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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문위원 칼럼] 全씨 소장품 경매보도 유감

    지난주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개인용품에 대한 경매가 화제에 올랐다.대통령기념관에 소중하게 보존돼야 할 전직 대통령의 물건들이 경매에 부쳐져 팔려나갔다는 보도를 보면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수치감과 함께 씁쓸함을 느꼈을 것이다.이날 팔린 물건들은 서예작품,병풍,동양화 등 유명작가들의 작품들에서부터 TV,피아노,찻잔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49종이며 심지어 진돗개 2마리까지 포함돼 있었다. 대통령은 개인적 품성,언행,또는 치적의 차이 등을 불문하고 해당 임기중 국가와 국민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역사에 가장 중요한 인물로 기록된다.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소장품까지도 소중하게 간직되는 것이 일반적인 예다. 전 전 대통령의 경우는 재임시의 부정축재로 인해 두 번 국민을 놀라게 했다.첫 번째는 추징금이 2205억원의 천문학적 숫자라는 것이고,두 번째는 대통령을 지냈다는 사람이 법원의 판결에 대해 그렇게 무성의하고 뻔뻔스러울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그동안 환수한 액수가 총액의 14%인 314억원에 불과한 상황에서,지난 6월 “가진 것은 29만 1000원뿐”이라는 법정 진술은 그동안 전 전 대통령의 씀씀이나 가족들의 호화스러운 생활을 보고 들었던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따라서 법원이 1890억원에 달하는 미납추징금 환수를 위해 전 전 대통령의 명의로 된 것은 모두 팔겠다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경매에서 비록 10배에 가까운 가격에 팔리기는 했어도 근본적 문제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수준에 그쳤다.결국은 상징성에 그치고 말았고 국민에게는 수모감만을 안겨준 꼴이 됐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본질에의 접근보다는 하나의 재미있는 읽을거리로 치부하는 데 그쳤다.법원의 경매발표를 다룬 9월27일자는 품목과 가격에 초점을 두었고,경매결과를 다룬 10월3일자 보도도 예상 외의 인파,감정가보다 10배 가까운 가격에 팔려나갔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두어졌다.어느 신문에서도 이번 일을 계기로 전·현직 대통령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사설이나 칼럼 등을 볼 수 없던 것은 매우 아타깝다. 대한매일도 9월27일자에는 경매하게 된 경위와 품목 등에 중점을 두었고,29일에는 ‘씨줄날줄’에서 애견압류에 대한 칼럼이 게재된 데 이어 10월3일자에는 ‘전두환씨 살림 49점 경매,감정가 10배 1억 7950만원’이라는 제목 하에 낙찰자들의 면면과 그 주변 얘기를 소개하는 데 그쳤다. 미국의 경우도 3대 토머스 제퍼슨의 장서,5대 제임스 먼로의 사저 등 전직 대통령의 소장품들이 퇴임 후 직접 팔린 일들이 여러 차례 있다.부정축재를 환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활 궁핍 때문이었고 대부분 지인들이 구입해 다시 돌려보내졌다.이번 경매에서도 그같은 의사를 밝힌 사람들이 많아 아쉬움 속에서도 기대를 갖게 한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큰 병폐는 똑같은 잘못이 되풀이된다는 점이다.부정축재나 대형 재난도 그렇고 천재지변에 당하는 것도 그렇다.일부 전직 대통령들의 부정부패도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은 사회와 권력에 대한 감시기능을 잠시도 늦춰서는 안될 것이다.그런 측면에서 이번 전 전 대통령의 소장품 경매는 그 사실 자체보다는 그를 통해서 현직 대통령에게,또 앞으로 대통령이 될 사람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는 기회로 삼았어야 한다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라 윤 도 건양대 교수 문학영상정보학부
  • 진돗개 전씨 집에 남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가재도구 경매가 2일 서울 연희동에서 진행돼 감정가 1790만원의 10배가량인 총액 1억 7950만원에 낙찰됐다.전 전 대통령이 애지중지하던 진돗개 ‘송이’와 ‘설이’는 낙찰자가 전 전 대통령에게 다시 돌려주기로 해 주인 곁에 남게 됐다.30만원짜리 골프채는 900만원에 낙찰됐다.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한 이번 경매에 응찰한 사람들은 10명가량.663만원에 맨 처음 경매에 부쳐진 진돗개 두마리와 TV,냉장고 등은 4명의 응찰자가 경쟁을 벌인 끝에 15분만에 김모(50)씨에게 7800만원에 낙찰됐다.고미술상으로 알려진 김씨는 대리인을 보내 낙찰받았다.김씨는 전체 낙찰가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총 1억 2000여만원어치를 낙찰받아 눈길을 끌었다.대리인 정모(34)씨는 “진돗개는 대통령이 기르던 것인 만큼 되돌려 줄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직접 사용했던 물건들이라 소장가치가 높다고 판단했으며 다른 대통령의 소장품들도 모아 박물관을 만들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골프채는 대구에서 온 조모(62)씨에게 낙찰됐고 서예작품과 병풍 6점은 370만원에서 시작,고미술상 김씨가 2000만원에 낙찰받았다.특히 감정가가 55만원인 도자기 5점은 한모(41·서울)씨가 45.5배인 2500만원을 불러 주인이 됐다. 이밖에 190만원짜리 동양화 8점은 역시 고미술상 김씨가 2050만원에 가져갔고 360만원인 서양화 5점은 1500만원에 장모(51·서울)씨가 낙찰받았다.감정가가 152만원인 과기류와 커프스 단추 등은 1200만원에 김모(59·경남 진주)씨가 낙찰받았다. 한편 경매 장소인 연희동 궁말놀이터 주변은 경매를 구경하려는 400여명의 시민들로 가득 차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연희동에서 33년째 사는 가정주부 김모(65)씨는 “우리 역사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홍지민기자 icarus@
  • 성에 제올리기 계각층 토론회 정상 채화행사/강북구, 솔밭공원서 축제

    자녀와 함께 개천절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주민들에게 3일 강북구 우이동 솔밭공원에서 열리는 ‘삼각산축제’는 놓치기 아까운 행사다.강북구(구청장 김현풍)가 마련,3일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펼치는 이번 축제의 핵심은 우리나라의 시조(始祖)인 환인·환웅·단군 등 삼성(三聖)에게 제를 올리는 단군제례. ‘삼각산축제’의 단군제례는 철저한 역사 고증을 거쳐 원형을 복원한 문화행사로 평가받는다.축제에 앞서 지난달 26일에는 단군제례의 본 모습을 연구하기 위해 김현창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학계와 문예·종교계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삼각산과 단군제례’란 주제로 토론회도 열었다. 축제의 시작은 오전 8시 삼각산 백운봉에서의 채화(採火).불꽃이 피어오르면 길굿·선녀춤 공연이 축제의 서막을 알린다.오전 10시30분부터는 단군제례·천도제 등 본격적인 제례가 거행된다.오후 1시30분부터는 태껸·교방굿거리·타악뮤지컬·동(洞)대항 풍물경연대회 등도 이어져 흥을 돋운다.전통장터와 무료가훈써주기,천연기념물 딱따구리 사진전,서예휘호대회 작품전시회 등도 마련된다. 김현풍 구청장은 “이번 축제는 조선시대 각종 국가 제례가 거행된 삼각산에서 단군제례를 경험할 흔치 않은 기회”라면서 “특히 자녀교육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
  • 馬 뛰어놀던 들녘/‘아파트벽’ 허무는 축제 장으로

