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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권 첨단기업들 제주로 옵서예”

    ‘제주로 오세요.‘ 제주가 파격적인 지원 조건을 앞세워 수도권지역 첨단기업 제주 유치에 나선다. 제주도는 제주시 아라동 일대에 조성중인 33만평 규모의 첨단과학기술단지 부지를 올 하반기부터 분양, 수도권 첨단기업을 유치하기로 했다고 31일 밝혔다. 수도권 기업이 제주로 이전하면 법인세는 5년간 100% 면제,2년간 50% 감면, 재산세는 5년간 100% 감면,3년간 50% 감면, 취득세·등록세는 100% 면제라는 조세감면 혜택을 준다. 유치 대상 기업은 수도권에서 3년 이상 영업, 상시 고용규모가 50명 이상인 IT·BT 등 첨단산업, 정보통신, 지식기반산업, 텔레마케팅서비스업 등이다. 정보통신업과 텔레마키팅서비스업(콜센터)은 50명 이상 초과 고용시 건물임대료 3억원까지, 시설장비 구입비 3억∼5억원을 특별 지원한다. 도 관계자는 “수도권 400여 기업에 제주 투자환경의 장점을 담은 홍보물을 보냈다.”면서 “9월 서울에서 수도권 기업 제주 투자 설명회를 갖고 본격적인 기업 유치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주로 이전한 수도권기업은 ㈜다음커뮤니케이션을 비롯, 반도체설계업체인 EMLIS, 키멘슨전자㈜ 등이 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길섶에서] 묵조(墨調)/최태환 수석논설위원

    동강 조수호 선생이 전화를 했다. 며칠 전 칼럼 ‘다시 쓰는 광화문’을 읽었다고 했다. 꾸짖을 일이 있으신가? 예술의 전당 전시장을 찾았다. 관람객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현존 최고의 서예가다. 일찍 고전의 발견이나 해석 차원을 넘어섰다. 지금도 글·그림이 실험적이다. 동강 특유의 시대정신과 화론(畵論)이 녹아있다.80대 청춘으로 불리는 이유다.‘망년기낙청춘’(忘年紀樂靑春·나이를 잊고 청춘을 즐긴다)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글을 그림으로 승화시켰다.‘문자추상’이다. 전쟁과 평화, 미래로, 심여추수(心如秋水), 만상회춘(萬象回春)등. 마음까지 환하게 한다. 서양회화적 느낌의 용어여서일까.‘문자추상’대신 ‘묵조’(墨調)라고 표현했다. 그의 조어다.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30대때 최연소 국전심사위원이 됐다. 일찍 묵조의 상상력을 쌓았다. 그는 “젊은이들이 우리 전통과 그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쓸쓸해. 그래서 최선생을 오시라고 했어.”한 시간여 담소하는 동안 기념촬영을 하겠다는 관람객이 줄을 이었다. 그럼에도 쓸쓸하단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Seoul In] 연신내역서 주민센터 합동전시회

    은평구(구청장 노재동) 29일부터 6월4일까지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에서 주민자치센터 합동전시회를 연다. 갈현1동의 대조동의 한지공예와 서예, 불광2동의 서예·종이접기, 불광3동의 도예공예 등이 전시된다. 이번 합동전시회에는 린파킹 사진 전시, 기초질서 지키기 캠페인 등도 함께 진행한다. 갈현1동사무소 350-1509.
  • 남도 예술혼 고르기 고민되네

    남도 예술혼 고르기 고민되네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 전남 진도의 ‘운림산방’에서는 한국화에 대한 경매가 열린다. 운림산방은 영화 ‘스캔들’에서 배용준, 전도연 등이 연못에 배를 띄워놓고 놀던 장면을 찍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 조선 후기 화가 허유에서부터 미산 허형, 남농 허건 등 허씨 집안의 화실로 사용된 한국 남종화의 성지이기도 하다. 지난 19일 제41회 남도예술은행 토요경매가 열린 운림산방을 찾았다. 주말을 맞아 나들이를 온 관광객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미술품 수집가 50여명이 몰렸다. 남도예술은행(www.nartbank.co.kr)은 전라남도가 지난 2005년 10월 작가들의 생활기반 마련 등을 위해 설립했다. 지금까지 1억 7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568점의 한국화, 서예, 문인화를 구입했다. 구입한 작품은 인터넷을 통해 시중가보다 30% 이상 싸게 판다. 토요일 경매에는 인터넷보다 30∼50%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건전 투자자 몰려 매주 30점씩 경매에 나오는 작품의 가격대는 보통 10만∼40만원대이다. 가장 비싼 작품이 100만원을 겨우 넘는다. 경매 분위기도 서울에서 실시되는 서울옥션,K옥션과는 천양지차이다. 수십억원대의 그림이 거래되는 서울의 옥션은 건전한 미술투자자 외에도 대리인을 내세운 투기꾼들이 몰린다. 인기작가의 작품을 놓고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서울의 미술품 경매현장은 살벌한 싸움터다. 반면 남도의 혼이 담긴 소리 한자락으로 문을 여는 한국화 경매장은 웃음과 미술에 대한 애정이 오가는 정겨운 장터 같다. ●경쟁 땐 2만원 단위로 값 올려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으면 손을 들고 징이 울리면 낙찰이 된다. 경쟁자가 있을 경우 2만원씩 값이 오른다. 경쟁이 붙으면 경매 주최에서 고객들끼리 값을 조정하라고 맡겨버린다. 경매가 끝난 뒤 주문서를 제출한 다음 일주일 안에 대금을 계좌로 납입하면, 작품은 무료로 배송된다. 마음이 바뀌어 구입의사를 취소해도 별다른 책임은 묻지 않는다. 이날 정경호씨의 작품 ‘일출산 오월’을 낙찰받은 손길자(63·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씨는 “집은 서울인데 고향이 진도라 자주 내려온다. 가격도 저렴하고 월출산이 힘있게 그려져 샀다.”면서 “집 거실에 걸어놓고 그림을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화 경매이지만 20대의 젊은 수집가도 있었다. 박인희씨의 ‘노송’을 21만원에 구입한 조규재(26·경기 수원시 인계동)씨는 “여행왔다가 집에 가는 길에 아버지께 선물하기 위해 그림을 샀다.”고 설명했다. 김용욱씨의 ‘마음이 머무는 곳’을 41만원에 낙찰받은 정성봉(29·전남 목포시)씨는 이미 집안에 한국화를 빽빽이 걸어놓은 미술투자자다. 주말이면 친구나 가족과 함께 자주 경매현장을 찾는데 이번이 7번째라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시작… 낙찰률 증가세 전라남도가 한국화를 되살리기 위해 마련한 경매제도는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됐다. 한 회 경매당 평균 3∼4점이 낙찰되지만 이날은 모두 8점이 팔려 총 낙찰금액이 270만원에 달했다. 낙찰율도 점차 오르는 추세다. 그동안 진도 신비의 바닷길축제 현장에서도 경매를 실시하는 등 여러차례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림이 한 점도 안 팔린 경우도 있었다. 올해 7∼9월에는 3억원의 예산을 들여 미술품을 더 구매할 계획이다. 전남도청 경매관계자는 “서울 인사동보다 싸게 좋은 작품을 살 수 있으니 진도 토요경매를 꼭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글 사진 진도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미스·서울지방 국세청」은성모(殷性摸)양 - 5분데이트(101)

    「미스·서울지방 국세청」은성모(殷性摸)양 - 5분데이트(101)

    「미스·서울지방 국세청」은성모(殷性摸)양은 갸름한 얼굴, 날씬한 몸매의 고전적인 느낌의 아가씨. 전남 광주 태생으로 69년 봄 조선대학교 의상과를 졸업했다. 국세청에 근무한 것은 69년 6월부터. 국세청 본청 직세국장실에 근무 하다가 지난 2월 서울지방 국세청으로 옮겨와 계속 청장실에 근무하고 있다. 가정쪽으로는 어머니 하의경(河義敬)여사(62)의 4남7녀중 다섯째 따님. 위로 4명의 오빠와 1명의 언니는 이미 결혼을 했고 지금은 3살위의 언니를 포함해서 딸만 모두 4명이 남은 셈이라고. 월급은 일부 살림살이에 보태라고 어머님께 드리고, 동생들에게도 용돈으로 몇푼씩 쥐어준다는 착한 아가씨. 또한 용돈은 아껴서 결혼자금 마련을 위해 계를 붓고 있는 야무진 아가씨. 취미는 서예와 성악. 노래부르기를 특히 즐겨서 여고때부터의 18번이 『솔베지의 노래』라고. 의상과 출신인만큼 옷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다. 그러나 요즈음은 직장일에 쫓기느라 통 옷을 못만들어 안타깝단다. 결혼은 아직 생각이 없고…. 2년쯤 뒤, 위의 언니가 결혼한 뒤에나 얘기해 보잔다. [선데이서울 70년 9월 27일호 제3권 39호 통권 제 104호]
  • ‘특선=1000만원’ 미술대전 ‘검은돈 얼룩’ 사실로

