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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미령 100세(외언내언)

    20세기 중국의 여걸 송미령은 1897년 3월20일 생이다.오는 20일이 그의 100세 생일이다. 장개석의 아내로,빼어난 미모와 출중한 능력으로 중국 현대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여인이다.그래서 많은 사람이 송미령을 알고 있지만 그가 아직도 살아있을 것으로 아는 사람은 많지않다.그러나 그는 지금 뉴욕근교에 살며 100세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버지는 대부호이고 남편은 중국대륙을 한때나마 지배했던 권력자.돈과 권력과 미모에 100세의 장수까지 누린 행운의 주인공이다.그러나 그에게는 손이 없다.그래서 거대한 저택에서 홀로 외로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장개석에 이어 대만의 총통이됐던 장경국은 장개석 전처의 소생.두사람 사이가 나빠 남편이 죽자 곧 미국으로 가 살고 있다. 1937년 미국의 주간지 타임은 송미령을 「세계에서 가장 잘알려진 여성」으로 선정했다.36년 유명한 서안사건에서 송은 남편이 장학양에 감금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남편을 구하기 위해 서안으로 뛰어들어 장학양과 담판끝에 남편을 구해냈다.그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진 계기였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선교사가 중국에 예수를 전했듯이 송미령은 미국에 중국을 알렸다』고 극찬하는 송의 팬.그래서 그는 43년 미국에 초청돼 미 의회 상·하 양원합동회의에서 연설한 최초의 중국인이 됐다. 경령·미령자매는 「세기의 이산 자매」로도 유명하다.언니 경령은 근대 중국의 국부로 존경받는 손문의 미망인.49년 대륙이 공산화 될때 언니는 대륙에 남아 공산주의자가 됐고 동생은 장개석을 따라 대만으로 건너갔다.이후 두 자매는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송미령 100세를 맞아 대만에서는 이등휘 총통 주재하에 「송미령여사 생일축하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20일께 축하사절단이 서명록을 갖고 미국으로 떠난다고 한다.한여성의 거대한 생애를 본다.
  • 정착촌­철군규모 타결이 관건/이 「중동평화 동결」이후

    ◎네타냐후,정치스캔들·우파 반발로 강경책/아랍측 신뢰 상실한 미의 중재 기대 어려워 힘들게 지켜져온 중동평화의 불씨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이스라엘과의 접촉중단 지시 ▲이스라엘의 평화협상 동결 경고 등 두가지 찬물이 끼얹어져 또다시 꺼질 위기에 처했다.이같은 위기의 원인은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에 건설키로 한 유태인 정착촌 문제와 요르단강 서안 주둔 이스라엘군의 철군 범위라는 2가지로 압축된다. 이스라엘은 67년 중동전때 점령한 동예루살렘의 하르 호마에 6천500채의 유태인 정착촌을 건설키로 결정하고 착공시기만 남겨놓고 있다.그러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비롯한 아랍세계는 이같은 결정이 협상을 통해 동예루살렘의 장래를 해결한다는 평화협정에 위반된다면서 이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총리는 『동예루살렘에 유태인 정착촌을 건설한다는 결정은 결코 번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히 맞서고 있다. 요르단강 서안 주둔 이스라엘군의 철군 범위에 대한 양측간 견해차도 해소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95년 조인된 오슬로 평화협정은 3단계로 실시하는 철군 1단계 범위를 서안지구의 30%로 명시하고 있다.그러나 이스라엘은 1단계 철군 범위를 9%로 못박고 더이상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반발에도 불구,중동평화협상 과정에서 강공책을 구사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국내정치사정 때문으로 보인다.검찰총장 임명을 둘러싼 정치스캔들과 팔레스타인에 지나친 양보를 하고 있다는 우파의 비판으로 불신임 위기에까지 몰린 네타냐후로서는 이들의 불만을 잠재울 고단위 처방이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과거의 예로 보아 중동평화협상 과정의 재개 여부는 그동안 「중재자」로서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이 전면에 나서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그러나 미국도 지난주 유엔 안보리에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유럽측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팔레스타인과 아랍측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어 사태 해결을 위한 기대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번 위기는 비록 아직파국상태에까지 이른 것은 아니지만 중동평화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 것이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 「실례」라고 할 수 있다.
  • 네타냐후 방러

    【모스크바 AP 연합】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총리는 러시아의 이란에 대한 핵협력 중단과 시리아를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협조 요청의 일환으로 10일 러시아를 처음으로 공식 방문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러시아 방문은 이스라엘과 시리아간 협상이 오랫동안 중단상태에 있고 팔레스타인과도 요르단강 서안에서 이스라엘군의 철군 범위를 둘러싸고 새 긴장관계가 조성되고 있는 등 중동평화 절차가 난항을 겪고 있는 시기에 이뤄진 것이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 아라파트,대이 접촉 중단 지시/이군 철수범위 반발

