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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산종사 탄생 100돌 앞으로 3년/원불교 대대적 추모사업

    ◎탄생지 경북 성주군일대 성지 조성/법어 번역·대규모 학술대회 추진도 원불교는 오는 2000년 첫 종법사 정산종사(1900­1962)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올해부터 추모사업을 대대적으로 준비한다. 우리 고유의 민족종교인 원불교는 최근 ‘정산종사 탄생 100주년기념사업회’(회장 김삼용·전 원광대총장)를 발족,정산종사(본명 송규)의 뜻을 기릴수 있는 각종 사업계획을 확정했다. 1943년 열반한 원불교 교조 소태산 대종사에게 법통을 이어받은 정산종사는 해방 전후부터 60년대 초반까지 원불교의 기반을 탄탄히 다져 오늘의 교단을 육성한 주역.기념사업회는 정산종사 탄생지인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동 일대를 교단의 성지로 지정하고 부지 1만1천여평을 매입,‘정산기념관’을 건립할 예정이다.오는 2000년 완공될 이 기념관은 순례자의 훈련관과 기도실,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원불교 제2의 성지로 태어난다. 사업회는 또 2000년안에 영남지역에 대규모 공원묘지도 조성하는 한편 청소년 훈련소도 건립하고 문제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안학교’도 대구 인근에 세운다.전북 익산에 중앙총부를 두고있는 원불교가 올해를 계기로 과거 전남·전북지역의 포교에서 벗어나 영남지역 교화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방침이다. 사업회는 또 학술과 편찬,역경사업에도 전에 없는 관심을 쏟기로 했다.98년 익산에서 99년 대구에서 차례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2000년에는 서울에서 대규모 국제학술대회를 연다는 것.또 기념논문집인 ‘정산종사와 원불교사상(가제)’ ‘삼동윤리와 종교협력운동(가제)’ 등을 펴내고 정산종사 법어도 영어와 일어·중국어·에스페란토어로 번역한다. 탄생 100주년 해당년도인 2000년에는 대규모 기념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원불교예술제 사진전서예전 미술전시회 등도 개최하고 정산종사의 전기집필과 삼동윤리의 사회화운동 전개 등도 계획중이며 3년전부터 추진중인 FM라디오방송국인 ‘원음방송국’설립도 추진한다. 정산종사는 9살때 ‘통감’을 읽고 나라를 바로잡는 큰 인물이 되겠다는 뜻을 품은뒤 스승을 만나기 위해 1917년 전북 정읍을 찾아 ‘불법연구회’라는 교단을 창설한 소태산대종사를 만나 그를 스승으로 삼고 원불교 교단을 창건했다.소태산 대종사가 열반하자 그의 유지에 따라 교단발전에 진력,원광대학을 설립하고 원불교역사 ‘불법연구회 창건사’,깨달음의 세계를 읊은 시 ‘원각가’,해방후 국가건설 강령을 제시한 ‘건국론’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특히 열반때 남긴 게송 ‘삼동윤리’는 그의 사상을 대표하는 것으로,소태산 대종사의 일원주의에 입각한 세계평화의 실천이념이 잘 드러나 있다.삼동윤리란 ‘한 울안 한 이치’라는 뜻의 동원도리,‘한집안 한권속’의미의 동기연계,‘한 일터 한 일꾼’이라는 뜻의 동척사업을 일컫는다.
  • 사이비 작가/장윤우 성신여대 교수·공예가(굄돌)

    생활속에서 우리가 두뇌를 통해 의식하는 부분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예술가는 의식 밑에 있는 것,잠재의식과 무의식까지도 끌어올려 형태를 주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영국학자 허버트 리이드는 말했다.능력의 뒤에는 피나는 노력과 고뇌가 수반되기에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게 되며 작품은 존중된다.각종 미술행사와 공모전시가 성행하면서 좁은 관문을 통과하여 작가로 데뷔하거나 수상작가로서 뽑내고 싶어한다.이른바 관전으로서의 국전,시도미술대전,공예대전 등의 비좁은 문과 독주에 낙망하거나 반발하여 생겨난 민전이 갈수록 늘어간다.문제는 유명무실한 민전과 출신작가들에게 있다.서울·중앙·동아·한국등 큰 언론기관 주최의 공모전은 확실한 기준과 연륜으로 역량있는 작가배출에 기여하기에 큰 평가를 받지만 기반이 취약한 군소단체에서 마구잡이로 남발하는 양산 작가들의 행태는 옥석을 가려내지 못하는 대중에게 보이잖는 피해를 끼친다. 서글픈 현실은 돈으로 상을 주고 받거나,작품이 대가로 오간다고도 한다.능력도 없으면서 그렇게나 예술가로 자처하고 싶은가.각종 국내외 전시에 초대되었거나 입상했다는 약력을 즐비하게 달고서 작품전인지 상품전인지 모를 수준미달의 판매전과 자기PR에만 열을 올린다. 빈독이 더 요란하다.두뇌속이 비어있을수록 허장성세가 심하다.표절작으로 입상취소되거나 심사의 불공정도 심심찮게 오르내린다.어느 서예공모전에서는,문예작품도 같은 방법으로 후보자들을 한데 모아놓고 백일장 형식으로 옥석을 가려낸다는 말도 들린다.사이비작가는 얼굴을 붉혀야 하고 난립한 유명무실의 공모전은 지양되어야겠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겸손함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가의 고독.유일무이한 걸작 한점을 위해서 필생을 거는 작가정신이 그립다.
  • 전주 전통부채/단아한 선비의 멋 부채살마다 가득

    ◎한해 합죽선 5만·태극선 50만개 생산/살 많고 고른것이 좋아… 가격 천차만별 ‘단오 선물은 부채,동지 선물은 책력(24절기가 표시된 지금의 달력에 해당됨)’ 단오가 되면 더운 여름철이 가까워지는 만큼 부채가 선물로 제격이고 동지가 가까워오면 새해에 쓸 책력이 선물답다는 뜻의 옛말이다. 부채가 다른 어느것보다 친근한 성하의 계절이 돌아왔다. 에어컨과 선풍기 등 냉방기기의 폭발적인 증가로 부채시장이 크게 위축됐지만 ‘전주 전통부채’가 나름대로 활로를 찾고 있다. 워낙 멋과 품위가 있는데다 옛 것을 되찾자는 최근의 복고적인 분위기도 부채사용 인구를 점차 늘리는데 한몫하는 셈이다. 부채와 관련된 기록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삼국사기다.이 책에는 후백제의 견훤이 왕건에게 공작선을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흥미로운 것은 당시 후백제의 수도가 지금의 전주인 완산이란 점이다. 조선시대에도 전주는 국내의 부채산업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당시 전라도 전역을 관할하던 최고행정기관인 전라감영에 부채를만드는 선자방을 별도로 두고있었으며 최고행정책임자인 관찰사는 해마다 여름이 되면 최고품질의 부채를 궁중에 진상해 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전주의 부채가 옛부터 전국적으로 높은 성가를 얻어온 것은 이 지역의 특산품인 한지와 질좋은 대나무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인 냉방기기가 폭넓게 보급되면서 부채산업은 지난 80년대 이후 한동안 판매량이 절반이하로 뚝 떨어지며 쇠락했다. 결국 전북도와 전주시는 지난 90년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전통문화보존대책의 하나로 전주지역의 부채 제작자들이 한 곳에 모일수 있도록 공예품협동화단지를 주선해주고 조합도 결성했다.공예품을 전시,판매할 수 있는 70여평규모의 공간도 지원했다. 현재는 전주지역에서 합죽선과 태극선을 수십년씩 제작해온 장인 8명이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 전주∼남원간 국도변의 협동화단지에 보금자리를 틀고 부채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단지에서 연간 생산되는 부채는 합죽선이 4만∼5만개,태극선을 비롯한 각종 부채는 40만∼50만개에이른다.합죽선은 국내 유통량의 거의 전부가 이곳에서 생산되고 태극선 등은 국내전체시장의 80∼90%에 해당되는 물량이다. 이밖에 남원지역과 전남 담양지역에서 태극선 등이 약간 생산되고 있으나 미미한 양이다. 다만 요즘엔 값싼 중국산 대나무로 만들어진 부채들이 국내에 상당량 유입되고 있으나 대와 종이의 질,접착상태등 전반적인 솜씨가 전주의 전통부채를 따라가진 못한다. 지난 90년부터 협동화단지에 입주해 작업중인 국내합죽선제작의 1인자 이기동씨(68·전북도 무형문화재)는 “에어컨과 선풍기 등 냉방기기 보급이 늘어났다고 해서 부채의 용도가 완전히 페기된 것은 결고 아니다”면서 “일부에서는 냉방병 걱정도 없고 전력도 아낄수 있는 부채사용을 적극 권장하고있으며 어떤 이들은 아예 부채를 장식용으로 구입해 수요는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단선과 접선으로 나눠 ▷종류◁ 부채는 모양이 둥근 단선과 접었다 펼 수 있는 접선으로 나뉜다.단선은 모양이나 크기에 따라 오엽선과 연엽선·태극선·까치선·공작선·파초선·대금선·중원선·대원선 등이 있다.또 접선에는 합죽선과 백선·칠선 등이 있으며 아동들을 위한 아동선과 민화가 그려진 민화선도 있다.물론 전통 전주부채로는 태극선과 합죽선을 제일로 친다. ○손잡이 재질은 소나무 ▷제작 과정◁ 태극선과 합죽선의 제작과정은 다소 다르다.우선 태극선은 2년이상 묶은 왕대나무를 겨울철에 베어내 1㎜ 두께로 부채살을 만든다.이어 고급비단인 양단을 부채살에 잘 붙여 떨어지지 않도록 응달에서 24시간 가량 말리고 각종 모양으로 끝을 오려낸 뒤 한지로 테두리를 친다.소나무를 재질로 하는 손잡이를 끼우면 마무리된다.합죽선은 이보다 제작과정에 훨씬 복잡하다.합죽선은 대나물를 양잿물에 삶아 진을 뺀 뒤 약 보름정도 말리고 칼로 부채살을 만든다.부채살의 아랫부분에 인두를 이용해 그림을 그려넣는 낙죽과정을 거친뒤 종이를 부채살에 붙이고 그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음 부채살의 끝을 고리로 꿰어 사용한다. ○살 많고 간격 일정해야 ▷좋은부채 고르는 법◁ 일반적으로 부채는 대나무살의 간격이 고르고 가급적 살의 수가많을수록 좋다.태극선은 살 위에 붙은 태극무늬가 정교하고 옆에서 봤을때 구김이 없고 반듯해야 한다.또 부채의 두께가 너무 두껍지 않고 한지를 이용한 모서리의 마감상태가 좋아야 한다.합죽선은 대살이 가급적 많고 가지런해야 하고 대나무와 한지의 접착상태를 잘 보고 구입하면 된다. ○합죽선 최소 2만원선 ▷가격과 구매방법◁ 태극선은 크기나 모양등에 따라 2천원부터 약 5만원까지 매우 다양하다.합죽선은 이보다 비싸 최소 2만원선이며 크기나 부채안에 그려진 그림·글씨에 따라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전주시 완산구 중앙동을 비롯한 시내 중심가의 화랑에 가면 유명화가나 서예가들의 그림이나 글씨를 붙인 각종 크기의 합죽선과 태극선을 손쉽게 구할수 있다.전주∼남원간 도로변인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의 전주공예품특산단지(0652­87­7975)에 가면 전국최고의 장인들이 만든 진품전주부채를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다.
  • 「경기 국보」 100여점 한자리에/경기도박물관 개관1주년 기념전