    ‘마들 노래를 불러보세 넓은 들이 갈월들이라 앞을 보니 도봉산이요….’ 아파트로 둘러싸여 평소 이웃간의 정을 나누기 어려웠던 노원구 주민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마음의 벽을 허문다.아파트 숲 가운데서 모내기 풍경과 농부들이 부르는 정겨운 농요도 감상한다. 노원구(구청장 이기재)는 7일부터 3일간 마들가요제,문예한마당 등을 통해 64만 구민이 하나되는 ‘마들축제’를 연다. 첫 날은 자신이 사는 동의 명예를 걸고 치열한 예선을 통과한 24명의 아마추어 가수들이 노래실력을 겨루는 ‘마들가요제’가 구민회관 대강당서 오후 3시부터 벌어진다.KBS ‘쇼 행운의 열차’와 코미디클럽 진행을 맡고 있는 오동광,오동피씨의 사회로 진행될 가요제에는 초청가수 배일호,강민주,김미성씨가 출연해 분위기를 달군다. 8일 오후 2시부터는 중계동 중계근린공원 잔디광장에서 초등학생과 주부들이 참가해 글짓기,서예,그림 솜씨를 뽐내는 ‘노원가족 문예한마당’이 열린다. 이번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9일엔 마들근린공원서 6000여 주민이 어우러져 화합을다지는 ‘노원구민 한마음 체육대회’가 하루종일 펼쳐진다. 체육대회에 앞서 기념행사로 서울서 유일하게 전해오는 마들농요(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2호)가 선보인다.노원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까지 벼농사가 성행했던 ‘역사’를 보여주는 마들농요에 취하다보면 애향심이 저절로 생기지 않을까. 태권도·에어로빅 시범,염광여자정보고의 고적대 퍼레이드,디스코 경연 등 다양한 볼거리도 준비돼 있다. 체육대회에는 2000여명의 선수들이 씨름,줄넘기 등 7개 종목에서 한판 승부를 펼친다.구는 경기종목을 줄다리기,협동 줄넘기,주부 페널티킥,4인5각 경기,큰 공 굴리기,어머니 배구 등 단체경기로 편성,주민들의 협동심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도록 행사를 준비했다.950-3462. 류길상기자 ukelvin@
  • “겉멋 부리려 하지말고 자기 마음을 그리세요”/동료에 그림 강습하는 韓銀 정영남 씨

    “그림에 속기(俗氣)가 들어가서는 안됩니다.겉멋 부리지 말고 자기 마음을 그림 속에 투명하게 담아내세요.그림이 천해지면 사람도 천해집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서울 남대문 한국은행 별관에 묵향이 번지면 정영남(鄭永男·57)씨의 닳고닳은 잔소리가 시작된다.언제나 듣는 얘기지만 스승의 말은 제자들의 붓놀림에 힘을 더하는 효과가 있다. 정씨는 한은에서 문서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1973년에 은행에 들어왔으니 올해로 31년째다. 내년이면 정년이다.요즘은 대부분 문서가 전산으로 관리돼 업무가 많이 줄었지만 우리경제의 온갖 데이터가 축적돼 있는 한은에서 문서관리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국전 수상경력·개인전 20여 차례나 정씨는 86년부터 행내 직원들에게 사군자,문인화 등 동양화를 가르쳐왔다. 매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2∼3시간씩이다.지금까지 길러낸 제자가 200여명에 이르고 이 중 몇명은 굵직한 미술대회에서 입상을 하기도 했다. 그 자신이 화단에서 탄탄한 입지를 확보한 유명 화가다.국전 수상경력이 10여차례에이르고 개인전도 10여차례 가졌다.주로 흙냄새 나는 고향산천을 화폭에 담았다.진경산수(眞景山水)의 대가인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을 좇아 우리 산천과 그 안에 흐르는 생명력을 살려내는 게 평생의 숙제였다. 1994∼2001년에는 홍길동전,춘향전,구운몽,혈의누,정읍사,왕오천축국전 등 우리문학 우표 시리즈의 도안을 맡기도 했다.한은 미술자문위원으로서 수많은 은행내 예술작품의 가치평가 및 복원,새 미술품 구입 등에도 조언을 하고 있다. 정씨의 고향은 전북 전주.서당에 다니던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붓을 잡았다. “천자문을 떼고 소학·대학을 배울 때쯤 훈장님이 아이들에게 붓글씨와 사군자를 가르쳐주셨습니다.남다른 자질이 있다며 저한테 특히 많은 관심을 보이셨지요.그게 제 인생을 결정했습니다.” 한참 뒤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훈장은 현대서예의 대가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1913∼1999) 선생이었다.강암 선생은 고전기법에 충실하면서 현대적 아름다움이 담긴 ‘강암서체’를 창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학(동국대 미술과)을 마친뒤 서울 장충동에 작은 화실을 냈지만 전혀 돈벌이가 안 됐습니다.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예술하는 사람들이 입에 풀칠하기는 참 어려웠습니다.” ●퇴직후에도 월연회 강습 계속할것 생업이 필요했던 정씨는 한은을 선택했다.낮에는 은행에서 일하고 밤에는 그림을 연마하는 생활이 계속됐고,차츰 수상경력도 쌓여갔다.그럴수록 동료들의 강습요청도 늘어갔다. “은행 일이나 제대로 하라는 주위의 눈총도 걱정되고 해서 많이 망설였습니다.하지만 계속되는 요청을 마냥 뿌리치기는 어려웠고,그 사람들이 갖고 있던 어릴 적 미술에 대한 꿈을 실현해 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은 월연회(月硯會)라고 이름붙여진 ‘묵화반’이 86년 탄생했고,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제자로 들어왔다. 정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관대한 스승은 아니다.복습을 하지 않는 제자들에게는 가차없는 꾸지람이 꽂힌다.사군자→산수화→문인화로 이어지는 과정에도 철저하다.사군자의 첫 과정인 난초에서 대나무로 넘어가는 데 꼬박1년이 걸린다. 매주 강습에 참석하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그런 것이어서 국화,매화까지 모두 마치려면 통상 4∼5년이 걸리게 된다. “동양화는 투명하고 담백합니다.1회성입니다.붓이 한번 지나간 자리에는 절대로 개칠이란 게 없습니다.매일 숫자와 씨름하는 은행 직원들에게 특히 동양화는 편안함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어 좋습니다.” 내년 정년퇴직 뒤에도 월연회 강습은 계속된다.이미 제자들과 굳게 약속을 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
  • 허준축제 보실 분 “줄을 서시오”강서구 새달 11~12일 행사