    ◎팔 지위협상 무산 가능성 【예루살렘 UPI 연합】 요르단강 서안 주둔 이스라엘 병력 철수 범위를 둘러싸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11일 대이스라엘 접촉을 모두 중단토록 지시했다. 아라파트의 이같은 지시에 따라 다음주 열릴 예정이던 팔레스타인지역 최종 지위 협상이 무산될 것으로 보여 중동평화 과정이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측의 이같은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1단계 철군 범위를 요르단강 서안 지역의 9%로 한정한 당초 계획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팔,헤브론철군 축소에 반발/아라파트“중동평화 과정 실질적 위험”

    【예루살렘 AFP 연합】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이스라엘 정부가 헤브론 철군협정에 따른 1단계 철군대상지역을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9%로 일방 결정함으로써 중동평화과정이 『실질적인 위험』에 빠졌다고 10일 경고했다. 자치정부의 한 고위관리도 『이스라엘 정부가 무력으로 자신들의 결정을 관철시키기 위해 고의적인 충돌을 준비하고 있다는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서 협상이 『막다른 길에 이르렀으며 실질적인 위험에 빠졌다』고 말했다.
  • 이 각의,서안 1단계철군 승인/팔인 시위대비 동예루살렘 비상경계

    【예루살렘 AFP AP 연합】 이스라엘 정부는 7일 헤브론 철군협정에 규정돼 있는 철군계획의 첫단계 조치로 요르단강 서안지구내 9%에 해당하는 농촌지역에서 자국군을 철군시키기로 했다고 이스라엘 라디오방송이 보도했다. 이스라엘정부는 이날 각의에서 7시간에 걸친 격론끝에 1단계 철군지역을 요르단강 서안지구내 9%에 해당하는 5천900㎢ 지역으로 하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총리의 제안을 10대7로 가결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고충을 토로한 뒤 이번 결정에도 불구,일부 기술적 문제 때문에 철군협정상 1단계 철군 시한으로 규정된 이날중 철군이 이뤄지기 힘들지만 『수일내에는』 철군이 완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루살렘 AFP 연합】 이스라엘은 7일 팔레스타인인들의 대규모 시위움직임에 대비해 동예루살렘에 2천여명의 경찰병력을 추가로 배치했다. 경찰대변인은 『동예루살렘 구시가지와 하르호마지구에 2천300명의 경찰을 추가배치했다』고 말했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정부가 최근 2천500채의 유태인 주택건설을 승인한 곳이다.
  • 「이」 1단계 서안철군/내주중 구체범위 발표

    【예루살렘 AFP 연합】 이스라엘은 3월로 예정된 요르단강 서안 시골 지역의 철군범위를 다음주 중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28일 밝혔다. 이스라엘 정부는 성명을 통해 네타냐후 총리가 이날 각의에서 『정부가 다음주에 이 문제에 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 「이」,동예루살렘 새 정착촌 건설 강행/각의 결정

    ◎「팔」 소요 대비 병력 증파… 긴장 고조 【예루살렘·가자 외신 종합 연합】 이스라엘 정부는 26일 국제사회의 우려와 팔레스타인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동예루살렘에 새로운 유태인 정착촌을 건설키로 한 계획을 승인했다.이스라엘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주재한 각의에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앞서 이스라엘 당국은 동예루살렘내 주택건설계획 승인 결정을 앞두고 팔레스타인측의 소요에 대비한 진압병력을 추가배치해 긴장을 고조시켰다. 아비그도르 카할라니 이스라엘 치안장관은 이날 동예루살렘의 병력 증강배치를 발표하면서 『팔레스타인측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한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 라디오방송은 이와관련,베냐민 네타냐후 정부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당국 수반에게 주택건설 강행결정에 대항해 폭력사태를 유발하면 내달 7일로 예정된 요르단강 서안주둔 병력철수를 연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 이 총리 “가뭄극복 대책 철저추진을”(국무회의:25일)

