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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전통사경의 세계 한눈에

    불교 경전을 베껴 쓰는 사경(寫經)은 그저 경전의 글귀를 옮기는 서예에 머물지 않는 수행의 방편이자 종교의식의 하나로 평가된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져온 사경은 고려시대 절정을 맞았으나 조선시대 이후 쇠퇴해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사경연구회(회장 외길 김경호)가 19일까지 청계천문화관 기획전시실서 열고 있는 제4회 회원전 ‘한국전통사경의 세계’는 이처럼 찬란했지만 스러져간 한국 전통사경의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특별한 자리. 회원들이 갈고 닦은 기량을 한껏 보여주는 작품들이 나와 있다. 한국사경연구회는 김경호씨가 창립해 어렵게 전통 사경의 맥을 잇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경 단체. 이번 전시에는 회원 26명이,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기록이나 구전으로만 전승되어온 사경의 원형을 꼼꼼하게 고증해 세상에 내놓은 역작들을 보여준다. 서예문화대전과 대한민국서예전람회를 비롯한 각종 서예관련 공모전 입상 경력이 있는 회원들과 스님 3명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작품들도 김경호 회장의 감지금니 ‘화엄경 보현행원품’ 변상도를 비롯해 금강경, 반야심경, 부모은중경 등 불경과 각종 보현보살도, 초전법륜도, 관세음보살도가 포함되어 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수원 영통구에 ‘3종 박물관’ 개관

    수원 영통구에 ‘3종 박물관’ 개관

    경기 수원시에 3개의 박물관이 동시에 문을 열었다. 수원시는 영통구 이의동 경기대와 수원외고 사이 언덕 3만 9135㎡에 243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6535㎡의 ‘수원박물관’을 준공해 1일 개관식을 가졌다. 박물관은 ‘수원역사박물관’,‘한국서예박물관’,‘사운 이종학 사료관’ 등 3개로, 그동안 기증받거나 구입한 유물 3만 3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수원역사박물관에는 논밭과 들판이 펼쳐진 1950∼70년대 수원 풍경 사진들과 중앙극장, 공설목욕탕, 수원 갈비의 원조 화춘옥이 있던 1960년 무렵 영동시장 거리를 재현한 전시장이 눈길을 끈다. 수원화성 화홍문이 도안된 1909년 발행 1원권 지폐와 남문이 그려진 성냥갑 등도 전시돼 있다. ‘한국서예박물관’은 서예가 양택동 선생으로부터 기증받거나 구입한 유물을 중심으로 건립된 지방자치단체 최초의 서예전문 박물관이다. 어필(御筆) 중 조선 영조의 7세 때 글씨와 정조의 동궁시절 서첩, 명필로는 퇴계 이황의 초서가 눈에 띈다.‘이종학 사료관’에는 17세기초 문인·학자들의 미공개 시 40여편이 담긴 시첩 ‘조천증행록’, 일제 조사보고서 유일본과 금강산 채색지도 등 이종학 선생이 기증한 유물 1만 9000여점이 전시된다. 박물관에는 어린이체험관과 문화교육관도 운영된다. 어린이 체험관에서는 화성모형 만들기, 옛날 살림살이 등을 체험하고 화성 축조에 사용한 거중기와 정조의 안경을 소재로 한 안경의 역사에 대해 공부할 수 있다. 수원박물관은 개관을 기념해 올해말까지 ‘근대수원 100년’ 기획전을 연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경찰, 신영복 작품 게시 돌연 취소

    경찰, 신영복 작품 게시 돌연 취소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여년을 감옥에서 보냈던 신영복(67)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서예작품 ‘처음처럼’을 서각(書刻·글씨를 써서 나무에 새기는 것)으로 만들어 일부 경찰 지구대에 내걸기로 했다가 돌연 취소해 그 배경에 궁금증이 쏠리고 있다. 16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신 교수가 1995년 개인 서예전에 출품했던 ‘처음처럼’을 서각으로 제작해 올해 말까지 관할 지구대 7곳과 역전 파출소 1곳에 걸 계획이었으나 내부 검토과정에서 취소했다. 이철성 영등포서장은 “신 교수의 허락을 받아 ‘경찰관으로서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하는 뜻으로 이 작품을 일선 지구대에 걸기로 했으나 내부검토 과정에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취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신 교수의 작품을 건다는 얘기가 나오자 경찰 안팎에서 무기징역까지 받은 사람의 글씨를 경찰이 활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88년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서예는 해경들 심신수양에 좋은 취미”

    해상의 치안을 담당하며 틈틈이 익힌 서예 솜씨로 각종 대회에서 18차례나 수상한 해양 경찰관이 화제다. 완도해경 경무기획과 최수남(51) 경위가 최근 제44회 전남 미술대전 서예부문에 입선했다. 최 경위는 심휴문의 한시 ‘장가행(長歌行)’ 글귀를 예서체로 쓴 작품으로 입선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 대회에서만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최 경위가 처음 서예전 수상의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 신춘 휘호대전에서 입선하면서다. 이후 그는 한국서예대전, 광주시 서예협회전,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등에서 잇따라 수상하면서 모두 18회나 상을 타는 경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는 40세를 훌쩍 넘어 선 2000년 11월 무렵 뒤늦게 서예를 익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도 기운이 가장 고요한 새벽 4시면 일어나 글을 쓰고 주말에는 자신이 서예를 배운 여수의 남재서실을 찾아 만학의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최 경위는 발령지마다 동료와 지역 주민들에게 가훈 등 글을 써주고 때로는 서예 강사 역할도 맡는다. 그래서 해경 내부에서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는다고 한다. 최 경위는 “서예는 거친 바다를 지켜야 하는 해경들의 심신수양에 매우 좋은 취미라고 생각해 동료들에게도 권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해경 서예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완도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우리 땅 독도 상징 도장 만들었죠”

