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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철제갑옷’ 연천서 발굴

    ‘고구려 철제갑옷’ 연천서 발굴

    경기 연천군 무등리 2보루 유적에서 고구려 것으로 추정되는 철제 갑옷이 발굴됐다고 문화재청이 17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서울대학교박물관이 연천군 왕징면 무등리 2보루에서 철제 갑옷을 발굴했다.”며 “그동안 북한이나 중국 등 고구려 고토 지역에서 고구려 찰갑(札甲·비늘모양 갑옷) 편이 확인된 적은 있지만 찰갑 상의 한 개체가 발굴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18일 오후 4시 발굴 현장에서 학술자문회의를 열어 이번에 발굴된 갑옷을 비롯, 무등리 2보루의 전반적 규모와 석축 성벽 등 확인된 조사 내용을 공개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권도엽 국토부 장관 후보자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후보자는 서울대학교 토목공학과를 나와 행정고시(21회)에 합격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참여정부 때 주택국장 등을 역임하면서 8·31대책 수립에 관여했고, 이명박(MB) 정부 출범 후에는 2년 6개월간 국토부 1차관을 맡으면서 국내 건설·주택·국토 정책을 진두지휘했다. 그런 만큼 국토부의 현안인 주택문제나 건설업체의 경영위기, 4대강 문제를 풀어낼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정책기조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으리라는 게 국토부 안팎의 평가다. 권 후보자가 풀어야 할 최우선 과제는 MB의 대표적인 친서민 공약 중 하나인 보금자리주택 공급 등 주택시장 정상화다. 이는 그의 인선 배경이기도 하다. 우선 서민들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MB 정부가 도입한 보금자리주택은 2018년까지 분양 70만 가구, 임대 80만 가구 등 총 150만 가구를 공급할 계획이지만 재원 부족과 시행 주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막대한 부채, 지방자치단체와 토지 소유주의 반발로 올해 공급 목표인 21만 가구 달성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총부채 125조원, 하루 이자 100억원에 달하는 LH의 재무구조 개선도 풀어야 할 난제다. 줄도산 위기에 처한 건설산업의 회생도 그의 과제 가운데 하나다. 특히 이 문제는 보금자리주택 문제와 배치되는 것이어서 권 후보자가 이를 제대로 풀어낼지 주목된다. 최근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건설업체의 경영위기는 보금자리주택 공급 확대에 따른 민간주택시장의 위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사업비 22조원의 ‘4대강 정비 사업’의 성공적인 마무리 역시 권 후보자에게 맡겨진 숙제이다. 하지만 현 정부 ‘최장수 장관’으로 기록된 정종환 장관의 그림자가 짙어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분석도 있다.일단 국토부 직원들이 권 후보자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그가 주택과 도시 전문가인 데다가 합리적인 스타일이어서 현안 해결은 물론 전임 장관 시절 행해진, 특정 지역이나 특정 부처 출신 중심의 편중 인사를 해소할 적임자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4일 TV 하이라이트]

    ●행복한 교실(KBS1 오전 11시) 자녀가 어릴 때부터 책을 읽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하는 선생님이 있다. 항상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던 어머니 강백향씨. 어머니 때문에 좋은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는 삶을 꿈꾸다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아들 김환훈군. 모자가 책을 읽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가시나무새(KBS2 밤 9시 55분) 병원 검사 결과 한별이 아닌 유경에게 문제가 있음이 밝혀지지만, 유경은 자책으로 병원 치료조차 미룬다. 한편, 정은(한혜진)이 영화 촬영으로 바쁜 사이 한별이 아파하자 유경이 간호를 하지만 한별은 엄마만 찾는다. 유경은 한별의 엄마가 자신이 아닌 정은임을 깨닫고 돌아서는 순간 그만 기운 없이 쓰러지고 만다. ●당신 참 예쁘다(MBC 오전 7시 50분) 안나와 치영은 강수(현우성)와 서회장의 관계를 계속 의심하고 뒷조사를 시작한다. 한편, 우주는 폐렴으로 위독해지고, 유랑은 눈물로 기도한다. 강수 역시 유랑과 함께 우주의 건강을 기도하면서 강수는 유랑에 대한 자신의 마음에 확신을 갖는다. 그리고 유랑은 강수를 따라다니는 나영의 존재가 은근히 신경쓰이는데…. ●진짜 한국의 맛(SBS 오후 6시 30분) 진짜 한국의 맛을 찾아 휴전선과 인접한 경기도의 최북단 지역인 연천을 찾았다. 메밀가루로 반죽해 칼로 싹둑싹둑 썰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 ‘칼싹두기’에 들어가는, 연천의 청정지역에서만 자란다는 고사리, 또 ‘칼싹두기’와 함께 먹으면 찰떡궁합이라는 ‘율무 짠지밥’까지. 과연 그 맛이 어떨지 함께 찾아가 본다. ●60분 부모(EBS 오전 11시) 형제 간의 갈등 어떻게 다룰까. 형제의 경쟁 심리, 엄마 손에 달려 있다. 하늘이 내린 벗인가, 인생의 첫 경쟁자인가.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우리 집 전쟁의 원인은 바로 형제·자매의 경쟁 관계이다. 왜 형제들은 그토록 질투하고 싸우는 것일까. ‘60분 부모’가 형제 출생 순위에 대한 고정관념과 관계 속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본다. ●나는 전설이다(OBS 밤 11시) 대한민국 해설계의 살아있는 전설. 수많은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축구의 대중화를 선도한 축구 해설위원 신문선, 그리고 뚝배기처럼 편안한 해설로 전 국민을 열광하게 했던 예측 해설의 1인자 야구 해설위원 하일성이 출연한다. 야구와 축구계 시청률 보증수표 신문선과 하일성이 직접 들려주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최초 공개된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사 사정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KBS 02-781-1800 MBC 02-780-0015 SBS 02-2113-3190 OBS 032-670-5000 EBS 02-526-2000 서울신문STV 02-777-6466
  • [25일 TV 하이라이트]

    ●우리말 겨루기(KBS1 밤 7시 30분) 제23대 우리말 달인이 탄생했다. 경기도 의왕시에 살고 있는 예비 공무원 이상아씨.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에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2011년 대학 졸업과 함께 5급 공무원으로서 새 출발을 앞두고 있는 역대 최연소 우리말 달인인 이씨의 모습을 엄지인 아나운서가 진행하는‘우리말 겨루기’에서 볼 수 있다. ●와글와글 꼬꼬맘(KBS2 오후 3시 5분) 출장에서 서둘러 돌아오던 아빠는 삼거리에서 돈돈씨와 하마 선생님과 충돌하고 만다. 집으로 돌아와 가방에서 선물을 꺼내던 아빠는 자신의 가방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돈돈씨와 하마 선생님 가방 역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당황한 가족들은 가방을 주인에게 돌려 주고 아빠의 가방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일일시트콤 몽땅 내사랑(MBC 밤 7시 45분) 순덕은 승아의 초대로 김원장의 집에 놀러 온다. 승아와 함께 즐겁게 놀고 있는 순덕에게 김 원장은 앞으로 자주 놀러 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 원장은 매번 놀러 와 민폐만 끼치는 순덕이를 점점 얄미워하게 된다. 한편, 금지는 두준에게 간식거리를 갖다 주지만, 두준은 예전 같지 않게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백세 건강스페셜(SBS 낮 12시 30분) 얼마나 오래 사는가의 문제를 넘어 얼마나 건강하고 즐겁게 노후를 보낼 것인가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백세 건강스페셜’에서는 현대 고령화 사회를 건강하게 사는 법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중·장년에게 유익한 건강 관리법과 특별한 음식을 소개하고 실버 세대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탐색해 본다. ●한국기행(EBS 밤 9시 30분) 거제도에 봄이 성큼 다가왔다. 봄이 찾아온 직접적인 증거가 대금산의 진달래라면, 또 다른 봄의 증거는 거제도 앞바다로 몰려드는 숭어떼다. 2만 그루의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 진분홍 물감을 여기저기 들이부은 듯 산 전체가 붉게 물들어 가고 있는 그곳, 거제도의 아름다움을 함께해 본다. ●경찰 25시(OBS 밤 11시) 드라마속 남자주인공처럼 자신을 포장하여 여자들을 현혹시킨 전문 사기꾼이 있다. 범인은 인터넷을 통해 여자들에게 돈을 요구했고, 사랑한다, 결혼하자, 라는 말에 철저히 신뢰하고 믿었던 여자들은 대출까지 손을 뻗어 아낌없이 갖다 주었다. 여자의 순정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운 늑대의 유혹을 공개한다.
  • 서울대병원 전공의 김선영·정종원씨 ‘앙드레 김 어워드’ 첫 수상