    ‘미술대전 특선=1000만원’ 등 소문으로만 떠돌던 미술계의 검은 커넥션이 경찰 조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국내 최고 권위의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제자들의 작품을 미리 수상작으로 찍어 놓고 각본대로 심사를 진행한 전·현직 미술협회 간부들이 대거 경찰에 적발됐다. 또 협회 이사장 선거에서 특정 후보의 표를 늘리기 위해 자격 미달자를 회원으로 가입시키거나 중견 작가가 돈을 받고 공모전 출품작을 대신 그려주는 등 미술계의 고질적인 병폐도 드러났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16일 제자나 후배들에게 돈을 받고 이들의 작품을 미술대전에 입상시킨 한국미술협회 전 이사장인 하모(54·H대 미대 교수)씨와 문인분과위원장 김모(53)씨 등 9명에 대해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조모(60)씨 등 심사위원과 협회 간부, 청탁 작가, 이사장 선거 비리 연루자 등 11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하씨는 협회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4월28일 제25회 대한민국미술대전 한국화부문 심사를 앞두고 후배 이모씨에게서 1000만원을 받고 심사위원에게 압력을 넣어 이씨의 작품을 특선에 입상시키는 등 같은 해 12월까지 모두 4명의 작품을 부당하게 특선에 입상할 수 있도록 주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 등 2명도 제자 등으로부터 3600만원을 받고 수상작에 뽑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다. 경찰은 이번에 꼬리가 잡힌 문인화 부문 외에도 한국화와 서양화, 공예, 서예 등에서도 사전 심사와 금품수수 등 비슷한 사례가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대한민국미술대전 1949년부터 1981년까지 30회를 열었던 정부 주도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가 82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거쳐 89년부터 미술협회 주관으로 바뀌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신인 미술작가 등용문으로 국전의 맥을 잇고 있지만 끊임없이 잡음에 휩싸여 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최태환칼럼] 다시 쓰는 ‘光化門’

    [최태환칼럼] 다시 쓰는 ‘光化門’

    북악(北岳)이 옹색하다. 조선 왕조의 주산(主山)이다. 정궁 경복궁을 품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보면 정상 부분만 드러난다. 광화문 복원 가림막 때문이다. 올봄엔 진달래 군락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산중턱을 분홍띠로 물들였던 진달래다. 광화문 복원공사를 시작한 지 6개월여 됐다. 아침 저녁 그 앞을 지난다. 가림막이 익숙하다. 장식 그림이 독특하다. 빛바랜 옛 광화문 주변 풍경과 색색의 세로 바가 어우러졌다. 경복궁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가림막 안으로 들어섰다. 철거 작업이 막바지다. 콘크리트 구조물이 속살을 드러냈다.‘광화문’ 현판은 벌써 내려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직 때 쓴 글이다. 새로 건축되는 광화문과는 인연을 맺지 못한다. 국립 고궁박물관에 보관한다고 한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박정희 현판’의 폐기를 발표했다. 광화문 복원 일정을 정리하면서다. 박정희 유산 지우기의 천명이었다. 하지만 원래 현판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새 현판 글씨는 정해지지 않았다. 유홍준 청장은 “우리시대 최고 명필에게 글씨를 맡기겠다.”고 했다.30년의 역사는 지우고, 새 역사를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우리시대 최고의 명필? 당시 이런저런 사람을 떠올렸다. 여초? 일중? 동강? 최고봉의 명필들이다. 하지만 얼마전 여초 김응현 옹이 작고했다. 그는 추사 김정희, 검여 유희강, 소전 손재형으로 이어진 명필 계보의 계승자다. 그는 2003년 광개토대왕 비문을 옮기는, 대작을 완성했다. 와병 중에 “광화문 현판은 반드시 쓰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문화재청이 염두에 뒀을 만한 인물이다. 일중 김충현도 앞서 지난 연말 세상을 떴다.3대 명필이라는 명성을 얻은 이 중 동강 조수호만 남았다. 그는 행서(行書)에 능했다. 행서가 현판 글씨에 적절할지 의문이다. 그리고 그는 서예에서 미술로 옮겼다. 지금 문자 추상전을 갖고 있다. 또 누가 있을까. 문화재청장의 ‘당대 명필’ 발언이 새삼 머쓱하게 다가온다. 과거 청산 조급증이 부른 경솔함이 아니었을까. 좀 더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하는 게 옳았다. 광화문 복원공사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문화재청은 한때 집자(集字)를 주장했다. 정조대왕 등 조선시대 인물의 글 가운데 ‘光’‘化’‘門’자를 모으겠다는 아이디어였다. 난센스다. 동일인의 글씨라도 그렇다. 어제와 오늘 글씨의 분위기가 다르다. 더구나 작은 글씨나 세필을 확대한다고 큰 글씨의 느낌이 오는 것은 아니다. 옹색하기 그지없는 발상이다. 서예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기본이 안 되는 소리였다. 문화재 복원이나 복구에서 경향성을 보여선 곤란하다. 이벤트에 집착하거나 시류에 민감해선 의미를 살리기 어렵다. 또 다른 논란을 부를 뿐이다. 지난해 보신각종 신종 주조 논란도 그 중 하나였다. 유홍준 청장이 느닷없이 들고 나왔다. 종의 울림이 시원찮다고 했다. 지금 종은 군사정권 시절 만들었다. 국민 성금으로 주조했다. 일부 학자들이 반발했다. 맥놀이를 검증했다. 문제가 없음을 입증했다. 그러자 슬그머니 철회했다. 군사정권 유산 지우기 이벤트 정도로 생각했던 듯하다. 광화문 새 현판은 어떤 모습이 될까.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는 힘이 담기길 소망한다. 그리고 더이상 논란 속에 뜯기는 아픔이 없었으면 한다. 제2, 제3의 여초가 이뤄 낼 것으로 기대한다.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노원구청사에 ‘갤러리 카페’

    노원구청사에 ‘갤러리 카페’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지고, 주민들이 국내·외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한다. 곁들여 차까지 한잔….’ 여느 화랑의 얘기가 아니라 서울 노원구 청사 1,2층에 마련된 ‘갤러리 카페 노원’의 모습이다. 서울 노원구는 청사 1층 로비와 2층 공간을 리모델링해 894㎡(271평) 규모의 ‘갤러리 카페 노원’을 꾸며 9일부터 주민들에게 개방한다. 그동안 공공청사에서 일회성 전시회는 열렸어도 이처럼 청사 자체가 상설 갤러리로 꾸며진 것은 노원구가 처음이다. 노원구는 인구가 62만명에 달하지만 미술관이 하나도 없었다. 이 미술관에는 1층 531㎡(161평),2층 363㎡(110평)으로 회화, 조각, 조형물, 영상, 서예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을 전시하게 된다. 구는 개관 기념 첫 전시회에 운보 김기창 화백의 ‘청산도’, 이두식 화백의 ‘잔칫날’, 화가 임옥상의 ‘날개’ 등 회화 31점, 조각 22점, 조형물과 영상 각 1점 및 서예 3점 등 모두 58개 작품이 참가,3개월간 선보인다. 갤러리는 연중무휴 운영되며, 야간에도 주민들에게 무료로 개방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국내외 유명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구는 공모전, 초대전, 기획전 등을 통해 3개월 단위로 계절별 테마가 있는 작품 전시회를 열 방침이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이며, 시 낭송회, 실내 음악회, 영화상영 장소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5~10년후 세계적 아트센터 만들겠다”

    “5~10년후 세계적 아트센터 만들겠다”