    “일본의 독도 영유권 망언에 맞서 ‘우리 땅 독도’를 상징하는 도장인 도새(島璽)를 만들었습니다.” ‘서예 퍼포먼스’로 유명한 서예전각가 김동욱(56·울산시)씨는 21일 일본의 최근 독도 영유권 망동과 관련, 우리 국민에 대한 독도의 관심을 촉구하고 독도의 소중함을 강조하기 위해 독도 도장인 도새를 제작해 공개했다. 김씨가 최근 완성한 ‘도새’는 가로×세로 각 9㎝에 길이 18㎝의 직육면체 크기이다. 재료로는 전남 해남에서 생산되는 3㎏짜리 돌로 사용됐으며 , 훈민정음체를 바탕으로 하는 ‘대한독도’ 한글 글씨를 새겼다. 옆면에는 3·1절 목판본에 기초를 둔 옛날식 태극기를 양각했고 다른 면에도 ‘韓國領’ 및 ‘과거 현재 미래에도 독도는 대한민국땅’이라는 글귀를 새겨 넣었다. 그는 또 독도와 관련한 전각 작품 200여점을 구상해 놓고 이중 ‘독도 우표’와 ‘독도 사랑’ 등 10여점을 완성했다. 김씨는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 등을 지켜보면서 예술가로서 조국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다 지난해 여름부터 도새 제작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8·15 광복절 때 독도 현지를 찾아 경북도와 공동으로 ‘동해를 지키는 독도는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다’는 주제의 서예 퍼포먼스를 펼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자신이 만든 도새와 독도 관련 전각 등을 8·15 광복절을 상징하는 한지 815장에 찍어 관광객들에게 나눠 줄 계획이다. 또 폭 6m, 길이 8.15m의 대형 태극기에 탐방객들의 독도사랑 소망도 적게 한다. 그는 이번 행사를 마친 뒤 도새를 경북도에 기증할 계획이다. 김씨는 지난 6월에도 독도 선착장에서 우리 땅 독도를 알리기 위해 ‘독도사랑 서예 아리랑’이라는 주제로 서예 퍼포먼스를 가졌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Seoul in] 20일까지 ‘한글서예전’

    [Seoul in] 20일까지 ‘한글서예전’

    광진구(구청장 정송학) 오는 20일까지 구청 민원실에서 한글서예전을 연다. 서예전은 군자동 주민자치센터에서 먼저 시작한 전시회로 한글서예교실 회원 16명의 작품 25점을 전시한다. 군자동 서예교실은 2000년부터 31기째 진행되면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민원여권과 450-7172.
  • [Seoul In] 2일까지 삼각산 서예전

    [Seoul In] 2일까지 삼각산 서예전

    강북구(구청장 김현풍) 지난 29일~2일 구청 1층 갤러리에서 ‘삼각산 서예전’을 연다. 삼각산을 소재로 서예동호회 회원들이 쓴 은은한 묵향의 작품 8점이 전시된다. 작품은 전서, 해서, 행서, 예서 등 다양한 서체로 쓴 김시습의 삼각산과 정조의 차석름봉운 등 옛 시다. 갤러리는 민원인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복도에 25.5㎡ 공간이다. 전시장 앞에는 삼각산 제이름 찾기 서명대가 설치됐다. 문화공보과 901-2096.
  • [Seoul In]구청 로비서 서예전시회 열어

    도봉구(구청장 최선길) 구청사가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난다.1층 갤러리에서는 14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도봉서예문인화회원초대전이 열린다. 지역 문인화회원 21명의 정갈한 필체와 짙은 묵향이 배어난 작품들이 전시된다. 문화체육과 2289-1033.
  • “서예전·요가경연 보러 오이소”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체험으로 느끼세요.’ 부산 연제구는 12일 평생학습도시 선정 1주년을 맞아 ‘평생학습 및 주민자치 페스티벌’을 개최한다고 밝혔다.13∼16일 4일간 구 청사 및 부산시청 대강당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에는 거제1동 등 관내 13개동 주민자치센터와 평생학습 기관·단체 등이 참여한다. 주요 행사는 주민 작품 전시회와 체험마당, 주민자치 심포지엄, 프로그램 발표회 등이다. 구청 행사장에서는 서예, 공예, 꽃꽂이, 페이퍼 아트 등 동아리 작품 전시회와 리본공예, 한지공예, 천연비누 만들기 등의 체험마당이 열린다.14일 오후 구청 대회의실에서는 평생학습 관련 외부 전문가를 초빙,‘연제구 평생학습의 발전방안’에 관한 심포지엄이 개최된다. 16일 오후 시청 대강당에서 열리는 ‘프로그램 발표회’는 13개동 주민자치회 수강생들이 참여해 노래와 댄스, 요가 등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하는 경연을 펼친다. 이위준 연제구청장은 “이번 페스티벌을 계기로 평생학습이 주민들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 내리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천리타향 LA에서 붓 든 채…