    서울대학교병원(병원장 정희원)은 의상디자이너 고(故) 앙드레 김이 생전에 의료인재 양성을 위해 써 달라며 내놓은 기금으로 ‘앙드레 김 어워드(Award)’를 제정, 최근 2명의 우수 전공의를 선정해 시상했다고 19일 밝혔다. 고인은 2008년 4월 서울대병원에서 지병을 치료하면서 촉망받는 의료인재 양성에 써 달라며 10억원의 ‘우수 전공의 포상기금’ 후원을 약정했었다. 이후 고인이 작고하기 전까지 5억원의 후원금이 병원 측에 전달됐으며, 작고 후인 지난해 12월에도 5000만원이 추가로 기탁됐다. 시상 첫해인 올해에는 진단검사의학과 김선영 전공의와 신경과 정종원 전공의가 각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들은 각각 1000만원의 해외연수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정희원 병원장은 “평생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추구해온 고인의 순수한 심성이 미래 의료인재 양성에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딸과 문인들이 전하는 박완서의 삶과 문학

    그의 나이 20세 때 맞은 봄은 참 아름다웠다. 섬섬옥수로 그러쥔 서울대학교 합격증은 그의 우월감과 선민의식을 한껏 부채질했다. 방년의 처녀에게 세상의 모든 가능성이란 죄다 자신의 손 안에 있는 듯했다. 요즘과 달리 다소 늦게 입학식을 치른 뒤 사나흘쯤 강의를 들었을 때다. 한국전쟁이 터졌다. 전쟁통에 그는 오빠를 잃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그에게 열살 터울의 오빠는 아버지와 다름없었을 터. 그와 가족들은 한순간에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얼개를 떠올리면 알기 쉽다. 메마르고 궁핍한 삶을 살던 그는 미8군 피엑스(PX)에 점원으로 취직했다. 그가 배속된 곳은 초상화부. PX를 찾은 미군을 꼬드겨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돈을 받는 게 그의 일이었다. 자괴감과 자포자기 속에서도 가늘게나마 우월의식의 끝자락을 놓지 않던 그가 일용 잡부나 다름없던 화가들과 친하게 지냈을 리 만무하다. 고용 화가들 사이에서 ‘막돼먹은 계집애’처럼 행세하던 그는 어느날 자신의 인생을 확 바꾼 화가와 조우한다. 박수근 화백이다. 박수근과 동병상련 비슷한 연민의 교류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던 그는 박수근의 죽음을 계기로 전기(傳記)를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불우했던 한 화가의 삶을 증언하고 싶었던 것. 그런데 전기를 쓰면서도 불쑥불쑥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그때부터 그는 논픽션을 단념하고 픽션의 길로 돌아섰다. 지난 1월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의 처녀작 ‘나목’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최근 출간된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박완서의 삶과 문학을 담담하게 되짚어 본다. 1992년 출간된 ‘박완서 문학앨범’과 절판된 이 책을 2002년 다시 펴낸 ‘우리 시대의 소설가 박완서를 찾아서’를 바탕으로 새롭게 꾸몄다. 고인의 산문 ‘나에게 소설은 무엇인가’와 ‘해산바가지’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을 비롯해 맏딸 호원숙씨와 김영현, 권명아, 김병익 등 동료 문인들의 글이 담겨 있다. 원숙씨는 새로 실은 글 ‘따뜻함이 깃들기를’을 통해 아차산 자락에 있는 구리시 아치울 집에서의 기억을 되새긴다. 집에 손님이 오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메뉴를 짜서 건네고, 마당에 앉아 잡초를 솎아내던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다. 소설가 김영현은 고향인 개성 땅 인근의 파주 교하리에 문학관을 짓자는 청에 고개를 흔들며 “작가는 죽고 나면 작품으로만 남으면 된다.”던 고인의 대답을 전한다. 책에 담긴 생전 고인의 사진들을 보는 느낌도 각별하다. 1만 4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강산 두번 바뀐 귀환운동 강탈당했던 우리 피붙이 “어서오세요 대~한민국”

    강산 두번 바뀐 귀환운동 강탈당했던 우리 피붙이 “어서오세요 대~한민국”

    20년은 강산이 두번 바뀌는 햇수이다.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운동은 1991년 10월에 규장각 도서를 일괄 소장 관리하고 있던 서울대학교가 우리 외교부에 반환 요청을 의뢰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곡절 속에 강산이 두번 바뀌면서 드디어 귀환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반환을 처음 제기하여 줄곧 관계당국의 자문에 응해온 나로서는 두팔이 절로 벌려진다. 145년 전 늦가을 찬 날씨 속에 이국 군인들의 거친 손길로 낯선 증기선에 실려 수만리 바다를 건너 돌집 어두침침한 서고에 갇혀 지내다 조국의 열띤 구명운동으로 돌아오는 외규장각 의궤 도서. 조국은 그새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항공회사가 둘이나 생겨 서로 모시겠다고 다투었다고 한다. 그들이 내려진 곳은 강제로 실려 떠났던 강화도에서 지척지간인 영종도. 무슨 힘이 한 세기 반 만에 세계 제일의 허브 공항을 만들고 그 먼 곳에 잡혀 갔던 귀중 도서들이 돌아와 내리는 곳으로 만들었던가. 사람이 하는 일에도 신비라는 단어가 동원될 수 있는 것인가. 외규장각 의궤도서의 귀환을 환영하는 온 국민의 힘찬 외침, “대~한민국 차차차차~.”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 극동함대 지휘관 로즈 제독이 강화도에서 철수하면서 본국 해군성 장관에게 보낸 편지 한장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편지가 쓰여진 뒤 내가 읽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124년이 걸렸다. 한국교회사연구소의 고(故) 최석우 신부가 1950년대 프랑스로 유학하여 병인양요 연구를 위해 모은 자료 속에 묻혀 들어와 연구소가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해 내놓은 것이 1986년이었다. 120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반출 경위를 알게 된 것이다. 그 편지는 놀랍게도 ‘강화도의 한 건물에 책이 가득한 데 그중에 우리 국립도서관(Bibliotheque Nationale)에 소장할 만한 300여 책은 배에 싣고 나머지는 모두 건물과 함께 불태우고 간다.’는 내용이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이 책들을 찾아낸 박병선 박사도 이 방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나는 국제법 전공의 백충현 서울대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고 그는 “이것은 명백한 문화재 전시 약탈행위로서 책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반환 요청을 해놓고 봐야 한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외규장각 도서 귀환에 걸린 20년은 결코 짧지 않지만 헛되지는 않았다. 이 반환운동으로 우리 국민들의 문화재, 특히 해외 유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그리고 이제 규장각을 모르는 국민도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반환운동이 시작될 즈음, 서울대학교에 견학 온 초등학생 몇이 규장각이라고 쓰인 건물 안내판을 보고 이거 중국집 아니냐고 까르르 웃던 광경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전화번호부를 펼쳐 보았더니 실제로 영등포에 규장각이란 중국집이 있었다. 이제는 TV 사극 드라마에도 규장각이 자주 등장할 정도로 규장각은 온 국민이 문화의 보고로 인식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귀환 외규장각 도서는 외롭지 않다. 강산이 두번 바뀌는 가운데 사람의 일도 많이 바뀌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미테랑 대통령으로부터 1권을 돌려받은 뒤 우리 대통령은 네번, 프랑스 대통령은 세번 바뀌었다. 그분들 중 세분은 고인이 되었다. 나와 함께 반환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백충현 교수도 4년 전에 고인이 되었다. 그는 외규장각 의궤도서처럼 한 나라의 왕실이 국가적 목적으로 생산한 책들은 소유권이 바뀔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프랑스 측은 자기네 국립도서관에 등록하여 국가재산이 되었으므로 돌려줄 수 없다고 하지만 그 등록 자체가 법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하였다. 반환문제가 난항에 부닥쳤을 때 의논차 아침 일찍 걸려오던 백 교수의 전화 음성이 오늘 아침에 들린다. “이 선생, 우리 정말 큰 거 한건 했어요!” ■이태진 위원장은 1988년 서울대 규장각 도서관리실장을 맡은 뒤 외규장각 도서가 불법으로 반출된 사실을 알고 환수 운동을 벌여왔다. 한일합병 불성립론을 주장, 지난해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1977년부터 2009년 2월까지 모교인 서울대 국사학과 강단에 섰다. 현재 차관급인 국사편찬위원장을 맡고 있다.
  • 총장 퇴근 막고 새벽까지 감금… 서울대 법인화 갈등 폭발 왜

