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쪽 재상” 개혁2기 고삐 당길듯/이회창 신임총리 스토리
◎「성역없는 사정」 일궈낸 「개혁선봉장」/고시 8회… 45세때 일약 대법관 탈락/88년 「동해선거」땐 「불법」보고 선관위장 자퇴
개혁을 기치로 출발한 문민정부 아래 「성역없는 사정」의 대명사로 불리던 이회창 신임국무총리.어찌보면 그는 우리가 바라는 이 시대의 「신한국인」인지도 모른다.
이신임총리가 「사정의 칼」을 들고 새 정부의 개혁선봉장으로 국민 앞에 나선 것은 지난 2월25일,김영삼대통령의 새정부가 출범하면서 부터다.대법원장 후보 물망에 오르내리던 「대쪽같은」 소신의 그가 개혁의 한 축인 감사원장에 발탁되면서 였다.
당시 여론은 그의 감사원장 발탁을 김대통령 인사의 절묘함으로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감사원장으로 내정된 그의 일성은 이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국회의 임명동의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소감이나 감사원 운영계획에 대한 포부를 밝히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그가 아니면 할수없는 참으로 그다운 얘기였다.이 발언은 새 정부의 이미지와 겹쳐 참신함을 더했고,국민에게 보다많은 기대를 심어줬다.
그는 개혁의 파고가 사회 곳곳을 휩쓸고간 지난 10개월 동안 이를 유감없이 보여줬다.언론들이 앞다퉈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것도 그가 재임기간중 국민 모두의 바람이었던 개혁과 구태의 청산에 얼마나 성실히 임했는가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감사원장으로 있는 동안 우리 사회에는 그의 청정한 「사정의 칼날」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늘 개혁의 현장에 앞장서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율곡사업」「평화의 댐」등 굵직굵직한 감사로 감히 넘보기 어려웠던 군과 안기부,나아가 권부로 불리던 청와대까지 성역 없는 감사의 대상으로 삼았다.김대통령을 도와 문민의 정신인 「법에 의한 국정 운영」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그는 여기서 중단하지 않았다.국민의 일상과 관련된 민원행정,세무,건설,금융등 생활감사 부분에도 메스를 가했다.
구조적 부정부패와 무사안일에 대한 쾌도난마의 감사방식은 참으로 엄격했다.한때 정부내에서 조차 「청와대와의 불화설」이 나돌 정도로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의 이같은 행보는 사실 예측가능한 것이었다.공직인생의 대부분을 법관으로 살아온 이신임총리의 평소철학은 「사법 적극주의」로 요약되고 있다.즉 사법부가 법조문의 해석에 얽매이지 말고 판결을 통해 사회정의를 실현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김대통령이 그를 감사원장으로 내정하면서 『대법원장이 되어야 할 분인데…』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법관시절,그는 많은 일화를 남겼다.특히 박세경변호사 계엄법위반사건은 헌법정신 수호와 인권보장이란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판으로 기록되고 있다.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재직중이던 89년에는 강원 동해시및 서울 영등포 을구 국회의원 재선거 과정에서 불법선거를 제대로 막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 모든 공직자의 수범이 되기도 했다.
고시 8회인 이신임총리는 지난 60년 인천지법판사로 임관돼 서울 민사지법 부장판사,서울고법 부장판사,법원행정처 기획실장을 거쳐 81년 일약 45세의 나이로 대법관에 임명됐다.그러나 86년 대법관 재임명에서 탈락되는 수난을 겪었다.서울이 고향으로 서울지검장을 지낸 이홍규변호사(85)의 아들이자 대법관을 지낸 한성수씨의 사위다.부인 한인옥여사(55)와의 사이에 2남1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