    ◎농·공용수 개발·범국민 절수운동 당부 이수성 국무총리가 주재한 25일 정례국무회의는 평소보다 1시간 앞당겨진 상오 8시에 열렸다. 국회의 통일·외교·안보분야 대정부 질문이 상오 10시로 잡혀있던데다,상오 9시30분부터는 취임 4주년을 맞은 김영삼 대통령의 담화문발표가 있었던 때문이다. 따라서 이날 국무회의는 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등 10건의 의안을 처리하고 45분만에 끝났다. ○…강현욱 환경부장관은 최근 남부지방에서 특히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겨울가뭄 상황과 극복대책을 설명했다. 강장관은 『지난 1월1일부터 2월22일까지 전국 평균 강우량은 16.7%로 최근 3년의 같은 기간 20.9∼31.8㎜에 비하면 40∼60%에 불과하다』면서 『2월22일 현재 영·호남의 연안 및 도서지역 17개 시·군,18만2천여명이 제한급수를 받고 있으며 4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제한급수는 75개 시·군 42만명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총리는 이에대해 『농림부·환경부·내무부·통상산업부 등 관계부처는 비상식수공급,수질관리강화,농업용수개발및 공업용수확보 대책 등을 보다 철저히 추진함과 아울러 범국민적인 절수운동을 전개함으로서 이번 가뭄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의결안건◁ △한국해양수산개발원법(제정안) △수출용원자재에 대한 관세 등 환급에 관한 특례법 시행령(개정안) △한국교육방송원법 시행령(제) △한국장학회법 시행령(개) △교육법 시행령(개) △대외무역법 시행령(개) △한국수자원공사에 대한 국유재산 현물출자안 △대한민국 정부와 미얀마연방 정부간의 대외경제협력기금 차관공여에 관한 교환각서안 등.
  • 팔인,미 엠파이어빌딩서 총 난사

    【뉴욕 연합】 미 뉴욕시 맨해튼에 위치한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86층 전망대에서 23일 하오 5시쯤(현지시간) 관광객을 가장한 팔레스타인인 출신 1명이 무차별 총기를 난사,관광객 가운데 1명이 사망하고 어린이 1명을 포함한 6명이 중상을 입었다. 범인도 범행후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쳐 중태에 빠진채 부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뉴욕시경은 반자동 기관단총을 난사한 범인이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서안 라말야에서 온 팔레스타인인 알리 아부 카말(69)로 밝혀내고 그의 범행동기와 입국경위 등을 수사하고 있다.
  • 권영필 고대교수,「실크로드 미술」내

    ◎한국미술 “실크로드 미술의 연장선에”/비한족의 미술로서 「중국변방」 평가에 반기/“더이상 헬레니즘·인도문화의 낙수아니다” 중국의 한나라와 고대 로마를 잇던 동서교역로 실크로드.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1887년 처음 명명한 실크로드는 기원전 2세기에 처음 열린 이래 동서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다했다.동아시아에서 불교가 쇠퇴하는 것과 때를 같이해 실크로드는 한때 막을 내리다시피 했지만,19세기 후반 열강의 세력각축장으로 중앙아시아가 각광받으면서 이 비단길은 다시금 역사의 중심무대에 등장했다.「소박주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는 실크로드 문화,그중에서도 특히 미술은 역사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아왔다.최근 고고미술사학자 권영필 고려대 교수(56)가 20여년간의 연구끝에 펴낸 「실크로드 미술」(열화당)은 실크로드 미술 전반에 관한 국내외 연구성과를 망라한 노작으로 관심을 모은다. 이 책은 특히 「중앙아시아에서 한국까지」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실크로드 미술문화가 한국에까지 이르는 경로를 밝히고자 했다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 차별성을 지닌다.서구학자들은 실크로드의 기점이 중국의 장안­현재의 서안­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집착한 나머지 실크로드 문화의 동쪽으로의 확산을 더이상 고려하지 않는다.그러나 권교수는 옛 로마시대의 유리잔 등이 경주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할 때 『실크로드 지도는 경주까지 연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나아가 신라의 왕들은 국제교류를 통해 실크로드 미술품을 수집했을 뿐 아니라 그것들을 재생산해 실크로드 문화에 대한 그들의 취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고 밝힌다.『그들은 어쩌면 이러한 미술품을 「수집」한 것이 아니라,그것을 「담지」하고 북방에서 내려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도 보인다. 권교수는 또 실크로드 미술은 「중국의 변방미술」이 아니라 「비한족 미술」이라고 강조한다.지금까지 나온 실크로드 관련서는 문화패권주의적 미학관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크로드 미술을 서방의 헬레니즘문화나 인도문화,중국문화 등이 흘려놓은 낙수정도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이 책에는 「위지을승 화법의 근원과 확산」「한국불화에 나타난 산수요소의 원류와 그 발달」「고구려벽화의 복희여와도」「한국의 전통미술,그 내방성과 외방성」 등 13편의 논문과 250여점에 달하는 컬러·흑백 도판이 함께 실렸다.
  • 원측 스님을 찾아/송상용 한림대 사학과 교수(굄돌)

