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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래식 감상, 비행청소년 교화에 ‘특효’

    차분한 고전음악이 비행청소년들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합리적인 사고를 갖게 해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춘천소년원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하는 최승학(崔承學·40·소년보호주사보)씨는 최근 경기대 행정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음악치료가 비행청소년들의 인성에 미치는 영향’에서 “음악치료 프로그램이 비행청소년의 자기방어적인 성향을 줄이고 자신을 개방적으로표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최씨는 소년원에 수용된 학생 중 인성검사를 통해 성격상 결함이 발견된 12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월부터 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고전음악 등을 들려준 뒤 인성검사를 다시 실시해 이같은 결과를 얻었다고덧붙였다. 프로그램에 사용된 음악은 바그너,모차르트,쇼팽,드뷔시 등의 고전음악으로 이들의 작품은 음악치료 효과가 검증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결과 프로그램 실시후 비행청소년들의 인성은 크게 달라졌다. 프로그램을 실시하기 전에 비해 사회성,성취성,안전성,자율성, 사려성 등에서 20∼30% 향상된 것으로 조사됐다.정신장애도 평균 25%가량낮게 나타났다. 대학에서 기악을 전공한 최씨는 “음악치료가 비행청소년들을 교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교육과 병행해실시하게 되면 효과가 배가(倍加)될 수 있다는 게 이번 프로그램을통해 증명됐다”면서 “소년보호 교육기관에서 생활하는 비행청소년들에게 아침,점심,저녁시간에 정기적으로 정서안정에 도움이 되는 음악을 틀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
  • [발언대] 중국내 항일유적 복원·보존 시급

    오는 15일은 광복절이다.조국 광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선열의 치열한 투쟁과 희생에 뿌리를 두고 있다.투쟁과 희생은 국내뿐만 아니라 이역 만리 국외에서도 이루어졌다.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그 대표적인 뿌리이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는‘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 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다.임시정부는 27년간 상해,남경,서안,중경 등을 거치면서 끈질기게 항일 투쟁을 해왔다.임시정부의 이같은 정신은 우리 대한민국의 뿌리 그 자체이다.역사적인 항일 독립운동의 역동성은 이미 과거사로 묻혔지만 그 정신만은 당시 현장과 함께 지금도 존재한다.그러나 문제는 ‘역사적 현장’이 현재 어떻게 존재하고 있느냐이다. 지난달 중국 내 독립운동 유적지를 탐방하고 왔다.상해,중경,서안 등을 중심으로 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그 산하 한국광복군 사적지를 탐방했다.그런데 그 역사적인 현장은 그야말로 참담한 실정이었다.많은 사적지가 그 위치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었으며,파악된 것도 제대로 복원·보존이 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서안의 한국광복군 사령부 자리는 현재 중국지방법원 청사로 바뀌어 어느곳에도 광복군 활동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그 흔한 표지석 하나 없었다.또 서안에는 1945년 당시 한국광복군 국내 정진대가 있었다.국내 정진대(挺進隊)는 해방 전 ‘대일 선전포고’ 후 연합군의 일원으로 한국 상륙을 준비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이며 특수부대이다.그 한국광복군 국내 정진대가 특수 OSS훈련을 받던 종남산 훈련장도 마찬가지였다. 중경에 있는 한국광복군 사령부 자리는 ‘미원(味苑)’이라는 중국식 식당으로 바뀌어 있었고,그나마도 내년에 철거될 처지라고 한다.상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물은 중국측의 허가로 박물관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비좁은 공간과 부실한 자료 등이 한 눈에 들어 왔다.관리소장은 인사말조차 한국 말로 못하는 중국인이어서 통역이 필요했다.잘 알려진 임시정부 관련 유적지가 이러할진대 타 지역의 유적지 관리 실태는 미루어 추측이 가고도 남는다. 중국 내에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의 보존·복원에 많은 관계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과 전 국민적 차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헌식[경기 안양시 안양6동]
  • 이·팔 西岸서 협상 재개

    [예리코(요르단강 서안) AFP AP 연합] 지난주 미국 캠프 데이비드 중동평화협상이 결렬된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측 협상대표가 30일 다시 만나 협상을 재개했다. 이스라엘의 오데드 에란은 요르단강 서안 예리코시에서 팔레스타인의 사에브 에레카트와 만나 2시간 동안 회담을 가진 뒤 “우리는 평화협상 과정의모든 현안과 캠프 데이비드 이후 협상 재개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며 “양측은 협상이 계속되길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에레카트도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팔레스타인 죄수 석방 문제와 요르단강서안 이스라엘 점령지의 양도 등 과도적 사안을 포함한 경제적 현안에 대해의견을 나눴다고 말했다.그는 31일 다시 협상을 가질 것이라면서 “캠프 데이비드 협상의 성공 또는 실패 여부는 현재로서 이야기할 수 없으며,궁극적으로 완전한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어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이 9월13일 이전까지는 합의에 이르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 중동 ‘9·13뇌관’ 결국 터지려나

    미국의 중재로 보름동안 진행됐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중동평화협상이25일 새벽(현지시간)결렬되면서 이 지역에는 또다시 암운이 감돌기 시작했다.한껏 부풀었던 52년 갈등종식 기대가 무너졌고 일각에선 중동의 전면전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긴장의 재연 협상 결렬 소식이 전해진 직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측은 회담 결렬 원인이 서로에게 있다며 상호 비방에 나선 가운데 ‘폭동 경계’상태를 선포.요르단강 서안과 가지지구 등에 경찰과 보안 병력을 요소요소에배치했으며 26일 요르단강 서안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총파업 및 이스라엘규탄 시위가 벌어질 것으로 전해지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여기에 과격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 지도자 세이크 아흐메드 야신은 이날 “협상의 실패는 무장투쟁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입증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무력에의해 생긴 문제는 무력에 의해 풀어야한다며 무장봉기를 촉구했다. ■협상 결렬 앞서 클린턴 대통령은 25일 중동평화협상을 주재하던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백악관으로돌아온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핵심 현안들에 대한 ‘상당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협상이 결렬됐다고 밝혔다.클린턴 대통령은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합의점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예루살렘의 장래 문제가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고 토로했다.소식통들은 예루살렘에 포함된 이슬람 최대 성지,알 아크사 모스크에 대해 팔레스타인의 주권을 인정하는 절충안에 대해 아라파트가 동예루살렘 구시가지 전체에 대한 주권요구로 끝까지 맞서,결국 협상이 결렬됐다고 전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 협상 세지도자들에 남은 일은 협상 결렬에 따른 위기와상처를 최소화하는 일. 이날 새벽 마지막 회담에서 수주일간 냉각기를 가진뒤 다시 테이블에 앉을 것도 논의됐지만 결국 구체적인 일정을 전혀 잡지 못해 향후 전망의 험난함을 예고했다. 핵심 뇌관은 오는 9월 13일로 예고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선포.팔레스타인측이 예고한 대로 일방적인 독립국 선언을 강행할 경우에는 정면충돌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최악의 경우 이스라엘과 아랍권간의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마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양측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그러나실각위기에 처한 바라크 총리의 국내 정치적 입지, 9월 13일 독립국가 선포약속을 한 아라파트의 물러설 수 없는 입장 등 주변상황도 더 이상의 낙관적인 전망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이·팔 “평화협상 다시 해보자”