    “글로벌 시대인 만큼 세계적인 공연장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견디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5∼10년 후 세계적인 아트센터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공연장으로 만들겠습니다.” 신현택(55) 예술의전당 신임 사장이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내년이면 개관 20주년을 맞는 중요한 시기에 자리를 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 사장은 “예술의전당을 클래식, 연극, 무용 등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가꾸어갈 것”이라면서 “관람객뿐 아니라 예술인들에게도 서비스하는 자세로 다가가겠다.”고 자세를 낮추었다. 그는 계층간, 지역간 문화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데도 우려를 표시하면서 “서민들도 고급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예술의전당이 앞장서 연구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신 사장은 문화관광부 예술진흥국장과 기획관리실장을 거치는 등 30여년 동안 문화행정 일선에서 잔뼈가 굵은 뒤 여성가족부 차관을 역임한 정통 행정관료 출신. 특유의 친화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낙후된 시설을 개보수해 나간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신 사장은 “오페라하우스는 입구가 너무 좁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처럼 열린 공간으로 만들겠다.”면서 “의자를 교체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페라하우스에 500억원, 서예관에 100억원이 필요한 만큼 임기 3년 동안 순차적으로 이 부분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사장은 예술의전당이 재정자립도를 높여 가야 한다는 경제부처들의 ‘압력’에 대한 소신도 피력했다. 그는 “정부산하기구의 일반적인 재정자립도는 80% 수준”이라면서 “예술성과 공익성을 강화하려면 예술의전당의 재정자립도는 오히려 낮춰야 한다. 선진국 아트센터와 우리 현실을 종합적으로 반영했을 때 예술의전당의 재정자립도는 70%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인 김용배 전임 사장이 ‘11시 콘서트’를 직접 진행한 것과 관련, 신 사장은 “김용배 교수님을 몇차례 만나 앞으로도 ‘11시 콘서트’를 맡아 발전시켜 달라고 부탁했다.”고 덧붙였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미스·금융 풀」성진옥(成珍玉)양-5분데이트(98)

    「미스·금융 풀」성진옥(成珍玉)양-5분데이트(98)

    금융기관 화재보험 공동 인수사무소(일명 금융「풀」)라는 길고 거창한 이름의 직장 대표로 뽑힌 성진옥(成珍玉)양은 50년생 아가씨. 69년 동구(東丘)여상을 졸업하자 곧장 금융「풀」에 들어와 1년7개월째 총무부에 근무하고 있다. 중학교 교사인 아버지 성영수(成榮洙·42)씨의 1남3녀중 장녀. 집이 있는 안양(安養)에서 통근한다. 장녀답게 규모가 있는 아가씨로 월급을 타서는 결혼자금 마련을 위해 20만원짜리 적금을 붓고 있고. 용돈도, 자신이 옷가지 장만도 모두 월급으로 해결한다는 야무진 아가씨다. 취미는 서예. 고등학교시절 서예반에서부터 익힌 만만찮은 솜씨. 목각인형을 수집하는 취미도 가지고 있어 귀엽고 예쁜 것만을 50점가량 모았다고. 가장 즐거운 때는 한가한 마음으로 동생들과 어울려 노는 주말. 외출을 별로 즐기지 않는 그녀는 동생들의 훌륭한 상담역할을 해서 부모의 칭찬을 듣는다고. 결혼에 관해서는 별로 생각한바가 없고 단지 『나이가 어리니까 3년쯤 뒤에나 생각할거예요. 부모님들도 아직 생각지도 않으시는 걸요』 환한 얼굴로 웃는다. 즐겨 입는 옷의 빛깔은「베이지」색, 북청색. 양재를 배워「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이 아가씨의 꿈이다. 숭배하는「디자이너」는「코코·샤넬」. [선데이서울 70년 9월 6일호 제3권 36호 통권 제 101호]
  • 진도 미술품 경매장 ‘三樂’

    ‘미술품 경매장에 국악공연.’ 한국화 등 미술품 경매장에서 싼값에 작품도 사고 덤으로 판소리도 듣는다. 2일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토요일마다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진도역사관에서 열리는 토요 경매가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지금까지 전남도가 중진과 신예작가 88명으로부터 사들인 미술품 568점 가운데 148점(5200만원)이 낙찰됐다.종류는 한국화 서예 문인화 등이다. 경매는 평균 30∼50% 할인된 가격으로 시작되고 낙착률은 평균 12.3%이다. 올 들어 토요경매에서는 59점이 낙찰됐다. 경매장 내방객들이 선호하는 작품은 한국화로 크기는 20호(1호는 엽서규격)이다. 낙찰자 23명은 전남도를 비롯해 서울, 경기, 대구 등 전국에서 참여했다. 지난달 28일 열린 38회차 경매에서는 한국화 17점, 문인화 7점, 서예 6점 등 30점 가운데 7점(200만원선)이 낙찰됐다. 경매는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1시간 동안 진행된다.경매 시작과 사이사이에 진도지역 소리꾼들이 판소리를 열창한다. 또 경매가 끝나는 시각에 맞춰 토요일마다 오후 2시 진도 향토문화회관에서는 강강술래·남도들노래·만가·씻김굿·사물놀이 등 진도 고유의 민속놀이가 펼쳐져 흥을 돋운다. 이달부터는 진도 군립민속예술단이 갈고 닦은 기량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도는 2005년 전남에서 활동중인 전업작가들이 작품에 전념토록 하기 위해 남도예술은행을 설립, 예산으로 미술품 568점을 샀다. 올해는 600여점(2억원)을 사고 2009년까지 3000여점을 더 구입한다. 진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팔순, 실험은 아직 안 끝났다

    ‘學養望八何思量(학양망팔하사량·깊은 학문 80객 어찌 헤아리리) 無學七十猶鬼神(무학칠십유귀신·무학이라도 70이면 귀신이라 했거늘)’ 선주선 원광대 교수가 서예계의 대가 동강 조수호(84) 선생의 개인전을 기념하며 지은 한시의 일부다. 1일부터 27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동강 조수호전’에는 서예작품 200여점이 전시된다.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차례로 일중 김충현, 여초 김응현 선생이 별세하면서 서예계는 더욱 힘이 빠진 듯하다. 국내 서예교과서를 도맡아 집필해온 동강은 말을 그대로 옮겨 책을 써도 될 정도로 말솜씨가 빼어나다. 그는 “서예는 ‘접의 예술’로 사랑하는 남녀가 입맞춤하듯 붓과 종이의 마찰지점에서 느낌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고 말했다. 정통서예와 함께 실험적인 묵조(墨調)작품도 선보인다. 현대 서예가 나아가야 할 분야의 하나인 묵조는 먹의 수천수만가지 빛깔로 조형을 만들어내는 교향곡이다. 묵조 작품인 ‘萬象回春’은 고대 상형문자인 글자의 점과 획을 풀어냈다. 한 마리의 코끼리가 걸어가는 듯한 그림이자 글씨는 물과 먹, 작가가 만나 구축한 또 하나의 세상이다. 흔히 말년이라고 부르는 시기, 서예인생 60년이 넘어서 묵조 작업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그의 양 어깨에 현대서예의 미래가 걸려 있다. 선생은 “귀신이 탐낼 만큼 내 대나무 그림이 빼어나다.”면서 “한국 가정의 거실에 각국에서 수집한 양주 대신 서예가 한 작품씩 걸려야 한다.”고 말했다.(02)580-1284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700년 잠들었던 ‘고려사경’ 되살린 김경호씨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700년 잠들었던 ‘고려사경’ 되살린 김경호씨

