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죄보다 신뢰회복부터/황성돈 외국어대 교수·정치학(서울광장)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지원 사태를 맞으며 상황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 누구 탓인가를 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단지 이 시대 많은 분들에게 빚을 지고 사는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또 한 때 나마 국정에 관여했던 공인으로서 국민과 독자들 앞에 불복하고 이 지면을 빌어 용서를 빌지 않을수 없다.유구무언의 심정으로 필을 절하고픈 심정이다.그러나 ‘위기(Crisis)=위(Risk)+기(Opportunity)’의 뜻을 새기며 이제라도 모두가크게 반성하고 함께 힘을 합쳐 심기일전한다면 이번 IMF위기를 그야말로 위험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에 진하게 배어있던 각종 불합리와 거품들을 걷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을수 있다는 생각에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글을 쓴다.
○총체적 부실의 산물
무엇보다 먼저 이번 IMF사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이번 IMF사태를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부실로만 이해해서는 문제를 풀 수가 없다.기업과 경제관료들의 방관과 무능,오만과 편견만 해결하면 해결될 성질의 것이아니다.IMF 사태는 오랜 동안 우리 사회 모든부분,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사에 배어있던 안이함,적당주의,이기주의,편협한 사고,으시댐 이런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빚어낸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점을 인정하는데 아직도 반감과 주저함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문제해결은 실로 요원하기만 하다.아직은 문제가 환율과 주식 가격에서 맴돌고 있지만,조만간 대부분의 문제들은 사회 구석구석의 일상 삶의 현장으로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그 때의 문제들은 단순히 경제적 처방으로는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들이 될 것이다.가정문제,범죄문제,부정부패문제,약육강식의 인간관계 문제 등 소위 사회적 스트레스의 가중으로 인한 각종 사회적 병리 현상들이 우리를 덮치게 될 것이다.
○신뢰구조 파산 우려
구태여 공자의 ‘병 제 신’ 순위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와 세계 여러나라들의 과거 역사들은 국가의 파산은 경제적,군사적 파산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최종적으로는 자신과 남에 대한,그리고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구조 파산에서 비롯된다.따지고 보면이번 IMF사태도 한국의 금융기관과 정부 정책당국자들에 대한 국내인과 외국인에 대한 신뢰 저하에서 비롯된 면이 많다.경제적 어려움이 이런 국가에 대한 신뢰구조의 파산에까지 이르느냐 아니냐는 바로 경제적 위기가 사회적 병리로 이어지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그리고 경제적 위기가 사회적 병리로 이어지느냐의 여부는 그동안 우리 사회 모든 부분의 일상사에 배어있던 안이함,적당주의,이기주의,편협한 사고,으시댐,이런 것들을 얼마나 하루빨리 떨어내느냐에 달려있다.
이 일을 해내는 데에는 현직대통령,대통령후보자,기업인,관료(문제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관료들,그 밖에 있는 관료를 막론하고),기업주,노동자,일반서민의 구분이 있을수 없다.모두가 겸손해져야 하고 시야를 넓혀야 하며,꼼꼼하게 남에 대한 책임을 느끼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그리고 무엇보다도 따뜻하게 서로를 감싸 안을수 있어야 한다.지금은 단죄의 시점이 아니다.
○시민단체 역할 중요
특히 현직대통령과 대통령 후보자들은 무엇보다도 국민들과 국제사회에 대해 신뢰를 회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한다.이를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설득력있는 정책의 발표도 중요하지만,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처절할 정도로 성실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뛰는 모습,그 자체가 지금 시점에서는 더 중요하다.그리고 건전한 시민단체들의 다양한 역할이 그 어느때 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임진왜란 때 전국에서 활약했던 민간 의병대와도 같은 역할이 절실한 때다.IMF의 후유증은 고통에 시달리게 될 서민들의 아픈 곳을 감싸안아 주는 시민단체,정책이 표류하지 않도록 정부 안팎을 파수하는 건전한 정책시민단체,우리 사회내에 만연된 각종 거품들을 걷어내는 역할을 하는 시민단체 등 정부가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시민단체들이 담당해야 한다.
이렇게만 한다면 이번의 IMF사태는 오히려 그동안 언제나 가능할지 모르던 우리 사회 합리화 과정의 시기를 대폭 앞당겨주는 기회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