    교직원들로 구성된 서울대 대학노조 조합원과 총학생회의 ‘오연천 총장 심야 감금 사태’는 서울대 법인화 이후 학교 운영에 관한 주도권 싸움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법인화 뼈대를 만들 설립준비위원에 ‘자기 사람’을 집어넣어 앞으로 첨예하게 부딪칠 사안에 선수를 치려는 것에 대한 갈등이다. 이는 ‘밥그릇’ 문제와도 직결돼 있어 법인화 추진 과정에서 ‘대학본부’ 대 ‘교직원+학생’ 측의 극심한 대립이 예상된다. 노조와 총학은 지난달 31일 대학본부가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설립준비위원회’ 위원 명단을 확정, 발표하자 총장실 복도를 점거해 1일 새벽 4시까지 오 총장의 퇴근을 막았다. 양측의 대립은 법인화 설립준비위원 추천권을 놓고 불거졌다. 추천 권한을 달라는 노조·총학 측의 요구에 오 총장 등 대학본부 측은 지난달 31일 전격적인 위원 확정 발표로 ‘노’(NO)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설립준비위는 법인의 정관 작성, 이사 및 감사 선임, 법인 설립등기 등 법인화의 근간을 만드는 중책을 맡고 있다. 본부 측은 “앞으로 노조나 총학과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해 나갈 것”이라면서도 “설립준비위원은 공식적으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승인하에 발표했으니 번복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남익현 서울대 기획처장은 대학 발전에 노조와 총학의 요구가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남 처장은 “서울대의 장기적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교내외 다양한 인사로 구성하기 위해 노조와 총학 측의 입장을 배제한 것”이라면서 “만약 그들이 추천하는 인사로 구성된다면, 외부 인사가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형평성 차원에서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반영할 순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노조와 총학 측은 본부 측이 학교의 운영하는 데 있어서 직원과 학생들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국회의 ‘날치기 통과’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지윤(23)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굉장히 엘리트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학교는 교수가 주인이라는 의식이 강할 뿐 아니라 노조와 학생들은 학교를 운영할 능력이 안 된다는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총학생회는 앞으로 ‘법인화 폐기’, ‘설립준비위 해체’를 외치며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혀 법인화 진행과정에 브레이크를 걸 뜻을 내비쳤다. 설립준비위원 추천권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 이면에는 ‘밥그릇’ 문제가 깔려 있다. 법인화가 되면 교직원의 신분은 ‘공무원’에서 ‘법인 직원’으로 바뀐다. ‘철밥통’이 깨지는 것이다. 학생들도 학교 운영에 있어서 자율권을 얻게 된 학교가 등록금을 사립대 수준으로 인상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학본부 측은 “법인화 이후 법인 직원으로 전환이 되지만 공무원으로 남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는 2년간 유예기간을 부여해 희망자에 한해 전출을 갈 수 있도록 배려할 예정”이라며 노조와 총학 측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속뜻을 보다 명확히 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정신장애인 절반이 비만… ‘2차 장애’ 경고등

    정신장애인 절반이 비만… ‘2차 장애’ 경고등

    우리나라 정신장애인의 절반가량이 비만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운동능력이 없거나 떨어지는 장애인 비만은 대사증후군이나 당뇨병, 고혈압 등 2차 질환으로 이어지기 쉬워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23일 보건복지부가 서울대 의학연구원에 의뢰해 수행한 ‘장애인 비만실태 및 정책개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08년 장애인 비만율은 39.5%로, 2002년의 35.7%보다 무려 3.8% 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조사한 2008년 성인 전체 비만율이 31%였음을 감안할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비만율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번 연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을 받은 장애인 98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으로, 장애인 비만 실태를 공식 조사한 첫 자료다. 연구진은 검진을 받지 않아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장애인을 고려하면 실제 비만율은 더 높을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에 따르면 최근 비만율이 높아진 장애 유형은 정신장애와 하지 및 척추지체 장애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장애인의 비만율은 48.4%, 하지지체와 척추지체 장애인은 각각 45.0%, 43.5%였다. 뇌병변장애와 시각장애, 상지지체 장애 등은 30%대의 비만율을 보였다. 특히 여성 하지지체 장애인은 54.3%, 여성 정신장애인은 51.9%가 비만으로 나타나 여성이 남성에 비해 비만에 더욱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몸무게가 표준 체중의 50%를 넘는 고도비만의 경우 전체의 4.6%(2008년 기준)가 해당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장애인의 고도비만율은 10.5%, 하지 지체장애인은 6.7%였다. 특히 여성 하지지체 장애인은 11.3%, 여성 정신장애인은 12.8%가 고도비만인가 하면 45세 이상 여성장애인이 전체 고도비만 장애인의 54.0%를 차지해 고령의 장애여성이 비만에 가장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 고도비만 여성장애인의 사망률은 정상체중 여성 장애인의 4배에 이르렀다. 여성장애인이 정책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연령별로는 하지 지체장애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애에서 저연령층의 비만율이 높아 나이가 들수록 비만율이 높다는 일반적인 건강 행태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장애 기간별로는 자폐성 장애를 제외한 대부분이 장애 기간이 짧을수록 비만율이 높았다. 연구에서는 장애인과 보호자 등을 대상으로 초점그룹 인터뷰를 병행했다. 사회적 지지 부족, 잦은 인스턴트식품 섭취 등이 비만의 주된 원인으로 나타났지만 장애유형별로 차이점을 보였다. 정신장애의 경우 비정형 약물 복용과 입원으로 인한 환경적 제약이 비만의 주요 원인인 것으로 분석됐다. 인터뷰에 참여한 정신보건센터 관계자는 “(정신장애인들은) 정신과 약물을 먹으면 움직이고 싶은 의지가 있더라도 움츠러들어 움직이기를 싫어하게 된다.”고 말했다. 자폐성 장애의 경우에는 청소년기 건강관리가 일회성에 그칠 뿐 아니라 지속적인 식이관리가 태부족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이들의 비만을 장애의 결과로 봐서는 안 되며, 보다 적극적인 예방 및 극복을 위한 프로그램이 지원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비룡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해외에서는 장애인의 비만, 혈압 등이 ‘2차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책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의료기관에서의 비만관리 강화, 지역사회 운동시설 이용 시 바우처 지급 등 생활 인프라 확충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씨줄날줄] 브리지 잡/이춘규 논설위원

    “베이비부머들에게 디지털 농촌은 새로운 꿈이자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릴 적 농촌에서 부모들과 희망을 일궈냈던 베이비부머들에게 디지털 농촌을 목표로 귀환운동을 펼친다면 어떨까.” 자신이 베이비붐 세대이기도 한 이재선(55) 자유선진당 의원이 명사와 나누는 농업이야기 ‘여기 길이 있었네’라는 공동저서에서 기술한 내용의 일부다. 그는 다수의 베이비붐 세대들을 농촌으로 귀환시켜 농촌의 부활을 도모해 보자고 제언했다. 지난해부터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들의 퇴직이 본격화하면서 이들의 인생 2막 대책이 사회적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웃 일본도 비정규직 비율이 40%에 육박할 정도로 고용의 질이 나빠졌다. 기업들의 정년이 60세에서 65세로 연장되거나 퇴직 후 재고용으로 혜택을 받는 직장인이 여전히 많기는 하지만, 일본마저도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무기력해지며 퇴직자들이 팍팍해졌다. 초고령화사회인 미국·유럽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퇴직자들의 인생 제2막 대책 일환으로 20여년 전부터 브리지 잡(Bridge Job)이 부상했다. 새로운 조류다. 브리지 잡이란 직장에서 물러난 뒤 ‘완전히 은퇴’할 때까지 10년 이내에 파트타임이나 풀타임으로 하는 일자리를 말한다. 우리말로 징검다리 직업이라고 하는 새로운 고용형태다. 미국 은퇴자의 3분의2 정도가 브리지 잡을 활용한다. 이들은 회사에 충성도가 높고 노하우를 다음세대에 전수할 수 있어 기업이 선호한다. 미국도 한국처럼 베이비붐 세대들의 퇴직이 한꺼번에 이뤄지며 일시적 노동력 부족에 따른 경제활동 공백이 문제다. 이를 브리지 잡으로 막고 있다. 퇴직자들은 활력 넘치는 인생 2막을 영위하고, 경제계는 노동력의 일시적 부족 현상을 메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미국퇴직자협회 등은 국가고용파트너십 등을 활용해 많은 퇴직자들의 브리지 잡을 알선한다. 아울러 ‘완전히 은퇴하지 않은 상태’라는 새로운 이력 사항도 생겨났다. 우리나라도 브리지 잡 시장을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할 때다. 서울대학교 노화고령사회연구소와 메트라이프 노년사회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720만명의 베이비붐 세대들이 퇴직 이후 생활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나지 않았는가. 사회안전망이 상대적으로 약한 우리나라에서 퇴직 뒤를 혼자서 준비하면 벅차다. 정부와 기업이 퇴직자들과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10년을 더 일할 수 있는 브리지 잡을 늘리면 개인과 국가의 10년이 밝아질 것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오송 첨단의료산업 재단 초대 이사장에 윤여표씨

    윤여표(55) 오송 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초대 이사장이 8일 취임, 3년의 임기를 시작했다. 국무총리실, 지식경제부, 교육과학기술부로 구성된 추천위원회를 통해 이사장으로 발탁됐다. 충남 논산 출신.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뒤 충북대 약학대학장, 식품의약품안전청장 등을 지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베이비붐세대 4668명 조사