    중국 내륙에 있는 서안은 2천여년에 걸쳐 열한 왕조의 수도였던 중요한 도시다.그곳은 일찍이 비단길의 출발점이었고 동서문화의 교류는 당나라때 절정에 이르렀다.뿐만 아니라 서안사변 같은 현대사에서 뺄수 없는 사건도 여기서 일어났다. 그러기에 오늘날 서안은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다.관광객들은 진시황릉과 세계 8대 기적의 하나라는 병마용,그리고 양귀비가 목욕했다는 화청지를 어김없이 돌아본다.그러나 당의 고승 현장이 불경을 번역한 대안탑과 그의 제자 원측에 관심을 갖는 한국관광객은 많지 않다. 신라 왕족으로 알려진 원측은 7세기 초 당에 유학해 유식사상을 공부했다.그는 여섯나라 말에 능통했고 불경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책임자였다.원측은 방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경쟁자 규기의 시기를 받아 이단시되었고 저술의 일부가 전할 뿐이다. 서안에서 50리 떨어진 흥교사에 원측의 사리탑이 있다.두번째로 서안에 간 기회에 택시를 달려 아무도 없는 측사탑 앞에 섰다.40년전 박종홍선생이 처음 시작한 한국철학사 강의에서 원측의 사상을 들었을 때의 감격이 되살아났다.그런데 절을 둘러보다가 일중불교친선비를 발견하고 놀랐다.현장과 원측이 일본 불교계의 존경을 받는다지만 한국이 먼저 했어야 할 일이다. 구 동베를린에 있는 훔볼트대학의 일본학연구소는 백년전 그곳에 살았던 일본 작가의 집이다.일본 정부에서 사서 대학에 기증했다고 한다.이 연구소는 일본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곳이다.한국 불교도들도 흥교사에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고승 원측을 기리는 비를 세워야 한다.그곳이 한국인들의 필수 관광코스가 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 150㎝ 단구로 버틴 「개혁세월」 73년/등소평이 걸어온 길

