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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회/교정대상 수상… 보람과 영광의 얼굴들

    ◎27년째 봉직… 출소자 결혼식엔 꼭 참석/진익화 52세ㆍ수원교도소 교사/대상 『남달리 뚜렸한 선행을 한 것도 아니고 교정인으로서 평범하게 살아온 제가 이런 큰상을 받게 돼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올해 제8회 교정대상 수상자로 뽑힌 진교사는 짤막하게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63년4월 수원교도소에서 「반징역살이」라는 교도관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27년째를 맞은 진교사는 박봉과 열악한 근무환경에도 불구하고 투철한 사명감과 봉사정신으로 교정행정의 산 일꾼으로 일관해왔다. 『앞으로의 교정행정은 재소자들을 격리ㆍ구금하는 것 보다는 이들을 교화ㆍ선도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소신을 펼치는 진교사의 얼굴엔 지난날에 대한 자부심이 어려있다. 재소자들을 위한 직업ㆍ교화교육을 통해 9백50여명의 각종 기능자격자와 59명의 대입ㆍ고졸합격자를 배출해냈다. 박봉을 쪼개 돕고 출소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취업을 알선하는 일이 진교사의 업무가 된지 오래다. 진교사는 『신참시절인 65년 혼자서 경기도 화성군 간척지조성 새마을사업장에서 6개월동안 재소자 35명과 함께 숙식을 하며 바다막는 일을 아무사고 없이 마치고 온 일이 후배들 사이에 화제로 떠오를 때면 감회가 새롭다』고 활짝 웃었다. 27년의 교도관생활을 통틀어 살인죄로 복역하던 김모씨(50)가 70이 다 된 노모와 어린 두자녀를 남겨두고 빚독촉에 못이겨 부인이 가출한 것을 고민하는 것을 보고 몰래 도와주자 출소후 부인과 함께 찾아와 이마가 땅에 닿도록 감사해 하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비록 교도관과 재소자 관계지만 그들이 출소한 뒤 검소한 생활을 하는것을 볼때면 교정계에 투신한 보람을 느낀다』면서 『아무리 시간에 쫓겨도 출소자들의 결혼식이나 회갑연에는 빠짐없이 참석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드러나지 않는 음지에서 사명감이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교정직에 종사하는 진교사는 『교도관에 대한 사회의 몰이해와 냉대,비난을 접할 때 가장 괴롭다』고 밝히고 『다른 행정기관에서 조차 최근까지도 교정기관을 「혐오기관」으로 분류한 것을 접할 때면 참담한 심정까지 든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는 교정행정에 대한 사회인식의 변화와 정부차원의 뒷받침을 아쉬워하며 『묵묵히 뒤에서 도와주고 교도관직을 자랑스럽게 여긴 아내와 4남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불우출소자 피복지원운동 전개/우규식(면려상) 54세ㆍ영등포구치소교사(본상) 60년 6월15일 교정계에 첫발을 내디딘이래 30년동안 재소자들을 선도하고 처우를 향상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64년 2월 공주교도소에서 근무할때 불우출소자들을 위해 피복지원운동을 시작,3년이 넘도록 계속하면서 옷가지 1백여점을 모아 출소자들에게 나눠줘 새생활을 돕기도 했다. 73년 영등포구치소 의무과에 재직할때는 폐결핵을 비관해 자살을 기도한 최모씨를 인공호흡으로 회생시킨 뒤 지속적인 상담으로 새 생활을 하도록 돕는 등 사경직전의 재소자 2명의 생명을 구했다. ◎무연고자 가족 찾아주기에 앞장/민도영(성실상) 53세ㆍ춘천교도소 교사(본상) 재소자들이 안정된 수형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정교육과 무연고자 가족찾아주기에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출소후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 취업알선과 사회생활에 대한 상담으로 27년 2개월동안 정성을 쏟아왔다. 73년2월부터 의지할곳 없는 출소자 17명을 지역사회독지가들의 도움을 받아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등 이들의 자립갱생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86년4월에는 강원대학교와 협조해 사범대학생 6명을 강사로 초빙,남모씨 등 26명을 고입ㆍ고졸자격 검정고시에 합격시키는 등 재소자들의 학과교육지도에 힘썼다. ◎문맹원생 1백여명에 한글 교육/조기선(창의상) 57세ㆍ대전소년원 보도사(본상) 조선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61년1월 보도직에 임용된 이래 소년원생들이 퇴원한 뒤 다시 