    베이비붐세대 4668명 조사

    베이비붐 세대를 대표하는 ‘58년 개띠’ 나은퇴(가상인물)씨는 9년 뒤인 2020년에 은퇴할 생각이다. 은퇴 후 한달 생활비는 200만원(현재가치 환산)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월 소득 386만원의 52% 수준이고 지금 쓰는 생활비 278만원의 72%에 해당한다. 아이들이 대학을 마치고 결혼을 하면 지금보다 씀씀이가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0만원이면 국민연금연구원이 은퇴 후 적정 생활비(부부 기준)로 제시한 174만원(전국 평균)과 215만원(서울)의 중간쯤으로 다소 빠듯하게 느껴진다. ●노후 대비 저축 월 17만원 불과 은퇴 후 생활비는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으로 58만 6000원을, 직장에서 받는 퇴직연금으로 9만 2000원을 충당할 계획이다. 나머지 132만 2000원은 개인 저축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나씨가 노후를 생각해 저축하는 돈은 한달에 17만원에 불과하다. 충분히 노후자금을 모으지 못했는데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권유하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인다. 비단 나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5~1963년에 태어난 720만명 베이비붐 세대가 가진 평균적인 고민이다. 8일 서울대학교 노화고령사회연구소와 메트라이프 노년사회연구소가 한국갤럽에 의뢰, 지난해 5~9월 전국 15개 시·도의 베이비붐 세대 4668명을 대상으로 심층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 준비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를 위한 개인적인 저축과 투자가 상당히 미흡하다는 응답이 전체의 30.3%였다. 15.8%는 은퇴 준비를 아직 시작하지 못했고, 계획조차 없다는 사람도 10.6%에 달했다. 반면 은퇴자금 준비를 마친 사람은 8%에 불과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월 평균 17만원을 은퇴 자금을 위해 저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0명 중 8명이 보험을 연금 상품으로 이용하고 10명 중 7~8명이 국민연금을, 6~7명은 예금과 적금에 투자한다고 답했다. 연구소는 “베이비붐 세대가 보수적인 투자성향을 갖고 있으며 은퇴 자금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저축 포트폴리오가 없음을 알려주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징검다리 직업 등 활성화 예상 이들이 은퇴 자금 마련에 소홀한 까닭은 자녀를 위한 지출이 많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월 평균 소득은 386만원으로 전체 가계 평균소득의 1.12배에 해당한다. 수입의 대부분은 자녀 교육과 결혼에 들어간다. 대표적으로 대학등록금은 연 소득의 21%인 973만원, 평균 유학비용은 연 소득의 35%인 1621만원으로 조사됐다. 자녀 결혼자금은 연 소득의 74%인 3428만원에 달했다. 은퇴 이후 수입원도 불안정하다. 베이비붐 세대는 본인의 은퇴 시점을 62.3세로, 기대수명을 81.5세로 예상한다. 약 20년간 근로 소득이 없는 상태가 된다. 이 때문에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기에 맞춰 고령자 노동시장에 변화가 일 것으로 연구소는 내다봤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에서 20년 전부터 관찰된 징검다리 직업(브리지 잡)과 시간제 근로, 복지서비스 일자리 등이 활성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경혜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는 “정부와 기업이 고령 노동자의 노동 가치에 대해 적절히 평가하고 현존하는 징검다리 직업 시장을 체계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지민·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나와 통일] (2) 이찬호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나와 통일] (2) 이찬호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나는 통일문제를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바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 통일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통일부에서의 직장생활은 이후 작년 여름까지 계속되었다. 통일문제에 대해 일반국민들이 의례적으로 갖고 있는 수준의 식견 정도를 갖고 통일업무를 시작한 나에게 분단과 통일문제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사회적 현상들과 함께 규범적인 측면에서 분단과 통일이라는 특수상황을 규정해 나가고 풀어내는 것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통일부에 막 들어가자마자 남북교류협력이 시작되었다. 정부의 승인을 받으면 북한 사람과 만나거나 북한을 방문할 수 있고, 북한과 물자를 교역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위해 정부에 승인을 요청하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 어쩌다 신청이 들어오면 장·차관들이 모여서 그 승인여부를 결정하였고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지금은 실무자 수준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처리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한다. 북한을 여러 차례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북한을 다녀옴으로써 그동안 관념적인 차원에 머물렀던 분단과 통일이라는 명제가 현실적인 과제로 다가왔다. 북한 관리들과의 회담이나 대화를 통해 남북 간의 불신의 벽이 만만치 않음을 실감할 수 있었고 남과 북이 진솔하게 마주앉아 통일과 민족의 장래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인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현실이라는 토대에 서서 통일이라는 목표를 바라보아야 하고,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분단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면서 통일을 지향하는 일은 창의성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에는 선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발상의 전환을 통해 현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각종 규범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일은 대학에서 법 공부를 한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또한 통일은 남북한의 법률과 제도를 통합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준비 작업을 진행하는 것도 법학도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유익한 일이었다. 독일의 사례를 공부하기 위해 고등학교 때 배웠던 독일어 교과서를 다시 집어 들었다. 독일통일의 경험을 연구하면서 제도적인 통합도 중요하지만 심리적인 통합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실감하였다. 우리가 갖고 있는 분단의 현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였고 항상 새로운 이슈들을 만들어 내었다.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환상적 통일지상주의의 열풍이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적이 있었고, 연평해전이나 연평도 사태와 같이 분단의 냉엄한 현실을 상기시켜 주는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남북교류협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도 하였지만 중단된 경우도 있었다. 북한 체제가 약화되면서 수많은 탈북자들이 생겨났고, 과거 ‘귀순 용사’로 이들을 대우하던 패러다임이 이들의 조기 정착을 지원하고 우리의 사회복지망 속에서 돌보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들은 항상 이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게 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민간에서 수많은 논쟁과 토론이 벌어지게 된다. 분단과 통일은 우리 사회에 있어 중요한 토론거리인 셈이다. 생산적인 토론을 통해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분단관리방안과 통일정책을 마련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는 점점 성숙해진다고 믿는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있어서 통일문제는 항상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면서 그 해결책을 요구하고 항상 창의적인 사고를 갖도록 독려해 왔던 존재이었던 것 같다. 이제 변호사로서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나에게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통일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만, 그동안 통일문제가 항상 나로 하여금 고민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면서 항상 깨어있게 했던 그 영향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약력 47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미국 컬럼비아 로스쿨 졸업, 통일부 교류협력과장, 정책기획과장, 독일주재관, 미국주재관, 현재 법무법인(유) 태평양 변호사
  • [김문이 만난사람] 25년째 여의도 지킴이 장석영 한나라 고흥길 국회의원 보좌관