    예루살렘 지위 문제로 한때 협상이 결렬되는 등 난항을 거듭하던 중동평화협상이 20일 다시 재개됐다.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이날 그간 중재역할을 맡아온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빠진 채 미 메릴랜드 캠프 데이비드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중재로 협상을 속개했다. 팔레스타인측의 미국 특사인 하산 압델 라흐만은 “합의점 도출을 위한 새로운 기회”라고 평가하면서 협상재개를 환영했다.바라크 총리의 측근인사인엘다드 야니브도 협상재개 이후 이스라엘 라디오와의 회견에서 “우리는 해결방안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이를 찾기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 19일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이 열리는 일본으로 떠나기에 앞서 “내가 G8 정상회담에 참가하는 동안 양측 대표가 캠프 데이비드에 머물기로 합의했다”며 “올브라이트 장관이 양측의 의견 차이를 좁히기 위해 중재역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회담 속개을 시사했었다. 그러나 바라크 총리의 정적들은 바라크 총리가 팔레스타인에게 과도한 양보를 준비하고 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강경파인 아리엘 샤론은 “우리 모두는평화를 원하지만 바라크 총리가 모색하는 끔찍한 평화는 원치 않으며 이는유감스럽지만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지지구, 팔레스타인난민의 운명 등에 대해서는 의견접근을 이뤘으나 예루살렘의 지위 문제로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클린턴 대통령은 양측의 입장 차이를 좁히기 위해 예루살렘 문제와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등을 포괄한 미국측 타협안을 양측이 받아들이도록 중재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10일째를 맞고 있는 이번 중동평화협상에서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은지난 19일 백악관이 성과없이 회담이 종료됐다고 발표한 때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회담결렬이 선언되자 이스라엘 TV와 라디오는 팔레스타인측이 성심껏협상에 임하지 않고 있으며 평화의 기회를 놓침으로써 ‘비극적인 결과’를감내해야 할 것이라는 혹평했다.팔레스타인측도 바라크 총리가 이번 협상에서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 지구의 유태인 정착민처럼 행동했다고 비난하고협상결렬 책임이 바라크 총리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캠프 데이비드 AFP AP DPA 연합
  • 예루살렘 지위등 협상 상당한 진전…訪日일정 연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19일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참석을 하루 연기하면서까지 공을 들이고 있는 중동평화협상이 막판 기로에서있다. 조 록하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중동평화협상을 좀더 심도 있게 논의할필요가 있어 클린턴 대통령의 일본 방문 일정이 하루 늦춰졌다”고 밝혀 회담의 진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연기 배경 클린턴 대통령이 당초 19일 오전까지로 잡았던 중동평화협상 시한을 하루 늦춘 것은 이번 협상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예루살렘 지위문제가상당한 진전을 보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지난 17일 저녁부터 시작된 클린턴 대통령과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의 협상은 18일 새벽 4시30분까지깊이있게 진행됐다.이 회담을 토대로 18일 저녁부터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만나 밤샘협상을 진행한 클린턴은 19일 새벽 전격적으로 방일(訪日) 연기를 발표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클린턴 대통령이 바라크 총리와 하루앞서 조율한 예루살렘 지위문제를 아라파트 수반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고 보고 있다.물론 클린턴이 하루 늦게 일본으로 출발하더라도 21일 G8 개막에는 참석할 수 있다는 시차도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루살렘 지위 문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는 바라크 총리의 입장과 동예루살렘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도를 건설하겠다는 아라파트 수반의 입장은 예루살렘의 경계선 확장을 통해 의견 접근을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인근에 있는 아부 디스와 에이자리야 등의 팔레스타인 마을을 예루살렘에 편입시킨 뒤 팔레스타인이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이스라엘은 이곳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정부 청사를두길 희망하고 있다.그대신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인근 서안지구에 있는 유대인 정착촌을 예루살렘에 병합시킬 수 있도록 했다. ■전망 이번 중동평화협상에서 3국 정상들이 역사적으로 협상을 타결하더라도 중동에 평화가 정착되기까지는 양국의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아브라함 부르크 이스라엘 의회의장은 18일 의회해산과 조기총선을요구하는 법안을 의회 본회의에 상정할 것이라고 발표,캠프 데이비드 중동평화 정상회담에 참석중인 바라크 총리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켰다. 중동평화협상에서 양보만하고 있는 바라크 총리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아라파트 수반도 동예루살렘을 독립국 수도로 삼겠다는 당초의 입장에서 한발물러난 협상안을 팔레스타인인들이 반발없이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강충식기자 chungsik@. *이·팔 정상 협상스타일.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중동평화란 숙제를 놓고 캠프 데이비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지만 두지도자의 협상 태도는 너무나 대조적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바라크 총리는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인물이다.군인 출신인 바라크는 거의평생을 적을 제압하기 위한 치밀한 작전을 수립하고 이행하는데 바쳐왔다. 협상이 진행될수록 바라크의 얼굴에선 웃음과 여유가 사라지고 차갑고 업무적인 표정이 두드러지고 있다.이는 그가 협상의 대상을 제압하기 위해 치밀한 전술을 구상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렇게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바라크의 약점은 감성이 부족하다는 것.지나치게 논리적인 나머지 상대방의 감성적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얘기다. 반면 아라파트 수반은 바라크에 비해 지나치게 감정적이다.그는 스스로를정치적 동물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온갖 정치적 풍상을 겪어왔으며 상대방의말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를 중시한다.이런 아라파트에게 논리적이고 직설적인 바라크의 발언들은 오해와 불신을 사기 십상이어서 아라파트는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업무적인 발언들을 쏟아내는 바라크를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전해졌다. 강충식기자
  • 구국의 뜻 되새기자/ 해외 항일유적 현황·실태