    ◎불교관련품·서예·회화류 등 다양 지난해 국내 첫 도립박물관으로 문을 연 경기도박물관이 박물관 개관1주년을 맞아 지난 21일부터 용인시에 소재한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경기국보」전시회를 열고 있다. 전국의 기관과 개인이 소장한 경기 문화재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여주는 이 전시에는 국보 7점과 보물 23점,경기도 유형문화재 5건 등 70여건 100여점이 나와 있다.전시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국사편찬위원회,궁중유물전시관,한빛문화재단,국립문화재연구소,서울대·동국대·고려대·이화여대·연세대박물관,목아불교박물관과 개인소장가들이 대여한 것들.불교관련품 10여건,교서·전적류 15건,초상화(영정) 5건,서예·회화류 25건,도자기류 20건,경기도 소재 비문 탁본 8점과 부동산문화재 사진 15점 등으로 구성돼 있다. 경기도에서 생산됐거나 출토된 문화재,경기도와 관련된 사람이 제작한 문화재들로 구성된 전시물들은 경기인의 삶과 모습을 비롯해 멋과 솜씨,불교와 이상세계,정조대왕과 수원 화성의 연관성,경기도내 소재 부동산 문화재의 특성 등경기지역의 문화·역사와 특성도출에 이해를 돕도록 꾸몄다는게 박물관측의 설명이다. 전시물 가운데 광주 금사리계 가마에서 제작된 개인 소장의 국보 제263호 「청화백자산수화조문대호」는 양감이 풍부하고 모양이 준수한 조선시대 백자로 그 자태가 돋보인다.또한 양평군 강상면 신화리에서 출토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제186호 「금동여래입상」은 고구려 불상으로 추정되는 대형불상으로 도금이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어 눈길을 끈다.(8월3일까지)
  • 두권의 한시 에세이집 낸 수필가 심영구씨

    ◎“시를 안다는 것은 선비의 필수덕목”/이규보·임제·이백·두보 등의 80여편 풀이/감각적 대중문화에 빠진 젊은층에 교훈 『일찌기 공자는 「시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우리나라에서도 옛부터 사람을 평가할 때 「시서예악 진군자」라고 해서 시는 선비가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이었습니다.이처럼 시가 생활을 지배했으니 시를 알지 못하고서는 교양인 대접을 받지 못했던 거지요』 서울시교육청 교육위원으로 재직중인 수필가 심영구씨(62)가 2권의 한시 에세이집 「눈물로 베개 적신 사연」(한국편)과 「그리움에 잠못이룬 사연」(중국편)을 펴내 화제다.감각적인 대중문화에 빠져 우리 고유의 혼을 잃어가고 있는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 우리의 정신적 뿌리를 일깨워 주고싶다』는게 그의 의도.도서출판 문학관에서 출간된 이 책은 무엇보다 딱딱한 교과서적 해설에서 탈피,7·5조의 민요조를 토대로 우리말로 옮겼으며 「시적 교훈」이 담긴 테마에세이를 싣고있는 점이 돋보인다. 하나의 예로 그는 「난향」이라는 작자미상의 우리나라 한시에 대한 글을 통해 친교의 법도를 일러준다.『곱씹을수록 그윽한 향이 풍겨나고 여운이 있는 것을 가리켜 난향기청이라고 합니다.사람도 그 경지에 이르려면 심지를 바르게 하고,가을달 같은 품격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해요.향란유인조라고 했던가요.난초의 향기는 종종 은사의 지조에 비유됩니다.처음엔 잘 몰랐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정이 깊어지는 친구를 난우라고 하지요』 요컨대 인간의 겉모습보다는 가려진 심향과 심덕에 가치를 두고 사람을 사귀라는 것이다. 지난 88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심위원은 「이매망량전」「물 아래 뜬 달」 등 문학수필과 「본1 알자」 등 전고에세이를 잇따라 발표,작가적 역량과 한문적 소양을 인정받아 왔다.이번에 펴낸 한시 에세이에서는 이규보·임제·최경창·정지상 등 우리나라 문인과 이백·두보··두목·소응·정호·조식·장위·가도·장계·고적·고병 등 중국 시인들의 작품 80여편을 원시의 정감을 살려 풀이했다. 『옛날에 금강산 바로 아래에서 평생을 살아온 나무꾼 노인이 죽을때까지금강산 구경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금강산 밑에 살고 있으니까 언제든지 산에 오를수 있다고 미루다가 끝내 오르지 못하고 만 것이지요.한시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비슷한데가 있는 것 같아요.중국의 한자문화권과 너무 밀접한 연관을 맺어 왔기 때문에 오히려 한시를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한시는 인문적 교양의 원천』이라는 그는 『입시교육에 치여 인본교육이 희생당하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 서예가 구당 여원구(이세기의 인물탐구:132)