    [김문이 만난사람] 25년째 여의도 지킴이 장석영 한나라 고흥길 국회의원 보좌관

    어떤 자리에서 누군가가 문득 물어본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거니?”라고. 그럴 때마다 똑 부러지는 대답이 나오기가 흔치 않다. 대개는 망설이거나 아니면 “그런대로 살지 뭐.”라는 식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주위 어른이나 선배들이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 조언해주기도 하겠지만 그것도 잠시뿐,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경우가 다반사일 터. 한 여인의 생각은 달랐다. 신혼의 단꿈에 부풀어 있을 때였다. 그러니까 1990년 2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부는 시아버지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신부는 얼른 봉투를 뜯었다. 편지에는 거두절미하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법, 즉 9가지 삶의 실천덕목이 친필로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그 내용은 이랬다. ▲타인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인간 ▲건실한 가정을 이끄는 인간 ▲가문과 사회의 명예를 빛내는 인간 ▲상사나 부모를 중히 여기는 인간 ▲시간을 아껴쓸 줄 아는 인간 ▲고향을 아끼는 인간 ▲저축을 생활화하는 인간 ▲학문을 중히 여기는 인간 ▲타인을 도울 줄 아는 인간 등이다. 여기서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이 여인은 편지를 읽고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얼핏 보면 웃어른이 아랫사람에게 ‘열심히 살라는 뻔한 내용이구나’ 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치밀한 선거 준비·의정 살림살이 정평 장석영(45)씨. 직업은 국회의원 보좌관이다. 단순히 보좌관이 아니라 올해 25년째가 되는 ‘왕보좌관’이다. 장씨는 지난 1월 공무원으로는 받기 힘들다는 근정포장을 수상했다. 특히 국회 교섭단체 보좌진 가운데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자 여성이기에 더욱 빛났다. 이때의 공적내용을 잠깐 들여다보자. ‘우리나라 최초로 민의 수렴을 위한 지역구 관리를 전산화해 유권자 관리, ARS여론조사 등 전반적인 컴퓨터 운영을 했으며 정치자금 회계 실무, 각종 선거관리 등을 통해 매번 선거 때마다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뛰어난 업무능력을 인정받았고…. 또한 평소 근면성실한 성격으로 모든 업무에 책임감과 열정으로 솔선수범하고, 꾸준히 신임받는 보좌관으로 국회에 근무하면서 시부모를 모시고 슬하에 두 아들을 두어 화목한 가정은 물론, 뒤늦게 대학원 진학 등 직장과 사회에 타의 모범이 되었으므로’ 공적내용들을 천천히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 9가지 실천덕목과 대부분 맞아떨어진다. 장씨가 시아버지한테서 편지를 받은 그날 이후부터 ‘9가지’를 삶의 금과옥조로 여기며 묵묵히 실행해 온 결과였다. 그럴 것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지갑 속에 시아버지의 편지 내용이 적힌 실천덕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장씨는 1986년 9급 공무원으로 국회에 들어와 대선 5회, 총선 6회, 지방선거 5회, 보궐선거 2회 등 선거만 무려 18회를 치렀다. 그러는 동안 선거관리법과 정치자금법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전문가가 됐다. 국회 내에서는 물론 지역 선거관리 직원들조차도 장씨에게 관련법을 물어볼 정도로 인정을 받는다. 인터뷰 요청에 그는 “제가 뭘, 훌륭하신 분들도 많은데.”라고 하면서 한사코 거절한다. 4월 재보선 선거도 있고 하니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경기 성남시 서현동에 위치한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장씨는 지난 16대 총선 때부터 고흥길 의원과 인연을 맺고 있다. ●‘세풍’ 등 사건 땐 검찰 조사 고초 겪기도 빗자루를 들고 사무실을 청소하던 그에게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어떤 연유로 국회에 발을 들여놓았을까. “그러니까 12대 국회 때였지요. 대학 교수님을 통해서 당시 정선호(육사17기) 의원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정 의원님은 아웅산 폭파사건 때 희생당한 서상철 전 동자부장관의 여동생 남편이기도 했지요. 당시 정 의원님은 여의도연구소의 전신인 사회개발연구소에서 컴퓨터로 여론조사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전자계산학과를 나와 IBM에서 근무하고 있었지요. 당시만 해도 국회에는 컴퓨터가 드물었고 또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정 의원님의 권유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국회에 들어가게 됐지요. 주위에서 반대도 많았습니다. 여자가 그 험한 정치판에 뛰어드느냐고 극구 말렸지요.” 장씨는 국회에 들어가자마자 역사적 사건과 간접적이나마 인연을 맺게 된다. 1987년 6월 노태우 민정당대표의 6·29선언에 결정적 역할을 한 여론조사 업무에도 참여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부터 일복이 터졌다. 당시 9급 공무원 월급은 16만원이었다.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와서 열심히 일하는 장씨의 모습을 보고 감동했던지 정 전 의원은 별도의 보너스를 지급해 주면서 장씨를 친딸처럼 여겼다. 이후 장씨는 1987년 대선을 치른 뒤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밤낮 없이 정 전 의원의 일을 도왔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지역구(천안)에서 낙선했다. 모시던 국회의원이 떠날 판이어서 장씨도 준비를 했다. 하지만 당시 서상목 전 의원이 전국구로 국회에 입성했는데 선거운동을 치밀하게 준비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장씨에게 6급 비서직을 제안했다. 정 전 의원도 그렇게 하라고 권유했다. 이렇게 해서 장씨는 국회에 다시 눌러앉았고 서 전 의원과는 15대 국회까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러던 1998년 이른바 ‘세풍(稅風)사건’이 터지면서 그해 12월 서 전 의원이 국회의원직을 내놓게 되자 장씨도 국회를 떠나게 된다(세풍사건은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석희 국세청 차장 등이 현대 SK 대우 등 23개 대기업에서 166억 3000만원을 한나라당 대선자금으로 불법모금한 사건이다). 하지만 곧 고흥길 의원과 인연이 돼 국회로 다시 돌아왔다. 16대 국회 때 초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고 의원 역시 성실한 장씨를 눈여겨봤다가 스카우트했던 것. 이후 17, 18대 총선에서 선거준비를 깔끔하게 처리해 고 의원이 3선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선거 때마다 꼼꼼한 지역구 관리는 물론 정치자금법이나 선거법에 저촉되는 일을 절대 못하도록 원칙을 삼았고 이를 철저하게 지켰다. 고 의원은 이런 장씨에 대해 늘 고마워한다. 그래서 멀리서(천안) 출퇴근하는 장씨에게는 되도록 많은 편리를 봐준다. ●“일하는 국회의원 기준 정했으면…” “어떤 의원들은 정치자금법을 놓고 형무소 담장을 걷는 것 같다고 하지만 돈을 안 쓰도록 하는 지금의 정치자금법은 정말 좋은 제도입니다. 그 이전에는 선거를 치르고 나면 재산을 탕진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거든요. (본인이)돈을 안 쓰고 후원금으로도 얼마든지 4년을 보낼 수 있는데 몸이 고달프고 피곤하다고 돈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결국 거덜나게 됩니다. 대개 당원을 확보하기 위해 돈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정해진 한도의 돈으로도 얼마든지 홍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장씨는 법 테두리 안에서 얼마든지 선거를 치를 수 있다고 재차 강조한다. 그는 또 “국회에 오래 있다 보니 일을 하는 국회의원과 그렇지 않은 국회의원들이 확연히 드러난다.”면서 “그럴 때마다 세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들도 어떤 기준을 정했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그는 다음 달 27일 재보선 때에도 ‘왕보좌관’의 철학, 즉 정치자금법과 선거관리법 등을 준엄하게 지키도록 하겠다고 장씨는 강조한다. “그동안 25년 국회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세풍’ ‘안풍’(安風) ‘썬앤문’ 등의 사건을 겪을 때마다 직·간접적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는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장씨는 서 전 의원 보좌관 시절에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으며 장남이 올해 대학에 진학했다. 첫아이 때는 출산한 지 25일 만에 출근했고 둘째 아이 때는 대통령선거와 맞물려 20일 만에 출근했다. 그것도 새벽 6시에 나와 밤 12시 퇴근하기 일쑤였다. 그는 “이런저런 이유로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 해서인지 몸이 어디엔가 이상이 생겼다고 늘 느끼지만 겁이 나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남편은 원래 대기업에 다녔는데 결혼할 때 나이 40이 되면 농사를 짓겠다고 약속하더군요. 남편은 그 약속대로 40세에 직장을 그만뒀고 현재 천안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아 지역 역사박물관에 나가기도 하지요.” 장씨는 19대 총선 때 고 의원을 4선 의원으로 반드시 당선시킨 뒤 정든 보좌관직을 그만둘 생각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살 건가요.” 대답이 지체없이 돌아온다. “천안에서 남편과 함께 시부모를 모시며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매실과 배농사, 그리고 맛있는 농산물을 재배해 저렴한 가격에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장석영 보좌관은 1986년 9급직 정선호 의원실에 ‘입사’…서상목의원실 거쳐 고의원과 3선 인연 1966년 충남 온양에서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84년 2월 평택 한광여고를 졸업한 뒤 안양공업전문대학(현 안양과학대)에 진학했다. 여기에서 전자계산학을 전공했으며 1986년 2월 졸업하자마자 컴퓨터 제조업체인 IBM에 입사했다. 그해 7월 회사를 그만두고 12대 국회 때 정선호 의원실에서 9급 공무원(현재는 4급)으로 새롭게 일을 시작했다. 이후 13·14·15대 국회 때 서상목 의원실(1988년 5월~1998년12월)에서 일했다. 서 전 의원이 세풍사건으로 도중 하차하자 장씨는 국회를 잠시 나왔다. 그러나 16대 국회 때 고흥길 의원의 요청으로 다시 국회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3선인 고 의원과 계속 인연을 맺고 있다. 현재 장씨는 한나라당 보좌진협의회 감사, 전현직 보좌진 모임인 ‘청파포럼’ 여성위원장 겸 감사를 맡고 있다. 주요 수상으로는 국회개원 54주년기념 국회사무총장표창(2002), 국회개원 61주년기념 국회의장표창(2009), 국회의장 공로패(2010) 등을 비롯해 지난 1월 근정포장을 수상했다. 현재 남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세무학을 공부 중(2학기)이다.
  • ‘우정 글로벌 사회공헌센터’ 서울대 - 부영그룹 건립 협약

    ‘우정 글로벌 사회공헌센터’ 서울대 - 부영그룹 건립 협약

    오연천(왼쪽) 서울대학교 총장과 이중근(오른쪽)부영그룹 회장이 2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행정관에서 ‘우정 글로벌 사회공헌센터’ 건립 협약을 맺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대는 부영그룹과 함께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연구하기 위해 센터 건립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센터는 연면적 6600㎡로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다. 사회공헌교육프로그램실, 기념홀, 국제 컨퍼런스룸, 화상 세미나실 등을 갖추게 된다. 건립비 100억원은 부영그룹이 전액 기부하고, 이 회장의 아호인 ‘우정’이 센터 이름에 반영된다.
  • ‘0.03초 차’ 이승훈 4관왕 불발 파벌 탓?