    천리타향 LA에서 붓 든 채…

    부산 흥사단 사람들이 불시에 필자를 찾아 왔다. 1975년 필자가 국제신문 문화부장으로 있던 시절이다. 오늘 아침 운여 김광업 선생이 미국에서 타계했다는 부음이었다. 1973년에 로스앤젤레스로 이민간 지 3년만이다. 한국 쪽은 부산에 있는 국제신문의 필자에게 제일 먼저 알리라는 것이 유가족 측의 부탁이었다고 했다. 이 분이 한국에, 아니 부산에 살고 계실 때 그다지 짙은 정을 못 느꼈던 터라 다소 망연자실한 순간이었다. 실은 운여 말고는 그의 유족에 대해 평소에 들은 바는 있지만 면식은 없었다. 아들이 의사라는 것과 운여의 생활이 다소 어렵다는 것 등이다. 또 더 이상 아버지를 고국에 두고 미국에서 자식들만 떨어져 살 수 없다는 것이 아들의 간절한 충정임을 들어 알고 있었다. 운여가 어느 날 “이제 더 못 버티겠어”라고 말했다. 왜냐고 물으니 “아들이 미국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의절하겠대”라고 말했다. 듣고 보니 정말 난감한 노릇이었다. 운여는 부산이 이미 정든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부산을 떠나 일단 서울로 옮겼다가 미국으로 가야 할 운명이었다. 거의 절망 상태에 빠졌다. 거기 가면 글씨며 전각이며 골동 감정하는 재미를 깡그리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강박관념이 그를 번민케 했다. 운여가 부산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동광동 김춘방 시인이 운영하는 벨모르 독서실에서 운여를 보내는 조촐한 모임을 가졌다. 교인인지라 아예 술 같은 건 마련할 필요가 없었다. 김춘방과 필자 등은 지필묵만 준비해 놓는 것으로 전송모임의 준비를 마쳤다. 부산에 거주하고 있을 때 창간 기념 휘호라든지 새로운 연재기획물이라도 마련되면 그 제호쓰기는 10중 8, 9는 운여 몫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 양반 한 번도 귀찮아하는 내색도 없이 묵묵히 응해주었다. 성품이 워낙 소박한데다 남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서예작품뿐 아니라 전각 작품까지도 남 주기를 좋아했다. 물욕 같은 것은 버린 사람 같았다. 물론 필자도 어느 날 한글체로 된 이름을 새긴 전각 도장을 받은 적이 있다. 운여는 송별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6절지 한 장씩에 전자(篆字) 글씨를 정성스레 써 손에 쥐어줬다. 다음 날 운여는 서울로 떠났다. 필자는 그에 대한 송별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운여체’란 어휘를 쓰면서 부산에서 전각과 서예를 위해 큰 터전을 일군 그의 공로를 기렸다. 1950년대 월남한 이래 정든 부산을 떠나는 그에 대한 필자의 작은 헌사에 지나지 않는다. 운여는 환속한 청남 오제봉을 위해 창선동 대각사의 선방을 빌려 동명서화원을 차리도록 주선했다. 해마다 서화 전람회도 열고 대구와 교류전도 빠짐없이 열면서 한국화와 더불어 서예, 전각으로 청남과 배재식, 조영제 등 그 제자들이 기량을 나타내고 향상시키는데 적잖이 이바지했다. 그는 기독교 장로이면서 불경에도 조예가 깊었다. 오늘에 와서 중진의 경지에 들어선 맷돌 수안 스님 등이 전각을 배우러 드나든 것도 이 무렵이다. 운여는 일찍이 도산 안창호를 흠모하는 사상가로 63년엔 흥사단 부산분회를 창립, 분회장직을 맡아 청년운동에 남다른 열성을 보였다. 그는 또 우리 골동문화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감식안을 갖고 있었다. 이를 자타가 공인 할 정도였다면 그 감식안의 수준을 알 만하지 않겠는가. 그는 진위를 가려 달라는 청을 받으면 그것이 비록 위작이라 하더라도 “그냥 가지고 계세요”라고 답한다. 상대가 그것을 밖으로 내돌리지 않는 것이 진정한 애호가들을 위해서 좋은 길이란 암시다. 그는 미국 이민 이후에도 부산을 너무 그리워하고 다시 오고 싶어했다. 이민 간 그 해 필자에게 부산 살던 간절한 그리움과 회한을 담은 서신을 보내면서 서신 끝에 ‘나성(羅城)에서 나부 운여(拿父 雲如)’란 서한을 받고 한동안 어리둥절한 적이 있다. 나부란 뜻은 나포된 아버지란 뜻이 아닌가. 그제서야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토록 가기 싫은 미국 이민을 아들의 강권에 못 이겨 갔으니 나포된 애비가 아니냐는 그런 눈물겨운 뜻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운여는 미주흥사단의 사무실을 마련하기 위한 자금을 조달하려고 서예전시에 골몰하고 있었다. 밤낮 없이 쓰고 깎고 하다가 밤새 붓을 든 채 책상머리에 엎드려 영원의 잠을 청한 운여! 자기 겸손이 지나쳐 초기 국전 서예부문의 심사위원 위촉마저 사양한 선비. 우리 서예계의 독보적 존재, 고국에 묻히고 싶다던 소원도 이루지 못하고 이국땅에 잠든 운여를 우리는 잊을 수 없다. 그는 1906년 평양에서 태어나 경성의전(현 서울의대)을 나와 평양에서 안과를 개업했다. 광복 후 북한 정부에 차출돼 종합병원에서 종사하다가 1·4후퇴 때 피란 대열에 섞여 대구로 내려 왔다가 수년 뒤 부산으로 옮겼다. 가족들은 수정동 산 언덕배기 판자촌에 기거시켜 놓고 한때 지게꾼 노릇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 뒤에 겨우 자금을 꾸려 창선동에서 ‘광명안과’로 개업하다가 대교동으로 옮겼다. 안과를 개업했으나 서예 쪽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의 운필은 딴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매우 독창적인 것이어서 추사(秋史) 이래 큰 재목으로 평가받아 왔다. 글 김규태 시인, 전 《국제신문》논설주간     월간 <삶과꿈> 2007.09 구독문의:02-319-3791
  • 강릉 율곡 이이선생제 26일까지