    ◎옥돌과 한지에 아로새긴 선비정신/점·획의 일분서서 현판 글씨까지 멋과 기품/40대에 서법탐구 나서… 천변만화 경지에 서울 신문로 파출소 뒤편에 위치한 구당서실.당호는 글씨와 전각을 뜻하는 현묵헌 또는 단석실로 내걸고 있다.서실에 들어서면 싱그러운 묵향이전에 고서적과 서예관련 자료에 둘러싸여 몸집이 작은 구당은 온통 책속에 매몰된 분위기다.그는 전각을 할 수 있는 공간과 글씨를 쓸수있는 서탁을 따로 마련해서 전각이 되는 날은 하루종일 옥돌을 쪼고 글씨가 되는 날은 먹을 갈아 성자에 몰두한다.글씨도 점과 획으로된 일분서에서 현판 등 대형글씨에 이르기까지 그의 예술은 한창 멋과 기품이 무르익는 경지다. ○실용성보다 정도 고집 그에게 서법의 길을 권하여 직접 서예와 전각을 가르친 여초 김응현은 「구당은 외화를 즐기지 아니하고 진솔을 추구하는 서가로 법도에의 구속을 면치 못하는 고집이 있다」고 말한다. 지난번 구당이 서예계에서는 처음으로 「반야심경」전각이 실린 「구당인존」을 발간했을때 「실용성이 없는 이런 대작을 시도하는 것은 참으로 예술하는 자세이며 구도자의 정신이 아니고는 해낼수 없는 원숙과 저력」임을 격려해 마지 않았다.그의 전각은 「전법 장법 도법을 치밀하게 궁리하고 계산한 호매괴려의 세계」로 알려져 있다.주옥같은 중국의 명필들이 집대성된 서법법첩으로 한금문에서 갑골문,백서와 죽목간을 교습하여 그는 언제부턴가 구당의 서미로 믿음의 신표인 전각을 성립해 낸것이다. 전각뿐만 아니라 그는 글씨에서도 조선일보가 초대한 「구당서전」과 「일분서전」으로 서단의 비상한 존재가 되었다.일분서전이란 문자그대로 작은 글씨전이다.그러나 단순한 선조가 아닌 소자에서 방촌에 이르는 모든 서체를 구사하는 것은 다른 대작과 마찬가지다.다만 필심을 세우고 가장 가는 붓으로 붓끝이 얼마나 지면에 닿아 혈과 육을 형성하느냐에 따라 그 품격이 점쳐지게 된다.점과 획이 뚜렷한 뼈대를 이루면서도 여기에 기운생동하는 정백이 통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파리의 머리만큼 작은 글자인 승두소자나 가는 터럭에 비견되는 호발과 같은 세서를 위한 행필에서도 그는 팔을 굽히고 펴는 모든 수법을 섭렵하게 되었고 그의 자재로운 용필은 여초의 지적에 의하면 「신채를 감지할수 있게된」 경지다.그중에서도 금박가루를 아교에 갠 금니로 쓴 금강경은 예서 해서로 5천400자를 이루고 그 길이는 폭 45㎝에 길이가 5m나 된다.한문성경중 잠언도 1천300자를 써서 10곡 병풍으로 만들고 있다. 구당 여원구는 청장년기를 보내다가 교단과 직장에 있다가 40대에 서법탐구의 길로 용감히 전환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경기도 양평에서 지주이자 한학자이던 여운필씨의 5형제중 장남,양근 향교 전교이던 부친으로부터 6살때부터 한문과 붓글씨를 배웠으나 서예가가 된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치 못한채 고교졸업후 고향에서 교편생활을 했었다.그후 다시 서울에 올라와 제일약품에서 경리일을 하다가 함양 여씨 종친회의 족보간행에 끼어든 것이 서예의 길에 들어선 동기다. ○전각으로 국전 첫 대상 때마침 인사동에서 표구사를 하던 집안의 어른이 「저렇게 잘쓰는 글씨를 경리일이나 하면서 썩히게 할수없다」면서 동방연서회의 여초에게 데려간 것이다.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퇴근후엔 동방연서회로 나와 글씨,그러나 붓잡는 방법조차 달라서 그는 세로획에서의 뾰족한 침을 매달아놓은듯한,이슬방울이 맺힌듯한 현침수로를 익히기 위해 창신동 단칸방에서 식구들이 줄줄이 누워 자는동안 글씨연습으로 밤을 새웠다. 그러나 스승은 딱부러지게 가르치는 대신 『전서를 많이 써라』『책을 많이 보라』고만 했고 세월이 지나자 비로소 「붓을 송곳처럼 세우고」쓰는 현완직필에 녹아들수 있었다.70년이후 동방연서회가 주관하는 행사와 교류전에 작품을 출품하기 시작했고 76년부터 국전 6회 연속입선,다음해 특선과 국전서예부문 대상은 전각으로서는 서예계에서도 최초의 경사였다. 그때 충북 괴산에서 활동하던 청화백자의 권위자인 황규동씨가 직장을 그만두고 괴산에 내려와 함께 일하자고 권유해왔고 만 6개월간 괴산에 내려가 도자기에다 쓴 글씨로 79년 서울 관훈미술관에서 첫전시인 도서전을 열었다.이때 문화재위원장인 임창순씨는 「글씨는 쓰는 사람의 내면의성숙과 외율의 조화이기 때문에 천질만으로는 부족하고 노력만으로도 미치지 못하나 그는 노력과 천질로 청자위에 글씨의 강과 유를 성취했다」고 호평했다. 구당은 성품이 깨끗하고 상냥해서 좀체로 화를 내는 법이 없는 무골호인이다.언제봐도 웃는 얼굴에 다정다감하지만 들끓는 불화가 그치지 않는 서예계에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옳은 말을 하고 자신의 의견을 명료하게 타진시킨다.그대신 도무지 융통성이 없고 막무가내로 비사교적이며 멋적고 쑥스러운 일은 해본적이 없는 천성 선비타입이다.여주 사람인 부인 경석분여사와의 사이엔 3남1녀. 그는 그날 글씨가 되지않으면 처음부터 쓰지 않는다.안되는 날은 하루종일 씨름해봤자 한자도 써지지 않기 때문이다.글씨를 쓰다보면 첫획에서부터 「오늘은 글씨가 된다」「안된다」는 것이 점쳐진다.그러나 일분서를 하기 위해 한번 책상앞에 앉으면 그는 몇날 몇밤을 그곳에 매달린다.그만큼 집념과 오기가 강하다. ○화를 모르는 무골호인 또 연륜이나 나이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지금도 글씨에 필요한것은열심히 배우고 연구한다.동양화가 홍석창에게 사군자를 배우고 당의 이양빙의 전서에 꿰뚫을듯이 파고든다.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게된것을 「스스로 대견하고 행복하게」 여긴다. 이제는 자신의 서법예술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으나 자신이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고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다.「천변만화의 계경에 이르렀다」는 스승의 칭찬도 극구 사양한다.다만 유창탁발을 앞세우기보다 「기하거나 험하거나 삽한 기미가 없이 정직하고 온자한 향기를 지닌 글씨」를 이루기에 전심전력할 뿐이다. 요즘은 천자문 전각을 완성하고 이를 책으로 출간,눈부신 옥돌에 심선을 새기고 청결한 백지에 묵향을 뿌리면서 자신만의 서법언어로 낭랑한 지음을 울리고 있다. □연보 ▲1932년 경기도 양평 출생 ▲51년 서울농고 졸업 ▲73∼91년 동방연서회전(서울) ▲76∼81년 국전연속 6회입선 ▲79년 동아미술제 미술상수상,도서전(서울 관훈미술관) ▲78∼86년 국제서도연맹전(도쿄),한국서예가협회전(서울) ▲80∼92년 한국전각학회 이사 ▲81∼86년 한중서법전(서울·대북),한일서예교류전(서울·도쿄) ▲82년 국전 특선 ▲83년 국전서예부문 대상수상 ▲83∼88년 국제서도연맹이사 ▲84년 개인전(롯데미술관) ▲84∼91년 국립현대미술관초대전 ▲86년 한불수교 1백주년기념전 ▲87년 동아미술제 심사위원 ▲88년 국전심사위원,한국서예 백년전(예술의 전당) ▲88∼92년 동방연서회및 국제서법예술연합이사 ▲89∼91년 한국미협 이사 ▲91년 단국대 교육대학원졸업,전국대학미술대전 심사위원장,대한민국 서예대전 운영위원장,서울서예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장 ▲92년 개인전(조선일보미술관) ▲93년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국제전각대전 평심위원(북경) ▲94년 동아미술제 운영위원 ▲96년 구당일분서전(덕원미술관) 〈현재〉 한국미협 및 한국전각학회부이사장, 국제서법예술연합 및 동방연서회 이사 〈저서〉 「구당인존(상·하)」 「반야심경인보」 전각 「천자문」외
  • 조선후기∼현대 서예·화가 부채그림전/새달 11일까지 대림화랑

    ◎감홍도·이응로 작품 등 90여점 선보여 조선후기시대의 서화가부터 근·현대 유명 화가·서예가들의 빼어난 그림과 서예가 담겨있는 부채그림전인 선면전이 지난 29일부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대림화랑(733­3738)에서 열리고 있다.6월11일까지. 대림화랑이 그동안 수집해온 각종 부채를 비롯해 개인 소장품들이 다양하게 나와있는데 겸재 정선,단원 김홍도 등 18∼19세기 조선후기 화가를 비롯해 근·현대 한국 화단에서 굵직한 선을 남긴 유명 작가들의 작품 90여점이 선보이고 있다. 산수,화조,사군자 등이 주로 그려진 이들 부채중에는 윤두서 윤덕희 일가 3대 화가에서부터 이상범 변관식 김은호 허백련 박생광 이응로 등 근·현대 대표작가의 그림이 담겨있는 작품,그리고 김정희,조희룡,정병조,김돈희,민태호 등 조선말기와 근·현대 서예가들의 작품도 눈에 띈다.
  • 진보문학단체 「기사」의 무대 송강(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7)

