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청와대의 생로병사/진경호 정치부 차장
회백색 담 탓일까. 출퇴근길 지나는 청와대는 늘 스산하다. 비라도 오면 내려앉을 듯 무겁고 적막하다.‘권부(權府)’임을 잊는다면, 서울 한복판 7만여평의 넓은 그 곳은 그저 도심 속 섬에 불과하다.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은 그제 일요일, 노무현 대통령이 그곳에서 예순한번째 생일을 맞았다. 진갑상에 미역국이 올랐는지는 모르지만 국무위원 등 부르려던 하객(賀客)은 모두 물렸다고 한다. 부인 권양숙 여사와 가까운 친지만이 그와 생일상을 마주했다. 그가 ‘본받을 공직자’라고 한 유능한 참모 변양균씨의 신정아 스캔들로 ‘할 말이 없게’된 지 일주일 뒤 일이다.
임기 마지막 해 대통령 부부만의 생일상은 처음이 아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퇴임을 한 달여 앞둔 2003년 1월 78회 생일을 부인과 둘이 보냈다. 작은 선물이라도 들고 왔어야 할 홍걸, 홍업 두 아들은 차가운 구치소에 갇혀 있었고, 다음 대통령이 드리운 권력 무상의 짙은 그늘에 노부부는 더 없는 한기(寒氣)를 느껴야 했다.
우울한 청와대는 낯설지 않다. 대통령이 있고부터 죽 있어 왔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까지 임기말 청와대는 우울하거나 불행했다. 한껏 어깨 펴고 들어섰다가도 모두 고개를 숙이고 나왔다. 임기말 증후군의 대표적 증세다.
‘거세된 대통령’(노 대통령의 표현이다)이 우울한 생일상을 받던 그제, 청와대 밖에서는 한때 그의 정치적 동지이자 자산이었던 옛 열린우리당 주역들이 ‘노무현 이후’를 놓고 또 한차례 일합을 겨뤘다.5년 전 종로 유세에서 노무현 후보가 “내 옆에 있다.”고 한 정동영은 ‘낫(not) 노’, 비노(非盧)를 외치며 선두를 달린다. 한나라당 이적생 손학규는 ‘노(no) 노’, 반노(反盧)로 살 길을 찾는다. 유일한 친노주자인 이해찬도 “대통령이 (특정후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거리를 둔다. 장외시장의 문국현은 아예 자신을 후보 단일화 무대에 올려 놓고는 노무현 정치와는 전혀 다른 프레임의 정치를 외친다. 노 대통령의 우군인 몇몇 인터넷 매체와 386세대들은 친노주자 대신 문국현 띄우기에 여념이 없다.
임기 마지막까지 할 일은 하고 가겠다는 노 대통령이다. 선거법이 대통령의 입을 틀어막는다며 헌법소원을 내고, 야당 대선후보를 거침없이 고소한 그가 이런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직 내 무대인데, 불러야 할 노래가 많은데 정작 관객들은 고개를 돌리고 다음 가수가 마이크를 넘겨 받으려 드는 이 당혹스러운 현실을 승복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유령선거인단을 동원한 ‘날림 경선’을 불사하며 노무현 이후를 향해 눈에 불은 켠 그들이다. 대통령이 자신도 모르게 선거인단에 포함된 것은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이 얼마나 날림이냐의 문제를 넘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는 야만적 무원칙과 빈곤한 정치신념, 누구든 가로막으면 부수고 가겠다는 전의가 담겨 있다. 그들에게 지지율 20%의 대통령은 더 이상 기댈 언덕이 아니다. 이명박이 끌어안지 못한 50%의 국민들 마음만 살 수 있다면 ‘노무현 밟고 가기’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권력의 생로병사다.
균형발전정책과 기자실 문에다 대못을 쾅쾅 박을지언정 ‘노무현 이후’에 대해서만은 한 발 물러서는 자세가 노 대통령에게 필요하다. 눈발 날리기 시작한 청와대의 겨울을 오롯이 관조했으면 싶다.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
진경호 정치부 차장 jade@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