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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연출가 임영웅(이세기의 인물탐구:71)

    ◎56년 「환절기」로 입신… 「완벽 무대」추구/작자의도 밀도있게 접근… 깊이있는 연기 도출/「고도를 기다리며」 초연땐 하루 19시간 맹연습/집팔아 지은 산울림소극장 개관 10돌 맞아 기념공연 막 올려 마른나무 한그루가 텅빈 공간에 물음표처럼 서있는 무대,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이 공허한 대지위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그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란 무엇인가.신인가 죽음인가 행복인가.고도는 그 무엇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일 수도 있다.시간과 공간이 단절된 상황속에서 이 연극은 언제나 시작되고 끝나면서 또 어디서나 생길수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69년 12월,한국일보 소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초연됐을 때 그것이 베케트의 난해한 부조리극이라는 이유만으로 관객은 이미 긴장되어 있었다.그러나 우려는 기우였다.연출가 임영웅은 관념과 현학이 넘치는 난삽의 「고도」를 시감의 템포로 도해시켰고 객석은 시종 웃음을 터뜨리며 서구 연극의 새로운사조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수 있었다.이후 「고도」는 「손색없는 명작」으로 정착되어 89년 프랑스 아비뇽과 다음해 고도의 본고장인 더블린 연극페스티벌에서 「한국의 고도는 과연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호평을 받았다.이보다 앞서 88올림픽 문화예술축전에 왔던 세계적인 극평가 마틴 애슬린(미스탠퍼드대 교수)은 「베케트의 희극성과 비극성이 섬광처럼 교차된 마지막 장면은 특히 작가의 의도에 밀도있게 접근하고 있음」을 지적하여 진작부터 세계무대의 진출과 입신을 예고해 주었다. ○속물근성 찾을 수 없어 널리 알려지다시피 임영웅의 연출에선 잡다한 상업성이나 분칠한듯한 속물근성은 찾아볼수 없다.관객을 의식한 연희성과 상투적인 작위성은 배제된다.부조리극이든 블랙 코미디든 혹은 뮤지컬이나 관념적인 추상언어라 할지라도 인간 심리의 바닥없는 심연에 끈질기게 파고들어 캄캄한 내부에 도사린 모순과 갈등을 명징하게 그려낸다.예를들어 77년 화사한 비애가 전신에 스며드는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이나 87년 「영국 애인」등은지금도 잊을수없는 정미한 무대로 기억된다. 그에게선 예술가 특유의 동심과 기벽과 기행은 찾아볼 수 없다.번뜩이는 재치나 직감력을 기대할 필요도 없다.만약 그런 의외성과 파격을 지녔다 하더라도 「보수적인 체질속에 숨겨진 진보적 감각」은 그의 탄탄한 자존심의 틀에 갇혀 쉽사리 노출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출가 임영웅을 떠올릴 때마다 프랑스 연극계의 거장이며 「황소의 뿔」로 불리는 장 루이바로를 연상케 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닐것 같다.바로가 그의 부인이자 연극 동반자인 마들렌 르노와 그들의 소극장을 세워 레퍼토리 극단으로 활동한 것처럼 그도 그의 부인인 오징자 교수(서울여대 불문과)와 함께 소극장운동의 전범으로 존재하면서 오교수는 극단 산울림의 희곡번역과 기획등에 참여하고 있다.그리고 연극을 「인간에 의한 공간예술」로 승화시킨 점과 비록 작은 일도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 섬세한 감지,한번 결심한 것은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황소고집등은 바로와 비슷한 노선을 그려나가고 있다.연극의 문제는 무엇보다 「얼음덩어리와도 같은 객석의 침묵」을 깨뜨리는 일이며 결국 얼음을 녹여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는 그의 연극을 보면 관객은 원로 여석기씨의 말이 아니더라도 「단순한 인사가 아닌 진심의 경의」와 진정한 감동으로 박수갈채를 보내게 된다. 그의 연극행로는 물흐르는듯 순조롭진 않았다. ○음악가부친 재능 이어 휘문고시절 동랑 유치진의 「사육신」연출을 계기로 연극연출을 지망하게 되었고 56년 극단 신협의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임희재작)로 연출데뷔,박진 이해랑에 이은 국립극단 연출을 거쳐 「정서적인 플롯과 사실적인 언어가 거부된」 오태석의 「환절기」를 「오서독스하면서도 감각적인 논리성」으로 형상화하여 연출가로서의 극명한 위치를 다졌다. 그의 예술적 재능은 음악가였던 부친 임태식씨와 음악계의 원로 지휘자인 숙부 임원식씨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할수 있다.13살에 부친을 잃은 창백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나 조모와 숙부의 따뜻한 보호아래 그는 음악 문학 연극에 접할수 있었고 동랑 유치진 이해랑과의 만남이 실질적인 연극의 촉진제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무리 비극적인 작품이라도 그는 작품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별빛 희망과 인간미의 향기를 절차탁마로 가꾸어낸다.그런만큼 탐구정신과 선별의 명철로 작품분석에 침몰하여 자신이 완전히 이를 소화해야만 비로소 배역을 정하고 스태프를 구성한다. 연습때는 연기자의 동선 하나 조명의 밝기,음향의 정확성에 주도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자로잰듯 확실하고 투명해야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완벽주의는 결벽과 맞먹게 마련이어서 그의 연출노트는 개칠한 흔적없이 추가사항들을 빈틈없이 정리해 놓고 있다.「고도」초연때의 하루 19시간의 연습 강행군으로 「사자」란 별명이 따르기도 했으나 그의 속마음은 만년소년에다 청담을 잃지 않는 순수성이 두드러진다.혹독한 연습과 훈련에 의해 수많은 배우들이 그의 연극을 거쳤고 관객이 그의 연극에 안심하는 것처럼 그들도 극단 산울림 출연을 자랑삼고 있다. 그러나 영광의 이면은 언제나 어두운 곡절과 고뇌가 감춰진다.연극이 생계를 해결하는 직업이 될수 없다는 실망과회의에 빠져 그는 한때 연극을 포기하고 방송 프로듀서로 돌아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어쩌면 「마지막 작품」이 됐을지도 모를 「쥬라기의 사람들」(이강백작)로 82년 대한민국 연극제에 참가,연출상 수상기념으로 2개월간의 해외연수길에서 그는 연극은 세계 어디서나 힘들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귀국길에 오르자 남들의 조소에도 불구하고 소극장을 짓는다는 참으로 엉뚱한 결단을 내려 주위를 놀라게했다.집을 팔고 빚을 얻어 누구라도 감히 꿈꿀수 없는 소극장 신축을 서둘렀고 85년 3월 숱한 수난끝에 탄생된 것이 지금의 홍대앞 산울림소극장이다.1년여 이상 극장을 짓느라고 가뜩이나 과로로 균형을 잃은 몸이 더욱이나 기울어진 자세가 되자 그와 절친한 평론가 유민영은 「걸어다니는 피사의 사탑」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런 그의 모습은 실제로 움직이는 연극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여 묘한 「시니컬 포퍼먼스」가 느껴진다. ○연극상 수상만 43차례 이제 극단 창단 25주년과 소극장 개관 10주년을 맞은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피와 땀과 노력의 결정인그의 아지트에서 10년을 하루같이 앙코르 공연을 제외한 26편의 신작공연과 43차례의 연극상 수상,40만 관객을 동원하고 있으나 남보기완 달리 극장운영에 따른 고충속에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그때도 그를 격려하듯 동랑연극상이 주어졌고 상을 받는 자리에서 그는 다시는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두려운듯 「죽을때까지 연극을 하겠다」고 재삼재사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었다. 개관 10주년기념공연으로 지난 16일부터 윤석화의 일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아놀드 웨스커작)를 필두로 극단 산울림의 신작 창작시리즈를 차례로 선보이고 맨 마지막에 명편 「고도」를 무대에 올리게 된다. 비튜겐슈타인의 말처럼 그는 수많은 남의 인생을 연출하고 있지만 자기자신의 인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 자신의 인생은 결국 연극일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그렇다면 그에게 있어 「고도」란 무엇인가.그가 살고있는 현재이며 또는 불확실성의 미래이고 영원한 의문부호일 수도 있다.그러나 지난 25년간 고도와의 외로운 투쟁끝에 「임영웅식 연극」을 성취한그로서는 아마도 고도가 무엇인지 그가 누구인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그래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연보 ▲1934년 서울출생 ▲1948년 휘문고를 거쳐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 졸업 ▲1956년 극단 신협 ‘세일즈맨의 죽음’(아더밀러)조연출겸 무대감독, ‘꽃잎을 먹고사는 기관차’(임희재작)데뷔연출 ▲1958년부터 세계일보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1963년 동아방송 드라마프로듀서 ▲1966년 예그린악단 뮤지컬연출 ‘살짜기 옵서예’등 ▲1968년 국립극단연출 ‘환절기’등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초연 연출 ▲1970년 극단 산울림 창단 ▲1973년 한국방송공사 입사 ▲1985년 산울림 소극장 신축개관 ▲1989년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고도를 기다리며’초청참가 ▲1990년 더블린 연극페스티벌 참가 ▲1991년 한국연극연출가협회 회장 ▲1992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백상예술대상 연출상및 특별상(69·72·86·95년),서울신문 문화대상및 연출상(70년),서울연극제 최우수연출상(82·85년),한국 연극영화 예술상 특별상(85년),대한민국연극제 대상(82·85년),김수근문화상(86년),동아연극상 연출상(86년),서울시 문화상(87년),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87년),이해랑연극상(92년),동랑연극상(94년)등 ‘전쟁이 끝났을 때’‘환상살인’‘인종자의 손’‘덤웨이터’‘위기의 여자’‘홍당무’‘코뿔소’‘꽃피는 체리‘‘블랙 코미디‘‘마리테레츠는 말이 없다’‘밤으로의 긴여로’‘여우와 포도’‘하늘만큼 먼나라’ 뮤지컬 ‘배비장전’‘꽃님이’‘대춘향전’등
  • 니코틴이 사고력 높인다곤 했으나(박갑천 칼럼)