    강릉 율곡 이이선생제 26일까지

    우리나라 유교 전통 제례(祭禮)행사를 엿볼 수 있는 ‘대현 율곡 이이선생제(율곡제)’가 25일부터 이틀동안 강릉 오죽헌에서 펼쳐진다. 올해로 46회째를 맞는 율곡제는 잊혀져 가는 우리의 제례 행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며 현대인들에게 좋은 볼거리가 되고 있다. 행사 첫날인 25일에는 오죽헌 문성사에서 강릉시장을 초헌관으로 한 향교 유림들의 서제(序祭)를 시작으로 율곡제가 막이 오른다. 서제는 본제사에 앞서 전날 지내는 제사다. 서제가 시작되기 전인 오후 4∼6시 율곡선생 ‘장원급제 삼일 유가 행렬’이 시내 중심가에서 펼쳐진다. 취타대와 농악대를 앞세우고 청사초롱을 든 유치원생과 학생 250여명이 명주초등학교∼옥천오거리∼강릉역간을 행진하며 율곡제를 알린다. 율곡선생이 장원급제했던 당시 3일 동안 고을에서 경축 행사를 펼쳤던 것을 재현한다. 같은 날 오후 7시부터 오죽헌에서는 본제사가 봉행된다. 제례 행사 동안 궁중악에 맞춰 제례무가 펼쳐지고 합창단 등의 공연이 함께 펼쳐져 관람객들에게 전통 제례행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례행사 이후 28일까지 오죽헌 일대에서는 한시백일장, 학생백일장, 학술논문 발표회, 휘호대회, 율곡학 국제학술대회 등 문예행사와 서예전시회, 들차회, 분재 전시회 등 다양한 경축행사가 열린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김홍대 전 법제처장 부부 서화전

    김홍대 전 법제처장이 부인 황선화(화가)씨와 함께 24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불일미술관에서 ‘김홍대·황선화 부부전’을 개최한다. 불경을 고유서체로 옮겨 적은 김 전 처장의 서예전과 부인 황선화씨의 풍경유화 등이 전시된다.1998년부터 2000년까지 법제처장을 지낸 김 전 처장은 2002년부터 현재까지 동양대 부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부고] 서예가 하남호 선생 별세

    원로 서예가 장전(長田) 하남호 선생이 4일 오전 10시50분쯤 8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하 선생은 국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 전남도 문화상 심사위원,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심사부위원장, 운영위원, 한국서가협회 공동회장 등을 역임했다.그는 13,15,16,17회 국전에 입선했고 18∼21회 국전 특선, 보관문화훈장, 세계평화예술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졌다. 빈소는 광주 무등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7일 오전, 장지는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 선영으로 결정됐다.유족으로는 부인 박순진(81)씨와 영규씨 등 3남4녀가 있다.(062)515-4488.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평창 효석문화제… “뭘 볼까 고민되네”

    평창 효석문화제… “뭘 볼까 고민되네”

    “가을의 문턱, 메밀꽃과 문학의 정취에 빠져 봅시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고장인 강원 평창 효석문화제가 7일부터 열흘 동안 봉평면 일대에서 펼쳐진다. 가산공원과 흥정천 등지에서 열리는 이번 효석문화제는 이효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전통의 향수와 문학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봉평면 주민들은 효석문화마을 170만여㎡에 메밀을 심고 꽃밭을 조성했다. 물레방앗간과 이효석 생가터 주변 모두가 제철을 맞은 메밀꽃으로 뒤덮여 있다. 축제 기간 이효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문학 관련 이벤트가 열린다. 봉평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는 다채로운 전통·민속행사도 이어진다. 전국 유명 문인 300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문학인 대회’를 비롯해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밭에서 문학의 밤, 문학 콘서트 등이 펼쳐진다. 마을앞 흥정천을 가로지른 나무다리와 돌다리, 섶다리 등을 건너며 소설 속의 시대를 체험할 수도 있다. 송어 맨손잡기나 봉숭아 꽃물들이기 등 가족단위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농사놀이 체험이나 우마차 타기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즐길거리다. 관광객들은 제기차기와 고무신끌기, 투호놀이, 굴렁쇠놀이 등 전통 민속놀이는 물론 지게지기와 도리깨질 등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체험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다. 먹거리도 많다. 주민들이 직접 재현한 1930년대 재래장터에서는 메밀전과 메밀국수, 올챙이국수, 동동주 등 전통 음식을 맛보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다. 대장장이와 짚신장수, 채소·곡물장수들이 연신 소리를 질러대며 와글와글한 시골장터의 모습이 그대로 펼쳐진다. 효석문화제의 백미는 봉평 달빛극장 페스티벌. 봉평면의 폐교된 덕거초등학교를 개조해 연극배우 유인촌이 공연장을 만들고 2004년부터 매년 효석문화제 기간에 맞춰 공연해오고 있다. 올해는 클래식 연주회와 연극이 어우러지는 프로그램으로 짜졌고, 기간도 종전 1주일에서 3주일로 늘었다. 축제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마을의 물레방앗간을 돌아 오솔길로 접어들면 산 중턱에 있는 이효석문학관을 만날 수 있다. 문학관 안의 메밀자료 전시관에는 메밀의 역사·성분·효능 등을 살필 수 있는 각종 자료가 전시된다. 바로 아래는 이효석의 생가터가 자리한다. 생가터 오른쪽으로는 폐교를 개조해 만든 ‘평창무이 예술관’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드넓던 운동장에는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마치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을 자아낸다.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도예전과 서예전을 감상하며 직접 도자기도 구워 볼 수 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30분거리에 있는 강릉을 찾아 철 지난 여름바다와 함께 회를 맛보는 것도 좋겠다. 효석문화제는 올해 고객 중심의 기획·운영 프로세스를 구축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국제표준화기구로부터 ISO9001(품질경영시스템) 인증을 획득했다. 권혁승 평창군수는 “평창은 울창한 숲과 맑은 공기, 가을의 시원한 바람과 함께 문학의 향기가 배어나는 고장이다.”면서 “1930년대의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봉평면으로 초대한다.”고 말했다. 평창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7일> ·전국 효석백일장 대회(문화마을 일대)·쏙버덩소리공연(주 행사장) <8일> ·황병산사냥놀이(주행사장)·문학의 밤(〃) <9일> ·무지개다리(국악공연·주행사장)·소래국악공연(주 행사장) <10일> ·민속놀이(주행사장)·영상물전(〃) <11일> ·평창 아라리공연(주행사장)·민속놀이(〃) <12일> ·평창 주부 사물놀이(주행사장)·민속놀이(〃) <13일> ·취타대 공연(주행사장)·민속놀이(〃) <14일> ·목도소리(주행사장)·문학콘서트(〃) <15일> ·가장행렬(주행사장)·연극공연(〃) <16일> ·사물놀이(주행사장)·농악(〃)
  • [단신] 강사현 ‘고희 기념 서예전’

