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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점령지 포기」 시사/샤미르총리

    ◎중동평화회담서 철군 논의 용의 【예루살렘·카이로·파리 AP AFP 연합 특약】 이스라엘이 유럽공동체(EC)의 중동평화회담 참여에 동의한 가운데 샤미르 이스라엘 총리는 5일 이스라엘 점령지인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가 평화회담에서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샤미르 총리는 이날 텔아비브의 종교학교 교사들에 대한 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는데,지금까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는 이스라엘 영토라고 강력히 주장해온 점에 비추어볼 때 점령지로부터 이스라엘이 철수하는 문제가 논의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이스라엘 관리들이 말했다. 한편 EC 현 의장국인 룩셈부르크의 푸스 외무장관은 5일 파리에서 EC 외무장관들과 레비 이스라엘 외무장관과의 회담을 마친 후,이스라엘은 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제의한 중동평화회담이 개최될 경우 EC가 미국 및 소련과 함께 참여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푸스 장관은 이스라엘이 점령지에 EC 특사를 파견하는 데 합의했으며 EC 원조를 관장할 EC 집행위원회 대표부가 외교적 지위를 인정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레비 장관은 EC가 회담 및 실무협상에 참가할 것이며 주로 지역개발사업 등이 다뤄질 실무협의회에서 EC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동평화회담이 수주일 안에 개최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도 5일 카이로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가능한 한 빨리 중동평화회담을 개최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이집트 외무장관이 밝혔다.
  • 베트남 억류 선원 24명 귀국/50일 만에 부산으로

    【부산=장일찬 기자】 지난 3월21일 동중국해 공해상에서 베트남의 무장해적단에 납치됐던 파나마선적 참치어선선 702호(3백12t·선장 서안성·38) 선원 24명이 피랍 50일 만인 10일 하오 2시 부산항을 통해 귀국했다. 선장 서씨를 비롯한 선원들은 오랜 억류생활의 긴장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건강한 모습들이었다. 선702호의 선체 곳곳에는 해적들이 난사한 총에 맞아 20여 군데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 “「이」 정착촌 계속땐 중동회담 난망”

    ◎요르단 방문 소 외무장관 강력경고/유태인 본국 이민 규제 시사 【암만 로이터 연합 특약】 알렉산데르 베스메르트니흐 소련 외무장관은 9일 아랍 점령지에의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은 중동평화회담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베스메르트니흐 외무장관은 이날 후세인 요르단 국왕과 아랍·이스라엘간의 평화회담을 미소가 공동 후원하는 데 대해 협의를 가진 뒤 『정착촌 건설이 계속되는 한 평화회담의 개최는 생각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같은 베스메르트니흐 장관의 발언은 지난 67년 중동전쟁으로 소련·이스라엘간 국교가 단절된 후 소련 외무장관으로선 최초의 이스라엘 방문을 하루 앞두고 나온 것이다. 요르단은 소련이 이스라엘과의 유대강화를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등 이스라엘 점령지에의 정착촌 건설을 중단시키는 데 이용해줄 것을 희망했었다. 소련내 유태인들의 이스라엘 이민을 규제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베스메르트니흐 장관은 소련은 정착촌 건설을 중단시키기 위해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 「쿠르드족 안전지대」 건립 안팎

    ◎난민촌/제2의 「웨스트뱅크」 가능성/구호·자치 인정해도 「독립」관 거리/장기정착땐 중동분쟁의 새 불씨 우려 걸프전의 희생자 쿠르드 난민들을 위한 안전지대가 설치된다. 미군을 비롯한 영국·프랑스군은 이라크 북부 험준한 산 속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는 쿠르드 난민들을 위해 「안전한 천국」(Safe Heaven)의 건설에 나섰다. 쿠르드 난민들을 위한 안전지대는 이라크 북부에 위치한 자코 부근 및 모술 북부의 비교적 평탄하고 도로에서 가까우며 물공급과 배수가 원만한 지형적 조건을 갖춘 곳에 만들어진다. 미국은 6개 정도의 안전지역을 설치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70여 만 명의 쿠르드 난민들이 수용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전지역 설치공사는 10일 내지 2주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돼 4월말경이면 쿠르드족들이 난민촌에 정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전지대 설치는 미국이 대이라크정책을 전환함으로써 가능해졌다. 미국은 당초 이라크 내전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안전지대설치를 강력히 반대해왔었다. 그러나 세계여론의 압력과 쿠르드족 난민들의 상상을 초월한 처절한 참상이 연일 보도되면서 결국 부시 미 대통령은 안전지대 설치를 결정했다. 부시의 결정은 그러나 미국이 「또다른 베트남식 수렁」에 빠지게 될지 모른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당초 안전지대 설치를 반대한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부시는 이라크 내전에 개입하게 되면 미군 주둔이 장기화되면서 걸프전의 극적인 승리가 퇘색할 것으로 우려해왔다. 부시의 꿈은 가능하면 빠른 시일내에 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이었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백악관안보담당보좌관도 쿠르드 난민들을 위한 안전지대는 제2의 요르단강 서안이 되어 또 다른 국제분쟁요인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는 또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쿠르드족 난민들이 안전지대로 몰려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이들까지도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 딕 체니 미 국방장관은 미국은 쿠르드족 난민들이 정착하면 그 통제와 운영을 빠른 시일내에 유엔과 기타 국제기구에 넘겨줄 것이라고밝혔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이 난민촌 운영에서 손을 떼기는 사실상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은 쿠르드 난민들의 보호를 위해 이라크정부와의 협조를 모색하고 있다. 이라크는 처음에 안전지대 설치를 내정간섭이라며 강력히 비난했으나 난민구조에 협조적인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라크군 지도자들은 19일 안전지대 설치를 총지휘하는 존 샬리 카시빌리 미군 중장과 회담했으며 이라크정부는 유엔과 난민지원을 위한 협정에 조인했다. 후세인 정권은 쿠르드족 난민과 반군들에 대해 화해제스처를 계속 써왔다. 이라크는 난민들에게 고향으로 돌아올 것을 호소하고 쿠르드족들에게 자치권 인정과 일정수의 의석을 할애할 것이라고 밝혔다. 쿠르드 반군은 이라크정부의 이 같은 제안을 검토하기 위해 정부군과 휴전에 합의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그러나 쿠르드족 난민문제가 쉽게 해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후세인 정권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쿠르드족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주저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악몽을 결코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도시 중산층들이 귀향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안전지대에서 영원히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국이나 유엔은 이들의 안전한 귀향길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쿠르드족들은 후세인이 집권하는 한 「안전한 천국」의 문을 나서는 것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때문에 쿠르드족 난민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으며 그들의 비극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 “이스라엘은 점령지 반환해야”/백악관 안보보좌관,TV회견서 주장