    담배가 들어온 초기에는 그것이 어떤 질병을 다스리는 것이라고들 생각했던 듯하다.이수광의 「지봉유설」(식물부)에도 그런 글귀가 보인다.『…담배는 가래와 하습을 없애주고 기를 내리며 술을 깨게한다.사람들이 이걸 심어 그법을 쓰고있는데 효험이 크다.…』 「하멜표류기」(조선국편)에는 엉뚱한 얘기도 쓰여있다.즉,조선 사람들은 아이들도 너덧살만 되면 담배를 피운다고 써놓은 대목이 그것이다.하지만 이는 내용을 잘 몰랐던데 기인한다.횟배가 낫는다는 속신때문에 피웠던 것이니 말이다.그 뿐 아니라 조선시대 서예가 이광사는 또 담배원산국(귀국)에서의 「신령스런효험」얘기를 남겨놓고도 있다.그 나라에서는 사람이 중병에 걸리면 산에 내다버리는 만풍이 있었는데 어느 왕비가 중병에 걸려 갖다버렸는 데도 살아났다.향기 짙은 풀냄새를 맡아서였다는 것으로 그게 곧 담배였더라는 내용이다. 담배를 피우면 오히려 가래가 끓는다는건 애연가들이 경험해 오는터다.그런데 그걸 다스리다니….어린애들 횟배는 정말로 나았던걸까.또 그 왕비는 어김없이 담뱃잎 향기를 맡고서 염라국 문턱에서 되돌아왔던 것일까.아무래도 초기에 있었던 일부 인사들의 미화론 같다는 생각이다.그때도 이덕무 같은 학자는 배초십폄설로 그 폐해를 논했을 만큼 예나 이제나 유해론 쪽이 강세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도 가끔씩 이익론이 튀어나오곤 한다.몇해전 한 일본학자가 주장한 것도 그것이다.그는 담배피우는 사람이 알츠하이머(노인성치매)에 걸리는 율이 낮다고 했다.그의 말은 곧장 애연가들의 「끽연합리화」로 이어졌다.그런데 이번에는 프랑스의 파스퇴르연구소와 제네바의 글락소 분자생물학연구소 공동연구팀이 니코틴에는 사고력 촉진효과가 있다고 발표하여 주목케 한다. 사물은 긍정·부정의 양면성을 지닌다.가령 은행의 경우를 보자.그것은 담이나 삭뇨증(수뇨증)·혈변·충치·하혈…등을 다스리는 약효를 지녔다고 말하여진다.그러나 그것 1천개를 먹으면 죽는다 했고(「연수서」)『어린애는 반되 남짓만 먹어도 죽는다』(「패관잡기」)고 했을 정도로 독성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담배 또한 그런 양면성이 있긴 하는 것이리라. 지난해는 21년만에 처음으로 담배소비량이 줄어들었다 한다.이는 담배가 해롭다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닐는지.
  • 사내 「주부대학」 큰 인기/삼성 개설 2년째… 사원부인들 북적

    ◎“자기 계발·내조 도움” 신청 쇄도/컴퓨터·세무상식 등 강좌 다채/기업선 “그룹도약 위한 투자” 지원 확대 매주 화요일 서울 중구 순화동의 중앙빌딩 2층 생활문화센터에는 손에 책가방을 든 20∼5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의 가정주부들로 북적댄다.노소 구분없이 자신이 원하는 강좌를 들으면서 여가활동을 즐기는 이곳은 다름아닌 사원부인들의 재교육을 위한 「주부대학」이다. 『회사가 성공하려면 사원부인들을 교육시켜라』­삼성그룹이 그룹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이 대학은 세계화에 맞춰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사원 뿐아니라 그들의 아내까지 재교육을 시켜야 가능하다는 취지에서 개설됐다. 이같은 주부참여 프로그램은 직장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중년 직장인들을 위해서는 가정의 주축이 되고 있는 사원부인들에게 자기계발의 기회를 주는 동시에 남편에 대한 이해와 역할의 중요성을 일깨워 부부가 함께 회사에 동참한다는 의식을 가질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기업들이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경영묘안을 짜고 있는 터여서 그런지 이 제도는 신선한 충격마저 던져 주고 있다. 93년 11월 삼성전자 임직원부인 2백여명을 대상으로 컴퓨터·어학·부모역할훈련·홈스케치·서예등 여가프로그램으로 첫 문을 연 주부대학은 지난해 12월 제4기(약 1천4백여명)를 배출해오면서 의외로 호응이 커 최근들어 이를 그룹전체로 확대해 실시하고 있다. 주부대학은 한기당 수강생 4백∼5백명씩으로 매주 화요일 4시간씩 3개월과정으로 진행되며 기본과정인 3개월과정을 마치더라도 별도의 3개월 보수과정을 둬 계속적인 공부가 이뤄지도록 하고 성적우수자에게는 부부동반으로 3박4일간의 일본연수를 갈수 있는 특전도 부여하고 있다. 특히 강좌과목이 「그룹의 공익사업견학」「신한국인상의 구현」「내조자의 길」「가정 세무상식」「21세기 정보사회와 한국경제의 현위치」「민족의 선택과 진로」등 13개 공통과목과 「바람직한 부모역할훈련」「생활영어」「엄마의 컴퓨터방」등 9개의 선택과목등 짜임새있게 구성돼 고급화된 생활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주부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8월 제3기로 주부대학을 졸업한 이순화(40·서울 은평구 응암동)씨는 『아빠가 다니는 회사를 더욱 이해하게 돼 내조에 큰 보탬이 됐다』며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컴퓨터 문맹」 소리를 안듣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주부대학을 총괄하고 있는 삼성 생활문화센터 황정은 과장(32·여)은 『사원가족들에 대한 복지차원에서 시작된 주부대학이 남편의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복지투자를 확대해 사원부인들이 날로 변화하는 세상을 폭넓게 바라볼수 있도록 좀더 다양하고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전주서 후학양성 힘쓰는 서예가 송성용옹(향토에 산다)

    ◎“고향서 묵향에 묻혀 사는게 기쁠 따름”/상투 고집하는 「서예의 달인」… 작품전시관·학술재단 설립 앞장 지금 우리 주변에는 태어난 고향을 지키며 살찌운 정신적 양식을 「향토사랑」으로 실천하는 명사들이 꽤나 많다.고향에서의 삶을 통해 건전한 「향토문화」를 정착시키고 나아가 「향토사랑」을 국가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진정한 명사들.그러기에 이들의 삶은 늘 우리네 인생의 귀감이 되고 있다.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 이기주의와 지역성이라는 비뚤어진 향토의식을 바로 잡으며 향토에 살기를 고집하는 이들의 고귀한 삶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고풍스런 전통 한옥들이 즐비한 전북 전주시 교동 남천교 첫들머리에 들어서면 묵향이 물씬 풍긴다.이 시대 최후의 한학자요 최고의 서예가 강암 송성용(83)옹의 체취가 골골마다 묻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조 한학을 지금으로 이어주는 한학자이자 강암체의 원조로 흔히 「서예의 달인」으로 칭송되는 강암선생. 『향리에 묻혀서 정다운 사람들을 만나고 예술의 고장에서 내 예술의 천분을 누릴수 있음이 그저 기쁠 따름』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선생은 일제의 무단통치가 극성을 부리던 19 13년 전북 김제군 백산에서 태어났다.5살때부터 역시 호남의 뼈대있는 한학자였던 유제 송기면 선생으로부터 한학을 배우며 서예를 익혔다. 한국 서예의 일가를 일궈낸 선생의 서예공부 정진은 일제의 단발령에도 목숨걸고 상투를 자르지 않았던 선비의 올곧은 고집이기도 했다.상투를 틀고 갓을 쓴 한복차림의 자세를 한치도 흐트러뜨리지 않은 선생은 아버지가 작고하고 1년이 지난 43살때인 56년 처음으로 국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입신양명하여 세상과 더불어 사는 재미도 재미려니와 향리에 눌러 앉아 천분을 지키며 사는 것도 또한 재미』라는 가르침을 거스르지 못해 뒤늦게 세상에 강암체를 선보였다. 선생의 작품은 국전 출품과 함께 세상의 이목을 끌었고 10년만인 66년에는 국전 초대작가로 추앙됐다.국전초대 작가가 되면서 선생은 향리를 떠나게 하려는 유혹에 시달렸다. 『향리에 눌러 앉아 천분을 지키고 싶다』는 선생의 고집도전북지방의 서예를 중흥시키자는 동료 서예가들의 강권만은 이겨내지 못했다. 실제로 선생은 전주로 거처를 옮긴 67년 전북도 미술전시회를 만들어 맥을 이어오고 있다. 『방문만 열면 남고산,승암산자락이 어울려 아름다운 산수를 이루고 완산봉 기린봉이 저만큼씩 좌정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는 곳,나는 이 하늘 아래서 숨쉬고 살 수 있다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예술의 분위기가 갖추어진 도시요 내 예술을 키워준 「가장 크고 넓은 세상」이라는게 선생의 향토예찬론. 전주가 가장 크고 넓은 세상이라는 선생의 향토 예찬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는다.한국서단에 강직한 선비품격과 마음에서 우러나온 서필로 호남을 대표해온 그는 요즈음 향토문화를 새롭게 일구기 위한 일들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강암서예전시관 건립과 강암서예학술재단 설립이 바로 그것이다.독특한 향토문화를 꽃 피우고 꼿꼿한 선비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해 평생숙원으로 추진하고 있다. 강암은 예술의 고장 전주를 서예발전의 본 고장으로 뿌리내리기 위해 90년 국내 최초로 서예작품상설전시관건립사업에 착수,오는 4월 준공을 눈앞에두고 있다.93년에는 그동안 모은 재산 6억원을 흔쾌히 기증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서예학술재단을 설립함으로써 서예를 학술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흥,보존하고 후진을 양성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 20여년전부터 국내에서 가장 큰 서단인 연묵회를 만들어 후배,제자들과 함께 일본,대만,중국 등 동남아를 돌면서 서예교류전을 갖는 등 서예의 세계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전·예·해·행·초서 등 모든 서체와 사군자의 달인,일생을 한복만을 고집하며 유학을 숭상,창씨개명과 단발령에 항거했던 한국의 마지막 선비인 강암. 향리에 눌러사는 재미가 어떠하냐고 물을 때마다 대답 대신 벽에 걸린 글귀를 조용한 미소로 응시한다. 「문여하사 서벽산 소이불답 심자한(왜 산중에 묻혀사느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않고 웃음으로 답하니 마음이 스스로 한가하더라)」 가장 크고 넓은 세상에서 서예를 익혔으니 나머지 여생도 이 고장 후학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겠다는 강암 송성용옹은 슬하에 4남2녀를 두었다.
  • 제빵기술에서 실내디자인까지/주부 평생교육원 배울거리“풍성”