    강사현 한국서화작가협회장의 ‘고희 기념 서예전’이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공평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올해 쓴 서예 작품 200여점을 전시한다.(02)733-9512.
  • 대한민국서예전람회 수상작 선정

    사단법인 한국서가협회(회장 주계문)는 제14회 대한민국서예전람회 대상작으로 최점희씨의 ‘高適 선생 시 夜別韋司士’를, 문화관광부 장관상에 김영수씨의 ‘梅窓 선생 시’를 각각 선정했다. 우수상에는 류복희씨의 ‘李退溪 선생 시’, 최윤영씨의 ‘趙泰億 선생 시’, 고성호씨의 ‘申翊聖 선생 시’, 류호숙씨의 ‘인현왕후전’, 최명숙씨의 ‘墨梅’가 각각 선정됐다. 이번 당선작은 오는 8월20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전시된다.
  • 건국대 60주년 기념식

    건국대는 15일 개교 6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김경희 이사장과 정길생 총장, 김태경 동문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행사에서는 건국대와 건국대병원, 건국유업 등에서 연합으로 구성된 180여명의 범건국합창단 공연과 기념 마라톤 대회, 서예전과 한·중 학술심포지엄, 교수 학술도서전시회 등이 열렸다. 건국대는 학생과 교직원, 동문 등 2000여명이 참가한 마라톤대회에서 모인 430여만원을 전액 광진구 관내 소년소녀가장 돕기에 사용한다고 밝혔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부고]

    ●항일 애국지사 조우식 선생 항일투쟁을 벌였던 애국지사 조우식 선생이 2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 1927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조 선생은 1943년 경남학생건국위원회를 조직했다. 위원회는 일본 해군 군사시설을 탐지하는 등 항일활동을 전개했다.1944년 체포된 조 선생은 4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다 광복으로 출옥했다. 정부는 1982년에 대통령표창을,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빈소는 부산대학병원 장례식장. 장지는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제3묘역이며, 발인은 26일 오전 6시30분.(051)240-7848. ●추연성(LG생명과학 연구개발 본부장)연식(가잘고고학연구소장)희경 효경(청강문화산업대학 식품학과 외래교수)씨 부친상 오일성(한도병원 이사장)최성철(부산외대 경제학과 교수)씨 빙부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5시 (02)3010-2295 ●최형엽(전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심사위원)씨 별세 영선(씨엘에스통상 대표)씨 부친상 김세진(신영FLS 대표)이경탁(우리은행 서교동지점 부지점장)전영승(대상 수석연구원)씨 빙부상 24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26일 오전 6시30분 (031)787-1501 ●이수춘(전 한국전력 과장)씨 별세 준희(선엔지니어링 이사)인희(대한항공 기술부장)장희(한국기계연구소 책임연구원)서관(전 국세청 계장)씨 부친상 노태천(충남대 교수)조규철(사업)씨 빙부상 2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6일 오전 7시30분 (02)3410-6927 ●성광제(현대중공업 건설장비 기원)관제(SK텔레콤 과장)혁제(한국노바티스 차장)씨 부친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6시 (02)3010-2265 ●송운엽(경희대 이과대 교무부처장)씨 모친상 24일 경희의료원, 발인 26일 오전 8시 (02)958-9545 ●김승헌(서울 신성치과병원장)삼헌(광주CBS 보도국 차장)씨 모친상 23일 서울대병원, 발인 25일 오전 9시30분 (02)2072-2027 ●장창호(자영업)현숙씨 부친상 전명술(전 연합뉴스 정보통신부 부국장)씨 빙부상 23일 경희의료원, 발인 25일 오전 11시 (02)958-9553 ●박원식(K.U.S 회장)성식(자영업)씨 부친상 2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 (02)3410-6907 ●이남기(전 공보처 부이사관)용기(사업)덕기 성기(사업)씨 모친상 종우(삼성정밀화학 과장)종인(강남성모병원 조교수)종혁(기술신용보증기금 차장)종서(웅진닷컴)씨 조모상 24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 (02)590-2697 ●김일수(건축업)이수(〃)영근(LG산전 책임연구원)영래(자영업)씨 모친상 김영재(자영업)이상숙(〃)정무영(쌍용자동차 홍보팀장)씨 빙모상 24일 중앙대병원, 발인 26일 오전 11시 (02)860-3591
  • [마니아] 고덕2동 주민자치센터 동호회