    ◎항청투쟁 불지른 저항시인의 한맺힌 절규…/소곤산 자락끝 하윤이부자 무덤 비석 외로이/“항청복국” 부르짖던 옥중시 4백편 그날을 증언 들 넓고 물 많은 땅에 배 따뜻하면 무슨 근심이겠냐고 하지만 꼭 그런 법만은 아니다.명말때 문학의 실용성과 현실성,그리고 반만청의 혁명에 참여,장렬하게 희생당했던 「복사」나 「기사」 등의 문학단체들은 바로 상해를 중심한 남북근교,곧 태창·곤산·송강 등지의 시인이었고,뒷날 반만청과 반봉건을 주창했던 문학의 진보단체 「남사」가 또한 소주와 오강을 중심으로 전개됐다.그곳들은 일망무진의 평원이라서 풍요로운 곡창이요,바다가 가까워서 근대화의 전진기지였다. 그중에도 「기사」의 성원들인 진자룡(1608∼1647),하윤이(1596∼1645),하완순(1631∼1647) 등은 모두 송강 사람이요,따라서 기사의 무대는 송강인 것이다. 상해시에서 서남쪽으로 30㎞쯤 벗어나는 곳,송강은 옛날 화정·운간·곡수·송릉·입택 등으로 불리웠는데 모두 시정이 물씬하다.상해의 근교라서 근대의 문물을 타고 중국 최초의 천문대와 중국 최대의 성당으로 사산 천주당이 있는가하면 서진때의 유명한 평론가 육기와 명나라때 서예가 동기창이 모두 여기 사람인데다 중화민국국부였던 손문이 그의 혁명단체 「동맹회」의 전국총회를 소집했던 곳도 바로 송강시내에 있는 명청대의 원림 취백지의 설해당이었다. 송강의 문단 맥락이나 산수 경개도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1934년 편찬한 「중국문학가사전」에 수록된 송강 출신의 문인이 90명이요,「중국미술가인명사전」에 수록된 미술가가 586명이라는 통계만으로도 문학예술의 맥을 알겠거니와 송강에는 봉황산,육보산,사산·소곤산 등 9봉이 있고,원림이 상기한 취백지말고 강남의 으뜸이라는 방탑원이 있다. 그럼에도 숭정초(1628∼) 이 고장에서 발족된 「기사),그 주요시인은 한결같이 장렬하게 순국했다.태창·곤산지역에서 먼저 발족된 「복사」처럼 명나라 초엽 소위 「전후7자」의 복고운동을 계승한 동인이다.그를 「기사」로 일컬음은 바로 「끊겨진 학문을 재기하는 기틀(기)」이란 뜻이었다.그러나 그들은 진보적이었다.정치의 진화를 강조하면서 민족의 단결을 호소했다.그래서 현실을 반영하는데 문학의 족쇄를 풀었고 만청에 항거하여 순국의 시를 쓰다가 그 저항은 강희연간까지 불길을 지폈다. 「기사」의 맏형격인 하윤이는 한때 복건의 장락지현을 살았건만 기사를 창립,청병이 침노하자 울분끝에 투신 자살했고,「복사」의 후기수령인 진자룡은 「기사」를 창설 주도하고 그의 웅혼하면서도 창량한 시를 무기로 항청 투쟁에 참여했다.그는 명나라의 멸망과 함께 강남 각지를 전전하면서 의병 투쟁을 벌이다 소주에서 피체,남경으로 압송 도중,하윤이처럼 강물에 투신 자살하고 말았다. 하윤이의 아들 하완순은 나이 겨우 13살로 진자룡의 의병을 따르다가 청군에게 피체,열여섯 꽃같은 나이로 처형당했는데 그는 법정에서 최후까지 오랑캐들의 만행을 규탄했다. 더욱 놀랄 일은 하완순이 어린 나이임에도 영웅열사를 가송하거나 항청복국을 절규하는 옥중시를 4백편이나 남겼는데 그가 청군에게 압송될 때 그의 향리를 마지막 작별하면서 썼던 「운간을 이별하며」는 천고의 절창이다.「삼연기여객,금일우남관. 무한산하누,수언천지관. 이지천노근,욕별고향난. 의백귀래일,영기공제간.」 「3년을 타관 떠돌다가/이제는 또 한번 옥 살이. 저 산하가 모두 눈물인걸/누가 이 천지를 넓다하랴! 이제 가면 황천길이지만/고향 떠나기 이토록 어려울 줄이야! 이 젊음,넋으로 돌아오는 날/하늘가에 가물거릴 혼령의 깃발이여!」 참으로 장렬했다.한낱 열여섯살 소년 시인의 목숨이 이토록 아름답게 메아리 칠 줄이야. 그들 부자는 나란히 묻혔다.송강서 서북쪽 13㎞쯤 소곤산 낮은 산자락 저 끄트머리 양지쪽 탕만촌뒤에 쓸쓸히 묻혔다.비록 그 동남쪽에 수수라는 작은 시내가 굽이 돌았지만 그들의 넋을 위로할만한 여울이 들리거나 솔바람 소리조차 스쳐가지 않았다.쓸쓸한건 하윤이 부자의 무덤만 아니다.서진때의 대시인이요,대평론가였던 육기와 그 아우 육운이 여기 소곤산 양지쪽에 살았다는데 아무런 자취도 찾을 길이 없다. 진자룡의 무덤은 훨씬 화려했다.역시 송강에서 서북쪽으로 10여㎞쯤 진산 못미쳐 왼쪽으로 광부림이라는 마을,그 동쪽 평지에 동향으로 앉았는데 그는 청나라 건융때 충유라는 시호를 얻은데다 묘비에 묘전,묘정등 세가지 특혜를 누리고 있었다. 이들 「기사」의 장렬했던 시인들,그 무덤들을 순례하고 다시 송강으로 돌아왔다.그 유명한 방탑원과 취백지를 한바퀴 돌아야만 했다.어쩌면 「기사」들의 족적이 거기에 남았을지도 몰라서였다. 송강시 중산동로에 자리한 방탑원은 중국 강남에서 손꼽는 원림이다.그 안에는 북송,1068년에서 1094년 사이에 세운 높이 42.5m,누각형 9층의 전목을 함께 쓴 방탑을 비롯,명나라 홍무 3년(1370),방탑의 북쪽에 세운 도교의 부조로 새긴 조벽,그리고 방탑의 3층에 그려진 송대의 불상화와 송교 등이 있다. 필자는 무엇보다 날씬한 몸매에 펄럭이는 치마 모양의 방탑,더구나 서북쪽으로 약간 기우뚱하여 언젠가 피사의 탑을 닮을지 모를 방탑과 용의 대가리에 사자의 꼬리,소의 몸통에 사슴의 발톱에 기린의 비늘을 지닌 탐이라는 괴수가 세상의 보배를 지니고도 모자라 하늘의 해를 삼키려 쫓다가 그만 바다에 빠지고 마는 그 부조가 인상적이다.그런가하면 단 한장 널찍한 화강석으로 덮개를 삼은 송교와 찰랑하게 물이 찬 연당을 살짝 덮도록 가설된 널찍한 부석교는 고전미와 현대미를 융합했다. 청대 초엽,당시의 부호 고대신이란 사람이 백낙천을 흠모하는 뜻으로 시공했다는 또 하나의 원림인 「취백지」도 운취가 그윽했는데 이러한 경개가 시인을 기르고 「기사」를 형성했는지도 몰랐다.
  • 글씨체 도용 영화업자에 한자당 1천만원 배상판결(조약돌)

    ○…서예가의 글씨체를 포스터에 도용한 영화제작업자에게 한자에 1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져 눈길. 서울지법 민사합의 12부(재판장 서태영 부장판사)는 25일 여태명씨(원광대 서예과교수)가 영화 「축제」의 제작업체인 태흥영화사를 상대로 낸 저작권침해금지 등 청구소송에서 『영화사는 여씨에게 2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
  • 등소평 사망­중 이끌 5인의 실력자