    ‘0.03초 차’ 이승훈 4관왕 불발 파벌 탓?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23·한국체대)의 동계아시안게임 4관왕은 불발됐다. 금메달을 3개나 땄기에 팀추월 2등도 잘했다고 손뼉 쳐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면을 알면 속이 쓰린다. 한국은 의도적으로 ‘최상의 금메달 조합’을 버렸다. 한체대 고병욱(21)을 출전시키기 위해 팀추월 선수구성 공고까지 바꾸면서 꼼수를 썼지만, 결국 자가당착에 빠졌다. 1등이 확실시되던 팀추월 금메달과 한국의 종합 2위는 수포가 됐다. 지난 4일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1500m에서 동메달을 딴 이규혁(33·서울시청)은 말했다. “팀추월은 후배를 위해 양보하고 싶지만, 내가 타야 되면 타겠다.”고. 이 말에 의미를 부여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 말엔 이승훈이 4관왕에 오르지 못한 이유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규혁은 단거리 전문 선수다. 2003·2007년 동계아시안게임에서 1500m 2연패를 할 정도로 중거리도 잘 탔지만 근래에는 단거리에 매진해 왔다. 최근엔 1000m조차 레이스 막판엔 페이스가 눈에 띄게 떨어진다. 그런 이규혁이 8바퀴(3200m)를 도는 팀추월을 타야 했다. 선수 생활 중 팀추월에 나선 건 처음이었다. 시간을 되돌려 보자. 빙상연맹이 지난해 10월 20일 발표한 팀추월 선발 기준은 이렇다. ‘1500m 1·2위, 5000m 1위로 구성한다.’ 그 기준에 따라 10월 29~31일 종목별선수권대회를 치렀고, 모태범(22·한국체대)·이규혁이 1500m 1·2위를 차지했다. 팀추월은 모태범·이규혁으로 확정됐다. 경기심판위원회는 31일 회의를 열고, 선수 유고 시에 대비해 1500m 3위에 오른 이종우(25·의정부시청)를 예비 선수로 추천했다. ●단거리 이규혁 양보·번복 끝에 출전 그러나 두 달 뒤인 12월 8일 변경된 선발 기준이 다시 공고로 떴다. ‘1500m 1·2위와 5000m 1·2위 중에서 팀추월 선수를 구성한다.’였다. 이미 1500m 선수 선발이 끝난 뒤 갑작스럽게 공지가 변경된 것. 뚜렷한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20~21일 치러진 종합선수권에서 이승훈·고병욱이 5000m 대표로 정해졌다. 두 번째 공고에 따른다면 팀추월은 이규혁·모태범·이승훈·고병욱 중에 결정돼야 했다. 예비선수로 추천돼 팀추월을 연습하던 이종우는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 이후 빙상연맹 강화위원회(경기심판위원회)가 세 번이나 열렸다. ‘이규혁이 안 탄다는데 그러면 이종우냐, 고병욱이냐.’가 문제였다. 고성이 오갔다. 한 경기이사는 사퇴했다가 번복했다. 좋은 마음으로 후배에게 양보했다가 더러운 꼴(?)을 본 이규혁은 결국 “그냥 내가 타겠다.”고 나섰다. 팀추월 외에도 장거리에 출전하는 고병욱은 카자흐스탄으로 향했고, 출전 종목이 없는 이종우도 팀추월 예비 엔트리 자격으로 비행기를 탔다. 팀추월에 5명의 선수를 파견한 강화위원회는 엔트리의 모든 권한을 윤의중 감독에게 위임했다. 그러나 혼란은 링크에서도 계속됐다. 이종우도, 고병욱도 ‘러브콜’을 기다렸다. 경기 전날 윤의중 대표팀 감독은 “(두 번째 공고에 따라) 승훈·태범·규혁·병욱이 중 셋이 탄다. 엔트리는 30분 전에 알려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경기 당일 오전까지 팀추월을 훈련했던 고병욱이 빠졌다. ●이승훈 혼자 8바퀴 이끌어… 체력부담 커 6일 팀추월 레이스는 악전고투였다. 3명이 함께 달리는 팀추월은 보통 구간을 분담해 선행 주자로 팀을 이끈다. 선행 주자가 공기저항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세계빙상연맹이 출간한 교본에 따르면 “선행 주자 뒤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선수는 400m 트랙 한 바퀴당 0.5초의 이득을 본다.”고 돼 있다. 그만큼 맨 앞에서 끄는 선수의 체력 부담이 크다는 얘기. 그래서 팀추월에서는 세 선수가 번갈아 선두에 서며 체력을 비축한다. 기본이다. 이번 대회 팀추월에서 일본·카자흐스탄·중국이 모두 그랬다. 한국은 이승훈이 처음부터 끝까지 8바퀴를 끌었다. 이승훈은 “달리다 처지는 선수가 있으면 내가 빠져서 그 선수를 밀어 주기로 작전을 짰다. 끝까지 아무도 안 처져 레이스를 잘 마쳤다.”고 말했다. 또 “모태범·이규혁은 장거리 선수가 아니라서 일본 등 경쟁국에 비해 우리가 처음부터 불리했다.”고도 했다. 이승훈은 마음껏 치고 나가기보다 뒤 선수들이 무사히 따라올 수 있도록 ‘바람막이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작전과 조직력이 중요한 팀추월에서 경기 직전까지 멤버를 몰랐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금메달을 딴 일본과 0.03초의 미세한 차이가 났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승훈·이종우·고병욱은 올 시즌 월드컵 때 처음 호흡을 맞췄음에도 3분 49초 89로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겨뤘던 카자흐스탄(3분 52초 19), 일본(3분 56초 77) 등에 월등히 앞섰다. 빙질에 따라 기록은 달라지지만 한국의 ‘최상 조합’이 분명히 있었다는 얘기다. 빙상 관계자는 “이종우를 의도적으로 제외시키다 제 꾀에 넘어간 꼴”이라고 말했다. ●전명규 , 한체대 승훈·태범·병욱 원했다? 그렇다면 이종우는 왜 ‘미운털’이 박혔을까. 이종우는 서울대학교 04학번이다. 한체대에서 “6년 장학금을 줄 테니 오라.”고 했지만, ‘공부하는 선수’를 꿈꾸며 거부했다. 이후 눈 밖에 났다. 스피드스케이팅 판에서 ‘비한체대’는 힘이 별로 없다. 한체대의 독주다. 지난해 밴쿠버올림픽에서 ‘한체대 3인방’이 금메달을 따면서 더욱 탄력이 붙었다.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때 쇼트트랙에서 불거졌던 ‘파벌 싸움’이 스피드로 고스란히 옮겨진 꼴이다. 그 중심에는 쇼트트랙 파벌의 중심이었던 전명규 전 빙상연맹 부회장이 있다. 한체대 빙상부 교수에 대한체육회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지만, 연맹에서는 현재 아무 직함이 없다. 지난해 쇼트트랙 짬짜미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얼음판을 주름잡은 위력은 여전하다. 한 관계자는 “연맹 이사들은 물론 대표팀 감독과 선수들까지 다 휘두를 수 있다. 강화위에 입김을 넣어 이종우가 팀추월에 뛸 수 없도록 힘을 행사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전명규씨는 한체대 이승훈·모태범·고병욱 조합을 원해 입김을 넣었는데 결국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전명규 교수는 이런 의혹에 대해 7일 “일고의 가치도 없는, 너무나 일방적인 주장이다. 난 이런 의혹에 답변할 위치도 아니다.”고 말했다. 빙상연맹도 “모든 공고를 만족시키는 선수들이 탔기 때문에 원칙상 전혀 문제가 없다. 과정상 갑론을박은 언제나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한편 전 교수는 오는 10일 빙상연맹 조직 개편에 맞춰 연맹 수뇌부로 복귀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용어 클릭] ●팀 추월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팀당 3명이 직선주로 반대편에서 동시에 레이스를 시작한다. 남자는 8바퀴(3200m), 여자는 6바퀴(2400m)를 뛴다. 상대 팀의 맨 뒤 선수를 추월하거나 3명 중 가장 늦게 들어온 선수의 기록을 비교해 승리 팀을 가린다. 선수들은 매 바퀴를 돌 때마다 선두를 맞바꾸며 스피드를 끌어올린 뒤 마지막 직선 주로에서 경쟁하듯 스퍼트를 해 기록을 단축한다.
  •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오세정 교수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오세정 교수

    한국연구재단 제2대 이사장에 오세정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57)가 임명됐다. 19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오세정 신임 이사장은 서울대 물리학과, 미국 스탠퍼드대 물리학 박사과정을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 자연대 학장과 국가교육과학자문회의 위원 등을 두루 거쳤다. 현정부 초기 교육부 장관직을 제의받기도 했지만, 지난해 열린 서울대 총장선거 출마를 위해 고사했다. 당시 행정대학원 오연천 교수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교과부는 오 이사장이 앞으로 창의적 연구환경 조성을 위해 연구지원·관리 제도의 선진화와 경영 효율화 등을 추진해 한국연구재단이 세계 일류의 연구지원·관리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 관훈클럽 58대 총무 정병진씨

    관훈클럽(총무 김진국 중앙일보 논설위원실장)은 22일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정병진(55) 한국일보 수석논설위원을 제58대 총무로 선출했다. 신임 총무의 임기는 2011년 1월 11일부터 1년간이다. 관훈클럽 감사에는 서두원 SBS 보도본부 라디오뉴스총괄국장, 오애리 문화일보 국제부 선임기자가 선출됐다. 정병진 신임 총무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워싱턴특파원, 생활과학부장, 정치부장, 부국장 겸 사회부장,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 [나눔 송년 릴레이 인터뷰] ② 27년간 기부한 류양선 할머니

