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해외 과소비’ 해법은 있지만/육철수 논설위원
골프를 못 하지만 그게 부자들만의 스포츠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국내에 좋은 골프장 다 놔두고 외국으로 골프 치러 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는데, 해외 골프를 이따금 즐기는 L씨의 얘기를 듣고는 생각이 흔들린다.
제주도의 경우,2박3일간 골프여행을 다녀오면 그린피·항공료·호텔비 등을 합쳐 100만원쯤 든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칭다오(靑島)에 가면 50만원이면 충분하다. 그것도 별 다섯개짜리 호텔에 묵고 풍광이 빼어난 골프장에서.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 골프여행을 가도 70만∼80만원이면 넉넉하단다. 국내에서는 허구한 날 골프 치면 욕얻어 먹기 일쑤고, 골프장의 서비스도 형편없다고 털어놓는다.L씨의 불평을 들어보니 외국으로 여행하고, 골프 치러 가는 것은 그래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계산의 결과라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이런 식으로 지난해 외국 골프장에서 뿌린 돈은 자그마치 3억 5000만달러(3500억원)였다. 해외 골프를 포함해서 유학·연수, 관광, 신용카드 사용액 등 해외소비지출은 사상 처음으로 11조원을 넘었다고 한다. 달러화로 환산하면 110억달러다. 지난해 우리나라 무역수지 흑자(297억달러)의 3분의1이 넘는다. 제조업체들이 피땀흘려 상품을 팔아 벌어들인 외화를 해외소비 부문이 크게 잠식한 꼴이다. 이러니 수출로 먹고살다시피하는 우리나라에서 서비스수지는 만년 적자다. 해외소비는 국민의 절제만으로도 수십억달러를 아낄 수 있는 돈이어서 너무 아깝다.
서비스수지에는 외국에 주는 각종 기술사용료(로열티)도 만만찮은데, 여행비·교육비로 이렇게 많은 돈을 외국에서 써댄다면 이제는 무슨 특단의 대책이라도 세워야 할 판이다. 그 돈을 나라 안에서 쓰게 하면 무역수지에도 도움이 되고, 내수도 크게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11조원이 얼마나 큰 돈인가. 이 돈이 국내에서 쓰인다면 경제성장률을 1%포인트 이상 올릴 수 있다.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큰 서비스산업에 투자되면 새 일자리 20만개를 만들 수 있고, 제조업에 투입되면 5만∼6만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해외여행과 유학, 해외 과소비를 언제까지나 지탄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애국심에만 호소하는 시대는 지났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경쟁력 있고 서비스 좋으며, 저렴한 곳으로 소비자들이 몰려가는 것은 당연하다. 해외소비를 국내로 돌리려면 외국에 버금가거나 더 좋은 관광레저시설을 갖추고 교육환경을 만들면 된다. 국내에서도 싼 값으로 여행하고 골프를 즐길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것이고, 해외 조기유학을 줄이도록 외국의 유수 교육기관을 유치하고, 국내 대학의 석·박사 학위가 외국 것처럼 권위를 인정받도록 수준을 높이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문제는 그걸 몰라서 지금까지 미적거린 게 아니다. 골프장을 더 짓자면 규제완화와 환경파괴 등에 직면할 테고, 외국학교의 유치로 빈부 양극화가 더 심화되는 등 걸림돌이 많을 것이다. 바로 이런 문제들에 대해 가슴을 툭 터놓고 논의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때가 이제는 됐다고 본다. 그런 합의를 바탕으로 해외소비를 국내소비로 돌릴 수 있는,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만들어 보자는 얘기다.
빈부 양극화가 문제라면 새로 건설하는 관광시설에 저소득층을 우선 취업시키면 될 것이고, 외국학교의 경우 국비장학금과 기부금 등을 통해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우수 자녀들에게 일정부분 개방하는 방법으로 위화감을 희석시키면 되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골프장도 잘 지어 놓으면 오히려 좋은 경관과 함께 환경도 지킬 수 있다. 경제적 약자와 목소리 큰 시민단체 등의 양보만 있다면 해외소비를 국내로 돌리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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