    [마니아] 고덕2동 주민자치센터 동호회

    일상속에서 발견하는 자연 ‘민화’ “어머니, 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 아들 율곡이 숨가쁘게 달려옵니다. 풀밭에서 산 채로 잡아온 방아깨비를 어머니에게 보여줍니다. 신사임당은 방아깨비의 뒷다리까지 꼼꼼하게 살펴본 뒤 놓아줍니다.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草蟲圖)’는 소박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맛이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사랑스러운 눈길이 묻어나오기 때문이지요. 신사임당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림은 단순히 손재주만으로 그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을 가다듬은 뒤 그릴 대상을 꼼꼼이 관찰해야 한다. 실체를 파악하지 않으면 생명력이 없는 그림이 나올 뿐이다.” 그래서인지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를 보고 닭이 와서 쪼아댔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현대판 신사임당’들이 민화를 그리고 있는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지난 7일 강동구 고덕2동 주민자치센터 2층의 ‘민화방(民房)’.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민화에 푹 빠진 20여명이 몰려든다. 민화방은 고덕2동 동사무소에서 운영하지만 절반 정도는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온다. 민화방을 이끄는 한국민화작가회 회장 안종혁씨의 개인전 등을 접하고 찾아오는 이들이다. ●취미로 시작… 국내외서 전시회 열어 이날은 민화 경력 19년차인 ‘왕 언니’ 이정순(60)씨가 분위기를 한껏 띄우면서 시작됐다. 전날 저녁 제사 상에 올렸던 인절미를 가져온 것. 대개 이른 시간 집을 나서며 아침을 먹고 오지 않은 터라 인절미에 손이 갔다. 커피를 곁들이면서 이씨는 민화의 매력에 대해 말했다. “민화는 서민들의 생활이 녹아든 과거의 민중 예술이었습니다. 궁중 화원이든, 떠돌이 작가든, 여인네든 민화를 그렸지요. 근대화 과정에서 민화는 무명작가들의 그림이라는 이유로 훼손당했지만 최근 회복되고 있지요.” 중학교 과학교사였던 이씨는 취미삼아 민화를 배웠다가 은퇴한 지금까지도 민화에 빠져 있다. 실력 또한 전문가 수준이다. 지난해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십장생도’ 등의 전시회를 열었으며, 강원 영월의 ‘난고 김삿갓 축제’의 민화 공모전에도 입상하기도 했다. ●일산서 왕복 4시간 걸려 오가기도 민화방의 ‘최고참’ 민춘례(73) 할머니도 거든다. “노인들이 시간을 보낼 게 마땅치 않잖아요. 집에서 잠이 안 오면 민화를 그리면서 잡념을 떨치고 집중할 수 있지요. 수다만 떠는 것은 싫어요. 틈만 나면 이렇게 붙잡고 있답니다.” 이런 열정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민 할머니는 민화방이 열리는 매주 화요일이면 꼬박 2시간 동안 서울을 가로지르는 ‘대각선 행진’을 한다. 집이 일산에 있는 탓이다.“민화방까지 오는 게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민 할머니는 “예전에는 관절이 좋지 않아 오래 걷는 게 힘들 정도였지만 이렇게 움직이니까 힘이 난다.”라고 대답했다. 원래 서예와 사군자를 시작한 민 할머니는 서예전에 갔다가 우연히 안종혁 회장의 작품을 접하고 민화방에 오게 됐다. 회원들은 어느새 자리로 가서 제각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각자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어서 꽃들을 그린 화훼도(花卉圖), 풀과 곤충이 담긴 초충도(草蟲圖), 꽃과 새를 화조도(花鳥圖), 문방사우(文房四友)가 있는 책걸이(冊架) 등 각양각색이었다. 이런 가운데 민화방의 ‘청일점’ 박민수(52·남)씨가 단연 눈에 띄었다. 평일 오전 민화방에 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올 수 있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현직 경찰인 박씨는 3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에 근무 시간이 아닐 때 짬을 내서 참석한다고 했다. 박씨는 지난주 밑그림을 그린 산수화를 채색하다가 “근무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에 일찌감치 나서야 한다.”면서 서둘러 민화를 그렸다. ●세월 흐를수록 자연스러운 색감 민화방의 신혜영(50)씨는 지난달 뉴질랜드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현지 예술협회와 한국총영사관 등의 후원을 받아 오클랜드 대학 초청으로 신씨의 작품이 이역만리까지 가게 됐다.