    사경(寫經)을 아시나요? 시계바늘을 잠시 고려시대로 돌려본다. 왕족과 귀족들은 하루 일과 중 사경원(寫經院)에서 불경을 베껴쓰는 일(寫經)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먹물이 아닌, 금·은가루를 사용했다. 이를 통해 공덕과 불심의 깊이를 스스로 가늠했음은 물론이다. 충렬왕 이후가 절정기였다. 원나라측은 고려의 사경기술을 거듭 요청했고 고려는 1회 100여명씩 수차례에 걸쳐 파견, 그 위상을 드높였다. 중국에서 들어온 사경 기술이 역수출된 셈. 아마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유일하게 큰소리 뻥뻥 치며, 콧대를 꺾은 대목이 아닐까. 전생이 있다면 아마 고려시대의 사경승(寫經僧)이었을 것이다. 꿈 속에서 고려 사경원의 각 처소를 돌면서 관리·감독을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김경호(46) 한국사경연구회 회장. 조선시대 이후 쇠퇴한 고려사경 재현의 길을 30년째 고독하게 걷고 있다. 마치 서산대사가 눈 내린 들판을 밟고 걸어갈 때(踏雪野中去)처럼 사경 발걸음에 잠시라도 어지러이 하지 않았다(不須胡亂行). 또 지금 걷는 발자국(今日我行蹟)이 뒤따라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듯(遂作後人程)이 말이다. ●새달 28일 중국서 사경전시회 그 결과, 이제는 사경이 하나의 어엿한 예술장르로 꽃을 피우고 있다. 다음달 28일부터 31일까지 중국 산둥(山東)의 성도 지난(濟南)에서 한국사경연구회 회원 20명과 함께 사경전시회를 갖는다. 이는 중국땅에서 원-고려 이후 700년만에 고려사경이 재현된다는 점에서 사뭇 의미가 크다. 이와 함께 중국의 4대 명찰 중 하나인 영암사에서 최초의 사경법회까지 연다. 특히 오는 7월24일부터 9월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한·중·일 사경 특별전이 처음 개최되는데 여기에서 김씨의 수준높은 사경작업 과정을 동영상으로 담아 선보인다. 아울러 9월 전주에서 열리는 세계 서예비엔날레에 특별초청을 받아놓은 상태. 지난 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무실에서 김씨를 만났다.“이제야 사경의 중요성을 알아주는 것 같다.”며 탄식이 섞인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동안 개인전만 11차례나 열면서 사경의 가치를 알려온 외로운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맺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경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역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을 탄생시킨 연원입니다. 사경이 지닌 전법, 그 기능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세계 최고품이 개발된 것이지요.” 또한 “(사경이)고려시대에는 가장 뛰어난 예술작품으로 승화됐다.”고 전제한 뒤,“고려 왕조 500년 동안 금자대장경과 은자대장경, 그리고 목판대장경을 포함해 무려 열번의 대장경을 사성했을 정도로 고려왕조는 가히 사경왕조였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청자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 고려시대의 미술을 깊이 있게 연구한 미술사학자들도 사경과 청자를 고려의 대표적 예술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빛을 잃었고, 현대에 와서는 그 예술성이 사실상 거의 사라지다시피했다는 것. 김씨는 이같은 고려사경을 재현하기 위해 두팔을 걷어붙였다. 언론매체와 방송 등을 통해 사경의 중요성을 수없이 역설했다.‘사경의 기법’ ‘사경서체’ ‘또다른 수행-사경’ 등을 주제로 책을 펴내는 한편, 문화센터와 대학사회교육원 등에서 십수년간 강의도 했다. 연세대 사회교육원에서 1999년 사경 지도자 과정을 신설했을 때 김씨가 최초의 지도교수가 됐다. 또한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교육원·포교원 등에서 사경수행법 연구 및 조사집필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특히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개인전과 단체전 등 모두 40여 차례의 전시를 통해 고려사경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꾸준히 알렸다. “사경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년 전입니다. 지금은 사경인구가 많이 늘어 15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장충식 교수님의 역할이 정말 컸습니다. 제가 은사로 모셨는데, 그분의 격려가 없었다면 도중하차했을 겁니다.2005년 은사님이 돌아가실 때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심정으로 사경을 그만두려고 했거든요.” 불교미술사학자로 이름을 떨쳤던 고 장충식 교수는 생전에 김씨의 사경작품을 보고 “고려시대의 그것보다 훨씬 정교하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 한글 궁서체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꽃뜰 이미경 선생은 “한글 궁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했으며, 문화재위원과 여러 미술사학자들로부터 “인간문화재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수만권 문헌 뒤지며 고려사경 직접 조사 그의 사경기법에는 몇가지 독창적인데가 있다.▲최대한 권위있는 원전을 5종 이상 대조하고 자구에 맞게 한글번역을 하며 ▲가급적 녹교를 끓여 사흘 이상 쓰지 않으며, 사경지를 포수처리하고 ▲금니와 은니를 3회 이상 정제하는 등 100%의 순도를 유지한다. 특히 모든 과정을 문헌에 근거, 제작하기 위해 슬라이드만 수만장에 이를 만큼 고려사경을 직접 조사하고 연구해왔다. 이같은 원칙을 바탕으로 머리카락보다 가는 선묘를 구사(1㎜ 공간에 5개 이상의 금선을 그음)할 만큼 사경의 정교함을 한 차원 높였다. 아울러 2005년 ‘사경수행법’을 집필할 때까지 종단에서조차 정리되지 않았던 사경수행의 방법을 체계화한 것도 그의 업적이다. 그가 사경과 인연을 맺은 것은 네살때. 붓을 잡고 부친에게서 획과 결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중학 진학도 미룬 채 홀로 서예공부에 빠졌다. 중학교를 1년 늦게 진학한 그는 이후 각종 전국 학생서예대회에 출전, 최우수·우수상 등 대부분의 상을 휩쓸었다. 고교시절에는 사경에 빠져 세번이나 부모 몰래 출가하기도 했다. 대흥사에서 행자생활을 하던 중에 가족들에게 붙잡혀왔고, 두륜산에서는 토굴에서 지내기도 했다. “사경은 서예의 영역을 뛰어넘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요. 일본의 경우 사경인구가 600만명에 이르고 전승도 잘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자문화권에서는 우리나라 사경이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그는 또 “사경은 서예와 회화, 공예적인 요소를 함께 지닌 종합예술”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의 ‘동·서양의 사경 만남전’을 추진 중이다. 이때 우리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명실공히 인정받겠다며 매일 12시간씩 사경에 몰두한다.“아들과 딸도 애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전국 서예대회에서 1,2위를 다툰다.”고 귀띔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2년 김제 출생 ▲76년 중학때 묵서로 사경 독학 ▲82년 남성고 졸업 ▲86년 전북대 국문과 졸업 ▲97년 제1회 불경사경대회 대상수상(조계종 총무원 주최) ▲99∼2006년 연세대 사회교육원 서예·사경 지도자과정 지도교수 ▲04년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석사) ▲현재 한국사경연구회 회장 #전시 금산사 창건 1400주년 기념초대전(98년) 등 40여회. #주요 저서 학의 울음(96년), 외길 김경호 사경집(02년), 신라백지 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의 연구(04년), 수행법연구(사경 책임집필·05년), 한국의 사경(06년). ■ 사경(寫經)이란? 사경의 사(寫)는 베끼다, 옮겨놓다 등이며, 경(經)은 ‘법, 이치, 성인이 지은 책’이라는 뜻을 지녔다. 본래 ‘경’은 ‘수트라’로 ‘실(線)’이라는 뜻으로 꽃에 비유할 수 있는 중요하고 짤막한 금언(金言)이나 격언을 모은 것에서 기원한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는 ‘사경이 병과 고뇌와 악업을 씻어주고 큰 죄도 용서할 것’이라고 적고 있다. 불가에서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고귀한 말씀을 사경을 통해 접하고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국에서 불교가 전래될 때 함께 건너온 사경은 원래 불교 경전만 옮겨 쓰는 행위였으나 최근에는 성경, 꾸란 등 타 종교의 경전으로 대상이 넓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은 경주 나원리 5층석탑에서 사리장엄구와 함께 출토된 무구정광대다라니편(8세기초)으로 전해졌으나 사성기(寫成記)가 없어 사성연대가 명확한 호암미술관 소장 국보 제196호 ‘신라백진묵서 화엄경 제2축’이 현존 최고(最古)의 사경으로 알려져 있다.
  • ‘한국의 불화’ 3156점 집대성

    ‘한국의 불화’ 3156점 집대성

    재단법인 성보문화재연구원(원장 범하 스님)의 ‘한국의 불화’ 출판 사업이 20년 만에 마무리됐다. 조계종 24개 본사의 전국 476개 사찰과 국·공립박물관, 대학박물관, 사립박물관 등이 소장하고 있는 불화 3156점을 40권에 담았다. 1989년 범하 스님을 중심으로 불화조사단이 출범한 뒤 1996년 통도사 본사편 상·하와 직지사 본·말사편 상·하를 시작으로 2000년까지 해마다 4권씩 발간했고, 이후 20권을 추가해 한국 불화를 집대성했다. 원색도판으로 제작된 ‘한국의 불화’는 불화의 유형에 따라 존상 뒤에 봉안하는 후불탱과 대형 걸개그림인 괘불, 보살탱과 신중탱·여러 폭으로 나뉜 각부탱과 각 단에 봉안한 각단탱, 초상인 진영, 전각을 장식하는 도량장엄 순으로 편찬되어 있다. 각 불화는 전도와 부분도를 실은 뒤 해설과 관련논문, 해당 사찰의 약사를 덧붙였다. 불화의 명칭과 조성연대, 조성불사에 참여한 사람, 작품 재료와 비용을 보시한 시주자도 밝혔다. 성보문화재연구원 구미래 기획연구실장은 “정부 지원이 채 2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간단체가 20년에 걸쳐 50억원 가량을 투입해 완성했다는 점에서 대장경 판각에 비유할 만한 일로 자부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의 불화’ 사업을 발원하고 비용을 마련하는 화주(化主)를 맡은 석정 스님은 21∼27일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완간기념회를 겸해 선서화(禪書畵) 300점으로 ‘석정연묵전(石鼎硏墨展)’을 갖는다. 중요무형문화재 단청장(丹靑匠)인 석정 스님은 1996년에는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평생 그려 모아두었던 작품으로 생애 첫 개인전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기도 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4) 서예가 마성린의 일생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4) 서예가 마성린의 일생