    ‘허준의 고장’ 강서구(구청장 유영)에서 다음 달 11∼12일 ‘제4회 의성(醫聖) 허준 축제’가 열린다.무료 한방진료,약령장터 등 무려 20가지가 넘는 다채로운 행사가 구암공원,구민회관 등에서 동시에 펼쳐질 예정이어서 주민들을 설레게 한다. 11일 오전 10시부터 구민체육센터와 양천향교에서 열리는 ‘한시 백일장’에는 전국 234개 향교에서 올라온 200여명이 도포를 입고 참가,옛 과거시험을 연상케 한다. 5호선 화곡역에서는 조선시대 강서구 일대의 모습과,개발되기 전 강서구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옛 사진 전시화와 양천팔경 재조명전이 열린다. 오후 1시30분에는 구민회관에서 전국 한의사들이 모여 ‘한의학 학술대회’를 갖고,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 ‘허!JUNE’이 오후 7시30분에 공연된다. 가족 장기자랑 대회 예선과 구립 금관5중주단의 연주,포크&록 페스티벌이 구민회관 야외무대에서 연달아 열려 축제의 첫 날을 장식한다. 12일에는 강서구 한의사회가 구암공원에서 무료 한방진료를 해주고 양천허씨 대종회 주관으로 공원내 허준 동상 앞에서 ‘허준 추모제례’가 열린다. 약령장터에서는 페이스페인팅,네일아트로 한껏 치장을 한 채 약초썰기,새끼꼬기,짚신삼기 등 선조들의 생활상을 구경할 수 있다.강서 서예인들이 가훈도 무료로 써 준다. 어린이 미술 한마당,주민자치센터 동아리 발표회,단축마라톤대회,한마음 걷기대회,사진촬영 대회,청소년·주부 백일장 등 다양한 행사도 마련됐다. 오후 6시 구암공원에서 시작되는 강서가족 한마음 축제가 끝나면 허준축제도 막을 내린다.2600-6455. 류길상기자 ukelvin@
  • 메트로 라이프/ 노원가족 문예한마당 접수

    노원구(구청장 이기재)는 다음 달 8일 중계근린공원에서 지역내 초등학생과 주부를 대상으로 시·수필,서예,그림부문 ‘노원가족 문예한마당’을 연다.주제는 전쟁과 평화,경제위기 극복,환경보존 등이다.신청은 30일까지.950-3492.
  • 메트로 라이프/ 새달4일 ‘도봉서예한마당’

    도봉구(구청장 최선길)는 다음 달 4일 구민회관에서 한글·한문·사군자 부문에 걸쳐 ‘도봉서예한마당’을 연다.대회용 화선지는 도봉문화원이 제공하지만 붓,먹,벼루 등은 지참해야 한다.신청은 다음 달 2일까지.대상 상금은 30만원.905-4026.
  • “주민 여러분~ 솜씨 뽐내보세요”마포, 22일 작품전·경연대회

    “주민자치센터에서 배운 솜씨,마음껏 뽐내보세요.” 마포구(구청장 박홍섭)는 오는 22일 대흥동 문화체육센터에서 ‘주민자치센터 작품 열린마당’을 개최한다.삶과 문화를 접목한 행사를 통해 주민의 행정참여를 이끌어 내고,지역사회의 건전한 생활 분위기 조성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24개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각종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그동안 익힌 솜씨를 자랑하는 행사로 프로그램 경연대회,작품전시회,즉석 참여코너 등으로 꾸며진다. 프로그램 경연대회에는 스포츠 댄스,노래교실,한국무용,경기민요,에어로빅 등 각 센터가 자랑하는 프로그램들을 주민들이 직접 발표한다.용강동 자치센터는 화관무를,신공덕동은 노인전통무용,신수동은 구연동화 등을 각각 발표할 예정이다. 23일까지 계속되는 작품전시회에는 주민들이 직접 출품한 서예,종이접기,꽃꽂이,한지공예 등 150여점이 전시된다. 참여행사로 종이접기와 풍선아트 시범,즉석 장기자랑과 푸짐한 경품추첨도 있다.330-2121. 이동구기자 yidonggu@
  • “곳곳 물난리 우리만 놀 수 없죠”

    시민 축제에도 ‘매미’ 불똥…. 자치구들이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대형 이벤트로 마련하려던 축제의 규모를 축소하거나 아예 날짜를 뒤로 미루고 있다.태풍으로 시름에 잠긴 피해주민들과 아픔을 함께 한다는 뜻에서다. 송파구(구청장 이유택)는 구민의 날인 지난 17일부터 주간행사로 개최할 예정이던 ‘한성백제문화제’ 일정을 축소,이미 예산이 집행된 부문만 치르기로 했다.기간중 태풍 ‘매미’에 피해를 입은 과수농가를 돕는 ‘낙과(落果) 장터’(21∼22일,석촌호수 서호)는 예정대로 열고,나머지 화려한 축제들은 구민 여론에 따라 축소 또는 취소키로 한 것이다. 우선 19일 열려던 ‘뱃놀이 선상공연’,21일 ‘청소년 힙합댄스 경연’과 모터보트 경주대회, 가수·발레단·성악가의 무대,불꽃축제 등으로 이뤄진 축하공연은 취소됐다. 18일 서울놀이마당에서 열 계획이었던 ‘가을밤의 야외음악회’도 온 국민들이 태풍피해 복구에 힘을 보태고 있는 분위기에 맞지 않아 취소,행사기간을 21일까지 4일에서 3일로 줄였다. 다만,국제민속축제(19∼20일),백제 시조인 온조대왕의 선조 동명제(東明帝)와 나라의 기틀을 다진 14대 근구수왕 즉위식 재현(20일),민속·예술놀이 한마당(21일) 등 우리네 옛 전통을 음미하는 행사와 외국인들을 초대해 문화적 비교체험의 기회로 마련하는 자리는 되도록 살렸다. 24일까지 송파미술관에서 부대행사로 열리는 미술·서예전시회는 계속된다.행사장 곳곳에는 재해성금을 받는 모금함이 비치된다.410-3323∼4. 용산구(구청장 박장규)는 오는 20∼29일 예정했던 ‘이태원관광특구 지구촌 축제’를 다음 달 2∼11일로 미뤘다.단지 지역행사로 그치는 게 아니라 외국관광객을 겨냥해 특구를 활성화한다는 원래 취지를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일정을 새로 짤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구는 곧 회의를 열어 불필요하다고 판단돼 취소할 부문이 없는지에 대해 이태원 상인연합회 등과 논의할 계획이다.710-3320∼4. 송한수기자 onekor@
  • 유럽인 눈길 끈 우리의 전통서예/소헌 정도준씨 獨·佛이어 伊·벨기에서 초대전