    중국을 현대화한 카리스마적 지도자 등소평이 사망함에 따라 등없는 중국의 미래에 세계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강택민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지도자들은 등과 같은 지도력과 카리스마적 권위가 없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강을 중심으로한 집단지도체제가 유지되며 권력투쟁의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등이후의 정치역학 구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실력자들을 알아본다. ◎강택민/개방정책 지휘한 등의 적자/상해·기술관료 출신… 추진·포용력 돋보여/대중적 카리스마 부족… 군부기반도 취약 「강철 미소」.북경외교가에서 강택민을 평하는 말이다.부드럽고 여유있게 보이는 이면에 치밀하고 끈질긴 추진력을 평하는 말이다.각 부문을 통괄하고 무리없이 이끄는 포용력은 등소평도 크게 평가했다고 한다.문제를 파악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지도력도 그의 장점으로 꼽힌다.현재와 같은 중국의 집단지도체제에선 강과 같은 적격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다른 지도자들의 입지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점진적으로 지도력을 강화해 나가고있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강은 명문대(상해 교동대)를 졸업한 전형적인 기술관료(테크노크래트)다.지난 95년 한국방문때 삼성전자 등을 둘러볼때 전문지식과 식견으로 주위를 놀라게 할 정도다.그러나 특유의 인화력과 포용력으로 조정과 막후 교섭등 정치력이 돋보인다는 평이다.지난 89년 천안문사건으로 전국이 혼란에 빠졌을때 상해서기로서 유혈사태를 피하면서도 시위대를 적절히 제압하는 「성과」를 거두어 등소평의 점수를 얻었다.그는 강소성의 비교적 넉넉한 학자집안의 자제다.그가 영어·러시아어 등 외국어에 능통하고 서예와 그림,중국전통악기 및 피아노 다루기 등에도 조예가 깊은 것은 그같은 집안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이붕에 비길수 없지만 그의 양아버지인 숙부가 공산당원간부로서 이선념·장애평·진의 등 신4군 수뇌들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이같은 출신배경도 그의 능력과 함께 출세의 밑천이 됐다.인민해방군의 거목인 이선념은 생전 그를 적극 지원했었다.강택민은 상해시 당위원회 부서기·서기·시장 등을 거치면서 중앙의 인정을 받았다.상해가 권력의 기반일뿐 아니라 출세의 발판이고 그의 고향도 넓게 범상해권에 속하는 강소성이다.상해의 식품공장과 비누공장에서 기술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뒤 기계공업부와 전자공업부 부장 등으로 기술관료로서도 엘리트코스를 거쳤다. 그의 뒤에는 상해파벌의 대부격인 왕도극이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오방국·황국·서광적 등이 다 그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는 소위 「상해방」이다.그는 증경홍 당중앙판공실 주임을 정치국으로 끌어올리려는 등 계속 상해출신의 진용을 강화하고 있다.94년 14기4중던회 때 상해시장 황국과 당시 당서기 오방국을 정치국원으로 진입시키는 등 주위를 두텁게 하고 있다.등소평에 의해 뽑혀 올려왔지만 지난 8년동안의 최고지도자로서의 입지 강화해 모택동에 의해 선택된 화국봉처럼 쉽사리 뽑혀나갈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그러나 국가지도자로서 카리스마나 구체적인 치적이 없고 취약한 군부의 지지기반 등이 그의 아픈 곳이다. ◎이붕/보수파 대변 태자당의 리더/거미줄처럼 깔려있는 관료인맥이 강점/천안문사태 강경진압 지휘… 대중반감 커 이붕 국무원총리는 지난 8년여동안 강택민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쌍벽을 이루며 중국을 이끌어 오고 있다.이미 79년 국무원 전력공업부 부부장으로 중앙에 진출한뒤 국무원 부총리(83년),중앙위원 겸 정치국위원 등을 거친 기술관료로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중앙위원이나 정치국원도 강택민보다 먼저 올랐다.제3세대 기술관료들의 본산인 소련유학파의 수장격으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관료인맥의 대부격이다. 87년이후 10년 가까운 총리직을 통해 각 지방에 자신의 인맥을 상당히 확보해왔다.정부를 통괄하는 국무원 판공실주임 라간 등도 그의 수하다.최근 그는 지난 95년 북경시의 진희동·왕보삼사건 등으로 곤경에 몰리는 등 강택민의 상해파에게 밀리는 듯 위축된 모습이다.그러나 그의 경력과 배경은 앞으로 전개될 권력투쟁에서 강점으로 꼽힌다. 그는 중국 공산혁명 제1세대의 적자로 비유되는 소위 로열패밀리의 성원이다.아버니 이석훈은 장개석 국민당군에게 처형된 「혁명열사」고 어머니 조군도도 열렬한 핵심당원이었다.그의 외가는 혁명1세대의 핵심성원이다.고아가 된 그는 혁명1세대들에게 「우리들의 아이」로 키워졌고 특히 주은래와 등영초의 양자로 성장했다.진운은 사망했지만 당원로 팽진·등력군 등은 그의 배경이 되고 있다.또 중국 정·관·군의 주류로 건재한 로열패밀리출신의 「태자당」들의 구심점이란게 무엇보다 그의 강점이다.이같은 배경은 그의 생각과 행동을 보수적인 성향을 갖게 한다. 이붕은 그러나 지난 89년 천안문사건때의 강경진압 주도자라는 부담을 지게하고 있다.진압의 총지휘자인 등소평이 사라진 마당에 천안문의 부담은 더할 것만은 분명하다.이붕은 연임제한규정에 묶여 오는 98년초 총리직에서 내려와야 한다.아직 그에게 마땅한 자리는 없는 듯하다.강택민·오방국·황국 등을 주축으로한 상해파가 계속 북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의 입지가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시장개방정책과 국유기업개혁 등 경제체제개혁이 심화돼 부작용이 높아질수록 그의 발언권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중국의 방대한 관료체계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상층부 인사들과의 인적관계,총리 등 당·정 지도자로서의 엘리트코스 등은 그가 1인자는 될 수 없어도 영원한 2인자,견제세력으로의 위치를 지키게 할 것으로 보인다. ◎교석/온건·합리… 서열3위 중도파/개혁·보수파 조정역… 전면 나서진 않을듯 올해 74세의 교석은 당 공식서열 3위로 국회의장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맡고 있다.절강성 출신으로 대학시절(상해 동제대) 상해학생운동의 총지도자였다.당조직부와 정법부문에서 오래 근무해왔다.공안부 및 검찰·감찰업무를 총괄하는 정법위원회 서기 임건신,부정부패처벌 등을 총괄하는 기술검사위원회 서기 위건항 등이 모두 그의 직계로 꼽힌다. 천안문사건 당시 강경진압에 기권의사를 표시하는 등 온건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전인대 상무위원장직을 맡은 이후 전기운부위원장의 지지 아래 전인대의 정부에 대한 감독·비판역할을 강화하고 있다.또 법률정비 및 법치제도 완비추세 속에 각종 법률제정 등을 주도하며 보이지 않게 중국사회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강택민 서기의 선배격이며 당조직 부부장 때는 현재 중국지도부의 거의 대부분을 발탁,관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발이 넓다.빠른 판단력에 기분과 의사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 성격은 그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결정적인 순간 그의 동의는 더욱 무게를 갖는다.그러나 개인적으로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위사람의 이야기다.사실상 실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란 것이다.한때 「강락석출(강택민은 떨어지고 교석이 등장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일반의 인정을 받고 있다.「불편불기,심장불로」로 요약되는 그의 조심성과 균형 있는 처신은 전환기를 맞아 정치적 힘을 배가시킬 것으로 보인다.중앙대의연락부 부장,중앙당교 교장 등 당·정 핵심요직을 두루 거쳐 넓은 인맥도 강점이다.또 최근 해외나들이 등 국회외교를 보여 주목받기도 했다.실질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경제개혁·개방에 이어 정치적 개혁의 바람을 주도할지 그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조자양/개방의 전도사… 대중적 인기/천안문사태로 실각… 세력잃어 재기 의문 소년 홍군병사 출신으로 총서기에 올랐다가 「급진」자유주의적 견해 때문에 권좌에서 추락한 올 79세의 조자양은 개인적인 권력기반보다는 중국 자유주의사조의 부침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의 입지변화의 귀추가 주목된다.89년 천안문사건 당시 천안문광장에서 학생과 얼굴을 맞대며 설득을 시도하던 그의 실각도 8년여가 되지만 개혁·개방정책의 주도자로서의 그의 명성과 성취는 기존지도자들을 위축되게 한다.경제성장,개혁·개방의 전도사란 말은 늘 그의 성공을 수식하며 따라다니는 말이다. 그만큼 그는 지금도 요주의인물의 하나로 감시받고 있다는 것이 북경외교가의 이야기다.이미 정치의 꿈은 버렸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그의 복귀가 현정권 자체에 위협시되고 있는 것이다.그는 성장시절 빈곤에 찌든 사천성에 빈곤추방을 시작해 대성공을 거두었다.「곡식 먹고 싶거든 조자양에게로 가라」는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로 그의 경제개혁은 성공을 거두었다.그는 중앙무대에서도 혁명세대와 혁명후 전문기술관료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며 입지를 다져왔었다.그는 1932년 13살의 나이에 중국혁명에 참가한 소년병 출신이다.양상곤의 다음세대인 2.5세대로 평가된다.80년대 개혁·보수의 힘겨루기 속에 급진적 정치·경제개혁을 추진하다가 천안문사태로 「동란을 지지하고 당을 분열시켰다」며 정치적 매장을 당해야 했다. 그는 지방의 자율성과 중앙권력의 지방이양을 강조,지금까지도 지방세력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특히 80년대 호요방에 의해 형성된 기술관료층이 현집권세력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복귀를 두려워하는 현정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그러나 세력기반이 뿔뿔이 흩어져 재기는 의문시된다. ◎양상곤/군부 영향력… 킹 메이커 노려/「천안문」 강경진압 주역… 나이도 너무 많아 양상곤이야 말로 등소평없는 중국에서 당·정·군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로다.그는 인민해방군의 창설자의 한명이자 중국공산당의 원로며 전임 국가주석겸 권력의 핵인 당 중앙판공실 주임을 20년가까이나 맡았다.실권은 없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즉 중국국내의권력투쟁이나 분쟁이 가열되고 문제해결이 어려워질 경우 그의 발언권과 선택이 상당한 무게를 갖는다는 점에서 그의 향배는 앞으로의 주요 변수로 꼽히고 있다. 올해로 91살이지만 쉬지않는 지방시찰 등으로 정력적인 활동으로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그는 95년 광동성,96년 동북3성을 순회한데 이어 올해초에도 주해와 심천 등을 시찰하고 개혁개방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중국건립 당시 팽덕회가 지휘하던 제3군의 정치위원이었다.양상곤은 지난 93년10월 정치 연소화란 구실로 권좌에서 밀려났다.실은 그와 그의 이복동생 양백빙의 군에 대한 장악력등은 강택민정권의 가장 큰 위협세력이 된다고 판단한 등소평의 기습으로 군의 실세였던 양백빙과 함께 실권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다. 그 역시 이붕처럼 89년 천안문사건때 「손에 피를 묻힌」강경진압자중 대표인물이다.부담을 벗어버리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천안문사건의 강경진압주장과는 달리 그는 비교적 유연한 사고와 실용주의적 노선이 지지자로 평가된다.나이 때문에 권력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없지만 유사시 「킹메이커」는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문화혁명때 주자파로 몰려 66년부터 13년동안 소련간첩 혐의를 뒤집어쓴채 감옥생활을 한 쓰라린 과거도 있다.등소평과는 고향도 갖고 깊은 친분을 갖고 있다.〈북경=이석우 특파원〉
  • 「예술의 전당」 10년(사설)