    중국 상해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의 필수 방문코스 가운데 하나는 홍구공원이다.이는 1932년 4월 29일 이곳에서 있은 천장절 기념식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주중 일본공사와 일본군 수뇌 수명을 폭살시킨 윤봉길 의사의 애국혼을느껴보고자 함이리라.윤의사 의거는 단순히 일제의 고관 수 명을 살상한 정도에 그친 게 아니라 당시 임시정부에 대해 미온적이던 장개석 정부의 마음을 돌려놓아 물심 양면의 지원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 항일세력들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러시아·미국 등지에본거지를 잡고 항일투쟁을 전개했다.이들이 활동근거지로 삼은 항일유적지는생생한 ‘민족혼의 현장’이라고 할수 있다.낯선 이국땅에서 접한 선열의 이 름이나 묘소,항일전적지는 후대들에게 애국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정부차원에서 이를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수십권의 항일운동 관련 홍보책자보다 선열의 얼이 서린 ‘흔적’ 하나가 민족정신을 고취하는데 훨씬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1910년 한일병합으로 국권을 상실하자 항일세력들은 국내·외에서 국권회복투쟁을 전개하였다.이들은 1919년 전 민족이 궐기한 ‘3·1의거’와 같은 비 폭력 투쟁은 물론 안중근·윤봉길 의사로 상징되는 의열투쟁,그리고 청산리·봉오동전투와 같은 대규모 무력항쟁도 전개했다.국내외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 항일투쟁은 곳곳에 그 애국혼의 ‘흔적’을 남겨두고 있다.그 가운데 임시정부 청사 등 일부는 정부의 복원·보존 노력으로 상태가 양호한 것도 있으나 아직도 많은 유적들이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최근 보훈처가 전문가들의 조언과 자체 현장조사를 통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해외독립운동 관련사적(시설물 포함)은 모두 317개소로 파악됐다.이들중 244개소는 중국지역에 소재하고 있으며,흔히 ‘만주’로 불리는 동북3성일대에 163개소가 밀집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서는 러시아 36,일본 4,카자흐스탄 4,대만 2곳 등 총46개소이며,그밖에 미주지역 24개소(미국 22,멕시코 2),유럽지역 3개소(프랑스 1,네덜란드 2)등이다. 중국내 항일전적지는 동북3성 가운데 하나인 길림성에집중돼 있으며 그 가운데서는 용정(龍井)일대가 단연 으뜸이다.90년대 들어 중국관광이 늘어나면서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찾는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용정이다.이곳은 우리귀에 낯익은 가곡 ‘선구자’의 고향으로 비암산,일송정을 비롯해 민족시인윤동주의 생가와 묘소가 있어 더욱 한국인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이밖에도인근 교외에 위치한 ‘3·13반일의사릉’을 비롯해 서전서숙·명동촌교회와‘봉오동전투’ 전적지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인근 화룡현에는 3·1의거 이듬해인 1920년 10월 독립군이 일본군 3,000여명을 궤멸시킨 ‘청산리전투’ 현장과 대종교 3종사의 묘소가 남아 있다.흑룡강성 하얼빈에는 안중근의사의 의거현장을 비롯,경박호·사도하자 전투지가 남아있고,영안(寧安)에는 김좌진장군의 묘소와 김 장군이 운영했던 정미소,그리고 신민부 군정파본부,고려공산당 북만지부 건물 등이 남아있다.또요령성 봉천에는 편강렬의사의 전투현장,신빈현에는 양세봉장군 순국지·서로군정서 본부,단동에는 이륭양행(怡隆洋行)건물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이륭양행은 당시 영국식민지인 아일랜드출신 무역상 윌쇼가 경영하던 건물로 임시정부는 그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교통국을 두고 국내와 연락거점으로 활용했었다.집안현,장백현 일대에는 독립군의 유적이 곳곳에 산재해있다.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돼 10여년을 머문 상해에는 임정 청사를 비롯해 임정기관지 독립신문사 터,윤봉길의사의 의거현장인 홍구공원(현 노신공원),애국지사 다수가 묻혀 있는 만국공묘(외국인 묘지),인성학교 등이 남아있다.북경에는 단재 신채호,우당 이회영 선생이 활동했던 흔적과 신한혁명단본부 자리가 남아있고,1932년 윤의사의거후 피난길에 오른 임시정부가 머물다간 진강,가흥,기강,장사,항주 등지에도 백범 김구 선생의 피난처를 비롯해 임정청사 이전지가 더러 남아있다.강소성 남경에는 의열단원들의 합숙지이자 민족혁명단의 본부였던 호가화원이 있다.서안에는 OSS훈련지와 광복군 2지대주둔지가,임정 마지막 정착지인 중경에는 임정 청사를 비롯해 광복군사령부본부건물(현 미원식당 건물) 등이 남아있다.국토 전역에 걸쳐서 항일투사들의 피와 혼이 서려있는 중국은 ‘항일전적지의 진열장’이라고 할만하다. 중국 다음은 러시아로 모두 36개소의 항일독립 유적지가 있다.일제 당시 연해주로 불린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최초의 한인거주지를 비롯해 신한촌,해조신문사 터 등이 남아있고,크라스키노에는 안중근 의사가 동지들과 ‘단지동맹’을 맺은 커리마을이 있다.하바로프스크에는 한인사회당 창당지와 지금은시민휴식공원으로 변한 독립군 전투지,그리고 1937년에 사망한 한인들의 무덤이 남아있다. 또 리르쿠츠크에는 고려공산당 창당대회지(현 레닌거리 23번지 인민의 집)와 이범윤 유배지 등이 남아있다.89년 소련붕괴후 러시아에서 분리된 카자흐스탄에는 ‘봉오동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옛집과 동상,묘소(크질오르다시 공원묘지)가 있으며,계봉우 선생의 묘소도 여기에 있다. 미국에는 한인 이민들이 처음 정착한 하와이를 비롯해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뉴욕 등에 민족세력들의 활동무대가 남아있다.하와이에는 당시 한인들의 구심체 역할을 했던 한인기독교회·한인기독학원을 비롯해 조선국민단 사관학교,하와이국민회관 등이 남아있다.샌프란시스코에는 전명운·장인환 두 의사가 친일미국인 스티븐스를 처단한 현장인 페어부두,스티븐스가 투숙했던 페어호텔이 90년이 넘는 세월속에서도 여전히 옛 모습을 지키고 있다. 이곳엔 대한국민회의 기관지 신한민보의 발간지(페리스트리트 232)도 여전히 남아있다.로스앤젤레스에는 애국지사이자 대표적 재미한인 지도자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고가(남가주대 구내소재)와 흥사단중앙회관이 남아있다.이밖에도 캘리포니아 클로세트 윌로스에는 계원 노백린 장군의 한국비행단 설립지가,네브래스카주에는 박용만의 한인소년병학교 설립지(현 헤이스팅스 네브래스터니 농장)가 남아있다.구미위원회 관련 유적은 뉴욕에 있다. 그밖에 프랑스 파리에는 평화회의 대표관과 임시정부 파리통신국,네덜란드에는 ‘헤이그밀사’ 가운데 한사람인 이준 열사의 묘역과 데용호텔이 항일관련 유적지로 기록할 만하다.일본에는 2·8독립선언의 현장인 도쿄기독교청년회관과 김지섭·이봉창의사의 의거현장인 도쿄 궁성의 앵전문과 이중교 일대,즉 일본의 최심장부가 바로 항일유적지인 셈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한국 古미술 특별경매전

    사단법인 한국고미술협회(회장 김종춘)는 15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서초동한국고미술상설전시관에서 ‘새천년한국고미술 특별경매전’을 연다. 출품작은 청자관음보살입상,청동초두,금동삼존불입상,고종황제어진,청동기시대의 홍도(紅陶),조선시대 화가 허주 이징의 이금(泥金,아교풀에 갠 금박가루)산수도 등 도자기와 불상,민속품,서화 1,500여점.이 가운데 특히 고려시대 청자관음보살입상은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겉옷은 통견의(通肩衣)를 입고 양손에는 향통(香筒)으로 보이는 짧은 막대모양통을 쥐고 있는 색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불상보다는 무속상으로서의 관음보살상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이번 전시에는 연상(硯床),경상(經床),서안(書案),지함(紙函),퇴침(退枕) 등 조상들의 생활정서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도 많이 나와 있다. 고미술협회는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에 이르는 이 작품들을 23일 오후2시 경매할 예정이다.고미술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15일부터는 인터넷사이트(www.daboseong.co.kr)를 통한 사이버전시도 마련한다.(02)3487-3900.
  • “팔레스타인에 다국적군 배치”

    [예루살렘·라말라(서안지구) AP AFP 연합] 팔레스타인은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 주재로 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릴 예정인 팔레스타인-이스라엘간 중동평화 정상회담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다국적군이나 유엔이 운영하는 군을 구성,배치하는 방안을 요구할 것이라고 야세르 아베드 라보 팔레스타인 공보장관이 9일 밝혔다. 라보 장관은 정상회담을 이틀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정상회담에서 어떤 방안이 합의되더라도 이 방안을 팔레스타인 자치구역 내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주민투표에 부칠 것이라고 말했다.
  • 美 중동평화 ‘마지막 도박’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교착상태에 빠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평화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22년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역사적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을 이끌어냈던 캠프 데이비드에서 3국 중동정상회담을 갖기로 한 것이다. 현재로서는 양쪽 모두 11일 회담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거듭된 협상에도 불구하고 주요 쟁점들을 둘러싼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고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또 레임덕에 빠진 미국 대통령의 말이 제대로 먹혀들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하다.절반의 성공 가능성만 보고 마련된 이번회담은 클린턴 대통령의 ‘도박’에 비유될 만큼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배경] 중동평화협상이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달았기 때문이다.지난달말 중동지역을 방문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3국 정상회담 개최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그러나 1주일 사이에 사태가 급박하게돌아갔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2일 평화협상 타결 여부와 관계없이 최종협상 타결시한인 9월13일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겠다고 발표했다.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독립선언을 강행할 경우 요르단강 서안을 합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저지하겠다는 의사로최악의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임기를 일곱달밖에 남겨놓지 않은 클린턴 대통령은 중동평화를 자신의 외교치적으로 남기고 싶어한다.그러나 최근까지 계속됐던 바라크,아라파트와의개별회담을 통해 양쪽의 팽팽한 이견만 재확인하고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그는 “회동을 미루거나 교착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대안이 될수 없다”며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최선이자 유일한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전망]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에서 평화협정이 타결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클린턴이 아무리 압력을 가하더라도 자치정부의 연장과 국경문제에 관한 클린턴 대통령의 절충안에 합의하는 정도로 그칠 것으로 본다.동예루살렘 문제와 팔레스타인 난민문제 등은 장기과제로 남겨놓을 가능성이 높다.바라크와 아라파트 모두 내부 반발로 더 이상 양보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않은 것도 협상에 암운을 드리운다.3국 중동정상회담 발표직후 이스라엘의연정 파트너들이 연정탈퇴를 선언했고 러시아 이민 출신의 나탄 샤란스키 이민자정당 당수는 내무장관직을 사퇴했다.이민자정당과 민족종교당의 연정탈퇴로 바라크 정부는 의회에서 과반에 미달,연정와해 위기에 몰렸다.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 관계자들도 성공하지 못할 회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평화협상에 합의해도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바라크 총리나 아라파트 수반 모두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입장이다.하지만 회담이 실패하면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감정만 악화돼 중동평화는 요원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극단적 전망까지 나온다.이번 회담에서 합의점 도출에실패,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11월 미 대선과 2월 취임 사이에 독립을 선언하고 이스라엘이 이에 보복을 취하며 차기 미국 대통령에게 어그러진 중동문제를 다시 수습하는 짐이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김균미기자 kmkim@
  • PLO “9월13일 독립선포”