    [나눔 송년 릴레이 인터뷰] ② 27년간 기부한 류양선 할머니

    서울 지역 아침 기온이 영하 9도까지 내려간 지난 16일 오전 11시. 칼바람이 안쪽까지 들어오는 서울 노량진동 수산시장 젓갈부의 ‘충남상회’에서 노란 옷을 겹겹이 껴입은 작은 체구의 할머니를 만났다. 37년간 젓갈장사를 하며 모은 전 재산으로 책과 장학금 기부를 이어가는 ‘젓갈 할머니’ 류양선(77)씨가 그 주인공. 할머니는 가게 한편에 있는 좁은 구들장 위에 앉아 손님맞이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온기가 도는 바닥과 할머니 앞에 놓은 작은 전기난로 덕분에 그나마 따뜻한 엉덩이와 발을 제외하고는 시장 안까지 불어닥치는 찬바람에 코가 시렸다. 할머니는 전기세가 아까워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간 이틀 전에야 비로소 난로를 켜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습관이 돼 있는 까닭이다. 류 할머니는 이렇게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어’ 모은 돈을 전부 책 사고 장학금 마련하는 데 사용한다. 얼마 전 국어사전 1억여원어치를 구입해 전국의 초·중학교 200여곳에 기부한 것이 알려지면서 할머니의 기부 열정은 또다시 화제가 됐다. 수없이 찾아오는 인터뷰 요청이 귀찮을 법한데도 할머니는 매스컴에 노출되는 것을 흔쾌히 환영했다. 할머니의 선행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져야 할머니를 닮은 제2, 제3의 기부 천사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젓갈이 더 많이 팔려야 더 많은 학생들에게 책을 사줄 수 있다는 생각에 할머니는 가게 벽면에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크게 뽑아 걸어뒀다. 생각 없이 지나가던 사람들도 사진과 기사를 보고 나서는 할머니를 알아보고 젓갈을 구입해 가기도 한다. “장사가 잘돼야 애들 책 한권이라도 더 사줄 수 있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온통 학생들 생각뿐인 듯 보였다. 말할 때마다 입에서 김이 나오는 날씨 속에서도 두 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가 힘들지 않았던 것은 할머니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란 옷만큼이나 따뜻한 ‘기부 천사’의 마음씨 때문이었다. 100촉짜리 백열전구 7개가 환하게 비춰 아늑하게 느껴지는 9.9㎡(3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할머니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날씨가 추운데 장사하시느라 고생 많으시죠. -날씨가 추워서 문제지. 여기 앉아 있으면 찬바람이 슝슝 들어와. 위아래로 잔뜩 껴입었는데도 춥네.(이날 할머니는 상의로 내복, 티, 양털조끼, 노란색 바람막이, 노란색 점퍼 등 5겹을, 하의로 내복, 기모바지, 방수 재질 바지 등 3겹을 겹쳐 입고 점퍼에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여기 구들장이 있어 엉덩이는 따뜻해. 전기난로 켜놓으면 그나마 낫지. 이것도 한서대학교에서 보내준 건데 잘 틀지도 않어. 젊었을 땐 새벽 4시에도 나왔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렇게 못 나와. 아침 7~8시 사이에 나와서 그래도 제일 늦게까지 장사하지. 밤 8~9시면 닫아. 그런데 어제오늘 날씨가 추워서 손님이 더 없네. →젓갈이 잘 팔려야 기부도 많이 하실 텐데요. -많이 팔아야 하는데. 올해는 완전히 적자야, 적자. 10월 20일부터 며칠 김장철에만 ‘빤짝’하고. 4월에서 9월까지는 정말 손님 없었어. 그전에 모아둔 돈 없었으면 나도 파산할 뻔했지. 임대료랑 창고 사용료 230만원 내고 나면 남는 것도 없어. 난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기부할 용의가 있는데 기부도 못 하게 생겼어. →적자가 났는데도 기부는 그치지 않으셨어요. -내가 벌고 남은 돈으로 기부하는 것도 아닌데 뭘. 형편 따라 기부하나? 애들 책 사주고 하려고 적금을 미리미리 들어놓지. 1000만원짜리고 2000만원짜리고, 3년짜리 4년짜리 있어. 그거 탈 때 기부하는 거지. 이번에도 3000만원 3년짜리 그게 만기돼서 그걸로 책 산 거야. 4~5번에 걸쳐서 줄 테니까 미리 책을 보내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떼먹을 사람은 아니니까 보내주시더라고. 고맙지. 크는 애기들이니까 얼릉 공부해야 하잖아. 죽기 전에 최대한 많이 (기부) 해야지. 나머지는 1년에 한번씩 계속 해서 갚아야지. (할머니는 지난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펴낸 ‘한국어대사전’ 201세트, 1억 854만원어치를 구입해 전국의 초등학교, 중학교에 보냈다. 사전 구입비로 3000만원을 내고 나머지 돈은 앞으로 5차례에 걸쳐 고려대 측에 분할 납부하기로 했다.) →처음 기부를 시작하신 건 언제인가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처음한 게 1983년도일 거야. 아, 완도. 완도초등학교 애들이 여기에 견학을 왔더라고. 그래서 걔들한테 책을 보냈지. 동화책. 그게 계기가 돼 가지고 책 기부를 시작했지. 어린 애들이 할머니가 보내준 책 잘 읽었다고 편지도 보내고 하니까 참 마음이 좋더라고. 거기도 책 여러 번 많이 보냈지. 나중에는 완도초등학교에서 애들이랑 학교가 같이 감사패도 보냈더라고. 여기서 감사패를 제일 먼저 받았는데 계속 기부하다 보니까 감사패가 나중엔 줄줄줄…지금은 한 100개는 돼. →지금껏 어느 정도 기부하셨는지 가늠하세요. -(손사래 치며) 모르지 그걸 어떻게 기억해. 무조건 주면 그만이지. 그런 걸 뭐라고 일일이 다 적어 놓나? 버는 대로 모이는 대로 족족 주는걸. →기부하시면 어떤 점에서 보람을 찾으시나요. -책 사주고 장학금 보내고 하는 그 자체가 좋아. 그러다 아이들이 고맙다고 편지라도 쓰면 그냥 엔도르핀이 팔구월에 목화송이 피듯 피지. 그런 편지 읽을 때가 제일 행복해. 이번에도 서산 국민학교 6학년 애가 편지허구 장갑허구 봉투에 같이 넣어서 보냈더라고. 할머니따라 기부 천사가 되겠다고 그렇게 썼더라고. 내가 이번에 사전을 그 동네 학교마다 쫙 보냈거든. 그걸 받은 아이가 기사에서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편지를 보낸 모양이야. →할머니 뒤를 이어 기부 천사들이 늘겠어요. -그게 제일 좋은 판단이여. 내가 자식들이 없어. 할아버지는 4년 됐나, 5년 됐나 돌아가셨고. 나 혼자 사는데 내가 준 장학금이나 책 받은 학생들이 자식처럼 손주처럼 찾아오면 반가워. 내가 준 장학금 받은 대학생들도 종종 가게로 찾아와. 젓갈도 사 가고 할머니도 뵙고 그런다고. 할머니가 기부하니께 우리도 같이 기부하는 거라고 젓갈도 더 많이 사 가고 하지. 기부는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녀. 자기가 스스로 허고 싶어야 허지. 자기가 받아보면 주고 싶은 마음도 더 생기는 법이야. 그래서 내가 어린 친구들한테 더 많이 나눠주려고 해. (인터뷰 도중 할머니는 기자에게 추운 날 고생한다며 간식을 이것저것 꺼내주셨다. 장사를 하다 보면 끼니 때 사이에 배가 고파져 두부, 고구마 등 새참을 드신다고 한다. 이날도 할머니는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흰 두부를 잘라 양념간장에 찍어 드셨다. 이 두부는 할머니가 장학금을 기부하는 대학 관계자의 친척이 감사의 표시로 자신이 운영하는 두부공장에서 직접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한다. 두부를 다 드신 할머니는 점심·저녁 밥을 지어 먹는 작은 전기밥솥에서 찐 고구마까지 꺼내 드셨다. 할머니는 “새참은 나눠 먹어야 제맛”이라시며 기자에게도 작은 밤고구마 한개를 건네셨다.) →얼마 전에는 학생들에게 또 사전을 사주셨는데 유난히 책을 많이 사주시는 이유가 있나요. -내가 사주는 건 전부 책이지 뭘. 돈으로 하면 고루고루 가간? 책으로 하면 1학년이 보고 나면 2학년, 2학년이 보고 나면 6학년 다 보잖아. 보고 나면 또 보고, 찢지만 않고 두면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으니 책이 좋지. 돈은 그냥 쓸데없이 쓰기도 하고 쓰고 나면 없고. 그니께 책 선물이 제일 좋은 거야. 그리고 또 내가 못 배웠응께. 어렸을 때 배워야지. 나 지금도 모르는 거 무슨 소린가 하고 사전에서 찾아보고 그러면 이튿날 보면 다 없어졌어. 어렸을 때 배운 건 지금까지도 아는데. 배움에도 때가 있지. 나무도 어린 나무에 거름을 줘야지 고목나무에 거름 줘봤자 소용없어. →학생들 교육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원래 꿈은 뭐였나요. -배우고자 하는 애 가르쳐야 혀. 내가 돈 벌면 내 고향에다가 하버드 대학보다 더 좋은 놈 지어서 돈 많은 사람은 돈 받고, 돈 없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한테 받아서 주고 그렇게 하는 게 꿈이었어. 그랬는데 돈 많은 부자가 나보다 먼저 짓데. 내가 지으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선수 치네(웃음). 그런 시골은 가난하니까 이런 서울에 와서 공부 못 해. 공부 잘해서 서울대학교에 붙어도 하숙비도 없고 생활비도 없어서 올라오지도 못혀. 그게 내 최종 목표였는데 이미 서산에 대학교가 생겼네. 그래서 내가 이제 거기다가 장학금도 보태주고 땅도 보태줬지. 할머니는 1998년부터 한서대학교에 20억원대의 부동산을 기부하고 현재 한서대학교 ‘류양선 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할머니가 기증한 부동산에서 나오는 세는 이 학교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쓰인다. 충남 서산시 해미면에 위치한 한서대학교는 1992년 개교했다.) →보통 사람들은 돈 벌면 자기 자식한테 물려주기 바쁜데 할머니는 어떠세요. -다 그렇지. 난 자식은 없어.(할머니는 28살에 결혼해 3년 정도 함께 산 남편이 두 번째 살림을 차려 집을 나간 뒤 쭉 혼자 사셨다고 한다.) 돈 많은 재벌들도 다 번 돈 자기 자식한테 주려고 하지 뭐. 그런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저 자식들은 뭐 두 손 두 발 붙들어 맸나. 저희들이 벌어서 먹고살아야지. 그러니까 자립심이 없어. →올 겨울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비리로 기부가 크게 줄었다던데요. -그렇다 하대. 안한다고. 그런 돈을 가져간다냐. 지가 노력해서 먹고살아야지. 아주 못 쓰는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 그런 사람은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혀. 기부가 어그러졌어. 허먼 뭘 혀. 그런 사람들이 다 가져가는걸. 난 그래서 책으로 하지 돈으로 안 해.(이 대목에서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할머니는 등을 떼고 몸을 일으키며 언성을 높였다.) →기부 계획이 더 있으신가요. -건강이 허락해서 장사를 하는 날까지는 천원짜리 하나라도 더 보태줘야지. 우선 얼마 전에 애들 사전 보내준 거, 고려대학에 남은 돈 채워넣어 줘야지. 사전값이 1억 좀 넘는데 처음에 적금 탄 돈 3000만원만 일단 주고 나머지는 차차 갚기로 했어. 장사해서 차곡차곡 돈 모아서 일단 그것부터 갚고. 그 뒤에는 또 학생들 책 사주고 대학교 장학금도 보태주고 할거야. 죽기 전까지 최대한 많이 주고 가야지. 나이는 공짜로 먹다 보니까 어느새 이렇게 많이 들었는데 얼마나 남았을지는 몰라도 죽을 때까지는 열심히 일해서 열심히 기부해야지. 허허.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류양선 할머니는 37년간 노량진서 젓갈장사 서산 한서대에 20억 기증 장학회 이사장으로 활동중 1933년 충남 서산읍(현재 서산시) 양대리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얼마 안 되는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지었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류 할머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학업을 잇지 못했다. 류 할머니의 기부가 대부분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과 책 마련에 쓰이는 것은 가난해서 공부를 더 할 수 없었던 본인의 아쉬움 때문이다. 어린 나이부터 집안일과 농사일을 돕다 28살에 남편을 만난 류 할머니는 1972년 고향을 떠나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먹고살 궁리를 하던 끝에 ‘장사가 안 돼 오래 두어도 썩지 않는’ 젓갈 장사를 택했다는 할머니는 그 후 지금까지 37년간 서울 노량진동 수산시장에서 ‘충남상회’를 운영하며 수익금의 대부분을 기부와 나눔에 쓰고 있다. 장사를 하면서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27년 전부터 기부를 시작한 류 할머니는 고향인 충남의 양로원, 재활원, 보육원 등을 비롯해 낙도와 지방의 초등학교 등에 책과 물품을 전달해왔다. 1983년 수산시장에 견학 온 완도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동화책을 보내준 것이 기부의 시작이 됐다. 충남 서산 한서대에도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세번에 걸쳐 20억원대의 부동산(경기 광명시 소재)을 기증해, 현재 한서대 ‘류양선 장학회’ 이사장으로 장학 사업에 힘쓰고 있다. 류 할머니는 돈이 없어 공부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고향인 서산에 대학교를 지으려 했던 꿈을 대신해 앞으로도 장학금과 책으로 기부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눈길끄는 사립미술관 두 곳 기획전