    임준원과 홍세태, 유찬홍 등의 낙사(洛社) 동인들 이후에도 인왕산과 필운대는 여전히 중인문화의 중심지였다. 위항시인들이 대개 한양성의 서쪽 인왕산에 많이 모여 서사(西社)라는 이름을 썼지만,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막연한 지칭이다. 최윤창이 ‘이른 봄 서사에서 두보 시에 차운하여(早春西社次杜詩韻)’라는 시에서 “백사에 한가한 사람들이 있어/술을 가지고 와서 안부를 묻네.”라고 한 것처럼 백사(白社)라는 이름을 즐겨 썼다. 최윤창이 지은 시 ‘서사에서 주인 엄숙일에게 지어주다(西社贈主人嚴叔一)’라는 시를 보면, 명필 엄한붕의 아들인 엄계흥의 집에서 한동안 서사가 모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 그 집터는 없어지고, 필운대 옆의 누상동 활터에 엄한붕이 ‘백호정(白虎亭)´이라고 쓴 글씨만 바위에 새겨져 있다. ●중인의 일대기 평생우락총록(平生憂樂總錄) 백사의 동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자 모임의 장소가 자연히 김성달의 함취원(涵翠園)으로 바뀌면서 구로회(九老會)로 발전하였다. 마성린(馬聖麟·1727∼1798)과 최윤창·김순간을 중심으로 한 이 모임도 주로 인왕산에서 모였다. 마성린은 대대로 호조와 내수사의 아전을 해오던 집안에 태어나, 넉넉한 살림으로 위항시인들의 후원자가 되었다. 그의 문집인 ‘안화당사집(安和堂私集)’ 뒷부분에는 그 자신이 엮은 연보 ‘평생우락총록(平生憂樂總錄)’이 실려 있어 보기 드물게 위항시인의 생장지와 교육, 교유관계, 모임터를 찾아볼 수 있다. 마성린은 1727년 3월28일 서울 황화방 대정동(大貞洞·지금의 중구 정동) 외가에서 태어나, 외가와 두석동 본가 및 다방동 외종가를 다니면서 자랐다.11세에 동네 친구인 김순간·정택주 등과 함께 인왕산 누각동 김첨지 집에서 글을 배웠다.12세에는 김팽령·원덕홍과 함께 두석동 고동지 집에서 글을 읽었다. 이즈음 문덕겸·최윤벽·최윤창·김순간·김봉현 등의 중인 자제들과 더불어 글을 지으며 놀았다. 이들은 평생 글친구가 되었으며, 나중에 백사와 구로회의 동인이 되었다. 15세에는 첨지 한성만의 여섯째 딸과 혼인한 뒤에 육조동 어귀에 있는 친구 김봉현의 집에서 함께 글을 읽었다.16세에는 유세통 형제와 더불어 유괴정사(柳槐精舍)에서 글씨 공부를 했다. 유괴정사는 필운대 아래 적취대(積翠臺) 동쪽, 첨지 박영이 살던 곳이다. 위항의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활동을 하던 곳으로 마성린은 어린 나이에 선배들과 함께 어울리던 기억을 이렇게 기록했다. 매번 꽃이 피고 꾀꼴새가 우는 날이거나 국화가 피는 중양절이면 이 일대의 시인·묵객·금우(琴友)·가옹(歌翁)들이 이곳에 모여 거문고를 뜯고 피리를 불거나, 시를 짓고 글씨를 썼다. 그중에서도 여러 노장들 즉 동지 엄한붕, 사알 나석중, 선생 임성원, 별장 이성봉, 동지 문기중, 동지 송규징, 첨정 김성진, 동지 홍우택, 첨지 김우규, 주부 문한규, 첨지 이덕만, 동지 고시걸·홍우필·오만진·김효갑 등이 매번 시회(詩會) 때마다 나에게 시초(詩草)를 쓰게 하였다. ●겸재 정선에 산수화 배워 선배들이 흥겹게 시를 읊으면, 나이 어린 마성린은 옆에서 받아 썼다. 십여년 글씨공부 끝에 마성린은 명필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중인 예술가들은 꽃이 피거나 꾀꼴새가 울거나 국화가 피면 그 핑계로 모여 시를 지었다. 수십명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제목으로 시를 짓다 보니 아름다운 자연과 즐거운 인생을 노래하는 시들이 수백편씩 쏟아지게 되었다. 필운대풍월이라는 말이 천편일률적인 유흥시라는 뜻으로 전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직을 통해 안정된 수입을 얻은 데다 더 이상 승진할 수 없는 신분적 제한 때문에 유흥에 빠지기 쉬웠던 것이다. 그는 18세에는 필운동으로 이사했으며, 인왕산 언저리에 살던 겸재 정선의 문하에 드나들며 산수화를 배웠다.19세에는 한의학 서적을 보면서 몸조리를 하는 틈틈이 필운동 어귀에 있는 처갓집 노조헌(老棗軒)에서 글과 글씨로 나날을 보냈다. 이때 유세통 형제와 김순간·최윤창·최윤벽 등 여러 친구들이 날마다 이 집에 모여서 시를 지으며 노닐었는데 이 모임이 7∼8년 계속되었다. 24세에는 봄과 여름 동안 여러 친구들과 더불어 인왕산의 명승지인 곡성(曲城)·갓바위·필운대·적취대 등을 찾아다니며 시를 짓고 노래를 불렀다.43세에는 필운대 아래 북동으로 이사하였다. 집안에 정원이 있었으며, 정원 아래에는 초가 삼간이 있었다. 안화당(安和堂)이라고 이름 지은 이 초당에는 시인·가객(歌客)·화사(畵師)·서동(書童)들이 날마다 모여들었다. 48세에는 인왕산의 청풍계·도화동·무계동에서 노닐었으며,49세에는 누각동에 있는 직장 권군겸의 집인 만향각이나 옥류동에서 모였다. 51세에는 신윤복의 아버지인 신한평이나 김홍도 같은 화가들과 함께 중부동에 살던 강희언의 집에 모여 그림을 그리거나 화제(畵題)를 써주었다. ●시·노래·글씨·그림의 유산 ‘청유첩’ 그는 52세 되는 1778년 9월14일에 이효원·최윤창과 함께 김순간의 집인 시한재(是閑齋)에 모여 국화꽃을 구경하며 시를 지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거문고를 타는 이휘선과 가객 김시경, 화원 윤도행이 약속도 없이 찾아오자 밤새도록 촛불을 밝혀 놓고 시와 노래, 글씨와 그림을 즐겼다. 이날의 모임을 기록한 시첩이 바로 ‘청유첩(淸遊帖)’이다. 마성린은 그 모임을 이렇게 그렸다. 주인옹(김순간)은 왼쪽에 그림, 오른쪽에 글씨를 걸고 중당에 앉았는데, 맛있는 안주와 술을 차리고 손님들에게 권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마루에 올라 안부 인사를 마친 뒤에 술잔을 잡고 좌우를 살펴보니, 대나무 침상 부들자리 위에 두 사람이 앉아서 바둑을 두는데, 바둑돌을 놓는 소리가 똑똑 들렸다. 왼쪽에 용모가 단정한 사람은 이효원이고, 오른쪽에 점잖게 차려입은 사람은 최윤창이다. 술동이 앞에 한 사람이 있는데, 떠돌아 다니는 분위기로 걱정스럽게 앉아서 춤추는 듯한 손으로 거문고를 탔다. 거문고 소리가 고요하고도 맑았는데, 은연 중에 높은 하늘 신선들의 패옥소리가 들렸다. 이 사람이 바로 세상에 이름난 금객(琴客) 이휘선이다. 그 곁에 한 소년이 또한 거문고를 껴안고 마주 앉아, 그 곡조와 어울리게 함께 연주하였다. 소리소리 가락가락이 손 가는 대로 서로 어울렸다. 길고 짧고 높고 낮은 가락이 마치 둘로 쪼갠 대쪽이 하나로 합치듯 하였으니, 묘한 솜씨가 아니라면 어찌 이같이 할 수 있으랴. 이 사람이 바로 전 사알(司謁) 지대원이다. ●늘그막에 소장품 팔아 위항시인 후원 두 거문고 사이에 한 사람이 의젓하게 앉아서 신나게 무릎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노랫소리가 어울려서 그 소리가 구름 끝까지 꿰뚫었으니,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게 손발이 춤추게 하였다. 노래를 부르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당시에 노래를 가장 잘 부르던 김시경이다. 창가에서는 한 사람이 호탕하고 노숙한 자세로 술에 몹시 취해 상에 기대어 앉았는데, 거문고 가락과 가곡을 평론하던 이 사람은 전회(典會) 유천수였다. 책상 위에 붓과 벼루를 마련하고 그 곁에다 한 폭의 커다란 종이를 펼친 채, 하얀 얼굴의 소년이 베옷에 가죽띠 차림으로 붓을 쥐었다. 이 자리의 모습을 그리는 이 사람은 윤숙관이다. 사알은 액정서의 정6품 잡직인데, 왕의 명령을 전하는 역할을 맡았다. 전회는 내수사의 종7품 관직으로 수입이 많은 경아전이다. 중인 신분의 시인·음악가·미술가·서예가들의 이 모임은 그뒤에도 봄가을마다 시한재에서 자주 모였다. 이듬해인 1779년 3월에는 필운대 아래에 있는 오씨의 화원에서 모였다. 이날의 모임도 역시 청유첩으로 엮어졌다.(필운대 화원 이야기는 9회에 소개) 마성린은 58세에 다시 승문원 서리로 들어갔다. 늘그막에는 집안 살림이 어려워져서 집안에 전해 내려오던 명필들의 작품을 재상 집안에 팔아넘겼다. 가난한 위항시인들의 후원자 노릇을 하기가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옥류동에 사는 천수경이 1791년에 위항시인 70∼80명을 불러 왕희지의 난정고사(蘭亭故事)를 본받아 풍류 모임을 열자, 마성린도 초청을 받고 나아가 시축에 시를 써주었다. 이때부터 최윤창·김순간 등 서사(백사) 동인들도 자주 옥류동 송석원으로 찾아가 후배들과 어울리면서 위항시사의 주축이 서사에서 옥계사 쪽으로 넘어갔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다음 주에는 대원군시대 가객으로 필운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박효관 이야기를 소개한다.
  • [고위공직자 재산공개/국회] 정몽준의원 1兆대 육박 ‘최고 부자’