비행을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 기술습득과 문맹원생 한글해독ㆍ취업알선 등에 앞장서 이들이 사회에 뿌리내릴수 있도록 열과성을 다했다. 72년부터 80년 4월까지 문맹원생 1백69명에게 한글을 가르쳐 진로선택의 폭을 넓히고 사회적응을 도왔다. 83년부터는 원생들에게 내실있는 직업교육을 실시해 1천4백20명이 각종 기능자격을 취득하고 지방기능경기대회에 출전,은메달 등 19개의 메달을 따내 소년원에 대한 사회인식을 개선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수형자 4백여명 자매결연 주선/김무웅(교화상) 49세ㆍ인천소년교도소 교회관(본상) 의지할 곳 없는 장기수와 문제수형자 4백57명에게 각계인사와의 자매결연을 주선하고 허물없는 신상상담을 통해 갱생의욕을 고취시켰다. 81년 1월부터 교정참여인사들로부터 피아노ㆍ컬러TV 등 2억5백만원어치의 교화기자재 7백54점과 7천여만원어치의 교화용도서 2만8백여권을 기증받아 재소자들의 교정교육과 정서함양에 기여했다. 73년부터 78년까지 광주교도소에 근무할 때에는 좌익수 교화기법을 개발,무기수 허모씨 등 98명을 전향시키는데 공헌했다. ◎신앙통한 교화로 갱생의지 부축/이의정(박애상) 49세ㆍ예장전북노회 목사(특별상)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77년 3월부터 13년이 넘도록 재소자 종교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앙을 통한 재소자교정교화에 헌신적으로 봉사해온 성직자로 법무부장관표장을 2차례 받았다. 77년 종교위원으로 위촉된 이래 52만3천5백여명의 재소자들을 상대로 8백80여차례에 걸쳐 기독교적 교화를 실시했다. 종교위원으로 봉사하면서 알게된 김모씨 등 출소자 15명을 신학교에 진학시켜 이 가운데 11명이 교육을 이수,전주와 남원 등지에서 목회자 활동을 하도록 지원했다. ◎「출소자들의 어머니」… 취업등 알선/정팔기(자애상) 73세ㆍ서울대교구사목회 회원(특별상) 78년8월 인천소년교도소 소년재소자 교화선도사업으로 인연을 맺은 뒤 11년여동안 매달 2차례씩 영등포ㆍ의정부ㆍ홍성교도소 등을 순회하면서 재소자 교화활동을 한 공로로 88년 법무부장관표장과 89년 「카톨릭대상」을 받았다. 재소자들의 심성순화활동 뿐 아니라 의지할 곳 없는 재소자 28명과 자매결연을 맺고 영치금 2백10만원과 1백30만원어치의 생활용품을 지원하는 등 불우재소자들의 수형생활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교도소 포교 자원… 20여년간 헌신/서병진(자비상) 39세ㆍ조계종 삼천사주지(특별상) 재소자교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교도소 포교법사를 자원해 20년동안 서울구치소와 수원ㆍ강릉교도소 등에서 재소자교리지도ㆍ신앙상담ㆍ사형수와의 자매결연 등 재소자교화선도에 헌신한 공로로 3차례에 걸쳐 법무부장관표장을 받은 성직자. 79년1월 서울구치소종교위원으로 위촉된 뒤 3백70여차례에 걸친 불교모임을 통해 4만6천여 재소자들에게 자비사상을 고취해 심성을 순화했다. 매주 1차례씩 사형수 3백21명에게 신앙상담을 해 과거의 죄를 참회토록 교화하고 해마다 불경암송대회를 열어 재소자들에게 신앙심을 고취시켰다. ◎재소자전용 직업훈련시설 기증/박광식(공로상) 48세ㆍ성보산업주식회사대표(특별상) 부산교도소 교화위원과 부산진구 갱생보호위원을 겸직하면서 재소자의 직업훈련 및 교화기자개기증 뿐 아니라 86년부터는 자신의 신발제조업체인 성보산업에 재소자들을 출퇴근시켜 기술훈련을 시킨뒤 원하는 경우 출소뒤 취업시키는 등 교화사회정착사업에 헌신해왔다. 성보산업 안에 재소자전용직업훈련 시설을 마련,현재까지 1백97명을 훈련시켜 이들에게 9백80여만원의 생활정착금을 지급하고 이 가운데 취업을 희망하는 60명은 정식직원으로 채용해 재소자들의 출소후 자립에 크게 기여했다. ◎재소자 9백명에 직훈/정해원 50ㆍ안동교도소 교사(장려상) 63년 12월 교정계에 투신한 뒤 27년동안 확고한 신념과 성실한 복무자세로 각종 재소자직업훈련과 출소자취업알선 등 교화선도에 헌신했다. 9백여명의 재소자들을 상대로 가구ㆍ미용기술 등 직업훈련과 영농교육을 실시해 근로정신을 함양하는 한편,출소자 17명의 신원을 보증해 취업을 시키는 등으로 사회복귀를 지원했다. ◎소년수형자 취업알선/양택민 52ㆍ군산교도소 교사(장려상) 농촌지도요원으로 8년동안 일하다 지난 66년 교도관으로 전직한 뒤 불우재소자돕기와 취업알선,독서ㆍ서예활동을 지원해 재소자의 정서함양에 남달리 헌신했다. 86년 소년재소자에 대한 수용관리대책을 마련해 직원들과 1대1로 자매결연을 맺고 취업을 알선,자립의 기반을 마련해주는데 힘썼다. ◎장기수에 생필품 지원/정인옥 51ㆍ광주교도소 교사(장려상) 유도2단의 무술교도관으로 21년동안 근무하면서 재소자교정교화 및 수용질서확립 등 각종교정사고방지에 기여했다. 재소자특별할동의 하나로 서예반과 회화반을 만들어 여가선용 및 심성순화에 힘썼다. 장기수 등 재소자 1백여명에게 영치금과 생필품을 지원,갱생의욕을 고취시켰다. ◎수용환경 개선에 힘써/김병윤 48ㆍ제주교도소 교사(장려상) 제주도 출신으로 제주교도소가 개청될때부터 근무해오면서 기반조성에 공헌하고 민원실환경을 이용자들에게 편리하도록 개선하는데 힘썼다. 