    예술의 전당이 15일로 창립 10돌을 맞는다.지난 87년 법인등록이후 88년 음악당·서예관 개관,90년 미술관·예술자료관 개관,93년 오페라하우스 개관으로 완성된 국내 첫 본격 복합문화공간인 예술의 전당은 지난 10년동안 한국 문화예술의 중심축으로 기능해왔다. 지금까지 이곳을 찾은 관람객은 연인원 8백29만여명에 이르고 올해 안에 1천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전속예술단체를 갖지 않았으면서도 자체 프로그램을 기획,공연문화의 새 틀을 짜는 등 국내 다른 문화공간보다 앞선 예술행정을 펴왔다.그런 점에서 예술의 전당 10년은 축하받을 만하다. 그러나 예술의 전당이 공연때만 잠시 들르는 부담스러운 곳이 아니라 시민이 즐겨 찾는 문화휴식공간이 돼야 한다는 과제는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내외적인 변화가 시급하다. 건물은 문화체육부,대지는 문예진흥원,운영은 예술의 전당이 맡고 있는 현재의 비영리재단법인의 위상을 우선 바꾸어야 할 것이다.예술의 전당 운영예산(연간 2백20억원)은 국고지원(약40억원)과 방송광고공사 공익자금(약40억원) 및 임대료·공연수입·후원금 등으로 이루어지지만 해마다 50여억원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어느 나라도 대형문화공간은 재정자립을 못하는 만큼 재정지원을 늘리거나 자체수익사업과 후원회의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이는 특별법을 통해 예술의 전당을 특수법인화하면 해결할 수 있다.따라서 지난해부터 시작돼 아직도 정부 관계부처협의가 끝나지 않은 특별법의 제정이 빨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별법제정과 함께 운영의 실질적 독립도 이루어져야 한다.문화예술행사는 3∼5년전에 계획이 수립돼야 하는데 예술의 전당에 필요한 올해 정부예산은 지난 1월말에야 확정,통보됐다.이런 경직된 행정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예술의 전당이 정보화·문화산업시대 국가적 문화이미지의 중심체역할까지 해낼 수는 없다.
  • 서예가 조수호(이세기의 인물탐구:120)

    ◎석고문을 법첩으로 독창적 행장구축/“글씨보다 인품”… 흐트러짐 없는 자세 일관/“개인전은 최상의 기량때 일생 한번” 고집 동강의 글씨는 패기와 강유를 겸하고 그의 난죽은 칼날 같고 풋솜 같고 세찬듯 부드럽다. 음악에 음조가 있듯이 명필에는 선조가 숨어 있다.옛대가의 서체를 두루 완수한 동강의 행초는 「천변만화를 구사하는 경지」에서 일생일작을 놓고 냉엄한 생사의 소명을 수행하는 시기다. 그는 서단에서는 여러 모로 남다른 존재다. 첫째 서예가로서는 드물게 서울대 미대 서양학과를 졸업했다.동양화가 아닌 서양화를 전공한 것은 서구적인 미학의 특성과 이질감을 접목하여 동양예술을 심도 있게 탐색,창조하자는 의도에서다.둘째는 미대재학중 「사군자」성적이 「100점」 만점을 기록한 일화가 있고 25세인 49년 제1회 국전 특선이후 57년부터 연 4회특선,아직 30대초반에 국전추천작가·심사위원·운영위원을 역임하는 등 만만치 않은 기세로 서단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서양학과 전공 이색경력 또 서예를 보는 눈과 이론에 정연하여 강물처럼 쏟아내는 명강의로 유명하다.84년,중국정부주최로 열린 「안진경 서거 1천2백주년 기념 국제서법학술대회」에서 그가 강의한 「안진경의 위치와 중국서법에 끼친 영향」은 중국서단의 거봉인 요몽각·우우임을 감동시켰고 그 내용이 중국 문화일보에 전면게재된 바 있다.이에 앞서 「예술의 파죽지세」로 지칭되는 그의 대작 「난죽도」를 대북의 역사박물관과 중국서화회겸 중국서법학회 이사장이던 마수화와 황군벽이 구입하여 소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강의 예술관은 「글씨에 앞서 고매한 인품을 먼저 형성시켜야 한다」는 자세가 굳건하다.문자의 의상에서 창출되는 서예술은 글씨의 점과 획,장법도 중요하지만 「부단한 노력과 수련을 통해 진실을 발견해야만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는 지론이다.그런 맥락에서 그는 「누에가 실을 토할 때」의 「여잠토사」와 「송곳으로 모래를 그린다」는 「추획사」의 명언을 가슴에 새기고 언제나 한점 흐트러짐이 없는 엄숙하고 경건한 심신과 팽팽한 긴장감으로 붓을 잡는다. 그가 좋아하는 법첩은 전예해행초가 모두 들어 있는 「석고문)」을 최고로 꼽고 있다.「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는 천가지 비문을 배워야만 비로소 글씨를 이룰 수 있다」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젊은 시절에는 왕희지와 안진경·구양순을 임서하는 과정에서 글자의 형태에 중점을 두는 「형임)」과 운필과 필세를 체득하는 「의임」,마음속으로 외워서 쓰는 「배임」의 과정을 섭렵한 끝에 자신의 체질에 맞는 정묘하고 유심한 행초의 세계에 접근하게 되었다. ○정연한 논리의 달변가 그는 고향인 경북 선산에서 국민학교에 다닐 때부터 이웃의 부탁을 받아 「입춘대길」을 쓰기 시작했다. 한학에 조예가 깊은 전통사회의 엄격한 집안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묵향에 젖어들게 되었고 대구사범 심상과에서 현재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의 부친인 우당 김용하 선생에게 서예와 교육심리학을 배웠다.그때 스승이 추천해준 왕희지의 「난정서」와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은 서법수업에서 일생의 지침서가 되었다. 평소의 성격은 괴팍하며 불의가 싫은 나머지 이에 저항하는 기질이과격한 편이다.가식과 겉치례를 경멸하고 현실과 의기투합한 속물적인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친구의 범위도 산정 서세옥이나 오정 김진해에 한하고 생존해 있는 유일한 스승인 월전(장우성)을 극진히 모신다.지금도 청년같이 건강하여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정의감은 「원문 한줄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국전이나 서예전에서 입·특선하는 기미가 보이면 추호의 용서없이 몰아붙인다. 『나에게 순탄하고 행복한 역정을 지내왔다고 하지만 나나름대로 고통과 인내,탄압과 분노,좌절과 희망으로 점철된 청춘기를 보냈다』고 그는 돌아본다.『국민학교 교사로 있던 일제시대에는 사상이 불온한 반일교사로 지목되어 왜경의 감시에 시달리다 징병으로 끌려간 적이 있고 6·25때는 굶주림과 뼈저린 외로움을 겪었으며 죽음을 넘긴 여러 번의 체험 탓인지 어떤 일도 함부로 포기하는 일이 없어졌고 침식을 거르고 작품제작에만 몰두하면서 자신의 운명에 책임과 용기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수많은 국제전에 출품하고 국제서법학술대회에 참여하면서도 75년 문예진흥원이 주관한 국전초대작가상 수상기념전에 응한 것 외에 서울에서는 정식으로 개인전을 연 적이 없다.이에 대해 동강은 『자연의 사계가 다르고 해마다 피는 꽃의 자태와 빛깔이 다르듯이 나만의 빛과 나만의 자태와 나만의 향기가 절로 우러나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새롭고 신묘한 기운」이 현현할때 일생 단 1회 개인전을 생각할 수 있다』고 밝힌다.다만 그 시기는 예정된 것은 아니지만 첫특선이 50주년이 되는 99년에 지금까지의 화업과 서업을 한자리에 펼쳐 스스로를 돌아보고 검토하고 반성하는 자리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다. 90년 서울교대 정년퇴임후 종로3가 세운상가에 있는 서실에 나와 그는 아침부터 난과 죽의 은은한 향기를 눈부신 백지에 뿜는다.일생을 걸고 한판 승부를 건 듯한 그의 서체는 세상을 질타하는 듯한 필획과 결구를 표출하여 「한획보다는 한폭에 흐르는 탐신의 미학이 구축된」 독창적 풍모다. 가족은 「글씨를 사랑하여 나를 따르던 묘령의 착한 소녀가 어느새 백발로 변한 아내」와 장남의 가족과 함께 종로구 구기동에서 살고 있다.아호는 달 밝은 밤이면 강이나 산으로 밤새도록 헤매는 습성 때문에 스스로 「월명」을 지어 가졌으나 고향이 낙동강부근이라는 데 착안하여 소전(손재형)이 「동강」을 내려주었다. ○퇴임후 종로에 서실 내 사람과 글씨가 함께 무르익는 「인서구로」를 지나 「마음속에 이미 대를 그리고 있는 흉중성죽」을 성취한 동강은 「묵과 획이 서로 화목하고 운치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심오한 유현의 세계를 유유자적으로 누리는 시기다. 그러나 「예술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예술가는 선택된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것과 「예술가는 자기노래를 부르면서 자기자신을 발견하고,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태워나가는데서 희열을 느낀다」는 진언은 바로 자신을 향한 심혼의 혈서일지도 모른다. □연보 ▲1924년 경북 선산 출생 ▲45년 대구사범 심상과 졸업 ▲47년 서울대 미대 서양학과 입학, 전국대학생미전 「고궁」특선 ▲49년 제1회 국전 서예부문 「어부사」특선 ▲57·58·59·60년 국전 서예부문 연속4회 특선 ▲51년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졸업, 김용진·손재형·김용준·장우성사사 ▲62년 국전초대작가·심사위원·운영위원 ▲68∼90년 서울교육대학 교수 ▲74년 국전초대작가상 수상 ▲75년 초대작가상수상 세계일주기념전(문예진흥원 미술회관) ▲77∼83년 제1·2·3회 아시아현대서화명가연합전 대회장 ▲76년 한중교류전(대북역사박물관) ▲78∼81년 문교부 1종도서 중학교서예교과서 개발위원장 ▲81년 중화민국 중화학술원서 명예철학박사,중국정부초청 서화개인전 ▲83년 제1∼3회 아시아 현대서화명가연합전 대회장 ▲84년 중화민국정부주최 「안진경서거 1천2백주년기념」국제서법학술대회 한국대표,대구매일신문사 특별초대전 ▲85년 문교부 중·고교미술교육과정 심의위원 ▲86년 중화민국 서법학회명예이사,부산일보 초대개인전 ▲91∼현재 한국국제서법연맹 회장 ▲94년 대북국제서법연토회 한국대표 ▲95년 광복50주년기념 95 서울국제서예전 대회장(예술의 전당) ▲96년 대구국제서예전 대회장(대구 문화예술관) 〈저서〉 「근례비편해열」(80년) 「동강 조수호서화집」(81년) 문교부검인정교과서 「고교서예」편찬 〈수상〉 경북문화상(60년) 국민훈장목단장(90년)
  • “새해벽두 전시회 봇물 애호가들 마음 설렌다”