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신씨는 미술학도답게 민화의 성격을 분석했다. “민화는 실용예술로 분류되지요. 옛 조상들의 일상 생활의 일부였지요. 방안의 족자, 소반, 병풍 등에 모두 민화가 담겨 있었고, 여인네들이 애장하던 물품이었지요. 민화를 두고 회화인지 아닌지 논쟁을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민화가 우리 삶을 다루는 친근한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우영숙(42)씨는 민화의 색감에 대한 예찬론을 폈다. “한지에서 물감이 피어나듯 우러나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운 맛이 더해지지요. 민화는 돌가루·흙을 염색한 분말을 아교에 개어서 쓰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색감이 아름답게 배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씨는 민화의 이런 매력에 빠져 올해 명지대 전통공예학과 대학원으로 입학하기까지 했다. 그런가 하면 김숙(49)씨는 신사임당이 즐겨 그린 ‘초화도’만 고집한다. 강아지풀에 오이 줄기가 얽혀 오이가 열려 있는 모습, 달개비꽃과 양귀비꽃 앞에 여치가 뛰어노는 모습, 개구리와 무당벌레가 연못가에서 노는 모습 등 온통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자연의 모습이다. 10개월 된 늦둥이를 포대기에 업고 그림을 그린 ‘신입생’ 김정현(40)씨는 오늘 처음 왔다. 신씨는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그리는 ‘까치 호랑이’ 민화에 정성스레 붓질하면서 “다음 민화방 마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고 말했다. 글 사진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안종혁 회장이 말하는 민화 고덕2동 ‘민화방’을 이끌고 있는 안종혁 회장에게 민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치 대중가요처럼 남을 의식하면 망설여지지만 여흥을 내는 분위기에서는 저명 인사도 대중 가요 한두곡을 불러야 속이 풀리고 일체감을 느끼는 것과도 같지요. 민화야말로 제대로 살아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화는 궁중민화와 민중민화로 나누어지지만, 이런 점에서는 민화의 본질은 민중민화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민화가 민중에 가까워서인지 때로는 민화의 격을 낮춰 보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훈훈한 인정이 넘치며 재주와 기교를 자랑하지 않았고, 그림의 구도·기법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상식과 상상을 뛰어 넘는 파격적이고 해학적인 멋스러움이 배어나온다는 점은 민화만이 갖는 매력입니다.” 민화가 서민들의 소망이 녹아나는 매체라는 점도 독특한 매력 중의 하나이다. “민화에는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감성이 얽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순수하고 소박한 소망을 담아 장수, 부귀, 다남, 화합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렸고, 이를 곁에 두고 신앙처럼 기원하면서 살았지요. 기복 신앙에서 출발했다고 해야겠지요.” 민화의 소재는 화조(花鳥), 산수(山水), 동물, 인물, 책거리(冊架), 문자 등 다양한데, 각 소재마다 저마다 상징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물고기-다산(多産) ▲호랑이-잡귀를 막아주는 수호신 ▲모란꽃-부귀 ▲연꽃-군자(君子) ▲짝을 이룬 새·동물-부부간의 금실 등이다. 우리 조상들은 딸을 결혼시킬 때 물고기·새·동물 등이 들어간 민화를 혼수품으로 딸려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민화는 고구려 벽화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다 조선 후기에 활발하게 그려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주춤하다 1970년대 전후로 다시 조명받기 시작해 1990년대 들어 미국·일본을 중심으로 가장 한국적인 작품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시대에 걸맞은 창작품을 만드는 동시에 전승을 위한 재현 작업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대들이 자랑할 수 있는 21세기 문화재를 창출해 나가야 하지요. 세계로 펼쳐가는 한류 열풍에 민화가 단단히 한몫을 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덕2동의 민화방은 그 밑거름이 될 것이고요.”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반신불수의 서예가 유희강씨