불우재소자 58명을 종교인들과 자매결연토록 주선해 생활용품을 지원하고 안정된 수형생활을 할 수있도록 상담했다. 교도소 주변의 환경미화작업에 앞장서 수용환경을 개선했다. ◎21년간 교화위원 활동/노지욱 76ㆍ공주제일감리교 장로(장려상) 고령에도 불구하고 21년동안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며 재소자의 신앙상담ㆍ종교교화ㆍ출소자취업알선 등 불우재소자를 위해 봉사해왔다. 의지할 곳 없는 출소자들을 집에 데려가 돌보며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명절때마다 재소자들을 찾아가 격려해왔다. 교도소 선교회를 만들어 신앙활동을 지도했다. ◎출소자 30명 보호선도/김봉래 61ㆍ순천 교화협의회장(장려상) 73년부터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재소자들을 위한 각종 행사를 마련,소외감을 없애고 불우재소자의 자활의욕을 고취시키는데 힘썼다. 불우출소자들에게 취업은 물론 결혼을 주선해주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데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갱생보호위원도 겸직하면서 출소자 30여명을 보호선도했다. ◎재소자 검정고시 교육/김태수 71ㆍ김천 교화협의회장(장려상) 소년재소자의 교화교육과 면학기회를 마련해주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국민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재소자들을 위해 중입검정고시제도를 신설,9백38명의 합격자를 배출했고 김천중앙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과정을 만드는데 앞장섰다. 84년 화랑소년대 권투부를 만들어 재소자의 체육활동을 활성화시켰다. ◎감호자 정신교육 앞장/안의종 49ㆍ청송 진성중학교장(장려상) 81년 청송교정시설의 개청과 함께 교화위원으로 일해오면서 감호자정신교육과 수용생활을 지원하는데 헌신했다. 진성중학교 교사를 검정고시강사로 보내 3백40명을 고입 및 고졸검정고시에 합격시켰다. 장기감호자와 신체장애자 5백여명에게 7백여만원어치의 생활용품을 지원했다.
  • 교정사의 새장… 청주여자교도소

    ◎2백15명 수용중 5년이상 복역수만 42%/교도관들 모두 여자… 금남의 구역 한복 등 갱생교육… 심성순화 큰 몫/간단한 기초화장도 허용… 가야금ㆍ서예교육도 실시 『감방생활 10년만에 샴푸로 머리를 감고 로션과 콜드크림까지 바를 수 있게 됐으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더군다나 몇달 있으면 가야금ㆍ서예까지 배워준다니…. 모쪼록 새사람이 되어 세상에 나가야지요』 한순간의 실수로 「살인」이라는 큰 죄를 짓고 오랜세월을 옥에서 보낸 중년여인 김모씨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보다는 새 교도소에서의 새 생활에 대한 갱생의 희망이 가득했다. 27일 우리나라 교정사상 처음으로 여자전용교도소로 문을 연 청주여자교도소. 전국 교도소에서 형이 확정된 여자수형자를 집결 수용,여성에게 적합한 갱생교육훈련을 중점적으로 실시 한다는 계획아래 지난해 12월4일부터 여자수형자를 수용하기 시작해 이날 정식개소한 것이다. 여자전용교도소를 설치하게 된 것은 그동안 각 교도소에서 여자수용실(여사)만을 별도로 두었을뿐 남자수형자들과 다름없는 「대접」을 함에 따라 여자수형자들이 「여성다움」을 잃을 수 밖에 없는 폐단을 없애려는데 뜻을 두고 있다. 새로 개소한 여자교도소는 남자교도관들조차 얼씬 거릴 수 없는 철저한 「금남의 구역」이다. 4.5m높이의 환담벽이 사방을 에워싼 청주교도소에서는 이날부터 잿빛 수의 를 걸친 여성기결수 2백15명이 「새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은 절반이상이 살인ㆍ상해치사ㆍ폭행치사ㆍ강도 등 의 강력범들이고 42%가 5년이상을 선고받은 장기복역수들로 별도수용계획에 따라 최근 각 교도소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사람들이다. 기혼자도 75%나 돼 일반수형자들과 함께 생활하기에는 여러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은 실정이었다. 그래서 교도소측은 다른 교도소와는 각별한 배려를 해나갈 예정이다. 개소에 앞서 지난 4개월동안 여자수형자를 이곳에 수용해 여성에게 적합한 교정행정을 펴온 결과 난폭했던 수형자들이 상당히 온순해지고 부정적ㆍ소극적이던 사고방식도 적극적인 것으로 변해가는 등 적지않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최효숙교감(35ㆍ여)은 설명했다. 『여자들만 있는데로 옮겨간다는 소리를 듣고 덜컥 겁부터 났습니다. 