11개 동, 전용면적 75~99㎡, 총 2100가구의 대단지로 조성된다. 2020년 개통 예정인 인천지하철 1호선 랜드마크 시티역(가칭) 역세권이며 단지 바로 앞에 중심상업지구가 위치한다. 송도국제도시의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송도 SK VIEW(뷰)’가 위치한 송도국제도시 랜드마크시티 6∙8공구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인천대교를 통해 진입할 때 초입에 위치해 송도국제도시의 관문으로서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지역”이라면서 “마이스(MICE)시설, 관광, 레저 등 서비스 산업을 바탕으로 글로벌 비즈니스 도시로 개발될 예정이어서 미래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금리 인하로 다시 뜨는 오피스텔 시장···경기 김포 수익률 ‘상승’

    금리 인하로 다시 뜨는 오피스텔 시장···경기 김포 수익률 ‘상승’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기존 1.5%에서 1.25%로 내리면서 수익형 부동산 상품으로 인기를 끄는 오피스텔에 대한 투자 인기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22일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경기 김포시 오피스텔의 연평균 임대수익률은 7.4%로 경기 지역 오피스텔 평균 수익률(5.5%)과 서울 지역 수익률(5.15%)보다 높게 나타났다. 현재 김포시 운양동에 있는 오피스텔 ‘한강베네치아’의 경우 전용면적 25㎡가 매매가 8150만원에 보증금 500만원, 월 45만원으로 7%의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김포시 사우동의 오피스텔 ‘시네마시티’는 전용면적 20㎡의 경우 매매가 6150만원에 보증금 1000만원, 월 38만원으로 8%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김포 내 오피스텔의 수익률이 높은 이유로 김포 구래동에 있는 한 부동산 중개업소 공인중개사는 “주변에 공단이 많고 앞으로도 산업단지에 많은 기업들이 입주할 예정”이라면서 “서울로 연결되는 도로망 등이 잘 갖춰져 있다 보니 영등포구 여의도, 마포구 등의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 김포도시철도가 2018년 개통 예정에 있어 수익률도 지금보다 큰 폭으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김포 지역의 오피스텔이 인기를 끌면서 새로운 오피스텔 분양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대림산업이 김포시 구래동 일대에서 분양 중인 오피스텔 ‘e편한세상 시티 한강신도시’가 분양을 앞두고 있다. 지하 5층~지상 20층 규모의 오피스텔로 지상 1~3층에는 상업시설, 지상 4~20층에는 오피스텔 호실이 들어선다. 오피스텔은 총 748실이 분양되며 전용면적은 23~43㎡이다. 각 오피스텔의 전용면적별 호실 숫자는 23㎡ 459실, 30㎡ 51실(A), 30㎡ 136실(B), 43㎡ 51실(A), 43㎡ 51실(B) 이다. 이 오피스텔 단지는 2018년 개통을 앞둔 김포도시철도 구래역(가칭) 이용이 가능하다. 철도, 버스, 택시 등을 한 번에 이용 가능한 복합환승센터로 개발 중인 구래역에서 지하철로 20분만에 김포공항역까지 이동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김포공항역은 서울 지하철 5, 9호선, 공항철도 등이 지나는 역이다. 단지 인근에 48번 국도와 김포한강로가 지나고 있어 서울 및 수도권 전역으로 빠르게 진입할 수 있다. e편한세상 시티 한강신도시 모델하우스는 경기 김포시 장기동 2016-1번지에서 운영 중이며, 입주는 2018년 12월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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