    ◎20세 파리유학때 중 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혁명 1세대”/33년 첫 좌절후 3전4기… 78년 개방기치로 전권장악/사회주의 몰락 국제풍파속 말년엔 체제독려 지방순회 신장 150㎝정도의 땅딸막한 등소평은 외무부터가 오뚝이 같았다.부도옹이라는 그이 별명은 세력다툼의 와중에서 쓰러졌다가도 매번 다시 오뚝 일어섰울 뿐 아니라 마침내는 모택동 사후의 중국을 한손에 틀어쥔 탁월한 정치력에 대한 경탄을 담고 있다. 실용주의노선으로 12억 중국인민을 배고픔에서 해방시키고 최고 지도자이면서도 최고직책을 가져보지 않은채 중국을 15년 넘게 통치해온 등소평.하지만 그 역시 같은 세대의 거의모든 중국지도층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서사시적 삶을 살아왔다. ○맏아들로 본명 등희현 1904년8월22일 사천성 광안현에서 비교적 부유한 불교도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본명은 등희현.광안중학시절 그의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고 성격은 온순 참착했다.겉으로는 매우 산박했으나 「마음은 겨자처럼 맵다」는 평을 들을 만큼 결단력에 냉혹성까지 갖추며 자라났다.16세 되던 20년 10월 은등 고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간후 24년에는 주은래·이입삼·조세염 등과 파리에서 주국공산단 유럽지부를 창설함으로써 일찍부터 혁명에 가담했다.이 시절 르노자동차회사의 조립공으로부터 기차화부,식당보이 등 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스런 시절을 보냈다.뒷날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이때 길러졌다고 한다.그는 당면에 따라 26년초 파리를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다.여기서 중국인만을 대상으로 공산주의학습을 시키던 중산대학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공산주의이론을 학습하고 군사훈련까지 받은뒤 그해 연말 귀국했다. 귀국후 그는 곧바로 서안의 중산군사학교에 배치돼 이 곳에서 정치처장을 맡으면서부터 본격적인 중국혁명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이듬해인 27년 국공합작이 실패로 돌아간뒤 그는 중국공상당본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이름을 등소평으로 개명했다.그해 겨울 중공중앙이 상해로 옮겨가자 함게 따라가 당비서장과 비슷한 역할을 맡으면서 최초의 부인 장서원과 결혼한다.하지만이장씨부인은 멀지않아 난산으로 사망하게 된다.등은 28년 당대회에서 당중앙부비서장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부턴 광서지역에 들어가 본격적인 게릴라활동을 벌였다. 31년에 들어서자 주덕이 이끄는 홍군제1군단에서 정치부주임을 맡게 되고 동시에 홍군총정치부부주임을 맡아 활동하던중 두번째 부인 김유영과 결혼한다. 그의 인생에서 최초의 큰 좌절은 33년에 찾아온다.강서성 위원회 서기로 취임하지만 그가 모택동파라는 이유만으로 곧 해임되고 「엄중경고」처분을 받는다.당시까지만해도 모가 전권을 잡지 못하던 시절이다.이것이 그이 첫번째 실각으로 기록되고 있다.설상가상으로 그의 처 김유영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그녀는 당시 중공중앙조직부장이던 이유한과 재혼해서 현재의 경제체제개혁위주임인 이철영을 낳았다. 34년10월 중국공산당은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의 끈질긴 소탕전에 견디다 못해 대장정에 나섰다.물론 등은 참여했다.이 장정도중 모는 준의회의에서 중공당 최고지도자로 부상하게 되고 당시 홍군기관지 「홍성보」 편집장 자격으로이 회의에 참석했던 은등 당중앙비서장(당사무총장격)이라는 중책을 맡게 돼 모파의 유력한 간부지위에 올랐다. 약 1년간의 대장정이후 계속된 붉은 공산혁명과 항일운동을 거치면서 등은 계속 모의 신임을 쌓아 가다가 38년8월에는 팔로군의 제129사단 정치위원으로 임명돼 사단장인 류백승과 함께 유등대군(제2야전군)의 기반을 닦아간다.그후 45년에는 군부내에서 주덕·팽덕회 다음으로 3번째의 지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군부내 기반과 인맥을 형성해나갔다. 그는 이에 앞서 39년9월 세번째이자 마지막 부인인 탁림과 결혼,지금까지 2남3녀를 둔채 반백년도 넘게 해로해왔다. 50년대말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극심한 가뭄등으로 수백만명이 굻어죽는 사태가 발생하자 그는 그 유명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론」(흑묘백묘론)을 내놓았다.『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사상이야 어떻든)쥐만 잘 잡으면(생산만 많이 하면)좋은 고양이(인민)다』는 의미의 이 주장으로 그는 자본주의 추종자라는 이른바 주자파로 주목받게 된다. 60년대 중반부터문화대혁명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그의 주변에도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홍위병들로부터 주자파라는 비판을 받아온 그는 류소기 국가주석과 함께 67년8월 모든 공직에서 해임,강서성 신건현에 유배돼 강제노동에 동원되어야 했다.2차 실각이었다. 그로부터 7년뒤인 73년3월 그는 국무원 부총리로 임명됨으로써 화려하게 복권,오뚝이의 면모를 과시했다.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남쪽 언덕이든 북쪽 언덕이든 꼭대기에만 오르면 된다』는 의미의 「남파북파논」을 내놓아 골수 공산주의자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결국 76년4월 주은래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난동사건(일명 4·5사건)때 사인방(모택동을 등에 업은 강청 장춘교 왕홍문 요문원등 강경파)으로부터 「난동의 배후조종자」로 몰려 또다시 실각했다.3차 실각이었다.주추모집회에서 은등 추도사를 읽었었다. 이윽고 모사망과 사인방 실각 이듬해인 77년 그는 다시 부활,실각 당시의 모든 직책을 회복했다.이때 그의 재기용여부를 놓고 중앙공작회의는 격렬한 찬반논쟁을 벌였다.그런데등이 스스로의 과오를 시인,이미 당주석과 중앙군사위주석이었던 화국봉의 지위를 인정하는 편지를 씀으로써 부활하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때 화는 의등 부활에 반대했었다. ○강경책 내며 위기극복 이렇게 되살아난 등은 78년12월 당11기3차중앙위전체회의에서 향후 20년간에 걸친 「4개(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현대화계획」선포를 주도함으로써 당의 최고 실권자임을 과시했다.이때부터 중국이 야심찬 개혁개방시대로 들어선 것이다.이는 곧 실사구시를 중심으로한 실용주의 「등시대」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했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이 최고실권자였음에도 당주석이나 국가주석과 같은 최고 자리에 오르지 않는채 호요방(당)과 조자양(정부)을 앞세워 화에 대한 문책과 강등에 착수,마침내 82년9월 화를 당중앙 위원이외의 일체의 요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권력투쟁에서의 기나긴 「장정」을 매듭지었다. 89년4월 전총서기 호요방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 민주화시위는 그에게 닥친 마지막 시험이었다.그러나 그는 이 시험문제를 시위대군중에 대한무자비한 발포와 함께 시위대의 추앙을 받던 총서기 조자양을 「폭란의 배후책임자」로 몰아 제거하는 방법으로 풀었다.13년전의 천안문폭동때 자신이 당했던 방법을 이번에는 자신의 심복이었던 조에게 그대로 되풀이한 셈이다.어쨌든 이로써 사회주의체제를 전복시켰을지도 모를 자유화물결을 일단 잠재울 수 있었다. 등은 그동안 자신의 후계자로 호요방과 조자양을 잇따라 내세워 봤지만 「홀로세우기」에 실패했다.그 뒤 가장 적절한 후계자라고 꼽은 인물이 강택민.강은 천안문사태 이후 상해시에서 혼란을 신속히 수습했고 그동안 의등 개혁개방노선을 가장 능숙하게 실천해온 것으로 평가되었다. ○강택민 지목한 뒤 은퇴 강을 후계자로 내세운 그는 89년 11월9일 당중앙위의 허락을 받아 당중앙군사위주석직에서 퇴임함에 따라 공직에서 은퇴,평민으로 돌아왔다.그러나 그가 은퇴한 뒤에도 배후에서 한동안 강체제를 지원하고 후견인역할을 해와서 최근까지도 「최고지도자」또는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라는 칭호를 들어왔다. 특히 그는 동구공산체제가붕괴된데 이어 소련마저 무너져 중국이 망당망국의 위기의식에 휩싸이자 심천 주해 등 남부 개혁개방지역을 돌며 이른바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개방을 보다 적극화할 것으로 주창함으로써 사회주이체제붕괴의 도미노현상이 중국대륙에 밀어닥치지 못하게 했을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모방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당노선으로 채택케함으로써 중국이 21세기 아시아 태평양시대를 이끌어갈수 있도록 새로운 용기와 힘을 불어넣기까지 했다. 중국경제가 이같은 시장경제체제 도입에 힘입어 연10%가 넘는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지속하며 전진을 계속하자 그는 『기회를 잃지 말고 성장을 계속하라』는 말을 남기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등소평 연보 ▲1904.8.22=사천성 광안현에서 3남매중 맏아들로 출생 ▲1918=중경에서 프랑스유학을 위한 예비학교 입교 ▲1920=프랑스 유학 떠남 ▲1924=파리에서 주은래와 중국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1926=모스크바의 중산대학으로 옮겨 수학한뒤 연말에 귀국 ▲1927=광서성에서 공산당 게릴라 조직.첫부인 장서원과 결혼 ▲1931=홍군제1군단 정치부주임.두번째부인 김유영과 결혼 ▲1933=강서성위서기로 취임직후 모택동파라는 이유로 해임.1차실각 ▲1934∼35=대장정 참가,준의회의에서 당중앙 비서장으로 선임 ▲1938=국공합작으로 홍군이 팔노군으로 개편될때 129사정치위원이 됨 ▲1939=세번째부인 탁림과 결혼 ▲1945=제7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으로 선출 ▲1952.8=국무원 부총리에 임명 ▲1954=당중앙위원회 비서장,국무원 부총리,국방위원회 부주석에 선출 ▲1956=정치국상무위원겸 당총서기 선임 ▲1966=문화대혁염 시기 홍위병으로 부르주아 반동파로 비판받음 ▲1967.7=모든 당·정 직무에서 해임.2차 실각.남창으로 하양 막노동 ▲1973.3=주은래 천거로 국무원 부총리에 복직 ▲1974=당정치국원 승진.유엔총회 특별회의에 중국대표 단장으로 참석 ▲1975.1=당중앙 부주석,정치국 상무위원,국무원 제1부총리,중공군 총참모장 등에 선임 ▲1976.4=천안문사건이 발생하자 4인방에 의해 배후조종자로 지목,모택동의 제의로 모든 직무에서 물러남.3차실각 ▲1977.7=중공당 10기3중전회에서 당중앙정치국상무위원,당중앙부주석,군총참모자 등으로 복직 ▲1978.12=당11기3중전회에서 당최고영도자 지위 획득,향후 20년간 4개 현대화 추진계획 선포 ▲1979=핑퐁외교로 미국과 국교수립후 공식 방미,개혁·개방정책을 당지도노선으로 정식 출범시킴 ▲1980=경제특구제 시행 결정,호요방·조자양체제 출범토록 지원 ▲1981.6=당중앙군사위우너회 주석으로 권권장악 ▲1987.10=당정치국원,정치국상무위원직 사임 ▲1989.6=천안문사태 유혈진압 지시 ▲1989.11=당중앙군사위 주석자리를 내놓고 정치일선에서 은퇴 ▲1992.1=남부개방지역 순시중 담화(남순강화)로 개혁·개방 가속화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도입 역설 ▲1992.10=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당원로들을 은퇴시키고 강택민체제 구축토록 지원 ▲1993.8=막내딸 용등,「나의 아버지 등소평」전기 출간 ▲1993.11=「등소평문선 제3집」 발간 ▲1993.12=북경시 순시중 「기회를 잃지말고 계속 성장추진」역설 ▲1997=92세를 일기로 영면
  • 호 기업 “아시아는 젖줄”/수출60% 집중…식량수요 폭발적 증가