    [고위공직자 재산공개/국회] 정몽준의원 1兆대 육박 ‘최고 부자’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30일 공개한 국회의원 재산상황에 따르면 최고 부자는 무소속 정몽준 의원, 가장 가난한 사람은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鄭의원 현대重 주식시세 작년보다 3.76배 올라 정 의원이 신고한 재산총액은 총 9974억원으로 이는 지난해 신고된 재산 2648억원에 비해 3.76배나 증가한 것이다. 정 의원 재산이 급증한 것은 특별한 거래가 없더라도 평가액 변동만 있으면 무조건 공개하도록 재산변동 신고기준이 변경됐기 때문이다. 정 의원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상장주식 820만주는 2003년 말 신고 당시 3078억원이었으나 지난해 말 기준으론 1조 344억원으로 평가돼 ‘서류상’의 재산증가 폭이 726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의원측은 “실질적 거래에 의한 재산 증가가 아니라 주식 평가액의 변동에 따라 재산이 늘어난 것”이라면서 “지난해엔 금융기관 채무 상환과 자녀예금 감소 등 마이너스 변동 요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재산이 가장 적은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은 마이너스 4억 9800만원을 신고했다. 대부분이 본인과 배우자의 은행빚이다. ●의원들 배우자 고급 보석류 다수 보유 의원들의 배우자들은 다이아몬드 등 고급 보석류를 다수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신당모임 소속 김한길 의원의 부인인 배우 최명길씨는 3.3캐럿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신고했고, 우리당 김혁규 의원의 부인과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각각 2캐럿의 다이아몬드 보유를 신고했다.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은 하피스트인 배우자가 소유한 8500만원 상당의 하프 4대와 3500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에 대해 실무진의 착오로 애초 신고를 누락했다가 사후 발견해 스스로 신고했다. 이해찬 전 총리의 경우, 본인이 누드화를 비롯한 그림과 서예 등 13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고 우리당 김혁규 의원은 배우자 명의로 서양화 및 동양화 9점을 신고했다. 신당모임 강봉균 의원의 경우 배우자가 전북 인근에 1억 8900만원에 달하는 논과 밭, 임야, 도로 등 88건을 가지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역시 신당모임 소속인 주승용 의원은 지역구인 여수에 45건,12억원 상당의 논, 밭과 임야 등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산증가 10걸 중 6명 한나라 의원 재산증가 10걸에는 한나라당 의원이 6명이 포함됐다. 반대로 재산감소 10위에는 열린우리당 의원이 6명이 포함됐다. 한편 100억원대 이상의 재산을 가진 국회의원은 모두 9명으로 나타났다. 정당별 평균 재산총액은 한나라당이 23억 100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이어 민주당 21억 700만원, 국민중심당 19억 5700만원, 우리당 12억 800만원, 통합신당모임 9억 6900만원, 민주노동당 3억 5700만원의 순이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버블세븐’ 주택 보유자 68명 이번 국회의원 재산변동 신고내역에 따르면 본인 및 배우자의 명의로 강남, 서초, 송파, 목동, 분당, 용인, 평촌 등 7개 지역에 주택과 아파트를 보유한 의원은 95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의원 293명(정덕구 전 의원 제외)의 32%에 달하는 수치다. 정당 및 교섭단체별로는 한나라당이 55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열린우리당 19명, 통합신당추진모임 7명이었다. 한나라당은 버블 세븐 지역이 강남, 서초, 송파 등 이른바 지지기반 지역과 겹치는 점도 있으나 대부분 버블 세븐 지역을 지역구로 두지 않은 의원들이 자신과 부인의 명의로 ‘강남 3개구’에 아파트 등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열린우리당도 버블 세븐 지역을 지역구로 둔 의원은 한 명도 없으나 충청, 제주, 광주, 전북 등 지방 의원들이 골고루 강남에 아파트를 보유중이었고, 비례대표 의원들도 다수 강남에 거주하고 있었다. 통합신당추진모임에서는 7명의 의원이 강남 3개구와 목동, 분당 등지에 아파트를 갖고 있었다. 민주당은 소속 의원 11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5명이 본인과 배우자의 명의로 강남, 서초구에 아파트 한 채씩을 가지고 있었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중심당, 무소속도 각 3명씩 버블 세븐 아파트와 주택을 보유한 것으로 조사돼 각 정당과 교섭단체에 골고루 ‘버블 세븐 의원’이 포진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버블세븐 의원’ 가운데 10억원대 이상의 아파트 또는 주택을 보유한 의원은 박근혜(삼성동 주택 20억 200만원), 김덕룡(서초3동 더미켈란 18억 9500만원), 이계안(압구정동 대림빌라트 16억원), 엄호성(도곡동 타워팰리스 15억 1000만원), 김재홍(반포동 반포아파트 15억 6000만원) 의원 등 28명에 달했다. 강봉균, 정형근, 유승민, 이계안, 정동채, 조성태, 이한구, 최병국 의원은 버블 세븐 지역에만 본인 또는 배우자 명의로 집을 두채 이상 보유한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의원들 재테크 효자는 ‘부동산·골프회원권’ 지난해 1억원 이상 재산을 불린 국회의원은 전체 의원의 59%인 173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전 1억원 이상 증가자의 비율이 30.9%인 것과 비교하면 대폭 증가한 것으로 국회의원들의 ‘재테크 실력’이 우수한 것으로 증명된 셈이다. 이는 지난해까지는 재산상의 거래가 발생한 경우에만 변동사항을 공개토록 돼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토지, 건물, 주식, 골프회원권 등은 거래가 없어도 변동이 있으면 이를 공개하도록 신고기준을 바꾼데 따른 것이다. 의원들의 ‘재테크 효자’는 부동산과 골프회원권이었다. 특히 아파트 등 부동산으로 1억원 이상의 재산을 증식한 의원이 전체의 52%인 154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열린우리당 심재덕 의원은 공시지가 상승으로 보유하고 있는 토지가 40억원에서 47억으로 증가했고, 건물도 기준시가 상승으로 8억 4000만원에서 33억 5600만원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한나라당 박희태 의원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150평 땅이 5억 6500만원에서 23억원으로 급상승하는 등 전체 토지가액이 30억원 증가했다. 또 본인과 배우자의 골프회원권 3개와 헬스클럽 회원권도 기준시가 상승으로 1억 7000만원에서 7억 3800만원으로 증가했다. 유림건설 사장 출신인 한나라당 김양수 의원도 지난해 104억 7900만원에서 올해 266억 5000만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 중 부동산 증가분이 117억원에 달했다. 현대차 사장 출신의 민생정치준비모임의 이계안 의원은 총 재산이 124억여원에서 132억여원으로 8억원가량 증가하는데 그쳤지만, 자신이 보유한 현대차 주식 1만 6689주를 매각해 예금 16억여원이 증가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종부세 대상 94명… 전체 의원의 32% 달해 30일 공개된 국회의원 293명의 재산변동 내역에 따르면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인 6억원을 넘는 주택을 보유한 의원은 94명이다. 의원 3명 가운데 1명꼴인 32%가 과세 대상인 셈이다. 종부세는 본인과 배우자가 보유한 주택(오피스텔 등은 제외)의 공시가격을 합산해 6억원을 초과하면 부과되는 세금이다. 종부세 납부대상 의원들이 많아진 것은 지난해 조사 때에 비해 종부세 과세기준이 9억원에서 6억원으로 강화되고 종전에는 실거래가와 크게 차이났던 주택 공시가격이 대폭 현실화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과세대상 의원들 대부분은 이른바 ‘버블 세븐’의 대표지역인 서울 강남 일대에 살고 있었고, 본인이나 배우자가 2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의원도 41명에 달했다. 정당별로는 한나라당이 51명으로 가장 많았다. 종부세 신설을 주도한 열린우리당과 통합신당추진모임, 민생정치모임이 각각 24명,5명,3명 포함됐다. 이어 민주당 6명, 국민중심당 3명, 무소속 2명으로 뒤를 따랐고,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단 1명도 종부세 과세 대상에 들지 못했다. ‘집부자’ 1위는 건설회사 사장 출신인 한나라당 김양수 의원으로 집계됐다. 김 의원은 서울 여의도와 부산 거제동 등에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아파트 4채(12억 4600만원)를 소유하는 한편,2004년말 자신이 경영하던 Y건설이 부산 전포동에 지은 S주상복합아파트의 미임대분 200여채(187억 4600만원)를 본인 명의로 보유, 집값의 합계가 2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미분양된 임대용 주택 200여채의 경우, 준공 5년 뒤부터 건설주에게 종부세가 부과돼 현재로선 종부세 부과대상이 아니다. 이에 따라 실제로 종부세를 가장 많이 내야 하는 의원은 서울 서초구에 본인 명의로 된 29억 2000만원 상당의 2층 주택 등 주택 2채의 합산 가격이 45억 3600만원에 달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으로 조사됐다. 이들을 포함,20억대 이상 ‘집부자’는 한나라당 정문헌 정의화 박근혜, 민생정치모임의 이계안, 열린우리당 김종률 의원 등 모두 7명이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석가탑 묵서지편 조사위 곧 구성