    ◎첨단병기로 방위완충지대 개념 상실/“시리아와는 평화협정 맺도록” 【워싱턴 AFP 연합】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미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은 14일 이스라엘이 방위 완충지대로서 아랍 점령지구를 유지할 필요성을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스코크로프트 보좌관은 이날 미 ABC­TV와의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의 안보는 단순한 전략적 거리에 의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이번 걸프전의 교훈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라크는 걸프전 동안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훨씬 떨어진 이라크 북부에서 이스라엘을 목표로 스커드미사일을 발사했었다. 그는 과거 이스라엘이 평화협정의 대가로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한 사실을 상기시킨 후 『이스라엘은 현재 시나이 반도에서 전략적 거리를 더 이상 확보하지 않은 채 엄청난 이집트 군사력과 대치하면서도 국경에서 안전을 유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이번 발언은 강경파인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주택장관의 최근 주장을 반박한 것으로 샤론 장관은골란고원과 요르단강 서안 등 『우리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역들을 계속 장악하기 위해』 점령지구내에 이스라엘인 정착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었다. 스코크로프트 보좌관은 이스라엘이 안보를 위협하는 『스커드 등 첨단 미사일에 의한 공격 가능성을 제거한다는 조건을 덧붙여』 시리아와도 이집트와 이루었던 것과 유사한 평화협정을 맺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중동평화 다지기」 가능성 확인/베이커 미 국무 2차순방 결산

    ◎「이」측,예상 뒤엎고 지역회의 수용/「팔」 대표문제 등엔 여전히 이견 못좁혀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중동순방을 마침에 따라 아랍­이스라엘 간의 오랜 분쟁을 해결하려는 그의 신뢰구축조치들도 상당한 결실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베이커 장관의 이번 순방을 통해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은 마침내 협상만이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데 어느 정도 의견접근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지 않았으며 누가 이 협상을 마련할 것인지 또 그 규모는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등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상당한 견해차를 보였다. 베이커 장관은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거쳐 그의 마지막 방문지인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중동 평화과정을 진척시킬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여기에 있다』면서 지난 43년간 싸워온 이스라엘과 아랍국들이 『이 기회의 창을 이용하기를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베이커 장관의 첫번째 조그만 승리는 첫 방문지인 이스라엘에서 이루어졌다. 이츠하크 샤미르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의 강경파 정부는 당초 예상을 뒤엎고 미국이 지원하는 지역회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중동문제 협상에서 배제시켜야 한다는 기존입장을 고수했으나 아랍국들의 전통적 지원자인 소련의 회담 참여를 허용하는 진일보한 자세를 보였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유엔의 감시하에 중동문제에 관한 국제평화회담을 소집하려는 아랍국들의 움직임을 거부해왔는데 이스라엘은 이같은 회담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일련의 유엔결의들이 요구하고 있는 영토 양보를 하게 만들 것임을 우려해왔다. 그대신 이스라엘은 인접한 아랍 당사국들과의 직접회담을 제의했으나 이 제안은 이집트가 지난 79년 이스라엘과 이룩한 독자적 평화협정이 중동의 포괄적 평화를 지연시키고 오히려 아랍세계를 분열시킨 결과만을 초래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아랍국들에 의해 거부됐다. 베이커 장관이 내놓은 이번 제안도 아랍권이 원하고 있는 광범한 중동평화회담 요구에는 못미치는 것이나 이 제안이 지금까지 시도되어온 아랍­이스라엘 분쟁 해결노력들 가운데 가장 심각하고 진지한 것임을 부인하는 아랍국은 없는 것 같다. 이집트는 베이커의 이 제안 속에 긍정적 요소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평가했으나 이같은 회담은 유엔이 보장하는 확대평화회담으로 이어지는 첫 발걸음이 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베이커 장관이 이스라엘 방문 도중 만난 팔레스타인인들은 PLO가 어떤 평화회담에서도 팔레스타인을 대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많은 아랍국들은 이번 회담에서 PLO를 배제하고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온 팔레스타인 대표단을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베이커 장관은 이번 중동순방을 통해 중동 평화 구축의 최대 걸림돌인 아랍­이스라엘 문제 해결에 상당한 진전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되나 시리아를 비롯한 아랍 당사국들이 유엔 안보리 결의 242호 및 338호에 따른 이스라엘의 아랍 점령지 철수 주장을 완강히 고수하고 있어 베이커의 제안이 그리 쉽게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 피랍 한국 선원들/베트남군이 억류

    【부산=장일찬 기자】 지난달 21일 공해상에서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됐다가 베트남지방 방위군에 인계된 것으로 알려진 원양참치잡이배 선702호(3백12t·선장 서안성)는 베트남영해 10마일 해상에서 쿠롱방위사무소 관할하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 피랍 선원 24명 풀려나/해상강도단 억류 16일… 금품만 털려

    ◎“베트남군이 신변보호”… 선장,전화연락 【부산=김세기 기자】 해상괴한들에게 납치된 파나마 국적 원양참치어선 제702선호(선장 서안성·38) 선원 24명이 피랍 16일 만인 6일 하오 극적으로 풀려났다. 이같은 사실은 서 선장이 이날 하오 1시23분(한국시간) 무선전화로 『우리들은 괴한들로부터 풀려났다. 괴한들은 금품을 모두 턴 후 선박과 함께 베트남 지방방위사무소 소속으로 보이는 현지인들에게 우리를 인계하고 어디론가 달아났다. 선원 모두 건강하며 무사하다』고 선박관리회사인 (주)삼영 부산지사 김경수 과장(38)에게 알려옴으로써 밝혀졌다. 회사측은 그러나 풀려난 선원들이 호치민시 인근 서남쪽 해안에 있는 베트남군 기지에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정확한 위치 등을 현재까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선박과 선원들을 납치했던 괴한들은 남중국해 아남다스제도에 본거지를 둔 조직적인 해상강도단들로 이들은 한국인 선원을 납치한 뒤 1명당 10만달러씩의 몸값을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영 회사측은 부산지사 고영탁 과장(39)을 8일 서울을 경유,9일 사이공으로 파견,피랍선원의 귀국 등 수속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 한국선원 24명 피랍/말련 근해서 조업하다… 15일째 억류

    ◎괴한,1인당 몸값 10만불 요구 【부산=김세기 기자】 한국인 선원 24명이 탄 파나마국적 원양어선이 지난달 21일 인도양에서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돼 15일째 억류돼 있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4일 부산지구해양경찰대에 따르면 파나마국적 원양참치잡이 어선인 3백12.2t급인 선702호(선장 서안성·38·부산 서구 대신동 1가 107의2)가 지난달 21일 상오 8시30분쯤 북위 6도13분 동경 7도53분 말레이시아 인근 말레카해협 동북부해상을 지나던중 무장괴한 5명이 탄 해적선에 의해 납치됐다가 소식이 끊긴 지 14일 만인 3일 하오 5시40분쯤 선장 서씨가 선원송출 회사인(주)대신해사(부산 동구 초량동 121의1 통운빌딩 512호)에 피랍사실을 전화로 처음 알려왔다는 것이다. 회사측에 따르면 선702호는 지난달 19일 싱가포르 항구를 출항 일본 스미즈항으로 항해중 21일 상오 8시쯤 말레카해협에서 같은 회사소속 선701호와 최종 교신을 한 뒤 30분 만에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돼 4일 현재 베트남 연안 10마일 해상에서 선장 서씨 등 한국인 24명이 선박과 함께 억류돼 있으며 괴한들로부터 1인당 10만달러의 몸값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진상 파악 지시/외무부 외무부는 이와 관련,4일밤 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인접국 공관에 긴급 훈련을 내려 우리 선원들의 정확한 피랍진상을 파악하고 해당 정부와 협조를 통해 이들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했다.
  • 이스라엘과의 공존 길 열어줘야(「팔」 문제 해결의 열쇠는:하)