여자한테는 여자가 더 모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지난 81년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공주교도소에서 9년동안 복역하다 지난달 9일 이곳으로 이감돼온 고모씨(35)는 『전에 있던 곳보다 이곳의 규율이 더 엄격해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으나 이제는 모든 일을 여성위주로 해나가는 것이 마음에 든다』고 청주생활의 소감을 털어놨다. 이곳의 하루는 해뜰무렵인 상오6시30분 기상음악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기상과 함께 3명씩 쓰는 2.18평 크기의 거실철문 70여개가 일제히 열리면서 세수하고 머리감고 빗질하고 방청소하느라 분주해진다. 이곳으로 옮긴뒤부터는 기초화장품에 한해 화장도 할수 있도록 허용돼 짧은 시간에 잽싸게 화장하는 사람도 많다. 이어 애국가제창,재소자준수사항 및 안전수칙 복창 등 「출역행사」를 마치고 나면 7시30분. 아침식사를 마친뒤 각 공장으로 내려가 8시부터 12시까지 전자부품조립ㆍ봉제완구만들기ㆍ한복만들기 등의 작업을 하고하오 역시 5시까지 같은 작업을 한다. 작업을 끝내고 저녁식사를 한뒤 씻고 나면 8시. 이때부터 하루중 가장 편한 취침시간이다. 아직은 초창기라서 이들의 생활은 매우 단조롭지만 법무부의 의욕적인 계획에 따라 앞으로는 재소자들의 심성을 순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할 예정이다. 문경화 초대소장(48)은 『지금은 전자부품조립ㆍ봉제완구 등 위탁공장과 한복ㆍ봉제공장 등 직영공장만 운영하고 있지만 오는 7월부터는 자수ㆍ미용ㆍ한복ㆍ봉제ㆍ조리 등 5개 특별활동을 추가운영하고 지역교화위원들의 도움으로 가야금ㆍ서예 등 취미활동도 시킬 계획』이라고 청사진을 펼쳐보였다. 현재로서는 기본의약품만 갖추었을뿐 의료기구가 미비하다든가 의무과장이 공석중인 것 등 여느 교도소와 마찬가지로 의료시설의 허술한것이 큰 아쉬움이다.
  • 노대통령 내일 취임2돌… 「청와대의 하루」

    ◎민의청취… 정책결단… 고독과 긴장의 24시/틈틈이 독서… 「페레스트로이카」읽어/결재 밀리면 퇴근뒤 서재로 옮겨 밤새 검토/휴일엔 영부인과 산책,서예ㆍ테니스등 즐겨 오는 25일로 취임2돌을 맞는 노태우대통령.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매일매일 결정을 해나가야하는 대통령의 청와대생활 24시는 어쩌면 고독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하루는 각료ㆍ참모들의 보고청취,주요인사접견,회의주재,오찬ㆍ만찬 등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비쳐지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청와대 24시 속에는 보통사람 노태우의 면모가 물씬하게 배어나온다. ○…노대통령은 침상맡에 자명종시계나 디지틀 라디오가 없어도 아침 6시만 되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기상을 하면 전날 청와대비서관들이 작성해 둔 그날의 일정과 접견자료,연설자료들을 세밀하게 읽어보면서 추가사항이나 검토사항이 생각나면 그때그때 메모를 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조간신문들을 훑어보면서 7시뉴스를 듣는다. 상오7시15분쯤에는 부인 김옥숙여사와 함께 본관아래쪽으로 약4백m가량 떨어진 체육관까지 심호흡을 하면서 산책을 한다. 체육관에 들어서면 사이클,역기 등 체력단련기구 등을 통해 20여분간 땀을 뺀다. 이어 길이 25m의 수영장을 4차례 왕복해 2백m가량을 수영한다. ○수영으로 체력단련 8시쯤 아침식사를 하지만 주로 잣죽,깨죽,호박죽등 가벼운 음식을 아침에는 즐겨든다. 출근은 9시. 출근이라야 본관 2층의 살림집에서 1층 집무실로 내려오면 된다. 정확히 말해 계단 30개를 밟고 내려오면 출근이 끝나는 셈이다. 출근을 하면 곧바로 경호실장과 의전비서관으로부터 간밤에 일어난 중요사항과 당일의 구체일정을 보고받는다. 상오의 공식일정은 9시30분부터 시작된다. 상오 일정은 대개 두세차례의 공식ㆍ비공식 접견이 있고 중간중간에 정부관계자 및 수석비서관들의 보고가 있다. 이어 낮12시에는 거의 매일 빠지지않고 외부인사들과 공식ㆍ비공식 오찬을 갖는다. 대통령의 오찬자리는 공식ㆍ비공식이 각기 반반씩 되지만 특히 비공식오찬은 정부기관을 통한 여론수집과는 전혀 별개의 민의를 은밀히 듣는 자리로 활용한다. 오찬이끝나면 대충 하오1시30분∼2시가 된다. 이때부터 서재겸 집무실에서 30∼40분간 휴식을 취한다. 대통령은 어릴적부터 음악을 좋아해 지금도 휴식시간에는 우리 가곡에서부터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다. 특히 좋아하는 노래는 우리 가곡 가운데 「그리운 금강산」,클래식가운데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이며 서울올림픽 주제가 「손에손잡고」도 애청하고 흥이 날때는 따라 부르기도 한다. 하오 2시30분부터 1시간동안은 적게는 10건,많을때는 30건의 보고서를 읽고 결재서류들을 점검,그때그때 서명,재가를 한다. 하오 공식일정은 일반적으로 3시30분부터 시작돼 공식만찬이 없을때는 6시30분에서 7시까지도 계속된다. 