    국립중앙박물관은 석가탑 중수기를 비롯해 석가탑에서 발견된 종이뭉치(묵서지편·墨書紙片)를 해석하고 성격을 구명하기 위한 조사위원회를 조만간 구성키로 했다. 중앙박물관은 28일 ‘석가탑 유물 관련 종합경과’를 발표하면서 최소한 4종으로 이루어진 묵서지편의 내용은 조사위원회가 내놓을 종합보고서에서 일괄 공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묵서지편을 조사할 위원회는 불교사와 불교서지학, 언어학, 다라니경, 서예사, 고활자, 보존과학자 등 내외부 전문가를 망라한다는 방침으로 이미 상당부분 인선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내옥 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은 “조사단이 차근차근 조사한 뒤 일괄해서 공표하는 것이 논란이 증폭되거나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면서 “추가 조사해서 결과를 종합한 뒤 공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1966년 석가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출토된 묵서지편은 모두 110쪽으로 ▲1024년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와 ▲보협인다라니경 ▲1038년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 ▲보시명공중승소명기 등으로 이루어졌다. 보협인다라니경은 12장의 필사본으로 전체 내용은 남아있지 않지만, 일체여래심비밀전신사리보협인다라니경의 내용이 고루 포함되어 있다. 중앙박물관은 또 금동제 사리기 외부에서 발견된 직물에 싸인 종이뭉치의 존재도 확인했다.1988년 들뜬 부분을 고정시키는 등 응급조치를 취한 뒤 밀봉해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종이뭉치가 중수기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무구정광다라니경인지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1989년과 2006년 두차례에 걸쳐 X선 조사를 한 결과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같은 두루마리 중심부의 목제축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중앙박물관은 묵서지편의 조사가 40년이 넘도록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석가탑의 종이류 문화재는 과학적 보존처리 기술이 없어 1980년대 말까지 보존·보관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1987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보존처리할 때도 일본인 지류보존처리 전문가를 초빙했고,1997년에 이르러서야 국내 지류전문가의 기술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묵서지편의 응급조치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후 용산 새 중앙박물관으로 신축 이전함에 따라 미뤄지다 개관 이후인 지난해 3월부터 연구가 본격화됐다는 설명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가짜 미술품 판친다] (상) 사례별 유통 실태