    ◎조선 왕실그림… 15C 북구판화… 한국의 누드화…/조선왕실 그림전­화려한 벽화·일원오봉도 등 80여점/조선 전기 국보전­몽유도원도 등 임란까지의 202점/뒤러와 동시대 판화전­원본작품 80점 등 120점 국내 첫 공개/한국누드미술 80년전­최초의 누드화 「해질녘」 등 100점 선봬 조선시대 왕실그림과 15세기 북유럽 작가들의 판화.그리고 조선전기의 문화재와 한국의 누드­. 새해 벽두,굵직굵직한 대규모 전시회가 미술에 관심있는 이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해마다 이때쯤이면 미술계는 이렇다할 이슈나 전시가 없어 썰렁한 분위기에 젖어들지만 올해는 큼직한 전시들이 동시에 열려 예년과 달리 풍성한 느낌을 전해준다. 서울 예술의 전당 미술관 제1전시실(580­1611)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누드미술80년전」(12일까지)을 비롯해 호암갤러리(771­2381)에서 마련되고 있는 「조선전기국보전」(2월11일까지),과천 국립현대미술관(503­7744)에서 진행중인 「뒤러와 동시대작가판화전」(31일까지),궁중유물전시관(753­2582)에서 개최중인 「조선왕실그림전」(26일까지) 등. 모두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전시들이다.이 전시들의 내용을 살펴본다. ▷한국누드미술 80년전◁ 지난 80년간 한국의 작가들이 그려온 누드작품중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국내 최초의 누드화인 김관호의 작품 「해질녘」(1916년)을 비롯,근·현대의 대표적인 작가 60명의 평면 회화작품 100점을 연대순과 작품별로 구분해 보여주고 있다.우리나라 최초의 누드화로 평가받는 김관호작 「해질녘」을 복제해 소개하며 누드화의 대가로 불리는 김흥수 화백의 「낙원의 봄」「인생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구본웅의 「여인」 등이 모두 화제작이다. ▷조선전기 국보전◁ 조선 개국때부터 임진왜란까지 200여년에 걸친 조선전기 문화유산을 전반적으로 조망해볼 수 있는 자리.일본 천리대에 소장돼 있는 조선전기 최고의 그림으로 평가받는 안견 그림 「몽유도원도」와 세종시대 그려진 작가미상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일본 용곡대 소장)를 비롯해 「고사관수도」(강희안작),「묵포도도」(황집중작)와 「화조구자도」(이암작)「청화백자매문죽호」,「조선방역지도」 등 서화 62점,서예·전적류 22점,나전·일반공예 25점,도자기 65점,불교미술품 28점 등 170건 202점이 나와있다. ▷뒤러와 동시대작가 판화전◁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적인 판화작가 4인전.15세기 이후 인쇄술에 종속된 판화를 독립 예술장르로 격상시킨 알브레히트 뒤러의 원본 판화작품 80점을 비롯해 같은 시기에 뒤러와 함께 활동한 한스 발둥 그리인,루카스 크라나흐,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등 독일 작가 4인의 판화 120점 출품.독일 브레멘 미술관 판화실 소장품을 들여와 소개하는 자리로 서양미술사의 거봉인 화가이자 판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의 원본 판화는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것들이다. ▷조선왕실 그림전◁ 조선왕실의 격조를 담고있는 회화류 80여점을 통해 조선시대 궁중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왕실을 화려하게 치장한 벽화와 어좌뒤에 친 임금의 위엄을 드러내는 일월오봉도,선명한 채색의 각종 화조도,불로장생물 열가지를 그린 십장생도,왕실의 여러 행사를 다룬 반차도,의궤도 등 기록화와 임금의 어진 등 인물화와 정조대왕이 부친 사도세자 능으로 행차하는 과정을 그린 8폭짜리 병풍그림 「화성능행도」와 영조대왕의 연잉군 시절 초상화 등이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 연세대 서우회/묵향으로 스트레스를 날린다(동아리 탐방)

    ◎올 31번째 전시회… 졸업후도 활동 계속/“서예로 병치유” 환자대상 붓글씨 교습 「일필휘지」 연세대 서우회(회장 김갑임·20·여·불문과 2년) 회원들은 매일 먹을 갈고 붓글씨를 쓰면서 마음을 가다듬는다.신세대들이 록카페나 포켓볼로 스트레스를 푼다면 이들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심신의 긴장을 해소한다. 서예를 좋아하는 학우끼리 친목단체로 출발한 서우회는 지난 80년 제1회 서우회전을 시작으로 올해로 31번째 서우회전을 가졌다.어느덧 교내에서 전통있는 동아리로 자리잡았다. 서우회 회원들은 매년 3월이면 신입생들과 함께 봄 수양회를 떠난다.서예를 통해 선후배가 하나가 되는 자리다.수양회는 모든 참가자들이 한자씩 보태 만든 시 한편을 모닥불에 태우는 의식으로 절정에 이른다. 신입생들은 기본획으로 시작해 지도교사인 시곡 김홍규 선생(60·증평중학교 교사)의 체본을 본따 서체를 익힌뒤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의 순으로 익혀 나간다. 이들에게 가장 큰 행사는 가을 정기서우회전.전시회가 다가오면 동아리방은 발디딜 틈이없다.음악소리와 기타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다른 동아리방과 달리 먹을 가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이들은 서예를 즐기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는다.신촌세브란스 재활학교에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서예를 가르치기도 한다.환자에게는 의술 못지 않게 예술도 특효약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졸업생들도 연서회를 조직,재학때처럼 2년마다 연서회전을 갖는다. 부종건군(26·물리학과 2년)은 『한글자 한글자 익혀 나갈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먹을 갈며 생각을 가다듬는 것은 서우회만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 도서출판 자유문고,「이향견문록」 해석본 상·하권 내

    ◎조선시대 민장들의 287가지 사연/1862년 문인 유재건이 엮은 여항 전기류/서민에 초점 맞춘 민중사 연구 귀한 자료 조선시대 서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기록한 전기집 「이향견문록」해석본 상하권(이상진 옮김)이 도서출판 자유문고에서 나왔다.조선 후기의 문인 유재건이 1862년에 편찬한 「이향견문록」은 제목이 암시하듯 「이향」(백성들이 사는 동네)에서 보고들은 다양한 인물군상들의 이야기를 적은 책.현재 전하는 조선시대의 각종 기록이나 자료들이 대부분 양반계층을 대상으로 하고있는 반면,이 책은 중인이하 서민들의 생활상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조선시대 민중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책에는 규장각에 근무했던 중인계층 서리인 엮은이가 각종 문집과 기록 등에서 채록하거나 스스로 지은 287조목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대상인물은 일반 백성에서부터 기인,신선,기생에 이르기까지 311명.비슷한 성격의 「여항전기류」인 「호산외기」와 「희조일사」가 각각 42명,85명을 다루고 있는 것과 비교할때 그 규모의 방대함을 짐작할 수 있다. 「이향견문록」은 손으로 직접 베껴쓴 필사본으로 모두 10편으로 이뤄져 있다.「덕과 학문이 뛰어난 인물들」「충신과 효자 효부들」「지모를 겸비한 호걸들」「가정을 일으키고 지킨 여인들」「이름을 떨친 문장가들」(상중하)「한폭의 작품과 싸운 화가 서예가들」「의사 약사 바둑 음악 점술의 대가들」「신선 도사 승려 기인들의 행적」등이 그 내용.이 가운데 중인계층의 시인,문사들의 이야기가 3편으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조선후기에는 기술직 중인인 의관이나 역관,승문원·규장각 서리들을 중심으로 한 문학 즉 「여항문학」이 특히 발달했다.이 책은 당나라 시인 고적·잠삼에 버금간다는 칭송을 들은 홍세태를 비롯해 시모임 직하사를 결성한 최경흠,「매화시 미치광이」로 불린 김석손 등 71명의 문장가들의 구체적인 작품세계와 일화를 통해 19세기 여항문학의 흐름을 면밀히 살피고 있어 주목된다.
  • 네타냐후,「팔」대표 면담/헤브론 철군문제 직접 논의

    【예루살렘 AFP 연합 특약】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3일 이스라엘군의 헤브론 철수문제와 관련한 협상에 나서고 있는 팔레스타인 대표들을 만났다고 목격자들이 전했했다. 이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서예루살렘의 한 호텔에서 아부 마젠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부사령관을 포함한 팔레스타인대표단을 만났다고 말했다. 이날 회담은 22일 이스라엘 협상대표들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만난데 이은 것으로 헤브론 철군문제를 둘러싼 협상에 진전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 협상대표를 만난 것은 헤브론에서의 이스라엘군 철수문제 등에 대한 협상이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 14일 호암아트홀서 「조선전기 국보전」 열어