    유럽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서예가 소헌(紹軒) 정도준(사진·55)씨가 최근 독일과 프랑스에서 전시를 연 데 이어 이탈리아와 벨기에에서도 초대전을 갖는다.이탈리아 피렌체 체탈도 시립미술관(12일부터 10월31일까지)과 주 벨기에 한국대사관(18일부터 10월31일까지)에서 각각 열리는 이번 전시로 소헌은 다시 한번 해외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소헌은 한문의 해서·행서·예서·전서·초서의 오체와 한글고체,궁체에 두루 능하다.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오륜체라는 자신만의 서체까지 개발했다.하지만 그가 주로 쓰는 것은 전서(篆書)다.이는 “가장 원시적인 것이 가장 현대적”이라는 그의 믿음과 무관하지 않다.소헌 작품의 특징인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조형성 또한 이 전서체를 통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그의 글씨의 기운생동하는 유연한 선은 ‘사제곡(莎提曲)’‘무강복(無彊福)’ 등의 작품에서 그대로 엿볼 수 있다. “글씨란 도(道)일 뿐 기술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소헌은 인격으로서의 서예를 강조한다.그는 언젠가 지인귀침명 처세혼광진(至人貴沈冥 處世混光塵),즉 지인(至人,덕이 극치에 이른 사람)은 드러나지 않는 것을 귀히 여기며 세상을 둥글게 산다는 내용의 글귀를 쓴 적이 있다.소헌은 그렇듯 담백하고 모나지 않기에 그의 글씨엔 사됨이 없다. 소헌은 고향 진주의 촉석루 현판을 쓴 부친 정현복 선생에게 가학(家學)으로 서예를 전수받았고,서단의 거목 일중(一中) 김충현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했다.1982년 ‘조춘(早春)’으로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이래 지금까지 서예작가로서는 드물게 국내외에서 꾸준히 개인전을 열어왔다.그는 경복궁 안의 구 조선총독부가 철거된 자리에 세워진 흥례문과 유화문의 현판을 비롯해 창덕궁의 진선문,규장각 등의 현판을 쓰는 등 우리 문화재 보존에도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다. 소헌은 내년에는 미국 오리건대학 동양사박물관과 프랑스 쇼몽에서 서예전도 열 계획이어서 서구에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민간 ‘문화대사’로서의 역할이 기대된다.‘서예가 어떻게 회화성을 가질 수 있는가’‘미술과서예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묵향에 젖어 지내는 그가 요즘 골몰하고 있는 화두다. 김종면기자 jmkim@
  • “고려때 꽃피웠던 寫經 원형복원이 꿈”/24년 사경작업 외길 김경호씨

    평생을 단 한 가지 목표에 매달려 사는 것은 쉽지 않다.그것이 남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더욱 힘겨울 수밖에 없다.그러나 그렇게 일궈낸 삶은 훨씬 더 값지다.사경(寫經)연구가 김경호(41)씨는 일찍부터 불모의 영역인 사경에 눈을 떠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있는 인물이다.그냥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지금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새 장르의 문화재를 복원해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 전파해야 하는 필생의 사업이 됐다. “사경은 고려 청자보다도 더욱 가치있는 문화재인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그 원형 복원 노력과 연구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라는 김씨는 “사경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독보적인 우수성을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흔치 않은 문화재”라고 거듭 강조한다. 김씨는 중학교 때부터 불교 경전을 한자 한자 그대로 옮겨 쓰는 사경을 시작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고교시절 출가해 1년간 행자생활을 했으나 부모의 만류로 귀가해 어렵사리 고교를 졸업했다.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사경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입학했지만,기본 자료조차 없는 실정을 개탄해 사라진 문화재의 원형 복원에 고군분투해 왔다.고교 시절부터 치면 24년간 외길을 걸어온 셈이다. 고려사 충렬왕·충선왕·충숙왕조 기사에 따르면 당시 중국 원 조정에서 많게는 한 번에 100명씩 고려에 관리를 파견해 사경을 제작해 갔다고 한다.사경 기술은 중국에서 전래됐지만 전성기인 고려시대의 사경은 서예,회화,금은공예 등 모든 면에서 중국보다 월등한 종합예술로 꽃피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과거 그토록 번성했지만 국내엔 옛 사경을 추적할 만한 기초 자료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그에 비해 일본에선 오래 전부터 사경연구가 활발히 전개돼 왔지요.” 그동안 국내 박물관을 샅샅이 뒤졌으나 신통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일본측 자료에 많이 의존했다고 한다.그런 점에서 현재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통일신라기 사경인 국보196호 ‘대방광(大放廣)불화엄경’은 주목할 만한 유물이라고 강조한다.‘대방광불화엄경’은 연대가 분명한 사경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먹으로 쓴 것이면서도 표지 그림과 경 내용을 설명하는 변상도를 금은으로 그려 당시 금은 공예가 얼마나 발달했는가를 잘 보여준다.무엇보다 통일신라기인 일본 천평(天平)시대에 전국적으로 흥했던 일본 사경의 모태가 됐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일본은 우리로부터 사경을 받아 꽃피웠지만 오히려 그것을 건네준 한국에선 그 의미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형편.내로라하는 일본 사경 연구가들의 정통 사경이라는 것에서조차 원전에서 벗어난 오·탈자와,원 형식과는 다른 모순을 적지 않게 발견한다는 김씨.그의 자부심은 그냥 말만 앞세운 게 아니다.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 가리지 않고 사경과 그 기록이 있는 곳이면 빼놓지 않고 발품을 팔아 슬라이드로 정리해놓은 것만 해도 3만여점.지난해 10월엔 자신이 직접 작업한 사경을 중심으로 사경의 모든 형태와 해설을 붙인 교본격인 사경집을 내기도 했다. 6차례의 개인전을 포함해 20여회의 전시를 열면서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서도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지난 6월에는 한인미주이민 100주년을 기념해LA로터스갤러리에 초대받기도 했다.내년 봄 미국 현지 교인들이 뉴욕 전시를 추진 중이며 일본측에서도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단순한 흉내내기가 아니라 우수한 우리의 사경을 원형 그대로 살려내 발전시키는 것에 가장 힘을 기울인다.표지와 발제,경전,변상도로 구성된 양식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다.실제로 그의 사경 작업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경전 선택과 원본의 오·탈자를 확인하는 대교 작업부터 작업의 전체 틀과 맞물릴 변상도 구상,닥종이와 금가루에 아교물을 입히고 푸는 데 이어 선을 긋는 계선과 경문쓰기,변상도 그림과 표지,금을 입힌 글자의 광내기인 연마작업…. 요즘엔 한국사경연구회(02-733-8334) 회원들이 자신의 뜻에 동참하고 있는 게 큰 힘이 되고 있다.사경연구회는 동양미술사학과 출신들과 사경에 뜻을 가진 학자,승려들과 함께 지난해 결성했다.서울 연희동에서 서예학원을 운영하는 부인의 수입이 사경작업의 모든 재원이다. 연세대 사회교육원에서 일반인 대상의 강의를 맡고 있고 동아문화센터에도 출강하고 있지만,이는 사경을 알리는 절실한 수단에 불과하다.동국대 대학원에서 사경에 관한 석사 학위 논문을 마무리해야 하지만 그보다는 서예지 등에 사경을 알리기 위한 기사 연재에 매달리느라 쉽지 않다. 사경 작업을 할 때는 며칠 밤낮을 지새우기 일쑤.사경에 몰두하다 보면 1∼2시간 정도만 의자에 앉아 눈을 붙여도 거뜬하지만 작업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아프다는 김씨.그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나에게 맡겨졌다.천직으로 안다.”며 주섬주섬 사경 도구를 챙겼다. 김성호기자 kimus@
  • 2학기 수시모집 대학별 가이드 / 대전대학교