    ◎숙대 등 11곳 1∼3월 개강/숙명여대/컴퓨터·사진·금속공예반 등 다양/덕성여대/문예창작 등 16개 프로그램 마련 「새해에는 생산적인 무엇을 해봐야 할텐데…」­매년 초 주부들이 한번쯤 떠올리게 되는 생각이다.최근 몇년 전부터 이화·숙명여대 등 각 대학들이 실시하고 있는 평생교육원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주부들의 이같은 바람을 들어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제과제빵기술」,「인테리어디자인」에서부터 동양철학,중국문제,뉴스타트건강법 등에 이르기까지 유익한 배울거리를 제공하는 평생교육원의 개강시기는 1∼3월 사이.대학의 수준높은 교육환경과 양질의 강의를 접할 수 있는 평생교육원의 프로그램들을 소개한다. 숙명여대는 박물관의 각종 유물과 유적지 문화재를 교육자료로 매학기 3회 고적답사 코스가 있는 박물관특설과정 및 외국어 컴퓨터 예능 몬테소리 및 보육교사 양성과정,미용산업 최고경영자 과정을 마련해놓고 있다.예능의 경우 사진 도예 염직 실내디자인 금속공예 아동미술 음악교육 서예 무용 등 29개 부문이있다.문의 710­9140∼1 산업교육전문인 과정과 문예창작과정 등 총 10개의 교육과정이 있는 연세대 사회교육원의 경우 여성자원 개발과정과 실내디자인 전문인과정 등이 주부에게 알맞다. 홍익대 미술디자인교육원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에는 채색화 수묵화 유화 판화 등 9개 부분이 있는 미술실기과정과 컴퓨터그래픽·의상·실내·기초 디자인의 디자인과정이 있다.교육기간은 1년 단위.문의 320­1411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은 모두 16가지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일반교양과 미술 생활예술 문예창작 등이 있는데 플라워디자인,사진,실내장식,패션일러스트레이션 등의 강의를 접할 수 있고 스트레스 해소 및 건강과정이 있다.특히 탁아소가 마련돼 있어 주부들의 편의를 돕는다.문의 765­1846 동덕여대 여성사회교육원은 디자인전문교육과정을 특징으로 한다.컴퓨터 및 패션,보육교사과정,시각정보 디자인과 정보사무처리과정이 있다.문의 919­1420,913­2048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은 일반교양강좌와 전문자교육과정으로 나뉜다.문학 역사 철학 무용 등에관한 31개 교양과정과 컴퓨터,레크레이션지도자,노인교육지도자,중국문제 전문과정 등 11개 전문자과정이 있다.문의 360­3115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95미술의 해/「천안 횃불대제전」 개막행사

    ◎조직위,새달 16일 세종회관서 「미술의 해」 선포식/작가 12명 작품세계 조명… 총 157개행사 확정/국토미화작업 추진… 「한민족 미술전」도 열어 95년 「미술의 해」사업계획이 확정됐다.미술의 해 조직위원회(위원장 이대원)가 22일 발표한 「미술의 해」사업은 학술사업 4건,미술관계법과 제도제정및 개정사업 3건,이벤트사업 9건,전시사업 16건 등 중앙 32개 행사와 지역 1백25개 행사 등 총 1백57개 행사다. 이들 행사는 내년 1월16일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의 「미술의 해」선포식에 이어 2월28일 천안삼거리공원에서의 미술횃불대제전을 개막행사로 차례로 추진된다.특히 「미술의 해」선포식에서는 식이 끝난 직후 동·서양화·조각·공예·서예등 5개 분야에서 월별로 선정한 한국의 근·현대작가 12명의 작품세계를 영상으로 제작,상영하며 개막행사에서는 「미술의 해」사업시작을 알리는 횃불점화식과 행진,시민과 만남전,설치대제전 등 행위예술을 벌일 예정이다. 「미술의 해」를 보다 뜻깊게 하기 위해 조직위가 마련한 이벤트사업 가운데는 ▲미술유적지및 작고작가 화비제작 ▲미술정보센터 설립,발족 ▲영상아트자료 제작을 통한 국토미화작업 추진 ▲유명미술인과 패션디자이너의 연계패션쇼 ▲미술의 해 기념우표발행 ▲무명작가발굴,진혼제 등이 있다.또 노수현·김환기 등 월별작가로 선정한 근·현대작가 12명의 작품세계를 집중재조명하는 한편 세계 저명미술관과 미술관계 명승지를 소개하는 작업도 펼치기로 했다. 전시사업으로는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줄 「오늘의 한국미술전」이 5월중 예술의 전당에서,광복50주년 「한국미술 30인전」이 11월중 파리시립미술관에서,비디오아트·영상미술 등 「테마별 현대미술전」이 11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펼쳐진다.내년 광복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각국에 거주하는 한민족 작가의 작품을 초대,전시하는 「한민족미술전」도 마련돼 있다.한민족의 문화적 얼을 되살리기 위한 야심찬 계획이다.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을 기념하는 「이탈리아현대미술전」(11월중),「전국휘호대회」(8월중),「한·중수묵화교류전」(5월중),「전국공예품 디자인개발전시및 워크숍」(10월중),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으로 마련한 「디자인 40년전」 등도 굵직한 행사로 추진된다. 이밖에 학술행사로는 국내외 저명작가가 참여하는 「미술세미나」와 세계현대미술의 경향을 소개하는 「국제심포지엄」,전국순회 「미술강연」등이,지역사업으로는 「광주 비엔날레」,「대구 미술제」,「제1회 제주 비엔날레」,「해운대 바다미술제」,「강원 야외조각공원설립」 등이 추진된다. 박광진 집행위원장은 『사업수립이 다소 늦어졌으나 사업추진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며 『다만 행사를 보다 알차게 추진키 위해 앞으로 더욱 보완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전체수석 정성택군/부산과고(수능시험 계열별 최고득점자)