    [가자시티 AFP AP 연합]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이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협상 시한인 오는 9월13일 이스라엘과의 협정 체결 여부에 관계없이 독립을 선포키로 했다. 이에 대해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이 일방적으로 독립을선포할 경우 요르단강서안 지역의 합병 등 이스라엘의 강력한 대응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미국도 일방적인 독립 선포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PLO는 2,3일 이틀간에 걸쳐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중앙위원회를 열고 독립선포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을 토의했다.
  • 숨죽인 화약고 中東에 가다/(하)가자지구

    [가자지구 남정호특파원]지중해 연안에 자리잡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구역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을 잇는 관문인 에레츠검문소는 ‘국경’ 통제가 삼엄하기 짝이 없다. 이스라엘의 황색 번호판을 단 차량들을 검문소 옆에 마련된 넓은 주차장에세워두고 이스라엘측 출입국관리소에서 출국증명서를 교부받아야 한다.출국증명서를 다시 이스라엘군 검문소에 제시,통과 허락을 받고 300m쯤 되는 중간지대를 걸어가면 팔레스타인 깃발이 날리는 팔레스타인 입국관리사무소가나타난다. 이곳에서 입국사증을 발부받은 후 다시 경찰 검문소를 통과하면 팔레스타인인 택시기사들이 몰려 있는 정류장에 닿는다.외지인이 나타나면 10여명의 택시기사들이 몰려들어 서로 손님을 차지하려고 아수라장을 연출한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삼손과 데릴라의 도시.2,000년 전부터 이집트와 시리아간의 교역통로로 그리스인,로마인,아랍인,터키인,영국인,이집트인과 이스라엘인들의 발자취가 어지럽던 고장이다.1994년부터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이된 가자지구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정부청사들과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의집무실,관저가 있다. 가자지구엔 100만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이 가운데 약40만명이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요르단강 서안지역 등지에서 쫓겨나거나 도망쳐 나온 난민들이다.가자지구에서 에레츠 검문소를 통과,매일 이스라엘 땅으로 노동을 하러 나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한때 8만명이 넘을때도 있었으나 95년 이후부터는 이스라엘측의 통제로 하루 평균 2만5,000명선으로 숫자가 격감했다.이들은 가자지구 경제의 기둥같은 존재들이다. 지난 50년 동안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가자지역의 생활상.“가자지구에는시간이 정지해 있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가난 속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듯,그들의 분노는 격렬한 데모로 나타나곤 한다. 가자시내 중심부에 있는 재학생 1만6,000명의 알 아자르 대학교 교정에서만난 정치학 전공의 알와디 살나(23)군은 기자에게 “학교 앞 단식농성장에가보자”고 했다.섭씨 32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텐트 안에는 84명이 이스라엘군에 체포돼 구속당해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석방을 호소하며 5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었다.농성자들의 가족과 친지들 100여명이 웅성거리는 속에서 대학생들은 “우리는 꼭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운다”고 엄지손가락을 펴며 고함을 질러댔다. 가자지구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천연의 관광도시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호텔 시설의 태부족과 출입의 부자유 때문에 관광객 대량유치가 쉽지 않다.현재 해안에는 팔레스타인 호텔,아담,크립,비치호텔 등 고급호텔들이 이미 세워져 있고 미국계 자본으로 로얄가자,초이스,원맨호텔 등 고급호텔들이 현재건축중이다. 가자지역 안에는 현재 유태인 정착촌이 20여개 형성돼 약 4,000여명의 이스라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구쉬 카티프라는 가자시 남쪽 지역에 주로 조성돼 있는 정착촌은 팔레스타인 독립국이 선포되는데 문제거리가 되고 있다. 가자지역 안의 행정과 경찰 업무 등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장하고 있지만 국경통제와 국방 등 안보 문제는 이스라엘측이 장악하고 있다.가자지구를 출입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출입허가를 얻어야 한다.같은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 지역 일부나 예루살렘 방문시에도 마찬가지이다.“우리는 감옥속에 있는 신세와 같다”는 호텔 로비에서 만난 전직교사 출신이라는 한 팔레스타인 노인의 말은 전체 가자주민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운동인 인티파다의 산실인 이 지역에 젖과 꿀이 흐르는 날은 언제쯤 올 것인지,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창설되는 날은 언제쯤일까.
  •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정부는 하반기에도 우리 경제가 견실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안정기조를 바탕으로 금융·기업구조개혁을 차질없이 시행하기로 했다. ◆안정성장 지속 상반기 성장률은 11%수준,하반기에는 6%수준을 기록해 연간성장률이 당초 예상치 6%선보다 높은 8%대에 이를 전망이다.내년에도 설비투자 증가와 건설투자 회복 등으로 6%수준의 성장이 예상된다.실업률은 활발한 창업과 기업의 인력수요 증가로 3.8% 수준을 유지,연간 4%안팎이 예상된다. ◆물가안정 주력 상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대비 1.5%내외에서안정되고 하반기에는 국제유가 불안에 따른 에너지요금,의보수가 등 공공요금 상승 등으로 2∼3% 상승,연평균 2.5%이내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물가안정을 위해 임금상승은 생산성 향상의 범위에서 이뤄지도록 한다.공공요금 인상요인은 공기업 경영혁신을 통해 최대한 흡수하되 불가피한 부분은 하반기에반영한다. ◆경상수지도 큰 걱정없다 수출은 하반기에 반도체,정보기술(IT) 산업의 수출호조로 13%,연간 18%안팎 증가할 전망이다.수입은 하반기에 24%,연간 34%내외에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경상수지는 상반기 50억달러,하반기 60억∼80억달러의 흑자가 발생,연간 100억∼120억달러의 흑자를 보일 것으로 추정된다. ◆저금리 기조 유지 통화는 물가안정 목표를 달성하는 범위에서 금융구조조정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신축적으로 운용한다.국채 발행물량을 신축적으로조정하고 채권인수 여력을 확대할수 있는 신상품 허용을 통해 장기금리 안정기조를 유지한다. ◆금융구조조정 가속 7월 중순까지 정부보유 은행주식 매각에 관한 기본전략을 발표해 금융구조조정의 불확실성을 제거한다.한투·대투 등 투신사의 경영을 조기에 정상화한다.투신사에 남아있는 부실채권은 추가 상각 등을 통해6월말까지 클린화한다. 금융지주회사법을 제정해 금융기관의 대형화와 겸업화를 촉진한다. ◆기업구조조정 8월중에 30대 그룹의 결합재무제표를 공시한다.모든 금융기관의 총신용공여 현황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대기업 신용위험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운용한다.금융기관이 사후관리 실태점검을 벌이고 대규모 화의·법정관리 기업도 경영실태를 종합점검해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은 조기퇴출을 유도한다. 손성진기자 sonsj@
  • 숨죽인 화약고 中東에 가다/ (상)레바논 접경 이스라엘 표정