    ◎국제회의 열어 「43년 적대」 청산 논의를/팔인구 급속 팽창… 이스라엘도 안보책모색 필요성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하나의 땅(팔레스타인지방)을 놓고 서로 자신들의 영유권을 주장한데서 비롯된 피할수 없는 마찰이다. 현재 이스라엘의 국토는 오래전부터 팔레스타인인들이 살던 곳이었지만 19세기말∼20세기초부터 유태인들의 이주가 본격화,유태인과 팔레스타인인들간의 다툼이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1차 세계대전시 오스만터키의 공격에 혼이 난 영국(당시 이 지역은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다)은 지역주민들의 협조를 얻기 위해 두가지 상반된 약속을 했다. 팔레스타인과 아랍인들에겐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약속한 맥마흔서한과 유태인들에겐 유태인 민족국가 수립에 대한 지지표명을 약속한 밸포어선언이 바로 그것이다. 이같은 두가지 상반된 약속을 두 민족간의 마찰을 더욱 첨예화시킬 수밖에 없었고 결국 2차대전후 유엔은 두 민족간의 마찰을 해결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방을 아랍국가와 유태인국가로 양분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유엔결의안에 따라 유태인들은 즉각 독립국가 이스라엘의 수립을 선포했고 이에 반발한 이집트와 시리아 등이 전쟁을 일으켰으나 이스라엘에 대패,오히려 요르단강 서안지역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스라엘과 아랍제국은 4차례에 걸쳐 전쟁을 벌였지만 모두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고 그때마다 이스라엘의 점령지와 팔레스타인 난민의 수는 크게 늘어났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긴 했지만 한번도 고향에서 쫓겨난 적은 없었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군사력에 밀려 고향을 떠나 난민신세로 전락함으로써 이들의 고달픔과 그에 따른 대이스라엘 적대감,아랍민족 특유의 복수심 등이 이스라엘에의 테러공격을 부추기게 됐고 이같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공격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는 이스라엘인들의 인식 및 대팔레스타인 강압정책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관계는 계속 악화만되는 악순환속에 빠져 들었다. 이같은 두 민족간의 상호적대감과 불신감이 먼저 해소되지 않는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분쟁해결은 영원히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두 민족간의 상호불신감,특히 국가생존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안을 해소시킨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치치하에서 민족 대학살의 참혹한 경험을 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확실한 보장도 없이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립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곧 그들의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과는 같다고 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이 과거의 강경전략을 상당히 수정,이스라엘에 대한 자세를 많이 누그러뜨린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일부 강경그룹에선 이스라엘과 공존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이 지난 88년 일방적인 독립선포시 발표한 그대로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스라엘로선 이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입장이다.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테러공격같은 것보다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협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민족간에 상당한 격차를보이고 있는 인구증가율 차이이다. 사실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팔레스타인 인구는 이스라엘로선 다른 어떤 것보다도 큰 위협요인이라고 할수 있다. 팔레스타인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곧바로 팔레스타인의 세력강화에 직결되고 이는 곧 이스라엘의 사회불안요인 및 국가안보 저해요인으로 작용할수 있다. 이스라엘이 소련 등지의 유태인을 대규모로 받아들여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에 정착시키려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이같은 인위적인 인구증가책이 자연적인 인구증가를 따라갈수 없음은 이스라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또 이같은 추세가 상당기간 지속될 경우 이스라엘의 안보가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더 큰 위협을 받게 되리라는 것도 이스라엘로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것 같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좋든 싫든간에 보다 근본적인 안전보장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이다. 그것이 곧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병존문제를 다룰 국제평화회의이다. 물론 지금으로선 이스라엘국내의 반대여론도 상당히 강해 이같은회의의 개최가능성조차 불투명한 상태이다. 또 설사 이같은 회의가 열린다 해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가 받아들일만한 합의안이 도출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할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중동문제를 다룰 국제회의에 기대를 거는 것외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협의를 통해 공존방안을 도출해내지 못하는한 양측의 분쟁은 어느 한쪽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에서 상대적인 우위에 서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위치가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수 있을 것같다.
  • “중동의 숙제” 팔 독립 실현될까(걸프전이후의 현주소:상)

    ◎이스라엘 점령지 고수로 실마리 안풀려/이라크 패전뒤 국제회담에 한가닥 희망 걸프전이 끝난지 3주일이 넘어서고 있다. 전쟁이 끝남에 따라 세계의 관심은 걸프전의 여파가 앞으로 중동지역의 평화정착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로 쏠리게 됐는데 중동지역에 평화가 정착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분쟁이 해결되는게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이 처한 현주소와 팔레스타인 문제가 발생한 경위,사태 해결의 전망 등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걸프전이 발발한 초기 이라크군의 스커드미사일이 이스라엘을 강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등 이스라엘 점령지구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로부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걸프전을 계기로 팔레스타인 문제가 국제사회에 크게 부각돼 1948년 이래 나라잃은 떠돌이로 겪었던 설움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이들로 하여금 이같은 환호성을 지르게 한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걸프전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이라크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난 것이 중요한 이유이긴 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이라크의 미사일공격이 바로 그들 자신의 생존에까지 위협을 가하게 됐다는 현실앞에 그같은 기쁨이 빛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국민들이 이라크의 화학무기 공격에 대비,최신식 방독마스크를 지급받은데 비해 이스라엘 점령지역내 팔레스타인인들은 극히 일부분만이 마스크를 지급받음으로써 화학무기 공격에 대한 공포가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 광범하게 퍼지게 된것이다. 평소엔 타도해야할 원수로 적대시하던 이스라엘에 대해 『우리에게도 방독마스크를 지급하라』고 호소해야만 했던 팔레스타인인들의 사정이 오늘날 이들이 처한 어려움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어려움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해방을 쿠웨이트 문제와 연계시키려 한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아랍의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는 영웅으로 비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세인이 다국적군의 군사력 앞에 굴복,쿠웨이트 철수를 발표하는 순간 후세인의 신화는 허무하게 깨지고 말았다.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소식에 접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두가지로 나타났다. 그래도 후세인에 대한 한가닥 희망을 버리지 못한채 최후의 승리를 기약하는 사람과 후세인도 결국 진정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지도자는 아니었다는 배신감 및 그에 따른 절망감을 표시하는 사람이란 반응이었다. 이같은 두가지 반응은 오늘날 팔레스타인이 처한 위치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도 할수 있다. 과거 아랍국들과의 4차례에 걸친 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던 이스라엘은 현재 다른 아랍국가들에 비해 군사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이 테러나 게릴라식 기습공격 등 과거의 전략에서 탈피,지금은 인티파다(봉기)라는 새로운 방식의 대이스라엘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군사력의 열세 때문이다. 지난 87년12월 가자지구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을 주축으로 이스라엘군에 대한 투석을 내용으로 하는 독특한 투쟁방식이다. 이같은 인티파다는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동정여론을 불러 일으키는 동시에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을 야기,88년11월에는 일방적이긴 하지만 팔레스타인 국가의 독립을 선언하고 미국과의 대화를 재개하는 등 한때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잔뜩 기대를 주었던 독립국가의 선언도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빛을 잃기 시작했으며 인티파다도 이제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니냐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할 무렵 걸프전이 발생한 것이다. 걸프전은 앞으로의 중동정세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걸프전이 어떤 영향을 미치든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욕망을 쉽게 잠재울수 없음은 분명하다.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 소식에 『우리에겐 진정 친구라고 부를만한 나라가 하나도 없단 말인가』라며 절망감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또 한편으론 『실의와 절망의 깊은 수렁속에서도 나라를 되찾는 날까지는 어떤 희생이라도 치를수 있다』고 다짐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다만 팔레스타인으로선 그들의 희망을 스스로의 손으로 실현시킬 능력이 현재로선 없으며 팔레스타인 독립의 꿈을 이루기 위해선 어쩔수 없이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는게 불가결하다는 것이 비극이라고 하겠다. 현재 팔레스타인이 바라는 것은 국제여론이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해 중동평화를 위한 국제회의가 성사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걸프전을 계기로 중동평화를 위해선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적으로 아루어져야 할 긴급과제라는 점에 대해선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이스라엘이 여전히 평화를 대가로 한 영토양보에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중동평화회의의 개최 가능성은 여전히 그늘속에 묻혀있다.
  • 시리아,미의 중동평화안 거부/외무 회견