    대전대(www.dju.ac.kr)는 전 학과에서 일반학생,학교장추천자,지역 담임교사 추천자,특정교과 우수자,기초학문육성 등의 전형을 실시한다.일반학생 전형에서는 학생부 성적 40%에 대전대에서 인정하는 대회의 입상실적(서예,무용 분야) 또는 실기(사회체육학) 60%를 반영한다. 학교장추천자,지역 담임교사 추천자,특정교과우수자 전형은 학생부 60%와 면접 40%를 활용한다.실업계 고교 및 직업과정 위탁생은 학교장추천자와 지역 담임교사 추천자 전형에 지원할 수 없다.특정교과우수자 전형은 학생부 반영방법에 의해 선택한 6과목 가운데 2과목 이상이 성취도 ‘우’ 이상이어야 한다.기초학문육성 전형은 기초학문 학업에 열의가 있어 담임교사의 추천을 받은 학생이 지원할 수 있으며 학생부만 100% 반영한다. 학생부 반영과목은 인문계열과 생활과학부의 경우 1학년은 국어·문학·공통사회·윤리를,2학년은 공통사회·윤리·영어Ⅰ·영어Ⅱ를,3학년은 영어Ⅰ·영어Ⅱ·국어·문학을 쓴다.자연계열에서는 ▲1학년 수학Ⅰ·수학Ⅱ·공통과학·과학 ▲2학년 공통과학·과학·영어Ⅰ·영어Ⅱ ▲3학년 영어Ⅰ·영어Ⅱ·수학Ⅰ·수학Ⅱ를 반영한다. 면접·구술고사는 외견적인 측면과 대학관,국가관 및 사회관 등 3가지에 초점을 맞춰 치러진다.외견적 측면은 복장상태와 답변시 태도,기본 인격과 품성을 평가한다.대학관은 지원 학과에 대한 관심도,지원 동기,구체적인 학습목표,졸업 후 진로 등을 물을 예정이다.국가관 및 사회관은 사고력과 의사소통 능력,표현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삼을 예정이다.
  • 메트로 프러스 / 강북 서예·휘호 대회 개최

    서울 강북구(구청장 김현풍)는 오는 31일 오전 수유동 혜화여고 강당에서 ‘제3회 강북서예·휘호대회’를 연다.역량 있는 신인작가 발굴을 위한 것으로,강북·도봉·성북구 초·중·고교생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901-2097.
  • 수원시 장르별 박물관 5개 건립

    경기도 수원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주제 및 장르별로 구성한 박물관 5개가 한 곳에 들어서는 ‘종합박물관 단지’가 만들어진다.24일 수원시 종합박물관 건립계획안에 따르면 팔달구 이의동 102 일대1만 2000평 부지에 들어설 박물관은 수원 화성박물관,서예역사박물관,사운(史芸)사료관,어린이박물관,전자박물관 등이다.총 955억여원이 투입될 이 사업은 오는 2006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된다. 수원 화성박물관은 화성을 테마로 하는 박물관으로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연면적 2000평에 전시관·교육관·역사관·민속관·체험관 등을 갖추게 된다.내년 6월 공사에 들어가 2006년 6월 완공된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진도 / 글씨·노래·그림에 비경은 덤