    중동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시리아,레바논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유혈사태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중동 평화협정을 이끌어낸 공로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까지 배출해냈지만 평화는 여전히 정착되지 못한 채 겉돌고있다.레바논주둔 이스라엘군이 22년만에 전격 철수하던 지난달 말 본사 남정호 프랑크푸르트 특파원이 이스라엘과 레바논,시리아 등지를 찾았다.중동분쟁의 배경과 쟁점,남특파원의 현지 르포를 3차례에 걸쳐 싣는다. [메툴라(이스라엘) 남정호특파원] 예루살렘에서 90번 국도를 따라 레바논과접경한 이스라엘 최북단 마을 메툴라로 북상하던 지난달 20일 하늘엔 짙은먹구름이 깔려 있었다.곧 닥칠 이스라엘군의 남부 레바논 지역 철군 후 다가올 북부 이스라엘 변경지역의 불안한 장래를 하늘마저 걱정하는 듯했다. 국경선 너머로부터 시도때도 없이 가해지던 헤즈볼라 게릴라들의 카추샤 포격과 총성은 사라졌다.그러나 접경지대 주민들 사이에 퍼져 있는 불안감은도처에서 느껴졌다.메툴라와 인근 휴양마을인 키리야트 쉬모나의 중간지역키부츠 등지에는 새로운 ‘임시 난민촌’이 형성돼 혼잡스러운 모습을 보였다.레바논 남부지역 민병대원 2,500여명과 그들의 일부 가족 등 6,000여명이이스라엘군의 철군 소식에 서둘러 도망쳐 나온 것이다.이들의 모습은 이스라엘군의 남부 레바논 철군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해 주고 있었다. 이스라엘 북부 레바논과의 접경지대에 사는 이스라엘 주민들중 상당수가 다른 곳으로 이주했으며 남은 사람들도 떠날 것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이스라엘군의 급작스런 철군으로 어느날 갑자기 헤즈볼라 게릴라들과 철조망을사이에 두고 마주 대하게 됨에 따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주민들의 마음을억누르기 때문이다. 키리야트 쉬모나에서 휴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오고 있다는 예후다 샤비트씨(45)는 “이제는 이 마을이 관광 휴양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면서자신도 가족들과 함께 좀더 안전한 남쪽지방으로 이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부 유럽 지역에서 고국으로 이주해온 부모를 따라 이스라엘땅에 돌아와이곳이 제2의 고향이 되어 살아왔다는 메툴라 주민 에풀라 추로프씨는 “이제 새삼스레 접적(接敵)지역에 살게 됐다는 두려움이 생긴다”고 밝혔다.30년 이상을 살아온 메툴라는 사실상 자신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그가 이처럼장래에 대해 두려움을 내비치는 것은 이스라엘군의 레바논지역 철군이 이들에게 얼마만큼의 쇼크를 주고 있는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처럼 메툴라나 키리야트 쉬모나 등 레바논 접경지대 주민들이 고향이나다름없는 정든 마을을 떠나려는 이유는 불안감 때문.지난 22년간 끊임없이무장공격을 감행해온 헤즈볼라 게릴라들이 “중동지역 최강인 이스라엘 군을레바논 영토에서 쫓아냈다”고 기고만장해 하는 마당에 언제 또다시 공격을감행해 올지 모른다는 걱정에 이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3∼24일 전격적으로 실시된 이스라엘군의 남부 레바논 철군으로 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메툴라는 인구 350여명의 이스라엘의 레바논 접경 최북단 정착(定着)촌이자 관광 휴양촌.레바논과 접경된 ‘굿 펜스’라는 검문소에 레바논 땅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돼있어 오랜 세월 관광객들이몰려들던 명소였고 남부지역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끓어 관광수입이 짭짤했던 부촌이었다.그러나 이제부터는 이스라엘 군당국이 신변 안전을 위해 이지역 출입을 통제할 방침이어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마을경제가 더욱 타격을받게 됐다. 지중해 연안의 레바논 접경지역 최북단 마을이자 관광 명소인 로쉬 하니크라와 모래사장,수영장으로 유명한 나하리야도 사정은 마찬가지.인근의 악지브 국립공원과 함께 로쉬 하니크라 해상 동굴은 연간 수만명의 관광객들을끌어모아왔던 관광명소.그러나 이제 적들이 코앞까지 다가오게 된 마당이라사정은 달라지고 있다. 지중해와 접해있는 로쉬 하니크라에서 레바논과 맞닿아 있는 국경지대의 899번 도로를 따라 북부지역의 키리야트 쉬모나로 향하던 중간중간에 들러본쉐툴라와 나투라라는 변경 마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스라엘군의 레바논 남부지역 철군 이후 주민들의 불안감은 어느때보다 고조돼 있었다. 오랜 준비후에 이뤄진 철군이었지만 미국의 ‘사이공 철수’를 연상시켰던 ‘패주(敗走)’의 인상이 이스라엘 국민들 가슴에 깊이 심어졌다. 또 헤즈볼라 게릴라들에게 ‘짓밟힌 듯한’ 이스라엘의 자존심을 회복하는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따라서 레바논 남부지역에서의 이스라엘군의 철군과 맞바꾼 국경지대의 평화가 어떻게 이 지역 에서 정착되느냐는 세계가 지켜보는 ‘도박’이 됐다. jhn@. *이·팔 분쟁…50년간 전면전만 4차례. 구약성경에서 유대인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된 팔레스타인.하지만 이곳은 지구촌의 대표적인 화약고로서 젖과 꿀 대신 피로 물든 역사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과 반목은 과거 2,000년 동안 쌓인 역사적,정치적,종교적 배경에서 비롯됐다.이 기간동안 유대인과 아랍인은 4차례의 전면전과 수천번에 달하는 교전을 하면서 최근 50년래 1만5,000여명이 죽고 350만명의 난민이 발생해 서로에 대한 증오심은 깊어만 갔다. ■분쟁의 배경/ 유대인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팔레스타인에 정착,나라를 세웠으나 기원전 100년경 로마제국의 박해를받자 대부분 국외로 이주했다.그뒤부터 19세기 말까지 팔레스타인은 아랍인이 실질적인 주인이었다. 그러나 나라없는 설움이 뼈에 사무쳤던 유대인은 19세기 말 반유대주의가대두되자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뭉치기 시작했다.1917년 11월유대인의 국가건설을 지지하는 영국의 ‘밸푸어 선언’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그로부터 30년 뒤인 1948년 5월14일 유대인은벤 구리온을 초대 총리로 내세워 감격적인 독립선언과 함께 2,000년 동안의방랑생활을 끝내게 된다.반면 이때부터 팔레스타인인의 수난은 시작된다. 이스라엘은 국가 선포 다음날부터 시작된 1차 중동전쟁 등 4차례에 걸쳐 주변 아랍국과 전면전을 치러야 했으나 모두 이겨 당초보다 국토를 4배나 넓히는 성과를 얻었다.하지만 팔레스타인인은 1차 중동전쟁때 발생한 난민을 포함,모두 350만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주변 국가에서 떠돌이 신세로 지내야하는 등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 ■평화의 싹 / 이슬람 과격분자의 테러와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이 되풀이되던팔레스타인에 평화의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은 93년 9월13일 양측이 팔레스타인 자치 확대에 대한 원칙에 합의하면서부터.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이에 힘입어 이듬해 7월1일 자치정부 수립을 공식 선언했다.96년 1월에는 아라파트가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이스라엘은 또 98년 11월 요르단강 서안내주둔군 일부를 철군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유혈사태/ 이스라엘과 PLO는 평화정착의 노력이 진전을 보일 때마다 강경파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94년 2월 군복입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무차별 난사,95년 11월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의 암살,96년 3월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과격단체 하마스의 폭탄테러,99년1월 헤브론 총격전 등이 모두 평화의 악수를 나눈 직후에 나온 유혈사태였다. ■향후 전망/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미국의 중재로 지난 13일 평화협상을재개했으나 팔레스타인 죄수 석방 문제를 놓고 의견 차이를 보이다 14일에는급기야 협상을 일시 중단했다.또 하페즈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10일갑자기 사망,중동의 중심축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시리아로넘어가 팔레스타인 문제가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여러 걸림돌에도 불구,지난해 5월 당선된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차기이스라엘 대통령으로 거론되는 시몬 페레스 전 총리가 평화정착에의 의지가강해 향후 전망은 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중동분쟁 일지.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 독립 선언. ■〃 5월15일 1차 중동전쟁. ■1956년 10월 2차 중동전쟁.이스라엘,시나이반도 점령. ■1967년 6월 3차 중동전쟁.이스라엘,골란고원·요르단강 서안·가자지구·동예루살렘 점령. ■1973년 10월 4차 중동전쟁. ■1978년 9월 이집트-이스라엘 캠프 데이비드 협정 체결. ■1982년 4월 이스라엘,시나이반도 이집트에 반환. ■1987년 12월 팔레스타인 인티파타(봉기) 시작. ■1993년 9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오슬로 평화협정 체결.양측상호 승인. ■1994년 5월 이스라엘,요르단강 서안의 예리코시 팔레스타인경찰에 이양. ■1995년 11월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암살. ■1996년 1월 아라파트 PLO의장,초대 대통령 당선. ■1998년 10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와이리버 평화협정 체결. ■1998년 11월 이스라엘,요르단강 서안내 주둔군 일부 철군. ■1999년 5월 에후드 바라크,이스라엘 총리로 당선. ■1999년 6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상회담 재개. ■2000년 1월 이스라엘-시리아 골란고원 반환 관련 평화협상 재개. ■〃 5월24일 이스라엘,남부 레바논에서 완전 철수.
  • 남북화해시대/ 부산 동북아 최대 환적항 될듯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경제협력이 활성화되면 부산항이 명실상부한 동북아지역 최대의 환적항으로,전북 군산항이 대북 경제교류의 중심항으로 부상할전망이다. 16일 부산지방해양수산청은 남북경협에 따라 부산항과 북한의 주요 항만을연결하는 정기항로가 개설되고 북한과의 철도 등 육상운송이 가능해질 경우러시아 화물은 물론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하는 유럽∼미주 물동량의 상당부분을 부산항에서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재 일본 서안과 중국 동부의 물동량만으로도 연간 20피트짜리컨테이너 163만여개의 환적화물을 처리하고 있는 부산항의 환적비율은 더욱늘어나게 된다. 러시아 물동량도 지난해의 경우 20피트 컨테이너 4만4,000여개로 전체 컨테이너 물동량의 5%가량에 그치고 있으나 북한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러시아물동량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항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연결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하는 환적화물의 경우 육상운송을 이용하게 되면 해상운송보다 컨테이너당 1,000달러가량의 운송비를 절감할 수 있어 화주와 선사들의 이용이 크게 증가할것으로 보인다. 부산∼보스토니치∼블라디보스토크 항로를 러시아선사와 공동 운항하고 있는 현대상선 관계자도 “부산에서 북한을 연결,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계되는 철도 등 육상운송 수단이 개설되면 시베리아철도를 이용한 미주∼유럽노선화물의 상당부분이 부산항에서 화물을 옮겨싣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군산시와 군산지방해양수산청은 남북한간의 경제교류가 본격화될 경우 군산항이 남북 경제교류의 중심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인천항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는데다 북한의 남포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군산항은 군장국가공단 조성 등으로 발전 잠재력이 풍부하고 전주와 익산,충남권 등의 배후도시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산항의 항만시설은 2만t급 9선석과 1만t급 2선석,5,000t급 1선석등 모두 12선석에 연간 하역능력은 760만t으로 연간 물동량 1,140만t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또한 현재 5부두에 건설중인 2만t급 4선석이 올해 완공되더라도 연간 물동량에 이르지 못한다. 이에 따라 1,100억원을 들여 2003년까지 건설할 예정인 2만t급 2선석과 5만t급 3선석 등 항만증설 사업이 앞당겨 추진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들 5선석이 완공되면 군산항의 연간 하역능력은 1,300만t으로 늘어 명실상부한 국제항으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으며 대북경제교류의 중심항으로발돋음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 이기철·전주 조승진기자 chuli@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3)잃어버린 먹거리