    ◎“예습·복습 치중 학교공부가 주효”/수학서적 원서 탐독… 국제올림픽서 동상 받아 『시험을 잘 봤다는 생각은 했지만 전체수석은 정말 뜻밖입니다』 20일 발표된 대입 수학능력시험에서 2백점 만점에 1백94점을 얻어 전체수석의 영예를 차지한 부산과학고(교장 박찬웅·62) 3년 정성택(18)군은 이날도 상오7시쯤 학교에 나와 본고사준비를 하다 낭보를 전해듣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대 전기전자제어계측공학군에 지원,세계적인 과학자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정군에게 남다른 공부방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학교수업에 충실하고 예습·복습을 철저히 했을 뿐이다.특히 과외를 하거나 학원에 다닌 일은 전혀 없다. 정군의 탁월함은 부산과학고 입학때부터 발휘되기 시작했다.수석입학에 3년 내내 전교 1등,3년 개근이었다. 지난해 7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국제올림피아드 수학부문에서 한국대표로 참가,동상을 차지했고 같은 해 9월 열린 제5회 전국수학경시대회에서는 최우수상을 안았다. 특히 수학관련 서적을 원서를 읽을 정도로영어와 일본어 실력이 뛰어나다.영어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중학교때와 고1때 응시해본 토플시험에서 5백70점과 6백17점을 각각 받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번 수능시험의 경우 언어영역에서 2점,수리탐구 Ⅱ부분에서 3∼4점 틀린 것 같아 1백93∼1백94점을 예상했습니다』 잠은 밤12시부터 6시까지 6시간정도로 충분히 자는 편이다.머리를 식히기 위해 피아노를 혼자 즐긴다.건강을 위해 가끔씩 치는 테니스가 취미의 전부다. 소아과의사인 정구용(48·부산시 남구 남천1동 11의16)씨와 이복순(44)씨의 2남중 막내.형 성우군(21)도 92년 당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수석입학할 정도로 형제가 모두 수재다. 정군은 본고사의 논술시험에 대비,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신문사설에 눈길을 돌렸다. ◎인문수석 권기대군/안동고/“아침에 한시간 비디오학습”/백과사전 탐독 등 독서 취미 『지난해 수석점수보다 높지 않아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얼떨떨합니다』 1백92점을 얻어 인문계 수석을 차지한 경북 안동고 권기대(18·안동시 태화동 현대아파트 201동 503호)군은 교과서 위주로 폭넓게 공부한 것이 의외의 성과를 거둔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고교 3년동안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지난해 교육부 주최 영어경시대회에서 동상을,올 경북도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각각 차지해 기대를 한껏 모았다.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채근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된 듯합니다.서울대 법대에 들어가 법조인이 되는 게 꿈입니다』 상오6시50분까지 등교해 1시간가량 비디오학습을 하고 하오6시 수업이 끝나면 새벽 1시까지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해왔다. 국민학교때부터 해온 서예가 수준급이며 공부하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학교운동장에서 고함을 지르거나 컴퓨터게임으로 해소한다고. 종합백과사전을 탐독하는 등 독서량이 풍부하고 성격이 활달해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대우자동차 안동지점장 권상기(46)씨의 1남1녀중 막내. ◎예체능 수석 이용신군/경신고졸/“그림 좋아해 대졸후 재도전”/디자인·시사만화 전공할터 『주위에서는 평범한 길을 택하라고 권했지만 어릴 때부터 간직해온 그림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숙명처럼 따라다닌 미술에의 향수를 떨치지 못해 이번 수능시험에 재도전,1백76·2점(내신 2등급)의 점수로 예체능계 수석을 차지한 이용신(24·연세대 국문과졸·도봉구 우이동 영동빌라)씨는 못내 쑥쓰러운 표정이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이씨는 『어릴 때부터 동경해오던 그림공부를 다시 할 수 있다면 나이가 무슨 장애가 되겠느냐』고 밝게 웃었다. 그는 그러나 『뒤늦게 시작한데도 불구,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 기쁘지만 앞으로의 실기 본고사가 문제』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씨가 미대 진학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것은 지난해 여름부터.하루 4∼8시간씩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실기를 준비했다.수능시험은 지난 9월부터 대입단과학원에서 생소한 과학탐구영역을 중심으로 공부해왔다. 이씨는 서울대 미대 산업디자인학과에 진학해 책표지 디자인이나 시사만화등 대중적인 그림을 그려볼 포부를 갖고 있다. 89년 서울 경신고를 졸업했다. 마산의 수산물가공업체에서일하고 있는 이관희(59)씨와 이영자(57)씨의 1남3녀중 막내다.
  • 전미술협회 이사장 김서봉씨(인터뷰)

    ◎“정겨운 우리산하 화폭에 담았죠”/5번째 개인전… “수채화 같은 유화풍경” 『지난 91년 미협 이사장직을 떠난 이후 최근까지 그려온 풍경화만을 모아 전시를 꾸몄습니다.늘 애정을 갖고 다뤄온 정겨운 우리의 산하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는 11일까지 프레스센타 1층 서울 갤러리에서 5회째 개인전을 열고있는 중진 서양화가 상하 김서봉(64)씨­.언제나 꾸밈없이 진솔한 자세며 단아한 표정으로 화단의 동료와 후학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는 김씨가 화력 40여년에 5회째 맞이하는 개인전이다.『이번 전시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다만 지난날 추구해왔던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그간 정성껏 그린 신작들을 내보이는 전시이지요』. 자연풍경을 대상으로 하는 김씨의 그림은 유화임에도 수채화처럼 투명하고 담백한 맛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 특징.기술적 방법에서는 서양화이지만 이를 지탱하고 있는 내재적 표현은 동양정신의 구현에 두고있는 때문이다.김씨는 또한 색채를 절제하며 주제 및 소재 선택에서도 일상적인 시각을 뛰어넘지않는 작가로 정평이 나있다.따라서 그의 그림은 「순일한 색채 이미지와 안정된 조형감각이 화면을 압도한다」는 평을 듣고있다.이번 전시는 바로 김씨의 이와 같은 특징적인 화면을 총체적으로 대할 수 있는 자리이다.오랫동안 붓글씨에도 심취,서예에서 오는 모필의 구사가 매우 독특한 경지를 이루고 있기도 한 김씨는 이번에 4계절의 풍경그림 30여점을 내놓았다.김씨는 동덕여대 예대학장,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예술의 전당 운영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 내고장문화 창달 주역에 갈채/서울신문 제정10회 향토문화대상 시상

    ◎대상 충남향토연구회 “영예” 서울신문사가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지역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제정한 제10회 향토문화대상 시상식이 6일 하오4시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영예의 대상은 충남 향토연구회(회장 송각헌)가 받았다.본상은 전통문화부문에 정명수씨(86·서예가)·이훈익씨(79·인천향토문화연구소장)·이기태씨(57·영광향토문화연구회장),현대문화부문에 박영출씨(75·울산문화원장)·조태훈씨(62·양주문화원장)·장규호씨(45·한국연극협회 속초지부장)가 각각 수상했다. 이 자리에는 극작가 차범석씨,임동권 중앙대 명예교수,이중한 서울신문 논설위원등 심사위원들을 비롯해 최창규 독립기념관장,시인 설창수씨,협찬사인 금성사 임직원과 수상자 가족등 1백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에게 상패와 상금을 수여한 이한수 서울신문사장은 축사를 통해 『우리가 평소에 향토문화를 아끼고 키워왔다면 올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성과가 훨씬 컸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향토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은 향토애의 발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의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 전각 예술가 김태석 선생/유품 172점 기증

    ◎손자 김현상씨,국립민속박물관에/인장 83점·인보 49책·인장도구 2점 지난 48년 정부수립 당시 대한민국 국새를 새겼던 전각예술가 성재 김태석선생(1874∼1951년)의 인장 인보등 유품 1백72점이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조유전)에 기증됐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최근 김태석선생의 손자인 김현상(61·서울 도봉구 방학동)·규상씨 형제가 지난 8월 29일과 11월 12일 두차례에 걸쳐 인장 83점 인보 49책 인장도구 2점을 비롯,선생의 유품 1백72점을 기증했다고 밝혔다. 성재는 정학교 유한익,오세창 등과 함께 19세기말∼20세기 중반의 5대전각가로 꼽히는 인물로 중국에서 원세개의 서예고문을 지내며 중화민국 국새를 새겼고 해방후에는 대한민국 국새와 각 부처 직인도 새겼다. 이번에 기증된 인장은 성명인,아호인,고어인,낙관 등으로 내용 크기 형태 재질 서체 등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한국 전각사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 전통공연예술 세계화/“소규모 해외무대 적극 지원해야”

    ◎음악평론가 송혜진씨,국악의 해 조직위 심포지엄서 주장/국가차원 대규모 공연은 대부분 일회성/“정례적이고 체계적 공연기회 확보 절실” 전통공연예술을 세계화하려면 국가홍보 차원에서 우리나라의 문화를 소개하기 위한 대규모 공연단의 해외공연 관행에서 벗어나 순수한 예술로 접근시킬 수 있도록 전문화·세분화된 소규모 공연단과 개인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됐다. 음악평론가 송혜진씨(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는 「전통공연예술 진흥방안」이라는 주제로 「국악의 해 조직위원회」가 30일 예술의전당 서예관에서 여는 심포지엄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전통공연예술의 세계화를 위한 방안」이라는 주제발표를 한다. 송씨는 주최측이 미리 공개한 발표문을 통해 『지금까지 전통공연예술의 해외활동은 수량적으로 적다고 할 수 없음에도 대개 단기적이고 일회적으로 끝난 경우가 많아 해외에 한국의 이미지를 심는데 실패했다』면서 『특히 국·공립단체의 경우 한국문화의 전체적인 이미지 전달에 초점이 모아져 공연의 성과가 곧예술성 전달이라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과거 국립예술단의 해외공연은 2∼3개월에 걸친 장기 순회공연으로 각 지역의 문화특성에 따른 공연물 선정 자체가 불가능했다.또 공연횟수나 공연개최지도 한 국가,한 도시에서 1∼2회로 그친 경우가 많아 공연에 쏟은 비용에 비해 효과가 약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검토 아래 송씨는 『해외에 보다 차원높은 전통예술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례적이고 체계적인 공연기회를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진단을 내렸다.그러기 위해서는 소규모 공연단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송씨에 따르면 소규모 공연단은 각 단체마다 전문성 있는 프로그램을 확보하여 공연장소나 기간을 결정하는데 유리하고 강의를 곁들인 전문적인 연주도 가능하다.또 성격을 달리하는 여러 소규모 공연단을 구성할 경우 세계 각 지역의 특수한 문화상황과 청중의 취향 등을 고려한 프로그램을 보다 쉽게 적용할 수 있다.여기에 이 활동이 정례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같은 지역에 다른 내용의 공연단을 잇따라보냄으로써 한국전통예술의 다양성을 점진적으로 깊이 인식시킬 수 있다.이처럼 소규모 공연단에 의한 깊이있는 공연이 이루어질 경우 「한국문화」가 아닌 보편적인 예술로 접근이 가능하다.이것이 바로 우리 전통예술이 세계화되는 단계라는 것이다. 송씨는 전통공연예술의 세계화를 위해서 이밖에 세계화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음향·영상·문헌자료의 개발,한국문화의 국제화를 위한 학문적 바탕의 건설,해외 국악교육프로그램의 다양화,해외의 예술가 가운데 한국전문가로 나서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장학금 지급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 대상에 충남향토연구회/10회 향토문화대상 수상자