    [가짜 미술품 판친다] (상) 사례별 유통 실태

    국내 미술시장이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만에 활황을 맞아 들썩거리고 있다. 하지만 시장구조는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해 미술 애호가들을 울리고 있다. 거래되는 미술품에 제대로 된 보증서나 출처정보(provenance·작품 소유주에 대한 역사정보)가 없을 뿐더러, 위작으로 인한 피해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위작은 화랑 뿐아니라 경매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게다가 위작인지, 진품인지 가려야 하는 전문감정기구와 전문인력의 신뢰도도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미술품의 가짜 유통실태에 대해 세차례에 걸쳐 짚어 본다. ●10년만에 호황 속 피해 속출 미술품 100여점을 소장하고 있는 한모(44)씨는 지난 2001년 지금은 사라진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화랑에서 서양화가 권옥연(84) 화백의 6호크기 소녀 그림을 구입했다. 권 화백은 첫사랑의 애잔한 기억을 연상시키는 청회색조의 미인도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림은 위작으로 판명돼 한씨는 일주일 뒤 그림값 1000만원을 환불받았다. 그러나 당시 화랑 주인은 “내가 볼 때는 진짜가 맞다.”고 강변했다. 한씨는 “가짜 그림을 팔고 나서도 환불만 해주면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A화랑에서 조각가 헨리 무어의 소품을,B화랑은 백남준 작품을 지하실에서 제작해 팔았다.”며 위작품 제작에 화랑들이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황필홍(53)씨는 19세기 개화기 미술작품을 수집하고 있으며 개화공정미술(開化工程美術) 대표로 있다. 그도 서울옥션에서 구입한 서예 글씨를 환불 조치받았다. 황씨는 지난해 4월 실시된 서울옥션 101회 경매에서 독립운동가 해공 신익희 선생이 ‘同智相謀(동지상모)’라고 쓴 휘호를 420만원에 낙찰받았다. 하지만 미술품 소장가 협회원들과의 논의 끝에 위작이라고 결론지었다. 여러차례 고미술협회와 서울옥션 간의 소견서에 대한 진위 공방이 있은 뒤 결국 낙찰금을 돌려받았다. 그는 서울옥션에 이 작품이 진품일 수 없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적시해 보내주었다. 서울옥션 심미성 부장은 “신익희 선생의 글씨가 가짜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7∼8개월 이상 문제가 길어지다 보니 결국 경매를 의뢰한 원 소장자에게 돌려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옥션측은 위작 논쟁으로 낙찰금을 돌려주는 경우는 1∼2년에 한번 있는 희귀한 사례라고 밝힌다. 특히 해공 작품은 소장자와 구매자 모두 가짜라고 확실히 결론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환불해 주면 그만” 의식 사기판매 부채질 황필홍씨는 “위작 문제를 제기하자 경매사에서 양주를 가져와서 진위와 상관없이 돈은 돌려주고, 신익희 선생의 작품이 나오면 가장 먼저 연락을 주겠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그는 “가짜를 팔 수 있고, 문제가 되면 환불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매사의 직무유기이자 사기극”이라며 “위작 문제를 환불로 덮는 것은 사기 판매를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황씨는 2005년 서울옥션 97회 경매에서 900만원에 낙찰받은 초의대사의 글씨도 위작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 후기의 대선사로 추사 김정희와 친구로 지낸 초의대사가 예서(隸書)체로 쓴 오언율시(五言律詩)와 흡사한 작품이 나타난 것. 황씨가 낙찰받은 작품과 필체, 크기, 내용 등이 거의 동일한 작품을 소장한 편영우(67) 중화문화연구원 대표. 초의대사의 글씨를 20년전 전남 순천에서 여학교를 세운 한 갑부로부터 구입했다고 밝혔다. 편씨는 서울옥션에 소장품의 실물 복사본과 두 작품 가운데 어느 것이 진품인지를 묻는 통지서를 보냈으나, 오히려 다른 제3의 작품에 대한 소견서가 왔다고 분개했다. ●감정 능력도 부실 서울옥션은 외부 감정위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작품 판매 이후에는 옥션이 진품임을 보장한다는 보증서를 구매자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근·현대 미술품을 독점적으로 감정하고 있는 한국화랑협회 산하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의 공신력은 국내 유일의 미술품 감정기관이란 위상에 못 미친다. 오지호(1905∼1982) 화백의 초기 석고 데생작품을 구입한 황필홍씨는 미술품감정연구소에 진위를 의뢰했으나 위작이라고 판명받았다. 오 화백이 본명인 ‘吳占壽’를 한자로 쓴 서명을 감정위원들이 알지 못했다고 판단한 황씨는 오 화백의 아들 오승우 화백에게 감정을 다시 의뢰했다. 이에 오승우 화백은 데생작품 뒤에 진품이 맞다고 자필서명을 해주었다. 결국 미술품감정연구소는 위작이라 판정했던 본래 입장을 바꿔 감정불가란 소견서를 재차 보내왔으며, 감정수수료 33만원도 반환했다. 초빙 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임명석(60) 우림갤러리 대표의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최근 그림값이 급등한 천경자 화백의 작품에 대한 감정 의뢰가 많이 들어오고 있으며, 박수근·이중섭의 작품은 절반 정도가 위작으로 판명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화랑협회의 1982년부터 2001년까지 20년간 미술품 감정결과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같은 가짜 작품의 유통량이 평균 29.5%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추사 대표작 ‘명선’ 초의선사에 준 호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대표 서예작 ‘명선’(茗禪·57.8×115.2㎝)은 한국의 다성(茶聖)이라 불리는 초의선사(1786-1866)에게 추사가 직접 지어 선사한 호(號)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한양대 정민(국어국문학) 교수가 다산 정약용(1762∼1836)의 강진 유배시절 제자인 황상(1788∼1863)의 문집 ‘치원유고(梔園遺稿)’에 실린 ‘걸명시(乞茗詩)’에서 확인한 것으로, 이 작품의 해묵은 위작 논란을 가라앉힐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는 한국학 전문계간지 ‘문헌과 해석’ 2007년 봄호에 기고한 논문 ‘차를 청하는 글:다산의 걸명(乞茗)시문’을 통해 “황상은 초의 스님에게 보낸 걸명시에서 ‘명선(茗禪)이란 좋은 이름 학사(추사)께서 주시었고…’라 쓴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특히 이 걸명시에서 황상이 ‘추사가 명선이란 호를 (초의선사에게)주었다.’고 부연설명까지 한 사실을 들어 ‘명선’을 추사의 진품 서예작으로 못박았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명선’은 세한도(歲寒圖)와 함께 추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예서체 작품으로 현존 추사 글씨 중 가장 큰 것이다.‘명선’이라 쓴 글씨 옆에 ‘초의가 자신이 만든 차를 부쳐왔는데 몽정차나 로아차에 못지않으니 이를 써서 보답한다.’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미술사·서예사 연구자들은 그동안 이 작품을 막연히 초의선사의 차(茶=茗)와 선(禪) 일치 정신을 높이 산 추사가 ‘차를 마시며 선정에 들다.’라는 뜻으로 써 준 글씨로만 여겨왔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산사람 이야기] 동중정(動中靜)의 여인

    [산사람 이야기] 동중정(動中靜)의 여인

    글 박재곤《산따라 맛따라》 저자, www.sanchonmirak.com 동중정動中靜이라고 했다. 생동감 넘치게 움직이며 활동하는 한 여인, 그 여인이 묵향 가득한 방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앉아 있는 또 다른 한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라. 붓을 잡고 정좌(靜坐)해 있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 대한산악연맹 배경미 상임이사의 모습이다. 한국의 근대적 의미의 산악운동사는 1930년대에 그 첫 장을 열었고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단체, 대한산악연맹의 역사도 40년을 넘겼다. 회갑을 넘기고 고희의 나이마저 넘긴 산악사에 불혹의 나이를 넘긴 산악단체, 이런 역사 이러한 조직 속에서 산악운동은 아직 남성들만의 전유물인 것인 양 여성들의 참여는 미진했었다. 통상 1천만 명 산악인구라 하고 산을 오르는 여성의 숫자는 남성에 뒤지지 않지만, 배경미 이사처럼 걸출한 여성산악인은 흔치 않다. 우선 배경미 이사가 방대한 조직인 대한산악연맹에 여성으로서는 첫번째 이사라는 사실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지 않는가? 배경미 이사는 동적인 활발한 활동에 정적인 정서를 겸비하고 있는 정통파 산악인이다. 낮 시간 자신의 사무실에서 분주하게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일하는 여성이 늘 그러하듯 가정의 대소사와 자녀들을 돌보느라 늘 바쁘다. 여기에 대한산악연맹에서 맡고 있는 학술정보위원장으로 산악연감과 오지탐사대 보고서, 각종 산악 정보수집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그러나 틈이 날 때마다 묵향 가득한 방에 화선지를 펴놓고 서예작품을 그려낸다. 맹렬한 활동의 걸출한 여성산악인에 전국대학미전에서 입상한 서예가 - 그래서 그는 動中靜(동중정)의 여인이다. 산에서는 바위를 타고 해외원정대를 이끌고 장도에 오르기도 하는 배 이사의 또다른 한 면모다. 그리고 그는 오래 전부터 등산전문 월간지에 해외 산악계의 동정을 연재한 경력마저 갖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활발한 활동이 그의 생업은 아니다. 그의 생업은 따로 있다. 남편인 서울특별시 산악연맹 김태삼 이사가 운영하는 ‘(주)푸른여행사’의 이사로 일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캐나다 전문 푸른유학 대표로도 맹활약 중이다. 배 이사는 자신의 인생을 가정과 산, 사업으로 삼등분해서 살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다. 남편을 만나기 전인 1988년,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여성만으로 구성된 한국 맥킨리 여성원정대 대원으로 북미 최고봉인 맥킨리를 등반했다. 신혼여행으로는 일본의 대표적인 산, 북알프스를 등반했다. 남편의 외조(?)에 힘입어 해마다 결혼기념일에는 부부가 함께 해외원정을 떠나기도 한다. 1990년에는 미국 서부의 레이니어 등반, 첫 아이를 낳은 후인 1993년에는 부부가 함께 맥킨리를 다시 등반하기도 했다. 남편을 최고의 친구이자, 클라이밍 파트너, 산선배,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하고 섬기며 살고 있다. 배 이사의 여성산악인과 여성후배들을 위하는 사랑은 남다르다. 여성이 전문적인 산악활동을 하며 겪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여성산악인들이 함께 공유하며,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또 함께 해결하기 위해 2002년에는 한국여성산악회를 결성했다. 한국여성산악회의 부회장이기도 한 배 이사는 후배 여성산악인들이 해외원정을 가거나 좋은 등반을 하도록 여성산악인만의 등반보고회와 정기적인 여성산악인 모임 등을 주최해 왔다, 원정등반을 떠나는 후배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등반보고회를 통해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2003년, 마흔의 나이 때는 직접 대학산악부 여자후배들로 구성된 맥킨리 원정대 대장을 맡아 후배들에게 등반활동의 장을 열어주기도 했다. 포터도 셀파도 없는 맥킨리 등반에서 허리디스크로 고생도 했지만 슬기롭게 극복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산에 대한 꿈을 잃지 않고 실천하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는 배 이사를 보고 있노라면 그는 진정한 여성산악인들의 본보기 그 자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길 건너편, 저 먼 곳에는 우리가 펼쳐야 할 꿈이 있다. 배 이사는 오늘 하루도 그 꿈을 펼치기 위해 멀고 험한 길을 분주하게 뛰고 있다. 분주하게 뛰고 있는 그 동(動)의 내면 세계에 내재되어 있는 배 이사의 깊고 깊은 정(靜)이라는 활력소가 이 땅의 수많은 산악인들이 ‘動中靜(동중정)의 여인’ 그를 좋아하고 그를 따르게 하는 요소이리라!!     월간 <삶과꿈> 2007.01 구독문의:02-319-3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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