    고한 김일성 주석과 공개석상에서 또는 비공식으로 수십여 차례 만났던 얘기는 책 한권을 엮을만큼 많은 사연이 있지만,그동안 가장 미묘한 부분이기 때문에 한번도 제대로 써서 발표한 적은 없었다.몇 년 뒤의 회갑 때에 가서나회고록 안에서 정리를 해볼 작정이다. 맨 처음에 만났을 때에는 다 알려진 바와 같이 문익환 목사 일행과 동석한자리였다.접견 장소로 들어가는데 그가 집무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서있었다.체격이 크고 쇳소리가 나는 음성이었다.김 주석은 그의 젊은 시절의 사진들에서 보는 바와 마찬가지로 호남자의 인상이었다.완전한 백발은 아니고 회색의 반백 머리를 올백으로 넘겼는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눈썹이 짙고 길게 드리워져 있는 점이었다. 원형의 식탁에 모두 둘러 앉았는데 주석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문목사가 왼편에 내가 앉고 수행원들도 함께 앉았다.그는 당시에는 살아 계시던 문목사 노모의 안부도 물었고 용정이나 북간도 시절의 추억도 말했다.문목사는 만주용정에 살 때 집에 독립운동가들이 수많이 묵기도 하고 드나들기도 했는데안중근 의사도 모친이 대접해드린 일이 있다고 말했다. 김주석도 만주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중국 항일군들과 연대할 때에 중국인부락을 지나다가 군량을 보급 받거나 숙박하고 나서 돈이 없으면 간단한 차용증을 써주고 ‘조선인민혁명군 김사령’이라는 글을 남기곤 하였는데,중국혁명 이후에 옛날 지주들을 척결하면서 김사령의 차용증을 지닌 지주들은 거의 다 사면했다는 말이 있더라고 중국정부의 간부들 가운데서 자신과 가장가까웠던 주은래가 전하더라면서 웃었다.그는 특히 옛날 중국의 시 속에서나 꺼우리 라는 만주 지역 사람들의 성씨에도 나타나듯이 만주는 고구려의 옛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국의 서안을 비롯한 예전 고구려 땅에서 남에서는 ‘식혜’라고 하는 감주를 담가 먹는다는데 등소평이가 감주를 썩 좋아한다면서,그 너르고 기름진 땅을 우리 조상들이 국토로서 보존해내지 못했다고 아쉬워 하였다.그렇지만 함경북도 일대에는 한때 여진족이 살았다고 하면서 아오지 탄광의 아오지는 ‘불타는 돌’이란 여진 말이며,주을 온천의 주을은‘뜨거운 물’이라는 여진 말이라면서 인민들 중에도 예전 여진의 성을 가진 사람이 간혹 있어서 모두우리 식으로 고쳐 주었다고 했다. 일행 중의 누군가가 느닷없이 주석님 어머님이 전도부인이 아니셨느냐고 묻자 그는 잘 못들었다는 시늉으로 귓가에 손을 갖다 대며 되묻고나서 측근이모친께서 교회에 나가시지 않았느냐 하는 말씀이라고 설명해주자 웃으면서대답했다. 우리 오마니는 살기 힘드시니까 교회에 가서 주로 주무셨디…. 사실 주석의 외조부는 장로교의 목사였고 외삼촌은 장로였으며 부친도 장로교단 소속인 숭실학교를 다녔으며 모친도 ‘강반석’이란 성명인데 그 뜻은‘베델’이란 세례명에서 왔다고 한다. 이같이 나도 일찍이 개화한 집안 분위기를 나도 아는 터이고 당시 이북의 개화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기독교와 관련이 있는 게 흔한 일이었다.김주석의부친 김형직은 교회 식의 야학을 운영하면서 청년들을 모으고 민족주의적 독립운동을 하다가 나중에 러시아 혁명과 신문물에 접하면서 무산자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독립운동에 눈 뜨게 되는데 그때가 아마도 어린 김성주와 가족을 평양에 남겨두고 만주로 떠날 때가 아닌가 생각 되었다.북선지방의 근대주의자는 마르크시스트와 크리스천의 두 얼굴에서 비롯된다는 것은참으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나는 그 뒤에도 이미 작고했지만 당시에는 중국에 망명 중이던 캄보디아의 시아누크공 부처와 만찬을 함께했던 적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점심을 함께한 적이 몇번 있었다. 공식적인 만찬 자리에서 그는 언제나 활달하게 좌중에 음식을 권하고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한식과 중식이 서로 적당히 어우러진 듯한 정식이 코스로 나오곤 했는데 약주도 즐겨 들었다.만찬 술은 인삼주이거나 백두산 들쭉술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15도 짜리 들쭉술을 좋아했다.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내외도 들쭉술을 좋아해서 열 두 상자나 비행기편에 실어 보냈다고 했다.들쭉은제주도의 멀구슬처럼 새까맣고 동그란 일종의 들딸기라고 하는데 고원지대에서만 자란다고 한다.요즘에는 남에서도 북한산 들쭉술을 먹을 수 있지만 한정된 야생의 열매로 그 많은 물량을 감당할 수는없을테니 혼합주로 맛을 낸 것이 분명하다.진품 들쭉술은 약간 쌉싸름하고 조금 떫은 것이 진한 적포도주 비슷하면서도 매우 향기롭다.전에는 담배를 하루에 두 갑씩 피웠지만 주위에서 하도 말려서 겨우 끊었다고 한다.그는 점심 뒤에 한 시간씩 집무실옆의 방에서 오침을 한다고 말했다. 가 깊은 인상을 받은 어느 점심은 매우 소박했다.작은 메추리 다리를 몇 개먹고나서 국수가 나왔다.주석은 자신이 국수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은 두 끼만 국수를 먹어도 곧 질린다고 하지만,자기는 한 열흘은 먹을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국수를 담은 유리 대접을 내려다보니 면이 그야말로새까만 색이었다.콩물국수인 셈인데 하얀 콩물에 검은 국수가 잠겨있는 모양이 이색적이었다.주석이 다른 날처럼 음식 설명을 내게 해주었다. 이거이 언 감자 국수라고 하는 거요.일전에 독일의 작가 루이제 린저 여사가 왔을 때 독일에 감자 음식이 많은줄 아는데 이렇게 조리하는 방법은 아느냐고 했더니,얼린 감자로 요리하는 건 세계에서 조선밖에 없다고 하더군. 검정색‘언 감자 국수’의 면발은 찰지고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다.언 감자를 우려내어 녹말을 낸 다음에 끓는 물에다 국수를 뽑는다는데 차디찬 콩물에 말아 먹는다.위에는 검은 깨를 뿌리고 함경도식 갓김치를 얹어서 먹는다. 그가 음식의 유래를 내게 말해 주었다. 우리가 두만강 연안에서 항일 투쟁할 때에 인민들이 많이 도와 주었소.화전하는 인민들도 저이 먹을 것이 없는데 우리가 지나는 산길에다 표를 해두고감자를 묻어놓군 합네다.눈이 한 길이나 쌓이고 땅은 꽁꽁 얼어 붙어 있디. 감자를 파내면 시꺼멓게 얼어서 돌덩이야.근거지루 질머지구 가두,언 감자를 구워도 못먹고 삶아도 못먹어요.그때 왜놈들 청야작전이 철저해서 보급선을 멀리서 차단하고 있대서.얼어 죽거나 굶어 죽고 남은 빨치산들을 토벌하겠다는 소리요. 인민들이 준 것을 버려서는 안된다구 그때 함경도 출신 동무가 우려내서 국수 만드는 법을 생각해냈소.가난한 인민들은 다 살아갈 궁리를 하는 지혜가있소. 맹물에다 소금만 넣고 끓인 국수가 어찌나 맛이 있던지. 나중에 뉴욕에서 나는우연히 개마고원이라는 냉면 집에서 이 국수의 조리법을 듣게 된다.아는 사람에게 듣기로는 그 집의 물김치가 기가 막히게 시원하고 맛있다는 것이었다.그래서 찾아가 보니 북청에서 피난 나왔다가 미국으로 이민했다는 사람네 집이었다.과연 물김치가 일품이었다.무는 보통 물김치처럼 나박썰기가 아니라 길쭉 길쭉하고 얇게 썰었고 배추 잎도 그만한 크기로썰었는데 오이쪽이 간간이 떠 있다.얇게 채 썬 밤,대추,사과,배,쪽파,등속의 건더기가 알맞게 섞였고 역시 김치 국물이 한 대접이다.고춧가루를 채에 걸러서 탔는지 붉은 물이 들었지만,나중에 뉴욕에 왔던 한시해 부부장에게서들으니 진짜 개마고원 김치는 고춧가루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집의 할머니가 팔십이 다 된 분인데 ‘언 감자 국수’를 알고 있었다.함북지방의 화전민들이 곧잘 해먹는다는 것이다. 언 감자를 강판에 갈아 채에다 녹말을 내리는 것은 감자국수 해먹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반죽을 하여 국수틀에 넣고 끓는 물에 국수를 뺀다.국수를 찬물에 우릴 적에 손가락으로 세심하게 끈기를 씻어내어야 찰기가 더 좋다고한다. 콩물 내는 것은,물에 담갔다가 위로 뜨는 콩을 버리고 골라내어 비린 맛이가실 때 쯤까지 끓이다가 설컹할 적에 건진다.그래야만 콩의 고소한 맛이 살아 있다고 한다.믹서에 갈 적에는 물을 조금 붓거나 편리한 대로 두유를 함께 넣어도 맛있다.콩국의 맛을 내려면 땅콩이나 잣을 갈아서 넣어도 좋고 들깨나 참깨도 좋다.검은 참깨를 뿌리고 위에다 함경도식 갓김치를 얹어 먹는다.함경도 산야의 들갓은 길이가 짧막하고 줄기도 여리다.여기 갓김치는 전라도 식으로 젓갈을 전혀 쓰지 않아서 깊은 맛은 없는 대신에 쌉쌀하고 향긋한 갓의 냄새가 싱싱한 것이 특징이다.
  • 이·팔 최악 유혈충돌…중동평화 또 암운