    ◎점령지 반환·국제회담 개최 요구/“불이행땐 이스라엘과 회담 안해” 【다마스쿠스 로이터 연합】 시리아는 22일 이스라엘이 점령한 아랍 영토들을 포기하고 아랍­이스라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회담이 열리기 전까지는 이스라엘과 신뢰회복을 위한 회담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리아의 정부관리들과 국영 신문들은 이스라엘이 먼저 우호감을 표시하고 평화의 대가로 지난 23년간 이상 장악해온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골란고원으로부터 철수할 준비가 돼있음을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루크 알 샤라 시리아 외무장관은 이날 국영 언론에 발표된 회견에서 이스라엘이 아랍 영토들에 대한 점령을 포기하기 전까지는 이집트를 제외한 아랍국들과 이스라엘간에 존재하는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어떤 회담도 열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샤라 장관은 상호 신뢰를 구축함으로써 아랍과 이스라엘이 평화 관계를 시작할수 있을 것이라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이스라엘이 지난 67년의 중동전에서 획득한 아랍영토들을포기하도록 요구한 유엔 안보리 결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전세계의 비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리아의 관영 티쉬린지는 『공은 이제 이스라엘 코트로 넘어갔다』면서 『이스라엘은 평화의 대가로 점령한 아랍 영토들을 원래 소유자들에게 반환할 준비가 돼있음을 공표함으로써 친선과 평화를 위한 열망을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소 학자가 밝힌 중공군 파병 경위

    ◎모택동,사흘 밤샘끝에 6·25참전 결정/김일성 긴급요청 하룻만에 3개군에 동원령/주은래 모스크바에 급파,공군지원 설득 나서/“미군의 압록강 진격 우려”… 당중앙위,신중론 일축 한국전에 관해서는 지금껏 비교적 많은 양의 사료와 비사들이 공개되고 발굴돼 온 편이다. 그러나 1950년 10월 UN군측에 유리하던 전쟁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뒤바꾸어 놓은 중공군의 개입에 관한 중국측 자료들은 좀체 공개되지 않았다. 한국전 참전 중공군 장성들이 쓴 회고록과 중국 내부에서 공개된 사료,중국 언론에 보도된 자료들을 토대로 중국의 한국전 참전배경을 밝힌 글이 최근 소련에서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소련 과학아카데미 산하 극동연구소에서 발간하는 격월간지 「극동의 제문제」 최근호에 실린 소련 역사학자 빅토르 유소프의 글 「누가 중국지원군을 한국에 보냈나」는 당시 한국전을 보는 모택동 등 중국 지도부의 시각과 파병결정과정에서 있었던 중소의 갈등 등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1950년 10월1일,모택동은 김일성으로부터 긴급 전문 한통을 받았다. 「미 제국주의 침략자들과 남조선 괴뢰정부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자신에게 중공군을 보내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모택동은 즉시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했고 찬반 양론이 개진됐다. 임표은 파병 반대를 주장하며 『중국정부는 수립된 지 얼마 안됐고 전국 각지에서 지금도 반혁명 잔당들이 설치고 있다. 국내외에서 동시에 적을 상대하기엔 아직 벅차다』라고 말했다. 고강도 같은 의견이었다. 『우리는 20년 이상 전쟁을 했고 아직 정상생활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무기는 모두 낡았다. 미군은 대포 1천5백문을 실전배치할 수 있는데 비해 우리는 3백문밖에 배치할수 없다. 탱크도 우리가 훨씬 적다. 미군이 압록강 너머로 진격해 온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 것인가. 북동쪽 국경의 수비를 강화하고 자중하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고강은 주장했다. 그러나 모택동은 참전쪽을 지지,이튿날인 10월2일 당중앙위원회는 한국파병을 결정했다. 같은날 당중앙위는 모택동이 서명한 파병결정전문을 스탈린 앞으로 보냈다. 지원군의 지휘책임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놓고 회의가 열렸다. 처음에는 임표가 적임자로 지목됐으나 그의 건강이 문제가 돼 팽덕회에게 넘어갔다. 10월4일 모택동은 서안에 있는 팽덕회를 북경으로 불렀다. 모는 이렇게 말했다. 『덕회 동지,결정은 내려졌고,3개군에 동원령을 내렸고 수십만명이 움직일 것이오. 잘못하면 우리는 큰 시련을 맞게 될 것이오. 확대 정치국 회의석상에서도 모두들 신중론을 제기했소. 하지만 김일성이 지금 위기에 처해 있는데 우리가 이를 방관하면 사회주의국은 모두 한 진영이라는 말은 헛말에 불과하게 되오』 팽덕회가 소련과의 군사 협조에 대해 묻자 모는 스탈린이 공군지원 약속을 했으며 따라서 중공군이 지상작전을 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1950년 10월8일,모택동은 팽덕회를 중국지원군사령관겸 정치장교로 정식 임명했다. 팽덕회는 이튿날 회의에서 연설을 통해 『조선에 군대를 보내는 것은 의무이다. 미국은 압록강 너머에 군대를 배치하는 즉시 구실을 붙여 침략전쟁을 도발해 올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10월11일 팽덕회는 새벽 기차를 타고 안동으로 갔다. 그리고는 압록강을 넘는 병력수송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10월12일 하오8시,모주석이 보낸 긴급 전문 한통이 팽덕회 앞으로 날아들었다. 지원군의 월경작전을 중지하고 즉시 북경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팽덕회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소련이 당초 약속과 달리 공군을 한국전에 보낼수 없다는 내용을 모스크바 주재 중국대사관에 통보해 왔다는 것이다. 주은래는 이같은 사실을 즉시 모에게 보고했다. 그 보고를 받고 모는 안색이 변하면서 담배를 문채 10여분동안 방안을 서성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출정명령은 이미 내린 상태였다. 이틀뒤 모는 정치국회의를 열어 파병을 연기시킨뒤 주은래를 모스크바로 보내 중국이 처한 어려운 입장을 설명하기로 했다. 10월15일 팽덕회는 심양으로 가서 모주석의 교시와 정치국의 파병연기 결정을 알렸다. 10월16,17일 이틀간 팽덕회는 김일성이 보낸 특사를 만났다. 주은래는 스탈린을 찾아갔으나 아무런 소득도 얻어내지 못했다. 스탈린은 한번 내린 결정은 번복치 않는 사람이었고 소련 공군이 참전 가능성은 없었다. 모는 꼬박 사흘을 뜬눈으로 새웠고 수면제 수십알을 먹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모는 결국 파병키로 결정을 내렸다. 모스크바의 주은래 앞으로 모의 전문이 전달됐다. 소련 공군의 오든 안오든 중국은 싸운다는 내용이었다. 같은날 주은래는 다시 스탈린을 찾아갔다. 스탈린은 주를 보고 『아직 떠나지 않았던가』라며 딴청을 부렸다. 주은래는 결연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모주석으로부터 조선 파병결정을 내렸다는 전문을 받았습니다』 스탈린은 한동안 침묵을 지킨끝에 『중국 동지들이 정말 훌륭해』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1950년 10월19일 하오8시,팽덕회의 지휘아래 중공군 지원군은 마침내 압록강을 건넜다.
  • “이스라엘,점령지 철수 전제조건/PLO,협상용의 표명