하오 일정은 주로 국무총리등 정례보고자,정부관계자들의 국정현안에 대한 보고가 주를 이루나 이따금 사회단체,협회,공로수상자,그리고 집단방문객들을 위한 다과가 베풀어지기도 한다. 만찬행사도 오찬과 마찬가지로 공식ㆍ비공식만찬이 거의 매일 들어있다. 부인과 2층 살림집에서 된장찌개에 우거지국으로 드는 저녁식사는 기껏해야 1주일에 1∼2차례뿐이다. 만찬행사가 끝나면 하오 8시30분전후가 된다. 2층 거처로 올라가 편안한 차림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저녁9시 TV뉴스를 듣는다. 일정이 많아 각종 보고서나 결재서류가 밀릴 경우 퇴근시에 서류를 무더기로 팔에 끼고 2층 서재로 들어가 밤새 살펴본다. 밀린서류가 없을때는 조용히 독서를 한다. 주로 동서고금의 역사책을 많이 보지만 최근에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서상목박사(민자당의원)가 지난해말 쓴 「한국자본주의의 위기,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읽었다. ○…노대통령이 보통사람으로서 즐거워하는 시간은 일요일 아침의 청와대 경내 산책이다. 본관 뒤편 산책로를 따라 약1시간가량 산책한다. 산책때는 꼭 애견을 데리고 간다. 본래 애견은 연희동시절부터 그를 무척 따르던 누런색의 진도견 「진돌이」였으나 「진돌이」가 최근 6개월간 훈련을 가는 바람에 역시 진도견인 흰색의 「올리」(수컷)와 「피스」(암컷)를 데리고 다녔다. 「올리」와 「피스」는 88서울올림픽이후 청와대 식구가 되었는데그 이름은 올림피아에서 따왔다는 것. 일요일 낮에는 부인과 함께 서예를 한다. 작년에만 해도 서예가를 초빙해 지도를 받았지만 지금은 혼자서 연습한다. 한문 한글을 모두 쓰지만 주로 한문을 많이 쓴다. 즐겨쓰는 문구는 「강유득중」(강함과 부드러움의 좋은 점을 살려 중간을 취함이 좋다) 「필사즉생」 등이다. 노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를 돌에 새긴 곳은 3군본부 청사입구에 세워져 있는 「계룡대」가 있고 현판으로는 「청소년연구원」현판이 있다. 하오에는 부인과 함께 청와대참모들이나 각료들을 초청,테니스를 즐긴다. 대통령은 3∼4개월에 한번꼴로 골프를 나가기도 하지만 주변을 번거롭게한다고 해서 매우 자제하는 편이다. 골프 핸디캡은 18. ○노모계실땐 꼭 문안 ○…노대통령은 지난해 외손녀를 보아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가정적인 단란한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딸 소영씨는 부군과 함께 미국에 유학중이고 아들 재헌군도 수학중이어서 청와대에서는 부부가 외롭게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올해 81세인 노모 김태향여사가 아들을보러 가끔 청와대에 들르는데 평균 한달에 6∼7일씩 머문다. 노대통령은 노모가 계실때는 퇴근후 꼭 노모방에 들러 문안을 드리고 출근 전에도 역시 문안을 드린다. 노대통령은 부인을 매우 사랑한다. 자신도 바쁘고 부인도 소리안나게 퍼스트 레이디로서 사회봉사활동을 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남편으로서 부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표시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부인생일에 중견여류시인 유안진씨가 쓴 시집과 수필집(「영원한 느낌표」「그리운 말한마디」인 것으로 전해짐)을 선물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대통령은 언젠가 「왜 시집을 선물했느냐」는 질문에 『시는 내가 가까운 사람에게 하고픈 말을 대신해주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 청와대 경내 대통령 관저 신축지/“천하명당” 4백년전 표석 발견

    ◎공사중 우연히 드러나 「풍수설」 화제로/화강암 암벽에 「천하제일 복지」 음각/글씨크기 가로ㆍ세로 50cm… 해서체로/정도전도 “명당” 지목… 낙관자리 「연릉 오거」 규명이 열쇠 청와대 구내 대통령관저 신축공사장 바로 뒷산 암벽에 천하 명당자리라는 표석이 최근 발견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표석은 수직으로 된 화강암 암벽을 깍아 가로 2m50cmㆍ세로 1m20cm의 암벽면에 「천하제일복지」라고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글씨의 크기는 가로 세로 각각 50cm,획의 굵기는 9cm인데 해서체로 씌어있다. 낙관자리에는 가로 세로 12cm 크기로 「연능 오거」라고 새겨져 있어 이 표석의 글을 쓴 사람이 아닌가 여겨진다. ○획 굵기는 9cm 정도 청와대측은 지난 20일 우리나라 금석학의 태두인 청명 임창순옹을 초빙,1차 감정한 결과,글을 새긴 연대는 지금부터 3백∼4백년전인 조선조 중기쯤으로 추정되며 글씨체로 미뤄 중국 청대의 서체 영향을 받은 것같다는 의견을 들었다. 