    전남 진도에 가면 자랑하지 말라는 세가지가 있다.첫째가 글씨,둘째가 노래,셋째가 그림이다. 남도문화의 정수만 모아놓았다는 진도는 어느 마을에 가도 남도창 한 가락쯤 멋드러지게 뽑아내는 이가 서넛은 있게 마련.또 진도 출신의 조선 후기 남종문인화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유(許維) 선생의 화풍은 지금도 한국 전통화단의 중심 맥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 진도 나들이에서 진한 육자배기 한 가락,소치의 그림 한 점 구경못했다면 공연히 헛발품만 판 것.‘섬중의 보배’라는 진도의 비경도 구경할 겸 예술 향기 그윽한 진도로 나들이를 떠난다. ●구름속 화실 ‘운림산방’ 운림산방(雲林山房).소치 허유가 말년에 거처하던 화실의 당호다.마침 비 갠뒤 올라가기 시작한 구름이 산방뒤 첨찰산 중간쯤에 걸려 있는 풍광을 보면서 ‘당호(堂號) 한번 절묘하게 지었다.’란 느낌이 든다. 산방 앞 널찍한 연못엔 연(蓮) 잎이 수면을 반쯤 덮고 있다.군데 군데 봉곳이 솟은 하얀 연꽃이 초록 일색의 심심함을 덜어준다.연못 중앙엔 자연석을 쌓아 만든 둥근 섬이있는데,여기에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 한그루가 서 있다.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난 소치는 초의대사,추사 김정희로부터 서화수업을 받았다.특히 추사 문하에서 중국의 미불,황공망,예찬 등의 화풍과 추사의 서체를 익혔는데,스승으로부터 ‘압록강 동쪽에 너를 따를 자 없다.’란 칭찬을 듣기에 이른다.‘소치’란 호도 중국 원나라 4대 화가중 한 사람인 대치 황공망과 견줄 만하다며 추사가 붙여주었다고 한다. 운림산방엔 소치가 기거하던 초가와 사랑채,화실, 전시관 등이 있다. 전시관엔 소치,그리고 그의 화풍을 이은 아들 미산 허형,손자인 남농 허건 및 의재 허백련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입장료 500원.(061-543-0088) 소전미술관과 남진미술관도 진도 예술나들이의 필수 코스.소전미술관(061544-3401)은 국전 심사위원장 및 운영위원장을 엮임했던 소전 손재형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올해 개관했다.중국적 스타일에서 벗어나 이른바 ‘소전체’란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를 개발한 그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구성진 남도가락 어깨춤 저절로 남진(南辰)미술관(061-543-0777)은 서예가 장전 하남호 선생이 사비로 세운 전시관.장전의 작품 뿐만 아니라 흥선 대원군,김옥균,민영환 등 유명 인사들의 서화작품,고려청자,백자 등 국사책에서나 보았던 국보급 미술품 등이 전시돼 있다.하지만 장전 선생이 노환과 경제적 문제로 미술관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찾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진도 민요를 듣고 싶다면 진도군에서 운영하고 있는 토요민속기행에 참가해보자.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도향토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진행된다.강강술래를 비롯,진도 씻김굿,진도북놀이,남도 들노래,진도 다시래기,진도만가 등이 이어진다. 공연 끝 부분에서는 진도아리랑,둥덩게타령 등 흥겨운 가락을 관람객들과 함께 부르는 시간도 갖는다.(061)540-3139. 진도 나들이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진도대교를 건너자 마자 나오는 녹진 전망대.사방이 탁 트인 전망대 꼭대기에 서니 동쪽으로 거센 물살이 흐르는 울돌목과 그 위로 지나는 진도대교,구불구불 이어진 해남의 해안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숨막히는 옥색 물빛따라 드라이브 울돌목은 이 충무공의 3대 해전중 하나인 명량대첩지로 잘 알려진 곳.남해에서 서해로 나가는 길목으로 시속 12노트 정도의 거센 물살이 굉음을 내면서 흐르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이 충무공은 당시 왜선 130여척을 이곳으로 끌어들여 궤멸시킴으로써 왜군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 230여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진도는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그중에서도 서부해안쪽이 최고로 꼽힌다.진도대교를 지나 우측으로 접어들면서 시작된 드라이브는 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세방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목길목 다도해의 옥색 물빛과 어우러진 섬들이 눈길을 끄는데 그중 압권은 약 5㎞에 이르는 세방길.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노송과,투명한 바닷물,점점이 떠있는 섬들의 절묘한 조화가 숨막힐 듯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진도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식후경/ 혀끝에서 살~살 ‘갈치구이’ 진도읍 성내리 진도초등학교 아래 ‘제진관식당’의 음식이 맛 좋기로 유명하다.요즘은 갈치구이(사진),간재미(일명 상어가오리)회가 잘나간다.갈치구이 맛의 생명은 재료의 선도.잡은지 오래됐거나 냉동했던 갈치는 아무리 요리를 잘해도 육질이 팍팍해 금방 표가 난다고.식당주인 조권의씨는 싱싱한 갈치 구입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 갈치구이 백반(1만원)엔 민어탕과 몇가지 나물,젓갈 등이 포함되는데,요즘 민어가 잘 안잡혀 서대,우럭으로 탕을 끓여낸다.간재미회는 오독오독 뼈째 씹히는 고소한 맛이 일품.진도 근해에서 많이 잡힌다고 한다.간재미를 적당하게 썰어 몇가지 야채와 양념,막걸리 식초를 넣어 버무린 회무침은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을 낸다.도톰하게 썰어 묵은 김치에 싸먹어도 좋다.1접시(2만원)면 2,3명이 먹기에 적당하다.(061)544-2419. 가이드/ 근처 관매도 들러 해수욕도 ●가는 길 승용차로는 서해안고속도로 목포IC에서 빠져 2,13,18번 도로를 차례로 갈아타면 진도대교로 진입할 수 있다.서울서 5시간 쯤 걸린다.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려면 광산IC에서 빠져 13번 도로를 타고 나주,영암을 거쳐 18번 도로로갈아타면 된다.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진도행 고속버스가 하루 4회 출발하며,광주와 목포에서 시외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있다.광주 또는 목포까지 비행기 또는 열차를 타고가서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진도 시외버스터미널(061-544-2141),군내 버스(061-544-2062). ●숙박 진도대교 인근의 군내면 녹진리 및 진도읍 일원에 프린스모텔(061-542-2251),대동모텔(061-543-5188),진도하우스(061-542-7788) 등 여관이 많다.콘도형 통나무집에서 묵고 싶으면 의신면 송군리의 마린빌리지(061-544-7999)를 찾으면 된다. ●관매해수욕장 해수욕을 즐기고 싶다면 여섯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조도 군도중 대표적인 절경을 모아놓았다는 관매도로 가보자.진도 서남단 팽목항에서 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엔 마치 금방 미장일을 끝낸 것처럼 고운 백사장을 자랑하는 관매해수욕장이 있다.길이 2㎞의 해변은 경사가 완만하고 물이 맑아 해수욕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백사장 주위론 3만여평에 달하는 송림이 들어서 있다.팽목항에서 조도페리호가 오전 6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출발한다.요금은 6800원.승용차(2만6000원)도 가져갈 수 있다.팽목 매표소(061-544-5353,019-9162-1000).
  • 하프타임 / 베이징올림픽 공식 엠블럼 공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공식 엠블럼이 3일 밤 10시(한국시간) 전 세계에 공개됐다.‘춤추는 베이징(Dancing Beijing)’이라는 이름의 이 엠블럼은 빨간색 바탕에 서예 기법의 필치로 춤을 추는 사람의 모양을 역동적으로 표현,동양의 멋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 제3폭탄 터뜨릴까 / 정대표 “국민뜻 전한것” 측근들 “잠시 숨고르기”

    24일 밤 서울 신당동 N 아파트에서 민주당 정대철 대표가 귀가하기를 기다리던 몇몇 기자들은 뜻밖의 ‘행운’을 얻었다.밤 12시쯤 취기 오른 얼굴로 집에 도착한 정 대표는 장대비 속에 서 있는 기자들이 안쓰러운 듯 “여기서 뭐해.들어가서 맥주나 한잔씩 하지.”라고 했다.정 대표는 지금까지 집을 공개하지 않았었다.처음 들어가본 42평 전세 아파트 내부는 고풍스러운 물건 몇 개가 눈에 띌 뿐 생각보다 평범했다. 부인은 늦은 밤임에도 싫은 기색 없이 캔맥주와 마른안주 등을 내왔다.정 대표는 거실 바닥에 둘러앉은 기자들에게 일일이 담배를 건네며 불을 붙여줬다. 기자들이 오전 ‘청와대 문책 인사’ 발언에 대해 물으려 하자,정 대표는 “에이,가만 있어봐.좀 천천히 하자.”라며 거실 탁자에 놓인 수석(水石)으로 한동안 화제를 돌렸다.“작고하신 모 의원이 43년 전 선물로 주신 건데 나한테는 보물 1호야.이걸 보고 있으면 시름이 사라져.”라며 쓸쓸하게 웃었다. 기자들이 이런저런 ‘취재’를 거듭하자,정 대표는 “좀 잘해달라는 국민의 생각을전한 거지,누굴 찍어서 나가라고 한 것은 아니야.”라고 수위를 낮췄다.그러면서도 “나를 장사꾼이 돈받은 것처럼 취급하는데,그런 사람 아냐.”라고 서운함을 숨기지 않았다. 마침 귀가한 둘째아들이 인사하자,정 대표는 “너 이리 와.”라며 옆에 앉혔다.“이놈이 24살인데,대학을 세 번이나 떨어졌어.큰놈은 33살이고 삼성에 다니는데 아직 장가를 못갔고…”라며 ‘평범한’ 가족사를 공개하기도 했다.딸은 결혼한 뒤 유학을 갔다고 설명했다.거실 한편에는 부모인 고 정일형·이태형 박사 사진과 가족 사진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기자들이 “아드님한테도 정치를 시킬 겁니까.”라고 묻자,정 대표는 “에이,얘는 안돼.”라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25일 새벽 1시쯤 기자들을 배웅하면서 정 대표는 거실 벽에 ‘시인거(是人居)’라고 씌어진 서예 액자를 가리켰다.“이거 독립선언 33인 중 한 분인 오세창 선생이 쓴 건데,여기에 사람이…,아니 사람다운 사람이 산다는 뜻이지.”라며 껄껄 웃었다. 정 대표는 이날 당에 출근해서도 새벽에 그랬던 것처럼청와대에 대한 추가적 강공은 자제했다.그러나 측근들은 “며칠 숨고르기를 하는 것일 뿐,개전(改悛)의 정이 안 보이면 결별밖에 없다.”고 말해 청와대에 대한 3차,4차 공격이 예비돼 있음을 강조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제주의 혼 깃든 돌문화공원 조성”/ 자연석등 14000점 기증 백운철 前 탐라목석원 대표