    ◎단체 1곳­개인 6명을 선정/서울신문사 제정·금성 협찬 서울신문사가 전통문화 계승과 지역문화의 창달에 힘써온 숨은 일꾼을 찾기 위해 제정한 제10회 향토문화대상수상자가 25일 결정됐다.전통문화부문과 현대문화부문으로 나누어 전국 시·군의 문화공보실과 문화원·예총등 관련단체에서 추천한 단체및 개인을 대상으로 심사한 결과 영예의 대상에는 충남향토연구회(대표 송각헌)가 선정됐다. 본상중 전통문화부문에는 ▲정명수(86·서예가·경남 진주) ▲이훈익(79·향토사학자·인천시) ▲이기태(57·사회사업가·전남 영광)씨등 3명이,현대문화부문에는 ▲박영출(75·울산문화원장) ▲조태훈(62·양주문화원장) ▲장규호(45·한국연극협회 속초지부장)씨등 3명이 뽑혔다. 대상에는 상금 3백만원,본상에는 각각 2백만원씩의 상금이 주어진다. 올해 심사는 구상(시인)·차범석(극작가)·임동권(중앙대 명예교수·민속학)·정영호(한국교원대교수 역사학)·이중한(서울신문사 논설위원)씨등 5명이 맡았다. ◎새달 6일 시상 서울신문사 주최,금성 협찬,문화체육부 후원으로 열리는 이번 향토문화대상의 시상식은 오는 12월6일 하오4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열린다. ◎대상/충남향토연구회 송각헌회장/태종왕지등 사료 발굴/보물지정된 선조교서도 찾아내/회지에 게재… 외국대학에도 배포 『이번 향토문화상 수상을 계기로 충남향토연구회는 지역문화 발굴·보존은 물론 잊혀진 우리 역사를 되살리는 길잡이로 거듭 태어날 것입니다』 대상 수상단체로 선정된 「충남향토연구회」 송각헌 회장은 80고령으로 병중인데도 『이 사회를 위해 뭔가 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우리 문화찾기에 앞장서온 회원들에게 감사한다』며 공을 회원들에게 돌렸다. 충남향토연구회는 지난 85년1월 충남도청 사료실에서 향토역사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온 전·현직공무원 13명이 주축이 돼 만들어졌다. 사라져가는 고문적및 유적·유물·유품등을 조사·기록해 향토사연구와 한국학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이에따라 회원들은 창립초기부터 지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그동안 묻혀 있던 생생한 역사자료를 발굴,회지인 「향토연구」에 게재했다. 연구회는 또 국내 대학도서관·박물관·문화원·연구단체는 물론 미국 하버드대학과 중국 연변대학도서관,일본에 사는 동향인에게도 회지를 무료로 배포,우리문화를 알리는 첨병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연구회가 발굴·소개한 것중에는 국보·보물·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많아 학계에 끼친 영향이 적지않다. 회원 송창준씨(74)가 지난해 여름 은진 송씨 문중에서 발굴,향토연구 13집에 소개한 「이형의 왕지」는 조선 태종때 받은 개국원종공신을 기록한 문서로 그해 국보 278호로 지정됐다. 또 회원 김영한씨(74·충남도 사료실장)가 지난 86년12월 향토연구 3집에 소개한 조선 선조대왕의 국문교서도 88년4월 보물 951호로 지정됐다. 임진왜란 이듬해인 선조 26년(1593년)9월에 내린 이 교서는 「전란중에 어쩔 수 없이 왜군의 포로가 됐더라도 뛰쳐나오면 용서하겠다」는 내용으로 왕이 내린 최초의 교서라는 점에서 당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또 지난 85년7월 향토연구 창간호에 게재돼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윤돈의 동복화합입의」도 국보급 문서로 꼽히고 있다. 이 문서는 출가한 딸과 며느리에게 토지·노비·집등 재산의 균등분배를 명시한 재산상속문서라는 점에서 조선 전기의 사회·경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회원들은 또 우리 역사가 깃든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 숨겨진 문화와 유적·유물들을 발굴·소개해 역사의 전령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 10월 회원들은 명성황후 민비의 이모가 살던 충남 아산군 송악면 외암리 외암 이간선생의 고택을 방문,당시의 관복과 황후가 이모에게 보낸 서찰집등을 살펴보았으며 이 내용을 다음번 회지에 소개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지난 88년에는 홍주의병실록을 토대로 당시 대덕구 산내면에 있는 단재 신채호선생의 생가터를 확인해내는등 이들의 지칠줄 모르는 역사확인작업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본상 수상자 6명◁ ◎정명수 진주·서예가/서예 후학지도에 한평생 전국에 서예학원이 없던 69년도에 서예학원을 열어 후학을 지도하며 지방 서예교육의 기초를 세웠다.진주지방 향토예술제인 개천예술제 창설동인으로 활동하면서 향토사랑에 앞장서왔고 개천예술탑 건립사업회 고문으로 일하면서 91년11월에는 개천예술탑을 제막했다. 진양성안에 있는 북장대의 주변이 일부 분실·파손된 것을 자비(자비)로 보수하여 문화재보호에 솔선수범하고 촉석루의 남장대·서장대·진남루등의 문화재에 휘호를 남겼다. 또한 스승인 성파 하동주선생이 작고한 지 50년만인 지난 91년 「성파 하동주선생의 유묵집」을 발간했다.그는 제자들에게 『글을 쓰는 것은 명필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격을 수양하기 위해 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훈익 인천·향토사학자/제예책자 등 무료배포 60년대부터 인천지방의 향토를 연구하면서 자료를 모아 81년 인천지방 향토문화연구소를 설립했다.86년에는 「인천 충효록」을 간행하고 87년에는 「인천지지(지지)」,90년에는 「인천지방 향토문찬」,91년 「인천 성씨인물고」,93년 「인천지명고」,94년 「인천지방의 전통제례」를 간행했다. 이 책들을 모두 자비출판한그는 각권 1천5백부씩 모두 9천여부를 노인회,각급 학교등에 무료배포했다. 이씨는 1940년 부천군에서 공무원생활을 시작하여 67년 인천시에서 퇴직할 때까지 27년간 인천지역에서만 근무했고 퇴직후에는 인천원예협동조합에서 9년을 근무한 인천역사의 산증인이다. ◎이기태 영광·사회복지사업/민속자료 수천점 수집 1956년 영광 백록육아원 원장으로 일하면서 향토문화연구회를 설립,38년을 향토문화발전과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해왔다.영광향토지와 선사유적조사등 30여종의 향토문화지를 사재로 발간했고 연건평 60여평의 향토관을 설립,민속자료 1천여점과 도서 및 문헌자료 4천여점을 전시·보관하면서 후학들에게 자료를 빌려주고 있다. 운동회 또는 학예회에 버금가는 교육의 하나로 「민속놀이의 날」을 정하고 강강술래·씨름·제기차기·줄다리기·호놀이·오재미던지기등의 민속놀이와 교사들의 전통악기연주등을 시연,우리놀이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 ◎박영출 울산문화원장/문화제열어 민속놀이 보급 64년 울산문화원을 설립하여 27년간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1억여원의 사재를 털어가며 문화활동을 전개해왔다.울산공업축제 집행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시민에게 애향심을 심어주고 향토문화창달에 큰 기여를 했다.울산체육회 부회장으로 많은 선수를 양성하고 68년에는 도서관이 없는 울산에 도서관을 설치해서 시민의 지식함양에 크게 기여해왔다. 73년부터 시민대학을 운영해오고 있으며 78년에는 「울산울주향토사」(1천5백부),80년에는 「울산문화재」(1천부),86년에는 「울산지명사」(1천5백부)를 발간해서 각급학교와 사회단체에 배포했다.87년에는 울산의 물당기기놀이를 개발해서 밀양에서 개최한 제19회 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86년부터 처용제를 개최하고 있다. ◎조태훈 양주 문화원장/군지·관광책자까지 발간 87년 양주문화원을 창립하고 88년에 부지대금 2천5백만원을 희사해서 2백35평의 건물을 지었다.86년에는 이 지역에서 3·1운동이 일어났던 가래비 3·1운동기념비를 건립하고 이곳을 공원화하는 한편 후세의 교육도장으로 가꾸기 위해 해마다 3·1절행사를 하고 있다. 조선조 당시의 대양주권인 서울 3개구,경기 4개시,2개군의 향토문화사료를 수집하여 4년간에 걸쳐 2천5백쪽의 군지를 발간,배포했다.당시 출판자금중 1억2천만원을 자부담하면서 훌륭한 군지를 발간한 공으로 국사편찬위원장의 표창을 받았다.평생을 향토문화발굴에 공이 큰 동은 백인현선생의 뜻을 기리는 추모비를 건립하고 93년에는 양주문화 소식지를 발간했으며 올해에는 양주의 문화유적 관광책자를 발간했다. ◎장규호 연극협 속초지부장/속초 극예술 창달에 힘써 66년부터 극예술의 불모지인 속초에서 연극을 시작,67년 속초극동우회를 설립하여 초대회장을 역임했다.지난 25년간 수십편에 달하는 연극의 연기·연출·기획 및 제작에 참여하며 속초는 물론 강원도 북부지역 극예술을 이끌었다. 91년도 제9회 전국연극제에서 극협지부장으로 기획·제작에 참여,강원도가 최초의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데 견인차역할을 했다.또한 해마다 강원도 청소년 연극경연대회를 개최하면서 청소년들의 정서함양에 노력하고 있다.이러한 공으로 89년에는 제1회 속초시민문화상,제17회 한국연극예술상,93년 제35회 강원도문화상등을 수상했다.
  • 인간문화재 만정 이소희(이세기의 인물탐구:62)