    ◎한때 독립관련 중대 양보설 【런던 로이터 AP 연합】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민족해방기구(PLO) 의장의 수석보좌관인 바삼 아부 샤리프는 13일 PLO가 아랍­이스라엘 분쟁에 관해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다짐했으나 이는 영토적인 측면의 양보 조치를 내놓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영국의 스카이 뉴스 TV는 아라파트 PLO의장의 정치담당 수석보좌관인 샤리프가 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PLO는 앞으로 이스라엘과의 협상에서 동등한 지위를 갖고 참여하겠다는 종래의 요구를 철회할 것이며 팔레스타인국의 영토로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 전체보다 작은 부분을 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샤리프는 그러나 뒤어어 자신의 발언을 PLO가 영토적 양보조치를 포함한 새로운 평화구상을 내놓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한 언론보도 내용을 부인하면서 스카이뉴스 TV가 자신이 말한 것으로 전한 발언들은 완전히 사실이 아니며 근거없는 보도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PLO의 전반적인 평화 구상은 국제적인 합법성 즉 점령 아랍영토로부터의 이스라엘 철수 및 정당하고 항구적인 중동 평화를 촉구하는 유엔의 결의문 242호와 338호에 토대를 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스카이뉴스 TV는 샤리프 보좌관이 이 방송과의 회견에서 ▲PLO는 이스라엘과의 협상에서 대등한 상대로 대우받으려는 종래의 요구를 포기할 것이며 PLO가 지명하지만 그 조직원은 아닌 팔레스타인인들이 협상에 나설 것이다 ▲그들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전체보다는 어느정도 작은 영토를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로 수락할 것이며 국경의 위치에 대해 이스라엘과 타협할 것이다 ▲팔레스타인국은 잠정 기간동안 비무장할 것이며 이 기간중에는 유엔이 안보를 책임질 것이다 ▲팔레스타인국은 자동적으로 아라파트 의장이 이끄는 PLO의 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민주적 선거를 통해 그들의 정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4개항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츠하크 샤미르 이스라엘 총리의 공보 보좌관인 아비 파즈너는 13일 팔레스타인 해받기구가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위해 동등한 상대자격 요구를 포기하는등 대폭적인 양보를 할 것이라는 이같은 보도 내용에 대해,『우리는 PLO가 무엇을 말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들은 중요치 않다』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 외언내언

    중국 협서성 중부에 있는 성도 서안. 주의 호경,진의 함양,한의 장안 등 역대 왕조의 도읍이 되던 곳이다. 그 중에서도 수·당의 장안은 가장 번성했던 도읍. 당이 멸망하면서부터 쇠락하여 간다. ◆그곳에서 1036년 12월12일 이른바 서안사건이 일어난다. 국부군의 공산군 토벌 총사령관 대리 장학량이 장개석총통을 감금한 사건. 12월12일로 12가 겹쳐 「쌍십이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중국판 「12·12」다. 그 옛날 양귀비가 목욕을 즐겼다는 온천 화청지에서 잠자던 장총통은 장의 동북군 1개사단과 양호성의 서북군 1개 연대에 포위당한다. 급해진 장총통은 틀니를 목욕탕 선반에 두고 잠옷 바람으로 탈출했다가 뒷산에서 붙잡혔다고 한다. ◆일본의 중국 침략에 대해 장총통은 먼저 나라안을 평정하고 나중에 외적을 몰아낸다는 정책을 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일본과 타협하며 모택동의 공산당 토벌에만 전력을 기울였던 것. 군벌이었던 아버지 장작림을 일본군에 의해 잃은 장학량은 그게 불만이었다. 그는 일본의 침략을 먼저 몰아내야 한다는 「일치항일」론자. 그래서 국부군이 공산군 토벌을 독려하러 온 장총통을 감금,국공협상을 주선한다. 국민당 정부의 약화는 이 때부터라고 해야겠다. ◆풀려난 장총통은 장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군사재판에 회부한다. 그리고 금고 10년형을 받은 그를 이튿날 사면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후 50여년에 걸친 연금­유폐의 시작. 감시의 눈길은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대만으로 쫓겨간 다음에도 마찬가지. 연금생활은 장총통 사후까지도 이어진다. 그러다가 지난해 6월1일 90회 생일을 맞으면서 자유에의 바람이 불었다. 정부가 나서서 망백연을 열어주면서 이등휘총통 등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이는 대만정부의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노린 제스처일 수도 있다. 또 그의 민족단결정신을 뒤늦게나마 인정한 장씨 아닌 이씨 정권의 배려였다 할수도 있겠고. 그가 10일 미국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전처와 자녀들을 만날 목적으로. 이 또한 시대의 흐름 때문인가.
  • 「부시의 신세계질서」구현 정지작업/중동순방길에 오른 베이커의 의중