    눈길끄는 사립미술관 두 곳 기획전

    시간의 무게와 인연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는 때, 사립미술관 두 곳의 기획전이 눈길을 끈다. 올해 개관 21주년인 금호미술관은 그간 미술관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작가 21명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하는 ‘21 & Their times’(그들의 시간들)를 열고 있다. 최근 신관을 개관한 김종영미술관은 ‘연리지, 꽃이 피다’전을 통해 1950년대 폐허의 화단에서 우정을 나눴던 세 거장, 장욱진·김종영·김환기을 추억한다.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은 지금까지 600여회 전시에서 실험성이 강한 중견·신진 작가의 작품들을 소개해 왔다. 이 가운데 미술관의 정체성을 보다 뚜렷이 각인시켜줬던 21명의 작가를 초대했다. 근작과 더불어 작업의 모티브가 됐던 오브제나 드로잉, 그리고 초기작을 나란히 배치했다. 미술관이 작가를 키우고, 작가는 미술관을 키운 ‘동반 성장’의 시간을 함께 돌아보도록 한 구성이다. 독특한 필묵기법으로 수묵화의 전통을 새롭게 확장시켜온 김호득은 천장에서 바닥으로 길게 떨어지는 먹지에 노란색 분필로 수직의 선을 그은 설치 작품을 한쪽 벽면에 설치했다. 그 옆에는 1990년대 수평선 작업이 걸려 대조를 이룬다. 조각가 정현은 지난해 기무사터에서 열렸던 국립현대미술관의 ‘신호탄’전에 선보인, 대형 작품의 원형이 된 철수세미 작품 등과 함께 철도용 침목·아스팔트·철근 등 그가 즐겨 다루는 작업 재료들을 전시했다. 재료의 성질을 살리고, 인공적인 개입을 최소화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을 엿볼 수 있다. 김태호는 10년간 지속적으로 해온 미니멀 회화 작품과 작업의 근간이 되었던 드로잉, 사진들을 출품했다. ‘맨드라미 작가’ 김지원도 맨드라미 생화를 박제시킨 오브제를 비롯해 맨드라미와 관련된 다양한 실험과 모색의 흔적을 선보인다. 내년 2월 6일까지. (02)720-5114.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의 ‘연리지, 꽃이 피다’전은 한자리에 가장 모으기 어렵다는 1950~60년대 장욱진, 김환기, 김종영의 대표작 35점과 소묘 30점을 전시한다. 1910년대에 태어나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한 세 작가는 한국전쟁 후 서울대학교에 적을 두고, 신사실파 등을 통해 서로 교유하며 전통과 현대, 사실과 추상, 동양과 서양을 융합해낸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인물들로 꼽힌다. 충남(장욱진), 경남(김종영),전남(김환기) 등 출신 지역과 성장 배경이 다른 이들이 전후 서울의 황량한 풍토에서 나눴던 우정을, 서로 다른 뿌리를 지닌 두 나무가 얽혀 한 몸을 이루는 연리지(連理枝)에 비유한 점이 흥미롭다. 일반에 거의 공개된 적이 없는 희귀작들이 여러 점 나왔다. 물고기의 형상을 사각과 삼각의 색면으로 분할해 구성한 장욱진의 초기작 ‘물고기’(1959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는 추상미술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엿보게 한다. 고향 앞바다를 닮은 푸른 빛 화면에 달 하나가 떠 있는 김환기의 ‘산과 달’(1950년대)은 일반인은 물론 연구자들에게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개인 소장자를 설득해 어렵게 전시했다는 후문. 조각가 김종영의 ‘꿈’(1958년)은 세부적인 형태를 생략하고, 절대적인 미를 추구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밖에 김환기가 뉴욕 시절 신문지 위에 그린 과슈 작품, 장욱진이 매직펜과 먹으로 간결하게 그려낸 소묘, 서예에 능했던 김종영의 수묵 추상소묘 등을 만날 수 있다. 내년 2월 11일까지. (02)3217-648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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