    ◎맑고 구성진 목소리 “당대의 명창”/13세때 이화중선 소리에 매료… 송만갑 문화 입문/19세때 「춘향전 전집」 내고 72년 미 카네기홀 공연/“팔순기념무대 열어 사그라진 목소리 펼쳐 보이고파” 「천지 삼겨 사람이 나고,사람 삼겨 글만글저,뜻정자 이별별자 어이허여 내셨던고.뜻 정자를 내셨거든 이별 별자를 없었거나…’ 이는 「춘향가」중 「옥중장탄」이다. 「천지삼겨」는 정정렬 바디로 박녹주이후 만정 김소희만이 꿋꿋한 옛맛을 이어받고 있다. 널리 알려진대로 만정은 국악의 대가이자 우리가 세계에 자랑해 마지않는 인간문화재다. 만정을 둘러싼 찬사는 책한권을 꾸며도 넘칠 것이다. 이대교수이며 국악작곡가인 황병기는 그의 소리를 「가을밤 기러기소리」에 비유했고 음악평론가 서우석은 「낭랑하고 확실하게 뻗어나가는 절세의 명창」,소설가 박경수는 「민족의 한이 담긴 애원성의 절창」으로 표현하고 있다. 과연 만정은 그 음색이 맑고 차가우면서도 그 안에 이른 봄의 매화향기를 머금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더구나 그의 비절한 계면조는 억지 눈물을 강요하는 청승푸념과는 달리 안으로 한을 참아낸 고고한 유열이 깃들여있다. 이는 곧잘 강주 사마의 청삼을 눈물로 적신 「비파행」의 한구절에 비유되어 「옥반에다 크고 작은 구슬을 떨어뜨리듯」 「홀연 은병이 깨지며 물줄기 쏟아져내리듯」 애절한 사연이 굽이굽이 엮어지고 우조 또한 「철갑두른 기마병이 돌격하여 창칼을 부딪치듯」 웅장청원과 기염만장을 토해낸다. 1936년 일본 빅터레코드가 출반(서울음반 복각)한 「춘향전 전집」을 들어보면 열아홉살의 앳된 목이지만 또박또박한 발음이 청순하고 수줍은 느낌을 살려 그의 가락위에서 듣는 이의 흥취가 잦아들고 휘몰아친다. ○동·서편제 나눔은 무리 애원성의 진양조로 인해 만정은 서편제의 일인자로 손꼽히고 있지만 넉넉하면서도 화평한 평조와 경드름 설렁제를 두루 구사하여 어느 한 창제에 그를 못밖는 것은 무리가 아닐수 없다. 명인의 자질은 무엇보다 타고 난 소리와 홍진을 뛰어넘는 격조라면 이를 고루 갖춘 이가 아마도 만정일 것이다. 만정은 무대에서 관중을 압도하는 자태와 인물과 예인으로서의 조건에서 한치의 허점도 찾아볼 수 없다. 「노래를 하다보니 노래가 모두 시라 가사와 창을 올바로 알고 노래부르기 위해」 그는 등불을 돋워놓고 고전을 탐독하고 묵필을 가다듬어 묵정 그윽한 속에 노래의 진수를 아로새겨왔다. 여기에 가야금 거문고와 양금 살풀이춤이 뛰어나 그에게 가야금 가락을 닦아주던 김윤덕은 「만정은 창의 최고이지만 만약 가야금을 했다면 누구도 미치지 못할 명인이 되었을것」을 아쉬워했고 원로국악인 성경린은 「김소희의 춤은 소리보다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판소리 더늠은 방정하고 단아하다.그리고 단순한 득음이 아닌 심득의 창성으로 관중을 사로잡아 지금까지 그가 공연한 판소리 무대는 흥청거리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연이 있는 날은 자주 댕기들인 쪽진 머리에 옥비녀,옥색치마로 화사하게 단장하고 쥘부채 하나만으로 만마를 다스리고 천하를 호령한다. 수많은 공연중에서도 지난 84년 동아일보가 주최한 명인명창초대 공연은 그의 판소리의 위력이 얼마나대단한가를 한눈에 증명한 감동의 무대였다. 그날의 청중은 대학생에서 직장인,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촌로에 이르기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을 구름같이 메웠고 객석은 시종 박수와 추임새로 「국창」에 대한 예우를 지켰다. 만정 역시 칠순을 눈앞에 둔 나이와는 상관없이 정확한 발음에 적절한 극적표현 그리고 구성진 수리성과 질감이 풍부한 방울목으로 목을 굴려 공연이 진행되는 2시간을 정교하게 수놓아갔다. ○전 일본 순회공연 가져 특히 「춘향가」중 「오리정 이별」대목은 자진모리 장단을 엇박으로 바꾸면서 원박으로 되돌아가 중모리로 마무리짓는 상성의 극치를 보였다. 이 대목에 이르면 아무리 「소리는 타고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의 소리목에 깃든 공력앞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공연은 그의 전성기인 60∼70년대에 미 카네기홀과 링컨센터에서의 기립박수를 꼽을수 있다. 또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초청한 전일본 순회 공연도 한국 국창의 긍지를 마음껏 과시한 역사적 무대의 하나다. 만정은 평소 겸허하고 따사로우나저속하고 부당한 천격을 용납하지 않는다.후학들이 실수로라도 경박한 언행을 저지르면 그 자리에서 엄히 나무라고 자세를 바로잡아준다.그러나 사소한 일에 연연하거나 사적인 인맥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보다 상대방이 지닌 기량과 미점을 적소에 둘줄 안다. 예를들어 국악계는 계보에 엄격한 편이지만 그는 자신이 키운 성창순을 정권진에게 보내 강산제를 이어받게 했고 신영희를 박초월에게 소개하는등 그 스승의 좋은 대목을 제대로 배울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2년전 동숭아트홀에서 외동딸인 박윤초가 판소리 독창을 열었을때는 딸에게 『너 비위도 좋다.그 소리를 가지고 어떻게 노래하느냐』고 나무라면서도 막상 공연날은 무대에 나와 『아직 미거하나 후진을 키운다는 뜻에서 격려해달라』고 부탁하기를 잊지 않았다.후계자 자리를 딸에게 물려주게 되느냐는 문제도 『제가 잘하면 물려줄 것이요 잘못하면 어쩔수 없다』고 냉정한 면을 지킨다. 만정은 이제 국악계의 어른으로서 국악이 발전되어지는 과정을 그 한가운데서 지켜보는 위치다.지난해 신병으로 협회이사장 자리를 물러나면서 『원래 이사장 자리라는 것은 국악실력보다는 단체를 잘 이끌고 운영할수 있는 실무자가 바람직하다』는 이유로 이성림을 추천했고 이사장 선출로 야기될 마찰을 미연에 방지하는 결단을 보였다. 만정의 어린시절은 모든 「끼」있는 예인의 삶이 그러하듯 모진 가난과 슬픔의 기록이 점철된다. 판소리의 태두인 동리 신재효를 배출한 고창 흥덕에서 출생,부모의 불화로 부친은 타관으로 떠돌고 모친마저 친정으로 가버리자 친척집에 얹혀서 고아처럼 자라났다. ○「천에 하나」 어려운 천재 광주여고보에 들어간 13살 되던해 당대 명창이던 이화중선의 공연을 보고 장래 「소리하는 사람」이 될것을 결심했고 동편제 소리의 대가인 송만갑문하에 입문한지 1년만에 남원명창대회에서 1등,송만갑은 미려청아한 소리를 지닌 어린 소녀를 향해 「천에 하나 나오기 어려운 천재」임을 인정하여 수업료도 받지않고 그의 모든 것을 전수시켰다. 이어서 정정렬에게 「춘향가」를 비롯,화순의 박동실에게 「수궁가」「적벽가」,김계문에게 향제가곡을 사사하고 이승환에게 거문고,강태홍 김윤덕에게 가야금등 금과옥조와도 같은 스승들을 거치면서 국악의 가시밭 길을 무난하게 헤쳐나갔다. 21살에 결혼하여 10년만에 부군을 잃고 3남매를 혼자서 키우면서 속창 속악의 천시속에서 서너명을 앉혀놓고 공연을 한적도 있고 조선창극단 시절에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내용때문에 왜경에게 붙잡혀 유치장 신세를 진적도 있다. ○소희이름 이모가 지어 조선성악연구회에 드나들던 소녀시절 본명 김순옥을 버리고 이모인 김남수씨가 지어준 「소희」란 이름을 가졌다.아호 「만정」은 「날이 갈수록 잔잔히 이름을 날리라」는 뜻으로 사주를 보는 이가 지어준 것이다. 만정은 지난 25년간 살았던 종로구 화동 골목안의 한옥을 떠나 84년 삼청동 쪽에 위치한 소격동으로 이사하면서 비로소 연탄불갈기에서 벗어났다. 지금도 결혼하지 않은 아들(준석·46·상업)과 둘이 살면서 손님이 오면 손수 문을 따주고 제자를 가르치고 밥짓고 빨래한다. 그만큼 그의 생활은 궁핍이 펼날이 없이 조금이라도 여유가생기면 가난한 제자들을 데려다 가르쳤다.지금은 국악계의 중진이 된 김소연 안향련이 그들이고 영화 「서편제」로 스타가 된 오정해는 8년간 이집에 머물면서 그가 세운 서울국악예고를 나왔다. 찬연한 오늘은 참담한 어제가 있었기에 얻어진 결과일 것이다. 지난 1,2년 병치레로 쇠잔해졌을 망정 그에게선 여전히 「닦은 자의 비어있는듯 차있는(수자 여하이유실)」예술불멸만이 돋보인다. 그리고 모진 시간속에서도 국창의 기개를 잃지않아 『만약 그때까지 살수 있다면 팔순 기념무대에 서서 사그라지면 사그라진대로 나의 목을 숨김없이 펼쳐보이고 싶다』고도 말한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화려한 흔적을 감추고 이제 역사의 뒤안길에 서려는 예인의 모습에는 자신을 끝없이 탁마하며 살아온 정제된 아름다움만이 하나의 구둣점처럼 선명하게 찍혀있다. □연보 ▲1917년 전북 고창 출생,본명 김순옥 ▲1930년 흥덕공립보통학교 졸업 ▲1932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2년 수료 ▲1929∼34년 송만갑에게 「심청가」「흥보가」사사 ▲1936년 일본 빅터 오케이레코드 전속,「춘향전전집」취입 ▲1948년 여성국악동우회 설립 ▲1954년 민속예술학원(서울국악예고 전신)설립 ▲1959년 국악30년 김소희 판소리첫번째 독창회(서울 원각사) ▲1962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파리국제민속예술제 참가이후 해마다 세계 각국순회 공연,신호열씨에게 서예사사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제5호 판소리 기능보유자),뉴욕 아시아학회 초청 미국공연 ▲1967년부터 국전서예부 연3회입선 ▲1969년 일본 요미우리신문주최 요미우리홀 공연,전일본지역 순회 ▲1972년 미국카네기홀서 김소희 판소리독창회,뮌헨올림픽 참가공연 ▲1973년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심청가전집」(5장)출반 ▲1977년 불우이웃을 위한 회갑공연(서울시민회관)「춘향전」완창 출반 ▲1979년 김소희 국악50년 기념공연(세종문회회관),고향 흥덕에「만정 김소희여사 국창기념비」건립 ▲1982년 제1회 한국국악대상 수상,첫민요 발표회(공간사랑),민요전집 출반(성음사),이대 한양대 출강 ▲198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동아일보주최 「명창 김소희 판소리의 밤 대공연」(세종문화회관 대강당) ▲1988년 서울 올림픽폐막식 공연,「김소희 구음과 민요」출반(성음사) ▲1993년 국악협회 이사장,94「국악의 해」지정기념 국악제 총지휘 ▲1994년 제1회 방일영국악상 및 11월28일 수상기념공연
  • 관광산업 육성(하남성이 움직인다:4)