    [예루살렘·라말라(요르단강 서안)AFP AP 연합]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영토에서 15일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경찰이 격렬한 총격전을 벌여 팔레스타인인 4명이 숨지고 양측에서 500여명이 부상하는 최악의 참사가 벌어져중동평화 앞날에 또다시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최근 4년만에 최악으로 꼽히는 이번 충돌은 52년전 이스라엘 건국으로 수십만명의 팔레스타인 유민이 발생한 ‘알-나크바(대재앙)’를 기념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전역에서 나흘째 계속되면서 발생했다. 시위에 참가한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1,600여명의 팔레스타인 죄수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이날 충돌은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시(市) 북쪽 베이트-엘 마을 부근에서 발생했다.지붕위의 팔레스타인 경찰과 도로 주변의 이스라엘 병사들이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팔레스타인 기자 등 민간인 수십명이 부상했다다. 또 요르단강 서안 북부의 나블루스 마을에서 벌어진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도중 팔레스타인 10대 소년 1명이 이스라엘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나블루스에서는 1,000여명의 시위대가 이스라엘 관할지역에 있는 요셉의 무덤주변에서 행진을 벌이면서 심야까지 충돌이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20대 팔레스타인청년 1명이 또 숨졌다. 이날 충돌로 이스라엘군 병사 6명이 부상하고 이 가운데 1명은 중상이라고이스라엘측은 밝혔다.이번 유혈 사태는 이스라엘 정부가 예루살렘 인근 마을3곳을 팔레스타인측에 넘겨주기로 하는 등 일련의 유화 제스처를 취한 가운데 발생해 평화협상 전도에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이스라엘 의회는 이날내각이 제출한 예루살렘 인근 3개 마을 이양안을 찬성 56,반대 48,기권 1표로 통과시켰다. 한편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수반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충돌에 우려를 표명하고 사태 확산을 막아주도록 요구했다.바라크 총리는 또 팔레스타인측이 이날 사건의 경위를 명확히밝힌 뒤에만 3개 마을을 이양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사태가 악화되자 데니스 로스 중동 특사를 다시 현지로 급파했으며양측에 폭력을 자제하도록 촉구했다.
  • 이·팔 4년만에 최악 총격전, 모두 1명 사망·200명 부상