    ◎후세인 이후의 이라크문제 중점 논의/이스라엘­아랍분쟁 해결책 타진할듯 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7일 중동순방길에 오른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이스라엘 시리아 터기 소련 등지를 방문할 베이커의 이번 순방은 향후 중동정세 운영에 대한 미국의 구도를 관련국들과의 협의를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낼 것으로 보여 부시 미 대통령이 밝힌 새로운 세계질서의 윤곽을 가늠할 첫번째 계기가 될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베이커장관이 이번 순방에서 다룰 문제는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의 처리와 후세인이후 이라크의 향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 ▲다국적군 철수후의 중동평화유지를 위한 안보구도 설정 ▲중동의 전후복구문제 걸프전쟁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소련에의 처우문제 등이 될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번 순방에서 최우선적으로 다뤄질 문제는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의 제거문제가 될것이다. 현재 후세인에 충성을 다짐하는 공화국수비대가 주도권을 장악한 것으로 전해지고는 있지만 이라크 전역이 반후세인 소요에 휩쓸려 내전의 상태까지 치닫고 있고 미국도 후세인대통령이 올연말까지 권좌를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후세인 제거라는 목표가 실현될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후세인이 제거된 후의 이라크에 어떤 정권이 들어설 것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이라크내부가 혼돈상태라는데 있다. 만일 후세인 이후의 이라크가 과거 이란의 이슬람 혁명같은 상황을 거쳐 반미성향이 강한 이슬람국가로 변한다면 오히려 더 큰 곤경에 처할수도 있다. 따라서 후세인이 권좌에서 제거된다면 과연 언제쯤이 가장 바람직한지 또 후세인 이후의 이라크에 대비,모종의 지원을 제공할 가능성은 있는지 등과 함께 이라크에 강력한 이슬람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 등이 이번 순방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걸프전쟁이 끝났다고는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나아가 이스라엘과 아랍전체간의 해묵은 분쟁이 해결되지 않는한 중동지역의 평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방안도 후세인제거 못지않은 주요의제가 될것이다. 한편 걸프전쟁을 계기로 PLO의 입지가 크게 약화되고 시리아와 이스라엘간의 관계가 개선되는 등 중동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변수가 많이 발생함으로써 이스라엘·아랍간의 분쟁해결에 어떤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일고 있는데 이번 순방은 그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이 될것이다. 즉 이스라엘에 대해선 아랍권내의 반이스라엘 감정을 완화시킬수 있게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등 이스라엘점령지의 팔레스타인 협상대표 선출문제에 대해 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하도록 요구하는 한편 다국적군에 참여했던 온건아랍국들에게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등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개선하도록 유도,팔레스타인 분쟁의 궁극적인 해결과 함께 중동지역에서의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미국측 시도의 첫단계가 될것이란 것이다. 걸프전후 중동의 안보구도는 후세인의 제거,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 등과 연계된 것이긴 하지만 단기적으로 볼때는 현재 이라크에 진주한 다국적군의 철수이후 그 힘의 공백을 어떻게메우느냐는 문제로 귀결된다고 할수 있다. 상당기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미군 등 서방측 군대의 철수는 불가피하며 미국은 이를 이집트와 시리아 등 아랍군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이집트 시리아에서 이 문제가 집중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중동지역에서의 미 해·공군력 증강을 위해 중동지역내의 미군기지 신설가능성 등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중동에서 또다른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전후복구 문제가 원만히 처리되는게 중요하다. 중동지역에서의 분쟁은 이스라엘·아랍간 문제와 함께 중동각국간 부의 분배불균형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미국으로선 이번 기회에 중동은행 설립 등을 통해 이 문제까지 해결하고 싶겠지만 이는 아랍권내의 내분 등으로 쉬운 문제는 결코 아니라고 할수 있다. 끝으로 소련에 대한 처우문제는 부시가 구상하는 냉전이후 시대의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을 위해선 소련의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에 제기되긴 했지만 이번 순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라곤 할수 없다. 그러나 소련이 초강대국의 위치에서 약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 소련을 완전히 따돌리고 독주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므로 중동지역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최소한으로 유지시키면서 소련이 미국의 구도에서 완전히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게 베이커의 또다른 중요한 임무로 보인다.
  • 더욱 멀어진 팔레스타인국의 꿈(걸프전후의 새 기류:5)

    ◎후세인 지지에 아랍권도 PLO 외면/미·이스라엘,“새 단체와 직접협상” 공언 팔레스타인인들은 걸프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들 중의 하나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빼앗긴 땅을 되찾게 될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그들의 희망은 좌절과 패배감으로 바뀌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과거 4차례의 중동전쟁과 마찬가지로 이번 걸프전쟁에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이라크가 패배함으로써 더욱 어려운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특히 앞으로 팔레스타인 문제 처리에 있어서 이라크를 지지한데 대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에 대한 재정지원을 중단했다. 지난 12년동안 10억달러 이상의 재정지원을 제공한 사우디는 PLO의 가장 큰 재정후원자였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번 전쟁과정에서 이집트·시리아 뿐만 아니라 요르단과 이라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아랍국가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쿠웨이트에 살던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은 삶의 터전까지 잃게될지 모른다. 쿠웨이트를 탈출,암만에 도착한 한 가정주부는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쿠웨이트인들의 복수가 두려워 쿠웨이트를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쿠웨이트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라크군에 협조했다며 이들을 비난하고 있다. PLO 의장인 야세르 아라파트(61)도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적극 지지함으로써 국제정치무대에서의 지지를 잃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물론이고 아랍권내에서도 아라파트 PLO 의장의 후세인 지지를 강력히 비난해 왔다. 일부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그러나 아라파트의장이 외부의 지지는 잃었지만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는 폭넓은 지지를 획득해 팔레스타인내에서는 그의 입지가 강화되었다고 분석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그러나 이번 걸프전쟁에서 후세인을 적극 지지한 PLO가 전후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논의석상에서 아예 제외하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PLO 대신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공동후원아래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교체대표와 직접 협상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데이비드 레비 이스라엘 외무장관도 이스라엘과 협상을 원하는 「팔레스타인 새단체」와 회담을 갖겠다고 말했다. 그는 점령지에는 이스라엘과 협상을 희망하는 세력들이 있다고 전제하고 『우리는 이들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국적군에 참여한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 등 회교국들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이번 걸프전에서 적극으로 미국에 협력함으로써 아랍민족주의 차원에서 신뢰성을 잃은 이들 회교국가들은 미국과의 협력이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 이익을 줄 수 있음을 입증하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미국도 이번 전쟁이후 중동의 안정된 평화를 위해 중동분쟁의 뿌리가 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고 있다. 미국은 아랍세계의 저변에 깔려있는 반미감정이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데서 비롯된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얻은 승리가 아랍권에서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음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특히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에 대해서는 대규모 군사보복을 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한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경우 이른바 「이중기준」에 대한 아랍권의 반발이 증폭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해도 당사자인 이스라엘이 어느정도 이 문제 해결에 성의를 가질지가 변수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반환하기에 앞서 아랍권에 자신들의 생존권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번 기회에 시리아 및 요르단 등 자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랍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미국이 외교적 노력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도 이들 국가들이 이번 전쟁에서 다국적군에 적극 참여한 것을 계기로 이스라엘과의 관계개선을 권유할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는 이미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보장하겠다는 시사를하고 있다. 만약 시리아와 이스라엘이 외교관계를 맺는다면 이스라엘의 안보위협은 크게 줄어들 수 있으며 이스라엘도 보다 적극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해결에 나설 것으로 중동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이 추구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방안은 PLO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일정기간 팔레스타인자치를 실시한 후 그다음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의하고 있다. 그러나 PLO는 점령지에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주장해오고 있다. PLO는 특히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을 위한 협상에서 자신들을 배제시키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의도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PLO는 자신들이 팔레스타인의 정통성을 갖고 있는 대표기구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PLO와의 이같은 마찰과 시각차는 전후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이 활발해지기는 하겠지만 완전해결까지는 아직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임을 예고해주고 있다.
  • 포화속의 「정치적 쇼」… 걸프전 난기류