「연능오거」의 인적사항이 규명되면 더 정확한 내용이 밝혀질 것으로 보이나조선조때 서예대가로 오거라는 인물이 없는것 같고 연능이 아호인지 아니면 연능에 사는 오거인지도 불확실하다. 오거가 명필이 아니라면 조선초기나 중기의 풍수지리에 밝은 역학가일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대통령 관저를 신축하는 터에 「천하제일복지」라는 선인들이 새긴 표석이 기초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은 무언가 길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표석이 발견된 암벽은 현 청와대 본관에서 동북쪽으로 계곡을 지나 1백50m 떨어진 가파른 지역인데 암벽 전면이 나무로 가려져 있는데다 이 쪽에는 길이 없어 그동안 전혀 눈에 띄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작년 5월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으로서 총독관저로 사용해온 현 청와대 건물 대신에 대통령 집무실(현 본관의 서북쪽 1백50m)과 함께 관저를 이곳에 새로 착공하면서 최근 공사를 위한 배수로를 치다가 이를 발견한 것이다. 청와대가 자리잡고 있는 북악의 언저리는 본래 경복궁의 후원으로 이태조가 서울로 천도할때부터 궁터로 점지되었던 곳이다. 한양천도 당시 무학대사는 지금의 인왕산 자락에 동향으로 도읍을 정하자고 한 반면 정도전은 북악산을 중심으로 남향으로 도읍을 정하자고 주장,이태조가 정도전의 건의를 받아들여 결국 지금처럼 북악산의 정남쪽에 경복궁을 창건하게 된 것이다. 한양천도 당시 풍수지리에 따른 주산(터를 등지고 있는 산) 결정과 도읍의 좌향 논의는 차천로의 오산설림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무학이 한양의 세를 보며 인왕산을 진산(주산)으로 삼고 백악(북악)과 남산으로 좌우의 청룡ㆍ백호를 삼으라고 하니 정도전이 자고로 제왕은 남면하여 다스리는 것이지 동향을 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따라서 궁궐은 임(서북서)좌병(남쪽)향하여 백악현무,인왕백호,낙산청용으로 해야 한다』 청와대 주변 터는 한양천도 이전인 이미 고려 숙종때 지기가 쇠해가는 송도의 왕업을 연장하기 위한 이궁터로 선택됐다. 지금부터 9백28년전인 숙종9년(1062)에 이궁을 지었으나 1백50년이 채 못된 고종19년(1210)에는 강화천도와 더불어 폐기되었다. 조선조에 들어 이 자리가 경복궁 후원으로 단장된 것은 세종8년(1426)이었으며 서현정ㆍ취로정ㆍ관전ㆍ충순당ㆍ융문당ㆍ융무당ㆍ경농제ㆍ연무장ㆍ과거장 등을 설치했다. 그후 국운의 흥망에 따라 성쇠를 함께해 임진왜란 이듬해(1593) 경복궁의 소실로 황폐화되었으며 고종8년(1868)에 경복궁이 재건되자 이곳 또한 과거ㆍ열무ㆍ근농의 행사 등이 치러지는 후원으로 옛 영화를 되찾았다. 그러나 일제의 본격적인 조선왕실 유린으로 이곳도 훼손돼 융문당ㆍ융무당 할것 없이 차례로 철거되었다. 조선조때 건물도 남아있는 것은 약간 자리를 옮겨 일부 복원된 것이긴 하지만 별채와 같은 20평 남짓한 침유각과 2평 가량의 오운정이 옛날의 향취를 다소나마 간직하고 있다. 현재의 청와대 본관 건물은 일제 식민통치의 제7대 조선 총독이었던 미나미 지로(남차랑)가 착공,중일전쟁으로 한차례 공사를 중단하는 곡절을 겪으며 착공 2년반만인 1939년 9월 준공을 했다. 당시 미나미는 남산의 왜성대,용산의 사택,현 적십자병원 자리의 임시사택 등을 옮겨가며 식민통치의 권위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사택 신축 부지를 물색하던 중 경복궁의 후원으로 경복궁이 눈아래 보이는 이곳을 택했다. ○청대 서체 영향 받아 일제는 조선 주권의 상징인 경복궁을 가리기 위해 그 전면에 총독부 청사(현 국립박물관ㆍ구 중앙청)를 지은데 이어 그 후면에 총독관저를 지어 조선왕실의 기를 누르고 풍수에 있어 용맥을 끊어 놓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항설에 의하면 일제는 경성부 청사(현 서울시청)­총독부 청사­총독관저로 이어지는 남향축이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할 당시 북악을 기점으로 하여 남쪽으로 왕궁을 건설한 풍수의 맥을 압살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또한 공중에서 보면 경성부 청사건물이 「대」자형,총독부 청사가 「일」자형이고 총독관저 건물 구조가 「본」자형으로 돼있어 동대문쪽에서 서대문쪽을 바라보면서 이를 읽어보면 「대일본」으로 읽혀진다는 항담도 있다. 그러나 풍수에 밝은 술가들 사이에는 당시 일제의 총독관저 자리 물색에 징발되었던 조선인 풍수지관이 본래 「임좌병향」의 북악의 용맥과는 약간 비켜나 있는 현 위치를 잡아주어 그 건물에 기거하게 되는 총독들이 망하도록 했다는 구전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알수 없지만 이번에 발견된 표석이 북악의 혈(풍수에 있어 음양이 합해지고 산수의 정기가 응결된 곳)에 해당되는 곳이라면 그럴법도 하다. 