    ◎동아시아 대규모 SOC개발에 눈독 호주의 기업들이 아시아로 몰려들고 있다.최근들어 호주 수출의 60%(3백40억달러)가량이 동북아시아에 집중되고 있으며 이같은 비율은 동북아지역 국가들의 호주에 대한 수출비중보다 더 높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10년전만 해도 일본에서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태평양 서안지역에 대한 호주 수출 비중이 30%에 머물렀으나 요즘은 65%이상으로 크게 확대됐다.더욱이 올해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될 경우 중국·일본·한국등 동북아 3국이 호주의 가장 큰 교역파트너로 부상할 전망이다. 호주의 50대 수출업체들중 대부분이 동북아지역의 시장 다변화에 힘을 쏟고 있으며 중소수출업체도 『아시아 중시』 추세에 한몫을 하고 있다.호주의 500대 수출업체에 들지않는 소규모 업체들만해도 지난 95년 7백60만달러인데 비해 지난해에는 20%가량 증가한 9백20만달러 상당을 수출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같은 호주 기업들의 아시아 진출 러시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앞으로 10년간 사회간접시설(SOC)에 1조5천억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경제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한편 호주정부는 금세기 말까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식량수요가 연간 6천8백50억 호주달러(5천1백10억달러)로 추산,그중 12%에 달하는 8백30억 호주달러(6백20억달러)정도가 수입으로 충당될 것으로 전망하고 식량수출전략을 강화할 계획이다. 호주 중소수출업체의 실무자·엔지니어들도 아시아의 사회간접시설 개발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호주 소프트웨어산업계 역시 아시아시장에서 치열한 수주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호주 기업들은 아시아의 급격한 도시화·산업화에 따른 공해문제 등으로 자국의 발전된 환경기술 분야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호주의 서비스수출도 지난 10년간 연 10% 성장을 보였으며 관광이 아직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교육과 사업관련 서비스도 늘고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호주정부는 광활한 국토와 함께 풍부한 경영기술과 낮은 사업경비,최고의 통신시설 등을 내세워 자국이 해외기업들의 중개수출기지로 이용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 “팔 일방적 독립국가 선포땐/요르단강 서안 재점령”