    ◎“성전체가 유적”… 북송왕궁 복원 한창/위락시설 개발붐… 외자유치 열올려/석본·당삼채등 문화 상품화… 전통오페라 「상극」 보급도 힘써 요동치는 황금빛 용처럼 하남의 북부를 흐르는 황하.서해로 향한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면 개봉·정주·낙양등 역사의 고도들이 나오고 삼국시대의 격전장이던 첩첩산중의 낮은 구릉지대가 펼쳐진다. 용문석굴·상대국사·소림사·숭산서원·중악묘등 중국역사의 이정표라 할 만한 고적들이 하남의 북쪽,황하주변을 따라 펼쳐져 있다.「중국의 역사박물관」이란 호칭에 걸맞게 성전체가 문화유적지다.중국의 역사유물중 8분의 1에 해당하는 1천3백만건과 전체 탑가운데 6분의 1쯤인 5백30여개가 이곳에 있다. ○탑 5백30여개 산재 「하남의 땅속엔 지하자원과 함께 역사자원도 있다」는 말처럼 중앙정부의 내륙지역 경제개발 추진정책이 세워진 이후 지난 2년여동안 하남성 정부도 문화유적을 경제발전의 중요 수단으로 생각하게 됐다.관광을 지역의 주력산업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특히 소림사,도교의 성지인 중악묘,관우의 사당인 관림,중국최초의 사찰인 백마사등으로 둘러싸여 있는 낙양시는 고신기술개발구에 대한 외국의 투자유치와 함께 관광산업육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지난 92년초 성도인 정주가 개방구로 지정되고 내륙에 대한 외국투자가 밀려들면서 성 정부도 관광산업개발에 열성적이다.최근에는 기업에 대한 합작투자에 이어 위락시설개발을 위한 외국자본의 유입이 늘고 있다. 낙양시 남부,루오난 지역에 대한 필리핀 국적의 화교재벌 정주민씨의 20㎦규모의 상업위락지구 개발 프로젝트도 외국투자의 대표적인 예의 하나.낙양에 별세개 짜리 호텔을 갖고 있는 홍콩의 중성집단도 시 주변에 놀이동산과 골프코스,숙박시설등이 결합된 관광단지개발을 모색하고 있다. 낙양시의 장세군시장은 『시와 성정부차원에서 관광시설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며 『부동산개발과 숙박시설의 확충,지역특산물등 관광상품의 개발,대규모 골프코스의 건설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골프장건설 구체화 장시장은 『시정부의 골프코스개발에 찬반양론이 있지만 경제발전에 따라 7∼8년후면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해외관광객을 끌기 위해서도 아시아 최대규모의 골프코스개발을 구체화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이와는 별도로 시정부는 97년초까지 조우산 부근의 골프장과 별다섯짜리 호텔 개장을 계획하고 있다. 하남성 인민대외우호협회 방홍연부회장은 『이러한 사업들을 위해 한국기업등 외국기업의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낙양시 대외문화교류협회 왕국평이사장도 『관광을 비롯,문화적인 교류확대를 위해 낙양시와 한국의 도시들과 자매결연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벽 14㎞ 내년 완공 이런 개발열기는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낙양을 비롯,개봉·정주·삼문협·안양 등 하남의 도시들에서는 유적의 복원작업이 한창이다.그중에는 단순한 보수작업도 있지만 개봉의 북송왕궁 같은 없어진 유적의 복원작업도 적지않다. 내년말 끝나는 왕궁복원사업중 성벽되살리기 작업으로 2㎞만 더 쌓으면 전장 14.4㎞의 원래 성의 모습을 되찾는다.개봉시는 또 시외각에 영화촬영소와 관광지로 쓰일 2만8천3백㏊ 규모의 동경문화영시성이란 북송시대의 궁궐과 거리,민가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개봉 남쪽 20㎞ 밖의 악비(남송 때의 장군) 사당도 보수작업이 한창이다. 하남성의 주요도시들은 어김없이 도시 축제기간을 갖고 있고 이 기간에 지역의 경제개발구에 대한 투자유치회가 열린다.매년 4월 낙양의 도시축제인 목단제와 개봉의 10월 국화제,삼문협의 황하제,정주의 도시축제의 프로그램에 빠짐없이 외국기업 투자유치회가 들어있다.매년 봄 소림사에서 열리는 세계무술경연대회의 프로그램에도 외국기업인을 위한 투자상담회가 열린다.모든 기회를 사업과 연결하는 중국인들의 주도면밀한 상술을 볼 수 있다. ○“투자없이 돈못번다” 뒤늦게 관광산업에 뛰어든 하남의 각 시정부는 문화상품개발과 지역의 대표성있는 상표개발에도 눈을 뜨고 있다.낙양의 황·녹·백색을 기본채색으로 고령토를 구워 만드는 당삼채를 비롯,삼문협의 옥으로 만든 장신구,그림과 서예작품·수예품·공예품등이 외국인들에게 높은 값으로 팔린다.최근 북경의 경극과 유사한 하남성의 전통 오페라 예극의 보급과 교육을 강조하는 것도 지역 문화의 특색을 나타내 보이기 한 것이다. 중국고대의 묘비를 모아놓은 낙양시 신안현의 천당지제박물관은 외국관광객에게 묘비의 탁본을 중국인의 한달월급에서 석달월급에 해당하는 5백위안에서 1천5백위안에까지 팔고 있다.종이한장에 먹물 몇방울로 근로자들 몇달 노동의 부가가치를 얻어내는 것이다. ○교통발달… 앞날 밝아 역사적 인물발굴과 관련된 관광코스의 개발도 활발하다.역사를 세일즈의 품목으로 삼고 있다.정주시산하 등봉 여유국(관광국)의 곽범죽부국장은 큰 투자없이 현금을 바로 얻을 수 있는 관광산업은 자금여력이 부족한 중국 내륙지방개발의 커다란 추진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직 하남성을 통틀어도 별 다섯짜리 호텔이 하나도 없고 관광부문의 외화획득액이 20개성중 15위밖이지만 하남인들은 이곳의 경제개발과 관광의 미래를 밝게 내다본다.중국의 가운데지역,중원이라는 이름처럼 지리적 조건에다 잘 발달된 철도교통,특히 최근 내륙개발을 위한 도로등 사회간접시설 확충은 관광 및 산업전반의 비약을 약속하고 있다. 하남인들은 21세기에는 하남이 이탈리아나 프랑스처럼 외국여행객들이 꾸역꾸역 밀려드는 관광보고가 되리라는 기대감에 젖어있다.
  • 김부자 우상화로 유명산 “신음”(오늘의 북한)