청와대 당국이 현재의 이 본관건물을 역사의 전면에서 퇴진시키고 새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짓기로한 결정적인 동기도 이 건물이 지난 반민족적 역사성 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독립한지 45년이 되고 전인류의 축제인 올림픽을 개최했으며 세계 10대 무역국가로 부상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식민통치의 채찍을 휘두르던 일제 총독의 사택을 집무실겸 거처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민족자존을 국정의 제1 지표로 내건 6공화국 정부의 이념에는 물론 민족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새 집무실의 건물은 영빈관쪽 출입문과 직선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본관 건물 서쪽 뒤편 구릉에 신축되고 있으며 한옥지붕 양식의 2층으로 총건평은 현재 본관 건물(1층 집무실ㆍ2층 대통령 살림집)의 9백평 보다 약간 적은 8백평 규모이다. 완공시기는 내년 상반기쯤으로 잡고 있어 노태우 대통령은 임기 후반부 1년반을 이곳에서 집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관저는 명당표석이 발견된 곳으로 부터 남쪽 아래로 50여m 떨어진 곳에 동향인 본채와 남향인 별채로 나뉘어 지어지고 있는데 역시 한옥 양식의 단층으로 건축되며 총건평은 8백평 가량 된다. 관저는 빠르면 금년 9월께 완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집무실과 관저가 모두 한국전통의 청기와 지붕형태로 건축되기 때문에 이미 사용하고 있는 영빈관 건물,그리고 오는 7월쯤 완공되는 보도관(프레스 센터)건물 등이 한데 어우러져 현 청와대 경내는 우리 고유의 전통건축미로 조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청와대측은 앞으로 집무실과 관저가 완공되면 현재의 청와대 본관 건물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으로부터 윤보선ㆍ박정희ㆍ최규하ㆍ전두환 전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에 관한 자료를 보관,전시하는 기념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길조로 받아들여” 대통령 관저의 신축장소가 명당표석이 발견된 지점과 일치된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청와대 주변지반은 대부분이 암반이어서 공사하기에 쉽게 좀 넒은 터를 찾아보니 이곳이 눈에 띄었을 뿐』이라며 『전적으로 우연이었다』고 설명했다. 「천하제일복지」라고 새긴 표석의 역사적인 고증은 앞으로 전문가들의 조사와 검토가 더 있어야 밝혀지겠지만 현 본관건물 2층에서 기거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뒤끝이 별로 좋지 않았던 사실에 비추어 풍수지리설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새 관저 신축을 계기로 대통령의 임기가 평화롭게 끝나고 물러나서도 국민들로부터 추앙받는 전직대통령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 미8군 부지에 「자연사 박물관」/문화부 업무보고 내용

    ◎전국을 문화공간화… 서울ㆍ지방간 문화벨트 조성/1백만 문화가족운동ㆍ사랑의 편지보내기도 추진 문화부가 12일 올해 업무보고에서 밝힌 주요사업계획의 항목별 추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화적 동질성회복◁ 가,원형발굴과 보존화 작업=자연사 박물관을 용산 미8군 이전부지내에 건립추진(90∼98년),상해임시정부 청사등 역사적 기념물의 복원검토,한국상징신화사전 편찬및 문화지도 제작,역사적 문화현장 되가꾸기. 나,표준화 작업=한국어 표준어법의 기준화,산업화에 따른 한글 글씨체 연구개발,우리고유의 색상및 색명정하기,전통 기본음의 표준화,생활습성의 변화에 따른 기준제시. 다,남북한 문화의 동질성회복=분단이전의 민족공동체로서의 민속문화교류등 문화교류 원칙제정,통일탑 건립및 통일민속잔치 개최(정월대보름ㆍ단오절ㆍ추석),어문ㆍ학술자료의 교환과 문화재 등 교류전시. ▷문화향수권 신장◁ 가,전국토의 문화공간화=서울및 지방에 문화벨트 조성,기존시설의 문화공간화,아름다운 도시,밝은 도시 가꾸기의 일환으로 환경문화 시장제도신설및 고지대등 문화소외지역에 쉬어갈 수 있는 「쌈지공원」과 50∼1백평 규모의 유휴지에 놀이시설을 갖춘 「쌈지마당」만들기. 나,문화의 지방화=지방의 폐교된 국민학교 시설등을 활용한 시범문화마을 가꾸기,문화사랑방운동을 통한 내고향문화 일으키기,지역문화시설 확충및 공공문화시설의 연계. 다,기업문화육성=시범기업 문화조성등 기업문화의 모형을 만듦. ▷문화참여권 유도◁ 가,까치소리전화운영 적극 추진. 