    ◎이라크 「조건부 철군 제안」의 저변/내부불만 해소 노린 “위장평화공세”/“반전여론 확산시켜 입지강화 속셈” 분석도 이라크가 15일 느닷없이 「쿠웨이트 철군」을 제의해 걸프전쟁 개시 30일만에 또다시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 철군제의에는 미국 등 다국적군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여러 전제조건을 내걸고 있어서 사담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의 속셈이 무엇인지,그 배경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선 이라크의 입장변화 여부에 대해서는 열거된 철수조건들이 예전보다 오히려 더 강화됐다는 점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당초 이라크의 안중에도 없었던 「쿠웨이트로부터의 철수」라는 개념 자체가 이번에 새로 도입됐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변화의 출발선상에 섰다고도 볼 수 있다. 즉 예전에는 다국적군측이 연계조건을 받아들일리가 없다는 전제아래 이라크도 협상이고 뭐고 할것 없이 쿠웨이트를 사수하기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자세였지만 지금은 철수할 용의가 있으니 흥청을 하자는 태도로 바뀌었다. 물론 아직까지 겉으로 내놓은 협상카드는 예전과 다를바 없고 협상진전여하에 따라 양보의 여지가 얼마나 되느냐는 점도 미지수지만 그만큼 이라크의 약화된 입장을 드러낸 셈이다. 이라크가 이처럼 애매모호한 조건부철군 제의를 내놓은 의도는 다목적용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국적군의 7만여회에 걸친 대규모 공습으로 전략무기 및 시설뿐아니라 사회간접시설마저 상당량 파괴돼 사실상 반격능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의 최대관심사는 앞으로도 계속 권좌를 유지하고 가능하다면 입지를 강화시킬 수 있는 길이 무엇이냐이다. 군사적인 측면에서 어차피 상대가 안되는 싸움이라면 정치적으로라도 명예롭게 살아남는 방안을 모색하는 일이 급선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전쟁피해 증가에 따른 군부를 포함한 이라크 국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 냉담하기만 한 아랍세계의 여론을 자신쪽으로 끌어들이며 국제사회에서 반전여론을 고조시켜 다국적군의 행동에 제약을 가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명예에 손상이 가지않는 범위내에서라면 쿠웨이트에서 철수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여러가지 심리적 및 실질적 효과를 노려서 나온 것이 이번 평화공세라 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봐도 일단 지상전에 돌입하고 난 뒤에는 협상의 여지가 현저히 줄어들고 협상의 위치도 불리할 것이기 때문에 다국적군의 지상공격 개시가 임박한 상황을 택했다. 이라크의 민간인 3백여명이 다국적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한 것도 반전여론 고조의 최대무기로 이용하고 있다. 프리마코프 소련 대통령 특사가 이라크를 방문,후세인대통령과 회담한 직후를 발표시기로 정한 것도 미국에 말려 걸프전쟁에서 역할을 찾지못해 고심하고 있는 소련에 평화중재를 위한 개입의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튼 이라크의 입장에서는 이라크를 완전 거세시킨 뒤 중동구도를 재편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빗나가게 하기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밖에 없다. 소련을 외교적으로 개입시켜 미국과 맞서게 하고,이집트와 시리아를 중동 군사중심으로 확립시키려는 미국의 의도에 맞서 중동안보구조 재편에 이란의 역할을증대시켜야 한다고 외치는 것도 그같은 이유에서다. 이라크의 조건부 철군발표가 있은 직후 이라크국민들은 마치 당장이라도 전쟁이 끝날것처럼 열광하다 공습사이렌 소리를 듣고 대피해야만 했다. 이들의 적개심이 부시 미대통령이 원하는대로 후세인 대통령을 향해 분출되기보다는 미국쪽으로 집결할 가능성이 높다는 심리적 효과를 후세인은 최대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의 조건부 철군제의는 미국의 즉각거부에 의해 없었던 일처럼 돼버렸고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후세인이 노린 효과는 멀지않아 상당부분 현실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당장 미국은 국내외적으로 가중되는 평화협상 압력을 받게되고 상당수의 인명피해가 수반되는 지상공격에 보다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던 소련을 평화협상의 중재자로 상대해야만 한다.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이 17일 소련을 방문하고 난 뒤에는 국제적인 평화협상 중재노력이 강화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번 이라크의 평화제의는 걸프전을 지금까지의 군사전에서 외교전으로 바꿔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은 왜 이라크제의 일축했나/“종전협상서 후세인 배제”… 「중동구상」 재확인/이라크의 전력위축 파악한 강공책 부시 미대통령이 이라크의 조건부 쿠웨이트 철수제의를 거부한 것은 사담 후세인의 군사적 약세를 간파하고 유엔 결의대로 무조건 철수를 관철시키려는 강공책의 일환이다. 부시의 거부는 또 사담 후세인을 종전협상에서 배제하겠다는 미국의 전후중동정책 구상을 한층 극명하게 보여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부시는 15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제의를 『잔인한 속임수』라고 비난하면서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을 전복시킴으로써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라크의 이번 제의는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몇가지 주요 조건들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골란고원으로부터의 철수,정전 1개월내 걸프에서의 외국군 철수,이라크복구를 위한 연합군측의 보상 주장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의 외교관과 전문가들은 이라크의 이번제의를 『지난 6개월간의 걸프사태에서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하고 있다. 즉 이라크가 유엔 결의안의 정당성을 최초로 인정하고 또한 많은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쿠웨이트 철수에 최초로 동의한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또 사담이 내세운 새로운 조건들도 워싱턴이 일축하긴 했지만 앞으로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이라크의 철수 제의엔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긴 하지만 선의로 해석한다면 장기협상의 문을 열었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이라크측의 제의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조건」 「함정」 「감춰진 의미」 등의 「지뢰밭」이라는 것이 부시행정부의 주장이다. 그건 워싱턴이 요구하고 있는 무조건 항복과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지난해 8월 사담 후세인이 내놓았던 제의를 상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부시행정부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라크의 발표문에는 「쿠웨이트」라는 용의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여전히 이라크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워싱턴의 정부관계자·외교관·전문가들은 이라크의 철군 제의 속셈을 대체로 「시간벌기」로 분석하고 있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군사적 손실이 막대한 사담 후세인이 박두한 연합군의 지상공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내놓았다는 것이다. 이라크군은 지금 와해되기 시작한 것으로 펜타곤은 판단하고 있다. 지난 1월17일 「사막의 폭풍」작전이 개시된후 연합군 공군기들은 7만6천회에 달하는 출격을 통해 이라크군 전력의 30% 이상을 파괴했다. 미군이 실시한 전쟁 게임에 의하면 전력 손실이 30%에 달할경우 전선의 단절과 통신 불통,심리적 타격 등으로 전투 응집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둔 미중부군 사령부는 최근 브리핑에서 그동안의 폭격을 통해 이라크 탱크 4천2백80대 가운데 1천3백대,장갑차 2천8백대 가운데 8백대,대포 3천1백문 가운데 1천1백문을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공화국 수비대의 1개 사단을 포함한 일부 부대는 50%가 파괴됐으며 쿠웨이트 주둔 이라크군의 보급체제는 90%가 차단됐다는 것이다. 또 펜타곤 브리핑에 의하면 이라크 탱크의 15%는 부품 공급이 끊긴 때문에 실전에서 쓸모가 없게 됐으며 이라크군이 보유한 화학탄두 5천개 가운데 상당수도 독성의 시효가 만료돼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연합군의 지상전 기피로 가시적인 전과를 얻을 수 없게된 이라크측의 무력감이 결국 사담으로 하여금 철군의 손을 들게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사담이 이번 전쟁에서 그의 정치적 통제력 및 군사적 역량을 온존시킨채 어떤 형태로든 살아 남는다면 미국과 반이라크 공동전선을 형성했던 아랍국가들에 만만치 않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초강국 미국의 전쟁위협을 견뎌낸 그는 아랍인의 긍지와 감정을 격발하는 촉매가 돼 중동에서 전전보다 더 큰 존재로 부상할지 모른다. 최근 공개된 미국의 전후중동질서 구상에서 후세인이 배제되고 부시가 이라크 국민들에게 후세인의 전복을 공공연히 요구하고 있는것도 이같은 후사를 없애자는 것이다. 연합군측은 이라크의 이번 제의가 연합군의 전쟁수행 계획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워싱턴과 리야드에선 연합군의 대이라크 지상공격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무성한 가운데 미 육군과 해병대는 공격지점으로 이동을 계속중이다. 이라크가 부시의 강공책에 꺾일 것인지,아니면 연합군과 정면 격돌할 것인지 지금 걸프전은 숨가쁜 막바지 상황을 향해 치닫고 있다.
  • 벼등 11개 우량종 장려 농작물 지정/농림수산부