    백운철(60·전 탐라목석원 대표)씨는 육신만 제주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그의 ‘제주사랑 혼’이야 말로 가히 광적이다. 1969년 제주도의 돌민예품과 조록나무 뿌리 형상목을 주제로 한 독특한 양식의 탐라목석원을 만들어 관광객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그가 제주의 돌과 민구류 등을 집요하게 수집해온 사실이나 제주초가 등이 좋아 프랑스 파리에서 4차례의 사진전을 열어 바깥세상에 제주를 알리고 있는 것도 모두 제주사랑을 바탕에 깔고 있다. “제주의 개발형상을 옷으로 말하면 한복이 아니라 개량한복을 입혀 놓고 한복이라 우기는 격”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제주적인 냄새나 색깔이 무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백씨는 가장 제주적인 사업을 찾고 찾다 지금 북제주군이 추진하고 있는 돌문화공원 조성사업에 몸을 던지게 됐다.북제주군 조천읍 교래리 산 119 일대 100만평에 들어설 돌문화공원의 건설은 신철주 군수가 행정·재정지원 책임을 맡을 뿐 기본계획에서 디자인,설치,기획,감독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이 백씨의 몫이다.그가 공원감독인 셈이다. 백씨는 “북제주군에는 구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에 이르기까지 동굴과 바위그늘 등에서 제주 돌문화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여러 흔적들이 많아 돌박물관 입지로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라며 “동부산업도로변 해발 430m되는 사업현장도 광활한 야초·목장지대로,서쪽의 ‘큰 지그리오름’,북서쪽의 ‘작은 지그리오름’ 북쪽의 ‘바늘오름’으로 둘러싸인 명당중의 명당”이라고 치켜세웠다. 차로 제주시에서 30분,서귀포시에서 4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돌문화공원 조성현장 인근에는 삼다수생수공장·경주마육성목장·산굼부리·제동목장·미니월드 등 관광명소들도 즐비하다. 제주시 출신의 그가 북제주군의 일에 ‘간여’하게 된 것은 지난 99년 돌박물관에 대한 기본계획을 북제주군에 제출하면서부터다. “이 사업은 제주도가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도에 기본계획서를 제출했으나 6개월 동안 책상 서랍에서 나오지 않더군요.다시 제주시에 제출했지만 30만평 이상 되는 땅이 없는 게 문제였어요.신 군수를 찾아가자 너무 좋은 계획이라며 마치 ‘매가 병아리를 채가듯’ 시원하게 받아들이더군요.” 이후 백씨는 30여년 동안 애지중지 모아온 자연석 4178점과 돌민속품 5349점,민구류 4473점 등 ‘돈으로는 도저히 환산할 수 없는’ 1만 4000점의 수집품을 북제주군에 선뜻 기증했다.자연석 중에는 무게 10∼20t이 넘는 용암석과 화산탄 등이 수두룩하다.민구류 중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5m짜리 낫과 300년은 족히 넘었을 궤도 포함돼 있다.그의 분신이라고도 할 탐라목석원 관리마저 딸에게 떠넘겼다. “이 물건들은 모두 제주 것들로 몇 십만원에서부터 몇 천만원씩 주고 구입한 것들입니다.목석원을 하며 번 것을 모두 투자한 셈이지요.이 때문에 빚만 늘고 가족들과도 별거하는 생활이 수차례 반복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5·16 이후 새마을사업이 한창이던 때에 도로 개설현장이나 농공단지 조성현장 등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이들 물건을 하나둘씩 모았다.기증품 규모는 5t트럭 300대분으로 2개월 동안 공원조성 부지로 옮겼을 정도다.현재 가수장고와 야외에 보관돼있다. 지난 2001년 9월 기공식을 가진 제주돌문화공원은 2005년 동굴형 전시관,수석 전시관,야외전시장,전통가옥촌,주차장 등을 시설하는 1단계 사업이 마무리된다.이어 2020년까지 설문대할망 전시관,특별전시관,토성전시관,전원숙박시설,생태공원 등이 조성된다.총사업비만 1852억원에 이르는 대역사다. 백씨의 말을 빌리면 돌문화공원은 돌·흙·나무·쇠·물 등 5개 테마가 기본틀이다.2단계 사업 때는 제주 창조신화의 하나인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전설’ 테마가 보태진다. 주요 시설인 동굴형 돌박물관은 진입로 남쪽에 지하1층 지상2층 연면적 3000평 규모로 지어져 위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배부른 산모가 출산하기 직전의 모습을 하게 된다.옥상에는 대형 야외무대가 꾸며지는데 현재 공사가 30%쯤 진척됐다. 박물관 남쪽에는 400평 크기의 원형호수가,서쪽 숲속에는 선사시대의 돌문화,장묘문화,생활속에서의 돌문화 전시장이 15만평에 배치되고 30평짜리 초가 50채로 마을 하나를 만든다.토성형 전시관 등에는 제주의 흙을 빚어 만든 토기·옹기·항아리류 등이,특별전시관에는 현대 미술과 조각,서예,염색,공예 등 국내외 유명 예술인 작품이 전시된다. 이밖에 연면적 5만평 규모의 주차장 주변은 성곽 모형으로 700m 길이의 전망대를 만들어 맨발로 산책하며 공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꾸며진다. “공원 디자인을 맡았지만 훌륭한 디자인은 디자인하지 않는 것입니다.그것은 이곳의 70%가 돌과 나무,넝쿨로 이뤄진 생태 우수지역으로,이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30%의 면적만 활용하고 있습니다.“ 백씨는 기본급료와 활동비 등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 방문객을 위한 커피 한 잔도 호주머니를 털어 내놓는다. 북제주군에서는 일정액의 보수를 받아주기를 권했지만 그는 “세계 제일의 돌공원 사업에 참여하는 것으로 족하다.”며 사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사람의 자존과 명예가 걸린,가장 제주적이면서 세계적인 생태·문화·돌공원을 만들기 위해 백씨는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글·사진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복날 음식 형편따라 즐겼지요”/서울 班家음식의 산증인 김숙년씨