    [예루살렘 AP AFP 연합]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경찰이 15일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영토내에서 4년만에 가장 격렬한 총격전을 벌여 양측에서 200여명 가까운 부상자가 발생하고 팔레스타인 10대 1명이 사망했다. 총격전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 등지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가 3일째 이어진 가운데 발생했다. 이날 이스라엘 내각은 아부 디스 마을 등 예루살렘 근처 요르단강 서안 마을 3곳을 팔레스타인측에 넘겨주기로 결정했으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교도소에 수감된 죄수 석방을 요구하면서 격렬한 시위를 전개,유혈충돌로 번졌다.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 (6)라빈 아라파트 회담

    *93년 이스라엘 - PLO 오슬로협정 체결. “이미 너무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렸다.전쟁터에서 죽어간 동료와 가족들을생각하면 만시지탄이다” 1993년 9월13일 미백악관.역사적 오슬로협정 테이블에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과 마주앉은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축사라기엔 엄숙한 한마디를 던졌다.이날 양국 정상이 체결한 오슬로협정은 결코화해할수 없을듯 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오랜 적대감을 끊고 이끌어낸 평화 총론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갈채를 받았다.그러나 협정시효가 훨씬지난 지금까지도 그 각론이 합의되지 않은채 유혈충돌 역시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중동평화의 가시밭길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평화의 청신호는 80년대 후반부터 찾아왔다.국제사회 압력과 극심한 경제난이 옥죄는 가운데 90년대초 소련의 붕괴는 그 지원에 의존하던 아랍 투쟁기구들로 하여금 노선 수정을 불가피하게 했다. 70년대 내내 반이스라엘 테러의 선봉에 섰던 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는 88년 임시 유엔총회 연설을통해 이스라엘 생존권 인정과 테러 포기를 선언,국제사회의 요구에 발맞췄다.이스라엘에도 92년 선거에서 라빈이 이끄는 노동당이 강경 리쿠드당을 대체,화해분위기가 무르익었다.오슬로 협정은 양국정상의 평화의지 외에도 이같은 유화정세의 산물이기도 했다. 양국 대표단이 노르웨이 오슬로에 모여 오랜 물밑회담끝에 선보인 협정문은당시까지의 중동관계로 미뤄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협정원칙(Declaration of principles;DOP)이라는 이름으로 공표된 문서는 △99년 5월까지 가자지구 및 요르단강 서안으로부터의 이스라엘 철군△이 지역에서의 팔레스타인 자치△자치 3년내 독립국가로서의 팔레스타인 지위 논의 등을 규정하고있다.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점령지를 돌려줄 뿐만 아니라 향후 독립국 건설까지도 인정하겠다는 것.협정문이 제시한 ‘영토와 평화의 교환’ 정신은 향후중동협상의 대원칙이 됐다. 오슬로협정 규정에 따라 라빈과 아라파트는 94,95년 1,2차 자치협정에 나란히 서명했다.양국 정상간에 직통전화가 놓이고 총선거를 거쳐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됐다.94년엔 요르단이 이스라엘과의 46년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평화협정에 조인,중동평화 도미노에 대한 예감으로 지구촌이들떴다. 그러나 94년 나란히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사회 갈채의 안쪽에서라빈과 아라파트는 국내 강경파의 거센 반발에 맞닥뜨려 진땀을 흘려야 했다.점령지에 정착중인 이스라엘인들의 반감이 극에 달했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역시 잊을만하면 폭탄테러를 자행,평화일정을 지연시켰다.결국 95년 11월라빈 총리가 반대파에 암살당하면서 한축을 잃은 중동평화호는 일탈이 불가피해졌다. 곧이어 집권한 강경 네타냐후 정권 아래서 오슬로 플랜은 19개월가량 정지되기도 했다.98년10월 와이리버 협정이 가까스로 체결됐으나 오슬로 시계에의하면 이미 이뤄졌어야 할 요르단강 서안 완전철군,팔레스타인 최종지위협정 등이 아직도 미완으로 남아있는 실정이다.이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또한번 정상간 회담에 의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손정숙기자 jssohn@. *라빈당시 이스라엘 총리. 중동평화의 정착을 위해 힘쓴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그의 오랜 군경력 때문에 ‘철권을 쥔 평화의 병사’,‘미스터 안보’로 불렸다. 1922년 예루살렘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카두리 농업고등학교를 마치고는 곧바로 하가나부대, 팔마치 부대를 돌며 군인으로서의 명성을 쌓아나갔다. 32세의 나이로 소장에 오르고 40세에 참모총장으로 진급, 67년의 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68년에는 26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주미대사로 임명되어 미국과 전략적 관계를 이끌어 내 대규모의 군사적 지원을 확보하기도 했다. 73년 귀국,74년에는 골다메이어 총리정부에 노동장관으로 입각했으며 같은해 6월 메이어의 사임으로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자란 최초의 총리로 취임했다. 그러나 77년 부인의 미국내 은행 불법계좌가 드러나 총리직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 84년에는 국방장관으로 복귀하여 레바논 전쟁을 종식시켰다. 92년 다시 총리가 된 뒤 주변 아랍국들과 평화협상에 힘을 기울여 93년 워싱턴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원칙에 합의하고 오슬로평화협정에 조인했다. 이공로로 페레스,아라파트와 함께 94년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으나 95년 11월 4일 평화집회를 마친 직후 극우파 유태인 청년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송하기자. *아라파트 당시 PLO의장.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야세르 아라파트는 1929년 부유한 무역상의 아들로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났다.4살 때 모친이 죽고 예루살렘의 삼촌 밑에서자랐다. 그러다 46년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가는 무기밀매를 하며민족주의자로 거듭난다.아랍과 이스라엘의 첫 전투 이후 UN은 팔레스타인에게 자치 정부를 약속하지만 이행되지 않고 갈 곳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박해를 받는다.이후 팔레스타인 동료들과 연계하여 64년 군소 저항단체들을 통합해 PLO(팔레스타인 해방 기구)를 창설한다. PLO는 게릴라전과 테러를 이스라엘에 행하여 많은 사상자와 피해를 입힌다. 그러나 대대적인 팔레스타인 길들이기에 나선 이스라엘 정부의 공격으로 요르단 본부를 빼앗기고 레바논으로 거점을 옮긴다.계속되는 테러와 마찰로 아라파트의 PLO는 세계의 불한당이 되었지만 72년 UN 옵저버 자격을 획득한다. 88년 모든 테러를 중지하고 평화를 지키겠다는 조건을 내세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을 요구, 그해 70개국의 승인을 얻었다. 90년 걸프 전쟁으로 신뢰도에 위기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93년 평화를 위한 기초 합의를 이스라엘 총리 라빈과 이루었다.96년 자치 수반으로 취임하여 98년 중동 평화의 결실이자 상징인 와이 리버 합의를 이끌어냈다. 황인철기자
  • 바라크·아라파트 전격회동 팔 최종지위협정 타결 논의

    [카이로 연합]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은 7일 밤(현지시간) 라말라에서 회담을 열어 난항을겪고 있는 팔레스타인 최종지위협상의 타결방안을 논의했다. 바라크 총리와 아라파트 수반은 2시간 가량 계속된 이날 회담에서 최종지위협정과 당면 현안 전반에 대해 협의했으며 지난 2일 중단된 최종지위협정 실무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 이스라엘 총리실이 성명을 통해 밝혔다. 성명은 회담이 “우호적이고 실무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으며 참석자들이모두생산적이고 유익한 것으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양측이 합의한 최종지위협정의 기본협정 타결시한(13일)을 불과 엿새 앞두고 열린 이날 회담에서두 지도자는 팔레스타인 국경선 문제와 난민귀환 등 최종지위협정의 주요 내용을 두루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지도자는 또 예루살렘 인근 마을 아부-디스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요르단강서안 3차 철군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관측된다.이스라엘은 지난주 협상에서 요르단강 서안의 66% 지역을 영토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지도를 제시했으나 팔레스타인측은 이에 반발,회담장에서 철수했다. 양측은 다음 실무협상을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비밀 장소에서 열기로 했으나 양측간의 뚜렷한 이견이 해소되지 않는 한 13일로 정해진 기본협정 타결시한을 지키기는 어려우며 타결시한이 6월말 또는 7월까지로 연기될 것이란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하페즈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8일카이로에서 회담을 열어 중동평화협상 전반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라고 이집트 관리들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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