    ◎네타냐후 이 총리 경고 【에루살렘 AP AFP 연합】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2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일방적으로 선포한다면 요르단강 서안지역을 다시 점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텔레비전 방송 회견에서 팔레스타인측은 이스라엘과 독립 문제를 협상할 수는 있으나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팔레스타인의 일방적인 독립선언에 대한 대책에 대해 자세한 언급은 회피했으나 비상계획이 수립돼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 라디오 방송은 총리실 소식통을 인용,네타냐후 총리는 서안 지역의 27%에 해당하는 농촌 지역을 재점령하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네타냐후 총리의 경고에 대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이 팔세스타인 문제에 불법적 간섭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 「팔」인에 취업기회 확대/「이」 연내 4만5천명 고용

    【예루살렘 AFP 연합】 이스라엘 정부는 대팔레스타인 관계 개선을 위해 팔레스타인 노동자의 이스라엘 내 취업기회를 확대키로 했다고 이스라엘의 일간 예디오트 아로노트지가 21일 보도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구체적으로 10주안에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출신 팔레스타인 노동자 2만명에게 취업허가를 내주는 것을 시작으로 오는 8월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4만5천여명의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에게 이스라엘 내 취업을 허가할 방침이라고 신문은 설명했다.
  • 이스라엘/헤브론 철군 완료/중동전후 30년만에

    ◎팔 경찰,이군 본부 접수 【예루살렘·헤브론 AFP DPA 연합】 이스라엘이 17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 헤브론시에서 완전히 철수하며 이날 새벽 팔레스타인경찰은 헤브론의 이스라엘군 본부를 공식접수했다. 이번 철군은 지난 15일 체결된 획기적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에 따른 것으로 헤브론이 지난 67년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당한 이래 거의 30년만에 실현되는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총리는 16일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기자회견을 통해 『헤브론철군이 17일 하오4시20분(한국시간 17일 하오11시20분) 시작되는 사바스(유태교도 안식일)에 들어가기 전에 완료될 것』이라며 『일부 작은 일은 18일 밤까지 끝낼 것』이라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협정은 과거 노동당정부로부터 물려받은 것보다 내용면에서 개선된 것이 많아 위험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강조한 뒤 『우리의 허락 없이 무장 팔레스타인경찰이 유태인지역 가까이 머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향후 18개월에 걸친 요르단강 서안내농촌지역에서의 3단계 철군과 관련,『철군규모와 속도는 우리의 보안기준에 맞춰 팔레스타인과 협상없이 우리만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이」 우익강경파 “대결보다 평화” 선회/헤브론철군 타결 의미