    ◎자연바위 글발/구호 새긴 나무/금강산 등 기암괴석에 찬양문구 4만자/나무껍질 벗겨 음각도… 산야훼손 가속화 금강산·묘향산·백두산 등 한반도통일 이후 국제적 관광지로 명성을 얻을 북한지역의 세계적 명산들이 김일성부자 우상화 작업으로 계속 훼손되고 있다. 북한당국은 최근 또 다시 묘향산과 금강산 등에 김일성을 찬양하는 글을 천연바위에 새긴 것으로 밝혀져 심각한 자연파괴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북한 중앙방송은 최근 묘향산 유선폭포 옆 1천2백여㎡의 대형 자연바위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1994년 7월8일 새김」이라는 문구를 새겼다고 보도했다.이 문구는 김일성이라는 글자의 경우 한 글자가 높이 3.2m,너비 2.5m이며 나머지 글자는 높이 3.0m,너비 2.3m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북측은 이에 그치지 않고 최근 금강산 내금강 만폭구역 법귀봉에 있는 천연바위에 묘향산에 새겼던 것과 똑같은 문구를 새긴 것으로 북한 선전매체들이 전하고 있다.이번에는 한 술 더 떠 김일성 이름의 경우한자의 높이가 무려 10m,너비가 8m에 이르는 초대형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같은 북한의 자연훼손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북한은 김일성 60회 생일인 72년부터 각지의 명산이나 명소에 이른바 「자연바위 글발」이라고 불리는 김부자 찬양문구를 새기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각인된 우상화 문구는 북한전역에 걸쳐 글자수로 무려 4만자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새겨진 문구도 「주체사상 만세」,「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 장군」따위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내용들이다. 이같은 찬양문구가 가장 많이 새겨진 곳은 금강산과 묘향산 등 기암괴석이 많은 명산들이다.금강산 지역에는 만물상·구룡연·삼일포·만폭동 등 인근 64개소에,묘향산에는 상원동·만폭동 등 26개소에 새겨져 있다. 북한당국은 『자연바위 글발은 「경애하는 수령님」의 위대성과 혁명업적을 칭송한 집약화된 표현형식을 취하면서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그러나 붉은 페인트로 칠해져 흉한 모습으로 북한의 명산을 뒤덮고 있는 「자연바위 글발」들은 제거하기도 매우 어렵게 돼있어 통일 이후 상당한 고민거리가 될 전망이다. 이 문구들은 대부분 바위 깊숙이 음각되어 있기 때문이다.특히 이들은 김정일이 지시한 「기념비 서예의 원칙」에 따라 명승지마다 가장 눈에 잘 띄는 곳들에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이른바 「구호나무」도 자연바위 글발과 함께 북한의 산야를 훼손하는 요인이다. 구호나무란 백두산 등 북한 산야의 나무 껍질을 벗겨 김일성 찬양문구를 새겨놓은 것으로 북한당국은 20∼30년대 김일성을 따르던 빨치산대원들의 작품으로 조작하고 있다.이 구호나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87년 김정일의 45회 생일 무렵이었으며 이후 91년 2월까지만 해도 북한 각지에서 무려 1만2천여점이 「발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장학기금 조성” 8번째 「성북미술전」 열어(은방울)

    ○…성북구는 26일 김기창화백 등 유명 화가,서예가,조각가 등의 작품을 팔아 장학기금을 조성하는 「성북 미술전」을 오는 30일부터 새달 3일까지 구청 5층강당에서 열기로 했다. 올해가 8번째인 이번 미술전에서는 시중 화랑에서의 미술품에 비해 값이 70% 가량 싸 매 전시회마다 전시품이 거의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좋아 성북구민에게 우선적으로 구매기회를 줘왔다고 구는 설명했다. 판매수익금의 절반은 장학기금으로 조성하고 45%는 작가에게 지급되며 5%는 소요경비로 충당된다. 전시되는 작품은 동양화 11점,서양화 10점,서예 5점,조각 3점 등 모두 29점으로 가장 값이 비싼 작품은 국전심사위원인 서세옥화백의 동양화 「소품Ⅰ」「소품Ⅱ」로 작품당 1천만원이고 김기창화백의 산수화 「화조」(화조)는 6백만원,서양화의 경우는 대략 2백50만원대이다.
  • 1만원권 복사 광고 단속/의류할인점 악용 늘어

    ◎“저작권 위반” 고발키로 내년부터 1만원권 화폐를 무단으로 복사 또는 인쇄해 광고용 전단에 사용하면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다. 한국은행은 23일 의류 할인판매 업체들이 최근 광고의 효과를 높이는 방편으로 1만원권 화폐의 도안을 광고용 전단에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나자,변조 지폐로 악용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를 단속하기로 했다. 우선 연말까지는 계도기간으로 설정,신문 광고 및 금융기관 점포의 안내문 게시 등을 통해 화폐도안의 무단 사용이 저작권법 위반임을 알린 뒤 내년부터 위반자를 고발키로 했다. 현행 저작권법 4조1항 4호는 회화·서예·도안·조각·공예·응용미술 작품 및 그밖의 미술저작물은 저작물로서,저작권법에 따라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위반했을 경우 민사상의 손해배상 책임과는 별도로 3년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 조선조 명필 양사언 친필/대형 「비」자 족자 발견

    ◎세로 2백42㎝ 크기 【포천 연합】 조선조 명필 봉래 양사언(1517∼1584)의 친필로 된 대형 「비」자 족자(가로 98㎝,세로 2백42㎝)가 최근 강남대 학술조사단(단장 홍순석교수)에 의해 발견됐다. 이 족자는 봉래의 13대 종손 양재웅씨(31·경기도 포천군 일동면)가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강원도 고성군내 고을 수령으로 재임할 당시인 1564년(명종19년)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로 시작되는 한시로도 유명한 양사언은 해서와 초서에 능해 안평대군,김구,한호와 함께 조선 전기 4대 서예가로 꼽히며 특히 큰 글씨를 즐겨 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강남대 홍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족자는 사료적 가치와 함께 당시의 서체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어린이들 여름방학/환경보호 실천의 계기 삼도록

    ◎오염행위 감시·환경일기쓰기 등 생활화/폐품활용 등 학부모도 자녀들에 모범보여야 16일부터 국민학교 어린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된다.이번 방학은 환경방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가정에서는 아이들의 환경 방학생활을 어떻게 도울수 있을까 고민하게도 된다.『어린시절 보고 들은 것은 어린이들의 머릿속에 아주 선명하게 각인되어 남습니다.또한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어릴적 몸에 익힌 습관이 중요하기 때문에 방학동안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가정에서 환경운동을 실천하면서 배울수 있도록 환경방학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한국교총관계자의 말이다. 이에따라 「환경을 생각하고 보호하며 실천하자」를 주제로 ▲환경오염행위 감시하기 ▲쓰레기줄이고 분리해서 버리기 ▲환경일기쓰기등 3대 과제를 설정,생활화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환경방학」을 맞은 각급 학교에서는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방학생활이 되도록 하기위한 다채로운 과제물과 활동을 제시,환경보호활동에 나섰다. 또한 「환경방학」은 학생들은 물론 교사·학부모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고 판단,가정과 피서지등에서의 연계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가정통신문을 통해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환경보호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하며 자녀들이 환경과제물을 훌륭히 해 낼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학교에 따라 「환경방학」동안 환경관련 책을 읽고 독후감쓰기와 환경보호를 소재로한 그림·서예·포스터그리기,폐품을 이용한 만들기등의 과제를 주고 있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 묘곡국교에서는 이같은 과제와 함께 환경보호에 대한 느낌등을 주1회 기록하는 「환경보존 생활기록장」을 작성토록 하고 여행중 환경관련사진을 제출받아 개학후 전시회도 열 예정이다. 은평구 응암동 연은국교에서는 환경과제물 가운데 우수 사례를 모아 책으로 발간하는 한편 쓰고 버린 공중전화카드·깡통·건전지등 폐품을 모아 마련한 전교생 이름의 「녹색환경통장」저축활동도 방학기간중 계속 벌여나갈 계획이다.이를위해 폐품수거활동에 적극 협조해온 인근 노래방·목욕탕·교회등에서의 폐품수거를 위한 특별활동반을 방학기간에도 운영키로 했다. 이 학교 신원영교감(50)은 『「환경방학」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어린 학생들에게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는 면에서 무척 바람직하다』면서『학교가 환경보호운동의 중심이 돼 학부모등 지역사회로 시급히 확산돼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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