    반신불수의 서예가 유희강씨

    왼손으로 붓글씨를 쓰는 서예가가 탄생했다.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의 왼손잡이는 아닌 인물이 바른 손의 기능이 마비되자 집념을 왼손에 옮겨 불사조 처럼 되살아 난 것이다. 사람의 의욕은 끝없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무언 중에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재기 불능이라던 중풍을 집념으로 이기고 첫작품 劍如 柳熙綱(검여 유희강•59•서울 영등포구 화곡동 61의99 주택207호)씨는 딸 小英(소영•23•홍익대미대 동양화과 졸) 양의 부축을 받아 아침 저녁 뜰을 거닐면서 생각에 잠기곤 한다. 창백한 얼굴. 쇠약해서 바람이 불면 날려갈듯한 몸이다. 한쪽 편을 못 쓰는 조각 난 몸에 뜰의 분홍장미들 보다 더 뜨거운 것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짐작할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왼손으로 붓글씨를 써서 다시 세상에 나가겠다는 꿈틀거림이 그것이다. 그 의지의 싸움에서 그는 일단 승리했다. 6월 20일부터 25일까지 서울 국립공보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서예가협회 전시회」에 다른 서예가와 함께 씨의 작품 1점도 나란히 출품되었다. 원래 바른 손으로 붓을 잡던 씨가 중풍인 몸을 채찍질해서 왼 손으로 써낸 작품이다. 세상은 그를 재기불능이라고 평했다. 그는 작년 9월7일 동양화가 霽堂 裵廉(제당 배렴)씨의 장례식에 참례한 뒤 집에 돌아오자 뇌일혈로 쓰러졌었다. 다행히 큰일이 나지는 않았지만 죽음의 선고와 같은 증상에 빠졌다. 몸의 오른 쪽 부분을 못 쓰게 된 것이다. 고요히 잊혀져 가는 인물로 처졌다. 세상은 그 재능을 아까와 했고 그 기골있는 붓글씨에 다시 접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안타까와 했다. 그는 우리나라 서예가로서는 드물게 젊을 때 淸國(청국)에 건너가 上海(상해)미술학교에서 서양화와 서예를 공부했다. 서양화로 출발해서 서예로 전향했다. 처음엔 한字를 써도 떨려 그만 붓을 놓아버리더니 제2회 國展(국전) 때 서양화부와 서예부에 동시에 출품한 뒤로는 서예 하나에만 전념, 특히 大朝(대조)시대의 隸書體(예서체)에 있어서 독특한 경지를 이룩해 왔고 해마다 海印寺(해인사)의 숲 우거진 계곡에서 붓글씨를 닦고 갈았다. 1955년 이후로는 國展 서예부 심사위원을 연임해 왔다. 그의 글씨를 평자는 꿋꿋하고 근엄한 힘이 응결된 서예양식이라고 했다. 또 어떤 평자는 천진절벽에 홀로 꽂힌 마른 향나무를 둔한 도끼로 마구 찍어 우틀두틀한 자국을 내었는데 그윽함을 느끼게 하는 필력- 이라고도 비유했다. 幽玄美(유현미)가 있다고도 했다. 왼손으로 쓴 글씨가 옛날의 기골을 가지게 될 것인가에 대해 세상은 상당한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줄곧 병시중을 들어 온 딸 小英양은 『아버지가 낱말도 많이 잊으시고 글뜻도 모르시게 된 것이 많은데 차차 연습을 거듭할수록 필법이 옛날과 닮아 가신다』고 신기해 하고 있다. 『글씨도 옛날에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화곡동 자택에서 小英양의 부축을 받으면서 서울시내 모 한의에게 매일 침을 맞으러 다닐 정도는 회복이 되었다. 안마사의 치료도 받고 있다. 그러한 사이사이에 매일 30분씩 화선지 2분의 1절 크기의 종이 5장에다가 왼손으로 연습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잔 글씨 쓰기부터 시작했다. 그것을 두 서너 글자만 써도 팔 다리가 떨려서 그만 붓을 놓아 버리기를 열흘 이상이나 거듭했다. 더욱이 창립에 참여한 한국서예가협회의 전시회를 목전에 두고 의욕을 불태웠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제자들의 작품전서 자극 이튿날 紙墨(지묵) 가져오라고 그는 별로 말이 없다.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을 아직도 제대로 하지를 못한다. 입은 낱말을 분명히 소리내기는 한다. 그런데 여러 낱말들이 연결이 되지 않는다. 낱말이 온전한「센텐스」를 이루지 못해 듣는 이에게 뜻이 전달되지 않는다. 겨우 기동을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몸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연습시간이 오면-대체로 하오이지만- 그는 병상에서 상반신을 도움받아 일으켜 세운다. 그 앞에 책상과 종이가 놓여진다. 그는 왼 손에 붓을 들고 글씨를 써 나간다. 그러다가 지치면 누워 버린다. 연습을 시작한 것은 금년 4월부터였으니 3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에 출품작을 제작해 낸 셈이다. 4월부터 연습을 시작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닌 듯 하다. 4월1일~7일 사이의 1주일 간 상업은행 화랑에서는 금년들어 최초의 서예전시회가 열렸었다. 그것이 劍如書院展(검여서원전)이었다. 문하생들이 자기들만의 힘으로 전시회를 연 것이었다. 오랫동안(7개월간) 스승의 직접지도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제자들 끼리 부지런히 공부해왔다는 증거들이었다. 이 때 출품작은 모두 40점이었다. 바퀴의자에 실려 회장에 나타난 그는 제자들의 부축으로 방명록 제1호로 자기 이름을 적었다. 그에 앞서 왼손에 가위를 쥐고 간신히 회장의「테이프」를 끊는 늙은 서예가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케 했다. 小英양 얘기로는 劍如는 그다음 날인 2일 하오에 딸을 병실에 불러 몸을 붙들어 일으키게 하고 글씨쓰는 시늉을 하면서 붓과 종이를 청했다. 그의 서숙 劍如書院(서울 안국동)에서는 그가 건강했을 때와 다름없이 제자들이 모여 스승없는 精進(정진)에 몰두하고 있다. 한편 그 스승은 스승대로 반신불수의 몸을 움직여 한국서예사상 최초인 右手(우수)에서 左手書(좌수서)에로의 기적을 창조해내고 있다. 그는 언젠가 가까운 동연배의 서예가에게 淸나라에서 글씨 배웠을 때의 경험을 말한 일이 있다. 왼손글씨 없지는 않아도 중풍 이기는 名筆은 처음 『그 스승이 가르치는 방법을 가만히 보았더니 제자들에게 일일이 지도를 하지는 않았다. 제자들 스스로가 자기 것을 개척해 나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 보고만 있었다. 그러면서도 말없는 지도를 하였다』 그 기풍이 劍如의 제자들에게도 배어 스승없이 서예전을 열어 스승을 격려했고 그 역시 홀로 새 경지를 헤쳐 여는데 집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 왼손글씨의 전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골의 사당에는 左手書라는 단서가 찍힌 현판이 걸린 곳이 여러군데 있다. 그러나 그 左手書는 원래가 왼손잡이의 글씨 아니면 바른 손도 쓰면서 餘技(여기)삼아 왼손을 움직여 본 글씨들이다. 劍如의 경우와 같이 처음에는 바른 손으로 높은 봉우리를 이룩한 뒤 더욱이 환갑을 1년 앞두고 그 손의 기능을 잃어서 붓을 다시 왼손에 고쳐 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서예사상 처음 있는 일을 그 병상에서 묵묵히 쌓아 올리고 있다. [ 선데이서울 69년 6/22 제2권 25호 통권 제3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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