    현대인들은 24절기를 대부분 잊고 지낸다.하지만 복날만큼은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여름 무더위가 지겨웠던 까닭일까,여름 보양식을 즐겁게 먹었던 기억 때문일까. 초복(16일)을 앞두고 전통요리연구가 김숙년(金淑年·69)씨를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났다.마른 장마 속에 몹시 더웠던 이날 그는 2시간 남짓 계속된 인터뷰 동안 앉음새를 흩뜨리지 않았다.흰색 모시 저고리에 포도색 치마로 곱게 차려입고 단아하게 화장을 한 김씨는 일흔을 바라보지만 수줍어하는 듯한 소녀티가 가시지 않았다.목소리 또한 낭랑했다. ●혀끝의 기억으로 350가지 맛 찾아 김씨는 최근 100년간의 서울 토박이 반가(班家) 문화를 대변한다.그의 고조부 김석진(金奭鎭) 이전 11대가 서울 사대문 안에서 살았고 증조부 김영한(金寗漢) 이후 지금까지 서울에서 살고 있다. 더위를 화제로 삼은 김씨는 복날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옛날엔 초복은 여름을 맞이하는 기분으로,말복은 한여름을 넘겼다는 다소 허전한 느낌으로 맞았지요.제가 어릴 때만 해도 복날엔 ‘복놀이’가있었지요.학동들은 천렵을 나서 미꾸라지와 붕어를 잡았고,어른들은 황구를 몰고 산등성이로 넘어 갔지요.” 복날 음식 이야기가 끝이 없다.복날 형편은 가세에 따라 다 달랐다.서민들은 보신탕과 추어탕을 즐겼고,반가에선 육개장이나 삼계탕으로 더위를 이겼다. “‘더 있는 집’에선 민어 잔치를 벌였지요.민어로 구이와 매운탕을 먹고,부레로 순대를,알로 어란을 만들었지요.” 인삼이 귀하던 옛날,서민들은 삼계탕 대신 닭곰탕을 먹었다. “장닭 몇 마리를 푹 고아 식구들이 한 그릇씩 먹으며 더위를 달랬지요.” “당시에도 음식 사치가 있었고 경제력이 있던 중인들은 궁궐 못지않게 먹었습니다.대표적으로 용봉탕을 들 수 있지요.” 용봉탕이란 잉어와 닭을 함께 고아 낸 다음 잣·호두 등으로 고명을 한 것으로 겉보기에도 화려하면서 먹음직한 것이다. 또 한겨울 동짓날의 팥죽도 복날 먹었다고 한다.붉은 팥을 액막이로 여겼기 때문이다. “참외와 수박도 빠지지 않았지요.” 그러면서 김씨는 참외와 증편(떡)을 살갑게 갖고 나왔다. 이렇게 당시의음식을 꿰뚫고 있는 김씨는 ‘김숙년의 600년 서울음식’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김씨는 어린시절 혀끝의 기억만으로 350가지나 되는 전통 서울음식의 맛을 찾아낸 것이다.이 책은 단순한 요리책의 차원을 넘어 서울 반가의 생활문화와 예의범절이 담긴 역사책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엄한 가풍… 4대 42명 한집서 살기도 음식 이야기로 바뀌면서 김씨는 추억속에 빠져드는 듯했다. “어릴 적의 가풍이 무척이나 엄했지요.” 그도 그럴 것이 김씨 집안은 조선 인조 때 예조판서를 지낸 김상헌(金尙憲)을 배출했고,순조의 둘째딸 복온(福溫)공주의 시댁이기 때문이다. 김씨 가문은 김상헌 이후 잣골(효자동) 등 서울 4대문 안에서만 살아왔으나 1910년 한일합방 당시 형조판서였던 고조부 오천(梧泉) 김석진이 “세상을 보고 듣지 않겠다.”며 두메산골이던 서울 도봉구 번동 드림랜드 자리의 한 부분인 오현(梧峴·당호)집으로 이사를 했다.오천은 결국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못이겨 자결했다. 고조부의 자결 이후 일본의 감시와 수탈이 한창이던 1934년 김씨는 오현집에서 5남매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린 김씨는 대가족의 울타리 속에 살았다.오현집에 증조부·조부모·부모·삼촌·고모·당숙·당고모·김씨의 5남매 등 4대 42명의 식구가 살았다고 회상했다.일제시대 가족은 엄했지만 언제나 따스하고 정겨웠다. 이런 대가족이자 일제를 거부하는 집안의 맏며느리였던 어머니의 손이 마를 날이 없었다.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제사와 어르신들의 생신,세시풍속을 다 챙겼기 때문이다. 대신 집안에서는 구수한 음식 냄새 또한 가시질 않았다.댕기머리 소녀였던 김씨는 감히 음식을 먹지 못했지만 부엌에선 할머니와 어머니가 ‘숙아 맛좀 보렴.’하고 한 숟가락 떠준 덕분에 맛을 봤다.그 기억이 잊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음식은 세대를 잇는 징검다리 해방과 더불어 김씨는 학교 교육을 받았다.일제 때 증조부가 신식교육은커녕 외출도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6·25 때 800평에 이르던 오현집은 인민군에게 빼앗겼고 유엔군에게 폭격됐다.현재 드림랜드에는 폭격에서 살아남은 사랑채만 남아 있다.안채는 수년 전에 복원된 것이다. 그런 와중에 김씨는 1957년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졸합하고 성심여고에서 음식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서예 교사로 교편생활을 시작했다.1959년 국전에서 입선하기도 했다.1973년 전근갔던 창문여고에선 가정 교사였지만 서예도 많이 가르쳤다.그동안 틈틈이 서예를 출품,국전에 입선한 적이 여러차례였다.한글 서예의 지평을 연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이 그의 숙부이다. 지난 1996년 교사를 그만둔 뒤 서예에서 멀어지는 대신 전통 음식에 가까워졌다.“감기 기운이 있다가도 부엌에만 들어가면 감기가 다 나았어요.” 그에겐 음식이 세대를 잇는 징검다리 같아 보였다.“언젠가 쇠골찜을 만들었는데,‘할아버지,숙이가 만들었어요.드셔보세요.’라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했지요.그리곤 즉시 전화를 걸어 7살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던 음식’이라며 먹으라고 했지요.” ‘…서울음식’ 발간 이후 김씨는 잡지와 방송에서 음식 코너를 맡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요리 연구가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하는 서울 반가음식의 산 증인인 김씨.그에게는 요즘 전통 음식과 생활문화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글 이기철기자 chuli@ 사진 이언탁기자 u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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