    ◎조선 전기 진품예술 대규모 전시/일 천리대소장 「몽유도원도」 등 202점/개국서 왕란까지 역사·문화유산 조망 조선 개국부터 임진왜란까지 200여년간에 걸친 조선전기 문화유산을 전반적으로 조망해볼 수 있는 대규모 전시가 마련된다. 오는 14일부터 내년 2월11일까지 호암갤러리에서 열릴 「몽유도원도와 조선전기국보전」이 그 전시로 서화 62점,서예·전적류 22점,나전·일반공예 25점,도자기 65점,불교미술품 28점등 170건 202점이 나온다. 특히 이번 전시는 호암미술관이 지난해에 이어 마련하는 「위대한 문화유산을 찾아서」 시리즈의 두번째 전시로 해외각국의 박물관과 개인을 상대로 섭외를 벌여 국내 24곳,일본 29곳,미국 1곳등 모두 54개처의 협조아래 열리게 된 것으로 한국의 국보 14점과 보물 37점,일본 중요문화재 7점등 58점의 국보급 문화재가 대거 출품되는 이례적인 자리다. 이가운데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세계전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가장 눈길을 끄는 문화재.조선전기 최고의 그림으로 평가받는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박팽년과 함께 도원을 거닐던 것을 형상화한 그림.안평대군의 발문외에 신숙주 정인지 박연 김종서 최항 김종서 박팽년 서거정 성삼문등 당대 최고의 학자 21명이 이 그림을 찬양한 시들이 적혀있어 조선전기 문인들의 시와 그림 글씨를 총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지난 86년 국립중앙박물관 개관기념전에 1개월간 전시된 적이 있는데 소장측인 일본 천리대 중앙도서관의 협조로 60일간 국내에 다시 들여올 수 있게 됐다.이와함께 세종시대 그려진 작자미상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일본 용곡대 소장)는 당시 중국중심의 세계관에서 탈피,조선의 위치를 크게 부각시켜 설정한 세계전도.1455∼1466년경 그려진 현존하는 최고의 한국지도로 우리나라가 다른 곳에 비해 매우 크게 과장돼 그려져 있다. 이밖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사관수도」(강희안작)와 「묵포도도」(황집중작)를 비롯해 호암미술관 소장품인 「화조구자도」(이암작)와 「청화백자매문죽호」,국사편찬위원회 소장품 「조선방역지도」등이 모두 조선 전기의 서화와 백자,조선지도 등 귀한 것들이다. 이번 전시에 자문을 맡은 한병삼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조선전기 문화는 유교와 불교,조선과 고려의 요소가 혼합된 모습을 띠고있어 고려문화에 비해 향유계층이 크게 확대돼 보다 한국적인 미의 세계를 창출하고 있다』면서 『이번 전시가 단순한 전람회의 성격을 넘어 조선시대 유물을 실물로 직접 볼 수 있는 산 교육의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고도 경주」 신라문화 유산 소재/한국화 박대성씨 개인전

    ◎경주유적 답사… 94년부터 작업에 몰두/대작 「천년배산」 비롯 미술사적 큰 의미/내일부터 가나화랑서 서예를 통해 익힌 탄탄한 운필을 바탕으로 기품있는 한국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작가 박대성씨가 고도 경주를 테마로 한 근작들을 선보이는 개인전을 27일부터 12월7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가나화랑(733­4545)에서 갖는다. 박씨는 중국·유럽·아프리카 등 각국 풍경을 묵화와 채색으로 화폭에 담아온 작가로 특히 실크로드 연작전을 통해 친숙해진 작가.독학으로 서예와 한국화를 익혀 독자적인 한국화 영역을 구축하면서 먹(묵)의 빼어난 운필작업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개인전은 지난 94년부터 경주답사를 통해 불국사·토함산·남산·경주시내등 경주 전역의 신라 문화유산을 스케치한 작품전으로 이전과는 달리 전 작품을 묵화로만 처리한 대작들을 선보이는 의미있는 자리. 2년전 현대미술의 흐름을 체득하기 위해 뉴욕 소호에서 작업중 현대미술이 아프리카 예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현지 체험을 살려 우리 문화유산인 경주만을 작품속에 담아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해 2년간 경주 곳곳을 스케치해 마련한 전시다. 지난 88년 만난 세계 최고의 중국화가 이가염(93년 작고)옹에게서 먹의 정신적인 측면을 깊이 깨달았고 이후 먹작업에 몰두,고도 경주의 문화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순전히 먹으로만 처리한 역작들이 나온다. 이가운데 불국사 전경을 담은 가로9m,세로 2.4m크기의 「천년배산」을 비롯해 경주 남산 칠불암의 해뜨는 장면인 「칠불여명」(200호)과 불국사 가람과 석굴암·토함산을 재구성한 300호크기의 「불밝힘굴」 등이 모두 눈에 띄는 역작들.특히 그동안 작가들이 불국사의 규모가 워낙 커 쉽사리 시도하지 못했던 불국사 전경을 한 화면에 담은 「천년배산」과 「불국설경」은 최초의 불국사 전경 그림으로 눈길을 끈다. 박대성씨는 『세계 각국의 어느 문화유산에 뒤지지 않는 경주 담아내기를 시작으로 앞으로 먹작업을 통해 잊혀져가는 우리 풍속과 풍물들을 밀도있게 살려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 여 대권주자들 “정중동”/겉으론 대권논의 해금 기다리며 “동면”

    ◎속으론 주자들간 회동·밑바닥 훑기 분주 대권논의 자제령으로 신한국당 대권예비군도 「동면」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현재 공식 행사라곤 중간쯤 끝난 지구당개편대회가 고작이다.그것도 2∼3명이 번갈아가며 참석,「이미지메이킹」을 하는 정도다. 이 기간동안 눈길을 끄는 움직임이래야 이홍구 대표의 「젊은 후보론」에 이은 출처 불명의 「당정분리 및 민주계 대표설」,지난주 김윤환·박찬종 고문의 청와대 개별면담,그리고 최형우 고문의 「온산 서예전」이 전부이다. 이처럼 외형상 예비주자들의 행보는 일단 「해금」을 기다리는 정치휴년병 처럼 보인다. 그러나 김윤환 고문의 얘기처럼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일 뿐이다.한걸음 내딛는 것 자체를 실전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일전을 위한 준비의 성격이 짙다.지난 15일 최고문의 서예전에 1천여명이 몰려 전시회장 일대가 대혼잡을 빚었듯이 주자군마다 대세확보 경쟁과 물밑을 훑는 잠행이 한창이다. 공통적인 특징은 강연·인사접촉 등으로 시간을 쪼개 쓰고 있다는 점이다.이홍구 대표는 공휴일에도 개인적인 조찬 약속부터 시작,종일 잠시도 짬을 내기가 어렵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서예전으로 바쁜 최고문도 15일 전시회 개막식이 끝난뒤 곧바로 강릉대 경영대학원 특강에 참석,「취약지역」을 누빌 정도로 열심이다. 이회창 고문은 다소 관계가 껄끄러운 재계에 자신의 무기인 「대세론」을 전파하기에 여념이 없고,14일 청와대 방문이후 측근들과의 폭음으로 관심을 모은 박찬종 고문은 「강연정치」까지 중단한채 접촉반경을 확대,영입파로 원외라는 취약점의 보강에 역점을 두고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빈도수를 높여가고 있는 주자들간의 물밑회동이 관심을 모은다.지난 8일 최형우 고문·김덕용 정무제1장관의 회동에 이어 지난주 초에는 김윤환 고문과 김정무 장관이 깊숙한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진다.김장관은 『민주화운동을 함께 한 사람들의 동지애는 각별하다』며 『개인적인 만남일 뿐』이라고 정치적인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다른 예비주자 진영에서는 정치는 먼저 만남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때 예사롭지 않다는시각이다. 독서광인 이한동 고문은 다음달 출간할 자신의 정치철학과 국가경영론을 담은 책발간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당내 하위직인사들과의 접촉반경을 확대중이다.그는 또 다음달 2일 아랍에미리트 국왕즉위 기념식과 쿠웨이트에 대통령 특사로 출국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 최형우 고문 서예전 개막/500여명 참석 대성황

    신한국당 예비후보군의 대권논의 자제분위기 속에 대권주자의 한사람인 최형우 고문이 15일 하오 3시 서울 안국동 백상기념관에서 「온산 최형우 서전」을 열었다.불우한 장애인들을 돕기 위한 행사다. 이번 행사는 지난 89년 첫 개인전 이후 두번째이다.50점의 출품작에는 그가 즐겨 쓰는 「대하무성(큰 강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도 들어있다. 그래서일까.최고문은 당이 「민주계 대권 배제론」「민주계 대표론」「정치총리론」「당정개편 연기론」등으로 요동을 칠 때도 공식적으론 입을 굳게 닫아왔다.필력이 넘치는 50점의 이번 출품작은 요즈음 그의 정치철학과 포부를 담고있다는 평이다. 이날 행사에는 김수한 국회의장,김용준 헌법재판소장,김덕용 정무제1장관,김윤덕 정무2장관,김상현 국민회의지도위의장,이인제 경기지사,유세준 공보처차관,서석재 김종호 김정수 의원 등 40여명의 의원과 서예은사인 여초 김응현 선생 등 500여명이 참석,대성황을 이뤄 이 일대 도로가 한때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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