    ◎헤브론 안보장치 강화·일정 11개월 늦춰 “소득”/팔 주권·정착촌문제 다룰 최종 협상 과제 남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에 15일 체결된 헤브론 철군협정은 이스라엘의 강경 우익정부를 처음으로 평화협상과정의 도상에 올려놓았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그동안 「평화」와 「토지」의 맞바꿈 원칙에 따라 추진해오던 중동평화협상에 브레이크를 걸어오던 네타냐후 이스라엘총리가 취임 7개월만에 현실에 굴복,전임총리들인 라빈과 페레스처럼 평화협상테이블로 복귀한 것이다. 이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협상은 원래 헤브론에서의 양측간 미래 안보장치를 강화하고 지난 9월 고대 지하터널공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교전으로 7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뒤 붕괴된 상호간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미국의 4개월에 걸친 집중적인 중재노력으로 중동평화의 정착은 한 걸음 더 진전하게 됐다.헤브론에서 뿐만 아니라 요르단강 서안에서의 이스라엘 철수라는 협상이 재개된 것이다.이번 협정은 라빈 전총리가 서명한 95년9월의 협정과 중복된다.그러나 이번 협정은 헤브론에서의 이스라엘 안보장치를 보다 강화하고 요르단강 서안의 철군일정을 98년8월까지로 원래보다 11개월 늦췄다는 점에서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의 양보를 받아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야당총재시절 라빈 총리의 중동평화추진과정을 팔레스타인에 대한 「굴복」이라며 비난에 열을 올렸던 그가 이번에 합의한 것은 「깜짝 놀랄만한 180도의 전환」인 셈이다. 이스라엘의 정치평론가 메나헴 샤레프는 이번의 철군협정체결에 대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에 지난 93년9월 체결된 오슬로 비밀평화협정은 이제부터 더이상 이스라엘 국민의 절반에 해당되는 반쪽짜리가 아니다』고 평했다.네타냐후는 이번 조치로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정착자들과 보수우익세력들의 반발에 직면했다.회담이 타결됐다는 소식이 들리자 우익인사들은 그를 교체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이번 합의는 네타냐후의 내각에서는 간신히 통과되겠지만 의회에서는 야당인 노동당의 압도적 지지로 큰 표차로 통과될 것이 확실시된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철군이 98년까지 완료되면 이스라엘의 정착촌과 이스라엘의 군사지역을 제외한 요르단강 서안지역을 통제하게 된다.그러나 팔레스타인의 주권,최종 국경선,팔레스타인 난민문제,예루살렘의 장래 지위,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에서의 유대인정착촌문제등을 다룰 최종 평화협상을 또 개최해야 한다.이스라엘은 평화를 선택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국경선문제만해도 팔레스타인은 요르단강 서안의 대부분을 반환받기를 원하고 있으나 네타냐후는 3분의1만 돌려줄 것으로 알려지는 등 앞으로 남은 최종협상은 더욱 큰 진통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 이­팔,헤브론 철군협정 조인

    ◎“내년 8월까지 완료”… 중동평화 큰 진전 【에레즈검문소(가자지구) AFP DPA AP 연합】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15일 오랫동안 지연돼온 요르단강 서안내 헤브론시 및 농촌지역에서의 이스라엘군 철군에 관한 협정에 마침내 조인했다.〈관련기사 10면〉 이로써 강경파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총리가 지난해 6월 집권한 이래 3개월여간 교착상태에 빠졌던 중동평화정착과정이 처음으로 상당한 진전을 보게 됐다. 양측의 협상수석대표가 서명한 평화협정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향후 수일안에 헤브론의 80%지역에서 병력을 철수시키고 이 지역을 팔레스타인자치정부에 이양하며 ▲서명후 6주안에 요르단강 서안내 농촌지역에서 철군을 시작하되 3단계로 나눠 오는 98년8월까지 완료하도록 돼 있다.
  • 헤브론협정 체결 임박

    ◎무바라크 “새달 28일까지 이군 1단계 철수” 【예루살렘 외신 종합】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대통령이 요르단강 서안과 헤브론시의 이양에 관한 협정체결을 위해 14일 국경마을의 에레스 검문소에서 만날 예정이라고 미국과 팔레스타인 관리들이 밝혔다. 앞서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협정에 따라) 다음달 28일까지 이스라엘군의 첫단계 철군이 틀림없이 시작되고 늦어도 98년 중반까지 단계적 철군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은 4∼5가지의 작은 문제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는데 협정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현안은 ▲가자지구의 항공과 항구 개항에 대한 이스라엘 동의 ▲이스라엘에 수감된 팔레스타인인 석방 ▲이스라엘 공격 민병대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소환요구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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