나,1백만 문화가족운동=문화가족 자원봉사자 구성,좋은 문화프로그램 참여유도,「멋진 생활,신나는 생활」운동 전개. 다,문화그림엽서 보내기=청소년에게 「사랑의 편지」「희망의 편지」보내기 운동 적극 전개. ▷창작지원정책◁ 가,창작지원공동시설 조성=충남 아산 외암리등 6개 민속마을을 예술창작마을로 활용,예술인의 집(서울 동숭동 홍릉 90∼92년),종합영화촬영소(경기도 남양주군 45만평 90∼92년),무대미술지원회관(경기도 고양군 2천3백평 90∼91년)건립. 나,예술인 창작활동 지원=엘리트 예술인 조기발굴 지원,유명예술인지원 제도화,문화예술인 연금제도 운영. ▷한국문화의 세계확산◁ 가,교민주축 한국문화의 세계화=「한민족 문화대축제」순회개최,중소거주 교민대상 예술단 파견,해외동포 예술가의 활동지원,해외 지역별 소수민족 문화행사 참가지원. 나,한국문화의 세계화=왜곡사례 수집등 「우리문화 바로잡기 운동」전개,한국어의 세계적 보급확대,전통문화 상품의 국제적 보급확대,90북경아시안게임,93대전무역박람회 등 주요 국제행사를 계기로한 한국문화 수출 추진. 다,국제화의 시각을 통한 민족문화의 새로운 조명=광복절등 민족절을 세계적인 문화이벤트로 승화,91년중 대합창등 각종 공연및 이벤트 창출. 라,비동양인 대상 국제전 신설추진=서양인을 대상으로 동양화 서예 도예 국제전 등을 개최,한국이 동양문화의 중심국이 되도록 함. 마,뉴미디어시대의 문화적 대응=한글 어문소프트웨어 개발,전산화 통한 문화예술정보 전달체계 확립,과학화시대의 놀이문화 조성.
  • 추진력 뛰어난 당료출신 3선/김영배 평민 원내총무(인터뷰)

    신민당 훈련원장과 당기위원장,민주당 사무총장을 거쳐 평민당 초대사무총장을 역임한 골수 야당당료 출신. 10대 때 구신민당의 김재광계로 국회에 진출한 뒤 87년 대통령선거 직전 평민당이 민주당에서 분가할 때 김대중총재를 따라 동교동 본류에 합류한 3선의원. 짙고 굵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무사형의 얼굴 때문에 「사무라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으나 수준급의 서예솜씨를 자랑할 정도로 섬세한 면모도 엿보인다. 국회 노동위원장으로서 강력한 추진력도 보여줬으나 이론무장에는 다소 소홀하다는 평도 있다. 부인 박창례여사(57)와 1남1녀.
  • “「창당심정」으로 당 이미지 쇄신”/평민 새총장 신순범씨(인터뷰)

    『내부수리가 아닌 신장개업으로 당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심부름꾼의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29일 평민당의 「살림꾼」으로 전격 발탁된 신순범 신임사무총장은 재야 인사등의 영입을 통한 당세확장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여대야소의 상황에서 사무총장을 맞게 된 소감은. 『인위적인 정계개편에 대한 대응전략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해 큰 책임을 떠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 문호개방을 통한 당세확장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본다. 보수대연합에 반대하는 재야등 범민주 세력을 영입하는 데 교량역할을 하겠다. 재야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인사들과도 접촉하고 설득해 제1야당의 면모를 갖추는 데 진력하겠다』 ­재야인사중 영입하는 창구역을 맡겠다는 뜻인가. 『총재가 전면에 나서 범민주인사들은 규합할 것이다. 나는 밥의 뜸이 덜 들었을 때 불을 더 때는 역할로 만족한다는 뜻으로 이해해 달라』 ­당세확장ㆍ지자제선거 등에 엄청난 정치자금이 소요될 텐데…. 『솔직히 말해 가장 자신이 없는 문제이지만 최선을 다해 정치자금이 원활하게 조달될 수 있도록 하겠다』 신총장은 11대선거 당시 군소정당인 안민당 공천으로 여수­광양­여천 지역구에서 출마,원내에 진출한 이래 신민ㆍ평민당으로 간판을 바꿔 12ㆍ13대에 내리 당선된 3선의원. 10대 선거에서 낙선한 뒤 한때 서울 서대문구 노라노예식장 차고를 빌려 재수생들을 상대로 라면가게를 운영하며 역경을 이겨낸 「입지전적 인물」로 서민적인 풍모를 갖고 있다. 13대총선 직후 3선 이상으로 국회직및 당직을 배분할 때 당내 경합이 심하자 스스로 당직을 사양하는 등 모나지 않는 처신으로 당내외에서 호평이나 자금동원력은 부족하다는 평. 따라서 권노갑사무차장­김대중총재를 잇는 총재직계 정치자금조달 라인을 굳히기 위한 포석으로 인화형인 신총장이 발탁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뒤늦게 영어공부를 시작,원고를 통째로 암기하는 뚝심으로 영어웅변대회에서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의지가 굳으며 대중연설에도 능하다. 부인 장금자여사(52)와의 사이에 2남. 취미는 서예.〈구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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