    농림수산부는 밥맛이 좋은 일품·서안벼와 대진보리,만리콩 등 8개 작물 11개 우량종을 개발,장려 품종으로 지정했다. 농림수산부는 16일 농산물 수입개방에 대비,품질이 우수한 벼 3개 품종,땅콩 2개 품종과 겉보리·콩·옥수수·호밀·고구마·유채 각 1개 품종을 장려품종으로 지정,농가에 재배를 권장키로 했다. 권장품종으로 지정된 벼품종은 일품벼·서안벼·진부찰벼 등 3종으로 일품벼는 중부지방에,서안벼는 간척지에 재배하기 적합하며 진부찰벼는 극조생종의 찰벼이다. 보리 장려 품종은 대진보리로 일찍 익고 습기에 강해 영·호남 평야지의 2모작 지대에 재배하기에 알맞다.
  • 「이스라엘 점령지」 다시 쟁점화/걸프전 장기화속 이해대립 팽팽

    ◎개전후 「요르단강 서안 문제」 재부상/이스라엘,“안전장치 마련전 포기 불가” 강경/이라크선 「쿠웨이트 철군」과 연격노력 강화 걸프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어감에 따라 전쟁결과와 함께 이스라엘 점령지의 향후 처리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백70여만명 거주 이스라엘 점령지는 지난 67년 6일만에 끝난 중동전쟁 당시 요르단으로부터 빼앗은 웨스트 뱅크지역과 이집트의 가자지구,시라아의 골란고원 등 3곳이다. 그중에서도 1백70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아직도 거주하고 있는 웨스트 뱅크지역이 군사전략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가장 민감한 곳이다. 이라크가 쿠웨이트 침공 명분으로 삼은 것도 바로 팔레스타인 문제다. 이라크를 위시한 강경 아랍국들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쿠웨이트 문제를 연계,동시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24년전과 수개월전이라는 시차를 제외하고는 영토점령이나 유엔의 철수촉구 결의 등 모든 면에서 똑같은 문제를 이중기준을 갖고 대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이에반해 이스라엘은 67년 당시 이스라엘의 웨스트 뱅크 점령은 선제공격을 받은뒤 자위차원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행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시각이다. 점령지를 무조건 반환할 경우 지역안정으로 이어지기보다는 또다른 불안을 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번 전쟁후 항구적인 지역평화를 위한 신질서에 의한 안정보장 장치를 마련하기 전에는 철수가 곤란하다는 얘기다. 아무튼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여론과 함께 이스라엘의 태도가 중요하다. ○“제2불안 초래” 주장 이스라엘 내에서는 지난 20여년 동안 팔레스타인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져왔다. 독립시키거나 자치만 허용하거나 아예 거주민들을 요르단으로 추방시켜 버리자는 등 다양한 견해가 대립돼 국민간의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웨스트 뱅크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스라엘내의 분위기다. 웨스트 뱅크는 폭 68㎞ 길이 1백38㎞로 한가운데 고도 1㎞의 산맥을 남북방향으로 끼고 있어서 아랍과 이스라엘을 차단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웨스트 뱅크에서 이스라엘 서쪽 끝까지는 전투기로 불과 3분거리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요르단이 완충역할을 했고 아랍세계의 군사력이 미미한 수준이었으며 반이스라엘의 선봉장인 이라크가 이란과 반목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요르단이 국민동요에 의해 이라크편으로 확실히 기울었고 이란·이라크가 화해했으며 무엇보다도 아랍세계의 군사력이 급격히 커졌기 때문에 웨스트 뱅크마저 내줄 경우 이스라엘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지난 67년 중동전 당시 4개 사단병력에 불과했던 이라크군이 현재 55개 사단규모로 늘어난 것을 비롯,시리아 10개사단·요르단 4개사단·사우디아라비아 3대사단 등으로 10배 가까이 늘어났고 각종 무기도 대폭 개량된데 반해 이스라엘은 첨단무기를 갖고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평시 3∼4개사단,전시 예비군까지 합해 12개 사단에 불과한 실정이다. 48년과 67년에 이라크가 이스라엘 공격을 위해 요르단 영토내로 진입시킨 병력이 전체 병력의 3분의1 규모였던 점으로 미뤄 볼때 현재 병력의 3분의1을 또다시 보낸다면 이스라엘로서는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랍군비 크게 증강 이라크 지상군이 이스라엘 국경까지 3백57㎞ 거리를 이동하는데 불과 35시간밖에 안걸리는데 반해 일단 유사시 미군 1개 사단이 파견되기 까지는 1주일 이상이 소요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아랍세계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스라엘과 아랍사이에 유엔군을 배치하는 등 아랍·이스라엘 문제의 항구적인 해결 없이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도 없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입장이다.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연계주장은 단지 이스라엘을 파괴하기 위한 전초전일 뿐이며 심지어는 이번 전쟁이 끝난뒤 중동의 새로운 질서확립을 위한 국제 평화회의에서는 이라크를 제외시켜야 한다는 주장마저 이스라엘에서는 나오고 있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어차피 중동평화 문제가 핫이슈로 부각될 것임은 분명하다. 안전장치의 방향이 전쟁결과에 영향을 받기는 하겠지만 미국이 패배하지 않는 이상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랍의 이스라엘 인정,점령지 반환 및 팔레스타인 독립,팔레스타인 영토내 유엔군 배치 등의 평화장치가 마련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랍인들의 범아랍주의와 반시오니즘이 생리적으로 강하기는 하지만 전쟁을 싫어하기는 아랍인이나 이스라엘인이나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전후 최대이슈 예상 그러나 중동에 일단 평화가 찾아든다 하더라도 그 평화가 장기간 지속되리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같다. 냉전의 시대를 넘어 데탕트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미국이 소련과의 군비감축 협상에서 해상발사 미사일의 감축에 난색을 보이는 것도 「사자가 없으면 토끼가 왕」이라는 식으로 지역별로 제3세계의 미니군사 강국들이 고개를 들고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투기 69대,이란으로 피신/아테네 미 금융기관 2곳서 폭탄테러/걸프전 28일 상황 ▷상오7시◁ 미군 정보장교 마크 로렌스 중령은 식량도 없이 쿠웨이트연안 섬에 갇혀있던 이라크군인 20여명이 투항을 희망해 왔다고 발표. ▷상오7시30분◁ 그리스경찰은 걸프전쟁과 관련이 있는것으로 보이는 폭탄이 아테네시의 인터아메리칸 보험회사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은행 앞에 1발씩 터졌다고 발표. ▷상오8시◁ 이라크는 다국적군 수송기 1대를 터키상공에서 격추시켰다고 주장. ▷하오4시50분◁ 다국적군의 계속된 폭격에도 불구,이라크의 주요 군사시설은 파괴되지 않았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보도. ▷하오6시45분◁ 이라크,다국적군의 전투기와 미사일 등 3대의 비행물체를 더 격추시켰다고 발표. ▷하오7시40분◁ 이란,36명의 이라크인들이 국경을 넘어 망명을 요청했다고 발표.▷하오8시40분◁ 이란으로 피신한 이라크 전투기의 숫자가 모두 69대로 늘어났다고 영국관리가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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